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39건

  1. 2018.11.13 자주쓴풀
  2. 2018.11.06 동래엉겅퀴
  3. 2018.10.30 가는잎향유
  4. 2018.10.23 산국
  5. 2018.10.16 인동덩굴
  6. 2018.10.10 참나무겨우살이
  7. 2018.10.02 바위구절초
  8. 2018.09.18 단풍취
  9. 2018.09.11 한라천마
  10. 2018.09.04 끈끈이귀개
  11. 2018.08.28 금강애기나리
  12. 2018.08.21 제비동자꽃
  13. 2018.08.07 해오라비난초
  14. 2018.07.31 큰까치수염
  15. 2018.07.24 모새나무
  16. 2018.07.17 까치수염
  17. 2018.07.10 접시꽃
  18. 2018.07.03 선백미꽃
  19. 2018.06.26 기생꽃
  20. 2018.06.19 동의나물

말석에 앉아 노자강독을 듣는다. 오늘은 제50장이다. 대강의 뜻이야 번역된 책을 참조하면 되겠지만 한자의 뿌리까지 더듬자니 그야말로 오리무중의 산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중간의 대목에 얄팍한 마음이 실린다. 人之生(인지생), 動之死地(동지사지). 사람의 삶은 죽을 곳으로 움직여 가는 것. 그중 세 글자에 눈이 꽂혔다. 지금까지 그 전모를 모른 채 나도 인생이란 말을 여러 번 사용하였다. 어느새 그것의 반 고비를 지난 마당에 가끔 그 어디로 떨어진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때도 있다. 그런 마당에 갈 지(之)를 사이에 끼우니 남은 인생이 어디로 급박하게 굴러간다는 촉감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도 같았다. 한 글자 차이로 인생과 인지생은 그 어감이 이렇게 퍽 다르다. 난해한 수업을 마치고 취해서 귀가할 때 이런 노래를 흥얼거렸다. “인지생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침불시(寢不尸)라고 하셨던가. 잘 때도 시체처럼 똑바로 눕지 않고 옆으로 걷는 듯이 잤다. 사나운 꿈을 꾸기도 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밤을 건너고 주말이 오면 또 마음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가, 몸을 움직여서 가는 곳은 산.

시원하게 앞으로 달린다. 이 도로를 만드는 데, 이 다리를 놓은 데 땀 한 방울 보탠 적 없지만 나를 안 받아준 적은 없다. 그렇게 해서 장보고대교를 건너는데 좌우에서 급한 해류가 흔들리고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완도의 명사십리 해수욕장 근처 어느 야트막한 곳. 저기는 바다이고 여기는 산기슭이다. 그 사이에 섬이 형님처럼 앉아 있다. 그 섬에 가고 싶었다. 이젠 달력도 얇아졌다. 두 장이 마지막 잎새처럼 간당간당하다. 풍부했던 햇살도 졸아드는 저녁이다. 모든 것들이 움직이며 그 어디로 넘어가는 중.

올해의 꽃들이 모두 사라졌군, 기대를 접으려는 때 길가에 어엿하게 핀 꽃이 있다. 남녘이라서 아직도 가능한 자주쓴풀이다. 미라처럼 쓸쓸하게 꽃대 위에 저의 세계를 건설하고 있다. 피뢰침처럼 날카로운 잎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혀를 찌르는 쓴맛이 다리를 다시 건널 때까지 입에 감돌았다. 그것의 맛도 이렇게 쓰다! 새삼 깨우쳐주는 자주쓴풀,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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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절에서는 마주치는 이도 있지만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이 주로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내려놓으려는지 어깨도 유난히 처져 보인다. 멀리 우뚝한 일주문 근처에서는 사람들이 지하로 푹푹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다.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행사에 참석하러 경주 가는 길. 김천의 직지사 사하촌에서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교실을 벗어난 이후 처음 보는 친구들과도 어울려 경내를 잠깐 거닐었다. 탑으로 가는 눈길을 빼앗아가는 단풍잎들. 아아, 벌써 40년이라니! 희끗희끗 영감으로 넘어가는 후줄근한 모습들이었지만 이름을 대면 졸업앨범에서의 앳된 얼굴들이 그냥 훅, 튀어나왔다. 흥건한 기분으로 신라의 달밤을 떠들썩하게 건넜다.

ⓒ최영민

골프, 관광 조와 헤어져 삼릉에서 남산 금오봉에 올랐다. 돌아드는 바위마다 심상찮은 기운이더니 실제 바위 바깥으로 외출한 부처들도 있다. 한 가족이 소풍을 나왔는가. 꼬마가 가파른 경사에서 외친다. 고만 집에 가자. 경상도 사투리의 투정을, 이 자슥아 이 길 아니고는 집에 갈 수 없데이, 다독이는 젊은 엄마의 슬기로운 거짓말은 이 지방 특유의 억양이다. 여기가 경주이고, 이곳이 남산이라 그런지 집이라는 말은 졸업과 얽히며 사무치게 귀에 들어왔다. 천년이 퇴적된 경쾌한 풍경을 가리키는 바위에 철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줄기와 가지, 어린 나뭇잎은 희한한 무늬를 연출해낸다. 사람 인(人), 큰 대(大), 마음 심(心)이 함께 어울렸다. 바람에 불어 철쭉이 흔들리면 따라서 일렁이는 오묘한 글자들 속에 철쭉이 전하는 큰 소식이 있는 듯!

어제부터 내심 떠올리며 공글린 꽃이 있으니 동래엉겅퀴이다. 몇해 전 상주 황금산 입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이름에 특별하게 꽂힌 건 엉겅퀴 앞에 얹힌 두 글자가 바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엉겅퀴는 동래(東萊)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마침 부산의 꽃동무가 이기대 해변에 한창이라며 동래엉겅퀴를 보내주었다. 50주년에도 모두들 저 동래엉겅퀴처럼 싱싱하게 모일 수 있을까. 이래저래 동래엉겅퀴와 얽히고설킨 하루였다. 동래엉겅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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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토록 요란하던 빛이 어둠한테 지고, 세상의 모든 사물도 웅크린 짐승처럼 하나로 묶이기 시작하는 저녁이다. 이 하루도 함께 지냈다고, 물먹는 소 목덜미에 손을 얹는 할머니(김종삼). 저물다는 말이 참 좋다. 날이 저문다, 라고 말하면 고단했던 하루가 묵직하게 섬돌 아래로 내려앉는 것 같다. 사방에서는 꽃도 이미 열매로 저물어 버렸다.

