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송경동 칼럼'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6.12.21 [송경동의 ‘시(詩)…인(人)’]어떤 가면극들에 대하여
  2. 2016.12.07 [송경동의 ‘시(詩)…인(人)’]새로운 시대를 상상하자
  3. 2016.11.23 [송경동의 ‘시(詩)…인(人)’]피의자 박근혜
  4. 2016.11.09 [송경동의 ‘시(詩)…인(人)’]역사를 바꾸는 ‘광화문 캠핑촌’
  5. 2016.10.26 [송경동의 ‘시(詩)…인(人)’]청와대에 발부되어야 할 영장
  6. 2016.09.28 [송경동의 ‘시(詩)…인(人)’]백남기 선생은 죽지 않았다
  7. 2016.08.31 [송경동의 ‘시(詩)…인(人)’]어느 하루 여의도의 아침
  8. 2016.08.17 [송경동의 ‘시(詩)…인(人)’]유가협 어른들께, 고맙습니다
  9. 2016.08.04 [송경동의 ‘시(詩)…인(人)’]아름다운 휴가
  10. 2016.06.22 [송경동의 ‘시(詩)…인(人)’]눈물의 꽃길 100리
  11. 2016.06.08 [송경동의 ‘시(詩)…인(人)’]스크린도어의 시
  12. 2016.05.24 [송경동의 ‘시(詩)…인(人)’]노동자들의 해산명령 1호
  13. 2016.05.10 [송경동의 ‘시(詩)…인(人)’]윤형에게 보내는 편지
  14. 2016.04.26 [송경동의 ‘시(詩)…인(人)’]‘까페 본쥬르’와 파견미술팀
  15. 2016.04.12 [송경동의 ‘시(詩)…인(人)’]한상균과 그의 벗들에게
  16. 2016.03.29 [송경동의 ‘시(詩)…인(人)’]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17. 2016.03.15 [송경동의 ‘시(詩)…인(人)’]누가 황유미를 죽였나요
  18. 2016.03.01 [송경동의 ‘시(詩)…인(人)’]시 읽어주는 남자, 임재춘
  19. 2016.02.23 [송경동의 ‘시(詩)…인(人)’]기록되지 않은 노동
  20. 2016.02.16 [송경동의 ‘시(詩)…인(人)’]‘노동자 시인’ 조영관 문학창작기금

“만나는 사람마다 입을 모아/ 민주화가 잘되어간다고 그러네/ 어떻게 잘되어가느냐고/ 구체적으로 좀 말해달라고 그러면/ 하나같이 입을 열어 대답해주네// 청와대도 개방하고/ 각하란 호칭도 없애고/ 장관 임명장도 서면만으로 하고/ 국무회의 같은 것도 원탁에서 하고// … 벗이여. 닫힌 사회의 대중은 열린 사회의 대중을 모른다네/ 그들이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지배자들이 연출하는 텔레비전 속의 연극뿐이라네/ 그들이 알고 있는 자유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그들이 각색한 연극 대본뿐이라네.”

87년 항쟁을 거치고, 김영삼 문민정부까지를 보며 김남주 시인이 썼던 ‘연극’이라는 시의 한 부분이다. 탄핵 가결 이후 계속 생각나는 시였다. 탄핵 가결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박근혜와 청와대는 탄핵 이유가 전혀 없다고 강변하고, 친박은 다시 원내대표 선거에서 승리했다. 최순실은 혐의 내용 전부를 부인하고, 국회 청문회 출석조차 거부했다. 검찰·법원 사유화의 몸통이었던 황교안이 버젓이 제2의 박근혜로 행세한다. 각종 ‘박근혜표 정책’들을 중단 없이 이어 가겠다고 한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이제 그만 촛불을 끄고 차분하게 헌재 결정을 기다리라고 한다.

‘항쟁’ 내내 광장의 뒤편에서 정략적 사고로 헛발질만 하던 야권 역시 탄핵 가결 이후 광장의 역동성을 다시 부정하고 의심하며 재빠르게 다시 ‘질서 있는 퇴진’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간 수고들 했으니 촛불을 끄고 광장을 비우라고 한다. 의회와 기존 법 질서에 모든 걸 맡기고 다시 TV 시청자로 돌아가라는 말이다. 여·야·정 협의체를 꾸려 대표적인 공범부역자 집단인 황교안 직무대행 체제와 내각을 인정하자 한다. 국정조사는 맥없이 진행되고, 가장 급선무인 ‘적폐청산 특위’를 통해 박근혜표 정책들과 악행들을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생각은 없이 정세의 교란 요인일 수밖에 없는 ‘개헌특위’를 만들고, 위원장을 새누리당에 주었다.

그렇다면 광장은 어떠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얼굴과 당만 바뀌는 가면극 놀이의 위선과 허위를 찢어내야 한다. 구태와 부정, 불의가 다시는 발붙일 수 없는 새로운 윤리와 가치관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향한 ‘항쟁’과 ‘혁명’은 아직 채 시작도 못했다는 긴장과 직접 행동을 유지해야 한다. 주권자들의 직접 민주주의가 검찰 법원 헌법 위의 유일한 상위법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박근혜와 비선 실세들에 대한 즉자적 분노로 열렸던 광장이, 박근혜 이후 새로운 한국사회 구성이라는 대안의 혁명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87년 항쟁의 뒤가 다시 노태우로 귀결되는 역사의 암흑이 재반복되지 않게 하겠다는 결의들이 필요하다.

4·19혁명 이후의 김수영 시인은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 버렸다’고 했다.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87년 항쟁 이후 국민의정부 출범까지 보며 ‘도대체 무엇이 바뀌었냐’는 김남주의 한탄을 다시 한번 반복해서도 안되지 않겠는가.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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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이번주 금요일, 비로소 제도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최대선인 ‘대통령 탄핵안 표결’이 이루어질 예정이다. 통과에 대한 우려가 저번 주 내내 이어졌지만 지난 3일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에 모인 전국 약 260만명의 물결이 ‘탄핵안 통과’ 이외 어떤 선택도 정치권에 남겨주지 않았다. 범죄자에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은 4차 담화를 통해 ‘국회 합의’와 ‘법’이라는 형식을 통해 ‘명예롭고 질서 있는 퇴진’이라는 마지막 배수진을 쳤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부릅뜬 눈을 비켜 갈 수 없었다. 만약 9일 국회에서 국민들의 민의를 어기고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새누리당 해체와 국회 해산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게 광장의 목소리다. 박근혜 카드를 버리고 새로운 얼굴과 조합을 통해 재집권 플랜을 짜고자 하는 수구보수재벌 동맹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상황이 더 두렵기에 역사의 반동은 가능치 않으리라는 판단들을 나는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시간 끌기를 하거나, 국민과 국회의 뜻을 어기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오히려 탄핵 가결 이후다. 순리대로라면 박근혜 퇴진은 기정사실화되었지만, 그 이후 상상되는 정치의 모습은 과히 희망적이지 않다. 먼저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행 체제를 어떻게 두고 볼 수 있는지이다. 박근혜 정권의 대표 공범부역자이자, 검찰·법원 사유화의 몸통인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직을 대행한다니 코미디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가피하게 ‘내각총사퇴 후 과도 내각’ 구성은 당연한 수순이다. 또 다른 몸통인 새누리당이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새로운 조각의 한 축이 된다는 것도 참 기가 막힌 일이다.

퇴진 운동 내내 민의의 뒤에서 계속 헛발질만 해왔던 야당에만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소한의 진정성이 있으려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발의와 함께 새로운 시대가 가야 할 길에 대해서 책임 있게 답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2의 이명박근혜, 제2의 노무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의 윤리다. 최소한 1% 재벌독점특혜 금수저 사회를 위해 1100만의 국민들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지 않아도 되는 사회. 평생을 일해도 은행빚 없이는 자기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부동산투기공화국의 폐지. 철도 의료 교육 등 공공부문 사유화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는 사회. 국가보안법 폐지와 남북평화협정을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현. 핵 없는 사회. 입시지옥 서열경쟁이 없는 사회.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조금은 더 평등하고 평화로운 사회이다. 그 대표자가 누가 되든 상관없지만 이런 새로운 시대의 요구가 사장된 채 얼굴 바꾸기 놀음만을 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있겠는가.

