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를 위한 민담은 없다. 어른들은 전해오는 이야기 속에서 원초적인 폭력과 성을 할 수 있는 한 순치한 뒤 듣기와 말하기 교육에, 또는 즐거운 놀이용으로 활용할 뿐이다.

어린이를 위한 우화도 없다. 인간 사회를 동물에 빗대 꼬집은 이야기가 우화다. 인간 사회와 세상의 인심을 곧이곧대로 털어놓았다가는 어린이가 견딜 수 없는 충격을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른이라면 이야기의 너머를 보아야 할 터이다. 민담의 끔찍함을 많이 지닌 우화로 <토끼전>이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용왕의 발병이다. 용왕은 성적인 향락과 술에 빠져 몇날 며칠을 내리 놀다가 덜컥 죽을병에 걸린다. 용왕이 평소 굽신대던 고위 관리들에게 자신을 살릴 방법을 물었지만 이런 소리나 할 뿐이다. “어쩌나?” “어쩐담!” “좋은 수 있나?” “별수가 있나!” 그리고 다른 얘기는 다 아는 얘기 너머에 있다.

“별수가 있나”가 전부인 한림학사 깔따구, 간의대부 모치는 각각 이부상서 농어, 병부상서의 자식이다. 무능한 자들이 아비 덕분에 그 높은 벼슬을 차지하고 있는 용궁이다. 아무 의견이 없으므로 적이 없는 쏘가리가 용왕의 자문역이었다. 대대로 6품 벼슬을 넘지 못한 자라는 미치도록 출세하고 싶었다. 고래도 벌떡게도 메기도 도미도 못 오를 길에 기어코 자라가 나선 데에는 이번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란 간절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간절해서 뭍에 오른 자라는 토끼의 자취를 쫓다가 범이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산속의 회의를 엿보게 된다.

산속 회의는 용궁에서 열린 어전회의와 닮은 데가 많았다. 회의는 노루, 너구리, 멧돼지의 나이 다툼으로 처음부터 엉망이었다.

사람이 농토를 넓히느라 개간이 이어져 산속이 잠식되니 살 곳이 없다고, 나날이 사냥이 극성이니 살길을 찾자고 회의가 열렸는데, 그 개시가 연장자 다툼이었다. 간신히 진정하고 나서 사냥꾼도 사냥꾼이지만 사냥개부터 해치우자는 보잘것없는 짐승의 아우성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산속의 왕 범은 꼬리를 내렸다. “사냥개 뒤에는 일등 포수가 있다. 잘못 건드렸다가 포수의 총에서 번쩍 불꽃이 튀는 순간 내 신세가 어찌 되겠는가?” 그러고도 간식은 필요했다. 범이 허기질 무렵 여우가 다람쥐가 모아 놓은 밤과 도토리를 들추었다.

다람쥐는 여우한테 대들 완력도 용기도 없었다. 다람쥐는 분풀이로 저보다 못한 쥐를 잡았다. 쥐가 모아 둔 양식을 털어 바쳤다. 그러나 범은 고기가 먹고 싶었다. 다시 여우가 나섰다. “멧돼지 새끼 큰놈이 사람 시장에 나가면 열 냥짜리입니다. 멧돼지 새끼 팔아 열 냥어치 맛난 거 사 드십시오.”

농장을 지배하는 동물이 힘없는 동포 동물을 인간에게 팔아먹는 장면이 나오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방불하다. 멧돼지가 땅바닥에 박힌 사금파리를 입에 넣고 으득으득 씹으며 어쩔 줄을 모르는데 기어코 여우가 한마디 덧붙인다. “나처럼 세상 살면 아무 걱정 없지. 어디를 가도 제일 힘센 놈 비위만 맞추면 일평생 편치. 남한테 거저 묻어가지.”

금수저 깔따구, 모치 대신에 가 본 적도 없는 뭍에서 본 적도 없는 토끼를 쫓는 것은 신분의 원한을 품은 자라였다. 아비한테 물려받은 흙수저를 입에 문 자라였다. 엉망인 산속에서 다람쥐는 저만 못한 쥐에게 제 억울함을 넘겨씌웠다. 산중의 임금이라지만 사냥꾼 무서워 사냥개를 못 쫓는 범에게, 멧돼지는 자식을 빼앗기고도 대들지 않거나 대들지 못했다. 제게 엄니가 있음을 잊고 사는 모양이다. 이 모습을 비웃으며 악마적인 쾌감을 느끼는 하수인이 존재한다. 누구보다 얄밉고, 누구보다 밉살맞다.

뱅 돌아 오늘이다. 뱅 돌아 우리 앞이다.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의 “밥하는 아줌마” 망언을 옹호하는 단체의 기자회견이 같은 당 장정숙 의원의 주선으로 열렸단다. 용왕이나 범을 염두에 둔 기자회견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 자리에 낀 분 가운데 인간세계에서 깔따구나 모치 같은 복을 누리고 사는 분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자리에서 “아줌마가 어때서”가 울려 퍼진 모양이다. 여우는 아주 분명히 보인다. 산속 회의는 곰의 한마디로 닫혔다. 곰은 이렇게 외쳤다. “여우 놈의 웃음소리 뼈 저려 못 듣겠다. 그만 집어치우자.”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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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고하신 문학평론가 천이두 선생님을 글로만 뵈었다. 소설가 손창섭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준비할 때였는데, 그의 평문을 읽고서는 예리한 비평 안목과 해박한 서구문학이론을 한국적 문맥에서 풀어놓는 솜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변변한 번역물 하나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막스 셸러며 도스토옙스키, 앙리 바리뷔스 같은 서구 사상가나 작가들을 섭렵하셨을까. 물론 일본판본이었을 테지만, 우리 시대 지평보다 더 넓은 세계문학사적 지평에서 한국문학을 논하는 선생님의 글이 문학청년에게 중요한 자극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남도에 내려와 선생님이 머물렀던 캠퍼스를 오가며 알게 된 것은 또 다른 선생님의 면모였다. 그는 당대 문학작품을 부지런히 읽고 논하는 실천적인 문학평론가일 뿐 아니라, 그가 발 딛고 있는 토착성에 대해 누구보다 애정을 가지고 탐구한 국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고유한 미의식을 연구한 <한의 구조 연구>의 저자이자 판소리의 전설인 <판소리 명창 임방울>을 저술하신 분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이들 저서에서 ‘한’이 단순히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의 소산이 ‘한’(르상티망)이 아니라 ‘삭임’이라는 내적 수련과 ‘원’(願)이라는 긍정적 가치를 지니는 것이며, 판소리의 ‘시김새’ ‘이면’ ‘그늘’ ‘소극적 수동성’과 함께 있는 중요한 미학적, 윤리적 가치임을 강조한 바 있다. ‘한’에 대한 의식과 강조는 그가 ‘정읍사’ 이후 한국 서정시와 <토지>와 같은 대하소설에서 ‘한’의 가락과 풀이를 읽어낼 때 독보적으로 빛을 발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고 천이두 선생을 민족주의자로 볼 수도 있으나 글을 읽다보면 그의 ‘한’에 대한 천착과 후속 작업이 거창한 이념의 소산이 아니라 투철한 토착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안의 이매창과 가람 이병기, 서정주의 글에 깃든 ‘호남의 사무치게 구성진 가락’을 적극적으로 읽어내고 ‘춘향가’와 ‘흥보가’에 깃든 전라도의 맛과 멋을 미학적으로 설파해낸 것도 이러한 토착주의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지난 11일 그의 영결식에 미처 가보지 못한 나는 다음날 연구실에서 색 바랜 그의 평론집을 꺼내들었다. 그의 비평 궤적을 더듬다가 문득 그의 등단작인 <인간 속성과 모럴>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 도서관으로 향했고, 내친김에 혼자 하는 추도식이라는 요량으로, 어두컴컴한 지하서고에 들어가 당시 발표지면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마땅히 실려 있어야 할 <현대문학> 1958년 11월호에 그의 글만 정확히 찢겨져 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부재하는 ‘인간속성과 모럴’이라니. 그날 종일 나는 이 부재하는 지면을 상상하는 것으로 보냈다. 아마도 자기본위적인 인간의 본성은 모럴이라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는 요지쯤으로 정리해둘 수도 있겠으나, 이 당위는 너무 단순하다. 더군다나 ‘보편적 가치판단의 기준을 간직하되 완전한 도그마에 떨어지지 않으며, 투철한 지도이념을 제시하되 인습적인 아나크로니즘(시대착오)이 떨어지지 않는 비평가’이기를 주문하면서도 그것이 불가능한 꿈임을, 그 각각의 요소들이 ‘상호보완의 관계에 있다기보다는 숙명적으로 상호배반의 관계’에 있음을 성찰하고 있던 분이 아니었던가.

또한 서구근대문학에 한국문학을 비춰보다가도 누구보다도 이 땅의 굴곡진 미학에 신명나 하셨던 분이 아니었던가. 아마도 ‘인간속성과 모럴’은 굳어진 도식이라기보다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항구적으로 변하는 인간속성과 모럴을 의미하는 것일 테고, 이 변전의 지점과 그 둘 사이의 간극을 사유하는 것이 비평가의 임무라는 화두쯤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느 독일작가는 이런 글을 남겼다. ‘화해할 수 있지만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있지만 이해할 수는 없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잊을 수는 없다.’ 문학과 비평은 인간의 저러한 삶의 밑자리를 살피는 일이고 이 간극에 깃든 수많은 결들을 가늠하는 일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단순히 당위로서 주어진 모럴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형용할 수 없는 존재의 구체적 영토가 있다. 그 대지 위에 서면 위 글은 때론 뒤집어지기도 한다. “인간은 용서할 수 없지만 화해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지만 용서할 수 있고, 잊을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떤 불합리와 이면, 오류들은 한편 놀라운 기적이기도 하다. ‘완벽히 이해할 수 없지만,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삶의 밑자리에서 그늘과 삭임을 보는 것, 그것은 고 천이두 선생님이 곱게 닦아놓으신 ‘한’의 현재성일 것이다. 큰 자취를 남기고 먼 길 떠나신 천이두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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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달 30일 아침밥을 먹으며 그날 학교급식은 나오는지, 선생님이 특별히 말씀해주신 것은 없는지 딸아이에게 물었다. 딸 말이 선생님이 따로 설명해주신 것은 없대서 나는 전학 오기 전 친했던 친구에게 연락해 거기는 오늘 급식이 나오는지 한번 물어보라 했다. “엄마, 수박이가 오늘 급식 대신 소보로빵이랑 요구르트 먹는대. 오늘 무슨 날이야”라는 딸의 물음에 나는 “힘들게 너희 밥해주시는 분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해달라고, 그 목소리를 좀 들어달라고 파업하는 날이야”라고 설명해줬다. 고개를 끄덕하더니 딸은 이내 신나게 이전에 다니던 학교급식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얘기하면서 우리 동네 최고였다고 자랑하듯 회상했다.

