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16건

  1. 2018.05.23 왕제비꽃
  2. 2018.05.15 대성쓴풀
  3. 2018.05.08 바위말발도리
  4. 2018.05.02 들쭉나무
  5. 2018.04.24 복사나무
  6. 2018.04.17 개나리
  7. 2018.04.10 쉬나무
  8. 2018.04.03 갯봄맞이
  9. 2018.03.27 대팻집나무
  10. 2018.03.20 말오줌때
  11. 2018.03.13 [이굴기의 꽃산 꽃글]사위질빵
  12. 2018.03.06 육박나무
  13. 2018.02.27 호두나무
  14. 2018.02.20 고구마
  15. 2018.02.13 층층나무
  16. 2018.02.06 [이굴기의 꽃산 꽃글]큰괭이밥
  17. 2018.01.30 [이굴기의 꽃산 꽃글]감자꽃
  18. 2018.01.23 천선과나무
  19. 2018.01.16 멀구슬나무
  20. 2018.01.09 노간주나무

올여름 매미는 언제쯤 귓전을 두드릴까, 생각하다가 그보다 먼저 개미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순결한 지면에 먹물로 개미, 개미, 개미라 쓰면 검은 행렬이 꼬물꼬물 어디로 진군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길에서 만나면 그냥 꾹꾹 눌러 밟기가 일쑤였다. 아파트에는 개미가 없는 줄로 알았지만 이사하고 방바닥을 쓸면 한두 마리의 개미가 쓰레받기에 얼씬거렸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창문 너머로 휙 던져버린 경험이 여러 번이다.

ⓒ이해복

요즘 개미에 관해 실감나는 게 있다. 그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발짝 이내에서 개미와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가 완벽하게 그들에게 포위된 형국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의 첫 문장은 파격적이되 명징하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뉘라서 주인공의 저 운명을 피할 수 있으랴. 언젠가 나도 그 신세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올 손님은 아마 개미일 것이다. 혹 오래전 나에게 당했다가 몇 생을 거듭난 그 녀석일지도 모를 일!

평창을 찾았다가 정선으로 넘어가는 어느 길목에서 희귀한 꽃을 만났다. 물소리가 은근한 공터에 차를 대고 개울을 건너니 멸종위기식물 안내문과 철조망이 있었다. 왕제비꽃 자생지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제비꽃만을 다룬 단행본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게 제비꽃의 세계이기도 하다. 제비꽃은 원줄기의 유무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제비꽃이 앉은뱅이 방석처럼 지면에 도톰하게 퍼져 있는 것에 비해 왕제비꽃은 원줄기가 뚜렷하다. 흰 꽃은 잎의 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제비꽃 중에서 키가 가장 커서 무릎을 때릴 정도이다. 그래서 왕을 이름 앞에 얹었나 보다.

왕제비꽃은 그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어 바깥으로 진출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왕제비꽃을 보는데 개미 한 마리가 꽃과 잎을 드나드는 게 아닌가. 제비꽃을 퍼뜨리는 데 개미가 큰 역할을 한다. 개미와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얽혔다.

내가 매미를 기다리듯 성질 급한 개미는 벌써 씨앗을! 왕제비꽃, 멸종위기 2급,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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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재발견이었다. 2018년 4월27일. 그날의 일은 모두 녹화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난 후에라야 객관적 거리도 확보되고 그 전모가 눈으로 들어온다. 한차례 흥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것은 처음 만나 악수한 뒤 잠깐 북측으로 월경(越境)하는 사진이었다. 이제껏 적대적이었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금단의 선을 넘는 뒷모습.

사람의 진면목은 뒷모습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광명한 세상에서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本人)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지(奧地)인 뒷모습. 그것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뒷모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뒷모습만을 찍은 사진도 좋지만 밀도 높은 글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십쯤에 <뒷모습>을 접했다. 오십이면 그 경지에 오르기를 소망했건만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시골에서 벌초할 때, 풀을 베고 난 뒤 모두에게 부탁해서 뒤로 돌아선 모습을 찍는다. 어쩌면 무덤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뒷모습이기도 하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뒷모습. 거기에는 홀가분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돌아서 있는 형님들은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지!

지난주에는 평창의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남북회담의 물꼬를 터준 올림픽의 열기는 옛일이 되었고 봄맞이 준비로 바쁜 어느 무덤가에 뛰어들었다. 살아서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헤어지지 말자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아래 여러 봉분 사이로 야생화가 퍽 다양했다. 지하로 가는 통로인 듯 구슬붕이, 무덤 봉우리엔 노란 솜방망이,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단박에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든 건, 아주아주 희귀한 대성쓴풀이었다. 손가락만 한 키이지만 네 장의 야무진 꽃잎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는 대성쓴풀. 굳이 입에 넣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쓴맛이 왕창 풍겨 나오는 대성쓴풀. 멸종위기 2급,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그림ⓒ이해복)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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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카메라로 힘껏 찍어보지만 시간의 강물이 어느 서랍에 처박을지 그 허망한 기억을 어이 믿을 수 있겠나. 하지만 야생화에 입문하고 천마산에서 처음 본 꽃들은 아직도 뚜렷하다. 그때의 공책을 뒤적이면 다소 생소한 이름과 함께 이런 간략한 설명이 있다. 좁은 바위틈, 그 깊고 컴컴한 허방을 짚고 자라는 매화말발도리… 기특했다.

적어도 꽃이름 100개는 중얼거리자고 시작한 꽃산행, 그것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높든 낮든 산행을 끝내고 골짜기를 빠져나오면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비록 하루 만의 일이지만 산이 배출한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은 또 한 주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좋았다.