서두르긴 했지만 조령산 깃대봉에 올랐다가 새재 뒤편으로 내려올 땐 어둑어둑해질 무렵이었다. 경사스러운 소식을 전해준다는 문경의 단풍이 몹시 푸짐했다. 아찔하기도 하지만 무섭도록 아름다운 바위들. 그 한쪽엔 불리한 조건을 딛고 일어선 꽃들이 있다. 참으로 갸륵하게 끌어모은 흙무더기마다 꽃이 꽂혀 있다. 저물어가는 이 계절을 담당하는 가는잎향유다. 꽃은 한두 송이가 아니라 길 떠나는 가족처럼 우르르 떼지어 피었다. 모든 꽃들이 훌쩍 사라진 때, 조금 고즈넉한 곳에서 가는잎향유를 보는데 옛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마지막 수업종이 울리면 필통과 공책을 부리나케 책보에 쌌다. 오늘은 우리 동네 ‘회치’가 있는 날이다. 마을 뒷산의 큰 느티나무 그늘에 어른들이 솥을 걸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커다란 바위인 ‘내리방석’에서 돼지를 굴러 떨어뜨린다고 했다. 송아지처럼 씩씩거리고 할아버지한테 달려가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벌렸다가 채 씹지도 않은 채 넘긴 돼지고기 몇 점. 굵은 소금에 찍지 않아도 단맛이 펄펄 입안에서 장구를 쳤다. 지나간 일은 지금으로부터 옛날로 멀어진 게 아니었다. 앞에서부터 이렇게 불시에 찾아든다. 아직도 안 잊히는 그날의 술렁술렁한 풍경들.

‘가는잎’은 잎이 어디로 간다는 건 아니고 그야말로 가늘다는 뜻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이 저물어가는 가을에 가는잎향유를 만나려니 그런 뜻만 실리는 건 아니었다. 봄이라는 글자에는 꽃을 보라는 의미가 들어 있고, 가을에는 어디로 간다는 동작이 마음껏 포함되어 있는 것.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가을에 몸을 맡긴 채, 흔들리고 흔들리는 가는잎향유 앞에서 송아지처럼 느리고 길게 울고 싶어졌다. 가는잎향유,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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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지나 석모도 상봉산의 호젓한 산길. 직육면체의 방과 네모난 모니터가 활개치는 도시에서는 짐작도 못할 생각들이 불쑥불쑥 찾아온다. 길은 뱀처럼 길고 또한 교묘해서 앞서간 이들의 흔적도 감쪽같이 삼켜버린다. 길이 문득 끊어지는 듯해서 부리나케 쫓아가 보면 또 그 어디로 넓게 구멍을 벌리며 나아가는 굽이굽이 산길. 그 좁아지는 고개를 수문장처럼 산국이 지키고 있다.

@이해복

무술에서 기해로 넘어가는 신호탄처럼 피어나는 산국. 저 노오란 산국을 보며 비로소 올해 꽃들의 마무리를 실감한다는 내 꽃동무도 있다. 기진한 체력으로 뒤처져 걷다가 정밀한 고독과 함께 쪼그리고 앉아 휘황한 산국을 자세히 관찰해 본다. 혀를 닮았다는 설상화와 대롱 모양의 관상화가 보기좋게 꽉 맞물렸다. 어느 산길에서나 흔히 발에 감기는 꽃이지만 오늘은 특별하다. 생각에도 품질이 있다. 길에서 길을 지키는 이런 산국을 두고 노자(路子)라 해도 되지 않을까. 또한 길이 고개로 넘어가듯 길의 철학자인 노자(老子) 생각으로 이어진다 해도 큰 억지는 아닐 듯싶었다. <노자>는 노자가 세상에서 몸을 숨기기 직전 함곡관 수문장의 부탁을 받고 단숨에 써낸 책이라는 풍문도 전해지지 않는가.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휘발유 냄새가 스며들어 산길도 끝나려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다. 그 옆에는 살아있는 목숨들이 가야 할 방향을 선도하듯 일제히 하늘로 걸어가는 나무들. 죽어서도 깎인 몸으로 서 있는 이정표는 굵은 팔을 들어 상봉산, 한가라지고개, 공동묘지의 세 방향을 가리킨다. 등산객은 상봉산, 하산객은 한가라지고개, 망자는 공동묘지로 가라는 것이겠다.

아직은 살아있는 나는 공동묘지를 외면하고 일행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타고 식당으로 향했다. 밥보다 먼저 나온 노란 막걸리 주전자를 보는데 산국과 노자가 다시 생각나기에 최근에 읽은 노자와 관련한 한 대목을 끄집어냈다. 노자가 이승을 떠나려는 스승 상용(商容)을 찾아 마지막 가르침을 청하자, 내 입안을 보라며 말씀하시길, 이가 있느냐, 없습니다, 혀가 있느냐, 있습니다. 문득 노자는 깨달았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남는다는 것을!

강화도 특산의 밥과 반찬의 묵직한 맛이 혀와 이로 구성된 입안을 휘젓고 목구멍으로 넘어갈 때, 노자의 말씀과 산국의 향기도 진하게 따라 넘어갔다. 산국,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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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앞.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불 꺼진 곳이 많았다. 시무룩한 동네의 낯선 간판과 좁은 골목에서 흘러나오는 컴컴함이 주는 위압감 때문인가. 마음이 조금 조마조마해졌다. 하지만 조마조마해지는 건 좋은 일이기도 하다. 마음이 그렇다는 건 하늘이나 어둠 또는 보이지 않는 곳이거나 잡을 수 없는 것에 잠깐이나마 마음을 맡긴다는 게 아니겠는가. 늦은 저녁을 먹으며 술잔 앞에서 박수도 치다가 깨고 보니 아침이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의 현진오 소장이 이끄는 식물탐사대의 무술년 마지막 산행이다. 거제도의 등뼈 같은 계룡산과 선자산 가는 길. 개띠라고 한 해를 마감하느라 유독 깡충깡충 저마다 바쁜 시기를 보낸다는 느낌도 든다.

