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봄, 나는 스페인에 있었다. 여자 셋이 가진 돈을 탈탈 털어 무작정 여행을 온 참이었다. “이때쯤 가면 큰 인형들을 잔뜩 태우는 축제가 있는데 그렇게 멋있대!” 그렇게 떠난 여행의 마지막은 바로 발렌시아. 방금 도착한 여행자도 ‘뭔가 있구나’를 단박에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축제가 시작된 도시의 분위기는 남달랐다. 라스 파야스(Las Fallas), 일명 ‘불의 축제’를 위해 온 도시 사람들이 1년을 준비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대로, 흩날리는 꽃들, 눈부신 햇살은 기본, 디즈니 만화부터 성경의 한 장면까지 개성 넘치는 거대한 목각 인형들이 위풍당당했다. 사람들이 터트리는 폭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거리에서 덩달아 흥분한 우리는 인형을 찾아 낯선 도시의 골목골목을 쏘다녔다. 그리고 축제 마지막 날, 거리의 인형들에 하나씩 불이 붙기 시작했다. 전통에 따라 단 하나의 인형만을 남겨두고 나머지 인형들은 모두 불사르기 때문이다. 지나간 나쁜 일들을 태워버리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란다. 공들여 만든 인형들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거대한 불구경 앞에서 순식간에 잊혔다.

일상이 전혀 다른 질감의 공기로 채워지는 느낌, 그야말로 축제라는 특별한 자장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자동차만 지나다니던 대로를 막고, 사람들이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고, 노래를 부르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분명히 익숙한 공간인데도 어쩐지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순간, 그때야말로 축제다. 무대가 아니라 일상의 공간에서 축제가 열릴 때, 관람객과 참여자의 경계가 없을 때 축제의 비일상성은 더욱 빛을 발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촛불이 타오르던 지난겨울의 많은 토요일들이 바로 그랬으니까. 도심 한복판의 왕복 16차로 도로를 평화롭게 돌아다니던 사람들 사이에서 느낄 수 있던 공기는 그때 그 축제를 떠올리게 했다. 물론 발렌시아 ‘불의 축제’ 공기와는 다른 종류의 질감이다. 스페인의 공기가 햇살과 ‘뜨거움’과 ‘열광’ 자체라면, 서울의 공기는 밤의 서늘함과 ‘분노’에 ‘이런 게 가능하구나’란 놀라움이 뒤섞인 그 무엇이었다. 청소년부터 초로의 노인까지 뒤섞인 군중 속에서 누군가 “박근혜”를 외치면 “퇴진하라”를 자연스럽게 이어받고, “토요일은 쉬고 싶다”처럼 재미있는 구호를 외치면 키득거리며 지나가던 사람들의 자유로움과 느슨한 연대! 유난했던 지난겨울의 추위에 코가 빨개지고 감각이 둔화된 와중에도 그 독특한 질감의 공기가 여전히 생생한 것은 일상의 공간이 일정한 시간차를 두고 비일상의 공간으로 바뀌는 드문 경험이었기 때문일 테다.

그렇게 만들어낸 ‘장미 대선’이 딱 일주일 남았다. 광장을 밝히던 촛불들의 선택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10%도 되지 않던 홍준표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가면서 2위인 안철수 후보와의 차이를 좁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농단’의 방조자였던 ‘자유한국당’의 후보인 그가 반성은커녕 대통령에 당선되면 “박근혜를 사면하겠다”고 외친다. 지난 토요일,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대통령 선거에서 광장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선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상황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19대 대선은 촛불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과 그로 인해 치러지는 초유의 ‘보궐선거’다. 투표 종료 시간이 오후 6시가 아니라 8시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기 시작하면서 이 선거가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그새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스페인 불의 축제는 1년 후에 다시 열리지만, 한국에서 선택의 시간은 5년 이후에나 다시 돌아온다. 불의 축제에서 최후에 선택된 단 1개의 인형만을 박물관에 영구히 보관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번에 선택한 후보는 19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역사에 영원히 남을 테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축제 불구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촛불혁명’이라는 밀도 높은 공동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인형을 태운 불은 축제와 함께 꺼졌지만, 서울의 밤거리를 밝혔던 축제 같았던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무엇을 위해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는지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축제를 앞두고 다시 생각해볼 때다. 딱 일주일 남았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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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과 색욕은 본성이며, 먹는다는 것은 더구나 한 몸이 살아가는 데 관련된다. 선현이 음식을 천하게 볼 때는 먹기에만 빠져 저 좋은 것만 추구하는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어찌 음식을 제쳐 두고 음식 얘기는 하지도 말라는 뜻이겠는가(食色性也, 而食尤軀命之關. 先賢以飮食爲賤者, 指其도而徇利也. 何嘗廢食而不談乎)?”

허균(許筠·1569~1618)이 <도문대작>의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부친 한 문단이 이렇다. <도문대작>은, 조금 과장을 보태 ‘먹방’에 가까운 조선의 음식 이야기다. 먹방 시작에 앞서 체면을 차려 보겠다는 고심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러고도 맨 앞 문단은 어려서는 아버지 덕분에, 장가가서는 처가 덕분에 귀하고 맛난 음식을 얼마든지 먹고 살아왔다는 이야기와 추억으로 채웠다. 조선 시대 교양의 잣대로 보면 방정맞은 글이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이 글은 글쓴이의 처지가 어렵고도 궁색할 즈음에 태어났다.

허균은 1610년 12월 전라도 함열로 귀양살이를 떠난다. 그해 11월 내내 허균을 괴롭힌 별시의 부정 합격자 문제가 끝내 탄핵과 파직에 이어 유배에 이른 것이다. 이해 조정은 선조의 신위를 종묘에 옮기고 별시를 치렀다. 허균은 그때 이항복, 이덕형, 이정귀 등과 함께 최종 시험을 감독했다.

문제는 최종 합격자가 발표되자 불거졌다. 허균이 조카와 형의 사위를 부정 합격시켰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 뒤로 한 달에 걸쳐 허균에 대한 ‘모욕 주기’가 이어졌다. 사관 또한 허균의 억울함을 암시하는 기록을 실록에 남겼으나 허균은 별수가 없었다. 한겨울에 귀양길에 오른 허균은 이듬해인 1611년 1월15일 함열에 가 닿는다. 그런 중에도 허균은 딴짓을 했다. 유배지에 도착하자마자 먹는 타령이었다. 예컨대 벗 기윤헌에게 유배지 도착을 알리느라 쓴 짧은 편지를 보면, 도착했다는 말 빼고는 이 내용이 전부다.

“새우도 부안 것만 못하고, 게도 벽제 것만 못해. 음식을 탐하는 사람으로서 굶어 죽을 판이야.”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함열현감으로부터 연어알젓을 받아 잘만 먹어치우고 나서도 다음날 바로 먹을거리를 가지고 불평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는 뱅어와 준치가 많이 난다고들 하기에 여기로 유배 오기 바랐습니다. 그런데 금년 봄에는 일절 나지 않으니 또한 제 운수가 사납습니다.”

불평 끝에, 허균은 기억 속에서 음식을 불러내고, 상상으로 미각을 되살렸다. 먹어본 사람일 뿐만 아니라, 취향과 기호가 분명하기에, 허균은 먹는 타령을 해도 조리가 있었다. <도문대작>은 마냥 “먹고 싶다”, “최고예요!”가 아니다. 재료는 산지별로 정리했고, 만드는 과정의 급소가 드러나며, 일품요리에서 간식과 요즘의 별미 음료와 과자까지 아울렀다. 조리서 빼고, 조선 시대에 음식을 단일 주제로 해 본격적으로 음식을 다룬 글이 이렇게 태어났다. 글쓴이로서는 괴롭고 궁핍한 즈음의 글이다.

‘도문대작’이라는 말은 유비, 손권과 함께 천하를 다툰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자 위나라의 대표적인 문인 조식(曹植)의 문장에서 왔다. 조식은 “푸줏간을 지나며 크게 입 벌려 씹는 시늉을 함은, 비록 고기는 못 먹었어도 바로 이 순간이 귀하고 더구나 유쾌해서다(過屠門而大嚼, 雖不得肉, 貴且快意)”라고 했다. 조식의 시대에 “고기 맛 좋은 줄 알면 푸줏간 문 앞에서 고기 씹는 시늉을 한다(知肉味美,則對屠門而大嚼)”라는 유행어도 있었다.

