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알고 쓰는 말글'에 해당되는 글 202건

  1. 2016.12.30 작별 인사
  2. 2016.12.23 엉겁결
  3. 2016.12.16 하릴없다
  4. 2016.12.12 채신없다
  5. 2016.12.02 문외한
  6. 2016.11.25 겉잡다
  7. 2016.11.18 딴전
  8. 2016.11.11 한참
  9. 2016.11.04 선소리
  10. 2016.10.28 뇌졸중
  11. 2016.10.21 바쁜 와중에
  12. 2016.10.14 겻불과 곁불
  13. 2016.10.07 너무 많잖아
  14. 2016.10.04 조바심
  15. 2016.09.23 똘기
  16. 2016.09.09 책갈피와 보람
  17. 2016.09.02 직진남 등극?
  18. 2016.08.19 말본새
  19. 2016.08.12 폭염과 선잠
  20. 2016.08.05 치맥과 치느님

신문에 연재를 끝내며 작별 인사를 할 때 누구는 ‘감사합니다’, 누구는 ‘고맙습니다’라고 한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항간에 떠도는 ‘감사하다’는 일제강점기 때 들어온 일본식 표현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감사하다’는 <조선왕조실록>(1434) 등 옛 문헌에서 ‘感謝’나 ‘감샤’의 형태로 활발하게 쓰인 말이다.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쓰임새나 그 뜻에서 별 차이가 없다. 한데 많은 이들이 ‘감사하다’를 ‘고맙다’보다 격식을 갖춘 말로 인식한다. 해서 공적인 자리에선 ‘고맙다’보다 ‘감사하다’를 더 잘 어울리는 말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반면 ‘고맙다’는 가깝고 허물없는 사적인 자리에서 고마움을 나타낼 때 쓰는 말로 여긴다. 그래서인지 윗사람에게 ‘고맙습니다’ 하면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보다 예의가 없어 보인다고 느끼는 이가 적잖다. 하지만 ‘고맙다’가 ‘존귀’ ‘공경’을 뜻하는 우리말 ‘고마’에서 온 말임을 이해한다면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정서적 친근감으로 봐도 한자말 ‘감사하다’보다 고유어 ‘고맙다’가 훨씬 정겨움을 더해주는 말이다. ‘감사하다’와 ‘고맙다’는 단어 선택의 문제일 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는 점에서 한뜻이다. 상황에 따라 구분해 쓸 이유가 없다. 이번 회로 ‘알고 쓰는 말글’ 연재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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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한 나머지 예기치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갑자기 벌어지는 이런 상황을 가리켜 흔히 ‘엉겁결’이란 말을 쓴다. 한데 마지막 음절 ‘결’의 영향 때문인지 ‘엉겁결’을 ‘엉겹결’로 쓰는 사람이 적잖다. ‘엉겹결’은 틀린 말이니 주의해야 한다.

‘엉겁결’은 ‘엉겁’과 ‘결’이 만나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 ‘엉겁’은 끈끈한 물건이 마구 귀찮게 달라붙은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발이 진흙으로 엉겁이 되었다’처럼 쓰는 그 ‘엉겁’이다. ‘결’은 ‘때’ ‘지나가는 사이’ ‘도중’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귓결’ ‘꿈결’ ‘말말결’(이런 말 저런 말 하는 사이) ‘아침결’ ‘잠결’의 ‘결’과 같다. 이처럼 ‘결’이 붙은 말들은 뒤에 ‘에’라는 조사를 붙여 ‘귓결에, 아침결에, 엉겁결에’ 등과 같은 부사로 사용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원치 않는 끈끈한 물질이 몸에 달라붙으면 정신 줄을 놓기 쉽다. 여기서 ‘엉겁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엉겁결’은 정신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점에서 ‘얼떨결’과 의미가 상통한다. ‘얼떨결’은 ‘얼결’과 한뜻이다. ‘얼결’도 ‘얼결에’ 꼴로 주로 쓰인다.

