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49건

  1. 10:52:36 점순이
  2. 2018.10.11 굴뚝 연기
  3. 2018.10.04 단감과 맨드라미
  4. 2018.09.27 된장국
  5. 2018.09.20 조을라고
  6. 2018.09.13 돌아온 입맛
  7. 2018.09.06 소설가의 집
  8. 2018.08.30 인력시장
  9. 2018.08.23 싫어, 아니야
  10. 2018.08.16 멜갑시
  11. 2018.08.09 소다데, 머나먼 섬들
  12. 2018.08.06 하늘 우럭
  13. 2018.07.26 시인과 등대
  14. 2018.07.19 계엄령
  15. 2018.07.12 까막눈 할매
  16. 2018.07.05 알로하오에! 하와이
  17. 2018.06.28 하쿠나 마타타
  18. 2018.06.21 성자가 된 청소부
  19. 2018.06.14 아침 점심 수박 저녁
  20. 2018.06.07 께끼 장수

요새 아이들은 이름도 참 예뻐. 내 또래만 해도 나온 순서대로 일식이 이식이 삼식이. 어디 몸뚱이에 점만 보이면 점만이 점택이 점순이 점례. 이름이 진짜 점순이였던 누나 친구가 있었어. 점순이 누나는 하필 얼굴에 큰 점이 있어가지고 온갖 놀림을 받고 자랐어. 그동안 고산 오지만을 수십 차례 오르내리며 직사광선 자외선 마사지를 너무 많이 받고 다녔다. 눈 밑에 기미가 생기고 보이지 않던 점들이 우수수. 집에 틀어박혀 연속극이나 보면서 산다면 모르겠지만 사람들도 두루 만나고 해야 하는 처지라 병원에 한번 가봤다. 기미, 주근깨, 점을 레이저로 지지자고 한다. 일주일 꼬박 뭘 바르고 붙이고 하면서 치료를 했는데 깨끗한 얼굴로 돌아왔다. 구절초에 감국이며 쑥부쟁이가 피어나는 계절에 햇빛 구경도 못하고 책만 슬슬 읽으면서 추석 명절 앞뒤를 그렇게 보냈다.

남북 이산가족을 찾을 때, 해외입양아가 친부모를 수소문할 때, 몸에 특징이 될 만한 점이 하나 있으면 ‘왓따’다. 문어가 멸치에게 퇴짜를 맞은 이유는 뼈대 없는 가문이라서. 복점이 있는 여인은 콧대가 높고 기운도 알차서 어지간한 문어는 눈에 차지도 뵈지도 않아. 뼈대가 없으면 복점이라도 한두 개 박혀 있어야 한다. 잘생긴 부처님 ‘부처 핸썸’도 이마에 점을 하나 붙이고 계시지 않던가.

입에 올리기도 민망한 ‘점 공방전’.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점 얘기. 싸리비를 들고 잠자리나 쫓던 스님이 내게 전화를 해서 다 물어본다. 나랑 같이 목욕탕에도 몇 번 간 사이. 그때 자기 점을 안 봤냐 하시는데 아니 사우나하면서 누가 남의 거시기를 쳐다보나. 게다가 스님 거시기를…. 돌았냐고 하면서 웃다가 전화를 끊으니 밤하늘에 별점이 한가득이나 우르르 떴어라. 병들어 일찍 죽었다는 점순이 누나도 하늘에 별점이 되어 나를 쳐다보는 듯해. 나도 이 별의 한 개 점 같은 존재. 고단하고 뻐근한 세월에도 복점이 하나씩 있으니 부디 견디라고, 견뎌보자며 그렁그렁해진 별빛들. 엎드려 웅크린 자리마다 꽃이 피듯 좋은 날 반드시 있을 거니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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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밑으로 내려가면 지평선이 펼쳐진 동네. 수평선을 보며 살았는데 이처럼 들녘 끝을 보며 살게 될 줄이야. 대지를 달려온 세찬 바람은 태극기에 닿자 몽돌 해변처럼 찰파닥 소리를 낸다. 만국기가 펄럭이던 가을운동회를 기억하는가. 학교 운동장에 들어가 볼까 하다가 모래바람이 불어 무르춤하였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높이 걸린 태극기는 K팝 아이돌만큼 신이 나서 혼자 춤춘다. 퇴근하고 돌아온 사오정에게 부인이 그랬다지. “퇴근길 힘들었나요?” 사오정이 깜짝 놀란 얼굴로 “태극기 흔들지 않았는뎅. 나 태극기 부대 아니영.” 사오정에게 귀팝 파라고 귀이개를 꼭 선물해주어야지.

생풀 냄새가 올라오는 들길엔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신중현의 노래 ‘미련’은 가을날 레퍼토리. “코스모스 길을 따라서 끝이 없이 생각할 때에, 보고 싶어 가고 싶어서 슬퍼지는 내 마음이여.” 코스모스 길을 따라 늘어선 마을엔 굴뚝마다 노래만큼 하얀 연기도 흘러나온다. 세상엔 연기를 쿨룩쿨룩 내뱉는 굴뚝만 있는 게 아니더라. 나 바람을 삼키는 굴뚝도 보았다. 중동 사막땅 이란에 가면 ‘버드기르’라고 있다. 집집마다 ‘바람 탑’이 하나씩 높다랗다. 뜨거운 사막 바람을 잡아다가 물 저장소에 식히는 원리. 이렇게 시원해진 공기를 집안 곳곳으로 들인다. 이젠 우리나라 굴뚝도 폭염이 기승일 때는 이란의 바람 탑처럼 에어컨 역할까지 했으면 좋겠어.

코스모스가 춤추고 태극기가 춤추고 굴뚝엔 연기가 춤추는 가을. 의자나 평상에 앉아 담배를 꼬나물던 영감님들은 대부분 하직. 찡등그리며 쏘아보던 교회 댕기는 아짐씨들, 이제 제 앞가림도 벅찬 세월이렷다. 골목을 주름잡던 영감탱이의 담배연기가 그립다. 연기가 피어나는 곳엔 어김없이 사람이 살고 있지. 사람이 집에 머문다는 게 얼마나 온기 있는 노릇인지. 수십 채 건물이 있대도 진실한 사랑을 나눌 ‘내 님’이 없다면 인간은 대체 어디서 위로와 온기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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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개를 묻은 단감나무는 통째 새들에게 주기로 했다. 봄날 슬펐던 수목장은 가을에 접어들자 조장이 되었구나. 감은 우리 개의 볼따구처럼 뽀얗고 발개서 내 마음은 더욱 아프다.