지난달 29~30일은 민주노총 사회적 총파업의 일환으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파업했다. 급식조리사, 보조교사 등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정규직과의 차별 해소를 요구했다. 현재 학교 비정규직 규모는 전체 교직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확대되었고, 그 규모는 한국 공공부문 내에서도 가장 크다. 이들 중 상당수는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의 열악한 노동환경, 학교 내 차별과 배제 등을 경험하고 있다.

학교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거 생기기 시작한 배경에는 경제위기 이후 본격화된 유연화 물결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면서 집에서 이루어지던 ‘밥하기’와 ‘돌보기’의 사회화에 대한 욕구가 증가했다. 김대중 정부 시기 초·중학교에 급식이 도입되면서 조리종사원이 늘어났고, 교무보조원뿐만 아니라 특별활동 강사 등 학교 비정규직은 지속적으로 늘어왔다. 2010년 이후에는 초등 돌봄교실이 확대되면서 많은 돌봄교사들이 시간제로 일하게 됐다.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의 밥을 지어주고 돌봐주는 사람들 대부분은 불안정하게 일하는 학교 비정규직이다.

이번 파업과 관련해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언주 의원은 본인 또한 아이를 둔 엄마로서 파업이 아이들의 밥 먹을 권리를 해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인건비가 올라가면 결과적으로 급식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급식 조리종사원을 두고 ‘간호조무사보다도 못한’ ‘요양사 수준의 그냥 밥하는 아줌마’라고 하고, 파업하는 노동자들은 ‘나쁜 사람들, 미친×’라고 말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그의 발언들은 여러 결에서 매우 참담하다. 그가 개인적으로 노동3권의 보장을 얼마나 진지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어떠한 서열체계를 가지고 특정 업종을 폄하하고 있는지는 더 이상 관심 가지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그가 아이를 둔 엄마이자 일하는 여성으로서 본인의 아이를 돌봐주고 밥을 지어주는 노동자들에 대해 이토록 무심할 수 있을까, 그리고 ‘밥하는 아줌마’는 곧 미숙련이라는 한국 사회의 남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는 것이 참담하다. 그도 한국 사회에 아이를 둔 수많은 부모와 수많은 일하는 여성(그리고 남성) 중 한 명일 것이다.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의 삶이 불안정해질지라도 내 아이의 밥 먹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고, 아줌마의 노동은 무시해도 되는 쉬운 일이라는 ‘이언주식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사와 돌봄의 노동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해내는 행위로 여겨져 오랫동안 ‘비노동’으로 치부돼 왔다. 남성주의 이데올로기는 돌보기, 밥하기 등을 ‘아줌마 노동’으로 간주하고 그 숙련 정도를 구체적인 검증 과정도 없이 평가절하했다. 사적 영역에서 여성이 담당해온 일들이 공적 영역으로 이전되었지만 뿌리 깊은 남성주의 이데올로기가 줄기는커녕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었다.

여러 개의 색실이 엮여서 한 사회의 풍경이 그려지듯 좋으나 싫으나 우리는 서로가 연결돼 있다. 아이들이 먹는 밥이 누군가의 삶을 빼앗은 덕분이라면 그 밥은 맛있으면 안된다. 아이들을 키우는 학부모들과 우리의 아이들은 불편함을 계기로 공존의 방안을 같이 고민해야 한다. 용기 내어 파업에 참여하고 우리로 하여금 고민하게 해준 ‘밥하는 아줌마’들에게 감사하다.

이승윤 |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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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지난 19대 대선 기간 중 있었던 일이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물었다. “군 동성애는 국방 전력을 약화시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에 문 후보는 “예,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홍 후보는 “그래서 동성애에 반대하십니까?”라고 재차 물었고, 문 후보는 “반대하지요”라고 확답했다.

당시는 대한민국 국군이 위헌 요소가 다분한 군형법 92조 6항에 따라 그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A대위를 구속 수감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군대 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말은 국가에 의한 부당한 억압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국민에 대한 차별 및 국가폭력을 승인하는 것이었다. 대선 이후 A대위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군대 위문 공연에는 소위 ‘2부’라는 것이 있다. 이성애자 남성들을 위한 성적 코드와 장치로 가득 찬 시간이다. 그리고 이는 군인의 사기진작을 위한 필수요소라고들 한다. 여기에는 남성은 무조건 이성애자이며, 그 성욕은 본능이자 어떤 식으로든 해소되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이성애자들의 성욕은 그렇게도 중요해서 국가가 나서서 여성의 ‘헐벗은 이미지’를 제공하는 반면 동성애는 형법으로 다스리는 것은 왜일까?

그 이면에는 동성애 혐오만큼이나 여성혐오가 놓여있다. “군력을 약화시킨다”는 말은 남성 간의 성관계가 남성을 ‘여성화시킨다’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향한 성욕은 남성성의 상징이고, 남성을 향한 성욕은 범죄가 되는 상황. 이는 이성애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의 착종이 아니고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태도야말로 여군에 대한 남군의 성폭력이 솜방망이 처벌로 그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사문화되었던 군형법 92조 6항이 갑자기 법적 효력을 발동하게 된 맥락 역시 살펴봐야 한다. 이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보수화되면서 성보수화 역시 진행되었던 것과 그 궤를 함께한다.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는 와중에 기독교 우파를 중심으로 본격화된 동성애에 대한 공격은 성보수화를 견인했다.

우경화와 성적 보수화가 함께 가는 이유는 명백하다. 대한민국에서 성(聖)스러운 존재인 ‘국민’이란 기실 성(性)중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성(性)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건강한 국가’를 오염시키는 ‘불온하고 더러운 것’은 남성중심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인 기득권의 성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구성된다. 그리하여 이성애자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성(聖)스러운 국민이, 동성애자 군인은 군력을 위협하는 성(性)스러운 범죄자가 된다. (올해 출간된 <‘성’스러운 국민>이라는 책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렇게 홍준표 후보 역시 문재인 후보에게 구닥다리 ‘빨갱이’ 프레임을 덧씌우고자 할 때 “동성애 찬성 여부”로 사상검증을 시도할 수 있었다. 2년 전 한 공영방송 이사가 입 밖으로 냈던 “동성애는 더러운 좌파”라는 말은 홍 후보의 질문과 공명한다.

성적 영역 이외의 부분에서 진행되었던 ‘우클릭’은 이제 박근혜 정권 퇴진과 함께 잠시 주춤해졌다. 그리고 일종의 상징적인 보루로 성(性)적/성(聖)적인 영역을 둘러싼 전면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싸움에서 결국 누가 이길지는 자명하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소수자들이 시민권을 얻고 평등을 쟁취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확장이기 때문이다.

2017년 7월15일. 서울광장에서 “나중은 없다, 지금 우리가 바꾼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제18회 퀴어 문화축제가 열린다. 보수 기독교는 이미 ‘음란과 타락’을 내세우며 이에 대한 마타도어를 시작했다. ‘음란함’이란 누가 규정하고, 언제 꺼내들며, 어떻게 사용하는가?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견고한 구습을 타파하고 평등과 자유를 불러오는 것이 음란함이라면, 이번 주말, 광장에서 마음껏 음란하라. 그것은 타락이 아니라 진보임을, 닥쳐온 지옥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장임을 만끽하실 수 있을 것이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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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비롯한 대리운전기사들이 손님에게 바라는 몇 가지 ‘매너’가 있다. 대단한 것은 아니고 기사가 전화를 하면 받아달라는 것, 차의 비상등을 켜고 기다려달라는 것 정도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리운전이라는 노동의 원활한 이행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행위만 언급하자면 그렇다.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뿐 아니라 노동을 관리하고 제공받는 사용자도 어떤 ‘의무’를 지는 것이다. 대리운전을 이용하는 순간부터는 평범한 우리들 역시 일종의 사용자가 되고, 곁에 앉은 노동자에게 지켜야 할 당연한 예의가 생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어느 손님은 나에게 “기사님, 뛰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괜찮습니다 :)” 하는 문자를 먼저 보내왔다. 나는 그때 그를 만나기 위해 1㎞ 남짓 떨어진 수서역 주차장으로 뛰어가다 덕분에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답신을 하자 “저는 지하주차장 2층 출구 근처에 있고 비상등을 켜놓았어요” 하는 문자가 곧 다시 왔다. 그에게 가는 동안,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편했다. 그의 위치를 찾느라 넓은 주차장을 헤매지 않아도 될 것이고, 늦게 왔다는 질책과 마주하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가 나의 노동(콜)을 취소하지 않을까 가슴 졸일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서역 지하주차장 2층에는 과연 비상등을 켜둔 차가 한 대 있었다. 30대 여성으로 보이는 손님은 웃으며 나를 맞이했고, 주차장 근처의 편의점에 들러달라더니 커피를 두 캔 사와서 나에게 하나를 내밀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환대해 주시는 손님은 처음이에요, 라고 하자 그는 “대리기사님들께 모두가 이렇게 하지 않나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전화를 받지 않아 출발지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게 만들고, 빨리 오지 않으면 콜을 취소하겠다고 퉁명스럽게 말하고, 도착하고도 어디 숨어 있는지 한참을 찾아 헤매게 만드는 이들이 많다. 특히 여러 업체에 전화하고는 먼저 오는 기사와 함께 떠나기도 한다. 수서역의 그는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호의를 베푼 것이다. 그가 종종 떠오를 때마다, 그가 가진 노동과 노동자를 대하는 삶의 태도에 감사와 존경을 함께 보낸다.

그 이후, 그와 같은 손님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대신 ‘손님이 이렇게 해주면 좋겠다’ 하는 순간이 많았다. 타인의 운전석, 을의 자리에서 보는 한 인간의 행동에는 무수한 균열이 있었고, 나는 그것을 보며 상처받고 가끔은 그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대리운전을 이용할 일이 생겼다. <대리사회>의 저자로 사내 독서 동아리 모임에 초대 받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의 회사 근처에서 맥주 한잔을 했다. 집에 돌아가기 위해 대리운전 콜을 하고는 주차장에서 기사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나를 배웅하겠다는 몇몇과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약 10분이 지나고, 기사가 도착했다. 그는 나에게 “전화를 받지 않으셔서 와야 하는지 걱정했습니다” 하고 말했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3통의 부재중 전화가 선명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말하자 기사는 나에게 “차는 어디에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차의 비상등도 켜놓지 않고 주차장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 순간, 부끄러움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몰려왔다.

