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단원고 세월호 교실지키기 예술행동’이 있어 안산에 다녀왔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 정부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받으며 재차 삼차 익사당하는 세월호의 진실은 언제쯤이나 인양될까. 칠판과 책상과 복도에 놓여 있는 수많은 꽃과 편지들. 어떤 진실도 인양되지 않았는데 교실이 부족하니 아이들 책상을 치워야겠다 한다.

세월호의 진실이 온전히 돌아올 때까지 그 빈 의자와 책상을 남겨두면 안되나. 국가의 무능과 부조리하고 부패한 사회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반성하는 상징의 장소로 남겨두면 안되나. 모두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먼저 치워져야 하는 책상은 단원고 2학년 교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저 해수부와 정부서울청사에, 청와대와 국정원, 이윤을 위해 부패와 부정을 스스럼없이 행하는 저 높은 기업 빌딩 숲 속에 있는 것은 아닐까.

맥이 빠져 집에 들어와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 문자가 한 통 들어와 있었다. “2월1일자로 정규직으로 복직합니다. 그동안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쌍용차 비정규직 해고자 복기성의 문자다. 1999년 용산참사 현장에 있을 때, 당시 공장 점거파업 중이던 복기성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자신들의 처지를 써줄 르포 작가를 보내주면 좋겠다고. 그 후 얼마나 많은 아픔과 눈물의 시간이 지났던 걸까. 그사이 복기성은 한상균, 문기주와 함께 171일 동안 공장 앞 철탑 고공농성도 했었다. 김정욱과 이창근이 다시 올라간 공장 굴뚝 아래를 가면 두 눈에 핏발이 선 그를 매번 만나야 했다.

이렇게 아무 일도 아닌 하루가 오기 위해 7년을 넘게 스물여섯 명의 동료와 가족들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니. 경찰서 문턱을 수없이 넘어 다녀야 했다니. 이게 과연 세상일까. 아직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다수지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 “기성아. 축하한다.” “수고했습니다. 쌍차 동지들.” 그러나 아직도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돌아가지 못한 많은 이들이 떠오르는 밤. 아직도 제 말을 얻지 못한 수만 개의 시들이 독재와 독점의 겨울 밤하늘에 슬픔으로 가득 차 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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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후 서울대병원에서 몇 개월째 사경을 헤매는 일흔 노구의 농민이 있다. ‘개사료값보다 못한 쌀값’, 노동법 개악,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온갖 ‘학정’에 분노해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새벽밥 먹고 올라오셨던 백남기 선생이다. 그는 1971년 10월 중앙대에서 위수령에 맞서는 시위를 주도하다 1차 제적되고, 1973년 2년여 동안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1975년 2차 제적 후 1980년 ‘서울의 봄’ 때 복교됐지만 그해 5월8일 교내에서 박정희 유신잔당 장례식 시위를 주도하고, 5월15일 4000여명의 학우들과 일명 ‘한강도하’ 행진을 하며 전두환 신군부 출현을 막고자 했다.

전국으로 계엄이 확대되고, 5월17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들이 교정으로 들어올 때, 그는 지하통로로 빠져나가는 것을 거부하고 체포되었다. 그 다음날 광주 도청에서 5·18학살이 일어났다. 고춧가루 물고문과 성기를 불로 지지는 고문이 이어지는 고문실에서도 그는 지지 않았다.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이듬해 3·1절 특사로 풀려난 후 고향 보성군 웅치면으로 내려가 농민운동을 하며 살아오셨다. 박정희 정권 때에는 제적과 수배, 구속, 물고문을 당하고 그의 딸이 집권하는 시대에는 물대포에 맞아 생명마저 내놓아야 하는 인생이 그분만의 서러움은 아닐 듯싶다.

마을 주민들 곁에서 징을 치고 있는 그분 사진을 볼 때마다 함께 떠오르는 이가 ‘물봉’ 김남주 선생이셨다. 두 분은 생김새도 삶도 닮았다. 김남주 선생은 1972년 전남대에서 반유신투쟁으로 구속, 제적당했다. 1977년 귀향해 해남농민회를 만들고, 1979년 남민전 활동으로 구속돼 1988년에야 풀려났다. ‘바람에 이는 풀잎으로 5월을 노래하지 말라 했다.’ 얼마 후 2월13일이면 22주기가 된다. 김남주 선생이 생전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냐”고 절규할 때 많은 이들이 ‘민주화’되었지 않았냐고 했다. ‘민주화?’, 백남기 선생 둘째 따님 이름이 ‘민주화’다.

