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181건

  1. 2016.12.06 좁은잎덩굴용담
  2. 2016.11.29 무궁화
  3. 2016.11.22 도둑놈의갈고리
  4. 2016.11.15 익모초
  5. 2016.11.08 좀바위솔
  6. 2016.11.01 꽃향유
  7. 2016.10.25 물매화
  8. 2016.10.18 철쭉
  9. 2016.10.11 청미래덩굴
  10. 2016.10.04 병아리풀
  11. 2016.09.27 큰잎쓴풀
  12. 2016.09.20 구절초
  13. 2016.09.13 등칡
  14. 2016.09.06 초피나무
  15. 2016.08.30 알며느리밥풀
  16. 2016.08.23 시로미
  17. 2016.08.16 송장풀
  18. 2016.08.09 좁쌀풀
  19. 2016.07.26 병아리난초
  20. 2016.07.19 솔나리

모릅니다, 기억에 없습니다. 그는 마이크 앞에서 이 말을 반복적으로 했다. 자신의 말에 힘을 싣기 위해서인지 머리를 아래위로 까딱까딱하였다. 현대사의 주요 길목마다 어김없이 등장하여 모종의 역할을 했던 법률가답게 자신이 꾸민 조서에 인감도장이라도 찍는 동작인 것 같았다. 어쩌면 그리 재주도 좋아서 기억을 이렇게 잘 관리하고 있을까. 목구멍 너머 어딘가에 기억을 꼬불쳐놓았다가 필요에 따라서 꺼내어 써먹는 것일까. 하지만 어쩌나. 몸에도 기억이 있는 법이다.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는데 몸통으로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희극적 광경으로 내 눈에는 비쳤다.

산은 적막하고 꽃은 없다. 병신년도 이제 마지막이다. 한 해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많은 식물들이 내 눈을 통과했다. 올해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는 좁은잎덩굴용담이다. 한강의 발원지인 태백의 검룡소 근처. 단풍도 함성처럼 산하를 물들이고 난 시기. 관광객의 발길을 잠깐 벗어난 곳에서 만난 꽃이었다. 꽃동무의 외침을 듣고 어느 덤불 속으로 허리를 꼬부리고 들어갔지만 한동안 어디에 시선을 둘지 몰랐다. 한참을 헤맨 끝에 보일 듯 말 듯 쇠뜨기에 의지하고 있는 그 꽃을 겨우 발견했다. 내 눈에 놀라운 건 꽃이 아니었다. 잎도 아니었다. 좁은잎덩굴용담의 실처럼 칭칭 감기는 줄기였다. 보일락 말락한 작은 줄기에서 어쩌면 이리도 어엿한 여러 꽃들이 주렁주렁 연결되어 있을까. 몹시도 가는 줄기에서 이따만하게 달려 있는 호박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감흥이었다.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를 노래하며 광화문광장에 모인 우리는 ‘홀로섬에 닻을 내린’ 주권자들이다. 함께 합창하니 입 모양도 같고,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율이 통하고, 그 어떤 힘이 뻗어나와 어깨와 어깨가 서로 연결되는 순간, 좁은잎덩굴용담이 떠올랐다. 가수 한영애의 이어진 노래는 ‘조율’이었다.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내년에도 변함없이 좁은잎덩굴용담은 더욱 뚜렷한 기억을 되살려 제자리에서 겨드랑이마다 또 꽃을 활짝 피우겠지. 좁은잎덩굴용담,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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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눈깨비 흩날리는 늦은 오후. 옷깃을 여미며 지하철을 탔다. 안국역에서 내렸다. 안국(安國), 나라의 평안. 말의 의미가 새삼스러워졌다. 헌법재판소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이내 인왕산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애석하다, 희뿌연 안개에 가려 산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우러르는 인왕산이다. 어렴풋한 흔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졌다. 광화문으로 쇄도하는 발걸음에 한 걸음을 보탰다. 광장임에도 숨바꼭질하듯 걸어야 했다. 많은 궁리가 일어났다. 경복궁역에서 청운동 사무소까지 가는 길. 예전 궁리출판 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눈 감아도 훤하다. 옆사람과 어깨를 걸고 나아가며 구호를 외쳤다. 특히 다음 일곱 글자에서 울컥, 했다. “국민이 명령한다!” 행진하는 너는, 나는, 우리는 저 문장의 확고한 주어다. 인왕산 쪽 길가에 가로수가 서 있다. 큼지막한 돌화분에 회양목을 울타리 삼아 심어진 무궁화. 총 68그루였다. 나흘 전이 소설(小雪)이었다. 시절에 맞게 오늘 첫눈이 내렸다. 나무는 꽃과 잎을 모두 버렸다. 벌어진 열매 속으로 하늘의 소식이 들어가고 있었다.

대열을 벗어나 잠깐 산에 다녀오기로 했다. 정상에서 기습 고함도 질러볼까. 직접 인왕의 안부도 살피고 싶었다. 아뿔싸, 등산로가 폐쇄되었다. 성난 목소리는 이미 북악산 꼭대기까지 넘실대고 있었다. 둘레길을 걷다가 청와대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대에 섰다. 무무대(無無臺)이다. 돌판에 그 뜻을 이렇게 적어놓았다.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 왜 아니겠는가. 참여자 150만명에 연행자 0명, 부상자 0명이다. 대통령이 내팽개친 국격을 거리의 국민들이 쌓아올리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저 아름다운 품격을 보라!

