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롯한 대리운전기사들이 손님에게 바라는 몇 가지 ‘매너’가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기사가 전화를 하면 받아달라는 것, 차의 비상등을 켜고 기다려달라는 것 정도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행위만 언급하자면 그렇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을 관리하고 제공받는 사용자도 어떤 ‘의무’를 지는 것이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순간부터는 평범한 우리들 역시 일종의 사용자가 되고, 곁에 앉은 노동자에게 지켜야 할 당연한 예의가 생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느 손님은 나에게 “기사님, 뛰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괜찮습니다 :)” 하는 문자를 먼저 보내왔다. 나는 그때 그를 만나기 위해 1㎞ 남짓 떨어진 수서역 주차장으로 뛰어가다 덕분에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답신을 하자 “저는 지하주차장 2층 출구 근처에 있고 비상등을 켜놓았어요” 하는 문자가 곧 다시 왔다. 그에게 가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편했다. 그의 위치를 찾느라 넓은 주차장을 헤매지 않아도 될 것이고, 늦게 왔다는 질책과 마주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가 나의 노동(콜)을 취소하지 않을까 가슴 졸일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서역 지하주차장 2층에는 과연 비상등을 켜둔 차가 한 대 있었다. 30대 여성으로 보이는 손님은 웃으며 나를 맞이했고, 주차장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달라더니 커피를 두 캔 사와서 나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환대해 주시는 손님은 처음이에요, 라고 하자 그는 “대리기사님들께 모두가 이렇게 하지 않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출발지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빨리 오지 않으면 콜을 취소하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도착하고도 어디 숨어 있는지 한참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이들이 많다. 특히 여러 업체에 전화하고는 먼저 오는 기사와 함께 떠나기도 한다. 수서역의 그는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호의를 베푼 것이다. 그가 종종 떠오를 때마다, 그가 가진 노동과 노동자를 대하는 삶의 태도에 감사와 존경을 함께 보낸다.

그 이후, 그와 같은 손님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대신 ‘손님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하는 순간이 많았다. 타인의 운전석, 을의 자리에서 보는 한 인간의 행동에는 무수한 균열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상처받고 가끔은 그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대리운전을 이용할 일이 생겼다. <대리사회>의 저자로 사내 독서 동아리 모임에 초대 받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의 회사 근처에서 맥주 한잔을 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대리운전 콜을 하고는 주차장에서 기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를 배웅하겠다는 몇몇과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 10분이 지나고, 기사가 도착했다. 그는 나에게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와야 하는지 걱정했습니다” 하고 말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3통의 부재중 전화가 선명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자 기사는 나에게 “차는 어디에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차의 비상등도 켜놓지 않고 주차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 순간, 부끄러움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몰려왔다.

대리운전기사에서 손님의 입장이 되자마자, ‘내가 저 입장이라면 이렇게 해야겠다’ 하고 상상하던 것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을의 자리에서는 선명하게 보이던 타인의 균열들이, 잠시 갑의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고 어디에 있다는 표시도 하지 않는 동안, 내게 오는 노동자는 불안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마주한 그는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내가 손님들 앞에서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그도 어색하게 한 번 웃고는 타인의 운전석에 앉았다. 거기에 어제의 내가 있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갑과 을의 자리를 넘나드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자신이 당한 갑질에 쉽게 분노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자리만 벗어나면 쉽게 갑질의 가해자가 되고 만다. 당장 일상의 자리에서 잠시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된다. 그렇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본 타인의 균열을 있는 그대로 오래 기억해야 한다. 달라진 자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정확히는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상상할 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의 운전석들이 조금은 ‘타인’이라는 단어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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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해결하러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들어갔다. 햄버거를 먹으며 귀에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들으려는 찰나, 옆 테이블에서 생경한 단어가 들려왔다. “걔는 진짜 낄끼빠빠 못하지 않냐?”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낄끼빠빠?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끼리끼리”도 아니었고 “뛰뛰빵빵”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옆 테이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메모장에 “낄끼빠빠?”라고 적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테이블에서는 ‘헬조선’처럼 친숙한 단어부터 ‘번달번줌’이나 ‘어덕행덕’처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통 뜻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조어가 온라인상에서만 쓰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육성으로 들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낄끼빠빠와 번달번줌, 그리고 어덕행덕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다. 낄끼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이었다. 자신의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동시에 과도한 개입을 ‘나대는 것’으로 바라보는 현세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단어인 셈이다. 번달번줌은 “번호 달라고 하면 번호 줌?”이라는 뜻이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무턱대고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걸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복잡한 심경이 저 신조어에 담겨 있었다. ‘적극적인 소심함’ 같은 형용모순 말이다. 어덕행덕은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는 뜻이었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다. 어덕행덕은 신조어가 또 다른 신조어로 변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덕질에 대한 시선이 ‘외골수’에서 ‘개인의 분명한 기호나 취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친김에 온라인상에서 ‘신조어 능력 평가’라는 것을 해보았다. 총 스무 개의 신조어가 제시되었는데 내가 아는 거라곤 고작 여섯 개뿐이었다. 개중 어떤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뜻풀이를 보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도 여러 개였다.

별걸 다 줄여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기성세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마음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대개 신조어들은 신문이나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주로 학교나 학원에서, 카페나 길거리에서 사용된다. 주변에 귀를 기울이고 살지 않으면 도통 알 수 없는 말들,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감히 예상할 수 없는 말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노트를 펴고 그 말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어들을 적다가 이를 단순히 새롭게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말이나 은어로 취급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조어의 대부분은 줄임말이다. 이를 언어의 간편한 유통 차원으로 축소 해석해서는 안된다. 신조어를 즐겨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성세대와의 분리를 꿈꾸는 것이다. 개저씨들은 스스로가 개저씨인 것을 모른다. 높은 청년 실업률로 인해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청년들을 빗댄 ‘달관세대’라는 말을 기성세대는 앞날 걱정은 하지 않고 흥청망청하는 세대라는 말로 해석할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 생겨난 말들은 확실히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신조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어서 낄낄거리고 재치 있어서 무릎을 탁 치게 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뜨끔하다. 왜 이런 조어가 생겨났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신조어의 뜻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다.

신조어를 정리하는 내내 유독 가슴팍을 두드리는 것도 금턴, 재포자, 청년실신 같은 단어들이었다. “금(金)처럼 소중한 인턴”을 뜻하는 ‘금턴’이라는 신조어는 정규직 전환 여부를 떠나 일자리를 얻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내준다. “직장을 그만둔 뒤 재취업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재포자’와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뜻의 ‘청년실신’은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가 지르는 비명 같았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를 줄여서 만든 “복세편살”이라는 단어는 자조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신조어는 새로 만든 말이라는 뜻이다. 새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새로운 직업을 많이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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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주택 최상층으로 이사했다! 평화롭다. 옆집 개새끼만 짖지 않아준다면….”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여러 댓글이 달렸고 그중에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내용도 있었다. 가장 불쾌했던 것은 모르는 사람이 툭 하고 남긴 것. “개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새끼라니… 휴.”

첫째로 난 저 댓글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헷갈렸다. 아마도 큰 고민 없이 남겼을 댓글의 의중을 헤아리며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이 불쾌했다. 둘째, 그는 생명체에게 ‘새끼’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명제를 전제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의할 수 없다.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조부모가 오랜만에 보는 손주에게 “아이고 내 새끼”라고 말하는 것은 가족의 정과 환대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클리셰다. 또한 (이참에 살짝 홍보하자면) 내가 청년 당사자로서 참여한, 청년 이슈를 다루는 시선에 대해 문제제기한 책의 제목은 <미운청년새끼>다. 인간도 생명체인데 새끼라는 말을 잘도 붙여왔다. 셋째, 어떤 표현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그것이 나오게 된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말을 보태는 것 역시 폭력이다.

옆집 개가 내가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짖어대는 소리는 총성을 떠올리게 한다. 옆집 개가 현관에 바짝 붙어 나를 향해 적대적으로 짖어대는 일의 반복은 집 밖에 나가기 전 나를 번번이 머뭇거리게 만든다.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어느 날, 옆집 개의 맹렬한 짖음에 심장에 무리가 왔고, 나도 사족보행하며 똑같이 짖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울부짖다시피 옆집 문을 두드리며 호소했다. “개 좀 안 짖게 해주세요! 집 나갈 때, 들어올 때 매번 깜짝깜짝 놀라고 스트레스 받습니다!” 옆집 현관문 안에서 “죄송합니다…”라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누그러지고 미안함마저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날 개는 또 짖었고 나는 또 격분했다.

옆집 개는 가수가 되고 싶은 걸까? 어느 날 새벽에는 인근 건물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개와 고양이와 함께 웅장한 삼중창을 수시간 들려주었다. 귀마개 착용도 소용없었다. 불쾌한 시각자극은 쉽게 차단할 수 있고(눈 감고 고개 돌리면 그만), 후각 자극에는 금방 둔감해지는 반면, 청각 자극은 방어하기 쉽지 않고 쉽사리 둔감해지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런 환경에서 개를 키우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른다. 내가 사는 집은 5.4평이다. 호별로 평형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건물 전체 크기와 가구 수를 고려할 때 옆집이 아무리 넓다 해도 10평은 되지 않을 것이다. 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 적 없는 것으로 보아 좀처럼 산책도 시키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라는 종의 특성상 많이 갑갑할 것이다. 동물을 가족으로 등록하기 위해 일정 이상의 거주 공간 크기가 담보돼야 하고, 인간들은 필수적으로 교육을 이수한 뒤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독일의 사례를 떠올려 본다. 한국도 도입이 시급하다.

