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24건

  1. 2018.07.17 까치수염
  2. 2018.07.10 접시꽃
  3. 2018.07.03 선백미꽃
  4. 2018.06.26 기생꽃
  5. 2018.06.19 동의나물
  6. 2018.06.12 감자난초
  7. 2018.06.05 산작약
  8. 2018.05.29 바위종덩굴
  9. 2018.05.23 왕제비꽃
  10. 2018.05.15 대성쓴풀
  11. 2018.05.08 바위말발도리
  12. 2018.05.02 들쭉나무
  13. 2018.04.24 복사나무
  14. 2018.04.17 개나리
  15. 2018.04.10 쉬나무
  16. 2018.04.03 갯봄맞이
  17. 2018.03.27 대팻집나무
  18. 2018.03.20 말오줌때
  19. 2018.03.13 [이굴기의 꽃산 꽃글]사위질빵
  20. 2018.03.06 육박나무

오래된 기억이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이런 요지의 오프닝 멘트를 들었다. 두 사람이 눈밭을 걸었는데 발자국은 하나뿐일 때, 그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 말대로라면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업혀갔다는 이야기 아닌가. 문득 예수님과 부처님이 떠올랐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업어달라고 두 분의 뒤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형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연암 행적을 좇아가는 열하일기 답사에서도 그와 비슷한 궁리가 일어났다. 연암의 발길에 내 발자국을 포개려는 건 퍽이나 무망한 일이다. 238년 세월은 연행사들의 흔적을 지우기엔 넉넉한 시간이다. 비행기, 기차, 버스를 차례로 갈아타며 인천-대련-단동으로 이동하는 동안 압축된 풍경에서 길은 많이 생략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바퀴를 벗어나 내 발로 걷는 기회가 왔다. 연암이 토해낸 문장들은 주위 풍경과 출렁출렁 몸을 반죽했기에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한 걸음마다 한 문장으로 쌓아올린 게 <열하일기>이겠다.

연행길의 가장 힘든 코스였다는 청석령 고개. 먼지 나는 신작로를 걸어서 오르니 연암이 <열하일기>에 묘사한 풍경이 나타났다. 관제묘가 보이고 수령 300년은 훌쩍 뛰어넘을 것 같은 수양버들이 자리하고 있다. 풍채 좋은 이의 엉덩이와 궁합을 딱 맞추는 돌도 수많은 나그네를 맞이한 듯 반질반질하게 닳았다. 필시 연암 일행도 쉬어갔음에 틀림없을 것만 같은 나무 그늘에서 오래 서성거렸다.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면 연암이 요동벌판을 맞닥뜨리기 전에는 중국의 산천경개에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란 짐작도 든다. 산의 골격과 나무의 체격들이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런 나무와 풀들 중에서 아주 친근한 꽃 하나가 있다. 그때의 조선에서도 흔했을 까치수염이다. 흰 꽃들이 다닥다닥 모여서 날씬한 형태를 이루고 있는 까치수염. 줄기에 털이 빽빽하다.

고금을 막론하고 길 위에선 자신의 보폭으로 걸어야 하는 여행객들. 이제 또 어디로 가야 하나. 어찌 보면 큰 물음표 같더니 다시 보면 거꾸로 꽂힌 우산의 손잡이 같기도 한 까치수염을 그러쥐면서 멀리 북경 쪽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까치수염,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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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답사 가는 길. 238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서울에서 출발했지만 연암은 무려 한 달, 후래자들은 고작 한나절 만에 압록강에 도착했다. 무언가 크게 새치기한 기분이 들었다. 세례받듯 압록강변에서 하룻밤을 자고 책문을 지나 대륙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지 말아야 하듯 벌판이라는 단어 앞에 다른 지역은 얼씬거리면 안된다. 요동벌판이다.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의 이정표가 되었던 요양(遼陽)의 백탑은 이제 고층빌딩에 가려 옛 정취가 사라졌다.   

연암을 흉내내 무슨 감정이 일어날까 목구멍 너머를 쥐어짰지만 아무 기미가 없다. 휘황한 불빛 아래 백주만 들이켜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산책 삼아 백탑공원에 가니 부지런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침이 있는 삶이었다. 탑돌이, 기공체조 그리고 제기를 차는 중국인들. 몇몇이 어울려 제기를 빌려 함께 놀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제기. 내 발목에 차인 뒤 없는 길을 더듬으며 올랐다가 공중의 기(氣)를 기웃거리고 내려오는 제기를 보는데 연암이 압록강을 건너며 했다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자네, 도(道)를 아는가. (…) 서양인은 기하학에서 하나의 획을 분별할 때, 하나의 선이라 말하는 것으로 그 은미함을 드러내지 못할 경우 ‘빛이 있고 없는 사이’(有光無光之際)라고 한다네. 불교에서는 이에 대해 ‘붙지도 않고 떨어지지도 않다’(不卽不離)라고 말하지. 그러므로 그 경계(際)에 잘 처신함은 오직 도를 아는 사람만이 가능하니….”

공중에 붙지도 못하고 발에 닿으려면 그냥 차올리니 떨어지지도 못하는 제기. 한국이 독일을 납작하게 만든 것처럼 축구에서 이기지 못할 상대는 없다. 하지만 제기차기는 하늘과 겨루는 것이니 스스로 그만두는 수밖에 없겠다. 이윽고 공원을 빠져나오는데 새로 보이는 풍경 속에 꽃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백탑 아래 정열적으로 핀 접시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보이는 꽃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니 더욱 크고 중국답게 빠알간 접시꽃. 연암의 눈길도 분명하게 묻어 있을 백탑과 중국제(製) 접시꽃을 보면서, 제기는 순우리말이라지만, 오늘은 이렇게 적고 싶어졌다. 제기는 際氣! 접시꽃, 아욱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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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은 특별한 산이다. 내가 콩나물시루보다 조금 웃자란 크기였을 때 어머니 따라 해인사를 갔었다. 가을걷이 끝낸 동네 어른들과 모처럼 합천의 큰 절로 야유회를 가는 길이었다. 오래전의 일이라 희미하고도 흐릿하지만 몇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그때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절에 갔다면 오늘은 내가 어머니를 업고 산으로 간다. 가파른 만물대 코스를 훑고 칠불암 지나 마지막 상왕봉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활짝 핀 꽃이 있다.

