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32건

  1. 2018.06.21 성자가 된 청소부
  2. 2018.06.14 아침 점심 수박 저녁
  3. 2018.06.07 께끼 장수
  4. 2018.05.31 다방의 푸른 꿈
  5. 2018.05.24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6. 2018.05.17 늙은 군인의 노래
  7. 2018.05.10 향내 나는 손
  8. 2018.05.03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 99882314
  9. 2018.04.27 ‘게미’ 맛집과 평양 동무
  10. 2018.04.19 당나귀 귀
  11. 2018.04.12 리틀 포레스트
  12. 2018.04.05 나무 목요일
  13. 2018.03.29 잔소리꾼
  14. 2018.03.22 유행가
  15. 2018.03.15 차력사
  16. 2018.03.08 신문지 한 장
  17. 2018.02.22 요롤레이 요롤레이
  18. 2018.02.19 강강술래와 윷놀이
  19. 2018.02.08 강원도 팝콘
  20. 2018.02.01 참새와 까마귀의 마을

남들 취미 생활을 일로 삼아 살다보니 취미에 대해 묻는 이는 드물다. 내 취미를 밝히자면 밀고 쓸고 닦는 ‘청소하기’. 가방에다 물티슈를 항상 담고 다니니 별명조차 물티슈. 밥 먹고 나면 곧바로 설거지를 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글을 쓰기 전엔 책걸상 청소를 마쳐야 개운한 마음가짐. 병적일 정도는 아니나 더럽고 어지럽혀진 곳에 있으면 안절부절 마음조차 산만해진다. 오지여행에선 자포자기하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눕곤 한다. 하루 쉬고 갈 집이라도 화장실 청소를 꼭 한다.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내 물티슈로 똥을 닦는 불행 중 다행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주리반득(출라판타카)’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하도 머리가 안 돌아가 멍텅구리 멍청이 소리를 들었다. 경전도 한 구절 못 외우는 형편. 부처님은 측은한 마음에 빗자루를 하나 들려주시곤 “사원 곳곳 먼지를 쓸어내고, 도반들이 앉는 데마다 반짝거리게 닦아놓으시게” 부탁하였다. 그날부터 주리반득은 죽어라 청소에 전념. “청소란 마음에 쌓인 번뇌의 먼지를 털어내고, 마음에 낀 사념을 닦아내는 일”이란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득은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우뚝 섰다.

청소뿐만 아니라 신변정리가 반듯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더 큰 문제. 산만한 인간관계로 어질러진 약속들. 관리를 못해 무너진 건강도 ‘청소’에 소홀한 때문이리라. 이건 로봇청소기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

마방이나 외양간을 날마다 청소하는 이들, 밤새 도심을 청소하는 미화원.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들과 온갖 눈뜬 벌레들. 떠난 사람을 깨끗이 잊고 새 출발을 한 친구도 마음의 청소부.

꽃잎을 슬픔처럼 달고 살던 나무가 있었다. 제 몸을 바람과 빗물로 깨끗이 씻고 구석구석 숲 주변을 청소하던 나무. 가을겨울 청소를 잘한 나무일수록 건강한 봄여름을 지낼 수 있다. 성자가 된 나무와 청소부들이 밤의 절벽에다 새라새로운 꽃을 피운다. 그대 성자가 되려는가, 바보가 되고픈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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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말 줄임 사자성어가 유행. 이부망천이라던가. ‘이’혼하면, ‘부’부가 더 잘되고, ‘망’하면, 알바 ‘천’국에 가면 되징.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수박은 먹고 헤어지자구. 바야흐로 수박이 제철 아닌가. 아점수저. 아침 점심 먹고 수박도 먹고 저녁까지 먹으면 하루가 끝. 저녁 먹고 나서 수박을 먹었다간 자다가 오줌 마려워 깨야 되니까, 수박은 각오하고 먹어야 해.

웅성웅성 모여 나눠 먹을 땐 수박만 한 과일이 없지. 요샌 평화의 길로 접어든 북녘 친구들이 넘 예뻐서 무등산 수박을 한 트럭 보내주고 싶을 정도. 미안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얼굴이 잘 여문 수박을 닮았다. 어떨 땐 백두산 호랑이 같기도 하고 말이지. “동무! 최고 존엄에게 이런 말 해도 되는기오?” 힝. 여긴 자유대한이오.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잉!

나는 사이다를 넣은 수박화채를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최루탄 연기를 뚫고 대학가 모퉁이 누나랑 둘이 자취하던 친구에게 갔다. 골목 입구 부식점에서 값싼 쬐고만 수박을 한 통 샀다. 대학생 누나는 마침 일찍 들어와 감은 머리를 선풍기에 말리고 있었다. 사간 수박은 덜 익었나 맛대가리가 영 없었다. 누나는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을 꺼내고 사이다를 부어 화채를 만들어 주었다. 우린 박수를 치며 집어먹었다. 마침 기타가 있어 뽐낼 겸 ‘시 코드, 에이 마이너’ 어설픈 노래를 불렀다. 누나가 내 곁에 당겨 앉았다, 나는 숨이 가빠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식당을 하는 엄마에게 꼬맹이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개밥을 주자며 조르자 엄마 왈 “저 손님 남은 밥으로 주자. 조금만 기다려봐.” 얼마 있다가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저 손님이 개밥까지 다 묵어버렸어요.” 헉. 수박은 개밥이 못되어 다행인 과일. 그날 다 먹어버리길 잘했지 정말. 누나의 키다리 남자친구가 불쑥 나타났다. 친구는 자리를 비켜주자며 눈치를 줬다. 거리엔 수박 같은 가로등이, 밤하늘엔 수박 같은 보름달이, 내 가슴엔 수박만 한 눈물이 쿵쿵 떨어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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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벙첨벙 개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엔 장바구니 가득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꺼내먹을 작정으로다가. 커피 마니아 고종황제는 아이스크림도 맛보았을까. 물뼉다구라는 옛 이름은 재미있다. 설탕물을 얼려서 먹을 때 물뼉다구라 했다던가. 언젠가 요코하마에 갔을 때 바샤미치 거리를 구경했다. 일본은 개항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일본 최초로 가로수길에 가스등이 설치되고 가게에선 아이스크림도 팔았단다. 한 곳에서 벚꽃 아이스크림이란 걸 먹어봤다. 하도 조그만 컵에 담아주어 혀끝만 잠시 얼얼하고 황홀했다. 우리도 개항하면 떠오르는 인천이나 부산으로 아이스크림이 상륙한 것은 언제일까. 초콜릿, 콜라와 함께 아이스크림은 서양문물을 대표한다. 시골엔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으니 서울 가면 일부러 찾아가 사먹게 되는데,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촌놈 호강을 해본다.

