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사전에 있는 발음기호대로 때려맞추다 보니 발음이 이상해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다. 이처럼 대충 헤아려서 어림짐작하다는 뜻으로 ‘때려맞추다’를 많이 쓴다. ‘때려맞추다’ 대신 ‘때려맞히다’로 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은 국어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 있지 않다.



‘때려 맞추다’ 따위로 띄어 써도 의미상 바른 표현이 아니다. ‘때려’는 ‘맞추다’와 서로 짝을 이루지 못한다. ‘때리다’의 활용형인 ‘때려’에는 ‘대충’이란 의미가 없다. ‘때리다’가 ‘때려’ 꼴로 쓰일 때는 ‘함부로 마구 ~하다’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때려 마시다’처럼 써야 한다.

‘대충 헤아려서 어림짐작하다’란 의미로 쓸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이 있다. 바로 ‘두드려 맞추다’이다. “나는 영어로 된 문장을 사전을 들춰 가면서 겨우겨우 두드려 맞춰 해독했다”에서 ‘두드려 맞춰’가 그런 뜻으로 쓰였다. ‘두드리다’는 주로 무엇을 때린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두드리다’가 ‘두드려’ 꼴로 쓰일 때는 ‘대충’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처럼 ‘두드리다’에 ‘대충’의 뜻이 있기 때문에 ‘두드려 맞추다’가 그런 의미가 된다.

누구나 두드려 맞춰서 글을 쓰다 보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글을 쓸 때 실수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국어사전을 자주 찾아보는 것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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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다’라는 순우리말이 있다. ‘다른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다’란 의미다. ‘에우다’와 비슷한 뜻을 지닌 말이 ‘때우다’이다.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하다’란 뜻이다. ‘ㅐ’와 ‘ㅔ’ 소리가 서로 비슷해서인지 ‘때우다’를 ‘떼우다’로 쓰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떼우다’는 사전에 없는 말로 비표준어다.

‘때우다’처럼 무엇인가를 대신한다는 의미로 ‘땜빵’이란 말도 일상생활에서 많이 쓰인다. 인터넷상에서 ‘땜빵 수업’ ‘땜빵 출연자’ 같은 글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땜빵’은 ‘빈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을 뜻한다.


‘땜빵’의 ‘땜’은 ‘땜질’에서 온 말이다. ‘땜빵’의 ‘빵’을 두고는 이견이 있지만 대개 ‘빵꾸’에서 온 것으로 본다. ‘빵꾸가 난 자리를 땜질한다’란 뜻에서 ‘땜질과 빵꾸’가 결합한 후 다시 ‘땜빵’으로 줄어든 것이다. ‘땜빵’은 많이 사용되지만 비속어 취급을 받는다. 또 ‘빵꾸’는 구멍을 뜻하는 일본어 잔재다.

하여 신문이나 공식적인 글에서 비속어를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대부분의 국어사전에 ‘땜빵’이란 말도 없다. 다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에만 ‘땜빵’이 올라 있을 뿐이다. 한국어대사전은 ‘연기자가 아파서 내가 땜빵으로 출연했다’란 예문과 함께 ‘땜빵’을 ‘남의 일을 대신하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풀이해놓았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좀 더 적극적으로 현실 언어를 반영한 듯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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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완전’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많다. 아주 좋은 것을 보면 ‘완전 좋다’고 말한다. 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는 ‘정말 맛있어’라고 하기보다는 ‘완전 맛있어’라고 한다. 거의 모든 말 앞에 ‘완전’을 덧붙인다. 그러고 보면 ‘아주, 정말, 매우’ 자리를 ‘완전’이 꿰찬 듯하다.

‘완전’은 명사로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완전’은 동사나 형용사를 꾸미는 말로 사용할 수 없다. 하여 ‘완전 좋다’ ‘완전 사랑해’처럼 쓸 수 없다. 반드시 ‘완전 개방’ ‘완전 타결’처럼 ‘명사+명사’꼴로만 써야 한다.

