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17.04.25 조개나물
  2. 2017.04.18 고깔제비꽃
  3. 2017.04.11 금괭이눈
  4. 2017.04.04 진달래
  5. 2017.03.28 사스레피나무
  6. 2017.03.21 생강나무
  7. 2017.03.14 산수유
  8. 2017.03.07 소나무
  9. 2017.02.28 오동나무
  10. 2017.02.21 목련
  11. 2017.02.14 질경이
  12. 2017.02.07 비목나무
  13. 2017.01.31 백서향
  14. 2017.01.24 먼나무
  15. 2017.01.17 소사나무
  16. 2017.01.10 나도밤나무
  17. 2017.01.03 만년청
  18. 2016.12.27 으름덩굴
  19. 2016.12.20 사철나무
  20. 2016.12.13 멱쇠채

내 고향 거창에서의 대처는 대구였다. 1960년대 너나없이 농촌을 떠나 도회로 진출할 때 솔가하여 대구에 터를 잡은 분들이 많다. 그런 연유로 예전에는 결혼식, 최근에는 장례식에 가려고 종종 대구를 찾는다. 며칠 전의 대구행은 그런 행사가 아니라 꽃산행이었다.

출발-도착만 있는 기차여행은 인간이 풍경과 소통하면서 얻는 애틋한 감정을 생략해 버린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아침에 떠나면 저녁은커녕 이슬이 마를 무렵이면 어디든 도착한다. 이름에서부터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대구 불로동에 들어서니 공기 속에 색다른 사연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삼국시대에 조성되었다는 210여 기의 무덤들이 밀집한 불로동 고분군. 불로(不老)라 했지만 죽음까지는 막을 수는 없었던가. 탱자나무로 울타리 했지만 해마다 무덤은 늘어나고, 봄마다 새파랗게 새롭게 살아나서 다종다양한 야생화를 기르고 있었다.

이곳은 무덤이 도심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덤 주위까지도 침범해 들어간 형국이다. 이미 죽음과도 많이 친해진 듯 무덤 사이로 길이 반질반질하게 나 있다. 고은의 절창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유서 깊은 동네의 음덕을 입었는지 이곳에는 귀한 야생화들이 차례차례 다녀간다. 이름을 잃고 아라비아 숫자로만 남은 어느 무덤 앞을 점령한 것은 조개나물이었다. 꼿꼿한 줄기 위에 층층의 다락방 같은 구조이다. 잎겨드랑이마다 입술 모양의 보랏빛 꽃들이 늠름하게 달려 있다. 이렇다 할 향기가 없지만 벌들이 쉬지 않고 출입하고 있다.

늙지 않는다는 동네의 지하에서 갓 올라온 꽃들은 발등 높이다. 따지고 보면 결혼-장례-무덤으로 이어지는 시간도 요만한 길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무덤에서 뻗어나간 길이 아파트를 꽉 껴안고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셔터를 눌렀다. 조개나물,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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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구멍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경향시선’에 소개된 ‘봄에는 구멍이 많아진다’를 접하고 은근한 시심이 작동하여 꼬리에 꼬리를 문 결과였다. “기지개와 혀가 튀어나오고/ 긴 꼬리가 스멀거리고/ 까맣게 부릅뜬 눈동자가 굴러 나와/ 알을 낳고/ 올챙이와 민들레로 피어나고/ 뱀으로 자라나고/ 수많은 꽃잎으로 퐁퐁퐁 터지는 구멍.”

잘 아시다시피 세상에는 구멍의 종류가 퍽 많다. 남산에 피어난 진달래를 보다가 터널로 들어갈 때, 두 개의 구멍은 사람의 얼굴에 난 콧구멍 같았다. 불가에서는 인중에 마음을 얹어두고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것을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기도 한다. 신심 깊은 이라면 이 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이곳을 수행처로 삼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던 차에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을 맛있게 끓여내던 여배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이제 허공으로 돌아간 그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했다. “연기는 나의 숨구멍이었어요.”

나란한 것 같지만 월화수목금토일은 등고선 같아서 아무 때나 비상구를 만들 수가 없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겨우 몸을 빼내어 떠난 주말의 꽃산행. 남해 망운산 초입에서 땅에 떨어진 꽃잎과 작은 제비꽃을 보았다. 산에 드나든 지가 제법 되었지만 아직 모르는 나무와 야생화가 너무 많다. 산에서 모르는 나무 앞에 서면 꼭 그 나무 형상의 구멍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쯤 나는 저 무수한 구멍들을 퐁퐁퐁 다 터뜨려 후련하게 통할 수 있을까.

땅에 떨어져 편안히 누운 꽃잎을 보면 어쩐지 예쁜 구멍, 지하로 가는 문(門)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잎에 둘러싸인 작은 꽃은 고깔제비꽃이었다. 제비꽃은 종류가 아주 많다. 꽃줄기가 뿌리에서 바로 나오느냐, 원줄기에서 나오느냐로 크게 구별된다지만 색깔, 털, 잎 모양 등에서 언제나 헷갈린다. 고깔제비꽃은 잎이 또르르 말리는 게 특징인데 오늘따라 그게 유난히 작은 구멍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고깔 같은 잎이 만들어내는 작은 구멍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둘러싼 여러 구멍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고깔제비꽃,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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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가설이란 게 있다.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는 이론이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뜻한다. 한 벌의 옷과 양말만으로 간단히 포장된 채 잠시잠깐 살아가기에 급급한 존재로서 지구를 운운한다는 게 참 가당치 않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겪어냈다는 것, 지상의 한 표면을 엄연히 내 두 발로 돌아다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나를 밑천으로 눈앞의 환경과 일대일로 대결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런 처지에서 가평 명지산의 어느 골짜기를 헤매고 헤맸다. 아침에 호기롭게 출발한 해를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서산으로 굴러떨어질 즈음 물소리가 졸졸졸 편안하게 귀를 간지럽히는 개울과 나란히 걷게 되었다. 뻐근한 다리도 식힐 겸 소리의 정체도 확인할 겸 숲 안으로 들어서니 이끼가 잔뜩 포진하고 있다.