글쓴이가 엉겁결에 쓰겠다고 해 시작한 ‘알고 쓰는 말글’이 5년이 되었다. 어줍은 우리말 실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넘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제 종착역이 보인다. 마지막 ‘작별 인사’만 남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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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중 ‘하릴없이’라는 표현이 있다. 발음이 비슷해서인지 이 ‘하릴없이’를 ‘할 일 없이’와 혼동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릴없이’는 ‘하릴없다’에서 나온 부사다. ‘하릴없다’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다. 그런데도 ‘해야 하는 일 없이’ 또는 ‘하고자 하는 일 없이’라는 뜻으로 많이들 쓴다.

 

물론 ‘하릴없다’에는 ‘일이 없어서 한가하게 지내다’란 의미가 없다. ‘하릴없다’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고 방도가 없다’는 뜻이다.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으니 꾸중을 들어도 하릴없는 일이다”에서 보듯 어쩔 수 없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나타낼 때 흔히 쓸 수 있는 표현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하릴없다’에는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의미도 있다. 이 경우 ‘하릴없다’는 ‘영락없다’ ‘간데없다’와 의미가 상통한다. 반면 ‘하릴없다’와 소리가 비슷한 ‘할 일 없다’는 글자 그대로 일이 없어서 한가하다는 말이다. 정말 해야 할 일이 없어 한가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을 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간혹 ‘할일없다’처럼 붙여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면 틀린 말이 된다. ‘할일없다’는 하나의 낱말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할 일 없다’처럼 세 단어로 띄어 써야 한다. 국어사전은 ‘할일없다’처럼 붙여 쓴 말은 ‘하릴없다’의 북한어라고 밝혀 놓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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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져야 할 몸가짐이나 행동을 말한다. ‘채신’은 단독으론 거의 쓰이지 않는다. 주로 ‘없다’나 ‘사납다’와 짝을 이루어 ‘채신없다’ ‘채신사납다’ 형태로 사용되며, 부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채신없다’는 ‘말이나 행동이 경솔하여 위엄이나 신망이 없다’란 뜻이다.

‘채신머리없다’ ‘채신머리사납다’와 같은 표현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채신머리’는 ‘채신’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머리’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싹수머리’ ‘안달머리’ ‘인정머리’ ‘주변머리’ ‘주책머리’의 ‘머리’들이 그렇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한데 ‘채신없다’나 ‘채신사납다’를 ‘체신없다’와 ‘체신사납다’로 쓰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 말을 몸 체(體)에 몸 신(身)이 더해진 ‘체신’(사람의 몸뚱이)과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리 쓰는 듯한데, 틀린 표현이므로 주의해야 한다.

‘채신’은 한자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한자말인 ‘처신(處身)’이 세월을 거치면서 고유어처럼 바뀐 말이다. 사전은 ‘채신’을 ‘처신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설명한다. ‘채신없다’ ‘채신사납다’는 ‘처신없다’ ‘처신사납다’와 한뜻인 셈이다. 모두 사전에 있는 말이지만 일상생활에선 ‘채신없다’ ‘채신사납다’가 더 많이 쓰인다. ‘채신’은 고유어처럼 굳어졌으므로 한자 없이 한글로만 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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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머리가 텅 빈 사람을 벌레에 빗대어 이르는 말로 ‘무뇌충’이 널리 쓰였다. 그 기세로 ‘무뇌충’은 국립국어원 신어사전에도 올랐다. ‘무뇌충’을 떠올려서인지 사람들 사이에서 ‘무뇌한’이란 말도 많이 쓰인다.

