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근처의 통인동 재래시장에 즐비한 좌판들. 요즘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옹기종기 담겨 있는 여름 과일이다. 살구, 복숭아, 자두, 포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녀석들은 얼굴이 서로 닮았다. 토마토는 비닐하우스에서 살다가 비닐에 포장되어 여기까지 왔다. 울긋불긋한 것들 중에서 내가 오늘 특별히 찾는 건 알알이 빨간 딸기였다.

딸기는요? 물었더니 제철이 지나 출하가 안된다는 대답. 없는 딸기에 더욱 군침이 돌면서 생각은 곧장 경북 상주의 황금산으로 날아갔다.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과 푸른 들판을 마주한 산. 바람이 강의 습기를 배달해주는 덕분일까. 황금산에는 귀한 식물들이 많다고 했다.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길섶으로 산딸기가 주렁주렁 달렸다. 훅훅 볶아대는 땡볕 아래에서 만난 공중의 오아시스. 뱀딸기도 있다. 못 먹을 것 없지만 보기에도 조금 칙칙하고 그저 밍밍한 맛이다. 산딸기 몇 알 입에 넣다가 무심코, 어머니 갖다드리면 좋겠네, 했다.

전망 좋은 정상에는 활공장이 있었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느라 비벼댄 풀 사이로 제비꿀과 솔나물이 드문드문. 그중에서도 두 뼘 크기의 산제비란은 일행을 땅바닥에 납작 엎드리게 했다. 제법 근사한 사진을 찍고 일어서는데 한 분이 어깨를 쳤다. 바람결에 했던 말을 전해 듣고 한 움큼 딸기를 따와선 손바닥을 벌리라는 게 아닌가.

아이고, 산딸기 아이가? 어머니는 천천히 드셨다. 양재기 들고 딸기 따러 억수로 다녔지. 그땐 냉장고가 있었나. 그냥 숟가락으로 퍼먹었지. 산딸기에서는 햇빛에 구운 먼지 냄새가 난다. 바람에 씻긴 빗물 냄새도 난다. 활공장에서 딴 딸기 향을 타고 어머니는 고향의 하늘로 곧장 날아가신 듯. 미수(米壽)라고도 하지만 달걀 두 개를 두 줄로 쌓아놓은 듯 위태로운 나이 88세. 몇 십 년의 시간이 농축된 맛으로 내 어머니를 소녀 시절로 안내하는 산딸기! 장미과의 낙엽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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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가 다녀갔다. 너구리 다음은 더우리. 어느 신문의 날씨와 관련한 재치 있는 기사 제목에 외려 마음속 더위가 쪼끔 꺾이는 것도 같다. 너구리 꼬리를 붙들고 뒤따라온 건 폭염만이 아니었다. 모처럼 일요일에 한가히 뒹구는데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게 있었다. 올해 처음 듣는 매미 소리가 아닌가. 매미가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특별히 나의 사정을 살핀 뒤 우는 건 아닐 테다. 귓구멍으로 지푸라기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말과 소리 중에서 그 가느다란 가락을 이제야 비로소 내가 잡아챘다는 얘기.

자글자글 우는 매미의 꽁무니를 붙들고 따라오는 기억이 있다. 일 년 전 이맘때의 일이라서 정확하게 생각난다.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의 녹전중학교. 운교산으로 통하는 학교 뒷산은 그야말로 깔딱고개였다. 가볍게 생각했다가 큰 코만 다칠 뻔했다. 겨우겨우 한 능선을 밟았는데 바위 사이에 그 나무가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전체적인 수형(樹形)은 진달래와 아주 흡사한데 꽃은 확연히 구별이 되는 나무. 흰 꽃이 가지 끝에 다닥다닥 뭉쳐 있고, 수술은 꽃잎보다 도드라지게 뾰쪽하다. 꼬리진달래였다.

오르기도 어렵지만 내려오는 데도 그만큼 땀을 쏟아야 했다. 그래도 귀한 꽃을 제대로 보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수업이 끝난 토요일 오후의 시골 중학교. 책 읽는 소리도, 공 차는 아이들도 없었다. 운동장에 흩어진 게으른 시간들이 수령 360년의 느티나무 아래로 수렴되는 듯. 우람한 느티가 제공하는 심심한 그늘에서 캔맥주를 따다가 퍼뜩 알아차렸다. ㅆㄹㄹ, ㅆㄹㄹ, ㅆㄹㄹ. 지금 귀에 닿는 이 소리는 올해 처음 듣는 매미 울음이 아닌가. 시원하게 한 모금 넘기는데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의 하이쿠 한 소절이 떠올라 목구멍을 때렸다. “올해의 첫 매미 울음/ 인생은/ 쓰라려, 쓰라려, 쓰라려.” 진달래과의 상록 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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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김광균의 설야)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이후 아직도 안 잊히는 구절들이다. 시조 하나가 더 있다. “눈보라 비껴나는/全──群──街──道//퍼뜩 차창으로/스쳐가는 인정아!//외딴집 섬돌에 놓인/하나/둘/세 켤레”(장순하의 고무신).

완도 식생조사 갔다 오는 길. 까딱까딱 졸다가 깨어나니 스쳐가는 이정표에 부안, 줄포가 나오고 언뜻 군산도 보이는 것 같았다. 꼭 그 도로는 아니겠지만 전군가도와 이웃한 어디쯤일 듯. 어느 순간 퍼뜩 차창으로 달려드는 나무가 있었다. 초례청의 청실홍실 같은 꽃을 가지 끝에 활짝 달고 있는 자귀나무였다.

