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임의진의 시골편지'에 해당되는 글 215건

  1. 2014.11.26 튀밥이 내리는 날
  2. 2014.11.19 산타 오빠 산타 언니
  3. 2014.11.12 국화꽃 향기
  4. 2014.11.05 하루만 햇새
  5. 2014.10.29 피카소, 추위와 사랑
  6. 2014.10.22 연탄검댕이
  7. 2014.10.15 풍선과 평화
  8. 2014.10.08 샹송을 듣는 시간
  9. 2014.10.01 이상한 사람
  10. 2014.09.24 석별의 정
  11. 2014.09.17 오브리가도
  12. 2014.09.10 코흘리개
  13. 2014.09.03 책상 위에 램프등
  14. 2014.08.27 하모니카와 키스하는 법
  15. 2014.08.20 벌초
  16. 2014.08.13 닭장
  17. 2014.08.06 선한 양치기
  18. 2014.07.30 설탕물
  19. 2014.07.23 은자들
  20. 2014.07.16 평양 냉면

자전거를 갖고 싶은 아이가 있었어. 침상에 눕기 전 큰 소리로 기도했대. “하느님이 귀가 멀었겠니. 왜 큰 소리로 기도하는 거야?” “하느님은 들으시겠지만 아빠가 못 들으실까봐서요.” 흐흐, 맹랑한 녀석. 나도 오늘은 큰 소리로 기도하고 잠들어야지. 내일은 제발 함박눈이 내리게 해달라고. 하늘나라 선녀님들은 단체로 클럽에 놀러 가셨나들. 송이송이 눈꽃송이 자꾸자꾸 뿌려줘야지 뭐하신대들.

빌리 조엘의 신나는 방랑 주제곡 ‘The stranger’를 귀에 꽂고 남미 페루를 여행하고 다닐 때였어. “모두들 남쪽으로 길을 떠나지. 낯선 여행자는 비밀을 안고 있다네. 네 속에도 은밀한 이방인이 숨어 있지. 낯선 이방인과 마주치면 너는 대번 흔들리고 말지.”


쿠스코에서 파는 옥수수는 그야말로 떡니, 산토끼 앞니만큼이나 굵었어. 그 옥수수로 뻥튀기를 하는데, 우리나라 뻥튀기 장수랑 똑같은 행색을 한 아저씨가 뻥튀기 기계를 돌리고 있었지. 크나큰 옥수수가 펑펑, 폭죽을 쏘아 올리면 아이들이 몰려왔어. 가끔 쌀을 한 바가지, 튀밥도 펑펑. 고소한 냄새와 함께 튀밥처럼 생긴 눈이 사방으로 흩날렸지.

서로에게 흔들린 여행자들은 튀밥을 나눠 먹더군. 그들 머리 위로 모자를 흔드는 바람, 높은 구릉을 넘어온 눈발이 수수 날리고. 점점이 굵직한 튀밥눈이 내려오면 목마른 아이들은 다투어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렸어. 혀가 젖을 때쯤 하늘은 맑게 갰고 개들은 광장에다 묽은 똥을 누더니 산동네로 사라져갔다.

아픈 무르팍을 끌고 그 길들을 오가면서 먹었던 튀밥을 잊지 못해. 과자가 흔해진 세상. 비싼 초콜릿과 케이크. 느닷없는 빼빼로데이. 이런 세상에 곶감과 튀밥이라니. 물고구마와 희고 긴 가래떡을 화덕에 구워먹길 좋아하는 이방인. 그래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방인이 되어 버리고 말았네. 튀밥을 먹고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 길거리에 흔해. 샌드위치를 든 아이들이 누룽지를 찾는 아저씨를 흘겨봐. 검은 하늘에선 튀밥 대신 방사능 묻은 창조경제 범벅눈이 만들어지고 있다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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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사는 사람을 신선이라고 부른다. 신선 그거 별거 아니다. 도시사람 안 같고 그냥 신선한 사람이 신선이지.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신선은 집과 세상을 오가는데, 이제 제법 겨울 속 같아. 진눈깨비를 한바탕 보기도 했어. 쌓이지도 못할 거면서 어쩌자고 내리는 것인지. 대지를 향한 중력의 사랑이여. 가슴이 뭉클뭉클 했어. 겨울에 신선은 하얀 머리칼이 된다. 눈을 뒤집어쓰면 백발마녀보다 더 푸짐한 백발을 눌러쓰고 휘휘 바람 사이를 걸어 다니지. 대지가 얼음을 껴입는 추운 밤에도 빨간 내복차림으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산타 할아범. 자판기 커피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집집마다 돌면서 선물을 돌린다는 산타 할아범. 우는 아이에겐 선물을 안 주겠다며 겁박을 하는 캐럴도 있지만 사실 산타 할아범 그렇게 쩨쩨한 영감탱이 아니야. 선물보따리엔 해바라기씨, 맨드라미씨, 연보라 패랭이꽃씨, 꺼시렁 보리밭을 지나면 보리 미숫가루 한 봉지 챙겨들지. 배고픈 아이들 주면 좋겠군 웃음기 번진 산타 할아범. 산을 타고 넘나드는 산타. 그래서 산타인가. 아이고 허리야 하면서도 잉글리시 아이고 하면서 또 냅다 달려가지. 벌겋게 익은 얼굴, 땀에 전 옷가지들.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호주머니는 땡그랑 동전뿐. 직장 잃은 아빠 엄마 궁핍한 살림살이. 그럴 땐 몰래 산타, 대리 산타 그런 것도 있단다. 누구긴 누구야. 당신이지. 산타 오빠 산타 언니…. 신선이 별거 아니듯 산타도 별거 아니야. 바로 우리들이 산타지.


하얀 빛깔 아기고양이들이 태어난 봉쇄수도원의 환호성. 절집 공양보살님이 키우는 하얀 진돗개 강아지는 나른한 오수를 즐기네. 세상은 고요하고 사랑은 따뜻해. 어두운 난세에도 별빛은 성성하고 메주 덩어리는 곰팡이꽃을 피워 희망을 키운다. 팔려온 아기 염소는 눈알을 궁굴리며 엄마 꿈을 꾸네. 눈물은 마르고 미소가 번진 아기 염소. 언젠가 아기도 엄마가 되겠지. 푸른 초장으로 이끌어주리라. 어서어서 배부르도록. 선물을 나누고 관심을 나누면 세상이 바뀌겠지. 저마다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면 겨울밤은 절대 춥지 않아.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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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향이 가장 진할 시기다. 마실 길에 맨손으로 뜯어온 국화 몇 단. 큼지막한 머그잔에 담아놓고 지켜보는데 온 집안이 국화향이다. 내 손바닥에도 국화꽃 향기가 맵게 배었다. 이럴 때 얼른 당신이랑 손잡아야 하는데…. 바깥 기온이 큰 폭으로 떨어졌어. 맹물을 팔팔 끓여 홀짝이며 마셨지. 향기 때문인가 꽃차를 마시는 기분이 들더군.