산중의 꽃 앞에서 굴기(屈己)하기를 거듭한 이래 꽃도 꽃이지만 식물이 처한 사정이나 상황에 주목해 왔다. 그때마다 맞춤한 시들이 찾아와 주었다. 한편 시를 먼저 염두에 두고 그 장소를 찾는 적도 있다. 가령 김달진의 ‘샘물’은 오래 가슴에 담고 다닌 시였다. “숲속의 샘물을 들여다본다/ 물 속에 하늘이 있고 흰 구름이/ 떠 가고 바람이 지나가고/ 조그만 샘물은 바다같이 넓어진다/ 나는 조그만 샘물을 들여다보며/ 동그란 지구의 섬 우에 앉았다”

산은 제 높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일까. 웬만한 정상은 바위로 그 뚜껑을 덮어놓는다. 가야산의 상왕봉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궐 같은 바위에 오르니 여태껏 찾았던 그 광경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지름 다섯 뼘에 깊이 두 뼘 정도의 바위 속 웅덩이, 우비정(牛鼻井)이 있다. 하늘과 구름이 들어가기에 충분히 넓었다. 물은 탁했지만 그건 나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다. 산오이풀이 뿌리를 내리고 비단개구리 일가가 퐁당퐁당 살고 있다. 신나게 장난치는 올챙이 형제들. 근심 많은 엄마 개구리의 큰 한숨인가. 가끔 기포가 뻐끔뻐끔 올라왔다. 

조그만 샘에 앉아 물낯에 비친 띵띵한 사내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동그란 지구의 테두리를 아슬아슬하게 걸어서 내려오는 길. 좀전에 본 꽃은 아직도 피어 있다. 올라갈 때 본 꽃 내려와서 찍으니 선백미꽃이다. 몇 층의 잎이 돌려나고 잎겨드랑이에서 노란 꽃이 다투어 피어난다. 제주를 제외한 지역에 살지만 이런 척박한 곳에까지 뿌리를 내린 꽃이 퍽이나 대견하다. 풀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이곳의 선백미꽃은 경건함에 제 일생을 투신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해인사 마당의 탑처럼 꼿꼿하게 서 있는 선백미꽃. 박주가리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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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천 년 전 형성된 고산습지의 색다른 풍경에 직접 몸을 적신 영향일까. 서울에 오고서도 대암산 용늪을 다녀온 후유증이 오래갔다. 허벅지에 군불이라도 땐 듯 기분 좋은 부작용이었다. 입산하기도 등산하기도 힘든 곳을 다녀왔다는 생각보다도 늪에 체류한 30여분 동안의 변화무쌍함에 압도된 탓이다. 눈앞의 식물도 식물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출몰을 거듭하는 안개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늙어가는 호기심이 모처럼 작동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그림ⓒ이해복

그 와중에 말석에 ‘낑기기로’ 한 <열하일기> 답사가 다가왔다. 여행을 준비하며 자료를 읽는데 이런 대목이 꼭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다. 지극히 미미한 사물들, 이를테면 풀·꽃·새·벌레와 같은 것도 모두 지극한 경지를 지니고 있지. 그러므로 이들에게서 하늘의 묘한 이치를 엿볼 수 있다.”(<나의 아버지 박지원>, 박종채 지음, 돌베개)

꿈결처럼 다녀온 용늪과 머나먼 타국의 열하를 어디 단순 비교하랴. 하지만 ‘한가롭게 지내며 고요히 앉아 이치를 궁구하고 관찰하기를 좋아하셨다’는 연암을 생각하자니 용늪 데크에서 엎드려 꽃을 찍던 꽃동무들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날, 세상과 격리된 용늪에서는 아무런 말이 필요 없었다. 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만 뱉을 뿐이었다. 용의 등에 올라앉듯 데크에 엎드려 눈앞을 응시하면 사초과의 야윈 줄기 사이로 흰 꽃들이 수줍게 피어 있었다. 북방계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산지대에서만 드물게 사는 귀한 기생꽃이었다. 설악산, 지리산에서 본 적이 있지만 그것들과는 확연히 크기가 작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작아서 노안이 찾아온 나에겐 보일 듯 말 듯 하는 기생꽃.

기생꽃이라고 할 때의 기생은 우리가 선뜻 짐작하는, ‘말을 이해하는 꽃’을 뜻한다고도 하는 그 기생이다. 이름이 주는 강렬함도 있지만 잎은 잎대로 또한 꽃은 꽃대로 땅을 짚고 애틋하고도 야무지게 일어선다. 잊으려야 잘 안 잊히는 서늘한 꽃이고 묘한 이치를 엿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꽃. ‘모타리’는 작아도 참 견결하다는 인상을 주는 꽃, 기생꽃.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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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만의 일일지라도 냄새 자욱한 동네에서 몸을 빼내 산으로 오를 때 아주아주 먼 옛날의 일도 한번씩 가늠해 보게 된다. 머리로 받드는 이 허공이야 뭐 그리 큰 변화가 있을까. 고구려적 하늘 풍경도 오늘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터. 종내에는 이런 과감한 생각도 든다. 수억 년 전의 시공간도 이 바위, 이 계곡물과 직방으로 연결되는 것!

ⓒ이해복

눈치 따위 필요 없는 상상력을 마구 동원하면서 몇몇 굽이와 고비를 지나 몸이 혼곤히 반죽이 되고서야 대암산 용늪에 도착했다. 용이 쉬고 갔다는 전설을 간직한 용늪. 수억 년 전 그 용이 휘젓고 노닌 흔적처럼 데크가 있다. 길게 용틀임이라도 하는 형상이다. 멀리서 보면 기계체조 선수들의 평균대만 한 데크에서는 반발짝도 옆으로 튀어나가서는 아니 된다. 곱게 쌓인 시간의 자식들이 그만큼 귀하고 용하기 때문이다.