어떤 이는 ‘완전 사랑해’에서 ‘완전’을 ‘완전히’의 준말로 볼 수 있지 않으냐고 한다. 무조건 본말을 줄여 쓴다고 준말이 되는 게 아니다. 설령 준말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 경우 의미상으로 적절치 않다. ‘완전히’는 ‘완전히 끝냈다’ ‘완전히 갈라섰다’에서 보듯 주로 동작을 뜻하는 말과 짝을 이룬다. 해서 ‘맛있다’ ‘사랑하다’처럼 감정이나 느낌을 나타내는 단어와는 절대 어울릴 수 없다.

각 각의 단어는 서로 어울리는 짝이 있다. 아무 말 앞에나 무조건 ‘완전’을 덧붙일 수는 없다. 한데 많은 이들이 ‘완전 ~하다’란 표현이 의미상으로나 구조상으로 어색하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유행어처럼 따라 쓴다. 그러면 안된다. ‘완전 ~하다’는 올바른 표현이 아니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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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란 의미를 지닌 우리말은 ‘어이없다’이다.

그런데 오래전 한 조사에 따르면 이 ‘어이없다’가 한국인이 가장 많이 틀리는 말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이없다’를 ‘어의없다’로 적는다는 것이다.

‘어의’보단 ‘어이’로 발음하는 게 편하다.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 그 이유를 ‘의’의 발음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표준발음법’ 제5항은 단어 첫음절 외의 ‘의’는 ‘의’로 발음함이 원칙이나 ‘이’로 발음함도 허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주의’는 ‘주의’로 발음함이 원칙이지만 ‘주이’로 발음해도 된다는 말이다. 해서 평소 ‘주의’로 쓰고 ‘주이’로 발음하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 ‘어이없다’도 무의식중에 ‘어의없다’로 적는 듯하다.



국어사전에 근거하면 ‘어이없다’는 ‘어처구니없다’와 같은 뜻이다. 하지만 ‘어이없다’의 ‘어이’는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한데 요즘 ‘어이 상실’이란 말을 쓰는 사람이 많다. ‘의욕 상실’ ‘기억 상실’ 등을 보면 구조상으로는 ‘어이 상실’을 쓸 수 있을 듯하다.

하나 ‘어이’는 ‘어이’만으로는 뜻을 가지지 못한다. 어원이 불분명해 뜻을 명확히 밝힐 수가 없어서다. 따라서 반드시 ‘없다’와 짝을 이루어 ‘어이없다’나 ‘어이가 없다’로 써야 한다. 하여 ‘어이’는 ‘상실’과는 짝을 이룰 수 없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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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정치권에 대해 물갈이가 아니라 판갈이를 원하고 있다.” 요즘 뉴스에 ‘물갈이’ ‘판갈이’란 말이 자주 나온다. 지난해 말엔 ‘표지갈이’ 교수가 뉴스의 한 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갈이’는 낡거나 못 쓰게 된 부분을 떼어 내고 새것으로 바꾸어 대는 것을 말한다. 즉 ‘표지갈이’는 내용은 그대로인데 표지만 갈아 딴 책인 것처럼 출판한다는 뜻이다.

‘표지갈이, 물갈이, 판갈이.’ 이 중 국어사전에 올라 있는 말은 ‘물갈이’뿐이다. 물갈이는 수족관이나 수영장 따위의 물을 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한데 최근엔 ‘물갈이’가 기관이나 조직체의 구성원이나 간부들을 비교적 큰 규모로 바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더 자주 쓰인다.



‘갈이’는 동사 ‘갈다’에서 온 말이다. ‘갈다’의 어간 ‘갈’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이’가 붙어 ‘갈이’가 된 것이다. ‘놀이, 벌이, 떨이, 풀이, 길이’ 등이 ‘이’가 붙어 만들어진 명사다. ‘표지갈이’나 ‘판갈이’는 ‘표지’와 ‘판’에 ‘갈이’가 붙어 만들어진 명사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표지 갈이’나 ‘판 갈이’처럼 띄어 써야 하지만, 네 글자는 붙여 씀을 허용한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붙여 써도 된다.

