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03건

  1. 2014.12.29 은꿩의다리
  2. 2014.12.22 아까시나무
  3. 2014.12.15 난티나무
  4. 2014.12.08 노루오줌
  5. 2014.12.01 달맞이꽃
  6. 2014.11.24 신갈나무
  7. 2014.11.17 개불알꽃
  8. 2014.11.10 분홍장구채
  9. 2014.11.03 물푸레나무
  10. 2014.10.27 풀솜대
  11. 2014.10.20 방석나물
  12. 2014.10.13 바위떡풀
  13. 2014.10.06 금강초롱꽃
  14. 2014.09.29 수정난풀
  15. 2014.09.22 산앵도나무
  16. 2014.09.15 해바라기
  17. 2014.09.01 배롱나무
  18. 2014.08.25 나팔꽃
  19. 2014.08.18 탱자나무
  20. 2014.08.11 정금나무


순한글인 다리는 그 뜻이 자못 이중적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몸통 아래 붙어 있는 신체의 부분으로 서고 걷고 뛰는 일 따위를 맡아 한다. 다리가 없다면 동물은 식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안경다리, 책상다리의 예에서 보듯 그것에 붙어서 그것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다리이다.

다리는 왜 다리일까. 다리는 또 큰 뜻을 가지니 그것은 널리 아는 바와 같다. 그 다리를 걷고 건너서 여기까지 와서 잠시 머물다가 또 그 어디로 간다. 우리가 가만히 있다면 여기에서 저기로 갈 수 없지만 오늘에서 내일로 갈 수는 있다. 그러니 지금 딛고 있는 둥근 지구는 우주에 놓인 징검다리이고 나의 몸은 그 어디로 연결된 다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식물에는 다리가 없지만 식물 이름에는 ‘다리’가 들어가는 게 제법 많다. 한국의 에델바이스에 흔히 비견되는 솜다리류(類)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표기만 다리일 뿐 그 뜻은 다리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외에도 낙지다리가 있다. 전국의 습지나 물가에 자라는 풀로 꽃이나 열매가 낙지의 다리처럼 달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다리라는 뜻을 제대로 담아내는 식물은 따로 있다. 금꿩의다리, 꼭지연잎꿩의다리, 꽃꿩의다리, 산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발톱꿩의다리. 이들은 말뜻 그대로 모두 꿩의 다리를 닮은 가족들이다. 바라만 보아도 곧 부러질 것 같은 가늘고 긴 줄기라서 그런 이름을 가진 것일까.

우리 모두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존재’들. 세밑에 서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다리에까지 이르렀다. 생의 깔딱고개라 할 오십의 나이도 훌쩍 지나고 또 한 고비를 지난다. 이제 나도 늙다리에 속하는 축에 들었구나, 새삼 탄식하는데 지난가을 내장산에서 본 은꿩의다리가 떠올랐다. 흡사 허공 속의 그 어딘가로 이어주는 징검다리처럼 공중에 흩어진 꽃들. 숱한 발걸음이 오가는 길가에 호젓하게 피어나 내 남은 길의 끝을 가늠케 해 주었던 은꿩의다리.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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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앉아서 맞을 수는 없어 인왕산으로 갔다. 호젓한 능선과 깔딱고개가 구비되어 있기에 가쁜 숨을 토해내야 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는데 어느덧 정상이다. 눈은 땅에서 솟아나지 않았고 분명 하늘에서 온 물질이다. 저 푸른 곳에서 떨어져 나왔는데 왜 흰색일까. 나의 시선은 힌트가 될 만한 흰 구름을 딛고 멀리멀리 나아갔다.

몇 해 전 해돋이 보러 갔던 감포의 대왕암 앞바다가 떠오른 것이었다. 거칠 것 없이 출렁이는 바닷가. 바다에 소금이 없어 밍밍하다면 바다는 바다일 수 없을 것이다. 검푸른 바닷물은 모래밭에 몰려와서는 모두들 흰 거품으로 까무러친다. 바닷물이 마지막에 흰색으로 표현되는 건 흰 소금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오늘따라 흔감한 기분으로 내려오는 길. 인왕산 허리의 전망대에 서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울긋불긋 뽐내는 문명의 색들을 모두 더한다면 아주 지독한 검은색이 될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는 코끝에 닿을 듯 아까시나무가 서 있었다. 콩보다 납작한 열매의 꼬투리를 달고 있는 저 나무는 콩과식물이다. 오늘 아침에 먹은 콩나물과 같은 가족인 셈이다. 지금 내 머릿속을 찌르는 건 나무의 가시나 줄기가 아니었다. 나의 궁리는 아까시나무의 뿌리로 뻗어갔다. 뿌리는 나무를 탄탄히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한편 물을 찾아 캄캄한 흙 속을 헤매고 있다. 세계의 한 끝을 찾아 물과 닿는 뿌리들. 볼 수는 없지만 모두들 흰색에 가깝지 않을까.

