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의 마지막 회에 아주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타임머신이 가능한가’라는 시청자의 질문이었다. 이 질문은 분명 정재승을 향한 것이었다. 유시민은 정재승의 설명을 듣기에 앞서 자신은 타임머신이 가능해도 타고 가지는 않을 거라고 선수를 친다. 그때 정재승은 이렇게 그에게 질문한다. 만일 타임머신이 있어 그걸 타고 내가 꼭 만나고 싶은 한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토론의 화두를 전환한 것이다. 유시민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재승은 아인슈타인, 유시민은 세종대왕, 김영하는 태조를 거명했다. 그때 나 역시 그 질문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며 머릿속으로 유재하를 떠올렸다. 1987년 11월1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25살에 생을 마감한 천재 싱어송라이터인 그에게 당신은 조금 있다 교통사고를 당하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의 죽음은 1980년대 한국 대중음악사의 지형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때 유희열이 유재하를 말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그것도 출연진 중의 한 명이. 그가 죽었기에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유재하가요제 대상 출신 유희열의 반전의 상상은 서로 대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준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알쓸신잡>은 서로 다른 직업과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여행 중 벌이는 잡다한 지식 수다를 통해 서로 다름과 같음을 이해하는 아재들의 자기발견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이 프로그램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잘나가는 아재들의 지적 나르시시즘의 향연 같다”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꼰대들의 탁상공론이다” “먹방 프로그램인지, 여행 프로그램인지, 인문학 프로그램인지 애매하다”라는 지적들 말이다.

이런 비판적 지적들에 아랑곳없이 <알쓸신잡>은 시작부터 대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첫 회 시청률 5.4%로 시작해 7회차 춘천여행편은 7.2%나 나왔다. 요즘 지상파 방송의 주말드라마도 시청률 7%를 넘기기 힘든데, 아재들의 지식 수다가 전부인 <알쓸신잡>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인기를 끈 것은 분명 하나의 미디어 현상으로 볼만하다. 어쨌든 이 프로그램으로 인해 이들이 여행 간 도시에 사람들이 몰리고, 종방에 소개된 책들이 곧바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현상은 마치 <무한도전>의 미디어 효과를 보는 듯하다.

이런 프로그램이 왜 인기를 얻게 된 걸까? 혹자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나영석 PD 사단의 뛰어난 연출 역량을 꼽는다. 어떤 사람은 현존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너무 공공연하게 자극적이고 표피적이어서 시청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5명의 출연진을 등장시킨 캐스팅의 승리라고 말한다.

이런 지적들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 방송을 보면서 느낀 <알쓸신잡>의 미덕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 같음과 다름의 감각을 발견하는 데 있다. 동일한 사물과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드러내는 태도, 그러다가도 특정한 상황이 오면 서로 공감하는 순간의 발견, 이런 것들이 <알쓸신잡>의 매력이지 않을까 싶다. 최종회 방송 마지막에 황교익이 김영하를 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의 숨은 감성을 발견하여 좋았고, 그의 머릿속 감성이 내 머릿속으로 돌아온 느낌이라고. 이 말에 정재승은 곧바로 김영하의 머리가 커서 그의 뇌가 황교익의 뇌 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평한다. ‘남성적’ ‘꼰대 같은’ ‘잘난 척’ ‘위험한 미디어 효과’라는 <알쓸신잡>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 공감하면서도 아재들의 수많은 지적 수다 속에서 발견된 ‘같음과 다름’의 미덕은 칭찬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지식 수다 그 자체가 아니라 지적 대화를 통한 자기발견과 타자에 대한 이해이다. 유시민이 말미에 모두 다 각자 자신의 소중한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소감을 밝힌 것도 타인을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발견한 그만의 통찰이 아닐까 싶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알쓸신잡>은 수컷 아재들이 타자와의 ‘대화적 상상력’을 통해 풋풋한 자기애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매우 쓸데 있는 지식 수다 이벤트였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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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7월28일 미국 본토 중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1만㎞짜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7월4일 미 서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8000㎞ ICBM을 발사하더니, 24일 만에 사거리가 2000㎞나 늘어난 ICBM을 발사했다. 북한 미사일 기술이 이런 속도로 진행된다면, 올 하반기에는 미 동부까지 도달할 수 있는 1만2000㎞ 이상 ICBM 개발도 가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벽 1시에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고, 사드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와 미사일 대응능력 강화를 명령했고, 우리 단독으로도 북한이 절감할 수 있는 압박 수단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취임 초 문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정책으로 ‘제재와 대화’ 병행을 천명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원칙에 맞고 시의적절했다. 앞으로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비난하는 말 폭탄을 쏟아내면서 유엔 대북 제재를 주도할 것이다. 그러나 7월4일 미사일 발사 제재에 대해서 반대했던 중·러가 이번 미사일 발사 제재에 대해서도 거리를 두는 입장이다. 미국 주도 대북제재결의안이 안보리를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시점에서 “설사 중·러가 동참한들 유엔 제재가 앞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본다. 지금까지 유엔 대북제재결의안이 5개 이상 시행되었고 미·일의 단독제재도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시간에 비례하여 고도화되었다. 북한을 강력하게 다룰 것이라고 호언하던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북한은 보란 듯이 13회나 미사일을 발사했다. 압박과 제재를 가해도 북한의 도발행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바늘과 실’ 같은 관계다. 작년에 북한은 핵실험을 두 번이나 하더니, 금년에는 월평균 1.5회 이상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다. 5차에 걸친 핵실험으로 탄두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를 이룬 후 북한은 미사일 사거리 늘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핵·미사일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그동안 이 문제 해결을 주도해온 미국이라면 북한이 미사일 사거리를 미 본토까지 늘리기 전에 손을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이제 와서 유엔 제재니, 독자 제재니, 중·러도 협조하라느니 하는 건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어리석음이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북핵·미사일 정책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오바마-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의 ‘압박과 제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대북정책으로 천명했고, 문 대통령도 ‘제재와 대화’를 대북정책 기조로 천명했다. 더 이상의 북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막기 위해서는 ‘관여(미국)’와 ‘대화(한국)’의 물꼬를 트는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그 프레임은 이미 북핵·미사일 문제를 다뤄 본 미·중의 전략가들이 내놓았다. 중국의 왕이 부장이 제의한 ‘쌍중단(雙中斷)-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의 중단’, 미국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차관보가 제안한 ‘동결 대 동결(suspension for suspension)-북핵 동결 대 한·미 군사훈련 동결’이 그것이다. 북한도 2015년과 지난해 초 핵개발 중단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맞바꾸는 조건으로 북핵회담 재개를 제의했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그 제안을 거부했고, 북핵회담은 열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그 시간 동안 북핵·미사일의 고삐가 풀린 것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한 조치는 해 나가야 한다. 한 고비를 넘기고 나면, 우리 정부가 ‘동결 대 동결’ ‘쌍중단’ 같은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입구로 들어가는 정책프레임 전환을 선도해야 할 것이다. 압박과 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 이것도 박근혜 정부 적폐의 하나로서 청산대상이다. 문재인 정부는 소신과 책임감을 갖고 그 방향으로 한·미 간 협의를 시작해야 한다. 북핵·미사일 문제 해결의 프로세스를 가동시켜야 하는 책임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황재옥 | 여성통일외교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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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반, 남쪽 지방의 시골 읍내에 거주하는 1971년생 J는 <주말의 명화>나 <명화극장>을 꼭 챙겨본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허락해 주말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어린 나이에 “존 포드의 기병대물, 히치콕의 스릴러물, 알랭 들롱 주연의 갱스터물” 등을 섭렵할 수 있었다.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며 우리말을 깨우쳤다고 믿는 그의 소원은 “정규방송 종료를 알리는 시그널이 나올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다.

1985년, 사당역 인근에 거주하는 1972년생 P는 버스로 다섯 정거장 거리의 중학교에 배정받자,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한다. 그녀에게 나이키 테니스화와 조다쉬 청바지와 함께 “열 장짜리 버스 회수권”은 “80년대식 청소년”이 되기 위한 기본 조건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월말고사, 중간고사, 기말고사로 이어지는 “시험의 향연들”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속한 8학군이 또 다른 조건을 요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밀 불법 과외가 그것이다.

1987년, 지방 소도시에 거주하는 1971년생 K는 부모님이 경영하는 ‘80년대식 빵집’이 전성기를 마감하고 있음을 감지한다. 손님들이 “바게트, 피자빵, 야채빵 등 서울에서 전해온 새로운 종류의 빵”을 구비한 최신식 인테리어의 제과점으로 발길을 돌렸기 때문이다. 조리법을 배워 새로운 빵들을 만들어내지만, 바게트만은 끝내 진열대 위에 올려놓지 못한다. 조리법대로 만들어도 특유의 식감이 살아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포기한 것이다.

