올해 개봉한 유지영 감독의 독립영화 <수성못>. 이 영화는 서울공화국 아래 지방에서 살아가는 ‘편입 딸’의 곤궁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20대 초반 딸은 대구에서 유원지로 유명한 수성못에서 알바를 하며 서울 소재 대학에 편입 준비를 하고 있다. 대구에는 청년이 할 만한 일이 없어 뭐라도 선택할 수 있는 서울에 가고 싶다.

엄마는 딸이 멀쩡히 잘 다니던 지방대를 때려치우고 되지도 않는 서울타령을 하고 있어 속이 잔뜩 상해 있다. 이왕 공부하려면 공무원 준비나 할 것이지, 철딱서니 없는 딸은 허파에 바람이 들어 서울로 내뺄 생각만 한다. 뭐라고 하고 싶지만 80만원 받으며 고달프게 일하는 딸이 안타까워 차마 입도 못 뗀다. 먹고사느라 ‘근로’하기 바빠 딸을 관리경영하기는커녕 변변히 돌봐주지도 못해 이 지경에 이른 것 같아 미안하다.

딸은 사실 알바 대신 편입 공부에만 몰두하고 싶다. 집에 손을 벌려야 하는데, 차마 못한다. 평생 가족밖에 모르고 ‘성실하게’ 살았음에도 자신을 뒷받침할 능력이 안되는 부모가 측은해서다. 이대로 지방에서 살아가다가는 부모 꼴 난다. 어서 집을 떠나 서울로 가자. 우선 편입 시험에 붙어야 한다. 알바하는 틈틈이 짬을 내 ‘딸딸딸’ 영어 단어를 외우지만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적당히 치열하게’ 공부하기에 실패할 것이 뻔해 보인다.

식탁에 둘러앉은 딸과 엄마는 여간해서 대화하지 않는다. 대신 서로를 연민한다. 이 연민의 공동체는 곪아터지기 직전의 종기처럼 잔뜩 부풀어 올라 척 봐도 위태위태하다. 뾰족한 말 한마디만 주고받아도 서로 깊은 내상을 입는다.

어느 날 집에 들어왔다 자기 방을 치우고 있는 엄마를 발견한 딸. 왜 허락도 없이 남의 방에 들어와 개인 물품을 함부로 만지냐며 소리소리 지른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 딸이 못마땅했던 엄마.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니가 지금 하는 게 우리 집 형편에 맞나, 엉? 남들은 졸업해가 다들 취직하는데, 뭔데 그래, 다 늦게 학교 간다고 이 난리고?”

‘나만의 방’을 침범당해 잔뜩 화가 난 딸은 뜬금없는 편입 얘기에 켜켜이 쌓인 불만을 토해낸다.

“내가 엄마한테 뭐 도와달라고 그랬나? 뭐 해준 것도 없으면서 왜 참견인데?”

자신도 내팽개치고 가족 돌봄 노동에만 매달려온 엄마는 기가 차다.

“와, 니는 부모가 해준 것도 없으면 부모노릇도 하지 마라 이건가? 오냐, 그래. 니는 돈 없는 부모가 우습다 이거지? 엉? 천박한 년!”

“뭐? 천박? 와, 어이없다, 씨.”

엄마가 딸에게, 딸이 엄마에게 욕질을 해대는 지방사회. 엄마가 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물어뜯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어디서 맨날 공부타령이야, 이 미친년이. 집이 하숙집인 줄 아나? 나가!”

딸도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없는 집구석에 태어나서 쌔빠지게 일하면서 공부해도 고생한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주제에 부모는 무슨 부모. 있으라케도 나간다, 알겠나?”

딸은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어디 갈 데는 있는가? 영화는 서울에 편입 시험 보러 간 딸이 지하철역에서 낯선 남자에게 뺨 맞고 지갑 뺏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방 청년이 서울로 올라가 ‘특별’시민에게 갑질당하는 현장을 은유적으로 그린 셈이다.

‘탈지방민’은 설사 서울 편입에 가까스로 성공한다 해도 우선 주거비와 생활비, 등록금에 허리가 휜다. 게다가 지방대 출신이라고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는다.

현재 지방자치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지방자치는 단순히 중앙 자원을 지방에 분산시키는 행정 절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에토스다. ‘편입 딸의 적당주의’와 ‘공무원 엄마의 성실주의’가 뒤범벅된 연민의 공동체가 지방의 에토스를 지배하는 한, 결단코 희망이 없다. 연민을 후벼 파면 바로 증오가 폭발할까 두려워 서로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처참한 현실. 영화는 섣불리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우선 고발한다. 침묵의 카르텔이 똬리를 튼 사이 쾌적한 유원지 수성못이 아래로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다고.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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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한 마리 날아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한반도를 엄습했던 전쟁의 공포를 생각해보면 불과 일 년 만에 천지개벽할 소식이 줄을 잇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야당이 선거 전략을 비롯해 당의 정체성까지 고심하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당 대표라는 중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지난 5월2일 창원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홍준표 대표는 손팻말 시위를 하던 이들을 보고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고 발언해서 또다시 막말이 화제에 올랐다. 홍 대표의 창원 빨갱이 발언을 접하자 예전에 읽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1958년 9월15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왜 국민을 억지로 공산당으로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이 게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설이 게재되었던 이유는 당시 삼천포 전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극우 인사 사백삼십팔명이 자유당 중앙당부와 대법원에 “삼천포 오만여 시민 중에 그 팔할(八割)에 해당하는 사만여명이 적색분자”이고, “민의원 이재현씨는 현재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진보당원”이며 “삼천포는 불원간 ‘제2의 모스크바’가 될 듯하니 이들을 조치하여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사천시의 일부가 되었지만, 삼천포는 고려 성종 때 조세미를 수송하는 조세창(漕稅倉)이 설치되면서 항구로 발전했다. 1931년 사천군 삼천포읍이 되었지만, 인근의 사천군, 고성군, 남해군보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시 승격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1956년 당시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정갑주(鄭甲柱)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삼천포를 어렵게 시로 승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2년 후인 1958년 5월2일에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이재현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밀려 5827표를 얻는 데 그쳐 2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도대체 삼천포는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의 통치 아래 있는 한 도시 시민의 팔할이 공산당이라고 하면 그 도시를 다스리고 있는 행정기관은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사실은 “삼천포 시민들이 자유당의 공천자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에서 보수정치세력이 정권 안보를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한마디가 바로 ‘빨갱이’라는 호명이었다. 이것이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는 까닭은 고발하기는 쉽고 변호하기는 어려워서 부당한 권력이 사회를 통제하는 데 언제나 유용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한편으로 남한의 우월성과 체제경쟁 승리를 자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이 이념적으로 취약하다며 위기의식을 부풀려왔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모호한 존재들을 색출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낸 세월이 70년이다.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란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제 선거에서 패배라도 하면 다른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은 죄다 빨갱이가 될 판이다. 오늘날 홍준표 대표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진영의 자화상은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퇴행을 거듭하여 큰 틀에서나마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어느덧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조차 진부하게 들리는 시대다. 지난 세기말 베를린 장벽에서 시작한 냉전 해체의 바람이 거의 30년의 세월이 걸려 이제야 극동(極東)의 판문점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수의 참모습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그런 보수가 필요할 때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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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국회에서 감정노동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감정노동 논의 10년 만의 결실이다. 법안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하나 그나마 촛불혁명 덕분에 가능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 감정노동을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때마침 작년 5월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와 노동부에 감정노동 개념을 공식화하고 감정노동자 보호조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감정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007년 감정노동 해결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첫 간담회 자리가 기억에 선하다. 당시 한 관계부처 공무원의 “이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라는 발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주무 부처 공무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책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취업자 가운데 약 740만명이 감정노동자로 분류된다. 그들에게 제조업 중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실효성이 없었다.

감정노동이란 용어는 1983년 앨리 러셀 혹실드의 <관리된 마음>이라는 책에서 제기된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책에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소비자들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개별 기업과 조직에서는 고객에게 표출하는 감정적 서비스의 양과 질이 ‘매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매출이 인격’이라는 조직문화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고객에게 눈맞춤은 기본이고 무릎을 꿇고 서비스를 제공하게끔 한다. 그 순간 고객과 노동자들은 동등한 인간일 수 없다. 아무리 서비스라는 단어의 어원이 라틴어 ‘노예’(servus)에서 출발했더라도 강요된 서비스는 비인간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노동자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노동 문제는 감정노동 그 자체보다 감정부조화가 핵심이다. 감정부조화는 실제 감정과 겉으로 표출하는 감정 사이의 격차인데, 외적 현상으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과 같은 건강장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예방과 사후관리 필요성이 제기된 지 오래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11곳의 지자체에서는 감정노동자 보호 조례가 제정되었다. 과거와 달리 노동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서울시는 감정노동 조례와 정책 이후 감정노동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만들었다.

