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송혁기의 책상물림'에 해당되는 글 61건

  1. 2016.12.28 정조의 고백
  2. 2016.12.14 법과 부끄러움
  3. 2016.11.30 330년 전의 상소문
  4. 2016.11.16 농단하는 정치
  5. 2016.11.02 여우 울음소리 가득한 나날
  6. 2016.10.19 귀로 먹는 세상
  7. 2016.10.05 백락과 천리마
  8. 2016.09.21 신념의 정치, 바람의 정치
  9. 2016.09.07 같음과 다름
  10. 2016.08.24 국기를 세우려면
  11. 2016.08.10 여름날의 얼음
  12. 2016.07.27 망국의 징조
  13. 2016.07.13 천하제일의 도둑이 되려면
  14. 2016.06.29 의인의 이름
  15. 2016.06.15 게으름뱅이 이야기
  16. 2016.06.01 누가 책임질 것인가
  17. 2016.05.17 협치가 필요한 이유
  18. 2016.05.03 리베로를 위해서
  19. 2016.04.19 우활한 질문
  20. 2016.04.05 역사, 기억, 변화

“내가 즉위한 이래 23년 동안 우근(憂勤)이라는 두 글자를 마음에 새기고 하늘과 백성의 마음을 따를 방법을 강구해 왔지만 어느 한 가지 일도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 이 때문에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1799년 12월, 겨울 같지 않은 날씨에 천둥 번개가 계속되자 날이 밝기도 전에 신하들을 불러들인 자리에서 정조가 건넨 고백이다. 정조는 자신의 잘못 때문에 하늘이 경고하는 것이라며 어떤 질책과 건의든 달게 받을 테니 천재지변을 해소시킬 방법을 내놓지 못할까 걱정하지 말고 무슨 말이든 해달라고 하였다. 그 자리에 모인 신하들은 중직을 맡고 있는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큰 잘못을 범한 이들이라며 당장 내치고 벌해달라고 하였다. “경들은 자신의 잘못으로 돌릴 필요 없다. 모두 나 한 사람의 책임이다.” 자책하는 여러 신하들에게 건넨 정조의 답변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오늘 우리는 천재지변이 통치자의 잘못 때문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국민들을 보호하고 힘을 다해 돕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위가 높고 권한이 강할수록 책임도 커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상식만큼은 200여년 전이나 지금이 다르지 않다. 가슴 무너지는 국가적 재난들이 연이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은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내 책임입니다”라는 통회의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이것이 연일 광화문을 채우고 있는 분노의 궁극적인 원인이다.

20년 전, 즉위 3년차의 정조는 영릉 행차길에 남한산성에 묵은 적이 있다. 자신의 행차길에 가득 찬 남녀노소의 백성들을 바라보며 정조는 말했다.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내가 이번에 배를 타고 백성들에게 오면서 이 경계가 더 절실해졌다.” 물은 그저 낮은 곳으로만 흘러들어 늘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물이 배를 띄울 수도 뒤집을 수도 있음을 정조는 알았고, 20여년 동안 마음에 새겼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자신이 어디에 떠 있는지 모르기에 무엇을 책임져야 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통치자에게 물은 더 이상 인지와 경계의 대상이 아니라 살아 역동하는 실체적인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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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언급되는 것 중의 하나가 ‘양극화’다. 양극화는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짐’이라고 풀이된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라면 누구나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애써 막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이를 조장하여 거기서 이득을 보려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양극화가 불가피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경제성장이 둔화된 채 재벌이 세습되는 과정에서 이는 더욱 가중되어서,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출발선이 아예 다른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분노한다.

양극화가 경제적인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 이 시대의 진정한 아픔이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가눌 수 없는 슬픔과 분노로 이 사회 구석구석을 다른 눈으로 볼 수밖에 없게 된 이들과, 교통사고 가지고 뭐 그리 요란을 떠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거리는 이들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서로 점점 더 달라지고 멀어짐’이 존재한다. 100만 촛불을 두고 험한 말들을 해대는 분들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이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우리와 비슷해야 할 존재가 너무도 달라지고 멀어졌을 때 그들을 우리는 ‘괴물’이라고 부른다. 연일 뉴스에서 만나야 하는 그 괴물들에게는 아무런 죄책감도 자기 성찰도 없다. 이미 엄청난 재산을 손에 쥐고 있지만 이권 하나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 법망을 피해 아무렇지도 않게 뒷돈을 찔러줄 수 있는 이들이다. 그 돈이 산업재해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을 씻어주고도 남을 만큼의 액수라는 데에 분노하는 이들과,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만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사이에는, 너무도 머나먼 거리가 존재한다.

‘면이무치(免而無恥)’라는 말이 있다. 도덕과 예의가 아니라 행정과 형벌로만 단속하면 백성들이 법망만 피해갈 뿐 부끄러움이 없어지게 된다는 공자의 말에서 비롯되었다. 범법행위 자체보다도 바로 그 부끄러움 없는 표정과 답변 때문에 누군가는 치가 떨리는데, 평생 법으로 먹고살아온 그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말만 안 하고 그 자리를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까지고 피해갈 수 있을 만큼 우리의 사법이 엉성하지는 않다고 믿는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 도덕과 예의에는 자비와 긍휼이 있지만 법에는 없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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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천재지변을 만났을 때 전하께서 통치의 잘못은 없었는지 반성하고 바로잡기를 그 당시 애절하게 내리셨던 말씀만큼만 하셨더라도 오늘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뒤로도 실제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으니, 일이 있을 때마다 내리신 말씀들 역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만, 신은 ‘하늘이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사람 역시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래 들어서는 전하께서 조언을 구하셔도 신하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 호응하지 않습니다. 전하의 말씀에 애초부터 진정성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얼마 전에 사헌부의 지적에 대해서 전하께서는 사실과 다르게 전달된 것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당시에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만, 사헌부의 보고가 맞았음이 요사이 밝혀지고 말았습니다. 신은 전하의 진실하지 못함이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실상을 열어 보여서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면 되는 일이었는데도 끝내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셨습니다. 그러니 어디든 밝히 보는 하늘이 어찌 전하를 돕겠습니까?

