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사무치는 즈음에 지나간 일은 글감으로 삼지 않는다는 칼럼의 불문율을 한 번 깨겠다. 2017년 한가위가 선물한 연휴가 꿈처럼 지나갔다. 지난 연휴는 밥벌이의 최전선으로 돌아온 생활인들에게 이미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게다가 11월도 하순이 코앞이다. 어정거리다 연말이 바로 코앞일 테다. 이때 하필 다시 펴느니 김매순(金邁淳, 1776~1840)의 <열양세시기>이다. 김매순은 신라의 “가배”에서 추석의 기원을 찾은 뒤 말한다. “이날은 아무리 구석진 시골 가난한 집이라도 으레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음식을 한다. 안주며 과일도 넘치도록 한 상 가득 차린다.” 이 때문에 당시에 이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減也勿, 但願長似嘉排日)”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녔다고 한다. 정말 오래된 관용구 아닌가. 사대부 또한 이 분위기에 젖었던 모양이다. 설, 한식, 중추, 동지 가운데 중추, 곧 한가위의 묘제를 가장 풍성하고 크게 치르는 경향이 있다고 김매순은 설명한다. 부모형제, 고향, 고향을 지키는 친구를 떠올리는 마음에 상하귀천이 있을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매순은 “하인, 종, 머슴, 거지 모두가 부모의 묘를 찾는다”는 옛글을 인용한 다음 마무리한다. “오직 이날이니까 그런 것이다”라고.

한국인은 이 문화를 이어는 받았다. 우리는 좀 더 맛나고 특별한 음식을 좇아다녔고, 일상과 다른 공간을 찾아 떠났다. 여기까지다. 휴가는 늘 짧기만 하고, 계획과 예산을 벗어난 지출은 11월까지도 돌아오는 짜증스러운 할부금으로 남았다. 음식은 어떤가. 남들이 사니까 덩달아 산, 송편을 필두로 한 떡이며 약밥이 지금 냉동고 속에서 잠자고 있지 않은가. 지금 냉동고 문을 열어볼거나. 그 송편은 필시 자다 못해 얼어 죽어버렸을 테다.

무언가 하던 대로 하는데 구체적인 행동은 다르다. 자본제 시대, 산업화 시대니까 음식은 그저 “사 먹지 뭐”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여행 또한 “여행 상품” 구입이라는 지름길이 있다. 그동안 세상은 너무 급히 변했고, 우린 너무 지쳤고, 음식 하는 법도 여행 하는 법도 가꿀 기회가 별로 없었다. ‘개저씨’는 돈밖에 모르고, 청년은 취향을 벼릴 겨를이라고는 없는 시대라고 하면 지나칠까. 그래서 더욱, 세시가 남긴 문화와 행동을 나를 돌보고 나를 돌아보는 계기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매체와 기업은 동지, 성탄 전야, 연말연시를 굽이치며 탐식과 고급 숙박 상품 판매에 활활 불을 붙일 테지만, 일상과 문화 일체를 소비에 의지할 수만은 없다. 내 줏대와 내 손이 빛나는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는 시도가 귀하다. ‘주말이니까 사 먹자’가 아니라, 주말만큼은 반찬을 만들자는 골목길 여기저기의 모색과 한 길이다. 매끼는 어렵지만 하루 한 끼는 내가 장을 보아 내가 내 밥상을 차려보자는 온당한 마음가짐과 같은 궤다.

어정하다가 동지가 훅 닥칠 테다. 우리는 별로 우리 일상을 가꾸며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과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송편은 냉동고에다 장사 지냈다. 그렇다면 다가올 동지팥죽은 어떤가. 역시 나한테 돌아가야 한다. 내 입맛, 취향은 어떤가. 나는 별미 죽 가운데 실제로 팥죽에 입맛 다신 적은 있나. 덩달아 먹을 테냐, 내가 내게 다른 수를 낼 테냐.

팥죽도 김치찌개만큼이나 집집이 다 달랐다. 통팥 퍼진 팥죽, 팥물을 고듯 쑨 팥죽, 쌀알을 살린 팥죽, 쌀가루로 방점 찍은 팥죽 등등 천차만별이었다. 새알심의 탄성과 질감도 저마다의 입맛을 탔다. 찹쌀가루와 밀고 당길 갖가지 전분도 취향껏 쓰였다. 동지팥죽에는 꿀로 단맛을 더했다. 대추를 고아 풍미를 더하기도 했다. 저마다의 손이 사라지면서 다채로움도 빛을 잃었다. 소가죽 젤라틴에다 꿀, 계피, 생강, 정향, 후추, 대추고를 더해 굳힌 전약(煎藥), 그러니까 프랑스 제과로 치면 앙트르메 또는 데세르에 준하는 과자가 팥죽에 따라오기도 했다. 이런 맛의 설계는 사자고 해도 없는 노릇이다.

송편은 냉동고에서 얼어 죽었다 치고, 이제 팥죽이 냉장고 합성수지 찬통에서 보글보글 괼 차례인가. 아, 죽이 쉬다 괸다는 말 또한 오늘날에는 알아먹기 어려운 말이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한 해에 한 번이다. 한 번이니까 내가 해 보자, 같이 모여 배워서 해 보자 하는 마음이 골목골목 자랐으면 좋겠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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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취미를 알게 됐다. 일명 ‘돈 되는 취미’. 방법은 간단하다. 식당이나 핫 플레이스를 갈 때마다 영업시간, 테이블 수, 주력 메뉴 객단가, 손님 평균 체류시간, 직원 수, 입지 등을 관찰하면서 그 가게의 매출과 이익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취미를 넘어선 놀이도 있다. 동네 상가 건물에 빈 곳이 생기면 앞으로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 맞혀보는 ‘상가 맞히기 놀이’다. 주변 상권을 분석하고 가게가 몇 평인지, 보증금이나 월세는 얼마인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생각했던 업종이 입점하면 자신의 부동산 감각을 확인할 수 있고, 틀렸다면 반성하는 기회로 삼고 그 가게가 잘되는지 지켜보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유튜브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실소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해볼까? 그래서 작정하고 며칠간 매의 눈으로 들르는 가게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공교롭게 구도심의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음악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와 시기가 딱 맞았다. 이틀간 다양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공연들을 신나게 관람했는데, 결과는 대실패. 나 자신이 워낙 그쪽으로 감이 없기도 했지만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들렀던 가게들이 소극장, 카페, 재즈클럽, LP카페 같은 문화공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2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있는 손님들이 가득한 곳, 평소에 술을 판다고 해도 객단가와 테이블 회전 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들이다. ‘돈 안되는’ 공간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돌아다닌 결과, ‘돈 되는’ 취미 계발에는 실패했지만 대차대조표로 계산할 수 없는 공간들의 소중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페스티벌처럼 한 곳에 집중된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간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보는 기획 그 자체다. 그래서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 그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군것질하는 즐거움은 옵션, 지도를 들여다보고 계단을 오르고 골목골목 숨어 있는 작은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발품은 필수다. 관객들은 자기 돈을 내고 티켓을 사서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는 수고를 즐겁게 감수한다. 뮤지션들은 연극 무대에 쓰인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친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뮤지션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도 누린다. 새로운 무대에서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가 닿는 그 느낌을 통해 ‘한 번 더 음악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뮤지션의 ‘사운드(sound)’가 무대 위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일상을 충전한 관객들과 만나면서 ‘바운드(bound)’한다.

이처럼 공간에는 역사가 남고, 뮤지션과 관객들에게 기억이 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누군가 공들여 가꾸고 매만지던 공간, 구석구석 쓸고 닦고 만지면서 생긴 생활의 결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가게만이 가진 세월의 무게든, 새로 문을 연 가게의 반짝반짝한 설렘이든 애정이 담긴 일상의 공간과 만날 때 비로소 음악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 아무 데나 버려져 있던 공간에 큰 무대 세우고 의자 깔아서 사람들을 앉혀 놓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돈 되는’ 걸로 따지고 들자면야 이런 행사는 애초에 계산기를 두드릴 견적도 나오지 않는다. ‘돈 되는’ 취미를 가진 이들이 보기에 이런 공간들은 운영 자체가 말이 안되는 곳이니까. ‘돈 주는’ 높은 분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수많은 관객이 한군데에 모여 장관을 연출하는, 소위 ‘그림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인사할 큰 무대도 없으니 말이다. 취미마저 ‘돈 되는’ 세상에서 ‘돈 안되는’ 일을 하려니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실적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운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건 아닐까? 나는 ‘돈 되는 취미’ 갖기에 실패했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시도만은 실패하지 않았으면, ‘돈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안되는’ 즐거움에도 “슈퍼울트라그뤠잇!”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그날까지 ‘돈 안되는’ 음악여행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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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너와 관계라는 것을 맺으며 ‘우리’가 되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너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성찰의 기회, 차곡차곡 쌓이는 우리의 이야기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하다는 느낌만큼이나 나도 누군가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우리를 생기발랄하고 살아있게 한다. 나와 너, 우리와 같은 말들은 어쩐지 따스하고 달콤하다.

그런데 자유로운 듯 하늘거리는 이 환희가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모든 관계에는 커져가는 즐거움만큼이나 같이 자라는 책임이 있다. 관계 속에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너의 행복에 대한 나의 책임도 어느새 배어 있다.

기쁨이 하늘 위로 마냥 두둥실 날아가지 않도록, 책임은 우리에게 의무를 지우고 때론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책임은 힘들고 싫은 것, 무거운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 나를 홀로 두기보다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은 손익계산상 그래도 관계가 주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나와 너, 우리, 가족, 동료, 이웃과 같이 수많은 관계들이 촘촘한 픽셀로 모여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이제는 즐거움과 책임이 빛과 어둠처럼 양분되어 공존하는 것 같지 않다. 오직 책임만이 더없이 가벼워졌고 또 계속해서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점점 만연하고 있는 하청, 파견, 그리고 아웃소싱 방식의 계약관계망에서 업체, 고용주,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책임의 비대칭성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청과 외주화는 현재 한국에서 주요 제조업뿐만 아니라 건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가전 수리, 통신, 보안, 청소 등의 서비스업 그리고 공공부문에까지 놀랄 만큼 확대되어 있다. 이러한 다단계방식의 하청구조가 실제로 원청업체에 얼마나 양적으로 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인지는 잘 따져봐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원청업체가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곧바로 계산되는 원청업체의 이득분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노동자의 임금이나 퇴직금이 체불되어도, 심지어 일하다 사고로 사망해도 그건 하청업체 고용주와 노동자들끼리 알아서 어떻게 해결할 일이다. 근로환경 개선, 임금 인상과 관련된 일 등 골치 아플 수 있는 갈등도 고용주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으면 신경을 끌 수 있다. 원청업체는 다만 낮은 단가로 같은 일을 해내줄 업체와 계약만 맺으면 그만이다.

