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03건

  1. 2017.06.15 평양 순안공항
  2. 2017.06.08 오월광장 회화나무
  3. 2017.06.01 백진강 전설
  4. 2017.05.25 아꼼빠니에또
  5. 2017.05.11 달나라
  6. 2017.05.08 꼬부랑 부처님
  7. 2017.04.27 저녁 예찬
  8. 2017.04.20 꼰대들
  9. 2017.04.13 오거리파 고양이
  10. 2017.04.06 과일장수 꿈
  11. 2017.03.30 빗소리 감상회
  12. 2017.03.23 쑥국 쑥떡
  13. 2017.03.16 늘낙지
  14. 2017.03.09 인형 뽑기
  15. 2017.03.02 건전가요
  16. 2017.02.23 새 학기 교과서
  17. 2017.02.16 보온병과 별들
  18. 2017.02.09 태극기
  19. 2017.02.06 염병과 콜라병
  20. 2017.01.26 머시락

나라와 대도시. 어디에나 공항이 있다. 내가 사는 담양에도 승용차로 삼십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광주공항이 있다. 오지 가운데 오지인 남미 아마존을 갈 때도 공항이 밀림 숲속에 뎅그러니 놓여 있더군. 때마침 공항 앞마당에서 연주하는 악사가 영화 <미션>의 ‘가브리엘 오보에’를 들려주었을 때 나는 순간 정지화면이 되고 말았다.

피아노 소리가 구슬픈 영화 <러브레터>의 홋카이도를 가는 길, 눈보라를 뚫고 비행기가 간신히 착륙했다. 그쪽으로 가지 않아도 눈이 펑펑 쏟아질 우리네 북녘 땅이 많이 보고팠었다.

농사를 지어놓고 열매는 친구들에게 따먹으라 하고 나선 순례길. 삽은 안타깝게도 여행에는 쓸모가 그다지 없다. 삽 대신 책을 손에 들고 나선 길엔 봄꽃들 지고 여름꽃이 만발이구나. 어느덧 반팔 차림에 샌들 신발은 가뿐해라. 진달래는 모두 지고 민주와 통일을 외치는 시민들 손에 든 촛불만이 근근하다. 까맣게 저물거나 꺼트리지 말아야 할 꽃이렷다.

전쟁으로 끊긴 북쪽으로 난 하늘길 땅길. 이렇게 좋은 봄날 왜 우리는 동포의 가슴에다 총구를 겨눴을까. 아직껏 오도가도 못한 채 금지선을 긋고 살아가는 걸까. 세상의 모든 공항은 마음조차 가까운데 유독 평양 순안공항은 멀기만 하다. 노예 사슬을 어서 끊고 덥석 만나야 한다.

먼저 곳간을 활짝 열어 일자리를 북쪽 노동자들에게도 안겨주어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같이 손잡고 입장해야지 않겠는가. 농번기 끝낸 우리 농부들, 삽을 놓고 육로나 비행기로 금강산 관광, 개성 관광, 내친김에 평양 관광, 즐길 날도 빨리 와야 하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게 바로 죄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이 맞아주지 않았고,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예언자 에스겔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낱낱이 그간의 죄목을 까발렸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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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전남도청 앞, 오월광장엔 150살 먹은 회화나무가 있었다. 여름이면 연노랑 나비를 닮은 꽃을 피운다. 오월 그날 시민군은 그 나무 아래 참호를 파고 무자비한 공수부대와 맞섰다. 귀신을 몰아낸다는 나무. 군부독재 귀신을 몰아내려고 그랬던가. 나무는 총을 대신 맞으면서 시민들을 보호했다. 광주가 절대공동체였던 그 순간, 나무까지도 한 덩어리 한마음으로 공동체를 이루었다. 매정한 세월이 흐르고 시민들은 회화나무를 잠시 잊었다. 문화전당을 짓는다며 뿌리를 건드리고 시멘트 먼지를 뒤집어씌워 괴로움을 안겼다. 세찬 돌풍이 불던 날 나무는 그만 쓰러져 최후를 맞고 말았다. 회화나무가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그제야 시민들은 가슴을 치며 위령제를 모시면서 슬퍼하였다. 적당한 후계목을 하나 구해 곁에다 심어주자는 의견들이 돌았다. 바로 그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승합차량 운전으로 밥벌이를 하던 한 시민이 있었다. 가끔 오월광장 앞에다 차를 대고 손님을 기다리곤 했는데, 회화나무 곁에 솟아난 손가락만 한 후계묘목을 보고는 한번 길러보고 싶었다. 한 뼘도 안되는 그걸 집에 가져다가 정성을 다해 돌봤다.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엄마 나무가 죽고 후계목을 찾는다는 소식이 들렸다. 시민은 주저하지 않고 “여기 아기 나무가 살아 있습니다!” 손을 들었다. 엄마 나무랑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백 프로 일치했다. 아기 회화나무는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엄마 무덤 곁으로 돌아왔다.

아기 나무는 엄마를 대신해 오월광장을 지키고자 마음을 굳게 먹었다. 빗물도 잘 받아먹고 햇볕도 잘 쬐고, 민주시민들의 사랑을 담뿍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바로 옆구리 건물에 내가 관장으로 있는 대안공간 메이홀과 2관 이매진이 있다. 광주 나가는 길이면 한 번씩 회화나무 곁을 일부러라도 찾아가고는 한다. 매연과 소음에 시달려 기운이 없어 보이면 손을 꼭 쥐고 기도를 해주기도 한다. 아기 나무가 다 자라서 너른 그늘을 드리우는 날, 연노랑 나비들이 훨훨 하늘을 날게 될 터이다. 고운 영혼들이 그렇게 다시, 우리 곁에 돌아올 것을 나는 믿고 기다린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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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는 임진강, 남에는 백진강이 있었다. 영산강을 옛 담양 사람들은 ‘백진강’이라 불렀단다. 달밤에 보면 하얀 용이 흘러가는 형상이라 하여 백진강. 지금은 조그만 천변에 불과하지만 예전에는 제법 강폭이 넓고 큰 바위들이 부려 있으니 겉으로 보아서도 웅장한 강줄기였을 것이다. 강은 자주 범람했고 홍수피해가 막대했다. 원님은 팽나무, 음나무, 은단풍나무, 푸조나무 등을 강둑길에 가득 심게 했다. 이걸 관에서 주도했다하여 ‘관방제림’이라 하였다. 관이 마땅히 해야 할 일, 나라가 할 일을 제대로 할 때 두고두고 그 공적은 빛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이 둑길을 따라 올라가면 용이 승천했다는 ‘가마골’이 나온다. 용소 주변 바위들이 쩍쩍 갈라져 있는데 용이 승천하면서 낸 자국들이란다. 영산강은 이곳이 시원지이고 굽이굽이 흘러가서 남해바다에 이르게 된다. 4대강 개발로 숨이 탁 막혔던 영산강. 다만 흉내, 시늉이라도 원상회복의 길을 텄다니 불행 중 다행이다.

