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189건

  1. 2017.11.14 갈대
  2. 2017.11.07 산오이풀
  3. 2017.10.31 기름나물
  4. 2017.10.24 겨우살이
  5. 2017.10.17 참회나무
  6. 2017.10.11 연꽃
  7. 2017.10.11 담쟁이덩굴
  8. 2017.09.26 코스모스
  9. 2017.09.19 세잎종덩굴
  10. 2017.09.12 미역취
  11. 2017.09.05 산비장이
  12. 2017.08.29 닻꽃
  13. 2017.08.22 난쟁이바위솔
  14. 2017.08.16 [이굴기의 꽃산 꽃글]나무수국
  15. 2017.08.08 작살나무
  16. 2017.07.25 자작나무
  17. 2017.07.18 실꽃풀
  18. 2017.07.14 부처꽃
  19. 2017.07.04 백리향
  20. 2017.06.27 벌깨풀

필기구로 한 일생을 요약할 수도 있겠다. 가갸거겨를 쓰고 구구단을 외울 무렵엔 연필이다. 이 컴컴한 지하자원은 그 품질이 울퉁불퉁해서 가끔 침을 묻혀야 했다. 중학교 땐 만년필이었다가 손가락이 제법 굵어지면서 모나미 볼펜을 잡았다. 귀퉁이에 볼펜똥을 닦으며 공책을 갈아치웠다. 칠판을 등지자 꿈도 떨어져 나갔다. 건조하고 메마른 일상의 연속이었다. 크게 변화할 일도 꾸중 들을 일도 없는 시기. 습관은 딱딱해지고 고집은 힘이 세졌다. 그동안 각종의 볼펜을 사용했고 드물게 만년필을 가까이했다. 이제 육필은 멀어지고 필기는 손가락 담당이다. 쓰는 게 아니라 구타하듯 자판을 때린다.

꿈 대신 꽃을 좇아 산에 출몰하기를 여러 해. 골짜기의 기운을 쬐고 꼭대기에서 고개를 숙이며 먼 곳을 본 효과일까. 부드러운 것은 부드러운 것으로 대접하는 게 마땅하고 옳을 것 같았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생각을 받아 적는 것으로 부드러운 붓을 택했다. 요즘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 의사표시는 주로 붓으로 한다. 잘 쓸 수는 없지만 그저 많이 쓰고 싶다는 욕심은 낸다. 먹이나 벼루는 그런대로 갖추었는데 마음에 드는 붓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착 감기는 애인 같은 붓은 어디에 있는가.

우연한 기회에 유필무 붓장을 알게 되었다. 마침 가평의 취옹예술관에서 전시회를 한다기에 단풍 나들이를 겸해서 찾아갔다. 족제비나 토끼의 털만 알았는데 칡, 억새 등 식물을 소재로 한 붓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천하의 기운이 붓 끝으로 고스란히 수렴되고 있는 듯했다. 붓대에 조각을 넣은 것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그중에서 갈대로 만든 붓에 마음이 쏠렸다.

갈대는 갈대. 왜 갈대는 이름이 갈대인가. 왜 갈대는 이 시기에 누군가의 가슴을 깊게 찌르는가. 왜 갈대는 흐르는 강가에 늘 우두커니 서 있는가. 왜 갈대는 항상 저런 특별한 동작을 취하는가. 갈대붓을 만나고서 쬐끔 알게 되었다.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허공에 ‘제 조용한 울음’을 필기하는 중이란 것을! 갈대,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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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만 젖히는 것과 등을 땅에 대고 보는 밤하늘은 그야말로 천양지차이다. 짐승처럼 웅크린 바위에 배낭을 베고 벌러덩 드러누웠다. 검은 밤이 가슴을 내리눌렀지만 코끝을 바짝 스치는 흐뭇한 별빛이 그 압박을 풀어주었다. 눈으로 마구마구 쏟아져 들어오는 이 별빛 중에는 저 북두칠성, 저 오리온자리에서 내려온 것들도 분명 섞여 있을 터!

소청을 나설 때 깜깜하던 어둠이 어느새 환하다. 희운각에서 누룽지와 인절미로 아침을 때운 뒤 마침내 공룡능선을 더위잡았다. 살아 있는 공룡을 한 번도 본 적은 없다만 이름과 실질이 딱 어울리는 지형이 아닐 수 없다. 공룡이라는 명칭 이외에는 그 어떤 다른 말로도 대체 불가능한 공룡능선. 작년 가을에 왔을 땐, 공룡의 비늘 같은 바위틈에서 많은 꽃들을 만났지만 이제 모두 자취를 감추고 열매조차 흩어지고 흔적만이 남았다. 그중에서 저무는 가을을 가냘프게 감당하는 꽃이 있으니 산오이풀이다. 꽃은 대부분 반토막이 났지만 오늘까지 그런대로 허술한 모양을 유지하면서 내 허전한 시선을 받쳐주는 게 대견하고 고맙다. 산의 높은 곳에서 자라기에 이렇게 늦게까지 이 자세를 유지하는가.

마등령에 서면 발밑에서 내 빠져나온 그림자가 아득한 선계로 들어가는 열쇠구멍인 듯 낯설다. 언제 또 여기에 올 수 있을까. 시간과 무릎을 걱정하면서 아래를 향해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상강 이후 정상 부근에서 몰락하더니 금강굴 부근에서 제대로 다시 부활한 단풍. 비선대 계곡 다리 옆 나무가 이런 팻말을 달고 있다. “당단풍나무. 가을에 붉은색으로 변하는 데서 유래되었고 설탕 당이냐 당나라 당이냐 유래가 확실하지 않다.” 저 훤칠한 나무를 두고 하필이면 저런 설명뿐일까. 웃음이 슬며시 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왔던 설악산 비선대. 그때의 까만 교복에 검은 모자 눌러쓴 까까머리의 나하고 지금의 나는 같은 나일까. 늙으면 이렇게 늙으라는 듯 소박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설악산 공룡능선의 산오이풀을 생각하면서 어둠 속으로 점점 희미해지는 그림자를 앞세우고 속초 외옹치항으로 향했다. 산오이풀,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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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가는 것일까. 달아나는 정유년을 압침으로 눌러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집어든 묵직한 책이 <비글호 항해기>였다.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최근 주말마다 오르는 산에서 마주치는 풍경의 한 자락을 집으로 운반해 온 탓인가. 낯선 동식물이 자주 출몰하는 가운데 이런 유의 문장들에 마음이 축축해졌다. “2월29일 브라질에 도착해 난생처음 열대 숲을 거니는 자연사학자는 우아한 초원, 진기한 기생식물, 아름다운 꽃, 반짝이는 초록 잎, 그러나 무엇보다도 무성하게 우거진 숲 전체에 흠뻑 매료된다.”