‘민주화’의 가슴은 오늘도 짓밟히고 있다. 안타깝지만 ‘학살’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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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전태일이 있다면 미국엔 로자 파크스가 있다. 어린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버스비가 없어 걸어서 집으로 가던 청년노동자 전태일. 그는 1970년 11월13일, 무용지물인 근로기준법 책과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면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 운동의 분기점이 되었다. 전태일을 따르는 수많은 이들에 의해 한국 사회에 민주노조 운동이, 진보정당 운동이 어렵사리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미국 몽고메리에서 전태일처럼 재봉사로 일하던 흑인 여성 로자 파크스는 1955년 12월1일 버스 좌석을 평소처럼 백인에게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인종차별에 맞서 ‘싫습니다’라고 저항하곤 감옥으로 끌려갔다. 그를 따라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몽고메리의 흑인들이 집단적인 버스 승차거부 운동에 나섰다. 로자 파크스가 체포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1956년 11월13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결국 그간 인종 분리와 차별을 불법이라고 인정하고, 공공시설 내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민권법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로자 파크스는 풀려나 흑인 민권 운동의 어머니가 되었다. 전태일이 죽고 한국 사회가 다시 태어난 ‘11월13일’, 로자 파크스가 풀려나고 미국 사회가 다시 태어난 ‘11월13일’. 우연이었겠지만 날짜도 같다.

미국의 로자 파크스 `버스 차별 철폐' 운동


‘일어나요. 로자’는 그의 이야기를 니키 지오바니라는 흑인 여성 시인이 동화로 재구성한 책 이름이기도 하다. 니키 지오바니는 내가 문학청년이던 시절, 하나의 알을 내가 깨고 나오는 데 큰 영감을 주었던 시인이기도 하다. 지금도 다음 시 구절을 잊지 못한다. ‘나는 어떤 백인도 나에 대한 얘기를 대신 써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나의 가난과 절망을 노래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는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주체성이 허락되는 세상이면 좋겠다. 아니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이 사회의 주인으로 당당히 일어서서,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면, ‘싫습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세상이면, 차라리 잡아가라고 집단적으로 일어설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다. 특히 요즈음처럼 ‘비정상의 정상’이 판을 치는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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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일이면 용산참사 7주년이 되는 해다. 마석모란공원에 잠든 철거민 다섯 분을 만나 뵈러 가야 한다. 매년 추모제 때마다 함박눈에 곱게 덮여 있던 다섯 봉분이 눈에 선하다. 그때의 화기는 다 빠졌을까. 유가족분들의 꺼지지 않던 분노도 조금은 사그라졌을까. ‘3조원의 개발이익’, ‘한강르네상스’의 제물이 됐던 평범한 철거민들의 죽음은 지금도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 있다. 평범한 이들의 죽음을 제물로 삼고도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자 용산 4구역 투기개발은 그간 중단되었다.

서울 전역을 전염병처럼 돌던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사업들도 거개가 중단되었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은 7년 전 그렇게 급하게 그 누구도 ‘진압’당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살고 싶다고 올라간 망루에서 단 하루 만에 사람들이 함부로 불태워지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실을 비웃듯 당시 살인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한국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지난 총선에 이어 오는 총선에서도 경주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고 한다.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에 이어 부자감세와 자원외교, 대운하 사업과 국정원 대선 부정 등으로 국가 전체를 참사로 내몰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건재하다.



2009년 그곳 용산에서 ‘작가선언6·9’가 공동으로 펴낸 책 이름이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였다. 슬프지만 용산의 진실을 모두 밝히지 못한 우리가 그 후로도 매번 내려야 했던 역들 역시 온갖 참사의 역이었다. 파괴되는 4대강 현장이 그러했고, 해군기지에 짓밟힌 강정이 그러했다. 핵마피아들에게 밀려난 밀양이 그러했고, 26명의 죽음이 이어진 쌍용차 정리해고 현장이,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그러했다. 1000만명에 다다른 비정규직 시대 전체가 헬조선이고, 오늘 국정화로 부관참시당하는 역사의 현장이 그렇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2009년 겨울, 그 뜨겁던 ‘용산참사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새로운 역사의 법정들이 열리는 그 날까지 언제까지고 이 고통스러운 역을 떠나지 않을 참이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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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누구만의 안전을 위해, 누구만의 이윤을 위해, 누구만의 권력만을 위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세월호와 함께 슬픔의 심해로 끝없이 가라앉아가던 우리들은 이제 살아 돌아 왔는가? 세월호와 함께 침몰되어 가던 한국사회는 구조되었는가? 한국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경악들은, 충격들은, 전망들은, 기대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열한명의 실종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을 뒤로하고, 때가 되면 한번씩 찾아오는 태풍을 지난 듯, 대한민국 세월호는 다시 출항해도 이젠 아무 문제없는가?

