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23건

  1. 2018.04.19 당나귀 귀
  2. 2018.04.12 리틀 포레스트
  3. 2018.04.05 나무 목요일
  4. 2018.03.29 잔소리꾼
  5. 2018.03.22 유행가
  6. 2018.03.15 차력사
  7. 2018.03.08 신문지 한 장
  8. 2018.02.22 요롤레이 요롤레이
  9. 2018.02.19 강강술래와 윷놀이
  10. 2018.02.08 강원도 팝콘
  11. 2018.02.01 참새와 까마귀의 마을
  12. 2018.01.25 농민가
  13. 2018.01.18 어촌 겨울풍경
  14. 2018.01.11 눈썰매
  15. 2018.01.04 통일 올림픽
  16. 2017.12.28 솔로 천국
  17. 2017.12.22 동계 캠핑장
  18. 2017.12.07 늑대가 우는 겨울밤
  19. 2017.11.30 시인의 사랑
  20. 2017.11.23 별이야! 눈이야!

좋아하는 신발 뒤축이 닳아서 구둣방을 찾았다. 뒤축을 새로 붙이면 새신처럼 신을 수 있단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나귀나 되는 것처럼 수선한 신발을 신고 발길질을 해 보고, 푸륵푸륵 콧김도 날려봤다.

중동 지방이나 인도, 네팔, 머나먼 남미 안데스 산길을 여행하면 당나귀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돌길을 오를 때 당나귀를 타기도 하는데 힘이 천하장사. 당나귀와 몇날 며칠 같이한 적도 있었다. 짐을 나르기도 하고 나를 태우기도 하면서 산골마을 트레킹을 도와주었던 당나귀.

프란츠 카프카의 <꿈>에도 당나귀가 나온다. 꿈속 당나귀는 네 발로 걷지 않고 두 발로 일어서서 걷는데 은색 가슴 털과 배를 내놓고 다닌다던가. 도심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짐도 들어주고, 폐지 줍는 할머니 언덕 오를 때 리어카도 밀어주는 이런 당나귀 한 마리 있었으면 좋겠다.

거짓 없는 투명한 세상을 이야기할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이야기가 맨 먼저 떠오른다.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진실. 들을 귀가 당나귀 귀처럼 자란 사람들. 아무리 덮거나 속이려 들어도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은 밝은 귀를 종그리며 금방 알아차린다. ‘잘 알아듣고, 잘 알아차린’ 사람들만이 진실의 세상을 사는 주인공들. 거짓의 세상을 밀고 가는 기계들과 달리 당나귀는 진실의 세상을 끌고 앞으로 간다. 주인 말을 잘 알아듣는 당나귀와 함께 산길을 걷는 즐거움. 자라다가 멈추는 손톱처럼 기운이 빠진 당나귀에겐 잘 익은 당근을 먹이자. 불쑥 또 힘이 자라면 다시 길을 출발. 오래오래 소금밭을 걸어왔는지 짠물이 고인 눈. 잔등을 쓰다듬어 가면서 당나귀와 함께 걷는 인생길.

시인은 당나귀 귀를 가진 사람들이다. 잘 들어야 잘 쓸 수 있지. 글을 쓰는 데 있어 경청만 한 비법은 없다. 사람의 말은 물론이고 자연의 언어도 알아듣는 시인. 영매처럼 다른 세상의 이야기까지 술술 들려주는 신비한 능력. 진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우리 곁의 수많은 시인들 가운데 바로 당신. 어제보다 더 자란 귀를 만져보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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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자랑(자장자장) 웡이 자랑, 금도 자랑 효도 자랑. 우리 아기 자는 소리. 곤밥(쌀밥) 먹엉 자는 소리. 놈의 아기 우는 소리, 고치(같이) 먹엉 우는 소리. 저래 가는 깜동 개야, 우리 아기 재와 두라. 느네 아기 재와 주마, 이래 오는 깜동 개야. 아니 재와주민(안 재워주면), 솔진솔진(날카로운) 촐(풀) 베려당(베어) 손발 꽁꽁 묶엉이네, 지푼지푼(깊디깊은) 천지 소레(물구덩이) 들이쳤다 내쳤다 허켜.”

‘웡이 자랑’이라는 제주도 자장가란다. 노란 뱅애기(병아리)가 꼬꼬꼬 울면서 뛰어가는 제주 유채밭도랑. 아기 무덤 지나면 아방 어멍 무덤, 너머엔 하르방 할망 무덤. 제주 봄날 꽃다운 사람들 아이고게(아이고) 죽고, 하영(너무) 가난한 사람들 아이고게 죽고.

수학여행 가던 아이들 먼바다에서 아깝게 죽고, 원통 분통한 봄날 슬픈 일 견디라고 꽃들은 저리 음쑥듬쑥 피는 걸까. “삼춘. 이디 봅써. 잘도 고우시다예.” 동백나무가 나를 붙잡고 말을 걸어온다. “나도 사랑허주게~게” 그래그래, 알았어 알았어잉.

자전거를 탄다. 봄 날씨엔 자전거지. 뜰낭(산딸나무), 굴무기낭(느티나무), 흰꽃이 무더기로 달린 시오기낭(섬개벚나무). 자전거는 보풀을 일듯 꽃눈을 날리면서 동네를 가로지르다가 삼춘들(어르신들) 타령소리에 멈춰 선다. “저 산천에 풀 이파리는 해년마다 푸릇푸릇 젊어나지고, 이내야 몸은 해년마다 소곡소곡 늙어간다.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오! 리틀 포레스트. 삶을 고양시켜주는 자연과 이런 체험. “조그만 동네를 산책할 때, 농부들의 장터에서 농산물을 구입할 때, 놀이터나 공원에 얘들을 데려갈 때, 리틀 야구를 구경할 때, 커피집에서 잠깐의 휴식을 즐길 때. 이처럼 이웃들과 섞이는 경험이 없다면 얼마나 삶이 무미건조할까.” &lt;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gt;에서 파커 J 파머는 이기와 냉소의 풍조에 휘둘리지 말고, 서로 마음을 쓰다듬자며 호소한다. 할망이 불러주는 자장가, 나무 아래 모인 삼촌들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면서 춤춰야 한다. 영악한 세상에 순수한 사람이여! 부디 다치지 말으시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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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가운데 목요일에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나무 목자, 목요일. 나는 나무를 사랑하다 못해 정원사까지 되었어라. 내 정원을 한번 구경해본 사람이라면 정원사라는 말에 트집 걸지는 못할 것이다. 울타리 솔숲과 갖가지 정원수로 꽉 찬 정원. 며칠 봄비가 내린다 하여 나무마다 구덩이를 파고 퇴비를 냈다. 내 손바닥은 나무의 살결 수피처럼 거칠고 딱딱해졌다. 샌님의 곱디고운 그런 손길이 아니다. 갈라지고 파이고 딱딱하며 거친 손. 악수하는 이들마다 무슨 공사하고 왔냐 캐묻는다. 나무를 매만지면 저랑 같은 동족인 줄 알고 가지를 쭉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더라.

