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195건

  1. 2017.04.13 오거리파 고양이
  2. 2017.04.06 과일장수 꿈
  3. 2017.03.30 빗소리 감상회
  4. 2017.03.23 쑥국 쑥떡
  5. 2017.03.16 늘낙지
  6. 2017.03.09 인형 뽑기
  7. 2017.03.02 건전가요
  8. 2017.02.23 새 학기 교과서
  9. 2017.02.16 보온병과 별들
  10. 2017.02.09 태극기
  11. 2017.02.06 염병과 콜라병
  12. 2017.01.26 머시락
  13. 2017.01.19 블랙리스트
  14. 2017.01.12 구둣발차기
  15. 2017.01.05 우주의 기운
  16. 2016.12.29 육식에서 채식으로
  17. 2016.12.22 여우골 성탄절
  18. 2016.12.15 간장 종지
  19. 2016.12.12 담뱃불과 촛불
  20. 2016.12.01 고산병

겨울에 살아남은 들고양이들이 떼로 마당을 쏘다니며 이곳은 자기 집이니 그리 알라 우김질이다. 영역 싸움에서 나는 번번이 지고 마는데, 현관 앞에 싸지르기 일쑤인 그놈의 똥이 가장 골칫거리. 야생 고양이똥 냄새, 맡아보지 않은 이는 모른다. 차를 타고 가는데 계속 똥내가 났다. 차를 세워 안을 들여다봤더니 내가 똥을 밟은 것. 윽~ 고양이 오거리파 놈들. 무하마드 알리나 되는 것처럼 주먹을 휘두르면서 개밥을 빼앗아 먹기도 다반사. 개들이 순하다보니 고양이가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나 행패가 예삿일이다. 어제는 씻지 않은 몸으로 내 흔들 그네에 앉아 낮잠을 한숨 자고 가더라. 거기다 죽은 새와 두더지, 들쥐를 물어다놓기도 한다. 뛰노느라 장독 덮개를 박살내고 푹신한 소금가마니엔 오줌도 싸질러놓고. 나만 사라지고 없으면 좋겠다는 야비한 표정은 소름을 쫙 돋게 만든다.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살아보리라 더 애를 쓰게 돼. 투쟁심을 길러주는 고양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힘들어봐야 행복도 알지. 겸손하게 살라고 한번 겪어보라는 ‘시험’인가 뭔가.

“행복이란 무얼까. 행복이라는 것은 일종의 가사 상태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름다운 아내를 동반한다든지 귀여운 아기들을 안고 데리고 저녁거리를 산보하면서 소크라테스의 머리에 위대한 사상이 움직였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신혼여행 중에 발생했다는 철학도 나는 아직 구경한 일이 없다.” 김기림의 수필 <동양의 미덕>(조선문단 1939년)엔 독설이 이어진다. “가족과 사무를 함께 버리고 혼자서 산이나 바다로 간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모두 시골이나 극장으로 보내놓고 다만 혼자 자빠져서 달을 쳐다보는 괴벽의 효용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역시 동양 사람일 성싶다.” 그런데 혼자 자빠져서 달구경이나 하면 좋으련만, 고양이 패거리가 떼로 괴롭히는 걸 김기림은 정녕 몰랐으리라.

봄비가 주르륵 내리는 자정쯤 물에 젖은 귀신들이 방문한다. 늙은 고양이가 신호하자 철커덩 철문이 열린다. 행복이고 나발이고 이불 속에 숨자니 나도 아기 고양이처럼 서럽게 울고 싶어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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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들은 하나같이 꼿꼿하고 늠름하게 언덕을 지킨다. 허리가 굽은 할망구 나무도 지친 기색이라곤 하나 없다. 모르지, 내가 잠들 때 몰래 뒤따라 눕는지도. 벚꽃나무는 봄눈을 뿌려 아가의 첫걸음마를 반기고 동백나무는 붉은 외등을 종일토록 켜두어 할매들 마실 길을 살펴준다. 새들이 언 발을 녹이던 가지엔 어김없이 꽃망울이 맺혔구나. 나무에게도 따뜻한 부위가 있는데 그곳부터 먼저 꽃소식이 달린다. “앞강에 살얼음은 언제나 풀릴거나. 짐 실은 배가 저만큼 새벽안개 헤쳐 왔네. 연분홍 꽃다발 한 아름 안고서 물 건너 우련한 빛을, 우련한 빛을 강마을에 내리누나….” 따라 불러보는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 섬진강, 영산강, 내 고향 탐진강 강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화원이요 꽃길마다 눈부셔라. 구멍가게 앉아 탁주를 들이켜던 촌로들이 육자배기를 한 소절씩 뽑을 때면 짐 실은 군내버스가 마을길로 스윽 접어든다. 주말에 애갱이 손주들이 놀러오는가. 노란 귤, 사과와 배를 한 개씩 주워 담은 할매의 장바구니. 그러고 보니 과일나무들도 꽃망울을 맺고 있구나. 사과나무 배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대추나무 감나무 모두들 깨어나서 푸른 잎을 손바닥 펴듯 펼치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욕심꾸러기 과욕으로 괴롭다. 과일 욕심, 과욕 말이다. 밥은 안 먹어도 살겠지만 과일 없이는 분명히 꼴까닥 할 것이다.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먹고 싶었던 과일부터 한 박스 쟁여둔다. 귤도 한자리에 앉아 박스째 먹으라면 숨도 안 돌리고 먹을 자신 있다. 하지만 혼자 먹으면 그게 무슨 맛이야. 죄를 짓고 영치금으로 사먹는 귤은 맛이 있을까. 과일은 나누어 먹어야 제맛이다. 과일이 둥근 것은 쪼개서 한쪽이라도 나눠 먹으라는 뜻이렷다. 목사, 시인, 수필가, 화가, 음악인, 관장 뭐 많은 직함이 있지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과일장수! 과욕이로다. 내가 과일장수라면 손님들한테 덤으로 집어주다가 망하든지 내가 다 먹어치워 망하든지 둘 중 하나일 터. 과일을 궤짝으로 쌓아둔 가게를 보면 부럽고 오지다. 자연재해 없이 올해 과일농사도 풍년 되길. 과일 농가, 과일장수들 다복했으면.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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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유, 개나리, 노랑나비, 팽목항 노란 리본. 온통 세상이 노란 빛깔이구나. 애기 노랑꽃떨기들 잡초들도 공터 담벼락 아래 무장무장 번지는 중이렷다. 맑게 세수를 할 수 있게 봄비가 내려주니 꽃도 나무도 싱그럽고 상쾌해. 서효인 시인의 시집 <여수>를 읽다가 기억이 가물가물한 바닷가 어디로 훌쩍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 그런데 며칠 비가 내리는 통에 마음만 굴뚝이었다. 비가 오면 비도 손님이니만큼 잘 모셔야지. 어둑어둑할 때 빗소리는 심장이 쫄깃해져. 테너 프리츠 분더리히의 독일 가곡을 듣다가도, 미안 쏘오리~, 엔츌디궁(Entschuldigung·죄송합니다) 하면서 전축을 서둘러 끄고는 한다. 친구랑 통화하다 말고 “빗소리 들어볼래?” 함석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 감상회. 봄비처럼 촉촉한 여인이 나에게 “우리 빗소리 같이 들어요” 한마디 내민다면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 환경운동가 자넷 파웃은 어린 딸 줄리아와 ‘들을 수 없는 소리 듣기’ 놀이를 만들었단다. 나무 수액이 차오르는 소리, 눈송이가 만들어져서 떨어지는 소리, 해가 뜨는 소리, 달이 뜨는 소리, 풀잎에 맺힌 이슬의 소리, 싹이 움트는 소리, 땅속 지렁이 소리, 햇빛에 달아오른 선인장 소리, 사과가 익어가는 소리, 깃털이 부딪치는 소리, 나무가 단단해지는 소리, 이가 썩어가는 소리, 거미가 거미줄 치는 소리, 거미줄에 날벌레가 걸리는 소리, 단풍이 물드는 소리, 연어가 산란하는 소리…. 훌쩍 자란 줄리아는 대학생이 되었고, 여전히 자연을 사랑하고 고독을 즐기며 작은 행복감을 잊지 않고 산단다. ‘자연결핍장애’를 경고하는 리처드 루브의 책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은 이런 고운 얘기들로 가득하다.