세상의 배후를 짐작하게 하는 일련의 색깔에 대해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주위에 있는 등산객들의 머리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모두들 희끗희끗해지는 육체의 끝. 누구는 염색약으로 가리기도 했지만 솟아나는 머리카락의 흰색은 감출 수가 없다. 나의 그것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그 어느 마지막을 향하는 몸이 길어올리는 색깔은 구름, 소금, 뿌리와 긴밀히 내통하는 것! 우리가 뿌리 있는 한 그루 나무라면 불안이 저 가시처럼 자라나겠지. 그래서 한번 더 눈길이 가는 아까시나무. 콩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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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버스를 기다린다. 더디 오는 버스의 행방을 하늘에 물어볼까. 고개를 들면 가로수가 척 가로막는다. 잎도 열매도 모두 아래로 줘버렸다. 12월의 찬 기온을 알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홋홋한 느티나무. 식물학자들은 꽃이나 열매를 분류의 기준으로 삼지만 초보자는 수피, 가지, 냄새 등의 특징을 본다. 어느 땐 잎의 모양을 보기도 한다. 이제는 다 떨어지고 흔적만 남은 나뭇잎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잎은 둥글고 넓적하며 편평하게 달려 있다. 가급적 햇빛을 많이 쬐어 광합성을 풍부히 하겠다는 뜻이다.

떡갈나무처럼 거의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잎자루는 가늘고 긴 형태로 가지에 연결된다. 손잡이가 가늘고 길쭉할수록 부채가 바람을 쉽게 만들어내듯 잎자루도 그런 구조일수록 나뭇잎은 잘 흔들린다. 나무는 잎의 뒷면에 난 기공을 통해 숨을 쉬고 신진대사를 하는데 잎이 잘 흔들려야 이들의 순환이 잘되는 것이다.

잎자루가 잘록해서 그래서 나뭇잎이 잘 흔들리도록 설계된 것은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봄, 여름, 가을을 거치면서 흔들릴 대로 흔들린 나뭇잎. 이제 그 잎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떨어지고 싶은 순간. 서슴없이, 간단히, 쉽게, 그냥 툭 떨어지기 위해서. 떨어져서도 낙엽의 삿대가 되어 얼른 떠나기 위해서. 상처도 없이, 미련도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잎에 대해 생각하는데 울릉도에서 본 아주 인상적인 나뭇잎이 떠올랐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가지 끝에 우뚝 달려 있던 난티나무의 잎들. 황혼녘 머릿속에서 부엉이가 훌쩍 날아가고 시선을 거두면, 나의 몸에도 그런 장치가 있는 것을 새삼 발견한다. 그것도 두 군데나 있다는 것을. 그 맨 아래쪽은 복사뼈 근처의 잘록, 잘록한 발목!

이윽고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저무는 하늘을 업고 나타났다. 나는 안다. 저 곱상한 공중에 눈과 비, 천둥과 벼락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뭇잎은 나무의 혀였던가. 떠날 때도 말없이. 난티나무는 난티나무. 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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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보면 하고많은 간판 중에서도 식당이 잘 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눈이 저절로 돌아가는 건 목구멍 깊숙이 연결된 식탐과 반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재래시장 근처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설 뿜는 흰 연기 사이의 붉은색 메뉴들은 왜 이리도 자극적인가. 우리나라 음식 이름은 좀 잔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칼은 보이지 않지만 피가 흥건하다.

돼지 한 마리를 낱낱이 분해해서 그 부위별 명칭을 그대로 요리 이름으로 쓴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갈매기살, 돼지갈비, 껍데기, 곱창, 등뼈, 족발 그리고 눌린 돼지머리까지. 소를 대우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갈가리 토막 내서 구워 먹고 삶아 먹는다. 날것으로 육회, 건조해서 육포로 먹기도 한다. 소갈비, 등심, 소간, 우족, 도가니, 소머리국밥, 꼬리곰탕까지.

산중에서 걷다보면 아래에서의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제 모두 꽃은 내년을 기약하며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벌겋게 달군 불판 옆으로 모이는 송년회 자리에서 모처럼 얼굴을 확인하듯 올해 본 꽃들을 호명해본다. 이런 이름의 야생화도 있다. 노루귀, 괭이눈, 다람쥐꼬리, 돼지풀, 낙지다리, 개구리발톱, 강아지풀, 꿩의다리, 범꼬리까지.

이름으로는 작고 여린 것들이지만 한 계절을 살아도 모두들 저마다의 웅장한 세계! 그것이 없었다면 그곳의 자연은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생각나는 게 있다. 어느 여름 소백산 능선에서 칼바람을 맞고 내려오다가 만난 노루오줌. 그 오묘한 식물을 만나고 와서 이렇게 썼다. 이처럼 꼿꼿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수가 어디 또 있겠는가. 처음 뿌리에 닿았던 물이 차츰차츰 차고 올라 이런 높이까지 도달했다. 그도 이런 위치까지 오를 줄은 몰랐던가 보다. 그것은 한번 차올랐다가 떨어지기에는 아쉬운 듯 한번 더 갈래를 뻗어 오른다. 그러다가 그냥 주저앉기에는 억울하다는 듯 공중에 잠시 머무는 중. 가장 멀리 날아감직한 각도를 비스듬히 유지한 채. 노루의 것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뿌리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해서 노루오줌.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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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로제타호는 2004년 3월 지구를 떠나 시속 6만6000㎞로 64억㎞를 비행한 끝에 혜성에 도착했다. 소설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손바닥에서 접했다. 갤럭시, 안드로이드, 삼성, LG(금성), 구글 등처럼 휴대폰과 관련해서 별과 관련된 말이 많다. 하늘의 별도 아니면서 별인 척하는 것에 왜 머리를 빠트리고 살았을까. 로제타가 어두운 창공을 나는 10년8개월 동안 나는 무슨 궁리를 하였던가. 모처럼 고개를 펴고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멍하게,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로제타호의 이름은 로제타스톤에서 빌린 것이다. 그 돌이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푼 것처럼 그 이름에 태양계의 수수께끼를 풀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로제타는 돌이 발견된 나일강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그렇다면 그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사람 사는 원리는 다 비슷할진대 목화가 많아서 우리나라의 목포(木浦)인 것처럼 혹 이집트의 로제타에는 장미꽃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다가 시선을 구부려 발밑을 보았다. 까마득히 가물거리는 저 하늘 끝에 있을 로제타호에서 로제트라는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로제트란 특정 식물은 아니고 근생엽이 장미꽃 모양의 방사상으로 땅 위에 퍼져 나는 것을 통칭하는 용어다. 땅에 바짝 붙어 바람도 피하고, 지열을 이용하여 겨울을 나는 로제트형 식물들. 봄꽃이나 가을단풍에 하나 꿇릴 것 없는 겨울잎으로 사나운 계절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식물의 지혜인 셈이다. 봄이 되면 로제트 식물은 차츰차츰 공중으로 진출한다. 땅에서 꽃까지의 서너 뼘 남짓한 여정이 지구에서 혜성까지의 여행만큼이나 엄숙하고 위대한 모험!