이건 아니라고, 이번주 토요일(28일) 전국에서 ‘2014 대한민국 세월호 버스’들이 출발한다. 똑바로 된 진상규명에 나서라고, 오늘도 수많은 세월호들이 정부의 무능과 탄압에 의해 침몰해 가고 있다고, 우리 모두가 세월호라고 전국민이 나선다.

밀양 세월호가 출발한다. 이 정부는 지난 11일 새벽 그들을 짓밟았다. LPG통과 기름통을 곁에 두고 칠순, 팔순 고개를 넘으신 어른들께서 절박한 호소를 하는 곳이었다. 예기치 못할 참사의 위험에도 공권력은 가릴 게 없었다.

조그만 움막 안에서 작은 가리개 하나만을 걸친 채 벌거벗고 있는 밀양의 할매들, 그 목에 쇠줄이 감긴 채 끌려나오는 한 할머니의 사진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 전체를 부정하고 모독하는 일에 다름이 아니었다. 더 용서할 수 없는 것은 같은 날 금수원에 공권력을 투입하며 세월호의 분노를 역으로 이 정부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 신성여객 앞에서는 진기승 열사 버스가 출발한다. 지난 4월30일, 노동절 하루 전날 회사 국기게양대에 목을 매었던 해고노동자. 그의 분향소 역시 침탈당했고,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충북지역은 유성기업 이정훈 영동지회장이 250여일째 고공농성 중인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광고탑에서 출발한다. 그의 동료들 역시 얼마전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끌려가야 했다. 이 정부는 지난 정부에 이어 계속 전국 곳곳의 민주노조호들을 파괴, 침몰시키기 위한 정치 공작을 멈추지 않고 있다.

팽목항에서는 실종자분들이 빨리 가족과 우리들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눈물의 버스가 출발한다. 무슨 말도 전하기 힘들어 조용히 안타까운 우리들의 마음을 담은 노란 종이배들을 띄워주고 출발한다고 한다.




서울 경기 지역의 시민들은 서울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모인다. 이미 이 정부는 5월18일 광주민중항쟁 추념식이 열리던 날, 자신의 장례를 동료들에게 위임하는 유언장을 써두고 자결한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의 장례식장에 군홧발을 신고 들어와 시신을 탈취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동료의 시신을 지키려 했던 삼성전자서비스 위영일 지회장과 라두식 수석부지회장, 그리고 영등포분회장 김선영을 구속시켰다. 삼성 무노조호는 이젠 더 이상 안된다고, 삼성전자서비스가 외주화한 1만명의 서비스기사들은 삼성전자에 직접고용 정규직화되어야 한다고, 그것이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들의 삶을 살리는 일이라고 외치겠다고 한다.

이런 전국의 세월호들이 모이는 6월28일은 이건 아니라고, ‘민주노총 총궐기’가 열리는 날이다. 또 다른 참사의 전조인 ‘의료영리화’, ‘철도민영화’에 맞서 보건의료노동자, 철도노동자들이, 전국의 공무원들이 모이는 날이다. 6·4 지방선거 당시 전국 13개 지역에서 진보교육감들을 세워준 국민들의 뜻과 평가를 저버리고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한 이 국가가 도대체 누구의 국가인지를 묻는 날이다. 총궐기를 통해서도 이 정부가 반성하지 않을 시 7월22일 정치 총파업으로 민주노총이 나서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날이다. ‘쌀 전면개방 저지! 식량주권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1차 범국민대회’를 향해 전국의 농민버스들이 출발해 서울로 오는 날이다. 도시 빈민들이 함께 나서는 날이며,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모이는 기독교인들을 비롯해서 5대 종단 평신도들이 나서는 날이다. 문학인들은 탑골공원에 모여 시국토론회를 마치고 함께한다. 더 이상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총체적으로 침몰해가는 광경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각성과 분노가 거대한 연대의 힘으로 모이는 날이다. 이런 희망이라도, 벅참이라도 없으면 어떻게 이 슬픈 시대를 견딜 것인가라는 치떨림과 서러움들이 모이는 날이다. 시간이 너무 짧지만 그날, 우리 모두 함께하자. 우리 모두가 다시 기울어가는 이 시대의 평형수로, 복원력으로 새롭게 서 나가자.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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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을 잘 안 쓰긴 하지만 정말 스펙터클한 날들이다. 어제(21일)는 서울 강남 삼성전자 본관 앞에 있었다. 다시 추모시를 읽어야 했다.

