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20건

  1. 2015.04.27 때죽나무
  2. 2015.04.20 병꽃나무
  3. 2015.04.13 보춘화
  4. 2015.04.06 매화나무
  5. 2015.03.30 개암나무
  6. 2015.03.23 꿩의바람꽃
  7. 2015.03.16 풍도대극
  8. 2015.03.09 너도바람꽃
  9. 2015.03.02 백부자
  10. 2015.02.23 노루귀
  11. 2015.02.16 회양목
  12. 2015.02.09 은행나무
  13. 2015.02.02 회화나무
  14. 2015.01.26 삽주
  15. 2015.01.19 수양버들
  16. 2015.01.12 당단풍나무
  17. 2015.01.05 호박
  18. 2014.12.29 은꿩의다리
  19. 2014.12.22 아까시나무
  20. 2014.12.15 난티나무

요즘 산에 들면 피어나는 건 꽃만이 아니다. 겨우내 단단하게 뭉쳐 있던 눈에서 새잎이 스르륵 얼굴을 내민다. 솜털을 뽀송뽀송하게 달고 팽그르르 돋아나는 잎.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나무에게는 꽃만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기가 아주 세다는 전북 순창의 회문산. 동학혁명과 한말 의병활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빨치산 전북도당 사령부가 자리 잡기도 했다. 김대건 신부의 동생과 조카의 묘가 안치된 천주교의 성지였다. 그런 인연의 작용인가. 죽음을 한번도 치르지 않는 안방이 없듯 무덤 하나 가지지 않은 산도 없겠지만 회문산에는 유난히 무덤이 많았다.

정상에 오르니 아예 무덤 위에 또 무덤이 포개져 있는 형국이었다. 함께 묻힌 사연을 뒤로하고 많은 무덤을 통과하여 오늘의 꽃산행을 마무리하고 식당으로 접어드는 길이었다. 내 마음은 흐물흐물하기가 이를 데 없어 닭도리탕에 소주 한 모금이면 무덤처럼 그냥 허물어지는 것.

식당 앞 길켠에서 마지막으로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큰개불알풀을 찍고 일어서는 순간이었다. 가까이에서 나의 눈에 척 걸려드는 나무와 그 나무의 가지와 그 가지에 달린 잎사귀가 있었다. 특히 잎사귀에는 사춘기 소녀의 귓불처럼 이제 막 피기 시작하는 솜털이 자욱했다. 내 꽃동무가 알맞게 표현한 바처럼 천하를 수놓는 ‘연두에서 초록까지’의 한 단계를 담당하는 빛깔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은 어린 때죽나무였다.

이 따뜻한 봄날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들은 모두 줄기 위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좁고 낭창낭창한 길을 밟으며, 하얀 솜털을 미세하게 나부끼며, 궁금한 세상을 향해 잎사귀를 벌리며, 녹색의 즙을 칙칙 뿌리며, 햇빛을 톡톡 튕기며, 그 어딘가로 나아가는 때죽나무 잎사귀들의 걸음! 내 허리춤의 낮은 곳에서 출발해서 공중에 난 계단을 밟고 구름의 난간으로 통, 통, 통 걸어가는 봄의 행진! 때죽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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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라고 하면 항상 활짝 핀 것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늘 쨍하게 피어 있는 것들은 조화(造花)이다. 꽃이 꽃으로 머문다면 그건 꽃이 아닐 것이다. 어렵게 이룩한 보름달도 하루 지나 쳐다보면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듯 절정은 잠깐이다.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 꽃은 순간적으로 피어나서 순식간에 지고 만다.

국립공원 내장산의 한 자락에 속하는 입암산 남창계곡이다. 장성새재로 가는 갈림길에서 갓바위까지 완만한 숲길이 길게길게 이어졌다. 내장금창초는 납작하게, 자주괴불주머니는 성성하게 길가에 흩어졌고, 개구리발톱이 등산객의 발길을 붙들었다.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들로 붐비는 길. 키 작은 나무들이 길섶에서 궁금한 눈길을 던지고 있다.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 길 위로 지나다니고, 나무들은 가만히 제자리를 지키며 이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병꽃나무가 길 안으로 한 가지를 뻗고 있다. 열매와 꽃봉오리가 호리병처럼 생겼다. 산속 깊은 곳에도 많이 분포하지만 등산로 주위에서 쉽게 만나는 나무이다. 나무를 한 번 더 본다. 같은 나무에서도 가지는 다 다르고, 같은 가지에서도 꽃은 색깔과 방향이 서로서로 다르다. 하얗게 피었다가 분홍빛이 되었다가 붉은색으로 변하는 꽃들. 이미 지는 꽃, 활짝 핀 꽃, 벌레 먹은 꽃. 막 피기를 기다리면서 세상을 향한 포부를 가득 담은 꽃봉오리도 있다. 어서 탁, 터지면 좋으련만 이목구비를 제대로 못 갖췄기에 바라보기가 안쓰럽다.

오후 들어 별안간 하늘이 캄캄해졌다. 곧 비라도 뿌릴 것처럼 마른바람이 불었다. 우리 일행은 이 계곡에 사는 귀한 꽃을 찾느라 가장 늦게 계곡에서 몸을 빼냈다. 오늘 하루만도 수많은 등산객을 배출한 호젓하고 후련한 산길. 국가기관에서 발표한 것이니 이것만은 사실이겠지. 남부지방의 강수확률 80~90%. 내일 이곳에는 비바람이 들이치고 미처 피지도 못한 꽃들이 늙은 꽃잎에 업혀 우수수 떨어지겠구나. 불안한 눈길로 두리번거리는 병꽃나무의 길쭉한 꽃과 꽃봉오리들. 병꽃나무과의 낙엽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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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에서 마음을 조금 더 내어 나아가면 주천이다. 다시 한갓진 길을 돌아들면 육모정이 나오고 도로에서 조금 비켜난 양지바른 언덕에 춘향의 묘가 있다.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춘향보다는 광한루의 오작교를 건너던, 피와 살이 감도는 춘향의 모습도 한번 그려보면서 내쳐 더 나아가면 구룡폭포 가는 길이다.