로제타호는 발사 후 지구와 화성의 타원 궤도로 돌면서 혜성까지 갔다고 한다. 여러 시공간에서 그 중첩된 궤적을 추적하면 로제트 무늬를 닮았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상상해 본다. 캄캄한 밤에 피었다가 아침이면 오히려 시드는 가장 대표적인 로제트 식물, 달맞이꽃 옆에서. 바늘꽃과의 두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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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우리나라. 면적만으론 그리 큰 땅이 아닐지라도 둘레를 따지면 심오한 구석이 많다. 이런 평가가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매우 긴 해안선을 갖고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자원이다.”(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 시력 탓도 있겠지만 그 테두리를 제자리에서 다 볼 수는 없다. 내 키가 너무 작아서.

대륙에 연결된 한반도. 산악지대가 70% 이상으로 산세가 옹골차게 빼어나다. 우리 사는 곳은 낮은 데라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하늘을 배경으로 산들이 눈에 척 걸려들기 마련이다. 해안선(海岸線)이니만큼 천안선(天岸線)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 흐뭇한 곡선은 아주 잘 보인다. 나의 높이가 너무나 낮아서.

무릇 모든 일과 사물에는 급소가 있는 법이다. 나의 급소는 언제나 너였다. 잔잔히 노래하던 가수가 급소에 이르자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이때 잠깐 드러나는 치열(齒列) 구조는 어쩌면 그리 말발굽을 닮았는가. 멀리 꽃산행을 가고 오다가 차창 밖으로 능선을 본다. 천의무봉한 바느질 자국처럼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생태지도(ecology map)에 따르면 백두대간에서 교목은 신갈나무, 관목은 철쭉이 가장 많이 분포한다고 한다. 그러니 높고 외롭고 쓸쓸한 저곳에는 신갈나무를 비롯해 참나무 가족들이 있을 공산이 크다. 그 나무들은 어쩌면 그렇게 얼룩말의 구부정한 목에서 휘날리는 갈기 같은가.

땅거미가 목덜미를 덮칠 때, 갯벌처럼 우툴두툴한 입천장을 더듬으며 사방의 능선을 유심히 보라. 세상의 모든 산들은 땅을 박차고 그 어딘가로 달려가는 얼룩말떼! 하늘과 산의 접면에서 울타리처럼 지키고 서 있는 신갈나무 아래로 힝힝거리고 쌕쌕거리고 푸들거리는 콧김 소리가 세상에 가득 찼다. 우리를 그 어딘가로 운반하는 신발(짚신)에 잎을 깔창처럼 갈아 신는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도 하는 신갈나무. 참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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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 도솔암,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 지리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곱 암자다. 주말이면 이 암자를 도는 순례자의 발길이 가랑잎처럼 쌓인다. 그 첫번째인 영원사의 소슬한 마당에 들어서니 천왕봉을 필두로 지리산의 장엄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원사의 법당 옆으로 새로 지은 요사채가 있었다. 지리가 빚어내는 풍광을 제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듯 삼면이 모두 유리창인 건물이었다. 스님이 큰 유리창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먼지 하나가 묻으면 그만큼의 풍경을 방해라도 한다는 듯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걸레질을 하고 계셨다.

허락을 받고 갓 태어난 방으로 들어갔다. 함부로 뒹굴던 풍경이 유리창 안으로 쫄깃하게 수렴되는 게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딴판이었다. 비로소 지리산의 풍광이 내것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뿔싸, 산에서도 존재보다는 소유로 파악하려는 속(俗)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구나!

툇마루에서 등산화 끈을 조이는데 누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절에서 키우는 흰 개였다. 스님께 이름을 물었더니 소정이라 했다. 작을 소에 머무를 정.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좋은 곳으로 환골탈태하라는 뜻이라는 부연 설명. 초등학교 여학생 이름일 것만 같은 소정이에서 小停(소정)으로 바뀐 개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가슴속을 휙, 지나갔다.

단풍이 자지러지는 풍경 좋은 영원사. 이 절은 개불알꽃의 자생지이기도 하다. 절의 바로 뒤편에 그 귀한 꽃이 자라고 있다. 이름이 조금 얄궂긴 하지만 모양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꽃. 물론 오늘 그 꽃을 볼 수는 없다. 한 송이 국화꽃이 소쩍새와 천둥과 긴밀히 연결되듯 개불알꽃과 소정이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맺는 거대한 인연의 수레바퀴에서 나 또한 그리 멀리 비켜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내년 초파일쯤 이곳에 다시 와야 할 까닭이 몇 개 생겼다. 소정이를 다시 만나러, 활짝 핀 개불알꽃을 실컷 보러. 멸종위기2급.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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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한탄강은 꽁꽁 얼어붙는다. 광활한 철원평야의 매서운 칼바람에 풍부한 수량의 강도 맥없이 무릎을 꿇고야 만다. 추위가 아니었다면 도무지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발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강물 위를 걸었다. 얼음 이불을 덮고 노니는 물고기떼를 보기도 했다. 작년 한탄강 얼음 트레킹 이야기이다.