가을비로 말갛게 씻고 향수를 바른 몸, 국화는 깨끗하고 요염하여라. 중세 유럽에선 씻지 않고 악취를 풍기는 것이야말로 수도자의 도력이 높다는 증거로 삼았단다. 성 아몬은 출가 서원한 뒤 한번도 자기 알몸을 본 일이 없었다지. 성 에우프락시아는 130명의 수녀들과 같이 지냈는데 그곳 수녀님들은 평생 발을 씻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목욕이라는 말만 들어도 까무러칠 정도였단다. 그밖에도 많은 수도원들이 일 년에 딱 두 번 목욕을 허용했다. 악취를 풍겨야 수도생활에 정진했다는 증표라니 차라리 악취 향수가 필요했겠어.


세탁기도 자주 돌리고 담배를 태우지도 않는데 친구들이 가끔 향수 선물을 준다. 나이가 들었으니 몸단장, 옷단장하고 다니란 소리겠다. 가끔 국제공항 면세점에서 향수병 샘플을 맡아보기도 해. 꽃향기만은 못해도 왠지 끌리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옷깃에 가볍게 묻혀온 사람을 만나면 배나 친근하고 근사하게 느껴진다.

촌에서 풍겨나는 향기는 주로 흙냄새 불냄새 똥냄새. 소를 키우는 집에선 송아지 냄새가 나고 꽃을 가꾸는 집에선 꽃내가 나겠지. 마음에서 풍기는 향기는 유리병에 담은 향수와 비교할 수 없음이렷다. 어떤 게 소중한 향기인지 모르고 값비싼 향수를 몸에 들이부은들 무엇하리요. “눈 덮인 철로는 더욱이 싸늘하였다. 소반 귀퉁이 옆에 앉은 농군에게서는 송아지 냄새가 난다.” 월북시인 오장환의 ‘북방의 길’ 첫 소절이다. 증기열차 석탄 냄새와 송아지 냄새, 백두산 호랑이 오줌 냄새도 난다. 보라 이 사람, 보라 이 꽃! 킁킁거리다가 사람과 꽃에 덩달아 취하고 마는, 어느 꽃핀 날.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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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락거리는 수풀 사이로 새들이 모여 산다. 뒷산은 매 일가족이 살아 매봉이라고 부른다. 한 번씩 공중에 붕 뜨면 온 동네 들쥐들은 쥐구멍을 찾아 비상대피. 그동안 내린 비 족족 마르고 따사한 햇살을 쬐며 매가 날았다. 어린 매가 자랐었나봐 처녀비행도 펼쳐졌다. 엄마를 따라 후계자가 처음 보이자 숲은 바람이 불지도 않았는데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헤르만 헤세 말고 하루만 햇새. 내일부터는 햇새가 아니라 이 동네를 지키는 늠름한 텃새가 되겠지. 무사한 비행을 마치고 쏜살같이 숲으로 사라진 매들. 하늘이 이토록 높고 푸를 수 있는 걸까. 정수리를 지나 목덜미까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깊은 하늘이었다. 그 하늘로부터 빳빳한 빛줄기가 내리꽂히고, 덤불 속에서 굵은 새알은 눈을 뜨며 깨어났을 테지. 어떻게 이 많은 새들 가운데 매가 존재하고, 매는 매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고, 꼭 닮은 아기 매를 낳을 수 있었을까.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어라.


가까스로 목선을 몰고 피항하듯 당신은 집을 향해 바쁜 걸음이었다. 햄 소시지와 라면 두어 개, 달걀 한판. 저녁나절 금성마트 앞길에서 만난 당신은 저 멀리 아시아 남쪽에서 날아온 새. 새를 닮은 사람. 어쩌다가 이 동네까지 흘러들어온 걸까. 외국에서 시집온 여성들도 꽤 살고 있고, 공장에 취업 중인 팔목이 굵은 아시안 친구들도 더러 보인다. 작년부터 다문화가족을 위한 송년축제 추진단장이란 감투를 썼다. 그냥 친구들이 알아서 갖다 붙인 일벼슬. 연말이면 반쪽고향이 더욱 그리울 다문화가족.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밥도 먹자며 그렇게 시작한 일이다. 올핸 어떤 인연들로 하루를 즐길까. 자기를 닮은 아이들, 햇새들도 즐겁게 해줘야 할 텐데. 외국인 노동자는 겹겹이 바람이 쟁여진 면사거리에서 집으로 향했다. 쓸쓸히 둥지를 찾아가는 한 마리 매. 고향나라에 두고 온 어린 매는 잘 자라고 있을까.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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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인연하여 함께했던 여인들, 그러니까 첫사랑 올리비에와 동거녀 에바, 첫번 결혼 상대자였던 무용수 올가, 부나방 같았던 열애의 주인공 마리 테레즈, 서커스단의 곡예사 출신 누쉬 엘뤼아르, 우는 여인 도라 마르와 법대생 프랑수아즈 질로, 말년을 함께한 재클린까지….

아니라는 설도 있지만, 파리의 라파예트 백화점 네거리에서 피카소는 소녀 테레즈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나는 피카소라는 화가요. 그대의 초상화를 그리고 싶소. 우리가 함께한다면 놀라운 작품이 탄생할 거요.” 팔을 붙잡고 다짜고짜 첫마디가 그랬다고 한다.


사랑은 구름처럼 떠도는 유령이어서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감정. 책임과 약속의 울타리가 아니라면 화가의 사랑은 범람하기 일쑤렷다. 피카소는 추운 밤을 못 견뎌 했다지. 아마도 스페인의 항구도시 말라가에서 태어난 때문이리라. 말라가는 캘리포니아처럼 다습고 밝은 땅. 게다가 피카소는 밤을 혼자 새우는 걸 지독하게 싫어했다. 난로에 장작불을 피우면 될 일을 기어이 뜨거운 사람의 체온을 찾기 바빴다. 그럼에도 용맹정진, 수만 점에 이르는 그림을 그려냈다. 공산당에 가입하고 숱한 염문을 뿌려 난리굿판 인생이었지만 결코 창작에 게으르지 않았다.