티베트 사람들은 이웃과 포근한 정을 나누기 위해 통렌(Tonglen)이란 수행법을 사용한다. 정을 나누며 살고픈 사람을 생각하고 그의 근심 걱정, 고통을 헤아려 깊게 숨을 들이마신다. 폐부 깊숙이 그의 모든 어두움을 삼킨 뒤, 다음은 천천히 숨을 내쉰다. 이때 그를 축복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훅~’ 내쉬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나무는 이미 오래전부터 통렌 수행을 해온 수도자 같다. 세상의 모든 어둠과 그늘을 들이마신 뒤, 우리에게는 밝음과 미소 그리고 맑은 공기를 안겨주는 나무. 목요일에 이르면 비로소 정신이 차려지고 숨도 고르게 쉴 수 있게 된다. 나무의 날은 평화와 안식의 날.

꼬리가 잘린 여우는 상상하기 어렵다. ‘솔로’ 여우는 제 꼬리를 베고 단잠을 잔다. 여우 꼬리의 전설은 대부분 배필, 짝을 상징한다. 꼬리 달린 모든 짐승들은 꼬리로 대화도 나눈다. 마찬가지로 나무도 대지의 꼬리. 목요일은 일주일의 꼬리부분이다. 일에서 놓여날 수 있는 금토일이 머리 부분이라면 월화수는 생을 살아가는 본디박이 몸통. 그러다 목요일이 되면 살랑살랑 봄바람에 춤을 추는 꼬리처럼 휴일이 설레어서 행복해진다. 나무는 다른 날보다 배나 어깨를 들썩거린다. 요샌 보통 목요일 밤에 직장 동료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더라. 금요일 오후부터는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목요일 밤엔 나무그늘 아래서 혼자 고독하게 차 한 잔 즐겨도 좋다. 나무 목요일, 나무아미타불. 이날엔 누구나 부처님처럼 성불할 수가 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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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 죄인을 판사가 꾸짖었단다. “당신은 세상에 좋은 일이라곤 해본 게 하나라도 있소?” 죄인의 대답. “섭섭한 말씀 마십쇼. 제가 그래도 수많은 형사님들과 교도관님까지 일자리 창출을 위해 나름 얼마나 애를 써왔는댑쇼.” 허걱, 변명을 이겨낼 재간은 아무도 없다더니 과연. 매화가 핀 봄날. 갇힌 수인들에게는 쬐끔 미안하지만서도 자유로운 바깥출입과 맛난 봄쑥국이여. 알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주꾸미하며 벗들과 보리개떡이라도 나눠먹는 화전놀이. 세상은 살 만하고 별빛은 눈부셔라. 꽃들은 봄이라고 목이 메게 소리를 지르는 표정. 새들도 지금은 봄이라고 소리를 바락바락 질러댄다. 아이고 알았다고. 밖에 나가보마. 미세먼지가 무서워도 발길을 자주 바깥으로 내디디며 살아간다.

이 세월을 용기내어 살아가자고, 힘들어도 웃고 살자면서 친구에게 전화로 속삭이듯 당신에게 뻔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잔소리가 바로 사랑이니깐. 작가는 잔소리꾼. 소리꾼 명창보다 더 센 잔소리꾼. 작가가 말을 아끼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글쟁이 말쟁이인데. “그런데 말입니다” 계속 발언을 이어갈 수 있는 재능을 지닌 이. “맞습니다 맞고요.” 내 자신이 나라인 공화국에서는 누구도 주눅들 까닭이 없지.

덮으려고 쉬쉬하다 보면 문제만 더 커질 뿐. 마을에선 온갖 소문들이 무성해. 그중엔 물론 엉터리 소문도 있곤 해. 하지만 말이 없는 쥐죽은 듯한 마을은 활기가 없음은 물론이고 마을 기능을 벌써 상실한 상태. 마을에 한명쯤 ‘떠버리’가 있어야 만남자리도 재미지고 구수하다. 이러구러 사연이 많고, 사연 보따리를 풀어내는 사람은 친근하고 정이 가지. 여기서 아재개그 하나. 가수 노사연씨는 사연이 없어서 노사연일까. 연예계는 자고로 사연, 스캔들이지. 스캔들이 없으면 재미도 뚝. 정치도 연예계나 다를 바 없어 허망하고 구질 맞은 소문들이 피어나기도 하고 그러는 동네인가. 이야기의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진실이여, 너 반갑다. 현란한 ‘혀 작동’ 사기꾼들과 애정 많은 잔소리꾼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성숙해진 우리 동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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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한 차례 ‘만나면 좋은 친구’ 방송국, 유행가 가락 소개하는 프로에 출연하고 있다. 강원도 올림픽 기간에는 가수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길’을 들려드렸다. 한 인터뷰에서 김현철이 그랬다. “재수 시절에 여자 친구랑 춘천 가는 기차를 입석으로 탔어요. 근데 완행열차라 너무 힘들었죠. 중간인 강촌역에서 그냥 내려버렸어요. 곡 제목을 강촌 가는 기차라고 했어야 맞습니다. 춘천에 다녀온 셈치고 춘천 가는 길이라고 지었죠. 가사에도 춘천 가는 기차라고 했지 춘천에 갔다는 얘기는 그래서 없어요.” 노래는 갖가지 이런 숨은 사연을 안고 있다.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는 봄 소풍, 수학여행이 한창일 때 들려드리려고 아끼는 노래다. “노는 아이들 소리. 저녁 무렵의 교정은 아쉽게 남겨진 햇살에 물들고, 메아리로 멀리 퍼져 가는 꼬마들의 숨바꼭질 놀이에 내 어린 그 시절 커다란 두 눈의 그 소녀 떠올라. 넌 지금 어디 있니. 내 생각 가끔 나는지. 처음으로 느꼈었던 수줍던 설레임….” 서울에서 현송월이 그랬듯이 윤상도 평양에서 노래 한 곡 불렀으면 좋겠다. 남북이 군가나 정치선전 노래가 아니라 유행가를 같이 나눠 부르면서 ‘사람의 가슴’으로 사랑하고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한없이 노래하고 마음껏 입술을 나누며 살아야지.

