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 하고 전화기가 진동했다. 서울시 청년정책과 주무관 전화다. “됐어요. 됐어요. 협의 통과했어요!!!” “아! 정말요? 진짜 축하드려요. 정말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아. 뭐 저희들이 했나요. 청년들이 했지요. 그런데 진짜 기뻐요. 하하하하.” 보건복지부 반대에 부딪혀 지급되지 못하고 있던 청년수당이 잠금 해제되는 소리였다.

대선정국에 묻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다. 서울시가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최대 6개월까지 매월 50만원씩 지급하려던 청년수당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복지부 협의를 얻어냈다는 소식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작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로를 탐색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작은 버팀목이라도 대어주자며 시작한 청년수당이 드디어 시행 가능하게 되었다. 크게 보면 촛불정국 때문이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이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청년수당을 처음 제안했던 청년들, 이것을 서울시 정책으로 적극 받아안은 박원순 시장, 정책적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었던 전문가들 등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이 17개월을 함께 버텨낸 사람들 중에서도 서울시 청년정책담당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해 8월14일 서울시가 청년수당에 대한 정부의 직권취소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서울도서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걸어 놓고 있다. 정지윤기자

“거버넌스에 대해 요즘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어요.” 청년수당을 놓고 서울시와 복지부 간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청년과 과장이 속내를 꺼내놓았다. “청년수당을 놓고 청년들이랑 협의를 하는데 사실 너무 어렵더라고요. 매번 논의하지만 자꾸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고. 우리가 조금 양보해서라도 이 정책이 하루라도 빨리 진행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청년들은 너무 이상적인 모델만 이야기하는 것 같고. 청년들과 협의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어요. 그런데 문득 우리 논의가 한자리에서 계속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마치 용수철의 나선형처럼요.”

“용수철의 나선형요?” “네! 용수철요. 청년수당 반대하던 사람들이 하는 말 있었잖아요. 청년이면 쇠도 씹어먹을 나이인데 왜 돈을 주냐고. 솔직히 말해 저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청년들이랑 한 달, 두 달, 석 달 그렇게 몇 개월을 계속해서 만나고 토론하다 보니까 청년들이 말하는 ‘인간 존엄이 지켜지는 방식으로의 청년수당’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들의 삶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지난 시간에 나눴던 이야기들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청년들과의 토론 시간은 제자리를 맴돌았던 것이 아닌, 사실은 촘촘하게 용수철이 감겨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요. 단단하고 탄력있게 잘 감겨진 용수철은 멀리 날아가잖아요. 저는 그래서 우리 청년수당 잘될 것 같아요.”

그의 말에 같이 있던 청년과 사람들이 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는 촛불정국도 아니었고, 복지부와의 협의도 잘될지 예측할 수 없었던 때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보자라는 이야기를 그는 그 스스로에게 또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싶었다.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청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해볼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에 대해 회의를 하던 때였다. 회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신문 1면에 지하철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 19세 청년 김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김군, 우리 청년수당 지급 대상자였는데….” 누군가 회의 중 이 말을 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날 청년 문제를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 제목으로 ‘너는 나다’가 정해졌다.

그냥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라 이야기하겠지만, 옆에서 보지 않았으면 모를 이야기들을 그 누군가는 기록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지면을 통해 남긴다. 이런 정성들이 알알이 배여 있는 서울시 청년수당이 단단하고 탄력있는 용수철처럼 우리 청년들의 삶을 오래오래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것, 매일 아침 옹기종기 모여 인사하던 그 구호로 이 글을 마친다. “청년이 미래다!”

김경미 | 정치발전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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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송민순 회고록의 비밀 내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작년 11월22일에 외교부 장관에게서 직접 받은 공문이다. 그러니까 송 전 장관은 작년 10월 회고록에 남북 접촉 등 안보 관련 비밀을 담아 출판하면서도 소속됐던 기관장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책에서 국가정보원이 북한으로부터 받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북한 전화통지문의 내용을 4줄에 걸쳐 공개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대통령 선거가 20일도 남지 않은 때, 자신의 책이 진실임을 증명하겠다며, 북한 전화통지문 청와대 문서를 공개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참여정부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 과정을 담을 자신의 회고록 내용과 관련, 당시 정부가 사전 확인한 북한의 입장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건을 21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나는 기억한다. 그가 장관으로 있던 외교부는 2007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고 문서를 공개한 정창수 당시 국회 보좌관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의 외교부는 FTA 보고 문서를 ‘비밀’로 지정하지도 않았었다. 게다가 문서의 내용도 매우 초보적이었다.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미국의 ‘반덤핑’이라는 무역 장벽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되, 미국이 끝내 거부하면 다른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삼척동자도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애초 정부가 제시한 FTA의 기본 목적을 허망하게도 포기한 것이었다. 정 보좌관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공익을 위해 언론에 제보했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정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결국 정 보좌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외교부의 수사의뢰가 없었다면 검찰은 정 보좌관을 기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송 전 장관은 북한이 보낸 전화통지 청와대 문서를 통째로 공개했다. 자신의 자서전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전화통지문 문서가 ‘비밀’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항변한다. 그는 자신이 수사의뢰한 정 보좌관을 잊었을까? 남북 사이에 오간 전화통지문 등은 보호가치가 있는 비밀이다.

나는 묻는다. 그는 어떻게 국정원장이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문서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을까? 그 문서는 사유할 수 없는 공공기록물이다. 송민순 사건은 외교·통상·안보 분야 비밀의 사유화이다. 소수 관료들이 시민이 알아야 할 외교·통상·안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 안보 비밀을 사유화한다. 파당적으로 이용한다.

외교부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위안부 공동 발표를 저질러 놓고도 가장 기초적인 강제연행 인정 여부 협의 문서도 한사코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산 수산물 방사능 검역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사드 배치를 위해 미국과 이미 진행을 마친 환경영향평가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한·미 FTA 협상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국익을 위한 비밀’이라는 나팔을 분다.

그러나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 파당화한다. 사익과 당파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 안보 비밀을 이용한다. 2012년 대선의 북방한계선(NLL) 사건에서도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이란 걸 들고나왔다. 정상회담 회의록이라며 대선 유세에서 읽었다.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해서 반북 공세를 강화한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둘로 갈랐듯이 시민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의 분출을 이념 대결로 편을 가른다.

안보 비밀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두 방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공익을 위한 공개 원칙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보호가치 있는 비밀에 대해선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첫째, 정보공개법을 고쳐 시민의 생명, 안전, 평화와 관련이 있는 정보는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공개 거부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안보 정보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안보가 산다. 이 점에서 송민순 사건에 대한 바른 처리가 중요하다. 관련 기관은 대선 날짜 달력만 쳐다보지 말고, 송 전 장관이 어떤 법적 권한에서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 문서를 취득했는지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것이 안보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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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발 태풍이 한반도에 몰아쳤죠.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며 북한을 압박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말하며 한국을 당황케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한반도 안보가 한국의 아킬레스건임을 새삼 곱씹어야 했죠.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 폭이 크지 않다는 현실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최선의 정책은 평화의 확장입니다. 평화는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럴수록 한국의 목소리는 커질 테니까요. 평화의 공간이 줄고 대결이 고조될수록 우리의 목소리는 강대국의 고함 속에 잠기는 법이죠.

안철수 후보는 평화에의 확신이 없어보입니다.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며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안 후보는 ‘국가 간 합의’를 외치면서 찬성으로 돌아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입장도 재개에서 유보로 바꿨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도 시기상조로 돌아섰고 햇볕정책에 대한 입장도 계승에서 침묵으로 바꿨습니다. 하나같이 중요한 외교 사안인데 모두 평화 쪽에서 대결의 방향으로 간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운데)가 20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유세에 앞서 시민들을 향해 두팔을 들어올리고 있다. 김기남 기자

게다가 그 변신에 대한 설명도 충분치 않습니다. 사드 입장 변화에 대해 안철수 후보 본인도, 박지원 대표도 사정이 바뀌었으니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바뀐 사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 정세나 북한 위협 등 사정은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뚜렷이 달라진 것은 보수층 지지를 받기 시작한, 안철수 후보 본인의 사정입니다. 선거를 위해 안보를 가벼이 대하지 않나 싶어 우려스럽습니다.

말하지 않은 그 무슨 심각한 고려가 있었다 치더라도 걱정이 싹 가시지는 않습니다. 국가 간 합의가 자연의 법칙이 아닌 것은 정작 미국 부통령이 한·미 FTA 개정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확인할 수 있었죠. 미국과 중국이 맞붙을 가까운 미래에는 유연한 입장을 통해 청과 명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광해군의 지혜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안 후보의 인식은 교조적 외교로 병자호란을 불러들인 인조의 실수를 떠올리게 해 우려됩니다.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던 안 후보의 호기를 기억하기에 더욱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대표가 2014년 꾸리자마자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소멸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그 이름이 이어졌죠. 안 후보가 탈당하며 더불어민주당이 되면서 ‘새정치’라는 수식어도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안 후보 하면 ‘새 정치’였습니다. 그 새 정치를 위해 안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나와 새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승자독식 선거제가 양당제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과감한 결단이었죠.