어쨌든 오늘의 하루도 그때의 하루와 꼭 같은 분량의 시간이다. 비글호가 갈라파고스를 향해 나아가듯 팔 저어 거인의 어깨 같은 태백의 덕항산을 오를 때 저자의 저런 느낌에 나를 포개기도 하였다. 꽃은 꽃이고 나무는 나무인 곳. 그곳에서 그것들의 너머를 힐끗 보려고 한다만 그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삐딱한 경사에서 상태가 환한 꽃이거나 묘한 처지에 놓인 나무의 사연을 줍느라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그러다가 오늘 나에게 걸려든 것은 초원도, 기생식물도, 꽃도, 잎도, 숲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좀 더 생각을 전개해 본다. 흔히 자연은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는 일면의 진실일 뿐 완전히 옳은 말은 아니다. 눈앞의 세계는 보여주는 빛과 보여지는 사물이 팽팽하게 만나서 빚어내는 현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물체가 모두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면 직진하는 빛은 모조리 직선이라서 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러니 세상의 절반은 직선이 아닐까.

지금 내가 빠져드는 곳은 접시처럼 매끈한 참싸리의 잎에 얹힌 꽃 그림자 속이다. 태양이 만드는 그림자는 바람에 따라 춤을 추기도 했지만 내 동작에 따라 없어지기도 하였다. 그래도 어쨌든 그림자의 주인은 기름나물. 산형과의 식물로 잘게 갈라지는 잎과 가느다란 가지가 곧고 길게 뻗는다. 그리고 그 끝에 우산처럼 모여서 달리는 자잘한 흰 꽃잎들. 평행한 햇살이 만드는 정교한 기름나물의 그림자 속으로 오늘의 내 그림자도 감쪽같이 흘러나가는 듯! 기름나물,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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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꽂힌 뒤로 무엇이든 꽃과 나무로 엮으려는 심사가 발동했으니, 열화당에서 마련한 <매화와 붓꽃>전에 가서도 그 버릇을 버리지 못했다. 올해 50주기의 근원 김용준과 올해 초 타계한 존 버거의 공통점은 적지 않으니, 시공을 달리한 두 예술가가 식물을 보는 눈이 범상치 않았다는 것도 추가할 수 있으리라. 작게 소리내어 읽으면 달그락거리는 문장들과 손가락으로 허벅지에 따라 그려보는 고아한 그림들. 진달래, 수선화, 노시(老枾) 등의 이름을 필기하다가 한쪽에서 상영되는 다큐를 보았다. 연초에 본 인상 깊은 사진집, <존 버거의 초상>에서 만난 그 사진이 혹 있을까. 안개 낀 눈길에서 출판사 편집자 출신의 아내와 그 뒤를 따르는 존 버거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있었다! “존 버거의 장례식 풍경과 추모의 글”의 중간쯤에 그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닌가. 이런 설명문이 붙었다. “1976년 새해맞이 장식물로 쓸 겨우살이를 든 베벌리와 클루아제 농장을 산책하는 존.”

겨우살이는 멀리서 보아도 특징이 확 드러난다. 몽블랑에는 물론 우리나라에도 많다. 잎이 떨어져 헐거워진 산에서 특히 잘 보이는 겨우살이는 그 모양만큼이나 생활사도 독특하다. 얼핏 보면 꼭 새의 둥지 같은 겨우살이는 독립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나무에 더부살이로 기생한다. 그간의 산행에서 자주 보았지만 가장 인상 깊게 본 건 어느 해 어머니 모시고 벌초하러 고향 가는 길에 무주의 적상산에서 본 것이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갔더니 정상에 발전소, 안국사, 사고(史庫) 유적지가 있었다. 덕유산 국립공원의 일원으로 함부로 훼손되지 않아 참으로 풍성한 겨우살이를 실컷 보았더랬다. 어머니는 단풍에, 나는 겨우살이에 푹 빠졌던 선명한 기억.

전시장을 나와 지난날을 더듬는데 겨우살이가 막걸리집까지 따라왔다. 나무에 기대고 새의 몸을 빌려 종자를 퍼뜨리는 겨우살이야. 어쩌면 겨우 존재하는 것들을 상징이라도 하는 듯한 겨우살이야. 네 덕분으로 어느 소박한 전시회의 후기로 작년에 나무 밑으로 돌아가신 내 어머니도 등장하는 이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었구나. 겨우살이, 단향과의 상록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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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상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개근상과 기타의 상. 전자가 자신이 자신으로부터 받는 상이라면 나머지는 심사위원들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니 기타의 상들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도 국가적으로 목을 매건만 올해도 우리나라를 비켜나간 노벨상의 뉴스에 이런저런 시답잖은 생각을 얹어놓기도 하면서 문경의 조령산에 올랐다.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텔레비전을 켜면 쏟아져 나오는 인문학의 교훈들. 도시는 아주 복잡했다.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도 다리에 걸리적거리는 각종 법규와 지시사항들. 오늘은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었으니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다’는 어느 유행가 가사에 딱 들어맞는 행보라 하겠다. 신생의 연두색 잎들이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벌써 붉은 단풍의 계절이다. 한 해 끝에 잎에서 모처럼 벌어지는 잔치.

그간 무성하되 무심했던 잎이었다. 지금 꽃이 사라지고 열매가 뒤로 물러나는 건 그 잎으로 쏠리는 시선을 빼앗지 않겠다는 배려일 것이다. 순서에 따라 이제는 잎들이 주인공이다. 나를 씻기에는 아직 땀이 부족한 것일까. 널찍한 임도를 벗어나 신선암봉으로 가는 가파른 길을 더위잡고 나서야 산이 주는 높이와 깊이를 제대로 섭취할 수 있었다. 따로 주어가 필요 없는 이런 문장도 하나 건졌다. 산에 사네!