거의 유사한 시점, 서울 변두리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1971년생 H는 부모 없고 가난한 집의 아이에게 쏟아지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헤비메탈을 탈출구로 선택한다. 독일 밴드 악셉트의 ‘메탈 하트’를 처음 들은 이후, 그는 “미쳐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헤비메탈 음악에 미쳐버렸다”. 그리고 오랜 벗이었던 ‘마이클 잭슨’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 시절에는 흔한 일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위의 J, P, K, H는 1970년대 초반생 소설가의 단편 소설, 즉 김경욱의 <미림아트시네마>, 정이현의 <비밀과외>, 김연수의 <뉴욕제과점>, 백민석의 <이 친구를 보라>의 주인공들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 이렇게 상이한 지리적·경제적 배경하에 성장한 이 인물들이 상위 10% 이상의 성적으로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의 대학교에 진학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1989년의 독일 통일 이후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1990년대 초반까지 운동권의 영향력은 여전했고, 1970년대 초반생 일부는 그에 휩쓸렸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3저 호황을 거치며 부모의 소득·자산 증대를 곁에서 지켜본 중산층 출신의 신입생들에게 한국 자본주의의 파국을 이야기하는 선배들은 그리 미더운 존재가 아니었다. 바야흐로 ‘압구정동 오렌지족’과 ‘신세대 문화’에 대한 풍문이 끊임없이 떠돌던 시절이 아니던가. 어쩌면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이 선배들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 그러면 위의 J, P, K, H들은 각각 어떤 모습으로 21세기를 통과하고 있을까? 통계 지표를 들여다볼 수도 있겠지만, 두 편의 소설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신경숙의 1995년 작 <외딴 방>에서 1963년에 태어난 서른둘의 소설가에게 그녀의 1930년대생 어머니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넌, 우리들 하고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더라.” 한편 김애란의 2011년 작 <서른>에선 학원 강사 출신의 1980년대 초반생 주인공이 학원가를 오가는 학생들을 보며 혼자서 다음과 같이 읊조린다.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자식이 부모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세상’과 ‘젊은 세대의 미래가 바로 앞 세대의 과거와 별 다를 바 없는 세상’. 어쩌면 J, P, K, H는 21세기 내내 후자의 세상을 뒤로한 채 전자의 세상으로 진입하기 위해 제각각 고군분투하며, 이미 그 세상에 안착한 선배들의 인생 궤적을 뒤따라가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작년 겨울, 이들 모두는 촛불을 들고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겠지만 말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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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시그널>이 있었다. 시간대가 다른, 그러나 같은 대한민국 공간에서, 과거의 사람이 미래의 사람에게 절박한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은 기적처럼 접속한다. 그리고 그들은 공감하고 함께 힘들어 하고 함께 피흘리고 함께 문제에 직면하고 함께 굴복하지 않으며 함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을 한다.

시그널은 그런 의미였다. 접속 그리고 연대. 내게 시그널은 접속하라! 그리고 연대하라!는 의미다.

촛불은 다양한 시그널이었다. 이질적인 시그널들이 서로 교차하고 접속하고 단속됐다. 그것은 9년간 우파 정권하에 외로이 싸워온 노동자, 농민, 빈민, 철거민들의 투쟁에 침묵해오던 도시 중산층 시민들이 정권퇴진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이는 과정이었다. 딱 거기까지 우리의 시그널들은 모였다. 그리고 시그널은 역설적으로, 문재인이라는 대통령을 뽑아 성공적인 정권교체가 이뤄지면서 흩어졌다. 그리고 지금 새 정부가 만드는 드라마 <시그널>이 펼쳐지고 있다. 모두 그 시그널을 해석 중이다.

tvN 드라마 시그널

그러나 지금까지를 보면, 문재인 정부는 너무 많이, 좋지 않은 시그널도 쏘고 있다. 그리고 과거로부터의 무수한 시그널들을 차단한다. 접속은 제한적이고 연대는 전면적이지 않다. 취임 초 대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적인 일일극을 펼친 정부로선 이 공감력마저 확장 배양하지 않았다면 어이했을꼬 싶다. 누구는 이 감동의 시그널만으로도 족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정권이 사회를 향해 쏘는 시그널은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너무 좋지 않은 시그널을 사회로 보내는 첫 번째는 갑을오토텍 사주 측을 변호한 박모 변호사를 민정수석실에 둔 것이다. 그리고 이 노조의 파괴 등에 이름이 등장하는, 로펌 김앤장 출신 신모 변호사에게 국정원의 중책을 맡긴 것이다. 그런데 우파 언론은 이 정부를 ‘친노동’ 정부라고 상찬한다! 그 노조 파괴 때문에 결국 자살에 이른 젊은 노동자 고 김종중의 장례식이 지난 22일 치러졌는데 말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적 비하와 폭력적인 대상화에 대한 뒷담화를 버젓이 출판물로 내고 이것이 ‘남자’ 일반인 양 묘사하면서 여성도 남성도 불쾌하게 만든 사람을 의전행정관으로 삼았다. 그리고 이 정권의 실세들이 이를 비호한다, 젊어서 한때의 치기어린 행동이라고. 그들의 변호론은 수많은 성폭행의 가해자들이, 혹은 판결이, 혹은 이 사회가 읊조리는 것과 유사하다. 거의 상식이다. 그래서 한국 사회는 ‘강간공화국’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습기 살인’의 기업들을 변호한 변호사가 또 청와대에 들어갔다. 국가와 제도가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방조하며 피해를 키웠고, 그 기업범죄를 옹호하고 법으로 보호한 변호사들이 있었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죄없는 아이들과 부모들, 소비자들이 안았다. 그렇다면 이 기업범죄에 무심한 사회에 대해, 청와대가 지금 더욱 나쁜 시그널을 보내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도 이런 사태를 방조·악화시키지 않을지? 나쁜 시그널이다.

그리고 광주항쟁을 기념하는 감동의 자리를 만들고 감동적인 연설을 했지만, 동시에 5·18 광주를 짓밟은 군부세력의 주모자 전두환을 “영도자”라고 기사를 쓴 기자 출신을 총리로 임명했다. 아무리 시대가 그러한들. 아니지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이길래. 신호들이 마구 서로 충돌하고 어색하고 나아가 도착적이다.

꼭 이런 시그널로 답했어야 하나? 과거로부터 오는 절박한 시그널에 이렇게밖에 감응하지 못하나? 결국 문재인 정부의 시그널은 보편적이지도, 철저히 인본주의적이지도 않은, 반쪽의 미완성 시그널, 아니 편향적인 시그널이다. 거창한 얘기가 아니다. 나는 단지 이 땅의 사람들이 잘못하는 대통령 때문에 고통받는 일이 조금은 사라지길 바란다.

진정성을 갖추라. 그 진정성, 과거와 현재의 아픔과 고통, 외로움들이 함께 접속하고 연대했던 그 시그널이 어떤 TV 드라마를 꽤 잘 만든 드라마로 만든 일등 공신이었다고 기억한다. 그러니 사회로 쏘아올리는 나쁜 시그널부터 걷어라!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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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10년이다. 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007년 7월 법 시행을 둘러싸고 노사정은 물론 사회적 논란이 컸다. 법의 필요성 못지않게 우려의 목소리들이 적지 않았다. 제도의 미흡함 때문이었다. 사실 비정규직보호법 도입 취지는 고용불안과 차별해소 목적이 명확했다. 직장에서 2년 된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과 불합리한 차별의 방지였다. 그렇다면 과연 지난 10년 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정말 궁금하다.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일부 정책 효과도 확인된다. 비정규직의 사회보험이나 퇴직금 적용 비율이 다소 증가했다. 그나마 노동시장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의 성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보수정부 시기 고용의 질 악화가 문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율은 16.8%에 불과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는 줄지 않고 있다. 정규직이 100일 때 비정규직은 48.7의 임금을 받고 있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은 근로기준법에나 있는 것이다.

정부는 2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열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추진계획'을 심의해 의결했다. 전국 852개 공공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기간제 근로자와 파견·용역 근로자 등 비정규직 31만명 가운데 향후 2년 이상 일할 인력은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날 오후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일터는 더 가혹하다. 폭언이나 성희롱 등 비인권적인 문제는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협력업체 소속이기에 보호해 줄 곳은 없다. 입사 후 단 한 번도 사장 얼굴을 볼 수 없던 그들은 2년에 한 번씩 바뀌는 작업복과 출입증을 받을 때 그나마 위안을 받는다. 계약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명절 때마다 관리소장의 호출은 부담스럽다. 연말 재계약을 앞두고 어떤 선물을 해야 하나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관리소장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괴롭혀 사표를 쓰게 하기도 한다. 제도적 사각지대가 실질적 사각지대를 만든 것이다. 제도시행 초기 2년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차별시정 신청은 1년에 고작 44건이다. 불이익을 감내하면서 차별시정을 신청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정부 정책이 개별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10년이 됐지만 좀처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지난 5년간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답을 찾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9098명의 정규직 전환은 의미가 크다. 특히 정규직 전환자 중 7602명은 청소, 경비, 시설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우리 사회의 빈곤과 불안정의 덫을 제거하는 첫 작업이었다. 여름휴가, 상여금, 교육, 건강검진, 본사 직원 연락망, 정년 퇴임식 등 변화된 일터의 모습이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들이다.

올해부터는 온전한 정규직 전환과 차별 해소를 위한 실천 과제들도 밝혔다. 정규직과의 임금격차(25%) 축소나 직군 간 통합 및 인사승진 체계였다.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자는 구성원 간 공감대가 형성되자 다양한 노력들이 시도되고 있다고 한다. 임금격차는 주로 기관 내 잔여 인건비를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어떤 기관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추가 부담 없이 해결방안을 찾았다. 현장 직원의 인사승진도 시작되고 있다. 내년부터는 서울시 민간위탁기관 등 소규모 사업장의 침해나 차별 등을 맡는 ‘노동조사관’을 신설한다고 한다.