개소리로 고통 받아도 취할 수 있는 공적 조치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녹음으로 증거자료를 확보해 민원 어플로 문제 제기를 해도 권고 조치에 그칠 때가 많고, 그것마저 같은 건물에 살 때만 유효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룸촌에서 바로 앞 건물 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뭘 할 수가 없다는 무력감. 민사 소송의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걸까.

계속 고민하다 보니 좁은 평형 주택을 부실한 방음 마감으로 지은 시공업체, 건물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허용한 공권력, 한 평의 땅을 독점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서울의 미친 부동산 가격에까지 문제의식이 미친다. 그 점을 고려하면 옆집 세입자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지만, 그래도 그 개는 너무 날뛴다. 동물을 도시에서, 좁은 공간에서 키운다는 것은 동물에 대한 책임감에 더해, 이웃에 대한 책임감까지 요구하는 일이 아닐까. 당신이 개의 체온을 느끼고 위로 받으며 사랑스러운 얼굴을 쓰다듬는 동안 당신 이웃은 미쳐가고 있다고요!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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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나는 한 철거공사 현장 앞에 서 있었다. 1912년 일본인이 설립한 최초의 비누공장인 애경사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포클레인의 삽질은 거세게 항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렁차게 계속됐다. 공사명은 동화마을 공영주차장 조성공사. 바로 전날 이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주차장을 짓는다는 소식에 지역사회의 반발이 이어졌고, 중구청과 협의해 공사를 멈춘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막상 현장에 와보니 철거는 진행 중이었고, 포클레인의 삽날이 지나갈 때마다 와르르 벽이 무너져나갔다.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건물 외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잔해만 남았다. 허무한 마음으로 관광버스들이 점령한 도로를 건너자 분위기가 딴판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송월동 동화마을은 색색의 머리핀을 꽂은 채로 군것질 거리를 하나씩 입에 물고 셀카봉 사진 삼매경에 빠진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 사람들 편하게 주차할 수 있게 만든다고 저 건물을 부쉈단 말이지….’ 폭삭 무너진 오래된 건물에서 뽀얗게 피어오르던 먼지와 알록달록한 동화마을의 풍경이 겹쳐지면서 괜히 관광객들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6월, 모차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갔다. 첫날부터 국립 오페라극장 앞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오페라가 우리를 맞았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이렇게 야외에서 무료로 실황 중계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역시 음악의 도시는 달라.” 감탄하던 우리에게도 며칠이 지나자 그 풍경은 일상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번화가 중의 번화가, 빈을 찾은 사람이라면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곳에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으니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표를 사서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 오페라를 관람했다. 그랬다, 오스트리아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몇 번이든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공연장 접근성도 좋았다. 공연장 앞 정류장에 내리면 광장을 가로지르거나 높은 계단을 올라갈 필요 없이 건물 입구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동차였다. 주차 안내가 중요한 홈페이지 메뉴인 한국 공연장과 달리 오스트리아 공연장에는 주차장이 아예 없었다. 도심의 가장 번화가에 위치한 오페라극장이 보행자전용거리와 연결되어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사실 극장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주차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온 관객 중에 차를 갖고 온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차를 갖고 오지 않는 공연장의 풍경은 신선했다. 주차 공간이나 요금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가져갈 차가 없는 사람들은 30분에 가까운 인터미션 동안 와인과 맥주, 샴페인을 마음껏 즐겼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공연을 보면서 현지인과 관광객용 공연을 두루 섭렵했는데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다. 사실 오스트리아의 관광지는 모차르트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많은 모차르트 공연이 열리고 있어서 고르는 것도 일이다. 물론 공연의 질은 들쭉날쭉하다. 빈에서 관람한 관광객용 모차르트 콘서트는 제대로 된 피드백이 있을 리 만무한 관광객을 상대하는 이들의 공연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에서 관람한 오후 3시 공연은 누가 봐도 학생이 아르바이트 삼아 연주하는 것이 명백했다. 좀 얄밉긴 했지만 여기가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이렇게 오래된 건물에서 라이브로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들을 만했다. 모차르트라는 콘텐츠와 그의 고향이라는 장소의 힘이 부실한 연주조차도 참을 수 있게 만든 셈이다. 게다가 마이크조차 필요없는 오래된 건물이 내뿜는 아우라는 별것 아닌 공연들조차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 관광객에게 필요한 것은 주차장이 아니라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텐츠다. 콘텐츠가 매력있다면 주차는 사소한 문제다. 인천 중구청이 애경사 건물을 부숴버리는 대신 120년 된 비누 공장이라는 역사를 살려냈다면, 흔하디 흔한 ‘비누 만들기 체험’조차 송월동에서만 할 수 있는 특색 상품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건 모차르트 덕분이지 잘 갖춰진 주차장 때문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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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은데 말이 길면 듣기가 너무 지루하다(夜短語長, 聽之太遲).” 정말 할 말이 있는 사람은, 할 말이 분명한 사람은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상대의 중언부언을 참지 못한다. 허생은 할 말이 분명했다. 야심해서 찾아온 나라의 신임을 받는 신하 이완에게 천하를 뒤집어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을 세 가지 방도를 설파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박지원이 남긴 <허생전>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초야의 인물을 찾아왔다는 이완은 인재를 발탁하고, 특권 세력을 누르고, 해외에서 새 길을 찾자는 허생의 말에 “어렵다(難矣)”는 말만 되풀이한다. 허생은 참지 못하고 칼을 뽑는다. “신임받는다는 신하가 정말 이렇다고? 너 같은 놈은 목을 베어야 해!(信臣固如是乎, 是可斬也)”

여름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주 펼쳐진다. 요리사, 제과사들의 퇴근길 술자리는 강렬하고 함축적이다. 내일 제대로 된 식료를 구입하려면 전철 첫차를 타고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걱정은 잠깐이다. 직업 예의상 하게 마련인 걱정을 마치자마자 요리사는 단번에 막소주 한 잔을 해치운다. 그러고는 허생으로 빙의해 분을 터뜨린다. “솁솁거리지 좀 마라, 천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동네 요리사 겸 주방장의 대답이 단호하다. “직업으로 요리사가 있지. 그럴 필요가 있는 주방에서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로 주방장이 있지! 언제부터 솁솁이야.”

셰프, 영어로 치프(Chief). 장보기와 맛내기에서 결정권이 있는 요리사, 제과사다. 본격적으로 빙과를 다루는 업장에서 아무나 온도계에 손 못 댄다. 냉동고와 쇼케이스 온도의 미세조정이 또한 제과사의 몫이다. 이쯤 되는 제과사가 셰프다. 서민대중의 한 끼를 감당하고 있는 백반집, 찌갯집에서 장보기와 맛내기는 단연 찬모가 도맡는다. 우리가 어제도 봤고, 오늘도 만날 셰프는, 실은 백반집, 찌갯집, 고깃집 찬모다.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탁자에서 넘겨본 주방 안, 막 찬통 콩나물, 오뎅에 파와 마늘과 깨소금을 듬뿍듬뿍 끼얹는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셰프다.

셰프.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온갖 매체에서 먹방과 맛집 사냥이 넘치고,  솁솁거리기가 울려 퍼지면서 너도나도 이 말에 감염되었다. 셰프란 말은 한순간에 요리사 또는 제과사, 찬모, 주방장이란 말을 지워버렸다. 동시에 새벽 첫차를 타고 장 보러 가기부터 실제로 하루 12시간은 업장을 지켜야 하는 고된 일의 세계를 가렸다. 주방은 늘 불이 활활 피어 있고, 늘 유증기가 가득하며, 늘 날서고 뾰족하고 달아오를 대로 달아 있는 도구가 가득한 위험한 공간이라는 점을 지우며 대중을 감염시켰다. 그러면서 청소년들 사이엔 어느새 셰프만이 끝내주고 멋있고 ‘힙’한 직업으로까지 떠올랐다. 매체에서 보기만 한 셰프만 남았다. 일은 모른다.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동네 요리사의 두 번째 분이 터진다. 누구나 자주 먹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음식이 계란찜이다. 수플레는 계란찜의 프랑스판, 오븐 요리판쯤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계란찜이든 수플레든 중간은 없다. 서구 요리판의 우스개로, 한 음식점 망하게 하려면 수플레를 주문한 다음 악평을 달면 된다는 소리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에 가장 기본적인 조미 방식만의 승부다. 최상의 상태로 내놓은 수플레를, 대중은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뒤집어서, 계란찜도 그런 음식이다. 그가 정말 ‘셰프’라면 눈에서 실핏줄 터질 듯한 집중력으로 계란과 온기와 수분을 상대로 승부를 낸다. 그러나 익숙한 계란찜은 손님들에게 서비스일 뿐이다. 수플레 한 쪽에는 1만원을 붙여도 불평 없는 손님일수록 계란찜은 서비스다.

