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189건

  1. 2017.06.20 돌가시나무
  2. 2017.06.14
  3. 2017.06.07 나도제비난
  4. 2017.05.30 매화말발도리
  5. 2017.05.23 빌레나무
  6. 2017.05.16 새우난초
  7. 2017.05.10 야광나무
  8. 2017.05.02 올괴불나무
  9. 2017.04.25 조개나물
  10. 2017.04.18 고깔제비꽃
  11. 2017.04.11 금괭이눈
  12. 2017.04.04 진달래
  13. 2017.03.28 사스레피나무
  14. 2017.03.21 생강나무
  15. 2017.03.14 산수유
  16. 2017.03.07 소나무
  17. 2017.02.28 오동나무
  18. 2017.02.21 목련
  19. 2017.02.14 질경이
  20. 2017.02.07 비목나무

바다하고 연애하듯 찰떡같이 착 달라붙은 해안길을 달리다가 아담한 마을로 내려서니 어느 건물 옥상에 물건중학교라는 간판이 보였다. 물건항을 목적지로 해서 찾아왔으니 묻지 않아도 여기는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임이 틀림없겠다. 물건리라서 물건중학교이겠지만 특이한 이름이기에 다시 한 번 쳐다보고 불러보았다. 물건중학교. 처음 부임해 온 선생님이, 너희들 나중에 세상의 물건이 되어야 한데이, 농담도 해보겠지만 실은 물건은 지세가 물(勿)자 혹은 건(巾)자 모양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아무리 파도가 몸살을 하지만 물건항에도 늦은 오후는 찾아오는 법이다. ‘2006 잘 가꾼 자연문화유산’으로 선정된 ‘물건방조어부림’에는 풍채 좋은 나무들이 어울려 산다. 몽돌 해안을 지나 바위들의 동네로 나아갔다. 바다에서는 한 해녀가 물질을 하고 있고, 가까운 해변에서는 따가운 햇살을 피하느라 수건으로 온통 얼굴을 가린 아주머니가 우럭조개를 캐고 있었다.

인기척을 듣고 뿔뿔이 달아나는 바닷게, 잔돌에 철석같이 들러붙은 굴과 따개비를 보면서 어느 바위에 이르렀다. 햇빛에 몸을 달군 바위의 등허리가 군불 땐 아랫목처럼 따뜻했다. 바위마다 어김없이 헤매는 개미 한 마리. 개미는 대열에서 이탈하여 길 없는 바위를 정처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갈매기 조나단처럼 멀리 가는 개미에게 내 마음의 일단을 실어 보내려는데 나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짭조름한 소금기가 자욱한 이곳에서 정갈한 티를 간직한 나무, 거센 바람의 눈치를 보느라 슬기롭게 납작 엎드린 나무. 돌가시나무였다.

흥건해진 마음으로 물건리에서 돌아와 물건들에 둘러싸인 일상의 나날을 보냈다. 어느 날 KBS 스페셜 <자연의 타임캡슐>을 보다가 제주의 어느 해녀가 숨비소리와 함께 내뱉는 말이 나의 귓전에 닿았다. “물건은 용왕이 주는 것. 저승에서 벌어다가 이승에서 쓴다.” 늦은 밤 컴컴한 밤중의 방에서 홀로 저 문장을 들었을 때, 비몽사몽간에 바다와 육지의 접면에서 그 어떤 경계를 꿰매는 바느질 자국처럼 가시가 발달한 물건항의 돌가시나무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돌가시나무, 장미과의 반상록성 소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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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남해 금산에 올랐다가 시간이 남아 바닷가 식물 조사를 했다. 항구의 이름이 재미있다. 물건항(勿巾港). 여느 해안처럼 멀리 바다가 있고 설레는 물은 출렁이고 있었다. 수평과 수직이 이 자연에 굳이 따로 있겠느냐만, 부분을 떼서 카메라에 담으려니 그게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나의 자세에 따라 기울어지기도 하는 수평선. 하지만 어디로 물이 왈칵 쏟아질 일은 없기에 바다는 바다이다. <중용(中庸)>에서 자연을 예찬한 심오한 메타포 한 대목이 생각났다. 도올 김용옥으로 하여금 눈물을 줄줄 흘리게 만들었다는 바로 그 구절이다. 載華岳而不重 振河海而不洩(재화악이부중 진하해이불설). 화악산을 업고도 대지는 무거운 줄을 모르고, 큰 강과 바다를 품에 안고 있어도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

그런 바다를 바위에 앉아 오래 바라보았다. 바다 그리고 바위. 서로 무슨 인연이 있을까. 겉만 볼 줄 아는 나의 눈으로 바다와 바위의 관계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지금 여기에 서로 함께 존재하는 것을 넘어 그 어떤 관계가 있을 것도 같다. 그러다가 나의 생각은 옆길로 빠져들었다. 바위에는 이 든든한 물체를 의지처로 삼아 살아가는 식물도 있다. 어디에서나 흔한 칡넝쿨이 길게길게 바위를 짚고 넘어왔다. 칡넝쿨의 끝은 부드러웠고 야들야들했다. 억세고 질긴 줄기와는 퍽 달랐다. 산에서 내려와 이곳에 오기까지 몇 개의 바위를 지나왔는가. 까끌까끌한 표면은 미끄러운 바위를 잡는 데 유용할 것 같았다. 뿌리가 사타구니를 파고들더니 무릎 위로 기어나왔다…는 말은 과장이고 내가 잠깐 그렇게 연출을 해 본 것이다. 당장 이 자리에서 명상에 몰두한다면 더욱 매진하라고 꽁꽁 묶기라도 할 태세인가, 칡은?

칡넝쿨의 끝을 잡고 가만 바라본다. 미세한 털이 마치 짐승의 부드러운 가죽 같다. 그 끝에 발톱이라도 달려 있을 것만 같다. 넝쿨은 또 분지할 준비를 하고 있다. 시퍼런 껍질은 멍이라도 든 피부 같다. 칡넝쿨은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이 거대한 땅을 가뿐하게 짊어지고, 저 광활한 바다를 안온하게 부둥켜안고 있는 그 어떤 존재의 꼬리를 붙들고 있는 듯한 이 기분, 이 느낌! 칡, 콩과의 낙엽 덩굴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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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여고동창생들인가. 조용하던 산중이 울긋불긋한 일군의 등산객들로 아연 시끌벅적해졌다. 늦은 만큼 마지막 뽐을 내는 철쭉의 꽃사태를 만났다. 화려한 외출이 아니라 건장하게 차려입은 여심들도 꽃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이러면 꽃이 될 수 있으려나. 잎을 당기고, 꽃잎을 건드리더니 아예 꽃더미 속으로 들어가 가지와 팔, 줄기와 다리를 섞기도 하면서 사진을 찍는다. 하하호호후후흐흐히히.

