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이굴기의 꽃산 꽃글'에 해당되는 글 212건

  1. 2015.03.02 백부자
  2. 2015.02.23 노루귀
  3. 2015.02.16 회양목
  4. 2015.02.09 은행나무
  5. 2015.02.02 회화나무
  6. 2015.01.26 삽주
  7. 2015.01.19 수양버들
  8. 2015.01.12 당단풍나무
  9. 2015.01.05 호박
  10. 2014.12.29 은꿩의다리
  11. 2014.12.22 아까시나무
  12. 2014.12.15 난티나무
  13. 2014.12.08 노루오줌
  14. 2014.12.01 달맞이꽃
  15. 2014.11.24 신갈나무
  16. 2014.11.17 개불알꽃
  17. 2014.11.10 분홍장구채
  18. 2014.11.03 물푸레나무
  19. 2014.10.27 풀솜대
  20. 2014.10.20 방석나물


오십여년 전의 섣달그믐밤. 이날 자면 눈썹이 센다고 했다. 호롱불 아래에서 용을 써보지만 이내 잠에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정말로 눈썹이 하얘졌다. 짓궂은 형이 밀가루를 뿌린 것이다. 며칠 전 그믐밤. 누가 뿌리고 도망갔나. 형님이나 나나 눈썹 대신 머리칼이 하얗다. 쉽게 잠들지 못해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어느 케이블에서 틀어주는 영화 <서편제>. 채널을 돌릴까 하다가 인물보다는 배경을 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참에 확인할 사항도 있었다.

지난 늦가을, 추수하는 기분으로 이 산 저 산을 기웃거렸다. 쨍한 날들은 가고 한 해의 뒤끝을 감당하는 꽃들이 저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터널이 뚫려 이제는 인적 끊긴 강원도의 어느 고개에서 백부자(白附子)를 보았다. 부자라고 하는 그것의 덩이뿌리는 맹독성이다. 독하나 귀한 꽃을 찍는데 바람결에 들리는 이야기. “<서편제>에서 딸의 눈을 멀게 한 게 바로 이게 아니겠능교!” 듣고 보니 망울을 터트리기 직전의 꽃이 조금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되려다 만 듯한 얼굴, 표정을 지으려다 만 듯한 표정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판소리의 쫀득한 맛에 집중하니 예전과는 다른 영화의 감흥이 일어났다. 짧은 귀동냥을 했다고 배경 속의 나무와 꽃도 이름을 알 만한 것이 제법 되었다. 중반에 이르자 마침내 유봉의 대사가 나왔다. “근데 한약 쓰는디 부자를 과하게 넣으면 눈이 먼다던데 정말 그런가 모르겄어.” 아무리 한(恨)을 위한 것이라지만 너무하다 싶어 원작에서 확인해보았더니 시나리오가 소설보다 차라리 은근했다. “여자의 아비가 잠든 계집자식 눈 속에 청강수를 몰래 찍어 넣은 것이라 했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후반부에 단가 ‘사철가’가 나왔다. 설 음식의 기름기가 진동하는 입안을 그 소리로 헹구는 것으로 내 을미년의 봄을 영접하기로 했다. 반백 아래 검은 눈동자를 문지르면서. 갑오년의 끝자락에서 만난 백부자의 난해한 얼굴도 떠올리면서. 멸종위기식물 2급의 독초.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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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으로 조합된 사전 속의 많은 낱말 중에서 ‘봄’이란 단어에 새삼 움찔해지는 요즈음이다. 우리 산하의 골짜기마다에도 이런저런 기운이 모이고 연결되어서 수많은 꽃들이 배열된다. 남녘에서부터 벌써 복수초,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등 을미산(乙未産) 야생화들의 개화 소식이 훈훈한 바람결을 타고 북상한다. 입춘 지나고 이제 곧 경칩이 되면 달콤한 봄비에 등짝을 맞으며 개구리도 뛰어나오겠지만 그보다 먼저 땅을 헤치고 등장하는 건 노루귀이다.

잎이 올라올 때 노루의 귀처럼 동그랗게 말린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노루귀. 잔털이 잎과 줄기에 빼곡하게 나부낀다. 노루를 직접 본 적 없으니 송아지의 그것처럼 간지럽고 정다웠다. 웬만한 산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야생화이지만 나에겐 작년 안양의 수리산에서 본 것이 으뜸이었다. 제대로 피진 못했지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 노루귀.

세상이라고 하는 큰 책의 갈피 같은 수리산 골짜기에서 변산바람꽃이 일제히 눈을 호렸다. 그 연약한 바람꽃의 꽃잎에도 마음이 글썽이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드물게 솟아난 노루귀를 발견하고는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졌다. 어느 죄 없는 짐승이 포수에게 맞고 흘린 듯 골짜기 사면에 흩어진 붉은 핏자국. 수리산 노루귀의 색깔이 유독 붉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 겨울이 채 물러나지 않는 냉랭한 그늘 탓일까. 그해 처음 제대로 보는 꽃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꽃 관찰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 올라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간판 하나를 보았다.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을 기념하는 그곳에 “이곳 수리산은 (…) 육군 51사단, 미 25사단과 터키 여단 1개 대대가 (…) 전투를 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 국군 전사자 유해 4구, 사진 및 수첩 등 유품 621점을 발굴하여 뒤늦게나마 조국의 품인 국립현충원에 모실 수 있었습니다”라고 적혀 있거늘, 어찌 이 골짜기의 지하에서 올라온 노루귀의 유난스레 붉은 기운을 내 눈의 착각 탓만으로 돌릴 수 있겠는가. 노루귀 앞에서 엎드렸다가 일어날 때 노루귀라고 괜히 한번 더 부르고 싶어지는 노루귀.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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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산 걷는 길. 와룡공원에서 시작해 숙정문, 청운대를 지나 창의문으로 빠지는 고개에서 백악마루로 오르는 길목에 이런 푯말이 있다. “손톱 크기 남짓한 작은 잎에다 사람 키 두 배 정도 자라는 자그마한 늘푸른나무입니다. 오늘날은 정원 주위에 장식용으로 심는 경계나무일 뿐이지만, 옛날에는 나무 활자를 만들고 정교한 목판을 새기는 데에 쓰였습니다. 우리의 찬란한 인쇄문화를 책임지던 역사를 가진 나무입니다.”