이 서해안고속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경부고속도로에는 이런 안내판이 있다. ‘일본-한국-중국-인도-터키’. 이른바 아시안 하이웨이의 이정표다. 언젠가는 이 도로를 죽 달리면 실크로드까지도 갈 수 있다는 뜻이렷다. 몇 해 전 중국의 서쪽 변방인 신장 위구르 자치주를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가는 길에 이 지방의 빵인 난을 파는 가게에 들렀다. 예쁜 수건으로 치장한 두 여인이 젖먹이를 하나씩 안은 채 난을 굽고 있었다. 코를 흘리는 꼬마가 우리를 흘깃흘깃 쳐다보았다. 몇 십 년 전 내 어릴 적 모습을 꼭 닮은 꾀죄죄한 꼬마.

큰 자귀나무가 지붕 너머로 가게를 굽어보고 있었다. ‘자귀나무 난집’이라고 간판을 단다면 안성맞춤일 것 같은 풍경. 자귀나무의 잎은 쌍으로 나란히 달리는 깃꼴겹잎이고 해가 지면 수면(睡眠) 운동을 한다. 잎맥을 축으로 좌우의 잎들이 한 짝의 고무신처럼 서로 들러붙는 것이다. 해서 금실 좋은 부부를 상징하는 나무. 진작 느낀 것인데 가게에는 사내라곤 아무도 없었다. 총명한 아이들과 따뜻한 빵, 무엇보다도 이 상냥한 아내를 두고 대관절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밤이면 자귀나무 잎들도 짝을 찾아 포개지는데! 콩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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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난들 어디 이러고 싶었겠나. 온몸의 안테나를 있는 대로 가동했지만 브라주카가 이리 빨리 올 줄 알았나. 모든 신경과 솜털까지도 쫑긋 세웠지만 공이 모서리로 빨려들어갈 줄 알았나. 벼락치듯 공이 쩍 갈라놓은 허공에 허를 찔린 골키퍼는, 공보다 한 박자 늦게, 골문 안으로 내려꽂히고 만다. 철퍼덕!

무릇 축구에선 이기려면 스트라이커의 한 방이, 지지 않으려면 수문장의 선방이 필요한 법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골키퍼가 애꿎은 풀을 뽑으며 분을 삭이고 있는 동안, 화면에서는 브라주카의 활약이 한 번 더 펼쳐진다. 중원에서 넘실대던 공은 두 번의 긴 패스와 정교한 헤딩을 발판으로 딱따구리가 제집을 찾아가듯 구멍 안으로 쏙 들어간다. 이번에는 각도를 달리하여 보여주는 골키퍼의 추락. 클로즈업되는 것은 브라주카와 흰 그물이다. 태양을 상징하는 축구공. 원래 축구공은 오각형과 육각형의 패널을 이어붙였지만 보다 완벽한 구형을 위하여 브라주카는 6개의 패널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공은 표면이 요란해서 문양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브라주카가 철렁, 골망을 뒤흔들 때 확실히 알았다. 골대의 그물이 모조리 6각형이 아니겠는가.

경기를 보면서 육각형에 주목한 것은 연유가 있다. 몇 해 전 휘돌아드는 어느 골짜기의 작은 나무 앞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 나뭇가지 좀 보세요. 축구공의 무늬를 닮지 않았나요? 고광나무였다. 식물을 기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 고광나무는 잎, 꽃, 수피가 아닌 가지의 형태에서 이런 특징을 찾는 것이다. 축구공, 아니 골대 그물 같은 고광나무. 어느덧 경기는 끝났다. 휘황한 전광판이 꺼지고 뿌리 없는 이들은 모두 떠났다. 선수도, 심판도, 응원객도, 브라주카도. 그라운드에 남은 것은 상처투성이의 잔디들. 그리고 줄기처럼 둥근 기둥으로 뿌리박은 골대, 아니 두 그루의 고광나무! 범의귀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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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옥계면의 석병산 중턱. 끊어질 듯 이어지는 희미한 등산로에서 녹색 잎들의 터널을 터덜터덜 걸어갈 때, 저만치에서 나무들의 그림자와 햇빛이 뒤엉켜 노는 것을 본다. 흑백의 그림이 총천연색의 그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다는 것을 확연히 느끼는 순간이다. 바람이 지휘하는 대로 일렁이는 녹색의 잎과 그 잎의 검은 그림자들. 그들을 밟겠다고 덤벼보지만 외려 나의 무딘 등산화를 타고 넘어 발등을 간지럽힌다. 어느새 마음도 그림자에 접착되니 덩달아 출렁거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단순히 산에 오르는 게 아니고 주위를 두리번두리번거리면서 야생화들과 안면을 익히는 길. 그런 판에 앞서 가던 누군가가 “오매, 저기 박쥐나무 좀 보소!”라고 외치면 모든 눈들이 일제히 그 소리의 꽁무니를 따라 쫓아간다. 나무들 속의 나무는 쉽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이리저리 가늠한 후에야 겨우 그를 찾아낼 수가 있다.

박쥐 수십 마리가 매달려 있는 듯한 박쥐나무. 그 박쥐떼 앞에서 어찌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으랴. 동굴 속의 박쥐라면 오금이 저릴 법도 하겠지만 이것은 순하디 순한 식물! 아무런 주저없이 가까이 가서 잎을 보면 정말 박쥐가 날개를 펼친 듯한 모양이다. 박쥐는 시방 어디에 머리를 감추었을꼬? 박쥐나무는 아주 귀한 나무는 아니라서 이산저산에서 여러 번 보았더랬다. 특히 박쥐나무의 꽃은 색상이 그리 요란한 것은 아니지만 그 형태가 단연 독특하다.