대리운전기사에서 손님의 입장이 되자마자, ‘내가 저 입장이라면 이렇게 해야겠다’ 하고 상상하던 것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을의 자리에서는 선명하게 보이던 타인의 균열들이, 잠시 갑의 자리에 앉았다는 이유로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고 어디에 있다는 표시도 하지 않는 동안, 내게 오는 노동자는 불안하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마주한 그는 내색하지 않고 웃었다. 내가 손님들 앞에서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그도 어색하게 한 번 웃고는 타인의 운전석에 앉았다. 거기에 어제의 내가 있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갑과 을의 자리를 넘나드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자신이 당한 갑질에 쉽게 분노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 자리만 벗어나면 쉽게 갑질의 가해자가 되고 만다. 당장 일상의 자리에서 잠시 이탈하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된다. 그렇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본 타인의 균열을 있는 그대로 오래 기억해야 한다. 달라진 자리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정확히는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을 상상할 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무수한 타인의 운전석들이 조금은 ‘타인’이라는 단어를 벗을 수 있을 것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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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해결하러 패스트푸드 음식점에 들어갔다. 햄버거를 먹으며 귀에 리시버를 꽂고 음악을 들으려는 찰나, 옆 테이블에서 생경한 단어가 들려왔다. “걔는 진짜 낄끼빠빠 못하지 않냐?” 순간, 귀가 번쩍 뜨였다. 낄끼빠빠?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난생처음 듣는 단어였다. “끼리끼리”도 아니었고 “뛰뛰빵빵”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옆 테이블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메모장에 “낄끼빠빠?”라고 적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테이블에서는 ‘헬조선’처럼 친숙한 단어부터 ‘번달번줌’이나 ‘어덕행덕’처럼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도통 뜻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신조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조어가 온라인상에서만 쓰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을 육성으로 들으니 묘한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낄끼빠빠와 번달번줌, 그리고 어덕행덕이 무슨 뜻인지 찾아보았다. 낄끼빠빠는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의 줄임말이었다. 자신의 사생활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 동시에 과도한 개입을 ‘나대는 것’으로 바라보는 현세대의 특징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단어인 셈이다. 번달번줌은 “번호 달라고 하면 번호 줌?”이라는 뜻이었다.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무턱대고 다가가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도 걸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복잡한 심경이 저 신조어에 담겨 있었다. ‘적극적인 소심함’ 같은 형용모순 말이다. 어덕행덕은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는 뜻이었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하는 것을 일컫는 신조어다. 어덕행덕은 신조어가 또 다른 신조어로 변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덕질에 대한 시선이 ‘외골수’에서 ‘개인의 분명한 기호나 취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친김에 온라인상에서 ‘신조어 능력 평가’라는 것을 해보았다. 총 스무 개의 신조어가 제시되었는데 내가 아는 거라곤 고작 여섯 개뿐이었다. 개중 어떤 것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뜻풀이를 보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도 있었지만,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것도 여러 개였다.

별걸 다 줄여 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기성세대와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아 마음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대개 신조어들은 신문이나 뉴스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주로 학교나 학원에서, 카페나 길거리에서 사용된다. 주변에 귀를 기울이고 살지 않으면 도통 알 수 없는 말들, 나와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감히 예상할 수 없는 말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노트를 펴고 그 말들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단어들을 적다가 이를 단순히 새롭게 나타났다가 곧 사라질 말이나 은어로 취급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조어의 대부분은 줄임말이다. 이를 언어의 간편한 유통 차원으로 축소 해석해서는 안된다. 신조어를 즐겨 쓰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 그러니까 기성세대와의 분리를 꿈꾸는 것이다. 개저씨들은 스스로가 개저씨인 것을 모른다. 높은 청년 실업률로 인해 희망도 의욕도 없이 무기력해진 청년들을 빗댄 ‘달관세대’라는 말을 기성세대는 앞날 걱정은 하지 않고 흥청망청하는 세대라는 말로 해석할지도 모를 일이다.

새로 생겨난 말들은 확실히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기 때문에, 신조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어서 낄낄거리고 재치 있어서 무릎을 탁 치게 되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뜨끔하다. 왜 이런 조어가 생겨났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신조어의 뜻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이유다.

신조어를 정리하는 내내 유독 가슴팍을 두드리는 것도 금턴, 재포자, 청년실신 같은 단어들이었다. “금(金)처럼 소중한 인턴”을 뜻하는 ‘금턴’이라는 신조어는 정규직 전환 여부를 떠나 일자리를 얻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내준다. “직장을 그만둔 뒤 재취업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을 가리키는 ‘재포자’와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뜻의 ‘청년실신’은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가 지르는 비명 같았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를 줄여서 만든 “복세편살”이라는 단어는 자조적으로 들리기까지 했다. 신조어는 새로 만든 말이라는 뜻이다. 새 정부의 청년 일자리 정책이 새로운 직업을 많이 만들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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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없는 다세대주택 최상층으로 이사했다! 평화롭다. 옆집 개새끼만 짖지 않아준다면….” 내 인스타그램 계정에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여러 댓글이 달렸고 그중에는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내용도 있었다. 가장 불쾌했던 것은 모르는 사람이 툭 하고 남긴 것. “개도 하나의 생명체인데… 새끼라니… 휴.”

첫째로 난 저 댓글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헷갈렸다. 아마도 큰 고민 없이 남겼을 댓글의 의중을 헤아리며 내 시간과 감정을 소모해야 하는 상황이 불쾌했다. 둘째, 그는 생명체에게 ‘새끼’라고 말하면 안된다는 명제를 전제한 것으로 보이는데, 동의할 수 없다.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조부모가 오랜만에 보는 손주에게 “아이고 내 새끼”라고 말하는 것은 가족의 정과 환대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한 클리셰다. 또한 (이참에 살짝 홍보하자면) 내가 청년 당사자로서 참여한, 청년 이슈를 다루는 시선에 대해 문제제기한 책의 제목은 <미운청년새끼>다. 인간도 생명체인데 새끼라는 말을 잘도 붙여왔다. 셋째, 어떤 표현을 최대한 악의적으로 해석하며, 그것이 나오게 된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말을 보태는 것 역시 폭력이다.

옆집 개가 내가 현관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짖어대는 소리는 총성을 떠올리게 한다. 옆집 개가 현관에 바짝 붙어 나를 향해 적대적으로 짖어대는 일의 반복은 집 밖에 나가기 전 나를 번번이 머뭇거리게 만든다. 집에 들어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어느 날, 옆집 개의 맹렬한 짖음에 심장에 무리가 왔고, 나도 사족보행하며 똑같이 짖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울부짖다시피 옆집 문을 두드리며 호소했다. “개 좀 안 짖게 해주세요! 집 나갈 때, 들어올 때 매번 깜짝깜짝 놀라고 스트레스 받습니다!” 옆집 현관문 안에서 “죄송합니다…”라고 가냘픈 목소리가 들려와 마음이 누그러지고 미안함마저 느꼈지만 그것도 잠시, 다음날 개는 또 짖었고 나는 또 격분했다.

옆집 개는 가수가 되고 싶은 걸까? 어느 날 새벽에는 인근 건물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다른 개와 고양이와 함께 웅장한 삼중창을 수시간 들려주었다. 귀마개 착용도 소용없었다. 불쾌한 시각자극은 쉽게 차단할 수 있고(눈 감고 고개 돌리면 그만), 후각 자극에는 금방 둔감해지는 반면, 청각 자극은 방어하기 쉽지 않고 쉽사리 둔감해지지도 않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런 환경에서 개를 키우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 싶은 생각에 이른다. 내가 사는 집은 5.4평이다. 호별로 평형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건물 전체 크기와 가구 수를 고려할 때 옆집이 아무리 넓다 해도 10평은 되지 않을 것이다. 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진 적 없는 것으로 보아 좀처럼 산책도 시키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개라는 종의 특성상 많이 갑갑할 것이다. 동물을 가족으로 등록하기 위해 일정 이상의 거주 공간 크기가 담보돼야 하고, 인간들은 필수적으로 교육을 이수한 뒤 자격시험을 치러야 한다는 독일의 사례를 떠올려 본다. 한국도 도입이 시급하다.

개소리로 고통 받아도 취할 수 있는 공적 조치가 부족하다는 점도 문제다. 녹음으로 증거자료를 확보해 민원 어플로 문제 제기를 해도 권고 조치에 그칠 때가 많고, 그것마저 같은 건물에 살 때만 유효하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원룸촌에서 바로 앞 건물 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도 뭘 할 수가 없다는 무력감. 민사 소송의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걸까.

