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양재동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전시작전권 이양 조약 공개 소송 재판이 열렸다. 아다시피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에 근거해서 한국 대통령의 헌법상 전시 국군통수권을 이양받았을까?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0년 7월14일, 맥아더 유엔군 연합군 사령관에게 편지로 작전권을 넘겨준 것은 지금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엔군 연합군 사령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군 연합군이라는 법적 실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엔군 연합군은 유엔 총회 결의에 따라 해산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미국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지는가? 비밀조약이다. 국방부는 1978년 7월27일,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비밀약정을 체결했다. 국방부 장관은 2015년 11월13일, 정보공개청구에 답신을 보내면서 이 약정 이름을 ‘관련 약정(한미 비밀문서/’78.7.27)’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은 한국이 같은 해 10월17일, 이 ‘관련 약정’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는 한·미 외교부 간 한·미 연합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각서를 교환했다”고 답신했다.

지난 13일의 정보공개소송은 이 비밀약정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한·미 연합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각서를 공개하라고 소송을 했다.

법정에서 외교부는 이 각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각서가 사법부의 손에 처음으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정보공개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이다. 정보공개법은 재판부가 직접 비공개로 소송 대상 문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정했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열람 결과, 이 각서에는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이양한다는 조항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각서 그 어디에도 전시작전권 이양 조항은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전시작전권 행사를 하는 법적 근거로서의 조약은 어디에 있는가? 국방부 장관이 답신한 관련 약정(한미 비밀문서/’78.7.27)에 전시작전권 이양 문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관련 약정이란 것의 법적 실체는 여태 단 한 차례, 국회나 언론 그리고 전문가 집단에 의해 검증된 적이 없다. 위에서 보았듯이 한국 외교부가 따로 미국과 각서를 교환하는 절차를 추가한 것에 비추어 보면, 관련 약정은 아마 국방부와 주한 미군 사이에 실무적 절차로 체결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것을 국제법적으로 적법한 조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전시작전권을 비밀조약으로 미국에 이양한 것은 국민주권 위반이다. 이는 곧 헌법을 부정한 일이다.

이성덕 교수가 ‘미국의 군사작전통제권하에서의 한국군’이라는 논문에서도 지적했듯이 전시작전권 이양은 “실질적 국가 주권의 중요한 부분”을 이양한 것으로, “최소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방부와 외교부는 전시작전권 이양 비밀조약을 공개하지 않는다. 한·미 군사 비밀 문서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심지어 외교부는 정보공개 소송에서 미국이 각서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한국도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넘겨준 한국과 이를 받은 미국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 이는 헌법이다. 제74조 제1항이다. 중요 조약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는 헌법 제60조 제1항이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이제라도 전시작전권 이양 비밀조약을 공개하고 국회에 보내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정부에 비밀조약을 국회로 보내라고 요구해야 한다.

안보·외교·통상에서 적법절차 원칙을 세워야 한다. 지금 온 나라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전시작전권 이양 비밀조약은 절차적 정당성 훼손의 뿌리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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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이번 정부 인사청문회도 요란합니다. 비난과 고성이 오가고 사과와 변명이 따릅니다. 지지율이 14%인 제1 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위장협치’ ‘독선’을 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죠. 하지만 야당의 고함이 큰 것과는 달리 여론은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80% 안팎에 이르고 있죠. 아주 드문 일입니다. 논란이 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찬성이 62.1%로 반대 의견 30.4%에 두 배가 넘었습니다. 대통령의 임명강행을 주문하는 의견도 과반 이상이죠. 민의가 어디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민주체제라는 가정을 놓고 보면 야당의 법석 떠는 모습은 이상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기이한 풍경이 그렇게 낯설지도 않죠. 민의를 거스르는 자유한국당의 전통은 아주 오래된 탓입니다. 박근혜가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한나라당이었고, 이는 이회창이 1997년 15대 대선을 준비하며 꾸린 정당이었습니다. 그 전신인 신한국당은 1995년 김영삼이 당내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바꾼 이름이었고 그 전에는 민주자유당이었죠. 민자당은 1990년 3당 합당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핵심인 민주정의당은 전두환의 정당으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공화당은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군부 세력이 구 자유당 세력,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흡수해 1963년 창당했죠.

굳이 독재와 총칼의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됩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염원을 뿌리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4대강 사업을 강행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병적 독단과 저열한 음모로 헌법을 짓밟았습니다. 그의 정치보복은 정치세력을 넘어 문화예술인까지 무자비하게 짓밟았죠. 그 탓에 지지도가 4%까지 내려간 박근혜를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하겠다는 신념 하나”뿐이라며 감싼 이가 바로 자유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입니다.

억압과 의전에 익숙해져 온 사람들에게 민의는 다만 어르고 다스려야 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죠. 민의를 듣고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듯합니다. 그러니 협치는 언감생심 꿈도 꾼 적이 없을 테죠. 여의도로 입성하는 첫날 한강 중간쯤에서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1961년 한강 다리를 건넜을 때, 또는 1950년 인도교 폭파 때 이미 버렸을지도 모르죠.

2009년 이상적이고 젊은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게다가 첫 흑인 대통령이었으니 여러 소외계층의 기대가 컸죠.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 또한 정권 초기 협치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의료보험 개혁에 상당한 공을 들였죠. 야당이 된 공화당과 재계를 상대로 설득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이어갔고 결국 개혁안에 한 표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공화당은 오바마의 제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고 오바마 정부도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죠. 애초에 그런 기대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현실을 직시했더라면 오바마 정권의 성과가 더욱 빛났을 겁니다.

자유한국당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홍준표의 억지가 사그라지던 당의 불씨를 되살렸고, 청문회 분탕질에 보수층 지지가 모이는 것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20% 안팎의 지역표가 있는 이상 독단의 유전자는 활개칠 것이 분명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 갈 길을 가야 합니다. 협치의 기억이 없어 협치할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 한가한 때가 아닙니다. 그 손길은 대신 그간 소외됐던 이들을 향해야 하죠. 노동자, 실업자,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양심수 등의 손을 잡고 당당히 나가야 합니다. 길이 험하고 멀겠지만 도도한 민의의 물결에 몸을 싣고 가다 보면 이를 거슬러온 자의 쪽배와는 다른 내일을 맞이할 겁니다. 이는 얼마전 박근혜가 직접 보여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죠. 그런 세상을 온전히 만드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사명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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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역사란 참으로 잔인해서 우리가 1987년 이후 여기까지 오는 데 30년이 걸렸다.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직접 가르치고, 대화를 나눠 보기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젊다고 여겼는데, 그들을 만나고 보니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란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저 나이 무렵의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만나는 젊은 친구들은 30년 전엔 이 세상에 있지도 않았다. 우리 세대에게 4·19가 너무나 먼 과거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저들에게 5·18과 6·10은 어떤 의미에선 조선왕조 500년보다 낯설고 먼 과거의 이야기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선박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을 ‘좌표’라고 하는데, 육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원양에서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해 과거의 인류는 천문학에 의존했다. 우리가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를 ‘항해왕’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가 직접 원양 항해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라 원양 항해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확한 태양의 적위표(赤緯表)를 얻기 위해 천문대를 건설했고, 항해학교를 설치해 전문적인 선원들을 양성했다. 그로부터 대양의 시대가 열렸고, 원양 항해를 위한 ‘시진의(chronometer)’를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이 축적되었다.

현대에는 위성의 전파를 수신해 좌표를 확인한다. 그 덕분에 인류는 원양 항해의 위험과 한계를 극복했지만, 연안의 복잡한 수로를 통과해 항구에 안전하게 배를 대기 위해서는 여전히 ‘도선사’라는 보다 뛰어나고, 경험 많은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역사 읽기에 비유하면 가까운 근세사일수록 세밀하게 읽고 해석해야 할 자료와 사건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건 중에서 어느 것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사건마다 부표를 설치하고, 그 사건의 의미가 다른 방향으로 오도되지 않도록 의미를 구성(앵커링)하는 것이 오늘의 역사가들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근현대사는 일국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복잡한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고, 전 세계를 역사적 시공간으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의 힘으로 그 시대를 연구하여 역사를 정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지나친 오만일 것이다. 우리가 해방 전후사를 자신의 힘으로 연구하여 우리 시각으로 살피기 시작한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그동안 뜻있는 학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사료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은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시선을 아시아와 세계로 넓혀 나가야 할 때이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역사는 그 의미와 해석을 두고 이웃한 중국, 일본 등과의 치열한 논증과 점검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학만큼 논리와 과학적 학문의 태도가 아니라 감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분야도 없을 것이다.

