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전쟁을 벌일 것 같던 북한과 미국이 8·15를 전후해서 다른 행보를 시작했다. 미 국무·국방장관이 지난 13일 월스트리트저널 공동기고에서 북핵의 외교적 해법을 시사했다. 14일 김정은 위원장은 ‘괌 포위사격 계획’을 보고받고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편 21일 시작된 금년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당초 계획보다 병력을 30%나 줄여서 시작했고 미군 전략자산도 투입하지 않았다.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을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발언을 했다.

국제관계에서 행위자들의 움직임을 시계열적으로 연계분석하면 정세의 큰 흐름이나 변화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북·미가 ‘화염과 분노’니 ‘괌 포위사격’ 같은 말폭탄을 쏟아내던 바로 그 시간에 북·미 외교관들이 물밑접촉을 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대전환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북·미는 작년 10월부터 1.5트랙 대화를 제3국에서 해왔고 뉴욕에서도 북·미 유엔대표부 간 비공개 접촉을 계속했다. 8월15일경 북한 유엔대표부 고위관계자가 워싱턴을 방문했다는 소문도 있다. 북·미 간 물밑접촉이 여기까지 진전되었기에 트럼프의 ‘존중론’과 틸러슨의 ‘대화경로 모색’과 같은 발언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돌발사고만 나지 않으면 북·미 간 물밑접촉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시간문제다. 북핵 6자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물론 북한은 단거리 발사체 발사와 같은 저강도 무력시위는 전략상 계속할 것이다. 문제는 회담재개의 조건이다.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보여야 6자회담을 시작할 수 있다는 기존입장을 미국이 계속 고수한다면 회담은 시작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은 2015년과 2016년 초, 자신들이 핵개발을 동결할 테니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고 6자회담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중국 왕이 부장이 이걸 쌍중단이라 이름 붙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후의 첫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쌍중단으로 넘어갈 수 있는 디딤돌이 마련된 것이다. 군사훈련 ‘규모 축소’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유예’를 조건으로 6자회담을 시작하고, 진전 상황을 봐가면서 쌍중단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후 비핵화와 평화협정 문제를 투 트랙으로 타결해 가는 쌍궤병행으로 나가야 한다. 사실 쌍궤병행은 2009년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3번(2, 7, 11월)이나 언급한 북핵 문제 해법과도 통한다.

8월27일 북한은 노동신문 논평에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헛소리’라고 험담했다. 남한과는 핵 문제 논의할 일이 없을 것이니,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이나 바로 세우라고 요구했다. 아마도 북·미 간 물밑접촉에서 희망이 보이니까 자신감이 넘쳐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북한이 못 보고 있는 중대한 측면이 있다. 한국이 현실적으로 핵 문제에 대한 결정권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미국이 유연하게 북한과 협상하도록 권고할 수 있는 힘은 물론이고, 6자회담을 성공적으로 진전시키는 데 한국의 역할은 절대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토대로 미국의 대북정책을 조율할 수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한국 빼고 북핵 6자회담은 성공할 수 없다. 북한은 이걸 알아야 한다.

동북아의 국제정치구조상 한국이 운전석에 앉아야 북한에도 유리하다.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려면 남북관계를 복원해야 한다. 9월 이후 새로운 정세 흐름이 나타나면,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 개최를 재촉구하는 것이 좋겠다. 문재인 정부가 실제로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려면 북한이 회담 개최 조건으로 내건 ‘김련희와 류경식당 여종업원 송환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매듭지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이산가족 상봉은 물론이고 남북대화의 물꼬도 트기 어려울 수 있다. 남북관계를 복원하고 한반도 운전석에 앉기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가 대승적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황재옥 | 여성통일외교포럼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자본주의 안에서 자본주의를 회피하고자, 생활세계를 설계하고 구성하자는 전략과 자본주의를 반대하고 전복하고 넘어서자는 전략은 애초에 틀거지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잘못된’ 자본주의를 새로 고치고 바로잡자는 전략이 운동, 그것도 진보 좌파의 전략으로 대두하고 있다. 그것도 국내와 전 세계적으로 말이다.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심히 우려스러운 반자본주의담론 회피 전략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 한국의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한 경제학자의 기괴한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는 한국의 자본주의를 정말 자본주의답게 만들자고 말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일 뿐이다. 자본주의에 왜 규범적인 태도를 취하나? 나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듯하지만, 사실은 착한 자본주의를 꿈꾸는 것이다. 아니면 자본주의의 문제를 반자본주의가 아닌, 비자본주의적으로 회피해보자는 것이다. 자본주의 안에서 어떤 ‘생활세계’를 구축해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자본주의와 이 생활세계는 어떻게 연계되는가’라는 문제에 봉착하고 만다. 이는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도, 기본소득도, 재벌체제 개혁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여기에는 당연히 반대와 긍정이 있다. 반자본주의 담론은 요즘 거의 고사상태이므로 후자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좋은 자본주의는 긍정하고 심지어 사회운동은 좋은 자본주의 만들기에 복무하자는 최근의 흐름은 자본주의 앞에서 일종의 사상적·정치적 무장해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와 상생하고 자본주의를 회피하고 심지어 자신의 ‘대안’이 바로 자본주의 살리기라고 말하는데, 이게 자본주의 앞에 무장해제가 아니라면 무엇인가?

“삼성 바로잡기”라는 한국 노조운동의 프레임을 예로 보자.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묘하다. 삼성을 바로 고쳐서 좋은 재벌을 만들자는 것인가? 아니면 기업이 공공재라는 것인가? 기업이 공공재라면 그럼 국유화 아니면 사회화된 것인가? 제 아무리 좋은 기업도 자본주의 사적 소유를 벗어나지 못한다.

즉 아무리 망해가는 기업을 살려놔도 그것은 누군가의 소유로 된다. 혹은 아무리 나쁜 기업을 좋은 기업으로 만들어놔도 그것은 누군가의 것이다.

우리는 이미 IMF 외환위기 때 경험했다. 국가는 수십조원을 들여서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인수·합병 매각을 단행하고, 그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세금을 퍼부었다. 그렇게 인공호흡하여 살려낸 기업은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단지 기업을 ‘경영’할, 아니 ‘소유’할 주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거의 0원으로 팔려간 기업도 있었다. 그 기업을 얻은 자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한국 자본주의도 더 막강해졌다. 마찬가지다. 삼성을 아무리 바로 고쳐봤자 그 소유의 끝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근데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를 새로운 재벌 반대운동이라고 실천하고 있다. 아마 누군가는 희색이 만면할 것이다. 족벌자본, 1인 소유의 재벌을 바꿔서 체질 개선하고 합리화시키면 그것으로 배당금 더 받고 주가 더 올리고, 그리고 1인 소유의 기업을 탈피해 주주자본주의, 관리자본주의의 이익을 다 함께 누릴 수 있다, 단 공유한 사람들끼리. 일단 이것부터 성취하고서 다음 대안을 말하겠다고? 재벌을, 아니 자본주의를 좋은 자본주의 대 나쁜 자본주의로 규범적으로, 아니 가치 판단의 대상으로 삼아버리고서 어떻게 반자본주의가 가능할까?

문제는 요즘 나온 이른바 대안 전략들 대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해서 이 사회 내 소수 좌파의 분발이 필요하다. 박근혜 퇴진 촛불은 ‘혁명’이라고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회체제도, 정치체제도 건드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혁명이 아니다. 아마 그것은 혁명을 선제적으로 방어하는 예방혁명일 수는 있겠다. 물론 그조차 ‘혁명’ 이후 혁명의 시대가 과연 펼쳐질지에 달려 있지만. 하지만 지금은 혁명이라는 말을 하기엔 너무나 ‘반혁명’적, 즉 개량의 시대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버버리, 네슬레, 구글, IBM. 전 세계 유명 글로벌 기업이다. 서점에 가면 기업 성공 사례 책들도 볼 수 있다. 혹여 영국에 여행 간다고 하면 ‘버버리(Burberry)’ 옷을 사달라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는 시간이 지나 어느덧 우리들에게도 친숙한 브랜드가 되었다. 물론 가격은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최근 이 회사 직원 임금을 보면서 다른 생각도 들었다. 올해 직원 시급이 9.75파운드(약 1만4294원)라고 한다. 바로 영국 런던의 생활임금재단이 정한 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생활임금’은 ‘기본소득’과 함께 주요 정책 의제였다. 반면 우리나라의 생활임금 인지도는 낮다. 아직은 시청이나 구청의 저임금 비정규직에만 적용되다 보니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인터넷 구글에 검색하면 ‘living wage(생활임금)’ 관련 내용이 603만개, ‘최저임금’은 3770만개 정도 나온다. 그만큼 최저임금에 비해 생활임금은 낯설다. 생활임금은 1994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처음 시작되었고 영국은 2005년 런던에서 도입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는 최저임금 못지않게 생활임금 논의가 무척이나 활발하다. ‘생활임금계산기’라는 사이트를 통해 각 지역별 상황과 수치도 공유한다.