계속 고민하다 보니 좁은 평형 주택을 부실한 방음 마감으로 지은 시공업체, 건물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허용한 공권력, 한 평의 땅을 독점하기 위해 너무나 많은 비용을 치러야 하는 서울의 미친 부동산 가격에까지 문제의식이 미친다. 그 점을 고려하면 옆집 세입자에게 일종의 동지애를 느끼지만, 그래도 그 개는 너무 날뛴다. 동물을 도시에서, 좁은 공간에서 키운다는 것은 동물에 대한 책임감에 더해, 이웃에 대한 책임감까지 요구하는 일이 아닐까. 당신이 개의 체온을 느끼고 위로 받으며 사랑스러운 얼굴을 쓰다듬는 동안 당신 이웃은 미쳐가고 있다고요!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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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나는 한 철거공사 현장 앞에 서 있었다. 1912년 일본인이 설립한 최초의 비누공장인 애경사가 있던 자리라고 했다. 포클레인의 삽질은 거세게 항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우렁차게 계속됐다. 공사명은 동화마을 공영주차장 조성공사. 바로 전날 이 오래된 건물을 부수고 주차장을 짓는다는 소식에 지역사회의 반발이 이어졌고, 중구청과 협의해 공사를 멈춘다는 소식을 들은 터였다. 막상 현장에 와보니 철거는 진행 중이었고, 포클레인의 삽날이 지나갈 때마다 와르르 벽이 무너져나갔다. 3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건물 외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잔해만 남았다. 허무한 마음으로 관광버스들이 점령한 도로를 건너자 분위기가 딴판이다. 평일 오후인데도 송월동 동화마을은 색색의 머리핀을 꽂은 채로 군것질 거리를 하나씩 입에 물고 셀카봉 사진 삼매경에 빠진 관광객들로 붐볐다. ‘이 사람들 편하게 주차할 수 있게 만든다고 저 건물을 부쉈단 말이지….’ 폭삭 무너진 오래된 건물에서 뽀얗게 피어오르던 먼지와 알록달록한 동화마을의 풍경이 겹쳐지면서 괜히 관광객들이 미워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6월, 모차르트의 나라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갔다. 첫날부터 국립 오페라극장 앞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상영 중인 오페라가 우리를 맞았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이렇게 야외에서 무료로 실황 중계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역시 음악의 도시는 달라.” 감탄하던 우리에게도 며칠이 지나자 그 풍경은 일상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번화가 중의 번화가, 빈을 찾은 사람이라면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곳에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으니 호기심이 동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다. 결국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표를 사서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어 오페라를 관람했다. 그랬다, 오스트리아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몇 번이든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공연장 접근성도 좋았다. 공연장 앞 정류장에 내리면 광장을 가로지르거나 높은 계단을 올라갈 필요 없이 건물 입구로 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자동차였다. 주차 안내가 중요한 홈페이지 메뉴인 한국 공연장과 달리 오스트리아 공연장에는 주차장이 아예 없었다. 도심의 가장 번화가에 위치한 오페라극장이 보행자전용거리와 연결되어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사실 극장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서 주차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온 관객 중에 차를 갖고 온 사람은 없었다. 누구도 차를 갖고 오지 않는 공연장의 풍경은 신선했다. 주차 공간이나 요금은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가져갈 차가 없는 사람들은 30분에 가까운 인터미션 동안 와인과 맥주, 샴페인을 마음껏 즐겼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공연을 보면서 현지인과 관광객용 공연을 두루 섭렵했는데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다. 사실 오스트리아의 관광지는 모차르트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워낙 많은 모차르트 공연이 열리고 있어서 고르는 것도 일이다. 물론 공연의 질은 들쭉날쭉하다. 빈에서 관람한 관광객용 모차르트 콘서트는 제대로 된 피드백이 있을 리 만무한 관광객을 상대하는 이들의 공연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았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에서 관람한 오후 3시 공연은 누가 봐도 학생이 아르바이트 삼아 연주하는 것이 명백했다. 좀 얄밉긴 했지만 여기가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이렇게 오래된 건물에서 라이브로 하프시코드 연주를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니 들을 만했다. 모차르트라는 콘텐츠와 그의 고향이라는 장소의 힘이 부실한 연주조차도 참을 수 있게 만든 셈이다. 게다가 마이크조차 필요없는 오래된 건물이 내뿜는 아우라는 별것 아닌 공연들조차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다.

그렇다. 관광객에게 필요한 것은 주차장이 아니라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콘텐츠다. 콘텐츠가 매력있다면 주차는 사소한 문제다. 인천 중구청이 애경사 건물을 부숴버리는 대신 120년 된 비누 공장이라는 역사를 살려냈다면, 흔하디 흔한 ‘비누 만들기 체험’조차 송월동에서만 할 수 있는 특색 상품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에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건 모차르트 덕분이지 잘 갖춰진 주차장 때문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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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은데 말이 길면 듣기가 너무 지루하다(夜短語長, 聽之太遲).” 정말 할 말이 있는 사람은, 할 말이 분명한 사람은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상대의 중언부언을 참지 못한다. 허생은 할 말이 분명했다. 야심해서 찾아온 나라의 신임을 받는 신하 이완에게 천하를 뒤집어 병자호란의 수치를 씻을 세 가지 방도를 설파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박지원이 남긴 <허생전>의 한 장면이다. 그러나 초야의 인물을 찾아왔다는 이완은 인재를 발탁하고, 특권 세력을 누르고, 해외에서 새 길을 찾자는 허생의 말에 “어렵다(難矣)”는 말만 되풀이한다. 허생은 참지 못하고 칼을 뽑는다. “신임받는다는 신하가 정말 이렇다고? 너 같은 놈은 목을 베어야 해!(信臣固如是乎, 是可斬也)”

여름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주 펼쳐진다. 요리사, 제과사들의 퇴근길 술자리는 강렬하고 함축적이다. 내일 제대로 된 식료를 구입하려면 전철 첫차를 타고 시장에 나가야 한다는 걱정은 잠깐이다. 직업 예의상 하게 마련인 걱정을 마치자마자 요리사는 단번에 막소주 한 잔을 해치운다. 그러고는 허생으로 빙의해 분을 터뜨린다. “솁솁거리지 좀 마라, 천하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동네 요리사 겸 주방장의 대답이 단호하다. “직업으로 요리사가 있지. 그럴 필요가 있는 주방에서 업무를 총괄하는 직위로 주방장이 있지! 언제부터 솁솁이야.”

셰프, 영어로 치프(Chief). 장보기와 맛내기에서 결정권이 있는 요리사, 제과사다. 본격적으로 빙과를 다루는 업장에서 아무나 온도계에 손 못 댄다. 냉동고와 쇼케이스 온도의 미세조정이 또한 제과사의 몫이다. 이쯤 되는 제과사가 셰프다. 서민대중의 한 끼를 감당하고 있는 백반집, 찌갯집에서 장보기와 맛내기는 단연 찬모가 도맡는다. 우리가 어제도 봤고, 오늘도 만날 셰프는, 실은 백반집, 찌갯집, 고깃집 찬모다.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면, 탁자에서 넘겨본 주방 안, 막 찬통 콩나물, 오뎅에 파와 마늘과 깨소금을 듬뿍듬뿍 끼얹는 그분들이야말로 정말 셰프다.

셰프. 텔레비전과 인터넷과 온갖 매체에서 먹방과 맛집 사냥이 넘치고,  솁솁거리기가 울려 퍼지면서 너도나도 이 말에 감염되었다. 셰프란 말은 한순간에 요리사 또는 제과사, 찬모, 주방장이란 말을 지워버렸다. 동시에 새벽 첫차를 타고 장 보러 가기부터 실제로 하루 12시간은 업장을 지켜야 하는 고된 일의 세계를 가렸다. 주방은 늘 불이 활활 피어 있고, 늘 유증기가 가득하며, 늘 날서고 뾰족하고 달아오를 대로 달아 있는 도구가 가득한 위험한 공간이라는 점을 지우며 대중을 감염시켰다. 그러면서 청소년들 사이엔 어느새 셰프만이 끝내주고 멋있고 ‘힙’한 직업으로까지 떠올랐다. 매체에서 보기만 한 셰프만 남았다. 일은 모른다.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동네 요리사의 두 번째 분이 터진다. 누구나 자주 먹기 때문에 쉽게 생각하는 음식이 계란찜이다. 수플레는 계란찜의 프랑스판, 오븐 요리판쯤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계란찜이든 수플레든 중간은 없다. 서구 요리판의 우스개로, 한 음식점 망하게 하려면 수플레를 주문한 다음 악평을 달면 된다는 소리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에 가장 기본적인 조미 방식만의 승부다. 최상의 상태로 내놓은 수플레를, 대중은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뒤집어서, 계란찜도 그런 음식이다. 그가 정말 ‘셰프’라면 눈에서 실핏줄 터질 듯한 집중력으로 계란과 온기와 수분을 상대로 승부를 낸다. 그러나 익숙한 계란찜은 손님들에게 서비스일 뿐이다. 수플레 한 쪽에는 1만원을 붙여도 불평 없는 손님일수록 계란찜은 서비스다.

“음식을 안다는 손님이 정말 이렇다고?” 요리사는, 제과사는, 찬모는, 또는 주방장은 여기까지 분통을 터뜨릴 뿐이다. 이 세계의 칼은 주방 밖에서 뽑는 게 아니다. 칼은 칼판 위에서만 쓸 수 있다. 짧고 강렬하고 박력 있는 순간은 퇴근길에 소주 한잔하는 그때뿐이다.

한 직업의 세계를 단박에 이해하기가 만만찮은 노릇임은 또한 어쩔 수 없다고 하겠다. 그야말로 어렵다! 알면서, 다 알면서 굳이 요리사의 한마디를 2017년 한국어 일간지 지면에 남긴다. 100년 뒤에 음식문헌으로 떠오를 것만 같다. “계란찜은 서비스고 수플레는 만원이냐?”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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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아도니스를 닮은 청년 도리언이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대신 그의 초상화가 늙고 추악해진다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육체와 죄 많은 영혼의 분리, 이 상상적 소망은 <마징가 Z>의 아수라 백작이나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와 같은 작품을 통해 거듭되었던 인간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는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향유하고 있는 어떤 실제들이 아닐까. 가령 우리들이 소셜미디어나 커뮤니티에서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다양한 아바타나 이모티콘, 아이디, 별칭 같은 것들 말이다.

육아, 영화, 커피, 애완동물 카페 그리고 페북과 단톡방들. 그곳에서 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을 고수할 필요가 없다. 페미니스트였다가 남아선호사상에 찌든 맘충이 될 수도 있고 인권 옹호자였다가 외국인 혐오자가 될 수도 있다. 물론 개인의 인격은 페르소나(persona·가면)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 현실에서도 다양한 가면을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엄마, 선생, 친구, 딸 등의 인격체들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체성의 변전은 가상공간만큼 가변적일 수 없다. 가상공간에서의 ‘가상의 자아’는 실제로 내가 수행하는 실제적 자아의 연장이 아니라, 억압되거나 잠재된 충동이 실현된 판타지로 비약될 수 있다. 그러나 사이버상에서 실현된 가상은 억압된 ‘하이드’라는 어두운 충동이기 쉽고, 따라서 무법천지의 폭력이 자행되기 쉽다.