감정노동 교육 의무화나 시민홍보 등 각 영역별 보호조치를 구체화했다. 대표적으로 폭언이나 성희롱 같은 위험이 발생할 경우 일터에서 벗어날 권리와 같은 업무중지권을 명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 또 심리적인 휴식이 필요할 때 적정휴식을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상품화된 노동이 아니라 인간중심적 노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의 정책이다. 무엇보다 조직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감정노동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조사관’ 신설은 의미가 있다.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과 등을 지시함으로써 노동자에게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EU)은 노동자와 고객 간의 업무 수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중대한 업무상 재해로 구분한다. 독일은 노사정 세 주체가 “노동세계에서의 심리적 건강을 위한 공동 선언”을 한 바 있다.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상시적인 상담 창구를 열어 놓고, 해마다 전국적인 토론회를 개최하고 감시자 역할과 정책제안도 한다. 인간의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유물이자 반사회적 노동형태인 과도한 감정노동은 없애야 한다는 취지다. 앞으로 감정노동자들의 일이 ‘욕먹고, 낭비적인 일’이 아니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도 노사정이 함께 지혜를 모아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사회적 대화와 전략을 갖출 시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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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어떤 당의 후보만 되면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런 지지도는 그 정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상대당의 급격한 몰락과 10여년 만에 멀쩡한 대통령이 국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좀 잘해달라는 애절한 염원이 지지도로 이어진 것이기에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피땀 어린 희생과 노력으로 얻은 권력을 낭비해버리지는 않을지 불안하다.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대통령이 탄핵되니 마니 하는 얘기들이 오고 갈 무렵 그 당시 제1야당의 당직자를 사석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대화 중에 현직 광역단체장에 대한 거취 문제가 나왔다. 그의 기반은 시민사회였기에 당내 세력은 약했지만,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을 이겨내고 연임에 성공하였다. 그를 두고 “다시 지방선거에 나온다면 염치가 없는 거지. 그 자리를 A도 노리고 B도 노린다는 얘기가 있는데”라는 얘기를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방선출직은 당내인사가 돌아가면서 차지하는 자리, 좀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 거쳐 가는 자리에 불과하다는 저급한 인식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 4월1일부터 이틀간, 서울의 한 기초지자체의 지역언론에서 그 당의 예비후보 중 누가 그 지자체의 후보로 적당한지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결과를 살펴보면, 상위 3인의 지지율은 C 19.1%, D 9.0%, E 8.6%였다. 아직 지지자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이 가는 사람을 질문한 결과는 C 21.7%, D 5.6%, E 3.0%였다. 후보가 여섯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C에 대한 지지도가 결코 작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C는 컷오프에서 탈락하여 경선에조차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경선은 D와 E가 치른다.

여론조사가 절대적 기준일 수도 없고, 컷오프 과정에서 C에 대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심사과정이 비공개여서 어떤 이유로 C가 탈락하였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만약 당의 지지율이 아직도 지지부진했다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지역에서 여론조사 결과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C를 경선기회도 주지 않고 쉽게 탈락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여겨진다.

재심을 청구한 C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가 문제가 된 듯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의 정당, 구성원의 충성도를 저울질하여 자리를 내주는 정당, 그래서 공당으로 보기 어려운 당이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은 떡 주듯이 아무에게나 베풀 수 있는 하찮은 자리가 아니다. 주민의 생활개선을 위해서는 대통령보다도 중요한 자리일 수 있다. 그간 사리사욕만 채우는 선출직이 적지 않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감당해야만 했다. 어떤 기초지자체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공공매입임대주택이 공급되지 않기도 하였다. 공공매입임대주택의 배정을 요청하고 입주자를 선정하는 권한이 기초단체장에게 있는데, 못사는 사람들이 자기 관할구역에 들어오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풀뿌리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주민자치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C는 중간지원조직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자치의 확대를 위한 활동을 오랜 기간 지속하여 왔다. 하지만 기초지자체의 협조가 없으면 주민자치의 확대가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초단체장에 도전하기로 다짐했다는 얘기를 2년 전에 들었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를 했었다. 우리 사회의 정치구조를 고려할 때 당내 기반이 없는 C가 경선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니 안타깝기도 하고, 다시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단체장을 꿈꿔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막막할 뿐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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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7일자 지면기사 -

핀란드가 지난 2년간 진행해 온 ‘기본소득 실험’을 중지하기로 했다. 이를 놓고 보수 매체들에서는 “공짜 돈을 나누어주는 복지과잉의 처절한 실패”라는 이념 공세를 펼치고 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에 대한 오해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핀란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중지하기로 한 것은 그것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실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므로, 거기에서 나오는 각종 데이터의 본격적인 수합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고 그 최종적인 평가와 판단도 아직 전혀 나온 바가 없다. 이 실험은 본래 끝나기로 한 시점에서 그냥 더 이상 연장되지 않고(이것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적 부담 때문이라는 진단은 있다) 정상적으로 종료되는 것뿐, ‘실패’ 때문에 중지되는 것이 아니다.

둘째, 이 핀란드의 실험은 사실 ‘기본소득 실험’이 아니었다. 단지 기존의 실업수당이 만들어내는 ‘복지 함정’ 혹은 ‘실업 함정’을 극복하고 취업률을 올릴 수 있는 대안적인 방식에 대한 실험이었을 뿐이다. 이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며, 대부분의 산업 국가에서는 직장을 잃은 이에게 혹은 극빈 상태에 처한 이들에게 일정한 수당을 지급하게 되어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업자·극빈자에게만 지급된다는 조건이 붙어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그 수급자가 취직하여 소득이 생기면 지급이 중지되도록 되어 있는 게 종래의 제도였다.

얼핏 보면 너무나 상식적이고 온당한 이런 제도가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몇 십년간 노동시장에서 벌어진 근본적인 변화 때문이었다.

1970년대 이전의 고전적인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시장의 ‘완전 고용’ 상태가 하나의 규범적인 정상적 상태로 상정되었고, 실업자가 직장을 얻는다면 이는 곧 쉬운 말로 ‘정규직’ 노동자가 된다는 것으로 여겨졌다. 정규직 일자리를 얻어 자기 힘으로 번듯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국가에서 수당을 타먹는 삶을 더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테니, 취직하여 수급 자격을 잃는다는 것이 두려울 이유도, 아쉬울 이유도 없다.

하지만 요즘의 노동시장은 다르다. 일자리가 생겨봐야 월급 150만원짜리 그것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일자리만 잔뜩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는 게 좋은 선택일까? 그러면 지금 받고 있는 실업수당 등의 각종 복지 혜택 수급 자격이 사라지게 되는데? 총액으로 따져 볼 때 소득이 얼마 늘어나는 것도 아니며, 더 나은 경력으로 발전되기는커녕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일자리인데? 또 잘리고 나서 다시 복지 수당 신청하면 걸리는 시간과 비용과 그사이에 감수해야 할 위험은 또 얼마인가?

그러니 아주 확실하고 좋은 일자리가 생기기 전에는 웬만한 일자리로는 일을 하려고 들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요지부동의 상태에 빠지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이 선진국에서 큰 문제가 되어왔다. 특히 노키아 파산 이후로 높은 실업률로 골머리를 앓던 핀란드의 신임 보수정권이 사람들이 그러한 적은 보수의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도록 하여 실업률을 낮추는 방법으로 실험한 것이 이번에 ‘기본소득 실험’으로 잘못 알려졌던 것이다.

그래서 이 실험은 원래 보편적 성격을 생명으로 하는 기본소득과는 달리 오로지 실업자들만을 대상으로 삼았으며, 새로이 무슨 돈을 지급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선발된 이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설령 취직하여 추가적인 소득이 생긴다고 해도 기존에 지급하던 실업수당을 끊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뿐이다. 이러한 약속이 주어졌을 때 과연 사람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여 불안정한 작은 보수의 일자리라도 받아들이려 하는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이 실험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이 실험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실험은 예정대로 올해로 종료된다. 우리가 정작 생각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이들은 불안정하고 적은 보수의 일자리만 양산되는 것이 최근 노동시장의 현실임을 인정하고 여기에서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불안정해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알아서 경쟁력을 키우든가, 정규직이 되든가 하라는 각자 도생만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어떤 노력과 실험을 하고 있는가? 핀란드의 실험이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번의 여러 오보는 우리의 무지몽매와 한국 자본주의의 야수성을 드러냈을 뿐이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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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군인이다. 늘 용감하고, 잠들지 않으며, 적을 놓치지 않는다.” 로봇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인 지뢰를 평한 말이죠. 이렇게 효과적인 무기가 또 저렴하기까지 합니다. 지뢰 하나를 생산, 설치하는 데 싸게는 3달러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적은 다리를 잃고 목숨마저 잃을 수 있습니다. 인기가 있을 수밖에요. 1960년대 이후 세계 곳곳에 1억개가 넘는 지뢰가 설치되어왔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지뢰의 공포는 전쟁이 끝나도 쉬 가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문제죠. 숨겨진 지뢰 제거에는 하나에 300달러에서 1000달러나 듭니다. 비용이 많이 드니 뒷전으로 밀리기 쉽고, 이 때문에 민간인 희생이 커집니다. 밭을 일구다, 공을 차다 지뢰를 밟는 일이 끊이지 않습니다. 개인과 가정의 비극임은 물론 경제 개발에 큰 걸림돌이기도 하죠. 지뢰 제거는 그래서 인권의 문제이자 사회 발전의 당면 과제이기도 합니다.

한번 심어 놓으면 제거하기 힘든 것은 지뢰뿐 아닙니다. 비 올 때마다 한 뼘씩 솟아나는 대나무도 있고, 날마다 뿜어져 나오는 공장 굴뚝의 검은 연기도 있죠. 공포도 그렇습니다.