생활임금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수준으로서 임금’ 혹은 ‘기본적인 욕구를 포함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임금’ 정도로 정의된다. 생활임금이 처음 시작된 미국이나 영국을 보면 그 역사적 배경은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산업화 초기 생활임금은 노동자들의 인간적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제시되었다. 저임금에 매력을 느낀 사용자들이 여성과 아동을 12시간 이상 일을 시켜도 괜찮을 때였다. 그래서 생활임금은 “그 사회에 어떤 임금이 필요한가?”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당시 생활임금은 가격으로서 시장에 맡겨진 임금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 가능한 임금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3년부터 생활임금 조례가 만들어져 현재 102곳에 제정돼 있다. 하지만 실제 생활임금은 88곳(35.9%)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문제는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도입이 안된 곳이 더 많다는 점이다. 영남지역은 생활임금을 시행하고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

그나마 생활임금 적용 대상도 서울을 제외하면 지자체 소속 노동자에 한정된다. 규모도 크지 않다. 생활임금 산정 기준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 대부분 기본급, 식비, 교통비를 산정 기준으로 하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도 없다. 적용 범위를 민간위탁이나 공공조달 업체로 확대해야 하는데 규정과 예산 걱정을 먼저 한다. 사실 재정을 걱정하면 할 수 있는 정책은 하나도 없다.

생활임금은 일의 성격이나 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임금, 그저 최저 시급에 맞추어 일을 시키는 임금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생활임금의 목적은 명확하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향상시켜 빈곤을 줄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운 삶, 즉 안정된 생활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임금은 어느 정도일까. 현재 지자체 생활임금은 평균 7623원(월 158만7000원)이다. 곧 대부분의 지자체가 내년도 생활임금을 결정한다. 2018년 최저임금이 7530원으로 결정되면서 지자체에서 많은 고민이 있다고 한다.

정부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밝혔기에 이제 생활임금은 어떤 목표를 가져야 할지 함께 고민할 시기다. 현재 생활임금을 시행하고 있는 곳은 임금불평등이 심각한 국가들이다. 미국보다 늦게 출발한 영국은 3249개의 기업들이 생활임금 지급에 참여하고 있다. 매년 가을이면 1주일 동안 생활임금 주간을 지정하기도 하고 인증제도 시행한다. 영국에서 대학과 병원 그리고 민간기업까지 생활임금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그래서 우리의 생활임금제도는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한다. 낮은 최저임금을 견인하기 위한 목적에서, 적용 범위의 ‘확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핵전쟁 위협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서 시작한 북핵 위기 25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북한과 미국은 상황을 더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한국은 한길밖에 없다. 정파와 정권과 관계없이 북핵 위기 해결의 독자적 개입점을 확보해야 한다. 독자적 개입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한국이 역할을 더 해야 한다. 이것이 출범 100일을 맞는 새 정부의 중요한 과제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7년 8월8일, 북한이 미국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지 않으면 ‘세상이 보지 못한’ 불바다와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트루먼 전 대통령이 1945년에 일본이 항복하지 않으면 ‘지구상에 없던’ 폐허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핵무기 추가 사용을 경고한 것처럼 매우 심각하다. 그리고 충격적이다. 과연 트럼프가 이러한 말을 할 때,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미리 조율을 했을까?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새 정부는 미국과의 안보동맹을 강화하면서도 독자적 영향력을 확보해야 한다. 어려운 과제이다. 그러나 슬기롭게 해결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이 없다.

먼저 북한과의 접점을 확보해야 한다. 북한은 핵우선주의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이라는 방법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구소련은 매우 뛰어난 핵능력을 보유했지만 붕괴했다. 핵무기가 있다고 해서 그 자체가 체제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북한이 미국이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라면, 이는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많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하는 것이다. 북한에 핵이 없을 때에도 미국은 북한을 공격하지 않았다. 1953년 휴전 후 그동안 왜 한반도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한국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일으킨다면 이는 한·미동맹의 해제를 의미한다. 핵무기가 북한 체제를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미국의 북한 공격을 막을 유일한 방법도 아니다. 그러니 북한은 핵무기 우선주의 노선을 변경해야 한다.

둘째, 한국도 분명한 행동을 해야 한다. 독립 변수로서의 자율적 공간과 영향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한·미 안보 태세를 확고히 하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동맹이란 말 그대로 동맹이다. 우리가 독자적인 힘을 갖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한국은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관계에서 외교와 군사에서 독자적 변수로서의 능력과 영향력을 가져야 한다. 이 점에서 평시의 연합작전 능력도 독자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시 연합작전 훈련 작전권도 환수해야 한다.

한국은 1994년에 평시 작전지휘권을 환수했다. 그러나 ‘코다(CODA)’라고 약칭하는 다섯 가지의 연합위임권한 사항에 대해서는 평시에도 한미연합사 사령관이 행사하도록 미국과 합의했다. 여기에는 평시 연합훈련의 계획과 지휘권도 포함되어 있다. 즉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평시에도 연합훈련에 대한 계획과 지휘권을 갖는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일본의 자위대는 주일미군과 연합훈련을 하지만, 연합훈련을 계획하고 자위대를 지휘하는 권한은 통합막료장이 가지고 있다. 일본에는 아예 일·미 연합사령부라는 것이 없다. 한국이라고 달라서는 안된다. 한국군이 다른 나라와 연합훈련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권한은 당연히 한국이 행사해야 한다.

그리고 전시 대비 작전 계획권도 환수해서 한국이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전시작전계획(OPLAN)도 ‘코다’에 포함시켜 한미연합사 사령관에게 주어 버렸다. 작전 계획을 최종적으로 심사하고 승인할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미국 합동참모의장에게 있다.

한·미 안보를 강화하는 것과 한국이 독자적 안보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일본의 사례도 있다. 독일과 나토의 관계도 같다. 핵전쟁 위협을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우리의 독자적 능력과 영향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길이 없다.

<송기호 | 변호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6일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안 2371호는 북한 총 수출액의 3분의 1가량 타격을 주리라 예상됩니다. 게다가 이달 중순부터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훈련이 시작되죠. 북한이 추가적 도발을 예고하면서 8월 위기설이 돌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북 제재, 한·미 군사훈련, 북한의 반발, 위기설 증폭 등에도 불구하고 이후 진정국면으로 이어지는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한국 시민들은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서구 언론에서 연일 뉴스로 다루고 있음에도, 이러한 평온함은 남북이 싸울 수 없는 한반도 현실을 반영한 겁니다.

이와 더불어 반세기 넘게 변하지 않는 현실은 미국의 지배적 영향력입니다. 사드 배치는 가장 최근의 예입니다.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핵은 한국 안보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결정적 요소는 아닙니다. 장사포 등 재래식 무기와 단거리 미사일이 주요 위협이죠. 사드는 이와 상관이 없는 무기체계입니다. 그나마 수도권은 성주 사드 방어권 밖에 있습니다. 사드가 한국 방어용이 아님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한국 안보와 사드를 연결하는 알쏭달쏭한 소리만 쏟아냈습니다. “사드 배치는 나날이 고조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국가적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린 자위적 방어 조처”라거나 “잔여 사드 발사기의 조기 배치” 등을 통해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동결”시키고자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죠. 앞은 박근혜의 2016년 발언이고 뒤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발언입니다. 이런 주장이 흐리고 있는 사실은 사드가 미국 방어용이라는 점, 한반도 안보의 정책은 미국 안보와 얽혀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와중에 한국 정부는 마땅히 꺼낼 외교카드도 없어 보입니다. 금강산 관광은 잊힌 지 오래고 개성공단은 어처구니없게 문을 닫았습니다. 지원을 ‘퍼주기’로 매도하는 정치공세도 사납습니다. 외교라는 것이 줄 게 있어야 하는데 한국이 쥔 것이라고는 헛기침뿐이죠.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코리아 패싱’을 걱정합니다. 북한이 대화의 상대로 한국을 무시하고 미국을 지목할 만합니다.

이번 ‘위기’가 일상적이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에 줄 ‘선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로 미국과의 평화죠. 북한은 크고 작은 도발로 한반도의 평화를 깨뜨릴 수도, 이를 유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 무대는 주로 한반도에 국한됐었죠. 이제 미국의 평화를 위협할 수 있게 됐습니다.