“음식을 안다는 손님이 정말 이렇다고?” 요리사는, 제과사는, 찬모는, 또는 주방장은 여기까지 분통을 터뜨릴 뿐이다. 이 세계의 칼은 주방 밖에서 뽑는 게 아니다. 칼은 칼판 위에서만 쓸 수 있다. 짧고 강렬하고 박력 있는 순간은 퇴근길에 소주 한잔하는 그때뿐이다.

한 직업의 세계를 단박에 이해하기가 만만찮은 노릇임은 또한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그야말로 어렵다! 알면서, 다 알면서 굳이 요리사의 한마디를 2017년 한국어 일간지 지면에 남긴다. 100년 뒤에 음식문헌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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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아도니스를 닮은 청년 도리언이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그의 초상화가 늙고 추악해진다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육체와 죄 많은 영혼의 분리, 이 상상적 소망은 <마징가 Z>의 아수라 백작이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와 같은 작품을 통해 거듭되었던 인간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어떤 실제들이 아닐까. 가령 우리들이 소셜미디어나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다양한 아바타나 이모티콘, 아이디, 별칭 같은 것들 말이다.

육아, 영화, 커피, 애완동물 카페 그리고 페북과 단톡방들. 그곳에서 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 페미니스트였다가 남아선호사상에 찌든 맘충이 될 수도 있고 인권 옹호자였다가 외국인 혐오자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개인의 인격은 페르소나(persona·가면)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 현실에서도 다양한 가면을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엄마, 선생, 친구, 딸 등의 인격체들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체성의 변전은 가상공간만큼 가변적일 수 없다.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의 자아’는 실제로 내가 수행하는 실제적 자아의 연장이 아니라, 억압되거나 잠재된 충동이 실현된 판타지로 비약될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상에서 실현된 가상은 억압된 ‘하이드’라는 어두운 충동이기 쉽고, 따라서 무법천지의 폭력이 자행되기 쉽다.

2017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도선우의 <저스티스맨>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폭력성을 자못 신랄하게 다룬다. 평범한 한 남자가 어느 날 밤 대취하여 길거리에 설사와 구토를 하는 장면을 누군가 찍어 인터넷상에 올리고 신분이 노출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되자 문제의 ‘설사남’이 복수극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무법천지의 디지털 세계에 ‘저스티스맨’을 자처하는 그는 ‘여고생의 첫 경험’을 동영상으로 유포하여 자살로 몰고 간 이들, 사이버 카페의 권력자, 무지한 누리꾼들을 응징하며 활약을 펼친다. 소설은 저스티스맨의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지만 이러한 봉합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저스티스맨’을 응원하거나 두려워하는 누리꾼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이모티콘의 현란한 제스처와 미소, 그리고 괴물의 언어, 그 가상의 소통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려지는 우리의 진짜 얼굴들이 문제인 것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으로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민주적이고 다양한 네트워크와 채널들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우리를 진실과 바람직한 사회적 합의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선택과 조립이 가능한 각자의 채널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을 사실로 만들고 그 사실의 판타지 속에서 각각 단절된 믿음의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공론장이 깨져버린 각자의 채널 속에서 파편적 사실을 소비하는 인터넷 문화와 사이버 범죄를 두고 도선우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라는 게 공존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흔히 결과만을 두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하기 쉬우며 그러한 집단오류가 또 다른 이차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단편적이고 일회적인 현대인의 소통을 벤야민은 ‘체험(Erlebnis)’이라고 했는데, 이는 집합적 과거와 기억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경험(Erfahrung)’과는 다른 기계적 쇼크라고 지적했다.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는 이러한 불가해와 익명성과 관련이 깊다. 미스터리 서사장르는 현대 대중문화의 주류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도시가 지닌 익명성 때문이다. 과거 전통 사회의 마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 알지 못하는 사건은 거의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지낼 수 있다. 매일 엄지족이 되어 끊임없이 이모티콘과 문자를 날리지만, 실상은 만난 적도 없고, 만났어도 실제의 그와는 무관한 이들, 또 실제의 나와는 분리된 캐릭터들의 소란에 불과할 수 있다. 인천 여아 살해사건을 심층 취재한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전문가의 말대로, 사이버상의 폭력과 잔혹성을 실재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나와 그것’의 환각을, ‘나와 너’의 실체로 돌려놓아야 한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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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0일 밤에 딸아이와 함께 나는 30년 전 6월 민주항쟁을 기록한 동영상을 찾아서 봤다. 영상 속 서울 한복판에는 사람들이 장마철의 한강처럼 가득했고 문익환 목사의 외침은 그 물결에 부딪히며 흘러나갔다. “전태일 열사여!”로 시작하여 호명되는 앳된 청년의 이름들이 그 강 위에서 봄날의 꽃잎처럼 참 슬프게도 흩날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전태일은 당시 고작 22살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공포 속에서도 민주화를 꿈꾸다 사망한 박종철·이한열도 20대 초반 꽃다운 청년이었다. 꽃잎 하나 떨어지면 이어서 수백개의 꽃잎이 떨어지듯 1970년 11월에 전태일이 사망하고 사흘째 되던 날, 서울대 법과대학 학생 100명은 ‘민권수호학생연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어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 수백명이 추도식과 집회를 열었고 이는 계속해서 전국 각지의 학생과 청년들의 집회로 확산되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도,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도 그 중심에는 청춘들의 영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968년께 중부시장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왼쪽이 전태일).

수십명의 군경들에 맨몸으로 맞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그 광장에서 그들이 느꼈을 무서움, 슬픔 그리고 분노에 대해 가만히 상상해보게 된다. 나도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우리도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대해 저토록 저항해낼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언제부터 침묵하는 것에 이토록 길들여지게 되었나.

지금 당장 한국 청년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헬조선, 흙수저 같은 자조 섞인 신조어, 알부자족(아르바이트해서 부족한 학자금을 모으는 청년들), 인구론(인문계의 90%가 논다), 니트족, 히키코모리 등 모두 불안정한 청년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청년세대의 절망적인 상황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1999년 공식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높은데 여기에 취준생(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하여 실질 실업률을 따져보면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자이다. 모두가 어렵다지만, 유독 청년층의 고용률만 감소하고 있다. 어렵게 취업되었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청년층에서만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득 변화를 살펴보면, 오직 20~30대 청년가구의 소득만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에 더해 청년들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지난 10년간 약 24배 증가했으며, 대출받는 학생의 수는 약 10배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니 좀 더 안정되고 높은 보수의 일자리로 가기 위해 학업이나 취업을 연기하는 것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주거 상황도 나쁘다.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청년들의 5명 중 2명은 주거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데 이들은 주로 고시원, 지하방, 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 청년들은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 타 연령층에 비해서도 열악한 지위를 가지고 새로운 빈곤집단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질성을 가진 개인들은 비슷한 의제가 있으면 연대하기 마련인데 한국 청년들의 정치참여나 사회참여도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다. 청년문제에 청년들이 뛰어들기에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도 버겁다. 또한 독재정권처럼 아주 선명한 적폐가 있으면 모를까 지금의 헬조선은 누구의 잘못인지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알 수 없이 다만 자욱한 안개 속에서 ‘실패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네온사인만 어렴풋이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대적 과제를 이렇게 방치해도 될까. 당장 이번 달의 최저임금 협상 결과는 청년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주거 정책, 소득보장 정책에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비판적 사고로 부당한 관행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을 제기해야 한다. 지난 시간 속의 청년들, 지금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청년들이 흐르는 역사의 강에서 만나 공유할 것이 있다. 우리가 아파서 청춘이 아니다. 청년의 정신은 저항이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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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자라지 않는 아재들’은 최근 한남 엔터테인먼트의 흥미로운 광경 중 하나다. <아는 형님>(JTBC)에서 아재들은 여전히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으며, <미운 우리 새끼>(KBS)에서는 아직도 ‘생후 오백 몇 개월’을 사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아재 독립 만세!! 거기서 만나>(TV조선)의 내레이션은 원로배우 김영옥이 맡았다. 나이든 ‘어머니뻘’ 여성이 아재들을 굽어보며 행동 하나하나에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코멘트 하는 것이다.