<도문대작>과 ‘도문대작’을 앞에 두니 각박한 처지를 스스로 위로하고픈 허균의 마음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아울러 5월 숨 가쁜 달력이 새삼스럽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이어진다. 초파일에 임시 공휴일까지 끼고, 연휴가 길어질 수도 있다. 미어터질 곳은 음식점일 테다. 내 이웃, 골목길 장삼이사들, 벌써 5월을 바라 맛집 검색에 들어갔으리라. 아름다운 5월 첫 주에 모두들 부디 좋은 음식을 들기 바란다. 단, 검색 말고, 텔레비전 먹방과 유명하다는 맛집 사냥꾼 말고, 내 일상과 내 추억에서 우러난 저마다의 도문대작을 펼쳤으면 좋겠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검색에 등 떠밀려 유명하다는 푸줏간 앞에 줄 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 마나 한 소리지만 우리 부모·자식, 형제자매, 사제, 도반, 동지 사이, 그리고 소중한 휴일을 얼마든지 함께할 친구, 연인 사이는 검색의 결과가 아니다. 뜬 세상에서 먹방도 쓸 데가 있으리라. 다만 추억은 잊지 말자.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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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은 하나의 시체에 대한 세 사람의 진술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한 사람은 범인으로 의심되는 도둑, 나머지 두 사람은 아내와 죽은 남편의 혼령. 기이한 것은 이들 셋이 모두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을 영화화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도 이 셋의 진술대로 사건을 재현할 뿐, 어떤 것이 진실인지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이 이야기에 대한 손쉬운 잣대는 “객관적 사실은 없다.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던 니체를 따르는 것이다. 사실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모두 각자 자신만의 원근법에 의해 사실을 재구성하고 때론 왜곡한다는 것. 그러나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것을 사실로 믿게 되었는가’이다. 여기에는 단순히 ‘자기합리화’라고만 할 수 없는 복잡한 욕망과 무의식의 기제가 작동한다.

대선 토론을 보면서 곳곳에 놓인 ‘덤불 속’을 발견한다. 그제 3차 토론에서 있었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공방은 마치 사오정 개그를 연상하게 한다. ‘물어봤습니까’ ‘아닙니다’ ‘물어봤다지 않습니까’ ‘진실이 아닙니다’라는 되풀이는 ‘팔계야 어디가’에 ‘목욕탕’이라고 거듭 답하는 저팔계의 말을 무시하고, ‘아~ 난 또 목욕탕 가는 줄 알고’라고 답하는 사오정의 판박이다. 합리적 보수로 자처하는 이성에도 강고한 욕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짜 뉴스가 판치고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지금, 매스컴과 후보들의 사실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 저마다의 무의식적 욕망을 담은 ‘선택된 사실’이자 ‘왜곡된 사실’일 경우가 많다. 누구도, 어떤 사실도 그런 욕망과 이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그 욕망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토론에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후보자들의 응답보다 질문이다. 흔히 응답자가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답변자는 질문자가 깔아놓은 물음이라는 매트릭스와 프레임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그의 자유는 제한된다.

한 나라의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일단 법의 경계 안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피의자’와 같이 경계를 넘나드는 대담한 분은 더 큰 판에서 활약해야 한다. 둘째, 어른이어야 한다. 어른은 스스로를 통제하고 책임지는 주인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물어보고, 거기에 반항하거나 반응하는 것으로 일관하는 것은 어른이 아니다. 또한 어른은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자이다. ‘내가 누구입니까’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남에게 묻고 확인받으려는 자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그리고 어른은 삐지거나 토라지지 않는다. 정직하게 타인의 잘못에 대해 질책할 수는 있지만, 얼굴을 보지 않는 등의 유치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른은 모욕과 비난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타인의 비난에 대해 ‘그만 좀 괴롭히십시오, 아휴, 실망입니다’와 같은 투정은, 더 큰 수난을 감내해야 하는 지도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멘탈이다.

그렇게 해서 남은 어른 중에 지도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덕목을 갖춰야 한다. 첫째, 타인과 진정으로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소통(communicate)은 함께(com) 나누는(municate) 것이다. 질문을 했으나 자신의 질문에만 사로잡혀 타인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대화가 아니다. 둘째, 자신의 철학과 언어가 있어야 한다. 참모의 말, 소셜미디어에 부유하는 말로 무장한 후보는 자신의 철학과 언어가 없는 자이다. 즉, 지도자의 언어는 그 사람과 밀착되어야 하지, 과거 지도자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셋째, 곤혹과 딜레마를 알아야 한다. 정의실현과 정책을 교과서 같은 진공 상태에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의 실타래 속에 놓고 볼 줄 알아야 한다. 쉽게 타인을 타매하고 배제하고 명쾌한 답을 내는 것은 쉽지만, 그것은 바깥에 있거나 상황 속에 있지 않을 경우이기 쉽다. 넷째, 지도자의 대타자, 즉 그가 눈치 보아야 하는 대상은 국민이어야 하지 어떤 특정인이거나 권력이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지도자는 그가 이끄는 국민들을 모두 다 데리고 가야겠다는 원대한, 불가능한 꿈을 꾸는 자여야 한다. ‘그 모두’를 데리고 가는 일이 아무리 끔찍하고 힘들더라도, 최대한 설득하고 달래고 위협하고 혼내서라도 함께 가야지 버리고 가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모두에는 ‘청년, 노인, 여자, 노동자, 재벌, 동성애자, 장애인’ 등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고 이웃인 ‘북한, 미국, 중국과 세계’까지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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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부터 울산 동구 고가다리 교각에서 전영수씨(42)와 이성호씨(47)가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지난달 업체가 폐업한 이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같이 실직했으나 아직도 일을 찾지 못한 4명 모두 노조 조합원이다.

사실 이들의 삶은 실직 이전부터 불안정했다. 하청노동자로 조선업에서 일하면서 업체의 잦은 폐업, 짧은 계약기간, 높지 않은 임금 등으로 불안정한 일자리를 전전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은 2000년대까지도 세계 최고 수준의 수주실적을 자랑하며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칭찬받았다. 그런데 조선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은 그리 좋지 않다. 한국 조선업 생산직 열 명 중 아홉 명은 사내하청 인력이다. 원청업체는 하청업체와 단기계약을 맺는데, 하청은 주어진 물량을 기한 내에 생산해내지 못하면 원청으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원천적으로 의존적 관계에 있는 하청업체들은 낮은 비용으로도 물량을 맞추기 위해 다시 물량팀과 하청 계약을 한다. 이렇게 하청, 하청의 재하청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은 전체 한국 조선업 종사자의 80%나 된다. 한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진 다단계식 고용구조 속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가장 위험한 일을 하면서도 가장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다. 2014년 현대중공업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9명 전원, 2015년 산재 사망자 3명 전원, 그리고 2016년 산재 사망자 11명 중 7명이 하청노동자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하청노동이 조선업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업종을 망라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는 지금 이러한 하청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더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몇 달치 임금이 체불되고 쉽게 해고되어도 다음날이면 다시 똑같이 나쁜 일자리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주요 제조업 분야만 하더라도 하청노동자의 수가 절반을 훌쩍 넘는데 왜 함께 연대하여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을까. 나는 연구차 여러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연스레 노동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 ‘노조에 가입했더니 찍혀서 취업이 안된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갈까봐 노조 가입을 못하겠다’ ‘조합원이 있는 하청업체는 원청이 아예 통째로 날려버린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논의는 사실 오래되었다. 본격화된 계기는 1970년대의 동일방직 노조투쟁이었다. 대부분의 종사자가 여성이었던 이 회사가 노조 파괴를 시도하자 여성 노조원들이 옷을 모두 벗고 뭉쳤다. 이에 경찰은 가차 없이 곤봉으로 구타하면서 전원 연행했다. 1978년 사측은 또다시 노조 무력화를 시도했다. 여성 노조원들이 이에 저항하자 사측은 남성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똥물을 뿌렸다. ‘동일방직 인분사건’이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것은 당시 작성되었던 블랙리스트다. 각 사업장에 배포된 블랙리스트로 인해 해고 노동자들은 이후 재취업까지 완전 봉쇄되었다. 이어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까지 노조 출신 노동자의 해고 사태가 속출하면서 노동계 블랙리스트는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1991년에는 부산 금호상사 전산실에서 전국의 해고 노동자를 비롯하여 노조 조합원이 포함된 8000여명의 명단이 입력된 블랙리스트가 발견됐다. 2014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기각되었지만, 2011년 동일방직 피해노동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과정에서 당시 국가 정보기관과 기업인 친목단체가 만든 블랙리스트가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한국은 복지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기 때문에 일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그야말로 벼랑 끝으로 내몰릴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 블랙리스트는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의 노동 3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일할 기회마저 박탈하여 생존권까지 위협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역사상 최초로 현직 장관까지 구속시켰다. 그런데 노동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노동계 블랙리스트는 이렇게 수십년 계속되는데도 우리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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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이 남자들 판이라는 건 새삼스럽지 않다. 규라인, 유라인, 강라인이 기승을 부리는 와중에 여자 예능인은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이렇게 남자판인 예능, 즉 한남 엔터테인먼트는 <남원상사>에서 그 완성을 본 것 같다.