이렇게 서울시 노동정책은 진화하고 있다. 생활임금이나 노동이사제뿐만 아니라 노동시간 단축과 감정노동자 보호사업도 의미있는 정책이다. 서울시 노동정책은 지방정부라는 한계 속에서 가능성을 보여준 정책의 연속이다. “우리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 소속감, 처음으로 직장에서 행복이라는 생각을 해봤다”는 한 청소 노동자의 말에서 어떤 노동정책이 필요한가의 의미를 되짚어 본다. 이제 국가는 어떤 정책을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시켜 주어야 할 시기다.

김종진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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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밑바닥에서 도도히 흐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장마당 시대에서 자유롭게 돈을 벌며 살게 해 달라는 요구이다. 이는 사람살이의 보편적 요구이다. 나는 이를 법치의 요구라고 부르고 싶다. 북한은 법치의 문턱 바로 앞에 서 있다. 이 요구에 응하여 협력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에 매우 중요하다. 당면한 과제가 개성공단 재개와 나선경제특구의 국제화이다.

북한에 법치가 가능하냐고 반문할 것이다. 북한의 법치는 필요하고 또한 가능하다. 북한을 떠나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전하는 말은 북한 사람들이 더 이상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등을 배급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북한 연구자들은 종합시장인 장마당을 비롯해 골목시장, 야시장 등 시장이 북한 사람들의 생활 수요의 80% 이상을 해결한다고 분석한다. 어떤 연구자는 90%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0년에 제정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기업소법’에 의하면 기업소, 즉 회사를 만들 수 있는 곳은 행정기관이나 인민위원회 등이다. 개인은 기업을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지금 북한에서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사실상 회사 조직을 만들어 생활 필수품을 만들고 판매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 경제를 해결한다.

이와 같이 장마당 경제와 북한 실정법이 서로 어긋나는 현실은 계속될 수 없다. 북한의 장마당 경제가 커지면 커질수록 북한 사람들에게는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다. 소유권이 확립되지 않는다면 누가 장사를 하겠는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는 상업 발전을 상상할 수 있을까? 신체의 자유는 또 어떠한가? 상업이 발달할수록 신체의 자유가 필수적이다.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잡히고 갇힌다면 상업이 발달할 수 없다. 법률에 처벌할 수 있는 죄목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어기지 않는 한 국가로부터 처벌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를 ‘죄형법정주의’라고 한다.

북한의 법치는 가능하다. 법치의 바다를 건널 것이다.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한 법제 변화를 가장 먼저 선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개성공단을 포함한 나선경제특구 등을 통해 북한에 경제 발전을 위한 법제도 도입의 선택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선택이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쪽으로 되도록 협력하는 것이 지금의 남북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를 북한법제발전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햇볕정책의 의의를 인식하면서도 이제 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햇볕정책의 결과가 핵무기 개발이냐는 일부의 반문은 무지의 소산이다.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이 이곳에서 플루토늄을 생산해서 숨겼다는 의혹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 사찰을 북한에 요구한 때는 1992년이었다. 햇볕정책은 북한 핵개발의 원인이 아니다.

햇볕정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북한과의 경제교류협력이 늘어난다고 하여 저절로 북한의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햇볕정책은 남북경제협력이 북한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고 매개하는 중간고리인 법치 발전 부문의 중요성을 소홀히 했다.

법치의 바다를 건너야 하는 북한은 경제발전을 위한 법제 변화를 가장 먼저 선택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개성공단과 나선경제특구 등에서 북한에 경제 발전을 위한 법제도 도입 선택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선택이 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쪽으로 되도록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햇볕정책의 한계를 넘어 북한과의 경제 협력 교류에서 북한 법치 변화에 대한 계획성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 북한 내부의 법치 요구에 터 잡아 북한의 단계적이고 자발적인 선택에 협력하는 체계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당면 과제는 개성공단을 다시 여는 것이다. 개성공단은 유엔 제재 속에서도 가능하다. 우리의 의지 문제이다. 그리고 나선경제특구의 국제화이다. 북·중·러 주도에 머물지 않고 미국과 일본도 참여하도록 한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 신냉전을 허무는 법치와 평화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15년 기준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자는 324만명에 이르렀다. 아직 휴대전화가 없는 약 2000만명의 북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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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태’를 쉬쉬하던 시대에 자라난 저는 우연히 눈에 띈 ‘금서’를 보고 광주의 1980년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 충격적 상흔이 광주시민 가슴에 아직도 절절히 박혀있음을 알게 되기까지 또 많은 시간이 흘렀죠.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이번 여름, 마지막 전투가 있었던 전남도청을 찾았습니다.

약간은 더운 평일 아침이었습니다. 텅 빈 광장이었지만 혼자는 아닌 듯했습니다. “그때의 함성이 들리는 듯했다”는 상투적 표현 말고는 달리 말할 수 없는 느낌이었죠. 그 함성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한, 그래서 편안히 살아버린 저의 부채의식만큼이나 크게 들렸습니다. 하지만 도청은 깔끔한 ‘아시아문화전당’이 돼 있었습니다. 1980년의 기억을 찾는 저에게 직원은 옆에 있는 기념관으로 가보라고 친절하게 알려줬죠. 그제야 도청을 둘러싼 논란이 기억났습니다. 2008년 시작한 문화전당 공사 탓에 항쟁의 흔적이 훼손되거나 사라져 반발이 심했고 논쟁은 아직 진행형이라는….

광장 앞에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둘러진 테이블과 몇몇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끝에 계신 한 분에게 도청에 관해 여쭤보고 탄원서에 서명했습니다. 계엄군을 상대로 승산은 없지만, 마지막 저항을 벌인 바로 그곳에서 고작 이름과 주소를 적어놓고 뒤돌아서려니 새삼 죄송스럽더군요. 인사를 드린 뒤 멀어져가는 저를 그분이 따라오셨습니다. 그러더니 조심스레 손을 내미셨죠. 자그마한 핀과 5·18민주화운동 안내 책자를 건네며 멀리서 온 사람에게 줄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당신은 삼일빌딩 앞에서 총을 맞았다며 총상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며 멋쩍어하셨죠. 미안하다는 말에, 또 그 멋쩍어하는 얼굴에 터지는 울음을 참느라 입을 열 수가 없었습니다.

광주의 비극은 1980년에 끝나지 않았습니다. 전두환과 그 부하들은 오랫동안 굴종과 망각을 강제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전라도 사람들을 헐뜯으며 그 장단에 춤을 추었죠. 전라도 출신이어서 승진에 밀리고, 결혼도 못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북한이 사주했다는 악담도 서슴지 않죠. 민주주의를 피와 몸으로 외친 광주 시민들로서는 어처구니없을 수밖에요.

한국 민주주의는 박근혜 정권을 끝내며 재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지만 이를 가능케 한 전남도청은 제 모습을 찾지 못한 채 남겨져 있습니다. 다행히도 문재인 대통령이 복원을 약속했지만, 복원의 정도와 비용, 기존 시설 이전 등 문제와 도전 과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대통령의 약속, 광주 유가족의 염원으로는 부족한 게 현실이죠. 전 국민의 성원이 필요합니다.

전 국민의 성원과 관심은 뉴욕 9·11 박물관을 가능케 했습니다. 정부와 유족, 전문가 사이에 오랜 대화 끝에 들어선 박물관은 참담했던 비극만큼이나 인상적이죠. 부서진 무역센터가 있던 그 자리에 들어선 박물관에는 휘어진 철근, 부서진 계단, 불타버린 소방차 등 건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습니다. 뉴스, 소방관 교신, 희생자에 대한 추억 등도 잘 전시되어,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합니다. 꼼꼼히 보지 않아도 두 시간은 족히 걸리는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그날 느꼈던 충격과 슬픔이 온전히 떠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촛불항쟁을 통해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든지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 투쟁을 광주는 1980년에 외롭게, 피를 흘리며 해냈습니다. 그 의로운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가족과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전문가와 광주 시민의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처절한 기억이 생생히 보존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돌아보아야 합니다. 광주를 지나 잊지 말아야 할 기억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지켜야 할 아픔은 무엇인가. 광주처럼 잊고 있는 것은 없는가. 저는 세월호가 그 시작이길 소망합니다. 선체와 유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오늘, 기억과 슬픔이 아직 생생한 오늘, 우리는 세월호가 어디서 어떻게 기억돼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수습과 조사가 끝나는 대로 그 기억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먼 훗날 우리 손자, 손녀에게 이 아픔을 그대로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태현 |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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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911년 3월25일은 토요일이었다. 오후 4시40분, 퇴근을 20여분 남겨놓은 상태에서 8층의 옷감을 재단하는 기계 밑 자투리 천을 모아놓은 통 근처에서 불꽃이 튀었다. 미국 뉴욕의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은 10층짜리 건물의 가장 높은 층인 10층부터 8층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공장주는 노동자들이 옷가지를 훔쳐 가거나 몰래 숨어서 휴식을 취한다는 이유로 출입문 두 곳 중 하나를 언제나 잠가두었다. 공장 안에는 공업용 재봉틀과 옷감들, 자투리천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러나 공장 안에는 소화 장치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대부분은 미국에 이제 막 도착한 여성 이주노동자로 화재가 일어나기 2년 전이던 1909년 13주간의 파업을 통해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지만,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공장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화재가 일어나자 공장주는 가장 먼저 열쇠를 들고 탈출해버렸다. 탈출할 수 있는 곳은 옥상에서 지상으로 이어지는 비상계단과 화물 엘리베이터뿐이었지만, 화재가 발생하자 화물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멈췄고, 비상계단은 너무 부실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소방 사다리는 6층이 한계였다. 화재를 알리는 경보벨은 울리지 않았고, 뒤늦게 화재가 발생한 것을 깨달은 9층의 노동자들은 불길을 피해 뛰어내리다 추락사하거나 유독성 연기에 질식사하고 말았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15분 만에 진화되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모두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트라이앵글 셔츠웨이스트 공장 화재는 미국 역사상 9·11 테러 이전까지 단일 사건으로 최대 희생자를 낸 사고로 기억된다.