이 퇴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특히나 우리 시대에 아버지란 <명량>이나 <국제시장>과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70~80대 어르신의 얼굴이 되어버린 지금, 대중문화는 왜 40~50대 남자를 어른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 사회의 남성 중심적 역사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386 남성들은 여전히 상징적으로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고, 그리하여 어른의 몸에 갇힌 ‘어린 아들’의 정신세계를 살고 있다. ‘자라지 않는 아재’가 일종의 시대정신이 된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문 대통령이 얼마나 성숙한 어른인지와 무관하게 그에게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하며 “오구오구 우쭈쭈”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문인들이 대선 당시 그를 지지하기 위해 만든 인터넷 사이트의 주소가 ‘www.5959uzuzu.com’이었다는 건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 사이트는 비판적인 칼럼이 한 편 등장하자마자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그저 무한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기실 여당 및 그 지지자들이 짜고 있는 정치적 프레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때 정청래 전 의원의 ‘소수 권력’이라는 말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팟캐스트 <파파이스>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아직은 ‘소수 권력’이라고 말하며 ‘감시 없는 지지’를 호소했다. 이 말은 기이하다. ‘소수’란 단순히 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위계에서 하위에 놓인 존재를 일컫는 표현이라고 할 때, ‘소수 권력’은 말 그대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불가능한 유머에 불과하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역사 인식 안에서 유시민 작가의 ‘진보 어용 지식인 선언’ 역시 가능해진다. 청와대 권력만 바뀌었을 뿐 한국 사회의 적폐 권력은 그대로라고 주장하면서, 유 작가는 문재인 정부의 ‘열악한 위치’를 이유로 ‘어용’이라는 단어에 새겨질 수밖에 없는 수치심을 간단히 지워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보, 어용, 지식인이라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세 단어가 하나의 단어를 구성하는 놀라운 시대를 살게 된다. 이야말로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 남자들의 화려한 정치적 쇼다.

하지만 ‘어용 지식인’조차도 냉정한 얼굴로 문재인 정부의 선택에 철퇴를 내리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앞에서였다. 그는 <썰전>(JTBC)에 출연하여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한다”면서 강 후보자를 폄하했다. 국민의당에서 “지금은 안보 현안이 중요한 만큼 이번에는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거나 “여객선이라면 모를까 전시를 대비할 항공모함 함장을 맡길 순 없다”며 부적격 입장을 낸 것과 다르지 않은 수사다.

‘어용 지식인’은 자신들의 권력적 지위를 부인하고 계속해서 ‘지켜 달라’고 징징거리면서도, 여성 앞에서만은 짐짓 근엄한 척한다. 남자들이 스스로 자라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에도 누구를 배제하면서 그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가는 명백해 보인다.

이 철없는 남자들의 강고한 연대는 역시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을 비호하는 것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탁현민의 10년 전 책은 그저 ‘젊은 한때의 과오’가 아니다. 사과 한마디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어른스럽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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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을 하지 않은 지가 몇 달 되었다. 생계의 수단으로서 그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지만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만큼 간헐적으로만 한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충청도까지 가는 20만원짜리 장거리 콜이라든가, 10분만 운전하고 기본료를 받을 수 있는 간편한 콜이라든가, 하는 것들만 주로 다녀온다. 이제는 ‘계속 대리운전 하나요’란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대리사회>의 저자로서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제일 힘들었던 손님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술에 취한 이들을 밤새 상대하는 노동이다 보니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많다. 어느 직업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폭언이나 욕설부터 시작해서 조롱, 냉소, 위계, 통제, 이러한 단어들과 늘 마주해야 한다.      

어느 대리운전기사는 손님이 라이터를 달라고 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답하니 “대리기사가 라이터도 안 가지고 다녀? 서비스 정신이 없어”라는 면박을 받기도 했다는데, 여기에 준하는 일들을 늘 겪는다.

그런데 모두가 입을 모아 가장 ‘나쁜 손님’이라 하는 어느 표본이 있다. 그들은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든다. 대리운전 콜을 보내고는 홀연히 사라져 전화도 받지 않는 이들이 있다. 평균 1㎞의 밤거리를 걷고 뛰면서, 생소한 골목을 누비며 출발지에 도착한 대리운전기사는 마냥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 그러는 동안 소중한 시간이 흐른다. 특정 피크타임을 제외하고는 콜을 잡는 일도 쉽지 않다. 새벽의 몇 시간은 이들에게 그대로 돈이다.

언젠가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요리사들이 한결같이 ‘노쇼 문화’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을 한 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을 위해 비워둔 자리도, 준비한 음식도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는 부담해야 할 비용이 된다. 식당뿐 아니라 미용실, 병원, 콜택시까지 예약이 가능한 모든 서비스업이 그럴 것이다. 타인의 노동을 사겠다고 약속하고는 쉽게 파기해 버리는 이들이 많다.

지난주에는 30대 남성의 대리운전 콜을 받았다. 그는 정중한 목소리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했고 나는 10분 정도 걸리겠다고 답하고는 그에게 갔다. 출발지에 도착해 전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했지만 “운전 중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는 기계음이 나왔다. 나중에는 아예 전화를 받고는 그대로 끊었다. 나는 30분가량을 약속 장소에서 서성이다가, 콜을 취소했다. 그에게 걸어간 나의 수고로움, 나의 시간, 혹은 다른 콜을 받았다면 벌 수 있었을 기회비용, 많은 것을 잃었다.

그는 아마도 2개 이상의 대리운전업체에 전화를 하고는 먼저 온 대리운전기사와 함께 집에 돌아갔을 것이다. 술을 마시고 직접 운전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손님이 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콜을 취소한 나는 손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대리기사입니다. 그냥 가신 걸로 알고 콜을 취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 때문에 출발지까지 갔고 그건 한 사람의 노동이 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을 알아주십시오.” 그에게서 아직까지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 술이 깬 그가 문자를 보고 한번쯤 부끄러워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 평범한 우리들이다. 휴대폰 화면을 몇 번 터치해 누군가의 노동을 예약하는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의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O2O서비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이어주는 새로운 형태의 예약 플랫폼이 생겼다. 특히 카카오를 기반으로 한 택시, 대리운전, 미용실 서비스 같은 것들이 그렇다. 나는 여기에 예약을 할 때 등록된 카드에서 예약금을 미리 지불하는 하나의 단계가 추가되기를 바란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 더 기계 너머의 노동과 노동자를 상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정착과 인식의 변환은 제도와 시스템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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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0년 전 우리는 뭐 하고 있었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별안간 질문을 던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지만 사람도 변한다. 캠퍼스에서 벗어난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곳에 와버렸음을 깨달았다. 하는 일도, 취미도, 식성도 달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요소들이 우리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별수 없이 10년 전의 그때를 더듬어야만 했다.

“대학생이었지.”

다음 말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학 다니던 때가 더없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뒤 어색하게 캠퍼스를 거닐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생각하면 아득하다, 진짜.” 친구의 말에는 두 가지의 아득함이 다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이 까마득히 오래되었다는 사실과 어떡하면 좋을지 막막했던 당시의 처지가. 그 아득함 때문에 나는 역설적으로 종종 대학 시절을 떠올리려 애쓴다. 어떻게든 그때를 내 심신에 새기고 싶어서, 어떻게든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상기할 때마다 힘이 났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꿈이 등줄기를 타고 꼬물꼬물 기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가 살던 곳은 신림9동이었다. 몇 년 전 대학동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도로명 주소를 표기하게 되면서 또다시 대학길이나 신림로로 불리게 된 곳이다. 나에게는 늘 ‘녹두거리’로 남아 있는 그곳을 생각하면 양가적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감정은 본디 꿈으로부터 비롯됐지만 꿈이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못했을 때에야만 그 민낯이 드러나곤 했다. 굳이 문을 열지 않아도 특유의 냄새를 풍기던 식당, 헉헉거리며 오르곤 했던 언덕길, 고시원과 독서실이 즐비하던 골목, 건물의 지하에는 으레 비디오방이나 PC방이 있던 곳이 바로 녹두거리였다. 골목마다 올망졸망 꿈이 늘어서 있던 곳이었다. 그 꿈 덕분에 절실했고 그 꿈 때문에 잔인한 곳이었다.

학생들이 방과후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미래를 그려보던 곳, 고시생들이 고시 일정에 맞춰 학원과 고시원을 오가며 매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곳이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날 즈음에 학생들은 골목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었고 고시원에 있던 고시생들은 고시 결과가 나오던 날에 일제히 PC방에 가서 결과를 확인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과 현실을 직면하는 사람들이 한데 있었다. 환호하는 사람들과 낙담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산책에 취미를 가지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는 여기를 사랑해야겠다는 마음과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꿈을 꿀 때의 설렘과 꿈을 달성해야 하는 압박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느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골몰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기엔 지나치게 이른 나이였다. 자주 어울리던 친구들은 학생에서 고시생이 되어 있었다. 학생이면서 고시생이 되어 있었다.

“아, 10년 전에 뭐 했는지 기억난다!”

친구가 웃었다.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다 보니 10년 전의 시간이 희미하게나마 떠올랐다. “나, 그때 영화를 찍고 있었어.” 어느 날 문득 산책하다 내가 쓴 시를 바탕으로 한 단편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영화감독이 되는 게 나의 꿈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찍고 싶다는 꿈은 늘 품고 살아왔었다.