오늘 내 눈을 특히 사로잡는 건 투신하듯 일제히 아래로 향하고 있는 나무의 열매였다. 여름에는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있더니 이제는 부상(副賞)처럼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지금 나의 심사에도 꼭 알맞은 그것의 이름은 참회나무. 가장자리가 꿀렁꿀렁 이는 잎은 대칭이고, 짙은 자주색의 열매는 다섯 조각으로 나뉜다. 잎이든, 꽃이든, 열매든 모두가 쩨쩨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활황하게 피어나는 참회나무. 사계절 내내 산에서 개근하고 있는 나무들만큼 성실한 게 또 있을까. 자칫 가을의 끝자락에서 감당할 수 없는 스산함으로 넘어갈 수도 있는 국면에서 아연 활기를 한 움큼 선물해주는 참회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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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때 판소리에 빠져 소리를 꽥꽥 질러댈 때가 있었다. 그 어름에 곁따름으로 배운 어느 민요의 가사에 특히 마음이 걸렸다. 그리하여 경상의 북도를 지나칠 때면 그곳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다녔다. 지난 추석 이틀 전 문경의 조령산에 가서 가을이 이슥하도록 꽃을 활짝 피운 가는잎향유를 보았다. 일행은 하행선, 나는 상행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머리를 굴리니 오랜 숙제를 풀기에 딱 맞을 것 같은 거리요 시기인 것 같았다.

삼국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상주의 공갈못은 그 명성에 비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관광지로서의 요란한 시설도 하나 없었다. 하나의 큰 저수지일 줄 알았더니 여러 구역으로 나뉜 연못이 여러 개 있었다. 이 못을 축조할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둑에 묻었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간직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는 공갈못. 경운기가 넉넉히 비켜갈 만한 공갈못의 사잇길을 걸었다. 잘 순환이 되지 않는 듯 거무튀튀한 물에 통발, 물달개비 등등의 수중식물이 빽빽했다. 혹 귀한 풀이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리다가 길섶에 난 며느리배꼽의 알록달록한 열매를 보는 순간 퍼뜩 알아차렸다. 여기에서 무슨 사연을 엮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는 건 모두 췌언에 가깝다는 것을. ‘옛 여성들의 서글픈 탄식과 애환을 담은 민요’인 ‘상주 함창가’를 얼른 불러내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연밥 줄밥 내 따 주마 우리 부모 섬겨다오//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 하더라/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는 안 할라네(…)”

노래가 끝날 무렵 압도적인 연꽃 무리와 맞닥뜨렸다. 오로지 연꽃뿐인 큰 연못. 이웃한 곳에서는 물에 젖은 수련의 꽃잎이 아직 몇 송이 피어있다. 연꽃은 물을 떨치고 일어나 키가 껑충하다. 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연밥이 몇 개 연꽃의 잎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물을 헤치고 들어가 견준다면 연밥은 내 어깨를 두드릴 것 같고, 연꽃잎은 내 얼굴을 보쌈할 것 같고. 문득 한 무리의 철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멀리 인가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늘은 쌀쌀했고 땅은 쓸쓸했다. 연꽃,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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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울적할 때 논어를 읽는다. 최근에는 집중해서 필사도 하였다. 쌀가마니를 기웃거리는 쥐처럼 손에 잡았다가 갉작거리기만 했던 게 여러 번이었다. 그러던 차에 어떤 깊은 자극을 받아 작심을 하고 덤벼들었던 것. 논어의 끝문장은 “不知言 無以知人也.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지 못한다”이다. 왜 말로 마무리를 했을까. 붓을 놓고 ‘言’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네모난 돌 위에 솔잎을 쌓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험한 한자. 문득 말의 바탕 위에서 늘 살아가면서도 이 글자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옥편을 뒤졌다. 이런 설명이 나왔다. “날카로운 칼과 口가 합친 것. 칼로 까칠까칠하게 만들 듯 하나하나 확실하게 발음되는 게 말이라는 뜻.”

대학을 갔는데 출석부는 이름의 가나다순이었다. 조상이 순서를 정해준 셈이다. 자연스레 같은 실험조가 되면서 가깝게 지낸 친구들이 있다. 성만 표기해 본다. <李, 全, 鄭1, 鄭2, 崔>. 이곳저곳에서 흩어져 살다가 중간지대인 예천에서 모처럼 모였다. 이름과 목소리는 그대로인데 얼굴은 조금씩 변했다. 다음날 全과 鄭1은 먼저 떠나고 李, 鄭2, 崔는 치악산 아래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을 둘러보았다. ‘작가는 치열하게 언어를 찾는 존재입니다.’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하여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군데군데 배치된 작가의 말을 읽으며 돌아다니는데 맞춤하게 돌담길에 ‘눈먼 말’이라는 시가 눈에 번쩍 뜨였다. 자연스레 논어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내용을 보니 말(言)이 아니라 말(馬)이었다. 시를 소개하는 입간판 뒤로 담쟁이덩굴이 담벼락에 빽빽했다.

담쟁이덩굴을 모르는 이 어디 있겠나. 벽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는 담쟁이덩굴에 대해 많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오늘 내가 주목한 건 담쟁이덩굴의 까칠한 잎이었다. 

그것은 나무의 혀처럼 보이지 않겠는가. 그것은 바람과 살랑살랑 호흡을 맞출 때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데 그걸 알아들을 귀가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추석 귀성객이 뭉텅 빠져나간 ‘훌빈한’ 공원에서 각별한 느낌으로 바라본 담쟁이덩굴. 포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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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의 한 여관에서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러 가는 길. 제법 쌀랑해진 날씨에 목덜미가 시큰해지더니 두툼한 긴팔 옷이 그리워졌다. 야외주차장으로 연결된 샛길에 꽃 몇 송이가 흔들흔들 서 있다. 육상선수처럼 헐레벌떡 어디로 뛰어가는 듯한 꽃들을 보면서 선뜻 이런 작문을 했다. 매미소리 끊기자 코스모스 피는구나.

