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톡, 밴드, 텔레그램.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를 침범한 녀석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60개가 넘는 카카오톡 모임방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카카오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 문자나 게임, 택시 예약 서비스는 초기 버전이다. 금융 거래와 영화 예매까지 가능하며, ‘헤이 카카오’라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원하는 음악도 들려준다. 곧 정부 고지서나 통지서까지 카카오톡을 통해 등기로 배달된다. 이제 카카오톡은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만능 플랫폼이 되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다. 그런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혜택 받은 세대인 듯도 하다. 그러나 과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은 없는가. 지난 몇 년 사이 ‘카톡 감옥’에 갇힌 직장인들, ‘카톡’이 두려운 노동자들과 같은 흥미로운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퇴근 후는 물론 주말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휴일이나 업무시간 이외에도 연락을 받거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장 급한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대부분 다음날 아침이나 월요일에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소통과 공유를 강조하고, 빠른 정보를 연결하는 수단이지만 직장인들에게 단톡방은 ‘족쇄’나 다름없다. 단톡방 메시지가 업무 관련 내용만 오고 가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사생활도 많다. 직장에서 업무상 필요로 인해 그룹방(일명 단톡방)을 만들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을까. 업무보고와 지시 때문이라고 하면 거부할 사람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해야 한다. 부서장의 썰렁한 메시지에 아무런 답을 달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아마도 승진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수치도 확인된다. 서비스 노동자 3046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37.5%)이 퇴근 후 SNS, e메일 등으로 업무 지시를 받고 있었다. 1주일 평균 2.3회, 87분의 부가적 일을 하고 있는데 1년이면 무려 69.6시간이나 된다. 휴일에도 일일이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고, 퇴근 뒤까지 이어지는 업무지시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선을 허문 지 오래다. 일과 삶의 균형은 이렇게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원격근무’나 ‘재택근무’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후 이미 카톡에 갇힌 직장인들의 굴레는 시작된 것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조차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효율적으로 일하라고 ‘스마트 워크’도 앞다퉈 도입했다.

사실 원격근무(telework)는 ‘멀리서(tele)’ ‘일한다(work)’는 의미다. 1973년 미국에서 나온 신조어인데 45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카톡이나 e메일, 문자 등으로 업무지시를 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기업들 스스로 규제 움직임도 보인다. 밤 10시 이후나 주말에 SNS로 업무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한 곳도 있고,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체결한 곳도 있다. 이미 유럽의 몇몇 기업은 업무시간 이외에 회사가 보낸 e메일이 도착할 경우 삭제하고 있다. 휴가기간에는 보낸 사람에게 ‘부재 중’이라는 정보와 함께 업무를 대체할 사람의 연락처를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업무종료 30분 이후 업무용 스마트폰은 e메일이 중지되고 다음날 근무시작 30분 전에 서비스가 된다.

최근 20대 국회에서도 퇴근 후 SNS 등을 활용한 업무지시 금지법이 3개나 제출된 바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긴박하고 꼭 필요한 경우’와 같은 단서 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은 분명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퇴근 후 혹은 휴일에 업무지시를 내리는 행위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이 통과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카톡이 침범한 경계 없는 노동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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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다수가 적폐청산을 원하고 있다. 청산범위는 과거 10년 동안 자행된 국기문란 사건이다.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촛불이 만든 정부는 박근혜 다음정부가 아니라, 역사적 맥락 위의 시대정부다. 산업화·민주화시대에 잉태된 관행들이 시스템·가치·문화의 오작동에 관여한 지 오래다. 낡은 관행은 고용주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소기업과 대기업,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수도권과 지방,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뒤에 숨어서 조금씩 몸집을 불렸다. 이러한 다층적이고 전방위적인 갈등을 균열구조로 고착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해 왔다. 적폐는 취업면접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던 고졸청년,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한 형제, 맞벌이 부모의 늦은 귀가로 해가 저물어도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 아빠가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기약 없이 월급날만 바라보고 사는 지하단칸방 가족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압축성장의 명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대한민국은 공정한 기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최소한의 주거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 자라나는 꿈나무의 미래를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국가, 중소기업의 아픔을 외면하는 국가가 되었다. 없는 자가 죄인이 되는 세상, 정직하게 사는 자가 손해를 보는 세상,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것이 많아야 성공하는 세상, 이런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나라가 되었다. 새로운 규칙을 정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는 물론이고 기업, 언론, 종교, 노조, 학계, 시민단체 모두가 적폐를 생산하고 소비했다. 적폐는 어떻게 광범위한 동맹을 맺고, 공공성약화와 소득양극화를 배설하며 생존할 수 있었을까. 진영논리와 이념대립 그리고 권위주의가 적폐와 공생을 도모했다. 적폐의 근원 중 하나가 정치무관심이다. 낡은 관행이 쌓이고 국기문란 사건이 터지는데, 정치무관심은 좋은 그늘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다. 누군가 6개월 또는 1~2년 후 적폐청산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한다면, 동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2가지다.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사회적 합의 방식, 즉 사람들의 핏빛 절규와 국가적 참화를 거친 후, 통제 가능하지 않은 수많은 변수들을 끌어안고 어쩔 수 없이 사회적 합의로 끌려가는 길. 또 하나의 길은 우리 스스로가 성찰적 자세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사회적 합의를 시도하는 길이다. 

적폐는 증명하기도 어렵고, 때론 법의 잣대도 피해가는 초법적이고 역사적인 존재다. 과거 정부의 국기문란 사건이 법적종결을 맞더라도, 적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도를 바꾸어도 적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995년 국민통합과 화해증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했다. 파시즘적 인종 살해의 과거청산을 위해 가해자가 공개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대신 이들을 사면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진실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우리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있었다.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누가, 어떤 권위와 방식으로 적폐를 규정하고 해소할 것이며 성과를 평가할 것인가. 어떤 관행들이 한국 사회를 좀먹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국민토론을 시작해 보자. 토론결과를 바탕으로 적폐청산 리스트를 만들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특별재판소 설치특별법을 제정하자. 용서를 구하면 그 죗값을 집행유예와 벌금 등으로 대신 묻고, 반복되는 실수엔 작은 죄라도 엄중한 형벌을 약속받자. 적폐청산과 통합정치가 따로 있지 않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적폐청산은 궁극적으로 통합정치의 길로 안내할 것이다. 적폐청산은 정부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를 필요로 한다. 

촛불로 만들어진 정부가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현재평가인 동시에, 더 좋은 미래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일하는 방식을 새롭게 해야 좋은 미래가 올 수 있다. 촛불이 꺼지고 다시 정치무관심의 시대가 온다면, 적폐는 번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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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나 드라마는 오래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워킹데드(Walking Dead)>라는 티브이 드라마는 지난 몇 년간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죠. 한국에서는 <부산행>이라는 놀라운 걸작이 나왔습니다. 이런 작품은 보통 좀비의 무서움을 묘사하며 시작하지만, 곧 좀비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란 걸 보여주죠. 혼란 속에서 그 어떤 괴물보다 무자비한 인간의 얼굴을 그립니다.

그런 무자비함은 무정부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좀비, 핵전쟁, 외계인 침입 등에서 시작한) 무정부 상태가 숨겨졌던 본성을 깨우는 것은 아닙니다. 본성은 그대로죠. 무정부 상태에서는 다만 서로서로 믿을 수 없을 뿐입니다. 보통 때는 분쟁이 있으면 법원을 갑니다. 공권력은 범죄자를 잡아 격리해 죗값을 묻게 하죠. 내 멋대로 살고 싶지만, 나의 안전을 위해 자유를 어느 정도 포기하고 그 질서를 따릅니다. 덕분에 사람들은 지나가는 저 사람이 갑자기 나를 때리지 않으리라는 안심을 합니다. 계약하면 지켜지리라 믿죠.

정부가 없으면 이 모든 안전장치와 이에 따른 사회적 신뢰와 질서가 사라집니다. 당장 내 몸을 지키기 위해 작은 막대기라도 잡아야죠. 옆 사람은 자연스레 불안해집니다. 내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습니다. 무법천지에서 그 사람도 별수 없습니다. 슬며시 막대기 하나를 집습니다. 혹시 모르니 칼 한 자루도 챙깁니다. 그리고 날 보며 웃습니다. 걱정 마. 널 해치려는 것은 아니야. 나는 총을 찾고, 그 사람은 탱크를 찾고. 끝이 없죠.

내 안보가 증가한 만큼 옆 사람 안보가 줄어드는 딜레마에 빠진 겁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서로 미워해서도 아니죠. 말이 안 통해서도 아닙니다. 말을 보증해줄 정부가 없어서죠. 영화나 드라마뿐만이 아닙니다. 현실에선 국제정치가 그렇죠. 국제연맹과 여러 기구가 있고 국제법, 규약, 도덕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 행동을 규제하고 강제할 법과 처벌장치는 많이 모자랍니다. 특히 국가 안보에서 더욱 그렇죠. 우방이니 친구니 말은 많지만 결국 안보를 책임지는 것은 온전히 자기 몫임은 국제정치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라크가 한때 우방이었던 미국의 손에 파괴된 게 2003년이었죠.