한 달에 한 번 지리산을 찾는 모임에서 3월에도 이곳을 찾은 건 까닭이 있다. 올해 첫 산행을 눈 덮인 이곳에 왔다가 뜻밖에 히어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두 그루도 아니고 히어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지 않겠는가. 그때 히어리 앞에서 맹세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봄이 오면 이곳에 다시 오자고 다짐을 했던 터다.

겨울이 깨끗하게 다녀간 계곡. 물이 통통히 오른 버들강아지를 동무 삼아 걷다가 ‘사랑의 다리’를 건너자니 노란 꽃이 공중을 온통 장악하고 있었다. 봄산에 들면 유독 노란 꽃이 많기는 하다. 산수유, 생강나무, 개나리 등 짙은 노랑의 꽃들. 꽃을 두고 우열을 가린다는 게 참 치졸한 심보이긴 하겠지만 흔한 것보다는 귀한 것에 눈이 더욱 돌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춘향이 머리에 꽂았을 법한 가지를 당겨 주렁주렁 층을 이룬 히어리의 탐스러운 꽃을 찍고 눈길을 돌리니 어느 비탈 아래 작은 꽃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저의 한 세계를 기품 있게 들추고 일어나는 보춘화였다. 봄을 알린다는 의미로 이름마저도 보춘화(報春花). 이 꽃이 없었다면 자연의 이 자리는 그만큼 비었을 테고, 이 보춘화가 없었다면 이 세상 봄의 자리가 그만큼 휑할까.

보춘화라지만 어찌 봄이 왔다는 기별만 전하겠는가. 지난날의 적폐처럼 쌓인 낙엽들을 뚫고 나온 꽃. 누군가의 넋이라도 기리는 십자가를 닮은 것도 같다. 꽃은 지하의 소식을 전해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꼿꼿하게 허리 펴고 야무진 입술로 뭔가 고함이라도 치는 것 같은데 그걸 알아들을 귀가 내게는 없을 뿐. 엎드린 나는 다만 바람의 기척만 느낄 뿐.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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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 잔인한 달이다. 오랜 가뭄이었다. 새 달 들자마자 비가 왔다. 비는 하늘에서 오고 눈물은 지상에서 솟아난다. 식물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오래 안 잊히는 풍경 중의 하나이다.

3년 전 진도의 식물상을 일 년에 걸쳐 조사하는 팀의 말석에 끼었다. 첫 방문지는 고군면 향동마을. 이른 시기라 야생화가 드물어 목이 말랐다. 그 갈증을 달래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밭 울타리에 매화가 활짝 피어났다. 나무 아래로 갔더니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몸집은 나하고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키는 나보다 훨씬 더 컸다. 내가 그저 눈으로만 매화를 훑을 때 그들은 매화를 만지고 건드리고 매화 꽃잎 안으로 얼굴을 깊숙이 파묻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일군의 꿀벌들이었다.

통상 벌은 한 꽃에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 부지런한 벌은 지체할 겨를이 없는 것이다. 이상했다. 어느 한 꽃잎을 붙든 채 나의 인기척에도 도무지 놀라지 않는 꿀벌. 벌이 처한 상태를 알 수 있었다. 벌은 꽃에 머리를 박고 꿀을 따다가 숨을 거둔 듯했다. 꽃자리가 곧 꽃무덤이었다.

그간 자연의 현장에서 숱한 것을 목격하였지만 이런 장면은 처음이었다. 조심스럽게 매화 가지를 당겨 뻣뻣해진 벌의 한쪽을 슬쩍 건드려보았다. 그간 경직이 일어났는지 한쪽 다리가 부스스 떨어졌다. 가벼운 먼지도 일어났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서 나무의 그늘을 피해 멀리 벌의 잔해를 데리고 갔다. 나무 그늘을 피해 양지바른 곳으로 데리고 가려는 마지막 배려인 것 같았다.

살아있는 벌들은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리저리 매화와 수작하느라 경황이 없었다. 이윽고 나무 아래를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벌들도 다음 나무를 찾아 떠나는가. 바람이 또 불었다. 매화나무 주위의 공중이 꿀렁, 하고 잠시 휘청거렸다. 나도 다음 꽃을 찾아 밭을 떠났다. 벌에게도 꽃다운 시절이 있겠지. 풍장(風葬)이라고 하려다가 화장(花葬)이라고 고쳤다. 모두가 다 아는 매화나무. 그러나 또한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매화나무. 장미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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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염두에 두고 처음으로 간 곳은 남양주의 천마산이었다. 4년 전 이맘때의 일이지만 꽃에 대해 꽂혔던 때라 기억이 생생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하는데 느닷없이 나무 이름이 줄줄줄 나오지 않겠는가. “고욤나무, 개암나무, 화살나무, 소태나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어느 라디오에서 이문구의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 등장하는 단편 제목의 나무 이름으로 첫 멘트를 잡은 것이었다. 그날 첫 산행에서 제법 많은 이름을 접했는데 특히 내 키만한 나무 앞에서 인솔자가 개암나무! 라고 호명했을 때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 본 개암나무의 강렬한 암꽃이 옛 추억의 한 자락을 떠올리게도 하였기 때문이다.

오래전 입영통지서 받아놓고 시골의 큰댁에서 한 철을 지내면서 모내기를 했다. 논에 물을 찰랑찰랑 채우고 일렬로 죽 늘어서서 모를 심을 때 간격을 맞추기 위해선 나일론 못줄이 꼭 필요했다. 모두들 등을 구부리고 못줄에 달린 빨간 눈표마다 모를 꽂고 나면 양쪽에서 “어이, 주울!”이라고 소리치면서 못줄을 넘겼다. 그렇게 고단하게 모내기를 끝내면 까무라칠 듯 흐뭇한 풍경 속에서 도열한 벼들이 꿈꾸듯 자라나기 시작했었다. 그때 그 못줄의 눈표와 개암나무의 암꽃이 어쩌면 그리도 닮았겠는가.

