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박정희는 조급했다. 정권 연장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았다. 부모의 조국을 찾아온 재일동포 유학생쯤은 얼마든지 간첩으로 둔갑시킬 수 있었다. 그건 쉬운 일이었다. 그 쉬운 일 때문에 서준식은 형 서승과 함께 17년을 갇혀 있었다.

형벌의 목적은 고통이다. 청년은 17년 내내 매일처럼, 매 순간 고통을 겪었고 장년이 되어서야 석방될 수 있었다. 누구나 고통에서 벗어나면, 다시는 그 고통을 돌아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이니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서준식은 달랐다. 출소한 다음에도 맹렬히 뛰었다. 그 대가는 다시 구금의 고통을 겪는 일로 이어졌다. 1991년엔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다, 1996년엔 인권영화제에서 제주 4·3항쟁을 다룬 영화를 틀었다고 또 갇혔다. 당시 서준식은 인권운동사랑방의 대표였다. 서준식은 교도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라 유무죄에 대한 판단도 받지 않은 미결수들이 왜 수의를 입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미결수 수의 착용은 서준식의 문제제기로 위헌 결정이 났다. 깔끔하게 해결되었다. 예전 같으면 국사범으로 불릴 만한 국정농단의 주범들도 이제는 조사나 재판을 받을 때 평상복을 입을 수 있다. 창피도 덜하고, 범죄자라 낙인찍히는 일도 덜해졌다.

석방된 다음엔 교도소 실태조사를 했다. 출소자들을 붙잡고 실태조사를 했다.

감방에는 몇 명이 살았는지, 생활은 어떤지, 아프면 진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었는지 등을 꼼꼼하게 물었고, 그 결과를 <한국 감옥의 현실>이란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 군대를 개혁하기 위해, 또 군대의 부조리를 없애거나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 숱한 유력 인사들이 드나들었고, 많은 운동가들이 고통을 겪었는데도 우리의 교정시설이 고만고만한 까닭도 마찬가지다. 나오면 다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곳이 바로 교정시설이다. 그래도 서준식은 달랐다.

또 한 사람, 백태웅.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그 대가는 구속과 구금이었다. 석방된 다음에는 훨씬 더 본격적으로 운동을 했다. 박노해 시인과 함께 ‘남한사회주의자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하고, 비합법 노동운동, 혁명운동을 벌였다. 그와 동료들의 투쟁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마치 <공산당선언>이란 팸플릿이 유럽 전역을 뒤흔든 것처럼, 그들도 조직 이름에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세상에 균열을 일으키려고 했다.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박노해, 백태웅, 은수미, 현정덕 등은 모두 긴 세월 구금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백태웅은 6년4개월 동안 갇혀 있었다.

서준식과 다른 점은 시대였다. 그래도 문민정부가 출범한 다음이었으니 서준식처럼은 아니지만, 청년에게 6년 넘는 구금은 그의 모든 것을 빼앗을 만큼 긴 세월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다음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이력으로 어디든 한걸음 정도 걸쳐 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가 선택한 것은 공부였다.

미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지금은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오랫동안 수감된 사람이 이런 성취를 보여주는 건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백태웅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강제 실종 실무그룹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짬이 나는 대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유엔의 위원 자격으로 백태웅이 주로 다니는 곳이 바로 각종 구금시설이다. 최근엔 스리랑카를 방문하여 비밀감옥을 밝혀냈고, 21명의 정치범을 석방시키는 성과도 있었다.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곳일 텐데, 백태웅은 서준식처럼 사뭇 달랐다.

누구든 감옥이 그 나라 문명의 척도라는 말은 쉽게 한다. 그렇지만 법무부 교정본부가 관할하는 한국의 감옥은 여전히 사각지대다. 오래된 시설이 많은데도 교도소 신축은 온통 막혀 있다. 예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결사반대 때문이다. 하긴 특수학교마저 아파트값을 떨어뜨린다는 괴담에 시달리는 나라에서 새로운 교정시설을 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마침 다음주에 서울동부구치소가 새로 문을 연다. 예전의 성동구치소가 문정동으로 자리를 옮긴 거다. 새로 옮긴 시설은 교도관들은 물론, 수용자들도 좋아할 만큼 쾌적하다. 시설이 좋으니, 여기선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교도소는 두말할 것도 없는 기피시설이다. 누구도 자기 동네에 교도소가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교도소처럼 안전한 곳도 없는데 범죄자들을 수용하고 있기에 생긴 편견 때문이다. 그렇다고 시민들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탓할 수만은 없다. 뭔가 새로운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동부구치소는 하나의 모델이 되고 있다. 교도소만이 아니라 바로 옆에 준법감시센터와 검찰청, 법원이 함께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도소는 싫지만, 검찰청이나 법원은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화답한 거다.

중요한 국가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가 교정시설을 방문하는 경우는 없다. 국가적 관심이 별로 없으니, 교정에 대한 지원도 형편없다. 인력도 예산도, 다른 무엇도 모두 부족하기만 해서 교정교화라는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오로지 구금에만 급급해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기에 누구보다도 교도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거다. 그래서 대통령으로서 챙겨야 할 일이 한 둘이 아니겠지만, 딱 한번이라도 교도소를 방문했으면 한다. 10월 교정의 날에 맞춰도 좋고, 일정이 어렵다면 오가는 길에 교도소를 한번 들러도 좋겠다. 그래서 교도소가 더 많이 발전하고, 인권친화적으로 변모해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을 말없이 웅변해주면 좋겠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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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사인은 질식사였다. 폭발이 있었지만 한동안 숨을 쉴 수 있었다. 안전장구만 제대로 갖췄거나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피할 곳을 찾을 수 있었다면 노동자들은 그렇게 어이없게 죽지 않았을 게다. 지난 일요일, 경남 창원 진해의 STX조선해양에서 건조 중인 화물운반선에서 도장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비정규 노동자 네 명의 죽음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인명은 재천이란다. 가끔 허망한 죽음을 보면 그리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 목숨이 하늘에 달려 있다는 말은 반쯤만 맞는 말이다. 요즘 평균 수명은 남성 79세, 여성 85세지만, 1980년 평균 수명은 남성 62세, 여성 70세였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은 하늘이 아닌 사람의 몫이었다. 의학의 발전, 양질의 영양공급, 결국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하는 데 쓸 수 있는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제발전이 평균 수명의 증가로 이어졌다. 목숨은 그저 하늘에만 달려 있지 않다.

그래서 지난 일요일의 참사는 원통하다. 꽉 막힌 실내 공간에서 도장 작업을 한다는 건 애초부터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하청업체는 작업 전에 ‘위험작업신청서’를 작성했고, STX 안전요원의 허가를 받은 다음에야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막상 작업을 진행할 때, STX 안전요원과 하청업체 현장책임자는 모두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이어선지, 원래 그리 하는지는 모르겠다. 밀폐 된 공간이니 환기가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환기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관에는 곳곳에 구멍이 나 있었고, 심지어 끊어져 있기도 했다. 산소 부족에 따른 질식 우려가 큰데도 마스크 자체에 공기가 주입되는 송기마스크는 지급조차 하지 않았다. 폭발 위험을 막는 정전기 방지 의류나 신발도 지급하지 않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미리 폭발사고를 막는 게 최선이겠지만, 폭발사고가 났더라도 안전장구만 갖췄다면 사람들이 질식해서 죽는 일은 없었다. 전형적인 인재이며, 보태고 뺄 것도 없는 STX의 책임이다. STX가 하청, 재하청 비정규 노동자들의 목숨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이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뻔한 위험 속에 노동자들이 방치된 건, 그들이 하청노동자였기 때문일 거다. 말은 번듯해서 ‘협력’이라 부르지만, 단가를 후려치고 위험부담까지 떠넘기는 건 대기업의 악질적 관행이다.       

일요일에도 위험한 작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원청업체가 저렴한 입찰가만 보고 하청업체를 정하기 때문이다. 가격을 줄이고 공사기간을 맞추는 게 급선무니 안전은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다. 이번 참사는 일요일, 지난 5월 삼성중공업 참사는 노동절, 지난해 구의역 사망사건은 토요일 저녁에 일어났다.

원청과 달리 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근로조건을 개선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대개 미조직 노동자들이고 언제 일감이 끊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처지이니 원칙대로 안전을 챙기는 건 쉽지 않다. 원청업체 입장에서는 뭔가를 요구하는 하청업체나 하청업체 노동자들과는 더 이상 ‘협력’하고 싶지 않을 테니 말이다. 목숨이 달려 있으니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마저, 비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곧잘 무시되고 있다. 천박한 자본의 탐욕과 남이야 죽든 말든 상관치 않겠다는 파렴치가 노동자 네 명을 죽였다. 남들은 다 쉬는 날, 그냥 서 있기도 힘든 폭염에 밀폐 된 공간에서 페인트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겪을 고초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탐욕이 부른 참사다.          

조선업 현장에서 산재로 숨진 노동자의 열에 아홉이 하청 노동자이고, 건설업은 거의 전부가 하청 노동자다.

산업은행 등의 공적 관리를 받는 기업도 이 정도니, 자율적으로 경영하는 사영기업에 노동자들의 안전을 제대로 챙겨 달라는 요청은 어쩌면 비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영기업의 탐욕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사고 직후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하고, 이런 사고가 나면 원청의 책임을 묻겠다고 못 박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결국 한 푼이라도 더 줄이고, 한 푼이라도 더 벌자는 사영기업을 단속할 방법은 제대로 책임을 묻는 것밖에는 없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오히려 돈을 버는 일이라는 걸 체감시키는 방법밖엔 없다. 대기업이라도 이런 식의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산업재해가 적은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채택하는 가장 일반적인 정책이기도 하다. 산업재해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

문제는 말이 아니라 실행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통해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한 게 지난 17일, 이번 참사는 예방대책 발표 사흘 만에 일어났다. 이에 앞서 지난달 3일 열린 ‘산업안전보건의 날’에 보낸 영상메시지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의 최우선 가치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으로, 그 어떤 것도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보다 우선 될 수 없다”면서 산업현장의 위험을 유발하는 원청과 발주자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현장은 대통령이나 장관의 말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대통령이 직접 확인한 것처럼, 국가의 가장 중요한, 그리고 무거운 책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거다. 군대나 경찰, 또는 소방처럼 당장의 성과만 보면 얼핏 낭비적 요소가 많아 보이는 기관을 운영하는 까닭도, 아니, 그 이전에 국가라는 체제를 만든 까닭도 우리의 목숨을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비롯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무엇보다 사람의 목숨에 민감한 정부여야 한다.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자살률도 교통사고 사망률도 낮춰야 한다. 그 무거운 책무가 바로 대통령과 정부에 있다. 말은 충분하다. 이젠 구체적인 실행을 보여 달라.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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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노무현 정권 때의 경찰혁신위원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번엔 경찰개혁 작업을 꼭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했다. 아무리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쳤다 해도, 그래도 십여 년이 지났으니 경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줄 알았다. 막연한 기대와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다는 것을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부터 확인할 수 있었다.

발족식에는 경찰청장을 비롯해 40여명의 경찰관들이 참석했는데, 전부 남성이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경찰의 별’이라는 경무관 이상은 물론, 실무자들 중에도 여성은 없었다. 그래도 여성 경찰관 숫자가 꾸준히 늘어서 전체 경찰관의 10%가 되었다지만, 경찰청의 주요 행사에선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장관도 30% 이상은 여성이 맡는 세상인데, 경찰청은 요지부동이었다. 경찰은 여전히 남성만의 조직이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개혁적 경찰관들의 의견 그룹 ‘폴네티앙’과의 간담회 때는 더 충격적인 현실과 만날 수 있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딱 한 명의 여성 경찰관. 13년차 경찰관인 그는 생리휴가를 한 번밖에 쓰지 못했다고 했다. 상급자와 동료들 눈치 보느라 쓸 수 없었단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는 여성 근로자가 청구하면 월 1일의 생리휴가를 주어야 한다”(73조)고 규정하고 있다. 생리휴가를 주지 않는 건 형사처벌을 해야 하는 범죄다. 

그래서일까, 아예 여성 경찰관들이 생리휴가를 청구하지 못하게 분위기를 조성한단다. 몸이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생리휴가를 청구하면, 정 쉬고 싶으면 생리휴가 말고 병가를 내라고 한단다. 어떻든 생리휴가로 쉬는 일은 막겠다는 거다.

여성 경찰관들이 생리휴가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생리휴가가 당연시될 텐데 그게 싫다는 거다. 법률이 보장하는 권리이기에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저 법조문으로만 멈추지 않고 진짜로 당연한 권리가 되는 건 싫다는 거다. 여성 경찰관들은 물론, 경찰 조직 안에서 홀대받는 일반직 공무원이나 무기계약직까지 생리휴가를 쓰는 게 싫다는 거다.

그는 자기 신세가 남자고등학교에 다니는 여고생 처지와 비슷하다고 했다. 지구대, 파출소의 화장실이 온통 남성 위주로만 되어 있는 것도 힘들지만, 온갖 차별을 감내해야 하고 일상적으로 들어야 할 핀잔도 보통 이상이라고 했다.

간담회가 있던 날 저녁, 마침 CBS <정관용의 시사자키>에 출연할 기회가 있었다. 경찰개혁 과제를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했다. 생리휴가조차 쓰지 못하는 경찰관이, 곧 자신의 기본적 인권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시민의 인권을 지켜주겠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터뷰가 기사로 나가자 금세 숱한 댓글이 달렸다. 내용으로 짐작건대 남성 경찰관들이 쓴 글이 많았는데, 놀랍게도 일베 수준의 막말이 넘쳐났다.