나 어려서 께끼 장수라고 있었다. 아이스께끼 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동네 아이들을 홀리던 사람. 동화 속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았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꼬리로 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선 탈래탈래 빈 통으로 고개를 넘어갔지. 여름이면 내내 그를 기다렸다. 폴 세잔의 그림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은 여름에 꼭 맞는 풍경화. 툇마루나 대살을 엮은 평상에서 가족들과 수박이나 참외, 딸기 같은 제철 과일을 집어먹으며 여름을 났다. 거기다가 께끼라도 하나 입에 물게 되면 전율할 만큼 행복했지. 정말 행복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님을 더 말해 무엇하랴. 녹아 흐를까봐 혀로 살살 단속을 해가면서 께끼를 음미하던 날의 소박한 기쁨. 께끼 장수가 사라진 뒤로 내 소박한 기쁨도 한 가지 사라지고 말았다.

에어컨을 아무리 펑펑 틀어도 시원하지 않은 시절이어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아이스크림은 여름의 별미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께끼 장수. 미루나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던 그를 마중 나가던 아이들도 함께 사라지고 없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골목에서 나던 그 소리. 문득 환청이 되어 들리는 듯해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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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란 말 대신에 다방이라고 쓰면 반갑다. 늙다리 옛사람도 아닌데 그러하다. 이난영의 노래 ‘다방의 푸른 꿈’을 틀어놓는다면 금상첨화겠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고요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만히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느나 부르느나. 흘러간 꿈을 찾을 길 없어 연기를 따라 헤매는 마음. 사랑은 가고 추억은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내뿜는 담배연기 끝에 희미한 옛 추억이 풀린다. 조우는 푸른 등불 아래 흘러간 옛사랑이 그립다. 조그만 찻집에서 만나던 그날 밤 목메어 부른다. 그리운 옛날을 부르느나 부르느나. 소리에 실은 장미화러냐. 시들은 사랑 쓸어진 그 밤. 그대는 가고 나 혼자 슬퍼 블루스에 나는 운다….”

남미에서 가장 이름난 다방을 가봤다. 아르헨티나 하고도 부에노스아이레스. 탱고를 추다가 구경하다 어찌 저찌 하다가 토르토니(Tortoni)라는 수백년 된 다방에 들어섰다. 가르델의 유성기판 탱고 노래들이 흐르는데, 나는 뜬금없이 이난영의 노래 ‘다방의 푸른 꿈’이나 ‘할빈(하얼빈) 다방’이 듣고 싶었다. 그런 오래되고 센스 있는 다방이 서울이나 울 동네 어디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야흐로 아이스커피의 계절. 걱정하는 척 남 흉이나 보고 앉아 있는 속인들 말고 손해만 보고 사는 맘 착한 친구랑 앉아 수다를 떨고파라. 편하고 순정한 다방이 어디 있나.

이브 라발리에는 십대 때 파리에 당도한 인기 절정의 여배우였다. 어느 날 갑자기 산속 마을로 숨어버렸다. 동네 병원을 도우며 화장기 하나 없이 지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녀는 튀니지에 찾아가 병자를 돌보기도 했다. 사연을 알게 된 영화계는 안달이 났다. “나는 파리에 돌아가지 않을래요. 파리는 많은 걸 안겨주었지만 행복을 주진 않았어요.” 라발리에는 장미꽃이 만발한 시골 다방에 앉아 시집을 읽고 드뷔시의 ‘달빛’을 들었다. 가장 부자였다가 가장 가난한 재속 수도자가 되었다. 소리에 실은 장미화. 성모 마리아에게 꽃을 바치며.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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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알라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라는 뜻. 호주 원주민들은 코알라를 제 아기처럼 예뻐한다. 엄마 잃은 코알라를 데려다 키우기도 하는데, 아침마다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대령했다. 코알라는 하루 종일 유칼립투스 나뭇잎을 씹어 먹는다. 이게 밥이고 물인 게다. 다른 잎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잎에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달큰히 먹으면 취기가 돈다. 코알라의 낙천성은 유칼립투스 잎에서 나오는가 보다.

유칼립투스란 꽃이 덮여 있어서 지어진 이름. ‘덮여 있다, 가려져 있다’라는 뜻. 유칼립투스의 꽃말은 ‘추억’이다. 추억 또한 덮여 있거나 가려진 일들이 배나 많은 법이렷다.

코알라는 유칼립투스를 사랑한다. 마치 판다곰이 대나무 순과 잎을 아껴먹는 것처럼. 세상에 이 나무 이 그늘뿐이라는 듯 한번 타고 올라가면 내려올 줄 모른다. 한번은 이브가 아담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꾸 캐물었다. “여보! 나만 사랑해?” 이브는 더 당겨 앉아 아담에게 물었다. “날 진짜 사랑하냐구… 응?” 그래도 시큰둥. 뿔딱지가 난 이브가 아담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 나 사랑해?” 그제서야 아담이 한마디. “여기에 당신 말고 누가 또 있다구 그러셩. 안심하셩. 증말~”

