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193건

  1. 2016.10.11 청미래덩굴
  2. 2016.10.04 병아리풀
  3. 2016.09.27 큰잎쓴풀
  4. 2016.09.20 구절초
  5. 2016.09.13 등칡
  6. 2016.09.06 초피나무
  7. 2016.08.30 알며느리밥풀
  8. 2016.08.23 시로미
  9. 2016.08.16 송장풀
  10. 2016.08.09 좁쌀풀
  11. 2016.07.26 병아리난초
  12. 2016.07.19 솔나리
  13. 2016.07.12 신나무
  14. 2016.07.05 통보리사초
  15. 2016.06.28 용머리
  16. 2016.06.21 갯강활
  17. 2016.06.14 등심붓꽃
  18. 2016.06.07 조름나물
  19. 2016.05.31 물참대
  20. 2016.05.23 덩굴꽃마리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식물탐사대의 올해 마지막 산행지는 경북 상주의 황금산이었다. 며칠 전 내린 비의 밧줄을 타고 공중의 먼지들이 모두 내려앉았나. 고개 들어 전방을 오래 바라보면 모두가 걸어가야 하는 쓸쓸한 그 길이 희미하게 보일 듯 깨끗한 하늘!

가을이 저물고 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산으로 가는데 오늘 기대하는 꽃보다 어느 해 보았던 열매의 근황이 먼저 내 머리를 두드렸다. 이곳은 어디인가. 바로 몇 해 전, 정상 부근에서 산딸기를 따서 어머니께 갖다드렸던 곳이 아닌가. 그사이 계절은 순서를 맞춰 다녀갔고 우리는 어김없이 그만큼 늙었다. 그땐 훅훅 볶아대는 땡볕이었는데 오늘은 찬 기운이 시작된다는 한로(寒露) 다음날. 변화는 또 있었다. 그때 황금산에서 딴 산딸기를 잡수시고 멀리 고향 하늘을 날았던 어머니는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지금 몹시 아프시다.

황금산을 헤매는 동안 병석에 계신 어머니와 산딸기 생각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인 황금들판을 지나 본격 산으로 들어가는데 빨간 열매가 있다. 산딸기인가 했더니 찔레꽃 열매였다. 포도 같은 열매가 있어 또 속고 보니 댕댕이덩굴이었다. 멀리서 꼭 딸기만 한 크기에 빨간 열매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진짜 산딸기인가.

그것은 청미래덩굴이었다. 이 나무는 사실 흔해서 어느 산에 가더라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을도 기울어 꽃과 열매가 사라져도 혼자 빨갛게 남아 허전한 이들의 타는 시선을 받아주는 나무. 윤기가 반질반질한 잎은 향기도 좋아서 망개떡을 싸는 데 쓰이기도 하는 나무.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산딸기를 대신해서 그 열매가 계속 따라왔다.

몇 굽이를 돌아 정상에 올랐다. 어머니께서 잡수신 산딸기는 아마 이 근처에서 딴 딸기였을 것이다. 알알이 뭉쳐 있는 청미래덩굴의 열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물기가 빠져나간 퍼석한 느낌. 처음엔 밍밍하더니 나중엔 쓴맛이 입안을 찔러왔다. 어머니는 지금 어느 창천에 마음을 얹어놓고 계실까. 네 개의 씨앗을 사리처럼 손바닥에 뱉어내면서 쓴맛, 인생살이의 그 씁쓸한 맛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청미래덩굴, 청미래덩굴과의 낙엽성 덩굴나무.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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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납작하게 산다. 그림자 위에서 폴짝 뛰어보아도 결국 제자리로 떨어진다. 고래등 같은 푸른 기와집에 살아도, 깎아지른 벼랑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마찬가지다. 모두들 납작하게 살고 있는 중이다. 환갑을 목전에 둔 현재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기일(忌日)을 지나서는 살아갈 방법이 없다. 생일에서 기일까지만 사는 것, 자리에 임기가 있는 것, 목숨에 통조림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것. 이 또한 모두 납작하게 사는 것의 한 증좌라 할 수 있겠다.

서울에서 옆으로 납작하게 뻗은 길을 달려 강원도로 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간다. 등이 가벼우면 저항할 게 없어서 허전하다. 그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닐까. 한때는 높이 솟은 고갯길이었지만 새로 터널이 뚫렸다. 이제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 칡넝쿨이 도로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인적 끊긴 고갯마루에는 무슨 전설(傳說)이 살고 있을까.

꽃 하나를 찾아 휘어진 모퉁이를 돌 때, 인기척에 놀라 풀섶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나는 또 그만큼 움푹 꺼졌다. 난데없는 즉석 추락을 당한 셈이다. 새삼 납작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동글동글한 해도 많이 짧아졌다. 낮과 밤이 어둑어둑 교차하는 시간. 내 눈에 편집된 강원도의 하늘이 벌겋게 물들고 있었다. 어느 옴방하게 파인 공간에 작은 꽃들이 일가를 이루며 빼곡하게 들어찼다. 병아리풀이다.

이 풍경에서 실핏줄처럼 서 있는, 작아도 너무 작은 야생화. 작지만 그래도 갖출 건 모두 다 갖추었다. 한쪽 방향으로 꽃과 열매가 달렸다. 병아리라 그런가. 꽃 껍질 안으로 노른자 같은 꽃들이 똘방똘방하다. 병아리풀이 손가락만 한 높이라서 땅바닥에 엎드리니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우리가 아무리 까불며 뱅뱅 돌아다녀도 결국은 식물들의 품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나는 불현듯 겨드랑이가 가렵다. …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이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쩍였”(이상)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그렇지만 꽃마저 납작한 건 아니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저의 가장 무거운 하늘을 안간힘을 다해 들어 올리고 있는 저 병아리풀을 보라! 병아리풀, 원지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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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하게 울어 젖힌 매미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난 이후, 숲의 적막을 헤치고 나아가다 개미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개미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는 몇 개 있다. 곤충들 중에서 가장 사회성이 발달하였다는 개미. 사람보다 먼저 농사를 지었다고 하는 개미. 인류가 멸망하고 나면 지구의 새 주인이 될 확률이 가장 높다는 개미.