아예 여경을 뽑지 말자, 남자의 영역이 따로 있는데 왜 여자들이 경찰에 들어와서는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법률이 보장하는 구체적 권리를 요구하는 게 엉뚱한 소리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이건 그래도 점잖은 편이었다. 어떤 사람은 대놓고 자기 이름까지 밝히며, “여경들, 개혁이 필요해. 불친절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범인 하나 제대로 제압도 못하고, 그렇다고 용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왜 그 자리에 앉아 있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직업 중의 하나임.” 여성은 그저 남성이 원하는 제한된 성 역할만 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경찰은 범인 검거 등 신체적 능력이 필요한 일이니 여성이 할 일이 아니란 거다.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생리휴가, 출산휴가, 육아휴가, 월차휴가, 연차휴가…. 도대체 언제 일할래?”라고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너무 힘든 출산율 꼴찌 국가는 하루아침에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여성이 생리휴가를 보장받는 건,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반응도 많았다.

대통령을 뽑는 일이든, 스스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는 일이든, 경찰관이나 다른 어떤 직업을 갖는 일이든 대개의 일들은 여성에게는 금지된 영역이었다. 남성은 일정한 나이만 되면 참정권을 보장받았지만, 여성이 똑같은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미국의 경우 50년, 프랑스의 경우 10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 지난달 타계한 서윤복 선생 덕분에 우리에게도 친숙한 보스턴 마라톤도 그랬다. 겉으로는 아무런 차별적 조건도 내세우지 않았지만 마라톤은 여성에겐 금지된 영역이었다. 여성이 800m 이상 뛰면 자궁이 떨어진다는 해괴한 소리까지 해대며 여성 출전을 막았다.

1967년 스무살 대학생 카트린 스위처는 말도 안 되는 벽을 깨기 위해 보스턴 마라톤에 나섰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경기감독관이 그를 덮쳤다. 당장 꺼지라며 등에 붙인 번호를 내놓으라고 소리 질렀다. 주변 도움으로 겨우 그 자리를 피하고서는 4시간20분의 기록으로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렇지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실격 처리되었다. 지난 4월17일, 이제 70세가 된 스위처가 50년 전과 똑같은 등번호 261번을 달고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했다. 4시간44분의 기록으로 이번에도 완주했고, 실격 처리 같은 일은 없었다. 보스턴 마라톤 측은 스위처의 번호 261번을 영구결번하기로 했다. 스위처의 도전이 있었기에 여성 마라톤은 1984년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의 참가 선수 중 여성은 46%였다.

여성에겐 마라톤처럼 경찰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50년 전의 카트린 스위처처럼 여성들은 여전히 금지된 것을 깨기 위해 뛰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법률로 정해둔 일이 사영기업도 아닌, 법집행을 하는 국가기관에서까지 외면당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찰청의 이런 반모성적 태도가 바로 개혁대상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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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폭염이다. 유월 내내 더웠다. 아직 석 달이나 남은 여름을 어떻게 견딜지 걱정이다. 주로 실내 공간에 머무는데도 힘든데, 이 폭염에 쉼 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지 모르겠다. 먹고살기 위해서라지만 위태로워 보인다. 두렵다.

택배노동자들의 하루는 길다. 아침 7시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한다. 분류는 택배회사가 해야 하지만, 당신들이 배송할 화물은 직접 골라가라는 거다. 분류에만 보통 대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대가 없는 공짜 노동이다. 분류작업을 하는 터미널은 허허벌판인 경우가 많아 더위나 추위를 피할 수 없다. 냉방 또는 난방 장치는 전혀 없고, 휴게실은 물론 화장실마저 없는 곳도 많다. 점심 무렵 분류작업이 끝나면 배송을 나가야 하는데 시간을 조금이라도 아끼려 점심을 거르기 일쑤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도시 지역은 어디든 주차가 만만치 않다. 택배노동자를 위해 주차장을 비워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겨우 주차를 마치면, 그 다음엔 우리가 매일처럼 보는 익숙한 풍경이다. 차를 세우자마자 몇 개씩 화물을 들고 뛰어야 한다. 이 폭염에도 날듯 뛰어야 하니, 두세 군데만 돌아도 땀에 흠뻑 젖는다.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그나마 잠깐 숨이라도 돌리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화물을 들고 계단을 뛰어 오르내려야 한다. 차를 세우고 짐을 들고 뛰는 일은 내내 반복된다. 폭염에도 뛰어야 하는 건 시간 때문이다. 얼른 배송을 마치고, 배달할 물건을 수거하는 작업을 오후 5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만 5시 이전에 배송이 끝나는 일은 별로 없다. 아침 7시부터 분류작업, 낮 12시부터 배송작업, 오후 5시에는 수거작업, 저녁 7시쯤부터는 미처 마치지 못한 배송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겨우 밤 9시, 10시가 되어야 일을 마칠 수 있다. 밤 10시가 넘어 집에 들어가면, 종일 주렸던 배를 채우기 위해 폭식을 하곤, 그대로 쓰러지듯 자야 한다.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택배화물 배송비는 대개 3000원쯤이다. 이 중 택배노동자가 가져가는 배송 수수료는 건당 800원 정도, 2200원은 택배회사 몫이다. 날듯 뛰면서, 때론 쿠팡의 광고처럼 로켓을 타고 다니면 하루에 250개쯤의 화물을 배송할 수 있다. 점심과 저녁을 거르고 15시간을 꼬박 일해야 감당할 수 있는 물량이다. 그러면 하루에 20만원쯤 벌 수 있다. 이 정도라면, 오래 할 일은 아니지만 젊은 몸 하나 믿고 뛰어들 수도 있을 거다. 그러나 건당 수수료가 800원이라고 그게 전부 택배노동자의 몫은 아니다. 여기서 부가세 10%와 대리점 수수료 10%씩을 떼어 낸다. 800원은 간단하게 640원으로 줄어든다. 이게 끝이 아니다. 차량 구입비와 기름값, 자동차보험료, 정비 등 유지비는 모두 택배노동자 부담이다.

택배회사 로고가 찍힌 유니폼도 자기 돈으로 사야 한다. 강매다. 차량도 회사 요구대로 전면 도색을 해야 하는데, 이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언제까지 그 회사와 일할지 모를 일인데, 원하는 대로 차량을 도색하지 않으면 일감조차 구할 수 없다. 전면 도색을 하면 중고차로 내다팔 때도 손해를 보지만, 그런 불이익도 모두 택배노동자가 감당해야 한다. 개인 소유 차량에 기업의 광고 문구를 넣는다면 도색 비용은 물론, 광고비까지 기업이 내야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택배산업은 매년 10%씩 급성장할 정도로 날로 발전하고 있다. 그래서 CJ와 대한통운이 합병했으며, 롯데는 현대를 인수하는 등 재벌 대기업들이 속속 택배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화물 수수료는 점점 내려가고 있다. 가격경쟁력만 강조하며 회사의 부담을 약자인 택배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킨 까닭이다.

택배노동자들은 CJ, 롯데, 한진 같은 대기업의 화물을 그 대기업의 로고가 찍힌 화물차로 운송하고, 대기업의 지침에 따라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을 동시에 수행하지만, 그 대기업의 노동자는 아니다. 흔히 써먹는 수법이다. 실질적으로는 고용·피고용 관계이지만, 편법적으로 고용에서의 부담을 피하려 각자의 사업체가 계약을 맺는 거다. 노동자가 아니어서 겪는 어려움은 너무 많다. 일을 하다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어도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한다.

위험한 노동만이 아니다. 화물을 배송하다 파손이 생겨도 택배노동자가 책임져야 한다. 드물지 않게 만나는 심술궂은 고객을 응대하는 일도, 택배노동자의 몫이다. 담당구역을 넘어 엉뚱한 곳으로 화물을 가져 오라는 고객은 너무 흔하고, 욕설을 퍼붓는 고객도 자주 만나야 한다. 배송해준 컴퓨터나 선풍기, 심지어 세탁기 등을 설치해놓고 가라는 고객도 가끔 만나야 한다. 숱한 고초를 겪고 고역을 반복하지만, 택배회사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별도의 비용도 쓰지 않고 그저 길목에 버티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얻는다.

택배노동자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올해 초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을 결성했다. 택배노동자들이 기댈 언덕이 이제야 마련된 거다. 그렇지만, CJ대한통운은 노조에 가입하거나 창립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보복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에겐 일감을 주지 말라고 대리점을 압박하는 거다.

당연히 택배노동자도 사람이고 노동자다. 부당한 착취를 당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려도 되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자기 노동에 대해서는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 누구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이고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다. 눈 밝은 공직자가 있다면, 오늘 오후라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택배노동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길 바란다. 택배노동자가 뛰어다니는 그 속도만큼 대한민국은 망가져 있고, 그만큼 우리는 아귀지옥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우리가 사는 곳이 공동체가 되려면, 택배노동자들의 달리기부터 멈추게 해야 한다. 그럴 법률적 권한과 능력이 공직자들에게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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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의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은 대선 내내 시빗거리였다. 몇몇 후보는 세금으로 일자리 만드는 건 누가 못하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선의로 해석한다면, 공공 부문보다는 민간 부문 일자리가 훨씬 많으니 일자리에 관한 한 국가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지적일 게다. 그렇다고 쳐도, 국가의 역할이 시장에 그냥 넘겨도 좋을 만큼 작은 것은 결코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공공 부문 일자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복지국가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고,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쉬운 일이라 트집을 잡았지만, 실제로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별로 없었다.

일자리는 아주 시급한 인권이다. 왕조시대 정책담당자들조차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다(民以食爲天)”면서 먹고 사는 문제를 정치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그래서 추가경정예산에 공무원 1만2000명 신규 채용 예산이 포함되어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늘어나는 1만2000명은 소방직,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경찰관, 군무원·부사관 등 각각 1500명씩 6000명에다, 교사 3000명, 근로감독관 등 일반 행정직 3000명이라고 한다. 소방이야 법정 기준만으로도 1만9000명 가까운 인력이 부족하니 말할 것도 없고, 격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전담 공무원 증원도 꼭 필요하다.

그런데 경찰관 증원은 좀체 이해되지 않는다. 인력이 당장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무경찰 폐지에 따른 증원 필요분을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앞으로 필요할지 모르니 미리 대비한다는 취지인 것 같다. 하지만, 의무경찰 폐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폐지를 위한 기본 계획도 마련되지 않았다. 정원 자체가 동결되거나, 소방의 경우처럼 법정 정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력 때문에 다른 분야의 공무원들이 격무에 시달릴 때, 경찰은 유례없는 파격적인 인력 증원 혜택을 받았다. 박근혜 정권 4년 동안에만 경찰관 1만2000명이 증원되었다. 민선 21년 동안 전국의 지방정부 공무원 증원은 2만6000명에 불과했다. 지난 정권 때 잔뜩 늘어났는데, 문재인 정부마저 경찰 인력 증원을 서두를 일은 전혀 없다.

지금 경찰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인력이 아니라, 인력을 재배치하는 일이다. 지난해 11월 나온 ‘2015년 경찰 통계연보’에 따르면, 경찰이 해야 할 일은 대체로 줄어들었다. 특히 시민의 안전과 직결된 살인, 강도, 절도, 폭력 등의 범죄는 발생 자체가 부쩍 줄었다.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도 엄청 줄었다. 일은 줄었는데 인력은 늘었으니 이상한 일이다. 경찰은 인력 운용과 관련해서는 최소한의 합리성도 갖추지 못한 이상한 조직이다.

경찰에는 시민의 안전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력이 잔뜩 배치되어 있다. 이를테면 경무, 정보, 보안, 경비 등의 분야가 그렇다. 경무는 경찰에 필요한 일을 하는 부서라기보다는 경찰청장, 지방청장, 서장 등 총경 이상 고위직 607명을 보좌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런 일에 배치된 인력이 3235명이나 된다.

3463명이 배치된 정보도 한심하다. 경찰의 정보부서는 ‘범죄 정보’는 아예 다루지도 않는다. 하는 일은 오로지 민심 동향 파악이 전부다. 권위주의 시대처럼 대통령 1인만을 위한 민심 동향 파악이 여태 계속되고 있는 거다. 대통령은 경찰의 정보보고 없이도, 언론과 인터넷, 정부 부처와 비서진의 보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민심 동향을 파악할 수 있고, 국정의 나아갈 바도 가늠할 수 있다. 원래 그렇게 해왔으니, 새삼 경찰의 정보보고에 기댈 일은 없다. 대통령이 가끔 볼까 말까 한 보고서 작성을 위해 3000명이 넘는 정보 경찰을 운용할 까닭이 없다.

2059명이 배치된 보안 분야는 시대착오적이다. 하는 일이 너무 없어서 탈북자 지원을 자임하며 새로운 출구를 찾는 수준이다. 진짜로 탈북자를 도와야 한다면, 그건 경찰 보안부서가 아니라, 통일부나 지방정부의 몫이어야 한다. 경찰서 보안과장은 정년퇴임 직전의 간부들이 맡는다. 할 일이 없으니 퇴임할 때까지 푹 쉬라는 배려다. 군대식 편제로 짜인 경비 경찰(1만775명)도 마찬가지다.

경찰 인력 중에서 지구대, 파출소 등의 지역경찰 인력이 4만6533명으로 가장 많은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일선 지역 경찰관들은 여전히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지구대장과 지구대 부장 등 관리 인력이 대거 포함되어 있어 실제로 일할 사람이 적은 탓도 있고, 경찰이 발표하는 인력 현황을 그대로 믿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종 지원이나 출장 등의 방식으로 지구대, 파출소 소속의 경찰관들을 경찰서 등에 데려다 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경무, 정보, 보안 분야의 인력은 통계보다 훨씬 많고, 지구대 인력은 훨씬 적을 거다. 한쪽에선 인력을 빼가고, 여러 가지 꼼수로 인력을 부풀리기도 한다. 질병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휴직하면, 해당 경찰관을 지구대, 파출소로 발령을 내는 경우가 많다. 실제 근무는 하지 않지만, 일선 경찰 인력을 조금이라도 많게 보이려는 거다. 시민들에겐 지구대 등 일선 지역경찰 활동 인력이 중요하지만, 현실은 거꾸로다. 보안과장의 경우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자리만 지키고 있는 고위직도 너무 많다.

