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03건

  1. 2016.08.25 태권도 입문기
  2. 2016.08.18 수북면 북방처녀들
  3. 2016.08.11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4. 2016.08.04 천렵놀이
  5. 2016.07.28 풀벌레 캠핑
  6. 2016.07.21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7. 2016.07.14 개 돼지 염소
  8. 2016.07.07 물방울, 빗방울, 눈물방울
  9. 2016.07.01 섬마을 소금밭
  10. 2016.06.23 리오넬 메시와 10시
  11. 2016.06.16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12. 2016.06.09 귀 청소
  13. 2016.05.25 채식주의자
  14. 2016.05.18 봄날의 코스모스
  15. 2016.05.11 귀곡산장
  16. 2016.05.04 봉하막걸리
  17. 2016.04.27 일판 사랑판
  18. 2016.04.20 버버리 곡꾼
  19. 2016.04.13 평범한 사람
  20. 2016.04.06 사우나 싸우나

냇물에 둥둥 뜬 오리들. 발바닥을 쫙 편 채 낮잠을 자고 있다. 저래야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겠지. 오리 선생에게 수영이나 배워볼까? 타잔만큼 자유형 헤엄을 잘 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배영, 접영까지 흉내는 낼 줄 안다. 그러나 수영장에 가려면 도심까지 멀리 나가야 한다. 남세스럽게 대낮에 아낙네들이랑 옷을 홀라당 벗고서 뱃살 훔쳐보기를 하고 싶지는 않아라. 게다가 우리 동네 개울보다 깨끗하지도 않을 것이다. 독한 락스 약품들을 풀어 청소를 한다던가. 

건강을 고려하여 운동을 하나 하긴 해야 할 나이다. 또래 친구들은 대개 골프에 빠져 있더라. 마당 잔디밭은 골프장 수준으로 단정하게 유지하고 산다. 구멍만 하나 파두면 여기가 바로 골프장. 골프는 호주나 아일랜드 초원에서 태어났더라면 벌써 프로급이 되어 있을 터. 천당에 가면 골프장이 많다더군. 예수님은 양떼들 노니는 푸른 초장에서 주로 골프를 치시는데 회원권을 사려면 십일조를 해야 한다니 나나 당신은 그냥 포기하고 다른 운동을 찾자. 


출처: 경향신문 DB

오랫동안, 매우 꾸준히 요가를 해왔다. 요가원을 직접 차리기까지 한 친구 덕분에 인도 요가 성지인 우타라칸드 지방의 도시 리시케시에 다녀오기도 했다. 며칠 수료했다고 종이딱지도 주긴 하더라만 어디 뒀는지조차 모르겠다. 요가는 속성 라이선스로 해결될 무엇이 아닌 무구하고 심오한 세계렷다. 

칼잡이 검도를 배워볼까도 했는데 목검을 들어 누굴 찌르는 건 흉내조차 내기 싫더라. 장고 끝에 태권도장을 찾아갔다. 한국 사람이 태권도 고려, 금강, 태백 품새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않겠어. 

꾸무럭꾸무럭 일어나 눈곱이나 간신히 떼고 살다가는 인생이 너무 허망하게 흘러가 버릴 것 같아 더 늦기 전에 월사금을 내고 등록까지 마쳤다. 형편이 어려워 도장을 그만둔 아이들이 생겼다고, 도생이 줄어 사범은 기운이 쪽 빠진 얼굴이었는데 나를 보자 생기가 돈 눈치였다. 아이들이랑 동무삼아 오리주둥이처럼 샛노란 학원차를 타고 다닐까 흐흐….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추픽추  (0) 2016.09.08
야경꾼  (0) 2016.09.01
태권도 입문기  (0) 2016.08.25
수북면 북방처녀들  (0) 2016.08.18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0) 2016.08.11
천렵놀이  (0) 2016.08.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구름이 끼고 까물까물하면 오만 곳의 삭신이 쏙쏙 쏙쏙쏙 쑤신다는 할매들. 날이 이렇게 화창한데도 나아질 기미가 없다. 당최 모르겠는 그놈의 삭신. 깻잎 자라는 둔덕 고랑을 예초기로 드르르륵 좀 쳐드렸다. “벨라도 올해는 심도 없고 뻗치요야. 눈까풀이 가마니때기 맹크롬 뚜꾸와진 거 같고 인자 눈감을 날이 가차운갑소.” 잠깐 내려와 지내던 큰아들네가 도로 올라간 뒤, 밭고랑은 풀고랑이 되어버렸다.

“젊어서도 그라고 아프셨소?” “아따, 애랬을 때는 안 그랬재.” 옛이야기들은 항상 다음 말문을 닫아걸게 만든다.

한참의 정적으로 저녁 어스름이 찾아왔다. 이곳 수북면은 북자가 붙어 당연히 북방처녀들이 살지. 멀리 툰드라 처녀들만 북방처녀가 아니올시다.

“혹시 바람이 거세게 부는 국경 근처를 여행하다 노스컨트리 축제에 들르게 되면 거기 사는 이에게 내 말을 전해주실래요. 그녀는 한때 내가 정말 사랑했던 소녀라고. 혹시 사납게 눈발이 날리고 있거나 여름이 끝나고 강물이 얼 때쯤 가게 되신다면 그녀가 거센 바람을 막아줄 따뜻한 코트나 입고 사는지 봐주실래요. 긴 머리를 여태 땋고 있는지도 내 대신 봐줘요. 머리칼이 가슴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모습. 그녀의 긴 머리칼은 내가 오래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네요. 그녀는 날 기억할지 모르겠어요. 수도 없이 나는 기도했어요. 밤의 어둠 속에서, 또 낮의 밝음 속에서.” 애청곡이자 애창곡인 가수 밥 딜런의 노래 ‘노스컨트리 출신 소녀(Girl From The North Country)’.

세월에 떠밀려온 하모니카 소리 같은 오래 묵은 노래가 이 골목과 마을을 휩싸고 있다. 며칠 전에 이곳에도 유성우가 뿌려졌다. 아타카마 사막의 천문대 말고도 별의 곳곳에서 긴 머리칼을 휘날리고 달려가는 별똥별 처녀들을 보았다. 나도 잠을 안 자고 창문 밖을 내다봤지. 누군가의 안부를 묻는 노래를 켜두고서. 소식이 끊긴 이북 땅과 시베리아 고려인 북방처녀들까지 들리도록 크게 더 크게….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경꾼  (0) 2016.09.01
태권도 입문기  (0) 2016.08.25
수북면 북방처녀들  (0) 2016.08.18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0) 2016.08.11
천렵놀이  (0) 2016.08.04
풀벌레 캠핑  (0) 2016.07.2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나는 밀물과 썰물이 사이좋게 들어오고 나가는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냇물보다는 짠물에서 멱을 감는 일이 훨씬 잦았다. 주민들은 모두 구릿빛 피부를 가졌고 웃을 때만 새하얀 이빨이 드러났다. 흑백 테레비가 칼라 테레비로 일제히 바뀌자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까무잡잡한 구릿빛만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처럼 나도 그 바닷가에 머물며 십년도 넘게 짠 내 풍기는 어부, 구릿빛 농부들의 종지기 목사로 살았다. 뽕짝 디제이 이장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잔칫날이면 보사노바나 삼바 음악을 몰래 틀었다. 언젠가 ‘나오미 앤 고로’라는 일본인 보사노바 밴드의 음반을 한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남미 음악 불모지에 사명감으로 한 일이었다. 대중의 싸늘한 외면으로 멋쩍어 뒤통수만 긁었던 기억.