궁궐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밖에서 알 수도 없고 알 일도 아닙니다만, 총애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하께서 감추시면서 이 사실을 지적한 신하를 다른 죄에 얽어서 처벌하셨다고들 합니다. 전하께서 개인적으로 총애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이 무슨 문제가 되겠으며, 무엇하러 그것을 숨기시겠습니까. 그래서 신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억측하는 것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런 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겠습니다. 새어나온 사실들만도 이러한데, 저희의 이목이 닿지 않는 궁궐 깊숙한 곳의 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 전하의 교만과 사치, 음란과 방탕, 원한과 승부욕이 극에 달하여 저 망국의 군주들처럼 되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김창협이 1686년 숙종에게 올린 상소문의 일부다. 한문을 번역하고 소개하는 데에는 많은 품이 든다. 시대가 다르고 문화와 통념에 거리가 있어서 말을 옮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330년이 지난 상소문을 소개하면서 별도의 해설이 필요하지 않음을 느끼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슬픈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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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연일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절로 나오는 의문이다.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도 않았던 일들 하나하나가 사실로 드러나는 것을 보는 것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엄청난 아픔이고 절망이다.

정권 말기에 권력자 주변의 전횡이 밝혀지곤 하는 것은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풍경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렇게 분노를 넘어서 아픔과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나름대로 이루어왔다고 생각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근간이 속속들이 무너져 내려 있는 암울한 현실을 목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농단(壟斷)은 본디 시장 주변에 높이 솟은 언덕을 뜻한다. 다들 소박해서 그저 남에게 팔 만한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자기가 필요한 물건과 맞바꾸던 시절에 어떤 장사꾼이 농단 위에서 내려다보고 이리저리 다니며 모든 이익을 독차지한 데서 비롯하여, 이익이나 권력을 무단히 독점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맹자는 이 일이 시장에서 세금을 걷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달리 보자면, 소수의 농단에 의해 다수가 피해를 입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규제와 제도가 발생한 셈이다. 국가가 필요한 이유 역시 남보다 유리한 조건을 소수가 독차지하지 않도록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국가가 오히려 농단을 조장하고 주도했으며, 그것이 거의 아무런 저항도 없이 여기저기서 자행되어왔다는 증거들에 직면해 있다.

이 유례없는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는 출발점이 철저한 진상 규명과 성역 없는 처벌에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 도처에 솟아 있는 농단들이다. 권력만 등에 업으면 언제든 올라갈 수 있는 농단들을 그대로 둔다면, 대다수 국민들은 아랑곳없이 자기 이익만을 위해 그 위에 올라가 설쳐대는 정치인과 관료, 언론, 검경, 문화계 인사, 그리고 재벌들을 우리는 계속 보아야 할 것이다. 이번에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대한민국의 악취 나는 몸뚱이를 직시하고, 암 덩어리를 베어내듯이 곳곳에 솟아 있는 농단들을 제거하는 대수술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불가능한 민주공화국을 다시 만들어 가는 것만이, 이 부끄러운 역사를 되돌릴 수 있는 길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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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줄 끊어지자 진면목이 드러나고 도깨비들 햇빛 비치자 소굴 찾아 숨는구나.” 조선 경종 때 목호룡이 이희지의 작품이라며 고변한 시의 일부다. 진위와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 시는 엄청난 피바람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고변한 측의 풀이는 이렇다. 경종이 모든 처분을 스스로 하지 못하고 두 명의 내시에게 의지했는데 그 내시들이 처벌되자 결국 본색을 숨기지 못하게 되었고, 주변의 음흉한 무리들도 다 숨을 곳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시가 당나라 한유가 영정(永貞) 연간의 상황을 그린 <영정행>의 모티프를 차용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영정행>은 무능한 임금과 그에 빌붙어서 잇속만 챙기는 이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당시 순종은 중풍을 앓아서 벙어리가 되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궁궐 깊은 곳 휘장 속에만 들어앉아 있었다. 모든 정사는 내시 이충언과 궁녀 우씨를 통해 이루어졌고, 그들 주변에는 뇌물과 비리, 협잡이 가득했다. 한유는 그 상황을 여우와 올빼미의 울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머리 둘 달린 뱀이 출현하는 을씨년스러운 광경으로 묘사했다. 이희지의 작품으로 지목된 <속영정행>에서도 옛적 영정 때의 일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다면서 제 세상 만난 듯 날뛰는 소인배들을 여우와 올빼미에 비유하였다.

무능한 왕도 문제고 그 왕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한 내시도 문제지만,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적절히 이용하면서 자기 권세를 누린 영악한 대신들이야말로 천벌을 받아 마땅하다. 왕이 아무리 괴승 신돈에게 놀아났다고 해도, 고려가 멸망한 결정적인 원인이 신돈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권력을 휘둘러온 이들에게 책임도 묻는 것이 마땅하지만, 역사는 대개 그렇게 흐르지 않는다. 내시를 쳐내고 왕을 바꾸고도 여전히 다른 모양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그들의 속성이다.