꽃들은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고 열매가 승한 시기이다. 가파르게 경사진 어느 돌길에 이르니 편평한 바위에 이끼가 그림처럼 붙어 있다. 누군가 조마조마한 마음을 표현한 듯 순정한 무늬. 문득 뒤를 돌아보면 거제도와 통영을 두루 아우르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윽고 정상에 오르니 멀리 부산, 대마도가 보이고 현직 대통령의 생가 마을도 보인다. 대통령을 두 분이나 배출한 거제도는 참 의젓하군! 꽃을 품은 섬이라는 거제에 푹 빠져 하산하는 동안 많은 열매를 보았다. 이 지역의 숭상한 기운을 다 끌어모았는가. 팥배나무, 찔레나무, 윤노리나무, 가막살나무의 열매들이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모든 열매가 태양의 자식이라 둥글긴 했지만 그렇다고 모조리 다 빨간 건 아니었다. 그중에 하나는 까맣게 여물어서 눈길을 끈다. 희고 노란,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꽃은 보았지만 이렇게 그 열매를 보는 건 처음인 인동덩굴이다.

흔히 인동초라고도 불리며 또 한 분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덩굴성 식물로 많은 고비를 지나 숱하게 휘어지고 꺾어지면서 마침내 척, 내놓은 까만 열매. 빨간 열매가 주위를 밝히면서 퍼지는 느낌을 준다면 검은 열매는 주위를 끌어모아 응축한다는 인상을 준다.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진 듯 반짝거리는 인동덩굴의 쥐똥처럼 까만 열매 앞에서 대낮인데도 내 마음이 잠깐 조마조마해졌다. 인동덩굴, 인동과의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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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가면 이상하게 받침 없는 지명에 마음이 끌린다. 그중에서도 서귀포는 특히 그렇다. 받침이 하나도 없는 곳, 서귀포. 그 어디로 돌아가기 직전 모든 흔적을 지우며 잠시 머무는 장소일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희한한 나무를 보자고 찾아간 서귀포 근처 어느 포구의 한적한 골목 식당. 손바닥 선인장만 한 정원과 주황색 양철지붕이 잘 어울렸다. 이 집의 맛과 향을 보증하겠다는 포즈로 서 있는 배롱나무는 아직도 꽃등이 무성하다. 식당을 닮은 길가의 메뉴판에는 그 이름만으로 혀를 씰룩거리게 하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간장덮밥, 성게문어덮밥, 오징어덮밥, 딱새우덮밥, 보말칼국수, 파전. 한편, 배롱나무 아래 임시 입간판에는 또 이렇게 적혀 있다. 준비한 재료가 소진되어 오후 5시에 다시 시작합니다. 아마도 그 재료의 8할은 식물들일 것이다.


꽃에 입문하고 꽃에 흠뻑 빠지면서 동물과 식물의 관계를 살펴보는 내 생각이 조금 변했다. 나무를 앞에 두고 움직일 줄도 모르는 저 등신들 좀 보라며 키득거렸던 게 그간의 상투적인 사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식물이 동물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 굳이 우열을 다툰다면 누가 더 고등하겠느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식물이 자생한다면 동물은 기생한다는 게 엄연한 사실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재주 많은 천하의 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일지라도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아야 하는 것처럼 음식이 외부에서 공급되지 않으면 몸은 폐허가 된다. 우리는 외부에 멱살이 잡힌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보려고 한 희한한 나무는 참식나무에 기생하는 참나무겨우살이였다. 식당 앞 현무암 돌울타리에 자라는 우람한 참식나무의 가지에 뿌리를 내린 그 나무는 때맞추어 꽃을 제대로 피우고 있다. 기생하는 제 처지를 고려하여 참식나무가 열매 키우기를 기다렸다가 이제야 늦게 꽃을 피우는가 보다.

겨우살이의 이름이 왜 겨우살이인 줄이야 모르겠다. 동서남북에서 왜 하필 그쪽에만 받침이 없을까. 해가 돌아가는 서쪽을 향하여 서서 서귀포의 참나무겨우살이를 한참 바라보았다. 참나무겨우살이, 겨우살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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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박명이다. 여기는 백두산의 서파로 오르는 산중 휴게소이다. 하룻밤일지언정 운 좋게 백두산의 주인이 되었다. 별들도 계단처럼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밝기에 따라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중. 마침내 1442개의 계단을 올랐다. 늘 만나는 해이지만 제대로 똑바로 쳐다본 적이 없는 태양이 멀리 자암봉과 쌍무지개봉 사이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움푹 꺼진 천지로 내리닫는 급한 경사에 핀 바위구절초. 가장 먼저 오늘의 햇살에 얼굴을 씻는 생명이다. 해가 뜨면서 세상은 밝아졌다지만 그만큼 세상은 엎질러진 물처럼 돌이킬 수 없는 사태다. 어둠이 깨진 상태가 지나고 한낮이면 지독한 땡볕에 시달려야 한다. 지금은 온순하기 짝이 없는 햇살이 금세 털이 빳빳한 짐승처럼 돌변해서 세상을 찔러댈 것이다. 대피소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때우고 텅 빈 광장에서 햇빛을 쬐었다. 이 무량한 자원은 장엄한 백두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자꾸 손이 오므라졌다. 그냥 흘러 보내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나의 손은 구부러지기가 쉬웠으니 포클레인처럼 햇빛을 어디에서고 움푹 퍼 담는 버릇 하나를 백두산에서 얻었다!