매화말발도리는 주로 바위를 딛고 살아간다. 바위는 햇빛은 쉬이 섭취하겠지만 비는 저축할 겨를도 없이 흘러가는 장소이다. 왜 이 나무는 이런 불리한 조건에 거처를 정한 것일까. 나무는 바위에 초라하게 빌붙기는커녕 아예 바위를 쪼개기도 하면서 악착같이 자란다. 그 기세에 자주 눈길이 가다가 매화말발도리와 비교되는 바위말발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은 아주 비슷하지만 가지 끝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몸에 뼈 있듯 산에는 바위 있다. 으레 바위는 매화말발도리를 품고 있었다. 바위 앞으로 갈 때마다 바위말발도리가 간절해졌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바위말발도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연천의 고대산으로 가는 길. 제2등산로를 오르자 엉거주춤 그러나 아주 편하게 앉아서 이제 오느냐며 반겨주는 바위가 있다. 그 바위가 거느리고 있는 깨끗하게 흰 꽃을 보는데 감이 왔다. 맛있는 알사탕을 빨아먹겠다는 심정으로 바위로 접근하여, 바위에 이끼처럼 착 달라붙어, 꽃을 관찰하였다… 과연!

매화말발도리는 작년 가지, 바위말발도리는 올해 가지에 꽃을 내놓는다. 새것은 새로워서 좋고 묵은 건 묵어서 더욱 좋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둘을 구별하는 그 결정적이고 우주적인 차이, 바위말발도리의 가지 끝에서 나는 그만… 까무러쳤다. 바위말발도리,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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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발한 대통령 일행이 자유로를 타고 판문점까지 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공중의 카메라는 건방진 건물들을 납작하게 만드는 한편 아무 걱정 없이 북으로 뻗어나간 숲을 융단처럼 푹신하게 담아내었다. 연두에서 초록까지, 색의 파노라마로 일행을 호위해주는 좌우의 나뭇잎들을 보자니 우리 사람의 일이란 작든 크든 결국 이 식물들의 손바닥 안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실감했다. 1953년생 소나무를 심고 난 뒤, 남북의 두 정상이 주위를 물리친 채 숲속에서 다정한 도반처럼 말, 표정, 손짓을 섞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도보다리 바로 곁에서 빵긋 웃는 건 조팝나무, 바람을 영접하는 건 갈대, 낮말을 알아듣는 건 버드나무이지 않을까.

한반도의 계절과 정치에 실질적인 봄이 오는 것을 체감하면서 많은 이들이 평양냉면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하나 더 물목을 추가하고 싶었다. 웬만한 술꾼들은 알겠지만 냉면은 안주로도 정말 제격이니 이에 어울리는 들쭉술을 빠트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은 백두산으로 곧장 달려갔다. 야생화에 입문하고 이듬해 떠난 꽃산행. 남에서는 주로 고산지대에서 겨우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들이 그곳에서는 발에 차일 만큼 흔했다. 그중에서도 파르라니 깎은 듯 푸르디푸른 건 들쭉나무 열매였다. 한 주먹 따서 입에 넣으면 들쭉술의 원액인 듯 볼을 빨갛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던 들쭉나무.

토요일의 임진각은 공기부터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특산물코너로 갔다. 들쭉술 있습니까. 그간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물건을 못 받았어요. 가게 주인은 두 손을 모으며 미안해하면서도 설레는 기대를 감추지 아니했다. 우리 대통령은 다시는 이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셨다. 내 혀끝으로 먼저 북녘과 화끈하게 접촉할 날도 머지않았으리. 들쭉나무는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거쳐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온난화가 진행되자 한라산, 설악산의 꼭대기로 빨치산처럼 피신한 나무이다. 작년 설악산에서 만난 들쭉나무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그 야무진 꽃을 떠올리며 파주-개마고원-백두산으로 이어지는 꽃산행 길도 그려보는 흐뭇한 봄밤! 들쭉나무, 진달래과의 낙엽소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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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서에서 접했던 조각품을 육안으로 만질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흐린 날씨와 그늘을 사랑했다는 자코메티. 그의 조각상을 보는데 ‘쪼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 조몰락거렸던 검붉은 찰흙이 쪼대다. 시골 뒷동산 진달래 덤불 근방에서 파낸 쪼대로 어설프게 만들었던 조각처럼 자코메티의 두상은 아주 거칠고 투박하였다. 드디어 명상의 집. 그 유명한 <걸어가는 사람>이 부지런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지만, 아쉬워라, 사람이란 몸은 물론이요 그 몸에서 뻗어나오는 그림자까지 포함하는 것일진대, 달랑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조각만을 중앙에 전시해 두고 있지 않은가.

도떼기시장 같은 전시장을 빠져나와 집결장소인 송파역으로 이동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가 이끄는 식물탐사대의 무술년 첫 산행이 있는 날이다. 오후 2시가 되자, 일행을 태운 버스가 산청의 동의보감촌을 향해 부릉부릉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허준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필봉산과 왕산을 오르는 길. 오고가는 것으로 가득 찬 산중에서 자코메티의 한 어록이 자꾸 떠올랐다. “인생에서 그 부질없는 것들을 걷어내고 그냥, 무작정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보이는 대로 실제 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자코메티. 큰 작품을 만들려고 높이를 키우다보니 가늘고 긴 자신만의 형상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물오른 국수나무 가지에서, 말라비틀어진 진달래의 열매 껍질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형상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막 나무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식물성의 눈빛들!

벌써 확 들이닥친 여름의 기운이 물씬하다. 류의태 약수터 아래에서 많은 꽃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활짝 핀 복사나무가 눈을 때린다. 개울물가에서 보아야 제격인 나무이다. 이태백의 ‘산중문답’의 한 대목, 복사꽃 떨어져 아득히 물 위로 떠내려가네, 그 그윽한 풍경을 선뜻 데리고 오는 복사나무. 흘러가는 물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복사나무. 하얗고 붉은 꽃잎과 그 꽃잎 뒤로 너무나도 선명한 초록의 잎이 그림자처럼 빠져나와 도드라지게 받쳐주는 복사나무. 장미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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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유리식탁에서 1식3찬의 아침을 받는다. 보리를 섞은 쌀밥, 된장을 푼 쑥국에 무깍두기, 머위나물 그리고 고등어 한 토막. 보름달 같은 접시에 골고루 담긴 것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고 먹는다면,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혀가 제대로 맛을 알겠는가. 매일 반복되는 이 행위를 거룩한 식사(食事)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젓가락 왕복운동과 어금니 저작운동이 연속되는 행동(行動)에 불과하지 않을까.

