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시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처음 만난 자리였다. “읽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인데, 꼭이라는 단어까지 붙으니 의무처럼 느껴지네요.”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자리에 있는 내내 뭔가가 머리를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소재가 등장해서 대화는 이어졌지만, 내내 기분이 찜찜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버스 안에서 어제 구입한 시집을 펼쳤다. 김현 시인의 <입술을 열면>이었다. ‘강령회’라는 시의 한 대목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영혼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몸이 느껴질 뿐입니다.” 시를 읽기 시작하면서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게 되었다. 움직이는 것은 몸이지만, 그 안에서 법석이며 몸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영혼이다.

아까 그 자리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시를 읽는 이유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싶었다. “시를 읽을 때, 나는 스스로를 발견해요. 나는 이런 단어에 끌리는구나, 이런 소재에 반응하는구나, 이런 문장에 마음을 내어주는구나….” 심신을 두드리는 시를 읽고 나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깨달음이 나를 향한 찬찬한 응시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어요. 저 단어가 내 인생에 단단한 매듭을 만들어주었지요.”

시를 읽음으로써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배양되기도 한다. 기형도의 ‘엄마 걱정’이라는 시가 있다. 나는 이 시를 대학수학능력시험 때 처음 접했다.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가 난생처음 외로움을 직면하는 시다. 모르는 작품이 나오면 으레 당황하게 되는데, 저 시는 읽는 순간 내 몸을 파고들었다. 파고든다는 것은 나도 모르게 시적 상황에 깊이 스며든다는 것이다. 시적 화자의 입장이 되어 움직인다는 것이다. 시를 읽는 일은 시적 화자가 되어봄으로써 누군가를, 누군가의 인생을 헤아려보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일상의 새로운 면, 언어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2002년에 김혜순 시인의 시집 <불쌍한 사랑 기계>를 읽었다. ‘코끼리 부인의 답장’이라는 시를 읽을 때였다. “다시 또 얼마나 숨 막고 기다려야/ 앙다문 입술 밖으로 불현듯/ 불멸의 상아가 치솟게 되는지”라는 구절이 가슴에 빗금을 긋고 지나갔다. 시집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불현듯’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맴돌았다. 불현듯의 어원이 ‘불 켠 듯’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무릎을 탁 쳤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는 늘 저 단어가 있었다. 무수한 ‘불현듯’들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여기 올 수 있었다.

‘다르게 보기’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내가 시를 읽는 이유다. 진은영의 ‘가족’을 읽었을 때는 둔중한 것에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가족을 응시하지 않았다면, 똑같은 광경을 다르게 보려고 애쓰지 않았다면, 그것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힘쓰지 않았다면 저런 시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좋은 시는 이처럼 편견을 뒤흔든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제와 달라져 있다. 어제까지는 없었던 벽보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매일같이 듣던 새소리에서 새로운 기척을 느끼기도 한다. 발견하려는 태도와 발견했을 때의 즐거움은 일상에 생기를 가져다준다. 익숙함 속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낯섦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외연뿐만 아니라 삶을 감싸는 사고의 외연도 넓혀준다. 같은 것을 보고도 전혀 다른 것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의 발견, 타인의 발견, 일상과 언어의 발견, 그리고 다르게 보기의 발견은 단숨에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 질문은 가깝게는 취향에서 멀게는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나를 구성하는 또 다른 자극이 된다. 질문을 던지고 일상에서 끊임없이 답을 구하며, 나는 진짜 나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시를 읽기 전의 나와 시를 읽고 난 후의 나는 확연히 달라져 있다. 공교롭게도 이것은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만 안다. 자기 자신은 안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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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 두루 잘 통하는 연인의 정사보다 맛있는 음식 한 입이 낫다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다. 마크 쿨란스키의 작업을 참고하니 이런 표현과 상상력은 이미 기원전 5세기 이래 이어진 모양이다. 네 생각에는 어떠냐, 주위에 물으면 둘 중 하나가 망설임 없이 ‘맞다!’를 외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조선 문인 허균(許筠·1569~1618)이 남긴 문자먹방 &lt;도문대작(屠門大嚼)&gt; 서문의 첫 문장이 이렇다. “식욕과 색욕은 본성이다(食色性也).”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그런데 식(食)과 성(性)은 ‘그만’에 이르기까지가 복잡하다. 과정은 구경거리(스펙터클)가 될 만한 자질로 충만하다. 남에게 민망한 구석 들키지 않는 한 내 취향으로 소품(팬시)을 지을 만한 요소로 가득하다. 이 가운데 ‘눈과 귀로만 먹는 음식’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 있다. 계급도 계층도 없다. 포르노는 몰래 보지만 음식 포르노는 벌건 대낮에 지하철을 타고 갈 길 가면서도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화면 앞에 앉아, 그 연출에 대한 비평과 완성도에 관한 품평을 나누면서도 볼 수도 있다. 그 앞에서 침을 흘리기란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다. 가장 만만한 오락이다. 그러니 헌 매체, 새 미디어 할 것 없이 여기에 환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온갖 매체에서, SNS에서 먹는 이야기가 폭발한다. 푸드 포르노에 잘만 기대면 명사, 준연예인 행세도 가능하다. 사진과 영상을 곁들이고 꾸준하기만 하면, 누구든 먹는 이야기 하나로 로마의 황제나 허균 같은 문인쯤은 쉬이 압도할 만한다. 그렇다고 신문마저 여기 압도된다면 무척 섭섭할 듯하다. 아니 이미 압도되었나, 아닌 게 아니라 불안이 솟는 요즘이다.

언론마다 여행과 주말과 토요일을 앞세운 특별판, 또 지역 골목길을 고리로 한 특집을 내면서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때 차지한 면이 크면 연예인화한 요리사와 사진을 찍고, 굳이 비싸서 이국적인(‘비싸고’가 아니다) 맛집을 나열한다. 차지한 면이 작으면 작은 대로 기자가 힙스터로 분해 숨어 있는 ‘힙’한 곳을 시시콜콜 소개한다.

거기 자리한 정보도 이 세상에 필요하다. 신문이 기획할 만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될 듯한 징후가 보이기에 불안하다. 푸드 포르노가 그저 반짝거리고 무해한 귀여움 쪽으로만 움직이지도 않는다. 막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북아프리카 사람 입에 겉절이를 욱여넣으며 ‘두유노김치’ 장면을 연출하는 한국적인 음식 폭력이 보다 증폭되곤 한다. 비싼 음식이 곧 좋은 음식으로 포장되는 동안 일상 식생활의 감각은 자꾸 지워진다. 한 끼를 먹기 위한 보통 사람의 분투를 허름하고 초라하다고 여기는 심성이 조장된다. 어쩌면 이야말로 푸드 포르노의 벌거벗은 속성이자 방향일 테다. 그러니 더욱, 신문-기자-칼럼니스트는 음식을 감각하고 음식 이야기를 쓸 때, 그저 푸드 포르노를 중개-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할 줄로 안다. 음식 이야기만 해서는 음식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할 줄로 안다.

푸드 포르노와 일상의 음식 사이에서 엇갈리는 보통 사람들의 감각은 복잡하다. 벌거벗은 먹방 앞에서 군침도 흘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신뢰할 만한 음식 담론을 아예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신문은, 기자는, 진짜 칼럼니스트는 푸드 포르노 너머에서 보다 정직하고 분별 있는 말과 상상력을 짓고 있으리란 기대를 품고 전통적인 신문의 기사 링크에 커서를 가져다 댄다. 그러다 누구나 하는 푸드 포르노가 오른 지면을 확인한 순간, 실망해 기어코 댓글을 단다. “입소문 홍보 결국 사기,” “애드버토리얼, 바이럴이 뭐냐면 결국 댓글알바.”

먹방, 먹는 이야기가 웃자라면서 나타난 직업군이 있다. 지난 시대의 파워 블로거, 요즘의 자칭 푸드 칼럼니스트 말이다. 이들은 푸드 포르노 속에 애드버토리얼, 바이럴 등을 심으며 담론의 장을 외로 꼬아버린 점까지 있다. 그러므로 더욱 엄중하다. 푸드 포르노 흉내뿐이었다가는 신문이 찌라시가 되는 수 있고, 기자가 기레기가 되는 수가 있다. 오늘 음식 꼭지를 기획 중인 신문과 기자에게 당부한다. 그래도 신문을 믿는 독자가 있다. 신문이라서 신뢰를 보내는 독자가 있다. 정말 쓰고 싶지 않은 말, 찌라시며 기레기 같은 말을, 더구나 음식 꼭지 앞에서는 쓰지 않게 해주십사!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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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 바로 개설된 채팅방 수만 1만개가 넘는다는 ‘고독한 ○○○’ 시리즈 채팅방이다. 워낙 유행이라 그런지 ‘안 고독한 ○○○’ 방들도 여럿 보인다. 궁금해져서 몇 개의 고독한 채팅방에 들어가봤다. 누구나 익명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답게 내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카카오톡 프렌즈로 프로필 사진을 정하고, 아이디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 상대방도, 나도 서로에 대해 알 수 없을 뿐더러 알 필요도 없는 구조다. 스타, 다이어트, 뜨개질, 스키, 마인크래프트, 동네 맛집, 여행, TV 프로그램 등 취미생활이나 게임까지 없는 게 없다. 방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친목 금지’와 ‘고독’이 콘셉트이기 때문에 대화는 NO, 사진만 OK라는 규칙을 갖고 있는 방들이 많다.

이 고독한 방들은 일본 인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패러디한 방에서 시작해 고양이 사진을 공유하는 ‘고독한 고양이’ 방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연예인 방이 많아지면서 팬들이 만든 ‘고독한 ○○○’ 방에 해당 연예인이 직접 들어와 인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들어간 ‘고독한 김생민’ 방의 대화를 살펴보다가 <김생민의 영수증> 프로그램에 소개됐던 “동방신기 덕질하며 내 집 마련하고 싶어요”란 사연이 떠올랐다. ‘덕알못(덕질을 알지 못하는 준말)’인 김생민이 이 방을 알았다면 ‘고독한 동방신기 방’에 참여하라고 해답을 제시했을지도 모르겠다. 돈 한 푼 들이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잔뜩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고, 운이 좋으면 스타와 직접 인사를 나눌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 채팅방이 덕질에만 유용한 건 아니다. ‘고독한 김생민’ 방에서는 김생민 뺨치는 절약 팁과 조언이 공유된다. “전동칫솔 사도 됩니까?”란 질문에 “이를 닦을 때마다 몸을 흔들 것”이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각자 읽고 있는 책의 표지나 인용문을 올리는 ‘실속형’ 채팅방도 많다. 개인의 관심사에 따라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거나 목적을 달성하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셈이다.