이상은 지난여름 백두산에 올라 일출을 보고 적은 소감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50일 후, 나의 시선이 더 이상 가지 못하고 머문 곳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어느 분은 손으로 천지물을 떠서 입안으로 들여놓기도 하였다.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물맛을 보기 위해 아니 그러고는 못 배겼으리라. 우리가 눈으로 본다는 건 앞만 보고, 겉만 보고, 부분만을 본다는 점에서 반쪽짜리 행위일 수밖에 없다. 내가 그때 영접한 천지일출이 개인적으로 감격스러운 일이긴 해도 이런 본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나 맞잡은 손은 다를 수 있다. 부디 역사를 통찰하는 혜안으로 두루 원만한 결과를 맺으시기를! 맞잡고 치켜든 두 정상의 손 뒤 어디쯤은 내가 정성스럽게 바라본, 지금도 눈에 밟히는 바위구절초가 있던 자리이다. 장군봉에는 무슨 꽃이 피어 있을까. 천지의 첫 햇살에 얼굴을 씻으며 웃던 백두산 바위구절초의 근황이 몹시 궁금해졌다. 바위구절초,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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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방태산에 가면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말이 늘 머리에 떠오른다. 방태산의 지형은 마치 솥 같아서 움푹 꺼진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 솥의 테두리 같은 능선을 걸어 원점회귀하면 됩니다. 내가 ‘솥산’이라는 뜻의 부산(釜山) 출신이라는 것과 뭐 상관있으랴만 솥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환기력이 있다. 오늘은 그 방태산을 세번째 오르는 길. 숭늉으로 말갛게 씻긴 솥단지의 한 사면을 기어오르듯 녹음이 울울하게 흘러넘치는 골짜기를 훑어오를 때 문득 시 한 구절을 소환해본다. “…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 마치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허수경) 독일에서 외롭게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시인에게까지 생각이 미칠 무렵 한 익숙한 광경을 만났다. 발바닥을 폭신하게 만들어주고 두리번거리는 눈길을 편하게 받아주는 전방의 풍경. 그건 바위도 아니고 모래도 아닌 무른 암석들이 만들어주는 길이 아닌가. 그 길은 맞춤하게 좁고, 좁아서 잘록하고, 그래서 휘어져 그 어디론가 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이런 길은 혼자 가는 게 좋다. 일행에서 뒤떨어져 마음껏 자빠져서 손바닥만 한 꽃사진을 찍었다.

모래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저 무른 암석을 내 고향에서는 ‘썩박돌’이라 했다. 돌 같기는 했지만 손으로 짚으면 부스스 흘러내리기도 하는 푸석푸석한 알갱이들. 얼핏 박수근 그림의 바탕이 되는 암석 같은 질감이 바로 이 돌 아닌 돌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만큼 정다운 썩박돌들. 때마침 알맞게 정금나무가 있고 산앵도나무도 있다. 어린 시절 소먹이 하러 갔을 때 참 익숙하고 친하게 맞닥뜨린 나무들이다. 신맛의 열매는 이름만 떠올려도 침이 흥건해진다.

나를 자빠뜨리며 여러 생각을 발굴하게 만든 건 단풍취였다. 산나물로 많이 먹는 취 종류 중에서 단풍잎을 닮아 그런 이름을 가졌다. 이제 그런 이름을 가졌기에 더욱 아름다운 단풍취. 매미소리는 곧 끊기겠지만 내년에도 봄은 온다. 풋향기 오를 때 허벅지에 솥단지 끼고 단풍취 한 장 뜯어서 쌈싸먹어 볼까. 입에서 단풍, 단풍이라는 소리가 나더라고 공갈이라도 쳐볼까. 단풍취,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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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가을, 겨울이 겨울, 봄에 봄, 여름은 여름. 멀리 산을 보면 젓가락 하나 꽂을 만큼의 빈틈도 없이 계절이 꽉 들어찼다. 자연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스스로 저의 길을 이루어나간다. 제 도리를 다하는 자연은 어쩌면 저리도 성실한가. 그럴 때 저 천하의 질서에 탄복하면서 자사(子思)의 <중용>에 대해 궁리해 본다.

올챙이와 개구리, 줄기 같은 대벌레, 뽕나무에 상황버섯, 쥐다래는 쥐다래. 가까이 산속으로 들면 어쩌면 이토록 자연은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한가. 그럴 때 이 위대한 질문을 떠올리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호출해 본다.

그제는 제주도로 꽃산행을 갔다. 아침의 피곤을 털고 일어나 바깥을 보니 내 어찌 할 수 없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비온 뒤 죽순처럼 떠오른 생각 하나. 중용은 두 개의 동사가 결합한 단어라고 한다. 중(中)은 가운데라기보다는 적중하다라는 말이다. 용(庸)은 그 상태를 떳떳하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때에 맞게 적중한 상태를 항상 유지해 나가는 경지를 이르는 게 중용이다. 산에 가면 알 수 있다. 식물은 최선의 노력으로 때맞추어 꽃을 피운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그 꽃을 건사하려고 한다. 꽃이야말로 내 눈앞의 생생한 중용이겠다!

모처럼 내리는 비 그칠 줄을 몰라 비를 맞는 수밖에 없었다. 비옷을 입고 비한테 흠씬 두들겨 맞으며 한라산에 들어갔다. 거린사슴 근처 둘레길에서 만난 한라천마*. 어디로 가다가 잠시 쉬는 두꺼비처럼 묵직하게 있다. 저 두꺼비를 대신할 두꺼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다가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한라천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한라천마 : 낙엽수림 아래 썩은 식물체에 기생하며 자라는 부생식물로 타원형의 덩이줄기가 있고 줄기는 붉은색이 도는 갈색으로 높이 10㎝ 정도 자란다. 잎은 비늘 같으며 여러 개 달린다. 꽃은 9~10월 줄기 끝에 2~5개가 총상꽃차례로 밑을 향해 달린다.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 드물게 자생하며 개체수가 매우 적다. -국립수목원의 <한국의 희귀식물>에서 인용함.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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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탐사 이틀째 타이거 네스트 일대를 둘러보았습니다. 놀랍게도 한반도의 것과 같은 종들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끔 산에 가는 게 아니라 잠깐 산에서 내려오는 듯, 항상 현장을 지키는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의 현진오 소장이 이번 여름에는 부탄으로 꽃산행을 떠난 모양이다. 현 소장이 보낸 생생한 사진 중에 어릴 적 우리 동네 뒷산에서 참 많이 따먹은 보리수 열매가 있다. 부탄과 거창의 열매는 형제처럼 아주 닮았다. 모양과 크기는 물론 설탕 같은 분가루가 햇빛에 반짝이는 표면까지!