며칠 전 한식이라 고향으로 향했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무주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드니 느낌이 달라진다. 벚나무 가로수가 내 속도에 맞추어 다투어 피어나는 건 아닐 테지만 구천동 지나 덕유산 빼재터널을 지나면서 거창으로 가까워질수록 꽃들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아예 꽃터널인 곳도 있다. 벚꽃구경 하겠다고 여의도 갈 게 아니네요! 큰형수님이 한마디 던지는데 벌써 오무마을 동청이다. 농사가 아직 본격 시작되기 전이라 조금 여유가 느껴지는 시골내음을 흠씬 들이마셨다. 사과향도 조금 섞인 듯 달콤한 벚나무 꽃공기!

비 부슬부슬 내릴 때의 산소는 그 어딘가로 연결되는 장소이다. 무덤은 식물과 곤충들에게도 명당이다. 그늘 하나 없고 통풍과 배수가 잘된다. 또한 물은 이렇게 직방으로 들이쳐 공급된다. 양지꽃, 민들레가 잔디 사이에 숨어 있다. 두리번거려 보지만 아쉽게도 할미꽃은 없다. 그간 잘 계셨나요? 어머니 보내신 고들빼기, 뽀리뱅이가 무덤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아버지 따라주시는 첨잔인가. 음복하는 제주(祭酒)에 빗물이 섞인다. 두 해 전 꽂아둔 개나리가 이제는 대가족이 되었다. 눈으로 왕창 들어오는 노란 개나리.

외가로 가는 길에 폐교된 지 오래된 허전한 공터에 잠깐 차를 세웠다. 부산으로 전학 가기 전 3학년까지 다닌 곳이다. 우람했던 플라타너스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운동장에서 반짝거리던 모래들은 힘을 잃었다. 겨우 발등 높이의 풀이 심심하게 놀고 있다. 애기똥풀, 뚝새풀, 고깔제비꽃. 학교는 없어져도 이름은 남는다. 완대초등학교. 돌담 바깥으로 축축 늘어져 텅 빈 완행버스를 물끄러미 배웅하는 개나리, 개나리, 노오란 개나리.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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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공연 녹화방송을 보았다.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 강산에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열창하는 모습 사이로 무대에 쓰인 한 문장이 간간이 부각되었다. ‘봄이 온다.’ 우리 쪽의 웬만한 추위보다도 어쩐지 조금 더 추울 것 같은 평양에도 관객들의 박수와 웃음소리에 실려 정녕 봄이 도래하는 듯했다. 가수들이 북상할 때 나는 남하했다. 경주는 봄꽃이 먼저 찾아오는 고장 중의 하나이다. 경주를 나의 꽃고향으로 여기기로 한 이후, 이 천년의 도시를 거치지 않고는 봄의 나라로 입국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기억이 생생하게 퇴적된 토함산이 아니라 단석산을 탐방하기로 했다. 독경소리가 울려퍼지는 아담한 동네를 지나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에 도착했다. 땅에 납작 엎드려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낸 달맞이꽃이 몸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달맞이꽃은 아무도 없는 공중에 저만의 웅장한 세계를 펼칠 것이다. 고단했던 달맞이꽃의 허리춤에 햇빛이 찰랑찰랑 넘친다.

바야흐로 봄이 왔구나. 봄기운이 고슬고슬한 땅을 딛고 나아간다. 나무마다 가득한 꽃인가 했더니 꽃만큼이나 예쁜 봄잎들이다. 그중 하나는 이제 막 겨울눈에서 터져나오는 연두색의 잎, 잎, 잎. 몇 해 전 경산의 삼성산에서 보았던 쉬나무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이름에서 떠오르는 한 편의 시.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아이쿠 아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였다고 합니다//(…)//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문인수, ‘쉬!’)

경산에서 보았을 땐 오줌을 다 눈 노인의 통쾌한 얼굴이더니 경주에서 보는 쉬나무는 봄을 만끽하는 환한 웃음을 숨기지 않는다. 어이쿠, 시원한 봄기운으로 활짝 피어나는 저 노인의 해탈한 표정! 참 조용한 우주 속의 쉬나무, 운향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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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우주굴기의 한 상징인 톈궁 1호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접한 후 가끔 하늘을 보았다. 육안으로 포착할 수는 없지만 저 가물가물한 어딘가에 톈궁이 어쩌면 나를 겨냥하기도 하면서 추락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하늘과 나의 관계는 이처럼 직접적이다. 비가 내리면 내가 몸소 맞아야 한다. 누구의 허락이나 눈치를 볼 일이 없다. 언젠가 하늘로 가야 한다는 나의 운명도 지금 저 어딘가에서 차츰차츰 접근하는 중! 우주정거장 톈궁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의 생각은 강원도의 한 호숫가로 곧장 달려갔다. 작년 5월경 어느 야생화를 만날 때의 일이다.

바다와 이웃한 작은 호숫가에 엎드렸다. 발등만큼의 높이로 무리지어 핀 꽃은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된 갯봄맞이였다. 꼿꼿한 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잎, 그 겨드랑이에 붙은 연붉은색의 꽃들. 그 너머로 모래밭이 있고, 그 모래밭을 철썩철썩 일렁이는 호숫물, 그 뒤로 싱그러운 산들. 참으로 보기 힘든 귀한 갯봄맞이를 찍으며 풍경을 일별해보는데 문득 우주중력을 다룬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무중력의 공간에서 우주미아로 떠돌 뻔한 여주인공(샌드라 불럭)은 우여곡절 끝에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대기권으로 진입한다. 풍덩, 호수에 떨어진 뒤 우주복을 벗고 헤엄쳐서 가까스로 식물들이 우거진 해변에 닿아 정신을 수습한 샌드라 불럭. 눈부시게 푸르른 지구를 바라본다. 참으로 감격스럽게 도착한 그곳에서 마지막 대사를 읊는다.