정치권이 인적쇄신을 한다며 인재 영입 경쟁에 한창이다. 이번엔 정치권이 ‘물갈이’ ‘판갈이’를 통해 제대로 인적쇄신을 이룰지, ‘그 나물에 그 밥’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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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해가 시나브로 저물어간다. 12월31일, 오늘이 지나가면 2016년, 또 다른 해가 시작된다. ‘어줍은’ 우리말 실력으로 ‘알고 쓰는 말글’을 시작한 이후 벌써 다섯 번째 해를 맞는다. 글쓰기를 통해 글쓴이의 ‘어쭙잖은’ 우리말 실력을 제대로 알게 된 4년이다.

‘어줍다’는 ‘말이나 행동이 익숙지 않아 서툴고 어설프다’란 의미다. ‘어쭙잖다’도 비슷한 뜻으로 쓸 수 있다. 따라서 ‘어줍은 실력’이나 ‘어쭙잖은 실력’은 한뜻이다. 그런데 ‘아주 서툴고 어설프다’란 뜻을 지닌 말을 ‘어쭙잖다’가 아니라 ‘어줍잖다’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어줍잖다’는 ‘어쭙잖다’와는 뜻이 사뭇 다르다.

‘어줍다’의 부정어가 ‘어줍지 않다’이고, 그것의 준말이 ‘어줍잖다’이다. 곧 ‘어줍잖다’는 ‘어설프지 않다’란 의미다. 하여 ‘어줍잖은 실력’이라고 하면 ‘괜찮은 실력’ 정도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다만 국립국어원은 사전에 ‘어줍잖다’가 ‘어쭙잖다’의 잘못으로 올라 있기 때문에 ‘어줍다’의 부정을 나타낼 때는 ‘어줍지 않다’로 쓰기를 권장하고 있다.

2016년 새해를 맞아 인터넷상은 벌써 기업들의 ‘병신년(丙申年) 마케팅’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병신년은 아직 멀었다. 을미년이니 병신년이니 하는 육십갑자의 기준은 음력이기 때문이다. 새해 2월8일이 진짜 병신년이 시작되는 날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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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술안주로 과메기만 한 게 없다. 꽁치를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서 차게 말린 과메기는 본디 청어로 만들었다. 그런데 청어가 귀해지면서 꽁치가 청어 자리를 꿰차고 앉아 지금에 이르렀다. 한데 최근 사라졌던 원조 ‘청어 과메기’의 생산량이 늘고 있다고 하니 미식가들이나 주당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과메기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과메기는 한자말 관목(貫目·건청어)에서 왔다고 한다. ‘목’의 포항지역 방언이 ‘메기’다. 포항지역에서 ‘관목’을 관메기로 부르다가, ‘ㄴ’이 소실되면서 과메기가 되었다는 게 통설이다. 하지만 관목에 ‘이’가 붙어 ‘관목이’가 되고 다시 ‘과목이’ ‘과뫼기’를 거쳐 과메기로 굳어졌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반면 일각에선 과메기가 순우리말이라는 반론을 펴기도 한다. 우리글이 없던 시절 과메기와 소리가 비슷한 한자를 빌려 표기한 것이 ‘관목’이라는 것이다. ‘관목’은 눈을 뚫었음을 뜻하는 한자말이다. 당시 포항에선 과메기가 청어의 눈을 짚으로 꿰어 말린 어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소리와 뜻이 비슷한 ‘관목’을 우리글 대신 쓰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과메기는 널리 쓰이는 말이지만 현대 서울말이 아니어서인지, 우리말법에 맞지 않아서인지 모든 국어사전에 경북 방언으로 올라 있다. 아무튼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친구와 과메기를 안주 삼아 권커니 잡거니 한잔해야겠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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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인배(小人輩)의 상대어로 대인배(大人輩)를 쓰는 걸 종종 본다. 그런데 대인배란 말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적확하게 말하면 ‘배(輩)’에 대한 거부감이겠다. 소인배, 폭력배, 불량배, 간신배처럼 ‘배’는 부정적인 말에 주로 붙여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배, 후배, 동년배, 연배에는 부정적인 어감을 찾을 수 없다. 여기에 인재가 계속하여 나온다는 의미를 지닌 배출(輩出)까지 고려하면 ‘배’에 부정적인 뜻만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배’는 무리를 이룬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일 뿐이다. ‘배’가 붙어 좋은 뜻이 나쁜 뜻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우리말엔 ‘배’처럼 긍정과 부정의 뜻에 모두 쓸 수 있는 접사가 더러 있다. ‘꾼’이 그런 경우다. ‘난봉꾼’ ‘노름꾼’ ‘도벌꾼’의 ‘꾼’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지만 ‘살림꾼’ ‘재주꾼’ ‘재간꾼’ ‘씨름꾼’의 ‘꾼’은 긍정의 뜻을 갖고 있다.