그러니, 이제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인력이 부족해 격무에 시달린다느니, 경찰관 1인당 담당 인구가 몇 명이라는 등의 엄살에 속지 말고, 전면적인 인력 재배치부터 해야 한다. 통계와 다른 실태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이고, 이를 바탕으로 경찰 고위직만을 위한 인력구조가 아닌, 시민을 위한, 또한 일선 경찰관들을 위한 인력구조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경무, 정보, 보안, 경비 분야, 그리고 내근 인력만 합리적으로 조정해도 꽤 많은 경찰관을 새로 뽑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건 물론 경찰에 맡길 일은 아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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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5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국 개신교가 침체란다. 신자들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활로를 찾느라 바쁜 모양이다. 바로 군대다. 한국군종목사단에 따르면 매년 15만명이 군대에서 세례를 받는단다. 부풀렸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엄청난 숫자다. 목사들이 말하듯 군대는 “침체되어 가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돌파구” 역할을 하고 있다. 군인도 제복 입은 시민이기에 당연히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고 신앙생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학교나 군대처럼 누구나 가야 하는 길목에 버티고 앉아 자기 교단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게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심각한 건 특정 종교를 신봉하는 지휘관들의 월권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교세 확장을 위해 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신앙생활이 정신전력을 강화한다며 자기가 믿는 종단으로 부하들을 이끄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특정 종교 일에 부대의 인력과 예산을 쏟아붓는 일도 적지 않다. 공화국의 공적 영역에서 지휘권을 선교 수단으로 삼는 건 헌법 위반이며 국가의 통합을 해치는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상처럼 반복되고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육군참모총장 장준규는 그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개신교 장로이기도 한 육군 대장 장준규는 한국기독군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다. 육군참모총장은 ‘군인사법’의 규정에 따라 “군에서 복무하는 현역장교 중 최고의 서열을 가지”는 사람이다. 중요한 자리인 만큼, 국방부 장관 추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2년 임기도 보장받는다. 이런 자리에 있는 사람의 종교 편향은 위험하다. 육군참모총장과 군 선교단체의 대표가 같은 사람일 수는 없다.

장준규는 1군사령관 시절부터 군부대에 ‘사랑의 독서카페’를 만들자는 활동을 펼쳤다. 책 읽는 병영을 위한 일이란다. 군부대 독서카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내년까지 989곳의 군부대로 확산된다고 한다. 대단한 실력이다. 이를 위해 군 예산을 투입하는 건 물론, 여의도 순복음, 극동방송, 여러 기업의 기독신우회 등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독서 카페 보급에 개신교계가 열심인 것은 군 선교의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종교 서적을 읽고 예배도 드리는 작은 교회 역할을 할 거란 기대다.

장준규는 2015년 9월에 참모총장이 되었으니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정권이 바뀔 테니 좀 더 빨리 물러날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난 걸까. 육군참모총장의 명을 받는 육군 중앙수사단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대대적인 동성애자 색출을 시작한 거다. 벌써 대위 한 명이 구속되고, 30여명이 동성애자란 이유만으로 입건되었다. 수사를 계속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장병들이 검거될지 모를 일이다. 범죄혐의는 오직 하나, 동성애를 했다는 거다.

상당 기간 준비한 기획수사였고, 함정수사를 비롯한 온갖 반인권적 수사기법이 총동원되었다. 이 사건을 추적해 온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육군참모총장 장준규의 강력한 주문 때문에 무리한 수사를 하고 있단다. 그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설파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국가가 지닌 최후의 수단인 국가형벌권을 휘두르고 있다. 전형적인 자의적 법적용이다.

광신도들의 가장 오랜 공격대상은 이교도를 빼고는 성소수자였다. 그들은 동성애를 변태, 심지어 치유 가능한 질병이라 여긴다. 회개하고 교회에 나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곧장 응징 대상이 된다.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차별이 반복되고 있다.

이성애든 동성애든 성관계를 갖는 게 범죄가 되려면 강간, 추행, 성매매 등 구체적인 범죄행위가 있어야 한다. 범죄행위가 없었다면, 법이나 국가는 물론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사생활의 영역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경우엔 그런 사생활조차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이 있다. ‘군형법’ 제92조의 6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악법이다. 추행이 범죄가 되는 건 상식이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 대상으로 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해 7월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대해 5 대 4로 합헌 결정을 했지만, 김이수·이진성·강일원·조용호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추상적이고 모호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인 법 해석 가능성을 초래”한다며 소수 의견을 내기도 했다.

동성애 처벌조항은 명백한 차별이다. 누구나 군대에 가야 하는 징병제 국가이기에 이런 차별은 더욱 심각하다. 개인의 사생활에 국가형벌권을 동원할 수 있는 잘못된 군형법 조항이 지금의 동성애자 탄압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 입장에서는 동성애가 비정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그리 가르치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동성애는 이성애자들이 찬성하거나 반대할 문제도, 이해하거나 그렇지 않을 문제도 아니다. 이성애가 동성애자들의 이해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숙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사람도 있고, 아주 단순한 잣대로 정상과 비정상을 함부로 가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저 속내가 그렇다면야 뭘 어쩌겠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육군참모총장이면 문제는 달라진다. 그가 손에 쥔 지휘권을 통해 수십만명의 육군 장병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목숨마저 내놓을 수 있는 늘 준비되어야 할 군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당장 육군 중앙수사단과 육군 법무실을 움직이는 힘만 봐도 그렇다.

문재인·심상정 등 유력 대선후보들도 육군의 동성애자 색출에 대해 반인권적 수사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장준규 개인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수사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종교적 신념을 표현할 때도 넘지 않아야 할 금도가 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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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는 단순히 죗값만 치르는 곳은 아니다. 왜냐면 거의 모든 교도소 수용자들은 언젠가 사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범죄자라고 가족과 생이별을 시키고 신체의 자유와 생계수단까지 빼앗는 잔인한 고통을 주는 게 맞는지도 의문이지만, 그런 형벌만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겨우 건질 게 있다면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교훈이겠지만, 이마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현실 앞에선 무색해지고 만다. 결국 남는 것은 범죄자에 대한 보복뿐이다.

보복도 정의를 위한 한 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교도소에서 보복만 당한 수용자는 대개 반성은커녕 앙갚음을 곱씹는다. 교도소가 범죄학교가 되고, 동료 수용자가 공범이 되며, 출소자는 더 위험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그래서 교도소의 목적은 단순한 보복이 아니라 교정·교화에 있다. 비록 범죄를 저질렀지만, 언젠가 사회로 돌아올 테니 사회 복귀를 잘 준비하도록 돕자는 거다. 이게 모든 문명국가들이 채택한 현대의 교정 이념이다. 수용자 인권 차원에서는 물론, 범죄 예방과 억제라는 실용적 차원에서도 교정·교화를 제대로 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거다. 수용자도 중등, 대학 등 정규 교육과정을 밟을 수 있고 각종 자격증을 따거나 직업교육이나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도소는 무엇보다 배움이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하지만 요즘 교도소는 중대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평소에도 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해 힘들었지만,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메가톤급 위기가 닥쳤다. 바로 과밀수용이다. 수용자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모든 게 박근혜 탓은 아니겠지만, 이건 진짜 박근혜 탓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이후, 수용자 숫자는 급증했다. 정권 초기 4만7924명에서 5만7669명으로 늘었다. 불과 4년 만에 20% 넘게 늘었다. 교도소 정원이 4만6600명이니 수용률은 123.8%나 된다. 수용자가 갑자기 늘면서 교도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좁은 수용실에서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야 하고, 운동이나 접견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는 것도 심각하지만, 진짜 중요한 문제는 교정·교화라는 본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다. 교정·교화 없는 구금은 일제시대의 감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사회가 있는 한 범죄는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가의 역할은 그 범죄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대처하느냐에 있다. 지금처럼 대책도 없이 잡아 가두기만 하는 일제시대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한국의 교도소 정원은 혼거수용실의 경우 1인당 차지하는 면적을 2.58㎡(0.78평)로 잡은 기준이다. 독일의 기준은 7㎡이니, 기준을 독일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면, 수용 정원은 1만7037명으로 줄고, 수용률은 338%로 늘어나게 된다. 교도소 수용자는 이제 일본의 수용자 숫자를 넘어섰다. 치안 여건이 비슷한, 그러나 2.6배나 인구가 많은 일본보다 수용자 숫자가 많다는 것은 한국의 형사사법이 실패했다는 가장 확실한 근거다.

교도소 유입인구가 늘어난 건 그만큼 범죄가 늘어난 건데, 그게 왜 박근혜 탓이냐고? 가장 큰 잘못은 서민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한 거다. 교도소엔 생계형 경제사범이 부쩍 늘었다. 2011년 말엔 사기·횡령범이 7113명이었는데, 2016년 말엔 1만3551명으로 늘었다. 5년 만에 무려 90.5%가 늘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하거나(채무불이행), 음식 값을 내지 않아도(무전취식) 사기죄로 처벌받는 법집행 현실을 고려할 때, 사기죄 수용자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뜻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도 같은 이유로 수용자가 급증했다.

박근혜 정권이 집착했던 ‘4대악’ 관련 수용자도 크게 늘었다. 성폭력은 34.9%, 폭력은 26.4% 늘었다. 반면 살인·강도·절도 범죄 수용자는 모두 줄었다. 지난 5년 동안 살인 4.4%, 강도 33.3%, 절도 19.1%가 줄었다.

정권의 뜻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호들갑을 떠는 경찰이 수용자 급증을 불러왔다. 지난 4년 동안 경찰관 1만2000명이 증원되었지만, 그만큼 치안 서비스가 좋아진 게 아니라, 단속과 검거가 늘었다. 교도소 수용자 숫자는 실제 범죄가 아니라, 경제적 형편이나 정권의 태도 따위에 따라 얼마든지 오락가락한다.

이건 교도소를 더 짓는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건설비용도 문제지만, 기피시설 취급을 받는 교도소를 세울 만한 곳도 마땅치 않다. 수용인원 500명 규모의 교도소를 세운다면, 당장 22개를 새로 지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의 한국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다. 교정행정을 책임지는 장관은 넉 달이 다 되도록 공석이고, 잘못을 바로잡을 지도력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장관이 멀쩡할 때도 별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실무부서가 중요하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이럴 때 교과서처럼 움직여야 한다. 교도소 정원을 초과할 때는 강제적 가석방 조치를 취하는 등의 적극적인 대응이 있어야 한다. 검찰과 법원에는 불구속 수사 원칙을 촉구하여 미결구금자의 숫자를 줄이고, 자유형 선고가 능사가 아님을 법원에도 일깨워줘야 한다. 법원이 경찰과 검찰의 수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범죄와 형벌이 범죄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 나아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제대로 살피도록 촉구해야 한다.

당장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쌓여 있다. 하지만, 중국과 야당, 다수 시민의 반대와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는 저토록 서두르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정부가 왜 이런 기초적인 일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국무총리, 직전 법무장관이니 과밀수용의 책임도 무거운 사람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마침 오늘은 역사적인 탄핵 선고일이다. 박근혜에 대한 파면 여부를 넘어 국가가 무엇인지를 묻는 날이기도 하다. 국가의 기본인 교정정책마저 무너진 상황을 빨리 일으켜 세워야겠다. 그야말로 국가적 과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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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2월24일에 누군가 태어났다면, 그는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될 겁니다. 아니면 직장에 다니거나, 군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19년. 한 생명이 태어나 장성할 만큼 긴 세월입니다.

그날 낮 12시20분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성 한 발이 울립니다. 권총 M9 베레타에서 나온 총알이 소대장 김훈 중위의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김 중위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인은 분명했으니, 자살인지 타살인지만 밝히면 그만이었습니다.

장관께서도 알고 계시듯, 사망사건에서 가장 확실한 증거는 주검과 사건 현장입니다. 총에 묻은 지문, 총과 손에 묻은 화약가루, 총알의 방향, 총이 놓인 위치, 그리고 밀착사인지 근접사인지만 밝히면 금세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사건 직후, 군 당국은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그건 지문, 화약가루 등 핵심적인 증거들에 기초한 결론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관행적 추정이었을 뿐입니다. 기껏해야 김 중위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었다는 게 자살의 근거였습니다. 그나마 사건 발생 일 년이 지난 뒤에서야 밝혀낸 ‘사실’이었습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김훈 중위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정예 장교였다거나, 그의 아버지도 같은 사관학교 출신의 예비역 3성장군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등의 자살하지 않을 만한 정황들도 어쩌면 중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주검과 현장입니다.

그날 1998년 2월24일은 50년 만의 정권교체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니, 판문점처럼 첨예한 지역에선 별 일 없어야 했을 겁니다. 그런 강박 때문에 자살로 조작한 건지, 아니면 기초적인 조사가 부족해 그냥 지나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첫 단추는 그렇게 꿰어졌습니다.

김 중위 사건이 여론의 주목을 받을 때마다, 군 당국은 셀 수 없이 많은 조사를 반복했습니다. 특별조사, 합동조사 등 명칭은 조금씩 달라지기도 했지만, 조사 결과는 한결같았습니다. 바로 자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김 중위 가족이나 저처럼 김 중위 사건을 직접 조사했던 사람은 물론, 대법원, 국민권익위원회,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국방부 밖의 국가기관들의 결론은 언제나 딴판이었습니다. 결코 자살일 수 없다거나, 범인을 특정할 수 없으니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거나, 초동수사가 부실해 자살인지 타살인지 가릴 수 없다는 결론들입니다. 사건은 하나인데, 사건에 대한 결론은 군의 안팎이 매번 달랐습니다.

이쯤 되면, 상식을 가진 사람들은 군 당국의 조사 결과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게 당연할 겁니다. 물론, 장관님은 이런 견해에 동의하기 힘들 수도 있겠지요. 국방부 특별조사본부를 비롯한 관련 부서들에선 꾸준히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보고만 반복할 테니까요.