갈색 나뭇잎은 다투어 떨어지고 밤이슬도 차가운 때. 외양간과 풀냄새, 찬 공기도 좋긴 하지만 더운 바닷가가 다시 그리워라.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노래엔 따뜻한 캘리포니아 꽃들과 선인장, 파도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난 교회당에 들어섰죠. 무릎을 꿇고 기도했어요. 목사님은 보통 추위를 즐기죠. 그분은 내가 이 추위 속에서 캘리포니아 꿈을 꾸는 걸 알고 있겠죠. 나무 잎사귀가 모두 갈색이네요. 하늘은 잿빛이고요. 산책을 나갔죠. 어느 겨울날… 나는 따뜻한 캘리포니아로 가는 꿈을 꿔요.”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라는 노래 가사다. 피카소가 해변에서 파라솔을 높이 들고 연인이랑 웃으며 노니는 사진을 앞에 놓고, 밤바람이 차가워 외투를 둘러쓰고서 시방 이 글을 쓴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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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에선 빨리빨리를 ‘싸게싸게’라고 부른다. 천천히 하라는 말은 ‘싸목싸목’이라 하고. 싸게싸게와 싸목싸목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니지. 싸게싸게 난로 곁으로 장작개비를 옮기던 중, 새끼발가락이 문턱 사이에 끼여 뼈에 금이 가는 줄 알았다. 기와지붕이 날아갈 만큼 오매! 비명을 질렀지. 다행히 목숨 대신 단풍잎 하나가 눈앞에 떨어지더군. 눈을 드니 온 산에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어라. “오매! 단풍 들겄네….”

집 주변은 재미없고 멀리 단풍놀이를 가야 하는데, 나도 단풍놀이 갈 줄 아는데…. 누가 주말에 해남에서 보자고, 일지암 법인 스님이랑 산보나 하자고. 예전엔 툭하면 만났던 인연들. 지금은 일년에 한 번도 못 보고 산다. 대개의 인간관계가 그렇게 흐르고 있다. “오래된 인연들을 버리지 마라. 새로 사귄 친구는 옛 친구만 못하다. 새 친구도 오래되어야 제 맛이 우러난다.”(구약외경 집회서) 남자들은 무조건 새 여자를 좋아한다는데, 농이 아니라 우리는 시방 너무들 새로운 시대에 취해 오래된 미래를 사랑하지 못하고 사는 거 같아.


“칠습 평상 살믄서 낭구 안 꼬실리고(태우고) 살게 된 거이 얼마 안됐재. 낭구(나무) 할라믄 가을이 겁나 바빴재. 시상이 채(훨씬) 좋아져 부렀재. 부삭(부엌)에 광이 딸려 있었는디 아조 망하태(안 좋아).” “불이 날까봐서요?” “큼매 그란단말요. 초가집에 불이 많이도 났재.” “후다닥 끄믄 되재라우.” “요새가치 물 호스가 집집마다 어디 있었간디? 살림을 홀라당 태워묵고도 잘 살었재. 가진 게 없으니께. 흐흐.” 나도 겨울채비로 불쏘시개 나무를 좀 더 해둬야 하는데, 날이 추워지기 전에 부지런을 떨어야 해. 아니면 연탄이나 태양광으로 바꾸던가. 낮에 뵌 할매는 기름 때시다가 무서워 연탄보일러로 바꾸시고 내게도 적극 추천. 보수적인 교인들이 나를 빨갱이 사탄이라고 그런다던데 그렇다면 연탄이 아니라 사탄보일러가 필요해. 연탄검댕이가 묻었나 검고 순한 눈빛들. 추위가 겁나지 않아. 연탄사람들 곁이라 마음만은 활활 연탄불이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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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미니 납작 만화책이 별책부록으로 들어있는 풍선껌이 있었다. 학교 앞 점방에서 주로 놓고 파는 물건이었는데 인기가 짱이었다. 잘근잘근 씹으면 단물이 나고 이어서 풍선을 이따만 하게 불었다. 풍선껌이 눈앞에서 팍 터지면 껌은 콧등에 달라붙었다. 그걸 또 걷어다가 입에 넣었지. 눈으로는 만화를 날렵하게 넘겨 읽고. 6·25 반공만화가 제법 많았는데 교회 주일학교에서 더 잔인한 살인과 전쟁 이야기를 숱하게 들은 통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난 풍선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이였다. 용돈이 생기면 과자보다 먼저 풍선을 샀다. 달이나 태양도 풍선일 거라고, 풍선이 아니고서는 저 멀고 높은 곳에 떠다닐 수 없는 거라고 굳게 믿었다. 동물원에 처음 놀러갔을 땐 빨간 풍선을 하나 샀는데, 풍선을 실에 매달고 다니면서 홍학처럼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었다. 실이 끊어져 도망가 버린 풍선은 늙은 당나귀가 가지고 놀다가 터트려버렸다.


풍선은 거미가 줄을 매달고 노니는 것처럼 실로 매달고 있어야 풍선이지 손에서 한번 떠나면 가시에 찔려 터지거나 시야에서 사라져버리는 물건이렷다. 애지중지 풍선을 꽉 쥔 손바닥에선 땀이 송송 맺혔다. 내 작은 손엔 늘 풍선실이 감겨있었고, 달아날까 안간힘으로 붙잡고 있으려니 손바닥은 소금땀 염전이었다. “가장 즐거운 것은 천진하게 마음속에서 이쪽을 신뢰하며 내미는 어린이의 손이다. 이것은 마치 동물의 앞발과 같아 전적으로 친애의 표시기 때문이다.”(<무서록>·이태준) 풍선을 만지던 내 손은 하늘에 닿아있었고, 그것은 정말 친애의 표시였다.

요즘 누군가들이 북녘땅으로 대형 풍선을 날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풍선에 매달아 보내는 대북 전단엔 무슨 내용이 들어있는 걸까. 총격전까지 벌어진 모양이니 짐작하여 알 수 있는 부분이겠다. 풍선에 매달아 동포들에게 닿게 해야 할 소식이 꼭 자존심을 짓밟는 조롱과 험담이어야 할까. 풍선은 풍선으로 족하고, ‘삐라’는 그만두기를. 남북 간 존중과 대화,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편지왕래가 속히 이뤄졌으면 좋겠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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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올랑드 정권이 탄생하던 투표 날 귀국했으니까, 파리 외곽 시골 마을 도몽(Domont)에서 딱 한 달을 슬렁슬렁 지냈다. 지인의 소개로 무턱대고 찾아간 동네. 이방인에게 방을 한 칸 내준 할배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꽃길을 달렸지. 빵을 잘 굽는 집을 수소문하거나 낡은 성당에 앉아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완행열차를 타면 코앞인 고흐의 무덤 마을도 자주 갔다. 그림 속 별들이 대낮인데도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것 같았다.

