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198건

  1. 14:48:28 멀구슬나무
  2. 2018.01.09 노간주나무
  3. 2018.01.02 참식나무
  4. 2017.12.26 처녀치마
  5. 2017.12.19 노각나무
  6. 2017.12.12 대나무
  7. 2017.12.05 산개벚지나무
  8. 2017.11.28 물박달나무
  9. 2017.11.22 갈매나무
  10. 2017.11.14 갈대
  11. 2017.11.07 산오이풀
  12. 2017.10.31 기름나물
  13. 2017.10.24 겨우살이
  14. 2017.10.17 참회나무
  15. 2017.10.11 연꽃
  16. 2017.10.11 담쟁이덩굴
  17. 2017.09.26 코스모스
  18. 2017.09.19 세잎종덩굴
  19. 2017.09.12 미역취
  20. 2017.09.05 산비장이

거제도에 갔다.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포로수용소 유적지로 더 들어갔다.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과 아직도 살아있는 나무들을 더듬어보겠노라, 정문을 통과했다. 포로라니! 듣도 보도 못한 신분으로 죽기 일보 직전의 삶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 어떡하겠는가. 아수라 같은 곳에도 때는 꼬박꼬박 찾아와서 떼를 지어 밥을 먹고 중인환시리에 용변을 보아야 했다. 그러고도 오늘날까지 그 장면이 적나라하게 전시되고 있는 고약한 운명이었다.

자료관에 들렀다. 수용소 철조망의 경고판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NO TALKING OR PASSING OF ARTICLE BETWEEN THE FENCE 철망 넘어로 말 혹은 물품을 교환치 말 것.” 그 사진을 보는데 이곳에 잠시 수용되었던, 영어를 잘했다는, 말을 아주 잘 다룬 어느 시인 생각이 났다.

사람은 곤죽이 되어도 산천은 의구하다. 혹 당시를 지켜본 나무가 있지 않을까. 포로들과 사람들 사이로 휩쓸리는 동안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관광지로 조성된 곳이라 식재된 관상수가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에 나이 지긋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의 수피며 굵기며 자태로 볼 때 최근에 심은 나무는 분명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처음 보았을 때 구슬처럼 알록달록한 연보라색 꽃을 피운 나무. 지금 한겨울에는 총알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장착하고 있는 나무. 멀구슬나무였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전봇대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포로수용소에도 철조망 따위는 훌쩍 건너뛰어 전봇대가 있었다. 전봇대는 무슨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가. 고향으로 연결된 포로들의 간절한 눈빛을 그 전봇대는 얼마나 받아냈을까.

휘적휘적 걷다보니 유적지 내 철조망에 화살표와 함께 <출구> 표시가 나왔다. 수용소에서의 짧은 한나절이었지만 여느 곳과는 색다른 의미와 교환되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틀림없이 그때의 나무일 것 같은 멀구슬나무.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362번지의 포로수용소에서 오래 거주해 온 멀구슬나무를 네 번 뒤돌아보았다.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구슬나무  (0) 14:48:28
노간주나무  (0) 2018.01.09
참식나무  (0) 2018.01.02
처녀치마  (0) 2017.12.26
노각나무  (0) 2017.12.19
대나무  (0) 2017.12.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보잘것없는 나의 몸도 나에겐 대륙이다. 좁다면 좁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참 많았다. 물론 모르는 게 더 압도적이다. 넓다면 또한 얼마나 넓은 곳이더냐. 나에게 속한 곳이라지만 아직도 못 본 구석이 너무 많다. 나는 여태껏 나의 전모를 한꺼번에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해가 교차하는 날에 지붕 아래 맥없이 앉아 있자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무실 뒤 심학산으로 갔다. 정유년의 마지막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약천사의 저녁 종소리를 듣느라 조금 우회했다. 해넘이를 하러 온 사람들로 꼭대기가 빼곡했다. 사람들 뒤통수 사이로 지는 해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산은 늘 좋다. 도시에서는 지금 걷고 있는 길도 행인들의 발길에 묻히기 마련이다. 산에서는 오전에 걸었던 길이 오후에도 보인다. 산에 가끔 가는 게 아니라 산에서 가끔 내려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싶었다.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언젠가 나도 산에서 사는 날이 올까. 그땐 저 나무들도 진짜 식구처럼 여겨질까.

울산에 사는 친구가 근사한 연하장을 카톡에 올렸다.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감나무와 짧은 신년사였다. 가끔 하늘도 보고 살자. 말도 사진도 작품이었다. 작심삼일이라고 할 때의 3일은 제법 긴 시간이다. 조금이라도 짙은 하늘도 볼 겸 심학산에 다시 올랐다. 해 바뀌고 사흘 만에 가는 무술년 첫 산행.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시선이 짧아졌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어둑해지면 나무들은 웅크린 짐승처럼 변한다. 소나무, 신갈나무 사이로 노간주나무가 서 있다. 말쑥하게 커서 차렷한 모범생 같다. 바늘처럼 뾰쪽한 잎에 찔리면 따끔따끔 아프다. 콩알만 한 열매가 다닥다닥 달렸다.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삶으면 말을 잘 들어서 코뚜레로 쓰였다는 노간주나무. 큰길로 내려서자 하늘이 꺼진 뒤 ‘쬐끄만’ 등들이 켜졌다. 간판 아래 손님들이 불판에 둘러앉아 있다. 소는 고기가 되고나서야 코뚜레를 벗어날 수 있었겠지. 모가지에 퉁소를 장착한 듯 새들이 크게 울며 날아갔다. 노간주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구슬나무  (0) 14:48:28
노간주나무  (0) 2018.01.09
참식나무  (0) 2018.01.02
처녀치마  (0) 2017.12.26
노각나무  (0) 2017.12.19
대나무  (0) 2017.12.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 해의 끝인 12월이 밋밋하게 30일로 끝나지 않고 혹처럼 하루 더 있는 게 얼마나 다행한가. 신년으로 연결된 등대처럼 그날이 있어 일년의 마무리를 할 수 있는 게 퍽 다행이다. 무언가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디딤돌이 필요한 시기에 무엇을 할까. 거제 내도(內島)로 갔다. 구조라 선착장을 떠난 배는 10분 만에 ‘자연이 품은 섬, 내도’에 일행을 내려주었다. “시계방향으로 돌되 쓰레기는 남기지 마시고요.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천연 원시림이 끝내줍니더.” 아직도 귓전에 남은 선장님의 구수한 입담.

