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를 정치인과 지식인들 사이의 논란과 비판의 대상에 머무르게 해서는 안된다. 새 정치를 참으로 갈망하고 구현코자 한다면 그러하다. 우리네 삶에서 논란과 비판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국민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세력과 세력이 경쟁하는 정치의 장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의도했든 아니든 논란과 비판을 앞세우다 보면 대부분 불만과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그리 되면 먹고사는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원하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들어가는 안철수 의원의 최근 행보는 실망스럽다. ‘안철수 새 정치’의 성공과 실패를 서둘러 재단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실패를 예측하거나 선언해버리는 이들이 점차 많아지는 상황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안 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의 정강정책에서 4·19 혁명, 5·18 항쟁, 6·15 남북공동선언, 10·4 남북정상선언의 정신 계승을 언급한 부분을 삭제하자고 했다. 당연히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치세력을 포함한 야권 전체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정치’. 안 의원이 새 정치라 이름 붙이고 해 온 정치는 논란을 일으키는 정치다. 이번의 정강정책 논란 이전에도 그러했다. 국회의원 정수 축소, 기초 단위 공천제 폐지를 갖고서도 논란을 일으켰다. 통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지금은 정부·여당의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안의 한시적 수용을 제안하고 나서 또 논란 중이다. 논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논란할 것과 논란하지 않을 것, 그리고 논란할 때와 논란하지 않을 때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뭔가 제안할 때마다 논란을 일으키는지라 도대체 언제 민생을 챙기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할 정세적 계기를 만들고 힘을 키울까 싶다.

담소나누는 안철수-윤여준-윤장현 (출처 :경향DB)


안 의원의 새 정치를 비판하는 이들, 특히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역시 논란의 회로에 갇혀 있다. 안 의원의 이런저런 제안에 대해 ‘그게 새 정치냐’ 반문하고선, ‘아니다’ ‘틀렸다’는 비판에 기대어 논란을 키워 왔다. 안 의원을 마치 시험 보는 학생 취급하면서,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갖고 점수를 매기려는 싸늘한 채점관들 같다.

이들의 정답은 ‘4·19, 5·18, 6·15, 10·4 정신 계승은 새 통합야당의 역사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꼭 명기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정수는 국가 규모를 감안했을 때 오히려 늘려야 한다’ ‘정당정치가 뿌리내리기 위해선 기초 단위 공천제를 유지해야 한다’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성격이 다른 별도의 것이기에 연계해선 안된다’ 등등이다. 이것이 정말 고정불변의 정답일까? 설사 정답이라고 해도, 안 의원의 새 정치가 과연 그 정답을 따르지 않아 실패하는 것일까? 혹은 그 정답을 따르면 새 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일까? 이들은 안 의원의 리더십 스타일을 지적하기도 한다. 홀로 - 혹은 소수 최측근과만 의논해 - 결정하는 최고경영자(CEO) 리더십이라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안 의원의 리더십 스타일을 탓한다고 달라질 게 도대체 무엇인가? 갑자기 안 의원이 다른 사람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안 의원이 다른 사람이 된다면 새 정치의 실패를 막고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단 말인가?

새 정치를 ‘책임정치’의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 에릭 프롬에 따르면, 책임은 배려와 관심 속에 타인의 요구에 대해 반응하는 것이다. 새 정치에 관계한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국민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행여 자신들이 중시하는 문구와 제도와 규칙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살펴봐야 한다. 자칫하다간 새 정치가 낡은 정치의 다른 이름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김윤철 |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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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기업들의 보편적인 임금체계는 연공급(호봉제) 형태의 기본급과 제 수당, 그리고 기본급과 연계되어 지급되는 상여금으로 구성되어 있고, 정기승급과 노사 간의 교섭으로 임금이 조정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가 저게 도대체 어느 나라 얘기냐고 묻는다. 지난 19일, 대한민국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 내용인데 말이다. 하긴, 노조 조직률 10%도 안되는 나라에서 ‘노사 간의 교섭’으로 임금이 조정된다니? 매뉴얼은 초입부터 사기성 기질이 농후하다.

어디 그뿐인가. 툭하면 해고되고 자주 일자리를 옮기다보니 항상 신입사원 신세다. 매년 상여금을 깎아서 최저임금 인상분을 채워주니, 이제는 받을 상여금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보편적인 임금체계’가 듣도 보도 못한 연공급, 호봉제, 상여금, 정기승급 중심이라니?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이건 완전히 딴 나라 얘기다.


간접고용 철회하라 (출처 :경향DB)


노동부의 매뉴얼은 현재의 임금체계를 △기본급 중심으로 임금 구성항목을 단순화하고 △기본급에서 연공성을 줄이고 △상여금은 성과와 연동돼야 한다고 말한다. 10~20년 일한 노동자나 신입사원이나 임금이 별반 다를 게 없으니 연공성은 아예 없다. 정부와 국회도 너무하다고 생각했는지, 지난해 12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근속수당 2만원을 신설하는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사장에게 예쁘게 보이면 좀 더 받고, 밉보이면 덜 받기도 하니 ‘성과(!) 상여금’도 익숙하다. 최저임금이 곧 기본급이고, 그 이외 수당이 거의 없으니 기본급 중심의 단순한 임금체계, 글자 그대로 ‘벌거벗은 임금’이다. 노동부 매뉴얼은 간단히 말해 이 나라 10%에 불과한 정규직 조직노동자 연공급 임금체계를 깨고, 90%에 달하는 미조직 비정규직의 ‘벌거벗은 임금’ 체계로 가자는 얘기다.

지난해 통상임금 논란을 시작한 박근혜 정권이 내놓은 종착역이 바로 이것이다. 마치 모든 노동자들이 상여금과 수당을 받는 것처럼 속여 수십조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억지를 사실로 포장했다. 대법관들은 민법에서도 잘 쓰이지 않는 ‘신의칙’을 노동법에 적용하는 창조(!) 법리로 사장님들 빚을 일거에 탕감해주었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아 이제 그나마 10% 남은 임금체계마저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90%는 이미 벌거벗었기에 연대의식을 느끼지 못하니, 10%만 고립시켜 마저 벌거벗기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0%가 자기 것만 지키겠다고 싸워봐야 본전도 못 찾고 패퇴할 것이 뻔하다. 10%가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머지 90%와 연대해 전선을 확장하는 것뿐이다.

“일자리 빼앗는 규제는 죄악이다.” 노동부 매뉴얼이 발표된 바로 다음날(20일), 박근혜 대통령이 끝장토론에서 밝힌 얘기다. 아하, 전경련·경총·대한상의 등 사용자단체들이 입만 열면 이놈의 규제 때문에 기업 못해먹겠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최저임금’ 아니던가!

그렇다면 조직된 10%가 해야 할 일은 통상임금 소송 준비가 아니다. 자신이 벌거벗겨지지 않으려면, ‘벌거벗은 임금’에게 옷을 입혀야 한다. 즉 최저임금을 높이는 투쟁에 자신들이 가진 힘을 최대한 쏟는 것이다. 투쟁기금을 모금하고,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평조합원 선언운동을 조직할 때다. 지방선거가 코앞이니, 이런 운동이 활발히 벌어진다면 후보들도 외면하지 못할 대세가 될 것이다.

가장 밑바닥의 최저임금이 대폭 인상되면, 그 혜택은 맨 위의 10% 조직노동자들에게도 돌아간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립을 탈피할 기회를 여기서 찾아야 한다.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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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지면을 넘기다 처음 보는 단어를 발견하곤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공간복지’.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 의원의 입에서 나온 이 한마디는 복지 담론의 궁극을 향하고 있을뿐더러, 오늘날 서울이 안고 있는 문제의 상당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로 읽혔다. 하지만 제목뿐이었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했나 싶어 해당 기사를 거듭 읽었지만, ‘공간복지’라는 단어에서 느꼈던 기대감 이상의 깊은 실망감만 얻었을 뿐이다.


한 사회의 계층관계와 권력관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그림으로는 필지(筆地)가 표시된 지도만 한 것이 없다. 도로에 면한 거대 필지의 소유자와 작은 골목 사이사이에 숨은 작은 필지의 소유자 사이에는 명백한 권력적 위계가 있다. 도시 안에 땅 한 평이라도 가졌다면 그래도 힘이 있는 축에 속한다. 도시 주민의 태반은, 도시 공간에 자신의 자취를 남길 권리조차 없는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도시는 본질상 주식회사와 비슷하다. 소수의 대주주가 회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처럼, 자본주의 도시는 거대 필지를 소유한 대지주들이 도시의 변화 과정을 좌우한다. 대지주들은 거대 필지에 초고층 건물을 지어 자신의 권위를 드러낼 수 있으나, 같은 도시 주민이라도 땅 한 평 갖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자기 삶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 아무런 표시도 할 수 없다.

한강 아라뱃길 방문한 정몽준의원 (출처: 경향DB)

자본주의 이전부터 수백년간 도시로 존속해온 서울과 같은 역사도시들에서 역사란, 각 필지의 크기와 위치로 표현되는 계층관계와 권력관계의 변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도시에서 개발이란 빈 땅에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라 이미 다른 건물이 있던 땅에 새 건물을 짓는 행위이다. 지난 반세기 넘게 우리가 겪어온 바와 같이, 서울의 도시 재개발 과정은 정확히 사회의 양극화 과정과 궤를 같이했다. 지도에서 작은 필지들을 지우고 그들을 묶어 하나의 큰 필지로 만들어서는 큰 빌딩을 지어 올리는 것이 도시 재개발의 일반적 방식이었다.