백진강에는 하늘로 승천하지 못하고 오랜 날을 이무기로 살았던 구렁이 복녀 전설이 남아 있다. 백진강 북천에 살던 구렁이 두 마리는 부부였는데 남편은 용이 되어 승천하고 뒤따르던 아내는 부정을 타서 그만 이무기가 되고 말았다. 다시 용이 되려면 인간으로 둔갑해 사내와 정을 나누어야 했다. 이무기는 봉물장수로 변장하여 동정자마을 효자 바우에게 찾아갔다. 자신이 남장을 한 복녀라고 밝히고, 둘은 신방을 차렸다. 바우와 복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겨울과 봄을 같이 살았다. 바우가 물난리 걱정을 하자 복녀는 금은보화를 쥐여주며 나중에 원님에게 바쳐 북천에 큰 둑을 세우고 나무도 많이 심으라 하였다. 이무기는 착한 바우의 혼을 결국 훔치지 못하고 차가운 강물로 돌아갔다. 바우는 복녀가 보고 싶어 같이 덮던 하얀 이불을 들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소설가 설재록은 <백진강 전설>에서 감동적인 마무리를 들려준다. “바우는 잡고 있던 이불을 물줄기 위에 펼쳐 놓았다. 이불이 너울거리며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불은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며 꿈틀거렸다. 바우의 눈에는 그 이불이 하얀 용처럼 보였다. 비로소 바우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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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김 없는 명품 원피스와 손톱마다 아기자기한 네일아트가 멋들어진 여인들. 자극적인 향수와 너풀거리는 넥타이의 젊은 신사들로 넘쳐나는 세상 같지만 그건 대개 드라마 속 풍경이렷다.

“지금 대한민국에 그 정도 경제력을 갖춘 30대는 극히 일부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식당과 카페에서 음식을 나르고, 남의 손톱을 정리하고, 마트와 백화점에서 물건을 파는 엄마들이 더 많다. 딸이 태어난 후 김지영씨는 또래의 일하는 여성들과 마주칠 때면 아이가 있을까, 몇 살일까, 누구에게 맡겼을까 궁금해졌다. 경기 불황, 높은 물가, 열악한 노동현장….” 소설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드라마, 소설 속이 아니라 바로 현실이다. 오늘도 우리는 점심시간 잠깐 들르는 커피 가게에서, 마트에서, 편의점에서 각종 알바로 분주하게 일하는 지영씨와 스치며 마주하게 된다.

가끔 길에서 군입거리 사러 가시는 촌로들을 뵙곤 하는데 그분들 사는 처지라고 별다르지 않다. 이런 외지에서 자녀들이 잘되면 또 얼마나 잘되어 풍풍 용돈을 쥐여드리겠는가. 어찌 지내시느냐 여쭈면 백이면 백 “안죽응께 살재 어쭈 살긴 살겄소잉. 포로시 밥숟가락이나 떠묵고 살재.” 포로시를 이곳에서도 포도시, 포돕시로 달리 쓰기도 하는데 ‘빠듯하다’를 가리키는 말이다. 빠듯이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불행하고 서글픈 시간 속의 나라.

“고통을 감수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능력 가운데 일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모든 고통이 동등한 것은 아니다. 병세를 평가하는 것은 환자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의사에게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아이티 섬마을에 병원을 차린 의사 폴 파머의 말. 가장 시급한 환부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이다. 아이티에선 ‘동반자’를 가리켜 ‘아꼼빠니에또(accompagnatuer)’라고 부른다. 환자가 그만두라 할 때까지 의료진은 동반자가 되어 함께 걸어가야지. 포로시 빠듯이 살아가게 만드는 ‘경기 불황, 높은 물가, 열악한 노동현장’. 솔선해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아꼼빠니에또가 많아져야 우리네 일자리 살림살이에도 꽃이 피겠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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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사람들은 큰 달이 뜨는 보름날 강강술래, 교교한 달빛에 깃들어 달춤을 췄다. 달이 차고 기우는 걸 춤으로 고스란히 담아내어 손을 잡고 손을 또 풀면서. 계수나무, 박달나무, 동네마다 신단수가 늘어선 언덕 어귀는 달빛이 왕왕했고 집집들이 나비 날아드는 꿈을 꿨단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면 저 멀리 예쁜 달이 히죽이 보였다. 마음에 두고 살던 나라, 달나라. 달을 가리켜 누가 처음 ‘달나라’라고 불렀을까. 그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던 걸까. 달나라까지 가진 않더라도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열린 오늘. 영어로 문은 달이다. 이곳도 이제 달나라가 되었음인가. 달빛 우렁우렁한 얼굴을 지닌 흰옷 입은 백성들. 강강술래 춤추다가 멈춰서보니 겨울 끝났다. 유쾌한 혁명의 춤을 추며 날밤을 새운 날이 오! 얼마였던가.

달나라의 국기는 태극기. 거짓부렁에 짓밟히고 찢긴 날도 있었으나 씻고 꿰매어 오늘 우리가 다시 들고 서 있다. 태극문양은 붉은빛과 푸른빛. 양과 음이 한데 담긴 원은 세계평화렷다. 낮엔 해, 밤엔 달로 둥실 떠 있다. 네 방향의 괘는 눈썹달처럼 기울어져 있는데, 왼쪽 상단의 건은 양의 기운으로 하늘의 공의를 상징. 오른쪽 아래는 곤인데 음의 기운으로 땅의 풍요를 뜻한다. 오른쪽 위 감은 현명한 지혜를, 왼쪽 아래는 이라고 하여 광명 세상을 빌고 있다. 달나라엔 아폴로호 우주인이 꽂은 성조기만 펄럭이는 게 아니다. 푯말과 이정표가 없어도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인다면 사방천지가 우리나라다.