한국 사회 공포의 근원에는 좌우 대립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친일 세력은 해방과 더불어 몰락의 공포를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군정의 은혜를 입은 이들은 ‘빨갱이’에 대한 공포 때문에 부활하죠. 그 공포는 신앙이고 복음이었습니다. 사활이 달린 문제였으니 필사적으로 전파했죠. 한국전쟁으로 정권을 거의 잃을 뻔했던 이들은 자신도 공포를 마음 깊이 심었습니다. 그 공포가 깊어질수록 미국에 대한 애정은 깊어만 갔죠.

그래서 이들은 공화당, 민정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으로 이름도 바꾸고 얼굴도 바꿨지만, 친미, 반공 말고는 별 사상적 기반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죠. 그 공포만 지키면 권력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공포 장사는 또 얼마나 쉬웠던가요. 북한은 간간이 도발을 해주었고 필요하면 간첩사건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몸서리 치며 입을 닫고 눈을 감았습니다. 유럽에서도 북한 식당 들어가기 겁이 났고, 온라인에서도 종북이란 딱지가 붙을까 눈치를 봤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발전해도, K팝이 전 세계를 흔들어도 공포는 그렇게 떨치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 해방부터 이제껏 공포로 연명해온 자유한국당 대표의 최근 발언들은 하나도 놀랍지 않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위장평화쇼” “주사파들이 남북관계를 보는 눈”이라는 독설을 이어갔죠. ‘비핵화 논의’가 안되면 무의미하다며 투정부리다 논의가 되자 ‘북핵 폐기’가 아니라 소용없다며 생떼도 썼습니다. 극우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자의 정치쇼일 수도 있고 민심을 못 읽는 무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웃을 수만은 없죠. 우리 모두의 공포를 대변하는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그 공포를 걷어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촛불집회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서 공포를 극복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용기와 연대가 당장 해결책은 아니지만, 괴물에 대한 공포만큼은 이기게 해준다는 경험을 말이죠. 공포가 없어지면 괴물도 허수아비일 뿐임도 수의를 입은 전직 대통령을 통해 보았습니다.

남북 문제의 절반은 우리 마음속의 공포입니다. 그러니 용기와 남북 연대만 되살릴 수 있다면 문제는 뜻밖에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문재인·김정은 정상회담이 더더욱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만남보다 용기를, 그리고 연대에의 희망을 주었으니까요. 갈 길은 멀고 험합니다. 실패와 실망에도 대비해야죠. 하지만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걷어낸 것만으로도 큰 성과입니다.

그 질기고 오래된 공포를 없애는 참에 지뢰도 제거해야겠죠. 한반도에는 100만개도 넘는 지뢰가 묻혀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휴전선 지뢰 제거는 꼭 필요한 일이고 남북 간의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남과 북이 더 가까워지고 휴전선 일대가 진정한 평화의 영토가 될 수 있는 지름길이죠. 공포와 지뢰가 없어진 그 땅 너머로 우리의 아이들이 농구공을 주고받고 웃음을 이어갈 미래가 기다려집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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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동안 모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일했다. 의원의 바쁜 일정은 한동안 계속됐다. 어느 이른 봄, 토요일. 그날은 수행비서의 감기몸살로 내가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아침부터 경기도 부천·구리·안양·안산을 거쳐 수원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초행길이라 내비게이션을 켰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길 수차례, 계획한 시간이 조금씩 늦어졌다. 의원은 괜찮다고 위로했다. 주차할 땐 차에서 내려 뒤를 봐준다. 해가 질 무렵 수원에서 행사가 시작됐다. 의원은 늦게 끝날 것 같으니, 차키를 자신에게 주고 그냥 가라고 했다. 행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났고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니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의원과 나는 일상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한참을 대화하다 의원은 내가 오늘 저녁 약속이 있는데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의원은 차를 갓길 옆으로 붙이라고 했다. 나는 차를 세웠다. 의원은 뒷좌석 문을 열어둔 채 밖으로 나왔다. 나도 나오란다. 의원이 운전대를 잡았다. 나는 의원이 열어둔 뒷좌석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앉았다. 차가 잘 달렸다. 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확인했다. 의원은 자신이 젊었을 때 채소가게 하면서 트럭을 운전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난감했다. 어디까지 이러고 가야 하나…. 결국 의원은 약속 장소까지 나를 모셔다(?) 주었고 술도 함께 마셨다. 술값. 의원이 냈다. 1차 술자리가 마무리됐고 의원은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갔다.

의원과 전라남도 진도군으로 출장을 왔다. 그곳은 외지기도 했지만, 갑자기 온 터라 숙박할 곳을 예약하지 못했다. 일정을 마치고 간 곳은 하룻밤 3만원짜리 시골 모텔이었다. 방 두 개를 잡을 법도 한데 의원은 하나만 잡는다. 곰팡내 나는 좁은 방 그리고 침대 하나. 두 남자가 늦은 밤에 할 일이 뭐 있겠는가. 편의점에서 사 온 캔 맥주를 하나씩 마셨다. 나보고 먼저 씻으란다. 아니나 다를까. 의원은 내가 씻고 있는 동안, 침대와 텔레비전 사이 비좁은 바닥에 자신이 누울 자리를 골라놓고 이불까지 깔았다. 결국 나는 침대에서 잤다. 잘 잤다. 의원이 침대가 불편해서 그런 것인지, 혹시 집에 침대가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봤다. 댁에 침대가 있단다. 하기야 침대를 안 써도 비좁고 냄새나는 바닥에서 자고 싶은 사람이 있겠는가. 의원은 어려서부터 그의 아버님이 운영하시는 공동체에서 전쟁고아, 동네 부랑아들과 먹고 자며 함께 자랐다.

갑질. 대기업 회장 부인이 임신 중인 직원을 30분간 비를 맞고 서 있게 했단다. 그녀의 자녀들도 회사 직원들에게 수시로 폭언과 행패를 일삼았단다. 이러한 행태가 여기서 끝나겠는가. 그 대기업 사주 일가는 사익 편취 등 비리 의혹이 도마에 올라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소개한 5선 국회의원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대기업 창업주다. 정치를 시작하기 전에 회사 지분 전부를 사회에 환원했다. 개털이 된 의원은 자기 소유 집 한 채 없는 전세살이였다. 한번은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의원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의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서야 자신의 집이 생겼다.

한때 의원이 소유한 차량의 주행거리는 45만㎞였다. 그것도 추정치. 45만㎞에서 계측기가 멈추고도 수개월을 더 탔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만㎞. 보통 영업용 택시는 30만㎞, 자가용 승용차는 20만㎞ 전후에 폐차한다. 지금은 장기임대로 새 차를 타고 다닌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면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거기엔 그의 아버님이 그에게 가르치시던 글귀가 적혀 있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게 좋은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수업료 한 푼 안 내고 월급 받아가며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의원은 아침 일찍 신문을 읽는다. 이 글도 보시겠지. 한마디 할 것이다. “쓸데없는 짓을 했군.” 혼날 게 뻔하다. 당분간 전화 드리지 말아야겠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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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열린 팔레스타인 뮤직엑스포 행사(PMX2018)에 참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수도 라말라에 다녀왔다. 나는 오는 6월 서울과 철원에서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을 영국의 음악관계자들과 준비하고 있다. 이분들이 작년부터 팔레스타인 음악인들을 돕기 위해 행사를 만들었다고 하니, 상부상조 차원에서 간 것이다. 팔레스타인과 한반도, 분쟁의 역사적 조건은 서로 다르지만 평화를 위한 메시지는 서로 통하지 않을까 한다. 출국 직전에도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스라엘 군인 간 충돌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난 터라 내심 긴장하고 갔지만, 페스티벌이 열리는 라말라는 생각보다 안전하고 평온했다.물론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에서 라말라로 들어가기까지 몇 번의 검문검색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음악관계자들과 팔레스타인 난민캠프를 함께 탐방했다. 난민캠프로 가는 내내 길은 곡선주로의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리의 좌우 쪽 중 하나는 이스라엘 거주지와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분할하는 높은 벽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 함께 탑승했던 팔레스타인 출신이자 베를린에서 밴드활동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팔레스타인 영토인 웨스트뱅크 지역도 이제는 3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첫째, 팔레스타인 사람들만 살고 있는 지역, 둘째, 같이 살고 있는데 팔레스타인 거주자의 이동이 일부 제한된 곳, 셋째, 팔레스타인 지역이지만 이동할 때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으로요.”

1946년 이래 팔레스타인 영토는 갈수록 줄어들어서 이제는 웨스트뱅크 지역과 완전히 고립된 가자 지구만 남았는데, 이 지역조차도 팔레스타인 거주자들에게는 안전한 자신의 영토가 아니다. 벽으로 둘러싸인 곡선 주로를 몇 번 돌고 나니 이곳이 팔레스타인 지역인지, 이스라엘 지역인지 도무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1시간을 넘게 달려 난민캠프로 들어갔다.

난민캠프는 평소에 내가 상상한 판자촌이나 텐트촌은 아니었다. 벽과 창이 있는 온전한 집들로 촌락을 이루었고 작지만 난민들을 위한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집들은 대부분 난민들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좁은 골목을 걷다보면 수도 파이프에서 물이 새고, 배수가 안되는 곳도 있지만, 그곳은 분명 사람들이 사는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었다.