안 후보의 새 정치는 딱 여기까지였던 듯합니다. 천정배 의원을 공동대표로 내세우며 호남 민심을 노렸고 박지원 의원을 위시한 동교동계를 대거 받아들였죠. 국민의당은 호남당이 됐고 총선에서 호남을, 호남만을 휩쓸었습니다. 이를 안 후보는 ‘녹색바람’이라 불렀죠. 하지만 승자독식 선거제의 양당제 경향을 지역표로 극복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양당제하에서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비슷한 예죠. 노동당과 보수당이 대변할 수 없는 특수한 이익, 즉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이들은 제3당의 입지를 넓혔습니다. 바로 국민의당의 전략이었습니다. 즉 안철수표 새 정치, 국민의당은 한국 특유의 지역정치를 잘 이용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죠.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손을 맞잡은 순간을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평화의 희망을 주었고 살육과 대결로 이어진 반세기 남북관계를 돌려놓는 감격적 계기였습니다. 그해 8월 개성공단 사업이 첫걸음을 떼었고 금강산 관광사업도 탄력을 받았죠. 당장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남북은 화해의 무지개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남북관계에 한국의 목소리가 커졌고 세계는 노벨 평화상으로 박수를 보냈죠. ‘햇볕정책’은 말 그대로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었습니다.

새 정치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안 후보가 말한 새 정치의 정체가 궁금한 때이기도 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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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에서만 20년 넘게 잡지 편집 일을 하고 있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 복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도록 일을 하며 나를 거쳐 간 후배 편집자들이 8~9명에 이르는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신입을 뽑아서 2~3년쯤 편집의 기초부터 인쇄 실무까지 출판의 전반적인 것을 익히면 붙잡아볼 새도 없이 서울의 중견출판사로 이직한다. 떠날 때마다 새로 뽑는데 신입 편집자 한 명을 뽑으려 해도 서울이 아니라서 어렵다. 인천이 무슨 지방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인천 사람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서울 사람 보고 인천 한 번 놀러오라고 하면 다들 난감해한다. 그런 탓인지 서울에선 비교적 쉬운 일도 인천에선 좀 더 공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있다.

떠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할 일은 절대 아니다. 문화 분야의 여러 곳을 분탕질했던 최순실·차은택조차 무시할 만큼 출판계가 영세하다는 것, 편집자가 박봉이란 건 어느새 비밀도 아니다. 그렇게 직장을 한두 군데 옮겨야 그나마 월급이 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전에는 출판사 내부에서 신입 편집자를 가르치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인턴 문화와 비정규직 고용이 일상화되면서 이른바 ‘초짜’들은 아예 그런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그런 형편이니 영세출판사가 초보들을 뽑아 가르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보다 나은 조건의 출판사로 옮겨가는 구조가 되었다. 기업 스스로 인력을 키우고 교육하지 않는 대신, 그 비용을 좀 더 영세한 업장이나 사회로 고스란히 전가하는 인력재생산 구조는 출판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는 이른바 “초왕이 잃어버린 활은 초나라 사람이 줍는다”란 고사가 있다.

춘추오패(春秋五覇) 가운데 하나였던 초(楚)나라 공왕(共王)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아끼던 활을 잃어버리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신하들이 황급히 나서며 저마다 활을 찾아오겠다고 하자, 공왕이 의연하게 말했다. “그만두어라. 초왕이 잃어버린 활은 어차피 초나라 사람이 가지게 될 터이니 굳이 찾을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만류했다. 이 일화는 임금의 너그러운 마음을 칭송하는 말로 오랫동안 전해졌다. 그러나 훗날의 공자(孔子)는 “애석하구나. 도량이 좁은 사람이로다. 사람이 잃은 화살을 사람이 줍는다고 하지 못하고 하필 초나라 사람이라 하다니(人遺之 人得之 何必楚也)”라며 탄식했다.

공자는 어째서 애석하다고 했을까. 잃어버린 활을 찾기 위해 신하와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괜찮은 왕이었겠으나 그의 도량과 포부가 ‘초나라’란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었기에 ‘천하(天下)’를 볼 수 없어 안타깝게 여긴다는 말이었다.

나는 여기에 공자와 유교의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자(老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이란 말조차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평했다. “그저 ‘잃으면 줍는다’라고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이라고 했다니, 노자는 인간의 천하를 넘어 만물천지(萬物天地)를 품었던 셈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가지만, 해마다 제때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 휴학하는 학생을 한둘은 만나게 된다. 놈 촘스키는 “학창 시절 엄청난 빚을 지게 되는 학생들이 사회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긴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채무 시스템에 가둬 놓으면 생각할 시간마저 가질 여유가 없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등록금 인상은 일종의 훈육 테크닉입니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 되면 단지 빚에 찌들게 되는 것뿐 아니라 훈육의 문화를 내면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비자 경제의 훌륭한 부속이 되어갑니다”라고 했는데, 오늘날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그 출발부터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사형대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내 자식 네 자식 구분하지 않고 사람 하나 키워낼 수 없는 곳이라면 젊은이에게 자식을 낳아 키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성원 | 황해문화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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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전 세계 게임스타일의 지형을 흔들었던 ‘포켓몬고’의 열풍은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예고하는 하나의 징후로 읽을 법하다. 포켓몬고는 증강현실 기술과 소위 ‘구글맵’으로 대변되는 위치 추적 장치를 이용해서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 <포켓몬>의 캐릭터들을 포획하는 게임이다.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충격효과는 게임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있다. 기존 게임들은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여, 가상공간에서의 특이한 체험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꾀했다. ‘서든어택’ 같은 1인칭 슈팅게임, ‘리니지’ ‘와우’ 같은 온라인 게임 등은 컴퓨터 스크린이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즐기게 하지만, 그 자체가 현실공간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과 유비쿼터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융합하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상공간이 실제 현실 안으로 들어와 개인의 감각을 활성화하고, 놀이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포켓몬고는 이러한 현상의 아주 단순하고 초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서드라이프(Third Life)’라고 명명하고 싶다. 서드라이프는 말 그대로 제3의 삶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현실공간에서 물리적인 삶을 사는 단계가 ‘퍼스트라이프’라고 한다면, 가상공간에서 잠시 흥미롭지만, 허구에 불과한 체험을 하는 단계는 ‘세컨드라이프’라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한때 큰 인기를 얻었던 ‘세컨드라이프’라는 게임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서드라이프 시대는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판타지 혹은 허구적인 대리만족을 현실공간에서 체험하게 함으로써, 가상현실이 곧 실제 현실이 되는 삶을 가능케 한다. 서드라이프는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연계·결합하는 게 가능한 초현대 하이퍼 현실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2016년 다보스포럼 이후, 한국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혁신과 시민들 일상의 변화에 대해 많은 예측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신경제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측인데, 자본이 아닌 문화의 논리에서 볼 때, 신경제란 과학과 공학의 첨단기술을 통해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경제, 인간에게 이로운 신홍익인간 산업,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며 인간이 중심이 되는 신인류산업을 의미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러한 산업적 변화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중요한 것은 산업과 경제, 자본의 재생산에 있는 게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래 사회에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바뀌고, 개인은 어떤 문화를 원하는가에 대한 감성적 간파이다.

서드라이프의 시대에는 유비쿼터스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혁명에 따라 개인의 신체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래서 ‘초감각지능산업’, 이른바 가상현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창의적인 이야기가 가미된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개인의 인지적 역량과 일상적 놀이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미래 예측이 필요하다.

서드라이프 시대는 또한 ‘예술과 문화, 기술과 과학’이 통섭하여 새로운 초감각적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통섭적 환경이 주는 감각의 새로운 지평들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문화 혁명에 따라 기존의 문화콘텐츠 영역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문화콘텐츠 산업이 어떻게 지배적인 영역으로 부상하고 이들이 이용자들의 기술 감각과 콘텐츠 관여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지에 대한 전망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개인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서드라이프 시대에는 책, 영화, 음악, 게임, 모바일, 메신저커뮤니티와 같은 미디어콘텐츠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 체험이 그 자체로 가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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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 주 강릉과 평양에서 남북이 한데 어울렸다. 5일 강릉에서 열린 세계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 예선에서는 남한팀이 북한팀을 3 대 0으로 이겼고, 7일 평양에서 열린 2018 여자아시안컵축구대회 예선에서는 남북이 1 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번 남북 스포츠 교류는 만남 자체가 소중했다. 작년 2월 개성공단 폐쇄 후 민간차원의 접촉도 일절 불허되고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2일 한국 여자축구팀이 인도를 10 대 0으로 이기자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때 관중석의 북한 주민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는 장면이 TV로 전달됐다. 3일에는 강릉 경포해변에서 북한 여자선수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리고 5일 평양에선 호텔 측이 남한 선수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한다. 스포츠는 이렇게 사람들을 풋풋하게 만들고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작년 이맘때라면 남북을 오가는 스포츠 교류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국제대회라는 이유로 남북 선수들의 왕래를 승인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북의 선수들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국제대회가 이렇게 동시에 열리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 우연하게 교차원정 경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곧 출범할 차기 정부에 남북관계를 복원하라는 역사의 명령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2017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훈련할 때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있지만 3일 오후 휴식시간을 맞아 강릉 경포해변을 찾은 북한 선수들이 물에 발을 담그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에 앞서 북한 선수들은 한국-슬로베니아전을 참관할 때 콜라를 마시며 또래 선수들과 다름없이 편안하게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북한은 오는 6일 오후 9시 남북 대결을 벌인다. ㅣ연합뉴스

쿠베르탱 남작의 올림픽 창시 정신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스포츠는 사람 사이의 이해와 교류에 큰 몫을 해왔다. 스포츠는 승리를 목표로 하지만 페어 플레이를 통해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하계·동계 올림픽을 비롯해 수많은 스포츠 행사를 통해 세계인들은 지역과 인종, 종교와 문화를 뛰어넘어 어울리고 화해한다.

