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32건

  1. 2018.09.18 단풍취
  2. 2018.09.11 한라천마
  3. 2018.09.04 끈끈이귀개
  4. 2018.08.28 금강애기나리
  5. 2018.08.21 제비동자꽃
  6. 2018.08.07 해오라비난초
  7. 2018.07.31 큰까치수염
  8. 2018.07.24 모새나무
  9. 2018.07.17 까치수염
  10. 2018.07.10 접시꽃
  11. 2018.07.03 선백미꽃
  12. 2018.06.26 기생꽃
  13. 2018.06.19 동의나물
  14. 2018.06.12 감자난초
  15. 2018.06.05 산작약
  16. 2018.05.29 바위종덩굴
  17. 2018.05.23 왕제비꽃
  18. 2018.05.15 대성쓴풀
  19. 2018.05.08 바위말발도리
  20. 2018.05.02 들쭉나무

인제 방태산에 가면 처음 갔을 때 들었던 말이 늘 머리에 떠오른다. 방태산의 지형은 마치 솥 같아서 움푹 꺼진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 솥의 테두리 같은 능선을 걸어 원점회귀하면 됩니다. 내가 ‘솥산’이라는 뜻의 부산(釜山) 출신이라는 것과 뭐 상관있으랴만 솥이라는 단어에는 묘한 환기력이 있다. 오늘은 그 방태산을 세번째 오르는 길. 숭늉으로 말갛게 씻긴 솥단지의 한 사면을 기어오르듯 녹음이 울울하게 흘러넘치는 골짜기를 훑어오를 때 문득 시 한 구절을 소환해본다. “…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 마치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허수경) 독일에서 외롭게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시인에게까지 생각이 미칠 무렵 한 익숙한 광경을 만났다. 발바닥을 폭신하게 만들어주고 두리번거리는 눈길을 편하게 받아주는 전방의 풍경. 그건 바위도 아니고 모래도 아닌 무른 암석들이 만들어주는 길이 아닌가. 그 길은 맞춤하게 좁고, 좁아서 잘록하고, 그래서 휘어져 그 어디론가 가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그러기에 이런 길은 혼자 가는 게 좋다. 일행에서 뒤떨어져 마음껏 자빠져서 손바닥만 한 꽃사진을 찍었다.

모래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저 무른 암석을 내 고향에서는 ‘썩박돌’이라 했다. 돌 같기는 했지만 손으로 짚으면 부스스 흘러내리기도 하는 푸석푸석한 알갱이들. 얼핏 박수근 그림의 바탕이 되는 암석 같은 질감이 바로 이 돌 아닌 돌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만큼 정다운 썩박돌들. 때마침 알맞게 정금나무가 있고 산앵도나무도 있다. 어린 시절 소먹이 하러 갔을 때 참 익숙하고 친하게 맞닥뜨린 나무들이다. 신맛의 열매는 이름만 떠올려도 침이 흥건해진다.

나를 자빠뜨리며 여러 생각을 발굴하게 만든 건 단풍취였다. 산나물로 많이 먹는 취 종류 중에서 단풍잎을 닮아 그런 이름을 가졌다. 이제 그런 이름을 가졌기에 더욱 아름다운 단풍취. 매미소리는 곧 끊기겠지만 내년에도 봄은 온다. 풋향기 오를 때 허벅지에 솥단지 끼고 단풍취 한 장 뜯어서 쌈싸먹어 볼까. 입에서 단풍, 단풍이라는 소리가 나더라고 공갈이라도 쳐볼까. 단풍취,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취  (0) 2018.09.18
한라천마  (0) 2018.09.11
끈끈이귀개  (0) 2018.09.04
금강애기나리  (0) 2018.08.28
제비동자꽃  (0) 2018.08.21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가을엔 가을, 겨울이 겨울, 봄에 봄, 여름은 여름. 멀리 산을 보면 젓가락 하나 꽂을 만큼의 빈틈도 없이 계절이 꽉 들어찼다. 자연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스스로 저의 길을 이루어나간다. 제 도리를 다하는 자연은 어쩌면 저리도 성실한가. 그럴 때 저 천하의 질서에 탄복하면서 자사(子思)의 <중용>에 대해 궁리해 본다.

올챙이와 개구리, 줄기 같은 대벌레, 뽕나무에 상황버섯, 쥐다래는 쥐다래. 가까이 산속으로 들면 어쩌면 이토록 자연은 다양한 생물들로 가득한가. 그럴 때 이 위대한 질문을 떠올리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호출해 본다.

그제는 제주도로 꽃산행을 갔다. 아침의 피곤을 털고 일어나 바깥을 보니 내 어찌 할 수 없는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비온 뒤 죽순처럼 떠오른 생각 하나. 중용은 두 개의 동사가 결합한 단어라고 한다. 중(中)은 가운데라기보다는 적중하다라는 말이다. 용(庸)은 그 상태를 떳떳하게 유지한다는 뜻이다. 때에 맞게 적중한 상태를 항상 유지해 나가는 경지를 이르는 게 중용이다. 산에 가면 알 수 있다. 식물은 최선의 노력으로 때맞추어 꽃을 피운다. 그리고 안간힘을 다해 그 꽃을 건사하려고 한다. 꽃이야말로 내 눈앞의 생생한 중용이겠다!

모처럼 내리는 비 그칠 줄을 몰라 비를 맞는 수밖에 없었다. 비옷을 입고 비한테 흠씬 두들겨 맞으며 한라산에 들어갔다. 거린사슴 근처 둘레길에서 만난 한라천마*. 어디로 가다가 잠시 쉬는 두꺼비처럼 묵직하게 있다. 저 두꺼비를 대신할 두꺼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보다가 골짜기를 빠져나왔다. 한라천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한라천마 : 낙엽수림 아래 썩은 식물체에 기생하며 자라는 부생식물로 타원형의 덩이줄기가 있고 줄기는 붉은색이 도는 갈색으로 높이 10㎝ 정도 자란다. 잎은 비늘 같으며 여러 개 달린다. 꽃은 9~10월 줄기 끝에 2~5개가 총상꽃차례로 밑을 향해 달린다.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 드물게 자생하며 개체수가 매우 적다. -국립수목원의 <한국의 희귀식물>에서 인용함.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취  (0) 2018.09.18
한라천마  (0) 2018.09.11
끈끈이귀개  (0) 2018.09.04
금강애기나리  (0) 2018.08.28
제비동자꽃  (0) 2018.08.21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부탄 탐사 이틀째 타이거 네스트 일대를 둘러보았습니다. 놀랍게도 한반도의 것과 같은 종들도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끔 산에 가는 게 아니라 잠깐 산에서 내려오는 듯, 항상 현장을 지키는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의 현진오 소장이 이번 여름에는 부탄으로 꽃산행을 떠난 모양이다. 현 소장이 보낸 생생한 사진 중에 어릴 적 우리 동네 뒷산에서 참 많이 따먹은 보리수 열매가 있다. 부탄과 거창의 열매는 형제처럼 아주 닮았다. 모양과 크기는 물론 설탕 같은 분가루가 햇빛에 반짝이는 표면까지!