올해 벌어진 일들은 우리에게 기억의 몫으로 남겨두고 시간의 강 아래로 흘러간다. 그보다 더 불가해한 일이 다시 또 있을 순 없겠다. 또 무슨 칼칼한 낯으로 오려는 걸까. 이제 곧 올해의 겨울이 온다.

직탕폭포 근처. 점심을 주문해 놓고 식당 뒷문으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한탄강으로 내려갔다. 귀한 꽃이 산이나 들에만 있으란 법이 어디 있겠나. 낮게 도열한 절벽을 훑었더니 어느 바위의 겨드랑이 사이로 분홍빛 꽃이 눈에 들어왔다. 우뚝한 줄기 끝에 제법 복잡한 구조의 꽃을 달고 있는 분홍장구채였다. 경기, 강원 이북의 지역에서 드물게 자라는 멸종위기 2급의 야생화다.

꽃은 절정을 지나 이제 완연히 퇴락한 모습들. 이미 총기를 잃고 땅으로 녹아드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로 바위틈에서 자라기에 까치발을 해서 겨우 찍었다. 분홍장구채 위로 아주 싱싱한 것이 있길래 어느 줄기의 잎사귀이거니 했다. 지금쯤 펄펄 끓고 있을 매운탕 생각에 서둘러 마무리했다.

집에 와 컴퓨터를 켜고서야 알았다. 시드는 건 꽃잎만이 아니었다. 노안 탓인가. 잎사귀는 사마귀였다. 너희들만 꽃을 보라는 법이 어디 있겠냐며 고운 꽃 앞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사마귀. 오늘의 나는 너무 큰 먹잇감이겠지만 언젠가는 사마귀와 녀석의 친구들에게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경고하듯 나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사마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칼바람 앞에서 분홍장구채는 흔들리고.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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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절정인 설악산 비선대에서 반질반질 닳은 돌계단을 내려오는 길. 좌우의 울창한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중의 물푸레나무에는 이런 설명문. “낙엽 지는 넓은 잎의 큰키나무. 꽃은 5월에 새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으며 물속에 넣은 가지가 물을 푸르게 만든다 하여 물푸레라 한다.”

하늘에 계신 누군가의 흰 머리카락처럼 치렁치렁 물이 풀어져 내려오는 날. 길을 잃고 논에 들어온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먹기도 했다. 호박잎 넣고 끓인 고디국은 물푸레보다도 더 푸른 국물이었다. 세상의 고요가 한층 납작하게 드리워지면 피감자를 삶기도 했다. 우산을 어깨에 걸친 채 펌프를 자아 올린 물로 감자를 씻던 누이의 뒷모습.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때의 그 별미를 이젠 고향에 가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그리움이 혀끝에 고이면 금천시장 안 ‘체부동잔치집’으로 간다. 각종 전과 면을 잘 빚어내는 곳. 식물의 뿌리들 곁으로 가야 할 날을 어슴푸레 짐작해 보기도 하는 최근의 이야기이다.

체부동잔치집. 밀가루로 요리하는 분식집이야 허다하지만 비 오는 날이면 그곳을 찾는 까닭이 따로 있다. 그곳의 주인 아지매가 언젠가 KBS <낭독의 발견>에 출연하여 빗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를 낭송하였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단풍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똑똑히는 모르겠지만 물은 그런대로 알 것도 같다. 그때처럼 비가 오는 오늘. 물푸레나무 같은 아지매에게 손수제비를 주문해놓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생각해 본다. 물은 하늘에서 와서 나나 나무로 잠시 꼴을 갖추어 서성거리고 흔들리다가 종내에는 하늘로 돌아가는 것!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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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태평한 이들에게 무슨 신호라도 주려는 뜻인가.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뉴스 중의 하나가 지진에 관한 것이다. 이웃나라에서는 일상이 되다시피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불쑥불쑥 그 소식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늘 딛고 사는 땅속에는 무슨 궁금함이 살고 있길래 저리도 세상 바깥으로 나오려는 것일까.

한편 지구 바깥, 그러니까 하늘로 눈을 돌리면 그곳에서도 뉴스는 많이 생산된다. 바로 얼마 전엔 월식이 일어나 육안으로 관찰할 수가 있었다. 일식이나 월식은 태양, 달, 지구가 일직선상에 배열될 때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벌레가 파먹은 듯 보이는 것이다. 그 신비한 현상을 볼 때마다 나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태양-나-지구가 동시에 일직선상으로 놓이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늘 아래 엄연히 띵띵한 물체인 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일생 빛을 연구한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 죽음이란 모차르트의 음악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감히 흉내내어 한마디 해본다. 나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산에도 못 다니고 따라서 야생화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태!