2017년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도선우의 <저스티스맨>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익명의 폭력성을 자못 신랄하게 다룬다. 평범한 한 남자가 어느 날 밤 대취하여 길거리에 설사와 구토를 하는 장면을 누군가 찍어 인터넷상에 올리고 신분이 노출되어 사회적으로 매장되자 문제의 ‘설사남’이 복수극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무법천지의 디지털 세계에 ‘저스티스맨’을 자처하는 그는 ‘여고생의 첫 경험’을 동영상으로 유포하여 자살로 몰고 간 이들, 사이버 카페의 권력자, 무지한 누리꾼들을 응징하며 활약을 펼친다. 소설은 저스티스맨의 ‘살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결론으로 끝나지만 이러한 봉합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저스티스맨’을 응원하거나 두려워하는 누리꾼들이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이모티콘의 현란한 제스처와 미소, 그리고 괴물의 언어, 그 가상의 소통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려지는 우리의 진짜 얼굴들이 문제인 것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혁명으로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민주적이고 다양한 네트워크와 채널들을 갖게 되었지만, 그것이 반드시 우리를 진실과 바람직한 사회적 합의체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선택과 조립이 가능한 각자의 채널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것을 사실로 만들고 그 사실의 판타지 속에서 각각 단절된 믿음의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공론장이 깨져버린 각자의 채널 속에서 파편적 사실을 소비하는 인터넷 문화와 사이버 범죄를 두고 도선우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라는 게 공존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흔히 결과만을 두고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오류가 발생하기 쉬우며 그러한 집단오류가 또 다른 이차적인 문제를 만들어낸다는 얘기”라고 지적한 바 있다.

단편적이고 일회적인 현대인의 소통을 벤야민은 ‘체험(Erlebnis)’이라고 했는데, 이는 집합적 과거와 기억 속에서 타인을 이해하는 ‘경험(Erfahrung)’과는 다른 기계적 쇼크라고 지적했다.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는 이러한 불가해와 익명성과 관련이 깊다. 미스터리 서사장르는 현대 대중문화의 주류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도시가 지닌 익명성 때문이다. 과거 전통 사회의 마을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 알지 못하는 사건은 거의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지낼 수 있다. 매일 엄지족이 되어 끊임없이 이모티콘과 문자를 날리지만, 실상은 만난 적도 없고, 만났어도 실제의 그와는 무관한 이들, 또 실제의 나와는 분리된 캐릭터들의 소란에 불과할 수 있다. 인천 여아 살해사건을 심층 취재한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전문가의 말대로, 사이버상의 폭력과 잔혹성을 실재로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나와 그것’의 환각을, ‘나와 너’의 실체로 돌려놓아야 한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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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0일 밤에 딸아이와 함께 나는 30년 전 6월 민주항쟁을 기록한 동영상을 찾아서 봤다. 영상 속 서울 한복판에는 사람들이 장마철의 한강처럼 가득했고 문익환 목사의 외침은 그 물결에 부딪히며 흘러나갔다. “전태일 열사여!”로 시작하여 호명되는 앳된 청년의 이름들이 그 강 위에서 봄날의 꽃잎처럼 참 슬프게도 흩날렸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했던 전태일은 당시 고작 22살이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공포 속에서도 민주화를 꿈꾸다 사망한 박종철·이한열도 20대 초반 꽃다운 청년이었다. 꽃잎 하나 떨어지면 이어서 수백개의 꽃잎이 떨어지듯 1970년 11월에 전태일이 사망하고 사흘째 되던 날, 서울대 법과대학 학생 100명은 ‘민권수호학생연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이어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 수백명이 추도식과 집회를 열었고 이는 계속해서 전국 각지의 학생과 청년들의 집회로 확산되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도, 1987년 6월의 민주화운동도 그 중심에는 청춘들의 영혼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1968년께 중부시장에서 일할 때 찍은 사진(왼쪽이 전태일).

수십명의 군경들에 맨몸으로 맞서 독재 타도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다보면 그 광장에서 그들이 느꼈을 무서움, 슬픔 그리고 분노에 대해 가만히 상상해보게 된다. 나도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우리도 부당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들에 대해 저토록 저항해낼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언제부터 침묵하는 것에 이토록 길들여지게 되었나.

지금 당장 한국 청년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산적해 있다. 헬조선, 흙수저 같은 자조 섞인 신조어, 알부자족(아르바이트해서 부족한 학자금을 모으는 청년들), 인구론(인문계의 90%가 논다), 니트족, 히키코모리 등 모두 불안정한 청년의 삶을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 청년세대의 절망적인 상황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1999년 공식 통계 집계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높은데 여기에 취준생(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 등을 포함하여 실질 실업률을 따져보면 청년 3명 중 1명이 실업자이다. 모두가 어렵다지만, 유독 청년층의 고용률만 감소하고 있다. 어렵게 취업되었다고 해도 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청년층에서만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있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소득 변화를 살펴보면, 오직 20~30대 청년가구의 소득만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에 더해 청년들의 학자금 대출 규모는 지난 10년간 약 24배 증가했으며, 대출받는 학생의 수는 약 10배 증가했다. 상황이 이러니 좀 더 안정되고 높은 보수의 일자리로 가기 위해 학업이나 취업을 연기하는 것이 이제는 흔한 일이 되었다. 주거 상황도 나쁘다. 서울시의 경우 1인 가구 청년들의 5명 중 2명은 주거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데 이들은 주로 고시원, 지하방, 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 공간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 청년들은 국제적으로 그리고 국내 타 연령층에 비해서도 열악한 지위를 가지고 새로운 빈곤집단으로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질성을 가진 개인들은 비슷한 의제가 있으면 연대하기 마련인데 한국 청년들의 정치참여나 사회참여도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낮다. 청년문제에 청년들이 뛰어들기에는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도 버겁다. 또한 독재정권처럼 아주 선명한 적폐가 있으면 모를까 지금의 헬조선은 누구의 잘못인지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알 수 없이 다만 자욱한 안개 속에서 ‘실패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네온사인만 어렴풋이 깜빡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시대적 과제를 이렇게 방치해도 될까. 당장 이번 달의 최저임금 협상 결과는 청년들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 주거 정책, 소득보장 정책에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고 연대해야 한다. 일상 속에서 비판적 사고로 부당한 관행에 대해 끊임없이 반문을 제기해야 한다. 지난 시간 속의 청년들, 지금의 우리, 그리고 미래의 청년들이 흐르는 역사의 강에서 만나 공유할 것이 있다. 우리가 아파서 청춘이 아니다. 청년의 정신은 저항이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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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자라지 않는 아재들’은 최근 한남 엔터테인먼트의 흥미로운 광경 중 하나다. <아는 형님>(JTBC)에서 아재들은 여전히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으며, <미운 우리 새끼>(KBS)에서는 아직도 ‘생후 오백 몇 개월’을 사는 어머니의 아들이다. <아재 독립 만세!! 거기서 만나>(TV조선)의 내레이션은 원로배우 김영옥이 맡았다. 나이든 ‘어머니뻘’ 여성이 아재들을 굽어보며 행동 하나하나에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코멘트 하는 것이다.

이 퇴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특히나 우리 시대에 아버지란 <명량>이나 <국제시장>과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70~80대 어르신의 얼굴이 되어버린 지금, 대중문화는 왜 40~50대 남자를 어른으로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 중 하나가 한국 사회의 남성 중심적 역사관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386 남성들은 여전히 상징적으로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고, 그리하여 어른의 몸에 갇힌 ‘어린 아들’의 정신세계를 살고 있다. ‘자라지 않는 아재’가 일종의 시대정신이 된 것이다.

예컨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을 떠올려보자. 그들은 문 대통령이 얼마나 성숙한 어른인지와 무관하게 그에게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하며 “오구오구 우쭈쭈”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문인들이 대선 당시 그를 지지하기 위해 만든 인터넷 사이트의 주소가 ‘www.5959uzuzu.com’이었다는 건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 사이트는 비판적인 칼럼이 한 편 등장하자마자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그저 무한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기실 여당 및 그 지지자들이 짜고 있는 정치적 프레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때 정청래 전 의원의 ‘소수 권력’이라는 말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팟캐스트 <파파이스>에 출연해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아직은 ‘소수 권력’이라고 말하며 ‘감시 없는 지지’를 호소했다. 이 말은 기이하다. ‘소수’란 단순히 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위계에서 하위에 놓인 존재를 일컫는 표현이라고 할 때, ‘소수 권력’은 말 그대로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불가능한 유머에 불과하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역사 인식 안에서 유시민 작가의 ‘진보 어용 지식인 선언’ 역시 가능해진다. 청와대 권력만 바뀌었을 뿐 한국 사회의 적폐 권력은 그대로라고 주장하면서, 유 작가는 문재인 정부의 ‘열악한 위치’를 이유로 ‘어용’이라는 단어에 새겨질 수밖에 없는 수치심을 간단히 지워버렸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보, 어용, 지식인이라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세 단어가 하나의 단어를 구성하는 놀라운 시대를 살게 된다. 이야말로 자라지 않기로 결심한 남자들의 화려한 정치적 쇼다.

하지만 ‘어용 지식인’조차도 냉정한 얼굴로 문재인 정부의 선택에 철퇴를 내리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앞에서였다. 그는 <썰전>(JTBC)에 출연하여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한다”면서 강 후보자를 폄하했다. 국민의당에서 “지금은 안보 현안이 중요한 만큼 이번에는 국방을 잘 아는 남자가 해야 한다”거나 “여객선이라면 모를까 전시를 대비할 항공모함 함장을 맡길 순 없다”며 부적격 입장을 낸 것과 다르지 않은 수사다.

‘어용 지식인’은 자신들의 권력적 지위를 부인하고 계속해서 ‘지켜 달라’고 징징거리면서도, 여성 앞에서만은 짐짓 근엄한 척한다. 남자들이 스스로 자라지 않았다고 주장할 때에도 누구를 배제하면서 그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가는 명백해 보인다.

이 철없는 남자들의 강고한 연대는 역시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행정관을 비호하는 것에서 그 빛을 발하고 있다. 탁현민의 10년 전 책은 그저 ‘젊은 한때의 과오’가 아니다. 사과 한마디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어른스럽게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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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을 하지 않은 지가 몇 달 되었다. 생계의 수단으로서 그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지만 노동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만큼 간헐적으로만 한다. 예를 들면 서울에서 충청도까지 가는 20만원짜리 장거리 콜이라든가, 10분만 운전하고 기본료를 받을 수 있는 간편한 콜이라든가, 하는 것들만 주로 다녀온다. 이제는 ‘계속 대리운전 하나요’란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지 않는다.

<대리사회>의 저자로서 강연이나 인터뷰에서, ‘제일 힘들었던 손님이 누구인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술에 취한 이들을 밤새 상대하는 노동이다 보니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이 많다. 어느 직업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폭언이나 욕설부터 시작해서 조롱, 냉소, 위계, 통제, 이러한 단어들과 늘 마주해야 한다.      