우리 고향에서 ‘뻐리똥’이라고 부른 그 열매를 보면서 나의 생각은 시골 뒷산을 거슬러 올라 퍽 희한한 상상에 이르렀다. 정상에서의 한 걸음은 한 고장에 해당한다. 지구가 넓고 둥글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지구가 둥글다는 건 땅속 깊숙한 어딘가에 산꼭대기처럼 수렴되는 곳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높은 곳을 향하여 낑낑거리며 올라가듯 뿌리는 그곳을 향하여 깊이깊이, 아니 높게높게 올라간다. 비탈에서도 꼿꼿하게 자라는 나무가 위로 올라가듯 지하의 뿌리도 그 중심을 향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뻗어나간다. 그러니 지하의 뿌리가 한 갈래를 삐끗하면 국경쯤이야 쉽게 넘지 않을까. 현 소장의 글은 계속 이어진다. “특히 진도 해남 신안 바닷가 초지에 자라는 끈끈이귀개를 히말라야 고산에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끈끈이귀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식물이다. 제자리에 앉아서 곤충을 사냥하는 벌레잡이 식물이다. 꼿꼿하게 서는 줄기에 반달 모양의 잎이 나고 팍, 느낌표처럼 터지는 샘털이 있다. 철모르는 곤충들이 공중의 꿀물 오아시스인 줄 알고 덤비지만 그게 실은 끈적끈적한 점액질인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모두 둥근 세상에 맞물려 돌아가는 중인가. 나는 진도의 어느 산기슭에서 재작년 어렵게 끈끈이귀개를 보았다. 그 옆에 혹 개미가 파놓은 구멍이 있었던가. 다시 가 본다면 그 대롱 같은 구멍이 혹 히말라야의 한 모퉁이로 연결되지 않을까. 자세히 관찰해 보아야겠다. 끈끈이귀개, 끈끈이귀개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풍취  (0) 2018.09.18
한라천마  (0) 2018.09.11
끈끈이귀개  (0) 2018.09.04
금강애기나리  (0) 2018.08.28
제비동자꽃  (0) 2018.08.21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좋은 말이 범람하고 있다.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어지러운 건 아닐 것이다. 거리의 간판처럼 아우성치는 말들. 신호등이 많다고 교통사고가 안 일어날까. 긴 계급장 같은 횡단보도를 건널 적에도 발목에 걸리적거리는 게 있다. 너무 많은 교훈이 전기처럼 흐르는 세상이다.

예전 산에 드물게 갈 적엔 언제 저 꼭대기를 다 다녀오나, 한숨과 함께 출발을 했다. 이젠 그 지경은 벗어났다. 중앙선도 없는 산에 가면 동물이 되지 않겠다는 식물들, 모음만으로도 저희들끼리 잘 통하는 빼어난 새소리, 그조차도 무의미로 구겨버리는 바위의 침묵을 만난다. 높은 깔딱고개를 오를 땐 몸에서 끓어나오는, 말이 되지 못한 신음을 내뱉는 재미도 덤으로 얻는다. 아이들이 장난감에 몰두하는 건 제 하자는 대로 아무 대꾸 없이 그대로 따라주기 때문이다. 최근 산이 부쩍 좋아진 건 그곳에는 말이 그리 필요치 않다는 것을 새삼 확인한 덕분이다.

그림ⓒ이해복

얼마 전 열하일기 탐사를 다녀오고 난 뒤, 요동벌판을 지날 때 사방에 산이 정말 없더라는 이야기를 했더니 가차없이 이런 반응이었다. 산이 없다면 꽃도 없기에 슬프겠군요. 산의 높이가 세상의 깊이와 비례한다고 굳게 믿는 나의 꽃동무. 그이는 가없는 벌판을 두고 또 다른 의미에서의 호곡장론(好哭場論)을 설파하는 중인 듯했다. 꽃이 산을 일으켜 세운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평지의 알통처럼 솟은 산. 산은 지하 저 중앙에서 누군가가 꽂아놓은 압침 같다. 우리 사는 세계가 이나마 유지되는 건 저 산이 저곳에서 자리를 잡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제는 산에 가서 금강애기나리를 보았다. 올 더위에 호되게 당했는지 갸름하던 잎들은 그을린 흔적이 역력하다. 주근깨투성이의 꽃잎 6장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겠다는 듯 뒤로 확 젖혀지는 게 특징이었다. 오늘은 이미 지고 없는 꽃 대신 이름에 주목해 본다. 왜 애기 앞에 금강을 얹어두었을까.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있어야 할 것만이 있는 그런 상태의 비유적인 말이 금강이기도 하다. 해서 경이나 산의 이름으로 사용되는 금강. 말로서 말을 끊어버리는 금강이다. 말없는 산속의 말없는 금강애기나리 앞에서 괜히 울적해졌다. 금강애기나리,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라천마  (0) 2018.09.11
끈끈이귀개  (0) 2018.09.04
금강애기나리  (0) 2018.08.28
제비동자꽃  (0) 2018.08.21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큰까치수염  (0) 2018.07.3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너무 더워서 울고 싶은 날씨. 운다고 봐줄 날씨(氏)가 아니다. 그이도 저 넓은 공중을 어찌 혼자 감당하겠는가. 추위든 더위든 나에게 와닿는 이 마지막 정황을 보이지 않는 그 양반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겠다. 최근 궁리에서 펴낸 책의 역자 소개의 한 대목을 소환해 본다.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 라고 생각한다”(노승영). 그뿐이겠는가. 작년에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나 비닐이 이 세상이 더워지는 것과 무관치 않으리라.

그림ⓒ이해복

아주 오래전, 한반도가 빙하기였던 때 북방계의 식물들이 한반도에 대거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지구온난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모두들 북으로 돌아갔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몇몇은 지리, 설악, 한라 등 고산지대의 꼭대기로 피신했다. 백두산 근처의 흔하디흔한 나무들이 남한에서는 높은 곳에서만 어렵게 명맥을 유지하는 까닭이 이런 내력에 근거한다. 유례가 없는 올해의 더위 속에서 그 꼭대기 식물은 아무리 몸을 낮춰도 하늘로 옮겨갈 수는 없다. 이제 또 어디로 쫓겨나야 하는 것일까.