하여 9일은 박근혜 이후 한국사회를 향해 소중한 한 발을 다시 내딛는 날이 될지언정 이 국면의 끝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이제 비로소 주권자들의 직접 민주주의, 광장의 정치가 시작되는 날로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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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을 떠나기로 했던 지난 11월4일 싸뒀던 여행 가방을 풀고 노숙 가방을 싸서 광화문광장으로 나와 텐트 노숙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권에 의해 블랙리스트로 찍힌 문화예술인 7500명이 시국선언을 하던 날이었다. 첫날 텐트 20여 동을 모두 경찰에게 빼앗기고 광장에서 맨몸으로 자야 했던 때가 어제인 듯한데 벌써 20일째다. 처음엔 문화예술인들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사람들 몇이 시작했던 작은 텐트촌이 이젠 60여 동의 다양한 개인 단체들의 텐트와 마을창고, 마을회관 등이 들어선 작은 마을이 되었다.

각각의 텐트에는 입구마다 주인의 성격을 보여주는 개성 있는 현판들이 달렸다. 이제 작은 마을 하나를 이루었지만 전국의 수많은 거리와 광장과 함께 연계해 2011년 9월 세계 경제의 중심인 뉴욕 월가를 점령하고 ‘1%에 맞선 99%의 항쟁’을 꿈꾸었던 즈카티 공원이나, 같은 해 ‘아랍의 봄’을 이끌었던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처럼 넓혀 갈 꿈을 꿔본다. 그렇게 광장과 거리로 모인 노동자 민중시민들의 직접 민주주의만이 박근혜 정권을 제대로 심판하고, 한국사회를 새로운 민주주의의 단계로 진전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정무직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실제로도 그렇다. 11월12일 100만이 모인 거리와 광장이 있고 나서야 머뭇거리던 야권은 박근혜 퇴진 당론으로 슬며시 입장을 바꾸었다. 해체가 정답일 새누리당 내에서도 탄핵 주장이 나오고, 법원은 청와대 앞 도로에 대한 합법적인 행진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간 권력의 하수인 역할에 충실했던 검찰 역시 최순실과 안종범·정호성의 공소장을 통해 부족하나마 ‘거의 모든 혐의에 대하여 기소된 3인이 대통령과 공모 관계’였음을 적시하였다. 검찰 역시 박근혜씨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주범인 ‘피의자 박근혜’에 불과함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피의자 박근혜’가 아직도 국사를 보고받고, 국정에 대한 결정들을 내리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단 하루도 재앙이며 악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피의자 박근혜’에게 ‘영수회담’을 제안하고, ‘질서 있는 2선 후퇴’를 위해 거국중립내각을 얘기하는 야권도 악몽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의 비판으로 영수회담의 기회를 잃은 야당 대표가 ‘피의자 박근혜’가 ‘계엄령’을 선포할 수도 있다며 자신의 행보를 변호한다. 만약 실제로 그런 사람이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면 더더욱 ‘즉각 퇴진’을 요구해야 하지 않는가.

그 힘을 만들 수 있는 ‘거리와 광장’을 꿈꾼다. ‘피의자 박근혜’와 그 부역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심판을 넘어, 단순한 정권 교체를 넘어, 한국사회의 새로운 내일을 만들어 나가는 새로운 가치관의 혁명, 노동자시민 항쟁을 꿈꾼다. ‘안될 거야’, ‘어려울 거야’라고 제풀에 접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래, 우리 모두가 새로워지는 그 사회로 이제 그만 넘어가자’는 새로운 윤리의 혁명이 되기를 바라본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새로운 시대의 봄을 꿈꿔본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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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통이 터져 집에서 TV만 보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대통령과 비선 실세들이 국가를 자기 집 곳간 정도로 여기며 나랏돈을 빼먹고, 아무런 위임도 없는 사인들이 국가 기밀과 국정 운영 핵심과 인사에 관여하고, 지시까지 내렸다는 이 황당한 상황. 국민의 80%가 하야하라는 의견을 밝히며, 이미 위임된 권력을 회수했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며 얼굴 바꾸기 놀음만 하고 있는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현행범 박근혜. 스스로 범죄 행위를 시인하며 검찰 조사와 특검까지 받겠다면서도 대통령직은 유지하겠다는 그 뻔뻔함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거대한 불의와 국가 전체가 침몰한 상태에서도 ‘혼란’을 이유로 정략적 이해관계만 저울질하는 야권의 행태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역사의 고비마다 정의를 바로잡아온 이들은 노동자 민중,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었음을 상기했다. 새로운 법과 정치와 주체와 체제는 늘 거리와 광장에서 태어났다는 교훈을 떠올렸다. 주권자들의 ‘항쟁’에 의해, ‘혁명’에 의해 달성되었음을 되돌아 보았다. 그래서 몇 달 동안 준비해온 일본 여행을 떠나야 하는 날 아침, 여행 가방을 풀고 노숙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아내에게는 고3 수험생 아이가 있다는 따위의 말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 재판 중인 것만 해도 몇 갠데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때의 교훈을 잊지 않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죽는다.’ 진정으로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길은 그 분이 노구를 이끌고 섰던 그 민주주의의 거리, 최전선에 다시 서는 일일 거라 생각했다. 1200만 비정규직을 포함한 2000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벼랑으로 내몰기 위해 노동법 전면 개악과 공공부문 사영화에 나서는 이 정권에 대한 분노, 사드 배치로 한반도를 다시 전쟁기지화하고, 역사를 자신의 가족사라도 되는 양 국정교과서로 통일시키겠다는 위험한 군주를 이번엔 끌어내려야 한다는 분노도 있었다.

동료 문화예술인들, 시민들, 노동자들과 함께 광화문광장에 ‘박근혜 퇴진 캠핑촌’을 꾸렸다. 박근혜 정권은 대한민국 예술인 1만명을 블랙리스트로 작성해 탄압해 왔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인 조윤선이 청와대 정무수석 때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박근혜는 더 이상 이 나라의 대통령일 수 없다. 분노한 문화예술계 전체가 나서고 있다. 어제는 캠핑촌에서 음악인 2000명이 시국선언에 나섰다. 건국 이래 음악인 2000명이 시국선언에 나선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12일에는 수백만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선다.

박근혜 퇴진은 이제 기본 상식이다. 나아가 이참에 한국 사회 운영 전반이 바뀌어야 한다. 얼굴과 당만 바뀌는 정계개편, 거국중립내각은 안된다.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핵 없는 나라,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 국가보안법 철폐를 통한 표현과 사상의 자유, 1% 기득권만의 무한한 행복과 자유와 독점이 규제되는 사회. 세월호법 재개정,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특검. 2000만 노동자 대표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즉각 석방 등. 새로운 가치관이 이 사회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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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여러분, 호소드립니다. 가능한 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을 마감하려고 앉아 있는 시간. 긴급 공지가 SNS를 도배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 강제 부검을 정말 강행하겠다는 것일까. 25일 밤 12시까지인 영장 집행을 막기 위해 며칠 전부터 수많은 시민들이 서울대병원을 지키고 있다. 24일 경찰은 언론을 통해 강제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흘렸다. 영장 재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모두가 연막이었다는 말인가.

정말 이 정부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어디까지 이 사회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것일까. 정부는, 아니 본인을 중세의 왕처럼 여기는 청와대는 물대포에 의한 공권력 살인 행위를 가리기 위해 그간 무수한 사회적 기준들을 허물어뜨려 왔다.