난민캠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청소년을 위한 커뮤니티센터였다. 특히 이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선보인 힙합 공연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단 한번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10여명의 아이들이 힙합 그룹을 만들어서 매일 연습을 한다고 한다. 적게는 8세에서 많게는 18세에 이르는 이 힙합 그룹 아이들은 비록 음향시설은 좋지 않았지만, 서로 마이크를 주고받으면서 스스로 만든 가사를 랩으로 열창했다. 나중에 이들을 가르친 선생님으로부터 랩의 메시지가 평화와 인권에 대한 것이라고 들었다. 공연이 끝나고 아이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나는 이 아이들을 우리가 6월에 준비하고 있는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에 초대하고 싶어졌다. 이 아이들이 전문 힙합 뮤지션들은 아니지만,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전 세계 음악인들이 모이는 뮤직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는 퍼포먼스를 펼친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 초대를 제안했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은 감격했다.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한반도 DMZ를 상상해본다.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생긴 높은 벽들은 철책으로 둘러싸인 한반도의 DMZ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것이 있다면 팔레스타인의 벽은 굴곡이 심한 반면, 한반도의 DMZ는 동서로 비교적 균일하게 뻗어있다. DMZ는 민간인이 들어갈 수 없어 더 위험해 보이지만, 팔레스타인의 벽은 이동을 일부 허용하기 때문에 분쟁의 상황에 따라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오늘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 종전 선언에 대한 합의안도 흘러나온다. 너무도 견고하고 상징적이었던 DMZ의 공간이 정말 말 그대로 무장해제되어 평화의 공간, 예술의 공간으로 될 날이 머지않을 듯하다. 팔레스타인에서 본 난민캠프에서 평화의 랩을 하던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은 지금 정상회담을 앞둔 한반도의 시간과 공간과 교차된다. 공포와 절망의 공간에서 희망의 시간을 보았던 그 난민캠프에서의 기억은 오늘 남북정상회담의 순간, 그리고 6월21일부터 열리는 DMZ 피스트레인 뮤직페스티벌의 순간으로 이어질 것이다. 나와 함께 환하게 웃었던 가장 어린 8세 래퍼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그들은 머지않아 이 무대에 설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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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다. 11년 만이다. 이전의 두 차례 정상회담(2000·6, 2007·10)과는 달리 이번 정상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과 북이, 나아가 북한과 미국이 함께 평화·공존·번영의 길로 새롭게 나아가느냐 아니면 위기와 혼란의 수렁으로 빠질 것인가를 가늠하는 변곡점이 만들어진다. 회담 의제의 핵심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러나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판이해질 수 있는 북한의 비핵화다.

북한 비핵화는 김씨 왕조 체제의 고뇌를 단단한 씨앗으로 품은 열매(핵무장)를 낱낱이 해체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돌이켜보면 핵동결과 동시에 경수로 건설을 시작하고 핵심부품 공급과 함께 핵폐기를 시작하는 것이 골자였던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로 비핵화의 문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2002년 10월 아들 부시 행정부가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고 북한이 시인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8년 만에 굳게 닫히고 말았다.

조명균 통일부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3월 29일 오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어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이 있고 나서 지금까지 여섯 차례나 핵실험을 거친 ‘열매’는 눈에 띄게 커지고, 무쇠처럼 단단해졌다. 북한은 2012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개정한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기했다. 비핵화 희망의 빛은 빠른 속도로 점멸했다. 무엇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2008·2~2017·5)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면서 평화로 가는 길은 먹물처럼 깜깜해졌다. 

정상회담 개최가 성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남·북·미 3국이 이제는 비핵화를 진행하고자 하는 ‘심리적’ 준비를 끝낸 것으로 보인다. 무력 충돌이 일어날 경우 어느 일방도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한국이 회담을 제안하고 중재하고 북한과 미국이 이에 응한 동기를 3자 모두가 약한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오히려 유연성을 내보인 것으로 동시에 ‘인식’했다는 증거다. 실제 북한과 미국 간 갈등은 불완전 정보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게임이므로 오인이 아닌 인식이라는 변수는 그 의미가 크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목표는 비핵화로 가는 데 잃어버렸던 시간과 단절되었던 신뢰 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진일보시키는 일이다. 하지만 남북 정상이 마련한 바구니에 양측의 희망사항들을 모두 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포괄적 절충이자 타협이다. 큰 틀에서 양국 정상이 합의하고 구체적인 사항은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한 다음 단계에서 살을 붙여 나아갈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을 필두로 관련국 모두가 각자 준비를 하고 있다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행동을 취해야 달성할 수 있는 정교한 협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미 사이에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일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과거 사례들은 비약(秘藥)이다. 1972년 2월 미국과 중공이 체결한 ‘상하이 공동 코뮈니케’도 참조했을 것이다. 미국이 약속한 대만 주둔 미군의 철수는 논외로 하더라도, 영토와 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상호 내정불간섭, 평등호혜, 평화공존 등 평화 5원칙이 트럼프와 김정은 간 합의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중국, 러시아 같은 강대국을 상대해 본 북한이기에 하는 말이다.

비핵화는 ‘약속의 땅’에 발을 들여놓는 일이다. 모세가 하느님과의 신의를 깨뜨려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북한 비핵화를 여태껏 해결하지 못한 주된 이유는 북·미 간 신뢰가 없는 적대적 관계였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김정은이 전격적으로 풍계리 핵시험장 폐쇄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동결을 선언한 것처럼 지금은 전회(轉回)의 순간이다. 최대 관심은 김정은이 혁명의 도시 평양 시내에 ‘제국주의 성조기’가 펄럭이는 상황을 용인하고, 트럼프 역시 ‘화염과 분노’를 삭이고 ‘북·미 공동 코뮈니케’에 서명할 것인가이다. 성공한다면 ‘비핵화’는 모름지기 진보의 단어가 될 것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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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진 교수가 작년에 펴낸 <신자유주의시대의 교육 풍경>은 사교육시장의 소비자이자 관리자인 ‘매니저 엄마’의 활약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이에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하는 기업가가 되라고 다그친다. 이에 발맞추어 매니저 엄마는 자녀의 자아를 기업가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자녀의 모든 것을 관리경영한다. 든든한 남성 부양자 덕분에 매니저 엄마가 계층상승을 위한 자녀교육에 몰입할 수 있다. “효율성과 경쟁을 중시하면서 ‘남성 부양자와 여성 전업주부’와 같은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강화하고 자녀의 (교육) 성공을 중시하는 ‘성별화된 세대 간 전략’을 통해 사회 이동의 가능성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저자는 이러한 신자유주의 모성 담론이 계급을 불문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보고한다.

나는 최근 몇 년 동안 지방대생과 그 부모를 연구하고 있는데 내가 수집한 자료에서는 이런 담론이 잘 통하지 않는다. 지방에서는 남편이 가족을 온전히 지원할 경제 능력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가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죽어라 일하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쓰러진다. 아내는 무능한 가부장 때문에 집 밖에 나가 임금 노동에 시달린다. 일 마치고 집에 와서도 ‘전업주부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다시 가사노동에 돌입한다. 중산층도 아니면서 가부장적 핵가족 모델을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려니 둘 다 과잉 노동에 죽을 맛이다. 그러는 사이 자녀들은 경영되기는커녕 돌봄 공백 상태에 빠져 살다 결국 지방대에 간다. 이런 상황에서 ‘가모장’은 자녀가 공무원이나 되었으면 하고 막연하게 바라는 ‘공무원 엄마’가 된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요즘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공무원 엄마가 볼 때 공무원이야말로 이 표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지방대생은 좀 괜찮다 싶은 사기업에 지원하면 서류전형부터 떨어진다. 공기업에서는 힘들게 1차 전형을 통과한다 해도 최종면접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공무원시험은 기회가 평등하게 열려있다. 시험 자체가 계량화, 표준화되어 있어 시험 과정도 공정하다. 얼마나 시간을 성실하게 투자했느냐가 관건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의롭지 못하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자아를 경쟁 밖에 놓는 것에 익숙한 지방대생은 애초부터 낮은 급수의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 그나마 돌봄 공백 상태에서 매사 ‘적당하게’ 살아왔기에 시험 준비도 느슨하게 한다. 어쩌다 공무원이 된다 해도 관료제 안에서 자율성 없는 조직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공무원 엄마는 자녀가 공무원이 되었으면 한다. 자녀가 자신과 같은 고된 삶 대신에 평범한 가정을 꾸려 살아가면 좋겠다. 하지만 이 바람은 사실상 자녀가 중산층 이상으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계층상승 언어’를 대놓고 사용할 수가 없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지방에서는 계층상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가 공무원이 되어 가늘지만 길고 안정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자녀에게 공무원이 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지 못한다. 지원해준 것이 변변찮아 오히려 미안할 따름이다. 자녀 역시 고생하는 부모를 보면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자이언티의 노래가 떠오른다. 아플까봐 가족끼리 걱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서로 아프게 하지 말자는 강렬한 상호 다짐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가족이 무리하게 요구할 때 나는 아프다. 시험에 붙을 자신이 없는데 공무원 되라고 막 요구하면 지방대 자녀가 아프다. 경제 지원 능력이 없는데 사교육시켜달라거나 서울에 가 취업 준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심하게 요구하면 공무원 엄마가 아프다. 잘못하다가는 관계 자체가 끝장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상대방의 요구에 적당히 맞춰주거나, 아니면 늘 하던 대로 성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상호 연민에 바탕을 둔 ‘자녀의 적당주의’와 ‘부모의 성실주의’가 서로를 증폭시킨다. 어쩌랴, 지방에 만연한 이 연민의 공동체를!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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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떤 나라, 어떤 시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나의 노력으로 선택할 수 없는 외부적이고 선천적인 요인들로 인해 우리 삶의 큰 줄기가 결정된다. 매 학기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에게 ‘역사 속의 나’라는 주제로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이 과제가 아니라 부탁인 이유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이자 누군가의 삶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제가 아니기에 학생 대부분은 자신의 생애를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반추한 짤막한 글을 제출한다. 나는 그들의 삶을 하나씩 읽고 이들을 학번 대신 존재로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힘겨웠을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대부분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났다. 어떤 학생은 국가 경제 붕괴로 가족이 해체되는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 배 속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적었다. 누군가는 부채 때문에 갈라선 부모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어린 시절 뇌리에 박힌 압류 딱지의 기억을 토로한다. 이들에게 외환위기가 경제적 고민을 상징한다면,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은 역사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생애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는 사건은 2014년 4월16일에 겪은 세월호 참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들을 ‘세월호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한 부모당 한두 명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마음껏 풍요를 누리며 자랐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에게는 검소함과 경제감각이 몸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알바’라 부르는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그가 자신의 시간을 최초로 팔 수 있었던 곳은 유명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안산의 작은 부품 공장이었다. 2013년 당시 최저시급이 4860원이었는데, 이보다 140원을 더 쳐주어 시간당 5000원을 받았다. 함께 일하는 외국인 이주 여성은 그보다 못한 시급이었지만, 해고당할까봐 최저임금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2013년 그는 비굴함을 배웠다고 적었다.