다행히 공모전에 낸 시나리오가 당선이 되어 영화 제작 지원을 받게 되었다. 주변에 영화 찍는 친구들이 없어서 친구들과 후배들로 스태프를 꾸렸다. 학교와 녹두거리 인근의 단골 가게에서 촬영하며 나는 마침내 아득한 시절을 건너올 수 있었다. 내가 꿈을 꾸던 곳, 꿈속에서 한없이 막연해지고 더없이 달콤해지던 곳이었다. 꿈이라는 단어가 가깝지 않다는 것을 몸소 깨닫던 시절이자 꿈을 꿀 때에야 겨우 존재한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년 후에도 오늘을 떠올릴 때 여전히 아득할까. 그때도 나는 여전히 꿈꾸기를 그만두지 않고 있을까.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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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힘이 세다.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동아대에 근무하던 한 조교수가 아파트 9층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도 이에 속한다. 야외 스케치 수업 뒤풀이에서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가 학내에 붙었다. 그는 성추행 의혹에 시달렸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대학 당국의 조사로 밝혀진 내막은 그와 함께 야외 스케치 수업을 갔던 ㄱ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한 뒤 지위를 이용해 입막음하고 숨기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과 ㄴ교수도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 ㄴ교수가 한 시간강사를 성추행했다는 투서가 총장 비서실에 접수되자 관심을 돌리려고 학생에게 대자보를 쓰도록 종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소수의 사례로 사실에 기반을 둔 정당한 문제제기마저 선입견의 필터를 투과시켜 읽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글을 쓰는 입장과 보는 입장 모두 ‘폭로’의 글을 대할 때 어느 정도 침착해질 필요는 있을 것 같다고 다시금 느끼게 된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낄 때는 어떤 ‘문제’를 강하게 인지했을 때다. 나에게 분노나 스트레스를 안기는 문제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도대체 왜 그러는지, 도대체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탐구한 뒤 나름의 주장을 도출한다. 글 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안정을 취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어 ‘이득’이다. 공포스러운 것은 미지의 존재다. 보통은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게 되면, 일종의 전략과 전술을 도출해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두려움은 완화된다.

문제는,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 제기 글은 일종의 ‘고발’이나 폭로의 내용을 담을 때가 많다. 내 기준은, 고발의 대상이 힘 있는 단체이면 적시해도 무방하지만 개인의 경우에는(특히 공직자가 아닌 경우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굉장히 허약하고 가변적인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한 인간에게 그 전과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쯤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학습의 기회, 신체의 호르몬, 그날의 날씨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얼마든지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글을 쓸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학습과 성찰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욕망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조적 변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좋은 구조 속에 살 때 좋은 사람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행배틀’을 하지 않고,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우며, 좀 더 친절하고 섬세하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어떤 제도나 문화의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쓸 때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에 대한 상상을 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 시작점이 내 경험일 때가 많다는 점이 딜레마다. 따라서 개인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은 가급적 밝히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이전에 나의 부친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는데 그 글에서 부친의 얼굴과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부친이 곤란해지는 일도 없었다. 내 글을 읽은 내 부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내 기준을 다른 이에게도 마냥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겪은 것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이는 그런 ‘침착함’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고,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은 글은 정치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저격’ 글을 통하지 않고도 피해자가 적절한 보상으로 심신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고, 구조가 개선되며 가해자에게 변화의 계기가 제공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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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친구가 사회로 돌아왔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내리 낳는 동안 7년 가까이 경력이 단절된 친구다. 원래 일하던 분야와 상관없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경력을 살려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니 더욱 기분이 좋다.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아이 둘 가진 엄마가 야근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 친구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밝고 활기차다.         

그런데 근무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란다. 낮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 시간을 제외하면 딱 4시간. 하루 8시간 근무하는 보통 직장인의 절반이니 당연히 월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월급도 시간도 애매하니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그 시간이 엄마들한테 얼마나 좋은데…. 자리만 있으면 당장 일할 수 있는 엄마들 많아.”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집에 올 시간이 된 아이를 데려오면 딱 맞는 시간이 바로 10시부터 3시라는 거다. 모든 주부들이 가장 원하는 시간의 일자리지만, 그 시간대의 일자리는 거의 없다.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솔직히 그런 일자리는 여자들에게 애도 키우고 일도 하고 살림도 하라는 것 아니냐”고 묻자 친구가 한숨을 쉰다. “그치, 맞는 말이지. 그래도 어쩌겠어. 어차피 집안일은 누군가 해야 하는 거고, 애도 키워야 하는데…. 남편은 맨날 늦게 오고, 첫째 학교 가면 돈 들어갈 일도 많아질 텐데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으면 그게 어디야.”         

착잡하긴 하지만 사실이다. 여자 친구들 중에 여전히 일을 하는 경우는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친구들뿐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예외없이 일을 그만뒀거나 기약 없는 휴직 중이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아이를 한 명 더 갖게 돼서, 눈치보여서,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가 아파서 등 개인의 사정은 각기 다르지만 모든 가정의 결론은 같다. 여자가 그만뒀다는 것.

“칸칸마다 한 명씩 성숙한 여자들이 들어 있고, 남자를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그 닭장 안에서 멀쩡한 여자 하나가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오 년씩 십 년씩 매달리고….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깨어나보면 발이 뻣뻣하게 굳어 영영 걸어나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야.” 20여년이 지났지만, 전경린의 소설 <염소를 모는 여자>의 풍경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사회는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단어를 딱지처럼 기혼 여성들에게 붙이고, “너는 이제 ‘경단녀’니까 좀 질이 낮은 일자리에서 일해도 돼”라고 선언하는 느낌이다. ‘경단녀’가 정책용어로까지 자리 잡았는데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 단어로 인해 여성의 ‘경력단절’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일본 정부는 직종·근무시간·근무지역 등이 한정된 대신 정년·임금·복리후생은 일반 정규직과 같은 ‘한정 정사원’이라는 정규직을 확대해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루 5시간, 일주일에 4일과 같은 식으로 시간을 조정해 일하면서도 계약 연장에 대한 불안감 없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시간선택제 일자리’처럼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정부는 이 일자리를 ‘다른 조건은 정규직과 같지만 노동시간만 짧은 일자리’라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급조한 일자리들은 2년 계약직으로 사라졌고, 고용노동부는 신규 채용을 통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경력을 이어갈 만한 일자리 자체가 드문 여성들에게 정규직 여부는 둘째 문제다. 이전의 실패를 거름 삼아 ‘10시부터 3시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통령 집무실 내에는 고용률, 취업자 수, 청년실업률, 창업법인 수, 임금격차, 근로시간 등의 각종 지표가 담긴 일자리 상황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무적인 일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이 일자리 상황판에도 여성들의 일자리와 관련한 지표는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상황판에 경력단절여성 관련 지표와 남녀 임금격차에 대한 지표부터 추가하고, 엄마들이 하루에 4시간이라도 정해진 시간 동안 걱정없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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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들 융도(戎稻) 쌀 옥보다 윤나도록 깨끗이 찧고, 닭국은 깨즙 넣어 부드럽게 끓이고 잉어회에 곁들인 알싸한 겨자장. 부추김치는 자못 매콤하고 미역국은 푸른빛 더욱 감도네. 무는 사철 내내 먹기 좋아 채소 가운데 으뜸이라. 은실처럼 가늘게 채 쳐 상에 올리니 차림새가 조촐하네.” (金堤戎稻飯, 精鑿潤於玉. 鷄瀋荏삼滑, 鯉膾芥醬馥. 䪥葅味稍辣, 海帶羹更綠. 蔓菁食四時. 菜族爲宗祖. 縷切銀絲細, 登盤粲可數.)

길가의 콩잎이 누렇게 타는 삼복, 전라도 장계를 지나던 종4품 장파총이 그 마을 백정집에 저녁을 청한다. 가장과 삼형제가 도축만이 아니라 장사에도 힘써 부를 이룬 집이었다. 그런데 주인은 고명딸 방주를 시켜 앞서 본 저녁을 차리고도 제대로 된 식기가 없어서 부끄러웠다. 도리어 나그네가 아무렇지 않았다. 하늘은 귀천을 가리지 않으니 사발이고 밥통이고 되는 대로 먹자고 했다. 밥상을 물리고는 주인에게 “뜻이 맞으면 모두 친구”라고 말했다. 자신은 하느님이 사람 사이에 계급을 나누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다며 다독였다. 장파총은 실은, 동네 시냇가에서 이 집 딸 방주를 이미 만났다. 나그네에게 물 한 사발 떠 주는 사이에도 엿보이는 이름 모를 소녀의 찬찬함에 단박에 반했다. 다시 이 집에서 방주가 밥상 차리고 내는 모습을 보고는 결심을 굳힌다. 방주를 내 며느리 삼겠다! 김려(金려·1766~1822)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구절마다 놀라운 대목이 깃든 걸작이다. 미완성작이라 장파총과 백정의 정혼 이후는 알 수 없어 안타깝지만.

몰락 양반 출신 장파총이 젊은 날 양양에서 영종도에 이르는 바다를 돌며 호연지기를 키우는 장면 또한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기, 준치, 도다리, 송어, 전복, 숭어, 민어, 명태 어업을 접한 장파총은 거기 깃든 노동과 생태 문제 또한 현대인처럼 감각했다. 그러고는 걱정한다. 하늘이 낸 생명을 마구 잡다가는 어획의 기쁨도 잠깐이고, 우리는 쓸쓸한 처지를 맞닥뜨릴 거라고. 장파총의 청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탁 트인 마음은 자수성가의 밑천이 되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애처로이 여기는 마음, 백정을 혼인 상대로 대할 수 있는 마음으로도 자랐다.