최근에는 이런 경험을 보탰다. EBS 다큐영화제에서 인상적으로 본 <존 버거의 사계>의 장면 하나. 아이들이 공을 차다가 교실 유리창을 깼다. 쨍그랑. 창문 박살나는 소리에 모든 아이들이 놀라 얼굴을 서로 쳐다본다. 유리창의 파편이 흩어진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출동한 건 선생님이 아니라 개미였다. 누가 내 구역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나, 하는 투로 운동장을 둘러보는 게 아닌가.


지금은 내 발밑에서 꼼지락거리지만 실은 개미가 제 발밑으로 내가 오기를 항상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을 때, 강원도 망상 근처의 한 야트막한 산의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 벙어리 파도가 철썩이고 흰 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는 풍경이었다.

멀리 그 야생화가 보였다. 지체없이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오늘 목표로 한 꽃, 큰잎쓴풀이었다. 이 꽃은 아주 귀하다. 아무데서나 함부로 볼 수 있는 꽃이 아니다. 이 시기에 이 지역에 와서 햇빛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만날 수 있는 꽃이다. 일조량에 아주 민감해서 햇볕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면 꽃잎을 닫아버린다. 저를 보겠다고 이리도 먼 길을 달려온 사정을 꽃이 봐 줄 리가 없는 것. 해질녘에 도착했더니 꽃이 입을 다물기 시작하는 판이었다. 집중해서 사진을 찍는데 어라, 개미 한 마리가 꽃잎 안으로 들어와 꿀샘을 빨아대지 않는가.

고독한 사냥꾼처럼 개미가 큰잎쓴풀의 꽃을 빠져나와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한참 지켜보았다. 개미가 제 소굴을 찾아가듯 나도 이젠 돌아가야 할 시간. 개미가 떠나고 왜 쓴풀일까를 생각하면서 잎사귀 하나를 조심스레 따서 입에 넣었다. 소태처럼 쓴맛이 혀를 찔렀다. 개미에게는 꿀을, 나에게는 쓴맛을 준 큰잎쓴풀.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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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고향, 흩어진 형제들을 새삼 한번 떠올려보라 함일까. 이 계절의 하늘은 높고, 높아서 더욱 잘 보인다. 사무실 근처 가로수인 상수리나무의 가지 끝에 둥지가 있다. 하늘은 한꺼번에 보는 게 아니었다. 무궁한 하늘을 바라볼 때면 먼저 내 허전한 시선을 받아주는 까치의 둥지. 새들도 잠시 깊은 산 가까이로 나들이를 한 것일까. 나무보다 키가 낮아 둥지 안을 볼 순 없지만 어쩐지 텅 빈 기운이 묻어나온다. 긴 추석 연휴를 보내는 동안 심학산 오르다 말고 새의 둥지를 징검다리처럼 짚고 나아간 곳은 며칠 전 가본 가평의 화악산이었다.

경기도의 최고봉 화악산. 그 꼭대기에 오르니 정상인 신선봉은 군부대의 차지이고 ‘화악산 1463M’의 표지석은 근처 봉우리로 쓸쓸히 밀려나 있었다. 촬영금지, 접근금지라는 위압적인 팻말이 붙어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경계마다 꽃들이 피어 있다. 철조망을 따라 길도 아닌 길을 한 바퀴 걸으니 몸의 균형이 기우뚱해졌다. 안 쓰던 근육들도 합심해서 겨우 긴 덤불을 빠져나와 넓은 임도의 갈림길에 이르니 멀리 발아래 인가가 보이고 구름이 눈썹을 쳤다.

먼저 간 일행이 점심 도시락을 펼치는 가운데 돌더미 사이로 듬성듬성 피어난 건 구절초. 껑충한 대궁, 고아한 색감, 맑게 씻은 얼굴 등등 가을의 정기를 다 그러모은 듯 기품이 흘러넘친다. 음력 구월 구일에 대궁을 잘라 약으로 쓴다 하여 구절초. 지금은 음력 8월 보름인 추석 어름을 지나는 중이다. 그런 명절과 어우러져 생각나는 건 왕유의 시, 구월구일억산동형제(九月九日憶山東兄弟)였다.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니/ 명절 때마다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다/ 멀리서도 알겠지, 높은 곳에 오른 형제들/ 산수유 꽂으며 놀다가 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런 시심에 흥건해진 채 모퉁이를 돌 때마다 한 무더기씩의 구절초가 툭툭 튀어나온다. 구절초 아홉 송이를 찍다가 돌아보면 또 벼랑 위에 소복하게 피어 있는 구절초. 이러니 구절초 앞에선 이런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 예쁜 게 따로 없는 구절초, 그저 다 황홀한 구절초. 이심전심인가. 저도 그렇다는 듯 구절초 향기를 잔뜩 묻히고 팔랑거리며 지나가는 청띠신선나비! 구절초,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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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 한 장 넘겼다고 다른 시간의 골짜기로 들어가는가 보다. 매미소리도 뚝 끊겼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 생전에 병신년의 매미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다. 내년의 매미를 믿고 무심히 지나치지만 한해살이 매미에게는 그게 아닌 모양이다. 몹시도 애절한 울음이 아직도 귓가에 얼얼한데 종적을 감췄다. 해마다 그러했겠지만 올해 유독 그런 심사를 느끼는 건 무슨 까닭일까.

경기도에서 가장 높은 화악산 가는 길이다. 입구에서부터 귀가 번쩍 뜨였다. 저기 바나나 좀 보세요! 노안 탓인가. 소리는 확실한데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밑에서부터 줄기를 짚어나가자 과연 바나나 모양의 등칡 열매가 보였다.

풍성한 나뭇잎의 호위를 받으며 허공에 달린 열매를 보는데 몇 해 전의 일이 생각났다. 정선의 각희산 기슭을 오르다가 전망 좋은 길목에서 등칡의 꽃을 만났다. 꽃이라고 했지만 수술과 암술, 꽃잎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꽃의 범주를 훨씬 벗어난 디자인으로 공중에 대롱대롱 달려 있었다. 은은한 향기도 좋았지만 입구에 구멍이 뻥, 뚫려 있어 색소폰 같기도 한 꽃. 어쩐지 그게 내 눈에는 시골에서 물고기 잡을 때 사용하던 어항을 생각나게 하였다. 입구가 잘록한 어항 안에는 물로 갠 깻묵을 놓았다. 그 깻묵의 고소함이 물고기에게는 죽음의 향기! 어항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듯 등칡의 꽃에는 어김없이 순진한 곤충들의 잔해가 있었다.