물론 굉장히 작은 가능성이지만 그 결과가 끔찍하기에 무시할 수 없죠. 거꾸로 평화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핵과 미사일이 발전될수록 북한과 미국은 테이블에 앉을 공산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오랫동안 원했던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미군의 철수입니다. 미국이 이를 당장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수 있죠. 북핵이 현실적 위협이 되는 수준에 오르면 미국은 한국을 지킬 의지가 약해질 겁니다. 북·미 대립이 미국 본토로의 핵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을 지킬까요? 그러지 않을 공산이 있습니다. 북·미 간 타협으로 미군 감소나 철수도 가능합니다. 여기에 커져만 가는 중국 입김이 실리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지죠.

설마 싶지만 1979년 중국과 국교 정상화가 되면서 하루아침에 대만을 버린 전력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1950년 맥아더 장군이 “가라앉지 않는 항공모함”이라고 부른 대만의 가치도 1979년 상황에서는 급락했듯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언제 폭락할지 알 수 없죠.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요? 미군이 없는 한국을 준비해야 합니다. 한국만의 국방정책, 자주적 대북외교 프로그램, 지역안보를 넓게 보는 독자적 프레임을 짜야 합니다. 준비할 시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끊이지 않는 군내 인권유린, 만성화된 방산비리, 성조기를 휘두르는 극우. 그 미래를 준비하기는커녕 논의를 시작하기에도 벅차보이는 한국의 모습을 보며 드는 질문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사람 중심 경제를 내세운 새 정부가 들어선 덕분일까, 누구나 뻔히 알고 있던 갑질이 마치 전혀 새로운 일인 양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소란 한복판에 문화사회학자인 나에게는 오히려 ‘졸질’이 눈에 들어온다. 졸질이란 서로가 서로를 졸로 보고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갑질이 전통사회 양반이 상놈을 부려먹는 작태가 왜곡된 방식으로 되살아난 것이라면, 졸질은 상놈끼리 하대하는 습속이 이어진 것이다. 상놈끼리는 상대방이 이룬 성취가 하찮아 보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우습게 본다. 문제는 상대방이 외부집단의 타자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집단 성원이라는 점이다. 같은 집단 성원을 졸로 대함으로써 결국 자신도 졸이 된다. 집단 전체가 졸이 됨은 물론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과 학문 세계를 보자. 한때 지성의 장으로 추앙받던 대학은 시장이 단기적으로 요구하는 인재를 맞춤 생산하는 위탁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여기에는 교육당국이 큰 몫을 했다. 학령인구가 급감한다며 대학 정원 줄이기에 나섰다. 그냥 줄이라고 밀어붙이기에는 뭐하니까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라며 모든 학과를 시장친화형으로 특성화하라고 들볶는다. 대학은 이러한 요구가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뻔히 안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이 내려보내는 사업비를 따내기 위해 열을 올린다. 어차피 등록금이 수년째 동결되어 재정 지원에 목마른 터다. 지표가 제일 중요하다. 그중 취업률은 모든 지표의 알파요 오메가다.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통폐합 대상이다.

대학은 교육당국의 요구를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비웃는다. 시장의 요구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 대학의 학과가 기업의 태스크포스인가? 태스크가 바뀔 때마다 이합집산을 거듭하는 임시부서란 말인가? 학과 자체가 특성화된 것인데, 뭘 또 특성화하라는 건가? 학과 특성에 맞게 잘 가르치면 될 일 아닌가? 융합, 융합 하는데 융합도 전공을 깊이 배워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융합이 무슨 조각난 쇠붙이 용접인가? 얇고 넓은 지식 백날 배운다고 융합이 어찌 가능할까? 교육당국도 이런 속내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은 요구하고 대학은 따른다. 짝짜꿍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졸로 본다.

학문 세계는 또 어떤가? 학자들은 교육당국이 정한 지표에 따라 연구 능력을 평가받기 위해 피 말리는 단기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전투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매년 평가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영어로 써서 외국 학술지에 내면 논문 한 편당 두세 편 쳐준다는 것이다. 공공성을 추구하는 국가기관이 국민이 낸 세금을 가지고 자기가 개발한 지표는 100으로 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외국 사기업이 만든 남의 지표를 200이나 300으로 한다. 한국어로 쓴 논문을 졸로 보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우스꽝스러운 현실에 한국어로 글을 쓸 때마다 자괴감을 느낀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한국어로 쓴 글을 우습게 알고 한글 논문은 인용하지 않고 영어 논문만 참고문헌에 잔뜩 나열한다. 영어 논문 번역해주는 업체들만 신났다. 더 좋은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창의적인 연구와 제자 양성에 전념하는 대신에 외국 학술지에 논문 싣는 방법에 몰두한다. 그런 연구자를 우수학자라며 교수로 임용하고 연구비를 지원하고 상을 주는 웃기는 사회. 국내박사, 특히 지방대 국내박사는 전혀 설 자리가 없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학문공동체가 형성될 리 없고, 더더욱 재생산될 까닭이 없다.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교육당국, 사실상 학문공동체 양성을 포기했다.

대학원은 졸을 생산하는 기관으로 추락하였다. 최근 석사 논문을 없앨 것인지 결정해서 알려달라는 공문을 받고 모든 학과가 난리 났다. 석사 논문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일정 학점만 채우면 자동 석사 학위를 받게 된다. 그러면 지도교수도 필요 없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표절과 짜깁기로 아무도 읽지 않는 학위 논문을 찍어내도록 할 바에야. 그것도, 한국어로. 하지만 이런 형국에 누가 진정 학문을 위해 대학원에 오겠는가? 석사 논문 하나 쓸 능력도 키워주지 못하는 대학원에. 지방대생은 학위 세탁하기 위해 서울대학원(서울 소재 대학원)에 가고, 서울대생(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학생)은 석사 마치고 언어 세탁하기 위해 유학 간다. 미국에 가서 영어로 학위 논문을 써야 졸로 취급받지 않는다. 영어 논문 쓰는 방법을 배워 외국 학술지에 논문을 실어야 그나마 취업문이 열린다. 국내 대학원이 텅텅 비어간다. 어쩌다 박사 학위자가 나온다 해도 지도교수는 제대로 지도하지 않은 학위를 볼품없다 무시하고 학생은 자기가 쓴 학위 논문을 남 앞에 내놓기가 부끄럽다. 졸질 사회가 따로 없다.

최종렬 | 계명대 교수·사회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1심에서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이 블랙리스트 무죄, 위증 유죄라며 석방되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삼성의 뇌물 공여 혐의가 드러나면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에 대한 특검의 구속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고 있지만, 변호인단은 경영권 승계자인 이재용만 모르게 이건희 회장과 삼성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경영 승계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블랙리스트 재판에 조윤선이 없고, 삼성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이재용이 없다. 각본 없는 드라마가 아니라 주인공 없는 법정이 이들의 목표로 보인다.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서유럽 역사를 살펴보면 합스부르크와 부르봉 가문 등 몇몇 주요 가문이 여러 국가를 분봉하여 통치했다. 당시 사람들은 왕족과 귀족은 평민과 달리 ‘푸른 피(Blue Blood)’를 지녔다고 생각했다. 세습에 의한 ‘혈연 엘리트(Blood Elite)’의 통치는 근대 시민혁명 이전까지 당연한 일이었고, 수천년간 의심받지 않았다. 특별한 피를 이어받아야만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권리(주권)가 있다는 왕권신수설을 넘어, 평범한 시민이 공화국의 주인이 되기까지 인류는 오랜 세월에 걸쳐 투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사진)과 박영수 특별검사가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결심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김기남기자 kknphoto@kyunghyang.com·연합뉴스

우리 역시 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으로부터 2017 촛불혁명에 이르는 힘든 과정을 통해 비로소 민주공화국 시민의 정체성과 자의식을 획득할 수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권력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비판이나 성찰 없이 꾸준하게 최고의 권력을 누려온 것이 바로 기업 권력이다. 아니, 온갖 비판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국가권력과 언론권력을 길들이며 불가침의 성역이 되었다.

국가권력과 부당하게 야합하여 결과적으로 외환위기를 자초했지만, 이 시기를 전후하여 비판지성의 생산지가 되어야 할 서울의 일류대학들은 앞다퉈 재벌 기업 총수들을 불러들여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기업 총수들은 보답으로 자신의 이름이나 기업명을 딴 신축 건물을 지어주었다. 기업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언론 역시 재벌이 쥐여주는 광고의 단물에 취해 감시를 소홀히 하고 기업의 나팔수가 되었다.

특히 삼성은 ‘삼성이 하면 뭔가 다르다’는 대중의 인식과 자본에 길들여진 언론의 비호 속에서 그들이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정도에 비해 과도한 지위를 누려왔다. “삼성이 국가 성장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국가경영을 주도한다”는 삼성이데올로기는 민주화 이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초래한 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하나의 신앙이 되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이 경영권을 대물림하면서 국가공동체의 가치 실현을 위한 어떤 책임 있는 태도를 지녀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불러온 삶의 위기 속에서 대중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삶의 척박함, 생존의 어려움은 대중의 분노를 자아냈지만, 이 분노는 연대를 통한 극복이 아닌 자기계발과 계층상승을 통한 각자도생으로 향했다. 기업지배사회가 된 대한민국은 이후 어떤 윤리적 규범이나 규칙에 구애받지 않고 오직 ‘부’의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의 세계가 되었다. CEO의 영웅화가 초래한 참혹한 실상은 ‘갑질공화국’으로 나타났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동안 언론에 등장한 기업 CEO들의 대표적인 갑질만 언급해도 지면을 다 채울 지경이다.