국립국어원도 ‘묻고 답하기’ 코너에서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지만 ‘대인의 무리’라는 의미로 ‘대인배’를 쓰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는 소인배의 상대어로 대인배가 올라 있다. 따라서 ‘대인배’란 말에 지나치게 거부감을 느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제 대인배에 채워진, ‘잘못된 말’이란 족쇄를 풀어줄 때가 되었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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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흡연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올해 초 담뱃값을 인상했다. 그런데 잠시 떨어지는 듯하던 담배 판매량이 최근 다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결국 담뱃값만 올라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만 가중시킨 꼴이 됐다.



얇은 종이로 가늘고 길게 말아 놓은 담배를 ‘궐련(卷煙)’이라고 한다. 그런데 궐련의 한자가 좀 이상하다. ‘卷煙’을 한자음대로 읽으면 ‘권연’이 된다. 하지만 한자는 ‘卷煙’으로 쓰고 전혀 다른 음인 ‘궐련’으로 읽는다. 왜 그런 것일까. ‘궐련’은 ‘권연’에서 변한 말이다. 즉 ‘궐련’의 원말이 ‘권연’이다. 사람들이 ‘권연’보다는 ‘궐련’으로 발음하는 게 편해 ‘궐련’으로 읽으면서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우리말 가운데 한자말을 우리말로 적을 때 원래 소리가 아닌 변한 음으로 적는 단어가 더러 있다. ‘초승’ ‘이승’ ‘저승’ ‘금실’ ‘출애굽기’ 등이 바로 그런 말들이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도 ‘권연’을 ‘궐련(卷▽煙▽)’으로 표기해 음이 변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는 한자음이 원음과 달라졌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다.

담배와 관련해 잘 틀리는 말 중에 ‘각연(刻煙)’이 있다. 칼 따위로 썬 담배를 ‘각련’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각련’은 우리말에 없다. 담뱃대에 꾹꾹 재워 넣고 피우는 담배는 ‘각련’이 아니라 ‘각연’이 맞는 말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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춥다, 추워! 이제 겨울이다. 아파트가 오래돼서인지 문틈으로 겨울바람이 세차게 들어온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뒤늦게 ‘외풍’ 막는다고 문틈에 문풍지 붙이고, ‘웃풍’ 없앤다며 창문에 ‘뽁뽁이’ 바르고 난리를 떨었다. 그래도 추운 건 어쩔 수 없다.



‘외풍’ ‘웃풍’ ‘우풍’. 이들은 뜻이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다른 말이다. ‘외풍(外風)’은 한자말 그대로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말한다. 그래서 ‘외풍을 막기 위해 문틈 사이에 문풍지를 꼼꼼히 붙였다’처럼 쓰는 단어이다. 특히 ‘외풍’ 중에서도 좁은 틈으로 세차게 불어 드는 바람을 ‘황소바람’이라고 일컫는다.

‘외풍’과 잘 헷갈리는 말이 ‘웃풍’이다. ‘웃풍’은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아니다. 겨울에 방 안의 천장이나 벽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찬 기운을 의미한다. ‘웃바람’이라고도 한다. ‘외풍’은 찬 바람을 말하고, ‘웃풍’은 찬 기운을 뜻하는 것이다.

‘우풍이 세다’처럼 쓰는 ‘우풍’은 틀린 말이다. ‘우풍’이 순우리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 국어사전들은 ‘우풍’을 바른말로 인정하지 않는다. ‘위풍’이나 ‘윗풍’도 잘못된 표현이다. ‘위’ ‘아래’ 구분이 없는 것은 ‘웃’으로 통일한다는 규정에 따라 ‘웃풍’으로 적어야 한다. 참고로 올해 1월 국립국어원의 말다듬기위원회는 ‘에어캡’의 순화어로 ‘뽁뽁이’를 선정했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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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진 “깜도 안된다”란 말이 한때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는 한 후보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깜이 안된다”란 발언으로 상대를 자극하기도 했다. ‘깜’, 무슨 뜻인가. 문맥상으로 ‘깜’이란 단어의 의미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여기서 ‘깜’은 이야깃거리나 자격을 의미한다.