서낭당 나무 속에 굴을 파고 사는 부엉이처럼 조용조용히 지내다가 가끔 파리 번화가에 나가곤 했다. 음반가게 프낙이나 버진에 들러 샹송 음반을 골랐다. 당신도 좋아하는 에디트 피아프나 이브 몽탕, 수염을 더부룩 기른 음유시인 조르주 무스타키가 부르는 ‘나의 자유’나 ‘나의 고독’은 반드시 들어야 할 노래. 샹송이란 ‘민중의 노래’라는 뜻. 우리네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가감 없이 스며든 주제가들. 가을엔 무조건 샹송이다. 마로니에 가로수길, 낙엽이 구르는 파리 시내. 그 길로 흐르는 잔잔한 노래들. 스펀지나 솜뭉치가 풀어져 궁둥이가 움푹 파인 소파에 앉아 샹송을 들어보라. 망가진 소파에서 망가지고 지친 인생도 잠시 기대어 위로를 얻는 순간.


선돌 위에 흙 묻은 신발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방에서 시름시름 앓던 날이 있었다. 마당 구석 약탕기에서 끓던 한약재 냄새. 낙엽으로 밑불을 지피고 그렇게 방에 들어오면 왠지 샹송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바다에 물이 저렇게 많건만 한 움큼도 마실 수 없는 것처럼 무수한 세월도 짜디짠 회한뿐. 낙엽이 떨어져 흩어지듯 사람 목숨도 천년만년 머물지 못한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초승달이 기우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때 샹송을 들으면 맘이 편안해진다. 이중 국적자처럼 갈팡질팡 인생, 한창 푸르던 미나리꽝 인생도 언젠가는 꽝꽝 언 얼음 땅이 되고야 말리라. 그날이 오기 전 친구와 다정히 샹송과 와인 한잔, 작은 내 소망이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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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샤인! 가을볕은 눈이 다 시릴 지경이야. 들소처럼 일하다 발갛게 그을린 농부들. 나도 남국에서 시커먼스가 되어 돌아왔지. 멧돼지가 칡뿌리를 찾듯 밭고랑부터 냉큼 갈아엎었다. 겨울에 배곯지 않으려면 부랴부랴 푸성귀라도 뭘 좀 심어야겠다. 가만히 살지 이상한 짓거리를 한다고 할매들이 또 뭐라시겠다.

김경미 시인의 시집 <밤의 입국 심사>에서처럼, “나만 이상한가?”라고 되묻고 또 의심하는 날들. 나만 이상한 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외로운 기분. “나만 이상한가. 당신들은 늘 양말 두 쪽을 가지런히 신고, 단추는 남녀 화장실처럼 왼쪽이나 오른쪽 구별해서 꿰고, 일생에 다섯 명 이상의 친구가 꼭 있어야 하고….” 뻔할 뻔자로 살지 못하는 운명의 시인들.


어쩌다 목사가 되었는지 몰라라. 목사님들이랑 어울리기처럼 어렵고 불편한 일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확신에 가득 찬, ‘댑다’ 큰 목소리. 성공과 번영이라는 코드로 목회를 하는 분들이 대다수다. 장사를 하지 왜 목사를 하는 건지. 시쳇말로 싸가지 없는 진보는 더더욱 상종하기 괴로운 무엇이다. 거리의 투사들 가운데는 벗들에게까지 말과 행동이 거칠어 만나기가 주저되는 이가 있다. 그가 쿨룩쿨룩 기침을 하듯 욕을 해대면, 나는 벌써 눈물이 차오른다.

나는 당신이 염치없는 세상에 염치를 알고, 불편해하며 나대지 않고 숨으려 하는…, 이상한 행동거지가 마음에 든다. 혼자 잘난 체 일장연설을 늘어놓기보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소중히 여기고, 때론 어색해서 자리를 피하기도 하는 당신. 평범하고 일반적인, 별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세계, 이 체제를 의심하고 번민하는 이상한 당신. 당신의 그 불편함 때문에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겠지. 범상치 않은, 다른 생각과 다른 공기를 좋아하는 당신이여. 가죽이 들뜬 신발도 아닌데 발가락에 바람이 숭숭 드나든다. 가을 공기를 까칠한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상한 계절의 이상한 사람의 이상한 생각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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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리에서 보트를 빌려 타고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아따우로 섬에 다녀왔다. 동쪽 끝 악어가 출몰하는 자코 섬과 더불어 동티모르에서 가장 수려한 경관을 지닌 섬. 기이한 산호초와 만화영화로 잘 알려진 물고기 니모를 보기 위해 스노클링을 하기도 했다. 이 작은 유인도엔 어부들이 터를 잡아 살고 있다. 바람 빠진 공을 차는 아이들의 앵무새 같은 웃음소리. 야생에서 자라는 돼지들이 꿀꾸르르 노래하는 골짝, 우쿨렐레를 가지고 다니는 악사라서 이런저런 바다 노래를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몇 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 현대인들은 만남이 흔하기 때문인가. 이별, 작별, 석별에 무감한 심정들이다. 공항이나 버스터미널, 항구, 기차역에서 헤어지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 전화가 발달하면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따우로 섬을 떠날 때 아주 오래도록 손을 흔들던 그곳 주민 닐스를 기억한다. 내가 탄 배가 선창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는 팔이 아플 텐데도 오래도록 손을 흔들었다. 돌고래가 춤추는 바다를 지나면서 나는 조용히 입안에 사탕을 굴리듯 노래를 굴렸다. “날이 밝으면 멀리 떠날 사랑하는 임과 함께 마지막 정을 나누노라면 기쁨보다 슬픔이 앞서. 떠나갈사 이별이라 야속하기 짝이 없고 기다릴사 적막함이라 애닯기가 한이 없네. 일년사시가 변하여도 동서남북이 바뀌어도 우리 굳게 맺은 언약은 영원토록 변함없으리.” 이제는 정말 아무도 부르지 않는 ‘석별의 정’이라는 노래다.

