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190건

  1. 2014.09.29 수정난풀
  2. 2014.09.22 산앵도나무
  3. 2014.09.15 해바라기
  4. 2014.09.01 배롱나무
  5. 2014.08.25 나팔꽃
  6. 2014.08.18 탱자나무
  7. 2014.08.11 정금나무
  8. 2014.08.04 동백나무
  9. 2014.07.28 해당화
  10. 2014.07.21 산딸기
  11. 2014.07.14 꼬리진달래
  12. 2014.07.07 자귀나무
  13. 2014.06.30 고광나무
  14. 2014.06.23 박쥐나무
  15. 2014.06.16 사람주나무
  16. 2014.06.09 [이갑수의 꽃산 꽃글]뻐꾹채
  17. 2014.05.26 [이갑수의 꽃산 꽃글]이팝나무
  18. 2014.05.19 [이갑수의 꽃산 꽃글]각시붓꽃
  19. 2014.05.12 [이갑수의 꽃산 꽃글]족도리풀
  20. 2014.04.28 [이갑수의 꽃산 꽃글]애기똥풀


동물학자도 아닌 주제에 잠깐 동물의 세계로 외출하여 본다. 인간이야 워낙 잡식성이라 논외라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그 먹이가 조금씩 다르다. 아프리카의 어느 큰 나무에는 수십종의 개미가 이웃해서 산다고 한다. 날씬한 허리의 개미 몸집이 워낙 작은 탓도 있지만 찾는 먹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입이 없다고 식물이 먹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다. 동물과 달리 식물의 주식은 같다. 하늘에서 오는 햇빛과 땅 밑을 흐르는 물. 이를 두고 다투는 식물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숲은 항상 요란하다. 바위 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린 소나무. 일부러 전망 좋은 곳에 터를 잡은 게 아니다. 참나무들과 씨름하다가 져서 거기까지 밀려난 것이다. 말하자면 한 움큼의 햇빛이나마 실컷 섭취하기 위해 저 옥탑방으로 이사한 셈이다.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숲이라고 마냥 냉혹한 것만은 아닌가 보다. 침묵의 뿌리가 공중으로 깊게 뻗어가는 산중의 가을이다. 전남 장성 백양산 중턱의 응달 한구석에서 층층이 쌓인 낙엽을 뚫고 자라는 수정난풀을 보았다.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할 수 없는 부생(腐生)식물이다. 썩어가는 부엽토에서 양분을 취해서 살아야 하는 고달픈 생활 탓일까. 핏기 없는 짐승들처럼 희고 투명했다. 홀로 독립생활을 할 수 없기에 옹기종기 모여 서로 기대고 있는 다정한 식구들. 그 모습이 시골에서 워낭소리 울리며 살아가던 외양간의 가족들을 매우 닮았다.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김종삼) 거무튀튀한 낙엽더미에서 이 고운 흰색을 어떻게 길어올렸을까. 거룩한 응달의 사랑 혹은 배려. 묵묵히 바라보다가 잠시 울먹해져서 나도 모르게 송아지의 귀와 목덜미인 양 꽃잎과 꽃받침을 조심스레 쓰다듬어준 꽃, 수정난풀. 노루발과의 여러해살이 부생식물.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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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라는 말 한번 귀에 안 걸어보고 자라날 수 있겠나. 자두, 복숭아, 포도, 사과 같은 입술이라고 해본다. 왜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일까. 그러니 입술에 대해서는 꼭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앵두 같은 네 입술! 그 붉은 입술에 얼떨떨한 내 입술을 닿으려 닿으려 하면서 누구나 설레는 사춘기를 지난다. 앵두라는 말에는 이루지 못한 짝사랑의 헛헛함, 떠나보낸 첫사랑의 아련함이 땡땡하게 뭉쳐 있는 것 같고나.

앵두, 혹은 앵도라고도 하는 것. 산앵도나무는 산 중턱에 주로 있다. 그리하여 설악산 어느 한구석, 귀때기청봉의 너덜겅을 엉금엉금 오를 때 산앵도나무는 지친 나를 끌어당겨 주었다. 산앵도나무는 산앵도나무! 그 이름만 중얼거려도 입안에 날카로운 침이 돌아 헐떡이는 숨의 절반을 고르게 하여 주었다. 혹 열매가 달려 있다면 그 즙은 거의 거덜이 난 나의 원기를 보충하고도 남으리라.

오늘 산앵도나무는 열매 대신 아래로 향하는 작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 옛날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는 사이렌이 아니라 종소리였다. 오줌보가 터질 무렵 소사 아저씨가 하마나 울려주실까 고대하던 땡, 땡, 땡 종소리. 교무실 창문 아래 화단에 달려 있던 꼭 산앵도나무의 꽃 같은 종. 쇠로 만든 불알을 차고 있던 학교종.

설악산 중턱에 앉아 산앵도나무 환한 그늘에 얼굴을 적시며 꽃을 보았다. 문득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시골 국민학교 생각이 났다. 폐허로 변한 꽃밭과 뿔뿔이 흩어진 동무들. 그중 한 여학생에게는 마음이 은근히 갔던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을 가리키기라도 하는 듯 꽃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아득히 멀어진 그 모든 곳으로 손 뻗으면 땡땡하게 뭉친 추억의 종소리가 울려나올 것만 같은 산앵도나무. 댕그랑, 땡그랑, 앵그랑……진달래과의 낙엽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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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는 외교부가 없다. 국무부 장관이 외국을 상대한다. 세계 각국의 일이 모두 자기와 관련된 것이라서 그렇단다. 왜 남의 나라 고민까지 짊어지려고 할까.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어서 중국이다. 중화는 중앙의 꽃, 곧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며 나머지는 다 오랑캐라는 뜻이란다. 그랬거나 말았거나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살면서 그런 건 관심사항이 아니다.