어느 대리운전기사는 손님이 라이터를 달라고 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답하니 “대리기사가 라이터도 안 가지고 다녀? 서비스 정신이 없어”라는 면박을 받기도 했다는데, 여기에 준하는 일들을 늘 겪는다.

그런데 모두가 입을 모아 가장 ‘나쁜 손님’이라 하는 어느 표본이 있다. 그들은 일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하지 못하게 만든다. 대리운전 콜을 보내고는 홀연히 사라져 전화도 받지 않는 이들이 있다. 평균 1㎞의 밤거리를 걷고 뛰면서, 생소한 골목을 누비며 출발지에 도착한 대리운전기사는 마냥 기다리는 것 외에는 딱히 방법이 없다. 그러는 동안 소중한 시간이 흐른다. 특정 피크타임을 제외하고는 콜을 잡는 일도 쉽지 않다. 새벽의 몇 시간은 이들에게 그대로 돈이다.

언젠가 요리 프로그램에 나온 요리사들이 한결같이 ‘노쇼 문화’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약을 한 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을 위해 비워둔 자리도, 준비한 음식도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는 부담해야 할 비용이 된다. 식당뿐 아니라 미용실, 병원, 콜택시까지 예약이 가능한 모든 서비스업이 그럴 것이다. 타인의 노동을 사겠다고 약속하고는 쉽게 파기해 버리는 이들이 많다.

지난주에는 30대 남성의 대리운전 콜을 받았다. 그는 정중한 목소리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했고 나는 10분 정도 걸리겠다고 답하고는 그에게 갔다. 출발지에 도착해 전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다시 전화했지만 “운전 중이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는 기계음이 나왔다. 나중에는 아예 전화를 받고는 그대로 끊었다. 나는 30분가량을 약속 장소에서 서성이다가, 콜을 취소했다. 그에게 걸어간 나의 수고로움, 나의 시간, 혹은 다른 콜을 받았다면 벌 수 있었을 기회비용, 많은 것을 잃었다.

그는 아마도 2개 이상의 대리운전업체에 전화를 하고는 먼저 온 대리운전기사와 함께 집에 돌아갔을 것이다. 술을 마시고 직접 운전했으리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 손님이 사라지는 것은 흔한 일이다. 

콜을 취소한 나는 손님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대리기사입니다. 그냥 가신 걸로 알고 콜을 취소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 때문에 출발지까지 갔고 그건 한 사람의 노동이 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을 알아주십시오.” 그에게서 아직까지 답장이 오지 않았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 술이 깬 그가 문자를 보고 한번쯤 부끄러워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사실 평범한 우리들이다. 휴대폰 화면을 몇 번 터치해 누군가의 노동을 예약하는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의 노동자가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O2O서비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이어주는 새로운 형태의 예약 플랫폼이 생겼다. 특히 카카오를 기반으로 한 택시, 대리운전, 미용실 서비스 같은 것들이 그렇다. 나는 여기에 예약을 할 때 등록된 카드에서 예약금을 미리 지불하는 하나의 단계가 추가되기를 바란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 더 기계 너머의 노동과 노동자를 상상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정착과 인식의 변환은 제도와 시스템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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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0년 전 우리는 뭐 하고 있었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별안간 질문을 던졌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지만 사람도 변한다. 캠퍼스에서 벗어난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곳에 와버렸음을 깨달았다. 하는 일도, 취미도, 식성도 달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대학 시절에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던 요소들이 우리 둘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별수 없이 10년 전의 그때를 더듬어야만 했다.

“대학생이었지.”

다음 말을 어떻게 연결해야 할지 난감했다. 대학 다니던 때가 더없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군대 다녀와서 복학한 뒤 어색하게 캠퍼스를 거닐곤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생각하면 아득하다, 진짜.” 친구의 말에는 두 가지의 아득함이 다 담겨 있었다. 그 시절이 까마득히 오래되었다는 사실과 어떡하면 좋을지 막막했던 당시의 처지가. 그 아득함 때문에 나는 역설적으로 종종 대학 시절을 떠올리려 애쓴다. 어떻게든 그때를 내 심신에 새기고 싶어서, 어떻게든 추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상하게도 그 시절을 상기할 때마다 힘이 났다. 잊어버리고 있었던 꿈이 등줄기를 타고 꼬물꼬물 기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가 살던 곳은 신림9동이었다. 몇 년 전 대학동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도로명 주소를 표기하게 되면서 또다시 대학길이나 신림로로 불리게 된 곳이다. 나에게는 늘 ‘녹두거리’로 남아 있는 그곳을 생각하면 양가적 감정에 사로잡힌다. 그 감정은 본디 꿈으로부터 비롯됐지만 꿈이 이뤄지거나 이뤄지지 못했을 때에야만 그 민낯이 드러나곤 했다. 굳이 문을 열지 않아도 특유의 냄새를 풍기던 식당, 헉헉거리며 오르곤 했던 언덕길, 고시원과 독서실이 즐비하던 골목, 건물의 지하에는 으레 비디오방이나 PC방이 있던 곳이 바로 녹두거리였다. 골목마다 올망졸망 꿈이 늘어서 있던 곳이었다. 그 꿈 덕분에 절실했고 그 꿈 때문에 잔인한 곳이었다.

학생들이 방과후에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미래를 그려보던 곳, 고시생들이 고시 일정에 맞춰 학원과 고시원을 오가며 매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곳이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날 즈음에 학생들은 골목으로 삼삼오오 몰려들었고 고시원에 있던 고시생들은 고시 결과가 나오던 날에 일제히 PC방에 가서 결과를 확인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과 현실을 직면하는 사람들이 한데 있었다. 환호하는 사람들과 낙담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열기와 냉기가 동시에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산책에 취미를 가지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당시의 나는 여기를 사랑해야겠다는 마음과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꿈을 꿀 때의 설렘과 꿈을 달성해야 하는 압박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기보다는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느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골몰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기엔 지나치게 이른 나이였다. 자주 어울리던 친구들은 학생에서 고시생이 되어 있었다. 학생이면서 고시생이 되어 있었다.

“아, 10년 전에 뭐 했는지 기억난다!”

친구가 웃었다. 기억의 조각들을 맞추다 보니 10년 전의 시간이 희미하게나마 떠올랐다. “나, 그때 영화를 찍고 있었어.” 어느 날 문득 산책하다 내가 쓴 시를 바탕으로 한 단편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영화감독이 되는 게 나의 꿈은 아니었지만, 영화를 찍고 싶다는 꿈은 늘 품고 살아왔었다.

다행히 공모전에 낸 시나리오가 당선이 되어 영화 제작 지원을 받게 되었다. 주변에 영화 찍는 친구들이 없어서 친구들과 후배들로 스태프를 꾸렸다. 학교와 녹두거리 인근의 단골 가게에서 촬영하며 나는 마침내 아득한 시절을 건너올 수 있었다. 내가 꿈을 꾸던 곳, 꿈속에서 한없이 막연해지고 더없이 달콤해지던 곳이었다. 꿈이라는 단어가 가깝지 않다는 것을 몸소 깨닫던 시절이자 꿈을 꿀 때에야 겨우 존재한다고 느끼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감히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10년 후에도 오늘을 떠올릴 때 여전히 아득할까. 그때도 나는 여전히 꿈꾸기를 그만두지 않고 있을까.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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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힘이 세다. 그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동아대에 근무하던 한 조교수가 아파트 9층에서 투신해 숨진 사건도 이에 속한다. 야외 스케치 수업 뒤풀이에서 교수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가 학내에 붙었다. 그는 성추행 의혹에 시달렸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대학 당국의 조사로 밝혀진 내막은 그와 함께 야외 스케치 수업을 갔던 ㄱ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한 뒤 지위를 이용해 입막음하고 숨기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린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과 ㄴ교수도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 ㄴ교수가 한 시간강사를 성추행했다는 투서가 총장 비서실에 접수되자 관심을 돌리려고 학생에게 대자보를 쓰도록 종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소수의 사례로 사실에 기반을 둔 정당한 문제제기마저 선입견의 필터를 투과시켜 읽어서는 안될 것이다. 다만 글을 쓰는 입장과 보는 입장 모두 ‘폭로’의 글을 대할 때 어느 정도 침착해질 필요는 있을 것 같다고 다시금 느끼게 된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강한 충동을 느낄 때는 어떤 ‘문제’를 강하게 인지했을 때다. 나에게 분노나 스트레스를 안기는 문제적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도대체 왜 그러는지, 도대체 어쩌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탐구한 뒤 나름의 주장을 도출한다. 글 쓰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감정적 안정을 취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어 ‘이득’이다. 공포스러운 것은 미지의 존재다. 보통은 상대를 이해하게 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게 되면, 일종의 전략과 전술을 도출해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고 두려움은 완화된다.

문제는, 문제를 제기하는 글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 제기 글은 일종의 ‘고발’이나 폭로의 내용을 담을 때가 많다. 내 기준은, 고발의 대상이 힘 있는 단체이면 적시해도 무방하지만 개인의 경우에는(특히 공직자가 아닌 경우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굉장히 허약하고 가변적인 존재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잘못을 한 인간에게 그 전과 다르게 살 수 있는 기회가 한 번쯤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족한 학습의 기회, 신체의 호르몬, 그날의 날씨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얼마든지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이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글을 쓸 때 그것이 누군가에게 학습과 성찰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욕망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구조적 변화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좋은 구조 속에 살 때 좋은 사람이 될 확률도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행배틀’을 하지 않고, 타인에게 좀 더 너그러우며, 좀 더 친절하고 섬세하게 서로를 돌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한국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어떤 제도나 문화의 변화가 필요할지에 대해 자주 고민한다.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쓸 때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와 대안에 대한 상상을 담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그 시작점이 내 경험일 때가 많다는 점이 딜레마다. 따라서 개인의 얼굴과 이름 등 신상은 가급적 밝히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이전에 나의 부친에 대한 글을 쓴 적도 있는데 그 글에서 부친의 얼굴과 이름은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부친이 곤란해지는 일도 없었다. 내 글을 읽은 내 부친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내 기준을 다른 이에게도 마냥 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내가 겪은 것보다 더 큰 아픔을 겪은 이는 그런 ‘침착함’을 가지기 어려울 것이고, 특정인을 지목하지 않은 글은 정치적으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저격’ 글을 통하지 않고도 피해자가 적절한 보상으로 심신의 상처를 회복할 수 있고, 구조가 개선되며 가해자에게 변화의 계기가 제공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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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친구가 사회로 돌아왔다.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내리 낳는 동안 7년 가까이 경력이 단절된 친구다. 원래 일하던 분야와 상관없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경력을 살려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니 더욱 기분이 좋다.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아이 둘 가진 엄마가 야근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한 친구의 얼굴이 어느 때보다 밝고 활기차다.         