사랑은 이별을 동반한다. 그래서 사랑은 아프면서 아름답다. 지루하고 지난한 관계는 밍밍한 물이나 다름없겠지. 순례자는 이별을 통해 사랑을 키운다. 남겨진 이는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겠지. 그리고 점차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질 때쯤 순례자는 우연 반 필연 반 턱하니 코앞에 나타나곤 하리라. 몸은 떠나지만 언약은 남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간대도 언약은 영원토록 변함없으리.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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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 선사는 동백꽃을 가리켜 산다화라 불렀다지. 엄동 추위에 매화가 필 때, 매화 옆에서 빨간 동백꽃도 곁들어 피느니… 산에 피는 차꽃. 매화 편에서 산다화는 얼마나 고마운 존재이겠나. 힘들고 어려울 때, 아프고 쓰라릴 때 팔짱을 끼고 같이 가주고, 배려하고 기운을 북돋아주는… 같이 밥 먹고 차 마시며 속엣말을 나누는 사람. 그래서 매화는 친구 덕분에 마침내 겨울을 뚫어내고 산천을 매화향으로 뒤덮을 수 있음이겠다.

고마운 사람아. 변심과 배신이 만연하여 정 붙일 곳 하나 없는 이 쓸쓸한 별에서 당신은 홀로 깊고 뜨거우며 진실하여라. 도시의 바깥을 지키는 외딴 집들, 외딴 불빛들 속에 당신이 머물고 있음은 내겐 그 무엇보다 큰 위로이며 안심이어라. 물에 잘 풀리는 창호지처럼 당신 앞에선 자존심 따위 세워봐야 민망해. 존재 자체로 선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귀한 사람. 당신과 함께 있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도 역경도 고맙고 감사해라. 기진맥진 쓰러진 나에게 슬픔 두려움 낙심, 이런 인생의 난제들을 헤쳐 나가도록 용기를 부어주고 기도해준 사람.


여기는 멀리 남태평양 동티모르. 내 입에서 “오브리가도(고맙습니다)”가 거의 남발 수준으로 튀어나온다. 산자락을 타고 어스름이 내려오는 시간. 소박한 저녁밥상 앞에서 오브리가도를 크게 외친다. 보고 싶은 친구들을 다시 보게 되고, 한 밥상에 둘러앉아 있음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스크리트어로 ‘보디사트바’를 우리는 보살이라 부른다. 사랑하고 고마워하는 마음 ‘보디치타’에서 나온 말이란다. 내 마음속 은인을 알고 모시는 마음. 고마운 존재.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되는 이들. 나는 당신의 보살이고 당신은 나의 보살이 될 수 있기를. 오브리가도, 새끼손가락 하날 붙잡고서 수줍은 목소리로 뇌어보는 말. 잦은 서운함 때문에 미처 몰랐던 그 고마움이 왈칵 눈물로 쏟아지는 날.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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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이 나 구들더께처럼 드러누워 며칠 앓았다. 고향을 떠나 객지로 옮겨 다니면서부터 몸살이 나기 시작했다. 납작 엎드려 중력의 지배를 받는 행성임을 밝히겠다는 듯 몇날 며칠 물만 마시고서 드러누웠어. 그래도 회복되지 않으면 의사 선생님을 만나야 하고, 그래도 성가시면 날개 달린 천사나 검은 갓을 쓴 저승사자 손을 잡고 요단강을 건너야겠지.

오래전 공동묘지에 가보면 아기 무덤이 거푸 보였다. 먹고살기 힘들던 시절엔 유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아기 무덤을 보면 들꽃이라도 하나 꺾어 묏등에 놓아주고 싶어진다.


우리 겨레의 신화이기도 한 바이칼 신화엔 ‘아바이 게세르’가 등장한다. 게세르의 다른 이름은 누르가이였다. 부리야트 부족의 말인데 코흘리개라는 뜻이다. 어렸을 때는 개똥이 소똥이 이렇게 더럽고 천한 이름을 지어 불러야 악한 영들이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는다고 믿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나 십대가 되면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복된 이름을 찾아 지어주었다. 이는 만주벌판을 거쳐 한반도, 멀리 툰드라까지 이어지는 똑같은 풍습. 얼굴에 주근깨 범벅인 늙은이 만잔(점박이) 구르메(할멈)…. 구르메 할멈은 게세르, 아니 코흘리개 누르가이의 어머니인 나란 고혼의 삼년 묵은 기침병을 고쳐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젖먹이 누르가이가 태어나자 보모 역할도 너끈히 맡아주었다. 코흘리개는 텡그리(하느님)의 맏아들 부르한 바위 위에서 씩씩하게 뛰어놀았다. 마법의 까치가 깃털을 고르는 바이칼 호수 마을, 이맘때쯤부터 추위가 싹트기 시작하여 시월이면 하얀 눈이 꾸덕꾸덕 내리고 얼음도 뼘만큼 얼기 시작했다. 나도 당신도 어려서 개똥이 소똥이 코흘리개로 불리며 어느 동리를 주름잡고 자랐겠지.

물 넘치던 샘, 약손으로 배를 문질러주시던 구르메 할멈, 서먹하니 나무그늘에 앉아 있다가 손을 더듬어 잡은 어린 연인들의 동네. 당신이 나의 잔주름을 어루만져줄 때 나는 벌써 개똥이 소똥이 이름을 버리고 난 뒤였지. 우리는 아름답고 늠름하고 영특한 이름으로 오늘도 살아있음이렷다. 부디 이름값을 하면서 보석처럼 빛나야 해.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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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는 정전이 잦다. 태풍이 불거나 폭풍이 근처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 때고 전기가 끊어져버린다. 그래서 나는 시장에서 사온 램프등을 켜놓고 답장을 썼다.”(류시화 <딱정벌레>) 여기 내가 혼자서 막 지은 황토집도 번개만 쳤다 하면 차단기가 내려가곤 한다. 집에 있으면 두꺼비집을 올리지만 집을 비운 날은 냉장고의 반찬들을 죄 버리고 만다. 냉동실엔 고등어 한 토막, 잠 안 올 때 마시는 보드카 한 병이 달랑달랑, 장아찌 정도로 간단하게 구비하면서 먹고 살아야 안심이 된다.

정전에 대비한 조그만 램프가 몇 개 있다. 하나는 나에게 처음 책을 내도록 용기를 준 류시화 시인에게서 선물받은 등이고, 다른 몇 개는 여행하면서 사가지고 온 예쁜 등잔과 미니 등. 네팔에서 고근호 조각가가 사온 푸른 램프. 매우 소중한 내 분신들.