타잔이 아니라 안개가 금방이라도 툭 튀어나올 듯한 덤불을 배경으로 바나나 같은 열매를 보자니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신기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헤르만 헤세) 어제-오늘-내일로 이어지는 시간의 기슭에서 지금 눈앞의 순간은 늘 안개 속이다. 아무리 등칡이 꽃을 꼬부려 시간의 흐름을 막으려 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나. 꽃이 지고 열매가 왔다. 오늘 화악산에서 보기로 한 목록에 등칡은 없었다. 아무려나, 우리는 각자 등을 돌려 안개 속을 거슬러 화악산의 깊은 골짜기로 더욱 들어갔다. 등칡, 쥐방울덩굴과의 덩굴성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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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의 계절이다. 벌초란 추석이 되기 전 조상의 산소에 자란 풀을 베고 묘 주위를 정리하는 세시풍속을 말한다. 웬만하면 80년을 거뜬히 사는 우리들에 비해 고작 한해 혹은 두해살이 풀들의 삶은 그 얼마나 치열하고 비약적인가. 해마다 찾아가면 그새 무덤을 뒤덮는 풀들의 폭풍성장이 놀랍기만 하다. 풀 하나 베는 것을 두고 군사용어로 적을 정벌하듯 벌초(伐草)라고 하는 건 이런 까닭인 것이다.

올해도 고향의 큰집은 형제들과 조카들을 비롯한 대규모 벌초단으로 북적거렸다. 밤늦도록 마당에 앉아 돼지고기를 구우며 한 해의 안부를 주고받는 일가친척들. 다음 날 모두들 무성한 풀들과 씨름하면서도 가마솥에서 끓고 있을 어탕국수에 은근히 마음이 빼앗겼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동생들을 위해 시골의 큰형님이 동네 앞개울에서 살이 통통히 오른 물고기를 미리 잡아 놓았던 것이다. 벌초하는 내내 형수님이 끓여 내는 어탕국수를 먹을 기대에 입맛을 다셨다.

고향의 별미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맛있게 먹는 어탕국수. 고향에 가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것을 입에 넣을 수 있는 그 어탕국수의 맛을 완성하는 향신료가 있다. 그것은 초피나무 열매가루이다. 쥐눈 같은 까만 열매를 제거하고 껍질을 그늘에 말린 뒤 빻으면 독특한 향을 낸다. 우리 고향에서는 제피가루라고도 하는 것. 나무를 의식하고 산으로 들어갔을 때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향기만으로 알 수 있었던 나무가 바로 초피나무였다.

벌초란 산소 주위의 풀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이름을 찾는 행위이기도 하겠다. 과연 예초기를 가지고 풀을 쓰러뜨리고 눈에 거슬리는 나무를 전지한 지 몇 분 만에 무덤이 제 모습을 찾았다. 무덤의 주인과 무덤을 세운 후손의 이름이 햇빛 아래 드러났다. 어느 산소 한 귀퉁이에는 나의 이름도 생생했다. 벌초 마치고 땀 흘린 뒤 초피가루로 완성한 뜨거운 국물을 삼킬 때 내 몸을 통과해나간 물고기, 간밤에 구워먹은 돼지고기, 무덤의 상석에 새긴 이름들에 대해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벌초하다가 벌에게 쏘여 목숨을 잃었다는 뉴스도 접하면서 복잡한 고속도로를 뚫고 서울로 귀가했다. 초피나무, 운향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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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 골짜기를 돌아들 때마다 아쉬움이 툭툭 튀어나왔다. 토함산에 오면 초등학교 수학여행의 경험이 너무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땐 오늘처럼 이렇게 순식간에 오르지 않았다. 지금보다 훨씬 작은 몸집과 허약한 기력으로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걸어서 올랐다. 그때처럼 그 길을 내 두 발로 직접 확인하며 걸어보고 싶은 것. 매표소를 기웃거리다가 토함산 정상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2시간 후 불국사 정문에서 만나자 하고 홀로 정상으로 향했다. 많은 이들이 다녀갔는지 길은 리어카가 지나갈 만큼 넓고 반질반질했다. 대학교 때 많이 불렀던 송창식의 노래도 흥얼거렸다. “토함산에 올랐어라…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 흘려 올라라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받쳐라….”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1년 가을. 현재보다 3분의 1의 홀쭉한 몸으로 나는 토함산 중턱까지 걸어 올랐다. 한때 참신했던 아동이 참으로 초라한 중늙은이로 변신해서 이제 해발 745m의 토함산 정상으로 가고 있다. 무려 45년 만에 끊어졌던 그 등산길을 다시 잇는 중! 추억에 젖다가도 혹 새로운 꽃이 있을까 싶어 눈을 두리번거렸지만 지금은 꽃들이 대부분 자취를 감춘 시기이다. 가을꽃이 곧 나타나겠지만 꽃 진 자리마다 열매가 익고 있다. 그 와중에 전국의 산 어디를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꽃이 바닥에서 눈을 호린다. 알며느리밥풀이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입술을 크게 벌린 꽃이 층층으로 꼿꼿하게 달린 야생화.

이렇게 사무친 토함산이라면 그에 어울리는 더 귀한 꽃을 찾아야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의 첫 경주행은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었다. 멋모르고 날뛰었지만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서 담임선생님의 배려로 겨우 따라간 수학여행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만큼이나 이름에 슬픈 사연을 간직한 알며느리밥풀. 꽃의 입술 아랫부분에 목구멍에 걸린 밥풀처럼 두 개의 도드라지는 흰 점을 오래 들여다보다가 식구들이 기다리는 불국사까지 걸어서 내려왔다. 알며느리밥풀, 현삼과의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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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긋지긋한 더위를 다스리는 방법 중 하나로 이런 시간 여행은 어떨까. 1억50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지구의 북반구는 빙하기다. 육지의 4분의 3이 얼음으로 꽁꽁 뒤덮인 것이다. 이때 추위를 피해 많은 식물들이 남으로 이동했다. 그때 한반도에도 이른바 북방계 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다가 차츰차츰 온난화가 진행되었다. 대부분이 고향으로 되돌아갔지만 일부는 한라산, 설악산의 고산지대로 피신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6·25전쟁 때 북으로 가지 않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던 빨치산처럼. 

이런 내력으로 한반도에 남게 된 북방계 식물들이 제법 많다. 이 식물들이 없었다면 우리 생태계의 다양성이 퍽 빈약하게 되었으리라. 우리 국토에서 제주도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 저 북방계 식물들이 없었더라면 한라산 꼭대기가 얼마나 허전했을까. 