국경 따위는 가볍게 뛰어넘자. 우주에도 중심이 있을까. 몸의 중앙에 배꼽이 있듯 우주에도 절대기준점이 있을까. 물리학에 따르면 우주에는 상대적 운동이 있을 뿐 중심이 없다. 중심이 없으니 그 모든 곳이 다 중심이다. 우리들은 너나없이 각자 걸어 다니는 우주의 중심기관이다.

예로부터 중심이나 중앙, 센터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개념이 있었던 것 같다. 힘에 의해 좌우되는 그런 것 말고 정면에 대해 궁리해 본다.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그냥 무심히 보게 되는 ‘앞’이 정면은 아닐 것이다. 세상의 정면은 어디일까.

추석 연휴의 마무리를 설악산에서 하였다. 한계령에서 귀때기청봉으로 오르니 달려온 길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죽죽 뻗은 나무들. 비탈진 곳에서도 나무들은 꼿꼿하게 자란다. 이는 나무들에게 일생을 통해 지향하는 정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정면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두리번두리번 눈치 보며 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추석 사흘 전, 경향신문의 사진 한 장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해바라기 꽃이 4일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농성을 하기 위해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에 친 천막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피어 있다”는 캡션이 붙어 있었다. 정작 와야 할 이가 오지 않는 곳을 방문한 해바라기. 그 껑충한 꽃을 보면서 세상의 정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해바라기는 해 바라기이지만 늘 해를 따라 도는 건 아니다. 그래도 항상 정면을 향하면서 자라는 꽃. 지금 우리 시대의 정면을 외면하는 이를 따끔하게 바라보는 해바라기.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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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수피, 줄기는 물론 전체적인 수형에 기품이 있는 나무. 유서 깊은 서원이나 사찰의 고졸한 풍경을 완성하는 나무. 배롱나무다. 그 많은 나무들 중에서 나에게 특히 감명 깊은 것은 따로 있다. 몇 해 전. 지리산에 가자고 마음을 모처럼 모았는데 태풍 무이파가 남부 지역을 강타했다. 지리산 출입이 금지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지만 종주가 아니면 원주(圓走)라도 하자고 집을 떠나 주천~운봉~인월의 둘레길을 걸었다. 판소리 동편제의 가왕(歌王) 송흥록의 비전마을 생가. 흥(興)인가 한(恨)인가. 구성지게 흘러나오는 명창의 가락을 떠받들어 가지마다 실어 나르듯 흐느끼며 흔들리는 나무가 있었다. 배롱나무였다.

지난주 동북아식물연구소(소장 현진오)가 주관하는 희귀특산 식물 조사의 말석에 끼어 내장산에 들렀다. 연자봉에 올라 문필봉~신선봉~까치봉의 산세와 오전에 통과했던 금선계곡을 굽어보았다. 계곡 끝에 내장사가 달려 있었다. 내 풍수학인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큰 아궁이 같은 산이 있고 그 입구에 절이 있는 셈이었다. 멀리 일주문 근처에 붉은 반점이 보였다. 배롱나무였다.

꽃의 입장에서 본다면 요즘의 숲은 적막하다. 꽃들의 전성시대를 마감하고 열매를 맺느라 바쁘다. 그 와중에 홀로 핀 배롱나무는 모종의 역할을 담당하는 듯하다. 백일간이나 핀다고 백일홍이라고도 하는 배롱나무. 한 송이가 오래 피는 것은 아니고 여러 꽃들이 교대로 피고 지면서 그렇게 긴 기간을 유지한다. 말하자면 릴레이 개화(開花)라고 할 수 있겠다.

지난여름 숲에서 벌어진 일을 나무들은 다 기억한다. 폭염이 퍼붓고 태풍이 할퀴고 간 이후를 견디는 시간. 모든 꽃들이 사라진 그 틈을 메우려 배롱나무는 피어 있는가. 가을이 오면 나무들의 울혈을 다스리듯 단풍도 온다. 감추었던 진실이 드러나듯 확 물드는 단풍. 그 불꽃 같은 단풍이 올 때까지 녹색의 아궁이 앞에서 불씨처럼 피어 있는 배롱나무의 꽃. 부처꽃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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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꽃산행.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는 정상 부근의 귀한 꽃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깔끔좁쌀풀을 보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웠다. 인솔자에 따르면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윗세오름 대피소에서 조금만 더 오르면 등산로에서 흔히 발견되었다고 했다. 풍광을 좇아다니는 나 같은 자들의 둔탁한 등산화와 날카로운 지팡이에 쫓겨 터전을 잃은 듯했다. 깔끔좁쌀풀. 대체 어떤 용모를 지녔기에 이런 똑떨어지는 이름을 얻었을까. 아쉬운 마음을 잔뜩 짊어지고 산을 내려와 바닷가로 갔다.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 해변. 뭍과 바다가 치열하게 다투는 이곳은 햇빛과 물이야 노다지이지만 식물이 살기에 녹록지 않은 환경이다. 사나운 바람과 거친 물보라를 이기며 악착같이 뻗어가는 덩굴성 식물들이 주로 살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그것도 해변에서 나팔꽃 공부를 할 줄이야. 나팔꽃을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나. 흔하디흔한 꽃이지만 파고들면 재미도 있고 그 종류도 많다. 애기나팔꽃, 별나팔꽃, 선나팔꽃, 둥근잎나팔꽃, 미국나팔꽃 그리고 그냥 나팔꽃.