별안간 날씨가 어두워진다. 무슨 조화라도 부릴 듯한 공중이다. 바람이 분다. 안개도 슬그머니 따라 나온다. 순식간에 앞선 이들의 허리가 반으로 잘리고 어깨마저 파묻힌다. 하지만 이내 안개무덤에서 발굴되듯 환히 복원되는 행렬들. 누가 있어 한 페이지를 훌렁훌렁 넘기는 것 같은 용늪의 신기한 풍경이다. 가까이 있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핀 안타까운 꽃들이 많다. 이 높은 산의 위에 오갈 데 없는 물들이 모여 늪을 이루고 누대에 걸쳐 기르는 꽃들이다. 엎드리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겨우 보는 꽃.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건 아니라지만 여기라서 그만큼 엄숙하고 고결한 꽃들이다. 기생꽃, 비로용담, 끈끈이주걱 등 귀한 꽃들도 있다지만 내 눈을 호리는 건 용늪을 거의 빠져나갈 무렵 만난 동의나물이었다.

용늪의 동의나물은 꽃은 모두 사라지고 열매가 활짝 벌어졌다. 기하학적 모양의 쟁반 같은 열매 안에 슬하를 떠나지 못한 자식들처럼 씨앗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곰취하고 닮아 잎이 큼지막하되 쌈으로 먹을 수 없는 위험한 독초란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또한 너무 흔한 것이라지만 그래서 차라리 더욱 눈길이 가는 용늪의 동의나물.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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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의 대암산 용늪은 워낙 중요한 생태계보전지역이라 등산하는 것도 힘들지만 입산하는 것도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여러 기관의 사전허가를 받아야 하고, 생태마을의 주민 가이드와 반드시 동행해야 한다. 나무꾼의 후예를 뒤따르는 울긋불긋한 복장의 등산객들. 널찍한 임도를 따라 걷는데 쉬어가라는 표정으로 너래바위가 앉아 있다. ‘대암산에 나무하러 오던 나무꾼들이 쉬어가던 곳’이라는 안내문도 실제 붙어 있다.

지금은 얕은 개울 위의 출렁다리로 건너지만 예전에는 ‘사방이 하나의 넓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어느 깊숙한 평전에 이르니 또 한번 나무꾼이 등장한다. 지명이 어주구리(魚走九里)라는 곳인데 이런 재미있는 사연이 적혀 있다. “용늪에서 살고 있던 물고기가 용이 승천하는 소리에 놀라 도망치다가 나무꾼에게 잡혔는데 다음날 나무꾼이 용늪에서 도망쳐온 거리를 재어보니 십리(十里)에서 조금 모자라는 구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족은 들어보았지만 어족(魚足)은 처음 듣는다. 용은 물론 뱀과 물고기 그리고 나보다 먼저 이 길을 지나간 나무꾼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나 엮으려는데, 길섶의 난초 하나가 맞춤하게 눈으로 들어온다. 많은 동물들의 발길을 용케 피하고 오늘 나의 눈길에 걸려든 그 꽃의 이름은 감자난초.

평생은 아니었지만 한나절이나마 어설픈 나무꾼이었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그땐 소먹이도 같이했다. 골짜기에 소를 풀어놓고 멱을 감은 뒤 지게 지고 다시 산으로 갈 때 감자 몇 개를 챙겼다. 이른바 ‘감자산꽃’을 하려는 것이다. 개미집처럼 정교하게 땅을 파고 돌을 달군 뒤, 물을 뿌려 그 증기로 칡잎에 싼 감자를 쪄서 먹는 우리들의 산중놀이였다.

감자난초는 땅속으로 두더지처럼 기어가던 뿌리의 일부가 비대해진다. 그 알줄기가 마치 감자 같다고 해서 감자난초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알줄기에서 단도 같은 잎이 1~2장 나오고 꽃대도 꼿꼿하게 뻗어나온다. 감자산꽃할 때 먹은 퍽퍽한 감자맛을 추억하며 올망졸망 달린 꽃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감자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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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둥둥 내 낭군 어허 둥둥 내 낭군, 도련님을 업고 보니 좋을 호자가 절로 나, 부용 작약의 모란화, 탐화봉접이 좋을씨구.” 춘향전 사랑가의 한 대목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아마 요샛말로 원예종일 것이다. 야생의 짐승을 가축화하듯 화단의 식물로 바꿔놓은 것들이다. 나중에는 베갯머리나 이불의 무늬로 들어앉아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싸움을 지켜보았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뜰 안의 손바닥만 한 정원으로 불러들인 작약도 그런 것 중의 하나이다. 하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으니 멀리 자연에서만 친견할 수 있는 종류도 있다. 참작약, 백작약 그리고 산작약. 이 중에서 산작약은 무척 귀한 꽃이다.

ⓒ이해복

 

꽃을 두고 우열을 가리는 게 참 바보 같은 일일지라도 산중을 헤매는 동안 고만고만한 것을 보다가 홀연 큼지막하게 우뚝 서 있는 꽃 앞에서 눈이 번쩍 휘둥그레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흰 꽃잎에 노오란 기관이 오밀조밀하게 밀집한 백작약. 깔끔하고 기품 있다.

갑자기 훅 더워졌다. 작열하는 태양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날씨다. 영월의 어느 야트막한 산의 계곡을 줄창 헤매고 다녔다. 사전정보를 갖고 찾아간 산작약은 누군가 연약한 꽃대를 댕강 분질러놓았다. 시대를 격하여 나타난 변사또 같은 놈이 저지른 소행인 듯했다. 씁쓸한 기분을 달랠 겸 더욱 헤매다가 뜻밖의 산작약을 만났다. 백작약은 여러 번 보았지만 산작약은 처음이다. 꽃에게는 나보다 먼저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 어느 큼지막한 애벌레가 푹신한 수술과 암술에 파묻혀 꽃잎에 주둥이를 대고 있다. 나 따위는 도저히 침범하지 못할 자연끼리의 접촉, 그들만의 사랑법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산작약은 무리지어 있지 않다. 홀로 한 송이만 있어도 주위를 압도하고도 남는다. 원줄기에서 뻗어나간 잎줄기에 3장의 잎이 달린다. 껑충한 대궁 끝에 강렬하기 이를 데 없는 오직 하나의 꽃을 올려두는 산작약. 보물을 두고 오는 것 같아서 자꾸 뒤돌아보면, 빛과 그늘을 하나로 묶으면서 그윽하게 서 있는 산작약. 여러 장의 잎을 그러모은 뒤 하나의 고고한 꽃으로 통일(統一)시키는 듯한 산작약!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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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도시를 떠나 강원도 영월행이다. 이번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산작약을 보러 간다. 사전정보를 조금 가지고 출발했건만 현장 사정은 여의치가 아니했다. 헤매고 헤매다가 겨우 발견했는데, 이럴 수가, 어떤 자의 소행인가, 꽃봉오리를 댕강 잘라놓지 않았겠는가. 씁쓸한 기분으로 한반도지형과 선돌 등을 대강 둘러보고 태백으로 건너왔다. 여러 해 쌓인 낙엽들이 뱉어낸 먼지로 매캐해진 목구멍을 청소할 겸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는데 속보가 떴다.