최근 어쩌다 집짓는 일에 관여하게 되면서 건축 현장을 관찰하는 기회가 생겼다. 설계를 마치고 시공에 들어가자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일론 줄을 이용해서 파일을 박을 위치를 정하는 ‘파일심보기’였다. 원점을 잡듯 교차하는 줄마다 박는 핀에는 바늘귀 같은 홈이 뚫렸고 붉은 끈이 묶여 있었다. 그게 마치 꽃처럼 보인다 해서 현장용어로 ‘꽃심기’로 통한다고 했다. 이제 막 첫삽을 뜨는 공사장에서 만난 붉은 끈은 모내기할 때의 못줄, 다시 말해 개암나무의 암꽃과 어찌 그리 닮았겠는가.

부지런한 농부처럼 이른 봄에 일찍 암꽃과 수꽃을 한 그루에 나란히 피우는 개암나무. 허공에 보금자리라도 만드는 표시처럼 빨간 암꽃과 이삭 같은 수꽃을 달고 있는 개암나무. 자작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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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지리, 한라, 인왕, 북한 등 우리나라의 산 이름은 대부분 똑 떨어지는 명사형이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화야산에 갔더니 입구에 작은 암자가 있다. 화야산운곡암(和也山雲谷庵)이라는 일주문이 우뚝했다. 화야(和也)! 동양 고전 한 권을 공부한다는 게 결국 저 단호한 한 문장을 만나는 것일 게다. 화야, 평화롭구다. 이름만으로도 화야산은 새롭게 다가왔다.

화야산은 초입부터 충분히 편안했다. 저 아득한 골짜기에서 복사꽃이라도 떠내려올 것만 같은 깨끗한 개울.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경(經) 읽는 소리처럼 낭랑했다. 조금 쌀쌀한 날씨. 완연한 봄꽃의 시절은 아니었지만 노루귀와 얼레지가 지천에 나부낄 준비를 하는 가운데 복수초, 너도바람꽃이 꽃샘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계곡을 더듬는 동안 이곳에서 특별히 만나기를 기대한 꽃이 있었다.

꿩의바람꽃.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봄이 차근차근 진행되면서 바람꽃들 중에서도 나름 피어나는 순서가 있다.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다음으로 이제 꿩의바람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꽃은 각각의 독특한 느낌을 갖기 마련인데 ‘화야’의 느낌과 꿩의바람꽃이 담고 있는 기품이 맞아떨어진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계곡 건너 어느 돌 틈. 꿩의바람꽃은 꽃잎이 없다. 흡사 꽃잎처럼 보이는 흰 것은 꽃받침이다. 일조량에 따라 이를 조리개처럼 조절한다. 꿩의바람꽃은 어느덧 하루를 마감하고 있었다. 바람꽃들 중에서 꽃받침잎이 가장 많은 꿩의바람꽃. 그 꾸욱 다문 잎들 사이로 기품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관찰을 끝내고 주차장에서 안내문을 보다가 화야(和也)가 아니라 화야(禾也)라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마찬가지다. 화(禾)에는 벼와 함께 평화라는 뜻도 들어 있다. 한 숟가락의 밥을 입에 넣는 것에 비할 평화가 어디 또 있으랴. 쪼그리고 앉아 흰 그릇처럼 오므라들고 그 안으로 졸아드는 햇빛이 쌀밥처럼 가득 담기는 꿩의바람꽃을 오래 바라보았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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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에 빠졌다면 그래도 풍도엔 한번 가야 하지 않을까요. 꽃동무가 은근히 유혹을 했다. 바람결에 들은 섬, 풍도. 그저 인천 앞바다에 배꼽처럼 떠 있겠거니 여기고 점심 먹고 들어갔다 오전 일찍 나오면 되겠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연안부두에서 출발한 배는 예상보다 훨씬 늦게 풍도에 도착했다. 알고 보니 풍도는 바람의 섬이 아니라 풍요로운 섬, 풍도(豊島)였다. 그간 내가 미처 몰랐을 뿐 봄의 야생화들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으로 유명한 섬이었다.

마을을 지나 후망산 입구에 들자마자 사람들이 엎어지기에 바빴다. 가히 풍도를 야생화의 천국으로 만들어주는 노루귀, 변산바람꽃, 복수초 등이 즐비했던 것이다. 번잡한 곳을 피해 산너머로 돌아갔더니 풍도대극이 있었다. 어린 잎은 붉은 보라색이었다가 연녹색의 청순한 잎으로 자라는 꽃. 스러지는 낙엽 사이에서 안간힘을 다해 저의 세계를 풍성하게 들어올리는 풍도대극을 만나면 내 가슴도 마냥 부풀어오르는 듯한 기분이다. 술잔 같은 꽃싸개잎 안에 5개의 수술과 1개의 암술이 간잔지런하게 배열되는 풍도대극의 황홀한 자태!

되돌아 처음의 자리로 오니 카메라가 지나간 자리마다 흙이 반질반질했다. 그 앞에서 들고나기를 되풀이한 이들의 흔적이다. 나를 포함한 울긋불긋한 무리와 떨어진 곳에 할머니 한 분이 ‘시랭이’ 봄나물을 캐고 있었다. 자식들은 인천에 산다고 했다. 어쩌다 아들네에 가기도 하지만 멀미가 나서 섬으로 되돌아온다고 했다. 풍도에서 태어나 풍도에서 결혼한 뒤 그 만고풍상을 겪고 이제는 꽃 옆에 앉아서 봄나물을 캐는 할머니의 고운 모습!