우리 아이들이 빗소리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 장화 뒤축으로 질컥이는 빗물소리. 악을 쓰고 고래고래 온갖 거짓된 목소리들 모두 물러가고 깨끗이 새롭게 씻기는 빗소리, 새 생명을 품어내는 착한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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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이 쑥쑥 올라오는 쑥의 봄날. 쑥이 쑥 솟아난 뒤부터 쑥 캐는 처자들로 들에 산에 언덕바지에 울긋불긋 봄세상이다. 간만에 누이가 찾아와 쑥 캐다가 쑥국 끓여놓고 가면서 “오빠! 쑥국에다가 저녁밥까지 자시오. 고깃국보다 맛나오” 한다. 쑥국이 있는 걸 잊어버리고 읍내 누가 저녁밥이나 먹고 들어가라 해서 고개를 끄덕거렸지. 상차림 전, 찹쌀가루에 버무린 쑥버무리가 반가웠어. 쑥철이라 어디를 가나 쑥쑥 내오는 것마다 쑥떡 쑥범벅. 내 몸에서 쑥내가 날 지경이로군.

서해안 ‘가자미 쑥국’도 맛나지만 남해안 통영, 소설가 박경리의 고향 부두엔 ‘도다리 쑥국’이 있어 침을 꼴깍이게 만든다. 관광버스가 떼로 드나들게 된 뒤부터는 도다리 쑥국도 예전같지 않아 물어물어 맛집을 물색해야 한다.

멀리 바다 건너 왜의 땅에도 봄은 진즉 찾아왔겠구나. 나가이 가후의 소설 속 ‘스미다강’도 봄의 나날들일 것이다. “비온 뒤에 갠 하늘과 창가로 스미는 빛줄기. 마주 보이는 장어집 미야타가와 마당에 버드나무 한 그루엔 새순이 돋아 봄인 줄 비로소 알겠어라. (중략) 청명한 하늘 밑으로 흐르는 스미다강. 강둑 위로 핀 쑥들 지천의 풀들. 둑길로 길게 이어진 벚꽃길. (중략) 꽃구경을 하러 나온 행렬들로 나룻배 부두는 분주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도 그려지는 쑥내 나는 풍경들.

퀴퀴한 지분 냄새가 맵기는 해도 밭고랑으로 쑥향이 알씬 피어오른다. 어머니가 장날 떡방앗간에서 해오셨던 쑥떡 생각이 간절하여라.

앞으로 어떤 아이들이 있어 풀내 풀풀 나는 푸른 쑥떡을 그리워할까. 숙덕대는 일들만 많아지고, 쑥떡 먹는 일들은 줄어들었다. 쑥국 아닌 고깃국, 쑥떡 아닌 고르곤졸라 피자로는 우리가 어떤 계절을 사는지 알 길이 있겠는가. 적폐청산 겨울을 걷어내고 영산강 능수버들 꽃바람에 춤추는 날. 춘삼월 꽃샘바람 뚫고 쑥을 한 소쿠리 캐 담은 아낙네가 떼어주는 쑥떡, 우리 어느 때까지 맛볼 수 있을까.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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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그나마 잘 돌아가는 거 ‘전기구이 통닭’으로다 일잔 하자는 말에 차 트렁크 싣고 다니던 자전거 꺼내 도심 순회공연. 손 시려 한동안 안 탔던 자전거도 멀쩡하게 잘 굴러가더라. 농부님네 리어카 경운기도 변함없이 잘 굴러 댕기더구먼.

옛날 훈련소 행군 중에 잠깐 휴식. 멀리 깜박거리는 도심의 불빛들을 구경하면서 ‘솔’ 담배 일발 장전. 그때 교관이 그랬다. “봐라. 너희들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지 않냐.” 일동 좌절 모드. “그러니까 딱 잊고, 군생활 잘해보잔 소리야. 파이팅~.” 누구 떠나보내고 맹신 광신 굽신자 말고는 ‘암시랑토 안 한 세상’이렷다.

밭두렁에 쑥이 푸르러 캐다가 쑥국 끓여먹고, 매화 밭에 벌떼들 구경도 잘했다. 매화차도 덤으로 두어 잔. 나 마셨대! 나마스떼! 일잔 걸치고 찾아온 주당 친구들. 달밤엔 동동주에다 불콰해져서 인도 요기처럼 덥수룩한 수염을 훑어가며 잘 놀았다.

누가 안주로다가 낙지를 사와서 또 먹었지. 언제도 한번 얘기했지만 나는 낙지 요리를 엄청 좋아해. 어려서 갯가에 살며 먹어버릇해서 그런가보다. 느려 터져 흐느적거리는 낙지를 늘낙지라 하는데, 딱 늘러붙어 안 떨어지는 걸 또 늘낙지라 부르기도 한다.