산의 높이를 재는 기준인 해발(海拔)이 그대로 환히 드러나는 곳을 출발해서 시계바늘처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옹기종기 모인 집에 바닷물처럼 들락날락거리는 주민의 수. 내도에는 자동차가 없다. 당연히 아무런 석유냄새가 없었다. 깨끗한 공기 사이로 세 종류의 길이 있다. 주민이 주로 다니는 마을길과 관광객이 사용하는 해안길. 그리고 염소가 닦아놓은 희미한 산길. 이날도 보았다. 나를 물끄러미 구경하더니 후다닥 절벽으로 뛰어가는 어린 염소 세 마리.

내도 나무를 살피면서 세심전망대를 거쳐 신선전망대에 도착했다. 섬에는 무덤도 물론 있었다. 멀리 외도(外島)가 반짝거렸다. 외(外)에 주목하면서 이 세상 바깥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말보다는 마음을 관찰해야 하는 시기. 무술년을 가늠하며, 나이를 재보며, 세월의 둘레에 대해서 궁리해 보는 시간.

어느덧 한 바퀴를 다 돌아 희망전망대에 도착하니 이런 팻말이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젊어지는 참식나무 이야기. 참식나무의 어린 잎을 보면 누런 털이 엄청 많은데 도무지 젊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 참식나무의 털은 시간이 가면 오히려 없어지고 맨질맨질해진다.” 조약돌처럼 흩어지는 나이를 걱정하는 이라면 거제 내도의 참식나무 아래로 올 일이다. 이곳에서 나무의 기운을 쬔다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남부 해안에 흔하게 도열해 있는 참식나무. 한겨울에도 붉은 열매로 직박구리를 불러들이는 나무. 금으로 칠한 듯 잎 뒷면이 연하장처럼 빛나는 참식나무. 녹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멀구슬나무  (0) 14:48:28
노간주나무  (0) 2018.01.09
참식나무  (0) 2018.01.02
처녀치마  (0) 2017.12.26
노각나무  (0) 2017.12.19
대나무  (0) 2017.12.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저물어가는 정유년을 인형처럼 일으켜 세운다면 아마도 요즘은 저 밑의 발쯤에 해당되지 않을까. 이 무궁한 시간을 납작한 시계 속에 가둬놓을 수 없듯 일-주-월-년으로 구분한들 시간이 토막 날 일은 없겠다. 하지만 우리는 또 마음이 생겨먹은 모양대로 몇몇 연례행사와 함께 한 해를 보자기에 싸서 기억의 창고로 밀어 넣는다.

오고가는 생각 속에서 재미 삼아 올해의 단어로 ‘명행족(明行足)’을 선택했다. 고려시대 어느 고승의 선시를 읽다가 ‘여래(如來)’라는 말을 만난 뒤끝이었다. 이제껏 그런대로 아는 척했는데 제대로 따지려니 막상 이 글자 앞에서 이응도 모르겠기에 사전을 뒤적이다가 딸려 나온 말이었다. 여래나 명행족이나 모두 부처를 뜻하는 말이다. 신체발부 중에서 어쩌면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발이 이런 자리의 소용을 얻었을까. 평발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와 교화를 위해 멀리멀리 돌아다니신 석가모니의 일생도 기리는 함의로 나는 이해했다.

걷는 건 늘 옳았다. 바람이 몹시 부는 산길. 시든 억새가 나부끼고 황소의 두둑한 등허리 같은 능선이 굽이굽이 이어졌다. 보이는 매 순간이 그냥 그대로 심우도(尋牛圖)의 한 작품들. 올해 무슨 공부를 하였던가. 얼마를 돌아다니고 헤매었던가. 눈이 침침해진 만큼 발바닥은 넓어졌는가. 이런저런 싱거운 궁리를 돌부리에 얹어보다가 통도사 뒤 영축산 정상에 드디어 도착했다.

바람도 얼른 지나가고 웬만한 녹색은 모두 사라지고 없는 엄동설한에 홀로 싱싱한 잎을 드러내놓고 있는 식물이 있다. 올해도, 오늘도 긴 꼬리를 감쪽같이 감추는 때라서 몹시도 고맙고 반가운 처녀치마였다. 처음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조금 특이하다 싶어 실물을 더욱 눈여겨보기도 했던 야생화. 처녀치마는 정상 부근의 바위틈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추운 계절을 지나느라 지금은 지면에 착 붙어 있지만 이윽고 날이 풀리면 대궁을 쭉 뻗어올려 황홀한 꽃을 피운다.

주름치마처럼 펼쳐진 잎에 곧 도래할 봄기운을 잔뜩 움켜쥐고 있는 처녀치마. 슬피 우는 제자들에게 관 바깥으로 슬쩍 내보였다는 부처의 맨발을 떠올리게 하는 처녀치마.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간주나무  (0) 2018.01.09
참식나무  (0) 2018.01.02
처녀치마  (0) 2017.12.26
노각나무  (0) 2017.12.19
대나무  (0) 2017.12.12
산개벚지나무  (0) 2017.12.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주 그간 말로만 들었던 영남알프스를 걸었다. 배내봉-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재-영축산-배내골까지. 우리의 고유한 지형에 공연히 딴 나라의 유명세를 끌어대는 게 조금 못마땅했지만 까짓 그런 것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어깨를 겨눈 산들의 웅장함이 너무 좋았다. 남으로 내달리다가 멀리 동쪽으로 애달픈 국토의 막내인 양 호젓하게 울릉도를 점찍어놓고 그 아쉬운 마음을 일으켜 바다로 뛰어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최대치를 일구었는가.

낙엽진 알몸의 산들은 사람을 위협하지도 압도하지도 아니 했다. 재를 넘을 때마다 길손처럼 서 있는 안내판은 이 지역의 풍상을 실감나게 전해주었다. 소리내어 읽으면 입에 착착 들러붙는 문장들이다. ‘오뉴월 엿가락처럼 휘어진 긴등(長登)’ ‘기러기처럼 떠도는 장꾼들이 모이던 배내고개’ ‘산짐승 울어대는 첫새벽, 호롱불을 든 배내골 아낙들이 선짐이 질등을 올랐다’ ‘밥물처럼 일렁이는 5만평의 억새밭은 백악기시대 공룡들의 놀이터이자 호랑이, 표범과 같은 맹수들의 천국이었다. 간월산 표범은 촛대바위에 숨어 지나가는 길손을 노렸고…’.

남부지방산림청장의 고시에 따르면 이 지역에는 설앵초, 방울난초, 처녀치마, 개회나무, 산오이풀, 참조팝나무 등이 분포한다고 했다. 내년에 이 산으로 개근을 해도 공룡, 호랑이, 표범이야 만날 수 없겠지만 때를 잘 맞춘다면 저 나무와 풀들은 만날 수 있겠다. 오늘 나의 아쉬운 눈길과 피곤한 발길에 위안을 던져주는 나무가 있었으니 잊을 만하면 나타나는 노각나무였다.