여덟 획의 꽃 화(花). 이 한자(漢字)는 마치 크고 작은 꽃잎 8장이 기대고 꼬부라지고 삐치면서 슬기롭게 조화를 이루는 모양을 형성하는 것일진대, 박쥐나무의 꽃은 그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디자인! 노란 수술은 아래로 길게 늘어지고 하얀 꽃잎은 바깥으로 똥그랗게 말린다. 박쥐가 어두컴컴한 천장에 매달리는 것보다 훨씬 천의무봉하게 허공에 매달리는 박쥐나무의 저 빼어난 잎과 꽃을 보라. 박쥐나무과의 낙엽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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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의 일. 설악산 가는 길이다. 오색에서 올라 대청봉을 어루만지고 희운각에서 일박했다. 희붐한 아침부터 공룡능선을 훑고 마등령에 섰다. 이쪽은 오세암, 저쪽은 비선대로 이어지는 인적 드문 갈림길 고개. 설악의 어깨에 내 키를 더하니 마음은 구름도 뚫을 듯. 이제 나는 세상에서 제법 고귀(高貴)한 거인이라도 된 셈인가. 1박2일을 꼬빡 투자해서 얻은 높이에 취해 잠시 까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벼슬도 아닌 것이어서 하산하는 순간 발밑에서 높이는 솔솔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산에서 얻는 것은 산에 모두 반납해야 한다. 그래야 산은 산에서 나가는 길을 허락한다. 절룩거리며 돌계단을 서너 시간 걸었다. 금강굴에 거의 다 왔을 무렵 앞장서서 걷던 이가 지팡이를 들었다. 사람주나무 좀 보세요. 처음으로 그 이름을 듣는데 괜히 시비심이 일어났다. 왜 사람인이 아니고 사람주일까.

3주 전의 일. 지리산 가는 길이다. 부산, 대구, 서울의 꽃동무들과 원지에서 만나 아침을 먹고 중산리에서 천왕봉까지 오르기로 했다. 집결장소인 산청군 신안면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펄럭이는 그것을 보고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다. 주소를 대니 우리 동네의 투표지 7장이 출력되어 나왔다. 우리나라 기표도장에는 무늬가 있다. 그냥 동그라미로 하면 투표지를 반으로 접었을 때 인주가 묻어 무효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넣은 것이다. ‘사람 인(人)’인 줄로 알았는데 ‘점 복(卜)’이라고 한다. 기표소에 들어가 심호흡을 하는데 사람주나무 생각이 났다. 사람주나무의 줄기는 사람의 벗은 몸처럼 매끈하다. 손으로 만지면 분처럼 흰 가루가 묻어난다. 오래될수록 울퉁불퉁한 알통 같은 마디를 빚기도 한다. 가을이면 아주 붉게 단풍 드는 기품 있는 나무. 오늘 지리산에서도 사람주나무를 보게 될까. 사람주는 ‘사람이 주(主)다’는 말의 준말이 아닐까. 붉은 도장을 불끈, 눌렀다. 대극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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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꾹뻐꾹. 뻐꾸기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는 북악산의 숙정문 앞 공터. 목요일의 오후 4시를 지나는 무렵이었다. 사연이 있다. 노고산 자락에서 학문에 열중하는 일군의 대학원생들이 야외수업을 겸해서 나들이를 왔다. 지도교수와는 오랜 친분이 있는 터라 어렵게 짬을 내서 안내를 자청하고 늙은 복학생이 된 기분으로 수업에 동참했던 것이다. 와룡공원에서 출발했다. 세월의 때를 시커멓게 묻혀가는 성곽과 그 곁에서 함께 늙어가는 식물들. 멀리서 보니 은사시나무가 훤칠하고 며느리밑씻개가 돌틈을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말바위 전망대에 서니 북한산이 코끝에 걸리고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부촌인 성북동이 발 아래 엎드렸다. 대부분 초행인 듯 단 몇 분 만에 확보되는 시원한 시야에 모두들 감탄했다. 몇몇의 입에서 성북동 비둘기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과연 학생들다운 이야기. 지금 그들은 돈이 아니라 시(詩)를 논하고 있는 것이렷다. 안내소를 통과하니 금방 숙정문이 나타났다. 문 밖으로 나가자 작은 공터가 있고 우뚝한 소나무 아래 한낮의 정적이 고즈넉이 고여 있었다.

그때 저 멀리 팔각정 숲 어딘가에서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그 뻐꾸기 소리를 들으매 퍼뜩 떠오르는 야생화가 있었다. 그것은 북악의 동생처럼 이웃한 인왕산에서 며칠 전 본 뻐꾹채였다. 얼핏 보면 흔한 엉겅퀴 같은 뻐꾹채는 내 허벅지를 찌르며 뻘쭘하게 뻗은 가지 끝에 보랏빛 꽃을 달고 있다. 아주 긴 궁리를 머릿속으로 깊게 하다가 이젠 바깥으로 뻥 터뜨려놓은 듯, 곱고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생각의 힘!

