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 여기저기서 예초기 소리가 들린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산길마다 차량이 줄지어 서 있는 게 눈에 띈다. 사는 게 아무리 바빠도 조상님 산소를 벌초하는 것을 빠트릴 순 없다. 예부터 민간에서는 처서(8월23일)에서 백로(9월8일) 사이가 벌초의 적기라 해 이때 벌초를 했다.



벌초(伐草)는 무덤의 풀을 베어서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한데 벌초의 벌(伐)이 ‘칠 벌’자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조상을 모신 봉분을 깎는데 ‘칠 벌’자를 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며 금초(禁草)를 쓰기도 한다. ‘금초’는 잔디가 자라지 못하도록 풀을 베어 잘 보살핀다는 뜻이다.

추석을 앞두고 벌초하다가 ‘땡벌’에게 쏘였다는 기사가 자주 난다. “당신은 못 말리는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이 노래 때문인지 ‘땡벌’을 표준어로 아는 사람이 많은데 방언이다. ‘땅벌’이 바른말이다. ‘땅벌’은 땅속에 집을 짓고 사는 말벌과의 벌이다. ‘땅강아지’ ‘땅거미’ ‘땅벌레(풍뎅이의 애벌레)’ ‘땅꽈리’ ‘땅콩’ ‘땅두릅나무’ 등에서 보듯 우리말에는 ‘땅’이 붙는 벌레나 식물이 많다.

어쩌면 벌초란 말도, 벌초하다 벌에게 쏘였다는 말도 옛말이 될지 모르겠다. 화장(火葬)을 선호해 유해를 납골당 등에 모셔 벌초할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서다. 아무튼 올해엔 벌초하다 벌에게 쏘였다거나 예초기에 다쳤다는 얘기가 들리지 않길 바란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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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는 싹수의 방언이다. 언제부터인가 특정 지역의 방언에 지나지 않는 ‘싸가지’가 지역에 상관없이 널리 쓰이고 있다. ‘싸가지’는 ‘싹’에 접미사 ‘아지’가 붙은 꼴이다. ‘강아지, 망아지, 바가지’에서 보듯 ‘아지’는 ‘작은 것, 어린 것’을 가리킨다. 따라지(보잘것없는 사람), 모가지 등처럼 작은 것을 가리키되 비하하는 의미를 덧붙이기도 한다.

‘싹수’와 ‘싸가지’는 의미와 용법에서 차이가 있다. ‘싹수’는 ‘있다’ ‘없다’ ‘보인다’ ‘노랗다’ 등과 잘 어울린다. 그러면서 ‘장래성, 가능성, 희망’이라는 비유적 의미를 지닌다. 반면 ‘싸가지’는 주로 ‘있다’ ‘없다’와 어울려 ‘버릇이나 예의가 있고 없음’을 나타낸다.




‘싸가지’는 부정어 ‘없다’를 생략하고 의인화해 ‘걔, 싸가지네’처럼 쓰기도 한다. ‘싸가지’에 ‘버릇이나 예의가 없는 사람’이란 부정적 의미가 생겨난 것이다. 이때 ‘싸가지’는 ‘싹수’와는 전혀 다른 뜻을 갖는 새로운 말인 셈이다.

지금도 ‘싸가지’는 ‘내 사랑 싸가지’에서 보듯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말로도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 이처럼 ‘싹수’와 ‘싸가지’는 의미뿐만 아니라 쓰임새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싸가지’를 방언으로 묶어두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싸가지’에게 표준어 대접을 해주는 것을 고민해봤으면 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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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남북 고위급접촉을 보도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했다. 하루 만에 다시 ‘괴뢰도당’으로 바꾸었지만 북한이 ‘남한’을 ‘대한민국’으로 부른 것은 이명박 정부 이래 처음이다. 오래전엔 대한민국도 북한을 ‘북한 괴뢰(북괴)’라고 불렀다. 그땐 남북한이 서로를 ‘괴뢰 정부’라고 비난하던 시절이었다.