눈으로 보아도 단단하기 이를 데 없고 손으로 만지면 묵직한 느낌이 팅팅팅 울려나는 나무이다. 수피가 사슴뿔인 녹각(鹿角)을 닮았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도 하는 나무. 여름에 만나면 우아한 흰 꽃과 함께 레고처럼 껍질이 일어나더니 겨울에 이르자 크리스마스트리에 붙이는 장식구처럼 여러 문양이 도드라진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900여종의 나무 중에서 내 특히 좋아하는 노각나무. 조상을 모시는 제기(祭器)로 안성맞춤이라기에 더더욱 각별하게 쓰다듬는 나무, 노각나무. 차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식나무  (0) 2018.01.02
처녀치마  (0) 2017.12.26
노각나무  (0) 2017.12.19
대나무  (0) 2017.12.12
산개벚지나무  (0) 2017.12.05
물박달나무  (0) 2017.11.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나무 모르는 이 어디 있겠나. 몇 주 전 아주 색다른 장소에서 특별한 대나무를 보았다. 찬바람 죽죽 불어대는 일요일 오후. 모처럼 산으로 들지 않고 지하로 파고들었다. 두더지처럼 땅속을 빙빙 돌다가 지상으로 뛰어나와 보니 삼성역 근처 ‘한국문화의집(KOUS)’이었다. <타계 10년/씻김/혁혁한 무공을 기리는 장장 6시간의 굿판/박병천>. 현수막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서울에서 진도까지 가고도 남을 시간 동안 진도씻김굿에 나를 몽땅 투자하는 저녁이다. 7년 전 같은 장소에서 <가무 악인 박병천 3년 탈상 씻김> 공연에 홀딱 넘어간 적이 있었다. 앞으로 15주기, 20주기 추모 굿판에도 반드시 참석하리라는 사소한 결심을 했다.

이승의 사람들이 절절한 마음을 담아 펼치는 공연을 생전 건강했던 모습의 사진으로 앉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무송(舞松) 박병천(1933~2007) 명인. 무대에는 소박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혹 진도에서 가져온 것일까. 여러 과일들이 진설되어 있고 병풍 옆에 대나무가 한 그루 있다. 실내에 우뚝 솟아 있는 대나무를 보니 저승에 뿌리를 두고 이승으로 건너온 나무 같아서 신령스럽다. 나무에는 망자의 넋을 담은 인형 같은 모습의 지전이 걸려 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 듯 그네라도 타는 모습이다. 이윽고 안당, 초가망석, 고풀이, 길닦음 등등의 순서가 펼쳐졌다. 여러 국악기가 어우러진 가운데 대나무로 만든 대금을 불고 있는 이는 고인의 장남이다. 피리소리는 더욱 애틋하게 공중을 휘감고 돌아 대나무를 짚었다가 내 귀로 들어왔다. 눈뜨고도 기꺼이 코 베이듯 찰진 음악들이 산 자들의 마음을 뭉텅뭉텅 떼내어 갔다. 흥을 이기지 못해 겨드랑이에서 팔을 꺼내어 나뭇가지처럼 덩실덩실 흔드는 이도 여럿이었다. 오늘밤 이 자리에 모인 분들, 어느 경계까지 갔다 오실지!

대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겠다.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누가 시켰으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윤선도).’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야위게 하지만/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한다네(소식).’ 고향집 뒤안에 있던 대나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대나무를 나는 지금 떠올리고 있다. 대나무, 벼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 식물.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처녀치마  (0) 2017.12.26
노각나무  (0) 2017.12.19
대나무  (0) 2017.12.12
산개벚지나무  (0) 2017.12.05
물박달나무  (0) 2017.11.28
갈매나무  (0) 2017.11.2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눈이 펄, 펄, 펄 내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눈사태. 공중을 살피니 쉽게 그칠 눈은 아니었다. 꾸물꾸물한 기세에 발길을 돌리려다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오리무중의 산중을 헤매겠더냐. 희방사 부도탑을 지나는데 눈 사이로 지상의 모든 소리가 꼬리를 감추어 적막만이 탑처럼 우뚝 섰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의 첫 소절이다. 평지를 걸을 땐 몰랐는데 가파른 깔딱고개를 오르자니 어느새 그가 또 나타났다. 헉, 헉, 헉 숨소리. 등 뒤에서 누가 따라붙었나 돌아보면 어느 새 가슴을 빠져나간다. 내 속에는 정말 나도 모르는 이가 살고 있는가 보다. 사타구니에서 걸음을 자꾸 꺼내면 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듯, 이 과격한 자를 쫓아내면 그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처음 오르는 산이 아니었지만 눈 속의 소백산은 새로운 산이었다. 점점 희미해지는 길을 어림으로 짚으며 무사히 연화봉대피소에 도착했다. 하늘에 무슨 벽이라도 있는가. 딱, 딱, 딱 공중에 튕겨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밤을 건넜다. 또 하루 늙은 몸으로 연화봉-비로봉-천동계곡으로 하산하는 길. 인간들의 등산로를 가로질러 눈밭으로 걸어간 어느 짐승의 발자국이 뚜렷하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어제의 노래를 다시 꺼내어 흥얼거리다가 어느덧 다래교에 도착했다. 꽃이 사라진 이 산중에서 내내 겨냥했던 나무가 멀리 보였다. 가시나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노래 속의 가시나무는 가시가 많은 나무를 통칭하는 것이지만 실제 참나무과의 가시나무도 있다. 하지만 남쪽 해안이나 제주도에서만 드물게 자생한다.

발길을 멈추고 오래 바라본 나무는 산개벚지나무다. 작년 5월에 왔을 때 인사를 나누었던 나무. 다닥다닥 달리는 흰 꽃도 꽃이지만 오늘 이 나무의 특징은 단연 수피다. 슬픔의 울혈처럼 피가 배어나오는 듯, 칭칭 감은 붕대 사이로 푸른 멍자국이 보이는 듯한 나무의 껍질. 지금은 겨울이라 그 느낌이 더욱 강했지만 산개벚지나무는 찬 기운을 뚫고 하늘로 ‘짱짱히’ 걸어가고 있었다. 산개벚지나무, 장미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각나무  (0) 2017.12.19
대나무  (0) 2017.12.12
산개벚지나무  (0) 2017.12.05
물박달나무  (0) 2017.11.28
갈매나무  (0) 2017.11.22
갈대  (0) 2017.11.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존엄사법이 시작된 후 연명의료를 받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택한 첫 사례가 나왔다. 의료진은 “환자가 고통받지 않고 임종했다”며 “병세가 악화돼 자연사(自然死)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며칠 전 접한 뉴스의 한 토막이다.