4시를 지나는 중이었지만 뻐꾸기는 시계가 아니라서 두 번밖엔 울지 않았다. 뻐꾸기는 아무도 제 소리를 기억해 주는 이가 없자 입을 닫았는가. 뻐꾸기 울음은 호응해 주는 소리가 없자 조용히 사라지고 말았는가. 북악의 뻐꾸기 울음을 홀로 받아 주고 있을 인왕의 뻐꾹채.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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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은 시를 통해서 내게로 왔다.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에서의 청산이 바로 그 무등산. 청산은 부산에도 있었다. 재수생을 가르치는 학원 이름. 청산학원을 통과하고 부산역을 떠난 이후 세월의 때를 묻히면서 나도 세상의 무릎 아래 정착했다. 무릎은 주름이 심하게 잡히는 곳이라서 그 문양이 아주 복잡하다. 광주도 광주였지만 무등을 만나야겠다는 건 오래된 생각이었다. 여름이 되면 무등산 수박에 침을 꼴깍 삼키겠지만 그보다 먼저 5월이 오면 무등산 꼭대기 생각이 났다. 기회가 왔다.

5월 첫 주말에 대학 동기들과 원효사-서석대-입석대-증심사의 코스를 잡았다. 초입에는 매미가 승천하는 모습으로 신나무 열매가 잔뜩 달려 있었다.

특이한 식물이 있나 두리번거렸지만 애기나리, 현호색, 광대수염 등등의 흔한 야생화들뿐. 광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다.

기념관을 둘러보는 동안 <허삼관매혈기>로 유명한 작가 위화의 산문집 <영혼의 식사>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그는 ‘한국방문기’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광주항쟁 과정에서 희생당한 열사들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 내가 본 광주항쟁 희생자의 사진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눈이 감긴 것이 없었다. 그들의 무심한 눈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그 후로 나는 그들의 눈이 한국의 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눈에 꽃가루라도 들어갔나. 눈두덩을 비비면서 묘지정문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었다. 가로수가 만개해 있었다. ‘입하(立夏)’ 무렵 꽃을 피운다고 그렇게 불린다는 나무.

흰 쌀밥이 쌓인 것 같아 ‘이밥’에서 유래했다는 나무. 이팝나무였다. 때맞추어 고맙게 핀 꽃은 뚜렷한 특징이 있다. 4갈래로 길쭉하게 갈라진 꽃잎 하나하나가 흐느끼듯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 눈에는 꽃잎이 꼭 만장(輓章) 같은 이팝나무.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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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한 꽃이다. 누가 붓으로 이리 고운 난초를 쳤을까. 백암산의 호젓한 길에서 색깔과 자태에 마음을 홀랑 빼앗겼다. 각시붓꽃, 그 이름을 알고 나선 더욱 그랬다. 이후 도톰하게 낙엽이 쌓인 좁은 능선을 만나면 어디 각시붓꽃이 없나? 궁금한 눈길을 던지기도 했다. 출렁이는 마음도 달랠 겸 인왕산 중턱 석굴암에 올랐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더니 어느새 여름 기운이 물씬하다. 도심에 포위된 인왕산의 야생화들. 진달래가 지더니 철쭉이 피었다. 이제는 붉은병꽃나무가 절정이다. 이 꽃도 곧 매미 소리에 파묻히겠지. 깔딱고개를 치고 오르니 반반한 바위가 있다. 그제까지 창창하던 돌단풍 곁에 각시붓꽃이 한 무더기 피어있는 게 아닌가. 엎드렸다 일어서는데 이리저리 숲속을 누비는 새들의 지저귐. 멀리서 꿩 우는 소리도 들렸다.

송나라 유극장(劉克莊)은 ‘앵사(鶯梭)’라는 시에서, 꾀꼬리가 나무를 부지런히 옮기며 비단 같은 낙양의 봄을 짜낸다고 읊었다. 앵사는 꾀꼬리가 가지에서 가지로 날아다니는 것으로 베를 짤 때 북이 왔다갔다하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나뭇가지 사이를 누비는 새를 보고 저런 시상을 건져내는 절묘한 감각에 감탄하다가도 이내 울음에서 번져오는 기막힌 것이 있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석굴암에 오르면 서울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 저곳에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그 어떤 감정이 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우려내는 중. 그래서 그런가. 오늘 인왕산에서 들리는 새의 울음은 비단 대신 슬픔의 피륙을 짜고 있는 듯하다. 붓으로 난초 치듯 각시붓꽃을 그려낸 이가 우리 시대의 민낯을 본다면 눈물로 범벅된 이 천에 무슨 기록을 남길는지. 칼처럼 휘어지는 잎과 꼿꼿한 꽃줄기 끝에 오로지 한 개의 꽃만 피우는 각시붓꽃.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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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집 마당 한편에는 손바닥만 한 꽃밭이 있었다. 나무판때기에 붓글씨로 쓴 아버지의 문패가 반짝거리고 송아지가 뛰쳐나가지 못하도록 지게 작대기를 슬쩍 걸쳐두었던 마당 입구. 그 곁에서 가족들의 발소리를 응원 삼아 채송화, 맨드라미, 분꽃, 칸나, 봉숭아, 코스모스 등이 좁은 땅에서 어울려 자라났다. 식물의 종수는 턱없이 빈약했지만 무성한 잎들로 꽉꽉 채운 꽃밭이었다. 식구들이 같은 밥을 먹고 같은 사투리를 쓰듯 같은 물을 마시고 같은 햇빛을 쬐며 경쟁하는 건강한 생태계. 바닥에 바짝 붙은 채송화는 아래를 담당했고 봉숭아 무리는 조금 높은 공중의 한 귀퉁이를 의젓하게 차지했다. 하늘에서 비라도 오는 날. 꽃들은 고개를 들고 얼굴을 말갛게 씻었고 꽃밭의 모래들도 모처럼 자리를 서로 바꾸었다. 울타리처럼 꽂아놓은 사금파리도 먼지를 씻어내면 엉덩이가 깨끗했다. 비 갠 후 꽃밭으로 가면 통통한 줄기마다 모래알갱이들이 날렵하게 뛰어올라 깨알같이 붙어 있기도 했다.