산에 갔다 온 사이 밤은 깊어졌고 국민들은 늘어났다. 도로에 송곳 하나 세우지 못할 만큼 빽빽했다. 경찰차에는 꽃 스티커도 많이 붙어 있다. 그 사이 무궁화는 여전하다. 이 함성, 이 물결, 이 느낌. 공중을 가득 채운 파동을 무궁화도 흠뻑 느끼고 있을 것이다. 내년 봄에 얼마나 본때 있게 피어날까, 골똘한 생각에 잠긴 무궁화. 우리나라의 꽃, 무궁화. 아욱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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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피치 못할 사정이 겹쳐 최근 산으로 가지를 못했다. 권력의 단물에 취한 이들이 거짓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에 어안이 벙벙해지기를 여러 날. 일손도 잘 잡히지 않았다. 이번 주 이 코너의 글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대선 때 이런 말이 있었다. 굳이 바닷물을 다 둘러 마셔야 바다가 짜다는 걸 알겠느냐. 한 방울만 맛보아도 충분하다. 우리 시대의 안목을 생각하며 머리를 빙빙 굴려보지만 쓰디쓴 입맛만 다셔야 했다. 그러다가 밤늦게 <다큐멘터리 3일>을 보게 되었다. 이번 주는 ‘어느 멋진 날’이라는 제목으로 최고의 단풍을 자랑한다는 내장산의 72시간을 다룬 것이었다. 과연 내장산의 단풍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넘어선 곳에 있었다. 저런 고운 단풍이 있어 한 해를 마무리하는 허허로움을 의지하는가 싶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저토록 울긋불긋하게 타올라 산하를 물들이는 단풍은 주말이면 전국 곳곳에서 타오르는 촛불과 어금버금한 것이 아니겠는가. 이 멋진 날에 어울리는 단풍만큼이나 아름다운 건 그래도 사람들이었다. 내장산에서 단풍구경하는 분들은 다들 평범한 이웃들이었다. 절에 들러 비는 소원도 그저 가족의 건강과 안녕, 막내의 대학 진학 같은 소소한 것들이었다. 어느 할머니는 백양사 사천왕문을 지나면서 이런 말씀을 남기시기도 했다. 그저 죄짓지 말고 살아야지!

어지러운 심사로 텔레비전 속의 단풍을 보는데 몇 년 전 내장산으로 희귀식물 조사 갔던 생각이 떠올랐다. 목적했던 말나리, 진노랑상사화, 백양꽃, 은꿩의다리를 관찰하고 내려오다가 금선계곡 길섶에서 인상적인 꽃을 만났다. 가늘고 긴 가지마다 세 장의 잎이 어긋나게 달리고 작은 나비 모양의 꽃이 다닥다닥한 야생화. 생긴 모습보다는 그 이름으로 먼저 기억되는 도둑놈의갈고리였다. 선글라스를 꼭 닮은 열매에 잔털이 많아 다른 물체에 잘 들러붙는다 하여 이런 애꿎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최근 ‘식물대통령’이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식물들이 들으면 퍽 섭섭하겠다. 그처럼 도둑놈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도둑놈의갈고리, 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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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김기림의 시 한 구절도 떠올리며 시냇가를 훑었다. 여기는 정선의 덕산기 계곡. 야생화 생태계가 다종다양해서 올봄에도 왔었다. 물에 반쯤 잠긴 바위에 올라앉아 일거에 눈길을 사로잡던 진달래. 풍경이 풍경을 복사하여 더욱 풍성한 풍경을 만들어내던 시간이 엊그제 같았다. 봄, 여름, 가을이 차례차례 다녀가고 이제 겨울이 와서 ‘차렷!’ 하는 계절이다. 꽃은 침묵의 세계로 들어갔다. 지금은 꽃산행이라기보다는 꽃관찰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다. 꽃을 탐하던 시선에서 벗어났더니 돌멩이 하나, 물 한 방울도 다 꽃으로 보인다. 그리 넓지 않은 계곡. 또랑또랑한 물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동요도 부르면서 이렇게 꼬부라져 돌아가는 시냇가에 서면 어쩔 수 없이 옛 생각이 난다.

예전의 나는 물속에 있었다. 여뀌를 풀어 물고기를 잡았다. 제법 큼지막한 돌을 뒤집으면 곤히 쉬다가 놀란 물고기가 족대에 걸려들었다. 잡은 물고기를 고무신에 담아놓으면 죽어가는 그것들이 뱉어놓은 허연 거품. 더러 어떤 돌에는 쏘가리가 슬어놓은 알이 붙어 있기도 했다. 아, 그게 별미라고 혓바닥을 내밀어 핥아먹기도 했던 미련한 시절.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과 물 바깥에서 꽃을 찾는 것 사이에 지나간 삶이 축약되어 있다. 물속에서 물 바깥으로 난 길의 몇 발짝에 보잘것없는 한 인생이 퇴적되어 있는 것. 머릿속에서 많은 생각이 일어나듯 골짜기 사이로 끊임없이 물이 흘러갔다. 이런저런 시절을 통과하여 고무신에서 등산화로 바꿔 신고 걸어가는 오늘. 멀리 냇가의 조약돌 사이로 우뚝한 익모초가 보인다. 겨드랑이마다 촘촘하던 꽃잎은 다 떨어지고 싱싱한 색감도 시나브로 사라졌지만 훤칠한 대궁이 쌀쌀한 날씨를 배경으로 더욱 날씬하게 보이는 익모초. 머지않아 잎도 떨어지고 줄기와 열매만이 남아 미라처럼 보이겠지만 그 자세와 기품은 그대로! 이로울 익(益), 어미 모(母). 익모초, 그 이름으로 많은 것을 말하는 꽃. 꿀풀과의 두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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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발갛게 달아오른 단풍이다. 무언가 모종의 조짐이 일어날 듯 울긋불긋한 색깔이다. 그동안 공중에 숨어 있었던 날카로운 바람들이 찬 기운 몰고 서울로 몰려갔다. 낙엽이 떨어지기 전에 결판을 내겠다는 기세인 듯했다. 오래전 약속에 따라 꽃동무들과 그 바람을 거슬러 간 곳은 경기도 연천의 보개산이었다.

몇 해 전에 본 연천 은대리의 물거미는 지금도 안녕하신가.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집을 짓고 새끼를 낳고 살아가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거미다. 물속에서 물 바깥을 보면 어떤 모습일까. 오늘처럼 이리도 세상의 상식이 물구나무선 적이 또 있을까. 물거미를 직접 보지는 못하고 빠끔빠끔 올라오는 기포를 통해 거미의 근황을 미루어 짐작만 했다.