과거 몇 차례에 걸쳐 국가가 주도하여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구호가 아니라 확실한 통치철학과 역사 인식을 가진 정부라면 이를 환영하지 않을 역사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국가권력의 관심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비롯한 꾸준하고 지속적인 지원과 장려가 아니라 이벤트나 정책의 나열에 그친다면 미숙한 선장이 직접 배를 몰아 항구에 들어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사는 계속해서 흐르고 시대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외면당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축적하고 정리해 나가면 그로부터 역사의 진실은 자연히 규명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수와 진보, 민족주의라는 일국적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역사 인식 속에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과거 우리는 일제강점기라는 폭압적인 현실과 투쟁하면서도 민족의 독립과 함께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를 꿈꿨다. 좌우의 날개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겹눈의 시선으로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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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 달도 채 안되었지만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통일부가 5월 말과 6월 초 10개 민간단체들의 대북접촉을 승인했다. 대북접촉이 방북과 남북왕래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6·15를 전후해 많은 사람들이 방북할 것 같다. 그런데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더니 얼마 전까지는 꿈도 못 꾸던 대북접촉이 승인되고 민간차원의 방북도 이루어지니,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민간 접촉·교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북 당국대화의 문호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북관계 개선뿐 아니라 북핵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화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의 손을 한쪽이라도 잡고 있으면, 북한이 나머지 손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1970년대 초 남북대화에 회의적이던 보수층에 남북대화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1981·1~1989·1)도 “소련은 악마의 제국이다. 그러나 악마의 제국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악마의 제국과의 대화’는 결국 미·소 핵무기 감축까지 도달했다.

미국은 작년 10월부터 미·북 1.5트랙 대화를 시작했다. 북한에선 당국자, 미국에선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관리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1.5트랙이라 부른다. 작년 10월 쿠알라룸푸르, 11월 제네바에 이어 금년 5월 오슬로에서 대화를 이어왔다. 작년에는 금년 1월 출범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자료수집 차원에서 대화를 했을 것이고, 지난 5월에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설정을 위해 만났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 ‘대북 선제타격론’과 ‘김정은 정권교체론’을 들고나왔다가, 4월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조정하더니, 5월25일 “강력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되 최종적으로는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북정책 최종안에 서명했다. 결국 ‘대화’에 방점이 찍힌 셈인데, 이 같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는 작년 10월 이후 진행되어 온 1.5트랙 대화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성공단 조업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공약했다. 그런데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후에도 미사일을 4번이나 발사했다. 남북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가려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취임 나흘 만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문 대통령은 직접, 즉각적인 대응을 했다. “북한의 군사행동에는 강력하게 대처하고 제재도 불사하겠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 문호는 열어두겠다”고 했다. 그렇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대화의 단초를 어떻게 여느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북한은 1주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4번 발사했고,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1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9차례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그런데 북한은 앞으로도 미사일 발사를 계속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북한은 미국이 직접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벼랑 끝 전술’ 차원의 도발을 계속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 문재인 정부가 남북 당국대화를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과 핵정책은 계속 세밀하게 탐색해 나가야 한다. 쓸 수 있는 방법이 미국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1.5트랙 대화이다.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관리들이 국가를 위한 봉사 차원에서 남북 1.5트랙 대화에 나서준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을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당국대화 시동을 걸기 전에 1.5트랙 대화를 공식 지원할 수 없지만 승인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이런 접근을 굳이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여당 정책연구원이 정부와 무관하게 지원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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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1970~1974년생들은 2002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꾸준히 진보적인 투표 성향을 보여왔다. 베이비붐 세대가 2007년 대선을 기점으로 빠르게 보수화된 것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1970년대 초반생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어디에서 발원하는 것인가? 사실 이 세대는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신세대론’이나 ‘X세대론’을 통해 ‘세대론’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바 있다. 1970년대 초반생을 ‘신세대’로 호명하던 이들은 이전 세대의 광고 전문가나 문화비평가들이었다.

1989년에 5000달러를 돌파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향해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점이었으니, 그들에게 급선무의 과제는 ‘소비 사회’로의 변화를 주도할 새로운 인간형을 발견해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68혁명 이후 유럽의 문화적 전환이나 1980년대 일본의 신인류론을 참고 삼아 새로운 ‘세대론’의 얼개를 짜나갔고, 30% 초반대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하며 이제 막 캠퍼스에 진입한 1970년대 초반생 일부, 특히 도시 중산층의 자녀들을 주목했다. 그리고 집단에 귀속감을 느끼기보다는 ‘나’를 중요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 정치적 대의보다는 일상의 삶과 취향을 소중히 여기는 ‘라이프스타일’ 지향적 태도, 다양한 매체 경험을 통해 축적된 시청각적 문해력 등 표면적으로 이전 세대와 질적으로 차별화된 문화적 특성이 ‘신세대’의 속성으로 나열되곤 했다.

그런데 이 집단의 속성은 이렇게 ‘문화적’으로 나열되고 끝나는 것이었을까? 1970년대 초반생이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유소년기를 보낸 첫 세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실제로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10번 넘게 목격했고, 바로 그 시기에 이들의 부모 세대인 1940년대생은 30~40대의 나이로 수출주도형 산업화와 지역 불균등 발전이 만들어내는 계층 형성과 분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을 전후로, 서울에서는 1940년대생 대졸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중산층 문화가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전략적 근거지로 삼아 완성 단계에 돌입하고 있었던 반면, 지방에서는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서 지역에 따라 1차 산업 기반의 전근대적 계층 질서가 여전히 유지되거나 중화학공업 단지라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계층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동남권과 기타 지역 등 각각의 지역에서 성장한 1970년대 초반생에게 고도 성장기는 계층과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경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71년생 소설가 백민석이 자신이 경험한 가난은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의 가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가난이었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차별적 경험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해진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이들이 30대에 진입하던 그 시점에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졸 엘리트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90년대의 신화가 고도성장기의 거품이 만들어낸 집단적 백일몽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그 백일몽의 마지막 등장인물이었던 1970년대 초반생은 기나긴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계층의 굴레를 뒤집어쓴 채로 고도성장기의 닫히는 문과 저성장 시대의 열리는 문을 양손으로 붙잡고 버티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저출산 1세대의 부모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30대에 진입한 이후 뚜렷하게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보이며 기성세대의 중산층이 주도하던 사회 전반의 보수화를 막아내는 인간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면, 그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봐야 할 대목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그들의 자녀들이 명확히 구분된 계층 세습의 이동 경로를 따라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경험한 가족 3대의 역사가 그렇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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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줄곧 지켜본 사람이다. 분명히 그 경험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그 자신도 그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실패’의 자산목록에 노동은 없는 것일까? 그는 과연 노무현 정부의 노동에 대한 실패에 어떤 입장일까?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업무지시가 비정규직 관련이었고, 비정규직 비율(곧 정규직 전환 비율로 해석될)을 적은 전광판을 집무실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를 수십만개 만들기 위해 무려 10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근데 여기에 노동은 없다. 연일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대통령이 나서지만 여기에 노동은 없다. 노동 문제를 ‘일자리’의 문제로 치환한 것이 문재인의 노동정책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꾸려고 시도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이었다. 당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대립적 노사관계가 안정적 노사관계로 바뀌면서 노동행정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해지고 있어 명칭도 바꾼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는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들을 쏟아냈고, 비정규직 비율 축소를 말하더니, 갑자기 ‘노사관계 선진화법’을 들고나와 비정규직보호입법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확대 법률을 통과시켰다.

24일 오전 문재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열린 일자리상황판 설치와 가동 일정에 참석해 이용섭 일자리위원회(부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그때 노사관계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다. 2003년 취임 첫해 노동자들은 ‘노동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믿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분신의 행렬로 바뀌는 데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비정규노동자 이용석이 분신했고, 세원테크 지회장 이해남과 이현중 등이 자결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을까를 묻기보다, “죽음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잔인하게 일갈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이 실패, 아니 참극으로부터 교훈을 얻을까? 또다시 노동을 우회하는, 노동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닐까?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진용을 봐도 이 우려는 재워지지 않는다. 새 정부의 일자리 수석비서관은 안현효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일자리기획비서관은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내정됐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도 관료 출신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을 빼고 온통 경제부처 관료 출신인 셈이다. 그리고 장하성 실장도 사실 노동 전문가가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와 기업구조 전문가이다. 결국 노동정책을 산업정책 우위로 바라본다.

나는 한국의 노동 문제를 한 정권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의가 아니라 현실 자본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로 여기 이 지점에서 출발하자. 이 냉정한 현실을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적어도 인정하자.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처럼 “모든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적어도 국가의 집행자인 정부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최소한의 균형자 노릇을 하란 말이다. 편을 들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편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노동의 편은 아니겠지만, 자본의 편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법도 재판도 다 노동자들이 이겨도, 자본은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때 법의 집행관으로서 나서라는 말이다. 적어도 자본과 결탁한 친자본적인 정권이 되진 말라는 말이다. 소위 국가·자본의 동맹을 해체하라는 말이다. 노동자들을 ‘비국민’ 취급하지 말라는 말이다. 일자리를 늘려주기 이전에 일자리를 자본이 없애는 데 가담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당연시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장 미개하고 후진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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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한 외교 전환기이다. 유엔이 이달에 그 수정을 요구한 데에서 드러났듯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전시 성노예 위안부 공동 발표문은 기초부터 꺼졌다. 기습적으로 반입한 사드 장비도 미국마저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법원은 개성공단 폐쇄 책임이 입주 기업에 없다고 판결했다. 국가에 폐쇄의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외교는 안팎에서 모순이 드러났다. 박근혜 외교 적폐를 원칙있게 청산해야 한다. 거대한 탁류를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검은 강물은 아직 거침없이 도도하다. 개성 공단은 폐쇄 중이다. 5조원대의 론스타 국제 중재 사건도 판결이 임박했다. 2012년에 시작한 이 사건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비밀로 일관한다. 오죽했으면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18일, 론스타가 청구하는 5조원이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를 국민에게 공개하라고 판결했을까!