어린 시절의 짓궂은 장난. 나팔꽃 한송이를 따서 흰 ‘런닝구’ 입은 동생의 등에 엎어놓고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붉은 꽃잎은 너무도 야들야들해서 모양과 색깔이 옷에 그리고 등짝에 그대로 인쇄되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거늘 아예 꽃을 때린 셈이었다.

이슬을 방울방울 머금은 채, 마당 한 귀퉁이에서 ‘담부랑’을 기웃거리며 자라던 나팔꽃.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계의 모든 소리를 모조리 듣겠다는 듯 큰 귀처럼 보이는 나팔꽃. 그 꽃을 따서 나팔처럼 불면 세상의 모든 잘못을 꾸짖는 고함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은 나팔꽃.

며칠 전 고향의 외가를 찾았다. 아침 산책 길, ‘질번디기’ 산소 쪽으로 걸어가는데 먼저 깬 나팔꽃은 전봇대 허리를 붙잡고 할머니 계시는 하늘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면서 하루의 도(道)를 날마다 깨치는 나팔꽃. 메꽃과의 한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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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은 거대한 용광로 같았다. 인왕산을 바라보면서 깊게 끓는 그 속을 가로질러 걸었다. 횡단보도 중간에 서명대가 있고 그 뒤로 곡기를 끊은 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분들, 그들을 응원하는 분들이 함께 있었다. 유례를 찾기 힘든 엄청난 참사에도 책임 있는 자들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무참하게 바다에 침몰한 세월호를 따라 가랑잎 같은 돛단배들이 지금 광화문 바닥에서 가라앉는 중. 그 와중에 멀리 십자가가 보였다. 낮은 곳으로 임하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직접 주재하는 시복식의 제단에 우뚝 솟은 큰 십자가.

‘차라리 한 채의 소슬한 종교’(서정주)라고도 하였지만 광화문은 말 그대로 하나의 문(門)이다. 출퇴근길에 혹은 저마다의 약속에 바쁜 걸음으로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이 문으로 수많은 사연들이 흘러오고 흘러간다. 200여년 전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분들은 이 문을 통해 복자(福者)로 거듭났다.

광화문 한쪽 교보생명 빌딩은 계절마다 폐부를 찌르는 글판을 눈썹처럼 단다. 작년 여름에는 베르고글리오가 교황이 되기 전 사목했던 아르헨티나와 이웃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작품에서 고른 한 구절이었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그때 광화문에서 그 글귀를 보는데 하필이면 탱자나무가 떠올랐었다. 어린아이 시절, 학교로 가는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었고 집으로 가는 골목에는 탱자나무가 울타리처럼 있었다. 탱자나무의 가시는 줄기가 변한 것이라서 어미에 해당하는 몸통의 껍질과 함께 찢어질지언정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노란 열매에는 세상의 쓴맛보다도 더 시큼한 탱자 맛이 탱탱했다.

땡볕이 제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경건한 침묵과 서늘한 고요가 지배하는 광화문광장. 일 년 전에 만났던 시구와 탱자나무의 가시가 나타나 아프게 사방을 찔렀다. 운향과의 낙엽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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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 나직이 불러보면 시골 초등학교 동창생 가시내 이름 같기도 하고 다시 정금, 중얼거리면 입에 침이 가득 고인다. 박수근 그림의 바탕이 되는 회백색의 질감은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한 무른 바위의 거친 표면을 아주 닮았다. 어릴 적 고향 뒷동산에서 뛰놀 때 부드럽게 휘어진 능선을 돌아들면 굵은 소금 같은 알갱이로 부서지는 다정한 바위들. 그 가까이에 주로 자라는 나무가 있었다. 정금나무였다.

소 먹이러 갔을 때 후두둑 깜보랏빛으로 익은 열매는 늘 우리들 차지. 정금나무의 키는 내 머리통에 수박 하나를 얹은 것과 어금버금해서 겨드랑이에서 팔을 쭉 빼면 딱 따먹기 좋은 위치였다. 어느 땐 익기를 기다리지 못해 초록의 띵띵한 열매를 훑기도 했다. 깨물면 퍼지는 시금털털한 맛도 얼굴 한번 찡그리고 나면 뒷맛이 이내 좋았다.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하나로 꿰매는 육십령에서 출발해 덕유산에 올랐다. 한식이나 벌초하러 오고 갈 때마다 별렀던 산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땀을 쏟고 능선에 올라 산세를 거머쥐고부터는 자주 오른쪽을 보았다. 농도를 달리하여 배열되는 산 너머너머에 내 고향이 숨어 있는 것이다. 덕유, 조용히 부르면 집에서 통하는 이름이 덕순이었던 친척 누이가 생각나고 덕유, 다시 부르면 덕이 여유롭게 흘러넘치던 동네가 떠오른다. 그리고 한번 더 덕유, 중얼거리면 이 모두를 다 품는 저 후덕한 덕유산!

할미봉을 지나 어느 바위틈을 돌아들자 붉게 상기된 듯한 나무가 있었다. 정금나무였다. 귀밑머리 솜털처럼 잎에는 잔털이 송송하고 가장자리엔 핏빛이 감돈다. 열매만 탐했던 터에 이제야 비로소 꽃들도 눈으로 들어온다. 소 턱 밑의 작은 워낭처럼 아래를 향해 달려 있는 꽃. 톡 건드리면 딸랑딸랑 워낭소리가 울려나오고 그 소리 끝을 따라가면 내 잃어버린 것들이 딸려 나올 것 같은 정금나무의 정다운 꽃, 꽃, 꽃, 꽃, 꽃. 진달래과의 낙엽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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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있는 연구자에 따르면 김수영 시인은 자유가 아니라 꽃의 시인이라고 해야 마땅하다고 한다. 시인이 남긴 작품을 조사해 보면 꽃이란 시어를 무려 127회나 부렸다는 것. ‘꽃’ 하나로 ‘꽃의 시인’의 지위를 누렸던 김춘수 시인이 듣는다면 뭐라고 하실까. 이제 시의 업(業)에서 홀가분하게 벗어나 고인(故人)의 반열에 드신 분들이니 그게 무슨 대수랴 싶기도 하다.