스포츠가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 간 화해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중 ‘핑퐁 외교’다. 1971년 4월 미·중이 핑퐁 외교를 시작하더니, 1972년 2월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고 ‘미·중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 미·중관계가 꾸준히 발전하면서, 1979년 1월1일 미·중은 드디어 수교했다. 한·중 수교에도 스포츠가 역할을 했다. 1984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난 한국의 안재형과 중국의 자오즈민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핑퐁 사랑’을 키웠고, 결혼을 했다. 핑퐁 사랑은 1992년 8월 한·중수교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동서독 간에도 스포츠 교류가 통일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56년 동계 올림픽 때 단일팀 성사 후 동서독은 총 6회에 걸쳐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1964년 10월 도쿄 올림픽 때는 파견 선수단이 총 376명으로 일본, 미국, 소련에 이어 4번째로 규모가 컸다. 1972년 동서독은 기본조약 체결 후 1973년 6월에 스포츠 교류 확대를 위한 기본협정을 체결했고, 1989년에는 7개 조항에 걸친 스포츠 교류 의정서도 합의했다. 1990년 10월 동서독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는데, 스포츠 교류가 경제 교류·협력 못지않게 통일의 인프라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달 출범할 차기 정부는 남북관계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끌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조치들이 나오겠지만, 대뜸 당국 간 회담부터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화합과 소통의 기능을 갖고 있는 스포츠 교류를 먼저 띄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1929년에 시작된 경평 축구의 전통을 살리고자 서울·평양 축구 경기를 치르고자 노력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불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준비는 많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 정부 출범 후 상징성이 큰 서울·평양 축구 경기를 제안하고, 정부는 그걸 승인하는 식으로 남북관계 복원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도 모양이 좋을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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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을 지나면서 ‘우리’는 박근혜 세력은 단죄하면서, 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작동방식에 대한 질문은 혹 놓쳐버린 것이 아닐까? 혹은 촛불이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 이런 질문을 해보려고 한다.

헌법재판소가 최종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결정했다. 8 대 0. 그러나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대해서 동의했던 법관들이다.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헌재가 박근혜 탄핵 하나로 헌법질서의 수호자로 등극했다. 이것은 역사적 아이러니다. 또 결정 주문은 8개의 탄핵사유 중에서 단 한가지, 즉 재벌을 압박하여 뇌물을 받아 자신의 이익을 취했다는 점만을 전적으로 인정했다. 뇌물을 준 재벌들은 졸지에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으로부터 탄압받는 피해자로 둔갑했고, 심지어 기업 경영활동의 자유 훼손이 탄핵인용의 주요 사유다. 이 ‘기업의 경영활동의 자유’가 헌법상의 또 다른 권리인 노동권을 짓밟고 기업의 부당노동행위를 폭넓게 인정해주는 무기로 작동하는 것은 헌재에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헌법해석조차도 균형을 잃고 있다는 이야기다.

제주 다랑쉬굴은 4·3 사건 당시 주민 11명이 집단희생을 당한 곳이지만 현재 안내판만 있을 뿐 입구는 수풀에 가려 흔적도 찾기 힘들다. 박미라 기자

화북동에 있는 곤을동도 군인들에 의해 마을 주민이 사살되고 집이 불타 집터와 돌담만 남아 ‘잃어버린 마을’이 됐다. 박미라 기자

촛불 속에서도 한국의 국가는 건재하다. 아니 더 튼튼해졌고 정당성을 새로 부여받았다. 바로 촛불들로부터. 법원은 갑자기 집회·시위의 보호자로 나섰고, 경찰은 갑자기 온순해졌으며, 검찰은 특검을 통해서 다시 살아났고, 법원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민주헌정질서의 최종적인 수호자로 재정의된다.

그러나 지난날에 비춰보면 이렇게도 된다.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지탱해온 정부는 황교안 체제를 통해서 전승되고 있다. 정치체제에 대해 권위주의, 군사독재 할 것 없이 합법성을 부여하는 입법들을 줄창 해오며 유지해온 입법권력도 힘을 받고 있다. 국가에 의한 양민학살마저 정당화하고, 스스로 사법살인을 자행하며 죄 없는 이들을 형장으로 보냈고, 제주 4·3항쟁에서 피를 묻혔던 사법권력도 그대로 온존하고 있다.

이 지점에 제주 4·3항쟁이 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성격, 아니 나아가 그 탄생은 제주 4·3항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주 4·3항쟁은 식민지 해방 이후 미군정이 물러나면서 대한민국의 수립과정에서 맞물린 숙명 같은 사건이었다. 동시에 대한민국 존재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구심을 제기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것은 미군정 3년의 시공간에서 포스트 식민지 해방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좌우의 투쟁과 민중적 열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당시 국가 탄생의 주요세력이 자행했던 극악무도한 탄압에 맞서 제주 민중들이 맞선 최후의 저항이기도 했다. 즉 제주 4·3항쟁은 체제를 둘러싼 저항이었고, 국가의 탄생을 두고 벌어졌던 전투이기도 했다.

제주학살은 바로 1947년 5·10 선거, 즉 미군정의 관리감독하에 남한만의 단독국가 구성을 위해 진행된 선거에 대한 반대시위에서 경찰총격으로 촉발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빨갱이 사냥’은 5·10 선거 후 1948년 수립된 ‘신생’ 대한민국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다. 그 과정에서 민간인 희생자는 2000년 발족한 진상조사위원회에 신고된 수만 1만4028명이고, 1950년 김용하 제주도지사 시절 도청 집계로 2만7719명이었다. 또 진압작전에서 전사한 군인 180명, 경찰 140명, 서북청년단을 비롯한 우익단체원 등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수가 639명이었다.

결국 제주 4·3항쟁의 기억투쟁, 그리고 현재 제주 4·3항쟁이 이 나라에서 기억되는 방식은 이 나라의 정통성이 어디에 뿌리박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친미우익과 반공을 국시로 한 반공병영국가, 민주주의도 넘지 못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건국’ 정신. 주권자를 억압하고 군림해온 권위주의국가. 제주 4·3항쟁에서 드러난 한계는 한국 국가의 ‘초기조건’이 돼버렸고, 민주화 이행 이후에도 공고화됐다.

이제 4·3은 촛불에게도 묻는다. 너의 국가는 없었던 것이 아니라 있었다라고, 그렇게 국가는 탄생했고 그 역사는 단지 기억이 아니라 현재 국가의 작동방식이라고. 이제 “국가는 없었다”가 아니라 우리의 “국가는 무엇인가”를 질문하자. 촛불 이후 질문이 이렇게 될 때 다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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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 8년 전의 일이다. 연말에 업무상 일하던 사람들과 송년회 겸해서 회식을 했다. 한 해 수고했다며 이런저런 덕담을 나누고 있던 참에 연세도 많고, 지위도 높던 한 사람이 테이블에 놓여 있던 바나나를 집어들면서, “이 바나나 어떻게 먹는지 알아요?”라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뭐지? 이 사람?’ 그 사람이 이전에도 회식 자리에서 이상한 농담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기에 올 것이 왔다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이 당황해하거나 말거나, 그는 점점 농담의 수위를 높여갔다.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내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분을 버티다, 그의 말을 끊어주길 기대했던 남자 동료들이 농익은 농담으로 화답하는 순간, 머리보다 몸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어허허험” 헛기침을 크게 하며 그의 말을 끊고, 거의 고함치듯 “그만하시죠!”라고 외쳤다. 나의 얼굴은 당혹스러움과 화로 벌개져 있었다. 당황한 그는 “겨…경미씨. 무슨 뜻인지 이해해요?”라고 되물었다. “중·고등학생들도 다 알죠. 지금 하신 말”이라고 대답했다. 일순간 분위기는 얼어붙었다. 내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고, 그 사람은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고, 그의 농담에 화답했던 다른 사람들은 부끄러움에 조용히 입을 닫았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른 후, 억지로 몇 마디를 나눈 후, 그는 먼저 일어나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급이 높은 사람인지라 다들 예의를 갖추기 위해 문 앞까지 배웅을 나갔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를 하자 문을 나서던 그가 뒤돌아서, “저…. 김 국장. 내가 음담패설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오해 마세요. 그냥 재밌자고 한 말입니다”라고 변명을 했다. “네”라고 웃으며 답했지만 눈으론 ‘당신, 음담패설 한 것 맞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이런저런 연구모임과 회의에서 그를 거의 보지 못했다.