파견직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파견나온 제빵사가 빵을 굽다가 화상을 입어도 가맹점주는 산재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도 가벼워지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상시적인 업무조차 상당 부분 민간 위탁으로 외주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제한된 시간에 하청업체가 지시한 일을 끝내려다 사망한 김모군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서울메트로의 법적 책임은 가벼웠다.

꼭 복잡한 다단계 방식의 하도급과 아웃소싱의 구조 속에서 관계가 갖는 모호성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기계약으로 관계를 맺으면 고용주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더 쉽다. 계약이 만료되거나 해고시켜 버리면 더 이상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이 성폭력과 폭언,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임을 묻는 것조차 두려워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버린다.

한쪽에서 너무나도 가벼워진 책임들은 결국 약한 개개인들에게만 비대칭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남은 것은 오로지, 모두 필사적으로 피하려고만 하는 법적 책임일 뿐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과 불안정한 삶에 내가 직접 고용한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법적 책임이 없다면 역시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워도 되는 것일까.

결국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야 나는 누구이고, 왜 살고 있고, 또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보다 대칭적인 관계들로 촘촘하게 이루어진 사회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연대감이 강하게 흐르는 사회다.

나와 관계 맺은 이를 소중하게 여기며 책임을 다할 때는 그도 나를 소중하게 여겨줄 것이라는 믿음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이런 막연한 믿음이 주는 안정과 평온함이 있는 사회는 발밑의 따뜻한 땅과도 같이 또 다른 차원의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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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보면, 학생들 사이에 존재하는 수학 능력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특히 수도권과 지방 사이의 간극을 더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같이 지내다보면 그것은 지적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동료가 늘 심드렁하게 얘기하는 것처럼 “사람의 머리는 거기서 거기다”라는 말이 진리임을 경험하면서 나는 자문하곤 했다. 그렇다면 지적 평등이라는 동일한 출발점이 다양한 지적 불평등을 결과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며칠 전 읽은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은 이러한 나의 물음에 매우 적절한 답을 해주고 있을 뿐 아니라, 교육에 관한 중요한 지침들을 알려주었다. 이 책은 조제프 자코토라는 인물의 기이한 지적 모험에 대한 소개로부터 시작한다. 1818년 벨기에 루뱅 대학에 불문학 외국인 강사로 일하게 된 자코토는 학생들의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고, 학생들 또한 프랑스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자코토는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사용해서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라고 주문했다. 학생들에게 제1장의 반 정도를 외우게 하고, 나머지는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만 읽으라고 한 후 프랑스어로 내용 전부에 대해 생각한 바를 써보라고 했다. 결과는 그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 문장을 훌륭히 써냈다는 것이다.

<무지한 스승>이 얘기하는 바는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어떤 지식 체계를 전수하고 설명하는 것은, 일종의 ‘바보 만들기’이다. ‘보편적 가르침’은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스승의 앎이나 학식을 전달하고 설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지능이 쉼 없이 실행되도록 강제하는 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학업 성취의 불평등은 자코토의 말대로 지능 발현의 불평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학습 능력이 뒤처지는 학생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습관과 의지와 관련된 어떤 멘털리티이다. 그러나 교단에 서보면 이 습관과 의지를 바꾸는 게 지능의 평등을 인정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것은 교육환경이라 불리는 가정, 지역 등의 복잡한 계기들에 의해 오랫동안 형성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환경 속에서 많은 학생들은 돌봄에서 소외되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그것은 랑시에르가 근본적인 지적 악이라고 했던 ‘무시’이다. ‘자기 무시’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기에게는 그러한 지식이 필요치 않으며, 이해할 수도 없으며 합당치도 않다는 ‘들러리’ 의식을 각인시키고 자신의 삶을 주변화하도록 작동한다.

‘인간은 지능의 시중을 받는 의지이다’라는 말은 교실에서 가르쳐야 하는 것이 지식이 아니라 자존감과 의지, 욕망 같은 더 복잡한 멘털리티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비교적 많은 교육적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되는 수도권 학생들에게 최근 느끼는 것은 이들의 지능 발현을 막는 또 다른 차원의 장애물이다. 그것은 이들 대신 능동성과 적극성을 과도하게 발현하고 있는 부모와 사회 시스템이다. 이들은 돌봄과 관심에 배제되는 대신 과도하거나 잘못된 돌봄에 의해 가두리에 갇혀 수동적 태도를 갖게 되고 실패로부터 차단된다. 학생들은 제도나 학제시스템에 매달리고 여기에서 벗어나는 걸 마치 엄청난 낙오처럼 두려워한다.

과연 이렇듯 매뉴얼의 기능적 존재로 만들어진 인재들이 시시각각 복잡한 맥락으로 달려드는 수많은 현실을 잘 헤쳐나가고 또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렇게 보면, 강의실보다는 캠퍼스와 동아리에서 시간을 보냈던 나의 대학 시절이 오히려 자코토의 보편적 가르침의 현장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출석보다 결석이 더 자연스러웠던 혼돈의 시절, 나는 스스로 공부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터득해나가는 독학을 익혔다. 우리 세대는 바쁘거나 무지해서 자식의 삶에 관여할 수 없었던 부모 세대 덕분에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자코토의 방법이 맞다는 것은 강의수업보다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이 중심이 된 수업이 강의평가도 좋고 학생들의 만족감도 높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내가 읽은 또 하나의 중요한 사유는, 평등이 실현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는 것이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평등이 실현해야 할 목표가 되었을 때, 그것은 언제나 허구이거나 불가능한 미래일 수밖에 없다. 평등이 출발점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숱한 의심을 지우고 그 중력처럼 지극히 당연한 평등에 기초해 지적 해방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러니까 평등은 신앙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것, 이 믿음이 있을 때 불평등은 부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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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모 대학에서 열린 ‘학문 후속세대의 이상과 현실’이라는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발표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작자 미생’의 발표문을 제출했고, 학회의 간사가 그것을 대신 읽었다. 

거기에 몇 년 전의 나와 닮은 여러 대학원생이 있었다.

3년 전까지, 내 신분은 대학원생이었다. 정확히는 박사 과정 ‘수료생’,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이수하고 논문 인준만 남은 단계를 가리킨다. 나 역시 논문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신진연구자 지원사업’이라는 프로젝트 공모가 있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연구자들이 신청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프로젝트 과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곧 무언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심정이 되었다. 한국연구재단에서 규정하는 신진연구자는 박사학위 소지자부터였다. 수료생인 나는 애초에 지원 자격이 안되었다.

그 시기의 나는 스스로를 ‘연구자’로 규정했다. 신진이나 후속이라는 수식어를 굳이 붙이고 싶지 않았다. 학회에 논문을 제출할 자격은 과정생과 수료생 모두에게 있고 논문을 투고하고 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수와 학생을 가리지 않고 함께 심사가 이루어진다. 나는 연구의 장에 이미 편입된, 그 생태계의 일원이었다. 연구자는 연구 성과로 말해야 한다는 그런 믿음이 있었다. 물론 나는 평범한 연구자였고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즐거웠고, 연구사에 하나의 단어나 한 줄 정도를 보탠다는 자부심으로 계속 버텼다.

나는 기독교라는 종교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아니었지만, 교회사에서도 문학사에서도 소외된 그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나는 ‘이 논문을 필요로 할 만한 기관이 어디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했다. 당연하겠지만 ‘교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대형교회에 보내는 e메일을 썼다. “월 50만원 정도의 연구비를 지원해 준다면 기독교가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에 미친 영향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명해 보겠다” 하는 내용이었다. 

왜 50만원이었냐고 하면,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을 부를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보다 더 낮은 금액이면 받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결국 e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쓰게 웃으면서 이럴 시간에 논문이나 한 줄 더 쓰자고 마음먹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그 이야기를 하자 그들은 “잘했어, 어차피 답장도 안 왔을 거야”라고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에 연구자로서 연구계획서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나는 가장 서글펐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자들을 지원하는 기관으로서 그 설립 근거를 가진다. 그렇다면 가장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한 연구자 집단이 어디인지를 먼저 살펴야 한다. 젊은 연구자들이 적어도 자신의 연구로 생계를 꿈꿀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의 과정생과 수료생들은 지도교수가 진행하는 연구에 선별적으로 소속되는 것만 가능하다. 프로젝트 공모 방식을 ‘위로부터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도’ 가능한 생태계로 재편해야 한다.

그에 더해 연구재단뿐 아니라 대학교 역시 대학원생들의 연구 지원을 책임져야 할 기관이다. 대학은 정규직 교수들에게는 교비로 연구비와 거마비 등을 지급하지만, 대학원생들에게는 그런 혜택이 거의 없다. 

다만 대학원 총학생회 학술국에서 학기 초에 공모를 해서 100만원 내외의 연구비를 집행하는 일은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학생회비를 모아 마치 곗돈처럼 나누는 일이지 연구비라고 해서는 안된다. 각 대학에서는 학기마다 대학원생들이 자신의 논문 계획서를 제출하고 연구비를 지원 받을 수 있는, 그러한 연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보다 높은 수준의 연구 성과를 불러올 것이다.

대학원생도 연구자이고 연구 생태계의 일원이다. 토론회에서도 가장 강조한 부분이지만, 그들은 제도로서 보호받아야 하고 그 안에서 무한한 기회를 약속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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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남자야, 이게. 이 XXXX야! 이게 한국남자라고. 너 뒤질 준비해.”

BJ ‘갓건배’ 살해협박 사건 당시 갓건배 추격 방송을 시작하면서 BJ ‘이병욱’이 한 말이다.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정의구현을 위해 길을 나선다. 무엇보다 갓건배가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욕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행했던 ‘BJ특수반’은 갓건배를 처치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시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남자란 도대체 무엇일까?