탁류는 도처에서 거세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제소당한 뒤의 박근혜 정부의 행태는 적폐의 상징이다. 일본 현지 조사 결과조차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의 방사능 관리 실태 조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밝히라고 아무리 외쳐도 변함이 없다. 심지어 일본이 제소했다는 이유로 현지 조사 결과 보고서 작성을 중단해 버렸다.

쌀 시장이 무너지는데도 밥쌀용 외국쌀을 함부로 수입하는 행태도 그대로이다. 해마다 무려 40만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지만, 그중 밥쌀용을 얼마나 수입해야 할지는 한국의 재량권이다. 아주 상징적인 밥쌀만 수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박근혜 외교 적폐를 법치주의와 적법절차를 적용해서 청산해야 한다. 박근혜 외교 적폐의 뿌리는 법치의 빈곤이다. 외교·국방·통상이 특수하다는 구실로 적법절차를 걷어차는 낡은 틀을 청산해야 한다. 외교도, 국방도, 통상도 법치 행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는 북핵 해결은커녕 한국을 더 심각한 전쟁위기에 그대로 노출시켰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내어준 남북교류협력사업 허가를 법에서 정한 취소 절차를 지키지 않고 모조리 없애 버렸다.

법치의 파괴는 전시 성노예 ‘위안부’ 한·일 협의 사건에서 더욱 심각하다. 서울행정법원이 지적했듯이, 일본이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 사실을 협의 과정에서 인정했는지는 중대한 인권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본질적 협의 내용만은 공개해야 한다. 이것이 법치주의이다. 외교 관계라는 구실로 함부로 ‘불가역적’ 합의를 해서, 헌법이 정한 기본권 보호 의무를 어기는 불법을 청산해야 한다.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핵심적 내용은 국민에게 알리고 적법 절차를 지켜야 한다.

사드도 마찬가지다. 안보 분야는 특수하다. 그러나 그 특수성도 법치주의 기본 원칙을 파괴할 만큼 거대한 전체가 아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미군에 사드 기지 땅으로 얼마를 제공했는지 면적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성주 사람들이 환경영향평가법이 보장한 절차 참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방부가 정식 문서로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주한미군에 공여한 사드 기지 면적이 32만8779㎡라는 말이 있다. 옛 골프장 면적이 148만㎡인데 이 중에서 왜 위 면적일까? 사드 부지 면적이 33만㎡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법과 국방군사시설사업법에서 정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이 절차를 피하기 위해 정한 면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에서의 적법 절차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핵심적 정보를 제공하고, 법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성주 군민에게 법이 정한 절차적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법이 정한 대로 허가권 취소 사유가 무엇인지 소명하고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도대체 론스타의 5조원이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외교 적폐를 원칙있게 청산해야 한다. 검게 흐르는 탁류를 막아 멈추게 해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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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믈리에’라는 직업이 한국에서도 자리를 잡은 듯합니다. 협회도 있고 자격증까지 줍니다. 식당에서 와인을 추천하는 이 소믈리에들이 많아진 것은 와인 소비가 늘어난 현실을 반영합니다. 어느덧 ‘포도주’라고 부르기도 어색할 정도죠. 화이트와 레드를 구분하는 정도였던 와인에 대한 이해도 아주 깊어졌습니다. 이제는 호주산인지, 칠레산인지도 따지고 각종 브랜드와 생산연도까지 꿰차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5만원 밑에도 인기 있는 와인이 있지만 10만원을 훌쩍 넘기기도 하죠.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이 넘는 와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겐 100만원은 고사하고 10만원만 넘어가도 쉽게 손이 가지 않죠. 어쩌다 비싼 와인을 마시게 되면 역시 다르구나 싶습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넘기면 칭찬과 탄성이 튀어나옵니다.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싶죠. 별 차이를 못 느껴도 내가 잘 모르는 것이겠지 싶어 술자리가 끝난 후 와인스쿨을 검색해 보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와인 전문가들도 막상 눈을 가리면 와인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실험 결과가 여럿 있습니다. 한 실험에서는 똑같은 와인을 마시고도 평가가 달라졌습니다. 고급 상표라고 여겼을 때 평가단은 찬사를 쏟아냈죠. 반대로 싸구려 와인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시큰둥한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바로 상표에 대한 편견 때문이죠. 이런 편견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명품 가방이 더 품위 있어 보인다거나 알프스 어디 물이 더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이 그런 예일 테죠.

짧지만 떠들썩했던 선거전을 치른 한국정치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후보라는 상표를 좋아한 사람들은 그의 공약뿐 아니라 언행 하나하나에 열광했습니다. 미소 하나도 듬직하게 보았고 그의 공약을 보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죠. 하지만 상대 후보는 늘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습니다. 음식을 넘기는 입 모양 하나도 꼴불견처럼 느껴졌고 그의 지지자들마저도 이상하게 쳐다봤습니다. 심지어 거의 같은 공약을 두고도 내 후보 것은 혁신적이라고 불렀고 상대방의 것은 엉터리로 믿었습니다.

사실 상표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가방을 다 뜯어보고 들어볼 수는 없습니다. 그 많은 와인을 다 마셔볼 수도 없죠. 모든 후보의 공약집을 다 읽어보고 비교 분석한 후 지지하는 후보를 결정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대북 외교, 경제 운용, 노동, 환경 등등 수많은 정책 이슈가 있습니다. 각각의 이슈를 들여다보면 많고 많은 정책이 있죠. 이들은 서로 얽혀있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합니다. 복잡하고 헷갈립니다.

유권자의 선택은 어려울 수밖에 없고 가이드라인에 기대게 됩니다. 여러 정보의 극단적 축약본인 ‘상표’는 이럴 때 요긴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명 브랜드를 믿고 사듯, 정책은 다 몰라도 정치 이데올로기를 보고, 후보 이름을 보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죠.

복잡한 현대정치에서 이런 선택은 어쩔 수 없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지하는 후보의 정책에 대해 잘 모르는 것도 부작용을 낳는 것 중 하나죠. 그러니 정책에 대한 논쟁은 쉽지 않습니다. 대신 토론은 외모나 말투에 국한되고 그럴수록 서로 간의 소통은 고통스러워집니다. 불편한 소통 대신 우리끼리 모여 함성을 지르며 선거를 치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드디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갖게 됐습니다. 정치 이데올로기를 옆에 두고, 브랜드를 무시하고 좀 더 차분히 지켜볼 여유가 생겼죠. 문재인 후보가 좋아서 그를 지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좋다고 정부 정책을 감싸기만 해서는 안될 테죠. 한쪽에선 벌써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들립니다. 이해가 가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됩니다. 조건 없는 지지는 조건 없는 명품 소비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문재인 브랜드를 접어놓고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어야 저쪽도 ○○○ 브랜드를 내려놓고 대통령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람 사는, 나라다운 나라에 우리는 한 발 더 다가가는 것이겠죠.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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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난 지난주 수요일에는 학생들과 최인훈 선생의 소설 <광장>을 읽고 토론을 진행했다. 잘 알다시피 최인훈의 <광장>은 철학과 대학생인 이명준이 남한과 북한을 경험하고 마침내 제3국행을 선택했다가 결국 자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주제 발표를 맡았던 학생에게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는 상징이 ‘광장’과 ‘밀실’인데 어째서 작가는 작품의 제목을 ‘밀실과 광장’이나 ‘광장과 밀실’로 하지 않고, ‘광장’이라고 했을까? 질문을 던졌다. 왜 그랬을까?

최인훈의 <광장>이 이전의 분단소설과 구분되는 점은 근대적 교양을 지닌 개인(이명준)의 출현에 있다. 우리 분단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남과 북이라는 이념의 민감성, 이데올로기 대립을 회피하기 위해 종종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분단 문제에 접근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이명준이란 이념과 민족을 넘어선 보편적 개인, 자기결정을 통한 개인성의 구현이란 근대적 교양을 지닌 주체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광장>에서 광장과 밀실은 단순히 남북한의 상징이 아니라 ‘개인(밀실)’이 ‘전체(광장)’의 일부로서 사회적 통합을 향해 분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록 이명준은 그 같은 광장을 찾아내는 데 실패하지만, 작가는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밀실(正)’과 ‘광장(反)’의 조화를 통한 ‘새로운 공동체(合)’의 창출이란 변증법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되묻는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이 ‘광장과 밀실’이 아니라 ‘광장’이다.