복자기나무가 유난히 빨간 계곡 입구에 그리 크지 않은 절이 있다. 사찰은 최근에 지은 티가 역력했지만 절의 내력이 발길을 오래 머무르게 했다. “보개산 심원사는 옛 금강산 유점사의 말사로 석대암, 남암, 지장암, 성주암 등 여러 암자를 관할하던 지장도량의 본산이다. 647년(신라 진덕여왕 원년)에 창건되어….” 금강산 유점사라는 대목에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흥건해졌다. 환갑을 목전에 둔 내가 생전에 그곳으로 뜻깊은 꽃산행을 할 수 있을까, 무망한 소망을 떠올려보는데 개울 건너편에서 꽃동무가 번쩍 소리를 질렀다. 무언가 큰 소식을 담은 호외를 뿌리는 소년의 목소리 같았다. 좀바위솔이다!

시원을 알 수 없는 저 아득한 골짜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공손하게 지나가는 바위 곁에 이끼도 아니고 고사리도 아닌, 일반적인 식물의 형태와 뚜렷이 구분되는 야생화가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다. 그곳에 그것이 없다면 그 자리는 필시 텅 빈 구멍이었을 것이다! 흙 한줌 없는 곳일지라도 꽃과 바위는 그렇게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자연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하도 대견하고 엄숙하고 고마워서 바투 코를 대고 킁킁거려 보지만 아무런 냄새나 향기조차 없다. 여보게, 이 바위에서 연원하는 이 깊은 침묵의 뿌리를 한번 즐겨보시게. 따끔하게 충고하는 듯한  좀바위솔. 돌나물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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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상주의 갑장산으로 가는 꽃산행. 상주보를 지나며 콘크리트로 성형수술한 낙동강을 보려니 쓴맛이 저절로 나왔다. 이윽고 갑장산으로 좁은 길을 올라가는데 좌우로 야생화들이 쌀쌀한 날씨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단풍이 드는 계절이었다. 꽃보다 잎이 더 예쁘네, 하려다가 말을 거두었다. 꽃은 꽃대로 잎은 잎대로 아름다울 뿐이다. 믿지 못할 눈을, 그것도 두 개나 가졌다지만 안목이 없다면 사기꾼이나 무당도 하늘같이 보이겠지.

산으로 들면 미련스럽게 꽃을 찾아 연신 눈을 두리번거린다. 그런 나에게 마지막까지 미끼를 던져두듯 핀 꽃들이 있다. 햇빛이 풍부하지 않고, 비가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겨울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그리 뛰어난 꽃은 아니겠지만 전국 어디에서나 가을이 깊도록 보랏빛 색감을 뽐내며 우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꽃, 꽃향유!

진동하는 꽃내음을 입안에 넣고 중얼거리며 갑장산 정상에 올랐더니 이런 표지석이 있다. “갑장산(甲長山). 일명 연악으로 불리는 상주의 안산(案山)이다. 정상은 상주 사람의 순후한 인심을 대변하듯 뾰족하면서도 모나지 않고 둥글다. 가뭄 때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오고, 부정한 매장을 하면 가뭄이 들었다는 영산(靈山)이요 상주 문학(文學)의 요람이다.”

상주 시내를 통과할 땐 곶감을 생각했는데 정상에 서서 이런 문장을 보자니 우리 시대에 시, 소설, 평론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 지역 출신의 몇몇 문인이 떠올랐다. 멀리 문필봉 아래로 굽어보는 상주 들판이 원고지처럼 촘촘했다. 과연 상주로다. 높은 산의 정상 표지석에까지 이런 글을 새겨놓다니! 곶감으로 일군 상주의 달달한 문장은 이렇게 길고 멀리 높게 퍼져 흐르는가 보다. 이런 것이야말로 문학의 힘이겠다.

오늘은 원점회귀 산행이었다. 내려갈 때 보았다, 올라갈 때 봤던 그 꽃향유. 이 야생화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모양새가 조금 특이하다. 우리의 얼굴이 밋밋한 뒤통수를 배경으로 이목구비가 한쪽으로 모여 있듯 꽃이 한쪽으로만 달려 있다. 한갓지고 무심한 곳에서 저물어가는 한해를 이윽히 바라보고 있는 꽃향유. 꿀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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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과 사회생활을 연속적으로 꾸려가는 동안 내 의지처가 되어준 산들이 있다. 납작한 나를 굽어보던 그 산의 능선을 죽 이으면 요약된 삶의 궤적을 그릴 수도 있으리라. 하루살이에게도 대체불가능한 저만의 일생이 있을진대 비록 초라하다 해도 나에겐 유일하고 엄숙한 지금까지의 삶이었다. 그러니 그 산의 정상을 밟았다는 말은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 어쩌면 그 표현은 스스로 내 흔적을 훼손하는 일일지도 모를 테니깐.

늘 그곳에 있으면서 내 정신을 고양시킨 산들은 다음과 같다. 삼봉산, 우룡산, 장산, 관악산, 일자산, 고봉산, 인왕산, 그리고 심학산. 열거한 산들 중에서 딱 하나 못 가본 곳이 있었으니 부산의 동래에 있는 장산이다. 공부밖에 모르도록 내몰렸던 시절. 청마 유치환이 작사한 교가에도 등장하는 산이었다. “우람히 굽이쳐 온 아세아의 거창한 얼이 여기 장산 기름진 벌 끝 그 염원을 이루었나니….”

아마 졸업식도 교가 제창으로 끝났겠지. 지난주 고등학교를 떠난 지 40년 만에 장산에 오르자니 단순한 꽃산행의 흥취를 뛰어넘는 그 어떤 감정이 일어났다. 그저 학교 뒷산인 줄로 알았던 장산이 이리도 큰 산일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단순히 높고 넓기만 한 산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에서 이 물을 공급하는지 정상 부근에 큰 습지가 있었다. 그리고 빽빽하게 우거진 억새와 진퍼리새 사이에서 탐스러운 야생화가 나를 불렀다. 물매화였다.

물매화는 이미 여러 번 본 꽃이다. 내 이제껏 이 꽃을 호명하지 않았던 건 장산의 물매화를 위한 것이었을까. 그 뿌리는 가늠할 수 없는 저 흙 속에 있고, 가는 줄기가 홀로 우뚝하게 솟았다. 공중으로 그냥 오르기에는 심심한 듯 심장 같은 잎 하나를 중간에 두고 쭉 뻗어 올랐다. 꽃에서 잎까지의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인 듯한 야생화!