꽃이 홀연 자취를 감춘 계절. 가로수 줄기 끝에선 꽃잎 대신 매미소리가 펄, 펄, 펄 떨어져 내린다. 시인들은 이 수상한 시절을 어찌 견디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여름에 발표하는 시를 살피면 그 속내의 한 자락이라도 혹 알 수 있지 않을까. 종로도서관에서 계간지를 일별해 보았다. 내 수준을 함부로 벗어날 순 없고 그저 작품 속의 구체적인 나무나 꽃을 조사했다.

<논어>를 보면 공자는 제자들에게 <시경>을 읽으라고 한다. 조수초목지명(鳥獸草木之名), 즉 새와 동물, 나무와 풀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시인들도 그런 영향을 암암리에 받은 것일까. 골짜기를 헤매듯 잡지를 뒤적이자 의외로 많은 동식물이 등장하였다. 그렇게 시의 생태계를 살피는데 문득 드는 생각. 나무 하나 들먹이지 않고 시를 생산하기가 힘들 듯 욕 한마디 없이 이 시절을 건너기도 참 어렵겠군. 그런 참인데 어느 페이지를 넘기자 내 마음을 딱 헤아리기라도 했다는 듯 이런 동시 한 구절이 있지 않겠는가. “아아아아아아아/ 시이이이이이이/ 가안시인배애가트은/ 어얼빠아지인노옴가트니이”(서정홍, 욕 공책)

4종의 계간지에서 확인한 것은 총 31그루. 반갑게 해당화도 있었다. 원예종을 제외하고 거의 알겠는데 모르는 나무가 하나 있었다. 왕동백나무였다. 시에 따르면 지옥에서 피는 나무라 했다. 내 근처에도 살 법했건만 도감을 보니 이승에는 없는 나무였다. 어쩌나. 시인들의 시상에 큰 도움을 준, 한겨울에 피었다가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나무를 여기에 심어 갈음하기로 한다. 차나무과의 상록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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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기억을 뒤적이면 그 내용을 다 발굴할 순 없어도 희미한 얼개는 간신히 수습할 수 있다. 바다로 나간 뒤 돌아와야 할 이를 기다리고 기다리다 주인공은 죽고, 그 자리에서 자라나 붉은 꽃을 피웠다는 전설 속의 나무. 이미자의 노래보다 먼저 동화에서 그 나무를 알았다.

휴일이 없는 달력이라면 누가 가까이 걸어놓겠는가. 하루가 짬뽕 국물처럼 빨갛게 표시된 날이면 짬을 내어 야외로 간다. 지난주 강원도 양양의 어느 석호(潟湖)에서 사초과 식물을 관찰했다. 화려하지도, 드러나지도 않으면서 지표의 한 면을 담당하는 흔한 풀들. 세상의 마무리가 이리도 오밀조밀하고 정교하다. 큰고랭이, 민하늘지기, 진퍼리사초, 병아리방동사니, 세대가리, 통보리사초 등등. 부르기도 힘들지만 구별하기는 더욱 힘든 사초과 식물들 사이에서 그 나무를 만났다.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내 키만 한 해당화였다.

저녁 시간. 사람이 먹는 밥은 사초과와 이웃한 벼과 출신의 식물이다. 사초과가 없었더라도 벼가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었을까. 주최 측에서 마련한 메뉴는 은어튀김에 뚜거리탕. 잘 차려진 음식 중에서도 오늘은 특히 고슬고슬한 공기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야물게 씹어먹었다.

시간은 늘 제 속도로 흐르는데 그 빠르기는 시간 속에 담긴 각자의 몫이다. 꼬박꼬박 끼니를 챙기며 하루를 더 있다가 서울로 왔다. 아무리 망각하려고 해도 달력에 있는 모든 날들은 반드시 오고야 마는 법이다. 그사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십자가를 지고 걸어서 순례하는 분은 아직 도로 위에 있었고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았다. 그날 아침 신문의 한 대목 앞에서 밥알이 잘 넘어가지를 아니했다. “오늘도 한번 신나게 굶어보자.” 열흘째 광화문에서 곡기를 끊고 계시는 ‘아버지’의 한마디가 내 혓바닥을 찔렀기 때문이다. 땡볕의 도심에서 먼바다를 헤아리며 휘청거리고 있는 아버지들. 어뢰 같은 열매가 달리고 잎과 줄기에 가시가 돋는 해당화 같은. 장미과의 낙엽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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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근처의 통인동 재래시장에 즐비한 좌판들. 요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옹기종기 담겨 있는 여름 과일이다. 살구, 복숭아, 자두, 포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녀석들은 얼굴이 서로 닮았다. 토마토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비닐에 포장되어 여기까지 왔다. 울긋불긋한 것들 중에서 내가 오늘 특별히 찾는 건 알알이 빨간 딸기였다.

딸기는요? 물었더니 제철이 지나 출하가 안된다는 대답. 없는 딸기에 더욱 군침이 돌면서 생각은 곧장 경북 상주의 황금산으로 날아갔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과 푸른 들판을 마주한 산. 바람이 강의 습기를 배달해주는 덕분일까. 황금산에는 귀한 식물들이 많다고 했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길섶으로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렸다. 훅훅 볶아대는 땡볕 아래에서 만난 공중의 오아시스. 뱀딸기도 있다. 못 먹을 것 없지만 보기에도 조금 칙칙하고 그저 밍밍한 맛이다. 산딸기 몇 알 입에 넣다가 무심코, 어머니 갖다드리면 좋겠네, 했다.

