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56건

  1. 2018.12.06 겨울 염소
  2. 2018.11.29 연탄난로
  3. 2018.11.22 사람 자랑
  4. 2018.11.15 달새와 비새
  5. 2018.11.08 인디언 기우제와 첫눈
  6. 2018.11.01 샤바 샤바 아이샤바
  7. 2018.10.25 앞으로의 삶
  8. 2018.10.18 점순이
  9. 2018.10.11 굴뚝 연기
  10. 2018.10.04 단감과 맨드라미
  11. 2018.09.27 된장국
  12. 2018.09.20 조을라고
  13. 2018.09.13 돌아온 입맛
  14. 2018.09.06 소설가의 집
  15. 2018.08.30 인력시장
  16. 2018.08.23 싫어, 아니야
  17. 2018.08.16 멜갑시
  18. 2018.08.09 소다데, 머나먼 섬들
  19. 2018.08.06 하늘 우럭
  20. 2018.07.26 시인과 등대

들판에 보이던 염소가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아기를 가져 배가 남산이 된 염소, 귀염둥이를 데리고 다니는 염소, 맴맴 돌다가 목줄에 감긴 염소, 우두커니 먼산바라기를 하는 수행자 염소, 뺀질뺀질한 양아치 염소, 안 가겠다고 삐대고(버티고) 앉은 떼쟁이 염소, 입삭낭구(잎사귀)를 죄다 뜯어먹고 배터지기 직전의 부잣집 염소, 졸다가 경운기 소리에 자망해서 뒤로 나자빠진 염소. 뿔자랑을 하며 깔짝깔짝 싸움을 거는 염소. 세상 뭐 있어, 디룩디룩 살찐 염소, 멀뚱멀뚱 똥개를 쳐다보는 염소, 부잡스러운 염소, 시부렁거리는 염소, 암컷을 쫓아댕기는 염소, 명주 솜털만큼 보드랍고 얌전하니 시말스러운 염소. 흑사탕처럼 검은 똥을 뻐르적뻐르적 싸놓은 염소…. 갑자기 하얗고 검은 염소들이 보고 싶어라.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하나.

김성동의 소설 <염소>는 여덟 달을 살다간 흑염소 빼빼의 이야기. 노랑내 난다고 소금을 한 주먹 집어먹게 한 뒤 칼잡이는 빼빼에게 덤벼들고, 순간 빼빼는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린다. 충남 보령 솔미마을. 입만 열면 “떠야지, 떠야 혀”라고 말하는 주민들 속에서 어디론가 떠나고팠던 빼빼. “편지해!”라는 청삽살이의 배웅을 받으며 장으로 끌려갔다. 중간 상인을 들이받고 잠시 자유를 얻기도 했다.

“내가 사람의 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였을 때, 나는 이미 힘없이 끌려만 다니던 어제의 염소가 아니라는 것을….”

빨강 에나멜 구두나 또각거리는 도심에선 볼 수 없는 염소를 만나러 북인도나 중동땅에 가고는 했다. 파키스탄에선 염소가 사람만큼 흔하다. 염소들이 맞아준 검은 밤엔 로티빵을 씹으며 염소젖을 먹어보기도 했다.

눈앞에서 사라지자 문득 보고 싶은 무엇들이 생기질 않던가. 하지만 다시 봄이 되어도 보기 싫은 얼굴들이 있다. 옥에 갇힌 적폐의 얼굴들. 그들을 누구 맘대로 석방 운운인가. 잠시 한뎃바람을 피하자는 겨울 염소도 아니고 말이다. 염소는 악마의 얼굴을 닮았다지만 진짜는 다른 데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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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김장철. 이 집 저 집에서 구수한 깨 볶는 냄새. 배춧잎의 새하얀 고갱이 향기가 또 얼마나 다디단지. 나는 김장김치를 얻어먹는 베짱이. 밭에선 할매들이 배추를 뽑아 다듬고, 나는 소나무를 성탄트리 삼아 별과 방울을 매달았다. 팝스타 스팅은 성탄 캐럴을 한장 냈는데, <겨울밤>이라는 음반. 앨범에는 팬들에게 띄운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다. “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있는 녹음실에서 한해 겨울을 보냈어요. 피렌체 북부지방의 찬바람이 매서웠죠. 일곱명의 음악가들과 모직 코트를 껴입고 주방 난로에 둘러앉아 머그잔으로 손을 데웠죠. 녹음기간 11월부터 3월까지 그 지방의 추위와 어둠을 견뎌야 했어요. 어찌나 추운지 입김이 풀풀 나오고 길은 얼음장이었죠. 나는 어릴 적 깜깜한 새벽에 아버지와 우유배달을 하면서 자랐어요. 하얗게 쌓인 숫눈길을 걸었죠. 우유배달을 마쳐도 해가 뜨지 않았죠. 우리 집의 유일한 난방장치는 연탄난로였어요. 전등을 끄고 앉아 난로를 혼자 바라보곤 했죠. 붉게 타오르는 연탄과 유령처럼 어른거리는 내 그림자를 하염없이 쳐다봤어요.”

나도 연탄난로를 보고 자랐다. 아래층 위층 두개의 연탄을 불구멍이 보이도록 갈아 끼우는 일. 연탄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고갤 돌려봐도 별수가 없었다. 콧속으로 매캐한 무엇이 훅 들어오곤 했다. 새벽예배를 위해 교회 난로는 살리고 목사관의 연탄보일러 불씨는 죽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 날은 아침 내내 추위에 떨었다. 미안했던지 목사 아버지는 달고 따뜻한 코코아를 컵에 가득 담아 건네시곤 했다. 아버지가 부엌에 나타나서 하신 일은 자신이 즐기시던 커피와 아이들을 위한 코코아를 타는 일뿐이었다. 그러나 그 코코아 맛을 지금도 기억하는 건 연탄보다 연탄과 맞바꾼 코코아가 훨씬 따뜻했기 때문이리라. 여기에 케이크도 한조각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소울케이크 한조각 주세요. 인심 좋은 아주머니 제발요. 이 집의 주인과 안주인, 복받으세요. 식탁에 둘러앉은 아이들 모두 무럭무럭 자라길. 마구간의 가축과 문 앞의 개도 열배의 축복이 있길.” 스팅의 캐럴 ‘소울케이크’로 겨울이 시작되었다. 당신, 어느 해보다 따뜻한 겨울을 나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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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엔 거절밖에 달리 대책이 없다. 아무 데나 걸터앉아서 판소리를 내질러서야 되겠는가. 예전엔 여기저기 연재를 많이 했었다. 하지만 써재낀 글들을 책으로 묶는 일은 낯부끄러워서 차마 하지 못했다. 세상에 사람은 많으나 사랑은 한 사람뿐이듯 내 글은 재주가 아닌 진심이고 싶었다. 그런 글을 찾아 살게 해주신 여러 은인들이 계시다. 감사한 인연들.