2014년 모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최저시급은 350원 올라 5210원이었지만, 3개월 수습 기간 동안 자체규정이란 명목으로 최저시급에서 500원을 떼어 시급 4710원으로 계산되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외모를 단정하게 하려고 15분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출근 등록 지문만은 정시에 찍도록 했다. 복장 규정에 따라 검은색 구두, 립스틱, 머리망이 필요했지만, 자비로 샀다. 3년이 지나 미지급된 임금이라며 30만원이 입금되었다. 누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당한 업무규정에 맞서 투쟁한 결과였다. 2016년 최저임금은 6030원이었지만, 동네 편의점 사장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 주정뱅이 아저씨들의 취미가 여자 알바생 괴롭히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주란 사람은 자신과 데이트해주면 대학 졸업까지 시켜준다는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2017년의 최저시급은 6470원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일엔 호프집, 주말엔 약국에서 알바를 했고, 성실함을 눈여겨본 교수가 일감을 주어 한 주에 3가지 일을 하기도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몸이 붓고, 피곤하여 좋아하는 책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학생이지만 강의시간엔 졸고, 일터에선 억지로 웃으며 버텨야 했다. 2018년 올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다. 세월호 사건 이전과 세월호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변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4년, 대한민국은 변했는가? 살아남은 세월호의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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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백화점 앞을 지나가다 보면 유명 브랜드들을 접하게 된다. 호기심에 백화점에 들어서면 명품 화장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대부분 글로벌 외국 기업의 제품이다. 샤넬, 에스티로더, 랑콤, 디올, 시세이도, 클라란스, 록시탕 등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다.  국내 백화점에는 미국과 프랑스에 본사를 둔 화장품 4사 브랜드 매장 수만 950개 정도 된다.

특히 샤넬은 7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전체 직원이 1100명을 넘는 대기업이다. 샤넬이 국내에 진출한 지는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샤넬의 경영전략은 지탄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인권 침해와 불성실한 노사관계 인식을 지적해야겠다.

10여년간 회사 매출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태다. 매장 판매직 5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며,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2018년 1년차 신입 직원의 통상임금을 확인해보니 월 170만원에 불과했다. 샤넬 매장 직원 10명 중 7명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니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현재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문제가 불거져 소송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백화점 매장의 노동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유통업 실태조사 결과 중 샤넬 내용은 충격적이다. 1주일 51.3시간 근무, 연차휴가 사용일 4.6일, 신입 직원 퇴사율 40%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몸이 아파도 매장에 일할 사람이 없어 출근한 경험이 67.8%나 되었다. 최근에는 임신 여성의 단축근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산한 직원도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은 10명도 채 안된다고 한다. 회사 규정과 업무 수칙은 더욱 황당하기만 하다. 손톱 길이부터 머리 모양과 색상까지 엄격하게 관리 지침으로 두고 있다. 아침에 메이크업부터 머리 모양까지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 30분 일찍 출근해야 한다.

기업의 고속 성장 그늘 속에 묵묵히 일했던 여성들. 지금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화점 샤넬 매장에 가면 낯선 복장의 판매원을 접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검은색 유니폼과 짙은 화장의 직원을 접할 수 있지만, 지금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바로 옆엔 “저희는 지금 쟁의행위 중입니다”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노동조합이 파업 중임을 알리는 팻말이다. 지난 4개월간 노사협상에서 월 6000원, 연간 7만2000원의 차이를 회사가 수용하지 않아 파업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샤넬이라는 기업이 고작 1년에 1인당 7만원의 비용을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샤넬은 연간 매출액이 약 1700억원으로 동종 업계 1위 브랜드다.

최근 파업 기간 중 일부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회사가 노조 탈퇴를 종용한 것이다. 회사는 지난 9일 노조 탈퇴자 소수를 대상으로 호텔에서 임금설명회를 개최했다. 노조 탈퇴자들은 소위 좋은 매장으로 올해 초 인사 이동된 바 있다. 노사 교섭과 파업 중에 흔치 않은 일이다. 회사가 노동조합의 조직 및 운영에 지배·개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노조가 현장을 확인하고 법적 절차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부당노동행위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위법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최근 언론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삼성처럼, 샤넬의 ‘노조 와해’ 시나리오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샤넬은 국내 최고의 ㄱ로펌이 법률 대리를 맡고 있기에 이런 추측을 해본다.

자국에서는 노동자 권리를 공화주의 정신처럼 중시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국민의 헌법적 권리는 무시하는 샤넬의 오만한 태도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최근 정부의 헌법 개정안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글로벌 샤넬의 민낯을 보고 있다. 전국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 “고객님도 응원해주세요”라는 샤넬 노동자들의 팻말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야 할 이유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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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일간지에 ‘여든 살 동생이 스무 살 오빠에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요즘 연구과제를 마무리하느라 다른 글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뭔가 깊은 사연이 담겨있을 듯한 제목에 끌려 기사를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묘비 앞에서 한 할머니가 오열하는 사진에 한동안 눈길을 거두기 어려웠다. “오라방, 올해가 마지막이여.” 고령의 할머니가 내년에 다시 묘소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에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졌다.

종조부 두 분이 4·3 때 희생되었다는 얘기를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별 느낌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4·3에 대해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냥 먼 옛날이야기처럼 넘기려 했던 거 같다.

그렇게 무심했던 사람이 오열하는 할머니의 사연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형제를 잃은 슬픔을 오래도록 안고 사셨을 할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아마 이런 게 ‘공감’일 것 같다.

제러미 리프킨은 800쪽이 넘는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두뇌과학과 아동발달학 분야에서 새로운 사실들이 발견되면서 인간이 본래 공격적이고 물질적이고 실리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오래된 믿음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며 인간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공감하는 종(種)”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가끔 공감을 전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들이 있다.

일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4.3 특별법 국회 통과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04.03 청와대사진기자단

여든 할머니가 스무 살 오빠의 묘비 앞에서 오열하던 그날, 같은 공간에 있었던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이런 논평을 하였다. “제주 4·3 추념식이 열리는 4월3일은 제주 양민들이 무고한 죽임을 당한 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좌익 무장 폭동이 개시된 날이다. 따라서 4월3일을 추념하는 것은 무고한 희생을 당한 양민들을 모욕하는 것이다.” 이를 듣는 순간 인간으로서 어찌 이런 말을 할까 싶어 화를 누르기 어려웠다. 그날만이라도, 수십만의 희생자와 그 유가족의 마음에 공감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2015년 4월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마치 보란 듯이 콜롬비아로 떠났다. 대통령이 없는 서울의 광화문에서는 경찰이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물대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콜롬비아에 도착한 박 전 대통령은 연단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르케스의 발언을 인용하며 “가슴을 가진 사람에게 망각은 어렵다”는 말을 하였다. 당시 이 말을 뉴스로 들었을 때, 자기 나라 국민과도 소통하지 못하면서 참 뻔뻔스럽다고 여겼다. 그가 국민과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한 결과가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간 자칭 보수라고 하는 인사들이 보여준 행동과 말은 그들의 공감 능력을 의심케 한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점점 잃어가는 청년들을 ‘이태백’이라고 조롱한 인사도 있었고,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적화통일에 대비한 용공세력’이라고 난데없는 비난을 퍼부은 인사도 있었다. 또 어떤 인사는 ‘진보정당은 앞으로도 노동자, 농민, 중소상공인 등 일하는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라는 말에 ‘김일성주의’라고 소리쳐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겠다는 말이 공감은커녕 비난을 받아야 한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는 “경찰은 미친개”라는 욕설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도 있다. 보수진영이 사회문제에 관해 일반 국민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듯하여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때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통령 당선을 이끌었던 보수진영에 대한 지지도는 20%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악재가 있었음에도 특정 지역에서는 과반 이상의 지지세를 유지하고 있으니 이나마 다행이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공감하는 법을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예전의 지지율을 얻기 힘들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보수는 그들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불행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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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살인은 미국 고질병입니다. 지난 2월 플로리다의 고등학교에서 한 범인이 쏜 총탄에 17명이 사망하며 충격을 줬지만, 그 충격이 무뎌지는 지경이죠. 네 명 이상이 희생되는 ‘총기 난사’가 거의 매일 일어납니다. 그런데도 총기 규제는 불가능한 게 현실입니다. 정치적으로 막강한 전국총기협회가 워싱턴 정가를 꽉 잡고 있는 게 주요 요인입니다. 총기 보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탓도 있죠. 총기에 익숙한 미국인의 정서도 한 요인입니다.

