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막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광고회사에 다닐 때의 일이다. 거래처 사장과 앞으로의 제작 일정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일정 중 설 명절이 있어서 기한 내 제작의 어려움을 설명하는데 눈앞으로 갑자기 커피 잔이 날아왔다. 내 기억으로 피하지 않았거나 피하지 못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손목을 꺾었는지 잔은 내 등 뒤로 날아가 산산이 깨졌다. 당황한 나에게 그는 핑계처럼 “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다소 반항적인 인간이었던 탓일까. 어려서부터 누나에게 “너 눈 좀 그렇게 뜨지마”라는 지청구를 듣긴 했었다. 커피 잔이 영화 속 슬로모션으로 내 옆을 스쳐지나간 뒤, 나는 사장을 탓하는 마음에 앞서 ‘내 눈빛이 그렇게 안 좋은가?’란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과연 내 몹쓸 눈빛 탓이었을까, 요즘도 가끔 생각나는 사건이다.

출처:경향신문DB

조현민이 광고사 직원에게 이른바 ‘물컵 갑질’을 했지만,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 사건에 관한 세 가지 혐의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 단순폭행, 둘째 업무방해, 셋째 특수폭행이다. 단순폭행은 피해자랑 합의하면 끝, 업무방해는 그것이 당사자의 업무였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업무를 방해했으니 끝, 남은 것은 특수폭행 하나뿐이지만, 결국 이것도 무혐의가 되었다. 보통 일반인이 유리컵을 던지면 빼도 박도 못하게 특수폭행(특수협박)이 된다고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손목을 꺾었는지 이조차 무혐의로 풀려났다. 사건이 일어난 뒤 이걸 가지고 칼럼을 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건이 사건을 덮는 ‘다이내믹 코리아’니까, 이마저도 시일이 조금 지나면 잊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또 다른 ‘갑질폭력’ 사건이 알려졌다. 놀랍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에선 이런 사건이 해마다, 달마다, 매일 어디선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건 당사자가 단순히 ‘갑질폭력’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일의 웹하드 업체 소유자이며, 웹하드 플랫폼을 통해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을 유포하여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업체란 사실이다. 2015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웹하드 서비스 음란물 이용현황에 따르면 웹하드 업계 전체 매출액은 약 2000억원, 그중 70~80%를 상위 5개 업체가 차지한다. 수십개의 웹하드 업체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소유주는 몇 명 되지 않는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도 그중 하나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따르면 웹하드에서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은 저작권료 없는 콘텐츠로 매우 수익성 높은 상품이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은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웹하드 업체가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은 유포가해자인 헤비업로더들을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경찰 수사에서 보호하는 등 범죄행위에 동참해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업체에서는 이와 같은 피해촬영물을 기술적으로 걸러주는 필터링업체와 인터넷에서 삭제해주는 대행업무로 수익을 올리는 디지털장의사 업체까지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피해촬영물을 유포하여 수익을 얻고, 이를 유포하는 범죄자들을 관리하고 보호해왔으며, 피해자들에게는 돈을 받고 피해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방식으로 다시 수익을 얻는 구조란 것이다.

웹하드 커넥션은 단지 필터링업체, 디지털장의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십수년 동안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이들이 쌓아온 돈(자본)의 힘은 어느새 정치권, 언론, 법률시장, 모바일결제시장, 통신사 등등 웹하드와 연계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들과 연계되어 왔다. 그동안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 유통 근절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야기되어 왔던 까닭은 기술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권력과 수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법이 명백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할 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할 때 이것은 결코 진심이 아니며 진실일 수도 없다. 그것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정도로, 처벌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권력차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말로 바꿔 읽어야 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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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청년들이 단기 성공 대신 장기 생존을 추구하고 있다. 사회적 삶이 서바이벌 게임처럼 변모한 지금, 오래 살아남은 자가 승자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러시안룰렛이나 폭탄 떠넘기기와 같이 매번 탈락자를 솎아낸다. 이렇게 되면 게임에 임하는 근본 태도가 달라진다. 이번만 피하고 보자. 남에게 위험을 전가하자. 하지만 마냥 운이 따라줄 수만은 없다. 어차피 승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는 잔혹한 게임에서 패배는 시간문제다. 경쟁에서 이길 때 잠시 기쁨을 누리지만, 패배자들이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괴롭고 처연하다.

짧은 주기를 가지고 거의 무한 반복되는 서바이벌 게임은 비극을 연상시킨다. 비극이란 무엇인가? 비극에서 주인공은 악한 사회의 도덕법칙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파멸에 이른다. 관객은 이 싸움이 피할 수 없는 파국으로 끝날 것임을 예감하기에 비장감을 느낀다. 주인공이 선한 덕성을 지닐수록 이는 더욱 증폭된다. 마침내 주인공을 좌절시키는 사회의 도덕법칙에 대한 분노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비극은 악한 사회를 위협한다.

지금 사방에서 청년들이 악한 사회에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고 울부짖고 있다. 하지만 기성세대 관객은 결코 분노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SBS 프로그램 <생활의 달인>은 이에 대한 답을 준다. 여기에서는 ‘소박한 일’을 무한 반복하면서 그 분야에 달인이 된 사람이 등장한다. 프로그램 소개다. “수십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가 담겨 있는 프로그램.” 2005년 4월에 처음 방영된 이 프로그램은 2018년 10월 말 현재까지 총 643회나 방영되었다. 워낙 장기 생존에 뛰어난 달인들만 찾아다니다보니 프로그램 자체도 장기 생존의 달인이 되었다.

달인사회에서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살아남은 자의 영예’로 뒤바뀐다. 기성세대는 청년들에게 말한다. 모든 패배는 너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사회가 악하다고 탓하지도 말고 패배를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고 줄기차게 하다보면 언젠가 너희들도 우리 기성세대처럼 생존의 달인이 될 수 있다. 청년들은 이러한 약속을 믿고 주어진 일을 죽어라 열심히 하다가도 때론 갸우뚱 묻게 된다. ‘죽어라’ 노력해서 얻은 영예가 고작 생존이라면 이걸 굳이 ‘죽어라’ 할 필요가 있나? 이러한 회의는 청년들로 하여금 부당한 경쟁 게임 밖으로 나가도록 부추긴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대충 살자’ 놀이가 한 예다.

이를 보는 나의 심경은 복잡하다. 지방대생들이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로 살아가고 있다는 연구를 얼마 전 발표한 터였기 때문이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방대생은 모든 상황에 적당하게 관여하는 것을 서로의 의무로 받아들인다. 이제 이러한 적당주의 집단 스타일이 모든 청년들로 확산되고 있는 것인가? 본격적인 경험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일단 나는 여기서 어떤 차이를 본다. 지방대생의 적당주의가 유사가족 안에서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적당주의는 모든 사회관계 밖에서 벌어지고 있다. 또한 전자가 상황에 적당하게 관여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아예 상황 밖으로 나가 관여를 끊어버리는 것이다.

기성세대가 달인이 되라고 강요하는 사이 청년들이 적당주의로 응수하고 있는 셈이다. 생활의 달인 흉내를 내다가는 일찍 ‘불타 없어져’ 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대충 살아도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어야 좋은 사회다. 죽어라 노력해야 생존할 수 있는 전장 같은 사회는 분명 악하다. 그래서 청년들의 적당주의는 달인사회에 대한 나름의 저항일 수 있다.

하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우선 장기 생존하기 위하여 대충 살아가는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더 나아가 청년들이 상황에 아예 관여하지 않게 되면 우리 사회에 더 좋은 삶을 만들 희망이 고갈된다. 악한 사회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일에는 몰입하고 헌신해야 한다. 무엇이 가치가 있는 일인지 청년들이 서로서로 계속 물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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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택’이라고 또렷하게 이름을 붙인 정책이 논의되고 그 성과로 조금씩 집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5년 1월에 ‘서울특별시 사회주택 활성화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이후라 할 수 있다. 서울시의 경우 2018년 2월까지 약 500가구의 사회주택이 공급된 것으로 집계된다. 조례가 제정된 지 아직 5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매년 정책의 결과를 평가받는 행정기관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실적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택의 활성화를 위한 여러 방안이 도입되고 있다. 하지만 주로 주택사업자를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어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주택이란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거주기간에 제한 없이 또는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을 아울러 이르는 용어이다. 부담 가능한 비용과 장기임대가 실현되려면 비영리 운영이 전제되어야 한다. 최대한 비용을 낮추고 불로소득 발생을 줄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좁게는 입주자, 넓게는 지역공동체 당사자가 사회주택의 공급주체 일원으로 참여하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구체적으로는 수요자나 당사자들이 자금조달, 사업기획 및 시행, 주택운영관리, 융자금상환, 신규입주자 안내 및 교육 등을 분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지역공동체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주택협동조합이 사회주택사업자인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공급된 사회주택의 경우 공급의 주체인 사업자가 별도로 존재하고 입주자는 단순히 세입자나 소비자의 입장에 머물 때가 있다. 이렇게 되면 전체 사업비용이 늘어나거나 운영주체의 부담이 커지게 되어 기대만큼의 성과를 올리기 어려울 수 있다. 사회주택이 활성화되려면 사업자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회주택과 관련된 지역공동체 당사자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한다.

행정안전부의 사회혁신추진단에서는 2018년 과제로 ‘지역의 공동체를 활용한 사회적 약자 삶의 질 향상 지원사업’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사회혁신 리빙랩의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이 사업의 주제 중 하나가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주택 활성화이다. 주민자치 및 거버넌스를 통하여 사회주택이 공급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사회주택 수요자의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모델을 실험하는 것이 주요 목표이다.