그런데 근무 시간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란다. 낮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 시간을 제외하면 딱 4시간. 하루 8시간 근무하는 보통 직장인의 절반이니 당연히 월급은 얼마 되지 않는다. 월급도 시간도 애매하니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모르는 소리 하지 마. 그 시간이 엄마들한테 얼마나 좋은데…. 자리만 있으면 당장 일할 수 있는 엄마들 많아.”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내고,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다가 집에 올 시간이 된 아이를 데려오면 딱 맞는 시간이 바로 10시부터 3시라는 거다. 모든 주부들이 가장 원하는 시간의 일자리지만, 그 시간대의 일자리는 거의 없다.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 설치된 대한민국 일자리상황판 앞에서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솔직히 그런 일자리는 여자들에게 애도 키우고 일도 하고 살림도 하라는 것 아니냐”고 묻자 친구가 한숨을 쉰다. “그치, 맞는 말이지. 그래도 어쩌겠어. 어차피 집안일은 누군가 해야 하는 거고, 애도 키워야 하는데…. 남편은 맨날 늦게 오고, 첫째 학교 가면 돈 들어갈 일도 많아질 텐데 그 전에 조금이라도 더 벌 수 있으면 그게 어디야.”         

착잡하긴 하지만 사실이다. 여자 친구들 중에 여전히 일을 하는 경우는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친구들뿐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예외없이 일을 그만뒀거나 기약 없는 휴직 중이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아이를 한 명 더 갖게 돼서, 눈치보여서,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이가 아파서 등 개인의 사정은 각기 다르지만 모든 가정의 결론은 같다. 여자가 그만뒀다는 것.

“칸칸마다 한 명씩 성숙한 여자들이 들어 있고, 남자를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그 닭장 안에서 멀쩡한 여자 하나가 혼자 아이를 키우느라 오 년씩 십 년씩 매달리고…. 그리고 어느 날 새벽에 깨어나보면 발이 뻣뻣하게 굳어 영영 걸어나갈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거야.” 20여년이 지났지만, 전경린의 소설 <염소를 모는 여자>의 풍경은 현재진행형이다. 한국 사회는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단어를 딱지처럼 기혼 여성들에게 붙이고, “너는 이제 ‘경단녀’니까 좀 질이 낮은 일자리에서 일해도 돼”라고 선언하는 느낌이다. ‘경단녀’가 정책용어로까지 자리 잡았는데도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그 단어로 인해 여성의 ‘경력단절’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일본 정부는 직종·근무시간·근무지역 등이 한정된 대신 정년·임금·복리후생은 일반 정규직과 같은 ‘한정 정사원’이라는 정규직을 확대해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하루 5시간, 일주일에 4일과 같은 식으로 시간을 조정해 일하면서도 계약 연장에 대한 불안감 없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시간선택제 일자리’처럼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정부는 이 일자리를 ‘다른 조건은 정규직과 같지만 노동시간만 짧은 일자리’라고 강조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대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급조한 일자리들은 2년 계약직으로 사라졌고, 고용노동부는 신규 채용을 통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경력을 이어갈 만한 일자리 자체가 드문 여성들에게 정규직 여부는 둘째 문제다. 이전의 실패를 거름 삼아 ‘10시부터 3시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높다. 대통령 집무실 내에는 고용률, 취업자 수, 청년실업률, 창업법인 수, 임금격차, 근로시간 등의 각종 지표가 담긴 일자리 상황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무적인 일이지만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이 일자리 상황판에도 여성들의 일자리와 관련한 지표는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 상황판에 경력단절여성 관련 지표와 남녀 임금격차에 대한 지표부터 추가하고, 엄마들이 하루에 4시간이라도 정해진 시간 동안 걱정없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주길 바란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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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들 융도(戎稻) 쌀 옥보다 윤나도록 깨끗이 찧고, 닭국은 깨즙 넣어 부드럽게 끓이고 잉어회에 곁들인 알싸한 겨자장. 부추김치는 자못 매콤하고 미역국은 푸른빛 더욱 감도네. 무는 사철 내내 먹기 좋아 채소 가운데 으뜸이라. 은실처럼 가늘게 채 쳐 상에 올리니 차림새가 조촐하네.” (金堤戎稻飯, 精鑿潤於玉. 鷄瀋荏삼滑, 鯉膾芥醬馥. 䪥葅味稍辣, 海帶羹更綠. 蔓菁食四時. 菜族爲宗祖. 縷切銀絲細, 登盤粲可數.)

길가의 콩잎이 누렇게 타는 삼복, 전라도 장계를 지나던 종4품 장파총이 그 마을 백정집에 저녁을 청한다. 가장과 삼형제가 도축만이 아니라 장사에도 힘써 부를 이룬 집이었다. 그런데 주인은 고명딸 방주를 시켜 앞서 본 저녁을 차리고도 제대로 된 식기가 없어서 부끄러웠다. 도리어 나그네가 아무렇지 않았다. 하늘은 귀천을 가리지 않으니 사발이고 밥통이고 되는 대로 먹자고 했다. 밥상을 물리고는 주인에게 “뜻이 맞으면 모두 친구”라고 말했다. 자신은 하느님이 사람 사이에 계급을 나누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없다며 다독였다. 장파총은 실은, 동네 시냇가에서 이 집 딸 방주를 이미 만났다. 나그네에게 물 한 사발 떠 주는 사이에도 엿보이는 이름 모를 소녀의 찬찬함에 단박에 반했다. 다시 이 집에서 방주가 밥상 차리고 내는 모습을 보고는 결심을 굳힌다. 방주를 내 며느리 삼겠다! 김려(金려·1766~1822)가 남긴 서사시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古詩爲張遠卿妻沈氏作)’은 구절마다 놀라운 대목이 깃든 걸작이다. 미완성작이라 장파총과 백정의 정혼 이후는 알 수 없어 안타깝지만.

몰락 양반 출신 장파총이 젊은 날 양양에서 영종도에 이르는 바다를 돌며 호연지기를 키우는 장면 또한 장쾌하기 이를 데 없다. 조기, 준치, 도다리, 송어, 전복, 숭어, 민어, 명태 어업을 접한 장파총은 거기 깃든 노동과 생태 문제 또한 현대인처럼 감각했다. 그러고는 걱정한다. 하늘이 낸 생명을 마구 잡다가는 어획의 기쁨도 잠깐이고, 우리는 쓸쓸한 처지를 맞닥뜨릴 거라고. 장파총의 청혼은 장난이 아니었다. 탁 트인 마음은 자수성가의 밑천이 되었을 뿐 아니라 생명을 애처로이 여기는 마음, 백정을 혼인 상대로 대할 수 있는 마음으로도 자랐다.

어느 분은 이 작품에서 막 꿈틀거리는 생태주의를, 여성주의를 건져 올리기도 할 테다. 어느 분에게는 조선 후기 어업사가 삼삼할 테다. 그런데 내게는 ‘융도(戎稻)’ 두 자가 뭉클하다. 오랑캐 융, 벼 도. 또는 두 글자 사이에 조를 넣어 융조도(戎早稻)라고도 썼다. 거칠게 요약하면, 건국 초기 조선의 북쪽 끝, 여진과 접경을 이룬 추운 데서 나는 벼를 가리킨다. 훈민정음으로는 ‘되오리’ ‘되올리’ ‘되오려’ ‘되올려’ 등으로 써 오랑캐 땅에서 유래한 조생종임을 나타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조생종 벼 품종 획득에 힘을 기울였다. 보리를 먹어치우고, 가을에 본격적으로 벼를 거두기 전, 조생 벼가 식량의 징검다리가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냉해를 견디는 품종을 확보한다는 의의도 있었다. 되오리와 함께 거론되는 ‘어름것기’ ‘빙석도(氷析稻)’ ‘빙도’와 같은 품종 기록도 예사롭지 않다. 얼음이 막 풀리는 즈음에 파종 가능한 품종이란 뜻이다. 물론 오늘날과 같은 육종을 통해 새 품종을 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라는 궁리했다. 1438년 세종 20년 4월4일, 의정부와 세종은 조선 최북단 고을인 여연, 강계, 자성에서 조생벼 볍씨 25석을 확보해 충청, 경상, 전라 삼도에서 시험 재배할 것을 결정한다. 오늘날의 도입육종이다. 노력과 궁리는 15세기 농서인 <농사직설>과 <금양잡록>에 흔적을 남겼고, 조선 후기 기술서에 이어진다. 이를 소담한 문학 작품에서 실제로 확인하며 느끼는 보람이야말로 음식 문헌 읽는 보람이기도 하다.

이게 나라다. 유사 이래 농업은 농민과 개인 독농가와 나라가 손잡고 북돋고 길렀다. 농법과 품종의 혁신, 상황과 제도에 대한 판단 모두 한편으로는 농민이, 한편으로는 당연히 나라가 맡아야 한다. 농민은, 국민은 나라가 농업에서 할 일을 하도록 촉구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발하고 연일 인사가 화제다. 시원하다, 잘했다 하는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단 이때에도 시민 사이에 농식품부 인사에 대한 관심을 엿보기는 힘들다. 이게 나라다, 여기에도 제 사람 쓰자고 고심했구나 하는 감동을 농식품부 인사에서 과연 볼 수 있을 것인가. 옛 밥상 기록 한 자락 읽는 동안 나는 갸웃거리며 속이 탄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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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가 있다. <시티홀>이라는 정치코믹로맨스이다. 최근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의 작가 김은숙이 이례적으로 ‘정치’를 다룬 드라마이기도 하다. 종영한 뒤에도 가끔 다시 꺼내보게 하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데, 아마도 현실정치에 대한 환멸감이 극에 달했을 때 찾는 판타지나 환각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인구 13만명이라는 가상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7년 동안 시장실 커피 심부름만 하던 10급 공무원 신미래이다. 전 남친의 빚 때문에 밴댕이 아가씨 대회에 나가고, 시 당국이 상금을 빼돌리려하자 1인 시위를 하며, 결국 시장이 되어 시민을 위한 진정한 ‘시정’을 펼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는 물론 엘리트 정치인 ‘조국’과의 달콤하고 코믹한 로맨스와 동지애가 중요한 엔진 역할을 한다. 10급 공무원이 작은 도시의 시장이 되어 새로운 정치를 펼치고 조국이라는 국회위원과 사랑을 이룬다는 것은 물론 판타지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와 웃음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은 이 판타지가 우리 현실정치의 고질적인 병폐와 부패 위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인주시 원더우먼을 자처한 무소속 후보 신미래는 참모들이 건네준 화려한 공약 대신, 시민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말들을 건넨다. 그녀는 “공약은 이기라고 있는 거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정치꾼의 말을 무시한다. 대신 그녀는 “지킬 수 있는 공약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해마다 보도블록을 교체하지 않겠습니다. 정치비자금 안 만들겠습니다. 인사청탁 안 받겠습니다. 이권 개입된 그 어떤 시정도 안 펼치겠습니다. 안 하겠다는 것은 안 하겠습니다. 시민들과 밀고 당기기 안 하겠습니다’라고 힘주어 다짐한다.

