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론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면서 그들끼리의 난타전, 이전투구 양상까지 벌이는 선거판이 있다. 바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를 뽑는 전당대회이다. 이들의 TV토론회를 본 사람이라면 “아니 어떻게 야당이 저렇게까지 가버렸나…”라고 혀를 찰 것이다. 친노와 비노의 계파 대결도 아예 내놓고 하고 있다. 호남 홀대론, 인신공격, 무책임한 정치공세 등 마치 전당대회가 끝나면 갈라설 것 같은 기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재인 후보, 그는 지난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또 그 이후에도 NLL 공방 등 참여정부 시절의 실정 한가운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정치 초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무현 정부는 이미 국민의 심판을 받은 지 오래됐다. 2007년 대선 때 열린우리당은 해체되었으며 노무현 정부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로 표출됐다.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국민이 진보세력에게 확실한 지지를 보여준, 은혜받은 정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를 살리지도 못했고, 양극화 현상을 부추겼고, 남북관계에 대한 실질적 개선은 크게 보이지 않았으며, 신자유주의 격랑을 오히려 방조하는 정권이 돼버렸다. 그때 국민들은 진보세력과 운동권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접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아직도 그 타성과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노무현이라는 유령을 안고 권력욕만 보이고 있다. 문재인 의원이 정말 대권을 잡고 싶다면 대안을 가진 새로운 문재인을 국민 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는 최근의 지지율 반등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 실정에 대한 일시적 견제심리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착각마저 보여주고 있다.

박지원 후보 역시 김대중 정부의 비서실장 출신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당의 원로 격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자신이 진정한 새정치민주연합의 주인이라면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는 정당을 어떻게 살릴 것인지, 후배 정치인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김대중 리더십이 무엇인지 희생적으로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는 날이면 날마다 문재인 후보 흠집 내기에 바쁘다. 친노를 도덕적·정치적으로 공격하고 그 반감을 등에 업어 당대표를 거머쥐려는 노회한 선거전술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왜 박지원 의원이 당대표 경선에 나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친노세력이 잡으면 분당이 되니깐 내가 당대표가 돼야 한다”라는 협박전술(?)만 보일 뿐이다. 정말 친노가 당권을 잡으면 그가 분당에 몸을 실을까. 두고 볼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인 문재인 의원(오른쪽)과 이인영 의원이 3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한 식당에서 열린 경기도의회 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운동권 출신 이인영 후보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문재인·박지원 사이의 틈새전략을 취하는 것 같은데, 그는 스스로를 새로운 세력이라고 칭한다. 새로운 정치, 새로운 세력도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나이만 갖고 새로운 세력이라고 하니깐 좀 우습다. 얼마 전부터 속칭 총학생회장 출신 정치인들이 보여준 행태는 기득권 지키기, 틈새전략, 유력 정치인에 편승해서 공천받기 아니었던가. 당이 이렇게까지 되는 동안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세력은 무엇을 했는지, 친노와 비노의 대립 상황에서 눈치만 보았던 486이 아니었던가. 80년대의 용기와 희생은 이미 배지라는 기득권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새누리당은 지도부를 비주류로 선출했다. 포스트 박근혜를 이미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집권 시절, 박근혜 후보가 마치 MB 정권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것처럼 위장해서 정권을 잡았듯이, 차기 대선 역시 반박근혜 위장술, 그러한 눈속임이 벌써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적권력 쟁취에만 한눈이 팔려서 명분은 잃어버리고 지나간 노래 구절만 씹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386의 부활만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이번 2월8일은 기권하기로 했다. 물론 당원이 아니라서 투표권도 없지만.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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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일하는 한 친구가 요즘 겪는 당혹스러운 일에 대해 알려줬다. 한마디로 말해 사람들이 위증을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에는 자신이나 친구를 위해 위증을 해야 하면 아예 법정에 나타나지 않거나 나타나도 티가 났는데 요즘은 그런 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내야 할 진술서를 변호사에게 알아서 써달라고 요구한단다. 편들어야 할 쪽에 유리한 대로 써주면 자기가 도장을 찍어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의뢰인의 인생 경력과 교육 수준에서는 나오지 않는 말로 써진, 누가 봐도 그 사람이 쓴 것이 아닌 ‘자술서’가 제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자신의 기억에 반하는 것을 진술하는 것이 위증이라 이게 양심이 걸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인데 이익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자신을 배반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세상이 되었다고 개탄했다.

위증의 시대다. 십계명에서는 이웃에게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이 시대의 계명은 반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거짓증언을 하라. 위증을 하는 것이 능력이고 자신의 위증을 감추고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을 억압할 수 있는 힘이 권력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가져야만 성공할 수 있으며, 그 힘이 없으면 위증에 빌붙어 거짓증언을 보태는 것이다. 최근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땅콩 회항’이다. 사건 초기부터 그랬다. 거짓이 드러날 때마다 또 거짓으로 그것을 덮으려고 했다. 자신들만 거짓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사무장과 승무원에게도 거짓증언을 유도했다. 심지어 2차 공판에 출석한 여승무원은 회사 관계자가 모친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에 협조해준다면 교수직의 기회가 있지 않겠냐고 제안했다고 진술했다.

이 위증의 시대에 인간은 뻔뻔해진다. ‘죄송하다’는 말은 많았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연출된 ‘사과’만 있었을 뿐이다. 원하지도 않는데 집을 찾아가 쪽지를 남기는 식으로, 사과하는 사람의 ‘진정성’을 돋보이게 하며 사과를 ‘받아줄 것’을 강요했다. 여승무원의 모친에게 회사 관계자가 전화를 걸었을 때도 ‘사과에 협조’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사과를 받는 쪽이 사과를 하는 쪽에 협조하는 것이 사과라는 것을 이 사건으로 처음 알았다. 사과조차 이웃을 해하는 거짓증언이 되었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등에 대한 결심공판이 열린 2일 서울 공덕동 서부지법으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등을 태운 호송차량이 들어오고 있다. (출처 : 경향DB)


증언은 말 중에서도 무게감이 상당한 말이다. 왜냐하면 증언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누군가의 ‘앞’에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언이라는 말에는 존재의 무게가 동시에 걸려 있다. 단지 처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 무게가 두렵기 때문에 거짓증언은 쉬운 것이 아니다. 바로 이 때문에 2차 공판에서 공개된 파일에 따르면 박창진 사무장은 “국토부는 회사와 다르게 국가기관인데 거짓” 진술을 하느냐면서 “죽을 것 같다”고 오열한다. 자신의 양심과 ‘국가기관’, 즉 법 앞에서 이루어지는 말이라는 증언의 무게를 느끼기에 그는 오열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뻔뻔한 자들은 이런 무게를 느끼지 않는다. 뻔뻔한 자들의 증언에는 자신의 이름도 걸려 있지 않고 말을 증언으로 보증하는 ‘앞’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언이 이뤄지는 ‘앞’이 없는 뻔뻔한 사람들에겐 거짓증언하지 말아야 할 ‘이웃’은 없다. 이웃이란 그 말을 증언으로 보증하는 ‘앞’이 같고, 그 ‘앞’에 평등하게 나란히 선 자를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거짓증언은 단지 위증하는 자의 개인적인 도덕의 문제가 아니다. 거짓증언으로 피해를 입는 ‘이웃’과의 사적인 관계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앞’과 이웃으로 이뤄지고 보증되는 공동체, 즉 ‘나라’를 파괴하는 정치적 문제다. 이것이 정치공동체가 이웃에게 불리한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는 것을 중요한 계명으로 삼는 이유다. 땅콩 회항 사건은 ‘갑질’이라는 한국 사회의 한 추악한 특징이 드러난 것을 넘어 바로 이것을 시험받고 있다.


엄기호 | 덕성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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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단체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의 문제점에 대해 연구하고, 개선을 위해 실천하는 단체, 소위 ‘수익사업’과는 성격이 먼 단체는 우리 사회의 빈틈을 채워준다. 좋은 활동을 하는 단체가 유지되기 위해 십시일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나 역시 참여할 마음이 있다. 물론 여유시간에, 일상에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런 맥락에서 특정 영역에서의 자원봉사는 필요하다고 보고, 자원봉사와 ‘열정 착취’는 구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정 착취’의 핵심은, 수익을 내고 있는 단체가 사회초년생들에게 과중한 시간 동안의 봉사를 ‘강요’했다는 점이다.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가며 최저시급을 한참 밑도는, 사실상 보수라고 할 수 없는 돈을 주고, 과중한 노동을 요구하며, 심지어 인격적 대우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회사 자체가 수익이 나지 않아 조직 모두가 동등하게 고통을 분담하는 상황이라면 온정적 시선을 던질 여지가 있겠다. 그러나 단체의 대표나 임원진은 막대한 연봉을 챙기면서 신입사원이나 인턴에게 형편없는 임금을 주고 부려 먹을 때는 윤리의 문제가 된다. 이런 비윤리성은 피착취자가 자신들과 함께하는 경험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을 것이라는 착각,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의 태도, ‘너 아니고도 이거 할 사람 많아’ 식의 배짱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열정 착취를 당하는 이들 중 일부는 착취자의 논리를 진심으로 믿는다. 자발적으로 선택한 일이고 ‘돈 주고도 못 배우는 것’을 배우니까 만족한다고 말한다. 은폐된 강요를 인지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극심한 경쟁과정을 통과해야 취직이 가능하기에, 많은 취업준비생들은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남들과 다른 ‘경험 스펙’을 쌓는 것에 몰두하도록 내몰린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그에 대한 열정이란 것은 항구적일 수 없다. 열정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은 자기결정권·자기주도성에서 나온다는데, 열정 착취 노동 중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업무는 적다.