흥미롭게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자신들이 속해 있는 BJ 네트워크 안에서 집단으로 움직였다. 그 네트워크의 이름이 ‘느금마 엔터테인먼트’다. 느금마 엔터는 명확한 실체는 없지만 느슨한 동아리라 할 만한 집단이다. 여기서 ‘느금마’(느그 엄마)는 상대방의 어머니를 비하하는 말이다. 느금마 엔터는 ‘신태일 패밀리’라고도 불린다. 유명 BJ ‘신태일’이 중심이기 때문이다. 신태일은 자동차로 자기 다리를 깔아뭉개거나 형광등을 씹어 먹고, 지하철 객차 한가운데서 부탄가스레인지로 라면을 끓이는 등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는 한 공중파에 출연해 이런 콘텐츠로 한 달에 1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벌어들인다고 밝혔다.

느금마 엔터에는 갓건배 사건 때 벌금 5만원으로 훈방 조치된 ‘김윤태’, 갓건배 추격에 나섰던 이병욱, 신태일이 이 사건으로 계정정지를 당한 후 1인자로 부상하고 있다는 ‘푸워’ 등이 소속되어 있다. 이들은 “형-동생” “회장-사장” 하는 사이로 서로의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SNS에 사생활을 흘려 자신들을 둘러싼 가십을 만들기도 한다. 느금마 엔터가 갓건배 추격에 나섰던 결정적인 계기는 갓건배와 신태일이 방송을 통해 싸움이 붙었기 때문이다. 느금마 엔터는 이처럼 서클을 구성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적지 않은 돈을 번다. 그러다보니 이너서클이 되려고 주변을 배회하는 (그들 표현으로) ‘찌끄레기’들도 생긴다. “대한민국 해방” 운운했던 BJ특수반은 그런 주변인 중 하나다. 그는 갓건배 추격 방송에서 자신이 “신태일 따까리”가 되고 싶었지만 거부당했고, 이제 독립적으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갓건배 건에 합류하여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그들 중 하나’가 되려고 했다.

여기까지 오면 “이게 한국남자야”라는 선언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역사의 고통을 이해하는 보편 주체로 터프한 한국남자를 내세우고, ‘잘나가는 놈’ 중심으로 위계를 세워 남성연대를 구축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업으로 연결시킨 뒤,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라고 포장한다. “한국남자-형제애-패밀리-엔터테인먼트-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확장은 낯설지 않다. 한국사회의 남성연대가 작동하는 방식의 축소판인 것이다.

다만 이 연쇄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남자다움’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처럼 나라와 가족을 지킨다거나 가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등의 전통적인 가치로는 그 성격이 규정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로부터 아무런 자원을 얻을 수 없는 현실 아닌가.

이 파국의 세계에서는 오히려 “나는 잃을 것이 없다”는 완전히 허무주의적인 태도와 “고로 나는 막 나간다”는 기이한 열정이 버무려진 기행이 남자다운 것이며, 그로부터 뽑혀 나오는 현금이야말로 최고의 가치다. 이 시대의 남자다움이란, 다른 한편으로는, 시계나 차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에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10대 남성들의 장래희망 1위가 BJ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남겨진 자원이 없다는 박탈감을 느끼는 10대 남성들은 느금마 엔터를 하나의 삶의 모델로 삼는다. 실제로 신태일 역시 그렇게 ‘가진 것 없는 10대’에 활동을 시작해서 ‘아우디를 타고 여자친구에게 100만원씩 용돈을 주는 한국남자’가 되었다. ‘남자다움’의 중층적인 의미망을 분쇄하지 않고 유튜브 탓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남자란 무엇인가? 이제 그 대답을 다시 써야 할 때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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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 동안 잠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하는 게 잠적일 텐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라질 수는 없었다. 원체 잔걱정이 많고 벌여놓은 일들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몰래 자리를 비우기 찜찜했다. “잠적은, 한다고 말하고 실행하는 게 아니지”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고 웃음이 터졌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친절한 잠적을 감행하게 된 셈이다.

언젠가부터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소읍에 도착하는 데까지 반나절이 걸렸다. 숲길도 걷고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뜨끈뜨끈한 온천수에 몸을 씻고 나니 활기를 되찾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제 뭐하지?’라는 생각도 잠시, 나는 어느새 책을 읽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아무 일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쉬기만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책을 펼치고 나서야 그제야 제대로 쉬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김중일의 시 ‘아무튼 씨 미안해요’를 떠올렸다.

이 시에는 외팔이 엽사가 등장한다. 엽총을 잃었지만 엽사는 자신이 엽사라는 사실은 잊지 않는다. “외팔이 엽사는 건조하게 웃는다 웃음은 초원의 모래바람과 함께 금세 흩어진다 아무튼 웃는다 아무튼 말한다”. 사전적으로 아무튼은 “의견이나 일의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떻게 되어 있든”이란 뜻이다. 아무튼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해본다. 그것이 곧 사라질 것임을 알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하는 일 앞에 ‘아무튼’이라는 부사를 붙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다음에 쉼표가 따라오면 어떤 의지가 느껴진다. 그래도 하겠다는 진득한 마음을 전달할 수도 있고, 쉼표와 더불어 한숨을 돌린 뒤 속내를 털어놓을 수도 있다. 아무튼을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일 때 상대의 입술을 유심히 살피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이 하게 될 선택이 입안에서 맴돌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생각한다. 그래서 ‘아무리’에서 ‘아무튼’으로 가는 여정에는 누구보다 나 자신이 중요하다.

얼마 전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세 명의 출판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아무튼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책을 발간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들의 불안과 걱정을 날려버린 건 다름 아닌 이 말이었다고 한다. “그래, 아무튼 해보지, 뭐!” 아무튼이라는 말에 담긴 배짱을 엿볼 수 있었다. 시리즈의 포문을 연 다섯 권의 책들을 마주하고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서재>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아무튼, 쇼핑> 그리고 <아무튼, 망원동>. 아무튼 안에는 취미, 공간, 그리움, 무엇보다 그들 자신의 삶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삶을 지탱해주는 동시에 삶에서 지탱해나가야 할 것들 말이다.

지난주에 나도 함께하는 사람들과 프로젝트 ‘이씀(IISSM)’을 시작했다. 매달 주제를 하나 선정해서 그에 어울리는 책들을 추천하는 프로젝트다.

첫 번째 주제는 ‘읽기와 쓰기’였는데, 이씀에 참여하는 누구와도 추천하는 책이 겹치지 않아 신기했다. 그동안 틈나는 대로 읽어왔던 좋은 책들을 소개하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추천하는 과정에서도 ‘아무튼’이 개입했다.

아무튼은 실행에 앞선 기우나 노파심을 잠재우는 힘이 있었다. 아무튼, 좋은 책이니까. 아무튼, 함께 읽고 싶은 책이니까. 아무튼, 책의 힘을 믿으니까.

잠적하고 돌아와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잠적했을 때 읽었던 책들을 책꽂이에 다시 꽂는 일이었다. 그 다음에 한 일은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이었다. 엽사가 팔을 잃고 엽총을 잃어도 눈의 총기는 잃지 않듯이, 사냥을 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끝끝내 잊지 않듯이. 다음에 읽을 책을 안고 집을 나서는데 발걸음이 가벼웠다. 1박2일 동안 가졌던 혼자만의 시간 덕분인지, 다음에 읽을 무수한 ‘아무튼’들 덕분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책이다. 아무튼, 이게 나다. 우리는 모두 아무튼 씨다. 쉼표와 함께 심호흡을 하고 다음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아무튼 씨다. 아무쪼록에서 시작된 간절함은 아무리라는 담장을 넘고 아무튼이라는 탄력을 받아 아무렴에 이를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비로소 ‘아무’가 아니게 된다. 아무튼을 발견하는 순간, 아무튼 다음에 쉼표를 찍는 순간.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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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지의 무밭과 배추밭, 그리고 향신료며 젓갈 생산과 유통의 일선은 김장 식료 준비로 이미 분주하다. 사전에 따르면 김장은 “겨우내 먹기 위하여 김치를 한꺼번에 많이 담그는 일. 또는 그렇게 담근 김치”이다. 또한 “김장거리로 무, 배추 따위를 심음. 또는 그 배추나 무”를 아우른다. 지상 어느 곳이든 겨울을 지나야 하는 지역에서는 반드시 겨우내 먹을 음식을 따로 준비하게 마련이다. 목축이 성한 곳에서는 양, 사슴, 소, 돼지의 고기, 내장, 선지를 총동원해 겨울 넘기는 동안 먹을 소시지, 햄을 만든다. 어업이 성한 곳에서는 염장이나 훈연으로 생선을 갈무리한다. 물도 마르고, 식물도 동물도 그 모습을 감추는 겨울을 나기 위해, 사람은 내가 사는 데서 주어진 자원으로 음식을 해 어떻게든 새봄까지 간수하고 먹어치워야 했다.

한국인의 김장도 그와 한 동아리다. 이때 김장은 김치라는 특별한 음식과 손을 잡고 있다. 김치는 그냥 염장 채소만도 아니어서, 채소의 소금 절임에다 젓갈 등 동물성 단백질까지 더해 발효를 기다린다. 그러고는 산미가 치고 올라오는 김치 특유의 풍미를 얻는다. 김치는 그저 소금이나 장에 절인 채소, 짭짤하면서도 향미가 강한 국물을 끼얹은 데 그친 음식이 아니다. 짠지나 샐러드하고는 그 속성이 다르다. 김치는 저온에서 숙성돼 어느 한 시점에서 맛의 정점을 찍고, 맛의 정점을 찍은 뒤로도 상당 기간 상하지 않고 버텨주어야 한다.

김치는 홑으로도 자립한 일품요리인가 하면, 흰쌀밥의 으뜸 반찬이고, 국과 찌개와 부침개의 부재료이다. 분식을 대표하는 국수와 만두하고도 김치는 최고의 짝꿍이다. 소든 고명이든 김치의 변신은 자유롭다. 홀로 자립할 수 있으면서도, 밥과 동반해 밥상의 방점이 된다. 다른 음식 안에서는 빛나는 조연이 되는 음식이 바로 김치다. 부재료가 되어 섞일 때에도 제 줏대를 잃지 않으며, 그러면서도 다른 재료와 조화를 이루는 음식이 또한 김치다. 한국인의 김장은 김치로 이룬 음식 문화사상의 일대장관이다.

오늘날과 같은 김치가 태어난 때는 대략 18세기 즈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고추가 껴들고 등장한, 짠지나 절임과 확연히 구분되는, 우리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바로 그 ‘김치’ 말이다. 19세기에 이르면 김치와 손잡은 김장 기록도 폭발한다.

