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던 오후, 원고 작성을 위해 강남역 근처 카페를 찾았다가 낯선 풍경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20대로 추정되는 청년들이 100여석 되는 테이블을 빼곡히 차지하고, 진지한 모습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옆자리 청년들은 취업 지원서로 보이는 문서를 작성하며 토론하고 있었고, 한쪽에서 그마저도 지쳤는지 엎드려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날 2~3시간 동안 본 카페 풍경은 음악과 쉼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처절한 전쟁터였다. 세상은 이들을 코피스(Coffee+Office)족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경험 후 약속을 위해 카페를 갈 때는 코피스족을 유심히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생각보다 주위에 많은 후배들도 대낮에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이들 대부분은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학 강의를 하다 보면,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매주 수업에 정장 차림으로 참여하던 학생은 일주일에 2~3번씩 취업면접을 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이 학생은 자기가 왜 면접에서 계속 탈락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너무 힘들다고 울먹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수업에 참여하던 대학생 상당수가 대학 학자금 및 취업·자취를 위해 상당한 금액의 빚이 있었고, 그 빚은 이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학생들과 맥주 한잔을 기울이면서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도 졸업 후 취업을 위해 카페를 전전하는 냉엄한 현실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출간된 <세상을 바꾸는 청년사회 입문서>에는 이런 청년들의 실태가 잘 드러나 있다. 2015년 6월 기준으로 102만명의 대학생들이 7조7000억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최근 5년간 은행이 대부업계에 매각한 청년층 부실채권은 866억원이었다. 또한 서울 지역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 52.6%가 자취를 하고 있고, 월 평균비용으로 66만원을 쓰고 있었다. 이런 빚과 비용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청년들을 집어삼킬 것이다.

제윤경 주빌리 은행 상임이사가 서울 서대문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하고 있다._경향DB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며 20대 국회에 도전장을 던진 청년들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와 기득권의 높은 장벽 앞에서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만 했다. 청년 후보자들의 처지와 코피스족들이 묘하게 닮아 있어, 가슴이 아플 뿐이다. 그나마 이번 선거에서 청년들의 투표율이 크게 상승했고, 이 문제를 계속 연구하던 민간 전문가 2명이 20대 국회에 입성했다는 점은 매우 다행스럽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당선자이다. 그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은행이 대부업계에 매각한 부실채권의 문제를 인식하고 소각운동을 벌여왔던 서민 금융전문가이다. 최근에는 청년 주빌리 은행을 창립하고, 청년들의 악성 빚 실태를 알리고, 빚 탕감 운동을 벌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가 국회에서 구조적 부실채권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 한명은 국민의당 채이배 당선자이다. 그는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대기업 지배구조를 연구하고 문제제기를 해온 대표적인 기업전문가이다. 공인회계사의 직업적 특성상 대기업 지배구조를 지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청년 창업 및 취업을 방해하고 있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 등 불공정 거래에 대해 강력한 감시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대기업들의 로비에 굴하지 않고, 기업을 전문적으로 감시하는 국회의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두 당선자 이외에도 20대 국회는 청년들의 지옥 같은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대낮에 코피스족으로 가득 차 있는 카페 풍경은 우리 사회가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들의 절망적인 모습은 우리 사회의 가까운 미래의 민낯이다. 취업과 빚으로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20대 국회가 되길 기대한다.


전진한 |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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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부쩍 아이가 애정표현을 심하게 한다. 이제 막 십대에 들어선 아이 특유의 예민함으로 하루 종일 까칠하게 굴다가도 학교에 갈 때, 학원에 갈 때, 하다못해 잠자리에 들어 잠깐이라도 떨어지는 순간이 오면 더없는 간절한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한다.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뽀뽀를 하고, 몇 번씩 끌어안고 쉽게 떨어지지를 못한다.

하루는 그 이유를 말했는데, 놀랍게도 세상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를 보면 지진도 일어나고, 테러도 일어나고, 무서운 범죄도 많아서 언제 어떻게 헤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고 했다. 지금 잠깐 떨어지는 순간이 이 세상 마지막 만남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혹 그렇게 됐을 때 마지막 인사가 짜증이나 신경질이 되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아무리 서운하고 속상한 날도 돌아서는 순간에는 반드시 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마음이 서늘했다.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라 평소에도 사건 사고 중심의 뉴스는 아이 앞에서 되도록 보지 않았다. 부득이한 경우 보게 되더라도 최대한 아이가 겁먹거나 오해하지 않도록 옆에서 많은 설명을 해주었다. 그렇더라도 아이가 세상 밖에서 접하는 모든 뉴스까지 피할 수는 없으니 아이 나름으로 보고 느끼는 세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 세상이 그렇게나 무서운 세상이라니 대체 지금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만들어놓은 것일까 미안하고 참담한 기분이다.

세상이 저를 지키지 못할 거라고 아이가 두려워할 때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처음 사고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때는 우리 사회가 모두 한마음이었다. 반드시 구해야 할 아이들을 위해서, 기어이 돌아와야만 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 앞에서, 섣부른 기도는 죄였다고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그런데 그 반성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세종시민 합동분향소’ 옆 잔디밭에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팻말과 기증받은 신발, 바람개비가 놓여 있다_연합뉴스

씨랜드에서, 대구 지하철에서, 삼풍에서, 성수대교에서 그동안 우리가 지키지 못한 아이들이 어디 한둘이었을까 마는 세월호의 아이들처럼 이토록 오래 비감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2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이들도 있지만 어떻게든 돌아온 아이들마저 아직도 구조되지 못한 시간 속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이고 오히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유가족들에 대한 사회적인 태도만 점점 차가워지고 있다. 분명 사회가 지키지 못한 것인데, 유독 이 아이들만, 이 아이들의 부모만 내내 돌팔매를 맞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죄책감의 다른 형태가 부정이라고 하던가. 한때는 온 사회가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더니 언제부터인가 그만 잊으라고 아우성이다. 살아 돌아온 아이들은 저만 살았다는 죄책감에도 모자라 잔인한 보상논리에 휘둘려 제 신분을 드러내는 일마저 두려워하고 있는데,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총선에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했다.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를 이뤘다고 하더니 제1야당은 정치 논리를 핑계로 추모식 참석 불가를 공식 입장으로 내놓았다. 위로는 오히려 바깥에서만 전해졌다. 외국의 배우는 희생자를 위하여 숲을 만들었고, 유럽 명문 축구 구단은 잊지 않겠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세월호는 여전히 물속에 있다. 내 아이가 사는 세상도 여전히 그 물속에 잠겨 있다. 현재 인양작업 중인 세월호는 7월이면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한다. 7월이면 우리 아이가 사는 세상도 물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그 깊은 바다에서 어떤 진실을 건져내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두려워하지 마. 어떤 재난 속에서도 우리는 너희를 지킬 것이고, 지키지 못한 재난에 대해서는 끝까지 진실을 밝힐 거야. 네가 사는 세상은 그런 세상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아이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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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권자들이었다. 결국 정치지형을 바꿔낸 것은. 유권자들이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소야대만을 만들어준 것이 아니다. 제1당을 갈아치우면서도 새로운 제3당을 등장시켰다. 작지만 진보정당에도 ‘연명의 자리 혹은 부흥의 밑천’을 마련해주었다. 제1당 교체라는 변화의 과실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야권 경쟁이라는 또 다른 변화의 씨앗도 심어놓은 것이다.

정당들은 그저 답습했을 따름이다. 아니, 20대 총선에서 유독 그 정도가 심한 듯했다. 공천 파동을 거쳐 분열하고, 분열 후에는 상호비방으로 일관했다. 진박, 비박, 친노, 비노 등 그 어떤 가치도 찾아볼 수 없는 호명을 일삼으며 그리했다. 전략적 요충지인 대구·경북, 광주·호남을 놓고서도 그랬다. 시대변화에 부응해 자기 텃밭의 ‘정치적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시도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이미 가진 것을 더 귀히 여겨야 확장이 가능한 것이 정치라는 사실을 일부러 잊어버렸는지 몰라도 그랬다. 막판에 또 읍소전략을 반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입에 올릴 만한 공약 하나 제시하지 못했고, 공약을 둘러싼 정당 간 논쟁도 벌이지 못했다. 그저 상대방을 심판해달라고 애원할 따름이었다. 정권 심판, 야당 심판, 양당 심판을 앞세워 그리했다. 그 이유를 조곤조곤 설명하지도 않은 채 그리했다.

이 때문에 투표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유권자들은 19대 총선(54.2%)에 비해 더 많이 투표했다(58%). 유권자들이 그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야 할 것 없이 주요 정당 모두가 구태의연한, 아니 한층 더 퇴행적인 작태를 선보였음에도 예전보다 더 많이 투표에 참여해, 여소야대와 제1당 교체와 야권 경쟁 구도의 조성이라는 절묘한 수를 둔 이유 말이다. 집권세력의 오만과 제1야당 무능에 따른 수권야당 생성의 지체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을 무기로 삼아 정치권을 채찍질하기 위해서다.

<선택 4.13> '투표하는 아름다운 손'_경향DB

유권자들 대부분은 보통사람이다. 소득의 80%를 부동산과 (사)교육에 갖다 바치고, 소득 대비 120%에 달하는 가계부채에 시달리면서도 먹고살고 자식 교육시키기 위해, ‘굴욕’을 참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다. 가족의 환대와 미소에 생의 모든 행복을 건 이들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선거 때마다 주로 패배한 측 열성 지지자들에 의해 그저 생존과 사익을 위해 대세에 편승하는 이기주의자 혹은 욕망덩어리로 여겨졌다. 평소에는 분명 존재하는 어엿한 사람인데도 ‘유령’으로 취급됐다. 사회경제적으로도 비천하고, 정치에도 무관심한 ‘비시민’이라는 이유로. 편견이다. 무엇을 욕망하든, 어떤 처지에 있든 보통사람들 모두가 인간적 존엄성을 지닌 시민이고 유권자이다. 보통사람이란 말의 뜻 자체가 그렇다. 민주공화국에서는 특히 그렇다.