괴뢰(傀儡). 한자말이라 참 어렵다. 쉬운 말로 하면 ‘꼭두각시’다. ‘괴뢰’의 한자가 꼭두각시(허수아비) 괴(傀)와 꼭두각시 뢰(儡)다. ‘꼭두각시’의 ‘꼭두’는 한자말 곽독(郭禿)에서 나왔다. 곽독은 기괴한 가면이나 탈을 씌운 인형을 말한다. ‘곽독’이 우리나라에서 ‘곡독’ ‘곡도’로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꼭두’로 변했다. 여기에 ‘각시’가 덧붙여지면서 ‘색시 인형’을 뜻하는 ‘꼭두각시’가 되었다.

그러다가 인형(꼭두각시)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조종하는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하여, 주체성 없이 조종되는 사람이나 정부를 이르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허수아비, 망석중, 망석중이, 가르친사위가 모두 꼭두각시와 비슷한 뜻을 지닌 우리말이다.

망석중이 또는 망석중은 팔다리에 줄을 매어 그 줄을 움직여 춤을 추게 만든 인형을 말하고, 가르친사위는 창조성 없이 무엇이든지 남이 가르치는 대로만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전부 줏대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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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하루가 여삼추다.” 대통령이 현장에서 제기된 문제들은 바로바로 처리하라고 주무부서를 질타하며 한 말이다. ‘하루가 여삼추’는 하루가 3년과 같다는 의미로, 짧은 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짐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하루가 열흘 맞잡이’ ‘일각이 삼추 같다’라고도 한다.

이들은 모두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지닌 우리 속담이다. 그런데 ‘맞잡이’란 단어가 좀 낯설다. ‘맞잡이’는 ‘서로 비슷한 셈이나, 무게, 부피’ 또는 ‘서로 힘이 비슷한 사람’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맞잡이’의 ‘맞’은 ‘맞담배’ ‘맞적수’ ‘맞바둑’ 따위에서 보듯 일부 명사 앞에 붙어 ‘마주 보면서 하는’이나 ‘서로 엇비슷한’의 의미를 더한다.





따라서 ‘맞잡이’는 “나에게 큰형은 곧 아버지 맞잡이다”나 “결승에서 맞잡이끼리 붙어서 승부가 잘 나지 않는다”에서처럼 ‘비슷하다’ ‘마찬가지다’나 ‘맞수’라는 의미로 쓸 수 있다. ‘맞잡이’는 ‘맞적수’ ‘맞들이’와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

또한 ‘맞잡이’는 ‘라이벌’을 대체해 쓸 수 있는 우리말이다. 프랑스는 자국 언어의 세 확장을 위해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고 한다. 프랑스처럼은 못해도 외래어를 우리말로 바꾸어 쓰려는 노력이라도 했으면 한다.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으로 그에 해당하는 우리말을 잃지 않도록….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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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재미나는 휴대폰 벨소리를 들었다. 제목이 ‘휘뚜루마뚜루’다. ‘휘뚜루마뚜루’는 ‘이것저것 가리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마구 해치우는 모양’을 일컫는 순우리말이다. ‘후뚜루마뚜루’나 ‘휫두루맞두루’라고도 하는데 ‘휘뚜루마뚜루’만 표준어다. ‘휘뚜루’만 써서 ‘닥치는 대로 대충대충’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휘뚜루마뚜루’의 ‘마뚜루’는 의미 없이 운율을 맞추기 위해 붙인 말이다. 우리말엔 특별한 뜻은 없지만 비슷한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재미를 주는 말이 많다. ‘눈치코치’ ‘미주알고주알’ ‘알나리깔나리’ ‘곤드레만드레’ 등등. ‘가시버시(부부)’도 마찬가지다. ‘가시’는 아내를 이른다.



다만 ‘가시버시’를 두고는 의견이 좀 나뉜다. 대부분 ‘버시’를 운을 맞추기 위해 덧붙인 말로 보지만 남편의 순우리말로 보는 학자도 있다. ‘가시버시’는 ‘가시밧’에서 왔고, 남편을 뜻하는 ‘밧’이 ‘버시’로 변했기 때문에 ‘버시’가 남편이라는 주장이다. 그 이유로 일부 지역에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뜻하는 ‘버시아버지’ ‘버시어머니’가 사용되고 있음을 든다.