정학유(丁學遊, 1786~1855)의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는 이렇게 노래했다.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앞 냇물에 정히 씻어 염담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홍석모(洪錫謨, 1781~1857)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는 이렇게 기록했다. “서울 풍속에 무, 배추, 마늘, 고추, 소금 등으로 장독에 김치(沈菹)를 담근다. 여름의 장담그기(夏醬)와 겨울의 김장(冬菹)은 민가에서 한 해를 보내기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도 김치와 김장이 확실히 손을 잡고 있다. 김치를 “침저”라 하고, 김장을 “동저”라 했다. 맥락으로 보아 오늘날의 김장김치이다. 이 앞 문단에는 “저채만두(菹菜饅頭)” 곧 “김치만두”까지 언급하고, 김치만두를 가장 괜찮은 시절음식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1890년대에 집필된 것으로 보이는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통배추김치가 확립돼 있다. 오늘날의 배추김치와도 흡사하다. 통배추와 동물 단백질과 젓갈과 고추 및 마늘 양념이 보다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좋은 통배추를 절이고 고추, 총백, 마늘, 생강, 생률, 배를 채치고 조기는 저며 놓고 청각, 미나리, 파, 소라, 낙지를 채에 섞어서 담고 삼일 만에 조기젓국을 달여 물에 타 국물을” 부어 담근 김치이다.

이 흐름은 20세기를 거쳐 오늘에 이어졌다. 한국 음식 문화사 연구의 선구자 방신영 선생은 ‘여성(女性)’(1939년 11월호)에 “김장교과서”를 소제호로 해 김장김치 담그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배추김치, 젓국지, 섞박지, 짠지, 동치미, 깍두기, 채김치, 보쌈김치에 이르는, 이름만 봐도 침이 고이는 김치 잔치이다. 아삭아삭 씹는 데서 후룩 마시는 데 이르는 김치, 그리고 일품요리에 접근하는 별미 김치까지, 참 면면히도 이어졌다.

이어졌다고 감탄하는데, 지난 음식 문헌이 내게 말을 건다. 지난 김치의 역사에 이어, 너는 당대에 어떤 김치를 이루고, 먹고, 감각할래? 응답하고 싶다. 이어진 것은 이어진 것대로 고맙게 받고, 그 안에서 당대가 반짝반짝하는 갱신을 이루어, 다음 세대에 유산이 될 만한 김치를 이루고 싶다. 눈으로는 김치 기록을 찾고, 발걸음은 생산지로 향한다. 아, 침이 고인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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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던 지난 월요일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할머니는 시골에서 지내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서울에서 큰삼촌이나 막내 이모와 번갈아가며 같이 사셨다. 그러다가 한 3년 전부터 부쩍 아파지신 할머니를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식들이 함께 돌보다가, 할머니에게 치매증상이 나타나자 몇달 전부터는 요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시래기같이 바싹 마르고 늘어진 몸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할머니를 뵈니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얼른 “할머니, 저 왔어요!” 하고 손을 덥석 잡았다. 보고 싶었던 할머니와 준비해온 과일도 같이 먹으며 한참을 정답게 얘기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대뜸 엄마 보고 “승윤이는?” 하며 내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 말에 엄마가 깔깔 웃으며 “승윤이 여기 있잖아”라고 말씀하시고는 할머니 손 위를 문지르는데, 문득 엄마 손을 물끄러미 보게 된다. 나에게 있어 할머니는 늘 의존적이거나 조금 엉뚱하셨는데, 그래도 나는 어쩐지 할머니가 항상 좋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할머니를 언제나 걱정하고 때론 다그치다 울고 웃기도 하셨던 우리 엄마의 모습을 내가 무척 사랑하고 있던 것 같다. 그런 엄마가 할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시기로 결정했을 때, 나에게 “사실 나도 내 노후를 생각 안 할 수가 없어”라고 가늘게 말씀하셨다. 생각해보면 아흔 인생을 살아온 할머니를 뵈러 온 우리 부모님도 곧 칠순이 되는 노인이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고령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1990년 5% 정도였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앞으로 8년 후인 2025년에는 다섯 명 중 한 명으로 늘어난다. 살아계신 노인을 부양하는 세대도 빠르게 노인으로 채워지고 있다. 노인들의 성인 자녀도 노인이고, 요양시설 등에서 노인을 돌보는 사람들도 중고령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한국 노인층의 특징 중 하나는 일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것, 다른 하나는 가난한 노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인데, 전체 노인의 절반 정도가 빈곤하다.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노인의 비율도 세 명 중 한 명 정도로 이 또한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유럽의 노인들은 연금을 받으며 제2의 인생을 설계해 보기도 한다지만 한국의 공적연금제도는 시행시기도 훨씬 늦어 국민연금에 포괄되는 노인의 수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게다가 급여수준도 낮아 노인들은 자신의 노후를 위해, 그러니깐 벌이를 위해 계속해서 일하고 싶어 한다.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경제활동 참가 노인 10명 중 8명이 생계비 마련을 위해 일을 한다고 응답하였고, 또한 노인들의 소득원천에서 근로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3%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 24%에 비해 훨씬 높다.

빈곤하고 연로한 노인을, 자기 소득보장도 충분히 안되어 노인 된 자식들이 돌봐야 하니 돌봄에도 공백이 생기게 된다. 과거에는 젊은 자식 세대가 가족 내 노인을 부양했다. 그러나 가족 구조가 변화하고 경제 성장도 둔화되면서 노인 부양과 돌봄은 성인 자식세대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게다가 성인 자녀들도 이제 같이 고령화되고 있는 것이다. 급격히 증가하는 노인들의 돌봄 공백을 돌봄 서비스 확대로 해결해보려 해도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지난 10년간 돌봄 없이 사는 독거노인의 비율도 급격히 증가해서 네 명 중 한 명의 노인은 혼자 살고 있다. 이들에게 돌봄은 둘째 치고 소득도 넉넉지 않다. 어디서든 볼 수 있는 폐휴지 줍는 노인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노인 자살률은 우리 할머니가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곳인지 보여준다. 나이 든 부모세대와 노인 된 우리 세대가 같이 살게 될 초고령사회에서는, 노인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돌봄은 좀 나아지기나 할지, 그 모습이 참 요원하기만 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옆으로 요양원들이 곳곳에 참 많이도 보인다. 차 안에서 올려다본 가을하늘 위에 몽실몽실 떠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니, 언젠가 시골에서 우리 할머니가 하얗게 뿜어내던 담배 구름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 그 구름을 재미있어 하니 “뭘 그리 쳐다보냐” 하며 씨익 웃으셨던 우리 할머니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저 하늘 구름 사이로 빠끔히 보인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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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IBK은행, DROPTOP, GS25, MG새마을금고, CU, Tous les Jours, Paris Baguette, Tworld, CGV, MINI STOP, 웰피부과, olleh, Hug Gallic, 프라이덴 치과, 킹노래방, 크리스탈 사우나, MADELENE, URBAN Bakery, 디지털 프라자, ETOOS#수학학원, K2, Hyundai Oilbank, 삼천리 자전거, Marley Coffee, MILLET, Eider, 꿀잠, SIEG, adidas, Reebook, BRONX, TARR TARR, FM치과, KOLON SPORT, NIKE, 다비치 안경, 창조의 아침 미술학원, 날씬한 요가, 재능교육, 다이소, ART BOX, 중앙보석, Olive Young, 정관장, McDonald’s, 샹떼 PC, ABC MART.

추석의 긴 연휴 동안 식구랑 근처에 생겼다는 대형 서점에 나들이 겸 산책을 갔다. 서점에는 오랜만인지라 긴 시간 책구경을 하고 몇 권의 책을 충동구매하고 나오려다보니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더니, 뜬금없이 ‘영어공부책’ 이야기를 꺼내신다.

‘한국어 독해도 잘 안되는 분이 웬 영어인가, 한국인의 영어강박이 70대 노인에게까지 불어닥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러 가는 해외여행에서 불편함을 느끼셨나 하는 생각에 애써 고르고 골라 영어회화책 한 권을 내밀었다. 해외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쇼핑 등의 상황 중심으로 발음을 한글로 병기해놓은 시니어용 책자였다. “글쎄다, 너무 글자가 많은데…”라며 돋보기를 꺼내시는 엄마 옆에 서있던 언니가 냉큼 나서서 퉁을 준다. “얘얘, 엄마는 알파벳도 모르는데 이런 걸 어떻게 보라고.”

엄마를 모시고 사는 언니 말에 따르면,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해외여행용이 아니라 A동, C동으로 구분지어진 건물이나 주차지역, 점포상호를 구분해낼 수 있는 정도의 영어란다. 어디어디로 오라고 얘기를 해도, 알파벳을 모르니 길눈도 어두운 노인들과의 약속이 어그러지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하소연이다.

추석 연휴에 만난 어린 조카에게 “오래 놀아서 좋겠네”라고 묻자, 퉁명스레 한마디 한다. “그냥 놀게 하면 좋을 텐데 선생님이 간판 200개를 조사해서 순우리말과 외래어를 분류해오래요.” 집에 돌아와 엄마 일도 있고 해서 내심 궁금해진 나는 하루 저녁 산책 삼아 번화가에 나가 간판 상호를 적어보았다.