어느덧 3세, 4세에 이르게 된 경영권 승계자들은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지금의 지위를 누리게 된 것일까? 과연 기업은 대한민국의 권력 구조, 경제시스템, 서민과 중소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과 무관하게 오로지 그들의 노력과 혁신으로 성공한 것일까?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기업을 위한 국가”에서 살아가는 기업국가의 국민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민주화 없는 국가의 민주화는 불가능하며, 주권을 능가하는 경영권에 대한 노동자의 참여와 시민의 감독이 필요하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알쓸신잡>의 마지막 회에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타임머신이 가능한가’라는 시청자의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분명 정재승을 향한 것이었다. 유시민은 정재승의 설명을 듣기에 앞서 자신은 타임머신이 가능해도 타고 가지는 않을 거라고 선수를 친다. 그때 정재승은 이렇게 그에게 질문한다. 만일 타임머신이 있어 그걸 타고 내가 꼭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토론의 화두를 전환한 것이다. 유시민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재승은 아인슈타인, 유시민은 세종대왕, 김영하는 태조를 거명했다. 그때 나 역시 그 질문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유재하를 떠올렸다. 1987년 11월1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25살에 생을 마감한 천재 싱어송라이터인 그에게 당신은 조금 있다 교통사고를 당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죽음은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때 유희열이 유재하를 말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출연진 중의 한 명이. 그가 죽었기에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유재하가요제 대상 출신 유희열의 반전의 상상은 서로 대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알쓸신잡>은 서로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여행 중 벌이는 잡다한 지식 수다를 통해 서로 다름과 같음을 이해하는 아재들의 자기발견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잘나가는 아재들의 지적 나르시시즘의 향연 같다”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꼰대들의 탁상공론이다” “먹방 프로그램인지, 여행 프로그램인지, 인문학 프로그램인지 애매하다”라는 지적들 말이다.

이런 비판적 지적들에 아랑곳없이 <알쓸신잡>은 시작부터 대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첫 회 시청률 5.4%로 시작해 7회차 춘천여행편은 7.2%나 나왔다. 요즘 지상파 방송의 주말드라마도 시청률 7%를 넘기기 힘든데, 아재들의 지식 수다가 전부인 <알쓸신잡>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인기를 끈 것은 분명 하나의 미디어 현상으로 볼만하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이들이 여행 간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고, 종방에 소개된 책들이 곧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현상은 마치 <무한도전>의 미디어 효과를 보는 듯하다.

이런 프로그램이 왜 인기를 얻게 된 걸까? 혹자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나영석 PD 사단의 뛰어난 연출 역량을 꼽는다. 어떤 사람은 현존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너무 공공연하게 자극적이고 표피적이어서 시청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5명의 출연진을 등장시킨 캐스팅의 승리라고 말한다.

이런 지적들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느낀 <알쓸신잡>의 미덕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같음과 다름의 감각을 발견하는 데 있다. 동일한 사물과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드러내는 태도, 그러다가도 특정한 상황이 오면 서로 공감하는 순간의 발견, 이런 것들이 <알쓸신잡>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최종회 방송 마지막에 황교익이 김영하를 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의 숨은 감성을 발견하여 좋았고, 그의 머릿속 감성이 내 머릿속으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이 말에 정재승은 곧바로 김영하의 머리가 커서 그의 뇌가 황교익의 뇌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평한다. ‘남성적’ ‘꼰대 같은’ ‘잘난 척’ ‘위험한 미디어 효과’라는 <알쓸신잡>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아재들의 수많은 지적 수다 속에서 발견된 ‘같음과 다름’의 미덕은 칭찬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지식 수다 그 자체가 아니라 지적 대화를 통한 자기발견과 타자에 대한 이해이다. 유시민이 말미에 모두 다 각자 자신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힌 것도 타인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한 그만의 통찰이 아닐까 싶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알쓸신잡>은 수컷 아재들이 타자와의 ‘대화적 상상력’을 통해 풋풋한 자기애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매우 쓸데 있는 지식 수다 이벤트였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북한이 7월28일 미국 본토 중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1만㎞짜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7월4일 미 서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8000㎞ ICBM을 발사하더니, 24일 만에 사거리가 2000㎞나 늘어난 ICBM을 발사했다. 북한 미사일 기술이 이런 속도로 진행된다면, 올 하반기에는 미 동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1만2000㎞ 이상 ICBM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벽 1시에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사드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와 미사일 대응능력 강화를 명령했고, 우리 단독으로도 북한이 절감할 수 있는 압박 수단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취임 초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정책으로 ‘제재와 대화’ 병행을 천명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원칙에 맞고 시의적절했다. 앞으로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비난하는 말 폭탄을 쏟아내면서 유엔 대북 제재를 주도할 것이다. 그러나 7월4일 미사일 발사 제재에 대해서 반대했던 중·러가 이번 미사일 발사 제재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는 입장이다. 미국 주도 대북제재결의안이 안보리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설사 중·러가 동참한들 유엔 제재가 앞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지금까지 유엔 대북제재결의안이 5개 이상 시행되었고 미·일의 단독제재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시간에 비례하여 고도화되었다. 북한을 강력하게 다룰 것이라고 호언하던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북한은 보란 듯이 13회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압박과 제재를 가해도 북한의 도발행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작년에 북한은 핵실험을 두 번이나 하더니, 금년에는 월평균 1.5회 이상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5차에 걸친 핵실험으로 탄두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이룬 후 북한은 미사일 사거리 늘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핵·미사일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그동안 이 문제 해결을 주도해온 미국이라면 북한이 미사일 사거리를 미 본토까지 늘리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와서 유엔 제재니, 독자 제재니, 중·러도 협조하라느니 하는 건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어리석음이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북핵·미사일 정책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오바마-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압박과 제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대북정책으로 천명했고, 문 대통령도 ‘제재와 대화’를 대북정책 기조로 천명했다. 더 이상의 북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서는 ‘관여(미국)’와 ‘대화(한국)’의 물꼬를 트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 프레임은 이미 북핵·미사일 문제를 다뤄 본 미·중의 전략가들이 내놓았다. 중국의 왕이 부장이 제의한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 미국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차관보가 제안한 ‘동결 대 동결(suspension for suspension)-북핵 동결 대 한·미 군사훈련 동결’이 그것이다. 북한도 2015년과 지난해 초 핵개발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맞바꾸는 조건으로 북핵회담 재개를 제의했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그 제안을 거부했고, 북핵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 시간 동안 북핵·미사일의 고삐가 풀린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한 조치는 해 나가야 한다.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우리 정부가 ‘동결 대 동결’ ‘쌍중단’ 같은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입구로 들어가는 정책프레임 전환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압박과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 이것도 박근혜 정부 적폐의 하나로서 청산대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신과 책임감을 갖고 그 방향으로 한·미 간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가동시켜야 하는 책임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황재옥 | 여성통일외교포럼 대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980년대 초반, 남쪽 지방의 시골 읍내에 거주하는 1971년생 J는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을 꼭 챙겨본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허락해 주말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어린 나이에 “존 포드의 기병대물, 히치콕의 스릴러물, 알랭 들롱 주연의 갱스터물” 등을 섭렵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며 우리말을 깨우쳤다고 믿는 그의 소원은 “정규방송 종료를 알리는 시그널이 나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1985년, 사당역 인근에 거주하는 1972년생 P는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의 중학교에 배정받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한다. 그녀에게 나이키 테니스화와 조다쉬 청바지와 함께 “열 장짜리 버스 회수권”은 “80년대식 청소년”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로 이어지는 “시험의 향연들”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속한 8학군이 또 다른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밀 불법 과외가 그것이다.

1987년,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1971년생 K는 부모님이 경영하는 ‘80년대식 빵집’이 전성기를 마감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손님들이 “바게트, 피자빵, 야채빵 등 서울에서 전해온 새로운 종류의 빵”을 구비한 최신식 인테리어의 제과점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조리법을 배워 새로운 빵들을 만들어내지만, 바게트만은 끝내 진열대 위에 올려놓지 못한다. 조리법대로 만들어도 특유의 식감이 살아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다.