2013년 4월24일 아침 8시45분, 방글라데시의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 8층짜리 건물이 폭삭 주저앉아 노동자 1134명이 죽었다. 이미 전날부터 공장 건물에 금이 가고, 물이 새는 등 위험 징후가 있었지만, 공장주는 작업장에 들어가길 거부하는 노동자들은 두들겨 패서 강제로 작업대에 앉혔다. 세계 패션산업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수백대의 재봉틀이 한꺼번에 돌아가자 잠시 후 지붕과 기둥이 거짓말처럼 내려앉았고, 쇠창살로 막힌 창문과 이중 철제문, 좁은 계단과 원단으로 막힌 출구 안에서 누구도 도망칠 수 없었다.

1988년 한국의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900명이 유기용제 중독으로 미쳐서 자살하거나 사지마비로 신음하다 죽어갔다. 1998년 부산의 내동 창고 공사 중 폭발화재 사고로 27명이 숨지고 15명이 크게 다쳤다. 2008년 벽두 경기도 이천 공장의 화재 사고로 40명의 노동자가 화염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2015년 한 해만 하더라도 1월에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3명이 질식사했고, 4월에는 SK하이닉스 이천공장에서 3명이 질식사했고, 7월에는 울산 한화케미칼 폭발사고로 6명이 숨졌다. 2016년에도 1777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최소한의 안전기준만 준수되었더라도 목숨을 잃지 않았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매일 5명씩 죽어간다. 며칠 전(7월8일) 근로복지공단이 삼성전자 LCD 공장(현 삼성디스플레이)에서 일한 노동자의 백혈병 피해가 산업재해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LCD 생산직의 백혈병 피해가 산업재해로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진국에서는 노동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영국의 경우 2007년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제정하여 2008년부터 기업 활동 중에 발생하는 사망사고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다. 개인 간에 살의를 품고 자행하는 살인과 달리 산업재해로 인한 치사에 대해 관대하게 접근해오던 그간의 관행을 깬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 관련성에 대한 증명책임이 산업재해 피해자 측에 있다. 산업재해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개선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것을 ‘국가의 실패(failure of the state)’로 보아야 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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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일본 사이타마 아레나에서 2만석 규모의 전용 공연장, 서울아레나를 도봉구 창동에 건립한다고 발표했을 때만 해도, 음악인들에게 창동은 아주 낯선 곳이었다. 왜 굳이 창동에 아레나를? 홍대도 힘들어 죽겠는데, 창동에 과연 뮤지션들이 갈까? 인디음악이 서울 동북권 도시재생 사업에 도구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건 아닌가? 이런저런 의구심과 부정적인 생각들이 팽배할 즈음에, 서울아레나의 마중물 사업인 플랫폼창동61이 작년 4월29일에 개장했다. 형형색색의 해상용 컨테이너 61개로 만들어진 플랫폼창동61은 클럽형 공연장 레드박스와 입주뮤지션을 위한 스튜디오, 녹음과 합주가 가능한 레코딩 스튜디오와 리허설 스튜디오 등 음악인들을 위한 편의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추었다. 홍대 앞 음악신(music scene)과 비교할 때,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창동의 초라한 모습은 플랫폼창동61의 좋은 사운드 시스템과 뮤지션 친화적인 편의시설로 인해 지금은 록, 힙합, 재즈, 국악 등 장르 뮤지션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연장이 되었다.

플랫폼창동61은 2016년에 총 23만여명이 방문했고, 총 218회의 각종 문화프로그램, 뮤지션 137개 팀이 참여한 168회의 공연, 공연장 가동률이 90%를 넘어설 정도로 성공적인 첫해를 보냈다. 50여 입주·협력 뮤지션이 참여해서 96회의 공연을 진행했고, 올해도 40여 입주 및 협력 뮤지션들이 좋은 공연들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플랫폼창동61은 ‘원더걸스’, ‘트와이스’, ‘SS301’, ‘크나큰’ 등 아이돌 그룹들의 쇼케이스와 뮤직비디오의 촬영지이자, 각종 음악 관련 방송 프로그램의 녹화장소, CNN, BBC 방송의 취재 장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창동은 음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기에는 여전히 황량하고 쓸쓸하다. 플랫폼창동61이 있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고 있지만, 정작 본 사업인 서울아레나는 중앙 정부의 석연치 않은 사업 타당성 심사에 발목이 잡혀 17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에, 서울 권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창동에 K팝 아레나를 건립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바 있어, 조만간 긍정적인 결론이 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뮤직시티 창동을 조성하는 계획은 단지 대형 공연장만을 건립하는 것으로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는 없다. 유럽과 미국의 유서 깊은 음악도시들은 지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성장과 장구한 음악클럽들의 건재, 그리고 음악 팬들의 오랜 열정으로 만들어졌다. 뮤직시티 창동 역시 앞으로 수많은 뮤지션과 팬들, 그리고 다양한 음악 자산들이 모여 오랜 음악적 유산을 이루고 그것들의 축적을 통해서 성장할 것이다. 단지 도시재생을 위해 음악이 도구나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도시의 미래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자원이 되는 뮤직시티를 상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뮤직시티 창동을 조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플랜이 수립되어야 한다.

다행히 7월6일 박원순 시장 주재로 음악 산업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뮤직시티 창동을 조성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했다. 서울시가 준비하는 뮤직시티 창동 플랜 안에는 대형 아레나 공연장 이외에 2000석 규모의 라이브공연장, 장르음악 중심의 클럽 공연장 조성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한국 음악인들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대중음악 명예의전당 건립과 대략 300여개의 음악과 공연 관련 기업 유치 계획도 준비되어 있다. 글로벌 음악비즈니스, 음악 테크놀로지, 차세대 음악 미디어 플랫폼 개발을 위한 대중음악 전문학교 설립과 균형 있는 음악 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한 전문 지원기구 설립 등도 검토하고 있다.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 음악 산업을 견인하는 창의적인 기업들, 다양한 대중음악 콘텐츠들을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과 차세대 음악 산업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이 창동이라는 장소 안에 집적될 수 있다면, 뮤직시티 창동은 상상의 은유가 아닌, 현실의 공장이 될 것이다. 이 희망 플랜이 내가 창동에 올인하는 유일한 이유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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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외교·안보 관련 학술회의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분야가 남성 편향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발표·토론·사회를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는 전문가 대부분이 남성이다. 어쩌다 여성 전문가가 하나라도 끼면 으레 ‘홍일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홍일점’, 이 말은 사실 여성을 꽃으로 비유한다는 점에서 여성 전문가들로서는 듣기 거북할 것이다. 저변에 깔린 우리 사회의 특성이 여성을 ‘꽃’으로 인식하게 하고, 여성의 참여를 제한한다. 국민소득이 증대되고 교육열이 높아지면서 부모의 아들딸 차별은 없어졌지만, 사회진출을 꿈꾸는 여성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과 마주친다.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도 예외는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성 전문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또는 여성들의 참여가 저조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건 변명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의 참정권 역사를 살펴보면, 민주주의 시발점이었던 프랑스대혁명 이후 일반시민들은 참정권을 부여받았지만, 여성은 자동적으로 제외되었다. 1800년대 후반 이후 여성의 참정권이 여성운동의 중심의제가 되었고, 세계 대부분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한 1960년대부터는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 획득이 여성운동의 주요 과제로 대두됐다. 서구에 비해 민주주의 정치발전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는 현재 4당 중 3당의 대표가 여성이다. 서구로부터 이식받은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민주주의 정치발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일상적으로 느끼는 문제들을 공적 영역에서 제기하고 논의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하고 배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남녀동수 내각을 약속하고, 일단 여성 비율을 30%로 시작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리고 1기 내각 구성에서 그 약속을 지켰다. 남성편향적이고 국가중심적인 외교·안보 사안에 여성을 수장으로 임명했다. 정치권력에 대한 전통적 개념을 허물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강경화 장관은 자력으로 국제외교 무대에서 능력을 키워 남성들만의 성역처럼 여겨져 온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유리천장’을 깨고 솟아올랐다. 여성후학들에게도 롤모델이 될 것이고, 앞으로 제2, 제3의 강경화도 나올 것이다.