관상용으로 잘 다듬어진 나무라 이렇다 할 흥미를 끌진 못했지만 그 나무의 이력이 나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는 물론 출근길 화단에서도 늘 마주치는 나무, 회양목이었다. 까까머리 시절부터 반백의 오늘까지 나를 쭉 호위해온 나무. 어쩌면 나중 무덤 앞에 서서 내 이승의 경계를 지켜줄 나무일 수도 있겠다. 그런 나무에 대해 저런 설명까지 보니 그간 밥벌이를 책임져준 출판업의 종사자로서 어찌 특별한 감회가 없을 수 있겠는가, 회양목.

꽃동무들과 남원시외버스터미널 근처 허름한 여관에 묵었다. 춘향의 향기 묻은 이 지역의 지하수로 세수를 했다. 쫄쫄쫄 빈약하게 나오는지라 손바닥을 마주 대고 물을 받았는데, 손가락만 잘 조절하면 그게 꼭 거꾸로 펼친 세계지도와 대강 닮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손금을 타고 흐르는 물이 손목을 적실 때 돋아나는 파란 혈관. 내 목숨이 힘겹게 지나가는 자리였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던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이 손바닥을 벗어나질 못하겠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비행기나 이불, 휴대폰도 좋지만 책 만드는 일은 더욱 좋지 않은가.

금계마을에서 출발해 벽송사를 거쳐 송전마을까지의 둘레길. 용유담 물가로 내려서니 작은 바위에 붙어 자라는 나무가 있다. 이제껏 제법 두루두루 돌아다닌 산행에서 처음 만난, 자생하는 회양목이었다. 바위에는 외계의 문자인 듯 잔설이 희끗희끗하고 소나무가 가는 잎을 떨어뜨려 난해한 기호를 적고 있다. 끼리끼리 모인 이끼는 지금 저들의 세계지도를 그려내고 있는 중인가. 죽어서 글자를 새겼고 살아선 바위를 뚫고 있는 회양목. 회양목과의 상록 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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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아무리 승하다 해도 천하에는 여지가 많다. 벌써 땅의 피부를 뚫고 도약하는 생명의 기운이 도처에서 발발하고 있다. 한자 生(생)은 초목이 땅을 뚫고 위로 일어나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그러니 수직과 수평의 선을 꿴 뒤 날렵한 사선을 얹어놓은 총 5획의 저 글자는 동물의 팔과 다리가 아니라 식물의 줄기와 가지에서 유래한 셈이라 할 수 있겠다.

나무는 떡잎 하나에서 출발하여 각자 맞춤한 높이로 자란다. 줄기가 올라가고 옆으로 가지가 뻗고 잎이 달린다. 나무의 겨드랑이마다에는 제 식솔인 가지와 잎을 건사하려는 안간힘! 어쩌면 참으로 시시하게 자라는 것 같더니 높은 곳으로 훌쩍 나아간 나무 앞에 서면 문득 숙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다 집짓는 일에 관여하면서 성균관대학교를 드나들게 되었다. 명륜당 앞 수령 500년의 은행나무. 어떻게 하면 자연이 보유한 저 위대한 건축술을 조금이나마 흉내낼 수 있을까. 산으로 가지 않고 이 도심에서 웬 나무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착각하지 말자. 이곳도 원래는 다 산이었다. 장소가 장소였나. 하늘을 찌를 듯 가지를 저어 공중으로 진출한 나무를 보는데 공자 생각이 났다. 지우학(志于學), 이립(而立), 불혹(不惑), 지천명(知天命), 이순(耳順)의 단계로 완성되는 생애. 공자는 이런 은행나무 노거수 아래에서 자신의 생을 정리한 게 아니었을까.

나무는 해마다 안으로 나이테를 그리고 밖으로 한 층의 가지를 더 얹는다. 그리하여 어느덧 발아래를 까마득히 굽어보는 높이에 이른 은행나무. 그 나무를 관찰해 보면 가늘어진 가지 끝으로 공중을 더듬으면서 하늘 속으로 자신의 전부를 풍덩 던지고 있다. 푸른 사방의 어느 곳과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서로 어울리는 은행나무. 이제 나무는 마음먹은 대로 움직여도 스스로 거스르는 법이 없는 이른바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의 경지에 도달한 것만 같았다. 굵고 짧은 단지(短枝)가 하늘로 가는 사다리처럼 잘 발달한 은행나무. 은행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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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살아오는 동안 사흘짜리 새해 결심을 다지는 방법은 연년각각이었다. 산에 오르거나, 바다를 찾거나 혹은 새 달력 아래에서 손발톱을 깎거나. 국악방송에 다이얼을 맞추고 이어질 듯 끊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수제천(壽齊天)의 장엄한 가락에 귀를 씻기도 했다.

어쩌다가 일년의 시작을 겨울에 두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월의 매듭을 짓고 풀 때마다 다이어리 속의 수상한 아라비아 숫자만큼이나 들과 산에 숨어 있는 식물의 동태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라도 빨리 꽃소식을 염탐하러 남녘으로 나서는 건 새해를 여는 최근의 방식이다. 경주에서 감포로 넘어가는 추령터널 근처에서 기림사~이견대~대왕암으로 가는 샛길로 접어들었다. 기지개를 켤까 망설이는 앉은뱅이 풀들과 구름의 재료를 공급하겠다는 듯 뭉클뭉클 연기를 올려 보내는 낮은 굴뚝. 쌀쌀한 산촌(散村)의 좁은 옛길을 걸어 모차골에 이르니 이런 안내판이 있다. “왕의 길. 이 길은 용성국의 왕자인 석탈해가 신라로 잠입하던 길이며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장례행차길이며 신문왕이 용이 되신 부왕인 문무왕에게 신라의 보배인 옥대와 만파식적을 얻기 위해 행차했던 길이기도 하다.”