오래전 ‘샘터’라는 잡지에 수필 연재를 다년간 했었다. 하루는 샘터의 뒷방을 지키던 동화작가 정채봉 샘이 전화를 주셨는데, 무슨 이야길 나누다가 정샘의 글 가운데 ‘택시 번호 연하장’ 얘기로 미소가 번졌던 기억. “지난해 송년 모임에서였습니다. 친구가 수첩 중의 한 장을 끊어서 송구영신이라고 써서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쪽을 들여다보니 웬 택시 번호가 줄줄이 적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무심히 무슨 택시 번호냐고 물었지요. 그러자 친구가 씩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금년에 너 태워 보낸 택시 번호들이야. 마음이 안 놓여서 그냥 있을 수가 있어야지.’ 바깥으로 나오니 그날따라 눈이 오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부 우범 택시들 얘기. 옛날엔 통금에 죄다들 쫓겼고, 택시는 폭풍우에 뜬 유일한 조각배였었다.

택시 번호가 담긴 연하장은 아니더라도, 금테를 두른 반지가 아니더라도, 엽서와 감귤 한 상자 선물로 나누는 연말. 안부를 묻는 다정한 인연. 세상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오직 ‘친구’ ‘사람’이라던 말씀. 그날 정샘과 나눈 대화는 택시 번호를 기록하는 심정으로 세상에서 나를 지키고 또 친구들을 지키며 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고물장수 두부장수, 푸성귀장수, 떡장수, 엿장수, 찹쌀떡장수, 메밀묵장수… 겨울 골목마다 손님을 찾아 서성이던 목소리. 막차를 타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과 호호 시린 손을 비비던 택시 운전수. “얼른 여와붑시다잉.” 부모님 허락에 벅차서 눈 내리는 밤길을 오래 서성이던 연인들. 돈 자랑, 집안 자랑, 권세 자랑, 다들 하는 자랑 속에서 당신의 유별난 친구 자랑. 그런 사랑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일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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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고꾸라진 나무는 땅심이 좋지 않음을 말해주네. 하지만 길 가던 사람들은 나무가 구부러져 볼품없다고만 흉보네. 바다에 떠 있는 근사한 요트보다는 어부의 찢긴 그물이 내 눈에 들어오네. 나이가 사십이 되자 소작농의 아내는 허리가 휘었다네. 나는 그 굽은 몸에 관해 노래하네. 아리따운 아가씨의 따스한 가슴은 외면한 채 말이네. 나도 사과나무에 피는 꽃을 제목으로 시를 쓰고 싶다네. 하지만 얼토당토않은 아무개의 연설에 분개하는 일에 마음이 앞서가네. 나를 책상으로 당겨 앉게 하고 시를 쓰게 하는 것은 역시 노여움이라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는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저 총총한 시. 우리는 굵직굵직한 분란과 소요를 겪으면서 가까스로 예까지 살아왔다. 때마다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헤쳐온 길. 그러면서도 한편 “달새의 머리는 온통 달에 대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다네. 비의 새는 온통 다음번 비가 언제쯤 내릴까 하는 생각뿐. 우리가 온 생애를 바쳐 사랑하는 그는 누구인가?” 인도의 시인 카비르가 들려주던 ‘애초의 시’를 내 작은 가슴에 품은 지도 오래되었다. 자연에 깃들여 살면서 한껏 ‘자연주의’가 될 수 없었던 노릇은 우리 시대 시인의 동일한 운명일까. 돌보지 않으면 방안 곳곳 쥐구멍이 생기는 것처럼 이내 마음 하나 챙기기도 쉽지가 않은 세월인데, 어두운 골목을 바라보면 눈물만 한가득이 된다. 내 배만 채운다고 해결될 수 없는 이 허기와 갈증. 다닥다닥 붙은 고시원에서 숨져간 이웃들의 사연엔 손이 다 떨렸다. 이뿐만 아니라 유치원 때부터 행여 한 아이라도 외롭거나 가난하지 않기를 바라는 부릅뜬 국민들의 눈과 노여움. 아이들의 웃음만 말고 아이들의 눈물도 엿볼 줄 아는 시인들이 많아져야겠다.

세계 상위층 부유함을 누리고 사는 우리들. 얼마나 더 경제가 성장해야 원이 풀릴지. 이십대 자녀가 더는 쑥쑥 키가 자라지 않는다며 한탄하는 어리석은 부모나 마찬가지. 많이 가지는 일보다 잘 나누고 사는 법을 터득해야 할 때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오로지 사랑으로 혁명하는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오늘도 분노하고 사랑하면서, 달새와 비새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먼 산을 바라보았다. 노을보다 붉은 단풍이 번진 먼 산을.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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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아저씨가 밤새 퍼마시고 집에 들어오니 곤히 자던 부인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내질렀다. “새벽 두시예요. 차라리 더 마시고 곧바로 출근을 하지 그러셨수. 집에는 왜 들어와서 달그락거리고 잠을 깨냐고요. 나도 술을 못 마셔서 이런 줄 아슈?” 그러자 아저씨 대답.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시간에 문을 열어주는 집이 이 집뿐이라서 들어왔소. 미안해요잉.”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개 꺼내더니만 텁석 식탁 의자에 앉더라는…. 그 말이 우스워서 둘이 그 맥주 한캔을 나눠 마셨다는 훈훈한 결말.

밤을 새우는 열정. 무어라도 하나 열심히 끈기 있게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지.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이면 쉽게 쓰러지진 않을 사람. 연말연시 모임들이 많을 때다. 연말에 한번쯤은 꼭 만나 맑은 술 한잔 나누고 지나가야 섭섭하지 않은 벗들이 있다. 자주 만나진 못해도 소중한 인연은 꼭 지켜가야 한다.

인디언 기우제는 신기하다. 호피족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몇날 며칠을, 아니 몇달이라도 계속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그날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정성. 냉정하던 하늘도 어찌할 수 없는 이 오기와 끈기. 애타하는 마음들이 모이면 하늘도 움직인다. 