난 신학교 시절부터 찬송가보다는 대중가요 유행가가 좋았다. 거기에 참다운 신의 호흡, 인간의 온정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구름 너머 신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사랑. 그대와 유행가를 함께 흥얼거리며 울고 웃는 이 다사로운 행복. 레드벨벳이 부르는 이수만의 옛 노래 ‘장미꽃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요샌 마마무의 ‘별이 빛나는 밤’도 따라 부른다. 장미꽃을 즐겨 그린 화가 니코 프로스마니와 수많은 별을 그린 빈센트 반 고흐도 소녀들의 노래를 배워 부르며 휘파람을 휘휘 휘이휘~.

소설가 이윤기는 <노래의 날개> 작가의 말에다 이렇게 적고 있더군. “유행가의 노랫말들이 요즘 들어 마음에 절실하게 묻어 든다. 읽히는 시의 생명보다는 불리는 노래의 생명이 더 긴 것 같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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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아이들은 차력사가 무엇인지 모를 거다. 약장수랑 둘이 쿵짝짝이던 차력사. 약장수들은 마블 주인공처럼 생긴 차력사를 한 명 대동하고 동네에 나타났다. 공터에다 간이무대를 마련하고 구경꾼들을 그러모았다. 차력사는 근육질 몸에 반질반질 기름을 바르고, 장발 머리엔 띠를 동여매고서 붉은 신호등 같은 얼굴을 반짝거렸다. 약장수는 낯선 경상도 말을 썼다. 차력사와 “롱가서 묵을라꼬예(나눠 먹겠다).” 고급 경상도 말을 처음 듣게 된 나. 지금도 경상도 사람을 만나면 롱가서 묵는다는 말이 퍼뜩 떠오르게 된다.

차력사는 입에서 불을 뿜고, 손바닥으로 못을 박는가 하면 주먹으로 배를 쳐도 요동치지 않았다. 소주 됫병을 손바닥 수도로 내리치는 장면에선 관객들 모두 자지러졌다. 행여 피를 보지 않을까 염려는 뚝. 전광석화처럼 유리병을 산산조각 냈다. 철사로 몸을 조인 뒤에 끊어내는 묘기도 선보였다. 근육 사이로 핏줄이 금방 터져나올 것 같았다. 으랏차차 기합과 동시에 철사줄은 사방으로 뜯겨져나갔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소설가 김영현의 단편 <차력사>도 나랑 기억이 똑같았다. 이름은 박팔갑산. 칠갑산도 아니고 팔갑산. 소설 속 나는 어려서 학교 공터에서 그를 만난 뒤 훗날 쇠전의 야바위꾼들 속에서 다시 보고, 세월이 흘러 파랑새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만나게 된다. “타아~.” 늙은 사내의 기합소리. 땀에 전 주름살투성이의 뺨. 소설가는 차력사에게서 “세상의 추잡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폭풍우 속에 혼자 서 있는 사람과도 같은 외로움과 야성”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지금 박팔갑산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내가 어려서 봤던, 꽁꽁 묶인 철사줄을 단숨에 끊어버리던 괴력의 사나이가 궁금해진다. 정작 괴물다운 괴물이 사라진 빈자리. 쇠꼬챙이보다 못한 아랫도리나 탈랑거리는 괴물들이 차지하고 있음이렷다. 약장수는 이 약을 사먹어야 이처럼 강골이 된다고 침을 튀겼지만, 차력사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딴소리를 했다. 약장수가 차력사를 흘겨보는 사이 자리를 뜨던 아짐씨들. 가설무대에다 무시(무) 방귀를 뿡뿡 사질러댔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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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눈들이 사람 눈처럼 또랑거리는 ‘봄봄’. 산수유는 벌써 노랗게 피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별들이 아침에도 돌아가지 않은 게 꽃이란다. 나무마다 별꽃이 피어 이쪽 말로 ‘버큼(거품)’ 같아. 부풀어 오르다가 쭉 가라앉으면 다음엔 풀들이 땅별을 덮으며 차오르겠지. 쑥 캐던 할매들은 신문지 한 장 바닥에 깔고서는 멍 때리고 앉아 봄바람을 쐰다.

막심 고리키의 에세이집 <가난한 사람들>엔 이런 얘기가 있다. “신문은 구독 안 합니까?” “그딴 걸 왜 봅니까. 뭐 찻집에 가면 들춰보긴 하죠. 언제는 진격했다더니 또 퇴각했다고 말을 바꾸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우리 동네 한 녀석이 있는데 그놈 별명이 바로 ‘신문’입니다.” 그래도 시골에선 신문지가 꼭 필요하다. 활자가 아니라 그냥 종이로라도 말이다. 예전엔 들밥을 먹을 때 펼쳤고, 들불을 놓을 때도, 물건을 싸거나 보관할 때 여러모로 요긴했다. 아이들은 딱지를 접고, 종이 모자로 쓰고, 두툼하게 겹쳐 야구 글러브를 만들었다. 도배할 때 초벌로 신문지를 붙이기도 했다. 아예 쇠죽 쑤는 허드레 방 같은 데는 신문지가 벽지를 대신했다. 해묵은 소식을 끌어안으면서 설설 끓던 쇠죽방. 어릴 적 친구는 엎드리면 벽이 신문지였다고 했다. 사설을 읽고 자란 덕분인지 신문사 동네에서 밥벌이를 삼고 지낸다. 신문의 정기를 받았다고나 할까.

굴착기를 앞세운 4대강 강행 때부터 국정농단까지 커다란 제목들. 신문보기가 두렵기조차 했다. 수고한 분들 덕분에 무사히 올림픽도 마쳤고,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남북한 소식은 반갑기도 하지만 말이다. 언젠가 남북정상회담 장면이나 헌법 제1조를 머리기사로 담은 경향신문 지면 같은 건 방바닥에다 깔고 짜장면을 먹기엔 숭고하고 거룩하기까지 했다. 그런 신문지는 버리지 못하여 어디 책꽂이 잡지 근방에 개켜져 있을 것이다. 반면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아궁이에 던져 넣고 싶은 신문지도 있다. 그런 신문사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그놈 별명에 다름 아니겠다. 재벌기업과 유착하여 혈맹을 과시하는 신문들, 추잡한 형님 선배님들의 신문. 그런 신문지는 저 밭에 할매들 궁둥이에서 납작 찌그러지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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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떼를 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러다가도 아프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보이면 가운데 자리를 내어주어 한 마리도 낙오 없이 종주를 마친다. 게임에서 이기고 지고, 금·은·동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함만이 아니다. 발맞추어 함께 달리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축제를 즐겼다는 게 가장 눈부신 역사.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놀이마당. 평화를 선포하며 단일기 아래서 한 팀, 한 몸이었던 남북한 선수들. 진정한 챔피언들이다.