물은 물대로 저희들끼리 어울려 내려가는 가운데 어느 잔칫집에라도 온 듯 봄기운이 왁자지껄했다. 어느 손바닥만 한 돌이 눈에 띄었다. 돌에 묻은 이끼와 지푸라기는 그 누군가가 쓴 낯선 문자 같기도 하다. 조금 흥분한 것 같은 돌을 힘겹게 밀어 올리며 세상으로 나오는 건 금괭이눈이었다.

산괭이눈, 애기괭이눈, 선괭이눈, 가지괭이눈 등 비슷한 종류가 몇 있지만 금괭이눈은 꽃잎은 물론 포엽까지 노란 황금색으로 짙게 물든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관찰해보면 난간 같은 포엽 위에 작은 사각의 됫박 같은 꽃들이 붙어있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 법인데 이곳은 유일한 예외인 듯 매끈하다. 함지박만 한 곳에 건설된 금색의 이 찬란한 문명(文明)을 홀린 듯 보노라면 많은 이야기가 울려나올 것만 같다.

아직 나는 산에서 살 수 없고 어둑어둑해지면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때 이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그러니 이 맞춤한 시간에 만난 금괭이눈은 그 이름에서부터 부리부리한 느낌을 주면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가이아의 눈이라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게끔 하는 것이었다. 금괭이눈,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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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산문을 보니 이런 문장을 인용해 놓았다. 꽃이 아름다운 건 땅에서 이만치 떨어져서 피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일락 말락 줄기나 가지 끝에 수줍게 달려 있는 봄꽃을 맞닥뜨리면 그런 실감이 든다. 수학적 모델을 이용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산은 땅을 x축으로, 나를 y축으로 하는 시공간이다. 그 아득한 시공간의 x축에서 이만치, y축에서 저만치 서로 교차하는 좌표에서 미지수로 피어난 꽃. 그리하여 낯선 여인의 습격을 받듯 발등을 때리거나 가슴팍을 찌르기에 더욱 사무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소월의 ‘산유화’에서 ‘꽃’만큼이나 핵심적인 시어가 있으니 ‘저만치’이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거리의 표시일까. 꽃이 되지 못하는 몸이 느끼는 안타까움의 표현일까. 미당 서정주는 저 부사의 의미를 이렇게 짚기도 했다. “저 수세(守勢)의 난처한 아름다움.” 미지수로 피어난 꽃과 저만치 피어난 꽃을 생각할 때 저절로 떠오르는 건 단연 진달래이다. 우리 사는 세상의 높이와 깊이가 산에서 비롯할진대 만약 그 산에 진달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산이 없다는 것과 같은 상태가 아닐까. 많은 다른 꽃들한테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진달래는 이렇게 대접해 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옛날 산으로 소먹이 구하거나 나무하러 다닐 때 참 억수로 따먹었던 진달래, 꽃 중의 꽃이기에 참꽃이라고 했던 진달래, 당장 어느 산에 가더라도 몇 발짝 만에 만날 수 있는 진달래. 아니 만나려야 아니 만날 수 없는 진달래, 몇 번을 만나도 싫증이 나기는커녕 외려 더욱 얼굴을 비비고 싶은 진달래.

화양연화인 듯 늘 저만치 피어 있는 진달래 꽃잎 하나에 지난 시절을 올려두고도 싶었다. 하지만 습자지처럼 쉬이 찢어지기도 하는 진달래. 그래서 더욱 가슴을 문지르게 하는 진달래. 꽃 앞을 지나칠 때면 내가 꽃을 보는 게 아니라 꽃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진달래. 다시 한번 더 진달래,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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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피 마른 지 엊그제 같던 아이가 비 맞은 죽순처럼 쑥쑥 자라기 시작할 무렵, 어느 여름휴가에 남해 금산에 가 본 적이 있다. 기도의 영험함이 유별하다는 보리암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본 뒤 정상에 올라 일망무제의 바다를 바라볼 때, 그다지 안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눈앞의 풍경이 거대한 무대처럼 느껴지더니 이내 저 휘장 너머의 외부로 건너가고 싶다는 생각이 툭 튀어나왔다. 나의 나머지 일생이 그저 요만한 크기와 넓이로 굴러가겠거니 가늠되던 시절에 만났던 그 호쾌하고도 아련한 장면은 짧은 순간이나마 답답한 마음에 큰 구멍 하나를 뚫어주었다. 그때 나란히 앞을 바라보던 어느 분의 한마디가 바람소리를 비집고 쏙 들어왔다. 굳이 나를 겨냥한 말은 아니었지만 쪼잔한 가장의 심사에 궁합을 꿰맞춘 말이라서 귀에 정확히 꽂힌 것이었다. “여행이라고 굳이 외국에 나갈 일이 아니라니까요!”

세월이 흘러 아이는 대나무처럼 훌쩍 자랐고 나는 제법 늙었다. 시골에서 뛰놀던 산과 들에서 학창 시절의 운동장으로, 그리고 사무실의 좁장한 책상으로 나의 공간이 팍 쪼그라들었다. 그때의 예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행로 끝의 결과였다. 어느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오르다가 비상구라도 만난 듯 오늘은 그나마 이렇게 남해 금산의 한 골짜기를 더듬는다. 발밑을 두리번거리지만 날씨는 쉬 풀리지 않아 제비꽃, 양지꽃을 겨우 건졌다.

그런 와중에 큼지막한 돌들이 함부로 나뒹구는 계곡의 가장자리에서 눈을 씻어주는 나무가 있었다. 바닷가에 주로 사는 사스레피나무였다. 노란 생강나무 곁에서 잎만 무성한 줄로 알았더니 가지 밑으로 꽃들이 한창이었다.

꽃이라면 으레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나무를 대표한다는 기분으로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쩐지 사스레피나무의 그것은 잎겨드랑이마다 종 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주 야무진 인상의 사스레피나무. 잎은 동백처럼 두껍고, 가장자리마다 톱니가 발달했다. 손가락 끝으로 한 바퀴 휙 어루만지면 꿀꿀하던 기분까지도 알싸하게 확 변화시키는 나무, 사스레피나무, 차나무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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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버리고 임도를 버리고 봄기운에 풀린 물소리가 졸졸졸 들리는 계곡으로 접어든 채 남해 금산 한 골짜기를 헤맬 때,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은 두개골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저 숲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게 아닐까. 얼크러진 바위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 하늘로 잇닿을 것처럼 꼬부라져 돌아가는 계곡에서 난데없는 생각들이 툭툭 뛰어나와 나를 자극하니 그런 느낌이 아니 들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만나지 못할 이런저런 생각들이 분명했다.