19대 대선 투표일 전날인 8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펼쳐진 서울 광화문광장에 지지자들이 모여 휴대폰 불빛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다. 권호욱 기자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1년 전 이맘때만 하더라도 우리들 가운데 5월에 대통령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 탄핵부터 5월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까지 이 모든 것은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의 치열한 투쟁 덕분이었다. 2016년 10월29일을 시작으로 2017년 4월29일까지 23주 동안 주말마다 수많은 개인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전국에서 160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우리 역사에서 많은 인원이 일시에 거리로 나선 것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이토록 끈질기게 오래도록 광장에 모인 적은 없었다. 가을에 시작해 혹한의 추위를 참고 견디며 봄이 오기를 갈망했던 시민들이 이토록 많았다는 것은 우리 시민사회의 성숙과 정치의식의 발전을 상징한다.

그러나 광장이 끝나면 다시 밀실이 열리는 법이다. 하나의 선택을 요구하는 선거 앞에서 시민들은 ‘우리 편’과 ‘남의 편’으로 갈라졌다. 민주당 지지자는 물론 당직자까지 나서 심상정 지지는 ‘죽는 표’라며 사표론을 제기했고, 진보정당 지지자를 ‘정치홍대병자’라 비판했다. 반대로 문재인 지지자에게는 ‘문빠’라느니 ‘문슬람’이란 비하가 쏟아졌다. 서로가 서로를 비방했고, 혐오했다. 선거 직후 출구조사 결과가 알려지자마자 소셜미디어에서는 대구·경북지역, 특히 사드 배치 지역인 성주를 놓고 입에 담을 수 없는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혐오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타인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친목도모 행위가 되었다.

마치 “당신 1980년대에 뭐했어?”라는 말처럼 곳곳에서 ‘촛불’이 자신들만의 것인 양 호명되었다. 비록 선거에서 서로 다른 후보와 정당을 지지했더라도, 개인은 다양한 정치적 의지와 정체성을 가지기 마련인데, 지지자라는 단 하나의 정체성만 호명되었다. 독선과 막말로 상대를 제압하려 드는 가운데 정치가 쓸모없이 낭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이번 대선과 촛불광장이 우리 사회 관계성 회복의 희망 또는 징후라 여긴다. 다시 말해 어차피 1년 후면 끝날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물러나라고 외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광장에 나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고립된 밀실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감각을 회복하고, 확인하고 싶었기에 모두 광장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최인훈은 <광장>의 서문에서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사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했는데, 우리도 빛나는 오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보람을 만들어 나가자.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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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새로운 나라,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염원하는 촛불 시민혁명은 문재인을 국가통치의 수반으로 선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연설문에서 적폐청산과 국민통합,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자유로운 여론과 소통을 강조했다. 촛불에서 탄핵, 탄핵에서 정권교체로 이어진 시민혁명의 향후 과제들이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러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특히 강조했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라는 통치 철학이 국민의 삶과 통치의 현장에서 실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기회도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았고, 결과도 정의롭지 않았던 문화정책의 대개혁은 문재인 정부 성공의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 통치자의 세치 혀에서 나온 문화융성이란 국정 철학이 돌연 예술 검열과 블랙리스트로 되돌아오는 황당한 일이 없기 위해서는 신뢰할 수 있는 언행일치의 혁신적 문화정책이 구현되어야 한다. 문화정책의 대개혁을 위해 문재인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블랙리스트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현장 예술인과의 지속적인 문화 협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통치자의 구상-청와대 참모의 작성과 전달-문체부 관료와 산하기관의 실행이라는 국가에 의한 조직적이고 방대한 예술 검열 행위라는 것이 재판과정에서 밝혀지고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은 꼼꼼하고, 사심 없는 조사와 기록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물론 블랙리스트의 진상규명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예술을 위한, 예술인들에 대한 자율적이고 투명한 국가문화정책을 만들기 위해 예술계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실질적인 문화협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예술인들이 작년 겨울부터 142일간 광화문에서 노숙농성을 하며 블랙리스트에 저항한 것도 ‘지원금’ 때문이 아니라 ‘창작의 자율성’ 때문이다.

둘째, 노동시간의 단축과 문화시간의 확대로 국민의 문화권리가 삶 속에서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이 멕시코 다음으로 많은 한국에서 문화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박근혜 정부가 했던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실시한 ‘문화가 있는 날’은 어찌 보면 과도한 노동시간을 줄일 생각은 없고, 문화이벤트로 잠시 스트레스를 풀자는 일종의 문화적 ‘모르핀효과’밖에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가 문화주권의 실현을 국민의 일상 삶의 여유와 행복에서 찾고자 한다면 과감하게 노동시간을 줄이고, 공연관람, 여행과 독서, 다양한 예술교육 참여의 시간을 늘리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미래를 향한 문화콘텐츠 산업의 창의적 인재 양성이다. 대권후보들이 저마다 4차 산업혁명을 말하지만, 모두 기술결정론과 경제결정론에 경도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기술과 경제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이다. 10년 후, 20년 후 우리 일상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바뀌고 그러한 삶의 변화를 추동시키는 문화는 어떤 창의적 시장을 형성할지가 관건인 것이다. 기술과 과학이 개인 삶의 형태를 혁명적으로 바꾸는 ‘서드라이프’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문화와 기술, 예술과 과학이 통섭하는 문화콘텐츠의 창의적 인력양성이 긴요하다. 그래서 대중음악, 게임, 가상현실 엔터테인먼트, 차세대 미디어플랫폼 등 대중예술 분야에 국가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 설립이 시급하다.

마지막으로 통합과 분권의 문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도록 지역문화의 자율성을 높이는 분권형 문화균형 전략과 한반도 통일을 준비하는 문화통일 정책에 대한 장기구상이 가동되어야 한다. 국내 차원에서는 심각한 지역문화 격차를 해소하면서도, 지역문화의 특성을 동시에 고려한 문화 분권의 실질적 실현과 한반도 차원에서는 문화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언어, 생활, 창작, 문화유산, 체육, 관광 등의 남북교류 플랜이 수립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 과제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준비하고 실현하는 게 ‘문화다운 문화’를 만드는 문재인 정부 문화정책의 대개혁이 아닐까?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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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5월3~4일, 북한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은 중국이 ‘조·중관계의 붉은 선’을 넘고 있다면서 “조·중관계가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목숨과도 같은 핵과 바꾸지는 않겠다”고 했다.

북한은 ‘배신’이란 말까지 써가면서 최근 중국의 대북 행동에 반발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대북 압박이 상당히 강해진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지난 4월6~7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대북 경제제재가 높아지고 있던 4월26일, 미국 틸러슨 국무부 장관, 매티스 국방부 장관, 코츠 국가정보국장이 합동으로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발표했다. 핵심은 ‘최대의 압박과 개입’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하루 뒤인 29일, CBS 인터뷰에서 김정은을 ‘꽤 영리한 녀석’이라고 평가하면서 ‘상황이 조성되면 그와 영광스럽게 만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5월4일 미국 하원은 강력한 대북제재법을 통과시켰다. 결국 트럼프의 북핵정책은 중국이 먼저 북한에 압박을 가하면, 이후 미국이 직접 나서서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 후 중·북관계를 보면, 트럼프와 시진핑이 ‘무역불균형 해소 100일 계획’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북핵 문제가 협상 칩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강화해서 김정은의 입장변화를 끌어내면, 이후 미국은 대중 경제압박을 줄여가면서 북한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낸다는 암묵의 양해가 이루어진 것 같다. 오바마는 레버리지도 쓰지 않고 북핵 관련 중국 역할만 주문했기 때문에 중국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중국이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경제를 걸고 들어오는 트럼프의 사업가적 거래방식이 외교에도 통한 것이다. 그럼 중국이 대북 경제압박을 가해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영광스럽게’ 만날 수 있는 상황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에겐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것이 내일 출범하는 새 정부 외교안보팀의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월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후, 한·미 간 사드 배치가 발빠르게 진행되는 시기에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3월18일 미·중 외교장관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왕이 부장은 “진정한 담판의 진전을 이뤄야 한다”면서 “중·미·북 3자 회담에 이어 6자회담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틸러슨 장관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화답했다. 왕이가 3자회담을 제안한 것도 문제지만 틸러슨이 화답한 것도 우리로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새 정부가 민첩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임기 초부터 북핵 문제 관련해서 ‘코리아 패싱’(외교 왕따)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내일 출범할 새 정부로서는 어차피 사드 문제를 놓고 국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과 사실상의 재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의 협의 계획을 명분으로 중국에 사드 보복 중지부터 요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대 미·중 외교적 입지를 넓혀가면서 3자회담이 아닌 4자회담을 수정 제안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6자회담 직행을 선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하려면 남북관계부터 복원해야 한다. 1990년대 중반 남북관계가 나빴을 때 이미 우리는 ‘통미봉남’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이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새 정부가 남북관계를 복원하려 하면 보수진영은 ‘북핵 문제 미해결’ ‘유엔제재결의안 위반’ 등의 구실로 반대할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는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고, 자신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트럼프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정은과 만나도 되고, 한국은 북핵 문제 해결 전엔 어떤 남북관계도 개선할 수 없다는 건 불공평하다. 금강산 관광비와 개성공단 인건비가 유엔제재안이 금하는 ‘벌크 캐시’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선 이미 2014년 박근혜 정부도 ‘해당없다’고 해석한 바 있다. 따라서 새 정부는 책임감을 가지고 소신있게 대북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그러면 ‘코리아 패싱’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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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사드 비용 10억달러(1조원 이상) 한국이 내라.”(미국)

“이미 한·미 합의에서 한국은 땅만 주기로 했다.”(한국)

“맥매스터 미 안보보좌관과의 통화에서 기존 합의를 재확인했다.”(한국)

“사드 비용은 재협상하게 될 것.”(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와 관련된 논란 중 일부다. 핵심은 ‘비용’ 문제다. 전형적인 ‘안보 장사’다. 그런데 여기서 저들이 말하지 않는 게 있다. 사드 배치를 (한창 선거 국면인) 4월26일 새벽, 비밀 강행한 작태다. 절차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미국이 (한국민 동의) 절차를 무시한 일을 은근슬쩍 숨긴다.