현 대 서울 도심부 대로변은 모두 대기업과 은행이 소유한 거대 필지들로 가득 차 있다. 누구 땅인지도 알 수 없는 소형 필지들은 거의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채 잔명(殘命)만 유지하는 정도다. 변두리 주택가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수백개의 작은 필지들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통합한 뒤에 그를 다시 그 필지들과는 본래 아무런 연고도 없던 수백, 수천 가구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 필지로 묶어서는 대단위 아파트를 짓는 것이 재개발이고 뉴타운사업이었다. 물론 이런 필지 통합, 대자본의 공간 지배가 평화롭고 순조로운 과정일 수는 없었다. 6·25전쟁 이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는 바로 도시 재개발 현장들이었다. 1960~1970년대 판자촌 철거 현장에서, 1980년대 사당동 등지의 합동재개발 현장에서, 최근의 용산참사 현장에서까지 숱한 전투가 벌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퇴각하곤 했다.

‘공간복지’라는 말을 쓰려면, 먼저 이 현실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았을까? 공동체 구성원 누구에게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복지’라면, ‘공간복지’란 이 도시에 사는 시민들 누구에게나, 땅을 가진 사람이건 그렇지 않은 사람이건, 자기 삶의 터전에 대한 최


소한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토지를 갖지 못한 사람들의 ‘공간 이용권’에 대해서도 배려하는 것, 그들을 ‘강제 철거’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공간복지’여야 하지 않을까? 말로는 ‘공간복지’를 내세우면서도 공간에 대한 약자의 권리를 도외시하고 추진되었던 용산 재개발 사업을 재추진하겠다는 것은, 4대강 사업에 ‘녹색성장’이라는 터무니없는 이름을 붙였던 과거의 행태와 너무 똑같지 않은가?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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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에서 20여년 전 날짜가 적힌 책 두 권을 꺼낸다. 먼저, 극작가 마샤 노먼이 쓴 희곡 <잘 자요, 엄마>. 극 초반에 엄마에게 자살할 거라고 말한 딸은 극 마지막에 문을 걸어 잠근 방 안에서 권총으로 목숨을 끊는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엄마는 딸을 달래고 설득하고 화를 내고 협박하며 어떻게든 딸의 마음을 되돌려 보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함께 살면서 늘 그랬던 것처럼 딸의 처지에서가 아니라 엄마 위치에서 생각한 말과 행동은 딸의 가슴에 가닿지 않았다. 극에 등장하지 않는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오빠는 해마다 슬리퍼를 선물했는데 그것은 동생에게 필요하지도, 크기가 맞지도 않았다. 그이들은 의식하지 못했다. 섬세하지 못했다. 상대에게 무엇이 어떻게 필요한지 귀 기울이거나 마음 쓰지 않았다. 딸을 위해서였다지만 자신을 위한 말과 행동은 진실마저 감추었다. 딸을 자신들에게 불편하고 불안한 존재로 만들었다.

두 번째 책에는 극작가 존 프레스리가 쓴 <에바 스미스의 죽음>이 들어있다. 의문의 수사관이 어느 집을 방문해 한 여성이 약을 먹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 집의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는데 몇 해 전, 임금인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열심히 일한 여성 노동자를 해고했다. 딸은 옷을 사러 갔다가 기분이 상했다는 이유로 아무 잘못이 없는 백화점 판매직 여성 노동자를 모함해 해고당하게 했다. 자선부인회 간부였던 부인은 혼자 아이를 낳아야 할 처지에 놓인 여자가 찾아왔을 때 매몰차게 내쫓았다. “가장 절박할 때, 가장 인간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외면했다. 아들과 곧 사위가 될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에바 스미스를 직접 죽이지 않았지만, 모두가 연루된 죽음이었다. 수사관이 떠난 뒤, 수사관이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속은 건 아닌지 의심하면서 누구나 다 그러고 살지 않느냐고 없었던 일로 치부하려 든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앞의 책을 소리 내어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픈 죽음을 들었다. 희곡 속 주인공은 마지막 장에서는 죽지만 다시 앞장을 펼치면 살아있다. 방향을 조금 바꿔 원작을 각색해 공연한다면 죽지 않는 것으로 결말을 낼 수도 있다. 드라마에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 죽음은 만약이라는 가정도, 되돌림도 불가능하다.

60대 여성노동자가 두 딸과 함께 죽음 말고도 다른 살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작은 숨구멍이 세상 어딘가에 있었다면, 여태껏 고단했을 삶이 앞으로 더 고단해지더라도 부여잡을 무언가가 있었다면…. 그이들이 죽음으로 말해버린 것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나는 잠시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한다. 두 희곡 속 등장인물들과 나는 과연 얼마나 다를까.

여성노동자 노동처우 개선 촉구 (출처: 경향DB)


지난 토요일, 서울 청계광장과 보신각 앞에서 3·8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한 행사가 열렸다. 그 거리에 서니 세상을 떠난 저이들이 떠올랐다. 광장에 모여 다른 여성들과 씨줄과 날줄로 엮여보지 못하고 가버린 여성들.

이제 책이 아니라 여성노동자대회에서 이야기를 듣는다. 먼저 간 세 여성과 각기 비슷할 나이대의 여성들이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전했다.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단시간 노동 계약을 강요하는 대형 유통할인매장, 눈을 쓸다 다치면 용역업체 소장한테서 “그만둬야지, 어디서 산재처리를 얘기하느냐”는 말을 들어야 하는 대학 청소노동자, 6개월마다 평가를 통해 재계약을 해 1년9개월을 일했는데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는 2년을 3개월 앞두고 비정규직보호법을 교묘하게 이용해 비정규직 간호사를 해고하고 다시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들이는 병원, ‘민간위탁 직접고용’을 요구하니 일군의 상담사들을 해고하려 드는 콜센터, 여성 조합원들이 일하는 곳과 탈의실로도 쓰는 휴게실에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제조업 현장, 이에 특별근로감독을 나와 달라는 노동자들의 요청에 바쁘다는 핑계를 대더라는 노동청…. 여성, 노동자, 가난한 이들을 외면하는 이 무딘 사회에서 더는 누구도 삶을 빼앗기지 않기를….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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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몇 달 앞둔 2012년 10월15일에 벌어진 일이다. 하루 평균 수십 명에 불과하던 트위터 팔로어 수가 단 2시간 만에 400명 가까이 늘었다. 트위터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싶었는데 조금 뒤 안철수 후보가 개인 트위터를 개설했다는 뉴스가 떴다. 안 후보가 35명을 팔로잉했고 내가 35번째였다. 안 후보가 이틀 동안 친구 신청을 35명에서 더 늘리지 않아 그 뒤에도 수백 명의 팔로어가 더 늘어 있었다. 이를 본 몇몇 매체는 ‘반(反)대기업 정서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안 후보의 트위터 친구 신청 명단에 친(親)노동, 반기업적 인사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것이다.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일면식은 물론 소위 노동과 관련한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던 사람이 트위터 친구 신청으로 대번에 친노동으로 분류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소위 쌍용차 해고노동자에게 친구 신청한 것이 정치인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10일 뒤 안 후보는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전격 방문했다. 방명록엔 ‘남아 있는 분들께 희망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적었다. 그러나 대선에서 쌍용차 국정조사가 여야 대선 공약으로 다뤄졌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참 나쁜 정치였다.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는 공권력에 의해 짓밟혔고 거리에서 농성하는 이들의 고통의 눈물은 아무도 닦아주지 않았다.


엊그제 일요일 아침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의 합당 소식이 모든 매체를 덮었다. 합당 기자회견에서 안철수 의원은 약속의 정치를 반복했고 거짓말 정치와 대결하겠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겨냥한 발언이기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그 약속의 정치가 공허하게 들리는 건 나뿐일까. 참 나쁜 정치란 정치적 수사가 집권 여당에만 해당되는 말이어야 할까. 기초공천 폐지가 새 정치의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이유를 모르겠다. 대선 공약을 파기한 집권 여당의 뻔뻔함을 질타하는 것을 탓할 일은 아니다. 당연히 공약 이행을 주문하고 싸워야 한다. 그러나 대선 공약이었던 쌍용차 문제는 늘 왜 뒷전인가. 2012년 쌍용차 국회 청문회 당시 안철수 후보는 대선 후보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었다. 청문회와 기자회견이 겹칠 경우 4년을 기다리고 준비한 우리로서는 이만저만한 낭패가 아니었다. 그래서 캠프에 전화를 했고 날짜를 고려해달라고 주문했다. 다행스럽게도 기자회견과 청문회는 겹치지 않았다. 딱 그만큼이었다. 쌍용차 문제로 대표되는 노동의 절박함은 정치인들의 일정이 겹치지 않는 그 정도에서 안도와 다행을 표할 뿐이었다.

지난 2월7일 서울고법은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다. 인내의 시간이 더는 길지 않길 바란다는 재판부의 당부도 뒤따랐다. 법적으로만 해결하기엔 쌍용차를 둘러싼 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변화와 해결책 없이 한 달이 지나고 있다. 회사는 회계조작에 대해 뻔뻔한 거짓말을 되풀이한다. 정치권 누구 하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있다. 정치인들의 약속이 모두 선일 순 없다. 당장 4대강을 하겠다던 이명박의 공약이 그렇다. 따라서 누구를 위한 약속이었는지 어떤 약속이었는지가 중요하다. 노동과 민생의 문제는 정치인들이 하는 약속의 본령이 아닌가. 새 정치란 것이 거짓말 정치와 구별되고 구태정치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말이 아닌 행동과 실천으로 보고 싶다. 쌍용차 문제 해결이 노동과 민생 문제의 모든 것으로 이해될 순 없다. 그러나 이미 법적으로 판결이 났고 사회적 심판도 끝난 사안인 쌍용차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텐가. 야속한 정치 한가운데서 약속의 정치 속삭임에 귀 기울일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쌍용차는 참혹한 죽음과 고통의 로도스 섬이다. 야속한 정치여 약속의 정치여, 여기서 뛰어보라.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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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7일 오후 2시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석기씨를 비롯한 소위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판결이 있는 날이었다. 법원이 거의 절대적으로 검찰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순간 앞이 깜깜해졌다. 평소 신뢰하는 한 법학자는 “이 정도 사건으로 내란이 성립된다면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대부분의 사건은 내란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향신문에서도 지난주 토요일 기사에서 박래군 인권활동가와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교수의 말을 인용해 국가보안법이 ‘내란보안법’으로 진화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 판결이 있는 동안 수원지법의 바깥에는 똑같이 ‘민주주의’ 넉자가 쓰인 플래카드를 들었지만 전혀 다른 두 그룹의 사람들이 있었다. 군복을 입고 나타난 누군가에게 민주주의는 지켜야 하는 것이고, 그 반대편에서 구호를 외치던 이에게 민주주의는 시민의 권리로서 누려야 하는 것이었다. 한편에선 국민을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에 동원되어야 하는 존재로 보고, 다른 한편에선 민주주의를 위해 국가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로 본다. 역설적인 것은 현행 법에 의하면 군인이 아닌 사람이 군복을 입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이지만 그들은 예외적 존재들이다. ‘비정상의 정상화’.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천안함 관련 서한을 보낸 참여연대 사무실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군복 민주주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남한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보다 더 적극적으로 북한을 민주화해야 한다. 군복을 입은 남한의 극우보수들이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으면서 북한의 민주화에는 온갖 돈과 노력을 다 쏟아붓고 있다. 민주주의는 한국의 시민들이 누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이 북한에 수출해야 하는 그 무엇이 되었다. 민주주의는 북한‘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것에서 북한‘으로 수출하기 위한’ 상품이 되었다. 단, 내수용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시민이 누리는 것은 제한된다.


