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40건

  1. 2018.08.16 멜갑시
  2. 2018.08.09 소다데, 머나먼 섬들
  3. 2018.08.06 하늘 우럭
  4. 2018.07.26 시인과 등대
  5. 2018.07.19 계엄령
  6. 2018.07.12 까막눈 할매
  7. 2018.07.05 알로하오에! 하와이
  8. 2018.06.28 하쿠나 마타타
  9. 2018.06.21 성자가 된 청소부
  10. 2018.06.14 아침 점심 수박 저녁
  11. 2018.06.07 께끼 장수
  12. 2018.05.31 다방의 푸른 꿈
  13. 2018.05.24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14. 2018.05.17 늙은 군인의 노래
  15. 2018.05.10 향내 나는 손
  16. 2018.05.03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 99882314
  17. 2018.04.27 ‘게미’ 맛집과 평양 동무
  18. 2018.04.19 당나귀 귀
  19. 2018.04.12 리틀 포레스트
  20. 2018.04.05 나무 목요일

일손도 잡히지 않고 나른하기만 하여라. 낮잠 ‘시에스타’가 있는 나라라면 좋겠단 생각. 나 꼬맹이 때 학교에서 강제로 낮잠을 자게 한 일이 있었다.

의자와 책상을 모두 뒤로 밀치고, 교실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무조건 잠을 자라는 것이었다. 전깃불도 언뜻하면 나가고, 외등도 부족하고, 초저녁부터 귀신들이 돌아다니던 판국에 설마 잠이 부족했을까. 군부정권 때였는데, 군인들이 까라면 그냥 까야 했다. 콧물을 줄줄 흘리던 못난이 짝꿍이랑 방구쟁이들이랑 누워 잠을 청했으나 한 시간 동안 해찰만 부리다가 땡.

잠 못 드는 아이들은 엉덩짝을 두들겨 맞았다. 어떤 해엔 독성물질이 남아 있는 비료포대를 뒤집어쓰고 방공호에 들어가는 훈련도 받았다. 방독면이 없으니 비료포대라도 뒤집어쓰라는 어이없는 지시사항. 사이렌이 울리자 개들이 동시에 으아앙 울기 시작했다. 학교 소사가 키우던 검둥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을 물었다가 양심수로 수감 중. 동네에서 제일 크게 울었다.

영화배우이자 감독 멜 깁슨도 아니고 이쪽 동네엔 ‘멜갑시’라는 말이 있다. ‘괜히’ ‘이유 없이’의 방언. 괜히 갇힌 건 아니지만, 갇힌 개는 유독 서럽게 컹컹 울었다.

여름 한낮 비구름이 말갛게 풀어지고 나면 높고 푸르게 드러나던 가을 하늘. 멜갑시 가슴이 설레어지는 찬바람. 감과 대추가 발간 얼굴로 익어가고 들판에 벼가 눕는 소리도 들렸다. 소프라노 매미가 공연을 마치고 떠날 즈음이면 멜갑시 어디론가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완행버스가 먼지를 뿜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풍경. 형과 누나들이 속속 동네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산업화로 바뀌어 기억 속에나 있는 내 고향 풍경들.

멜갑시 질벅질벅 여자애들을 놀리고 괴롭히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소사네 개가 그 애를 콱하니 물어버렸다. 두번째 구속 수감. 지긋지긋한 양심수 생활로 ‘개고생’하던 개를 풀어주기 위해 난생처음 쇠톱을 가지고 열쇠를 잘랐다.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도둑’이 되어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멜갑시 여자애들이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검둥개가 내 이야기를 했던 걸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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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개들이 팔자가 가장 좋고 다음은 고양이 순. 우리 동네엔 명물 진돗개 말고도 잡종 ‘암시랑토 안하당개’와 ‘쉬었다 가시랑개’가 있다. 천하대장군 개들이 누워 계시는 골목길. 비켜! 해도 안 비킨다. 아쉬운 내가 비켜서 돌아가야지. 사람 입맛들 고급이 되고, 안방 침대에 모셔진 개들이 늘면서 보신탕집은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수술하고 나온 할매들도 달달한 커피와 양송이 수프를 찾는다. 개들아. 좋은 시절이니만큼 마을을 지켜다오.

소재지 호프집엔 생맥주가 동이 나고 있다. 이쪽 사람들은 ‘거시기’ 하면서 삼행시로 건배를 한다. 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게! 미남미녀들은 모두 서울로 가버리고, 대충 생긴 우리들끼리라 그다지 기쁘진 않다. 아이슬란드에선 “스카울!” 바이킹의 후예답게 큰소리로 건배를 나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놀자는 뭐 그런 뜻이겠지.

듣자하니 제주도는 개발 새발, 또다시 나무 학살극. 가장 아름답던 비자림로를 깡그리 밀어버렸다고 한다. 거기다 뻥 뚫린 사차선을 만든다는 계산. 제 정신들인가. 제주도 도지사는 도로아미타불의 그 도인가. 생태와 민주라는 역사의 흐름을 못 읽고 자본의 망나니 춤에 놀아나다보면 신기방기하던 오즈의 마법사라도 ‘오지의 맙소사’가 되고 말 일.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을 다룬 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를 보았다. 북극해,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남극해까지 이름도 모르는 섬들. “나는 지도책과 함께 자랐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 이스터 섬과 로빈슨 크루소 섬 정도는 알겠더라.