사랑한다는 말.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시골에선 이런 일도 있다. 엉덩이에 종기가 난 아주머니가 병원에 가서 생긴 일. “선상님. 요거이 그냥 종기 맞지요?” “암 그라지요. 걱정 마시쑈잉.” 아낙은 그길로 병원을 빠져나와 대성통곡. 암이라는 말이 그 나쁜 암을 가리킨 게 아닌데….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아아. 향기로운 꽃보다 진하다고. 오오. 사랑 사랑 그 누가 말했나. 아아. 바보들의 이야기라고. 오오.” 단점, 약점, 흠과 티를 물고 흔드는 것도 모자라 거짓부렁까지 해가면서 갈라서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드는 짓들.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이런 어깃장을 부리는 자들이 있다. 코알라에게 유칼립투스를 빼앗고, 판다에게 대나무를 빼앗으려는 자들. 사랑 노래를 진창 불러도 모자랄 판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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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협 의장이었던 임종석. 지금은 대통령비서실장. 나도 안면이 있는 분인데, 신출귀몰 전대협의 전설이었다. 1990년대 초 그가 오랜 수배 끝에 붙잡히자 교통방송 진행자였던 가수 서유석은 노찾사의 노래 ‘솔아 푸르른 솔아’를 멘트 한마디 없이 틀었다고 한다. 노찾사는 당시 대학가와 대중들에게 신선하고 말랑말랑한 ‘운동권 노래’들을 들려주었다. 특히 2집의 인기는 대단했다. 광야에서, 사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잠들지 않는 남도…. 김민기의 대를 잇는 노래꾼들이 모여 음반을 제작했고, 노찾사의 음반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아침이슬이나 상록수만 알던 대중이 이런 노래를 즐겨 부르게 된 것은 모두 노찾사 덕분이었다. 또 질펀한 대중가요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은 한대수, 정태춘, 김광석과 백창우, 한돌, 안치환, 노래마을 등에 마음이 흘러갔다.

그 이전은 무조건 김민기 시대였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군인은 노동자가 되고 농민이 되고 투사로 바뀌어 불리었다. “내 평생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오월 광주에서도 이 노래는 애국가와 함께 불리었다.

이른 봄날 광주에선 박효선, 윤상원 등이 극단 광대를 창단. 소설가 황석영이 축사를 하고 김민기 기획, 양희은 찬조출연의 잔치가 열리기도 했다. 청년학생들은 뒤풀이 내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불렀다. 김민기는 정년 퇴직한 선임하사의 넋두리를 기억했다가 이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고 한다. 농촌에선 “농민이 되어 꽃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모내기하다가도 얼싸덜싸 불렀다. 남북의 늙은 군인들, 퇴직하고 금강산 구경이나 갔으면. 총은 새떼나 쫓을 때 허풍으로 쏘는 것이고, 훈련은 지진 대비 훈련이면 족한 세상. 봄비 살살 내려 세상이 고요하고 참 좋았는데 전투기 편대가 꽈광꽝. 달콤하게 낮잠 자던 아가들 깜짝 놀라 깼겠구나.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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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들이랑 눈싸움하고 들어온 밤. 어머니는 동동구루무를 손에 잔뜩 발라주셨다. 트고 갈라진 손에 기름기가 물큰하니 퍼졌다. “아가. 손은 밥 먹을 때와 일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때, 기도할 때도 이렇게 두 손을 모으잖니. 몸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게 손이란다.” 노랗고 노란 달빛 아래서 어머니는 내 손을 오래도록 만지셨다. 함박눈이 내리다가 그치고 또 내리다가 그치고 하던 밤이었다. “낼 누가 오실랑가부네.” 아니나 다를까 먼 나라에 일하러 가셨던 외삼촌이 불쑥 찾아오셨고, 어머니는 편찮으시다는 외할머니 소식에 눈물 지으셨다. 두 분이 조금씩 흘린 소금들로 간이 맞아선지 저녁밥은 정말 풍성하고 맛있었다. 눈이 그치자 달이 둥시럿 떴다. 봉창엔 따스한 불빛이 어렷다.

갓방에서 외삼촌이랑 같이 잤는데, 오들오들 추운 밤에 삼촌은 사우디 사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래가 산처럼 쌓인 나라. 물이 없이도 길고 먼 여행을 한다는 낙타라는 동물.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 “저도 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해봐. 뭐든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 언젠가 백 프로 이루어진단다.” 삼촌은 미신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다음날 일찍 새벽길을 떠나셨다. 그런데 삼촌 말이 자꾸 맘에 걸렸다. 기도할 때마다 손을 모으게 되었다.

붓다께서 여행하실 때 전다라 신분의 사람, 게다가 똥치기인 한 청년의 집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청년은 붓다를 한번 뵙고자 간절히 바라 왔었다.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그를 갠지스 강으로 데려갔다. 악취로 코를 찌르는 몸을 친히 닦아주었다. “이제부터는 나를 따라오라. 너를 제도하여 사문을 만들겠다.” 천민 신분으론 수행자가 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는데, 붓다는 완전히 달랐다. 출요경에 따르면 “똥치기 청년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수행한 끝에 열흘이 못 되어 번뇌를 완전히 끊어버린 성자가 되었다”. 똥을 치던 손으로 스님들의 밥을 짓고, 스승 붓다를 따라 걸으면서 손을 모아 정진했다. 이후 청년의 손에선 세상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향내가 났다. 아무도 그가 똥치기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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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촉이 봄비 오시는 날. 이은하의 노래 ‘봄비’가 혀끝을 맴돈다. “봄비 속에 떠난 사람 봄비 맞으며 돌아왔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꿈같던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 뒤돌아 살아가는 날들. 소식이 궁금해서 인터넷을 켰다.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이 궁금해. 혹시 99882314가 아닐까. 구십구 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만 아프고 꼴까닥 죽으면 좋겠다는 바람. 이렇게 좋은 날 보고 가시지 서두르셨나요. 울 아버지 어머니, 당신 아버지 어머니. 우리라도 오래오래 살아서, 살아남아서 좋은 날 좋은 세상 구경합시다.

“봄비가 되어 돌아온 사람. 비가 되어 가슴 적시네. 오늘 이 시간, 오늘 이 시간 너무나 아쉬워 서로가 울면서 창밖을 보네, 헤에~.” 세상이 온통 파릇파릇, 올챙이 떼 웅덩이 가득 헤엄치고 개구리는 마당에서 담박질. 대나무 식구들은 일가친척 수도 없이 모여 살면서도 무엇이 또 아쉬워서 아기 죽순들을 저렇게 ‘다산’하는 것인지. 정말로 우후죽순. 낳고 낳고 또 낳고, 징하게도 많이 낳아 복작거리며 산다. 빽빽한 대숲.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 도우며 텅 빈 가난에도 허리가 휘는 찬바람에도 견디고 또 견디는 저들. 대나무를 몇 그루 쪄서 울타리를 보수했는데 금세 그 빈자리에 죽순이 불쑥 올라와 있구나. 누구도 못 이긴다.