25일 오후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이 고 백남기 농민에 대한 부검영장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대병원은 외압에 의해 명백한 ‘외인사’를 대한의료계의 지침까지 어기며 ‘병사’로 기재해 전체 의료계를 우습게 만들었다. 경찰과 검찰은 이를 빌미로 두 번씩이나 영장을 재청구하며 고인 죽음의 원인을 가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유가족들의 고소·고발 관련해서는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조사조차 하지 않는 검경이다. 도대체 이 나라 공권력은 누구의 공권력인가. 특정 권력의 사병이란 말을 피할 수 있을까.

정작 지금 한국 사회에서 영장 발부가 시급히, 가장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근래 모든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청와대가 아닌가. 24일 JTBC 보도에 의해 대통령 연설문, 수석비서관 회의 주재 자료, 국무회의 자료 등 극비여야 할 최고 국정 정보가 아무런 자격도 없는 ‘최순실’에게 사전 유출되었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내내 논란이던 ‘십상시’나 ‘문고리 3인방’, 주변 ‘환관’들은 최소한 공무원 신분이기라도 했다. 도대체 대통령의 위에서 이 사회 최고 권력자처럼 행동해 온 ‘최순실’은 누구인가. 그런 비선의 조종에 의해 앵무새처럼 연설문을 읽고 있던 박근혜씨는 도대체 누구인가.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막고,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 앞에 살인 물대포를 전진 배치시키고, 역사교과서를 ‘족보’책처럼 국정화시키고, 2000만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도매값으로 자본에게 넘기려 노동법 전면 개악을 밀어붙이고, 사드 배치로 한반도를 전쟁기지화하려는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그는 이 국가의 주권자인 모든 국민들을 무엇으로 아는 것인가. ‘쫄’로, ‘바보’들로, 아니면 교육부 정책기획관이었던 이처럼 ‘개·돼지’들로 아는 것은 아닌가.

이제 더 이상은 안된다. 백남기 농민에 대한 영장 집행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보다 먼저 박근혜 정부에 대한 영장 청구가 있어야 한다. 그가 물러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법정에 그와 그의 ‘무당’ ‘환관’들이 세워져야 한다. 그러지 않을 때, 오늘은 서울대병원으로 가지만, 모든 국민들이 내일은 청와대를 향해 가게 될 것이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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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말끔히 씻고 푹 자고만 싶었다. 삼일째. 네댓 시간밖에 눈을 못 붙였다. 작년 11월14일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 직사 물대포를 맞고 사경을 헤매던 백남기 선생께서 운명하실 것 같다는 소식에 들어온 길이었다.

고인에 대한 정부 당국자의 말은 직사 물대포만큼이나 기가 막혔다. 경찰은 서울대병원으로 들어오는 모든 도로와 문을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막고 조문조차 불허했다. 검경이 담합해 강제부검을 위한 영장을 두 번씩이나 청구하며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다. 얼마 전 국회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지만 어떤 진실규명도 없이 이렇게 야만의 시간 320일이 지나가고 있다.

한 선배 시인은 선생의 죽음이 ‘죽음이 아닌 죽임’이라고 했다. 그렇다. 선생은 죽은 적이 없다. 죽임을 당한 것일 뿐이다. 담당 의사는 어떤 까닭에서인지 고인의 사망진단서 ‘병사’란에 표시를 했지만, 그건 진실이 아니다. 선생은 박근혜 정부의 국가폭력에 의해 ‘살해’당했다. 까닭은 참된 민주주의에 대한 끝없는 헌신과 열망, 독재와 독점으로 치닫는 반민주 반노동자·민중 반통일 정권에 대한 도전과 저항 때문이라고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칠순 노구에도 불구하고 15만 민중총궐기 맨 앞에 서서 역사의 진보를 앞당기려 했다는 죄였다. 가만히 있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 투쟁으로 나섰다는 죄였다.

그렇게 선생은 평생을 이 척박한 분단의 땅, 불평등의 대지에서 희망이라는 한 알의 밀알이 되기 위해 온몸으로 살아오셨다. 자신을 드러내는 삶도 아니었다. 그가 쓰러지고 나서야 우린 선생의 숨겨진 삶을 알게 되었다. 아, 이런 고귀한 삶도 있구나. 이렇게 욕심 없고 가식 없이 순박하고 정직한 삶도 있구나. 놀라고 부끄러웠다. 이런 선생이 ‘보성농민회’라고 적힌 조끼 하나를 자랑스럽게 걸치고 우리와 함께 서 계셔 주셨다는 게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런 선생을 위해 우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죽인 자들이 어떤 사과나 책임도 없이 시신마저 탈취하려는 강제부검을 오늘, 막는 일이다. 지금보다 더 엄혹했던 80년대 선생이 그러했듯 우리가 다시 ‘박정희 유신잔당 장례식’을 치르러 거리로 나가는 일이다. 차벽과 최루액과 물대포가 없는 세상. 소수의 독점과 착취가 없는 세상. 분단의 철조망이 걷히는 세상을 향해 우리가 선생이 쓰러졌던 종로 2가 한복판에 다시 서는 일이다.

새벽 5시. 아직도 영장 발부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모두가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소식을 듣고 새벽길을 달려 온 택시들이 한 대, 두 대 늘어나고 있다. 공공부문 총파업에 나서는 서울대병원 노조분들도 본관 바닥에서 노숙을 하고 있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5·18 전남도청의 풍경이, 6·10 명동성당의 한 밤이 이러했을까. 한 알, 시대의 참된 밀알이었던 백남기 선생의 삶과 투쟁을 이 역사는 잊지 못할 것이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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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엔 여의도로 출근했다.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 공동대책위 회의. 새누리당사 앞 노숙농성 331일차, 부당해고 후 3500일 동안 거리농성을 하고 있다. 지난 26일엔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의 공식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그는 단 하루의 사과였지만, 그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노동자들은 60여일을 단식하고 1년여를 새누리당사 앞에서 노숙으로 지새야 했다. 그 세월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할까.

한국 부자순위 120위권, 지금도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빼돌린 공장에서 배를 불리고 있는 박영호 사장의 사과와 책임은 언제쯤 물을 수 있을까. ‘미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에도 해고가 정당하다는 면죄부를 준 대법원의 사과와 책임은 언제쯤 물을 수 있을까. 정의는 언제쯤이나 바로 세워질 수 있을까.

동병상련. 콜트-콜텍 노동자들과 건너편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점거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과 백남기 농민 대책위 연대 방문을 갔다. 여대야소여서 어떤 일도 못한다고 표를 몰아달라던 야당이 다수당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20대 국회 첫 사업으로 세월호특별법 재개정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4년 3번의 야합으로 세월호 진실규명 기회를 침몰시킨 책임도 있다. 벌써 2년 넘게 유가족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선잠을 자야 한다. 침몰은 2014년 4월 한번만 일어났던 것이 아니다. 연거푸 일어났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번엔 최소한 진실된 답을 들을 수 있을까. 백남기 농민 국회 청문회가 7일 열리기로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청문회는 시작일 뿐, 국가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까지 가야 할 길이 많다.

바로 이어서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리는 통신 비정규직 티브로드 단식 선포 기자회견에 연대 참여했다.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유가족 단식도 벌써 14일째. 세월호 유가족과 백남기 대책위 농민들 단식도 벌써 10여일째. 그런데 또 단식이라니. 추석이 낼모레인데 가슴이 무너진다. 오늘은 웬일로 기자회견을 보장하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익숙한 경찰 선무 방송이 시작된다. ‘여러분들은 기자회견을 빙자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선창하는 등 불법 집회를 하고 있으니 즉각 중단하기 바랍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 책임을 묻기 위한 채증이 시작되며….’ 낯익은 영등포서 정보과 형사들이 와서 아는 체를 하지만 눈도 주기 싫다.