이런 현실을 인식하는 이들 중 더럽고 치사해서 새로운 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자비 출판 발행, 온라인 매체 창간, 팟캐스트 운영, 협동조합 설립 등이 그 예다. 어차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 벌기가 쉽지 않다면 마음대로나 해보자는 거다. 갑을관계가 아닌 평등한 우애의 관계 속에서 자기주도적인 일들을 벌이는 것은 좀 더 지속적인 열정을 보장한다. 문제는 상업적 성취를 거두는 사례가 희박하고, 심지어 금전적 손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래도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할 수도…. 기존의 회사에 들어가 다른 놈들 배불려주며 “배우는” 것보다 더 큰 배움이 있을 수도….

슬픈 것은, 이런 시도조차 사치로 느끼는 청년이 한국사회에 많다는 거다.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과, 한 번의 실패가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식 때문이다. 많은 청년이 각종 부채와 불안정한 미래를 볼모로 겁박당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는 대학등록금이 무료에 가깝고, 재취업 교육을 국가에서 무상에 가깝게 보조하며, 과로하지 않아도 일자리의 보전이 가능한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부러워진다.

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열정페이 계산법


사회민주주의 국가인 스웨덴과 네덜란드에서 현지인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책을 읽고 토론하며, 일상의 여유를 누리고, 각종 단체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이들을 자주 목격했다. 이는 사회의 빈틈을 채우는 단체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국민의 권리와 평등에 대한 요구를 활발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이것이 진짜 민주주의 아닌가? 설마, 그런 사태를 막기 위해 국가는 국민을 그렇게 겁박하며 과로하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을 국가가 주도해서 국민들의 열정을 착취하는 ‘열정 착취국’이라 부를 수 있겠다. 지금 이 상황은, 한 두 기업을 탓해서 개선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최서윤 | 격월간 ‘잉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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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비정규직 종합대책이지, 실제로는 정규직을 겨냥한 내용인데?”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가 ‘정규직 과보호’ 탓이라며 성과·업적 중심의 임금체계로 바꿔야 한단다. 해고 기준과 절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며 정규직에 대한 손쉬운 해고도 밀어붙이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①객관적·합리적 기준에 의한 평가 ②교정기회 부여, 직무·배치전환 등 해고회피 노력 ③공정한 절차와 관련 내부규정 운영 등이 들어 있다. 아니,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단어들인데? 그렇다. 합리적 대상자 선정, 해고회피 노력, 노조와 성실한 협의 절차 등 정리해고 요건에서 ‘긴박한 경영상 필요’를 제외한 나머지 요건을 빼다박았다.

다시 말해 사장님들은 이제 개별 노동자의 성과와 업적을 평가한 후 경영이 어려울 때엔 정리해고를, 그렇지 않을 때엔 일반해고를 할 수 있게 된다. 해고를 면한다 하더라도 성과·업적에 따라 임금을 깎도록 임금체계도 개편해 준다니, 사장님들은 박근혜 정부 비정규대책에 만세를 부를 지경이다.

“그래도 우린 노조가 있으니 단체협약으로 보호가 될 거야.” 이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정부 대책은 도대체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 비정규직도 아니고, 노조로 조직된 노동자도 아니라면? 그렇다. 한국 사회 90%에 달하는 이들, 노동조합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이다.

정부가 손쉬운 해고를 밀어붙인다는 말에 가장 위기의식을 느끼는 부문이 바로 여기이다. 여성 노동자들,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 대기업의 경우 상대적으로 조직률이 취약한 사무일반직 노동자들 …. 임금체계 개편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도 똑같다. 노조라도 있으면 단체협약으로 보호되겠지만, 노조가 없는 곳은 속수무책이다.

상당수 사업장에서 성과상여금 제도와 포괄임금제를 도입하며 임금을 깎으려 할 게 뻔하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사장님들은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 취업규칙을 변경해야 하는 수고를 들여야 한다. 하지만 정부 비정규직 대책에는 취업규칙 변경에 대한 규제도 완화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나 원 참, 이 노동자들 뺏어먹으려고 깨알같이 신경 쓴 거다. 근로기준법을 바꿔서 1주당 노동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늘려 60시간까지 일을 시킬 수 있도록 개악하고, 여기에 덧붙여 휴일수당도 없애겠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노조가 있는 사업장은 단협으로 방어할 수 있지만 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게 된다.

지난 10여년간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노조로 조직된 정규직을 비난하면서 비정규대책을 내놓지만, 비정규직에겐 나아지는 게 없었고 오히려 노조가 없는 노동자층만 점점 밑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그러다보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미조직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이 추락하면서 조직노동자들의 고립은 계속 심화되었다. 노조 조직률도 하락세를 면치 못해 조만간 한 자릿수로 떨어질 위기이다.

김동만 한국노총위원장(좌측)이 7일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을 방문해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우측)과 쌍용차 굴뚝농성 내용이 담긴 신문을 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70만명 조합원 중 40만명이 투표에 참여한 민주노총 직선제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총파업을 공약한 한상균 지도부를 선택했다. 비록 노조라는 무기를 갖고 있지만 자신을 포위해오는 위기의식이 컸다는 증거이리라. 그렇다면 한상균 지도부가 조직할 총파업이 향할 곳도 명확하다.

박근혜 정권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겨냥하고 있는 부문, 즉 노조를 갖지 못한 채 조직노동자들보다 훨씬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요구와 방식으로 접근함이 마땅하다. 장그래에게, 그리고 김대리와 오과장에게도 노동조합을 만들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런 총파업.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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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의 아픔! 살면서 겪는 가장 큰 고통이다. 지켜보면서도 뭔가 해줄 수가 없을 때 그 고통은 특히 커진다.

누군가 사랑하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아니, 누구나가 그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이 가져다주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그런 두려움이 자리를 잡은 마음에 사랑은 들어설 수 없다. 사랑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가족, 특히 아이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존재이다. 여러 사회제도와 정책을 고민하는 이유가 결국은 다 아이들 때문이다. 먹고사는 문제의 본질 역시 그러하다. 한 나라의 명운도 그렇지만, 그 나라를 이루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도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웃음은 행복을 날라다 주는 수레인 바, 그 수레를 끌고 오는 이가 바로 아이들이다.

물론 아이들로 인해 불행할 수도, 슬플 수도 있다. 세상 어느 무엇도 오로지 하나인 것은 없다. 모두가 둘 이상의 것들을 함께 담아 하나를 이룰 뿐이다. 좋음과 나쁨, 옳음과 그름, 맞음과 틀림이라 불리는 것들이 각기 다른 하나인 것 같지만, 그 하나 하나에 서로 다른 모든 것들이 함께 스며 있다. 인간과 사회와 나라가, 그리고 삶과 역사와 세계가 복잡다단한 이유이다. 그런 세상에서 태어나 커가는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아이들을 오히려 더 사랑하게 된다. 세상사의 오묘함을 헤아릴 수 있는 온전한 ‘나’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저출산과 1인 가족의 시대!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도래한 현실이다.

불안정한 일자리라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아이들 교육은커녕, 가계를 꾸려가기조차 어려운 현실. 2012년 통계청 조사 기준으로 전국 평균 맞벌이 부부의 비율이 46.4%로 거의 절반인데도 아이들을 믿고 맡길 보육시설이 부족한 현실. 있다 해도 인천 어린이집 사태를 통해 또다시 확인한 바와 같이 아이들에 대한 보육교사의 학대와 폭행이 계속되고 있는 현실. 그런데도 보육교사와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은 부실한 현실. 각종 영양을 풍부하게 섭취해야 할 청소년기에 밤늦게까지 학원 다니느라 끼니를 패스트푸드로 때우는 현실. 즐겁게 나선 수학여행 길에서 수백명이 목숨을 잃는 현실. 비싼 등록금 내고 들어간 대학에서 삶에 가장 중요한 자원인 상호배움의 인연은 만들지 못하고, 스펙 경쟁이라는 미명 하에 학점과 남들 엉덩이 쫓아다니며 돈벌이 대상만 되는 현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군대에 갔다가 어이없게도 살인자가 되거나 희생자가 되는 현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파하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이런 현실을 바라보며 그 누가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가 감히 사랑을 감행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이런 현실을 바꿔 달란 보통사람들의 요구에 정계와 재계가 꿈쩍도 않고 있는데 말이다. 심지어 이제는 주권자인 보통사람들에 대해 갑질마저 서슴지 않고 있는데 말이다.