‘세석대피소 0.5㎞/의신마을 8.6㎞/청학동 9.5㎞/거림 5.5㎞’의 이정표가 장승처럼 우두커니 서 있다. 여기는 지리산 주능선에 거의 잇닿은 산중 삼거리인 1400고지 갈림길. 거림계곡을 출발하여 오전을 꼬박 투자해서 도착한 곳이다.

가까운 세석산장에서 분주하게 놀리는 젓가락소리가 들리는가. 등산객들은 평탄한 길에서 모두 한숨을 돌리며 여유를 찾는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불룩한 배낭 속의 음식으로 마음에 점을 찍을 수 있다. 모처럼의 허기가 배달해준 높이에서 기다리던 한 끼의 거룩한 점심을 먹는 것. 오로지 자신의 두 발로 이곳에 도착했으니 누구나 그런 호사를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하겠다.

꽃을 사이에 두고 한바탕 명랑한 수작을 부리던 이들이 빠져나가고 텅 빈 적막. 넘실대는 초록의 잎사귀를 건드리고 땅으로 떨어지는 햇살이 찰랑거린다. 흥겨운 떨림에 몸이 단 새의 울음이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여기는 어디인가. 좌표가 있지만 그건 얼기설기한 공간을 잠시 가리키는 숫자에 불과하다. 웅크린 돌, 짙은 응달, 흩어지는 구름도 궁금하기는 하지만 내일의 일이다. 오늘은 철쭉 너머 작은 ‘또랑’ 곁에서 반짝이는 꽃 하나에 시선이 꽂힌다. 손바닥만 한 한 장의 잎, 손가락처럼 꼿꼿한 꽃줄기, 두 갈래의 꽃잎. 그것으로 한 세계를 우아하게 이룩한 나도제비난. 식물의 나라에도 여고동창회가 있다면 혹 이런 모습들일까. 주근깨를 잔뜩 달고 옹기종기 모여서 세상 낮은 곳의 소식에 귀를 쫑긋 하고 있는 나도제비난.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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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가 우렁차서 그 이름을 얻었다는 수성동(水聲洞) 계곡을 지나 인왕산을 오른다. 아파트를 허물고 옛 모습을 복원했다지만 조야한 현대식 공원이 내는 소리는 귓전에 닿기도 전에 사그라든다. 날이 갈수록 우리 사는 동네에서 신비는 사라진다. 모든 걸 과학의 잣대로 재단하고 여지를 없애버린다. 청계천 발원지라는 작은 웅덩이를 호령하던 가재나 새우는 어디로 갔을까.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하듯 인왕산에 호랑이를 풀어놓으면 어떨까. 그런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발등으로 내려보내기도 하면서 인왕산 중턱 석굴암에서 맨손체조를 했다.

팥배나무 그늘에서 나무의 근황을 살피다가 하산하는 길이었다. 깔딱고개를 내려오니 약수터 의자에서 할머니로 기우는 듯한 나이의 아주머니가 혼잣말을 했다. “아이고, 웬만하면 가겠는데, 이젠 더는 못 올라가겠네.” 내가 자리를 뜨려는 눈치를 보이자 물끄러미 옆 계곡으로 얼굴을 돌리며 말했다. “작년보다 더 덥고 어제보다 더 덥네. 내일은 또 어째.” 투정하듯 계곡으로 말을 던지는 것이었다. 조금 전 산에 오를 때 나는 저 계곡에서 손과 얼굴을 씻었다. 나를 세탁하고 난 계곡은 또 혼자 저 아래에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계곡은 텅 비어 있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은은한 공간 속에서 다양한 생물들이 생명의 기운을 잉태시킬 수 있”(<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최진석)는 상태가 된 것이리라.

새삼 계곡을 다시 바라보았다. 호젓한 공간에 땀과 괴로움으로 범벅이 된 두 사람과 달리 계곡에는 꽃이 풍성하게 피어 있다. 굳이 바위틈에 뿌리내리기를 좋아하는 견고한 나무, 매화말발도리이다. 흘러가는 물은 물론 지나가는 비도 바위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 불리한 조건을 이용하기에 그만큼의 기품이 깃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무는 작년의 가지 끝에 올해의 가지를 두세 마디 달아놓았다. 꽃은 오로지 묵은 가지의 겨드랑이에서만 피어난다. 이 또한 신비라면 신비가 아닐까. 계곡에서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바위와 함께 이 세상의 한 아래를 묵묵히 담당하고 있는 매화말발도리, 수국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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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를 할까 하다가 뒤로 미루고 제주도 고유의 원시림인 곶자왈에 들어가 귀한 나무를 만났다. 2003년 최초로 발견된, 오로지 제주에서만 사는 빌레나무였다. 이 나무하고는 얽힌 사연이 있다.

2012년 겨울 투표를 하고 친구집에 모였다. 오후 6시, 출구조사가 발표되었다. 화성에서 한 투표, 금성에서 본 개표. 이제껏 겨우겨우 견뎌왔는데 또 5년이라니, 그 어떤 너덜겅에 패대기쳐지는 기분이었다. 졸지에 흥이 파하고 뿔뿔이 흩어져 귀가하는데 새로운 사실이 떠올라 기분을 더욱 잡치게 했다. 당선인의 임기가 끝날 때면 어느덧 나도 환갑이겠구나. 이른바 지천명(知天命)의 시기를 삽질과 불통으로 얼룩지게 할 형편이 아닌가. 그래서 더욱 바깥으로 돌아다녔던가 보다. 소태 같은 심사를 달래려 대마도 식물 탐사에까지 따라나섰다가 이런 산행기를 작성하였다. “(…) 빌레나무는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부엽층 형성이 양호한 곶자왈 내 함몰된 지형에서 무리지어 자란다(김진석·김태영). 나는 아직 우리나라의 빌레나무를 본 적은 없다. 언젠가 곶자왈에 가서 간신히 제주도에 한 발을 걸친 기특한 빌레나무를 오래 바라보겠다.”