후망산을 한 바퀴 돌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 입구에 은행나무가 있다. 당나라의 소정방이 심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유서 깊은 나무이다. 나무 아래 샘이 있고 그 앞에 놓인 플라스틱 바가지는 노란색이었다. 노오란 은행잎을 배려한 것일까. 점점 꽃을 닮아가는 섬 주민들이 궁리 끝에 선택하였을 물바가지가 절묘하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어 할머니 계신 곳으로 자꾸 뒤돌아보았다. 풍도대극. 대극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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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의 추위는 이것으로 끝일까. 꽃샘추위라는 말이 있듯 겨울은 호락호락 물러가는 법이 없다. 아직도 하늘의 창고에는 눈의 재고량이 있는가 보다. 작년에는 4월에도 눈 구경을 했었다. 올해의 눈은 이젠 그쳤을까. 아니면 더 올까.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논어>의 아름다운 문장이다. 이 같은 돌연한 문장으로 촘촘하기에 <논어>는 이천 년의 텍스트가 되었을 것이다.

며칠 전 밤 누우려고 불을 끄니, 유리창에 바짝 안개가 몰려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때늦은 눈발이 흩날렸다. 시절을 잘못 조준한 눈은 아침이 되기도 전에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세상모르고 쿨, 쿨, 쿨 자는 내 주위를 밤새 서성거렸을 안개. 안개는 간밤에 도(道)를 깨닫고 아침이 되기도 전에 사라진 것일까. 그러고 보면 이 세계는 안개의 무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날씨 속에서도 하루하루는 간다. 오늘은 첫 기차를 타고 경주에 간다. 이천 년 고도는 토함산, 불국사로 이어지는 수학여행의 추억이 고스란히 저장된 창고이기도 했지만 몇 해 전부터는 나의 꽃대궐이 되었다. 복수초, 노루귀, 변산바람꽃 등 겨울을 이기고 가장 먼저 피어나는 야생화를 친견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도로 하나를 돌아들면 돌올하게 뛰어나오는 무덤들. 언젠가는 저 무덤가의 생태계도 조사해 보아야겠다는 결심도 보태면서 천년의 도심을 통과했다. 이 지역에서 피어나는 꽃소식을 훤히 꿰는 꽃동무와 함께 간 곳은 안강읍 근처의 골짜기였다. 입구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겨우내 얼었다가 봄을 맞이하는 못물은 가볍게 이는 바람에도 흥분을 숨기지 않고 찰랑거렸다. 신라의 것은 아니로되 신라인의 후예로 짐작되는 이의 무덤 앞에 이르니 온 사면에 가득한 너도바람꽃! 하얀 꽃받침잎을 배경으로 수술 같은 노란 꽃잎이 동그랗게 다발을 이루는 꽃이다. 검불을 얼굴에 묻히며 엎드리니 너도바람꽃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형국이다. 몸과 무덤의 이 팽팽한 긴장에서 누가 이기겠느냐.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너도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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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여년 전의 섣달그믐밤. 이날 자면 눈썹이 센다고 했다. 호롱불 아래에서 용을 써보지만 이내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말로 눈썹이 하얘졌다. 짓궂은 형이 밀가루를 뿌린 것이다. 며칠 전 그믐밤. 누가 뿌리고 도망갔나. 형님이나 나나 눈썹 대신 머리칼이 하얗다. 쉽게 잠들지 못해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어느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영화 <서편제>. 채널을 돌릴까 하다가 인물보다는 배경을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참에 확인할 사항도 있었다.

지난 늦가을, 추수하는 기분으로 이 산 저 산을 기웃거렸다. 쨍한 날들은 가고 한 해의 뒤끝을 감당하는 꽃들이 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터널이 뚫려 이제는 인적 끊긴 강원도의 어느 고개에서 백부자(白附子)를 보았다. 부자라고 하는 그것의 덩이뿌리는 맹독성이다. 독하나 귀한 꽃을 찍는데 바람결에 들리는 이야기. “<서편제>에서 딸의 눈을 멀게 한 게 바로 이게 아니겠능교!” 듣고 보니 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의 꽃이 조금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되려다 만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려다 만 듯한 표정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판소리의 쫀득한 맛에 집중하니 예전과는 다른 영화의 감흥이 일어났다. 짧은 귀동냥을 했다고 배경 속의 나무와 꽃도 이름을 알 만한 것이 제법 되었다. 중반에 이르자 마침내 유봉의 대사가 나왔다. “근데 한약 쓰는디 부자를 과하게 넣으면 눈이 먼다던데 정말 그런가 모르겄어.” 아무리 한(恨)을 위한 것이라지만 너무하다 싶어 원작에서 확인해보았더니 시나리오가 소설보다 차라리 은근했다. “여자의 아비가 잠든 계집자식 눈 속에 청강수를 몰래 찍어 넣은 것이라 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후반부에 단가 ‘사철가’가 나왔다. 설 음식의 기름기가 진동하는 입안을 그 소리로 헹구는 것으로 내 을미년의 봄을 영접하기로 했다. 반백 아래 검은 눈동자를 문지르면서. 갑오년의 끝자락에서 만난 백부자의 난해한 얼굴도 떠올리면서. 멸종위기식물 2급의 독초.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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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으로 조합된 사전 속의 많은 낱말 중에서 ‘봄’이란 단어에 새삼 움찔해지는 요즈음이다. 우리 산하의 골짜기마다에도 이런저런 기운이 모이고 연결되어서 수많은 꽃들이 배열된다. 남녘에서부터 벌써 복수초,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등 을미산(乙未産) 야생화들의 개화 소식이 훈훈한 바람결을 타고 북상한다. 입춘 지나고 이제 곧 경칩이 되면 달콤한 봄비에 등짝을 맞으며 개구리도 뛰어나오겠지만 그보다 먼저 땅을 헤치고 등장하는 건 노루귀이다.

잎이 올라올 때 노루의 귀처럼 동그랗게 말린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노루귀. 잔털이 잎과 줄기에 빼곡하게 나부낀다. 노루를 직접 본 적 없으니 송아지의 그것처럼 간지럽고 정다웠다. 웬만한 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이지만 나에겐 작년 안양의 수리산에서 본 것이 으뜸이었다. 제대로 피진 못했지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 노루귀.