꽃들이 생존압력에 직면한 것처럼 폭염에 눌린 사람들의 마음도 최고치를 경신하는 아라비아 숫자를 앞세우고 낯선 경지를 체감해야 했다. 이윽고 더위야 물러나가기는 하겠지만 식물들이 산꼭대기로 간 것처럼 그 마음들은 어느 곳으로 도피했던가. 그 도망갔던 평상심은 제자리를 찾아올 수 있을까. 자신도 짐작할 수 없는 사태 앞에서 예전보다 더 빨리 끓고 더 낮은 온도에 얼굴을 붉히는 마음의 생태계로 변한 건 아닐까.

당분간 비 소식이 없다는 뉴스를 듣다가 강원도 쪽의 하늘을 보면서 선자령 근처에서 본 제비동자꽃을 떠올렸다. 이름에서부터 사람 냄새가 물씬 나기에 그 안부가 더욱 궁금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높은 산 습지에 아주 드물게 자라는 귀한 꽃, 제비동자꽃. 꽃잎 끝이 제비 꼬리처럼 날렵하게 갈라지고 긴 대궁 끝에 한 문명을 이룩한 듯 오묘한 세계를 얹어두었다. “발목에 찰랑대는 물기를 잃어버리고 갈 곳 몰라 허둥대는 제비동자꽃의 찢어진 꽃잎에 지칠 대로 지친 8월의 마음을 착잡하게 얹어둔다.” 제비동자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끈끈이귀개  (0) 2018.09.04
금강애기나리  (0) 2018.08.28
제비동자꽃  (0) 2018.08.21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큰까치수염  (0) 2018.07.31
모새나무  (0) 2018.07.2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내가 어머니의 안온한 배안에서 꼼지락꼼지락할 때, 어머니의 배가 수박만 하게 부풀어 올랐다. 날씨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더웠다. 하지만 그러고도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우주를 유영하듯 헤엄치고 자맥질하면서 혼자 놀았다. 보다 못한 부친이 어느 날 ‘이따만한’ 수박 한 덩어리를 사 가지고 오셨다. 리어카에 굴러다니는 수박으로 어머니의 배에 박힌 수박을 빼내기로 한 전법이 통했을까. 신통하게도 그 다음날 새벽 나는 시원하게 세상맛을 구경했다고 한다. 그런대로 더위를 꿋꿋하게 버티고 과일 중에서도 특히 수박을 좋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한 일이 있고난 이후 오십구 년이 지난 오늘 아침의 일이다. 부엌에서 미역국이 설설 끓는 동안 무심코 바깥을 보니 매미 한 마리가 방충망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나보다 한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은 지척에서 울어대는 매미를 지우개 보듯 슬쩍 보고는 화장실로 들어가고 나는 급히 카메라를 찾아 몇 방을 찍으며 오래 매미를 바라보았다. 혹 매미나라에서 생일축하 사절이라도 보낸 건 아닐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이르던 순간, 매미는 뚝 노래를 멈추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휙 날아갔다.

찜통더위에 입맛도 없어졌다. 수박으로 가볍게 마무리한 뒤, 매미가 훌쩍 공중으로 떠나듯 나는 산으로 떠났다. 경기도 어느 야산으로 해오라비난초를 찾으러 가는 길.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아주 보기 힘든 난초이다. 비가 한바탕 내릴 것 같더니 더위에 눌려 이내 맥없이 종적을 감추었다. 몇 발짝 움직이지 않았는데 등줄기에 도랑처럼 땀에 후드득 흘러내린다. 드디어 만났다. 야생에서 처음으로 만난 아주 귀한 꽃, 해오라비난초.

이 꽃은 한번 보면 빨려든다. 왜 이런 이름을 가졌는지, 지금 무슨 자세를 취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사방의 공중에서 요란히 울어대는 매미소리를 응원 삼아 이 첩첩산중의 골짜기를 도움닫기로 하여 제 세상을 떠메고 어디로 가려는가, 해오라비난초여. 비상한 모습과 날렵한 동작에 잠시 더위를 잊을 만큼 황홀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해오라비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애기나리  (0) 2018.08.28
제비동자꽃  (0) 2018.08.21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큰까치수염  (0) 2018.07.31
모새나무  (0) 2018.07.24
까치수염  (0) 2018.07.1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부산이다. 눈썹이라도 태울 것처럼 훅훅 볶아대는 한낮. 땀이 빠져나간 뒤의 서늘한 상쾌함을 알기에 뙤약볕쯤이야 아랑곳하지 않기로 했다. 금정산의 산성마을로 가는 길. 익숙한 풍경이다 싶어 기억을 뒤적이니 고등학교 마지막 소풍 왔던 곳이 아닌가. 사춘기의 우울한 심사와 대학입시에 짓눌려 옆으로 눈길 한번 주지 못했던 시절. 꺼먼 교복으로 회상되는 시절이라고 그때의 풍경조차 우중충한 건 아니었다. 오늘을 짐작하고 어깨 높이의 나무를 내 나무로 지정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꼬. 보잘것없는 나의 생이 그 나무를 축으로 조금은 정갈하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만약 그런 지혜를 바탕으로 그 나무 그늘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얼마나 근사할까. 두 발을 지녔다고 깝죽대며 돌아다녀보았자, 결국은 자네 밑이로군!

그림ⓒ이해복

부질없다. 금정산 중턱에 오늘 보아야 할 꽃이 있었지만 내 눈에 더욱 들어오는 건 큰까치수염이다. 한 달 전 여행길에서 만났던 것과 아주 비슷한 꽃이다. 벌써 기억이 마구 헝클어지지만 그때 나는 연암의 뒤를 좇아가는 길 위에 있었다. 아주 압축된 여정이라 연암의 자취를 확인하는 건 난망한 일이었다. <열하일기>에 등장하는 바로 그 지점에 가면 그 자리는 이미 허물어지고 흔적조차 없기가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준비한 동작은 내게도 있었다. 발밑만 쫓으며 앙앙불락할 게 아니라 고개만 들면 나타나는 하늘을 보는 것이었다. 아무리 당대의 문명이 까불어도 하늘에 부스러기 하나라도 건설할 수 없는 노릇이다. 흑백 사진 하나 남은 게 없는 과거라고 그때의 풍경이 거무튀튀한 건 아니다. 매연도 미세먼지도 하나 없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깨끗한 총천연색의 세계였을 것이다. 차라리 연암의 시선이 뚜렷하게 박힌 하늘을 보면서 그때 그 심중을 헤아려보는 것!