화산 폭발이 만든 요철 지형의 신비한 곶자왈. 이곳에 오면 나 따위란 그저 하나의 떨림, 지나가는 미풍, 있으나 마나 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숲에 앉아 덤불 속의 빌레나무를 바라본다. 다소 꺼칠한 잎을 들추면 겨드랑이마다 꿀단지 같은 하얀 꽃들이 송송송 달려 있다. 이 작은 나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 생태계가 얼마나 허전했을꼬. 빌레나무와의 관계를 곰곰 짚어보자니 지금 이곳은 내 개인적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의 현장이 아닌가!

태블릿PC-촛불-장미로 상징되는 일련의 흐름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바다. 혹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지게 하는 것과 동일한 힘이 기획한 건 아니었을까. 전혀 다른 기분으로 환갑을 맞이하게 되어 다행이다. 나의 지난 시절을 요약하면 ‘20-시, 30-책, 40-산, 50-꽃’이다. 이순(耳順)에는 어떤 한 글자가 찾아올까. 조금은 건방진 궁리도 해보게 되는 새 공화국 치하에서의 즐거운 하루. 빌레나무, 자금우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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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풍광의 제주. 이런 풍경에 어울리게 특이한 이름도 많다. 우리 국토가 한반도에서 내처 제주도로 훌쩍 뛰었기에 우리 어휘도 그만큼 풍성해졌다. 제주를 대표하는 오름의 이름 몇 개를 중얼거려 본다. 입안이 복잡해진다.         

한라산이 키운 흑돼지 오겹살과는 또 다른 차원의 쫄깃한 맛이다. 성산읍의 한 오름은 허리 부분이 활 모양의 띠가 둘러져 있기에 궁대악(弓帶岳)이다. 궁대악, 궁대악, 궁대악. 과녁에 꽂힌 화살처럼 말맛이 입술을 때리고 지나갔다.

초파일 뒤였다. 날이 날이니만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며 궁대악 오름에 올랐다. 인적 드문 오름의 비탈에는 몇 년 치의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고 아주아주 건조했다. 바짝 마른 오름은 그간의 적폐를 털어내듯 낙엽을 밟을 때마다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었다. 눈은 눈대로, 발은 발대로 포식을 하면서 정상의 호젓한 오솔길에 도착했다.

따가운 햇살을 받아 소나무가 그림자로 내려앉고 그 사이로 내 그림자도 나란히 누웠다. 문득 이 고요한 숲에서 그림자들끼리는 뭔가 내통하지 않을까, 하는 궁리가 일어났다. 이 세상의 배후는 어딜까, 하는 궁금증도 솟아났다. 층층의 낙엽 사이를 휘저으며 부지런히 오가는 수행자들이 있다. 포행이라도 하는가. 탁발이라도 나가는가. 검은 가사장삼을 걸친 날씬한 개미들!

특이한 지형과 특이한 이름에 걸맞게 궁대악 사면 곳곳에 새우난초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름진 타원형의 잎 사이로 훤칠하게 뻗어오른 꽃줄기마다 오밀조밀한 꽃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 두꺼운 흙을 뚫고 어찌 이리도 곱게 올라왔는가. 땅속의 뿌리줄기가 구부린 새우등을 닮아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 새우난초. 너무나 풍성해서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코끝을 대보지만 이렇다 할 향기는 풍기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 살갗을 건들고, 햇살이 찾아와 목덜미를 간지럽히고, 새소리가 둥지처럼 귓구멍을 찾아드는 것. 이는 살아 있기에 누리는 잠시 잠깐의 복락인가. 어느 울적한 야단법석(野壇法席)에 그 누가 꾸며놓은 새우난초를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새우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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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4월의 끝자락에 강원도 홍천 도사곡리의 깊은 골짜기 끝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흩어진 인가 서너 채와 조그만 밭뙈기. 그 한 귀퉁이에 하얀 꽃을 무겁도록 달고 있는 건 야광나무였다. 밭에 딸린 나무 한 그루, 야광나무를 뒤따라 참 좋아하는 시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제목 덕분이기도 했다. “밤늦게 귀가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끝에 대해 끝까지 간 의지와 끝까지 간 삶과 그 삶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김중식) 식물학과 졸업하고 33년이나 지나 뒤늦게 꽃에 빠지니 눈에 보이는 게 다 식물이다. 이 뒤늦은 후회를 어찌하나. 오늘처럼 그 휘황한 야광나무를 가슴에 담고 오는 날이면 정류장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도 모두 나무로 보일 때가 있다. 파라택소노미스트(준분류학자)의 어설픈 지식으로 이렇게 동정(同定)해 보기도 한다.

암수딴몸. 두 개의 가지가 겨드랑이에서 대칭으로 나온다. 가지 끝은 다섯 갈래로 찢어진다. 짧은 모가지 위의 이목구비는 한 면에 모두 쏠려 있다. 열매 같은 얼굴의 정수리 부근에 잔뿌리가 울창하다. 처음에는 검었다가 차츰 하얗게 변하며 드물게 몽땅 빠지기도 한다. 가슴 근처가 조금 복잡하다. 가슴 아래에는 그보다 더 복잡한 사타구니가 있다. 여기로부터 몽당한 뿌리가 둘 뻗어나가지만 신발로 차단된다. 그것들은 돌아다니는 데 능숙하다. 그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아직도 헤매는 중일까? 산 아래쪽이나 물가에 높은 집을 짓고 모여서 겨우 지낸다. 잎자루처럼 발목은 잘록하다. 내부에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손바닥, 발바닥을 제외한 전신에 솜털이 빽빽하다. 무슨 소리가 웅얼웅얼 나오는 입구인 입술에도 털이 없다. 수십 년 직립하여 살다가 그 어디로 떠난다. 동물계 영장목 사람과의 포유류.

밤늦게 귀가하니 울긋불긋 단풍잎 같은 벽보가 요란하다. 어둑해질 때까지 혹 밭에 계신 할머니를 위해 꽃을 켜고 있는 야광나무를 떠올리며 몇 마디 덧붙인다. 해마다 낙엽을 만들어 산을 갱신하는 나무와 달리 5년에 한 번 생각을 떨구어 투표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오늘이 그날이구나! 야광나무, 장미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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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에 한 문장이다. 네모의 빌딩과 네모난 유리창, 비슷한 메뉴에 비슷한 얼굴들, 전망이 온통 광고뿐인 도시에서야 어찌 감히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으랴. 하지만 산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한 발짝 옮길 때마다 나무에서 나무로, 그 나무들 아래에서 전혀 다른 꽃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생각은 휘발유 같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재빠르게 도망가 버린다. 지금 눈앞에 핀 꽃들은 작년에 떠나간 내 생각들이 아닐까.