리빙랩은 사회주택 수요자 및 지역공동체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방안을 실험하는 것과 사회주택을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협의체계를 검토하는 것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자의 경우 기존 사회주택 입주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 공동학습, 신규 수요자 및 지역공동체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집담회나 토론회 등을 실시하여 기존 사업체를 비영리 사회주택공급조직으로 전환하거나 수요자 기반의 사회주택주체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을 실험하고 있다. 후자의 경우 지자체 담당부서, 지방공기업, 사회적경제주체 등 사회주택과 관련되어 있는 공공 및 민간 주체와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사회주택 관련 지원정책을 개선하고 지역공동체 인내자본과 같은 연대체계를 형성하는 것을 시도하고 있다.

3개월 정도의 짧은 사업기간이지만 수요자 참여형으로 10가구가 거주할 사회주택의 공급이 진행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지역공동체의 수요자가 주택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입주자 공모방식을 개선할 수 있었다. 또한 리빙랩에 참여한 사회주택사업자 중 하나는 입주자 등 전체 조합원의 총의를 모아 비영리 사회주택공급조직으로 전환하기에 앞서 사회적기업 인증을 추진 중이다.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관심이 많은 신용협동조합, 사회주택사업자, 수요자 집단의 연대와 인내자본 형성도 시도되고 있다. 짧은 기간에 여러 당사자와 의견을 나누는 게 쉽지만은 않겠지만 이번 사업을 계기로 사회주택 활성화를 위한 지역공동체 차원의 논의를 시작해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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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IT·게임 업계에서 잇따른 노동조합이 설립되고 있다. 처음에는 인터넷 검색 포털 서비스 기업 ‘네이버(NAVER)’였다. 이때만 해도 그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여겼다. 그 위력이 약해서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한 기업의 특수한 상황으로 치부했다. 과연 그럴까. 불과 6개월 사이에 넥슨, 스마일게이트, 안랩, 그리고 가장 최근엔 다음카카오에서도 노동조합이 생겼다. 이 정도면 IT나 게임 업계의 노동조합 설립은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유 있는 태풍이다.

네이버를 비롯하여 이들 기업 모두 포털, 게임 등 정보통신 분야 선도 기업이다. 그런데 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을까.

하나둘 살펴보니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직장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잘 구축되어 있다. 임금이나 복지가 좋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자유로운 직장 분위기, 유연한 근무, 능력에 따른 보상, 다양한 복지제도 등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비교되는 국내 기업들이다. 대부분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은 직장으로도 꼽힌다. 그런데 IT 업계 이직이 많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없다. 왜 그럴까.

정보기술(IT) 업계 노동자들이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도 사무실 불을 끄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 IT 업계 프리랜서 10명 중 6명이 과도한 업무와 임금체불 등으로 중도하차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무엇보다 IT·게임 업계의 과도한 장시간 노동 때문이다. 지난해 정부 조사 결과 10명 중 6명이 1주일 평균 60시간 이상 일하고 있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살인적인 노동조건이다. 이 때문일까. 몇몇 게임업체에서는 직원들의 자살이나 돌연사도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IT나 게임 업계의 ‘크런치 모드’라는 것이 원인이다. 크런치모드(crunch mode)는 게임이나 프로그램 등 제품 출시를 맞추기 위해 야근과 특근을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3개월 이상의 고강도 노동을 하다 보니 일상의 피폐함이 심각하다. 그간 연장·야간·휴일수당 등은 거의 지급되지 않았고, 임금체불은 추정조차 힘들다. 벤처정신, 열정이라는 이름하에 노동인권의 사각지대가 바로 IT와 게임 업체였다.

한 게임업체는 지난 수년간 엄청난 수익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은 인센티브도 받지 못했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직원들의 성과평가나 보상기준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항상적인 구조조정과 고용불안이다. 사실 IT·게임 업체 개발 프로젝트는 성공 확률이 10%도 안된다. 중간에 프로젝트가 중단될 때도 많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프로젝트 폭파’라는 표현도 쓴다. 그러다 보니 조직개편도 잦고, 조직 내 의사결정도 폐쇄적이다. 특히 프로젝트가 끝나면 대기발령, 전환배치, 권고사직 등을 강요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이럴 때마다 “또 당했네!”라는 자조 섞인 말이 위안이라고 한다.

네이버는 40여개 계열사에 약 1만명의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IT 업계 특성상 2030세대 젊은층과 여성도 많다. 그러나 최근까지 네이버는 직원 건강검진이나 조회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았었다. 이런 상황들이 스스로 노동자로 인식하지 않았던 곳에서 노동조합이 설립된 계기다. 그러나 네이버의 노사관계 인식과 태도는 매우 실망스럽다. 회사는 지난 4월 노조 설립 초기부터 노조 활동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을 위한 사내 메일도, 게시판 요구도, 강당 사용도 불허했다고 한다. 홍보물 배포와 같은 정당한 활동조차 제약한 것은 사실상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막은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지난 6개월 동안 교섭에 소극적이다가, 뜬금없이 비조합원이 참여한 TF를 제안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노동법 81조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만큼 위법한 행위로 보인다. 회사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사람을 내보내는 회사, 평소 사내에서 직원 간 인사조차 하지 않는 조직문화, 실패의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회사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IT·게임 업계의 바람이라고 한다. 바로 회사는 이런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다.

문득 엔씨소프트 노동자들은 안녕한지 궁금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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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고되고 긴 더위 탓일까. 쾌청한 가을의 끝이 아쉽다. 곧 겨울이 오겠지. 찬 공기 가득 실은 매서운 바람도 데려오겠지. 오늘은 24절기 중 상강이다. 밤과 낮의 기온차가 커지고 서리가 내리는 시기다. 농경사회였다면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 추수와 겨울맞이에 집중했을 시기. 하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붉게 물든 단풍과 활짝 핀 국화꽃 나들이의 여유를 만끽한다.

이러한 호사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이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계절의 변화 속에서 패턴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해졌다. <생각의 탄생> 저자인 생리학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의 말처럼 “패턴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는 일”이다. 패턴 인식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변화에 보다 안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패턴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은 인류문명이 유지되고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4차 산업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도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패턴 인식능력이 늘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패턴에 적응하고 대처하기 위한 생활안내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이 지정해 둔 기념일을 제외하면 수백년 전과 비교하여 별다른 정보가 추가되지 못했다. &lt;마인드세트&gt;의 저자인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는 “미래를 덮고 있는 커튼을 걷어내는 데 필요한 지식의 가장 커다란 원천은 바로 신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시도해 봤다. 앞으로 한 달간 무슨 일이 벌어질까.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매해 10월21일부터 11월20일까지 한 달간, 국내 포털에 노출된 언론사 뉴스 약 150만건 중 반복출현 및 신규출현 어휘를 추출하고 그 패턴을 분석했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결과를 경제이슈, 생활이슈, 사회사건, 정치외교 등 크게 4가지 패턴으로 분류했다. 첫째, 경제이슈에선 코스닥·관광객·개발·소비자·스타트업 등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특히 ‘관광객’은 중국·의료·사드·유치 등의 연관어휘와 짝을 맺었고, ‘개발’은 사물인터넷·정보통신·자동차 등의 신기술 발표가 많았다. ‘소비자’는 물가와, ‘스타트업’은 지원과 짝을 이뤘다. 둘째, 생활이슈에선 청약·취약계층·겨울 등이 다수 언급됐다. ‘청약’은 아파트·통장·서울·자격·경쟁 등과 짝을 이루어 부동산시장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취약계층’은 지원과, ‘겨울’은 추위·준비·조류독감 등과 상관성을 보였다. 셋째, 사회사건에서는 재건축·나포·환경부·파업·집회·나눔·봉사 등이 주로 언급되었다. 이 중 ‘재건축’은 압수수색·이사비용·건설 등과 함께 언급되었고, ‘나포’는 중국·어선·북한·서해 등과, ‘환경부’는 국감·물발자국·제품·부평·다이옥신 등과 높은 상관성을 갖고 있었다. 끝으로 정치외교에선 유엔·시찰·제주 등이 거론되었다. ‘유엔’은 인권·추모·난민 등과, ‘시찰’은 김정은·자동차·투자 등과, ‘제주’는 한라산·북핵·6자회담·한미관계 등과 2차관계로 연결되어 나타났다. 칼럼을 다시 쓰는 한 달 후쯤엔, 위의 패턴분석을 통한 예측이 얼마나 적중했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같은 별을 보더라도 관심사에 따라 서로 다른 상상을 하듯, 예측결과에 대한 해석과 반응도 제각각일 것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 인생도 예측할 수 있을까. 만약 과거에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실수들을 단지 예외적인 사건의 연속이라는 마음속 변명으로 늘어놓는다면, 패턴분석도 소용없는 일일지도.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데이터에는 인간의 경험 자체에 대한 가치가 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쩌면 인생을 예측하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패턴분석보다는 자기성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선조들은 수세기 동안의 관찰결과를 후손에게 DNA와 기록에 실어, 하늘의 변화를 달력으로, 별들의 변화를 생존을 위한 쪽지로 변환해서 물려주었다. 우리 인생에서 하늘과 별은 무엇일까. 우리는 후손에게 무엇을 물려주려고 하는 걸까. 궁금하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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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당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직접 관여를 했습니다. 보잉사 F-15SE로 거의 기울었던 결정을 뒤엎었죠. 경쟁 기종보다 기술 이전, 가격 면에서 모두 뒤진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그는 “정무적 결정”이라며 록히드 마틴사의 F-35A를 밀어붙였습니다. 7조원이나 쓸 사업을 이렇게 가볍게 처리해도 되나 싶었죠. 그 의문은 올해 조금 풀렸습니다. 김관진이 록히드마틴사와 연관된 로비업체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수수한 게 드러났죠. 무기 사업은 역시 복마전이구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복마전의 정말 큰손은 미국입니다. 유럽 전투기는 유독 한국 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습니다. 미국 주요 동맹국인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독일,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유럽산 전투기와 미국 제품을 동시에 사용하죠. 우린 사실상 100% 미국에 의존합니다. 게다가 한국의 미국 무기 쏠림은 전투기뿐 아닙니다. 액수로만 따지면 90%를 미국에서 사들이고 있죠. 기술 이전은 미미하고 품질 시비도 심심하면 터져 나와도 말입니다.