지난주 벌초하러 고향 갔다가 초등학교에 가보았다. 개구쟁이들이 떠난 운동장은 쑥부쟁이, 명아주, 방동사니 등 심심하게 놀고 있는 풀들의 차지였다. 길가에 그 많았던 코스모스는 어디로 갔을까. 도자기 공장으로 변한 교사를 보는데 추억의 한 자락이 떠올랐다. 완대초등학교는 거창읍에서 40여리. 내 어머니 머리에 쌀 이고 거창장으로 갈 때 두 시간이나 잡아먹던 거리이다. 햇빛이 풍부해 사과농사를 많이 하는 동네--남에서 북으로 꼽으면 막터, 오무, 새터, 오류골, 완대, 돗골--의 아이들이 이 학교에 다녔다. 한 학년에 한 학급이었지만 쉬는 시간이면 이야기꽃과 먼지로 운동장이 자욱했다. 이맘때쯤의 어느 날 따뜻한 햇볕을 찾아 모여 놀다가 한바탕 말싸움이 벌어졌다. 어느 동네가 최고냐고. 다들 고만고만했지만 어린 마음이야 그러지를 못해 제 동네 자랑하느라 마구 핏대를 올렸다. 하지만 돗골 아이들 한마디에 모두들 꼬리를 내려야 했다. “야, 씨바, 누가 서울에서 가장 가깝노!”

이제는 폐교가 된 완대초등학교. 그땐 부산으로 전학 간다고 좋아라 방방 날뛰었는데 지금은 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울퉁불퉁 자갈길에서 쌀쌀맞은 아스팔트로 포장한 도로를 달려 서울로 가는데 선뜻 이런 문장이 이마를 때린다. 학교가 폐허되니 코스모스도 사라졌구나.

파주출판단지의 사무실에서 나와 자유로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면 임진각 조금 못 미친 곳에 코스모스 꽃밭이 있다. 내 고향에서 사라진 꽃들도 이곳으로 몽땅 전학을 왔나 싶을 정도로 눈에 넘친다. 꽃은 어쩌자고 코스모스인가. 코스모스는 우짜자고 이런 이름인가. 출발총성을 기다리는 마라톤선수들처럼 술렁이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내 어린 시절 등하굣길에 동무해준 꽃들을 불러보았다. 코스모스,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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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의 돌이 콧등을 칠 만큼 가파른 길이다. 고개를 숙이고 오르고 오른 끝에 겨우 서북능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조금 한숨을 돌리며 둘러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눈에 보이는 대로 나무 이름을 불러주었다. 길은 쉬는 법이 없다. 신발끈을 조이고 다시 출발을 한다. 실새풀, 조릿대 등등이 만들어주는 길은 그 어떤 숙연함이 고여 있는 깊숙한 웅덩이 같다. 바람이 몰려가고 나뭇잎의 그림자가 빼곡하게 바닥에 일렁인다. 흑백의 그림인데 그 어떤 총천연색보다도 더 생생하고 환한 세계. 나는 못 보는 나의 얼굴에도 그림자가 얼룩처럼 내려앉았겠다.

막걸리라도 한 사발 마신 듯 초록에 취해 나아갈 때 이런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경기민요 ‘창부타령’의 한 급소. “우연히 길을 갈 적에 이상한 새가 울음을 운다. 무슨 새가 울랴마는….” 꼭 이희완 명창의 소리로 들어야 제맛이 나는 이 대목을 읊조리면 정말 내가 이상한 길로 순간이동한 것 같고 무슨 기운에 휩싸이는 것 같다. 흥에 겨워 팔을 가지처럼 뻗으며 한 바퀴 돈다고 갑자기 새가 찾아와서 울 일은 없겠다. 하지만 새벽 3시에라야 건질 수 있는 문장이 있듯 설악산의 높은 길모퉁이에 당도해야만 만날 수 있는 기운이 있어 겨드랑이까지 들어찼다.

정밀한 고독과 정교한 산색이 궁합을 맞추려는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의 기분을 알아차려 설악이 산새라도 보냈나 싶었는데 인기척이었다. 오른쪽은 대청봉으로 왼편은 귀때기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산중의 소박한 번화가에서 사람들이 쉬고 있다. 바로 그 삼거리길의 입구에 세잎종덩굴이 앉아 있다. 종처럼 생긴 짙은 자줏빛의 꽃은 이미 지고 열매가 도드라진다. 머리를 풀어헤친 듯한 열매 모양이 퍼뜩 할미꽃의 그것을 연상시킨다. 확인해보니 둘 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집안들이다. 세잎종덩굴은 이름 그대로 덩굴식물이라 다른 의지처에 기대거나 서로 얽히고설키며 한 무더기로 자라는 나무이다. 열매에서 할미꽃을 보아서 그랬나. 멀어지면서 뒤돌아보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할머니 모습도 얼핏 보이는 듯한 세잎종덩굴.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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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주흘산의 한 옆구리인 부봉(釜峰)은 험한 암벽산이었다. 산세가 엎어놓은 솥을 닮아서 저런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내 젊은 날의 퇴적지인 부산(釜山)에 기대어 왠지 쉬운 산행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보통 악산이 아니어서 유격을 방불케 하는 각종 몸동작을 요구하였다. 늦은 점심을 위해 찾아든 수안보의 한 식당은 산나물을 잘 차려낸다는 곳이었다.

간판에서부터 구수한 냄새가 폴폴 나는 식당은 특이한 게 하나 있었다. 참나물, 삼지구엽초, 고사리, 취나물, 쐐똥, 어느리…. 정갈하게 담아낸 접시마다 나물의 이름이 일일이 적혀 있지 않겠는가. 많은 식객들의 젓가락이 거쳐 간 접시에 박힌 나물 이름들. 솥을 거쳐 나와 모양을 잃은 나물은 그게 다 그것 같지만 이렇게 이름을 알고 먹는 나물은 더 맛이 있었다. 한 방울의 맛도 새지 않고 고스란히 입안으로 들어와 혓바닥이 장구를 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또 이런 뜻밖의 맛을 즐길 수 있느니, 이처럼 추가 주문을 고급스럽게 하는 것이었다. 죄송하지만 여기 미역취 좀 더 주시겠습니까?

생물다양성교육센터에서 이끄는 9월 탐사지는 설악산이었다. 설악의 기운으로 번들거리는 산은 가을 정취가 이미 물씬했다. 성질 급한 어느 나무는 단풍의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고 있다. 돌아드는 바위마다 바위떡풀이 벌떡벌떡 일어나 붙어 있고, 금강초롱꽃도 나의 언어를 벗어난 경지의 색감으로 환히 피어 있다. 그리고 어느 한 모퉁이를 돌았더니 수줍게 맞이하는 노란 꽃, 미역취였다.