국제정치학이 국가중심적이고 남성편향적이어서 전쟁과 평화 연구에 여성의 경험이 첨가되지 않았다는 페미니스트 학자들의 비판은 논외로 하더라도, 분단국인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참여와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은 아쉽다.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는 70.7%이고, 7급과 9급 공무원 여성 합격 비율도 41.7%, 57.6%이다. 다만 4급 이상 여성 공무원은 여전히 전체의 10.6%였다. 통일·외교·안보 분야를 연구하는 여성 전문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비켜갈 수 없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연구와 활동을 했지만, 그에 걸맞은 사회적·국가적 참여와 역할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최선을 다했는지 되짚어 봐야겠지만 실력과 경력을 갖추고도 기존편견과 고정관념의 유리천장을 깨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재 우리는 탈냉전시대에 살고 있다. 탈냉전시대에선 군사적 측면뿐 아니라 배리 부잔이 말한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다양한 사항을 포함한 ‘확대된 안보개념’이 필요하다. 그래서 통일·외교·안보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과 참여가 기대된다. 예를 들면 분단국인 우리의 경우 탈북자의 남한사회 정착 문제와 북한인권 문제가 그런 분야일 것이다. 탈북자의 80%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 전문가들이 탈북자의 우리 사회 적응과 정착, 복지정책을 개발하고 일선 업무에도 나선다면 효율적일 것이다. 북한인권 개선 문제도 여성의 시각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인권개선의 가치를 실현한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여성의 참여와 역할로 통일·외교·안보 현상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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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4일 행정자치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있었다. 김부겸 장관은 기록 관련 질의를 받자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기록관리가 발전했다는 기조로 답변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의외의 답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검찰이 이전 정부에서 공명정대하게 검찰권을 행사했다는 답변이 나온다면 큰 사회적 파장이 있었을 것이다.

한국의 공적 기록관리는 노무현 정부 때 토대가 마련되었으나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급격히 후퇴했다는 것이 기록 관련 학회와 전문가단체, 시민단체의 중론이다. 2008년 국가기록원의 대통령기록 고발사건, 2012년 대선 당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사건, 2017년 박근혜 대통령기록 무단폐기 및 이관 적법성 논란, 대통령경호실의 문서목록 미작성, 기록 블랙리스트 논란 등은 퇴보를 거듭한 기록관리 분야의 쓸쓸한 단면이다.

기록은 노무현 정부에 와서야 체계적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기록혁신을 단행했다. 대통령기록은 2007년에 제도가 마련되었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뒤이은 정권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이관된 대통령기록을 이용해 정치공세를 벌이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훼손했다.

김부겸 장관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도 대통령기록을 1000만건 넘게 이관했으니 기록의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게 아니냐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편의적인 해석이다. 1000만건이라는 수치는 문제가 있다. 홈페이지 등 웹 기록이나 사진은 시대적 추세이다. 현재 이관된 기록의 대다수는 이런 기록이다. 대통령기록의 핵심은 대통령보고서, 대통령 회의기록, 외교안보기록, 주요 정책문서 등이다. 지금 이런 기록이 이관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주무기관인 국가기록원이 상세한 이관과정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수량보다는 내용이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던 대통령기록 무단폐기 및 이관 적법성 논란이 심각한 이유이기도 하다.

원인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선은 국가기록원이 문제였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국가기록원은 정부기록을 책임지는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이다. 공공기록법과 대통령기록법을 운용하고 있으며 대통령기록관을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다. 정원은 350명이다. 국민이 국가기록원에 이렇듯 막강한 권한을 주면서 책임을 맡긴 것은 기록이 민주주의 성숙의 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기록원은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갈등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오히려 거셌다.

국가기록원 개혁이 대한민국 기록 정상화의 시발점이다. 개혁방향은 국가기록원의 독립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은 행정자치부 소속기관이다. 국가기록원장은 행자부 국장급이 임명되며 임기는 평균 1년이다. 독립성도 안정성도 없는 이런 상황은 행자부 인사관행이 낳은 기현상일 뿐, 기록과는 상관이 없다. 우리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조직의 수장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국가기록원장이 바로 서야 국가기록원 독립도 바로설 수 있다. 소신과 전문성,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정신과 역사의식이 투철한 기록전문가가 국가기록원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가기록원장 직위를 개방직으로 풀어야 한다. 기록의 무게를 감당할 기록전문가가 우리 사회의 기록운명을 이끌어가야 한다.

기록이 발달한 곳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기록공직자가 있다. 이 자리에 오른 기록전문가가 국가기록을 책임진다. 미국은 국립기록관장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국립기록관(NARA)은 1930년대 설립된 이후로 줄곧 총무처 소속기관이었다. 그러다가 1985년에 독립해 연방정부의 기록관리를 전담하는 독립행정기관으로 탈바꿈했다. 수장은 국립기록관장이면서 동시에 ‘미국 아키비스트’라는 상징적 지위까지 부여받는다. 이런 이유로 행정관료가 아닌 기록전문가가 국립기록관장이 된다.

이제 우리에게도 ‘대한민국 아키비스트’가 필요하다. 단지 수량이 아니라 기록의 무게를 감당할 기록전문성과 기록의 중요성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야 한다.

이영남 한신대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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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권은 트럼프 스캔들로 요란스럽지만, 정작 미국이 당면한 핵심적 문제는 트럼프에도, 그리고 러시아에도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의료보험제(오바마케어)는 현재 상태로는 지속이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트럼프케어로의 수정도 사실상 상원 통과가 불가능하다. 재정 계획이나 조세 개편안은 아무도 현재 상태로는 통과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으며, 의회가 승인해준 미국의 부채 발행 한도는 다 찼기 때문에 재정 고갈로 인한 정부 셧다운 가능성은 커져가는데 정작 트럼프 행정부는 국방예산 증액을 외치고 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여전히 국무부 등 주요 행정부 핵심 포스트를 아직도 온전히 채우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하원외교위원장이 “현재 국무부는 여러 가지 사안을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이는, 심지어는, 공화당이 행정부와 상·하원 모두를 장악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다른 말로 해서 트럼프 행정부는, 그리고 의회는 ‘정상 작동’이 안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하고 멜라니아 트럼프가 옆에서 박수 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사회학에서는 이처럼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는 국가기구가 맡겨진 자기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태를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는 개념으로 정리하는데 우리네 말로 옮기면, “이게 나라냐”쯤에 해당한다. 엄밀히 말하면, ‘실패한 국가’는 각기 층위가 다른 몇 가지 정의가 혼재된 것이다. 실패한 국가는 부패, 무능력 등으로 국가기구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기능적 비효율성’(dysfuntion)을 보이는 경우도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 정치가 반영해야 하는 사회 내부가 도저히 상호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보다 근본적인 것은 사회 내의 적대적 대립이다. 국가의 기능은 그 효율성과 역량의 정도와 무관하게, 이 같은 사회적 적대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외부로 표출되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2008년 이후 미국 정치의 변화 과정은 자못 시사적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미국 대중들은 기존 체제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변화’를 내세운 오바마와 민주당에 몰표를 던졌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집권 뒤에 한 일은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수’(repair)와 미봉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실망한 대중들은 2010년의 중간 선거에서는 공화당(티파티)에 표를 던졌다. 그러자 ‘민주주의자’인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의 민주적 의사’를 존중한다는 명분으로 보수파와 더 타협했으며, 결과는 더 강력한 현상 유지였다. 오바마의 정치적 레토릭, 즉 자신은 국민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개혁파라는 이미지는 그의 재선에는 도움을 주었지만, 기득권의 강화에 불과했으며, 그럴수록 대중들의 불만은 더 커져갔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이런 요인들이 바로 어떤 막말을 해도 지지를 받는 트럼프현상을 불러왔다. 그 결과 미국 대중들은 금융위기 이후 거의 10년이 지나는 동안 기득권인 민주당과 또 다른 기득권인 공화당 사이를 오가면서 결국은 세상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제자리걸음을 하게 되었고, 그사이에 국가기구는 자신들의 조직 이기주의만을 존재 이유로 삼게 되었다.

미국의 사례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대중의 구호가 ‘이게 나라냐’에 머무는 한, 그것은 단지 국가 기능의 강화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일조할 따름이며 그것이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나라’가 아니라 ‘사회’이며, 무엇이 우리 사회에서 수십년 동안 똑같은 비정상과 실패를 재생산해내고 있는가이다. 실패한 국가에 질려서, ‘제대로 된 국가’(정상국가·normal state)만 바라고 빌고 있다면, 우리는 10년 뒤에도 여전히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에 매달려 이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 진자 운동을 할 뿐, 여전히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을 것이고, 트럼프를 훨씬 능가하는 더 화려한 대통령을 만나게 될 것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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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을 33번이나 거론한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연설. 2017년도 추경 예산이 통과되길 바라면서 강조한 말이다. 현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는 일자리고, 그 핵심에 청년이 있다. 엊그제 국가일자리위원회가 첫발을 내디뎠다. 일자리위원회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청년정책이 ‘청년구직촉진수당’으로 대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고용, 주거, 문화, 복지 등 여럿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일자리만 강조되는 모양새다.

사실 지난 한 해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청년수당)에 대한 찬반 논란이 뜨거웠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날선 공방을 벌였고, 정치권에서도 쟁점이었다. 청년수당이 중앙정부와의 협의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반대했던 보건복지부도 동의 통보를 했다. 평균 연령 27.7세, 여성 52.5%, 3분의 2 대졸 이상 학력. 바로 2017년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신청 청년들이다. 문제는 미취업 기간이다. 신청자들의 미취업 기간이 20.8개월이나 된다. 전체 청년 구직기간의 두 배로 장기실업 상태가 다수였다.