우리 고향에서 ‘뻐리똥’이라고 부른 그 열매를 보면서 나의 생각은 시골 뒷산을 거슬러 올라 퍽 희한한 상상에 이르렀다. 정상에서의 한 걸음은 한 고장에 해당한다. 지구가 넓고 둥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건 땅속 깊숙한 어딘가에 산꼭대기처럼 수렴되는 곳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높은 곳을 향하여 낑낑거리며 올라가듯 뿌리는 그곳을 향하여 깊이깊이, 아니 높게높게 올라간다. 비탈에서도 꼿꼿하게 자라는 나무가 위로 올라가듯 지하의 뿌리도 그 중심을 향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뻗어나간다. 그러니 지하의 뿌리가 한 갈래를 삐끗하면 국경쯤이야 쉽게 넘지 않을까. 현 소장의 글은 계속 이어진다. “특히 진도 해남 신안 바닷가 초지에 자라는 끈끈이귀개를 히말라야 고산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끈끈이귀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식물이다. 제자리에 앉아서 곤충을 사냥하는 벌레잡이 식물이다. 꼿꼿하게 서는 줄기에 반달 모양의 잎이 나고 팍, 느낌표처럼 터지는 샘털이 있다. 철모르는 곤충들이 공중의 꿀물 오아시스인 줄 알고 덤비지만 그게 실은 끈적끈적한 점액질인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모두 둥근 세상에 맞물려 돌아가는 중인가. 나는 진도의 어느 산기슭에서 재작년 어렵게 끈끈이귀개를 보았다. 그 옆에 혹 개미가 파놓은 구멍이 있었던가. 다시 가 본다면 그 대롱 같은 구멍이 혹 히말라야의 한 모퉁이로 연결되지 않을까. 자세히 관찰해 보아야겠다.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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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이 범람하고 있다.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어지러운 건 아닐 것이다. 거리의 간판처럼 아우성치는 말들. 신호등이 많다고 교통사고가 안 일어날까. 긴 계급장 같은 횡단보도를 건널 적에도 발목에 걸리적거리는 게 있다. 너무 많은 교훈이 전기처럼 흐르는 세상이다.

예전 산에 드물게 갈 적엔 언제 저 꼭대기를 다 다녀오나, 한숨과 함께 출발을 했다. 이젠 그 지경은 벗어났다. 중앙선도 없는 산에 가면 동물이 되지 않겠다는 식물들, 모음만으로도 저희들끼리 잘 통하는 빼어난 새소리, 그조차도 무의미로 구겨버리는 바위의 침묵을 만난다. 높은 깔딱고개를 오를 땐 몸에서 끓어나오는,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을 내뱉는 재미도 덤으로 얻는다. 아이들이 장난감에 몰두하는 건 제 하자는 대로 아무 대꾸 없이 그대로 따라주기 때문이다. 최근 산이 부쩍 좋아진 건 그곳에는 말이 그리 필요치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덕분이다.

그림ⓒ이해복

얼마 전 열하일기 탐사를 다녀오고 난 뒤, 요동벌판을 지날 때 사방에 산이 정말 없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가차없이 이런 반응이었다. 산이 없다면 꽃도 없기에 슬프겠군요. 산의 높이가 세상의 깊이와 비례한다고 굳게 믿는 나의 꽃동무. 그이는 가없는 벌판을 두고 또 다른 의미에서의 호곡장론(好哭場論)을 설파하는 중인 듯했다. 꽃이 산을 일으켜 세운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평지의 알통처럼 솟은 산. 산은 지하 저 중앙에서 누군가가 꽂아놓은 압침 같다. 우리 사는 세계가 이나마 유지되는 건 저 산이 저곳에서 자리를 잡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제는 산에 가서 금강애기나리를 보았다. 올 더위에 호되게 당했는지 갸름하던 잎들은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다. 주근깨투성이의 꽃잎 6장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듯 뒤로 확 젖혀지는 게 특징이었다. 오늘은 이미 지고 없는 꽃 대신 이름에 주목해 본다. 왜 애기 앞에 금강을 얹어두었을까.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있어야 할 것만이 있는 그런 상태의 비유적인 말이 금강이기도 하다. 해서 경이나 산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금강. 말로서 말을 끊어버리는 금강이다. 말없는 산속의 말없는 금강애기나리 앞에서 괜히 울적해졌다. 금강애기나리,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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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더워서 울고 싶은 날씨. 운다고 봐줄 날씨(氏)가 아니다. 그이도 저 넓은 공중을 어찌 혼자 감당하겠는가. 추위든 더위든 나에게 와닿는 이 마지막 정황을 보이지 않는 그 양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겠다. 최근 궁리에서 펴낸 책의 역자 소개의 한 대목을 소환해 본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 라고 생각한다”(노승영). 그뿐이겠는가. 작년에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이 세상이 더워지는 것과 무관치 않으리라.

그림ⓒ이해복

아주 오래전, 한반도가 빙하기였던 때 북방계의 식물들이 한반도에 대거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지구온난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모두들 북으로 돌아갔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은 지리, 설악, 한라 등 고산지대의 꼭대기로 피신했다. 백두산 근처의 흔하디흔한 나무들이 남한에서는 높은 곳에서만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는 까닭이 이런 내력에 근거한다. 유례가 없는 올해의 더위 속에서 그 꼭대기 식물은 아무리 몸을 낮춰도 하늘로 옮겨갈 수는 없다. 이제 또 어디로 쫓겨나야 하는 것일까.

꽃들이 생존압력에 직면한 것처럼 폭염에 눌린 사람들의 마음도 최고치를 경신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앞세우고 낯선 경지를 체감해야 했다. 이윽고 더위야 물러나가기는 하겠지만 식물들이 산꼭대기로 간 것처럼 그 마음들은 어느 곳으로 도피했던가. 그 도망갔던 평상심은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자신도 짐작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예전보다 더 빨리 끓고 더 낮은 온도에 얼굴을 붉히는 마음의 생태계로 변한 건 아닐까.