우리는 그 누구라도 죽음 이후에는 그림자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 오늘도 발밑에서 뻗어나오는 그림자와 동무하면서 지리산의 능선을 걸었다. 성삼재에서 출발해 임걸령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반야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어느 바위틈을 돌았더니 유난히 햇빛이 환히 집중되는 곳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빨갛게 익은 풀솜대의 열매였다. 산 아래에선 꽃보다 할배라지만 지금 산중에선 꽃보다 열매이다. 꽃이 청춘이라면 열매는 할배이겠다.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이 최종 도착한 곳은 시들어가는 잎에 얹힌 열매의 그림자였다. 너무나 먼 곳에서 오는 평행한 햇살을 요약하여 업은 채 잎사귀 하나가 아래로 처지고 있는 풀솜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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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완도군 군외면의 대문마을 앞바다. 봄부터 수행한 완도 식생조사의 마지막 탐사에 동참했다. 완도에서 가장 높은 상황봉을 필두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산중 식물의 다양함에 못지않게 해변의 생태계 또한 유별한 풍경과 놀라움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썰물 때라 확 드러난 갯벌. 짠 바닷물을 먹고사는 염생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의 나무들이야 어쩌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폭풍을 맞기도 한다. 바닷가의 꼬맹이 식물들은 어김없이 물세례를 받는다. 잠깐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 아예 물에 푸욱 온몸을 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제주 먼바다에는 제19호 태풍인 봉퐁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고 했다. 사나운 물결을 예감하는 조용한 바닷가. 내 눈을 잡아채는 건 줄기마다 물이 통통하게 오른 방석나물이었다. 방석처럼 낮게 깔리어 자란다고 그 이름을 얻었다.

펑퍼짐한 나물 주위를 재재발거리며 돌아다니는 바닷게. 도망가려던 한 녀석을 재빨리 잡았더니 아예 앞발을 움켜쥐고 맘대로 해보라며 웅크린 자세를 취했다. 녀석에게는 태풍보다도 더 무서운 게 나라는 인간이겠다. 등딱지는 갯벌의 고운 진흙을 닮았는데 도드라지는 집게발이 붉은색이었다. 망설일 것 없이 몸을 구부렸다. 낮은 시선으로 보니 얼크러진 방석나물의 통통한 마디들과 게의 앞발이 어찌 그리 닮았는가.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온통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이다. 여기라고 가을이 비켜가라는 법은 없다. 빙그레 웃는 섬, 완도(莞島) 앞바다의 갯벌. 바닷게의 앞발에도 가을색이 땡땡하게 뭉쳤다. 방석나물의 마디마디마다 가을 기운이 탱글탱글하다. 그 높은 산의 단풍에 하나 꿀릴 것 없는 고운 색이 이곳에도 들어찼다. 작은 게의 앞발에 착 내려앉은 천하의 가을. 바닷게의 집게발에 꼬집히며 비로소 내 가슴에도 가을이 물밀듯이! 한입 깨물면 달달한 짠맛이 우러나는 방석나물.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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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근처의 해인사는 여러 번 가보았지만 하늘 근방의 가야산은 처음이었다. 깊은 산이 큰절을 낳는 법인가. 막연히 해인사 뒷산인 줄로만 알았더니 만만한 산이 아니었다. 경북 성주의 백운동에서 출발해 만물상-서성재-칠불봉-상왕봉으로 오르는 길. 첩첩 봉우리들이 장엄하게 도열했다.

몇몇 기준으로 세계를 나눈 그리스 철학자들을 들먹일 필요가 무어 있으랴. 지금 당장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도 무게로 나눠볼 수 있겠다. 그 가벼움조차 아예 가늠할 수 없는 허공과 티끌 같은 먼지를 모아 몸집을 키운 구름들 그리고 말랑말랑한 흙과 단단한 바위들이 차례로 배열된다. 그사이 어디쯤에 팔랑거리는 나뭇잎들과 제법 딱딱해진 나도 배치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해 가을걷이가 끝나고 동네에서 단풍구경을 해인사로 갔었지, 성철 스님 사신다는 암자에 갔다가 입구를 돌아들었더니 큰 방구(바위)가 있어 한참 놀다 왔었지, 라고 하시는 어머니의 정확한 기억. 그날 어린 나도 따라갔었다. 그러니 그 바위에 내 궁둥이가 붙었다 떨어진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바위는 그냥 무거움만으로 설명이 잘 되지 않는 존재이다. 여러 특별한 성분을 흙에 공급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식물의 뿌리가 물과 양분을 찾아 캄캄한 지하를 헤매다가 바위를 보면 맛있는 사탕이라도 만난 듯 쪽쪽 빨아먹는 것!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늘어선 만물상에서 잠시 쉬는 동안, 언젠가 경남 합천의 해인사에서 가야산 오를 때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곳, 백련암 그 어드메쯤을 가늠해보는데 가까운 바위 틈에서 바위떡풀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단단한 바위라지만 틈이 있고 그 틈으로 난 길이 있다. 틈은 좁지만 길은 깊고도 깊다. 그 길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인 바위떡풀. 척박한 곳에 웅크려 우주로부터 이 세상의 배후를 밝히는 신호라도 포착하겠다는 듯 접시안테나처럼 쫑긋 서 있는 바위떡풀.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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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을 본다고 해서 봄인가. 그렇다면 가을은? 꽃들이 입을 다물고 모두들 어디로 간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겠다. 사시(四時)는 명확하고 만물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니 따질 것 없이 이젠 여름 다음의 계절이다.