‘플라이 미 투 더 문(Fly Me to the Moon)’이라는 재즈곡이 있다. “달나라로 날아가게 해주세요. 별들 사이를 오가며 즐기고 싶어요. 목성과 화성의 봄을 알고 싶어요. 무슨 말이냐면 내 손을 잡아달라는 뜻이에요. 다시 말하지만 내게 입맞춰달라는 말이에요. 노래를 마음에 가득 채우고, 영원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그대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 진정 어린 마음으로 나를 살펴주세요. 그댈 사랑해요.” 흰말과 맨입이 아니라 손을 먼저 내밀어 사랑해달라는 구애의 노래렷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손이 기도나 하는 입보다 거룩하고 귀하다’는 걸 명심해야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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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눈꼬락쟁이(애꾸눈)도 아니고 고랑을 쫙하니 빤닷하게 빼야재. 그라고 허부적거림시롱 빼틀어지게 맹글어따가 워디다 쓰꺼시오. 첫삽에 눈애개 봐야쓰재 미꼬랭이(미꾸라지) 헤엄치대끼 고랑을 맹글다 보믄 비가 암만 허뿍이(충분히) 와싸도 뻘구덕이나 돼야불재 뿌리로 스매들지가 안해분닥 말이오.” 또 참견이 시작된 것이다. 퍼허 웃고 말뿐. “물긋물긋 보고섰지만 말고 금방 껑껌해질 틴디(어두워질 텐데) 마저 허시재만 그라시요. 아이고메 따블(나무아미타불이 그렇게 들림) 벌떡증이 나가꼬 더는 못보겄소. 호미자루 일루 줘보쇼잉.” 할매가 호미를 빼앗아 후다닥 심어주신 옥수수밭. 여름에 옥수수가 몇 수나 달릴 거나. “비니루를 안 덮으믄 풀이 아조 수두럭뻑적하게 달라들틴디 으짜실라고 그라요. 봉게로 집에 꽃은 여엽스럽게(단정하게) 잘도 애끼시등만 농사는 송신병이 나서 동당이질 친 사람 맹크로 엄배덤배. 항시 딴다리만 잡고 성의라고는 영 없으십디다잉.” 올해도 이것저것 작물 좀 심고, 남이야 말아 묵든가 삶아 묵든가 훈수 놓고 신청하는 재미로 사시는 할매들. 해마다 종류별로 얻어듣는 지청구렷다.

꼬부랑 할매가 마을로 내려가고 나는 흙집으로 쏙하니 들어오고. 심심해서 라디오를 틀었더니만, 나무아미타불 부처님오신날. 부처님은 방금 나에게 다녀가셨는데. 말끝마다 아이고매 따블. 꼬부랑 부처님. “야소교면 어떻고 불도면 어떠랴. 걱정 말고 숨길 것 없이 정성을 다해 믿어라. 다만 편지나 자주 했으면 좋겠구나. 나는 부처님 앞에 빌고 너는 십자가 앞에 빈다면 한쪽에서는 이뤄지는 게 있겠지. 일흔이 지난 지금껏 몸서리치는 이 가난, 이 업신여김, 네 대는 없어야지. 내일이라도 내사 눈 감으면 그만이지만. 이 칠칠한 것아.”(정규화 시인, 개종한 아들을 위해)

종교가 아니라 다만 사람이다. 정치권력이나 경제이윤이 아니라 사람. 사람으로 오신 꼬부랑 부처님이 외로워서,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못하다가 나를 붙잡고 속사포로 유세연설을 하고 가신 날. 부처님과 말동무하려면 밭농사를 늘 망하게(?)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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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이 높아 오후 네다섯 시쯤 되면 산그늘이 집을 덮친다. 오래도록 석양을 즐기고 싶으나 그러려면 앞산을 삽으로 떠다 옮기든지 멀리 서해안 어디께로 이사를 가야 한다. 포기하고 이른 저녁을 받아들였더니 저녁과 밤이 없이는 이제 심심해서도 못살겠어라.

비바람이 치는 추운 밤이나 이슥한 어둠 속에서 차라도 한잔 마시려면 난롯불을 꺼트리지 말아야 한다. 이불도 여태 두툼한 솜이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묵직한 걸 덮어줘야 잠버릇도 온순하고 감기도 모르고 살게 된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집에서 옷을 훌러덩 벗고 지낸다는데 산촌에서 그러다간 딱 얼어 죽는다. 개멋보다는 내복을 챙겨 입으며 살 궁리를 앞세우게 된다.

나는 아침보다 저녁이 배나 반갑고 감사하더라. 머리가 개운해지고 가슴이 진정되어 차분해지는 건 대개 저녁시간이다. 주변이 좀 어두컴컴해져야 안정감이 들고 심장조차 고르게 쿵쾅거린다. 해가 서산에 떨어지면 밖에 널어둔 빨래를 거두고 내일쯤 무슨 꽃이 필지 꽃밭을 살펴보기도 한다. 할미꽃과 튤립, 은방울꽃, 꼬마장미가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날마다 파티 중이다. 침침한 조명 아래 미인들이 많아 보이듯 저녁때쯤의 꽃들은 배나 눈부신 황홀경이다. 가물 때 물을 주고 고랑을 살펴주면 은혜에 반드시 이렇게 보답들을 한다. 받은 은혜를 까먹고 능글능글한,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하고는 질적으로 성질이 다르다. 식물은 정직하고 분명해서 정성과 사랑을 나눈 만큼 열매와 꽃으로 갚아주는 선량한 친구들이다.