지금 청년들에게는 당장 버틸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서울시 청년활동지원사업 신청자 8329명의 사연에서 하나같이 청년들의 절박하고 아픈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줄 주변 사람조차 사라진 지 오래인 청년들.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청년들. 사회조차 외면했던 청년들의 삶. 아픈 부모를 간병하며 아르바이트하는 청년부터 장애 청년까지. 학교 밖 사회로 나와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의 삶은 ‘인간 존엄의 상실’ 그 자체였다. 청년활동지원센터 실무자들은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부족한 서류 때문에 탈락되면 안되니까.

물론 청년활동 신청자들의 활동계획에서는 희망도 확인된다. 그들은 “작년에 단 한번이었지만 그 기회에 꿈을 꿔볼 수 있었다”, “이렇게 계획을 이야기할 기회라도 있어서 고맙다”는 말들을 남겼다. 센터는 지난 몇 개월 동안 마음속 작은 이야기라도 꺼낼 수 있는 공동체라도 만들어 보고자 했다. 자신의 마음 한 번 돌아볼 여유 없이 살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동네에서 그냥 만나는 ‘어슬렁 반상회’를 시작했다. 이 모임은 여섯 명에서 여덟 명 정도로 꾸려진다. 자기 안의 소리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미약하지만 서울시와 같은 사업은 이행기 노동시장에서 필요한 정책이다. 이미 서울시 청년수당을 계기로 경기, 대전, 광주 등 광역지자체 절반에서 검토 중이다. 광주는 ‘청년드림사업’을 시작하고 있다. 드림사업 1기 131명(여성 78명)이 84개 사업장에서 다양한 진로역량을 쌓는 경험을 한다. 청년활동, 사회적경제, 공공기관 등 청년특성과 욕구에 적합한 5개 유형별 사업이다. 1주일 25시간 내외 참여와 활동으로 자기모색과 일 경험을 한다. 이 때문에 청년들은 취업이나 자격증, 교육 등에 시간을 할애할 수도 있다. 게다가 광주는 드림사업 참여자들에게는 지자체 생활임금을 지급한다.

촛불로 시작한 새 정부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까. 청년들을 취업에 대한 강요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미 2010년부터 국제기구들은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맞게 새로운 청년정책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2013년 유럽연합은 고용과 실업 해소를 위해 청년보장제도(Youth Guarantee)를 회원국들에 권고한 바 있다. 유럽연합도 몇몇 지역에서 시범사업으로 시작했다. 예산도 중앙과 지역이 일정 비율의 매칭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이제 우리보다 앞선 정책을 시행했던 나라들의 정책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확인할 때이다. 특히 청년정책은 일자리 제공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과 연결될 때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청년들에게 더 나은 진로를 모색할 시간과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또한 청년들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한 정책과 포괄적 지원서비스도 필요하다. 서울이나 광주의 정책들은 청년들이 부딪혔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고민한 결과물이다. 무릇 정부가 어떤 새로운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의 ‘좋은 모델’을 확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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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양재동 서울행정법원에서는 전시작전권 이양 조약 공개 소송 재판이 열렸다. 아다시피 한국군의 전시작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에 근거해서 한국 대통령의 헌법상 전시 국군통수권을 이양받았을까?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0년 7월14일, 맥아더 유엔군 연합군 사령관에게 편지로 작전권을 넘겨준 것은 지금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엔군 연합군 사령관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군 연합군이라는 법적 실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엔군 연합군은 유엔 총회 결의에 따라 해산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근거로 미국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지는가? 비밀조약이다. 국방부는 1978년 7월27일,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비밀약정을 체결했다. 국방부 장관은 2015년 11월13일, 정보공개청구에 답신을 보내면서 이 약정 이름을 ‘관련 약정(한미 비밀문서/’78.7.27)’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국방부 장관은 한국이 같은 해 10월17일, 이 ‘관련 약정’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는 한·미 외교부 간 한·미 연합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각서를 교환했다”고 답신했다.

지난 13일의 정보공개소송은 이 비밀약정을 공개하라는 것이다. 일차적으로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한·미 연합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각서를 공개하라고 소송을 했다.

법정에서 외교부는 이 각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각서가 사법부의 손에 처음으로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정보공개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이다. 정보공개법은 재판부가 직접 비공개로 소송 대상 문서를 열람할 수 있도록 정했다.

정보공개법에 따른 열람 결과, 이 각서에는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이양한다는 조항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니까 각서 그 어디에도 전시작전권 이양 조항은 없었다.

그렇다면 미국이 전시작전권 행사를 하는 법적 근거로서의 조약은 어디에 있는가? 국방부 장관이 답신한 관련 약정(한미 비밀문서/’78.7.27)에 전시작전권 이양 문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관련 약정이란 것의 법적 실체는 여태 단 한 차례, 국회나 언론 그리고 전문가 집단에 의해 검증된 적이 없다. 위에서 보았듯이 한국 외교부가 따로 미국과 각서를 교환하는 절차를 추가한 것에 비추어 보면, 관련 약정은 아마 국방부와 주한 미군 사이에 실무적 절차로 체결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이것을 국제법적으로 적법한 조약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전시작전권을 비밀조약으로 미국에 이양한 것은 국민주권 위반이다. 이는 곧 헌법을 부정한 일이다.

이성덕 교수가 ‘미국의 군사작전통제권하에서의 한국군’이라는 논문에서도 지적했듯이 전시작전권 이양은 “실질적 국가 주권의 중요한 부분”을 이양한 것으로, “최소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어야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국방부와 외교부는 전시작전권 이양 비밀조약을 공개하지 않는다. 한·미 군사 비밀 문서라는 이유를 내세운다. 심지어 외교부는 정보공개 소송에서 미국이 각서를 공개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한국도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넘겨준 한국과 이를 받은 미국의 입장이 같을 수 없다는 것이 오히려 정의롭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군을 통수한다. 이는 헌법이다. 제74조 제1항이다. 중요 조약은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는 헌법 제60조 제1항이다.

국방부와 외교부는 이제라도 전시작전권 이양 비밀조약을 공개하고 국회에 보내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정부에 비밀조약을 국회로 보내라고 요구해야 한다.

안보·외교·통상에서 적법절차 원칙을 세워야 한다. 지금 온 나라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의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은가.

전시작전권 이양 비밀조약은 절차적 정당성 훼손의 뿌리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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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렇듯 이번 정부 인사청문회도 요란합니다. 비난과 고성이 오가고 사과와 변명이 따릅니다. 지지율이 14%인 제1 야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위장협치’ ‘독선’을 하고 있다며 비난을 퍼부었죠. 하지만 야당의 고함이 큰 것과는 달리 여론은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80% 안팎에 이르고 있죠. 아주 드문 일입니다. 논란이 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임명에 찬성이 62.1%로 반대 의견 30.4%에 두 배가 넘었습니다. 대통령의 임명강행을 주문하는 의견도 과반 이상이죠. 민의가 어디 있는지는 분명합니다.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민주체제라는 가정을 놓고 보면 야당의 법석 떠는 모습은 이상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이 기이한 풍경이 그렇게 낯설지도 않죠. 민의를 거스르는 자유한국당의 전통은 아주 오래된 탓입니다. 박근혜가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기 전까지는 한나라당이었고, 이는 이회창이 1997년 15대 대선을 준비하며 꾸린 정당이었습니다. 그 전신인 신한국당은 1995년 김영삼이 당내 반대세력을 제거하고 바꾼 이름이었고 그 전에는 민주자유당이었죠. 민자당은 1990년 3당 합당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 핵심인 민주정의당은 전두환의 정당으로 박정희의 민주공화당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공화당은 5·16 군사정변을 주도한 군부 세력이 구 자유당 세력, 일부 시민사회단체를 흡수해 1963년 창당했죠.

굳이 독재와 총칼의 과거를 들추지 않아도 됩니다.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염원을 뿌리치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4대강 사업을 강행했습니다. 박근혜 정권은 병적 독단과 저열한 음모로 헌법을 짓밟았습니다. 그의 정치보복은 정치세력을 넘어 문화예술인까지 무자비하게 짓밟았죠. 그 탓에 지지도가 4%까지 내려간 박근혜를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하겠다는 신념 하나”뿐이라며 감싼 이가 바로 자유한국당의 정우택 원내대표입니다.

억압과 의전에 익숙해져 온 사람들에게 민의는 다만 어르고 다스려야 하는 것일 뿐일지도 모르죠. 민의를 듣고 받들어야 한다는 것은 아직도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듯합니다. 그러니 협치는 언감생심 꿈도 꾼 적이 없을 테죠. 여의도로 입성하는 첫날 한강 중간쯤에서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1961년 한강 다리를 건넜을 때, 또는 1950년 인도교 폭파 때 이미 버렸을지도 모르죠.

2009년 이상적이고 젊은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됐습니다. 게다가 첫 흑인 대통령이었으니 여러 소외계층의 기대가 컸죠.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 또한 정권 초기 협치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의료보험 개혁에 상당한 공을 들였죠. 야당이 된 공화당과 재계를 상대로 설득과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이어갔고 결국 개혁안에 한 표도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공화당은 오바마의 제안을 무조건 반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고 오바마 정부도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죠. 애초에 그런 기대가 없었더라면, 애초에 현실을 직시했더라면 오바마 정권의 성과가 더욱 빛났을 겁니다.