천마산에 가서 처음 족도리풀을 보았을 때 내 어린 시절의 꽃밭, 그 꽃밭에서 착하게 자라나던 흙 묻은 식물들이 생각났다. 연지곤지 찍고 시집가는 새색시가 일생에 한번 쓰는 족두리. 그 족두리를 닮은 꽃이라 하여 제 이름을 얻은 족도리풀. 흔한 줄기나 대궁도 없이 뿌리에서 바로 잎자루가 올라오고 그 끝에 심장 같은 잎이 한 장씩 달리는 족도리풀. 지면에 딱 들러붙어 있기에 흙과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족도리풀. 시집가는 누이처럼 무슨 부끄러움이 그리도 많은지 좀체 얼굴을 들지 않는 족도리풀. 꽃잎은 없고 꽃받침통으로 땅을 괸 채 주로 숲속의 후미진 응달에서 세상의 고요를 고요히 바라보는 족도리풀. 쥐방울덩굴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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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함민복) 이는 거대한 은유일 뿐만 아니라 사실의 정확한 진술이기도 하다. 청와대 뒤 북악산에 가 보면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완고한 철조망에 드문드문 호제비꽃 혹은 서양민들레가 딱 붙어 피어 있는 것을. 경계병의 매서운 눈초리에도 전혀 주눅 드는 법 없이 나비는 이편저편을 마구잡이로 횡행하고 다니는 것을. 효자동에서 인왕산으로 올라가자면 인간의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식물의 동네는 시작된다. 그 경계에도 어김없이 꽃은 피어난다. 나의 일천한 관찰에 따르면 가을이면 보라색 닭의장풀, 봄이면 노란색 애기똥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중에서도 가장 절정은 꽃봉오리인 아기들. 줄기나 잎을 찢으면 아기들의 향기로운 똥 같은 노란 즙이 나온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은 애기똥풀. 따지고 보면 아기울음 들리는 곳은 전생과 이승의 한 접면이기도 하리라. 우리는 누구나 그 경계를 기적처럼 통과한 뒤 이 세상으로 나온다. 그리고 흰 기저귀에 노란 똥을 마구마구 묻히며, 더러 닭똥 같은 눈물도 흘리며 자라난다. “그대가 결혼을 하면 여인은 외부로 열린 그대의 창 그 풍경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보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 그대가 그 여인에게서 아이를 얻으면 그대의 창은 하나둘 늘어난다.”(이성복) 아이는 부모라는 집에 뚫린 유리창. 부모는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창문이 없다면 바깥을 보지 못하듯 아이가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볼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던진 돌팔매에 그만 유리창이 깨져 캄캄한 어둠 속에 갇힌 이들의 통곡 소리가 흘러넘치는 우리 동네. 그러잖아도 아기들의 웃음소리는 끊긴 지 이미 오래인 우리 동네의 시멘트 담벼락에는 죄없는 애기똥풀만 무심하게 피어 있다. 노오랗게 피어 있다.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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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숙이고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한 토막의 풍경이다. 내 고향은 덕유산의 무릎 저 아래에 자리 잡은 아주 궁벽한 촌동네. 천방지축 뛰놀며 철없이 자랐다지만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달그락거리는 필통소리와 함께 책보 집어던진 뒤 찬물에 후다닥 밥 말아 먹고 소먹이를 하러 가는 것. 소를 산으로 몰고 가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일이 나의 몫이었다. 어느 날의 일이었다. 동무들과 멱을 감고 소를 찾으러 나섰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비에 젖은 꼴(풀)을 망태에 대충 담고 서둘러 소를 풀어논 골짜기로 흩어졌다. 아뿔싸, 모두들 소를 찾아 고삐를 붙들고 집으로 내려가는데 아무리 헤매도 우리 송아지는 찾을 수가 없지 않은가. 축 처진 어미소의 꼬리를 따라 힘없이 처진 어깨로 동네로 돌아오니 어른들이 말씀하셨다. 소는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 무덤가로 가 보아라.

다음날 새벽 아버지와 함께 소를 앞장세우고 골짜기로 갔다. 음매음매. 아주 낮고 낮은 울음으로 어미가 새끼를 부르니 어느 무덤가 덤불에서 송아지가 뛰어나왔다. 밤의 적막과 어둠의 공포 속에서 밤새 바들바들 떨었을 송아지.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며 잠 못 자고 뒤척이던 어미소. 서로 부둥켜안지는 못했지만 밤새 되새김질하던 혀로 어미는 새끼를 닳도록 핥았다. 그때 그 현장을 지켜보던 꽃이 있었다. 몇 해 전 무덤 속으로 드신, 어쩌다 용돈 조금 드리면 꼬깃꼬깃 접어두었다가 손자한테 그대로 전해주시던 내 외할머니 같은 할미꽃. 저기 저만치 피어 있는 할미꽃을 보고 어, 저기 할미꽃이 피어 있네, 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힘겹게 서 있는 할미꽃을 그렇게 단순한 한 꽃송이로만 처리하면 놓치는 게 너무 많아 원통하지 않을까? 무덤가에서 너무나도 많은 기억과 세월을 감당하느라 등이 움푹 휜 할미꽃.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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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끼니를 때운다. 새싹에 초고추장을 끼얹은 비빔밥이거나 ‘틉틉한’ 고깃국물에 양념장을 푼 설렁탕 혹은 가정식 백반. 오늘은 청국장이다. 점심 메뉴가 매일 달라도 마무리는 늘 같다. 이쑤시개로 입안에 남은 음식을 마저 먹는 것. 주말이면 먼 산에 가서 목을 길게 빼고 나무의 신분을 알아내려 한다. 가지 끝에 정보가 많이 숨어 있는 법이다. 그 버릇은 묘한 중독성이 있다. 서울에 와서도 버릴 수가 없다. 본래를 잃고 날카로움만 남은 채 플라스틱통에 쑤셔 박힌 이쑤시개의 고향이 문득 궁금해졌다. 이것은 무슨 나무였을까.