그중에서도 ‘연합뉴스’의 자막들이 좋았다. 단풍잎처럼 붉은 바탕의 단문들을 이어 붙이면 드라마틱한 한 편의 시가 될 것도 같았다. ‘세 번의 포옹과 세 번 이상의 악수’라 하면 괜찮은 제목일까. 퀴퀴한 여관방에서 조금 불콰한 기운에 기대 몇몇 벗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얼마 전 먹은 평양냉면을 김치국이라 여긴 탓인지 아무런 대꾸조차 없었다. 다만 한 친구가 나의 흥분을 차분하게 진압하여 주었다. 또… wait and see!

오후 3시. 그 시각은 나에게도 있다. 그것도 매일 찾아온다. 산으로 들면 으레 그러는 것처럼 햇빛이 있는 한 산중에 머물려고 한다. 굳이 맞추자는 건 아니었지만 어제의 여운이 남았는지 시계바늘이 직각을 이루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모르고 꽃을 찾아 헤매는 동안 천하가 뒤집어지는 일은 바로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는 궁리가 문득 찾아든 것이었다.

지금은 첩첩산중의 깎아지른 절벽 앞이다. 침묵이 견고하게 뭉친 바위는 산이 내심 지키려는 위엄 같기도 하다.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바위에 바위종덩굴이 달려 있다. 바위종덩굴은 전인미답의 저 벼랑에 앉아서 스스로 귀한 꽃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으니 세상이라고 일어날 일만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모든 신하가 겁에 질려 사람이 갈 수 없는 길이라며 몸을 뺄 때, 암소를 몰고 가던 노인이 척 나타나 벼랑 끝의 꽃을 따서 수로부인에게 바치는 것처럼, 누군가는!

작년에 들렀다가 허탕을 쳤기에 더욱 흐뭇하게 본 꽃. 불과 일 년 만에 없던 곳에서의 새로운 길을 예감하면서 허공을 걸어가는 바위종덩굴을 오래 우러러보았다. 바위종덩굴. 미나리아재비과의 낙엽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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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매미는 언제쯤 귓전을 두드릴까, 생각하다가 그보다 먼저 개미와 나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순결한 지면에 먹물로 개미, 개미, 개미라 쓰면 검은 행렬이 꼬물꼬물 어디로 진군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길에서 만나면 그냥 꾹꾹 눌러 밟기가 일쑤였다. 아파트에는 개미가 없는 줄로 알았지만 이사하고 방바닥을 쓸면 한두 마리의 개미가 쓰레받기에 얼씬거렸다.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창문 너머로 휙 던져버린 경험이 여러 번이다.

ⓒ이해복

요즘 개미에 관해 실감나는 게 있다. 그것은 마음만 먹는다면 몇 발짝 이내에서 개미와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이는 내가 완벽하게 그들에게 포위된 형국임을 뜻하는 게 아닐까. 노벨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무크의 소설, &lt;내 이름은 빨강&gt;의 첫 문장은 파격적이되 명징하다.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뉘라서 주인공의 저 운명을 피할 수 있으랴. 언젠가 나도 그 신세가 되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올 손님은 아마 개미일 것이다. 혹 오래전 나에게 당했다가 몇 생을 거듭난 그 녀석일지도 모를 일!

평창을 찾았다가 정선으로 넘어가는 어느 길목에서 희귀한 꽃을 만났다. 물소리가 은근한 공터에 차를 대고 개울을 건너니 멸종위기식물 안내문과 철조망이 있었다. 왕제비꽃 자생지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제비꽃은 종류가 많다. 제비꽃만을 다룬 단행본이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 게 제비꽃의 세계이기도 하다. 제비꽃은 원줄기의 유무에 따라 크게 구분된다. 대부분의 제비꽃이 앉은뱅이 방석처럼 지면에 도톰하게 퍼져 있는 것에 비해 왕제비꽃은 원줄기가 뚜렷하다. 흰 꽃은 잎의 겨드랑이에서 나온다. 제비꽃 중에서 키가 가장 커서 무릎을 때릴 정도이다. 그래서 왕을 이름 앞에 얹었나 보다.

왕제비꽃은 그 경계를 간단히 뛰어넘어 바깥으로 진출해 있었다. 쪼그리고 앉아 왕제비꽃을 보는데 개미 한 마리가 꽃과 잎을 드나드는 게 아닌가. 제비꽃을 퍼뜨리는 데 개미가 큰 역할을 한다. 개미와 나는 오늘 또 이렇게 얽혔다.

내가 매미를 기다리듯 성질 급한 개미는 벌써 씨앗을! 왕제비꽃, 멸종위기 2급,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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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재발견이었다. 2018년 4월27일. 그날의 일은 모두 녹화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난 후에라야 객관적 거리도 확보되고 그 전모가 눈으로 들어온다. 한차례 흥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것은 처음 만나 악수한 뒤 잠깐 북측으로 월경(越境)하는 사진이었다. 이제껏 적대적이었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금단의 선을 넘는 뒷모습.

사람의 진면목은 뒷모습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광명한 세상에서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本人)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지(奧地)인 뒷모습. 그것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뒷모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뒷모습만을 찍은 사진도 좋지만 밀도 높은 글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십쯤에 <뒷모습>을 접했다. 오십이면 그 경지에 오르기를 소망했건만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시골에서 벌초할 때, 풀을 베고 난 뒤 모두에게 부탁해서 뒤로 돌아선 모습을 찍는다. 어쩌면 무덤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뒷모습이기도 하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뒷모습. 거기에는 홀가분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돌아서 있는 형님들은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지!