전망 좋은 정상에는 활공장이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느라 비벼댄 풀 사이로 제비꿀과 솔나물이 드문드문. 그중에서도 두 뼘 크기의 산제비란은 일행을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했다. 제법 근사한 사진을 찍고 일어서는데 한 분이 어깨를 쳤다. 바람결에 했던 말을 전해 듣고 한 움큼 딸기를 따와선 손바닥을 벌리라는 게 아닌가.

아이고, 산딸기 아이가? 어머니는 천천히 드셨다. 양재기 들고 딸기 따러 억수로 다녔지. 그땐 냉장고가 있었나.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었지. 산딸기에서는 햇빛에 구운 먼지 냄새가 난다. 바람에 씻긴 빗물 냄새도 난다. 활공장에서 딴 딸기 향을 타고 어머니는 고향의 하늘로 곧장 날아가신 듯. 미수(米壽)라고도 하지만 달걀 두 개를 두 줄로 쌓아놓은 듯 위태로운 나이 88세. 몇 십 년의 시간이 농축된 맛으로 내 어머니를 소녀 시절로 안내하는 산딸기! 장미과의 낙엽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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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다녀갔다. 너구리 다음은 더우리. 어느 신문의 날씨와 관련한 재치 있는 기사 제목에 외려 마음속 더위가 쪼끔 꺾이는 것도 같다. 너구리 꼬리를 붙들고 뒤따라온 건 폭염만이 아니었다. 모처럼 일요일에 한가히 뒹구는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게 있었다. 올해 처음 듣는 매미 소리가 아닌가. 매미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특별히 나의 사정을 살핀 뒤 우는 건 아닐 테다. 귓구멍으로 지푸라기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말과 소리 중에서 그 가느다란 가락을 이제야 비로소 내가 잡아챘다는 얘기.

자글자글 우는 매미의 꽁무니를 붙들고 따라오는 기억이 있다. 일 년 전 이맘때의 일이라서 정확하게 생각난다.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의 녹전중학교. 운교산으로 통하는 학교 뒷산은 그야말로 깔딱고개였다. 가볍게 생각했다가 큰 코만 다칠 뻔했다. 겨우겨우 한 능선을 밟았는데 바위 사이에 그 나무가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전체적인 수형(樹形)은 진달래와 아주 흡사한데 꽃은 확연히 구별이 되는 나무. 흰 꽃이 가지 끝에 다닥다닥 뭉쳐 있고, 수술은 꽃잎보다 도드라지게 뾰쪽하다. 꼬리진달래였다.

오르기도 어렵지만 내려오는 데도 그만큼 땀을 쏟아야 했다. 그래도 귀한 꽃을 제대로 보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수업이 끝난 토요일 오후의 시골 중학교. 책 읽는 소리도, 공 차는 아이들도 없었다. 운동장에 흩어진 게으른 시간들이 수령 360년의 느티나무 아래로 수렴되는 듯. 우람한 느티가 제공하는 심심한 그늘에서 캔맥주를 따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ㅆㄹㄹ, ㅆㄹㄹ, ㅆㄹㄹ. 지금 귀에 닿는 이 소리는 올해 처음 듣는 매미 울음이 아닌가. 시원하게 한 모금 넘기는데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의 하이쿠 한 소절이 떠올라 목구멍을 때렸다. “올해의 첫 매미 울음/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진달래과의 상록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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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김광균의 설야)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이후 아직도 안 잊히는 구절들이다. 시조 하나가 더 있다. “눈보라 비껴나는/全──群──街──道//퍼뜩 차창으로/스쳐가는 인정아!//외딴집 섬돌에 놓인/하나/둘/세 켤레”(장순하의 고무신).

완도 식생조사 갔다 오는 길. 까딱까딱 졸다가 깨어나니 스쳐가는 이정표에 부안, 줄포가 나오고 언뜻 군산도 보이는 것 같았다. 꼭 그 도로는 아니겠지만 전군가도와 이웃한 어디쯤일 듯. 어느 순간 퍼뜩 차창으로 달려드는 나무가 있었다. 초례청의 청실홍실 같은 꽃을 가지 끝에 활짝 달고 있는 자귀나무였다.

이 서해안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경부고속도로에는 이런 안내판이 있다.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 이른바 아시안 하이웨이의 이정표다. 언젠가는 이 도로를 죽 달리면 실크로드까지도 갈 수 있다는 뜻이렷다. 몇 해 전 중국의 서쪽 변방인 신장 위구르 자치주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가는 길에 이 지방의 빵인 난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예쁜 수건으로 치장한 두 여인이 젖먹이를 하나씩 안은 채 난을 굽고 있었다. 코를 흘리는 꼬마가 우리를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몇 십 년 전 내 어릴 적 모습을 꼭 닮은 꾀죄죄한 꼬마.

큰 자귀나무가 지붕 너머로 가게를 굽어보고 있었다. ‘자귀나무 난집’이라고 간판을 단다면 안성맞춤일 것 같은 풍경. 자귀나무의 잎은 쌍으로 나란히 달리는 깃꼴겹잎이고 해가 지면 수면(睡眠) 운동을 한다. 잎맥을 축으로 좌우의 잎들이 한 짝의 고무신처럼 서로 들러붙는 것이다. 해서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나무. 진작 느낀 것인데 가게에는 사내라곤 아무도 없었다. 총명한 아이들과 따뜻한 빵, 무엇보다도 이 상냥한 아내를 두고 대관절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밤이면 자귀나무 잎들도 짝을 찾아 포개지는데! 콩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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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난들 어디 이러고 싶었겠나. 온몸의 안테나를 있는 대로 가동했지만 브라주카가 이리 빨리 올 줄 알았나. 모든 신경과 솜털까지도 쫑긋 세웠지만 공이 모서리로 빨려들어갈 줄 알았나. 벼락치듯 공이 쩍 갈라놓은 허공에 허를 찔린 골키퍼는, 공보다 한 박자 늦게, 골문 안으로 내려꽂히고 만다. 철퍼덕!