그들이 하지 않는 질문도 있다. 북핵 위기로 사드 배치를 한다는데 그 실효성은 제쳐두고라도, 왜 북한이 핵에 목숨을 거는 것인가이다. 사실 북한은 자기 체제 수호에 목을 맨다. 남한과 미국이 자기 체제에 목숨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호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

물론 북한이건, 남한·미국이건 민주주의와 복지를 높여야 한다. 진정으로 민본·평화 정치를 하면 헛돈 써가며 싸울 필요가 없다.

또 대선이건, 총선이건 선거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가 지역 개발이나 지역 발전이다. 보수 진영은 물론 진보 진영도 마찬가지.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지역 개발이나 발전이 결국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땅 가진 이들만 부자로 만든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부동산이 없는 이들도 이를 반긴다. 왜 그런지에 대한 토론은 없다. 그 결과는 빈부 격차와 환경 파괴, 농토 소멸인데도 말이다. 부동산을 잡아야 서민 경제, 살림의 경제가 산다는 진실을 저들은 말하지 않는다.

“귀족 노조” 논란도 마찬가지다. 평소에 노조 자체를 전혀 인정·존중하지도 않으면서 엉뚱하게 ‘귀족 노조 탓에 경제가 엉망’이라는 근거 없는 비난만 해댄다. 아무 말 않는 이들 역시 노조의 중요성에 침묵한다. 우리가 일하는 것은 잘살기 위해서인데, 일을 해도 잘살지 못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가 필요하다는 사실, 바로 이를 그들은 말하지 않는다. ‘귀족’이니 ‘빨갱이’니 욕만 할 뿐. 진짜 귀족들은 우리 눈에 띄지도 않게 고급 승용차나 비행기를 이용, 호화 저택과 호텔, 골프장, 리조트, 고급 음식점만 찾는데도 말이다. 지금도 노동자 6명이 척박한 노동 현실을 바꾸자며 광화문 광고탑에서 단식 농성 중이다.

한편 요즘 사회경제적 위기를 모든 후보들이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등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은, 이제 세계 경제 자체는 더 이상 고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마치 ‘신성장 동력’이나 ‘4차 산업혁명’만 추진하면 고성장이 가능할 것 같지만 이제는 지구가 포화·고갈 상태이기에 성장보다는 ‘성숙’을 추구할 때다. 과거와 같은 고성장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돈보다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이 된다. 성장보다 23%에 불과한 식량 자급률도 높여야 한다.

여기서 나는 “아무도 부유해지려 하지 않으면 모두 부유해질 것이며, 모두 가난해지려 하면 누구도 가난해지지 않는다”고 한 피터 모린을 떠올린다. 소박하게 더불어 사는 것이 세계 평화다.

5월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새 대통령만 뽑는 게 아니다. 그것은 지난 50년 이상 지속된 ‘박정희 체제’를 종식시키는 과정이며, 해방 이후 70년 이상 지속된 ‘신식민지 재벌독점 체제’를 종식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것은 120여년 전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요구한 ‘사회경제 개혁’을 완성하고 새 시스템을 창출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요컨대 권력이나 돈에 중독되어 비정상적으로 작동해온 ‘중독 시스템’을 건강하고 행복한 시스템으로 대수술하는 것이 이번 선거가 가진 큰 의미다. 그 수술의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진실과 자유, 정의와 평등, 연대와 소통, 생명과 평화의 가치가 새 시스템의 방향성이다.

이제 남은 것은 참여다. 투표 참여는 기본이고, 부정선거 감시에도 참여해야 한다. 투표 이후 개표 과정이나 투표함 보관 및 운송 과정, 나아가 집계 과정도 한 점 의혹이 없게 지켜보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 선거 이후 새 정부의 인사나 정책들이 제대로 되는지도 잘 봐야 한다. 특히 ‘헬조선’을 극복하고픈 이웃들이여, ‘가짜뉴스’에 속지 말고 더 성숙해지자. 역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하여!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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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5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선거 판세는 극심하게 요동쳤다. 그 결과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선두 다툼을 벌이던 2강 3약의 구도는 문재인 후보가 독주하는 1강 2중 2약의 구도로 재편되었다. 각종 네거티브 공세와 논란이 있었지만, 이런 재편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집단은 50대 유권자층이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보면, 실제로 이 연령대의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4월 중순까지 29%와 30%를 오가다가 마지막 주에 43%로 뛰어오른 반면, 안철수 후보는 4월 초순에는 51%까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중순을 넘어서 40%, 22%로 급격히 하락했다.

두 후보가 희비의 쌍곡선을 그리는 동안 홍준표 후보는 반사 이익을 보았다. 4월 초만 해도 10%대 미만의 지지율이었으나 4월 말에는 16%에 도달했다. 물론 이런 변화는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지난 2월에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탄핵에 반대하는 50대 유권자가 24%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가능해 보인다. 50대의 이른바 ‘샤이 보수 지지자’ 일부는 4월 전반에 걸쳐 2강 후보 간에 네거티브 전선이 만들어지자, “어차피 정치인들은 다 똑같아”라는 식의 ‘정치 혐오’를 앞세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쪽팔림’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공개적으로 홍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홍 후보가 TV토론에서 거침없이 혐오의 언어를 구사하며 자신의 후안무치함을 전시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뻔뻔함이야말로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뻔뻔함의 확산이야말로 보수세력 복원을 위한 제일선의 전략이라고 굳게 믿은 것이다.

한편 문재인 후보에 대한 50대의 지지율 증가를 주목해 보면 이와는 다른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즉 중도적인 성향을 지닌 50대 일부가 탄핵 이후의 대선 정국에서 안희정, 안철수로 이어지던 제3후보군을 두고 갈등하다 결국 문재인 후보에게 돌아섰다는 분석이 그것이다. 확실히 386세대의 정치인이나 진보 지식인이라면 반가워할 만한 소식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2002년 이후 보수와 개혁 구도의 정치 지형 내에서 입지를 마련한 이후, 자기 진영 내에서 다수파로 행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수파는 보수 진영에 패배하는 다수파였고, 또래 집단이나 출신 지역에서 소수파일 수밖에 없는 다수파였다. 그러니 그들 중 일부가 탄핵정국이 시작되자마자 서둘러 ‘박정희 체제의 종언’을 외치고 나섰던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박정희 체제란 다수파-소수파의 딜레마 해소를 위해 넘어야 하는 거대 장벽이었으니 말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그들의 승부수는 성공한 듯 보인다. 일부 지역과 또래 집단에서 다수파로 올라섰고, 선거의 승리도 눈앞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석만으로 50대 지지율 변화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간 독특한 투표 행태를 보여준 50대 일부 소수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각종 선거 관련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이 50대 소수파는 2002년 이후 세 차례의 대선에서 각각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했으며 두 번의 대선에서는 승패를 좌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들이 개혁과 보수, 양 진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것은 지역주의나 민주-반민주 구도와는 거리를 둔 채, 소득·자산·교육·세제 등과 관련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전략적 투표 행위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경제적 성장 과정과 제도적 토대를 명확히 인식한 결과였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 바로 이 50대 소수파가 혹시 특정 후보의 지지율 증가에 한몫 거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이들이 그 후보를 선택한 이유는 무얼까? 과연 차기 정권은 이들의 기득권에 영합하지 않고 경제 관련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을까? 2000년대 중반, 종합부동산세와 부동산 실거래가의 도입이 이 소수파 상당수에게 계급적 각성의 계기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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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는 반대하는데 핵무기 반대 구호는 왜 함께 외치지 못할까? 원자력발전소보다 더 무서운 ‘대량살상’의, 아니 절멸의 무기가 바로 한반도에 있는데 말이다. 이것은 지금 한국 반핵(아니 탈핵?) 운동의 난제다.

사실 전 세계 핵 관련 운동을 보면 ‘반핵’인가 혹은 ‘탈핵’인가 하는, 운동적으로 두 개의 큰 흐름이 있다. 비교하면 유럽은 반핵(Anti-NUKE) 운동이 주였고, 그에 따라 핵무기 반입 저지 및 미군기지 반대투쟁을 했다. 그리고 일부는 녹색당 창당의 밑거름이 됐고, 일부는 더욱 급진적인 사회운동으로 남아 이미 이익집단이 된 ‘조직노동’에 대한 견제세력이 되기도 했다.