전설로만 남은 만파식적으로 수제천을 연주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재위기간 고작 반나절의 왕이라도 된 어마어마한 기분으로 ‘왕의 길’을 걸어 마침내 신라시대엔 불국사를 말사로 거느렸다는 천년 고찰인 기림사에 도착했다. 절의 뒷마당으로 가는 초입에 서 있는 나무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회화(槐花)나무였다.

나무(木)와 귀신(鬼)을 합친 괴(槐)로 표기하되 회화로 읽는 나무 이름. 잡귀를 물리치는 신통력이 있어 궁궐, 서원, 향교 등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림사는 제 입구에 회화나무를 세워두었고 나는 올해의 입구에서 이 나무를 만난 것이렷다. 우람한 나무를 경배하듯 쳐다보며 동정(同定)에 몰두하는 꽃동무들. 나무와 사람이 어우러진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답니다, 회화나무여. 콩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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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의 늦은 밤, 폭설이 내려 내일 출근길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기상특보가 떴다. 창문을 열고 뜻밖의 눈 구경을 할까, 마음만 먹다가 기우뚱 잠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침에 버스를 탔더니 운전석 바로 뒤편 창가에 의외의 물건이 눈에 띄는 게 아닌가. 묶인 폼으로 보아 갑자기 설치한 것은 아니었고 간밤 눈 소식의 여파로 비로소 내 눈이 알아채는 듯했다. 불에 대비해서 소화기를 구비하듯 물(눈)에 대비한 도구인 삽이었다.

삽질이라고 어디 다 같은 삽질이겠나. 미끄러운 고개를 오르다가 동력을 잃고 헛바퀴가 돌아서 곤란한 지경에 처했을 때 슥슥 내려서 눈과 얼음을 삭삭 해치우는 삽이 늠름하고 대견해 보였다. 제가 필요해지는 때를 기다리면서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삽. 그간의 활약이 대단했던 듯 삽자루는 때가 까맣게 절어 있었다. 재질이 나무인 삽자루를 보면서 버릇처럼 식물과 연결시켜 보았다. 목질이 단단한 물푸레나무가 농기구에 많이 사용된다는데 혹 저 삽자루도 그쪽 출신일까. 몇몇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삽나무가 있다면 딱이겠는데 실제로 그런 나무는 없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오로지 삽과 이름만으로 연결되는 야생화가 떠올랐다. 고집불통처럼 아주 뻣뻣하게 보이는 삽주였다. 겨우 무릎 아래의 높이지만 제자리를 야무지게 차지하고 있다는 느낌의 식물이다. 특히 잎의 가장자리마다 가시 같은 톱니가 도드라지는 삽주.

이 버스가 종점으로 가듯 나에게도 종점은 있다. 오늘은 비록 비켜나지만 마침내 그곳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삽이 있다. 그대도 한없이 찧고 까불더니만 결국은 별 수 없이 여기까지로군요, 하면서 나의 일생을 둥그렇게 완성시키는 삽! 남은 가족들이 내 누워 있는 곳으로 마지막 요기를 건네듯 눈물과 함께 한 움큼의 흙을 던져주는 것도 삽이다. 그렇게 말없이 등을 토닥거리면서 삽은 마침표 하나를 찍겠지. 시골 헛간에서 손에 익은 농기구를 만나듯 시내버스에서 만난 정다운 물건, 삽. 그 삽 앞에서 잠깐이나마 생각의 삽질을 제법 했다. 삽자루, 삽나무, 종점. 그리고 올여름에 더욱 반갑게 만나야 할 삽주.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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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삐끗해서 신년 연휴에 산으로 들지 못했다. 고작 나무의 허리춤에나 겨우 견줄 만한 높이였지만 달력을 교체하는데 큰 한숨이 나왔다. 빈둥빈둥 뒹굴다가 팔다리를 휘휘 저으면 그야말로 시간의 강을 떠내려가는 조각배라도 된 기분이었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는데 신년벽두 특집방송인 <백두산-하늘과 바람의 땅>이 걸려들었다. 1편은 백두의 자연과 생태, 천지와 구름, 그리고 야생화를 집중해서 다루었다. 이 엄동설한에 두메양귀비, 하늘매발톱, 가솔송, 날개하늘나리 등 오뉴월의 귀한 꽃들!

2편은 백두고원 골골마다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삶이었다. 저마다 곡진한 이야기 가운데 잎갈나무 굴뚝이 내굴(매운 연기)을 잘 빨아내는 지린성 허룽시 백리촌의 강옥미 할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열여섯 살 때 재가한 모친에게 외할머니를 모셔다 드리려고 고향인 평양을 떠났다. 하지만 차마 외할머니와 떨어질 수 없어 백두산에 그대로 주저앉았다고 했다. “여기에 눌러 앉으니까 속절없이 인간수업, 성공도 못하고 땅을 뒤지면서 땅에서 낟알을 주워 먹고 삽니다.” 경상도 밀양 출신의 남편을 만나 5남매를 키우고, 셋째딸을 한국으로 시집 보낸 할머니. 강 할머니의 선한 눈매가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꽃에 꽂혔다지만 이런 깜냥은 그래도 귀에 꽂아두고 산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우리나라의 버드나무는 그 종류가 제법 많다. 이제껏 본 건 호랑버들, 갯버들, 왕버들뿐이다. 생각건대 수양버들이 눈으로 아니 들어왔을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접할 줄 몰랐으니 아니 본 바와 진배없다. 봄이 오면 수양버들을 찾아 두리번거려야겠다. 어려서 첼로를 배웠고 울적하면 노래로 시름을 달랜다는 강옥미 할머니. 옌볜노래자랑대잔치의 우수상에 빛나는 그 할머니의 꾀꼬리 같은 노래, ‘백두산의 눈물’이 귀에 쟁쟁하기 때문이다. “수양버들 휘늘어진 시냇가에서 너는 신랑 나는 각시 약속하였네/ (……)/ 사랑아 내 사랑아 가지를 말아다오 석양 노을 붉어주니 알아주려나.” 수양버들, 버드나무과의 낙엽 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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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기나긴 폭우 끝에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이거니 했다. 바람을 이용해서 힘껏 뿌리치려고 안달해보지만 한번 붙들린 그 별은 도무지 나무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을이 오도록 가지의 포로가 된 별들이 마침내 벌컥 화를 냈다. 그러다가 문득 떠난다는 기별도 없이 그냥 툭 떨어지는 단풍낙엽들. 약간의 과장을 더해서 살펴본 나뭇잎들의 일생이다.