물웅덩이에 제 그림자를 비춰보는 나무들은 무심하고 태연하다. 겨드랑이가 무척 근질근질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돌 가운데의 어느 나무 가지에는 새의 깃털이 꽂혀 있고 상류에서 떠밀려온 것들이 낑겨 있기도 하다. 비바람에 씻겨 풍화하는 작년의 흔적들. 이 고요하고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골짜기에도 무서운 일들이 끊임없는가 보다.

이른 봄이면 남녘을 수놓는 노오란 꽃잎의 삼총사가 있다. 산수유, 히어리 그리고 생강나무. 산수유는 차창 밖의 밭에서 많이 보았고 히어리는 보리암으로 오르는 초입에 우세하였다. 나머지 하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노란색이 공중으로 톡톡 번지고 있다. 틀림없는 생강나무였다. 꽃잎을 코끝에 대면 은은한 향기가 좋다. 히어리가 조롱조롱 달린 등불, 산수유가 확 퍼져나가는 불꽃이라면, 생강나무의 꽃은 생각의 덩어리처럼 가지에 딱 붙어 묵직하게 기지개를 켠다. 가지나 잎을 문지르면 살캉살캉 생강냄새가 흘러넘치는 생강나무.

소슬한 침묵을 짚으며 바위를 넘고, 길들여지지 않는 돌을 딛고 계곡을 오르는 동안 세련된 사무실에서는 쓰지 않던 근육을 동원하느라 많이 노곤하였다. 덕분에 어느새 몸이 밀가루 반죽처럼 말랑말랑해졌다. 돌은 자음, 물은 모음. 둘이 완벽하게 결합하면서 빈틈없이 꽉 짜인 문장을 부지런히 아래로 보내는구나! 남해 금산의 어느 편평한 돌팍에 앉아 생강나무 향을 만끽하면서 그런 부드러운 생각을 했다. 생강나무, 녹나무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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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어떻게 올까. 봄을 맞이하는 각심(各心)은 서로에게 한 가지씩 있을 것이다. 내로라하는 신문들은 3월이 오면 으레 농부가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는 사진을 1면에 싣는 것으로 바야흐로 천하에 봄이 도래하였음을 알렸다. 겨우내 딱딱해진 흙을 갈아엎으며 땅심을 돋우는 농부 옆에서 산수유가 활짝 펴 봄기운을 보태기도 했다. 몇 해 전 그 전통이 깨져버렸다. 멀쩡한 강에 콘크리트를 처바르기 시작한 시기부터였다. 그땐 봄이 와도 좀 이상한 광경들이 신문을 장식했다. 그것은 싱그러운 들판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강의 둔덕, 언덕, 습지, 숲, 둔치, 사구, 모래톱, 텃밭, 여울, 농지였다. 그곳에서는 누런 소가 아니라 노란 불도저, 굴착기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이상한 중장비들은 황야의 무법자처럼 마구 돌아다니며 강의 연안을 할퀴고 물어뜯는 중이었다. 봄이 왔다지만 영 봄 같지 아니했다.

종이신문을 잘 안 본 탓도 있지만 그 이후 봄소식을 전하는 소는 자취를 감추었다.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되기 직전 눈물짓는 할머니 앞에서 마지막 여물만찬을 하는 소를 보았을 뿐이다.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본 사진은 모처럼 눈을 환하게 당겼다. “이랴~, 봄을 깨우는 힘찬 쟁기질. 지리산 자락의 경남 함양군 마천면 당흥마을 고랭지 밭에서 한 농민이 소를 앞세워 쟁기질을 하고 있다.” 언제 보아도 소는 늘 좋다. 한편으로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럽기도 하다. “꽃 피고 새가 우네, 이 좋은 봄에/ 거름 싣고 이 몸은 밭을 가노라/ 등가죽엔 붉은 피 멍이는 목에/ 채찍은 벼락질을 이내 엉덩이”(‘소는 운다’, 김소월).

봄소식은 이뿐이 아니었다. 광장에서는 이런 구호도 만났다. “가라 朴, 와라 봄.” 마침내 빵, 봄이 터졌다. 압도적이고도 전면적으로 방방곡곡마다 한꺼번에 확, 봄이 들이닥쳤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나의 입가에도 봄이 와서 말뚝을 튼튼하게 박았다.

재작년 이 시기에 구례의 당동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당흥마을과 이웃한 지리산의 골짜기 마을이다.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의 노란 물감 속에 폭 빠진 동네였다. 산수유는 잎은 잎, 꽃은 꽃, 열매는 열매로 그 존재가 확실했다. 또한 이름은 이름대로 산수유! 산수유, 층층나무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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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생각 하나를 줍기 위하여 모처럼 인왕산에 올랐다. 바위투성이의 암산이다. 가까운 곳의 낮은 산이라지만 갖출 건 다 갖추었다. 호젓한 오솔길, 아찔하게 돌아가는 벼랑길이 있는가 하면,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하는 깔딱고개도 있다. 추락하면 목숨을 가져가는 높이도 입을 벌리고 있다. 인왕산 정상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다섯 개의 홈을 파놓았다. 두 개의 눈, 코, 입 그리고 보조개로 각각 대응시킬 수도 있어 멀리서 보면 꼭 해골 같다. 이처럼 인왕산이 꼭대기에 해골을 얹어놓은 것은 헥헥거리며 정상에 오르는 나 또한 어깨 위에 그것을 달고 있으니 어쩌면 둘은 닮은 구조라 하겠다. 오늘 인왕산 정상에서 유념하는 건 해골바위가 아니라 바위에 거처를 두고 자라는 소나무였다. 척박한 환경이라 우람하지는 않지만 지친 등산객 하나를 품기에는 넉넉한 소나무. 나무 밑에 앉으니 광화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간밤의 함성이 실린 듯 귓전에서 쟁쟁하였다. 발밑으로 환히 펼쳐지는 서울특별시. 인왕산 소나무에 연결되어 멀리 빌딩숲에서도 헌법재판소의 앞마당에 있다는 백송(白松)으로 시선이 달려가 꽂히는 건 최근 마음이 쏠리는 바를 좇음이었다.