저 드넓은 천지에만 그 명확한 법칙이 적용되는 건 아니다. 바로 좁은 발밑에서부터 그것은 어김없이 시작된다. 오르고 오르면 못 오를 리 없는 것. 드디어 설악산 서북능선의 한계령 삼거리에 도달했다. 왼쪽으로는 귀때기청봉이고 오른쪽으로는 대청봉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오늘도 꽃산행이니 자연이 제공하는 그 허다한 무늬들 중에서도 눈을 파고드는 건 단연 꽃일 수밖에 없었다. 왕성한 시선으로 두리번거려 보지만 꽃들은 대부분 지고 흔적만이 남았다. 그 꽃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단풍이다. 이제 꽃이 조용히 비켜나는 건 까닭이 있다. 꽃을 꽃으로 만들어준 잎에서 벌어지는 잔치. 그를 배려하여 단풍과는 경쟁하지 않겠다는 갸륵한 뜻인 게다.

올해에 벌어진 숱한 사연을 간직한 숲. 겨울로 접어들면 꽁꽁 잃어버릴지도 모를 기억을 일깨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래도 가장 늦게까지 핀 꽃은 금강초롱꽃이었다. 가는 줄기에 보라색과 흰색이 어울린 탐스러운 꽃을 달고 있다. 등 같기도 하고 종 같기도 한 금강초롱꽃의 꽃. 희미한 빛도 나오고 은은한 소리도 울리는 듯하다. 금강초롱꽃의 주위는 다른 곳보다도 더 환하고 더욱 깊은 공감각의 자리!

하늘과 땅은 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天地有大美而不言)고 했다. 하지만 서로 아무런 소통조차 안 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라. 오락가락하는 날씨 사이로 하늘에서 잠깐 빛을 보내자 어둑어둑하던 설악산의 한 기슭에 있는 금강초롱꽃의 꽃 두 송이에 환히 불이 들어오는 것을. 그 어디로 저물어가는 설악산의 만물에게 안간힘을 다해 등불을 밝혀주는 금강초롱꽃. 오직 우리나라에만 사는 한국특산식물. 초롱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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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학자도 아닌 주제에 잠깐 동물의 세계로 외출하여 본다. 인간이야 워낙 잡식성이라 논외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그 먹이가 조금씩 다르다. 아프리카의 어느 큰 나무에는 수십종의 개미가 이웃해서 산다고 한다. 날씬한 허리의 개미 몸집이 워낙 작은 탓도 있지만 찾는 먹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입이 없다고 식물이 먹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동물과 달리 식물의 주식은 같다. 하늘에서 오는 햇빛과 땅 밑을 흐르는 물. 이를 두고 다투는 식물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숲은 항상 요란하다.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소나무. 일부러 전망 좋은 곳에 터를 잡은 게 아니다. 참나무들과 씨름하다가 져서 거기까지 밀려난 것이다. 말하자면 한 움큼의 햇빛이나마 실컷 섭취하기 위해 저 옥탑방으로 이사한 셈이다.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숲이라고 마냥 냉혹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침묵의 뿌리가 공중으로 깊게 뻗어가는 산중의 가을이다. 전남 장성 백양산 중턱의 응달 한구석에서 층층이 쌓인 낙엽을 뚫고 자라는 수정난풀을 보았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는 부생(腐生)식물이다. 썩어가는 부엽토에서 양분을 취해서 살아야 하는 고달픈 생활 탓일까. 핏기 없는 짐승들처럼 희고 투명했다. 홀로 독립생활을 할 수 없기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기대고 있는 다정한 식구들. 그 모습이 시골에서 워낭소리 울리며 살아가던 외양간의 가족들을 매우 닮았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김종삼) 거무튀튀한 낙엽더미에서 이 고운 흰색을 어떻게 길어올렸을까. 거룩한 응달의 사랑 혹은 배려. 묵묵히 바라보다가 잠시 울먹해져서 나도 모르게 송아지의 귀와 목덜미인 양 꽃잎과 꽃받침을 조심스레 쓰다듬어준 꽃, 수정난풀. 노루발과의 여러해살이 부생식물.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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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라는 말 한번 귀에 안 걸어보고 자라날 수 있겠나. 자두, 복숭아, 포도, 사과 같은 입술이라고 해본다. 왜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러니 입술에 대해서는 꼭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앵두 같은 네 입술! 그 붉은 입술에 얼떨떨한 내 입술을 닿으려 닿으려 하면서 누구나 설레는 사춘기를 지난다. 앵두라는 말에는 이루지 못한 짝사랑의 헛헛함, 떠나보낸 첫사랑의 아련함이 땡땡하게 뭉쳐 있는 것 같고나.

앵두, 혹은 앵도라고도 하는 것. 산앵도나무는 산 중턱에 주로 있다. 그리하여 설악산 어느 한구석, 귀때기청봉의 너덜겅을 엉금엉금 오를 때 산앵도나무는 지친 나를 끌어당겨 주었다. 산앵도나무는 산앵도나무! 그 이름만 중얼거려도 입안에 날카로운 침이 돌아 헐떡이는 숨의 절반을 고르게 하여 주었다. 혹 열매가 달려 있다면 그 즙은 거의 거덜이 난 나의 원기를 보충하고도 남으리라.

오늘 산앵도나무는 열매 대신 아래로 향하는 작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 옛날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는 사이렌이 아니라 종소리였다. 오줌보가 터질 무렵 소사 아저씨가 하마나 울려주실까 고대하던 땡, 땡, 땡 종소리. 교무실 창문 아래 화단에 달려 있던 꼭 산앵도나무의 꽃 같은 종. 쇠로 만든 불알을 차고 있던 학교종.