보통사람이야말로 대한민국 역사의 주역이다. 한국의 민주화도 이들이 ‘결정’지었다.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몇몇 정치지도자들이나 재야 명망가, 대학생들이 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주도했을 따름이다. 앞장선 사람들을 다수의 보통사람들이 뒤따르고 지켜주지 않았다면 민주화는 불가능했다. 이들은 서슬 퍼런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에서도 야권에 다수표를 주어 집권세력의 폭정과 오만을 심판했다. 1978년 10대 총선이 그랬고, 1985년 12대 총선이 그랬다. 그래서 민주화의 진짜 주체는 보통사람들이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당민주주의도, 운동민주주의도 아닌 ‘유권자 민주주의’이다. 산업화 역시 마찬가지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내했음은 물론이고, 가족과도 떨어져 목숨마저 내놓은 채 산업전사로 복무했다.

여야 모두 그리 살아온, 그래서 정치의 실제 주역인 유권자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들도 살고, 유권자도 살고, 한국의 민주주의도 산다. 존중의 방식은 무엇일까? 협력과 경쟁이다. 여야 간에도 그리고 야당 간에도 협력하고 경쟁해야 한다. 균열과 갈등이 있더라도 협력과 경쟁으로 바꿔내야 한다. 인위적인 정계개편도 삼가야 한다. 여당은 낮은 자세로 야권과 함께 국회의 일원으로서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견인하며 국정을 이끌어 가야 한다. 야권은 괜한 정쟁으로 여당이 또다시 야당심판론을 제기할 빌미를 제공해서는 안된다. 정치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러저러한 분석의 목적을 유권자 존중에 두고 협력과 경쟁의 정치를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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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개성공단 한국 기업 재산을 ‘완전 청산’하겠다고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한국인 재산이 어떤 상태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정부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애초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시킨 목적은 무엇이었나?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돈줄 차단 효과는 정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다.

“핵·미사일 개발에 얼마나 사용됐는지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는 통일부가 지난 3월10일자 공문에서 밝힌 내용이다. 게다가 임금은 북한 근로자들이 노동한 대가로 지급한 돈이다. 근로자들과 그 가족이 생계유지에 사용하는 돈이다. 핵무기 개발에 전용할 공짜 돈이 아니다. 물론 개성공단에서 지급한 달러가 북한의 달러 보유량을 늘리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논리로 개성공단을 중단시키면 남과 북의 경제교류를 앞으로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남과 북의 경제 관계를 화폐가 없던 구석기로 돌린 것이다.

강력한 유엔 제재를 위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했다는 논리도 근거가 부족하다. 이미 북한의 핵 위협과 세 차례 핵실험에 대응해 유엔은 1993년부터 2013년까지 제재 강도를 갈수록 높였다. 유엔 제재에 맞선 북한의 4차 핵실험 다음에 유엔이 더 강력한 제재를 하는 것은 처음부터 예정돼 있었다. 한국이 개성공단을 폐쇄하는가 아닌가는 핵심변수가 아니었다.

여기서 꼭 확인할 점은 유엔의 올 3월의 강력한 대북 제재 또한 개성공단 사업과 같은 경제협력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안보리 제재 내용에는 제재가 북한의 경제활동과 경제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주려는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고 돼 있다. 또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연관성이 있는 금융거래에 한해 제재하고 있다. 애초 개성공단 사업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기여하지도 않았고, 연관성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의 2013년 제재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을 계속 가동했다.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8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고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서 근로자 대표가 항의의 표시로 머리를 깎고 있다._경향DB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성공단 임금으로 지급한 달러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얼마나 사용됐는지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렵다는 게 정부의 공식 의견이다. 핵무기 개발과의 연관성을 정부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을 중단시켜 달성하려고 한 목적은 모호하고 추상적이다. 구체적이고 정교한 행동 계획과 대책을 가지고 개성공단을 중단시킨 것이 아니다. 북한은 한국 기업의 재산을 보장하는 내용의 남북투자보장협정을 어겼다. 한국 기업인을 강제 추방하고, 재산을 동결시켰다. 이 불법적 과정에서 상호신뢰는 무너졌다. 그 피해는 한국의 기업과 근로자들이 보았다. 북한이 지금 개성공단에서 동결 중인 한국 기업의 재산은 한국 기업의 소유다. 정부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북한에 한국인 재산에 대한 보호를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북한과 접촉하여 재산이 현재 어떤 상태에 있는지 현지 조사를 통해 파악해야 한다.

북한이 지난 3월10일에 발표한 한국기업 재산 ‘완전 청산’의 의미는 소유권을 박탈하는 ‘몰수’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나는 그 의미를 북한이 2011년에 개정한 ‘외국인투자기업파산법’에서의 ‘청산’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기업의 채권 채무를 청산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기업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1월분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1년 이상 근로한 근로자에게는 퇴직금도 추가로 줘야 한다.

결국 북한이 말한 ‘완전 청산’은 이같은 채권 채무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북한은 먼저 개성공단에 있는 한국 기업의 재산 가치 평가액이 얼마이고 북한 근로자의 임금 채권이 얼마인지 정산한 정산서를 한국 기업과 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만일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몰수 조치를 한다면, 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 북한과 접촉해야 한다. 국민의 재산을 지킬 의무가 정부에 있다. 정부는 개성공단 기업인의 북한 방문을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북한과 접촉을 개시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정부를 믿는다. 시간이 많지 않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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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31일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의. ‘12·28 위안부 문제 합의’ 이후 한·일 정상 간 첫 만남이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합의 중 일부는 좀 보완할 필요가 생겼다고 운을 띄우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오히려 ‘합의 이행을 위해 양국이 꾸준히 노력하기로 했다’는 보도만 나왔다.

일본은 왜 이렇게 위안부 문제에 버틸까. 일본 기타큐슈 대학 이동준 교수가 편역한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2015)에 의하면 그 뻔뻔함의 뿌리는 1965년 한일협정에 있다.

그리고 그건 다시 1951년 미·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까지 올라간다. 샌프란시스코 조약(제2조)에 “한국은 일본의 일부였는데 패전으로 ‘분리’됐다”고 규정되어 있다. 즉 한국은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된 나라가 아닌, 일본에서 ‘분리’된 것이었다. 그래서 법리상 일본은 한국에 사죄와 배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한일협정에는 일본이 한국에 준 5억달러도 36년 식민통치에 대한 ‘배상금’이 아닌 ‘지원금’으로 돼있다. 한국은 ‘지원금’ 대신 ‘청구권 자금’이라고 쓰고자 했지만 그것도 무시됐다.

한일협정 체결 당시 한국은 왜 그렇게 한·일 간 문제를 봉합했을까. 그 배경엔 미국이 있었다. 미국은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면서 한·일 간 협력이 필요했고,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자금도 급했지만 군사정권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원했다. 따라서 미국의 권고대로 일본 중심의 한일협정을 마무리해야만 했었다.

이번에도 미국은 한·일 간 위안부 문제에 개입했다. 12·28 위안부 합의가 나오자마자 미국의 안보보좌관, 국무장관, 대통령이 차례로 ‘박 대통령의 결단’을 치하하는 전화를 했다. 이는 취임 초부터 한·일 정상회담까지 거부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주도권을 잡으려 했던 박 대통령을 미국이 달래서 위안부 문제를 매듭짓게 했다는 방증이다. 미국은 대중정책의 일환으로 한·미·일 공조가 필요했고, 하루라도 빨리 한·일관계를 조정하기를 바랐다. 미국의 국가이익 때문에 급히 서둘러진 12·28 합의에도 일본의 사죄와 배상은 빠져 있다.

그러면 12·28 합의는 앞으로 절대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없는가. 1965년 한일협정 이후에도 한·일 간에는 과거사와 관련된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었다. 그리고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일본은 성의있는 조치를 하기도 했었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위안부 합의는 일본에 아베 같은 국수주의 총리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국제정치적 필요 때문에 한국에 불리하게 마무리가 됐다. 그러나 상황변화 여하에 따라 재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얻어내고자 하는 사죄와 배상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시간을 끌수록 생존하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합의에 대한 국민 반대여론은 58%(1월8일 한국갤럽)나 된다. 3월8일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이번 위안부 합의가 희생자 중심의 접근방식을 채택하지 않았음을 정면 비판했다. 27일 ‘민변’은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처럼 위안부 문제는 국제사회도 관심을 갖는 인권 문제다. 따라서 향후 국제사회의 여론, 일본 국내정치 변화 등 상황 여하에 따라 이번의 ‘최종적·불가역적’인 합의는 뒤집을 수 있다. 이는 일본군 위안부로 추정되는 8만~20만명의 피해자들(이 중 조선인은 51.8%)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다.

위안부 문제가 기본적으로 인권 문제라는 점에서 명분은 일본이 아닌 우리에게 있다. 그래서 위안부 피해자가 수용하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안이 나올 때까지 위안부 문제의 재협상을 계속 촉구해야 한다. 대내외 여론을 환기시켜 나가는 우리 여성단체와 인권단체들의 노력에 작은 힘을 보탠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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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참정권(universal suffrage)은 한때 혁명적이었다. ‘선거혁명’이라는 가소로운 발언을 할 것도 없이 말 그대로 혁명적이었던 때가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산계급의 전유물, 시민혁명의 성과를 독식한 부르주아지의 전리품이 바로 유산계급만의 투표였다. 그리고 이후 지난한 ‘민주주의투쟁’이 있었다. 먼저 노동계급이 나섰다. 당시 계급으로 구성된 유일한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은 무산자에게도 투표권을 주장하며 바리케이드를 쳤다. 1848년 혁명, 그리고 1871년 파리코뮌, 두 번의 대중봉기도 그 결과였다. 그렇게 투표함은 바리케이드와 항상 함께였다. 그것은 양자택일이 아니었다. 바로 역사사회학자 아민자드가 말하는 ‘투표함과 바리케이드’.