‘깜’은 많이 쓰이지만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자격을 갖춘 사람 또는 대상이 되는 도구나 사물을 뜻하는 우리말은 ‘감’이다. 신랑감, 장군감, 놀림감, 안줏감에서 보듯 ‘감’은 주로 명사 뒤에 붙어 접미사처럼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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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그는 그 일을 맡을 만한 감이 못된다” 따위로 쓰이기도 하지만 단독으로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단독으로 쓰인 ‘감’을 된소리로 발음한 말이 ‘깜’이다.

사전에 근거하면 ‘감도 안된다’가 바른 표현이다. 문제는 글맛이나 말맛이 영 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현실 언어로 많이 쓰이는 ‘깜’을 ‘감’의 센말로 인정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듯하다. 하지만 글맛 때문에 사전에 단어를 올릴 순 없는 일이다.

이럴 때 궁여지책으로 신문에서 글맛이나 말맛을 살리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작은따옴표(‘’)의 활용이 그것이다. 단어(깜)를 작은따옴표 속에 넣어 이 단어가 사전엔 없지만 글을 읽는 재미를 주기 위해 쓴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작은따옴표를 남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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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헛나오는 바람에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사람들은 이와 같이 ‘말을 잘못하여 실수를 저지르다’는 의미로 ‘말이 헛나오다’란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런데 국어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헛나오다’란 단어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나가다’란 뜻인 ‘헛나가다’가 ‘말이 헛나가다’라는 예문과 함께 표제어로 올라 있다. 사전에 따르면 ‘말이 헛나가다’가 보다 적확한 표현인 셈이다. 그러면 ‘헛나오다’는 틀린 말일까.

‘헛’은 일부 명사나 동사 앞에 붙어 새 단어를 만드는 접두사다. 명사 앞에 붙은 ‘헛’은 명사에 ‘이유나 보람 없는’ ‘쓸데없는’의 뜻을 더해준다. 따라서 ‘헛이름’은 실속 없는 헛된 명성을 뜻하고, ‘헛고생’은 보람 없이 하는 고생을 가리킨다. 또 ‘헛바람’은 쓸데없이 부는 바람을, ‘헛웃음’은 마음에 없이 지어서 웃는 웃음을 말한다.

‘헛듣다’ ‘헛먹다’ ‘헛보다’ ‘헛살다’ ‘헛디디다’ 등에서처럼 동사 앞에 붙은 ‘헛’은 뒷말에 ‘잘못’이란 의미를 덧붙인다. 이런 ‘헛’이 붙은 ‘헛나오다’는 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그렇다고 ‘헛나오다’를 글말로 쓸 수 없는 건 아니다. ‘헛나오다’와 비슷한 형태인 ‘헛나가다’가 사전에 있고 어법상으로도 문제가 없기 때문에 ‘헛나오다’를 사용해도 괜찮다는 게 국립국어원의 견해다. 다만 ‘헛 나오다’처럼 쓸 순 없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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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미디빅리그>의 새 코너 ‘오지라퍼’가 인기를 끌고 있다. ‘오지라퍼’는 이국주씨와 이상준씨의 남다른 입심 대결이 돋보이는 개그 코너의 제목이다. ‘오지라퍼’는 2007년 무렵 ‘오지랖’에 영어권에서 사람을 뜻하는 접사 ‘er’를 붙여 만든 신조어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일컫는다.


오지랖은 원래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하지만 ‘오지랖’을 일상생활 속에서 앞자락이란 의미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지랖’은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구로 주로 쓰인다. ‘오지랖’은 남의 작은 어려운 일에도 마음이 아파 도와주려고 무던히 애쓰는 사람을 가리키는 좋은 뜻으로 쓸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지랖’을 주로 쓸데없이 지나치게 아무 일에나 참견하는 사람을 살짝 비꼬는 말로 사용한다. 따라서 이 말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요즘은 ‘웬 오지랖?’에서 보듯 ‘오지랖’만 사용해 ‘주제넘게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다’란 뜻으로도 많이 쓴다.