좌우튼간에 ‘탕탕탕’ 잘게 썰어 탕탕이를 해먹든가 끓는 물에 연포탕을 해먹든가 날이 잘 드는 칼만 한 자루 있으면 된다. 이쪽에선 ‘조사 먹는다’라고 하는데, 잘게 칼집을 내는 ‘조사서~’를 거쳐 참기름 소금장에 찍어먹는다. 오이채나 계란 노른자를 풀기도 하고 쇠고기 육회를 겸하기도 하는데, 낙지 요리는 역시 그냥 맨낙지, 첨가물 없이 싱싱한 낙지만 입에 털어 넣는 게 최고.

누구처럼 승복 없이 불복하고 안 떨어지는 늘낙지. 지난가을부터 너무 기운을 빼서 이걸 어떻게 처리 못하면 내가 죽겠는데 어째. 감사 기도를 올린 다음에 어금니에게 맡길 뿐이다. 어금니와 혀와 목구멍을 넘어 검은 어둠 속으로 쓱 사라져가는 늘낙지는 닭똥집보다 맛나고 몸에도 좋다. 우리 건강한 봄날을 살게 되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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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풍에 날아간 비닐들이 탱자나무숲, 매화 가지에 걸려 영화 <라라랜드>에서처럼 막춤을 춘다. 논밭에 농사용 비닐 없이 어떻게 해볼 순 없는 걸까. 바람이 불면 과수농가 나무마다 폐비닐이 걸려서 나풀거린다. 무슨 <고스트 버스터즈> 유령을 보는 거 같아.

낮에 짬이 나길래 마을길 쓰레기를 좀 모아봤다. 검정 비닐, 플라스틱 용기들, 우산대, 버린 시멘트 덩어리, 큼지막한 곰 인형까지 와글다글. 곰은 어쩌다가 이 골짝 구정물에 빠져서 진흙을 뒤집어쓰게 된 걸까. 물에 씻어 강아지 집에 넣어주니 물어뜯고 야단이다. 하다 지치면 그만두겠지. 꽃샘추위 어젯밤엔 눈도 내렸다. 싸우지들 말고 꼬옥 안고 자면 좋으련만.

시내 나가선 청년들이랑 어울리게 되는데 인형 뽑기 돈을 대주기도 한다. 개인은행에 돈을 맡겨놓았나 “쪼금만 보태주시옹!” 그런다. 내가 이래봬도 잡기의 달인 아닌가. 참다못해 토이트레인을 운전, 모두 방울눈이 되어 몰려든다. 헉, 애걔걔~ 급실망들. 나도 안되는 것이 있구나. 열에 아홉 ‘속임수’라질 않더냐. 요즘 인형 뽑기가 유행. 아이들 있는 집마다 인형이 차츰차츰 늘고 있을 게다. 내 돈도 거기 찬조금으로 쬐끔 들어 있을지 몰라. 부디 예뻐해 주시길.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장난감 인형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게 되고, 다음엔 고이 키우던 강아지 고양이를 길에 내다버리고…. 나중엔 사랑하던 친구까지 이익이 없다 싶으면 차갑게 정리하는 잔인한 인간이 될까 무서운 세상이다.

아쿠아리움에 갇혀 사는 흰돌고래 벨루가도 꺼내주고 싶고, 수족관에 갇힌 바닷물고기들 모두 꺼내주고 싶다. 유리 상자에 갇힌 인형들도 한바구니 꺼내주고 싶어라. 피자배달 총각도 그 정신없는 속도에서 구출해주고 싶고, 봄꽃이 환장하게 핀 어떤 날엔 당신을 비좁은 사무실 책상에서 꺼내와 여기 뒷산 꽃길을 같이 걸으면 좋으련만. 올핸 대통령도 우리 손으로 뽑아야 한다. 재미 삼아 후딱 뽑아서는 안될 일이다. 재벌과 기득권층의 꼭두각시를 뽑아서도 안된다. 수수십년 적폐를 털어낼 이. 이 나라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만 해도 괜찮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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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마마한 강아지가 배를 내놓고 누워서 드르렁 콧노래. 불황과 탄핵정국으로 사람 세상은 어디서나 피죽바람인데 개 팔자가 상팔자, 조금씩 약이 오를 정도다. 동네에 청소차가 건전가요를 틀어놓고 달려오면 그때서야 부스스 일어난다. 이름에도 아예 잠이 들어 있는 프란시스 잠, 자연생활을 예찬한 예이츠 같은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노래들을 요새 주워들었다. 하나같이 밍밍하고 나른한 낮잠을 몰고오지. 우리 대중가요는 걸그룹 일색이고 영어 가사도 절반쯤. 해외 팬들 땜에 그러는가. 어려워서 못 따라 부르겠는데 중·고딩 친구들은 대단해. 인디음악은 아껴주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시상 트로피를 팔아 월세를 내야 한다니 원. 대중가요 가사들은 대부분 러브스토리. 가끔 진지한 고민이 담긴 가사와 멜로디 좋은 노래들이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요새 뜨는 노래는 역시 건전가요. 고생이 많으신 태극기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 ‘좋아졌네’ ‘잘살아보세’ 이런 노래들, 징그럽게 가난하던 시절 건전가요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사전에 의하면, 국가의 음악통제정책의 일환으로 관변단체의 주도하에 창작되어 불린 노래. “이리 보아도 좋아졌고 저리 보아도 좋아졌네.” 급기야 이 세대는 박정희 작사·작곡 ‘나의 조국’을 애국가만큼 따라 부르게 되는데, “백두산의 푸른 정기 이 땅을 수호하고 한라산의 높은 기상 이 겨레 지켜왔네. 삼국통일 이룩한 화랑의 옛 정신을 오늘에 이어받아 새마을 정신으로 영광된 새 조국에 새 역사 창조하여…” 노래인지 염불인지 마하반야 바라밀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은 5공 시절과 맞물려 건전가요 축에 진입. 최근엔 박사모에서 민중가요 가수 안치환의 히트곡 ‘위하여’를 느닷없이 합창. 이 노래는 정체를 모르고 따라서 부른 케이스다. 여하튼 국민화합에 일조한 노래가 되었구나. 나는 불건전 가요를 좋아하는 불건전 인간인가. 노래방 가서 찬송가 찾는 재수 없는 목사가 아니어서 업계에 죄송하다. 그런데 노래방은 수천만년 된 거 같다. 누가 좀 델꼬가줘잉. 국민이 승리하는 날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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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후군 형이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눈곱이 심하게 끼고 금방 천당에 갈 것 같았는데 살아남아 연년생인 나랑 쌍둥이처럼 자랐다. 호적도 생일도 들쑥날쑥 엉망인 유년기. 아버지의 목회는 장애인 아이의 존재로 무지한 촌로들에게 외면당했다. 누나들은 일찍 도회지로 도망 나갔고, 나는 장애인 형의 도우미요 단짝 동무로 남게 되었다.