비슷했다. 요동벌판에서 본 까치수염과 금정산의 큰까치수염. 그래도 차이는 있다. 전자가 줄기에 털이 빽빽한데 후자는 전신이 매끈하다. 꽃들이 드문 시기에 울울하게 피어나 허전한 눈길을 달래주는 큰까치수염의 잎겨드랑이마다 붉은 점이 묻어 있다. 오늘은 또 무슨 생각을 발굴하라고 이 혈흔 같은 무늬를 부산에서 내게 주는가. 큰까치수염.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비동자꽃  (0) 2018.08.21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큰까치수염  (0) 2018.07.31
모새나무  (0) 2018.07.24
까치수염  (0) 2018.07.17
접시꽃  (0) 2018.07.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덥다. 더위는 입이 아주 큰 곤충 같다. 전신을 꽉꽉 물어댄다. 맴, 맴, 맴 소리를 펄, 펄, 펄 눈발로 치환하면 조금은 시원할 것 같은데 선공(蟬公)들도 더위에 지쳤나 보다. 올해의 매미소리를 어디에서 처음 들을까. 귀를 뚫을 만큼의 시원한 소릿발을 기대했지만 아직은 그저 가늘고 희미하다. 벼랑 끝의 꽃 하나를 찾아 우주센터가 멀리 보이는 고흥으로 갔다. 이 고장에는 식당이나 모텔에 저 어마어마한 이름이 자주 등장한다. 모퉁이를 돌아들면 작은 휴게소가 금성(金星)이다. 불시착한 기분으로 잠깐 들렀다.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유리 가가린이 발사대로 가면서 했다는 동작을 떠올리며 화장실에서 자연의 부름에 따랐다.

드디어 도착한 어느 무인도. 통통거리는 낚싯배에서 따개비가 붙은 바위로 뛰어내릴 때, 그야말로 훌쩍 출세(出世)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작은 섬은 그야말로 식물의 공화국이다. 아슬아슬한 벼랑에는 아주 희귀한 난초들이 붙어 있고, 풀은 풀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어울려 산다. 인적 하나 없기에 무덤도 없는 섬.

더웠다. 펄펄 끓는 세상에서 탈출해 나갔지만 여기는 또 여기대로의 통쾌한 더위가 도사리고 있었다. 땡볕은 올여름에만 사는 한해살이 식물 같기도 하다. 온 사방에 무성하다. 아무리 더워도 꽃은 피고 열매는 단련된다. 더울수록 더 통통한 알곡을 맺는 식물의 가르침을 따라 내 마음의 근육을 다지는 기회로 삼는다. 지금은 꽃들도 온도에 지쳐 잠깐 쉬는 형국이다. 계절이 가을꽃을 다투어 피우기 직전, 한 호흡을 고르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와중에 활짝 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건 모새나무였다. 이름이 조금 특이하고, 종처럼 작은 꽃들이 무슨 아우성이라도 치는 듯 다닥다닥 붙어 있다. 내륙의 고향에서 참 자주 보았던 정금나무, 산앵도나무와 비슷한 꽃. 종소리라도 듣는 듯 꽃에 얼굴을 파묻으면 은은한 향이 먼저 코로 왕창 몰려온다. 고흥의 벼랑 끝에 앉아 작지만 옴팡지게 자란 모새나무를 보며 생각해 본다. 세계의 끝이 이리도 자잘하고 예쁘고 정교하구나! 모새나무, 진달래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오라비난초  (0) 2018.08.07
큰까치수염  (0) 2018.07.31
모새나무  (0) 2018.07.24
까치수염  (0) 2018.07.17
접시꽃  (0) 2018.07.10
선백미꽃  (0) 2018.07.0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오래된 기억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런 요지의 오프닝 멘트를 들었다. 두 사람이 눈밭을 걸었는데 발자국은 하나뿐일 때, 그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 말대로라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업혀갔다는 이야기 아닌가. 문득 예수님과 부처님이 떠올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업어달라고 두 분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형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연암 행적을 좇아가는 열하일기 답사에서도 그와 비슷한 궁리가 일어났다. 연암의 발길에 내 발자국을 포개려는 건 퍽이나 무망한 일이다. 238년 세월은 연행사들의 흔적을 지우기엔 넉넉한 시간이다. 비행기, 기차, 버스를 차례로 갈아타며 인천-대련-단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압축된 풍경에서 길은 많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바퀴를 벗어나 내 발로 걷는 기회가 왔다. 연암이 토해낸 문장들은 주위 풍경과 출렁출렁 몸을 반죽했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한 걸음마다 한 문장으로 쌓아올린 게 <열하일기>이겠다.

연행길의 가장 힘든 코스였다는 청석령 고개.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어서 오르니 연암이 <열하일기>에 묘사한 풍경이 나타났다. 관제묘가 보이고 수령 300년은 훌쩍 뛰어넘을 것 같은 수양버들이 자리하고 있다. 풍채 좋은 이의 엉덩이와 궁합을 딱 맞추는 돌도 수많은 나그네를 맞이한 듯 반질반질하게 닳았다. 필시 연암 일행도 쉬어갔음에 틀림없을 것만 같은 나무 그늘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면 연암이 요동벌판을 맞닥뜨리기 전에는 중국의 산천경개에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란 짐작도 든다. 산의 골격과 나무의 체격들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런 나무와 풀들 중에서 아주 친근한 꽃 하나가 있다. 그때의 조선에서도 흔했을 까치수염이다. 흰 꽃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날씬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까치수염. 줄기에 털이 빽빽하다.

고금을 막론하고 길 위에선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하는 여행객들.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어찌 보면 큰 물음표 같더니 다시 보면 거꾸로 꽂힌 우산의 손잡이 같기도 한 까치수염을 그러쥐면서 멀리 북경 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치수염,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까치수염  (0) 2018.07.31
모새나무  (0) 2018.07.24
까치수염  (0) 2018.07.17
접시꽃  (0) 2018.07.10
선백미꽃  (0) 2018.07.03
기생꽃  (0) 2018.06.2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열하일기 답사 가는 길. 238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연암은 무려 한 달, 후래자들은 고작 한나절 만에 압록강에 도착했다. 무언가 크게 새치기한 기분이 들었다. 세례받듯 압록강변에서 하룻밤을 자고 책문을 지나 대륙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지 말아야 하듯 벌판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지역은 얼씬거리면 안된다. 요동벌판이다.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의 이정표가 되었던 요양(遼陽)의 백탑은 이제 고층빌딩에 가려 옛 정취가 사라졌다.   

연암을 흉내내 무슨 감정이 일어날까 목구멍 너머를 쥐어짰지만 아무 기미가 없다. 휘황한 불빛 아래 백주만 들이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산책 삼아 백탑공원에 가니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침이 있는 삶이었다. 탑돌이, 기공체조 그리고 제기를 차는 중국인들. 몇몇이 어울려 제기를 빌려 함께 놀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제기. 내 발목에 차인 뒤 없는 길을 더듬으며 올랐다가 공중의 기(氣)를 기웃거리고 내려오는 제기를 보는데 연암이 압록강을 건너며 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네, 도(道)를 아는가. (…) 서양인은 기하학에서 하나의 획을 분별할 때, 하나의 선이라 말하는 것으로 그 은미함을 드러내지 못할 경우 ‘빛이 있고 없는 사이’(有光無光之際)라고 한다네. 불교에서는 이에 대해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다’(不卽不離)라고 말하지. 그러므로 그 경계(際)에 잘 처신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가능하니….”