거의 유사한 시점, 서울 변두리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1971년생 H는 부모 없고 가난한 집의 아이에게 쏟아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헤비메탈을 탈출구로 선택한다. 독일 밴드 악셉트의 ‘메탈 하트’를 처음 들은 이후, 그는 “미쳐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헤비메탈 음악에 미쳐버렸다”. 그리고 오랜 벗이었던 ‘마이클 잭슨’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위의 J, P, K, H는 1970년대 초반생 소설가의 단편 소설, 즉 김경욱의 <미림아트시네마>, 정이현의 <비밀과외>, 김연수의 <뉴욕제과점>, 백민석의 <이 친구를 보라>의 주인공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이렇게 상이한 지리적·경제적 배경하에 성장한 이 인물들이 상위 10% 이상의 성적으로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대학교에 진학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1989년의 독일 통일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운동권의 영향력은 여전했고, 1970년대 초반생 일부는 그에 휩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3저 호황을 거치며 부모의 소득·자산 증대를 곁에서 지켜본 중산층 출신의 신입생들에게 한국 자본주의의 파국을 이야기하는 선배들은 그리 미더운 존재가 아니었다. 바야흐로 ‘압구정동 오렌지족’과 ‘신세대 문화’에 대한 풍문이 끊임없이 떠돌던 시절이 아니던가.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선배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 그러면 위의 J, P, K, H들은 각각 어떤 모습으로 21세기를 통과하고 있을까? 통계 지표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지만, 두 편의 소설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신경숙의 1995년 작 <외딴 방>에서 1963년에 태어난 서른둘의 소설가에게 그녀의 1930년대생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넌, 우리들 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한편 김애란의 2011년 작 <서른>에선 학원 강사 출신의 1980년대 초반생 주인공이 학원가를 오가는 학생들을 보며 혼자서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자식이 부모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세상’과 ‘젊은 세대의 미래가 바로 앞 세대의 과거와 별 다를 바 없는 세상’. 어쩌면 J, P, K, H는 21세기 내내 후자의 세상을 뒤로한 채 전자의 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각각 고군분투하며, 이미 그 세상에 안착한 선배들의 인생 궤적을 뒤따라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작년 겨울, 이들 모두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겠지만 말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V 드라마 <시그널>이 있었다. 시간대가 다른, 그러나 같은 대한민국 공간에서, 과거의 사람이 미래의 사람에게 절박한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처럼 접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공감하고 함께 힘들어 하고 함께 피흘리고 함께 문제에 직면하고 함께 굴복하지 않으며 함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한다.

시그널은 그런 의미였다. 접속 그리고 연대. 내게 시그널은 접속하라! 그리고 연대하라!는 의미다.

촛불은 다양한 시그널이었다. 이질적인 시그널들이 서로 교차하고 접속하고 단속됐다. 그것은 9년간 우파 정권하에 외로이 싸워온 노동자, 농민, 빈민, 철거민들의 투쟁에 침묵해오던 도시 중산층 시민들이 정권퇴진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이는 과정이었다. 딱 거기까지 우리의 시그널들은 모였다. 그리고 시그널은 역설적으로, 문재인이라는 대통령을 뽑아 성공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흩어졌다. 그리고 지금 새 정부가 만드는 드라마 <시그널>이 펼쳐지고 있다. 모두 그 시그널을 해석 중이다.

tvN 드라마 시그널

그러나 지금까지를 보면, 문재인 정부는 너무 많이, 좋지 않은 시그널도 쏘고 있다. 그리고 과거로부터의 무수한 시그널들을 차단한다. 접속은 제한적이고 연대는 전면적이지 않다. 취임 초 대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일일극을 펼친 정부로선 이 공감력마저 확장 배양하지 않았다면 어이했을꼬 싶다. 누구는 이 감동의 시그널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권이 사회를 향해 쏘는 시그널은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너무 좋지 않은 시그널을 사회로 보내는 첫 번째는 갑을오토텍 사주 측을 변호한 박모 변호사를 민정수석실에 둔 것이다. 그리고 이 노조의 파괴 등에 이름이 등장하는, 로펌 김앤장 출신 신모 변호사에게 국정원의 중책을 맡긴 것이다. 그런데 우파 언론은 이 정부를 ‘친노동’ 정부라고 상찬한다! 그 노조 파괴 때문에 결국 자살에 이른 젊은 노동자 고 김종중의 장례식이 지난 22일 치러졌는데 말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와 폭력적인 대상화에 대한 뒷담화를 버젓이 출판물로 내고 이것이 ‘남자’ 일반인 양 묘사하면서 여성도 남성도 불쾌하게 만든 사람을 의전행정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정권의 실세들이 이를 비호한다, 젊어서 한때의 치기어린 행동이라고. 그들의 변호론은 수많은 성폭행의 가해자들이, 혹은 판결이, 혹은 이 사회가 읊조리는 것과 유사하다. 거의 상식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강간공화국’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습기 살인’의 기업들을 변호한 변호사가 또 청와대에 들어갔다. 국가와 제도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방조하며 피해를 키웠고, 그 기업범죄를 옹호하고 법으로 보호한 변호사들이 있었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죄없는 아이들과 부모들, 소비자들이 안았다. 그렇다면 이 기업범죄에 무심한 사회에 대해, 청와대가 지금 더욱 나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도 이런 사태를 방조·악화시키지 않을지? 나쁜 시그널이다.

그리고 광주항쟁을 기념하는 감동의 자리를 만들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지만, 동시에 5·18 광주를 짓밟은 군부세력의 주모자 전두환을 “영도자”라고 기사를 쓴 기자 출신을 총리로 임명했다. 아무리 시대가 그러한들. 아니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이길래. 신호들이 마구 서로 충돌하고 어색하고 나아가 도착적이다.

꼭 이런 시그널로 답했어야 하나? 과거로부터 오는 절박한 시그널에 이렇게밖에 감응하지 못하나? 결국 문재인 정부의 시그널은 보편적이지도, 철저히 인본주의적이지도 않은, 반쪽의 미완성 시그널, 아니 편향적인 시그널이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땅의 사람들이 잘못하는 대통령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조금은 사라지길 바란다.

진정성을 갖추라. 그 진정성, 과거와 현재의 아픔과 고통, 외로움들이 함께 접속하고 연대했던 그 시그널이 어떤 TV 드라마를 꽤 잘 만든 드라마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니 사회로 쏘아올리는 나쁜 시그널부터 걷어라!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어느덧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10년이다. 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007년 7월 법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은 물론 사회적 논란이 컸다. 법의 필요성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제도의 미흡함 때문이었다. 사실 비정규직보호법 도입 취지는 고용불안과 차별해소 목적이 명확했다. 직장에서 2년 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과 불합리한 차별의 방지였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10년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일부 정책 효과도 확인된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이나 퇴직금 적용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 그나마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보수정부 시기 고용의 질 악화가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16.8%에 불과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줄지 않고 있다. 정규직이 100일 때 비정규직은 48.7의 임금을 받고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근로기준법에나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심의해 의결했다. 전국 852개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용역 근로자 등 비정규직 31만명 가운데 향후 2년 이상 일할 인력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일터는 더 가혹하다. 폭언이나 성희롱 등 비인권적인 문제는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협력업체 소속이기에 보호해 줄 곳은 없다. 입사 후 단 한 번도 사장 얼굴을 볼 수 없던 그들은 2년에 한 번씩 바뀌는 작업복과 출입증을 받을 때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계약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명절 때마다 관리소장의 호출은 부담스럽다. 연말 재계약을 앞두고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리소장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괴롭혀 사표를 쓰게 하기도 한다. 제도적 사각지대가 실질적 사각지대를 만든 것이다. 제도시행 초기 2년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차별시정 신청은 1년에 고작 44건이다.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차별시정을 신청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정부 정책이 개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10년이 됐지만 좀처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5년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9098명의 정규직 전환은 의미가 크다. 특히 정규직 전환자 중 7602명은 청소, 경비, 시설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우리 사회의 빈곤과 불안정의 덫을 제거하는 첫 작업이었다. 여름휴가, 상여금, 교육, 건강검진, 본사 직원 연락망, 정년 퇴임식 등 변화된 일터의 모습이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올해부터는 온전한 정규직 전환과 차별 해소를 위한 실천 과제들도 밝혔다. 정규직과의 임금격차(25%) 축소나 직군 간 통합 및 인사승진 체계였다.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자는 구성원 간 공감대가 형성되자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고 한다. 임금격차는 주로 기관 내 잔여 인건비를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어떤 기관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추가 부담 없이 해결방안을 찾았다. 현장 직원의 인사승진도 시작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서울시 민간위탁기관 등 소규모 사업장의 침해나 차별 등을 맡는 ‘노동조사관’을 신설한다고 한다.