신기한 방이 많아 몇 개의 방에 들어갔다 나갔다를 반복해 봤는데 살짝 귀찮은 것 외에 부담은 없다. 일반 그룹 채팅방에 초대되면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해 머리 아픈 경우가 많은데, 오픈 채팅방은 그런 피로감에서 자유롭다. 사진만 올라오니 누군가의 이야기에 답을 할 필요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오픈채팅방은 의도치 않게 타인의 정보를 너무 많이 알게 되거나 사소한 것까지 알게 되는 경우에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으니 그만하라는 뜻으로 요즘 많이 쓰이는 ‘TMI(너무 많은 정보/Too Much Information)’와는 좀 다른 맥락이다. 어쩌면 이 ‘고독한’ 방들은 ‘김무성 의원 탄생화는 로즈메리’ ‘푸틴은 용인대 명예박사’처럼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정보(?)들이 범람하는 요즘 시대에 딱 맞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타인과의 불필요한 감정소모 없이 서로의 목적에 맞게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고, 내가 갖고 있는 자료를 나누는 한편 필요한 자료를 다 받으면 미련 없이 나갈 수 있는 편리함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카카오톡, 텔레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인스타그램, 블로그, 카페까지 많은 SNS를 이용하면서 온라인 관계조차 신경써야 하는 요즘, 가장 마음이 편한 수단이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겠다.

‘고독한’ 방들의 유행은 20대들 사이에서 인기라는 ‘쓸모없는 선물 교환’과도 닮았다. 주차금지 표시판, 구멍난 고무장갑, 보도블록, 짚신처럼 최대한 ‘쓸데없는 것’을 찾아 서로에게 선물하고 노는 놀이 말이다. 비용이나 시간 걱정 없이 다른 사람이 키우는 반려동물 사진이나 동영상 등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랜선 집사’ 놀이와 비슷한 기분으로 심각하지 않으면서도 불특정 다수와 부담없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상품을 권유하지 않는 ‘무언(無言) 접객 서비스’가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와도 비슷할 테다.

원하든 원치 않든 너무 많은 정보와 연결점에 지쳐있는 요즘, 나는 당분간 고립되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고독한’ 오픈채팅방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다. 말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대답하고 싶을 때만 대답해도 아무 부담 없는, ‘고독’하게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다닐 수 있는 이 채팅방에서 말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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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탐욕’이라는 것이 말이 될까 싶은데, 이 기이한 자질을 자본주의 시대 우아한 덕목으로 등극시킨 것은 막스 베버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신의 삶에 유용한 자산 이상의 것을 근면하게 추구하는 것을 죄가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적인 직업 윤리이자 신의 축복의 증좌임을 이야기했던 막스 베버 말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성실한 탐욕’을 윤리적으로 승격시킨 베버의 면죄부에 대해 여전히 의심하고 있는 편이다. 거짓과 술수에 기반을 두고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겨우, 자식에게 승계하는 것으로 끝내는 몇몇 자본가를 볼 때 특히 그러하다. 그런 걸 보면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게 임하는 죽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싶을 때도 있다. 죽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보다 비대한 이윤들을 어디선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타나 제거한다면?

이런 상상은 나만 한 것이 아니었나보다. 최근 읽은 김동식 소설집에도 이와 유사한 판타지가 등장한다. <재산이 많은 것을 숨길 수 없는 세상>이라는 글에는 재산만큼 몸집이 거대해지는 지구인 이야기가 나온다. 외계인의 마법에 의해 부자들은 아파트처럼 거대해지고 일상에서 소외되자 그들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게 되고, 모두 삶에 지장이 없을 정도의 자산만을 지니게 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윤리는 이렇게 바뀐다. “그동안 우리는 인간관계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드는 비용이 그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합시다. 재산이라는 것도 무인도가 아닌 사회 속에서나 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10년간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서 글쓰기를 했다는 노동자 소설가 김동식의 글은 과연, 기존의 문학관습과는 먼 것이었다.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나 복잡한 사회현실 같은 것과 무관하게 마구 뻗어가는 주물 노동자의 상상력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소설보다는 철학콩트가 어울릴 법하다. 그의 짧은 단상들은 대체로 ‘인간, 요괴, 악마’와 같은 존재들을 통해 인간을 사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연 주물공장에서 액세서리, 지퍼 등을 만들어낸다는 작가 김동식은 글에서도 ‘조물딱조물딱’거리면서 ‘인간’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하다.

가령, 모두 인조인간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져 ‘인조인간’임을 아웃팅하게 되는 세상이 된다든가 혹은 늙은 부모를 디지털 공간에 모셔 가상의 삶을 살게하는 판타지들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상상은 한편 허무개그 같기도 하고, 더러 기발한 해법 속에서 촌철살인의 풍자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 세상에 미만한 차별과 불평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 김동식은 이런 해법을 내놓는다. 정부는 인류 인공진화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손가락이 여섯 개인 신인류의 출산을 장려한다. 그러나 그 프로젝트가 거짓임이 밝혀지고 여섯 손가락의 아이들을 집집마다 갖게 된 부모들은 일체의 차별을 금지시킨다. 또 다른 예. 저승의 인구가 줄어들자 저승의 대표는 이승으로 건너와 한 사람이 죽으면 임의의 영혼의 짝을 같이 데려간다는 ‘사망 공동체’를 공표한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무작위한 죽음 연대에 맞서 본인이 아닌 타인의 죽음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고, ‘사회안전망’은 물론 사회의 폭력 근절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이 죽음의 연대를 통해 “돈 한 푼 없는 노숙인이나 수백억 부자”의 목숨값은 평등해지게 된다. ‘나만 아니면 돼’가 아니라 ‘나일 수 있어’라는 무지의 베일의 정의가 실현되는 장면이다.

김동식의 콩트는 인간, 요괴, 악마 같은 허황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사회적인 것’에 대해 심오한 통찰을 보여준다. <무인도의 부자노인>이라는 단편에서 “통조림 몇 개 때문에 한 노인을 죽이려고 했을 때, 저희는 짐승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한 노인을 살려주고 나니, 그제야 저희는 사회 속에 사는 인간이 되어 있더군요”라고 할 때, 또는 아무런 보람 없이 노동만 하는 회색인간들 속에서 노래 부르고 타인의 삶을 기억하는 예술가의 존재를 이채롭게 그려낼 때, 김동식은 짐승으로 추락하는 인간을 아슬아슬하게 구출해낸다. 인간이란 젊음과 재산에 눈먼 괴물 같은 존재일지라도 ‘타인’과의 관계들 속에서 인간은 기계나 인조인간이 아닌 겨우, 인간으로 오롯할 수 있다는 것, 작가 김동식이 일상의 노동에서 길어올린 값진 통찰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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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안경점’은 망원우체국 사거리에 있는 적당한 규모의 안경점이다. 1991년부터 자리를 잡은 그곳에서 나뿐 아니라 성산동과 망원동의 아이들이 대부분 첫 안경을 맞췄다. 주인인 30대 남자는 언제나 친절했다. 시력검사를 하고, 테와 렌즈를 고르고, 시간이 걸려 안경이 완성되고 나면 그는 “자, 한 번 볼까” 하면서 손수 안경을 씌워주었다. 그때 볼의 약간 윗부분에 그의 손이 닿았다. 참 따뜻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스무 살이 되어 나는 망원동(성산동)을 떠났다. 그러고는 학교 때문에, 군대 때문에, 직장 때문에, 그 무엇 때문에 계속 멀어져 있었다. 한동안 안경점에 갈 일도 별로 없었다. 이전처럼 안경을 자주 부러뜨리지도 않았고 시력이 크게 변할 일도 없는 나이가 되었다. 직장 근처에는 ‘안경나라’나 ‘다비치’ 같은, 점원을 몇 명씩 두고 영업하는 대형 안경점들이 있어서, 주로 거기로 갔다.

얼마 전 “스마트안경 딸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안경점 주인의 딸이라고 밝힌 그는, 얼마 전 출간한 나의 <아무튼, 망원동>이라는 책을 잘 읽었다면서 “작가님이 저희 부모님의 사업체에 대해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신 것 같아서, 반갑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 시간이 괜찮으시면 12월 중순쯤에 한번 가게에 방문해주시겠어요?” 하고 제안했다. ‘도시를 자신의 고향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아무튼, 망원동>을 내고서, 아무튼, 가장 기쁜 순간이었다. 답장을 보내고 곧 만날 약속을 잡았다.

가는 길에, 동네 책방인 한강문고에서 나의 책을 한 권 샀다. 별로 많이 팔린 책이 아닌데도 베스트셀러 매대에 작은 메모까지 더해서, 왼쪽에는 유시민 작가가 오른쪽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있는 그 가운데에 놓여 있었다. 동네 작가의 책을 굳이 잘 보이는 매대에 놓아준 동네 책방의 후의에 깊이 감격했다. 한강문고부터 스마트안경점까지 약 3분쯤 걸리는 그 거리를, 어느덧 아홉 살에서 서른다섯 살로 훌쩍 자란 나는 나의 책을 들고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 내외가 나를 보고는 아, 왔네, 하고는 “아니 그때 얼굴이 남아 있네, 기억이 나요” 하고 몇 번이고 말했고, 나 역시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목소리도 그대로세요” 하고 인사드렸다. 아홉 살과 삼십대 후반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하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준비해 둔 책 다섯 권을 여기에 사인을 좀 해 줘요, 하고 꺼내 놓고는, 나의 안경을 벗겨서 이리저리 매만졌다. 나는 민망해서 “아이하고 놀다 보니까 안경 코가 계속 휘어요” 하고 변명하듯 말하고, 책 다섯 권에 나의 이름을 적어 나갔다. 과연, 책에는 ‘한강문고’의 도장이 선명해서 괜히 다시 울컥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나는 시력검사 기계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도수를 낮추는 게 더 잘 보이겠고, 난시도 조금 조정이 필요하겠고, 어디 이걸 한 번 써 보자” 하고는 새로운 렌즈를 내 눈 앞에 가져다 댔다. 갑자기 세상이 너무 밝아져서 나도 모르게 앗, 하고 반응하자, 그는 “됐네, 우리 밥 먹고 오자” 하고 나를 이끌었다.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한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안경점에 돌아와서 그는 완성된 안경의 렌즈를 정성스럽게 닦기 시작했다. 내가 “사장님, 괜찮아요…” 하고 말하자 그는 “나는 여기에서 안경 팔아서 벌 만큼 벌었어, 이 안경은 지금 내가 쓰고 있는 것과 완전히 같은 모델이야, 렌즈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 가장 좋을 만한 것을 골랐어, 정말 좋은 안경이지, 그러니까 계속 글 잘 써요” 하고 답하면서, 나에게 안경을 씌워주었다. 25년 전 볼에 닿던, 그 따뜻한 감각 그대로였다.