우리말에서 ‘오지랖이 넓은 사람’에 해당하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힘들어 ‘오지라퍼’란 신조어가 생긴 것 같다. 어쩌면 국어사전엔 없지만 ‘간섭쟁이’ ‘참견쟁이’가 우리말과 외래어를 억지로 결합시켜 만든 ‘오지라퍼’의 한 대안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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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로 말발을 세우는 자는 아무리 소수라 해도 두려운 법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말발’을 찾으면 나오는 관용구다. ‘말발을 세우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발’은 말의 기세나 힘을 의미한다. ‘말’ 뒤의 ‘발’은 ‘기세’ 또는 ‘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끗발’ ‘물발’ ‘안주발’ ‘술발’ ‘오줌발’ 등이 그런 의미로 쓰인 것이다. 사람들이 ‘당당한 기세’란 뜻으로 많이 쓰는 ‘끝발’ 혹은 ‘끝빨’은 ‘끗발’이 바른말이다. 화투 같은 노름 따위에서 셈을 치는 점수를 나타내는 단위가 ‘끗’이고 좋은 끗수가 잇따라 나오는 기세를 일컬어 ‘끗발’이라고 한다. 접미사 ‘발’은 ‘약발’ ‘사진발’ ‘조명발’ ‘화장발’ 따위에서 보듯 일부 명사 뒤에 붙어 ‘효과’의 뜻을 더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말발’ ‘조명발’ ‘화장발’ 등을 ‘말빨’ ‘조명빨’ ‘화장빨’ 등으로 잘못 쓰는 이들이 많다. 접미사 ‘발’의 실제 발음이 ‘빨’이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비록 소리는 ‘말빨’ ‘화장빨’로 나더라도 글말로는 ‘말발’ ‘화장발’로 써야 한다.

우리말에 접미사로 쓰이는 ‘빨’은 없다. 그래서 명사 뒤에 ‘빨’이 붙는 경우도 없다. ‘빨’로 끝나는 단어도 ‘이빨’ ‘빨빨’ 정도뿐이다. 이들을 제외하곤 ‘빨’로 소리 나는 것은 모두 ‘발’로 적어야 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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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텔레비전에서 ‘먹방(먹는 방송)’이나 ‘쿡방(요리하는 방송)’을 가끔 본다. 그중에서도 케이블 채널인 코미디 TV의 <맛있는 녀석들>을 재미나게 보는 편이다. 당사자에겐 참기 힘든 벌칙이겠지만, ‘쪼는 맛’이라는 복불복 게임에 걸려 남들이 먹는 것을 구경만 해야 하는 사람의 표정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너무 모진 생각인가.



아무튼 ‘쪼는 맛’은 어떤 맛일까? 화투 두 장을 포개어 놓고 있다가 뒷장이 붙기를 바라며 마음을 졸이며 패를 보는 행위를 연상하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하지만 ‘쪼다’에는 카드나 도박과 관련된 뜻이 전혀 없다. ‘쪼다’는 ‘닭이 모이를 쪼고 있다’에서처럼 알 수 있듯 ‘뾰족한 끝으로 쳐서 찍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혹은 좀 어리석어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쓰인다.

카드는 ‘쪼는 맛’이 아니라 ‘죄는 맛’이라고 해야 바른말이 된다. ‘죄다’는 일반적으로 ‘느슨하거나 헐거운 것이 단단하거나 팽팽하게 되다’란 뜻으로 알지만, ‘노름 따위에서 마음을 졸이며 패를 보는 행동’이란 의미도 있다.

‘죄는 맛’이라고 하니 말맛·글맛이 영 없기는 하다. 우울한 소식이 들린다. 글쓴이가 응원하는 팀 선수가 해외에서 ‘쪼는 맛’ 아니 ‘죄는 맛’을 즐기다 수사를 받고 있단다. 안타깝다.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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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능프로그램에서 ‘딱밤’을 때리고, 맞는 장면을 가끔 본다. 그 장면을 보다보면 어릴 적 ‘수업시간에 장난치다’, ‘운동장에서 여학생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다’ 선생님에게 걸려 ‘땡꼬’를 맞던 일이 생각난다.