그리고 그 다음. 자본가계급은 피곤했다. 물론 피곤하다고 해서 참정권을 프롤레타리아에게 주지 않는다. 하지만 줄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 노동계급의 전투주의는 혁명주의로 성장하였고, 그 혁명주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로 번져 제2인터내셔널을 만들었다. 그리고 1917년까지 투표함과 바리케이드는 전 유럽을 덮었다. 아,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있었다. 그리하여 소위 ‘전간’시기, 즉 1914년 1차 세계대전과 1939년 2차 세계대전 사이 유럽의 민주주의는 지금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즉 노동계급이 보편참정권을, 그리고 노동자들이 노조결성권·교섭권·파업권이라는, 노동자에게만 주어지는 시민권을 갖는 것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니까 유럽의 민주주의 역사도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물론 여전히 완성은 아니었다. 성인남자 노동자들이 쟁취한 투표권은 절대 ‘보편’참정권이 아니었다. 그 투표에서 소외된 여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20세기 초반부터 노동계급보다는 늦었지만, 그러나 남자노동계급에 준 참정권을 보편참정권으로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정치사에 반격을 가하며 여성들이 일어났다. 그 과정 역시 꽤 길었다. 스위스의 경우 여성참정권은 1971년에 허용됐다.


20대 총선 4당 정책공약 평가 점수_경향DB


다른 한편 민주주의의 굴절이 있었다. 이는 민주주의 뒤편에 있는 자본주의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는 민주주의 뒤편에 숨고자 했다. 그러곤 정치가 경제와 독립적인 공간인 양 만들고자 했지만, 자본주의적 민주주의(capitalist democracy)여야 한다는 것도 분명했다. 여기서 자본가들은 민주주의, 즉 다수결 민주주의가 자본주의 사회 내 다수 계급인 노동계급의 지배를 불러오리라 우려했다. 결국 아니었지만.

그 우려가 기우는 아니었다. 일례로 독일의 1912년 선거에서 사민당이 거의 집권할 뻔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1974년 칠레의 아옌데 정권보다 더 먼저, 역사상 최초로 선거로 집권하는 사회주의 정권, 혹은 선거 사회주의혁명이 가능할 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의 염려는 적어도 기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적 지배를 어떻게 민주주의 속에서 관철시킬까. 그것은 결국 민주주의의 굴절 과정을 거쳐서 달성되었다. 다수의 계급이 다수의 지배를 관철하지 못하게 하는 민주주의의 마력. 민주주의의 온갖 장치들, 삼권분립, 정당정치 중심주의, 양당제·다당제, 대통령제·내각제 등 온갖 것들이 다수의 지배를, 그리고 인민주권을 굴절해 여과시키는 장치들이기도 하다는 점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역사가 그것을 보여준다. 수많은 증거들이 있다. 그리고 수많은 연구들이 있다. 그리하여 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위해서, 자본주의와 함께 존속할 수 있게 됐다. 민주주의라는 이상과 구분되는 현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 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투표를 통해 ‘선거혁명’을 꿈꾸겠지만, 그것은 단지 레토릭일 뿐이다. 미사여구일 뿐이다. 투표는 그것이 ‘혁명적’일 때조차도 혁명을 만들지 못했다. 그것이 선거민주주의의 마력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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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 이전의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이라는 민주개혁세력의 구성이 시대에 맞지 않게 되어 대규모 정계 개편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상당한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었던 것이다. 이에 원내·원외의 진보정당들은 복잡한 이합집산을 거쳐나갔으며, 당시의 민주당 또한 어느새인가 ‘진보’라는 이름을 둘러쓰게 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상황은 가히 ‘보수의 재구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이른바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는 여러 흐름들이 분출하여 ‘부패하고 무능한 시대착오적 수구 세력’과 ‘이념과 독선을 버리지 못한 1980년대 운동권의 잔재’ 양자 모두와 선을 긋고 독자적인 정치적 지도 세력이 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가 이끄는 국민의당, 김종인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 유승민 등으로 상징되는 새누리당 ‘비박’ 등의 존재이유를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현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작동해 온 한국 자본주의 모델이 그 끝을 보이고 있는 시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지표로 나타난 경제 실적의 중장기적 경향뿐만 아니라 인구 절벽이나 교육 시스템의 붕괴 및 불평등 심화 등의 각종 사회 지표 또한 이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동북아 질서의 변화도 중대한 국면으로 가고 있는 데다 여기에 전 세계를 휘감고 있는 ‘4차 산업혁명’ 충격까지 밀려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정치적 지형과 담론 구조는 해묵은 이념 및 세력 대립 구도 속에 갇혀서 1980년대 아니 심지어 1970년대로 끝없이 퇴행하면서 사회 전체를 물귀신처럼 침몰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스스로를 ‘합리적 보수’라고 여기는 이들과 세력들이라면 이러한 정치 구도의 현상 타파를 꾀하자라는 흐름을 형성할 만하며, 비록 발원지는 서로 달라도 흘러가는 지향점은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여야 3당이 보는 4·13 총선 판세


나는 개인적으로 선거 이후에 더욱 관심이 간다. 당면한 총선에서 이러한 ‘합리적 보수’의 여러 흐름이 대통령에 대한 절대 충성이라는 원칙으로 뭉친 새누리당에 맞서 어느 만큼이나 세를 확장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 이후에 과연 스스로의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을지도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가 없다.

가장 회의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이 ‘보수의 재구성’에 별로 이렇다 할 만한 노선과 방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는, 굳이 별쭝나게 새로운 기획과 노선을 만들기보다 이념과 정파에 휘둘리지 않는 실력있고 경륜있는 전문가들을 제대로 중용하기만 하면 된다는 인식이다.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에 대한 나름의 진단과 지금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천착이나 설득력있는 설명 등은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각자가 거느리고 있는 전문가 엘리트의 네트워크를 과시하는 것으로 충분히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여기에서 예전 진보 진영에서 시도되었던 ‘재구성’이 왜 큰 성과 없이 흐지부지되고 말았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도 이렇다 할 내용, 즉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석과 그에 기반한 노선 및 방향을 내걸고 나온 세력이 없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러한 내용이 없는 상태이니 ‘재구성’이란 결국 하릴없는 이합집산이 될 뿐이었으며, 여기에서 해묵은 은원관계와 계파 싸움이 다시 살아나 원심력만 커져가는 과정으로 변해갔었다. 보수의 재구성에도 무수한 혁신과 고민을 통한 새로운 내용의 준비가 필요하다.

복지와 증세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대한민국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적인 산업 조직의 향도 역할이 사라져가는 재벌 기업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런 것들은 새 시대의 ‘합리적 보수’라면 결코 회피해서는 안될 굵직한 질문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과감한 도전과 내용 및 방향의 제시가 없다면 보수의 재구성도 새로운 정치적 힘의 발흥이 아닌 기존 세력 구도하에서의 이합집산에 불과한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개인적인 신념을 떠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시민으로서 보수의 재구성이 적극적인 결실을 맺기를 기대하며 지켜보련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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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이 미취학, 장기결석 초·중학생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면서 나타난 아동학대의 심각성과 사회적 무관심과 방관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서울가정법원은 5월부터 가사재판 및 협의이혼 과정의 ‘자녀양육 안내 절차’에 ‘아동학대 예방교육’을 추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녀양육 안내절차는 강제성이 있기에 해당 교육을 받지 않으면 법원에서 이혼 절차가 중단된다. 이는 이혼이나 재혼 가정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를 방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아동학대 방지를 위해 부모교육이 필요하다는 법원의 판단에 공감하지만, 이 조치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법원의 조치는 이혼 내지 재혼 부모에 의한 아동학대라는 사회적 편견을 고착화시킴으로써 당면한 현실 문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제공하고, 결과적으로 친부모 가정에서의 아동학대가 상대적으로 가려져 올바른 해결책을 찾아가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정법원이 근거하고 있는 아동학대 통계에서 한부모 가정, 재혼 가정의 자녀는 학대받는 아동 10명 중 4명이다. 이는 일반 친부모 가정에서의 아동학대도 결코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또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전국아동학대 현황보고’(2014년 기준)를 보면 전체 학대 가정 유형으로는 친부모 가정이 가장 많았고, 뒤를 이어 한부모 가정, 재혼가정이 있다.


물론 많은 수의 친부모 가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이혼이나 재혼가정 숫자를 고려한 후 각 집단에서 발생하는 아동학대 숫자를 비교해 보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열악한 한부모, 재혼가정에서의 발생 비율이 높을 수 있다.

20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정부에 아동학대 근절 대책을 요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_경향DB

그러나 장기간 소년원 봉사를 했던 개인 경험으로 볼 때 친부모 가정에서의 학대는 매우 심각하다. 부모들이 보살피겠다고 하면 법원에서 문제아동을 되도록 가정(부모)으로 보내고 소년원으로 보내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할 때, 친부모 가정 출신의 소년원 학생 비율은 결코 낮지 않다.

또 가정에서의 영·유아 및 청소년에 대한 학대는 눈에 띄는 신체적 형태로부터 심리적 학대까지 넓은 범위에 걸쳐 있다는 점과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특히 고소득, 고학력 집안에서의 정신적 학대도 매우 높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친부모 가정은 외형적으로 문제없이 보이기에 주변으로부터의 피해 아동 보호가 거의 불가능하고, 부부 간의 불화는 그대로 아동학대로 이어지기 쉽다. 무엇보다 친부모 가정에서 흔한 정신적 학대 유형은 심리적 상처로 인해 성인이 되었을 때 심각한 잠재적 문제를 지닌다.

그런 면에서 아동학대 예방 대상으로 단지 이혼가정을 특정화한 법원 대책은 근시안적 접근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일정 나이만 되면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사회 압력이 하나의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자유롭게 연애하고 동거를 하다가 결혼하는 문화에 비해 결혼하지 않으면 비정상이라는 선입견과 편견으로 주변의 채근에 강제로 선을 보고 간단히 결혼을 결정하는 사회현실도 아동학대의 원인이라면 원인이다.