출처: 경향신문 DB

아주 오래전 제주로 신혼여행 갔을 때만 해도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 근처까지를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곳은 아무나 함부로 갈 수 없는 곳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 진즉 식물에 눈을 떴더라면 그때 그 근처의 아주 귀한 나무와 야생화를 실컷 보아 둘 것을. 그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더 위로 올라가면 등산로 가장자리에 융단 같은 식물들을 볼 수 있다. 얼핏 보아서는 완고한 풀들이 뻣뻣하게 서 있는 것 같기도 하다. 10~20㎝의 키에 새끼손가락만 한 굵기라서 나무라고 볼 수 없을 것 같은 나무, 시로미다. 열매가 시어서 그 이름을 얻었다지만 잘 익은 것은 달콤하기만 하다. 이름이 독특한 만큼 생김새도 참 특이하다. 북방계 식물의 하나로서 그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키가 작고 잎은 뾰족하되 물기를 잘 저장하도록 통통하다. 

요즘같이 연일 불볕더위가 계속될 때, 한라산의 시로미를 생각한다. 이처럼 급격한 온난화가 진행된다면 이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더욱 고산지대로 쫓겨 가야 할까. 한라산 정상의 깎아지른 절벽에 어디 한 발 제겨디딜 데가 있을까. 실향(失鄕) 식물답게 땅으로 기면서 많은 가지를 내는 시로미. 혈혈단신으로 어깨동무하여 대가족을 이루는 시로미, 시로미과의 상록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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헥헥헥거리며 심학산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파드득 하는 기척이 들렸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말벌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매미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이종(異種)간의 결합이니 짝짓기는 분명 아니었다. 아이쿠, 말라 비틀어진 낙엽 사이에서 생사(生死)를 걸고 벌이는 난투극이 아닌가. 벌이 침이라도 놓았는지 싸움은 싱겁게 끝이 났다. 뻣뻣해진 사체를 두 토막으로 나누어 챙긴 말벌이 저의 소굴로 휙,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도 자리를 떴다.

며칠 전에는 미국 뉴욕의 보태니컬 가든에서 시체꽃이 80년 만에 피었다고 하는 기사를 보았다. 꽃에서 고기 썩는 냄새가 나서 저런 고약한 이름으로 불리는 시체꽃. 언젠가 죽는다는 운명을 알아차리고 미리 예방주사라도 맞는 기분이었을까. 그 거대한 꽃을 보려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다고 하는 뉴스를 보자니 시체꽃에 필적하는 우리나라의 꽃 하나가 떠올랐다.

<메밀꽃 필 무렵>은 지금 읽어도 자연의 향기가 듬뿍 담긴 현대적인 소설이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넘긴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고 할 때의 대화. 강원도 평창의 그 대화 근처에 있는 대원사 계곡을 훑을 때의 일이다. 아득한 저 위쪽에서 복사꽃잎이라도 하나 떠내려 올 것만 같은 청량한 개울의 가장자리마다 물소리에 홀린 귀한 야생화가 드문드문 살고 있었다. 한참을 올랐나. 개울은 어디론가 문득 숨고 암자 옆으로 가파른 고개가 나타났다. 사람의 자취에 닳고 닳은 등산로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그 이름을 좀체 잊을 수 없는 꽃을 만났으니 송장풀이었다.

질컥한 이름에 비해 아름답기 그지없는 야생화다. 줄기 상부의 잎겨드랑이에 층층이 연분홍의 꽃이 피어난다. 한여름 땡볕에 꽃은 절정이고 무언가 고함이라도 치는 듯 꽃의 입술이 크게 벌어지는 송장풀. 잎이나 꽃에 코를 들이대어도 고약하기는커녕 향기로운 냄새뿐이다. 그래도 혹 이름과 관련한 무슨 사연을 품고 있지 않을까. 납작 엎드리면 지하에서 누가 보고서 뭐라고 명명(命名)하고 군침을 흘리실지! 송장풀,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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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응시명월 기생수도매화(前生應是明月 幾生修到梅花). 십수년 전 중앙일보에 게재된 한 칼럼에서 저 12글자를 만났을 때 한마디로 뻑, 갔다. 틈나는 대로 중얼거리며 필사하였다. 나의 전생은 분명 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을 닦아야 매화가 될꼬. 달-시인-매화로 연결되는 숙연(宿緣)의 한 고리에 나도 끼어들고 싶었다.

그런 사무친 생각의 원력이라도 작용한 것이었을까. 땡볕 속의 인왕산을 한창 오르내릴 때 이런 궁리가 문득 찾아들었다. 여름이 지배하는 계절에 매미 소리는 인왕산을 도배하고 있는 중. 우렁찬 울음이 인왕산을 뒤덮고 있다. 매미는 땅에서 오지만 매미 소리는 땅으로 떨어진다. 자욱한 녹음 사이에서 귀가 먹먹한 가운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혹 매미의 전생(前生)은 눈이 아니었을까. 시방 우는 매미가 환생해서 다시 눈사람으로 태어나는 건 아닐까. 펄펄펄 내리는 겨울의 눈과 맴맴맴 우는 여름의 매미 소리는 그런 인연의 관계가 아닐까. 너무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나자 마음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졌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사시(四時)는 명확한 법칙 속에 움직이는 바 어김없이 지금은 또 올해의 여름 땡볕이다. 최근 마음속에 짚이는 바가 있어 새삼 하늘을 발견하고 그곳을 가까이 해야겠다는 감정이 일어났다. 근래 들어 산으로 가는 발걸음을 부쩍 늘린 건 현재로서는 직접 바로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겠다. 그나마 우회로라도 되는 한 방편이 될까 싶어 산길을 찾는 것.