울먹이고 외롭던 새. 알을 몇 개 부여안고 빗속에서 애지중지. 아기 새들 눈뜨면 엄마는 진종일 먹이를 물어 날릴 것이다. 나눠 먹으라고 꾸짖으면서 엄한 교육도 마다 않을 것이다.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 온 아이가 누구인지를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마종하 시인의 ‘딸을 위한 시’를 읽다보니 99세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강어귀 물살이 일렁이고 소금쟁이 한 마리 지팡이를 짚으며 물위를 헤엄쳐 다가온다. 예수처럼 누구처럼 물 위를 아슬아슬 걸어오는 평화여! 봄비 세상을 관찰하다가 당신 얼굴을 보았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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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작곡가 윤이상의 고향 통영 앞바다에서 건진 싱싱한 문어로 만든 냉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학시절 즐겨 먹었을 스위스식 감자전, 김대중 대통령이 애호했던 신안군 가거도의 민어와 해삼초의 궁합 민어해삼편수, 정주영 회장의 소떼로 잘 알려진 충남 서산목장 누렁소로 만든 한우숯불구이, 노무현 대통령 생가가 있는 봉하마을에서 오리농법으로 지은 찰진 봉하쌀, 그리고 직접 평양에서 요리사를 모셔와 장만한다는 옥류관 냉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들. 남북정상회담장을 달뜨게 할 만찬상.

이곳 남도에선 친구들을 만나면 점심때 뭘 먹었냐부터 성큼 묻는다. 딸이 시집을 가면 가장 걱정하는 것이 시가는 도대체 뭘 먹고 사니였다. 반찬만 알면 모든 살림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맛난 음식을 가리켜 ‘게미가 있다’라고 했다. ‘게미’란 곰삭은 깊은 맛을 의미한다. 게미 있는 맛은 기름에 튀긴 달달한 음식이나 혀끝에서만 요동치는 음식 맛이 아니다. 봄이면 쑥을 한줌 뜯어 넣고 야들야들한 보리 순을 뜯어설랑 홍어 내장과 함께 끓인 홍어애국을 먹었다. 코가 뻥하니 뚫리고 입안 천장이 홀라당 벗겨지는 맛. 한번 게미 입맛에 빠지면 호남선 열차에 자주 올라타게 될 테다. 북조선 동무들도 헤어날 수 없게 될 이 게미 수렁.

하얀 국물에 둥둥 뜬 수육과 향긋한 파향을 호물호물. 밭에서 막 뜯은 상추, 부추, 쑥갓으로 쌈을 해서 입꼬리가 찢어지게 아그작아그작. 어디 음식점을 가나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이런 풍경. 어느새 나도 그중의 한명이 되고 만다. 나는 낙지 요리에 환장하고 오리고기도 즐기는 편. 쇠고기는 남이 사줘도 눈치를 좀 봐야 한다. 선의는 돼지고기까지이며, 쇠고기는 잘못 먹으면 속탈이 무섭지. 돼지고기는 사주면 얻어먹어도 무방하지만 오리고기는 제 발로 찾아다니라는 옛말이 있다. 광주엔 오리탕 골목이 유명하다. 인근 담양에도 맛집이 두어군데 있다. 오리고기보다 미나리나 쑥을 더 먹게 된다. ‘남도의 5미’라는 한정식, 보리밥, 김치, 오리탕, 떡갈비가 담양에 다 있다. 언젠가 평양 동무들이 우리 동네에 찾아오면 내가 한턱 쏴야지. 간첩은 빼고잉.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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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신발 뒤축이 닳아서 구둣방을 찾았다. 뒤축을 새로 붙이면 새신처럼 신을 수 있단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나귀나 되는 것처럼 수선한 신발을 신고 발길질을 해 보고, 푸륵푸륵 콧김도 날려봤다.

중동 지방이나 인도, 네팔, 머나먼 남미 안데스 산길을 여행하면 당나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돌길을 오를 때 당나귀를 타기도 하는데 힘이 천하장사. 당나귀와 몇날 며칠 같이한 적도 있었다. 짐을 나르기도 하고 나를 태우기도 하면서 산골마을 트레킹을 도와주었던 당나귀.

프란츠 카프카의 <꿈>에도 당나귀가 나온다. 꿈속 당나귀는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데 은색 가슴 털과 배를 내놓고 다닌다던가. 도심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짐도 들어주고, 폐지 줍는 할머니 언덕 오를 때 리어카도 밀어주는 이런 당나귀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거짓 없는 투명한 세상을 이야기할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이야기가 맨 먼저 떠오른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실. 들을 귀가 당나귀 귀처럼 자란 사람들. 아무리 덮거나 속이려 들어도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은 밝은 귀를 종그리며 금방 알아차린다. ‘잘 알아듣고, 잘 알아차린’ 사람들만이 진실의 세상을 사는 주인공들. 거짓의 세상을 밀고 가는 기계들과 달리 당나귀는 진실의 세상을 끌고 앞으로 간다. 주인 말을 잘 알아듣는 당나귀와 함께 산길을 걷는 즐거움. 자라다가 멈추는 손톱처럼 기운이 빠진 당나귀에겐 잘 익은 당근을 먹이자. 불쑥 또 힘이 자라면 다시 길을 출발. 오래오래 소금밭을 걸어왔는지 짠물이 고인 눈. 잔등을 쓰다듬어 가면서 당나귀와 함께 걷는 인생길.

시인은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이다. 잘 들어야 잘 쓸 수 있지. 글을 쓰는 데 있어 경청만 한 비법은 없다. 사람의 말은 물론이고 자연의 언어도 알아듣는 시인. 영매처럼 다른 세상의 이야기까지 술술 들려주는 신비한 능력. 진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우리 곁의 수많은 시인들 가운데 바로 당신. 어제보다 더 자란 귀를 만져보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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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자랑(자장자장) 웡이 자랑, 금도 자랑 효도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곤밥(쌀밥) 먹엉 자는 소리. 놈의 아기 우는 소리, 고치(같이) 먹엉 우는 소리. 저래 가는 깜동 개야, 우리 아기 재와 두라. 느네 아기 재와 주마, 이래 오는 깜동 개야. 아니 재와주민(안 재워주면), 솔진솔진(날카로운) 촐(풀) 베려당(베어) 손발 꽁꽁 묶엉이네, 지푼지푼(깊디깊은) 천지 소레(물구덩이) 들이쳤다 내쳤다 허켜.”