밥상에 둘러앉듯 몇 사람이 둥그렇게 서서 미역취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였다. 참 단아하군요. 청초하기가 이를 데 없어요. 나물을 무치면 미역 냄새가 난다고 합디다. 잎을 삶으면 미역처럼 미끌미끌하다고 해요. 먹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마무리는 깔끔하게 했다. 오늘 아침에 막 피어난 것 같군요. 일행이 떠나고 혼자 남아 사진을 몇 방 더 찍었다. 나로선 미역취 앞에서 미역취 나물 생각이 아니 날 도리가 없었다. 올봄 내가 먹은 미역취의 손녀뻘쯤 되는 설악산의 미역취 앞에서 속되게 입맛을 다시 한번 다시면서. 미역취,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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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눈 쌓인 태백산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청량리에서 출발해 용문, 예미(禮美), 고한을 지나 태백역에 내렸다. 플랫폼의 안내판을 보니 다음역이 문곡(文曲)이었다. 멀어져가는 기차를 보는데 예와 악을 중시한 공자님 생각이 났다. 지난주 정선(旌善)의 여량에서 일박하고 반론산에 올랐다. 정선의 문자적인 뜻은 ‘선행을 드러내어 칭찬함’이고 반론은 ‘半論’이다. 생소하지만 궁리가 깊은 듯한 산 이름을 입에 굴리며 오르는데 논어 생각이 아니 날 수가 없었다.

이 계절은 지금 어디를 통과하는 중인가. 어제 들은 매미소리가 오늘은 또 확연히 다르다. 매미는 꼬리를 씰룩이던 힘도 잃은 채 겨우 가슴 근처의 발음기만으로 희미한 소리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닳아지는 매미소리를 듣는데 최근 때맞추어 읽은 논어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조지장사 기명야애, 인지장사 기언야선. 새가 죽으려 할 때는 그 울음이 애처롭고, 사람은 죽음이 가까우면 그 말이 선해진다).

정상 부근에 천연기념물인 철쭉을 키우는 반륜산은 접근이 쉽지 않은 오지의 산행처였다. 등산로에 사람들의 발길과 눈길이 닿은 흔적이 별로 없었다. 좌우의 껑충한 나무와 풀들이 외려 우리를 구경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희미하게 끊어지기도 하는 길을 오르다가 양지바른 무덤에 읍을 하고 그 앞에 앉았다. 햇살이 기탄없이 찾아오는 무덤가의 식생은 언제나 풍요롭다. 고개를 숙이고 오래 쳐다보면 와글와글한 햇빛 사이로 주로 벼과와 사초과의 풀들이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다. 곧 벌초를 하게 되면 본치가 나게끔 어깨보다 훌쩍 웃자란 풀들. 그중에 무덤을 지키는 수문장인 양 확실하게 꼿꼿한 산비장이가 있다. 기다란 대궁 위에 짙은 보라색 꽃을 둥근 공처럼 얹어두었다. 엉겅퀴와 달리 가시가 하나도 없어 부드러운 느낌이 주르르 흘러넘친다. 가느다랗게 흘러나오는 매미소리 들으며, 순한 산비장이 바라보며 반론산의 무덤가에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가을이라 소리도 순해지는구나, 이순(耳順)이 가까이에 왔구나. 산비장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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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무거운 이불을 걷어차기가 몹시 힘들었다. 철석같은 게으름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를 수십 분, 마침내 떼놓은 한 걸음이 나로서는 거대한 도약이었다. 첫발이 힘들었지만 산 입구에 서니 여기가 오늘의 자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피둥피둥한 몸뚱이를 급한 경사에 현관(懸棺)처럼 비끄러매는 것이 언젠가 저 나무 아래로 가야 하는 예행연습처럼 가끔은 필요한 법. 이내 몸은 초록의 바다와 쉽게 호흡을 맞추었다.

가볍게 산에 한 번 다녀온 것을 두고 말머리가 괜히 구불구불한 능선처럼 복잡해졌다. 오늘은 조금은 특별한 날이다. 멸종위기종인 닻꽃의 식생을 확인하는 조사에 합류했다. 우리나라에 자생지가 몇 안 되는 닻꽃. 생긴 모양이 실제로 닻을 그대로 닮아 그 이름을 얻은 꽃이다. 캄차카나 사할린 등의 추운 지역에 가면 발에 차이듯 많이 볼 수 있지만 남한에서는 몇몇 고산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꽃이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에 우뚝 솟은 화악산. 이름에서부터 꽃냄새가 물씬한 화악의 능선에는 하늘과 땅의 접면에 닻을 내린 어선처럼 닻꽃이 정박해 있었다. 북쪽에서 따뜻한 곳을 찾아온 내력답게 주로 햇살이 푸짐하게 내리꽂히는 경사면이었다. 꼿꼿한 줄기에 조금은 복잡한 구조이다.

잎은 두 장씩 마주나기로 줄기에 드문드문 달리고, 그 겨드랑에서 꽃줄기가 가냘프게 뻗었다. 그 끝에 두 장의 포엽과 함께 연한 노란색 꽃이 달려 있다.

정상에 도착하니 마음은 더욱 나부낀다. 이 높이에 서고 보면 닻을 거두고 항구를 떠나는 배처럼 거칠 것이 없어진다. 땀을 훔치며 깎여나간 몸을 보충하려고 김밥을 우물거리는 동안 한 동무는 점심도 잊은 채 구름을 배경으로 사진에 열중이다. 이윽고 흐뭇한 웃음과 함께 일어나 멀리 군부대의 철탑을 바라보며 즉석에서 한마디를 읊는다.

“먼 옛날 빙하기 배 한 척 내려와 화악산에 닻을 내렸네. 멀리…… 삿대가 없어 떠나지 못하는구나.” 아쉬워라, 중간 대목은 바람한테 빼앗겼다. 지금 닻꽃은 내 꽃동무의 잠자고 있던 시심(詩心)에 날카로운 닻을 명중시킨 셈인가? 닻꽃, 용담과의 한두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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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으로 자보는 성주읍에서의 하룻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무리는 참외로 했다. 나이가 지긋한 두 아주머니가 끓여내는 시래깃국으로 아침을 때우는데 꽃동무가 가야산 쪽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가 왜 백운동이겠어요?