음침한 여우 울음소리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내고 있다. 죄 없는 이들에게 부끄러움마저 안기는 이 시대에, 그 원인을 만든 이들이 또다시 새로운 권력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이합집산하도록 둬서는 안된다. “어느 집 여자 무당이 새 귀신에게 기도하는지, 봄날 밤 거리에 나앉아 질장구 두드리며 노래하네.” <속영정행>의 구절이 다른 의미로 심장하게 다가온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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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최순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식(耳食)이라는 말이 있다. 소동파가 견양 지방의 돼지고기 맛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사오게 했는데, 돌아오는 길에 술에 취해서 끌고 오던 돼지를 잃어버리고는 동네 돼지를 사다가 바쳤다. 그 사실을 모른 손님들은 요리를 맛보고서 역시 견양 돼지는 다르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이처럼 평판에 가려서 실질을 보지 못하는 것을 두고 귀로 먹는다고 한다.

조선시대 하징이라는 사람이 땅딸막하고 절룩거리는 말 한 마리를 헐값에 샀다. 절룩거리던 다리는 어느새 치유되었고 그 짧은 다리로 잘도 걸어서 하루에 수백 리를 갈 정도였다. 하도 볼품없고 특이하게 생겨서 지나는 이들이 가리키며 구경하기에, 하징은 장난삼아 일본에서 들여온 ‘왜당나귀’라고 말했다. 그러자 다들 갑자기 관심을 보이며 큰 값을 치르고 사겠다며 몰려들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사실대로 말해주니 아무도 돌아보지 않더라는 것이다.

이 두 이야기에서 헛된 이름에 현혹되지 말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은 소중하다. 그러나 문제는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질이 없다는 데에 있다. 하징의 이야기를 기록한 조구명은 이렇게 반문한다. ‘왜당나귀’라는 이름이 거짓이라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그 이름이 거짓이라고 해서 하루에 수백 리를 갈 수 있는 능력마저 돌아보지 않는 자들이 어리석은 것 아닌가? 능력만 있다면 ‘왜당나귀’가 아니라 ‘오추마’ ‘적토마’라는 이름을 붙인다 한들 무슨 문제가 있는가? 가짜 견양 돼지처럼 실질이 없이 이름만 있다면 사기지만, ‘왜당나귀’처럼 실질을 갖추고 있다면 이름은 빌려오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직함 하나 바뀌면 대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브랜드 가치가 얼마나 큰 자산인지 실감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스토리가 곁들여질 때 음식의 맛도 살아나는 게 사실이다. 우리의 눈과 귀를 하루 종일 지배하는 온갖 형태의 광고들이야말로 ‘귀로 먹게 만드는 산업’이다. 이름의 과잉시대를 살수록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름에 값하는 실질이다. 듣도 보도 못한 재단 이름들이 갑자기 여기저기서 거론되더니 그 뒤로 생소한 이름들이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실질이 있다면야 이름이 낯설다는 게 무슨 문제겠는가. 그러나 실질 없는 이름에 무소불위의 권력이 더해진다면 그건 사기다. 그것도 엄청나게 공포스러운.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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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늙은 말이 소금수레를 끌고 태항산을 오르는데, 아무리 안간힘을 써 봐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한다. 그때 지나가던 어떤 이가 이 모습을 보고는 다가가서 그 말을 어루만지며 통곡하고 옷을 벗어 걸쳐 주었다. 그러자 늙은 말이 머리를 치켜들고 하늘을 찌를 듯이 슬프게 울부짖었다. 이 말은 본디 천리마인데,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평생 소금수레만 끌며 늙어간 것이다. 형편없는 몰골을 한 이 말이 천리마인 줄을 알아보고 통곡한 사람은 말을 잘 감별하고 조련하기로 유명했던 백락이었다. 인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인재를 알아볼 백락이 없는 것이 불행이라며 인재 발굴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거론되곤 하는 이야기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런데 장자(莊子)는 이 이야기를 다르게 비튼다.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며 들판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것이 말의 본성이다. 그런데 백락이라는 자가 나타나서 좋은 말을 가려내어 명마로 키운다면서 편자를 박고 굴레를 씌워 먹이와 채찍으로 길들이는 바람에 그 본성이 망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기준을 정해두고 인위적으로 맞추려 함으로써 불행이 야기됨을 경계하는 맥락이다. 다들 천리마에만 눈이 가 있을 때 장자가 본 것은 재능이나 의사와 무관하게 천리마로 길러지다가 죽고 버려지는 대부분의 말들이다.