유가족, 언론, 인권단체와 국가기관까지 나서 김 중위는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다각도로 밝혀냈지만,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은 지 19년이나 지났지만, 김 중위의 장례는 아직도 치러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김 중위는 벽제 보급대대 창고 한쪽 구석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은 유가족의 고통은 곁에서 지켜보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자식의 죽음도 힘겨웠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은 그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 등의 국가기관들은 군 당국이 유족에게 사과하고 김 중위는 순국으로 인정하는 등의 명예회복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군 당국은 그저 요지부동일 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국방부에 묻고 있습니다. 장군의 아들도 군에서 죽으면 저런 취급을 당하는데, 평범한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냐는 질문입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님! 김훈 중위 사건은 오래된 숙제지만,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습니다. 부담도 없습니다. 김 중위 사건의 진상을 규명한다고 군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도 없고, 그 때문에 전력이 떨어질 일도 전혀 없습니다. 그저 국민권익위원회 또는 대법원의 결정만 좇아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유족의 상처가 아물진 않겠지만, 그래도 우리 국가와 군은 그저 강도떼에 불과하다는 오명에서는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김 중위의 아버지 김척 장군이 자주 인용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입니다. “국가에 정의가 없다면, 강도떼와 무엇이 다릅니까?”

저는 우리 체제가 1600년 전 교부의 말에 기댈 만큼 허약하지 않다고 믿고 싶습니다. 아니, 제 바람과 별개로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김 중위 사건은 그저 장관님의 결단만으로도 얼마든지 해결 가능합니다. 지금도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해결해야 합니다. 김 중위 가족의 고통에 대해 사과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김 중위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 다시는 이런 참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관련 업무를 혁신하면 됩니다. 난제처럼 보이더라도, 오로지 진실의 편에만 서면 어려울 게 없습니다.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억울함을 덜고, 우리 공동체가 다만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도록 하는 게 바로 장관님의 소임입니다.

장관께서 김훈 중위 사건을 공명정대하게 푼다면, 그건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우리 군의 미래가 여기 달려 있습니다. 병력을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무기체계를 운용하는가도 중요하겠지만, 훨씬 더 중요한 건, 군이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전력이고, 그게 가장 확실한 무기입니다. 전력 극대화의 숙제를 풀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바로 장관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군의 미래는 김훈 중위, 허원근 일병 사건처럼 잘 알려진, 그러나 군 당국의 결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건들을 어떻게 푸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런 일마저 다음 정권으로 넘길 수는 없습니다. 곧 김 중위 19주기입니다. 벌써 19년입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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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함성은 여전하다. 역사적 체험을 간직한 시민들 덕이다. 대통령 탄핵 절차도 순조롭다. 절차만 남았을 뿐이라며, 탄핵은 기정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검 수사는 김기춘, 우병우, 조윤선, 이재용에게서 성패가 갈리겠지만, 우병우를 제외하면 여태까지의 기세는 좋다. 대선 후보들은 벌써부터 공약을 쏟아낸다. 무엇보다 이번엔 확실히 바꿔야 한다는 시민들의 열망이 뜨겁다.

변화의 조짐은 곳곳에서 읽을 수 있지만, 정작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황교안 총리도 여전하다. 대통령은 죄 없는 어린양 시늉을 하고, 총리는 대통령 시늉을 하는 게 달라졌을 뿐, 그들의 체제는 여전히 확고하다.

그 확고한 체제가 새해 벽두부터 국가보안법 사건을 일으켰다. ‘노동자의 책’이란 인문사회과학 전자도서관을 운영하는 이진영씨를 구속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 및 자유를 확보”하는 게 목적인 법(제1조 1항)이다.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당장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등의 이름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경찰은 도서관 운영자를 꼽았다. 이적표현물 소지·반포·판매 혐의다. 책을 보관하고 나눴던 게 ‘반국가단체에 동조할 목적’이었다는 거다. 다른 혐의는 없다. 오로지 책 때문에 구속되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도서관 운영자까지 구속해야 할 까닭이 뭘까. 백문이 불여일견, ‘노동자의 책’ 사이트에 접속해봤다. 모두 3000여권의 책이 분류되어 있는데, 공개된 건 목차뿐이고, 본문은 회원 가입을 해야만 읽을 수 있었다. 시중에서 팔리는 책도 있었지만, 대개는 진작 절판된 1970~80년대 책들이다. 사이트 전면엔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의 사진이 걸려 있다. 공안당국은 이진영씨가 반국가단체, 곧 북한에 동조했다지만, 이 네 명의 사진을 걸어둔 것만으로 그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절대 권력을 3대에 걸쳐 세습하고, 국가정체성을 ‘김일성 조선’이라고 규정하는 북한은 마르크스 등에서 한참을 벗어난 변종체제일 뿐이다. 마르크스 등의 사진은 북한에 동조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사표시인 셈이다. 그게 아니라도 상관없다. 김일성이 축지법을 쓰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든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책들이 있다 해도, 그게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이진영씨를 구속할 만큼 위험하다던 책들 중에는 E H 카의 <러시아 혁명>이나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목록에는 애초 기준 같은 건 전혀 없다. 공안당국은 심지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같은 책도 국가보안법 위반 금서로 묶어뒀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경향신문 ‘내 인생의 책’에 “일독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 꼽았던 책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카는 영국 외교관, 언론인, 학자였다. 그가 쓴 <러시아 혁명>은 읽어보지도 않았을 거다. 그저 ‘혁명’이란 단어 때문에 이적표현물이 되고, 그 때문에 멀쩡한 사람을 잡아 가두는 근거가 되는 거다. 공안당국은 “소위 운동권 학생들에게 러시아 혁명과 유사한 방식의 혁명이 필요한 것으로 믿게 할 소지” 때문이라지만, 그런 규정조차 1987년의 것이다. 30년 전의 낡은 잣대다. 교육 분야의 고전 <페다고지>도 1986년 이적표현물이 되었다.

2017년에도 이런 농간이 가능한 건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실제 행위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에 동조할 목적’이라는 도저히 측량할 수 없는 내심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으니, 자의적 법적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진영씨를 범죄자로 만든 곳은 서울경찰청 보안수사 4대다. 신촌 대신동에 있어 보통은 신촌 보안분실로 불린다.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과 같은 곳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2005년 폐쇄되었지만, 홍제동, 장안동, 옥인동, 신정동, 대신동 등 서울에만 다섯 곳의 보안분실이 있다. ‘노동자의 책’ 이진영씨에 대한 구속은 그들의 체제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책동이다. 아니, 그들의 존재 자체가 바로 도발이다.

이런 작태가 비단 보안경찰, 공안검찰, 그리고 시민 인권보호에 적절한 역할을 하지 않는 법원만의 것은 아니다. 최근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국가보안법 신고 포상금 상한액을 5억원에서 20억원으로 단박에 4배나 올렸다. 기껏해야 인터넷을 뒤져 옛날 사회과학 서적이나 털어대고, 유우성씨 사건처럼 간첩조작사건이나 일으켰던 새누리당 정권이 반성은커녕 시대착오적 안보 장사에 나서고 있다. 안보 현실에 대한 고려조차 없는 그냥 유치한 코미디다. 진짜 코미디야 웃음을 주지만 이런 저질 코미디는 애먼 사람만 해친다. 결국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악순환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공안당국의 자의적 판단만으로 시민들이 구속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건 자유민주주의도 뭣도 아니다.

국가보안법은 1948년 12월 정부 수립 이후 불과 넉 달 만에 탄생했다. 백번을 양보해 그때는 막 분단된 상황이니 국가 보위를 위한 시급한 요구가 있었다고 치자. 그렇지만 국가보안법의 역사가 가장 확실하게 입증해주는 것처럼, 국가보안법은 고작해야 정권의 안보 또는 정권의 한 축을 떠받치는 공안세력의 안전만을 지켜줬을 뿐이다. 그들의 권력, 그들의 자리를 위한 매개일 뿐이다.

내일은 박종철 열사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목숨을 빼앗긴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 대공분실이란 이름은 보안분실로 바뀌었지만, 똑같은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대공수사를 한답시고 곳곳의 보안분실을 지키고 있다. 1000만 촛불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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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휘두르던 사람들이 정작 책임은 외면한다. 황교안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딱 그 짝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 참석해 이런 사태에도 국무위원 누구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다며 질타한 지 꼭 한 달이 지났지만, 지금껏 책임지고 사퇴한 사람은 없었다. 아예 반성조차 없었다. 국회 청문회에 나온 증인들도 그랬다. 뻔한 거짓말로 오로지 자기 안위만을 챙기는 사람들투성이였다. 어떻게 다들 저런 식으로 한결같은지, 소신은 고사하고 거짓말과 변명만 일삼는 사람들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다니 답답할 뿐이다.

문제는 그쪽만 한심한 게 아니라는 거다.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 무능을 비판하는 쪽에도 한심한 인사가 적지 않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가 그중 하나다. 그는 법인세 정상화라는 절호의 기회를 그냥 날려버렸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나 윤호중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도 얼마쯤 탓을 해야겠지만, 책임은 권력의 크기에 비례하는 만큼 우 원내대표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법인세 인상은 곧 정상화를 뜻한다. 25%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이명박 정권이 22%로 깎아버렸고 실효세율도 대폭 낮췄다. 이는 줄곧 ‘부자감세’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부자감세의 결과 대기업들은 사내유보금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났지만, 서민들의 삶은 더 곤궁해졌다. 이 문제를 가장 집중적으로 비판했던 게 바로 민주당이었다.

기회도 좋았다. 새누리당은 분당의 위기에 빠져 어수선한 상태이고, 청와대는 의제를 끌고 갈 최소한의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사내유보금을 잔뜩 쌓아두고도 엄살을 부리던 기업들은 뇌물사건에 연루되어 고분고분해졌다. 지난 총선으로 여소야대가 되었고, 국회의장도 야당 출신이라 안팎의 조건이 모두 갖춰진 셈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세금을 더 거둬서 어디에 쓸까에 대한 고민을 따로 할 필요도 없다. 청년들의 삶이 너무 힘드니 일자리를 만드는 데 쓰면 된다는 답도 이미 다 마련해두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달 14일 ‘청년세’를 도입하는 법률안을 발의했다. 의장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개념은 간단하다. 법인세 과세 표준 1억원이 넘는 기업에 10년 동안 한시적으로 법인세를 1%만 더 걷자는 거다. 그러면 연평균 2조9000억원쯤 추가 세수를 확보할 수 있다. 이 돈으로 소방, 복지, 교육 등 민생과 직결되는 공공부문에 매년 2만7000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새로 만들고, 학자금 대출 이자 지원 등도 가능하다는 거다. 10년 동안 27만개의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가 늘어난다면, 당장의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 말고도 부수적인 이익이 많다. 일자리가 늘어나면 그만큼 세금 내는 사람이 늘어나니, 세수도 확대될 수 있고 노량진 등에서 공무원 시험합격을 위해 젊음을 소모하는 청년들의 수고도 덜 수 있다.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도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공무원이 너무 많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상은 거꾸로다.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률은 심각한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미치려면 2.8배나 더 채용해야 하고, 선진 복지국가 수준이 되려면 6배쯤 고용을 늘려야 한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법인세와 소득세 관련법은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했다. 이젠 표대결만 남았는데, 여소야대이니 결코 질 수 없는 상황이 된 거다. 소득세는 과표 3억~10억원의 최고세율을 38%에서 41%로 늘리고 과표 10억원을 초과하면 45%로 인상하는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의 안이었다. 법인세는 500억원 초과기업의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는 민주당 정책위의장의 안이었다. 이건 곧 야당 단일안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소득세는 5억원 세율을 38%에서 40%로 올렸지만, 법인세 인상은 전혀 없었다. 광장의 함성이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고, 구체제를 넘어 새로운 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시민들의 명예혁명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재벌, 대기업이 누린 특혜, 부자감세는 요지부동이다. 무슨 혁신적인 조세정책을 새로 도입하자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노무현 정권 시기만큼이라도 세금을 걷자는 것인데 자기들의 안마저 그저 협상용 카드로 날려버렸다.

우 원내대표는 법인세 정상화를 날려버린 다음, 나중에 정권을 잡으면 법인세 인상을 추진하면 된다고 했다. 민주당이 법인세 인상을 대선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다음에 하겠다는 거다. 제대로 된 설명도 없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인데도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정당이 나중에 정권을 잡으면 추진하겠다는 말을 도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당에 미래를 맡길 정도로 시민들이 바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저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만 기대면 저절로 정권이 넘어온다는 건가. 정책의지는 예산으로 드러나는 법이다. 광장과는 달리 의회에는 의회의 방식이 따로 있다는 사람이니 우리가 모르는 무슨 깊은 뜻이 따로 있다는 건가.         

조지 오웰은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가장 나쁜 욕은 적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그 욕을 법인세를 말아먹은 우 원내대표에게 해주고 싶다.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이고, 이미 해고 통보를 받은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하고 있다. 대통령이 저 지경이니, 이제 선출권력은 의회밖에 남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곧 쪼개질 판이니, 이제 실질적인 의회의 힘은 민주당,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원내대표에게 쏠려 있다. 비상시국인 만큼 국정을 끌어가야 할 무거운 책무가 우상호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것이다. 실제로 가장 큰 권력이 되었다. 그 권력을 제대로 써야 하는데, 이렇게 한심하기만 하다. 도대체 정치를 왜 하냐고 따져 묻고 싶다. 그냥 직업일 뿐인가.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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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광화문 세종대왕상 앞까지였다. 청와대로부터 1.8㎞. 10월29일의 첫 번째 촛불집회와 11월5일의 2차 촛불집회까지는 그랬다. 매주 광장의 함성이 커질 때마다 시민들은 조금씩 청와대 근처로 갈 수 있었다. 3차 집회는 800m 거리인 내자교차로까지, 4차 집회는 400m, 그리고 지난 주말엔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청와대 200m 앞까지 진출한 거다.

집회와 시위를 신고하면, 경찰은 금지하고 법원이 조금 더 허용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원의 행진 허용은 경찰의 금지조치에 빗대면 전향적인 일이지만, 법원도 기본적인 입장은 경찰의 금지와 같은 맥락이다. 다만, 경찰보다는 조금씩 더 허용하겠다는 것뿐이다.