작년 가을 가야산 소리길을 걸어 해인사에 도착했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 중 장경각을 개방했다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후박나무로 만들었다는 대장경판을 눈으로 쓰다듬듯 오래오래 바라보았다. 법보전에는 주련이 있었다. 8만여 경판을 압축하고 요약하여 얻는 열두 글자인가. 圓覺道場何處 現今生死卽是(원융한 깨달음의 장소는 어디인가. 살고 죽는 지금 여기가 바로 그 자리). 장경각 후문으로 나오니 달려드는 나무 한 그루. 해인사로 수학여행을 다녀온 형한테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에 등장하는 바로 그 나무였다. 최치원이 지팡이를 거꾸로 꽂아놓고 신선이 되었는데 그 지팡이가 우렁차게 되살아났다는 전설 속의 전나무였다.

나의 마지막 식사는 성찰을 동반한 되새김질과는 거리가 있는 동작이다. 입안에서 임무를 마친 뾰족한 나무를 꺼내 분지를까 하니 조금 미안했다. 그렇다고 그대로 잔반으로 보내면 돼지 목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한다.

문득 해인사의 전나무가 좋은 꾀를 가르쳐주었다. 청국장 식당 옆에는 작은 화단이 있다. 파릇한 괭이밥 옆에 꽂으니 감쪽같이 들어갔다. 곧 거름이야 되겠지만 혹 모르는 일이다. 나의 이쑤시개도 최치원의 지팡이처럼 아니 되란 법 없는 것을. 그땐 이 나무의 후생을 동정(同定)할 수 있으리라. 행여 전나무일까! 소나무과의 상록교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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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망울을 터뜨리는 백목련. 담장을 기웃거리는 매화. 동백은 벌써 지는가. 담 아래 떨어진 통꽃이 즐비했다. 속절없이 이어지는 남도의 마을 풍경. 완도대교를 지나 왼편의 납대대한 곳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동네 입구의 길가에서 범상치 않은 간판을 보았다. 시동을 끄고 내리니 양지 끝에 자리 잡은 교인리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스님이 누워 잠든 모습을 닮았다는 숙승봉(宿僧峰). 그 작은 산 아래 양지바른 곳이었다. 지금 나는 완도식물조사단의 일원으로 어제는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에 올랐고 오늘은 산자락의 식생을 살펴보는 중이다. 남도 끝의 섬이라지만 맵싸한 추위가 발톱을 숨기고 있어 야생화는 아직 더딘 걸음이었다. 울타리처럼 마을 수로가 돌아나가고 그 곁으로 꽃들이 총기있게 피어났다. 발끝에 차이는 봄꽃들! 시궁창 냄새도 묻어나는 터라 꽃들은 씨알이 굵었다.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간판 아래로 갔다. ‘차 한 잔의 여유 있는 공간’. 타이탄 트럭을 개조한 가게였다. 종업원 대신 강아지를 데리고 혼자 운영하는 주인은 별말이 없었다. 꽤 까다로운 질문을 해도 희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주문을 하고 실없는 농담 끝에 어렵사리 얻은 몇 마디. 완도에 시집온 지 몇 해 안된 새댁이라 했다. 친정은 경남 진주라 했다. 있을 게 없어서 그렇지 살기는 좋은 곳이라 했다. 커피를 받아들고 간이의자에 앉는데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백석). 스님의 어깨를 짚고 쏟아지는 햇살이 몹시도 푸짐한 가운데 큰개불알풀, 왜제비꽃, 동백꽃들 옆에서 먹는 커피맛이란!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빤히 쳐다보는 야생화가 있다. 붉은 옷을 입은 광대가 꽹과리 가락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는 것 같은 광대나물. 설탕이 모자랄 때 하나 뽑아서 빨면 단맛이 쪽쪽 나는 광대나물. 꿀풀과의 두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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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리산은 봄철 산불조심 기간이어서 통제구간이 많다. 피아골 농평마을에서 출발해 황장산을 거쳐 쌍계사 근처 모암마을로 내려오는 길을 걸었다. 황장산은 말하자면 지리산의 발치쯤에 자리한 산이다. 인위적으로 구분한 국립공원에 속하지는 않지만 엄연히 ‘지리 대가족’의 일원이다. 3월 중순임에도 산에는 눈이 두툼하게 쌓여 있었다. 밑에서 보면 적설이 상당한 곳도 막상 올라보면 눈은 관목의 하부를 붙들고 겨울의 패잔병처럼 웅크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나 이곳의 눈은 아직도 발목까지 푹푹 빠질 정도였다. 지리산 자락이라 획기적인 야생화를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는 당재를 지나면서 접었다. 높은 나무에서 녹는 눈이 눈을 때려 눈밭이 곰보처럼 움푹움푹한 사이로 작은 발자국이 보이기도 했다. 요란한 등산화 자국에 비해 어느 짐승의 단정한 발걸음들. 먹이를 구하지 못한 겨울철의 허기가 얄팍한 발자국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했다.