1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세월호참사가족대책위원회가 마련한 희생자 임시분향소에서 한 유가족이 영정을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_ 연합뉴스


공감과 배려와 시민성을 부쩍 강조하는 요즘이다. 부와 권력의 횡포에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많아져 그러하다. 서로 기대며 살아갈 가족과 이웃이 붕괴되어 삶에 필요한 자원 획득의 책임을 홀로 져야 하기에 그러하다. 그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하루 평균 40명에 달하기에 그러하다. 이런 나라에서 공감과 배려와 시민성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세밑 중앙일보가 ‘이제는 시민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새로이 내걸었고, SBS가 ‘배려’를 새해 아젠다로 내걸었다. 고무할 일이다. 하지만 유념할 것이 있다. 현실은 좋은 것을 표방하는 것만으로는 바뀌지 않는다. 또 좋은 것의 내용을 상황에 따라 자기 편한 것만으로 채워내면 허위가 되고 위선이 된다. 그런데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를 앗아간 현실을 바꾸는 데 우선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단순 표방과 허위와 위선이 된다. 시민성과 배려의 환경과 조건을 실제로 만드는 데 기여해야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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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찰청장의 계급은 치안정감이다. 치안총감이 제일 윗자리인데 경찰청장 한 명뿐이니, 그 다음으로 높은 자리다. 그 높은 자리에 있는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이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다섯 번이나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했다.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고, 고쳐나가겠단다. 권 청장은 그동안 부하 경찰관들에게 상습적으로 욕설과 모욕적인 말을 했단다. 총경 계급의 경찰관이 공식 해명을 요구할 정도다. 권 청장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자, 그동안의 행태에 대한 제보가 잇따랐다. 제 분을 이기지 못해 자동차를 함께 타고 가던 경찰관을 고속도로에서 내리게 한 일도 있었다는 거다. 재벌 피붙이나 하는 줄 알았던 갑질 행태다. 여론이 들끓자 경찰청은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의 행태에 대해 ‘엄중 경고’ 조치를 했다. 겨우 하루 만에 조사를 끝낸 다음 내린 결론이었다. ‘엄중’은 그냥 하는 말일 뿐 어떤 징계도 하지 않고 그냥 봐주겠다는 거다.

2014년 상반기 기준으로 월평균 110명 이상의 시민이 경찰관을 모욕했다는 혐의로 처벌받고 있다. 이는 전년도의 월평균 86명에 비해 28%나 늘어난 것이다. 이쯤 되면 급증이다. 2013년 8월 경찰청이 엄정 대처를 주문하자 처벌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한 경찰청 책임자의 라디오 인터뷰에 따르면 “일선 법집행 현장에서 다수의 시민들이 있는 상황에서 경찰관을 상대로 지속적인 욕설이나 폭언 등이 위험수위까지 이르는 등 이와 같은 공권력 경시 풍조가 만연된 사회 분위기를 정상화시킬 필요가 있어서” 그렇게 한단다. 욕설을 들으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래서 당당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할 수 없기에 더욱 엄정하게 대처한다는 거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된 진정사건들을 보면 이런 설명은 설득력이 한참이나 떨어진다. 혼잣말로 ‘바보’라고 했다거나, 금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경찰관에게 훈계를 했다고 모욕죄로 체포되는 등 모욕죄 적용이 남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 당시 경찰에게 체포되어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있는 고대생들 (출처 : 경향DB)


모욕죄도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따라 현행범 체포 대상이 될 수 있다. 경찰은 이걸 악용한다.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수갑을 채운다. 내가 기분 나쁘니, 너도 당해보란 식이다. 현행범으로 체포하면 그냥 풀어주지 않는다. 역시 형사소송법을 악용해 유치장에 48시간씩 가두는 일이 반복된다. 법의 빈 구석을 악용한 전형적인 공권력 남용이다. 꼭 욕설을 하지 않아도 경찰관이 모욕감을 느꼈다고 우기면 현행범 체포를 피할 길이 없다. 경찰은 이렇게 무섭다.

일반 시민은 모욕을 당하면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해야 한다. 한참을 기다려 고소인 조사와 피고소인 조사를 마치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경찰관이 모욕을 당하면 피해자인 경찰관이 곧바로 법의 심판자가 된다. 절차는 생략되고 법집행은 다른 어떤 경우보다 빠르다. 이렇게 빠른 절차가 시민을 위해 작동되는 경우는 없다. 시민을 모욕했다고 처벌받는 경찰관도 아직 없었다. 이런 게 바로 자의적 법적용이다.

상습적으로 욕설을 했으니 당연히 권 청장도 모욕죄 적용 대상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권 청장을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위계가 분명한 계급 조직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해한다. 그렇다면, 일반 시민도 마찬가지다. 당장 모욕을 당했기에 기분은 나쁘지만 시민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가 있으니, 아주 긴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현행범 체포를 하지 않아야 한다. 문제가 있다면 피해를 당한 경찰관이 고소를 하면 되고, 나중에 불러다 조사를 하면 된다. 받아야 할 벌이 있다면 그것도 나중에 물으면 된다.

시민들이 원하는 대접은 간단하다. 특별한 대접을 해달라는 게 아니다. 청장에게 욕을 들으니, 시민들의 욕도 참으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공평한 대접을 해달라는 거다. 그게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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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담뱃값 인상에 따른 서민들의 분노와 상실감이 크다. 정부는 국민 건강증진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드물다. 정부의 속내가 결국 구멍 난 세수를 메우는 것이라는 사실쯤은 대부분 안다. 막대한 세금을 엉뚱한 데 탕진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애먼 서민들에게 피바가지를 씌우니 화가 날밖에.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멀쩡한 4대강을 죽이는 데 22조원을 들였다. 그 유지관리비용으로 올해에만 7000억원 넘게 들어간다고 한다. 상당 기간 동안 매년 수천억원대의 유지관리비용이 들어가게 생겼다. 하지만 이 사업을 추진한 공무원들은 처벌은커녕 훈장을 받고 줄줄이 승진했다.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가뜩이나 법인세율이 낮은 상태에서 2008년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큰 폭으로 법인세를 낮췄다. 각종 비과세감면 혜택도 남발했다. 한 해에 줄어든 세수만 대략 7조원으로 추산된다. 발표 당시 ‘서민경제 지원’을 명분으로 삼았던 감세 정책은 서민들 세 부담을 늘리는 것으로 귀결됐다. 감세정책을 실시한 이래 저소득층일수록 소득 대비 세금부담 증가율이 더 높아지는 기막힌 현실이 펼쳐졌다.

부동산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일시적 효과밖에 없는 취득세 영구 인하를 통해 지방세수만 매년 2조4000억원가량을 날리게 만들었다. 광역지자체 세수의 가장 큰 축이 흔들리자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들은 줄줄이 복지예산 줄이기에 나섰다. 이밖에도 걷어야 할 세금은 제대로 걷지 않으면서 나랏돈을 엉뚱한 데 탕진한 사례는 책으로 수십권을 쓸 수 있을 정도다.

이처럼 온갖 미명으로 부동산이나 토건, 재벌 퍼주기에 수십조원씩 탕진하거나 퍼주고 나서 정작 국민들의 삶의 질을 올리는 곳에 돈 좀 쓰자고 하면 돈이 없단다. 이렇게 해서 우리 아이들 급식 지원도, 대학 반값 등록금과 기초연금도, 누리과정 예산도 줄이고 깎고 미루기 일쑤다. 줄여야 할 가계부채는 늘리는 데 도가 텄는데, 생활예산은 깎는 데 도가 텄다. 뻑하면 “돈이 없으니 참죠”라는 말이 정부 입에서 나온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창조경제가 아니라 ‘참죠 경제’라고 하겠는가.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년 12월 29일 (출처 : 경향DB)


4대강 사업 예산과 그 유지관리비용만 있으면 국공립대학 등록금을 영구히 무상으로 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재벌 3, 4세들이 탈·불법적인 승계로 수조원대의 자산가가 돼도 상속증여세수는 제대로 걷힌 적이 없다. 겨우 2.5% 정도의 실효세율을 적용하는 부동산 임대소득세라도 좀 걷자는 방안도 기득권의 반발에 후퇴를 거듭했다. 그러면서 ‘유리알 지갑’을 터는 데는 눈이 벌겋다. 세수가 펑크 나면 ‘국민건강증진’이라는 미명 아래 담뱃세를 인상하고, 부가세 대상 확대 등을 통해 서민들 세금 부담을 늘린다. 이미 낮은 법인세율은 ‘경제활성화’를 위해 더 낮추자면서도 간접세 부담이 높아 ‘서민 경제 활성화’에 역행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밀어붙인다. 세금을 걷어야 할 곳에서는 걷지 않고, 그나마 거둔 세금은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는 곳에 탕진하고, 세수가 부족해지면 서민들을 족치는 나라. 삼정이 문란했던 조선 말기와 뭐가 크게 다른가. 나라 살림살이를 이렇게 하니 OECD 국가들 가운데 조세와 재정지출에 의한 불평등 완화 효과가 압도적인 꼴찌다.

나라 살림살이를 이렇게 하고도 망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망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나라 살림살이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칼자루를 쥔 위정자들이 바뀔 리가 없으니 국민들이라도 단단히 각성하는 수밖에 없다. 담뱃값 인상에 대한 분노가 즉자적 분노에 그치지 않고, 나라 살림살이에 대한 국민적 대오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선대인 | 선대인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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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이후 미소의 냉전 대립, 좌우익의 이념대립,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상황에서 정권을 잡은 이승만, 김일성 정권에 적대적인 남북관계는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고 국내를 통치하는 가장 기초적인 존립기반이었다. 위정자들은 통일문제, 남북관계를 독점하면서 자신들의 정권을 보위하는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남쪽에서는 ‘빨갱이’, 북쪽에서는 ‘미제간첩’이라는 말. 즉 냉전 반공주의와 미제국주의 주구라는 적대적 용어는 다양하고 중도적인 이념지향을 전혀 허용하지 않았으며 사회를 양극단으로 내몰았다. 다른 정치세력의 존립은 허용되지 않았고 자유로운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아 왔다. 북한에서는 노동당만, 남한에서는 분단을 찬성했던 이승만의 자유당과 토착지주세력인 한민당만 정당으로 기능했다.