법원의 ‘아동학대 예방교육’ 조치나 노력 자체가 편견 조장으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혼 가정에 대한 따스한 사회적 시선과 더불어 사회 전반의 근본적이고 통합적인 대책 마련이 전제돼야 한다. 어찌 보면 가정을 이뤄 부모가 된다는 ‘결혼 예비교육’이 더 절실할지 모른다.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학대에 시달릴 아이들을 생각할 때,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무한경쟁과 물질적 가치 기준에 대한 재고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최소한 우리의 결혼문화와 가정 내 부부폭력과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미래인 아이들의 안전은 가정뿐만 아니라 사회의 의무이기도 하다.


우희종 |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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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가서 죽은 딸에게 부모로서 못한 책임 다하겠다.” 3월18일에 한씨로 알려진 엄마가 충북 청원에서 자살하면서 남긴 유서의 일부다. 원래 네 살배기 친딸이 있었다. 계부 안씨는 한씨가 2011년 12월 중순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는 이유로 물 찬 욕조에서 딸에게 물고문 비슷한 가혹 행위를 했고, 이에 결국 딸이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딸의 시신은 암매장되었다. 30대 초반의 엄마나 계부가 할 수 있는 정상적 행동은 아니었다. 그 직전에 일어난, 경기 평택의 일곱 살배기 신원영군의 죽음도 비슷했다. 아빠와 계모의 비정상 행위가 문제였다. 청원의 엄마 한씨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면서 먼저 간 딸에게 사죄했다. 삶은 비정상이었고, 오히려 죽음이 정상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 큰 대학생의 안타까운 죽음도 있었다. “힘들고 부끄러운 20년이었습니다. 저를 힘들게 만든 건 이 사회고, 저를 부끄럽게 만든 건 제 자신입니다…. 제 자신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큰 고통으로 다가옵니다…. 먼저 태어난 자,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에 굴복하는 것이 이 사회의 합리입니다. 제 개인적으론 비합리라 여길 수 있어도 사회에서는 그 비합리가 모범답안입니다…. 서로 수저 색깔을 논하는 이 세상에서 저는 독야청청 ‘금 전두엽’을 가진 듯했습니다. 하지만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전두엽 색깔이 아닌 수저 색깔이군요.”

그는 과학고 출신으로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다니면서 대통령 장학금까지 받은 ‘우수’ 학생이었다. 그는 지난해 12월18일 새벽, 한 건물 옥상에서 떨어져 세상을 버리기 직전,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 했다.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수저 색깔과 그렇지 않은 자의 수저 색깔이 다르다는 그의 말은, 빈부의 대물림이 구조화한 사회 현실을 고발한다. 이른바 금수저·흙수저 논란의 핵심이다. 합리가 비합리이고 비합리가 합리인, 전도된 세상의 결과다.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앓은 사람의 비율, OECD 회원국 자살률 비교_경향DB

지난 3월17일 아침, 유성기업 영동지회 노조원인 한 아무개씨가 어느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한창 팔팔하게 살 40대 초반이었다. 그의 자살 배경엔 유성기업의 파행적 노사관계, 그리고 원청인 현대자동차의 노조 혐오가 자리한다. 2011년 이후 ‘창조 컨설팅’의 도움을 받고 용역깡패를 동원한 직장폐쇄 및 노조파괴, 각종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 부당 해고 등 무수한 노동탄압으로 고위험 우울증과 스트레스 등 더 이상 심신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였다. 2012년에도 유성기업에서는 유사한 자살이 있었다. 또 지난해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43%가 심각한 고위험 우울증에 노출돼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었다. “사측의 노동 탄압에 최악의 심리상태에서 자살을 기도하거나 생각하는 조합원도 있다. 조합원들이 육체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죽어가고 있고 이에 대한 사회적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죽음을 불사한 항거나 사회적 관심 촉구에도 세상은 냉정했다. 명백한 증거 앞에도 검찰은 2년의 세월을 보낸 뒤 회사 측을 불기소 처분했다. 노동자 한씨의 자살이 사회적 타살인 이유다.

하루에만도 40명이 자살한다는 ‘자살공화국’ 대한민국,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란, 누구나 두려움 없이 꿈꿀 수 있고, 누구나 두려움 없이 아이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다. 그러나 이 자살공화국은 ‘두려움’을 확대, 조장한다.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고 학대 끝에 죽이고, 그도 모자라 암매장까지 한 부부, 그토록 열망하던 대학에 진학했지만 ‘수저 색깔’ 앞에 절망한 청년, 심야 노동 없애고 ‘밤에 잠 좀 자자’며 저항했으나 회사와 국가의 탄압 아래 죽은 노동자, 이들의 삶과 죽음은 각자 그 결이 다르지만, 삶의 무게와 두려움 앞에 짓눌리고 절망한 끝에 자살로 항거한 점이 공통된다. 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죽는가. 이것이 삶인가. 또 이런 삶과 죽음을 매일 보고도 ‘모른 체’하며 사는 우리는 과연 사람인가?

헌법 10조는 행복추구권을 다룬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조항이 장식품에 그치지 않으려면, 온 사회가 이들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고 성찰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인간성 존중의 사회구조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맑은 정신’을 가진 이들이 나라 일꾼으로 뽑혀야 한다. 우리도 모르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보다 무서운 외환위기가, 세월호보다 무서운 세월호가 올지 모른다. 행복한 삶을 위한 혁명이 온 사회에 절실한 까닭이다.


강수돌 |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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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는 어떤 상태인가? 군사적 효용이 있는지, 전자파는 안전한지의 핵심적 질문에 평범한 시민이 바로 답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정확한 정보다. 사드는 군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약 배치를 한다면, 배치 지역 시민 삶의 문제다. 나아가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시민은 사드 정보를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일한 내용은 지난 2월7일 미국과 사드 배치를 위한 실무협의를 개시한다고 공식 선언한 사실이다. 이후 2월23일에 주한미군과 배치 협의 공동실무단 운용 약정이라는 문서를 체결했다. 이 약정서의 내용은 대체 무엇인가? 사드 배치를 전제로 배치 지역을 공동으로 찾는다는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사드 배치 여부를 결정할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법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배치 실무단 약정서의 법적 성격이 참으로 궁금하다. 이를 체결했으니 한국은 미국에 어떤 국제법적 의무를 지게 되는 것인가? 그래서 국방부에 물어보았으나 벽에 부딪혔다. 국방부는 17일에 사드 배치 실무단 약정서가 ‘한·미 2급 비밀’이라며 공개 거부 결정을 내렸다.

배치 실무단 약정서가 ‘한·미 2급 비밀’이라는 것이 처음 밝혀졌다. 원래 2급 비밀은 ‘보안 업무 규정’에 ‘누설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막대한 지장을 끼칠 우려가 있는 비밀’을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사드 배치 약정서에 어떤 내용이 있기에, 공개하면 국가안보에 막대한 지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것일까? 그동안 2급 비밀이라고 알려진 문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과 한·미 군사작전계획 등이었다.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민변 회원이 경찰에게 저지 당하고 있다. _연합뉴스

사드 배치를 지금의 주한미군 부대가 아니라 새로이 배치지역을 정한다면 해당 지역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을 수용 박탈해야 한다. 그리고 인근 주민에게 전자파 등 환경 피해를 낳는다. 막대한 토지수용 보상금을 예산으로 지출해야 한다. 헌법은 이와 같은 재산과 기본권 침해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하고 법적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정했다. 그리고 재정 지출이 따르는 조약 체결은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 비준하도록 했다. 만일 배치 실무단 약정서에 새로운 장소에 사드 배치를 한다는 내용이 있다면 국회의 동의를 받기 전에는 법적 효력이 없다. 최소한 국방부는 시민에게 이 내용을 알려야 한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이 주한미군에 필요한 ‘시설과 구역’을 제공한다고 정했더라도 여기에는 어디까지나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른다는 단서가 있다. 국회는 사드 배치가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른 것인지 심의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배치 예정지 시민들의 사전 절차 참여권은 법적 권리이다. 사드 배치는 ‘국방 군사시설 사업에 관한 법률’ 2조2호의 ‘대한민국 주둔 외국군대의 부대시설 설치사업’에 해당한다. 이러한 설치 사업을 국방부가 승인하려는 경우에는 사전에 사업계획을 공고해 예정지역 토지 소유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에 배치지역 합의를 해주기 전에 해당 지역 시민의 의견제출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또 국방부 장관에게 요구한다. 만일 사드 배치 실무단 약정서에 사드를 배치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면 정부는 약정서를 국회에 보내야 한다. 국회의 심의와 동의를 받기 전에는 약정을 집행해서는 안된다. 배치지역 예정지를 미국과 협의하거나 합의해서는 안된다. 시민은 삶에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사드는 법치주의의 예외가 아니다. 헌법과 법률의 법적 절차에 따라 시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사드가 안보에 필요하다고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잘된 결정이 되려면 관련 정보를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 그래야 합리적 여론 형성이 가능하다. 시민이 법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군인을 통제할 수 있다. 사드 배치 실무단 약정서를 공개해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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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부 능선은 넘었다. 두 사람 모두. 이제 몇 고비만 넘기면 고지가 바로 앞이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 4·13 총선의 두 주역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두 사람은 ‘진박프로젝트’와 ‘집권플랜’으로 경합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같이했던 두 사람은 이제 창끝을 서로의 심장에 겨눈 채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진박프로젝트는 지금까진 원안 그대로다. 돌격대장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의 공이 크다. 그는 국민공천제라는 7부 능선의 철책을 단숨에 돌파했다. 대표 김무성을 ‘바보’로 만들면서. 그 사이에 윤상현이라는 핵심 전력의 예기치 않았던 손실도 있었지만 무소속 생환의 길도 있다. 옥새를 틀어쥔 ‘바보’의 마지막 저항이 만만치 않지만 이 역시 어떻게든 진압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진박프로젝트는 시연도 못해본 채 무산될 터이니.