지난주에는 평창의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남북회담의 물꼬를 터준 올림픽의 열기는 옛일이 되었고 봄맞이 준비로 바쁜 어느 무덤가에 뛰어들었다. 살아서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헤어지지 말자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아래 여러 봉분 사이로 야생화가 퍽 다양했다. 지하로 가는 통로인 듯 구슬붕이, 무덤 봉우리엔 노란 솜방망이,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단박에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든 건, 아주아주 희귀한 대성쓴풀이었다. 손가락만 한 키이지만 네 장의 야무진 꽃잎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는 대성쓴풀. 굳이 입에 넣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쓴맛이 왕창 풍겨 나오는 대성쓴풀. 멸종위기 2급,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그림ⓒ이해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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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카메라로 힘껏 찍어보지만 시간의 강물이 어느 서랍에 처박을지 그 허망한 기억을 어이 믿을 수 있겠나. 하지만 야생화에 입문하고 천마산에서 처음 본 꽃들은 아직도 뚜렷하다. 그때의 공책을 뒤적이면 다소 생소한 이름과 함께 이런 간략한 설명이 있다. 좁은 바위틈, 그 깊고 컴컴한 허방을 짚고 자라는 매화말발도리… 기특했다.

적어도 꽃이름 100개는 중얼거리자고 시작한 꽃산행, 그것으로 끝낼 수가 없었다. 높든 낮든 산행을 끝내고 골짜기를 빠져나오면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기분에 젖어들기도 했다. 비록 하루 만의 일이지만 산이 배출한 졸업생이라는 자부심은 또 한 주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좋았다.

매화말발도리는 주로 바위를 딛고 살아간다. 바위는 햇빛은 쉬이 섭취하겠지만 비는 저축할 겨를도 없이 흘러가는 장소이다. 왜 이 나무는 이런 불리한 조건에 거처를 정한 것일까. 나무는 바위에 초라하게 빌붙기는커녕 아예 바위를 쪼개기도 하면서 악착같이 자란다. 그 기세에 자주 눈길이 가다가 매화말발도리와 비교되는 바위말발도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은 아주 비슷하지만 가지 끝에 결정적 차이가 있다고 했다… 궁금했다.

몸에 뼈 있듯 산에는 바위 있다. 으레 바위는 매화말발도리를 품고 있었다. 바위 앞으로 갈 때마다 바위말발도리가 간절해졌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바위말발도리가 자주 출몰한다는 연천의 고대산으로 가는 길. 제2등산로를 오르자 엉거주춤 그러나 아주 편하게 앉아서 이제 오느냐며 반겨주는 바위가 있다. 그 바위가 거느리고 있는 깨끗하게 흰 꽃을 보는데 감이 왔다. 맛있는 알사탕을 빨아먹겠다는 심정으로 바위로 접근하여, 바위에 이끼처럼 착 달라붙어, 꽃을 관찰하였다… 과연!

매화말발도리는 작년 가지, 바위말발도리는 올해 가지에 꽃을 내놓는다. 새것은 새로워서 좋고 묵은 건 묵어서 더욱 좋다. 일견 사소해 보이지만 둘을 구별하는 그 결정적이고 우주적인 차이, 바위말발도리의 가지 끝에서 나는 그만… 까무러쳤다. 바위말발도리,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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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를 출발한 대통령 일행이 자유로를 타고 판문점까지 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공중의 카메라는 건방진 건물들을 납작하게 만드는 한편 아무 걱정 없이 북으로 뻗어나간 숲을 융단처럼 푹신하게 담아내었다. 연두에서 초록까지, 색의 파노라마로 일행을 호위해주는 좌우의 나뭇잎들을 보자니 우리 사람의 일이란 작든 크든 결국 이 식물들의 손바닥 안에서 벌어지는 것임을 실감했다. 1953년생 소나무를 심고 난 뒤, 남북의 두 정상이 주위를 물리친 채 숲속에서 다정한 도반처럼 말, 표정, 손짓을 섞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도보다리 바로 곁에서 빵긋 웃는 건 조팝나무, 바람을 영접하는 건 갈대, 낮말을 알아듣는 건 버드나무이지 않을까.

한반도의 계절과 정치에 실질적인 봄이 오는 것을 체감하면서 많은 이들이 평양냉면을 이야기할 때 나는 하나 더 물목을 추가하고 싶었다. 웬만한 술꾼들은 알겠지만 냉면은 안주로도 정말 제격이니 이에 어울리는 들쭉술을 빠트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나의 생각은 백두산으로 곧장 달려갔다. 야생화에 입문하고 이듬해 떠난 꽃산행. 남에서는 주로 고산지대에서 겨우 자생하는 북방계 식물들이 그곳에서는 발에 차일 만큼 흔했다. 그중에서도 파르라니 깎은 듯 푸르디푸른 건 들쭉나무 열매였다. 한 주먹 따서 입에 넣으면 들쭉술의 원액인 듯 볼을 빨갛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던 들쭉나무.

토요일의 임진각은 공기부터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특산물코너로 갔다. 들쭉술 있습니까. 그간 사이가 너무 안 좋아서 물건을 못 받았어요. 가게 주인은 두 손을 모으며 미안해하면서도 설레는 기대를 감추지 아니했다. 우리 대통령은 다시는 이 길을 되돌아가지 않는다 하셨다. 내 혀끝으로 먼저 북녘과 화끈하게 접촉할 날도 머지않았으리. 들쭉나무는 빙하기 때 백두대간을 거쳐 제주도까지 내려왔다가 온난화가 진행되자 한라산, 설악산의 꼭대기로 빨치산처럼 피신한 나무이다. 작년 설악산에서 만난 들쭉나무에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그 야무진 꽃을 떠올리며 파주-개마고원-백두산으로 이어지는 꽃산행 길도 그려보는 흐뭇한 봄밤! 들쭉나무, 진달래과의 낙엽소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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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서에서 접했던 조각품을 육안으로 만질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흐린 날씨와 그늘을 사랑했다는 자코메티. 그의 조각상을 보는데 ‘쪼대’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 조몰락거렸던 검붉은 찰흙이 쪼대다. 시골 뒷동산 진달래 덤불 근방에서 파낸 쪼대로 어설프게 만들었던 조각처럼 자코메티의 두상은 아주 거칠고 투박하였다. 드디어 명상의 집. 그 유명한 <걸어가는 사람>이 부지런히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지만, 아쉬워라, 사람이란 몸은 물론이요 그 몸에서 뻗어나오는 그림자까지 포함하는 것일진대, 달랑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조각만을 중앙에 전시해 두고 있지 않은가.