물론 ‘무뇌한’이란 말은 없다. 한데 소리가 정확히 ‘무뇌한’으로 난다. 그 때문인지 ‘무뇌한’으로 참 많이들 쓴다. 무엇을 잘 모를 때,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아님을 밝힐 때 흔히 하는 ‘~에 대해 잘 몰라서 그러는데’ 대신 쓰는 말이다. ‘문외한’ 이야기다. ‘무뇌한’은 ‘문외한’의 잘못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문외한(門外漢)’은 본래 문(門) 밖(外)에 있는 사내(漢)를 뜻한다. 어느 집에서 왁자지껄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밖에서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다. ‘문외한’은 집 안에서 벌어지는 사정을 전혀 알 수 없다. 여기서 어떤 일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란 의미가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일에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외한’의 ‘한’은 ‘남자’ ‘사내’ ‘사람’을 뜻한다. ‘한’은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와 관련된 사람’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무뢰한(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 아라한(성자), 인색한(인색한 사내), 파렴치한(뻔뻔한 사람), 호색한(여색을 밝히는 사람)의 ‘한’과 같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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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잡다’는 접두사 ‘겉’과 동사 ‘잡다’가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겉잡다’에서 ‘겉’은 양이나 정도를 나타내는 단어 앞에 붙어 ‘겉으로만 보아 대강한다’는 뜻을 더하는 말이다. ‘겉가량, 겉대중, 겉어림, 겉짐작’의 ‘겉’이다. 이들은 모두 ‘겉잡다’와 의미가 상통한다. ‘겉’은 일부 명사나 용언 앞에 붙어 실속과는 달리 ‘겉으로만 그러하다’는 뜻을 더하기도 한다. ‘겉멋, 겉치레, 겉핥다’의 ‘겉’이 그러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동사 ‘잡다’는 ‘어림하거나 짐작하여 헤아리다’란 뜻을 갖고 있다. “이 책들을 권당 5000원으로 잡아도 100권이면 50만원이다”에서 쓰인 ‘잡아도’가 ‘잡다’의 활용형이다. 해서 ‘겉잡다’는 ‘겉으로 보고 대강 짐작하여 헤아리다’란 의미다. ‘겉잡다’는 주로 ‘겉잡아도’ ‘겉잡아서’ 꼴로 쓰인다.

한데 소리가 ‘걷짭따’로 같아서인지 ‘겉잡다’를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서의 ‘걷잡다’와 혼동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걷잡다’는 ‘거두어 잡다’의 줄임말로, ‘잘못 치닫거나 기우는 형세 따위를 바로잡다’ ‘마음을 진정하거나 억제하다’라는 뜻이다. ‘걷잡다’의 첫 받침에 ‘ㄷ’을 쓰는 것은 ‘거두어’에서 쓰인 ‘ㄷ’ 받침에서 비롯되었다. ‘걷잡다’는 주로 부정형으로 쓰인다. 따라서 단독으로 사용되기보다는 ‘걷잡을 수 없는’에서 보듯 ‘없다’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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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 한 마리 놓고 딴전 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하고 있는 일과는 상관없는 엉뚱한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이다. ‘딴전’은 ‘부리다’ ‘피우다’와도 짝을 잘 이룬다. ‘딴전 보다’ 대신 ‘딴전 부리다’ ‘딴전 피우다’로 바꾸어 써도 의미가 상통한다.

‘딴전’은 순우리말이 아니다. ‘딴전’의 ‘딴’은 ‘다른’의 옛말이다. ‘딴마음, 딴사람, 딴살림, 딴판’의 ‘딴’과 같다. ‘전’은 한자어로 가게 전(廛)을 쓴다.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를 말한다.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를 이르는 ‘싸전’, 생선 따위의 어물을 파는 가게를 의미하는 ‘어물전’의 ‘전’이다. 허가 없이 길에 함부로 벌여 놓은 가게를 가리키는 조선시대 ‘난전’의 ‘전’도 마찬가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곧 ‘딴전’은 ‘다른(딴) 가게(전)’라는 의미다. 주된 가게 외에 별도로 마련해 놓은 가게, 본래의 가게와 비교하면 덜 중요한 가게를 가리킨다. 여기서 ‘어떤 일을 하는 데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나 행동’이라는 뜻이 생겨났다.

‘딴전’과 같은 의미로 ‘딴청’이라는 표현도 널리 쓰인다. ‘딴청’은 주로 ‘부리다’ ‘피우다’ ‘하다’와 어울린다.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 덕에 둘 다 사전에 올라 있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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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너를 기다렸다.” 여기서 ‘한참’은 ‘시간이 상당히 지나는 동안’이란 의미다. 꽤 오랫동안을 뜻하는 ‘한동안’과 한뜻이다.