진박프로젝트가 9부 능선을 넘자면 유승민이라는 마지막 폭탄 제거가 관건이다. 유승민은 진박프로젝트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로부터 시작해 그의 제거가 진박프로젝트의 완성이 될 것이다. 거센 역풍에도 어떻게든 그를 배제하려는 이유다. 유승민이 살아남는다면 진박프로젝트의 절반은 날아간다.

더민주의 전권을 단숨에 틀어쥔 김종인 대표도 거침이 없다. 한참 열기가 오르던 필리버스터 국면을 단숨에 정리했다. 야권통합을 제안해 국민의당을 뿌리부터 흔들고 안철수를 고립시켰다. 정의당과의 연대는 아예 입 밖에도 내지 못하게 했다. 더민주의 대표주자격인 정청래와 이해찬도 주저 없이 정리했다. 북한 핵 이슈도 “언젠간 북한이 궤멸할 것”이라는 한마디로 넘겼다. 기존의 더민주라면 야단법석이었을 행보다.

더민주 안에서 그의 ‘진로’와 ‘정무적 판단’에 감히 제동을 걸고 나선 이는 없었다. 오죽하면 이해찬 의원이 탈당 성명에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고 했을까. 더민주는 완벽하게 김종인에게 복속했다. 그렇게 말 많고 시끄럽던 당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이해찬 의원이 “정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일갈했지만, 김종인은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버팀목으로, 승리에 대한 갈구를 채찍 삼아 더민주와 그 지지자들을 한 손에 틀어쥐었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진영 의원 영입까지 성사된다면 그의 장악력은 더 배가될 터. 설령 무산된다 해도 그 정치적 효과는 충분하다.

그의 목표는 집권이다. 그의 말을 따르면 집권을 못하면 모든 게 ‘헛된 일’이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위해 집권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다음 대통령 되는 사람이 최소한의 경제민주화라도 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것. 총선은 그 과정이다. 최소한 기존의 의석수를 유지하고 집권의 발판을 만들면 된다는 게 그의 셈법이다. 무자비하게 목표지향적이라는 점에서 박근혜와 김종인은 닮았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스타일도 비슷하다. 그러나 리더십의 배경과 그 지향은 달라 보인다. 박근혜는 대통령의 권력으로 복속과 충성을 요구하고 있다. TK라는 지역적 기반이 든든한 밑천이다. 그래서 유승민을 더 참을 수 없는지 모른다. 한때는 집권을 위해 경제민주화까지 차용하면서 외연을 넓혔지만, 이제는 배신자를 가차 없이 쳐내며 친위 당을 만드는 게 최우선 목표다. 그래도 새누리당이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을 터다. 퇴임 이후까지를 겨냥한 포석이다.

김종인은 불가피하게 자발적 동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온전히 자신의 비전과 정치력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 어쨌거나 분당이라는 위기 국면에서 비대위원장으로 영입됐다지만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어 비상대권까지 거머쥔 것은 순전히 그의 정치적 역량이다. 사분오열돼 있는 당을 수습하고 당의 진로를 크게 바꾸면서도 그 지지자들까지를 큰 이탈 없이 이끌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진 성공적이다. 물론 총선 결과가 잘 나와야 한다.

박근혜와 김종인 누가 웃을까. 현재의 구도와 비전으로 보면 김종인 쪽이 유리해 보인다. 판세는 속단하기 어렵다. 박근혜와 김종인의 승부는 비대칭 구도다. 총선에서 여야의 전체 성적만으로 승패를 가를 일이 아니다. 총선 결과가 큰 잣대가 되겠지만 진박프로젝트의 승부처는 대구다. 유승민과 그의 친구들의 생환 여부가 결정적인 가늠자가 될 것이다. 외연 확장을 겨냥한 김종인의 집권플랜은 수도권이 승부처가 되겠지만 호남과 충청, 특히 광주의 표심이 관건이다. 수도권에서 선전해도 광주를 얻지 못하면 그 집권플랜은 동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대구와 광주 유권자들의 선택이 궁금한 까닭이다.


백병규 |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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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진다. 국가운영 면에서 국회는 예·결산 심의를 할 때, 국방부가 국민들이 전쟁걱정 없이 살도록 예산을 썼는지, 통일부는 안정적인 남북관계 관리를 위해 예산을 썼는지를 따진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런 ‘비용 대비 효과’ 개념 없이 북한을 압박만 하는 것 같다.

북한이 4차 핵실험(1월6일)을 하자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2월7일)하자 개성공단 가동을 중단시켰다. 북한도 이에 맞서 공단폐쇄와 군사지역화를 선포했다.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은 우여곡절 끝에 3월3일 가결됐다. 그런데 그날 김정은은 ‘핵탄두 발사 준비’ 지시를 내렸다. 정부는 닷새 후(3월8일) 유엔 제재와는 별개로 4개항의 대북 제재 조치를 추가했다. 그러자 북한은 이틀 뒤 금강산과 개성공단 내 ‘남한자산 청산’을 발표했다. 남북 간에 체결된 경제협력과 교류왕래 관련 합의 무효화도 선언했다. 정치·경제·군사적 보복조치도 연달아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남북이 서로 강 대 강으로 나가니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어차피 북한은 정책의 합리성이나 ‘비용 대비 효과’ 같은 건 따지지 않는 체제다. 반면 우리는 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라서 정책의 ‘비용 대비 효과’를 따진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강경일변도 대북정책이 가져온 마이너스 효과가 천문학적이라는 사실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개성과 금강산에 있는 남한자산을 북한이 마음대로 처분하면, 우리는 총 1조4287억원이나 되는 재산을 고스란히 뺏기게 된다. 그중 민간 기업 자산이 1조52억원이나 된다. 정부를 믿고 북한에 투자한 기업들이 정부의 강경 압박정책 때문에 길에 나앉게 됐다. 1조52억원은 어디 가서 찾아야 하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안이 채택된 3일 오전 외신 기자들이 중국 랴오닝성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대교(중조우의교)의 차량 움직임을 취재하고 있다._연합뉴스

대북 강경정책의 마이너스 효과는 또 있다. 3월7일부터 4월30일까지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훈련이 실시된다. 한국군 30만명, 미군 1만7000명이 참가한다. B-52폭격기, F-22전투기, 핵항공모함, 핵잠수함 등 미국의 전략자산이 총동원된다. 군사기밀이기 때문에 이번에 경비가 얼마나 드는지 알 수 없지만, 2013년 훈련 때 B-2폭격기 1대, F-22전투기 2대가 불과 몇 분 한반도 상공을 날았는데 6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대북 압박수위와 비례해서 훈련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이번 훈련이 역대 최상·최대라 하니 경비도 훨씬 더 들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많은 경비를 들여 겁주고 압박해서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까? 이번 대북 제재 결의안 2270호 49-50항에 대화권고, 9·19공동성명에 대한 지지와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는 제재와 동시에 대화와 협상을 권고하고 있다.

북핵협상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북핵 대화는 상호주의보다 북한의 일방적인 항복을 받아내려는 식으로 운영되었기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 이것이 북핵 문제의 불편한 진실이다.

현 정부는 대북 압박에 몰두하는 자기 정체성 때문에 일부러 외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중·러는 ‘북한을 6자회담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는 전제하에 미국 주도 제재안에 찬성했다. 뿐만 아니라 제재안 통과 다음날,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같이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일 리퍼트 대사는 기자회견에서 ‘제재가 대화유도 수단임’을 강조했다. 북핵 관련 정세가 슬금슬금 협상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걸 시사한다.

그렇다면 현 정부도 엄청난 비용에 비해 마이너스 효과만 가져오는 강경 압박 정책을 적당한 시점에 거둬들일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2270호 결의안에 담긴 대화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것도 결의안 위반이다. 추후에라도 일이 꼬였을 때 남 탓 말고, 미국도 원망하지 않길 바란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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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야권 연대’를 두고 시비를 벌이고 있다. 야당들이 특히 그러하다. 야권 연대 문제를 둘러싸고 더민주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연일 설전을 벌이고 있고, 국민의당은 내분을 겪으며 창당 한 달여 만에 분당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참 답답한 일이다. 이번 총선에서 야권 연대는 불가피하다. 아니 꼭 필요하다. 단지 야당의 승리를 위한 당파적, 선거공학적 차원에서 볼 일이 아니다. 작금의 한국정치 현실에서 야권 연대는 민주주의 체제의 원활한 작동과 정당정치 강화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작금의 한국정치 현실에서 야권 연대는 민의를 대표하는 방식이다. 현재 집권세력에 대해 비판적인 야당성향의 유권자-특히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는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있는 주요 야당, 즉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중 어느 한 정당을 특정해 지지하는 경향이 약하다. 어느 한 정당을 지지한다고 해도 그 강도가 썩 높지 않다. 야당 중 어느 한 당이 단독으로 현 집권세력을 누르고 우위를 점할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야당 통합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현 집권세력에 비판적인 야당성향의 유권자를 대표하는 방법은 야권 연대밖에 없다. 더 나아가 야권 연대는 정당이 표방해 온 전통적인 정체성의 차이보다 실제로 행한 것의 결과를 더 중시하는 추세에 부응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보다 좋은 결과를 위해선 협력이 필요한데, 야권 연대가 바로 그 협력의 구체적 방도이다.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정당별 이념·정책적 정체성이 분명한 것으로 정평이 난 유럽 역시 1970년대 이후 그랬다. 계급-종교-지역-인종과 같은 전통적 균열과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된 후로는 경제·고용·복지·조세·환경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구체적 성과를 내기 위한 정당 간 협력이 빈번히 전개되면서, 야당정치가 아닌 야권정치-때로는 여당정치가 아닌 여권정치-의 중요성이 커져 왔던 것이다.