이렇게 서울시 노동정책은 진화하고 있다. 생활임금이나 노동이사제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감정노동자 보호사업도 의미있는 정책이다. 서울시 노동정책은 지방정부라는 한계 속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정책의 연속이다. “우리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소속감, 처음으로 직장에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봤다”는 한 청소 노동자의 말에서 어떤 노동정책이 필요한가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이제 국가는 어떤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시켜 주어야 할 시기다.

김종진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북한의 밑바닥에서 도도히 흐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장마당 시대에서 자유롭게 돈을 벌며 살게 해 달라는 요구이다. 이는 사람살이의 보편적 요구이다. 나는 이를 법치의 요구라고 부르고 싶다. 북한은 법치의 문턱 바로 앞에 서 있다. 이 요구에 응하여 협력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매우 중요하다. 당면한 과제가 개성공단 재개와 나선경제특구의 국제화이다.

북한에 법치가 가능하냐고 반문할 것이다. 북한의 법치는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다.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말은 북한 사람들이 더 이상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등을 배급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 연구자들은 종합시장인 장마당을 비롯해 골목시장, 야시장 등 시장이 북한 사람들의 생활 수요의 80% 이상을 해결한다고 분석한다. 어떤 연구자는 90%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0년에 제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업소법’에 의하면 기업소, 즉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행정기관이나 인민위원회 등이다. 개인은 기업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회사 조직을 만들어 생활 필수품을 만들고 판매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 경제를 해결한다.

이와 같이 장마당 경제와 북한 실정법이 서로 어긋나는 현실은 계속될 수 없다. 북한의 장마당 경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소유권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누가 장사를 하겠는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상업 발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신체의 자유는 또 어떠한가? 상업이 발달할수록 신체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잡히고 갇힌다면 상업이 발달할 수 없다. 법률에 처벌할 수 있는 죄목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어기지 않는 한 국가로부터 처벌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죄형법정주의’라고 한다.

북한의 법치는 가능하다. 법치의 바다를 건널 것이다.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한 법제 변화를 가장 먼저 선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개성공단을 포함한 나선경제특구 등을 통해 북한에 경제 발전을 위한 법제도 도입의 선택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선택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쪽으로 되도록 협력하는 것이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를 북한법제발전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햇볕정책의 의의를 인식하면서도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햇볕정책의 결과가 핵무기 개발이냐는 일부의 반문은 무지의 소산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이 이곳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해서 숨겼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 사찰을 북한에 요구한 때는 1992년이었다. 햇볕정책은 북한 핵개발의 원인이 아니다.

햇볕정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북한과의 경제교류협력이 늘어난다고 하여 저절로 북한의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남북경제협력이 북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매개하는 중간고리인 법치 발전 부문의 중요성을 소홀히 했다.

법치의 바다를 건너야 하는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한 법제 변화를 가장 먼저 선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개성공단과 나선경제특구 등에서 북한에 경제 발전을 위한 법제도 도입 선택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선택이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쪽으로 되도록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햇볕정책의 한계를 넘어 북한과의 경제 협력 교류에서 북한 법치 변화에 대한 계획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 내부의 법치 요구에 터 잡아 북한의 단계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에 협력하는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당면 과제는 개성공단을 다시 여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유엔 제재 속에서도 가능하다. 우리의 의지 문제이다. 그리고 나선경제특구의 국제화이다. 북·중·러 주도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일본도 참여하도록 한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 신냉전을 허무는 법치와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는 324만명에 이르렀다. 아직 휴대전화가 없는 약 2000만명의 북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광주사태’를 쉬쉬하던 시대에 자라난 저는 우연히 눈에 띈 ‘금서’를 보고 광주의 1980년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충격적 상흔이 광주시민 가슴에 아직도 절절히 박혀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흘렀죠.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이번 여름,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전남도청을 찾았습니다.

약간은 더운 평일 아침이었습니다. 텅 빈 광장이었지만 혼자는 아닌 듯했습니다.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는 상투적 표현 말고는 달리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그 함성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그래서 편안히 살아버린 저의 부채의식만큼이나 크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도청은 깔끔한 ‘아시아문화전당’이 돼 있었습니다. 1980년의 기억을 찾는 저에게 직원은 옆에 있는 기념관으로 가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줬죠. 그제야 도청을 둘러싼 논란이 기억났습니다. 2008년 시작한 문화전당 공사 탓에 항쟁의 흔적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반발이 심했고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라는….

광장 앞에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둘러진 테이블과 몇몇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끝에 계신 한 분에게 도청에 관해 여쭤보고 탄원서에 서명했습니다. 계엄군을 상대로 승산은 없지만, 마지막 저항을 벌인 바로 그곳에서 고작 이름과 주소를 적어놓고 뒤돌아서려니 새삼 죄송스럽더군요. 인사를 드린 뒤 멀어져가는 저를 그분이 따라오셨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손을 내미셨죠. 자그마한 핀과 5·18민주화운동 안내 책자를 건네며 멀리서 온 사람에게 줄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삼일빌딩 앞에서 총을 맞았다며 총상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며 멋쩍어하셨죠. 미안하다는 말에, 또 그 멋쩍어하는 얼굴에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1980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과 그 부하들은 오랫동안 굴종과 망각을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헐뜯으며 그 장단에 춤을 추었죠. 전라도 출신이어서 승진에 밀리고, 결혼도 못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북한이 사주했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죠. 민주주의를 피와 몸으로 외친 광주 시민들로서는 어처구니없을 수밖에요.

한국 민주주의는 박근혜 정권을 끝내며 재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한 전남도청은 제 모습을 찾지 못한 채 남겨져 있습니다. 다행히도 문재인 대통령이 복원을 약속했지만, 복원의 정도와 비용, 기존 시설 이전 등 문제와 도전 과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약속, 광주 유가족의 염원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죠. 전 국민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전 국민의 성원과 관심은 뉴욕 9·11 박물관을 가능케 했습니다. 정부와 유족, 전문가 사이에 오랜 대화 끝에 들어선 박물관은 참담했던 비극만큼이나 인상적이죠. 부서진 무역센터가 있던 그 자리에 들어선 박물관에는 휘어진 철근, 부서진 계단, 불타버린 소방차 등 건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습니다. 뉴스, 소방관 교신, 희생자에 대한 추억 등도 잘 전시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꼼꼼히 보지 않아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그날 느꼈던 충격과 슬픔이 온전히 떠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투쟁을 광주는 1980년에 외롭게, 피를 흘리며 해냈습니다. 그 의로운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가족과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와 광주 시민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처절한 기억이 생생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광주를 지나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지켜야 할 아픔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잊고 있는 것은 없는가. 저는 세월호가 그 시작이길 소망합니다. 선체와 유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늘, 기억과 슬픔이 아직 생생한 오늘, 우리는 세월호가 어디서 어떻게 기억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수습과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 기억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 손자, 손녀에게 이 아픔을 그대로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태현 |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911년 3월25일은 토요일이었다. 오후 4시40분, 퇴근을 20여분 남겨놓은 상태에서 8층의 옷감을 재단하는 기계 밑 자투리 천을 모아놓은 통 근처에서 불꽃이 튀었다. 미국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은 10층짜리 건물의 가장 높은 층인 10층부터 8층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공장주는 노동자들이 옷가지를 훔쳐 가거나 몰래 숨어서 휴식을 취한다는 이유로 출입문 두 곳 중 하나를 언제나 잠가두었다. 공장 안에는 공업용 재봉틀과 옷감들, 자투리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공장 안에는 소화 장치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대부분은 미국에 이제 막 도착한 여성 이주노동자로 화재가 일어나기 2년 전이던 1909년 13주간의 파업을 통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지만,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공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화재가 일어나자 공장주는 가장 먼저 열쇠를 들고 탈출해버렸다.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옥상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과 화물 엘리베이터뿐이었지만, 화재가 발생하자 화물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췄고, 비상계단은 너무 부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소방 사다리는 6층이 한계였다. 화재를 알리는 경보벨은 울리지 않았고, 뒤늦게 화재가 발생한 것을 깨달은 9층의 노동자들은 불길을 피해 뛰어내리다 추락사하거나 유독성 연기에 질식사하고 말았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15분 만에 진화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모두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미국 역사상 9·11 테러 이전까지 단일 사건으로 최대 희생자를 낸 사고로 기억된다.