날마다 나는 저녁을 기다린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는 것이 저녁이지만 특별히 기다리기 때문에 반갑고 고마운 것이다. 악단이 때에 맞춰 연주를 시작하듯 개구리와 풀벌레들이 열창하기 시작한다. 내가 침묵할 때 또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이 된다. 단순하고 여유로운 삶이여. 18세기 퀘이커 교인들은 단순하게 살라면서 이처럼 찬미했단다. “단순하게 사는 것이 축복이라네. 자유롭게 되는 것이 축복이라네. 몸을 누여 쉴 만한 밤이 되니 축복이어라. 당신이 매일 찾아가는 집이 바로 사랑과 기쁨의 골짜기라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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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연륜과 경험이 풍부한 지혜자들이 꼭 필요하다. 모질고 사나운 생각들을 씻어주는, 따뜻하고 정 넘치는 진짜 어른들. 송곳니의 예리함도 지니신 분들. 대립과 갈등 위에 화해와 치유를 선물해 주실 분들 말이다. 지금은 급속한 고령화·노령화 사회. 그러다보니 유력 정치인들도 대부분 닷곱장님(반쯤 장님이라는 우리말), 눈이 침침하신 분들이 거반이시다. 나이가 지긋해도 생각이 젊고 명료한 분이 계시는가 하면 수구 꼰대 소리, 갈등과 분열의 구닥다리 인물들은 참말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유쾌하게 또 재미나게 나이 들어가면서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고 어깨동무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로조 로젠블라트는 타임지에 가끔 기고하는 에세이스트인데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을 몇 가지 소개하고 있더라. “서른이 넘었으면 자기 인생을 부모 탓으로 돌리지 마라. 겉모습이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는 경우가 매우 많다.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분야는 파고들지 마라. 친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외로운 것이 차라리 낫다. 거창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넘치는 자리는 당장 일어나 도망가라. 아무 이야기나 책이 될 수는 없다. 학연, 지연, 경력을 따지는 사람을 가까이 말아라. 다른 사람을 개선하려고 하지 말라. 그에게 도움이 될지라도 말이다. 모두가 뜯어말리는 일은 하지 마라. 친절한 웨이트리스는 당신에게 마음이 없다. 자신감이 없는 사람과는 일하지 말라. 젊은 상사가 당신을 존경하리라 기대하지 말라. 명성을 좇지 않되 있으나마나한 존재는 되지 말라. 자신에게 진실하지 못하게 살면 어느새 남을 닮아가게 되어 있다. 휴가 때는 아무 생각 하지 말고 쉬어라. 무슨 일이든 돈 때문에는 하지 말라. 원래 목적을 항상 기억하라. 진짜 경기는 공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다. 모닥불은 불씨를 아래서부터 붙여라….”     

아무 이야기나 책이 될 수 없다는 대목에선 전두환·이순자 회고록을 문득 생각했다. 숨쉬는 것조차 죄스럽고 감사해야 할 분들이 뻔뻔하기가 정말 말할 수가 없어라. 박근혜 회고록이 또 이어질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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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살아남은 들고양이들이 떼로 마당을 쏘다니며 이곳은 자기 집이니 그리 알라 우김질이다. 영역 싸움에서 나는 번번이 지고 마는데, 현관 앞에 싸지르기 일쑤인 그놈의 똥이 가장 골칫거리. 야생 고양이똥 냄새, 맡아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차를 타고 가는데 계속 똥내가 났다. 차를 세워 안을 들여다봤더니 내가 똥을 밟은 것. 윽~ 고양이 오거리파 놈들. 무하마드 알리나 되는 것처럼 주먹을 휘두르면서 개밥을 빼앗아 먹기도 다반사. 개들이 순하다보니 고양이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 행패가 예삿일이다. 어제는 씻지 않은 몸으로 내 흔들 그네에 앉아 낮잠을 한숨 자고 가더라. 거기다 죽은 새와 두더지, 들쥐를 물어다놓기도 한다. 뛰노느라 장독 덮개를 박살내고 푹신한 소금가마니엔 오줌도 싸질러놓고. 나만 사라지고 없으면 좋겠다는 야비한 표정은 소름을 쫙 돋게 만든다.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보리라 더 애를 쓰게 돼. 투쟁심을 길러주는 고양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힘들어봐야 행복도 알지. 겸손하게 살라고 한번 겪어보라는 ‘시험’인가 뭔가.

“행복이란 무얼까. 행복이라는 것은 일종의 가사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아내를 동반한다든지 귀여운 아기들을 안고 데리고 저녁거리를 산보하면서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위대한 사상이 움직였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신혼여행 중에 발생했다는 철학도 나는 아직 구경한 일이 없다.” 김기림의 수필 <동양의 미덕>(조선문단 1939년)엔 독설이 이어진다. “가족과 사무를 함께 버리고 혼자서 산이나 바다로 간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모두 시골이나 극장으로 보내놓고 다만 혼자 자빠져서 달을 쳐다보는 괴벽의 효용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역시 동양 사람일 성싶다.” 그런데 혼자 자빠져서 달구경이나 하면 좋으련만, 고양이 패거리가 떼로 괴롭히는 걸 김기림은 정녕 몰랐으리라.