일원상 부처님을 모신 원불교 교무님 아들도 아닌데 형은 동그라미 그리기를 좋아했다. 나는 학기 초마다 새 교과서를 받아오면, 설레는 마음으로 들춰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형은 그 틈을 이용해 교과서에다 색연필 볼펜 크레용으로 동그라미를 빼곡히 채워 넣었다.

사정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냉큼 종아리를 걷으라 호통을 치셨다. 형 이야기를 꺼냈다간 동무들이 또 ‘병신 집구석’ 어쩌고 놀릴 게 뻔해서 때리시는 대로 그냥 맞았다.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님은 목사관 곳곳에 그려진 알 수 없는 동그라미를 목격했다. 벽지에도 그려진 수많은 동그라미. 선생님은 내 방에 웅크리고 있던 동그라미 화가를 만났다. 선생님은 내게 곧바로 사과하셨고 나는 그제야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인척 중 한 분이 왜 이런 이야길 책에 쓰냐며, 무슨 가문의 자랑이라고 그런 소릴 바깥으로 내뱉느냐고 정색하셨다. 그 맘도 헤아리지만, 내가 오늘 순례자가 되고, 슬픈 사연들을 짐작하는 작가가 되어 있으니 무엇보다 소중한 기억인 게다. 더 사랑해주지 못하고 작별한 후회와 반성뿐. 제 자랑에 치우친 교과서로는 도무지 담아낼 수 없는 형의 동그라미들.

수레바퀴 같은 사람의 진실과 사랑의 역사. 누구네 집구석 자랑을 하려고 급하게 쓴 국정 역사교과서엔 그런 진실과 연민, 자성 반성 같은 게 담겨 있을 리 만무하다. 목적이 애초 그런 것인데 어떻게 선의라며 받아들이라 말하는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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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 폭설의 섬, 북해도를 방문했다가 어떤 가게에서 앙증맞은 보온병 하나를 발견. 요새 유행하는 롱패딩, <스타워즈>의 다스 베이더가 입을 법한 긴 옷, 거기 호주머니에 들어가면 딱 좋을 만한 크기. 즐겨 마시는 레몬차 자몽차 모과차 그리고 커피도 담아 가지고 마시는데, 그래 요즘 내 호주머니는 항상 따뜻하고 훈훈하다. 당신도 한번 손을 넣어보세요.

체코의 소설가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 <너무 시끄러운 고독>. 지하 작업장에서 노자의 <도덕경>을 압축기로 분쇄하며 겪는 감상. 예수와 노자가 맥주를 마시며 담소하는 듯한 장면들. 지하저장고 수제 맥주관이 전 세계로 배급되는 상상을 해봤다. 체코 대통령은 그런 거나 좀 하지 뭐하시나. 나도 거기다 기다란 관을 하나 연결할 수 있다면 기분이 째지겠다. 여름에는 체코산 맥주를, 겨울에는 따뜻한 북해도 온수와 차를 그렇게 제공받고 싶다. 집집마다 붉은색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 쏟아지는 더운 물.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건 더운 물 덕분이지.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책을 덮었는데, “자유나 저항 같은 거창한 단어보다 연민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자유나 저항이 맥주 같다면, 연민은 더운 물, 따뜻한 차 한 잔. 보온병과 입을 맞췄다. 여자 말고 보온병이랑 올겨울 참 많은 키스를 나누고 산다.

따스운 방에만 머물면 알 수 없는 고마움. 겨울산행을 할 때나 바깥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보온병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가. 맛 좋고 향 좋은 차가 꼭 아니더라도 온수 한 잔에 번지는 온기. 추운 밤 촛불광장에서 나누는 음료들도 그렇다. 가슴마다 덥혀주는 온기. 사람에 대한 정성과 연민은 오래오래 우리들을 인간으로 빛나게 만들어줄 것이다. 별들이 빛나는 건 온기 있는 생명체들이 살기 때문. 온기를 잃으면 어둠 속으로 영영 사라지고 말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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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 훈련 하면 역시 태~극기. 어려서 길을 걷다가도 애국가가 울리면 길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바쳐야 했다. 모른 척하고 걷다가는 선생님에게 걸려 귀싸대기를 얻어맞아야 했다. 누구처럼 무릎 꿇린 채 따귀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랬다. 나도 증인이다. 우리 교회 형이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목사님 설교를 곧이곧대로 알아먹고 대들었다가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유신에 반대하는 이런 엑스 소리를 들으며 발길질에 날아갔다. 태극기는 그렇게 무서운 대상이었다.

공기놀이를 하다가도, 줄넘기를 하다가도 일동 일어섯! 국기가 있는 학교 교정을 향해 동작 그만, 얼~음. <뽕>이나 <어우동>을 보러 극장을 찾은 어른들도 일동 차렷! 국기에 대한 경례.

그 시절 그 풍경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있는 갑다. 관공서 말고 태극기가 항상 걸려 있는 쪽은 무당 점집 같은 곳. 동그라미 태극 문양이나 눈썹처럼 둘러친 괘는 고대 샤먼 세계와 떼어놓을 수 없는 상징들. 나라 무당 만신들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뜀뛰기를 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대표선수 마사이족보다 더 높이 뛸 수가 있다. 또 우익 집회에서도 항상 태극기는 단골손님. 우리나라 우익들은 신기하게도 미국 성조기까지 양손에 들고 응원이다. 십자군을 자처하면서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했다니 우리가 이렇게 큰 대국인지 미처 몰랐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연방이 부럽지가 않구나.

지금은 쏙 사라지고 없지만, 한때는 한반도기가 유행이었다. 남북단일팀 탁구도 재밌었고 축구 실력도 엄청났지. 낮은 단계 통일이라도 금방 오는 줄 알았다. 한반도기와 태극기, 인공기가 친근하게 펄럭이고 남북이 얼싸안으면서 같이 울었다. 몇 해가 뭔가, 육이오 때로 후퇴한 지금 분위기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을 그때는 함께했구나.