비단 한국의 경우만이 아니다. 셸던 월린은 그의 책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에서 미국의 공화당을 평가하며 “민주주의를 수출용으로 포장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국내에선 민주주의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난도질했다”고 말한다. 월린에 따르면 사법부 권한을 축소하고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 미국의 애국자법은 긴박한 테러에 대응하는 실용적 차원에서 대중의 지지를 받았지만, 어느새 “법 집행체계 내의 영속적 요소로 확고”해졌다고 한다. 이것이 비정상의 정상화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비정상적인 것을 없애고 상황을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상적인 것을 없애고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 상태로 둔갑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비정상적인 상태가 되는 것은 민주주의 그 자체다. 다시 월든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수출용이 되면 국내 정치보다 국방과 외교가 더 중요해진다. 외교와 국방은 다른 정치의 부문과는 달리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엘리트주의를 합법적으로 강화한다. 이것이야말로 ‘무지한 민중’들을 정치로부터 ‘민주적’으로 배제하고 엘리트들이 권력을 독점할 수 있는 전략이다. 여기서 비밀이 드러난다. 수출용 민주주의는 사실상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군복’과 엘리트들의 내수용 전략이라는 것 말이다.


민주주의는 수출용이 아니라 내수용이다. 최소한으로 보더라도 민주주의는 정치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 ‘간’의 차이를 인정하고 불화를 조정하며 ‘공통성’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바깥으로 수출하는 그 무엇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누리면서 지키는 것이지, 지키기 위해 누릴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내수용일 때 정상이다. 수출용 민주주의, 그것은 ‘정상의 비정상화’다.


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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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처음 폭로되었을 때, 정부 당국은 ‘성조차 혁명의 도구로 이용하는 운동권의 상투적 수법’이라고 피해자를 매도했다. 갓 스물을 넘은 앳된 여학생이 그 치욕스러운 일을 폭로하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먼저 떠올리는 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상정(常情)이었으나, 공신력을 가진 정부 기관이 이렇게 발표했으니 그 내용을 그대로 믿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1991년 김기설씨가 분신자살하자, 정부 당국은 그의 유서는 강기훈씨가 대신 써 준 것이라고 발표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常識)으로는, 동료더러 자살하라고 부추기고 유서까지 대신 써 주는 악마 같은 자가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역시 공신력을 가진 정부 기관의 발표였고 둘의 필체가 같다는 정부 기관의 감정 결과까지 있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강기훈씨를 ‘유서조차 대신 써 준 악마 같은 인간’으로 기억했다.


앞의 사건은 곧 진상이 밝혀졌으나, 암 투병 중인 강기훈씨가 무죄를 선고받은 것은 사건 발생 후 23년이 지난 며칠 전의 일이다. 공신력을 가진 국가 기관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사건의 내용을 조작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행위는, 한 인간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런 행위는 사회 전체를 망가뜨린다.


김기설씨가 분신하기 직전, 모 대학 총장은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것일까. 그를 믿을 만한 예언자로 만들어 준 것이 이른바 ‘강기훈 유서 대필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조사하고 발표한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던 것일까. 권력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특정한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인간성’의 문제로 치환하는 간단한 트릭을 썼을 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상정과 상식으로는 떠올릴 수 없는 악마 같은 ‘인간성’을 상상하고, 그 상상의 ‘인간성’이 실재(實在)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까지 조작한 이런 행위는, 실제로는 그 행위자의 ‘인간성’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매스미디어는 이런 ‘인간성’에 대한 망상을 사회 전체로 확산시킨다. 대중이 이런 망상에 사로잡히는 순간, 그 사회는 무서운 미래를 잉태한다.



이 사회 일부에 자신의 성조차 도구로 이용하는 인간, 남의 유서까지 대신 써 주는 인간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실재한다는 믿음은, 그들에 대한 공포와 증오를 부추기고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그들에 맞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키워준다. 악마 같은 자들에 대항해 자신의 평온한 삶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는 믿음, 이런 믿음이 사람들 내면의 악마성(惡魔性)을 소환한다. 강기훈씨에게 “왜 유서를 대신 써 주었냐”고 물었다는 순진한 사람은 강기훈씨를 악마로 보았겠지만, 강기훈씨에게는 그의 그 순진한 질문이 악마의 목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사람들 내면의 악마성을 소환해 그를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권력은 결코 선(善)할 수 없다.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 학살에 동참했던 사람들,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의 참극을 연출했던 사람들은 무슨 이념의 포로가 된 사람들이 아니라 악마 같은 자들로부터 자신의 가족과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지배된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악’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삶 안에 존재한다.


이른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한국 검찰이 제출한 중국 공문서는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게 사실이라면, 어떤 정치적 필요에 따라 국제 망신의 위험까지 감수하며 증거를 조작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사회에 억지로 증오와 공포의 바이러스를 확산시키려는 짓은 그만두자. 좋은 정치는 사람들 마음에 ‘평화’를 심어주는 것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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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적으로 보자면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그 노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이들이 노동할 때가 아니라 ‘노동을 중단했을 때’ 드러나게 된다. 한때 ‘직장맘’을 대표했던 야쿠르트 아줌마들의 노동이 얼마나 고된지, 그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임금은 얼마나 받는지,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얼마나 소중한가 하는 것은, 전국의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모조리 일손을 놓을 때에야 비로소 사회 전체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 제33조는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을 조직해 자본에 맞설 수 있는 단결권·단체교섭권과 함께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른바 ‘노동3권’이라 불리는 이 권리들은, 어느 하나만 제한돼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불가분의 것이다. 하물며 노동자 스스로의 가치를 드러낼 수 있는 핵심적인 권리인 파업권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난주 일부 언론에 노사정위원회가 만든 ‘비정형 근로자 보호방안 정책보고서’가 소개됐다. 한국노총에도 버림받은 노사정위가 작년 12월 만든 보고서, 이게 왜 이제야 언론 보도로 나왔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이 보고서는 화물트럭·덤프·레미콘·퀵서비스·대리운전·택배기사, 학습지 교사, 간병인, 보험설계사 등 이른바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육아휴직 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제안을 담고 있다.



(경향DB)



그러나 노사정위 보고서는 유독 단체행동권, 즉 파업권만은 보장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보고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그 일부가 노조법상 근로자에서 배제될 가능성도 있다는 걸 전제한 것”이라는 한마디 외에 찾아볼 수가 없다. 아니, 헌법에 명백히 보장된 권리를 제한하는 이유가 이거란 말인가. 그럼 ‘그 일부’ 때문에 나머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헌법상 권리가 몽땅 제한되는 것은 정당한가.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존재는 전혀 ‘특수’하지 않다. 정부와 자본은 이들이 ‘노동자’와 ‘자영인’의 경계선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수많은 업종에서 특수고용 형태가 아니면 일을 할 수 없도록 자본이 요구하기 때문에, 그 규모는 현재 200만명에 육박하며 계속 늘어나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 다수도 특수고용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퀵서비스와 택배기사들을 보자. 이들은 물건을 배달하고 일정한 수수료를 받아 생활한다. 그런데 이들을 사용하는 업체들은 어떠한가. 사무실 하나 차려놓고 전화기를 설치해 배달 주문을 받아, 대기 중인 기사들에게 ‘오더’만 내리면 된다. 배달 요금 전체를 업체가 챙긴 후, 거기에 붙는 몇%의 수수료만 떼어주면 된다.


배달 주문량만 일정 수준 이상이면, 업체 입장에선 완전히 땅 짚고 헤엄치기다. 업체 홍보나 주문량 따오기조차 기사들에게 스티커를 나눠주도록 해서 떠넘긴다. 온갖 재주는 기사들이 부리는데, 돈은 모조리 업체가 챙겨간다. 주문량이 떨어져 업체 문을 닫더라도 최소한 손해는 안 본다. 경영자들이 져야 할 책임이나 부담을 모조리 기사들이 대신 지기 때문이다. 주문량이 감소하면 업체가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기사들의 배달 건수가 떨어져 자동으로 임금이 삭감된다. 자본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쉬운 장사인가!


이처럼 자본가들이 져야 할 경영 위험이나 책임을 모조리 노동자에게 전가시킨 것이 ‘특수고용’이란 고용형태다. 그런데 정부는 10년 넘게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요구해온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노사정위는 파업권은 도저히 못 주겠으니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으로 만족하란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있는 것인지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그토록 무서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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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웠다. 선물로 받은 판화 액자를 마땅한 자리가 없어 걸어둔 곳이 잠자리 머리맡이었다. 판화로 표현했지만 그림 너머 쇠로 만든 삽차가 내게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게다가 삽차 팔 끝에 올라앉아 팔을 뻗어 외치는 사람들이라니. 2010년 10월, 가산디지털단지 네거리 대형 상점가 뒤, 철거된 공장 앞에 멈춰 선 삽차 위에 오른 이들과 맞은편 경비실 옥상에서 단식농성을 하는 이들을 보고 돌아오던 길이면 밑도 끝도 없이 슬펐던 탓일까. 꿈자리가 사납거나 가끔 가위 눌리는 일을 핑계 대며 나는 슬그머니 액자를 떼어냈다.