국민의당 김한길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야권 통합·연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_경향DB

둘째, 현 시기 한국정치에서 야권 연대는 견제와 균형의 힘을 만들어내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박근혜 정권은 공공·노동·금융·교육개혁과 같은 국가중대사를 두고 ‘독선·독단·독주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이는 정치·사회적으로 숙고와 토론의 권리와 기회를 빼앗아 보다 덜 나쁜 혹은 보다 더 좋은 대안을 도출할 가능성을 봉쇄한다는 점에서, 또 소모적인 갈등을 양산해 정권 스스로 설정한 국가중대사의 해결을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이를 제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견제와 균형의 힘이다. 그런데 현재 야당들은 각자 그런 힘을 만들어낼 수가 없는 상황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의 정당지지율 추이를 볼 때, 야당들은 새누리당에 비해 지지율이 무려 15~40% 이상 낮다. 하지만 야권 연대를 하면 전국 차원에서는 5% 뒤져도 수도권에서는 5% 정도 앞선다(리얼미터 2016.3. 조사). 정치전문가들이 더민주-국민의당 갈등을 예사롭지 않다고 여기면서도 수도권에서는 야권 연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을 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야권 연대는 그 범위를 수도권에서 전국 차원으로 넓히면,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 특히 영남지역주의를 완화시킬 침로이기도 하다. 몇몇 선거구의 경우 야권 연대-후보단일화를 통해 경쟁력이 가장 높은 후보를 출마시키면 새누리당을 이길 가능성이 있다. 가령 정의당의 노회찬 전 의원이 출마한 창원 성산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노회찬 예비후보는 김부겸(대구 수성갑)-김영춘(부산 진구갑) 예비후보와 함께 새누리당 일색인 영남정치를 바꿔낼 ‘영남 3총사’라는 호명을 받고 있다. 그러니까 창원 성산은 새누리당 패권질서를 해소할 야권의 ‘전략지역구’인 셈이다. 만약 이와 같은 전략지역구를 중심으로 야권 연대를 이뤄 야당이 승리하면 새누리당은 더 이상 ‘묻지마 지지’에 안주할 수 없어 일신우일신할 것이고, 이는 영남정치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좋은 보수의 등장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야권 연대는 좋은 정치를 가져올 야당 간 혹은 여야 간 경쟁의 방식이기도 하다.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당이 20대 총선을 계기로 변화에 적응하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야권에 부여된 시대적 과제를 잘 수행하는 현명한 정치의 길, 야권 연대를 잘 가꿔가길 기대한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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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영국 노동당 대표가 된 제러미 코빈, 그리고 그리스에서 정권을 잡은 급진좌파연합(시리자)과 당수 치프라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한국에서 이른바 진보 민주세력이 번갈아가며 ‘급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이라는 점? 맞다.

하지만 그보다는 내용적 공통점을 묻고 싶다.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다음 두 가지이다. 미국과 영국과 그리스의 정치지형, 내부의 이념적 스펙트럼, 그리고 그들 세 명의 정치적 입장과 소속 정당의 차이를 감안하고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자국 내 정치지형에서 좌쪽이고, 자기 세력의 우경화에 맞선 좌경화 세력이라는 점이다. 근데 흥미롭게도 한국에서 선거를 겨냥하여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이른바 진보정당세력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인물들에 투사하여 자신의 정치적 꿈을 드러내고 그들과 동일시해보려는 세력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한국 내 정치지형에서 좌에서 이탈하여 우쪽으로 가고 있는 세력이고, 자기 세력의 이전 좌경화를 비판하는 우경화 주창 세력이라는 점이다. 아닌가?

샌더스는 40년간 똑같은 말을 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는 그가 바뀐 것이 아니라 “시대가 버니를 따라잡았다”고 말한다. 그는 미국의 정치지형에서 보수-자유, 아니 공화-민주당 양당구조에서 항상 아웃사이더로 있었고, 그래서 이번에 빛을 본 것이다. 시대가 드디어 그의 말에 귀 기울여서 말이다. 그리고 그의 나이는 73세다. 나이가 젊어서 ‘진보’가 아니라, 나이가 아주 많은 백전노장이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으로, 그리고 미국을 송두리째 흔들 정치적 아이콘으로 부상한 것이다.

젊다고 진보는 아닌 것이다. 한국의 청년담론은 그 점에서 얼마나 속류 유물론적이고, 비정치적이고 탈이념적이고 나아가 폭력적인 담론인지. 코빈은 또 어떤가? 그 역시 영국의 보수-노동 양당 구조 안에서 비주류, 그리고 급진화된 민주주의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노동당 안에서 계급의 언어를 살려내고 있는 사람이다. 또 그 역시 우경화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좌경화를, 그리고 자당 세력의 우경화에 맞서면서 부상했다. 미국의 샌더스와 영국의 코빈이 보수 양당 구조 내에서 살아남은, 그리고 단지 정치적 생존을 넘어서 화려한 부활 혹은 위협적인 인물이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그리스의 시리자는 정치세력으로서 계급좌파의 생존 부활 집권과정을 보여주었다. 여하튼 이들 모두는 그들 국가 안에서 그리고 그들 세력 안에서 우경화가 아니라 좌경 급진세력이고, 자기 세력·진영의 우경화에 맞서온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는 샌더스처럼 40년째 한결같이 급진적 언사를 외치는 이가 제도정치인 중에 없고, 코빈처럼 당내 아웃사이더로 살아남아 이념의 전투 끝에 당권을 장악하려는 시도도 없으며, 더구나 그리스의 시리자 같은 급진좌파는 소수 중의 소수다. 물론 구조적 원인도 있다. 한국 사회와 정치지형은 미국과 영국보다 좌파에 더 적대적이며, 이번 비례대표제 축소에서도 보였듯이 보수 양당은 민주화 이행 이후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입을 막는 데 줄곧 이해의 담합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정치의 내용도 문제적이다. 한국에는 과연 샌더스와 코빈과 시리자가 있긴 한가 말이다. 모두가 우경화를 말할 때, 견결히 좌쪽에 서서, 정치의 양 날개 중 좌익이 되는 세력 말이다. 한국의 진보정치는 샌더스와 코빈과 시리자를 보면서 그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리고 현재의 입지가 아니라 그들의 입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진보정치가 코빈과 샌더스 그리고 시리자로부터 배울 지점이다. 진보정치를 하려면 똑바로 하란 말이다. 갈수록 체제내화되고, 체제 안으로 진입할 생각만 하지 말란 말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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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다보스포럼 덕분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은 일약 도처에서 회자되는 뜨거운 열쇳말로 떠올랐다. 클라우스 슈밥 박사는 현재의 기술 변화가 단순히 정보화와 자동화에만 의존했던 3차 산업혁명과 구별되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음을 역설하면서, 이러한 기술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충격, 특히 일자리의 부족과 부의 불평등 심화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분명히 시의적절하고 반가운 일이지만, 현재 시기는 4차가 아닌 여전히 3차 산업혁명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있다.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거나 밀접하다거나 하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둘은 ‘동일한’ 과정이다. 사회 변화를 수반하지 않는 기술 변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는 특히 몇 가지 자잘한 기술이 아니라 아예 기술 패러다임과 같은 거시적이고 큰 차원에서의 기술 변화에 더욱 절실하게 해당되는 이야기다. 따라서 우리는 산업혁명의 역사를 생각할 때 어느 한쪽, 특히 기술과 생산 방식의 변화만을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사회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함께 보아야만 그 의미를 충분히 음미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19세기와 20세기의 1차 및 2차 산업혁명이 각각의 기술 패러다임에 맞는 형태로 산업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 확연해진다. 대략 100년의 시간을 두고 전반기 50년에 축적된 기술 변화가 후반기 50년 동안 사회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 패턴이었던 것이다. 1770년쯤을 전후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1832년에 영국 개혁 의회를 가져왔고 이윽고 1848년 혁명을 통해 전 유럽을 부르주아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1880년대에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은 1930년대를 기점으로 산업사회를 국가 중심의 집산화 체제로 또다시 바꾸어 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4차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다보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_AP연합뉴스

1970년대쯤부터 디지털 혁명이 기술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기 시작한 지 50년 정도가 되어간다. 하지만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중후반에 맞먹는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정당민주주의, 자본시장, 주식회사 등 2차 산업혁명의 결과로 지배적 위치를 갖게 된 사회 제도들이 여전히 그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세기의 자유주의와 20세기의 사회민주주의 등의 이념은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가치관을 대표하는 것들이지만, 현재의 세계는 인간과 사회와 자연을 여전히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한 비용과 투입물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세상이 크게 바뀌지 않았으므로, 기술적 혁신이 실제의 큰 사업으로 구체화돼 세상을 바꾸어 놓는 데에도 뻔한 한계가 주어진다. 19세기 중반과 20세기 초에는 좌절에 지친 나머지 전혀 새로운 인간관과 사회 변화가 필요하다고 외치며 행동에 나서는 사업가, 투자자들이 속출했다.

일자리의 소멸과 소득 불평등의 심화와 같은 것은 현재의 기술 변화의 산물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들이 좁은 의미에서의 노동정책이나 사회 재분배 정책 차원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기능적인’ 것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인공 지능과 로봇이 엄청난 풍요와 엄청난 박탈을 동시에 가져오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인간에게 노동이란 무엇이며, 인생에서 소득이란 무엇이며, 개인의 노동 및 소득과 사회 전체는 또 무슨 관계가 있는가에 대해 근본적이고도 전면적인 재검토와 숙고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앞의 두 번의 산업혁명 물결은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음을 역사적으로 보여준 바 있다. 아직 4차가 아니라 3차 산업혁명 중임을 역설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50년간 기술과 산업의 패러다임은 상전벽해로 변해 버렸다. 이제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사회의 질서를 상상하고 토론해갈 때이다. 다보스포럼의 문제제기가 단순한 기능적 차원의 해법에 머물지 않고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21세기 산업사회의 가치와 인간 및 사회관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빈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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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혼자 결정하지 않고 회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은 ‘집단지성’을 믿기 때문이다. 여럿이 모여 지혜를 짜내는 것이 홀로 고민하는 것보다 더 나은 판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명제가 적용되지 않는 곳이 있었다. 바로 제1야당이었다. 과거 이 당은 극히 최근을 제외하면 언제나 집단지도체제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언제나 ‘우유부단’, ‘자중지란’이었다. 유일하게 잘했던 것은 ‘나눠 먹기’ 정도였다.