대서양의 브라바 섬 항구, 선술집에서 울리는 노래란다.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긴 길을.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먼 길을. 상투메로 가는 이 길. 소다데(그리움),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게 편지를 쓰면 나도 답장 쓸 거야. 네가 잊는다면 나도 널 잊을 거야. 소다데,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아몬드나무, 대추야자나무, 코코넛나무 아래서 부르는 노래. 가깝거나 먼 섬들이 모두 암시랑토 안 하고, 쉬었다 갈 만한 섬, ‘소다데’로 남는다면 좋으련만. 거시기 스카울! 그런 날을 위하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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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생사 따위 초월하고 사는 자. 생판 모르는 나라에서 엄벙덤벙 렌터카를 빌려 타고 비포장도로를 쌍지팡이 짚고 달리는 나. 담뱃갑의 비극적인 사진을 보고도 생사해탈 애연가에 비하면 하수급이겠다. 그걸로 위안을 삼고, 오빠 달려~. 멀리 서쪽 부둣가, 싱싱하다는 말에 속아 ‘오늘의 생선’ 한 접시를 주문. 기대와는 달리 뻔한 ‘피시 앤 칩스’였다. 밍밍하고 심심한 요리. 깨작깨작 먹다보니 얼큰한 우럭매운탕이 간절해라. 한인 식당 한 군데 없는 나라에 찾아온 내가 잘못이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럭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우럭 매운탕.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묻어나는 매운탕 냄새에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우럭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제는 우럭 매운탕을 먹으러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출장도 뭣도 아니고 출가가 너무 길었나보다.

바이킹은 더러 해적도 있었지만 기본이 어부들. 초기 예수 무리도 물고기와 어선 마크를 달고 다니던 주로 어부들. 아랫녘에는 ‘이크티오파기’라 불리는, ‘물고기 먹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자리를 잡은 족속들. 늑대 동굴이나 고래 뼈다귀로 지은 천막집에 살며 고기잡이가 주업이었다. 말리고 염장하고 훈제를 통한 대량보관이 가능해지자 단순한 생계형 어부들에서 졸부들이 되어갔다. 암만 농협 축협 하지만 수협 조합장이 으뜸 아니던가. 청어와 대구를 잡으러 덴마크와 노르웨이 어선들이 북해를 뒤지고 다닐 때 도둑갈매기나 귀염둥이 퍼핀은 일용할 양식이면 족했다. 피시 앤 칩스를 일용 양식으로 주신 하늘에게 반기를 든 한국인. 난데없이 우럭 매운탕을 탐하고 있어라. 하늘을 우러러 하늘 우럭. 둥둥동동 우럭이 떠다니넹.

슈퍼마켓에서 반가운 건어물을 만났다. ‘하르드 피스쿠르’라는 대구포. 요게 짭짤하면서도 고소하다더라. 몇 봉지 쟁여놓고 마른안주 삼아 맥주 세례식. 선수 용어로 멱을 감고 있다. 귀한 사람을 덜컥 잃으면 대신할 누가 있겠느냐만, 주전부리야 무엇으로든 대체가 가능하지. 이걸로다가 어떻게든 몇 밤은 더 버텨보자꾸나.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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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길모퉁이 피어난 들꽃 같은 사람이다. 와글와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눅눅해진 종이에다 시를 적는다. 백야로 하루가 길면 긴 시간만큼 시를 쓴다. 종이가 떨어지면 나무 그늘에다가도 쓰고, 예수처럼 흙 마당에다 쓰고, 모래사장에다도 시를 쓴다. 코끼리떼 돌고래떼 구름에다가 시를 쓴다.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고 말한 고물장수도 금방 시를 쓸 수 있다. 뱀 장수도 이제 그만 뱀을 잡고 시를 써라.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한국인이었다면 선악과는 먹지 않고 몸에 좋은 뱀을 잡아 드셨을 거라는 얘기. 그렇다면 기독교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힛~.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을 해보고 있다. 이 나라에선 빙하를 요쿨이라 부른다. 호수 위에 빙하가 가두어져 기이한 형상이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쏟아지듯이 소낙비가 불쑥 내리기도 하고, 아무리 숙부드러운 바람이라도 뛰던 말들조차 휘청한다. 한국에서 싹쓸바람 태풍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 나는 끄떡도 않아.

담쌓고 벽치던 사람도 이곳에 와보면 정말 뭔 짓을 하고 사는지 뉘우치게 된다. 대다수가 도시에 살고 시골엔 인적이 드물다보니 여행자를 보면 무턱대고 반갑다. 겨우 밥풀이나 떼는 구입장생이라도 커피와 빵을 아낌없이 나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 새 둥지에 이곳의 땅을 담아 그걸 먹을 수 있다면 접시의 반만 먹은 뒤 밤새 편안히 잠을 자리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소설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인도의 아쉬람을 기억하며 쓴 시가 이 땅에서도 유효하다. 외로운 곳에서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깊이 아끼게 되는 법.

어촌엔 등대가 밤을 밝힌다. 당신이 보고 싶으면 등대의 불빛을 보면 된다. 누군가 밤새 사람을, 사랑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속이 뭉클해진다. 시인이 당신의 사랑을 대신하여 밤새 연시를 써 내리는 것처럼. 삶이 아무리 차갑고 황폐해도, 퉁명스럽고 무뚝뚝한데도 방실거리는 미소와 같은 등불이 남아 있다. 내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등대가 있기 때문. 등대 같은 당신과 등대 같은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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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계엄령이다. 꼬마 호떡이 엄마 호떡에게 너무 뜨겁다고 하자 엄마가 그랬다. “얘야! 그럼 얼른 뒤집어.” 평화로운 촛불을 총과 탱크로 뒤집겠다고 군인들이 아무개씨들이랑 머리를 짜냈다는 소문. 촛불광장이 뜨거우면 차가운 바닷물 쪽으로 수영이나 하러 갈 일이지 말이야.

알베르 카뮈는 연극쟁이여서 희곡을 쓰기도 했다. <계엄령>이라는 희곡은 증오와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민중의 사랑과 저항을 눈여겨 따라간다.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계엄령 속에서도 사랑하고, 아리아를 합창한다. “디에고: 당신 머리칼은 밤의 공기처럼 신선해. 빅토리아: 밤마다 창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려. 디에고: 당신 몸에서 레몬 향내가 나. 서늘한 밤과 맑은 물 때문인가 봐. 빅토리아: 아냐. 당신 사랑이 나를 꽃으로 덮어주어 그래. 디에고: 꽃들은 결국 시들고 말 텐데…. 빅토리아: 그다음은 열매들이 있잖아! 디에고: 겨울이 오면 어떡해? 빅토리아: 그때도 우린 같이 있으니 무슨 상관. 당신이 들려준 노래처럼. 디에고: 이 노래? ‘내가 죽어 백년이 지난 뒤 대지가 그댈 잊었냐고 물으면 대답하려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고.’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디에고: 왜 말을 하지 않아? 빅토리아: 너무 행복해서, 목이 메어서….” 사랑의 힘은 강인하고 뜨거운 것. 동토처럼 차가운 계엄령, 빙하처럼 얼어붙은 땅에도 사랑하고 기억하며 옹기종기 모여든 마을의 위대함.