도떼기시장 같은 전시장을 빠져나와 집결장소인 송파역으로 이동했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가 이끄는 식물탐사대의 무술년 첫 산행이 있는 날이다. 오후 2시가 되자, 일행을 태운 버스가 산청의 동의보감촌을 향해 부릉부릉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허준의 발자취가 묻어 있는 필봉산과 왕산을 오르는 길. 오고가는 것으로 가득 찬 산중에서 자코메티의 한 어록이 자꾸 떠올랐다. “인생에서 그 부질없는 것들을 걷어내고 그냥, 무작정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보이는 대로 실제 크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자코메티. 큰 작품을 만들려고 높이를 키우다보니 가늘고 긴 자신만의 형상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물오른 국수나무 가지에서, 말라비틀어진 진달래의 열매 껍질에서 ‘걸어가는 사람’의 형상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었다. 이제 막 나무에서 걸어나온 사람들, 식물성의 눈빛들!

벌써 확 들이닥친 여름의 기운이 물씬하다. 류의태 약수터 아래에서 많은 꽃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활짝 핀 복사나무가 눈을 때린다. 개울물가에서 보아야 제격인 나무이다. 이태백의 ‘산중문답’의 한 대목, 복사꽃 떨어져 아득히 물 위로 떠내려가네, 그 그윽한 풍경을 선뜻 데리고 오는 복사나무. 흘러가는 물 옆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복사나무. 하얗고 붉은 꽃잎과 그 꽃잎 뒤로 너무나도 선명한 초록의 잎이 그림자처럼 빠져나와 도드라지게 받쳐주는 복사나무. 장미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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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유리식탁에서 1식3찬의 아침을 받는다. 보리를 섞은 쌀밥, 된장을 푼 쑥국에 무깍두기, 머위나물 그리고 고등어 한 토막. 보름달 같은 접시에 골고루 담긴 것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고 먹는다면,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혀가 제대로 맛을 알겠는가. 매일 반복되는 이 행위를 거룩한 식사(食事)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젓가락 왕복운동과 어금니 저작운동이 연속되는 행동(行動)에 불과하지 않을까.

며칠 전 한식이라 고향으로 향했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무주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드니 느낌이 달라진다. 벚나무 가로수가 내 속도에 맞추어 다투어 피어나는 건 아닐 테지만 구천동 지나 덕유산 빼재터널을 지나면서 거창으로 가까워질수록 꽃들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아예 꽃터널인 곳도 있다. 벚꽃구경 하겠다고 여의도 갈 게 아니네요! 큰형수님이 한마디 던지는데 벌써 오무마을 동청이다. 농사가 아직 본격 시작되기 전이라 조금 여유가 느껴지는 시골내음을 흠씬 들이마셨다. 사과향도 조금 섞인 듯 달콤한 벚나무 꽃공기!

비 부슬부슬 내릴 때의 산소는 그 어딘가로 연결되는 장소이다. 무덤은 식물과 곤충들에게도 명당이다. 그늘 하나 없고 통풍과 배수가 잘된다. 또한 물은 이렇게 직방으로 들이쳐 공급된다. 양지꽃, 민들레가 잔디 사이에 숨어 있다. 두리번거려 보지만 아쉽게도 할미꽃은 없다. 그간 잘 계셨나요? 어머니 보내신 고들빼기, 뽀리뱅이가 무덤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아버지 따라주시는 첨잔인가. 음복하는 제주(祭酒)에 빗물이 섞인다. 두 해 전 꽂아둔 개나리가 이제는 대가족이 되었다. 눈으로 왕창 들어오는 노란 개나리.

외가로 가는 길에 폐교된 지 오래된 허전한 공터에 잠깐 차를 세웠다. 부산으로 전학 가기 전 3학년까지 다닌 곳이다. 우람했던 플라타너스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운동장에서 반짝거리던 모래들은 힘을 잃었다. 겨우 발등 높이의 풀이 심심하게 놀고 있다. 애기똥풀, 뚝새풀, 고깔제비꽃. 학교는 없어져도 이름은 남는다. 완대초등학교. 돌담 바깥으로 축축 늘어져 텅 빈 완행버스를 물끄러미 배웅하는 개나리, 개나리, 노오란 개나리.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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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측 예술단의 공연 녹화방송을 보았다. 조용필, 최진희, 이선희, 강산에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열창하는 모습 사이로 무대에 쓰인 한 문장이 간간이 부각되었다. ‘봄이 온다.’ 우리 쪽의 웬만한 추위보다도 어쩐지 조금 더 추울 것 같은 평양에도 관객들의 박수와 웃음소리에 실려 정녕 봄이 도래하는 듯했다. 가수들이 북상할 때 나는 남하했다. 경주는 봄꽃이 먼저 찾아오는 고장 중의 하나이다. 경주를 나의 꽃고향으로 여기기로 한 이후, 이 천년의 도시를 거치지 않고는 봄의 나라로 입국하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늘은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기억이 생생하게 퇴적된 토함산이 아니라 단석산을 탐방하기로 했다. 독경소리가 울려퍼지는 아담한 동네를 지나 물안개 피어오르는 저수지에 도착했다. 땅에 납작 엎드려 겨울을 슬기롭게 이겨낸 달맞이꽃이 몸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달맞이꽃은 아무도 없는 공중에 저만의 웅장한 세계를 펼칠 것이다. 고단했던 달맞이꽃의 허리춤에 햇빛이 찰랑찰랑 넘친다.

바야흐로 봄이 왔구나. 봄기운이 고슬고슬한 땅을 딛고 나아간다. 나무마다 가득한 꽃인가 했더니 꽃만큼이나 예쁜 봄잎들이다. 그중 하나는 이제 막 겨울눈에서 터져나오는 연두색의 잎, 잎, 잎. 몇 해 전 경산의 삼성산에서 보았던 쉬나무가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다. 그 이름에서 떠오르는 한 편의 시. “(…)환갑이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이 아직 초롱 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아이쿠 아이쿠, 시원하시겄다아/ 농하듯 어리광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누였다고 합니다//(…)//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문인수, ‘쉬!’)