봄비가 주르륵 내리는 자정쯤 물에 젖은 귀신들이 방문한다. 늙은 고양이가 신호하자 철커덩 철문이 열린다. 행복이고 나발이고 이불 속에 숨자니 나도 아기 고양이처럼 서럽게 울고 싶어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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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하나같이 꼿꼿하고 늠름하게 언덕을 지킨다. 허리가 굽은 할망구 나무도 지친 기색이라곤 하나 없다. 모르지, 내가 잠들 때 몰래 뒤따라 눕는지도. 벚꽃나무는 봄눈을 뿌려 아가의 첫걸음마를 반기고 동백나무는 붉은 외등을 종일토록 켜두어 할매들 마실 길을 살펴준다. 새들이 언 발을 녹이던 가지엔 어김없이 꽃망울이 맺혔구나. 나무에게도 따뜻한 부위가 있는데 그곳부터 먼저 꽃소식이 달린다.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거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 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따라 불러보는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 섬진강, 영산강, 내 고향 탐진강 강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화원이요 꽃길마다 눈부셔라. 구멍가게 앉아 탁주를 들이켜던 촌로들이 육자배기를 한 소절씩 뽑을 때면 짐 실은 군내버스가 마을길로 스윽 접어든다. 주말에 애갱이 손주들이 놀러오는가. 노란 귤, 사과와 배를 한 개씩 주워 담은 할매의 장바구니. 그러고 보니 과일나무들도 꽃망울을 맺고 있구나.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모두들 깨어나서 푸른 잎을 손바닥 펴듯 펼치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욕심꾸러기 과욕으로 괴롭다. 과일 욕심, 과욕 말이다. 밥은 안 먹어도 살겠지만 과일 없이는 분명히 꼴까닥 할 것이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먹고 싶었던 과일부터 한 박스 쟁여둔다. 귤도 한자리에 앉아 박스째 먹으라면 숨도 안 돌리고 먹을 자신 있다. 하지만 혼자 먹으면 그게 무슨 맛이야. 죄를 짓고 영치금으로 사먹는 귤은 맛이 있을까. 과일은 나누어 먹어야 제맛이다. 과일이 둥근 것은 쪼개서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라는 뜻이렷다. 목사, 시인, 수필가, 화가, 음악인, 관장 뭐 많은 직함이 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과일장수! 과욕이로다. 내가 과일장수라면 손님들한테 덤으로 집어주다가 망하든지 내가 다 먹어치워 망하든지 둘 중 하나일 터. 과일을 궤짝으로 쌓아둔 가게를 보면 부럽고 오지다. 자연재해 없이 올해 과일농사도 풍년 되길. 과일 농가, 과일장수들 다복했으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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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개나리, 노랑나비, 팽목항 노란 리본. 온통 세상이 노란 빛깔이구나. 애기 노랑꽃떨기들 잡초들도 공터 담벼락 아래 무장무장 번지는 중이렷다. 맑게 세수를 할 수 있게 봄비가 내려주니 꽃도 나무도 싱그럽고 상쾌해. 서효인 시인의 시집 <여수>를 읽다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바닷가 어디로 훌쩍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 그런데 며칠 비가 내리는 통에 마음만 굴뚝이었다. 비가 오면 비도 손님이니만큼 잘 모셔야지. 어둑어둑할 때 빗소리는 심장이 쫄깃해져.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의 독일 가곡을 듣다가도, 미안 쏘오리~, 엔츌디궁(Entschuldigung·죄송합니다) 하면서 전축을 서둘러 끄고는 한다. 친구랑 통화하다 말고 “빗소리 들어볼래?” 함석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 감상회. 봄비처럼 촉촉한 여인이 나에게 “우리 빗소리 같이 들어요” 한마디 내민다면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 환경운동가 자넷 파웃은 어린 딸 줄리아와 ‘들을 수 없는 소리 듣기’ 놀이를 만들었단다. 나무 수액이 차오르는 소리, 눈송이가 만들어져서 떨어지는 소리, 해가 뜨는 소리, 달이 뜨는 소리, 풀잎에 맺힌 이슬의 소리, 싹이 움트는 소리, 땅속 지렁이 소리, 햇빛에 달아오른 선인장 소리, 사과가 익어가는 소리, 깃털이 부딪치는 소리, 나무가 단단해지는 소리, 이가 썩어가는 소리, 거미가 거미줄 치는 소리, 거미줄에 날벌레가 걸리는 소리, 단풍이 물드는 소리, 연어가 산란하는 소리…. 훌쩍 자란 줄리아는 대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자연을 사랑하고 고독을 즐기며 작은 행복감을 잊지 않고 산단다. ‘자연결핍장애’를 경고하는 리처드 루브의 책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이런 고운 얘기들로 가득하다.

우리 아이들이 빗소리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 장화 뒤축으로 질컥이는 빗물소리. 악을 쓰고 고래고래 온갖 거짓된 목소리들 모두 물러가고 깨끗이 새롭게 씻기는 빗소리, 새 생명을 품어내는 착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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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이 쑥쑥 올라오는 쑥의 봄날. 쑥이 쑥 솟아난 뒤부터 쑥 캐는 처자들로 들에 산에 언덕바지에 울긋불긋 봄세상이다. 간만에 누이가 찾아와 쑥 캐다가 쑥국 끓여놓고 가면서 “오빠! 쑥국에다가 저녁밥까지 자시오. 고깃국보다 맛나오” 한다. 쑥국이 있는 걸 잊어버리고 읍내 누가 저녁밥이나 먹고 들어가라 해서 고개를 끄덕거렸지. 상차림 전, 찹쌀가루에 버무린 쑥버무리가 반가웠어. 쑥철이라 어디를 가나 쑥쑥 내오는 것마다 쑥떡 쑥범벅. 내 몸에서 쑥내가 날 지경이로군.

서해안 ‘가자미 쑥국’도 맛나지만 남해안 통영,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 부두엔 ‘도다리 쑥국’이 있어 침을 꼴깍이게 만든다. 관광버스가 떼로 드나들게 된 뒤부터는 도다리 쑥국도 예전같지 않아 물어물어 맛집을 물색해야 한다.

멀리 바다 건너 왜의 땅에도 봄은 진즉 찾아왔겠구나. 나가이 가후의 소설 속 ‘스미다강’도 봄의 나날들일 것이다. “비온 뒤에 갠 하늘과 창가로 스미는 빛줄기. 마주 보이는 장어집 미야타가와 마당에 버드나무 한 그루엔 새순이 돋아 봄인 줄 비로소 알겠어라. (중략) 청명한 하늘 밑으로 흐르는 스미다강. 강둑 위로 핀 쑥들 지천의 풀들. 둑길로 길게 이어진 벚꽃길. (중략) 꽃구경을 하러 나온 행렬들로 나룻배 부두는 분주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도 그려지는 쑥내 나는 풍경들.

퀴퀴한 지분 냄새가 맵기는 해도 밭고랑으로 쑥향이 알씬 피어오른다. 어머니가 장날 떡방앗간에서 해오셨던 쑥떡 생각이 간절하여라.

앞으로 어떤 아이들이 있어 풀내 풀풀 나는 푸른 쑥떡을 그리워할까. 숙덕대는 일들만 많아지고, 쑥떡 먹는 일들은 줄어들었다. 쑥국 아닌 고깃국, 쑥떡 아닌 고르곤졸라 피자로는 우리가 어떤 계절을 사는지 알 길이 있겠는가. 적폐청산 겨울을 걷어내고 영산강 능수버들 꽃바람에 춤추는 날. 춘삼월 꽃샘바람 뚫고 쑥을 한 소쿠리 캐 담은 아낙네가 떼어주는 쑥떡, 우리 어느 때까지 맛볼 수 있을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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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그나마 잘 돌아가는 거 ‘전기구이 통닭’으로다 일잔 하자는 말에 차 트렁크 싣고 다니던 자전거 꺼내 도심 순회공연. 손 시려 한동안 안 탔던 자전거도 멀쩡하게 잘 굴러가더라. 농부님네 리어카 경운기도 변함없이 잘 굴러 댕기더구먼.