이런 국제정치의 태생적 원리를 이해한다면 북한의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위협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아무리 대화를 종용해도 번번이 핵무기에 매달리는지도 알 수 있죠. 핵무기 개발에 환호하는 북한 인민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에 대표를 보낼 수 있다고 했고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이 시급히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대화 공세에 의아해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습니다. 당장 서방 외신은 한·미동맹을 약화하기 위한 정치공세라는 해석을 보도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신년사 환영을 북한 책략에 놀아나는 것이라 일축했죠. 하지만 이는 북한이 마침내 안보 딜레마를 해소하면서 비로소 자신감이 생긴, 국제정치의 원리를 간과하는 겁니다.

무법천지인 세계정치에서 자신을 지킬, 김정은 위원장 표현에 따르면 ‘평화수호의 강력한 보검’을 얻고서야 남북대화의 기회가 온 겁니다. 역설적이죠. 사실 북핵 개발로 한국 안보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북한의 위협은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로 재래식 무기와 휴전선~서울의 짧은 거리에서 오죠. 계산이 크게 바뀐 쪽은 미국입니다. 한국으로서는 오히려 기회입니다. 차분하게 미국,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며 평화의 공간을 늘려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당장 대화를 시작하자고 화답했습니다. 환영할 일입니다. 이를 기회로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을 되살려야 합니다. 종북이네, 이간질에 속네 하는 소음도 작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한국은 미국, 중국, 북한, 러시아 등 핵무장 국가 사이에서 아무 목소리도 낼 수 없게 될 테니까요.

좀비 영화나 드라마는 보통 질서의 회복으로 끝납니다. 한반도에서 그 질서는 상호교류와 신뢰 회복입니다. 2018년은 그 회복을 시작한 해로 역사에 남기를 기원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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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시인 송경동이 파인텍 소속 두 노동자의 굴뚝농성을 지지하는 연대의 날을 제안했다. 콜트콜텍 때도 그랬고, 희망버스 때도 그랬고, 작년 광화문 노숙농성 때도 그랬었지. 익숙하지만 늘 새로운 예술행동들의 시작. 이른바 ‘408+49’ 프로젝트이다.

2006년 한국합섬의 정리해고에 맞서 5년간 투쟁했던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 노동자들은 자신이 다녔던 회사를 인수한 스타케미칼이 공장부지와 기술을 팔아먹고 위장 폐업했을 때,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들 중에 차광호 동지는 2014년 5월27일부터 408일 동안 세계 최장기 고공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2017년 11월11일, 다른 두 명의 노동자들은 스타케미칼 본사가 있는 목동 에너지공사 75m 굴뚝 위로 올라가 다시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12월30일이면 농성 49일째가 된다. 광화문 캠핑촌에서 함께 싸웠던 촌민들이 다시 목동으로 달려가 연대의 날을 갖기로 한 것이다. 매서운 추위가 계속되고 있어, 얼마나 참여가 가능할지 걱정을 했지만, 제안 5일 만에 무려 822명이 함께하기로 했다.

사회적 재난에 개입하는 예술행동은 2000년대 들어 구체적인 문화운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2004년부터 시작된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아마도 동시대 예술행동의 본격적인 첫 번째 사례일 것이다. 예술가들은 ‘파견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회적 재난의 현장에 참여하여, 다양한 예술 활동을 전개했다.

대추리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시작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운동, 한진중공업·쌍용자동차·콜트콜텍·기륭전자 등 파업노동자들의 싸움 현장, 밀양송전탑 건설반대·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등 안전·탈핵·평화운동의 현장, 세월호 재난의 현장, 그리고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박근혜 퇴진을 위한 광화문 캠핑촌 운동에 이르기까지 예술행동은 한국 사회 재난 현장에서 운동 당사자들과 연대했다. 왜 예술행동은 다시 재난과 투쟁의 현장으로 돌아갈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삶이 갈수록 힘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 많이 있다. 평생을 평화롭게 살다가 송전탑을 설치하고 군 시설 들어와야 한다고 해서 마을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지 못한 꽃다운 학생들도 있다. 이들 모두가 자본과 공권력에 의해 일상의 삶이 망가진 사람들이다. 예술인들이 달려간 곳은 사람의 삶이 파괴된 곳이다.

재난의 현장에서 예술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파견예술가라고 부른다. 예술가들은 재난 현장에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재난이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예술행동은 언제나 사후적일 수밖에 없다. 파견예술가들은 자신의 작업실이 재난의 현장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들은 언제든지 재난의 현장에 파견 나갈 자세가 되어 있다.

광화문 캠핑촌이 사라졌어도, 시민의 힘으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예술행동은 지속된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들이 산적하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예술행동은 늘 누적되어왔다. 예술행동의 끝은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사회적 재난과 시국사건이 생길 때마다 예술행동이 요청되고, 개입하기 마련이니까. 예술행동은 본능적으로 ‘5분 대기조’의 운명을 갖는다. 재난이 발생하거나 연대가 필요한 곳이라면 본능적으로 현장으로 달려간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파견예술인 사이에 강력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고, 재난의 개입에 대한 필연적인 의지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 예술행동이 계속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아직 고통과 파국의 시대에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점에서 결코 좋은 일은 아니다. 파견예술가들은 언젠가 이 일이 끝나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현장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은 양가적 감정을 가진다. 그래서 예술행동은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오래된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처럼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짜~앙가 엄청난 기운이” 틀림없이 생겨나면서 예술행동은 언제나 이미 현장에 있을 거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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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 국정수행의 첫 번째 업무로 일자리 상황을 점검하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구성을 지시했다. 대통령은 첫 번째 외부 방문지였던 인천국제공항에서 임기 중 비정규직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면서 우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반년이 흘러 올해도 며칠 안 남았지만, 정규직 전환은 새로운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특이한 것은 이 갈등의 진앙이 사용자나 자본이 아니라 노동자 사이의 갈등 양상을 띤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노노(勞勞)갈등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 직후부터였다. 당시 주류언론은 어용노조와 민주노조의 갈등을 일러 노노갈등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노노갈등이란 말은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고용불안정과 구조조정이란 자본의 압력에 굴복한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탠리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복종(Obedience to Authority)’ 실험에서 영감을 받은 워튼스쿨의 J 스콧 암스트롱 교수는 제약회사 업존의 사례를 들어 ‘주주이익의 극대화’ 실험을 실시했다. 1970년대 미국의 제약회사 업존이 개발한 신약 ‘파날바’는 매월 100만달러의 이득을 거둬들일 만큼 잘 팔렸지만, FDA(미국식품의약국)는 이 약의 부작용을 의심해 판매 중단을 권유했다. 업존은 특별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법정공방을 통해서라도 판매기간을 최대한 연장한다는 결정을 내려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실험에 앞서 상황을 설명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을 때, 피실험자의 97%가 판매 중단을 선택했지만, 이들에게 업존의 임원 역할을 맡기자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100여차례에 걸쳐 모의이사회를 열었으나 판매 중단을 결정한 팀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실험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구조(권위)의 호명에 무의식·무비판적으로 응답하는 순간, 구체적 개인이 특정한 주체로 재구성된다는 알튀세르의 명제를 입증해보였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점쳐질 때마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해법을 발견해냈다. 과거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던 시절의 자본가란 머리에 실크햇을 쓰고, 입에는 고급 시가를 문 극소수의 남성들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대중자본주의(people’s capitalism)’의 시대에 이르러 자본가란 곧 대중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우리나라 역시 1962년 증권거래법이 제정된 이래 경제개발을 위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적극적인 증시육성정책을 펼쳤다. 1980년대부터 국가기간산업이나 공공성이 높은 기업 주식이 국민주 형태로 보급되면서 주식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의 신화가 깨지고, 노동시장을 통해서는 불평등한 계층구조를 극복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얼마 안되는 여유자금을 주식과 펀드에 쏟아부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적립식 펀드 투자가 21세기 부자가 될 수 있는 막차로 여겨지면서 주식과 펀드 투자 광풍이 일었다. 2007년 주식형 펀드 계좌수가 2000만개를 넘었고, 1가구 1펀드를 넘어 1인 1펀드 시대가 되었다. 주식 투자자 역시 경제인구 5명 중 1명꼴이 되었고, 그 가운데 20대의 비중이 가장 높다.