이 묘한 상황에 대한 설명은 여럿이지만 그중 가장 강력한 주술은 한·미동맹입니다. 미군과 전략적 공조를 이루어야 하니 미국 무기를 쓰는 게 효율적이라고 합니다. 다른 미 동맹국은 그렇지 않은데 왜 한국만 그럴까.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말이 동맹이지 한쪽이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기대고 질질 끌려다니는 게 현실입니다. 군사를 부리는 권한은 한 국가의 고유 권한이자 국가라는 개념의 토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작전권은 이미 1950년 미국으로 넘겼고 전쟁이 끝나도 찾아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1994년, 겨우 반만 돌려받았죠. 하지만 전쟁이 나면 한국군은 아직도 미군 지휘를 받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논란에도 미국 무기를 묵묵히 사대고, 범죄를 저지른 미군을 조용히 내보내는 게 오히려 당연하죠. 온전한 국가는 아닌 셈입니다.

그래서 트럼프의 승인 논란이 더욱 씁쓸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5·24조치’ 해제 검토 발언에 대해 “우리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연거푸 강조했습니다. 트럼프의 평소 태도를 보면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난리가 났죠. 그 반응이 흥미롭습니다.

한편에서는 미국 심기를 건드렸다며 좌불안석이었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승인 발언은 외교적 결례지만, 정부가 자초한 측면도 크다”며 화살을 미국 정부가 아닌 한국 정부로 돌렸죠. 한국당 의원들은 비슷한 성토를 토해냈습니다. 보수당이라면 한 나라의 전통과 민족주의를 중요시하는 게 보통이죠. 그런 정당이라면 성조기를 흔드는 대신 트럼프 발언에 분노를 표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당은 그 정체성이 극우와 종미 사이를 오가니 그런 반응이 무리였다고 할까요. 

더불어민주당 쪽에서는 승인 발언이 부적절했다는 데 초점을 모았습니다. “부적절했다”(심재권 의원), “적절치 않다”(송영길 의원). 정의당 대표 이정미 의원은 “국민에 대한 모욕” “외교적 갑질”이라며 비판의 수위를 최고조로 올렸죠. 하지만 이들도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아무도 미국이 한국 외교, 군사, 안보에 비정상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지적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에 대한 모욕은 트럼프가 어떤 단어를 써서가 아니라 굳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현실임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그 현실을 바꾸려 시도조차 않는 자신들 행태가 더 큰 모독임을 감히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문제든 해결의 시작은 직시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한국의 꼬인 외교를 푸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주권국가라면 할 수 있는 게 우리에겐 너무 모자란, 차가운 현실이죠.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사태를 바닥으로 몰고 간 것도, 그것 말고는 별로 할 게 없어서인 측면이 크죠. 사태를 호전시킬 방도가 마땅치 않으니 호통치고 겁박할 수밖에요. 그만큼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한국시리즈 7차전 9회 말 전력투구입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끌어다 공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그 노력에 행운이 곁들여져 결실이 하루빨리 나길 고대합니다. 그래서 정상 국가로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합니다. 그 걸음에 딴지를 거는 목소리가 한국 안에서만큼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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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꿈같다. 그 겨울에 어린 딸의 손을 잡고 광화문광장에 처음 나갈 때만 하더라도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남과 북이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것 같았는데, 그 사이 남북 정상이 세 번이나 만났고, 13년간 직접고용을 외치며 투쟁하던 KTX 승무원들, 9년간 복직을 외치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직장으로 돌아간다. 그런가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 국민에게 상처를 주었던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거나 재판 중에 있다.

이 모든 일이 꿈이라면 깨고 싶지 않을 지경이지만, ‘그래서 세상이 변했니?’라고 묻게 되는 일도 자주 일어난다. 세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자주 듣게 되는 ‘소확행(小確幸)’이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작지만 일상에서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런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성을 이른다. 이것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필집에서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 자신이 느끼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감정이라고 한 데서 유래하게 되었다.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인생은 한 번뿐(You Only Live Once)’이란 말을 줄여서 ‘욜로’라고도 한다.

이런 사회적 경향은 애초부터 출발선이 다른 사람, 도저히 쫓아갈 수 없을 만큼 격차가 확연히 벌어진, 불평등이 고착된 사회의 반증이기도 하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신용불량자의 삶이 확정되는 이들에게 멋진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오늘을 희생하며 먼 미래를 위해 살아가라는 성장시대의 동기를 부여한들 더 이상 속을 사람도 없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실현하기 어려운 소망을 품고 살면서 괴로워하는 대신, 오늘이나 내일쯤 당장 실현가능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겠다는 자기위안과 행복을 탓할 수 없다. 도리어 노동중독사회에서 게으를 권리까지 권하지는 못하더라도 일과 삶의 균형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며 권할 만한 인생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미투(Me too)’를 경험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고, 새롭게 느끼게 된 깨달음이 하나 있다.

그중 하나는 고발당한 사람들만 고발된 것이 아니라 나도 누군가 타인에게는 살아있는 권력이고, 잠재적인 위협이며 공포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촛불혁명’ 직후 시작된 ‘미투혁명’은 잘못된 최고 권력자 하나 사라진다고 해서 일상의 민주주의가 저절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함께 촛불을 들고, 더불어 진보를 말하고, 소셜미디어 프로필 이미지에 세월호 추모 이미지를 달고 있는 우리들 역시 일상에서 어느 순간 갑자기, 또는 지속적으로 1차 가해자가 되고,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소소하게는 직장에서 누군가 잘되게는 할 수 없어도 못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고, 자동차 운전대를 잡으면 길 앞의 여성운전자에게 시시때때로 욕설과 비난을 가할 수 있다. 또 그와 반대로 한순간의 분노와 실수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공연한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모두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큰 권력을 비판하기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잘못된 큰 권력이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을 비판하던 사람들이 저절로 정의로운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위협하는 우리 일상의 ‘소소하지만 확실한 불행’을 외면하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불의’를 방치하고도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우리 모두 행복해지려고 노력하지만, 행복해지기 어려운 까닭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오직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의 테제이고, 다른 하나는 ‘인생을 바꿔야 한다’는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테제다. 세상과 일상의 변화라는 두 가지 테제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한다면 ‘틸틸’과 ‘미틸’이 그토록 열심히 찾아 헤맸던 파랑새는 우리 곁에 머물 수 없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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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회에서 새로운 강사법이 통과될 예정이다. 이 법에 따르면 강사당 학기별 최대 6시간,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9시간 수업을 맡겨야 한다. 1년 단위로 계약해서 최대 3년을 보장해야 하고, 방학 중 급여를 지급해야 하며, 퇴직금도 마련해야 하고, 보험에도 가입해주어야 한다. 학문 후속세대에 최소한이나마 안정적인 교육과 연구 환경을 마련해주어 학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벌써 엉뚱한 효과가 나타날 조짐이 보인다. 대학이 인건비 상승이 예상되자 이를 사전에 막고자 온갖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선 교원확보율에 해당되지 않는 강사는 현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 대신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강의를 늘린다. 이를 위해 강사 비율이 높은 학과에 불이익을 준다. 또한 개설 강좌 수를 대폭 줄이기 위해 졸업에 필요한 필수 학점 수도 낮춘다.

이러한 소문이 실제로 실행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추가 예산지출이 없기에 당장 대학 생존에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학문의 재생산이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다. 많은 강사들은 생계는 말할 것도 없고 학문할 수 있는 여건을 잃는다. 대부분 본교 출신의 강사들은 자신을 키워낸 대학에서조차 설 땅이 없다. 이를 바라보는 후배들은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할 뜻을 접는다. 대학원 나와 봐야 교수가 되기는커녕 당장 활동 공간도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이 텅텅 비어간다. 학문을 논할 제자가 없으니 교수도 공부를 게을리한다.

전임교원은 엄청난 강의 부담에 시달린다. 1주일에 5과목, 6과목, 7과목 거의 무제한으로 강의를 해야 한다. 강의 시수와 수강학생 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과중한 강의 시간 탓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질 리 없다. 게다가 개설 강좌가 줄어들어 모든 강의가 도떼기시장처럼 벅적거린다. 강의하느라 연구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외국 학자들이 해놓은 연구를 요약해서 ‘얕고 넓은 지식’을 전달하는 지식소매상으로 추락한다.

이렇듯 대학이 생존주의자로 전락하는 사이 학문 후속세대의 재생산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 실제로 인건비를 줄여 생존하려는 노력은 신임 교수를 뽑지 않는 사태로 나타나고 있다. 정년퇴임을 해도 새로 교수를 충원하지 않는다. 취업에 별 도움이 안되는 것처럼 보이는 학과가 말라죽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새로 오는 자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온다. 새로운 교수가 와야 대학도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예 그 싹을 짓밟는다.

이제 대학의 목적은 생존이다. 많은 사람들은 저출산과 학령인구의 감소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마냥 이러한 사회구조의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도대체 누가 대학을 생존주의자로 몰아가는가? 손에 손을 맞잡고 취업 문제를 대학에 떠넘긴 국가와 기업이다. 국가는 국가보조금을 한 손에 쥐고 또 다른 손에는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두르면서 대학을 겁박하고 있다. 정원을 줄이고 취업훈련소가 되라고. 기업 역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산업인재를 키워내라며 대학을 압박한다.