“군자왈종(君子曰終), 소인왈사(小人曰死)라고 해서 군자가 죽는 것을 종(終)이라 하고, 소인이 죽는 것을 사(死)라고 합니다. 유학의 사생관이 반영된 표현인데, 유학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삶은 내가 어떻게 결정할 수 없습니다. (…) 다만,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인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에 읽은 <한국철학사>(전호근 지음)의 한 대목이다.

그제는 사무실 뒤편의 심학산에 올랐다. 금방이라도 눈을 흩뿌릴 것 같은 우중충한 날씨였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다가 단란한 핵가족을 만났다. 젊은 엄마가 앞장을 서고 초등학생 아들이 등산스틱을 짚었고 딸, 아빠의 순서로 나무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뒤따르던 아빠가 행로에서 이탈하여 낙엽이 쌓인 곳으로 들어가려는 눈치였다. 마침 뒤돌아본 아내가 한마디 했다. “자기, 어디 가?”

지금 여기에서 ‘자기’는 연인을 부르는 호칭이겠지만 사전적인 의미는 남이 아닌 본인을 뜻하는 말이다. 

귓전으로 흘러가는 말에 괜한 용심이 일어나면서 이런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자기(自己)는 문자적으로 ‘스스로의 몸’이다. 심학산의 이 작은 공간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이는 누구일까.

문득 주위를 살피니 우리 다섯 사람 말고도 비탈에 서 있는 벌거벗은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 오기 전 나무들은 물 공급을 차단하여 잎을 고사시킨다. 월동하기 위해 스스로 잠시 곡기를 끊는 것이다. 가족들과 엇갈리는 곳에서 멈춰 허리를 펴니 온통 상수리나무 사이로 유독 한 그루가 반짝거렸다. 깊은 산에 가서 드물게 만나는 물박달나무였다. 잿빛의 껍질이 여러 겹, 여러 조각으로 벗겨져서 쉽게 알아보는 나무이다. 

하늘로 기품 있게 뻗어올라가는 물박달나무를 낙엽을 밟은 채 오래 쳐다보았다.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나무  (0) 2017.12.12
산개벚지나무  (0) 2017.12.05
물박달나무  (0) 2017.11.28
갈매나무  (0) 2017.11.22
갈대  (0) 2017.11.14
산오이풀  (0) 2017.11.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오고가는 여행길의 동대구역. 기차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따끈한 국물에 어울리는 생선을 비롯해 일찍이 대구에 자리 잡은 고향분들, 친구들이 떠오른다. 모두들 안녕하신가요? 하지만 이들도 이내 강력한 기억 하나에 밀려나고 만다. 아주 오래전 논산훈련소를 떠나 초라한 이등병의 신분으로 동대구역에 도착했던 것. 지금도 코끝에 걸려 있는 희붐한 새벽 공기 냄새! 오늘은 동대구역에 직접 내렸다. 달성군의 최정산으로 가는 꽃산행. 초행인 줄 알았는데 교통표지판을 보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여기는 군대시절 입에 단내 나도록 훈련받던 가창유격장이 있던 곳이 아닌가.

이렇다 할 꽃이 없는 줄로 짐작했기에 임도를 따라 걸었다. 그냥 싱겁게 마무리를 하는가 싶었는데 호쾌하게 사방이 툭 트인 능선에 강한 바람을 맞으며 외롭게 서 있는 나무에 눈이 번쩍 뜨였다. 먼저 알아본 꽃동무의 외침이 귓전에 닿는 순간,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나무에 우열을 따질 수야 없겠지만 산에 들고나면서 꼭 보고 싶은 나무가 있었다. 움푹 파인 늪 같던 군대시절을 전후해서 내 허전한 옆구리를 지켜준 시집에 등장하는 나무.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라고 할 때의 그 나무. 갈매나무였다.

강화도 고려산에서 처음 본 이후 여러 차례 갈매나무를 만났다. 드물긴 해도 숲에 꼭꼭 숨어 있는 건 아니었다. 백석(白石)은 대체 어디에서 저런 나무를 보았을까. 내가 산에서 본 나무는 시에서 만난 것과 너무나 달랐다. 굳고 정하기는커녕 어쩐지 이등병같이 후줄그레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정산 어느 바위 옆에 외로이 서 있는 나무는 이 지역의 전망을 한껏 휘어잡으며 굳건히 서 있지 않겠는가. 까맣게 익은 열매 하나를 입에 넣었다. 단맛과는 아주 거리가 먼 애매하고 오묘한 맛이 일거에 입안을 장악했다. 오늘의 나를 배출한 여러 요소들이 우려낸 맛이라 생각하고 꿀꺽 삼켰다. 갈매나무, 갈매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개벚지나무  (0) 2017.12.05
물박달나무  (0) 2017.11.28
갈매나무  (0) 2017.11.22
갈대  (0) 2017.11.14
산오이풀  (0) 2017.11.07
기름나물  (0) 2017.10.3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필기구로 한 일생을 요약할 수도 있겠다. 가갸거겨를 쓰고 구구단을 외울 무렵엔 연필이다. 이 컴컴한 지하자원은 그 품질이 울퉁불퉁해서 가끔 침을 묻혀야 했다. 중학교 땐 만년필이었다가 손가락이 제법 굵어지면서 모나미 볼펜을 잡았다. 귀퉁이에 볼펜똥을 닦으며 공책을 갈아치웠다. 칠판을 등지자 꿈도 떨어져 나갔다. 건조하고 메마른 일상의 연속이었다. 크게 변화할 일도 꾸중 들을 일도 없는 시기. 습관은 딱딱해지고 고집은 힘이 세졌다. 그동안 각종의 볼펜을 사용했고 드물게 만년필을 가까이했다. 이제 육필은 멀어지고 필기는 손가락 담당이다. 쓰는 게 아니라 구타하듯 자판을 때린다.

꿈 대신 꽃을 좇아 산에 출몰하기를 여러 해. 골짜기의 기운을 쬐고 꼭대기에서 고개를 숙이며 먼 곳을 본 효과일까. 부드러운 것은 부드러운 것으로 대접하는 게 마땅하고 옳을 것 같았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생각을 받아 적는 것으로 부드러운 붓을 택했다. 요즘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 의사표시는 주로 붓으로 한다. 잘 쓸 수는 없지만 그저 많이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낸다. 먹이나 벼루는 그런대로 갖추었는데 마음에 드는 붓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착 감기는 애인 같은 붓은 어디에 있는가.

우연한 기회에 유필무 붓장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가평의 취옹예술관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단풍 나들이를 겸해서 찾아갔다. 족제비나 토끼의 털만 알았는데 칡, 억새 등 식물을 소재로 한 붓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천하의 기운이 붓 끝으로 고스란히 수렴되고 있는 듯했다. 붓대에 조각을 넣은 것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그중에서 갈대로 만든 붓에 마음이 쏠렸다.