무릇 축구에선 이기려면 스트라이커의 한 방이, 지지 않으려면 수문장의 선방이 필요한 법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골키퍼가 애꿎은 풀을 뽑으며 분을 삭이고 있는 동안, 화면에서는 브라주카의 활약이 한 번 더 펼쳐진다. 중원에서 넘실대던 공은 두 번의 긴 패스와 정교한 헤딩을 발판으로 딱따구리가 제집을 찾아가듯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간다. 이번에는 각도를 달리하여 보여주는 골키퍼의 추락. 클로즈업되는 것은 브라주카와 흰 그물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축구공. 원래 축구공은 오각형과 육각형의 패널을 이어붙였지만 보다 완벽한 구형을 위하여 브라주카는 6개의 패널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공은 표면이 요란해서 문양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브라주카가 철렁, 골망을 뒤흔들 때 확실히 알았다. 골대의 그물이 모조리 6각형이 아니겠는가.

경기를 보면서 육각형에 주목한 것은 연유가 있다. 몇 해 전 휘돌아드는 어느 골짜기의 작은 나무 앞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나뭇가지 좀 보세요. 축구공의 무늬를 닮지 않았나요? 고광나무였다. 식물을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고광나무는 잎, 꽃, 수피가 아닌 가지의 형태에서 이런 특징을 찾는 것이다. 축구공, 아니 골대 그물 같은 고광나무. 어느덧 경기는 끝났다. 휘황한 전광판이 꺼지고 뿌리 없는 이들은 모두 떠났다. 선수도, 심판도, 응원객도, 브라주카도. 그라운드에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의 잔디들. 그리고 줄기처럼 둥근 기둥으로 뿌리박은 골대, 아니 두 그루의 고광나무! 범의귀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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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옥계면의 석병산 중턱.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희미한 등산로에서 녹색 잎들의 터널을 터덜터덜 걸어갈 때, 저만치에서 나무들의 그림자와 햇빛이 뒤엉켜 노는 것을 본다. 흑백의 그림이 총천연색의 그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이다. 바람이 지휘하는 대로 일렁이는 녹색의 잎과 그 잎의 검은 그림자들. 그들을 밟겠다고 덤벼보지만 외려 나의 무딘 등산화를 타고 넘어 발등을 간지럽힌다. 어느새 마음도 그림자에 접착되니 덩달아 출렁거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단순히 산에 오르는 게 아니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야생화들과 안면을 익히는 길. 그런 판에 앞서 가던 누군가가 “오매, 저기 박쥐나무 좀 보소!”라고 외치면 모든 눈들이 일제히 그 소리의 꽁무니를 따라 쫓아간다. 나무들 속의 나무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이리저리 가늠한 후에야 겨우 그를 찾아낼 수가 있다.

박쥐 수십 마리가 매달려 있는 듯한 박쥐나무. 그 박쥐떼 앞에서 어찌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으랴. 동굴 속의 박쥐라면 오금이 저릴 법도 하겠지만 이것은 순하디 순한 식물! 아무런 주저없이 가까이 가서 잎을 보면 정말 박쥐가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이다. 박쥐는 시방 어디에 머리를 감추었을꼬? 박쥐나무는 아주 귀한 나무는 아니라서 이산저산에서 여러 번 보았더랬다. 특히 박쥐나무의 꽃은 색상이 그리 요란한 것은 아니지만 그 형태가 단연 독특하다.

여덟 획의 꽃 화(花). 이 한자(漢字)는 마치 크고 작은 꽃잎 8장이 기대고 꼬부라지고 삐치면서 슬기롭게 조화를 이루는 모양을 형성하는 것일진대, 박쥐나무의 꽃은 그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디자인! 노란 수술은 아래로 길게 늘어지고 하얀 꽃잎은 바깥으로 똥그랗게 말린다. 박쥐가 어두컴컴한 천장에 매달리는 것보다 훨씬 천의무봉하게 허공에 매달리는 박쥐나무의 저 빼어난 잎과 꽃을 보라. 박쥐나무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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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일. 설악산 가는 길이다. 오색에서 올라 대청봉을 어루만지고 희운각에서 일박했다. 희붐한 아침부터 공룡능선을 훑고 마등령에 섰다. 이쪽은 오세암, 저쪽은 비선대로 이어지는 인적 드문 갈림길 고개. 설악의 어깨에 내 키를 더하니 마음은 구름도 뚫을 듯. 이제 나는 세상에서 제법 고귀(高貴)한 거인이라도 된 셈인가. 1박2일을 꼬빡 투자해서 얻은 높이에 취해 잠시 까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벼슬도 아닌 것이어서 하산하는 순간 발밑에서 높이는 솔솔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산에서 얻는 것은 산에 모두 반납해야 한다. 그래야 산은 산에서 나가는 길을 허락한다. 절룩거리며 돌계단을 서너 시간 걸었다. 금강굴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앞장서서 걷던 이가 지팡이를 들었다. 사람주나무 좀 보세요. 처음으로 그 이름을 듣는데 괜히 시비심이 일어났다. 왜 사람인이 아니고 사람주일까.