몇 해 전 궁리출판에서 펴낸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는 1988년 이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아파하고 고민하며 오늘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대통령 탄핵을 다룬 뒷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재동 헌법재판소의 백송 오른편에 산책로가 있다. 재판관들은 점심을 함께 먹은 뒤 모두 이곳을 산책한다. 뒷짐을 지고 무언가 담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재판관들이 대놓고 심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만, 내심을 담아 치열하게 설득을 벌이고 있을 테다. 이런 이야기를 20년 가까이 보고 들은 목격자가 바로 천연기념물 8호 재동 백송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것처럼 우리 살아가는 모습은 하늘에 다 녹화될 것이다. 소나무 아래 이슥하도록 머물렀지만 생각을 줍지는 못했다. 며칠 후 수령 600년의 목격자 백송은 그 어떤 경건한 소식을 전해주실까. 강원도에서 굽이굽이 흘러와 결국 바다를 찾아가는 한강을 보면서 집으로 내려왔다. 소나무, 소나무과의 상록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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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경이  (0) 2017.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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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현기증은 봄으로 달래는 게 옳겠다. 여러 봄소식 중에서도 꽃이 제일이지 않을까 싶어 남해를 찾았다. 지난여름 땡볕의 열기를 간직하고 있는 바다와 직접 면한 고장들 중에서도 특히 따뜻하기로 이름났다 해서 운동선수들의 겨울훈련지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씩씩한 함성에 놀라 바삐 뛰어나온 꽃이 있을까. 하지만 그런 요행은 늘 비켜가기 마련이다. 망운산 중턱에 있는 노구 저수지의 뒷사면을 뒤졌지만 이렇다 할 꽃은 기미조차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낙엽을 들추고 흙을 조금 파보니 땅은 아직 얼음으로 죄 딱딱했다.

허전하게 임도로 나오는데 나이 지긋한 분이 경운기를 세워놓고 대나무를 자르고 있다. 남해요? 좋다말다요. 물이나 땅에서 파기만 하면 뭐라도 나와요. 꽃? 하이고, 아직 정월인데 아직 멀었지요. 바다에서 고기를 낚을 건 아니었고 밭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데 쓰일 대나무. 나이테 대신 구멍이 뻥뻥 뚫린 대나무의 텅 빈 속을 보며 지나치는데 길 가까이에 또 다른 구멍이 있었다. 딱따구리의 작품인 듯 여덟 개나 되는 오동나무의 구멍이었다. 사실 오동나무를 오늘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산에서 가끔 보되 주로 무덤가에서 만났던 나무였다.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큼지막한 잎은 지하로 녹아들고 없었지만 눈알만 한 열매가 아직도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공중에 세로로 뚫린 구멍들을 보는데 한 궁리가 주르륵 엮어졌다. 오동 한 잎 떨어지는 소리가 천하에 가을을 알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오동나무는 소리하고 깊은 관련이 있다. 이뿐인가. 여러 국악기의 공명판으로 안성맞춤인 오동나무이다. ‘이그(Ig)노벨상’에 따르면 딱따구리의 머리는 머리뼈와 부리 사이에 스펀지 같은 완충조직이 있어서 뇌진탕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새는 구멍을 뚫을 때부터 헤드뱅잉으로 경쾌한 음악을 숲에 들려주는 것. 그리고 지금은 바람이 세게 불면 오동나무에서 희미한 피리소리가 울려나올 것 같았다. 나중 죽어선 거문고나 가야금이겠고 살아선 여덟 구멍으로 허공을 연주하는 오동나무. 현삼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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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이 가까워지면 라디오가 시간을 알려준다. 띠띠띠땡!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그 시각은 지나고 만다. 아무리 반듯한 아나운서일지라도 결과적으로 바르지 못한 시보(時報)를 하는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예전 국악방송의 어느 진행자는 이런 미묘한 사태를 고려했음인지 흥겨운 음악 하나가 끝나고 나면 이런 멘트를 날리기도 하였다. “지금 시간 오후 1시10분 이쪽저쪽입니다.”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의 입구로 들어가다가 이런 시간의 이정표를 듣는 것이 참으로 신선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귀기울여도 들을 수 없어 게시판에 이런 글을 직접 올렸다. “우리가 같은 강물에는 두 번 들어갈 수 없듯이 1시10분이라고 말하는 순간 1시10분은 어디론가 흘러가버립니다. 해서 이쪽저쪽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고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쪽저쪽 하면 우리네 삶이 생과 사의 이쪽저쪽에 있음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슨 소쩍새가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 이 참신한 표현을 더 들려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늘 좋은 음악에 가슴이 출렁댑니다.”

그제 경향신문을 펼치는데 봄소식을 전하는 버들강아지와 목련 사진이 눈을 찔렀다. 목련 아래에는 경희대학교의 한 졸업생이 기념사진을 찍는 광경이 희미하게 담겨 있었다.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을 딛고 완도로 곧장 달려갔다. 그날 나는 완도의 식생을 관찰하는 길이었다. 남녘이라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손수건만 한 햇볕을 등에 지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산의 위력이 끝나는 곳에 논이 있고 그에 잇대어 자투리 밭이 있고 그 끝에 허술한 집이 있었다. 이 뒤안 여기에 왜 이 나무인가, 하는 것은 우문이다. 그을린 굴뚝의 온기에 기댄 채 바깥을 기웃거리고 있는 나무 한 그루, 목련이었다. 가지 끝마다 너무도 분명하게 오로지 한 꽃송이 내걸고 있는 목련. 입춘 지나고 우수 근처. 봄 냄새가 물씬했다. 겨울을 뚫고 나오는 이 기세를 봄이라고 꼭 집어 말하면 봄이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을까. 그러니 이 낮은 지붕을 슬그머니 휘어잡는 목련 아래에선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다. 바야흐로 봄의 이쪽저쪽이로구나! 목련, 목련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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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서향  (0) 2017.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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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지나고 여러 날인데 날씨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해만 조금 길어졌다. 심학산에 올랐다. 월초에 온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다. 겨울을 앓고 있는 산속에서 몸져누운 길이 수척하다. 가장자리마다 간호하듯 낙엽이 대기하고 있었다. 길이 훤히 보이는 만큼 뱀껍질처럼 반들반들했다. 골짜기를 끼고 도는 둘레길은 드문드문 응달이었다. 한물간 낙엽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어이쿠, 엉덩방아를 찧었다. 낙엽 밑이 얼음이었다.