개선하려는 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과 사회는 여전히 편협한 기준에 의한 줄서기를 요구하고 있다. 재능과 관심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들은 일찌감치 차단되어 버린 채 이른바 ‘주요 과목’의 비중만 오히려 더 커졌으며, ‘서열 높은’ 대학, ‘인기 있는’ 학과와 ‘안정적인’ 직장의 관문은 점차 더 좁아져 간다. 백락이 없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천리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과 불안에 내몰리기 때문에 불행하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이 21세기라는 데에 있다. 어제의 손익계산서가 금세 휴지 조각이 될 정도로 급변하는 이때에, 그다지 창의적일 필요도 없고 그저 당장 안정적인 것처럼 보일 뿐인 진로로 우수한 인재들이 몰린다면 이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청년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게 하고 그 기회비용을 국가사회가 파격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백락 없이도 저마다 천리마가 되어 내달릴 수 있는 장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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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중화의 문명은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피 흘리는 전쟁을 멈추게 하였으니 그 누구보다도 인(仁)한 사람이다.” 공자가 이토록 높이 평가한 사람은 바로 관중이다. 주나라 왕의 힘은 약해지고 제후들이 저마다 세력을 키워서 분열과 혼란이 극심해지던 춘추시대,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제후국들의 질서를 잡고 외세의 침략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 제후들을 패자(覇者)라고 부른다.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첫 번째 패자로 만든 인물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창고가 가득 차면 예절을 지키게 되고,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하면 영예와 치욕을 가려서 행동하게 된다”는 자신의 말처럼, 제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관중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백성들이 먹고살 생업과 거처를 마련해주는 일이었다. 공자나 맹자 역시 민생을 보장하는 것이 정치의 출발이라고 말했지만, 관중처럼 현장과 실용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공자는 관중의 공로를 인정하면서도 그릇이 작고 예를 모른다고 비판했는데, 관중이 전승되던 가치보다 현실적인 효용을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 차이를 가장 크게 보여주는 것이 “보통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보통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관중의 원칙이다. 맹자도 “백성과 함께 즐겨야 함”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위에서 아래로 베풀어지는 은덕이자 교화의 결과이다. 그러나 관중이 강조한 것은 민간에서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이루어줄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보통사람들의 바람과 동떨어졌거나 이해시키기 어려운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절차를 통해서 정치권력을 쥔 이들이, 정작 그들을 뽑아준 보통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애초에 알 수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이는 왕정시대보다 더 큰 불행이다. 물러섬 없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는 자세가 미덕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민의를 대변하며 그 바람을 실현시켜가야 할 정치인이 보통사람으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신념의 권좌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설혹 그 신념이 옳다 하더라도, 때로는 내주는 것이 얻는 것임을 아는 것이 정치의 보배다. 역시 관중의 말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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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먹는 사람은 그 열매 맺은 나무를 생각하고,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 물이 나온 근원을 떠올린다.” 여기서 유래한 ‘음수사원(飮水思源)’은 일상의 사소한 것을 누리면서도 그 근본을 잊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말을 백범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던 데에는 아마도 이 구절의 원출전인 <징조곡(徵調曲)>의 작가 유신(庾信)의 일생에서 느낀 바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망국의 시름을 품고 적국에 사로잡혀 살았던 유신은, 그의 재주를 아낀 적국 왕의 극진한 예우에도 불구하고 28년 동안 조국을 잊지 못하며 슬프고도 아름다운 명편들을 남겼다. 머나먼 중국 땅에서 비장하게 활동하던 백범의 마음 역시 늘 조국에 있었을 것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한·중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시진핑 주석이 백범의 아들 김신 장군이 항저우 인근 방문 때 “음수사원 한중우의”라는 구절을 남겼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중국이 한국의 임시정부를 지원해준 점을 거론하여 항일 전선에서 함께한 우군이었음을 상기시킴으로써 한·미·일 공조를 은근히 비판하는 뜻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2년 전 서울대 강연에서 임진왜란 때 함께 일본과 맞섰던 역사를 언급한 전례에서도 시 주석의 의도한 바를 유추할 수 있다.

이어진 회담에서 시 주석이 말한 구동존이(求同存異)는 함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어 추진하고 서로 다른 부분은 남겨둔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른 부분도 바꾸어가자는 뜻의 구동화이(求同化異)로 답했다. 진정한 관계 개선의 측면에서 보자면 박 대통령의 발언이 진일보한 것이다. 다만, 서로가 말하는 ‘다른 부분’이 무엇이고 과연 변화 가능한 것인지가 중요하다. 중국과 우리의 입장이 같을 수 없는 지점이 적지 않겠으나, 현안으로 말하자면 사드 배치 문제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경고하면서 그러나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있음을 선포하였다. 자신이 지킬 수 있는 말을 하고 우리의 결단을 요구한 것이다. 그에 비해 구동화이는 우리 의지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상대에게 어떤 압박도 줄 수 없는 말이다. “나의 넓지 않은 어깨에 오천만 국민의 안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밤잠을 자지 못하며 걱정하고 있다”는 말에 아무리 진정성이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그 호소가 과연 외교적 언사로서 적절한 것이었는지 의심스러운 것도 그 때문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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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를 흔든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손에 들고 흔드는 국기(國旗)로 오인하는 분은 없겠지만, 국기(國基)인지 국기(國紀)인지를 두고는 생각이 다르거나 뒤섞이는 것 같다. 

“저출산으로 흔들리는 국기를 강력한 정책으로 바로잡아주길 기대한다”는 22일 더불어민주당의 논평에서는 ‘나라를 이루고 유지하는 기초’라는 의미의 국기(國基)를 사용한 셈이다. 

그러면서 “국기를 흔드는 일에 무엇보다 발 빠르게 대처해 온 대통령이 왜 이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는가”라고 비판하였는데, 이 경우는 원래 국기(國紀), 즉 ‘나라의 기강’을 두고 말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기 문란을 문제 삼은 사안들이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우병우 비리 의혹 관련 감찰 내용 유출 등 정권의 권위와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경향신문 DB

국기(國基)를 굳건하게 다지고 오래도록 유지하는 일이 정치의 본질이지만, 안정된 국정 운영을 위해서 흔들림 없는 국기(國紀) 역시 필요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진정한 국기(國紀)가 무엇인지, 그것을 바로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행하는 데에 있다. 

<중종실록>에 인용된 홍문관의 상소문에서는 국기(國紀)를 세우는 방법으로 사기(士氣), 즉 선비의 기개를 흥기시켜야 함을 들었다. 걸핏하면 시끄럽게 반대만 일삼는다는 구실로 선비들을 억누르고 한 방향으로 끌고 가려고만 든다면, 마치 만취한 사람을 지나치게 부축하다가 반대로 몸이 쏠려 쓰러지고 마는 것처럼 역효과를 낼 뿐이라고 했다. 선비들이 주눅 들어 눈치 보며 부화뇌동이나 하고 불의를 보고도 입을 다물게 된다면 사회가 침체되고 부패하여 국기가 어지러워질 것이며, 그렇게 되면 국기는 무너지고 만다. 오히려 선비의 기상을 북돋워주고 염원을 이루어주며 조금 거칠더라도 강직한 이들을 포용해야 나라의 기강이 제대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정을 맡을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을 가리키는 국기(國器)라는 말도 있다. 나라의 근간인 국민들이 기본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국기(國基)가 탄탄한 나라, 특정인과의 친분에 연연하지 않고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국기(國紀)가 투명하게 서 있는 나라, 오를 만한 자리에 오른 국기(國器)들이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주는 나라, 그런 나라를 꿈꾼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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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모 대학에서 기숙사 냉방시설 설치를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얼음 덩어리를 공급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냉동기술이라는 것 자체를 상상할 수 없던 시절이라면 한여름의 얼음 한 덩어리가 주는 시원함이야말로 비길 데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겨울에 얼음을 떠서 빙고에 보관했다가 한여름에 반포해주는 제도가 왕의 권위와 은혜를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벌빙지가(伐氷之家)’가 권세가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 것은 국가에서 고위 관료들에게 얼음을 나눠준 오랜 전통에서 유래한다. 한여름에 얼음을 사용하는 것은 그 시절 아무나 누릴 수 없는 호사였다.