남북관계를 통한 국내정치 변수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3대 세습의 북한정권 존재요건은 바로 적대적인 대남정책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전쟁에 대한 공포, 남과 북의 대결환경은 북한 주민들을 김일성주의 정권에 순종시키는 중요한 통치 수단이다.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국민에게 북한 정권은 국민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존재다. 따라서 북한연계 집단뿐만 아니라 친북, 종북 등을 지향하는 운동세력은 바로 반국가적 정치세력으로 간주되며 이들을 과감하게 제거, 탄압하는 통치술로 정권은 그 보위력을 유지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하에서 정권의 위기 때마다 터져 나온 혹은 조작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은 이를 증명한다. 최근 해산 결정을 받아낸 통합진보당 사건역시 시대적 환경과 방법만 세련(?)되어졌을 뿐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오바마·시진핑·김정은 (출처 : 경향DB)


두 번째 특징은 통일과 평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적절하게 이용하며 민족 지도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하게 하려 한다. 국내정치를 한번에 아우를 수 있는 거대 담론의 효과도 볼 수 있다.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김일성의 남조선 해방 무력통일론, 고려연방제론, 박정희의 8·15 평화통일방안 등은 이들이 진정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원했다기보다는 독재체제의 공고화에 남북관계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및 남북 평화와 화해에 대한 노력은 장기적 전망하에 추진된 것이지만 소수정권의 한계 속에서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 후 적대적 남북관계를 통해 내부체제 공고화를 도모했다. 제3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은 후계자로서의 권력을 장악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핵과 경제 발전 병진노선을 밝힌 김정은으로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회복 및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유치를 끌어내는 지렛대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2년여 동안 뚜렷한 업적을 내놓지 못하고, 국내의 정쟁 갈등 속에 함몰되었던 박근혜 정부 역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정권의 리더십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실질적인 통일의 시대를 열어갈 것”을 선언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통일대박론 등 여러 차례 자신의 구상을 밝혔지만 국내 선언용으로만 그쳤을 뿐 구체적인 남북관계 개선으로는 이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NLL 논란과 진보당 사건 등 대북 변수를 국내정치에 적극 활용해 왔을 뿐이다. 경제적 위기에서 벗어나야 하는 김정은, 지지율 하락 및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국내정치 갈등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박 대통령, 2015년 남북관계 변수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이해관계는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은데 과연 남북의 지도자들이 진정으로 통일을 향한 장도를 걸어 나갈지는 의문이다. 국민들만 또 평화와 통일에 대한 미련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닌지, 남북관계 개선이 국내정치용으로만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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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나치의 악명 높은 선전상 괴벨스의 말이다. 이를테면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 ‘그럼 국가는 사랑하지 않는가?’라며 반역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다는 거다.

대통령에 당선된 지 꼭 2년이 되던 날, 박근혜 정권은 통합진보당을 역사 속으로 묻어버렸다. 하지만 이게 시작에 불과하다는 건 정치에 조예가 깊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종북몰이 공안 광풍은 정권에 반기를 든 세력 중에서 또 다른 사냥감을 찾을 것이다.

“쌍용차와 스타케미컬 노동자들이 올라간 굴뚝에는 종북 색칠을 할 수 없을까? 저들을 응원하는 국내외 지식인들 몇몇을 북한과 연결시킬 소재 한두 개쯤 없어? 규제 완화와 민영화에 저항하는 공공부문 노조 간부들 중에는? 이참에 전교조도 같이 묻어버릴 방법 없을까?”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는 말은 하지 말자. 박근혜 정권이 위헌정당 심판을 제기할 때만 해도 사악함으로 가득 찬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예상한 이는 없었다. 증거? 애초부터 그런 건 필요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았다. 냉전 시기 ‘미국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297명의 공산주의자 명단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며 시작된 유명한 매카시즘 역시 297명은커녕 단 1명의 공산주의자도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혐의가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무려 1만여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데 성공했다. 공안몰이의 목표는 언제나 노동계급의 저항을 분쇄하는 데 있었다는 얘기이다.

경제위기로 치달아가는 한국 자본주의에 내년은 중요한 시점이다. 재정위기를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재벌들 이윤율 유지를 위해 구조조정을 밀어붙여야 하는데 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이야말로 박근혜 정권에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직선거가 없는 내년은 대중이 야권연대라는 허상이 아니라 노동자투쟁에 희망을 걸 가능성이 높다. 희망버스 수백대가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던 2011년도 선거가 없는 해 아니었던가.

안타깝게도 SNS상에서는 수많은 표현들이 난무하는 반면 이 사태를 접하는 민주노조운동의 태도는 조용하다 못해 차분하기까지 하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너무 어처구니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진보정당운동에 실망한 이들이 노동조합 활동에만 주력해온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그들의 노력으로 내년엔 비정규직 총궐기를 조직하자, 공공부문 총파업을 만들어보자는 등의 과감한 제안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을 노동자투쟁에 종북 딱지를 붙이기 위한 사전정지작업을 해놓은 것이다.

경제위기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저들에 맞서 노동자들의 정당한 저항을 엄호하기 위해서도 통합진보당 해산 시도에 견결히 맞서야 했다. 통합진보당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저항을 조직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겨눠진 칼이었기에 함께 방패를 들어야 마땅했다. 그런 노력 속에서만 비정규직 총궐기, 공공부문 총파업 등 노동자투쟁을 엄호하며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전파할 진짜 노동자당을 건설할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법인데 말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4년 12월 16일 (출처 : 경향DB)


늦었지만 반성하고 다시 출발하자. 비록 너무 늦어버려서 사악해진 종북몰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만, 절망과 패배주의는 극우세력의 자양분이 될 뿐이다. 비정규직 총궐기와 공공부문 총파업, 그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그려나갈 진짜 노동자당이라는 전망을 포기하지 말자.

그러고 보니 한 달에 한 번 써온 이 칼럼이 40회가 넘어가도록 통합진보당 문제를 다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글은 통합진보당 해산에 부치는 반성문이다. 노동조합에만 갇혀 있지 않겠다는 다짐이 흔들릴 때마다 다시 꺼내 읽을 반성문.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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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남산 한옥마을에서 서울 정도 600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타임캡슐 묻기 행사가 열렸다. 타임캡슐에는 각계 전문가들이 당대 서울의 생활상을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판단한 물건 1000개가 담겼다. TV, 녹음기, 무선호출기, VCR 등의 전자제품은 물론 당시 유행했던 의복과 신발, 라면 등의 음식물, 심지어 생리대까지. 타임캡슐 개봉 연도는 그때로부터 400년 후이자 서울 정도 1000년이 되는 2394년, 그런데 그때로부터 고작 20년밖에 안 지난 현시점에도 그 안에 담긴 물건 중 상당수는 일상생활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돼 버렸다.

타임캡슐을 묻는 ‘이벤트’가 처음 열린 것은 1939년 뉴욕 만국박람회 때로, 광속으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물질문명에 대한 ‘선진국’ 국민들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던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타임캡슐들에는 문명사적 성취의 증거물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생활 용품들이 더 많이 담기게 되었다. 이벤트 기획자들이 명료히 의식했건 아니건, 이런 변화의 배후에는 역사의 주인공을 영웅에서 보통 사람들로 ‘끌어내리는’ 민주주의적 역사의식의 변화가 있었다. 같은 무렵, 역사학에서도 미시사니 일상사니 생활사니 하는 분야가 새롭게 대두했다. 역사를 ‘승리한 자의 기록’에서 ‘자기표현에 서툴거나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으로 옮겨야 한다는 의식은, 사물을 보는 안목에도 영향을 미쳤다. 기념비적인 문화재뿐 아니라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했던 사소한 물품들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박원순 시장 취임 직후부터 서울시는 ‘미래유산 사업’이라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 일을 추진해왔다. 평범한 서울시민들의 집단적 추억과 사연이 담긴 건물, 시설, 명소, 사물들을 발굴하여 가급적 훼손하지 않고 미래 세대에 전달하자는 사업이다. 넓게 보자면 타임캡슐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을 지표상에 고정시켜 보존하자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 시대에 관한 정보들을 후대에 전하는 사업일 뿐 아니라, 이 시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어떤 것들에 의지하여 삶을 영위했고, 어떤 것들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으며, 어떤 것들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성찰할 수 있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교정에 묻어놓은 타임캡슐을 꺼내고 있다. (출처 : 경향DB)