어느 분은 이 작품에서 막 꿈틀거리는 생태주의를, 여성주의를 건져 올리기도 할 테다. 어느 분에게는 조선 후기 어업사가 삼삼할 테다. 그런데 내게는 ‘융도(戎稻)’ 두 자가 뭉클하다. 오랑캐 융, 벼 도. 또는 두 글자 사이에 조를 넣어 융조도(戎早稻)라고도 썼다. 거칠게 요약하면,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 접경을 이룬 추운 데서 나는 벼를 가리킨다. 훈민정음으로는 ‘되오리’ ‘되올리’ ‘되오려’ ‘되올려’ 등으로 써 오랑캐 땅에서 유래한 조생종임을 나타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조생종 벼 품종 획득에 힘을 기울였다. 보리를 먹어치우고, 가을에 본격적으로 벼를 거두기 전, 조생 벼가 식량의 징검다리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냉해를 견디는 품종을 확보한다는 의의도 있었다. 되오리와 함께 거론되는 ‘어름것기’ ‘빙석도(氷析稻)’ ‘빙도’와 같은 품종 기록도 예사롭지 않다. 얼음이 막 풀리는 즈음에 파종 가능한 품종이란 뜻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육종을 통해 새 품종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라는 궁리했다. 1438년 세종 20년 4월4일, 의정부와 세종은 조선 최북단 고을인 여연, 강계, 자성에서 조생벼 볍씨 25석을 확보해 충청, 경상, 전라 삼도에서 시험 재배할 것을 결정한다. 오늘날의 도입육종이다. 노력과 궁리는 15세기 농서인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에 흔적을 남겼고, 조선 후기 기술서에 이어진다. 이를 소담한 문학 작품에서 실제로 확인하며 느끼는 보람이야말로 음식 문헌 읽는 보람이기도 하다.

이게 나라다. 유사 이래 농업은 농민과 개인 독농가와 나라가 손잡고 북돋고 길렀다. 농법과 품종의 혁신, 상황과 제도에 대한 판단 모두 한편으로는 농민이, 한편으로는 당연히 나라가 맡아야 한다. 농민은, 국민은 나라가 농업에서 할 일을 하도록 촉구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발하고 연일 인사가 화제다. 시원하다, 잘했다 하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단 이때에도 시민 사이에 농식품부 인사에 대한 관심을 엿보기는 힘들다. 이게 나라다, 여기에도 제 사람 쓰자고 고심했구나 하는 감동을 농식품부 인사에서 과연 볼 수 있을 것인가. 옛 밥상 기록 한 자락 읽는 동안 나는 갸웃거리며 속이 탄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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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가 있다. <시티홀>이라는 정치코믹로맨스이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의 작가 김은숙이 이례적으로 ‘정치’를 다룬 드라마이기도 하다. 종영한 뒤에도 가끔 다시 꺼내보게 하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데, 아마도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감이 극에 달했을 때 찾는 판타지나 환각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인구 13만명이라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7년 동안 시장실 커피 심부름만 하던 10급 공무원 신미래이다. 전 남친의 빚 때문에 밴댕이 아가씨 대회에 나가고, 시 당국이 상금을 빼돌리려하자 1인 시위를 하며, 결국 시장이 되어 시민을 위한 진정한 ‘시정’을 펼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물론 엘리트 정치인 ‘조국’과의 달콤하고 코믹한 로맨스와 동지애가 중요한 엔진 역할을 한다. 10급 공무원이 작은 도시의 시장이 되어 새로운 정치를 펼치고 조국이라는 국회위원과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물론 판타지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와 웃음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은 이 판타지가 우리 현실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와 부패 위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인주시 원더우먼을 자처한 무소속 후보 신미래는 참모들이 건네준 화려한 공약 대신, 시민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말들을 건넨다. 그녀는 “공약은 이기라고 있는 거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치꾼의 말을 무시한다. 대신 그녀는 “지킬 수 있는 공약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해마다 보도블록을 교체하지 않겠습니다. 정치비자금 안 만들겠습니다. 인사청탁 안 받겠습니다. 이권 개입된 그 어떤 시정도 안 펼치겠습니다. 안 하겠다는 것은 안 하겠습니다. 시민들과 밀고 당기기 안 하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다짐한다.

화려하고 노련한 정치공학과 결별하고 오직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시정을 펼치는 신미래라는 인물을 보면서, 냉소와 한숨만을 안겨주는 현실과의 낙차만큼 환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드라마의 끝에 가면 ‘정당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 정 떨어지고 치떨리는 것, 정기적으로 치사한 짓 하는 것’쯤으로 생각되던 정치의 의미가 그녀의 주장대로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선거가 끝난 지 2주일도 채 안되는 동안, 드라마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법 하나 안 고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 줄 정말 몰랐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이 웃고,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고, 세월호 미수습자 영령이 돌아오고, 4대강 보가 열리고, 투명인간처럼 법문을 넘나들던 검사들이 ‘법 앞’에 서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인데, 이토록 놀랍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비상식의 일상을 살았나’를 절감케 한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새 정부의 행보에 사람의 숨결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명문이라는 5·18 기념사를 글로 다시 읽어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살아 있는 말보다 감동적이지 않았다. 진심과 결기에 찬 말, 가방을 뒤지는 아이와의 눈맞춤, 5·18 유가족을 끌어안는 온기가 문자와 행정시스템, 관료주의를 흔들고 현재의 대한민국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여느 때처럼 숱한 곤경과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분주함에는 좀처럼 꺼지지 않을 촛불의 힘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 여기에 당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어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얼마나 많이 절망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5월의 바람에 밥 딜런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야 비로소 진정한 사람이 되나/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넓은 바다를 날아야/ 모래 위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들이 오가야/ 영원히 멈출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Blowing in the wind>)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지금의 겨우 시작된 이 시작은 미처 이 자리까지 오지 못한 그분들 덕이다. 폴 발레리의 말대로 ‘바람이 분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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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일이 너무 힘들어요, 작업장이 너무 추워요. 목에서 까만 핏덩이가 나와요.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힘들어요. 시너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발이 퉁퉁 부었어요. 못하겠어요. 쉬고 싶어요. 쉬고 싶어요”는 한강의 기적이 찬양되었던 시대에 우리 하늘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던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절규였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72년에 유신체제를 갖추면서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경제발전의 전략으로 삼았다. 공장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경제는 1970년대 내내 연평균 약 8%씩 급속한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사람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 또한 크게 변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생활수준이 오르고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공장에서 가혹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 당시 특히 젊은 여성들의 삶이 변했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촌에서 일하였다면 1970년대부터 많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빠르게 도시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경제발전에 큰 몫을 한 섬유, 의료, 전자산업과 같은 경공업 분야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농촌의 딸들은 공부할 남동생과 오빠를 위해 그리고 집에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도시로, 공장으로 대거 진입하였다. 하지만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폭력적인 근로조건 속에서 순종적이면서도 부지런하게 일하길 요구했다. 한국 여성노동자들은 이 비인간적인 불평등을 모두 삼켜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23개 여성노동단체로 구성된 무급타파행동단이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여성 비정규직 임금차별타파의 날’ 선포식을 하고 있다. 행동단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35.8% 밖에 되지 않는 임금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 격차를 날짜로 환산하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5월11일부터 연말까지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김영민 기자

4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여성의 삶은 어떠한가. 각종 보고서에서 한국의 젠더불평등은 최악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아래인데 여성이 운 좋게 취직했더라도 임금수준은 여전히 남성의 65% 정도밖에 안된다. 남녀 임금격차 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심하고 2위인 에스토니아에 비해서도 그 격차가 한참 크다. 우리나라의 나쁜 일자리에는 여성이 집중되어 있고, 관리자급으로 직위가 올라갈수록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산과 양육기에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비율도 한국이 가장 높다. 여성이 중고령자가 되면 불안정한 일자리로 재진입하거나 다시 부모, 나이든 남편, 손주를 돌보는 무급노동을 한다.

한국 여성이 불평등을 경험하는 것이 능력의 차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성적은 국제적으로 최상위권이다. 이에 더해 한국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독해력 그리고 수리력에서도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국제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한국의 여학생들은 성인이 되면서 불평등종합세트를 차례대로 경험하게 된다. 입사 과정에서, 임금수준과 승진의 기회에서, 출산과 양육기에, 그리고 중고령 여성이 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체념과 순응, 경쟁과 남성화, 분노와 투쟁 중 어떤 선택지가 그나마 나은 답인지 헤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남녀 고용평등,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정부 계획이 수립되고 정책들이 실행되었지만 일자리와 양육의 책임에 대한 불평등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

한 사회의 관습, 규범, 제도와 정책은 서로 결합하여 그 안의 개인들의 행동방식을 구속시켜버리는 효과를 가진다. 오래된 제도들은 한번 결합되면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 매우 파격적인 외부 충격만이 굳게 뿌리내린 불평등에 균열을 가지고 올 수 있다.