이제 좀 머리맡이 가벼워질까 했다. 그런데 그림 속 주인공인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지금 철야농성 중이다. 2005년 노조를 만들어 회사에 정규직화와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협상을 요구했다 대량 해고로 이어져 시작한 투쟁이 2010년에야 마무리됐다. 공장 앞 농성장에 하루씩 바꿔 붙인 날짜가 1895일이 될 때였다. 그 노동자들이 종이에 투쟁 날짜를 적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설을 앞두고 가보니 사무실 문에 벌써 ‘30일’이라는 숫자가 붙었다.


복직 유예기간, 일을 주지 않아 출근해 회사에서 대기했던 시간까지, 꼬박 3년을 기다린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새해를 앞두고 회사가 야반도주하고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는, 말이라 할 수 없는 말을 한다. 이들이 텅 빈 사무실에 농성장을 꾸린 건 선택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밀양 송전탑 농성장(출처 :경향DB)


투쟁하던 중에 태어난 아이가 어느덧 다섯 살이 되었다는 미영씨가 이제 3월이면 세상에 나올 배 안의 둘째아이와 함께 농성장을 지켰다. 자신은 아이 때문에 밤에는 집으로 가지만 여기서 잠들어야 하는 다른 동료들은 내내 감기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 부당한 일을 당해 저항하면 함께 목소리 보태는 게 중요한 것임을 아는 기륭 노동자들은 그날도 중앙대 청소노동자들에게, 한남운수에서 해고된 정비노동자에게 달려갔다.


2010년 11월1일 국회에서 열린 ‘금속노조-기륭전자 합의문 조인식’을 기억할 게다. 사진에 찍힌 노사 대표 모습이 내겐 아직도 또렷하다. 삽차에서 떨어져 으스러진 발뒤꿈치를 수술한 남편과 병원에서 신문을 봤다. 바랐으나 올 것 같지 않은 시간이었다. 파견직이 아니라 정규직으로, 유예기간을 두긴 했으나 생산설비를 완비해 다시 일터에 선다니…. 그러기까지 삭발과 단식, 고공농성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한 노동자들이었다. 구사대·용역경비 폭력에 공권력 폭력까지 안 당해본 일이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24회 인권상(2010년) 수상자로 금속노조 기륭분회를 선정하면서 말한 것처럼 “인간의 존엄성과 노동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기륭 노동자들이 앞장서고, 여러 분야의 무수한 사람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연대해 함께 얻어낸 결과였다. 노사 합의에 더한 사회적 합의, 당사자보다 지켜본 증인이 더 많은 약속이었다.


그 약속이 지금 무시를 당한다. 기륭만이 아니다. 한진중공업도 마찬가지다. 정리해고가 살인이 된 사회, 수많은 이들이 자기 사는 곳에서 스스로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하지 않았던가. 1년 뒤 현장복직을 약속했던 2011년 11월9일 사회적 합의는, 복귀 3시간 만에 강제휴업 명령으로 무시되었다. 그동안 한진 노동자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알게 모르게 여전히 어디선가 누군가는 불법파견·간접고용과 정리해고 문제로 혼자 아플 것이다.


판화를 다시 머리맡에 걸어야 할까. 농성을 시작한 이들을 모른 체하면 안되겠다. 2월6일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 불이행에 대한 사회적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린다. 기륭과 한진 노동자들이 나선다. 다시 듣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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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대형마트 앞. 마트로 들어가려는 차량들의 꼬리가 길게 늘어섰다. 그러고 보니 설날이 코앞이다. 저 차량들이 곧 고향으로 가는 도로를 꽉 채울 것이다. 고향이 제각각이듯 귀성길 교통편도 다양하다. 고속도로 위 승용차와 버스는 귀성길 교통량과 차량 정체의 기준이 되곤 한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타니 차량의 거북이걸음이 익숙하기만 하다. 항공기도 소개되는데 대개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반면 열차는 과거나 지금이나 방송사 카메라가 첫 번째로 포진하는 곳이다. 손에 든 선물 꾸러미를 들고 인터뷰하는 귀향객 모습과 줄지어 열차에 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철도파업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민영화에 반대하며 23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철도노조 파업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이었다. 시민들은 ‘불편해도 괜찮아’를 외치며 뜨거운 응원과 연대를 보냈다. 그런데 설날을 앞둔 지금까지 파업이 계속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불편해도 괜찮다고 했을까. 아니면 이제는 그만두라고 했을까.

지난번 철도노조 파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민영화 문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에 더 이상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시민들의 분노를 확인한 것 또한 소중한 결실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정부와 코레일의 무차별 탄압에 일방적으로 무릎 꿇었다는 지적이 있기도 했을 만큼 남은 과제 또한 커 보인다.

 

일터로 들아가는 철도노동자들 (출처: 경향DB)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어느 순간 민영화 반대 여론은 증발했다. 박근혜 정부가 잔인하게도 민주노총을 침탈한 기억 또한 갈수록 희미해진다. 언론사 침탈 문제는 또 어떤가. 정치권이 철도노조 파업을 중재한답시고 들고 나온 ‘철도산업 발전 소위원회’는 어떤 역할과 움직임을 보이고 있나. 여야가 밝힌 ‘여야, 국토교통부, 코레일, 철도노조,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정책자문협의체’가 민영화 문제의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철도노조 파업 종료 이후 언론사 인터뷰를 통해 ‘백기투항’ 문서라며 철도노조를 우롱했다. 민영화 문제에 대한 진지한 접근에서 멀어진 건 물론 철저한 당리당략적 입장이다. 코레일 최연혜 사장은 철도노조 지도부가 구속되던 날 자신의 지역구를 챙기기 위해 새누리당 지도부를 찾는 몰염치를 과감하게 선보였다. 강경한 파업 대응이 일신의 영달을 위한 강공책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195명이 고소·고발되었고, 노조에 116억원에 달하는 돈을 가압류했고, 153억원에 달하는 손배 가압류를 설정했다. 여기에 코레일 이미지 실추에 대한 10억원 소송까지 진행되고 있다. 김명환 위원장 등 지도부 5명이 구속됐고 파업 참가 조합원을 대상으로 강제 전보 계획이 진행되고 있어 철도 현장이 뒤숭숭한 상태다. 파업 결과에 따른 탄압을 조합원들이 고스란히 지고 있는 것이다.


‘불편해도 괜찮다’는 지난 철도파업의 국민적 구호였다. 그러나 민족의 대이동이라는 설날에도 이 구호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선 파업의 실질적 불편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정말 우리는 불편해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철도노조가 외치고 국민들이 응답한 민영화 반대의 흐름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에 이렇게 노동자가 많은데도 교육과정에서 노동을 멀리한 결과 사회에선 노동을 천시한다. 파업은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고, 손배 가압류는 정권과 자본이 노동자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어하는 ‘악법’이다. 파업에 대한 인식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파업을 불온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걷어내지 못한다면 노동자만 자본과 정권의 뜨거운 맛을 보는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이창근 | 쌍용차 해고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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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이 주최한 ‘서울학생인권조례 개정(안) 토론회’는 아수라장이었다고 한다. 토론회를 시작하자마자 국민의례를 약식으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보수 측 참가자들이 고함을 지르며 문제를 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개정안에 반대하는 참가자들에게 “아가리를 찢어버리겠다”는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교육을 위한다는 말로 가장 반교육적인 말과 행동을 주저없이 저지른 것이다.

내가 ‘교육’을 공부하면서 깨우친 것이 하나 있다면, 한국에서 가장 속지 말아야 하는 말이 바로 ‘교육’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 교육이라는 말은 가장 반교육적으로 사용된다. 교육을 운운하는 사람들의 교육적 무능함을 가리거나 반교육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알리바이로 사용되는 말이 ‘교육’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보기에 보수냐 진보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나이 듦’에 대한 ‘생각 없음’에 그 원인이 있는 듯하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나이가 들수록 당연히 겁을 먹고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경험이 많을 테니 그만큼 인생에 대해 후대가 경청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말을 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선대가 필히 자신들이 부딪치며 경험으로 터득한 지식과 지혜를 후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그것은 자연이나 외부의 위협을 슬기롭게 이기는 지혜일 수도 있고 삶에 대한 어떤 깨달음으로부터 오는 조언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나아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람에게는 다른 압력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젊은이들을 ‘꼬시는’ 지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사회에서 젊은이는 늙은이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을 다 잔소리꾼이라고 여기고 자기들의 삶을 구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경험에서 터득한 지혜를 물려주고 싶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젊은이를 구슬려 자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 의견서(출처 :경향DB)

 

지혜로운 자란 이처럼 자신의 경험을 남이 들을 수 있는 때를 봐가며 포착하고 기회가 닿았을 때 살살 잘 구슬릴 수 있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내 말을 들어라’는 명령이 아니라 듣고 싶게 하는 기술, 즉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한다. 때를 보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 때나 내키는 대로 마구 행동해도 되는 ‘자격’이 있다고 여긴다. 후대가 솔깃해서 들을 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들어!’라고 명령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디 나이도 어린 것이 어른에게!”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무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회인 것만 같다. 오죽했으면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채현국 선생님이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너희들이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된다”고 말씀하셨겠는가?

나는 이런 사회에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정말 겁난다. 늙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다. ‘제대로’ 늙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소리를 꽥! 지르는 어른들은 많아도 나이 드는 법을 제대로 보여주는, 따라하고 싶은 어르신은 정말 찾아보기 힘들다.