호주 눙가바라 원주민들의 창조 신화는 재미있다. 어느 날 땅이 무지개뱀을 낳았다. 뱀은 이곳저곳 다니며 강줄기를 냈다. 강물 속에 개구리알 보따리가 생겨났고 뱀이 개구리의 옆구리를 간질이자 개구리는 웃음보를 참지 못해 보따리가 터져버렸다. 개구리들이 온 강줄기에 가득 찼다. 이제 개구리떼는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하게 울기 시작했다. 주구장창 울어댔다. 결국 비가 가득 내렸다. 나무와 풀과 꽃들, 캥거루와 코알라, 암사슴과 새들이 강물줄기에 기대어 살게 되었다. 비도 그렇지만 첫눈도 간절한 마음으로 빌 때 ‘펄펄’ 내린다. 첫눈 내리는 날 보자고 약속한 사랑이 세상에 있는 한, 첫눈은 올해도 어김없이 내릴 게다. 간절한 사랑과 소원이 없다면, 더는 비도 눈도 이 세상에 내리지 않으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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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씨는 심을 땐 구덩이에 쇠똥거름을 담뿍 준다. 발아 시기에는 해충을 이겨내도록 잎사귀에 재를 툭툭 뿌려주지. 가을이면 샛노란 호박마차를 탄 신데렐라가 어김없이 찾아온다오. ‘검은 재를 뒤집어쓴 소녀’란 뜻의 신데렐라. 호박공주라고 불러도 되겠다.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왕자님은 언제 만날까.” 아이들은 신데렐라 동요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즐긴다.

계모와 언니들은 착한 신데렐라를 왜 괴롭혔을까. ‘구박을 받았더래요, 불쌍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사랑을 받았더래요, 행복한 신데렐라’… 이런 스토리였다면 얼마나 좋아.

눈 내리는 밤, 노란 호박죽을 끓여먹으면 노란 보름달처럼 속이 다스워질 거야. 우린 이토록 정겨운 호박에다가 서양에선 악마 얼굴을 새겨 넣고 촛불을 밝힌다. 크리스마스가 명절이 되었듯 요샌 핼러윈데이가 젊은이들의 축제. 반짝거리는 유리 구두처럼 환한 쇼윈도. 호박 등불을 밝힌 가게마다 유령 무도회가 밤새 열릴 것만 같아라.

이맘땐 이른 무도 덥썩 캐고 고구마도 풍년. 단감도 살찌게 먹는 시기. 무를 날로 깎아먹으면 방귀를 밤새 뀌게 된다. 일본에서 방귀를 가장 많이 뀌는 사람은 ‘아까끼고 또껴’씨. 천하의 짠돌이 구두쇠 ‘무라까와 쓰지마’와 ‘도나까와 쓰지마’ 형제들은 조선의 홍시 하나 남겨두는 마음, 그 넉넉한 마음을 꼭 배우길. 감나무 꼭대기에 남긴 감들이 주렁주렁. 밭주인의 넉넉한 인심을 느끼게 한다. 밭둑에 줄줄이 호박, 이달 하순엔 배추도 캐서 김장을 담그게 될 게다. 싸리울을 넘나들던 산비둘기도 논에 버려진 낱알을 부지런히 쪼아먹으면서 겨울 채비를 서두른다.

별똥 하나가 적막을 긋고 가는 오밤중. 나는 호박이 조르라니 앉아 있는 부엌을 오지게 바라본다. 달빛을 흠뻑 머금은 호박이 스스로 빛을 뿜고 있어라. 샤바 샤바 아이샤바 불쌍한 신데렐라, 호박마차를 타고 집으로 갈 시간. 눈물은 뚝. 이제는 왕자님과 겨우내내 행복하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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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모임에서 벌어진 일. 각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단다. “손가락을 잘라야 할 성싶네요. 도박에서 헤어나질 못해요. 부인 몰래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삽니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에요. 오늘도 사실 거짓말하고 이 자리에 왔어요.” “나는 요즘 누구를 사랑하고 있어요. 배우자가 알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마지막으로 한 사내가 말했다. “나는 남의 말 하는 걸 좋아한답니다. 그것도 배나 부풀려서 말이죠. 이 자리가 파하면 동네방네 다니면서 떠들 일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되네요.” 

사람들은 모였다 하면 남의 말 하길 좋아한다. 그만 한 재미도 없겠지만, ‘카더라 통신’에다가 ‘주관적인 오해’도 적지 않다. 시골사람들은 순박해서 최소한 뒤통수를 치지는 않는다. 양동이 가득 톱밥을 떠 난로에 집어넣고 불을 쬐는 시간.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 좋을까.

소설가 임철우의 <사평역>에선 역장이 톱밥을 ‘바께스’째 부어놓고 이야기를 주거니받거니 한다. “첫눈 얘기, 지난 농사와 물가에 관한 얘기, 얼마 전 새로 갈린 면장과 머잖아 읍내에 생기게 된다는 종합병원까지 화제는 이어진다. 처음엔 역장과 농부가 주연이었지만 차츰 여자들도 끼어들게 된다. 그들 중 음울한 표정의 젊은 사내만이 끝내 입을 열지 않은 채로다. … 톱밥 난로의 열기가 점점 강하게 퍼져 오르고 있다.” 데모를 하다 유치장에 잠깐 갇히고, 그 후 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대학생 청년. 젊은 날 내 모습 그대로여서 이 소설을 한참 사랑하였다. 소설엔 미친 여자도 등장하는데 기차를 타고 떠났다가 또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그녀는 오늘 막차를 타지 않았고, 역 대합실에서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중이다.