출처: 경향신문DB

조빔의 저 살가운 보사노바곡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브라질 리우의 해변 말고 우리네 땅 바닷가에서도 듣기 좋은 노래. “둠둠둠 둠둠둠 그녀를 보라! 신이 내린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우아하게 해변을 걷고 있는 걸음걸이. 이파네마 해변의 태양이 축복을 내린 구릿빛 피부의 아가씨. 마치 외로운 시인처럼 걷고 있어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하늘의 선물이여. 그런데 왜 나는 혼자란 말인가. 이다지 슬픈 것일까. 눈앞에 보이는 저 눈부신 아가씨가 꼭 내 님이 아니더라도 그녀가 해변을 걷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은 얼마나 눈부시고 사랑스러운 곳인지….”

한번은 리우에서 꿈같이 짧은 며칠 밤을 보냈다. 숙소에 짐을 풀기가 바쁘게 택시를 잡아타고 해변으로 달려갔다. 코파카바나 해변과 이파네마 해변. 노랫말처럼 보사와 삼바의 청춘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고 내 귀엔 보사노바, 가슴에 오래 새겨둔 소녀의 노래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새로운 감각, 새로운 경향,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보사노바. 세상의 모든 외롭고 슬픈 청춘들이 그 바닷가에서 행복해하며 물장구치고 놀았으면 싶었다. 해변을 걷는 청춘들이 있기에 이 세상은 이미 눈부시고 사랑스러운 천국인 것을….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권도 입문기  (0) 2016.08.25
수북면 북방처녀들  (0) 2016.08.18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0) 2016.08.11
천렵놀이  (0) 2016.08.04
풀벌레 캠핑  (0) 2016.07.28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0) 2016.07.2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모래강변 치렁치렁한 머리를 땋은 버드나무가 헤드뱅잉. 물고기는 귀가 없으니 강바람 록음악을 듣지 못한다. 바보같이 바늘을 숨긴 지렁이를 탐하다가 강태공에게 붙잡히면 자글자글 매운탕 되어 때늦은 불꽃 춤. 판화가 오윤의 저 유명한 작품 ‘천렵’엔 족대를 들고 냇물을 뒤지는 아재들, 주먹만 한 돌을 모아 솥단지를 얹고 불을 지피는 이의 뒤통수가 재미지고 오지게 표현되었다. 마을마다 흔했던 여름나기 풍경. 시방 그 많던 이웃들은 다 어디에 갔는가. 토종 물고기는 씨가 말랐단다. 어딜 가나 파헤쳐진 강물엔 쿰쿰한 녹조가 떠다니고, 넓어진 신작로마다 너도나도 차를 장만하여 거대한 주차장이다. 냇물은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 닭뼈와 쓰레기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작은 동네에 머물며 천렵을 즐기고, 재물이나 권세가 아니라 사람을 우선하고 인정과 자연을 소중히 여기면서 살 수는 없는 걸까.

한번은 페루와 볼리비아를 끼고 있는 티티카카 호수를 찾아갔다. 버스에서 내려 배로 갈아타자마자 거대한 산정 호수. 거기 코파카바나라는 강변마을이 있었다. 잉카 어부들이 물고기를 놓고 흥정을 하던 곳. 꼭 우리 맛 닮은 매운탕을 끓여 먹거나 ‘세비체’라는 레몬에 절인 생선회를 내놓기도 했다. ‘꾸이’라는 쥐목과 동물을 잡아다가 불에 굽거나 튀긴 요리도 즐기는데 쥐 이빨이 떡하니 놓여 있어 비명을 지를 뻔도 하였다.

건너편엔 먼 옛날 우리처럼 색동저고리를 입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동쪽은 독수리 콘도르가 지키고 서쪽은 산신령 퓨마, 남쪽은 늑대개 자칼, 북쪽은 용왕님 물뱀이 지킨다는 호수. 여기 원주민들은 한번씩 천렵을 즐기기도 하는데 정분이 깊이 들어 마을은 벌꿀보다 끈끈하였다. 여행자를 위해 마련한 상은 푸짐하였고, 이웃들을 모두 불러 기쁨도 슬픔도 함께 나눴다. 새까만 아이들이 줄줄이 사탕으로 골목에서 뛰놀았다. 유치원 버스 같은 거 태우지 않아도 아이들은 옥수수처럼 잘 자란다. 대한민국 ‘TK 가카’의 지엄하신 땅이 아니라 지구 반대쪽 동네 ‘티티카카’ 얘기다. 옹졸하지 않은 대범한 사랑으로 살아가는 영혼들. 세상은 그런 맑고 순수한 영혼들이 어느 정도 살고 있어주어야 영속할 수 있는 곳이라고 나는 믿는다.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북면 북방처녀들  (0) 2016.08.18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0) 2016.08.11
천렵놀이  (0) 2016.08.04
풀벌레 캠핑  (0) 2016.07.28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0) 2016.07.21
개 돼지 염소  (0) 2016.07.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집에 반찬도 없고 하여 면소재지 함바집에 들러 백반을 사먹었다. 혼자서 테이블을 차지하고 먹으니 아짐이 째려보며 빨리 먹고 나가라 눈치가 사나웠다. 참견쟁이들 걸핏하면 하는 소리 “아따메 날도 더운디 씨염 조깐 자르쇼잉” 하지 않음만도 고마웠다. 암튼 급체할 뻔했다. 나간 김에 마트에 들러 수박도 한 통. 좋은 상품은 도시민들에게 죄다 가버리는지 번번이 사먹은 수박마다 맛이 밍밍하고 싱거웠다. 이 살인더위에 수박 한 통 사려고 대처까지 나갈 기력이 이젠 없다. 날마다 열대씩 곤장을 맞는다는 열대야. 오늘도 곤장 열대야. 단물 빠진 수박이나 씹으며 산골에 눌러앉아 궁둥이 쓰라린 설움이나 달래련다.

대자리에 누워 매미소리가 좔좔 자장가다. 청대를 잘라 엮은 대자리는 나만의 차가운 북극 얼음침대. 재미삼아 잔디마당에 텐트를 치고 대자리도 옮겨 놓았다. 마당에 밥상을 차리고 앉아 밥을 먹자니 방에서는 느끼지 못한 산바람이 별스럽더라. 풀냄새 향긋하고 풀벌레소리도 우렁차. 밤사이 소낙비가 내린다면 좋겠어. 싱 잉 인 더 레인!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풀벌레 캠핑.

원령공주의 섬에 다녀온 뒤부터 깨달은 바가 있어 정말 부지런히 꽃밭에 물을 준다. 언제 비가 내릴 것을 믿고 모른 체 내버려 둘 것인가. 샘에 물이 있을 때 꽃들과 사슴, 어린 강아지들과 나누어 마셔야 한다. 어린이와 동물을 사랑했던 영화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우리 셋이서 풀벌레 캠핑을 한다면 내 친구의 집은 바로 이 마당에 친 텐트일 게다.

