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03건

  1. 2014.09.03 책상 위에 램프등
  2. 2014.08.27 하모니카와 키스하는 법
  3. 2014.08.20 벌초
  4. 2014.08.13 닭장
  5. 2014.08.06 선한 양치기
  6. 2014.07.30 설탕물
  7. 2014.07.23 은자들
  8. 2014.07.16 평양 냉면
  9. 2014.07.09 조르바 춤
  10. 2014.07.02 옥수수 사람
  11. 2014.06.25 멸치 같은 사람들
  12. 2014.06.18 오! 수국
  13. 2014.06.11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14. 2014.06.04 앵두 보리똥 월드컵
  15. 2014.05.28 선거철
  16. 2014.05.21 숨 쉬는 이유
  17. 2014.05.14 책 읽어주는 여자
  18. 2014.05.07 ‘나무애미타불’
  19. 2014.04.30 동방예의지국
  20. 2014.04.23 노란 리본의 노래

“섬에는 정전이 잦다. 태풍이 불거나 폭풍이 근처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 때고 전기가 끊어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시장에서 사온 램프등을 켜놓고 답장을 썼다.”(류시화 <딱정벌레>) 여기 내가 혼자서 막 지은 황토집도 번개만 쳤다 하면 차단기가 내려가곤 한다. 집에 있으면 두꺼비집을 올리지만 집을 비운 날은 냉장고의 반찬들을 죄 버리고 만다. 냉동실엔 고등어 한 토막, 잠 안 올 때 마시는 보드카 한 병이 달랑달랑, 장아찌 정도로 간단하게 구비하면서 먹고 살아야 안심이 된다.

정전에 대비한 조그만 램프가 몇 개 있다. 하나는 나에게 처음 책을 내도록 용기를 준 류시화 시인에게서 선물받은 등이고, 다른 몇 개는 여행하면서 사가지고 온 예쁜 등잔과 미니 등. 네팔에서 고근호 조각가가 사온 푸른 램프. 매우 소중한 내 분신들.


내 작업실을 찾은 친구들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어둡지 않으냐, 조도가 낮다고 한소리씩 꼭 구시렁. 국정원 직원도 아닌데 음지, 어두운 곳에서 일하기를 좋아해. 멀리 무등산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인데도 항상 창문을 커튼으로 가린 채 생활한다. 창문도 환기할 때나 가끔 열어야 귀하고 사랑스럽지. 드라큘라 백작이랑 사는 스타일이 뭐 비등비등하겠다. 어둡고 침울한 독거자의 집, 빨간색 선짓국을 끓여 먹으면 딱 흡혈귀 포스가 난다.

요즘 난 집을 수리하고 있다. 책이 너무 늘어나 목수를 모셔와 또닥또닥 책방을 하나 짓고 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나간 길에 책상에 놓을 등을 한 개 구했다. 전기를 먹는 갓등인데 책을 볼 때 가까이 두려고 빈티지 골목에서 산 낡은 등…. 버지니아 울프의 방에 놓인 연갈색 책상처럼 손때 묻은 책상, 그 위에 이 전등을 올려놓고 김수영이나 네루다, 타고르의 시를 읽어야지.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 영화 <만추>의 사운드트랙을 올려놓으니 책이 되지 못한 운명의 나무들이 찬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책의 이야기들을 궁금해한다. 이 가을 당신에게 부탁 하나. 올가을엔 술집보다 서점에 자주 가시길. 흐~.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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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북아일랜드 초장만큼 바람이 차가워질 거 같아. 물리도록 이브 몽탕의 ‘고엽’을 듣게 되겠지? 밤마다 찌르찌르르 소년소녀풀벌레 합창단 발성 연습. 당신도 나도 자꾸 바깥에서 서성거리게 되겠지. 철길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누워야 기차가 달릴 수 있듯 구름도 하늘 높이 달라붙어야 찬바람이 자유롭게 비보이 춤을 출 수 있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들길, 손잡고 걷자. 걸어가 보자. 저 푸른 초장을….


남녘땅 목초지엔 양들 대신 염소 떼가 죽치고 산다. 아마 밤엔 몰래 노루랑 산토끼들이 내려올 거야. 잔디가 푸른 마당에 앉으면 하모니카를 불고 싶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두꺼운 입술을 가진 하모니카랑 열렬한 프렌치 키스를 나누곤 해. 숨이 가빠오면 후후 노래도 부르면서. 오늘은 ‘대니 보이’… 내가 사랑하는 월드뮤직을 골라 시디를 펴내곤 하는데 <여행자의 노래>는 그중 가장 오랜 레퍼토리. 한번은 아일랜드 노래 대니 보이를 내가 번안하고 누가 불러 전파하였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는 골짜기마다 은은하구나. 여름이 가고 꽃은 저무리니 나는 가고 너 홀로 남으리. 저 초원에는 여름철이 가고 산골짝마다 흰눈 덮여도 나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아! 목동아 목동아 내 사랑아. 가을이 깊고 꽃은 속절없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너 찾아와 내 무덤 앞에 서서 정다운 말로 날 불러주오. 네 부르는 소리 따스하리니 봄날에 무덤 꽃이 피리라. 너 부디 나를 기억하여 주오. 아! 목동아 목동아 내 사랑아.”

푸른 초장. 고향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죽는 일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잿빛 도시와 빠른 일상, 늦잠도 금지되고 아침밥도 못 먹은 불행한 아이들이 새벽별을 보고 등교를 한다지. 경쟁 또 경쟁, 머니머니 해도 머니라는 돈벌레들의 세상. 하모니카와 키스 하는 법을 잊어버린 불행한 현대인들. 숲길에서 가을 냄새를 맡고, 바람이 밀어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살자.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바람만이 알고 있지. 하모니카를 분다. 대니 보이, 어서 오라 내 사랑아!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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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이놈으 저년으 하고 쌈박질하다가 살을 섞는다. 깨진 살림살이 곁 지친 잠에 떨어진 딸년도 밀어놓고 단칸 셋방에 눈물로 눈물로만 누워 전설같이 살을 섞는다.”(오봉옥 ‘살다가’) 단칸, 아니면 두어 칸 아주 가난한 살림집에 인기척이 들려. 젊어서처럼 대책 없는 무데뽀 사랑은 아닐지라도 주책인 포옹으로 능소화의 볼을 부끄럽게 물들이는 나날들. 골목은 그렇게들 이어져 둔덕의 개울을 휘돌다가 불끈 솟은 정자나무를 만나고 젖가슴같이 봉긋한 뒷산에 이른다. 사람의 형상을 꼭 빼닮은 게 마을 지도다.