치아가 부실한 할매들 누구도 감을 따먹지 못한다. 자녀들도 참기름이나 고춧가루면 모르지만 눈독을 들이지 않아. 새로 이사 들어온 이들이 거창하게 농사를 벌이는 걸 보면 저걸 다 어떻게 뒤처리를 하려나 염려가 생긴다. 고추나무 서너 대, 배추밭 한 고랑이면 여름 내내 먹고도 남을 단출한 식구에 말이다.

스쳐 지나가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다가서면 고된 노동의 현장. 논밭이며 과수농장이 그렇다. 감을 따는 일도 고생이 막심인 일터다. 새들이 파먹기 전에 어서 수확을 서둘러야 하는데. 사람을 데려다 쓰는 일은 돈도 돈이려니와 노동력을 구하기가 일단 어렵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누가 허리라도 삐끗하면 손해는 눈덩이. 단감은 5일장에 가져가보아야 누가 사가지도 않는다. 이런 소읍에서는 아그닥아그닥 단감을 씹어 삼킬 장정이 드물지.

차라리 밭에다 맨드라미꽃을 심은 정자지기 촌로는 마음부터 가벼워 보였다. 그런데 여쭤보니까 고개를 젓는다. “빈 땅 놀리기가 뭐햐서 심은 꽃일 뿐이재. 꼽사(꼽추) 맹키로 꾸부러진 양반들도 추수떨이를 하는디 영 미안해가꼬잉.” 마치 갠지스 강가에서 우아하게 요가를 하다가 들킨 것처럼 나도 마음이 저어했다.

“그의 인생은 부조리 수업을 위한 노트가 아니다. 메모 쪼가리가 아니다. 그의 인생은 똥을 치우는 것이다. 빨래하는 것이다. 바위에 빨래를 패대기친다. 물먹은 운명을 패대기친다. 어린 바라문들이 아름다운 요가를 하는 새벽 갠지스 강가에서. 그는 홀로.” 최승호 시인의 ‘불가촉천민’이라는 시. 인도 여행길에서 나도 똑같은 걸 보았다. 서양 여인이 섞인 요가 수련생들이 강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데 핏기 없는 화장터 노동자들, 숨을 꼴깍이던 풍경. 그래도 꽃이 피면 어디나 아름답다. 한가로운 농땡이 양반들도 있어야 마을이 조화롭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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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했다가 나와도 절대 물에 젖지 않는 건 갈릴리 예수님하고 백두산 천지 산신령 할아버지뿐일 게다. 백두산 천지를 보면 우리는 눈두덩부터 축축이 젖고 만다. 백두산에서 손사랑짓 핑거 하트를 날리던 북쪽나라 위원장은 이번 추석에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나는 뒤늦게 찾아온 몸살기운에 누워 지냈다. 고위급 백수의 3대 필수품이라는 ‘안막 커튼, 국가대표 추리닝, 세줄 그어진 어딜갔스표 슬리퍼’를 가까이했다. 명절 백수의 최고 휴양지는 역시 이집트. ‘이틀’ 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내는 이집트 여행코스. 다단계 피라미드 광고나 쳐다보며 스핑크스처럼 엎드려 있다 보면 연휴쯤 후딱 지나간다. 다음은 동남아. 동네에 남아 있는 아이들과 노는 것인데, 피자라도 한판 시켜줘야 놀아주겠지. 돈이 좀 나가는 휴양지라 패스.

집집마다 여인들은 그렇게 오래도록 눈 화장을 하고서 왜 거기다 선글라스를 끼는 걸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여인네의 속마음이여. 여인들은 이제 더는 ‘집사람’이 아니다. 부인의 요리솜씨로 살아가던 남자들은 멸종위기단계 동물. 여인들이 선글라스를 끼고 집 밖으로 나간 뒤 세상은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어라. 내 이럴 줄 알고 된장국을 아주 잘 끓이는 법을 배웠다. 세상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끼니쯤 때울 줄 알아야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보노라니 텔레비는 역시나 먹방이더군. 이 나라도 모자라 해외로까지 먹방은 이어지고 있더군. 싱싱한 물고기를 보여주자고 칼로 등짝을 째니 파르르 몸을 떠는 장면까지 연출된다. 사내들이 집 밖에 나가 해먹는 요리가 죄다들 무법하고 무례하며 자랑에 급급하다. 뭐가 그리 저들을 배고프게 만들었을꼬.

음식에도 분명 예의가 있을 텐데. 참람한 시대(?)에 촛불을 켜듯 소소한 된장국을 끓여본다. 반찬은 없어도 손사랑짓 핑거 하트를 날릴 수 있는, 마주 앉은 벗 하나 있으면 그만. 된장국에 김치에 밥을 한 그릇. 속이 다 개운해라. 아무리 잘 먹어보아도 이만큼 담백하고 이만큼 순한 맛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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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기억나는 얼굴이 있다. 순수하고 해맑은 평양 소녀의 얼굴. 까마득해라. 20년도 더 지난 일. 기자 출신 사진작가 임종진 샘이랑 가끔 만나곤 했는데, 북한에 다녀온 사진들을 교회에서도 전시하고 싶었다. 남녘 아재 아짐들이 평생 처음 소박한 북한 보통사람들 얼굴을 보게 되었다. “아그덜도 순허고 이삐요잉.” 뿔난 사람들은 없다는 걸 새삼 확인했던 전시였다.

우리 모두는 한때, 아니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를 사랑한다.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그간 잊힌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날들이다. 잔뜩 찌푸린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본다. 광장에 함께했던 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청중들은 노래를 따라 불렀다. 흐린 가을 하늘에 쓴 노래 편지였다. 이쪽 사람들은 이 말을 자주 한다. “조을라고 안 그라요.” “아따 조을라고 그라재.” 궂긴 일, 아픈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조을라고, 조을라고…. 곧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비나리를 한다.

한때 이런 제목의 책이 유행이었지. 거꾸로 읽기, 삐딱하게 보기, 급기야 ‘오랑캐로 살기’가 나오자 앗~ 이제 그만. 세상이 요지경으로 돌아가자 저항과 반항의 시대는 불길처럼 타올랐다. 지나고 보면, ‘조을라고’ 좋아지려고 그랬던 게다.