국회가 600만명의 국민이 청원한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에 나섰더라면, 명백한 물대포 직사 국가폭력에 대한 조사와 문제 해결에 나섰다면, 국회가 파견노동, 간접고용, 비정규직 확산법을 통과시키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을 참사와 아픔들이기도 하다. 이것은 부탁이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과 사회의 요구이며 명령이다. 세월호특별법 재개정하라! 백남기 농민 국가폭력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비정규직법 폐기하라!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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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선 안되는 모임/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들이었다/ 빨리 없어져야 할 슬픔의 집, ‘한울삶’/ 더 이상 회원이 늘면 안되는 단체였다// 푸르른 얼굴의 영정 하나씩을 들고/ 눈이 벌겋게 붓고 시시때때로 목이 메이고/ 가슴이 찢어지고 넋이 풀린 이들이/ 떨어진 낙옆들마냥 한 잎 두 잎 모였다// 모이지라도 않으면/ 살 수 없는 시간들/ 분통이라도 터트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세월”(졸시 ‘가는 길 험난하여도’ 중에서).

지난 8월12일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창립 30주년 기념식에서 낭송했던 여는 시다. 1970년 청년 전태일이 분신한 후 수많은 이들이 독재와 착취, 분단구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어떤 이는 고문으로 죽어갔다. 거꾸로 매달고, 전기로 지지고, 물을 먹였다고 했다. 항쟁의 거리에서 죽어간 이들도 많다. 때론 곤봉에, 쇠파이프에, 최류탄에, 소화기에 맞아 죽어야 했다. 지금도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생사를 오가고 있기도 하다. 어떤 이는 스스로 자신을 던져야 했다. 투신이었고, 분신이었고, 할복이었고, 음독이었다. 스스로 목을 맸다 했고, 실족사, 과실 총기사고라고 했다. 모두가 거짓말이었다. 어떤 이들은 아직껏 행방이 묘연하다. 1999년 제정된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과 ‘의문사진상규명법’이 제정되고 국가가 인정한 죽음만 136명이다.

유가족들이 한 분 두 분 모여 아직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86년 통한의 모임을 만들었다. 진실규명, 명예회복, 보상만을 바라는 길도 아니었다. 죽어 간 이들이 염원했던 통일 조국을 내놓으라는 길이었다. 국가보안법 철폐, 노동3권 보장, 언론출판결사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험난한 길이었다. 유가족들의 생업은 이제 변혁운동의 최전선이었다. 연행, 수배, ‘빵깐’ 가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의 길이었다. 그렇게 독재와 싸워 온 30년, 망각과 싸워 온 30년, 의문과 싸워 온 30년, 더 이상 죽이지 말라고, 더 이상 빼앗지 말라고, 더 이상 죽지 말자고 싸워 온 30년이었다.

그 세월 동안 세상을 떠난 어른들도 많고, 이젠 거동이 불편해 나오시지 못한 분들도 많다. 한 분 한 분의 이름이 얼마나 아프고, 귀하고, 소중한지 모른다. 다행히 르포작가 송기역과 정윤영씨가 몇 년 동안 어른들의 삶을 받아 적은 유가협 30년 기록집 <너의 사랑 너의 투쟁>이 묶여 나왔다. 한 번쯤은 이분들의 고귀했던 삶과 투쟁을 기억하면 좋겠다. 이분들의 희생을 딛고서야 한국사회는 이만큼이라도 나아질 수 있었다. 다음은 유가협 창립 때부터 후원회장을 맡고 있으신 청화 스님의 시 한 부분이다.

“오늘 산업화의 샘물을/ 한 바가지씩 마음껏 떠 마시고 있는 이들/ 그 샘을 누가 판 것인지/ 그 사람들의 얼굴이나 아는지 몰라.// 또 오늘 민주화의 나무 아래/ 잘 익은 과일을 뚝, 뚝 따먹고 있는 이들/ 그 나무를 누가 심은 것인지/ 그 사람들의 이름이나 기억하고 있는지 몰라.”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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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한 점 없는 길이 뜨겁다. 젓갈처럼 온몸이 땀에 절여진다. 그러나 이 길을 멈출 수는 없다. 제주도 강정 평화대행진. 동진과 서진으로 나눠 제주도를 한 바퀴 걸어 제주시에서 만나는 5박6일 긴 여정의 첫날. 전국에서 700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

어떤 이들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하기도 했다. 공사가 강행돼 올해 2월엔 준공식까지 가졌기 때문이다. 2005년 ‘세계 평화의 섬’으로 공식 지정된 지 11년째. 제주는 다시 동아시아 전쟁 전진기지로 나아가는 첫발을 떼었다. 막아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로 모여들기도 했다. 아예 주소지를 옮겨 강정 주민이 된 지킴이들도 있었다. 2007년 강정마을 주민들 1900명 중 단 87명이 참석한 무늬만 마을총회에서 불법적으로 통과시킨 일이었다.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 725명이 참가한 주민투표 결과 94%의 반대가 있었지만 정부는 물러나지 않았다. ‘민관복합형 관광미항’이라 속였지만 2012년 국정감사 과정에서 제주 해군기지가 주한 미 해군사령관이 요구한 조건대로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한때는 야 5당이 나서서 부대조건 미준수, 생태계 훼손, 심각한 절차적 하자 등을 이유로 공사 중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2012년엔 국회에서 해군기지 건설 예산 96%를 삭감하며 재검토를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해군은 이런 국회의 요구까지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해 결국 무력으로 해군기지를 완공시켰다. 이 과정에 700명의 주민과 연대하는 시민들이 연행되었고, 그중 600여명이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 그중 56명은 구속당해야 하기도 했다. 그간 4억여원의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해군기지가 완공되고도 반대 운동이 사그라지지 않자 공사지연 배상금 명목으로 주민 등 121명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탄압을 멈추지 않고 있기도 하다. 이런 무법에 의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전쟁기지가 다시 4·3의 아픔을 안고 있는 제주에 들어섰다. 비록 공사 강행을 막지 못했지만, 평화를 향한 싸움은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들을 모으는 자리다. 천년 구럼비바위 위에 건설된 저 무자비한 전쟁기지를 걷어내고 이 바다에 다시 평화가 깃들 때까지 우리 함께 행진해 나가야 한다는 다짐들을 모으는 자리다. 강정만 싸우는 게 아니라, 미군기지가 들어선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전쟁의 위협이 있는 모든 곳에서 오늘도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자리다.

첫날 숙소인 체육관 스티로폼 위에 누워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데, 충남 아산에 있는 갑을오토텍 공장 안에서 다급한 전화들이 온다. 특전사 출신의 용역깡패들이 진입 준비 중이라고 언론에 알려달라 한다. 얼마 전 사장이 부당노동행위로 법정구속까지 되었는데, 도리어 직장폐쇄에 용역깡패 투입이라니 도대체 법이란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분노스럽고 한심하다. 다행히 그곳에도 황금의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연대하러 온 수백명의 노동자 시민들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남들 같은 여름휴가를 가 본 지가 언제였는지, 하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인생의 휴가가 또 어디 있을지.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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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세 켤레를 챙겨 나갔다. 서울광장에 있던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의 분향소를 현대차 본사 앞으로 옮기는 꽃상여 100리 길이었다. 초라한 영정. 테두리 4면엔 청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저 영정이 경찰들 발에 짓밟히던 날, 내 안경도 짓밟혔다. 무슨 아우슈비츠의 형무소도 아닌데 추위를 피할 비닐 하나도 반입 금지였다. 궁여지책으로 대형 쓰레기봉투를 사서 쓰레기처럼 몸을 구겨넣고 자는데, 그것마저 뺏어가는 세상이었다.

첫날은 국회 앞에서 1박이었다. 마침 20대 국회 개원 날이었다. 19대 국회 당시 은수미 의원 등의 노력으로 국회 청문회에서 유성기업과 청와대, 국정원, 검·경, 현대차 등이 유착해서 자행한 부당노동행위의 실상이 밝혀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지금까지도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검·경의 비호 아래 이루어지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시달리고 있다. 그 불의 속에 사람이 죽었고, 유성 노동자들이 절벽 위에 선 듯한 긴장과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더 이상의 사회적 타살이 일어나면 안된다고, 국정조사 등을 통해 유성기업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사회적 갈등의 종지부를 찍어야 하지 않느냐고 찾은 국회였다. 우선은 이 눈물의 상여를 맞아주는 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사회적 호소이기도 했다. 고맙게 정의당의 이정미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의 이용득 의원이 대표단을 만나주기는 했지만, 그뿐. 국회는 싸늘했다.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18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앞에서 노조파괴 공작을 벌이는 현대차와 정몽구회장의 처벌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_경향DB



둘째날은 한남동 정몽구 회장 집 앞.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힘을 느끼는 날이었다. 사병도 아니고, 경찰들이 아예 정몽구 회장 집으로 가는 길 전체를 막아섰다.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도 하는 합법적인 1인 시위를 이유불문으로 안된다고 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현장에서 버젓이 일어나는 현대차 고용 용역들의 폭력이었다.