“치열하게 싸운 자는 적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황지우) 정말 지긋지긋했을 온갖 사연들. 땟국물 낀 집구석들의 연결망인 골목과 계단. 그 끝인 뒷산의 무덤. 인생의 끝도 종국엔 죽음 아니런가. 지긋지긋했던 일들 모두 잊고 조르라니 누운 무덤은 달고 벅찬 영생의 안식 중이렷다. 어려운 고난을 같이해야 진짜 동무지. 좋을 때만, 잔치 때만이 아니라 궂긴 일과 슬피 우는 날 함께했던 이들이 맞이하는 장엄한 위로. 서로에게 내어준 곁마다 화안한 환생의 무덤이여.


추석이 다가오니 벌초를 하는 소리로 산마다 우우웅 예초기 엔진소리. 효성스러운 후손들이 있어 그나마 벌초라도 대접받는 무덤이 있는가 하면 잊히고 버려진 무덤들도 허다하다. 인부를 사서 벌초를 하는 묘지가 점차 늘고 있는데, 정성이 부족하면 안되겠다 싶어 일부러 선영을 찾은 자녀들. 이슬람 신자들보다 더 갸륵하게 넙죽 절하고.

이맘때쯤엔 죽은 사람 말고 산 사람 벌초도 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이발을 단정하게 하고 자랑삼아 밖을 나다니신다. 친척들을 보려고 처음 먼저 하는 일이 이발. 거름 한 바작 이고 비투름 바투름 걸어가는 영감님, 각진 스포츠머리가 이른 명절 분위기다. 부모님 머리 단장하러 읍내 모시고 가던 일이 마치 엊그제만 같아. 언젠가 당신도 무덤의 풀을 뽑는, 이발이 아닌 벌초하는 처지가 될 것이리. 이번주엔 내 머리도 벌초를 해야겠다. 아니 이발….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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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분 별명이 닭이 된 후부터 닭에 관한 글을 쓰는 마음조차 요상스럽다. 자기 검열이랄까.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호들갑이 아냐. 소식을 들어 아시겠지만, 광주 비엔날레는 허수아비와 닭으로 풍비박산이 나는 중이렷다. 옥수수를 산새로부터 지키려면 허수아비가 필요하고, 마당에 닭을 풀어놓아야 달걀이라도 주워 먹는 산골에선 피식 웃어버리면 그만일 풍경인데….

닭장을 지어놓고 달걀 맛을 보며 살던 할배가 이승을 뜨자 닭장이 필요 없어진 할매는 나더러 닭장을 가져가 써보겠느냐 그러셨다. 닭을 키울 맘은 없는데 철사로 얼기설기 수제로 만든, 핸드메이드 닭장이 매우 예뻤기에 솔깃한 마음도 들었지. 가두고 키우려면 닭과 병아리에게 미안해서 포기. 예전에 폭정에 맞서 데모하다 이른바 닭장에도 끌려가 봤다. 한번은 불심검문에 걸려 빨갱이 외국서적이 가방에 들어 있다 하여 귀싸대기를 얻어맞기도 했었다. 사회과학책도 아니고 그냥 수필집이었는데 너무 억울하여 지금도 따귀가 얼얼해. 이런 웃지 못할 촌극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니. 그 시대를 주도했던 폭군들이 여태 건재하고, 아무리 복고풍이 유행이라지만 급행열차로 역주행인 세상을 보면 전라도 말로 ‘얼척이 없다’.


폭군 같던 폭염도 주춤. 입추 지나니 곧바로 살갗에 닿는 바람부터가 달라. 초복 중복 말복 광복. 해방이다 해방! 검둥개 누렁이도 무사하고 닭들도 모두 안녕. 퇴비를 내는 뒤꼍에 지렁이가 떼로 곰지락거리는데, 들고양이 사나워 닭들 얼씬도 않는 그곳에 삽을 들이밀었지. 지렁이 밥을 안겨주었더니 동네 닭들이 나를 알아보고 쫑쫑 뒤를 따른다.

통닭구이라는 고문을 자행하고 간첩 색출에 눈알이 발갰던 분들. 요즘도 심심하면 소설 쓰듯 지어내는 간첩단 조작사건…. 동네 치킨집에서 치맥이나 하며 오순도순 살아도 부족한 짧은 인생이거늘. 비정상의 정상화는 이런 거 아닌가? 나이가 들면 권력을 버리고 시골로 낙향해 닭들 키우며 사는 것. 사람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닭들 보살피는 닭장이나 지으며.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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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임의진

농부는 어떤 통과의례를 거쳐 농부가 되는 걸까. 들바람이 꼭두머리로 불어 지극하게 쓰다듬을 때 농부로 인증받는 걸까. 자운영꽃이 정성스레 발뒤꿈치를 매만져 주는 날, 그 시로 들녘을 사는 농부가 되는 걸까. 최보따리 해월 선생은 스승 수운을 만났을 때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아! 가슴이 뜨겁게 되면 그날로 제자가 되는 걸까.

스님은 계를 받는다하고, 천주교 사제는 서품을 받는데 개신교 목사는 안수를 받는다. 나도 신학교를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내게 안수를 주신 분은 통일 선구자 조용술 목사님이다. 평생 민주화와 분단 극복에 한목숨 바치셨던 믿음의 아버지. 범민련 베를린 3자회담을 하고 귀국길에 공항에서부터 연행되어 구속되셨는데, 그때가 일흔이 넘은 노구였다. 우리 목사님은 평생을 독재정권에 의한 연행, 수감, 감시와 처벌을 달고 사셨던 분이다. 작은 믿음의 씨가 떨어져 나 같은 후예를 두셨는데, 늘 뜻을 받들지 못하고 사는 일이 죄스럽다. 우리는 이런 분을 모두 까맣게 잊고 산다. 이름이 비슷한 어떤 목사님은 정반대 인생을 살고 계시는데, 그 부유하고 의뭉스러운 이름 앞엔 다투어 줄들을 서고….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일이 머지않았다. 그분이 사목했던 아르헨티나 성당도 가보았고, 후배들인 사제들을 만나기도 했었다. 사뭇 다른 그분의 행보 앞에 세계가 많은 자성과 변화를 주문받고 있다는 반응들이었다. 최근엔 교종의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을 줄을 쳐가며 읽기도 했다. “오늘날 모든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지 맙시다. 다만 다를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앞서가며 그 시대의 어려움에 맞서 싸운 성인들에게서 (길을) 배웁시다.”