경제위기 20년의 불안은 우리의 영혼을 잠식해 들어갔고, “함께 살자”는 외침은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처참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다. 개인은 다양한 정체성을 통해 구성되지만,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노동자나 시민의 정체성은 약화된 대신 스스로를 경영하는 자본가의 정체성을 강화해 왔다.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등한히 한다면 그 사회는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소수, 약자를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결코 그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하게 여기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 그들이 처한 운명이 바로 내일 우리가 처할 운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나 또는 다른 구성원에게 슬픔을 준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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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시절 단과대 행정조교로 일할 무렵이었다. 1학년 학부생 한 명과 심하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 볼이 발그스름하고, 긴장하면 얼굴 전체가 홍당무처럼 되던 학생이었다. 왜 다투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신입생 기념배지 배부와 관련된 사소한 사안이었으나 당시 우리는 둘 다 마음이 상했다. 나는 조교실에 선 채 울었고, 그 친구 역시 학사지원부에 찾아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들었다. 그러다 몇 해 더 지나 고시실 담당조교를 할 때였다. 입실시험 감독관으로 들어갔더니 그 학생이 앉아있었다. 이미 신입생이 아닌 고학번이었으나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렇게 볼이 빨간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녀 또한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나 역시 한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얼굴 까만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1교시 시험이 시작되었다. 학생증 검사를 하려고 책상 사이를 지나던 중, 그 친구 언저리에서 무언가 난감한 공기를 감지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펜에 잉크가 닳아 글씨를 쓰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자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려니 예전의 그 못된 조교언니인지라 내키지 않고 그랬던가 보았다. 시간은 째깍째깍 흐르는데 그녀는 울상이 되어 펜을 흔들며 잉크가 나오게 하려 애쓰고 있었다. 나는 교탁에 놓아둔 필통에서 내 펜을 하나 집어 그녀의 책상 위에 말없이 올려두었다. 이윽고 쉬는 시간이 되자, 그 친구는 앞으로 나와서 아까 빌려주었던 펜을 탁 교탁에 얹었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아무 말 않고 휙 나갔다.

그 순간, 나는 기분이 상한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아, 네가 바로 나구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줄넘기 시험 망치고 울다가 담임선생님이 다가와 껴안아 주시자 ‘좋아서’ 몸을 비틀어 빠져나왔던 아홉 살 무렵의, 저편에 선생님들이 걸어오시는 걸 보고 지금 목례할지 더 기다렸다 가까이 오셨을 때 인사할지 ‘망설이다가’ 허공에 꾸벅하고서 밀치고 뛰었던 열일곱 살의, 그리고 앙증맞은 빨간 장화를 가리키며 “너 그 코트 입고 이 장화 신으면 빨간망토 차차처럼 귀엽겠다”던 선배오빠의 말에 그만 ‘설렌 나머지’ 도리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던 스물 몇 살의 내 모습이 머뭇거리다 휙 나가던 그녀의 몸짓 안에서 보였다. 그 ‘수줍은 예의 없음’을 나는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마음에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종류의 자애로운 감정이 솟았다. 쉬는 시간에 사온 펜으로 고개 숙이고 답안만 쓰던 그녀의 머리 위로 나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따스한 시선을 2교시 내내 쏟아부었다.

어쩌면 또 모른다. 그 친구는 그야말로 싫어서 펜을 던지고 나간 것뿐일지도. 저 못된 조교언니 펜으로 시험 보려니 글씨가 안 써진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렇지만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풋내기 선생으로 살아가면서 종종 그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볼이 빨갛고 내성적인 누군가의 빈틈을 알아보게 만든, 얼굴 까맣고 내성적인 다른 누군가의 동일한 빈틈.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비록 학생들에게 카리스마 넘치는 역할모델이나 근사한 멘토가 되어주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지닌 모종의 빈틈으로 인해 타인의 그것을 한층 세심하게 알아차리고 보듬어줄 수는 있을 거라고. 그리하여 싱그럽고 화사하며 당찬 젊음의 틈새에 숨어든, ‘수줍다고 인사 못하고’ ‘소심해서 예의 없는’ 몇 안되는 얼굴들을 누구보다 먼저 찾아 다독일 것이라고. “내가 너야. 그래서 나는 알아본단다”라며 말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앳됨의 마지막 흔적마저 얼굴에서 지워지는 날도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여전히 수줍다며 고마운 이에게 어색하게 행동하는, 황당한 할머니일지 모르겠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선의의 상대방들이 ‘좋아서’ 혹은 ‘설렌 나머지’ 부자연스러워진 자의 내심까지 들여다보고 알아채주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테다. 다만 살면서 우리가 자신과 닮은 이들의 빈틈을 알아보고 다정한 이해의 눈길을 보내었던 그 순간들이 우리의 상대방들에게도 깃들여, 황당함이나 불편함 대신 이해의 웃음을 선물해주기를 소망해본다.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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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29일 새벽 북한은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하고 그날 낮 정부성명을 통해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다. 20여일이 지난 12일 군수공업대회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미사일 개발계속’ 방침을 천명했다. 그러자 12일 틸러슨 장관이 ‘북한과 조건 없는 첫 만남’을 제의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즉각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변하지 않았다”고 발표했고, 국무부 대변인도 NSC와 같은 입장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파 틸러슨 장관을 곧 강경파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교체한다는 소문이 나도는 상황이라 더 혼란스럽다. 북핵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의 입장이 현실적으로 우리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대북 압박·제재 정책을 고수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 되면 북한은 핵·미사일 도발 강도를 더 높일 것이다. 그게 북한의 DNA다. 그런데 미국의 안보가 지금보다 더 위협을 받게 돼도 트럼프 정부가 기존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까? CIA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핵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이 3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보고했다. 폼페오 국장으로서는 3개월 내에 군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뜻이겠지만, 동북아 국제정치 구조상 군사행동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3개월 후 미국도 북핵 정책을 바꿔야 할 것이다. 대화 국면으로 넘어가면 대화 개시 조건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미 ‘핵무력 완성’과 ‘지속적 강화’ 방침을 선언한 북한이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조건 없는 첫 만남’이 이뤄져도 미국은 일단 비핵화를 요구할 것이다. 그럼 북한은 회담장을 박차고 나갈 것이고,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미국의 정책변화를 기다릴 것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12월3일 중국 전문가의 말을 인용, “중국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받아들이고 미국 또한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더 타임스가 대내외적으로 영향력 있는 보수성향 매체라는 점에서 그냥 흘려들을 수 없다. 더구나 영국은 리비아와 이란 핵 문제 해결과정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었다. 중·러는 지금까지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대화를 강조해 왔다.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은 지난 7일 국제회의에서 만난 틸러슨 장관에게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받고 싶어 하고 대화를 원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가 미·북 협상을 지원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한편 왕이 외교부장도 9일 국제회의에서 “현재 한반도 정세는 무력시위와 대항의 악순환에 빠져있다. 전망이 좋지는 않지만 아직은 협상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이런 와중에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이 5일 방북했다. 닷새간의 방북을 끝내면서 “앞으로 유엔과 북한이 긴밀하게 대화하기로 합의”했음을 전했다. 미 국무부 외교관 출신인 그의 방북은 북한 ICBM 발사 당일 결정되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을 압박하는 중에도 펠트먼을 통해 대화 메시지를 보내면서 국면전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7일 미 국무부 조지프 윤 특별대표는 북한에 다시 ‘60일 근신’을 요구했다. ‘조건 없는 첫 만남’ ‘60일 근신’, 이는 단순한 립서비스가 아닐 것이다. 더 타임스가 보도한 대로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비핵화 대신 비확산 쪽으로 선회할 경우 러시아도 동조할 가능성은 크다. 영국도 리비아-이란 경험으로 미북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럴 경우 트럼프와 ‘물 샐 틈 없는’ 공조를 해온 우리 정부는 결국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준비는 되어 있는가? 북한의 대화공세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는 지난 8일 통일부 주최 학술회의에서 “북한이 내년 초 남쪽을 상대로 정신없이 대화공세를 펼 것 같다”고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체육회담을 비롯해서 군사회담, 이산가족회담을 제의해 올 때 북핵 미해결을 이유로 거절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황재옥 | 한반도평화포럼 여성·청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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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한 명이 뇌졸중 진단을 받았다면 어떤 상황일까. 가족의 삶은 이전과는 다른 풍경과 마주할 것 같다. ‘돌봄’은 이제 개인과 가족이 감당할 수 없다. 누구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상황은 생기기 마련이다. 보살핌은 개인의 몫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많은데 그 서비스는 모두 민간에 맡겨져 있다. 어린이집부터 유치원, 아동센터, 요양 및 장애시설까지. 우리 주위 모든 사회서비스는 공공이 아닌 민간시설뿐이다. 그나마 보육과 요양시설 일부를 국공립이 맡고 있는 정도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사회서비스공단이다. 공단은 2010년 지방선거 때 ‘복지서비스인력공단’이라는 용어에서 착안되었다. 그 후 서울시에서는 요양서비스 등 종사자 노동조건 개선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확보와 고용의 질 개선을 위해 사회서비스재단이 검토되었다. 그런데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에 공공인프라와 일자리 창출에 녹아들면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이다. 문제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의 필요성과 달리 그 방향과 틀을 알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공단 설립은 취약한 사회서비스를 본질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기획이다.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간 열악한 노동조건과 고용불안, 비전문성과 재정취약성 등의 이유로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문성부터 교육훈련 시스템 부재와 민간위탁 운영까지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다. 게다가 사회서비스 돌봄노동은 ‘좋은 일자리’라기보다는 비정규직의 ‘그저 그런 일자리’가 더 많았다. 사회서비스공단은 시민과 수혜자들에게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공공 인프라는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학습을 통해 민간보다 좋은 서비스가 가능하다. 체계화된 실습 중심의 직무교육과 다양한 프로그램은 민간시장과는 다른 혹은 차별화된 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특히 사회서비스공단 노동자들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서 벗어난다. 현재는 임금이 낮고,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고, 휴가 등 최소한의 권리도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보육교사 휴가는 아이들 방학기간이며, 요양보호사는 그 자체를 상상조차 못하는 분들이 다수다. 요양보호사나 장애인활동보조인 10명 중 9명은 비정규직이고, 급여는 100만원 남짓이다. 어린이집 교사 임금은 178만원 수준으로 광역지자체 생활임금에도 못 미친다.