당분간 비 소식이 없다는 뉴스를 듣다가 강원도 쪽의 하늘을 보면서 선자령 근처에서 본 제비동자꽃을 떠올렸다. 이름에서부터 사람 냄새가 물씬 나기에 그 안부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높은 산 습지에 아주 드물게 자라는 귀한 꽃, 제비동자꽃. 꽃잎 끝이 제비 꼬리처럼 날렵하게 갈라지고 긴 대궁 끝에 한 문명을 이룩한 듯 오묘한 세계를 얹어두었다. “발목에 찰랑대는 물기를 잃어버리고 갈 곳 몰라 허둥대는 제비동자꽃의 찢어진 꽃잎에 지칠 대로 지친 8월의 마음을 착잡하게 얹어둔다.” 제비동자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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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머니의 안온한 배안에서 꼼지락꼼지락할 때, 어머니의 배가 수박만 하게 부풀어 올랐다. 날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웠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우주를 유영하듯 헤엄치고 자맥질하면서 혼자 놀았다. 보다 못한 부친이 어느 날 ‘이따만한’ 수박 한 덩어리를 사 가지고 오셨다. 리어카에 굴러다니는 수박으로 어머니의 배에 박힌 수박을 빼내기로 한 전법이 통했을까. 신통하게도 그 다음날 새벽 나는 시원하게 세상맛을 구경했다고 한다. 그런대로 더위를 꿋꿋하게 버티고 과일 중에서도 특히 수박을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한 일이 있고난 이후 오십구 년이 지난 오늘 아침의 일이다. 부엌에서 미역국이 설설 끓는 동안 무심코 바깥을 보니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나보다 한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지척에서 울어대는 매미를 지우개 보듯 슬쩍 보고는 화장실로 들어가고 나는 급히 카메라를 찾아 몇 방을 찍으며 오래 매미를 바라보았다. 혹 매미나라에서 생일축하 사절이라도 보낸 건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이르던 순간, 매미는 뚝 노래를 멈추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휙 날아갔다.

찜통더위에 입맛도 없어졌다. 수박으로 가볍게 마무리한 뒤, 매미가 훌쩍 공중으로 떠나듯 나는 산으로 떠났다. 경기도 어느 야산으로 해오라비난초를 찾으러 가는 길.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아주 보기 힘든 난초이다. 비가 한바탕 내릴 것 같더니 더위에 눌려 이내 맥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몇 발짝 움직이지 않았는데 등줄기에 도랑처럼 땀에 후드득 흘러내린다. 드디어 만났다. 야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아주 귀한 꽃, 해오라비난초.

이 꽃은 한번 보면 빨려든다. 왜 이런 이름을 가졌는지, 지금 무슨 자세를 취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사방의 공중에서 요란히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응원 삼아 이 첩첩산중의 골짜기를 도움닫기로 하여 제 세상을 떠메고 어디로 가려는가, 해오라비난초여. 비상한 모습과 날렵한 동작에 잠시 더위를 잊을 만큼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해오라비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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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다. 눈썹이라도 태울 것처럼 훅훅 볶아대는 한낮. 땀이 빠져나간 뒤의 서늘한 상쾌함을 알기에 뙤약볕쯤이야 아랑곳하지 않기로 했다. 금정산의 산성마을로 가는 길. 익숙한 풍경이다 싶어 기억을 뒤적이니 고등학교 마지막 소풍 왔던 곳이 아닌가. 사춘기의 우울한 심사와 대학입시에 짓눌려 옆으로 눈길 한번 주지 못했던 시절. 꺼먼 교복으로 회상되는 시절이라고 그때의 풍경조차 우중충한 건 아니었다. 오늘을 짐작하고 어깨 높이의 나무를 내 나무로 지정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보잘것없는 나의 생이 그 나무를 축으로 조금은 정갈하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만약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그 나무 그늘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두 발을 지녔다고 깝죽대며 돌아다녀보았자, 결국은 자네 밑이로군!

그림ⓒ이해복

부질없다. 금정산 중턱에 오늘 보아야 할 꽃이 있었지만 내 눈에 더욱 들어오는 건 큰까치수염이다. 한 달 전 여행길에서 만났던 것과 아주 비슷한 꽃이다. 벌써 기억이 마구 헝클어지지만 그때 나는 연암의 뒤를 좇아가는 길 위에 있었다. 아주 압축된 여정이라 연암의 자취를 확인하는 건 난망한 일이었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바로 그 지점에 가면 그 자리는 이미 허물어지고 흔적조차 없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준비한 동작은 내게도 있었다. 발밑만 쫓으며 앙앙불락할 게 아니라 고개만 들면 나타나는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당대의 문명이 까불어도 하늘에 부스러기 하나라도 건설할 수 없는 노릇이다. 흑백 사진 하나 남은 게 없는 과거라고 그때의 풍경이 거무튀튀한 건 아니다. 매연도 미세먼지도 하나 없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깨끗한 총천연색의 세계였을 것이다. 차라리 연암의 시선이 뚜렷하게 박힌 하늘을 보면서 그때 그 심중을 헤아려보는 것!

비슷했다. 요동벌판에서 본 까치수염과 금정산의 큰까치수염. 그래도 차이는 있다. 전자가 줄기에 털이 빽빽한데 후자는 전신이 매끈하다. 꽃들이 드문 시기에 울울하게 피어나 허전한 눈길을 달래주는 큰까치수염의 잎겨드랑이마다 붉은 점이 묻어 있다. 오늘은 또 무슨 생각을 발굴하라고 이 혈흔 같은 무늬를 부산에서 내게 주는가. 큰까치수염.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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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위는 입이 아주 큰 곤충 같다. 전신을 꽉꽉 물어댄다. 맴, 맴, 맴 소리를 펄, 펄, 펄 눈발로 치환하면 조금은 시원할 것 같은데 선공(蟬公)들도 더위에 지쳤나 보다. 올해의 매미소리를 어디에서 처음 들을까. 귀를 뚫을 만큼의 시원한 소릿발을 기대했지만 아직은 그저 가늘고 희미하다. 벼랑 끝의 꽃 하나를 찾아 우주센터가 멀리 보이는 고흥으로 갔다. 이 고장에는 식당이나 모텔에 저 어마어마한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모퉁이를 돌아들면 작은 휴게소가 금성(金星)이다. 불시착한 기분으로 잠깐 들렀다.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이 발사대로 가면서 했다는 동작을 떠올리며 화장실에서 자연의 부름에 따랐다.

드디어 도착한 어느 무인도. 통통거리는 낚싯배에서 따개비가 붙은 바위로 뛰어내릴 때, 그야말로 훌쩍 출세(出世)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작은 섬은 그야말로 식물의 공화국이다. 아슬아슬한 벼랑에는 아주 희귀한 난초들이 붙어 있고,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어울려 산다. 인적 하나 없기에 무덤도 없는 섬.