이 외딴 동네에도 교회들이 몇 갈라져 있는데 성인들의 길을 따르기보다는 온갖 경영이론을 총동원하여 부흥과 성장이라는 배불리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대도시 교회들은 안 봐도 훤하겠고. 선한 양치기를 만나기 힘든 시절. 문제는 깨어있지 못하는, 우매한 양들에게도 있겠다. 여하튼 우리 시대의 선한 양치기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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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먹을 게 많아져서 과체중 뚱뚱이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만 예전엔 홀쭉이들이 배로 많았다. 홀쭉이들의 장점은 개구멍을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거. 여름엔 수박밭에 서리를 하러 가기도 했는데, 빼빼 마르고 날렵해 보이는 홀쭉이들을 앞세워 밤마다 곳곳에서 서리가 펼쳐졌다. 수박이나 참외를 지키기 위해 주인장은 높다랗게 원두막을 짓고,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 원두막엔 파란 그물망 모기장이 별들을 거르는 체처럼 밤새 살그랑거렸다. 라디오에서는 조용필 오빠 신청곡과 이종환 아저씨의 디스크쇼,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 여기저기서 골든 팝송들이 가사 내용과 함께 지글지글 끓어넘치고 있었고.

나는 어려서 자주 아팠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 개근상을 받는 일이 드물었다. 다운 장애인이었던 형은 누워 있는 나를 위해 설탕물을 타주었다. 물론 자기가 절반 넘게 꿀꺽꿀꺽 마셔댔지만. 고마워서 언젠가 수박밭을 지나다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밭에 숨어들어 수박서리를 했던 날을 기억한다. 덜 익은 수박이었지만 얼마나 달았던지 내 입술과 혀가 남들보다 더 빨개진 거 같았다. 천사였던 형은 나의 꾐에 빠져 그날로 천국에서 쫓겨나는 신세였고. 에덴동산에서 몰래 딴 금단의 열매가 그렇게 달았을까. 세상은 괴로웠어도 사랑은 설탕처럼 수박처럼 달았다. 우린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세상에 없는 줄로만 믿었다.

속을 모두 파먹고, 절반의 수박 통에 남은 붉은 물. 그 물을 쪼옥 마셔본 일이 있는가? 그 물을 동무와 나눠 먹어본 사람은 안다. 마주 앉아 함께 머무는 그 다디단 맛을. 설탕 한 숟갈 물에 풀어 나눠 마셔본 아이들, 지금은 어른이 되었을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다디단 인생을 살고 있을까. 아무리 괴롭고 쓴맛의 인생일지라도 우리들 그날의 추억을 잊지 말자꾸나. 장마 그치고 폭염의 연속. 짜디짠 땀의 인생 가까이 가난한 설탕물이 한 사발. 당신이 들고 온 수박 한 통에 둘러앉으면 그게 바로 천당이지. 십자가도 불상도 다 필요 없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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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솔라시도’ 발음하기는 쉬워도 노래를 만들어 부르라면 어려운 법. 수많은 가르침을 듣고 배워도 실천하고 행하는 일은 간단치가 않다. 그래 사는 일, 살아보는 일을 포기하고 배우는 일에만 허송세월하는 분들도 많아라. 틈새시장이랄까, 도사 흉내를 내는 승냥이들이 이런 양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오히려 농사짓고 사는 촌로들이 학삐리 수도자보다 백배 건강하며 소로나 토머스 머튼을 능가하는 명상가, 신비가들로 가득한데 왜들 다른 데서 지혜를 구할까.

“먼뎅이(먼 산)엔 비구름이 꽉 찼소만 쪼잔허게 소낙우 조깐 내리고 말아부요잉. 포장헌다고 엎어둔 질(길)이 흑몬지(흙먼지)가 뿌야튼만 메욕(목욕)이라도 허겄다 싶었지라이.” 한숨 쉬는 할망구. 찌는 더위를 피해 이 은자는 민물비트리(다슬기)를 잡아 옆구리에 차고서 피서를 즐기던 순간이었다. “물이 솔찬이 차갈거신디. 이 더위에 추와서 저승가메(상여) 타불믄 큰 박수야 받겄소만. 날벌가지(날벌레)도 많고 그란디 이적시(이제껏) 물에 지셨소? 부처님이 물처럼 바람처럼 살라등만 아조 물에 지피 빠지셔꾸만.” 농으로 걱정까지 해주시고.

“빌라도(별나게도) 오늘은 석양 하늘이 곱소야. 뱃속이 허심헝께 그랑가 몰르겄는디, 히히. 인자 나도 올라갈 날이 머지않응게 그래 보이겄지라잉.” 산처럼 굽은 등을 기우뚱거리며 썰렁한 빈집을 향해 가시던 차 한 말씀 내려주시네.

둘러보면 모두가 은자들. 경자 안자 미자 순자, 아니 노자 장자 말고도 은자가 있다는 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어떤 봉쇄 수도자보다 맑은 얼굴들. 이 산촌은 내게 수도원이나 진배없는 곳. “은둔은 모든 가면과 위선을 벗기는 일. 은둔은 절대 허위를 참아주지 않네. 명백한 확언이나 침묵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숲의 고요에 의해 조롱받고 심판받으리.” 달이 차오른 밤, 침묵의 시간이로다. 은자들은 잘 때 푹 자고 깨어있을 땐 호랑이 물어가도 죽지 않을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린다. 잡초를 뽑고 씨를 뿌리며 특별한 방법이나 비책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은자들에게 우리 어찌 반하지 않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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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욕조가 물을 기다리듯 가뭄에 탄 저수지가 빗물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그래도 남녘은 홑적삼 젖을 만큼은 비가 내렸어. 북녘은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맛봤을 뿐. 담양에 살다보니 광양 단양 밀양 양양 영양 정양 함양, 이런 곳이 마치 이웃동네 같다. 거기다 평양을 빠트릴 순 없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겨레의 한 고향 평양. 국가보안법이 암만 시퍼래도 수런대는 수천수만의 밀어들까지 잡아 가둘 수는 없는 법. 평양을 도읍지로 삼고 사는 저쪽에 이러다가 또 큰 흉년이 들지나 않을까. 배고픈 사람들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모국어를 같이 사용하는 동포라면 날씨 예보 들으며 이런 걱정 한번쯤은 해보았겠지. 따뜻한 피가 감도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헤어져 이렇게 소 닭보듯 지낼 것인가.