이 때문에 보건복지부가 사회서비스 공단 설립의 법적 규정과 예산보조를 지원해야 한다. 지자체 재정 상황을 볼 때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없을 경우 공공성을 담보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와 달리 보편적 서비스는 “서비스와 수혜자의 몫을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향후 공단 설립은 일정 규모 이상의 지역 운영을 기초로 설계될 필요성이 있다. 예를 들면 신규, 위탁 만료, 재정운영 비리, 법률 위반 시설 등을 우선 검토할 수 있다. 광역이나 권역별 공단 운영은 노동자의 주거이전 과정에서 퇴사가 아닌, 인사이동 배치를 통해 고용안정성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

학계는 민간시장 의존이 심한 사회서비스에서는 좋은 돌봄이 불가능하기에 전달체계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는 이유를 꼽는다. 요양보호사나 보육교사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더 이상 묵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간 시장중심의 복지서비스는 제도적 진척이 없었다. 현재 복지부 논의 초안은 공단이 아닌 진흥원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공공이 아닌 민간지원을 고려한 것인데 국정철학의 후퇴다. 돌봄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차별적으로 제공받거나 제공하는 것이 아닌 보편적 권리여야 한다. 사회서비스공단 설립과 같은 노력이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꿀 수는 없을지라도, 공공이 돌보고, 변화하기 위한 첫 시작이다. 사회서비스공단은 돌봄을 사회와 시민이 함께 풀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국회와 보건복지부의 답을 듣고 싶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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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민주노총이 합법화되었다. 조직 노동이 자신들의 체제 편입을 환호하고 있을 바로 그 순간에, 진정한 재난이 시작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조건하에서 노동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첫 시험대가 현대자동차였다. 누군가는 ‘짤려야만’ 했다. 그리고 선택된 것이 가장 ‘덜 정규직스러웠던’ 현대차 구내 식당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당시의 사건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 <밥.꽃.양>은 정리해고법이 어떻게 노동현장에서 폭풍을 몰고 왔는지, 그리고 노동자들 내부에서 자신들이 살자고 다른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것을 어떻게 묵인 방조했는지를 보여준다.

‘밥꽃양’이 쫓겨난 빈자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그 부메랑은 ‘살아남은’ 자들에게 여지없이 다시 돌아왔다. 처음에는 식당 여성 노동자들이었지만, 그 다음은 ‘공장 생산 라인’ 밖의 남성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몰렸고, 그 다음에는 생산직 남성 노동자들이, 그 다음에는 사무 판매직이 차례로 제단에 올려졌다. IMF 외환위기는 끝났고, 정권의 이름은 DJ,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바뀌었지만, 이 ‘법’과 ‘기조’는 바뀌지 않았으며, 오히려 강화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에 이미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졌다.

집권 이후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핵심 정책 과제로 들고나왔다. 그러나 그 첫번째 대상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천공항공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나섰고, 전교조도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 반대를 선언했다. 창원의 한국지엠 공장은 일거리가 줄어들자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기존 정규직으로 채우는 ‘인소싱’을 노조가 합의하고 나섰다.

왜 그럴까? 노동자들이 자기 밥그릇에만 목을 매는 이기주의자들이라서? 20여년 전의 밥꽃양이 그랬듯이, 부분적으로는 그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도 노동을 보호해주지 않았는데, 그들이 개인들의 생존을 위해 ‘덜 규범적’으로, 즉 이기적으로 행동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 있을 만큼 떳떳한 명분을 가진 주체가 이 사회에 과연 존재할까?

그리고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밥꽃양을 불러온 정리해고법은 여전히 개정되지 않았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은 단지 공공기관에만 국한된 것이다. 게다가 이것마저도 기획재정부가 ‘임금총액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비정규직이 정규직화되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자리’뿐만이 아니라, 임금을 둘러싸고 분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 사업장에 주어지는 임금 총액은 한도가 있는데 동일 임금을 받는 정규직 노동자 숫자가 늘어나면 기존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인상률이 억압되기 때문이다(게다가 이는 나중에는 결국 세금 부담을 둘러싼 노동자 내부의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지금의 사태는 20여년 전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노동은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밥꽃양들을 양산해낼 것이며, 서로에게 총질을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고, 지금 살아남은 자들도 이내 총알받이가 될 것이다. 또한 단지 정부의 지침이나 정책이 아니라 법 제도 판례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즉 노동시장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못한다면, 그나마의 정규직화조차도 정권이 바뀌는 순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한국의 노동에는 20년 전의 IMF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영화 <밥.꽃.양>의 삽입곡인 박창근의 ‘이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게 목을 죄는 쇠사슬을 준다면/ 나는 순순히 응하지 않을 거야, 물어 볼 거야/ 난 물어보고 싶어, 함께 살아가는 이유를.”

사회를 구성한다는 것은 ‘공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쇠사슬을 끊어라. 공존은 노예이기 거부하는 자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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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국회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도 11월 말 논의를 시작했죠. 일정이 빠듯하지만,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커녕 특위 내 논의마저 아직 시작 단계입니다. 개헌의 주요 주제인 정부 형태는 정치 전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기본적 이해조차 부족하죠. 어떤 형태가 있는지, 그 효과는 어떤지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채 국민투표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대통령으로의 권력 집중과 5년 단임으로 요약할 수 있는 현 체제의 수명이 다했다는 공감은 있습니다. 재선 걱정이 없는 대통령이 권력을 멋대로 휘둘러도 막기 힘들다는 것을 박근혜가 몸소 보여줬죠. 문제는 대안입니다. 지난 대선 전 문재인 후보는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제시했고 안철수 후보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했습니다. 홍준표 후보는 이 둘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했죠. 문재인 대통령의 복안도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권형 대통령제의 면모를 포함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이 분권형 대통령제가 개헌 후 정부 형태의 큰 뼈대가 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이원집정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 제도의 핵심은 국민이 직접 선거하는 대통령의 존재, 그리고 이와는 별도로 의회에 책임을 지는 총리와 정부의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정부 권력을 대통령과 총리가 나누고 동시에 의회의 행정부 견제를 강화할 길을 열어 놓았죠. 흔히 대통령은 국가원수직과 외교·안보·국방 정책 등을 담당하며, 총리는 내정을 맡는 형태를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완전히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온전히 맞지도 않습니다.

우선 분권이라는 말이 문제입니다.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를 보면 대통령과 총리의 권력 배분은 정치적 배분이지 헌법적 강제력은 거의 없으니까요. 정치적 사정에 따라 분권이 일어나기도 하고 아닐 수도 있죠. 여당이 총선에서 패하면 분권이 가능합니다. 우선 대통령의 총리 지명이 야당 주도의 의회에서 통과가 안됩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의회를 장악한 야당 지도자를 총리로 임명할 수밖에요. 복잡한 정치적 타협이 이어지고 이에 따라 행정부 권한도 나눠집니다. 하지만 여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카리스마적 리더가 대통령이 되고 그 여당이 의회 다수를 차지하는 경우, 대통령은 자기 수하를 총리로 지명하고 의회는 이를 수용합니다. 그러면 대통령은 행정부를 오롯이 지휘하고 의회마저 휘두를 수 있습니다. 분권은커녕 거의 독재에 가까운 대통령이 나올 수 있죠. 오늘날 러시아는 좋은 예입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메드베데프 총리를 압도하는, 제왕적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즉 분권형 대통령제는 분권을 위한 제도가 아닙니다. 그 반대죠. 그러므로 대통령 권력을 축소한다는 오늘날 한국의 시대 요구와 맞지 않습니다.

게다가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오늘날과 비슷한 정부 형태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되고 있습니다(67조 1항). 정부를 주도하는 총리 또한 존재합니다. 그리고 총리임명에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점도 명시돼 있습니다(86조). 국회가 총리 해임을 할 수는 없지만 건의할 수는 있습니다(63조). 즉 최소한 제도적으로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우리는 이미 갖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현 제도로도 정치적 조건만 맞으면 분권은 가능합니다. 실제로 김종필 전 총리는 김대중 정부의 대주주로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후보 시절부터 ‘책임총리제’를 통해 권력을 분산하겠다고 여러 번 밝혔죠.

결론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데 맞지 않고 굳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이를 대단한 개혁인 양 말하는 것이 의아할 수밖에요. 의아함과 의심을 해소할 활발한 개헌 논의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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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화체육관광부의 ‘새 문화정책 준비단’ 단장을 맡아 국가 문화정책의 틀을 다시 짜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비극적인 블랙리스트 사태를 딛고 다시 대안적인 문화정책을 세우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다. 그래도 예술인이 주체가 되어 블랙리스트의 진실을 철저하게 밝혀내는 일과 함께 아픔을 이겨내고 미래로 향하는 문화정책을 구상하는 일은 시대적 소명이 되었다.