마당 한쪽에다 찜용 코펠을 설치하고 장작불을 모아 옥수수와 감자를 쪘다. 개들이랑 먹으려고 어묵도 한 솥 끓였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살림들이 장난이 아니게 늘어만 갔다. 냄새를 맡은 야옹이들이 귀신 울음소리를 내면서 몰려들고, 모기떼는 종아리를 인정사정없이 빨아댔다. 캠핑은 딱 하루만 신나다가 심심하고 괴로워졌다. 다음 캠핑은 멀리 계곡물에 몸 담그며 할리우드 아니 홀라당우드 애인들이랑 찐하게 해야 쓰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  (0) 2016.08.11
천렵놀이  (0) 2016.08.04
풀벌레 캠핑  (0) 2016.07.28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0) 2016.07.21
개 돼지 염소  (0) 2016.07.14
물방울, 빗방울, 눈물방울  (0) 2016.07.0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름엔 선인장이다. 산더미만큼 크다는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을 한번쯤 보고 싶다. 애리조나 광야엔 언제 가보나. 선인장 하면 단연 멕시코겠다. 한번은 화가 프리다 칼로의 행적을 따라 출생지 코요아칸과 ‘꽃피는 땅’이라는 뜻을 지닌 소치밀코를 순례했다. 도심 외곽은 야생선인장들이 끝도 없는 숲을 이루었다. 날카로운 가시 끝엔 울긋불긋 꽃들. 배고플 때 새들과 도마뱀이 따먹기도 한다더라. 프리다 칼로는 나 같은 조무래기쯤 만나주지도 않겠지. 내세에 소원이 있다면 선인장 나무 아래 설탕차를 마시면서 프리다와 딱 한번이라도 티타임을 나눠봤으면. 그녀의 푸른 집을 다시 방문해 벽에다 등을 기대고 앉아 한참 쉬다오고 싶어라.

라틴 미술 전시기획자인 안진옥 샘이 옮긴 <프리다 칼로, 내 영혼의 일기>를 읽고 있다. 프리다의 마음을 통째 가져간 디에고 아저씨가 부러울 따름. “디에고! 진실은 너무 거대해서, 나는 말하기도, 잠들기도, 듣기도, 좋아하기도 싫어져요… 마법의 힘 없이 나는 당신의 두려움, 불안, 심장 소리 안에 갇히고 싶어요… 당신을 그리고 싶어요. 하지만 적합한 색깔이 없네요. 당신은 너무 다양한 색깔을 가진 사람… 당신은 매 순간 나의 아이. 날 때부터 내 아이. 매 순간, 매일 나의 것.”

디에고처럼 키가 크고 뚱뚱한 선인장들. 겨울 추위만 없다면 꽃밭에 그런 커다란 선인장을 몇 그루 심고 싶어라. 외부세력 내부세력 꽃들은 그런 거 모른다. 모두가 조화롭게 연대하고 이슬 한 모금이라도 나눠마시며 장엄한 꽃송이들을 피워낸다. 요즘 귀촌하여 집 짓는 사람들 보면 꽃밭은 만들지 않고 돼지고기 굽는 불판과 고기 싸먹을 상추 배추밭에만 집착한다. 정성을 들여 정원을 가꿀 생각도 여유도 없으면서 왜들 저렇게 숲을 허물고 집들을 짓는 걸까.

앵무새와 비둘기, 원숭이, 백합꽃과 선인장, 달과 태양과 솜브레로 모자를 눌러쓴 농부들. 이국적인 정원이 기억 속에 생생해. 아삭아삭 씹히는 참외와 해바라기 꽃밭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전쟁무기를 들여놓자는 사람들을 본다. 무슨 선인장 독가시처럼 생겨먹은 귀신에 홀린 자들일까.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렵놀이  (0) 2016.08.04
풀벌레 캠핑  (0) 2016.07.28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0) 2016.07.21
개 돼지 염소  (0) 2016.07.14
물방울, 빗방울, 눈물방울  (0) 2016.07.07
섬마을 소금밭  (0) 2016.07.0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암팡지게 생긴 아기 돼지들이 꿀꿀이죽을 나눠 먹고 뛰놀던 집. 거무뎅뎅한 피부에다 머리엔 쇠딱지가 달라붙은 아이들이 그 집에서 또래처럼 같이 자라났다. 요마마한 강아지들은 얼마나 또 귀엽고 재미나던가. 시들방귀나 뀌던 할아버지. 숨을 고르며 초록풀이 무장한 데다 염소를 메고 돌아오면 묵은 김치에 강피밥이라도 온 식구 둘러앉아 감사기도를 바쳤던 집. 얼빠진 치룽구니들은 모를 것이다. 다복했던 사람들의 아름다운 기억과 소망을. 먹고살기 위해서만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인도의 큰 스승 라마 크리슈나의 제자 중에 공부를 많이 한 비베카난다가 있었다. 그에겐 갠지스강의 돌을 주워 신전을 꾸민 깔루라는 도반이 있었는데 이게 늘 못마땅했다. 신은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돌 따위에 있지 않다고 깔루의 어리석음을 쏘아댔다. 아랑곳하지 않고 깔루는 사원에다 부지런히 돌단을 쌓고, 쓰러질 것 같은 초막에단 돼지와 염소를 길렀다. 깔루를 따르던 개와 원숭이들은 깔루를 볼 때마다 졸졸 뒤를 따랐다. 성난 이빨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스승 크리슈나는 머리와 재기만 발달해서 항상 날이 서 있는 비베카난다를 꾸짖었다. “그대의 열쇠는 앞으로 내가 가지고 있겠네. 그대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 없으니 위험한 인물이야.” 비베카난다는 요가와 명상으로 정진했으나 스승이 가져간 깨달음의 열쇠를 돌려받지 못했다. 죽기 사흘 전에야 비로소 무릎을 쳤다. “머리로 살지 않고 마음으로 사는 법. 겸손하고 순수한 삶을 사는 일이야말로 신에게 이르는 최선의 길임을 내 이제야 알았노라.”

집집마다 돼지 한 마리씩은 키울 것이다. 돼지저금통. 나도 한 마리 있지. 오백원짜리 백원짜리 어쩔 땐 지폐도 몇 장. 해마다 성탄절엔 이걸 쪼개서 나눈다. 돼지가 멀리 아프리카에 가는 해도 있고 북한 빵공장에 가기도 하고 세월호 팽목항으로…. 시방 통의동 한옥집에선 백기완 어르신과 문 신부님 전시가 있다. 작품은 가난뱅이라 못 사지만 연말에 돼지저금통이라도 보태련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이 꼭 이 땅에 세워지길.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풀벌레 캠핑  (0) 2016.07.28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0) 2016.07.21
개 돼지 염소  (0) 2016.07.14
물방울, 빗방울, 눈물방울  (0) 2016.07.07
섬마을 소금밭  (0) 2016.07.01
리오넬 메시와 10시  (0) 2016.06.2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월은 해오름달, 새해 아침 해가 힘차게 솟아오르는 달. 2월은 시샘달, 잎샘추위 꽃샘추위로 겨울의 끝달살이 달. 3월은 꽃내음달, 남녘에서부터 봄꽃 소식이 들려오는 달. 4월은 잎새달, 저마다 잎들이 초록빛깔로 다투어 우거지는 달. 5월은 푸른달, 마음마저 푸르러지는 모든 이의 즐거운 달. 6월은 누리달, 온 누리에 생명의 숨소리가 가득 차고 넘치는 달. 7월은 빗방울달, 초록 잎사귀들 신명나는 장맛비 내리는 달. 8월은 타오름달, 불볕더위로 하늘과 땅, 가슴조차 타는 달. 9월은 열매거둠달, 가지마다 논밭마다 열매 맺고 거두는 달. 10월은 온누리달, 누리 가득 달빛 그윽하여 넉넉한 달. 11월은 눈마중달, 가을에서 겨울로 달려가는 첫눈 내리는 달. 12월은 매듭달, 몸과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끄트머리 달.