해서 ‘버시’는 예전에 남편을 이르는 고유어라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반영해서일까.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버시’를 표제어로 올려놓았다. 아무리 좋은 우리말이라도 쓰지 않으면 죽은언어가 된다. 국어사전 속에 잠들어 있는 우리말을 한번 깨워보자.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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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인터넷상에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돌더니 최근엔 방송·신문 기자들도 아무 생각 없이 유행어처럼 따라 하고 있다. ‘역대급 미모’ ‘역대급 공연’ ‘역대급 선수’ ‘역대급 가뭄’…. 거의 모든 말 앞에 ‘역대급’이란 신조어가 수식어처럼 붙는다. ‘역대급’을 ‘최고’나 ‘최악’ 정도의 뜻으로 알고 쓰는 듯하다.

‘역대’는 ‘대대로 이어 내려온 여러 대 또는 그동안’을 의미한다. 그리고 ‘급’은 직급을 뜻하는 명사 뒤에 붙어 ‘그 직급’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과장급처럼 쓰는 ‘급’을 ‘역대’에 붙일 수 없다. ‘역대급’은 정체불명의 단어이고, 의미적 호응도 부자연스러운 말이다. 우리말 조어법에도 어긋난다.


‘역대’ 뒤에 오는 ‘급’은 쓸데없이 덧붙인 말에 불과하다. ‘역대 최고의 미모’ ‘역대 최고의 경기’ ‘역대 최악의 가뭄’처럼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 ‘급’을 붙이고 싶다면 ‘역대 최고급 자동차’ ‘역대 최고 수준급 경기’에서 볼 수 있듯 ‘역대’와 ‘급’ 사이에 ‘지금까지 이어 내려온 것 중에서 어떠하다’나 ‘지금까지 드러난 내용 중에서 어떠하다’라는 말이 와야 한다.

줄임말과 신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신어는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권장할 만하다. 단지 우리말법에 맞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신어를 만들어 사용하거나 단어를 지나치게 줄여 쓰는 것은 문제란 얘기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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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시 싫어하거나 꺼리며 놀람’이란 의미로 쓸 수 있는 표현이 ‘질색하다’이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질색팔색’도 많이 쓰인다. 하지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질색팔색’이란 단어가 없다. 다만 ‘칠색(七色) 팔색 하다’가 관용구로 올라 있다. 이는 얼굴색이 7가지로 변할 만큼 매우 질색을 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인지 ‘질색팔색’은 틀린 말 내지는 재미 삼아 만든 말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질색팔색’은 우리말 조어법에 맞지 않는 말일까? 그렇지 않다. ‘질색팔색’은 ‘질색’에 ‘팔색’이 붙은 단어로 볼 수 있다. 이때 ‘팔색’은 국어사전에 없지만 운율을 맞추기 위해 이용된 것으로, 별다른 의미가 없다.




우리말엔 앞말 뒤에 특별한 뜻은 없지만 비슷한 단어를 나열함으로써 재미를 주는 말이 꽤 있다. ‘흥청망청’의 ‘망청’, ‘알나리깔나리’의 ‘깔나리’, ‘미주알고주알’의 ‘고주알’이 음의 장단을 위해 붙인 말이다. 흔히 쓰는 ‘얼레리꼴레리’는 ‘알나리깔나리’가 바른말이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질색팔색’을 표제어로 올려놓았다. 즉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질색팔색’을 ‘알나리깔나리’ ‘미주알고주알’처럼 비슷한 형태의 말이 반복되는 단어로 보고 표제어로 올린 것이다. 국립국어원보다 현실 언어를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한 셈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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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에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을 제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기림일’이란 용어가 마뜩잖다. 기억에서 사라진 ‘위안부 기림비’까지 되살아나 영 언짢다.