‘웡이 자랑’이라는 제주도 자장가란다. 노란 뱅애기(병아리)가 꼬꼬꼬 울면서 뛰어가는 제주 유채밭도랑. 아기 무덤 지나면 아방 어멍 무덤, 너머엔 하르방 할망 무덤. 제주 봄날 꽃다운 사람들 아이고게(아이고) 죽고, 하영(너무) 가난한 사람들 아이고게 죽고.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 먼바다에서 아깝게 죽고, 원통 분통한 봄날 슬픈 일 견디라고 꽃들은 저리 음쑥듬쑥 피는 걸까. “삼춘. 이디 봅써. 잘도 고우시다예.” 동백나무가 나를 붙잡고 말을 걸어온다. “나도 사랑허주게~게”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어잉.

자전거를 탄다. 봄 날씨엔 자전거지. 뜰낭(산딸나무), 굴무기낭(느티나무), 흰꽃이 무더기로 달린 시오기낭(섬개벚나무). 자전거는 보풀을 일듯 꽃눈을 날리면서 동네를 가로지르다가 삼춘들(어르신들) 타령소리에 멈춰 선다. “저 산천에 풀 이파리는 해년마다 푸릇푸릇 젊어나지고, 이내야 몸은 해년마다 소곡소곡 늙어간다.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오! 리틀 포레스트. 삶을 고양시켜주는 자연과 이런 체험. “조그만 동네를 산책할 때, 농부들의 장터에서 농산물을 구입할 때, 놀이터나 공원에 얘들을 데려갈 때, 리틀 야구를 구경할 때, 커피집에서 잠깐의 휴식을 즐길 때. 이처럼 이웃들과 섞이는 경험이 없다면 얼마나 삶이 무미건조할까.” &lt;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gt;에서 파커 J 파머는 이기와 냉소의 풍조에 휘둘리지 말고, 서로 마음을 쓰다듬자며 호소한다. 할망이 불러주는 자장가, 나무 아래 모인 삼촌들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면서 춤춰야 한다. 영악한 세상에 순수한 사람이여! 부디 다치지 말으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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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가운데 목요일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무 목자, 목요일. 나는 나무를 사랑하다 못해 정원사까지 되었어라. 내 정원을 한번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정원사라는 말에 트집 걸지는 못할 것이다. 울타리 솔숲과 갖가지 정원수로 꽉 찬 정원. 며칠 봄비가 내린다 하여 나무마다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냈다. 내 손바닥은 나무의 살결 수피처럼 거칠고 딱딱해졌다. 샌님의 곱디고운 그런 손길이 아니다. 갈라지고 파이고 딱딱하며 거친 손. 악수하는 이들마다 무슨 공사하고 왔냐 캐묻는다. 나무를 매만지면 저랑 같은 동족인 줄 알고 가지를 쭉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

티베트 사람들은 이웃과 포근한 정을 나누기 위해 통렌(Tonglen)이란 수행법을 사용한다. 정을 나누며 살고픈 사람을 생각하고 그의 근심 걱정, 고통을 헤아려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이 그의 모든 어두움을 삼킨 뒤, 다음은 천천히 숨을 내쉰다. 이때 그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훅~’ 내쉬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통렌 수행을 해온 수도자 같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그늘을 들이마신 뒤, 우리에게는 밝음과 미소 그리고 맑은 공기를 안겨주는 나무. 목요일에 이르면 비로소 정신이 차려지고 숨도 고르게 쉴 수 있게 된다. 나무의 날은 평화와 안식의 날.

꼬리가 잘린 여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솔로’ 여우는 제 꼬리를 베고 단잠을 잔다. 여우 꼬리의 전설은 대부분 배필, 짝을 상징한다. 꼬리 달린 모든 짐승들은 꼬리로 대화도 나눈다. 마찬가지로 나무도 대지의 꼬리. 목요일은 일주일의 꼬리부분이다. 일에서 놓여날 수 있는 금토일이 머리 부분이라면 월화수는 생을 살아가는 본디박이 몸통. 그러다 목요일이 되면 살랑살랑 봄바람에 춤을 추는 꼬리처럼 휴일이 설레어서 행복해진다. 나무는 다른 날보다 배나 어깨를 들썩거린다. 요샌 보통 목요일 밤에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더라. 금요일 오후부터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목요일 밤엔 나무그늘 아래서 혼자 고독하게 차 한 잔 즐겨도 좋다. 나무 목요일, 나무아미타불. 이날엔 누구나 부처님처럼 성불할 수가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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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죄인을 판사가 꾸짖었단다. “당신은 세상에 좋은 일이라곤 해본 게 하나라도 있소?” 죄인의 대답. “섭섭한 말씀 마십쇼. 제가 그래도 수많은 형사님들과 교도관님까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나름 얼마나 애를 써왔는댑쇼.” 허걱, 변명을 이겨낼 재간은 아무도 없다더니 과연. 매화가 핀 봄날. 갇힌 수인들에게는 쬐끔 미안하지만서도 자유로운 바깥출입과 맛난 봄쑥국이여. 알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주꾸미하며 벗들과 보리개떡이라도 나눠먹는 화전놀이. 세상은 살 만하고 별빛은 눈부셔라. 꽃들은 봄이라고 목이 메게 소리를 지르는 표정. 새들도 지금은 봄이라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댄다. 아이고 알았다고. 밖에 나가보마. 미세먼지가 무서워도 발길을 자주 바깥으로 내디디며 살아간다.

이 세월을 용기내어 살아가자고, 힘들어도 웃고 살자면서 친구에게 전화로 속삭이듯 당신에게 뻔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잔소리가 바로 사랑이니깐. 작가는 잔소리꾼. 소리꾼 명창보다 더 센 잔소리꾼. 작가가 말을 아끼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글쟁이 말쟁이인데. “그런데 말입니다” 계속 발언을 이어갈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이. “맞습니다 맞고요.” 내 자신이 나라인 공화국에서는 누구도 주눅들 까닭이 없지.