설악산 중턱에 앉아 산앵도나무 환한 그늘에 얼굴을 적시며 꽃을 보았다. 문득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시골 국민학교 생각이 났다. 폐허로 변한 꽃밭과 뿔뿔이 흩어진 동무들. 그중 한 여학생에게는 마음이 은근히 갔던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을 가리키기라도 하는 듯 꽃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득히 멀어진 그 모든 곳으로 손 뻗으면 땡땡하게 뭉친 추억의 종소리가 울려나올 것만 같은 산앵도나무. 댕그랑, 땡그랑, 앵그랑……진달래과의 낙엽 관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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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외교부가 없다. 국무부 장관이 외국을 상대한다. 세계 각국의 일이 모두 자기와 관련된 것이라서 그렇단다. 왜 남의 나라 고민까지 짊어지려고 할까.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어서 중국이다. 중화는 중앙의 꽃, 곧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며 나머지는 다 오랑캐라는 뜻이란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면서 그런 건 관심사항이 아니다.

국경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자. 우주에도 중심이 있을까. 몸의 중앙에 배꼽이 있듯 우주에도 절대기준점이 있을까. 물리학에 따르면 우주에는 상대적 운동이 있을 뿐 중심이 없다. 중심이 없으니 그 모든 곳이 다 중심이다. 우리들은 너나없이 각자 걸어 다니는 우주의 중심기관이다.

예로부터 중심이나 중앙, 센터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힘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것 말고 정면에 대해 궁리해 본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냥 무심히 보게 되는 ‘앞’이 정면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정면은 어디일까.

추석 연휴의 마무리를 설악산에서 하였다.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니 달려온 길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죽죽 뻗은 나무들. 비탈진 곳에서도 나무들은 꼿꼿하게 자란다. 이는 나무들에게 일생을 통해 지향하는 정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정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두리번두리번 눈치 보며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추석 사흘 전, 경향신문의 사진 한 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해바라기 꽃이 4일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농성을 하기 위해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 친 천막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피어 있다”는 캡션이 붙어 있었다. 정작 와야 할 이가 오지 않는 곳을 방문한 해바라기. 그 껑충한 꽃을 보면서 세상의 정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해바라기는 해 바라기이지만 늘 해를 따라 도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항상 정면을 향하면서 자라는 꽃. 지금 우리 시대의 정면을 외면하는 이를 따끔하게 바라보는 해바라기.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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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수피, 줄기는 물론 전체적인 수형에 기품이 있는 나무. 유서 깊은 서원이나 사찰의 고졸한 풍경을 완성하는 나무. 배롱나무다. 그 많은 나무들 중에서 나에게 특히 감명 깊은 것은 따로 있다. 몇 해 전. 지리산에 가자고 마음을 모처럼 모았는데 태풍 무이파가 남부 지역을 강타했다. 지리산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종주가 아니면 원주(圓走)라도 하자고 집을 떠나 주천~운봉~인월의 둘레길을 걸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가왕(歌王) 송흥록의 비전마을 생가. 흥(興)인가 한(恨)인가.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명창의 가락을 떠받들어 가지마다 실어 나르듯 흐느끼며 흔들리는 나무가 있었다. 배롱나무였다.

지난주 동북아식물연구소(소장 현진오)가 주관하는 희귀특산 식물 조사의 말석에 끼어 내장산에 들렀다. 연자봉에 올라 문필봉~신선봉~까치봉의 산세와 오전에 통과했던 금선계곡을 굽어보았다. 계곡 끝에 내장사가 달려 있었다. 내 풍수학인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큰 아궁이 같은 산이 있고 그 입구에 절이 있는 셈이었다. 멀리 일주문 근처에 붉은 반점이 보였다. 배롱나무였다.

꽃의 입장에서 본다면 요즘의 숲은 적막하다. 꽃들의 전성시대를 마감하고 열매를 맺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홀로 핀 배롱나무는 모종의 역할을 담당하는 듯하다. 백일간이나 핀다고 백일홍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 한 송이가 오래 피는 것은 아니고 여러 꽃들이 교대로 피고 지면서 그렇게 긴 기간을 유지한다. 말하자면 릴레이 개화(開花)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여름 숲에서 벌어진 일을 나무들은 다 기억한다. 폭염이 퍼붓고 태풍이 할퀴고 간 이후를 견디는 시간. 모든 꽃들이 사라진 그 틈을 메우려 배롱나무는 피어 있는가. 가을이 오면 나무들의 울혈을 다스리듯 단풍도 온다. 감추었던 진실이 드러나듯 확 물드는 단풍. 그 불꽃 같은 단풍이 올 때까지 녹색의 아궁이 앞에서 불씨처럼 피어 있는 배롱나무의 꽃. 부처꽃과의 낙엽 교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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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꽃산행.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정상 부근의 귀한 꽃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깔끔좁쌀풀을 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인솔자에 따르면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등산로에서 흔히 발견되었다고 했다. 풍광을 좇아다니는 나 같은 자들의 둔탁한 등산화와 날카로운 지팡이에 쫓겨 터전을 잃은 듯했다. 깔끔좁쌀풀. 대체 어떤 용모를 지녔기에 이런 똑떨어지는 이름을 얻었을까. 아쉬운 마음을 잔뜩 짊어지고 산을 내려와 바닷가로 갔다.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해변. 뭍과 바다가 치열하게 다투는 이곳은 햇빛과 물이야 노다지이지만 식물이 살기에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사나운 바람과 거친 물보라를 이기며 악착같이 뻗어가는 덩굴성 식물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그것도 해변에서 나팔꽃 공부를 할 줄이야. 나팔꽃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나.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파고들면 재미도 있고 그 종류도 많다. 애기나팔꽃, 별나팔꽃, 선나팔꽃, 둥근잎나팔꽃, 미국나팔꽃 그리고 그냥 나팔꽃.