구름도 쉬어가는 땅. 북에선 개마고원, 남에선 진안고원. ‘조을라고’ 폭염이 괴로웠어라. 바람이 살랑살랑, 구름은 둥실둥실. 광산이나 산판 벌목공들이 산 위에서 땀을 식힌다. 계단밭에는 짚으로 죽을 쑤어 먹은 소들이 보인다. 소녀가 입은 치마처럼 푸른 하늘 아래 염소가 뛰논다. 빨간 목도리 같은 홍시와 능금밭. 흐린 날에는 우산을 들고 나가는 것처럼 당신이 내 곁에 있어만 준다면 겨울이 와도 끄떡없으리. 손 저리도록 감사납고 뼈아픈 일 닥친 대도 기억하세요. 좋아지려고 그런다고. 어금니를 물고 참고 견디다보면 그렁그렁해진 당신의 눈에 무지개가 피어난다. 눈뿌리가 아득해도 머잖아 좋은 날 꼭 보리라 믿으며, ‘조을라고 조을라고’를 반복해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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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그러졌네! 초산(楚山)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옷 없고 밥 없고 자유가 없어 나귀에 짐 싣고 어디론가 이주하는 사람들.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 담긴 소월의 시 ‘옷과 밥과 자유’다.

지금 세상이야 아사(餓死)나 동사(凍死)는 없어졌지만, 기온이 뚝 떨어진 아침에 일교차를 느낄 때, 아- 사람이 얼어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 엊그제는 더워 쪄죽겠다고 징징대던 인간이 하루아침에 추워 죽겠노라니. 하지만 이처럼 인간이 계절에 민감하고, 감정도 복잡해지는 건 우리가 ‘하나뿐인 목숨을 아끼는 존재’이기 때문이겠다.

인류가 왜 꽃에 환호하고 행복해하는가라는 의문. 꽃이 피는 장소에는 반드시 옷과 밥, 그리고 자유가 덩달아 있다는 정보를 갖게 된단다.

꽃이 있으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달달한 꿀도 있고, 과일나무가 무성한 숲도 있으며, 열매를 따먹으러 새들이나 짐승들이 찾아들겠지. 그렇다면 우리 인간도 덩달아 굶어죽지 않을 거고 말이다. 인간이 꽃에 마음이 팔리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라는 학설. 그 어떤 선물보다도 꽃다발에 얼굴이 밝아지는 건 우리 안에 이러한 본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던가. 

선선해서 그런지 밥맛이 돈다. 입맛이 좋아졌다. 찬물에 밥을 말아 생선 한 토막으로 간신히 떠넘기던 지난달과 달리 깍두기에 밥을 비벼설랑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입이 ‘쩍’ 벌어지게 먹으면 ‘입적’할까봐 눈치도 살펴가면서.

갈꽃들이 피어나자 입맛이 돌아왔다. 밭곡식과 물벼는 풍년 수확을 앞두고 있구나. 태풍이 몰고 온 폭우로 인해 충분히 해갈한 땅에선 고구마가 종아리만 하게 여물었다. 고구마에 체한 적도 있는데, 입맛이 좋을 때는 군침으로도 한 입에 꿀꺽했던 나였다. 도라지 밭에 꽃구경이 좋으니 어서 오라며 동무가 초대했다. 고구마를 삶고 커피를 내려 에코백에 챙겼다. 식기 전에 어서 나가보아야 하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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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룹뚜룹 귀뚜리 우는 가을. 드디어 찬 공기가 떠돈다. 동네 밭들은 배추나 무 농사를 서두르고 언제부턴가 일손을 놓은 나는 그저 풀이나 베면서 빈터를 즐긴다. 노순자의 단편 <소설가의 집>을 보면 소설가인 이모부가 등장하는데, 이모부는 헛간 움막에 들어가 소설을 쓰곤 한다. 그 이모부가 죽자 잡지엔 ‘소설가의 집 요절한 아무개’ 하면서 무광, 김장광, 배추광이었던 방공호에 볏섬으로 거적문을 단 작은 움막이 소개된다. 그딴 데서 소설이 너무 단순하게(?) 제작된 건 아니었나, 이모부는 얼마나 마음이 맑은 영혼이었나 따위, 사람들은 가난한 소설가를 그리워한다. 이사 가기 전, 무광의 독에서 차곡차곡 개어진 소설 원고를 발견하게 된 가족들. 이모부의 영혼이 서린 움막을 지켰어야 한다며 후회를 한다. 그때 엄마가 이런 말을 한다. “뭘 그래요. 움막집이야 얼마든지 지을 수 있는데요. 소설가의 집은 영혼의 집인걸요.”

내 아버지도 움막을 지어 농기구와 채전걷이들을 보관하곤 했다. 아버지 호는 안뜰이란 뜻의 내원이었으나 사실은 뒤뜰을 좋아한 후원이었어야 옳았다. 뒤꼍에 가보면 닭장, 토끼장, 그리고 독들을 모두 땅에 묻고 볏짚을 엮어 지붕을 올린 움막이 있었다. 이 움막은 내 놀이터였다. 움막을 아지트 삼아 소년소녀 전집들을 가져다가 읽었고, 성냥과 양초로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해보기도 했다. 누룩뱀이나 생쥐가 나타나기도 했고, 손톱만 한 도롱뇽이 살림을 차려 살았고, 들어오지 말랬더니 삐진 개는 일부러 문 앞에다가 똥을 싸지르곤 했다. 는개가 종일 내리면 움막의 비닐 안으로 몸이 따뜻한 새들이 피신을 왔다. 새들이 조잘대는 알 듯 모를 듯 한 외계어들을 엿듣고는 했는데, 내용이 길어 시는 분명 아니고 소설임을 눈치챘다. 새들의 소설은 책으로 묶이지는 않으나 달달 외워서 전달하는 모양이었다.

그린벨트를 풀고 신도심을 만들고 주택을 다량 보급하고,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아파트촌. 영혼의 거점이었던 움막은 헐리고, 소설가는 쫓겨나가는 황막한 지상도시. 집은 많으나 소설가의 집은 찾기 어렵고, 시간과 돈은 있으나 소설책을 사서 읽을 여유를 잃어버린 저 행렬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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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간한 개그보다 아재개그가 훨 재미나지. 오도깝스러운 몸짓으로 까불어봐야 이맛전이나 조금 펴질 뿐. 가게 간판이 ‘맥주날드’나 ‘스티브잡술’ 정도 돼야 들어가 볼까 호기심. 연세대학교 박물관에서 김봉준, 박은태, 이윤엽, 최병수, 기독교 선수로 나까지 다섯이 그림전시를 열었는데 제목이 ‘민중미술과 영성’. 쬐끔 거창하다. 그런데 내가 찍은 사진을 보니 ‘민중미’가 빠지고 ‘술과 영성’만 찍혀 있네. 불경하나 틀린 말도 아니다. 민중미술이 자라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술을 자셨을까. 기운 빠진 화가들은 짜장면과 짬뽕만 한 젓가락 뜨고 1차에서 굿바이. 순복음교회의 건너편엔 술폭음교회가 있었노라 농을 쳤다. 이젠 이 바닥도 간이 쓸모를 다해 주저앉은 형국인가. 비아그라보다 강력한 ‘웃기그라’를 사용해보았으나 상대방은 입술만 반쯤 벙긋. 무안해서라도 얼른 헤어졌다.