가평 명지산 한 골짜기를 훑고 내려가는 길. 달아나는 생각이 그물에라도 걸린 것처럼 가뭇한 공중에 싱싱한 생강나무의 노란 꽃이 촘촘하다. 지난겨울에 흩날린 진눈깨비 몇 점 아직도 남았는가, 했더니 사위질빵의 씨앗들이다. 북실북실한 털이 햇살에 반사되어 하얀 눈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4월이라고 눈이 오지 말란 법은 없다. 이 깊은 산골에는 계절도 느리게 가고 오는 법이다. 짙은 응달의 어느 구석에서는 최후의 얼음이 패잔병처럼 남아 있기도 하다. 공중을 비집고 나오는 찬 기운에 마음이 속았나 보다. 이번에는 정말로 펄펄펄 내리는 흰 눈인가 했더니 올괴불나무의 꽃들이다. 향기가 진동하여 나그네의 빌길을 막아섰다는 길마가지나무와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아취를 풍기는 꽃, 올괴불나무.

산길을 더욱 천천히 내려가는데 노란 꽃이 펄럭거렸다. 가까이 가서 보니 꽃이 아니라 리본이었다. 등산팀들이 흔히 갈림길에 달아놓는 꼬리표였다. ‘산에 사네.’ 무심코 지나치려고 했는데 그 말이 이상하게 입안에 자꾸 맴돌았다. 생강나무의 꽃에 일부러 색상을 맞춘 듯 노란 천에 쓴 글씨. ‘산에 사네.’ 산이라는 명사와 산다라는 동사가 이렇게 딱 어울리는 조합일 줄이야 예전에 미처 몰랐었네. 물소리가 졸졸졸 흐르는 것을 보면서 돌은 자음, 물은 모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 또한 서로 착 호응하는 문장이 아닐 수 없겠다. 빨랫줄에 천사들의 속눈썹이 떨어져 걸린 듯한 올괴불나무 앞을 지나치며 자꾸자꾸 중얼거려 보았다. 산에 사네, 산에 사네, 산에 사네. 올괴불나무, 인동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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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거창에서의 대처는 대구였다. 1960년대 너나없이 농촌을 떠나 도회로 진출할 때 솔가하여 대구에 터를 잡은 분들이 많다. 그런 연유로 예전에는 결혼식, 최근에는 장례식에 가려고 종종 대구를 찾는다. 며칠 전의 대구행은 그런 행사가 아니라 꽃산행이었다.

출발-도착만 있는 기차여행은 인간이 풍경과 소통하면서 얻는 애틋한 감정을 생략해 버린다. 아무리 먼 길이라도 아침에 떠나면 저녁은커녕 이슬이 마를 무렵이면 어디든 도착한다. 이름에서부터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대구 불로동에 들어서니 공기 속에 색다른 사연이 섞여 있는 것 같다. 삼국시대에 조성되었다는 210여 기의 무덤들이 밀집한 불로동 고분군. 불로(不老)라 했지만 죽음까지는 막을 수는 없었던가. 탱자나무로 울타리 했지만 해마다 무덤은 늘어나고, 봄마다 새파랗게 새롭게 살아나서 다종다양한 야생화를 기르고 있었다.

이곳은 무덤이 도심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덤 주위까지도 침범해 들어간 형국이다. 이미 죽음과도 많이 친해진 듯 무덤 사이로 길이 반질반질하게 나 있다. 고은의 절창 ‘문의(文義) 마을에 가서’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유서 깊은 동네의 음덕을 입었는지 이곳에는 귀한 야생화들이 차례차례 다녀간다. 이름을 잃고 아라비아 숫자로만 남은 어느 무덤 앞을 점령한 것은 조개나물이었다. 꼿꼿한 줄기 위에 층층의 다락방 같은 구조이다. 잎겨드랑이마다 입술 모양의 보랏빛 꽃들이 늠름하게 달려 있다. 이렇다 할 향기가 없지만 벌들이 쉬지 않고 출입하고 있다.

늙지 않는다는 동네의 지하에서 갓 올라온 꽃들은 발등 높이다. 따지고 보면 결혼-장례-무덤으로 이어지는 시간도 요만한 길이에 불과하지 않을까. 무덤에서 뻗어나간 길이 아파트를 꽉 껴안고 있는 풍경을 배경으로 그런 생각도 해보면서 셔터를 눌렀다. 조개나물,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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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구멍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경향시선’에 소개된 ‘봄에는 구멍이 많아진다’를 접하고 은근한 시심이 작동하여 꼬리에 꼬리를 문 결과였다. “기지개와 혀가 튀어나오고/ 긴 꼬리가 스멀거리고/ 까맣게 부릅뜬 눈동자가 굴러 나와/ 알을 낳고/ 올챙이와 민들레로 피어나고/ 뱀으로 자라나고/ 수많은 꽃잎으로 퐁퐁퐁 터지는 구멍.”

잘 아시다시피 세상에는 구멍의 종류가 퍽 많다. 남산에 피어난 진달래를 보다가 터널로 들어갈 때, 두 개의 구멍은 사람의 얼굴에 난 콧구멍 같았다. 불가에서는 인중에 마음을 얹어두고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는 것을 수행의 한 방편으로 삼기도 한다. 신심 깊은 이라면 이 컴컴한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이곳을 수행처로 삼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던 차에 <변호인>에서 돼지국밥을 맛있게 끓여내던 여배우가 세상을 떠났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접했다. 이제 허공으로 돌아간 그이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했다. “연기는 나의 숨구멍이었어요.”

나란한 것 같지만 월화수목금토일은 등고선 같아서 아무 때나 비상구를 만들 수가 없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겨우 몸을 빼내어 떠난 주말의 꽃산행. 남해 망운산 초입에서 땅에 떨어진 꽃잎과 작은 제비꽃을 보았다. 산에 드나든 지가 제법 되었지만 아직 모르는 나무와 야생화가 너무 많다. 산에서 모르는 나무 앞에 서면 꼭 그 나무 형상의 구멍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쯤 나는 저 무수한 구멍들을 퐁퐁퐁 다 터뜨려 후련하게 통할 수 있을까.