‘한참’의 ‘참’은 한자로 참(站)이다. 이 ‘참’은 ‘역참(驛站)’의 준말이다. 역참은 중앙 관아의 공문을 지방 관아에 전달하거나 벼슬아치가 여행이나 부임을 할 때 말을 공급하던 곳을 말한다. 요즘처럼 교통이 발달하기 전엔 공문을 전달할 때 말을 이용했다. 이때 지친 말을 새로운 말로 갈아타거나 사람들이 잠깐 동안 머물러 쉴 수 있도록 일정한 거리마다 마련하여 놓은 장소가 바로 역참이다. 지금의 기차역이나 고속도로 휴게소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곳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그리고 ‘한참’의 ‘한’은 하나를 뜻한다. 해서 ‘한참’은 글자 그대로 하나의 역참을 말한다.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을 위해 역참은 대개 25리, 약 10㎞마다 하나씩 설치되어 있었다. ‘한참’은 바로 이 역참과 역참 사이의 한 단위 거리(25리)를 뜻하는 말이다. 이게 ‘한참’의 본뜻이다.

그러다 세월이 흘러 한 역참에서 다음 역참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는 뜻으로 의미가 변했다. 역참과 역참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에 말을 타고 가더라도 역참 사이를 오가는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다. 해서 ‘시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는 의미가 새로 생겨났다. 공간·거리 개념이 시간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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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소리’는 이치에 맞지 않은 서툰 말을 의미한다. 엉뚱한 말을 일컫는 ‘생(生)소리’와 뜻이 비슷하다. ‘선소리’의 ‘선’은 ‘선무당’ ‘선밥’ ‘선웃음’ ‘선잠’의 ‘선’과 같은 뜻이다. ‘선’은 ‘익숙하지 못하다’ ‘빈틈이 있고 서투르다’를 뜻하는 ‘설다’에서 왔다. ‘설다’의 관형형인 ‘선’이 접두사가 된 것이다. ‘선’은 ‘서툰’ 또는 ‘충분치 않은’의 뜻을 더한다.

‘선소리’는 ‘쓸데없는 소리’와 의미가 상통하는 면이 있다. ‘듣기에 거슬리는 소리’나 ‘쓸데없는 소리’ 하면 ‘신소리’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신소리’는 상대편의 말을 슬쩍 받아 엉뚱한 말로 재치 있게 넘기는 말을 가리킨다. 나쁜 의미보다는 좋은 뜻을 지닌 말인 셈이다. 듣기에는 거슬리지만 도움이 되는 말은 ‘쓴소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재치 있게 받아넘기는 말과 달리 터무니없는 자랑으로 떠벌리거나 허풍을 떠는 말을 ‘흰소리’라고 한다. ‘흰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헛소리’와 뜻이 서로 통한다. ‘헛소리’는 실속이 없고 미덥지 아니한 말을 뜻한다. 즉 실체가 없는 허황된 소리를 가리킨다.

참, 잘못을 했을 때 흔히 ‘한소리 듣겠다’고 하는데, 이때 ‘한소리’는 ‘큰 소리’를 말한다. ‘한’에는 ‘크다’라는 뜻이 있다. ‘한소리’는 곧 ‘크게 나무라는 말’이란 의미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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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졸중’은 뇌혈관이 막히거나 갑자기 터져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나타나는 여러 신경 증상을 일컫는다. 졸중(卒中)은 졸중풍(卒中風)의 줄임말이고, ‘뇌졸중’은 ‘뇌졸중풍’이 줄어든 말이다. 요즘은 그냥 ‘뇌중풍’이라고도 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많은 사람들이 ‘뇌졸중’을 ‘뇌졸증’으로 잘못 알고 있다. 아마도 ‘합병증’ ‘통증’ ‘우울증’ 등 질병이나 증상을 나타내는 대부분의 단어에 ‘증’이 붙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졸’은 ‘갑자기’를 뜻한다.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졸도’다. ‘뇌졸중’의 ‘중’은 가운데를 뜻하는 게 아니다. ‘중’에는 ‘맞다’ ‘맞히다’란 의미도 있다. 화살 따위가 목표물에 정확하게 맞는 것이 ‘적중’이요, 쏘는 족족 들어맞는 것이 ‘백발백중’이다. 이 ‘중’이 ‘뇌졸중’의 ‘중’과 같은 뜻이다. 따라서 ‘뇌졸중’은 ‘뇌가 갑자기(졸) 바람을 맞았다(중)’는 의미다.