채현국 선생님은 “잘 봐두고 저렇게 되지 않기 위해 봐주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50대를 넘어서고 있는 386들도, 40대 중반이 되고 있는 나도 ‘저 모양’으로 늙어가고 있지 않는가?

폭력을 질서라 생각하며, 폭력을 ‘인륜’이라 생각하며, 폭력을 교육이라 생각하면서.

 

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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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단지 황궁우 옆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돌북(석고·石鼓) 세 개가 있다. 본래 롯데호텔 주차장 부근에 있다가 옮겨진 것인데, 이 돌북이 만들어진 내력은 이렇다. 1902년은 고종 즉위 40년이자 그의 나이 51세, 즉 망육순(望六旬)이 되는 해였다. 조선 역사상 네 번째이자 제국 선포 후 처음 맞는 즉위 40년이었던 데다 황제가 노인(老人) 대접을 받게 되는 때이기도 해서, 몇몇 아첨꾼들이 황제의 양대 기념일을 축하하는 비석을 세우기로 하고 모금에 들어갔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 종로 교보빌딩 앞에 있는 기념비전이다. 이 기념비전 건립에 끼지 못한 다른 아첨꾼들은 범상한 비석으로는 황제의 공덕을 제대로 기릴 수 없으니, 하늘에 그 뜻이 닿을 수 있도록 특별한 비석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황제의 공덕을 칭송하는 비석을 세우기 위한 모임’이라는 뜻의 송성건의소(頌聖建議所)라는 조직을 만들어 관리들에게 강제로 모금하는 한편, 특별한 비석 제작에 착수했다. 그 특별한 비석이 바로 이 돌북이다. 백성들이 ‘자의로’ 자신을 칭송하기 위한 특별한 비석을 제작한다는 말을 들은 고종은 분명 흐뭇했을 것이다. 그런데 송성건의소 부의장으로 추대된 이유승이 이에 반대하며 이렇게 상소했다.


“선왕의 중흥은 시경(詩經)과 사전(史傳) 등으로 전해진 것이지 돌북에 의해 후세에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큰 공적이 있다면 좋은 역사가들이 대서특필하여 천추(千秋)에 전할 것이니 어찌 한 조각 돌에 새길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 일을 중지하라는 특명을 내려 겸손한 덕을 빛내시기 바랍니다.” 역사를 왜곡해 제 얼굴에 분칠하려 하지 말고, 역사에 잘 기록되도록 정치나 잘하라는 힐난이었다. 결국 이 돌북에는 아무 글자도 새기지 못했다. 만약 그때 이 돌북에 고종의 ‘하늘에 닿을 공적’을 기록했더라면 지금쯤 세간의 웃음거리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원구단, 황궁우, 석고단의 옛 모습(출처 :경향DB)


조선시대 국왕이 사초(史草)를 열람할 수 없었던 데에서 알 수 있듯, 중세의 전제군주제하에서 역사 서술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었다. 그 시대 역사 서술의 소명은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었다. 권력이 역사를 두려워해야지, 역사가 권력에 아첨해서는 안되었다. 국가 권력이 역사 서술과 보급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기의 일이었다. 권력이 장악한 역사는, 신분과 지역에 따라 나뉘어 있던 백성을 ‘국민’이라는 단일 호칭으로 묶어내는 데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런 역사는 교훈보다는 일체감, 자부심, 충성심 등을 고취하고 국가 권력의 정당성과 권위를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부작용이 엄청났다. 권력이 채택한 ‘유일사관’은 국민과 비(非)국민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고, 그 ‘유일사관’으로 무장한 자들은 그 사관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불순물’로 취급했다. ‘유일사관’을 필수 구성요소로 삼은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는, 국민통합이라는 미명하에 일부 국민에 대한 폭행과 고문, 살인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일제강점기나 군사독재시절 고문 살인자들의 의식 속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는 없고 오직 당대 권력이 일방적으로 주입한 편향된 ‘국가관’만이 있었다.


20세기 후반 이후 각국이 국정 역사교과서를 검인정으로 바꾼 것은 반인간적 국가 폭력조차 정당화했던 국정 ‘유일사관’의 문제점을 성찰한 결과이다. 역사 서술과 교육의 권리를 학계와 시민사회에 대폭 양도한 것은, 역사 서술자와 권력 사이의 긴장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국가가 살인 괴물을 양산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학계와 시민사회의 비판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극구 칭찬하던 새누리당의 몇몇 의원들이, 이 교과서 채택률이 0%가 되자 돌연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환원하자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 중 일부는 심지어 다른 역사교과서 전체를 좌편향으로 매도하는 광기마저 드러내고 있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역사관’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다 돌연 ‘획일적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을 바꾸는 그 창조적인 발상 전환을 제 정신 가진 보통 사람이 이해하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그들이 지금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 하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새누리당 염동열 의원은 모 방송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선진국이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러시아, 필리핀, 베트남, 북한을 꼽았다. 도대체 이 나라를 저 중에 어느 ‘선진국’처럼 만들고 싶은 건가?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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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기차, 기차역, 기찻길에 이어진 추억을 갖고 있을 게다. 훌쩍 가볼 수도 있지만 이미 떠나온 곳에 다시 가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아련한 모습 그대로 마음에만 담아두기도 하는.


어릴 때를 떠올리면, 누군가 정성으로 돌본 게 분명한 작은 꽃들이 예쁘게 폈던 화전역, 새벽 어둠 저편에서 달려오는 기차 불빛을 확인하며 겨울바람을 안고 내달렸던 등굣길 운정역, 하굣길 기차를 기다렸던 수색역, 눈이 잘 안 보이는 데다 곧 부서질 듯 마른 할머니와 탔던 기차가 떠오른다. 꺼내보면 더 많은 역과 시간, 일과 사람이 딸려 나올 게다.


승객이 아닌 기차, 기차역, 기찻길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어떤 추억이 있을까. 사람과 사연이 무수하리라. 보람과 더불어 힘겨운 현실도 만만찮았을 게다. 2만5000V 고압 전류가 머리 위로 흐르는 철길에서 눈비를 피하지 않는 일인 데다, 뙤약볕에 ‘엿가락처럼 휘는 선로에서 곡괭이질’을 하고, 철로가 얼어 끊어지면 달려가 바로 연결해야 한다. 그래야 화물이든 사람이든 막힘없이 이동할 수 있다.


철도 노동자들이 직접 쓴 <철길에 핀 민들레>와 <47, 그들이 온다>는 책에는 그이들의 추억이 담겼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한 해 순직자가 서른 명은 생겼다던 현장. 한정된 시간에 일을 마쳐야 하는 촉박함은 ‘열차가 무거운 쇳덩이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우리의 몸이 열차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피가 터지고 뭉개지는 부드러운 살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무감각해지고 일에 매몰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안전하게 정시 도착을 목표로 운전하는 동안 긴장을 늦추지 못하며, 예상할 수 없는 사상 사고를 겪어도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혼자 고통을 감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관사도 여럿. 동료의 죽음을 가까이서 보거나 멀리서 들어야 했던 철도 노동자의 상처가 철길과 굄목, 자갈 밑에 고스란히 누워 있을지도….


두 책에는 철도와 관련해 이런 역사도 담겼다. 민주적인 노조가 들어서기 전까지 철도 현장에는 불합리와 부당함이 많았다. 노조가 노동자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게 아니라 당시 사용주인 철도청과 한통속이었다. 흔히 말하는 어용으로 노동자 위에 군림했다. 그런 이들이 ‘노동귀족’이다. ‘관리자와 노동조합이 합작하여 인사를 전횡’하고, ‘잘못된 것을 말하기조차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이는 징계를 받고, 유배 받듯 멀리 전출됐다. 그러니 각종 부당노동행위에도 그저 참고 침묵, 말 잘 듣는 일꾼으로만 살아야 했다.


일터로 돌아가는 철도노조 조합원들(출처 :경향DB)


굴종의 역사에 서서히 금이 가 2001년에 비로소 깨졌다. 그해, 전국철도노동조합은 민주적인 노조로 거듭났다. 노동 현장의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긴밀하다. 노조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그리고 그 뒤 여러 일이 있었다. 1988년과 1994년 기관사 파업, 지부나 분회의 변화, 간선제였던 선거제도를 직선제로 바꾸기 위한 노력, 근로조건 개선, 각 정부에서 추진한 철도 민영화 정책을 막기 위한 고투였다.


노동자와 노조가 최후로 찾았을 방법인 파업에 언론과 정부는 그때마다 ‘불법파업’이라 했다. 노동자를 해고하고, 징계하고, 구속했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서지 않았다면 기관사라면 당연히 꿈꾸는 무사고 100만㎞ 운전을 충분히 달성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 자리에 섰던 ‘이유’는 지금처럼 늘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2013년 겨울, 철도공사와 정부는 수서발 KTX 분리는 경영에 관한 일이라며 철도노조의 대화 요구를 거부했다. ‘철도 민영화 반대, 공공성 강화’를 지지하는 시민의 뜻에도 귀를 닫았다. 대신 파업 초기부터 징계성 직위해제, 노조간부 수배, 민주노총 공권력 투입, 최후통첩,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직권면직 입법 운운을 이어갔다. 


그 암흑 같던 불통의 스물두 날의 끝머리에 희소식이 들린다. 국회에서 철도발전소위를 구성하고, 그 즉시 노조가 파업을 철회한다는 합의문을 발표했다는 보도다. 하지만 파업은 끝났어도 수서발 KTX의 민영화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이제 곧 새해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수서발 KTX의 문제가 산뜻하게 풀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보다 철도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 ‘철밥통’이라는 말로 훼손할 수 없는 역사를 만들어온 철도 노동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고, 수서발 KTX 문제로 어느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서울광장에 섰던 일을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박수정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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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노동자의 심장인 민주노총을 짓밟았다. 민주노총 18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와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를 이유로 들어 일요일 도심 한가운데에 5500명의 경찰을 투입했다. 벽을 부수고 현관문은 무력으로 간단하게 깨버렸다. 언론사 사옥을 보란 듯이 짓밟고 민주노총 사무실을 급습했다. 경찰들은 막무가내로 1층에서 17층까지 모조리 부수며 진입했다. 그들은 조합원을 끌어냈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 얼굴에는 최루액을 쏴댔다. 