땅에 떨어져 편안히 누운 꽃잎을 보면 어쩐지 예쁜 구멍, 지하로 가는 문(門)이라는 생각이 든다. 꽃잎에 둘러싸인 작은 꽃은 고깔제비꽃이었다. 제비꽃은 종류가 아주 많다. 꽃줄기가 뿌리에서 바로 나오느냐, 원줄기에서 나오느냐로 크게 구별된다지만 색깔, 털, 잎 모양 등에서 언제나 헷갈린다. 고깔제비꽃은 잎이 또르르 말리는 게 특징인데 오늘따라 그게 유난히 작은 구멍으로 도드라져 보였다. 고깔 같은 잎이 만들어내는 작은 구멍 옆에 쪼그리고 앉아 나를 둘러싼 여러 구멍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고깔제비꽃,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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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가설이란 게 있다.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파악하는 이론이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을 뜻한다. 한 벌의 옷과 양말만으로 간단히 포장된 채 잠시잠깐 살아가기에 급급한 존재로서 지구를 운운한다는 게 참 가당치 않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겪어냈다는 것, 지상의 한 표면을 엄연히 내 두 발로 돌아다녔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어쨌든 나는 나를 밑천으로 눈앞의 환경과 일대일로 대결하고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런 처지에서 가평 명지산의 어느 골짜기를 헤매고 헤맸다. 아침에 호기롭게 출발한 해를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서산으로 굴러떨어질 즈음 물소리가 졸졸졸 편안하게 귀를 간지럽히는 개울과 나란히 걷게 되었다. 뻐근한 다리도 식힐 겸 소리의 정체도 확인할 겸 숲 안으로 들어서니 이끼가 잔뜩 포진하고 있다.

물은 물대로 저희들끼리 어울려 내려가는 가운데 어느 잔칫집에라도 온 듯 봄기운이 왁자지껄했다. 어느 손바닥만 한 돌이 눈에 띄었다. 돌에 묻은 이끼와 지푸라기는 그 누군가가 쓴 낯선 문자 같기도 하다. 조금 흥분한 것 같은 돌을 힘겹게 밀어 올리며 세상으로 나오는 건 금괭이눈이었다.

산괭이눈, 애기괭이눈, 선괭이눈, 가지괭이눈 등 비슷한 종류가 몇 있지만 금괭이눈은 꽃잎은 물론 포엽까지 노란 황금색으로 짙게 물든다. 쪼그리고 앉아 자세히 관찰해보면 난간 같은 포엽 위에 작은 사각의 됫박 같은 꽃들이 붙어있다. 자연은 직선을 만들지 않는 법인데 이곳은 유일한 예외인 듯 매끈하다. 함지박만 한 곳에 건설된 금색의 이 찬란한 문명(文明)을 홀린 듯 보노라면 많은 이야기가 울려나올 것만 같다.

아직 나는 산에서 살 수 없고 어둑어둑해지면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때 이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한다. 그러니 이 맞춤한 시간에 만난 금괭이눈은 그 이름에서부터 부리부리한 느낌을 주면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가이아의 눈이라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게끔 하는 것이었다. 금괭이눈,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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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의 산문을 보니 이런 문장을 인용해 놓았다. 꽃이 아름다운 건 땅에서 이만치 떨어져서 피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일락 말락 줄기나 가지 끝에 수줍게 달려 있는 봄꽃을 맞닥뜨리면 그런 실감이 든다. 수학적 모델을 이용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산은 땅을 x축으로, 나를 y축으로 하는 시공간이다. 그 아득한 시공간의 x축에서 이만치, y축에서 저만치 서로 교차하는 좌표에서 미지수로 피어난 꽃. 그리하여 낯선 여인의 습격을 받듯 발등을 때리거나 가슴팍을 찌르기에 더욱 사무치는 아름다움이 아닐까.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소월의 ‘산유화’에서 ‘꽃’만큼이나 핵심적인 시어가 있으니 ‘저만치’이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놓인 거리의 표시일까. 꽃이 되지 못하는 몸이 느끼는 안타까움의 표현일까. 미당 서정주는 저 부사의 의미를 이렇게 짚기도 했다. “저 수세(守勢)의 난처한 아름다움.” 미지수로 피어난 꽃과 저만치 피어난 꽃을 생각할 때 저절로 떠오르는 건 단연 진달래이다. 우리 사는 세상의 높이와 깊이가 산에서 비롯할진대 만약 그 산에 진달래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건 산이 없다는 것과 같은 상태가 아닐까. 많은 다른 꽃들한테 참으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진달래는 이렇게 대접해 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옛날 산으로 소먹이 구하거나 나무하러 다닐 때 참 억수로 따먹었던 진달래, 꽃 중의 꽃이기에 참꽃이라고 했던 진달래, 당장 어느 산에 가더라도 몇 발짝 만에 만날 수 있는 진달래. 아니 만나려야 아니 만날 수 없는 진달래, 몇 번을 만나도 싫증이 나기는커녕 외려 더욱 얼굴을 비비고 싶은 진달래.

화양연화인 듯 늘 저만치 피어 있는 진달래 꽃잎 하나에 지난 시절을 올려두고도 싶었다. 하지만 습자지처럼 쉬이 찢어지기도 하는 진달래. 그래서 더욱 가슴을 문지르게 하는 진달래. 꽃 앞을 지나칠 때면 내가 꽃을 보는 게 아니라 꽃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진달래. 다시 한번 더 진달래,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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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피 마른 지 엊그제 같던 아이가 비 맞은 죽순처럼 쑥쑥 자라기 시작할 무렵, 어느 여름휴가에 남해 금산에 가 본 적이 있다. 기도의 영험함이 유별하다는 보리암을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본 뒤 정상에 올라 일망무제의 바다를 바라볼 때, 그다지 안목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눈앞의 풍경이 거대한 무대처럼 느껴지더니 이내 저 휘장 너머의 외부로 건너가고 싶다는 생각이 툭 튀어나왔다. 나의 나머지 일생이 그저 요만한 크기와 넓이로 굴러가겠거니 가늠되던 시절에 만났던 그 호쾌하고도 아련한 장면은 짧은 순간이나마 답답한 마음에 큰 구멍 하나를 뚫어주었다. 그때 나란히 앞을 바라보던 어느 분의 한마디가 바람소리를 비집고 쏙 들어왔다. 굳이 나를 겨냥한 말은 아니었지만 쪼잔한 가장의 심사에 궁합을 꿰맞춘 말이라서 귀에 정확히 꽂힌 것이었다. “여행이라고 굳이 외국에 나갈 일이 아니라니까요!”