겨울이 오고 눈이 오고 새해도 왔다. 꽃 하나 없는 이 사나운 계절에 무얼 보러 산으로 가느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겨울산은 소리 없는 변화를 엮어내느라 분주하기만 하다. 어서 세상으로 외출하겠다고 아우성치는 겨울눈, 잎이 떨어져나간 흔적인 엽흔(葉痕), 그리고 가지마다 쌓인 눈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눈은 포식을 하고도 남는다.

냉랭한 겨울산으로 들면 잎들은 귀향하듯 땅에 떨어지고 흙으로 녹아든 지 오래이다. 그런 와중에 당단풍나무는 특별한 장치를 하고 있다. 촘촘하던 색깔과 물기가 모두 달아난 작년의 잎을 그대로 달고 있는 것이다. 한때 별처럼 반짝거렸으나 이제는 바짝 마른 잎사귀들. 무슨 미련이 아직도 남았길래 나무는 이처럼 과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것일까.

얼핏 보면 곧 도래할 봄을 맞이하면서 갱신(更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듯 쥐다 만 주먹 같지만 다시 보면 작은 포클레인처럼 꼬부라졌다. 일조량이 팍 줄어들어 겨우 햇빛을 쬘 수 있는 겨울. 그냥 주르륵 흘러내리는 햇빛을 조금이나마 더 퍼담으려고 하는 노력일까. 쓸쓸한 추위 속에서 안간힘을 다해 공중의 온기를 나무에게 전해주려는 뜻일까. 그 비스듬히 벌어진 그릇 안에는 새끼손가락 하나 정도는 너끈히 데울 만큼의 따뜻한 햇볕!

발 있는 것들은 평생 돌아다녀 보았자 무좀이나 키우고 헛걸음에 불과한 이력(履歷)을 쌓을 뿐이다. 그러니 저 조막만 한 햇빛주머니를 지나칠 때, 나무는 가지 끝마다 뇌(腦)를 장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어찌 안 할 도리가 있겠는가. 당단풍나무, 단풍나무과의 낙엽 소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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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두루 꿰는 한 톨의 지식도 내겐 없지만 세월의 한 고비를 넘자니 조그만 용심 하나가 일어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기억도 까마득한 중학교 시절, 교과서에서나 배웠던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글자 바깥의 실제 세상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로 만날 줄이야. 그 네 글자를 배울 때, 이해를 돕는 조잡한 삽화에 등장하였던 인물들은 어린 내 소견에도 그 얼마나 등신 같고 한심하였던가. 그런 갑오년을 지나고 을미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올해 간지에 해당하는 양(羊) 이야기가 사방에 넘친다. 참으로 뒤죽박죽인 세상에서 상투적인 열두 띠의 동물 대신 내 나름의 식물 하나를 궁리해 보기로 했다.


호박꽃도 꽃이냐, 라고 우리가 어리석게 말할 때의 그 호박이었다. 참 아무렇지 않게 생긴 호박이지만 그를 세상의 중심에 놓을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아침에 호박을 먹었다. 한 숟가락 잘람잘람 된장국을 떠먹을 때 호박 한 조각은 포함되었을 것이다. 현명한 주부라면 멸치와 된장만으로 멀건 국을 끓이진 않았을 터이다. 비록 눈치를 못 챘을지라도 그가 오전을 견딘 기운이 실은 호박의 달큰한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오늘 나는 아침식사를 건너뛰었다. 저녁에는 술집에서 신년모임이 있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막걸리에 어울리는 모듬전 소쿠리에서 호박전이 가장 빨리 사라진다. 그러고 보면 이 땅에 살면서 사흘이 지나도록 호박 한 조각 섭취 안 하기란 정말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작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대접한 메뉴에도 어김없이 애호박전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어디 호박의 열매만이랴. 호박의 꽃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호박은 혼자 사는 법이 없다. 얼크러설크러져 있다. 무더기 지어 뻗어가는 줄기와 넓적한 잎의 호위를 받으며 꽃들이 피어난다. 수꽃에는 수술이 그것처럼 푹 튀어나와 있고 암꽃에는 호박이 달리고. 너를 두고 우주의 배꼽이라 한들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랴, 호박꽃! 박과의 덩굴성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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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한글인 다리는 그 뜻이 자못 이중적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몸통 아래 붙어 있는 신체의 부분으로 서고 걷고 뛰는 일 따위를 맡아 한다. 다리가 없다면 동물은 식물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한편 안경다리, 책상다리의 예에서 보듯 그것에 붙어서 그것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다리이다.

다리는 왜 다리일까. 다리는 또 큰 뜻을 가지니 그것은 널리 아는 바와 같다. 그 다리를 걷고 건너서 여기까지 와서 잠시 머물다가 또 그 어디로 간다. 우리가 가만히 있다면 여기에서 저기로 갈 수 없지만 오늘에서 내일로 갈 수는 있다. 그러니 지금 딛고 있는 둥근 지구는 우주에 놓인 징검다리이고 나의 몸은 그 어디로 연결된 다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식물에는 다리가 없지만 식물 이름에는 ‘다리’가 들어가는 게 제법 많다. 한국의 에델바이스에 흔히 비견되는 솜다리류(類)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표기만 다리일 뿐 그 뜻은 다리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외에도 낙지다리가 있다. 전국의 습지나 물가에 자라는 풀로 꽃이나 열매가 낙지의 다리처럼 달린다고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다리라는 뜻을 제대로 담아내는 식물은 따로 있다. 금꿩의다리, 꼭지연잎꿩의다리, 꽃꿩의다리, 산꿩의다리, 자주꿩의다리, 발톱꿩의다리. 이들은 말뜻 그대로 모두 꿩의 다리를 닮은 가족들이다. 바라만 보아도 곧 부러질 것 같은 가늘고 긴 줄기라서 그런 이름을 가진 것일까.