민주노총이 세들어 있는 건물의 건물주인 경향신문사엔 사전 통보도 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이 위치한 경향신문사 방향으로는 하루 종일 통행이 불가능한 불통 상황이 되어 버렸다. 정작 검거하겠다던 철도노조 지도부는 이 정권에 등을 돌린 민심이 보호해주고 있어 검거되지 않았다. 일요일 한낮에 병력 수천명을 풀어 작전을 벌였다가 실패한 경찰을 민영화해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오고 있다.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 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어제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주어만 바꾸면 국민의 입장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줄곧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개입으로 1년을 허송세월하고 있는 대통령이 할 소리는 아니다. 


민주노총 차량봉쇄(출처 :경향DB)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으로 촉발될 민영화를 막기 위해 오늘로 16일째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민영화가 아니란 말만 반복할 뿐 대화와 타협의 테이블은 마련도 하지 않았고 사실상 파업 진압 강경몰이만 일삼고 있다. 이제 철도파업은 민영화 문제를 넘어 박근혜 정부의 속살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국민을 상대로 겁박과 굴복을 강요하고 불통을 자신들의 통치철학으로 확인시켜주고 있다. 불편해도 괜찮다며 철도파업을 지지하는 국민을 종북으로 만들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촛불을 들며 호소해도 정부는 귀를 아예 틀어막고 있다. 국민들이 참을 수 있는 임계점이 넘어갔다. 민주노총이 사무실을 침탈당하는 그 시간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더 이상 짓밟히지 않겠다며 맨 앞에서 싸우는 민주노총과 함께하겠다는 얘기를 쏟아냈다. 


예년과 다른 파업 여론이다. 시민들의 요구를 받아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번 총파업이 민주노총만의 파업이 아닌 이유다. 우리는 이명박 정부 2년차였던 2009년 1월을 기억한다. 용산참사가 발생했다. 그러나 국민적 저항으로 맞서질 못했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쌍용차 노동자들이 1980년 광주 현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잔인한 폭력으로 진압됐다. 국가가 ‘이래도 되는구나’ 하게끔 허용한 우리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리자 국가 폭력은 스스로 진화해 전국에 공포를 심었다. 그 결과 국민들은 체념하고 침묵하는 게 일상이 됐다. 국가 폭력이 행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막지 못했다. 


그러나 밀양이 그렇고 강정의 고통이 그렇듯이 저항의 힘도 만만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삼성의 최종범과 한진중공업의 최강서는 죽음으로 항변했다. 손발 묶은 겁박의 쇠사슬을 뜯어내지 않고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버리지 않는다면 괴로움은 연장된다고 그 두 사람은 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국민들 입에서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이야기가 국민총파업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있다.


안녕들하십니까(출처 :경향DB)


최근 대학가 벽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가정집 주방에도 붙고 있다. 답답했지만 말 못했던 이들이 드디어 자신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막혔던 말의 길이 열리자 이곳저곳에서 하소연과 분노가 만들어진다. 실종된 민주주의를 찾아나섰고 국가가 우리에게 무엇인지를 묻는다. ‘너희 없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고 말하는 국가에 ‘우리가 멈추면 세상이 멈출 수 있다’는 경고를 한다. 철도노조 파업이 밑불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국민들이 총파업으로 일어서겠다고 한다. 12월28일, 우리는 가정과 직장에서 여성과 남성, 학생과 어르신들이 국민총파업을 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민을 우습게 보는 박근혜 정부에 국민총파업의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 한다. 고통의 시간을 반복할 것인가, 끝낼 것인가. 12월28일, 국민총파업으로 나가자!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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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주현우씨가 손글씨로 쓴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가 대학가를 넘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이 대자보가 붙어 있던 곳에 300여명의 대학생들이 모여 서로 안녕하지 못한 상황을 이야기하며 성토대회를 열고 서울역에서 열린 철도 민영화 반대 집회에 ‘나들이’를 갔다고 한다. 대학가를 넘어 고등학생, 직장인 등도 동참하고 있으며 페이스북에는 2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사실 주현우씨가 쓴 대자보 내용은 평범하다. 한국이 왜 살 만한 사회가 아닌지에 대해 우리가 이제까지 알지 못하던 새로운 뉴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왜 안녕하지 못한지에 대해 구구절절하게 개인적 사정을 쓴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동감하고 있으며 각자의 ‘안녕하지 못한’ 사연이나 감정을 풀어내고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있다.


이 대자보는 다른 사람의 ‘안녕’에서 자신의 ‘안녕’을 찾고 서로에게 안부를 묻게 한다는 점에서 다른 대자보와 결이 다르다. 다른 대자보가 말을 하는 것이라면 이 대자보는 읽는 이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읽는 사람이 보탤 말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타인의 안녕을 돌아볼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나 돌보고 살아야지 주제넘게 다른 사람의 안녕에 신경을 쓰다가는 자신도 탈락할 수 있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사회다. 그래서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이다. 학교에서 친구가 왕따를 당하더라도 못 본 척해야 하고 직장에서 동료가 ‘집단적으로’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더라도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외면해야 한다. 대신 자신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호소하는 고통에 대한 ‘자기 이야기’는 넘쳐난다. 어디를 가나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치유를 받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이 시대에 고통에 대한 이야기는 ‘자기’라는 문턱을 넘지 못한다. 돌아가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자리를 가보더라도 자기 힘든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에 심취하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해서는 잘 듣지 않는다.


고려대,'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출처 :경향DB)


특히 청년세대가 ‘사회문제화’되고 난 다음부터 청년세대들의 글은 어떤 고정된 틀 속에 갇혔다. 미디어에서 청년들에게 글을 부탁할 때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것을 강요하고 기대한다. 그들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하려 하면 ‘그건 됐고, 그래서 네 이야기를 해봐’ 하는 경우가 많다. 교실이라고 다르지 않다. 강사나 교수들 역시 청년들이 ‘청년’에 국한시켜 자기를 서사화할 것을 기대한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들의 말과 글을 타인에게 건네는 ‘말걸기’가 아니라 이 시대에 넘쳐나는 피해자로서의 자기 서사에 가두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대학가에서만도 그동안 꾸준히 다른 이의 고통에 함께하는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몇 년 전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에게 대학 안팎에서 많은 이들이 함께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외부인은 빠지라’는 배제의 명령에 대해 자신들을 ‘날라리 외부세력’이라 부르던 이들 말이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존재를 외면하고는 자신들도 안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선례들이다. 지금 이 ‘안녕’ 대자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런 흐름의 연속에서 다시 말을 건 사례가 될 것이다.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안녕을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나와 무관하던 남은 나와 연결된 ‘너’가 된다. 나와 남 사이에는 ‘거리’만 있지만 나와 너 사이에는 ‘관계’가 있다.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나는 너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고 다시 안녕을 서로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자기에 갇힌 이 시대에 이런 ‘말걸기’가 바로 파괴된 세계를 재건하는 힘이다. 나는 이 대자보가 우리 모두 듣기를 강요하는 말은 많이 했지만 오랫동안 서로에게 말을 걸지는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최악은 “요즘 대학생들은 생각이 없는 줄 알았는데…” 운운하며 ‘기특’해하거나 이 흐름을 “완전 새로운 일”로 포장해 어떻게든 ‘기획’해보겠다고 나서는 태도다. 그런 말은 오히려 사람들을 팔꿈치로 밀어낸다. 좋은 바람이 불 땐 그 바람에 맡기면 된다. 그 바람에 손부채질을 하는 것이야말로 어리석다. 호응하되 들뜨지 말자.


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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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학자 마이크 새비지는 도시를 “정치과정과 사회 갈등이 흔적을 남긴 물리적 고증물”이라고 정의했다. 권력을 ‘공간을 지배하는 힘’이라 한다면, 현대의 도시 공간은 공시적(共時的)으로는 정치권력·자본권력·종교권력·시민권력들이 서로 다투는 현장이며, 통시적(通時的)으로는 특정 장소를 지배했던 권력의 상징물들이 퇴적된 역사지층(歷史地層)이다. 현대의 도시 공간은 건설과 파괴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공간이며, 이런 행위는 항상 상당한 정치적 긴장과 사회적 갈등을 초래한다.


오늘날 도시민들 사이의 집단적 대립을 유발하는 가장 큰 사회적 이슈는 개발, 재개발, 신축, 철거 등의 행위다. 또 국가 차원에서든 지자체 단위에서든, 권력을 쥔 사람은 흔히 대규모 토목 건설 사업으로 자신만의 특별한 치적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이 역시 ‘차별화’라는 명목으로 그 이전 권력과 대립한다. 그래서 현대 도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구조물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팽팽한 긴장 관계, 때로는 적대적 관계까지 맺는다. 다원적 권력이 지배하는 현대 도시의 경관은 그 자체로 정치적·사회적 갈등과 대립, 타협의 산물이다. 한 공간 안에서 여러 차례의 권력 이동을 경험한 역사 도시의 경우에는 여기에 ‘과거와 과거의 대립’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추가된다.


1995년 구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를 둘러싼 논란의 와중에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상당한 곤혹감을 느꼈다. 일제가 조선총독부 청사를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지은 것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왜소화하고 그를 총독 정치와 직관적으로 대비시키려는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그것은 조선의 수도로 조영된 서울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선총독부 청사도 역사의 일부가 되었고, 그렇게 뒤틀린 정체성이 서울의 새 정체성이 되었다. 당시 철거 찬성론자들은 일제가 왜곡한 서울의 정체성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반대론자들은 그런 행위 자체가 일종의 역사 왜곡이라고 맞섰다. 게다가 아무리 잘 복원한다 해도 모형일 수밖에 없는 건물들을 짓기 위해 문화재 가치가 있는 건물을 허무는 것은 반문화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구 조선 총독부 철거로 모습을 드러낸 경복궁 근정문과 근정전(1996년)/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출처 :경향DB)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광화문광장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경복궁이다.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이 그대로 있었다면, 광화문 주변은 물론 인근 삼청동이나 통인동의 모습도 분명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요컨대 특정 장소에서 맺어진 ‘과거와 과거의 대립 관계’를 처리하는 방식이 그 장소의 미래상을 결정한다. ‘과거와 과거 사이의 대립’을 해소하는 문제는 많은 역사 도시들에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오래된 것들을 모두 보존하는 도시는 생명력을 잃은 ‘화석 도시’이지 역사를 자원으로 삼아 새 문화를 만들어내는 역사 도시라고는 할 수 없다.