그러나 이런 여름날의 호사와 함께 떠오르는 장면이 한겨울 얼음 뜨는 현장이다. 서울의 세 빙고에 한 해 보관한 얼음의 양만 해도 20만정에 이르렀다. 이 많은 얼음을 뜨는 노역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김창협은 ‘착빙행’이라는 한시에서 한여름 높은 누대에 앉아 얼음으로 더위를 잊으며 흥겹게 즐기는 고관대작들의 모습을 보며, 더위 먹고 길가에 널브러져 죽어 있는 백성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바로 지난겨울 꽁꽁 언 한강에서 매서운 추위 가운데 옷도 변변히 못 입은 채 얼음 뜨는 노역에 종사하던 이들이기 때문이다.

예년보다 심하고 긴 무더위에 다들 힘겨워하는 가운데, 역대 최고 더위로 1994년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온열질환 사망자 3384명이라는 기록이 당시의 상황을 말해준다. 예상치 못한 더위가 워낙 대단했고 냉방시설과 의료 환경이 지금보다 많이 부족했던 여건도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아무리 더워도 야외활동을 쉴 수 없는 일에 종사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데 있었을 것이다. 20여년 전보다 냉방과 의료 기술이 대폭 발전해서 눈에 띄는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급감했다. 하지만 더 불안해진 고용과 앞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현실이 무더위보다 더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하루에 16시간씩 400~500개의 물건을 배달하다 안타깝게 과로로 돌아가신 택배기사 분도, 대기업 택배회사 소속이 아니라 그 회사와 계약을 맺은 대리점과 다시 개인사업자로서 계약을 맺고 일하던 ‘특수고용직’ 신분이었다고 한다. 을도 아닌 병, 정, 무의 처지로 내몰린 분들에게, 이 무더위는 어떤 얼음으로도 식힐 수 없을 만큼 가혹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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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딸을 시집보내면서 이렇게 가르쳤다. “반드시 남모르게 돈을 모아라.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서 오래 눌러사는 건 행운이고, 대개는 내쫓기게 마련이다.” 딸이 그 말대로 몰래 돈을 모으다가 시어머니에게 들통나서 쫓겨났다. 그런데 딸이 시집갈 때보다 갑절이나 많은 돈을 숨겨가지고 돌아오자, 아버지는 자신의 지혜 덕분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해 두고 한비자(韓非子)는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남의 신하가 되어 관직에 나가 있는 자들이 모두 이와 같다.”

(출처: 경향신문DB)

남보다 높은 지위에 올라 특별한 대접을 받는 이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직분과 책임이 따른다. 그런데 본분은 망각한 채 나라가 망하든 말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자기 배 불리는 데에만 혈안이 된 자들이 너무도 많음을 비판한 것이다.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모든 원칙에 앞선다. “고관대작의 신하들이 군주의 얼굴빛만 살피며 복종하느라 모든 일을 정상에서 벗어나게 처리한다면, 그 나라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다.” 관포지교의 주인공 관중의 사상이 담긴 <관자(管子)>에 나오는 말이다.

나라가 망할 징조는 그 밖에도 많다. 군주가 고집이 강해서 남과 화합하지 못하고 건의하는 사람과 대결하여 이기려고만 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군주가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면서 자화자찬만 늘어놓고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군주가 실제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자신이 선발해서 요직에 앉힌 특정인들만을 창구로 삼아 판단한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먼 나라와의 동맹을 믿고 가까운 나라를 등한히 하며 강대국의 구원을 기대하여 이웃 나라를 얕본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권세 있는 신하들을 통해서 관직을 구할 수 있고 뇌물을 써서 이권을 얻을 수 있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자신의 재산과 가족을 해외로 빼돌려 둔 자가 높은 자리에 올라서 정치를 좌우한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일반 백성이 재상을 신뢰하지 못하는데 군주가 그 재상을 신임하여 감싸고돈다면 그 나라는 망하게 된다. 모두 한비자가 말한 ‘망국의 징조’들이다. 물론 요즘 이야기는 아니고, 그저 군주가 다스리던 시절의, 2000년도 더 된 옛날이야기일 뿐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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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 부자가 있었다. 아비 도둑의 기술을 열심히 배운 아들 도둑이 다른 도둑들의 칭송에 자신이 최고인 양 우쭐해했다. 아비 도둑은 “아직 멀었다. 스스로 터득한 것이 아니지 않으냐”라고 말했지만 아들 도둑은 건성으로 들어 넘겼다. 어느 날 아비 도둑은 아들 도둑이 보물을 챙기는 동안 창고 문을 밖에서 잠그고 가 버렸다. 갇혀버린 아들 도둑은 쥐가 물건 갉는 소리를 내서 주인이 쥐를 쫓으려 문을 여는 순간을 이용해 빠져나왔고, 돌을 연못에 던져 물에 뛰어든 것으로 위장함으로써 가까스로 도망쳤다. 자신을 원망하는 아들에게 아비 도둑은 말했다. “남에게 배운 기술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으로 터득한 것은 무궁하게 응용할 수 있는 법이다. 너를 궁지로 몬 것은 너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서였고 너를 함정에 빠뜨린 것은 너를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이제 너는 천하제일의 도둑이 될 것이다.”