우리 모두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존재’들. 세밑에 서서 흘러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다리에까지 이르렀다. 생의 깔딱고개라 할 오십의 나이도 훌쩍 지나고 또 한 고비를 지난다. 이제 나도 늙다리에 속하는 축에 들었구나, 새삼 탄식하는데 지난가을 내장산에서 본 은꿩의다리가 떠올랐다. 흡사 허공 속의 그 어딘가로 이어주는 징검다리처럼 공중에 흩어진 꽃들. 숱한 발걸음이 오가는 길가에 호젓하게 피어나 내 남은 길의 끝을 가늠케 해 주었던 은꿩의다리.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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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다. 먼 곳에서 온 손님을 앉아서 맞을 수는 없어 인왕산으로 갔다. 호젓한 능선과 깔딱고개가 구비되어 있기에 가쁜 숨을 토해내야 했다.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는데 어느덧 정상이다. 눈은 땅에서 솟아나지 않았고 분명 하늘에서 온 물질이다. 저 푸른 곳에서 떨어져 나왔는데 왜 흰색일까. 나의 시선은 힌트가 될 만한 흰 구름을 딛고 멀리멀리 나아갔다.

몇 해 전 해돋이 보러 갔던 감포의 대왕암 앞바다가 떠오른 것이었다. 거칠 것 없이 출렁이는 바닷가. 바다에 소금이 없어 밍밍하다면 바다는 바다일 수 없을 것이다. 검푸른 바닷물은 모래밭에 몰려와서는 모두들 흰 거품으로 까무러친다. 바닷물이 마지막에 흰색으로 표현되는 건 흰 소금과 모종의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오늘따라 흔감한 기분으로 내려오는 길. 인왕산 허리의 전망대에 서면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 울긋불긋 뽐내는 문명의 색들을 모두 더한다면 아주 지독한 검은색이 될 것이다. 아주 가까이에는 코끝에 닿을 듯 아까시나무가 서 있었다. 콩보다 납작한 열매의 꼬투리를 달고 있는 저 나무는 콩과식물이다. 오늘 아침에 먹은 콩나물과 같은 가족인 셈이다. 지금 내 머릿속을 찌르는 건 나무의 가시나 줄기가 아니었다. 나의 궁리는 아까시나무의 뿌리로 뻗어갔다. 뿌리는 나무를 탄탄히 떠받치는 역할을 하는 한편 물을 찾아 캄캄한 흙 속을 헤매고 있다. 세계의 한 끝을 찾아 물과 닿는 뿌리들. 볼 수는 없지만 모두들 흰색에 가깝지 않을까.

세상의 배후를 짐작하게 하는 일련의 색깔에 대해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주위에 있는 등산객들의 머리에 자연스럽게 눈길이 갔다. 모두들 희끗희끗해지는 육체의 끝. 누구는 염색약으로 가리기도 했지만 솟아나는 머리카락의 흰색은 감출 수가 없다. 나의 그것 또한 예외일 수는 없다. 그 어느 마지막을 향하는 몸이 길어올리는 색깔은 구름, 소금, 뿌리와 긴밀히 내통하는 것! 우리가 뿌리 있는 한 그루 나무라면 불안이 저 가시처럼 자라나겠지. 그래서 한번 더 눈길이 가는 아까시나무. 콩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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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버스를 기다린다. 더디 오는 버스의 행방을 하늘에 물어볼까. 고개를 들면 가로수가 척 가로막는다. 잎도 열매도 모두 아래로 줘버렸다. 12월의 찬 기온을 알몸으로 감당하고 있는 홋홋한 느티나무. 식물학자들은 꽃이나 열매를 분류의 기준으로 삼지만 초보자는 수피, 가지, 냄새 등의 특징을 본다. 어느 땐 잎의 모양을 보기도 한다. 이제는 다 떨어지고 흔적만 남은 나뭇잎에 대해 생각해 본다. 잎은 둥글고 넓적하며 편평하게 달려 있다. 가급적 햇빛을 많이 쬐어 광합성을 풍부히 하겠다는 뜻이다.

떡갈나무처럼 거의 없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잎자루는 가늘고 긴 형태로 가지에 연결된다. 손잡이가 가늘고 길쭉할수록 부채가 바람을 쉽게 만들어내듯 잎자루도 그런 구조일수록 나뭇잎은 잘 흔들린다. 나무는 잎의 뒷면에 난 기공을 통해 숨을 쉬고 신진대사를 하는데 잎이 잘 흔들려야 이들의 순환이 잘되는 것이다.

잎자루가 잘록해서 그래서 나뭇잎이 잘 흔들리도록 설계된 것은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봄, 여름, 가을을 거치면서 흔들릴 대로 흔들린 나뭇잎. 이제 그 잎이 떠나야 할 때를 알고 떨어지고 싶은 순간. 서슴없이, 간단히, 쉽게, 그냥 툭 떨어지기 위해서. 떨어져서도 낙엽의 삿대가 되어 얼른 떠나기 위해서. 상처도 없이, 미련도 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잎에 대해 생각하는데 울릉도에서 본 아주 인상적인 나뭇잎이 떠올랐다.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가지 끝에 우뚝 달려 있던 난티나무의 잎들. 황혼녘 머릿속에서 부엉이가 훌쩍 날아가고 시선을 거두면, 나의 몸에도 그런 장치가 있는 것을 새삼 발견한다. 그것도 두 군데나 있다는 것을. 그 맨 아래쪽은 복사뼈 근처의 잘록, 잘록한 발목!