THANK YOU. 그 장면을 보는데 조금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감독이라면 그에게 친구(親口)를 하게 하였을 것이다. 우주에서 가족이 기다리는 이 현실의 지구로 다시 들어온 감격에 격을 맞춘다면 모래 한 주먹을 고두밥인 양 씹어 먹어야 하지 않았을까!

혹 내가 있는 곳의 지붕에 떨어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짐짓 호기를 부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톈궁이 남태평양의 칠레 앞바다에 추락해서 소멸하였다는 속보를 전해 들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강원도 어느 해변의 갯봄맞이는 또 올해의 꽃을 활짝 피우겠지. 갯봄맞이,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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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入春이 아니라 立春이라는 걸 안 건 나이가 제법 들어서였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이야기인가. 함부로 까불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은 덤으로 했다. 하지만 생각은 또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 쓴맛이 좋아지고 나서부터 봄에 대해 매해 다르게 보려고 한다. 봄을 골똘히 본다. 무덤의 상석 같은 미음(ㅁ)에 사다리 같은 비읍(ㅂ). 그 사이를 연약한 풀 한 포기가 연결해 주는 한 글자가 아닌가. 무술년 봄에 대한 생각이다.

낮의 길이가 밤의 그것을 추월하는 춘분인 그제 눈이 왔다. 그 지독했던 추위도 이제 끝났군! 성급하게 짐작했던 사람들의 정문에 일침을 놓은 셈이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몇 해 전에는 4월에도 눈이 왔었다. 그때 나는 전북 순창의 회문산 능선을 걷고 있었다. 꽃샘추위 속에서 얼음을 잔뜩 달고 있는 대팻집나무를 만났다. 대패의 자루인 대팻집을 만드는 데 쓰이는 나무라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나무이다. 대팻집나무는 모든 나무들이 나이테를 몸 안에 품듯 해마다 자란 표시를 가지 끝에 스스로 기록해 둔다. 이 나무의 특징인 이른바 단지(短枝)라는 것이다. 나무의 조직이 단단하고 치밀한 비밀은 단지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이 단지의 꼿꼿함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대팻집나무를 다시 가만히 본다. 대패는 많은 것들을 싸고 있는 보따리 같은 단어이기에 대팻집나무 앞에 서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된다. 가지마다 엄지손가락처럼 단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대팻집나무. 그 둘레마다 돌반지, 결혼반지처럼 작은 홈들이 차곡차곡 끼워져 있다. 그것은 혹은 꼬부라지고, 혹은 비뚜름하고, 혹은 엇비슥하게, 그 어디로 나아가는 듯하다. 경복궁의 날렵한 처마 끝을 걷고 있는 잡상(雜像)들 같기도 하다. 점심 때 와서는 저녁이 되기도 전에 홀연히 사라진 뜻밖의 눈을 보면서 낭창낭창 공중 난간을 밟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대팻집나무의 단지들을 떠올렸다. 대팻집나무, 감탕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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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태순 선생이 이끄는 ‘국토학교’에 참가한 적이 있다. 때에 맞게 제철 음식을 몸으로 들이듯 계절에 따른 우리 산하의 제철 풍경을 맞이하는 현장수업이었다. 그때의 주제는 ‘해남반도와 보길도의 별천지 꽃길, 하염없는 동백나무 숲속의 산책’. 새벽에 출발하여 자욱한 안개 속을 달리다가 해남으로 접어들자 박 교장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북에서 남으로 내리닫는 산들을 보면 소위 우리들의 인생 같아요. 설악산이 사춘기의 아이라면 지리산은 중년의 신사이고 이곳 땅끝에서는 잘 익은 영감탱이 같지 않나요?” 선생님의 문자향, 보길도의 동백향에 흠뻑 취하고 귀경하는 길에 미황사에 잠깐 들렀다. 병풍 같은 달마산을 우러러보면서 언젠가 저 산꼭대기에 꼭 오르겠다는 소망을 품었더랬다.

무술년의 봄꽃을 찾아 전라도 남녘으로 달려갔다. 개화를 기대했건만 아직도 겨울의 발톱이 날카로웠다. 몇 해 전의 그 소망을 실현했다는 후끈한 마음으로 달마산의 정상에 올랐다. 멀리 바다가 막아서는 해안선이 가물가물하더니 뒤로 돌아서면 미황사 마당을 서성거리는 사람들. 하늘과 잇닿은 날렵한 공간일 줄 알았는데 조릿대와 사스레피나무가 무성한 작은 평전이 있어 넉넉한 산이었다. 과연!

미황사로 하산하는 벼랑길이다. 이렇다 할 꽃이 없는 적막 속에서 꽃 대신 소위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박 교장님의 말씀마따나 사춘기 아이에서 중년의 신사 그리고 어느덧 영감으로 근접하는 게 보통의 차곡차곡 인생이다. 조릿대, 사스레피나무만으로는 허전했던 참인데 꽃동무가 앙상한 줄기를 가리켰다. 여기 말오줌때가 많군요. 시쳇말로 이름이 좀 거시기하고 가지를 꺾으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나무이다. 봄의 잎, 여름의 꽃보다는 가을의 열매가 무척 인상적인 나무. 까만 씨앗을 톡톡 내뱉는 열매의 껍질이 꼭 어릴 적 축구공으로 가지고 놀았던 돼지오줌보를 연상케 하는 말오줌때. 올해의 잎, 꽃, 열매를 착착 준비하는 말오줌때 곁을 지날 때 아이, 중년, 영감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의 일생도 휙,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말오줌때, 고추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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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문장에는 꼬리가 있다. 행간의 의미를 읽으라는 말은 마침표 너머에 똬리 틀고 있는 그 꼬리를 놓치지 말라는 뜻일 게다. 엊그제 경향신문 이범준 기자의 ‘삼성과 법관’이라는 칼럼을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법리 따위는 애당초 글러먹은 법이라서 칼럼에 거론된 판결문의 원문을 구해서 읽어보아도 당최 무슨 뜻인지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판결문에 동원된 문장의 꼬리들의 행방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법의 문외한이긴 해도 상식의 전문가들이 아닌가.