오래전 내가 이렇게 달이름을 지어 나눈 뒤로 7월엔 어김없이 빗방울이 세차게 날린다. 장맛비에 젖지 않도록 우산을 앞세우고 길을 걷는 당신. 우리들 손을 꼭 잡아주는 우산 손잡이가 있다. 내가 우산을 만지듯 우산도 나를 꼭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매만지는 것이다. 빗줄기가 아무리 세차도 우산이 있으면 머리칼이 젖지 않아. 당신이 내 곁에 있으면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이겨내며 살아낼 용기를 얻듯이 말이다. 나의 우산이신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기엔 서재에 꽉 찬 책들과 장롱 속 이불과 옷가지들, 갓방의 통기타까지 모두 눅눅하고 습한 얼굴들이다. 이럴 때 보일러를 좀 돌려주고 난로에 장작불도 조금 지펴줘야 한다. 방바닥 훈기야 너 참말 오랜만이구나. 어머니가 안 계신 아랫목은 한없이 허전하고 쓸쓸하다. 벼락치고 큰비 내리면 나가있을 때 어머니께 꼭 안부를 여쭸다. “나는 걱정 말아. 바쁘실틴디 전화해줘서 고맙네잉.” 어머닌 전화를 끊을 때마다 매번 그렇게 말씀하셨다. 전화해주어 고맙다고…. 물방울, 빗방울 말고 눈물방울이 맺히는구나. 한밤중에 천둥 번개라도 치면 불효한 죄가 하도 많아서 순간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빠져든다. 죄 없는 사람만이 이 뇌성벽력 장마통에 달고 긴 꿀잠 속에 빠져드는 것이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인장과 프리다 칼로  (0) 2016.07.21
개 돼지 염소  (0) 2016.07.14
물방울, 빗방울, 눈물방울  (0) 2016.07.07
섬마을 소금밭  (0) 2016.07.01
리오넬 메시와 10시  (0) 2016.06.23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0) 2016.06.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한번은 지구 반대편 볼리비아 소금사막에 갔었다. 지평선 끝까지 거짓말 같은 소금사막. 설탕보다는 소금. 국수, 팥죽, 감자까지 나는 소금을 찍어 먹는다. 선인장이 우북이 자란 산을 만났는데 하트 모양으로 된 그 언덕에 오래 앉아 보았다. 소금사막, 땅에 비친 하늘과 구름에 반해 거기 눌러앉고 싶었다. 돌아보면 여행 때마다 집을 구해 살고 싶은 데가 어지간히도 많았지. 정이 들면 어디라도 고향을 삼고, 사랑을 만나면 온전히 사랑해야지.

경향신문DB

신안군 앞바다 두 시간 통통배를 타고 가면 맹금 송골매를 닮았다 하여 비금도라 이름 붙인 섬이 있다. 이곳은 천일염 염전이 유명하다. 바다에 맞닿은 땅에 소금밭이 있는데 하얀 보석들이 반짝거린다. 빛과 소금이 되라는 말씀은 인류의 계명. 빛의 땅 담양과 광주에 근거를 두고 살자니 장차는 소금의 땅 신안 섬에 들어가 살면 좋겠다고 만날 입버릇 한다.

나이 먹어 외진 섬마을에 산다면 얼마나 호젓하고 자유로울까. 아무도 그 무엇도 끄덩이를 움켜쥘 수 없이, 지극히 가뿐한 갈매기의 춤을 추고파. 섬사람들은 대개 강인하면서도 정답고 순수한 성질을 지녔다. 흉한 미꾸라지들이야 사람 사는 어디나 있기 마련. 내가 아는 섬사람들 대부분이 나 따위는 근접할 수 없는 인격자였다. 게다가 크레타섬의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비롯해 세계의 섬사람들은 얼마나 숭고한 영혼이런가.

엊그제 짬을 내어 훌쩍 비금도에 갔다. 남쪽에 살 때 이런 호사라도 누려야지. 섬을 끼고 도는 뱃길이 그림 같았다. 목포 북항에서 배표를 끊고 매점 이모가 끓여주신 라면을 후후 불어 먹으며 선상에서부터 황홀경. 바둑왕 이세돌이 태어난 마을 바로 코앞이 염전이었다. 염전같이 짠맛 바둑을 두는 바둑왕은 섬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음이렷다. 섬에서 나오는 길에 소금을 한소쿠리 챙겼다. 이 소금으로 데킬라를 마셔야지. 멕시코 사람들은 데킬라를 마실 때 소금을 살짝 곁들인다. 땀이 나는 여름엔 소금 섭취가 인생의 살길. 신안 섬마을 소금이 없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배추김치는 또 어떻게 담그며….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 돼지 염소  (0) 2016.07.14
물방울, 빗방울, 눈물방울  (0) 2016.07.07
섬마을 소금밭  (0) 2016.07.01
리오넬 메시와 10시  (0) 2016.06.23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0) 2016.06.16
귀 청소  (0) 2016.06.0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내가 좋아하는 시간은 10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10시면 무슨 일이 있어도 잠자리에 들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잠이란 달콤한 선물이지만 깨야 할 시간이 꼭두새벽이라면 죽을 맛이 된다. 지금은 그 고생을 하며 살고 있지 않으니 팔자가 편 것이다. 가혹하게도 고학년 때부터 새벽예배에 빠지면 안되는 무지막지한 환경에서 자랐다. 동자승으로 출가한 내 친구는 똑같이 새벽예불을 그렇게 했다더라. 아이들에게 새벽 기상은 정말 가혹한 시련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교회만 안 다녔어도 지금보다 키가 10센티미터는 더 컸을 것이다. 연애를 할 시기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선배들에게 주입을 받았다. 감사하게도 10회씩이나 치근거려야 할 만큼 무시무시한 여신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아재 개그하나 해볼까. 학교에서 선생님이 그랬단다. “아그들아. 지금 맷시라냐?” “선생님. 리오넬 메시 말인가라우?” “그 메시 말고 시간이 맷시냐고. 이 자슥들이.” “메시는 10번인디.” 아이고 썰렁~. 그래서 아재 개그라 미리 밝혔음을 양해하시길.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메시는 등 넘버 10, 그리고 지구 반대편 나는 항상 10. 오전 10시쯤엔 어김없이 좋아하는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신다. 갓 볶은 커피를 진하게 내리고 바나나를 갈아 라떼를 만든다. 바나나나 아보카도를 갈아 커피에 부어 마시면 남태평양 바닷가에 놀러온 느낌이 난다. 그리고 밤 10시엔 하루를 정리하며 짧은 요가. 굉장한 아사나 기술을 연마해봐야 봐줄 사람도 없고, 몇 가지 기본 동작이면 몸이 한결 이완되고 편안해.