새 정부는 하늘의 절반을 받치고 있는 여성들의 평등 실현 없이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성은 다만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기를 낳고 양육하고, 나쁜 일자리를 채워 고용률을 높이고, 남성을 내조하기 위해 하늘 아래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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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알려지자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여들었다. 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슬픔과 공포, 분노의 마음들이 그려졌고, 당신이 바로 나라는 고백, 잊지 않겠다는 다짐,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겠다는 약속 등이 빼곡하게 적혔다.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번져갔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우리에게 그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으로 요동쳤다. 2015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일었던 페미니즘 운동이 드디어 거리로 나섰다. 다양한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담론은 확장되었으며, 페미니즘 시장 역시 형성되었다. 각성하기 시작한 페미니스트들은 촛불광장에도 참여했다. ‘페미존’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깃발이 나부꼈다. “나라 바꾸는 계집, 호모, 가난뱅이, 페미”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로부터 비롯된 한계 역시 존재했다.

한 페미니스트가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추모 공간에까지 찾아와 혐오발화를 서슴지 않았던 한 남성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고 사라졌다. 그는 논쟁을 끝내고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분홍색 마스크였다. 얼굴이 찍혀 신상이 털리거나 조리돌림 당하지 말라는 마음. 많은 여성들이 그 마음에 공감했을 것이다.

지난해 5월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지난 17일 새벽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는 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여기에 그 현실이 놓여있다. 추모조차 안전하지 않은 곳이 바로 우리의 세계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이야기되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다. 우리의 두려움이 과도하다는 말은 아니다. 두려움이 사슬이 된다는 의미다. 얼굴을 가리는 것이 비겁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얼굴을 되찾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얼굴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여성들의 공통 경험, 그 기억이 일상적인 공포라는 사실은 우리의 운동을 절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도 했다. 강력한 피해자 정체성을 바탕으로, 나를 숨어들게 만드는 두려움을 자양분으로 했던 움직임. 그 한계를 뛰어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가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것은 강력하게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 지어진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추모의 시공간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성별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았던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에 가해지는 억압과 부조리와 싸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는 혁명과도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여성들에게는 또다시 두려움을 주입하여 스스로의 활동반경을 줄이고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획일화된 범주 안에 고착되게 했다는 점에서 반동적이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강한 운동을 위해서는 확고한 정체성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런 정체성이란 우리를 다시 그 자리에 가둔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나의 현실을 조건 짓고 있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운동을 추동해가면서, 동시에 장애인, 퀴어, 이주민 등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들과 접속하여 그 경계를 넘는, 일종의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뿌리를 내리면서 이동하기(rooting and shifting).’ 이는 ‘나’의 문제를 기반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능해진다. 이는 또한 나를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를 드러낸 타자와 대면해야 한다는 점에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가 허락한 자리를 ‘발본적’으로 깨치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급진’이다.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범페미네트워크가 주최하는 1주기 추모제의 제목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의 1년은 용기로 채워진 시간들이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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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를 목도해야 했던 작년 어느 날, 문득 대통령의 ‘대’를 구성하는 한자어가 궁금해졌다. 크다는 뜻의 ‘大’와 대신한다는 뜻의 ‘代’ 중 하나일 것 같은데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사전을 찾아보고는 조금 우울해졌다. 사실 짐작은 하면서도 아니길 바랐던 단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한자어로 ‘大統領’이었다. 번역하면 ‘크게 거느리고 다스리다’라는 뜻이 될 것이다.

나는 <대리사회>라는 책을 쓰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대리대통령’으로 규정지었다. 그것은 우선 그가 최순실이라는 인물의 대리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자신의 몸으로 존재하거나, 자신의 언어로 발화하거나, 자신의 사유로서 행동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도 올림머리라는 ‘만들어진 몸’을 하고서야 나타났고, 누군가 써 준 연설문을 그대로 읽으며 ‘타인의 감정과 언어’로만 말했다. 그러나 박근혜가 최순실의 욕망만을 대리해 왔다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어디까지나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 충실했다. 말하자면 시대의 욕망, 그것에 사로잡힌 이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보일 수 있는 여러 추태를 모두 내어보였다.

19대 대선 투표일 전날인 8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펼쳐진 서울 광화문광장에 지지자들이 모여 휴대폰 불빛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다. 권호욱 기자

최순실, 그리고 청문회에 소환된 재벌 총수들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자신들의 대리인간으로 만들어냈다. 그들에게 박근혜는 ‘大통령’이 아닌 자신들을 위한 ‘代통령’이었다. 그러는 동안 돈이 오가고, 말이 오가고, 평범한 국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온갖 특혜가 오고 갔다. 자본과 권력의 욕망에 사로잡힌 존재들이 한 인간을, 그리고 주변의 여러 타인들을 그러한 괴물로 만들었다. 모든 유착 관계를 부인하며 “국민들께 송구스럽습니다”라는 별 의미 없는 말만 반복하던 그들 역시 대리인간이었다. 자신의 몸과 언어와 사유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있음을 청문회에 나와 스스로 증명했다.

박근혜 역시 재임 기간 동안 대리인간들을 무수히 양산해냈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국가와 자기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대통령의 국민’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거리로 나온 일부 지지자들은 대통령과 국가를 동일시했고, 또한 자기 자신을 국가로 믿었다. ‘자신들의 국가’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 나선 그들은 대통령의 천박한 욕망을 대리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그에 더해, 박근혜는 자신의 대리인간이 되기를 거부한 이들의 이름을 적어 나갔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세월호를 추모하는 글을 쓴 소설가를, 상대 후보를 지지한 영화배우를, 시국 선언에 참여한 교수를, 자신의 정권에 비판적 성향을 보인 그 어느 인물들을 ‘관리’해 나갔다. 이처럼 박근혜는 이 사회를 천박한 욕망이 지배하는 대리사회로 만든 대리대통령이었다.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시킨 것은 자신의 몸을 가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자신의 사유로서 행동하는 평범한 국민들이었다. 저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 그 결과 5월의 대선이 치러졌고 문재인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문재인이, ‘大통령’이 아닌 ‘代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대통령은 자본과 권력이나 자기 자신과 주변인의 욕망이 아닌 ‘국민의 욕망’을 대리하는 데 충실해야 한다. 국민을 대리인간으로 만들지 않아야 하고 국민의 대리인간이 될 것을 선언해야 하는 존재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대통령이라면 그래야 한다. 자신의 몸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국민을 위한 몸으로 나타나며,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동시에 국민을 위해 발화하고, 나아가 자신의 철학으로 국민들과 끝없이 소통해야 한다.

문재인은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대리운전기사가 되었다. 조수석에 앉은 국민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자기 자신이나 41.1%가 아닌 모든 국민을 대신해 운전대를 잡은 그가, 조금 더디게 돌아가더라도 올바르고 정의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박근혜와 같은 무면허 대리운전기사가 등장하지 않기를 더욱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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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5월이 되었다. 어릴 때는 5월이 마냥 좋았다. 봄 날씨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마도 기념일들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길가에 연등이 나란히 걸리는 걸 보는 것도 좋았고 어린이날에 가족끼리 놀러 가는 것도 좋았다. 커가면서 5월은 점점 부담스러운 달이 되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날에 해야 할 선물을 고민하는 일부터 갖가지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기꺼이 하고 싶은 일도 있었지만 주변 눈치를 보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도 생겨났다.

공익근무를 갓 마친 2012년 가을, 길거리에서 하는 설문조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항목을 다 기입한 후 뒷장을 펴자 직업을 체크하는 칸이 있었다. 잠시 멍해 있었다. 나는 학생도, 직장인도, 그렇다고 해서 더 이상 공익근무요원도 아니었던 것이다. 옆에 있던 친구가 문화예술인에 체크하라고 자꾸 눈치를 줬지만 내 손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직업은 그것으로 생계유지를 할 수 있어야 했다. 시를 써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나는 끝까지 직업란을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나 자신이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즈음 나는 ‘1년’이란 제목의 시를 썼다. 1년 중 5월에 해당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5월엔 정체성의 혼란이 찾아옵니다/ 근로자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니고/ 어버이도 아니고/ 스승도 아닌 데다/ 성년을 맞이하지도 않은 나는,/ 과연 누구입니까/ 나는 나의 어떤 면을 축하해줄 수 있습니까.” 어릴 때는 기념일들이 많다는 이유로 5월을 좋아했지만, 그 어떤 기념일도 나를 위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문득 서글퍼졌다. 내년 5월에는 자신 있게 직업란에 뭐라도 적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다가도 경기가 어렵다거나 청년실업이 심각하다는 뉴스를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이 왔다. 조기 대선 때문인지 몰라도 예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축하해야 할 일도 많고 챙겨야 할 기념일도 여전하지만, 탄핵정국 이후 처음 맞이하는 선거라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는 눈치다. 사전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수가 1100만명이 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징검다리 연휴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 전국 어느 투표소에서든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어서 투표율이 높았다는 의견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이 투표를 했다는 점이다. 특정 후보에게 유불리함을 떠나서,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권리를 행사했다는 점이다.

투표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또다시 역설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 처음으로 한 표를 행사했을 때 정말이지 기분이 묘했다. 내가 드디어 국민으로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헌법 제1조 2항을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던 순간이었다.