오늘은 사무실 가까이 있는 심학산의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식당을 지나면 배밭이 있다. 이화(梨花) 진 자리마다 배가 몽글몽글 올라오고 그 아래로 발목이 빠질 만큼 수북한 풀들 사이에 눈에 띄는 꽃 하나. 종재기처럼 작은 꽃 안에 매미 소리가 수북하게 담겨 더욱 노랗게 보이는 꽃, 좁쌀풀이다. 지난주 정선과 태백을 잇는 만항재에서도 보았던 꽃이라 더욱 반갑다. 좁쌀풀도 그저 그냥 아무 궁리 없이 서 있지는 않겠지. 쏟아지는 매미 소리를 폭설 오는 광경으로 치환해서 전해주면 저도 알아듣겠다는 듯 반짝 호응해주는 좁쌀풀. 앵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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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애꿎은 돼지가 등장하는 뉴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교육부의 어느 고위공무원이 민중을 개·돼지로 여겨야 한다는 굳건한 소신을 영화 대사를 콕 집어 인용하여 내뱉었다. 미국에서 날아든 돼지 뉴스는 차라리 나았다.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의 첫 번째 회고록을 저술한 저자가 자신의 책에 대해 “나는 돼지에게 립스틱을 발랐다”고 쓰라린 후회를 밝힌 것이다. 잊을 만했는데 북한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와 민가에까지 출현한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요즘의 신문을 보면 분탕질을 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자들이 힘 있는 곳에 우글거리는 형국이다. 이런 판이라면 우리 사는 세상이 돼지우리와 별반 뭐 그리 다를까. 이런저런 씁쓸한 심사를 짊어지고 횡성군 청일면으로 갔다.

난다긴다 하는 곳의 지저분한 소식에서 한 발짝 비켜난 한갓진 동네였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이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쪼그만 개와 날씬한 노루가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지 않은가. 장뇌삼을 캐러 개(똘이)와 함께 간 주민이 어미를 잃은 채 아사 직전에 놓인 노루(산돌이)를 데리고 와서 우유로 기르는 중이라 했다. 똘이는 제가 처음 발견했다고 산돌이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 상당한 미모의 산돌이에게 이방인이 손이라도 대면 요란하게 짖어댔다.

참 오리무중의 세상이다. 무엇이 이곳에 살고 누가 저곳에 있는가. 말을 못하지만 거짓말도 안 하는 똘이와 산돌이가 아침을 먹으러 2층 계단으로 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근처 운무산으로 떠났다. 항상 구름과 안개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고 그 이름을 얻은 산이다. 이름이 제공하는 습기의 덕을 보았나? 운무산에는 귀한 꽃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오늘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바위틈에 자라는 병아리난초였다. 바닥에 납작 붙은 넓적한 잎을 딛고 가느다란 줄기가 뻗어올랐다.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 번 쳐다보는 병아리떼처럼 분홍색 꽃들이 횡으로 총총하다. 저 멀리 첩첩산중을 굽어보며 꿈꾸듯 서 있는 운무산의 병아리난초.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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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멀리서 보면 작은 구멍에 불과하지만 그냥 눈감고 통과하기엔 억울하지 않을까. 무언가 수런거리는 예감이 고여 있는 곳이기에.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수렴한 뒤 어마어마한 세계를 확 펼쳐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집약된 곳이기에. 그런 몇 개의 터널을 통과해서 강원도로 갔다. 강원도는 왜 강원도일까. 강릉과 원주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지만 그것으로는 미흡하다. 강원, 강의 원천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실제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는 모두 태백에 있지 않은가.

산이 높아 골짜기가 깊고 그래서 도로가 겹겹이 휘모리장단처럼 구부러지고 휘어지며 돌아드는 강원도. 아무래도 이곳 도로는 관절이 허약한가 보다. 이번 장마로 곳곳마다 파여나간 곳을 보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남해로 가기 위해 경상도를 누비는 낙동강, 황해를 향해 서쪽으로 흘러가는 한강, 그리고 동해의 강릉으로 미끄러지는 오십천. 이 세 강을 뜻하는 삼수령(三水嶺)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느 한 길모퉁이를 돌아들 때 길가에서 눈에 확 띄는 꽃이 있다. 모모한 높은 산에 가서도 보기가 쉽지 않건만 이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만날 줄이야.

솔나리였다. 오로지 하나의 줄기 끝에 여러 송이의 압도적인 꽃들을 터뜨린다. 씽씽 달리는 차들이 궁금한 듯 길 안으로 눈길을 던지는 솔나리. 오늘 내 앞에 들이닥친 솔나리는 무려 10개가 넘는 꽃을 달고 있는 것도 있다. 백합과의 나리는 얼굴이 닮은 사촌들이 많다. 말나리, 중나리, 하늘나리, 참나리, 땅나리 등등. 그중 솔나리는 솔잎처럼 가느다란 잎이 뿜어져나오는 분수처럼 달려 있는 게 특징이다. 그 잎들이 줄기의 하부에서 꽃들을 힘껏 응원하고 있는 듯해서 더욱 보기에 좋다.

해발 높은 길가에서 만난 솔나리. 같은 물, 같은 햇빛을 섭취했을 텐데도 운명이 다들 다르다. 이미 활짝 핀 것도 있지만 절정을 지난 듯 색감이 희미하게 총기를 잃은 것도 있다. 그중에서 내가 특히 주목한 것은 이미 피어난 꽃들 위에 묵묵히 달려 있는 꽃봉오리였다. 세상을 향한 포부를 가득 담고 있는 꽃봉오리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오늘 내린 비가 밖에서 실컷 두드렸으니 내일이면 더욱 활짝 피어날 솔나리.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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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서울로 외출하여 인왕산을 보는데 매미 생각이 났다. 내 일천한 관찰에 따르면 비가 오면 매미는 울지 않는다. 아무리 울어보았자 빗소리에 제 울음이 잡아먹힌다는 것을 매미는 잘 알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매미는 비가 그치는 기색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린다. 그래서 비가 그치자마자 그간의 참았던 울음을 시원스레 토해낸다.

여름의 땡볕을 달구었던 그 매미 울음들을 생각한다면 매미의 개체수도 대단할 것이다. 서울에 사는 시민과 서울에 소속된 나무만큼이야 안되겠지만 만만찮은 숫자이다. 죽음에 순서가 있는 건 아니라 해도 시민들은 그래도 차례차례 서울을 떠난다. 한꺼번에 왔다가 왕창 울어 젖히는 매미는 떠날 때도 한꺼번에 그냥 몽땅 떠난다.

인왕산에서 한바탕 논 매미들. 그들의 영혼이 떠난 사체들은 어디로 갔을까. 상식적이라면 내리는 빗물에 저항하지 못하고 물살에 떠밀려 인왕산 둘레의 하수구는 매미의 사체들로 뒤덮여야 할 것이다. 작년 가을엔 그게 궁금해서 인왕산으로 뻣뻣한 매미를 찾으러 일부러 가보았다. 그러나 어디에도 매미의 흔적은 없었고 매미 소리의 여운만이 숲을 휘감고 있었다. 인왕산 중턱에 있는 석굴암 계단에서 풍장하고 있는 1구를 겨우 발견했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인왕산의 주인인 인왕이 매미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숲속에서 잘 수습해 거둔 것이라고 믿기로 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는 중이다.