‘땡꼬’는 ‘꿀밤’의 영남 사투리다. 지역에 따라 ‘땅콩’ ‘딱콩’ ‘땡콩’이라고도 하는데 모두 방언이다.

‘꿀밤’과 ‘딱밤’의 차이는 뭘까? 누구는 주먹으로 때리느냐, 손가락으로 때리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그럴듯하지만 아니다. ‘꿀밤’은 국어사전에 있는 말로 표준어 대접을 받지만, ‘딱밤’은 사전에 없는 말이란 것이다. 국립국어원 ‘묻고답하기’ 코너에도 ‘딱밤’의 표준어로 ‘꿀밤’이나 ‘알밤’을 제시하고 있다.




‘꿀밤’이나 ‘알밤’은 ‘주먹 끝으로 가볍게 머리를 때리는 행위’를 일컫는다. ‘꿀밤’은 ‘주다’ ‘맞다’ ‘때리다’와 잘 어울리지만 ‘알밤’ 뒤에는 주로 ‘먹이다’ ‘주다’가 온다. ‘딱밤’은 사전에 없는 말이므로 쓰지 말아야 할까? 사전에 없다고 해서 모두 비표준어인 것은 아니다. 우리말법에서 벗어나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쓰면, 그 단어가 사전에 있든 없든 바른말이라는 게 글쓴이의 생각이다. ‘딱밤’과 ‘꿀밤’은 말이 주는 느낌이나 말맛도 많이 다르다.

가을 하늘이 더없이 높고, 아름다운 요즘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이 ‘알밤답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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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6일은 경향신문 창간기념일이다. 지난 6일 경향신문은 ‘창간 69주년’을 맞아 사옥에서 ‘어떤 치우침이나 편견 없는 시각으로 바른 균형자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자’는 다짐을 하며 조촐한 자축연을 열었다.

우리는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해’를 헤아린다. 그런데 해를 세는 말 가운데 ‘주년(週年)’과 ‘주기(週忌)’의 쓰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사전의 뜻풀이만으로는 그 쓰임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주기’는 사람이 죽은 뒤 그 날짜가 해마다 돌아오는 횟수를 나타내는 말이다. ‘할아버지 20주기’ ‘안중근 의사 순국 105주기’와 같이 쓸 수 있다. 반면 ‘주년’은 1년 단위로 돌아오는 해를 세는 말이다. ‘경향신문 창간 69주년’ ‘결혼 20주년’과 같이 쓴다.


그 러면 ○○○ 사망 1주년과 같은 표현은 가능할까. 국립국어원은 ‘1년 단위로 돌아오는 해를 세는 말’의 뜻만 생각한다면 ‘주년’을 쓰지 못할 것은 없다고 한다. 다만 ‘주년’의 전형적인 용례가 ‘결혼 20주년’과 같다는 점을 들어 ‘주기’를 쓰는 게 낫단다. 즉 ‘주년’은 중립적인 의미로 길흉에 모두 쓸 수 있으나 사람이 죽은 뒤 그 날짜가 해마다 돌아오는 횟수를 나타내는 제한적인 문맥에서는 ‘주기’를 써야 한다. 내일은 한글날이다. 뜬금없지만 569돌 한글날을 맞아 질문 하나. 한글날의 원래 이름은? ‘가갸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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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연휴가 끝났다. 아내는 명절 준비로 많이 힘들었겠지만, 글쓴이는 모처럼 가족·친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게다가 이번 추석엔 휘영청 밝게 떠 있는 ‘보름달’도 봤다.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빈 이들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신문·방송들이 ‘보름달’을 ‘슈퍼문’이라 부르며 너무 요란을 떠는 듯해 마음이 불편했다. 신문·방송 탓인지 너 나 할 것 없이 보름달을 ‘슈퍼문’이라고 한다. 이번 보름달이 여느 보름달과 다름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어느 때보다 크고 밝은 보름달’ 등으로 설명하면 될 텐데. 굳이 어려운 외래어를 써야 하는지….