화려하고 노련한 정치공학과 결별하고 오직 시민들의 눈높이에서 서툴지만, 진심을 담은 시정을 펼치는 신미래라는 인물을 보면서, 냉소와 한숨만을 안겨주는 현실과의 낙차만큼 환호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드라마의 끝에 가면 ‘정당끼리 치고받고 싸우는 것, 정 떨어지고 치떨리는 것, 정기적으로 치사한 짓 하는 것’쯤으로 생각되던 정치의 의미가 그녀의 주장대로 ‘정성껏 국민의 삶을 치유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선거가 끝난 지 2주일도 채 안되는 동안, 드라마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법 하나 안 고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이렇게나 많은 줄 정말 몰랐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이 웃고, ‘님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고, 세월호 미수습자 영령이 돌아오고, 4대강 보가 열리고, 투명인간처럼 법문을 넘나들던 검사들이 ‘법 앞’에 서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비정상의 정상화’일 뿐인데, 이토록 놀랍다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비상식의 일상을 살았나’를 절감케 한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새 정부의 행보에 사람의 숨결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명문이라는 5·18 기념사를 글로 다시 읽어보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살아 있는 말보다 감동적이지 않았다. 진심과 결기에 찬 말, 가방을 뒤지는 아이와의 눈맞춤, 5·18 유가족을 끌어안는 온기가 문자와 행정시스템, 관료주의를 흔들고 현재의 대한민국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여느 때처럼 숱한 곤경과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분주함에는 좀처럼 꺼지지 않을 촛불의 힘이 담겨 있다고 믿는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 여기에 당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걸어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얼마나 많이 절망했는지를 생각해 본다. 5월의 바람에 밥 딜런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하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야 비로소 진정한 사람이 되나/ 하얀 비둘기는 얼마나 넓은 바다를 날아야/ 모래 위에서 쉴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들이 오가야/ 영원히 멈출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Blowing in the wind>)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걸까. 지금의 겨우 시작된 이 시작은 미처 이 자리까지 오지 못한 그분들 덕이다. 폴 발레리의 말대로 ‘바람이 분다’.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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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일이 너무 힘들어요, 작업장이 너무 추워요. 목에서 까만 핏덩이가 나와요. 팔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힘들어요. 시너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발이 퉁퉁 부었어요. 못하겠어요. 쉬고 싶어요. 쉬고 싶어요”는 한강의 기적이 찬양되었던 시대에 우리 하늘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던 한국 여성노동자들의 절규였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72년에 유신체제를 갖추면서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경제발전의 전략으로 삼았다. 공장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경제는 1970년대 내내 연평균 약 8%씩 급속한 성장을 경험하게 되는데, 사람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 또한 크게 변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생활수준이 오르고 장밋빛 미래를 그려보기도 했지만, 어떤 이들은 공장에서 가혹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이 당시 특히 젊은 여성들의 삶이 변했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인구의 절대다수가 농촌에서 일하였다면 1970년대부터 많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더 빠르게 도시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경제발전에 큰 몫을 한 섬유, 의료, 전자산업과 같은 경공업 분야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농촌의 딸들은 공부할 남동생과 오빠를 위해 그리고 집에 생활비를 보내기 위해 도시로, 공장으로 대거 진입하였다. 하지만 여성의 임금은 남성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였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여성이 폭력적인 근로조건 속에서 순종적이면서도 부지런하게 일하길 요구했다. 한국 여성노동자들은 이 비인간적인 불평등을 모두 삼켜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등 23개 여성노동단체로 구성된 무급타파행동단이 1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여성 비정규직 임금차별타파의 날’ 선포식을 하고 있다. 행동단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정규직 남성노동자들의 35.8% 밖에 되지 않는 임금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이 격차를 날짜로 환산하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5월11일부터 연말까지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김영민 기자

4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 여성의 삶은 어떠한가. 각종 보고서에서 한국의 젠더불평등은 최악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여성의 고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아래인데 여성이 운 좋게 취직했더라도 임금수준은 여전히 남성의 65% 정도밖에 안된다. 남녀 임금격차 수준은 OECD 국가 중에서도 가장 심하고 2위인 에스토니아에 비해서도 그 격차가 한참 크다. 우리나라의 나쁜 일자리에는 여성이 집중되어 있고, 관리자급으로 직위가 올라갈수록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출산과 양육기에 여성이 일을 그만두는 비율도 한국이 가장 높다. 여성이 중고령자가 되면 불안정한 일자리로 재진입하거나 다시 부모, 나이든 남편, 손주를 돌보는 무급노동을 한다.

한국 여성이 불평등을 경험하는 것이 능력의 차이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한국 학생들의 성적은 국제적으로 최상위권이다. 이에 더해 한국 여학생들은 남학생에 비해 독해력 그리고 수리력에서도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국제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한국의 여학생들은 성인이 되면서 불평등종합세트를 차례대로 경험하게 된다. 입사 과정에서, 임금수준과 승진의 기회에서, 출산과 양육기에, 그리고 중고령 여성이 되는 과정에서 한국의 여성들은 체념과 순응, 경쟁과 남성화, 분노와 투쟁 중 어떤 선택지가 그나마 나은 답인지 헤아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남녀 고용평등, 일과 가정 양립에 대한 정부 계획이 수립되고 정책들이 실행되었지만 일자리와 양육의 책임에 대한 불평등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

한 사회의 관습, 규범, 제도와 정책은 서로 결합하여 그 안의 개인들의 행동방식을 구속시켜버리는 효과를 가진다. 오래된 제도들은 한번 결합되면 스스로 변하지 못한다. 매우 파격적인 외부 충격만이 굳게 뿌리내린 불평등에 균열을 가지고 올 수 있다.

새 정부는 하늘의 절반을 받치고 있는 여성들의 평등 실현 없이는 우리나라에 민주주의와 복지국가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여성은 다만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아기를 낳고 양육하고, 나쁜 일자리를 채워 고용률을 높이고, 남성을 내조하기 위해 하늘 아래 함께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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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에서 한 여성이 살해됐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자였기 때문이었다. 사건이 알려지자 여성들은 강남역 10번 출구로 모여들었다. 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었다. 슬픔과 공포, 분노의 마음들이 그려졌고, 당신이 바로 나라는 고백, 잊지 않겠다는 다짐, 이 세계를 바꾸어나가겠다는 약속 등이 빼곡하게 적혔다. 무고한 죽음에 대한 애도가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번져갔던,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의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흘렀다. 우리에게 그 1년은 어떤 시간이었을까? 무엇보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으로 요동쳤다. 2015년 온라인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일었던 페미니즘 운동이 드디어 거리로 나섰다. 다양한 단체들이 결성되었고, 담론은 확장되었으며, 페미니즘 시장 역시 형성되었다. 각성하기 시작한 페미니스트들은 촛불광장에도 참여했다. ‘페미존’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깃발이 나부꼈다. “나라 바꾸는 계집, 호모, 가난뱅이, 페미”가 등장했다. 그야말로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실로부터 비롯된 한계 역시 존재했다.

한 페미니스트가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는 추모 공간에까지 찾아와 혐오발화를 서슴지 않았던 한 남성과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고 사라졌다. 그는 논쟁을 끝내고서야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분홍색 마스크였다. 얼굴이 찍혀 신상이 털리거나 조리돌림 당하지 말라는 마음. 많은 여성들이 그 마음에 공감했을 것이다.

지난해 5월 20일 서울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 지난 17일 새벽 인근 공용화장실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여성을 추모하는 글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강윤중 기자

여기에 그 현실이 놓여있다. 추모조차 안전하지 않은 곳이 바로 우리의 세계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는 것이야말로 이야기되어야 할 또 하나의 문제다. 우리의 두려움이 과도하다는 말은 아니다. 두려움이 사슬이 된다는 의미다. 얼굴을 가리는 것이 비겁하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그보다는, 어떻게 얼굴을 되찾을 것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얼굴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여성들의 공통 경험, 그 기억이 일상적인 공포라는 사실은 우리의 운동을 절박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도 했다. 강력한 피해자 정체성을 바탕으로, 나를 숨어들게 만드는 두려움을 자양분으로 했던 움직임. 그 한계를 뛰어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해서 그 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것이야말로 이 세계가 여자들에게 요구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것은 강력하게 ‘생물학적 여성’으로 한정 지어진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강남역 10번 출구’라는 추모의 시공간은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 성별에 대한 자각 없이 살았던 여성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그에 가해지는 억압과 부조리와 싸우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는 혁명과도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여성들에게는 또다시 두려움을 주입하여 스스로의 활동반경을 줄이고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획일화된 범주 안에 고착되게 했다는 점에서 반동적이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강한 운동을 위해서는 확고한 정체성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그런 정체성이란 우리를 다시 그 자리에 가둔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나의 현실을 조건 짓고 있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운동을 추동해가면서, 동시에 장애인, 퀴어, 이주민 등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들과 접속하여 그 경계를 넘는, 일종의 이중전략이 필요하다. ‘뿌리를 내리면서 이동하기(rooting and shifting).’ 이는 ‘나’의 문제를 기반으로 ‘너’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능해진다. 이는 또한 나를 온전히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스스로를 드러낸 타자와 대면해야 한다는 점에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가 허락한 자리를 ‘발본적’으로 깨치고 나온다는 의미에서 ‘급진’이다.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 범페미네트워크가 주최하는 1주기 추모제의 제목은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의 1년은 용기로 채워진 시간들이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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