인류의 겨울축제가 끝나면 덩그러니 남을 빈산. 이제 주어진 숙제는 메아리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나가는 일. 산짐승들이 다시 돌아오게 부르고, 파헤쳐진 골짜기마다 나무들을 채워 넣어야 하겠다. 자연의 희생은 한없이 값졌고 고마웠다. 우리는 반드시 가리왕산 복원약속을 지켜가야 한다. 후손들에게 잘 복원된 자연환경을 남기는 일. 짙푸른 숲을 남길 때 금메달은 우리 모두의 차지.

“푸른푸른 푸른산은 아름답구나. 푸른산 허리에는 구름도 많다. 토끼구름 나비구름 짝을 지어서 딸랑딸랑 구름마차 끌고 갑니다. 푸른푸른 푸른산은 아름답구나. 푸른산 그늘 아래는 서늘도 하다. 어깨동무 내동무들 짝을 지어서 매앰매앰 매미소리 찾아갑니다….” 봄소풍 가면서 동무들과 불렀던 이런 동요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산하고 바다하고 누가누가 더 푸를까. 산하고 바다하고 누가누가 더 푸를까. 내기해 보자~ 내기해 보자~. 나무를 심어줄게. 나무를 심어줄게. 산아 산아 이겨라. 더 파아래라. 요롤레이 요롤레이 요롤레이디 요롤레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요롤레이 요롤레이디…” 요들송을 부르면서 발맞추어 걷던 우리들. 옛 동무 그리우면 이 노래를 쩡쩡 불러보라. 메아리도 당신의 오랜 길동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누나. 벌교가 집인 교사 부부가 강아지 한 마리를 들고 왔다. 이름이 좀 길다. ‘벌교 꼬막 조니뎁.’ 족보도 없는 발바리 강아지가 봄마당에서 신명이 났다. 요롤레이 요롤레이! 사람 개 고양이 염소 토끼 오리 병아리 담비 노루 산양 두더지 수달 다람쥐 물고기 반달곰 조랑말 산새 들새 모두 다 요롤레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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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15일 지면기사-

어려서 명절이나 잔치마다 강강술래였다. 손만 잡으면 강강술래 빙글빙글 돌고는 했다. “전라도 우수영은 우리 장군 대첩지라. 장군의 높은 공은 천수만대 빛날세라. 술래술래 강강술래. 술래소리 어디 갔나 때만 찾아 잘 돌아온다… 먼데 사람 듣기 좋고 곁에 사람 보기 좋게 강강술래. 높은 마당이 얕아나 지고 얕찬 마당은 짚어나 지게 욱신욱신 뛰어나보세… 은팔지는 팔에 걸고 약초 캐는 저 큰 아가. 니야 집이 너 어데냐. 내야 집은 전라도 땅. 검은 구름 방골 속에 열두우칸 지하 집에. 화초병풍 둘러치고 나귀에다 핑깅(풍경)달고. 응그랑쩡그랑 그 소리 듣고. 나알만 찾아 어서 오소. 강강술래.” 천국에 가면 성형수술 때문에 얼굴 원본대조를 하느라고 길게 줄을 서야 한단다. 돋보이려는 욕망들이 지어낸 그런 줄서기 말고, 둘러서서 다 같이 욱신욱신 뛰어나보는 강강술래의 여인들. 조선하늘 맑은 여인들이 빚어낸 잔치 풍경들. 가족이 또 이웃이 손을 잡고서 달과 별을 반기고 해와 구름과 동무했다. 우주가 내려앉은 태극기를 공중에 매달고서 우리는 누대를 그렇게 한 덩어리 한겨레였다.

얼음판을 지치는 쇼트트랙. 헤집고 시원하게 달리는 선수들을 구경한다. 하계 운동에 양궁이 세계 으뜸이라면 동계엔 빙상 쇼트트랙이다. 미장이가 다져놓은 듯 반듯한 얼음판을 숨차게 달려가는 선수들. 마치 윷놀이만 같아라. 윷놀이도 설날에 빠질 수 없지. 돼지와 개, 양, 소 그리고 말을 가리키는 도, 개, 걸, 윷, 모. 우리가 ‘동 났다’라고 할 때 쓰는 동. 한 동 두 동… 그렇게 네 동이 먼저 나면 이기는 놀이. 암만 빨리 달려도 뒷덜미를 붙잡히면 어김없이 꼴찌로 나앉아야 한다. 모가 나는 행운보다 말을 더 잘 써야 한다.

전 세계에 윷놀이는 오직 한국 사람만 하는 놀이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윷을 가르쳐주면 쉽게 따라서 한다. 어렵지 않은 놀이다. 사막에서 묵을 때 하도 심심해서 윷판을 만들어 날밤을 새웠다. 국민 혈세로 한식세계화 어쩌다가 쪽박을 찬 그런 코미디와는 격이 다른 문화전도사. 내가 그런 사람인데 알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글로 남겨보는 센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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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은 올해 진짜 춥고 눈도 많이 내린다. 집 울타리 대밭이 있는데 매서운 북풍 한풍을 양팔 벌려 막아주고 있다. 고스란히 그 바람을 맞고 선 어리고 순한 대나무. 얼마나 춥고 아플까. 또 있다. 밤이면 고갤 떨구고서 발밑을 따뜻하고 환히 밝혀주는 외등. 그늘진 곁을 항상 지켜주고 돌봐주는 이런 존재들에 무한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같은 혈육이라고 ‘분단과 휴전’ 중임에도 올림픽 잔치에 함께해준 북녘 동포들. 어찌 보면 영화 속 동막골 한 장면 같지 않은가. 영화 &lt;웰 컴 투 동막골&gt;을 기억한다. 불발인 줄 알고 수류탄을 옥수수가 꽉 찬 헛간에다 던졌는데 순식간 펑! 하늘에서 쏟아지던 무수한 팝콘. 불꽃놀이처럼, 함박눈처럼 내리던 그 팝콘. 살지고 미끈한 송사리 떼가 개울을 헤엄쳐가듯 올림픽 선수들이 날쌔게 달려가는 자리마다 팝콘이 쏟아지길 기도하는 마음이다.

강원도에선 옥수수를 옥시기라고 부른다. 강원도 사투리에서 반드시 앞장을 서는 말이 ‘요’란 말. 요 옥시기, 요 막국시, 요 깔뚝국시(메밀국수), 요 도루매기(도루묵), 요 뜨데기국(수제비), 요 맨두(만두), 요 강쟁이(튀밥), 요 칠구랭이(칡), 요 쌔미(상추쌈), 요 마마꾸(민들레), 요 꿀밤(도토리), 요 감재(감자), 요 해자오라기(해바라기)….