기업은 사실 부모가 20~30년간 자녀에게 쏟아부은 인적 자본의 최후의 수혜자다. 별다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열매를 마구 따먹는다. 사회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도 사람에게 투자하지 않고, 써먹지도 않을 온갖 스펙을 요구해서 대학교육을 황무지로 만든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학이 학문의 탁월성을 추구할 수 없다. 단기성과를 내라는 경영 언어에 휘둘려 눈앞의 생존에 매달린다. 하지만 묻자. 진정,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서 우러나온 문제를 붙잡고 ‘우리의 언어’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남의 삶’에서 나온 ‘남의 이야기’를 주워섬기며 ‘제 이야기’인 양 우쭐대는 허깨비가 수두룩하다. 이런 비판을 하면 제 밥그릇 챙기기 급급하다며 ‘교레기’ 취급이나 받겠지. 나는 또다시 우울한 상념에 사로잡힌다. 이러다가 온 대학이 다 천해지면 누가 귀한 일을 맡아서 할까?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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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찬 대표는 집값 급등에 대한 대책으로 토지공개념의 ‘실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990년대 초반 토지공개념을 도입하였으나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않아서 부동산 문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토지공개념을 사유재산권 침해, 극단적으로는 공산주의라고 매도하는 주장도 있으나, 여당이나 정부에서 거론되는 것은 부동산에 대한 세금을 좀 더 현실화하겠다는 정도이다. 국외의 사례를 살펴보면 토지공개념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으로 쓰이는 것은 ‘토지가치세제’와 ‘토지가치공유제’이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1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토지가치세제는 토지의 소유를 통해 파생된 불로소득을 조세를 통해 환수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실효적인 토지가치세제의 도입이 도시개발과 주택건설을 통한 경기부양책에 밀려 계속 좌절되어왔다. 따라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토지가치세로 마련된 재원이 어디에 쓰이는지 그래서 서민들의 삶이 어떻게 나아지는지 명확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를 살펴보면 보유세를 부과하여 조성된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쓰임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의 분배라는 측면에서 기본소득의 보장도 토지가치세의 적절한 사용처일 수 있으나, 우리나라처럼 부동산가격 상승이 소득증가보다 가파른 상황에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서민에 대한 소득 보조가 주택임대료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토지가치세는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어야 한다.

토지가치공유제는 공동체의 실수요자를 위해 토지를 사용하여 토지를 매개로 한 불로소득의 발생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사유재산 침해라는 엉뚱한 오해를 받고 있으나 실제로는 공유재산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여 사회안전망을 확보하는 것일 뿐이다. 공공임대주택이나 사회주택을 지역공동체에서 일정량 확보하여 서민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고 주택가격이 치솟는 것도 막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정부의 부동산대책을 살펴보면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단지를 개발하겠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단순히 주택공급을 늘린다고 해서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새롭게 공급되는 주택에 얼마나 많은 공공임대주택을 넣을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공공임대주택을 마냥 늘리기 어렵다면 최근 지자체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사회주택을 활성화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사회주택은 부담 가능한 임대료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말한다. 실수요자로 구성된 비영리 사업주체나 지역공동체가 소유하는 공유재산이기에 가능하다. 서울시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공공의 토지를 일정 기간 빌려주는 토지임대부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공유재산도 늘리고 서민의 주거안정도 도모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물론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 활성화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지역공동체의 서민들이 주택건설비를 마련해야 한다. 초기에 투입된 건축비를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야 하는데 현재는 토지의 임대기간이 최장 40년에 불과하여 부담이 만만치 않다.

서구의 사례를 보면 토지의 임대기간이 충분히 길어서 100년에 가까운 경우도 많다. 토지를 개인이 아니라 서민들로 구성된 비영리 사업주체나 지역공동체에 빌려주는 방식이기에 장기임대가 공익의 증대로 이어지는 게 가능하다. 이처럼 장기간 임대할 토지를 확보하려면 공공재원이 필요한데 토지가치세를 활용하거나 토지임대부 사업으로 거둬들인 토지임대료를 재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비영리 사업주체나 지역공동체에 건축자금을 저리로 융자해주거나 사회주택에 입주하는 서민들에게 주택보증금을 융자해주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공급활성화에 중요하다. 사회주택의 활성화를 통해 토지공개념에 대한 오해도 해소하고 시장경제 회복과 소득주도 성장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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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차원을 여는 이야기>. 청년의 삶을 바꾸려는 서울시 청년의회 슬로건이다. 청년의회는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한 정책 제안의 공간이다. 올해로 벌써 4번째였다. 그동안 서울지역 청년들은 청년의회를 통해 활동공간이나 청년수당 그리고 주거와 일자리 정책 등을 제안했다.

2018년 청년의회에서는 어떤 정책들이 제시되는지 궁금했다. “여러분들은 버스 안의 휠체어를 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독립할 수 있는 집은 없다!” “안심을 넘어 평등으로” “진학하지 않아도 괜찮아” “인서울과 탈서울” 등과 같은 10가지 정책을 제안했다. 청년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과거의 주택 공급정책에 안타까움을 표현했고, 청년자치 공간을 마구마구 홍보해달라고 한다.

하나같이 현실적이고 필요한 정책이었다. 대부분 법제도를 고칠 필요가 없었다. 정책의지만으로도 충분히 실현 가능한 것들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애인 저상버스 이용 문제는 공감을 이끌기 충분했다. 우리는 일반버스와 저상버스를 구분해서 탄 적이 있을까. 그러나 장애인에게는 중요한 이동권이다. 규칙적이지 않은 배차 시스템, 마지막 저상버스를 놓칠 경우 일반버스 접근 불가, 장애인 승차 의사표시(알림시스템) 등 꼼꼼히 살피지 않으면 체념하기 쉬운 내용들이다.

이러한 정책을 만들기 위해 13개 분과별로 4개월 동안 80여차례 회의를 했다고 한다. 무엇이 이러한 열정과 관심을 만들게 했을까. 한 청년에게 물어보니, “바로 자신들의 목소리가 사회에 많이 전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안전한 공간’이라는 말에는 미안함이 들었다. 기성세대들에게 청년들의 주장은 ‘불평불만’의 목소리였고, 치기어린 애들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청년의회와 같은 곳에서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존중받고 있다는 경험이 그들에게 열정을 불러온 것이다.

혹자는 예전과 달리 우리 사회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이와 서열의 권위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획일성은 서울의 2030청년들이 가치관 갈등으로 꼽은 세 가지다. 권위주의가 가치관 갈등의 1위(5점 만점 4.4점)라고 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같은 청년이라도 여성과 남성은 가치관 충돌이 두 배 이상 차이가 있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청년들은 앞으로 인권, 다양성, 탈권위, 공정, 성평등, 신뢰, 안전, 환경들을 우리 사회가 핵심적 가치로 추구해야 할 의제로 꼽았다.

4년의 시간 동안 청년들은 서울시라는 지방정부 내에 ‘자치정부’라는 실행력을 갖춘 집행기구를 만들기까지 노력한 것 같다. 서울시는 청년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2019년부터 정책수립과 예산집행에 청년이 직접 참여하는 모델을 실현한다. 우선 시장 직속으로 청년청을 신설하고, 상설 거버넌스 조직으로 청년의회는 확대될 것 같다. 연 500억원 규모의 예산과 사업도 청년자율예산제를 통해 집행할 예정이다. 특히 서울시 각종 조례 위원회에 청년들이 15%까지 참여하도록 한 것은 세대 불균형을 맞추기 위한 노력이다.

그러나 청년들은 하나같이 행정조직의 느림을 지적한다. ‘나도 고발한다’(#MeToo)나 ‘디지털 성범죄’ 등 새로운 사회 이슈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규칙 때문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함도 토로한다. 국가기구나 행정의 ‘지체된 적응’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치정부 준비단은 앞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조응하는 의제와 사업을 위해 다양한 청년들을 만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청년의 삶은 청년들이 가장 잘 알기에 의미 있는 정책들을 기대해본다.

2002년 독일에서는 전 세계 최연소 국회의원이 당선되었다. 당시 19세의 독일 녹색당 당원인 안나 뤼어만은 재선에 성공한 이후 한국에도 다녀간 적이 있다. 대학 강연에서의 발언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그대 변화의 꿈에 참여하라! 청년들에게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제 서울만이 아니라 경기, 광주, 대구, 부산, 제주 등에서도 다른 차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시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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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콜롬비아는 커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남미 성장을 주도하는 국가로 지난 6월 OECD에 37번째 가입했음은 잘 알려지지 않았죠. 물론 그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성장은 2016년 오랜 내전을 끝내고서야 가능했습니다. 내전은 폭력과 심해지는 빈부격차로 신음하던 농민들이 자위대를 구성하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 초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으로 성장했죠. 길고 긴 내전이 이어졌고 20만명 넘는 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휴전 시도도 있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무장해제였습니다. 정부로서는 당연한 요구였지만 반군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무력은 이들을 정부가 심각하게 대화할 수밖에 없는 상대로 만든 바로 그것이니까요. 무력해제 후 정부가 말을 바꿀 수 있으니 협상은 어려울 수밖에요.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20일 (출처:경향신문DB)