해남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 가는 길이다.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산이고 절이다.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판결문을 거듭해서 읽어보아도 어떤 법리를 말하는지 가늠이 안 된다”는 탄식으로 시작해서 “현실은 언제나 법리보다 치밀하고 또 가혹하다”는 날카로운 진단으로 마무리되는 그 칼럼이 계속 떠올랐다. 갑자기 멀리서 눈을 의심케 하는 눈 무더기가 나타났다. 봄빛이 완연하고 자세히 관찰하면 가지마다 파릇한 새순이 움터오는 이 달뜬 시기에 웬 설경인가. 더구나 이곳은 따뜻한 이 기운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땅끝 부근이 아닌가.

햇빛을 받아 눈송이처럼 찰랑거리는 건 눈이 아니라 사위질빵의 열매들이었다. 멀리 씨앗을 퍼뜨리려고 부풀거리는 솜털에 눈이 그만 깜빡 속은 것이다. 이 덩굴식물은 조금 고약한 습성이 있다. 지면을 기다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그냥 휘감아 오른다. 오르는 것도 그냥 줄기에 매달리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만만한 관목들의 꼭대기를 누르고 앉는다. 그리고 올라탄 높이가 저의 키인 양 허세를 작렬시킨다. 여름철 잎이 무성한 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낙엽이 지고 숲의 아랫도리가 드러나는 순간이면 사위질빵의 꼬리도 들통이 나고 만다.

글이 생각의 최소한이라면 법은 상식의 최소한일 것이다. 제 한몸 가누지 못하고 남의 등에 업혀 사는 사위질빵. 원줄기에 이만큼 떨어져서 가냘프게 꽂혀 있는 사위질빵의 꼬리를 힐끗 보고 암벽투성이의 달마산으로 헥헥거리며 올라갔다. 사위질빵,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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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방에서 봄을 영접하려니 영 도리가 아닌 듯해서 남해안으로 내달렸다. 우리 국토의 울타리를 지키는 경계병인 양 건장한 체격의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거제 해금강에 바로 도착했다. 작년에 보았던 백리향의 향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은 것이다. 땅은 아직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작년 여름의 땡볕을 간직한 바다는 가벼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철썩이고 있었다.

낚시꾼들이 반질반질 닦아놓은 산길로 접어드니 우람한 육박나무가 떡 버티고 서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각나무처럼 껍질이 인생의 수수께끼처럼 벗겨지는 나무이다. 문득 길이 끊기고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눈을 부라리는 해안초소가 나타났다. 간밤의 경계근무에 곯아떨어졌는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티가 역력한 수도꼭지가 철조망 곁에 서 있지 않겠는가.

나는 수도꼭지를 보면 틀고 싶어진다. 바깥으로 나오고 싶은, 스프링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저 지하에서부터 올라와 마지막 한 걸음이 부족해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물. 딱딱하게 얼어붙은 이 계절의 추위를 풀어줄 해방군처럼 고요하고 엄숙하게 앉아 있는 물.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이 낡은 수도꼭지에는 봄을 재촉하는 그런 물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물이 나오기에는 수도꼭지가 너무 고집이 세게 보였다. 과연 물이 나올까? 수도꼭지는 왜 이제야 왔느냐며 원망이라도 하듯 처음에는 잘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고비를 넘더니 이내 차고 깨끗한 물을 시원하게 내뱉었다. 우렁차게 뛰어나온 물은 육상선수처럼 바다를 찾아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콸, 콸, 콸.

어쩌면 육박나무의 뿌리도 건드리고 나왔을 그 물맛을 굳이 표현해야 할까. 봄이 단지 나의 눈두덩이만 두드린 게 아니라 저 발뒤꿈치에까지 골고루 육박해갔다는 건 말할 수 있다. 수피가 얼룩덜룩 군복을 닮기도 한 육박나무. 올해 59번째로 들이닥친 나의 봄을 육박나무 아래에서 만끽했다. 육박나무. 녹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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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와 아리랑이 없다면? 이 겨레의 이 마음을 그 어디에 의탁하랴. 그것이 없는 것만으로 아찔할 반열의 품목으로 가야금도 들 수 있으리라. 한 달 전, 황병기 명인의 부음을 들었다. 문득 영화 <공동경비구역>에서 송강호가 김광석을 두고 했던 대사를 흉내내고 싶어졌다. 아니 왜 이리 빨리도 떠나시는 겁니까.

ⓒ김진옥

가야금 소리에 귀를 종종 적시는 한편 명인을 소개하는 글이나 인터뷰는 가급적 챙겨보았었다. 중학생 때 가야금에 반했다는 명인한테 부러운 게 있었기에 다음의 글을 적기도 했다. “… 내 마음이 쏠리는 건 5년 연상의 소설가를 평생의 반려로 맞이한 것도 아드님의 출중한 수학실력도 아니었다. 감히 가야금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그것은 황 선생이 자신이 태어난 방에서 아직도 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졸저, <인왕산일기>에서 인용함)

명인의 명복을 빌며 구석에 있는 가야금을 보았다. 오래전 동묘 풍물시장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는 것을 소리나 한번 뚱땅거려 보자는 허영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저는 기억이 안됐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제 죽겠죠. 그러면 그걸로 사라졌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하신 말씀을 떠올리며 가야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야금은 오동나무를 나룻배 모양으로 파낸 소리통에 호두나무를 깎은 안족(雁足·기러기발)을 올려놓고 명주실을 걸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명인이 가야금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갈비뼈 근처에서 꺼낸 또 다른 자기를 눕혀놓고 어르고 달래는 형국인 것도 같다. 나룻배의 몸통에 기러기의 발. 선생은 이런 가야금에 인생의 비의를 깨닫고 불현듯 떠난 것일까. ‘사람살이 머문 곳이 무엇과 같은가? 눈 위에 잠시 쉬어 간 기러기 발자국 같은 것.’ 천년 전에 이런 시를 남기고 잠시 세상을 다녀간 소동파처럼.