옛날 훈련소 행군 중에 잠깐 휴식. 멀리 깜박거리는 도심의 불빛들을 구경하면서 ‘솔’ 담배 일발 장전. 그때 교관이 그랬다. “봐라. 너희들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냐.” 일동 좌절 모드. “그러니까 딱 잊고, 군생활 잘해보잔 소리야. 파이팅~.” 누구 떠나보내고 맹신 광신 굽신자 말고는 ‘암시랑토 안 한 세상’이렷다.

밭두렁에 쑥이 푸르러 캐다가 쑥국 끓여먹고, 매화 밭에 벌떼들 구경도 잘했다. 매화차도 덤으로 두어 잔. 나 마셨대! 나마스떼! 일잔 걸치고 찾아온 주당 친구들. 달밤엔 동동주에다 불콰해져서 인도 요기처럼 덥수룩한 수염을 훑어가며 잘 놀았다.

누가 안주로다가 낙지를 사와서 또 먹었지. 언제도 한번 얘기했지만 나는 낙지 요리를 엄청 좋아해. 어려서 갯가에 살며 먹어버릇해서 그런가보다. 느려 터져 흐느적거리는 낙지를 늘낙지라 하는데, 딱 늘러붙어 안 떨어지는 걸 또 늘낙지라 부르기도 한다.

좌우튼간에 ‘탕탕탕’ 잘게 썰어 탕탕이를 해먹든가 끓는 물에 연포탕을 해먹든가 날이 잘 드는 칼만 한 자루 있으면 된다. 이쪽에선 ‘조사 먹는다’라고 하는데, 잘게 칼집을 내는 ‘조사서~’를 거쳐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먹는다. 오이채나 계란 노른자를 풀기도 하고 쇠고기 육회를 겸하기도 하는데, 낙지 요리는 역시 그냥 맨낙지, 첨가물 없이 싱싱한 낙지만 입에 털어 넣는 게 최고.

누구처럼 승복 없이 불복하고 안 떨어지는 늘낙지. 지난가을부터 너무 기운을 빼서 이걸 어떻게 처리 못하면 내가 죽겠는데 어째. 감사 기도를 올린 다음에 어금니에게 맡길 뿐이다. 어금니와 혀와 목구멍을 넘어 검은 어둠 속으로 쓱 사라져가는 늘낙지는 닭똥집보다 맛나고 몸에도 좋다. 우리 건강한 봄날을 살게 되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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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에 날아간 비닐들이 탱자나무숲, 매화 가지에 걸려 영화 <라라랜드>에서처럼 막춤을 춘다. 논밭에 농사용 비닐 없이 어떻게 해볼 순 없는 걸까. 바람이 불면 과수농가 나무마다 폐비닐이 걸려서 나풀거린다. 무슨 <고스트 버스터즈> 유령을 보는 거 같아.

낮에 짬이 나길래 마을길 쓰레기를 좀 모아봤다. 검정 비닐, 플라스틱 용기들, 우산대, 버린 시멘트 덩어리, 큼지막한 곰 인형까지 와글다글. 곰은 어쩌다가 이 골짝 구정물에 빠져서 진흙을 뒤집어쓰게 된 걸까. 물에 씻어 강아지 집에 넣어주니 물어뜯고 야단이다. 하다 지치면 그만두겠지. 꽃샘추위 어젯밤엔 눈도 내렸다. 싸우지들 말고 꼬옥 안고 자면 좋으련만.

시내 나가선 청년들이랑 어울리게 되는데 인형 뽑기 돈을 대주기도 한다. 개인은행에 돈을 맡겨놓았나 “쪼금만 보태주시옹!” 그런다. 내가 이래봬도 잡기의 달인 아닌가. 참다못해 토이트레인을 운전, 모두 방울눈이 되어 몰려든다. 헉, 애걔걔~ 급실망들. 나도 안되는 것이 있구나. 열에 아홉 ‘속임수’라질 않더냐. 요즘 인형 뽑기가 유행. 아이들 있는 집마다 인형이 차츰차츰 늘고 있을 게다. 내 돈도 거기 찬조금으로 쬐끔 들어 있을지 몰라. 부디 예뻐해 주시길.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장난감 인형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고, 다음엔 고이 키우던 강아지 고양이를 길에 내다버리고…. 나중엔 사랑하던 친구까지 이익이 없다 싶으면 차갑게 정리하는 잔인한 인간이 될까 무서운 세상이다.