지난 5월18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공권력에 의해 시신이 탈취당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양산분회장 염호석님의 시신이었다. ‘5·18’ 광주가 데자뷰되었다. 그는 유서를 세 통 남겼다. 첫 번째는 ‘아버지 어머니께’였는데, ‘제가 속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좋은 결과가 나오면 그때 장례를 치러달라’고 했다. 두 번째 편지는 함께했던 ‘삼성서비스지회 여러분께’였다.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지 못하겠기에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달라’고 했다. 그는 동해안 정동진 해변가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곳을 택한 이유는 ‘해가 뜨는 곳’이어서, ‘내일도 뜨는 해처럼 이 싸움 꼭 승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직접고용 정규직화’ ‘민주노조 인정’ 등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되고 난 후에 화장해서 정동진에 자신을 뿌려달라고 했다. 세 번째 유서는 간단했다. ‘상기 본인은 장례에 관한 모든 것을 삼성전자서비스노동조합(금속노동조합)에 위임합니다.’ 그리고 자필 서명과 사인을 했다. 설령 부모라 해도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유서 내용이었다. 당연히 부모님들도 장례의 모든 것을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게 위임했다. 하지만 이런 죽은 자의 최소한의 명예와 인권조차 삼성과 정부는 훼손했다.

지난 일요일 세월호 참사에 분노한 시민들은 빨리 실종자들을 찾아내라고, 국민들을 수장한 무능한 대한민국 세월호의 선장 박근혜씨가 책임지고 물러나라고 시위를 해 광화문 네거리가 마비되었다. 바로 그런 날 경찰이 영안실을 짓밟고 들어왔다. 상주인 노동자 수십명을 연행하고 시신을 탈취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영정사진 들고 기자회견(출처: 경향DB)


알려진 대로 삼성전자는 본인들이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서비스업무를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자회사에 외주화했다. 삼성전자서비스는 다시 160여곳의 도급업체에 이 업무를 외주화했다. 이 도급업체들은 다시 1만여명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건당수수료를 주면서 노동착취를 자행해왔다. 선박에 대한 안전책임을 비정규직들로 채우고, ‘해피아’들로 이루어진 해운조합에, 한국선급에, 구조에 대한 책임은 해경 등과 유착관계로 보이는 언딘마린인더스트리에 외주화해온 세월호 참사와 똑같은 일이었다.

삼성전자는 AS 명목으로 1년에 1조7000억원을 소비자들에게서 걷어간다. 그러나 삼성은 이 중 6000억원 정도를 대주주로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에 외주도급비로 지불해왔을 뿐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그중 3300억원 정도만을 169개 협력사에 지불해왔다. 부당한 2중 도급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가 착복한 이윤만 1조1000억원에 달한다. 대신 염호석님과 같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 근무조건 속에서, 방문수리용 차량도, 공구도, 하다못해 작업복까지를 자비로 구매해야 했다. 이것은 명백한 사기이자, 반사회적 활동이다. 불법파견, 위장도급이지만 고용노동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조사 내용에 따르면 평형수를 빼고 과적을 했지만, 관련 공무원들은 괜찮다고 사인을 해주었다. 어쩜 이리 똑같을까. 그러곤 이젠 고인의 시신까지 돈으로 매수를 한다. 생부를 매수해 시신탈취의 명분을 만들었다. 부모가 자식의 유언을 배신하게 하는 인륜적으로 해선 안될 일이었다. 생모는 아직도 동의해주지 않고 있지만, 작전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경찰은 삼성의 사병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사실 확인도 없이 ‘112 신고’ 하나로 그렇게 빨리, 전격적으로 수백명의 경찰병력들의 작전이 가능할까. 구조신고 이후에도, 현장에 도착해서도 구해달라고 손 흔드는 사람들 단 한 사람도 살려내지 못한 무능한 정부, 무능한 공권력이었다. 삼성은 이로 인해 대한민국 세월호 선장 박근혜씨와 함께 ‘이윤보다 생명을’이라는 모든 이들의 공적 1호가 되고 말았다. 넘어선 안될 상식의 선들이 있다. 이 선을 넘어서버린 삼성의 신화가 이제 침몰되어가는 중이다.