흰 메리야스 차림의 아재가 들녘에 물꼬 보고 오는 걸음새를 보아 하니 매가리가 축 늘어져 있다. 자글자글 햇빛이 끓고 있는 논바닥에서도 더운 바람이 굉장해라. 바닷가 ‘포’나 ‘진’에 오래도록 살다가 뭍 땅 ‘양’으로 이사를 온 뒤부턴 빗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물 한 바가지의 감사함, 두레박을 내리고 퍼 올린 맑은 생수를 허투루 쓸 수가 없다. 하물며 냉면을 먹어도 비빔냉면보다는 물냉면을 찾게 되고, 어디 식사자리에 초대받아 가면 해산물에 덥석 손부터 간다.

면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여름엔 냉면을 자주 먹게 되는데, 힛~ 나는 수북면 면민이라서 면을 아예 기본으로 달고 살지. 부랴부랴 첫차로 일 나가는 노동자. 밤새 마신 술로 토악질을 하다가도 점심끼니 냉면 한 그릇은 수분을 보충해주고 해장을 돕는다. 입맛이 없는 여름 더위엔 냉면이 최고야. 평양 냉면을 자주 먹어야 통일 입맛도 지닐 수 있음이렷다. 햄버거와 피자, 빙수, 아이스크림이 아무리 맛나다지만 여름엔 그래도 냉면이지. 입맛 음식맛이 결국 고향이고 조국이지 않던가. 평양 냉면, 함흥 냉면… 수수만년 즐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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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숙소에 당신이 묵는 줄도 모르고 단잠에 빠져든 여행자. 젖은 태양은 숨어 보이질 않고 장대비만 홀로 눈떠 오래도록 탭댄스로다. 얼른 일어나 같이 춤을 춰볼까. 내 별명은 어깨춤. 월드뮤직 애호가들은 떠돌이별이라 하고, 성격이 까칠해서리 까실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어깨춤이란 인디언식 이름이 가장 맘에 들어. 이 별명을 갖게 된 계기는 <그리스인 조르바>렷다. 영화에선 앤서니 퀸이 조르바로 분해 덩실덩실 춤을 췄지. 무위에 이른 초탈한 춤을. 한평생 조르바 춤을 추며 살고픈 게 소원이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면서 똑 부러지게. 한껏 자유롭게. 누구 지시 받고 지령 받는 하수인 노릇은 죽어도 못해. 예수님도 부처님도 내가 좋아 따르는 것이지 속박하고 조종을 하시겠다면 당장 삼천리나 도망가 버릴 테다.

비가 계속되니 방에서 조르바 어깨춤을 추며 요가 운동. 칠레 영화 <글로리아>를 봤는데 주인공으로 분한 폴리나 가르시아가 ‘글로리아’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던 끝장면을 잊을 수 없다.


고달픈 이혼녀가 조르바처럼 당당히 춤을 추게 되는 장면은 소름이 돋을 정도. 로라 브로니갠이 부른 추억의 팝송 글로리아, 그 디스코 음악에 막춤을. 가끔씩 ‘퐈이야!’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같은 것도 재밌고. 절대로 안 잡히는 구원파 두목님 현상수배 벽보에 새겨진 야릇한 입꼬리, 청문회장에 선 재테크의 달인들 염치없는 썩소. 수백 벌 맞춤옷을 자랑하는 패션여왕의 근엄한 미소도 글로리아 춤을 추는 참자유의 환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기만일 뿐.

우산을 쓴 할매들이 매스게임 춤을 추며 지나가고, 그 뒤로 버얼건 흙이 빗물에 튀어 춤을 추고. 말라깽이 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엉덩이를 실룩거리면서 마실을 나가는데 꼭 클럽에 춤추러가는 여자애 같아. 괜히 주눅 들지 말고, 억울한 눈물만 흘리지 말고, 촛불아! 정의의 춤을 추렴. 별들아! 4대강 썩은 강물에 떠서 소생의 춤을 추렴. 조르바 춤을….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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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씨이익, 영감은 싸아악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면 금니 틀니도 덩달아 더글더글. 금테를 두른 틀니를 꺼내어 물에 씻고 난 다음 다시 장착. 오만가지 수다를 와르르 쿵쿵 쏟아낼 때쯤 하늘도 입을 벌려 후드득 장맛비를 쏟아낸다. 이빨이 빠지면 옥수수가 털렸다고 우스갯소리로 그러는데 옥수수가 다 털린 할매와 영감. 잇몸과 틀니를 동원하여 가까스로 호물짝거리면서 옥수수를 드시는 모습은 애처롭고도 숭고하여라.

시방 밭에는 옥수수가 실하게 여무는 중이렷다. 그것도 물컹물컹 어르신들이 드시기 편한 찰옥수수가. 잉카 마야 전설에 의하면 신이 처음 인간을 창조할 때 흙이 아니라 옥수수를 찧어 이겨 그 반죽으로 우릴 만들었다지. 그러니 옥수수 이빨도 틀린 말이 아니겠네 뭐.


나 어려서 자랐던 동네에 옥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집이 째지게 가난하여 옥수수와 감자로 끼니를 주로 때웠다. 나를 오빠 오빠아~ 따르면서 좋아했는데, 목사관에서 고봉밥과 달걀 반찬을 얻어먹고 돌아가는 날엔 더 아양스럽고 길다랗게 오빠아~를 불러젖혔지. 옥수수를 보면 그 아이 배고픔이 문득 생각이 난다.