세상이라고 하는 큰 책의 갈피 같은 수리산 골짜기에서 변산바람꽃이 일제히 눈을 호렸다. 그 연약한 바람꽃의 꽃잎에도 마음이 글썽이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드물게 솟아난 노루귀를 발견하고는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졌다. 어느 죄 없는 짐승이 포수에게 맞고 흘린 듯 골짜기 사면에 흩어진 붉은 핏자국. 수리산 노루귀의 색깔이 유독 붉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겨울이 채 물러나지 않는 냉랭한 그늘 탓일까. 그해 처음 제대로 보는 꽃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꽃 관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올라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간판 하나를 보았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기념하는 그곳에 “이곳 수리산은 (…) 육군 51사단, 미 25사단과 터키 여단 1개 대대가 (…) 전투를 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 국군 전사자 유해 4구, 사진 및 수첩 등 유품 621점을 발굴하여 뒤늦게나마 조국의 품인 국립현충원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라고 적혀 있거늘, 어찌 이 골짜기의 지하에서 올라온 노루귀의 유난스레 붉은 기운을 내 눈의 착각 탓만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노루귀 앞에서 엎드렸다가 일어날 때 노루귀라고 괜히 한번 더 부르고 싶어지는 노루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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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걷는 길. 와룡공원에서 시작해 숙정문, 청운대를 지나 창의문으로 빠지는 고개에서 백악마루로 오르는 길목에 이런 푯말이 있다. “손톱 크기 남짓한 작은 잎에다 사람 키 두 배 정도 자라는 자그마한 늘푸른나무입니다. 오늘날은 정원 주위에 장식용으로 심는 경계나무일 뿐이지만, 옛날에는 나무 활자를 만들고 정교한 목판을 새기는 데에 쓰였습니다. 우리의 찬란한 인쇄문화를 책임지던 역사를 가진 나무입니다.”

관상용으로 잘 다듬어진 나무라 이렇다 할 흥미를 끌진 못했지만 그 나무의 이력이 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는 물론 출근길 화단에서도 늘 마주치는 나무, 회양목이었다. 까까머리 시절부터 반백의 오늘까지 나를 쭉 호위해온 나무. 어쩌면 나중 무덤 앞에 서서 내 이승의 경계를 지켜줄 나무일 수도 있겠다. 그런 나무에 대해 저런 설명까지 보니 그간 밥벌이를 책임져준 출판업의 종사자로서 어찌 특별한 감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회양목.

꽃동무들과 남원시외버스터미널 근처 허름한 여관에 묵었다. 춘향의 향기 묻은 이 지역의 지하수로 세수를 했다. 쫄쫄쫄 빈약하게 나오는지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물을 받았는데, 손가락만 잘 조절하면 그게 꼭 거꾸로 펼친 세계지도와 대강 닮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손금을 타고 흐르는 물이 손목을 적실 때 돋아나는 파란 혈관. 내 목숨이 힘겹게 지나가는 자리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손바닥을 벗어나질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비행기나 이불, 휴대폰도 좋지만 책 만드는 일은 더욱 좋지 않은가.

금계마을에서 출발해 벽송사를 거쳐 송전마을까지의 둘레길. 용유담 물가로 내려서니 작은 바위에 붙어 자라는 나무가 있다. 이제껏 제법 두루두루 돌아다닌 산행에서 처음 만난, 자생하는 회양목이었다. 바위에는 외계의 문자인 듯 잔설이 희끗희끗하고 소나무가 가는 잎을 떨어뜨려 난해한 기호를 적고 있다. 끼리끼리 모인 이끼는 지금 저들의 세계지도를 그려내고 있는 중인가. 죽어서 글자를 새겼고 살아선 바위를 뚫고 있는 회양목. 회양목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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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아무리 승하다 해도 천하에는 여지가 많다. 벌써 땅의 피부를 뚫고 도약하는 생명의 기운이 도처에서 발발하고 있다. 한자 生(생)은 초목이 땅을 뚫고 위로 일어나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그러니 수직과 수평의 선을 꿴 뒤 날렵한 사선을 얹어놓은 총 5획의 저 글자는 동물의 팔과 다리가 아니라 식물의 줄기와 가지에서 유래한 셈이라 할 수 있겠다.

나무는 떡잎 하나에서 출발하여 각자 맞춤한 높이로 자란다. 줄기가 올라가고 옆으로 가지가 뻗고 잎이 달린다. 나무의 겨드랑이마다에는 제 식솔인 가지와 잎을 건사하려는 안간힘! 어쩌면 참으로 시시하게 자라는 것 같더니 높은 곳으로 훌쩍 나아간 나무 앞에 서면 문득 숙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다 집짓는 일에 관여하면서 성균관대학교를 드나들게 되었다. 명륜당 앞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어떻게 하면 자연이 보유한 저 위대한 건축술을 조금이나마 흉내낼 수 있을까. 산으로 가지 않고 이 도심에서 웬 나무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자. 이곳도 원래는 다 산이었다. 장소가 장소였나. 하늘을 찌를 듯 가지를 저어 공중으로 진출한 나무를 보는데 공자 생각이 났다. 지우학(志于學),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의 단계로 완성되는 생애. 공자는 이런 은행나무 노거수 아래에서 자신의 생을 정리한 게 아니었을까.

나무는 해마다 안으로 나이테를 그리고 밖으로 한 층의 가지를 더 얹는다. 그리하여 어느덧 발아래를 까마득히 굽어보는 높이에 이른 은행나무. 그 나무를 관찰해 보면 가늘어진 가지 끝으로 공중을 더듬으면서 하늘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풍덩 던지고 있다. 푸른 사방의 어느 곳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 어울리는 은행나무. 이제 나무는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도 스스로 거스르는 법이 없는 이른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도달한 것만 같았다. 굵고 짧은 단지(短枝)가 하늘로 가는 사다리처럼 잘 발달한 은행나무. 은행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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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사흘짜리 새해 결심을 다지는 방법은 연년각각이었다. 산에 오르거나, 바다를 찾거나 혹은 새 달력 아래에서 손발톱을 깎거나. 국악방송에 다이얼을 맞추고 이어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수제천(壽齊天)의 장엄한 가락에 귀를 씻기도 했다.