교육제도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휘청댈 수밖에 없었던 수험생 시절, 왜 정작 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없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표가 사표(死票)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투표를 할 수 있다는 권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권리는 누려 마땅한 자격이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어쩌면 그 ‘가능성’ 때문에 계속해서 권리를 행사해왔던 것 같다. 정권 심판이나 경제 발전은 권리 행사 ‘이후’에 찾아오는 것이다.

얼마 전에야 나는 우리나라에 유권자의날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5월10일이 바로 유권자의날이다. 이날은 1948년 5월10일, 우리나라 최초로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선거가 치러진 것을 기리고 나아가 선거와 투표 참여에 대한 중요성과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유권자의날이 2012년 1월에 제정되었다고 하니, 만약 저 사실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1년’의 5월 부분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대선일 다음날, 그러니까 당선자의 윤곽이 드러나는 날이 때마침 올해 유권자의날이다. 우리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날인 셈이다. 투표(投票)는 표를 던진다는 뜻이다. 던진다는 것은 다음날을 향한다는 것이다. 대선일 다음날, 우리 모두 유권자로서 스스로에게 축하를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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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다 합쳐서 두세 시간쯤 될까? 내가 이번 대통령 후보 토론회 및 선거 관련 TV 뉴스를 보는 데 쓴 시간이. 이것을 말하자 눈이 휘둥그레져서 “최서윤씨는 정치에 관심 많은 줄 알았는데….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나?”라고 반문하는 이가 있었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을 봤다는 표정이었고 ‘민주시민’의 책무를 방기하는 자를 검거했다고 선언하는 음색이었다.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인가?

내가 사는 원룸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그러나 이것은 토론회와 TV 보도를 챙겨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열의가 있다면 소셜미디어를 통한 생중계나 다시보기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나 역시 시도한 바다. 그렇게 힘겹게 챙겨본 것은 각자 ‘캐릭터’ 분석을 끝낸 뒤 역할에 몰입해 연기하는 연극과도 같았다. 지금의 한국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논증보다는 비방의 음색과 단정적 표현이 난무하는.

누가 더 북한을 감칠나게 욕하나 대결하고, 그것에 동참하지 않으면 ‘종북’이라 딱지 붙이는 시대착오적인 분위기 역시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성공’했다는 이유로 ‘흙수저’가 노력이 부족한 이들이라 인식하고, ‘귀족노조’ 타령하며, 여성 후보를 가리키며 ‘말로는 못 당하겠다’고 이죽거리고, 동성애자를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막말을 기어코 보태는(‘자기를 찍으면 자유대한민국을 지킨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으면서 성소수자들이 행복할 수 있는 자유는 짓밟아도 되는가?) 특정 후보의 존재는 나로 하여금 2016년 최고의 폭력영화 <아수라>가 그려낸 폭력신보다 수위 높은 신체훼손을 상상하게 만들었고,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걱정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피폐해진 심신을 감내하면서까지 굳이 TV토론회를 보지 않아도 될 또 다른 이유는 일찍이 선택지를 대폭 좁혀뒀기 때문이다. 촛불정국 때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권 창출을 도왔거나 그와 같은 정당에 속했던 이들에게는 표를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낡은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세력, 원내에 의석을 가지지 못한 당 소속 후보들도 제하고 나니 펴져있는 손가락은 두 개였다.

둘 중 한 명이 당선된다고 내가 사는 이 땅이 일순간 ‘헤븐조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특정 인물에 과한 기대를 걸고 크게 실망하는 일을 경계한다. 내가 좀 더 관심 있는 ‘정치’는 스스로의 삶을 증언하고, 동료 시민들과 평등한 토론을 통해 사회를 보는 눈을 학습하며, 변화에 대해 제언하고 요구하는 일이다. 타인의 존재를 함부로 규정하고 배격하는 이들이 주류인 사회에서는 나 역시 몰이해에 기반을 둔 폭력적인 대상화로 고통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TV토론 열심히 보지 않는다고 ‘우민’ 취급했던 그 남자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남을 깔아뭉개면 자신의 지위와 가치가 높아진다는 인식이 만연하다면 착취와 갑질은 정당화될 것이다. 돈 없고 ‘빽’ 없으면 소중하게 일궈온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라면 나는 이 땅에서 평생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할 것이다. 일상의 정치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TV토론과 대선 관련 보도의 홍수는 시민을 정치적 주체로 행동하게 돕기보다 ‘유권자’의 틀에 갇히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 가십뉴스처럼 누가 어떤 스케줄을 소화했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고, ‘스포츠 토토’ 정보라도 제공하듯 승률을 분석하는 것. 유권자들로 하여금 그놈의 ‘정치공학’에 매몰되게 하고, 피아를 가르는 놀음에 몰입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막말이 의견이랍시고 지상파를 통해 널리 전파되는 것은 사회에 크게 해악을 끼치는 일인데, 그렇게 혐오의 언어로 활개친 이의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뉴스 역시 큰 스트레스 요인이다. 나는 집으로 우송된 정책집, 시민단체와 언론사의 정책 요약 기사 및 분석 칼럼만으로도 투표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스스로의 정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더 이상 이번 대선과 관련한 TV토론은 없다. 이제는 시민들끼리 지금의 정치구조와 관련해 일상에서 토론할 차례 아닐까? 나는 대선 결선투표제와 총선에서의 100% 비례대표제에 대한 토론이 시급하다고 느낀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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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봄, 나는 스페인에 있었다. 여자 셋이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무작정 여행을 온 참이었다. “이때쯤 가면 큰 인형들을 잔뜩 태우는 축제가 있는데 그렇게 멋있대!” 그렇게 떠난 여행의 마지막은 바로 발렌시아. 방금 도착한 여행자도 ‘뭔가 있구나’를 단박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축제가 시작된 도시의 분위기는 남달랐다. 라스 파야스(Las Fallas), 일명 ‘불의 축제’를 위해 온 도시 사람들이 1년을 준비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대로, 흩날리는 꽃들, 눈부신 햇살은 기본, 디즈니 만화부터 성경의 한 장면까지 개성 넘치는 거대한 목각 인형들이 위풍당당했다. 사람들이 터트리는 폭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덩달아 흥분한 우리는 인형을 찾아 낯선 도시의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그리고 축제 마지막 날, 거리의 인형들에 하나씩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전통에 따라 단 하나의 인형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인형들은 모두 불사르기 때문이다. 지나간 나쁜 일들을 태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란다. 공들여 만든 인형들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대한 불구경 앞에서 순식간에 잊혔다.

일상이 전혀 다른 질감의 공기로 채워지는 느낌, 그야말로 축제라는 특별한 자장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자동차만 지나다니던 대로를 막고, 사람들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노래를 부르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분명히 익숙한 공간인데도 어쩐지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 그때야말로 축제다. 무대가 아니라 일상의 공간에서 축제가 열릴 때, 관람객과 참여자의 경계가 없을 때 축제의 비일상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촛불이 타오르던 지난겨울의 많은 토요일들이 바로 그랬으니까. 도심 한복판의 왕복 16차로 도로를 평화롭게 돌아다니던 사람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던 공기는 그때 그 축제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발렌시아 ‘불의 축제’ 공기와는 다른 종류의 질감이다. 스페인의 공기가 햇살과 ‘뜨거움’과 ‘열광’ 자체라면, 서울의 공기는 밤의 서늘함과 ‘분노’에 ‘이런 게 가능하구나’란 놀라움이 뒤섞인 그 무엇이었다. 청소년부터 초로의 노인까지 뒤섞인 군중 속에서 누군가 “박근혜”를 외치면 “퇴진하라”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고, “토요일은 쉬고 싶다”처럼 재미있는 구호를 외치면 키득거리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자유로움과 느슨한 연대! 유난했던 지난겨울의 추위에 코가 빨개지고 감각이 둔화된 와중에도 그 독특한 질감의 공기가 여전히 생생한 것은 일상의 공간이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비일상의 공간으로 바뀌는 드문 경험이었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만들어낸 ‘장미 대선’이 딱 일주일 남았다. 광장을 밝히던 촛불들의 선택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10%도 되지 않던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2위인 안철수 후보와의 차이를 좁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방조자였던 ‘자유한국당’의 후보인 그가 반성은커녕 대통령에 당선되면 “박근혜를 사면하겠다”고 외친다. 지난 토요일,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광장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19대 대선은 촛불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해 치러지는 초유의 ‘보궐선거’다. 투표 종료 시간이 오후 6시가 아니라 8시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기 시작하면서 이 선거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그새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스페인 불의 축제는 1년 후에 다시 열리지만, 한국에서 선택의 시간은 5년 이후에나 다시 돌아온다. 불의 축제에서 최후에 선택된 단 1개의 인형만을 박물관에 영구히 보관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번에 선택한 후보는 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역사에 영원히 남을 테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축제 불구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촛불혁명’이라는 밀도 높은 공동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인형을 태운 불은 축제와 함께 꺼졌지만, 서울의 밤거리를 밝혔던 축제 같았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는지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축제를 앞두고 다시 생각해볼 때다. 딱 일주일 남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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