어느 동네에나, 그 자리를 오래 지켜온 가게들이 있다. 그곳의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신의 노동을 해 온 이들이 있다. 스마트안경점에서 내가 맞추어 온 것은 단순한 안경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그래서 그 사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괜히, “아, 우리 동네는 여전히 ‘잘’ 있구나” 하는 마음이, 정말로 드는 것이다. 한강문고 역시 동네의 서사를 기억하고 보존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동네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여전할 수는 없겠지만, 나의 몸이 나이 들고 부수어지는 만큼 건물과 가게 역시 그런 부침을 겪겠지만, 그래도 그 사라짐이 어느 날 갑자기,가 아니라 추억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조금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일어나기를 바란다. 새로움과 여전함이 공존하고 그 안에서 자란 모두가 안녕한 공간, 도시의 고향이 가져야 할 모습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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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까칠남녀>에 출연 중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젠더토크쇼를 표방하는 <까칠남녀>는 지난 37회 동안 피임, 졸혼, 맘충, 군대, 데이트폭력, 낙태죄, 10대 성적 자기결정권, 성희롱, 꽃뱀, 냉동난자, 페미니스트 교사 등 다양하고 논쟁적인 주제들을 다루어 왔다.

덕분에 프로그램 자체는 심심찮게 폐쇄 요청에 시달렸고, 심지어 홈페이지가 해킹당해 ‘노알라(고 노무현 대통령의 얼굴과 코알라의 얼굴을 합성한 일베발(發) 이미지)’로 홍보 사진이 변경된 적도 있었다. 물론 출연진에 대한 공격과 신상털기는 일상에 가까워서, 한 출연자의 경우에는 직장에까지 항의와 민원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회보다도 38회(12월25일 방송)와 39회(내년 1월1일 방송)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성소수자 특집이기 때문이다. 초대 게스트는 201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하며 87%의 지지를 받은 김보미씨,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인 강명진씨,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씨, 국내 최초 커밍아웃 트랜스젠더 변호사 박한희씨다. 이들은 각자 LGBT, 즉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출연했다.

이미 보수 기독교 쪽에서는 방영을 막기 위해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신자들 사이에는 “<까칠남녀>가 음란한 정체성을 드러냈습니다. 성소수자 특집에 하나님의 거룩에 대적하는 음란의 영으로 충만한 최고 제사장급들 4인방이 출연합니다. EBS에 항의 전화 부탁드립니다” 등의 내용을 담은 단체 메시지가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염려와 달리 이번 특집은 아주 ‘건전하고 유익’했다. 방송은 JTBC <아는 형님>을 패러디하여 ‘모르는 형님’ 콘셉트로 기획되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인 LGBT가 ‘까칠학교’에 전학을 와서 재학생들의 편견과 궁금증에 응답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성소수자에 대해서 무지한가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함께 출연 중인 황현희씨는 현실에서 LGBT를 처음 보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한국인들은 때로 “성소수자가 도대체 무슨 차별을 당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성소수자의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비가시화되고, 그토록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이미지로 정형화되어 사회적 편견 아래 놓이게 된다. 그리고 다수의 편견은 차별을 정당화한다.

만약 당신이 스스로 성소수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라.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그려지는가. 그 어떤 것을 떠올려도 그것이 모든 LGBT를 설명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편견은 LGBT를 문화적으로 배제하고, 법적으로 차별하며, 때때로 물리적 폭력에 노출시킨다.

<까칠남녀>는 우리가 보여주는 LGBT의 이미지가 또 다른 편견을 만들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 방송을 기획했다. 출연자들 역시 그것을 염려했을 것이다. ‘김보미’는 레즈비언을, ‘강명진’은 게이를, ‘은하선’은 바이섹슈얼을, ‘박한희’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대표하지 않는다. 그들이 LGBT의 ‘표준’이 아님은 물론이다. 하지만 더 많은 목소리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재현, 더 많은 가시성의 확보가 필요하다.

조심스러움 속에서, 그리고 공중파에 얼굴이 공개된 이후 받게 될 수많은 공격을 감수하고서, 이 네 명의 ‘제사장’들이 용기를 낸 것은 이 세계의 굳은 머리를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더 다채롭게 칠하기 위해서다. 열린 마음으로 우리의 게스트들을 만나주시기 부탁드린다. 판단은 시청 후로 미뤄도 늦지 않다.

보수 기독교 쪽에서 돌렸다는 단체 메시지의 내용을 보다가 또 다른 깊은 한숨이 나왔다. 얼마 전 그들의 요구에 떠밀려 여성가족부에서 ‘성평등’과 ‘양성평등’을 혼용하겠다고 밝힌 것이 떠올라서다. 2017년 대한민국에서 “음란의 영” 운운하는 자들의 강압 때문에 정부 부처의 정책운영 철학이 흔들린다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가 무능할 때, 개인이 하드캐리하게 된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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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연말이면 이 같은 질문에 성실한 답변을 작성해야 할 것 같은 강박에 빠진다. 개인적으로는 작년보다 나은 한 해였다. (이 또한 오래가지 않겠지만) 생애 가장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한철을 보냈고, 금융자본주의에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상대적) 주거안정성을 확보했으며, 사랑에 빠졌다…가 얼른 빠져나왔다. 수도승처럼 애욕, 집착, 번뇌에서 거리를 두고 살자고 다짐했다. 수도승 생활은 2년을 채우지 못했다. 일전의 연인들과 다른 환상을 보여주는 사람이 나타났고, 금세 매료되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좁은 세계에 침잠하며 끝없는 우물을 판 끝에 비대한 자의식의 글이나 영화를 선보이는 예술가형 인물과 만난 적이 많았고, 창작의 과정 동안 주변인을 감정적으로 학대하는 일을 보고 겪으며 환멸을 느꼈는데, 그는 달라 보였다. 개인의 욕망보다 사회적 변화를 위해 투신하는 모습이 강인하고 멋져 보였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고들 한다. 나 역시 그의 눈으로 세상을, 스스로를 응시했고, 언젠가부터 죄책감을 느끼게 됐다. 나의 사사로운 ‘소시민적’ 욕망들이 새삼스러워진 것이다. 나는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일상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긴다. 무례해서 불쾌함을 느끼게 만드는 인간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 애쓰고, 맛있는 것 먹고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는 감각적 충족감을 중시하고, 흥미로운 서사창작물을 탐닉한다. 이것은 내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해야 타인에게 마음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믿음과도 이어져 있다. 그렇게 확보된 마음의 공간 덕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다가오는 고통의 사연들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예를 들어 나의 소셜미디어 뉴스피드에는 고용 보장 및 단체협약 보장을 외치며 이토록 추운 날씨에 굴뚝 위에 올라 버티고 있는 사람들, 권력의 눈치를 보며 진단서를 작성한 바 있는 병원장의 퇴진과 의료공공성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서울대학병원 노동자들, 법의 허점을 적극 이용한 폭력적인 강제철거에 저항하다 손가락이 잘리고 생살이 찢긴 궁중족발 사장 등 동시대 사람들의 고통이 생생하게 줄을 잇는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 기업 입장에 이입하여 노동조합을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건물주 입장에 빙의하여 세입자가 ‘을질’한다고 비난하는 일은 너무 쉽기에 의식적으로 경계한다. 당사자의 절박한 투쟁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억울함과 서글픔을 헤아려보며 어떻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응원의 마음으로 추이를 지켜보는 정도마저 ‘노력’해야 할 수 있는 것은, 대다수가 고통을 겪으며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팍팍한 한국사회의 현실 때문일 테다.

그나마도 뉴스피드에 올라오는 소식에 ‘좋아요’나 ‘슬퍼요’, ‘화나요’를 클릭하며 멀찍이서 걱정하는 데에 그칠 때가 많다. 실체 없는 걱정의 ‘마음’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고 무언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들썩이다 일회성 소액 후원을 하거나 관련 굿즈를 구매하거나 관련 문화행사에 참여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스스로의 일상을 지키고 난 뒤 여유가 남을 때의 일이다. 그렇기에 ‘일상’이라는 것이 오로지 투쟁하고 외로운 이들의 곁을 지키는 일인 사람을 사랑하며 가슴이 철렁했던 것이다.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인간은 잘 변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사람이어서 끌렸지만 정확히 그 이유로 견디지 못하게 되어버렸고, 나는 지금도 소시민적 일상을 산다. 앞으로도 나는 이렇게 비겁하게 살아남고 더 섬세하고 뜨겁게 시대와 불화하는 사람들은 이르게 세상을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렵다…는 이야기를 지면에 쓰고 나니, 너무 감성이란 것이 터져버렸나 싶지만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연말이지 않습니까?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끝’이라는 감각이 주는 비일상성에 휘말리니까. 또 지금 우리는 실제로도 많은 이별과 상실을 경험하고 있으니까.

우리 모두가 더 이상의 슬픔도 고통도 외로움도 없이 남은 한 해를 맺기를. 부질없는 소망이겠지만 전해본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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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시 ‘디아스포라’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기자 양반, 근데 아리랑이 뭔 뜻인가요? 엊저녁부터 저 말이 머릿속에 딱 붙어 떠나지를 않더라고요 (피식) 뭐요, 확실치 않다고요? 그럼 내 처지랑 별반 다를 게 없잖아요 (피식) 그냥 밥이나 먹으렵니다 허, 싱겁네.” 이 시를 쓴 지 정확히 10년이 지난 2017년, 나는 아리랑 컨템퍼러리 시리즈 ‘아리랑X5’에 참여하게 되었다. 명창 이춘희, 현대무용가 안은미, 피아니스트 양방언,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앞선 네 차례 공연의 메가폰을 잡았다. 제목처럼 다섯 가지 새로운 아리랑을 선보이겠다는 것이다.