최근 논란거리가 되어 있는 서울역 고가차도 ‘재활용’ 문제도 애초 미래유산 보존의 관점에서 제기된 것이다. 수명이 다해 더 이상 쓸 수 없는 서울역 고가차도를 ‘산업유산’으로 분류하여 미래 세대에 전달하자는 취지였다. 사실 1960~1970년대 ‘돌격건설’의 기치 아래 가히 열광적으로 건설되었던 보도육교들과 서울역 고가차도, 청계고가도로, 삼각지 입체교차로 등은 ‘한강의 기적’을 뒷받침하고 서울을 입체 도시로 만든 고가 구조물들이었다. 매년 수출 목표액을 설정하고 그를 달성하기 위해 전 국민이 밤낮없이 ‘바쁘다 바빠’를 외치며 달리던 시대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반세기, 이제 서울 도심부에서 보도육교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고가차도들도 차례로 철거되고 있다. 서울역 고가차도를 보존하는 일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송가(送歌)이자 한 시대를 대표했던 도시 구조물을 미래 세대에 전달하는 일이다. 더불어 속도와 효율을 위해 공간에 대한 동선(動線)의 주권과 경관에 대한 시선(視線)의 주권을 기꺼이 양도하고 거리에서 ‘사색’을 치워버렸던 태도를 유물화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유물화하는 데 반대하는 사람이야 그렇다 쳐도, 이를 보존하자면서도 ‘재활용’을 위해서는 이런저런 시설물을 덧붙이고 접근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꽤 많은 듯하다. 속도와 효율 만능의 시대를 상징하는 구조물을 유물화하여 성찰의 대상으로 삼자면서 속도와 효율 중심의 태도를 고수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현대 한국인들이 당면한 진정한 문제는 속도와 효율의 부족이 아니라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의 부족이 아닐까? 진즉에 유물로 삼았어야 할 의식, 태도, 관념들을 떨치지 못한 채 그것들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세상을 재구성해보려는 의지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전반적 퇴행을 방조하는 공범인지도 모른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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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로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면서 언론 탓을 하며 정권의 흔들림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왜냐하면 비선 실세 라인의 국정농단 사건이 도마에 오르면 바로 레임덕이 올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누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날 박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는 뉴스가 전해졌다. 국회에서 종교계, 시민,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참석하는 ‘개헌추진국민연대’가 구성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야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바꾸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비선 실세 논란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스스로 파괴하는 폐해를 보여주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아들 이강석에서부터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홍일, 또한 노무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그리고 박지만, 정윤회 논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은 일련의 역사적 괘를 형성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그 제도적 성격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대통령의 가족과 친·인척, 측근에게 막강한 사적권력을 부여했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자기 정권의 약화, 파괴로 몰고 갔다.

이는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의 절대권력에 따른 절대부패는 계속될 수밖에 없고, 집권 말기에는 결국 식물대통령으로 그 직을 마치게 됨을 보여주었다. 단지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강도가 이전 대통령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시기가 좀 더 일찍 다가올 수 있다는 예측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에서 채용하고 있는 대통령중심제는 그 권력집중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국가수반으로서의 외교, 군 통수권뿐만 아니라 행정수반으로서 검·경찰, 각 부처 장차관 인사권까지, 또 미국식 대통령제에도 없는 계엄선포권, 선전포고권 등의 비상대권과 헌법개정 발의권, 국민투표 발의권까지 쥐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집권당의 대표까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현행의 제왕적 대통령제는 과거 독재정권의 막강한 대통령 권한에서 그 모태를 찾을 수 있다. 12·12 쿠데타와 5·17 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는 7년 단임제와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변형된 유신헌법으로 5공화국을 탄생시켰다. 그 이후 국민들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직선제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우리는 과도기적 목표로서 장기집권 방지와 직선제라는 권력구조의 일부 혁신에만 만족해야 했다. 즉 과거 독재정권으로부터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권력의 집중과 독식 문제는 차후의 과제가 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에서 첫번째)과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세번째) 등이 9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추진국민연대 출범식에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잦은 정쟁과 좌우 이념 대립으로 소모적 정치행각을 벌였던 프랑스는 1958년 드골의 분권형 대통령제 헌법을 관철시켜 그 후 모든 정파로부터 칭송받으며 안정된 정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외교·군사권 등 국가를 대표하는 실질적인 권력을 갖는 국가수반인 대통령, 행정수반으로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총리, 이 두 권력이 협력과 동거형태로 국가를 운영하는 프랑스 외에도 유럽에서는 13개의 국가가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국가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9일 출범하는 ‘개헌추진국민연대’가 얼마나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낼지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반민주적 속성으로 승자독식의 권력을 독점하는 한 일상적 정쟁뿐만 아니라 대통령 주변의 사적권력 농단은 그치지 않고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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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서울시는 12월10일 세계 인권의날에 맞춰 발표하려던 ‘시민인권헌장’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4개월간의 공든 탑을 무너뜨린 것이다. 인권헌장 제정을 위한 시민위원회는 헌장에 담길 50개 조항 가운데 이견 없이 합의된 45개 조항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 등 미합의 조항에 대해서는 표결에 부쳐 ‘성별·종교·나이 등 차별금지 사유와 함께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적시한 안으로 통과시켰고 서울시의 정치적 판단으로 헌장은 폐기되었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헌장임에도 인권의 증진을 위한 의미 있는 발걸음에 잔뜩 기대를 품었던 이들 머리에 된서리가 내렸다. 반인권의 숙주였던 동성애 혐오세력에 사회적으로 시민권만 부여한 어처구니없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인권보호 및 증진활동 지원사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자체로서는 이례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추진약정서까지 체결했던 ‘남산 인권 숲 콘서트’에 대해 ‘정치적 활동’이란 정치적 판단으로 지원을 중단해버렸다.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터를 인권과 평화, 민주주의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였다. 그러나 서울시는 “국가정보원은 중앙정보부와 안기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국가폭력을 자행한 집단입니다”라는 홍보 문구 한 줄을 문제 삼았다. 결국 서울시가 빠진 채 행사를 치러야 했다.

서울 노원구는 내년 생활임금액을 월 149만5000원, 시급 7150원으로 결정했다. 내년 최저임금 116만6220원, 시급 5580원보다 28.2%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치인 노동자 평균임금의 50%를 적용하고 서울시 물가가 다른 지역보다 높은 점을 반영해 8%를 더했다. 노원구의 올해 생활임금 적용 대상자는 100여명, 내년에는 150명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서울시가 광역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내년부터 생활임금을 도입하겠다고 밝히고, 법정최저임금보다 많은 6582원을 생활임금으로 정했다. 박원순 시정 1기에 비정규직 600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데 이어 2기에는 생활임금 도입에도 앞장선다는 소식에 노동자들의 관심이 대단히 높았다. 그런데 노원구보다 월평균 20만원이나 적은 서울시의 생활임금 적용대상은 120명 수준. 서울시와 투자출연기관에 직접 고용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생활임금은 1만3000명이 넘는 민간위탁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지난해 서울시는 30억원을 들여 맥킨지앤컴퍼니-삼일회계법인 컨소시엄에 시정 주요 분야 컨설팅을 맡겼다. 맥킨지보고서는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업무 효율화를 위해 역무분야 직원 2000명을 아웃소싱해 비정규직화하는 방안을 내놨다.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안전업무에 대한 비정규직 문제가 전면화되면서 맥킨지보고서의 봉인이 아직 해제되지는 않고 있다. 박원순 시정 방향이 노동과 인권에서 재벌과 권력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비판이 들끓는다. 정치인의 가치와 신념은 표 앞에서 맥없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정치는 설득과 조율을 바탕으로 하지만 가치 실현의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조율은 권력과의 짬짜미이며 시장통 흥정에 불과하다. 노동과 인권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임에도 한국에서만은 유독 ‘표 떨어지는’ 이야기다. 그 이유는 가치를 표로 치환해 사고하며 연명한 대한민국 진보와 민주를 참칭한 세력들의 늙은 주판알 정치 때문이다. 임계점 앞에서 우회를 반복하면 불가능과 체념이 가속도만 낼 뿐이다.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싼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의 정치적 판단은 ‘박원순 정치’의 노동과 인권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당신 곁에 누가 있냐던 선거 당시 물음에 박원순 시장이 직접 답해야 한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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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난 10년 동안 싸워보니 우리가 현대차라는 회사 하나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를 상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폐부를 찌른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 판결하자 “그럼 법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현대차는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말도 안되는 소송이라 기각함이 당연한데도 헌법재판소는 4년째 판결을 미루고 있다. 비슷한 취지의 기간제법 헌법소원은 이미 1년 전에 기각한 헌재는, 유독 현대차가 제기한 소송만 ‘쥐고 있다’. 불법파견은 범죄행위가 분명하니 정몽구 회장 등 회사 임원을 처벌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대검이 직접 회의까지 주재하며 작년 연말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해놓고, 4년이 지난 오늘까지 기소조차 안 하고 있다. 1000명 넘는 비정규직을 불법파견이라 선언한 판결문이 나왔는데도, 검찰은 처벌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하지 않는다.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이 제기한 소송은 1심에 이어 4년 전에 2심도 승소했지만, 대법원은 아직까지 판결을 미루고 있다. 쌍용차 사건은 2심 판결 후 단 9개월 만에 결론을 뒤집은 대법원이 말이다. 검찰,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 거대 국가기구가 유독 현대차 사안만 4년 넘게 시간을 끌어주고 있으니, “국가를 상대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그러는 동안 현대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삶은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현대차 자본이 제기한 수백억원대의 손해배상소송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며 조합원들을 옥죈다. 게다가 이 소송은 파업에 대한 손해를 받아낼 목적이 아니라 노조 파괴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소속 회원들이 30일 현대차 신차 발표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불법파견 시정 및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현대차가 300여명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에 대해, 지난 10월23일 울산지방법원이 70억원의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대차는 판결 선고 이전에 68명, 선고 직후에 51명에 대해 소송을 취하한다. 이유가 뭘까? 소송이 취하된 총 119명 중 118명이 노조 탈퇴자들이며 이들 중 97명은 현대차를 상대로 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도 취하한 이들이다. 유일한 조합원 1명은 애초부터 현대차 상대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우였다. 즉 현대차는 손해배상 취하를 미끼로 노조 탈퇴와 현대차 상대 소송을 포기하도록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손해를 받아낼 목적이 아니라 권리 행사를 방해하려는 소송을 미국에서는 ‘전략적 봉쇄 소송’이라 하여 각 주별로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한국의 민사소송법 전문가들 상당수도 이런 종류의 소송에 대해서는 법원이 ‘소권 남용’으로 보아 기각해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현대차에 책임을 묻는 소송은 4년째 지연되지만, 현대차가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은 법원이 청구액을 거의 100% 인정하고 있다. 억울하게도 판결에 항소하려면 인지대만 수천만~수억원을 내야 한다. 돈 없으면 정당하게 재판받을 헌법상 권리도 무시된단 말인가.