경찰들이 잠시 터준 사잇길로 유성기업 홍종인 조합원이 올라가는데 갑자기 용역 네 명이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는데도 경찰은 모르쇠였다. 도리어 용역들을 에워싸서 경찰벽 뒤로 빼돌렸다. 촬영된 수많은 동영상을 증거로 제시하며 당장 조치에 나설 것을 요구하자 억울하면 나중에 신고하란다. 피해 당사자인 홍종인씨가 이번엔 경찰들에게 짓밟혀 병원으로 실려 가야 했다.

셋째날, 억수로 내리는 빗속을 걸어 당도한 현대차 본사 앞은 말해 뭐할까. 신고된 집회 장소에 상여와 영정을 내려놓기까지 6시간이 걸렸다. 경찰 폭력으로 비 피할 비닐 하나 칠 수 없었다.

그런 눈물의 영정을 다음날 서초구청은 쓰레기 수거하듯 뺏어가 버렸다. 서울시청 광장에서도 가능했던 분향소가 서초구나 현대차 본사 앞에서는 가능치 않다. 도대체 법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는 6월24일, 다시 현대차 본사 앞에서 한광호 열사 100일 추모제를 1박2일로 갖는다. 그를 위해 추모시를 짓기 전에 어서 빨리 그가 장례라도 온전히 치르고 저 하늘로 갈 수 있게 힘써야겠다는 생각뿐.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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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9-4 승강장엘 다녀왔다. 지난 5월28일 이곳에서 한 외주하청 청년노동자가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협착사를 당했다. 그의 작업가방엔 미처 끓여 먹지 못한 컵라면 하나가 있었다.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에만 벌써 세 번째 일어나는 참사였다.

강남역 10번 출구에서처럼 평범한 이들의 연대와 항의의 발걸음이 구의역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작은 추모의 포스트잇이 역사 곳곳에 나붙기 시작했다. 비로소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둘러싼 온갖 부패와 비리와 불의가 밝혀지기 시작했다. 국토부에서도 외주화는 안된다고 했지만 강행됐다. 관련 사업 경험이 없고 설립된 지 3개월도 안된 회사가 경쟁입찰에 단독 입찰해 수주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씨와 서울메트로 사장인 강경호, 해당 업체인 유진 등의 유착관계가 드러났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된 후 강경호씨는 다시 코레일 사장으로 임명됐고, 스크린도어 사업이 도입됐다. 그 역시 유진이 맡았다. 강경호씨는 현재 이명박씨 형인 이상은씨가 대표인 주식회사 다스 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한 원인이었던 해피아들과 다를 바 없는 메피아들 실체도 드러났다. 청년이 일하던 은성PSD 직원 143명 중 36명이 메트로 퇴직 관리들. 입찰 당시 조건이 고용 인력 중 30%를 전직자로 채용하고 임금의 60~70%를 보장한다였다. 공공의 안전을 외주하청화하면서 생겨나는 이윤의 떡고물을 나눠먹는 것이었다. 140만원 안팎의 쥐꼬리 월급을 좇아 청년과 그의 동료들이 컵라면 챙겨먹을 시간도 없이 일할 때 이들은 별다른 일 없이 메트로 시절 임금을 보장받았고, 회사는 수천억원의 광고 수익을 쌓아오고 있었다.


국회 국토해양위의 코레일에 대한 국정감사가 17일 정부대전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려 강경호 코레일 사장이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_경향DB


이 모든 게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력형 부패와 비리의 사슬,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인 자본의 문화, 외주 하청 비정규직화의 구조적 참사이다. 서울시는 7일 ‘시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업무, 위험한 업무의 외주화에 대해서는 직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은 다행이며 부디 그 약속들이 정확히 지켜지기를 소망해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부터 시작해 사회 곳곳에서 죽어가는 평범한 노동자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런 사회적 약속들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본다.

더불어 한 가지, 그 죽음의 스크린도어를 언젠가부터 치장해주며 뜻 없이 걸려 있던 ‘스크린도어 詩’는 어떡할 것인지 한번쯤 문학인 사회에서도 공론화가 되기를 바란다. 시인들은 그간 그게 서울시의 공익사업쯤일 거라 생각하며 아무런 대가 없이 시를 내주고 있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닌 게 밝혀진 지금, 우리들 시가 오히려 있어야 할 자리는 저 작은 포스트잇들의 감응과 실천과 연대의 자리 어디쯤이 아닐지.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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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엔 오랜만에 야전용(?) 음향트럭 위에 올라 시낭송을 했다. 현대·기아차 본사 정문 앞. 역시 대한민국 최고 재벌을 대하는 국가의 예 의는 각별했다. 주변이 온통 경찰병력으로 새까맸다. 해산명령 3차가 지나 검거가 임박했으니 주변 기자분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라는 자상한 경찰 방송이 이어지고 있었다. 대회를 시작하기도 전 정문 앞에 임시로 꾸린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분향소에 조문하려는 노동자, 시민 17명이 연행된 바로 직후였다.

또 그럴까 싶어 나도 특별한 내용의 시를 준비했다. 언제부터인가 기자회견, 문화제, 추모제를 가리지 않고 어김없이 듣게 되는 그 ‘해산명령’을 한번쯤은 희화화하고 싶었다. 제목은 ‘노동자 민중의 해산명령 1호’였다. 온갖 공유지를 사유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기회와 행복을 사금고 속에 부당 억류하고 있는 재벌들에게 인류 모두의 염원을 받아 해산을 명령하는 내용이었다.

자본의 사병들이 되어 주권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공권력에 즉각 해산을 명령하는 내용이었다. 국가마저도 잘못이 있으면 해산을 명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확인. 시가 좋아 받은 박수가 아닐 것이다. 방금까지도 경찰 해산명령에 부글부글 끓던 사람들 얼굴이 잠깐 밝아지며 ‘해산하라’를 구호처럼 따라 외쳐주기도 했다.

그런데 왜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추모 범국민대회를 하느냐고? 정몽구 회장이 원청사용자이기 때문이다. 유성에서 만드는 피스톤링을 현대·기아차가 주문해주고 있다. 더더욱 헌법에 보장된 민주노조 파괴도 현대·기아차 원청은 주문해 왔다.

2011년 창조컨설팅 관계자들과 유성 유시영 사장은 일주일에 한번씩 본사 14층으로 불려와 민주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회의를 했다고 한다. ‘밤엔 잠 좀 자자. 심야노동 철폐’라는 소박한 요구였다. ‘2011년부터 실시하되, 노사 협의한다.’ 2009년에 이미 합의서도 작성했다.

하지만 사측은 약속된 교섭을 해태하고 현대차 본사와 검경, 국정원과 정부 관계자들과 긴밀한 공조하에 노조 파괴 시나리오를 밀어붙였다. 2012년 국회 청문회를 통해 이런 내용이 낱낱이 공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 2011년 노사 협의 이후 5년이 넘도록 탄압은 끊이지 않았다. 용역깡패들의 폭력, 직장폐쇄 5일 만에 헬기를 앞세워 투입된 4000명의 공권력, 해고, 징계, 고소·고발, 구속, 12억원에 이르는 손배가압류, 그리고 얼마 전 법원에서조차 유령노조로 판명난 어용노조를 통한 분열공작, 현장 곳곳에 감춰져 있던 소형 CCTV 30여대 등 정말 피를 말리는 5년이었다.