이윽고 집으로 가는 버스가 저무는 하늘을 업고 나타났다. 나는 안다. 저 곱상한 공중에 눈과 비, 천둥과 벼락이 숨어 있다는 것을. 나뭇잎은 나무의 혀였던가. 떠날 때도 말없이. 난티나무는 난티나무. 느릅나뭇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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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다보면 하고많은 간판 중에서도 식당이 잘 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눈이 저절로 돌아가는 건 목구멍 깊숙이 연결된 식탐과 반응하기 때문일 것이다. 재래시장 근처에서는 더욱 그렇다. 설설 뿜는 흰 연기 사이의 붉은색 메뉴들은 왜 이리도 자극적인가. 우리나라 음식 이름은 좀 잔인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칼은 보이지 않지만 피가 흥건하다.

돼지 한 마리를 낱낱이 분해해서 그 부위별 명칭을 그대로 요리 이름으로 쓴다.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갈매기살, 돼지갈비, 껍데기, 곱창, 등뼈, 족발 그리고 눌린 돼지머리까지. 소를 대우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갈가리 토막 내서 구워 먹고 삶아 먹는다. 날것으로 육회, 건조해서 육포로 먹기도 한다. 소갈비, 등심, 소간, 우족, 도가니, 소머리국밥, 꼬리곰탕까지.

산중에서 걷다보면 아래에서의 일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제 모두 꽃은 내년을 기약하며 침묵 속으로 들어갔다. 벌겋게 달군 불판 옆으로 모이는 송년회 자리에서 모처럼 얼굴을 확인하듯 올해 본 꽃들을 호명해본다. 이런 이름의 야생화도 있다. 노루귀, 괭이눈, 다람쥐꼬리, 돼지풀, 낙지다리, 개구리발톱, 강아지풀, 꿩의다리, 범꼬리까지.

이름으로는 작고 여린 것들이지만 한 계절을 살아도 모두들 저마다의 웅장한 세계! 그것이 없었다면 그곳의 자연은 성립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중에서 특히 생각나는 게 있다. 어느 여름 소백산 능선에서 칼바람을 맞고 내려오다가 만난 노루오줌. 그 오묘한 식물을 만나고 와서 이렇게 썼다. 이처럼 꼿꼿하면서도 부드러운 분수가 어디 또 있겠는가. 처음 뿌리에 닿았던 물이 차츰차츰 차고 올라 이런 높이까지 도달했다. 그도 이런 위치까지 오를 줄은 몰랐던가 보다. 그것은 한번 차올랐다가 떨어지기에는 아쉬운 듯 한번 더 갈래를 뻗어 오른다. 그러다가 그냥 주저앉기에는 억울하다는 듯 공중에 잠시 머무는 중. 가장 멀리 날아감직한 각도를 비스듬히 유지한 채. 노루의 것으로 확인된 바 없지만 뿌리에서 지린내가 난다고 해서 노루오줌. 범의귀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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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로제타호는 2004년 3월 지구를 떠나 시속 6만6000㎞로 64억㎞를 비행한 끝에 혜성에 도착했다. 소설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이 놀라운 소식을 손바닥에서 접했다. 갤럭시, 안드로이드, 삼성, LG(금성), 구글 등처럼 휴대폰과 관련해서 별과 관련된 말이 많다. 하늘의 별도 아니면서 별인 척하는 것에 왜 머리를 빠트리고 살았을까. 로제타가 어두운 창공을 나는 10년8개월 동안 나는 무슨 궁리를 하였던가. 모처럼 고개를 펴고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멍하게,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로제타호의 이름은 로제타스톤에서 빌린 것이다. 그 돌이 이집트 문명의 비밀을 푼 것처럼 그 이름에 태양계의 수수께끼를 풀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로제타는 돌이 발견된 나일강 연안의 항구도시이다. 그렇다면 그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사람 사는 원리는 다 비슷할진대 목화가 많아서 우리나라의 목포(木浦)인 것처럼 혹 이집트의 로제타에는 장미꽃이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다가 시선을 구부려 발밑을 보았다. 까마득히 가물거리는 저 하늘 끝에 있을 로제타호에서 로제트라는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로제트란 특정 식물은 아니고 근생엽이 장미꽃 모양의 방사상으로 땅 위에 퍼져 나는 것을 통칭하는 용어다. 땅에 바짝 붙어 바람도 피하고, 지열을 이용하여 겨울을 나는 로제트형 식물들. 봄꽃이나 가을단풍에 하나 꿇릴 것 없는 겨울잎으로 사나운 계절을 슬기롭게 이겨내는 식물의 지혜인 셈이다. 봄이 되면 로제트 식물은 차츰차츰 공중으로 진출한다. 땅에서 꽃까지의 서너 뼘 남짓한 여정이 지구에서 혜성까지의 여행만큼이나 엄숙하고 위대한 모험!

로제타호는 발사 후 지구와 화성의 타원 궤도로 돌면서 혜성까지 갔다고 한다. 여러 시공간에서 그 중첩된 궤적을 추적하면 로제트 무늬를 닮았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상상해 본다. 캄캄한 밤에 피었다가 아침이면 오히려 시드는 가장 대표적인 로제트 식물, 달맞이꽃 옆에서. 바늘꽃과의 두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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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의 우리나라. 면적만으론 그리 큰 땅이 아닐지라도 둘레를 따지면 심오한 구석이 많다. 이런 평가가 있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어 매우 긴 해안선을 갖고 있다. 이는 미래를 위해 상당히 중요한 자원이다.”(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 시력 탓도 있겠지만 그 테두리를 제자리에서 다 볼 수는 없다. 내 키가 너무 작아서.

대륙에 연결된 한반도. 산악지대가 70% 이상으로 산세가 옹골차게 빼어나다. 우리 사는 곳은 낮은 데라서 어디를 둘러보아도 하늘을 배경으로 산들이 눈에 척 걸려들기 마련이다. 해안선(海岸線)이니만큼 천안선(天岸線)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 흐뭇한 곡선은 아주 잘 보인다. 나의 높이가 너무나 낮아서.