근래 들어 외래어가 우리말을 밀어내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골키퍼가 상대의 슛을 잘 막는다는 뜻을 지닌 우리말 ‘선방’이 브라질월드컵 이후 ‘슈퍼세이브’로 바뀌다시피 했다. 추석 연휴에 방송된 아이돌 스타 미니실내축구경기에서도 해설자는 골키퍼가 선방할 때마다 ‘슈퍼세이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금쪽같은 시간’ ‘황금시간’은 ‘골든타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말이 외래어에 자리를 점점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말 대신 외래어를 쓰는 이유가 뭘까? 외래어가 우리말보다 더 전문용어로 들린다는 그릇된 인식 탓이라고 한다면 너무 옹졸한 생각일까. 한글날이 다가온다.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을 한번쯤 되새겨 봤으면 좋겠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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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홈페이지에 독특하고 재미나는 사이트가 생겼다. 향이집(가족), ‘향이네’다. ‘향이네’의 ‘네’는 ‘집, 가족’을 의미한다. 이 접미사 ‘네’는 그 쓰임새가 다양하다.

우선 ‘네’는 명사 뒤에 붙어 ‘같은 처지의 사람’이란 뜻을 더하는 말이다. ‘우리네, 남정네, 아낙네, 동갑네’가 그런 사례이다. 또한 ‘향이네’에서 보듯 ‘네’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사람이 속한 무리’나 ‘어떤 집안 또는 가족’임을 나타낸다. ‘철수네, 김 서방네, 아저씨네’가 그렇게 쓰인 것이다.





‘너네 둘이 어디 가니?’처럼 ‘너’에 ‘네’가 붙은 ‘너네’도 입말로 널리 쓰인다. 그런데 어떤 이는 ‘네’는 사람을 직접 가리키는 인칭대명사에 붙여 복수를 만드는 말이 아닐뿐더러 의미도 모호한 면이 있어 너네는 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너네’는 ‘너희’로 써야 한단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이네, 그네, 저네’가 대명사 ‘이, 그, 저’에 ‘네’가 붙어 굳어진 낱말로 사전에 있으므로 ‘너네’도 쓸 수 있다고 밝혔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과 ‘연세현대 한국어사전’에도 ‘너네’가 ‘우리네’와 함께 올라 있다. 우리말법에 어긋나는 말이 아니라는 소리다.

곧 추석, 고향으로 가는 길이 멀어도 마음만은 편안한 게 우리네 명절의 풍경이다. 고향 가는 길에 읽을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한 ‘향이네’도 한번 들러보시길….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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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티’일까, ‘옥의 티’일까?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나 물건이라 하여도 작은 흠이 있다’란 뜻으로 쓰이는 속담은 ‘옥에 티’다. 그런데 말법대로라면 ‘옥의 티’가 맞는 말이다. 앞 명사가 ‘의’ 뒤에 있는 명사를 꾸며주는 구실을 하는 구조여서다. ‘하늘의 별 따기’ ‘그림의 떡’에서 쓰인 ‘의’가 그렇다.

‘옥에 티’는 ‘옥에 티가 있다’란 관용적 표현에서 서술어 ‘있다’가 생략된 것이다. ‘만에 하나’나 ‘열에 아홉’도 ‘만 개 가운데에 하나’ ‘열 개 중에 아홉’이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관용적으로 ‘에’를 쓴다. 단순히 옥 속에 있는 티를 가리킬 땐 ‘옥의 티’로 쓰면 된다.


그럼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딴다’가 줄어 ‘하늘에 별 따기’가 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으냐고 되물을 수도 있겠다. ‘하늘의 별 따기’는 ‘하늘의 별’이 하나의 단어처럼 연결된 관용구로 본다. ‘그림의 떡’ ‘천만의 말씀’도 마찬가지다. 연결성이 강한 ‘별의별’ ‘반의반’은 아예 단어로 굳어졌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하늘에 별이 참 많다’처럼 장소 개념으로 쓴다면 ‘에’로 적는다.

며칠 전 경향신문이 공공기관 청년 인턴에게 정규직 자리는 ‘그림의 떡’이란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요즘 뒷배경 없이 능력만 가지고 대한민국 청년들이 직장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듯하다. 가슴이 답답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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