그런 폭력적인 일상에 시달리던 유성기업 한광호 조합원이 지난 3월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아직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이 불의한 시대는 어떻게 해산시켜야 할까. 또 거리의 하루가 저물어가고 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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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시는지요. 문득 형에게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SNS로 전 세계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데 웬 구닥다리 편지냐고요. 하지만 밤새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쓰고 우체국을 찾아가는 시간까지 생각하면 편지를 쓴다는 건 봉인된 마음 한 갈피를 전하는 귀한 일. 1년 내내, 아니 삶의 남은 시간 동안 이런 편지만 쓰며 살아도 좋겠습니다. 어떤 효율과 이윤도 낳지 못하는 불용한 시간. 하지만 그 시간에 우리가 고귀하게 여기는 ‘사랑’이나 ‘우정’ ‘믿음’ ‘신의’ ‘응원’ 같은 것들을 나누고 새긴다면 그보다 소중한 인간의 시간이 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자본의 이해를 위한 생산성의 노예가 되어 있는 사람들. 바쁘게 살고, 힘써 일을 해보지만 다수는 도리어 간신히 생존하며, 일할수록 가난해지고, 고독해집니다. 세상의 부가 적어서가 아니겠죠. 인류의 생산력은 모두가 조금만 일하고도 생태적으로, 문화적으로 잘살 수 있을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

그러나 세상의 0.1%도 안되는 소수가 천문학적인 사회적 잉여를 독점하며 다수의 사람들은 소외와 고통을 받아야 하는 삶. 그런 모순을 넘어보고자 하는 사회운동. 생각하니 형과 그런 ‘용기’와 ‘투쟁’, ‘연대’의 길에 함께한 지도 꽤 됐네요.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당시 귀한 한약을 계속 보내주는 이가 있었죠. 2009년 용산참사 당시 순천향대병원 4층 장례식장에서도 스쳤던 것 같습니다. 순천만 갈대밭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얘기 나누던 날도 기억합니다. 검찰 기소 요지 중 2011년 희망버스 사전 답사를 그해 4월에 했지 않냐는 일도 형과 의논했었죠. 희망버스가 시작되고는 순천에서 부산까지 주말마다 현장진료를 다니던 형. 2012년부터는 아예 매주 목요일 한의원 문을 닫고 울산 현대차비정규직, 평택 쌍용차, 밀양, 제주 강정까지 전국을 떠돌며 연대의 인술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는 놀랍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모든 게 자신의 일이라 했습니다. 학창시절 노동자로 살겠다고 들어간 공단. 그러나 고된 노동일을 견딜 수 없었던 건강. 한의사가 되어 자신처럼 힘써 일하고 싸우고 싶지만 건강이 허락지 않는 이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 했다죠. 사회운동 과정에서 지치거나 재충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남원 귀정사에 중묵처사님 등과 함께 ‘사회연대쉼터-인드라망’을 만들어 두시기도 했죠. 일주일에 한 번 아랫말 어르신들 건강까지 챙긴다는 말 들으며, 낯간지럽겠지만 우리 시대의 허준 같은 이구나 했습니다.

그렇게 진력을 다 쏟고 근래엔 힘이 부친다는 형께 한번쯤은 모두를 대신해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형은 약제만 짓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과 정의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시의 어떤 부분에도 형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형과 같은 건강지킴이로 함께하는 길벗한의사회와 여러 보건의료 활동가분들도 기억합니다. 그런 우리 모두의 숨겨진 연대로 지켜가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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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파견미술팀’들과 함께 대전 유성에 있는 ‘아트센터 쿠’엘 다녀왔다. 28일부터 작고한 ‘천재 조각가 구본주’전이 열리는데 작품 설치를 돕기 위한 나들이였다. 대부분 쇠 작업에 작품들 크기가 만만하지 않아 10톤 트럭 한 대분의 작품들을 옮기고, 닦고, 설치하는 고된 노동일이었다. 10주기 성곡미술관 전시 때는 친구들 수십 명이 사흘 동안 일해야 했는데 다행히 이번엔 전체 작품이 아니기도 하고,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별이 되다’ 작품이 나오지 않아 우리끼리 천만다행이라고 수군거렸다. 대추초교 앞에 서 있던 ‘갑오농민전쟁’상도 이번엔 내려오지 않았다. 토요일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관련 현대차 본사 집회도 있었지만 시간을 내야 했다. 그렇게 중요한 전시전이냐고? 최소한 우리에게는 그렇다.

도착해 보니 이미 1층 로비에 ‘비스켓 나눠먹는 사람들’이 설치되어 있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대형 나무 벤치를 물고 있는 두 사내의 얼굴을 매만져 본다. 뺨에 긁힌 자국은 이제 모두 나았나? 지난날, 2년여 동안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장에서 함께 눈비를 맞았다. 94일의 집단 단식도, 망루 투쟁도 함께 봤다.

뺨의 상처는 경찰과 용역들이 합동으로 농성장 전체를 싹쓸이하던 날 지게차 삽날에 밀리면서 났던 것이다. 부인인 전미영은 유작이어서 ‘억’이 넘어가고, 유명 미술관들에 임대해주었던 이 작품들을 본인이 매일 못 오는 대신 농성장을 함께 지키게 하겠다고 10톤 카고 트럭에 싣고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구본주의 '갑오농민전쟁'(1994)._경향DB

운임료 한 푼, 비타500 한 병 주지 않는 일이었다. 접근금지 띠를 에둘러놓은 이 귀한 작품이 기륭에서는 마침 필요했던 음식조리대였다. 전미영 나규환 이윤엽 전진경 정윤희 상덕 신유아 등 파견미술팀은 기륭 현장에 천막미술관을 설치해주고, 기금 마련전까지 열기도 했다.

‘구본주’와 전미영이, 그리고 파견미술팀이 해주었던 일들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그간 우리는 참 많이도 함께 어울려 전국을 떠돌았었다. 대추리, 용산, 지엠대우, 콜트콜텍,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쌍용차, 현대차, 밀양, 강정, 세월호까지 파견미술팀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의 현장으로 ‘파견’하는 사람들이었다. 하나하나가 미술사적으로 남을 작품들도 많았지만 파괴되어도, 함부로 되어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우리들의 미술이 조금이나마 사람들에게 힘이 되었다면 됐지. 뭐.’

그 팀의 대장으로 일하던 전미영과 나규환은 그런 활동들로 세월과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지금은 안간힘으로 홍대역 3번 출구 근처에 아트숍이기도 한 ‘까페 본쥬르’를 열어두고 있는데, 비영리 전문인 사람들이 영리 일에 무슨 소질이 있을까. 도리어 빚만 산더미란다. 월급 100만원씩만 받아보면 소원이 없겠다는 사람들. 남 돕는 일엔 열심이지만 도통 자신들을 돕는 일엔 젬병인 사람들. 그래도 늘 웃음을 잃지 않는 친구들. 지난 금요일은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우리들의 파견 우정전이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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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 수많은 시민군들 속에 함평고구마처럼 투박하게 생긴 한 소년이 있었다. 광주기계공고 3학년 학생이었다. 사람들이 맞고 끌려가고, 죽어가는 야만의 현장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들 수 있는 모든 것을 함께 들었다. 장갑차에 올라보기도 했다. 별다른 일이 아니었다. 평범한 광주 시민들이 모두 그러했다. 상무대에 즐비하게 누워 있던 시신들. 그 5월을 소년은 끝내 잊을 수 없다.