세발자전거를 몰고 마을을 누비던 어린 날엔 기운이 셌다.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났는지 하루종일 뛰놀고도 힘이 남아돌았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날마다 행복한 디즈니랜드였다. 이런저런 전시로 서울에 두어주 머물고 있는데 숨도 가쁘고 힘이 많이 달린다. 홍삼캔디라도 먹어야 하나. 사거리에 ‘인력시장’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인력이라 함은 사람의 힘, 사람의 노동력을 가리킴이겠다. 벽에 매대기라도 치게 할라치면 숭굴숭굴하게 생기고 살팍지게 생긴 사내를 하나 낚아와야 한다. 나를 글이나 쓰는 산송장으로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시골생활이 오래라 팔뚝이 굵고 일손도 야무져서 부라퀴라 할 만하다. 인력시장에 나가도 빠질 몸은 아닌데, 도심의 공기는 내 다리를 잡아끌고, 다급한 사람들과 만나다보니 기운이 빠진다. 밖에 나갈 때는 자르르 빼입고 나가지만 바지라도 걷으면 무릎까지 상처투성이. 산골에 살고 집을 건사하려면 그렇게 된다. 믹스커피에 밥을 말고 재봉틀 발판을 베개 삼아 눕기도 했다는 미싱 노동자에 비하면 설렁설렁 사는 거지만. 솔길을 걷고 가을바람 불면 ‘인력’이 생길까. 인력시장에 팔릴 만큼 힘이 생기진 않더라도, 우리들 조금만 힘을 내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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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전도사들은 기가 막힌 형편에도 긍정하라고 권한다. 불상과 십자가가 요즘 미꾸라지들 때문에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있는데도 그 원인이 되는 이들에겐 찍소리도 못하면서 한 명이라도 어떻게 종교생활을 그만둘까봐 염려의 소리. 엄밀히 말하면 헌금을 그만 낼까봐 걱정인 게다.

긍정전도사들과 적폐시대에 머물러 살 요량이 아니라며 손에 묻는 때나 좀 닦을 일이 아니라 매연을 뿜는 굴뚝을 통째 손봐야 한다. 준엄한 법을 세우고 약속들을 지키고 건강한 틀을 갖춰나가야 한다. 무한 긍정은 세계를 망친다. 부정과 의심은 고정된 세계의 변화를 가져온다. 간첩은 친구·가족들 안에 있으니 늘 조심(훗~). 의심하고 살펴보고, 세뇌당하지 않으려면 매일 께름칙한 힐링의 글보다는 교양이 되는 책을 한 줄씩은 읽자.

문제를 빨리 해결하려면 비싼 값을 치르면 된다. 한 치과병원에 앓는 이를 뽑으러 온 손님이 따졌다. “몇 초면 뚝딱 뽑는데 뭐가 이리 비싸요.” “네 손님. 우리 병원은 손님 같은 분을 위해 아주 저렴하게도 해드려요. 한 시간 정도 아주 느리게 뽑아드릴 수 있습니다.”

나만 보아도 당장 ‘아니요’를 못해 질질 끌려다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관계도 그렇고, 용돈벌이 일도 그렇다. 싫어, 아니야만 몇 초 말했어도 가난하나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으련만.

여행 중에도 만사를 너무 낙관적으로만 보지 않고 주의하면서 걸어야 노상강도를 피할 수 있다. 궂은일을 자주 당하는 오지 여행. 조금만 방심했다간 카메라 가방을 도난당한다. 나도 거금을 주고 산 카메라를 인도 오지에서 잃어버렸다. 책 속에 있는 현자들이 사는 세상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미안하지만 이후로 누구에게도 등짐을 맡기지 않고 내가 진다. 그러다보니 짐을 줄이게 되고 어깨는 가벼워졌다. 카메라 욕심도 버렸고, 김치통조림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래도 굶어죽지 않아. ‘싫어, 아니야’라는 말을 단호하게 잘해야 하겠다. 부정적인 놈으로 찍히니 자주 할 말은 못되지만. 이 지독한 늦더위에게도 말해주고 싶고 북상 중이라는 태풍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하늘이 날더러 어쩌라는 거냐 하겠지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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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도 잡히지 않고 나른하기만 하여라. 낮잠 ‘시에스타’가 있는 나라라면 좋겠단 생각. 나 꼬맹이 때 학교에서 강제로 낮잠을 자게 한 일이 있었다.

의자와 책상을 모두 뒤로 밀치고, 교실바닥에서 이불도 없이 무조건 잠을 자라는 것이었다. 전깃불도 언뜻하면 나가고, 외등도 부족하고, 초저녁부터 귀신들이 돌아다니던 판국에 설마 잠이 부족했을까. 군부정권 때였는데, 군인들이 까라면 그냥 까야 했다. 콧물을 줄줄 흘리던 못난이 짝꿍이랑 방구쟁이들이랑 누워 잠을 청했으나 한 시간 동안 해찰만 부리다가 땡.

잠 못 드는 아이들은 엉덩짝을 두들겨 맞았다. 어떤 해엔 독성물질이 남아 있는 비료포대를 뒤집어쓰고 방공호에 들어가는 훈련도 받았다. 방독면이 없으니 비료포대라도 뒤집어쓰라는 어이없는 지시사항. 사이렌이 울리자 개들이 동시에 으아앙 울기 시작했다. 학교 소사가 키우던 검둥개가 한마리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을 물었다가 양심수로 수감 중. 동네에서 제일 크게 울었다.

영화배우이자 감독 멜 깁슨도 아니고 이쪽 동네엔 ‘멜갑시’라는 말이 있다. ‘괜히’ ‘이유 없이’의 방언. 괜히 갇힌 건 아니지만, 갇힌 개는 유독 서럽게 컹컹 울었다.

여름 한낮 비구름이 말갛게 풀어지고 나면 높고 푸르게 드러나던 가을 하늘. 멜갑시 가슴이 설레어지는 찬바람. 감과 대추가 발간 얼굴로 익어가고 들판에 벼가 눕는 소리도 들렸다. 소프라노 매미가 공연을 마치고 떠날 즈음이면 멜갑시 어디론가 나도 떠나고 싶어졌다. 완행버스가 먼지를 뿜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풍경. 형과 누나들이 속속 동네에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산업화로 바뀌어 기억 속에나 있는 내 고향 풍경들.