위의 목록은 내가 사는 작은 도시의 번화가에서 무작위로 찾아 적어본 50개의 상호들이다. 의미와 상관없이 우리말로 적은 상호가 14개, 우리말과 영어 혼용이 8개, 영어 상호가 28개이다. 이 중에서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는 순우리말 상호는 ‘삼천리 자전거’ ‘꿀잠’ 등 7개에 불과하다. 한글로 써있다지만 ‘프라이덴, 웰, 다비치’ 등의 뜻을 모르니 이들 간판은 뜻 모를 깃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은행은 물론 가장 흔한 편의점, 빵집, 휴대폰 매장의 거개가 다 영어니, 어찌 영어공부가 무지한 노인들을 강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이 공용문자로 채택할 정도로 한글은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이 단순하고 과학적인 한글 덕분에 한국의 문맹률이 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한글에 대해 진정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자부심이란 것이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서 누구는 어디 학교를 가고, 취직하고 등의 대외 홍보용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0%에 육박한다는 한국의 문맹률은 지금 우리가 놓인 일종의 이중언어 상황에서 보자면, 거짓에 가깝다.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 이중언어 상황이 포섭하고 배제하는 독자와 청자가 누구인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잘살지 못하고 그래서 배우지 못한 자들, 첨단 문화에 어두운 자들과 노인들. 이 현실은 골목이나 재래시장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다. 후미진 동네에는 영어 상호가 거의 없다. 국어시간에 암송하던 저 한글창제의 정신, 즉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 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다.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라던 세종대왕의 ‘어여삐’ 여김은 다 어디 갔을까. 더불어 소수자, 약자의 정체성 정치의 약진은 엘리트의 것만이 아닌, 무식을 부끄러워하며 뒤로 숨는 또 다른 하위주체에게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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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봄에 누군가가 나에게 “고향이 어디예요?” 하고 물었다. ‘망원동’이라고 답하자 그는 “망원동을 고향이라는 사람도 있네요” 하는 반응을 보였다. 서울의 어느 특정 동네를 고향으로 답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고향을 묻는 질문에 ‘홍대입구’나 ‘망원동’이라고 자연스럽게 대답해 왔다. 홍익대학교 정문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태어났으니 홍대입구라고 하는 게 가장 알맞기는 하겠다.

성미산의 서쪽 자락에서 나는 오래 살았다. 정확히는 성산동과 망원동과 상암동의 경계지역에서 자랐고, 어린 나는 여권도 없이 동과 동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1990년대부터 꿩을 잡아 보겠다고 성미산을 타고 놀았고, 망원유수지 인근의 한강시민공원에 가서 연을 날리기도 하고, 어느 날은 한참 걷고 걸어서 합정역이 나타나면 세상의 끝에라도 온 것처럼 머뭇거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망원동이라고 답한 나의 고향은 성미산과 한강, 합정동까지를, 그리고 난지도와 연남동 철길 이전까지를 종과 횡으로 모두 담아내는 공간이다. 점과 선으로 구획한 행정구역과는 관계없는, 내 마음속의 지도와도 같다.

작년 여름,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망원동으로 돌아왔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회사지만 나에게는 별로 직장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못 되었다. ‘퇴사’를 한 이들이 대개 그렇듯 그 사연이야 무척 길지만, 우선은 접어두고 망원동에서 글을 쓰고 대리운전 노동을 하며 지냈다. 이때 망원동의 구석구석을 낮에는 한가롭게 걷고 밤에는 바쁘게 뛰며 모두 살펴보게 되었다. 망원시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직선도로, ‘망리단길’의 골목과 골목마다 ‘힙’하다는 카페와 공방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그 거리를 걸으며, 어린 시절에는 그 길의 초입에 자리 잡은 동네 빵집 ‘홍순양빵집’이 마치 ‘홍순양길’과 같은 도로명 역할을 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오랜만에 다시 돌아와 걷는 고향은, 별로 외롭지 않았다. 어디선가 아홉 살의 내가 나타나 입을 삐죽 내밀고는 함께 걸었다. 그는 내가 첫 안경을 맞추었던 ‘스마트 안경점’에서 안경을 고르고 있거나, 망원시장에서 장을 보고 우체국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장바구니를 대신 들고 있기도 했고, 지금은 중국인 관광객을 위한 면세점이 들어선 영풍가든 자리에서 아버지가 잘라주는 갈비를 먹고, 망원시장에서 닭강정을 사 먹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나는 그와 함께 내가 기억하는 망원동을, 나의 고향을, 마치 다시 돌아온 연어라도 된 것처럼 유영했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고향은 ‘안녕’보다는 ‘안녕히’가 더욱 어울리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내가 넘어지거나 잠시 쉬고 있던 동안에도 시계태엽은 쉬지 않고 돌았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너무나 빨리 풀려 나갔다. 어느 밤에는 대리운전을 마치고 성미산을 넘어 집으로 돌아오다가 내가 알던 망원동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았다. 합정동에 들어선 높다란 주상복합아파트들 사이로 흐릿한 달이 걸려 있었다. <아무튼, 망원동>이라는, 공간에 대한 자기 서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 이 즈음이다.

어쩌면 모두의 고향은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 속에서 간신히 버텨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는 언제나 재생되거나 개발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건물을 부수고 새로운 간판을 다는 일만큼이나 그 삶과 추억을 보존하는 일 역시 중요할 것이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개발은 단절과 상처가 되기도 하고 연속과 치유가 되기도 한다.

특히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온전한 고향으로 기억하는 1세대인지도 모르겠다. 서울을 터전으로 살아 온 선배 세대들이 많지만, 나는 이 도시가 메트로폴리탄으로 이행하고 정착하는 모습을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목도해 왔다.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프랜차이즈 간판들이 자리를 잡는 것뿐만 아니라 골목과 골목이 허물어지는 모습까지도 지켜보았다. 나는 도시의 어느 골목까지를 자신의 고향으로 감각하는 우리들이, 그 소중한 공간에 대한 서사를 타인에게 들려줄 수 있기를 바란다. 저마다의 기억과 추억들은 기록과 역사가 되고 그 공간을 연속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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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A가 사람 B에게 묻는다. “C라는 사람 알아?” “응, 알아.” 사람 A가 재차 묻는다. “잘 알아?” 사람 B가 대답을 주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 A는 사람 B가 사람 C를 잘 안다고 확신한다.

사람 B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는 사람 C를 안다고 말하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 사람 C에게 물어봐도 사람 B를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 C를 잘 안다고 말하기는 왠지 어렵고 불편하다. ‘잘’이라는 부사가 가져다주는 무게 때문에 사람 B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 C와 알고 지낸 지 5년이 훌쩍 넘었지만, 단순히 긴 시간 동안 교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득 ‘잘’이라는 단어는 간편하면서도, 그만큼 쉽게 써서는 안되는 말처럼 느껴졌다. 안다고 말할 때는 부담 없을지 몰라도, 잘 안다고 표현할 때는 모종의 책임감이 생겨난다.

사람 B는 잠자리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어떤 사람을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이? 연락처를 주고받은 사이? 때때로 간단한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이? 오랜만에 만나도 서슴없이 악수할 수 있는 사이?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허심탄회하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 투정을 부려도 되는 사이? 장점은 기꺼이 칭찬해주고 결점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사이? 사람 B의 눈앞에 두 사람이 걸어가는 장면이 펼쳐진다. 두 사람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두 사람이 하나의 점으로 겹쳐 보이기 시작한다. 눈을 감았다 떴더니 하나의 점이 다시 두 개가 되어 있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서로에 대해 제대로 몰랐던 사람 둘이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며칠이 지나고 사람 A와 사람 B는 다시 만났다. 이번에 먼저 입을 연 건 사람 B였다. 사람 B는 사람 A에게 사람 C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누군가를 잘 안다고 말하는 데는 확신이 필요하고 잘 안다는 것에 대한, 그리고 잘 안다고 말한 데 대한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서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사람 A는 놀랐다. 그가 아는 사람 B는 어떤 자리에서나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사교성이 좋고 인기도 많았다. 사람 B가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 격의 없이 얘기하는 모습을 무수히 목격하기도 했다. 자신이 이때껏 알아온 사람 B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 B가 누군가에 대해 얘기할 때 조심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사람 A는 처음 알았다. 사람 A는 혼잣말했다. “사람은 역시 어려워.”

사람 A는 문득 하재연의 시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길게 누워 있는 섬 위의 저녁 구름에/ 서린 분홍 같은 것이었다가// 조금씩 시간이 흘러 이렇게/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 A의 혼잣말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처음에 모두 길게 누워 있는 섬이었을 것이다. 가만 바라보니 섬 위의 저녁 구름이었을지도 모른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구름에 서린 분홍 같은 것이었다.” 모르는 사이일 때, 사람은 사람에게 그저 ‘어떤 사람’이다. 어떤 사람과 만났다고 해서 그 사람을 절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신뢰가 쌓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를 이해하겠다는 마음 없이 유대감은 형성되지 않는다. 이해의 과정에 오해가 끼어들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떤 사람은 ‘사람’이 되었다가 마침내 ‘한 사람’이 된다. 한 사람이 되면, 다른 누구도 그 사람을 대신할 수 없다.

사람 A는 휴대전화를 열고 연락처 버튼을 누른다. 연락처들이 쏟아져 나온다. 살면서 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스쳤을 것이다. 스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번호를 주고받기 위해 어색하게 말도 몇 마디 주고받았을 것이다. 사람 A는 앞으로 ‘사람’을, 나아가 ‘한 사람’들을 주변에 많이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군중이 고독한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다. 잠시 한곳에 모였지만 곧 뿔뿔이 흩어질 거란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를 알 기회도, 잘 알 기회도 얻지 못한다. 군중에서 고립되지 않기 위해, 아니 군중 속에서 끝끝내 한 사람만은 지키기 위해, 사람 A는 사람 B에게 전화를 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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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천국편: 공교육은 학생 10명당 교사 1명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며 토론을 장려한다.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해 갈등을 조율하는 능력을 신장하고, 창의성을 증대하기 위함이다. 한편, 공공임대주택 비율은 대폭 늘어나 전 국민이 주거 불안 없이 삶을 꾸려간다. 이 모든 사회 복지 재원 마련은 기술 발전을 통한 수익 증대분에서 충당된다. 기술 발전은 또한 인류에게 더 많은 여유 시간을 선물했다. 사람들은 낮에는 그늘에서 부서지는 볕을 보며 사색하고, 밤에는 쏟아지는 별을 보며 노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시민들은 서로를 마주 보고 어루만지며 더 나은 사회를 담대하게 상상한다.

4차 산업혁명 지옥편: 산업 현장에서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의 활용은 갈 데까지 가서, 극소수의 노동자만이 노동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불안정 노동에 몰리고, 그마저도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은 장기 적출, 인신매매 대상이 된다. 계속되는 불황으로 세계는 전쟁의 유혹에 빠지고, 임금노동을 통해 존재가치 입증이 불가능해진 인간들은 군에 동원되어 쓸모를 입증하거나, 첨단 무기에 의해 뼈도 못 추리고 사멸한다. 그렇게 인류는 멸망했다….