기자간담회를 할 때까지는 긴장이 되는 정도였는데, 네 차례 공연을 보고 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분들도 아리랑을 재해석하는 작업은 분명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깝다고 느끼는 대상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은 더욱더 어렵고 등잔 밑은 늘 어두운 법이다. 

그런데 그분들은 아리랑 고개를 또 한 차례 넘었다. 아리랑 고개의 이편에 있는 나는 이미 저편에 가 계신 그분들이 부러웠다. 게다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이 주관하는 행사이니만큼 부담감도 엄청났다.

10년 전에 쓴 시를 떠올렸다. 당시 아리랑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아리랑의 기원들 중 아직까지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놀랐었다. 나는 흩어진 사람들이자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민족 집단인 디아스포라와 아리랑을 연결해서 시를 썼었다. 

아리랑의 기원이 분명치 않다고 해서 아리랑의 의미가 퇴색되지는 않는다. 그만큼 아리랑은 폭넓고 다양하며, 시공간에 따라 고유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마치 우리의 마음처럼 말이다.

고심 끝에 공연의 제목을 ‘아리랑의 마음들’로 정했다. 지금 여기에서 사람들은 아리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리랑의 정서를 단순히 ‘슬픔’이나 ‘아픔’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고개를 넘어가는 자의 아리랑과 고개를 넘어가는 자를 바라보는 사람의 아리랑은 어떻게 같고 다를까. 

한동안 나는 아리랑에 사로잡혔다. 열여덟 명의 시인들에게 지금―여기의 아리랑에 대해 시를 써달라는 부탁도 드렸다. 먼 데 있는 아리랑을, 아니 우리가 망각해서 멀어진 아리랑을 21세기로 소환하고 싶었다.

열여덟 명의 아리랑이 모두 달랐다. 그것은 아리랑에 대한 열여덟 편의 시들이 아니라, 차라리 열여덟 개의 감정이었다. 마음이었다. 어딘가를 향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리랑의 무늬와 색깔, 냄새와 질감은 각기 다르다. 아리랑은 거대한 추상이지만, 그것을 파고들면 개개의 간절한 사연이 담긴 ‘나의 아리랑’이 된다. 아리랑이 지닌 힘은 뿜어내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이 동시에 이뤄지는 데서 나온다. 혼자서 품고 있을 때 마음은 간절하다. 그리고 주고받을 때, 비로소 마음은 ‘해소’될 기회를 얻는다. 음악처럼, 춤처럼, 그리고 시처럼.

행사 당일, 이현승 시인은 아리랑의 마음을 가리켜 배고픔이라고 했다. 안현미 시인은 할머니의 은비녀라고 했다. 시인들이 아리랑을 재해석한 시를 읽고 “제가 생각하는 아리랑의 마음은 ○○○입니다”라고 말할 때 사람들의 가슴에 불씨가 생겼으리라. 고비를 한 고개 한 고개 넘어가기 때문에 마침내 아리랑은 완성될 수 있다는 안은미 선생님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무대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이것이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리랑의 마음은 안간힘입니다.” 혼자의 마음이 함께의 마음들이 되기 위해 애쓰는 힘, 혹은 그 반대.

‘아리랑의 마음들’ 공연의 전날과 당일에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마음과 겨우겨우 아리랑 고개를 넘어왔는데 뭐 놓고 온 것은 없는지 초조한 마음 때문이었다. 어칠비칠하며 나는 아리랑을 넘었다. 2017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올 한 해 내 앞에 있는 아리랑 고개를 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돌이켜보니 매해 나는 아리랑을 살고 있었다. 기쁜 날도 있었지만 슬픈 날, 아픈 날이 더욱 생생했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웃음은 휘발되지만 울음은 축적된다. 2018년이 온다. 아리랑의 새 마음이 오고 있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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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그거요? 죄송한데 못 갈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내려놓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벌써 세 명째다. 미안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해맑은 목소리로 아무렇지도 않게 취소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제 놀랍지도 않다. 당장 다음주에 강의가 시작하니 새로 신청받기도 어려운 상황, 40명이 넘는 신청자에 기분이 좋아 ‘강의실이 너무 좁으면 어쩌지’ 걱정한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리스트에는 신청자들이 적어놓은 강의 신청 이유들이 다양하게 적혀 있다. ‘좋은 강의 꼭 듣고 싶습니다’ ‘너무 기대됩니다’ ‘다른 강의도 너무 듣고 싶어요’ 등 읽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는데, 막상 통화를 해보니 아예 자신이 신청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 같으니 힘이 빠질 수밖에. 사실 통화하기 전에 문자도 보냈다. 개강 날짜와 시간을 자세히 안내하면서 “혹시 일정이 변경되어 수강이 어려우신 분은 연락을 꼭 부탁드린다”고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당황스럽다. 안내 문자를 받고 취소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앞서 개강한 강의에서는 문자로 참석 확인을 부탁했는데, 막상 개강날이 되니 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일부러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고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한 수준이다. 한두 명 정도야 사정이 생기거나 일정이 바뀌었다고 이해할 수 있지만 프로그램마다 이런 사태가 반복되고 있으니 문제다.

일단 강사 선생님께 고백부터 했다. 신청은 40명이 했는데, 확인해보니 20명이 됐다고. 심지어 강의 당일에 전화해서 취소한 사람이 4명이나 된다. 40명을 예상하고 대관해 세팅해놓은 강의실은 여유로울 정도로 자리가 남았다. 선생님은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료 강의는 원래 좀 그래요. 못 온다고 미리 연락하는 분은 그나마 양반이에요. 돈을 낸 게 아니라 절실함도 없고, 꼭 와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고, 들쭉날쭉한 경우가 많아서 저도 기대치가 낮은 편이에요.” 선생님 말처럼 무료 강의는 일단 신청해놓고, 막상 시작할 때가 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오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아예 신청 인원의 반만 온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정작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못 오고, 프로그램 규모조차 예측하기 어려울뿐더러 수업 진행 방식에도 차질이 생긴다. 공공 영역의 특성상 비용을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무료 프로그램 운영에 대해 고민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뭔가를 배우겠다고 마음과 시간을 내어 신청한 강의조차 이런 상황일진대, 돈을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 업종은 더 심각하다. 사실 ‘노쇼(No-Show·예약부도)’ 근절 캠페인이 진행될 때만 해도 레스토랑 같은 일부 업종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노쇼’가 꼭 식당에서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실제로 식당과 병원, 미용실, 공연, 고속버스 등의 업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쇼’가 초래하는 사회적 손실은 직접 비용만 4조5000억원, 간접 비용까지 포함하면 8조원이 넘는 수준이다. 지난 추석 연휴에 예매된 기차 승차권 역시 40%에 가까운 표가 반환됐고, 5% 가까운 좌석이 빈 채로 남았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은 장기간 사용 신청을 내놓고 행사일에 닥쳐서야 취소하는 ‘노쇼’로 골머리를 앓다가, 동일한 행사로 7일 이상은 대관할 수 없게 규칙을 변경했다. 일부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선량하게 이용하는 대다수 사람들마저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노쇼’에서 가장 큰 문제는 “사정이 생기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의식 그 자체다. 누군가 그 시간에 쓰려던 사람이 자신의 ‘노쇼’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연말이다. 이런저런 모임이나 약속이 많을 수밖에 없고, 당연히 예약도 많은 시기다. 당연한 얘기지만 ‘예약은 약속’이다. 예약이 변경된다면 사전에 연락해 양해를 구하는 것이 기본이다. 당신이 갈지 말지 몰라서 잡아둔 그 자리가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자리였을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언젠가는 당신도 모르게 ‘노쇼’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 못 가면 못 가게 됐다고 미리 연락하는 것, 어렵지 않다. “한 번쯤은 그럴 수도 있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시간에 전화 한 통, 클릭 한 번으로 기본을 지키는 것. 올 한 해를 보내며 할 수 있는 작지만 꼭 필요한 기본이 아닐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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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의 고용률은 그 나라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과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서로의 땀방울을 존중하며 연대의 환희를 나눌 수 있는지 말해주지 못한다. 한 국가의 1인당 국민소득 수준은, 그 나라의 이주자, 장애인 그리고 성소수자들이 얼마나 혐오와 폭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서로가 자유롭게 친구가 될 수 있는지 말해주지 못한다. 한 국가의 국민총생산은, 노인과 젊은이가,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이, 그리고 서로가 평등한 여성과 남성이 한데 어울려 얼마나 신비롭고 장대한 직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결코 말해주지 못한다. 한 국가의 부의 수준은, 무엇보다 그 나라의 산과 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푸르며, 어린이들은 그 위를 얼마나 마음껏 뛰놀 수 있는지 하나도 말해주지 못한다.

 

 

한국은 경제수준을 세계 10위 안으로 끌어올렸지만, 다른 모든 것들에서 치명적인 적신호가 켜졌다. 무엇보다 분배구조가 심각한 수준으로 망가져 있다. 자산과 임금 수준이, 협상력과 의사결정권이, 문화를 향유하며 건강하고 사람답게 삶을 영위할 개인들의 권리는 말할 것도 없이,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꿈의 크기조차 점점 더 한쪽으로만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다.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지 않아도 상식적인 수준의 분배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오감을 통해 느끼고 있다. 다만, 매일 경험하며 하루하루 무뎌지고 있을 뿐이다. 가난한 노인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폐휴지를 주워야 하고, 많은 노인들이 삶의 끝을 자살로 택하도록 내몰린다. 한국 청년들은, 이미 다 잡아가 버려 좋은 물고기가 없는 바다에서 계속해서 물고기 잡는 법을 배워야만 살 수 있다고 주입받는다. 권리에 대한 기억은 이들에게서 서서히 퇴색했고, 젊은 영혼들은 음료공장 현장실습 과정에서 기계에 가슴이 눌려 목숨을 잃기도, 콜센터에서 실습교육 대신 실적 압박에 눌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나마 일이 있는 어른들은 긴 근로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날마다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부부는 아이와 놀아줄 시간도 없다. 출산은 아득하고, 한번쯤 꿈꿔봤던 “행복한 집”에 대한 바람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부모가 바깥 세계에서 몰고 들어온 불안감으로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반문 없이 달린다.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행복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낮고, 청소년의 자살률은 가장 높다.