멜갑시 질벅질벅 여자애들을 놀리고 괴롭히던 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소사네 개가 그 애를 콱하니 물어버렸다. 두번째 구속 수감. 지긋지긋한 양심수 생활로 ‘개고생’하던 개를 풀어주기 위해 난생처음 쇠톱을 가지고 열쇠를 잘랐다. 목사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도둑’이 되어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멜갑시 여자애들이 나에게 윙크를 날렸다. 검둥개가 내 이야기를 했던 걸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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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개들이 팔자가 가장 좋고 다음은 고양이 순. 우리 동네엔 명물 진돗개 말고도 잡종 ‘암시랑토 안하당개’와 ‘쉬었다 가시랑개’가 있다. 천하대장군 개들이 누워 계시는 골목길. 비켜! 해도 안 비킨다. 아쉬운 내가 비켜서 돌아가야지. 사람 입맛들 고급이 되고, 안방 침대에 모셔진 개들이 늘면서 보신탕집은 하나둘 없어지고 있다. 수술하고 나온 할매들도 달달한 커피와 양송이 수프를 찾는다. 개들아. 좋은 시절이니만큼 마을을 지켜다오.

소재지 호프집엔 생맥주가 동이 나고 있다. 이쪽 사람들은 ‘거시기’ 하면서 삼행시로 건배를 한다. 거절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 기쁘게! 미남미녀들은 모두 서울로 가버리고, 대충 생긴 우리들끼리라 그다지 기쁘진 않다. 아이슬란드에선 “스카울!” 바이킹의 후예답게 큰소리로 건배를 나눈다. 다 같이 잘 먹고 잘 놀자는 뭐 그런 뜻이겠지.

듣자하니 제주도는 개발 새발, 또다시 나무 학살극. 가장 아름답던 비자림로를 깡그리 밀어버렸다고 한다. 거기다 뻥 뚫린 사차선을 만든다는 계산. 제 정신들인가. 제주도 도지사는 도로아미타불의 그 도인가. 생태와 민주라는 역사의 흐름을 못 읽고 자본의 망나니 춤에 놀아나다보면 신기방기하던 오즈의 마법사라도 ‘오지의 맙소사’가 되고 말 일.

간 적 없고, 앞으로도 가지 않을 50개의 섬들을 다룬 유디트 샬란스키의 <머나먼 섬들의 지도>를 보았다. 북극해,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 남극해까지 이름도 모르는 섬들. “나는 지도책과 함께 자랐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책. 이스터 섬과 로빈슨 크루소 섬 정도는 알겠더라.

대서양의 브라바 섬 항구, 선술집에서 울리는 노래란다.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긴 길을. 누가 너와 함께하나. 이 먼 길을. 상투메로 가는 이 길. 소다데(그리움),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게 편지를 쓰면 나도 답장 쓸 거야. 네가 잊는다면 나도 널 잊을 거야. 소다데, 소다데. 내 고향 성니콜라우, 내가 돌아오는 그날까지.” 아몬드나무, 대추야자나무, 코코넛나무 아래서 부르는 노래. 가깝거나 먼 섬들이 모두 암시랑토 안 하고, 쉬었다 갈 만한 섬, ‘소다데’로 남는다면 좋으련만. 거시기 스카울! 그런 날을 위하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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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생사 따위 초월하고 사는 자. 생판 모르는 나라에서 엄벙덤벙 렌터카를 빌려 타고 비포장도로를 쌍지팡이 짚고 달리는 나. 담뱃갑의 비극적인 사진을 보고도 생사해탈 애연가에 비하면 하수급이겠다. 그걸로 위안을 삼고, 오빠 달려~. 멀리 서쪽 부둣가, 싱싱하다는 말에 속아 ‘오늘의 생선’ 한 접시를 주문. 기대와는 달리 뻔한 ‘피시 앤 칩스’였다. 밍밍하고 심심한 요리. 깨작깨작 먹다보니 얼큰한 우럭매운탕이 간절해라. 한인 식당 한 군데 없는 나라에 찾아온 내가 잘못이지.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럭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우럭 매운탕.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묻어나는 매운탕 냄새에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우럭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이제는 우럭 매운탕을 먹으러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출장도 뭣도 아니고 출가가 너무 길었나보다.

바이킹은 더러 해적도 있었지만 기본이 어부들. 초기 예수 무리도 물고기와 어선 마크를 달고 다니던 주로 어부들. 아랫녘에는 ‘이크티오파기’라 불리는, ‘물고기 먹는 사람들’이 살았는데, 홍해와 아라비아해에 자리를 잡은 족속들. 늑대 동굴이나 고래 뼈다귀로 지은 천막집에 살며 고기잡이가 주업이었다. 말리고 염장하고 훈제를 통한 대량보관이 가능해지자 단순한 생계형 어부들에서 졸부들이 되어갔다. 암만 농협 축협 하지만 수협 조합장이 으뜸 아니던가. 청어와 대구를 잡으러 덴마크와 노르웨이 어선들이 북해를 뒤지고 다닐 때 도둑갈매기나 귀염둥이 퍼핀은 일용할 양식이면 족했다. 피시 앤 칩스를 일용 양식으로 주신 하늘에게 반기를 든 한국인. 난데없이 우럭 매운탕을 탐하고 있어라. 하늘을 우러러 하늘 우럭. 둥둥동동 우럭이 떠다니넹.

슈퍼마켓에서 반가운 건어물을 만났다. ‘하르드 피스쿠르’라는 대구포. 요게 짭짤하면서도 고소하다더라. 몇 봉지 쟁여놓고 마른안주 삼아 맥주 세례식. 선수 용어로 멱을 감고 있다. 귀한 사람을 덜컥 잃으면 대신할 누가 있겠느냐만, 주전부리야 무엇으로든 대체가 가능하지. 이걸로다가 어떻게든 몇 밤은 더 버텨보자꾸나.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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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길모퉁이 피어난 들꽃 같은 사람이다. 와글와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눅눅해진 종이에다 시를 적는다. 백야로 하루가 길면 긴 시간만큼 시를 쓴다. 종이가 떨어지면 나무 그늘에다가도 쓰고, 예수처럼 흙 마당에다 쓰고, 모래사장에다도 시를 쓴다. 코끼리떼 돌고래떼 구름에다가 시를 쓴다. 병든 자여 내게로 오라고 말한 고물장수도 금방 시를 쓸 수 있다. 뱀 장수도 이제 그만 뱀을 잡고 시를 써라.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한국인이었다면 선악과는 먹지 않고 몸에 좋은 뱀을 잡아 드셨을 거라는 얘기. 그렇다면 기독교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야. 힛~.