2009년 이대 동대문병원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보았을 때, 조선총독부 청사 철거 때와 비슷한 곤혹감을 느꼈다. 1892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여관(保救女館)의 분원으로 문을 연 이래 120년 가까이 한 자리를 지켜온 유서 깊은 병원이 철거된 것은 분명 일대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시는 ‘디자인 서울’이라는 기치 아래 국제적 명소가 된 동대문 주변의 경관 개선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필자가 곤혹스러웠던 것은 동대문 주변의 전통 경관 회복과 한국 최초 여성병원의 장소성 유지 사이에 경중을 따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때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별다른 논란이 없었다.


최근 보구여관 분원인 볼드윈시약소의 병설 예배당으로 출발한 동대문교회 철거 문제가 새삼 논란이 되고 있다. 철거 반대론의 핵심은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120년 된 교회를 허무는 것은 반문화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옛 건물은 1970년대에 교회 스스로 허물었고, 성벽을 타고 앉은 한옥 건물은 여러 차례의 증·개축으로 원형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다. 남은 것은 ‘장소의 역사성’뿐인데 그나마 동대문병원 철거로 인해 태반이 손상돼 버렸다. 누대에 걸쳐 그 교회에 다닌 신도들의 안타까움에 충분히 공감하면서도, 이제는 동대문과 성벽 사이의 시각적 연결성을 회복하는 쪽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다만 그 ‘장소의 역사성’을 신도들만의 것에서 공공의 것으로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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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다수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특히 노조를 갖지 못한 비정규직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박근혜 후보가 시종일관 강조한 민생, 즉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든 책임지겠다는 약속이었다. 공약의 세세한 부분까진 다 몰라도, 복지와 민생 약속은 지킬 것이라는 기대감에 ‘변화’가 아니라 ‘안정’을 선택한 것이다.


박근혜 후보 당선 전후만 해도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던 그들이 최근 입을 닫기 시작했다. 집권 280일인데 벌써 기대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기초연금·노인연금 공약 파기에 이어 ‘국민통합’ 슬로건은 온데간데없고 온갖 종북과 공안 몰이로 편가르기에 여념이 없다. 엊그제는 이석기와 통합진보당, 어제는 공무원노조와 전교조, 오늘은 가톨릭 사제단, 내일은 또 어디란 말인가?


정국이 시끄러운 사이 박근혜 정부는 먹고사는 문제를 더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도시가스·우편료·택시요금에 이어 지난달 전기요금이 평균 5.4% 인상되었다. 전기로를 사용하는 철강업체는 벌써 철근 가격을 인상했고, 시멘트 제조사들도 가격 인상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렇다면 평범한 시민들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철도와 지하철 요금 등 전기를 주로 사용하는 상품가격이 오르리란 것을! 가정용에 비해 산업용 요금을 더 올렸다는 얘기는 생색일 뿐, 정부와 기업들은 가격 인상이란 방식으로 노동자·서민에게 모든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가스 민영화가 통과되면 난방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고용률 70%’를 달성한다며 내놓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은 기초공사부터 부실임이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눈치 보느라 기업들이 만든 일자리 대부분은 1~2년짜리 저임금 일자리뿐이어서, 새누리당 내에서조차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일자리 창출효과가 분명한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여야 대치와 정쟁이 계속되는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복지재정 확충’ 역시 뒷걸음질이다. 증세 없이도 복지가 가능하다는 헛소리를 해대더니, 최근에는 국가부채가 위기라며 엉뚱하게도 공공부문 노조들 공격에 나섰다. 현오석 부총리는 그동안 노조 요구를 들어주느라 경영이 부실해졌다는 핑계를 댄다. 도대체 무슨 요구를 들어줬단 말인가? 당연히 답을 못한다. 그동안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100% 정부 뜻이 관철되었으니 말이다. ‘창조경제’? 그동안 존재감도 없던 경제부총리는 노동자 쥐어짜기가 창조경제라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대기업들은 위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돈벼락을 맞고 있다. 10대 그룹 사내유보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무려 477조원으로 유보율이 자기자본 대비 1668%로 치솟았다. 3년 전 사내유보금(331조원)보다 146조원이 늘었고, 유보율(1,376%)은 292%포인트가 올랐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에 온갖 특혜와 규제 완화를 밀어주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그들에게 세금을 더 물릴 생각은 절대로 없단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2년 2월 7일 (출처 :경향DB)


그런 와중에 정부는 부가가치세 인상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까지 정부는 부가세 인상안을 부정하고 있지만, 국책기관인 조세연구원이 현행 10%의 부가세를 12%로 올리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고, 후보 시절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스승 역할을 했던 김종인씨까지 나서 부가세 인상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세금 인상 없이는 복지는커녕 정부 운영 자체가 어려우니, 증세를 하되 재벌 대기업이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 호주머니를 털자는 것이다. 부가세 인상은 고스란히 상품 가격과 물가 인상으로 돌아와, 먹고사는 문제는 더욱 팍팍해질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와중에 삼성전자의 법인세 부담률이 중소기업보다 낮다는 주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세액공제를 비롯해 천문학적인 세금을 깎아주기 때문이다.


법원에서 불법파견 판결이 나면 특별근로감독과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하겠다던 공약은 또 어디로 갔나? 지난주엔 현대차와 한국GM에 이어 쌍용차도 불법파견이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는데 말이다. 박근혜를 지지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입을 닫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니, 지금 그들은 침묵이란 방식으로 목이 터져라 이렇게 외치고 있다. “민생 문제는 책임지고 해결한다며! 도대체 힘들어 죽겠는데 먹고사는 문제 어떻게 할 거냐고?”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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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늦은 저녁에 버스를 탔다. 가야 할 곳이 낯설 줄 알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버스로 오갔던 길 중간쯤이었다. 그런 지 몇 년째이니 더러 버스 창 너머로 봤을 게다. 아무래도 무심히.


가전 판매장 앞 한쪽에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노래가 울려 퍼졌다. 목적지에 왔건만 금방, 너무 가까이서 사람들을 보게 되니 발걸음이 주춤했다. 그 앞으로 지나거나 옆에 끼어 앉을 용기가 없었다. 몸을 돌려 횡단보도를 건넜다. 사람들 위로 깃발이 보인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영등포분회’.


신문과 인터넷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죽음을 들은 지 벌써 오래다. 장례식장이든 집회장이든, 마음만 가봐야지 하면서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전 아는 사람들에게 이 죽음을 말하자, 한 사람이 두 눈 벌겋게 한참 울었다. 다른 이들도 마음으로 울었다. 남편들을 봐서도, 아이들이 크는 대로 일터를 찾아 나설 자신들을 봐서도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아니, 같은 사람이기에 울었다. 온전히 ‘노동’을 인정받고, ‘사람’이 모욕당하지 않으며 일하는 게 이 땅에서 과연 가능할까. 당연해야 할 게 왜 그리 어려운 일일까.


삼성전자서비스 협력노조 출범 (출처 :경향DB)


“당신들이 월급 40루피로 나의 육신과 영혼을 샀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산입니다. 나는 당신네들이 몇 년 동안 나에게 책정해 놓은 그 보잘것없는 40루피를 받는 노예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굶어 죽는 것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훨씬 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신네들끼리는 몫을 잘 나눠 가지면서 왜 우리는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도 작가가 쓴 단편소설 <월급 45루피>에 나오는 벤카트 라오처럼 저런 사직서를 날마다 가슴에 쓰는 누군가도 있을 게다. 일하느라, 딸에게 ‘살면서 느끼는 소박한 즐거움’조차 누리게 해주지 못한 아빠는 딸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시에 퇴근하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과장에게 당당히 내민 저 사직서도 ‘생계’ 앞에서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선심 쓰듯 과장은 월급 5루피 인상을 회사에 얘기해뒀다고 했다.


관리자의 선심이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꾸고자 노조를 만든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든 뒤 고난이 크다. 얼마 안 남은 11월, 밤바람 한가운데 앉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직서가 아니라 유서를 써야 했던 동료는 어린 딸에게 부질없는 약속조차 해줄 수 없다.


그이들 앞으로 노동자들이 지나간다. 비닐로 싼 짐을 오토바이 뒷자리 가득 넘치도록 싣고 달리는 퀵서비스 노동자, 택시 노동자, 화물차 노동자. 차를 세워 물건을 꺼내 급히 달려갔다 얼른 차에 오르는 택배 노동자. 횡단보도를 건너는 여성 노동자들. 언젠가 일터에 설 학생들. 깃발과 구호는 지나는 이들 마음에 무얼 새겼을까. 다음 횡단보도 앞에서 녹색불이 여러 번 켜지는 동안 본 무수한 사람들. 대부분 노동자로 살 텐데 ‘노조’를 만들어 사는 게 퍽 힘겹고 고통받는 사회라니.


횡단보도를 건넜다. 판매장 유리문에는 4대 조사기관 고객만족도 1위라 적힌 냉장고 광고지가 가득 붙었다. 일하는 노동자 만족도도 1위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께, 16년을 쓴 세탁기를 더는 고칠 수 없어 바꾸기 전까지 몇 차례 뒷수리를 받아 그 수명을 늘려 썼다. 그때 수리해준 분들마다 마지막에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전화가 오면 잘 좀 부탁한다는 말에 내가 참 미안했다.