그간 한국 예능은 경제적 몰락 속에서 기가 꺾인 남자들을 위로하는 재현 전략을 취해왔다. 예컨대 지난 10년간 대표 예능이었던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무모한 도전’을 하는가를 보여주던 콘셉트에서, 점차로 지치고 힘든 국민정서에 말을 거는 거대 프로젝트에 대한 ‘무한한 도전’으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고난 끝에 기어코 성공하고야마는 루저의 성공담으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무한도전>을 급부상시켰던 에피소드가 스포츠 댄스, 조정, 봅슬레이, 프로레슬링처럼 스포츠를 주제로 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그 서사의 축적 속에서 출연자들 역시 ‘고군분투 속에 성공한 가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남자 루저들의 우정과 성장, 그렇게 쓰여진 성공담. 그것이 <무한도전>의 인기비결이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2017년 대한민국. 여기는 프로젝트의 성공과 가장의 탄생이라는 판타지조차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는 헬조선이다. 덕분에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판을 치기 시작했다. 내 인생 유일한 즐거움을 망치는 아내에 대한 성토(<수방사>)와 아재짓의 향연(<아는 형님>)을 지나, 남자들이 술마시고 ‘노가리 까는’ 것(<인생술집>)까지 방송을 탄다. 그리고 드디어 대놓고 “남자의 원기가 떨어진 것은 여자 탓”이라고 악다구니를 치는 예능이 등장했다. <남원상사>다. 이건 정말 최악이다.

<남원상사> 1회는 “남자의 주차 부심”에서 시작해서, “남자들이 고추 긁는 이야기”로 넘어가더니, 마지막 대미는 “프러포즈 안 했다고 바가지 긁는 와이프에게 확실히 프러포즈 해주기”로 장식되었다. 그렇게 “남자들의 로망, 우리가 책임집니다”라고 외치며 방송은 끝난다.

프러포즈에 대한 묘사도 가관이다. 몰래카메라인지 모르고 레스토랑에 남편과 함께 들어온 아내는 계속해서 셀카를 찍어댄다. 그러고는 “우리 이사가면 인테리어를 클래식하게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남편은 “돈이 얼만지 아냐?”라고 되묻고, 진행자인 장동민이 그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렇죠, 남자들은 현실적인 생각을 하죠.” <남원상사>가 여자와 남자를 그리는 프레임은 분명하다.

그 프레임 안에서 프러포즈 받는 여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 역시 ‘남자가 상상하는 여자의 생각’을 반영하면서 자막으로 박제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식사 도중 다른 커플의 공개 프러포즈가 각본대로 진행된다. 남편이 아내에게 “부러워?”라고 묻자 아내는 고개를 젓는다. 그러자 “부럽지 않은 척”이라는 자막이 뜬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충실한 대역 배우가 될 뿐이다. 예쁘고, ‘관종’이고, 보호받길 좋아하는 ‘전형적인 여자’로서, 그는 프러포즈를 받고 ‘행복의 눈물’을 흘린다. 그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어떤 개성을 가진 사람이건, 그를 그리는 프레임은 이미 짜여 있기 때문이다. 이 ‘김치녀 서사’에 반전이란 없다.

<남원상사>는 남자를 좌절시키는 원인으로 여자, 그리고 그들의 ‘여자짓’을 지목한다. 여기서 ‘여자짓’이란 여성이라는 성별에 덧씌워져 있는 이 사회의 전형(stereotype)을 의미한다. 이 확증편향 안에서 여자는 김치녀 프레임에 포획돼 벗어날 수 없다.

대중문화가 지친 남자들을 위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 위로를 다른 이에 대한 차별과 배제로 제공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해서 형성되는 것은 ‘여성혐오가 팔리는 시장’일 뿐이다.

여혐을 자기 상품성으로 삼는 예능과 남성 셀렙, 그리고 셀렙-워너비가 늘고 있다. 특히 <남원상사>와 같은 남성용 예능은 그런 시장을 발굴하고 확대시킨다. 그 세계에서 여혐 발언은 실수가 아니라 적극적인 생존전략이 된다. 그 공동체는 혐오를 제재하지 않고 오히려 권한다. 이 지긋지긋한 한남 엔터테인먼트의 끝장을 보고 싶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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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고향인 서울 망원동으로 돌아왔다. 모 선생님께서 글을 쓰기 위한 공동 공간의 한 자리를 흔쾌히 내주신 덕분이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순대를 사 먹던 그 거리는 이제 ‘망리단길’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망원동과 경리단길의 합성어라고 한다. 간판만 보아서는 무엇을 파는지 잘 알 수 없는 세련된 가게들이 많이 생겼고 물가도 많이 올랐다. 그렇게 많은 것이 변했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정겹다. 눈길 닿는 자리마다 묻은 지 30년은 되었을 법한 추억들이 여전하다.

낮에는 허락받은 작업실에서 글을 쓰다가 저녁에 콜이 들어오면 대리운전을 하는, 그런 생활을 한동안 지속했다. 새벽에 일을 끝내고 돌아와 알람 소리를 못 듣고 누군가의 출근하는 소리에 깨기도 여러 번이었다. 정말이지 몇 달 동안은 거기에서 먹고 자는 민폐를 끼쳤다. <대리사회>라는 글은 그래서 나올 수 있었다.

망원동에서 대리운전을 시작하면 일산이나 파주로 많이 가게 된다. 광명이나 안양, 아니면 남양주로도 간다. 다양한 지역의 콜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양화대교를 기점으로 여러 도로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도로라고는 강변북로밖에 모르던 나는 곧 자유로, 내부순환로, 외곽순환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와 같은 주요 도로들을 외우게 되었다. 경기도의 외곽, 그 어느 경계지역까지 가고 나면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수목원이나 화장터 근처에 홀로 남기도 했다. 운 좋게 같은 처지의 대리기사 선배들을 만나면 함께 농협 사거리로 내려와 어떻게든 서울로 돌아왔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광역버스 막차의 손님은 주로 대리기사들이었다. 물론 기다리다가 서울로 가는 콜을 잡을 수 있다면 복귀도 하고 돈도 벌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런 행운은 거의 따르지 않는다. 늦은 밤, 서울에서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경기도로 빠져나가기 위해 입석을 마다하지 않는 그 시간에, 경기도에서는 대리기사들이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광역버스가 서는 정류장을 서성거린다. 서울로 복귀하면 경기도로 가는 콜이 핸드폰 화면을 채운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기껏 돌아온 그곳으로 다시 가는 수밖에 없다. 대리기사들은 새벽의 서울이 사람을 뱉어낼 뿐 쉽게 다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망원동으로 돌아왔지만,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은 이제 없다. 서울이 그들을 뱉어냈다고 하는 편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서른이 넘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어느 인생의 변화를 겪으면서 각지로 흩어졌다. 서울의 북쪽 끝인 수유나 미아로 간 친구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고 역곡으로, 동탄으로, 원흥으로, 김포로, 저마다 이름도 생소한 도시로 갔다. 광역버스나 급행전철의 노선을 따라 ‘이주’한 것이다. 아이가 크면 조금 더 멀어져야 할지 모른다. 망원동 근처의 대학/대학원을 다니는 이들도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50만원을, 아니면 500만원에 60만원을 마련하기가 힘들어 대학가와 오히려 멀어진다. 그러고서도 변기와 침대가 거의 맞닿아 있는 비좁은 공간에서 견뎌낸다. 보증금을 적게 요구하는 곳을 찾아가 보면 대개는 이런 데서도 사람이 사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망원동/서울은 더 이상 젊은 세대가 자신의 노동이나 신용으로 거주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대학생이 단칸방을 얻는 데도 1년치 월세가 훌쩍 넘는 보증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단순히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뿐 아니라 대학이, 직장이, 삶을 지탱하는 그 무엇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모두가 안간힘을 쓰며 버텨낸다. 초등학교 동창 한 명이 결혼하고도 망원동에 남았는데 그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나는 내가 자란 망원동이 정말로 좋아, 여기에서 아내와 아이와 함께 계속 살고 싶어, 지금은 그게 유일한 목표야.” 그에게 다른 도시로의 이주는 밀려나는 일이 될 것이다.

망원동/서울이 언제 다시 나를 뱉어낼지 알 수 없다. 허락받은 작은 공간이 있어 잠시 머물고 있을 뿐 완전한 이주를 꿈꾸기는 어렵다. 다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조금 더 버텨내고 싶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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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단편 ‘손톱’에는 소희라는 이름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소희 곁에 있어야 할 대상들은 다 떠나버리고 소희는 빚만 떠안은 채 성인이 된다. 스물한 살의 소희가 갚기엔 만만치 않은 액수다. 그녀는 이십만원으로 한 달을 살고 있고 출퇴근 시간을 급여로 환산해 머릿속으로 계산해볼 만큼 꼼꼼하다. 아니, 절박하다. 친구도 못 만나는 삶, 섣불리 친구도 못 만드는 삶이다. 방세가 오르거나 병원에 가는 일이 없다면, 착실하게 돈을 모아 스물여덟에는 빚을 다 갚을 수 있다. 그게 소희의 유일한 희망이다. 성실함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한없이 불투명한 희망.