반면 미국은 스리마일 원전 사고 등을 계기로 주로 반원전운동 혹은 원전가동 중단운동을 했다. 그리고 그들 반원전운동은 자국의 핵무기를 타국에 배치하는 문제에 미온적이거나 모른 체했다. 그들은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운동에 가담하기는 했으나 적극적인 군비축소 및 특히 미국산 핵무기의 폐기운동으로는 진행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반원전운동은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중산층 지향의 시민운동이었다.

지금까지 양상을 보면 한국의 핵관련 운동은 미국과 비슷하다. 반핵이 아니라 탈핵운동 일변도이며, 원전가동 중단에 초점을 두고 있다. 핵무기 및 미군기지 문제에 대체로 침묵하며, 외부세력이 아니라 주로 한국 정부와 정치권을 겨냥하고 있다. 일례로 작년 북한의 4차 핵실험 때 미국은 즉각 B-52 핵전폭기를 한반도 상공에 띄웠지만 ‘탈핵’운동단체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사드 무기를 한국에 반입하면서, 미국은 한반도 인근에 핵잠수함을 배치하고 핵무기가 포함된 한·미 군사훈련을 시행했지만 그에 대해서도 탈핵운동은 거의 침묵하고 있다.

경북 성주군에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를 전격 배치한 26일 성주골프장의 길목인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주민들이 사드 반대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결국 탈핵은 하지만 반핵은 못하는 사회. 이는 사회적 분위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지진대의 원전 가동과 방사능 유출에 극도의 공포를 갖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북·미 긴장고조로 현실화될 수 있는 핵폭탄 투하와 가공할 방사능 구름에 대해선 강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북한 핵무기 개발을 비판하지만, 이 모든 긴장의 한 축인 미국에 대해선 현저히 불균형적인 태도 내지 침묵하는 태도를 취한다. 이 불균형, 이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 검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면 탈피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대면 없이 한반도의 전쟁, 핵전쟁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요원한데 말이다.

4월26일 새벽, 우리 사회의 이런 한계는 고스란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멀찍이 떨어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의 주민들에게 날벼락으로 떨어졌다. 그날 새벽 한국 경찰이 경비를 선 가운데 미군이 모는 트럭들이 사드 장비를 옮겼다. 70~80대의 연로한 주민들은 그 새벽 자신들의 고요한 마을을 습격한, 점령군처럼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던 미군들과 그들을 보호한 한국 경찰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곧바로 외쳤다. “미국 경찰은 물러가라!”

이 구호가 바로 전율이다. 그들은 이 사회를 꼼짝 못하게 하고 있는 이념적인 편향과 왜곡을 넘어서 곧바로 알아차렸다. 무엇인가 잘못됐다, 이것은 나라가 국민을 향해서 할 짓이 아니다, 이 나라 경찰은 미국 경찰인가.

근데 왜 이 사회는 침묵하는가? 왜 우리는 박근혜의 국정농단에만 분노하고, 미국의 대한민국에 대한 ‘농단’에는 침묵하는가? 물론 여기에는 넘어서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탈핵뿐 아니라 반핵을 고민해야 하고, 친미와 반미를 다 고민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과연 이 땅의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를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도 현장의 상황은 너무 절박하고, 고령의 원주민들은 이 모든 현대사와 한국 사회의 못난 모습이 그들에게 전가한 부담을 안은 채 사드 배치를 온몸으로 막고 있다. 평화로워야 할 가정의 달, 과연 당신의 평화를 깨는 세력이 누군가 한번 생각해보고,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를 기억해주기 바란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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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 하고 전화기가 진동했다. 서울시 청년정책과 주무관 전화다. “됐어요. 됐어요. 협의 통과했어요!!!” “아! 정말요? 진짜 축하드려요. 정말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아. 뭐 저희들이 했나요. 청년들이 했지요. 그런데 진짜 기뻐요. 하하하하.” 보건복지부 반대에 부딪혀 지급되지 못하고 있던 청년수당이 잠금 해제되는 소리였다.

대선정국에 묻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소식이 하나 있다. 서울시가 형편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최대 6개월까지 매월 50만원씩 지급하려던 청년수당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복지부 협의를 얻어냈다는 소식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정작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로를 탐색할 여유를 갖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작은 버팀목이라도 대어주자며 시작한 청년수당이 드디어 시행 가능하게 되었다. 크게 보면 촛불정국 때문이고,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이를 위해 헌신한 수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청년수당을 처음 제안했던 청년들, 이것을 서울시 정책으로 적극 받아안은 박원순 시장, 정책적 내용을 풍성하게 해주었던 전문가들 등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이 17개월을 함께 버텨낸 사람들 중에서도 서울시 청년정책담당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난해 8월14일 서울시가 청년수당에 대한 정부의 직권취소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서울도서관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걸어 놓고 있다. 정지윤기자

“거버넌스에 대해 요즘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어요.” 청년수당을 놓고 서울시와 복지부 간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청년과 과장이 속내를 꺼내놓았다. “청년수당을 놓고 청년들이랑 협의를 하는데 사실 너무 어렵더라고요. 매번 논의하지만 자꾸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고. 우리가 조금 양보해서라도 이 정책이 하루라도 빨리 진행되게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청년들은 너무 이상적인 모델만 이야기하는 것 같고. 청년들과 협의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들었어요. 그런데 문득 우리 논의가 한자리에서 계속 빙글빙글 맴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마치 용수철의 나선형처럼요.”

“용수철의 나선형요?” “네! 용수철요. 청년수당 반대하던 사람들이 하는 말 있었잖아요. 청년이면 쇠도 씹어먹을 나이인데 왜 돈을 주냐고. 솔직히 말해 저도 처음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청년들이랑 한 달, 두 달, 석 달 그렇게 몇 개월을 계속해서 만나고 토론하다 보니까 청년들이 말하는 ‘인간 존엄이 지켜지는 방식으로의 청년수당’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들의 삶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지난 시간에 나눴던 이야기들이 다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청년들과의 토론 시간은 제자리를 맴돌았던 것이 아닌, 사실은 촘촘하게 용수철이 감겨지는 과정이었다는 것을요. 단단하고 탄력있게 잘 감겨진 용수철은 멀리 날아가잖아요. 저는 그래서 우리 청년수당 잘될 것 같아요.”

그의 말에 같이 있던 청년과 사람들이 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는 촛불정국도 아니었고, 복지부와의 협의도 잘될지 예측할 수 없었던 때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가보자라는 이야기를 그는 그 스스로에게 또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싶었다.

또 하나의 풍경이 있다. 청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해볼 사회적 대화 프로그램에 대해 회의를 하던 때였다. 회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신문 1면에 지하철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한 19세 청년 김군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김군, 우리 청년수당 지급 대상자였는데….” 누군가 회의 중 이 말을 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날 청년 문제를 알리기 위한 프로그램 제목으로 ‘너는 나다’가 정해졌다.

그냥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이라 이야기하겠지만, 옆에서 보지 않았으면 모를 이야기들을 그 누군가는 기록을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 지면을 통해 남긴다. 이런 정성들이 알알이 배여 있는 서울시 청년수당이 단단하고 탄력있는 용수철처럼 우리 청년들의 삶을 오래오래 잘 버텨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악마는 언제나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것, 매일 아침 옹기종기 모여 인사하던 그 구호로 이 글을 마친다. “청년이 미래다!”

김경미 | 정치발전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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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는 송민순 회고록의 비밀 내용을 승인하지 않았다. 작년 11월22일에 외교부 장관에게서 직접 받은 공문이다. 그러니까 송 전 장관은 작년 10월 회고록에 남북 접촉 등 안보 관련 비밀을 담아 출판하면서도 소속됐던 기관장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청와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책에서 국가정보원이 북한으로부터 받아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북한 전화통지문의 내용을 4줄에 걸쳐 공개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대통령 선거가 20일도 남지 않은 때, 자신의 책이 진실임을 증명하겠다며, 북한 전화통지문 청와대 문서를 공개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2007년 참여정부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기권 과정을 담을 자신의 회고록 내용과 관련, 당시 정부가 사전 확인한 북한의 입장을 담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문건을 21일 공개했다. 연합뉴스

나는 기억한다. 그가 장관으로 있던 외교부는 2007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보고 문서를 공개한 정창수 당시 국회 보좌관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의 외교부는 FTA 보고 문서를 ‘비밀’로 지정하지도 않았었다. 게다가 문서의 내용도 매우 초보적이었다.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미국의 ‘반덤핑’이라는 무역 장벽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되, 미국이 끝내 거부하면 다른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삼척동자도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애초 정부가 제시한 FTA의 기본 목적을 허망하게도 포기한 것이었다. 정 보좌관은 이를 두고 볼 수 없어, 공익을 위해 언론에 제보했다. 그러나 송 전 장관은 정 보좌관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결국 정 보좌관은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기소되었다. 나는 확신한다. 외교부의 수사의뢰가 없었다면 검찰은 정 보좌관을 기소하지 않았을 것이다.