그렇게 노동자를 평가하는 전화나 문자를 받는 일이 많았다. 은행 업무 뒤에도, 휴대전화 문제로 상담을 해도 여지없다. 그때마다 나는 매우 만족을 말하거나 눌렀다. 수화기 저쪽에서든, 눈앞에서든 일하는 이들 모두 최선을 다했다. 다들 고객을 위해 애쓰는데 기업은 그런 노동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쥐어짜 ‘부’를 이룬 건 아닌지.


세계인권선언 23조에서는 “모든 노동자는 자신과 그 가족이 인간적으로 존엄을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그것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노동자가 이 권리와 존엄을 인정받지 못한다면, 고객만족은 기만이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버스로 이 길을 지날 때면 나는 고개 들어 여길 볼 게다. 아무래도 유심히.


박수정 | 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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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더 달라고 떼를 쓰면 사측은 조합원을 달래는 방향으로 그간 노사관계를 풀어왔다.” 어느 공중파 기자의 방송 멘트다. “드러누우면 돈을 더 주더라는 학습효과와 조합원 간 상대적 박탈감 등이 버무려져 강경 기조를 택하게 만든다, 이런 얘기죠.” 앵커도 거들었다. 생방송에서 이들은 애써 가려 쓰고 골라 쓴 단어를 주거니받거니 했다. 교섭을 더 달라고 ‘떼쓰는 행위’로, 파업은 ‘드러눕’는 것으로 표현했다. 노동조합을 이성은 없고 떼나 쓰고 드러눕기나 하는 집단으로 매도한 것이다. 근본 없는 기사는 여과 없이 전국에 전달됐다. 강성노조가 결국 경제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친다는 결론으로 보도했다. 노동조합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이 같은 기사가 최근 부쩍 늘었다.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에 ‘회사 살릴 수 있도록 민주노총 탈퇴하게 해달라’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사실과 주장이 섞인 기사는 오로지 민주노총 혐오를 유포시키려 애쓰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결국 그들이 말하는 강성노조란 정권 비위에 거슬리고 자본의 무한 통제에 저항하는 이들이다.


오열하는 밀양 주민 (출처 :경향DB)


무덤을 팠다며 호들갑떤 기사가 온라인을 달군 적이 있다. 바로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에 맞선 주민분들의 저항과 마찰을 다룬 기사였는데 이번에도 조선일보가 한몫했다. 농터와 삶터에서 쫓겨날 수 없다며 주민분들은 밧줄과 무덤으로 저항했다. 방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섬뜩한 절박함이 아닐 수 없었다. 우려됐고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절박함은 막무가내와 교환됐고 간절함은 목숨을 담보로 떼쓰고 드러눕는 것으로 바뀌었다. 전형적인 언어도단이며 기사 왜곡이다. 노조에 대한 왜곡된 기사를 익히 접한 노동자로서 주민분들의 심정이 이해된다. 올무에 걸린 짐승이 발버둥칠수록 발목만 파이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 그들의 언론 프레임 밖으로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그 답답함과 막막함을 우리는 보고 있다. 도시에선 송전탑 지중화 공사로 문화제를 열 만큼 환영하지만 밀양에선 소박한 그 어떤 주장도 땅에 매립되기 일쑤다. 밀양의 눈물이 송전탑을 따라 흐르고 있다.


11월30일 노동자들이 밀양으로 간다. 희망버스 밀양행이다. 빽빽한 햇볕의 고장 밀양에서 따가운 고통의 서릿발을 걷어내기 위한 발걸음이다. 한전은 여전히 주민 의사를 무시하고 보상논리로 상황을 밀어붙인다. 공권력은 어른, 아이 가리지 않는 예의 그 평등한 탄압으로 제복의 권위를 달성하고 있다. 송전탑 공사 중단의 목소리는 오히려 외부세력의 불온한 개입으로 치부된다. 평온하던 밀양의 평화를 망치소리와 헬리콥터 소음 그리고 공권력의 군홧발 소리가 수년째 깨고 짓이긴다. 이시우 할아버지의 분신은 기억에서 멀어졌고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유출 문제는 먼 나라 얘기로 전락했다. 후쿠시마는 다른 지역보다 암 발병률이 7배 높게 나타났다. 심지어 후쿠시마에서 250㎞ 떨어진 도쿄만 하구에서 고농도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다는 보도도 잇따른다. 밥상머리 고등어만 밀어낼 일이 아니라 점차 늘어나는 송전탑을 막아내야 하는 이유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정부의 입장 변화와 독일 시민들의 태도를 우리가 동시에 배울 수는 없는 것인가. 독일 노동자 시민들의 원전 폐기를 위한 ‘드러눕’고 ‘떼쓰는’ 시위에 독일 정부는 8기를 폐기하고 나머지 9기도 곧 폐기한다는 계획으로 응답했다. 원전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밀양 송전탑 문제가 단순히 노인 몇 분의 고향땅 지키기로 좁게 이해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노동자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송전탑에 올랐던 노동자들이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밀양으로 가는 까닭이기도 하다. 희망버스로 사회적 공감과 연대를 온몸으로 받았던 한진, 현대차 비정규직 그리고 쌍용차 노동자들이 선두에 선다. 고통과 고립의 벽을 수년간 더듬어 봤던 이들이다. 연대의 이름으로 노동조합 혐오의 붉은 장막을 걷어낸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고통과 고립의 눈물로 쥐어 짜낸 밀양 송전탑 전기를 우리는 반대한다. 송전탑 아래에서 감전된 평화와 백골로 변해가고 있는 하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우리는 밀양행 희망버스를 탄다. 정권과 보수언론이 물 만난 고기마냥 깨춤 추듯 노동자 시민을 우롱하고 겁박하는 까닭이 우리가 제대로 ‘드러눕’지 않고 지속적으로 ‘떼쓰’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이창근 | 쌍용차 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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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HIV/AIDS 감염인 인권운동을 하는 친구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장기요양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한 감염인이 병원 측의 적절한 조치 부족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이에 인권활동가들이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를 진정했다. 이 병원의 에이즈환자요양사업은 병원 측의 사적인 ‘선의’나 환자 부담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국가가 지정하고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감염인을 위해 이 병원에 설치된 72개의 병상과 간병인, 상담 간호사 등에 대한 비용 일체를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당연히 그 돈이 제대로 감염인의 생명보호를 위해 쓰이고 있는지를 잘 관리 감독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 이번 사건은 그 책임을 소홀히 해서 빚어졌다는 게 활동가들의 판단이다.


먼저 증언대회에서 나온 이야기를 보자. 사망하신 분이 이 병원으로 옮기기 전에 “당분간 수액을 꼭 꽂아달라고 전하라”고 원래 치료를 담당하던 의료진이 말해서 그대로 전했지만 요양병원에서는 “수액을 맞아야 한다면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재차 요구했지만 수액이 없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또한 감염인이 호흡곤란이 생겨 자신이 치료받던 “본원으로 보내달라”고 했음에도 병원 측에서 들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병원 측에서는 자신들이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이동하는 데 30만~50만원의 비용이 발생하는데 보호자인 환자 어머니가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결국 이 과정에서 감염인은 자신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아보지도 못한 채 사망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HIV/AIDS 감염인의 처지와 인권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감염인들은 갈 곳이 없다. HIV/AIDS가 만성질환이 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죽을 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것도 남에게 전파할 수 있는 전염병이자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생긴 병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감염인들의 일상생활은 매우 제한적이다. 직장에 알려질까 두려워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꺼린다. 경제적 여력이 없다보니 주거도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이들을 위한 쉼터도 이웃들이 모르게 쉬쉬하며 만들어야 한다. 이런 사회적 배제와 차별 때문에 많은 감염인들이 병이 아니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인도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에이즈 상징 모양으로 배치한 촛불에 불을 붙이고 있다. (출처 :로이터연합)


더욱 문제가 되는 경우는 이번에 돌아가신 분처럼 장기요양을 받아야 할 분들이다. 이들이 갈 곳은 유일하게 이번에 문제가 된 병원이다. 그러다보니 감염인들은 받아주는 것만 해도 어디냐는 태도를 보이더라도 할 말이 없고 다른 것을 요구할 수도 없다.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그러니 그저 생명이나 겨우 연장할 수 있는 곳으로 ‘수용’된다. 실제로 증언대회에 따르면 다른 환자들과 달리 감염인들은 외출이나 산책에서도 제한이 심하고 다른 사람과의 접촉도 통제되었다고 한다. 이런 공간에서 이들의 생명은 완전히 육체적으로만 연장하는 것으로 ‘고립’되고 ‘격리’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그저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것에 감사하라는 공간에 인권은 없다. 인권에서 말하는 생명이란 그저 생명이 아니라 인간의 ‘삶’으로서 생명이다.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로 돌볼 가치가 있는 생명이고 그럴 때 우리는 ‘요양’이라는 말을 쓴다. 만약 그저 생명을 연명하게 하며 그조차도 돈이나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일 때 그 생명을 ‘돌보는’ 행위는 사육에 불과하다. 돌보는 사람은 자신이 생명을 돌보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한 증언자는 이 요양병원이 “환자로 보는 게 아니라 데리고 있으면 돈”이라고 한다며 “요양이 아니라 ‘사육’”이라고 단언했다.


청와대와 여의도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도하며 ‘민생’을 외면하는 한국의 ‘정치’를 개탄하지만 그 정치의 바깥에서 생명을 두고 벌어지고 있는 돈과 인권 사이의 전투, 그리고 그 전투에서 국가와 정치의 책임 방기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이 칼럼을 쓰는 동안 활동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가 한 말이 가슴을 판다. 이 한 사람의 죽음에 경악하며 정치권과 언론을 찾아 뛰어다닐 때 그들은 ‘더 많은 사례와 더 심각한 증거’를 내놓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사람의 생명을 숫자로 환원하기는 자본이나 정치권이나 매한가지인 셈이다. 숫자를 넘을 때 비로소 정치가 시작된다는 말을 실감한다.


엄기호 |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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