덮으려고 쉬쉬하다 보면 문제만 더 커질 뿐. 마을에선 온갖 소문들이 무성해. 그중엔 물론 엉터리 소문도 있곤 해. 하지만 말이 없는 쥐죽은 듯한 마을은 활기가 없음은 물론이고 마을 기능을 벌써 상실한 상태. 마을에 한명쯤 ‘떠버리’가 있어야 만남자리도 재미지고 구수하다. 이러구러 사연이 많고, 사연 보따리를 풀어내는 사람은 친근하고 정이 가지. 여기서 아재개그 하나. 가수 노사연씨는 사연이 없어서 노사연일까. 연예계는 자고로 사연, 스캔들이지. 스캔들이 없으면 재미도 뚝. 정치도 연예계나 다를 바 없어 허망하고 구질 맞은 소문들이 피어나기도 하고 그러는 동네인가.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진실이여, 너 반갑다. 현란한 ‘혀 작동’ 사기꾼들과 애정 많은 잔소리꾼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성숙해진 우리 동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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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한 차례 ‘만나면 좋은 친구’ 방송국, 유행가 가락 소개하는 프로에 출연하고 있다. 강원도 올림픽 기간에는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길’을 들려드렸다. 한 인터뷰에서 김현철이 그랬다. “재수 시절에 여자 친구랑 춘천 가는 기차를 입석으로 탔어요. 근데 완행열차라 너무 힘들었죠. 중간인 강촌역에서 그냥 내려버렸어요. 곡 제목을 강촌 가는 기차라고 했어야 맞습니다. 춘천에 다녀온 셈치고 춘천 가는 길이라고 지었죠. 가사에도 춘천 가는 기차라고 했지 춘천에 갔다는 얘기는 그래서 없어요.” 노래는 갖가지 이런 숨은 사연을 안고 있다.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는 봄 소풍, 수학여행이 한창일 때 들려드리려고 아끼는 노래다. “노는 아이들 소리. 저녁 무렵의 교정은 아쉽게 남겨진 햇살에 물들고, 메아리로 멀리 퍼져 가는 꼬마들의 숨바꼭질 놀이에 내 어린 그 시절 커다란 두 눈의 그 소녀 떠올라. 넌 지금 어디 있니. 내 생각 가끔 나는지. 처음으로 느꼈었던 수줍던 설레임….” 서울에서 현송월이 그랬듯이 윤상도 평양에서 노래 한 곡 불렀으면 좋겠다. 남북이 군가나 정치선전 노래가 아니라 유행가를 같이 나눠 부르면서 ‘사람의 가슴’으로 사랑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한없이 노래하고 마음껏 입술을 나누며 살아야지.

난 신학교 시절부터 찬송가보다는 대중가요 유행가가 좋았다. 거기에 참다운 신의 호흡, 인간의 온정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구름 너머 신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사랑. 그대와 유행가를 함께 흥얼거리며 울고 웃는 이 다사로운 행복. 레드벨벳이 부르는 이수만의 옛 노래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요샌 마마무의 ‘별이 빛나는 밤’도 따라 부른다. 장미꽃을 즐겨 그린 화가 니코 프로스마니와 수많은 별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도 소녀들의 노래를 배워 부르며 휘파람을 휘휘 휘이휘~.

소설가 이윤기는 <노래의 날개> 작가의 말에다 이렇게 적고 있더군. “유행가의 노랫말들이 요즘 들어 마음에 절실하게 묻어 든다. 읽히는 시의 생명보다는 불리는 노래의 생명이 더 긴 것 같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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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아이들은 차력사가 무엇인지 모를 거다. 약장수랑 둘이 쿵짝짝이던 차력사. 약장수들은 마블 주인공처럼 생긴 차력사를 한 명 대동하고 동네에 나타났다. 공터에다 간이무대를 마련하고 구경꾼들을 그러모았다. 차력사는 근육질 몸에 반질반질 기름을 바르고, 장발 머리엔 띠를 동여매고서 붉은 신호등 같은 얼굴을 반짝거렸다. 약장수는 낯선 경상도 말을 썼다. 차력사와 “롱가서 묵을라꼬예(나눠 먹겠다).” 고급 경상도 말을 처음 듣게 된 나. 지금도 경상도 사람을 만나면 롱가서 묵는다는 말이 퍼뜩 떠오르게 된다.

차력사는 입에서 불을 뿜고, 손바닥으로 못을 박는가 하면 주먹으로 배를 쳐도 요동치지 않았다. 소주 됫병을 손바닥 수도로 내리치는 장면에선 관객들 모두 자지러졌다. 행여 피를 보지 않을까 염려는 뚝. 전광석화처럼 유리병을 산산조각 냈다. 철사로 몸을 조인 뒤에 끊어내는 묘기도 선보였다. 근육 사이로 핏줄이 금방 터져나올 것 같았다. 으랏차차 기합과 동시에 철사줄은 사방으로 뜯겨져나갔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소설가 김영현의 단편 <차력사>도 나랑 기억이 똑같았다. 이름은 박팔갑산. 칠갑산도 아니고 팔갑산. 소설 속 나는 어려서 학교 공터에서 그를 만난 뒤 훗날 쇠전의 야바위꾼들 속에서 다시 보고, 세월이 흘러 파랑새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만나게 된다. “타아~.” 늙은 사내의 기합소리. 땀에 전 주름살투성이의 뺨. 소설가는 차력사에게서 “세상의 추잡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폭풍우 속에 혼자 서 있는 사람과도 같은 외로움과 야성”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지금 박팔갑산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내가 어려서 봤던, 꽁꽁 묶인 철사줄을 단숨에 끊어버리던 괴력의 사나이가 궁금해진다. 정작 괴물다운 괴물이 사라진 빈자리. 쇠꼬챙이보다 못한 아랫도리나 탈랑거리는 괴물들이 차지하고 있음이렷다. 약장수는 이 약을 사먹어야 이처럼 강골이 된다고 침을 튀겼지만, 차력사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딴소리를 했다. 약장수가 차력사를 흘겨보는 사이 자리를 뜨던 아짐씨들. 가설무대에다 무시(무) 방귀를 뿡뿡 사질러댔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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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눈들이 사람 눈처럼 또랑거리는 ‘봄봄’. 산수유는 벌써 노랗게 피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들이 아침에도 돌아가지 않은 게 꽃이란다. 나무마다 별꽃이 피어 이쪽 말로 ‘버큼(거품)’ 같아. 부풀어 오르다가 쭉 가라앉으면 다음엔 풀들이 땅별을 덮으며 차오르겠지. 쑥 캐던 할매들은 신문지 한 장 바닥에 깔고서는 멍 때리고 앉아 봄바람을 쐰다.