당신은 하루 가운데 몇 시를 가장 좋아하는가. 신문을 읽고 계시는 지금? 아니면 즐거운 점심시간? 챙겨 보는 드라마 본방 시간? 라디오 방송 <세상의 모든 음악> 시간엔 내가 처음 소개한 곡들도 살짝 흘러나오곤 한다. 그땐 별들이 하늘에 톨톨 박히면서 세상이 근사해진다. 당신에게 의미 있는 숫자와 시간이 궁금해. 우리는 아직도 모르는 게 참 많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 바로 사랑이고 인생일 것이다.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물방울, 빗방울, 눈물방울  (0) 2016.07.07
섬마을 소금밭  (0) 2016.07.01
리오넬 메시와 10시  (0) 2016.06.23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0) 2016.06.16
귀 청소  (0) 2016.06.09
채식주의자  (0) 2016.05.2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올핸 허브농사를 제법 보암직하게 지었다. 문 열면 덥석 잡히는 곳, 애플민트 풀떼기 몇 장이면 사탕수수 럼을 붓고 모히토(럼을 베이스로 라임즙 등을 넣어 만든 칵테일)를 말아 마실 수 있는데 따로 밭까지 진출해가며 욕심을 좀 부려본 것이다. 라임 대신 구하기 쉬운 레몬을 사다가 냉동실에 곱게 잘라 넣어두기도 했다. 사정을 얘기했더니 누가 싱싱한 라임을 구해다 주어 라임오렌지 나무가 아니라 라임오렌지 냉장고가 부엌을 차지하게 되었다.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한낮에 브라질이나 쿠바 사람들처럼 얼음 둥둥 뜬 모히토로 기분을 업~해주면 어디서 허리케인이 부는지 싶을 정도다.

브라질에선 개구지고 말썽만 피우는 아이를 카페친냐라 부른다. 악마라는 카페타에서 나온 말. 카페친냐는 그저 장난이나 치는 수준이지 어디 인생에 해를 끼치는 사악한 존재는 아니다. 카페친냐 귀염둥이 악동 제제의 이야기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당신도 기억하시리라. “형아! 나는 에드문두 아저씨처럼 만물박사가 되고 싶고 또 시인도 되고 싶어. 나비넥타이를 매고 다닐래. 나비넥타이를 매고 사진도 찍을래. 시인은 나비넥타이를 매야 돼. 아저씨가 잡지에 난 시인들 사진을 보여줬는데 모두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어.” 직장을 잃은 아빠, 공장에 나가는 엄마, 가난한 집안 형편이지만 제제는 나비넥타이를 맨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아이는 제 키만 한 라임오렌지 나무를 친구 삼아 놀며 소원을 빌었다.



“진정으로 삶을 노래하는 시는 꽃이 아니라 물 위에 떨어져 바다로 떠내려가는 저 수많은 이파리 같은 것이지.” 제제는 어떻게 그걸 알았을까. 어린 나이에 말이야. 위험과 슬픔, 어려움이 연속인 거친 바다. 이파리들의 모험 같은 항해야말로 진정 가치 있는 삶임을 말이다. 한편 나비넥타이의 멋진 ‘위풍당당’도 잃지 말자구나. 나는 멋진 사람이 좋다. 당신은 안 그런가? 나는 멋진 시인이 좋다. 당신은 안 그런가? 나는 멋진 아이들이 나무처럼 자라나는 멋진 나라에서 살고 싶어. 시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배불뚝이 부자와 허깨비 스타가 되고 싶어 안달인 아이들 얘긴 너무 슬프다.



임의진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섬마을 소금밭  (0) 2016.07.01
리오넬 메시와 10시  (0) 2016.06.23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0) 2016.06.16
귀 청소  (0) 2016.06.09
채식주의자  (0) 2016.05.25
봄날의 코스모스  (0) 2016.05.18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열기를 식히는 비바람에 나도 모르게 말뚝잠. 엄마 무르팍에 누워 있었더라면 귀 청소를 청했겠다. 엄마 품에서 강아지처럼 콜콜 잠들었겠지. 어려서 집에 수수 빗자루, 갈대 빗자루, 싸리 빗자루… 교회에 딸린 목사관은 창고나 진배없어 빗자루를 비롯해 물걸레자루까지 무슨 청소용역 수준이었다. 만날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청소’. 예배가 끝나면 어머니와 함께 집에 빨리 가지 않아도 되는 과부 아주머니 몇, 똘마니인 나는 부지런히 교회당 곳곳을 청소했다. 지금도 내 취미와 특기는 청소. 아버지 목사님과 장로님들은 부지런히 새 빗자루를 손수 만들어 공급하셨다. 그중에 얇실얇실한 갈대 빗자루에서 뚝 하니 한 줄기를 뜯어다가 서랍에 넣어두곤 가끔 가느다란 그걸로 귀를 후벼주셨다. 귀지를 파내려는 게 아니라 간질이는 용도로. 이비인후과 병원에선 나무랄 소리겠지만 그래도 지금 내 귀는 너무 밝아 음악을 가려듣고 누가 내 흉보는 소리를 하면 천리만리라도 다 들린다.

코딱지는 새끼손가락으로 무지막지하게, 새빨간 코피가 나도록 파대지만 귀는 무서워서 아예 손을 못 댄다. 귀는 엄마가 있어야 해. 아니면 누나나 언니가. 커서 애인이 생기면 엄청 아부를 떤 뒤에야 귀를 맡기는데 이게 시원찮으면 빨랑 헤어지는 게 낫다. 무릎에 머릴 누이고 귀 청소까지 안심서비스. 그런 짝꿍을 그대 가졌다면, 짱~ 부럽소이다.

경상도에 ‘안득기’라는 이름의 야구선수가 있었다. “니는 이름이 뭐꼬?” 감독님이 묻자 “안득낍니더” “야 이 자슥 봐라. 안득낀다고?” “네 안득낍니더.” 감독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감똑님예. 야 이름이 진짜 안득낍니더.” 코치까지 나서서 말렸다는 얘기.

요즘 정부·여당을 볼라치면 귀 청소를 하시라 귀띔해주고 싶다. 안득기가 분명히 계시는갑다.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으려면 먼저 귀 청소부터 해야 할 일이다. 기가 막힌 것인지 귀가 막힌 것인지, 아무튼 뭐가 하나 가운데 단단히 막혀 있지 않고서야….



임의진 ㅣ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오넬 메시와 10시  (0) 2016.06.23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0) 2016.06.16
귀 청소  (0) 2016.06.09
채식주의자  (0) 2016.05.25
봄날의 코스모스  (0) 2016.05.18
귀곡산장  (0) 2016.05.11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삽으론 파고 호미로 긁고 낫으로는 친다. 녹음방초 우거진 뒷산. 사방이 짙은 푸름으로 덮여있어 귀신이랑 숨바꼭질해도 내가 이길 듯. 호미와 낫으로 길을 내고 꽃을 심어놓으니 사람 오가는 길임이 뚜렷해졌다. 이런 길을 걸으며 살고 싶었다.


기계영농의 시대에 나는 삽과 호미와 낫이 전부다. 욕심만 버리면 세월이 즐겁다. 죽으면 그만인 인생 왜들 그리 우당탕탕인지. 고요한 산막에 마음을 내려놓고 최소한의 소비로 살아간다.

꽃집 하는 후배 덕에 벼라별 꽃들을 불러다가 꽃밭을 채웠다. 밭에는 딸기를 몇 포기 심었는데 새들처럼 쪼아 먹고 있다. 열무 배추는 최참판 나리처럼 인심을 써가며 나눠 먹는 일이 재밌다. 채식주의자 정도가 아니라 채식보급자. 해 질 녘이면 삽과 호미와 낫을 깨끗이 도랑물에 씻어 대문에 기대어 둔다. 삽은 집을 지키는 장승만 같아라. 요새 대나무는 죽순을 밀어올리고 있는데, 하루가 다르게 키가 쑥쑥. 아이들처럼 우쑥부쑥 자라서 오지고 장하다. 죽순을 꺾어다가 삶아 먹기도 한다. 초장에 찍어먹으면 동동주 생각이 간절해진다.