‘뇌졸중’을 ‘뇌졸증’으로 잘못 쓰는 것과는 반대로 ‘증’을 써야 할 곳에 ‘중’으로 잘못 쓰는 말도 있다. ‘대중요법’이 그렇다. ‘대중적인 치료법’쯤으로 생각하고 ‘대중요법’으로 쓰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은 ‘대증요법’이 바른말이다. 병의 증상에 대응해 처치를 하는 치료법을 말한다. 요즘은 어떤 정책이 근본 해결보다 미봉책에 머물 때 비유적인 표현으로 ‘대증요법’을 쓰기도 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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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가운데’처럼 형용사나 동사 뒤에 ‘ㄴ/는 가운데’를 붙여 쓰면 ‘어떤 일이나 상태가 이루어지는 범위의 안에서’라는 뜻이 된다.

한데 ‘ㄴ/는 가운데’를 써야 할 곳에 ‘바쁜 와중에’처럼 ‘ㄴ/는 와중에’를 쓰는 것을 적잖게 볼 수 있다.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모른 채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을 따라 하다 보니 ‘와중’이란 말을 잘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와중’의 ‘와’는 소용돌이를 말한다. 따라서 ‘와중’은 글자 그대로 ‘소용돌이의 가운데’라는 의미다. 바다나 강의 바닥이 팬 자리에서 물이 빙빙 돌면서 원을 그리며 흐르는 현상을 소용돌이라고 한다. 소용돌이가 치는 곳은 물이 세차고 급하게 휘돌아 흐른다. 쳐다보고 있으면 무엇인가에 이끌려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정신이 없고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이처럼 ‘와중’은 소용돌이 안으로 들어선 것 같은 어려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일이나 사건 따위가 시끄럽고 복잡하게 벌어지는 가운데’라는 의미로 쓰인다.

‘와중’은 ‘전란의 와중에’처럼 큰일이 나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복잡하게 꼬일 때 쓰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바쁜 와중에’처럼 일상생활 중 조금 바쁜 상황을 가리킬 땐 ‘와중’이란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바쁜 가운데’나 ‘바쁜데도 불구하고’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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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따뜻한 햇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말 속담 가운데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 친다’는 속담과 한뜻이다. 그까짓 체면이 뭐길래, 양반은 체면에 목숨까지 거는 걸까?

‘겻불’은 곁에서 얻어 쬐는 불을 말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겨를 태우는 불’이다. ‘겨’는 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겨를 태운 불은 뭉근하게 타오르기 때문에 불기운이 약하다. 해서 ‘겻불’에 ‘불기운이 미미하다’란 의미도 있다.

속담 중의 ‘겻불’을 ‘짚불’로 쓰기도 한다. ‘짚불’은 짚을 태운 불을 말한다. ‘겨’나 ‘짚’은 태우면 연기만 많이 날 뿐 불기운은 신통치 않다. ‘겻불’과 ‘짚불’은 불기운이 시원찮기로는 도긴개긴,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한데 ‘겻불’을 ‘곁불’로 잘못 쓰는 경우가 흔하다. ‘곁불’은 얻어 쬐는 불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까이하여 보는 덕을 말한다. 운 나쁘게 목표물 근처에 있다가 맞는 총알을 일컫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어떤 일에 직접 관여하지 않고 가까이에 있다가 받는 재앙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통치 않거나 시원치 않음을 뜻하는 ‘겻불’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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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게 많지 않다.” 가진 게 충분치 않다는 얘기다. ‘-지 않다’는 앞말이 의미하는 행동이나 상태를 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게 ‘-지 않다’의 자연스러운 쓰임새이고 본뜻이다. 한데 요즘 ‘-지 않다’가 글말과 입말에선 달리 쓰이기도 한다.

“이건 너무 많지 않아?” 많다는 뜻이다. 의문형으로 바꾸었을 뿐인데 반대 의미가 되었다. 의문형으로 끝난 ‘-지 않다’에선 부정의 뜻을 찾기 힘들다. 단순히 ‘많다’를 강조하는 역할만 한다. ‘않다’의 본래 뜻을 잃어버린 것이다.