공중에 붙지도 못하고 발에 닿으려면 그냥 차올리니 떨어지지도 못하는 제기. 한국이 독일을 납작하게 만든 것처럼 축구에서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다. 하지만 제기차기는 하늘과 겨루는 것이니 스스로 그만두는 수밖에 없겠다. 이윽고 공원을 빠져나오는데 새로 보이는 풍경 속에 꽃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백탑 아래 정열적으로 핀 접시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이는 꽃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니 더욱 크고 중국답게 빠알간 접시꽃. 연암의 눈길도 분명하게 묻어 있을 백탑과 중국제(製) 접시꽃을 보면서, 제기는 순우리말이라지만, 오늘은 이렇게 적고 싶어졌다. 제기는 際氣! 접시꽃, 아욱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새나무  (0) 2018.07.24
까치수염  (0) 2018.07.17
접시꽃  (0) 2018.07.10
선백미꽃  (0) 2018.07.03
기생꽃  (0) 2018.06.26
동의나물  (0) 2018.06.1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가야산은 특별한 산이다. 내가 콩나물시루보다 조금 웃자란 크기였을 때 어머니 따라 해인사를 갔었다. 가을걷이 끝낸 동네 어른들과 모처럼 합천의 큰 절로 야유회를 가는 길이었다. 오래전의 일이라 희미하고도 흐릿하지만 몇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절에 갔다면 오늘은 내가 어머니를 업고 산으로 간다. 가파른 만물대 코스를 훑고 칠불암 지나 마지막 상왕봉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활짝 핀 꽃이 있다.

산중의 꽃 앞에서 굴기(屈己)하기를 거듭한 이래 꽃도 꽃이지만 식물이 처한 사정이나 상황에 주목해 왔다. 그때마다 맞춤한 시들이 찾아와 주었다. 한편 시를 먼저 염두에 두고 그 장소를 찾는 적도 있다. 가령 김달진의 ‘샘물’은 오래 가슴에 담고 다닌 시였다. “숲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 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 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만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만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

산은 제 높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까. 웬만한 정상은 바위로 그 뚜껑을 덮어놓는다. 가야산의 상왕봉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궐 같은 바위에 오르니 여태껏 찾았던 그 광경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지름 다섯 뼘에 깊이 두 뼘 정도의 바위 속 웅덩이, 우비정(牛鼻井)이 있다. 하늘과 구름이 들어가기에 충분히 넓었다. 물은 탁했지만 그건 나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산오이풀이 뿌리를 내리고 비단개구리 일가가 퐁당퐁당 살고 있다. 신나게 장난치는 올챙이 형제들. 근심 많은 엄마 개구리의 큰 한숨인가. 가끔 기포가 뻐끔뻐끔 올라왔다. 

조그만 샘에 앉아 물낯에 비친 띵띵한 사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동그란 지구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서 내려오는 길. 좀전에 본 꽃은 아직도 피어 있다. 올라갈 때 본 꽃 내려와서 찍으니 선백미꽃이다. 몇 층의 잎이 돌려나고 잎겨드랑이에서 노란 꽃이 다투어 피어난다. 제주를 제외한 지역에 살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까지 뿌리를 내린 꽃이 퍽이나 대견하다. 풀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이곳의 선백미꽃은 경건함에 제 일생을 투신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해인사 마당의 탑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선백미꽃.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치수염  (0) 2018.07.17
접시꽃  (0) 2018.07.10
선백미꽃  (0) 2018.07.03
기생꽃  (0) 2018.06.26
동의나물  (0) 2018.06.19
감자난초  (0) 2018.06.1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몇 천 년 전 형성된 고산습지의 색다른 풍경에 직접 몸을 적신 영향일까. 서울에 오고서도 대암산 용늪을 다녀온 후유증이 오래갔다. 허벅지에 군불이라도 땐 듯 기분 좋은 부작용이었다. 입산하기도 등산하기도 힘든 곳을 다녀왔다는 생각보다도 늪에 체류한 30여분 동안의 변화무쌍함에 압도된 탓이다. 눈앞의 식물도 식물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출몰을 거듭하는 안개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늙어가는 호기심이 모처럼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림ⓒ이해복

그 와중에 말석에 ‘낑기기로’ 한 <열하일기> 답사가 다가왔다. 여행을 준비하며 자료를 읽는데 이런 대목이 꼭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지극히 미미한 사물들, 이를테면 풀·꽃·새·벌레와 같은 것도 모두 지극한 경지를 지니고 있지.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하늘의 묘한 이치를 엿볼 수 있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지음, 돌베개)

꿈결처럼 다녀온 용늪과 머나먼 타국의 열하를 어디 단순 비교하랴. 하지만 ‘한가롭게 지내며 고요히 앉아 이치를 궁구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하셨다’는 연암을 생각하자니 용늪 데크에서 엎드려 꽃을 찍던 꽃동무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날, 세상과 격리된 용늪에서는 아무런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만 뱉을 뿐이었다. 용의 등에 올라앉듯 데크에 엎드려 눈앞을 응시하면 사초과의 야윈 줄기 사이로 흰 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북방계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산지대에서만 드물게 사는 귀한 기생꽃이었다. 설악산, 지리산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것들과는 확연히 크기가 작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작아서 노안이 찾아온 나에겐 보일 듯 말 듯 하는 기생꽃.

기생꽃이라고 할 때의 기생은 우리가 선뜻 짐작하는, ‘말을 이해하는 꽃’을 뜻한다고도 하는 그 기생이다. 이름이 주는 강렬함도 있지만 잎은 잎대로 또한 꽃은 꽃대로 땅을 짚고 애틋하고도 야무지게 일어선다. 잊으려야 잘 안 잊히는 서늘한 꽃이고 묘한 이치를 엿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꽃. ‘모타리’는 작아도 참 견결하다는 인상을 주는 꽃, 기생꽃.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접시꽃  (0) 2018.07.10
선백미꽃  (0) 2018.07.03
기생꽃  (0) 2018.06.26
동의나물  (0) 2018.06.19
감자난초  (0) 2018.06.12
산작약  (0) 2018.06.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하루 만의 일일지라도 냄새 자욱한 동네에서 몸을 빼내 산으로 오를 때 아주아주 먼 옛날의 일도 한번씩 가늠해 보게 된다. 머리로 받드는 이 허공이야 뭐 그리 큰 변화가 있을까. 고구려적 하늘 풍경도 오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종내에는 이런 과감한 생각도 든다. 수억 년 전의 시공간도 이 바위, 이 계곡물과 직방으로 연결되는 것!