세월이 흘러 2009년 평택 쌍용자동차에 소년은 노조 위원장이 되어 서 있었다. 광주에서처럼 다시 머리 위로 헬기들이 날고, 테이저건과 곤봉과 전기충격기로 중무장한 테러진압부대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렸다. 77일 옥쇄 파업하는 동안 동료 노동자 가족들 6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했다. 자신과 함께 일하던 노조 정책부장 부인이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 베란다로 걸어가 뛰어내렸다 했다. 나는 다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도장공장에는 엄청난 인화물질들이 쌓여 있었다. 이곳이 다시 5·18 전남도청이 되어야 하나. 그러나 마지막까지 그 선택을 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동료들이 맞고 끌려가는 것을 다시 보아야 했다. 수십년 일한 현장에서 ‘함께 살자’는 소박한 요구였다. 모든 책임을 지고 감옥으로 끌려가 3년을 꼬박 보내야 했다. 세상은 자신을 기억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결단은 계속 요구되었다. 2012년 11월20일 새벽 4시. 12만5000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 아래에 소년은 다시 배낭 하나를 메고 서 있었다. 감옥에서 나온 지 이제 갓 3개월. 이제 저 ‘하늘감옥’으로 오르면 언제 또 이 평지를 밟아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올라가세.’ 문기주, 복기성 두 벗과 함께였다. 그간 쌍용차 정리해고 희생자들은 22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171일 동안 다시 하늘에 갇혀 있어야 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 관음전을 나오고 있다_경향DB

그러곤 지난해 12월10일 그는 다시 조계사에서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끌려가야 했다. 2015년 4월16일 세월호 1주기 추모 투쟁과 이어진 4월24일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그리고 5월1일 메이데이 투쟁과 11월14일 14만 민중총궐기 투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진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다. 6개월을 민주노총에서, 1개월여를 조계사에서 갇혀 지낸 후였다.

소년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어떤 민주주의 현장에서도 본 적 없던 이들이 스스로 민중의 지팡이가 되겠다고 선거판을 쫓아다니고, 그들에 대한 기사가 매일매일 쓰레기처럼, 오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4월. 민간인을 강제진압하며 불태워 죽인 전 서울경찰청장 김석기가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4월. 세월호 진상규명을 막고, 야합하고, 막말을 일삼아 온 이들이 다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4월.

5·18 당시 국보위에 참여한 자가 제1야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되어 떠드는 4월. 한 서생이 갑자기 광주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4월. 소년은 다시 창살 너머 먼 별들을 보며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배태선은, 남정수는, 박준선은, 이현대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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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시인, 신부님께 드리는 시 안 써왔어!” 준비 못한 줄 알면서 사진가 노순택이 짓궂게 나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그래, 즉흥시라도 해봐.’ 다른 벗들도 덩달아 나를 궁지로 몬다. 그렇잖아도 신부님 찾아뵌 게 언젠지 죄송해 술잔만 비우고 있는데, 나쁜 사람들. “시가 뭐 자판기도 아니고… 안 돼요” 하면서 신부님 얼굴을 살피니 ‘네 놈에게 내가 뭘 기대하겠니’ 서운함이 역력하다. 어떻게 이 곤경을 벗어나야 하나. 이럴 땐 담배 한 대 피우는 게 제일.

마당으로 나오니 캄캄한 밤하늘에 보름달 하나 덩그러니 걸려 있다. 지금은 제주도 강정마을로 아예 거처를 옮기셨지만, 이곳 군산에서 정신지체 아이들을 가족 삼아 ‘작은 자매의집’에서만 21년을 사셨고, 지금도 ‘평화바람’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이 집에서 대부분의 삶을 보내셨던 신부님. 이렇게 서늘한 밤이면 저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언젠간 저 달을 보며 신부님을 그리워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며왔다. 3월24일은 ‘금경축미사’. 문정현 신부님이 신부 수품을 받으신 지 50년이 되는 날. 그 긴 세월을 성당 안보다 고난 받는 자들의 현장에 더 많이 서 계셨던 ‘우리들의 하느님’. 정말 그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시를 적고 있었다. 종이라고는 내려오기 전 서울에서 시집을 수령하며 받았던 세금명세서 용지뿐. ‘사람들이 쓰러진 거리 위에/ 마지막까지 서 있던 달/ 사람들이 끌려간 공장 마당에 마지막까지 떠 있던 달/ 포크레인 위에 올라 있던 달/ 구치소 창살 안에 갇혀 있던 달/ 모든 파헤쳐지는 슬픔 위에/ 아픔 위에 고통 위에 설움 위에/ 분노 위에 떠 있던 달/ 평택 대추초교 지붕 위에 떠 있던 달/ 용산 철거민 망루 위에 떠 있던 달/ 천년의 강 위에 떠 있던 달/ 강정 구럼비 바위를 끌어안고 울던 달/ 콘크리트 바닥 위에 쓰러져 신음하던 달// 그러나 세상의 평화는 지지 않으리/ 그러나 평등의 노래는 그치지 않으리’ 그전까지 ‘현장 청탁’을 받고 가장 짧은 시간에 써본 시는 용산참사 때 문화 프로그램이 없으니 추모문화제를 빙자한 불법집회라고 경찰들이 에워싼 일촉즉발의 상황. 바닥에 나뒹구는 유인물을 주워 15분 만에 적은 시였는데 이번에 그 기록을 깼다. 딱 담배 한 대 타들어갈 시간. 10여분 만이었다. 내 가슴속에도 신부님께서 오래 계셔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예산통과에 항의삭발한 문정현신부의 눈물_이상훈 선입기자


“험, 험, 신부님은 이렇게 10분 만에도 시를 짓게 하시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기고만장, 너스레를 떨며 즉석 헌시를 낭송하는데 어느 대목에선가 울컥 목이 메어왔다. ‘우리는 하느님을 몰랐지만/ 신부님을 만나며/ 가난한 자들의 하늘을 보았으니/ 신부님을 따라 걸으며/ 정의로운 자들의 하늘을 보았으니/ 세상의 복음을 알았으니.’

신부님,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셔 주세요. 서울에서는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시청 분향소를 지키던 벗 오진호와 김정도가 또 연행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던 캄캄한 밤이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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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희생자인 황유미씨 9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스물셋에 반도체공장에서 직업병을 얻어 생을 마감한 한 소녀의 이야기.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거리로 나선 황상기 아버님. 한 명 두 명, 용기를 내어 나타나기 시작한 반도체공장 직업병 사망자들이 134명, 투병자들이 233명이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으로도 알려졌던 일이다.

박일환 시인의 르포집 <삼성반도체와 백혈병>도 있고, 르포작가 희정의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도 나왔었다. 김성희씨의 만화책 <먼지 없는 방>과 김수박씨의 만화책 <사람냄새>로도 그려졌다. 극단 ‘날’이 연극 <반도체소녀>로 기억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9년이 지나고도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예년보다 초라해진 추모제. 여러 희생자 가족들, 반올림 활동가들인 이종란, 공유정옥씨와 삼성바로세우기운동본부의 조대현씨 등 몇 사람의 얼굴이 가슴에 박혀 왔다. 그간 무너져 왔던 그들의 마음을 다 쓰려면 몇 백 편의 시와 노래와 르포와 소설과 영상이 더 나와야 할까.

삼성 바로잡기 문화제에서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발언 후 무대를 내려가고 있다_경향DB

얼마 전 194시간 동안 테러방지법 통과 저지를 위한 국회 필리버스터가 있었다. 세계 최장시간 이어말하기니 하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하지만 끝내 여야 국회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고 우리 모두의 인권과 자유를 괴물 국가와 국정원에 넘겨주고 말았다. 그 이전 154일 동안 삼성전자 앞에서 ‘삼성이어말하기’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아는 이들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쉼 없이 필리버스터를 해 온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다행히 위안부 소녀상이 전국을 넘어 전 세계에 세워지고 있지만, 삼성전자 앞 농성장에 허름하게 앉아 있는 백혈병 소녀상은 외롭기만 하다. 전국의 위안부 소녀상 옆에 삼성 백혈병 소녀상들이 함께 앉을 수 있을 때, 우리가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 참전했던 베트남전 희생자 소녀상이 함께 앉을 수 있을 때, 지금 이 땅에 다시 노예처럼 팔려 와 온갖 인격 침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제3세계 이주노동자 소녀상이 함께 앉을 수 있을 때, 한국 기업들이 동남아에 진출해 약탈하고 있는 제3세계 소녀상들이 함께 앉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야만의 근대를 넘어 조금은 다른 현대로 넘어갈 수 있는 것 아닐까.