이런 얘기를 써봐야지 하고 앉았는데,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피눈물나는 농성장에 용역깡패들과 경찰이 난입했다는 속보가 전해져 왔다. 아, 이번엔 기륭인가. 여기서 다시 세월호를 만들어보고 싶으냐고 울부짖는 조합원들과 함께 여기서만은 그 어떤 인간적인 것도 빼앗기면 안되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싸웠다. 오늘의 전적은 찢어진 단벌 여름 재킷과 부러져버린 지팡이 하나, 결린 옆구리였지만, 우린 수장당하지 않겠다고, 가만히 있으라는 너희들의 말을 믿다 죽진 않겠다고 싸운 사람들의 힘으로 간신히 공동체에 전해질 또 하나의 절망적인 소식을 막을 수 있었다. 벗인 정혜윤이 1년여를 눈물 흘리며 쓴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르포집 <그의 슬픔과 기쁨>의 북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대법원 앞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24시간 무기한 1인시위에 들어가 있던 날이다. 지난 17일, 18일 이런 정부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나섰다가 연행되어 풀려난 245명의 사람들이 대한문 앞에 모여 오는 24일에는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자신과 1% 자본가들의 무한안전만을 지키며 사는 청와대를 향해 가자는 약속을 한 날이었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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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동안 산 자들과 살지 못하고 죽은 자들과 함께 살았다. 문득 젊은 날 한때 내 의식과 행동의 변화에 영향을 미쳤던 문구 하나가 떠오른다. ‘자유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숙고가 아니라 삶에 대한 숙고이다.’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나오는 이 구절을 만나며 나는 청년시절 내내 빠져들던 어둡고 염세적인 절망의 포즈와 결별하게 되었다. 삶에 대해 숙고하기에도,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에 하루하루 반응하고 환호하기에도 바쁜데 웬 죽음에 대한 숙고인가 하는 대전환이기도 했다. 근래 몇 년 동안 수많은 열사 투쟁에 함께하면서, 죽겠다고 고공과 망루로, 단식으로 빠져드는 사람들을 함께 지키자 하면서도 진정한 바람은 빨리 생에 대한 즐거운 숙고의 시간으로 넘어가자는 바람이었다. 하지만 바람과 달리 끝도 없는 죽음의 수렁으로 온 사회가 침몰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무섭고 두렵다. 세월호 선실에 갇혀 있던 아이들의 공포가 이러했을까.

지난주 토요일에는 다시 쌍용차 정리해고 관련 25번째 희생자였던 고 정한욱님에 대한 추모시를 써야 했다. 그는 가족과도 헤어져 혼자 살던 창원의 한 아파트 난간에서 쓰러져야 했다. 해고된 이후부터 그들에겐 이미 모든 곳이 차고 어두컴컴한 망망대해였다. 끝모를 고통의 파도가 덮치고 더 내려갈 길 없는 슬픔의 심해에 갇혀야 했다. 모든 문이 닫히고 막혀 있었다. 함께 살자고 아무리 두드려보아도 이 사회는, 정부는, 국회는, 노동부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생활 밑바닥은 이미 빵구난 지 오래, 다정했던 모든 관계의 선들이 끊어지고, 기울어진 생의 밑바닥부터 슬픔의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에겐 누가 손을 내밀어주어야 하나. 그들에겐 언제나 구조함이 도착하나. 우리는 이 지상에조차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문형표장관 집앞에서 촛불집회(출처 :경향DB)


고 송국현 님을 추모하는 시도 써야 했다. 23년 동안의 시설 생활 끝에 자립해보겠다고 얼마 전 세상 밖으로 나온 그는 자신의 방 침대 위에서 산 채로 화장당했다. 자동센서가 부착된 방문이 활짝 열려 있었지만 활동보조인의 도움 없이는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인 그에게는 자신의 침대 밖이 모두 망망대해였다. 죽기 며칠 전까지 그는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투쟁의 맨 앞에 앉아 있었다. 35만명에 이르는 장애인들이 오늘도 이렇게 어디엔가 갇혀 있고 고립되어 있다. 다름이 있다면 세월호는 단숨에 침몰했고, 그들 35만명의 장애인들은 서서히 시나브로 한 척씩 침몰해 왔다. 우리는 어떻게 이 잔혹한 사회의 심해에서, 불구덕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 탈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이 참혹한 세월의 시설들로부터 벗어나 존엄한 생의 자립을 이룰 수 있을까.