ⓒ이해복

눈치 따위 필요 없는 상상력을 마구 동원하면서 몇몇 굽이와 고비를 지나 몸이 혼곤히 반죽이 되고서야 대암산 용늪에 도착했다. 용이 쉬고 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늪. 수억 년 전 그 용이 휘젓고 노닌 흔적처럼 데크가 있다. 길게 용틀임이라도 하는 형상이다. 멀리서 보면 기계체조 선수들의 평균대만 한 데크에서는 반발짝도 옆으로 튀어나가서는 아니 된다. 곱게 쌓인 시간의 자식들이 그만큼 귀하고 용하기 때문이다.

별안간 날씨가 어두워진다. 무슨 조화라도 부릴 듯한 공중이다. 바람이 분다. 안개도 슬그머니 따라 나온다. 순식간에 앞선 이들의 허리가 반으로 잘리고 어깨마저 파묻힌다. 하지만 이내 안개무덤에서 발굴되듯 환히 복원되는 행렬들. 누가 있어 한 페이지를 훌렁훌렁 넘기는 것 같은 용늪의 신기한 풍경이다. 가까이 있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핀 안타까운 꽃들이 많다. 이 높은 산의 위에 오갈 데 없는 물들이 모여 늪을 이루고 누대에 걸쳐 기르는 꽃들이다. 엎드리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겨우 보는 꽃.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건 아니라지만 여기라서 그만큼 엄숙하고 고결한 꽃들이다. 기생꽃, 비로용담, 끈끈이주걱 등 귀한 꽃들도 있다지만 내 눈을 호리는 건 용늪을 거의 빠져나갈 무렵 만난 동의나물이었다.

용늪의 동의나물은 꽃은 모두 사라지고 열매가 활짝 벌어졌다. 기하학적 모양의 쟁반 같은 열매 안에 슬하를 떠나지 못한 자식들처럼 씨앗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곰취하고 닮아 잎이 큼지막하되 쌈으로 먹을 수 없는 위험한 독초란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또한 너무 흔한 것이라지만 그래서 차라리 더욱 눈길이 가는 용늪의 동의나물.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백미꽃  (0) 2018.07.03
기생꽃  (0) 2018.06.26
동의나물  (0) 2018.06.19
감자난초  (0) 2018.06.12
산작약  (0) 2018.06.05
바위종덩굴  (0) 2018.05.2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강원도 인제의 대암산 용늪은 워낙 중요한 생태계보전지역이라 등산하는 것도 힘들지만 입산하는 것도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여러 기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생태마을의 주민 가이드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나무꾼의 후예를 뒤따르는 울긋불긋한 복장의 등산객들. 널찍한 임도를 따라 걷는데 쉬어가라는 표정으로 너래바위가 앉아 있다. ‘대암산에 나무하러 오던 나무꾼들이 쉬어가던 곳’이라는 안내문도 실제 붙어 있다.

지금은 얕은 개울 위의 출렁다리로 건너지만 예전에는 ‘사방이 하나의 넓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어느 깊숙한 평전에 이르니 또 한번 나무꾼이 등장한다. 지명이 어주구리(魚走九里)라는 곳인데 이런 재미있는 사연이 적혀 있다. “용늪에서 살고 있던 물고기가 용이 승천하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다가 나무꾼에게 잡혔는데 다음날 나무꾼이 용늪에서 도망쳐온 거리를 재어보니 십리(十里)에서 조금 모자라는 구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족은 들어보았지만 어족(魚足)은 처음 듣는다. 용은 물론 뱀과 물고기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 길을 지나간 나무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나 엮으려는데, 길섶의 난초 하나가 맞춤하게 눈으로 들어온다. 많은 동물들의 발길을 용케 피하고 오늘 나의 눈길에 걸려든 그 꽃의 이름은 감자난초.

평생은 아니었지만 한나절이나마 어설픈 나무꾼이었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땐 소먹이도 같이했다. 골짜기에 소를 풀어놓고 멱을 감은 뒤 지게 지고 다시 산으로 갈 때 감자 몇 개를 챙겼다. 이른바 ‘감자산꽃’을 하려는 것이다. 개미집처럼 정교하게 땅을 파고 돌을 달군 뒤, 물을 뿌려 그 증기로 칡잎에 싼 감자를 쪄서 먹는 우리들의 산중놀이였다.

감자난초는 땅속으로 두더지처럼 기어가던 뿌리의 일부가 비대해진다. 그 알줄기가 마치 감자 같다고 해서 감자난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알줄기에서 단도 같은 잎이 1~2장 나오고 꽃대도 꼿꼿하게 뻗어나온다. 감자산꽃할 때 먹은 퍽퍽한 감자맛을 추억하며 올망졸망 달린 꽃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감자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생꽃  (0) 2018.06.26
동의나물  (0) 2018.06.19
감자난초  (0) 2018.06.12
산작약  (0) 2018.06.05
바위종덩굴  (0) 2018.05.29
왕제비꽃  (0) 2018.05.2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둥둥둥 내 낭군 어허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 나,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씨구.” 춘향전 사랑가의 한 대목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아마 요샛말로 원예종일 것이다. 야생의 짐승을 가축화하듯 화단의 식물로 바꿔놓은 것들이다. 나중에는 베갯머리나 이불의 무늬로 들어앉아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싸움을 지켜보았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뜰 안의 손바닥만 한 정원으로 불러들인 작약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하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니 멀리 자연에서만 친견할 수 있는 종류도 있다. 참작약, 백작약 그리고 산작약. 이 중에서 산작약은 무척 귀한 꽃이다.

ⓒ이해복

 

꽃을 두고 우열을 가리는 게 참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산중을 헤매는 동안 고만고만한 것을 보다가 홀연 큼지막하게 우뚝 서 있는 꽃 앞에서 눈이 번쩍 휘둥그레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흰 꽃잎에 노오란 기관이 오밀조밀하게 밀집한 백작약. 깔끔하고 기품 있다.