어린 시절의 짓궂은 장난. 나팔꽃 한송이를 따서 흰 ‘런닝구’ 입은 동생의 등에 엎어놓고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붉은 꽃잎은 너무도 야들야들해서 모양과 색깔이 옷에 그리고 등짝에 그대로 인쇄되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아예 꽃을 때린 셈이었다.

이슬을 방울방울 머금은 채, 마당 한 귀퉁이에서 ‘담부랑’을 기웃거리며 자라던 나팔꽃.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계의 모든 소리를 모조리 듣겠다는 듯 큰 귀처럼 보이는 나팔꽃. 그 꽃을 따서 나팔처럼 불면 세상의 모든 잘못을 꾸짖는 고함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나팔꽃.

며칠 전 고향의 외가를 찾았다. 아침 산책 길, ‘질번디기’ 산소 쪽으로 걸어가는데 먼저 깬 나팔꽃은 전봇대 허리를 붙잡고 할머니 계시는 하늘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면서 하루의 도(道)를 날마다 깨치는 나팔꽃. 메꽃과의 한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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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은 거대한 용광로 같았다. 인왕산을 바라보면서 깊게 끓는 그 속을 가로질러 걸었다. 횡단보도 중간에 서명대가 있고 그 뒤로 곡기를 끊은 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분들, 그들을 응원하는 분들이 함께 있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엄청난 참사에도 책임 있는 자들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무참하게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를 따라 가랑잎 같은 돛단배들이 지금 광화문 바닥에서 가라앉는 중. 그 와중에 멀리 십자가가 보였다.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재하는 시복식의 제단에 우뚝 솟은 큰 십자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서정주)라고도 하였지만 광화문은 말 그대로 하나의 문(門)이다. 출퇴근길에 혹은 저마다의 약속에 바쁜 걸음으로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이 문으로 수많은 사연들이 흘러오고 흘러간다. 200여년 전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분들은 이 문을 통해 복자(福者)로 거듭났다.

광화문 한쪽 교보생명 빌딩은 계절마다 폐부를 찌르는 글판을 눈썹처럼 단다. 작년 여름에는 베르고글리오가 교황이 되기 전 사목했던 아르헨티나와 이웃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에서 고른 한 구절이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그때 광화문에서 그 글귀를 보는데 하필이면 탱자나무가 떠올랐었다. 어린아이 시절, 학교로 가는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었고 집으로 가는 골목에는 탱자나무가 울타리처럼 있었다. 탱자나무의 가시는 줄기가 변한 것이라서 어미에 해당하는 몸통의 껍질과 함께 찢어질지언정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노란 열매에는 세상의 쓴맛보다도 더 시큼한 탱자 맛이 탱탱했다.

땡볕이 제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경건한 침묵과 서늘한 고요가 지배하는 광화문광장. 일 년 전에 만났던 시구와 탱자나무의 가시가 나타나 아프게 사방을 찔렀다. 운향과의 낙엽 관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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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 나직이 불러보면 시골 초등학교 동창생 가시내 이름 같기도 하고 다시 정금, 중얼거리면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박수근 그림의 바탕이 되는 회백색의 질감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한 무른 바위의 거친 표면을 아주 닮았다. 어릴 적 고향 뒷동산에서 뛰놀 때 부드럽게 휘어진 능선을 돌아들면 굵은 소금 같은 알갱이로 부서지는 다정한 바위들. 그 가까이에 주로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 정금나무였다.

소 먹이러 갔을 때 후두둑 깜보랏빛으로 익은 열매는 늘 우리들 차지. 정금나무의 키는 내 머리통에 수박 하나를 얹은 것과 어금버금해서 겨드랑이에서 팔을 쭉 빼면 딱 따먹기 좋은 위치였다. 어느 땐 익기를 기다리지 못해 초록의 띵띵한 열매를 훑기도 했다. 깨물면 퍼지는 시금털털한 맛도 얼굴 한번 찡그리고 나면 뒷맛이 이내 좋았다.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하나로 꿰매는 육십령에서 출발해 덕유산에 올랐다. 한식이나 벌초하러 오고 갈 때마다 별렀던 산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땀을 쏟고 능선에 올라 산세를 거머쥐고부터는 자주 오른쪽을 보았다. 농도를 달리하여 배열되는 산 너머너머에 내 고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덕유, 조용히 부르면 집에서 통하는 이름이 덕순이었던 친척 누이가 생각나고 덕유, 다시 부르면 덕이 여유롭게 흘러넘치던 동네가 떠오른다. 그리고 한번 더 덕유, 중얼거리면 이 모두를 다 품는 저 후덕한 덕유산!

할미봉을 지나 어느 바위틈을 돌아들자 붉게 상기된 듯한 나무가 있었다. 정금나무였다. 귀밑머리 솜털처럼 잎에는 잔털이 송송하고 가장자리엔 핏빛이 감돈다. 열매만 탐했던 터에 이제야 비로소 꽃들도 눈으로 들어온다. 소 턱 밑의 작은 워낭처럼 아래를 향해 달려 있는 꽃. 톡 건드리면 딸랑딸랑 워낭소리가 울려나오고 그 소리 끝을 따라가면 내 잃어버린 것들이 딸려 나올 것 같은 정금나무의 정다운 꽃, 꽃, 꽃, 꽃, 꽃. 진달래과의 낙엽 관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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