가까운 면사무소에도 태극기와 나란히 새마을기가 걸려 있다. 새마을기는 내려야 할 때가 된 듯싶다. 너무 오래 새마을이었다. 태극기는 통일의 그날까지 펄럭일 것인데, 독재자처럼, 세월호 선장처럼, 동작 그만! 가만히 있으라고만 하지 않으면 천번 만번 경례해주마. 흔들어주마.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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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요쪽 동네에선 대부분 인도의 힌두교를 신앙하는데 아멘 대신 ‘긍게’가 화답 멘트. 긍게란 강력한 동의를 뜻하는 말로 ‘긍게 말이시’를 한번 뱉으면 되돌릴 수가 없다. 이후 밑도 끝도 없이 긴 설교를 들어야 한다. 고운 말도 석자리라고 대화 중에 긍게는 그러니까 정도껏 해야 한다. 인도나 여기나 신의 성호는 ‘시바’로 동일하다. 시바 중에도 ‘느그미’가 들어가면 대왕 시바신. 웬만한 시바신도 모두 그분 이름 앞에서 눈을 내리깔아야 한다.

교회에서도 회의하다 열불이 나면 집사님들이 시바신을 모셔버리는데, 여호와는 그때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만다. 여호와나 목사나 조용히 잠자코 있는 게 상책. 누구 입에서 ‘염병하네’ 어쩌고가 튀어나오게 되면 교회가 얼마간 영하권 날씨. 남녘에서 머무를 때 욕도 솔찬이 얻어먹고 살았다. 우리도 남들처럼 박수치고 찬송을 부르자는 집사님에게 미국에나 가서 그렇게 하라 했더니만 대번 ‘빨갱이 목사가 염병을 하네’가 돌아왔다. 같이 박수를 쳐줄 교인들도 늙어 힘 빠진 상태라 호응도 없고. 발길 끊었다가 내가 사임하자 다시 나오신다던가. 드디어 할렐루야 세상이겠다. 살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날마다가 놀렐루야인데, 할렐루야는 때에 따라 등 따시고 배부른 지배자들의 구호. 좋은 말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해야 한다. 누가 시킨다고 따라 외칠 싸구려 구호가 아니렷다.

염병에 이어 미국은 콜라병, 아니 꽐라병이 대세나 봐. 청교도들이 제멋대로 신약 구약을 떼더니만 이젠 마약에 손댔나. 청교도가 아니라 절교도. ‘절교하자!’가 그들의 입버릇 구호. 일치 연대 연합 연민 관용 배려 공동선 같은 말을 사전에서 아예 지운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 깨진 콜라병을 휘두르며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포도주도 콜라도 친구랑 나눠마셔야 맛나지. 자기들만 울타리 치고 친구 필요 없이 살겠다니 한심하고 암암해라. 이러다간 그쪽도 탄핵밖에 답이 없는.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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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에선 꾸지람을 “머시락 한다”고 표현한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 지청구를 좀 해야겠다 싶으면 “자네가 자꼬자꼬 머시락을 잔 해야 안쓰겄능가. 아조 이참에 버르쟁이를 단다니 고채놔야 쓰네잉. 항시 그라고 싸고만 동께로 아그들이 저 모냥 아닝가배.” 아부지 어무니가 앉아서 이런 말씀을 나눌 때는 잽싸게 자리를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겠다. 거시기 머시기 할 때 그 머시기가 머시락이 되기도 하는데, 머시락 할 때 마음을 닫아걸고 삐져버린 아이는 부처님도 대책이 없는 것이다.

제 자식이라고 끼고돌며 버르장머리 없이 키우면 큰 화근덩어리가 된다. 따끔하게 꾸중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반듯하고 성실하다. 아이를 망치려면 칭찬을 트럭으로 갖다가 해주고, 원하는 대로 청을 다 들어주고, 버르장머리 없이 살게코롬 두둔해주면 된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을 보면 그 부모들의 입이 궁금해진다. 국정농단 사태의 한 축이 된 아이도 줄줄이 욕 사탕이더군. 엄마 아빠 이모 삼촌 아저씨님들 입들은 거기다가 곱빼기 짜장 짬뽕이겠지. 교양은 스테이크 고기나 썰 때 나오는 것일 테고.

눈보라가 뿌려놓고 간 설경 위로 철새들 날고 별은 배나 붉어졌어라. 시와 노래로 입을 헹구고 새와 별로 눈을 씻는다. 곧 설 명절. 꼬까옷 입고 가족들 만나 같이 밥 한 끼 먹다가 괜한 말 한마디에 울상이 되고. 누가 좀 머시락 했다고 삐지고 그러지 말고 “넹! 알았엉!” 하고 웃어넘기면 다 인생에 좋은 보약이 된다. 좋아하고 그러니까 잔소리도 하고 머시락도 하는 것이지. 밉고 싫으면 포기해버리고 납부닥(얼굴)을 안 봐버리는 것이다. 날 넘어 가부렀다, 날 넘 묵었다, 날 넘어가꼬 어쩌고 할 때 ‘날 넘다’라는 말도 재미있다. 칼날을 너무 잘 갈아도 문제. 날 넘었다는 건 그런 뜻.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고 귀한 조언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어영부영 살다보면 인생 망가지는 거 그거 급행열차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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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꺼먼 키다리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별도 없는 시꺼먼 밤, 공기의 울타리 시꺼먼 산. 시꺼먼 혀를 궁글리는 차우차우 강아지들, 시꺼먼 내 그림자가 사는 집마당. 서로 시꺼먼 눈동자를 주고받는 까무잡잡 까마귀들. 벌겋게 달아오르기 직전의 시꺼먼 철제 난로, 흰눈에 덮이기 앞서 시꺼먼 기와 지붕. 검은 현무암으로 깎은 석등과 검은 돌들. 동네 앞길을 데구루루 굴러가는 리어카 바퀴도 블랙. 굶은 고라니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올 때는 외등도 촉이 나가 숨죽이는 블랙홀. 거무스레 냇물에 잠겨 있는 징검돌을 밟으러 밤중에 나가보면 시냇물조차 먹물처럼 시꺼멓고….

비틀스가 노래한 ‘블랙버드’를 사랑한다. “어둠 속에서 검은 새가 노래하네. 날개가 부러져 파닥거리면서. 오직 지금 이 순간을 기다려왔네. 침몰한 눈을 껌벅이며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검은 새는 눈을 떴네. 생을 다해 자유를 꿈꾸는 새여.” ‘펄잼’의 보컬인 에디 베더가 이 노랠 기가 막히게 불렀다. 자리한 모든 관중들이 따라서 새소리를 내는데, 볼 때마다 전율케 하는 감동이 있다.