앞서 내가 적은 건 잘못 안 사실이었다. 선생은 가회동에서 태어나 북아현동에서 평생 머물렀다. 이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으니 그 한 뼘의 차이를 따지는 건 부질없는 일이겠다. 오동나무는 물론 호두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덧없는 시간을 실어나르는 명인의 가야금 소리 울려나올 듯! 호두나무, 가래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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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연휴 동안 나로서는 퍽 간곡한 일들이 차례차례 벌어졌다. 잠들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그믐밤에는 벗들에게 짧은 인사를 띄웠다. “설날이 이제 몇 번 남았겠나요. 아껴서 대접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면서…떡국!” 무술년 새해 아침, 모처럼 엉덩이를 높이면서 절을 한 뒤 둥그렇게 둘러앉아 음복을 하고 동그란 떡국과 함께 또 한 살을 먹었다. 모든 건 이렇게 둥글게 맞물리면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인가. 소임을 마친 제기들이 선반으로 올라가듯 언젠가는 나 또한 병풍 뒤로 돌아가겠지.

기름진 음식에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집 안에서 뒹구는 쪽을 택했다. 뱃살처럼 축 늘어진 의자에서 발이나 꼼지락거리면서 우리 선수가 금메달 따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스켈레톤(skeleton)이란 종목의 명칭은 해골이나 뼈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몇 번의 하품 끝에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부푼 배를 안고 낮잠을 잤다. 다음날 춘천 나들이하는 길에 기지개를 켜고 있을 멀리 천마산에게는 눈인사로 안부를 전했다.

마지막 휴일에는 안산-인왕산에 오르기로 했다. 행장을 꾸리면서 &lt;설특집, 나의 살던 고향은&gt;을 잠깐 보게 되었다. 고향의 밭에서 고구마를 수확하던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다. “농사일을 하다 고무신에 흙이 들어가면 밭으로 되돌아와서 흙을 텁니다. 어머니가 디뎠던 흙, 어머니가 만졌던 흙을 대하면 어머니 볼을 비비는 것 같아요….” 호미로 두둑을 팔 때마다 흙의 스켈레톤처럼 누워 있는 고구마. 저녁 메뉴로 고구마를 삶아달라고 부탁하고 집을 나섰다.

고구마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제법 있다. 제사 음식을 마련하는 어머니 곁에서 슬쩍 챙겨 먹던 고구마전이 아닌가. 몇 해 전 경향신문에서 본 ‘100년 만에 피는 고구마꽃 보셨나요?’라는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무악재 위의 육교로 감자와 고구마처럼 사이좋게 연결된 안산과 인왕산을 돌아다녔다. 스프링처럼 통통 튀는 참새들이 봄기운을 물어다 주고 있었다. 막걸리 한잔 하고 귀가한 저녁. 명절 끝의 기름진 혀를 닦아내기엔 고구마가 안성맞춤이었다. 동김치 국물로 막힌 목구멍을 뚫어가며 맛있게 먹은 고구마. 목이 조금 메었던가. 고구마, 메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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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랄, 이라고 하려다가 착잡, 이라고 말을 바꾼다. 착잡하다. 세상과 거리를 두려고, 하자니 이 또한 너무 거창하다. 기분전환이나 하려고 심학산에 올랐다고 해두자. 나 하나 운다고 세상이 달라지랴. 일산평야에 돌출한 심학산. 드넓은 평지에 홀로 우뚝하기에 그리 높지 않아도 사방의 경관이 툭 트였다. 서해로 귀순하는 한강의 마지막 용틀임이 한눈에 보인다. 강원도 심산유곡에서 출발한 가느다란 물줄기는 많은 동네-대부분 고시(考試) 따위는 거들떠도 안 보는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터전-를 굽이굽이 거치면서 두툼한 강이 되었다. 직선으로 흐를 줄을 모르는 한강은 한번 더 용틀임이라도 하듯 크게 구부러진다. 그렇게 일산을 둥글게 휘돌아 감싸니 하회(河回) 마을이 달리 없겠다. 강은 결국 바다를 찾아간다고 했던가.

 

춥다. 결빙하였던 한강의 얼음이 둥둥 떠내려와 서해와 몸 섞기 전에 대기하고 있는 게 멀리 보인다. 저건 아마도 서울이 배출한 각종 근심과 걱정덩어리들인 듯, 서초동 출신의 쓰레기도 한몫하고 있는 듯. 이른바 법꾸라지 한 마리가 일으킨 꾸중물이 잠잠해지는가 했는데 법귀족이라 칭할 만한 자들이 활개치는 형국이다. 한강 하구의 얼음들이 유난히 탁하고 불결하게 느껴졌다. 귀족의 정의는 태어나자마자 은퇴한 사람이라던가.

세 글자의 단어를 두 개 내뱉은 뒤 내려가는 길. 며칠 전 ‘한겨레 그림판’에서 본, 가슴이 뻥뻥 뚫린 채 걸어가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심학산 둘레길의 배밭삼거리에 서 있는 층층나무가 오늘따라 걸려들었다. 가지가 옆으로 층층이 뻗는 이 나무는 고약한 습성이 있다. 조금이라도 공간이 생기면 가지를 옆으로 벌려 햇빛을 독차지하려고 덤빈다. 같은 종(種)들끼리도 함께 살지 못하고 드문드문 떨어져 산다. 숲속의 폭군으로 불리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나무이다.

봄이 되면 가늘고 여린 꽃들이 또 찾아오겠지만 아직은 쓸쓸한 심학산. 찬기운이 승한 가운데 길섶에 희끗희끗한 눈들이 쌓여 있다.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김수영) 이것도 분풀이랍시고 애꿎은 층층나무를 몇 대 쥐어박아 보지만 이 더럽고 허황한 기분을 어이할꼬. 층층나무, 층층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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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떴다. 슈퍼문, 블루문, 블러드문을 한꺼번에 관찰할 수 있는 개기월식이 일어났다. 어제하고는 많이 다른 달. 내일 뜨는 것과도 아주 다른 달. 하지만 이목구비가 훤한 아나운서가 큰소리로 소식을 전해주어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먼 곳의 달은 충분히 멀리 있기에 달을 바라보는 사람과 사물 모두에게 일일이 눈을 맞추어 주었다. 이날 밤 나는 심학산 아래, 사무실 베란다에서 이 현상을 지켜보았다. 가로수로 심어진 상수리나무와 귀룽나무 그리고 계수나무가 하늘을 우러르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달-지구-태양이 나란히 정렬하는 이 황홀한 우주 현상은 2037년에 다시 일어난다고 한다. 그때도 벌레 먹은 듯한 달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하지만 20년 후엔 벌레가 내 몸을 먹고, 눈에는 달이 아니라 흙으로 가득 찰지도 모를 일이다. 운 좋게 살아 있다면 침침한 육안으로 반드시 고개를 들겠다는 웅장한 약속을 했다. 아무튼 하나뿐일지라도 저 하늘에 저 달이 있기에!