겨울채비로 장작개비를 쪼갰다. 시꺼먼 연탄을 닮은 강아지, 아버지 고향이 시모노세키인 시바견 블랙탄도 놀러와 거들어 주었다. 시바 시모노세키. 무슨 욕 같아라. 남의 흉한 말, 남 얘기는 개한테나 들려주련다. 난롯가에 빙 둘러앉은 뒤엔 덕담부터 건네자. 또 ‘앞으로의 삶’에 대해 고민을 나눠보자. 우리에게 있어 진정 귀중한 시간은, 앞으로의 삶일 테니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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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아이들은 이름도 참 예뻐. 내 또래만 해도 나온 순서대로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어디 몸뚱이에 점만 보이면 점만이 점택이 점순이 점례. 이름이 진짜 점순이였던 누나 친구가 있었어. 점순이 누나는 하필 얼굴에 큰 점이 있어가지고 온갖 놀림을 받고 자랐어. 그동안 고산 오지만을 수십 차례 오르내리며 직사광선 자외선 마사지를 너무 많이 받고 다녔다. 눈 밑에 기미가 생기고 보이지 않던 점들이 우수수. 집에 틀어박혀 연속극이나 보면서 산다면 모르겠지만 사람들도 두루 만나고 해야 하는 처지라 병원에 한번 가봤다. 기미, 주근깨, 점을 레이저로 지지자고 한다. 일주일 꼬박 뭘 바르고 붙이고 하면서 치료를 했는데 깨끗한 얼굴로 돌아왔다. 구절초에 감국이며 쑥부쟁이가 피어나는 계절에 햇빛 구경도 못하고 책만 슬슬 읽으면서 추석 명절 앞뒤를 그렇게 보냈다.

남북 이산가족을 찾을 때, 해외입양아가 친부모를 수소문할 때, 몸에 특징이 될 만한 점이 하나 있으면 ‘왓따’다. 문어가 멸치에게 퇴짜를 맞은 이유는 뼈대 없는 가문이라서. 복점이 있는 여인은 콧대가 높고 기운도 알차서 어지간한 문어는 눈에 차지도 뵈지도 않아. 뼈대가 없으면 복점이라도 한두 개 박혀 있어야 한다. 잘생긴 부처님 ‘부처 핸썸’도 이마에 점을 하나 붙이고 계시지 않던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점 공방전’.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점 얘기. 싸리비를 들고 잠자리나 쫓던 스님이 내게 전화를 해서 다 물어본다. 나랑 같이 목욕탕에도 몇 번 간 사이. 그때 자기 점을 안 봤냐 하시는데 아니 사우나하면서 누가 남의 거시기를 쳐다보나. 게다가 스님 거시기를…. 돌았냐고 하면서 웃다가 전화를 끊으니 밤하늘에 별점이 한가득이나 우르르 떴어라. 병들어 일찍 죽었다는 점순이 누나도 하늘에 별점이 되어 나를 쳐다보는 듯해. 나도 이 별의 한 개 점 같은 존재. 고단하고 뻐근한 세월에도 복점이 하나씩 있으니 부디 견디라고, 견뎌보자며 그렁그렁해진 별빛들. 엎드려 웅크린 자리마다 꽃이 피듯 좋은 날 반드시 있을 거니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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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으로 내려가면 지평선이 펼쳐진 동네. 수평선을 보며 살았는데 이처럼 들녘 끝을 보며 살게 될 줄이야. 대지를 달려온 세찬 바람은 태극기에 닿자 몽돌 해변처럼 찰파닥 소리를 낸다. 만국기가 펄럭이던 가을운동회를 기억하는가.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볼까 하다가 모래바람이 불어 무르춤하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높이 걸린 태극기는 K팝 아이돌만큼 신이 나서 혼자 춤춘다. 퇴근하고 돌아온 사오정에게 부인이 그랬다지. “퇴근길 힘들었나요?” 사오정이 깜짝 놀란 얼굴로 “태극기 흔들지 않았는뎅. 나 태극기 부대 아니영.” 사오정에게 귀팝 파라고 귀이개를 꼭 선물해주어야지.

생풀 냄새가 올라오는 들길엔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신중현의 노래 ‘미련’은 가을날 레퍼토리.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코스모스 길을 따라 늘어선 마을엔 굴뚝마다 노래만큼 하얀 연기도 흘러나온다. 세상엔 연기를 쿨룩쿨룩 내뱉는 굴뚝만 있는 게 아니더라. 나 바람을 삼키는 굴뚝도 보았다. 중동 사막땅 이란에 가면 ‘버드기르’라고 있다. 집집마다 ‘바람 탑’이 하나씩 높다랗다. 뜨거운 사막 바람을 잡아다가 물 저장소에 식히는 원리. 이렇게 시원해진 공기를 집안 곳곳으로 들인다. 이젠 우리나라 굴뚝도 폭염이 기승일 때는 이란의 바람 탑처럼 에어컨 역할까지 했으면 좋겠어.

코스모스가 춤추고 태극기가 춤추고 굴뚝엔 연기가 춤추는 가을. 의자나 평상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던 영감님들은 대부분 하직. 찡등그리며 쏘아보던 교회 댕기는 아짐씨들, 이제 제 앞가림도 벅찬 세월이렷다. 골목을 주름잡던 영감탱이의 담배연기가 그립다. 연기가 피어나는 곳엔 어김없이 사람이 살고 있지. 사람이 집에 머문다는 게 얼마나 온기 있는 노릇인지. 수십 채 건물이 있대도 진실한 사랑을 나눌 ‘내 님’이 없다면 인간은 대체 어디서 위로와 온기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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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개를 묻은 단감나무는 통째 새들에게 주기로 했다. 봄날 슬펐던 수목장은 가을에 접어들자 조장이 되었구나. 감은 우리 개의 볼따구처럼 뽀얗고 발개서 내 마음은 더욱 아프다.

치아가 부실한 할매들 누구도 감을 따먹지 못한다. 자녀들도 참기름이나 고춧가루면 모르지만 눈독을 들이지 않아. 새로 이사 들어온 이들이 거창하게 농사를 벌이는 걸 보면 저걸 다 어떻게 뒤처리를 하려나 염려가 생긴다. 고추나무 서너 대, 배추밭 한 고랑이면 여름 내내 먹고도 남을 단출한 식구에 말이다.

스쳐 지나가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다가서면 고된 노동의 현장. 논밭이며 과수농장이 그렇다. 감을 따는 일도 고생이 막심인 일터다. 새들이 파먹기 전에 어서 수확을 서둘러야 하는데. 사람을 데려다 쓰는 일은 돈도 돈이려니와 노동력을 구하기가 일단 어렵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누가 허리라도 삐끗하면 손해는 눈덩이. 단감은 5일장에 가져가보아야 누가 사가지도 않는다. 이런 소읍에서는 아그닥아그닥 단감을 씹어 삼킬 장정이 드물지.