여러 미래학자의 저술 및 SF 창작물에 등장하는 상상에 내 것을 보태보았다. 앞으로의 세상이 지옥이 될까 봐 걱정하는 이들은 그만큼 많고, 나도 그 중 하나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는 맥락도 여기에 있다.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소득’ 또는 배당금을 지급하자는 것. 사회 구성원이 사회에 축적된 부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여했다는 시각에서다. 현재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토대가 되는 데이터 축적에 소비자로서 기여한 바(구글 번역, 인공지능 스피커, 자율주행자동차 등)와, 기존 임금노동 시장 통계에 집계되지 않는 가사노동, 돌봄노동 및 시민으로서의 활발한 정치참여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 이것은 또한 높은 확률로 예측되고 있는, 인간 없는 생산으로 일자리 자체가 극단적으로 줄어들 미래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기도 하다. 임금노동자가 소수인 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경제 순환이 이뤄지게끔 하고, 궁극적으로는 좀 더 행복하고 충만한 기운 넘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 기본소득 재원은 로봇세, 탄소세 등 기술 사용으로 인한 부의 축적분과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환경 파괴에 대한 부담금으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기본소득제도를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우니 청년, 노인, 장애인 등에 우선적으로 수당을 지급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자는 의견에 나는 조건부 찬성한다. 그래서 ‘청년수당’ 명목의 제도를 시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난다는 소식에 우호적이었지만, 상당수가 사용처를 ‘검사’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고 시무룩해졌다. 이 제도가 개개인에게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제공하고 자율성을 발휘하게 돕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고, 혜택 받는 사람들을 심사하고 평가하는 데 비용을 쓰느니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이에게 수당을 주는 편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청년수당 사용처를 검사해야 마땅하다는 관념이 팽배해 보인다. 최근 한 온라인 언론사는 헐벗은 남녀의 사진을 첨부해 서울시 청년수당 수급자가 수당을 연인과 모텔에서 사용해 수급 자격을 잃었다는 식으로 읽히게끔 유도하는 기사를 실었고, 많은 독자들은 ‘도덕적 해이’를 질타했다. 실상은 ‘타 지역 취업 면접 시 필요할 수 있기에 모텔에 대한 사용처 규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수급 대상자 일부가 청년수당 수급 자격을 잃었다는 사실’을 짜깁기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수당을 취업 활동이 아닌 데이트비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그것 역시 경제순환에 기여하는 일 아닌가? 

게다가 언제는 청년들이 ‘혼밥’ 등 인간관계 단절로 사회적 자폐를 겪어 문제, 출산 안 해서 문제라더니. 청년들이 좀 덜 불안하고, 더 행복하게 사는 꼴 보기가 그리도 싫은가? 쪼잔하게….

우리는 급변하는 세계에 대응하기 위해 더 많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언론 및 시민들의 정책 평가 역시 미래지향적인 시각에서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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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된 얼굴의 키가 작은 여자 손님이 카스 두 캔과 감자칩 한 봉지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다 말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홍미영 교수님 아니세요? 그녀는 제대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어수룩하게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다행히 여자 손님은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고 편의점을 나섰지만, 그날 이후 그녀는 나이가 어려 보이는 손님이 편의점으로 들어설 때마다 반사적으로 긴장하는 몸의 습관을 갖게 되었다.”

조해진의 소설 <산책자의 행복>에는 구조조정 여파로 대학 강사직을 잃고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홍미영이 등장한다. 그녀는 실직 이후 함께 사는 아픈 어머니의 병원비와 은행 빚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면서 빈곤층으로 추락한다. 힘들어하던 제자의 손을 잡고 “살아 있는 동안엔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던 다정한 스승은 사라진 지 오래다. 대학 철학과 강사에서 편의점 알바가 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너무 극단적인 상황 아닌가’ 싶었는데 웬걸, 한국의 현실은 소설보다 더 나쁘다.

얼마 전 인터넷을 달궜던 최영미 시인의 ‘호텔 투숙 편의 요청’이 바로 그렇다. 일전에도 최영미 시인은 “연간소득이 1300만원 미만이고 무주택자이며 재산이 적어 빈곤층에게 주는 근로소득장려금 대상이 되었다”는 고백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내게는 편의점에 들르는 제자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전전긍긍하는 소설 속 홍미영 교수보다 자신의 궁핍한 경제적 상황을 솔직하게 알리고 농담 반 진담 반의 글을 올렸다가 홍역을 치른 ‘(전) 베스트셀러 시인’ 최영미가 훨씬 소설 속 인물처럼 느껴졌다. 시인의 현실이 소설이면 얼마나 좋겠냐만, 김명인 교수의 지적대로 이번 논란의 본질은 “시인이라는 돈 안되는 타이틀을 가진, 의식주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50대 중반 빈민 독신여성”의 문제다. 논란 이후 최 시인은 집주인의 월세 계약 연장과 함께 한 호텔에서 투숙 제공 의사까지 전달받은 상태다. 훈훈하게 끝났으니 해프닝쯤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최 시인의 상황이 결코 특수하지 않다는 현실이 문제다. 최근 <반지하 앨리스>라는 시집을 내고 사진전을 연 신현림 시인도 하루에 한 시간만 햇빛이 들어오는 반지하에서 10년간 살았다고 하니 비슷한 처지다.

한국 사회가 돈 없는 사람에게 유독 가혹하다는 현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여성, 비혼, 소속 없음’으로 살다 보면 가난 혹은 빈곤이라는 단어와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은 처참하다. 취업 시장에서 ‘남성이 최고의 스펙’이라는 말은 취업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정규직 근로자 중 여성 비율은 38.7%로 남성 62.3%에 한참 못 미치고, 여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은 20.1%인 데 비해 남성 가구주의 절대 빈곤율은 5.1%다. 여성 전체 노동자의 약 40%가 ‘일을 해도 가난한’ 근로 빈곤계층이고, 전문직 내 여성 집중 상위 6개 직업의 월평균 임금조차 214만원에 불과하다.

해외에서는 같은 커피를 팔면서 남성 손님에게 돈을 더 받는 카페까지 등장했다. 호주 멜버른의 ‘핸섬 허(Handsome Her)’ 카페는 같은 일을 해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구조적 격차(Gender Gap)를 가격표에 반영, 남성에게 가격의 18%를 더 내게 한다. 15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인 한국의 남녀 간 임금 격차는 36.3%이니, 한국에도 이런 카페가 생긴다면 남성들은 37%쯤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여성의 인생이 동화나 셰익스피어의 희곡처럼 결혼으로 끝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삶은 계속되는데, 한국은 결혼하지 않은 가난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아무런 답도 갖고 있지 않다. 30~40세 미혼 여성 인구는 10년 새 2배 넘게 급증한 반면 국가는 결혼하지 않는 여성에는 무관심하고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걱정하느라 바쁘다. 소설 속의 홍미영 교수와 현실의 최영미, 신현림 시인은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하다는 점에서 꼭 닮았고, 그래서 슬프지만 이렇게라도 가시화되었다는 점에서 다행스럽기도 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혼자라서 더 괜찮지 않은 여성의 가난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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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논어>를 열자마자 보이는 공자의 한마디다. 나는 군자 발끝에도 못 미쳐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음식 문화사 탐구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삐진다. 가령 “설렁탕은 선농제에서 시작됐다” “한국사상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다” 하는 사람 앞에서는 순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한 번은 쏘아붙이게 된다. “낭설 수집을 음식 문화사 공부로 착각하면 그 다음이 없어요.”

부끄럽게도, 내 군자답지 못한 면모를 자주 들키는 계절이다. 추석을 앞두고 차례 상차림을 묻는 전화가 잦다. 대중매체는 여전히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시:대추·밤·배·감의 차례로 놓기) 같은 진설법을 가르치려 든다. 이 철만 오면 무엇이 차례상에 오를 수 있고, 무엇은 올라서는 안되는가 하는 문제에 정답을 내야만 차례를 지낼 수 있는 것처럼 군다. 다시금 발그레한 얼굴로 단언한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말은 꺼낸 쪽에서 증명하라고. 예서는 이런 규약을 논한 적이 없다. 명절 앞두고 기억할 말은 딱 한마디, “가가례(家家禮)”뿐이다.

추석 열차 승차권 예매가 시작된 8월 29일 오전 서울역 매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가가례, 집집마다 예가 다르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예를 따른다는 말이다. 추석의 차례와 손님맞이를 두고 남의 집에다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할 것도 없고, 내 조상께 예 갖추고 오랜만에 겨레붙이 모이는 데 남의 집 눈치 볼 것 없다는 뜻이다. 고려시대 이후 예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주자가례(朱子家禮)>, 18세기에 이를 조선화한 <사례편람(四禮便覽)> 어느 책도 차례 상차림을 규범화한 적이 없다. 이이는 1577년에 간행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차례에는 지내는 그때 나는 식료로 음식을 해 올리되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설명했다.

차례는 원래 축문도 읽지 않고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의식이었다. 이는 그동안의 민속학 조사가 밝힌 바이고, 오늘날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에서 되풀이해 강조하는 바다. 추석 차례는 별 탈 없이 한 해의 수확을 앞두고 있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의식이었다. 추석은 농번기를 앞두고 모두가 쉬어가는 휴일이었다. 차례 음식은 올벼로 빚은 술, 구할 수 있는 과일, 그리고 지역이나 집안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 충분했다. 퇴계 이황은 간소한 제사와 차례를 강조했다. 그 뜻을 진성 이씨네는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파평 윤씨 윤증(尹拯·1629~1714) 고택에 전해오는 차례에 쓰는 상은 가로 99㎝, 세로 68㎝에 지나지 않는다. 후손들은 이 상에 과일 셋, 나물, 밥과 국, 그리고 어포와 육포만으로 제물을 차린다. 차례 상차림은 집안 형편과 사는 곳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다른 게 당연하다. 낙지, 문어, 상어, 홍어, 통북어, 꿩, 부꾸미, 파인애플, 바나나, 카스텔라 등 홍동백서며 조율이시에 들지 않는 제물이 보이는 편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1970년대 이후 대중매체가 추석 차례에 무슨 대단한 규약이 존재하는 듯 굴었으나 이는 소비와 과시의 시대를 맞아 새로 “만들어낸 전통”일 뿐이다. 감히 동포에게 낯을 붉히랴. 낭설로 쌓은 억지가 불편할 뿐이다. 낭설과 억지가 빚은 가짜 전통은 명절에 깃든 평화와 휴식의 풍경, 공동체의 정다운 마음을 바래게 했다.