갈대는 갈대. 왜 갈대는 이름이 갈대인가. 왜 갈대는 이 시기에 누군가의 가슴을 깊게 찌르는가. 왜 갈대는 흐르는 강가에 늘 우두커니 서 있는가. 왜 갈대는 항상 저런 특별한 동작을 취하는가. 갈대붓을 만나고서 쬐끔 알게 되었다.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허공에 ‘제 조용한 울음’을 필기하는 중이란 것을! 갈대,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박달나무  (0) 2017.11.28
갈매나무  (0) 2017.11.22
갈대  (0) 2017.11.14
산오이풀  (0) 2017.11.07
기름나물  (0) 2017.10.31
겨우살이  (0) 2017.10.2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고개만 젖히는 것과 등을 땅에 대고 보는 밤하늘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짐승처럼 웅크린 바위에 배낭을 베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검은 밤이 가슴을 내리눌렀지만 코끝을 바짝 스치는 흐뭇한 별빛이 그 압박을 풀어주었다. 눈으로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이 별빛 중에는 저 북두칠성, 저 오리온자리에서 내려온 것들도 분명 섞여 있을 터!

소청을 나설 때 깜깜하던 어둠이 어느새 환하다. 희운각에서 누룽지와 인절미로 아침을 때운 뒤 마침내 공룡능선을 더위잡았다. 살아 있는 공룡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만 이름과 실질이 딱 어울리는 지형이 아닐 수 없다. 공룡이라는 명칭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말로도 대체 불가능한 공룡능선. 작년 가을에 왔을 땐, 공룡의 비늘 같은 바위틈에서 많은 꽃들을 만났지만 이제 모두 자취를 감추고 열매조차 흩어지고 흔적만이 남았다. 그중에서 저무는 가을을 가냘프게 감당하는 꽃이 있으니 산오이풀이다. 꽃은 대부분 반토막이 났지만 오늘까지 그런대로 허술한 모양을 유지하면서 내 허전한 시선을 받쳐주는 게 대견하고 고맙다. 산의 높은 곳에서 자라기에 이렇게 늦게까지 이 자세를 유지하는가.

마등령에 서면 발밑에서 내 빠져나온 그림자가 아득한 선계로 들어가는 열쇠구멍인 듯 낯설다. 언제 또 여기에 올 수 있을까. 시간과 무릎을 걱정하면서 아래를 향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상강 이후 정상 부근에서 몰락하더니 금강굴 부근에서 제대로 다시 부활한 단풍. 비선대 계곡 다리 옆 나무가 이런 팻말을 달고 있다. “당단풍나무. 가을에 붉은색으로 변하는 데서 유래되었고 설탕 당이냐 당나라 당이냐 유래가 확실하지 않다.” 저 훤칠한 나무를 두고 하필이면 저런 설명뿐일까. 웃음이 슬며시 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왔던 설악산 비선대. 그때의 까만 교복에 검은 모자 눌러쓴 까까머리의 나하고 지금의 나는 같은 나일까. 늙으면 이렇게 늙으라는 듯 소박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설악산 공룡능선의 산오이풀을 생각하면서 어둠 속으로 점점 희미해지는 그림자를 앞세우고 속초 외옹치항으로 향했다. 산오이풀,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매나무  (0) 2017.11.22
갈대  (0) 2017.11.14
산오이풀  (0) 2017.11.07
기름나물  (0) 2017.10.31
겨우살이  (0) 2017.10.24
참회나무  (0) 2017.10.1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가는 것일까. 달아나는 정유년을 압침으로 눌러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집어든 묵직한 책이 <비글호 항해기>였다.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최근 주말마다 오르는 산에서 마주치는 풍경의 한 자락을 집으로 운반해 온 탓인가. 낯선 동식물이 자주 출몰하는 가운데 이런 유의 문장들에 마음이 축축해졌다. “2월29일 브라질에 도착해 난생처음 열대 숲을 거니는 자연사학자는 우아한 초원, 진기한 기생식물, 아름다운 꽃, 반짝이는 초록 잎,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성하게 우거진 숲 전체에 흠뻑 매료된다.”

어쨌든 오늘의 하루도 그때의 하루와 꼭 같은 분량의 시간이다. 비글호가 갈라파고스를 향해 나아가듯 팔 저어 거인의 어깨 같은 태백의 덕항산을 오를 때 저자의 저런 느낌에 나를 포개기도 하였다.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인 곳. 그곳에서 그것들의 너머를 힐끗 보려고 한다만 그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삐딱한 경사에서 상태가 환한 꽃이거나 묘한 처지에 놓인 나무의 사연을 줍느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나에게 걸려든 것은 초원도, 기생식물도, 꽃도, 잎도, 숲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좀 더 생각을 전개해 본다. 흔히 자연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일면의 진실일 뿐 완전히 옳은 말은 아니다. 눈앞의 세계는 보여주는 빛과 보여지는 사물이 팽팽하게 만나서 빚어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물체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면 직진하는 빛은 모조리 직선이라서 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세상의 절반은 직선이 아닐까.

지금 내가 빠져드는 곳은 접시처럼 매끈한 참싸리의 잎에 얹힌 꽃 그림자 속이다.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기도 했지만 내 동작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래도 어쨌든 그림자의 주인은 기름나물. 산형과의 식물로 잘게 갈라지는 잎과 가느다란 가지가 곧고 길게 뻗는다. 그리고 그 끝에 우산처럼 모여서 달리는 자잘한 흰 꽃잎들. 평행한 햇살이 만드는 정교한 기름나물의 그림자 속으로 오늘의 내 그림자도 감쪽같이 흘러나가는 듯! 기름나물,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갈대  (0) 2017.11.14
산오이풀  (0) 2017.11.07
기름나물  (0) 2017.10.31
겨우살이  (0) 2017.10.24
참회나무  (0) 2017.10.17
연꽃  (0) 2017.10.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식물에 꽂힌 뒤로 무엇이든 꽃과 나무로 엮으려는 심사가 발동했으니, 열화당에서 마련한 <매화와 붓꽃>전에 가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올해 50주기의 근원 김용준과 올해 초 타계한 존 버거의 공통점은 적지 않으니, 시공을 달리한 두 예술가가 식물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도 추가할 수 있으리라. 작게 소리내어 읽으면 달그락거리는 문장들과 손가락으로 허벅지에 따라 그려보는 고아한 그림들. 진달래, 수선화, 노시(老枾) 등의 이름을 필기하다가 한쪽에서 상영되는 다큐를 보았다. 연초에 본 인상 깊은 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에서 만난 그 사진이 혹 있을까. 안개 낀 눈길에서 출판사 편집자 출신의 아내와 그 뒤를 따르는 존 버거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있었다! “존 버거의 장례식 풍경과 추모의 글”의 중간쯤에 그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닌가. 이런 설명문이 붙었다. “1976년 새해맞이 장식물로 쓸 겨우살이를 든 베벌리와 클루아제 농장을 산책하는 존.”