강원도 사투리가 하고 싶으면 ‘요’라는 첫마디만 꺼내면 된다. 캐나다·미국에서 온 친구, 러시아에서 온 친구, 멀리 남미에서 온 친구한테도 요를 가르쳐주길. 요 올림픽. 고라댕이(산골짝) 너와집마다 건강하고 예쁘장한 요 해까이(어린이), 요 아주버이, 요 아주머이, 요 할머이, 요 할부지, 재미지게 오순도순 살고 있는 강원도땅. 설피를 신고 설산을 오르다보면 멀리 보이는 설악산 금강산. 겨울에 금강산은 개골산이라 불린다지. 수천수만 번 들었던 노래 그리운 금강산. 눈두덩 말라붙은 눈물로도 모자란 그리움이렷다. 눈 내리는 ‘요 밤’, 강원도 옥수수 팝콘이라 생각하고 입을 쩍 벌려본다. 가문 땅에 내리는 평화와 생명의 은총. 아무리 추워도 감사해 지분지분 눈물부터 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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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인들에겐 예배 때 휴대폰을 꺼두라고 주의까지 줬는데 정작 자기 호주머니에서 전화벨이 울린 목사. 설교를 중단하고 강대상에서 전화를 받았다. “하나님! 지금 당신에 관해 한참 설교 중인데, 나중에 전화해요. 그럼 끊습니당. 뚝~” 누가 전화했는지 이거 뭐야 당황했겠다. 아무튼 하나님 개무시. 어설픈 회개와 영악한 간증. 적당히 죄를 사해주면 양심세탁비로 헌금을 받고, 아무나 집사고 장로 직분을 내려주는 하나님 없는 교회. 가난하고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짓이기는 수억짜리 오르간과 성가대. 박수를 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방언 기도.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이 전화해도 들리지 않는, 그저 소음일 따름. 진실이 숨죽이고 소음만 있는 곳엔 하늘의 천사라도 누구 하나 내려앉을 수 없는 법이렷다.

산골엔 요즘 배고픈 참새들이 많이 내려앉는다. 갈대밭에 몸들 비비며 우는 갈대처럼 새들이 무리지어 밥 좀 나눠달라 애원들이다. 묵은쌀이 없나 한 됫박 찾아 바위에 올려놓고, 돌확에다간 물도 한 바가지 떠놨다. 논밭전지에 까마귀떼가 시꺼먼 구름마냥 내려앉기도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검은 날개 천사들.

이태준의 소설 <까마귀>는 친구 별장에 잠시 깃든 작가와 뜨락 정자에 가끔 방문하는 여자 이야기다. “여자는 잊어버린 듯 오래도록 햇볕만 쏘이고 있다가 어디선지 산새 한 마리가 날아와 가까운 나뭇가지에 앉는 것을 보더니 그제야 사뿐 발을 떼어놓았다.” 정자지기는 그 여자가 폐병에 걸려 요양 중인 환자라고 알려준다. “여기 나와선 까마귀가 내 친굽니다. 내 뒤를 쫓아다니는 무슨 음흉한 사내같이 소름이 끼쳐요. 아마 내가 죽으면 저 새가 덥석 날아와 앞을 설 것만 같이….” 몇차례 다담과 설렘이 오가고, 여자는 슬픈 미소만 남기고 내려갔다. 날이 추워지고 싸락눈이 내린 날, 잡지사에 글을 넘긴 작가는 영구차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목격한다.

새들이 알아차린 진실과 베푸는 위로. 어쩌면 사람보다 나을 때가 있다. 배고픔을 던 새가 들려주는 합창은 바흐나 헨델의 코랄을 능가한다. 까마귀도 하늘을 덮으며 베토벤의 ‘운명’을 들려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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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에 농사가 들지 않는 것은 의아하다. 겨울날 일이 끊겨 일절 돈이 나오지 않는 직업.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견디기. 금전 줄이 말라붙어 결국 ‘나가너부러지게’ 되는 직업. 돌아오는 농촌, 귀농도 유행을 타서 효리네 민박처럼 산다면 또 모를 일. 골프나 테니스처럼 공을 잘 때려 상금을 딸 수도 없다. 딸기와 포도, 토마토 ‘공’은 농협 빚만 늘린다.

흘근번쩍거리는 대도시를 지나 어두컴컴한 도끼집들(도끼 하나로 허술하게 지은 집). 해 넘어가는 네다섯시만 되어도 길은 한가롭고 바람조차 썰렁해라. “할머니. 어디 가시나요?” “이런 써글 것이 있나. 젊은 거시 어른 헌티 어디 가시나라고? 그래 나 전라도 가시나다.” ‘헉~ 그런 말씀이 아니라… 어디 가시는지. 날이 추워 태워 드리려고.” “태워가꼬 어떠케 해볼라고? 니가 뒤지고 자프냐?” 뭐 이런 극지방 아재 개그가 생겨난 동네. 경운기도 다니고 탈곡기도 다니던 길. 찬바람만 씽씽 지나다니고 인기척이 드문 밤엔 부엉이들이 길가에서 홀짝홀짝 울어댄다.

시베리아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러시아 농민가’를 우리말로 불렀다지. “가난한 마을에 태어난 형제가 있었네. 험악한 세상을 만나 농부가 되었구나. 가난한 마을에 태어난 농부가 있었네. 악독한 지주를 만나 농노가 되었구나. 가난한 마을에 태어난 농노가 있었네. 악독한 지주랑 싸우다 전사가 되었구나.” 누군가 답가를 불렀다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농민이 되어 괭이 메고 삽질하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내 청춘.” 그러고 보니 삽질은 엠비 정권 때 농민들보다 곱절로 난리브루스였지. 덕분에 강은 썩어 문드러지고, 이용객이라곤 없는 수변공원 짓는다고 빼앗긴 서민들의 하천부지 좁쌀 논은 잡초만 무성해. 아수라장이 된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서, 다시 농사를 지어야지. 이 추위가 끝나면 전라도 경상도 가시나 머시마, 저 들에 씨를 뿌릴 테지. 괭이와 삽을 들고 농민가를 부르면서.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은… 이 땅의 농민들아. 손잡고 일어서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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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내륙이나 러시아만 가도 평생 바다를 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고, 마음먹으면 달려서라도 찾아가 바다를 껴안을 수 있다. 갯벌이 짓무른 눈시울 같은 남해와 서해, 망망대해 거치른 동해가 생김이 달라 신기한 지점이다. 나는 남녘 어촌에서 나고 자라 남해에 익숙해진 사람이다. 동해는 사철 깊고 사나운데 남해는 폭풍우 말고는 온순한 편이다. 이태준의 단편소설 <바다>는 북쪽 사람들의 어촌 풍경이 담겨 있다. 사투리가 생경하고도 재미지다. “야! 과연” “무스게라능야?” “멀기(함북 방언 물결. 아주 크고 거친 파도)말이오, 멀기. 과연 기차당이.” “무시거?” “멀기 말임둥. 과연 무섭지 앙이오?” 추위가 예사 추위가 아니고 바람도 곱빼기로 으르렁거릴 북녘에선 바다의 사나움이 대단할 것 같기도 하다.