나는 지난주부터 대서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빙하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에 머물고 있다. 이곳의 서울은 레이캬비크. 곁에 ‘비데이’란 작은 섬이 있는데 존 레넌을 기념한 이매진 피스 타워가 있다. 존 레넌의 생일과 기일, 그리고 성탄과 봄날. 오노 요코의 생일에도 빛을 쏜다. 얼음의 계엄령 속에도 ‘이매진 피스’라 24개 국어로 적힌 평화의 탑에선 백야와 극야, 오로라와 함께 ‘빛의 춤’을 춘다. 여름엔 시규어 로스나 지역가수들이 공연을 하는데 ‘이매진’을 합창한다. 겨울엔 빙하 바다에 뛰어든다. 여름의 계엄령, 겨울의 계엄령에도 아랑곳 않는 빛의 춤, 촛불의 노래. 얼마간 이곳에 머물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춤과 노래를 보태보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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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검정 기와. 빨간색이면 장대비가 정조준할까봐 검은색. 뒤꼍에 바위들이 많아서 위장색깔. 동네엔 빨강 파랑 노랑 지붕들. 내 집보다 강우량이 더 많을 거야 분명.

“벽토로 지어 푸른색으로 문을 칠한 집들,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 사모바르 주전자에서 솟아오르는 김, 그리고 강가의 버드나무. 대마초 부스러기를 연상시키는 검은 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빛이 황새들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둥지를 튼 평평한 지붕에 스며들었다. 중심가는 챙 달린 검은색 모자를 쓴 시아파와 챙이 없는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의 펠트 모자를 쓴 조로아스터교도들, 작달막한 키에 터번을 쓰고 쉰 목소리로 격론을 벌이길 즐기는 쿠르드족이 이방인들을 빤히 쳐다보는 웅덩이 같은 곳.” 사진가, 시인 니콜라 부비에의 여행기 <세상의 용도>를 읽다보면 이런 마을에 대한 색깔론(?)이 흥미롭다. 우리 마을도 ‘수많은 빛깔이 깃발로 모여’ 펄럭거린다.

오래전 할매가 대문 앞에서 내 이름을 물었다. 대문에 명패가 턱하니 붙어 있는데도 묻는 건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 앞이 캄캄하다고 해서 까막눈. 교회 있을 때도 앞이 캄캄한 할매들을 만났다. 나는 성경책을 자주 덮어버렸고, 같이 읽자고 청하지도 않았다. 그까짓 검은 글씨를 누구들은 성스럽게 모시지만 사람이 더 귀한 법. 사람의 자존심이 더 웅혼한 것이리라.

겨울엔 온통 희고 검었던 세상이 7월 타오름달, 울긋불긋 마치 화투짝 같구나. 마을회관은 피서지로 인기다. 전기세 무서운 에어컨도 솔솔 돌아간다. 죽마고우란 죽치고 마주앉아 고스톱을 치는 친구. 그 자리엔 백설공주도 꼭 한분씩 있는데, 백방으로 설치고 다니는 공포의 주둥아리. 점당 십원짜리 화투가 아직도 펼쳐지는 곳. 까막눈 할매가 이맘쯤 경로당을 끊고, 고도리가 든 화투도 던져버리고, 세상을 등진 날. 우리집 깜장 차우차우 마오쩌순이가 며칠 곡기를 끊고 앓다가 노환으로 죽은 날. 새까만 털을 다시는 못 만지다니. 산밭에 개를 묻고 검은 기와를 하나 덮어주었다. 평안하라고 기와에 십자성호를 그어주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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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가 깡통을 발로 툭툭 차고 다니자 행인들이 시끄럽다며 쏘아봤다. “나 이사하는 중이라오. 이삿짐 옮기는데 왜들 그러슈.” 참말 간소하게 사는구려. 알짜 땅에다 웅장한 건축물 짓고 사람 불러다 모ㅂ아 ‘사원, 성전’이라 부르고들 있다. 나는 반항심으로 길 떠나는 자들을 위한 ‘순례자학교’를 열었다. 며칠 전엔 순례자들과 동무해서 제주 섬을 걸었다. 예멘 난민을 초대해 농사일을 맡긴 동생의 허브올레 농장에도 갔었다. 올레길을 반기는 푸른 바다도 잠시. 폭우에 휩쓸려온 생활쓰레기가 해변에 수두룩. 혹시 돌고래가 플라스틱 가루며 비닐조각을 먹으면 어떡하지?

태평양 끝머리 하와이 섬. 돌고래의 또 다른 고향. 하와이만큼 꽃이 많이 피고 빽빽한 밀림을 유지하는 섬도 드물 것이다. 바닷가 모래밭엔 바다거북이 흔하지. 인파가 모인 곳엔 훌라춤 파티. 서핑도 하와이가 고향이다. 부서진 카누 조각을 붙들고 파도와 싸우던 청년이 있었지. 멋지게 일어서서 파도 굴을 빠져나오자 그 모습에 반한 인어공주. 청년의 손을 끌고 산호초 궁궐로 사라졌다지.

백인 침략자들은 하와이 원주민들의 고유 언어를 못 쓰게 했다. 서핑과 훌라춤도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선교사들이 그랬지. 영어를 익히면 앞잡이로 세우고, 음식 베풂인 제사상과 풍물놀이조차 금했지. 지금도 금지가 교리인 줄 알고 고분고분 눈치를 본다.