문재인이 대표가 되면서 당의 미래를 외부인사가 주를 이루는 혁신위에 맡겨버리자 곧 분란이 일었고 집단탈당이 이어졌다. 그런데 재미있다. 더민주가 영입한 김종인은 ‘전제군주’라는 세간의 평을 들으며 과거 야당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탈당파들이 만든 국민의당은 안철수, 김한길, 천정배, 정동영, 이상돈이 모여 또다시 집단지도체제로 당을 꾸려가고 있다. 결과는 정반대다. 더민주는 작아졌지만 과거처럼 쉽게는 지지 않을 정당으로 변모했다. 국민의당은 지도부의 구조마저 혼란스러운데 과연 총선 후 온전할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이러한 풍경을 바라보면서 제1야당의 오랜 관행이었던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맞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다수의 합의를 따르는 것이 민주적으로 보이긴 한다. 그러나 국민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예민하고 세와 계파를 중시하는 한국 정치인들의 집단지도체제는 오히려 반민주적 행태를 반복해서 보여줬을 뿐이다. 결국 강력한 리더십, 일사불란함, 자기 헌신이 없으면 국민은 그 당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권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 새롭게 확인한 게 있다. 바로 더민주와 국민의당의 우클릭. 두 당 모두 위기에 처하자 구원투수로 모셔온 사람이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든 김종인과 이상돈이다. 국민의당은 더 두고 봐야겠지만 김종인을 투입한 더민주는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의 대성공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국민들은 안정을 원한다는 것이다. 개혁도 안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국민은 불안해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김상곤 인재영입위원장, 문재인 전 대표가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_연합뉴스

사실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이 야당에 요구했던 것은 진보적 선명성이었고 투쟁이었다. 그러나 야권에서 이들의 몸값이 올라가고 지지자들마저 환영하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이전 야당의 지리멸렬함은 진보적 선명성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당 자체가 우왕좌왕 일관성이 없었기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지지세력의 결집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권획득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한국의 정치지형에서 진보는 보수에 수적으로 절대 열세인데 그렇다고 중도보다 많은 것도 아니다. 김대중은 호남의 결집으로, 노무현은 노사모의 결집으로 대권을 얻었지만 동시에 김대중이 유신보수 김종필과 손잡지 않았다면, 노무현이 재벌보수 정몽준과 단일화하지 않았다면 정권창출은 불가능했다.

보수와 진보가 일대일로 맞붙으면 진보가 이길 수 있을까? 지난 대선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 더해 전여옥이란 걸출한 인물이 박근혜 후보의 민망한 속살을 까발려줬고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사퇴했을 뿐 아니라 기록적 투표율이 나왔음에도 독재자의 딸 박근혜는 인권변호사 문재인을 이겼다. 결국 지지세의 결집은 기본이고 여기에 중도와 중산층 유권자를 더하지 못하면 보수의 영구집권은 현실화되는 것이다. 김종인이 당에 기여한 것은 국민이 원하는 안정감이고 이는 지지도 상승으로 연결됐다.

김종인 체제의 더민주가 변화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구석도 보인다. 당내 이견이 있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다. 최근 논란은 한·미FTA의 주역인 김현종 영입과 필리버스터 중단이었다. 문제는 소속 의원들이 지도부 결정에 대한 불만을 개인 성명과 특히 SNS를 통해 밖으로 표출하는 행태다. 어느 직장에서든 가장 못난 사람은 회사의 문제를 밖에다 떠드는 사람들이다. 비리가 있다면야 외부에 고발할 수도 있지만 경영진의 결정을 밖에서 성토하는 것은 구성원의 도리가 아니다.

그 대부분은 운동권 성향의 의원들인데 이들의 이러한 행태는 당을 계속 ‘운동권 정당’의 수준에 붙잡아 둘 뿐이다. 특히 더 문제는 당내의 이견이 이러한 경로를 통해 지지자들 간의 싸움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유난히 야당은 지지자들 간의 싸움이 격하고 패거리주의가 심한데 이러한 ‘운동권 의원’들의 행태와 ‘운동권 지지자’들의 싸움을 보며 야당에 관심을 갖던 중도와 중산층이 결국 돌아서게 되는 것이다. 이제 더민주는 의석수 감소에도 불구하고 강한 야당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내부투쟁은 치열하게 하고 국민에게는 신뢰를 선사했으면 한다.


정희준 | 동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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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문을 닫은 지 보름이 지났다. 결과는 무엇인가? ‘끝장 제재’를 이끌었는가? 미국의 북한제재법과 유엔의 대북제재안을 보자. 핵심 내용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성이 있는 거래 금지이다. 주민의 경제생활 거래까지 제한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엔법의 기본적 원칙이다. 모든 국제 제재에 대해 적용하는 유엔의 원칙은 “특정 국가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국제 평화 규범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기본권을 박탈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1997년에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가 결정한 원칙이다.

끝장 제재는 성립할 수 없는 허구적인 개념이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 길이는 870마일, 140만㎞이다. 휴전선 길이의 다섯 배가 넘는다. 물리적으로 봉쇄할 수 없다. 석유 공급 중단? 북한 주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석유 공급 중단을 중국에 요구하는 것 자체가 국제인권법 위반이다. 중국 외교부의 왕이 부장이 적절하게 미국 케리 국무장관에게 발언했듯이 “북한의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석유 공급 중단은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를 가져온다”. 대규모 동사라는 참사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 않은가? 미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미국의 북한제재법도 석유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인도주의’ 예외를 두었다. 북한제재법이 미국 하원과 상원을 통과한 때는 차례대로 올 1월12일과 2월10일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전이다. 한국이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어 미국의 강력한 북한제재법을 이끈 것이 아니다.


북한 주민의 해외 취업도 마찬가지다. 북한 사람이 중국과 러시아에 취업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은 근로의 권리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 위반이다. 그래서 유엔 결의에 담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 문제가 심각할수록 그 해결 방법과 과정은 인권적이고 문명적이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준 남북협력 사업승인은 아직 살아 있다. 유효하다. 정부는 사업승인을 취소하지도, 정지하지도 않았다. 기업의 개성공단 방문은 금지한 상태이다. 아무리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더라도,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해야 한다. 토지 이용권, 공장 건물, 기계, 원료, 재고품 등 막대한 국민의 재산이 개성에 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남과 북은 우선은 개성에 있는 한국민의 재산 관리 문제를 위해서라도 만나야 한다. 북한이 동결한 재산의 정확한 현황을 함께 파악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 채무가 얼마인지 정산해야 한다.

이 접촉과정에서 논란의 핵심인 근로자 임금 지급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이 제정한 ‘개성공업지구 로동규정’도 “기업은 로동 보수를 화폐로 종업원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제32조). 북한법대로 북한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주어 핵무기 개발 자금 전용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임금 지급용 북한 화폐를 한국 기업이 조달하도록 남과 북이 통화 교환 협정을 맺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국은 북한 돈으로 북측 근로자 임금을 지급하고, 북한은 한국 돈을 한국 제품 구입에 사용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 속에서도 가능한 협력 사업의 대안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한다.

개성공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도 한계의 모습을 드러냈다. ‘끝장 제재’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개성공단에 있는 재산은 한국민의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다. 정부는 개성공단 재산 관리를 위한 남북 접촉에 나서야 한다. 북한도 일방적 재산 동결이라는 불법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북한 근로자의 임금 채권 정산을 위해서라도 한국 기업의 재산 가치가 얼마인지 남과 북이 같이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개성에서 남과 북은 만나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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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의 문을 닫은 지 보름이 지났다. 결과는 무엇인가? ‘끝장 제재’를 이끌었는가? 미국의 북한제재법과 유엔의 대북제재안을 보자. 핵심 내용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관련성이 있는 거래 금지이다. 주민의 경제생활 거래까지 제한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엔법의 기본적 원칙이다. 모든 국제 제재에 대해 적용하는 유엔의 원칙은 “특정 국가의 주민들은 자신들의 지도자가 국제 평화 규범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기본권을 박탈당하지 않아야 한다”. 이미 1997년에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가 결정한 원칙이다.

끝장 제재는 성립할 수 없는 허구적인 개념이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 길이는 870마일, 140만㎞이다. 휴전선 길이의 다섯 배가 넘는다. 물리적으로 봉쇄할 수 없다. 석유 공급 중단? 북한 주민의 생계를 위협하는 석유 공급 중단을 중국에 요구하는 것 자체가 국제인권법 위반이다. 중국 외교부의 왕이 부장이 적절하게 미국 케리 국무장관에게 발언했듯이 “북한의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석유 공급 중단은 대규모 인도주의적 위기를 가져온다”. 대규모 동사라는 참사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맞는 말이지 않은가? 미국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래서 미국의 북한제재법도 석유를 제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인도주의’ 예외를 두었다. 북한제재법이 미국 하원과 상원을 통과한 때는 차례대로 올 1월12일과 2월10일이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이전이다. 한국이 개성공단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두어 미국의 강력한 북한제재법을 이끈 것이 아니다.

29일 중국 단둥에서 바라본 신의주 압록강변에 북한 선박들이 정박해 있다. 전례 없이 강도 높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초안이 공개되면서 대북 무역의 거점인 단둥의 분위기는 썰렁해졌고 대북사업을 해온 교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_경향DB


북한 주민의 해외 취업도 마찬가지다. 북한 사람이 중국과 러시아에 취업하는 것을 봉쇄하는 것은 근로의 권리를 규정한 세계인권선언 위반이다. 그래서 유엔 결의에 담을 수 없다. 북한의 핵문제와 인권 문제가 심각할수록 그 해결 방법과 과정은 인권적이고 문명적이어야 한다.