가야산 백운동탐방센터를 지나 만물상 능선을 향하여 올랐다. 과연 흰구름과 먹구름이 떼지어 몰려 있다. 오후 3시부터 뿌린다는 비도 저 너머에 대기하고 있으려나. 돌아드는 길목마다 툭 튀어나와 반겨주는 꽃며느리밥풀. 가을이 오기까지 내 허전한 눈길을 받아주는 고마운 꽃이다. 어느덧 만물상 능선이다. 시야가 툭 트이자마자 나의 시선은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아침 시래깃국에서 물꼬가 트인 어머니 생각도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멀리 내 고향 거창과 잇닿은 저 아래의 해인사, 그 한편에 백련암, 그 뒤의 어느 큰 바위는 어머니와 함께 일군 내 소싯적 추억의 적석총!

눅눅한 날씨에 눌린 탓일까. 오늘따라 산으로 오를수록 자꾸 납작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멀리 능선마다 부복하고 있는 나무들도 모두 안개 사이를 서성이는 인물들의 형상이다. 가까운 바위에는 누군가 쌓은 돌담불. 그중의 하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이다. 이 골짜기를 지나가는 바람이 수행자의 모습을 조각하는 중이다. 가야산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겠다.

마침내 상아덤~서성재를 지나 정상에 도착했다. 어깨를 겨루며 서 있는 칠불봉과 상왕봉 사이의 꽃길은 그야말로 공중정원이다. 자주꿩의다리, 네잎쓴풀, 가야산잔대, 산오이풀 등이 구름의 딸이고 아들인 듯 사이좋게 어우러졌다. 손바닥만 한 것에서부터 정강이 높이의 야생화를 보느라 꽃동무들은 칠불암 주위에 여덟 번째 바위처럼 흩어졌다. 나도 따라 쪼그리고 엎드리는데 특히 눈을 호리는 건 바위에 따개비처럼 철석같이 붙어 있는 난쟁이바위솔이었다. 이슬보다 더 부드러운 안개를 먹고 자란다는 풀이다. 통통한 다육질의 잎과 줄기 위에 손톱처럼 얹혀 있는 꽃들. 오래 바라보면 손끝은 물론 눈알까지 간지러워지는 난쟁이바위솔. 바라볼수록 어쩐지 나를 더욱 납작하게 만드는 난쟁이바위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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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이끄는 사할린 및 쿠릴 열도 식물 탐사에 참가하였다. 지도에서 한반도와 한 손바닥에 덮이는 곳이긴 해도 좀체 가기 어려운 곳이었다. 어깨를 찌르는 조릿대 숲을 헤치며 가는 동안 처음 보는 식물도 많았지만 꿀풀, 금방망이, 해당화 등의 익숙한 것들도 만났다. 헛꽃이 발달한 나무수국은 특히나 반가웠다. 곰이 출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인 나무들의 날씬한 자세를 보는데 이런저런 궁리가 일어났다.

예전 산에 막 다니던 시절, 정상에 서면 조금 다른 사람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하산해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걸었던 길을 우러르면 괜히 어깨가 들썩거렸다. 거기까지만 했더라도 마음은 흔감했을 터이다. 산은 사람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 것 같다. 산에는 우리가 산이라고 명명한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나의 몸에 학력과 이력을 비롯해 게으름, 시기, 질투, 불안이 들끓고 있듯 산에는 많은 것들이 구체적으로 뒹굴고 있었다. 낙엽과 열매, 벌레와 곤충, 바위와 흙. 그중에서 나무가 꽃과 함께 나를 문득 찾아왔다.

나무 이름 하나 아는 게 대수인가. 이름은 나무의 겉을 대표할 뿐 정작 거룩한 세계는 나무 안에 있다. 거죽을 찢고 나오는 꽃, 그 꽃 안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수술과 암술, 바람에 흩날리는 미세한 꽃가루들, 쟁반 같은 꽃잎과 접시 같은 꽃받침, 동물들의 가죽이나 사타구니에 은밀하게 자라는 것과 흡사한 털과 가시. 예전에는 오밀조밀한 식물의 기관을 보고서도 심드렁했는데 식물을 가까이 하면서 그것들이 그것들로 한 세계를 우아하게 이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꼭대기가 세상의 넓이를 가졌다면 한 그루의 나무에는 세계의 깊이가 응축되어 있는 건 아닐까. 귀국하고 출근하면서 꽃들의 근황이 궁금해서 화단부터 먼저 둘러보았다. 활짝 핀 나무수국이 새삼 눈을 찔러왔다. 이 지구는 물의 행성이니 섬뿐만 아니라 실은 대륙도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겠다. 사할린에서 자생하는 나무수국과 내 화단에서 자라는 원예종의 나무수국. 이러니 나는 지금 식물의 품 안을 헤엄치는 중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듯! 나무수국, 수국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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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녹색의 터널 같은 임도를 걸었다. 억수같이 오는 비가 아니라면 산에서 맞는 이 정도의 비는 차라리 달콤하다. 함께 가는 꽃동무들과 식물 공부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이다. 나무 이름 하나 안다고 그 나무를 다 아는 건 아닐 테지만 나무와 접촉하기 위해서는 이름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름을 불러주어야 겨우 나무 곁으로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것.

길이 오두막 지붕처럼 완만하게 꼬부라지는 곳에서였다. 영험한 기운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숲속으로부터 안개를 퍼나르는 쇠스랑 같은 가지가 길게 뻗은 나무 앞에 섰다. 이 나무는요? 자주 본 것 같은데, 나는 또 이 고유명사 앞에서 그만 콱 막히고 말았다. 입이 근질근질했지만 머리가 도와주질 아니했다. 꽃동무가 슬며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자고 했다. 은근히 힘을 주면서 이 나무를 모르면 작살납니다, 하는 농담을 던졌다. 그제야 나의 입에서 아, 작살나무! 하는 답을 조립해 낼 수 있었다.

작살나무는 비교적 흔한 나무이다. 줄기는 정확하게 대칭이고, 잎은 정교하게 마주난다. 꽃보다는 열매가 퍽 인상적이다.

장난감 총알 같은 보랏빛 열매가 다닥다닥 맺힌다. 잔물결이 이는 잎사귀, 꽃잎보다 긴 수술의 작살나무를 힘껏 기억하며 오늘은 한걸음 더 나아가 손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오래전 조삼모사(朝三募四)라는 제목으로 이런 글을 작성했었다.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마, 하니/원숭이들이 부당하다며 항의하기에/그러면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는 세 개를 주마, 하자/원숭이들이 좋다고 난리 끝에 손뼉까지 동원한다/그걸 본 그 말 방금 끝낸 사람은 돌아서서/등신 같은 놈들이라며 키득키득 웃으면서 손가락질한다/어쨌거나 나는/손가락질보다는/손뼉 치는 일에/내 손을 사용하고 싶다.”