콜롬비아의 산토스 정부는 혁명군에게 공간과 시간을 내줬습니다. 여기서 반군은 제한적 활동을 이어가며 정부를 신뢰할 수 있는지 지켜봤습니다. 동시에 반군이 콜롬비아 사회에 참여할 기회도 주어졌죠. 이런 점진적 방식 덕에 2016년 평화협정이 가능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산토스 대통령의 후임자인 두케 대통령이었죠. 평화협상을 재검토하겠다고 공언한 그가 대통령이 되자 옛 혁명군들은 들썩이기 시작했죠. 전 혁명군 지도자 몇몇은 조직 재건에 나서고 있습니다. 내전의 기운이 다시 꿈틀대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사정도 콜롬비아 무장혁명군과 아주 다르지 않습니다. 평화를 원하지만 북한도 핵무기를 쉽게 내줄 수는 없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하는 이유가 북한 핵무기가 이제 미국을 위협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죠. 그러니 핵무기를 포기하는 순간, 북한은 대화 상대로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핵화 이후의 미국을 믿을 수 있을까요? 불안할 수밖에요. 협상이 더딜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산토스 정부가 그랬듯이, 미국과 한국도 북한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시간을 줘야죠.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을 포기하고, 한국과 미국도 이에 맞는 조치를 하나씩 취해나가야 합니다. 비핵화 이후에도 우리가 공존의 길을 함께 걸으리라는 확신을 줘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평양 정상회담은 의미가 깊습니다.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정상화, 서해경제공동특구와 동해관광공동특구 조성 등 다방면 협력 강화 조치와 비무장지대의 확대, 비행금지구역 설정, 해상기동훈련 중지 등 군사 부문의 협약 모두 북한의 염려를 덜 수 있는 중요한 기재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복병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바로 자유한국당입니다. 이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대북정책에 발맞춰왔습니다. 평화와 안정보다는 북한 핵무기 제거에 초점을 맞춰왔죠. 긴장 고조는 2017년 한반도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반북 멸공 이데올로기를 태생적 근간으로 하는 이들로서 사태 해결보다는 극한 대결을 추구한 결과였죠.

촛불정국에 꿇은 무릎도 잠시, 이들은 다시 2018년 평화 분위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4월 판문점 회담 당시 당대표는 “위장평화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적은 것” 등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심지어 “다음 대통령은 아마 김정은이 되려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의 속내를 내보였죠. 원내대표는 ‘4·27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안’ 처리도 단칼에 거절했고 이번에는 “평양에서 점심으로 무엇을 드셨는지 모르지만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며 억지와 심술을 이어갔습니다.

이들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할 경우 남북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답은 뻔합니다. 남북 인민이 다 같이 환영하는 오늘의 성과가 개성공단 닫히듯 황당하게 사라질 테죠. 우리는 다시 전쟁 위협과 외세 놀음에 휘둘리게 될 겁니다. 촛불혁명에도, 6월 지방선거에서도 정신을 못 차린 사람들이니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겠죠. 우리의 안위를 위해서 당장 항의 편지라도 써야 합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는 2020년 4월15일. 앞으로 570여일 남았습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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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아직 코끼리를 만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의 시간은 1년을 조금 넘겼다. 브루킹스연구소 폴 C 라이트의 저서 <대통령의제>에 따르면, 대통령자원은 임기가 지날수록 쇠퇴하는 자원과 성장하는 자원으로 구분된다. 쇠퇴하는 자원은 시간, 파워 등이고, 성장하는 자원은 정보, 전문지식, 학습효과 등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정책추진의 영향력은 감소하지만, 효율성은 증가한다. 쇠퇴하는 자원은 그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 증가하는 자원은 잘 활용해야 한다. 대통령의제는 대부분 대중의 관심, 즉 국민여론이 만든다는 것이 폴 C 라이트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민이 부여한 의제는 무엇일까.

대선 직후 지지 이유를 묻는 여론조사(2017·5 이하 갤럽)에서 ‘적폐청산 및 개혁’ ‘정권교체’ ‘개인평가’ ‘타 후보가 싫어서’ ‘신뢰’ 등의 순으로 응답됐다. ‘적폐청산 및 개혁’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국민은 오랫동안 쌓인 관행, 부패, 비리 등의 찌꺼기를 거둬내는 일을 대통령의제로 설정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2017·6) 후 역대 대통령 첫 직무수행평가 중 가장 높은 84%를 기록했다. ‘국민과의 공감소통’ ‘인사’ ‘전반적으로 잘함’ ‘공약실천’ ‘적폐청산 및 개혁’ ‘추진력 및 결단력’ ‘일자리 및 정규직화’ 등이 주된 이유로 언급됐다. 임기 초반 대통령 개인자원인 파워는 잘 발휘되었지만, 초기 설정된 대통령의제는 순위에서 조금 밀렸다.

최근 여론조사(2018·9)에선 긍정 49%, 부정 42%로 국정수행 평가격차가 크게 줄었다. 긍정평가 이유는 ‘북한관계’ ‘대북안보정책’ ‘열심히 함’ ‘서민 및 복지확대’ ‘외교’ ‘국민과의 공감소통’ ‘적폐청산 및 개혁’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대북관계와 복지 및 외교 등으로 대통령의제가 다변화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초기에 설정된 ‘적폐청산 및 개혁’은 순위에서 좀 더 밀렸지만, 생명력을 가지고 의제로 남아 있다. 부정평가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도 확인했는데, 주로 ‘경제민생 해결부족’ ‘친북성향’ ‘최저임금’ ‘부동산’ ‘일자리 부족’ ‘과도한 복지’ 등이었다. 1년 전, 긍정평가 순위에 있던 고용 문제를 포함한 민생, 부동산 등 경제현안이 부정평가 최대의제로 부상했다. 긍정평가에선 대북현안이, 부정평가에선 경제현안이 중심 이슈로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의제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첫째, 국민이 설정한 의제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의제에 집중해야 한다. 국면전환을 위한 새로운 의제설정 혹은 자의적인 의제전환은 자구적 함정이 될 수 있다. 둘째, 설정된 의제가 장기적인 추세에서 형성되었다면, 즉자적인 대응보다는 국정기조의 틀 안에서 구체적인 과제로 다뤄야 한다. 그래야 유기적 인과관계에 놓여 있는 여타 정책들과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셋째, 임기 내 해결할 수 있는 과제와 그렇지 않은 과제를 구분하여 자원의 불필요한 소모를 막아야 한다. 넷째, 신속하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부터 추진해야 한다. 다섯째, 대통령 자원 중 개인파워는 아직 쇠퇴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공감능력과 소통능력을 활용하여, 과제추진의 과정 및 결과를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정책캠페인에 소홀해선 안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제를 망가뜨릴 수 있는 요인도 있을까.

그 코끼리 이야기다. 세금폭탄, 종북좌파, 아마추어리즘 등 외부에서 쏟아지는 의제왜곡에 주의해야 한다.

내부에선 의제가 흔들리면 지지회복을 위한 중도편향 확대를 시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나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도는 성격 측면에서 소극진보와 소극보수, 성향 측면에서 공정진보와 경제보수가 비동시적으로 혼재되어 공존한다. 이들은 노선변경이나 편향확대로 소통할 수 있는 계층이 아니다. 때론 진보적이고 때론 보수적인데, 그 이유는 과제해결능력을 중시하는 스윙보터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언젠가 코끼리를 만나게 되면, 무소의 뿔처럼 의연해야 한다. 대통령의제는 국민이 설정한 대로, 있는 그대로. 주어진 의제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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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나라에는 광장이 있다. 천안문광장, 트라팔가광장, 카탈루냐광장, 바츨라프광장 등. 광장은 각자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다. 그리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광장들은 혁명의 유산을 갖고 있다. 1919년 5·4운동과 1989년 6·4항쟁의 중심지였던 천안문광장, 스페인 왕정으로부터 카탈루냐 분리 독립의 시민 함성이 가득했던 카탈루냐광장, ‘프라하의 봄’으로 각인된 체코 민중혁명의 진원지 바츨라프광장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우리에게도 광화문광장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분노의 촛불을 들고 겨울의 길고 긴 암흑의 시간을 뚫고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전진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붉은악마의 함성에서 2015년 촛불 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의 정치적, 문화적 해방구였다. 그러나 혁명과 문화가 지배한 시간은 잠시뿐이었다. 일상 속 광화문광장은 우리에게 여전히 불편하고 재미없고 권위적이다.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에 나란히 놓아둔 종이컵들에서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이 ‘촛불은 계속된다’고 적힌 종이컵을 놓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서울시가 촛불시민혁명의 희망을 담아 새로운 광화문의 시대를 열겠다며, 광장 조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광화문시민위원회가 제시한 밑그림은 광화문 주변을 역사광장으로 조성하고 훼손된 월대, 해치상, 동십자각, 서집자각, 의정부터를 복원하는 것과 세종문화회관 쪽 차도를 없애 시민광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서둘러서도 안되고, 너무 느긋해서도 안된다. 정치적 이해타산에 매몰되어서도 안된다. 충분한 소통도 중요하지만, 목적과 가치가 훼손될 정도의 타협도 안된다. 동상과 꽃밭이 지배하지 않는, 이제는 정말 제대로 된 광장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원리가 중요하다.   

첫째는 역사유산의 원리이다. 주지하듯이 광화문 일대는 조선시대 왕이 살았던 권력의 중심부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정신을 훼손하기 위한 상징적 파괴의 공간이었다. 역사 지리적 관점에서 훼손된 유산들은 제대로 복원되어야 한다. 다만 복원의 원칙은 문화유산의 원형 복원을 위한 물리적, 조형적 디자인이 아니라 그것의 역사적 가치의 귀환과 동시대 공간과의 조화이다. 복원으로서 광화문광장은 기념물이 아니라 기록물이 되어야 한다. 복원될 것은 권력의 역사적 아이콘이 아니라 역사의 문화유산적 가치이다.