오윤의 판화에서처럼 “있는 놈만 논답디까. 사람은 매 한가지. 도동동당동. 우라질 것 놉시다요. 지지리도 못생긴 가난뱅이 끼리끼리…”. 두세 사람 모이다가 ‘여럿’이 되고 ‘다 함께’가 된다. 그렇다고 날마다 시끄러운 건 아니다. 어제는 밭에서 산토끼를 만났다. 똥구멍으로 숨 쉬고 죽은 체해서 살았다는 나무꾼처럼 정말 숨도 안 내쉬고 날 훔쳐보더라. 토끼는 잘 먹고 잘사셔~ 하고는 병풍산 제 숲으로 달아났다. 토끼탕 파는 식당이 고개 넘어 가까운데, 그쪽으론 가지 말거라.

어영부영 놀다 보니 금방 밥 때. 옷과 밥과 집은 만드는 게 아니라 짓는다고 한다. 글도 쓰는 게 아니라 짓는 일, 글짓기라 하지. 허구한 날 풀때기 채식이고 팔자마저 채식주의자. 고기가 당기는 날도 있는데 그런 날은 벗들이 바쁘고 나는 뒷전. 채소 반찬에다 밥 짓고 글 짓는 저녁. 올드 팝 ‘문 라이트 플라워’가 달빛을 불러온다.


임의진|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0) 2016.06.16
귀 청소  (0) 2016.06.09
채식주의자  (0) 2016.05.25
봄날의 코스모스  (0) 2016.05.18
귀곡산장  (0) 2016.05.11
봉하막걸리  (0) 2016.05.0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코끼리 귀때기가 바람에 펄럭이듯 넓적해진 잎사귀들이 한 뼘씩이다. 이른 여름이라 그늘이 좋고 바람도 좋아. 누옥은 햇살이 무서운 남향, 솔그늘에 앉아 지평선 끝 무등산을 구경한다. 볕이 가마니로 부어지다보니 철없는 코스모스가 봄날에 필 듯도 해.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이제는 법구를 버리고 몸에 불을 넣은 속명 정세현, 그 사람 범능 스님과는 개인적으로도 오랜 인연이 있다. 고규태 시인의 시에 스님이 곡을 붙인 노래는 전남대생 박승희 열사 추모곡. “어여쁜 가을꽃아 봄날에 피지 마라. 스무살 코스모스 너 홀로 피지 마라. 철 이른 그대 넋이 불타네 타오르네. 온몸에 불을 놓아 새날이 밝아오네. 그대의 뜻을 따라 민주의 불꽃이 되어 뜨겁게 타오르리. 내 사랑 아가다여 봄날에 지지 마라. 스무살 고운 꽃잎 너 홀로 지지 마라. 해맑은 그대 숨결 들리네 살아오네. 순결한 꽃이 되어 어둠을 불사르네. 그대의 뜻을 따라 민주의 불꽃이 되어 뜨겁게 타오르리.”

남녘의 딸 박승희가 온몸에 불을 놓아 코스모스가 되었던 그해 봄날을 기억한다. 당시 신문은 연일 젊은이들의 분신과 의문사로 도배되었다. 옥시보다 무서운 최루탄을 국민을 향해 부어대던 군부독재는 입에 거짓말을 달고 다니는 용가리. 불통 독재자들과 그 재롱둥이들은 지금까지도 비겁한 거짓말과 가증스러운 거드름을 뿜어댄다. 하지만 우린 더 세고 강하지. 우리는 수천만 여럿이니까. 가끔 조선대, 전남대에 공놀이를 간다. 엊그제는 강연이 있어 호남신학교를 찾았다. 학생들 눈은 꽃보다 별보다 맑고 선량하여라. 과거 데모와 최루탄으로 자욱하던 캠퍼스엔 청춘들이 사슴처럼 거닐고 잔디밭에서 짜장면도 시켜먹는다.

나도 안다. 최악의 취업난과 하루살이 알바인 청년들의 눈물. 하지만 꽃이 죽지 않고 피어있지 아니한가. 죽지 않고 피어있다는 건 얼마나 고맙고 갸륵한 일인가. 세월은 가고 마른 눈물자위에 주름조차 깊어졌다. 저문 강물은 구불구불 돌아 어디로 흐르려나. 강변에 꽃들 피고 나와 우리는 이제 격문이 아닌 수필과 시를 쓰며 산다. 앞서간 열사들과 저 평등의 기도터 무등산 덕분이다.


임의진 ㅣ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 청소  (0) 2016.06.09
채식주의자  (0) 2016.05.25
봄날의 코스모스  (0) 2016.05.18
귀곡산장  (0) 2016.05.11
봉하막걸리  (0) 2016.05.04
일판 사랑판  (0) 2016.04.27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친한 스님들이랑 쏙닥거리는 카톡방이 있는데 부처님 생신 축하해드리고 연등도 하나 달아주시라 부탁말씀을 드렸다.



쥐떼들이 나라곡간 훔쳐 먹고 사대강 난도질을 쳐놓은 뒤부터 양심 둑도 무너지고 강변마을은 인심조차 사나워졌어. 시멘트로 발라 흉측해진 강변. 수변공원이라며 돈 발라 만들어놓은 곳엔 잡초가 무성. 쥐똥 치우려면 하나님도 부처님도 앞으로 두고두고 속타시겠다들.

부처님오신날엔 절집에 인사차 갔었는데 인사말씀을 시키는 통에, 그런 거 즐기는 촐랑이는 아니라서 언제부턴가 마음으로만 축하. 올핸 세월호 시민상주 천일순례하는 친구들이랑 5·18 망월묘역에서 출발해 영산강줄기 따라 내가 사는 산동네까지 걷기로 약속을 잡았다. 붉은 팥죽이나 한 그릇 먹고 차근차근 순례길을 걷노라면 맑은 기도가 되겠지 싶어.

차알찰 봄비 오신 뒤에 마당은 풀이 우북. 풀잔디도 매주 깎아주고 해야 하는데 강의다 전시회다 출타가 잦은 통에 집은 버려진 귀곡산장 같아라.

권정생 아저씨는 마당 풀을 말끔히 정리하는 걸 매우 싫어하셨단다. 마당에 풀도 살아야 한다고. 방에 들어온 쥐에겐 방금 한 밥을 퍼주고, 쥐똥은 정성스럽게 쓸어 담아 텃밭에 버리고…. 안동 조탑동 흙집에 찾아오는 모든 미물들을 귀하야 대하셨단다.

나는 그 경지가 못되어 쥐가 괴로워 죽겠다. 요놈의 쥐떼가 창고를 드나들며 개밥을 훔쳐 먹고 새끼도 낳아 키우는데 벌써 대가족을 이루신 듯. 어젯밤엔 쥐떼에게 물려 죽는 꿈까지 꿨다.

집을 쥐떼에게 양도하고 진짜 은수자가 되어 성녀 소화 데레사처럼 백합화와 장미꽃을 보면서 순례길을 걷고 싶어라.

소화 데레사는 수풀 꽃 시내 바다 나비와 예쁜 어린애들, 생전 보지도 못했을 만큼 많은 나비와 새들이 등장하는 꿈만 꿨다는데, 부럽소이다. 나는 이 쥐들과 언제야 이별하고 나비와 춤추는 꿈을 꿀까나.