넥타이를 매던 시절, 연례행사처럼 꼭 도로에서 넘어져야 했다. 모가지를 조르는 만큼 다리에 힘이 풀렸던가. 조급한 성격과 구두 탓도 있을 것이다. 옛날 생각에 싱겁게 젖었다가 또 넘어졌다. 두 번을 거푸 심학산한테 엎어치기를 당한 셈이다. 원하지 않은 동작을 취해야 했지만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에선 넘어져도 나무 곁이다.

오늘은 아이젠을 준비했다. 얄미운 체중을 실은 쇠는 미끄러운 얼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상어이빨 같은 아이젠을 장착했으니 넘어질 뻔, 하는 일조차 없겠다. 그제는 가운데를 피해 가장자리로 쫓겨다니기에 바빴다. 이젠 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외려 반들반들한 곳이 눈에 더 들어온다. 일부러라도 그곳을 밟고 싶어진다. 미끄러운 길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데 나의 머릿속으로 뛰어드는 식물이 있다. 그건 질경이였다.

얌전한 식물들이라지만 살아가는 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먹이인 햇빛과 물을 두고 다투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역발상으로 인간이 뚫은 길 안으로 뛰어드는 생존전략을 택했다. 그게 바로 질경이다. 이 영리한 식물에게 여기는 블루오션인 셈이겠다.

살아가면서 질경이 한 번 안 밟은 이 어디 있겠나.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도 생명력이 질긴 질경이. 줄기는 없고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흰 꽃이 자잘하게 피는 질경이. 넓은 잎이 참으로 유연한 질경이. 바람보다도 더한 바퀴나 발길에 짓밟혀도 거뜬하게 먼저 일어나는 질경이. 지리산의 노고단산장에서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길에도 질경이는 무성했다. 올해 지리산 꽃산행 갈 적에는 더욱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할 질경이. 질경이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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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거제도 가는 길. 고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쾌속선 돌핀호를 타고 여행했던 기억과 함께 포로수용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눈 맑은 시인의 그 커다란 눈동자에도 이 풍경들이 다 담겼을까. 그는 오늘의 나처럼 여유로운 꽃산행객이 아니라 포로의 신분이었다. 그것도 이 섬에서 몇 개월 머무르다 이내 부산의 거제리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이동해야 했던 운명이었다. 얼핏 스치는 이정표가 차창을 때린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잔존기념물. 날카로운 화살표 옆으로 ‘잔존’이라는 단어가 생경하다. 포로들은 오래전 여기를 떠났지만 그 흔적은 이렇게 생생하게 잔존하는 것인가. 언젠가 포로수용소에 생존하는 식물상을 직접 조사해 보리라 마음먹고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

이번에 목적한 곳은 비상하는 꾀꼬리를 닮았다는 앵산이다. 그 이름을 입안에 넣고 한번 더 굴려보지 않을 수 없는 앵산. 이름이 이리도 강력하니 철이 다소 이르긴 하지만 땅심이 대단하여 봄꽃이 혹 엄동설한의 찬 기운을 뚫고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기대가 꽃의 의욕을 너무 앞지른 게 아닌가 했더니, 어라, 노란 복수초가 여러 촉 환히 피어 있지 않은가. 가장 먼저 접촉하는 정유년의 봄꽃. 내 볼에 훅 그대로 곤지처럼 들러붙는 듯 반갑기 그지없다. 변산바람꽃도 보았더라면 주체 못할 희열로 얼굴이 많이 씰룩거렸겠지만 이만해도 어딘가. 뜻밖의 봄꽃으로 몸안이 아연 환해졌다.

그래도 조금 아쉬워 허전한 시선을 거두려는 참인데 너덜겅을 배경으로 일군의 나무가 눈으로 들어왔다. 보통 산에서 흔한 나무이긴 하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은 비목나무였다. 비목나무는 수피가 조금 지저분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른 봄에 종알종알 피는 꽃은 그 향이 은은하고 은근해서 발길을 붙든다. 이름에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비목나무는 어느 산을 간들 으레 한두 그루는 만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앵산의 비목나무, 어쩌면 시인 김수영의 시선도 묵묵히 받아내었을 바로 거제도의 저 비목나무도 함께 생각하기로 했다. 비목나무, 녹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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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아니라 낮이다. 덕분에 사방이 잘 보였다. 경사가 있었다. 미끄러지면 곧바로 바다로 풍덩, 빠지는 곳이었다. 물은 물렁물렁해서 나비만 한 체중이 아니라면 그냥 그대로 푹 꺼질 것이다. 나무들은 가파른 비탈 따위는 간단히 제압하고 지구의 중심을 향하여 뿌리를 뻗고 있었다. 바다와 면한 곳이지만 나무가 먹는 건 짠물이 아니었다. 여기는 거제도 벼락바위 근처, 우리 국토의 최남단 한 자락이다. 아직은 한창 겨울인가.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지만 그건 달력 속의 사정이다. 남해안 바닷가 언덕에는 정유년의 봄꽃들이 벌써 피어나고 있었다. 뫼제비꽃, 붉은대극, 복수초를 눈으로 만지고 손으로 접촉해 보았다. 신기한 감정이 일어났다. 올해도 어김없이 또 시작이군, 이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이곳은 겨울에도 그리 춥지가 않아서 나무가 낙엽을 만들지 않는다. 계절이 바뀌어도 잎을 바꿀 필요가 없는 상록수들. 그처럼 육중하게 자신만의 한 세계를 이룩한 나무들 사이로 작은 나무가 있다. 다 자란다 해도 겨우 허리춤을 찌르는 정도이다. 짓궂게 장난을 친다면 한달음에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나무도 있다. 키가 작아서 아주 다정하고 몸피가 작아서 아주 다감한 나무. 제주도에도 있지만 뭍에서는 단지 몇 군데에서만 관찰되는 아주 희귀한 나무. 백서향이다.

백서향은 거제도 맨 아래쪽 바다와 인접한 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한두 포기가 아니라 무리지어 띄엄띄엄 사이좋게 산촌(散村)의 인가처럼 흩어져 있다.