둘째, 시민공간의 원리이다. 광화문광장의 주인은 권력자나 통치자가 아니라 시민이다. 시민들이 광장에 편하게 접근해야 하고, 즐겁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더 좋겠다. 광장은 시민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정치적 요구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다만 차별과 혐오를 표현하는 행위 장소로 시민의 공간은 용납될 수 없다. 광화문 촛불혁명에서 시민들의 행동이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들이 평화롭고, 자율적이며, 호혜적이었기 때문이다. 시민의 공간으로서 광화문은 아고라이면서도 아레나이다. 광화문광장은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의 집결지이며, 자신의 자유로운 표현들의 차이가 서로 인정되는 놀이와 유희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셋째, 일상문화의 원리이다. 광화문광장 조성의 핵심적인 철학은 비움이다. 광장의 비움은 새로운 채움을 예비한다. 비움의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광장의 조성은 최소한의 조경과 시설 보완에 그쳐야 한다. 다만 그 비움이 어떤 의미인지를 성찰해야 한다. 지금 광화문광장은 주말마다 대형 이벤트로 몸살을 앓고 있다. 거대한 무대를 쌓고 사운드 테스트를 위해 높은 레벨의 음향 출력이 귀를 강하게 자극한다. 광장의 몽골텐트는 주변의 확 트인 경관을 해친다. 대형무대와 거대 음향시설과 몽골텐트는 그냥 일상의 경관이 되어버렸다. 광화문광장이 일상문화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대형시설이 들어서는 행사를 불허하거나 최소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광장의 피로는 바로 이벤트 때문이다. 대형 이벤트 대신 시민들이 광장을 거닐거나 앉아서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확성하지 않은 노래와 연주와 퍼포먼스가 이곳저곳에서 생겨나 일상의 카니발로 이어질 때, 비로소 광화문광장은 모두의 광장이 될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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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당전서>에서 정약용은 자신의 소망을 털어놓는다. “내가 바라는 바는 온 나라를 양반 되게 하여 온 나라에 양반 없게 하는 것이다.” 정약용이 정말 온 나라 양반 되기를 바랐는지 학자들 사이에서 말이 많다. 아리송한 다음 말이 논란을 부추긴다. “천한 자가 있어야 귀한 자가 드러나는 것인데, 만일 다 존귀하다면 이는 곧 존귀한 사람이 따로 없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정약용이 온 나라 양반 되기를 바라긴 했지만 당시 양반답지 않은 자들의 행세를 비판했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실제로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관작이 없는 자도 스스로 귀족이라 칭하고 군역과 요역을 면하는 바람에 나라가 가난해지는 폐단이 벌어지고 있다며 당대 온 나라 양반 되기를 질타한다.

김상준 교수는 ‘온 나라 양반 되기’란 논문에서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양반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를 문화적으로 설명한다. 양반은 관직의 획득과 혼인을 통해 되는데 이는 꼭 사전에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현실에서 양반으로 대접받으려면 해당 가문이 유교적 예법 실천과 학문 수련을 통해 지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사회적 평판을 획득해야만 한다. 조선 후기에 양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양인들이 양반 신분으로 행세하기 위해 양반들이 독점하고 있던 유교적 예법과 학문 수련을 모방하면서 평등화 현상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신분 자체에 대한 냉소, 회의, 부정이 증가하면서 반(反)신분적 평등화가 싹텄다.

이러한 설명을 입증이라도 하듯 일제강점기에도 족보와 문집 발행 등을 통해 양반이 되려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온 나라 양반 되기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만은 아니다. 이혜령 교수는 ‘양반은 말해질 수 있는가’라는 논문에서 일제강점기 상놈이 양반 되는 것을 양반들이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양반들은 “상놈의 자식이 글을 배워 알게 되면 양반의 세력이 없어질 터이니 미리 예방”하기 위해 지역에 야학이 개설되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향촌사회에 상놈이 양반 되지 못하게 하는 운동이 광범하게 벌어졌다. 상놈이 학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라!

한때 누구나 대학 가면 계층 상승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사실 학벌의 획득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시도는 근대 한국의 온 나라 양반 되기의 주된 형태였다. 이제 이런 희망은 무참히 꺾이고 있다. 대학 나와도 좋은 직장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령인구가 줄어들자 대학위기론이 힘을 받고 있다. 서울의 몇 개 대학만 학문하는 곳으로 놔두고 나머지는 모조리 취업훈련소로 만들자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특히 지방대에는 어차피 학문할 사람도 없으니 아예 취업사관학교로 개편하자고 한다. 이광수가 <흙>에서 “서울 양반”과 “시골 상놈”이라 대비해서 불렀던 양극화 현상이 조만간 광범하게 실현될 태세다.

지금 지방대생은 저임금과 장시간의 탈숙련된 단순 반복 노동, 그것도 비정규직과 파견직으로 가득 찬 지방의 열악한 노동시장에 최적화된 존재로 키워지고 있다. 사회에 온전히 참여하여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역량을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상놈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도 지방대는 취업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 취업률 지표로 대학의 생존 여부가 결판나는 지금 모두 단기 이윤을 내라는 경영 언어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은 ‘인서울’ 대학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서울 양반이 상놈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김문용 교수는 ‘정약용의 변등론과 유교 사회윤리의 확장 가능성’이란 논문에서 정약용의 진짜 걱정은 다른 데 있었다고 말한다. “온 나라가 다 귀해지면 누가 천한 일을 맡아서 할까?” 미국에서 노예제를 반대하던 백인들이 하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예가 해방되어 모두 자유인이 되면 그들이 맡아 하던 천한 일을 누가 대신할까? 하지만 온 나라 상놈 되는 상황을 우울히 지켜보고 있는 나는 다른 걱정을 한다. 생존 문제에 몰두하느라 모두 학문에 뜻을 두지 못한다. 이러다가 “온 나라가 다 천해지면 누가 귀한 일을 맡아서 할까?”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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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거주하는 사람 입장에서 뉴스를 보노라면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서울만 사람 사는 동네라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이번에 태풍 솔릭이 지나갔는데, 하필이면 그날 이사를 하게 되어 태풍 경로에 온 신경이 쏠렸다. 다행히 수도권은 큰 피해 없이 지나갔다지만, 다른 지방에서는 적지 않은 재산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뉴스에서 집중하는 것은 태풍이 수도권을 비껴가서 다행이란 것뿐이다.

2014년 제1회 대회 때부터 인천에서 열리고 있는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참여해오고 있다. 가요제 심사를 맡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하지만, 주최 측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가요제 심사를 맡긴 것은 아마도 지역대표성과 더불어 평화라는 주제가 지닌 무게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는 서해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싸고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하는 등 서해와 인천 지역의 평화와 시민의 안전이 직접적으로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화의 노래를 찾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자발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창작가요제이다.

이 가요제 수상자들은 2014년 인천에서 개최된 아시안게임 폐회식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고, 조직위원회에서 음반을 제작해 발표하고 공연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첫 행사는 시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제법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시 정권이 보수정당으로 바뀌면서 지원이 끊기는 등의 우여곡절 끝에 한 해를 거르고 현재까지 시민단체의 힘만으로 어렵게 끌어오고 있다. 위로는 대학부터 아래로는 작은 풀뿌리시민단체에 이르기까지 정부 지원만 바라보고 있는 시대에 스스로의 힘으로 작은 행사나마 정성스럽게 치르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조직위원회의 젊은 활동가들은 활동비를 아끼고 줄여가며 상금을 마련하고, 음향시설을 대여해 직접 설치하는 등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이유는 전쟁과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노래는 많아도 누구나 공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를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평화 노래는 많지 않은 현실이 가슴 아팠기 때문이다. 입소문을 타고 해마다 참가팀이 늘어나 올해는 156개 팀이 참여해 세상에 없었던 평화의 노래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올해 들려온 소식에 모두가 상심하고 가슴아파했다.

통일부에서 주최하는 2018 유니뮤직레이스가 ‘평화를 노래하다(평화를 염원하는 내용의 대중음악 창작곡)’라는 같은 주제의 창작가요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인천평화창작가요제 조직위가 만든 참가 신청서나 작성안내 등 관련 서류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현행법에서 행사기획, 문서 등이 명확하게 ‘저작물‘의 범주에 들어가는지는 사안에 따라 따져봐야겠지만, 국가기관인 통일부에서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의 내용이나 형식은 물론 문서 양식까지 도용했다는 것은 지역의 문화현실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노력하고 있는 문화운동가들의 입장을 고려했을 때, 대기업의 골목상권 죽이기와 무엇이 다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기관의 공신력과 파급력을 생각할 때, 일반 시민들은 누가 표절했고, 도용했는지에 대해 오해할 수도 있다.

풀뿌리민주주의나 지방분권이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지역이 소외되지 않는 것이다. 지방에 산다고 우습게 보거나 천대받지 않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가 모든 일을 할 수 없기에 시민의 참여민주주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이들을 제대로 지원하고, 대접하지는 못할 판에 공들여 일군 것마저 빼앗아간다면 누가 나서서 그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 지역문화를 일구기 위해 노력하겠는가. 서울에선 흔하고 넘치는 것들도 지역에선 귀하기 이를 데 없을 때가 많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고 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한다. 일단 싹이라도 틔워야, 꽃이라도 피워봐야 그것이 큰지 작은지, 예쁜지 못생겼는지 알아볼 거 아닌가.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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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상고·공고라는 명칭이 ‘특성화고’로 변경된 지 10년이다. 구시대적인 어감을 걷어내고 취업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는 전체의 4분의 1로 600여개나 된다. 전국에 30만명이 넘는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특성화고 현장실습과 졸업 후 직장생활은 인권침해와 차별만이 존재한다. 2016년 5월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곳, 2017년 1월 전주 대기업 콜센터 전화상담을 받던 곳, 2017년 11월 제주도 한 공장의 컨베이어벨트 작업을 하던 곳. 바로 특성화고 학생들이 현장실습을 하던 곳들이다.