그날을 복기하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친한 사람들도 아닌 공적으로 만난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음담패설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테다. 그런데 그는 ‘너무 쉽게’ 음담패설을 시작했다. 한 번의 주저함도 없이 말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몇 번을 생각한 끝에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제지당한 적이 없었구나.’ 그제야 자신의 농익은 농담을 이해하고 있느냐고 놀라 되묻던 그의 당혹스러운 표정이 이해가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일부러 화를 낼 때가 있다. 눈으로 ‘당신 지금 (인격이) 벌거벗은 상태예요’라고 말해줄 때가 있다. 그렇게 화를 낼 때마다 속이 후들거린다. 까칠한 사람으로 보이진 않을까, 조직에 적응 못하는 사람으로 찍히진 않을까 하는 걱정에 며칠씩 잠을 잘 못 이룬다. 내가 화를 입었는데, 되레 화를 당할까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에 속이 상한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을 다시 떠올린다. 그 사람의 벌거벗은 인격으로 또 다른 누군가가 고통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낸다. “그만하시죠”라고 당당히 그의 말을 끊어내도 괜찮다는 걸, 동료들에게 알게 해주고 싶어 힘을 낸다. ‘당신 나에게 고마워해야 돼요. 그렇지 않음 벌거벗은 채 온 동네를 돌아다녔을 텐데, 지금이라도 옷을 차려입게 되었으니 말이에요’라고 생각한다.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 원리에 대해 떠올린다. 그와 나 사이 놓여 있는 직급의 차이는 사람의 높고 낮음이 아닌 주어진 역할의 차이일 뿐이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민주시민이라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덕목이다. 이것을 알고 나니 마음을 다치지 않고 문제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피해자와 가해자로서가 아닌, 그에게 ‘동료 시민으로서 예의’를 갖춰주길 정중히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러 화를 낸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럼에도 화를 내야 할 일이 있으면 나는 또 화를 낼 것이다. 이상한 농담에 불편했던 나와, 원치 않음에도 그 농담에 화답해야 했던 동료들과,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르던 그 사람을 위해서 말이다. 참, 그날 이후 그 사람은 옷을 차려입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김경미 정치발전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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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은 누구나 한번은 하는 경험이지 않을까 싶네요. 새로 오신 선생님을, 이웃 학교 학생을, 이름 모를 그 누군가를 기다리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성장기에 필요한 경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짝사랑은 비극입니다.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끙끙 앓다가 결국 저 사람은 내게 관심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죠. 이 각성은 충격적입니다.

미국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동아시아를 지나가며 남긴 여파가 꼭 초특급 태풍 같습니다. 특히 한반도는 말이죠. 여기저기에서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틸러슨 장관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만찬을 했지만 유독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틸러슨은 일본을 ‘가장 중요한 동맹’으로 불렀지만, 한국은 ‘중요한 파트너’로 지칭했습니다. 오바마 정부 때는 ‘핵심축’으로 불렸는데 말이죠. 결국 한국이 강등된 것은 아닌가, 트럼프 정부는 한·미동맹을 미·일동맹보다 더 낮게 보고 있지는 않나 걱정을 하고 있죠.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까, 관심이 적어지지 않을까 걱정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15년 리퍼트 미국 대사 테러공격 이후 대응은 좋은 예입니다. 기괴한 부채춤 공연에서부터 엄마부대의 꽃바구니 시위 등 도가 지나친 반응이 이어졌죠. 정치인들의 병문안이 과도해 병원에서 이를 저지하기도 했습니다. 걱정을 넘어 버려짐에 대한 공포의 표출이었죠. 2017년 군가가 울려 퍼지는 태극기집회에서 엉뚱하게 등장한 성조기 또한 비슷한 원인에서 생긴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걱정은 온당한 것일까요? 트럼프 정부는 한국을 버리거나 최소한 가볍게 보는 것은 아닐까요?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북한을 “큰 걱정거리”로 보며 “새로운 제재 등 중대한 추가 조치들”을 강조한 것은 오바마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죠. 중국과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되는 사드도 오바마 정부 주도로 시작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서 한국을 ‘핵심축’으로 보았을 수 있지만 일본 중심의 동아시아 구상을 떠받드는 축이었죠. 중국의 전략적 위협을 견제하는 첨병으로 한국의 가치는 늘 비슷했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른 것은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 1994년 영변 핵시설을 폭격하려 한 것은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어도 미국의 한반도 정책은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미국의 마음은 애초에 변한 것이 없으니 우리의 걱정은 온당치 않습니다.

그 걱정이 온당치 않은 또 다른 이유는 정작 걱정해야 할 것을 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앞날이죠. 미국이 우리의 앞날을 지켜주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우리가 ‘믿음’을 가져도, 애원해도, 무기를 사줘도 말이죠. 사실 미국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싸이가 잊혀 가면서 한국은 그냥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나라, 삼성과 현대의 나라 정도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안에 수천만의 사람들이 북한 포대에 인질로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미국이 위협적인 발언만 해도 정국이 흔들린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격변하는 세계 정세에서 한반도의 안전을 모색하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죠.

놀라운 것은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운명을 동일시하는 한국 내 목소리입니다. 아무리 제한적 군사행동도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매우 큰 나라의 외교부 장관인 윤병세는 “군사적 억제방안”까지 언급했습니다. 미국의 시각이 한국 지도자들에게 투영돼 있음을 알 수 있죠. 문제는 이런 정치 지도자가 윤병세 장관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선주자들의 입을 지켜봐야겠습니다.

짝사랑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을 따라 해보기도 합니다. 비슷한 옷도 입어보고 그 사람 단골집도 가봅니다. 그 사람과 더 가까워진 듯하고 그만큼 흐뭇합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짝사랑은 여전히 짝사랑으로 남습니다. 게다가 그런 노력과 공을 많이 들일수록 짝사랑의 결말은 더욱 비참하죠. 하지만 이런 짝사랑의 진실을 마주하기 힘든 것은 청소년뿐만은 아닌 듯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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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사회의 평범한 직장 생활자들도 일이 예상대로 처리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수립하는데,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이 탄핵심판이란 국가중대사를 앞두고 탄핵이 인용될 경우와 기각될 경우에 대비해 아무 준비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탄핵 인용 이후 드러난 여러 정황과 보도를 살펴보면 대통령 참모진은 처음부터 탄핵 인용 가능성에 대해 보고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책 없는 전 대통령과 참모진의 일사불란(一絲不亂)이 일으킨 분란(紛亂)을 보면서 세월호 참사에 숨겨진 이면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41년 6월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다. 역사상 최고의 스파이로 손꼽히는 소련 첩보원 조르게는 침공 9일 전에 이미 “독일이 6월22일 새벽에 9개 군 150개 사단으로 공격할 것”이라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처칠과 루스벨트 역시 국경에 독일군이 집결 중이란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개전 초기 소련은 독일에 철저하게 패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스탈린이 독일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 마음이 컸기에 어떤 경고나 정보도 믿지 않았다. 두 번째는 투하체프스키를 비롯해 유능한 지휘관들을 대거 숙청하고 그 자리에 충성스럽지만 무능한 충견들을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선이 무너지고, 지상에 주기돼 있던 1200여대의 공군기가 파괴당하는 순간까지도 스탈린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것은 전쟁이 터지고 열흘이나 지난 뒤였다.

히틀러 역시 암살 음모와 쿠데타에 대한 두려움으로 군부의 병력 이동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1944년 6월6일 새벽, 15만6000여명의 연합군이 노르망디 해안에 상륙했다. 독일의 일선 사령관들은 이들을 저지하기 위해 기갑사단의 이동이 필요했지만, 하필 그 시간에 히틀러는 관저에서 자고 있었다.

그의 잠을 깨우는 것이 두려웠던 참모진과 보좌관들은 그날 오전 11시까지 히틀러를 깨우지 못했다. 평소 자고 있는 동안에는 절대 깨우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은 연합군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히틀러가 잠에서 깨어나 보고를 받았을 때는 연합군이 이미 교두보를 확보한 뒤였다.

권위주의 체제의 문제는 단지 정치권력 집중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국민 개개인의 심리구조에 심대한 정신 병리현상을 초래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체제의 해악은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힘이 내부가 아니라 마치 물 위에 떠있는 작은 배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도록 만드는 것이다. 오랜 세월 이런 체제에 길들여진 사회는 위로부터 아래까지 강자의 힘에 의해 지배되고 조율되는 마이크로 파시즘적인 일상을 조성한다. 그런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과 개인의 권위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보다 약한 타인을 짓누르고 큰소리칠 때만 인정받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개인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만족하는 감정을 보람이라고 했을 때, 한국 사회에서 보람이란 내면적인 것이 아니라 외재적 가치,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 바깥에 있는 권력관계에 따라 끊임없이 요동친다.

자신의 양심과 내면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야만 체제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사회에서 출세하기 위해선 자신의 주체성을 내려놓고 외부의 권력 변화에 성공적으로 편승해야 한다. 표면적으로 대단히 강력한 듯 보이지만 권위주의 체제란 외부에서 몰아치는 격랑으로부터 권력 자신을 보호하려는 보호본능이 그 본질일 수밖에 없기에 어떤 분란도, 실패의 가능성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에 비해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혼란과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있지만, 이를 대화와 타협으로 수용하여 타당한 절차와 투명한 정책으로 해결해 나간다. 이제야말로 권위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개인의 존엄과 권위가 바로 서는 민주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다.

전성원 | 황해문화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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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차분하지만 단호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주문은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을 선언하는 순간이었다. 역사에 길이 남을 결정문을 읽어 내려가는 이정미 권한대행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최고 통치자의 권력보다 헌법 수호의 가치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최종 확인했다. 그리고 그 주문의 반대편에 헌법을 위배하고, 수호할 의지도 없으며, 국민의 신임을 배신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침묵이 있다.