무릇 모든 일과 사물에는 급소가 있는 법이다. 나의 급소는 언제나 너였다. 잔잔히 노래하던 가수가 급소에 이르자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이때 잠깐 드러나는 치열(齒列) 구조는 어쩌면 그리 말발굽을 닮았는가. 멀리 꽃산행을 가고 오다가 차창 밖으로 능선을 본다. 천의무봉한 바느질 자국처럼 나무들이 빽빽이 서 있다. 산림청에서 발표한 생태지도(ecology map)에 따르면 백두대간에서 교목은 신갈나무, 관목은 철쭉이 가장 많이 분포한다고 한다. 그러니 높고 외롭고 쓸쓸한 저곳에는 신갈나무를 비롯해 참나무 가족들이 있을 공산이 크다. 그 나무들은 어쩌면 그렇게 얼룩말의 구부정한 목에서 휘날리는 갈기 같은가.

땅거미가 목덜미를 덮칠 때, 갯벌처럼 우툴두툴한 입천장을 더듬으며 사방의 능선을 유심히 보라. 세상의 모든 산들은 땅을 박차고 그 어딘가로 달려가는 얼룩말떼! 하늘과 산의 접면에서 울타리처럼 지키고 서 있는 신갈나무 아래로 힝힝거리고 쌕쌕거리고 푸들거리는 콧김 소리가 세상에 가득 찼다. 우리를 그 어딘가로 운반하는 신발(짚신)에 잎을 깔창처럼 갈아 신는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고도 하는 신갈나무. 참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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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 도솔암,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 지리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일곱 암자다. 주말이면 이 암자를 도는 순례자의 발길이 가랑잎처럼 쌓인다. 그 첫번째인 영원사의 소슬한 마당에 들어서니 천왕봉을 필두로 지리산의 장엄한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영원사의 법당 옆으로 새로 지은 요사채가 있었다. 지리가 빚어내는 풍광을 제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듯 삼면이 모두 유리창인 건물이었다. 스님이 큰 유리창을 정성스럽게 닦고 있었다. 먼지 하나가 묻으면 그만큼의 풍경을 방해라도 한다는 듯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걸레질을 하고 계셨다.

허락을 받고 갓 태어난 방으로 들어갔다. 함부로 뒹굴던 풍경이 유리창 안으로 쫄깃하게 수렴되는 게 바깥에서 보는 것과는 딴판이었다. 비로소 지리산의 풍광이 내것이 되는 느낌이었다. 아뿔싸, 산에서도 존재보다는 소유로 파악하려는 속(俗)된 버릇을 버리지 못했구나!

툇마루에서 등산화 끈을 조이는데 누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절에서 키우는 흰 개였다. 스님께 이름을 물었더니 소정이라 했다. 작을 소에 머무를 정. 이곳에 잠시 머물다가 좋은 곳으로 환골탈태하라는 뜻이라는 부연 설명. 초등학교 여학생 이름일 것만 같은 소정이에서 小停(소정)으로 바뀐 개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가슴속을 휙, 지나갔다.

단풍이 자지러지는 풍경 좋은 영원사. 이 절은 개불알꽃의 자생지이기도 하다. 절의 바로 뒤편에 그 귀한 꽃이 자라고 있다. 이름이 조금 얄궂긴 하지만 모양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꽃. 물론 오늘 그 꽃을 볼 수는 없다. 한 송이 국화꽃이 소쩍새와 천둥과 긴밀히 연결되듯 개불알꽃과 소정이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이 맺는 거대한 인연의 수레바퀴에서 나 또한 그리 멀리 비켜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내년 초파일쯤 이곳에 다시 와야 할 까닭이 몇 개 생겼다. 소정이를 다시 만나러, 활짝 핀 개불알꽃을 실컷 보러. 멸종위기2급.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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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한탄강은 꽁꽁 얼어붙는다. 광활한 철원평야의 매서운 칼바람에 풍부한 수량의 강도 맥없이 무릎을 꿇고야 만다. 추위가 아니었다면 도무지 엄두를 못 낼 일이었다. 발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강물 위를 걸었다. 얼음 이불을 덮고 노니는 물고기떼를 보기도 했다. 작년 한탄강 얼음 트레킹 이야기이다.

올해 벌어진 일들은 우리에게 기억의 몫으로 남겨두고 시간의 강 아래로 흘러간다. 그보다 더 불가해한 일이 다시 또 있을 순 없겠다. 또 무슨 칼칼한 낯으로 오려는 걸까. 이제 곧 올해의 겨울이 온다.

직탕폭포 근처. 점심을 주문해 놓고 식당 뒷문으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한탄강으로 내려갔다. 귀한 꽃이 산이나 들에만 있으란 법이 어디 있겠나. 낮게 도열한 절벽을 훑었더니 어느 바위의 겨드랑이 사이로 분홍빛 꽃이 눈에 들어왔다. 우뚝한 줄기 끝에 제법 복잡한 구조의 꽃을 달고 있는 분홍장구채였다. 경기, 강원 이북의 지역에서 드물게 자라는 멸종위기 2급의 야생화다.

꽃은 절정을 지나 이제 완연히 퇴락한 모습들. 이미 총기를 잃고 땅으로 녹아드는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로 바위틈에서 자라기에 까치발을 해서 겨우 찍었다. 분홍장구채 위로 아주 싱싱한 것이 있길래 어느 줄기의 잎사귀이거니 했다. 지금쯤 펄펄 끓고 있을 매운탕 생각에 서둘러 마무리했다.

집에 와 컴퓨터를 켜고서야 알았다. 시드는 건 꽃잎만이 아니었다. 노안 탓인가. 잎사귀는 사마귀였다. 너희들만 꽃을 보라는 법이 어디 있겠냐며 고운 꽃 앞에서 먹잇감을 노리고 있는 사마귀. 오늘의 나는 너무 큰 먹잇감이겠지만 언젠가는 사마귀와 녀석의 친구들에게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날이 오고야 만다. 경고하듯 나를 날카롭게 째려보는 사마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칼바람 앞에서 분홍장구채는 흔들리고.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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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절정인 설악산 비선대에서 반질반질 닳은 돌계단을 내려오는 길. 좌우의 울창한 나무들이 이름표를 달고 있다. 그중의 물푸레나무에는 이런 설명문. “낙엽 지는 넓은 잎의 큰키나무. 꽃은 5월에 새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으며 물속에 넣은 가지가 물을 푸르게 만든다 하여 물푸레라 한다.”