장례도 못 치르고 있는 밀양의 유한숙 어르신에 대한 추모시도 다시 한 편을 써야 했다. 밀양에 마지막 남은 농성장들을 강제 철거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나온 이후였다. 도대체 이 지상에서도 곧 죽겠다는 사람들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 이 정부와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어떤 세월호에 대한 진정성을 바랄 수 있을까. ‘우리에겐 헬기가 나르는 전쟁의 하늘이 아니라/ 잠자리가 나르는 평화로운 하늘이 필요하다고/ 모든 생명의 숨구멍을 막는 개발의 레미콘과 파괴의 포크레인이 아니라/ 모든 살림의 작은 호미와 부드러운 삽날이 필요하다고/ 죽음의 전기가 아니라 핵발전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존엄한 마음의 발전이라고/ 우리에게 송전되어야 하는 것은/ 무한 소비와 소유의 욕망이 아니라/ 무한 축적의 빈틈없는 전선이 아니라/ 어디선가 다시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연대의 전선이 투쟁의 전선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는 희망의 송전이라고’ 다시 외쳐 보았으면 좋겠다.

이 모든 와중에 까마득히 잊혀져 있는 한 사람도 기억했으면 좋겠다. 한강의 기적과 함께 한국 근대화의 상징이라는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 옆 광고탑에서 오늘로 197일째 고공농성 중인 유성기업 노동자 이정훈이다. 그는 아직 살아 있으니 다행인가. 박근혜 정부는 그 틈에도 그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일날은 그의 고공농성 200일을 기억해 옥천으로 가야 한다. 한국 사회라는 세월호에 타고 있는 이 수많은 노동자 민중은 도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이 세월호는 위험하니, 이 세월호의 선장은 믿을 수 없으니 어서 빨리 이 그릇된 시대의 선실로부터 탈출해 다른 사회로 건너가야 한다는 믿음의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을까. 더 이상 죽음에 대한 숙고가 아닌 생에 대한 연대와 투쟁과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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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봄이 오고 있다. 지난겨울은 너무 추웠다. 시청 광장이거나, 이제 다시 쓸쓸해져가는 대한문 앞이나 몇몇 군데에 조그마한 촛불들이 피어오르곤 했지만, 우리 모두의 생활과 마음을 덥히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막연하게 빨리 봄이라도 왔으면 하곤 했다. 그 봄이 이제 오고 있다.

그 겨울 사이 다시 몇 편의 추모시와 글을 써서 길거리로 나서야 했다. 가장 최근의 시는 밀양의 고 유한숙 어르신 100일 추모제에 바치는 시였다. ‘원전마피아들의 짜릿한 속셈만 흐르는 곳/ 푼돈의 모략이 판치고/ 죽음의 전류가 관통하는 메마른 땅/ 계엄의 헬리콥터가 뜨고/ 점령지의 병사들이 진주하는’ 그곳으로 아프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으며 밀양으로 가는 길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언제쯤 우리는 다시 차가운 냉동고에 갇혀버린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인권을 구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전 시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직업병으로 죽어간 반도체 희생자 고 황유미님과 그렇게 ‘의문사’ 당해간 분들을 추모하는 시였다. 생각하니 황유미님 관련 추모시만 매해 쌓여 다섯 편이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아이와 함께 보며 지난 몇 년간의 과정이 떠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분들은 ‘의문사’다. 산업재해(산재) 신청은 번번이 거부당하고, 사회적 연대에 힘입어 몇 년 만에야 처음으로 열린 반도체 희생자 관련 교섭은 진정성 없는 삼성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간 고 최종범 열사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삼성전자서비스는 다시 무노조 삼성의 신화를 복구하기 위해 부산해운대 센터 등 3곳의 센터를 위장폐업시키는 등 ‘부당노동행위’에 나서고 있다. 오는 22일과 28일에는 이에 분노하는 문화제와 대규모 규탄대회가 서울시청 광장에서 다시 열린다. 그곳에도 가봐야지.

제주도 강정의 문정현 신부님과 지킴이들, 주민분들은 잘 계시는지. 누군가 또 바닷물에 뛰어들었다던가, 포클레인이나 레미콘 바퀴 아래에 들어눕거나 올라갔다던가, 끌려갔다던가 하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강정을 함께 지키다 구속된 지 1년이 넘어가는 양윤모 선배는 잘 계시는지. 그 선하던 영화평론가를 누가 투사로 만들었는지. 누군가라도 자신을 기억해주는 이가 없는지 날마다 신문을 들출 또 다른 감옥 안의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과 용산참사의 또 다른 희생자 남경남 전 전철연 의장과 평생을 공안탄압의 희생자가 되셔야 했던 범민련 이규재 의장님은 잘 지내시는지. 이렇게라도 안부를 전하니 부디 모두 건강하시길.