3주 전의 일. 지리산 가는 길이다. 부산, 대구, 서울의 꽃동무들과 원지에서 만나 아침을 먹고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 오르기로 했다. 집결장소인 산청군 신안면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펄럭이는 그것을 보고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주소를 대니 우리 동네의 투표지 7장이 출력되어 나왔다. 우리나라 기표도장에는 무늬가 있다. 그냥 동그라미로 하면 투표지를 반으로 접었을 때 인주가 묻어 무효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사람 인(人)’인 줄로 알았는데 ‘점 복(卜)’이라고 한다. 기표소에 들어가 심호흡을 하는데 사람주나무 생각이 났다. 사람주나무의 줄기는 사람의 벗은 몸처럼 매끈하다. 손으로 만지면 분처럼 흰 가루가 묻어난다. 오래될수록 울퉁불퉁한 알통 같은 마디를 빚기도 한다. 가을이면 아주 붉게 단풍 드는 기품 있는 나무. 오늘 지리산에서도 사람주나무를 보게 될까. 사람주는 ‘사람이 주(主)다’는 말의 준말이 아닐까. 붉은 도장을 불끈, 눌렀다. 대극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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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뻐꾹.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북악산의 숙정문 앞 공터. 목요일의 오후 4시를 지나는 무렵이었다. 사연이 있다. 노고산 자락에서 학문에 열중하는 일군의 대학원생들이 야외수업을 겸해서 나들이를 왔다. 지도교수와는 오랜 친분이 있는 터라 어렵게 짬을 내서 안내를 자청하고 늙은 복학생이 된 기분으로 수업에 동참했던 것이다. 와룡공원에서 출발했다. 세월의 때를 시커멓게 묻혀가는 성곽과 그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식물들. 멀리서 보니 은사시나무가 훤칠하고 며느리밑씻개가 돌틈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말바위 전망대에 서니 북한산이 코끝에 걸리고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인 성북동이 발 아래 엎드렸다. 대부분 초행인 듯 단 몇 분 만에 확보되는 시원한 시야에 모두들 감탄했다. 몇몇의 입에서 성북동 비둘기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과연 학생들다운 이야기. 지금 그들은 돈이 아니라 시(詩)를 논하고 있는 것이렷다. 안내소를 통과하니 금방 숙정문이 나타났다. 문 밖으로 나가자 작은 공터가 있고 우뚝한 소나무 아래 한낮의 정적이 고즈넉이 고여 있었다.

그때 저 멀리 팔각정 숲 어딘가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 뻐꾸기 소리를 들으매 퍼뜩 떠오르는 야생화가 있었다. 그것은 북악의 동생처럼 이웃한 인왕산에서 며칠 전 본 뻐꾹채였다. 얼핏 보면 흔한 엉겅퀴 같은 뻐꾹채는 내 허벅지를 찌르며 뻘쭘하게 뻗은 가지 끝에 보랏빛 꽃을 달고 있다. 아주 긴 궁리를 머릿속으로 깊게 하다가 이젠 바깥으로 뻥 터뜨려놓은 듯, 곱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생각의 힘!

4시를 지나는 중이었지만 뻐꾸기는 시계가 아니라서 두 번밖엔 울지 않았다. 뻐꾸기는 아무도 제 소리를 기억해 주는 이가 없자 입을 닫았는가. 뻐꾸기 울음은 호응해 주는 소리가 없자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는가. 북악의 뻐꾸기 울음을 홀로 받아 주고 있을 인왕의 뻐꾹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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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은 시를 통해서 내게로 왔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에서의 청산이 바로 그 무등산. 청산은 부산에도 있었다. 재수생을 가르치는 학원 이름. 청산학원을 통과하고 부산역을 떠난 이후 세월의 때를 묻히면서 나도 세상의 무릎 아래 정착했다. 무릎은 주름이 심하게 잡히는 곳이라서 그 문양이 아주 복잡하다. 광주도 광주였지만 무등을 만나야겠다는 건 오래된 생각이었다. 여름이 되면 무등산 수박에 침을 꼴깍 삼키겠지만 그보다 먼저 5월이 오면 무등산 꼭대기 생각이 났다. 기회가 왔다.

5월 첫 주말에 대학 동기들과 원효사-서석대-입석대-증심사의 코스를 잡았다. 초입에는 매미가 승천하는 모습으로 신나무 열매가 잔뜩 달려 있었다.

특이한 식물이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애기나리, 현호색, 광대수염 등등의 흔한 야생화들뿐. 광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동안 <허삼관매혈기>로 유명한 작가 위화의 산문집 <영혼의 식사>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는 ‘한국방문기’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광주항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열사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 내가 본 광주항쟁 희생자의 사진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눈이 감긴 것이 없었다. 그들의 무심한 눈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의 눈이 한국의 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눈에 꽃가루라도 들어갔나. 눈두덩을 비비면서 묘지정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가로수가 만개해 있었다. ‘입하(立夏)’ 무렵 꽃을 피운다고 그렇게 불린다는 나무.

흰 쌀밥이 쌓인 것 같아 ‘이밥’에서 유래했다는 나무. 이팝나무였다. 때맞추어 고맙게 핀 꽃은 뚜렷한 특징이 있다. 4갈래로 길쭉하게 갈라진 꽃잎 하나하나가 흐느끼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 눈에는 꽃잎이 꼭 만장(輓章) 같은 이팝나무.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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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한 꽃이다. 누가 붓으로 이리 고운 난초를 쳤을까. 백암산의 호젓한 길에서 색깔과 자태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다. 각시붓꽃, 그 이름을 알고 나선 더욱 그랬다. 이후 도톰하게 낙엽이 쌓인 좁은 능선을 만나면 어디 각시붓꽃이 없나? 궁금한 눈길을 던지기도 했다. 출렁이는 마음도 달랠 겸 인왕산 중턱 석굴암에 올랐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더니 어느새 여름 기운이 물씬하다. 도심에 포위된 인왕산의 야생화들. 진달래가 지더니 철쭉이 피었다. 이제는 붉은병꽃나무가 절정이다. 이 꽃도 곧 매미 소리에 파묻히겠지. 깔딱고개를 치고 오르니 반반한 바위가 있다. 그제까지 창창하던 돌단풍 곁에 각시붓꽃이 한 무더기 피어있는 게 아닌가. 엎드렸다 일어서는데 이리저리 숲속을 누비는 새들의 지저귐. 멀리서 꿩 우는 소리도 들렸다.