정부가 기업에 준 남북협력 사업승인은 아직 살아 있다. 유효하다. 정부는 사업승인을 취소하지도, 정지하지도 않았다. 기업의 개성공단 방문은 금지한 상태이다. 아무리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더라도, 국민의 재산권은 보장해야 한다. 토지 이용권, 공장 건물, 기계, 원료, 재고품 등 막대한 국민의 재산이 개성에 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남과 북은 우선은 개성에 있는 한국민의 재산 관리 문제를 위해서라도 만나야 한다. 북한이 동결한 재산의 정확한 현황을 함께 파악해야 한다. 한국 기업이 북한 근로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 채무가 얼마인지 정산해야 한다.

이 접촉과정에서 논란의 핵심인 근로자 임금 지급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북한이 제정한 ‘개성공업지구 로동규정’도 “기업은 로동 보수를 화폐로 종업원에게 직접 주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제32조). 북한법대로 북한 근로자에게 직접 임금을 주어 핵무기 개발 자금 전용 의혹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 임금 지급용 북한 화폐를 한국 기업이 조달하도록 남과 북이 통화 교환 협정을 맺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한국은 북한 돈으로 북측 근로자 임금을 지급하고, 북한은 한국 돈을 한국 제품 구입에 사용할 수 있다. 유엔 안보리 제재 속에서도 가능한 협력 사업의 대안을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한다.

개성공단을 어떻게 할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도 한계의 모습을 드러냈다. ‘끝장 제재’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국제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개성공단에 있는 재산은 한국민의 것이다. 정부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다. 정부는 개성공단 재산 관리를 위한 남북 접촉에 나서야 한다. 북한도 일방적 재산 동결이라는 불법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 북한 근로자의 임금 채권 정산을 위해서라도 한국 기업의 재산 가치가 얼마인지 남과 북이 같이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개성에서 남과 북은 만나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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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북한 핵실험 후, 여권 일부에서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심지어는 여당 원내대표가 지난 15일 국회 연설에서 독자적 핵무장론을 공식 제기했다. 여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이기 때문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고, 그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국민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첫째, 핵무장을 하려면 무기급 핵물질을 독자적으로 생산할 수 있어야 하고, 우라늄 고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할 수 있도록 미국이 허락해야 한다. 그런 내용이 한·미원자력협정에 명시돼야 한다. 그런데 미국이 그걸 허용할 가능성은 제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해서 작년까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로 미국과 4년 이상 협상을 했지만 이번에도 미국은 우리에게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가 독자적 핵기술을 개발하려면 북한처럼 핵확산금지조약(NPT)부터 탈퇴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미국과는 원수가 될 각오부터 해야 한다. 그게 가능할까?

2004년에 우리 핵과학자들과 관련된 대형사고가 하나 터졌다. 1982년 KIST 연구진이 비밀리에 플루토늄 추출을 했고, 2000년 초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진이 고농축(90%) 우라늄 0.2g을 생산했다는 기록이 튀어 나왔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노무현 정부가 곤욕을 치른 끝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북한처럼 국제사회와 담을 쌓고 살기 전에는 핵기술 개발 자체부터 이렇게 어렵다. 독자적 핵무장을 주장하려면 이런 핵관련 기술적 장벽과 제한도 미리 체크해 보고, 여당 원내대표는 말을 꺼냈어야 한다.

17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_경향DB


둘째, 핵 주권을 갖고 싶으면 북한처럼 NPT를 탈퇴해야 한다. 그 순간 미국을 비롯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주도하는 국제적 제재와 압박을 받게 돼 있다. 그런데 한국은 북한과 달리 대외무역의존도가 99.5%나 된다. 정치·외교적으로 고립되기 전에 경제적으로 먼저 주저앉게 된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대책은 마련해 놓고 핵무장을 주장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NPT에 가입한 건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4월이다. 자진해서는 아니고, 자주국방을 강조해온 박정희 대통령의 핵보유 의지를 의심한 미국의 권고로 NPT에 가입한 걸로 보인다. 그 이후에도 미국은 한국이 핵무장 의욕을 갖고 있다는 의심을 해 왔던 것 같다. 1991년 12월에 체결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겉으로는 북한의 핵개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선언에 명시된 ‘비핵 8원칙’ ‘핵물질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시설 보유 금지’는 북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한국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미군의 전술핵은 그렇게 해서 빠져나간 것이다. 북한 핑계를 대고 한국도 묶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북한이 핵실험을 함으로써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파기했다고 해서 우리도 전술핵을 다시 들여와야 한다거나 독자적 핵무장을 하자고 나설 수는 없다. 그럴 경우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잃게 된다.

셋째, 독자적 핵무장을 하려면 한·미동맹을 깰 각오도 돼 있어야 한다. 현재 한·미동맹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 핵심이다. 그런데 한국이 독자적 핵무장을 한다면 미국의 핵우산은 접어야 하는 것이고, 핵우산을 접는다면 주한미군의 역할도 바뀌어야 한다. 주한미군 병력 감축 또는 철수까지도 몰고 올 수 있는 과정의 시작이 독자적 핵무장이다.

독자적 핵무장. 북핵에 가위눌려 살기 싫은 사람들 모두 간절히 바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런 꿈조차 꿀 수 없는 처지다. 2012년 4월에 다 찾아오게 되어 있던 작전통제권을 미국에 되돌려 줬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핵무장을 주장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쯤에서 우리 국민들이 핵무장론은 안보 포퓰리즘이라는 사실에 눈떴으면 좋겠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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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 국민은 세월호 사고의 아픔과 젊은 병사들의 죽음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번 교황님 방문으로 우리 국민의 마음의 상처와 아픔이 치유되길 바랍니다.”

2014년 8월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환영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또 대통령은 교황에게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1년5개월 뒤 지난 1월 말, 마이나 키아이 유엔 특별관이 방한했다. 일주일 넘게 입법·사법·행정부를 방문하고 감옥에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 세월호 유가족과 시위 현장을 찾았다.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그는 “한국의 시민사회와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지만 “평화로운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점진적으로 뒷걸음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보고에 대해 여러 언론은 “균형 감각 상실” 또는 “궤변”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청와대 환영식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여기서 전쟁이란 군사적인 것을 포함, 모든 사회 갈등을 총칭한다. 그렇다. 정의와 진실이 구현되는 곳에서는 불필요한 갈등이 줄어들 것이고 자연스레 평화와 화해가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현 한국 사회, 나아가 한반도는 어떤가? 과연 나라 경영을 어떻게 해야 정의와 진실을 구현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하는 ‘적폐’들은 충분하다. 경제민주화 공약 실종, 통합진보당 해산, 강정 해군기지, 원전비리, 밀양 송전탑, 군 폭력과 방산 비리, 세월호 참사, 역사 교과서, 노동 개악, 전교조와 민주노총 탄압, 누리과정 실종, 최근의 개성공단 사태까지 어느 것도 시원한 게 없다. 민초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치솟고 ‘3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까지 등장, 70% 이상이 ‘이민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지경이다. ‘국민 없는 국가’가 오는가? 애국심과 충성심을 토대로 나라 경영을 하던 때가 있었다. ‘군사부일체’로 상징되는, 높은 자에게 머리 숙이고 순종하는 문화가 지배했다. 권위주의 국가가 재벌을 다스리면서 공존공영을 도모한 ‘국가-재벌 복합체’ 시대였다. 이 문화에서는 ‘상벌의 법칙’이 통했다. 한편에선 성실히 복종하는 자에게 상을 주고, 다른 편에선 불복종하는 자에게 가혹한 벌을 주었다. 그렇게 ‘군기’를 잡았다. 박정희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아우르는 약 30년의 세월이었다.

방한 이틀째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 있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를 방문해 헌화한 뒤 신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_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1987년 6월 항쟁과 7~9월의 노동자 대투쟁으로 상징되는, 한국 민주화 물결이 고조되었다. 더 이상 애국심과 충성심으로 나라를 경영하긴 어렵다. 물론, 이제는 재벌의 권세가 국가를 압도하는 ‘재벌-국가 복합체’ 형태로 지배 블록이 재구성됐지만, 민초들은 더 이상 ‘상벌 법칙’에 복종하지만은 않는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저항이 솟는다. 곳곳에서 대안도 실험된다. 키아이 특별관의 말처럼 “한국에 민주주의를 구축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일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사실, 이 일은 결코 끝나서도 안되고 끝날 수도 없다. 완벽한 민주주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불완전함’이야말로 역동적 역사 발전의 근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직 진실과 정의가 부재한 현실을 솔직히 대면하는 일이다. 그것도 권력자의 눈높이가 아니라 민초들의 눈높이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1조)를 높은 사람일수록 매일 되새겨야 한다. 물론 “헌법보다 위에 있는 것은 인간관계”라는 한 여당 의원의 말도 흥미롭다. 그러나 그 인간관계는 초헌법적 권력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다운 사회관계여야 진실이 된다. 헌법조차 ‘좋은 삶’을 위해 존재할지니. 이런 면에서 개성공단 문제를 ‘국가-재벌 복합체’ 시대의 ‘상벌 법칙’을 준용해 군기 잡기 수단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오늘날 ‘재벌-국가 복합체’ 시대답게 ‘무디스’가 평가한 ‘개성공단의 가치’라는 식으로 보는 것도 문제다.

특히 한반도를 66년 전과 같은 전쟁판으로 몰아갈 ‘사드 배치’는 평화와 화해의 길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나라 경영의 길은, 상처받은 국민을 치유할 평화의 삶이지 ‘재벌-국가 복합체’의 지배력 창조가 아니다! 진실로, 어디론가 빠져나가버린 ‘혼’을 시급히 되찾아 나라 경영의 ‘균형 감각’을 회복할 때다. 두려움의 정치가 아니라 즐거움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교황에게 ‘고맙다’는 인사는 그 뒤에 해도 전혀 늦지 않았을 터이다.


강수돌 |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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