내 작업실을 찾은 친구들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어둡지 않으냐, 조도가 낮다고 한소리씩 꼭 구시렁. 국정원 직원도 아닌데 음지, 어두운 곳에서 일하기를 좋아해. 멀리 무등산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인데도 항상 창문을 커튼으로 가린 채 생활한다. 창문도 환기할 때나 가끔 열어야 귀하고 사랑스럽지. 드라큘라 백작이랑 사는 스타일이 뭐 비등비등하겠다. 어둡고 침울한 독거자의 집, 빨간색 선짓국을 끓여 먹으면 딱 흡혈귀 포스가 난다.

요즘 난 집을 수리하고 있다. 책이 너무 늘어나 목수를 모셔와 또닥또닥 책방을 하나 짓고 있다. 서울에 볼일이 있어 나간 길에 책상에 놓을 등을 한 개 구했다. 전기를 먹는 갓등인데 책을 볼 때 가까이 두려고 빈티지 골목에서 산 낡은 등…. 버지니아 울프의 방에 놓인 연갈색 책상처럼 손때 묻은 책상, 그 위에 이 전등을 올려놓고 김수영이나 네루다, 타고르의 시를 읽어야지.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 영화 <만추>의 사운드트랙을 올려놓으니 책이 되지 못한 운명의 나무들이 찬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책의 이야기들을 궁금해한다. 이 가을 당신에게 부탁 하나. 올가을엔 술집보다 서점에 자주 가시길. 흐~.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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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북아일랜드 초장만큼 바람이 차가워질 거 같아. 물리도록 이브 몽탕의 ‘고엽’을 듣게 되겠지? 밤마다 찌르찌르르 소년소녀풀벌레 합창단 발성 연습. 당신도 나도 자꾸 바깥에서 서성거리게 되겠지. 철길이 바닥에 납작 엎드리고 누워야 기차가 달릴 수 있듯 구름도 하늘 높이 달라붙어야 찬바람이 자유롭게 비보이 춤을 출 수 있어.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찌는 들길, 손잡고 걷자. 걸어가 보자. 저 푸른 초장을….


남녘땅 목초지엔 양들 대신 염소 떼가 죽치고 산다. 아마 밤엔 몰래 노루랑 산토끼들이 내려올 거야. 잔디가 푸른 마당에 앉으면 하모니카를 불고 싶다. 안젤리나 졸리처럼 두꺼운 입술을 가진 하모니카랑 열렬한 프렌치 키스를 나누곤 해. 숨이 가빠오면 후후 노래도 부르면서. 오늘은 ‘대니 보이’… 내가 사랑하는 월드뮤직을 골라 시디를 펴내곤 하는데 <여행자의 노래>는 그중 가장 오랜 레퍼토리. 한번은 아일랜드 노래 대니 보이를 내가 번안하고 누가 불러 전파하였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는 골짜기마다 은은하구나. 여름이 가고 꽃은 저무리니 나는 가고 너 홀로 남으리. 저 초원에는 여름철이 가고 산골짝마다 흰눈 덮여도 나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아! 목동아 목동아 내 사랑아. 가을이 깊고 꽃은 속절없고 나 또한 죽어 땅에 묻히면 너 찾아와 내 무덤 앞에 서서 정다운 말로 날 불러주오. 네 부르는 소리 따스하리니 봄날에 무덤 꽃이 피리라. 너 부디 나를 기억하여 주오. 아! 목동아 목동아 내 사랑아.”

푸른 초장. 고향 마을에 아이가 태어나고 노인이 죽는 일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잿빛 도시와 빠른 일상, 늦잠도 금지되고 아침밥도 못 먹은 불행한 아이들이 새벽별을 보고 등교를 한다지. 경쟁 또 경쟁, 머니머니 해도 머니라는 돈벌레들의 세상. 하모니카와 키스 하는 법을 잊어버린 불행한 현대인들. 숲길에서 가을 냄새를 맡고, 바람이 밀어대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살자. 당신이 가야 할 길을 바람만이 알고 있지. 하모니카를 분다. 대니 보이, 어서 오라 내 사랑아!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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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이놈으 저년으 하고 쌈박질하다가 살을 섞는다. 깨진 살림살이 곁 지친 잠에 떨어진 딸년도 밀어놓고 단칸 셋방에 눈물로 눈물로만 누워 전설같이 살을 섞는다.”(오봉옥 ‘살다가’) 단칸, 아니면 두어 칸 아주 가난한 살림집에 인기척이 들려. 젊어서처럼 대책 없는 무데뽀 사랑은 아닐지라도 주책인 포옹으로 능소화의 볼을 부끄럽게 물들이는 나날들. 골목은 그렇게들 이어져 둔덕의 개울을 휘돌다가 불끈 솟은 정자나무를 만나고 젖가슴같이 봉긋한 뒷산에 이른다. 사람의 형상을 꼭 빼닮은 게 마을 지도다.

“치열하게 싸운 자는 적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긋지긋한 집구석.”(황지우) 정말 지긋지긋했을 온갖 사연들. 땟국물 낀 집구석들의 연결망인 골목과 계단. 그 끝인 뒷산의 무덤. 인생의 끝도 종국엔 죽음 아니런가. 지긋지긋했던 일들 모두 잊고 조르라니 누운 무덤은 달고 벅찬 영생의 안식 중이렷다. 어려운 고난을 같이해야 진짜 동무지. 좋을 때만, 잔치 때만이 아니라 궂긴 일과 슬피 우는 날 함께했던 이들이 맞이하는 장엄한 위로. 서로에게 내어준 곁마다 화안한 환생의 무덤이여.


추석이 다가오니 벌초를 하는 소리로 산마다 우우웅 예초기 엔진소리. 효성스러운 후손들이 있어 그나마 벌초라도 대접받는 무덤이 있는가 하면 잊히고 버려진 무덤들도 허다하다. 인부를 사서 벌초를 하는 묘지가 점차 늘고 있는데, 정성이 부족하면 안되겠다 싶어 일부러 선영을 찾은 자녀들. 이슬람 신자들보다 더 갸륵하게 넙죽 절하고.

이맘때쯤엔 죽은 사람 말고 산 사람 벌초도 해야 한다. 어르신들은 이발을 단정하게 하고 자랑삼아 밖을 나다니신다. 친척들을 보려고 처음 먼저 하는 일이 이발. 거름 한 바작 이고 비투름 바투름 걸어가는 영감님, 각진 스포츠머리가 이른 명절 분위기다. 부모님 머리 단장하러 읍내 모시고 가던 일이 마치 엊그제만 같아. 언젠가 당신도 무덤의 풀을 뽑는, 이발이 아닌 벌초하는 처지가 될 것이리. 이번주엔 내 머리도 벌초를 해야겠다. 아니 이발….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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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분 별명이 닭이 된 후부터 닭에 관한 글을 쓰는 마음조차 요상스럽다. 자기 검열이랄까.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다. 호들갑이 아냐. 소식을 들어 아시겠지만, 광주 비엔날레는 허수아비와 닭으로 풍비박산이 나는 중이렷다. 옥수수를 산새로부터 지키려면 허수아비가 필요하고, 마당에 닭을 풀어놓아야 달걀이라도 주워 먹는 산골에선 피식 웃어버리면 그만일 풍경인데….