문화융성은 개뿔, 문화충성의 시대를 만들려다 들통이 난 블랙리스트 사건. 이번만은 뿔난 블랙버드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다. 새들은 경계 없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유혼을 퍼트리는 것이 소임. 낮에는 흰 구름과 흰 새, 밤에는 검은 산과 검은 새. 만약 새들이 휘파람 소리를 더 이상 내지 않는다면 지상은 적막한 동굴 속일 뿐.

전설에 따르면 하늘을 덮을 만큼 크고 영험한 검은 새가 한 마리 있었는데, 밤새 숯검댕이 같은 어둠을 집어삼켜야 하는 운명이었단다. 마침내 어둠을 다 삼킨 뒤 그걸 뱉어내자 불덩어리가 되었고, 아침 태양이 그렇게 해서 떠올랐다는 얘기. 그간 어둠을 집어삼켰다면 이젠 뱉어내야 할 때. 침몰하는 선상의 아이들아. 가만히 있지 말고 헤엄쳐 나오라. 바다여! 아이들을 어둠 밖으로 빨리 내뱉어다오. 블랙리스트 검은 새들도 주눅들어 주춤하지 않기를. 생을 다해 자유를 노래하는 검은 새들이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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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에 가면 대웅전 곁에 가지런히 놓인 털 고무신. 스님 보살님 처사님 차례차례 벗고 올라간 석단. 안에 몇 분이 계신지 신발 켤레를 보면 알 수 있다. 전도사 시절부터 나무마루가 깔린 교회를 다녔었는데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일을 잘했다. 상갓집에 가면 누군가 그 일을 맡아서 한다. 눈에 띄지 않는, 보이지 않는 음덕들이 쌓여 신발이라도 찾아 신고 다닐 수 있는 것이다. 털신을 찾다가 신발장에 쌓인 먼지를 보고 청소를 시작했다. 끝 구석엔 어머니 신으시던 구두가 장화 뒤에 숨어 있더라. 꼬맹이 때 아이가 신던 신발도 한 켤레 개켜져 있었다. 버리지 않기로 마음먹고 깨끗이 닦아 야물게 봉해두었다.

쓰촨성 청두 출신 바진의 단편소설 가운데 <아버지가 새 구두를 사오실 때>가 있다. 나라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거사에 뛰어든 아버지는 아이와 약속한 구두를 사주지 못하고 결국 붙잡혀 처형되고 만다. 아이는 눈뜨자마자 구두부터 찾았으나 아버지조차 어젯밤 집에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훗날 아이는 어머니 상을 치른 뒤에야 아버지 소식을 유품으로 알게 된다.

 

윤흥길 소설 <아홉 결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주인공 권씨, 구두 하면 또 떠오르는 인물이지. 광주대단지사건이라고 칠십년대 경기 성남 도시빈민들의 생존투쟁기가 녹아든 소설. 비틀린 인생 권씨에겐 반들반들 잘 닦아놓은 구두란 인생의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가차 없이 돌아오는 건 구둣발과 군홧발. 행방불명된 권씨가 시방 결기 넘치는 성남 시장으로 살아 돌아온 걸까?

신발장을 둘러보니 이건 어디서 났고, 어떻게 샀는지 기억이 새록새록. 신발 고르는 취향도 조금씩 변했구나.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들은 대부분 군화를 몇 해 동안 신게 된다. 군대축구라고, 그거 신고 월드컵 나가면 브라질도 오대빵 십대빵 이길 수 있다. 나도 한 켤레 있었는데 곰팡이가 슬어 그만 버렸지. 박사모나 무슨 연합 어르신들은 어떻게 지금껏 관리를 잘하셨는지 궁금하다. 구둣발차기 하기에도 튼튼하고 좋겠는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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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새파란 귀때기를 두 손으로 감싸고서 밀밭과 까마귀가 있는 동네 어귀를 내달렸다. 여름엔 사이프러스나 올리브나무가 자랄 것같이 따뜻한 남프랑스 어디 같은데 겨울 되면 백팔십도 달라져서 파타고니아, 우수아이아 어디 빙하마을 같아. 거미줄처럼 내리는 차가운 빗물과 밤사이 서릿발. 구름이 새까맣게 얼룩진 날엔 눈보라가 들이치기도 할 것이리라. 김치 치즈 하면서 웃고 서 있는 건 자작나무뿐. ‘갈봄 여름 없이 산에는 꽃이 피네’ 그랬다면 이젠 눈꽃이 피어날 차례.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자 흰 산토끼는 자작나무 말고는 어디 마땅히 숨을 곳을 못 찾은 모양이다. 산길에 허둥대는 토끼를 만났는데 실눈을 뜨고 못 본 척해주었다. 토끼는 씰룩 기운을 모은 뒤에 다시 비탈길을 뛰어 달렸다. 버스를 놓칠까봐 뛰어가는 아이처럼 잽싸고 날래게. 누군가 그토록 원했던 ‘우주의 기운’을 아마도 토끼가 저 혼자 차지해버린 걸까. 조그만 몸에서 무슨 기운이 저렇게 펄펄 나는 거람.

“내가 기운 없어 보일 때는 기운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기운을 내지 않는 거라고 나는 옆에 있는 사람한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낼 필요가 있을 때는 무슨 기운이든 기운을 냈다) 듣는 사람은 의아해했으나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호랑이들도 만족스러워했다.” 정현종 시인의 ‘기운’이란 시다. 정말 맞는 말씀이다. 기운은 있고 없고가 아니라 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프로, 세계테마 어쩌고에서 나를 봤다며 동네 부녀회장님이 그랬다. “세계적으로다가 돌아댕기시는 양반입디다잉. 퇴깽이(토끼)보다 겁나게 깔끄막(산고개)도 잘 올라타시등만.” 호랑이도 있고 뭣도 있고 하는데 하필 토끼가 뭐람. 막걸리 포도주에 눈이 빨개 살아가니 그러셨나. 그래 우주의 기운까지는 무리이고 새해 기운이나마 받아 누려야 할 시간. 산토끼가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우리 모두 토끼의 뒷다리처럼 야물딱진 뜀박질로, 기운을 내서 살아가자. 기운은 내야 하는 것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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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오리들이 ‘살처분’되고 있다. 이건 정말 대학살극이라 해야 맞겠지. 모두 인간의 육식 습성을 유지하려고 기르던 불쌍한 식용 가축들이렷다. 해마다 반복되고 있는 이 재앙, 이 죄악을 막을 길은 정녕 없는 걸까. 한없이 미안하고 죄스러운 일이다. 다른 나라들도 이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가슴이 찌릇찌릇 아프고 참 많이 속상하다.