탄핵이 이루어지고 이틀 만에 박근혜는 헌재의 판결에 승복한다는 공식 입장 없이,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박근혜 지지자 중 3명이 헌재 앞에서 과격한 시위를 하다 목숨을 잃었고, 박사모 회원들은 헌재 재판관들을 향해 피의 보복을 선언했다. 지난 일요일 밤,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자택에 도착한 박근혜는 예상과 달리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지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민경욱 전 청와대 대변인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고 박근혜의 헌재 불복 의사를 대신 전했다. 삼성동 자택으로 간 다음 날, 소송 대리인단에 참여했던 박근혜 탄핵의 일등공신(?) 김평우 변호사는 문전박대를 당했고, 대신 청와대에서 올림머리를 해주었던 미용실 아주머니가 자택으로 들어갔다. 아, 이 와중에도 올림머리를 해주어야 하는구나!

헤어 롤과 올림머리. 그것은 이정미와 박근혜의 현 상태를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아이콘이다. 판결 당일 날, 밤을 꼬박 새우고 머리 손질도 제대로 못한 채 그녀의 머리에 그대로 말린 채 있던 두 개의 분홍색 헤어 롤은 치장보다는 자기 일에 성실한 한 여성 재판관의 인간미의 징표가 되었다. 반면 세월호 재난의 7시간을 진상규명할 때, 세간의 입방아에 오른 박근혜의 올림머리는 재난의 시간도 어찌할 수 없는 컬트적 여왕 숭배의 징표가 되었다. 볼품없는 이정미의 헤어 롤은 헌법재판관이라는 권위 뒤에 감추어진 소소한 일상의 오브제였다. 반면 손질에 대략 50분이 걸린다는 박근혜의 올림머리는 평생 자기 어머니를 대리한 이미지 정치의 유령에서 벗어나지 못한, 불안 심리의 편집증의 표상이다. 헤어 롤과 올림머리라는 상반된 두 여성을 표상하는 헤어스타일에서 우리는 주권의 심판과 권력의 퇴행, 헌법의 가치와 통치의 무능이 마치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우화를 상상하게 된다.

이정미는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나온 그 다음 날 퇴임식을 가졌다. 헌법의 이름으로 박근혜를 유일하게 제압했던 이 여성의 퇴임식은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방을 뺀 그 다음 날 이루어져 더 극적이다. 이번에는 헤어 롤을 한 채 나타나지 않았다. 이정미는 퇴임사에서 한비자의 말을 빌려 “법의 도리는 처음에는 고통이 따르지만 나중에는 오래도록 이롭다”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정미는 전효숙 전 재판관에 이어 여성으로는 최연소로 두 번째 헌재 재판관에 올랐다. 당시 그녀는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1979년 10·26사태를 보고, 수학교사에서 법률가로 꿈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가 숙명적으로 박정희의 딸이자, 유신정치의 최후 통치자 박근혜를 파면시키는 결정문을 낭독하는 역할을 맡았다.

헤어 롤과 올림머리의 숙명은 법과 권력, 시민 주권과 유신 독재의 숙명을 대리한다. 헤어 롤은 혼자서 말 수 있다. 올림머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다. 헤어 롤과 올림머리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일에 치여 차 안에서 말 수밖에 없었던 이정미의 헤어 롤과 스프레이와 핀으로 고정해 머리를 수직으로 올려 어머니와의 빙의를 기도하는 박근혜의 올림머리는 ‘소박한 워킹맘’과 ‘우울한 퀸’의 형상을 대비한다. 국민적 환호를 받으며 퇴임한 최연소 여성 재판관 이정미와 파면당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을 눈앞에 둔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의 피할 수 없었던 숙명. 그 숙명의 파노라마에서 ‘헤어 롤과 올림머리’는 탄핵이라는 위대한 대하 드라마에 가장 어울리는 제목이 아닐까 싶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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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탄핵심판이 막바지 단계로 접어든 지난 6일, 사드 발사대 등 일부 장비가 전격적으로 오산 미군기지에 들어왔다. 2월27일 롯데가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부지로 국방부에 제공하기로 결정한 이후 사드 배치는 속도를 내었다. 그러자 탄핵 인용 당일인 10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과거 정부의 그릇된 외교안보 정책을 즉각 동결하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한·미가 계획한 대로 가급적 2개월 안에 사드 배치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는 당초 금년 말로 예정되어 있던 사드 배치를 대선 예정일인 5월9일 이전에 끝내겠다는 뜻이다.

도대체 정부는 왜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것일까? 이렇게 서둘러 사드를 배치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소한 북핵을 방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답은 ‘둘 다 아니다’이다. 무기체계로서 사드의 성능 자체가 신통치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핵 문제 발생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소하지 않는 한 북한이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북한의 6차 핵실험 징후가 포착되고 있지 않은가. 사드 배치는 남북 간 군비경쟁을 불러올 뿐이다. 더구나 사드 배치는 “북한은 핵보유국”이라는 김정은의 주장(2016년 5월 7차 노동당대회)에 손을 들어주는 결과가 된다.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가 화풀이하듯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떠나면 우리는 앞으로 더 이상 북한의 비핵화를 요구할 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8일 경기 평택시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 지난 6일 사드 발사대 2기와 일부 장비를 싣고 온 것으로 알려진 C-17 수송기(왼쪽)가 활주로에 서 있다. 이상훈 기자

임기가 두 달도 채 안 남은 현 정부가 이렇게 졸속으로 사드 배치를 서두르면 안된다. 차기 정부가 사드 문제를 합리적이고 원만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떠나야 그나마 후일 역사적 비난을 덜 받을 것이다. 그럼 정부가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사드 문제를 두 달 후에 출범할 차기 정부로 넘긴다면 해법은 있는가? 이와 관련해 우리는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이 지난 2월7일의 세미나와 3월9일의 라디오 방송에서 제기한 사드 문제 해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월7일, 송 전 장관은 “사드와 북한의 핵·미사일을 묶어 해결하는 협상의 과정을 한국이 먼저 고안해야 한다”면서 “일차적으로는 중국이 북한으로부터 핵·미사일 실험을 안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등 북핵 문제의 진전에 더 큰 역할과 책임을 지게 하고, 미국과는 사드 배치 일정을 조정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했다. 3월6일 밤 사드 발사대 일부 장비가 전격적으로 들어온 뒤인 9일, 송 전 장관은 “중국이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는 X밴드 레이더가 아직은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시점에 한국이 미·중에 명분을 주면서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런 계기가 없는 상황에서는 미국도 중국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미·중에 명분을 주면서 사드 배치의 원인이 된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앞장서서 풀어나가야 한다.

사드 문제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전면 반대하는 후보가 있는가 하면 수용하는 후보도 있다. 사드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후보도 있다. 그런데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후보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는 아직 밝히지 않고 있다. 장차 누가 사드 문제 해결책임을 맡게 될지는 모르지만, ‘핵-미사일-사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서 6자회담을 열도록 선도하면 사드 배치 문제 때문에 중국이 우리에게 가하는 경제보복부터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미동맹도 유지하면서 북핵 문제도 해결하는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사드 문제를 차기 정부로 넘겨 국민동의 절차도 밟고, 밖으로는 미·중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핵-미사일-사드 일괄 협상’을 하는 6자회담 개최를 선도해 나가면 북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시작될 것이다. 이 방안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협상 병행’을 제안한 ‘왕이(王毅) 이니셔티브’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중국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의 보복도 중지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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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민주주의란 것이 민의를 표현하기 전에 먼저 대리인을 자처하는 자들의 수준을 끝없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더구나 과연 이것이 민주적인가? 민의와 상관없이 그 민의를 대표할 대리인들이 선정되는 것이. 무엇이 저들을 대선후보라고 정했는가? 여론조사? 지지율? 과연 그것이 민의를 얼마나 반영할까? 한국의 정치인 지지율 조사가 얼마나 그릇되고 조작되고 바람몰이용인지는 이미 지난 18대 대선에서 충분히 폭로된 바 있다.

결국 대의민주주의로 불리기도 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선출된 자들(the elected) 가운데 고르기 게임이다. 즉 ‘자격 갖춘 자들’(the elite) 중에서 고르는 정치게임. 1987년 헌법으로 재개된 대통령 직선제도 마찬가지다. 내 주권은 선거일과 선거일을 앞둔 얼마 동안만 작동한다. 그리고 그 이전에 나는 내가 원하는 후보감이 없는 것도 참아내야 하고, 내가 주인이라는 사실도 잊어야 한다. 지금도 이른바 주권자들은, 어느새 촛불 든 자발적이고 다양하며 역동적인 시민들에서 촛불 든 방청객이 되고 있다. 주말마다 촛불 들고 광화문 콘서트에 모이는 관중들. 일부에서 제도권과 촛불권력, 혹은 의회권력과 시민권력의 관계를 두고 ‘이중권력’으로 개념화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국회와 사법권력, 그리고 촛불권력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시너지효과를 내야 한다는 규범적인 언명에 불과하다. 왜 규범적이냐면? 현실의 정치사를 보면, 제도정치와 사회운동정치, 아니면 의회권력과 ‘민중권력’, 지금은 또 이름을 바꿔 의회권력과 ‘시민권력’이라는 양대 정치가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관계를 맺거나, 양자가 유지 존속하면서 상호 성장한 경우는 거의 찾기 어렵다. 양자는 대립 혹은 경쟁적인 동원의 관계다. 이것은 사회운동론이 주로 규명해온 수수께끼이기도 하다.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주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 참가자가 노란 리본이 깃봉에 달린 태극기를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리고 이 점이 더 중요한데, 그렇게 되는 이유가 바로 양자 동원체제의 효과나 작동기제 탓이 아니라 그들이 터를 두고 있는 민주주의의 성격 탓이라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를 거세하면서 의회민주주의라는, 한때는 반민주적 장치로 불렸던 정당정치에 기초한 대의제를 유일한 민주주의로 만들어낸 정치체제다. 그렇게 자유주의를 민주주의가 안았기 때문에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지금 의회민주주의의 신봉자들이 광장권력과 제도정치의 시너지와 이중권력 상태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 테제이며, 혹은 광장권력을 통해 의회권력을 장악하거나 의회권력으로 진출하려는 욕망의 정치적 표현일 뿐이다. 그래야 대중은 스스로 주권자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동원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동원은 선거로 이어주는 동력이고, 선거는 대중의 주권을 제도적 대리자들의 대의정치로 전화시키고, 대중은 다시 장외로 퇴출되거나 아니면 제도화된다. 벌써부터 정권교체 이후 ‘대중’의 동원이 불러올 혼란과 환멸을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터져 나온다.