자유한국당 또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모든 것을 걸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홍준표의 억지가 사그라지던 당의 불씨를 되살렸고, 청문회 분탕질에 보수층 지지가 모이는 것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20% 안팎의 지역표가 있는 이상 독단의 유전자는 활개칠 것이 분명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제 갈 길을 가야 합니다. 협치의 기억이 없어 협치할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 한가한 때가 아닙니다. 그 손길은 대신 그간 소외됐던 이들을 향해야 하죠. 노동자, 실업자,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양심수 등의 손을 잡고 당당히 나가야 합니다. 길이 험하고 멀겠지만 도도한 민의의 물결에 몸을 싣고 가다 보면 이를 거슬러온 자의 쪽배와는 다른 내일을 맞이할 겁니다. 이는 얼마전 박근혜가 직접 보여준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죠. 그런 세상을 온전히 만드는 것이 문재인 정권의 사명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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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역사란 참으로 잔인해서 우리가 1987년 이후 여기까지 오는 데 30년이 걸렸다. 대학에서 젊은이들을 만나 직접 가르치고, 대화를 나눠 보기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 젊다고 여겼는데, 그들을 만나고 보니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구나’란 서늘한 깨달음을 얻는다.

저 나이 무렵의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만나는 젊은 친구들은 30년 전엔 이 세상에 있지도 않았다. 우리 세대에게 4·19가 너무나 먼 과거의 이야기였던 것처럼, 저들에게 5·18과 6·10은 어떤 의미에선 조선왕조 500년보다 낯설고 먼 과거의 이야기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선박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을 ‘좌표’라고 하는데, 육지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원양에서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하기 위해 과거의 인류는 천문학에 의존했다. 우리가 포르투갈의 엔리케 왕자를 ‘항해왕’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가 직접 원양 항해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라 원양 항해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술을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후원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확한 태양의 적위표(赤緯表)를 얻기 위해 천문대를 건설했고, 항해학교를 설치해 전문적인 선원들을 양성했다. 그로부터 대양의 시대가 열렸고, 원양 항해를 위한 ‘시진의(chronometer)’를 만들 수 있는 과학기술이 축적되었다.

현대에는 위성의 전파를 수신해 좌표를 확인한다. 그 덕분에 인류는 원양 항해의 위험과 한계를 극복했지만, 연안의 복잡한 수로를 통과해 항구에 안전하게 배를 대기 위해서는 여전히 ‘도선사’라는 보다 뛰어나고, 경험 많은 전문가의 조력이 필요하다. 이것을 역사 읽기에 비유하면 가까운 근세사일수록 세밀하게 읽고 해석해야 할 자료와 사건의 비중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건 중에서 어느 것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건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중요한 사건마다 부표를 설치하고, 그 사건의 의미가 다른 방향으로 오도되지 않도록 의미를 구성(앵커링)하는 것이 오늘의 역사가들에게 주어진 책무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근현대사는 일국의 역사가 아니라 세계사의 복잡한 흐름 속에서 진행되었고, 전 세계를 역사적 시공간으로 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개인의 힘으로 그 시대를 연구하여 역사를 정리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면 지나친 오만일 것이다. 우리가 해방 전후사를 자신의 힘으로 연구하여 우리 시각으로 살피기 시작한 것이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그동안 뜻있는 학자들의 노력으로 많은 사료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많은 상황이다. 이제 우리는 역사의 시선을 아시아와 세계로 넓혀 나가야 할 때이지만, 한반도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역사는 그 의미와 해석을 두고 이웃한 중국, 일본 등과의 치열한 논증과 점검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학만큼 논리와 과학적 학문의 태도가 아니라 감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 분야도 없을 것이다.

과거 몇 차례에 걸쳐 국가가 주도하여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구호가 아니라 확실한 통치철학과 역사 인식을 가진 정부라면 이를 환영하지 않을 역사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국가권력의 관심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비롯한 꾸준하고 지속적인 지원과 장려가 아니라 이벤트나 정책의 나열에 그친다면 미숙한 선장이 직접 배를 몰아 항구에 들어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될 것이다.

역사는 계속해서 흐르고 시대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외면당한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축적하고 정리해 나가면 그로부터 역사의 진실은 자연히 규명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보수와 진보, 민족주의라는 일국적 관점에서 벗어나 좀 더 보편적인 역사 인식 속에 세계를 인식해야 한다. 과거 우리는 일제강점기라는 폭압적인 현실과 투쟁하면서도 민족의 독립과 함께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를 꿈꿨다. 좌우의 날개뿐만 아니라 그것을 극복하는 겹눈의 시선으로 역사와 현실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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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 달도 채 안되었지만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통일부가 5월 말과 6월 초 10개 민간단체들의 대북접촉을 승인했다. 대북접촉이 방북과 남북왕래를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6·15를 전후해 많은 사람들이 방북할 것 같다. 그런데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더니 얼마 전까지는 꿈도 못 꾸던 대북접촉이 승인되고 민간차원의 방북도 이루어지니,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민간 접촉·교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북 당국대화의 문호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북관계 개선뿐 아니라 북핵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화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의 손을 한쪽이라도 잡고 있으면, 북한이 나머지 손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짐작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1970년대 초 남북대화에 회의적이던 보수층에 남북대화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1981·1~1989·1)도 “소련은 악마의 제국이다. 그러나 악마의 제국이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악마의 제국과의 대화’는 결국 미·소 핵무기 감축까지 도달했다.

미국은 작년 10월부터 미·북 1.5트랙 대화를 시작했다. 북한에선 당국자, 미국에선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관리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1.5트랙이라 부른다. 작년 10월 쿠알라룸푸르, 11월 제네바에 이어 금년 5월 오슬로에서 대화를 이어왔다. 작년에는 금년 1월 출범할 새 정부의 대북정책 자료수집 차원에서 대화를 했을 것이고, 지난 5월에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설정을 위해 만났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초 ‘대북 선제타격론’과 ‘김정은 정권교체론’을 들고나왔다가, 4월 ‘최대의 압박과 관여’로 조정하더니, 5월25일 “강력한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되 최종적으로는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대북정책 최종안에 서명했다. 결국 ‘대화’에 방점이 찍힌 셈인데, 이 같은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는 작년 10월 이후 진행되어 온 1.5트랙 대화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개성공단 조업과 금강산관광 재개를 공약했다. 그런데 북한은 문 대통령 취임 후에도 미사일을 4번이나 발사했다. 남북관계를 잘 발전시켜 나가려는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었다. 취임 나흘 만에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문 대통령은 직접, 즉각적인 대응을 했다. “북한의 군사행동에는 강력하게 대처하고 제재도 불사하겠다. 그러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대화 문호는 열어두겠다”고 했다. 그렇다.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대화의 단초를 어떻게 여느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북한은 1주일 간격으로 미사일을 4번 발사했고, 트럼프 정부가 출범한 1월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벌써 9차례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그런데 북한은 앞으로도 미사일 발사를 계속할 것이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북한은 미국이 직접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벼랑 끝 전술’ 차원의 도발을 계속할 것이다.

이런 시점에 문재인 정부가 남북 당국대화를 시작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의 대남정책과 핵정책은 계속 세밀하게 탐색해 나가야 한다. 쓸 수 있는 방법이 미국이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는 1.5트랙 대화이다.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전직 관리들이 국가를 위한 봉사 차원에서 남북 1.5트랙 대화에 나서준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을 것이고, 남북관계 개선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당국대화 시동을 걸기 전에 1.5트랙 대화를 공식 지원할 수 없지만 승인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이런 접근을 굳이 마다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에 도움이 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여당 정책연구원이 정부와 무관하게 지원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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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1970~1974년생들은 2002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 꾸준히 진보적인 투표 성향을 보여왔다. 베이비붐 세대가 2007년 대선을 기점으로 빠르게 보수화된 것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1970년대 초반생의 이러한 정치적 성향은 어디에서 발원하는 것인가? 사실 이 세대는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신세대론’이나 ‘X세대론’을 통해 ‘세대론’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바 있다. 1970년대 초반생을 ‘신세대’로 호명하던 이들은 이전 세대의 광고 전문가나 문화비평가들이었다.

1989년에 5000달러를 돌파한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를 향해 가파르게 상승하던 시점이었으니, 그들에게 급선무의 과제는 ‘소비 사회’로의 변화를 주도할 새로운 인간형을 발견해내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68혁명 이후 유럽의 문화적 전환이나 1980년대 일본의 신인류론을 참고 삼아 새로운 ‘세대론’의 얼개를 짜나갔고, 30% 초반대의 대학진학률을 기록하며 이제 막 캠퍼스에 진입한 1970년대 초반생 일부, 특히 도시 중산층의 자녀들을 주목했다. 그리고 집단에 귀속감을 느끼기보다는 ‘나’를 중요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 정치적 대의보다는 일상의 삶과 취향을 소중히 여기는 ‘라이프스타일’ 지향적 태도, 다양한 매체 경험을 통해 축적된 시청각적 문해력 등 표면적으로 이전 세대와 질적으로 차별화된 문화적 특성이 ‘신세대’의 속성으로 나열되곤 했다.