하늘에는 별, 들판에는 꽃, 가슴에는 꿈. 달에 취해 방에 들어오다가 언젠가 광고에서 본 간지러운 문구를 떠올린 끝에 나의 생각은 곧장 천마산으로 내달렸다. 잃어버린 꿈이야 그렇다치고 모처럼 별의 이웃을 보았으니 꽃 생각이 사무쳤던 것이다. 입춘 근처라지만 꽁꽁 얼어붙은 머릿속에 꽃 이름이 뱅뱅 돌았다. 꽃에 입문하고 처음 찾았던 천마산. 꽃과 나무를 가까이하려고 노력하게 되면서부터 산이 그저 삼각형 모양의 흙덩어리만은 아니게 되었다. 춘천 갈 적마다 고개를 돌려 천마산의 구체적인 안부를 묻는다. 눈밭을 뚫고 명상하는 앉은부채는 한 소식 얻었을까. 계곡 바위틈의 매화말발도리는 안녕한가. 개별꽃은 옹기종기 나부끼고 있을까. 그리고 미처 이 자리에 소개하지 못한 큰괭이밥은 어느 응달을 밝히고 있을까. 뿌리에서 바로 뻗어나온 세 장의 삼각형 잎. 큼지막한 함지박 같은 꽃잎에는 올봄에도 실핏줄이 환히 도드라지겠지. 달에 드리운 지구 그림자를 보다가 지구에 떨어진 내 그림자를 밟으면서 생각해 본다. 한 해 한 번만 피는 꽃일지라도 저 풀들이 없었더라면! 큰괭이밥, 괭이밥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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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첫 손님이 사무실에 오시어 책 한 권을 주셨다. 봉투에서 나오는 순간 그 책의 표지가 빵끗 인사를 했다. 거개의 표지들이 저를 좀 보아달라고 요란하게 비명을 지르기가 십상인데, 그저 최소한의 정보만을 담은 날씬한 책이었다. 김지연 사진 산문, <감자꽃>, 열화당. 오십에 사진을 시작해서 일흔에 책을 묶는다는 저자의 글과 작품은 여기에 함부로 옮기기가 저어할 만큼 애잔하고 솔깃했다. 표제작인 ‘감자꽃’의 이런 대목에서는 고개가 지면으로 구부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진안에서 계남정미소를 공동체박물관으로 운영하면서 사귄 마을 친구를 한 명 대 보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장금숙 할머니를 들고 나온다. 당시 팔십대 중반인 그이는 이빨이 다 빠지고 허리가 기역 자로 구부러져 있어 휴우- 가락을 몇 번이나 쳐야 빤히 건너다보이는 자기 밭에서 우리 수돗가까지 올 수 있었다.”

표지 사진이 자꾸 눈에 밟혔다. 지하의 뿌리를 실하게 하느라 따 버리는 꽃이 하도 예뻐서 부케처럼 만들어 드렸다는 감자꽃. 꽃도 꽃이지만 꽃을 들고 있는 니은 자처럼 구부러진 할머니의 손이 오래된 생각 하나를 촉발시켰다. 서강대학교에서 도교철학을 가르치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목이 멘다. 평생 농사일을 하신 당신의 손은 호미처럼 구부러져 있다.” 그 말은 금방 전염이 되어 목구멍 너머에서 짠한 마음이 불어나오도록 풍구질을 했었다. 오늘은 수제비 반죽을 해놓고 닳은 숟가락으로 감자껍질을 벗기던 어릴 적 내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하였다.

편안하다는 말은 참으로 편안하다. 이는 등받이 의자처럼 바닥에 앉아 있는 두 개의 니은 받침 덕분이 아닐까.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지만 나는 그동안 감자 앞에서 꽃을 몰랐다. 막걸리에 감자전만 좋아했지 이쁘고 고운 감자꽃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했다. 안간힘을 다해 사라지는 것의 흔적을 붙드는 <감자꽃> 앞에서 우리 어머니들의 팔 끝에 평생 달려 있다가 이제야 겨우 조금 편안해진 그 호미 같은 손이 그리는 풍경에 대하여 오래오래 생각했다. 감자, 가지과의 여러해살이풀. (사진ⓒ 김지연)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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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를 물의 행성이라고 한다. 뭍이 넓다고 하지만 물에 댈 일은 아니다. 내가 생활하는 곳은 나무의 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화장실에 가서라야 안 보이던 나를 잠깐이나마 만져보듯, 내가 담긴 장소에서 조금만 주의 깊게 사방을 둘러본다면 이 세상은 나무들에 의지하는 형국임이 틀림없다 하겠다.

거제도 앞바다에 부부처럼 떠 있는 두 개의 섬이 있다. 그래서 이름도 외도(바깥섬)와 내도(안섬). 그중에서 자연미가 더 물씬한 내도에 갔을 때 이런 점이 한꺼번에 실감이 났다. 섬이라 낮은 ‘물울타리’(함민복)가 둘러쳐졌고 바다에서 조금 나온 땅 위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내도 나무 중에서 특히 보고 싶은 게 있었다. 귀신을 쫓는다 하여 산소 주위에 심거나 관 속에 넣는다는 붓순나무였다. 부산의 유엔공원에서 식재된 것을 만나긴 했지만 자생하는 나무는 본 적이 없는 터였다. 배에서 내려 잘 조성된 일주로를 따라 급격한 비탈길을 오르자,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호위하고, 대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지형이었다. 눈물처럼 후드득 지는 꽃으로 장식을 하고, 속기(俗氣)를 쫘악 뺀 그것은 무덤이었다. 내 이제껏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명명해도 좋을 무덤.