갑자기 훅 더워졌다. 작열하는 태양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날씨다. 영월의 어느 야트막한 산의 계곡을 줄창 헤매고 다녔다. 사전정보를 갖고 찾아간 산작약은 누군가 연약한 꽃대를 댕강 분질러놓았다. 시대를 격하여 나타난 변사또 같은 놈이 저지른 소행인 듯했다. 씁쓸한 기분을 달랠 겸 더욱 헤매다가 뜻밖의 산작약을 만났다. 백작약은 여러 번 보았지만 산작약은 처음이다. 꽃에게는 나보다 먼저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어느 큼지막한 애벌레가 푹신한 수술과 암술에 파묻혀 꽃잎에 주둥이를 대고 있다. 나 따위는 도저히 침범하지 못할 자연끼리의 접촉, 그들만의 사랑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산작약은 무리지어 있지 않다. 홀로 한 송이만 있어도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원줄기에서 뻗어나간 잎줄기에 3장의 잎이 달린다. 껑충한 대궁 끝에 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오직 하나의 꽃을 올려두는 산작약. 보물을 두고 오는 것 같아서 자꾸 뒤돌아보면, 빛과 그늘을 하나로 묶으면서 그윽하게 서 있는 산작약. 여러 장의 잎을 그러모은 뒤 하나의 고고한 꽃으로 통일(統一)시키는 듯한 산작약!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의나물  (0) 2018.06.19
감자난초  (0) 2018.06.12
산작약  (0) 2018.06.05
바위종덩굴  (0) 2018.05.29
왕제비꽃  (0) 2018.05.23
대성쓴풀  (0) 2018.05.1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세속도시를 떠나 강원도 영월행이다. 이번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산작약을 보러 간다. 사전정보를 조금 가지고 출발했건만 현장 사정은 여의치가 아니했다. 헤매고 헤매다가 겨우 발견했는데, 이럴 수가, 어떤 자의 소행인가, 꽃봉오리를 댕강 잘라놓지 않았겠는가. 씁쓸한 기분으로 한반도지형과 선돌 등을 대강 둘러보고 태백으로 건너왔다. 여러 해 쌓인 낙엽들이 뱉어낸 먼지로 매캐해진 목구멍을 청소할 겸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는데 속보가 떴다.

그중에서도 ‘연합뉴스’의 자막들이 좋았다. 단풍잎처럼 붉은 바탕의 단문들을 이어 붙이면 드라마틱한 한 편의 시가 될 것도 같았다. ‘세 번의 포옹과 세 번 이상의 악수’라 하면 괜찮은 제목일까. 퀴퀴한 여관방에서 조금 불콰한 기운에 기대 몇몇 벗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얼마 전 먹은 평양냉면을 김치국이라 여긴 탓인지 아무런 대꾸조차 없었다. 다만 한 친구가 나의 흥분을 차분하게 진압하여 주었다. 또… wait and see!

오후 3시. 그 시각은 나에게도 있다. 그것도 매일 찾아온다. 산으로 들면 으레 그러는 것처럼 햇빛이 있는 한 산중에 머물려고 한다. 굳이 맞추자는 건 아니었지만 어제의 여운이 남았는지 시계바늘이 직각을 이루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모르고 꽃을 찾아 헤매는 동안 천하가 뒤집어지는 일은 바로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궁리가 문득 찾아든 것이었다.

지금은 첩첩산중의 깎아지른 절벽 앞이다. 침묵이 견고하게 뭉친 바위는 산이 내심 지키려는 위엄 같기도 하다.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바위에 바위종덩굴이 달려 있다. 바위종덩굴은 전인미답의 저 벼랑에 앉아서 스스로 귀한 꽃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 세상이라고 일어날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모든 신하가 겁에 질려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이라며 몸을 뺄 때, 암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척 나타나 벼랑 끝의 꽃을 따서 수로부인에게 바치는 것처럼, 누군가는!

작년에 들렀다가 허탕을 쳤기에 더욱 흐뭇하게 본 꽃. 불과 일 년 만에 없던 곳에서의 새로운 길을 예감하면서 허공을 걸어가는 바위종덩굴을 오래 우러러보았다. 바위종덩굴.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난초  (0) 2018.06.12
산작약  (0) 2018.06.05
바위종덩굴  (0) 2018.05.29
왕제비꽃  (0) 2018.05.23
대성쓴풀  (0) 2018.05.15
바위말발도리  (0) 2018.05.0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올여름 매미는 언제쯤 귓전을 두드릴까, 생각하다가 그보다 먼저 개미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순결한 지면에 먹물로 개미, 개미, 개미라 쓰면 검은 행렬이 꼬물꼬물 어디로 진군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길에서 만나면 그냥 꾹꾹 눌러 밟기가 일쑤였다. 아파트에는 개미가 없는 줄로 알았지만 이사하고 방바닥을 쓸면 한두 마리의 개미가 쓰레받기에 얼씬거렸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창문 너머로 휙 던져버린 경험이 여러 번이다.

ⓒ이해복

요즘 개미에 관해 실감나는 게 있다. 그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발짝 이내에서 개미와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가 완벽하게 그들에게 포위된 형국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lt;내 이름은 빨강&gt;의 첫 문장은 파격적이되 명징하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뉘라서 주인공의 저 운명을 피할 수 있으랴. 언젠가 나도 그 신세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올 손님은 아마 개미일 것이다. 혹 오래전 나에게 당했다가 몇 생을 거듭난 그 녀석일지도 모를 일!

평창을 찾았다가 정선으로 넘어가는 어느 길목에서 희귀한 꽃을 만났다. 물소리가 은근한 공터에 차를 대고 개울을 건너니 멸종위기식물 안내문과 철조망이 있었다. 왕제비꽃 자생지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제비꽃만을 다룬 단행본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게 제비꽃의 세계이기도 하다. 제비꽃은 원줄기의 유무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제비꽃이 앉은뱅이 방석처럼 지면에 도톰하게 퍼져 있는 것에 비해 왕제비꽃은 원줄기가 뚜렷하다. 흰 꽃은 잎의 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제비꽃 중에서 키가 가장 커서 무릎을 때릴 정도이다. 그래서 왕을 이름 앞에 얹었나 보다.

왕제비꽃은 그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어 바깥으로 진출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왕제비꽃을 보는데 개미 한 마리가 꽃과 잎을 드나드는 게 아닌가. 제비꽃을 퍼뜨리는 데 개미가 큰 역할을 한다. 개미와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얽혔다.

내가 매미를 기다리듯 성질 급한 개미는 벌써 씨앗을! 왕제비꽃, 멸종위기 2급,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작약  (0) 2018.06.05
바위종덩굴  (0) 2018.05.29
왕제비꽃  (0) 2018.05.23
대성쓴풀  (0) 2018.05.15
바위말발도리  (0) 2018.05.08
들쭉나무  (0) 2018.05.0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판문점의 재발견이었다. 2018년 4월27일. 그날의 일은 모두 녹화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난 후에라야 객관적 거리도 확보되고 그 전모가 눈으로 들어온다. 한차례 흥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것은 처음 만나 악수한 뒤 잠깐 북측으로 월경(越境)하는 사진이었다. 이제껏 적대적이었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금단의 선을 넘는 뒷모습.