소희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돌아보고 자신이 처하게 될 미래를 내다보다 건물 쇼윈도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만다.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뭘, 뭘, 뭘? 뭘? 뭘? 뭘?” 그녀에게 삶은 단 한번도 개척해나가는 것이나 누리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늘 ‘처하는 것’이었다.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 자신이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간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

이쯤 되면 소희는 ‘헬조선’을 살고 있는, 아니 헬조선에 처해 있는 젊은이들을 대변하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른다.” 우리 중 대부분은 모르는 채로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각박한 현실 앞에 놓인 ‘왜’라는 질문은 너무 커다래서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울 때 이 소설을 읽어서인지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소설이 섣불리 희망을 말하지 않아서, 행복할 거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아서, 그런데 그게 더없이 적확한 현실이라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잘될 거라는 확언이나 나아지리라는 보장은, 그 말을 듣는 당사자에게는 멀리 있는 말, 아득한 말이다. 마치 ‘미래(未來)’라는 단어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뜻인 것처럼. 나의 눈물은 위안의 눈물이라기보다 공감의 눈물에 더 가까웠다.

공감은 자기 자신도 그렇다고 느끼는 기분이다. 자기 자신도 그런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는 데서 오는 마음의 끄덕임이다.

공감에 시공간의 제약이 있을 리 없다. TV로 딱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을 보며 전화기를 집어 드는 것도, 대형 참사 앞에서 함께 눈물 흘리는 것도 우리가 공감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문학작품을 많이 읽으면 공감 능력이 커진다. 생면부지의 누군가에게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때로는 그가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공감은 불러일으키는 것에서 가는 것, 마침내 도달하는 것이 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된다.

정신없이 바쁠 때일수록 나는 더 갈급이 나서 문학을 찾았던 것 같다. 내가 바랐던 게 위안인지 격려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늘 문학작품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안도했다. 그것을 단순히 요새 유행하는 ‘힐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나는 그저 세상에 있는 단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며 경건해졌다. 세상에 누구도 같은 사람은 없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산다. 그의 삶과 나의 삶에서 공통된 감각을 찾고 결이 유사한 순간을 발견하면 누구든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흔들림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 공감하는 사람이 될 확률이 높다.

문학작품은, 아니 좋은 문학작품은 무턱대고 “힘내”라거나 “잘될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여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런 게 왜 있는지 소희는 모르지만, ‘슬프면서 좋은 거’ 때문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내일을 생각할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사실, 나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함께 앓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은 절로 뜨거워진다. 그것은 빤한 위로나 날카로운 조언보다 힘이 된다. 공감이 위안에 가닿는 놀라운 순간이다.

손톱은 손가락을 보호하지만, 손 전체를 보호해주지는 못한다. 인간이 손을 내밀고 맞잡는 존재인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문학작품 속에는 당신의 손을 기다리는 무수한 손들이 있다. 슬프면서 좋은 거, 그게 바로 문학이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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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올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할 일이 생겼다. 해당 프로그램을 봤다는 지인들의 피드백을 종종 접하는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들 중 대다수가 나의 ‘분량’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그램 시작할 때 협약한 회차당 출연료가 있고, 그것은 고정됐다. 내 모습이 방송에 좀 더 빈번하게 나온다고 출연료 더 주는 것도 아닌데, 분량이 뭣이 중요한가?

내게는 출연료가 방송 출연의 제1목적이다. 계기가 있었다. 내가 보드게임 ‘수저게임’을 기획·제작한 뒤였다. 모 방송 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수저게임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연락이 와서 만난 적 있었는데, 그때 제작진으로부터 약속받은 내용이 방송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나는 느꼈다. 약간의 소음과 감정 소모 뒤, 결국 아이디어 제공자 표기에 대한 서로 간의 이해 차이가 있었음을 확인하며 일단락됐다. 같은 해 하반기에도 수저게임과 유사성 있는 게임을 핵심 축으로 삼은 방송 프로그램이 방영됐다. 거기에는 아예 수저게임을 ‘참고’했다는 표기마저 없었다. 그 제작진과도 방송 기획 단계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당시 그들은 내 진행 아래 수저게임 플레이를 했고, 숱한 질문 뒤 더 참고하겠다며 수저게임 키트도 무상으로 빌려갔다가 내가 돌려달라고 연락하자 그때서야 보내줬다.

모순을 감지했다. 제작진 미팅 때 “(내가 방송에 협조한 바가 있는 만큼) 방송 영상을 필요할 때 활용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원작자’(방송에는 따로 표기하지 않았지만 구두로는 원작자임을 인정한 셈인가?)이니만큼 최대한 예우하겠지만, 그때 돼서 다시 본사와 얘기하라”는 대답을 들었다. 방송사는 영상 사용권이라든지 포맷 판권이라든지, 본인들 권리 구사에는 적극적이지만 독립기획자 및 예술가의 콘텐츠에는 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소모품으로 사용할 뿐이라는 아이러니.

공공기관의 지원금 없이 독립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개인의 작업이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을 때, 혹은 재밌어 보일 때 보수를 받지 않고 참여한다. 나 역시 자본 없이 혈혈단신으로 콘텐츠를 만들 때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방송국 본사는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직원 연봉도 수천만원, 제작비도 회당 수천만원 책정된다. 거기에 출연료 예산은 포함돼 있으나 ‘자문’이나 ‘참고’를 위한 예산은 없는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내놓고 싶은 욕망을 가진 개인의 고민과 시간 투여가, 더 많은 경제적·사회적 자본을 가진 주체에 의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레퍼런스’로 귀결된다는 것에 모멸감을 느낀다. 해당 방송만이 기억되고 원작자는 잊히는 상황도 부당하다.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후련했냐!(feat. 김래원)

모티브에 대한 언급, 크레디트 표기, 원작자에 대한 예우 등 추상적이고 가치 중심적인 약속 뒤에 그것이 지켜지지 않아 실망하는 일을 적잖이 경험하고 빈번히 목격했다. 이제 나는 뚜렷하게 손에 잡히는 물질을 믿기로 했다. 만약 앞으로 방송사에 ‘쓰임’ 당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반드시 돈이라도 챙기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방송 출연의 목적이 그뿐만은 아니다. 의견을 전하고픈 욕망도 있다. 그래서 지금 출연하고 있는 프로그램에서도 (때론 함께 출연하는 패널들의 눈치를 보며) 열심히 발언했다. 힘 있는 주체에 의해 약소한 개인이 착취당하는 사례, 종교단체의 성소수자 기본권 침해, 주거 빈곤 문제와 젠트리피케이션 등을 줄기차게 거론했지만, 많은 부분이 편집되고 있다…. 한정된 방송 시간, 좀 더 흥미롭고 매끄럽게 완성해내야 함을 알기에 이해한다. ‘이 정도면 꿀알바다’ 싶은 정도의 출연료 덕에 내 도량이 넓어진 것일 수도….

방송에 이용만 당하지 않겠다. 나도 의견을 널리 전하기 위해 방송을 활용하겠다. 다만 그것에 너무 큰 기대를 갖지는 않는다. 내가 최종 편집권을 가진 통로를 통한 발화와 독립적인 창작을 더 중시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콘텐츠는 또다시 보상 없는 레퍼런스 제공으로 귀결되려나?       

방송 기획에 도움을 준 예술가에게 (비단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도) 합당한 보상이 돌아가지 않은 일을 최근에도 목격했다.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방송사들의 자성과 체계적인 매뉴얼, 관련 예산 편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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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니시카와 미와의 장편소설 <아주 긴 변명>이었다.

지난 2월 개봉한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로,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인기 소설가(사치오)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몇 번이나 울컥했다. 아예 책을 덮고 잠시 울기도 했다.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었다. 자극적인 묘사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여러 등장인물이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읽는 내내 세월호 이후의 현실이 계속 겹쳐 생각났다. 사실 소설과 현실은 거의 겹치는 장면이 없는데도, 갑작스러운 비극 이후 남아있는 자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구체성이 감정선을 건드렸다.

겨우내 광장에서 외쳤던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구호는 봄이 오면서 실현됐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했고, 예정된 봄꽃축제를 취소한 목포 거리에 노란 깃발이 휘날리고, 하루 평균 1만여명이 목포를 찾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아직도 9명의 미수습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수부와 선체조사위원회의 불협화음, 선체 훼손 논란, 계속 나오는 의문의 동물 뼈까지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영화 <아주 긴 변명> 스틸 이미지

주인공 사치오는 아내가 죽을 때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장례식 때 직접 쓴 추도사를 낭독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나 슬픈 척 연기를 했고, 장례를 마친 후 자신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반응을 살피는 비겁하고 열등감 가득한 인간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여전히 사고 당일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전직 대통령,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비하했던 공영방송 보도국장, 단식투쟁하는 유족들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고 인증샷을 찍던 일베 회원들, 미수습자 가족들만 만나고 사라진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다행히 소설의 주인공은 죽은 아내 친구의 아이들을 보살피며 ‘감미로운 충족감’과 위로를 얻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면서 비극을 똑바로 마주하고 견뎌내는 법을 배우지만, 3년이 흐른 지금도 현실 속 인물들은 반성 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출몰 중이다.