코아 나무로 만든 조그만 기타 우쿨렐레. 우쿠(벼룩)와 렐레(뛴다)가 합해진 말. 다른 해석도 있는데, 우쿠는 선물이라는 뜻도 있다지. 우쿨렐레를 퉁기며 ‘알로하 오에(사랑해요! 당신)’를 열창. 플루메리아 꽃으로 화환 ‘레이’를 만들어 목에 걸친 이들. 가수 박인희의 ‘알로하오에’를 듣다보면 하와이 수평선이 눈앞에 닿는 듯해. “검은 구름 하늘을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서로 작별하여 떠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다시 만날 때까지.”

제주도와 하와이. 돌고래의 고향 섬. 과거엔 우리네 남도 섬들이 모두 폴리네시아의 커다란 서클로 연결되었으리라. 섬여행이 즐거운 여름이렷다. 누구나 알로하오에! 어디나 하와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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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병아리가 엄마 꼬꼬닭에게 질문했다. “엄마. 우리는 날개도 있는데 왜 하늘을 날지 못하는 거죠?” 엄마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즉석자판기처럼 대답했다. “얀마! 하늘을 올려다봐. 시퍼렇기만 하고 먹을 게 어디 있겠니. 땅에 먹을 게 이렇게 많은데 뭐하려구 고생하면서 날아다녀.”

병아리가 난데없이 독수리 꿈을 꿀 필요는 없다. 생을 만족하고 오늘을 즐기며 사는 일이 행복 아닌가. 닭도 사람도 땅이 답이렷다. 주렁주렁 포도가 열리고 무뭉스름한 참외가 많이도 달렸구나. 귀마루 끝엔 귀꽃이 피어 있고 마당엔 두덩에 누운 소처럼 게으른 꽃들의 기지개. 근심 걱정 없이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장마구름 틈에서 햇살이 살짝 비친다.

아프리카 부족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 가운데 대표 인사말이 “하쿠나 마타타!”. 상점 주인도 하쿠나 마타타 인사를 하고, 슬쩍하려는 도둑도 하쿠나 마타타 인사를 건넨다. “모든 일이 잘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 뜻이란다. 하루에 하쿠나 마타타를 백 번 이상은 하고 잠들어야 ‘괜찮은 하루’를 보낸 셈으로 친단다. 치유 무용가 가브리엘 로스는 <기도가 땀에 젖게 살아라!>는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다. 아침에도 춤추고 낮에도 춤추고 밤에도 춤을 추느라 흘리는 땀방울. 나도 ‘어깨춤’이라는 아호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뜨겁게 춤을 추면서 하쿠나 마타타 소리 지르자고 지은 이름. 도망치듯 피서나 할 게 아니라 “걱정하지 말자구!” 용감하게 뙤약볕 모래사장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풍덩! 그대와 나, 우리는 더 물러서지 말자. 진짜진짜 앞으로는 잘될 거야! 그렇고말고. 잘되는 수밖에 없어.

작년 여름의 기억. 영국 리버풀에서 무명 가수들의 길거리 공연을 봤다. 콜드 플레이의 ‘픽스 유’를 청춘들이 엉켜서들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 높여 난리 부르스. 나도 픽스 유! 머리를 흔들고 뜀을 뛰면서 함께했었다. 아프리카식으로 하자면 하쿠나 마타타 인사법. 젖은 나무도 웅신하게 타들어가는 불기의 날들. 기록을 다투는 더위. 그대여! 땀에 젖게 춤을 추며 사랑하자. 여름의 꽃들과 함께 춤을 추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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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취미 생활을 일로 삼아 살다보니 취미에 대해 묻는 이는 드물다. 내 취미를 밝히자면 밀고 쓸고 닦는 ‘청소하기’. 가방에다 물티슈를 항상 담고 다니니 별명조차 물티슈. 밥 먹고 나면 곧바로 설거지를 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글을 쓰기 전엔 책걸상 청소를 마쳐야 개운한 마음가짐. 병적일 정도는 아니나 더럽고 어지럽혀진 곳에 있으면 안절부절 마음조차 산만해진다. 오지여행에선 자포자기하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눕곤 한다. 하루 쉬고 갈 집이라도 화장실 청소를 꼭 한다.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내 물티슈로 똥을 닦는 불행 중 다행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주리반득(출라판타카)’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하도 머리가 안 돌아가 멍텅구리 멍청이 소리를 들었다. 경전도 한 구절 못 외우는 형편. 부처님은 측은한 마음에 빗자루를 하나 들려주시곤 “사원 곳곳 먼지를 쓸어내고, 도반들이 앉는 데마다 반짝거리게 닦아놓으시게” 부탁하였다. 그날부터 주리반득은 죽어라 청소에 전념. “청소란 마음에 쌓인 번뇌의 먼지를 털어내고, 마음에 낀 사념을 닦아내는 일”이란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득은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우뚝 섰다.

청소뿐만 아니라 신변정리가 반듯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더 큰 문제. 산만한 인간관계로 어질러진 약속들. 관리를 못해 무너진 건강도 ‘청소’에 소홀한 때문이리라. 이건 로봇청소기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

마방이나 외양간을 날마다 청소하는 이들, 밤새 도심을 청소하는 미화원.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들과 온갖 눈뜬 벌레들. 떠난 사람을 깨끗이 잊고 새 출발을 한 친구도 마음의 청소부.

꽃잎을 슬픔처럼 달고 살던 나무가 있었다. 제 몸을 바람과 빗물로 깨끗이 씻고 구석구석 숲 주변을 청소하던 나무. 가을겨울 청소를 잘한 나무일수록 건강한 봄여름을 지낼 수 있다. 성자가 된 나무와 청소부들이 밤의 절벽에다 새라새로운 꽃을 피운다. 그대 성자가 되려는가, 바보가 되고픈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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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말 줄임 사자성어가 유행. 이부망천이라던가. ‘이’혼하면, ‘부’부가 더 잘되고, ‘망’하면, 알바 ‘천’국에 가면 되징.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수박은 먹고 헤어지자구. 바야흐로 수박이 제철 아닌가. 아점수저. 아침 점심 먹고 수박도 먹고 저녁까지 먹으면 하루가 끝. 저녁 먹고 나서 수박을 먹었다간 자다가 오줌 마려워 깨야 되니까, 수박은 각오하고 먹어야 해.