급기야 지난 6일, 손해배상 대상이 된 비정규직 조합원 1명이 자살을 기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천만다행으로 생명엔 지장이 없지만, 그가 쓴 유서에는 “현대에게 꼭 이기세요” “현대는 다 개○○다”라는 분노가 절절히 녹아 있다. 가족들에겐 져주는 걸 한없이 행복해하던 이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단 한번이라도 이기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지난 10년 동안 상대한 건 ‘한국의 비정규직 제도’이기 때문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의 승리가 저 노예제도를 허물어뜨리는 교두보인 것이다. 이제 손해배상소송 1심에 이어 줄줄이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노조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소송은 기각함이 마땅하다.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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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어찌 다루어야 할까. 특히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갈랐던, 그래서 감당키 어려운 분노와 슬픔이 배어 있는 참혹하고도 처절했던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사실과 진실에 입각해서? 무엇이 사실이고 진실인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객관적 증거에 입각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냄으로써? 그것은 어떻게 찾아내고 판명하는가? 인류문명의 산물인 과학과 보편의 관점으로? 대체 무엇이 과학이고 보편인가? 그것은 누가 보장할 수 있는가? 보수가? 아니면 진보가?

필자는 이 물음들에 답할 능력이 없다. 다만 역사를 몇 가지 ‘목적’에 걸맞은 방식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무고한 사람들을 부당하게 희생시키는 범죄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목적. 불가피했다는 논리로도 사람들에 대한 추악한 폭력과 억압과 차별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할 목적. 서로가 연대하고 협력할 때에만 소수 강자의 편취를 막아내고 생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배울 목적. 주류와 영웅이 돋보이는 역사, 심지어 정당치 못한 강자의 승리가 주를 이루는 역사라 할지라도 그 이면과 저변에는 다수의 ‘보통 사람들’과 패배를 감수하는 ‘용기 있는 반역자들’이 존재했음을 알릴 목적. 그래서 지난 시간의 흐름 끝에 놓여 있는 현재의 처지를 이해하고, 시공간을 관통해 서로서로를 존중할 줄 아는 힘과 지혜를 얻을 목적. 이것이 역사를 다루는 이유이자, 역사를 다루는 방식을 내올 목적이다.

나라와 사람의 품격은 역사를 어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시간의 살핌 속에서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림을 가늠하는 기준을 찾아낼 감각을 회복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또 인간의 나약함과 인류문명의 과오를 확인하며 인류애를 갖고 오만과 편견을 벗어날 반전의 계기를 찾아낼 수 있기에 그러하다.

가령 인종차별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터무니없는 것인지는 역사를 읽어야 알 수 있다. 신과 과학의 이름으로 인종을 차별하고 학살까지 했지만, 실상은 경제적 이익과 권력을 향한 탐욕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그래서 꼭 그리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음을 알아내는 길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벨기에의 레오폴드 2세가 고무채취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고 콩고인의 팔목을 하루에 무려 1308개씩이나 잘라낸 것이, 40년간 2000만명에 달하던 콩고 인구를 1000만명으로까지 줄어들게 한 것이 도대체 인류문명의 발전에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었던가라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작금의 대한민국을 목도하며 역사 읽기와 공부의 중요성을 새삼 체감한다. 사회·경제적 소외와 상실의 아픔을 비아냥과 조롱의 행위로 달랜다며 광주항쟁 희생자들을 모욕한 것이 왜 민주공화국의 안녕을 해하는 것인지 모른다 하는 것을 볼 때 그러하다. 또 나치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는 게 왜 문제가 되는지, 그리하면 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심지어 제재를 당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볼 때 그러하다. 역사를 읽고 공부해야 단순한 불만의 표출이라 해도, 또 노이즈마케팅이라 해도 ‘해서는 안되는 것’이 있음을 구분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으로도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헤아리는 사리분별의 능력을 갖출 수 있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한 신인 걸그룹의 의상 (출처 : 경향DB)


지난주 세계한국학대회 참석차 하와이에 다녀왔다. 중간에 명소 몇 군데를 찾아가 보았다. 인상적이었던 곳은 진주만이었다. 역사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전쟁이라는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탓하며 적으로 돌리는 언명보다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물음을 던지며 ‘역사에 대한 기억과 이해, 그리고 희생자에 대한 존중’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방식이었다. 사리분별에 어두워 역사를 이념 다툼의 장으로 보며, 어느 한편의 소멸을 주창하는 이들이 접하면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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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당시 중학생이던 내 아들은 주말마다 독거노인을 방문해 음식을 대접하고 말동무 노릇을 해주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하루는 뭔가 의미 있는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걸어 왔다.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우리랑 얘기하는 걸 무척 좋아해. 평소 너무 외로워서 그렇겠지? 그런데 소년소녀 가장이나 고아들도 많잖아. 고아들이랑 노인들이랑 함께 살게 하면 서로 의지도 되고 외롭지 않아서 좋을 텐데.” 그런 시도가 있다는 보도를 어느 방송에선가 본 기억이 있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이미 하고 있을 걸”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얼마 뒤, 수십년간 사회사업에 헌신한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나름 화제감이 될 만하다고 생각해 꺼낸 것이 아들과 대화한 내용이었다. “고아원과 양로원을 통합 운영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성과가 어떤가요?” 그분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거 애초에 안되는 일이었어요. 노인들은 아이들 때리고 간식 뺏어 먹고, 아이들은 그런 노인들에게 쌍욕 하고…. 자애로운 노인과 천사 같은 아이들은 상상 속에만 있는 거예요.”

기대에 정면으로 배치된 대답에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노인들이 아이들 간식을 뺏어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줘도 그런 일이 생겼겠느냐고 반박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런 세상을 바라는 것이 ‘자애로운 노인과 천사 같은 아이들’로 가득 찬 세상을 바라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본성이 정말 그런 것일까?

사람의 성정이 전적으로 유전자에 좌우되는지, 아니면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에 반응하고 적응하면서 형성·변화하는 것인지 쉽게 결론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설령 그악스러운 심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이 있다 하더라도, 많지는 않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스페인의 역사철학자 호세 오르테가이가세트는 “인간에게 본성이란 없다. 그에게는 오직 역사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이 말대로, 그 노인들을 그렇게 만든 건 그들이 겪은 역사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내 코가 석자인데 남 사정 봐줄 여유가 어디 있나”는 한국 현대사가 사람들에게 가르쳐 온 보편적 신념의 하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교육재정확대를 위한 국민운동본부,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국민연대, 보육재정파탄대응 공동대책위 회원들이 17일 국회 앞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및 무상보육, 무상급식 후퇴에 반대해 농성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홍준표 경남지사가 초·중·고생에 대한 무상급식 예산지원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뒤, 무상급식을 ‘과잉복지’나 ‘부당한 복지’의 대표 사례로 지목해 공격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정부가 4대강 사업이니 자원외교니 하는 터무니없는 일들에 수십조원씩을 쏟아부을 때에는 잘한다고 박수치던 사람들이, 고작 학생들 점심 한 끼 값 때문에 나라가 망할 지경이라고 호들갑 떠는 모습은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지만, 그래도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부잣집 아이들 ‘공짜 밥’ 주는 데 돈 들이는 건 예산 낭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상급식의 원 취지는 부잣집 아이들에게 ‘공짜 밥’ 주자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눈칫밥’ 주지 말자는 것이었다. 가난한 부모 둔 죄로 눈칫밥 먹으며 자라야 하는 아이들, 그런 현실을 함께 겪으며 밥과 자존심을 교환하는 게 세상의 원칙이라는 믿음을 내면화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주역이 되는 미래는 어떨 것인가?