그렇다면 촛불 이후에 올 것들은 무엇일까? 여러 얘기가 가능하겠지만 미국의 오큐파이운동에 대한 지젝의 인용으로 마무리하련다.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길로 빠지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유쾌한 순간을 맞고 있지만, 축제를 여는 데는 그렇게 돈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중요한 건 축제가 열린 그 다음날입니다. 우리가 저마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무언가 변화돼 있을까요?”

지금 특검의 마지막 브리핑에 귀를 쫑긋하고, 다음주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 여부로 세상을 행과 불행으로 나누고자 한다면 당신은 많이 불행하고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환멸과 희망은 한 끗 차이다. 어느 쪽으로 풀썩 넘어지는가, 아니 풀썩 넘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고 버틸 것인가? 촛불이 촛농으로 흘러내려 지저분한 얼룩이 되지 않으려면 촛불은 버텨야 한다. 투표함이 아니라 이 광장에서. 그리고 나아가야 한다. 99%가 사는 길은 법관의 판결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둘러싼 투쟁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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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민주당 당대표라면 세 가지를 하고 싶다. 첫째, 정책검증 및 공약이행 TF를 구성하고, 둘째, 조직강화 TF를 만들고, 셋째, 2030프로젝트와 인권보호팀을 운영하고 싶다.

정책검증 및 공약이행 TF는 국회 상임위별로 팀을 구성해 각 후보의 공약을 검토토록 하겠다. 이 팀은 민주당 국회의원, 구의원, 시의원, 도의원과 민주당 소속 기초단체장, 지방자치단체장 및 민주정책연구원과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할 것이다. 각 후보들의 공약이 민주당의 비전에 잘 부합하는지, 실현가능한지,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검토한 후 그 결과를 유권자들에게 제공토록 하겠다. 후보 확정 후, 경선에서 아쉽게 떨어진 후보들의 공약과 대선후보의 공약을 종합해 민주당 대선공약을 만들겠다. 내가 민주당 당대표라면 여기에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등 중도에 하차한 후보들의 정책까지도 포함하며, 각 경선 캠프 핵심 멤버들도 이 TF에 함께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겠다.

조직강화 TF에는 경선 과정에 참여한 시민들과 후보 및 그 지지자들이 민주당에서 계속 활동하고 싶도록 동기부여할 방안을 찾아오라 하겠다. 각 후보 지지자들에게는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떨어졌다고 민주당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말고, 민주당 안에서 계속 분투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겠다. 이를 통해 민주당이 어느 한 후보의 당이 아닌, 각 후보 지지자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해도, 자기가 바랐던 정책이 문재인 정부, 안희정 정부, 이재명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를 통해 실현됨을 보고 느끼게 하겠다.

내가 민주당 당대표라면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세상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이야기하겠다. 열정의 초점을 ‘대선 당일’에 두지 말고,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둬달라고 말하겠다. 민주당이 약속한 공약이 실제로 이행될 때까지, 이웃에게 그 정책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달자가 되어주기를 부탁하겠다. 민주당이 뒷걸음질치면 따끔하게 회초리를 드는 선생이 되어달라 말하겠다. 무엇보다 당원이 되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겠다. 민주당 당원수가 3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 440만명보다, 보수기독교인 960만명보다, 정부 기준 공무원 100만명보다는 많아야 입법부가 행정부를 견제할, 민주당 관료가 고도의 전문성으로 훈련된 행정 관료들을 다스릴 힘이 생긴다고 이야기하겠다.

내가 민주당 당대표라면 각 후보 캠프에서 탁월함을 인정받은 2030청년들을 발굴해 내년 지방선거에 도전하도록 하겠다.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제도적 기반을 지금부터 만들겠다. 이들이 선거 때 반짝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닌, 유럽 선진 정당들과 같이 기초의회에서부터 훈련받아 이후 전국 단위의 예산과 입법까지 다를 수 있는 유능한 직업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을 만들겠다.

내가 민주당 당대표라면 각 후보 캠프에서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2030청년들이 최저임금에 준하는 활동비를 받고 있는지 알아보겠다. 그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이나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족이나 지인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보고, 당 차원에서 이들에게 활동비를 줄 수 있도록 하겠다.

내가 민주당 당대표라면 캠프 내 위계나 성별, 장애, 인종 등에 의한 차별이 일어나지 않는지, 불필요한 신체적 접촉이나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일어나지는 않는지 살피는 인권보호팀을 만들겠다. 캠프가 권력을 다루는 자리에 올라갔을 때, 그 사람과 조직이 타인과 약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미리 검증할 수 있는 곳이 되게 하겠다. 문제가 되는 이들이 국회 청문회와 언론의 검증은 통과해내더라도, 민주당의 검증은 통과할 수 없게 하겠다. 이를 통해 정당이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만들어내는 최고의, 최후의 보루임을 알게 하겠다.

내가 민주당 당대표라면 그렇게 하겠다. 정의당, 녹색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노동당,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이 이루어진다면, 내가 그 당대표라면 역시 그렇게 하겠다.

김경미 서울시 주무관 청년정책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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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일본에서 사는 한국인을 위해 만든 법이 있다. ‘일본 외 출신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적 언동의 해소를 향한 대응 추진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이다. 약칭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일본의 극우 세력은 재일 한국인을 향해 ‘바퀴벌레를 내쫓아라’ ‘좋은 한국인이든, 나쁜 한국인이든 모두 죽여라’라는 증오 발언을 자행했다.

증오 발언은 재일 한국인을 일본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할 목적에서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 국회는 증오 발언이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넘어 일본 사회를 찢어 버리는 해로운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그 해소를 위한 조치와 시책을 추진할 의무를 부과했다. 비록 형사처벌 조항은 없지만 공공영역에서 교육과 지원 그리고 사전적 규제를 의무화했다. 이처럼 일본 사회는 증오 발언의 사회적 해악에 인식을 같이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구의 박영수 특검 집 앞에서 열린 집회 연설에서 “목을 쳐야 한다”는 공개 발언이 있었다고 한다. 대한민국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는 극단적 증오 발언이다. 대한민국은 인간의 존엄성을 터전으로 섰다. 그리고 자유롭고 공정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국민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에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한다. 공개 집회 연설에서 목을 쳐야 한다고 발언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목을 쳐야 하는 대한민국은 없다. 이른바 보수이든, 진보이든 이런 발언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어느 쪽의 세력이든, 그러한 발언에 대해서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시민들이 강력히 맞서야 한다.

목을 치자는 공개 발언은 국가 안보를 매우 위태롭게 한다. 대한민국은 정체성을 지킬 주권이 있는데 그 힘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국민이 지키지 않으면 주권은 바로 쓰러질 고목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국민통합이 안보이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일부를 배제시키고, 차별하는 행위야말로 안보의 적이다.

이번 발언은 우발적이지 않다. 국민의 일부를 ‘비국민’으로 만들어 사회에서 배제하고 차별하고 억압하고 제거하는 것은 식민지 잔재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인을 ‘불령선인’으로 낙인찍어 조선 사회에서 배제시키고 처단했다. 식민지였으므로 조선 사람들이 스스로 국회에서 법률을 만들어 불령선인법을 제정한 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하여 삼천리 방방곡곡의 지역 사회는 갈기갈기 찢겼다. 공포와 분열의 시대였다. 한 사회가 내부 구성원의 일부를 비구성원화하고 처단하는 처참한 역사였다. 한국전쟁 시기의 한반도 전역에서 자행된 학살은 참혹했다.

2017년인 지금, 대한민국 공동체의 일부를 비국민화하려는 그 어떠한 시도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형법상 협박죄에 이를 증오 발언에 대해서는 입건해서 수사해야 한다. 협박죄는 협박 상대방이 된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정도의 해악을 고지하면 성립한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최소한 일본이 재일 한국인을 위하여 그랬듯이 내부 구성원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증오 발언이 얼마나 사회 통합에 해로운지, 이른바 보수와 진보를 떠나 공통으로 인식해야 한다.

증오 발언 대책법을 제정해서 증오 발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남과 북은 사형제를 동시에 폐지해야 한다. 일본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형성된 비국민화에 대한 트라우마가 아직 크다. 불령선인화와 비국민화가 곧 죽음이요, 학살이었던 고통이 너무 처참했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선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정치공동체를 한반도에서 뿌리내리기는 매우 어렵다.