차라리 밭에다 맨드라미꽃을 심은 정자지기 촌로는 마음부터 가벼워 보였다. 그런데 여쭤보니까 고개를 젓는다. “빈 땅 놀리기가 뭐햐서 심은 꽃일 뿐이재. 꼽사(꼽추) 맹키로 꾸부러진 양반들도 추수떨이를 하는디 영 미안해가꼬잉.” 마치 갠지스 강가에서 우아하게 요가를 하다가 들킨 것처럼 나도 마음이 저어했다.

“그의 인생은 부조리 수업을 위한 노트가 아니다. 메모 쪼가리가 아니다. 그의 인생은 똥을 치우는 것이다. 빨래하는 것이다. 바위에 빨래를 패대기친다. 물먹은 운명을 패대기친다. 어린 바라문들이 아름다운 요가를 하는 새벽 갠지스 강가에서. 그는 홀로.” 최승호 시인의 ‘불가촉천민’이라는 시. 인도 여행길에서 나도 똑같은 걸 보았다. 서양 여인이 섞인 요가 수련생들이 강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핏기 없는 화장터 노동자들, 숨을 꼴깍이던 풍경. 그래도 꽃이 피면 어디나 아름답다. 한가로운 농땡이 양반들도 있어야 마을이 조화롭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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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했다가 나와도 절대 물에 젖지 않는 건 갈릴리 예수님하고 백두산 천지 산신령 할아버지뿐일 게다. 백두산 천지를 보면 우리는 눈두덩부터 축축이 젖고 만다. 백두산에서 손사랑짓 핑거 하트를 날리던 북쪽나라 위원장은 이번 추석에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나는 뒤늦게 찾아온 몸살기운에 누워 지냈다. 고위급 백수의 3대 필수품이라는 ‘안막 커튼, 국가대표 추리닝, 세줄 그어진 어딜갔스표 슬리퍼’를 가까이했다. 명절 백수의 최고 휴양지는 역시 이집트. ‘이틀’ 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이집트 여행코스. 다단계 피라미드 광고나 쳐다보며 스핑크스처럼 엎드려 있다 보면 연휴쯤 후딱 지나간다. 다음은 동남아. 동네에 남아 있는 아이들과 노는 것인데, 피자라도 한판 시켜줘야 놀아주겠지. 돈이 좀 나가는 휴양지라 패스.

집집마다 여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눈 화장을 하고서 왜 거기다 선글라스를 끼는 걸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여인네의 속마음이여. 여인들은 이제 더는 ‘집사람’이 아니다. 부인의 요리솜씨로 살아가던 남자들은 멸종위기단계 동물. 여인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집 밖으로 나간 뒤 세상은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라. 내 이럴 줄 알고 된장국을 아주 잘 끓이는 법을 배웠다. 세상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끼니쯤 때울 줄 알아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보노라니 텔레비는 역시나 먹방이더군. 이 나라도 모자라 해외로까지 먹방은 이어지고 있더군. 싱싱한 물고기를 보여주자고 칼로 등짝을 째니 파르르 몸을 떠는 장면까지 연출된다. 사내들이 집 밖에 나가 해먹는 요리가 죄다들 무법하고 무례하며 자랑에 급급하다. 뭐가 그리 저들을 배고프게 만들었을꼬.

음식에도 분명 예의가 있을 텐데. 참람한 시대(?)에 촛불을 켜듯 소소한 된장국을 끓여본다. 반찬은 없어도 손사랑짓 핑거 하트를 날릴 수 있는, 마주 앉은 벗 하나 있으면 그만. 된장국에 김치에 밥을 한 그릇. 속이 다 개운해라. 아무리 잘 먹어보아도 이만큼 담백하고 이만큼 순한 맛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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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기억나는 얼굴이 있다. 순수하고 해맑은 평양 소녀의 얼굴. 까마득해라. 20년도 더 지난 일. 기자 출신 사진작가 임종진 샘이랑 가끔 만나곤 했는데, 북한에 다녀온 사진들을 교회에서도 전시하고 싶었다. 남녘 아재 아짐들이 평생 처음 소박한 북한 보통사람들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아그덜도 순허고 이삐요잉.” 뿔난 사람들은 없다는 걸 새삼 확인했던 전시였다.

우리 모두는 한때, 아니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를 사랑한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간 잊힌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들이다. 잔뜩 찌푸린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본다. 광장에 함께했던 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청중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흐린 가을 하늘에 쓴 노래 편지였다. 이쪽 사람들은 이 말을 자주 한다. “조을라고 안 그라요.” “아따 조을라고 그라재.” 궂긴 일, 아픈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조을라고, 조을라고….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비나리를 한다.

한때 이런 제목의 책이 유행이었지. 거꾸로 읽기, 삐딱하게 보기, 급기야 ‘오랑캐로 살기’가 나오자 앗~ 이제 그만. 세상이 요지경으로 돌아가자 저항과 반항의 시대는 불길처럼 타올랐다. 지나고 보면, ‘조을라고’ 좋아지려고 그랬던 게다.

구름도 쉬어가는 땅. 북에선 개마고원, 남에선 진안고원. ‘조을라고’ 폭염이 괴로웠어라. 바람이 살랑살랑, 구름은 둥실둥실. 광산이나 산판 벌목공들이 산 위에서 땀을 식힌다. 계단밭에는 짚으로 죽을 쑤어 먹은 소들이 보인다. 소녀가 입은 치마처럼 푸른 하늘 아래 염소가 뛰논다. 빨간 목도리 같은 홍시와 능금밭. 흐린 날에는 우산을 들고 나가는 것처럼 당신이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겨울이 와도 끄떡없으리. 손 저리도록 감사납고 뼈아픈 일 닥친 대도 기억하세요. 좋아지려고 그런다고. 어금니를 물고 참고 견디다보면 그렁그렁해진 당신의 눈에 무지개가 피어난다. 눈뿌리가 아득해도 머잖아 좋은 날 꼭 보리라 믿으며, ‘조을라고 조을라고’를 반복해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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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옷 없고 밥 없고 자유가 없어 나귀에 짐 싣고 어디론가 이주하는 사람들.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 담긴 소월의 시 ‘옷과 밥과 자유’다.

지금 세상이야 아사(餓死)나 동사(凍死)는 없어졌지만, 기온이 뚝 떨어진 아침에 일교차를 느낄 때, 아- 사람이 얼어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 엊그제는 더워 쪄죽겠다고 징징대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추워 죽겠노라니. 하지만 이처럼 인간이 계절에 민감하고, 감정도 복잡해지는 건 우리가 ‘하나뿐인 목숨을 아끼는 존재’이기 때문이겠다.