혁신해야 할 수많은 국가 문화정책의 과제 중에 예술인 복지정책은 작은 부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태 이후 국가가 예술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예술인 복지정책이 블랙리스트라는 국가검열의 짝패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상’이 아닌 ‘권리’ 그 자체이고, 예술인 자립을 위한 최소한의 물적 토대이다. 준비단 내 예술인복지 분과에서 현재 예술인 고용보험, 예술인 주거, 예술인 금고, 예술가 사례비, 예술인 사회참여 확대와 매개자 교육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과제들을 실제 사업으로 이행시키기 전에 먼저 생각할 것은 예술인 복지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의 패러다임은 먼저 구제에서 권리로 바뀌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을 가난한 예술가를 구제하는 정책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예술인 복지정책이 생활환경이 어려운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지원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제의 정당성이 가난한 예술가의 ‘궁핍’을 해소하는 것에 있다면, 그것은 아주 협소한 시각에 그칠 수 있다. 예술인의 복지는 창작활동을 위한 환경과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창작의 권리와 함께 동일선상에서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의 보편적 가치가 국민의 권리이듯이, 예술가의 복지 역시 사회적 가치를 가진 예술가들의 창작활동과 연계된 특수한 권리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새로운 예술복지 정책은 예술가를 구제하는 정책을 넘어 창작의 생활환경을 개선하여 예술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또한 사후적 대응에서 선제적 대응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예술인 복지정책은 어느 예술가의 불행한 죽음이 있고 나서야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커다란 사회적 재난이 발생하고 나서 사건을 수습하는 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하는 방식과 같다. 같은 복지정책이라도 비극적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 마련의 목적보다는 행복한 사건을 더 많이 만들기 위한 선제적 투자의 목적이 예술가들에게는 더 어울리고 필요한 것이 아닐까?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의 창작활동에 따른 ‘정산’이 아니라, 창작활동의 조건을 마련하는 ‘투자’가 되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관리 장치에서 예술가와 함께 상생하는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예술인 복지정책이 가난한 예술가들의 불만을 해소시키고, 공급자 과잉상태의 예술가들을 관리하는 장치로 활용된다면, 그것은 가장 불행한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이 예술인 인구와 활동을 통제하는 일종의 ‘통치성’의 관점에서 사회적 관리의 장치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예술인들을 ‘지원’과 ‘혜택’으로 권력의 장치 안으로 가두려 했던 과거 독재정권의 문화정책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사회적 관리장치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복지정책이라고 해도 국가가 예술인들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서 ‘혜택’을 누리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예술인 복지정책이야말로 ‘소통’과 ‘협치’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예술인들의 사정은 예술인 본인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예술인 복지정책은 ‘예술가를 위해’ ‘예술가와 더불어’ ‘예술가 모두가’라는 이 세 가지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그것은 가난한 예술가들의 삶을 최소 관리하는 정책에서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복지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협치’의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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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교회개혁 500주년, 10월혁명 100주년, 그리고 87년 민주항쟁 30주년, 외환위기 20주년, 평택 미군기지 주민 이주 10년을 맞이한 해다. 

나는 대학에서 학기 초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에게 ‘역사 속의 나’란 주제로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쓰도록 한다. 교양과목을 강의하는 까닭에 매 학기 여러 학과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을 만나지만, 정작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할까봐, 그리고 이들에게 자신의 삶 또한 역사 속의 삶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어서 그런 과제를 내준다.

2017년 현재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 대부분은 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난 이들이다. 흔히 IMF 세대라면 지금 40대 중반의 이른바 ‘영포티’를 떠올리지만, 대학생들이 제출한 글을 읽다보면 외환위기의 여파는 그들도 비켜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부모의 이혼, 가정경제 파탄 등 우리 근현대사의 사건은 그들의 삶과 일상에도 씻어낼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겼다. 최근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자 이번에 수능을 치른 이들이 스스로를 ‘저주받은 99년생’이라고 자조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 직후에 태어나 초등학생 때 신종플루, 중학생 때 세월호·메르스 사태를 겪었고, 고등학생일 때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이 있었다. 우리 정부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그날, 그러니까 20년 전 이 무렵 수많은 이들의 삶이 행과 불행의 갈림길에 섰다. 국가경제가 파산하는 중대한 고비를 맞이했지만, 모두가 불행한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는 1844년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멋진 것을 만들어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불행만을 만들어낸다”고 말한 바 있다. 서민들이 금 모으기에 앞장서는 동안에도 권력과 부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소외 속에서도 행복”했다. 중고시장에는 직장을 잃은 중산층들이 토해낸 수입 오디오와 자동차가 헐값에 쏟아졌고, 은행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이들은 집을 경매로 내놨다. 

어떤 이들은 현금으로 대금결제를 받는 행운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고의부도를 내서 하청업체와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다. 고유가와 고금리로 영세자영업자, 서민들이 자동차 운행을 포기했을 때, 텅 빈 도로를 내달리던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라는 건배사를 읊었다는 풍문도 있었다.

그날 이후 무엇이 가장 크게 달라졌을까. 우리 세대는 흑백TV에서 컬러TV로 방송이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1.44MB짜리 3.5인치 플로피디스크에서 기가바이트 단위의 USB로 컴퓨터 저장매체가 변하는 것도 보았다. 우리는 정규직이 평균적인 고용형태였던 세상에서 태어나 비정규직이 일반화되는 세상을 겪었다. 그러나 지금 대학생들은 처음부터 컬러TV, 테라바이트 단위가 더욱 익숙하며 정규직 채용이 평생의 소원이다. 컬러TV, 스마트폰이 지천인 세상에서 태어났으니 과연 이들은 복 받은 세대일까? 이들이 태어나서 만난 세상의 모습은 그뿐만이 아니다.

10년 전 한화 김승연 회장이 보복폭행 사건을 일으켰다. 2010년 SK그룹 일가 최철원은 노동자를 몽둥이로 때리고 맷값으로 2000만원을 건넸다. 2011년 피죤 이윤재 회장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전임 사장을 청부 폭행했고, 2012년 삼환그룹 총수 일가가 수십년간 임직원을 상습 폭행한 것이 드러났다. 2014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사건, 2015년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 몽고간장 김만식 회장이 운전기사를, 2016년 미스터피자 정우현 회장이 경비원, 현대비엔지스틸 정일선 사장이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을 자행해서 물의를 일으켰다. 2017년 호식이두마리치킨 최호식 회장은 여직원 성추행, 종근당 이장한 회장은 운전기사 상습폭언으로 언론을 장식했다. 급기야는 경영 세습에 이어 폭행도 세습되고 있다. 

일할수록 가난해져서 워킹푸어, 공부하면 할수록 가난해져서 에듀푸어, 집 사기 위해 노력할수록 가난해져서 하우스푸어란 말이 생겼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의 멘붕사회, 사람이 사람 대접받지 못하고 돈이 대접받는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야 우리 사회에 내일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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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전, 바람이 얼음처럼 찼던 초겨울 아침이었다. 지하철역 바깥으로 나오니 여느 때처럼 출구에 전단을 나누어주는 분들이 서 계셨다. 요리조리 전단 받기를 피하던 중에 강한 포스로 종이를 내미는 분과 맞닥뜨렸다. “죄송합니다” 웃으면서 옆으로 비켜 걷는데, 스치는 귓가로 이렇게 나직이 되뇌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웃어. 썅, 좀 받으라고.”

대학 입학을 앞둔 열아홉의 겨울, 친구들과 처음 번화가로 나들이해본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골목마다 미용실과 피부관리실, 어학원 등이 즐비했던 그곳에서 홍보용 전단을 쥐여주려는 아주머니들과 그것을 받지 않고 휙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가진 전단을 전부 나누어주기만 하면 저분들은 그날 치 품삯을 받으실 텐데, 그러면 추운 날 조금이라도 일찍 귀가하여 몸 녹일 수 있을 텐데, 종이 한 장 받아가는 것이 무엇이 그리 힘들까. 필요 없더라도 일단 받고 나서 나중에 버리면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다짐했다. 길에서 전단을 나누어주면 전부 받자고 말이다.

실제 여러 해 동안 의지적으로 그렇게 행했다. 받지 않으려 피하는 행인들을 밀치고 “그걸 그냥 저한테 주세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거리를 걸을 때면 품에 전단이 한 아름씩 쌓였다. 서너 장을 받아들면 ‘받는 사람’으로 인식되어 집중적으로 안겨주셨던 것이다. 더욱이 한동안 서울시 미화정책이 바뀌었던지, 노상에 휴지통이 대거 줄어드는 바람에 전단 10여장을 끌어안고 지하철을 타거나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점차 대상 모를 짜증과 미움이 내면에서 솟구쳤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진정으로 누군가의 고단한 일손을 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스스로와의 첫 약속을 지키려는 강박 때문일 텐데, 대체 이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그리하여 언젠가부터 전단 받는 것을 멈추었다. 대신 마주할 때면 할 수 있는 한 예의 바르게 웃으며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곤 했다. 그렇게 지나칠 수 있게 되니 내 쪽에서는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한데 그 웃음이 바로 그 아침, 전단을 나누어주던 어떤 분의 마음을 할퀴었던 셈이다.

그날 온종일 생각했다. “죄송합니다”라며 웃었던 것이 왜 상대방의 심경을 불편하게 하였을까. 그리고 나는 무엇 때문에 웃음을 지었을까.