송 전 장관은 북한이 보낸 전화통지 청와대 문서를 통째로 공개했다. 자신의 자서전 내용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전화통지문 문서가 ‘비밀’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항변한다. 그는 자신이 수사의뢰한 정 보좌관을 잊었을까? 남북 사이에 오간 전화통지문 등은 보호가치가 있는 비밀이다.

나는 묻는다. 그는 어떻게 국정원장이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보고한 문서를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었을까? 그 문서는 사유할 수 없는 공공기록물이다. 송민순 사건은 외교·통상·안보 분야 비밀의 사유화이다. 소수 관료들이 시민이 알아야 할 외교·통상·안보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 안보 비밀을 사유화한다. 파당적으로 이용한다.

외교부는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위안부 공동 발표를 저질러 놓고도 가장 기초적인 강제연행 인정 여부 협의 문서도 한사코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산 수산물 방사능 검역 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사드 배치를 위해 미국과 이미 진행을 마친 환경영향평가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한·미 FTA 협상 문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국익을 위한 비밀’이라는 나팔을 분다.

그러나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 파당화한다. 사익과 당파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 안보 비밀을 이용한다. 2012년 대선의 북방한계선(NLL) 사건에서도 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이란 걸 들고나왔다. 정상회담 회의록이라며 대선 유세에서 읽었다. 그들은 안보 비밀을 사유화해서 반북 공세를 강화한다. 모세의 지팡이가 홍해를 둘로 갈랐듯이 시민의 다양한 정치적 요구의 분출을 이념 대결로 편을 가른다.

안보 비밀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 두 방법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공익을 위한 공개 원칙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보호가치 있는 비밀에 대해선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첫째, 정보공개법을 고쳐 시민의 생명, 안전, 평화와 관련이 있는 정보는 최대한 공개해야 한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한 공개 거부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틀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둘째, 안보 정보의 사유화와 파당화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그래야 안보가 산다. 이 점에서 송민순 사건에 대한 바른 처리가 중요하다. 관련 기관은 대선 날짜 달력만 쳐다보지 말고, 송 전 장관이 어떤 법적 권한에서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 문서를 취득했는지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것이 안보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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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발 태풍이 한반도에 몰아쳤죠. ‘전략적 인내’가 끝났다며 북한을 압박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을 말하며 한국을 당황케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한반도 안보가 한국의 아킬레스건임을 새삼 곱씹어야 했죠.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운신 폭이 크지 않다는 현실도 마주해야 했습니다. 그 비좁은 공간에서 최선의 정책은 평화의 확장입니다. 평화는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럴수록 한국의 목소리는 커질 테니까요. 평화의 공간이 줄고 대결이 고조될수록 우리의 목소리는 강대국의 고함 속에 잠기는 법이죠.

안철수 후보는 평화에의 확신이 없어보입니다.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며 사드 배치를 반대했던 안 후보는 ‘국가 간 합의’를 외치면서 찬성으로 돌아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개성공단에 대한 입장도 재개에서 유보로 바꿨죠.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도 시기상조로 돌아섰고 햇볕정책에 대한 입장도 계승에서 침묵으로 바꿨습니다. 하나같이 중요한 외교 사안인데 모두 평화 쪽에서 대결의 방향으로 간다는 점에서 우려스럽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운데)가 20일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유세에 앞서 시민들을 향해 두팔을 들어올리고 있다. 김기남 기자

게다가 그 변신에 대한 설명도 충분치 않습니다. 사드 입장 변화에 대해 안철수 후보 본인도, 박지원 대표도 사정이 바뀌었으니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바뀐 사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못하고 있습니다. 주변 정세나 북한 위협 등 사정은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뚜렷이 달라진 것은 보수층 지지를 받기 시작한, 안철수 후보 본인의 사정입니다. 선거를 위해 안보를 가벼이 대하지 않나 싶어 우려스럽습니다.

말하지 않은 그 무슨 심각한 고려가 있었다 치더라도 걱정이 싹 가시지는 않습니다. 국가 간 합의가 자연의 법칙이 아닌 것은 정작 미국 부통령이 한·미 FTA 개정을 들고나오는 바람에 확인할 수 있었죠. 미국과 중국이 맞붙을 가까운 미래에는 유연한 입장을 통해 청과 명 사이에서 줄타기하던 광해군의 지혜가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안 후보의 인식은 교조적 외교로 병자호란을 불러들인 인조의 실수를 떠올리게 해 우려됩니다.

새로운 정치를 보여주겠다던 안 후보의 호기를 기억하기에 더욱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안철수 대표가 2014년 꾸리자마자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소멸했습니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으로 그 이름이 이어졌죠. 안 후보가 탈당하며 더불어민주당이 되면서 ‘새정치’라는 수식어도 사라졌습니다. 그만큼 안 후보 하면 ‘새 정치’였습니다. 그 새 정치를 위해 안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나와 새 정당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승자독식 선거제가 양당제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과감한 결단이었죠.

안 후보의 새 정치는 딱 여기까지였던 듯합니다. 천정배 의원을 공동대표로 내세우며 호남 민심을 노렸고 박지원 의원을 위시한 동교동계를 대거 받아들였죠. 국민의당은 호남당이 됐고 총선에서 호남을, 호남만을 휩쓸었습니다. 이를 안 후보는 ‘녹색바람’이라 불렀죠. 하지만 승자독식 선거제의 양당제 경향을 지역표로 극복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영국의 양당제하에서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비슷한 예죠. 노동당과 보수당이 대변할 수 없는 특수한 이익, 즉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이들은 제3당의 입지를 넓혔습니다. 바로 국민의당의 전략이었습니다. 즉 안철수표 새 정치, 국민의당은 한국 특유의 지역정치를 잘 이용한 것에 불과했던 것이죠.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 비행장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손을 맞잡은 순간을 모두들 기억하실 겁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평화의 희망을 주었고 살육과 대결로 이어진 반세기 남북관계를 돌려놓는 감격적 계기였습니다. 그해 8월 개성공단 사업이 첫걸음을 떼었고 금강산 관광사업도 탄력을 받았죠. 당장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던 남북은 화해의 무지개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남북관계에 한국의 목소리가 커졌고 세계는 노벨 평화상으로 박수를 보냈죠. ‘햇볕정책’은 말 그대로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었습니다.

새 정치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안 후보가 말한 새 정치의 정체가 궁금한 때이기도 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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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직장에서만 20년 넘게 잡지 편집 일을 하고 있다. 한 직장을 오래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 복일 수도 있겠지만, 오래도록 일을 하며 나를 거쳐 간 후배 편집자들이 8~9명에 이르는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신입을 뽑아서 2~3년쯤 편집의 기초부터 인쇄 실무까지 출판의 전반적인 것을 익히면 붙잡아볼 새도 없이 서울의 중견출판사로 이직한다. 떠날 때마다 새로 뽑는데 신입 편집자 한 명을 뽑으려 해도 서울이 아니라서 어렵다. 인천이 무슨 지방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인천 사람을 서울로 불러들이는 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서울 사람 보고 인천 한 번 놀러오라고 하면 다들 난감해한다. 그런 탓인지 서울에선 비교적 쉬운 일도 인천에선 좀 더 공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있다.

떠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할 일은 절대 아니다. 문화 분야의 여러 곳을 분탕질했던 최순실·차은택조차 무시할 만큼 출판계가 영세하다는 것, 편집자가 박봉이란 건 어느새 비밀도 아니다. 그렇게 직장을 한두 군데 옮겨야 그나마 월급이 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현상이다. 예전에는 출판사 내부에서 신입 편집자를 가르치는 과정이 있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인턴 문화와 비정규직 고용이 일상화되면서 이른바 ‘초짜’들은 아예 그런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그런 형편이니 영세출판사가 초보들을 뽑아 가르치고,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보다 나은 조건의 출판사로 옮겨가는 구조가 되었다. 기업 스스로 인력을 키우고 교육하지 않는 대신, 그 비용을 좀 더 영세한 업장이나 사회로 고스란히 전가하는 인력재생산 구조는 출판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덧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방식이 되었다.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는 이른바 “초왕이 잃어버린 활은 초나라 사람이 줍는다”란 고사가 있다.

춘추오패(春秋五覇) 가운데 하나였던 초(楚)나라 공왕(共王)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아끼던 활을 잃어버리고 왕궁으로 돌아왔다. 신하들이 황급히 나서며 저마다 활을 찾아오겠다고 하자, 공왕이 의연하게 말했다. “그만두어라. 초왕이 잃어버린 활은 어차피 초나라 사람이 가지게 될 터이니 굳이 찾을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만류했다. 이 일화는 임금의 너그러운 마음을 칭송하는 말로 오랫동안 전해졌다. 그러나 훗날의 공자(孔子)는 “애석하구나. 도량이 좁은 사람이로다. 사람이 잃은 화살을 사람이 줍는다고 하지 못하고 하필 초나라 사람이라 하다니(人遺之 人得之 何必楚也)”라며 탄식했다.