올해 매미 소리는 언제쯤 나의 귓전을 두드릴까. 강원도 깊은 숲에서는 지금쯤 매미가 기지개를 켜고 있을 것이다. 아마 영리한 매미들은 도심의 소음을 이기기 위한 내공을 쌓은 뒤 이 야단법석의 세상으로 데뷔할 기회를 노리고 있으리라.

몇 해 전부터 산으로 들 때 주로 초입에 있으면서 눈에 확 들어오는 나무가 있다. 봄이 가고 여름의 기미가 올 때까지 작년 열매를 그대로 달고 있는 신나무이다. 멀리서 보면 매미들이 줄지어 나무의 가지에서 도움닫기라도 하는 듯한 형국이다. 오호라, 작년의 선공(蟬公)들이 여기에 모여 승천하기 직전이로군! 신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소교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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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뚤귀뚤. 창문 너머에서 귀뚜라미가 운다고 창문 너머에 귀뚜라미만 있다고 여겨서는 안 되는 것처럼 해수욕장에 그저 모래만 가득하다고 생각해서는 절대 아니 된다. 그곳에도 해풍에 시달리며 키 작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지난달 동해안 어느 해변에 들렀더니 먼저 반기는 건 통보리사초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의연히 포즈를 취하는 녀석들을 보는데 몇 해 전 이들을 처음 보았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비금도 식물조사 동행 제안에 두말 않고 따라나선 건 꽃도 꽃이었지만 바둑기념관을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비금도는 섬이라는 나의 선입견을 간단히 제압한 뒤 제 높고 낮은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첫날 탐사를 마치고 간 숙소의 이름이 독특했다. 빨간집모텔. 천일염과 시금치만 유명한 줄 알았더니 프로기사의 이름과 옥호를 작명하는 데에서 보듯 말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 동네였다. 이름에 합당하게 간판과 벽을 온통 빨간색으로 치장한 건물의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빨간 소주에 빨간 안주를 먹은 셈이었다. 방으로 올라왔더니 벽지도 빨간색이었다. 빨간 잠을 자고 빨간 꿈을 꾸시라는 주인의 배려인 듯했다.

그렇게 매운 잠을 자고 일어나 둘째날의 탐사를 시작했다. 내심 바라던 대로 차가 초등학교를 개조한 이세돌바둑기념관의 운동장에 멈춰섰다. 행사가 없는 기념관은 바둑돌처럼 쓸쓸한 느낌이었다. 달맞이꽃이 듬성듬성한 뒷문으로 나가니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바로 연결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출렁이는 파도소리를 응원 삼아 자라는 통보리사초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알파고와 멋진 대국을 펼쳤던 이세돌 기사가 독도에서 기념대국을 하였다는 뉴스를 그제 접했다. 사진을 보니 대국하는 모습 뒤로 독도의 풍광이 보였다. 독도는 비금도하고는 전혀 다른 섬으로 모래밭이 없다. 통보리사초가 자랄 형편이 못되는 것이다. 이세돌 선수가 어디에서 누구하고 붙는다 해도 비금도 해변의 통보리사초는 그를 힘껏 응원하지 않을까. 어깨너머로 배운 동네바둑에 불과한 실력의 소유자로서 그런 다소 엉뚱하고 싱거운 훈수를 두어보았다. 통보리사초, 사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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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한쪽에 화단이 있어 무엇을 심을까 고민이 깊어가던 차였다. 그렇다고 상투적인 식물을 함부로 심기는 싫었다. 당분간 전통적인 방식대로 방치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런 처지를 딱하게 여긴 꽃동무가 도움의 손길을 주셨다. 부산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화단 가꾸기에 일가를 이룬 분이었다. 급기야 강원도로 꽃산행을 떠나는 길에 잠깐 방문해 화단을 정리해주셨다. 황무지 같던 시멘트 감옥이 아연 녹색이 철철 흘러넘치는 공간으로 변했다. 하늘매발톱, 왜솜다리, 부산꼬리풀, 은방울꽃, 꿀풀, 해국, 돌단풍, 용머리가 새 주소를 받았다. 목록 중 다 알 만했는데 용머리가 좀 낯설었다.

갑작스레 거주지를 옮긴 어리둥절한 꽃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강원도로 떠났다. 요산요수(樂山樂水)를 한꺼번에 체감하는 동해안 바닷가.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야릇한 낭만을 즐길 수도 있겠지만 카메라 들고 발밑의 싱싱한 고독을 캐내는 재미도 쏠쏠하기만 하다. 우리 국토의 등허리인 이곳에는 마치 물고기의 지느러미처럼 모종의 힘이 비축되어 있기에 진귀한 꽃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여러 귀한 야생화들을 만났다. 방풍림으로 심은 해송이 우거진 어느 해변에는 우리보다 먼저 온 분들이 있었다. 두 모녀가 무덤으로 진출하는 해당화를 제거하고 있었다. 해당화 뿌리가 산소로 들어가면 자손한테 안 좋대요! 내 고향에서도 벌초 때면 아까시나무가 수난을 당하는데 이곳에서는 해당화가 그런 대접을 받고 있었다. 한참을 헤매었나. 마침내 꽃동무들이 소리를 질렀다. 용머리다! 드디어 야생의 용머리를 강원도 해변에서 찾았다. 치켜든 꽃대 끝이 정말 용의 머리처럼 꼿꼿했다. 색감 또한 강원도의 하늘빛과 동해의 물빛을 고스란히 포개놓은 듯했다.

최근 궁리출판 사무실 화단에도 용머리가 활짝 피었다. 색감이야 강원도의 그것에는 못 미치지만 꽃대만큼은 야무져서 어디 하나 꿇릴 것 없다. 강원도의 용머리가 모래밭에서 우뚝 돌출해서 무덤을 바라보는 것처럼 파주의 용머리도 화단 곁을 지나치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용머리,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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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의 지리 수업 시간. 선생님이 칠판에 토끼모양의 한반도 지형과 제주도를 그린 뒤 그 밑에 토끼똥처럼 작은 점을 두 개 찍었다. 여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남쪽인 가파도와 마라도이다. 이 세 섬을 넣어서 짧은 글을 지어보아라.