웅성웅성 모여 나눠 먹을 땐 수박만 한 과일이 없지. 요샌 평화의 길로 접어든 북녘 친구들이 넘 예뻐서 무등산 수박을 한 트럭 보내주고 싶을 정도. 미안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얼굴이 잘 여문 수박을 닮았다. 어떨 땐 백두산 호랑이 같기도 하고 말이지. “동무! 최고 존엄에게 이런 말 해도 되는기오?” 힝. 여긴 자유대한이오.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잉!

나는 사이다를 넣은 수박화채를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최루탄 연기를 뚫고 대학가 모퉁이 누나랑 둘이 자취하던 친구에게 갔다. 골목 입구 부식점에서 값싼 쬐고만 수박을 한 통 샀다. 대학생 누나는 마침 일찍 들어와 감은 머리를 선풍기에 말리고 있었다. 사간 수박은 덜 익었나 맛대가리가 영 없었다. 누나는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을 꺼내고 사이다를 부어 화채를 만들어 주었다. 우린 박수를 치며 집어먹었다. 마침 기타가 있어 뽐낼 겸 ‘시 코드, 에이 마이너’ 어설픈 노래를 불렀다. 누나가 내 곁에 당겨 앉았다, 나는 숨이 가빠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식당을 하는 엄마에게 꼬맹이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개밥을 주자며 조르자 엄마 왈 “저 손님 남은 밥으로 주자. 조금만 기다려봐.” 얼마 있다가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저 손님이 개밥까지 다 묵어버렸어요.” 헉. 수박은 개밥이 못되어 다행인 과일. 그날 다 먹어버리길 잘했지 정말. 누나의 키다리 남자친구가 불쑥 나타났다. 친구는 자리를 비켜주자며 눈치를 줬다. 거리엔 수박 같은 가로등이, 밤하늘엔 수박 같은 보름달이, 내 가슴엔 수박만 한 눈물이 쿵쿵 떨어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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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벙첨벙 개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엔 장바구니 가득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꺼내먹을 작정으로다가. 커피 마니아 고종황제는 아이스크림도 맛보았을까. 물뼉다구라는 옛 이름은 재미있다. 설탕물을 얼려서 먹을 때 물뼉다구라 했다던가. 언젠가 요코하마에 갔을 때 바샤미치 거리를 구경했다. 일본은 개항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일본 최초로 가로수길에 가스등이 설치되고 가게에선 아이스크림도 팔았단다. 한 곳에서 벚꽃 아이스크림이란 걸 먹어봤다. 하도 조그만 컵에 담아주어 혀끝만 잠시 얼얼하고 황홀했다. 우리도 개항하면 떠오르는 인천이나 부산으로 아이스크림이 상륙한 것은 언제일까. 초콜릿, 콜라와 함께 아이스크림은 서양문물을 대표한다. 시골엔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으니 서울 가면 일부러 찾아가 사먹게 되는데,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촌놈 호강을 해본다.

나 어려서 께끼 장수라고 있었다. 아이스께끼 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동네 아이들을 홀리던 사람. 동화 속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았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꼬리로 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선 탈래탈래 빈 통으로 고개를 넘어갔지. 여름이면 내내 그를 기다렸다. 폴 세잔의 그림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은 여름에 꼭 맞는 풍경화. 툇마루나 대살을 엮은 평상에서 가족들과 수박이나 참외, 딸기 같은 제철 과일을 집어먹으며 여름을 났다. 거기다가 께끼라도 하나 입에 물게 되면 전율할 만큼 행복했지. 정말 행복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님을 더 말해 무엇하랴. 녹아 흐를까봐 혀로 살살 단속을 해가면서 께끼를 음미하던 날의 소박한 기쁨. 께끼 장수가 사라진 뒤로 내 소박한 기쁨도 한 가지 사라지고 말았다.

에어컨을 아무리 펑펑 틀어도 시원하지 않은 시절이어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아이스크림은 여름의 별미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께끼 장수. 미루나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던 그를 마중 나가던 아이들도 함께 사라지고 없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골목에서 나던 그 소리. 문득 환청이 되어 들리는 듯해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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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란 말 대신에 다방이라고 쓰면 반갑다. 늙다리 옛사람도 아닌데 그러하다. 이난영의 노래 ‘다방의 푸른 꿈’을 틀어놓는다면 금상첨화겠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느나 부르느나. 흘러간 꿈을 찾을 길 없어 연기를 따라 헤매는 마음.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조우는 푸른 등불 아래 흘러간 옛사랑이 그립다. 조그만 찻집에서 만나던 그날 밤 목메어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느나 부르느나. 소리에 실은 장미화러냐. 시들은 사랑 쓸어진 그 밤. 그대는 가고 나 혼자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남미에서 가장 이름난 다방을 가봤다. 아르헨티나 하고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를 추다가 구경하다 어찌 저찌 하다가 토르토니(Tortoni)라는 수백년 된 다방에 들어섰다. 가르델의 유성기판 탱고 노래들이 흐르는데, 나는 뜬금없이 이난영의 노래 ‘다방의 푸른 꿈’이나 ‘할빈(하얼빈) 다방’이 듣고 싶었다. 그런 오래되고 센스 있는 다방이 서울이나 울 동네 어디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야흐로 아이스커피의 계절. 걱정하는 척 남 흉이나 보고 앉아 있는 속인들 말고 손해만 보고 사는 맘 착한 친구랑 앉아 수다를 떨고파라. 편하고 순정한 다방이 어디 있나.

이브 라발리에는 십대 때 파리에 당도한 인기 절정의 여배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산속 마을로 숨어버렸다. 동네 병원을 도우며 화장기 하나 없이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튀니지에 찾아가 병자를 돌보기도 했다. 사연을 알게 된 영화계는 안달이 났다. “나는 파리에 돌아가지 않을래요. 파리는 많은 걸 안겨주었지만 행복을 주진 않았어요.” 라발리에는 장미꽃이 만발한 시골 다방에 앉아 시집을 읽고 드뷔시의 ‘달빛’을 들었다. 가장 부자였다가 가장 가난한 재속 수도자가 되었다. 소리에 실은 장미화. 성모 마리아에게 꽃을 바치며.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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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라는 뜻. 호주 원주민들은 코알라를 제 아기처럼 예뻐한다. 엄마 잃은 코알라를 데려다 키우기도 하는데, 아침마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대령했다. 코알라는 하루 종일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씹어 먹는다. 이게 밥이고 물인 게다. 다른 잎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잎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달큰히 먹으면 취기가 돈다. 코알라의 낙천성은 유칼립투스 잎에서 나오는가 보다.