어촌마을은 흩어져 지내는 산촌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의 촌장이 마을은 물론이고 폭풍우까지 다스린다. 용왕의 화를 재우고 바치는 쌀이나 목각 음경은 무조건 돈을 바치라는 서양신 신앙보다 관대하고 너그럽다. “무엇하러 당신들은 사제들을 임명하는가? 이미 당신들 가운데 사제들이 있는데.” 장 그르니에의 글을 읽다 밑줄을 친 부분이 맞는 소리렷다. 바람이 불어 횟감이 좋다는 어디로 따라갔는데, 오도독 씹은 회 한 점에 멀리서 오는 봄맛을 느꼈다. 동네의 촌장으로 보이는 횟집 주인은 일행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담뿍담뿍 밑반찬들을 내다 주었다. 일본의 쩨쩨한 구두쇠 영감 ‘겐자히 아끼네’와는 ‘굉장히’ 다른 인심이었다. 아베 총리 또한 하는 말마다 아니꼽살스럽고 짠내가 진동한다. 입맛을 위해 그만 다른 생각을 하기로 하고, “가즈아~”·

갈무리를 하려는데 눈이 퍽퍽 내리기 시작했다. 바다에 갔던 배들이 뒷거둠질도 다 못하고 부두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여복도 많고 어복도 많은 촌장은 ‘멀기’를 뚫고 배를 모는 아들을 기다렸다. 부디 몸집만 한 방어를 잡아다주기를. 여들없는 아비와 달리 번개 같고 싹싹하던 그 아들을 나도 덩달아 기다리고 있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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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여관집 현관에 전시되어 있던 눈썰매를 보고 감탄. 대물림을 할 정도로 짱짱한 물건이었다. 집집마다 이젠 스노 모빌 눈썰매가 있지만 과거엔 모두 아버지들이 나무를 깎아 만든 눈썰매를 탔단다. “겨울 나라에서 살려면 기술이 좋아야 해요. 썰매 하나를 만들어도 설렁설렁 대충 이어 붙여서는 곤란합니다. 눈길에 갇히면 얼어 죽죠. 모든 게 목숨과 관계되어 있으니까요” 여관집 아저씨는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눈썰매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만주땅 봉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내 아버지도 얼음 썰매를 곧잘 만드셨다. 그곳에서 배우신 걸까. 꽁꽁 언 냇가에 나가면 내 썰매가 가장 앞서나갔다. 엊그제부터 남쪽은 폭설이다. 냇물도 두껍게 얼었다. 방문 창으로 쏟아지는 눈보라가 최면을 거는 마술사의 무엇처럼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마을에서 쫓겨난 한센인들은 짓무른 코로 눈발이 들어갈까 가마니 자루를 뒤집어쓰고서 이 서러운 남도 땅을 돌아다녔다. 갑오년 농민들과 동란 때 빨치산들은 또 얼마나 추운 산하를 떠돌며 울었을까.

남녘 목사로 지낼 때였다. 한 해 겨울은 젊은 축에 끼던 부부가 새해를 맞아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목사가 공산당에다가 성경을 믿지 않는다는 괴소문. 미국의 ‘이슬람 대결 전쟁’을 반대한다고 설교를 한 다음주 일이었다. 시골에선 미국의 뜻에 반대하면 무조건 공산당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는데 집엘 찾아갔다. 이번주부터 읍내 큰 교회에 다니기로 했다고. 얘기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시라 문전박대. 그런데 대문 앞 눈길이 얼어 그만 꽈당 넘어지고 말았다. “목사님 따라서 살다가는 그라고 재수 없을 거 같아 그만뒀당게라잉.” 내가 잘못 들었나 재차 물었더니 딸깍 문을 닫아걸었다. 나는 접질린 발목을 질질 끌고 도망치듯 그 골목에서 빠져나왔다. 동구 밖 교회로 돌아오는 눈길은 그날따라 배로 멀었다. 눈썰매를 타고 싱싱 달리고 싶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참으로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별수 있나. 사람 말고 또 누가 있어 이 추위에 온기를 나누며 살아갈 것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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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구멍에 겨울이 가득해. 해솟음달 새해가 반갑다. 근혜신년이었다가 근하신년이 된 것이 불과 한 해 남짓. 국정교과서에 깃발을 함께 들었던 나모씨 교육부 기획관께옵서 개돼지라고 우리 국민들에게 거시기한 별명을 붙여주심도 그 어느 참. 드디어 올해가 개띠. 개자유에 개사이다의 새해렷다. 거기다 올핸 눈 많은 평창군에서 올림픽도 열린다지. 핵미사일 놀이로 한바탕 세계를 들었다 놨다 했던 북쪽 동포들도 겨레의 큰잔치엔 함께하겠다니 반갑고 감사해. 어떻게든 단군할아버지 핏줄의 끈을 놓지 말아야지. 우리는 어쩌다가 잠깐 으르렁거리며 살고 있지만 후손들은 평화롭고 행복한 통일나라에서 살아야지 않겠어. 적개심을 키우고 불화를 조장하는 외세와 남북의 매파들에게 ‘개사이다’ 엿을 먹이는 평화의 잔치를 열어내야 해. 애먼 이들에게 간첩 딱지를 붙이고 육자배기 빨갱이 타령. 지긋지긋해.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아이들의 그림에까지 국가보안법 운운하는 자들의 입술이 부끄럽게. 위기를 잘 관리하고 평화를 가슴마다 꽃피어내야 하리라.

올림픽이 있으면 내림픽도 있겠지. “더 높이. 더 빨리. 더 힘차게.” 올림픽 3대 표어가 있다면 내림픽은 “더 낮게. 더 느리게. 더 여리게”. 주변을 돌아보고 낮은 사람들과 손잡으며 걸었던 촛불광장은 놀라웠다. 보고만 있어도 온누리가 따뜻해졌지. 정신없이 숨차게 살지 말고 조금씩 발걸음을 늦춰서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고 싶어. 주머니에 손 같이 넣고서 골목마다 구경하고 싶어라. 자전거를 타고 극장에도 가고 새 시집이 나왔다는 책방에도 같이 가고파. 힘자랑보다는 여리고 섬세한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남북이, 그리고 세계가 강하고 센 무기보다 안부를 나누는 대화를 귀히 여겼으면. 통일이란 낱말을 내버리지 말기를.