여기에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미국의 탄생 그 자체입니다. 미국 팽창은 원주민에 대한 폭력을 통해 이루어졌죠. 그 탓에 미국 전역에 퍼져있던 원주민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들의 피와 눈물이 뿌려지지 않은 곳이 없죠. 살인적 폭력이 미국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승자인 백인들이 총을 사랑할 수밖에요. 총기 폭력은 미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이 원죄를 씻지 않고서는 총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딱지 붙이기는 한국 고질병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추악하고 비열한 범죄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되 놀랍지는 않습니다. 이명박 시장 때 이미 많은 이가 그의 저열함을 눈치챘고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의심은 이미 ‘다스’를 향하고 있었죠. 그래도 우리는 이명박을 뽑았습니다. 입맛을 다시는 그의 등짝에 붙어있던 ‘현대건설 신화’라는 딱지와 ‘장로’라는 딱지 덕이었죠.

불행히도 한국 거리는 온통 딱지투성이입니다. 재벌을 옹호해도, 신자유주의를 추구해도 ‘진보’ 딱지는 민주당 이마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백인이면 ‘미국인’으로 떠받들고 흑인은 미국인이어도 ‘깜둥이’로 멸시하죠. 한국계 미국인은 ‘미국교포’이지만 한국계 중국인은 ‘조선족’입니다. 이 중 최고(?)의 딱지는 역시 ‘빨갱이’죠.

레드벨벳이 평양에서 공연한 2018년에도 제1야당은 사회주의 개헌저지 투쟁본부를 만들고 앉아있습니다. 누구는 윤상 평양공연 예술단 음악감독을 친북인사들과 엮는 웃지 못할 비난도 했죠. 보수정권 때에는 야당을 “종북세력의 숙주” “종북 연대”라면서 조롱했고 “북한 지령에 따른다” “차라리 월북하라”며 규탄했습니다. 2013년 박근혜 정부는 통합진보당을 빨갱이로 몰아 해산시키며 그 광기의 정점을 찍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빨갱이가 아니냐는 의심에 내내 시달려야 했습니다.

모든 딱지는 이성을 메마르게 합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는 비극과 비극을 넘나들었죠. 빨갱이 선동에 열을 올리며 이명박, 박근혜는 정부를 노리개로 썼습니다. 그 와중에 세월호는 가라앉았죠. 신군부 독재 정부는 저항하는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때리고, 감금하고, 고문했습니다. 안타깝게 죽어간 이는 박종철, 이한열만이 아니었죠. 그 독재 정권의 시작은 광주 학살이었습니다. 간첩으로 몰려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한둘이 아니었죠. 1975년 인혁당 사건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8명은 사형 확정 후 불과 18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이어졌습니다.

이명박이 수상해도 그냥 찍었듯, 우리는 쉬쉬하며 넘어갔습니다. 나의 안위가 당장 급했지만 그렇게라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 조그마한 딱지라도 하나 있어야 했죠. 권력은 금방 눈치를 챘습니다. 딱지만 붙여놓으면 사람들은 딴 곳만 쳐다본다는 것을요. 그 시작은 1948년이었습니다.

그해 4월3일, 400여명의 좌익 무장봉기가 제주도를 흔들었고 미 군정과 한국 정부는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이름으로 초토화 작전을 벌였습니다. 3만여명을 학살했고 마을도 불살라버렸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죠. 살아남은 이들도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을 감추고 침묵으로 버텼습니다. 이들의 피를 쏟고 태어난 대한민국 권력은 빨갱이 딱지에 중독됐죠. 그러니 제주의 피는 대한민국의 원죄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딴 곳만 쳐다보는 사이 뻔뻔한 세월이 흐르고 또 흘러 오늘까지 왔습니다. 제1야당 대표는 아직도 빨갱이 딱지 덧대기에 바쁩니다. 다행히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죠. 원죄를 씻지 않고서 우리는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명명백백히, 숨김없이 밝히는 일이 급합니다. 온전히 씻지 못할지도 모르죠. 그래서 더 급한 숙제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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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땐 몰랐다. 세월호 참사 당일. 나는 진도체육관에 있었다. 그곳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으로 가득 찼다. 첫날부터 정부관계자와 실종자 가족 간의 구조작업을 둘러싼 진실공방이 이어졌다. 자정을 조금 넘길 무렵. 50대 남성이 체육관 연단 앞, 자유발언을 위해 놓아두었던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한참을 흐느껴 울고 분노에 울던 남성이 목이 메어 던진 한마디는 “이게 나라냐”였다. 그땐 그 체육관 안, 작은 외침이 세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몰랐다. 말하기가 두렵다. 느낌이 생생하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의 한 장면, 대사가 뇌리를 스쳤다. “니들, 그 냄새를 맡아 본 적 있어? 새끼 잃은 부모 속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냐 이 말이여!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리 밖에까지 진동하는 거여!” 그 냄새는 정말 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게 나라냐’는 외침과 촛불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고,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을 위로했다.

#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공공의창·우리리서치는 최근 한국 사회 공공성지수 관련 여론조사를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필요성과 광화문촛불의 사회적 의미는 매우 높은 상관성(0.736)을 보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공공성 확대 요구는 계속되어 왔다. 공공성 개념은 그 차원과 영역이 너무나 다양하지만, 헤겔의 말처럼 모든 개념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는 듯하다. 한국 사회의 공공성은 보수정부 10년 동안, 투명·소통·정의·평등·안전·공유·인권 등의 가치실현을 위한 욕구에 목말랐다. 공공성 확대는 제도뿐만 아니라 국민인식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공공성 인식은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반영하며, 이는 제도 변화의 강도와 방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다원화된 한국 사회에서 국가·시장경제·시민사회로 분화되고 다시 연결되는 공공의 역할을 절차적 투명성과 내용적 공익성 등 6가지 지수로 나누어 조사했다. 지수마다 동의 여부를 묻는 방식으로 질문했다. 국가의 소통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질문한 ‘국가가 국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다’에 46%가, 국가의 정책편향성을 알아보기 위해 질문한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한다’에 30%가 동의했다. 또 시장의 공정경쟁 측면에서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에 29%가, 시장의 공평배분 측면에서 ‘누구나 노력한 만큼 정당한 대가를 받는다’에 25%가 동의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의 자율성, 즉 ‘우리 사회는 계층·지역·인종·종교 등에 의한 차별이 없는 사회’라는 데 23%만 동의했다. 담론권력의 공정성, 즉 ‘언론은 강자보다 약자를 잘 대변한다’엔 12%가 응답해 가장 낮은 동의율을 보였다. 응답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얻은 공공성지수는 없었고, 100점 만점에 평균 28점으로 평가되었다.

# 1인칭 숙제, 미투. 이번에는 촛불의 의미와 함께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물었다. ‘작년 광화문촛불이 부패한 권력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에 71%가 동의했다. 또 ‘미투 운동이 특정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일상적인 문제’라는 주장에 77%가 동의했다. 전자의 광화문촛불이 질문 그대로 부패한 정치·경제 권력에 보내는 국민의 심판인 반면, 후자의 미투 운동은 촛불이 촛불에게 던지는 우리 모두의 공적 과제인지도 모른다.

# 대한민국엔 희망이 있을까. 끝으로 두 개의 질문을 더 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한국 사회에서 가능하다고 보는지’를 물었다. 가능하다는 응답이 59%로 가능하지 않다는 응답(27%)보다 높게 나타났다. 또 ‘한국 사회는 정말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바뀔 수 있다는 응답이 53%로 바뀌지 못한다는 응답(26%)보다 높았다. 슬픈 현실과 절박한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가을곡식의 볕이 되고 어두운 밤의 별이 되어 불어오는 ‘천개의 바람’도 우리와 함께 희망이 될 것이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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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와 블랙리스트, 그것은 아마도 지금 곤경에 처한 예술의 상반된 두 얼굴일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국가가 예술가에게 자행한 가장 천박한 형태의 상징폭력이다. 미투는 권력을 가진 예술가가 그에게 종속된 공동체에 자행한 가장 참담한 형태의 젠더폭력에 맞선 상징저항이다. 블랙리스트는 정치적 이념의 잣대로 예술가를 배제한 국가의 검열 장치이다. 그것은 통치자의 지시에서 문화 관료들의 실행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를 냉전-이념의 틀로 구별지으려 했다는 점에서 유신정치의 회귀이며, 그것의 종말을 확증하는 징표이다. 블랙리스트는 보수 정치권력 10년 통치술의 무의식이며, 문화융성이라는 허울 좋은 기표의 무의식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는 보수 정치권력이 진보적 예술가들을 포획하려는 공작정치였던 것이다.