이에 더욱 삼삼한 문헌이 정학유(丁學游·1786~1855)의 가사 <농가월령가>이다. 정학유는 산과일이 익어가는 음력 8월을 “뒷동산 밤대추는 아이들 세상”으로 노래했다. 명절 쇠며 쓸 식료는 북어와 젓갈용 조기로 충분했다. “신도주(햅쌀술),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만으로 차례 지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제물은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다. 차례를 지내고서 며느리는 “말미”, 곧 휴가를 받아 친정으로 떠났다. 삶은 개고기에 떡고리와 술병을 챙겨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남의 집 따님에게, 시적 자아는 얼굴은 좀 폈는지 묻는다. 그러고는 위로 겸해 당부한다.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보름달 아래서 마음껏 놀다 오란 말이다. 밤과 대추를 차지한 아이들, 이웃과 나누는 소박한 제물, 그리고 가사와 농사에 지친 여성의 휴식, 여기 추석의 본래 뜻 명절의 원래 모습이 깃들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해서다. 그 마음으로 굳이 문헌을 불러내 낭설과 억지부터 물리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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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드라마로 히트를 쳤던 이 제목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니, 이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는 어떻게 다른가. 톨스토이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강변했지만, 내가 보기에 남녀 할 것 없이 사람은 ‘일하며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 문제적이라면 그것은 일반 ‘사람’과는 다른 어떤 삶의 지형 속에 놓여있음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을 제출해야 했던 과거 여성의 삶은 대체로 ‘남자’ 혹은 ‘사랑’을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일과 사랑이 대체로 남자라는 운명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조선희의 <세 여자>를 읽으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과연 조선 최고의 신여성이자 코뮤니스트였던 단발랑의 이 세 여자가 이전까지 여성에게 강제된 ‘남자라는 단 하나의 운명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살았는가’이다. 이 관점에서 세 명의 이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주세죽. 그녀는 함흥에서 태어나 음악선생이 되기 위해 상해로 유학을 떠난다. 그녀는 박헌영을 만나 결혼하고 공산주의자가 되지만, 모스크바에서 박헌영의 단짝인 김단야와 재혼하고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당하는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결국 1953년 생을 마친다.

둘째, 강경의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인 고명자는 이화학당을 다니다가 김단야와 사귀고,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으며 경성에 돌아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전향하여 친일행로를 걷다가 한국전쟁 중 사망한다.

셋째, 허정숙은 고베 유학을 거쳐 상해에서 경성으로, 모스크바와 뉴욕, 타이베이, 남경, 무한, 연안, 태항산, 연안을 거쳐 평양에서 최고 권력을 누리다가 아흔의 나이로 사망한다. 허정숙의 생은 무장항일투쟁 전력에서 알 수 있듯 단순하게 보자면 투철한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의 생이지만, 그 면면은 동선만큼이나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가령 ‘조선의 콜론타이’라 불렸던 허정숙의 남편 혹은 파트너가 여러 번 바뀐다든가 일본, 미국, 대만 등지에서 유학하고 연안에서 항일운동을 하는 등의 엄청난 행보가 그러하다.

얼핏 보면, 이 셋 중에 남자와 별개로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살아낸 것은 유일하게 허정숙이라 할 수 있다. 주세죽은 박헌영과 김단야라는 혁명가를 뒷바라지하거나 의존하는 헌신적 여성상이었다는 점에서, 고명자 또한 김단야의 행보와 함께하다가 이후 전향 등의 나락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단적으로 이 셋 중에 허정숙만이 누구의 아내나 애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으므로. 그러나 어찌 보면 허정숙의 저 독립적인 행보에는 아버지 허헌이라는 절대적 운명이 어른거리고 있다. 조선 최초의 변호사 중 하나이자 조선 공산주의의 후원자로 또 동아일보 사장과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까지 지냈던 허헌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과연 그녀가 자신의 삶을 찬란한 궤도에 놓을 수 있었을까.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두 명과 달리 비극적 역사에 희생되지 않고, 역사라는 호랑이에 올라탈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특히 평양에서의 허정숙의 삶에 의구심이 든다. 이 작품에서 남로당을 비롯한 소련파, 연안파 등이 숙청당할 때 허정숙의 태도는 회의적이면서도 방관적이다. 첫 번째 남편인 임원근이 형무소에 있을 때 송봉우와 재혼한다든가, 미국 유학을 떠나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박헌영, 최창익, 임화, 이태준 등이 숙청당하고 김일성 1인숭배체제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과연 어떤 주체였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 의구심은 어쩌면 작가가 허정숙의 행보에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면서 변명의 시선을 얹고 있기 때문에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에서 그려진 세 여자의 삶이 그다지 주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 명의 내면적 동력이 좀 더 핍진하게 묘사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떤 누구도 주체일 수 없었던 저 폭군의 역사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우면서 끝내는 참담했던 것은,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그려나갔던 숱한 혁명가들이 속절없이 역사의 격랑에 희생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무력감을 어찌할 것인가. 남성이라는 단 하나의 운명을 열고 나가면 더 폭압적인 역사라는 운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세 여자>를 읽으면서 느낀 새로운 지점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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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가끔 일이 많이 몰려 쉬지 않고 달리다보면 감기 몸살에 심하게 걸릴 때가 있다. 하루 종일 꼼짝없이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끙끙 앓다보면 걸렀던 식사부터 전반적인 생활습관까지 떠올리며 아픔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후회가 밀려든다. 반성을 하다가도 아픔이 길어지면 종국에는 ‘죽음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찾아올까’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무한한 듯 누리던 내 몸에 대한 사용권은 없어지고 방구석에 웅크려 오로지 내 몸에서 나는 숨소리와 고열만 느껴지기 시작할 때 비로소 보이는 시간과 공간의 유한함. 우리의 존재는 이 유한함 속에서 또한 얼마나 미약하게 잠시나마 깜빡이는 불빛일까. ‘살아있음’을 다만 느끼고 있자면, 일상에 파묻혀 믿게 되었던 시간의 직선적 흐름에서 벗어나 삶과 죽음, 아픔과 회복의 순환이 만들어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어느덧 숙연해지기도 한다.

언젠가 신은 왜 굳이 사람에게 ‘아픔’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일까 의아해했지만, 아팠던 것이 나으면 같은 세상도 정말 더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픔이라는 것이 오히려 살아있음에 대한 신호이자 누구나가 경험할 수 있는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라면, 우리 사회에서 아프다고 해서 가난해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색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는데, 어떤 사회에서는 왜 아프면 가난이 찾아오게 될까.

세 모녀가 자살한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주택 반지하 방. 28일 찾은 이 집 텔레비전 위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찍은 가족사진이 놓여있었다. 박은하 기자

몇 해 전 자살한 송파구의 세 모녀 사건은 오랫동안 아파서 일하기 힘든 큰딸과 취업준비하며 아르바이트하던 둘째딸, 그리고 식당에서 열심히 생활비를 벌어온 어머니 이야기의 끝이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삶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넘어져 다치게 되자 본격적으로 가난해졌다. 우연히 넘어진 것 같지만 아픈 몸으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었다. 세상을 뜬 지 3년이 된 고 최인기님은 두 차례의 큰 수술을 받고 생계가 어려워져 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자가 되었다. 그런데 아파서 도저히 일할 수 없었던 그에게 2013년부터는 ‘근로능력 있음’으로 판정이 내려졌다. 정부는 그에게 먹고살기 위한 급여를 받으려면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부 수급자’ 자격을 부여했다.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일을 하지 않으면 수급권이 박탈되기 때문에 그는 지하주차장 청소부로 일하다가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나라마저 그에게 일을 해야만 밥값을 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꼭 이렇게 극적인 사건이 아니더라도 내가 연구를 하면서 만나게 된 아픈 노동자들도 아프기 시작하면 일자리가 불안정해지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 때문에 일을 계속하다가 더 아프게 되기도, 또는 아예 일자리를 더 이상 구할 수 없으니 소득이 없어 결국에는 수급자가 되는 경우들도 있었다.

그동안의 많은 연구들은 아파서 가난해지는 경로보다 가난할수록 사람들이 더 아프게 되는 경로에 집중하였다. 특히 서구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한 연구들을 보면 아프면 가난이 찾아온다는 가설은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가설은 아파서 일을 못하면 즉각적으로 소득이 단절되어 가난을 버티다 못해 자살을 선택하거나, 아파도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다가 정말로 죽는 사람이 있는 한국과 같이 슬픈 사회에서나 설득력이 있을 수 있겠다.

반드시 일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또는 노동력을 시장에서 교환해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만 가난에서 벗어나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인간의 노동력에 대한 상품화 지수가 높은 나라이다.

실제로도 한국은 국제적으로 비교분석해보면 이 상품화 지수가 높다. 반드시 일을 해야만 그나마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몸뚱이 자체가 가난을 피하기 위한 생존수단이 된다. 그리고 아픈 몸뚱이는 ‘하자 있는 상품’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들 중에 의료보장 사각지대가 넓어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계속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꼭 재난적 의료비 때문이 아니더라도 노동자가 먹고살기 위해 아픈데도 쉴 수 없고,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한다면, 그리고 그러다가 정말 일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게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가파르게 가난의 굴레에 빠지게 되는 사회라면 의료비 이전에 그 사회의 소득보장정책에 구멍이 있는 것이다. 아픔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고 가난으로 향하는 비참한 저주가 되어버린다는 것은, 우리가 만든 사회의 어느 부분은 심각하게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 아닐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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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미국.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소설가인 다나는 집에서 이삿짐을 정리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휘청, 현기증을 느끼며 쓰러진다. 이어 눈을 뜬 곳은 1815년 메릴랜드주의 숲속이다. 그곳에서 다나는 호수에 빠진 ‘백인 소년’을 구한 뒤 1970년대로 되돌아온다.

SF 거장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 <킨>은 이렇게 시작된다.

이후로 다나는 소년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1800년대로 끌려간다. 처음에는 몇 분, 그 다음에는 몇 시간, 그 다음에는 며칠, 그리고 또 그 다음에는 수어달. 그렇게 1800년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나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흑인 여자’로서의 생존술을 익히게 된다. 즉 점차 노예로 생존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1970년대의 다나는 자유인이자 ‘엘리트 여성’이지만, 1800년대에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건방진, 따라서 다소 위험한 여자 노예일 뿐이다.

버틀러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다나를 노예제가 가장 혹독했던 1800년대로 보내 그 시대를 경험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에서 ‘흑인됨’이란 무엇인지, 그 역사성을 탐구한다.