제주에 몇 번 가보았지만 마라도는 늘상 기억으로만 남았다. 전에는 틀에 박힌 관광코스를 돌아다니기에 바빴고 최근에는 한라산과 곶자왈, 해변을 관찰하기에 일정이 빡빡했다. 이번 제주 꽃산행은 모두 떠난 뒤 혼자 남았다. 마라도를 가보기로 했다. 누가 재작년에 우도에서 뚜껑별꽃을 보았다고 했기에 마라도에서도 혹 그 꽃을 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만약 그걸 발견한다면 그건 나의 꽃 이력에서 하나의 사건이 될 법했다.




망망대해에 모가지를 간신히 내놓고 겨우 존재하는 섬, 마라도. 제법 높은 절벽 옆으로 배가 접안하는 동안 마라도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이렇다 할 식물은 없는 듯했고 따개비처럼 작은 건물들이 악착같이 붙어 있었다. 섬은 조금 넓기만 할 뿐 높이는 없었다. 식물들이 근육을 키울 계곡이나 능선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날카로운 절벽 근처에는 손바닥선인장이 인상적이었다. 그중 어느 한 무더기는 길 떠나는 가족들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서귀포에서 잠시 살았던 이중섭의 작품을 떠오르게 하는.

이 작은 섬에서 체류한 2시간 동안 특별한 꽃을 만나지 못했다. 큰개미자리, 괭이밥, 땅채송화, 순비기나무, 해국, 애기달맞이꽃 등을 눈에 넣었을 뿐이다. 제주도에서 노름하다 진 빚은 가파도 좋고 마라도 조타! 지리시간에 들었던 그 작문을 떠올리며 마침내 대한민국최남단 표지석에 섰다. 멀리 갯강활이 바다를 향해 전면적으로 서 있었다. 줄기 끝에 흰 꽃이 몽글몽글 모여 있고 나무처럼 단단한 느낌을 주는 식물이다.

내가 두 발로 갈 수 없는 곳에서 몇 발짝 더 남쪽에 서 있는 갯강활. 녀석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글쎄, 여기는 최남단이니 남쪽으로 끝이긴 하겠지요. 하지만 그대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 동안 디뎠던 그 모오든 곳도 땅끝이 아니었던가요? 갯강활, 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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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연휴를 이용하여 제주도에 갔다. 첫 행선지는 당연히 한라산이었다. 숙소에서 영실에 도착할 때까지 날씨가 오락가락했다. 시내에선 오던 비가 1100도로에 들어서자 맑았고, 고개 하나를 넘을 때마다 공중의 기미가 아연 달라졌다. 영실에 도착해서 하늘을 살피니 그리 큰비는 아니었지만 바람이 몹시 사나웠다. 영실(靈室)인 이곳이 이러할진대 한라산의 꼭대기는 어떠할까 싶었다. 오름, 곶자왈의 계곡, 해변을 탐사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안개에 잠긴 한라산을 우러르면서 고지대에 자란다는 깔끔좁쌀풀을 생각했다. 개화 시기가 많이 이르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혹 볼지도 모른다는 은근한 기대를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하산하는데 이수익의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제주에 가면 꼭 한번 가보라던/ 애월, 그 바닷가 마을은/ 결국 가보질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잘된 일,/ 애월은 이제 ‘다음에…’ 하고 내 가슴 깊이 묻어둘/ 애틋한 그리움의 한 대상이 되었으므로”



산에서 내려와 먼저 새별오름으로 향했다. 시심(詩心)을 알 리 없는 무정한 자동차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이정표를 휙휙 지나쳤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애월이 있는 듯했다. 애월 아래를 지나칠 때마다 “가슴에 품고 싶은/ 작은 기생(妓生) 같은” 애월을 생각하면서 애월, 애월이라고 중얼거렸다. 한라산 꼭대기의 그 깔끔좁쌀풀도 생각하면서.

새별오름은 완만한 구릉이 발달한 큰 무덤 같았다. 이렇다 할 나무도 없이 잔디들만 새털처럼 나부끼고 있었다. 이번 제주도 탐사에서 또 하나 보아야 할 게 뚜껑별꽃이었다. 깔끔좁쌀풀이 높은 곳에 자란다면 그것은 해변이나 풀밭에서 자란다. 깔끔좁쌀풀과 뚜껑별꽃. 애월이 시인의 마음에 자리한 애틋한 장소이듯 실물을 보기도 전에 이름으로 먼저 심금을 울리는 꽃들이었다.

이날 나는 뚜껑별꽃도 찾지 못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꽃은 모습을 보여주지 아니 했다. 대신 등심붓꽃을 많이 보았다. 비록 손톱만큼 작은 꽃이지만 깎은 듯한 자태로 바라보는 눈을 홀랑 뒤집어놓은 꽃이었다. 북미 원산의 귀화식물로 허전한 내 마음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하나 없었던 등심붓꽃.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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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령 넘어 동해안으로 갔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틉틉한 날씨였다. 해변 도로에서 바다를 등지니 논이 펼쳐졌다.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었다. 논에 물이 가득했다. 이 물은 반은 지하에서 왔고 반은 하늘에서 왔을 것이다. 논두렁이 뱀처럼 구불구불 풀어져 있었다. 참 오랜만에 논두렁을 밟아보았다. 어릴 적엔 아주 익숙했지만 그동안 잊고 지냈던 풍경이었다.

“한 숟가락 흙 속에/ 미생물이 1억5천만 마리래!”(정현종)라는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이 찰진 흙 아래에는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는 미생물이 우글거리고 있다. 두툼한 등산화 바닥을 뚫고 논두렁의 폭신함, 다시 말해 작은 생명들의 꿈틀거림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한 움큼’이 아니라 ‘한 숟가락’이라는 표현에 기대니 흙이 마치 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생각으로 논을 바라보았더니 이상한 전이가 일어났다. 논이 부글부글 끓는 술독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뱀처럼 풀어진 논두렁을 테두리로 하는 아주 잘 빚은 항아리!