겨우살이는 멀리서 보아도 특징이 확 드러난다. 몽블랑에는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다. 잎이 떨어져 헐거워진 산에서 특히 잘 보이는 겨우살이는 그 모양만큼이나 생활사도 독특하다. 얼핏 보면 꼭 새의 둥지 같은 겨우살이는 독립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나무에 더부살이로 기생한다. 그간의 산행에서 자주 보았지만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어느 해 어머니 모시고 벌초하러 고향 가는 길에 무주의 적상산에서 본 것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갔더니 정상에 발전소, 안국사, 사고(史庫) 유적지가 있었다. 덕유산 국립공원의 일원으로 함부로 훼손되지 않아 참으로 풍성한 겨우살이를 실컷 보았더랬다. 어머니는 단풍에, 나는 겨우살이에 푹 빠졌던 선명한 기억.

전시장을 나와 지난날을 더듬는데 겨우살이가 막걸리집까지 따라왔다. 나무에 기대고 새의 몸을 빌려 종자를 퍼뜨리는 겨우살이야. 어쩌면 겨우 존재하는 것들을 상징이라도 하는 듯한 겨우살이야. 네 덕분으로 어느 소박한 전시회의 후기로 작년에 나무 밑으로 돌아가신 내 어머니도 등장하는 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구나. 겨우살이, 단향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오이풀  (0) 2017.11.07
기름나물  (0) 2017.10.31
겨우살이  (0) 2017.10.24
참회나무  (0) 2017.10.17
연꽃  (0) 2017.10.11
담쟁이덩굴  (0) 2017.10.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세상의 상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개근상과 기타의 상. 전자가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받는 상이라면 나머지는 심사위원들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니 기타의 상들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도 국가적으로 목을 매건만 올해도 우리나라를 비켜나간 노벨상의 뉴스에 이런저런 시답잖은 생각을 얹어놓기도 하면서 문경의 조령산에 올랐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텔레비전을 켜면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의 교훈들. 도시는 아주 복잡했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도 다리에 걸리적거리는 각종 법규와 지시사항들. 오늘은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으니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다’는 어느 유행가 가사에 딱 들어맞는 행보라 하겠다. 신생의 연두색 잎들이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벌써 붉은 단풍의 계절이다. 한 해 끝에 잎에서 모처럼 벌어지는 잔치.

그간 무성하되 무심했던 잎이었다. 지금 꽃이 사라지고 열매가 뒤로 물러나는 건 그 잎으로 쏠리는 시선을 빼앗지 않겠다는 배려일 것이다. 순서에 따라 이제는 잎들이 주인공이다. 나를 씻기에는 아직 땀이 부족한 것일까. 널찍한 임도를 벗어나 신선암봉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더위잡고 나서야 산이 주는 높이와 깊이를 제대로 섭취할 수 있었다. 따로 주어가 필요 없는 이런 문장도 하나 건졌다. 산에 사네!

오늘 내 눈을 특히 사로잡는 건 투신하듯 일제히 아래로 향하고 있는 나무의 열매였다. 여름에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더니 이제는 부상(副賞)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지금 나의 심사에도 꼭 알맞은 그것의 이름은 참회나무. 가장자리가 꿀렁꿀렁 이는 잎은 대칭이고, 짙은 자주색의 열매는 다섯 조각으로 나뉜다. 잎이든, 꽃이든, 열매든 모두가 쩨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활황하게 피어나는 참회나무. 사계절 내내 산에서 개근하고 있는 나무들만큼 성실한 게 또 있을까. 자칫 가을의 끝자락에서 감당할 수 없는 스산함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국면에서 아연 활기를 한 움큼 선물해주는 참회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름나물  (0) 2017.10.31
겨우살이  (0) 2017.10.24
참회나무  (0) 2017.10.17
연꽃  (0) 2017.10.11
담쟁이덩굴  (0) 2017.10.11
코스모스  (0) 2017.09.2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때 판소리에 빠져 소리를 꽥꽥 질러댈 때가 있었다. 그 어름에 곁따름으로 배운 어느 민요의 가사에 특히 마음이 걸렸다. 그리하여 경상의 북도를 지나칠 때면 그곳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다녔다. 지난 추석 이틀 전 문경의 조령산에 가서 가을이 이슥하도록 꽃을 활짝 피운 가는잎향유를 보았다. 일행은 하행선, 나는 상행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머리를 굴리니 오랜 숙제를 풀기에 딱 맞을 것 같은 거리요 시기인 것 같았다.

삼국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상주의 공갈못은 그 명성에 비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관광지로서의 요란한 시설도 하나 없었다. 하나의 큰 저수지일 줄 알았더니 여러 구역으로 나뉜 연못이 여러 개 있었다. 이 못을 축조할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둑에 묻었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간직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는 공갈못. 경운기가 넉넉히 비켜갈 만한 공갈못의 사잇길을 걸었다. 잘 순환이 되지 않는 듯 거무튀튀한 물에 통발, 물달개비 등등의 수중식물이 빽빽했다. 혹 귀한 풀이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리다가 길섶에 난 며느리배꼽의 알록달록한 열매를 보는 순간 퍼뜩 알아차렸다. 여기에서 무슨 사연을 엮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는 건 모두 췌언에 가깝다는 것을. ‘옛 여성들의 서글픈 탄식과 애환을 담은 민요’인 ‘상주 함창가’를 얼른 불러내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연밥 줄밥 내 따 주마 우리 부모 섬겨다오//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 하더라/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는 안 할라네(…)”

노래가 끝날 무렵 압도적인 연꽃 무리와 맞닥뜨렸다. 오로지 연꽃뿐인 큰 연못. 이웃한 곳에서는 물에 젖은 수련의 꽃잎이 아직 몇 송이 피어있다. 연꽃은 물을 떨치고 일어나 키가 껑충하다. 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연밥이 몇 개 연꽃의 잎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물을 헤치고 들어가 견준다면 연밥은 내 어깨를 두드릴 것 같고, 연꽃잎은 내 얼굴을 보쌈할 것 같고. 문득 한 무리의 철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멀리 인가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늘은 쌀쌀했고 땅은 쓸쓸했다. 연꽃,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우살이  (0) 2017.10.24
참회나무  (0) 2017.10.17
연꽃  (0) 2017.10.11
담쟁이덩굴  (0) 2017.10.11
코스모스  (0) 2017.09.26
세잎종덩굴  (0) 2017.09.1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울적할 때 논어를 읽는다. 최근에는 집중해서 필사도 하였다. 쌀가마니를 기웃거리는 쥐처럼 손에 잡았다가 갉작거리기만 했던 게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차에 어떤 깊은 자극을 받아 작심을 하고 덤벼들었던 것. 논어의 끝문장은 “不知言 無以知人也.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이다. 왜 말로 마무리를 했을까. 붓을 놓고 ‘言’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네모난 돌 위에 솔잎을 쌓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험한 한자. 문득 말의 바탕 위에서 늘 살아가면서도 이 글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옥편을 뒤졌다. 이런 설명이 나왔다. “날카로운 칼과 口가 합친 것. 칼로 까칠까칠하게 만들 듯 하나하나 확실하게 발음되는 게 말이라는 뜻.”