막심 고리키의 에세이집 <가난한 사람들>엔 이런 얘기가 있다. “신문은 구독 안 합니까?” “그딴 걸 왜 봅니까. 뭐 찻집에 가면 들춰보긴 하죠. 언제는 진격했다더니 또 퇴각했다고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우리 동네 한 녀석이 있는데 그놈 별명이 바로 ‘신문’입니다.” 그래도 시골에선 신문지가 꼭 필요하다. 활자가 아니라 그냥 종이로라도 말이다. 예전엔 들밥을 먹을 때 펼쳤고, 들불을 놓을 때도, 물건을 싸거나 보관할 때 여러모로 요긴했다. 아이들은 딱지를 접고, 종이 모자로 쓰고, 두툼하게 겹쳐 야구 글러브를 만들었다. 도배할 때 초벌로 신문지를 붙이기도 했다. 아예 쇠죽 쑤는 허드레 방 같은 데는 신문지가 벽지를 대신했다. 해묵은 소식을 끌어안으면서 설설 끓던 쇠죽방. 어릴 적 친구는 엎드리면 벽이 신문지였다고 했다. 사설을 읽고 자란 덕분인지 신문사 동네에서 밥벌이를 삼고 지낸다. 신문의 정기를 받았다고나 할까.

굴착기를 앞세운 4대강 강행 때부터 국정농단까지 커다란 제목들. 신문보기가 두렵기조차 했다. 수고한 분들 덕분에 무사히 올림픽도 마쳤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남북한 소식은 반갑기도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남북정상회담 장면이나 헌법 제1조를 머리기사로 담은 경향신문 지면 같은 건 방바닥에다 깔고 짜장면을 먹기엔 숭고하고 거룩하기까지 했다. 그런 신문지는 버리지 못하여 어디 책꽂이 잡지 근방에 개켜져 있을 것이다. 반면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아궁이에 던져 넣고 싶은 신문지도 있다. 그런 신문사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그놈 별명에 다름 아니겠다. 재벌기업과 유착하여 혈맹을 과시하는 신문들, 추잡한 형님 선배님들의 신문. 그런 신문지는 저 밭에 할매들 궁둥이에서 납작 찌그러지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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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떼를 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러다가도 아프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보이면 가운데 자리를 내어주어 한 마리도 낙오 없이 종주를 마친다. 게임에서 이기고 지고, 금·은·동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함만이 아니다. 발맞추어 함께 달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축제를 즐겼다는 게 가장 눈부신 역사.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놀이마당. 평화를 선포하며 단일기 아래서 한 팀, 한 몸이었던 남북한 선수들. 진정한 챔피언들이다.

인류의 겨울축제가 끝나면 덩그러니 남을 빈산. 이제 주어진 숙제는 메아리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일. 산짐승들이 다시 돌아오게 부르고, 파헤쳐진 골짜기마다 나무들을 채워 넣어야 하겠다. 자연의 희생은 한없이 값졌고 고마웠다. 우리는 반드시 가리왕산 복원약속을 지켜가야 한다. 후손들에게 잘 복원된 자연환경을 남기는 일. 짙푸른 숲을 남길 때 금메달은 우리 모두의 차지.

“푸른푸른 푸른산은 아름답구나. 푸른산 허리에는 구름도 많다. 토끼구름 나비구름 짝을 지어서 딸랑딸랑 구름마차 끌고 갑니다. 푸른푸른 푸른산은 아름답구나. 푸른산 그늘 아래는 서늘도 하다. 어깨동무 내동무들 짝을 지어서 매앰매앰 매미소리 찾아갑니다….” 봄소풍 가면서 동무들과 불렀던 이런 동요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산하고 바다하고 누가누가 더 푸를까. 산하고 바다하고 누가누가 더 푸를까. 내기해 보자~ 내기해 보자~. 나무를 심어줄게. 나무를 심어줄게. 산아 산아 이겨라. 더 파아래라. 요롤레이 요롤레이 요롤레이디 요롤레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요롤레이 요롤레이디…” 요들송을 부르면서 발맞추어 걷던 우리들. 옛 동무 그리우면 이 노래를 쩡쩡 불러보라. 메아리도 당신의 오랜 길동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누나. 벌교가 집인 교사 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이름이 좀 길다. ‘벌교 꼬막 조니뎁.’ 족보도 없는 발바리 강아지가 봄마당에서 신명이 났다. 요롤레이 요롤레이! 사람 개 고양이 염소 토끼 오리 병아리 담비 노루 산양 두더지 수달 다람쥐 물고기 반달곰 조랑말 산새 들새 모두 다 요롤레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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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 지면기사-

어려서 명절이나 잔치마다 강강술래였다. 손만 잡으면 강강술래 빙글빙글 돌고는 했다. “전라도 우수영은 우리 장군 대첩지라. 장군의 높은 공은 천수만대 빛날세라. 술래술래 강강술래. 술래소리 어디 갔나 때만 찾아 잘 돌아온다… 먼데 사람 듣기 좋고 곁에 사람 보기 좋게 강강술래. 높은 마당이 얕아나 지고 얕찬 마당은 짚어나 지게 욱신욱신 뛰어나보세… 은팔지는 팔에 걸고 약초 캐는 저 큰 아가. 니야 집이 너 어데냐. 내야 집은 전라도 땅. 검은 구름 방골 속에 열두우칸 지하 집에. 화초병풍 둘러치고 나귀에다 핑깅(풍경)달고. 응그랑쩡그랑 그 소리 듣고. 나알만 찾아 어서 오소. 강강술래.” 천국에 가면 성형수술 때문에 얼굴 원본대조를 하느라고 길게 줄을 서야 한단다. 돋보이려는 욕망들이 지어낸 그런 줄서기 말고, 둘러서서 다 같이 욱신욱신 뛰어나보는 강강술래의 여인들. 조선하늘 맑은 여인들이 빚어낸 잔치 풍경들. 가족이 또 이웃이 손을 잡고서 달과 별을 반기고 해와 구름과 동무했다. 우주가 내려앉은 태극기를 공중에 매달고서 우리는 누대를 그렇게 한 덩어리 한겨레였다.