ⓒ 경향신문DB

강희맹이 아들에게 준 글이다. 왜 하필 도둑 이야기일까?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어려운 것이 부모와 자녀의 관계다. 세대가 다르고 관심과 바람이 다른 부모와 자녀가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기란 쉽지 않다. 강희맹은 이 글을 쓰면서 “과감하게 직접 훈계하지 않고 속된 이야기를 통해서 뜻만 살짝 내비친 것은, 부모 자식 간에는 말을 부드럽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각자의 의도와는 달리 깊은 상처를 주기 쉬움을 경계한 것이다.

강희맹의 집안은 대대로 고관을 지낸 명문가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남들이 치켜세워주는 대로 기고만장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올 때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 것임을 잘 알았다. 어려움 없이 자라 이미 세상의 인정을 받기 시작한 자녀에게 도둑 부자 이야기를 건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굳이 일부 재벌가의 추문을 떠올릴 것도 없이, 부와 교육의 세습이 점차 고착화되면서 어려움을 딛고 터득한 실력이 아니라 좋은 환경에서 잘 배운 덕분에 높은 지위에 오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비 도둑처럼 자녀를 일부러 곤경에 밀어 넣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곤경 가운데 스스로 터득하는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낮은 자리에 거하며 내면의 실력을 다져가라는 권면은 오늘 우리의 자녀에게도,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유효하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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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왕이 폭군 주왕을 정벌하려고 나서는데 처음 보는 두 사람이 말고삐를 당기며 만류한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기 전에 전쟁을 일으키니 효성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까? 신하로서 군주를 시해하려 하니 어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무왕의 통치를 거부하고 굶어죽은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다. 고결하게 절의를 지킨 인물의 대명사로 오늘 우리에게까지 잘 알려진 이들이지만,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르려 비장하게 출발하는 군대의 입장에서는 권위를 무너뜨리고 사기를 해치는 방해꾼일 뿐이다. 무왕 곁의 군사들이 백이와 숙제를 죽이려 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왕을 보좌하던 강태공이 나서 말리고 보호하지 않았다면 이들은 허망하게 죽고 말았을 것이며 그 이름이 후세에 전해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들을 죽여서는 안되는 이유를 강태공은 한마디로 표현했다. “이분들은 의인이다.”

경향신문DB

사마천은 왕과 제후들의 역사로 이미 연대기적 기록이 완료된 <사기>에 다시 개별 인물들의 삶을 다룬 70편의 <열전>을 더하면서 백이와 숙제 이야기를 머리말처럼 얹었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어떤 이들은 자손 대대로 잘 먹고 잘사는데, 이처럼 훌륭한 의인은 왜 그리 비참하게 굶어죽어야 했는가? 도대체 하늘의 올바른 뜻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사회를 살아내야 하는 오늘,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의인의 소식을 접하면 우리는 무한한 존경심과 부끄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의인은 이상적인 인간이지만, 많은 의인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있다면 누군가의 뼈저린 희생이 아니라 정상적이고 적절한 시스템에 의해서 충분한 도움을 받아야 온전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재난이나 참사와 관련해 의인이라는 말이 유독 많이 들리는 것은, 그만큼 국가의 기능이 온전치 못함을 의미하는 셈이다.

묵자(墨子)는 의인이 윗자리에 있으면 세상이 안정된다고 했다. 자신을 희생하며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의인이 그에 합당한 대우는커녕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통과 수모 끝에 쓸쓸히 숨져갔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국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 있기는 한가?” 민간잠수사 고 김관홍님. 의인의 이름을 기억에 새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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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지독한 게으름뱅이가 있다. 하도 안 씻어서 머리가 헐고 몸에 부스럼이 나는데도 게을러서 그냥 그렇게 지낸다. 방에서는 앉아 있는 게 귀찮고 길에서는 걸어 다니는 게 귀찮다. 그저 허수아비처럼 두 다리를 쭉 뻗고 멍청히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게으름도 질병 수준인데, 주변에서 아무리 말하고 치료해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어느 날 그를 고쳐보겠다는 ‘부지런쟁이’가 나타났다. 오랜 공부 끝에 깨달은 바가 있어 세상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백성들을 잘살게 하려고 쉴 틈 없이 일했던 성군들처럼, 만물을 낳고 기르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 저 하늘처럼 부지런하게 살아야 마땅하다며 게으름뱅이를 가르치려 들었다. 게으름뱅이는 게을러빠진 눈을 멀겋게 뜨고 이야기를 듣다가 피식 웃고는, 배워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며 한마디 한다. 그래 봐야 하루 종일 허덕거리며 일만 하다가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잠꼬대나 하다 보면 또 아침이 되곤 하니, 그런 부지런함이 무슨 소용 있느냐며 부지런쟁이를 내쫓아버렸다.




부지런쟁이가 한참 생각하다 아이디어를 떠올리고는, 맛난 술과 멋진 음악을 준비해서 다시 찾아갔다. 오늘처럼 좋은 날을 함께 즐기고 싶어 왔다고 말하자, 게으름뱅이는 반갑게 웃으며 부리나케 일어나더니 어느새 대문 밖까지 뛰어 나왔다. 수십년의 게으름이 일시에 모조리 없어져 버린 것이다. 둘은 껄껄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 뒤로 게으름뱅이는 평생 부지런하게 살았다고 한다.