유칼립투스란 꽃이 덮여 있어서 지어진 이름. ‘덮여 있다, 가려져 있다’라는 뜻. 유칼립투스의 꽃말은 ‘추억’이다. 추억 또한 덮여 있거나 가려진 일들이 배나 많은 법이렷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를 사랑한다. 마치 판다곰이 대나무 순과 잎을 아껴먹는 것처럼. 세상에 이 나무 이 그늘뿐이라는 듯 한번 타고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른다. 한번은 이브가 아담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꾸 캐물었다. “여보! 나만 사랑해?” 이브는 더 당겨 앉아 아담에게 물었다. “날 진짜 사랑하냐구… 응?” 그래도 시큰둥. 뿔딱지가 난 이브가 아담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 나 사랑해?” 그제서야 아담이 한마디. “여기에 당신 말고 누가 또 있다구 그러셩. 안심하셩. 증말~”

사랑한다는 말.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시골에선 이런 일도 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난 아주머니가 병원에 가서 생긴 일. “선상님. 요거이 그냥 종기 맞지요?” “암 그라지요. 걱정 마시쑈잉.” 아낙은 그길로 병원을 빠져나와 대성통곡. 암이라는 말이 그 나쁜 암을 가리킨 게 아닌데….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아아.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 오오. 사랑 사랑 그 누가 말했나. 아아.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오오.” 단점, 약점, 흠과 티를 물고 흔드는 것도 모자라 거짓부렁까지 해가면서 갈라서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드는 짓들.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이런 어깃장을 부리는 자들이 있다. 코알라에게 유칼립투스를 빼앗고, 판다에게 대나무를 빼앗으려는 자들. 사랑 노래를 진창 불러도 모자랄 판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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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 지금은 대통령비서실장. 나도 안면이 있는 분인데, 신출귀몰 전대협의 전설이었다. 1990년대 초 그가 오랜 수배 끝에 붙잡히자 교통방송 진행자였던 가수 서유석은 노찾사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멘트 한마디 없이 틀었다고 한다. 노찾사는 당시 대학가와 대중들에게 신선하고 말랑말랑한 ‘운동권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2집의 인기는 대단했다. 광야에서, 사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잠들지 않는 남도…. 김민기의 대를 잇는 노래꾼들이 모여 음반을 제작했고, 노찾사의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만 알던 대중이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르게 된 것은 모두 노찾사 덕분이었다. 또 질펀한 대중가요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은 한대수, 정태춘, 김광석과 백창우, 한돌, 안치환, 노래마을 등에 마음이 흘러갔다.

그 이전은 무조건 김민기 시대였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군인은 노동자가 되고 농민이 되고 투사로 바뀌어 불리었다. “내 평생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오월 광주에서도 이 노래는 애국가와 함께 불리었다.

이른 봄날 광주에선 박효선, 윤상원 등이 극단 광대를 창단. 소설가 황석영이 축사를 하고 김민기 기획, 양희은 찬조출연의 잔치가 열리기도 했다. 청년학생들은 뒤풀이 내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김민기는 정년 퇴직한 선임하사의 넋두리를 기억했다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농촌에선 “농민이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모내기하다가도 얼싸덜싸 불렀다. 남북의 늙은 군인들, 퇴직하고 금강산 구경이나 갔으면. 총은 새떼나 쫓을 때 허풍으로 쏘는 것이고, 훈련은 지진 대비 훈련이면 족한 세상. 봄비 살살 내려 세상이 고요하고 참 좋았는데 전투기 편대가 꽈광꽝. 달콤하게 낮잠 자던 아가들 깜짝 놀라 깼겠구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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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이랑 눈싸움하고 들어온 밤. 어머니는 동동구루무를 손에 잔뜩 발라주셨다. 트고 갈라진 손에 기름기가 물큰하니 퍼졌다. “아가. 손은 밥 먹을 때와 일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때, 기도할 때도 이렇게 두 손을 모으잖니. 몸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게 손이란다.” 노랗고 노란 달빛 아래서 어머니는 내 손을 오래도록 만지셨다. 함박눈이 내리다가 그치고 또 내리다가 그치고 하던 밤이었다. “낼 누가 오실랑가부네.” 아니나 다를까 먼 나라에 일하러 가셨던 외삼촌이 불쑥 찾아오셨고, 어머니는 편찮으시다는 외할머니 소식에 눈물 지으셨다. 두 분이 조금씩 흘린 소금들로 간이 맞아선지 저녁밥은 정말 풍성하고 맛있었다. 눈이 그치자 달이 둥시럿 떴다. 봉창엔 따스한 불빛이 어렷다.

갓방에서 외삼촌이랑 같이 잤는데, 오들오들 추운 밤에 삼촌은 사우디 사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래가 산처럼 쌓인 나라. 물이 없이도 길고 먼 여행을 한다는 낙타라는 동물.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 “저도 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해봐. 뭐든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 언젠가 백 프로 이루어진단다.” 삼촌은 미신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다음날 일찍 새벽길을 떠나셨다. 그런데 삼촌 말이 자꾸 맘에 걸렸다. 기도할 때마다 손을 모으게 되었다.