사실 일본 영화계는 3·11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일본이 겪은 ‘사회적 상실’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아주 긴 변명> 역시 ‘이 시점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감독의 무력감에서 쓰인 소설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세월호를 다룰 준비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바로 얼마 전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해양재난’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슬퍼할 수 있는 휴먼드라마’를 내세워 제작 계획을 발표했던 영화 <세월호>가 버젓이 후원을 받고 있었으니까. 비극적 참사를 상업영화의 소재로 이용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후원이 중단되긴 했지만, 웃고 넘어갈 해프닝으로 취급하기에는 뒤끝이 너무 씁쓸하다.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바다 호랑이>(가제)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무력감이 창작자로 하여금 이렇게 담담한 소설을 내놓을 수 있게 한 동력이라면, 한국 사회는 세월호를 세월호 자체로 바라보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아내가 일하던 미용실에 뒤늦게 찾아가 아내가 늘 해주던 스타일대로 머리를 다듬고, 아내의 평소 사진을 받아와 인화해 액자에 담고 그제서야 늦은 울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끝난다.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 회한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내를 생각’하는 순수한 울음 그 자체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세월호 이후의 부재와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아직 세월호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기억할 장면은 여전히 많다. 우리는 아직 그 기억들에 대해 제대로 기록하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미수습자 다윤이 어머니의 절규에 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말이다. 누군가는 사과 대신 ‘아주 긴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모르지만, 언제든 들을 준비는 되어 있다. 다만 너무 늦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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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 9월27일 조선 숙종의 사망 소식을 청에 알리기 위해 파견된 연행사의 정사 이이명, 부사 이조, 서장관 박성로, 아버지 이이명을 따라온 이기지가 북경의 천주교 남당을 방문한다. 포르투갈 신부 수아레즈, 마갈렌스, 카르도소, 그리고 독일 선교사 쾨글러가 이들을 정중히 맞았다. 이기지는 1720년 7월27일 출발부터 1721년 7월1일 귀국에 걸친 일지를 기록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기지는 일행이 돌아가고도 홀로 남아 서양인과 수다를 떨었다. 간식도 나왔다. 노란 빛깔이 인상적인 과자, ‘계란병’으로 기록된 과자였다.

이기지에 따르면 “부드럽고 달콤하며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풀려 정말 색다른 맛이었다”. 만드는 법을 물으니 설탕, 계란, 밀가루를 섞어 만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락없는 스펀지케이크 또는 카스텔라이다.

순간 이기지의 머릿속에 계란병의 기억이 반짝했다. 숙종이 말년에 입맛을 잃자, 어의 이시필이 계란병을 만들어 본 것이다. 이시필은 북경에서 계란병을 접한 바 있다. 그러나 제맛은 나지 않았다. 어디서 실패했을까? 당밀을 잘 뺀 설탕도, 제과용 밀가루도 조선 사람이 쉬이 얻기 힘든 재료였다. 어깨너머로는 어떤 품위의 재료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으리라. 계란이 있다 해도, 계란을 거품이 나게 치다 반죽을 이루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익힐 수 없다.

스펀지케이크며 카스텔라를 굽기까지는 세월이 더 필요했다. 조선의 문호가 열리자 정제당과 구미산 과자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제과 기술이 있는 화교와 일본인도 조선에 들어왔다. 가사 실습에도 제과가 껴들었다.

이윽고 1921년, 일찌감치 조선 음식의 체계화에 뛰어든 방신영 선생이 <조선료리제법>(광익서관판)에 전통적인 병과와는 구분되는 서양 과자 제법을 싣기에 이른다. 선생의 ‘조선료리’란 조선 당대의 요리였다. 이 책에는 카스텔라, 팬케이크, 컵커스터드, 코코아케이크, 초콜릿케이크, 버터케이크, 롤스펀지 등 다양한 서양과자 또는 일본식 양과자가 등장한다. 아울러 버터, 마가린, 라드와 같은 새로운 유지에 팬, 제과용 성형틀, 화덕 등 새로운 용구의 쓰임이 자세히 소개된다. 계란과 우유를 과자에 쓴다는 감각도 전에 없던 것이다. 이때 카스텔라는 가장 많은 문단이 할애된 과자였다. <조선료리제법>의 카스텔라는 거품기로 계란을 치고, ‘상등 밀가루’를 풀어 반죽을 만들고, 틀에 버터를 발라 화덕(오븐)에 앉히고, “한 반 시간쯤 구운 후 지푸라기로 찔러 보아 속이 다 익었거든” 완성되는 ‘상등 과자’였다. 이시필이 계란빵 굽기에 실패한 이후, 조선 사람이 카스텔라의 재료와 제법을 정확히 기술하는 데 이르기까지 실로 200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고는 백년쯤 흐른 오늘, 카스텔라는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나쁜 화제로 떠올랐다. 이제 누가 무슨 말을 붙이든 애초에 나쁜 화제를 만든 쪽만 좋은 일 시키는 눈치다. 기획한 쪽에서 바란 ‘노이즈 마케팅’의 승리 아닌가. 몇 백년 전 카스텔라의 시초, 그리고 나열할 수 있는 모든 제법을 따지는 말도 허무하다. 이 땅의 제과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꽃핀 케이크류와 카스텔라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와 시각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나 둥근 물체를 차고 놀았다. 그렇다고 둥근 물체 차고 놀기 일체가 곧 축구는 아니다. 김치에 대한 고민은, 김치라고 하기 뭣한 아득한 김치의 원형도 아니고, 기무치도 아니고, 김치에서 시작할 일이다.

방신영 선생은 주의사항을 곳곳에 묻은 카스텔라 항목을 이렇게 마쳤다. “주의치 아니하면 되기는 할지라도 잘되지 못할 염려가 있느니라.” 카스텔라를 둘러싼 나쁜 화제를 뒤쫓은 담론은, 카스텔라의 정체와 속성을 고민하고 카스텔라 ‘되기’만이 아니라 ‘잘되기’에 애쓴 제과 전문가를 유령 취급했다. 제과사의 말은 간단히 생략됐다.

음식을 쉽게 보는 세태도, 서민대중이 무작정 음식업에 뛰어드는 현실도, 싸고 양 많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주술에 지핀 소비자도 아리고 쓰리다. 그 틈에서 챙길 것 챙기는 먹방에 소름이 돋는다. 그 뒤를 쫓아가는, ‘염려’보다 자기현시가 돋보이는 2차먹방, 파생먹방도 아리고 쓰리다. 내 뒷북 또한 그리 되지 않을까 염려할 뿐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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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되풀이되는 로맨스의 공식처럼 누구나 현실의 누추함에서 나를 구원해줄 멋진 이성과의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분과 인종, 문화 차이 등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즉 어떤 사회에서든 모든 것을 극복하거나 초월하는 열정적 사랑이 결혼의 합당한 관습으로 인정된 적이 없다는 것이 사랑 연구자의 연구 결과이다.

과거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결혼계약의 기초가 된 것은 경제와 신분을 둘러싼 가족 간의 거래이지 ‘사랑’은 아니었다. 계급과 부의 결속이 아닌, 개인의 의사에 바탕한 ‘자유연애’가 결혼의 조건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들어서이며 우리의 경우 이광수의 <무정>이 나온 뒤로도 지난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최초의 근대인들이 환호작약했던 것처럼 사랑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각종 자료를 보면 서양은 90% 이상, 우리의 경우 70% 이상의 청년이 ‘부모가 반대해도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 결혼 당사자들이 순수한 사랑만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부모를 대신해서 스스로 결혼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시장’, 즉 결혼을 교환과 경제관계의 산물로 보고 있는 연구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에 의하면, 미국의 현재 결혼시장은 19세기 이전의 신분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자유연애라는 근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낭만적 방식이 아닌, 계급 장벽을 높이는 현실적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책 <결혼시장>(시대의 창, 2016)에 의하면 결혼시장의 현재적 동향은 미국의 불평등과 계급격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결혼율은 낮아지며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으나, 이 일반적인 통계가 모든 계급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상층, 즉 소득분위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집단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이혼율, 혼외출산율이 낮아졌으며 결혼과 가정을 중시하고, 그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하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집단의 경우, 결혼율은 급격히 낮아졌으며 혼외출산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 전체 출산의 70%, 고등학교 중퇴자의 96%를 차지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의 가족 재구성이 철저히 미국 경제적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즉 고소득층이 더 결혼에 충실하고 계급 장벽을 높이게 된 것, 그리고 극빈층에 거의 결혼이 사라지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고 있다.

실업이 하층민 가족 붕괴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이들의 분석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있다. 청년실업자 수 100만9000명(2017), 비혼 여성 35.5%(2010), 출산율 1.17(2016), 그리고 지난해 혼인율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최근 통계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이 한국 청춘들을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여성의 비혼을 고스펙 탓으로 돌리고 하향 결혼을 권장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자는 국책연구기관의 백색 음모론, 행정자치부의 ‘가임기여성분포지도’ 등은 아직도 결혼과 가족을 개인의 문제와 문화현상으로, 또는 생물학적 세포로 보고 있는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또한 고스펙이라 하면 다 골드미스일 거라는 생각도 착오다.