항상 나를 대표해서 세상과 접촉하는 손이다. 이것이 다섯 가락으로 나뉘지 않았더라면 내 어찌 세상의 단맛, 짠맛, 신맛, 매운맛 그리고 쓴맛을 만끽할 수 있으리오. 좌우대칭의 가지에서 뻗어나간 손바닥 같은 잎사귀에 그런 내 궁리를 얹어두었다. 작살나무, 마편초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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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경향신문의 한 지면에서 세 장의 사진을 보았다. 한 면을 통째로 구성한 ‘류샤오보의 동지’인 후자의 인터뷰. 그중의 하나는 인터뷰이가 사진을 들고 있고 이런 캡션이 있다. “사하로프상 수상자인 중국의 인권운동가 후자가 류샤오보 생전에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속에서 류샤오보와 그의 아내 류샤는 웃고는 있지만 어쩐지 웃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빡빡머리의 부부 모습과 함께 이런 메시지가 있다. 니지도타문마(知道他們). 당신은 이들을 아시나요?

또 다른 사진을 본다. 남편은 떠나고 아내만 남았다. “타계 이틀 만에 화장…참담한 이별. 중국의 인권운동가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류샤오보의 유골을 담은 단지가 지난 15일 랴오닝성 다롄 앞바다의 바닷속에 내려지는 모습을 아내 류샤가 지켜보고 있다.” 류샤오보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길림성 장춘에서 태어나 선양에서 죽어 다롄에 묻히다. 세계지도에서 보면 모두 백두산의 인근 지역들이다.

나머지 한 장의 사진이다. 류샤오보와 류샤가 행복했던 한때의 모습이다. 활짝 웃는 두 사람 뒤로 배경이 되어주는 울창한 나무들. 얼핏 보기에 자작나무 같다. 류샤오보의 고향은 길림성이다. 백두산 갈 때 길림성의 한 자락을 통과한 적이 있다. 북방계의 자욱한 삼림에 압도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류샤오보 부부를 흐뭇하게 호위하고 있는 나무들. 그들이 고향을 방문해서 만난 나무일까. 이 나무를 보고서 고향을 떠올리며 찍은 사진일까.

우리나라에는 자생하는 건 없지만 식재한 자작나무는 제법 많다. 우리 동네의 손바닥만 한 정원에도 하얀 붕대를 감은 듯한 자작나무 세 그루가 기품 있게 자라고 있다.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만든 인터뷰의 제목은 “그가 남긴 민주화 열망, 중국인 일깨워 세계와 함께할 것”이다. 중국은 큰 나라라고 하지만 마냥 큰 나라는 아닌 것 같다. “중국의 근본적 인권을 위한 그의 오랜 비폭력 투쟁을 높이 평가한다”는 노벨상 선정 이유도 곱씹어본다. 산책하며 자작나무를 볼 때면 니지도타문마를 상기해야겠다. 자작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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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따라 떠올랐다가 빗방울과 함께 떨어지고 보니 제주도였다. 공항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직접 몸을 쓴 것은 아니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 구름의 근처를 기웃거리고 하늘의 근황을 곁눈질한 셈이었다.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여기에서는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저기에서는 햇빛이 말짱하다.

나는 비가 늘 좋다. 하늘에서 오는 어마어마한 물질이 아닌가. 공중과 제대로 사귀자면 비를 피하는 게 능사만이 아닐 것이다. 도착하고 이튿날, 한라산 둘레길을 쏘다니는 동안에도 하늘엔 비를 짊어진 구름이 낮게 깔렸다. 산에서 맞는 비는 충분히 색다르다. 제대로 맡은 적이야 없지만 어쩐지,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았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비, 백석)라고 할 때의 그 냄새가 바로 이 냄새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느 너덜겅에 이르니 한라산 특유의 돌들이 웅크리고 있다. 한때 뜨겁게 들끓던 용암이 차분해지다가 오늘은 또 오늘의 빗물에 식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얼크러진 모습을 보자니 엎드리고 있다가 졸지에 화석이 된 생명들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아주 늙은 물개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면서 어이쿠, 자네 이제사 오는가, 인간의 말을 구사하며 악수를 청할 듯한 분위기.

야생화는 늘 피어 있는 게 아니다. 꽃도 나처럼 제게 허락된 시간만큼을 겨우 잘라먹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7월의 제주에서 염두에 둔 몇몇 꽃은 함부로 기회를 주지 않았다. 꼭 그 꽃을 보자고 한 건 아니었지만 그 꽃은 무시로 눈으로 들어왔다. 실꽃풀이다. 심심한 것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도 묘한 느낌을 풍기는 꽃이다. 있을 듯 없을 듯한 물큰한 느낌이 이름에서부터 전해졌다. 지상에 떨어진 뒤 세상구경 떠나는 빗방울처럼 똘방똘방한 사연을 간직하는 꽃이 아닐까, 어림짐작하면서 실물을 보았다. 과연 하늘에서 떨어진 비의 마지막 한 토막인 듯 줄기가 바위틈에 꼿꼿하게 박혀 있고 꽃은 가지런히 꽃밥을 층층이 쌓으며 공중으로 올라간다. 빗물에는 많은 성분이 들어있고 비에는 많은 사연이 들어 있는 법이다. 비와 어우러져 실, 꽃, 풀이라니! 실꽃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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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볼 때, 철부지 어린 심보에 애꿎게 당한 게 있다. 매미와 잠자리이다. 영문 모르고 나온 세상. 매미는 감나무에, 잠자리는 빨랫줄에 앉았다가 내 손에 심심찮게 걸려들었다. 시골을 떠나고 더 이상 곤충을 잡을 일은 없었다. 그만큼 곤충과 접촉할 일이 없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몇 줄의 식견이나마 보충한 덕분도 있겠다. 금강경을 귀동냥하고 우편엽서에 반야심경을 적어 띄우기도 한 원력이 작용한 때문이려나.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나도 좀 순해졌다. 이젠 취미도 바뀌어간다. 잡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모처럼 제주도에 들러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한라수목원에 갔다. 지금은 꽃은 거의 없는 계절이다. 산수국이 저 혼자 화려하게 피었을 뿐, 대부분의 나무들이 열매를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중이었다. 멀리 꼿꼿한 꽃대 끝에 붉게 어우러진 무리가 있어 심심한 내 눈길을 일거에 빼앗아갔다.