술독은 고요히 끓고 있었다. 고두밥이 익어가는 것처럼 논에서는 흙이 익어가고 있었다. 독에 걸맞은 큰 발효균처럼 올챙이들이 꼬물꼬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야흐로 순흙 막걸리가 맛좋게 익어가는 신호처럼 여기저기에서 큰 기포들이 뻐끔뻐끔 올라왔다. 멀리 울산바위가 보였다. 강원도의 산들은 작정하고 내려온 술꾼인 듯 항아리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겨드랑이에 바람도 집어넣으며 걸으니 논두렁 정기가 흠뻑 온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몇 다랑이의 논을 지나자 갈대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습지가 나타났다. 그 사이에서 드디어 조름나물을 보았다. 이름으로만 듣던 멸종위기 2급의 아주 귀한 식물이다. 물속에서 어떻게 이런 자세를 취하고 또 유지하는가. 3장의 잎은 정갈한 녹색 그릇이고 그 위에 고봉으로 담은 쌀밥처럼 핀 흰 꽃이 피어났다. 조름나물은 서걱대는 키다리 갈대 사이에서 한 뼘만큼만 드러나 있었다. 물속의 고요함을 흡수한 뒤 저만의 기품으로 소화하여 물 바깥으로 다시 내놓고 있는 듯했다. 외지고 축축한 뒤안에서 자라지만 늘 물낯바닥으로 얼굴을….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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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을 날던 새가 나뭇가지에 잠시 앉듯 산을 오르던 등산객들도 아늑한 공터에서 잠깐 쉰다. 축 처진 엉덩이를 바위에 내려놓으면 누가 그 무게를 얼른 가져간다. 산 아래에서는 왜 이런 모습을 숨기고 살았을까. 배낭에서 물이나 간식을 꺼내면서 모두들 얼굴에서 선한 표정도 함께 꺼내놓는다. 그러다가 누군가 던지는 농담 한마디에 한바탕 웃기도 한다. 제법 오래전이다. 가만 저 새소리 좀 들어보란다. 홀딱벗구,라는 뻐꾸기의 소리라면서. 그 농담 이후 이제 새소리는 홀! 딱! 벗! 구!라는 소리에 끼워맞춰서 들리는 게 아닌가. 참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사람의 마음이요 귀다.

오늘도 어디선가 새울음이 들리고 있었다. 소리의 방향을 찾다가 때죽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검은등뻐꾸기를 겨우 붙잡았다. 허공을 나는 새는 비행에 최적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한다. 체공시간을 늘리도록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뼈 속을 텅 비웠다. 허공을 날기 위해 몸안 곳곳에 허공을 아로새긴 것!

하늘의 엉덩이를 찌르고 있는 듯한 정상에 오르면 구름을 만질 것 같더니 어느새 창공은 또 저만큼 달아난다. 괜히 시비 걸어보았자 나의 초라한 키만 확인할 뿐이다. 격이 다른 바람이 몰려오는 태백산 정상. 멀리 굽이치는 산들을 때리고 오는 바람의 맛이 칼칼하다.

몸을 텅 비우고 내려오는 길이다. 반재를 지나 백단사 계곡의 약사암에 이르면 개울물이 활기차게 기운을 얻는 중에 나무 한 그루가 활짝 피어 있다. 물을 참 좋아하는 물참대. 마구 뒤엉킨 가지마다 하얀 꽃이 탐스럽게 달렸다. 누군가 물참대의 시든 가지 하나를 조심스레 꺾었다. 보세요, 물참대의 가지는 텅 빈 구멍이에요!

어쩌자고 물참대는 허공을 제 안에 감추었나. 산에서 듣는 새소리가 저리도 낭랑한 건 뼈의 구조와 전혀 상관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가 털갈이를 하듯 어린가지 껍질이 얇게 벗겨지는 물참대. 글썽이는 눈물처럼 한 아름의 물참대 꽃이 저리도 맑고 흰 것은 가지가 텅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닐까, 아닐까. 물참대, 수국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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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0여종의 우리나라 식물들 중 지면을 기어가거나 곁에 있는 물체를 휘감고 자라는 덩굴성 식물이 꽤 있다. 다른 것에 의지한다고, 바닥을 긴다고 이들이 비굴하게 살아간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본성에 충실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울릉도에 갔을 때 큰 나무의 줄기마다 덩굴식물이 빽빽하게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섬의 면적이 좁아서 이처럼 현명하게 동거하는 게 아닐까. 덩굴식물이라면 등나무나 담쟁이를 대표적으로 떠올리기 쉽지만 포도, 딸기 등도 덩굴성 식물 출신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수박도 그렇다. 태양이 부는 풍선처럼 밋밋한 가지에 달리는 사과도 놀랍기는 하지만 더러 배배 꼬이기도 하는 저 연약한 덩굴줄기에서 보름달처럼 부풀어오르는 수박을 보면 더욱 놀랍지 않은가.

지난주 소백산을 오르다 비로사 입구의 서늘한 숲그늘을 기어가는 덩굴꽃마리를 만났다. 이름에조차 그 말이 들어있듯 줄기가 길게 덩굴로 자란다. 특히 그 꽃차례의 끝도 덩굴처럼 또그르르 말린다. 어쩌다 터널이 뚫려 이제는 버려진 고개를 갈 때가 있다. 인적 끊긴 차도로 주춤주춤 진출하는 칡을 보면 그 끝은 한결같이 꼬부라져 있다. 마구잡이로 나아가지 않고 이리저리 망설이고 살피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처럼 덩굴성 식물들은 공통의 특징이 있다. 그 끝이 제가 뻗어갈 방향보다는 뻗어온 곳을 자꾸 쳐다본다는 것이다. 이제껏 잘 기어왔는지, 너무 멀리 가는 건 아닌지, 이러다가 되돌아가야 할 곳을 잃어버리는 건 아닐지. 그걸 경계한다는 동작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말을 하고 산다. 이목구비를 갖춘 얼굴을 달고 사니 떠드는 것도 한 본성이긴 하겠다. 엎질러진 물처럼 한번 뱉은 말은 주워담을 수가 없다. 말은 나를 뿌리로 하여 뻗어나간 덩굴의 줄기와도 같은 것일 테다. 아무리 힘껏 당신을 향해 내던져도 그 말의 끝은 정작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아내가 배꼽처럼 꼭지가 마른 수박을 쪼갰다. 고추장처럼 빨간 수박을 한입 베어문 채 올여름의 유난한 더위를 예감하면서 덩굴꽃마리의 꽃대 끝에 나의 그런 생각을 얹어놓았다. 덩굴꽃마리, 지치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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