닭장을 지어놓고 달걀 맛을 보며 살던 할배가 이승을 뜨자 닭장이 필요 없어진 할매는 나더러 닭장을 가져가 써보겠느냐 그러셨다. 닭을 키울 맘은 없는데 철사로 얼기설기 수제로 만든, 핸드메이드 닭장이 매우 예뻤기에 솔깃한 마음도 들었지. 가두고 키우려면 닭과 병아리에게 미안해서 포기. 예전에 폭정에 맞서 데모하다 이른바 닭장에도 끌려가 봤다. 한번은 불심검문에 걸려 빨갱이 외국서적이 가방에 들어 있다 하여 귀싸대기를 얻어맞기도 했었다. 사회과학책도 아니고 그냥 수필집이었는데 너무 억울하여 지금도 따귀가 얼얼해. 이런 웃지 못할 촌극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니. 그 시대를 주도했던 폭군들이 여태 건재하고, 아무리 복고풍이 유행이라지만 급행열차로 역주행인 세상을 보면 전라도 말로 ‘얼척이 없다’.


폭군 같던 폭염도 주춤. 입추 지나니 곧바로 살갗에 닿는 바람부터가 달라. 초복 중복 말복 광복. 해방이다 해방! 검둥개 누렁이도 무사하고 닭들도 모두 안녕. 퇴비를 내는 뒤꼍에 지렁이가 떼로 곰지락거리는데, 들고양이 사나워 닭들 얼씬도 않는 그곳에 삽을 들이밀었지. 지렁이 밥을 안겨주었더니 동네 닭들이 나를 알아보고 쫑쫑 뒤를 따른다.

통닭구이라는 고문을 자행하고 간첩 색출에 눈알이 발갰던 분들. 요즘도 심심하면 소설 쓰듯 지어내는 간첩단 조작사건…. 동네 치킨집에서 치맥이나 하며 오순도순 살아도 부족한 짧은 인생이거늘. 비정상의 정상화는 이런 거 아닌가? 나이가 들면 권력을 버리고 시골로 낙향해 닭들 키우며 사는 것. 사람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닭들 보살피는 닭장이나 지으며.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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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어떤 통과의례를 거쳐 농부가 되는 걸까. 들바람이 꼭두머리로 불어 지극하게 쓰다듬을 때 농부로 인증받는 걸까. 자운영꽃이 정성스레 발뒤꿈치를 매만져 주는 날, 그 시로 들녘을 사는 농부가 되는 걸까. 최보따리 해월 선생은 스승 수운을 만났을 때 가슴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아! 가슴이 뜨겁게 되면 그날로 제자가 되는 걸까.

스님은 계를 받는다하고, 천주교 사제는 서품을 받는데 개신교 목사는 안수를 받는다. 나도 신학교를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다. 내게 안수를 주신 분은 통일 선구자 조용술 목사님이다. 평생 민주화와 분단 극복에 한목숨 바치셨던 믿음의 아버지. 범민련 베를린 3자회담을 하고 귀국길에 공항에서부터 연행되어 구속되셨는데, 그때가 일흔이 넘은 노구였다. 우리 목사님은 평생을 독재정권에 의한 연행, 수감, 감시와 처벌을 달고 사셨던 분이다. 작은 믿음의 씨가 떨어져 나 같은 후예를 두셨는데, 늘 뜻을 받들지 못하고 사는 일이 죄스럽다. 우리는 이런 분을 모두 까맣게 잊고 산다. 이름이 비슷한 어떤 목사님은 정반대 인생을 살고 계시는데, 그 부유하고 의뭉스러운 이름 앞엔 다투어 줄들을 서고….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일이 머지않았다. 그분이 사목했던 아르헨티나 성당도 가보았고, 후배들인 사제들을 만나기도 했었다. 사뭇 다른 그분의 행보 앞에 세계가 많은 자성과 변화를 주문받고 있다는 반응들이었다. 최근엔 교종의 권고문인 <복음의 기쁨>을 줄을 쳐가며 읽기도 했다. “오늘날 모든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하지 맙시다. 다만 다를 뿐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앞서가며 그 시대의 어려움에 맞서 싸운 성인들에게서 (길을) 배웁시다.”

이 외딴 동네에도 교회들이 몇 갈라져 있는데 성인들의 길을 따르기보다는 온갖 경영이론을 총동원하여 부흥과 성장이라는 배불리기에 정신이 팔려 있다. 대도시 교회들은 안 봐도 훤하겠고. 선한 양치기를 만나기 힘든 시절. 문제는 깨어있지 못하는, 우매한 양들에게도 있겠다. 여하튼 우리 시대의 선한 양치기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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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금은 먹을 게 많아져서 과체중 뚱뚱이 아이들이 많이 보이지만 예전엔 홀쭉이들이 배로 많았다. 홀쭉이들의 장점은 개구멍을 쉽게 드나들 수 있다는 거. 여름엔 수박밭에 서리를 하러 가기도 했는데, 빼빼 마르고 날렵해 보이는 홀쭉이들을 앞세워 밤마다 곳곳에서 서리가 펼쳐졌다. 수박이나 참외를 지키기 위해 주인장은 높다랗게 원두막을 짓고,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그 원두막엔 파란 그물망 모기장이 별들을 거르는 체처럼 밤새 살그랑거렸다. 라디오에서는 조용필 오빠 신청곡과 이종환 아저씨의 디스크쇼,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 여기저기서 골든 팝송들이 가사 내용과 함께 지글지글 끓어넘치고 있었고.

나는 어려서 자주 아팠다. 그래서 학교에 다니면서 개근상을 받는 일이 드물었다. 다운 장애인이었던 형은 누워 있는 나를 위해 설탕물을 타주었다. 물론 자기가 절반 넘게 꿀꺽꿀꺽 마셔댔지만. 고마워서 언젠가 수박밭을 지나다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밭에 숨어들어 수박서리를 했던 날을 기억한다. 덜 익은 수박이었지만 얼마나 달았던지 내 입술과 혀가 남들보다 더 빨개진 거 같았다. 천사였던 형은 나의 꾐에 빠져 그날로 천국에서 쫓겨나는 신세였고. 에덴동산에서 몰래 딴 금단의 열매가 그렇게 달았을까. 세상은 괴로웠어도 사랑은 설탕처럼 수박처럼 달았다. 우린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세상에 없는 줄로만 믿었다.