해고에 대한 불안으로, 좀처럼 오르지 않는 임금에 대한 불만조차 꺼내보지 못하는 노동자가 3명 중 1명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측 가능성, 자원에 대한 통제력과 협상력은 낮아지고 있고, 개별 노동자들의 불안정성은 확대되고 있다. 작아지는 밥그릇 자체에 대한 의문은 없이, 어느새 싸움은 노동 대 자본이 아니라, 불안정 노동자와 ‘좀 더’ 불안정한 노동자 간의 싸움이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나라에서 부는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축적되고 있다. 전체 부의 반은 토지, 빌딩과 같은 자산이다. 그리고 자산에서 얻어지는 소득은 노동소득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난다. 상위 10%가 우리나라 전체 부의 절반 정도를 가지고 있는데, 부의 불평등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이다. 한국 아이들의 꿈은 빌딩주인이고, 가장 ‘좋은’ 부모나 배우자가 되려면 자산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이렇게 망가진 채 성장에 대한 맹목적 허기로 우리는 언제까지 달리기만 할 것인가. 한국의 경제성장은 상식적인 수준의 분배조차 가져오지 못했다. 일하지 않는(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복지에는 그토록 엄격하면서, 자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에 어떻게 이토록 관대할 수 있는가. 역사상 가장 보편적인 복지정책을 내세웠던 정부도 대대적 조세개혁 대신 핀셋 조세정책만으로 생색내고 있다. 아이들의 보편적 권리로 약속되었던 아동수당마저 결국 선별적 급여로 추락될 조짐이다. 보편적인 복지서비스의 확대는 작은 예산의 일자리 정책으로 전락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급진적 상상력이다. 이것은 일과 소득의 새로운 관계, 공유자산에 대한 새로운 규칙, 성장과 분배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우리에게는 영웅적 수장이 아니라, 분배에 대한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봄날 걷잡을 수 없이 사방에서 피어오르는 새싹같이, 깨어있는 시민들 한명 한명의 급진적 상상력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우리를 압도시킬 만큼 아름다운 사회에 대한 상상을 시작하자.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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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보내는 시절에는 잘 몰랐다. 사람들이 ‘보통 인간’에게 기대하는 바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을. 그리고 보수적이라는 것을.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이쪽’ 세상이 책에 펼쳐진 ‘저쪽’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가끔 혼자서 놀라고는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을 했는지, 아이는 몇인지, 연령에 따라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마찬가지이다. 타인들의 질문은 조심스럽지만, 그 조심스러움에는 응당 그러해야 마땅하다는 완강한 의식이 묻어 있다. 그 완강한 의식을 <편의점 인간>은 석기시대부터 지속된 인간의 보수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편의점 인간>은 2016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데, 작가 무라타 사야키는 실제로 18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편의점을 통해 바라본 인간 사회란 작가에 의하면 석기시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현대사회니 다양성이니 해도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를 무리는 가만두지 않고 ‘보통 인간’이라는 규격품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을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풀어가는 시점과 코믹한 문체이다. 화자인 게이코는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기계적 인물인데, 18년을 편의점 알바로 지내오고 있지만 어떤 결핍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서른여섯 살의 게이코의 알바인생을 끊임없이 의아해하고 염려한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녀는 그 반복되는 질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일을 감행한다. 혼활(결혼활동)을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다 쫓겨난 껄렁한 청년을 집 안에 들인 것이다. 연인이 아닌 이들의 동거는 위장에 불과한 것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기뻐하고 우려하면서 그들에게서 하나의 채찍을 거둔다. 동거 소식에 “잘됐다! 난 걱정했어”라는 친구의 반응, 그리고 이어지는 백수 애인에 대한 복잡한 표정과 다른 충고들을 접하면서 게이코는 “다들 내가 비로소 진정한 ‘한패’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모두에게 ‘저쪽’이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 무감한 게이코의 시선에 비치는 인간세상의 기묘함은 철저히 ‘이쪽’ 세상에 속하면서 루저의 원한으로 똘똘 뭉친 백수 청년 시라하의 것과 대비되면서 강조되는데,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관점에 의하면 게이코는 그보다 못한 이단자이다. “자신이 부끄럽지 않아요? 알바만 하다가 할망구가 되어 이제 시집갈 데도 없잖아요. 당신 같은 여자는 처녀라도 중고예요. 너저분한. 석기시대라면 자식도 낳을 수 없는 나이 든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무리 속을 어정거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무리의 짐일 뿐이죠. 나는 남자니까 아직 만회할 수는 있지만, 후루쿠라씨는 이제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요.”

<편의점 인간>은 일종의 편의점에서 바라본 인간학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편의점의 점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제복을 입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 그 매뉴얼이란 유년, 청년, 중년 등의 시간대별로 할 일이 정해지고, “어서오세요”와 같은 접객용어로 무장한 기능인이다.

어느 평자의 말대로 이 소설은 ‘우습고 귀엽’지만, ‘대담하고 무섭다’. ‘이쪽’의 삶의 밑자리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삼포세대, 미혼, 백수 등의 호명도 일종의 편견일 수 있겠다. 주변에는 남녀 구분 없이 결혼을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하는 이들도 많고, 또 결혼한 부부 중에서도 경제적 이유와 상관없이 아이를 원치 않는 이들도 많다. 그 나름 다른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생의 두꺼운 층이 있을 터인데,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예요’라는 소설의 한 대목처럼 사람들은 대번에 걱정하거나 힐난하곤 한다. 아이를 갖지 않는 젊은이들을 이기적이라고 재단하거나 비혼이나 무직이 당연히 우려할 만한 사태라는 식으로 말이다.

‘저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며 노동을 거부하는 바틀비(<필경사 바틀비>)는 성과사회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아이콘으로 언급되곤 한다. <편의점 인간>의 게이코는 정상의 삶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류의 오랜 보수성과 불화하는, ‘아니요’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보통 사람의 우려와 비난에는 어쩌면 ‘이쪽’ 세상에서의 고난과 견딤이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는 불안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을 해치지 않는, 각자 추구의 행복을 이쪽 방식과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하는 것, 그것은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외에 인간이 가꾸고 추구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유토피아가 아닐는지.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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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서른다섯을 먹도록 아직 해외에 나가본 일이 없어서 무척 큰 결심을 하고 후쿠오카행 항공권을 예매했는데,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출발하기로 한 그 주에 아이의 수술 일정이 잡혔다.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서 벌어진 급작스러운 일이었다. 의사는 수술 다음 날 어린이집에도 갈 수 있을 만큼 별것 아니라고 했지만, 아버지라는 인간이 혼자 해외로 떠나기에는 염치가 없었다. 마침 이런저런 일정들도 생겨서 티켓을 취소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끊은 항공권은 후쿠오카까지 왕복 8만원, 일명 ‘땡처리 티켓’이었다. 예약을 하면서도 0이 하나 덜 붙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만큼 취소 수수료가 비쌌다. 50%까지는 예상했는데, 2만원이 좀 안되는 돈을 환불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몇 자리 남지 않은 것을 간신히 구했으니 예약대기를 걸어둔 누군가가 곧 그 자리를 다시 채울 것이었다. 그러면 항공사와 여행사는 누군가가 그 티켓을 취소할수록 오히려 이익을 얻는다. 왠지 그것이 얄미워진 나는 티켓을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을지를 물었다. 그러자 담당자는 “여권에 등록된 영문 이름이 같은 대한민국 남성이면 출발 3일 전까지는 가능합니다” 하고 답했다. 그러니까 김민섭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한민국 남성을 우선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의 여권에 나와 같은 ‘KIM MIN SEOP’이라는 영문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가 ‘김’을 GIM으로, ‘섭’을 SEOB, SUB으로 등록해 두었으면 양도가 안된다.

그래서 페이스북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하는 글을 올렸다. 반응은 생각보다 뜨거워서, 8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고, 저마다의 ‘김민섭’을 호출(태그)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반응은 “내 이름은 왜 김민섭이 아니란 말인가, 개명하고 오겠습니다”라는 것이었고, ‘김민서’라는 친구를 태그하고는 “ㅂ 만들어 ㅠㅠㅠ” 하는 댓글을 다는 이용자도 있었다. 현실 감각이 높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은 “이름이 김민섭인 사람이 하필 영어 이름이 KIM MIN SEOP이어야 하고, 평일에 2박3일 남자 혼자 자유여행을 갈 수 있어야 하고,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10만원, 그런 사람을 찾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고 말했다. 실제로 그들의 예상이 틀리지 않아서 태그된 ‘김민섭’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어느덧 이것은 “김민섭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가 되었다. 누군가는 “그냥 2만원 환불 받으시지요” 하고 댓글을 달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나 즐거운 일이 되어 있었다. 좋아요든, 공유든, 댓글이든, 그 어떤 수단으로 여기에 참여한 모두가 이 이벤트에 즐거워했다. ‘아, 이런 게 되는 거야? 우리 힘으로 김민섭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두근거림이 서로에게 전해졌다. 내가 후쿠오카에 가고 못 가고, 하는 것보다도 김민섭씨를 찾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되어 있었다. 공유된 어느 글에서는 “엇 저와 영문 이름이 같으신데 이런 일이 있으면 서로 양도할까요?”, “아이고 좋죠” 하는 그들끼리의 연대가 일어나기도 했다.

싸이월드의 미니홈피가 지금의 페이스북 역할을 하던 불과 10년 전에, 같은 이름을 가진 이들과 친구를 맺는 유행이 잠시 있었다. 나의 미니홈피에도 김민섭들이 들어와서 글을 남겼고 “우리 김민섭 운동회라도 만들어 볼까요?” 하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곧 사그라들었던 그 유행을, 나는 2017년의 페이스북에서 다시 떠올린다. 이름이 같다는 그 단순한 이유와 인연만으로도 이처럼 재미있는 일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연대한다는 감각은 별것이 아닌데도, 인천에서 후쿠오카로 가는 일보다도 더 멀고 어렵다. 아직 김민섭씨는 찾지 못했다. 페이스북에서 ‘김민섭’이나 ‘나는지방대시간강사다’라고 검색하면, 공유된 글을 볼 수 있다. 김민섭과, 김민섭을 아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글은 어느 이용자의 가장 다정했던 댓글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을 읽고 김민섭을 떠올린다. 동네친구 김민섭, 같은 반 김민섭, 같은 과 김민섭, 직장동료 김민섭, 가끔 생각나던 김민섭, 너무 오래 연락하지 않았던 김민섭, 연락이 올 때마다 ‘언제 한 번 보자…’라고 했던 김민섭, 그래서 언젠가부터 먼저 연락하기 너무 미안했던 김민섭, 내가 때렸던 김민섭, 화냈던 김민섭, 싸웠던 김민섭, 술주정부렸던 김민섭, 고백하고 차였던 김민섭,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시 연락할 찬스다. 다시 오지 않을 김민섭 찬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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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을 때부터 결혼 생각이 없었다. ‘비혼주의’라는 말을 모를 때에도 이미 비혼주의자였던 셈이다.