더웠다. 펄펄 끓는 세상에서 탈출해 나갔지만 여기는 또 여기대로의 통쾌한 더위가 도사리고 있었다. 땡볕은 올여름에만 사는 한해살이 식물 같기도 하다. 온 사방에 무성하다. 아무리 더워도 꽃은 피고 열매는 단련된다. 더울수록 더 통통한 알곡을 맺는 식물의 가르침을 따라 내 마음의 근육을 다지는 기회로 삼는다. 지금은 꽃들도 온도에 지쳐 잠깐 쉬는 형국이다. 계절이 가을꽃을 다투어 피우기 직전, 한 호흡을 고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활짝 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건 모새나무였다. 이름이 조금 특이하고, 종처럼 작은 꽃들이 무슨 아우성이라도 치는 듯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내륙의 고향에서 참 자주 보았던 정금나무, 산앵도나무와 비슷한 꽃. 종소리라도 듣는 듯 꽃에 얼굴을 파묻으면 은은한 향이 먼저 코로 왕창 몰려온다. 고흥의 벼랑 끝에 앉아 작지만 옴팡지게 자란 모새나무를 보며 생각해 본다. 세계의 끝이 이리도 자잘하고 예쁘고 정교하구나! 모새나무, 진달래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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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런 요지의 오프닝 멘트를 들었다. 두 사람이 눈밭을 걸었는데 발자국은 하나뿐일 때, 그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 말대로라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업혀갔다는 이야기 아닌가. 문득 예수님과 부처님이 떠올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업어달라고 두 분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형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연암 행적을 좇아가는 열하일기 답사에서도 그와 비슷한 궁리가 일어났다. 연암의 발길에 내 발자국을 포개려는 건 퍽이나 무망한 일이다. 238년 세월은 연행사들의 흔적을 지우기엔 넉넉한 시간이다. 비행기, 기차, 버스를 차례로 갈아타며 인천-대련-단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압축된 풍경에서 길은 많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바퀴를 벗어나 내 발로 걷는 기회가 왔다. 연암이 토해낸 문장들은 주위 풍경과 출렁출렁 몸을 반죽했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한 걸음마다 한 문장으로 쌓아올린 게 <열하일기>이겠다.

연행길의 가장 힘든 코스였다는 청석령 고개.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어서 오르니 연암이 <열하일기>에 묘사한 풍경이 나타났다. 관제묘가 보이고 수령 300년은 훌쩍 뛰어넘을 것 같은 수양버들이 자리하고 있다. 풍채 좋은 이의 엉덩이와 궁합을 딱 맞추는 돌도 수많은 나그네를 맞이한 듯 반질반질하게 닳았다. 필시 연암 일행도 쉬어갔음에 틀림없을 것만 같은 나무 그늘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면 연암이 요동벌판을 맞닥뜨리기 전에는 중국의 산천경개에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란 짐작도 든다. 산의 골격과 나무의 체격들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런 나무와 풀들 중에서 아주 친근한 꽃 하나가 있다. 그때의 조선에서도 흔했을 까치수염이다. 흰 꽃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날씬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까치수염. 줄기에 털이 빽빽하다.

고금을 막론하고 길 위에선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하는 여행객들.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어찌 보면 큰 물음표 같더니 다시 보면 거꾸로 꽂힌 우산의 손잡이 같기도 한 까치수염을 그러쥐면서 멀리 북경 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치수염,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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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답사 가는 길. 238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연암은 무려 한 달, 후래자들은 고작 한나절 만에 압록강에 도착했다. 무언가 크게 새치기한 기분이 들었다. 세례받듯 압록강변에서 하룻밤을 자고 책문을 지나 대륙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지 말아야 하듯 벌판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지역은 얼씬거리면 안된다. 요동벌판이다.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의 이정표가 되었던 요양(遼陽)의 백탑은 이제 고층빌딩에 가려 옛 정취가 사라졌다.   

연암을 흉내내 무슨 감정이 일어날까 목구멍 너머를 쥐어짰지만 아무 기미가 없다. 휘황한 불빛 아래 백주만 들이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산책 삼아 백탑공원에 가니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침이 있는 삶이었다. 탑돌이, 기공체조 그리고 제기를 차는 중국인들. 몇몇이 어울려 제기를 빌려 함께 놀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제기. 내 발목에 차인 뒤 없는 길을 더듬으며 올랐다가 공중의 기(氣)를 기웃거리고 내려오는 제기를 보는데 연암이 압록강을 건너며 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네, 도(道)를 아는가. (…) 서양인은 기하학에서 하나의 획을 분별할 때, 하나의 선이라 말하는 것으로 그 은미함을 드러내지 못할 경우 ‘빛이 있고 없는 사이’(有光無光之際)라고 한다네. 불교에서는 이에 대해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다’(不卽不離)라고 말하지. 그러므로 그 경계(際)에 잘 처신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가능하니….”

공중에 붙지도 못하고 발에 닿으려면 그냥 차올리니 떨어지지도 못하는 제기. 한국이 독일을 납작하게 만든 것처럼 축구에서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다. 하지만 제기차기는 하늘과 겨루는 것이니 스스로 그만두는 수밖에 없겠다. 이윽고 공원을 빠져나오는데 새로 보이는 풍경 속에 꽃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백탑 아래 정열적으로 핀 접시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이는 꽃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니 더욱 크고 중국답게 빠알간 접시꽃. 연암의 눈길도 분명하게 묻어 있을 백탑과 중국제(製) 접시꽃을 보면서, 제기는 순우리말이라지만, 오늘은 이렇게 적고 싶어졌다. 제기는 際氣! 접시꽃, 아욱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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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은 특별한 산이다. 내가 콩나물시루보다 조금 웃자란 크기였을 때 어머니 따라 해인사를 갔었다. 가을걷이 끝낸 동네 어른들과 모처럼 합천의 큰 절로 야유회를 가는 길이었다. 오래전의 일이라 희미하고도 흐릿하지만 몇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절에 갔다면 오늘은 내가 어머니를 업고 산으로 간다. 가파른 만물대 코스를 훑고 칠불암 지나 마지막 상왕봉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활짝 핀 꽃이 있다.