임의진 |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채식주의자  (0) 2016.05.25
봄날의 코스모스  (0) 2016.05.18
귀곡산장  (0) 2016.05.11
봉하막걸리  (0) 2016.05.04
일판 사랑판  (0) 2016.04.27
버버리 곡꾼  (0) 2016.04.2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홰바람이라지. 태풍도 아닌데 홰홰 불어대는 바람. 가지가 꺾이고 이팝나무는 쌀밥 같은 꽃잎을 떨구는 바람에 길이 왼통 꽃밥 꽃길. 경남 함안에 일이 있어 갔다가 봉하마을이 가깝대서 건너갔다. 연세대서 신학을 공부했던 대배우 명계남 선배가 마중 나와 반겨주셨다. 귀향한 대통령이 막걸리 소주 마시던 테마국밥집. 파전에 봉하막걸리 딱 한잔씩만 하자던 게 낮술 스타트. 봉하막걸리는 봉하에서 농사한 유기농 쌀과 내가 살고 있는 담양의 물을 합해 만든다. 봉하쌀이 물맛 좋은 전남 담양으로 와서 막걸리로 익으면 다시 경남 봉하로 배달. 담양막걸리와 봉하막걸리는 그렇게 형제지간. 세상에 봉하막걸리를 담양 삼다리 주조장에 가면 살 수도 있다. 이건 비밀인뎅~.

까끔집(산집)에 며칠간 물이 안 나왔다. 준재난지역. 다른 마을과 달리 지하수 관정을 파서 골고루 나눠 쓰는데 그게 단단히 고장. 목욕도 못하고 빨래도 못해. 삼사일 소방차가 와서 물을 나눠줬다. 산을 전라도에선 까끔이라 부른다. 산에 살면 까끔살이. 아이들 소꿉놀이는 빠끔살이. 까끔이나 빠끔이나. 떠돌다 와보니 드디어 물이 나오는구나. 없는 동안 고쳤나봐. 야구도 축구도 내가 안 봐야 이겨. 내가 만지면 고칠 것도 더 고장이 나더라. 콸콸 맑은 골짝물에 벌건 얼굴을 씻고, 봉하막걸리 한 병 더 콜.

다시 까끔에서 빠금살이. 야밤엔 집게벌레가 벌써 바삐 돌아다니고, 새벽부턴 며느리 같은 어르신들의 부지런한 남새밭일. 그러고보니 나는 목사고시를 두 번 떨어졌는데 모두 설교 때문. 첫 번 설교는 ‘며느리가 하나님이시다’. 동학의 가르침과 성서를 같이 읽었더니 땡~. 두 번째는 오기로 ‘소작농 예수, 땅주인 교회’ 설교 기회도 안 주고 땡~.

미운털이 박힌 나를 몰아세우던 어른들 얼굴은 서울며느리처럼 하얗고 고우셨다. 교단이 쪼그라들자 한 사람이라도 아쉬웠던지 세 번째는 합격. 친구 스님이 농반진반 승가대로 옮기라는 걸 안 하길 잘했지. 갔으면 막걸리 없는 인생. 이 나이 먹고까지 계율이다 뭐다 눈치코치 보며 살겠는가.


임의진 |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날의 코스모스  (0) 2016.05.18
귀곡산장  (0) 2016.05.11
봉하막걸리  (0) 2016.05.04
일판 사랑판  (0) 2016.04.27
버버리 곡꾼  (0) 2016.04.20
평범한 사람  (0) 2016.04.1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판이 안 생겨 연일 술추렴이던 미장이 국씨. 사랑판이었던 이불을 끄잡아 당기다 시계 한번 쳐다보던 그때 장독가 제비꽃이 슬금 땅문을 열고 피어났지. 여우 꼬랑지 털은 빨랫줄에서 빳빳이 말라 하늘로 승천하고, 간만에 분 바르고 장에 나간 여인네는 전화도 안 받고 이게 뭐시라냐. 꾸무리한 먼 산에 영감이 누워계시는데 뒤따라 할매가 맥이 끊어질락 말락 나눔병원으로 실려가신다. 삐요삐요 응급차 소리에 메아리도 삐요삐요 재방송. 저수지 아래 최씨네 샛노란 병아리떼도 삐요삐요 배웅이다. 익비 생비 비빔밥 한 그릇 비벼 먹고 나와 교대로 이빨을 쑤시던 공사판 아재들, 나무그늘에 옷 깔고 누워 삼십분은 잠을 자야 할 시간. 봉고차에 올라타자마자 들리는 노래는 오정선의 ‘마음’. 곡성 보성에서 건너온 아랫바람에 실려 창문 밖으로 또 꽃길로 튕겨져 나온 노랫소리에 듣는 모두 흥에 겹다. “하늘엔 별들이 흩어져 내리고 언덕엔 꽃들이 바람에 날릴 때, 나는 어여쁜 소녀의 손에 의해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리. 살며시… 흐르는 구름이 비 되어 내리고 부딪치는 햇살에 내 목이 마르면 나는 어여쁜 소녀의 손에 의해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리. 살며시….” 진짜 살며시 어디론가 사랑 가득한 세계로 날아가고 싶어라.


<꼬방동네 사람들>의 공목사 허병섭 목사님. 생전에 가끔 뵙고는 했지. 목사직을 버리고 일용노동자들과 함께 건설협동조합을 처음 만드셨던 분. 가까운 무주로 내려와 사셨는데 두어번 내 산골집에 오셔서 다담을 나누기도 했었다. <일판 사랑판>이라는 책에 사인해 주셨는데 “노동하는 손은 부르터서 아름답습니다”라고 적어주셨지. “사람이 몸으로 일을 해야 맑아지는 것이지 머리로만 일을 할라치면 고스톱 쳐서 푼 사람처럼 온통 불만스럽고 복잡해집니다.” 사랑 가득한 세계로 데려가 줄 어여쁜 소녀의 손도 아름다우나 우리는 시방 노동하는 부르튼 손이어서 부끄럽지 않구나. 오월 메이데이. 맑은 영혼의 노동자들을 위해 언덕엔 꽃이 피고, 꽃잎은 져서 한 점 두 점 바람에 흩날리누나. 꽃잎 날리듯 일판 사랑판 곳곳에서 흥겨운 노랫가락 울려 나거라.


임의진 |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곡산장  (0) 2016.05.11
봉하막걸리  (0) 2016.05.04
일판 사랑판  (0) 2016.04.27
버버리 곡꾼  (0) 2016.04.20
평범한 사람  (0) 2016.04.13
사우나 싸우나  (0) 2016.04.0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곡식 곡자에 봄비 우자 곡우날. 농사철에 맞춰 반가운 비소식. 바지런한 편이라 밤엔 녹초가 되어 눕곤 한다. 간혹 고독감에 지쳐 잠을 설치는데 냅다 막일을 해버리면 꿀잠이 솔솔. 드물게 꿈도 꾸는데 귀한 만큼 생생해. 다운증후군 장애인 형을 꿈에서 봤어.

부모님 여읜 지 오래되어 꿈에서라도 뵈면 반갑고 깬 뒤엔 한참 울적해. 말을 못해 버버리로 놀림 받던 형은 꿈에 잘 나오질 않는데 무슨 일일까. 나오더라도 하늘에서 말을 배워 유창하던데 어젯밤엔 예전처럼 어버버버버뿐.