어쩌다가 일년의 시작을 겨울에 두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월의 매듭을 짓고 풀 때마다 다이어리 속의 수상한 아라비아 숫자만큼이나 들과 산에 숨어 있는 식물의 동태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라도 빨리 꽃소식을 염탐하러 남녘으로 나서는 건 새해를 여는 최근의 방식이다. 경주에서 감포로 넘어가는 추령터널 근처에서 기림사~이견대~대왕암으로 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기지개를 켤까 망설이는 앉은뱅이 풀들과 구름의 재료를 공급하겠다는 듯 뭉클뭉클 연기를 올려 보내는 낮은 굴뚝. 쌀쌀한 산촌(散村)의 좁은 옛길을 걸어 모차골에 이르니 이런 안내판이 있다. “왕의 길. 이 길은 용성국의 왕자인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하던 길이며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장례행차길이며 신문왕이 용이 되신 부왕인 문무왕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 위해 행차했던 길이기도 하다.”

전설로만 남은 만파식적으로 수제천을 연주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재위기간 고작 반나절의 왕이라도 된 어마어마한 기분으로 ‘왕의 길’을 걸어 마침내 신라시대엔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다는 천년 고찰인 기림사에 도착했다. 절의 뒷마당으로 가는 초입에 서 있는 나무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회화(槐花)나무였다.

나무(木)와 귀신(鬼)을 합친 괴(槐)로 표기하되 회화로 읽는 나무 이름. 잡귀를 물리치는 신통력이 있어 궁궐, 서원, 향교 등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림사는 제 입구에 회화나무를 세워두었고 나는 올해의 입구에서 이 나무를 만난 것이렷다. 우람한 나무를 경배하듯 쳐다보며 동정(同定)에 몰두하는 꽃동무들. 나무와 사람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답니다, 회화나무여. 콩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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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늦은 밤, 폭설이 내려 내일 출근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기상특보가 떴다. 창문을 열고 뜻밖의 눈 구경을 할까, 마음만 먹다가 기우뚱 잠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침에 버스를 탔더니 운전석 바로 뒤편 창가에 의외의 물건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묶인 폼으로 보아 갑자기 설치한 것은 아니었고 간밤 눈 소식의 여파로 비로소 내 눈이 알아채는 듯했다. 불에 대비해서 소화기를 구비하듯 물(눈)에 대비한 도구인 삽이었다.

삽질이라고 어디 다 같은 삽질이겠나. 미끄러운 고개를 오르다가 동력을 잃고 헛바퀴가 돌아서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슥슥 내려서 눈과 얼음을 삭삭 해치우는 삽이 늠름하고 대견해 보였다. 제가 필요해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삽. 그간의 활약이 대단했던 듯 삽자루는 때가 까맣게 절어 있었다. 재질이 나무인 삽자루를 보면서 버릇처럼 식물과 연결시켜 보았다. 목질이 단단한 물푸레나무가 농기구에 많이 사용된다는데 혹 저 삽자루도 그쪽 출신일까. 몇몇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삽나무가 있다면 딱이겠는데 실제로 그런 나무는 없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오로지 삽과 이름만으로 연결되는 야생화가 떠올랐다. 고집불통처럼 아주 뻣뻣하게 보이는 삽주였다. 겨우 무릎 아래의 높이지만 제자리를 야무지게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의 식물이다. 특히 잎의 가장자리마다 가시 같은 톱니가 도드라지는 삽주.

이 버스가 종점으로 가듯 나에게도 종점은 있다. 오늘은 비록 비켜나지만 마침내 그곳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삽이 있다. 그대도 한없이 찧고 까불더니만 결국은 별 수 없이 여기까지로군요, 하면서 나의 일생을 둥그렇게 완성시키는 삽! 남은 가족들이 내 누워 있는 곳으로 마지막 요기를 건네듯 눈물과 함께 한 움큼의 흙을 던져주는 것도 삽이다. 그렇게 말없이 등을 토닥거리면서 삽은 마침표 하나를 찍겠지. 시골 헛간에서 손에 익은 농기구를 만나듯 시내버스에서 만난 정다운 물건, 삽. 그 삽 앞에서 잠깐이나마 생각의 삽질을 제법 했다. 삽자루, 삽나무, 종점. 그리고 올여름에 더욱 반갑게 만나야 할 삽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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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삐끗해서 신년 연휴에 산으로 들지 못했다. 고작 나무의 허리춤에나 겨우 견줄 만한 높이였지만 달력을 교체하는데 큰 한숨이 나왔다. 빈둥빈둥 뒹굴다가 팔다리를 휘휘 저으면 그야말로 시간의 강을 떠내려가는 조각배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데 신년벽두 특집방송인 <백두산-하늘과 바람의 땅>이 걸려들었다. 1편은 백두의 자연과 생태, 천지와 구름, 그리고 야생화를 집중해서 다루었다. 이 엄동설한에 두메양귀비, 하늘매발톱, 가솔송, 날개하늘나리 등 오뉴월의 귀한 꽃들!