옥수수를 여러 조각으로 쪼개 나눠 먹으면 엄마는 항상 끄트머리 꽁지. 굵고 토실한 알갱이는 자식들을 먹였다. 당신의 어머니, 할머니, 증조와 고조할머니… 옥수수로 당신이 지음 받고 길러졌음은 정녕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옥수수를 쪄놓고 기다리시던 부모님. 옥수수대만큼 키가 자란 자식들을 대견해하던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할매들에게 옥수수를 가끔 대접받고, 나눠 먹자며 한 토막 건네실 때는 가장 굵고 토실한 부분을 안겨주신다. 어머니의 사랑이렷다.

금니로 살짝 웃으시며 옥수수로 성체분병. 핵이빨로 물어뜯는 축구선수 수아레스보다 더 옥수수를 꽉 깨문다. 깨물어주고 싶게끔 사랑스러운 당신. 누런 옥수수 피부를 가진 내 님, 옥수수 사람이여. 나는 어느덧 옥수수수염까지.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턱에 하얀 수염이 나기 시작했다. 이를 어째!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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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눅한 날이 잦아 쌀독에 벌레가 났는데 마당에 널었더니 새들이 훔쳐 먹고. 잠깐 나갔다오니 소낙비 맞아 못 먹게 되고. 쌀독이 바닥이 나서 국수나 한 그릇 끓였다. 손 쉬운 라면은 있으면 꼭 먹게 돼 사놓지를 않는데, 궁상맞은 독거생활 주제에 건강까지 챙긴다고 비웃으시겠네. 귀찮더라도 멸치로 국물 우려내어 국수 한 그릇. 열무김치도 잘 익어서 양대 국물로 속이 간만에 편안해졌다.

삼치, 참치, 갈치, 바닷물고기들 속에 새끼손가락만한 멸치가 살고 있다. 고래가 새우만 먹는 게 아니라 멸치도 먹는데, 멸치떼가 좋아설랑 우리 해안에 눌러 산다는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더라. 심지어 먼 바다에서 멸치를 즐기는 멸치 고래라는 이름을 지닌 고래도 있단다. 원무를 그려 춤추면서 고래를 희롱하기도 하고, 거대한 모양으로 고래에게 위협을 주기도 한다. 뭉치지 않으면, 단결하지 않으면 멸치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나도 여름엔 맥주 술고래. 친구들이랑 시원한 맥주를 즐기는데 안주는 고추장에 찍어 먹는 멸치 안주가 최고렷다. 베를린에서 잠깐 지낼 때 루터교회 친구랑 죽이 맞아가지고 만날 맥주로 밥을 대신했었다. 고향 어머니가 챙겨주신 멸치와 고추장에 반한 키다리 친구는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해 하더라. 이제 다시 먹을 수 없는, 어머니가 챙겨주신 멸치와 고추장.

죄 고만하고 풍성하지 않아 보여도 짭짜름 고소할 뿐만 아니라 깊은 국물 맛을 내는 데 없어서는 안될 멸치. 우리네 진솔한 민중들, 무리지어 오가는 서민들…세상에 국물 맛을 내는 멸치 같은 친구들. 속이 훤히 다 보이는 투명한 멸치. 거짓됨이 하나 없이 투명한 몸으로, 멸치는 시방 바다와 육지에서 떼를 지어 움직이고 있음이렷다.

나는 오늘 당신을 멸치라 부르고 싶다. 고래를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 멸치. 고래는 멸종할지 모르나 멸치는 쉽게 꺾이지 않아. 웃고 울며 단결할 때, 한 무리 한통속일 때 멸치는 절대로 지지 않아. 깨어있는 시민들처럼 대오를 갖춘 멸치로 바닷속은 오늘도 짱짱하게 대치 중이다.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짠맛까지도 멸치의 공덕이 아니겠는가.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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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지어 헤엄치는 물고기처럼 거리응원단까지 ‘대-한-민-국!’ 함성이 드높은 때다. 하지만 우리 동네 주민들은 딴 세상 사람들 같아. 성령을 한번 받아보려고 멀리 읍까지 새벽부흥회 나가는 교인들이나 꼭두새벽 움직이시지 대부분 천근만근 무거운 몸뚱어리들. 전파가 잘 잡히지도 않는 테레비를 붙잡고 브라질 시간대에 맞춰 ‘고오오올~’ 연호할 만한 기력조차 없음이렷다. 게다가 슬로 시티 담양에 사는 즐거움을 어찌 포기할 수 있으랴. 늦잠은 기본이고 낮잠은 보너스. ‘한국’은 친일파 잔챙이들이 여태껏 재물과 권력을 싹쓸이해가는 슬픈 나라의 이름. 다행스럽게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산골짝 마당은 순결하고 정결한 ‘수국’의 나라. 6월 민주항쟁의 화이트칼라처럼 말쑥하게 차려입은 수국은 온 세상 사람들이 환히 웃는 진일보한 하루를 힘차게 응원하는 거 같다. 한국만큼 수국은 아름답고 소중한 이름. 물국화 수국의 나라에 장마구름이 몰려오고, 나와 당신은 경이로운 자연을 경배하며 찬미한다.



“모든 것에 경이로움을 깨닫는 아이처럼 항상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갖기를. 그리고 작은 풀과 꽃떨기부터 저 멀고 먼 행성에까지 모든 피조물을 향한 사랑과 경배의 마음을 가지라. 그래야만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인디언 모히칸족)