대학을 갔는데 출석부는 이름의 가나다순이었다. 조상이 순서를 정해준 셈이다. 자연스레 같은 실험조가 되면서 가깝게 지낸 친구들이 있다. 성만 표기해 본다. <李, 全, 鄭1, 鄭2, 崔>. 이곳저곳에서 흩어져 살다가 중간지대인 예천에서 모처럼 모였다. 이름과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얼굴은 조금씩 변했다. 다음날 全과 鄭1은 먼저 떠나고 李, 鄭2, 崔는 치악산 아래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을 둘러보았다. ‘작가는 치열하게 언어를 찾는 존재입니다.’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하여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군데군데 배치된 작가의 말을 읽으며 돌아다니는데 맞춤하게 돌담길에 ‘눈먼 말’이라는 시가 눈에 번쩍 뜨였다. 자연스레 논어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내용을 보니 말(言)이 아니라 말(馬)이었다. 시를 소개하는 입간판 뒤로 담쟁이덩굴이 담벼락에 빽빽했다.

담쟁이덩굴을 모르는 이 어디 있겠나. 벽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담쟁이덩굴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오늘 내가 주목한 건 담쟁이덩굴의 까칠한 잎이었다. 

그것은 나무의 혀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것은 바람과 살랑살랑 호흡을 맞출 때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들을 귀가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추석 귀성객이 뭉텅 빠져나간 ‘훌빈한’ 공원에서 각별한 느낌으로 바라본 담쟁이덩굴. 포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참회나무  (0) 2017.10.17
연꽃  (0) 2017.10.11
담쟁이덩굴  (0) 2017.10.11
코스모스  (0) 2017.09.26
세잎종덩굴  (0) 2017.09.19
미역취  (0) 2017.09.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태백의 한 여관에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러 가는 길. 제법 쌀랑해진 날씨에 목덜미가 시큰해지더니 두툼한 긴팔 옷이 그리워졌다. 야외주차장으로 연결된 샛길에 꽃 몇 송이가 흔들흔들 서 있다. 육상선수처럼 헐레벌떡 어디로 뛰어가는 듯한 꽃들을 보면서 선뜻 이런 작문을 했다. 매미소리 끊기자 코스모스 피는구나.

지난주 벌초하러 고향 갔다가 초등학교에 가보았다. 개구쟁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쑥부쟁이, 명아주, 방동사니 등 심심하게 놀고 있는 풀들의 차지였다. 길가에 그 많았던 코스모스는 어디로 갔을까. 도자기 공장으로 변한 교사를 보는데 추억의 한 자락이 떠올랐다. 완대초등학교는 거창읍에서 40여리. 내 어머니 머리에 쌀 이고 거창장으로 갈 때 두 시간이나 잡아먹던 거리이다. 햇빛이 풍부해 사과농사를 많이 하는 동네--남에서 북으로 꼽으면 막터, 오무, 새터, 오류골, 완대, 돗골--의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 한 학년에 한 학급이었지만 쉬는 시간이면 이야기꽃과 먼지로 운동장이 자욱했다. 이맘때쯤의 어느 날 따뜻한 햇볕을 찾아 모여 놀다가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졌다. 어느 동네가 최고냐고. 다들 고만고만했지만 어린 마음이야 그러지를 못해 제 동네 자랑하느라 마구 핏대를 올렸다. 하지만 돗골 아이들 한마디에 모두들 꼬리를 내려야 했다. “야, 씨바, 누가 서울에서 가장 가깝노!”

이제는 폐교가 된 완대초등학교. 그땐 부산으로 전학 간다고 좋아라 방방 날뛰었는데 지금은 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울퉁불퉁 자갈길에서 쌀쌀맞은 아스팔트로 포장한 도로를 달려 서울로 가는데 선뜻 이런 문장이 이마를 때린다. 학교가 폐허되니 코스모스도 사라졌구나.

파주출판단지의 사무실에서 나와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임진각 조금 못 미친 곳에 코스모스 꽃밭이 있다. 내 고향에서 사라진 꽃들도 이곳으로 몽땅 전학을 왔나 싶을 정도로 눈에 넘친다. 꽃은 어쩌자고 코스모스인가. 코스모스는 우짜자고 이런 이름인가. 출발총성을 기다리는 마라톤선수들처럼 술렁이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 등하굣길에 동무해준 꽃들을 불러보았다. 코스모스,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꽃  (0) 2017.10.11
담쟁이덩굴  (0) 2017.10.11
코스모스  (0) 2017.09.26
세잎종덩굴  (0) 2017.09.19
미역취  (0) 2017.09.12
산비장이  (0) 2017.09.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바닥의 돌이 콧등을 칠 만큼 가파른 길이다. 고개를 숙이고 오르고 오른 끝에 겨우 서북능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조금 한숨을 돌리며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나무 이름을 불러주었다. 길은 쉬는 법이 없다. 신발끈을 조이고 다시 출발을 한다. 실새풀, 조릿대 등등이 만들어주는 길은 그 어떤 숙연함이 고여 있는 깊숙한 웅덩이 같다. 바람이 몰려가고 나뭇잎의 그림자가 빼곡하게 바닥에 일렁인다. 흑백의 그림인데 그 어떤 총천연색보다도 더 생생하고 환한 세계. 나는 못 보는 나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얼룩처럼 내려앉았겠다.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신 듯 초록에 취해 나아갈 때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경기민요 ‘창부타령’의 한 급소.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음을 운다. 무슨 새가 울랴마는….” 꼭 이희완 명창의 소리로 들어야 제맛이 나는 이 대목을 읊조리면 정말 내가 이상한 길로 순간이동한 것 같고 무슨 기운에 휩싸이는 것 같다. 흥에 겨워 팔을 가지처럼 뻗으며 한 바퀴 돈다고 갑자기 새가 찾아와서 울 일은 없겠다. 하지만 새벽 3시에라야 건질 수 있는 문장이 있듯 설악산의 높은 길모퉁이에 당도해야만 만날 수 있는 기운이 있어 겨드랑이까지 들어찼다.