이제 더 이상 국가 또는 그 아류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는 곳이 되어야 한다. 이런 안도와 안심의 메시지를 남과 북 모든 생명체의 저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송신해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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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적 한파의 경험과 지구온난화 간의 괴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경험이 중요한 자산임은 상식입니다. 취업 공고엔 경험자 우대라는 글귀가 자주 등장하고 역사가 소중하게 다루어지는 이유입니다. 논쟁에서도 경험을 앞세운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내가 직접 겪었다고 하면 주장에 힘이 실리게 마련이죠. 그래서 논쟁이 치열할수록, 경험이 많다고 생각할수록 이런 화법을 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상사나 연장자 등 경험이 많다고 여기는, 또는 여겨지는 층이 상대적으로 경험이 얇거나 그렇게 여겨지는 이를 향해, 경험을 무기로 일방적 말을 쏟아내는 경우 전자를 ‘꼰대’라고 부릅니다. 꼰대들의 말투도 굉장히 비슷합니다. 나는 이렇게 잘하는데 너는 왜 그러냐는 식의 말투가 그 전형이죠. 나는 생전 그런 실수가 없었는데 넌 매일 실수냐. 나는 더한 일도 참았는데 넌 왜 그것도 못 참냐. 내가 학생 때는 패기가 넘쳤는데 너희는 왜 열정도 없냐. 즉 꼰대는 경험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돼 의미 있는 대화나 검증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겠습니다.

정치인 중에도 꼰대가 많습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표적인 경우죠. 2016년 선거전 내내 비즈니스 경험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환심을 샀습니다. 자신의 엄청난 부는 곧 지도자가 지녀야 할 자질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떠들어댔죠. 비난과 반대도 컸지만 많은 이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트럼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런 면에서 이명박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치인입니다. 대통령 시절 그 유명한 ‘해봐서 아는데’ 시리즈를 쏟아냈죠. 장사를 해봐서, 배를 만들어 봐서, 민주화운동 해봐서 등등 경험을 강조, 과장하면서 주장의 근거로 즐겨 삼았습니다.

경험이 소중한 것은 맞지만 큰 함정도 있습니다. 경험은 기억이 되고 자아의 일부가 되는 까닭에 미화되기 쉽죠. 실수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는 묻히거나 심지어 잊히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경우 도산과 빚으로 고생했지만, 선거전 동안 이런 실패에 관해서 일언반구도 없죠. 또 한편으로 경험은 개인적일 수밖에 없기에 편협한, 또는 그릇된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눈보라의 경험과 지구온난화에 대한 의심은 좋은 예입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눈보라가 쳐서 집이 완전히 묻히고 전기가 일주일 끊기는 경험을 했다 해도 이는 개인의 지엽적 경험일 뿐이죠. 하지만 이런 경험을 지구온난화 현상의 방증을 찾은 듯 으스대는 사람도 미국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경험을 맹신하며 편협한 시각을 정치세력화한 이들은 그래서 위험합니다. 어버이연합 회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6·25전쟁의 경험, 전후 불안정한 시대를 산 경험이 정치적 열정의 근원이 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빨갱이’들에게 당했다는 기억은 빨갱이가 사라진 시대에서 빨갱이를 계속 찾게 하였을 겁니다. 그러니 그 빨갱이를 보지 못하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를 총탄에 잃은 박근혜는 자신의 불안감을 바탕으로 “국민을 각종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겠다며 사드를 밀어붙였습니다. 심지어 대통령의 권한을 “선생님”에게 던져주고서 “컨펌”을 기다리는 것마저 정당화했습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들을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경험했다는 확신은 검증을 힘들게 해 위험합니다. 억지와 꼰대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각종 오류에 취약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경험을 무작정 버릴 수는 없죠. 대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험을 모으는 지혜입니다. 어제 눈 폭탄을 맞았지만 겨울 전체를 보면 역사적으로 더운 겨울이었던 것, 이제는 저성장 경제의 구조적 제한이 젊은이들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 우리 집이 빨갱이 손에 몰락했지만 서북청년단의 총칼에 마을 전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경험을 서로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어제와 오늘을 살피고 나와 너의 대화를 이어가야 합니다. 민주체제는 이를 정치적으로 구체화한 겁니다. 서로의 경험을 비교해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민주체제이죠. 한 사람의 직관과 경험에 기댄 권력은 독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혹시 독재에 익숙해지지 않았었나요. 박근혜를 파면하며 느슨해진 경계의 줄을 바꾸어 매야겠습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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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그동안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던 분이 갑자기 당신이 지지해왔던 정당과 대통령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평소 내가 잘 알던 분이라 여겼던 가까운 친·인척들조차 이런 면이 있었던가, 또는 이런 사람이었나 하고 깜짝깜짝 놀라게 될 때가 있다. 평소 스마트폰 사용을 어려워하고, 문자메시지는커녕 전화도 반드시 필요할 때가 아니면 거의 연락조차 하지 않던 분들이 갑자기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그런데 보내온 내용을 보면 더욱 놀라게 된다. 이분들은 뉴스도 보지 않는 건지, 아니면 박근혜·최순실 사태가 너무 황당해서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건지 이해하고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의 허황된 소식들을 전한다.

이런 상황과 맞닥뜨리면서 문득 떠오른 것이 <짱구는 못 말려> 극장판 시리즈 중 2001년에 제작되었던 <어른 제국의 역습>이었다. 일본에서 버블경제 거품이 꺼지고, ‘잃어버린 20년’ 중 10년이 경과할 무렵 제작된 이 작품은 부모세대의 좋았던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어느 날 짱구가 사는 도시에 ‘20세기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지난 20세기, 일본의 경제 부흥기였던 1970년에 개관했던 ‘엑스포 70’을 비롯해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부모세대가 좋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추억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짱구의 부모는 물론 유치원 원장님과 선생님들 모두 이곳에서 그 시절의 추억과 낭만에 젖는다. 20세기 박물관이 큰 인기를 끌자 복고바람이 불면서 추억의 LP판이 복각되고, 당시 유행이 되살아난다.

그러나 이것은 좋았던 옛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던 악당 ‘Yesterday once more’의 은밀한 계획이었다. 그들은 현재 어른이 되어 힘겨운 이들에게 젊거나 어려서 좋았던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들고 이들을 세뇌시켜 21세기를 20세기로 되돌리고자 한다. 과거의 추억과 향수에 젖은 어른들은 어린애가 되어 자기 자식들을 버리고, 20세기 박물관으로 몰려간다. 부모들이 모두 과거의 추억에 젖어 현재를 망각하고 어린아이가 되어버리자 짱구와 그 친구들은 “얘들아, 20세기 박물관 생기고 나서 너희 부모님들이 이상해지지 않았니? 아무리 옛날 추억이 좋아도 그렇지. 옛날 냄새를 맡더니 어린이가 되어버렸어. 이러다 우리 부모님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되어버리진 않을지 걱정이야”라며 한탄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일상생활방법론의 창시자였던 해럴드 가핑클은 우리의 일상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수많은 공유지식과 문화가 서로 복잡하게 투사되는 과정임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나누는 평범한 대화조차 사실은 눈빛과 몸짓 등 수많은 비언어적 언어와 상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 대화의 규칙들을 의도적으로 파괴하여 긴장상황을 초래하는 이른바 ‘상호작용적 반달리즘’ 실험을 진행했다. 이것은 자식세대가 부모와 대화하면서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거친 말투와 의도적인 말대꾸 등으로 그간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일상을 혼란시키는 실험이었다. 그러자 많은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지만 갑자기 변해버린 그들을 타인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사태는 어쩌면 그들의 배후에서 과거부터 누려왔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싶은 더 큰 악당 ‘Yesterday once more’의 계획에 따라 진행되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폭발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크고 심각한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인화성 짙은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다. 대선을 앞두고 더욱 뜨거워질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갈등은 물론 세대와 세대, 남성과 여성 사이의 주장에 대해 공감과 치유, 정치적 비전 제시를 위한 진지한 대화가 아닌 조롱과 멸시라는 상호작용적 반달리즘(반지성주의적)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서로 간의 의심과 무례함을 자체적으로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서로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생산적 대화가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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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서울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에서는 두 개의 의미있는 공연이 있었다. 하나는 이윤택 연출의 연희단 거리패의 <씻금>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정월 대보름맞이 <얼쑤, 탄핵하세!> 국악공연이다. ‘씻금’은 진도 씻김굿을 바탕으로 만든 창작극으로 진도 앞바다에 몸을 던진 망자들의 혼을 달래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천을 떠돌던 망자들이 각자의 원혼을 씻고 영원한 안식처로 떠나려 할 즈음, 저 멀리서 울부짖는 아이들의 통곡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은 세월호 어린 희생자들을 위한 애도의 시간이기에 충분하다. 공연을 마치고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하얀 천을 들고 배우와 관객들은 광화문광장으로 나아가 세월호 희생자들의 영정이 있는 곳으로 향하여 넋을 달랬다. 당초 원작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씻김의 예식은 광화문광장 블랙텐트였기에 더 깊은 공감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주 토요일 퇴진행동 본부의 본 집회를 마치고, 저녁 8시부터 블랙텐트에서 있었던 <얼쑤, 탄핵하세!> 국악공연 역시 감동의 무대였다. 특히 공연의 맨 마지막 순서로 나온 ‘앙상블 시나위’의 격정적인 연주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국악공연을 선사했다. 알다시피 앙상블 시나위는 2015년 11월에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예정된 <소월산천> 공연을 한 문화 관료의 어처구니없는 검열로 인해 하지 못했다. 표면적으로는 <소월산천> 공연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극장 특성상 맞지 않아 삭제를 요청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소월산천> 공연을 함께 만들었던 박근형 연출가가 박정희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풍자한 <개구리>라는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앙상블 시나위는 블랙텐트에서 평소처럼 격정적으로 연주했고, 말미에는 이 팀의 검열에 분노하여 1인 시위를 벌인 안무가 정영두와 함께 즉흥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1월 10일 광화문광장에 문을 연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이해성 극장장(극단 고래 대표)은 “정치권력에 빼앗긴 극장의 공공성을 광장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고 말했다. 권호욱 기자