올림픽에 찾아온 세계 친구들이 우리를 보고 미소 짓는 추억 하나 생기길 바란다. “저녁별과 눈보라와 기나긴 밤 속에, 먼 따뜻한 햇빛 비추는 나라의 추억이 그래서 그의 마음속 믿음을 다시 미소 짓게 하겠지.” D H 로런스의 시 ‘아몬드’를 아삭아삭 씹으며 미소 짓는 정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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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혼술의 끝은 혼절과 혼령이라던가. 혼자 놀다 혼자 죽기를 바란다면 뭔 소리야 하겠지만, 세계대전보다 무서운 부부싸움이나 데이트 전쟁이 생기면 인류 모두의 소망이겠구나 싶어질 게다. 세밑에 얼어 죽지 않으려면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하는데도 또 혼자가 좋은 때가 못지않게 많다. 잠깐 누가 곁에 없어 어쩔 수 없는 혼밥 말고 정신없이 사느라 혼밥을 먹어야 한다면 서럽겠지.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낸 사람들을 ‘혼크족’이라 한단다. 혼자 생일을 맞으면 혼나. 그러면 친구들에게 진짜 혼나게 되어 있다. 뉴요커는 혼커들이 많다. 혼자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우리도 혼커가 많아졌는데, 혼밥은 이제 시작 기미. 월급쟁이들은 혼밥을 먹어야 지갑이 그나마 줄지 않을 것이다. 고기라면 환장을 하거나 철판이 두꺼운 아재들은 혼자 식당에 앉아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한다.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처량한 생각이 쬐끔. 같이 먹어주면 계산은 내가 안 해도 되겠지?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겠다.

영화 <범죄도시> 말미에 윤계상이 결투를 앞두고 “너 혼자냐” 묻자 엉뚱하게도 “아직 싱글이다” 대답하는 마동석. 실제로 싱글 아니잖아. 비현실 몸매를 자랑 삼은 여배우 애인을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깨는 순간’. 웃자니 성질이 조금 나려는 부분이었다. 한 솔로(해리슨 포드)를 죽이고서도 잘될 줄 알았더냐. 너 스타워즈! 한 솔로는 타투인 행성에 잠시 내렸다가 루크 스카이워커를 만나게 된다. 돈벌이로 루크를 자신의 비행선 밀레니엄 팔콘에 실은 게 그만 사달이 나고 만다. 이름은 솔로인데 털북숭이 외계인 조종사 츄바카와 단짝동무. 게다가 레아 공주님과 열애 끝에 애까지 둔다. 배 아파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 감독이 그랬을까. 한 솔로는 어쩌다가 아들에게 칼베임을 당하고 극장에서 영영 쫓겨났을까. 어디 저승길에서 혼자 혼밥을 즐기고 있겠지. 한 솔로가 문득 보고 싶구나. “혼자가 훨 나서. 병들어가꼬 둘이 요때까지 사렀으믄 날마다가 지옥이재.” 일찍 혼자 된 동네 할머니는 그렇게 자족하면서 오늘도 혼밥이다. 나도 이 산중에서 자발적인 혼밥에 혼커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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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가에 길어 놓은 물도 딴딴하게 얼었다. 장작 패고 군불 때는 일이 잦아졌다. 두어 번은 즐겁지만 이게 일상이면 괴롭고 불편한 노릇이다. 그래서 좀 재밌어보려고 난롯불에 고구마도 구워 먹고 밤도 굽고 숯불이 아까우면 물고기를 굽기도 한다. 무언가 구워 먹을 때 원시인이나 된 것처럼 송곳니를 혀끝으로 더듬어본다. 물도 난로에다 끓이면 자글자글 소리조차 경쾌해. 불을 쬐고 있노라면 피곤이 가시고 마음조차 차분해진다. 난로 앞에서 몸이 노곤해질 때까지 책을 읽다 쓰러져 잠든 날도 많다.

밤새 내린 눈에 세상이 왼통 흰색으로 덮인 날. 흰둥이 강아지처럼 마당을 뜀박질하며 설국을 만끽한다. 지붕도 하얗게 덮여 운동회 날 친 커다란 텐트만 같아라. 특별히 동계 캠핑장에 찾아가 텐트를 치고 하룻밤 야영할 필요가 없는 야생의 삶. 나는 이 숲에서 어쩌다보니 날마다가 캠핑이다. 가끔 가래떡을 좀 썰어 넣고 라면을 끓이기도 한다. 일부로 캠핑용 버너와 코펠 식기류를 꺼내서 마당으로 들고나간다. 간단한 장비만을 가지고 야영하는 ‘백 패킹’ 기분을 내보는 것이다. 그동안 줄래줄래 살림들이 너무 늘었다. 꼭 필요한 건 정말 몇 가지뿐인데. 뭔가 많아진 건 성가시고 귀찮기까지 하다. 살림을 한번 엎고 정리할 시점이 다가왔다.

요샌 자연 미인이 참말 귀하더라. 검게 탄 얼굴과 흙물이 든 손톱. 이리나 여우처럼 총기 있는 눈빛. 가장 고독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일 텐데 대부분 유약하고 지질하다. 대부분 단체생활에 절여 있다. 조금만 외로워도 견디질 못해한다. 사하라 사막에 사는 투아레그족 베두인들은 ‘이모하’라 불리는데, 자유인이라는 뜻이란다. 이 자유인들은 탐욕, 지배욕, 편협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별이 총총한 사막의 밤길을 걸으며 호젓하게 잠들 줄 안다. 세밑의 활활 타오르는 간판 속으로 부나방들이 달려드는 이때, 고독을 찾아 나선 자유인과 이방인들이 그립다. 그대의 동계 캠핑장은 과연 어디쯤인가. 당신이 누구보다 강해지길 원한다. 우리는 이 노예 같은 삶에서 벗어나 야생미를 지닌 캠퍼로 거듭나야 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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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탄이 숭숭 뚫린 몸을 끌고 판문점을 넘은 인민군 청년을 생각한다. 이름은 오청성, 올해 스물다섯. 반대였다면 이쪽에서도 국군 청년의 등을 향해 총을 쏘아댔겠지.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 국경에선 가끔가다 일어나는 일.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전 세계에 방송을 타지는 않을 것이다. “국경은 없어요. 너의 나라 나의 나라….” 이매진 노래는 그래서 제목조차 ‘상상’일 뿐인가.