정밀한 고독과 정교한 산색이 궁합을 맞추려는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기분을 알아차려 설악이 산새라도 보냈나 싶었는데 인기척이었다. 오른쪽은 대청봉으로 왼편은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산중의 소박한 번화가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다. 바로 그 삼거리길의 입구에 세잎종덩굴이 앉아 있다. 종처럼 생긴 짙은 자줏빛의 꽃은 이미 지고 열매가 도드라진다. 머리를 풀어헤친 듯한 열매 모양이 퍼뜩 할미꽃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확인해보니 둘 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집안들이다. 세잎종덩굴은 이름 그대로 덩굴식물이라 다른 의지처에 기대거나 서로 얽히고설키며 한 무더기로 자라는 나무이다. 열매에서 할미꽃을 보아서 그랬나. 멀어지면서 뒤돌아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할머니 모습도 얼핏 보이는 듯한 세잎종덩굴.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쟁이덩굴  (0) 2017.10.11
코스모스  (0) 2017.09.26
세잎종덩굴  (0) 2017.09.19
미역취  (0) 2017.09.12
산비장이  (0) 2017.09.05
닻꽃  (0) 2017.08.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경 주흘산의 한 옆구리인 부봉(釜峰)은 험한 암벽산이었다. 산세가 엎어놓은 솥을 닮아서 저런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내 젊은 날의 퇴적지인 부산(釜山)에 기대어 왠지 쉬운 산행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보통 악산이 아니어서 유격을 방불케 하는 각종 몸동작을 요구하였다. 늦은 점심을 위해 찾아든 수안보의 한 식당은 산나물을 잘 차려낸다는 곳이었다.

간판에서부터 구수한 냄새가 폴폴 나는 식당은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참나물, 삼지구엽초, 고사리, 취나물, 쐐똥, 어느리…. 정갈하게 담아낸 접시마다 나물의 이름이 일일이 적혀 있지 않겠는가. 많은 식객들의 젓가락이 거쳐 간 접시에 박힌 나물 이름들. 솥을 거쳐 나와 모양을 잃은 나물은 그게 다 그것 같지만 이렇게 이름을 알고 먹는 나물은 더 맛이 있었다. 한 방울의 맛도 새지 않고 고스란히 입안으로 들어와 혓바닥이 장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이런 뜻밖의 맛을 즐길 수 있느니, 이처럼 추가 주문을 고급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여기 미역취 좀 더 주시겠습니까?

생물다양성교육센터에서 이끄는 9월 탐사지는 설악산이었다. 설악의 기운으로 번들거리는 산은 가을 정취가 이미 물씬했다. 성질 급한 어느 나무는 단풍의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돌아드는 바위마다 바위떡풀이 벌떡벌떡 일어나 붙어 있고, 금강초롱꽃도 나의 언어를 벗어난 경지의 색감으로 환히 피어 있다. 그리고 어느 한 모퉁이를 돌았더니 수줍게 맞이하는 노란 꽃, 미역취였다.

밥상에 둘러앉듯 몇 사람이 둥그렇게 서서 미역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다. 참 단아하군요. 청초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나물을 무치면 미역 냄새가 난다고 합디다. 잎을 삶으면 미역처럼 미끌미끌하다고 해요. 먹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했다. 오늘 아침에 막 피어난 것 같군요. 일행이 떠나고 혼자 남아 사진을 몇 방 더 찍었다. 나로선 미역취 앞에서 미역취 나물 생각이 아니 날 도리가 없었다. 올봄 내가 먹은 미역취의 손녀뻘쯤 되는 설악산의 미역취 앞에서 속되게 입맛을 다시 한번 다시면서. 미역취,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스모스  (0) 2017.09.26
세잎종덩굴  (0) 2017.09.19
미역취  (0) 2017.09.12
산비장이  (0) 2017.09.05
닻꽃  (0) 2017.08.29
난쟁이바위솔  (0) 2017.08.2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미역취

몇 해 전, 눈 쌓인 태백산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해 용문, 예미(禮美), 고한을 지나 태백역에 내렸다. 플랫폼의 안내판을 보니 다음역이 문곡(文曲)이었다. 멀어져가는 기차를 보는데 예와 악을 중시한 공자님 생각이 났다. 지난주 정선(旌善)의 여량에서 일박하고 반론산에 올랐다. 정선의 문자적인 뜻은 ‘선행을 드러내어 칭찬함’이고 반론은 ‘半論’이다. 생소하지만 궁리가 깊은 듯한 산 이름을 입에 굴리며 오르는데 논어 생각이 아니 날 수가 없었다.

이 계절은 지금 어디를 통과하는 중인가. 어제 들은 매미소리가 오늘은 또 확연히 다르다. 매미는 꼬리를 씰룩이던 힘도 잃은 채 겨우 가슴 근처의 발음기만으로 희미한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닳아지는 매미소리를 듣는데 최근 때맞추어 읽은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 기언야선. 새가 죽으려 할 때는 그 울음이 애처롭고, 사람은 죽음이 가까우면 그 말이 선해진다).

정상 부근에 천연기념물인 철쭉을 키우는 반륜산은 접근이 쉽지 않은 오지의 산행처였다. 등산로에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이 닿은 흔적이 별로 없었다. 좌우의 껑충한 나무와 풀들이 외려 우리를 구경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희미하게 끊어지기도 하는 길을 오르다가 양지바른 무덤에 읍을 하고 그 앞에 앉았다. 햇살이 기탄없이 찾아오는 무덤가의 식생은 언제나 풍요롭다. 고개를 숙이고 오래 쳐다보면 와글와글한 햇빛 사이로 주로 벼과와 사초과의 풀들이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다. 곧 벌초를 하게 되면 본치가 나게끔 어깨보다 훌쩍 웃자란 풀들. 그중에 무덤을 지키는 수문장인 양 확실하게 꼿꼿한 산비장이가 있다. 기다란 대궁 위에 짙은 보라색 꽃을 둥근 공처럼 얹어두었다. 엉겅퀴와 달리 가시가 하나도 없어 부드러운 느낌이 주르르 흘러넘친다.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매미소리 들으며, 순한 산비장이 바라보며 반론산의 무덤가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가을이라 소리도 순해지는구나, 이순(耳順)이 가까이에 왔구나. 산비장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잎종덩굴  (0) 2017.09.19
미역취  (0) 2017.09.12
산비장이  (0) 2017.09.05
닻꽃  (0) 2017.08.29
난쟁이바위솔  (0) 2017.08.22
[이굴기의 꽃산 꽃글]나무수국  (0) 2017.08.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