빙하의 나라 아이슬란드를 한 바퀴 도는 일정을 해보고 있다. 이 나라에선 빙하를 요쿨이라 부른다. 호수 위에 빙하가 가두어져 기이한 형상이다. 헝클어진 머리칼이 쏟아지듯이 소낙비가 불쑥 내리기도 하고, 아무리 숙부드러운 바람이라도 뛰던 말들조차 휘청한다. 한국에서 싹쓸바람 태풍에 이골이 난 사람이라 나는 끄떡도 않아.

담쌓고 벽치던 사람도 이곳에 와보면 정말 뭔 짓을 하고 사는지 뉘우치게 된다. 대다수가 도시에 살고 시골엔 인적이 드물다보니 여행자를 보면 무턱대고 반갑다. 겨우 밥풀이나 떼는 구입장생이라도 커피와 빵을 아낌없이 나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 새 둥지에 이곳의 땅을 담아 그걸 먹을 수 있다면 접시의 반만 먹은 뒤 밤새 편안히 잠을 자리라.”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소설가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인도의 아쉬람을 기억하며 쓴 시가 이 땅에서도 유효하다. 외로운 곳에서야 더 깊이 들어갈 수 있고, 더 깊이 아끼게 되는 법.

어촌엔 등대가 밤을 밝힌다. 당신이 보고 싶으면 등대의 불빛을 보면 된다. 누군가 밤새 사람을, 사랑을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속이 뭉클해진다. 시인이 당신의 사랑을 대신하여 밤새 연시를 써 내리는 것처럼. 삶이 아무리 차갑고 황폐해도, 퉁명스럽고 무뚝뚝한데도 방실거리는 미소와 같은 등불이 남아 있다. 내일도 두렵지 않은 것은 등대가 있기 때문. 등대 같은 당신과 등대 같은 시인이 있기 때문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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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의 계엄령이다. 꼬마 호떡이 엄마 호떡에게 너무 뜨겁다고 하자 엄마가 그랬다. “얘야! 그럼 얼른 뒤집어.” 평화로운 촛불을 총과 탱크로 뒤집겠다고 군인들이 아무개씨들이랑 머리를 짜냈다는 소문. 촛불광장이 뜨거우면 차가운 바닷물 쪽으로 수영이나 하러 갈 일이지 말이야.

알베르 카뮈는 연극쟁이여서 희곡을 쓰기도 했다. <계엄령>이라는 희곡은 증오와 공포의 도가니 속에서도 민중의 사랑과 저항을 눈여겨 따라간다. 디에고와 빅토리아는 계엄령 속에서도 사랑하고, 아리아를 합창한다. “디에고: 당신 머리칼은 밤의 공기처럼 신선해. 빅토리아: 밤마다 창문 앞에서 당신을 기다려. 디에고: 당신 몸에서 레몬 향내가 나. 서늘한 밤과 맑은 물 때문인가 봐. 빅토리아: 아냐. 당신 사랑이 나를 꽃으로 덮어주어 그래. 디에고: 꽃들은 결국 시들고 말 텐데…. 빅토리아: 그다음은 열매들이 있잖아! 디에고: 겨울이 오면 어떡해? 빅토리아: 그때도 우린 같이 있으니 무슨 상관. 당신이 들려준 노래처럼. 디에고: 이 노래? ‘내가 죽어 백년이 지난 뒤 대지가 그댈 잊었냐고 물으면 대답하려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느냐고.’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 디에고: 왜 말을 하지 않아? 빅토리아: 너무 행복해서, 목이 메어서….” 사랑의 힘은 강인하고 뜨거운 것. 동토처럼 차가운 계엄령, 빙하처럼 얼어붙은 땅에도 사랑하고 기억하며 옹기종기 모여든 마을의 위대함.

나는 지난주부터 대서양 가장 북쪽에 위치한 빙하의 섬나라 아이슬란드에 머물고 있다. 이곳의 서울은 레이캬비크. 곁에 ‘비데이’란 작은 섬이 있는데 존 레넌을 기념한 이매진 피스 타워가 있다. 존 레넌의 생일과 기일, 그리고 성탄과 봄날. 오노 요코의 생일에도 빛을 쏜다. 얼음의 계엄령 속에도 ‘이매진 피스’라 24개 국어로 적힌 평화의 탑에선 백야와 극야, 오로라와 함께 ‘빛의 춤’을 춘다. 여름엔 시규어 로스나 지역가수들이 공연을 하는데 ‘이매진’을 합창한다. 겨울엔 빙하 바다에 뛰어든다. 여름의 계엄령, 겨울의 계엄령에도 아랑곳 않는 빛의 춤, 촛불의 노래. 얼마간 이곳에 머물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비는 춤과 노래를 보태보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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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은 검정 기와. 빨간색이면 장대비가 정조준할까봐 검은색. 뒤꼍에 바위들이 많아서 위장색깔. 동네엔 빨강 파랑 노랑 지붕들. 내 집보다 강우량이 더 많을 거야 분명.

“벽토로 지어 푸른색으로 문을 칠한 집들,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 사모바르 주전자에서 솟아오르는 김, 그리고 강가의 버드나무. 대마초 부스러기를 연상시키는 검은 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빛이 황새들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둥지를 튼 평평한 지붕에 스며들었다. 중심가는 챙 달린 검은색 모자를 쓴 시아파와 챙이 없는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의 펠트 모자를 쓴 조로아스터교도들, 작달막한 키에 터번을 쓰고 쉰 목소리로 격론을 벌이길 즐기는 쿠르드족이 이방인들을 빤히 쳐다보는 웅덩이 같은 곳.” 사진가, 시인 니콜라 부비에의 여행기 <세상의 용도>를 읽다보면 이런 마을에 대한 색깔론(?)이 흥미롭다. 우리 마을도 ‘수많은 빛깔이 깃발로 모여’ 펄럭거린다.

오래전 할매가 대문 앞에서 내 이름을 물었다. 대문에 명패가 턱하니 붙어 있는데도 묻는 건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 앞이 캄캄하다고 해서 까막눈. 교회 있을 때도 앞이 캄캄한 할매들을 만났다. 나는 성경책을 자주 덮어버렸고, 같이 읽자고 청하지도 않았다. 그까짓 검은 글씨를 누구들은 성스럽게 모시지만 사람이 더 귀한 법. 사람의 자존심이 더 웅혼한 것이리라.