시작은 어린 소녀들이 흔히 느낄 법한 ‘성관계에 대한 막연한 혐오’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이유는 조금씩 달라졌다. 좋아하는 사람을 놓고 마음이 갈대처럼 변하던 10대 후반에는 “한 남자랑 어떻게 평생을 살아”라는 마음이었고, 20대 중반에는 여성에게 유독 불리한 결혼제도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20대 후반이 되어서는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지 않는다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인류 문명 대대로 마치 ‘자연’인 것처럼 군림하는 문화가 동등한 시민을 차별하는 제도로 기능한다면 응당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구실은 계속 바뀌었지만 비혼 결심만은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였다. 나의 비혼주의를 믿지 않았던 죽마고우가 “웃기지 마라. 네가 결혼을 안 할 리가 없다. 내기하자”고 도발(!)해 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었으므로 흔쾌히 그에 응했다.

내기의 내용은 이랬다. “손희정이 마흔이 될 때까지 미혼이라면, 내가 세계여행을 시켜준다.”

그리고 2017년. 나는 드디어 만으로 마흔이 되었다. 여전히 미혼이며, 결혼을 시도해 본 적 역시 전혀 없다. 내기에 이긴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내기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누구나 어렸을 때 실없는 내기를 하고 나이 들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법조인’으로 성장한 나의 친구는 서류 한 장 남기지 않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다만 내기의 내용은 살짝 변경됐다. 세계여행은 너무 과하므로, 같이 여행을 가게 되면 항공권을 끊어주겠노라고. 그리하여 내년 2월에 우리는 싱가포르에 놀러간다.

나이 마흔에 맞이하는 전문직 비혼 여성의 삶은 꽤 재미있고 스펙터클하다. 하지만 사회적 통념상 잘 포착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적잖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영포티’와 ‘나비남’의 등장은 나의 주변부적인 위치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었다.

X세대 출신, 90년대 학번, 직장에서 중간 관리자의 자리에 올랐고, 이제 후배들을 위해 지갑을 열 수 있는 세련된 중년이라는 의미의 영포티. 이 말이 지시하는 남자들은 내 또래다. 한국 사회는 그 세대를 영포티라고 부르면서 높이 받들고, 심지어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이들을 20대 여성들과 엮어주려고 안달이 났다. 하지만 함께 나이 들어 온 여자인 나를 호명해주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유행이 지난 ‘골드미스’도 30대 여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내 또래는 열외다.

나는 국가가 그토록 싫어하는 “하향결혼을 하지 않아 국가 저출산을 초래한 고스펙 여성”이고, 그나마도 대한민국 출산지도에도 포착되지 않는 나이인 탓에 내년부터는 아예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러므로 복지의 대상이 아닌 것은 물론이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영포티’들은 40대까지 자유롭게 살다가 50대에 독거남이 되면 나라에서 ‘나비남’이라 부르며 그들을 위한 영화제도 개최하고 돌봄 노동도 제공한다는데, 과연 나는 무엇이 될까? 결국 나에게 남겨진 선택지는 어떻게든 홀로 고군분투하며 생존하는 것인가?

그래서 성평등 개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대표에 따르면 성평등 개헌의 핵심 목표는 “대기업 정규직 남성 중심으로 짜여 있는 복지 체제에 편입되지 못해 국가로부터 마땅한 기본권을 받지 못하는 절대다수 인구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취약한 복지 기반을 확장하는 헌법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 우파에서 이를 막아서고 나섰다.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양성평등에 기초한 가족제도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복지를 이성애 중심 핵가족에게 전가하겠다는 뜻 외에 다른 말이 아니다.

나는 양성평등 개헌이 아닌 성평등 개헌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 ‘일 가정 양립으로 과로하는 독거 포티’인 나에게는 자격 조건을 따지지 않고 국민으로서 응당히 누려야 할 기본권을 보장해줄 개헌이 필요하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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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대학교에서 직업·적성 관련 특강을 했다. 담당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삶의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마련한 특강이라며, 내가 문제의식을 느낀 사회·문화 현상, 그와 관련해 벌인 작업,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제까지 안 굶어죽고 살아 있는지에 대한 경험담을 들려주기를 바랐다. 특강을 하기로 한 뒤 서류를 주고받았는데, 내 서류를 받아 본 담당자는 학력사항 기재를 요구했다. 나는 조금 의아했다. 삶의 경험을 나누는 특강을 이전에도 한 적 있지만, 학력사항 기재를 요구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담당자는 정부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아 시행되는 사업이기에 정부가 요구한 서류의 형식과 내용이 존재하고, 학력사항 역시 이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강연비 책정 기준이라고!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만약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수십년 동안 식당을 운영해 온 요리 장인이 직업 특강을 한다면? 학력을 이유로 다른 특강 인사보다 낮은 강연비를 받는다면 부당한 일 아닌가? 수십년간 삶의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몇년간 대학에서 쌓은 경험보다 가치가 떨어지는가?

나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학위 시스템을 중요한 축으로 삼는 기관임을 이해한다. 조금 더 시니컬하게 말하면 학위 증명을 통해 돈을 벌고, 배출된 인물들의 실적을 통해 대학의 권위를 공고히 다져 ‘높은 값’을 유지하며, 이와 같은 시스템이 가급적 오래도록 지속되길 바라는 공간이라고 인지한다. 이런 맥락에서 대학이 누군가에게 ‘정규 수업’을 맡길 때 그곳의 질서를 따르도록 하며 학위 증명을 요구하는 일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직업·적성 특강은 대학교 바깥의 경험을 학생들과 나누기 위해 외부 인사를 일회적으로 불러오는 것. 특강에 섭외된 것부터가 경험의 가치를 인정받은 일이고, 만에 하나 경험의 가치를 차등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 기준을 학력으로 삼는 것이 올바른지 의문이었지만 담당자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시스템이 문제지…. 행정의 모순을 관계자도 알았는지 그도 내게 말했다. “저도 문제 있다고 생각하지만 공개적으로는 말 못하는 입장이라…. 서윤씨가 이거 관련해서 칼럼 써주세요.” 그래서 지금 쓰고 있다.

필요한 만큼만 요구하라. 평소 해 온 생각이다. 특히 타인에게 정보를 요구할 때, 필요한 것이 뭔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몽땅 다 요구하고 수집하다 보면 폭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그걸 왜 물어보시죠?”라는 반문이 절로 나오는 순간들. 예컨대 처음 만난 사람과 친교를 목적으로 만났을 때 나이, 출신 학교, 결혼 여부가 ‘가장’ 중요한 정보인가?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을 탐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 아닐까? 또한 상대가 감정을 가진 인간이고, 정보 역시 개인의 재산임을 인지한다면 좀 더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적 정보를 스스로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을 자주 접한다. 너무 많은 정보를 당연한 듯 요구해서다. 예컨대,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포털사이트에 가입하려면 이름, 휴대폰 번호, 주소, 심지어 주민등록번호까지 몽땅 입력해야 했고, 그것은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왕창 털려서 마케팅 자원으로 거래됐다. 이에 대해 제대로 된 보상은 받지도 못했다. 온라인 사이트가 회원에게 수집하는 정보를 제한하는 제도가 마련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려나.

수집된 사적 정보가 개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는 자료로 쓰이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회사에서 일하는 데 업무 경험 내지 업무 적성,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중요하지 본적, 가족관계, 부모 직업, 신체 사이즈, 출신 학교 등을 왜 알려야 하는가? 입사 서류에 과도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 역시 ‘필요한 것만을 정확히 요구하는 태도’의 부재라고 느낀다.

제도의 변화로 우리의 의식과 문화도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여 벌이는 사업의 행정 절차부터, ‘본질적으로 필요한 정보’만을 수집하고 차별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길 바란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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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여행을 다녀왔다. 충남 곳곳을 방문하는 당일치기 여행이었다. 내가 맡을 역할은 해설자라고 했다. 부여에 있는 신동엽문학관에서 신동엽 시인 관련 특강을 해주면 된단다. 제안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저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요?” 연락을 해온 사람은 아마 난감했을 것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난 후에야 나는 버스에 탑승하겠다고 대답했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재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이번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여행을 두려워한다. 여행을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설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답답한 일상의 반대편에 여행을 위치시키는 사람도 있고, 휴식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여행에서 마주할 수 있는 낯선 풍경에서 생동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바로 그 낯섦 때문에, 나는 여태껏 여행을 멀리해왔었다. 남들이 여행의 묘미로 파악하는 그것이 내게는 ‘예기치 않은, 당혹스러운 상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면 기다렸다는 듯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당일치기여행, 국내여행, 가이드가 동행하는 단체여행 등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 요소들이 있어 실로 다행이었다.

공주역에서 난생처음 만난 사람들이 아트버스에 올랐다. 첫 번째 코스는 무령왕릉이었다. 가이드의 상세한 설명 덕에 어릴 적 배웠던 내용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문제는 자유시간이었다. 무심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갔다가 일행에서 벗어난 나 자신을 발견하고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예기치 않은 일이 어김없이 벌어진 것이다. 몇 번의 통화 끝에 아트버스에 다시 오를 수 있었다. “시인이라 갑자기 시 쓰러 가신 줄 알았어요.” 운전기사님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는 동네에서도 길을 잃어요.” 내 말에 버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나는 한배를 탄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 뒤에 나란히 앉은 분들은 네 자매였다. 첫째와 막내가 함께 앉고 둘째와 셋째가 함께 앉았다. “막내랑 나랑 열두 살 차이예요. 띠는 같지요.” “언니는 자기가 업어 키웠다고 하는데, 그때 기억이 날 리가 있나요? 갓난것이 뭘 알겠어요.” “애들 다 키우고 나니 자매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평생 고생했으니 시간 내서 좋은 것 보러 다니고 싶었지요.” “우리는 계절마다 꼭 한 번씩 이렇게 나들이해요. 신산한 삶에 활력도 되잖아요.” ‘신산하다’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접해서 그런지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 셋째가 왕년에 글깨나 썼어요. 그때는 끼니 때우기도 힘들어 지원해줄 생각을 못했지.”