“너무 많잖아.” 이 또한 많다는 소리다. ‘많지 않아’가 줄어든 말이 ‘많잖아’다. ‘많다’의 어간에 ‘-지 않아’가 결합한 말이지만 부정의 뜻은 없다. 이는 ‘-지 않아’가 줄어든 표현인 ‘-잖아’로 굳어져 쓰이면서 새로운 뜻을 얻었기 때문이다. ‘귀찮잖아’ ‘예쁘잖아’ ‘힘들잖아’ ‘이야기했잖아’에서 보듯 ‘-잖아’로 굳어진 표현이 널리 쓰인다. 이 ‘-잖아’는 말하는 이가 듣는 이에게 자신의 말이 맞지 않느냐고 상기시키면서 핀잔하듯이 말함을 나타내는 관용구처럼 쓰인다. 일부에선 부정의 ‘-지 않다’의 축약형과 구분해 ‘구어 종결어미 -잖아’로 부른다.

“사람이 많지 않아 좋다.” 종결형과 달리 연결형일 때는 ‘-지 않다’의 본뜻으로 읽힌다. 이땐 ‘많잖아’로 거의 줄여 쓰지 않는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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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바심’은 조의 이삭을 떨어서 좁쌀을 만드는 일이다. 이게 ‘조바심’의 본디 뜻이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조바심’의 의미와는 많이 다르다.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임. 또는 그렇게 졸이는 마음.’ 그렇다. 대부분 조바심을 이런 뜻으로 알고 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세월이 변했다. 흔하디흔했던 것들이 지금은 많이 사라져가고 있다. 가꾸는 농작물도 마찬가지다. 오곡 중 하나인 조도 이젠 이 땅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바심의 의미도 달라졌다. 아니 조바심의 본뜻에 새로운 뜻이 추가되었다.

‘조바심’은 ‘조’와 ‘바심’이 결합해 만들어진 말이다. ‘조’는 알겠는데 ‘바심’이란 말은 많이 낯설다. ‘바심’은 요즘 잘 쓰이지 않지만 ‘타작’을 뜻하는 우리말이다. 즉 조의 이삭을 떨어서 낟알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바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조바심’은 글자 그대로 ‘조를 타작한다’는 의미다.

한데 조는 꼬투리가 질겨서 이삭을 떨어내기가 만만찮다. 너무 세게 떨어내면 이삭이 엉뚱한 곳으로 달아나 수확을 망칠 수도 있다. 하여 다른 농작물에 비해 조를 타작할 때는 힘이 더 들 뿐만 아니라 이삭도 잘 떨어지지 않아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해서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며 걱정을 하게 된다. 여기서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인다’란 두 번째 의미가 생겨났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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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똘기’를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기 쉽다. 덜 익은 과실을 잘못 먹으면 누구나 그렇다. ‘똘기’는 채 익지 않은 과실을 말한다. 대개 떫은맛이 난다. 풋과일과 같은 뜻이다. 이때 ‘풋’은 ‘덜 익은’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똘기’는 ‘또아기’와도 한뜻이다. 한데 ‘또아기’는 이제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여럿 있을 때, 그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 탓에 ‘똘기’에 자리를 내주었다.

과실은 다 익으면 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정상이다. 저절로 떨어질 정도로 탐스럽게 잘 익은 밤이 ‘아람’이다. 해서 밤송이가 여물어 저절로 떨어지게 된 것을 ‘아람이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과실이 충분히 익은 후 떨어지는 게 아니다.

개중에는 운이 나빠 익는 도중에 바람이나 병 때문에 나무에서 떨어지는 과실도 있다. 이 운 나쁜 과실이 순우리말로 ‘도사리’다. 도사리는 다 익지 못한 채로 떨어진 과실을 일컫는다. 한자말로는 ‘낙과’이다.

과실은 먹을 수 있건 없건 상관없이 나무에 달리는 모든 열매를 이른다. 한데 요즘 과실은 본뜻보다는 ‘성과물’이라는 비유적인 의미로 더 많이 쓰인다. 그나마 과일에 밀려 실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다. 과일은 과실에서 나온 말이다. 과일은 과실과 달리 먹을 수 있는 것만 가리킨다. 과실에 비해 단어의 의미가 좁아졌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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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는 책장과 책장의 사이를 말한다. 이게 책갈피의 본뜻이다. ‘갈피’는 ‘겹치거나 포갠 물건의 하나하나의 사이’를 가리킨다. 일이나 사물의 갈래가 구별되는 경계를 일컫기도 한다. 해서 사물이나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할 때 ‘갈피를 잡지 못한다’고 한다.