그렇게 우리 모두가 조금은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는 ‘희망버스’가 지난 토요일에는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엘 다녀왔다. 공장으로 가기 전 경부고속도로변 옥천나들목 옆 광고탑에서 154일째 고공농성 중인 이정훈 유성기업 영동공장지회장을 찾기도 했다.



전국에서 모여든 97대의 버스와 승합차들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다. 그간 얼마나 외로웠을 것인가. 1987년에도 1997년에도 또 언제도 남편은 늘 ‘민주노조’를 지켜야 한다며 자신의 곁을 떠났다고, 이번에는 결혼기념일날 저 허공으로 다시 떠나갔다고 울먹이는 이정훈 지회장 아내인 한영희님의 편지글을 들으며 울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

조합사무실 출입을 막지 말라고 절규하며 경찰들의 숲으로 온몸을 던지고, 최루액이 난무하는 공장 안에서 마지막 남은 한 사람까지를 구해 나오던 홍종인 아산지회장을 보면서도 모두가 눈물이 울컥했다.

2012년 굴다리 고공농성 151일, 그리고 얼마 전까지 이정훈 지회장과 함께 저 외로운 광고탑에서 129일을 버티다 눈물을 머금고 이 투쟁을 위해 내려온 이였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사회적 진실을, 인간의 마음을 지키고 싶은 것일까. 민주노조가 도대체 뭐길래 이 기나긴 투쟁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일까. 거기 내 일처럼 나서서 일을 돕는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사회적 정의를 지키고 싶어하는 것일까. 한순간 터널처럼 어두운 대한민국 사회가 반짝 빛나는 날이었다. 이젠 다시 기운을 내보자고 서로가 서로를 북돋는 웃음과 노래와 껴안음이 끊이지 않는 너무도 아름다운 연대의 들판, 축제의 마당이었다. 어느 곳에서라도 봄이 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모두가 유성으로 가는 2차 희망버스를 결의하고 올라왔다. 희망의 버스가 분노의 버스가 되기 전 성실한 노사교섭을 통해 이정훈 지회장이 안전하게 가족과 동료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기륭에서, 한진에서, 쌍용자동차에서, 유성 등에서 불법을 저지른 사업주들이 구속되고, 그 모든 현장에서 벌어진 사회적 약속 파기, 부당노동행위들에 대한 특검이 실시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1700만 노동자 가족들도 조금은 안심하며 이 사회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 것인가.

물론 안다. 자연의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지만, 역사의 봄은, 변혁의 봄은 우리 모두가 함께 나서서 끌어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봄을 맞으러 함께 나서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물결을 떠올려본다. 꿈만 꾸어도 이렇게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진다.


송경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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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내내 꿈이었던 개인 사무실을 냈다. 8층 전면유리 아래로 시흥대로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기역자로 넓은 책상을 배치하고, 한쪽엔 침대도 만들어 두었다. 지난해 12월30일 회사가 도망이사를 가고 난 기륭전자의 휑뎅그렁한 사무실 한편이다. 처음엔 불도, 물도 없었는데 웬일인지 얼마 전부터 전기와 수도와 중앙난방을 모두 열어주었다. 이런 좋은 곳에서 달달 떨며 두 번이나 심한 감기몸살을 앓았던 생각을 하니 은근히 약이 오르긴 한다. 갑자기 선심을 쓰는 게 아마도 끌어낼 때가 가까워오는가 보다.


2010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주변 공기가 심상치 않더니 무장경찰들이 밀려들었다. 카고차와 앰뷸런스가 뒤따라오고 있었다. 오도가도 못하는 포클레인 위였다. 건너편 공장 1층 옥상에는 단식 중인 여성조합원 둘이 흰 소복을 입고 야위어가고 있었다. 