겨울엔 온통 희고 검었던 세상이 7월 타오름달, 울긋불긋 마치 화투짝 같구나. 마을회관은 피서지로 인기다. 전기세 무서운 에어컨도 솔솔 돌아간다. 죽마고우란 죽치고 마주앉아 고스톱을 치는 친구. 그 자리엔 백설공주도 꼭 한분씩 있는데, 백방으로 설치고 다니는 공포의 주둥아리. 점당 십원짜리 화투가 아직도 펼쳐지는 곳. 까막눈 할매가 이맘쯤 경로당을 끊고, 고도리가 든 화투도 던져버리고, 세상을 등진 날. 우리집 깜장 차우차우 마오쩌순이가 며칠 곡기를 끊고 앓다가 노환으로 죽은 날. 새까만 털을 다시는 못 만지다니. 산밭에 개를 묻고 검은 기와를 하나 덮어주었다. 평안하라고 기와에 십자성호를 그어주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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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가 깡통을 발로 툭툭 차고 다니자 행인들이 시끄럽다며 쏘아봤다. “나 이사하는 중이라오. 이삿짐 옮기는데 왜들 그러슈.” 참말 간소하게 사는구려. 알짜 땅에다 웅장한 건축물 짓고 사람 불러다 모ㅂ아 ‘사원, 성전’이라 부르고들 있다. 나는 반항심으로 길 떠나는 자들을 위한 ‘순례자학교’를 열었다. 며칠 전엔 순례자들과 동무해서 제주 섬을 걸었다. 예멘 난민을 초대해 농사일을 맡긴 동생의 허브올레 농장에도 갔었다. 올레길을 반기는 푸른 바다도 잠시. 폭우에 휩쓸려온 생활쓰레기가 해변에 수두룩. 혹시 돌고래가 플라스틱 가루며 비닐조각을 먹으면 어떡하지?

태평양 끝머리 하와이 섬. 돌고래의 또 다른 고향. 하와이만큼 꽃이 많이 피고 빽빽한 밀림을 유지하는 섬도 드물 것이다. 바닷가 모래밭엔 바다거북이 흔하지. 인파가 모인 곳엔 훌라춤 파티. 서핑도 하와이가 고향이다. 부서진 카누 조각을 붙들고 파도와 싸우던 청년이 있었지. 멋지게 일어서서 파도 굴을 빠져나오자 그 모습에 반한 인어공주. 청년의 손을 끌고 산호초 궁궐로 사라졌다지.

백인 침략자들은 하와이 원주민들의 고유 언어를 못 쓰게 했다. 서핑과 훌라춤도 금지했다. 한국에서도 선교사들이 그랬지. 영어를 익히면 앞잡이로 세우고, 음식 베풂인 제사상과 풍물놀이조차 금했지. 지금도 금지가 교리인 줄 알고 고분고분 눈치를 본다.

코아 나무로 만든 조그만 기타 우쿨렐레. 우쿠(벼룩)와 렐레(뛴다)가 합해진 말. 다른 해석도 있는데, 우쿠는 선물이라는 뜻도 있다지. 우쿨렐레를 퉁기며 ‘알로하 오에(사랑해요! 당신)’를 열창. 플루메리아 꽃으로 화환 ‘레이’를 만들어 목에 걸친 이들. 가수 박인희의 ‘알로하오에’를 듣다보면 하와이 수평선이 눈앞에 닿는 듯해. “검은 구름 하늘을 가리고 이별의 날은 왔도다.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고 서로 작별하여 떠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꽃피는 시절에 다시 만나리. 알로하오에 알로하오에. 다시 만날 때까지.”

제주도와 하와이. 돌고래의 고향 섬. 과거엔 우리네 남도 섬들이 모두 폴리네시아의 커다란 서클로 연결되었으리라. 섬여행이 즐거운 여름이렷다. 누구나 알로하오에! 어디나 하와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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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병아리가 엄마 꼬꼬닭에게 질문했다. “엄마. 우리는 날개도 있는데 왜 하늘을 날지 못하는 거죠?” 엄마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즉석자판기처럼 대답했다. “얀마! 하늘을 올려다봐. 시퍼렇기만 하고 먹을 게 어디 있겠니. 땅에 먹을 게 이렇게 많은데 뭐하려구 고생하면서 날아다녀.”

병아리가 난데없이 독수리 꿈을 꿀 필요는 없다. 생을 만족하고 오늘을 즐기며 사는 일이 행복 아닌가. 닭도 사람도 땅이 답이렷다. 주렁주렁 포도가 열리고 무뭉스름한 참외가 많이도 달렸구나. 귀마루 끝엔 귀꽃이 피어 있고 마당엔 두덩에 누운 소처럼 게으른 꽃들의 기지개. 근심 걱정 없이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장마구름 틈에서 햇살이 살짝 비친다.

아프리카 부족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 가운데 대표 인사말이 “하쿠나 마타타!”. 상점 주인도 하쿠나 마타타 인사를 하고, 슬쩍하려는 도둑도 하쿠나 마타타 인사를 건넨다. “모든 일이 잘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런 뜻이란다. 하루에 하쿠나 마타타를 백 번 이상은 하고 잠들어야 ‘괜찮은 하루’를 보낸 셈으로 친단다. 치유 무용가 가브리엘 로스는 <기도가 땀에 젖게 살아라!>는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있다. 아침에도 춤추고 낮에도 춤추고 밤에도 춤을 추느라 흘리는 땀방울. 나도 ‘어깨춤’이라는 아호를 가지고 살아가는데, 뜨겁게 춤을 추면서 하쿠나 마타타 소리 지르자고 지은 이름. 도망치듯 피서나 할 게 아니라 “걱정하지 말자구!” 용감하게 뙤약볕 모래사장으로 달려가 바닷물에 풍덩! 그대와 나, 우리는 더 물러서지 말자. 진짜진짜 앞으로는 잘될 거야! 그렇고말고. 잘되는 수밖에 없어.

작년 여름의 기억. 영국 리버풀에서 무명 가수들의 길거리 공연을 봤다. 콜드 플레이의 ‘픽스 유’를 청춘들이 엉켜서들 발을 동동 구르고 소리 높여 난리 부르스. 나도 픽스 유! 머리를 흔들고 뜀을 뛰면서 함께했었다. 아프리카식으로 하자면 하쿠나 마타타 인사법. 젖은 나무도 웅신하게 타들어가는 불기의 날들. 기록을 다투는 더위. 그대여! 땀에 젖게 춤을 추며 사랑하자. 여름의 꽃들과 함께 춤을 추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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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취미 생활을 일로 삼아 살다보니 취미에 대해 묻는 이는 드물다. 내 취미를 밝히자면 밀고 쓸고 닦는 ‘청소하기’. 가방에다 물티슈를 항상 담고 다니니 별명조차 물티슈. 밥 먹고 나면 곧바로 설거지를 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글을 쓰기 전엔 책걸상 청소를 마쳐야 개운한 마음가짐. 병적일 정도는 아니나 더럽고 어지럽혀진 곳에 있으면 안절부절 마음조차 산만해진다. 오지여행에선 자포자기하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눕곤 한다. 하루 쉬고 갈 집이라도 화장실 청소를 꼭 한다.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내 물티슈로 똥을 닦는 불행 중 다행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주리반득(출라판타카)’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하도 머리가 안 돌아가 멍텅구리 멍청이 소리를 들었다. 경전도 한 구절 못 외우는 형편. 부처님은 측은한 마음에 빗자루를 하나 들려주시곤 “사원 곳곳 먼지를 쓸어내고, 도반들이 앉는 데마다 반짝거리게 닦아놓으시게” 부탁하였다. 그날부터 주리반득은 죽어라 청소에 전념. “청소란 마음에 쌓인 번뇌의 먼지를 털어내고, 마음에 낀 사념을 닦아내는 일”이란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득은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우뚝 섰다.