언젠가 김해자 시인의 시를 읽고 울었던 기억. “초분 옆에 살던 버버리… 동네 초상이 나면 귀신같이 알고 와서 곡했네. 옷 한 벌 얻어 입고 때 되면 밥 얻어먹고 내내 울었네… 어으으 어으으 노래하는 동안은 떼 지어 뒤쫓아 다니던 아이들 돌팔매도 멈췄네. 짚으로 둘둘 만 어린아이 풀무덤이 생기면 관도 없는 주검 곁 아주 살았네. 으어어 버버버 토닥토닥 아기 재우는 듯 무덤가에 핀 고사리 삐비꽃 억새 철 따라 장식했네… 대신 울어주러 왔네.”(‘버버리 곡꾼’)

장례식에 울어주는 이들을 ‘곡꾼’이라 부르는데, 개처럼 운다하여 이때 쓰는 곡자는 울다 곡자. 버버리 곡꾼, 맞아 우리 형도 그랬어. 목청 좋은 거위처럼 깍깍 꺽꺽 한도 없이 울었지. 나도 피식하면 울어 의진이 아닌 울보 우진이라 불렸는데 형은 한술 더 떴다. 형은 남이 울면 이유 없이 따라 울었지. 내가 울면 뒤질세라 개처럼 거위처럼 울었다. 곁에 살포시 앉아 함께 울어주는 일, 버버리 작은형이 내게 내민 유대와 사랑이었다.

없는 것도 서러운데 멸시천대가 다반사인 구조악. 낙타 바늘귀가 된 취업문턱에서 버려지는 청년들. 야만적인 한 편은 노란 리본의 세월호 유족들을 비정하게 외면한다. 반대로 죽은 아이들이 우리를 이 풍랑 속에서 구조 중이란 생각이다. 자본이 아닌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삶. 곡꾼 되어 연민 어린 삶들 사시라고.


임의진 |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하막걸리  (0) 2016.05.04
일판 사랑판  (0) 2016.04.27
버버리 곡꾼  (0) 2016.04.20
평범한 사람  (0) 2016.04.13
사우나 싸우나  (0) 2016.04.06
시대적응 불량자  (0) 2016.03.30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남북 겨레 모두 진달래꽃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는 꽃절기. 한강에도 대동강에도 행락객들이 늘고 있다.

평양냉면관이나 대동강식당 같은 해외에 퍼진 북한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 어떤 이들에겐 고소한 일이겠지만 음식 맛이 그리울 애호가들에겐 슬픈 이야기다. 먹고는 살아야지 않겠는가. 민족문화 선양의 관점에서 크게 애석한 일이다.

친구들이 놀러와 벚꽃 핀 뒷산으로 같이 걸어 들어갔다. 뒷산으로 난 가로수 벚나무에 핀 꽃이 떨어지고 산벚꽃도 지는지 먼산에도 눈이 내리는구나. 봄눈이렷다. 벚꽃이 지고 벚꽃이 쌓인 곳을 돌아보면 알래스카의 흰곰 백곰은 물론이고 신령하다는 툰드라의 백호까지 으르렁거리며 나타날 거 같아.

겨레가 마음 다해 존경해마지 않는 지도자 백범 김구. 백범이란 호는 ‘백정범부’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단다. 소 잡는 백정, 평범한 사람을 가리키는 범부. 평범한 사람들까지도 떨쳐 일어나 좋은 세상을 세우자는 다짐. 백범과 같은 겨레의 큰 길잡이 어른이 새삼 그리운 시절이다.



제주섬에서 감귤 농사를 짓는다는 가수 루시드 폴의 노래 가운데 좋아하는 곡이 있다. 평범한 사람을 노래하는 곡.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용산에서 죽고 팽목항에서 죽고 또 어디서 어느 별에서 죽고 또 죽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여.

백범은 평범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 빈털터리 승려에다 도망자 신세였고 한때 고물상을 하기도. 평범한 사람들을 존중하면서 동시에 평범에서 비범으로 성장해가길 그분은 누구보다 바랐다. 무지와 무관심, 냉택없는 두려움은 우리를 신판 노예로 전락시키고 있음이다. 민주공화국! 세상을 바꿀 이들은 결국 백정범부 국민들이다.


임의진 |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판 사랑판  (0) 2016.04.27
버버리 곡꾼  (0) 2016.04.20
평범한 사람  (0) 2016.04.13
사우나 싸우나  (0) 2016.04.06
시대적응 불량자  (0) 2016.03.30
봄보로 봄봄  (0) 2016.03.23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길가다 본 극장 포스터. 배트맨하고 슈퍼맨은 왜 싸우나. 이젠 하다하다 별놈의 것들까지 다 싸우고 별꼴이야 정말. 싸우지들 말고 벚꽃 구경이나 가시지. 벚꽃은 또 피자마자 엔딩이로군. 꽃세상도 잠깐이라 재미가 없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불구경. 뒤끝 작렬 뒤통수 때리기, 사과 안 받아주기, 눈곱만큼도 용서가 없이 매정하고 단호하기, 연대 같은 거 단일화 같은 거 절대로 안 하기. 징그러운 싸움구경. 구경은 뭐니뭐니해도 불구경, 싸움구경인가.

맹물보다 심심하다는 눈구경을 하러 갔던 날이 있었다. 핀란드 노르웨이 스칸디나비아의 협곡들. 쌍방울이 얼어 잘 걷지도 못해. 내가 음반에 쓴 소개 글로 국내 배급 중인 ‘KKV’라는 노르웨이 음반사가 있다. 수사네 룬뎅이랄지 시그바르트 닥슬란과 같은 음악인들의 주옥같은 노래들을 들으면서 오프로드. 깊은 침엽의 숲에 들어가면 자작나무로 물을 데우는 사우나 시설들이 기다린다. 외딴 시골일수록 전통이 남아있어 집집마다 사우나 전용 사랑채가 한 채씩. 난 공중목욕탕 가기를 어려서부터 싫어했다. 엄마가 여탕에 끌고 간 것도 아닌데, 그래서 1학년 1반 여선생님을 만난 것도 아닌데.(친구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진짜 옛날엔 이런 일이….) 이곳 담양에도 온천이 있으나 절대로 안 가. 땀이 없는 체질이라 구린 냄새도 없고 불치병 무좀도 없다. 목욕은 집에서…. 집이 흙벽돌로 쌓은 집이고 난로에 불 지펴 물을 데우는데 따로 온천을 찾을 까닭이 없지. 욕조도 큼지막하게 하나 있고. 요샌 떨어진 동백꽃을 주워 둥둥 띄우면서 럭셔리 단독 목욕.

장작으로 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으면 피로가 싸악 가신다. 증기목욕이 가능하도록 한두 평짜리 꼬맹이 사우나실을 만들까도 구상했었는데 목욕 한번 하겠다고 너무 호들갑인가 싶어 접은 게 수년 전. 포기해놓고선 두고두고 후회를 한다. 울타리에 자작나무를 심어 목욕물을 데운 뒤 싸움에 찌든 영혼, 아직도 싸우나, 그만들 싸우시지, 가시 돋은 마음들 내려놓으며 사우나를 즐기십시다들.


임의진 | 목사·시인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버리 곡꾼  (0) 2016.04.20
평범한 사람  (0) 2016.04.13
사우나 싸우나  (0) 2016.04.06
시대적응 불량자  (0) 2016.03.30
봄보로 봄봄  (0) 2016.03.23
팽나무와 바둑이  (0) 2016.03.16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