세월이 흘러 아이는 대나무처럼 훌쩍 자랐고 나는 제법 늙었다. 시골에서 뛰놀던 산과 들에서 학창 시절의 운동장으로, 그리고 사무실의 좁장한 책상으로 나의 공간이 팍 쪼그라들었다. 그때의 예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행로 끝의 결과였다. 어느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오르다가 비상구라도 만난 듯 오늘은 그나마 이렇게 남해 금산의 한 골짜기를 더듬는다. 발밑을 두리번거리지만 날씨는 쉬 풀리지 않아 제비꽃, 양지꽃을 겨우 건졌다.

그런 와중에 큼지막한 돌들이 함부로 나뒹구는 계곡의 가장자리에서 눈을 씻어주는 나무가 있었다. 바닷가에 주로 사는 사스레피나무였다. 노란 생강나무 곁에서 잎만 무성한 줄로 알았더니 가지 밑으로 꽃들이 한창이었다.

꽃이라면 으레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나무를 대표한다는 기분으로 얼굴을 빳빳하게 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쩐지 사스레피나무의 그것은 잎겨드랑이마다 종 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다닥다닥 붙어 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주 야무진 인상의 사스레피나무. 잎은 동백처럼 두껍고, 가장자리마다 톱니가 발달했다. 손가락 끝으로 한 바퀴 휙 어루만지면 꿀꿀하던 기분까지도 알싸하게 확 변화시키는 나무, 사스레피나무, 차나무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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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버리고 임도를 버리고 봄기운에 풀린 물소리가 졸졸졸 들리는 계곡으로 접어든 채 남해 금산 한 골짜기를 헤맬 때,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생각은 두개골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저 숲속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게 아닐까. 얼크러진 바위들,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 하늘로 잇닿을 것처럼 꼬부라져 돌아가는 계곡에서 난데없는 생각들이 툭툭 뛰어나와 나를 자극하니 그런 느낌이 아니 들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지금 이곳에 있지 않았더라면 도저히 만나지 못할 이런저런 생각들이 분명했다.

물웅덩이에 제 그림자를 비춰보는 나무들은 무심하고 태연하다. 겨드랑이가 무척 근질근질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돌 가운데의 어느 나무 가지에는 새의 깃털이 꽂혀 있고 상류에서 떠밀려온 것들이 낑겨 있기도 하다. 비바람에 씻겨 풍화하는 작년의 흔적들. 이 고요하고 아무 일 없을 것 같은 골짜기에도 무서운 일들이 끊임없는가 보다.

이른 봄이면 남녘을 수놓는 노오란 꽃잎의 삼총사가 있다. 산수유, 히어리 그리고 생강나무. 산수유는 차창 밖의 밭에서 많이 보았고 히어리는 보리암으로 오르는 초입에 우세하였다. 나머지 하나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멀리서 노란색이 공중으로 톡톡 번지고 있다. 틀림없는 생강나무였다. 꽃잎을 코끝에 대면 은은한 향기가 좋다. 히어리가 조롱조롱 달린 등불, 산수유가 확 퍼져나가는 불꽃이라면, 생강나무의 꽃은 생각의 덩어리처럼 가지에 딱 붙어 묵직하게 기지개를 켠다. 가지나 잎을 문지르면 살캉살캉 생강냄새가 흘러넘치는 생강나무.

소슬한 침묵을 짚으며 바위를 넘고, 길들여지지 않는 돌을 딛고 계곡을 오르는 동안 세련된 사무실에서는 쓰지 않던 근육을 동원하느라 많이 노곤하였다. 덕분에 어느새 몸이 밀가루 반죽처럼 말랑말랑해졌다. 돌은 자음, 물은 모음. 둘이 완벽하게 결합하면서 빈틈없이 꽉 짜인 문장을 부지런히 아래로 보내는구나! 남해 금산의 어느 편평한 돌팍에 앉아 생강나무 향을 만끽하면서 그런 부드러운 생각을 했다. 생강나무, 녹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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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어떻게 올까. 봄을 맞이하는 각심(各心)은 서로에게 한 가지씩 있을 것이다. 내로라하는 신문들은 3월이 오면 으레 농부가 소를 몰고 쟁기질을 하는 사진을 1면에 싣는 것으로 바야흐로 천하에 봄이 도래하였음을 알렸다. 겨우내 딱딱해진 흙을 갈아엎으며 땅심을 돋우는 농부 옆에서 산수유가 활짝 펴 봄기운을 보태기도 했다. 몇 해 전 그 전통이 깨져버렸다. 멀쩡한 강에 콘크리트를 처바르기 시작한 시기부터였다. 그땐 봄이 와도 좀 이상한 광경들이 신문을 장식했다. 그것은 싱그러운 들판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파헤쳐진 강의 둔덕, 언덕, 습지, 숲, 둔치, 사구, 모래톱, 텃밭, 여울, 농지였다. 그곳에서는 누런 소가 아니라 노란 불도저, 굴착기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이상한 중장비들은 황야의 무법자처럼 마구 돌아다니며 강의 연안을 할퀴고 물어뜯는 중이었다. 봄이 왔다지만 영 봄 같지 아니했다.

종이신문을 잘 안 본 탓도 있지만 그 이후 봄소식을 전하는 소는 자취를 감추었다.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되기 직전 눈물짓는 할머니 앞에서 마지막 여물만찬을 하는 소를 보았을 뿐이다. 며칠 전 경향신문에서 본 사진은 모처럼 눈을 환하게 당겼다. “이랴~, 봄을 깨우는 힘찬 쟁기질. 지리산 자락의 경남 함양군 마천면 당흥마을 고랭지 밭에서 한 농민이 소를 앞세워 쟁기질을 하고 있다.” 언제 보아도 소는 늘 좋다. 한편으로 미안하고 고맙고 안쓰럽기도 하다. “꽃 피고 새가 우네, 이 좋은 봄에/ 거름 싣고 이 몸은 밭을 가노라/ 등가죽엔 붉은 피 멍이는 목에/ 채찍은 벼락질을 이내 엉덩이”(‘소는 운다’, 김소월).

봄소식은 이뿐이 아니었다. 광장에서는 이런 구호도 만났다. “가라 朴, 와라 봄.” 마침내 빵, 봄이 터졌다. 압도적이고도 전면적으로 방방곡곡마다 한꺼번에 확, 봄이 들이닥쳤다. 2017년 3월10일 오전 11시21분. 나의 입가에도 봄이 와서 말뚝을 튼튼하게 박았다.