법원이 제시하는 허용의 단서도 웃긴다. 지난번 집회를 보니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롭게 했으니 이번엔 조금 더 앞으로 나가도 좋다는 허가다. 이건 100만 또는 200만 시민에게 준법서약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찰의 행정작용이 헌법과 법률의 원칙에 맞는지만 판단해야 할 법원이 자기 역할에서 훌쩍 더 나아가 시민의 도덕교사처럼 굴고 있다. 기본부터 다시 확인해보자. 대통령이 앞장서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상황이라 민망하긴 하지만, 그래도 원칙은 원칙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가지고, 집회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제21조).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집회나 시위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만의 권리가 아니다. 질서를 잘 지키고 평화로운 집회를 한다거나 남들이 버린 쓰레기마저 잘 치우는 착한 시민들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선량하냐, 그렇지 않으냐를 묻지 않고, 이전 집회에서 어떻게 행동했느냐며 전력을 따지지도 않는 거다. 경찰이나 법원 등 국가가 허용하고 말 계제도 아니다.

그런데도 경찰과 법원이 집회를 허용하는 건 희한한 악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때문이다. 집시법은 1962년 12월 제정됐다. 군사쿠데타 직후에 국회가 아니라, 지금 대통령의 아버지가 만든 법이다. 이 법을 만들었다는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박정희에게 임명장을 받은 쿠데타 부역자들로 구성된 반헌법 유령조직이었다. 여기서 만든 최소한의 형식적 요건조차 갖추지 못한 법이 여태껏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청와대 근처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건,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선 집회나 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1조의 규정 때문이 아니다. 집시법 제12조의 ‘주요 도로’ 규정 때문이다. 교통 소통 때문에 주요 도로에서는 집회나 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주요 도로는 법이 아닌 시행령으로 정하는데, 전국의 모든 고속도로와 모든 자동차 전용도로에다, 서울 16개, 부산 10개 등 전국 88개 도로를 주요 도로로 지정해 놓고 있다. 서울의 1번 주요 도로는 자하문 터널 북단부터 한강대교 남단까지다. 효자동, 광화문, 남대문, 서울역, 삼각지를 아우르는 꽤 긴 코스다. 그나마 1번 주요 도로는 좀 낫다. 2번 도로는 아예 서울 서남부 끝에서 동북부 끝까지다. 부천시와의 경계부터 구리시까지의 경계다. 여기에는 오류동, 영등포역, 여의도, 광화문, 종로, 청량리, 상봉동, 망우동까지가 모두 들어간다. 시내 어디든 경찰이 맘만 먹으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거다.

악법을 만든 박정희도 이렇게까지 무도하지는 않았다. 1962년의 집시법에도 주요 도로에서의 집회와 시위를 금지한다는 개념은 있지만, 그건 관공서 출퇴근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 전과 1시간 후까지로만 한정된 개념이었다. 만약 박정희가 만든 집시법이 여태껏 남아 있었다면, 주요 도로를 핑계로 집회 금지 통고를 반복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우리는 주로 출퇴근이 없는 토요일에 모인다. 54년 동안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 존속하고 있다는 것도 통탄할 일이지만, 그냥 존속 수준에서 멈춘 게 아니라, 오히려 박정희 때보다 퇴행했다.

청와대는 다섯 번의 촛불집회 내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기는커녕 꼼수만 부리고 있다. 어차피 기댈 게 없는 사람, 진작 쫓아냈어야 할 사람이니 그렇다 치자. 문제는 국회다.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중만 쫓는 여당은 제쳐놓더라도, 야당이 이러면 안 된다. 촛불 행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사람들이 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반헌법, 반인권 악법을 폐지할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야당 의원이 청와대 앞으로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개정안을 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의원들에 비하면 반가운 일이지만, 집시법 문제는 청와대 앞 100m를 30m로 당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집회와 시위를 경찰이 허가하는 근거 법률인 집시법이 남아 있는 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침해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대부분의 나라에는 집시법이란 법 자체가 없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기본적으로 집회와 시위가 못마땅할지도 모르겠다. 집회와 시위가 자신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고, 언제나 민원인에게 시달린다고 여길 테니 말이다. 집회와 시위는 기본적으로 평소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우리 시민들, 특별히 가난한 시민들의 권리다. 말로만 민심을 좇는 게 아니라면, 당장 광장을 여는 일부터 해야 한다. 광장의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집시법이다. 쿠데타 시절보다 못한 퇴행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경찰의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의 인권이 침해되고, 헌법질서가 일상적으로 파괴되는데도 잠자코 있는 까닭이 뭔가.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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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은 “박근혜 퇴진!” 구호로 뜨겁다. 1960년 4월처럼, 또는 1987년 6월처럼 모처럼의 국민적 항쟁이 시작되었다. 국민적 요구는 뜨겁지만, 국회 등 정치권은 그저 뜨뜻미지근하다. 친박이야 논외로 쳐도, 다수의 정치인들은 박근혜의 2선 후퇴, 거국중립내각 따위만 읊조리고 있다. 그나마 박원순, 안철수, 이재명 같은 사람들이 시민의 뜻을 좇을 뿐이다. 다수의 주류 정치인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헌정질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헌정질서가 대통령 임기 5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것이라 여긴다면, 그건 무지 아니면 의도적인 왜곡일 게다. 토머스 페인은 “헌법은 정부에 선행하며, 정부는 헌법의 소산일 뿐”이라고 했다.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은 물론, 국가도 모두 헌법에서 비롯되었다. 헌법은 국민의 의지에서 나왔다.

위계로 따진다면, 국민-헌법-국가-대통령-대통령 임기 순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국가권력에 대한 헌법의 우위, 이걸 우리는 입헌주의라 부른다. 그러니 헌정질서와 헌정질서를 위한 일개 수단을 혼동해선 안된다. 헌정질서의 핵심은 헌법 제1조의 ‘민주공화국’과 ‘주권재민’ 그리고 제10조에 규정된 국민 인권 보장의 의무를 지닌 국가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박근혜 정권은 하루라도 빨리 끝내야 한다. 박근혜의 범죄 때문이기도 하지만, 국정을 수행할 자질이나 능력도 없고, 도덕적 근거마저 상실한 박근혜 정권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탄핵에 대한 기억 때문인지, 정치권에선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별로 없다. 헌법은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제65조)를 탄핵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무성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며 국정을 운영”했고, “대통령직이라는 공적 권력이 최순실 일가가 국정을 농단하고 부당한 사익을 추구하는 데 사용”되었으니, 딱 맞아떨어지는 탄핵 사유다.

탄핵제도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을 때,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국회의 소추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대통령을 해임하는 민주적인 공무원 파면제도다. 국정이 온통 마비된 상황에서,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헌법상 안전장치를 가동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진정으로 헌정질서를 유지하기 바란다면, 바로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 중요한 건, 헌정질서를 유지하는 것이지, 정치적 셈법 따위가 아니다.

헌법 위반의 공범 역할을 한 새누리당이야 그렇다 쳐도, 야당마저 탄핵이란 말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 문재인은 ‘중대 결심’ 운운하며 짐짓 점잖은 체만 하고, 우상호는 광장은 광장의 방식, 국회는 국회의 방식이 있단다.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왔으며 국회가 바로 광장의 소산이라는 걸 벌써 잊은 걸까. 1987년 광장의 힘으로 여태껏 국회의원을 하는 사람의 말치곤 너무 고약하다.

야당은 공범은 아닐지 몰라도, 국정 파탄을 막지 못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광장의 함성도 경향, 한겨레, JTBC 등 언론의 끈질긴 추적과 시민들의 호응이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오는 과정에서 야당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별 존재감도 없었다. 여소야대의 새로운 지형에도 불구하고, 그 지형을 활용해 새롭게 돌파한 국면이 뭔지도 도통 기억나지 않는다. 마치 벌써 정권을 잡은 사람들처럼, 부자 몸조심 수준에 멈춰 있다.

대한민국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영원해야 한다면, 그건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헌법 전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 자유, 행복은 참담하게 짓밟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헌정질서는 외면하고, 지엽말단에만 골몰하는 건, 광장의 함성을 거슬러 오로지 자기 기득권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메르스, 지진, 북핵 등 안전과 관련한 여러 현안에서 박근혜 정권은 내내 무능했다. 때론 안전에 관심조차 없는 태도로 일관하기도 했다. 국가와 국가지도자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차라리 없는 게 훨씬 더 안전해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대통령과 정부만 멀쩡했어도 겪지 않았을 희생이 반복되었다. 그런데도 우리의 안전을 위해 박근혜의 임기를 보장해주어야 하나.

자유는 극도로 위축되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가 모두 후퇴했다. 19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조차 확립하지 못했다. 검찰과 경찰의 힘은 지나치게 커졌다. 온갖 종류의 블랙리스트가 떠돌고, 권력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으면 대기업마저 좌파로 몰아버린다.

행복은 또 어떤가. 작가 조세희의 말처럼 지금 행복한 사람은 악당 아니면 바보밖에 없는 것 같다. 다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세계에서 가장 적은 시간밖에 못 자고, 가장 긴 시간 일하며, 가장 늙은 나이까지 일해야 하는 나라, 자살률 1위에 출산율 꼴찌라는 지표는 우리가 가장 살기 어려운 상황, 곧 가장 행복하지 못한 지경에 내몰려 있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게 꼭 박근혜 탓만은 아니다. 그러나 남은 1년4개월을 부패하고 무능하며 국가운영의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박근혜 일당에게 국정을 맡겨둘 정도로 우리의 형편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헌법과 법률을 일상적으로 위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박근혜를 당장 쫓아내야 한다.

가난했고, 국가 시스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지만, 1960년의 대한민국은 이승만 퇴진 이후, 아무런 불상사 없이 새로운 공화국을 출범시켰다. 56년 전에도 가능했던 일이 지금은 혼란만 가중시킨다면, 그야말로 뻔한 거짓말에 불과하다.

광장의 요구는 간명하다. 퇴진이든 탄핵이든, 당장 그 자리에서 쫓아내자는 거다. 광장은 이제 시민의 뜻을 따르는 정치인과 그렇지 않은 정치인을 엄격하게 구분할 거다. 대선은 그다음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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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는 짧다. 선거일로부터 6개월이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사람이 국민의 대표로 행세하는 걸 하루라도 빨리 해소하자는 뜻이다. 취지는 좋지만,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6개월의 시한은 아무래도 촉박하다.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뻔한 범죄야 어렵지 않겠지만,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죄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를 테면 같은 당원들끼리 돈을 주고받았다면, 6개월 안에 이걸 인지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또 기소까지 하는 건 좀체 쉽지 않다. 경찰이나 검찰이 온통 선거법 위반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사건은 넘치고, 인력은 부족하다는 게 이럴 경우엔 괜한 푸념만은 아닐 거다.

따라서 수사기관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선택과 집중’일 가능성이 높다. 선관위에서 고발했다면 무조건 기소한다거나 고소나 고발이 있다면 기소를 하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 여길 거다. 그렇다고 선관위가 고발했다고 무조건 기소하는 건 아니다. 당장 이번 20대 총선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도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과 염동열 의원은 선관위의 고발에도 불구하고,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자세한 속내야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둘 다 남부럽지 않은 친박 국회의원이니 검찰의 ‘선택과 집중’의 방향이 어떠한지 가늠할 근거로는 충분할 거다. 평소 남다른 정의감을 뽐낸 적이 없었던 선관위마저 검찰의 처분에 반발해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낼 정도니 검찰의 수사가 얼마나 엉망이었는지는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선택과 집중’이라는 게 그렇다. 19대 총선 때 검찰은 여당 14명, 야당 14명의 국회의원을 기소했다. 딱 절반씩이다. 공평해보이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 2012년 대선을 목전에 둔 상황 때문일까. 어떻게든 균형을 잡으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번 20대 총선은 사뭇 달랐다. 여당 11명, 야당 22명을 기소했다. 숫자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친박 국회의원들이 죄다 빠졌다는 거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누가 비박인지 친박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권력의 풍향에 그토록 민감했던 사람이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을 어떻게 모른다는 건지, 우리야말로 정말 모르겠다. 여당 의원들은 세상이 다 아는 심각한 선거법 위반에도 면죄부를 받았지만, 야당 의원들은 명함을 달라는 시민들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다고 덜컥 기소하기도 했다.

권력이나 권세를 뜻하는 ‘권(權)’자는 저울추라는 뜻도 갖고 있다. 권력을 행사할 때는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는 뜻일 게다. 검찰은 거듭 지적하는 것처럼 형사사법에 관한 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다. 독점적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에 형집행권까지 관련 권한을 죄다 틀어쥐고 있다. 이런 제왕적 권력을 지닌 대한민국 검찰의 저울추는 단박에 기울어졌다. 주어진 권한을 기껏해야 5년밖에 안되는 정권을 위해 자의적으로 휘두르고 있다.

범죄 혐의가 구체적인데도 아예 덮어버리기도 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뭉개버린 새누리당 지상욱 의원 사건이 그렇다. 이 사건을 담당한 남대문서의 차윤주 경위는 지난주 열린 경찰청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지상욱 의원 사건이 ‘윗선’ 때문에 불발되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초에 지상욱 후보를 지지하는 새누리당 당원들이 다른 당원들에게 현금과 목도리를 뿌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단다. 선거를 앞두고 돈을 주고받았다면 통신자료나 금융계좌를 들여다보거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보다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적어도 돈을 뿌린 사람의 금융계좌에 대해서라도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려고 했지만, 윗선에서 못하게 했다는 거다. 차윤주 경위는 그 까닭을 “경찰조직은 계급사회이고, 상부의 지시명령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곤 남대문서 지능팀장, 수사과장, 서울경찰청의 수사2계장, 수사과장과 수사부장을 ‘윗선’으로 지목했다.

이런 사건, 곧 여당 국회의원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어물어물 덮어버린 게 남대문서의 지상욱 의원 사건뿐일까. 혹시 빙산의 일각은 아닐까. 지상욱 의원 사건이야 차윤주 경위라는 소신 있고 강단 있는 경찰관 덕에 세상에 알려졌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입도 벙긋하지 못하는 경찰관들이 한둘은 아닐 거다. 경찰청은 이 문제로 진상조사팀을 꾸렸단다. 진짜 진상을 밝히려는 걸까, 아니면 진상조사를 핑계로 차윤주 경위를 압박하려는 건 아닐까.