다른 나무들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 동안 백서향은 깨어 있었다.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줄기를 따라 어긋나게 달리는 잎들. 둥근 계단처럼 오른 끝에 십자 모양의 꽃들이 야무지게 다발을 이루고 있다.

올해 처음 만난 나무의 꽃이 백서향이라서 좋았다. 이름에서부터 그윽한 향기를 자랑하더니 실제로 코끝을 접근하자 은은한 향이 풍겨왔다. 향기도 담겠다는 태세로 카메라들 들이대던 한 꽃동무의 속삭임이 나비처럼 날아와 딱딱해진 내 가슴을 벼락처럼 때렸다.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사랑의 감정이 녹아 솟아나오는 향기로군요! 백서향, 팥꽃나무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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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출렁 부산이다. 꼭 티를 내어야 산다고 느끼는 것처럼 무슨 일이 있고서야 부산을 갔다. 행사장에서 박수치고 밥 먹고 부리나케 부산역을 빠져나오기에 바빴다. 그러니 부산을 가도 부산은 어디에도 없는 셈이었다. 강남 가는 제비처럼 그냥 훅 떠난 부산 여행. 덤으로 꽃이나 볼까 했는데 외려 된통 추위를 만났다. 지난주 부산의 날씨는 보통 추운 게 아니었다. 김이 설설 나는 돼지국밥집으로 뛰어들었더니 주방의 아지매도 이제껏 살면서 이런 추위가 처음이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영도다리 밑 오후 두 시. <날개>의 마지막 장면처럼 뚜우 하고 사이렌이 울렸다. 영도다리가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섬이 아니라 하늘로 가는 다리가 신기해서 여기저기 기념사진 찍는 소리가 요란했다. 제법 높은 각도로 쩍 벌린 다리를 뒤로하고 뜻밖의 나무를 찾아서 바닷가를 향해 내 다리를 벌렸다.

예전의 부산은 바다가 근처라서 그런지 겹겹이 산도 많았다. 문현동-대연동-광안리의 골짜기 하나하나마다 내 지난 시절이 담겨 있다. 그 앞을 지날라치면 아코디언 주름을 열었다 닫는 것처럼 옛 추억이 연주된다. 이기대 너머로 가는 길. 아스팔트를 들어붓고 널찍한 도로로 조성하기 전에는 이 길도 흙냄새 물씬한 호젓한 길이었겠다. 경사가 아주 급해서 가르랑가르랑 한숨을 쉬며 오르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한 말씀을 한다. “뭐 있능교, 아나고 한 접시로 목에 때 벗기고 노래방 가서 한 곡조 땡기믄 최고라예.” 무심코 내뱉는 아저씨의 저 한 문장에 부산 사람들의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 않을까.

처음 보는 건 아니었지만 내 눈을 호리기에 충분한 나무를 만났다. 주로 제주도나 남부지방에 자생하지만 가로수로 널리 심는 나무. 여름에 피는 꽃만큼이나 반짝 아름다운 열매를 겨울 내내 달고 있는 나무. 먼나무였다.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나무가 있어 멀리 나무 너머를 한번 비켜보기도 하는 것. 먼나무 위로 굶주린 새가 날고 먼나무 밑으로 버스와 행인1이 지나갔다. 몇십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면 바다를 보고 놀라는 승객2 혹은 교련복 입은 행인3으로 나도 등장하였을 풍경이었다. 먼나무. 감탕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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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이 수상하니 날씨도 공중에서 갈피를 못 잡는가. 소한 지나고도 봄날같이 따뜻하다. 춘정까지는 아니고 가벼운 흥분을 이기지 못해 강화도 마니산을 찾았다. 함허동천. 입구의 입간판에 유래를 적어놓긴 했으나 그 뜻보다 먼저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 혀끝을 툭 때리고 가는 것이 있었다. 마니산은 악산이다. 함허(涵虛)에 걸맞게 바위 주위에 검은 흙들이 이끼처럼 포진해 있다. 그래도 지하는 겨울이다. 서릿발에 꼬집힌 흙들이 주상절리처럼 세로로 꼿꼿하게 무리지어 서 있다.

114계단을 지나 드디어 바위능선에 도착했다. 사방의 툭 트인 호쾌한 풍경에 눈이 좁아지는 것 같다. 벌써 정유년의 세월에 제법 때를 묻힌 듯하지만 음력으로 따지자면 아직 설밑이다. 새해를 즐길 자격이 아직은 충분하다. 김밥과 소주가 사이좋게 어울린 자리.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잠겨 있는 곳’이라는 함허동천이니 맞춤하게 수제천(壽齊天) 한 자락을 불러들였다. 최대치로 높인 음량의 유장한 가락에 실려 몇 가지 궁리가 흘러나왔다.

생명은 바다에서 뭍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좀전에 흘린 땀이 저 바다의 소금과 같은 성분이란 것도 한 증거가 되리라. 오늘 나는 한 문장을 더 보태고 싶다. 사람이란 모두 산에서 아래로 추락한 존재들이 아닐까. 그래서 고향을 찾듯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곳으로 오르는 것. 그리하여 이런 시 한 구절에 그만 마음이 공명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백석) 어느덧 참성단에 도착했다. 말굽처럼 쌓은 제단이다. 멀리서 보니 세계수(世界樹)처럼 위용을 자랑하던 나무가 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고결한 자태이다.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를 굳건히 내리고 있는 건 소사나무였다. 지그재그로 하늘 끝으로 뻗어가는 가지만 앙상할 뿐 잎도 열매도 없이 겨울을 견디고 있다. 이 나무 덕분에 강화는 마니산을 앞세우고 바다 바깥으로 불쑥 솟아날 수 있었다. 까마득한 시절에 이곳에서 단군이 하늘을 우르러 제사를 지냈다던가. 이제 또 세상으로 내려가야 하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소사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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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름덩굴  (0) 20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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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란 태어나자마자 은퇴한 사람이다라는 정의를 들었다. 아등바등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곡을 찔렀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한편으로 최근에 등장한 금수저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것이다. 이런 말도 있다. 공주는 평생 손잡이를 잡을 일이 없다고 한다. 어디를 가나 세상을 칸막이하는 문은 항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손이란 바깥에 그냥 달려 있는 게 아니다. 밑천이라고 달랑 고것뿐인 육체가 자신이 담긴 이 세계와 가장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관문이다. 그러니 그들은 세상의 문을 봉쇄당한 채 살아가는 존재라 할 수 있겠다. 스스로 열어야 할 문이 하도 많은 한 편의 인생에서 이만한 대리인생이 어디 또 있을까.