얼음판을 지치는 쇼트트랙. 헤집고 시원하게 달리는 선수들을 구경한다. 하계 운동에 양궁이 세계 으뜸이라면 동계엔 빙상 쇼트트랙이다. 미장이가 다져놓은 듯 반듯한 얼음판을 숨차게 달려가는 선수들. 마치 윷놀이만 같아라. 윷놀이도 설날에 빠질 수 없지. 돼지와 개, 양, 소 그리고 말을 가리키는 도, 개, 걸, 윷, 모. 우리가 ‘동 났다’라고 할 때 쓰는 동. 한 동 두 동… 그렇게 네 동이 먼저 나면 이기는 놀이. 암만 빨리 달려도 뒷덜미를 붙잡히면 어김없이 꼴찌로 나앉아야 한다. 모가 나는 행운보다 말을 더 잘 써야 한다.

전 세계에 윷놀이는 오직 한국 사람만 하는 놀이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윷을 가르쳐주면 쉽게 따라서 한다. 어렵지 않은 놀이다. 사막에서 묵을 때 하도 심심해서 윷판을 만들어 날밤을 새웠다. 국민 혈세로 한식세계화 어쩌다가 쪽박을 찬 그런 코미디와는 격이 다른 문화전도사. 내가 그런 사람인데 알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글로 남겨보는 센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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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은 올해 진짜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집 울타리 대밭이 있는데 매서운 북풍 한풍을 양팔 벌려 막아주고 있다. 고스란히 그 바람을 맞고 선 어리고 순한 대나무. 얼마나 춥고 아플까. 또 있다. 밤이면 고갤 떨구고서 발밑을 따뜻하고 환히 밝혀주는 외등. 그늘진 곁을 항상 지켜주고 돌봐주는 이런 존재들에 무한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같은 혈육이라고 ‘분단과 휴전’ 중임에도 올림픽 잔치에 함께해준 북녘 동포들. 어찌 보면 영화 속 동막골 한 장면 같지 않은가. 영화 &lt;웰 컴 투 동막골&gt;을 기억한다. 불발인 줄 알고 수류탄을 옥수수가 꽉 찬 헛간에다 던졌는데 순식간 펑! 하늘에서 쏟아지던 무수한 팝콘. 불꽃놀이처럼, 함박눈처럼 내리던 그 팝콘. 살지고 미끈한 송사리 떼가 개울을 헤엄쳐가듯 올림픽 선수들이 날쌔게 달려가는 자리마다 팝콘이 쏟아지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강원도에선 옥수수를 옥시기라고 부른다. 강원도 사투리에서 반드시 앞장을 서는 말이 ‘요’란 말. 요 옥시기, 요 막국시, 요 깔뚝국시(메밀국수), 요 도루매기(도루묵), 요 뜨데기국(수제비), 요 맨두(만두), 요 강쟁이(튀밥), 요 칠구랭이(칡), 요 쌔미(상추쌈), 요 마마꾸(민들레), 요 꿀밤(도토리), 요 감재(감자), 요 해자오라기(해바라기)….

강원도 사투리가 하고 싶으면 ‘요’라는 첫마디만 꺼내면 된다. 캐나다·미국에서 온 친구, 러시아에서 온 친구, 멀리 남미에서 온 친구한테도 요를 가르쳐주길. 요 올림픽. 고라댕이(산골짝) 너와집마다 건강하고 예쁘장한 요 해까이(어린이), 요 아주버이, 요 아주머이, 요 할머이, 요 할부지, 재미지게 오순도순 살고 있는 강원도땅. 설피를 신고 설산을 오르다보면 멀리 보이는 설악산 금강산. 겨울에 금강산은 개골산이라 불린다지. 수천수만 번 들었던 노래 그리운 금강산. 눈두덩 말라붙은 눈물로도 모자란 그리움이렷다. 눈 내리는 ‘요 밤’, 강원도 옥수수 팝콘이라 생각하고 입을 쩍 벌려본다. 가문 땅에 내리는 평화와 생명의 은총. 아무리 추워도 감사해 지분지분 눈물부터 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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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에겐 예배 때 휴대폰을 꺼두라고 주의까지 줬는데 정작 자기 호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린 목사. 설교를 중단하고 강대상에서 전화를 받았다. “하나님! 지금 당신에 관해 한참 설교 중인데, 나중에 전화해요. 그럼 끊습니당. 뚝~” 누가 전화했는지 이거 뭐야 당황했겠다. 아무튼 하나님 개무시. 어설픈 회개와 영악한 간증. 적당히 죄를 사해주면 양심세탁비로 헌금을 받고, 아무나 집사고 장로 직분을 내려주는 하나님 없는 교회.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짓이기는 수억짜리 오르간과 성가대. 박수를 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방언 기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이 전화해도 들리지 않는, 그저 소음일 따름. 진실이 숨죽이고 소음만 있는 곳엔 하늘의 천사라도 누구 하나 내려앉을 수 없는 법이렷다.

산골엔 요즘 배고픈 참새들이 많이 내려앉는다. 갈대밭에 몸들 비비며 우는 갈대처럼 새들이 무리지어 밥 좀 나눠달라 애원들이다. 묵은쌀이 없나 한 됫박 찾아 바위에 올려놓고, 돌확에다간 물도 한 바가지 떠놨다. 논밭전지에 까마귀떼가 시꺼먼 구름마냥 내려앉기도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검은 날개 천사들.

이태준의 소설 <까마귀>는 친구 별장에 잠시 깃든 작가와 뜨락 정자에 가끔 방문하는 여자 이야기다. “여자는 잊어버린 듯 오래도록 햇볕만 쏘이고 있다가 어디선지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사뿐 발을 떼어놓았다.” 정자지기는 그 여자가 폐병에 걸려 요양 중인 환자라고 알려준다. “여기 나와선 까마귀가 내 친굽니다. 내 뒤를 쫓아다니는 무슨 음흉한 사내같이 소름이 끼쳐요. 아마 내가 죽으면 저 새가 덥석 날아와 앞을 설 것만 같이….” 몇차례 다담과 설렘이 오가고, 여자는 슬픈 미소만 남기고 내려갔다. 날이 추워지고 싸락눈이 내린 날, 잡지사에 글을 넘긴 작가는 영구차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한다.

새들이 알아차린 진실과 베푸는 위로. 어쩌면 사람보다 나을 때가 있다. 배고픔을 던 새가 들려주는 합창은 바흐나 헨델의 코랄을 능가한다. 까마귀도 하늘을 덮으며 베토벤의 ‘운명’을 들려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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