2편은 백두고원 골골마다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저마다 곡진한 이야기 가운데 잎갈나무 굴뚝이 내굴(매운 연기)을 잘 빨아내는 지린성 허룽시 백리촌의 강옥미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열여섯 살 때 재가한 모친에게 외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려고 고향인 평양을 떠났다. 하지만 차마 외할머니와 떨어질 수 없어 백두산에 그대로 주저앉았다고 했다. “여기에 눌러 앉으니까 속절없이 인간수업, 성공도 못하고 땅을 뒤지면서 땅에서 낟알을 주워 먹고 삽니다.” 경상도 밀양 출신의 남편을 만나 5남매를 키우고, 셋째딸을 한국으로 시집 보낸 할머니. 강 할머니의 선한 눈매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꽃에 꽂혔다지만 이런 깜냥은 그래도 귀에 꽂아두고 산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우리나라의 버드나무는 그 종류가 제법 많다. 이제껏 본 건 호랑버들, 갯버들, 왕버들뿐이다. 생각건대 수양버들이 눈으로 아니 들어왔을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접할 줄 몰랐으니 아니 본 바와 진배없다. 봄이 오면 수양버들을 찾아 두리번거려야겠다. 어려서 첼로를 배웠고 울적하면 노래로 시름을 달랜다는 강옥미 할머니. 옌볜노래자랑대잔치의 우수상에 빛나는 그 할머니의 꾀꼬리 같은 노래, ‘백두산의 눈물’이 귀에 쟁쟁하기 때문이다. “수양버들 휘늘어진 시냇가에서 너는 신랑 나는 각시 약속하였네/ (……)/ 사랑아 내 사랑아 가지를 말아다오 석양 노을 붉어주니 알아주려나.” 수양버들, 버드나무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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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기나긴 폭우 끝에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이거니 했다. 바람을 이용해서 힘껏 뿌리치려고 안달해보지만 한번 붙들린 그 별은 도무지 나무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을이 오도록 가지의 포로가 된 별들이 마침내 벌컥 화를 냈다. 그러다가 문득 떠난다는 기별도 없이 그냥 툭 떨어지는 단풍낙엽들. 약간의 과장을 더해서 살펴본 나뭇잎들의 일생이다.

겨울이 오고 눈이 오고 새해도 왔다. 꽃 하나 없는 이 사나운 계절에 무얼 보러 산으로 가느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겨울산은 소리 없는 변화를 엮어내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어서 세상으로 외출하겠다고 아우성치는 겨울눈, 잎이 떨어져나간 흔적인 엽흔(葉痕), 그리고 가지마다 쌓인 눈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눈은 포식을 하고도 남는다.

냉랭한 겨울산으로 들면 잎들은 귀향하듯 땅에 떨어지고 흙으로 녹아든 지 오래이다. 그런 와중에 당단풍나무는 특별한 장치를 하고 있다. 촘촘하던 색깔과 물기가 모두 달아난 작년의 잎을 그대로 달고 있는 것이다. 한때 별처럼 반짝거렸으나 이제는 바짝 마른 잎사귀들. 무슨 미련이 아직도 남았길래 나무는 이처럼 과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일까.

얼핏 보면 곧 도래할 봄을 맞이하면서 갱신(更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듯 쥐다 만 주먹 같지만 다시 보면 작은 포클레인처럼 꼬부라졌다. 일조량이 팍 줄어들어 겨우 햇빛을 쬘 수 있는 겨울. 그냥 주르륵 흘러내리는 햇빛을 조금이나마 더 퍼담으려고 하는 노력일까. 쓸쓸한 추위 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공중의 온기를 나무에게 전해주려는 뜻일까. 그 비스듬히 벌어진 그릇 안에는 새끼손가락 하나 정도는 너끈히 데울 만큼의 따뜻한 햇볕!

발 있는 것들은 평생 돌아다녀 보았자 무좀이나 키우고 헛걸음에 불과한 이력(履歷)을 쌓을 뿐이다. 그러니 저 조막만 한 햇빛주머니를 지나칠 때, 나무는 가지 끝마다 뇌(腦)를 장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어찌 안 할 도리가 있겠는가. 당단풍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 소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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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두루 꿰는 한 톨의 지식도 내겐 없지만 세월의 한 고비를 넘자니 조그만 용심 하나가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기억도 까마득한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글자 바깥의 실제 세상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만날 줄이야. 그 네 글자를 배울 때, 이해를 돕는 조잡한 삽화에 등장하였던 인물들은 어린 내 소견에도 그 얼마나 등신 같고 한심하였던가. 그런 갑오년을 지나고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 간지에 해당하는 양(羊) 이야기가 사방에 넘친다. 참으로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상투적인 열두 띠의 동물 대신 내 나름의 식물 하나를 궁리해 보기로 했다.


호박꽃도 꽃이냐, 라고 우리가 어리석게 말할 때의 그 호박이었다. 참 아무렇지 않게 생긴 호박이지만 그를 세상의 중심에 놓을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아침에 호박을 먹었다. 한 숟가락 잘람잘람 된장국을 떠먹을 때 호박 한 조각은 포함되었을 것이다. 현명한 주부라면 멸치와 된장만으로 멀건 국을 끓이진 않았을 터이다. 비록 눈치를 못 챘을지라도 그가 오전을 견딘 기운이 실은 호박의 달큰한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늘 나는 아침식사를 건너뛰었다. 저녁에는 술집에서 신년모임이 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막걸리에 어울리는 모듬전 소쿠리에서 호박전이 가장 빨리 사라진다. 그러고 보면 이 땅에 살면서 사흘이 지나도록 호박 한 조각 섭취 안 하기란 정말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대접한 메뉴에도 어김없이 애호박전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어디 호박의 열매만이랴. 호박의 꽃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호박은 혼자 사는 법이 없다. 얼크러설크러져 있다. 무더기 지어 뻗어가는 줄기와 넓적한 잎의 호위를 받으며 꽃들이 피어난다. 수꽃에는 수술이 그것처럼 푹 튀어나와 있고 암꽃에는 호박이 달리고. 너를 두고 우주의 배꼽이라 한들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랴, 호박꽃! 박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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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글인 다리는 그 뜻이 자못 이중적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몸통 아래 붙어 있는 신체의 부분으로 서고 걷고 뛰는 일 따위를 맡아 한다. 다리가 없다면 동물은 식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안경다리, 책상다리의 예에서 보듯 그것에 붙어서 그것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다리이다.

다리는 왜 다리일까. 다리는 또 큰 뜻을 가지니 그것은 널리 아는 바와 같다. 그 다리를 걷고 건너서 여기까지 와서 잠시 머물다가 또 그 어디로 간다. 우리가 가만히 있다면 여기에서 저기로 갈 수 없지만 오늘에서 내일로 갈 수는 있다. 그러니 지금 딛고 있는 둥근 지구는 우주에 놓인 징검다리이고 나의 몸은 그 어디로 연결된 다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식물에는 다리가 없지만 식물 이름에는 ‘다리’가 들어가는 게 제법 많다. 한국의 에델바이스에 흔히 비견되는 솜다리류(類)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표기만 다리일 뿐 그 뜻은 다리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외에도 낙지다리가 있다. 전국의 습지나 물가에 자라는 풀로 꽃이나 열매가 낙지의 다리처럼 달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다리라는 뜻을 제대로 담아내는 식물은 따로 있다. 금꿩의다리, 꼭지연잎꿩의다리, 꽃꿩의다리, 산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발톱꿩의다리. 이들은 말뜻 그대로 모두 꿩의 다리를 닮은 가족들이다. 바라만 보아도 곧 부러질 것 같은 가늘고 긴 줄기라서 그런 이름을 가진 것일까.