사실 후자의 답이야 자명했다. 누군가에게 무정하고 싸늘한 표정을 내보이기 싫은 자기애적인 위선이었을 테다. 그런데 이에 대한 부끄러움과는 별개로, 여전히 무언가 생선가시처럼 마음에 걸렸다. 전자, 즉 무엇이 그분의 마음을 그토록 상하게 하였는지는 나의 위선과는 별개의 문제인 듯했기 때문이다. 위선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지의 성찰마저 이쪽의 사치스러운 감상일 뿐 막상 상대방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분에게 더 절실했던 것은 어쩌면 웃음에 담긴 진정성이 아닌, 짜증스럽게나마 전단 한 장 더 가져가는 손길 아니었을까.

각종 광고전화가 걸려올 때면 어떻게든 ‘덜 모질게’ 얼른 끊으려는 이쪽과 설령 모진 말을 듣더라도 조금이나마 길게 통화를 이어가야만 하는 저쪽 사이의 일분일초를 둔 실랑이처럼, 어쩌면 이 또한 그런 성질의 문제일지 모른다. 개인의 인격이나 진정성으로만 환원되지 못할, 이 체제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로서 벗어나기 어려운 관계구도 같은 것 말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신영복 선생은 모로 누워서 칼잠을 청해야 하는 비좁은 감옥의 잠자리가 옆 사람을 단지 섭씨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하였던 비정함에 관해 이야기한 바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곳은 찜통감방처럼 타인의 살갗이 닿으면 증오가 솟아나는 극한상황도 아닐진대, 세상은 왜 ‘어떻게든 빨리 상대방을 떼어놓고 싶은 자’와 ‘어떻게든 상대방을 붙잡고 시간을 끌어야 사는 자’의 대립구도로 우리네 삶을 밀어 넣는 것일까. 거기서 나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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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박근혜’ 하나로 돌리면서 우리의 정치의식은 또 후퇴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밀양의 송전탑이 박근혜의 작품인가, 또 박근혜 아닌 전임정부들은 정말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았을까? 김대중은, 노무현은? 그렇다면 농민시위에서 경찰에 맞아죽은 농부는, 태안반도는 어찌 가능했을까?

이명박 정부하에서 우리는 전임 정부와의 연속성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 괴물정부 하나의 존재에 분노하면서, 그들이 하는 수많은 일들이 전임정부에서 결정되고 후임 이명박 정부에서 집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명박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그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정과 반민주성을 비판하는 것과 같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렇고, 제주 해군기지가 그렇고 정보통신법이 그렇고 자본 통상법이 그렇고 나아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그렇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며 지난해 10월29일부터 시작된 촛불집회 1주년을 맞아 지난 28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이를 기념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은 유신의 악령이 깃든, 웬 야만과 변종의 지도자 박근혜와 그의 옆에 인의 장벽을 치고 있는 꼴통 소수가 문제였다. 새누리당도 들러리인 양 취급됐다. 그리고 심지어, 자본들- 박근혜의 배후에서 박근혜 정부의 경제와 노동정책을 좌지우지했던 자본은 눈에서 멀어졌다. 노동자 투쟁만이 자본의 그림자를 언뜻언뜻 보여줄 뿐이다. 그런 현실에 대한 쉬운 표현이 바로 ‘적폐’란 단어다. 아이러니는 이 단어를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씨가 처음 쓰고 우리는 그 단어의 사용을 조롱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지금 그 단어가 전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프레임이 향할 방향은 어디인가? 이명박 시절에 그 전임 김대중·노무현의 자유주의정부의 공과를 깨닫게 됐다면, 박근혜 시절에서는 고작 차라리 전임 이명박이 더 낫다거나(실제로 그런 말도 했었다) 혹은 그러니 박근혜와 그 정치일당이 아니면 다 괜찮다는 앙상한 결론이면 될까?

내가 박근혜 정부하에서 바란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전과 14범 이명박 전 대통령 앞에서 처절하게 선거민주주의의 한계를 목도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바로 앞선 자유주의정부의 공과를 함께한다는 점도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각성과 절망의 상태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어떻게 할 것인가와 누가 주체가 될 것인가는 더욱 오리무중이었다. 자유주의정치가 민주주의를 배반했던 30년의 역사를 꿰뚫어보면 희망의 그림자는 더욱 멀어져갔다.

우파와 자유주의 세력이 함께 망친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적인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바꾸어 나갈, 즉 민주주의의 민주화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들이 주체라는 믿음은 없었다. 그것이 노무현 정부의 말기였다. ‘진보개혁세력의 위기.’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섰다. 우리는 이제 알 만큼 안다. 우파의 국가통치철학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리고 선거만 민주주의가 얼마나 무늬만 민주주의인지. 민중과 노동과 결합하지 않은 정치엘리트, 선거엘리트, 운동엘리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지. 그러니 박근혜 정부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것이었다. 박근혜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유신체제만 벗어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다시 1980년, 혹은 87년을 재탕하지 말길. 좌절과 절망을 모아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잡길. 진정 민중과 노동자와 서민의 이해가 정치적인 힘이 되길.

하지만 촛불이었다. 짱돌도 아니고 스크럼도 아닌 촛불을 들자고 했다. 촛불은 절묘하게 법과 제도와 타협하면서 박근혜를 퇴진시켰다. 그 프레임은 결국 우려한 대로, 박근혜를 모든 ‘적폐’의 화신으로 삼는 것이었다. 이제 박근혜가 남긴 적폐를 청산하자고 한다. 그러나 집권세력은 구자유주의세력이 공유하는 적폐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에 대한 모호함, 노동에 대한 모호함, 미국에 대한 모호함으로 나타나고 있다. 촛불은 자유주의정치를 위기에서 구출하였다. 그러나 과연 민주주의는 위기에서 구출하였을까? 촛불 1주년을 맞아, 의문은 이 지점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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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85년 영화 <란>은 한 영주 집안의 비극적 몰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늙은 영주가 땅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며 시작합니다. 서로 도우라는 당부가 무색하게 내분과 살육으로 이어지죠. 게다가 그 내분으로 가족과 영토를 잃는데, 영주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와 복수를 꿈꾸던 이의 계책이었다는 스토리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정세를 살펴보면 강력한 지도자의 강경한 외교가 힘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공산당 내 입지를 굳히면서 더욱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도 총선 압승을 통해 기존 우경화 외교를 더 밀어붙일 테죠. 북한 김정은 위원장 또한 경제 회복과 군사력 증강에 탄력을 받아 더 큰 목소리를 낼 듯합니다. 여기에 큰 목소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각종 언행과 스캔들, 독단적인 외교 행보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일본 방문에서도 노골적으로 미국 무기 구매 확충과 무역적자 해소를 되풀이했죠. 북핵 위기를 장사 기회로 삼는다는 비판이 커지는 만큼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에 대한 불신도 늘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나 한국처럼 국방을 미국에 기대고 있는 처지에서 속앓이가 깊어질 수밖에요. 미국 안에서도 걱정은 깊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있느냐, 대선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느냐 등의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죠. 게다가 행정부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어서 제도적 문제로 번지고, 또 그 여파마저 오래가리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걱정과 혼란은 대선 다음 날 바로 시작됐습니다. 각 정부 부처에서는 정권 이양에 분주했습니다. 당장 다음 날 인수위 맞이에 나섰죠. 주차장, 인터넷, 사무실 등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정작 인수팀은 오질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말이죠. 다들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농무부의 경우 한참이 지나 기껏 나타난 이들이 부서 업무에 문외한들이었습니다. 엉성한 준비는 엉성한 부서 구성으로 이어졌죠. 농무부 최고 관료 직책 중 장관 딱 한자리 빼고는 대부분 국회 인준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무부 책임 과학자에 지구 온난화뿐 아니라 과학 자체에 깊은 회의를 가진 이데올로그이자 극우 라디오 진행자가 임명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농업과 자원 관리 업무를 떠나 과학 연구에 주요 역할을 하는 농무부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거세죠.

비슷한 상황은 국방부를 제외한 전 부서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관리하는 에너지부, 외교의 난제를 풀어가는 국무부 등 한국의 입장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서도 포함해서 말이죠. 에너지부 장관이 된 릭 페리는 후보자 시절 에너지부를 아예 없애겠다고 공언한 인물입니다. 거대 에너지 회사인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로 국무부 장관이 된 틸러슨은 국무부 축소를 주요 목표로 내세워 국무부 관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습니다. 덕택에 고위 관리들이 은퇴하거나 물러나면서 전문가가 모자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아직 공석인 게 우연이 아닙니다.