인류가 왜 꽃에 환호하고 행복해하는가라는 의문. 꽃이 피는 장소에는 반드시 옷과 밥, 그리고 자유가 덩달아 있다는 정보를 갖게 된단다.

꽃이 있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달달한 꿀도 있고, 과일나무가 무성한 숲도 있으며, 열매를 따먹으러 새들이나 짐승들이 찾아들겠지. 그렇다면 우리 인간도 덩달아 굶어죽지 않을 거고 말이다. 인간이 꽃에 마음이 팔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라는 학설. 그 어떤 선물보다도 꽃다발에 얼굴이 밝아지는 건 우리 안에 이러한 본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던가. 

선선해서 그런지 밥맛이 돈다. 입맛이 좋아졌다. 찬물에 밥을 말아 생선 한 토막으로 간신히 떠넘기던 지난달과 달리 깍두기에 밥을 비벼설랑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입이 ‘쩍’ 벌어지게 먹으면 ‘입적’할까봐 눈치도 살펴가면서.

갈꽃들이 피어나자 입맛이 돌아왔다. 밭곡식과 물벼는 풍년 수확을 앞두고 있구나. 태풍이 몰고 온 폭우로 인해 충분히 해갈한 땅에선 고구마가 종아리만 하게 여물었다. 고구마에 체한 적도 있는데, 입맛이 좋을 때는 군침으로도 한 입에 꿀꺽했던 나였다. 도라지 밭에 꽃구경이 좋으니 어서 오라며 동무가 초대했다. 고구마를 삶고 커피를 내려 에코백에 챙겼다. 식기 전에 어서 나가보아야 하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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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룹뚜룹 귀뚜리 우는 가을. 드디어 찬 공기가 떠돈다. 동네 밭들은 배추나 무 농사를 서두르고 언제부턴가 일손을 놓은 나는 그저 풀이나 베면서 빈터를 즐긴다. 노순자의 단편 <소설가의 집>을 보면 소설가인 이모부가 등장하는데, 이모부는 헛간 움막에 들어가 소설을 쓰곤 한다. 그 이모부가 죽자 잡지엔 ‘소설가의 집 요절한 아무개’ 하면서 무광, 김장광, 배추광이었던 방공호에 볏섬으로 거적문을 단 작은 움막이 소개된다. 그딴 데서 소설이 너무 단순하게(?) 제작된 건 아니었나, 이모부는 얼마나 마음이 맑은 영혼이었나 따위, 사람들은 가난한 소설가를 그리워한다. 이사 가기 전, 무광의 독에서 차곡차곡 개어진 소설 원고를 발견하게 된 가족들. 이모부의 영혼이 서린 움막을 지켰어야 한다며 후회를 한다. 그때 엄마가 이런 말을 한다. “뭘 그래요. 움막집이야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데요. 소설가의 집은 영혼의 집인걸요.”

내 아버지도 움막을 지어 농기구와 채전걷이들을 보관하곤 했다. 아버지 호는 안뜰이란 뜻의 내원이었으나 사실은 뒤뜰을 좋아한 후원이었어야 옳았다. 뒤꼍에 가보면 닭장, 토끼장, 그리고 독들을 모두 땅에 묻고 볏짚을 엮어 지붕을 올린 움막이 있었다. 이 움막은 내 놀이터였다. 움막을 아지트 삼아 소년소녀 전집들을 가져다가 읽었고, 성냥과 양초로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해보기도 했다. 누룩뱀이나 생쥐가 나타나기도 했고, 손톱만 한 도롱뇽이 살림을 차려 살았고, 들어오지 말랬더니 삐진 개는 일부러 문 앞에다가 똥을 싸지르곤 했다. 는개가 종일 내리면 움막의 비닐 안으로 몸이 따뜻한 새들이 피신을 왔다. 새들이 조잘대는 알 듯 모를 듯 한 외계어들을 엿듣고는 했는데, 내용이 길어 시는 분명 아니고 소설임을 눈치챘다. 새들의 소설은 책으로 묶이지는 않으나 달달 외워서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그린벨트를 풀고 신도심을 만들고 주택을 다량 보급하고,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아파트촌. 영혼의 거점이었던 움막은 헐리고, 소설가는 쫓겨나가는 황막한 지상도시. 집은 많으나 소설가의 집은 찾기 어렵고, 시간과 돈은 있으나 소설책을 사서 읽을 여유를 잃어버린 저 행렬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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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개그보다 아재개그가 훨 재미나지. 오도깝스러운 몸짓으로 까불어봐야 이맛전이나 조금 펴질 뿐. 가게 간판이 ‘맥주날드’나 ‘스티브잡술’ 정도 돼야 들어가 볼까 호기심.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김봉준, 박은태, 이윤엽, 최병수, 기독교 선수로 나까지 다섯이 그림전시를 열었는데 제목이 ‘민중미술과 영성’. 쬐끔 거창하다. 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민중미’가 빠지고 ‘술과 영성’만 찍혀 있네. 불경하나 틀린 말도 아니다. 민중미술이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술을 자셨을까. 기운 빠진 화가들은 짜장면과 짬뽕만 한 젓가락 뜨고 1차에서 굿바이. 순복음교회의 건너편엔 술폭음교회가 있었노라 농을 쳤다. 이젠 이 바닥도 간이 쓸모를 다해 주저앉은 형국인가. 비아그라보다 강력한 ‘웃기그라’를 사용해보았으나 상대방은 입술만 반쯤 벙긋. 무안해서라도 얼른 헤어졌다.