어떡해야 하나. 농성장 옆에 세워둔 가스통이 눈에 들어왔지만 누구에게도 요구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눈도 입도 닫고 근 4시간을 포클레인 붐대 맨 끝에 올라 마침 위로 지나가던 전깃줄을 잡고 매달려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조금은 더 안전하고 행복하고 평화로우면 좋을 텐데 하는 서늘한 생각뿐이었다. 그런 수많은 눈물들이 모여 그해 11월1일, 

기륭전자 노사 합의가 이루어졌다. 삭발이니 3보1배니 하는 자잘한 일들 빼고 50일간의 공장점거 농성과 세 번에 걸친 고공농성, 김소연 당시 분회장의 94일에 이르는 단식, 두 번의 국회점거 농성, 다시 한 번의 단식과 두 번의 포클레인 점거농성 등 1895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투쟁을 해온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들의 초인적인 승리였다. 그 호소에 함께한 수많은 연대의 힘들이 이룬 눈물겨운 승리였다. 

당시 국회의 요청을 받아 국회 귀빈식당에서 사회적 조인식을 가졌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1년 더 연장하는 동안, 최동열 회장은 중국 공장을 처분하고, 현재의 신사옥 역시 매각해 버렸다. 법인명도 바꾸고, 연구기술직 등 100여명도 모두 정리해고해 버렸다. 며칠 전 결국 증권거래소에 의해 상장폐지가 결정되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한진중공업도, 유성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2012년 9월 국회청문회와 연이은 국정감사를 통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와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 탄압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노동부와 검찰이 몇 차례에 걸쳐 특별근로감독과 압수수색 등을 진행하기도 했다. 당시 창조컨설팅의 심종두 대표와 김주목 전무는 노무사 자격이 박탈되었고, 법인이 해체당하기도 했다. 이를 사주하고 지휘한 유시영 사장과 두 공장장에겐 사법처리가 필요하다는 고용노동부와 경찰의 기소 의견이 몇 번에 걸쳐 검찰에 전달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2년여를 끌다 결국 불기소 처리하고 말았다. 당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파괴하는 시나리오에 등장했던 청와대, 국정원, 노동부, 경찰, 경총, 원청인 현대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과정에 노동자들만 17명이 구속되었다. 부당해고 당한 27명이 승소했지만 여론이 잠잠해지자 사측은 11명을 재해고시켰다. 12억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가 떨어졌다. 국가도 별도로 1억2000여만원의 손배가압류를 청구했다. 관리직들까지 위장 가입시켜 어용 복수노조를 대표 교섭단체로 만들고 민주노조 조합원들 수십명에게는 정직과 출근정지를 반복했다. 

첫 시작은 심야노동철폐, 주간2교대라는 요구였다. 그것이 그토록 큰 죄였을까. 지난 3년여 동안 홍종인 지회장은 목에 밧줄을 묶고 한겨울에 굴다리 고공농성을 151일 동안 했고, 며칠 전까지 경부고속도로 옥천IC 근처에서 129일 동안 철탑 고공농성을 해야 했다. 지금도 그곳에 이정환 영동지회장이 혼자 남아 겨울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다. 아, 이런 것을 총체적인 것이라고 표현하는 것일까. 이렇게 누군가 목숨들을 걸고 싸우는 데도 너무나 조용한 세상 속에서 1700만 노동자 가족들의 힘겹고, 분노스러운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

하다못해 지하철 무임승차만도 약속을 어긴 대가로 30배의 벌금이 부과되는데, 국가와 의회와 시민사회 모두가 참여해 수많은 사회적 시간과 자원을 투여하고, 여러 출혈과 갈등해결 비용을 지출한 후 이룬 사회적 약속을 헌신짝 취급하는 이런 악덕 기업주들에게는 도대체 몇 배의 책임을 물어야 할까. 그것 없이 어떤 국민이 다시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싸울 수 있으며,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는 바로잡혀질 수 있다는 꿈을 가질 수 있을까. 이렇게 공공연하게, 버젓이 사회적 윤리를 파괴하는 반공공세력들은, 반국가단체들은, 대국민 사기집단은 어떤 철퇴로 다스려져야 할까. 이런 불의를 잊지 말자고, 함께 이겨 나가보자고 다시 희망버스 승객들이 출발한다. 한 대여도 좋다고 백기완 선생님과 노나메기 어른들이 먼저 제안해주셨다. 

3월15일. 154일차를 맞는 유성기업 고공농성 연대를 위한 희망버스다. 이 눈물겨운 세상이 조금은 평온해지기 위해 구속되어야 하는 것은 기륭전자 최동열이라고, 한진중공업 조남호라고, 유성기업 유시영이라고, 대법판결조차 무시하는 현대차 정몽구라고, 악질적인 콜트콜텍의 박영호라고 함께 외쳐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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