경산에서 보았을 땐 오줌을 다 눈 노인의 통쾌한 얼굴이더니 경주에서 보는 쉬나무는 봄을 만끽하는 환한 웃음을 숨기지 않는다. 어이쿠, 시원한 봄기운으로 활짝 피어나는 저 노인의 해탈한 표정! 참 조용한 우주 속의 쉬나무, 운향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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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야심차게 추진하는 우주굴기의 한 상징인 톈궁 1호가 통제불능의 상태에 빠졌다는 뉴스를 접한 후 가끔 하늘을 보았다. 육안으로 포착할 수는 없지만 저 가물가물한 어딘가에 톈궁이 어쩌면 나를 겨냥하기도 하면서 추락하고 있다는 거 아닌가. 하늘과 나의 관계는 이처럼 직접적이다. 비가 내리면 내가 몸소 맞아야 한다. 누구의 허락이나 눈치를 볼 일이 없다. 언젠가 하늘로 가야 한다는 나의 운명도 지금 저 어딘가에서 차츰차츰 접근하는 중! 우주정거장 톈궁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의 생각은 강원도의 한 호숫가로 곧장 달려갔다. 작년 5월경 어느 야생화를 만날 때의 일이다.

바다와 이웃한 작은 호숫가에 엎드렸다. 발등만큼의 높이로 무리지어 핀 꽃은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된 갯봄맞이였다. 꼿꼿한 줄기에 다닥다닥 붙은 잎, 그 겨드랑이에 붙은 연붉은색의 꽃들. 그 너머로 모래밭이 있고, 그 모래밭을 철썩철썩 일렁이는 호숫물, 그 뒤로 싱그러운 산들. 참으로 보기 힘든 귀한 갯봄맞이를 찍으며 풍경을 일별해보는데 문득 우주중력을 다룬 영화, <그래비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무중력의 공간에서 우주미아로 떠돌 뻔한 여주인공(샌드라 불럭)은 우여곡절 끝에 중력이 작용하는 지구대기권으로 진입한다. 풍덩, 호수에 떨어진 뒤 우주복을 벗고 헤엄쳐서 가까스로 식물들이 우거진 해변에 닿아 정신을 수습한 샌드라 불럭. 눈부시게 푸르른 지구를 바라본다. 참으로 감격스럽게 도착한 그곳에서 마지막 대사를 읊는다.

THANK YOU. 그 장면을 보는데 조금 아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감독이라면 그에게 친구(親口)를 하게 하였을 것이다. 우주에서 가족이 기다리는 이 현실의 지구로 다시 들어온 감격에 격을 맞춘다면 모래 한 주먹을 고두밥인 양 씹어 먹어야 하지 않았을까!

혹 내가 있는 곳의 지붕에 떨어진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짐짓 호기를 부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와중에 톈궁이 남태평양의 칠레 앞바다에 추락해서 소멸하였다는 속보를 전해 들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강원도 어느 해변의 갯봄맞이는 또 올해의 꽃을 활짝 피우겠지. 갯봄맞이,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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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이 入春이 아니라 立春이라는 걸 안 건 나이가 제법 들어서였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하면 너무 거창한 이야기인가. 함부로 까불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은 덤으로 했다. 하지만 생각은 또 생각으로 그치고 말았다. 쓴맛이 좋아지고 나서부터 봄에 대해 매해 다르게 보려고 한다. 봄을 골똘히 본다. 무덤의 상석 같은 미음(ㅁ)에 사다리 같은 비읍(ㅂ). 그 사이를 연약한 풀 한 포기가 연결해 주는 한 글자가 아닌가. 무술년 봄에 대한 생각이다.

낮의 길이가 밤의 그것을 추월하는 춘분인 그제 눈이 왔다. 그 지독했던 추위도 이제 끝났군! 성급하게 짐작했던 사람들의 정문에 일침을 놓은 셈이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몇 해 전에는 4월에도 눈이 왔었다. 그때 나는 전북 순창의 회문산 능선을 걷고 있었다. 꽃샘추위 속에서 얼음을 잔뜩 달고 있는 대팻집나무를 만났다. 대패의 자루인 대팻집을 만드는 데 쓰이는 나무라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나무이다. 대팻집나무는 모든 나무들이 나이테를 몸 안에 품듯 해마다 자란 표시를 가지 끝에 스스로 기록해 둔다. 이 나무의 특징인 이른바 단지(短枝)라는 것이다. 나무의 조직이 단단하고 치밀한 비밀은 단지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이 단지의 꼿꼿함 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닐까.

대팻집나무를 다시 가만히 본다. 대패는 많은 것들을 싸고 있는 보따리 같은 단어이기에 대팻집나무 앞에 서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된다. 가지마다 엄지손가락처럼 단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대팻집나무. 그 둘레마다 돌반지, 결혼반지처럼 작은 홈들이 차곡차곡 끼워져 있다. 그것은 혹은 꼬부라지고, 혹은 비뚜름하고, 혹은 엇비슥하게, 그 어디로 나아가는 듯하다. 경복궁의 날렵한 처마 끝을 걷고 있는 잡상(雜像)들 같기도 하다. 점심 때 와서는 저녁이 되기도 전에 홀연히 사라진 뜻밖의 눈을 보면서 낭창낭창 공중 난간을 밟으며 어디론가 가고 있는 대팻집나무의 단지들을 떠올렸다. 대팻집나무, 감탕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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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태순 선생이 이끄는 ‘국토학교’에 참가한 적이 있다. 때에 맞게 제철 음식을 몸으로 들이듯 계절에 따른 우리 산하의 제철 풍경을 맞이하는 현장수업이었다. 그때의 주제는 ‘해남반도와 보길도의 별천지 꽃길, 하염없는 동백나무 숲속의 산책’. 새벽에 출발하여 자욱한 안개 속을 달리다가 해남으로 접어들자 박 교장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북에서 남으로 내리닫는 산들을 보면 소위 우리들의 인생 같아요. 설악산이 사춘기의 아이라면 지리산은 중년의 신사이고 이곳 땅끝에서는 잘 익은 영감탱이 같지 않나요?” 선생님의 문자향, 보길도의 동백향에 흠뻑 취하고 귀경하는 길에 미황사에 잠깐 들렀다. 병풍 같은 달마산을 우러러보면서 언젠가 저 산꼭대기에 꼭 오르겠다는 소망을 품었더랬다.