세발자전거를 몰고 마을을 누비던 어린 날엔 기운이 셌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하루종일 뛰놀고도 힘이 남아돌았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날마다 행복한 디즈니랜드였다. 이런저런 전시로 서울에 두어주 머물고 있는데 숨도 가쁘고 힘이 많이 달린다. 홍삼캔디라도 먹어야 하나. 사거리에 ‘인력시장’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인력이라 함은 사람의 힘, 사람의 노동력을 가리킴이겠다. 벽에 매대기라도 치게 할라치면 숭굴숭굴하게 생기고 살팍지게 생긴 사내를 하나 낚아와야 한다. 나를 글이나 쓰는 산송장으로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시골생활이 오래라 팔뚝이 굵고 일손도 야무져서 부라퀴라 할 만하다. 인력시장에 나가도 빠질 몸은 아닌데, 도심의 공기는 내 다리를 잡아끌고, 다급한 사람들과 만나다보니 기운이 빠진다. 밖에 나갈 때는 자르르 빼입고 나가지만 바지라도 걷으면 무릎까지 상처투성이. 산골에 살고 집을 건사하려면 그렇게 된다. 믹스커피에 밥을 말고 재봉틀 발판을 베개 삼아 눕기도 했다는 미싱 노동자에 비하면 설렁설렁 사는 거지만. 솔길을 걷고 가을바람 불면 ‘인력’이 생길까. 인력시장에 팔릴 만큼 힘이 생기진 않더라도, 우리들 조금만 힘을 내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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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전도사들은 기가 막힌 형편에도 긍정하라고 권한다. 불상과 십자가가 요즘 미꾸라지들 때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데도 그 원인이 되는 이들에겐 찍소리도 못하면서 한 명이라도 어떻게 종교생활을 그만둘까봐 염려의 소리. 엄밀히 말하면 헌금을 그만 낼까봐 걱정인 게다.

긍정전도사들과 적폐시대에 머물러 살 요량이 아니라며 손에 묻는 때나 좀 닦을 일이 아니라 매연을 뿜는 굴뚝을 통째 손봐야 한다. 준엄한 법을 세우고 약속들을 지키고 건강한 틀을 갖춰나가야 한다. 무한 긍정은 세계를 망친다. 부정과 의심은 고정된 세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간첩은 친구·가족들 안에 있으니 늘 조심(훗~). 의심하고 살펴보고, 세뇌당하지 않으려면 매일 께름칙한 힐링의 글보다는 교양이 되는 책을 한 줄씩은 읽자.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면 비싼 값을 치르면 된다. 한 치과병원에 앓는 이를 뽑으러 온 손님이 따졌다. “몇 초면 뚝딱 뽑는데 뭐가 이리 비싸요.” “네 손님. 우리 병원은 손님 같은 분을 위해 아주 저렴하게도 해드려요. 한 시간 정도 아주 느리게 뽑아드릴 수 있습니다.”

나만 보아도 당장 ‘아니요’를 못해 질질 끌려다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용돈벌이 일도 그렇다. 싫어, 아니야만 몇 초 말했어도 가난하나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으련만.

여행 중에도 만사를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고 주의하면서 걸어야 노상강도를 피할 수 있다. 궂은일을 자주 당하는 오지 여행. 조금만 방심했다간 카메라 가방을 도난당한다. 나도 거금을 주고 산 카메라를 인도 오지에서 잃어버렸다. 책 속에 있는 현자들이 사는 세상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미안하지만 이후로 누구에게도 등짐을 맡기지 않고 내가 진다. 그러다보니 짐을 줄이게 되고 어깨는 가벼워졌다. 카메라 욕심도 버렸고, 김치통조림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래도 굶어죽지 않아. ‘싫어, 아니야’라는 말을 단호하게 잘해야 하겠다. 부정적인 놈으로 찍히니 자주 할 말은 못되지만. 이 지독한 늦더위에게도 말해주고 싶고 북상 중이라는 태풍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하늘이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 하겠지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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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도 잡히지 않고 나른하기만 하여라. 낮잠 ‘시에스타’가 있는 나라라면 좋겠단 생각. 나 꼬맹이 때 학교에서 강제로 낮잠을 자게 한 일이 있었다.

의자와 책상을 모두 뒤로 밀치고, 교실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무조건 잠을 자라는 것이었다. 전깃불도 언뜻하면 나가고, 외등도 부족하고, 초저녁부터 귀신들이 돌아다니던 판국에 설마 잠이 부족했을까. 군부정권 때였는데, 군인들이 까라면 그냥 까야 했다. 콧물을 줄줄 흘리던 못난이 짝꿍이랑 방구쟁이들이랑 누워 잠을 청했으나 한 시간 동안 해찰만 부리다가 땡.

잠 못 드는 아이들은 엉덩짝을 두들겨 맞았다. 어떤 해엔 독성물질이 남아 있는 비료포대를 뒤집어쓰고 방공호에 들어가는 훈련도 받았다. 방독면이 없으니 비료포대라도 뒤집어쓰라는 어이없는 지시사항. 사이렌이 울리자 개들이 동시에 으아앙 울기 시작했다. 학교 소사가 키우던 검둥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을 물었다가 양심수로 수감 중. 동네에서 제일 크게 울었다.

영화배우이자 감독 멜 깁슨도 아니고 이쪽 동네엔 ‘멜갑시’라는 말이 있다. ‘괜히’ ‘이유 없이’의 방언. 괜히 갇힌 건 아니지만, 갇힌 개는 유독 서럽게 컹컹 울었다.

여름 한낮 비구름이 말갛게 풀어지고 나면 높고 푸르게 드러나던 가을 하늘. 멜갑시 가슴이 설레어지는 찬바람. 감과 대추가 발간 얼굴로 익어가고 들판에 벼가 눕는 소리도 들렸다. 소프라노 매미가 공연을 마치고 떠날 즈음이면 멜갑시 어디론가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완행버스가 먼지를 뿜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풍경. 형과 누나들이 속속 동네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산업화로 바뀌어 기억 속에나 있는 내 고향 풍경들.

멜갑시 질벅질벅 여자애들을 놀리고 괴롭히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소사네 개가 그 애를 콱하니 물어버렸다. 두번째 구속 수감. 지긋지긋한 양심수 생활로 ‘개고생’하던 개를 풀어주기 위해 난생처음 쇠톱을 가지고 열쇠를 잘랐다.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도둑’이 되어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멜갑시 여자애들이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검둥개가 내 이야기를 했던 걸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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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개들이 팔자가 가장 좋고 다음은 고양이 순. 우리 동네엔 명물 진돗개 말고도 잡종 ‘암시랑토 안하당개’와 ‘쉬었다 가시랑개’가 있다. 천하대장군 개들이 누워 계시는 골목길. 비켜! 해도 안 비킨다. 아쉬운 내가 비켜서 돌아가야지. 사람 입맛들 고급이 되고, 안방 침대에 모셔진 개들이 늘면서 보신탕집은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수술하고 나온 할매들도 달달한 커피와 양송이 수프를 찾는다. 개들아. 좋은 시절이니만큼 마을을 지켜다오.