하지만 버틀러가 이런 이야기를 쓴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머니는 가정부 일을 하셨고, 나는 그녀가 하는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킨>을 쓴 이유는 이런 기분을 풀기 위해서였다. 결국 나는 그녀가 한 일들 덕분에 먹고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가 삶을 빠르게 개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모를 부끄러워하거나, 혹은 좀 더 맹렬하게 부모에게 화가 나 있었던 196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날의 사람들을 노예제 시대로 보내고 싶었다.”

버틀러가 말하는 ‘1960년대에 일어났던 일’이란 미국에서 흑인민권운동이 꽃을 피웠던 시기, 민권운동가들이 노예의 삶을 살았던 윗세대에게 쉽게 격분하곤 했던 것을 의미한다. 어떤 민권운동가들은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는 부모세대를 진심으로 원망하고 저주했다.

버틀러에게 이런 태도는 맥락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없다는 의미에서 순진하고 안일한 것이며, 동시에 자기혐오라는 점에서 무기력한 것이기도 하다. 버틀러의 작품과 수치심의 관계를 탐구했던 프랜 미셸은 ‘수치스럽다’의 또 하나의 표현인 ‘굴욕당한(mortified)’의 어원이 ‘죽음(mort)’임에 주목한다. 수치심을 안고 있는 자기혐오는 변화를 견인하기보다는 자기파괴적이다.

버틀러에게 선조들은 어떤 식으로든 버텨낸 자들이었다. <킨>은 다나가 어떻게 노예가 되어가는가, 그리고 다나가 구했던 ‘다른 백인들과는 조금은 다른 백인 소년’은 어떻게 ‘크게 다르지 않은 백인 노예주’로 성장하는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개인을 구조에 종속시키는 조건 안에서 그렇게 간단하게 발휘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다나는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교섭하면서 인간으로서 생존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다나가 머무는 집의 다른 노예들도 마찬가지였다.

노예화된 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 안에서 그 시간을 살아냈고 (혹은 결국 죽거나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살았고) 그렇게 버텼거나 버티지 못했던 시간들의 중첩 속에서 역사적인 투쟁들은 불타오를 수 있었다.

여성 인터넷 개인방송 진행자(BJ)에 대한 살해 협박이 공공연하게 인터넷 방송을 타고, 강남역 여성살인사건을 볼거리로 만드는 영화가 제작된다.

탁현민 경질을 말했다고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경질 청원이 올라온다. 만만하지 않은 강도로 진행되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을 보면서 버틀러의 교훈을 되새긴다.

여전히 우리는 각자의 맥락에서 각자의 ‘노예의 조건’을 산다. 그러나 우리의 발버둥이 아무리 하찮아 보일 때에도 제자리걸음 중인 것은 아니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함께 버텨야 한다. 버텨서 더 많은 목소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 우리가 밀어낸 어떤 한계가 세상을 또 조금 바꾸어놓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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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청춘직설란에 쓴 ‘아재들에게’가 SNS에서 꽤나 관심을 받은 모양이다. 대리운전을 하며 바라본 50대 남성들의 모습을 담은, 타인에게는 당신의 자기서사를 들어야 할 의무가 없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우선은 50대 남성들로부터 “아재들 건드리지 마라, 우리도 힘들다”하는 직간접적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요약하면, 선배들의 경험이 필요한 시대라는 것이다. 나도 그것을 부정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귀를 열어 후배들의 말을 경청하고 자신의 경험은 몸으로 실천하는 방식을 선택한다면, 조금 더 환영받는 아재가 되지 않을까 한다. 곧 생물학적 아재가 될 나에게 하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재들의 아우성보다도 더욱 눈길이 갔던 부분은 20대와 30대, 특히 젊은 여성들이 ‘아재들에게’라는 글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많은 이들이 “글쓴이는 그래도 노동을 하는 쪽이잖아. 나는 손님이 되어 택시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기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해”하고 반응했다. 자신이 비용을 지불하는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욱 눈치를 보아야 하고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택시기사들의 몇 가지 유형을 들어 보자면 1) 연애는 하고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필요 이상으로 민감한 사적 정보에 대해 묻거나, 2) 여자는 어떠해야 한다, 하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며 걱정하거나, 3) 자기 자녀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듣는 이의 처지와 비교하며 자랑하거나, 4)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된 자신의 인생사를 계속 들려주거나, 하는 것이다. 3번과 4번 항목은 나도 자주 경험하는데, 그들의 발화는 택시에서 내릴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일이 많다. 나보다 젊은 여성 손님이라면 나이와 성별이라는 특성에 따라 조금 더 ‘경험을 들려주고 싶은 대상’이 될 것이다. 반면, 대리기사들은 같은 운수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그처럼 손님에게 자신의 서사를 들려주는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조용한 택시기사도 있고 말이 많은 대리기사도 물론 있겠지만, 대체로는 그렇다. 두 집단의 차이는 그들이 운전하고 있는 공간에서 온다. 택시기사들에게 택시는 온전히 자신의 공간이다. 특히 개인택시기사들은 차량이 자신의 소유이고 그 면허의 값만 해도 상당하다. 보조석 앞 공간에 붙은 기사등록증에는 이름도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마치 집의 주인처럼, 그 공간에서 온전한 자기의 몸으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리기사들은 타인의 운전석에 앉는다. 운전하고는 있지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어 잠시 그 자리를 점유할 뿐이다. 그러면 자신의 목소리로 발화할 수 없게 되고, 대개는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말 정도나 하게 된다.

우리는 타인을 초대하고 나면 그를 환대할 준비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공통의 화제를 고민하고, 선물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가 나의 공간에 머무는 동안 함께 행복하기를 바란다. 택시기사들 역시 자신의 공간에 들어온 타인이 그러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한 존재로서 먼저 인사하고, 무언가 화젯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말을 건네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그 공간에서 자신의 주도권을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고 나면 문제가 된다. 자기 주도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부터 무조건 자기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는 데까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해야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순간 타인과의 갈등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인을 향한 환대는 그를 향한 배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내가 준비한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꺼낸 화제가 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가 조금 더 내밀한 초대에 응하기를 원치 않는 상태일 수도 있다. 그래서 공간의 주인은 언제나 상대방의 처지를 살피고 그의 입장에서 사유해야 한다. 그것이 오히려 주인으로서의 자리를 명확히 해 주면서 초대받은 이들을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가장 소중하고 명확한 자신의 공간에서 타인에게 실수하기가 더 쉽다. 자기만족을 위한 과한 친절을 베풀거나, 공유해야 할 무언가를 점유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과시하게 된다. 운전석과 조수석이라는 특별한 공간을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일상의 공간 어디에서든 그렇다. 계속해서 초대받고, 또 타인을 초대해야 할 우리는 자신의 공간에서부터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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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죽이는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참여자가 일주일에 세 차례 글을 올리면 해당 글에 댓글로 조언하는 방식이다. 프로젝트를 위해 마련된 비공개 카페를 틈나는 대로 방문해서 글을 읽는 게 어느덧 일과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세 편의 글을 한 번에 몰아서 올리는 분들도 있고 하나의 이야기를 연재 형식으로 나눠서 게시하는 분들도 있다. 어쨌든 참여자들 모두 틈나는 대로 글을 쓰고 있다. 일과의 한 부분이 오롯이 ‘쓰는’ 시간으로 채워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고 그 글을 다름 아닌 내가 가장 먼저 보게 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참여자들이 올리는 글의 형식 또한 다양하다. 보통은 에세이 형태를 띤 글들이 많지만, 르포 형식의 글도 간간이 눈에 띄고 팩션(faction) 느낌이 물씬 나는 글도 있다. 내가 시인이라 그런지 시를 올려주시는 분들도 있다. 글쓰기 코치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지만, 코칭을 하면서 발견하는 것은 참여자가 올린 글의 부족한 부분이 아니라 내가 미처 잡아채지 못한 일상의 반짝임이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자기만의 화법으로 전달하려는 간절한 몸짓이었다. 그 몸짓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 화답하는 게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글을 읽으며 일상의 반짝임은 기쁨에서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예기치 않은 슬픔이나 상실감에서 비롯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는다.

그들은 모두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밖에서는 공공연하게 떠들지 못했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이야기, 누군가에게는 지나치는 풍경에 불과할지라도 내 가슴에 다가와 단박에 얼어붙어버린 순간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든 지우고 싶지만 발설하지 않으면 끝끝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 나를 향한 이야기, 나로부터 발아해서 나에게 가까스로 도달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은 사람에 대해,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각자의 삶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댓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한다. 어떤 글은 첨삭이 불가능하다고 느껴졌다. 내가 누군가의 삶에 함부로 무언가를 보태거나 뺄 수는 없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바로 꾸준함이다. 꾸준함은 성실함과 직결되는 것으로, 다른 어떤 기술보다 더 체득하기 힘든 재능이다. 보통 재능이라고 말하면 타고난 능력을 생각하지만, 재능은 타고난 능력과 훈련에 의하여 획득된 능력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꾸준히 어떤 일을 하려면 해당 일을 하고 싶은 마음과 그 일을 실제로 수행하는 추진력이 결합되어야만 한다. 일주일에 세 편의 글을 쓰는 것은 얼핏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일주일에 세 번 운동을 하거나 산을 오르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게다가 글쓰기 능력이 향상되는 것은 근육이 붙거나 지구력이 생기는 것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몸으로 느끼기 어렵다.

영어 선생님이 영어를 잘하는 이유는 매일 일정 정도의 시간을 영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데 사용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내서 정기적으로 쓰면 나도 모르는 사이,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 기술적인 부분뿐만이 아니다. 백지를 마주하는 데서 오는 공포는 줄어들고 어떤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말하고자 하는 용기는 커진다. 한 문장이 다음 문장을 불러들이는 근사한 순간을 마주하는 것은 덤이다.

현실과 동떨어져 생동감을 잃은 글을 죽은 글이라고 일컫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은 글에서는 ‘죽이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죽이다’ 혹은 ‘죽여주다’는 말은 “몹시 만족스럽거나 흡족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죽이는 글쓰기는 해당 글을 읽는 사람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더욱 흡족한 것은 쓰는 사람이다. 쓰는 일은 나를 되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단어를 많이 쓰는지,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나를 쓰게 만드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글을 읽으며 죽이는 글쓰기가 역설적으로 나를 살리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글이 가장 빛나는 것도 그때일 것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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