수국 꽃이 만개하는 이맘때는 하늘이 장맛비를 몰고와설랑 원도 한도 없이 물을 쏟아부어준다. 바닥까지 드러냈던 저수지도 수국 덕분에 만수가 되고, 애타던 채마밭도 수국 덕에 해갈의 기쁨을 얻게 된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나는 수국처럼 갈증에 시달려 물통을 항상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무조건 ‘신가스 아구아(맹물)’를 확보해 놓아야 안심이 됐다. “물 좀 주소! 목마르요….” 한대수 아저씨처럼 괄괄거리는 목소리로 만날 물타령이었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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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여름, 이른 더위. 못자리 물을 흠씬 받은 논에는 개구리들이 장엄미사 대합창. 당신은 들에서 검게 익어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밭은 있는데 논이 없는 나는 농부랄 것이 없지.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푹푹 빠지는 무논에 마음만 같이 부려놓고…. 어릴 적 아버지는 농사꾼 교인들 집집마다 다니며 일손을 돕고 그러셨다. 농번기 방학이 있었는데, 나도 아버지 따라 동네 다니며 모도 심고 들밥도 얻어먹고 그랬지. “목사님이 도와주싱게로 올해 농사는 해보나마나 대풍이겄재라. 마니마니 자시쇼잉. 여보! 겨란 후라이라도 조깐 부채오재 그랬능가. 우리 의진이 먹을 것이 없네잉.” 동네 아재는 들밥 위에다가 침을 잔뜩 튀기며 일장 연설로 부산을 떠시고…. 식초 맛이 싸아~하던 오징어무침, 꼬신 냄새가 진동하던 누룽지 밥. 들에서 손을 모아 기도하고 먹었던 그 들밥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시간이 멀리 흘러 내가 이제 아버지의 그 나이로구나. 혼자 된 분들 논밭은 뭐가 하나씩 부족하고 야물지가 못해 거들어주고만 싶은데, 내가 무슨 아는 게 있어야 면장을 하지. 그저 길가다 말 신청이나 살갑게 걸고, 정다운 사람들 고추 몇 개 쥐여주면 얻어오는 재미. 달라이 라마 스님의 가르침대로 살고픈 여기 한 사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누구에 대해서도 나쁜 생각을 갖지 않는다. 또한 나 자신보다 이웃을 더 많이 생각하고, 남이 나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들이라고 여긴다. 나는 늘 타인에게 행복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달라이 라마, ‘용서’)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자 따라서 불러보는 오후.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하르르 꽃잎이 지는 날, 사람이 그리워 문밖으로 나간다. 나비도 나를 따라 들길을 따라오고…. 황혼에 기운 사람들 곁에 다가가 “손을 꼭 잡았소”. 달차근하고 정겨운, 당신께로 향한 길.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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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월드컵이 코앞이다. 나 또한 축구협회에 불만이 매우 많아. 요샛말로 축피아. 그래도 수북중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조기 축구를 비롯하여 유소년 축구교실 애들까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 작년 여름, 남미오지여행 고생 끝에 브라질에 입성했는데 리우데자네이루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그 동네 ‘노는 아이들’과 공도 찼다. 알랑가 몰라. 나 그런 몸이셔. 개인적으로 야구를 정말 좋아해서, 특히 폭포수 커브 김진우 투수와 부처님 작은아버지 한대화 수석코치님 광팬이라서(사인볼 부탁해요)… 그래도 야구만큼 축구도 세상에 꼭 필요한 재미 하나 아니겠는가.

스포츠에 빠져 세상사 모두 잊을까봐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더라. 살아있는 시민들이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정치 문제들, 그러려면 예선 전패하고 빨리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하더라. “마약 중에서도 가장 선동적인 마취제 ‘성조기여 영원하라!’ 노래.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감정을 고양시키는 설교, 국기를 늘어뜨린 관, 여러 인종으로 구성된 운구대원… 대중을 좀비로 만드는 데 이만한 것은 없지”(필립 로스의 소설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에서)… 애국심이 비뚤어지면 나치 같은 괴물을 낳지. 그렇지만, 하지만, 박주영 선수의 기도를 이제는 하느님도 좀 들어줬으면 좋겠어. 구두쇠 짠돌이 하느님.




아이들이 드문 동네엔 공이라고 하늘에 뜬 낮달과 태양뿐이로다. 젊은 축에 끼는 국씨 아짐씨 젖가슴은 축구공에서 야구공으로 아니 탁구공으로 변한 지 오래되었고. 전쟁하듯 지방선거를 치른 분들도 축구공처럼 둥근 마음을 가지고 상대편을 품어가야지 어쩌겠누. 한동네에서 같이 살아가려면 그 수밖에는 길이 없어.

뜰에 ‘둥글게 둥글게’ 앵두가 열렸다. 나와 새들이 앵두를 가운데 놓고 한판 월드컵 경기 중. 잠깐 한눈판 사이 앵두는 새들의 것이고, 공격수처럼 날쌔게 다가가면 뒷걸음질을 친다. 남녘에선 ‘보리똥’이라고 부르는 보리수나무 열매도 산새들이 차지하려고 난리. 연전연패. 에라~ 열매를 모두 따다 술을 담가 버릴까. 아서라. 이 주정뱅이 목사야.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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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선거철이다. 처음 보는 생경한 얼굴부터 정치판을 오랜 날 기웃대온 면면들까지 시골동네도 온통 울긋불긋 현수막 물결이로다. 길가로 하얗게 한들거리는 마가렛 꽃떨기가 그래도 내 눈엔 젤 먼저 들어온다. 정치판에서 순결하고 순정한 꽃떨기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 마가렛 꽃떨기처럼 수줍고 환한 미소를 가진 정치인을 하나 만나고 싶다.

현수막 중에는 일면식 정도가 아니라 벗하며 지내는 이름도 더러 보인다. 다행히 내가 인연한 정치인들은 정의감과 봉사정신이 남다른 분들이시다. 보통 속물들이 권력맛을 보려고 정치권을 맴도는데, 이번에도 수준 높은 우리 국민들의 분별심을 믿어 볼밖에.


그동안 잘 해온 정치인에게는 격려와 함께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야겠지만 비리와 부정을 일삼은 구태세력, 추태 정치인은 당장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할 것이리라. 건강한 대안세력, 참신한 인물들로 지역마다 골골마다 사람 사는 맛이 돌았으면 좋겠다. 말뿐이 아닌 새 정치, 퇴보가 아닌 진보정치를 진정 보여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주인을 무는 개에게 정치를 맡길 것이냐, 온기 있는 피를 가진 이에게 미래를 맡길 것이냐 선택의 날만 남았어라.

논밭에 스미지 않은 채 양철지붕에서 부서져 그만 먼 바다로 휩쓸려가는 빗방울도 있음이렷다. 암만 생각해봐도 생활정치에 무관심하고 그 바닥을 혐오하면서는 좋은 세상을 당겨올 수 없을 거 같다. 검은 그림자를 남기지 않으려고 높은 하늘을 나는 새일지라도, 배가 고프면 어김없이 땅으로 내려와야 하는 법. 땅의 사람들 곁에 스며들어 상생하는 정치, 인간 세상 산적한 위기를 해결해주는 희망의 정치. 투표는 살기 좋은 세상의 시작임이 분명하겠다.