이뿐만 아니라, 검찰은 총선시민네트워크를 만들어 활동했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무더기로 기소했다. 선거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했던 게 선거법 위반이라는 거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총선 관련 활동을 하며 선관위에 문의도 하고, 기자회견을 미리 알리기도 하는 등, 답답해 보일 정도로 선거법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런데도 선관위는 활동가들을 고발했고,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소를 해버렸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 등 맹렬히 활동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으려는 속셈임이 틀림없다. 곧 대선이니 아무래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면 위축될 거라 여겼던 것 같다.

20대 총선 선거법 관련 수사는 경찰이든 검찰이든 수사를 맡을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균형도 없고, 범죄를 진압하겠다는 수사 의지도 없었다. 그저 힘센 사람들 눈치나 보는 비굴한 타협과 협작, 그리고 은폐만이 있었을 뿐이다.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야 한다는 법집행 공무원의 씩씩한 기상과 꿋꿋한 절개는 차윤주 경위 단 한 사람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었을 뿐이다. 법이 그리고 법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가 참담하게 무너졌다.

굳이 소득이 있었다면, 다시금 검찰개혁, 그리고 경찰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뿐이다. 오로지 그것 말고는 소득이 없다. 아 참, 하나 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건재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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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서울에서 무역업을 하던 사람이다. 살 만했다. 언젠가 지역 언론운동을 하는 매형이 공주에서 함께 일하자고 했다. 제대로 된 지역 언론을 일구고 싶은데, 지역에선 사람이 빠져나가기만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감당할 만한 일인지 따져보기 위해 공주를 찾았다가 금강에도 가봤다. 불현듯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 손을 잡고 따라다니며 멱도 감고 낚시도 하던 강이 바로 거기 있었다. 순전히 강 때문에 이직과 이사를 단박에 결심했다. 금강이 좋아 공주 사람이 되었다.

백제신문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자, 나중엔 사장으로 경영을 책임졌다. 10여명의 기자가 일하며 주간신문, 시사잡지, 인터넷판을 내는 탄탄한 종합언론사였다. 제대로 된 진보적 지역 언론을 만들고 싶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었지만, 그런 꿈에 가까이 가는 것 같았다. 적어도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만날 때까지는 그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대운하를 추진하던 이명박 정권은 4대강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김종술은 무서웠다. 댐 공사로 수몰된 고향이 떠올랐다. 물을 잘못 건드리면 엉망이 된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강에 기대 살기에 강이 망가지면 사람들도 망가진다는 생각에 몸서리쳤다. 강을 지키고 싶었고, 적어도 강이 어떻게 변하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는 기자였다. 새벽부터 강에 나가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정권은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중앙정부의 하청을 받은 지방정부는 반대여론을 무마하려 했다. 중·고교 학생들을 동원해 금강 유역에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학생들에게는 봉사활동 점수와 함께 각종 기념품이 주어졌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당장 기사를 썼다. 4대강과 관련한 김종술의 첫 기사였다. 기사가 나가자, 공주시청 공무원이 전화를 했다. 국책사업을 지역 언론이 왜 반대하느냐는 거다. 황당했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이틀 뒤엔 민방위 교육에서도 4대강 홍보사업을 한다는 기사를 썼다.

이번엔 광고주들이 전화를 했다. 그런 식이면 광고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광고 없는 언론이 계속 버틸 재간은 없었다. 모아둔 돈을 모두 쏟아붓고, 집도 팔았다. 게다가 빚까지 얻었지만, 1년6개월을 간신히 버텼을 뿐이다.

김종술은 백수가 되었다. 기자들 월급 챙기려고 빚을 지는 일은 더 이상 없었지만, 수입도 없었다. 그래도 강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강에 대한 기사는 계속 쓰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 유력한 지역 언론의 사장님이었지만, 이젠 인터넷언론 시민기자라는 직함만 남았다. 생업이 없어진 거다. 그래도 새벽부터 강을 훑고 다니며 4대강 관련 기사에만 몰두했다.

2014년 6월, 정말 끝까지 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월세는 6개월이 밀렸다. 보증금을 훌쩍 넘어선 규모였다. 임대인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게다. 세간과 자동차까지 압류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여기는 그 순간, 김종술의 호주머니엔 5600원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5000원어치 빵을 사고, 수돗물을 잔뜩 받아 배낭을 메고 금강에 나갔다. 새벽부터 걷고 또 걸었다. 사흘째가 되자 빵도 떨어졌고, 기력도 의욕도 없어졌다. 강가에 쓰러지듯 누워 있다가, 강에 뭔가 떠오른 것이 보였다. 그동안 아무리 강을 훑고 다녔어도 볼 수 없던 희한한 생명체였다. 축구공만 한 벌레였다. 4대강 공사의 후유증으로 뭔가가 나타났다고 직감했다. 사진을 찍어 알 만한 연구자들에게 보냈지만, 다들 모른다고 했다. 전문연구자들도 모르는 괴생물체의 정체가 궁금했다. 만져 보니, 물컹했다. 심지어 먹어보기도 했다. 독성이 있는지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기로 한 거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심한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김종술은 그렇게 절박했다.

한참 뒤에야 ‘큰빗이끼벌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곤 득달같이 기사를 썼다. 4대강에서 최초로 큰빗이끼벌레가 발견되었다는 기사의 파장은 컸다. 그 파장만큼 김종술의 삶도 더 깊숙이 강속으로 빠져들었다.

지금도 김종술은 일주일에 닷새쯤 강에서 산다. 4대강 사업이 끝난 다음, 그 후유증을 하나씩 짚어 내고 있다. 금강의 물고기 떼죽음이나 녹조 사태도 역시 김종술이 첫 번째로 보도한 특종이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보에 갇힌 강은 흐르지 않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되어 갔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금강도 썩어갔다. 악취도 심해졌다. 하지만, 4대강을 밀어붙였던 사람들, 부화뇌동했던 사람들 중에 그 누구 하나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젠 큰빗이끼벌레도 사라졌다. 그나마 2~3급수 정도에서만 살 수 있는 놈이었다. 이제 금강은 4급수가 되었고, 이놈들도 집단폐사해 버렸다. 이젠 4급수에서만 사는 실지렁이가 나타나고 있다. 4급수, 정제하지 않으면 농업용수나 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완벽하게 썩은 물이 된 것이다.

4대강에 미친 김종술 덕에 우리의 생명이 이렇게 썩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종술은 지금도 4대강 곳곳을 누비며 4대강 사업의 후유증을 파헤치고 있다. 때론 벌에게 쏘이기도 하고, 뱀에게 물리기도 했다. 가난에 시달리는 것도 힘들지만, 부양할 가족이 없어 다행이라며 강을 누비며 살고 있다. 강에 미친 사람 김종술.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이 늘 새로운 역사를 일궈왔다. 금강 등 4대강도 김종술 같은 사람 덕에 그나마 가쁜 숨이나마 몰아쉬고 있는 거다.

김종술의 고초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애써 모은 자료를 도둑맞기도 했고,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전화도 자주 받았다. 그래도 김종술은 언제나 씩씩하다. 자기 별명이 ‘금강 요정’이라며 능청도 잘 떤다. 우리는 김종술에게 너무도 많은 빚을 졌다. 그에겐 꼭 풀고 싶은 절박한 과제가 있단다. 국회 차원에서 4대강 청문회를 열자는 거다. 이명박을 구속 수사하라는 것도 아니다. 고작 청문회다. 여소야대라는데 그걸 못할 까닭이 있을까.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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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교도소에 구금되어 있던 수용자 두 명이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19일엔 이 아무개씨가, 그 다음날인 20일엔 서 아무개씨가 숨졌다. 둘 다 삼십대의 한창 나이였다. 두 사람은 조사수용방에 격리되어 있었다.

이 방은 규정위반 혐의를 받는 수용자들을 가두는 별도의 공간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규율위반실 또는 징벌방이 되기도 한다. 조사수용실 또는 징벌방, 뭐라 부르든 이 방에 갇히면, 교도소 생활은 몇 곱절 힘들어진다. TV 시청, 신문 구독을 금지당하고, 운동이나 가족과의 면회는 물론 편지마저 주고받을 수 없다. 징벌방이 곧 조사를 위한 대기 공간이라는 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혐의만으로도 징벌을 받는다는 거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교도소에 갇힌 사람의 감각은 자유로울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도 교도소에 갇히면 운동시간은 빠트리지 않고 챙긴다. 운동 자체도 중요하지만, 운동을 나가야만 햇볕 한 줌이라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교도소 구내여도 좁디좁은 사방 안과 널찍한 운동장은 공기마저 다르다. 그래서 주말이나 공휴일이라고 운동을 못하게 되면 그야말로 몸살을 앓는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겐 추석이 민족 최대의 명절일지 몰라도, 교도소 수용자에겐 운동도 접견도 못하는 참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일 뿐이다. 평소 신문을 보지 않던 사람도 교도소에 들어가면 열심히 챙겨 읽는다. 광고도 빠트리지 않는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TV, 신문을 금지하고 접견마저 차단하는 건 밖에 있는 사람들은 가늠하기 어려운 극심한 고통이다.

조사수용방에는 선풍기조차 없었다. 저 뜨거웠던 역사상 최악의 폭염을 그저 몸으로 버텨내야 했다. 오로지 부채와 하루 세 번만 주는 2ℓ짜리 물만으로 찜통, 가마솥 같은 비유조차 무색한 숨 막히는 공간에서 버텨야 했다. 숨 쉬기도 어려운 곳에 그저 잘잘못을 따져보겠다며 가둔 거였다. 징벌이 목숨보다 중할 수는 없는데, 징벌도 아닌, 징벌을 위한 조사 대기였다니 말문이 막힌다.

물론 교도소 측이 이렇게 할 수 있는 법률 근거는 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에는 증거 인멸이나 위해 우려가 있으면, “분리수용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제110조). 꼭 필요한 경우에 선택적으로 할 수 있지만, 징벌대상자가 되면 예외 없이 분리수용을 당한다. 자의적 법집행이 가능한 포괄적 조문 때문이고, 기계적 행정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접견, 서신 등 다른 사람과의 접촉이 가능한 처우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제한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다. 물론 필요한 경우에 한해 선택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조문이다. 아무리 양보해도 견딜 수 없는 폭염 속에서 목숨을 빼앗길 지경으로 내몰려선 안되는 일이다.

법률에 따르면 조사를 마치고 진짜 징벌을 시작할 때도, 집행 중일 때도 수시로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한다(같은 법 제111조). 그렇지만 부산교도소는 그러지 않았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 판가름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수용자들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는 징벌적 구금을 해버렸다. 그 결과는 참담한 죽음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일상적으로 건강상태를 확인해야 할 환자들이었다. 서른일곱 이씨는 당뇨와 간질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동료와 싸우다 얼굴 부분에 골절이 생겼다. 당장 눈에 띄는 상처가 있으니 외부 진료를 나갈 수는 있었지만, 더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권고는 간단하게 무시당했다. 큰 병원에 데려가기는커녕, 아무런 조치 없이 조사수용방에 가둬버렸다. 어지럼증을 호소했지만 묵살당했다. 죽기 전날 가족이 찾아와 큰 병원이 아니라면 교도소 의료병동으로라도 옮겨달라고 호소했지만, 부산교도소는 이 역시 묵살해버렸다. 면회도 시켜주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 40도가 넘는 고열로 쓰러진 다음에야 큰 병원으로 옮겨질 수 있었지만, 겨우 심폐소생술만 받다가 사망했다.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구였지만 어이없게 목숨을 잃었다.

서른아홉 서씨도 지체장애 3급에, 뇌전증과 당뇨를 앓는 환자였다. 동료 수용자와 언쟁을 벌이다 조사수용방에 끌려온 지 열흘 만에 숨졌다. 이씨가 숨진 바로 다음날이었다. 사람이 죽어나갔는데도, 똑같은 일이 다음날에도 똑같이 반복된 거다. 이건 단순히 교도소의 의료체계가 문제가 있다거나, 조사수용방이 사실상의 징벌방처럼 악용되고 있다는 상황을 넘어, 교도소가 사람을 일부러 죽이기로 작정한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게 하는 일이다. 한 사람이 죽어나간 바로 다음날 같은 곳에서 같은 이유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달리 설명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사람이 죽었는데도 당국은 조사수용방의 상태를 살펴보는 기본적인 일도 챙기지 않았다. 부상을 입었거나 지병이 있는 수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적절한 진료였지만, 교도소는 간단하게 묵살해버렸고, 그 무서운 폭염 속에서 선풍기도 없는 좁은 공간에 가둬버렸다. 그러면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용서하기 힘든 일이다.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교도소는 가장 기초적인 국가 기능의 하나다. 누구라도 국가가 운영하는 기관에서 목숨을 잃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난여름 이 기본적인 원칙이 허물어졌다. 매년 30명 안팎의 수용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올해에만 벌써 5명이 자살했고, 이 두 명의 수용자를 포함해 20명이 병으로 죽었다. 교도소는 죗값을 치르는 곳이지, 사람을 죽이는 곳은 아니어야 한다.

폭염은 단박에 끝났지만, 정부가 자초하는 말기적 현상들은 꼬리를 물고 있다. 마치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며 곳곳이 무너지고 있다. 절대 무너져선 안되는 교도소까지 엉망이다. 박근혜 정권 3년 반째의 대한민국은 이렇게 절망적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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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무와 박봉, 게다가 위험하다는데도 경찰관이 되려는 젊은이들은 넘쳐난다. 경찰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만 100개쯤 된다. 경찰관 중 가장 낮은 계급, 순경은 원래 고졸 일자리였다. 하지만, 요즘 순경이 되려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도 노량진쯤에서 2~3년 정도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합격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순경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요즘엔 자연스럽다.