공자는 어째서 애석하다고 했을까. 잃어버린 활을 찾기 위해 신하와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괜찮은 왕이었겠으나 그의 도량과 포부가 ‘초나라’란 좁은 틀 안에 갇혀 있었기에 ‘천하(天下)’를 볼 수 없어 안타깝게 여긴다는 말이었다.

나는 여기에 공자와 유교의 보편성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노자(老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이란 말조차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 평했다. “그저 ‘잃으면 줍는다’라고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을”이라고 했다니, 노자는 인간의 천하를 넘어 만물천지(萬物天地)를 품었던 셈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가지만, 해마다 제때 등록금을 납부하지 못해 휴학하는 학생을 한둘은 만나게 된다. 놈 촘스키는 “학창 시절 엄청난 빚을 지게 되는 학생들이 사회를 변화시켜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긴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채무 시스템에 가둬 놓으면 생각할 시간마저 가질 여유가 없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등록금 인상은 일종의 훈육 테크닉입니다.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 되면 단지 빚에 찌들게 되는 것뿐 아니라 훈육의 문화를 내면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비자 경제의 훌륭한 부속이 되어갑니다”라고 했는데, 오늘날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그 출발부터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 사형대 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 사회가 내 자식 네 자식 구분하지 않고 사람 하나 키워낼 수 없는 곳이라면 젊은이에게 자식을 낳아 키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전성원 | 황해문화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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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전 세계 게임스타일의 지형을 흔들었던 ‘포켓몬고’의 열풍은 인공지능 시대 새로운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예고하는 하나의 징후로 읽을 법하다. 포켓몬고는 증강현실 기술과 소위 ‘구글맵’으로 대변되는 위치 추적 장치를 이용해서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 <포켓몬>의 캐릭터들을 포획하는 게임이다.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충격효과는 게임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있다. 기존 게임들은 실제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여, 가상공간에서의 특이한 체험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꾀했다. ‘서든어택’ 같은 1인칭 슈팅게임, ‘리니지’ ‘와우’ 같은 온라인 게임 등은 컴퓨터 스크린이라는 가상공간 안에서 생생한 현장감을 즐기게 하지만, 그 자체가 현실공간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인공지능과 유비쿼터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융합하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상공간이 실제 현실 안으로 들어와 개인의 감각을 활성화하고, 놀이의 체험을 극대화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포켓몬고는 이러한 현상의 아주 단순하고 초보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서드라이프(Third Life)’라고 명명하고 싶다. 서드라이프는 말 그대로 제3의 삶의 시대가 왔다는 뜻이다. 현실공간에서 물리적인 삶을 사는 단계가 ‘퍼스트라이프’라고 한다면, 가상공간에서 잠시 흥미롭지만, 허구에 불과한 체험을 하는 단계는 ‘세컨드라이프’라 말할 수 있다. 미국에서 한때 큰 인기를 얻었던 ‘세컨드라이프’라는 게임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서드라이프 시대는 가상공간이 제공하는 판타지 혹은 허구적인 대리만족을 현실공간에서 체험하게 함으로써, 가상현실이 곧 실제 현실이 되는 삶을 가능케 한다. 서드라이프는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이 연계·결합하는 게 가능한 초현대 하이퍼 현실사회의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한다.

2016년 다보스포럼 이후, 한국에서도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혁신과 시민들 일상의 변화에 대해 많은 예측 보고서가 나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신경제가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측인데, 자본이 아닌 문화의 논리에서 볼 때, 신경제란 과학과 공학의 첨단기술을 통해 인간의 삶을 윤택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경제, 인간에게 이로운 신홍익인간 산업, 기술혁신과 사회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며 인간이 중심이 되는 신인류산업을 의미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러한 산업적 변화가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중요한 것은 산업과 경제, 자본의 재생산에 있는 게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미래 사회에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이 어떻게 바뀌고, 개인은 어떤 문화를 원하는가에 대한 감성적 간파이다.

서드라이프의 시대에는 유비쿼터스 정보기술과 생명공학 혁명에 따라 개인의 신체를 완전히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그래서 ‘초감각지능산업’, 이른바 가상현실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창의적인 이야기가 가미된 유비쿼터스 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할 것이다. 따라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혁신적으로 바꿀 수 있는 개인의 인지적 역량과 일상적 놀이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미래 예측이 필요하다.

서드라이프 시대는 또한 ‘예술과 문화, 기술과 과학’이 통섭하여 새로운 초감각적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통섭적 환경이 주는 감각의 새로운 지평들을 고려해야 한다. 새로운 기술문화 혁명에 따라 기존의 문화콘텐츠 영역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새로운 문화콘텐츠 산업이 어떻게 지배적인 영역으로 부상하고 이들이 이용자들의 기술 감각과 콘텐츠 관여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지에 대한 전망 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개인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서드라이프 시대에는 책, 영화, 음악, 게임, 모바일, 메신저커뮤니티와 같은 미디어콘텐츠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 체험이 그 자체로 가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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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첫 주 강릉과 평양에서 남북이 한데 어울렸다. 5일 강릉에서 열린 세계여자아이스하키선수권 예선에서는 남한팀이 북한팀을 3 대 0으로 이겼고, 7일 평양에서 열린 2018 여자아시안컵축구대회 예선에서는 남북이 1 대 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번 남북 스포츠 교류는 만남 자체가 소중했다. 작년 2월 개성공단 폐쇄 후 민간차원의 접촉도 일절 불허되고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2일 한국 여자축구팀이 인도를 10 대 0으로 이기자 김일성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그때 관중석의 북한 주민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태극기를 바라보는 장면이 TV로 전달됐다. 3일에는 강릉 경포해변에서 북한 여자선수들이 망중한을 즐기는 장면이 방영됐다. 그리고 5일 평양에선 호텔 측이 남한 선수의 생일 케이크를 준비했다고 한다. 스포츠는 이렇게 사람들을 풋풋하게 만들고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서슬이 시퍼렇던 작년 이맘때라면 남북을 오가는 스포츠 교류는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국제대회라는 이유로 남북 선수들의 왕래를 승인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남북의 선수들이 올라가고 내려오는 국제대회가 이렇게 동시에 열리기가 쉬운 일은 아닌데, 우연하게 교차원정 경기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곧 출범할 차기 정부에 남북관계를 복원하라는 역사의 명령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2017 아이스하키 여자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의 자유분방한 모습이 눈길을 끌고 있다. 훈련할 때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있지만 3일 오후 휴식시간을 맞아 강릉 경포해변을 찾은 북한 선수들이 물에 발을 담그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에 앞서 북한 선수들은 한국-슬로베니아전을 참관할 때 콜라를 마시며 또래 선수들과 다름없이 편안하게 자유시간을 만끽했다. 북한은 오는 6일 오후 9시 남북 대결을 벌인다. ㅣ연합뉴스

쿠베르탱 남작의 올림픽 창시 정신을 되새기지 않더라도 스포츠는 사람 사이의 이해와 교류에 큰 몫을 해왔다. 스포츠는 승리를 목표로 하지만 페어 플레이를 통해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하계·동계 올림픽을 비롯해 수많은 스포츠 행사를 통해 세계인들은 지역과 인종, 종교와 문화를 뛰어넘어 어울리고 화해한다.

스포츠가 적대 관계에 있는 국가 간 화해의 촉매제 역할을 했던 사례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중 ‘핑퐁 외교’다. 1971년 4월 미·중이 핑퐁 외교를 시작하더니, 1972년 2월 닉슨 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고 ‘미·중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 후 미·중관계가 꾸준히 발전하면서, 1979년 1월1일 미·중은 드디어 수교했다. 한·중 수교에도 스포츠가 역할을 했다. 1984년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난 한국의 안재형과 중국의 자오즈민은 국경과 이념을 넘어 ‘핑퐁 사랑’을 키웠고, 결혼을 했다. 핑퐁 사랑은 1992년 8월 한·중수교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동서독 간에도 스포츠 교류가 통일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56년 동계 올림픽 때 단일팀 성사 후 동서독은 총 6회에 걸쳐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1964년 10월 도쿄 올림픽 때는 파견 선수단이 총 376명으로 일본, 미국, 소련에 이어 4번째로 규모가 컸다. 1972년 동서독은 기본조약 체결 후 1973년 6월에 스포츠 교류 확대를 위한 기본협정을 체결했고, 1989년에는 7개 조항에 걸친 스포츠 교류 의정서도 합의했다. 1990년 10월 동서독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됐는데, 스포츠 교류가 경제 교류·협력 못지않게 통일의 인프라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다음달 출범할 차기 정부는 남북관계를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처럼 끌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한 조치들이 나오겠지만, 대뜸 당국 간 회담부터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 화합과 소통의 기능을 갖고 있는 스포츠 교류를 먼저 띄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동안 서울시는 1929년에 시작된 경평 축구의 전통을 살리고자 서울·평양 축구 경기를 치르고자 노력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불허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준비는 많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새 정부 출범 후 상징성이 큰 서울·평양 축구 경기를 제안하고, 정부는 그걸 승인하는 식으로 남북관계 복원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도 모양이 좋을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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