성간(1427~1456)이 자신을 빗대어 지은 <용부전(용夫傳)>인데, 참 묘한 글이다. 부지런함을 권고하는 것도 아니고 게으름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게으름뱅이가 평생 부지런하게 살게 되었다는 게 결말이지만, 그 부지런함이 애초에 부지런쟁이가 말한 부지런함은 아니다. 이미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경계는 의미가 없다. 나도 모르게 그리로 가게 되는 즐거움.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거기에서 행복은 결정된다. 쳇바퀴 도는 삶처럼 목적을 상실했다면 우리의 부지런함은 그저 그만큼의 고역일 뿐이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즐거움이 있다면 부지런함은 그대로 기쁨일 것이다.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부지런한가? 그래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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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몸만 생각하는 소인들도 집이 있고 저 형편없는 이들도 녹봉이 있거늘, 복 없는 백성들에게 하늘이 화를 내리네. 부자들이야 어떻게든 괜찮지만 외롭고 곤궁한 이들이 애처롭구나.” 음력 4월에 서리가 내림을 근심하여 지은 ‘시경, 정월’ 시의 마지막 부분이다. 어려운 시대를 한탄하던 시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의지할 곳 없는 이들이다. 안정된 생활의 터전도 없고 정기적인 보수도 보장되지 않는 이들. 예로부터 재해와 사고는 유독 그런 이들에게 닥치곤 한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19세 청년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정해진 수칙을 지키지 않은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가거나 어디서든 있을 수 있는 사고일 뿐이라고 덮어둔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물어야 할 책임이 눈앞에서 증발해 버리는 장면을 또다시 목격하게 되고 말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래 일련의 사건들이 슬픔을 넘어 무서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많은 무고한 희생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래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 이 사회 자체 때문이다.

서울시 지하철이 이원화되고 기본적인 안전 관리까지 외주를 주면서 발생하게 된 여러 문제들에는 이런저런 속사정이 있을 것이다. 다만 그 근간에 흐르는 것이 효용성과 편의성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를 위한 경쟁적 입찰과 하청의 과정에서, 마땅히 누군가 져야 할 ‘책임’ 역시 단계별로 끊기고 업무별로 쪼개져서 이윤의 극대화라는 지상 목표 아래 공중분해되어 어디 가서도 물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와 사고는 아무런 결정권 없이 현장에서 주어진 일에 헌신하던 비정규직 저임금 용역들에게 닥치곤 하는 것이다. 산재사망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옛 성군 문왕은 홀아비, 과부, 고아, 독거노인을 먼저 챙겼다고 한다. 경제능력이 취약하고 사회관계까지 단절되어 나라의 보호가 꼭 필요한 이들이다. 올바른 정치를 실현한 결과 이들에게까지 복지의 혜택이 이르게 한 것이 아니라, 이들을 챙기는 일을 정치의 시작으로 삼았다.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이야말로 높은 자리에 올라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든 기업이든 결정권이 많은 지위에 이를수록 책임도 커져야 한다. 그것이 마땅하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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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변방의 진(秦)나라가 180여년간의 전국시대를 끝내고 천하를 통일한 것은 진시황만의 공이 아니다. 그보다 120년 전 상앙(商앙)의 내정 개혁을 통해 강력한 나라로 발돋움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효공이 상앙의 정책에 매우 만족하면서도 반발을 우려하여 선뜻 시행하지 못하자, 상앙이 말했다. “선각자는 원래 세상의 비난을 받게 마련입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모두가 혜택을 누리게 될 테니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상앙이 단행한 개혁의 핵심은, 능력과 실적에 의한 신분 변동, 군사조직과 토지제도의 혁신, 철저한 상벌을 통한 법치의 실현 등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법령을 적용하고 부세를 공평하게 하여 백성에게 신뢰를 주었다. 자발성이 아니라 엄격한 상벌로 강요된 신뢰이기는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그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용한 셈이다. 결국 상앙 덕분에 진나라는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상앙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는 새로운 법령을 위반한 이들은 물론 법령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처형하였고, 이때 만든 정적들에 의해 자신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법치의 성과는 얻었지만 사람의 마음을 잃은 것이다. 상앙이 말한 개혁이 자신의 선각자적인 식견과 판단을 믿고 따라만 오면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게 해 줄 텐데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는 으름장과 함께 던져지는 것이라면, 그렇게 해서 얻는 것이 이익이든 통일이든 그 어떤 대단한 것이든 간에, 섬뜩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협치(協治)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상앙의 시대와는 달리 민주주의가 제도화된 지금 협치라는 신생어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삼권분립과 의회정치의 기본만 지켜진다면 굳이 언급할 것조차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을 넘어서 민간 부문과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통치 방식을 지향하는 뜻이라면 참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이 말이 투표로 드러난 민의를 무시하고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벗어나서 정치세력 간의 협잡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사용된다면, 더구나 협치의 이름 아래 선각자적 오만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모든 독재자는 선각자의 이름으로 나타나곤 했음을 역사가 말해준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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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축구선수 베켄바워가 한때 세계를 재패했던 것은, 경기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경기의 흐름을 창의적으로 주도했기 때문이다. 수비수이면서 위치에 구애 받지 않고 활약하는 것을 이르는 ‘리베로’가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이제 특정 선수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수시로 위치를 넘나드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현대축구의 추세다.

공자가 말한 ‘군자불기(君子不器)’는 특정한 용도에 국한되는 그릇이 아니라 어느 자리에나 두루 쓰이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는 분야별 전문성을 간과하고 실용 지식을 천시하는 현상을 낳을 여지도 있다. 막스 베버는 바로 이 점을 동양에서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한 이유의 하나로 들었다. 20세기를 거치며 동양에서도 전문가와 기술자가 각광을 받기는 했지만, 전문성을 바탕으로 하되 분야를 넘나드는 통섭이 다시금 강조되는 지금이야말로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총괄적인 식견과 포용의 덕망을 갖춘 인물이 더욱 필요하다.