속을 모두 파먹고, 절반의 수박 통에 남은 붉은 물. 그 물을 쪼옥 마셔본 일이 있는가? 그 물을 동무와 나눠 먹어본 사람은 안다. 마주 앉아 함께 머무는 그 다디단 맛을. 설탕 한 숟갈 물에 풀어 나눠 마셔본 아이들, 지금은 어른이 되었을 그 아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다디단 인생을 살고 있을까. 아무리 괴롭고 쓴맛의 인생일지라도 우리들 그날의 추억을 잊지 말자꾸나. 장마 그치고 폭염의 연속. 짜디짠 땀의 인생 가까이 가난한 설탕물이 한 사발. 당신이 들고 온 수박 한 통에 둘러앉으면 그게 바로 천당이지. 십자가도 불상도 다 필요 없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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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도레미파솔라시도’ 발음하기는 쉬워도 노래를 만들어 부르라면 어려운 법. 수많은 가르침을 듣고 배워도 실천하고 행하는 일은 간단치가 않다. 그래 사는 일, 살아보는 일을 포기하고 배우는 일에만 허송세월하는 분들도 많아라. 틈새시장이랄까, 도사 흉내를 내는 승냥이들이 이런 양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오히려 농사짓고 사는 촌로들이 학삐리 수도자보다 백배 건강하며 소로나 토머스 머튼을 능가하는 명상가, 신비가들로 가득한데 왜들 다른 데서 지혜를 구할까.

“먼뎅이(먼 산)엔 비구름이 꽉 찼소만 쪼잔허게 소낙우 조깐 내리고 말아부요잉. 포장헌다고 엎어둔 질(길)이 흑몬지(흙먼지)가 뿌야튼만 메욕(목욕)이라도 허겄다 싶었지라이.” 한숨 쉬는 할망구. 찌는 더위를 피해 이 은자는 민물비트리(다슬기)를 잡아 옆구리에 차고서 피서를 즐기던 순간이었다. “물이 솔찬이 차갈거신디. 이 더위에 추와서 저승가메(상여) 타불믄 큰 박수야 받겄소만. 날벌가지(날벌레)도 많고 그란디 이적시(이제껏) 물에 지셨소? 부처님이 물처럼 바람처럼 살라등만 아조 물에 지피 빠지셔꾸만.” 농으로 걱정까지 해주시고.

“빌라도(별나게도) 오늘은 석양 하늘이 곱소야. 뱃속이 허심헝께 그랑가 몰르겄는디, 히히. 인자 나도 올라갈 날이 머지않응게 그래 보이겄지라잉.” 산처럼 굽은 등을 기우뚱거리며 썰렁한 빈집을 향해 가시던 차 한 말씀 내려주시네.

둘러보면 모두가 은자들. 경자 안자 미자 순자, 아니 노자 장자 말고도 은자가 있다는 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어떤 봉쇄 수도자보다 맑은 얼굴들. 이 산촌은 내게 수도원이나 진배없는 곳. “은둔은 모든 가면과 위선을 벗기는 일. 은둔은 절대 허위를 참아주지 않네. 명백한 확언이나 침묵을 제외한 모든 것들은 숲의 고요에 의해 조롱받고 심판받으리.” 달이 차오른 밤, 침묵의 시간이로다. 은자들은 잘 때 푹 자고 깨어있을 땐 호랑이 물어가도 죽지 않을 만큼(?) 정신을 바짝 차린다. 잡초를 뽑고 씨를 뿌리며 특별한 방법이나 비책 없이도 잘 먹고 잘 사는 은자들에게 우리 어찌 반하지 않을손가.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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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당신이 퇴근하고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욕조가 물을 기다리듯 가뭄에 탄 저수지가 빗물을 애타게 바라고 있다. 그래도 남녘은 홑적삼 젖을 만큼은 비가 내렸어. 북녘은 푸설거리는 마른 눈이나 맛봤을 뿐. 담양에 살다보니 광양 단양 밀양 양양 영양 정양 함양, 이런 곳이 마치 이웃동네 같다. 거기다 평양을 빠트릴 순 없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되는 겨레의 한 고향 평양. 국가보안법이 암만 시퍼래도 수런대는 수천수만의 밀어들까지 잡아 가둘 수는 없는 법. 평양을 도읍지로 삼고 사는 저쪽에 이러다가 또 큰 흉년이 들지나 않을까. 배고픈 사람들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선다. 모국어를 같이 사용하는 동포라면 날씨 예보 들으며 이런 걱정 한번쯤은 해보았겠지. 따뜻한 피가 감도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헤어져 이렇게 소 닭보듯 지낼 것인가.


흰 메리야스 차림의 아재가 들녘에 물꼬 보고 오는 걸음새를 보아 하니 매가리가 축 늘어져 있다. 자글자글 햇빛이 끓고 있는 논바닥에서도 더운 바람이 굉장해라. 바닷가 ‘포’나 ‘진’에 오래도록 살다가 뭍 땅 ‘양’으로 이사를 온 뒤부턴 빗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물 한 바가지의 감사함, 두레박을 내리고 퍼 올린 맑은 생수를 허투루 쓸 수가 없다. 하물며 냉면을 먹어도 비빔냉면보다는 물냉면을 찾게 되고, 어디 식사자리에 초대받아 가면 해산물에 덥석 손부터 간다.

면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 여름엔 냉면을 자주 먹게 되는데, 힛~ 나는 수북면 면민이라서 면을 아예 기본으로 달고 살지. 부랴부랴 첫차로 일 나가는 노동자. 밤새 마신 술로 토악질을 하다가도 점심끼니 냉면 한 그릇은 수분을 보충해주고 해장을 돕는다. 입맛이 없는 여름 더위엔 냉면이 최고야. 평양 냉면을 자주 먹어야 통일 입맛도 지닐 수 있음이렷다. 햄버거와 피자, 빙수, 아이스크림이 아무리 맛나다지만 여름엔 그래도 냉면이지. 입맛 음식맛이 결국 고향이고 조국이지 않던가. 평양 냉면, 함흥 냉면… 수수만년 즐기리라.


임의진|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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