기림일’은 기리다의 명사형 ‘기림’에 날을 뜻하는 ‘일’을 붙여 만든 말이다. ‘기리다’는 ‘뛰어난 업적이나 바람직한 정신, 위대한 사람 따위를 칭찬하고 기억하다’란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위안부 할머니에게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에게 일제가 저지른 만행은 규탄해도 모자랄 지경인데 기리는 날을 만들다니 그 무슨 당찮은 소린가.




그러면 ‘기림일’ 대신 어떤 말을 써야 할까. 지난해 국립국어원이 밝힌 ‘위안부 기림비’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국립국어원은 ‘기림비’ 대신 ‘추모비’ ‘추념비’ ‘불망비’로 쓸 것을 제안했다. 이 중 ‘추모비’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하기 위해 세운 비이기에 생존해 있는 할머니가 계시므로 적절치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추념비’는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한다’는 뜻을 담고 있고, ‘불망비’는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어떤 사실을 적어 세우는 비석’이다. ‘불망비’는 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 있다.

위안부 ‘기림일’은 ‘추념일’이나 ‘불망일’로 쓰는 게 좋을 듯하다. 잘못된 말 때문에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날이 오히려 상처만 덧나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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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배가 ‘여지껏(여직껏)’이 틀린 말이고 왜 그런지 이유까지 설명할 줄 알면 우리말 실력이 상위 1% 내에 드는 사람이란다. 이 말이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여지껏(여직껏)’을 표준어로 아는 사람이 많다.

‘여지껏(여직껏)’은 ‘여태껏’을 잘못 쓴 말이다. ‘이제껏’이나 ‘입때껏’도 ‘여태껏’과 같은 의미다. 그런데 ‘여지껏’과 ‘여직껏’은 왜 틀린 말일까?

그 이유를 ‘껏’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마음껏’ ‘힘껏’ ‘이제껏’ ‘지금껏’ 등에서 볼 수 있듯 ‘껏’은 일부 명사나 부사 뒤에 붙어서 ‘그것이 닿는 데까지’나 ‘그때까지 내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접미사는 부사나 명사 뒤에서 의미를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없어도 대부분 말이 통한다. ‘마음껏, 힘껏, 지금껏’….

그러고 보니 ‘껏’ 앞에 있는 단어는 모두 홀로 쓸 수 있는 말이다. 즉 ‘껏’ 앞에 오는 말은 모두 표준어인 것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제는 알 듯하다. 여지껏(여직껏)이 표준어가 되려면 지금을 뜻하는 여지나 여직이란 말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을 뜻하는 ‘여지’는 사전에 아예 없는 말이고, ‘여직’은 ‘여태’의 잘못으로 나온다. 따라서 ‘여지’나 ‘여직’이 틀린 말이므로 접미사(껏)를 붙일 수 없다. 그래서 ‘여지껏’이나 ‘여직껏’은 표준어가 아니라는 소리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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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질문 하나 하자. ‘실뭉치, 실타래, 실몽당이, 토리’ 중 표준어가 아닌 말은 어느 것인가? 이 중 비표준어는 실뭉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실뭉치를 찾아보면 ‘실몽당이’의 잘못으로 나온다.

‘실타래’는 실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도록 한데 뭉치거나 감아 놓은 것을 말한다. ‘토리’는 실몽당이를 세는 단위다. ‘실몽당이’는 실을 꾸려 감은 뭉치를 뜻한다. ‘몽당이’가 노끈, 실 따위를 공 모양으로 감은 뭉치다. 결국 ‘실몽당이’가 ‘실뭉치’인 것이다.




그런데 왜 실뭉치는 비표준어일까? “실몽당이와 실뭉치는 같은 의미이나, 의미가 똑같은 형태가 몇 가지 있을 경우 그중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널리 쓰이면, 그 단어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표준어 규정에 따라 ‘실몽당이’만을 표준어로 인정하였다.” 국립국어원 묻고 답하기 코너에 올라 있는 답변이다.