최혜성이란 젊은 여성도 그렇게 순경이 되었다. 몇 년 동안 그저 공부만 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경찰관이 되었다. 2014년 12월 경찰관 생활을 시작했고, 올 1월부터는 경기도 동두천경찰서 관내 지구대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안정된 일자리를 얻은 건 좋은 일이었지만, 불행은 느닷없이 닥쳤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6월21일, 자정을 막 넘긴 시간, 최혜성 순경은 차를 몰다 가로등을 들이박는 사고를 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사고였다. 누가 다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최 순경이 속한 조직, 경찰은 민감했다. 같은 경찰관이라고 사정을 봐주기는커녕, 일단 최 순경의 음주운전부터 의심했다.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29%였다. 소주 한 잔 마신 것보다 적은 혈중 알코올 농도였다. 음주운전 기준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다. 기준치 이하니 문제될 게 없었다. 그러니 아무 일도 없어야 했다. 0.029% 정도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액체 소화제, 피로해소제나 구강청결제, 심지어 사탕이나 빵을 먹어도 나올 수 있는 수치다. 그래서 기준이 중요하다. 정해진 기준을 넘어서면 면허정지나 형사처벌을 받고, 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범죄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이다. 최 순경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법률은 물론, 경찰 내부의 다른 어떤 규정으로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수치였다.

그러나 경찰의 감찰조직은 많이 달랐다. 사고 몇 시간 뒤인 오전 7시부터 동두천경찰서 감찰팀은 성화했다. 일곱 차례나 전화와 문자를 보내 출석을 강요했다. 감찰조사를 위한 소환통보는 적어도 이틀 전까지는 해야 한다는 규정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뭔가 트집을 잡아내겠다는 식으로 들쫓듯 감찰조사를 벌였다. 결코 감찰 대상이 아닌데도 그랬다. 막무가내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휴가를 낸 날이었지만, 감찰팀의 닦달에 여행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마구잡이 감찰이었지만, 순경 계급의 새내기 경찰관 처지는 곤궁했다. 오전 11시부터 시작된 감찰조사는 매우 강압적이었다. 당최 자신을 방어할 수가 없었다. 음주운전이 건수가 안된다는 것을 아는 감찰팀은 사생활부터 다양한 신상털기를 시도하며 압박했다. 최 순경은 공포에 질렸다. 진술서를 작성하며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같은 기본 사항조차 잘못 써서 여러 차례 고쳐 쓸 정도였다. 참기 어려운 모멸감과 두려움을 이길 수 없었다. 최 순경은 감찰조사를 받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찰조사가 사람을 죽인 것이다.

동두천경찰서 감찰팀의 무리한 감찰은 ‘자체 인지 처분 실적’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징계할 만한 사안들을 발굴하고, 그게 실제 징계로 이어지면 성과 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제도다. 자기 평가 점수를 챙기려고 죄 없는 사람을 일단 털어보자며 몰아세운 것이다.

최 순경의 죽음을 확인한 동두천경찰서는 발빠르게 움직였다. 이례적으로 경찰서장이 직접 사망 현장을 찾고, 감찰과 형사팀이 분주하게 뭔가를 찾아 나섰다. 유족들은 이 과정에서 최 순경의 유서와 유류품이 빼돌려졌다고 의심하고 있다.

평가 점수만 높일 수 있다면, 동료 경찰관의 운명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감찰조사와 징계가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음주운전자와 함께 술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한다. 올해에만 5명의 경찰관이 이런 까닭으로 징계처분을 받았다.

그렇지만, 전혀 다른 사례도 많다. 올해 총경으로 승진한 경찰관은 두 번이나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사람이었다. 경정 때 혈중 알코올 농도 0.109%의 만취상태에서 운전을 하다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멀쩡하게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까지 올랐다. 까닭을 모르겠다.

1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둔 이철성 경찰청장 후보자도 음주운전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이다. 그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9%였다. 이철성 후보자는 음주운전 처벌 이력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를 거듭해 경찰청장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그보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3분의 1로, 법적 기준치 이하였던 최혜성 순경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할 만큼 강도 높은 감찰조사를 받았다. 공평치 못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철성 후보자는 논문 표절,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자녀 취업 의혹에다 집회·시위 강경진압 논란까지 제기되고 있다. 감찰을 통해 진작 걸러졌어야 할 사람이다.

감찰은 고위직 간부들 앞에서는 직무유기를 일삼았고, 배경도 없는 일반 순경에게만 가혹했다. 그래서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걸까. 힘없는 사람만 감찰조사의 치욕을 감내해야만 했다. 사람이든 조직이든 가장 모욕적인 평가는 약자에겐 군림하면서, 강자에겐 비굴하다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감찰조직이 꼭 그렇다.

최소한의 공정성도 갖추지 못한 감찰, 기껏 한다는 일이 높은 사람들 비위나 맞추고, 자기들 승진할 건수 찾기에만 골몰하는 감찰 때문에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비단 최 순경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 29일엔 화성 동부경찰서의 한 경찰관이 “억울하게 감찰조사를 받게 되었다”는 유서를 쓰고 자살했다. 56세의 남성이었다.

경찰에게는 공정한 감찰을 진행할 능력과 자질, 의지도 없으니 방법은 하나뿐이다. 경찰 조직에서 감찰을 떼어내 외부에 독립기관으로 두는 것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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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이란다. 국민 신뢰를 조속히 회복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단다. 법무부 장관 김현웅의 말이다. 그 ‘각고의 노력’이란 인사검증과 감찰 시스템을 강화하고, 검사의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확고히 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단다. 수치심마저 들었다는 검찰총장 김수남도 비슷했다.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제시한 해법은 주식정보와 관련된 사람은 주식투자를 금지하겠다는 거다. 내부 제보 시스템을 활성화하고, 검찰의 재산등록도 심층 감찰하겠단다. 참담, 수치심 등 말만 거창했지, 내부에서 좀 챙겨보겠다는 게 전부다. 결국 장관과 총장의 사과는 시의적절한 물타기였다.

ⓒ 경향신문

진경준의 놀라운 재산 증식은 처음부터 뇌물이었고, 홍만표는 ‘전관’이란 권력으로 돈을 긁어모았다. 다들 추잡한 전횡과 비리를 일삼았다. 현직은 물론 전직까지 돈을 긁어모으는 이 신통한 재주는 검찰의 막강한 힘에서 나온 것이다.

검찰은 막강한 권력이다. 국가정보원, 경찰, 군대, 재벌도 상대가 되지 않는다. 국회보다 세며, 때론 대통령의 권력을 능가할 정도다. 검찰보다 센 조직은 없고, 검사보다 힘센 사람도 없다. 박근혜가 김기춘, 정홍원, 황교안 등 검찰 출신들에게 힘 있는 자리를 맡긴 것도 검찰의 힘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나라에도 없는 막강한 절대 권력,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검찰의 막강한 권력은 검찰만이 틀어쥐고 있는 수사권, 기소권, 형집행권에서 나온 것이다. 형사사법과 관련한 일체의 권한이 검찰에 집중돼 있다.

죄가 있으면 당연히 수사를 하고, 죄가 없으면 수사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꾸로 할 수도 있다. 범죄자를 봐줄 수도, 죄 없는 사람을 괴롭힐 수도 있다. 미네르바 사건, MBC <PD수첩> 사건,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 등 애꿎은 사람을 괴롭히고 인생을 망치려 한 사례는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범죄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 사례도 차고 넘친다. 진경준, 홍만표는 언론보도가 없었다면, 지금껏 권력을 탐닉하고 있었을 거다.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중태에 빠트린 사건은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수사도 하지 않았다.

국가는 최고의 슈퍼파워지만, 실제로 국가가 개인에 대해 쓸 수 있는 무기는 국가형벌권이 유일하다. 잡아다 벌을 주는 것밖에 없다. 국가의 유일한 무기를 검찰만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건 사실상 국가 전체의 힘과 맞먹을 정도의 엄청난 권력이다. 경찰도 수사를 하지만, 그건 검찰의 지휘와 통제 속에서만 가능하다. 일종의 머슴 역할에 불과하다. 기소권도 검찰만의 독점 권한이다. 악질 범죄자도 기소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고, 죄가 없어도 기소당하면 몇 년씩 재판을 받으며 치도곤을 당해야 한다.

재판도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 주도한다. 재판이 열려도 검찰이 공소를 취소하면 그날로 재판은 없던 일이 된다. 법원이 범죄자를 단죄해도 형을 집행하는 건 검찰의 몫이다. 형집행을 정지시키면 대우그룹 김우중 또는 영남제분 ‘사모님’처럼 교도소가 아닌 자기 집이나 병원에서 편히 지낼 수도 있다.

물이 고이면 썩듯, 권력도 집중되면 썩는다. 진경준 등속은 검찰이 얼마나 썩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검사가 공익의 대표자라는 건, 검찰청사에 붙은 ‘검사선서’에나 나오는 고상한 말이다. 더러 묵묵히 일하는 검사들도 있다지만, 김홍영 검사 자살에서 보듯, 묵묵히 일하는 것조차 참담한 굴욕을 감수하는 일이 되곤 한다.

권력을 한곳에 집중시켜 놓고도 부패하지 않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내부의 자정 노력 따위로 바로잡을 수 없다. 권력의 집중이 핵심이니, 해법은 권력을 쪼개는 데 있다. 가장 확실한 재발방지책은 검찰권력의 해체에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수사권은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기소권으로 경찰의 파쇼화를 견제하면 된다. 검찰의 기소권은 미국식 기소배심이나 일본식 검찰심사회를 통해 민주적·시민적 통제를 받게 해야 한다.

검찰 내부 개혁도 필요하다. 쓸모라곤 그저 검찰 폼 잡는 것이 전부인 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도 꼭 필요한 기능만 남겨두고 폐지해야 한다.

지방검찰청장은 교육감처럼 시민이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개혁 방안은 전혀 급진적이지 않은 평범한 방안일 뿐이다. 그게 아니라면 미국, 영국, 독일 등 어떤 나라도 좋으니 그 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옮겨와 검찰제도를 새로 마련하는 것도 좋다. 어떤 나라 제도를 옮겨와도 지금보다는 훨씬 낫다.

하지만 검찰권력과 공생을 즐기는 여당은 그렇다 쳐도, 야당마저 검찰개혁에 미온적이다. 야당의 원내대표들이 합의했다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만드는 정도로 검찰은 개혁되지 않는다. 검찰권력에서 독립된 별개의 조직이라면 일부 비리를 적발할 수는 있겠지만, 부패, 비리, 전횡을 없애지는 못한다. 그러니 논의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국회에 검사 출신 아닌 사람들로 검찰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제대로 된 논의부터 시작해보자.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바꿔보자. 자신의 약점 때문에 검찰이 두려운 국회의원들이 개혁 시늉만 내거나, 국면만 바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검찰개혁을 언급조차 않는 상태로 돌아가선 안된다. 악순환은 이제 끊어버려야 한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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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제복으로 말한다. 지친 퇴근길에도, 약속시간에 늦어 속도를 붙여야 하는 바쁜 시간에도 경찰관이 불러 세우면 시민들은 군말 없이 차를 세운다. 제복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제복은 공권력의 상징이고, 또한 공복의 상징이다. 그 경찰 제복이 말썽이다.

경향신문DB


경찰청은 6월1일부터 경찰관들의 제복을 싹 바꿨다. 한 달이 되었지만, 경비용역업체 직원인지, 경찰 관련 학과 학생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갑자기 바뀐 탓에 새로운 제복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 물론 이런 혼란이야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을 거다.

제복은 시민과 경찰의 약속이기 때문에 함부로 바꾸면 안된다. 꼭 바꿔야 할 중요한 까닭이 있어도 신중해야 한다. 경찰청은 무턱대고 바꾼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게 볼 여지도 있다. 제복 교체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있었다. 내부 품평회를 열고 세 가지 후보 안을 놓고 선호도 조사도 했다. 경찰관 1651명이 참여한 선호도 조사에서 A안은 695명(42.1%), B안은 750명(45.4%)의 지지를 받았고, C안은 196명(11.9%)의 지지를 얻었다. 이럴 경우, 경찰청의 선택은 A, B 둘 중의 하나다. 그렇지만, 실제 결정은 엉뚱했다. 11.9%로 가장 낮은 선호도를 보인, 비호감 제품을 새로운 제복으로 결정했다. 무슨 까닭일까.

뭔가 비리가 있는 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경찰청은 설명회를 열었다. “여론조사에서 많은 득표를 얻은 디자인은 과거 사용한 색상이거나, 내근에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어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납득하기 어려웠다. 과거 사용했던 색상이나 내근에 부적절한 제품을 왜 후보에 올렸을까. 90%에 가까운 경찰관들의 안목이 그렇게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품평회와 여론조사는 그저 요식행위뿐이었을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새로운 제복이 일선에 보급된 다음에 일어났다. 물 빠짐이 심하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경찰관은 새 제복을 세탁해보니 물 빠짐이 심하다며 다른 옷과 함께 세탁하면 안된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조심하라는 거다. 경찰청은 또 설명에 나섰다. 글을 올린 경찰관을 색출해 그 경찰관의 실수로 물 빠짐 현상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다.

평소 빨래도 하지 않던 사람이 부인이 해외여행을 가서 빨래를 했는데, 세제를 133배나 더 넣어서 물 빠짐 현상이 생겼다는 거다. 물 90ℓ에 세제 60㎖를 넣어야 하는데, 이 경찰관은 물 4.5ℓ에 세제 400㎖를 부었다는 거다. 물은 20배나 적게, 세제는 6.7배나 많이 넣었다는 거다. 133이란 숫자는 20(배나 적은 물)에다 6.7(배나 많은 세제)을 곱해서 얻은 숫자다. 믿기 어렵지만, 국가기관의 공식 설명이었다. 요즘 세탁기는 알아서 세탁을 해준다. 그런데 평소 빨래도 않던 사람이 물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적게, 세제는 상상 그 이상으로 너무 많이 넣었단다. 아무튼 133배!