송나라 유극장(劉克莊)은 ‘앵사(鶯梭)’라는 시에서, 꾀꼬리가 나무를 부지런히 옮기며 비단 같은 낙양의 봄을 짜낸다고 읊었다. 앵사는 꾀꼬리가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는 것으로 베를 짤 때 북이 왔다갔다하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는 새를 보고 저런 시상을 건져내는 절묘한 감각에 감탄하다가도 이내 울음에서 번져오는 기막힌 것이 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석굴암에 오르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 저곳에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어떤 감정이 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우려내는 중. 그래서 그런가. 오늘 인왕산에서 들리는 새의 울음은 비단 대신 슬픔의 피륙을 짜고 있는 듯하다. 붓으로 난초 치듯 각시붓꽃을 그려낸 이가 우리 시대의 민낯을 본다면 눈물로 범벅된 이 천에 무슨 기록을 남길는지. 칼처럼 휘어지는 잎과 꼿꼿한 꽃줄기 끝에 오로지 한 개의 꽃만 피우는 각시붓꽃.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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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어릴 적 시골집 마당 한편에는 손바닥만 한 꽃밭이 있었다. 나무판때기에 붓글씨로 쓴 아버지의 문패가 반짝거리고 송아지가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지게 작대기를 슬쩍 걸쳐두었던 마당 입구. 그 곁에서 가족들의 발소리를 응원 삼아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칸나, 봉숭아, 코스모스 등이 좁은 땅에서 어울려 자라났다. 식물의 종수는 턱없이 빈약했지만 무성한 잎들로 꽉꽉 채운 꽃밭이었다. 식구들이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사투리를 쓰듯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햇빛을 쬐며 경쟁하는 건강한 생태계. 바닥에 바짝 붙은 채송화는 아래를 담당했고 봉숭아 무리는 조금 높은 공중의 한 귀퉁이를 의젓하게 차지했다. 하늘에서 비라도 오는 날. 꽃들은 고개를 들고 얼굴을 말갛게 씻었고 꽃밭의 모래들도 모처럼 자리를 서로 바꾸었다. 울타리처럼 꽂아놓은 사금파리도 먼지를 씻어내면 엉덩이가 깨끗했다. 비 갠 후 꽃밭으로 가면 통통한 줄기마다 모래알갱이들이 날렵하게 뛰어올라 깨알같이 붙어 있기도 했다.

천마산에 가서 처음 족도리풀을 보았을 때 내 어린 시절의 꽃밭, 그 꽃밭에서 착하게 자라나던 흙 묻은 식물들이 생각났다. 연지곤지 찍고 시집가는 새색시가 일생에 한번 쓰는 족두리. 그 족두리를 닮은 꽃이라 하여 제 이름을 얻은 족도리풀. 흔한 줄기나 대궁도 없이 뿌리에서 바로 잎자루가 올라오고 그 끝에 심장 같은 잎이 한 장씩 달리는 족도리풀. 지면에 딱 들러붙어 있기에 흙과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족도리풀. 시집가는 누이처럼 무슨 부끄러움이 그리도 많은지 좀체 얼굴을 들지 않는 족도리풀. 꽃잎은 없고 꽃받침통으로 땅을 괸 채 주로 숲속의 후미진 응달에서 세상의 고요를 고요히 바라보는 족도리풀. 쥐방울덩굴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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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민복) 이는 거대한 은유일 뿐만 아니라 사실의 정확한 진술이기도 하다. 청와대 뒤 북악산에 가 보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완고한 철조망에 드문드문 호제비꽃 혹은 서양민들레가 딱 붙어 피어 있는 것을. 경계병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전혀 주눅 드는 법 없이 나비는 이편저편을 마구잡이로 횡행하고 다니는 것을. 효자동에서 인왕산으로 올라가자면 인간의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식물의 동네는 시작된다. 그 경계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난다. 나의 일천한 관찰에 따르면 가을이면 보라색 닭의장풀, 봄이면 노란색 애기똥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중에서도 가장 절정은 꽃봉오리인 아기들. 줄기나 잎을 찢으면 아기들의 향기로운 똥 같은 노란 즙이 나온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애기똥풀. 따지고 보면 아기울음 들리는 곳은 전생과 이승의 한 접면이기도 하리라. 우리는 누구나 그 경계를 기적처럼 통과한 뒤 이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흰 기저귀에 노란 똥을 마구마구 묻히며, 더러 닭똥 같은 눈물도 흘리며 자라난다. “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 외부로 열린 그대의 창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 그대가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그대의 창은 하나둘 늘어난다.”(이성복) 아이는 부모라는 집에 뚫린 유리창. 부모는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창문이 없다면 바깥을 보지 못하듯 아이가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던진 돌팔매에 그만 유리창이 깨져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의 통곡 소리가 흘러넘치는 우리 동네. 그러잖아도 아기들의 웃음소리는 끊긴 지 이미 오래인 우리 동네의 시멘트 담벼락에는 죄없는 애기똥풀만 무심하게 피어 있다. 노오랗게 피어 있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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