표준어를 정할 당시에는 ‘실몽당이’가 ‘실뭉치’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잘못 쓰는 말은 고쳐 쓰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말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표준어로 인정하는 게 맞다. ‘실’도 ‘뭉치’도 표준어이고, 우리말 조어법상에 문제가 있는 말도 아니다. 실뭉치를 실몽당이의 잘못으로 묶어놓을 이유가 없다. 사전이 사람들의 말 씀씀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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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봤다.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는 요리연구가 ‘백주부’ 백종원씨가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요리하면서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장면이 재미나고 참신했다.

방송 중 ‘고급진 재료’ ‘고급진 음식’이란 말이 나왔다. ‘고급지다’라는 말은 사전에 없다. ‘품질이 뛰어나고 값이 비싼 듯하다’를 뜻하는 말은 ‘고급스럽다’이다. ‘고급하다’도 같은 의미다. ‘고급지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비표준어는 아니다. ‘지다’는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 있음, 또는 그런 모양임’의 뜻을 더한다. 따라서 ‘값지다’나 ‘기름지다’처럼 ‘고급’에 접미사 ‘지다’를 붙여 ‘고급지다’라는 단어를 만들 수 있다.




해서 국립국어원은 올 3월 ‘고급지다’를 신어사전에 올렸다. 그리고 ‘고급지다’에 ‘고급스러운 멋이 있다’란 뜻풀이를 달았다. ‘신어(신조어·새로 생긴 말)’는 표준어와 비표준어로 나누기 이전 단계의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신어의 사용 양상을 관찰한 후 사전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즉 ‘신어’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면 ‘표준어 대접’을 받게 되고, 사전에 표제어로 오르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비표준어로 남게 된다.

우리말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신어를 사전에 올리는 게 맞다. 하지만 사전에 올리기 전 우리말법에 맞는지 꼼꼼히 살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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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에서 요리사가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후 유명해져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기사를 봤다. 예약하지 않고 무작정 식당을 찾은 손님들은 헛걸음하기 일쑤란다. 그러면서 기사는 요리사가 기쁨에 겨워하는 모습을 ‘한 달 전에 예약해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유명세를 타고 있다’로 묘사했다.

이는 한자말을 잘못 쓴 경우로, 손님이 많아서 기뻐한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다 ‘손님 때문에 불편하고 곤욕을 치르다’는 뜻으로 만들어버렸다. ‘유명세’의 뜻을 몰라 벌어진 실수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유명세’를 긍정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 ‘유명세’는 주로 정치인이나 연예인이 유명하기 때문에 당하게 되는 불편함이나 곤욕을 뜻하는 말이다. 한마디로 나쁜 뜻이다. 그래서 유명세(有名稅)의 한문 ‘稅’에서 볼 수 있듯 유명해서 겪는 고통을 세금에 빗댄 것이다.


‘유명세’는 부정적인 의미에나 쓸 수 있는 말이다. 따라서 ‘유명세’는 ‘치르다’ ‘겪다’ ‘따르다’ ‘내다’ 등과 주로 어울린다. 긍정적인 상황이나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엔 ‘유명세’를 쓰면 안된다. 이땐 ‘이름을 날리다’ ‘이름을 떨치다’ ‘이름을 드날리다’ 따위로 써야 한다. 한자말을 잘못 쓰는 실수를 줄이는 방법은 사전을 자주 찾는 것이다. 물론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쉬운 우리말로 풀어 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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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근처 덕수궁 주변은 늘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특히 덕수궁 앞 조선시대 수문장 교대의식이 ‘재연/재현’되는 시간이면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런데 요즘은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인지 거리가 한산하다.

‘재연’과 ‘재현’은 발음과 의미가 서로 비슷해 헷갈리기 쉬운 말이다. 똑 부러지게 구별하기도 쉽잖다.

재연(再演)은 ‘한번 행하였던 일을 되풀이하는 것’을 뜻한다. ‘범인은 현장 검증에서 태연히 범행을 재연했다’처럼 동작이나 행위가 되풀이될 때 쓴다.