아쿠아리움에 갇혀 사는 흰돌고래 벨루가도 꺼내주고 싶고, 수족관에 갇힌 바닷물고기들 모두 꺼내주고 싶다. 유리 상자에 갇힌 인형들도 한바구니 꺼내주고 싶어라. 피자배달 총각도 그 정신없는 속도에서 구출해주고 싶고, 봄꽃이 환장하게 핀 어떤 날엔 당신을 비좁은 사무실 책상에서 꺼내와 여기 뒷산 꽃길을 같이 걸으면 좋으련만. 올핸 대통령도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 재미 삼아 후딱 뽑아서는 안될 일이다. 재벌과 기득권층의 꼭두각시를 뽑아서도 안된다. 수수십년 적폐를 털어낼 이. 이 나라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만 해도 괜찮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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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마한 강아지가 배를 내놓고 누워서 드르렁 콧노래. 불황과 탄핵정국으로 사람 세상은 어디서나 피죽바람인데 개 팔자가 상팔자, 조금씩 약이 오를 정도다. 동네에 청소차가 건전가요를 틀어놓고 달려오면 그때서야 부스스 일어난다. 이름에도 아예 잠이 들어 있는 프란시스 잠, 자연생활을 예찬한 예이츠 같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요새 주워들었다. 하나같이 밍밍하고 나른한 낮잠을 몰고오지. 우리 대중가요는 걸그룹 일색이고 영어 가사도 절반쯤. 해외 팬들 땜에 그러는가. 어려워서 못 따라 부르겠는데 중·고딩 친구들은 대단해. 인디음악은 아껴주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시상 트로피를 팔아 월세를 내야 한다니 원. 대중가요 가사들은 대부분 러브스토리. 가끔 진지한 고민이 담긴 가사와 멜로디 좋은 노래들이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요새 뜨는 노래는 역시 건전가요. 고생이 많으신 태극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 ‘좋아졌네’ ‘잘살아보세’ 이런 노래들, 징그럽게 가난하던 시절 건전가요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사전에 의하면, 국가의 음악통제정책의 일환으로 관변단체의 주도하에 창작되어 불린 노래. “이리 보아도 좋아졌고 저리 보아도 좋아졌네.” 급기야 이 세대는 박정희 작사·작곡 ‘나의 조국’을 애국가만큼 따라 부르게 되는데,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 영광된 새 조국에 새 역사 창조하여…” 노래인지 염불인지 마하반야 바라밀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5공 시절과 맞물려 건전가요 축에 진입. 최근엔 박사모에서 민중가요 가수 안치환의 히트곡 ‘위하여’를 느닷없이 합창. 이 노래는 정체를 모르고 따라서 부른 케이스다. 여하튼 국민화합에 일조한 노래가 되었구나. 나는 불건전 가요를 좋아하는 불건전 인간인가. 노래방 가서 찬송가 찾는 재수 없는 목사가 아니어서 업계에 죄송하다. 그런데 노래방은 수천만년 된 거 같다. 누가 좀 델꼬가줘잉. 국민이 승리하는 날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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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형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눈곱이 심하게 끼고 금방 천당에 갈 것 같았는데 살아남아 연년생인 나랑 쌍둥이처럼 자랐다. 호적도 생일도 들쑥날쑥 엉망인 유년기. 아버지의 목회는 장애인 아이의 존재로 무지한 촌로들에게 외면당했다. 누나들은 일찍 도회지로 도망 나갔고, 나는 장애인 형의 도우미요 단짝 동무로 남게 되었다.

일원상 부처님을 모신 원불교 교무님 아들도 아닌데 형은 동그라미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는 학기 초마다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들춰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형은 그 틈을 이용해 교과서에다 색연필 볼펜 크레용으로 동그라미를 빼곡히 채워 넣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냉큼 종아리를 걷으라 호통을 치셨다. 형 이야기를 꺼냈다간 동무들이 또 ‘병신 집구석’ 어쩌고 놀릴 게 뻔해서 때리시는 대로 그냥 맞았다.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님은 목사관 곳곳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동그라미를 목격했다. 벽지에도 그려진 수많은 동그라미. 선생님은 내 방에 웅크리고 있던 동그라미 화가를 만났다. 선생님은 내게 곧바로 사과하셨고 나는 그제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인척 중 한 분이 왜 이런 이야길 책에 쓰냐며, 무슨 가문의 자랑이라고 그런 소릴 바깥으로 내뱉느냐고 정색하셨다. 그 맘도 헤아리지만, 내가 오늘 순례자가 되고, 슬픈 사연들을 짐작하는 작가가 되어 있으니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인 게다. 더 사랑해주지 못하고 작별한 후회와 반성뿐. 제 자랑에 치우친 교과서로는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형의 동그라미들.

수레바퀴 같은 사람의 진실과 사랑의 역사. 누구네 집구석 자랑을 하려고 급하게 쓴 국정 역사교과서엔 그런 진실과 연민, 자성 반성 같은 게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목적이 애초 그런 것인데 어떻게 선의라며 받아들이라 말하는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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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 폭설의 섬, 북해도를 방문했다가 어떤 가게에서 앙증맞은 보온병 하나를 발견. 요새 유행하는 롱패딩,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입을 법한 긴 옷, 거기 호주머니에 들어가면 딱 좋을 만한 크기. 즐겨 마시는 레몬차 자몽차 모과차 그리고 커피도 담아 가지고 마시는데, 그래 요즘 내 호주머니는 항상 따뜻하고 훈훈하다. 당신도 한번 손을 넣어보세요.

체코의 소설가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 <너무 시끄러운 고독>. 지하 작업장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압축기로 분쇄하며 겪는 감상. 예수와 노자가 맥주를 마시며 담소하는 듯한 장면들. 지하저장고 수제 맥주관이 전 세계로 배급되는 상상을 해봤다. 체코 대통령은 그런 거나 좀 하지 뭐하시나. 나도 거기다 기다란 관을 하나 연결할 수 있다면 기분이 째지겠다. 여름에는 체코산 맥주를, 겨울에는 따뜻한 북해도 온수와 차를 그렇게 제공받고 싶다. 집집마다 붉은색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 쏟아지는 더운 물.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더운 물 덕분이지.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책을 덮었는데, “자유나 저항 같은 거창한 단어보다 연민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자유나 저항이 맥주 같다면, 연민은 더운 물, 따뜻한 차 한 잔. 보온병과 입을 맞췄다. 여자 말고 보온병이랑 올겨울 참 많은 키스를 나누고 산다.

따스운 방에만 머물면 알 수 없는 고마움. 겨울산행을 할 때나 바깥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온병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맛 좋고 향 좋은 차가 꼭 아니더라도 온수 한 잔에 번지는 온기. 추운 밤 촛불광장에서 나누는 음료들도 그렇다. 가슴마다 덥혀주는 온기. 사람에 대한 정성과 연민은 오래오래 우리들을 인간으로 빛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별들이 빛나는 건 온기 있는 생명체들이 살기 때문. 온기를 잃으면 어둠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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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훈련 하면 역시 태~극기. 어려서 길을 걷다가도 애국가가 울리면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바쳐야 했다. 모른 척하고 걷다가는 선생님에게 걸려 귀싸대기를 얻어맞아야 했다. 누구처럼 무릎 꿇린 채 따귀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랬다. 나도 증인이다. 우리 교회 형이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목사님 설교를 곧이곧대로 알아먹고 대들었다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이런 엑스 소리를 들으며 발길질에 날아갔다. 태극기는 그렇게 무서운 대상이었다.

공기놀이를 하다가도, 줄넘기를 하다가도 일동 일어섯! 국기가 있는 학교 교정을 향해 동작 그만, 얼~음. <뽕>이나 <어우동>을 보러 극장을 찾은 어른들도 일동 차렷! 국기에 대한 경례.