산중의 꽃 앞에서 굴기(屈己)하기를 거듭한 이래 꽃도 꽃이지만 식물이 처한 사정이나 상황에 주목해 왔다. 그때마다 맞춤한 시들이 찾아와 주었다. 한편 시를 먼저 염두에 두고 그 장소를 찾는 적도 있다. 가령 김달진의 ‘샘물’은 오래 가슴에 담고 다닌 시였다. “숲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 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 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만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만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

산은 제 높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까. 웬만한 정상은 바위로 그 뚜껑을 덮어놓는다. 가야산의 상왕봉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궐 같은 바위에 오르니 여태껏 찾았던 그 광경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지름 다섯 뼘에 깊이 두 뼘 정도의 바위 속 웅덩이, 우비정(牛鼻井)이 있다. 하늘과 구름이 들어가기에 충분히 넓었다. 물은 탁했지만 그건 나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산오이풀이 뿌리를 내리고 비단개구리 일가가 퐁당퐁당 살고 있다. 신나게 장난치는 올챙이 형제들. 근심 많은 엄마 개구리의 큰 한숨인가. 가끔 기포가 뻐끔뻐끔 올라왔다. 

조그만 샘에 앉아 물낯에 비친 띵띵한 사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동그란 지구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서 내려오는 길. 좀전에 본 꽃은 아직도 피어 있다. 올라갈 때 본 꽃 내려와서 찍으니 선백미꽃이다. 몇 층의 잎이 돌려나고 잎겨드랑이에서 노란 꽃이 다투어 피어난다. 제주를 제외한 지역에 살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까지 뿌리를 내린 꽃이 퍽이나 대견하다. 풀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이곳의 선백미꽃은 경건함에 제 일생을 투신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해인사 마당의 탑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선백미꽃.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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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몇 천 년 전 형성된 고산습지의 색다른 풍경에 직접 몸을 적신 영향일까. 서울에 오고서도 대암산 용늪을 다녀온 후유증이 오래갔다. 허벅지에 군불이라도 땐 듯 기분 좋은 부작용이었다. 입산하기도 등산하기도 힘든 곳을 다녀왔다는 생각보다도 늪에 체류한 30여분 동안의 변화무쌍함에 압도된 탓이다. 눈앞의 식물도 식물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출몰을 거듭하는 안개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늙어가는 호기심이 모처럼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림ⓒ이해복

그 와중에 말석에 ‘낑기기로’ 한 <열하일기> 답사가 다가왔다. 여행을 준비하며 자료를 읽는데 이런 대목이 꼭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지극히 미미한 사물들, 이를테면 풀·꽃·새·벌레와 같은 것도 모두 지극한 경지를 지니고 있지.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하늘의 묘한 이치를 엿볼 수 있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지음, 돌베개)

꿈결처럼 다녀온 용늪과 머나먼 타국의 열하를 어디 단순 비교하랴. 하지만 ‘한가롭게 지내며 고요히 앉아 이치를 궁구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하셨다’는 연암을 생각하자니 용늪 데크에서 엎드려 꽃을 찍던 꽃동무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날, 세상과 격리된 용늪에서는 아무런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만 뱉을 뿐이었다. 용의 등에 올라앉듯 데크에 엎드려 눈앞을 응시하면 사초과의 야윈 줄기 사이로 흰 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북방계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산지대에서만 드물게 사는 귀한 기생꽃이었다. 설악산, 지리산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것들과는 확연히 크기가 작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작아서 노안이 찾아온 나에겐 보일 듯 말 듯 하는 기생꽃.

기생꽃이라고 할 때의 기생은 우리가 선뜻 짐작하는, ‘말을 이해하는 꽃’을 뜻한다고도 하는 그 기생이다. 이름이 주는 강렬함도 있지만 잎은 잎대로 또한 꽃은 꽃대로 땅을 짚고 애틋하고도 야무지게 일어선다. 잊으려야 잘 안 잊히는 서늘한 꽃이고 묘한 이치를 엿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꽃. ‘모타리’는 작아도 참 견결하다는 인상을 주는 꽃, 기생꽃.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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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하루 만의 일일지라도 냄새 자욱한 동네에서 몸을 빼내 산으로 오를 때 아주아주 먼 옛날의 일도 한번씩 가늠해 보게 된다. 머리로 받드는 이 허공이야 뭐 그리 큰 변화가 있을까. 고구려적 하늘 풍경도 오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종내에는 이런 과감한 생각도 든다. 수억 년 전의 시공간도 이 바위, 이 계곡물과 직방으로 연결되는 것!

ⓒ이해복

눈치 따위 필요 없는 상상력을 마구 동원하면서 몇몇 굽이와 고비를 지나 몸이 혼곤히 반죽이 되고서야 대암산 용늪에 도착했다. 용이 쉬고 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늪. 수억 년 전 그 용이 휘젓고 노닌 흔적처럼 데크가 있다. 길게 용틀임이라도 하는 형상이다. 멀리서 보면 기계체조 선수들의 평균대만 한 데크에서는 반발짝도 옆으로 튀어나가서는 아니 된다. 곱게 쌓인 시간의 자식들이 그만큼 귀하고 용하기 때문이다.

별안간 날씨가 어두워진다. 무슨 조화라도 부릴 듯한 공중이다. 바람이 분다. 안개도 슬그머니 따라 나온다. 순식간에 앞선 이들의 허리가 반으로 잘리고 어깨마저 파묻힌다. 하지만 이내 안개무덤에서 발굴되듯 환히 복원되는 행렬들. 누가 있어 한 페이지를 훌렁훌렁 넘기는 것 같은 용늪의 신기한 풍경이다. 가까이 있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핀 안타까운 꽃들이 많다. 이 높은 산의 위에 오갈 데 없는 물들이 모여 늪을 이루고 누대에 걸쳐 기르는 꽃들이다. 엎드리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겨우 보는 꽃.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건 아니라지만 여기라서 그만큼 엄숙하고 고결한 꽃들이다. 기생꽃, 비로용담, 끈끈이주걱 등 귀한 꽃들도 있다지만 내 눈을 호리는 건 용늪을 거의 빠져나갈 무렵 만난 동의나물이었다.

용늪의 동의나물은 꽃은 모두 사라지고 열매가 활짝 벌어졌다. 기하학적 모양의 쟁반 같은 열매 안에 슬하를 떠나지 못한 자식들처럼 씨앗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곰취하고 닮아 잎이 큼지막하되 쌈으로 먹을 수 없는 위험한 독초란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또한 너무 흔한 것이라지만 그래서 차라리 더욱 눈길이 가는 용늪의 동의나물.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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