반면 재현(再現)은 다시 나타난 현상을 뜻한다. ‘선사시대 모습을 재현한 움막들이 들어서 있다’처럼 현상에 강조점을 둔다. ‘지금은 사라진 어떤 것이 다시 나타나거나 나타나게 하는 것’이 재현이다.

일반적으로 행위가 반복되는 것은 ‘재연’, 옛 모습을 되살리는 것은 ‘재현’을 쓴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문장에서 ‘재연’과 ‘재현’, 둘 다 쓸 수 있는 경우다.

‘6·25 전쟁과 같은 동족상잔의 참사가 재연/재현되어서는 안된다’의 경우 싸우고 죽이는 동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면 ‘재연’, 전쟁의 결과 나타난 현상에 강조점을 둔다면 ‘재현’을 써야 한다. 또한 덕수궁 앞에서 벌어지는 ‘수문장 교대의식’을 표현할 때 의식이 진행되는 동적 상황을 강조하면 ‘재연’, 수문장의 복장 등 현상, 정적인 것에 주안점을 둔다면 ‘재현’이 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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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공세성 발언이 금도를 벗어났다.” ‘금도’에 눈길이 간다. 무슨 뜻인가. 언제부터인가 일부 정치인들이 상대를 공격하거나 상대의 말을 반박할 때 한자말인 ‘금도(襟度)’를 즐겨 쓴다. 아마도 ‘금도’를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나 ‘한계’ 정도의 뜻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말에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란 뜻의 ‘금도’는 없다. 본래 쓰이는 ‘금도(襟度)’는 ‘다른 사람을 포용할 만한 도량이나 아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해서 ‘금도’는 ‘금도를 베풀다’ ‘금도가 있다’처럼 써야 한다. ‘넘어서는 안되는 선’이란 뜻과는 전혀 상관없다. 따라서 ‘금도를 벗어나다’나 ‘금도를 넘어서다’는 단어의 본뜻과는 다르게 쓰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본뜻과 다르게 ‘금도’가 너무 자주 쓰이다 보니 일부에서는 ‘금도(禁度)’라는 한자말을 만들어 쓰면 어떻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금지하다’를 뜻하는 ‘금(禁)’과 ‘도량’을 의미하는 ‘도(度)’를 합쳐 한자말 ‘禁度’를 만들자는 것이다. 그러면 쉽게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구태여 이렇게까지 해서 어려운 한자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한자말보다는 쉬운 우리말로 풀어쓰는 습관을 들이는 게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글쓴이처럼 뜻도 모르고 한자말 쓴다고 토를 다는 사람은 있어도 쉬운 우리말로 풀어쓴다고 타박 주는 사람은 없을 테니.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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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자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이집트의 음역어가 애급(埃及)인데 <성경> 창세기 다음 제2장에 나오는 ‘출애굽기’는 왜 ‘출애급기’로 표기하지 않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헬라어(그리스어)로 이집트를 아이귑토스라고 한다. 아이귑토스를 음역화한 게 ‘애급’이다. 불란서(프랑스), 이태리(이탈리아), 화란(네덜란드) 등은 널리 쓰이는 음역어다. 영국(英國)은 ‘잉글랜드’의 음역어 ‘영란(英蘭)’에서 온 말이다. 영(英)이 중국어 발음으로 ‘잉’이다. 음역어는 한자를 가지고 외국어의 음을 나타낸 말이다.