그 시절 그 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갑다. 관공서 말고 태극기가 항상 걸려 있는 쪽은 무당 점집 같은 곳. 동그라미 태극 문양이나 눈썹처럼 둘러친 괘는 고대 샤먼 세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상징들. 나라 무당 만신들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뜀뛰기를 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대표선수 마사이족보다 더 높이 뛸 수가 있다. 또 우익 집회에서도 항상 태극기는 단골손님. 우리나라 우익들은 신기하게도 미국 성조기까지 양손에 들고 응원이다. 십자군을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했다니 우리가 이렇게 큰 대국인지 미처 몰랐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연방이 부럽지가 않구나.

지금은 쏙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는 한반도기가 유행이었다. 남북단일팀 탁구도 재밌었고 축구 실력도 엄청났지. 낮은 단계 통일이라도 금방 오는 줄 알았다. 한반도기와 태극기, 인공기가 친근하게 펄럭이고 남북이 얼싸안으면서 같이 울었다. 몇 해가 뭔가, 육이오 때로 후퇴한 지금 분위기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을 그때는 함께했구나.

가까운 면사무소에도 태극기와 나란히 새마을기가 걸려 있다. 새마을기는 내려야 할 때가 된 듯싶다. 너무 오래 새마을이었다. 태극기는 통일의 그날까지 펄럭일 것인데, 독재자처럼, 세월호 선장처럼, 동작 그만!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지 않으면 천번 만번 경례해주마. 흔들어주마.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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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요쪽 동네에선 대부분 인도의 힌두교를 신앙하는데 아멘 대신 ‘긍게’가 화답 멘트. 긍게란 강력한 동의를 뜻하는 말로 ‘긍게 말이시’를 한번 뱉으면 되돌릴 수가 없다. 이후 밑도 끝도 없이 긴 설교를 들어야 한다. 고운 말도 석자리라고 대화 중에 긍게는 그러니까 정도껏 해야 한다. 인도나 여기나 신의 성호는 ‘시바’로 동일하다. 시바 중에도 ‘느그미’가 들어가면 대왕 시바신. 웬만한 시바신도 모두 그분 이름 앞에서 눈을 내리깔아야 한다.

교회에서도 회의하다 열불이 나면 집사님들이 시바신을 모셔버리는데, 여호와는 그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여호와나 목사나 조용히 잠자코 있는 게 상책. 누구 입에서 ‘염병하네’ 어쩌고가 튀어나오게 되면 교회가 얼마간 영하권 날씨. 남녘에서 머무를 때 욕도 솔찬이 얻어먹고 살았다. 우리도 남들처럼 박수치고 찬송을 부르자는 집사님에게 미국에나 가서 그렇게 하라 했더니만 대번 ‘빨갱이 목사가 염병을 하네’가 돌아왔다. 같이 박수를 쳐줄 교인들도 늙어 힘 빠진 상태라 호응도 없고. 발길 끊었다가 내가 사임하자 다시 나오신다던가. 드디어 할렐루야 세상이겠다.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날마다가 놀렐루야인데, 할렐루야는 때에 따라 등 따시고 배부른 지배자들의 구호. 좋은 말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누가 시킨다고 따라 외칠 싸구려 구호가 아니렷다.

염병에 이어 미국은 콜라병, 아니 꽐라병이 대세나 봐. 청교도들이 제멋대로 신약 구약을 떼더니만 이젠 마약에 손댔나. 청교도가 아니라 절교도. ‘절교하자!’가 그들의 입버릇 구호. 일치 연대 연합 연민 관용 배려 공동선 같은 말을 사전에서 아예 지운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깨진 콜라병을 휘두르며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포도주도 콜라도 친구랑 나눠마셔야 맛나지. 자기들만 울타리 치고 친구 필요 없이 살겠다니 한심하고 암암해라. 이러다간 그쪽도 탄핵밖에 답이 없는.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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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선 꾸지람을 “머시락 한다”고 표현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지청구를 좀 해야겠다 싶으면 “자네가 자꼬자꼬 머시락을 잔 해야 안쓰겄능가. 아조 이참에 버르쟁이를 단다니 고채놔야 쓰네잉. 항시 그라고 싸고만 동께로 아그들이 저 모냥 아닝가배.” 아부지 어무니가 앉아서 이런 말씀을 나눌 때는 잽싸게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겠다. 거시기 머시기 할 때 그 머시기가 머시락이 되기도 하는데, 머시락 할 때 마음을 닫아걸고 삐져버린 아이는 부처님도 대책이 없는 것이다.

제 자식이라고 끼고돌며 버르장머리 없이 키우면 큰 화근덩어리가 된다. 따끔하게 꾸중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반듯하고 성실하다. 아이를 망치려면 칭찬을 트럭으로 갖다가 해주고, 원하는 대로 청을 다 들어주고, 버르장머리 없이 살게코롬 두둔해주면 된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들의 입이 궁금해진다. 국정농단 사태의 한 축이 된 아이도 줄줄이 욕 사탕이더군.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아저씨님들 입들은 거기다가 곱빼기 짜장 짬뽕이겠지. 교양은 스테이크 고기나 썰 때 나오는 것일 테고.

눈보라가 뿌려놓고 간 설경 위로 철새들 날고 별은 배나 붉어졌어라. 시와 노래로 입을 헹구고 새와 별로 눈을 씻는다. 곧 설 명절. 꼬까옷 입고 가족들 만나 같이 밥 한 끼 먹다가 괜한 말 한마디에 울상이 되고. 누가 좀 머시락 했다고 삐지고 그러지 말고 “넹! 알았엉!” 하고 웃어넘기면 다 인생에 좋은 보약이 된다. 좋아하고 그러니까 잔소리도 하고 머시락도 하는 것이지. 밉고 싫으면 포기해버리고 납부닥(얼굴)을 안 봐버리는 것이다. 날 넘어 가부렀다, 날 넘 묵었다, 날 넘어가꼬 어쩌고 할 때 ‘날 넘다’라는 말도 재미있다. 칼날을 너무 잘 갈아도 문제. 날 넘었다는 건 그런 뜻.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귀한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어영부영 살다보면 인생 망가지는 거 그거 급행열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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