그런데 이 집단의 속성은 이렇게 ‘문화적’으로 나열되고 끝나는 것이었을까? 1970년대 초반생이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에 유소년기를 보낸 첫 세대였다는 사실을 상기해보자. 실제로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성인이 되기 이전까지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을 10번 넘게 목격했고, 바로 그 시기에 이들의 부모 세대인 1940년대생은 30~40대의 나이로 수출주도형 산업화와 지역 불균등 발전이 만들어내는 계층 형성과 분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을 통과하고 있었다.

19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을 전후로, 서울에서는 1940년대생 대졸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중산층 문화가 강남의 아파트 단지를 전략적 근거지로 삼아 완성 단계에 돌입하고 있었던 반면, 지방에서는 불균등 발전의 결과로서 지역에 따라 1차 산업 기반의 전근대적 계층 질서가 여전히 유지되거나 중화학공업 단지라는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새로운 계층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동남권과 기타 지역 등 각각의 지역에서 성장한 1970년대 초반생에게 고도 성장기는 계층과 지역에 따라 차별적으로 경험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971년생 소설가 백민석이 자신이 경험한 가난은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의 가난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가난이었다고 말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차별적 경험이 의미하는 바가 분명해진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였다. 이들이 30대에 진입하던 그 시점에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가능성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졸 엘리트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90년대의 신화가 고도성장기의 거품이 만들어낸 집단적 백일몽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고, 그 백일몽의 마지막 등장인물이었던 1970년대 초반생은 기나긴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계층의 굴레를 뒤집어쓴 채로 고도성장기의 닫히는 문과 저성장 시대의 열리는 문을 양손으로 붙잡고 버티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저출산 1세대의 부모가 되기로 작정한 것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30대에 진입한 이후 뚜렷하게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보이며 기성세대의 중산층이 주도하던 사회 전반의 보수화를 막아내는 인간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다면, 그 역시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봐야 할 대목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그들의 자녀들이 명확히 구분된 계층 세습의 이동 경로를 따라 대학에 진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를 경험한 가족 3대의 역사가 그렇게 쓰이고 있는 것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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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를 가장 가까이서 줄곧 지켜본 사람이다. 분명히 그 경험은 그가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데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그 자신도 그 실패의 경험을 교훈으로 의식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실패’의 자산목록에 노동은 없는 것일까? 그는 과연 노무현 정부의 노동에 대한 실패에 어떤 입장일까?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은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업무지시가 비정규직 관련이었고, 비정규직 비율(곧 정규직 전환 비율로 해석될)을 적은 전광판을 집무실에 설치하기도 했다. 그리고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를 수십만개 만들기 위해 무려 10조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근데 여기에 노동은 없다. 연일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가 언론에 오르내리고 대통령이 나서지만 여기에 노동은 없다. 노동 문제를 ‘일자리’의 문제로 치환한 것이 문재인의 노동정책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을 계승한 것이기도 하다.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이름을 바꾸려고 시도한 것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이었다. 당시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대립적 노사관계가 안정적 노사관계로 바뀌면서 노동행정도 일자리 창출이 중요해지고 있어 명칭도 바꾼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는 ‘좋은 일자리’ 창출 방안들을 쏟아냈고, 비정규직 비율 축소를 말하더니, 갑자기 ‘노사관계 선진화법’을 들고나와 비정규직보호입법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직 확대 법률을 통과시켰다.

24일 오전 문재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열린 일자리상황판 설치와 가동 일정에 참석해 이용섭 일자리위원회(부위원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그때 노사관계는 전혀 안정적이지 않았다. 2003년 취임 첫해 노동자들은 ‘노동인권변호사 노무현’을 믿고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분신의 행렬로 바뀌는 데는 1년이 걸리지 않았다. 비정규노동자 이용석이 분신했고, 세원테크 지회장 이해남과 이현중 등이 자결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왜 그들이 죽어야만 했을까를 묻기보다, “죽음을 투쟁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고 잔인하게 일갈했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은 이 실패, 아니 참극으로부터 교훈을 얻을까? 또다시 노동을 우회하는, 노동을 통제하는 방식이 아닐까?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진용을 봐도 이 우려는 재워지지 않는다. 새 정부의 일자리 수석비서관은 안현효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일자리기획비서관은 이호승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이 내정됐고,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도 관료 출신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을 빼고 온통 경제부처 관료 출신인 셈이다. 그리고 장하성 실장도 사실 노동 전문가가 아니라 ‘주주’자본주의와 기업구조 전문가이다. 결국 노동정책을 산업정책 우위로 바라본다.

나는 한국의 노동 문제를 한 정권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이것은 정치적 민주주의의가 아니라 현실 자본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바로 여기 이 지점에서 출발하자. 이 냉정한 현실을 적당히 넘어가지 말고 적어도 인정하자.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처럼 “모든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 말이 얼마나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지 생각해보란 말이다. 적어도 국가의 집행자인 정부가 집단적 노사관계에서 최소한의 균형자 노릇을 하란 말이다. 편을 들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편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노동의 편은 아니겠지만, 자본의 편도 들지 말라는 말이다. 법도 재판도 다 노동자들이 이겨도, 자본은 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때 법의 집행관으로서 나서라는 말이다. 적어도 자본과 결탁한 친자본적인 정권이 되진 말라는 말이다. 소위 국가·자본의 동맹을 해체하라는 말이다. 노동자들을 ‘비국민’ 취급하지 말라는 말이다. 일자리를 늘려주기 이전에 일자리를 자본이 없애는 데 가담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마디로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당연시하지 말라는 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가장 미개하고 후진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권영숙 | 노동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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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한 외교 전환기이다. 유엔이 이달에 그 수정을 요구한 데에서 드러났듯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전시 성노예 위안부 공동 발표문은 기초부터 꺼졌다. 기습적으로 반입한 사드 장비도 미국마저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법원은 개성공단 폐쇄 책임이 입주 기업에 없다고 판결했다. 국가에 폐쇄의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박근혜 외교는 안팎에서 모순이 드러났다. 박근혜 외교 적폐를 원칙있게 청산해야 한다. 거대한 탁류를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검은 강물은 아직 거침없이 도도하다. 개성 공단은 폐쇄 중이다. 5조원대의 론스타 국제 중재 사건도 판결이 임박했다. 2012년에 시작한 이 사건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비밀로 일관한다. 오죽했으면 서울고등법원이 지난 18일, 론스타가 청구하는 5조원이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를 국민에게 공개하라고 판결했을까!

탁류는 도처에서 거세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조치를 제소당한 뒤의 박근혜 정부의 행태는 적폐의 상징이다. 일본 현지 조사 결과조차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일본의 방사능 관리 실태 조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밝히라고 아무리 외쳐도 변함이 없다. 심지어 일본이 제소했다는 이유로 현지 조사 결과 보고서 작성을 중단해 버렸다.

쌀 시장이 무너지는데도 밥쌀용 외국쌀을 함부로 수입하는 행태도 그대로이다. 해마다 무려 40만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지만, 그중 밥쌀용을 얼마나 수입해야 할지는 한국의 재량권이다. 아주 상징적인 밥쌀만 수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박근혜 외교 적폐를 법치주의와 적법절차를 적용해서 청산해야 한다. 박근혜 외교 적폐의 뿌리는 법치의 빈곤이다. 외교·국방·통상이 특수하다는 구실로 적법절차를 걷어차는 낡은 틀을 청산해야 한다. 외교도, 국방도, 통상도 법치 행정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는 북핵 해결은커녕 한국을 더 심각한 전쟁위기에 그대로 노출시켰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내어준 남북교류협력사업 허가를 법에서 정한 취소 절차를 지키지 않고 모조리 없애 버렸다.

법치의 파괴는 전시 성노예 ‘위안부’ 한·일 협의 사건에서 더욱 심각하다. 서울행정법원이 지적했듯이, 일본이 일본군과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 사실을 협의 과정에서 인정했는지는 중대한 인권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본질적 협의 내용만은 공개해야 한다. 이것이 법치주의이다. 외교 관계라는 구실로 함부로 ‘불가역적’ 합의를 해서, 헌법이 정한 기본권 보호 의무를 어기는 불법을 청산해야 한다. 국민의 인권과 직결되는 핵심적 내용은 국민에게 알리고 적법 절차를 지켜야 한다.

사드도 마찬가지다. 안보 분야는 특수하다. 그러나 그 특수성도 법치주의 기본 원칙을 파괴할 만큼 거대한 전체가 아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 있다. 미군에 사드 기지 땅으로 얼마를 제공했는지 면적 문서를 공개해야 한다. 그래서 성주 사람들이 환경영향평가법이 보장한 절차 참여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방부가 정식 문서로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주한미군에 공여한 사드 기지 면적이 32만8779㎡라는 말이 있다. 옛 골프장 면적이 148만㎡인데 이 중에서 왜 위 면적일까? 사드 부지 면적이 33만㎡ 이상이면 환경영향평가법과 국방군사시설사업법에서 정한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한다. 결국 이 절차를 피하기 위해 정한 면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외교안보에서의 적법 절차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필요한 핵심적 정보를 제공하고, 법에서 정한 절차를 준수하는 것이다. 일본이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했는지를 국민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성주 군민에게 법이 정한 절차적 참여권을 보장해야 한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법이 정한 대로 허가권 취소 사유가 무엇인지 소명하고 참여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도대체 론스타의 5조원이 어떻게 계산된 것인지 국민이 알 수 있어야 한다. 박근혜 외교 적폐를 원칙있게 청산해야 한다. 검게 흐르는 탁류를 막아 멈추게 해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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