모두 10대 청소년들이 학교를 다니면서 조기취업의 굴레에서 일하다 산재 사고가 난 곳이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에 관한 규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학생들은 안전교육 하나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터에 내몰렸다. 결국 교육부는 올해 안전한 현장실습 제공이 가능한 ‘현장실습 기업 후보군’ 정보를 학교에 제공하고,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교육 문제에서 우리들이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현장실습만이 아니다. 바로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들이 일터에서 비인권적 대우나 차별·침해를 더 많이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실태 토론회를 개최했다. “넌 커피색 스타킹보다는 검은색 스타킹이 잘 어울려” “난 여자를 볼 때 허벅지랑 엉덩이를 제일 먼저 봐”와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까지 흘러나왔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연장근로수당이나 최저임금 미지급 등 임금체불이 37%나 되었다. 또한 “경력조차 없는 특성화고 졸업생” “너희 특성화고 애들 뽑기 싫다” 같은 발언에서는 차별의 심각성(23%)도 확인된다.

국가인권위원회법 2조 3항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하지 못하도록 했다. ‘평등권의 침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성화고 현장실습 공간이나 졸업생의 노동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교육청 취업진로부서는 노동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 지자체는 학교 내 교육 문제에는 권한이 없다. 노동청은 청소년 문제는 학교의 몫으로 생각하는 눈치다.

오래된 습관은 반복된다. 그건 개인과 조직은 물론 사회도 비슷한 것 같다. 그나마 개인과 조직은 변화와 혁신에 민감하기에 시대의 흐름에 조응하기도 한다. 그러나 학교는 청소년과 청년노동 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나마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 서울노동청은 ‘특성화고 현장실습 안전노동인권협약’을 체결했다. 주요 내용은 노동인권보호와 취업지원 그리고 보호대책이다. 공공행정조직 간 상호협력을 도출한 첫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반가운 것은 ‘노동의 가치 인식과 노동인권 존중 사회’가 조례에 명시된 것이다. 모든 학교에서 노동교육이 의무화되기 위한 지역 차원의 첫 시작이다. 또한 당사자인 특성화고 노동조합과 시·교육청이 정례적인 논의를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흐름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실습과 졸업 후 직장의 첫 일터의 안전과 교육훈련 여부 등을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유럽연합 주요 국가들은 청소년 노동 규정을 법에 명시했다. 우리는 연소근로자 문제가 헌법 32조 5항에 적시되어 있음에도 무시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청소년과 청년을 포괄하는 노동보호법 제정이 논의될 시점이다. 매년 수만명의 특성화고 졸업생이 사회에 진출하지만, 일부 산재 사고만 언론에 드러난 것이다.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초기 노동시장에서 겪는 차별과 성희롱 등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들이 왜 산재 사고를 유독 많이 겪고 있는지 우리 사회는 반성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간 자본의 이윤창출 밑바탕에 끊임없이 배출되는 공급처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노동의 가치는 모든 사회구성원이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하고, 차별 없는 일터는 그 시작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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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슈퍼리그. 말레이시아 프로축구리그의 이름입니다. 2017년 통계를 보면 총관중이 87만2108명이었습니다. 경기당 평균 6607명이 관람한 셈이죠. 2014년부터 우승을 휩쓸어온 조호르 다룰 탁짐(JDT)의 수치를 보면 작년 총관중이 18만7557명으로 경기당 1만7051명의 관중을 불러모았습니다. 비슷한 팀이 한국에도 있습니다. FC서울로 총관중 수 31만61명, 경기당 평균 1만6319명이었죠. 흥행이 비슷하다 싶지만 속사정은 너무 다릅니다.

서울 인구는 990만명, 수도권까지 합치면 2500만명입니다. JDT의 근거지 조호르바루 인구는 160만명, 조호르주는 300만명 정도입니다. 광역인구를 비교해 보면 서울이 8배 큰 셈이죠. 한국과 말레이시아 축구 열기가 비슷하다면 서울 평균 관중 수가 지금의 8배여야 맞습니다. 즉 13만명이 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단순한 계산이지만 한국 축구 열기가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반대로 말레이시아의 축구 열기를 상상해 볼 수 있죠. 한국대표팀이 말레이시아에 진 것이 놀랍지만 예상할 수 있었던 미래가 온 셈이죠. 

사실 텅 빈 축구장과 꽉 찬 골프장을 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점입니다. 축구를 하지 않는 나라에서 축구 관중 수가 급감하는 것이 이상할 게 하나 없죠. 오히려 이상한 것은 축구 열기입니다. 월드컵 때만 되면 광장이 들어차고 ‘치맥’이 동이 납니다. 평소에 축구에 전혀 관심 없고, 심지어 규칙도 모르는 이조차 온몸을 빨갛게 물들이고 소리를 지릅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은 이미 식었으니 그 열기의 뿌리는 아마도 축구는 아닐 테죠.

이는 민족주의입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동질감, 다른 이들보다 뛰어나다는 우월감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그 뿌리입니다. 일제 치하에서는 긍정적 에너지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한국에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민족주의는 우리가 특별하다는 환상을 만들어주는 증거를 필요로 합니다. 양궁, 태권도, 한글, 김치, 첨성대, 직지심체요절, 삼성. 세계 최고, 동양 최고라는 자부심에 감격합니다. 사실 세계 어디를 가도 자랑스러운 유물과 전통 없는 나라는 없죠. 다들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즉 아무도 최고는 아닌 셈입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중요치 않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인 것만 자랑스러워할 뿐 그 배경인 고려말 불교의 망국적 행태는 논하지 않습니다. 당시 구시대의 유물이었던 직지심체요절과는 반대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유럽 전체의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일으켰죠. 하지만 ‘우리가 더 빨랐다’는 데에만 만족해할 뿐입니다.

민족주의는 남을 비하해서 우월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합니다. 똑같은 동포라도 미국에서 오면 교포고, 중국에서 오면 조선족이 됩니다.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이 아니면 누구라도 낮게 보죠. 심지어 미국인도 흑인은 ‘깜둥이’라고 비하해 부릅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는 무자비합니다. 선장은 선원을 바다에 빠뜨리고, 농장주는 노동자 가슴팍에 니킥을 날립니다. 성추행도 다반사고, 다치면 버려집니다. 휴일·휴식도 제때 보장하지 않고 임금체불도 흔하죠. 심지어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권력기관에 의한 폭행과 불법감금도 심심치 않게 일어납니다. 가게에서 나가라고 고함치기도 하고, ‘쟤들은 뭐야’라는 빈정거림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특정 집단을 향한 공공연한 증오발언·폭행 등 이른바 혐오범죄를 규제할 법조차 없습니다. 상식과 인권의 차원은 물론 실질적 이유에서도 이래서는 안됩니다. 2013년 기준 외국인 노동자는 25만여명. 매해 2만건이 넘는 국제결혼으로 2017년 전체 혼인 중 다문화 혼인의 비중은 7.7%. 다문화 학생은 2017년 10만명을 돌파해 5년 사이 2배 증가. 이런 수치만 보더라도 한국은 이민자 없이는 지탱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는 국민연금 고갈도 마찬가지죠. 인구 고령화와 출산율 감소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근본적 해결책은 젊은 노동력의 증가이고, 여기에 이민 문호 확대 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민 확대, 이민자 보호, 전반적 노동권 확대 등 정부가 할 일이 산적합니다. 게다가 민족주의적 반대와 두려움과도 다퉈야 할 겁니다. 정책을 마련하고 사회 인식을 바꾸는 노력에도 공을 들여야 하죠. 비정부기관의 활동도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국민연금 위기 같은 근본적 위기가 폭발할 한국의 미래는 이미 문 앞에 와있으니까요.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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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적인 것에 대해 애써 외면했다.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정당에서 일했던 경력이 잠시 덮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덮어 둔다고 덮어지는 것도 아닐진대, 2016년 ‘공공의창’이라는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를 만들면서 행여, 과거활동이 발목을 잡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국민의 정치 불신이 크다보니, ‘난 아닌 척’ 벗어나려 했다.

최근 국회의원 특수활동비를 없애라는 국민 목소리가 높았고, 국회는 특수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근데 그 결정이 최선이었을까. 국회와 정부는 물론이고 기업마저도 제도적 하자나 사회적 파장이 큰 문제가 발생할 때면, 개선이나 보완보다는 중단이나 폐지로 결론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러한 선택은 여론에 순응하고 가장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여론에 밀려 가장 손쉬운 방법을 선택한 것일 수 있다. 예상 밖으로 이러한 결정의 피해자는 대부분 국민이다. 물론 국회는 특수활동비 외에도 전체예산을 지금보다 더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집행해야 한다. 반면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곳이며, 여느 기관처럼 일을 잘하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한 곳임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낮은 출산율, 높은 자살률과 고령화지수. 가계부채는 늘고 고용지표는 악화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경제능력, 행정능력, 정치능력 중 정치능력이 가장 미약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다. 정치능력이 미약한 이유는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겠으나, 우리의 정치시스템이 미약해서다. 낡은 정치시스템으로는 경제시스템과 사회시스템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없다. 국회의원 정수의 부족 또는 지역구 일보다 나랏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부족이 낡은 정치시스템 오작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난 30년간 국민여론이 바라는 정치개혁의 방향은 언제나 슬림화였다. 애초에 작게 만들어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긴 탓이다. 여기엔 언론도 크게 목소리를 보탰다. 정치는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가 성장한 만큼의 정상적인 체격을 필요로 한다. 슬림화된 정치가 뒷북을 치면, 가장 많은 피해를 입는 것 역시 국민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한국사정에서 국회는 국회의원이 소속되어 있는 정당이 주도하는데, 현재 다수당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요즘 민주당 지도부 선출을 위한 경선이 한창이다. 이번 주말 새로운 지도부가 선출된다. 그래서 실무적 경험을 토대로 ‘좋은 정치개혁을 위한’ 5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의원총회 투표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빅 마우스에 의한 당론결정을 줄여야 한다. 의원총회 결정이 당론으로서 민주적 권위를 확보하고 당내분란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전자투표기를 활용하고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이 기록되어야 한다. 둘째, ‘당론심의위원회’가 필요하다. 당론이 다수의견으로 결정되어야 하는 동시에 당헌이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 당론심의과정에서 국민, 당원, 전문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도 종합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셋째, ‘합의쟁점승인제도’의 시행이다. 다른 당의 정책일지라도 가치와 정책방향이 일치하는 것이 있다면, 조건 없이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한다. 여야정쟁으로 법안을 처리하지 못해 국민이 손해 보는 일을 최소화할 수 있다. 넷째, ‘중앙당과 원내의 운영을 이원화’하는 방안이다. 국회운영은 국회의원 중심의 원내가 역할을 다하고, 중앙당은 전국의 당원관리 및 선거준비에 매진하되 국회의원이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회활동이 보다 안정되고, 당원은 국회의원을 견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국민설득위원회’를 제안한다. 단기적으로는 국민이 손해를 보는 결정 같지만, 장기적으로 꼭 필요한 결정에 대해 국민과 적극 소통하는 채널을 확보하는 일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정책에 대해 국민을 설득하는 자리인 만큼, 해당 국회의원에겐 무거운 멍에가 될 수 있다. 나의 생각과 다른 여론에 대처하는 방법엔 반드시 단기처방과 장기처방이 동반되어야 한다.