무술년의 봄꽃을 찾아 전라도 남녘으로 달려갔다. 개화를 기대했건만 아직도 겨울의 발톱이 날카로웠다. 몇 해 전의 그 소망을 실현했다는 후끈한 마음으로 달마산의 정상에 올랐다. 멀리 바다가 막아서는 해안선이 가물가물하더니 뒤로 돌아서면 미황사 마당을 서성거리는 사람들. 하늘과 잇닿은 날렵한 공간일 줄 알았는데 조릿대와 사스레피나무가 무성한 작은 평전이 있어 넉넉한 산이었다. 과연!

미황사로 하산하는 벼랑길이다. 이렇다 할 꽃이 없는 적막 속에서 꽃 대신 소위 우리들의 인생이라는 현상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박 교장님의 말씀마따나 사춘기 아이에서 중년의 신사 그리고 어느덧 영감으로 근접하는 게 보통의 차곡차곡 인생이다. 조릿대, 사스레피나무만으로는 허전했던 참인데 꽃동무가 앙상한 줄기를 가리켰다. 여기 말오줌때가 많군요. 시쳇말로 이름이 좀 거시기하고 가지를 꺾으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는 나무이다. 봄의 잎, 여름의 꽃보다는 가을의 열매가 무척 인상적인 나무. 까만 씨앗을 톡톡 내뱉는 열매의 껍질이 꼭 어릴 적 축구공으로 가지고 놀았던 돼지오줌보를 연상케 하는 말오줌때. 올해의 잎, 꽃, 열매를 착착 준비하는 말오줌때 곁을 지날 때 아이, 중년, 영감으로 이어지는 누군가의 일생도 휙,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말오줌때, 고추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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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모든 문장에는 꼬리가 있다. 행간의 의미를 읽으라는 말은 마침표 너머에 똬리 틀고 있는 그 꼬리를 놓치지 말라는 뜻일 게다. 엊그제 경향신문 이범준 기자의 ‘삼성과 법관’이라는 칼럼을 읽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법리 따위는 애당초 글러먹은 법이라서 칼럼에 거론된 판결문의 원문을 구해서 읽어보아도 당최 무슨 뜻인지 끝까지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그 판결문에 동원된 문장의 꼬리들의 행방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은 법의 문외한이긴 해도 상식의 전문가들이 아닌가.

해남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 가는 길이다. 우리 국토를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산이고 절이다. 둘레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판결문을 거듭해서 읽어보아도 어떤 법리를 말하는지 가늠이 안 된다”는 탄식으로 시작해서 “현실은 언제나 법리보다 치밀하고 또 가혹하다”는 날카로운 진단으로 마무리되는 그 칼럼이 계속 떠올랐다. 갑자기 멀리서 눈을 의심케 하는 눈 무더기가 나타났다. 봄빛이 완연하고 자세히 관찰하면 가지마다 파릇한 새순이 움터오는 이 달뜬 시기에 웬 설경인가. 더구나 이곳은 따뜻한 이 기운이 가장 먼저 찾아온다는 땅끝 부근이 아닌가.

햇빛을 받아 눈송이처럼 찰랑거리는 건 눈이 아니라 사위질빵의 열매들이었다. 멀리 씨앗을 퍼뜨리려고 부풀거리는 솜털에 눈이 그만 깜빡 속은 것이다. 이 덩굴식물은 조금 고약한 습성이 있다. 지면을 기다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다면 그냥 휘감아 오른다. 오르는 것도 그냥 줄기에 매달리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만만한 관목들의 꼭대기를 누르고 앉는다. 그리고 올라탄 높이가 저의 키인 양 허세를 작렬시킨다. 여름철 잎이 무성한 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낙엽이 지고 숲의 아랫도리가 드러나는 순간이면 사위질빵의 꼬리도 들통이 나고 만다.

글이 생각의 최소한이라면 법은 상식의 최소한일 것이다. 제 한몸 가누지 못하고 남의 등에 업혀 사는 사위질빵. 원줄기에 이만큼 떨어져서 가냘프게 꽂혀 있는 사위질빵의 꼬리를 힐끗 보고 암벽투성이의 달마산으로 헥헥거리며 올라갔다. 사위질빵, 미나리아재비과의 덩굴성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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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아래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방에서 봄을 영접하려니 영 도리가 아닌 듯해서 남해안으로 내달렸다. 우리 국토의 울타리를 지키는 경계병인 양 건장한 체격의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거제 해금강에 바로 도착했다. 작년에 보았던 백리향의 향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은 것이다. 땅은 아직 차렷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작년 여름의 땡볕을 간직한 바다는 가벼운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철썩이고 있었다.

낚시꾼들이 반질반질 닦아놓은 산길로 접어드니 우람한 육박나무가 떡 버티고 서 있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노각나무처럼 껍질이 인생의 수수께끼처럼 벗겨지는 나무이다. 문득 길이 끊기고 민간인의 출입을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눈을 부라리는 해안초소가 나타났다. 간밤의 경계근무에 곯아떨어졌는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다.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티가 역력한 수도꼭지가 철조망 곁에 서 있지 않겠는가.

나는 수도꼭지를 보면 틀고 싶어진다. 바깥으로 나오고 싶은, 스프링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저 지하에서부터 올라와 마지막 한 걸음이 부족해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물. 딱딱하게 얼어붙은 이 계절의 추위를 풀어줄 해방군처럼 고요하고 엄숙하게 앉아 있는 물.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고개를 숙인 이 낡은 수도꼭지에는 봄을 재촉하는 그런 물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물이 나오기에는 수도꼭지가 너무 고집이 세게 보였다. 과연 물이 나올까? 수도꼭지는 왜 이제야 왔느냐며 원망이라도 하듯 처음에는 잘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 고비를 넘더니 이내 차고 깨끗한 물을 시원하게 내뱉었다. 우렁차게 뛰어나온 물은 육상선수처럼 바다를 찾아 절벽을 타고 내려갔다. 콸, 콸, 콸.

어쩌면 육박나무의 뿌리도 건드리고 나왔을 그 물맛을 굳이 표현해야 할까. 봄이 단지 나의 눈두덩이만 두드린 게 아니라 저 발뒤꿈치에까지 골고루 육박해갔다는 건 말할 수 있다. 수피가 얼룩덜룩 군복을 닮기도 한 육박나무. 올해 59번째로 들이닥친 나의 봄을 육박나무 아래에서 만끽했다. 육박나무. 녹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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