사람들은 준과 나오미의 분석이나 각종 통계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여전히 신데렐라 드라마를 즐기고 있을지라도 내게 주어진 현실적 선택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선택지에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면? 합리적 판단을 하는 여성이라면, ‘낭만적 사랑’에 눈이 멀어 경제와 육아를, 게다가 성인 한 명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비혼 현상은 ‘그럭저럭’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남자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괜찮은 여성 일자리가 없는 탓이지, 여성의 눈이 높아진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럭저럭’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의 붕괴, 격변하는 한국의 결혼시장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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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따스한 우리 집 바깥에서 좁은 계단을 바삐 오르내리는 신문 배달부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는 몇 시에 일을 시작했을까 생각하는 사이 동이 튼다. 베란다 밖에선 버스가 정차했다가 출발하며 오늘의 순환을 시작한다. 오늘은 반올림 스타일로 머리를 묶어달라는 딸아이와 한번만 더 놀고 씻겠다는 둘째를 달래 안락한 집을 나선다. 큰아이는 학교로, 막내는 어린이집으로 가기 위해 나와 함께 차에 올라타고 아파트 정문을 지난다. 흰머리만 조금 남아 있는 경비원에게 인사까지 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던 세계에서 나와 공허한 명랑함이 깃든 도시로 들어선다.

활기찬 공기에 어쩐지 한기가 서려 있다. 흰 장갑을 끼고 신기한 것에 올라탄 ‘야쿠르트’ 아주머니, 막 지나가는 지하철, 택배 오토바이를 보며 환호하는 막내를 데리고 비로소 어린이집에 들어서면 선생님이 다가와 따뜻한 세계로 아들을 데리고 간다. 잠시 들른 카페에서 주문받는 점원의 핏기 없는 열정을 어색하게 느끼고 있을 때 잘 아는 연구교수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난다. 그녀가 불안한 고용상태 때문에 하고 싶은 연구가 미뤄지는 자신의 처지와 개학하고 내내 분식집에서 저녁을 사먹고 있는 초등학생 아들 처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아픈지 저울질하는데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의 세계는 어째서 그의 것보다 안정적이어도 되는 것일까. 도망치듯 헤어지고 강의실에 들어선다.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이 한가득 앉아 있다. 이들에게 최고치를 경신 중인 한국의 청년실업률, 그리고 저임금 일자리로 여러분과 같은 청년이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공중에서 두 개의 세계 같은 것이 잠시 엉켰다가 풀어진다.

기이하다고 생각하며 다음 일정으로 발을 옮긴다. 오늘은 학교 내 청소미화원과 경비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 청소미화원이 자신의 동료가 강도 높은 노동을 하다 쓰러져 지금은 반지하방에 누워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경비노동자가 자신의 월급은 왜 그렇게 낮은지, 대학이라는 한 공간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하는 사람의 월급이 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야 하는지 묻는데 내 목에 뭔가 턱 걸린다. 말끔히 청소된 나의 밝은 세계와 더러운 것들을 청소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세계가 포개졌다가 다시 갈라선다. 집으로 가기 전 들른 마트의 계산대 앞 중년 여성은 나와 눈을 맞출 새가 없다. 줄줄이 서 있는 고객들은 이미 바쁜 발을 구르고 있다. 5000원 남짓을 손에 쥐기 위해 손수레에 위태롭게 쌓아올린 폐휴지를 억척스럽게 끌고 가는 노인을 오늘도 어김없이 만난다. 아슬아슬하게 나의 세계로 들어오니 불편한 안도가 집 한가운데에 서려 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70%가 임금노동자인데 이중 절반에 가까운 45%가 비정규직이다. 2000만명 중 1000만명 가까이가 불안정하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30%는 자영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90% 이상이 종업원 5인 미만의 영세자영업이다. 신문 배달원, 버스기사, 경비원, 야쿠르트 아주머니, 지하철 기관사, 택배 청년, 기간제 교사, 어린이집 선생님, 카페 점원, 비정규직 연구자, 청소미화원, 마트 계산원, 폐휴지 할아버지와 같이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그 숫자를 만든다. 이런 사람 다섯 명 중 한 명은 임금이 낮고 고용관계도 불확실하며, 사회보험에서 제외돼 있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지옥 같은 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색깔과 감촉이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어떻게 이토록 가까이에 공존할 수 있을까. 불안정노동자 50%라는 그 단순해 보이는 숫자 뒤에는 하나같이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세계는 그 이야기들이 겹겹이 더해져 색이 더 어두워진 다른 세계 때문에 연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존의 골목을 지나면 공멸이 기다리는 것은 아닐지. 두 세계가 서로 만나 화해할 수는 없을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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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민희와 영화감독 홍상수가 서로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을 열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장에서 받은 기자의 질문에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축복받지 못했다. ‘불륜’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홍상수는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고, 그에 따라 김민희는 아직 유지되고 있는 남의 가정에 끼어든 불청객이 되었다.

대리운전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나는 함께 차에 오른 남녀가 부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눈이 생겼다. 유심히 그들을 관찰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모두가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우선 앉는 자리부터가 다르다. 부부는 자연스럽게 남편이 조수석에, 아내가 뒷좌석에, 그렇게 한 사람이 굳이 뒤통수를 보며 따로 앉는다. 가는 동안 대화도 별로 없고 휴대폰을 꺼내서 각자의 일을 한다. 하지만 부부가 아닌 이들은 뒷좌석에 같이 앉아 나를 기다린다. 가끔은 내가 온 줄도 모르는지 서로를 바라보는 데 열심이다. 시선뿐 아니라 무엇으로든 서로를 꼭 붙들고는 목적지까지 간다. 가끔 민망한 행위를 하는 것도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운전을 한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13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는 연인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연인사이임을 인정했다. 이석우 기자

유부남녀들이 왜 대개의 경우에 같이 앉지 않는지, 서로 즐겁게 대화하지 않는지,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웃지 않는지 하는 것이 궁금했다. 물론 그러한 데면데면함을 오랜 시간 다져온 익숙함으로 포장하거나 삶의 고단함으로 핑계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들도 어느 한때는 뜨겁게 사랑했을 것이다. 뜨거운 적이 없어 식을 것조차 없는 사이라면 그것은 서글픈 일이다. 부부이든 아니든, 사랑하는 이들은 같이 앉아 즐겁게 대화하며 함께 웃는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그런데 정작 김민희와 홍상수를 손가락질하는 우리는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같이 앉아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는 단순한 질문에 당신은 당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제도와 법리와 도덕을 굳이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그런 구차한 핑계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나아가 이미 일종의 ‘불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징표와도 같다.

두 사람은 시사회장에 같이 앉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지을 수 없는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들이 ‘미안하다, 죄송하다’고 사과하지 않아서 나는 좋았다. 미안함과 죄송함을 우리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감정의 전달은 이해 당사자들끼리 나누고 풀면 그만이다.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그들’이 짊어질 것이다.

홍상수와 그의 부인, 홍상수와 김민희,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그가 어떠한 길을 함께 걸어왔는가는 당사자인 두 사람만이 안다. 거기에 대고 타인들이 사과를 요구할 자격도, 당위성도 없다. 특히 우리가 굳이 ‘남편을 위해 희생한 아내’, ‘불쌍한 아내를 배반한 남편’이라는 틀을 억지로 덮어씌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조강지처의 역할을 강요해 온 남성중심의 서사이고 욕망일 뿐이다. 오직 여성만이 여기에서 희생양이 되는데, 그러한 틀 안에서 김민희와 홍상수를 비난할수록 그의 부인도, 누군가의 부인도 결국 더욱 초라해진다.

우리가 손가락질해야 할 대상은 타인의 사랑에 분노하거나 열광하는 스스로의 오지랖일 것이다. 그보다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는 편이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일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김민희와 홍상수를 응원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무수한 타인들을 그만 놓아주고 내 곁에 앉은 나의 소중한 사람만을 신경 쓰기로 한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하기에도 벅차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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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우렛소리’(<레이 브래드버리>, 현대문학, 2015)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이런 하찮은 것 하나 때문에!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인데!” 2016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태부터 2017년의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돌이켜보다 문득 저 대목이 떠올랐다. 처음에 일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를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은 ‘하찮은 것’의 입만 틀어막으면 될 거라 낙관하거나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이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알다시피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정운호에서 출발한 법조 비리는 우병우와 정유라를 거쳐 소용돌이가 되었고 최순실로 인해 급기야 태풍으로 변모했다. 언론의 특종, 노승일과 고영태의 증언은 태풍이 금세 지나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암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리꾼이 업로드한 동영상은 ‘법꾸라지’라 불리는 김기춘의 증언이 거짓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태풍에 맞서지 않으면 더 크고 지독한 태풍이 불어올 것이 불 보듯 빤했다. 이에 시민들은 불씨를 품고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가 아니었다. 광장은 수백만마리 나비들로 가득 찼다.

실제로 ‘우렛소리’에서는 중생대의 나비 한 마리 때문에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바뀌어 히틀러 같은 전체주의자가 당선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기상천외하고 어찌 보면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상상이 소설 속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발표된 지 64년이 지난 2016년, 대한민국에서 더한 사건들이 줄줄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아무도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하지만 누구나 알았어야 할 그 일들이. “상상하라,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라는 말이 그대로 현실에 적용된 셈이다. 막장 드라마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드라마는 안 보면 그만이지만, 삶은 그렇지 않으니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채널을 돌릴 수 없는 게 다름 아닌 삶이다.