미륵사지에 도착하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하늘 좀 봐, 그새 발갛게 익었네.” 미륵사지석탑이 국보 제11호라는 설명을 들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저기 돌기둥 좀 봐. 옛날에는 끌 것도 마땅히 없었을 텐데 어찌 저 무거운 것을 옮겼을까?” “석탑을 복원 중이라니까 저기 한 번 들어가보자.” 네 자매가 빚어내는 활기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여행할 때마다 쭈뼛거리기 바빠 중요한 장면을 번번이 놓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보려고 애쓰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지금껏 나는 나를 오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의 장점을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견문(見聞)을 넓힐 수 있다는 것. 견문을 넓힌다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그때 그 순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것, 바로 그 현장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장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것이다. 입을 연 사람에게 풍경이 하나의 추억이 되듯 말이다.

뭔가에 홀린 듯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깨달은 게 있어요. 여행을 하니 평소에 안 쓰던 단어를 쓰게 되더라고요.” “신산하다?” “네, 그것도 오랜만에 건져 올린 단어예요. 석탑, 연못, 발갛다… 하나같이 잊고 지내던 것들이에요. 단어의 뜻을 아는 것과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잖아요. 돌아가는 길에 오늘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지 생각해보세요.” “시인 양반, 여행 끝자락에 설레기 시작하네!” 그 말을 들으니 언제가 될지 모를 다음 여행이 기다려졌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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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사무치는 즈음에 지나간 일은 글감으로 삼지 않는다는 칼럼의 불문율을 한 번 깨겠다. 2017년 한가위가 선물한 연휴가 꿈처럼 지나갔다. 지난 연휴는 밥벌이의 최전선으로 돌아온 생활인들에게 이미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게다가 11월도 하순이 코앞이다. 어정거리다 연말이 바로 코앞일 테다. 이때 하필 다시 펴느니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열양세시기>이다. 김매순은 신라의 “가배”에서 추석의 기원을 찾은 뒤 말한다. “이날은 아무리 구석진 시골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음식을 한다. 안주며 과일도 넘치도록 한 상 가득 차린다.” 이 때문에 당시에 이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減也勿, 但願長似嘉排日)”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녔다고 한다. 정말 오래된 관용구 아닌가. 사대부 또한 이 분위기에 젖었던 모양이다. 설, 한식, 중추, 동지 가운데 중추, 곧 한가위의 묘제를 가장 풍성하고 크게 치르는 경향이 있다고 김매순은 설명한다. 부모형제, 고향, 고향을 지키는 친구를 떠올리는 마음에 상하귀천이 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매순은 “하인, 종, 머슴, 거지 모두가 부모의 묘를 찾는다”는 옛글을 인용한 다음 마무리한다. “오직 이날이니까 그런 것이다”라고.

한국인은 이 문화를 이어는 받았다. 우리는 좀 더 맛나고 특별한 음식을 좇아다녔고, 일상과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났다. 여기까지다. 휴가는 늘 짧기만 하고, 계획과 예산을 벗어난 지출은 11월까지도 돌아오는 짜증스러운 할부금으로 남았다. 음식은 어떤가. 남들이 사니까 덩달아 산, 송편을 필두로 한 떡이며 약밥이 지금 냉동고 속에서 잠자고 있지 않은가. 지금 냉동고 문을 열어볼거나. 그 송편은 필시 자다 못해 얼어 죽어버렸을 테다.

무언가 하던 대로 하는데 구체적인 행동은 다르다. 자본제 시대, 산업화 시대니까 음식은 그저 “사 먹지 뭐”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여행 또한 “여행 상품” 구입이라는 지름길이 있다. 그동안 세상은 너무 급히 변했고, 우린 너무 지쳤고, 음식 하는 법도 여행 하는 법도 가꿀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개저씨’는 돈밖에 모르고, 청년은 취향을 벼릴 겨를이라고는 없는 시대라고 하면 지나칠까. 그래서 더욱, 세시가 남긴 문화와 행동을 나를 돌보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매체와 기업은 동지, 성탄 전야, 연말연시를 굽이치며 탐식과 고급 숙박 상품 판매에 활활 불을 붙일 테지만, 일상과 문화 일체를 소비에 의지할 수만은 없다. 내 줏대와 내 손이 빛나는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가 귀하다. ‘주말이니까 사 먹자’가 아니라, 주말만큼은 반찬을 만들자는 골목길 여기저기의 모색과 한 길이다. 매끼는 어렵지만 하루 한 끼는 내가 장을 보아 내가 내 밥상을 차려보자는 온당한 마음가짐과 같은 궤다.

어정하다가 동지가 훅 닥칠 테다. 우리는 별로 우리 일상을 가꾸며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과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송편은 냉동고에다 장사 지냈다. 그렇다면 다가올 동지팥죽은 어떤가. 역시 나한테 돌아가야 한다. 내 입맛, 취향은 어떤가. 나는 별미 죽 가운데 실제로 팥죽에 입맛 다신 적은 있나. 덩달아 먹을 테냐, 내가 내게 다른 수를 낼 테냐.

팥죽도 김치찌개만큼이나 집집이 다 달랐다. 통팥 퍼진 팥죽, 팥물을 고듯 쑨 팥죽, 쌀알을 살린 팥죽, 쌀가루로 방점 찍은 팥죽 등등 천차만별이었다. 새알심의 탄성과 질감도 저마다의 입맛을 탔다. 찹쌀가루와 밀고 당길 갖가지 전분도 취향껏 쓰였다. 동지팥죽에는 꿀로 단맛을 더했다. 대추를 고아 풍미를 더하기도 했다. 저마다의 손이 사라지면서 다채로움도 빛을 잃었다. 소가죽 젤라틴에다 꿀, 계피, 생강, 정향, 후추, 대추고를 더해 굳힌 전약(煎藥), 그러니까 프랑스 제과로 치면 앙트르메 또는 데세르에 준하는 과자가 팥죽에 따라오기도 했다. 이런 맛의 설계는 사자고 해도 없는 노릇이다.

송편은 냉동고에서 얼어 죽었다 치고, 이제 팥죽이 냉장고 합성수지 찬통에서 보글보글 괼 차례인가. 아, 죽이 쉬다 괸다는 말 또한 오늘날에는 알아먹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한 해에 한 번이다. 한 번이니까 내가 해 보자, 같이 모여 배워서 해 보자 하는 마음이 골목골목 자랐으면 좋겠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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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취미를 알게 됐다. 일명 ‘돈 되는 취미’. 방법은 간단하다. 식당이나 핫 플레이스를 갈 때마다 영업시간, 테이블 수, 주력 메뉴 객단가, 손님 평균 체류시간, 직원 수, 입지 등을 관찰하면서 그 가게의 매출과 이익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취미를 넘어선 놀이도 있다. 동네 상가 건물에 빈 곳이 생기면 앞으로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 맞혀보는 ‘상가 맞히기 놀이’다. 주변 상권을 분석하고 가게가 몇 평인지, 보증금이나 월세는 얼마인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생각했던 업종이 입점하면 자신의 부동산 감각을 확인할 수 있고, 틀렸다면 반성하는 기회로 삼고 그 가게가 잘되는지 지켜보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유튜브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실소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해볼까? 그래서 작정하고 며칠간 매의 눈으로 들르는 가게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공교롭게 구도심의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음악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와 시기가 딱 맞았다. 이틀간 다양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공연들을 신나게 관람했는데, 결과는 대실패. 나 자신이 워낙 그쪽으로 감이 없기도 했지만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들렀던 가게들이 소극장, 카페, 재즈클럽, LP카페 같은 문화공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2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있는 손님들이 가득한 곳, 평소에 술을 판다고 해도 객단가와 테이블 회전 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들이다. ‘돈 안되는’ 공간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돌아다닌 결과, ‘돈 되는’ 취미 계발에는 실패했지만 대차대조표로 계산할 수 없는 공간들의 소중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페스티벌처럼 한 곳에 집중된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간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보는 기획 그 자체다. 그래서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 그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군것질하는 즐거움은 옵션, 지도를 들여다보고 계단을 오르고 골목골목 숨어 있는 작은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발품은 필수다. 관객들은 자기 돈을 내고 티켓을 사서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는 수고를 즐겁게 감수한다. 뮤지션들은 연극 무대에 쓰인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친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뮤지션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도 누린다. 새로운 무대에서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가 닿는 그 느낌을 통해 ‘한 번 더 음악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뮤지션의 ‘사운드(sound)’가 무대 위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일상을 충전한 관객들과 만나면서 ‘바운드(bound)’한다.

이처럼 공간에는 역사가 남고, 뮤지션과 관객들에게 기억이 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누군가 공들여 가꾸고 매만지던 공간, 구석구석 쓸고 닦고 만지면서 생긴 생활의 결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가게만이 가진 세월의 무게든, 새로 문을 연 가게의 반짝반짝한 설렘이든 애정이 담긴 일상의 공간과 만날 때 비로소 음악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 아무 데나 버려져 있던 공간에 큰 무대 세우고 의자 깔아서 사람들을 앉혀 놓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돈 되는’ 걸로 따지고 들자면야 이런 행사는 애초에 계산기를 두드릴 견적도 나오지 않는다. ‘돈 되는’ 취미를 가진 이들이 보기에 이런 공간들은 운영 자체가 말이 안되는 곳이니까. ‘돈 주는’ 높은 분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수많은 관객이 한군데에 모여 장관을 연출하는, 소위 ‘그림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인사할 큰 무대도 없으니 말이다. 취미마저 ‘돈 되는’ 세상에서 ‘돈 안되는’ 일을 하려니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실적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운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건 아닐까? 나는 ‘돈 되는 취미’ 갖기에 실패했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시도만은 실패하지 않았으면, ‘돈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안되는’ 즐거움에도 “슈퍼울트라그뤠잇!”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그날까지 ‘돈 안되는’ 음악여행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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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너와 관계라는 것을 맺으며 ‘우리’가 되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너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성찰의 기회, 차곡차곡 쌓이는 우리의 이야기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하다는 느낌만큼이나 나도 누군가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우리를 생기발랄하고 살아있게 한다. 나와 너, 우리와 같은 말들은 어쩐지 따스하고 달콤하다.