닭과 오리를 기르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 나는 아침이면 달걀보다 배나 큼지막하고 새하얀 오리알을 집어 들고서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곤 했었다. 목사관에 딸린 가축우리엔 닭, 오리, 토끼 말고도 염소까지 길렀지. 뿔 달린 염소는 자꾸 나를 쿡쿡 찌르거나 밀쳤다. ‘참피온’이라 불리던 염소 대장은 뿔 자랑을 시도 때도 없이 해댔다. 첨탑 가까이엔 여러 마리 집비둘기도 길렀어. 비둘기들은 멀리 날아갔다가도 오후면 집에 돌아오고 그랬다. 오리떼를 뒷개울에 풀어놓기도 했는데 그들도 비둘기처럼 저녁마다 귀가를 했다.

닭을 잡거나 오리를 잡는 일은 매우 특별한 날. 아버지의 선후배 목사님들이 오거나 집안 어른들이 찾아올 때. 어른들은 유쾌한 날이었지만 나는 슬픈 이별의 날이었다. 지금껏 고깃살을 그닥 찾아서 배부르게 즐기진 않는다.

나는 콩을 심기도 하고 두부를 좋아해 두부 요리를 즐긴다. 두부김치에 둘러앉으면 몇 순배를 마셨는지 막걸리가 동이 나고 없어져. 담양천변 국수거리에 가면 두부김치가 으뜸 안주. 평소 두부를 잘 먹지 않던 이들도 그 평상에 앉으면 두부김치를 찾게 된다. 두부찌개에단 강진 구강포나 장흥, 완도 뻘구덩에서 건진 바지락을 넣어야 제맛이 난다. 김치찌개를 끓일 때도 두부 한 모 썰어 넣으면 김치와 두부가 조화를 이루어 군침 넘어가게 만들지.

조류인플루엔자, 구제역이 도는 얼마 동안이라도 집집마다 식단을 바꾸게 될 터. 연중 닭과 오리고기를 탐하고 사는 것도 죄가 되는 일이겠다. 완전히는 어렵더라도 육식 습관에서 조금이나마 놓여나는 계기를 삼았으면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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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면 성탄절이다. 올해는 탄핵종이 땡땡땡. 서글픈 나랏일 때문인지 덩달아 캐럴도 사라지고 없어라. 여기는 담양이고 건너편 땅은 빛고을 광주. 빛을 담는다 하여 담양인데, 이곳엔 빛깔 좋은 여우들이 굴을 하나씩 차지하고 살았단다. 무등산엔 영험한 호랑이가 살고 있어서 담양 추월산이나 병풍산, 삼인산 자락은 여우들 차지. 호랑이 등쌀에 ‘밀린’ 여우가 나름 방귀를 뿡뿡 뀌며 재미지게 살았겠지. 그러다 한 여우는 백살을 먹고 구미호가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드라마.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고. 아무튼 구미호가 학정을 일삼던 원님을 내쫓았다는 이야기. 백성들은 독일어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그라제’를 연발하며 의인들과 함께했다. 오랑캐 말고 ‘그랑께’, 비아그라 말고 ‘그라지라’를 입버릇으로 말하고, 불어로는 ‘그래 불어’, 정의에 맞장구를 치면서 참세상 올바른 나라를 꿈꿨다. “뭐시라고?” 포악한 임금이 나타나거나 왜군이 쳐들어온달지 하면 죽창을 깎아들고 별보다 환한 횃불을 높이고서 저 산을 넘기도 했었다.

남녘교회 목사 때는 성탄절마다 아이들과 함께 전나무에 왕방울을 달면서 성탄 장식을 했었다. 북녘 동포, 봉수교회에 성탄엽서도 한 장 써서 달았지. 보내진 못했지만 해마다 그랬었다. 국정원에도 잡히지 않는 꼬리 아흔아홉 개 달린 구미호 편에 보낼걸 그랬어. 누군 대놓고 편지도 보내고 그랬더라만…. 참, 북조선 그리스도교연맹이 올해로 70주년이란다. 축하 축하. 통일되면 북녘 친구들이랑 백두산 소나무에 성탄 장식도 하고 그래야지. 차가운 바람을 뚫고 우리는 따순 봄나라로 갈 거다. “이리 붙어라!” 놀이처럼 통일나라로 갈 사람은 이리 붙어라!

여우골 성탄절. 나는 또 전시 놀이를 시작했어. 오래된 미곡 창고를 개조한 담빛예술창고. 전시와 곁들여 일본인 가수 친구 사토 유키에랑 아시아 평화를 기도하는 음악회도 열고. 평화와 통일, 거창한 구호 같지만 나부터 우리부터 작고 소소하게 시작하면 되는 거다. 평화나 통일은 대박이나 로또가 아니야. 차근차근 작은 하나됨부터 일궈가는 거지. 나부터 우리부터, 여우와 토끼도, 아기 예수도 함께하는 이 걸음마. 이 거룩하고 장엄한 행진에 같이해요!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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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픈 시절 찬물에 간장을 한숟갈 타서 마시곤 했다는 이야길 아시는가. 애들이 들으면 짜장면 시켜먹지 왜 그랬느냐 찡그리겠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가 아니었다면 배고픈 시절도 아마 없었을 거다. 찬물에 간장을 타 먹어야 하는 일도 없었으리라. 해방이 되고 노동자들은 정말 열심히, 신물이 올라올 만큼 일을 했다. 배고픔과 무식을 깨쳐보려 지문이 닳도록 일을 하고, 야학도 다녔다. 자녀교육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근면한 노동자들 덕택에 나라경제는 쑥쑥 성장해갔다. 하지만 야간 잔업은 들어봤어도 야간 수당은 들어보질 못했어. 닭장 아파트 한 채 장만하는 일도 감지덕지. 부정부패가 없고 고른 분배를 깨우쳤다면 북유럽이 뭐야.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선진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멀쩡하던 제 나라를 군홧발로 짓밟은 똥별들이 있었다. 총칼로 무장한 별똥부대는 자본가들과 쿵짝짝이 되어 권력을 독차지했다. 이후로 자자손손 그들만(그들 자녀만) 행복했다. 그들이 세운 정당은 누구처럼 자주 이름을 바꿔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잠시 흙탕물을 튀겨가며 싸우고들 계시지만 금세 재건하여 또 한번의 파국을 몰고 오겠지. 악으로 깡으로, 군인 정신으로 세운 정당이 쉽게 문을 닫겠는가.