산행을 마치고 자갈치로 갔다. 어깨동무하고 교가를 우렁차게 합창했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맑은 소주와 붉은 회. 이제는 거룩해진 옛시절을 끄집어내며 단풍잎 같은 얼굴로 잔을 부딪칠 때마다 추억의 기슭에서 피어난 물매화가 얼비쳤다. 물매화,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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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의 늦은 휴가. 경주에서 1박 하고 동해안의 해파랑길을 따라 북상하기로 했다. 강구항에서 물회로 점심을 때우고 삼척 부근을 지나는데 바닷가에 맞붙어 우뚝한 엘리베이터가 있고 큰 조형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수로부인에게 견우노인이 꽃을 꺾어 바친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꾸민 ‘수로부인헌화공원’이었다. 공원 한 귀퉁이의 안내판. 삼국유사의 원문에서 꽃은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고천장 상유척촉화성개(절벽 높이가 천 길이요, 그 위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척촉화는 철쭉이다. 척촉의 훈을 새기면 머뭇거릴 척, 머뭇거릴 촉이다. 마음을 홀랑 뺏어가는 너무나 아름다운 꽃이었으니 그 앞을 좀체 떠나지 못하고 머뭇, 머뭇거린다 하여 척촉, 철쭉이라고 한 것이겠다.

7경주에서 삼척까지 오는 동안 즐비한 횟집과 모텔 사이로 이런 간판도 간혹 눈에 띄었다. ‘○○요양병원.’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앞둔 어르신들이 모여서 머무르는 곳이다. 시간의 절벽에 매달린 한 송이 철쭉꽃처럼.

제철도 아닌 시기에 철쭉을 불러내는 건 까닭이 있다.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런가. 지난 주말 상주의 황금산에서 개나리를 보았다. 겨울의 입구에서 만난 뜻밖의 꽃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활공장이 있는 정상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을 씻고 다시 보아도 낮은 자세로 활짝 피어 있는 건 철쭉이 아닌가. 급격한 기후변화의 와중에서 시절을 잘못 알고 어리둥절 서 있는 철쭉.

수상한 건 산중만이 아니다. 최근에 읽은 한 뉴스는 이런 절규를 담은 것이었다. 물대포에 맞아 돌아가시고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한 주검 앞에서 모욕당한 유족은 이런 글을 토하며 피울음을 삼킨다.

“저희들은 이미 충분히 아프고 슬프다. 부디 사람의 길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 까마득한 신라 시대. 물의 길, 수로(水路)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을 생각해본다. 지나칠 수 있건만 외면하지 않고 절벽으로 오른 노인도 헤아려본다. 그런 머뭇거리는 마음들이 끈적끈적하게 묻어 있는 척촉화도 떠올려본다. 철쭉, 진달래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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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식물탐사대의 올해 마지막 산행지는 경북 상주의 황금산이었다. 며칠 전 내린 비의 밧줄을 타고 공중의 먼지들이 모두 내려앉았나. 고개 들어 전방을 오래 바라보면 모두가 걸어가야 하는 쓸쓸한 그 길이 희미하게 보일 듯 깨끗한 하늘!

가을이 저물고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산으로 가는데 오늘 기대하는 꽃보다 어느 해 보았던 열매의 근황이 먼저 내 머리를 두드렸다. 이곳은 어디인가. 바로 몇 해 전, 정상 부근에서 산딸기를 따서 어머니께 갖다드렸던 곳이 아닌가. 그사이 계절은 순서를 맞춰 다녀갔고 우리는 어김없이 그만큼 늙었다. 그땐 훅훅 볶아대는 땡볕이었는데 오늘은 찬 기운이 시작된다는 한로(寒露) 다음날. 변화는 또 있었다. 그때 황금산에서 딴 산딸기를 잡수시고 멀리 고향 하늘을 날았던 어머니는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 몹시 아프시다.

황금산을 헤매는 동안 병석에 계신 어머니와 산딸기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인 황금들판을 지나 본격 산으로 들어가는데 빨간 열매가 있다. 산딸기인가 했더니 찔레꽃 열매였다. 포도 같은 열매가 있어 또 속고 보니 댕댕이덩굴이었다. 멀리서 꼭 딸기만 한 크기에 빨간 열매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진짜 산딸기인가.

그것은 청미래덩굴이었다. 이 나무는 사실 흔해서 어느 산에 가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을도 기울어 꽃과 열매가 사라져도 혼자 빨갛게 남아 허전한 이들의 타는 시선을 받아주는 나무. 윤기가 반질반질한 잎은 향기도 좋아서 망개떡을 싸는 데 쓰이기도 하는 나무.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산딸기를 대신해서 그 열매가 계속 따라왔다.

몇 굽이를 돌아 정상에 올랐다. 어머니께서 잡수신 산딸기는 아마 이 근처에서 딴 딸기였을 것이다. 알알이 뭉쳐 있는 청미래덩굴의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물기가 빠져나간 퍼석한 느낌. 처음엔 밍밍하더니 나중엔 쓴맛이 입안을 찔러왔다. 어머니는 지금 어느 창천에 마음을 얹어놓고 계실까. 네 개의 씨앗을 사리처럼 손바닥에 뱉어내면서 쓴맛, 인생살이의 그 씁쓸한 맛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과의 낙엽성 덩굴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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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납작하게 산다. 그림자 위에서 폴짝 뛰어보아도 결국 제자리로 떨어진다. 고래등 같은 푸른 기와집에 살아도, 깎아지른 벼랑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납작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환갑을 목전에 둔 현재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기일(忌日)을 지나서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 생일에서 기일까지만 사는 것, 자리에 임기가 있는 것, 목숨에 통조림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것. 이 또한 모두 납작하게 사는 것의 한 증좌라 할 수 있겠다.