영화 <란>의 며느리처럼 일부러 정부를 약화시키려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연방정부는 큰 혼란을 겪고 주요 업무에서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죠. 그사이에 백인우월주의 목소리, 흑백갈등, 좌우대립 등 정부의 개입이 절실한 문제는 악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냐는 논의는 오래됐습니다. 그만큼 미국의 지배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미국의 세계 질서에 어떤 나라보다 기대왔고 그래서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응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논의는 북핵 문제를 넘어 지역 정세를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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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치! 정치를 진정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한 길이다. 삶의 정치가 뭐길래 그러할까? 평범한 사람의 삶에 기반을 둔 정치, 그리고 삶의 질을 좋게 만드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을 갖지 못한 다수의 사람에게 보다 고귀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지향할 수 있는 배움과 일의 기회와 조건을 제공하는 정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의 정치는 거창한 이념의 구현을 내세워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거꾸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이념을 사람 사이를 잇는 꿈과 희망의 언어로 사용한다. 또 삶의 정치는 권력을 목적으로 삼아 사람을 적과 동지로 가르지 않는다. 거꾸로 적마저도 친구로 만들기 위해 권력을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와 규칙의 지렛대로 삼는다.

근래에 들어 삶의 정치란 말이 부쩍 강조되어 왔다. 이념과 권력을 좇아 사람과 사람을 내 편과 네 편으로 가르고 나누면서 공동체를 해체하고 삶을 위협하는 정치가 지배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보통사람을 배제하고 차별하며 소외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해 온 것이다.

한국의 경우 삶의 정치는 한층 더 절실하다. 부와 권력의 독점과 보통사람에 대한 배제와 차별과 소외가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제윤경 의원이 한국은행의 ‘2016대차대조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불평등지수(피케티 지수=자본/소득비율)는 8.28배로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한다. 일본(6.01배), 프랑스(5.75배), 영국(5.22배), 미국(4.10배), 독일(4.12배)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불평등 정도가 훨씬 높은 상태다. 이런 중에도 권력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기득권층의 사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사유화되어 있었다.

‘촛불혁명’은 삶의 정치를 위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을 파면시키고,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함 그리고 결과의 정의로움을 지향하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나아가야 한다. 삶의 정치를 본격화하기 위한 주체와 작동 영역과 방책을 확보해야 한다. 이때 주목할 세 개의 키워드가 있다. 여성과 노동과 사회혁신이 바로 그것이다.

삶의 정치를 위해서는 여성을 정치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 가장 극심한 배제와 차별과 소외의 희생자이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의 ‘2016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에 기초해 당장 임금성비만 봐도 여성은 남성의 64.1%에 불과하다. 여성가족부는 의사결정 분야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격차가 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성은 보통사람의 삶의 터전에 가장 넓고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생활인’이다. 삶의 정치의 핵심인 지역공동체와 가계와 교육 문제 등에 가장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새 정부가 ‘여성내각 30%’를 약속하고 지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우선 내년 6월에 치를 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를 대거 발탁해야 한다. 특히 촛불혁명 덕에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야 한다. 민주당은 핵심 지지기반인 광주에서조차 지난 20여년간 단 한 명의 여성단체장도 배출하지 못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삶의 정치의 주된 작동 영역으로는 노동에 주목해야 한다. 보통사람의 삶은 기본적으로 노동에 의존한다. 따라서 삶의 정치는 일터에서의 평등과 공정함과 정의로움을 구현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불합리하고 과도한 임금격차를 비롯해 고용안정은 물론 생산성마저 해치는 권한의 격차도 해소해야 한다. 끝으로 관이 아닌 시민(주민)이 주도해 의제를 설정하고, 해법을 도출하는 ‘사회혁신적’ 방책을 구사해야 한다. 그래야 당리당략이 아닌 삶에 밀착한 의제를 다루고, 천편일률적이지 않은 다양한 관점에서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

촛불혁명 1주년과 문재인 정부 출범 6개월을 맞이해 의미를 조명하고 성과와 과제를 짚어보는 중이다. 이런 때에 삶의 정치라는 화두와 여성과 노동과 사회혁신이라는 키워드를 불러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적폐청산을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의 설계를 위한 새로운 정치를 시작할 수 있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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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공작정치이다. 지난 10월30일 국정원개혁위원회가 밝혀낸 사실에 따르면, 국정원은 ‘문예계 내 좌성향 세력 현황 및 고려사항’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15개 문화예술 단체와 249명의 문제 인물들을 작성하여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검찰은 국정원이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인 이재만, 안봉근에게 매월 현찰로 1억원을 상납했고, 조윤선, 현기환 전 정무수석에게는 500만원을 상납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재만, 안봉근은 상납받은 돈으로 지난 4·13 총선 동향을 파악하는 비공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이 돈이 모두 전직 국정원장의 특수활동비였다.

국정원이 작성한 15개 단체에 속한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이자, 특별관리 대상 249명에 속한 당사자로서 국정원이 주도적으로 개입한 블랙리스트를 남한 최대의 공작정치로 보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정원은 블랙리스트를 자신의 세력 확장 수단으로 보았으며, 이 일련의 과정에서 청와대에 돈으로 로비를 했으며, 예술가들을 공작정치의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블랙리스트라는 고리로 예술가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영혼을 짓밟았으며, 자신들의 정치적 재생산과 세력 확장을 위해 이용했다. 예술가들이 청와대와 국정원의 공작정치에 놀아난 것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이해관계는 좌파예술가 색출과 퇴출을 위해 상호협조라는 명분에 기초하지만, 실제로 이 명분은 가설효과에 불과하다. 이 모든 게 나라를 위해 한 것이라는 이들의 공감대는 공작정치의 명분을 만들기 위한 가상의 신념에 기초한다. 그들은 이 신념을 동맹의 원천으로 생각하며 권력의 재생산을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

블랙리스트는 그러한 공작정치의 동맹을 작동시키고, 생성케 하는 중요한 매개 고리가 된다. 블랙리스트는 어떤 점에서 그들이 고안해 낸 공작정치의 훌륭한 신상품이며, 정치권력과 정보권력의 동맹을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리트머스 종이와 같다. 청와대와 국정원은 구국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각자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이기적 집단들이다. 국정원은 청와대에 돈을 상납하여, 부패한 공작정치에 면죄부를 받고자 했으며, 청와대는 국정원을 이용해 본인들이 해야 하는 정보공작의 임무를 부여했다.

김기춘이 작동시킨 블랙리스트는 유신 공안검사의 습관적 망상증의 결과이며, 이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망상증과 유사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고영주와는 다르게 공작정치의 판을 크게 벌였다는 점이다. 블랙리스트가 공작정치가 되기 위해서는 국정원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들은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고, 예술가 개인을 사찰할 수 있으며, 블랙리스트를 그럴듯한 구국의 미션으로 부풀릴 수 있다. 김기춘은 블랙리스트 작성의 정당성을 국정원의 공작 파일을 통해 얻고자 했고, 국정원은 청와대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공작정치의 영역을 넓히는 수단으로 삼았다.

블랙리스트는 원래 인터넷에서 떠돌던 데이터베이스였다. 문재인, 박원순을 지지하고, 세월호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문화예술인들의 명단이었다. 그런데 이 명단이 김기춘, 국정원을 거치면서 블랙리스트가 되었다. 김기춘은 블랙리스트가 정책적 결정일 뿐 검열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국정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는 정치적 성향과 활동을 기준으로 배제와 퇴출을 적시한 명단이라는 점에서 검열이며, 청와대가 요청하고 국정원이 보고했다는 점에서 공작정치이다.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에서 수행 주체로 가담한 문체부의 전직 장차관들, 고위공무원들, 그리고 산하기관 간부들의 부역행위는 이러한 공작정치로서의 블랙리스트의 의미를 충분하게 간파할 때, 그 구조적 작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총력을 기울여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실체적 진상규명이 필요한 것은 바로 최고의 두 권력기관이 동맹해서 만든 공작정치가 돈과 정보와 권력으로 예술가들을 우롱했기 때문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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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획자란 남들 앞에서 자신이 생각한 바를 직접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 필자, 독자, 출판 관계자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를 구현해내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편집기획자는 음지에서 일하지만, 양지를 지향한다. 아무리 좋은 기획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해줄 필자가 없으면 소용없다는 것을 절감하게 될 때가 있다. 얼마 전 편집회의에서 여러 안건을 두고 이야기하다가 너무나 멋진 기획을 만났지만,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하신 말씀의 의도를 정확하게 반영해서 글을 쓸 수 있는 필자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지식인 중에는 자기 분야를 벗어나서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연구자들이 정말 드물어요. 또 할 수 있다고 해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그럴 여력 자체가 없습니다.” 전문가(specialist)의 시대지만, 공적 지식인(public intellectual)이라 부를 만한 이들은 더욱 희소한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

1980년 한 해 동안 배출된 국내 박사 학위 소지자는 528명에 불과했지만, 2009년 1만명을 넘어섰고, 2015년에는 1만3077명에 이른다. 올해 태어날 신생아 수가 최초로 40만명 미만이 될 것이라 하니 인구는 줄어도 박사 학위 소지자들은 꾸준히 증가하는 셈이다. 인구 1만명당 박사 학위 취득자도 2명이 넘는다.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7%에 불과하며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육박한다. 수치와 통계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는 지식 선진사회, 바야흐로 대중지식인의 시대다. 그런데도 지식인 사회, 대학의 위기를 넘어 우리 사회가 반지성주의 사회가 되어간다는 우려가 들려온다.