이 모든 공연의 감동은 모순적이게도 블랙리스트 덕분이다. 광화문 캠핑촌에 블랙텐트라는 극장이 들어서고 나서 무대에 오를 수 없었던 공연들이 무대에 올려졌고, 모든 공연은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검열 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룬 작품, 세월호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연극, 그리고 우리 시대 재난의 아픔으로 각인시켜준 마임공연과 영화상영, 시낭송, 국악공연까지 블랙텐트는 검열로 빼앗긴 극장을 대신해서 예술인들의 정겨운 유배지이자 창작의 수용소가 되었다. 비록 시설은 열악하지만, 열정은 충만하다. 발은 시리지만, 마음은 따뜻하다. 그럴듯한 대접은 못 받지만, 검열은 없다. 오직 예술가로서 자기 주권과 관객의 감동적인 환호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탄핵을 향한 촛불의 리듬은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를 뚫고 봄을 맞이하려 한다. 2월에는 탄핵되길 희망했지만, 국면상 3월 초를 기다려야 한다. 아니 그 이상을 견뎌야 할지도 모른다. 블랙텐트는 그날까지 광장에서 수많은 예술인과 관객들을 만날 것이다. 빼앗긴 극장에도 봄은 오는가? 아마도 올 것이다. 최소한 물리적으로 계절의 순환 원리에 따라 따스한 봄은 올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의미하는 ‘은유의 봄’도 올 것이다. 사악한 통치자는 탄핵당할 것이고, 감옥에 갈 것이며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위한 진상규명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야 한다. 

그런데 블랙텐트에는 정말 봄이 올 것인가? 역설적이게도 탄핵이 인용되면 블랙텐트는 아마도 사라질 것이다. 광화문 캠핑촌의 텐트와 각종 작품들과 시설도 서서히 정리될 것이다. 만일 기각되면 블랙텐트는 저항의 시간을 연장하며 존속될 것이다. 블랙텐트에 봄이 오려면 블랙텐트는 소멸되어야 한다. 빼앗긴 극장에 봄이 오면 우리는 다시 블랙텐트를 정리하고 본래의 극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최선의 길일까? 아니다. 빼앗긴 극장에도, 그래서 애써 만든 블랙텐트에도 진정 봄이 오려면, 광화문광장에 블랙텐트가 영구적으로 존치되었으면 한다. 블랙리스트의 참혹한 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가 우리의 연기를 할 수 있도록 광화문 블랙텐트는 탄핵 이후에도 그곳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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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부 이래 역대 정부에는 대북정책이 있었다. 그러나 전두환 정부 이전에는 딱히 대북정책에 이름표를 달지 않았었다. 노태우 정부 때 북방정책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대북정책이라기보다는 대 중·소 관계개선 정책이었다. 김대중 정부가 처음으로 대북정책에 화해협력 정책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남북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다. 그 후 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 정책,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 정책,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이라는 이름표가 붙여진 대북정책을 추진했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대북정책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힘을 받을 수 있다. 상대인 북한에 메시지도 전달하고 국제사회의 협조도 끌어내야 한다. 국민의 지지와 동의를 구할 필요가 없는 독재국가라면 몰라도, 국민과 더불어 국가목표를 달성해 나가야 하는 민주국가에서는 정책 방향과 기조를 밝힘으로써 정책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북정책에 이름표를 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은 100%에 가깝다. 정권이 교체되면 정책교체는 당연한 일이지만, 남북관계의 현실 때문에도 차기 정부는 대북정책 면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와는 방향과 기조를 달리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9년 동안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착각과 오판에 근거한 대북정책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다양화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보수정부가 9년 동안에 초래한 북핵·미사일 능력부터 정지시키고 비핵화까지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국민들에게 분명히 알리기 위해서 대북정책의 내용에 걸맞은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

차기 정부는 민주정부 10년 동안의 대북정책 방향과 기조를 복원해야 하지만, 그동안 변화된 국제정세와 북한실정에 맞게 대북정책의 새판을 짜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정책의 이름이 주는 메시지와 이미지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은 정책의 방향과 기조를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대내외적 설명력은 컸다. 그러나 성과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손해도 만만치 않았다. 퍼주기 정책, 유화 정책, 안보외면 정책이라는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정책의 막대한 성과가 묻히는 아쉬움을 남겼다.

그런 점에서 차기 정부의 대북정책 준비 팀은 이런 비판과 공격을 사전에 차단하면서 대내외적으로 확실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쉬운 말로 대북정책에 이름표를 달아야 할 것이다. 정책의 내용 못지않게 이름이 그 정책의 이미지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바람에 맞게, 차기 정부는 안보를 튼튼히 하고 남북협력도 증진시킴으로써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정책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통일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도 솔직히 인정한다. 시대정신과 미래비전이 반영된 융복합적 표현이면 더욱 좋다. 박근혜 정부는 말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해 나가면서 북핵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행동은 통일준비라는 미명하에 흡수통일을 준비하면서 북핵·미사일 문제는 방치했다. 그 결과 북한의 핵보유라는 재앙만 초래했다. 차기 정부는 이전 정부의 이 같은 잘못을 지적하고, 안보부터 다지고 남북협력을 증진시킴으로써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전기를 마련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차기 정부 대북정책에는 ‘안보강화·협력증진 정책’이라는 이름표를 다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외용으로는 ‘Peace Keeping & Making Initiative’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평화 지키기(Peace Keeping)를 토대로 남북협력을 증진시켜 나가고, 그걸 기초로 평화 만들기(Peace Making)를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토대를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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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라는 분야가 있다. 이 분야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경제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성장했다. 초기만 해도 A분야의 부흥사들은 선진국의 성공 사례들을 들고와 해당 분야가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생산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선전했고, 기업들은 수출과 내수 시장에서 상품의 경쟁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A분야에 주목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비용이 상대적으로 덜 소요된다는 점, 그리고 비교적 단기간에 투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A분야가 꽤 매력적이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전문 인력의 양성과 고용이 A분야의 핵심이었던 것이다. 부흥사들도 이런 ‘저비용 고효율’의 특성을 세일즈 포인트로 삼았다.

실제로 A분야는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리던 1980년대 중반부터 고도성장의 기운이 잔존하던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구가했다. 기업들은 A분야 관련 부서를 조직 내부에 설치해 관련 분야의 대졸자들을 앞다퉈 채용했고, 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팅 업체들 역시 자사 나름의 독특한 문제 해결 비법을 간판으로 내세우며 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시절, 대기업의 사업을 수주한 업체 일부가 그 수익으로 건물 한 채를 매입하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실제로 부동산은 비용 절감과 자산 증식,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였다.

한편 A분야의 성장은 관련 교육산업의 성장을 견인해냈다. 일자리의 증가세를 반영해 대학에 관련 학과들이 속속 생겨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A분야 교육산업의 정점은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1995년, 대학 설립 요건이 완화되자 이후 전국 각지의 산비탈에는 대학 건물들이 지어 올려졌고, 그 대학 건물들에는 어김없이 A분야의 관련 학과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 분야의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어렵지 않게 교직에 진출할 수 있던 호시절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 A분야는 학문적으로 아직 미성숙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 체계화를 목표로 내건 대학원 과정이 여기저기 개설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A분야의 업무와 직능을 성공적으로 체계화한 것은 한국의 대학원이 아니라 태평양 건너 북미 대륙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학문적이 아니라 기술적인 방식이었지만 말이다.

그 시기, 일군의 북미 엔지니어들은 방법론의 체계화를 통해 A분야의 업무를 일종의 문제해결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려고 시도했고, 벤처기업을 설립해 그 성과 일부를 전문가용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에 적용했다. 이전까지 도제식으로 전수되던 전설의 노하우 비법들은 메뉴판의 수많은 기능들로 정리되고, 최상의 결과물을 추구하던 전문가의 미세한 손동작은 모니터의 화살표 움직임으로 대체되었다. 업무 과정의 반자동화는 A분야의 진입장벽 상당 부분을 허무는 결과를 가져왔다.

문제는 저성장 시대 진입 이후 상황이다. 시장 위축과 일자리 감소에도 불구하고 전문 인력은 대학을 통해 계속 배출되고, 여기에 낮아진 진입 장벽까지 더해져 임금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그리고 마침내 30대 중반의 경력직 평균 임금이 대도시 4인 가구의 평균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상황에 도달한다.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소득의 양극화? 그런데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남녀 임금 격차 1위의 가부장제 사회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젊은 대졸 여성을 인력 수급의 대상으로 삼는 ‘성차별적인 분업화’가 진행되리라 예측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좀 더 명확한 사태 파악을 위해 1970년대 경공업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구조에 대한 사회학자 구해근의 지적을 경청해볼 만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들은 결혼 후 공장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높은 노동강도, 장시간의 노동과 초과근무가 기혼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고용주들은 나이 든 노동자들을 임금비용을 줄이면서 새롭고 젊으며 다루기 쉬운 노동자들로 대체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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