“누구 찍을라요. 정해는 놨소?” 할매들이 내게 물어온다. 다짜고짜 “김대중 노무현은 몇 번이라요?” 묻기도 한다. 나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장군은 몇 번이라고 가르쳐주고선 씁쓸히 웃고 만다. 군수와 시장을 뽑는 선거인데도 여전히 탱크와 군홧발 소리가 아프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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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택씨 상춘씨 하고 부르다가 나는 수박씨 참외씨 옥수수씨 호박씨 이렇게 또 당신의 이름을 달착지근하게 불러본다. 씨앗은 먼 훗날의 재회 약속. 그래서 수채통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뱉어버릴 수 없음이다. 당신은 어디다 씨앗을 뱉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흙 마당이나 밭에다가, 아니면 들길을 걷다가 적당한 땅에 툭 뱉어낸다. 새들이 물어가고 남은 씨들은 더러 갸륵하게 뿌리를 내리기도 하더라.

세상에서 가장 빨간 속살을 지닌 수박과 노란 리본을 단 원피스를 걸쳐 입은 참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사계절 연속극. 이맘때쯤엔 냉장고에 아껴둔, 얼음이 살짝 언 다디단 식혜 한 그릇도 일미 중의 일미렷다. 알사탕처럼 둥근 달빛 아래 모여 식혜 맛을 즐기는 조선 사람들, 진짜 “으리집 으리음료 신토부으리…” 달달한 맛은 어쩔 땐 당신의 입술보다도 더 달달달.




요새 세상은 단물이 쏙 빠지고 쓴물과 짠물로 고약한 형편이구나. 세월호 아이들이 무지개 나라로 떠난 이후 설탕물 대신 쓰디쓰고 짜디짠 맛들 천지로다. 죄책감이 들어서도 단물을 멀리하게 되고…. 바늘을 찔러봐라 꿈쩍이나 하나 그토록 차갑던 철의 여인이 눈물까지 보이고, 미개한 국민을 지도 편달 중인 개화된 누구께옵서도 짜디짠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5·18을 맞아 메이홀에선 한겨레 만평의 만화가 박재동 샘의 시사만화를 총망라 전시 중이다. 전시 제목을 내가 잡았는데 ‘숨 쉬는 이유’라 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진실한 눈, 따뜻한 행동, 손에 손 맞잡은 다디단 인연들 덕분에 이나마 숨 쉬고 사는 것이리라.

둘러앉아 수박화채를 나누어 먹고, 노란 리본 참외도 깎아먹고, 항아리 얼음 식혜로 입가심하면서 단맛의 세상을 즐기고 싶어라. 유채꽃밭 아카시아 꽃산을 헤집고 다니는 꿀벌처럼 단 거 없인 못살지 못살아. 다디단 사람, 당신의 이름에 씨자를 붙여 마치 씨앗인 것처럼 상냥하게 불러주고 싶어라. 아무개씨, 항상 미안해! 사랑해! 그리고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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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날 월드뮤직을 소개하는 방송일로 중남미를 떠돌다 왔다. 그래서 만날 그쪽 동네 음반만 챙겨 들었는데, 이제야 정신이 좀 드나 전축 곁에 다른 대륙 가수들, 고전음악, 재즈 음반들도 눈에 띄기 시작한다. 어디를 가든 음악을 낮게 켜두고 책을 읽는 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목사라도 자비량으로 여태껏. 가뭄에 콩나듯 몇 푼 생기면 대부분을 책과 음반 구입에 쓴다. 생선이라도 하나 먹고 싶지만 꾹 참고 몰빵. 좋은 글과 음악에 한없는 감동이다. 남의 그림 구경하러 다니다가 낙서 같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젠 도화지와 물감 없이는 못 산다. 여기 시골편지 삽화도 우스꽝스럽지만 내 솜씨.

레몽 장의 소설 <책 읽어주는 여자>에선 이런 명함이 등장한다. “젊은 여성, 가정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여러 가지 시와 텍스트 문헌, 기타 서적”… 어릴 적 나도 집에 찾아와 책을 읽어주는 천사가 있었다. 긴 머리를 곱게 땋은 스물몇살 주일학교 선생님. 소매가 늘어나도록 동화책을 읽어 달라 졸랐었다.

목사님이었던 아버지는 밤마다 또 성경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는 상상력으로 가득차 꿈이 온통 성경 속의 주인공들로 마블시리즈나 진배없었다. 밤마다 꾸는 꿈이 벤허, 십계, 쿼바디스 같았다.



아이들 머리맡 동화책을 읽어주는 엄마 아빠. 외로운 할머니는 테레비와 라디오가 밤새워 말벗이 되어준다. 영혼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랑 노래와 얘기들이렷다. 사람들이 저 번잡한 관계망에서 놓여나 호젓해지고 느긋해졌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책 읽어주는 여자와 남자이길. 한 장의 음반 선물로 그의 침소에 밤새 속삭임이 되어주길. 우리는 ‘영혼의 안전’을 위해서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겠다. 책을 읽는 백성이라야 산다.

“음악이 있는 곳에 나쁜 사람은 없다.” 쿠바의 속담이란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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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목항에 걸린 글귀가 비구름처럼 글썽거린다. “그동안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었는데, 이제 널 보내니 가난만 남았구나.” 봄꽃이 가을꽃보다 일찍 지듯 눈물이 바다보다 먼저 짠맛으로 흘러내린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걸 잃고 난 뒤, 맑은 국물에 소금이 풀어지듯 미래가 삽시간에 녹아 사라진 걸 안 뒤에야 사랑에 대해 알게 되었다네. 손에 잡았던 것, 귀하게 알고 아꼈던 것들. 이런 모든 걸 잃고 난 뒤 사랑 없는 풍경은 참으로 황량만 하여라.” 팔레스타인의 시인 ‘나오미 시하브 나이’의 시를 베껴 적은 공책을 살짝 뒤적여본다. 송화가 핀 솔숲 그늘 아래 담요를 깔아놓고 소풍을 즐겼다.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Plaisir D’amour….”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로 듣다가, 트윈폴리오의 번안곡으로 듣다가…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어느덧 해지고 어둠이 쌓여오면 서글픈 눈물은 별빛에 씻기네. 사라진 별이여 영원한 사랑이여. 눈물의 은하수 건너서 만나리. 그대여 내 사랑 어디서 나를 보나. 잡힐 듯 멀어진 무지개 꿈인가….”