세상이 어찌 되든 말든 찢어지게 행복해서, 웃을 때 입매가 상상할 수 없이 넓어지더군. 진실 앞에선 모르쇠로 일관해야 하니까 입을 꾹 다물지만, 평소엔 누구처럼 간장병 한통이 들어갈 만큼 화끈하게 웃을 수 있다. 즐겁고 기쁘니까 웃을 테지. 불행한 일을 당한 이웃들 앞에서 한껏 웃는 건 대체 무슨 취미일까. 철면피 강심장들만 골라서 자리에 앉히는 모양이다. 난롯불에 살짝 구운 김을 싸 먹으려고 간장 종지를 찾았는데 한참 못 찾다가 이제 찾았다. 속히 민주주의를 되찾고 싶다. 눈 오는 밤에는 격문이 아닌 시를 쓰고 싶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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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알아보지 못해 툭하면 이를 드러내고 짖어대는 개. 얼마나 멍청한가. 그래서 똥개 소리를 듣는 모양이다. 저문 골목길 똥개들이 별똥별을 집어먹고 별별 소리들로 짖어대다가 턱주가리가 아파선지 끙끙 잠이 들었다. 개가 한 푸닥거리 마친 뒤 이번엔 고양이 차례. 스님처럼 가부좌로 앉아 심야심경인지 반야심경인지를 옹알쫑알 외우는 보살 고양이. 하늘에서 고운 눈가루가 뿌려지자 고양이는 아궁이 불을 찾아 후다닥 뛰어간다. 나무껍질에 기름을 품은 자작나무 한 그루 어디선가 자글자글 불타고 있을 것이다.

나도 올겨울 처음 아궁이 가득 불을 지폈다. 굴뚝으로 연기가 푸르릉. 담배처럼 생긴 굴뚝 연통은 연말에 산타 할아범이 청소를 해주시겠지. 밀걸레 대신 흰 수염으로다가 깨끗이.

어떤 집들은 영하 한파에 아랫도리조차 얼어붙겠다. 장가도 한번 못 가보고 늙어버린 사내들이 울면서 술 취하는 밤. 뻣뻣한 어깨를 아스스 떨며 한잔 또 한잔 부어대면 이내 차갑던 방이 찜질방처럼 달궈져. 촛불집회를 하는 것도 아닌데 담배 연기를 뺀다고 켜놓은 촛불은 저 혼자서 타오르며 시국기도 중. 마른 풀잎들 서걱거리는 흙길로 부연 먼지를 뿜으며 떠난 막차는 텅텅 비어 마치 유령선만 같아라. 귀신 유령도 떠나버리고 없는 동네는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목사님은 “고요하야 거룩하야” 찬송을 바꿔 불렀다가 권사님한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고 시무룩. 또 새내기 전도사는 진학반 고딩들이랑 담배를 나눠 태웠다가 들켜 장로님에게 끌려가 단칼에 탄핵을 당한 모양. 마을버스에 승객이 또 한 명 줄게 생겼다.

안주가 떨어지면 김장김치에 숨어 있는 굴, 석화를 골라 빼먹으면 된다. 휘청거리는 사내들은 대부분 이 시간 몰래 김장독을 뒤지고 있겠다. “일하다 죽은 노동자는 개끔(갯값)이나 던져주고 거깃다간 수백억을 갖다 바쳤담서? 트랙터로 싹 밀어부러야 쓸 시상인디 왜 길을 막고 지롤이여잉.” 담뱃값은 올려놓고, 담배 못 끊을 세상을 또 만들어놓고. 집집마다 한숨인지 연기인지 담배와 촛불이 지긋하게 타고 있는 겨울밤이렷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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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난 일인데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종편 프로그램에서 수차례 출연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뭔 소리야 웃고 말았지. 날 몰라도 한참 모르는 방송작가의 장난전화(?)가 그저 깜찍했어. 신문에다 ‘시골편지’를 오랜 날 연재하는 아저씨니 아마 오지에 은둔하여 지내면서 누렁이랑 산나물 뜯으러 댕기는 촌사람으로 짐작한 모양. 다음엔 서울이나 뉴욕에 살면서 도시편지를 연재해야 할랑가 보다. 정관장 홍삼엑기스도 잘 안 빨아먹는데 멧돼지처럼 낙엽 속을 뒤지며 산삼, 더덕, 영지버섯‘씩이나’ 캐러 다니겠는가. 어려서는 땅에 달라붙은 땅꼬마였는데 고딩 때 좀 키가 웃자라 천만다행 중간키는 어떻게 되었다. 대학생 아들놈은 백팔십을 훌쩍 넘었으니 유전이 문제가 아닌 건 분명해. 하지만 인기 좋은 키다리 아저씨도 아닌 건 사실. 키 큰 사람들을 보면 고산병 때문에 고생이 적지 않겠구나 주제에 남 걱정을 하기까지 해. 비아그라를 먹으면 고산병에 효과가 있다는 청와대발 유언비어가 참으로 우습고 재미있다. 왜 고산병을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무서워 않으면서 고산병은 무서운갑다.

비우그라 하야하그라 아니 비아그라는 고산병에 시달릴 키다리 아저씨들이 즐겨 드셔야겠다. 높은 데는 공기가 희박할 텐데 큰 키로 얼마나들 숨쉬기 힘드실까. 여자들은 키다리 사내를 무조건하고 좋아하더라. 나는 이처럼 하늘이 지켜주시고 절제를 안겨주신 덕분에 별 탈 없이 중년의 고독과 소소한 애정관계를 즐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권세 높고 지체가 높으신 분들이 고산병에 시달리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하나님도 높디높은 천상세계 고산병에 괴로워하시다 인간의 몸을 입고 지상세계에 내려오셨다는 이야기. 성탄을 앞두고 대림절이 시작되었어라. 천상을 떠나 낮고 낮은 민중의 친구가 되었다는 하나님 아들 예수. 고산병 때문에 벌어진 이야기일까. 비아그라로는 소용없다. 고산병은 이렇게 무조건, 긴급히, 하산해야지 새 길이 열리는 법이다. 하산하그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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