재작년 이 시기에 구례의 당동마을에 가본 적이 있다. 당흥마을과 이웃한 지리산의 골짜기 마을이다. 꽃망울을 터뜨린 산수유의 노란 물감 속에 폭 빠진 동네였다. 산수유는 잎은 잎, 꽃은 꽃, 열매는 열매로 그 존재가 확실했다. 또한 이름은 이름대로 산수유! 산수유, 층층나무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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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생각 하나를 줍기 위하여 모처럼 인왕산에 올랐다. 바위투성이의 암산이다. 가까운 곳의 낮은 산이라지만 갖출 건 다 갖추었다. 호젓한 오솔길, 아찔하게 돌아가는 벼랑길이 있는가 하면, 가쁜 숨을 몰아쉬게 하는 깔딱고개도 있다. 추락하면 목숨을 가져가는 높이도 입을 벌리고 있다. 인왕산 정상에는 큰 바위가 있는데 다섯 개의 홈을 파놓았다. 두 개의 눈, 코, 입 그리고 보조개로 각각 대응시킬 수도 있어 멀리서 보면 꼭 해골 같다. 이처럼 인왕산이 꼭대기에 해골을 얹어놓은 것은 헥헥거리며 정상에 오르는 나 또한 어깨 위에 그것을 달고 있으니 어쩌면 둘은 닮은 구조라 하겠다. 오늘 인왕산 정상에서 유념하는 건 해골바위가 아니라 바위에 거처를 두고 자라는 소나무였다. 척박한 환경이라 우람하지는 않지만 지친 등산객 하나를 품기에는 넉넉한 소나무. 나무 밑에 앉으니 광화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에 간밤의 함성이 실린 듯 귓전에서 쟁쟁하였다. 발밑으로 환히 펼쳐지는 서울특별시. 인왕산 소나무에 연결되어 멀리 빌딩숲에서도 헌법재판소의 앞마당에 있다는 백송(白松)으로 시선이 달려가 꽂히는 건 최근 마음이 쏠리는 바를 좇음이었다.

몇 해 전 궁리출판에서 펴낸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는 1988년 이후 대한민국이 어떻게 아파하고 고민하며 오늘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대통령 탄핵을 다룬 뒷부분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재동 헌법재판소의 백송 오른편에 산책로가 있다. 재판관들은 점심을 함께 먹은 뒤 모두 이곳을 산책한다. 뒷짐을 지고 무언가 담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재판관들이 대놓고 심판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만, 내심을 담아 치열하게 설득을 벌이고 있을 테다. 이런 이야기를 20년 가까이 보고 들은 목격자가 바로 천연기념물 8호 재동 백송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것처럼 우리 살아가는 모습은 하늘에 다 녹화될 것이다. 소나무 아래 이슥하도록 머물렀지만 생각을 줍지는 못했다. 며칠 후 수령 600년의 목격자 백송은 그 어떤 경건한 소식을 전해주실까. 강원도에서 굽이굽이 흘러와 결국 바다를 찾아가는 한강을 보면서 집으로 내려왔다. 소나무, 소나무과의 상록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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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현기증은 봄으로 달래는 게 옳겠다. 여러 봄소식 중에서도 꽃이 제일이지 않을까 싶어 남해를 찾았다. 지난여름 땡볕의 열기를 간직하고 있는 바다와 직접 면한 고장들 중에서도 특히 따뜻하기로 이름났다 해서 운동선수들의 겨울훈련지로 각광받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씩씩한 함성에 놀라 바삐 뛰어나온 꽃이 있을까. 하지만 그런 요행은 늘 비켜가기 마련이다. 망운산 중턱에 있는 노구 저수지의 뒷사면을 뒤졌지만 이렇다 할 꽃은 기미조차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낙엽을 들추고 흙을 조금 파보니 땅은 아직 얼음으로 죄 딱딱했다.

허전하게 임도로 나오는데 나이 지긋한 분이 경운기를 세워놓고 대나무를 자르고 있다. 남해요? 좋다말다요. 물이나 땅에서 파기만 하면 뭐라도 나와요. 꽃? 하이고, 아직 정월인데 아직 멀었지요. 바다에서 고기를 낚을 건 아니었고 밭에서 무언가를 건져 올리는 데 쓰일 대나무. 나이테 대신 구멍이 뻥뻥 뚫린 대나무의 텅 빈 속을 보며 지나치는데 길 가까이에 또 다른 구멍이 있었다. 딱따구리의 작품인 듯 여덟 개나 되는 오동나무의 구멍이었다. 사실 오동나무를 오늘 처음 보는 건 아니었다. 산에서 가끔 보되 주로 무덤가에서 만났던 나무였다.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큼지막한 잎은 지하로 녹아들고 없었지만 눈알만 한 열매가 아직도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공중에 세로로 뚫린 구멍들을 보는데 한 궁리가 주르륵 엮어졌다. 오동 한 잎 떨어지는 소리가 천하에 가을을 알린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오동나무는 소리하고 깊은 관련이 있다. 이뿐인가. 여러 국악기의 공명판으로 안성맞춤인 오동나무이다. ‘이그(Ig)노벨상’에 따르면 딱따구리의 머리는 머리뼈와 부리 사이에 스펀지 같은 완충조직이 있어서 뇌진탕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새는 구멍을 뚫을 때부터 헤드뱅잉으로 경쾌한 음악을 숲에 들려주는 것. 그리고 지금은 바람이 세게 불면 오동나무에서 희미한 피리소리가 울려나올 것 같았다. 나중 죽어선 거문고나 가야금이겠고 살아선 여덟 구멍으로 허공을 연주하는 오동나무. 현삼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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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이 가까워지면 라디오가 시간을 알려준다. 띠띠띠땡!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에 그 시각은 지나고 만다. 아무리 반듯한 아나운서일지라도 결과적으로 바르지 못한 시보(時報)를 하는 셈이라 할 수 있겠다. 예전 국악방송의 어느 진행자는 이런 미묘한 사태를 고려했음인지 흥겨운 음악 하나가 끝나고 나면 이런 멘트를 날리기도 하였다. “지금 시간 오후 1시10분 이쪽저쪽입니다.”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의 입구로 들어가다가 이런 시간의 이정표를 듣는 것이 참으로 신선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귀기울여도 들을 수 없어 게시판에 이런 글을 직접 올렸다. “우리가 같은 강물에는 두 번 들어갈 수 없듯이 1시10분이라고 말하는 순간 1시10분은 어디론가 흘러가버립니다. 해서 이쪽저쪽이라고 하는 표현이 가장 적확하고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쪽저쪽 하면 우리네 삶이 생과 사의 이쪽저쪽에 있음을 일깨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무슨 소쩍새가 시간을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 이 참신한 표현을 더 들려주실 수는 없겠는지요? 늘 좋은 음악에 가슴이 출렁댑니다.”