 

 

유재영의 소설 <하바롭스크의 밤>에도 비슷한 추격전이 나온다. 러시아 벌목공 탈북자 기라는 청년과 율이라는 청년. 벌목공으로 팔려나간 친구들은 하바롭스크의 폭설과 벌목 현장의 위험을 견디며 살아간다. “남한은 안전하오?” 대답 없는 질문. “늑대의 늪을 가로지를 거요. 같이 갑시다.” 감자를 입에 녹여 먹으면서 아무르강 유역을 걸어 탈출한다. 굶주린 검은 털빛의 늑대떼가 뒤를 쫓고… 곰덫이 그만 왼쪽 발목을 덥석 물었다.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간신히 목숨을 건진 둘은 동굴처럼 생긴 방공호를 발견한다. 벌목공의 집이었는지 어느 실패한 혁명가의 움막이었는지 모르는 그곳. 철철 피가 흐르는 발목을 도끼로 자른 기는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선다. 방공호에는 엽총과 기의 발목이 달랑 남아 있었다. “이제 형벌은 끝났으니 당신의 삶을 사시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소.”

담양의 밤 또한 하바롭스크의 밤처럼 차갑다. 방공호 같은 집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밤바람 소리가 마치 늑대 우는 소리 같다. 외롭게 살다간 이의 혼이 우는 소리일까. 유칼립투스 나무에서 맡았던 냄새. 독특한 바람 냄새. 건너온 자, 건너간 자들이 남긴 몸 냄새 같다.

김장배추를 다듬던 할매가 그랬다. “배추에서 단내가 나요. 인자 겁나 추울랑갑소.” 늑대처럼 사람도 냄새만 맡아도 알아차리는 게 많다. 자유의 냄새를 맡은 우리는 국경을 넘고 체제를 넘어 더 멀리 도망쳐야지. 총을 쏘든가 말든가. 사람은 죽여도 자유는 죽일 수 없다. 자유를 향한 이 갈망. 더는 분단과 총성이 없는 땅. 탈출다운 탈출을 이제 모두 각오할 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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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나라 시인들은 촛불을 들고 길거리에 자주 서 있었다. 몸이 그곳에 없으면 마음이라도 밤새 세워놓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며 거친 대자보를 이어갔다. 여행하고 사랑하는 일조차 미안한 시절이었다. 눈꽃이 피면 눈꽃 보러 지리산에 가야 한다. 억새가 보고 싶으면 제주도 올레길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게 시인들. 하루는 비행기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제주도에 다녀왔다. 김종해 시인의 ‘섬 하나’란 시를 펄럭거리면서 말이다. “어머니가 이고 오신 섬 하나. 슬픔 때문에 안개가 잦은 내 뱃길 위에 어머니가 부려놓은 섬 하나. 오늘은 벼랑 끝에 노란 원추리 꽃으로 매달려 있다, 우리 집 눈썹 밑에 매달려 있다. 서투른 물질 속에 날은 저무는데 어머니가 빌려주신 남빛 바다. 이젠 저 섬으로 내가 가야 할 때다.” 남빛 바다는 내가 없는데도 오래도록 잘 있어주었구나. 어느 날 캄캄한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았다. <시인의 사랑>이라는 영화였다. 장소는 제주도. 원추리 꽃과 유채꽃이 노랗게 일렁거리는 남빛 바다가 눈앞에 수두룩했다.

“삶의 아름다움과 비애가 동시에 내재된 시어를 사용했다면 더 깊은 울림이 가능했을 것 같네요.” 곶자왈 시동인 턱주가리 샘의 조언에 끙끙 앓던 시인. 월수 30만원의 방과후 학교 글짓기 교사 현택기 시인. 병든 아버지를 돌보는 가난한 동네 청년을 사랑하게 된 시인. “세상에서 자기 혼자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뭐가 필요한지 정도는 나도 알고 있어. 그건 한 사람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있어줄 단 한 사람.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 사람 망가지지 않아.” 위태롭던 감정도 사랑도 파도에 쓸려가듯 떠나가고, 똑같은 일상에 팽개쳐진 시인은 그래도 또박또박 ‘희망’이라는 제목의 시를 써내려간다. 시인은 결국 시로써 구원을 입는 존재.

제주도 밤바다는 언제보아도 좋더라. 조선에선 북두칠성과 삼태성, 또 문창성. 서양에서는 한 덩어리로 큰곰자리 별하늘. 옛 선비들과 시인들은 급제하려고 문창성을 찾아 소원을 빌고 또 빌었단다. 좋은 시가 점지된다면 무슨 일을 못할까. 오래된 떡갈나무가 서 있는 풍경처럼 하늘엔 별들이, 땅에는 시인들이 살아주었으면 바란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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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들의 마을엔 벌써 첫눈이 내렸단다. 추운 날 가만 온돌방에 붙어 있으며 소설가 이경자가 쓴 <시인 신경림>을 읽었다. 시인이 함께했던 어린이 잡지 ‘별나라’ 첫 장에 쓰여 있다는 글.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이 잘살고, 그 아들딸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 그런 세상이 별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되길 나도 빌었다.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에 사막과 초원까지 가서 찾던 별이 보인다. 종로 을지로 그리고 서울을 온통 뒤덮은 뜨거운 숨결 속에 별이 보인다. (중략) 너무 어두워 서울 하늘에서는 사라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보인다. 눈비도 아랑곳없이 늦도록 흩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촛불들 사이에 별이 보인다.”(신경림, 별이 보인다.) 촛불 혁명 내내 도심에 뜬 별들. 하늘은 눈구름으로 캄캄해지고 송이눈이 함지박으로 내리는 날에도 기상관측 사상 최초(?)로 광장에 별이 내려앉은 순간들을 우리는 목격했다. 때가 차면 때가 됐다고, 열일 제치고 말했던 우리들.

이건 레몽 크노의 시집 <만돌린을 든 개>에 나오는 구절이다. “눈이 올 땐 눈이 온다고, 열일 제치고 말해야 한다.” 별이 눈부시거나 눈이 내리는 순간,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다 같이 “별이야! 눈이야!” 소리친다면 우리 인생이 배나 아름답고 소중해질 거 같다. 여행을 할 때 비행기가 공중에 뜨면 꼬마 친구들은 일제히 박수를 친다. 천진무구 기쁨에 찬 탄성을 잃어버린, 굳고 말라버린 시무룩한 어른들. “돈이야! 내 거야!” 밤낮 없는 아귀다툼 속에 쪼그라들고 비틀어진 인생들.

별처럼 나뭇가지에 높이 떴던 감을 따다가 쟁여놓고 보니 얌전히 홍시가 되고 곶감이 되었구나. 단단하고 떫던 감도 시간이 흐르면 물렁물렁하고 달달해진다. 우리 인생도 세월 따라 물렁하고 달콤해져야지. 돈이야! 내 거야! 소리치고 다니지 말고 별이야! 눈이야! 소리치며 살아야지. 작년엔 모진 추위에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 연말엔 안도하는 탄성을 내지를 수 있길. 촛불 정권은 오로지 국민만 보고 적폐청산 고삐를 세게 당겨야 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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