2016년 12월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7년 2월17일, 우리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장면을 보았다. 삼성 창립 이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무 차례 진행된 촛불집회에 약 16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그리고 2017년 3월10일, 박근혜가 파면되었다. 드라마는 일차적으로 막을 내렸다. 매주 토요일,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비들이 한데 모여 팔랑거렸다. 촛불과 나비는 닮은 데가 있다. 촛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듯, 나비 또한 살기 위해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한다.

나비효과가 본디 과학 이론이었으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광범위한 용어가 된 것처럼, 우리는 이제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잠재적인 나비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가 해냈다”나 “우리가 이겼다”라는 구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힘없는 존재들에게 승리의 경험은 중요하다. 그것은 ‘다음’을 꿈꾸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비가 모이고 모여 나비떼가 됨으로써, 실낱같은 희망이 실타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나비효과가 가시적 성과로 드러나려면 무수한 나비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많은 나비들이 필요하다. 날갯짓은 더 요란해져야 한다. 극적인 드라마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믿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서두에 언급한 ‘우렛소리’는 이렇게 이어진다. “나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훌륭한 곤충이었다. 작은 동물이지만, 균형을 흐트러트려 작은 도미노의 줄을 무너트리고, 이어서 큰 도미노를,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도미노까지, 시간의 물결 속에서 모든 것을 무너트릴 수 있는 존재였다.” 사회의 균형추이자 지렛대라는 점에서, 시민도 그런 존재다.

우리는 무너진 도미노를 차근차근 다시 세울 것이다. 나비는, 나비들은 이제 막 날기 시작했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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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는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개인마다 살아오는 동안 쌓아온 경험이 다르기에, 역지사지라는 단순명쾌해 보이는 윤리적 태도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선별되고, 이입의 강도도 사안별로 달라진다. 

역지사지를 더욱 폭넓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모를 수 있는 다른 이의 입장이 있음을 고려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 타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고백들을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피로할 수도 있는 과정이다.

팍팍한 ‘헬조선’에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출렁이기 쉽다는 것 역시 역지사지를 실천하기 어려운 요건이다. 나 역시 누군가 툭 건드리면 왈칵 감정이 세어 나올 때가 많다. 그 감정의 뜨거움이나 서늘함은 타인을 상처 입히고야 만다. 나는 감정이 진정된 뒤에야 후회하고 자책한다. 스스로의 감정도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위해 애쓰고 인식의 외연을 확장하려 노력하며, 무심결에 저지르는 실수를 경계해도 어려운 것이 역지사지인데, 눈 감고 귀 닫고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을 선택한 이들은 타인에게 ‘유해한’ 사람이 될 확률이 더욱 높을 것이다. 스스로의 갱신을 거부하고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 이들에게 ‘미러링’이 유효한 교육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메갈’이 미러링이라는 전술과 함께 등장했을 때 깊이 감명을 받았다. 메갈은 ‘김치녀’ 같은 자국 여성에 대한 혐오언어의 대칭을 이루는 ‘한남(충)’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여성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내포하는 진부한 표현을 주어를 바꿔 패러디했으며(“자고로 남자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나대지 말아야지”, “남자는 집에서 과일 깎고 애나 봐야지” 등), 여성에게 가해지던 성희롱의 방식으로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평가하는 글과 ‘남동생 몰카’를 찍었다는 허구의 글(‘소라넷’이나 ‘일베’에 올라온 여성 혈육 관련 게시물의 패러디)을 업로드하는 활동을 했다. 이 모든 것이 미러링이었다. 대칭이 되는 상을 들이밀며, 상대의 의식이 ‘당해 보니 기분 나쁜데? → 나도 비슷한 짓을 했던 것 같은데? → 앞으로 하면 안되겠군’으로 흐르기를 기대하는 것.

근래에는 미러링을 오인하고 오용하는 사례를 목격하기도 했다. 선제공격을 가한 특정 개인에 대한 보복 폭력이 미러링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인 예다. 나는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그것이 왜 폭력적인지 설득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특정 개인을 향한 조롱과 인신공격이 아니라 관습적 표현을 비틀어 ‘보여주는 것’이 미러링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미러링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해당 원본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활용한다 할지라도, 미러링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교육법이 될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종종 폭력적인 언행으로 ‘선빵’ 날리는 노인을 접할 때, 청년에 대한 과도한 요구나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비방을 비틀어 미러링을 ‘시전하는’ 상상을 한다. “요즘 노인들은 노력을 안 해. 노인수당 타려면 토익 700점 넘기고 어학연수 다녀오고 봉사활동도 해야지”, “먹고살 만한가 보지? 태극기 집회나 하고 말이야” 같은 말들. 하지만 이것을 한 명의 노인과 안전한 공간에 있을 때 시도해도 위험한데, 태극기 집회 한복판에서 한다면? 죽창에다 태극기 다신 분도 있던데, “이거 다 미러링인 거 아시죠? 허허”라는 덧붙임은 나의 유언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러링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기반에 둔다. 상대가 문해력과 최소한의 공감능력 및 학습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존중. 하지만 최근에는 회의감이 든다. 어쩌면 그 정도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메갈의 탄생과 강남역 살인 사건 같은 굵직한 일들을 접하며 이미 인식의 균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역지사지를 거들기 위한 강력한 정서적 요법마저 무용하다면(다음 단계로 의식이 흐르지 않고 ‘기분 나쁨’에만 머물러 있다면), 도대체 ‘설득’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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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85. 최근 일주일 동안 걸어다닌 결과의 평균이다.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비가 와서, 피곤해서…. 각종 핑계를 대며 하루에 5000보 걷기도 힘들던 ‘귀차니즘’은 사라지고, 틈만 나면 ‘좀 걷다 올까’ 궁리하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다. 갑자기 부지런해진 이유는 단 하나, ‘포켓몬고’ 게임 덕분이다. 조금이라도 덜 걷기 위해 꾀를 내던 내가 자발적으로 더 먼 거리를 걷기 시작하다니 놀라운 변화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돼 100㎞를 걸었다는 메달을 받았으니, 짧은 기간 동안 내 일상과 습관을 완전히 바꿔버린 셈이다.

사실 나는 포켓몬 세대가 아니다. 피카츄나 꼬부기 정도만 알았고, 포켓몬 애니메이션도 거의 안 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포켓몬고를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게임을 즐기지도 않는 편인데 말이다. 가장 큰 매력은 이 최첨단 게임의 아날로그적인 성격이다.

일단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어딘가에 가야 한다. 게다가 몬스터볼이나 기타 아이템은 돈 주고 살 수도 있지만 포켓몬 강화에 꼭 필요한 별의 모래는 포켓몬을 잡아서 차곡차곡 모으는 수밖에 없다. 포켓몬들을 하나씩 도감에 등록해나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250마리에 달하는 모험 도감을 채워나가는 행위가 수집욕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광화문 인근에서 포켓몬을 잡는 모습. 연합뉴스

요즘은 체육관을 점령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어폰을 꽂고, 효과음과 음악 설정을 켠 후 내 것보다 훨씬 센 포켓몬들이 포진한 체육관에서 한바탕 싸운다. 센 상대가 필살기를 써서 한 방에 나를 쓰러뜨리더라도 또 다른 포켓몬이 있으니 괜찮다. 이 체육관에서 지더라도 다음 체육관에서는 내가 이길 수도 있고, 같은 체육관에서도 상대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력의 조각과 상처약을 사용하면 기절한 포켓몬은 금방 회복되니, 얼마든지 더 경기를 할 수 있다. 실패해도 점수가 깎이지 않을뿐더러, 아이템은 또 받으면 된다. 걸어다니기만 하면, 실패를 얼마든지 극복하고 재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없다.

개인적인 흥미 외에도 포켓몬고를 주시하게 되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 우선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거다. 그동안 게임은 “청소년들이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악’ 취급을 받아왔는데, 최소한 포켓몬고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일본의 ‘히키코모리’들을 자발적으로 방 밖으로 이끌어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니 효과는 검증된 셈이다.