그제 경향신문을 펼치는데 봄소식을 전하는 버들강아지와 목련 사진이 눈을 찔렀다. 목련 아래에는 경희대학교의 한 졸업생이 기념사진을 찍는 광경이 희미하게 담겨 있었다.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을 딛고 완도로 곧장 달려갔다. 그날 나는 완도의 식생을 관찰하는 길이었다. 남녘이라지만 날씨는 쌀쌀했다. 손수건만 한 햇볕을 등에 지고 하산하는 길이었다. 산의 위력이 끝나는 곳에 논이 있고 그에 잇대어 자투리 밭이 있고 그 끝에 허술한 집이 있었다. 이 뒤안 여기에 왜 이 나무인가, 하는 것은 우문이다. 그을린 굴뚝의 온기에 기댄 채 바깥을 기웃거리고 있는 나무 한 그루, 목련이었다. 가지 끝마다 너무도 분명하게 오로지 한 꽃송이 내걸고 있는 목련. 입춘 지나고 우수 근처. 봄 냄새가 물씬했다. 겨울을 뚫고 나오는 이 기세를 봄이라고 꼭 집어 말하면 봄이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을까. 그러니 이 낮은 지붕을 슬그머니 휘어잡는 목련 아래에선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다. 바야흐로 봄의 이쪽저쪽이로구나! 목련, 목련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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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지나고 여러 날인데 날씨가 조금도 꺾이지 않았다. 해만 조금 길어졌다. 심학산에 올랐다. 월초에 온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있었다. 겨울을 앓고 있는 산속에서 몸져누운 길이 수척하다. 가장자리마다 간호하듯 낙엽이 대기하고 있었다. 길이 훤히 보이는 만큼 뱀껍질처럼 반들반들했다. 골짜기를 끼고 도는 둘레길은 드문드문 응달이었다. 한물간 낙엽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어이쿠, 엉덩방아를 찧었다. 낙엽 밑이 얼음이었다.

넥타이를 매던 시절, 연례행사처럼 꼭 도로에서 넘어져야 했다. 모가지를 조르는 만큼 다리에 힘이 풀렸던가. 조급한 성격과 구두 탓도 있을 것이다. 옛날 생각에 싱겁게 젖었다가 또 넘어졌다. 두 번을 거푸 심학산한테 엎어치기를 당한 셈이다. 원하지 않은 동작을 취해야 했지만 기분이 과히 나쁘지는 않았다. 여기에선 넘어져도 나무 곁이다.

오늘은 아이젠을 준비했다. 얄미운 체중을 실은 쇠는 미끄러운 얼음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상어이빨 같은 아이젠을 장착했으니 넘어질 뻔, 하는 일조차 없겠다. 그제는 가운데를 피해 가장자리로 쫓겨다니기에 바빴다. 이젠 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외려 반들반들한 곳이 눈에 더 들어온다. 일부러라도 그곳을 밟고 싶어진다. 미끄러운 길 안으로 성큼 들어서는데 나의 머릿속으로 뛰어드는 식물이 있다. 그건 질경이였다.

얌전한 식물들이라지만 살아가는 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먹이인 햇빛과 물을 두고 다투는 것이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역발상으로 인간이 뚫은 길 안으로 뛰어드는 생존전략을 택했다. 그게 바로 질경이다. 이 영리한 식물에게 여기는 블루오션인 셈이겠다.

살아가면서 질경이 한 번 안 밟은 이 어디 있겠나.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도 생명력이 질긴 질경이. 줄기는 없고 초여름부터 가을까지 흰 꽃이 자잘하게 피는 질경이. 넓은 잎이 참으로 유연한 질경이. 바람보다도 더한 바퀴나 발길에 짓밟혀도 거뜬하게 먼저 일어나는 질경이. 지리산의 노고단산장에서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길에도 질경이는 무성했다. 올해 지리산 꽃산행 갈 적에는 더욱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할 질경이. 질경이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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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거제도 가는 길. 고등학교 시절 부산에서 쾌속선 돌핀호를 타고 여행했던 기억과 함께 포로수용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눈 맑은 시인의 그 커다란 눈동자에도 이 풍경들이 다 담겼을까. 그는 오늘의 나처럼 여유로운 꽃산행객이 아니라 포로의 신분이었다. 그것도 이 섬에서 몇 개월 머무르다 이내 부산의 거제리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이동해야 했던 운명이었다. 얼핏 스치는 이정표가 차창을 때린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잔존기념물. 날카로운 화살표 옆으로 ‘잔존’이라는 단어가 생경하다. 포로들은 오래전 여기를 떠났지만 그 흔적은 이렇게 생생하게 잔존하는 것인가. 언젠가 포로수용소에 생존하는 식물상을 직접 조사해 보리라 마음먹고 오늘은 그냥 지나친다.

이번에 목적한 곳은 비상하는 꾀꼬리를 닮았다는 앵산이다. 그 이름을 입안에 넣고 한번 더 굴려보지 않을 수 없는 앵산. 이름이 이리도 강력하니 철이 다소 이르긴 하지만 땅심이 대단하여 봄꽃이 혹 엄동설한의 찬 기운을 뚫고 오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의 기대가 꽃의 의욕을 너무 앞지른 게 아닌가 했더니, 어라, 노란 복수초가 여러 촉 환히 피어 있지 않은가. 가장 먼저 접촉하는 정유년의 봄꽃. 내 볼에 훅 그대로 곤지처럼 들러붙는 듯 반갑기 그지없다. 변산바람꽃도 보았더라면 주체 못할 희열로 얼굴이 많이 씰룩거렸겠지만 이만해도 어딘가. 뜻밖의 봄꽃으로 몸안이 아연 환해졌다.

그래도 조금 아쉬워 허전한 시선을 거두려는 참인데 너덜겅을 배경으로 일군의 나무가 눈으로 들어왔다. 보통 산에서 흔한 나무이긴 하지만 이렇게 집단적으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은 비목나무였다. 비목나무는 수피가 조금 지저분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른 봄에 종알종알 피는 꽃은 그 향이 은은하고 은근해서 발길을 붙든다. 이름에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비목나무는 어느 산을 간들 으레 한두 그루는 만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앵산의 비목나무, 어쩌면 시인 김수영의 시선도 묵묵히 받아내었을 바로 거제도의 저 비목나무도 함께 생각하기로 했다. 비목나무, 녹나무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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