서울에서 옆으로 납작하게 뻗은 길을 달려 강원도로 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간다. 등이 가벼우면 저항할 게 없어서 허전하다. 그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닐까. 한때는 높이 솟은 고갯길이었지만 새로 터널이 뚫렸다. 이제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칡넝쿨이 도로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인적 끊긴 고갯마루에는 무슨 전설(傳說)이 살고 있을까.

꽃 하나를 찾아 휘어진 모퉁이를 돌 때, 인기척에 놀라 풀섶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나는 또 그만큼 움푹 꺼졌다. 난데없는 즉석 추락을 당한 셈이다. 새삼 납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동글동글한 해도 많이 짧아졌다. 낮과 밤이 어둑어둑 교차하는 시간. 내 눈에 편집된 강원도의 하늘이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어느 옴방하게 파인 공간에 작은 꽃들이 일가를 이루며 빼곡하게 들어찼다. 병아리풀이다.

이 풍경에서 실핏줄처럼 서 있는, 작아도 너무 작은 야생화. 작지만 그래도 갖출 건 모두 다 갖추었다. 한쪽 방향으로 꽃과 열매가 달렸다. 병아리라 그런가. 꽃 껍질 안으로 노른자 같은 꽃들이 똘방똘방하다. 병아리풀이 손가락만 한 높이라서 땅바닥에 엎드리니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우리가 아무리 까불며 뱅뱅 돌아다녀도 결국은 식물들의 품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쩍였”(이상)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그렇지만 꽃마저 납작한 건 아니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저의 가장 무거운 하늘을 안간힘을 다해 들어 올리고 있는 저 병아리풀을 보라! 병아리풀, 원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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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울어 젖힌 매미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난 이후, 숲의 적막을 헤치고 나아가다 개미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개미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는 몇 개 있다. 곤충들 중에서 가장 사회성이 발달하였다는 개미. 사람보다 먼저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개미. 인류가 멸망하고 나면 지구의 새 주인이 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개미.

최근에는 이런 경험을 보탰다. EBS 다큐영화제에서 인상적으로 본 <존 버거의 사계>의 장면 하나. 아이들이 공을 차다가 교실 유리창을 깼다. 쨍그랑. 창문 박살나는 소리에 모든 아이들이 놀라 얼굴을 서로 쳐다본다. 유리창의 파편이 흩어진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건 선생님이 아니라 개미였다. 누가 내 구역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나, 하는 투로 운동장을 둘러보는 게 아닌가.


지금은 내 발밑에서 꼼지락거리지만 실은 개미가 제 발밑으로 내가 오기를 항상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을 때, 강원도 망상 근처의 한 야트막한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 벙어리 파도가 철썩이고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는 풍경이었다.

멀리 그 야생화가 보였다. 지체없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오늘 목표로 한 꽃, 큰잎쓴풀이었다. 이 꽃은 아주 귀하다. 아무데서나 함부로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 지역에 와서 햇빛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일조량에 아주 민감해서 햇볕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꽃잎을 닫아버린다. 저를 보겠다고 이리도 먼 길을 달려온 사정을 꽃이 봐 줄 리가 없는 것. 해질녘에 도착했더니 꽃이 입을 다물기 시작하는 판이었다. 집중해서 사진을 찍는데 어라, 개미 한 마리가 꽃잎 안으로 들어와 꿀샘을 빨아대지 않는가.

고독한 사냥꾼처럼 개미가 큰잎쓴풀의 꽃을 빠져나와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았다. 개미가 제 소굴을 찾아가듯 나도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 개미가 떠나고 왜 쓴풀일까를 생각하면서 잎사귀 하나를 조심스레 따서 입에 넣었다. 소태처럼 쓴맛이 혀를 찔렀다. 개미에게는 꿀을, 나에게는 쓴맛을 준 큰잎쓴풀.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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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고향, 흩어진 형제들을 새삼 한번 떠올려보라 함일까. 이 계절의 하늘은 높고, 높아서 더욱 잘 보인다. 사무실 근처 가로수인 상수리나무의 가지 끝에 둥지가 있다. 하늘은 한꺼번에 보는 게 아니었다. 무궁한 하늘을 바라볼 때면 먼저 내 허전한 시선을 받아주는 까치의 둥지. 새들도 잠시 깊은 산 가까이로 나들이를 한 것일까. 나무보다 키가 낮아 둥지 안을 볼 순 없지만 어쩐지 텅 빈 기운이 묻어나온다. 긴 추석 연휴를 보내는 동안 심학산 오르다 말고 새의 둥지를 징검다리처럼 짚고 나아간 곳은 며칠 전 가본 가평의 화악산이었다.

경기도의 최고봉 화악산. 그 꼭대기에 오르니 정상인 신선봉은 군부대의 차지이고 ‘화악산 1463M’의 표지석은 근처 봉우리로 쓸쓸히 밀려나 있었다. 촬영금지, 접근금지라는 위압적인 팻말이 붙어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계마다 꽃들이 피어 있다. 철조망을 따라 길도 아닌 길을 한 바퀴 걸으니 몸의 균형이 기우뚱해졌다. 안 쓰던 근육들도 합심해서 겨우 긴 덤불을 빠져나와 넓은 임도의 갈림길에 이르니 멀리 발아래 인가가 보이고 구름이 눈썹을 쳤다.