하늘에 계신 누군가의 흰 머리카락처럼 치렁치렁 물이 풀어져 내려오는 날. 길을 잃고 논에 들어온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먹기도 했다. 호박잎 넣고 끓인 고디국은 물푸레보다도 더 푸른 국물이었다. 세상의 고요가 한층 납작하게 드리워지면 피감자를 삶기도 했다. 우산을 어깨에 걸친 채 펌프를 자아 올린 물로 감자를 씻던 누이의 뒷모습. 어린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때의 그 별미를 이젠 고향에 가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런 그리움이 혀끝에 고이면 금천시장 안 ‘체부동잔치집’으로 간다. 각종 전과 면을 잘 빚어내는 곳. 식물의 뿌리들 곁으로 가야 할 날을 어슴푸레 짐작해 보기도 하는 최근의 이야기이다.

체부동잔치집. 밀가루로 요리하는 분식집이야 허다하지만 비 오는 날이면 그곳을 찾는 까닭이 따로 있다. 그곳의 주인 아지매가 언젠가 KBS <낭독의 발견>에 출연하여 빗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오규원의 ‘한 잎의 여자’를 낭송하였다.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단풍이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똑똑히는 모르겠지만 물은 그런대로 알 것도 같다. 그때처럼 비가 오는 오늘. 물푸레나무 같은 아지매에게 손수제비를 주문해놓고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생각해 본다. 물은 하늘에서 와서 나나 나무로 잠시 꼴을 갖추어 서성거리고 흔들리다가 종내에는 하늘로 돌아가는 것!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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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태평한 이들에게 무슨 신호라도 주려는 뜻인가.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뉴스 중의 하나가 지진에 관한 것이다. 이웃나라에서는 일상이 되다시피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불쑥불쑥 그 소식이 등장해서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늘 딛고 사는 땅속에는 무슨 궁금함이 살고 있길래 저리도 세상 바깥으로 나오려는 것일까.

한편 지구 바깥, 그러니까 하늘로 눈을 돌리면 그곳에서도 뉴스는 많이 생산된다. 바로 얼마 전엔 월식이 일어나 육안으로 관찰할 수가 있었다. 일식이나 월식은 태양, 달, 지구가 일직선상에 배열될 때 생기는 그림자로 인해 벌레가 파먹은 듯 보이는 것이다. 그 신비한 현상을 볼 때마다 나의 그림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은 태양-나-지구가 동시에 일직선상으로 놓이기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하늘 아래 엄연히 띵띵한 물체인 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기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인 것이다.

일생 빛을 연구한 아인슈타인은 자신에게 죽음이란 모차르트의 음악을 더 이상 듣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말을 감히 흉내내어 한마디 해본다. 나에게 죽음이란 더 이상 산에도 못 다니고 따라서 야생화들을 만나지 못하는 상태!

우리는 그 누구라도 죽음 이후에는 그림자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 오늘도 발밑에서 뻗어나오는 그림자와 동무하면서 지리산의 능선을 걸었다. 성삼재에서 출발해 임걸령 샘물에서 목을 축이고 반야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어느 바위틈을 돌았더니 유난히 햇빛이 환히 집중되는 곳이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보니 빨갛게 익은 풀솜대의 열매였다. 산 아래에선 꽃보다 할배라지만 지금 산중에선 꽃보다 열매이다. 꽃이 청춘이라면 열매는 할배이겠다.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이 최종 도착한 곳은 시들어가는 잎에 얹힌 열매의 그림자였다. 너무나 먼 곳에서 오는 평행한 햇살을 요약하여 업은 채 잎사귀 하나가 아래로 처지고 있는 풀솜대.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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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여기는 완도군 군외면의 대문마을 앞바다. 봄부터 수행한 완도 식생조사의 마지막 탐사에 동참했다. 완도에서 가장 높은 상황봉을 필두로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산중 식물의 다양함에 못지않게 해변의 생태계 또한 유별한 풍경과 놀라움을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썰물 때라 확 드러난 갯벌. 짠 바닷물을 먹고사는 염생식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산의 나무들이야 어쩌다 하늘에서 내리는 물폭풍을 맞기도 한다. 바닷가의 꼬맹이 식물들은 어김없이 물세례를 받는다. 잠깐 지나가는 비가 아니라 아예 물에 푸욱 온몸을 담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 제주 먼바다에는 제19호 태풍인 봉퐁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고 있다고 했다. 사나운 물결을 예감하는 조용한 바닷가. 내 눈을 잡아채는 건 줄기마다 물이 통통하게 오른 방석나물이었다. 방석처럼 낮게 깔리어 자란다고 그 이름을 얻었다.

펑퍼짐한 나물 주위를 재재발거리며 돌아다니는 바닷게. 도망가려던 한 녀석을 재빨리 잡았더니 아예 앞발을 움켜쥐고 맘대로 해보라며 웅크린 자세를 취했다. 녀석에게는 태풍보다도 더 무서운 게 나라는 인간이겠다. 등딱지는 갯벌의 고운 진흙을 닮았는데 도드라지는 집게발이 붉은색이었다. 망설일 것 없이 몸을 구부렸다. 낮은 시선으로 보니 얼크러진 방석나물의 통통한 마디들과 게의 앞발이 어찌 그리 닮았는가.

이제 완연한 가을이다. 온통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이다. 여기라고 가을이 비켜가라는 법은 없다. 빙그레 웃는 섬, 완도(莞島) 앞바다의 갯벌. 바닷게의 앞발에도 가을색이 땡땡하게 뭉쳤다. 방석나물의 마디마디마다 가을 기운이 탱글탱글하다. 그 높은 산의 단풍에 하나 꿀릴 것 없는 고운 색이 이곳에도 들어찼다. 작은 게의 앞발에 착 내려앉은 천하의 가을. 바닷게의 집게발에 꼬집히며 비로소 내 가슴에도 가을이 물밀듯이! 한입 깨물면 달달한 짠맛이 우러나는 방석나물. 명아주과의 한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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