멀리 쌍계사가 보이고 오늘의 산행이 이대로 끝나는가 싶을 때였다. 작은 비탈의 고개를 돌아드는데 몇 발짝 뒤에서 들리는 외침. 야, 히어리 밭이다! 자생하는 히어리는 귀한 꽃이다. 지리산을 중심으로 몇 지역에서만 발견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멸종위기식물이었다. 나무는 꽃과 열매를 주렁주렁 달기에 이름에도 받침을 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라시대 선덕여왕은 모란꽃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을 것이라고 짐작했다고 한다. 히어리, 아랫도리가 허전한 그러나 참 아름다운 그 이름을 듣고서 혹 이 나무는 꽃들이 빈약하지나 않을까, 졸렬한 상상력을 발휘해보았더랬다.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먼저 피어나면서 여러 층층의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히어리. 코끝에 바싹 대어도 이렇다 할 향기는 풍기지 않았지만 무망할 뻔했던 산행의 피로를 한방에 날려준 히어리. 조록나무과. 한국 특산의 낙엽관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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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밥상에서 젓가락으로 반찬을 건져 올리다가 봄나물 하나 없다는 사실을 문득 알아채고 부엌으로 눈을 슬쩍 흘기기도 하겠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두툼한 옷을 벗어던지고 겨우내 텁텁했던 입맛을 갱신하며 봄을 맞이하려는 정당한 투정으로 이해해 줄 법도 하다. 어디 봄나물이 대수랴. 밥상보다 아주 넓게 들판으로, 그 들판보다 조금 높게 야산으로 시선을 옮기면 바야흐로 벌어지는 꽃들의 잔치판. 그중에서도 봄의 교향악을 울리듯 먼저 피는 꽃들이 있다. 그리 멀리 갈 것도 없이 안양의 수리산에서 변산바람꽃을 보았다. 희끗희끗한 잔설 틈에서 꽃샘추위를 이기며 바람에 맞서며 피어나는 꽃이다. 중지(中指)로 키를 가늠하면 내 손가락 사이 골짜기에 닿을락말락. 그 작은 꽃 앞에 엎드리는데 스웨덴 생각이 났다. 사연이 있다.

2년 전 백두산 야생화 탐사를 갔을 때의 일이다. 일행 중에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로 아주 먼 나라에서 오신 분이 있었다. 사진은 물론 식물에 관한 지식도 전문가를 뺨칠 수준이었다. 어떻게 그 멀리서 이 자리까지 오셨습니까? 식사 자리에서 슬쩍 물어보았더니 돌아오는 호탕한 말씀. “시댁이 경주 근처였는데 변산바람꽃을 보고 그만 홀딱 반해 버렸지요. 어쩌다 스웨덴에 눌러앉았지만 아직도 고국의 꽃소식에 늘 가슴이 설레지요. 변산바람꽃의 그 야들야들한 연보랏빛 수술 좀 보세요. 그 꽃이 그만 내 운명을 바꾸어버렸네요.” 사진을 찍고 일어나 꽃을 유심히 보았다. 바깥의 흰 5장은 실은 꽃받침잎이고 꽃잎은 그 안에 조그맣게 깔때기 모양으로 있다. 오밀조밀한 꽃 안의 세계에서 특히 작은 기관에 주목했다. 한 젊은 새댁의 인생을 바꾸게 한 변산바람꽃의 저 야들야들하고 꼬물꼬물한 수술! 미나리아재비과. 한국특산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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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북한산 갈 때 구기동에서 올라 백운봉 찍고 우이동으로 하산하는 날도 있었다. 도떼기시장처럼 왁자지껄한 식당 한구석에 자리 잡으면 찌그러진 주전자에서 콸콸콸 쏟아져나오는 막걸리.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는 참새처럼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인 쨍한 자리에서 그 한 사발을 생략할 순 없었다. 산중에선 발을 사용하느라 제법 홀쪽해졌지만 시내에선 젓가락을 분주히 놀리느라 또 띵띵해졌다. 무릇 등산이란 산으로 상승할 때도 좋지만 집으로 미끄러져들 때는 더욱 좋은 법 아닌가. 은근한 취기와 종아리의 뻐근함에 취한 채 까딱까딱 졸면서 버스에 실려갔다. 그렇게 불콰한 기운으로 단풍잎 같은 얼굴을 달고 귀가하면서 문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오늘 하루 밟은 북한산의 능선이 귀에 걸렸다. 이런저런 등산객들을 배출하고 평온에 깃드는 북한산은 어쩌면 옆으로 누워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포즈! 방 안에서 뒹굴지 않고 산바람을 쐰 이런 날은 그래도 큰일이라도 해낸 듯 마음이 넉넉해졌다. 저 멀리 산은 오로지 내 힘과 땀으로 오늘을 투자해 벌어둔 재산(財産)처럼 든든했다. 월요일이 쳐들어와도 아무런 걱정이 없는 일요일의 저녁.