사람의 진면목은 뒷모습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광명한 세상에서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本人)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지(奧地)인 뒷모습. 그것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뒷모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뒷모습만을 찍은 사진도 좋지만 밀도 높은 글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십쯤에 <뒷모습>을 접했다. 오십이면 그 경지에 오르기를 소망했건만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시골에서 벌초할 때, 풀을 베고 난 뒤 모두에게 부탁해서 뒤로 돌아선 모습을 찍는다. 어쩌면 무덤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뒷모습이기도 하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뒷모습. 거기에는 홀가분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돌아서 있는 형님들은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지!

지난주에는 평창의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남북회담의 물꼬를 터준 올림픽의 열기는 옛일이 되었고 봄맞이 준비로 바쁜 어느 무덤가에 뛰어들었다. 살아서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헤어지지 말자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아래 여러 봉분 사이로 야생화가 퍽 다양했다. 지하로 가는 통로인 듯 구슬붕이, 무덤 봉우리엔 노란 솜방망이,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단박에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든 건, 아주아주 희귀한 대성쓴풀이었다. 손가락만 한 키이지만 네 장의 야무진 꽃잎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는 대성쓴풀. 굳이 입에 넣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쓴맛이 왕창 풍겨 나오는 대성쓴풀. 멸종위기 2급,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그림ⓒ이해복)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위종덩굴  (0) 2018.05.29
왕제비꽃  (0) 2018.05.23
대성쓴풀  (0) 2018.05.15
바위말발도리  (0) 2018.05.08
들쭉나무  (0) 2018.05.02
복사나무  (0) 2018.04.2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마음의 카메라로 힘껏 찍어보지만 시간의 강물이 어느 서랍에 처박을지 그 허망한 기억을 어이 믿을 수 있겠나. 하지만 야생화에 입문하고 천마산에서 처음 본 꽃들은 아직도 뚜렷하다. 그때의 공책을 뒤적이면 다소 생소한 이름과 함께 이런 간략한 설명이 있다. 좁은 바위틈, 그 깊고 컴컴한 허방을 짚고 자라는 매화말발도리… 기특했다.

적어도 꽃이름 100개는 중얼거리자고 시작한 꽃산행, 그것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높든 낮든 산행을 끝내고 골짜기를 빠져나오면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비록 하루 만의 일이지만 산이 배출한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은 또 한 주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좋았다.

매화말발도리는 주로 바위를 딛고 살아간다. 바위는 햇빛은 쉬이 섭취하겠지만 비는 저축할 겨를도 없이 흘러가는 장소이다. 왜 이 나무는 이런 불리한 조건에 거처를 정한 것일까. 나무는 바위에 초라하게 빌붙기는커녕 아예 바위를 쪼개기도 하면서 악착같이 자란다. 그 기세에 자주 눈길이 가다가 매화말발도리와 비교되는 바위말발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은 아주 비슷하지만 가지 끝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몸에 뼈 있듯 산에는 바위 있다. 으레 바위는 매화말발도리를 품고 있었다. 바위 앞으로 갈 때마다 바위말발도리가 간절해졌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바위말발도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연천의 고대산으로 가는 길. 제2등산로를 오르자 엉거주춤 그러나 아주 편하게 앉아서 이제 오느냐며 반겨주는 바위가 있다. 그 바위가 거느리고 있는 깨끗하게 흰 꽃을 보는데 감이 왔다. 맛있는 알사탕을 빨아먹겠다는 심정으로 바위로 접근하여, 바위에 이끼처럼 착 달라붙어, 꽃을 관찰하였다… 과연!

매화말발도리는 작년 가지, 바위말발도리는 올해 가지에 꽃을 내놓는다. 새것은 새로워서 좋고 묵은 건 묵어서 더욱 좋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둘을 구별하는 그 결정적이고 우주적인 차이, 바위말발도리의 가지 끝에서 나는 그만… 까무러쳤다. 바위말발도리,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제비꽃  (0) 2018.05.23
대성쓴풀  (0) 2018.05.15
바위말발도리  (0) 2018.05.08
들쭉나무  (0) 2018.05.02
복사나무  (0) 2018.04.24
개나리  (0) 2018.04.1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청와대를 출발한 대통령 일행이 자유로를 타고 판문점까지 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공중의 카메라는 건방진 건물들을 납작하게 만드는 한편 아무 걱정 없이 북으로 뻗어나간 숲을 융단처럼 푹신하게 담아내었다. 연두에서 초록까지, 색의 파노라마로 일행을 호위해주는 좌우의 나뭇잎들을 보자니 우리 사람의 일이란 작든 크든 결국 이 식물들의 손바닥 안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실감했다. 1953년생 소나무를 심고 난 뒤, 남북의 두 정상이 주위를 물리친 채 숲속에서 다정한 도반처럼 말, 표정, 손짓을 섞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도보다리 바로 곁에서 빵긋 웃는 건 조팝나무, 바람을 영접하는 건 갈대, 낮말을 알아듣는 건 버드나무이지 않을까.

한반도의 계절과 정치에 실질적인 봄이 오는 것을 체감하면서 많은 이들이 평양냉면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하나 더 물목을 추가하고 싶었다. 웬만한 술꾼들은 알겠지만 냉면은 안주로도 정말 제격이니 이에 어울리는 들쭉술을 빠트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은 백두산으로 곧장 달려갔다. 야생화에 입문하고 이듬해 떠난 꽃산행. 남에서는 주로 고산지대에서 겨우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들이 그곳에서는 발에 차일 만큼 흔했다. 그중에서도 파르라니 깎은 듯 푸르디푸른 건 들쭉나무 열매였다. 한 주먹 따서 입에 넣으면 들쭉술의 원액인 듯 볼을 빨갛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던 들쭉나무.

토요일의 임진각은 공기부터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특산물코너로 갔다. 들쭉술 있습니까. 그간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물건을 못 받았어요. 가게 주인은 두 손을 모으며 미안해하면서도 설레는 기대를 감추지 아니했다. 우리 대통령은 다시는 이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셨다. 내 혀끝으로 먼저 북녘과 화끈하게 접촉할 날도 머지않았으리. 들쭉나무는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거쳐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온난화가 진행되자 한라산, 설악산의 꼭대기로 빨치산처럼 피신한 나무이다. 작년 설악산에서 만난 들쭉나무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그 야무진 꽃을 떠올리며 파주-개마고원-백두산으로 이어지는 꽃산행 길도 그려보는 흐뭇한 봄밤! 들쭉나무, 진달래과의 낙엽소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일반 칼럼 > 이굴기의 꽃산 꽃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성쓴풀  (0) 2018.05.15
바위말발도리  (0) 2018.05.08
들쭉나무  (0) 2018.05.02
복사나무  (0) 2018.04.24
개나리  (0) 2018.04.17
쉬나무  (0) 2018.04.1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