표기상 ‘출애굽기’는 ‘출애급기’로 쓰는 게 맞다. 하지만 ‘애급’보다는 ‘애굽’으로 발음하는 게 쉬워 ‘급(及)’의 음이 ‘굽’으로 변한 것이다. ‘초생’이 ‘초승’, ‘이생/저생’이 ‘이승/저승’, ‘금슬’이 ‘금실’로 변한 것처럼 한자말을 우리말로 적을 때 원래 소리가 변한 것이 더러 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도 ‘출애굽기’의 ‘굽’의 음이 변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출애굽기’와 ‘출애급기’ 중 어느 것이 맞느냐도 중요하겠지만 개인적으론 ‘이집트 탈출기’라고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요즘 한글세대뿐만 아니라 한문에 웬만한 관심이 없으면 ‘애급’이 이집트의 음역어란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쉬운 말로 풀어놓으면 비기독교인도 좀 더 쉽게 <성경>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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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김태곤의 노래 ‘송학사’ 첫 소절이다. 산에 혼자 자주 간다. 가고 싶은 속도대로, 가고 싶은 만큼 갈 수 있어 혼자 가는 걸 좋아한다. 산기슭에서 시작해 ‘8부능선’쯤 있는 ‘깔딱고개’를 넘어 가쁜 숨을 내쉬며 산마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기분은 오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산모퉁이’는 산기슭의 쑥 내민 귀퉁이를 말한다. ‘산기슭’은 산의 아랫부분이고 ‘산비탈’은 산기슭의 비탈진 곳에 해당한다. 또 ‘산마루’는 산등성이의 가장 높은 곳이다. ‘마루’는 정상을 일컫는 우리말이다. 산 정상이 산마루다. ‘능선’은 산의 등줄기인 ‘산등성이’를 가리킨다.


‘8부능선’은 산기슭에서 산마루까지를 10등분하여 그 10분의 8이 되는 능선 부분을 일컫는다. 문제는 ‘8부능선’의 ‘부’가 일본어 찌꺼기라는 사실이다. ‘일의 10분의 1이 되는 수’를 나타내는 ‘분(分)’을 일본어 ‘부(ぶ)’로 읽은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분’이나 ‘푼’이다. 따라서 ‘8분능선’이나 ‘8푼능선’으로 표현해야 한다.

‘칠부바지’도 ‘칠분바지’나 ‘칠푼바지’로, ‘3부 이자’는 ‘3분 이자’나 ‘3푼 이자’처럼 쓰는 게 우리말법에 맞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도 ‘칠부바지’를 ‘칠푼바지’로 순화해두었다. ‘부’를 당장 ‘분’이나 ‘푼’으로 되돌리기는 힘들겠지만 순화하는 노력은 필요할 듯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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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승리를 얻어 그 어느 승리보다 뜻깊고 시쁘다.” 어느 신문에 난 기사다.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이 문장을 자연스럽게 읽고 넘어갔다면 여러분도 ‘시쁘다’의 뜻을 잘못 알고 있다. 글자 모양만 보면 뜻을 오해할 수 있는 순우리말이 있다. ‘시쁘다’도 그중 하나다.

‘시쁘다’는 ‘기쁘다’ ‘예쁘다’ 등 때문인지 좋은 뜻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한데 ‘시쁘다’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시들하다’ 혹은 ‘껄렁하여 대수롭지 않다’란 의미다. 즉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시쁜 웃음’ 하면 ‘마음에 차지 않아 웃는 웃음이나 씁쓸한 웃음’을 말한다. ‘기쁜 웃음’처럼 기뻐서, 좋아서 웃는 웃음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뜻깊고 시쁘다’는 ‘~뜻깊고 기쁘다’처럼 바꾸어 써야 적확한 표현이 된다.


보통 ‘-프다’로 끝나는 말은 ‘슬프다’ ‘서글프다’처럼 슬픔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하지만 ‘-쁘다’가 붙으면 ‘기쁘다’처럼 좋은 뜻을, ‘시쁘다’처럼 부정적인 뜻을 지닌 말도 있다.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나오는 “꺽정이 당자는 욕심으로 ‘이왕 나면 쓸 자식이나 날 것이지’ 하고 시뻐하였다”에서 볼 수 있듯 ‘시쁘다’에 하다가 붙어 동사 ‘시뻐하다’가 된다. ‘시쁘장하다’ ‘시쁘장스럽다’ ‘시틋하다’도 비슷한 의미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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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놈이 눈이 멀어 뵈는 게 없으니 세상을 이리 아사리판으로 만들어놨구나.” 영화 <왕의 남자>에서 공길(이준기)이 장생(감우성)에게 한 말이다. ‘아사리판’에 눈길이 간다. “네가 죽냐 내가 죽냐 하는 아사리판에 다른 사람의 생명은 알아 모셔서 어쩌겠냐는 세월이었다.” 이정환의 소설 <샛강>에도 아사리판이 나온다.