예술계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오랫동안 참담한 겨울을 보냈고, 그 공작정치가 폭로되면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공작’으로서 블랙리스트는 예술가를 옥죄는 배제의 장치이지만, ‘사건’으로서 블랙리스트는 저항의 계기였다. 예술가들이 광화문광장 캠핑촌에서 143일간 노숙농성을 하면서 국가검열과 배제에 맞서 저항했던 것은 오로지 블랙리스트라는 사건과 그 사건이 주는 예술의 총체적 파국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술 파국은 블랙리스트로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예술 파국의 최종 형태는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바로 젠더폭력이었다. 미투는 그것을 알게 해주었다. ‘운동’으로서 미투는 예술계에 오랫동안 신체화된 젠더폭력에 맞선 저항의 연대이면서, 블랙리스트라는 정치적 파국을 다시 내파시키는 ‘자기 부정’의 동력인 셈이다.

미투 운동이 블랙리스트 사건 이후에 촉발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것은 여혐 논쟁으로 환기된 젠더운동의 진화된 형태만은 아니다. 그것은 블랙리스트에 맞선 예술행동 안에 감추어진, 혹은 은폐된 젠더폭력의 폐부를 드러내는 예술운동의 진화된 형태이기도 하다. 미투 운동이 블랙리스트에 속한 진보적 남성 선배 예술가들을 향한 것도 그런 점에서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김어준 식의 음모론으로 귀결될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예술계 내 위계 권력의 상층부에서 성공가도를 달린 진보적 남성 예술가들이 같은 장 안에 함께 있었던 여성 후배들에게, 제자들에게 습관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했던 것은 단지 은폐되었을 뿐이다. 젠더폭력은 블랙리스트라는 훈장으로 은폐될 수 없다. 미투는 우리 안의 블랙리스트를 환기시켰다. 그것은 우리 안 젠더폭력의 자명성을 드러낸 것뿐 아니라, 진보적 이념의 논리가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허위의식을 폭로했다.

저항과 진상조사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종결을 지으려 했던 블랙리스트 사건은 지금 미투라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고, 진상조사와 관련자 추가 처벌만으로 해결될 줄 알았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건은 매우 불편하게도 지금 미투라는 거울을 바라보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이자 그 사건을 주도했던 진보적 예술가들도 미투라는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블랙리스트와 미투는 대립적이지만, 어떤 점에서 예술의 장을 파괴시킨 강력한 폭탄과 같은 것이다. 블랙리스트가 예술의 장 외부에서 날아온 폭탄이라면, 미투는 예술의 장 내부에서 투척된 폭탄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미투 운동이 예술의 장을 회복불가능하게 소멸시킬 것이라고 불편한 심경을 드러낸다. 예술의 생존을 위해 적당히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다. 예술의 장은 미투로 내파되어 완전히 새로운 장으로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투 운동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거울효과이다. 블랙리스트는 미투라는 거울을 통해 성찰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미투는 우리 안의 블랙리스트라는 검은 얼굴을 보게 해주었다. 그리고 미투는 촛불혁명의 이행을 위한 예술계 내 사투의 언어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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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사진). 이 영화는 한국 경제 성장의 ‘종착역’이 어디인지 정확히 보여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아버지가 제대로 역할을 못하게 되면 어린 딸이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떠난다. 낮은 노동가격을 지닌 딸이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성 노동시장이다. 열악한 성 노동에 시달릴 때 한 남자가 나타나 위로한다. 그는 딸이 성 노동에서 빠져나오도록 도우면서 남자친구가 된다. 하지만 돈을 벌어 여자친구를 부양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원조교제로 내몬다. 남자친구와 포주가 한 모습이다.

애니메이션 영화 <서울역>

딸은 ‘남자친구-포주’에서 벗어나 다시 집 밖으로 나서지만 세상은 이미 좀비 일색이다. 누구나 좀비에게 물려 피 빨리면 또 다른 좀비가 된다. 딸은 좀비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도망치지만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물대포가 날아오고, 군인에게 기대면 총알이 빗발친다. 국가는 좀비를 피해 생존을 추구하는 국민을 좀비에게 감염되었을지도 모를 유사좀비로 취급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보루는 집이다. “저, 집에 가고 싶어요. 집 나오고 무서운 사람만 만났어요.” 딸은 바들바들 읊조린다. 애초에 왜 집을 뛰쳐나왔지? 집에서 빚을 지워줬기 때문이다. 안전하게 보호도 못하면서 빚을 지워주는 집. 그런 집일망정, 좀비에 물릴 바에야 그곳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집에는 평생 ‘착하게’ ‘바르게’ ‘성실하게’ 근로만 했을 병든 아버지가 누워있다. 그나마도 이젠 빚쟁이에게 쫓겨 도망가고 없지만.

딸은 좀비를 피해 간신히 어떤 집으로 숨어든다. 공교롭게도 재개발 신축아파트 ‘모델하우스’다. 한숨 내려놓고 쉬고 있는데, 수소문 끝에 집 나간 딸을 찾아 아버지가 이곳으로 온다. 아, 아버지! 희미한 실루엣을 뚫고 나타난 아버지. 하지만 그는 딸이 일하던 업체의 포주다. 아버지와 포주가 하나다. 보호해주지도 않으면서 아버지 행세를 하며 몸을 팔아 이윤을 남기라고 강요한다. 좀비로 변해가기 시작한 딸은 ‘아버지-포주’를 물어뜯는다.

이는 사실 ‘국가-포주’를 물어뜯는 것과 마찬가지다. 좀비를 피해 도망쳐온 생존주의자를 지켜줄 줄 알았던 국가가 오히려 물대포와 총을 내갈긴다. 보호해주지도 못하면서 평생 근로만 하라고 강요하는 국가. 국가는 국민을 좀비, 유사좀비, 생존주의자로 편 갈라서 물리적으로 지배한다. 극소수의 성공주의자들만 국가가 쌓아올린 산성 안에서 안전을 누리며 살고 있다.

한국인은 지난 반세기 이상 가족과 국가의 성장을 위해 죽어라 노동만 해왔다. 그 결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 10위권으로 우뚝 올라섰다. 그런데 국민 다수가 비정규직이나 외주업체 노동자와 같은 좀비나 유사좀비로 전락했다. 운이 좋은 사람은 더러 무기 계약직과 같은 생존주의자로 남았지만 좀비에게 물리는 건 시간문제다. 이를 피한답시고 집 안에만 머물러 있다가는 아버지-포주-좀비에게 물어뜯길 수 있다. 좀비 사회, 이 처참한 메타포는 지금까지 한국인이 믿고 의지해왔던 친밀성 제도(家)와 공적 국가 제도(國)가 사실상 딸을 팔아먹는 ‘가부장적 포주-좀비’였다는 기막힌 사실을 폭로한다.

바야흐로 헌법 개정 논의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권력분산이나 지역균형발전, 물론 중요하다. 그럼에도 가족과 국가의 성장을 위해 죽어라 노동만 하다 좀비로 전락한 기성세대와 이제 노동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좀비에게 물리도록 예정되어 있는 청년세대를 두루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 성장’이나 ‘지속가능한 성장’을 들먹이며 여전히 가족과 국가의 ‘성장’을 최고의 가치로 놓는 가족주의와 국가주의를 폐기해야 한다. 대신 누구나 ‘자신의 좋은 삶’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이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삶을 기획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개인주의’를 헌법의 가치로 분명히 새겨 넣어야 한다. 가족과 국가는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절대 가치가 아니라 개인주의를 적극적으로 실현시켜주는 ‘좋은 제도’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혀야 함은 물론이다. 좋은 제도 아래에서만 개인의 좋은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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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착되어 ‘바꾸기 힘든 사고방식’을 영어로는 ‘mindset(마인드세트)’라고 한다. ‘우리가 안다고 믿었던 세계’ 개념은 미셸 푸코의 말처럼 어쩌면 우리를 그렇게 알도록 만드는 세계의 힘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우리의 앎’ 자체가 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거대한 착시(optical illusion)라는 것이다. 지식 또는 사고방식의 구성과 관련하여 우리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결정적인 단절을 경험한 적이 있다. ‘사대자소(事大字小)’를 명분으로 하는 중국 중심의 사대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사람에게 서구 근대는 오랑캐의 세계 질서였다. 그러나 양이(洋夷)로만 알았던 세계와 만나며 우리는 오랜 세월 품어왔던 전통적인 천하(天下)가 붕괴하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하늘인 줄 여기며 살아왔던 세계가 무너진 것이다.

변화는 충격적이었고,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다가왔지만, 이런 변화는 우리가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시작된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한 이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했다. 토르데시야스 조약을 통해 양국은 세계를 나눠 가지기로 했고, 가상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스페인은 서쪽으로,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결과 스페인은 멕시코를 차지하고, 아카풀코항에서 출발한 범선을 이용해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포르투갈은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인도에 이르렀고, 말라카 해협을 건너 인도네시아를 거쳐 중국 남부 마카오에 그들의 항구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포르투갈이 개척한 해로를 따라 네덜란드가 왔고,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왔다. 미국은 대륙횡단철도를 완성한 뒤 본격적인 태평양 경영에 나섰고, 미서전쟁을 통해 쿠바를 비롯한 카리브해 지역에서 스페인을 축출하고, 하와이를 병합했으며, 필리핀을 차지했다. 이처럼 서구 근대 문명이 세계를 경영하고,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을 벌이며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곳이 그들을 기준으로 ‘머나먼 동쪽(Far East)’, 고요한 아침의 나라인 조선이었다. 한반도는 동쪽과 서쪽으로 출발한 서구 문명이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세상의 끝(borderland)이었다. 우리는 일제 식민 지배, 분단과 전쟁, 이후 냉전체제로 인해 오랫동안 국제사회에서 직접 행위자(주체)로 나서기보다는 식민체제와 냉전체제의 하위 파트너 구실에 머물러야 했다.