어린이가 나라의 미래라면 노인은 나라의 역사다. 밥 한 끼를 위해서 자존심은 물론 양심까지 버리는 것도 당연한 일로 취급했던 것이 우리의 현대사다. 이런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미래의 인간형도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4대강 강바닥에 돈을 쏟아부어 환경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보다는, 이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의 심성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가난한 집 자식들은 ‘눈칫밥’ 얻어먹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고집한다면, 미래에 화를 입는 것은 지금의 어른들일 것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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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신드롬을 만들었던 여야의 영입전쟁. 결국 반 총장의 해명으로 일단락됐지만, 반기문 러브콜은 정치권에서 계속될 것이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첫째는 박근혜 대통령 때문이고, 둘째는 한국 정당의 후진성 때문이다.

반 총장이 대선후보 1위를 기록하는 이유는 박 대통령 덕분이다. 반 총장의 리더십은 외교가에서 따뜻한 카리스마로 알려져 있다. 반 총장은 외교부에서 일했을 때 부드럽고 인간적인 면모로 후배들을 이끌면서 그의 리더십을 형성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 레이더에 한번 쏘이면 확실하게 찍히는 정치풍토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최근 김무성 대표가 개헌 이야기를 잘못 꺼냈다가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고생이 많은 것과는 대비된다. 반 총장은 중도적 성향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타협과 협상을 중요시한다. 그것은 그의 오랜 외교생활 덕택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장애라고 생각하면 가차 없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연말까지 완성해야 하고, 세월호 유가족들 요구 역시 아니면 아닌 것이다. 야당도 지난해 천막당사 농성을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는 조용한 리더십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결국 힘센 사람이 이기는 리더십이 박근혜 정권에서 높이 보였다. 그래서 국민들은 아직 잘 모르지만, 검증되지도 않았지만, 뭔가 중립적 입장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정치를 이끌 것 같은 반 총장을 선호하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출처 : 경향DB)


또 다른 이유는 대선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정치인들 덕분이다. 한국 정당의 가장 큰 특징은 대통령 권력을 좇아서 혹은 유력 대선후보를 따라 정당이 이합집산됐다는 점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1951년 자유당을 만들 때,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서 말 잘 듣는 사람들로 자유당을 구성했다. 그리고 1952년 헌법을 뜯어고치고 2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자유당 사람들의 목적은 오직 이승만 대통령 구하기였다. 대한민국의 정당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창당과 분당, 그리고 당명을 수시로 바꾼 역사를 갖고 있다. 박정희 때의 공화당, 전두환 시절의 민정당, 그리고 3당 합당으로 창당된 민자당, 1995년 김영삼(YS) 정권 시절의 신한국당, 1997년 대선을 한 달 앞두고 만들어진 이회창의 한나라당, 박근혜의 새누리당. 야당도 마찬가지다. 1987년 대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김대중(DJ)의 평민당과 YS를 대권후보로 옹립했던 통일민주당, 또 김종필(JP)의 신민주공화당, 정주영의 국민당, 정몽준의 국민통합21,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이 모든 정당이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또 대통령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든 정당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 본래적 의미의 정당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정당정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는 비운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한국 정당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개선해야 된다고, 정치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이 기회만 있으면 대선 줄서기용 정당을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번 반기문 추파 사건도 대권 줄대기의 오래된 관행 중 하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전당대회가 내년 2월이라고 한다. 역시 논란의 중심은 문재인 의원의 대선 출마 여부이다. 대권주자 문재인 때문에 당권·대권 분리라는, 대표·최고위원 분리선거 논쟁이 격하다. 한국 정치 현실에서 제대로 된 새 정치는 제대로 된 정당 기반을 다지는 일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만, 유력 대권주자 만들기가 더 급하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그 정당을 바꿔야 한다. 정당의 기반도 새롭게 짜고, 지향점 역시 물적 토대 위에서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해당 정당이 국민에게 심판받고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마도 현재의 국회의원들은 이 작업을 하기가 난망할 것이다. 유력 대선주자 한 명 모시고 선거를 치러도 그 정치적 생명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바뀌지 못하는 한국 정당, 그래서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당에 대한 갈증이 더욱 심하다.


유용화 | 시사평론가·동국대 대외교류硏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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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반기문

신문에서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보도를 봤다. 서울 장안동의 다가구주택이었다. 주검을 수습할 이들에게 남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쪽지엔 “고맙다. 국밥이라도 한 그릇 하라. 개의치 말고”라 써 있었다. 빈곤의 바닥으로 또 하나의 목숨이 푹 꺼졌다. 그런데 ‘스스로 끊었다’는 말이 오랜 시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스스로라니. 모순이지 않은가. 목숨은 스스로 끊는 게 아니다. 극단으로 몰린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벼랑으로 떨어지는 과정일 뿐이다. 송파 세 모녀도 집단으로 벼랑으로 몰린 예가 아니던가. ‘스스로’라는 말은 그저 남은 자들의 면피처럼 읽혔다. 이들의 죽음이 주목된 이유는 그들이 남긴 짧은 글이었다. 노인은 ‘고맙다’는 말을 남겼고 송파 세 모녀는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가느다란 신음 같은 말이다. 무엇이 고맙고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가. 질식해가는 이들은 큰소리조차 낼 수 없다. 기절과 탈진을 반복한 이들이 남기는 마지막 말은 그래서 언제나 낮고 가늘다. 말할 힘까지 소진했기 때문이다.

유서가 없었다. 궁금했고 한편으로 화가 났다. 단서라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 집안 구석구석을 찾아 헤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유서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말이 담긴 유서를 흔들어대며 회사 멱살이라도 잡고 싶었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6년 동안 침묵의 죽음만 이어졌다. 그 숫자가 25로 바뀌었다. 이들은 왜 조용하게 숨졌을까. 난리라도 한번 치고 죽지 왜 그렇게 하나같이 조용하게 죽어갔을까. 궁금함보다 원망스러움이 컸다. 다투고 싸우는 것도 그들에겐 그저 번잡스러움이었을까. 의문이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이해는 조금씩 넓어졌다. 체념과 극단의 좌절이 불러온 죽음은 소리가 없다. 뚝뚝 끊기며 가늘게 이어지던 소리는 죽음 주변에 맴돌았다. 그러나 주파수가 달라 우리가 듣지 못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이 근로자 지위 확인 가처분소송 판결을 10여일 앞둔 2일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평택지원까지 3보1배를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00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정리해고에 맞서 싸운 시간. 다가오는 11월11일이다. 까마득한 시간이 하얗게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정리해고를 막겠다며 겁 없이 경찰 특공대의 진압을 온몸으로 막아섰던 시간들이다. 한여름 공장 옥상에서 최루액을 몽땅 뒤집어쓰고, 사회적으로 빨갱이라 불렸다. 집 밖 나서기가 두려웠고 이어지는 동료의 부음에 오금 저렸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한국 사회를 향해 던진 질문에 사회는 응답했다. 정리해고 폐해와 비정규직 남용의 문제가 대선 시기 공약으로까지 밀어올라간 것이다. 사회적 논의는 불이 붙었고 뭐라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또 제자리걸음이었다. 무겁게 밀어올린 돌덩이가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체념의 반복이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기엔 비탄스럽기만 한 세월이다. 취업의 문은 막혀 있고 해고의 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 있다. 격차는 더욱 벌어졌고 지난 과정의 반면교사들은 등을 돌렸다.

쌍용차 문제는 재난의 문제다. 인간이 만든 해고가 인간 삶을 부수는 인간 재난이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정치적 사건이다. 정치권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해결 의지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낙인찍기 의도와 편가르기 소재로만 삼고 있다. 화재가 나면 119 소방차가 출동하고 사람들은 길을 열어준다. 불 끄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일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길을 열었지만 정작 정치 난전판은 길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재난 경보음을 정치권만 듣지 않았다. 쌍용차 문제 해결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정치권의 이 같은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 소복하게 쌓여만 가는 인고의 시간 앞에 정치가 답을 찾고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소리 없는 죽음이라지만 귀를 열면 들리는 죽음이며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사건 이후 요란 떨 게 아니라 그들의 가늘고 작은 신음 소리에 주목해야 재난은 방지할 수 있다. 더는 이대로 살 수 없지 않은가. 2000일이 두렵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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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에는 항상 책임이 따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상위 1%를 차지하고 있는 재벌 자본가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관계에서 책임은 지지 않고 오직 권리만 행사한다. 예를 들어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면? 이 노동자들 모두 현대차를 조립하고 있는데도 하청업체 소속이니 “저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거부한다. 아무런 책임을 안 진다는 거다. 그런데 만일 이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자기들과는 상관없다더니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탄압하는 데에 현대차가 직접 나선다. 노사관계 당사자로서 책임은 지지 않고 사용자로서의 권리는 다 누리는 것이다.

지난 23일,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현대차에 무려 70억원의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4년 전 파업으로 7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며, 이들 소송 모두 하청업체가 아니라 현대차가 직접 제기한 것이다. 이번이 6번째 판결이며 누적 배상액은 185억원에 달한다. 185억원. 현대차에 저 돈은 한전 부지 매입에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질러댄 10조5500억원의 한 달 이자보다 작은 금액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저 돈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도 갚기 어려운 금액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 판결이 나오기 일주일 전에 현대차가 애초 소송을 제기한 323명의 조합원 중 67명에 대해 소를 취하해준 것이다. 그 67명은 누구일까?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취하하고 사측이 제시한 신규채용 절차를 거쳐 정규직이 된 노동자들이다. 간단히 말해 비정규직노조의 지침을 따르지 않은 이들에게 소를 취하한 거다. 현대차의 목적이 손해배상이 아니라 비정규직노조 파괴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들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출처 : 경향DB)


노조의 파업에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노동탄압국의 오명을 사고 있는데, 소송 취하를 미끼로 노조 탈퇴나 투쟁 포기를 종용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쌍용차 노동자들 역시 투쟁을 포기하고 희망퇴직을 한 이들에게는 사측이 손해배상 소송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대로 파업 진압비용을 물어내라며 경찰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는 희망퇴직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본가들의 손해배상 소송 목적이 노조 파괴와 투쟁 포기 종용에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 아닌가.