먼저 간 일행이 점심 도시락을 펼치는 가운데 돌더미 사이로 듬성듬성 피어난 건 구절초. 껑충한 대궁, 고아한 색감, 맑게 씻은 얼굴 등등 가을의 정기를 다 그러모은 듯 기품이 흘러넘친다. 음력 구월 구일에 대궁을 잘라 약으로 쓴다 하여 구절초. 지금은 음력 8월 보름인 추석 어름을 지나는 중이다. 그런 명절과 어우러져 생각나는 건 왕유의 시,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였다.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니/ 명절 때마다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다/ 멀리서도 알겠지, 높은 곳에 오른 형제들/ 산수유 꽂으며 놀다가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런 시심에 흥건해진 채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한 무더기씩의 구절초가 툭툭 튀어나온다. 구절초 아홉 송이를 찍다가 돌아보면 또 벼랑 위에 소복하게 피어 있는 구절초. 이러니 구절초 앞에선 이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 예쁜 게 따로 없는 구절초, 그저 다 황홀한 구절초. 이심전심인가. 저도 그렇다는 듯 구절초 향기를 잔뜩 묻히고 팔랑거리며 지나가는 청띠신선나비! 구절초,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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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한 장 넘겼다고 다른 시간의 골짜기로 들어가는가 보다. 매미소리도 뚝 끊겼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 생전에 병신년의 매미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 내년의 매미를 믿고 무심히 지나치지만 한해살이 매미에게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몹시도 애절한 울음이 아직도 귓가에 얼얼한데 종적을 감췄다. 해마다 그러했겠지만 올해 유독 그런 심사를 느끼는 건 무슨 까닭일까.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 가는 길이다. 입구에서부터 귀가 번쩍 뜨였다. 저기 바나나 좀 보세요! 노안 탓인가. 소리는 확실한데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밑에서부터 줄기를 짚어나가자 과연 바나나 모양의 등칡 열매가 보였다.

풍성한 나뭇잎의 호위를 받으며 허공에 달린 열매를 보는데 몇 해 전의 일이 생각났다. 정선의 각희산 기슭을 오르다가 전망 좋은 길목에서 등칡의 꽃을 만났다. 꽃이라고 했지만 수술과 암술, 꽃잎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꽃의 범주를 훨씬 벗어난 디자인으로 공중에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은은한 향기도 좋았지만 입구에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색소폰 같기도 한 꽃. 어쩐지 그게 내 눈에는 시골에서 물고기 잡을 때 사용하던 어항을 생각나게 하였다. 입구가 잘록한 어항 안에는 물로 갠 깻묵을 놓았다. 그 깻묵의 고소함이 물고기에게는 죽음의 향기! 어항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듯 등칡의 꽃에는 어김없이 순진한 곤충들의 잔해가 있었다.

타잔이 아니라 안개가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듯한 덤불을 배경으로 바나나 같은 열매를 보자니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신기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헤르만 헤세) 어제-오늘-내일로 이어지는 시간의 기슭에서 지금 눈앞의 순간은 늘 안개 속이다. 아무리 등칡이 꽃을 꼬부려 시간의 흐름을 막으려 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나. 꽃이 지고 열매가 왔다. 오늘 화악산에서 보기로 한 목록에 등칡은 없었다. 아무려나, 우리는 각자 등을 돌려 안개 속을 거슬러 화악산의 깊은 골짜기로 더욱 들어갔다. 등칡, 쥐방울덩굴과의 덩굴성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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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의 계절이다. 벌초란 추석이 되기 전 조상의 산소에 자란 풀을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세시풍속을 말한다. 웬만하면 80년을 거뜬히 사는 우리들에 비해 고작 한해 혹은 두해살이 풀들의 삶은 그 얼마나 치열하고 비약적인가. 해마다 찾아가면 그새 무덤을 뒤덮는 풀들의 폭풍성장이 놀랍기만 하다. 풀 하나 베는 것을 두고 군사용어로 적을 정벌하듯 벌초(伐草)라고 하는 건 이런 까닭인 것이다.

올해도 고향의 큰집은 형제들과 조카들을 비롯한 대규모 벌초단으로 북적거렸다. 밤늦도록 마당에 앉아 돼지고기를 구우며 한 해의 안부를 주고받는 일가친척들. 다음 날 모두들 무성한 풀들과 씨름하면서도 가마솥에서 끓고 있을 어탕국수에 은근히 마음이 빼앗겼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동생들을 위해 시골의 큰형님이 동네 앞개울에서 살이 통통히 오른 물고기를 미리 잡아 놓았던 것이다. 벌초하는 내내 형수님이 끓여 내는 어탕국수를 먹을 기대에 입맛을 다셨다.

고향의 별미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는 어탕국수. 고향에 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것을 입에 넣을 수 있는 그 어탕국수의 맛을 완성하는 향신료가 있다. 그것은 초피나무 열매가루이다. 쥐눈 같은 까만 열매를 제거하고 껍질을 그늘에 말린 뒤 빻으면 독특한 향을 낸다. 우리 고향에서는 제피가루라고도 하는 것. 나무를 의식하고 산으로 들어갔을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향기만으로 알 수 있었던 나무가 바로 초피나무였다.

벌초란 산소 주위의 풀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이름을 찾는 행위이기도 하겠다. 과연 예초기를 가지고 풀을 쓰러뜨리고 눈에 거슬리는 나무를 전지한 지 몇 분 만에 무덤이 제 모습을 찾았다. 무덤의 주인과 무덤을 세운 후손의 이름이 햇빛 아래 드러났다. 어느 산소 한 귀퉁이에는 나의 이름도 생생했다. 벌초 마치고 땀 흘린 뒤 초피가루로 완성한 뜨거운 국물을 삼킬 때 내 몸을 통과해나간 물고기, 간밤에 구워먹은 돼지고기, 무덤의 상석에 새긴 이름들에 대해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벌초하다가 벌에게 쏘여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도 접하면서 복잡한 고속도로를 뚫고 서울로 귀가했다. 초피나무, 운향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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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 골짜기를 돌아들 때마다 아쉬움이 툭툭 튀어나왔다. 토함산에 오면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경험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땐 오늘처럼 이렇게 순식간에 오르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작은 몸집과 허약한 기력으로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걸어서 올랐다. 그때처럼 그 길을 내 두 발로 직접 확인하며 걸어보고 싶은 것. 매표소를 기웃거리다가 토함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2시간 후 불국사 정문에서 만나자 하고 홀로 정상으로 향했다. 많은 이들이 다녀갔는지 길은 리어카가 지나갈 만큼 넓고 반질반질했다. 대학교 때 많이 불렀던 송창식의 노래도 흥얼거렸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1년 가을. 현재보다 3분의 1의 홀쭉한 몸으로 나는 토함산 중턱까지 걸어 올랐다. 한때 참신했던 아동이 참으로 초라한 중늙은이로 변신해서 이제 해발 745m의 토함산 정상으로 가고 있다. 무려 45년 만에 끊어졌던 그 등산길을 다시 잇는 중! 추억에 젖다가도 혹 새로운 꽃이 있을까 싶어 눈을 두리번거렸지만 지금은 꽃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춘 시기이다. 가을꽃이 곧 나타나겠지만 꽃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고 있다. 그 와중에 전국의 산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바닥에서 눈을 호린다. 알며느리밥풀이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크게 벌린 꽃이 층층으로 꼿꼿하게 달린 야생화.