국제외교와 정치를 연구해온 원로학자 김용구 선생은 이와 같은 역사적 경험과 조건으로 인해 우리가 이른바 ‘오지(奧地)적 사고’에 고착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세계정치의 본질을 자신의 문화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세계 다른 지역(중심)의 인식으로 대체하는 세계 인식의 타율성이다. 둘째, 세계정치와 문화를 균형적으로 보지 못하고 편파적으로 수용한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기에 국제정치의 표면적인 현상과 형식에 치중한다. 셋째, 오지적 사고는 이와 같은 실패를 다른 정치 세력에 전가하며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기에 언제나 중심의 이론을 번역하거나 뒤쫓는 수준에 그치게 된다.

최근 우리를 둘러싼 세계열강과 남북한의 관계 변화는 너무나 변화무쌍하여 종잡기 어려울 지경이다. 북핵과 사드 배치를 비롯해 전쟁의 위기가 한반도 하늘에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다고 염려했던 것이 불과 얼마 전의 일인데, 지금 4월에는 남북한 정상이 만나고, 5월에는 미국 정상으로는 최초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다가올 두 달여의 시간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이 기간이 한반도의 미래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동안 미국만 바라보면서 전쟁 불사를 외치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과 외교에 꾸지람과 훈수를 두던 사람들은 매우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 자신의 시선으로 보고, 주체적으로 사고하며, 자주적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국가가 냉혹한 국제질서와 역사 앞에서 주인이 되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우리 운명의 조타수가 되어야 할 때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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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현장중심 연구.’ 오래전이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2010년 무렵 현재 근무하고 있는 연구원이 대외적으로 표방하던 표어였다. 당시 수도권 소재 지방연구원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무맹랑한 사업에 대한 명분과 타당성을 억지로 만들어야 하는 업무에 지쳐있던 차에 ‘생활인’ ‘현장중심’이라는 말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당장 후원회원으로 가입하고 여러 활동에 동참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대부분의 연구를 현재의 연구원에서 진행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수십년간 어렵게 공부하여 고작 어용학자가 되었다는 모멸감에서 벗어날, 좀 더 근본적으로는 ‘돈을 위한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 중에는 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상하고 무리한 사업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4대강 살리기’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그동안 견지해온 입장을 버리고 사업에 찬성하는 무수한 학자들이 나타났다. MB가 유독 운이 좋은지 ‘뉴타운 사업’ ‘녹색 뉴딜’ 등 해괴한 개념을 가지고 나올 때마다 학계 사람들은 비판하기는커녕 사업의 전도사가 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때 반대하지 못했던 것은 무사히 학위과정을 마쳐야 했고, 학위를 받은 후에는 직장을 잡아야 했고, 직장에서는 재계약에 탈락하지 않아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활인을 위한 연구, 당사자성에 뿌리를 둔 현장중심 연구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진 후 항상 머리를 무겁게 하는, 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연구의 대가로, 좀 더 근본적으로는 지식을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정당한 것일까, 하는 점이다.지금 일하고 있는 연구원에서 다른 눈치 안 보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수많은 회원이 매달 얼마씩 후원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구라는 것이 물건 만들 듯 일정에 맞추어 쓸 만한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다. 그간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원 모두를 뿌듯하게 할 만한 연구결과가 항상 나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후원을 중단하는 분들도 많다. 순수한 시민의 힘만으로 연구원을 지탱하기 어려운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잘못된 공공정책을 바로잡고 올바른 정부를 세우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기 때문에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찾는 연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전략으로 연구원 밖에 있는 많은 시민을 연구를 같이 해나갈 동반자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이익을 얻기 위해 꼭꼭 숨기는 게 아니라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식은 기본적으로 비영리여야 한다. 우리 산과 들에서 오래도록 나고 자란 식물의 특허권을 외국의 거대기업이 차지하고, 그래서 특허료를 내지 않으면 우리 농부들이 키우지 못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런 부당함을 통해 깨달은 것이 지식과 정보가 소수에 독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상이 없으면 아무도 연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미 우리는 수많은 비영리 연구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인터넷을 유용하게 하는 웹 서버의 대부분은 공개 소프트웨어인 리눅스 기반이다. 누구나 쓸 수 있고 수정이 가능한 위키 철학을 바탕으로 수많은 공개사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른바 오픈소스 라이선스에 따른 정보기술 분야의 발전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힘입어 불로소득을 철저히 배제하고 노동의 가치에 좀 더 비중을 둘 수 있는 비영리가 경제 전반에 확산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시장경제를 구원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연구자 버전으로 표현하자면, “기득권은 돈을 벌겠다고 빅데이터 기술을 연구하겠지만, 우리는 지식을 나누기 위해 빅데이터 기술을 연구할 것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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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팬서> 열기가 한국에서도 뜨겁습니다. 한 주요 장면이 부산 자갈치 시장을 배경으로 하니 한국 팬으로서 더욱 반가울 수밖에요. 만화를 기본으로 한 이 슈퍼히어로 영화는 가상의 아프리카 나라 와칸다 안팎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작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죠. 미국에 슈퍼히어로 영화가 많았지만, 흑인 영웅은 처음이니까요. 게다가 배우의 대부분이 흑인이고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도 다수가 흑인이어서 더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발랄한 상상력입니다. 영화 속 와칸다는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유럽 제국주의에 희생당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비밀 광물인 비브라니움 덕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전을 이뤘지만, 외부에는 숨기고 살죠. 뛰어난 지도자들도 있습니다. 최고 무사인 왕은 미남에 통찰력과 애타심을 겸비했습니다. 왕비는 우아함을, 공주는 재치와 비범함이 몸에 배어있죠. 천연자원이 풍부함에도 정치 혼란과 내전 등으로 힘겨워하는 아프리카의 현실과 크게 다르죠. 대중매체에서 흔히 묘사하는 흑인들의 모습과도 정반대입니다.

영화 <블랙 팬서>의 한 장면.

그래서 영화는 백인들의 부정한 손을 타지 않았다면 오늘의 아프리카는, 흑인은 어땠을까를 상상하게 합니다. 강산과 전통을 짓밟고 살육과 노예화를 서슴지 않은 백인의 침략이 없었다면 아프리카는 훨씬 평화롭고 풍족한 땅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입니다. 노예의 후예인 미국 흑인들도 훨씬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살았겠죠. 미국 흑인 장년층이 애들도 없이 와서 보고 열광하는 이유죠. 빈민층 흑인 학생들에게 이 영화를 보여주기 위한 모금 운동이 큰 호응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흑인들이 느낀 감동을 우리가 온전히 느끼기는 힘들 테죠. 평창의 감동을 외부인이 짐작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며 미군 가족들 동향을 보며 안심해야 하는 우리였습니다. 하지만 북에서 내려온 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손짓 하나하나에 우려는 조금씩 누그러져 갔죠. 그리고 우리는 상상했습니다. 1945년 8월10일 미군 대령 둘이서 38선 따라 줄을 긋지 않았더라면, 이 땅에 전쟁이 없었더라면, 그래서 그 비극에 기생하는 정치 권력이 민중을 짓밟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하고 말이죠.

상상은 상상일 뿐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상마저 하기 힘든 날이 얼마나 많았나요. 통일은 대박이라는 공허한 외침과 북을 처단하라는 고함 사이에서 우리네 마음은 움츠러들었습니다. 마음이 움츠러든 만큼 운신의 폭도 줄었죠. 우리는 스스로 그린 좁은 원 안에서 쪼그려 앉았고, 저들은 그 금밖에서 칼춤을 추었습니다. 이를 구경하며 전쟁의 찬가를 부르는 이마저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창은 우리를 그 금 안에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상상은, 마음은, 지지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평창에 선수단을 보내도 되냐며 걱정이었지만 이제 4월이면 정상회담까지 열립니다. 정상 간 핫라인도 설치됩니다. 앞으로의 길이 쉽지만은 않겠죠. 안팎에서 딴지를 거는 이도 있을 겁니다. 사건, 사고도 있을 수 있죠. 누구는 당장 정상회담을 ‘정치 쇼’로 폄하했습니다. 하지만 간신히 잡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정세를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이렇게까지 나온 이유는 핵무기를 통한 대미 억제력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신을 미국이 공격하기 힘들다는 자신감이 이들을 움직였죠. 대북 공격을 들먹이는 이들도 실제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남은 길은 좋든 싫든 대화뿐입니다. 대화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할 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로 양보할 때 대화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영화 <블랙 팬서>는 비브라니움과 발전을 숨겼던 방침을 버리며 끝이 납니다. 외부와의 접촉이 와칸다에 줄 부정적 영향을 감수하면서 전 인류와 공존의 길을 걷습니다. 북은 남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죠. 우리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마련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태권도 시범단 뒤를 이어 경제 투자, 인적 교류, 정치 협력이 따르고 제도화되어야 합니다. 개성공단을 열고 금강산 관광을 시작했던 상상력이 절실한 때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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