2013년 4월24일 아침 8시45분,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 8층짜리 건물이 폭삭 주저앉아 노동자 1134명이 죽었다. 이미 전날부터 공장 건물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등 위험 징후가 있었지만, 공장주는 작업장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노동자들은 두들겨 패서 강제로 작업대에 앉혔다. 세계 패션산업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수백대의 재봉틀이 한꺼번에 돌아가자 잠시 후 지붕과 기둥이 거짓말처럼 내려앉았고, 쇠창살로 막힌 창문과 이중 철제문, 좁은 계단과 원단으로 막힌 출구 안에서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1988년 한국의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900명이 유기용제 중독으로 미쳐서 자살하거나 사지마비로 신음하다 죽어갔다. 1998년 부산의 내동 창고 공사 중 폭발화재 사고로 27명이 숨지고 15명이 크게 다쳤다. 2008년 벽두 경기도 이천 공장의 화재 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2015년 한 해만 하더라도 1월에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3명이 질식사했고, 4월에는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서 3명이 질식사했고, 7월에는 울산 한화케미칼 폭발사고로 6명이 숨졌다. 2016년에도 177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최소한의 안전기준만 준수되었더라도 목숨을 잃지 않았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매일 5명씩 죽어간다. 며칠 전(7월8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전자 LCD 공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일한 노동자의 백혈병 피해가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LCD 생산직의 백혈병 피해가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진국에서는 노동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영국의 경우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제정하여 2008년부터 기업 활동 중에 발생하는 사망사고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개인 간에 살의를 품고 자행하는 살인과 달리 산업재해로 인한 치사에 대해 관대하게 접근해오던 그간의 관행을 깬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 관련성에 대한 증명책임이 산업재해 피해자 측에 있다. 산업재해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개선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국가의 실패(failure of the state)’로 보아야 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5년 2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2만석 규모의 전용 공연장, 서울아레나를 도봉구 창동에 건립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음악인들에게 창동은 아주 낯선 곳이었다. 왜 굳이 창동에 아레나를? 홍대도 힘들어 죽겠는데, 창동에 과연 뮤지션들이 갈까? 인디음악이 서울 동북권 도시재생 사업에 도구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의구심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팽배할 즈음에, 서울아레나의 마중물 사업인 플랫폼창동61이 작년 4월29일에 개장했다. 형형색색의 해상용 컨테이너 61개로 만들어진 플랫폼창동61은 클럽형 공연장 레드박스와 입주뮤지션을 위한 스튜디오, 녹음과 합주가 가능한 레코딩 스튜디오와 리허설 스튜디오 등 음악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추었다. 홍대 앞 음악신(music scene)과 비교할 때,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창동의 초라한 모습은 플랫폼창동61의 좋은 사운드 시스템과 뮤지션 친화적인 편의시설로 인해 지금은 록, 힙합, 재즈, 국악 등 장르 뮤지션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연장이 되었다.

플랫폼창동61은 2016년에 총 23만여명이 방문했고, 총 218회의 각종 문화프로그램, 뮤지션 137개 팀이 참여한 168회의 공연, 공연장 가동률이 90%를 넘어설 정도로 성공적인 첫해를 보냈다. 50여 입주·협력 뮤지션이 참여해서 96회의 공연을 진행했고, 올해도 40여 입주 및 협력 뮤지션들이 좋은 공연들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플랫폼창동61은 ‘원더걸스’, ‘트와이스’, ‘SS301’, ‘크나큰’ 등 아이돌 그룹들의 쇼케이스와 뮤직비디오의 촬영지이자, 각종 음악 관련 방송 프로그램의 녹화장소, CNN, BBC 방송의 취재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창동은 음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에는 여전히 황량하고 쓸쓸하다. 플랫폼창동61이 있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고 있지만, 정작 본 사업인 서울아레나는 중앙 정부의 석연치 않은 사업 타당성 심사에 발목이 잡혀 17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에, 서울 권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창동에 K팝 아레나를 건립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어, 조만간 긍정적인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뮤직시티 창동을 조성하는 계획은 단지 대형 공연장만을 건립하는 것으로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유럽과 미국의 유서 깊은 음악도시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성장과 장구한 음악클럽들의 건재, 그리고 음악 팬들의 오랜 열정으로 만들어졌다. 뮤직시티 창동 역시 앞으로 수많은 뮤지션과 팬들, 그리고 다양한 음악 자산들이 모여 오랜 음악적 유산을 이루고 그것들의 축적을 통해서 성장할 것이다. 단지 도시재생을 위해 음악이 도구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도시의 미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는 뮤직시티를 상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뮤직시티 창동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플랜이 수립되어야 한다.

다행히 7월6일 박원순 시장 주재로 음악 산업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뮤직시티 창동을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했다. 서울시가 준비하는 뮤직시티 창동 플랜 안에는 대형 아레나 공연장 이외에 2000석 규모의 라이브공연장, 장르음악 중심의 클럽 공연장 조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 음악인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대중음악 명예의전당 건립과 대략 300여개의 음악과 공연 관련 기업 유치 계획도 준비되어 있다. 글로벌 음악비즈니스, 음악 테크놀로지, 차세대 음악 미디어 플랫폼 개발을 위한 대중음악 전문학교 설립과 균형 있는 음악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전문 지원기구 설립 등도 검토하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 음악 산업을 견인하는 창의적인 기업들, 다양한 대중음악 콘텐츠들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과 차세대 음악 산업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창동이라는 장소 안에 집적될 수 있다면, 뮤직시티 창동은 상상의 은유가 아닌, 현실의 공장이 될 것이다. 이 희망 플랜이 내가 창동에 올인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통일·외교·안보 관련 학술회의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분야가 남성 편향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발표·토론·사회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전문가 대부분이 남성이다. 어쩌다 여성 전문가가 하나라도 끼면 으레 ‘홍일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홍일점’, 이 말은 사실 여성을 꽃으로 비유한다는 점에서 여성 전문가들로서는 듣기 거북할 것이다. 저변에 깔린 우리 사회의 특성이 여성을 ‘꽃’으로 인식하게 하고, 여성의 참여를 제한한다. 국민소득이 증대되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부모의 아들딸 차별은 없어졌지만, 사회진출을 꿈꾸는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과 마주친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성 전문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또는 여성들의 참여가 저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변명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의 참정권 역사를 살펴보면, 민주주의 시발점이었던 프랑스대혁명 이후 일반시민들은 참정권을 부여받았지만, 여성은 자동적으로 제외되었다. 1800년대 후반 이후 여성의 참정권이 여성운동의 중심의제가 되었고, 세계 대부분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1960년대부터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획득이 여성운동의 주요 과제로 대두됐다.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 정치발전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현재 4당 중 3당의 대표가 여성이다. 서구로부터 이식받은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민주주의 정치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일상적으로 느끼는 문제들을 공적 영역에서 제기하고 논의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배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남녀동수 내각을 약속하고, 일단 여성 비율을 30%로 시작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1기 내각 구성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 남성편향적이고 국가중심적인 외교·안보 사안에 여성을 수장으로 임명했다. 정치권력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강경화 장관은 자력으로 국제외교 무대에서 능력을 키워 남성들만의 성역처럼 여겨져 온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유리천장’을 깨고 솟아올랐다. 여성후학들에게도 롤모델이 될 것이고, 앞으로 제2, 제3의 강경화도 나올 것이다.

국제정치학이 국가중심적이고 남성편향적이어서 전쟁과 평화 연구에 여성의 경험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분단국인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와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는 70.7%이고, 7급과 9급 공무원 여성 합격 비율도 41.7%, 57.6%이다. 다만 4급 이상 여성 공무원은 여전히 전체의 10.6%였다.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연구하는 여성 전문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비켜갈 수 없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연구와 활동을 했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적·국가적 참여와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지 되짚어 봐야겠지만 실력과 경력을 갖추고도 기존편견과 고정관념의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는 탈냉전시대에 살고 있다. 탈냉전시대에선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배리 부잔이 말한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사항을 포함한 ‘확대된 안보개념’이 필요하다. 그래서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과 참여가 기대된다. 예를 들면 분단국인 우리의 경우 탈북자의 남한사회 정착 문제와 북한인권 문제가 그런 분야일 것이다. 탈북자의 80%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전문가들이 탈북자의 우리 사회 적응과 정착, 복지정책을 개발하고 일선 업무에도 나선다면 효율적일 것이다. 북한인권 개선 문제도 여성의 시각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인권개선의 가치를 실현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성의 참여와 역할로 통일·외교·안보 현상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 6월14일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김부겸 장관은 기록 관련 질의를 받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기록관리가 발전했다는 기조로 답변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의외의 답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검찰이 이전 정부에서 공명정대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는 답변이 나온다면 큰 사회적 파장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공적 기록관리는 노무현 정부 때 토대가 마련되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급격히 후퇴했다는 것이 기록 관련 학회와 전문가단체, 시민단체의 중론이다. 2008년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 고발사건, 2012년 대선 당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사건, 2017년 박근혜 대통령기록 무단폐기 및 이관 적법성 논란, 대통령경호실의 문서목록 미작성, 기록 블랙리스트 논란 등은 퇴보를 거듭한 기록관리 분야의 쓸쓸한 단면이다.

기록은 노무현 정부에 와서야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기록혁신을 단행했다. 대통령기록은 2007년에 제도가 마련되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뒤이은 정권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이관된 대통령기록을 이용해 정치공세를 벌이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훼손했다.