소재지 호프집엔 생맥주가 동이 나고 있다. 이쪽 사람들은 ‘거시기’ 하면서 삼행시로 건배를 한다. 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게! 미남미녀들은 모두 서울로 가버리고, 대충 생긴 우리들끼리라 그다지 기쁘진 않다. 아이슬란드에선 “스카울!” 바이킹의 후예답게 큰소리로 건배를 나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놀자는 뭐 그런 뜻이겠지.

듣자하니 제주도는 개발 새발, 또다시 나무 학살극. 가장 아름답던 비자림로를 깡그리 밀어버렸다고 한다. 거기다 뻥 뚫린 사차선을 만든다는 계산. 제 정신들인가. 제주도 도지사는 도로아미타불의 그 도인가. 생태와 민주라는 역사의 흐름을 못 읽고 자본의 망나니 춤에 놀아나다보면 신기방기하던 오즈의 마법사라도 ‘오지의 맙소사’가 되고 말 일.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을 다룬 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를 보았다. 북극해,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남극해까지 이름도 모르는 섬들. “나는 지도책과 함께 자랐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 이스터 섬과 로빈슨 크루소 섬 정도는 알겠더라.

대서양의 브라바 섬 항구, 선술집에서 울리는 노래란다.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긴 길을.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먼 길을. 상투메로 가는 이 길. 소다데(그리움),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게 편지를 쓰면 나도 답장 쓸 거야. 네가 잊는다면 나도 널 잊을 거야. 소다데,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아몬드나무, 대추야자나무, 코코넛나무 아래서 부르는 노래. 가깝거나 먼 섬들이 모두 암시랑토 안 하고, 쉬었다 갈 만한 섬, ‘소다데’로 남는다면 좋으련만. 거시기 스카울! 그런 날을 위하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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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생사 따위 초월하고 사는 자. 생판 모르는 나라에서 엄벙덤벙 렌터카를 빌려 타고 비포장도로를 쌍지팡이 짚고 달리는 나. 담뱃갑의 비극적인 사진을 보고도 생사해탈 애연가에 비하면 하수급이겠다. 그걸로 위안을 삼고, 오빠 달려~. 멀리 서쪽 부둣가, 싱싱하다는 말에 속아 ‘오늘의 생선’ 한 접시를 주문. 기대와는 달리 뻔한 ‘피시 앤 칩스’였다. 밍밍하고 심심한 요리. 깨작깨작 먹다보니 얼큰한 우럭매운탕이 간절해라. 한인 식당 한 군데 없는 나라에 찾아온 내가 잘못이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럭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우럭 매운탕.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묻어나는 매운탕 냄새에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우럭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제는 우럭 매운탕을 먹으러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출장도 뭣도 아니고 출가가 너무 길었나보다.

바이킹은 더러 해적도 있었지만 기본이 어부들. 초기 예수 무리도 물고기와 어선 마크를 달고 다니던 주로 어부들. 아랫녘에는 ‘이크티오파기’라 불리는, ‘물고기 먹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자리를 잡은 족속들. 늑대 동굴이나 고래 뼈다귀로 지은 천막집에 살며 고기잡이가 주업이었다. 말리고 염장하고 훈제를 통한 대량보관이 가능해지자 단순한 생계형 어부들에서 졸부들이 되어갔다. 암만 농협 축협 하지만 수협 조합장이 으뜸 아니던가. 청어와 대구를 잡으러 덴마크와 노르웨이 어선들이 북해를 뒤지고 다닐 때 도둑갈매기나 귀염둥이 퍼핀은 일용할 양식이면 족했다. 피시 앤 칩스를 일용 양식으로 주신 하늘에게 반기를 든 한국인. 난데없이 우럭 매운탕을 탐하고 있어라. 하늘을 우러러 하늘 우럭. 둥둥동동 우럭이 떠다니넹.

슈퍼마켓에서 반가운 건어물을 만났다. ‘하르드 피스쿠르’라는 대구포. 요게 짭짤하면서도 고소하다더라. 몇 봉지 쟁여놓고 마른안주 삼아 맥주 세례식. 선수 용어로 멱을 감고 있다. 귀한 사람을 덜컥 잃으면 대신할 누가 있겠느냐만, 주전부리야 무엇으로든 대체가 가능하지. 이걸로다가 어떻게든 몇 밤은 더 버텨보자꾸나.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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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길모퉁이 피어난 들꽃 같은 사람이다. 와글와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눅눅해진 종이에다 시를 적는다. 백야로 하루가 길면 긴 시간만큼 시를 쓴다. 종이가 떨어지면 나무 그늘에다가도 쓰고, 예수처럼 흙 마당에다 쓰고, 모래사장에다도 시를 쓴다. 코끼리떼 돌고래떼 구름에다가 시를 쓴다.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고 말한 고물장수도 금방 시를 쓸 수 있다. 뱀 장수도 이제 그만 뱀을 잡고 시를 써라.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한국인이었다면 선악과는 먹지 않고 몸에 좋은 뱀을 잡아 드셨을 거라는 얘기. 그렇다면 기독교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힛~.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을 해보고 있다. 이 나라에선 빙하를 요쿨이라 부른다. 호수 위에 빙하가 가두어져 기이한 형상이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쏟아지듯이 소낙비가 불쑥 내리기도 하고, 아무리 숙부드러운 바람이라도 뛰던 말들조차 휘청한다. 한국에서 싹쓸바람 태풍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 나는 끄떡도 않아.

담쌓고 벽치던 사람도 이곳에 와보면 정말 뭔 짓을 하고 사는지 뉘우치게 된다. 대다수가 도시에 살고 시골엔 인적이 드물다보니 여행자를 보면 무턱대고 반갑다. 겨우 밥풀이나 떼는 구입장생이라도 커피와 빵을 아낌없이 나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 새 둥지에 이곳의 땅을 담아 그걸 먹을 수 있다면 접시의 반만 먹은 뒤 밤새 편안히 잠을 자리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소설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인도의 아쉬람을 기억하며 쓴 시가 이 땅에서도 유효하다. 외로운 곳에서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깊이 아끼게 되는 법.

어촌엔 등대가 밤을 밝힌다. 당신이 보고 싶으면 등대의 불빛을 보면 된다. 누군가 밤새 사람을, 사랑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속이 뭉클해진다. 시인이 당신의 사랑을 대신하여 밤새 연시를 써 내리는 것처럼. 삶이 아무리 차갑고 황폐해도, 퉁명스럽고 무뚝뚝한데도 방실거리는 미소와 같은 등불이 남아 있다. 내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등대가 있기 때문. 등대 같은 당신과 등대 같은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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