명백한 부당노동행위이지만 검찰과 노동부는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다. 하긴, 이미 4년 전에 대법원이 불법파견임을 판결했건만, 현대차를 파견법 위반으로 기소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검찰 아니던가. 노조탄압과 불법파견을 자유롭게 하라고 자본가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다. 노조 지침을 어기고 투쟁이 아니라 채용절차에 응하면 소를 취하해 대상자가 줄어들게 되니, 반대로 탄압을 버티고 있는 조합원들의 경우 물어야 할 배상액이 더 커진다. 당연히 노조 탈퇴나 투쟁을 포기하라는 무언의 압박이 된다. 이게 노조 파괴수단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현대차가) 문제 해결을 위해 피고 노조와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단체교섭을 거부하는 태도로 일관하여 조합원들과의 갈등이 심화된 점”을 감안해 조합원들의 책임을 현대차가 입은 손해의 70%로 제한한다고 판결했다. 하청업체 뒤에 숨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진짜 사장’ 현대차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에 이어 삼성전자서비스에서, 그리고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를 결성해 투쟁을 시작했다. 책임은 지지 않고 사용자로서 권리만 누리고 있는 재벌들이여, 손해배상 따위로 노조 파괴 획책 그만하고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에 직접 책임을 져라.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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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노조

1928년 개성에서 왕평이 노랫말을 쓰고 전수린이 곡을 붙인 대중가요 ‘황성(荒城)의 적(跡)’이 만들어졌다. 고요함, 폐허, 회포, 허무, 외롭다 등 식민지 주민의 비애(悲哀)를 표현하는 단어들로 채워진 이 노래는 그해 가을 단성사에서 이애리수가 부른 뒤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가 공전의 히트를 쳤다.

애초 노랫말을 검열하면서 ‘문제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통과시켰던 일제 당국은 부랴부랴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작사·작곡자를 잡아들여 닦달했다. 그들은 이 노래의 ‘황성’이 일본어 ‘아라키’로 발음되는 황성(荒城, 황폐한 성)이 아니라, 대한제국 시대의 서울을 의미하는 ‘황성(皇城)’일 거라고 의심했다. 이때로부터 20년 전만 해도, 서울의 공식 명칭은 ‘대한 황성’이었다. ‘황성은 서울이 아니라 개성’이라는 작사자의 해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사건을 겪은 뒤, 황성옛터와 비슷한 노래는 물론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노래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식민지 원주민들은 슬픔을 함부로 표현하는 것도 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깨달음은 아예 슬픔이라는 감정을 억누르고 사는 것이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검열과 그에 후속한 처벌이 반복되면서, 검열당하는 자들은 검열하는 자의 시선으로 자기 내면을 살피고, 검열하는 자가 문제 삼지 않을 범위 안으로 자기 생각과 말의 한계를 좁히는 습관을 들여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검열하는 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고 해도, 그가 무엇을 문제 삼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런 조건에서는 ‘문제 되는’ 생각과 말뿐 아니라 ‘문제될 염려가 있는’ 생각과 말도 금기의 영역에 갇히게 마련이다. 설사 검열자가 그어 놓은 ‘금기의 경계선’이 명료하다 해도, 그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어쨌든 위험하다. 위험한 경계선에서는 멀리 떨어질수록 안전한 법이다. 이렇게 해서 공개적이거나 반공개적인, 때로는 극히 사적인 대화와 교류마저도, 검열하는 자가 그어놓은 경계선 한참 바깥의 공간에서만 이루어지게 된다. 검열이 진행되는 영역뿐 아니라, 검열이 진행될지도 모른다고 의심받는 영역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적 공간’을 자진해서 축소시킨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 감시의 눈이 존재한다는 일반적 믿음 아래에서는, 허용된 범위 안에서만 생각하고 시키는 대로만 말하는 기계적 인간, 노예적 인간이 대량생산될 수밖에 없다.

서적 <검열에 대한 검은 책> (출처 : 경향DB)


대통령이 “대통령 모독이 도를 넘었다”고 발언한 직후, 검찰은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 수사팀’이라는 것을 만들어 인터넷 포털과 SNS를 실시간 감시하고 ‘문제가 되는 글’은 즉시 삭제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사람뿐 아니라 퍼 나른 사람도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 고위 관계자는 “표현의 자유가 왜 위축되느냐? 문제되지 않는 글만 쓰면 아무 문제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학교 일진이나 폭력배가 “까불면 죽는다”고 한 뒤 “뭘 그리 겁내냐. 까불지만 않으면 아무 문제없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허위사실인지 아닌지, 문제가 되는 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권한을 권력 기관이 독점한 상태에서, 이는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금기의 영역을 넓히고 생각할 공간을 줄이라고 협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사태 직후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줄을 이었고 수사기관의 무절제한 사생활 침해를 비판하는 여론도 높아졌지만,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많다. 대통령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겠다는 권력기관의 발상도 문제지만, 검열과 자기 검열을 당연시하는 문화야말로 후손에게 물려줘서는 안되는 식민지 노예 문화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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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엔 ‘6학년의 품격’이라 씌어 있었다. 6학년 친구 중에 연골무형성증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6급 학생이 있었다. 또래에 비해 성장이 늦어 운동회가 설레기보다 스트레스를 받는 작은 아이였다. 그런데 이번 가을 운동회는 달랐다. 반 친구들이 깜짝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등수를 가리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뒤처진 이 친구를 반 아이들 모두가 기다렸다가 나란히 손을 잡고 결승선을 통과했다. 지켜보던 가족과 선생님은 물론 아이도 울며 결승선을 들어왔다는 보도를 봤다.

아픔을 품을 줄 아는 아이들의 품격이 놀라웠다. 신문을 펴기 두려울 만큼 사건이 많은 요즘 가슴 뻐근한 장면임엔 분명했다. 그런데 이 달리기 시합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가. 육체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나고 발육상태도 턱없이 모자란 아이를 같은 출발선에 세우는 것이, 교육적으로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그저 동일선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만으로 차이를 없앴다 할 수 있을까.

초등학생이 보여준 ‘행복한 달리기’는 어쩌면 노동운동이 보여줘야 할 모습이다. 대기업 노동자는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와,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남성은 여성과 손을 잡아야 한다.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내국인 노동자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연대의 달리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의 노동운동은 그렇지 못하다. 어느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주간 2교대 근무로 2000만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을 때, 바로 옆 공단 하청 노동자는 밤샘근무에 최저임금을 받는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제조업의 모든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이를 알리는 현수막은 찾아보기 어렵다. 통상임금 법원 판결 이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클 뿐이다. 자본의 탐욕에 제동을 걸고, 200만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너끈히 품을 수 있는 판결이지만 민주노총엔 그 흔한 대책기구 하나 없고 평상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가오는 12월엔 민주노총이 조합원 직선제를 한다.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은 대의원 간선제로 위원장 선거를 치렀다. 직선제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현장의 목소리가 왜곡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정체된 민주노총에 활력을 주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주문도 뒤따른다.

그런데 어떤 활력이냐는 것과 누구를 위한 활력이냐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탐욕을 멈추지 않는 자본과 이성을 잃은 정권에 맞선 투쟁을 이끌 지도부 구성도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외부 역학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노동계 내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갈라져 있고 대기업과 중소·영세사업장의 차이는 갈수록 커진다. 우리가 만든 현실이 아니지만 그 현실에서 살아가는 건 우리들이지 않은가. 각자 결승선을 향해 뜀박질만 하는 현실을 끝내야 한다. 아파하는 이들은 누구인지 고통당하는 사람은 또 어디에 있는지 이제는 돌아봐야 할 때다.

그런 면에서 이번 직선제는 노동계 내부를 면밀하게 진단하고 차이를 메우고 차별을 없애는 노력부터 시작해야 한다. 때만 되면 등장하는 대기업 노조 때리기가 지겹지도 않은가. 노동 탄압에 맞서 쉴 틈 없는 날들이며 하루하루 싸워내기도 버거운 시절이다. 그 어느 때보다 해야 할 일이 많은 민주노총이며 노동계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조합원 이해와 요구뿐 아니라 일하는 전체 노동자의 대표를 자임하는 조직이라면 더는 내부 문제에 등 돌려선 안된다. 그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삶에 지쳐 달리기에 버거운 작은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민주노총 직선제의 아름다운 달리기의 시작이다. 11월은 전태일 열사 기일이 있는 달이다. 아픈 달이자 아픔을 품는 달이다. 노동조합이 건강할수록 그 사회 복지 수준은 물론 민주주의가 건강해진다는 믿음을 민주노총이 보여줘야 한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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