이렇게 사무친 토함산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더 귀한 꽃을 찾아야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경주행은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멋모르고 날뛰었지만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서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겨우 따라간 수학여행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만큼이나 이름에 슬픈 사연을 간직한 알며느리밥풀. 꽃의 입술 아랫부분에 목구멍에 걸린 밥풀처럼 두 개의 도드라지는 흰 점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식구들이 기다리는 불국사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알며느리밥풀,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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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긋지긋한 더위를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로 이런 시간 여행은 어떨까. 1억50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지구의 북반구는 빙하기다. 육지의 4분의 3이 얼음으로 꽁꽁 뒤덮인 것이다. 이때 추위를 피해 많은 식물들이 남으로 이동했다. 그때 한반도에도 이른바 북방계 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온난화가 진행되었다. 대부분이 고향으로 되돌아갔지만 일부는 한라산, 설악산의 고산지대로 피신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6·25전쟁 때 북으로 가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던 빨치산처럼. 

이런 내력으로 한반도에 남게 된 북방계 식물들이 제법 많다. 이 식물들이 없었다면 우리 생태계의 다양성이 퍽 빈약하게 되었으리라. 우리 국토에서 제주도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 저 북방계 식물들이 없었더라면 한라산 꼭대기가 얼마나 허전했을까. 


출처: 경향신문 DB

아주 오래전 제주로 신혼여행 갔을 때만 해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근처까지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 진즉 식물에 눈을 떴더라면 그때 그 근처의 아주 귀한 나무와 야생화를 실컷 보아 둘 것을.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등산로 가장자리에 융단 같은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얼핏 보아서는 완고한 풀들이 뻣뻣하게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0~20㎝의 키에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라서 나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은 나무, 시로미다. 열매가 시어서 그 이름을 얻었다지만 잘 익은 것은 달콤하기만 하다. 이름이 독특한 만큼 생김새도 참 특이하다. 북방계 식물의 하나로서 그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키가 작고 잎은 뾰족하되 물기를 잘 저장하도록 통통하다. 

요즘같이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될 때, 한라산의 시로미를 생각한다. 이처럼 급격한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이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더욱 고산지대로 쫓겨 가야 할까. 한라산 정상의 깎아지른 절벽에 어디 한 발 제겨디딜 데가 있을까. 실향(失鄕) 식물답게 땅으로 기면서 많은 가지를 내는 시로미. 혈혈단신으로 어깨동무하여 대가족을 이루는 시로미, 시로미과의 상록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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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헥거리며 심학산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파드득 하는 기척이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말벌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매미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이종(異種)간의 결합이니 짝짓기는 분명 아니었다. 아이쿠, 말라 비틀어진 낙엽 사이에서 생사(生死)를 걸고 벌이는 난투극이 아닌가. 벌이 침이라도 놓았는지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뻣뻣해진 사체를 두 토막으로 나누어 챙긴 말벌이 저의 소굴로 휙,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도 자리를 떴다.

며칠 전에는 미국 뉴욕의 보태니컬 가든에서 시체꽃이 80년 만에 피었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꽃에서 고기 썩는 냄새가 나서 저런 고약한 이름으로 불리는 시체꽃. 언젠가 죽는다는 운명을 알아차리고 미리 예방주사라도 맞는 기분이었을까. 그 거대한 꽃을 보려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다고 하는 뉴스를 보자니 시체꽃에 필적하는 우리나라의 꽃 하나가 떠올랐다.

<메밀꽃 필 무렵>은 지금 읽어도 자연의 향기가 듬뿍 담긴 현대적인 소설이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넘긴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고 할 때의 대화. 강원도 평창의 그 대화 근처에 있는 대원사 계곡을 훑을 때의 일이다. 아득한 저 위쪽에서 복사꽃잎이라도 하나 떠내려 올 것만 같은 청량한 개울의 가장자리마다 물소리에 홀린 귀한 야생화가 드문드문 살고 있었다. 한참을 올랐나. 개울은 어디론가 문득 숨고 암자 옆으로 가파른 고개가 나타났다. 사람의 자취에 닳고 닳은 등산로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그 이름을 좀체 잊을 수 없는 꽃을 만났으니 송장풀이었다.

질컥한 이름에 비해 아름답기 그지없는 야생화다. 줄기 상부의 잎겨드랑이에 층층이 연분홍의 꽃이 피어난다. 한여름 땡볕에 꽃은 절정이고 무언가 고함이라도 치는 듯 꽃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는 송장풀. 잎이나 꽃에 코를 들이대어도 고약하기는커녕 향기로운 냄새뿐이다. 그래도 혹 이름과 관련한 무슨 사연을 품고 있지 않을까. 납작 엎드리면 지하에서 누가 보고서 뭐라고 명명(命名)하고 군침을 흘리실지! 송장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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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응시명월 기생수도매화(前生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십수년 전 중앙일보에 게재된 한 칼럼에서 저 12글자를 만났을 때 한마디로 뻑, 갔다. 틈나는 대로 중얼거리며 필사하였다. 나의 전생은 분명 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을 닦아야 매화가 될꼬. 달-시인-매화로 연결되는 숙연(宿緣)의 한 고리에 나도 끼어들고 싶었다.