책을 읽던 곳이나 필요한 곳을 쉽게 찾도록 책갈피에 끼워 두는 종이쪽지나 끈을 ‘갈피표’라 한다. 한자말로는 ‘서표’다. 한데 사람들이 ‘책갈피’를 ‘갈피표’란 뜻으로 더 많이 쓴다. 그래서 사전도 ‘읽은 곳을 표시하는 도구’란 뜻풀이를 추가했다. ‘책갈피’는 책의 갈피인 동시에 책갈피에 끼워 두는 도구인 셈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책갈피’는 곧 ‘보람’이다.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사실이다. ‘보람’은 다른 물건과 구별하거나 잊지 않기 위해 하는 표적을 말한다. 책 따위에 표지를 하도록 박아 넣은 줄이 ‘보람줄’이다. 나중에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서 책갈피와 보람(줄)은 닮아 있다.

‘보람줄’은 갈피에 끼운다고 해서 ‘갈피끈’, 읽은 곳과 읽지 않은 곳을 구별하는 끈이라고 해서 ‘가름끈’이라고도 한다. 참, 비행기에 짐을 실어 보낼 때 다른 가방과 구별하기 위해 가방에 달아매는 이름표나 꼬리표도 ‘보람’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보람’은 대부분 ‘어떤 좋은 결과나 뿌듯함’이란 뜻으로 많이 알고 쓴다. 바로 이 ‘보람’의 원뜻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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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가 고려 직진남으로 등극했다.” 배우 이준기의 복귀작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드라마 <달의 여인-보보경심 려>를 다룬 기사다. 물론 글쓴이의 관심은 드라마가 아니라 ‘직진남’에 있다. ‘직진남’은 ‘한 사람만 바라보며 뜻을 굽히지 않고 사랑을 향해 직진하는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이 신조어가 한때의 유행어에 그칠지, 낱말로 자리 잡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론 이런 신조어에 다소 거부감을 느낀다. 아무튼 ‘직진남’은 내버려 두더라도 ‘직진남’과 짝을 이룬 ‘등극’은 살짝 눈에 거슬린다. ‘직진남’과 ‘등극’은 아무리 꿰맞추려 해도 어울리지 않는 짝이기 때문이다.

‘등극’은 ‘임금의 자리’나 ‘어떤 분야에서 가장 높은 자리나 지위’에 오름을 뜻한다. ‘등극’의 뜻이 이러니 ‘직진남 등극’이라 하면 ‘직진남이란 최고의 자리나 지위에 오른다’는 의미가 된다. ‘남자’가 자리나 지위를 일컫는 말은 아닐 터. ‘직진남이 되었다’면 충분할 것을 ‘등극’ 때문에 글이 우습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연인 등극’ ‘막내 등극’도 그냥 ‘연인이 되었다’ ‘막내이다’로 쓰면 그만이다.

직업병 탓이겠지만 얼마 전 방송 진행자가 무심코 던진 ‘4위로 등극했다’란 말도 다소 귀에 거슬린다. 진행자가 ‘등극’의 뜻을 모르진 않을 텐데. 방송의 파급력을 고려하는 신중한 말글살이가 조금 아쉽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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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표현으로 ‘말본새’라는 말이 있다. 주로 “말본새가 왜 그래?”처럼 사용된다. 소리는 ‘말뽄새’로 나지만 글로 적을 때는 어원을 밝혀 ‘말본새’로 써야 한다. ‘말본새’는 발음 때문에 일본어 잔재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말하는 태도나 모양새’를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말과 관련된 표현 중에 ‘입바르다’와 ‘입빠르다’도 소리가 모두 ‘입빠르다’로 같아 말로 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글로 쓸 때 잘 헷갈리는 말이다. ‘입바르다’는 ‘바른말을 하는 데 거침이 없다’는 뜻이다. 주로 ‘입바른 소리’ ‘입바른 말’과 같이 사용되는 ‘입바르다’는 ‘입이 도끼날 같다’와 한뜻이다. ‘입바른 소리’는 자칫 마음에도 없이 겉치레로 하는 말인 ‘입에 발린 소리’와 헷갈리기 쉬운데 뜻이 완전히 다르다.