산으로 가지 않을 때면 우면산 자락의 국립국악원에 가서 토요명품공연을 보기도 한다. 국악 고수들의 소리와 악기로 귀를 흠뻑 씻는 시간이다. 여러 다양한 공연에서 대개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고전무용이다. 숨을 빨아들일 듯 흰옷을 차려입고 도살풀이춤을 출 때 주목하는 건, 공중과 접촉하면서 길게 뻗어나가는 손가락 끝!

나무들에겐 잎을 달았다가 떼는 것이 달력이고, 그 앞을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차림새나 얼굴 표정이 곧 시계이리라. 꽃도 없는 요즘 산에 가서 뭘 보느냐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겨울은 겨울대로 보아야 할 게 많다. 그리하여 눈꽃을 헤치고 가서 꽃이나 열매가 아닌 엽흔이나 겨울눈을 관찰해도 충분히 하나의 세계가 보인다. 원숭이 얼굴, 하트 모양은 물론 지하에 계신 외할머니의 옆모습도 발굴할 수 있다. 그렇게 궁금한 표정으로 지리산의 한 자락을 훑을 때 가장 눈길을 끈 건 나도밤나무의 겨울눈이었다. 6월에 피는 탐스러운 꽃도 꽃이지만 이런 한겨울에 손가락을 각기 다른 방향으로 꼬부리며 가리키는 겨울눈을 외면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물가나 바위틈에서 뿌리를 두고 내 눈높이를 얼추 맞춰주는 나도밤나무의 겨울눈. 그 언젠가 본 무용수의 가지런한 손끝,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조지훈)을 너무나도 빼닮은 나도밤나무의 겨울눈! 나도밤나무, 나도밤나무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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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  (0) 201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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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 오른다. 길을 돌아들 때마다 커다란 바위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 면면마다 바깥으로 나올 준비를 한 채 숨어 있는 부처님들. 하늘이 재주를 주고 세상이 끌을 손에 쥐여준다면 우리 시대의 표정을 발굴할 수 있겠다는 허무맹랑한 궁리도 해보다 드디어 금오봉 정상에 섰다. 경주 남산은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이무기능선과 도깨비능선을 사이에 두고 멀리 고위봉이 눈썹을 때린다. 이런 곳에 서면 퍽 이상하다. 해발로 따지면 고위봉이 금오봉보다 조금 더 높다. 하지만 금오봉에 내 키를 더한 때문인지 여기가 더 높은 듯하다. 왜 우리는 자기가 있는 자리를 가장 높다고 여길까. 지금 여기가 가장 높다는 이 엄연하고도 즐거운 착각! 지구가 편평하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크게 휘어지는 지평선과 함께 지구가 둥글다는 한 증거로 삼을 수 있으리라.

고위봉을 지나 남산의 산중에 있는 식당을 향해 가는 길. 중간에 백운암에 들러 목을 축이다가 이런 글귀를 만났다. “꽃은 늘 웃고 있어도 시끄럽지 아니하고 새는 늘 울어도 눈물을 보이지 아니하고….” 한참을 걸었더니 천룡사 폐사지에 삼층석탑만이 우뚝하다. 이윽고 말라버린 나무덤불 사이로 화살표가 나타났다. ‘녹원정사식당’. 석탑을 쌓는 시대가 있는가 하면 고작 이런 간판이나 갖다붙이는 시대도 있는가 보다.

꽃이 없는 계절에 꽃 대신 꽃으로 시작하는 문장 하나를 주웠으니 그래도 다행이구나, 하려는데 발길이 멈추었다. 식당 울밑에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만년청이었다. 이 싸늘한 계절에 상록의 잎을 배경으로 꽃만큼이나 매혹적인 열매가 그래도 반가웠다. 야생의 만년청은 제주도나 대마도에서 본 적이 있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골짜기가 용장계곡이다. 그 골짜기에 웅크리고 은거해서 김시습은 <금오신화>를 썼다고 한다. 오늘 식당에서 내가 읽는 문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산채정식 6000원, 촌두부 4000원, 도토리묵 4000원, 남산신선주 7000원…. 요금은 선불입니다.” 그나마 마지막은 만년청을 떠올리며 슬쩍 마무리해서 다행일까. 이 대명천지에 등불처럼 열매가 피어나는 만년청,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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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 가면 다른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감흥에 아니 젖을 도리가 없게 된다. 3시간 전의 서울시민에서 벗어나 천 년 전의 신라인으로 변신해 보는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두 바퀴로 가는 버스를 타고 성동시장에 가면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가 눈을 껌뻑거리며 한숨을 쉬고 있을 듯. 구름이 낮게 깔린 아리송한 도시. 저 구름은 서라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그제는 조금 색다른 풍경에 몸을 담갔다. 무덤이 광장을 지키고 있는 신경주역에 도착하니 오후 3시30분. 나의 일생을 하루에 요약해 볼 때, 지금의 내 나이가 오늘의 이 무렵이 아니겠는가. 그냥 맥없이 허둥대다가 전기문명이 제공하는 어지러운 도심의 불빛에 속절없이 포박되기는 싫었다. 얼른 몸을 날려 칠불암으로 향했다. 몇 개의 무덤과 몇 개의 탑을 지나 찾아드니 동지를 며칠 앞둔 공중은 벌써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초행은 아니었기에 무서울 건 없었다. 보름달도 믿었다. 돌부리에 걸려 자빠지면 또 어떠랴. 남산에서 넘어졌으니 남산을 짚고 툴툴 일어나면 될 일이다. 사위질빵이 돌담을 기웃거리고 있는 초입의 농장을 지나니 호젓한 오솔길 좌우로 소나무가 빽빽했다. 활성탄층을 통과하며 꾸정물이 정화되듯 나는 이 훤칠한 숲을 지나가며 마음을 세탁하는 중. 갈비뼈를 훑고 나오는 숨결도 몸속 노폐물을 바깥으로 뱉어내는 중.