역사학자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공적 지식인 리처드 호프스태터가 1963년에 펴낸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현대 지성사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그는 미국 건국 초기부터 시작된 ‘복음주의’가 매카시즘이라는 ‘극우-반공주의’와 결합하면서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지식인, 특히 공적 지식인들을 어떻게 몰락시켰는지 치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복음주의, 극우-반공주의와 더불어 실용주의를 반지성주의의 핵심으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지적 능력(intelligence)’과 ‘지성(intellect)’의 핵심적 차이는 실용성이 아니라 비판 능력에 있다. 지적 능력이 어떤 사안을 파악하고 처리하는 능력이라면, 지성은 의문을 품고, 이를 비판하고 이론화한다. 지적 능력은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높은 자질로 평가되지만, 지성은 때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 이유에 대해 호프스태터는 “지식인이란 해답을 질문으로 바꾸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지식인은 사회적 통념과 상식에 의문을 던지는 불편한 존재란 뜻이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 사회는 대중의 참여에 의한 민주주의를 경험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은 국가권력의 정상화란 우리 시대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를 달성한 결과이지만,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을 외면하고, 분단이라는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 대한 대처 없이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우리는 스스로 정직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한가롭게 ‘선비질’이나 하는 존재로 비치기에 십상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반지성주의를 염려하게 된 이유의 상당 부분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을 살아오면서 권력과 야합하고, 금력에 굴복했던 지식인 자신에게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귀결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뚜껑을 연 것이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 사태와 정유라의 부정입학 사건이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오늘날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 사회가 처한 위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싸우는 지식인이 없다면 적폐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과 싸울 때보다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스스로 더욱 외로운 소수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들의 비판과 의문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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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불안과 공포의 시대다. 일회용 생리대와 계란, 용혈성요독증후군(HUS·햄버거병) 의혹을 받고 있는 맥도날드의 안전성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소비자 수난의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제품의 안전 불감증 문제는 최근에 나타난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이 부여하는 HACCP 인증은 제품의 안전을 보장하므로 소비자들은 좀 더 비싸더라도 HACCP 인증 제품을 구매한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 HACCP 인증 업체 중 식품위생법을 어겨 적발된 업체가 계속 증가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1년 4월부터 수면 위로 드러나기 시작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 및 사망 사건은 제품안전 불감증의 대표적이며 가장 심각한 사례이다. 제품안전은 소비자가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아무리 음모론이 들끓어도 제품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사회적 권리로 인정받아 마땅하다.

살충제 계란 파장이 전국으로 확산되며 출하되는 계란에 대한 전수 조사가 진행중인 8월 1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는 판매중지 안내문을 게시하고 다른 제품으로 계란 매대를 채워놨다. 김기남 기자

소비자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소비자시민단체가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에 의해 주창되었다. 1962년 3월15일 케네디 대통령은 소비자 이익 보호를 위한 특별보고서에서 네 가지 소비자 기본권리를 제시했다. ‘안전보호 권리’,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알 권리’,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 간에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권리’, 소비자의 이익이 정부정책에 충분히 고려되고 행정법원에서 공정하고 신속히 처리되도록 하는 ‘의결을 반영시킬 권리’가 네 가지 권리이다. 이 네 가지 권리는 유엔의 소비자 보호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이후에 보상, 교육, 건강한 환경과 생필품에 대한 권리들이 추가되었다. 이 권리들은 소비자를 시민으로 규정한 ‘소비자 시민주의(consumer citizenship)’에서 소비자가 누려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이다.

사실 소비자 시민주의는 권리보다는 의무를 강조해왔다. 시민으로서 소비자는 윤리적,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고려를 한 소비를 해야 하며, 소비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지구환경을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지향하는 소비가 의무로 강조되는 추세이다. 그런데 갑질 논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시민으로서 소비자의 의무는 갑질과 무관한가?

마트에서는 반 이상을 먹다 남은 고기를 가져와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어 반품해달라는 진상 소비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TV홈쇼핑 업계에서는 빈 박스나 다른 제품, 심지어 쓰레기를 넣어 반품한 뒤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매월 수천건에 이른다는 기사가 나왔다. 이들은 ‘블랙컨슈머’이다. 블랙컨슈머들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악의적인 입소문을 내거나 부정적인 글을 온라인에 유포하겠다고 협박하기 때문에 기업이 이들을 상대하는 것은 조심스럽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블랙컨슈머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되면, 그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요즘 소비자는 호갱이라고 일컬어지는 호구고객과 진상고객인 블랙컨슈머로 양분되는 것 같다. 많은 소비자는 호갱이 되어버렸고 소수의 블랙컨슈머는 소비자들을 갑질쟁이로 손가락질 받게 했다. 건강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소비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소비자를 보호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같은 법적·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일회용 생리대와 계란의 안전성 문제는 소비자의 안전보장 권리가 핵심이다.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이 신체와 환경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살충제 계란의 원인은 공장식 가축사육방식에서 비롯됐다고 볼 때, 미래의 일회용 생리대와 계란의 안전성은 단순한 안전 관리 감독의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결국 생산과 소비의 과정이 환경에 한 갑질 때문에 우리의 건강에 해를 받는 역습을 당한 꼴이다.

우리 모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황금주 | 중앙대 교수·경영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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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다른 뭐라고는 말 못하겠소. 예전에, 그러니까 몇십년 전에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을지 몰라요. 지금은 그저 빵장수일 뿐이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의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이 엄마에게 “댁 아드님에 대해 뭐 잊으신 것 없수?”라며 반복적으로 전화를 걸어 비아냥대면서, 빵집 주인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 ‘댁 아드님’은 생일케이크 주문하였던 바로 그날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으로 실려 갔었다는 것을. 의식을 잃은 어린 아들의 병상을 일주일째 뜬눈으로 지키며 젊은 부부의 몸과 마음은 생선가시 발리듯 뜯겨갔다는 사실을. 그리고 결국 아이는 세상을 떠났음을. 그는 그저 자신이 공들여 구워낸 생일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예약 손님에게 화가 난 나머지 수화기에 대고 좀 이죽거렸을 따름이었다.

어스름한 새벽녘에 빵집 문을 두드리고서 “그 애는 죽었다구. 이 못된 놈아!”라며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 엄마와 “부끄러운 줄 아세요”라 쏘아붙이던 아이 아빠를 앞에 두고, 그는 횡설수설 미안함을 전하고, 더듬더듬 위로를 건넨다. 그러다 부부를 안으로 들여 탁자 앞에 앉힌 후 갓 구워낸 빵을 건넨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라며, 그들이 접시에 놓인 빵을 하나씩 집어 먹기 시작할 때까지 기다린다.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으며, 아이 엄마는 “롤빵을 세 개나 먹어 빵집 주인을 기쁘게” 한다.

이렇듯 빵집 주인은 자신이 무심코 던진 돌로 인해 낯선 부부에게 미안함과 연민을 갖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이 잃은 부모의 아픔을 온전히 보듬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불어 짊어지고 살 수는 더더욱 없을 테다. 본인 말대로 그저 한 사람의 빵장수일 따름이니까. 바로 그 빵장수만의 방식으로, 도움이 되고자 무언가 끌러놓는 저 장면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번역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의 마지막 장면이다.

여러해 전 어느 늦은 저녁, 필자는 길에서 울고 있었다. 어딘가로 찾아들어 마음을 누이고 싶었고, 떠오르는 장소가 당시에는 성당 정도밖에 없었다. 지나던 택시를 무작정 잡아타고 “명동성당 가주시겠어요?”하였다. 그리고 택시 안에서 다시 울었다. 기사분은 뒷좌석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아무 말 않고, 듣고 계시던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의 볼륨을 줄였다. 그리고 치지직 주파수를 돌렸다. 이내 경건하고 고요한 노래가 들려왔다. 조스캥 데프레가 작곡한 ‘아베 마리아’라고 라디오 진행자가 알려주었다. 뒤이어 그레고리안 풍의 단조로운 노래도 흘러나왔다. KBS 클래식FM이었던 듯한데, 그 시간에 성모 마리아를 주제로 한 고음악을 특집으로 선곡했던가 보다. 여기저기서 자동차 클랙슨이 울리던 캄캄한 월요일 밤, 퇴계로 부근의 택시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아베 마리아와 살베 레지나와 마니피캇을 함께 들었다. 어느덧 울음은 스르르 잦아들었다.

그날 밤 신에게 무엇을 간절히 빌었던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이 그리 힘들었던지도 가물가물하다. 다만 성당으로 가달라며 울던 승객을 위해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희생하고 그 노래들을 같이 들어주신 택시 아저씨의 마음은 기억한다. 말하자면 당시 위로는 잠자코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택시 아저씨의 손길을 통해 건네졌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에서 ‘세상읽기’인지 의아해하실지 모르겠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예리하게 분석해주실 정치·경제적 현안들과 ‘세상을 바꾸는 방안’에 필자의 서툰 논평을 한 줄 더 얹는 대신, 필자는 그 세상에서 떼어놓는 작은 발걸음들에 시선을 두고자 하였다. 핵문제가 해결되고 적폐청산이 되고 나쁜 자들이 감옥에 가도 여전히 견고하게 지속될, 제도를 몸통으로 하고 자본을 심장으로 한 체제. 그 안에서 힘겨워할 우리가 서로에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찰나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이 글은 그 첫 시도다.

<이소영 제주대 교수 사회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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