새 제복의 물 빠짐을 조심하라던 경찰관은 이렇게 본인 실수를 자인하고 SNS에 올린 글도 삭제했다. 그 효과는 확실했다. 경찰관들은 새로운 제복에 대해 모두 입을 닫아 버렸다. 하지만 새로운 경찰 제복은 세제 없이 그저 찬물에만 담가도 물이 빠진다. 원단이 좋지 않은 데다 염색이 불량하기 때문이다. 물 빠짐만이 아니라, 옷감이 좋지 않아 보풀이 일어나고, 폴리 100%라 착용감도 나쁘지만 볼멘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경찰 내부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경찰관에게 제복은 명예와 품위의 상징이지만, 표현의 자유조차 봉쇄하는 비굴함의 상징이 되었다.

경찰 제복을 왜 바꿨을까. 역시 적절한 설명은 없다. 지난해가 광복 70주년이었다거나, 바꾼 지 10년 되어 바꾼다는 뻔한 이야기뿐이다. 새로 제복을 바꾸면 수백억원의 혈세가 들어간다. 당장 하복 교체에만 약 110억원이 들어갔다. 시민이 새로운 제복을 바란 것도 아니고, 일선 경찰관들의 요구도 없었다. 더 희한한 건 미리 예산도 준비하지 않았는데도 제복 교체 사업을 강행했다는 거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는 건 강신명 경찰청장의 고집 때문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새로운 제복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 치적이 없었으니 눈에 확 띄는 새로운 변화를 과시하기 위해 만만해 보이는 제복을 골랐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례적으로 서둘렀고, 고집을 부렸다. 경찰조직의 가장 강력한 근거는 ‘경찰청장의 의중’이다. 시민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경찰이란 조직이 원래 좀 그렇다. 청장이 마음먹으면 예정에 없던 일도 현실이 되고, 시민이나 경찰관의 여망 따위는 단박에 뒤집어 버릴 수 있다. 독재라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독재의 폐해는 언제나 심각하다. 세제를 133배나 더 넣지 않도록 꼼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수백억원의 혈세 낭비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임기가 달포 남은 사람이다. 여럿이 지적하듯 경찰청장 임기를 채웠다는 것 말고 경찰 발전을 위한 기여라곤 눈곱만큼도 없던 사람이 자기 돈도 아닌 국민의 혈세를 낭비해가며 이런 분란을 일으키는지 모르겠다.

하긴, 고향이 저쪽이어서 경찰청장을 시킬 때부터 이런 폐해는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자질이나 인품,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고향을 기준으로 인사를 하면 책임을 맡은 사람은 인사권자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기만 할 뿐이다. 주권자인 시민이나 자기가 챙겨야 할 직원들은 안중에도 없게 된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살인적 물대포로 백남기 농민을 해친 책임만 물었어도 진작 물러났어야 할 사람이었다. 경찰대학 출신의 첫 청장이라지만, 수사권 조정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장신중 경찰인권센터장의 말처럼, “대통령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경찰조직이 망가지든 말든 오직 자신의 입신양명밖에 생각 안 하는 그런 경찰 수뇌부의 생얼”은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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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28일 토요일 오후 5시57분. 우리는 앞으로 이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열아홉 살 노동자 김군이 구의역 9-4 승강장 스크린도어 수리를 하다 역으로 들어오는 전동차를 피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목숨을 빼앗겼다.

남들은 다 쉬는 토요일 저녁, 평일이어도 보통의 직장인들은 6시 퇴근을 위해 일손을 멈췄을 시간이다. 비정규 노동자 김군은 쉴 수 없었다. 언젠가 짬이 나면 먹으려고 가방 속에 넣어둔 컵라면이 알려주듯, 끼니를 챙길 짬도 없이 작업 지시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지시를 따라 곳곳의 현장에 투입되었다. 토요일 저녁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아직 군대조차 다녀오지 않은 젊은이였다. 그가 목숨을 잃었다. 물론, 단순한 사고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허망하고도 원통한 죽음이다. 역 구내로 진입하는 전동차는 언제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들어온다. 승강장의 승객들도 구내방송으로 전동차 진입이 임박했다는 걸 얼마든지 알 수 있는데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2인1조 근무원칙도 지켜지지 않았고 스크린도어 너머의 위험한 작업을 누구도 살피지 않았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청년이 이렇게 죽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온갖 비리와 전횡이 권력의 크기에 따라 작동했다. 권력은 서울시-서울메트로-퇴직자들의 하청회사-하청회사의 비정규직 순으로 작동했다. 권력은 그 힘의 작용에 따라 맨 밑바닥의 힘없는 청년 노동자에게 모든 위험을 떠넘겨 버렸다. 나이도 어리고, 정해진 직급조차 없는 비정규직이 가장 만만했던 거다. 그래서 참사의 책임은 권력의 맨 꼭대기에 있는 서울시장 박원순에게 있다.

일부에선 이명박, 오세훈 등 전임 시장의 책임을 거론한다. 그들의 책임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박원순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입 부조에 불과하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에 취임한 건 2011년 10월이었다. 곧 5년이 된다. 거의 대통령 임기에 맞먹는 시간을 서울시장으로 있었다. 2013년 성수역, 2015년 강남역에 이어 똑같은 죽음만 벌써 세 번째다. 모두 박원순이 시장으로 있을 때 빚어진 참사들이다. 세월호처럼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구의역 참사 직후 박원순이 보인 행태는 또 어떤가. 실시간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하며 여러 현안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던 사람이 이번엔 달랐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흘 동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참사 직후부터 언론보도가 쏟아졌고, 지체 없이 보고를 받았다는데도 그랬다. 참사 다음날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축구시합을 관람했다. 경기 시작 전에는 시축도 했다. 열아홉의 잔혹한 죽음을 생각하면 한가한 행보였다. 이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과 닮았다. 저편이 아니라, 이편이라 다르다는 거 말고, 진짜 다른 게 뭔지 모르겠다. 다르다면 박근혜는 7시간, 박원순은 사흘이라는 것뿐이다. 구의역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제 일처럼 아파하는 시민들이 없었다면, 그 사흘은 지금껏 이어졌을 게다.박원순은 안일하고 무책임했다. 엊그제 열린 기자회견에선 스크린도어나 메피아 문제를 알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저는 자세히 몰랐다”고 답했다. 몰랐다는 것도 알았다는 것도 아닌 묘한 말이다. 5년 내내 시장이었던 사람이 똑같은 죽음이 세 번이나 반복되었는데도 이런 말을 한다.서울메트로 간부 180명의 사표를 받았다며 비상한 각오로 사태 수습을 할 것처럼 호기를 부렸지만, 결국 2명의 사표만 수리했다. 5명을 직위해제했다지만, 그건 징계도 뭣도 아니다. 그저 이번 사태를 책임지는 사람이 2명이 아니라 7명이라는 눈속임에 불과하다. 많이 잘라야 수습을 잘한다는 게 아니다. 대응이 늦었더라도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해야지, 이런 꼼수에 기대선 안된다.

박원순은 유력 대권 주자이다. 얼마 전 광주에선 대선 주자로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박근혜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세월호, 메르스, 위안부 협약, 개성공단 폐쇄, 가습기 사태 등을 일일이 언급하며 박근혜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했다. 메르스 사태를 두고는 “국민 안전에는 ‘1% 가능성이 100%였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 말을 그대로 박원순에게 돌려주고 싶다.

박원순의 행보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대통령 다음이라는 서울시장 자리를 5년이나 했으니, 이젠 더 큰 권력 욕심을 내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권력 욕심이 아니라, 일 욕심이라 해도 좋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다음에 국민의 선택으로 주어지는 자리이지, 광주 찍고 충북, 경북 식으로 돌아다닌다고 꿰찰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서울시청 뒤편에선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한 달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매일처럼 엄마들이 삭발을 하며 시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자식들 건사하느라 아플 겨를도 없는 부모들이다. 이들을 만나지 못할 까닭이 뭔가. 무릎을 맞대고 시장이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제발, 시장 업무부터 제대로 챙겨라. 그래서 여태 숱하게 봤던 그렇고 그런 ‘대통령병’ 환자들처럼 추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그럴 만큼 서울시 형편이 녹록한 것도 아니다.

오늘 김군 장례식이 열린다. 하지만 이는 그저 주검을 수습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는 장례 이후다. 박원순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김군 죽음의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의미 없는 희생이 되지 않도록 다부지게 챙겨야 할 가장 막중한 책임이 바로 박원순에게 있다. 지켜볼 일이다.



오창익 ㅣ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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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소리 없는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언론은 침묵했고 소문마저 더뎠다. 광주라는 도시 전체가 금단 구역이었다. 저들의 의도는 분명했다. 광주를 고립시켜 학살마저 없던 일로 만들려 했다. 전두환 일파는 기세등등했고, 모두에게 무서운 침묵이 강요됐다. 광주 밖 사람들이 광주의 실체를 만난 건, 사진과 비디오테이프 때문이었다. 독일 기자 위르겐 힌치페터가 촬영한 영상을 비디오테이프에 담아 들여온 건 신부 장용주였다. 문제는 이걸 널리 알리는 거였다.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그 일을 해냈다. 정의평화위원회 간사 김양래와 홍세현이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했다. 성당 한쪽 골방에서 단순 반복의 수공업적 방법으로 비디오테이프를 한 개씩 복사했다. 아날로그 시대였다. 이렇게 만든 비디오테이프 ‘오월, 그날이 오면’은 교회와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나와 또래들도 사진과 비디오를 봤다. 참혹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5월 광주를 만나면서 이전까지의 삶은 송두리째 부정되었다. 학살자 전두환, 노태우가 구속될 때까지 광주의 진상을 알리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건, 우리 세대의 제일 사명이었다. 우리 86세대 운동권들은 광주에서 다시 태어났다.

청년들만이 아니었다. 1980년 이후 5·18은 가장 첨예한 전선이었다. 1983년 야당지도자 김영삼이 23일간의 단식투쟁을 시작한 날도, 1984년 김대중과 김영삼이 연대해 만든 민주화추진협의회가 발족한 날도 모두 5월18일이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불씨는 신부 김승훈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조작 은폐되었다고 밝히면서 당겨졌다. 역시 5월18일이었다. 꼭 그날만이 아니었다. 1980년 이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5월18일이었다.

36년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래도 광주 그리고 5·18은 여전히 현재다. 광주를 고립시키려는 세력마저 여전하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이냐 합창이냐는 논란 속에 묶어 두는 건, 5·18을 잊으라는 강요다. 광주가 이룩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역사를 무력화시키고 지워버리려는 술책이다. 그 ‘님’이 김일성이라거나, 북한군이 침투해 항쟁을 주도했다는 모략이 반복되고 있다. 헛소리는 장군 출신 보훈처장 박승춘이나, 지만원 등속에서 멈추는 도발이 아니다. 이제는 전두환까지 나서 자신은 광주학살과 무관하다고 우긴다. “어느 누가 국민에게 총을 쏘라고 했겠느냐.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전두환의 말이다. 1979년 12·12 쿠데타로 전권을 틀어쥐고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자가, 단지 직함이 국군 보안사령관이었다며 딴소리를 한다. 가해자의 딴죽만은 아니다. 광주를 고립시키려는 집요하고도 조직적인 도발이다.

총칼로 광주를 고립시키려던 전두환 무리의 수작은 끝내 실패했다. 광주 안팎에서의 숱한 싸움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지금 광주를 고립시키려는 도발도 광주를 넘어서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서 깨뜨릴 수 있다. 다행히, 광주는 외지인의 어설픈 조언에 기댈 정도로 어수룩하지 않다. 광주는 5·18을, 민주주의를 넘어 인권과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가치로 승화시켰다. 인권도시가 되겠다는 광주광역시의 노력은 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7년엔 인권 증진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고, 이를 바탕으로 2010년엔 인권 전담부서를 만들었다. 전국 최초였다. 광주가 인권도시를 선포하자, 서울특별시, 부산광역시 등 광역단체들과 서울시 성북구 등 기초단체들이 광주의 모범을 따랐다. 광주는 인권에 관한 한 늘 한 발 앞서갔다. 시민이 인권침해나 차별을 받으면, 상담, 조사, 개선 권고 등으로 시민의 인권을 챙겨주는 중립기구로 인권 옴부즈맨도 활동하고 있다. 인권침해 감시와 피해자 구조가 역할이다. 선배 김양래를 도와 5·18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하던 홍세현이 광주광역시 인권 옴부즈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난 1년 넘게 광주광역시와 민간이 함께 만든 45개 핵심 인권지표 실천계획도 발표했다. 계획만 거창한 게 아니다. 계획마다 주무 부서를 두고, 부수 예산도 함께 발표했다. 학교 밖 청소년, 이주민, 생명, 빈곤, 교통 약자, 비정규직 등 6개 분야에 대해 행정역량과 예산을 집중 투입하겠단다.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은 아예 “모든 행정은 인권에 기반을 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광주가 다른 도시와 사뭇 다른,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도시가 되면, 고립을 훌쩍 넘어설 수 있다. 5·18은 이렇게 계승되고 있다.

가해자들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극우세력과 함께 5·18을 논란거리로 만들며 여론을 호도하고 있지만, 광주 5·18은 이미 세계인의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18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5·18 비디오테이프 복사를 책임졌던 김양래는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 되어, 5월 정신의 세계화를 위해 뛰고 있다. “국내의 일부 논란과 달리, 해외에서는 오히려 5·18이 민중의 위대한 승리로 각광받고 있다.” 김양래 상임이사의 말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만 해도, 1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아시아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불리고 있다. 5·18 사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시되고 있고, 올해에만 1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전시회가 예정되어 있다. 5·18은 이렇게 지역, 세대, 심지어 국경마저 훌쩍 뛰어 넘고 있다.

그렇지만 고립을 넘어서려는 노력은 온통 광주 사람들만의 몫처럼 여겨진다. 광주만의 고군분투다. 중앙정부는 관심도 없다. 관심이 없으니 지원도 없다. 하긴 레임덕이라 차관급인 보훈처장의 어깃장을 방관하는 건지, 아니면 군 출신 보훈처장이 대통령의 뜻을 따르는 건지 아리송한 상황이 아닌가. 대통령은 아예 5·18기념식 참석조차 하지 않은 상황이니 뭘 바랄 일은 아닌 것 같다.


오창익 ㅣ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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