아사리판을 일본말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사리판은 ‘질서가 없이 어지러운 곳이나 그러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아사리판은 ‘개판’ ‘난장판’처럼 한 단어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진 않다. 사전은 ‘아사리’를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의 행위를 바르게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승려’로 풀이하고 있다. 하여 영화나 소설 속 의미와는 다른 듯하다. 어원전문가인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승려를 뜻하는 ‘아사리’와 일이 벌어진 자리를 의미하는 ‘판’이 붙어 ‘아사리판’(<정말 궁금한 우리말 100가지>)이 된 것으로 본다. 아사리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의견이 다를 경우 격론이 벌어졌는데 이 모습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해 보인 데서 ‘질서 없이 어지러운 현장’이란 비유적 의미가 생겨났다고 한다.

아사리판과 비슷한 말로 ‘아수라장’이 있다. ‘아수라’는 싸우기를 좋아하는 귀신이다. 아수라는 모이기만 하면 싸움질해 엉망진창이며 소란스럽다 해서 생긴 말이 아수라장이다. 아수라장을 줄여 ‘수라장’이라고도 한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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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기업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의 칼끝이 어디까지 미칠지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비자금’은 거래에서 관례적으로 생기는 리베이트와 커미션, 회계 처리의 조작으로 생긴 부정한 돈을 일컫는다. ‘비자금’을 쉽게 풀어쓰면 ‘꼬불친 돈’이 된다.

‘꼬불치다’가 사투리인지 표준어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꼬불치다’는 ‘돈이나 물건 따위를 몰래 감추다’라는 뜻이다. 속된 말이기는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아내 몰래 비상금을 꼬불쳐 두었다’란 예문과 함께 표제어로 올라 있다.


‘꼬불치다’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문서에 쓰기는 힘들어도 표준어 대접을 받는 단어이다. 불법·부당하다는 뜻과 함께 좀스럽고 치사하다는 어감이 살아 있는 말이기도 하다. ‘꼬불치다’를 ‘새우처럼 몸을 꼬불치고’ 따위로 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 쓴 것이다. 이땐 ‘꼬불치다’ 대신 ‘곱치다’나 ‘꼽치다’를 써야 한다. ‘반으로 접어 한데 합치다’란 의미다.

‘꼬불치다’와 비슷한 말로 ‘꿍치다’가 있다. ‘꿍치다’를 ‘몰래 숨겨 놓다’의 전라도 방언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꿍치다’가 아예 없거나 ‘조금 세게 동이거나 묶다’란 의미로 쓰인 ‘꿍치다’만 올림말로 올라 있는 사전이 있어서다. 하나 ‘꼬불치다’란 뜻으로 쓰이는 ‘꿍치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표준어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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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새끼가 알에서 부화한 이후 일정 기간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새끼가 다 자라면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도 부른다.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근거다. 이러한 까닭으로 반포지효는 자식이 자란 후에 부모의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반포지효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안갚음’이다.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안갚음’이라고 한다.

‘안갚음’의 ‘안’은 ‘아니’의 준말이 아니다. ‘안’은 ‘마음’을 뜻한다. 하여 ‘안갚음’은 마음을 다해 키워준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다.


‘앙갚음’이란 말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래서 ‘안갚음’을 ‘앙갚음’의 잘못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안갚음’은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준다’, 즉 ‘보복’을 뜻하는 ‘앙갚음’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안갚음’과 반대되는 말이 ‘안받음’이다. 자식이나 새끼에게 베푼 은혜에 대하여 안갚음을 받는 것을 말한다. 자식이 마음을 다해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게 ‘안갚음’이라면, 부모가 자식의 봉양을 받는 것이 ‘안받음’이다. 기본형은 ‘안받다’이다.

벌써 5월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부모님께 문안전화를 드리는 것도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안갚음’의 하나다. 지금 부모님께 전화를 해보자.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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