붓다께서 여행하실 때 전다라 신분의 사람, 게다가 똥치기인 한 청년의 집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청년은 붓다를 한번 뵙고자 간절히 바라 왔었다.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그를 갠지스 강으로 데려갔다. 악취로 코를 찌르는 몸을 친히 닦아주었다. “이제부터는 나를 따라오라. 너를 제도하여 사문을 만들겠다.” 천민 신분으론 수행자가 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는데, 붓다는 완전히 달랐다. 출요경에 따르면 “똥치기 청년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수행한 끝에 열흘이 못 되어 번뇌를 완전히 끊어버린 성자가 되었다”. 똥을 치던 손으로 스님들의 밥을 짓고, 스승 붓다를 따라 걸으면서 손을 모아 정진했다. 이후 청년의 손에선 세상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향내가 났다. 아무도 그가 똥치기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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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이 봄비 오시는 날. 이은하의 노래 ‘봄비’가 혀끝을 맴돈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꿈같던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 뒤돌아 살아가는 날들. 소식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켰다.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이 궁금해. 혹시 99882314가 아닐까.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고 꼴까닥 죽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렇게 좋은 날 보고 가시지 서두르셨나요. 울 아버지 어머니, 당신 아버지 어머니. 우리라도 오래오래 살아서, 살아남아서 좋은 날 좋은 세상 구경합시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세상이 온통 파릇파릇, 올챙이 떼 웅덩이 가득 헤엄치고 개구리는 마당에서 담박질. 대나무 식구들은 일가친척 수도 없이 모여 살면서도 무엇이 또 아쉬워서 아기 죽순들을 저렇게 ‘다산’하는 것인지. 정말로 우후죽순. 낳고 낳고 또 낳고, 징하게도 많이 낳아 복작거리며 산다. 빽빽한 대숲.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 도우며 텅 빈 가난에도 허리가 휘는 찬바람에도 견디고 또 견디는 저들. 대나무를 몇 그루 쪄서 울타리를 보수했는데 금세 그 빈자리에 죽순이 불쑥 올라와 있구나. 누구도 못 이긴다.

울먹이고 외롭던 새. 알을 몇 개 부여안고 빗속에서 애지중지. 아기 새들 눈뜨면 엄마는 진종일 먹이를 물어 날릴 것이다. 나눠 먹으라고 꾸짖으면서 엄한 교육도 마다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읽다보니 99세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강어귀 물살이 일렁이고 소금쟁이 한 마리 지팡이를 짚으며 물위를 헤엄쳐 다가온다. 예수처럼 누구처럼 물 위를 아슬아슬 걸어오는 평화여! 봄비 세상을 관찰하다가 당신 얼굴을 보았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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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윤이상의 고향 통영 앞바다에서 건진 싱싱한 문어로 만든 냉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학시절 즐겨 먹었을 스위스식 감자전, 김대중 대통령이 애호했던 신안군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의 궁합 민어해삼편수, 정주영 회장의 소떼로 잘 알려진 충남 서산목장 누렁소로 만든 한우숯불구이,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지은 찰진 봉하쌀, 그리고 직접 평양에서 요리사를 모셔와 장만한다는 옥류관 냉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 남북정상회담장을 달뜨게 할 만찬상.

이곳 남도에선 친구들을 만나면 점심때 뭘 먹었냐부터 성큼 묻는다. 딸이 시집을 가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시가는 도대체 뭘 먹고 사니였다. 반찬만 알면 모든 살림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맛난 음식을 가리켜 ‘게미가 있다’라고 했다. ‘게미’란 곰삭은 깊은 맛을 의미한다. 게미 있는 맛은 기름에 튀긴 달달한 음식이나 혀끝에서만 요동치는 음식 맛이 아니다. 봄이면 쑥을 한줌 뜯어 넣고 야들야들한 보리 순을 뜯어설랑 홍어 내장과 함께 끓인 홍어애국을 먹었다. 코가 뻥하니 뚫리고 입안 천장이 홀라당 벗겨지는 맛. 한번 게미 입맛에 빠지면 호남선 열차에 자주 올라타게 될 테다. 북조선 동무들도 헤어날 수 없게 될 이 게미 수렁.

하얀 국물에 둥둥 뜬 수육과 향긋한 파향을 호물호물. 밭에서 막 뜯은 상추, 부추, 쑥갓으로 쌈을 해서 입꼬리가 찢어지게 아그작아그작. 어디 음식점을 가나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경. 어느새 나도 그중의 한명이 되고 만다. 나는 낙지 요리에 환장하고 오리고기도 즐기는 편. 쇠고기는 남이 사줘도 눈치를 좀 봐야 한다. 선의는 돼지고기까지이며, 쇠고기는 잘못 먹으면 속탈이 무섭지. 돼지고기는 사주면 얻어먹어도 무방하지만 오리고기는 제 발로 찾아다니라는 옛말이 있다. 광주엔 오리탕 골목이 유명하다. 인근 담양에도 맛집이 두어군데 있다. 오리고기보다 미나리나 쑥을 더 먹게 된다. ‘남도의 5미’라는 한정식, 보리밥, 김치, 오리탕, 떡갈비가 담양에 다 있다. 언젠가 평양 동무들이 우리 동네에 찾아오면 내가 한턱 쏴야지. 간첩은 빼고잉.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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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신발 뒤축이 닳아서 구둣방을 찾았다. 뒤축을 새로 붙이면 새신처럼 신을 수 있단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나귀나 되는 것처럼 수선한 신발을 신고 발길질을 해 보고, 푸륵푸륵 콧김도 날려봤다.

중동 지방이나 인도, 네팔, 머나먼 남미 안데스 산길을 여행하면 당나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돌길을 오를 때 당나귀를 타기도 하는데 힘이 천하장사. 당나귀와 몇날 며칠 같이한 적도 있었다. 짐을 나르기도 하고 나를 태우기도 하면서 산골마을 트레킹을 도와주었던 당나귀.

프란츠 카프카의 <꿈>에도 당나귀가 나온다. 꿈속 당나귀는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데 은색 가슴 털과 배를 내놓고 다닌다던가. 도심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짐도 들어주고, 폐지 줍는 할머니 언덕 오를 때 리어카도 밀어주는 이런 당나귀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거짓 없는 투명한 세상을 이야기할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이야기가 맨 먼저 떠오른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실. 들을 귀가 당나귀 귀처럼 자란 사람들. 아무리 덮거나 속이려 들어도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은 밝은 귀를 종그리며 금방 알아차린다. ‘잘 알아듣고, 잘 알아차린’ 사람들만이 진실의 세상을 사는 주인공들. 거짓의 세상을 밀고 가는 기계들과 달리 당나귀는 진실의 세상을 끌고 앞으로 간다. 주인 말을 잘 알아듣는 당나귀와 함께 산길을 걷는 즐거움. 자라다가 멈추는 손톱처럼 기운이 빠진 당나귀에겐 잘 익은 당근을 먹이자. 불쑥 또 힘이 자라면 다시 길을 출발. 오래오래 소금밭을 걸어왔는지 짠물이 고인 눈. 잔등을 쓰다듬어 가면서 당나귀와 함께 걷는 인생길.