청소뿐만 아니라 신변정리가 반듯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더 큰 문제. 산만한 인간관계로 어질러진 약속들. 관리를 못해 무너진 건강도 ‘청소’에 소홀한 때문이리라. 이건 로봇청소기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

마방이나 외양간을 날마다 청소하는 이들, 밤새 도심을 청소하는 미화원.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들과 온갖 눈뜬 벌레들. 떠난 사람을 깨끗이 잊고 새 출발을 한 친구도 마음의 청소부.

꽃잎을 슬픔처럼 달고 살던 나무가 있었다. 제 몸을 바람과 빗물로 깨끗이 씻고 구석구석 숲 주변을 청소하던 나무. 가을겨울 청소를 잘한 나무일수록 건강한 봄여름을 지낼 수 있다. 성자가 된 나무와 청소부들이 밤의 절벽에다 새라새로운 꽃을 피운다. 그대 성자가 되려는가, 바보가 되고픈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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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말 줄임 사자성어가 유행. 이부망천이라던가. ‘이’혼하면, ‘부’부가 더 잘되고, ‘망’하면, 알바 ‘천’국에 가면 되징.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수박은 먹고 헤어지자구. 바야흐로 수박이 제철 아닌가. 아점수저. 아침 점심 먹고 수박도 먹고 저녁까지 먹으면 하루가 끝. 저녁 먹고 나서 수박을 먹었다간 자다가 오줌 마려워 깨야 되니까, 수박은 각오하고 먹어야 해.

웅성웅성 모여 나눠 먹을 땐 수박만 한 과일이 없지. 요샌 평화의 길로 접어든 북녘 친구들이 넘 예뻐서 무등산 수박을 한 트럭 보내주고 싶을 정도. 미안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얼굴이 잘 여문 수박을 닮았다. 어떨 땐 백두산 호랑이 같기도 하고 말이지. “동무! 최고 존엄에게 이런 말 해도 되는기오?” 힝. 여긴 자유대한이오.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잉!

나는 사이다를 넣은 수박화채를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최루탄 연기를 뚫고 대학가 모퉁이 누나랑 둘이 자취하던 친구에게 갔다. 골목 입구 부식점에서 값싼 쬐고만 수박을 한 통 샀다. 대학생 누나는 마침 일찍 들어와 감은 머리를 선풍기에 말리고 있었다. 사간 수박은 덜 익었나 맛대가리가 영 없었다. 누나는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을 꺼내고 사이다를 부어 화채를 만들어 주었다. 우린 박수를 치며 집어먹었다. 마침 기타가 있어 뽐낼 겸 ‘시 코드, 에이 마이너’ 어설픈 노래를 불렀다. 누나가 내 곁에 당겨 앉았다, 나는 숨이 가빠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식당을 하는 엄마에게 꼬맹이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개밥을 주자며 조르자 엄마 왈 “저 손님 남은 밥으로 주자. 조금만 기다려봐.” 얼마 있다가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저 손님이 개밥까지 다 묵어버렸어요.” 헉. 수박은 개밥이 못되어 다행인 과일. 그날 다 먹어버리길 잘했지 정말. 누나의 키다리 남자친구가 불쑥 나타났다. 친구는 자리를 비켜주자며 눈치를 줬다. 거리엔 수박 같은 가로등이, 밤하늘엔 수박 같은 보름달이, 내 가슴엔 수박만 한 눈물이 쿵쿵 떨어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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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벙첨벙 개울을 지나 집으로 오는 길엔 장바구니 가득 아이스크림. 냉동고에 넣어두고 생각나면 꺼내먹을 작정으로다가. 커피 마니아 고종황제는 아이스크림도 맛보았을까. 물뼉다구라는 옛 이름은 재미있다. 설탕물을 얼려서 먹을 때 물뼉다구라 했다던가. 언젠가 요코하마에 갔을 때 바샤미치 거리를 구경했다. 일본은 개항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처음 만나게 되는데, 일본 최초로 가로수길에 가스등이 설치되고 가게에선 아이스크림도 팔았단다. 한 곳에서 벚꽃 아이스크림이란 걸 먹어봤다. 하도 조그만 컵에 담아주어 혀끝만 잠시 얼얼하고 황홀했다. 우리도 개항하면 떠오르는 인천이나 부산으로 아이스크림이 상륙한 것은 언제일까. 초콜릿, 콜라와 함께 아이스크림은 서양문물을 대표한다. 시골엔 아이스크림 가게가 없으니 서울 가면 일부러 찾아가 사먹게 되는데, 우와! 탄성을 지르면서 촌놈 호강을 해본다.

나 어려서 께끼 장수라고 있었다. 아이스께끼 통을 짊어지고 다니며 동네 아이들을 홀리던 사람. 동화 속에 나오는 ‘피리 부는 사나이’ 같았어.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꼬리로 달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선 탈래탈래 빈 통으로 고개를 넘어갔지. 여름이면 내내 그를 기다렸다. 폴 세잔의 그림 ‘과일 접시가 있는 정물’은 여름에 꼭 맞는 풍경화. 툇마루나 대살을 엮은 평상에서 가족들과 수박이나 참외, 딸기 같은 제철 과일을 집어먹으며 여름을 났다. 거기다가 께끼라도 하나 입에 물게 되면 전율할 만큼 행복했지. 정말 행복이란 거창한 무엇이 아님을 더 말해 무엇하랴. 녹아 흐를까봐 혀로 살살 단속을 해가면서 께끼를 음미하던 날의 소박한 기쁨. 께끼 장수가 사라진 뒤로 내 소박한 기쁨도 한 가지 사라지고 말았다.

에어컨을 아무리 펑펑 틀어도 시원하지 않은 시절이어라.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된 아이스크림은 여름의 별미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께끼 장수. 미루나무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던 그를 마중 나가던 아이들도 함께 사라지고 없다. 아이스께끼! 아이스께끼! 골목에서 나던 그 소리. 문득 환청이 되어 들리는 듯해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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