너무 작아서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한 손바닥만 한 인공의 호수. 그래도 물이 가득하고 부들, 연꽃을 비롯한 여러 수중 식물의 생태계가 볼만하게 어우러졌다. 태풍 소식으로 어지러운 날씨에 내 눈을 호린 건 붉은 부처꽃이었다. 오늘 처음 보는 건 아니로되 이름과 더불어 진흙 같은 내 마음의 저 바닥을 두드리는 꽃이 아닐 수 없었다.

부처꽃. 저 돌올한 꽃대 끝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으면 풍경을 그럴싸하게 완성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공중에는 오락가락하는 빗방울뿐이다. 좀 더 가까이 찍고 싶어서 뾰족한 돌을 딛고 호수 아래로 내려서는데, 어라, 서너 뼘 앞에 큰 개구리가 장좌불와를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웅크리고 있지 않겠는가. 개구리는 수행에 관한 한 일가를 이룬 자세였다. 나 따위의 이물질이 갑자기 뛰어들어도 미동조차 아니했다. 좁은 연못에서도 시선은 무한대를 향하고 있었다. 오래 지켜보았지만 눈조차 깜빡이지 아니하는 개구리 앞에서 나의 동작들이 무의미해지려는 순간이었다. 글쎄, 움직이는 것들이 움직이지 않는 것 앞에서 수행을? 발은 진흙에 꽂아두고 바람에 흔들리는 부처꽃, 부처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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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띄엄띄엄 산다. 코끝에 걸리는 가파른 비탈길을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오를 때 작년 겨울 눈밭에 찍혔던 내 발자국을 떠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해 보았다. 기억에도 없는 어느 때부터 하여간 숨을 팔딱팔딱 쉬면서 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단 한순간의 정지도 분명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형식은 저 발자국처럼 그렇게 띄엄띄엄 살아가는 것. 지도에 있는 곳을 다 못 가보고, 사전에 있는 단어를 다 못 써본다. 놓치고 가는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갈림길에선 나머지 길을 버리고 나아가는 중이다. 다시 한번 궁리해 본다. 태중에서 무덤까지 연속적인 흐름으로 살고 있지만 이 순간은 띄엄띄엄 살아가는 것. 그렇다면 모든 물질이 파동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입자의 성질을 가진다는 이중성은 바로 나의 몸에서도 이렇게 체현되고 있는 게 아닐까. 고매한 물리학자들에겐 참으로 허무맹랑하게 보일 그런 상상도 해 보다가 어느 큰 바위 앞에 이르렀다.

마음을 놓을 데가 있어 둘러보니 삼척의 석병산 정상이었다. 곳곳마다 면벽한 수행승처럼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바위틈에 핀 백리향을 찍는 중이다. 멀리서 보면 바위는 단순한 물체가 아니다. 사람인 내 눈엔 주로 사람의 얼굴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당장 눈앞에 어렴풋이 짐작되는 건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백리향의 꽃을 물고 빙그레 웃고 있는 부처님의 상호!

향기가 백리를 간다고 그 이름을 얻은 백리향은 높은 산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산다. 가볍고 단출하게 무리지어 있기에 그저 잘 번지는 풀의 한 종류이겠거니 했는데 엄연한 나무였다. 향기는 꽃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 나무 전체에서 난다. 그 향기를 전하려고 그런가. 작지만 가지는 많이 갈라지고 최선을 다해 옆으로 기는 나무들. 이름이 백리라고 어디 백리만 가랴. 코끝에 대면 진한 향기가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바람을 따라가는 향기의 입자는 바람이 그치는 곳까지 퍼지겠지만, 머리로 들어와 나의 기억 속에서 향긋하게 진동하는 백리향은 어디까지 갈까. 백리향, 꿀풀과의 낙엽소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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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뒷산만 다니다가 먼 산을 다니기 시작한 게 마흔 무렵부터이다. 그 이후 산이라고 제법 오르고 내리기를 되풀이하였지만 아직도 입구에 서면 부담이 먼저 이마를 때린다. 언제 저 꼭대기를 다녀오나. 산에 오르는 것에도 요령이 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산에만 들면 펄펄 나는 동무가 있어 작심을 하고 산행 모습을 유심히 보았다. 그이는 지팡이를 짧게 잡고 어깨를 모은 채 무게 중심을 앞으로 던지듯 허리를 한껏 구부린 채 걷는 게 아닌가. 가히 꼬부랑 할머니와 어금버금한 걸음걸이였다. 이제껏 나는 산의 경사에서 가급적 멀찍이 떨어지려는 듯 작대기처럼 허리를 꼿꼿이 세우려는 동작을 취해왔었다. 그날 쉼터에서 간신히 따라잡았더니, 나라고 어디 사람이 아닌가요, 힘들지만 견디며 오를 수밖에요, 한마디 던지고는 급한 비탈을 와락 껴안으며 다람쥐처럼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나름 터득한 비결을 응용할 기회가 왔다. 삼척 환선굴을 허리에 품고 있는 지각산으로 오르는 길. 컴컴한 굴 안을 둘러보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관광이지만 빛들이 빚어낸 바깥의 꽃들이 내겐 더 환상적이다. 엎어지는 게 아니라 숙이기만 해도 코가 닿을 듯한 급경사 길에서 동무로부터 간취한 회심의 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오르막을 받아들이며 쏟아질 듯 몸을 앞으로 앞으로 이동시킨 것이다. 어쩌면 그건 그 언젠가 들어갈 땅으로 몸을 휙휙 내던지는 형국인 것도 같았다.

그렇게 비교적 수월하게 오른 정상에는 나보다 더 뚱뚱한 바위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바위는 날카로웠다. 아차, 하는 한발 끝에 “(…)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유치환)가 되는 지름길도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바위는 제 심중의 일단을 이런 꽃을 통해 드러내 보이는가. 바위에 몸을 풀고 있는 야생화를 만났다. 오르기는 힘들지만 이런 석회암의 고산 바위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벌깨풀이다. 단애와 협곡이 떠받치는 이 지역의 하늘빛을 고르고 골라 농축시킨 듯 환장할 만한 꽃, 꽃, 꽃. 벌깨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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