<최정묵 |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 공공의창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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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6일 금강산 지역에서 제21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다. 판문점선언 1조 ⑤항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에 근거한다. 상봉순서는 1회차 방문단과 2회차 상봉단의 순차교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1회차는 우리 측 방문단 89명이 북측 가족 197명을 상봉한다. 북측이 주관한다. 2회차는 북측 방문단 83명이 우리 측 가족 337명을 상봉한다. 우리 측이 주관한다. 1회에 3일 동안 진행되는 행사의 구체적 상봉시간은 남북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남북한 당국은 제21차 상봉행사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발전적 개선책에 어느 정도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제20차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12시간의 상봉시간을 가졌다. 1일차 단체상봉 2시간·환영만찬 2시간, 2일차 개별상봉 2시간·공동중식 2시간·단체상봉 2시간, 3일차 작별상봉 2시간 등 총 12시간이다. 이번 제21차 상봉행사에 적용되는 개선책의 핵심은 통관절차의 간소화, 개별상봉시간 확대, 상봉동선의 최소화 등으로 보인다. 거동이 불편한 이산가족들은 차량에 탑승한 채 통행검사를 실시한다. 통관절차의 간소화를 의미한다. 2일차 개별상봉 후 공동중식을 가족별 객실에서 도시락으로 실시한다. 공동중식의 이동시간을 절약하면서 개별상봉시간을 확대한다. 3일차 작별상봉 후 동일 장소에서 연이어 공동중식을 한다. 동선의 최소화를 통한 상봉의 편의성을 보여준다.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1985년 남측 35명, 북측 30명 등 총 65명의 방문단이 상봉과 함께 서울과 평양의 고향을 방문했다. 이후 고향 방문은 사라졌다.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20차례의 대면상봉 행사가 있었다. 4120명의 방문단이 1만9771명의 가족과 상봉했다. 7차례 화상상봉 행사도 있었다. 557가족이 3748명의 가족·친척과 화상상봉을 했다. 남북한 각각 300명씩 600명이 서신교환을 했다. 40명의 영상편지도 교환했다. 20차례의 대면상봉·7차례의 화상상봉·2차례의 생사·주소 확인 기회를 통해 5만7410명의 생사가 확인되었다.

현단계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13만2603명 가운데 생존자가 5만7059명이다. 연간 4000명 정도가 고령으로 이산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난다. 이산가족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보여준다. 연간 100명씩 대면상봉을 한다면 570년이 걸린다. 상봉의 확대가 필요한 대목이다. 80세 이상이 63%를 차지한다. 부부·부모·자녀 관계가 44%이고 형제·자매 관계가 41%이다. 고령화된 어르신과 부부·부모·자녀·형제 관계의 이산가족에게 상봉의 가중치가 요구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전산화가 미비해서 사람 찾기가 쉽지 않고, 찾은 사람도 상봉을 기피하기 때문에 규모 확대에 난색을 표한다. 얼굴·옷·신체조건에서 남측 가족들과 비교가 되고, 그런 비교에서 상봉자들이 남측을 동경하게 되는 것을 우려해 규모와 횟수를 제한한다는 분석도 있다. 관심 부족, 행정전산화의 미비, 월남자에 대한 배신감, 양부의 성을 따르는 가족제도의 차이 등이 소극적 태도의 근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국제사회로부터 정상국가의 정상적인 지도자상이 각인되기를 원한다. 이산가족에 대한 정치적 접근이 아니라 인도주의적 접근을 한다면 원하는 것의 달성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은 생사·주소 확인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남북한은 생사확인 의뢰서를 교환하고, 생사와 주소가 확인되는 대로 그 결과를 조속히 회보해야 한다. 주소가 확인되고 이미 상봉을 경험한 사람을 대상으로 매월 서신과 영상편지 교환을 실시해야 한다. 금강산면회소의 정상화를 통해 상봉의 정례화도 이루어져야 한다. 추석과 설 등 민족 명절을 계기로 고향 방문과 성묘가 추진되어야 한다. 이산가족들의 편의도 고려해서 개성·파주 지역의 출퇴근 상봉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북측이 인도주의적 접근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측은 환경과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대화와 교류를 지속하면서 신뢰를 쌓고, 비핵화가 진전되면 최우선적으로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의 의미는 적지 않다. 개인 차원에서는 아픈 상처를 달래면서 혈육의 정을 찾는 의미이다. 민족 차원에서는 동질성 회복과 민족화합의 의미를 지닌다. 평화통일 차원에서는 작은 통일이 하나씩 이루어져 가는 의미가 담겨있다. 9월 중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 번째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올해의 가을맞이 또는 내년의 설맞이 이산가족 상봉 합의가 예상된다. 상봉인원을 남북이 각각 200명으로 확대하고, 2차 후보자의 생사확인 인원도 3배수로 증대시키고, 자유상봉을 포함한 상봉시간을 확대함에 있어 북측을 설득하는 적십자사의 충분한 준비가 요구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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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문화연구자들이 2년마다 모여 동시대 문화의 주요 이슈들을 토론하는 ‘크로스로드 콘퍼런스’가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다. 기조연설에서 런던 소아스대학의 가이 스탠딩 교수는 ‘약탈자본주의하에서 프레카리아트: 왜 기본소득이 필수적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이 시대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노동자들이 처한 곤란을 말하면서 임시직 노동 양산에 따른 소득 불안정으로 인해 삶의 기본 토대가 무너진 전 지구적 착취의 상황을 기본소득의 구현을 통해 극복하자고 주장했다.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기본소득의 재원은 임시직 하층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축적한 불로소득을 환수함으로써 충분히 가능하다. 노동의 정의, 분배의 정당성, 삶의 가치를 위한 기본소득 운동은 새로운 시대의 진보와 그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문화연구자들에게도 필수적인 논쟁거리다. 

기조연설이 끝난 직후 ‘예술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발표해야 하는 나에게 가이 스탠딩 교수의 기조연설은 프레카리아트 예술인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예술과 젠트리피케이션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예술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촉매자이자 희생양이 되는 역설이다. 이런 현상들은 도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일반적인 폐해 중의 하나이다. 쇠락한 도시의 한 지역에 예술인들이 모이는 것은 대체로 그곳이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가난한 예술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벌인 소박한 작품 활동들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리고 카페가 생기면 가난한 예술인들은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그곳을 더 이상 사수하기가 어렵게 된다. 예술인은 도시공간 고급화의 촉매자이자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의 젠트리피케이션은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인이 고급화와 양극화의 해당 주체가 되는 것이다. 예술 젠트리피케이션은 예술인의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문화자본은 예술의 미적 취향을 고급화시켜 예술시장 자체를 양극화시켜버린다. 돈이 되는 예술과 그렇지 않은 예술. 돈이 되는 예술은 소수의 예술인들에게 집중한다. 뮤지컬에서 주인공과 단역 무명 배우들의 출연료 차이는 작게는 수십배, 많게는 수백배가 난다. 출연진 100명 중 주연급 3~4명의 총 출연료는 나머지 배우들의 출연료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한국에는 가난한 예술인이 많다. 2016년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형 예술인 희망플랜’ 보고서를 보면, 청년예술인 1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있다. 이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수입이 50만원 미만이 경우가 무려 86%이다. 예술인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오히려 그들은 창작을 위해 이러한 삶을 스스로 선택한 면도 있다. 어떤 청년예술인은 자신의 삶과 활동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안정적인 직장과 고소득의 레슨을 포기하고 창작, 제작, 기획 같은 일들을 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들의 통장 잔액은 늘 마이너스이다.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프레카리아트 예술인들에게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본 생계 조건만 국가가 보장해준다면, 한국에서 예술하기는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것이다. 최근 정부와 서울시는 프레카리아트 예술인들을 위한 사회보장 제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예술인을 고용보험에 의무가입시키기로 했다. 서울시는 예술인의 주거를 안정되게 만드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 보급할 예정이다. 창작지원 이전에 생계지원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자유와 삶의 행복을 위한 기본소득의 실현은 결코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생활고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정적인 소득의 확보는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존재를 높이는 창작의 권리이다.

프레카리아트(precariat) : 이탈리아어 ‘프레카리오(precario, 불안정한)’와 독일어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무산 노동자 계급)’를 합성한 신조어.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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