그 자리에서 다시 추모시를 읽어야만 했다.

‘당신은 단지 방독면을 쓰고 들어가야 하는 어느 밝은 클린룸에서 하얀 소복을 입은 채 죽음의 용액에 반도체를 씻어내며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그런 당신 영전에 나는 어떤 소망의 만장을 걸어주어야 할까. 어떤 사랑의 만가를 불러주어야 할까. … 삼성이라고 얘기하기엔 너무 사실적이어서 안돼,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심드렁해. 나는 누가 스물셋 꽃보다 아름다운 당신을 죽였다고 저 하늘 저 땅에게 고해야 할까.’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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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평역 거리나 낙원동 악기상가 초입에서 시를 읽어주는 남자가 있었다. 어느 쪽에서 보나 잘못 구워진 옹기처럼 치켜세워 줄 곳 마땅찮은 이었다. 말을 많이 더듬어 귀를 쫑긋 세우고 한마디 한마디를 쫓아야 했던 이다. 늘 사람들 뒤편에그림자처럼 말없이 있어야 했던 이. 그런 그가 흡사 어떤 법정에 끌려나온 죄수처럼 달달달 떨며 읽어주던 시는, 그래서 원문 내용과 상관없이 항상 새로운 긴장의 시들로 다시 태어나곤 했다. 우리는 때로 객석에서 한 편의 코미디 같은 그의 시낭송을 들으며 웃곤 했지만, 진짜 웃음거리는 잘난 말들이 판을 치지만 도무지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 사회였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눌함은 희한하게도 모든 지배와 계몽과 권위의 언어들, 현학적이고 유려한 언어들을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엔 타인의 시를 읽어주던 그가 글쓰기까지 시작했었다. 컴퓨터도 쓸 줄 몰라 편지지에 오글오글한 손글씨로 써나갔다. 맞춤법도 엉망. 설득력 있는 논리나 표현, 수사는 힘겹게 돌아가는 19세기 증기기관차 터번에게 21세기 후반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오가는 인터넷 세상을 꿈꾸라는 말과 같았다. 그런데 묘하게 그런 그의 서툰 손글씨에서 흔치 않은 사람의 진정성을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2012년 7월부터 2015년 6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던 그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_연합뉴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오늘로 노숙농성 3318일째인 콜트-콜텍 해고노동자 임재춘 형의 경이로운 기록이다. 1983년부터 30년 동안 기타만 만들어 온 이다. 습도나 온도 영향을 많이 받아 사계절에 만들어진 기타 소리가 모두 다름을 아는 이다. 한국부자 순위 120위의 박영호 사장은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빼돌리곤 평균 근속 20년에 이르는 ‘식구’들을 모두 쫓아냈다. 대법원은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도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사법 살인까지 보탰다.

목 잘린 기타처럼 거리에서 나뒹굴며 살아 온 10년. 지금 그의 집은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이다. 김무성 대표가 잘나가던 콜트-콜텍이 ‘강성노조’ 때문에 문을 닫았다고 온 나라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유포했다. 용서할 수도, 참을 수도 없다. 아직,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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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보다 다른 글을 고민하며 살아온 시간이 더 많다. 2002년이었을 것이다. 노동자 생활글쓰기 운동을 꿈꾸며 잡지 ‘삶이 보이는 창’을 만들 때였다. 구체적인 사람들의 현실은 달라진 게 없는데 이런 현재를 어떻게 다시 문학, 글쓰기 자장 안으로 끌어들일까, 생각했던 것이 ‘르포’와 ‘여성 노동자 글쓰기’ 운동이었다.

시·소설 창작교실은 안 하고 당시엔 아예 존재하지 않던 말, ‘르포 교실’과 생경한 ‘여성 노동자 글쓰기’ 교실을 한다고 동료 문학인들이 마뜩잖아 했지만 한국 사회엔 다시 ‘르포’와 ‘여성 노동자’이야기가 필요해라는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렇게 만났던 이들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룬 <부서진 미래>와 영화 <카트>의 원본인 <우리들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용산 철거민들 이야기를 다룬 <여기 사람이 있다> 등 소중한 작업들이 이어져 왔다.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밀양을 살다>에도 그때 마음 모았던 이들이 함께하고 있는 것을 본다.

세월호 시민기록위원회가 지난 10개월 동안 유가족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_출처 : 창비


훌쩍 13년여 세월이 흘러 내 앞에 한 권의 책이 놓여 있다. <기록되지 않은 노동>, ‘여성 노동자 글쓰기 모임’이 펴낸이로 되어 있다. 안미선, 희정, 류현영, 이지홍…. 반가운 이름들이 많다. 모임 이름 하나 없이,

이 책은 서른한 명의 비공식 부문 여성 노동자들의 삶의 기록을 담았다. 야쿠르트 판매원, 행사도우미, 피트니스센터의 운동강사, 톨게이트 계산원, 급식조리원, 여성 대리기사, 산모도우미, 돌봄교실 교사, 비정규 보육교사, 장애인 활동보조인. 장애여성노동자, 미혼모, 이주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이중 삼중 차별을 당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비로소’ 입을 열고 자신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 이런 것이었구나, 꼭 기억해야지 하고 밑줄치고 접어둔 곳이 책장의 절반을 넘는다. 문학 하면 고도의 미학 어쩌고 하는 어려운 말이 늘 따라붙어 평범한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데, 이들의 말처럼 생생한 문학이, 미학이 또 어디 있을까.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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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기 바쁘지 않다. 먼저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겠다. 시는 그다음에 써도 충분하다. 시인은 누구보다도 먼저 진정한 민중의 소리를 전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투철한 민주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인민을 위한 전사가 되는 것”이다. 한 무명 시인(?)의 글이다. 1948년 유진오 시인이 자신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창(窓)> 서문에 쓴 글이다. 그는 전쟁이 발발한 1950년 사상범으로 분류돼 처형당했을 거라 알려진다. 이십대 문청시절 우연히 이 글을 접하곤 아, 이게 내 삶이었으면 했다.

지금도 ‘시인’이기 전에 그런 ‘민주주의자’가 되고 싶다. 지금은 흔치 않지만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자’가 되고 싶어 하고, 먼저 ‘전사’가 되기 위해 문학을 뒤로하고 공장으로 농토로 빈민가로 가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글보다, 노동자 민중들이 자신들의 말과 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대중문학운동에 청춘을 바친 벗들이 있었다. 조영관 형은 그런 선배 중 한 분이었다. 서울시립대 영문과 출신, 좋은 출판사에도 잠깐 있어 봤다. 80년대 구로공단과 부평공단을 찾아 노동자의 길을 걸었다. ‘동미산업’에 노조를 만들었다가 구사대 테러로 죽을 고비도 넘겼다. 해고, 수배 이후 인천지역 건설일용노동조합을 만들고, 현장에서 만난 동료들과 ‘햇살공동체’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90년 초반 사회주의권이 붕괴되며 많은 이들이 유진오의 길이 아닌, ‘얻은 건 이데올로기요, 잃은 건 예술이다’라며 훼절해 간 박영희의 길을 따라 떠났지만, 그는 도대체 무엇이 바뀐 것인지 알 수 없어 제관공으로 남았다.

시인이자 르포 작가인 박영희씨 _경향DB


이번주 토요일엔 그를 찾아 마석모란공원엘 간다. 간암으로 우리 곁을 떠난 지 9년. 형과 가리봉 오거리에서 막걸리 들이켜며 세상을 얘기하던 그 모든 ‘우리’들이,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런 우리들을 기억하자고 형의 짧은 생의 이름을 빌리고, 가난한 호주머니들을 털어 무명의 문학창작기금을 만들었다. 벌써 6회째다. 어느 현장에선가 다시 철근처럼 굵은 시를, 황소처럼 힘센 시를, 뻘밭을 뜨는 삽처럼 묵직한 글을 쓰기 위해 힘쓰는 이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되길 바란다. 올해 수혜자는 소설을 쓴 하명희씨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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