출처: 경향신문 DB

반면 ‘입’과 ‘빠르다’가 합쳐진 ‘입빠르다’는 ‘남에게서 들은 말이나 자신의 생각을 참을성 없이 지껄이는 버릇이 있다’는 의미다. 해서 ‘입빠른 사람’이라고 하면 입이 가벼워 경솔하게 남의 약점을 잘 찔러 말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입바른 말을 하는 것도, 입빠른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닌데 때때로 투박한 말투 때문에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한다. 이럴 땐 참 곤혹스럽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상대를 배려해 말하는 능력이 부족함을 탓하면서도 말본새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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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독한 더위다. 입추가 지났지만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불더위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잠을 자다가도 자주 깨게 된다. 해서 ‘괭이잠’이나 ‘개잠’을 자기 일쑤다. 보통 이런 날은 늦잠을 자 허둥지둥 출근을 서두르게 된다. 잠이 보약이라는데 ‘귀잠’을 자본 게 언젠지 모르겠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우리말에는 ‘잠’을 나타내는 말이 많다. ‘귀잠’은 아주 깊이 든 잠을 가리킨다. ‘속잠’ ‘단잠’과 한뜻이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잠을 말한다. 반대로 깊이 들지 않아 자주 깨면서 자는 잠은 ‘괭이잠’이다. ‘괭이’는 고양이의 준말이다. ‘괭이잠’은 다른 말로 ‘선잠’ 혹은 ‘겉잠’이라 한다. ‘개잠’은 일찍 일어나려고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알람이 울리면 끄고 다시 자는 잠을 말한다. ‘개잠’의 ‘개’는 개(犬)가 아니라 고칠 개(改)를 쓴다.

찜통더위 탓에 밤잠은 설치지만 올림픽은 반갑다. 브라질 리우에서 전해오는 ‘승전보’가 잠시나마 더위를 잊게 한다. 승리 소식을 전하면서 ‘승전보를 울리다’란 표현을 쓰는데 이는 잘못이다. ‘승전보’는 싸움에서 이긴 경과를 적은 기록이다. 하여 ‘승전보’는 ‘전하다, 알리다’와 짝을 이룬다. ‘울리다’를 쓰고 싶으면 ‘승전고’를 써야 한다. ‘승전고’는 싸움에서 이겼을 때 울리는 북이다.

당분간 태극전사의 선전을 지켜보느라, 가마솥더위와 싸우느라 이래저래 ‘단잠’을 자긴 힘들게 생겼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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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치킨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맛있는 치킨을 하느님에 빗댄 치느님이란 신조어가 생길 정도이니 말이다. 일과 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치맥은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한다. ‘치느님치킨하느님’, ‘치맥치킨맥주를 줄여 만든 표현이다.

출처: 경향신문DB

치맥치킨맥주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준말이다. 이런 말을 두자어라고 한다. 단어 전체를 이루는 각각의 단어에서 첫 글자만 따서 만든 말이라는 뜻이다. 합성어와는 다르다. 우리말에서 두자어는 노동조합노조로 줄이는 것처럼 일반적으로 한자말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다. 한데 치맥은 이런 규칙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치킨은 외래어이기 때문이다.

반면 치느님은 머리글자인 와 뒷글자인 느님을 합성해 만든 말이다. 이런 말을 혼성어라고 한다. ‘스모그(스모크+포그)’에서 보듯 보통 영어권에서 준말을 만들어 쓰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우리말법에도 어긋나지만 자연스럽지도 않다. 해서 개인적으론 이처럼 단어를 합성해 만들어 쓰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별것을 다 불편해한다고 핀잔주는 사람도 있겠다. 그래도 직업병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편안함만 좇아 억지스레 줄여 만든 말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로막고 우리말을 병들게 한다. 우리말법에 맞는 쉬운 말을 쓰려는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때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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