고추밭 토마토밭 채전밭의 어린 것들에게 때마다 물을 흠뻑 준다. 작은 호롱불빛처럼 야생화도 피었는데 덤으로 너도 “옜다!”. 텃밭과 꽃밭을 오가면서 비중을 어떻게든 꽃밭으로 두려고 하는데, 그래도 명색이 시인이니깐. 가난하지만 행복한 내 사랑 내 밭작물들.

“문복쟁이(점쟁이) 제 사주 못보대끼 촌에 산다고 죄 농사를 잘 짓는 건 아니재라. 안쓰러지게 맹기라줄라먼 대에다가 꽉하니 잡아 묶어야 써요. 그라고 물 보타 죽지 앙커코롬(않게끔) 유제(이웃)만 믿지 말고(내가 집을 자주 비우니 밭작물 염려되어 가끔 물을 주시고는), 신경 제깐 쓰고 사쑈잉.” 비중을 텃밭으로 당겨주는 할매의 일성. “고추 하날 키워도 이라고 심(힘)이 든디 하물며 아그들 키우는 맘은 으짜겄소. 꽃도 못피워 보고 일찍 가불믄 그 애미 속이 젓갈 속이겄재. 아이고 나무애미타불.” 그래 아미가 아니라 애미겠지. 우리 동네 할매 부처님은 요새 부쩍 나무아미타불을 입에 달고 사신다. 아니 나무애미타불을….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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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새로 뽑힌 이장은 사람들이 있건 없건 “야 의진아!” 하면서 막 하대를 해대는데 목젖이 부어오를 정도다. 엊그제는 “이 시발 놈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친근함(?)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나도 나잇값 못하고 살지만 열 손가락 몇 번 흔들어야 하는 연령대인데… 흐~ 쥐뿔만한 완장으로 똥폼을 잡기 위함일 게다. 어이 상실, 귀여운 울 동네 이장님.

내가 형이라고 다정히 부르는 사람은 진짜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말을 내리고 편히 하대하는 동생도 정말 몇 되지 않아. 강의 나갈 땐 어린 학생에게도 높임말을 사용했다. 어린 제자일수록 귀하게 공경하여 모시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럼 버릇없어진다고? 보고 배우는 것일진대 어른이 버릇없으니 아이들이 따라서 버릇없어지는 거겠지.


동창을 오랜만에 만나면 그쪽에선 무조건 반말인데 나는 “자네는 어떠신가”. 정말 마음이 가까운 사람 아니면 애 엄마, 애 아빠가 된 벗한테 함부로 말을 내릴 수 없음이다. 동갑내기에게 높이며 대하는 게 남들이 봐선 친하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적당한 거리가 느껴져 두고두고 좋다. 어느 철없는 대안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어른을 친구로 대하라며 교내에서 선생님에게 반말 짓거리를 한다는 얘길 들었다. 외계인들 개그콘서트도 아니고. 그러려면 모두 높임말을 써야 맞지. 별의별 사이비 대안이 다 있구나 그랬다.

사람에 대한 공경심이 사라진 세상. 목숨과 인격이 먼저가 아니라 가진 재물, 알량한 삼일천하 권력이 망나니 칼춤을 추는 세상. 먼 나라 대통령은 검정 정장을 차려입고 애도를 표하러 찾아왔는데 눈물 콧물 국상 중에 상주가 밝은 하늘색 옷차림이라니. 변명이랍시고 하늘색은 창조, 도전, 청운, 꿈, 미래, 젊음, 도전, 긍정, 영생의 의미라던가. 구둣발로 아이들 거처하는 방에 터벅터벅 들어가는 북쪽 나라 장군님 또한 한 치도 뒤지지 않으시고…. 구원인지 십원인지 구원파 교주는 예의 없이 모세 할아버지를 세모라고 성까지 갈아버리지를 않나. 헐! 진짜 답이 없네. 허울뿐인 동방예의지국에서 속이 까맣게 탄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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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들판 숨 가쁜 골짜기 어머니.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엘랑 다시는 나오지 마세요 어머니.” 김남주 시인의 ‘편지’란 시에는 남녘땅 선창가의 안타까운 이별이 그려지고 있다. 미개한 게 아니라 순수해서, 교활하고 약삭빠르지 못해서, 너무나 느리고 착해서 만날 빼앗기고 만날 당하고 선창가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바보 같은 우리네 어머니. 그 어머니에 그 아들 그 딸인 우리네 선량한 이웃들….

노란 색깔 리본을 친친 감은 떡갈나무에 우리들 이름도 빠짐없이 적혀 있음이겠다. “Tie A Yellow Ribbon Round The Ole Oak Tree….” 임이 돌아올 때 식별이 가능하도록 떡갈나무에 매어둔 노란 리본의 노래가 고딩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목소리처럼 흥겹게 춤을 추는데, 돌아오마 약속하고 떠났던 아이들은 목소리마저 까마득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일주일, 아니 보름, 한 달이라도 정녕 뜨거운 피가 도는 사람이라면 생환의 기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요전날 서울 간 김에 <한공주>라는 제목의 영화를 늦은 밤 웅크리고 구경했었다. 선량한 주인공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영화는 절대 안 보겠다 다짐하면서도 꼭 그런 영화를 굳이 찾아서 보게 된다. 상처 입은 고딩 ‘한공주’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 여행용 가방을 질질 끌고 거리를 헤맨다. 갈 곳 없어 찜질방으로 어디로 떠도는 공주가 찾아올 수 있도록 집 앞에 노란 리본을 달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끝내 아이가 강바닥으로 뛰어들어 인어처럼 사라져갈 때 나는, 공주 그 가여운 가시내를 구하려고 캄캄한 극장에서 덥석 손을 내밀었다.

노란 장미꽃이 핀 내 산골집엔 어디 다녀오면 새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환대의 인사로 아카펠라 노래를 불러준다. 꽃이 피는 집을 새들도 좋아해. 흙은 그립고 보고파 “흑흑흑” 운다고 흙인데, 당신의 몸은 가루가 되고 흙이 되어 이렇게 눈물로 꽃을 키우는가. 새들이 꽃나무 그늘 아래 노래를 불러주는 집, 노란 리본을 걸어둔 집집마다 당신이 어서 찾아가주길.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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