시인은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이다. 잘 들어야 잘 쓸 수 있지. 글을 쓰는 데 있어 경청만 한 비법은 없다. 사람의 말은 물론이고 자연의 언어도 알아듣는 시인. 영매처럼 다른 세상의 이야기까지 술술 들려주는 신비한 능력. 진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우리 곁의 수많은 시인들 가운데 바로 당신. 어제보다 더 자란 귀를 만져보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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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자랑(자장자장) 웡이 자랑, 금도 자랑 효도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곤밥(쌀밥) 먹엉 자는 소리. 놈의 아기 우는 소리, 고치(같이) 먹엉 우는 소리. 저래 가는 깜동 개야, 우리 아기 재와 두라. 느네 아기 재와 주마, 이래 오는 깜동 개야. 아니 재와주민(안 재워주면), 솔진솔진(날카로운) 촐(풀) 베려당(베어) 손발 꽁꽁 묶엉이네, 지푼지푼(깊디깊은) 천지 소레(물구덩이) 들이쳤다 내쳤다 허켜.”

‘웡이 자랑’이라는 제주도 자장가란다. 노란 뱅애기(병아리)가 꼬꼬꼬 울면서 뛰어가는 제주 유채밭도랑. 아기 무덤 지나면 아방 어멍 무덤, 너머엔 하르방 할망 무덤. 제주 봄날 꽃다운 사람들 아이고게(아이고) 죽고, 하영(너무) 가난한 사람들 아이고게 죽고.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 먼바다에서 아깝게 죽고, 원통 분통한 봄날 슬픈 일 견디라고 꽃들은 저리 음쑥듬쑥 피는 걸까. “삼춘. 이디 봅써. 잘도 고우시다예.” 동백나무가 나를 붙잡고 말을 걸어온다. “나도 사랑허주게~게”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어잉.

자전거를 탄다. 봄 날씨엔 자전거지. 뜰낭(산딸나무), 굴무기낭(느티나무), 흰꽃이 무더기로 달린 시오기낭(섬개벚나무). 자전거는 보풀을 일듯 꽃눈을 날리면서 동네를 가로지르다가 삼춘들(어르신들) 타령소리에 멈춰 선다. “저 산천에 풀 이파리는 해년마다 푸릇푸릇 젊어나지고, 이내야 몸은 해년마다 소곡소곡 늙어간다.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오! 리틀 포레스트. 삶을 고양시켜주는 자연과 이런 체험. “조그만 동네를 산책할 때, 농부들의 장터에서 농산물을 구입할 때, 놀이터나 공원에 얘들을 데려갈 때, 리틀 야구를 구경할 때, 커피집에서 잠깐의 휴식을 즐길 때. 이처럼 이웃들과 섞이는 경험이 없다면 얼마나 삶이 무미건조할까.” &lt;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gt;에서 파커 J 파머는 이기와 냉소의 풍조에 휘둘리지 말고, 서로 마음을 쓰다듬자며 호소한다. 할망이 불러주는 자장가, 나무 아래 모인 삼촌들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면서 춤춰야 한다. 영악한 세상에 순수한 사람이여! 부디 다치지 말으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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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가운데 목요일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무 목자, 목요일. 나는 나무를 사랑하다 못해 정원사까지 되었어라. 내 정원을 한번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정원사라는 말에 트집 걸지는 못할 것이다. 울타리 솔숲과 갖가지 정원수로 꽉 찬 정원. 며칠 봄비가 내린다 하여 나무마다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냈다. 내 손바닥은 나무의 살결 수피처럼 거칠고 딱딱해졌다. 샌님의 곱디고운 그런 손길이 아니다. 갈라지고 파이고 딱딱하며 거친 손. 악수하는 이들마다 무슨 공사하고 왔냐 캐묻는다. 나무를 매만지면 저랑 같은 동족인 줄 알고 가지를 쭉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

티베트 사람들은 이웃과 포근한 정을 나누기 위해 통렌(Tonglen)이란 수행법을 사용한다. 정을 나누며 살고픈 사람을 생각하고 그의 근심 걱정, 고통을 헤아려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이 그의 모든 어두움을 삼킨 뒤, 다음은 천천히 숨을 내쉰다. 이때 그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훅~’ 내쉬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통렌 수행을 해온 수도자 같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그늘을 들이마신 뒤, 우리에게는 밝음과 미소 그리고 맑은 공기를 안겨주는 나무. 목요일에 이르면 비로소 정신이 차려지고 숨도 고르게 쉴 수 있게 된다. 나무의 날은 평화와 안식의 날.

꼬리가 잘린 여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솔로’ 여우는 제 꼬리를 베고 단잠을 잔다. 여우 꼬리의 전설은 대부분 배필, 짝을 상징한다. 꼬리 달린 모든 짐승들은 꼬리로 대화도 나눈다. 마찬가지로 나무도 대지의 꼬리. 목요일은 일주일의 꼬리부분이다. 일에서 놓여날 수 있는 금토일이 머리 부분이라면 월화수는 생을 살아가는 본디박이 몸통. 그러다 목요일이 되면 살랑살랑 봄바람에 춤을 추는 꼬리처럼 휴일이 설레어서 행복해진다. 나무는 다른 날보다 배나 어깨를 들썩거린다. 요샌 보통 목요일 밤에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더라. 금요일 오후부터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목요일 밤엔 나무그늘 아래서 혼자 고독하게 차 한 잔 즐겨도 좋다. 나무 목요일, 나무아미타불. 이날엔 누구나 부처님처럼 성불할 수가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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