우리 모두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존재’들. 세밑에 서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다리에까지 이르렀다. 생의 깔딱고개라 할 오십의 나이도 훌쩍 지나고 또 한 고비를 지난다. 이제 나도 늙다리에 속하는 축에 들었구나, 새삼 탄식하는데 지난가을 내장산에서 본 은꿩의다리가 떠올랐다. 흡사 허공 속의 그 어딘가로 이어주는 징검다리처럼 공중에 흩어진 꽃들. 숱한 발걸음이 오가는 길가에 호젓하게 피어나 내 남은 길의 끝을 가늠케 해 주었던 은꿩의다리.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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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앉아서 맞을 수는 없어 인왕산으로 갔다. 호젓한 능선과 깔딱고개가 구비되어 있기에 가쁜 숨을 토해내야 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는데 어느덧 정상이다. 눈은 땅에서 솟아나지 않았고 분명 하늘에서 온 물질이다. 저 푸른 곳에서 떨어져 나왔는데 왜 흰색일까. 나의 시선은 힌트가 될 만한 흰 구름을 딛고 멀리멀리 나아갔다.

몇 해 전 해돋이 보러 갔던 감포의 대왕암 앞바다가 떠오른 것이었다. 거칠 것 없이 출렁이는 바닷가. 바다에 소금이 없어 밍밍하다면 바다는 바다일 수 없을 것이다. 검푸른 바닷물은 모래밭에 몰려와서는 모두들 흰 거품으로 까무러친다. 바닷물이 마지막에 흰색으로 표현되는 건 흰 소금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오늘따라 흔감한 기분으로 내려오는 길. 인왕산 허리의 전망대에 서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울긋불긋 뽐내는 문명의 색들을 모두 더한다면 아주 지독한 검은색이 될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는 코끝에 닿을 듯 아까시나무가 서 있었다. 콩보다 납작한 열매의 꼬투리를 달고 있는 저 나무는 콩과식물이다. 오늘 아침에 먹은 콩나물과 같은 가족인 셈이다. 지금 내 머릿속을 찌르는 건 나무의 가시나 줄기가 아니었다. 나의 궁리는 아까시나무의 뿌리로 뻗어갔다. 뿌리는 나무를 탄탄히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한편 물을 찾아 캄캄한 흙 속을 헤매고 있다. 세계의 한 끝을 찾아 물과 닿는 뿌리들. 볼 수는 없지만 모두들 흰색에 가깝지 않을까.

세상의 배후를 짐작하게 하는 일련의 색깔에 대해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주위에 있는 등산객들의 머리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모두들 희끗희끗해지는 육체의 끝. 누구는 염색약으로 가리기도 했지만 솟아나는 머리카락의 흰색은 감출 수가 없다. 나의 그것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그 어느 마지막을 향하는 몸이 길어올리는 색깔은 구름, 소금, 뿌리와 긴밀히 내통하는 것! 우리가 뿌리 있는 한 그루 나무라면 불안이 저 가시처럼 자라나겠지. 그래서 한번 더 눈길이 가는 아까시나무. 콩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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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버스를 기다린다. 더디 오는 버스의 행방을 하늘에 물어볼까. 고개를 들면 가로수가 척 가로막는다. 잎도 열매도 모두 아래로 줘버렸다. 12월의 찬 기온을 알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홋홋한 느티나무. 식물학자들은 꽃이나 열매를 분류의 기준으로 삼지만 초보자는 수피, 가지, 냄새 등의 특징을 본다. 어느 땐 잎의 모양을 보기도 한다. 이제는 다 떨어지고 흔적만 남은 나뭇잎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잎은 둥글고 넓적하며 편평하게 달려 있다. 가급적 햇빛을 많이 쬐어 광합성을 풍부히 하겠다는 뜻이다.

떡갈나무처럼 거의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잎자루는 가늘고 긴 형태로 가지에 연결된다. 손잡이가 가늘고 길쭉할수록 부채가 바람을 쉽게 만들어내듯 잎자루도 그런 구조일수록 나뭇잎은 잘 흔들린다. 나무는 잎의 뒷면에 난 기공을 통해 숨을 쉬고 신진대사를 하는데 잎이 잘 흔들려야 이들의 순환이 잘되는 것이다.

잎자루가 잘록해서 그래서 나뭇잎이 잘 흔들리도록 설계된 것은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봄, 여름, 가을을 거치면서 흔들릴 대로 흔들린 나뭇잎. 이제 그 잎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떨어지고 싶은 순간. 서슴없이, 간단히, 쉽게, 그냥 툭 떨어지기 위해서. 떨어져서도 낙엽의 삿대가 되어 얼른 떠나기 위해서. 상처도 없이, 미련도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잎에 대해 생각하는데 울릉도에서 본 아주 인상적인 나뭇잎이 떠올랐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가지 끝에 우뚝 달려 있던 난티나무의 잎들. 황혼녘 머릿속에서 부엉이가 훌쩍 날아가고 시선을 거두면, 나의 몸에도 그런 장치가 있는 것을 새삼 발견한다. 그것도 두 군데나 있다는 것을. 그 맨 아래쪽은 복사뼈 근처의 잘록, 잘록한 발목!

이윽고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저무는 하늘을 업고 나타났다. 나는 안다. 저 곱상한 공중에 눈과 비, 천둥과 벼락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뭇잎은 나무의 혀였던가. 떠날 때도 말없이. 난티나무는 난티나무. 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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