최근에는 먼 산을 간다. 그냥 산의 거죽만 더듬는 게 아니다. 나무도 가늠하고 꽃도 본다. 바지는 물론이고 팔꿈치에도 흙 묻힌 채 귀경하는 버스에서 어둠에 잠든 능선을 보면서 골똘히 생각해 보는 시간. “어째서 산은 삼각형인가 어째서 물은 삼각형으로 흐르지 않는가 어째서 여자 젖가슴은 두 개뿐이고 어미 개의 젖가슴은 여덟 개인가 언제부터 젖가슴은 무덤을 닮았는가 어떻게 한 나무의 꽃들은 같은 색, 같은 무늬를 가졌는가”(이성복) 그리고 내처 백암산 정상 조금 못 미쳐 어느 무덤가에서 만났던 세잎양지꽃, 오종종한 5장의 노오란 꽃잎과 항상 삼각편대를 이루며 털이 북실북실한 줄기 끝에 매달린 3장의 작은 잎들, 무리지어 자라는 그 대가족을 가슴에 옮겨심어 집에까지 데리고 가기도 한다. 장미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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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납작하게 붙은 족도리풀, 양지꽃을 찍고 후다닥 일행의 뒤를 쫓아가는 길이었다. 누군가 길가에 바짝 가까이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가는 줄기가 몇 개 모인 내 키만 한 나무였다. 우와, 길마가지잖아! 이름을 안다고 나무를 다 아는 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나무 공부할 때 이름으로 알아차려야 하는 건 기본이다. 쭈글쭈글해진 나무껍질처럼 내 머리의 주름도 그리 변했는가. 그게 잘 외워지지가 않는다. 그런데 이상했다. 길마가지. 그 이름을 처음으로 들으매 가슴속을 휙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꽃향기가 너무 강해 지나가는 길손의 발길을 막아선다 하여 길마가지라 했다는 나무. 그 이후 여러 차례 길마가지를 보았다. 만날 땐 언제나 길가였고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 압도적인 나무들 옆에서 그저 있으나마나한 존재. 울긋불긋한 꽃들 곁에 시부저기 서 있다가 시나브로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산에 가더라도 그저 서너 개체, 항상 삐쩍 마른 몸매로.

진도 운림산방 뒤 첨찰산의 호젓한 길모퉁이에서 활짝 핀 꽃을 보았다. 그때 길마가지의 꽃들이 내 이마 높이의 공중에 떠 있는, 움터나는 눈동자와 긴 눈썹을 제대로 갖춘, 눈물이 글썽글썽하게 맺힌, 한 세트의 눈(眼) 같지 않았겠는가. 조금 각도를 다르게 보면 노란 수술은 가느랗게 떨리는 여인의 속눈썹! “내 마음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서정주) 놓은 것 같아 자꾸자꾸 뒤돌아본 길마가지나무. 인동과의 낙엽관목.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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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너무 작은 꽃. 바라보면 눈이 간질간질해지고 종내에는 그 간지러움이 손으로 전염되는 꽃. 해서 다섯 손가락을 꽃잎인 양 괜히 오므려 보게 하는 꽃. 그리해서 나의 운명이 그려져 있다는 손바닥의 무늬도 한번 보게 하는 꽃. 그것은 산 아래 숲속, 큰 나무의 곁이나 낙엽들 사이에서 피어난다. 부러질 듯 가는 줄기와 좁다란 잎사귀에는 초록이 찰랑찰랑 넘쳐난다. 바닥에서 궁리해도 충분하다는 듯 그저 발등 높이까지밖에 자라지 않는 꽃. 그러니 예전엔 나 같은 자의 발에 얼굴을 더러 밟히기도 했을 것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다 숲으로 산산이 흩어져서 이 꽃들이 되었나. ‘별’자 돌림의 비슷한 형제들이 참 많기도 하다. 개별꽃, 참개별꽃, 큰개별꽃, 가는잎개별꽃, 쇠별꽃, 왕별꽃, 긴잎별꽃, 덩굴별꽃, 숲개별꽃 그리고 별꽃. 적어도 꽃이름 100개는 입에 넣고 중얼거리자는 결심을 하고 식물 전문가들의 뒤를 따라다닌 지 어느덧 세 해. 이젠 옹알이 수준을 벗어나 멀리서도 척, 이름을 댈 수 있는 꽃들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야생화에 관한 한 이런 여유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는 내게도 이런 날이 오겠지. 혼자 힘으로도 제법 꽃산행을 나서는 것. 마음에 은근히 두고 있는 꽃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럴 때를 대비하여 한편에 꼬불쳐두고 싶은 꽃, 개별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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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 전, 봄꽃을 마중하러 간 곳은 남양주의 천마산이었다. 산은 처음이 아니었지만 작정하고 꽃을 보겠다고 산중으로 드는 건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그냥 앞만 보고 걸었다면 이젠 아래를 두리번거리며 걷는 걸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가는데 시선을 던지는 곳마다 꽃들이 꽂혀 있었다. 산속에는 정말로 꽃이 많이 있었고 저마다의 색깔과 생김새를 뽐냈다. 그동안 이름을 몰라 불러줄 줄을 몰랐으니 나에게는 꽃이 아니었던 꽃들. 공책에 낯선 이름들을 적으며 나아갔다. 계곡 언저리에는 현호색, 바위 틈에는 매화말발도리. 연신 쪼그리고 엎드렸다 일어나며 공책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산의 중턱에 이르렀다. 그저 걷기만 했더라면 허리가 뻐근했을 텐데 공부(!)에 열중하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


앞장서 가는 이가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외쳤다. 링거줄 모양의 관을 꽂고 수액을 채취당하는 고로쇠나무 앞에서였다. ‘앉은 부처’로 들렸는데 확인해보니 앉은부채라 했다. 줄기도 없이 뿌리에서 곧장 큰 잎이 난다. 그 잎이 부채 같아서 제 이름을 얻은 야생화. 겨울 끝의 잔설을 좌대로 삼고 불염포로 열매를 감싸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그 불염포는 어깨로 흘러내리는 자주색의 가사장삼을 닮지 않았겠는가. 그 열매는 겨울을 이겨낸 짐승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먹이라지 않는가. 그러니 차라리 앉은 부처라 잘못 부르고도 싶은 앉은부채.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갑수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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