학문의 분야와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야 하고, 대학사회의 과감한 자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학문의 변화가 충분히 진행된 뒤에 그 신중한 반영으로서 시도되어야 할 교육의 변화가, 정부의 재정지원 사업요강을 기준 삼아 졸속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다. 어느 분야는 21만명이 남아돌고 어느 분야는 21만명이 부족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 자체도 신뢰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를 근거로 근 백년에 걸쳐 이루어진 교육과정을 두어 달 만에 뚝딱 바꾼다면 이것이 야기할 결과는 또 누가 예측하고 책임질 수 있겠는가. 당장의 산업수요에 맞춤형으로 신설되는 학과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제한적인 용도 이외에는 무용지물이 되기 쉽고, 숙성되지 못한 채 급조된 융합학과는 통섭이 아니라 접합에 그칠 공산이 클뿐더러 본래 있던 전문성의 장점마저 버리는 꼴이 되지 않겠는가.

리베로는 자유인을 뜻한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여는 안목이 필요하다. 기성의 틀이 변화되면 언제 폐기될지 모를 지식만을 전수하며 취업률에 연연하는 교육으로는 이런 인재를 키울 수 없다.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설계하고 사회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낼 비전을 스스로 찾아가는 자유인을 위해서, 대학은 존재한다. 그래야 한다.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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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활(迂闊)하다’는 말이 있다. “사리에 어둡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뜻이다. 우활하다는 평을 달고 산 이가 맹자다. 각 나라가 부국강병에 혈안이 되어 있던 전국시대,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묻는 위나라 왕에게 맹자는 대뜸 “왕은 어찌 이로움밖에 모른단 말입니까? 오로지 사랑과 정의가 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위나라 왕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번번이 전쟁으로 땅을 빼앗겼고 그 와중에 맏아들마저 잃고 말았다. 당장 억울함을 되갚고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강한 나라가 필요했다. 그런 왕에게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여 백성들을 감화시키다보면 국익과 병력은 저절로 딸려오게 마련이라고 답했으니, 우활하다는 평을 듣고도 남을 만하다.

맹자의 해법이 과연 당시 상황에서 적절한 것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옳음과 이로움 사이의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었다. 그 무엇을 위해서든 간에, 사람이 사람답지 못한 상태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맹자에게는 있었다. 눈앞의 이로움을 얻기 위해서 원칙과 양심도 무시하고 부끄러움 따위 던져버릴 뿐 아니라 남에게 가해질 위험이나 아픔 따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건 이미 사람이 아니고 괴물이기 때문이다.

맹자는 물었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과 잘못된 정치로 죽이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고는 왕에게, 전쟁과 착취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왕궁의 가축들은 피둥피둥하다면 그건 가축에게 사람을 먹인 거나 다름없다는 직격탄을 날렸다. 과연 누가 천하를 통일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맹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 죽이기를 꺼리는 사람이 통일할 것이다.” 당시의 왕이란 사람 목숨 따위 안중에도 없는 이들뿐이므로, 누구 하나라도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왕이 있다면 바로 그 사람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우리가 각자도생의 무한경쟁에 내몰려서 혹은 첨예한 이권의 당사자로 혹은 적당하게 묵인하고 외면하는 동조자로 저마다 크고 작은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사이에, 꽃다운 생명들을 태운 배가 가라앉았고 여전히 그 차가운 물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맹자의 우활한 질문에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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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 제나라의 최저는 자신의 후처를 농락한 장공을 시해하는 난을 일으켰다. 이때 제나라 사관으로 있던 태사 백이 사실 그대로 “최저가 그 주군을 시해했다”고 기록했다. 이를 본 최저는 그를 살해했다. 관례에 따라 그 동생인 태사 중이 사관의 직분을 이어받았는데, 형의 죽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똑같이 기록했다. 그러자 최저는 태사 중도 살해했고, 이어서 사관이 된 태사 숙이 형들과 똑같이 기록하자 그 역시 살해했다. 세 형이 죽어나가는 것을 본 태사 계 역시 사관에 오르자 한 치의 타협도 없이 똑같이 기록했다. 최저는 사관들의 필봉을 한탄하면서도 막내마저 죽이지는 못했다.



사관들이 연이어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키려 한 것이 ‘역사는 오로지 사실 그대로 기록해야 한다’는 원칙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죽고 사건은 지나가도 역사만은 영원히 남으므로, 역사 기록은 그 자체로 명분을 바로세우는 일이며 후세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공자의 □□춘추□□ 이래로 난을 일으키는 신하나 패륜한 자식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라는 맹자의 말처럼, 동아시아에서 역사 서술의 이상은 적극적인 가치 판단이자 심판이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않음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내는 힘이었다.

하나만으로도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는 시기를 살고 있다.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건들 속에서 분노하고 흥기되었다가 이내 시들해지는 사이, 어마어마한 일들이 결말도 없이 지나쳐 갔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집권여당의 비밀문서 공개,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 책임지는 이 없는 세월호의 진상, 교육부의 전횡이 야기한 국립대 교수의 투신자살, 현역 실세들이 걸린 뇌물 게이트, 역사교과서 국정화….

왕정시대에 역사 기록이 불의를 기억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면, 이른바 민주사회의 주인들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투표가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난리통 같은 공천 파문들,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프레임들로 인한 무력감이 정치에 대한 환멸로 이어질 만하다. 그러나 마땅히 기억해야 할 것들조차 망각의 강으로 흘려보내고 만다면, 다시 어디서 희망을 말할 수 있겠는가. 기억이 변화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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