그런데 자유로운 듯 하늘거리는 이 환희가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모든 관계에는 커져가는 즐거움만큼이나 같이 자라는 책임이 있다. 관계 속에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너의 행복에 대한 나의 책임도 어느새 배어 있다.

기쁨이 하늘 위로 마냥 두둥실 날아가지 않도록, 책임은 우리에게 의무를 지우고 때론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책임은 힘들고 싫은 것, 무거운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 나를 홀로 두기보다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은 손익계산상 그래도 관계가 주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나와 너, 우리, 가족, 동료, 이웃과 같이 수많은 관계들이 촘촘한 픽셀로 모여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이제는 즐거움과 책임이 빛과 어둠처럼 양분되어 공존하는 것 같지 않다. 오직 책임만이 더없이 가벼워졌고 또 계속해서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점점 만연하고 있는 하청, 파견, 그리고 아웃소싱 방식의 계약관계망에서 업체, 고용주,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책임의 비대칭성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청과 외주화는 현재 한국에서 주요 제조업뿐만 아니라 건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가전 수리, 통신, 보안, 청소 등의 서비스업 그리고 공공부문에까지 놀랄 만큼 확대되어 있다. 이러한 다단계방식의 하청구조가 실제로 원청업체에 얼마나 양적으로 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인지는 잘 따져봐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원청업체가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곧바로 계산되는 원청업체의 이득분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노동자의 임금이나 퇴직금이 체불되어도, 심지어 일하다 사고로 사망해도 그건 하청업체 고용주와 노동자들끼리 알아서 어떻게 해결할 일이다. 근로환경 개선, 임금 인상과 관련된 일 등 골치 아플 수 있는 갈등도 고용주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으면 신경을 끌 수 있다. 원청업체는 다만 낮은 단가로 같은 일을 해내줄 업체와 계약만 맺으면 그만이다.

파견직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파견나온 제빵사가 빵을 굽다가 화상을 입어도 가맹점주는 산재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도 가벼워지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상시적인 업무조차 상당 부분 민간 위탁으로 외주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제한된 시간에 하청업체가 지시한 일을 끝내려다 사망한 김모군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서울메트로의 법적 책임은 가벼웠다.

꼭 복잡한 다단계 방식의 하도급과 아웃소싱의 구조 속에서 관계가 갖는 모호성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기계약으로 관계를 맺으면 고용주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더 쉽다. 계약이 만료되거나 해고시켜 버리면 더 이상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이 성폭력과 폭언,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임을 묻는 것조차 두려워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버린다.

한쪽에서 너무나도 가벼워진 책임들은 결국 약한 개개인들에게만 비대칭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남은 것은 오로지, 모두 필사적으로 피하려고만 하는 법적 책임일 뿐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과 불안정한 삶에 내가 직접 고용한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법적 책임이 없다면 역시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워도 되는 것일까.

결국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야 나는 누구이고, 왜 살고 있고, 또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보다 대칭적인 관계들로 촘촘하게 이루어진 사회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연대감이 강하게 흐르는 사회다.

나와 관계 맺은 이를 소중하게 여기며 책임을 다할 때는 그도 나를 소중하게 여겨줄 것이라는 믿음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이런 막연한 믿음이 주는 안정과 평온함이 있는 사회는 발밑의 따뜻한 땅과도 같이 또 다른 차원의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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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학생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학 능력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간극을 더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다보면 그것은 지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동료가 늘 심드렁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사람의 머리는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경험하면서 나는 자문하곤 했다. 그렇다면 지적 평등이라는 동일한 출발점이 다양한 지적 불평등을 결과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며칠 전 읽은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은 이러한 나의 물음에 매우 적절한 답을 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에 관한 중요한 지침들을 알려주었다. 이 책은 조제프 자코토라는 인물의 기이한 지적 모험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1818년 벨기에 루뱅 대학에 불문학 외국인 강사로 일하게 된 자코토는 학생들의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고, 학생들 또한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자코토는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해서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에게 제1장의 반 정도를 외우게 하고, 나머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만 읽으라고 한 후 프랑스어로 내용 전부에 대해 생각한 바를 써보라고 했다. 결과는 그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 문장을 훌륭히 써냈다는 것이다.

<무지한 스승>이 얘기하는 바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어떤 지식 체계를 전수하고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바보 만들기’이다. ‘보편적 가르침’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스승의 앎이나 학식을 전달하고 설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지능이 쉼 없이 실행되도록 강제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업 성취의 불평등은 자코토의 말대로 지능 발현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학습 능력이 뒤처지는 학생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과 의지와 관련된 어떤 멘털리티이다. 그러나 교단에 서보면 이 습관과 의지를 바꾸는 게 지능의 평등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교육환경이라 불리는 가정, 지역 등의 복잡한 계기들에 의해 오랫동안 형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환경 속에서 많은 학생들은 돌봄에서 소외되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그것은 랑시에르가 근본적인 지적 악이라고 했던 ‘무시’이다. ‘자기 무시’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에게는 그러한 지식이 필요치 않으며, 이해할 수도 없으며 합당치도 않다는 ‘들러리’ 의식을 각인시키고 자신의 삶을 주변화하도록 작동한다.

‘인간은 지능의 시중을 받는 의지이다’라는 말은 교실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지식이 아니라 자존감과 의지, 욕망 같은 더 복잡한 멘털리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비교적 많은 교육적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수도권 학생들에게 최근 느끼는 것은 이들의 지능 발현을 막는 또 다른 차원의 장애물이다. 그것은 이들 대신 능동성과 적극성을 과도하게 발현하고 있는 부모와 사회 시스템이다. 이들은 돌봄과 관심에 배제되는 대신 과도하거나 잘못된 돌봄에 의해 가두리에 갇혀 수동적 태도를 갖게 되고 실패로부터 차단된다. 학생들은 제도나 학제시스템에 매달리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걸 마치 엄청난 낙오처럼 두려워한다.

과연 이렇듯 매뉴얼의 기능적 존재로 만들어진 인재들이 시시각각 복잡한 맥락으로 달려드는 수많은 현실을 잘 헤쳐나가고 또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렇게 보면, 강의실보다는 캠퍼스와 동아리에서 시간을 보냈던 나의 대학 시절이 오히려 자코토의 보편적 가르침의 현장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출석보다 결석이 더 자연스러웠던 혼돈의 시절, 나는 스스로 공부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해나가는 독학을 익혔다. 우리 세대는 바쁘거나 무지해서 자식의 삶에 관여할 수 없었던 부모 세대 덕분에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자코토의 방법이 맞다는 것은 강의수업보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중심이 된 수업이 강의평가도 좋고 학생들의 만족감도 높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읽은 또 하나의 중요한 사유는, 평등이 실현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평등이 실현해야 할 목표가 되었을 때, 그것은 언제나 허구이거나 불가능한 미래일 수밖에 없다. 평등이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숱한 의심을 지우고 그 중력처럼 지극히 당연한 평등에 기초해 지적 해방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까 평등은 신앙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것, 이 믿음이 있을 때 불평등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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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모 대학에서 열린 ‘학문 후속세대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발표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작자 미생’의 발표문을 제출했고, 학회의 간사가 그것을 대신 읽었다. 

거기에 몇 년 전의 나와 닮은 여러 대학원생이 있었다.

3년 전까지, 내 신분은 대학원생이었다. 정확히는 박사 과정 ‘수료생’,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논문 인준만 남은 단계를 가리킨다. 나 역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이라는 프로젝트 공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연구자들이 신청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과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심정이 되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규정하는 신진연구자는 박사학위 소지자부터였다. 수료생인 나는 애초에 지원 자격이 안되었다.

그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연구자’로 규정했다. 신진이나 후속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고 싶지 않았다. 학회에 논문을 제출할 자격은 과정생과 수료생 모두에게 있고 논문을 투고하고 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수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함께 심사가 이루어진다. 나는 연구의 장에 이미 편입된, 그 생태계의 일원이었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로 말해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물론 나는 평범한 연구자였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즐거웠고, 연구사에 하나의 단어나 한 줄 정도를 보탠다는 자부심으로 계속 버텼다.

나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지만, 교회사에서도 문학사에서도 소외된 그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는 ‘이 논문을 필요로 할 만한 기관이 어디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했다. 당연하겠지만 ‘교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대형교회에 보내는 e메일을 썼다. “월 5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해 준다면 기독교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명해 보겠다” 하는 내용이었다. 

왜 50만원이었냐고 하면,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보다 더 낮은 금액이면 받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국 e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쓰게 웃으면서 이럴 시간에 논문이나 한 줄 더 쓰자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그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잘했어, 어차피 답장도 안 왔을 거야”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에 연구자로서 연구계획서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나는 가장 서글펐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그 설립 근거를 가진다. 그렇다면 가장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연구자 집단이 어디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젊은 연구자들이 적어도 자신의 연구로 생계를 꿈꿀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의 과정생과 수료생들은 지도교수가 진행하는 연구에 선별적으로 소속되는 것만 가능하다. 프로젝트 공모 방식을 ‘위로부터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도’ 가능한 생태계로 재편해야 한다.

그에 더해 연구재단뿐 아니라 대학교 역시 대학원생들의 연구 지원을 책임져야 할 기관이다. 대학은 정규직 교수들에게는 교비로 연구비와 거마비 등을 지급하지만, 대학원생들에게는 그런 혜택이 거의 없다. 

다만 대학원 총학생회 학술국에서 학기 초에 공모를 해서 100만원 내외의 연구비를 집행하는 일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학생회비를 모아 마치 곗돈처럼 나누는 일이지 연구비라고 해서는 안된다. 각 대학에서는 학기마다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논문 계획서를 제출하고 연구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보다 높은 수준의 연구 성과를 불러올 것이다.

대학원생도 연구자이고 연구 생태계의 일원이다. 토론회에서도 가장 강조한 부분이지만, 그들은 제도로서 보호받아야 하고 그 안에서 무한한 기회를 약속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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