그런 사무친 생각의 원력이라도 작용한 것이었을까. 땡볕 속의 인왕산을 한창 오르내릴 때 이런 궁리가 문득 찾아들었다. 여름이 지배하는 계절에 매미 소리는 인왕산을 도배하고 있는 중. 우렁찬 울음이 인왕산을 뒤덮고 있다. 매미는 땅에서 오지만 매미 소리는 땅으로 떨어진다. 자욱한 녹음 사이에서 귀가 먹먹한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혹 매미의 전생(前生)은 눈이 아니었을까. 시방 우는 매미가 환생해서 다시 눈사람으로 태어나는 건 아닐까. 펄펄펄 내리는 겨울의 눈과 맴맴맴 우는 여름의 매미 소리는 그런 인연의 관계가 아닐까.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마음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시(四時)는 명확한 법칙 속에 움직이는 바 어김없이 지금은 또 올해의 여름 땡볕이다. 최근 마음속에 짚이는 바가 있어 새삼 하늘을 발견하고 그곳을 가까이 해야겠다는 감정이 일어났다. 근래 들어 산으로 가는 발걸음을 부쩍 늘린 건 현재로서는 직접 바로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다. 그나마 우회로라도 되는 한 방편이 될까 싶어 산길을 찾는 것.

오늘은 사무실 가까이 있는 심학산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식당을 지나면 배밭이 있다. 이화(梨花) 진 자리마다 배가 몽글몽글 올라오고 그 아래로 발목이 빠질 만큼 수북한 풀들 사이에 눈에 띄는 꽃 하나. 종재기처럼 작은 꽃 안에 매미 소리가 수북하게 담겨 더욱 노랗게 보이는 꽃, 좁쌀풀이다. 지난주 정선과 태백을 잇는 만항재에서도 보았던 꽃이라 더욱 반갑다. 좁쌀풀도 그저 그냥 아무 궁리 없이 서 있지는 않겠지. 쏟아지는 매미 소리를 폭설 오는 광경으로 치환해서 전해주면 저도 알아듣겠다는 듯 반짝 호응해주는 좁쌀풀.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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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애꿎은 돼지가 등장하는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교육부의 어느 고위공무원이 민중을 개·돼지로 여겨야 한다는 굳건한 소신을 영화 대사를 콕 집어 인용하여 내뱉었다. 미국에서 날아든 돼지 뉴스는 차라리 나았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의 첫 번째 회고록을 저술한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해 “나는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랐다”고 쓰라린 후회를 밝힌 것이다. 잊을 만했는데 북한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와 민가에까지 출현한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요즘의 신문을 보면 분탕질을 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자들이 힘 있는 곳에 우글거리는 형국이다. 이런 판이라면 우리 사는 세상이 돼지우리와 별반 뭐 그리 다를까. 이런저런 씁쓸한 심사를 짊어지고 횡성군 청일면으로 갔다.

난다긴다 하는 곳의 지저분한 소식에서 한 발짝 비켜난 한갓진 동네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쪼그만 개와 날씬한 노루가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지 않은가. 장뇌삼을 캐러 개(똘이)와 함께 간 주민이 어미를 잃은 채 아사 직전에 놓인 노루(산돌이)를 데리고 와서 우유로 기르는 중이라 했다. 똘이는 제가 처음 발견했다고 산돌이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 상당한 미모의 산돌이에게 이방인이 손이라도 대면 요란하게 짖어댔다.

참 오리무중의 세상이다. 무엇이 이곳에 살고 누가 저곳에 있는가. 말을 못하지만 거짓말도 안 하는 똘이와 산돌이가 아침을 먹으러 2층 계단으로 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근처 운무산으로 떠났다. 항상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고 그 이름을 얻은 산이다. 이름이 제공하는 습기의 덕을 보았나? 운무산에는 귀한 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오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위틈에 자라는 병아리난초였다. 바닥에 납작 붙은 넓적한 잎을 딛고 가느다란 줄기가 뻗어올랐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병아리떼처럼 분홍색 꽃들이 횡으로 총총하다. 저 멀리 첩첩산중을 굽어보며 꿈꾸듯 서 있는 운무산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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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멀리서 보면 작은 구멍에 불과하지만 그냥 눈감고 통과하기엔 억울하지 않을까. 무언가 수런거리는 예감이 고여 있는 곳이기에.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수렴한 뒤 어마어마한 세계를 확 펼쳐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집약된 곳이기에. 그런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해서 강원도로 갔다. 강원도는 왜 강원도일까. 강릉과 원주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지만 그것으로는 미흡하다. 강원, 강의 원천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실제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는 모두 태백에 있지 않은가.

산이 높아 골짜기가 깊고 그래서 도로가 겹겹이 휘모리장단처럼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돌아드는 강원도. 아무래도 이곳 도로는 관절이 허약한가 보다. 이번 장마로 곳곳마다 파여나간 곳을 보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해로 가기 위해 경상도를 누비는 낙동강, 황해를 향해 서쪽으로 흘러가는 한강, 그리고 동해의 강릉으로 미끄러지는 오십천. 이 세 강을 뜻하는 삼수령(三水嶺)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 한 길모퉁이를 돌아들 때 길가에서 눈에 확 띄는 꽃이 있다. 모모한 높은 산에 가서도 보기가 쉽지 않건만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만날 줄이야.

솔나리였다. 오로지 하나의 줄기 끝에 여러 송이의 압도적인 꽃들을 터뜨린다. 씽씽 달리는 차들이 궁금한 듯 길 안으로 눈길을 던지는 솔나리. 오늘 내 앞에 들이닥친 솔나리는 무려 10개가 넘는 꽃을 달고 있는 것도 있다. 백합과의 나리는 얼굴이 닮은 사촌들이 많다. 말나리, 중나리, 하늘나리, 참나리, 땅나리 등등. 그중 솔나리는 솔잎처럼 가느다란 잎이 뿜어져나오는 분수처럼 달려 있는 게 특징이다. 그 잎들이 줄기의 하부에서 꽃들을 힘껏 응원하고 있는 듯해서 더욱 보기에 좋다.

해발 높은 길가에서 만난 솔나리. 같은 물, 같은 햇빛을 섭취했을 텐데도 운명이 다들 다르다. 이미 활짝 핀 것도 있지만 절정을 지난 듯 색감이 희미하게 총기를 잃은 것도 있다. 그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이미 피어난 꽃들 위에 묵묵히 달려 있는 꽃봉오리였다. 세상을 향한 포부를 가득 담고 있는 꽃봉오리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오늘 내린 비가 밖에서 실컷 두드렸으니 내일이면 더욱 활짝 피어날 솔나리.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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