드디어 가파른 돌계단이 보이고 울창한 이대가 칠불암에 다 왔음을 알려준다. 이제 조금 후면 국보 312호 마애석불 앞의 야단법석에서 108배를 올리고, 환장하게 좋아하는 칠불암 툇마루에 시린 엉덩이를 부려놓으며 보름달을 볼 수 있겠다. “크게 한번 후, 하고 숨을 내쉬세요.” 나무에 붙은 안내문 옆에 으름덩굴이 창백한 잎사귀를 아직 달고 있다. 부처님 손바닥 같은 편평한 5~6장의 잎이다. 으름덩굴은 혼자 설 수 없어 생강나무를 타고 올랐다. 땅을 기어야 하는 덩굴성이었지만 곁의 나무를 짚고 공중으로 박차고 뛰어오른 것. 나도 저 으름덩굴처럼 몸을 가볍게 엮고 엮어서 오늘밤엔 토함산 위 보름달로 훌쩍 건너가 볼까나! 으름덩굴, 으름덩굴과의 덩굴성 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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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우룡산 중턱에 자리한 중학교에 다녔다. “오륙도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오륙도라/ 흐리락 맑으락 하니 몇 섬인 줄 몰라라.” 국어시간에 노산 이은상의 시, 오륙도(五六島)를 배운 어느 날엔 학교 뒷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가다 오륙도를 새삼 눈에 힘주어 보았다. 멀리로는 대마도가 희끄무레 보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세월의 산을 여러 개 넘어 도착한 오늘, 부산 용호동의 오륙도 선착장에 섰다.

 

철썩이던 파도 옆 안내판을 보자니 몇 가지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아무래도 이제까지 아무렇게나, 대충, 희끄무레하게 살았던가 보다. 오륙도를 더 자세히 보니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으로 이루어진 섬들의 작은 공화국이었다. 이 중 방패섬과 솔섬의 아랫부분이 붙어 있어 밀물에는 하나, 썰물에는 두 개로 보여 오륙도라는 낭만적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 언젠가 저 섬에 올라 유일한 주민인 식물상을 조사해 보리라는 작은 결심을 하고 갈맷길로 향했다.

 

 

바다와 마주 보며 서 있는 고층 아파트를 끼고 돌아 나무 계단으로 올라 벼랑이 안내하는 갈맷길로 들어섰다. 각종 이끼가 추상화 같은 무늬를 그리며 바위에 송송하게 붙어 있고 송악 등의 덩굴식물이 바다로 뛰어들려는 바위들을 안간힘을 다해 묶으며 막아서고 있다. 한반도(韓半島)가 이만한 넓이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이런 연약한 덩굴성 줄기들이 서로 어깨동무하고 있는 덕분이 아닐까. 몇 굽이를 지나 바닷가로 움푹 꺼진 농바위 근처를 지날 때였다. 멀리 여객선이 가로지르며 가는 풍경을 배경으로 꽃이 활짝 핀 나무가 있다. 바위에 틈을 내리고 핀 그것은 사철나무였다. 이토록 쌀쌀한 시간의 틈에 뿌리를 내린 건 꽃이 아니라 열매였다. 사실 사철나무는 사철 내내 푸르른 나무이다. 해서 생울타리로 널리 심는 나무라서 주의 깊게 보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이 바닷가 끝의 바위틈에서 피어난 자연의 사철나무. 우리 국토의 가장 바깥의 울타리인가 싶어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본 사철나무, 노박덩굴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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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이 꿀렁, 하였다. 꽃이 핀 것이다. 햇빛과 비바람, 천둥과 번개가 합심하여 한 송이의 꽃을 공중에 틔워내었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관이라고 하지만 그건 저희들끼리의 내밀한 사생활에 속하는 영역이다. 당장 눈앞에 드러난 사실은 꽃이 이 지상의 한 매듭이라는 것. 꽃이 아니었다면 뉘라서 우리 사는 세상을 이렇게 맵시 있게 마무리할 수 있으랴. 그제는 시간이 꿀렁, 하였다. 역사가 회오리를 친 것이다. 이제까지 쌓이고 쌓인 적폐가 민낯을 드러내고 한 매듭으로 묶였다. 누구는 끝이라고도 하지만 어림없는 일이다. 세상을 향한 포부를 가득 담은 꽃봉오리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만개(滿開)로 이어지듯 먼 길로 가는 첫걸음을 뗀 것일 뿐이다.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그 어떤 후련한 마음과 함께 부산으로 돌진하는 기차를 탔다. 그것도 새벽 첫 기차이고 보니 앞장서서 어둠을 뚫고 간다는 호쾌한 기분을 덤으로 얻었다. 장산, 황령산, 금정산 등 부산에는 덩치가 큰 산이 많지만 오늘 걷는 길은 오륙도에서 이기대로 이어지는 바닷가 해파랑길. 기암괴석이 즐비한 가운데 옛날 뜨거운 마그마가 흘러 형성된 이곳은 우리 국토의 한 끝자락으로 국가지질공원이기도 하다. 더러 낭떠러지 모퉁이를 돌면서 그 연원을 잴 수 없는 억겁 년의 시간의 얼굴에 내 얼굴을 포갤 때 알 수 없는 전율이 일어났다. 밀려오던 파도가 딱딱한 바위를 깨울 땐 가슴 근처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해국, 갯고들빼기, 감국 등 오늘 본 꽃들의 목록이 초라하다고 여겨질 즈음 아예 이기대의 바닷가로 내려섰다. 건너편으로 해운대가 보이는 곳이었다. 파도에 닳고 닳은 몽돌 가까이에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형태도 색도 덜 자란 민들레처럼 보이더니 가까이 가서 보니 멱쇠채라고 하는 귀한 꽃이다. 본래 4~6월경에 피는 꽃인데 시절을 잘못 알고 바깥으로 나와서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멱쇠채. 계절의 첫차를 타고 일찍 나를 마중하여 주는 꽃이라고 이기적으로 말할 수 있겠다. 이름이 낯설어서 입에 착 감기지는 않지만 잎은 미역을 닮고 꽃잎은 리본 같다. 그리하여 저 노란 꽃잎에 한 조각 붉은 마음을 적어보고 싶은 꽃, 멱쇠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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