화장실에서처럼 비좁은 섬에서 밀착된 죽음을 만나고 갑자기 안목도 좁아진 탓일까. 한 바퀴를 다 돌도록 붓순나무를 놓쳤다. 죽음은 살아 있는 것보다는 언제나 그 면적이 넓다. 원점 회귀하듯 도착한 선착장 부근의 어느 지점. 한 발 삐끗하면 바다로 미끄러지고, 이내 그 어떤 너머로 통하게 되는 곳에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를 만났다. 상록수가 우점한 가운데 잎은 지고 열매가 돋보이는 천선과(天仙果)나무였다. 하늘의 선녀들이 따먹는 과일이라 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는 나무. 주머니 없는 옷을 입는 선녀들은 입도 이렇게 작은가. 열매들이 간지럽도록 작다. 표면에 파르스름한 핏줄이 도는 듯한 열매 하나를 입에 넣어본다. 배꼽을 달고 있는 이라면 누구나 맛보다 먼저 생각나는 이가 있을 듯! 천선과나무, 뽕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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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 갔다.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포로수용소 유적지로 더 들어갔다.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과 아직도 살아있는 나무들을 더듬어보겠노라, 정문을 통과했다. 포로라니! 듣도 보도 못한 신분으로 죽기 일보 직전의 삶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 어떡하겠는가. 아수라 같은 곳에도 때는 꼬박꼬박 찾아와서 떼를 지어 밥을 먹고 중인환시리에 용변을 보아야 했다. 그러고도 오늘날까지 그 장면이 적나라하게 전시되고 있는 고약한 운명이었다.

자료관에 들렀다. 수용소 철조망의 경고판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NO TALKING OR PASSING OF ARTICLE BETWEEN THE FENCE 철망 넘어로 말 혹은 물품을 교환치 말 것.” 그 사진을 보는데 이곳에 잠시 수용되었던, 영어를 잘했다는, 말을 아주 잘 다룬 어느 시인 생각이 났다.

사람은 곤죽이 되어도 산천은 의구하다. 혹 당시를 지켜본 나무가 있지 않을까. 포로들과 사람들 사이로 휩쓸리는 동안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관광지로 조성된 곳이라 식재된 관상수가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에 나이 지긋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의 수피며 굵기며 자태로 볼 때 최근에 심은 나무는 분명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처음 보았을 때 구슬처럼 알록달록한 연보라색 꽃을 피운 나무. 지금 한겨울에는 총알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장착하고 있는 나무. 멀구슬나무였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전봇대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포로수용소에도 철조망 따위는 훌쩍 건너뛰어 전봇대가 있었다. 전봇대는 무슨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가. 고향으로 연결된 포로들의 간절한 눈빛을 그 전봇대는 얼마나 받아냈을까.

휘적휘적 걷다보니 유적지 내 철조망에 화살표와 함께 &lt;출구&gt; 표시가 나왔다. 수용소에서의 짧은 한나절이었지만 여느 곳과는 색다른 의미와 교환되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틀림없이 그때의 나무일 것 같은 멀구슬나무.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362번지의 포로수용소에서 오래 거주해 온 멀구슬나무를 네 번 뒤돌아보았다.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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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것없는 나의 몸도 나에겐 대륙이다. 좁다면 좁겠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참 많았다. 물론 모르는 게 더 압도적이다. 넓다면 또한 얼마나 넓은 곳이더냐. 나에게 속한 곳이라지만 아직도 못 본 구석이 너무 많다. 나는 여태껏 나의 전모를 한꺼번에 직접 본 적이 없다.

한 해가 교차하는 날에 지붕 아래 맥없이 앉아 있자니 왠지 억울한 생각이 일어났다. 사무실 뒤 심학산으로 갔다. 정유년의 마지막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때가 때이니 만큼 약천사의 저녁 종소리를 듣느라 조금 우회했다. 해넘이를 하러 온 사람들로 꼭대기가 빼곡했다. 사람들 뒤통수 사이로 지는 해를 간신히 볼 수 있었다. 산은 늘 좋다. 도시에서는 지금 걷고 있는 길도 행인들의 발길에 묻히기 마련이다. 산에서는 오전에 걸었던 길이 오후에도 보인다. 산에 가끔 가는 게 아니라 산에서 가끔 내려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싶었다.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언젠가 나도 산에서 사는 날이 올까. 그땐 저 나무들도 진짜 식구처럼 여겨질까.

울산에 사는 친구가 근사한 연하장을 카톡에 올렸다. 하늘을 배경으로 찍은 감나무와 짧은 신년사였다. 가끔 하늘도 보고 살자. 말도 사진도 작품이었다. 작심삼일이라고 할 때의 3일은 제법 긴 시간이다. 조금이라도 짙은 하늘도 볼 겸 심학산에 다시 올랐다. 해 바뀌고 사흘 만에 가는 무술년 첫 산행.

해가 완전히 넘어가자 시선이 짧아졌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어둑해지면 나무들은 웅크린 짐승처럼 변한다. 소나무, 신갈나무 사이로 노간주나무가 서 있다. 말쑥하게 커서 차렷한 모범생 같다. 바늘처럼 뾰쪽한 잎에 찔리면 따끔따끔 아프다. 콩알만 한 열매가 다닥다닥 달렸다. 재질이 단단하면서도 삶으면 말을 잘 들어서 코뚜레로 쓰였다는 노간주나무. 큰길로 내려서자 하늘이 꺼진 뒤 ‘쬐끄만’ 등들이 켜졌다. 간판 아래 손님들이 불판에 둘러앉아 있다. 소는 고기가 되고나서야 코뚜레를 벗어날 수 있었겠지. 모가지에 퉁소를 장착한 듯 새들이 크게 울며 날아갔다. 노간주나무, 측백나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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