김부겸 장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대통령기록을 1000만건 넘게 이관했으니 기록의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게 아니냐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편의적인 해석이다. 1000만건이라는 수치는 문제가 있다. 홈페이지 등 웹 기록이나 사진은 시대적 추세이다. 현재 이관된 기록의 대다수는 이런 기록이다. 대통령기록의 핵심은 대통령보고서, 대통령 회의기록, 외교안보기록, 주요 정책문서 등이다. 지금 이런 기록이 이관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주무기관인 국가기록원이 상세한 이관과정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량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대통령기록 무단폐기 및 이관 적법성 논란이 심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은 국가기록원이 문제였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가기록원은 정부기록을 책임지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다. 공공기록법과 대통령기록법을 운용하고 있으며 대통령기록관을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다. 정원은 350명이다. 국민이 국가기록원에 이렇듯 막강한 권한을 주면서 책임을 맡긴 것은 기록이 민주주의 성숙의 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갈등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오히려 거셌다.

국가기록원 개혁이 대한민국 기록 정상화의 시발점이다. 개혁방향은 국가기록원의 독립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은 행정자치부 소속기관이다. 국가기록원장은 행자부 국장급이 임명되며 임기는 평균 1년이다. 독립성도 안정성도 없는 이런 상황은 행자부 인사관행이 낳은 기현상일 뿐, 기록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조직의 수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국가기록원장이 바로 서야 국가기록원 독립도 바로설 수 있다. 소신과 전문성,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정신과 역사의식이 투철한 기록전문가가 국가기록원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가기록원장 직위를 개방직으로 풀어야 한다. 기록의 무게를 감당할 기록전문가가 우리 사회의 기록운명을 이끌어가야 한다.

기록이 발달한 곳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록공직자가 있다. 이 자리에 오른 기록전문가가 국가기록을 책임진다. 미국은 국립기록관장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국립기록관(NARA)은 1930년대 설립된 이후로 줄곧 총무처 소속기관이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독립해 연방정부의 기록관리를 전담하는 독립행정기관으로 탈바꿈했다. 수장은 국립기록관장이면서 동시에 ‘미국 아키비스트’라는 상징적 지위까지 부여받는다. 이런 이유로 행정관료가 아닌 기록전문가가 국립기록관장이 된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한민국 아키비스트’가 필요하다. 단지 수량이 아니라 기록의 무게를 감당할 기록전문성과 기록의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이영남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미국 정치권은 트럼프 스캔들로 요란스럽지만, 정작 미국이 당면한 핵심적 문제는 트럼프에도, 그리고 러시아에도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의료보험제(오바마케어)는 현재 상태로는 지속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케어로의 수정도 사실상 상원 통과가 불가능하다. 재정 계획이나 조세 개편안은 아무도 현재 상태로는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으며, 의회가 승인해준 미국의 부채 발행 한도는 다 찼기 때문에 재정 고갈로 인한 정부 셧다운 가능성은 커져가는데 정작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예산 증액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국무부 등 주요 행정부 핵심 포스트를 아직도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하원외교위원장이 “현재 국무부는 여러 가지 사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이는, 심지어는, 공화당이 행정부와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다른 말로 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그리고 의회는 ‘정상 작동’이 안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멜라니아 트럼프가 옆에서 박수 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사회학에서는 이처럼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가기구가 맡겨진 자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는 개념으로 정리하는데 우리네 말로 옮기면, “이게 나라냐”쯤에 해당한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국가’는 각기 층위가 다른 몇 가지 정의가 혼재된 것이다. 실패한 국가는 부패, 무능력 등으로 국가기구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능적 비효율성’(dysfuntion)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 정치가 반영해야 하는 사회 내부가 도저히 상호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사회 내의 적대적 대립이다. 국가의 기능은 그 효율성과 역량의 정도와 무관하게, 이 같은 사회적 적대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외부로 표출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8년 이후 미국 정치의 변화 과정은 자못 시사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대중들은 기존 체제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변화’를 내세운 오바마와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집권 뒤에 한 일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repair)와 미봉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실망한 대중들은 2010년의 중간 선거에서는 공화당(티파티)에 표를 던졌다. 그러자 ‘민주주의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의 민주적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보수파와 더 타협했으며, 결과는 더 강력한 현상 유지였다. 오바마의 정치적 레토릭, 즉 자신은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개혁파라는 이미지는 그의 재선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기득권의 강화에 불과했으며, 그럴수록 대중들의 불만은 더 커져갔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요인들이 바로 어떤 막말을 해도 지지를 받는 트럼프현상을 불러왔다. 그 결과 미국 대중들은 금융위기 이후 거의 10년이 지나는 동안 기득권인 민주당과 또 다른 기득권인 공화당 사이를 오가면서 결국은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었고, 그사이에 국가기구는 자신들의 조직 이기주의만을 존재 이유로 삼게 되었다.

미국의 사례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대중의 구호가 ‘이게 나라냐’에 머무는 한, 그것은 단지 국가 기능의 강화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조할 따름이며 그것이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나라’가 아니라 ‘사회’이며, 무엇이 우리 사회에서 수십년 동안 똑같은 비정상과 실패를 재생산해내고 있는가이다. 실패한 국가에 질려서, ‘제대로 된 국가’(정상국가·normal state)만 바라고 빌고 있다면, 우리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에 매달려 이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진자 운동을 할 뿐,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것이고, 트럼프를 훨씬 능가하는 더 화려한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청년’을 33번이나 거론한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연설. 2017년도 추경 예산이 통과되길 바라면서 강조한 말이다. 현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일자리고, 그 핵심에 청년이 있다. 엊그제 국가일자리위원회가 첫발을 내디뎠다. 일자리위원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청년정책이 ‘청년구직촉진수당’으로 대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고용, 주거, 문화, 복지 등 여럿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자리만 강조되는 모양새다.

사실 지난 한 해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날선 공방을 벌였고, 정치권에서도 쟁점이었다. 청년수당이 중앙정부와의 협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반대했던 보건복지부도 동의 통보를 했다. 평균 연령 27.7세, 여성 52.5%, 3분의 2 대졸 이상 학력. 바로 2017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신청 청년들이다. 문제는 미취업 기간이다. 신청자들의 미취업 기간이 20.8개월이나 된다. 전체 청년 구직기간의 두 배로 장기실업 상태가 다수였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당장 버틸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신청자 8329명의 사연에서 하나같이 청년들의 절박하고 아픈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주변 사람조차 사라진 지 오래인 청년들.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청년들. 사회조차 외면했던 청년들의 삶. 아픈 부모를 간병하며 아르바이트하는 청년부터 장애 청년까지. 학교 밖 사회로 나와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의 삶은 ‘인간 존엄의 상실’ 그 자체였다. 청년활동지원센터 실무자들은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부족한 서류 때문에 탈락되면 안되니까.

물론 청년활동 신청자들의 활동계획에서는 희망도 확인된다. 그들은 “작년에 단 한번이었지만 그 기회에 꿈을 꿔볼 수 있었다”, “이렇게 계획을 이야기할 기회라도 있어서 고맙다”는 말들을 남겼다. 센터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마음속 작은 이야기라도 꺼낼 수 있는 공동체라도 만들어 보고자 했다. 자신의 마음 한 번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동네에서 그냥 만나는 ‘어슬렁 반상회’를 시작했다. 이 모임은 여섯 명에서 여덟 명 정도로 꾸려진다. 자기 안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미약하지만 서울시와 같은 사업은 이행기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정책이다. 이미 서울시 청년수당을 계기로 경기, 대전, 광주 등 광역지자체 절반에서 검토 중이다. 광주는 ‘청년드림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드림사업 1기 131명(여성 78명)이 84개 사업장에서 다양한 진로역량을 쌓는 경험을 한다. 청년활동, 사회적경제, 공공기관 등 청년특성과 욕구에 적합한 5개 유형별 사업이다. 1주일 25시간 내외 참여와 활동으로 자기모색과 일 경험을 한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취업이나 자격증, 교육 등에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다. 게다가 광주는 드림사업 참여자들에게는 지자체 생활임금을 지급한다.

촛불로 시작한 새 정부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까. 청년들을 취업에 대한 강요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2010년부터 국제기구들은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맞게 새로운 청년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2013년 유럽연합은 고용과 실업 해소를 위해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를 회원국들에 권고한 바 있다. 유럽연합도 몇몇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다. 예산도 중앙과 지역이 일정 비율의 매칭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제 우리보다 앞선 정책을 시행했던 나라들의 정책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확인할 때이다. 특히 청년정책은 일자리 제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청년들에게 더 나은 진로를 모색할 시간과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청년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정책과 포괄적 지원서비스도 필요하다. 서울이나 광주의 정책들은 청년들이 부딪혔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다. 무릇 정부가 어떤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좋은 모델’을 확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