게임 비용의 측면에서도 혁신적이다. 그동안 게임은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돈을 들이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그런데 포켓몬고는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만 깔면 되고, 돈을 쓴다고 해서 레벨이 갑자기 올라가기 어려운 구조다. ‘모험을 떠난다’는 말에 걸맞게 ‘현질’ 효과보다는 직접 걸어다니거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실과 가장 밀접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관광과 가장 상관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게임을 관광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었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본에서는 이미 각종 이벤트로 ‘포켓코노미(포켓몬고+이코노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모바일 게임이 화면에 세상을 구현해내려 했다면, 포켓몬고는 화면에 세상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현실 세상을 화면과 만나게 하는 위치기반 증강현실(AR)의 속성을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바꾸겠다”던 개발사 나이앤틱의 야심은 일단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포켓몬고에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운전할 때 켜 놨더니 자꾸 눈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포켓몬이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잡으려고 하다보니 실제로도 너무 위험했다. 최소한 운전할 때만은 아예 켜놓지도 않는 게 정답이다.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포켓몬고는 게임이다. 봄을 맞아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걸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파트너 포켓몬과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다를지라도, 포켓몬 트레이너의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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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손잡은 한식은 권력자를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자에게 한식을 바친 사람은 중세 궁중의 하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 김윤옥이 끼어든 한식 세계화 사업,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아래 사라진 미르재단의 “‘한식 DNA’를 품은 글로벌 셰프 양성” 기획 속의 한식은 그들만을 위한 한식을 대변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한식은 한국인이 먹어본 적도 없고, 한국인이 먹을 일도 없는 한식이다. 다만 사진과 영상은 잘 받아서, 특정 인물을 위한 장식품으로는 꽤 쓸 만한 소품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통해 범죄의 내막이 새로 밝혀지고, 장관과 재벌이 재판에 넘겨지자 많은 사람들이 시원해했다. 하지만 한식은 여기서도 찬밥이었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은 국정조사 특위 제4차 청문회에서 미르재단 관계자와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 분교 유치를 논의했음을 인정했다. 한식 세계화를 매개로 한 최순실·정유라 의혹의 한 고리가 드러난 순간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이 “에콜 페랑디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는 최순실-차은택”이라고 말했어도 그뿐이었다. 이를 둘러싼 의혹은 특검의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기서 음식 시중을 들던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심부름꾼, 하찮은 말석의 인물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온갖 매체가 요 몇 년 사이에 요리사를 연예인으로 떠받들고 있다. 덩달아, 성공했다는 0.1%의 한식당,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한식당 몇몇 곳만이 매체와 일간지 문화면을 수놓는 즈음이다. 그런 가운데 대화를 나눈 청년 요리사는 자신의 처지와 사뭇 다른,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한식 세계화 담론, 한식 담론 앞에서 지독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울러 지독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가령 그동안 대통령 부인에서 대통령, 그리고 기관장이 주인공으로 둔갑한 ‘한식 화보’ ‘한식 홍보물’은 어떤가. 주인공이 마땅히 음식이어야 할 자리에, 요리사가 드러나 마땅할 자리를 특정 인물이 차지한다. 음식 하는 사람이라면 입지 않을 옷을 입고, 머리 장식을 하고, 짙은 화장을 하고, 어색한 동작으로 음식 주무르는 사진을 찍는다. 음식이 있을 자리, 요리사가 있어야 할 자리를 권력 있는 사람이 독차지한 화보를 펼쳐 놓고, 청년 요리사가 탄식했다. “우린 하인이니까.”

매체의 시대, 영상의 시대에 음식의 매력과 본질을 드러내는 연출은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기에 청년 요리사는 더욱 화가 났다. “음식을 찍어야지 왜 그 사람을 찍어요? 그럼 한식 화보가 아니라, 그 사람 화보잖아요. 그 사람 홍보잖아요.”

외국인 취향 한식, 외국인 입맛에 맞는 한식이라는 식의 한식 세계화 담론 앞에서는 거의 절망했다. “외국인 입맛에 맞춘다고 제 나라 음식을 바꾼 나라가 있어요? 그게 가능은 해요? 그리고 그 외국은 어디래요. 그냥 미국, 유럽, 일본인이 외국인의 다인가요?”

실제 여행 경험으로나, 한국 속 국제 경험으로나, 인터넷 경험으로나 이전 세대하고 전혀 다른 ‘외국’을 감각하며 오늘에 이른 청년 요리사의 세계는 미국, 유럽, 일본을 못 벗어난 사람들의 세계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실감하며 걱정했다. “푸드 트립(식도락 여행)? 낯선 데 가는 게 여행이죠. 낯선 음식도 먹고. 낯설어서 한식을 기대할 수도 있을 텐데. 서울에서 맥도날드 못 찾아 굶어죽을 외국인은 없을 거고.”

이윽고 청년 요리사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들어섰다. “세계화가 뭐예요? 아직 한식은 무언지 한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데. 한식을 세계화하는 게 뭔지, 왜 세계화해야 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잖아요.” 근본은 실제로 건너갔다. “배울 데나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코르동블루, 시아이에이, 츠지, 핫토리 수준의 한식 학교가 없는데. 실습 나갈 마땅한 한식당도 전혀 없고요.”

외국인 입맛에 맞춘 한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관계자들끼리의 호언장담, 관계자만 아는 구미, 일본 출신 외국인이 인사로 건넨 “맛있어요”가 출발선일 수 없다. 한식이 2월28일 수사를 종료한 특검한테도 버림받았다며 쓰게 웃는 청년 요리사는 “내 처지, 현실, 근본적인 질문, 앞으로 할 일을 정직하게 확인하는 데가 출발선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음식에, 한식에 머물 말이 아니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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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미니즘과 관련된 프로젝트 제의를 받으면서 갈등한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갈등은 다소 복잡한 것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대단한 페미니스트라고’라는 겸양도 들어있지만, 한편에는 페미니스트라고 분류되는 순간 감당해야 할 많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늘 올바르고 도덕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녀가 함께 모여 사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여자로만 가득 찬 울타리 안에서 옳은 소리만 하는 운동가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나는 아직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인권 운동가나 투사가 되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며 멋대로인 데다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많은 의미에서 나는 아직은 남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에 대한 불편함에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보다는 어떤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이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나는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가벼운 에세이를 낸 적이 있는데, 이후 나는 본의 아니게 ‘디아스포라 문학 전공자’가 되어버렸다.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 내가 문학에서 애초에 지니고 있던 다양한 관심은 삭제되고 이후 그것에 한정된 글을 주로 쓰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주의자’를 경계하는 편이다. 어떤 특정 부분을 지향할 수는 있으나 어떤 인간도 그것만일 수는 없고, 우리는 조금씩 흔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DB

‘페미니스트’란 것도 그와 유사하다. 그 모자를 쓰는 순간, 다른 정체성은 보이지 않고 호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불편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공격성과 부정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미지만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말 많고 따지기 좋아하고 남자들과 적대하는.’ 그러나 그 단 하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또 내가 왜 불편했는지에 대해 최근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인데, 여기에서 그녀는 주류 페미니즘, 근본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완벽한 페미니즘 대신 결함이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복수의 페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접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나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면서, 그 불완전한 대로의 페미니스트이기를 원한다고 공표한다.

지난 학기에 ‘페미니즘과 여성문학’이라는 강의를 맡았는데, 이 수업은 애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소 재미가 없이 흘러갔다. 왜냐하면 분석방법과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불행, 고통과 원한에 ‘남자’라는 타깃을 달아주면 모든 것은 해결 가능해 보인다. 고민 끝에 그러한 일률적인 분석틀을 버리고 텍스트를 매개로 각자의 경험에 대해 토론하는 것으로 바꾸자 수업은 훨씬 더 흥미로워졌다. 그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우리들은 로맨스를 즐기고 외모를 가꾸고,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예쁜 여자를 좋아해도, 전업주부를 열망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 오직 여성의 직장, 육아와 가사의 평등, 여성의 대상화 등에 대해 똑같은 주장과 원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육아, 가사, 그런 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건……’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듯 여성의 수만큼 수많은 갈등과 원망이 있고, 그것은 때로 근본주의 페미니즘이 말하는 그것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한국 청년들의 고통을 전부 ‘청년실업’으로만 치부할 수 없듯이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워 모든 것의 교정을 요구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은 오류이다. ‘논리정연하고 도덕적이며 일과 가정에서 완벽한 여자, 남성과 적대하고 스커트를 입지 않는 남자 같은 여자, 희생없이 끊임없이 권익만 요구하는 이기적 페미니스트’와 같은 추상적 이미지도 환상일 뿐이다. 여성 혐오는 그러한 관념 속에서 자라난다. 다 큰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생을 쓸쓸해하는 어머니, 직장 일 때문에 늘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아내, 씩씩한 딸 등의 구체적인 모습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편린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록산 게이의 말처럼, 어떤 완벽한 모델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인 채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은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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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가 어느 순간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은 ‘진실’에 대한 기억뿐이다. 건너가지도 못한 진실, 건너갔으나 닿자마자 변형된 진실, 나에게 비로소 도달했으나 알 수 없었던 그의 진실. 상호모순되는 진실들이 어느 순간 뒤죽박죽 엉키면서 안개가 어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진실이 어느 시공간에서 부유하고 있는지 어디선가 공허한 바람 소리도 난다. 그때의 진실을 이제 와 감정으로 만져본 것뿐이데 어느새 해지고 있다. 진실은 본래 그토록 연약한 것일까.

박사 과정 초기 시절 꽤나 여러번 지도교수들과 사회과학에서의 ‘사실’과 ‘의견’에 대해 논쟁을 했다. 어느 날 나는 두 분의 지도교수들에게 한국과 일본의 비정규직 확대에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해보겠다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분이 나에게 “너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맞니?”하고 물었다. 다른 한분은 키득 웃으시며 “우리는 왜 자꾸 네가 정치가 같을까?”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그 에피소드는 연구할 때마다 나를 긴장하게 한다. 증거가 되는 자료, 사실 등을 찾아내어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진실이 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보여주는 예쁜 무지갯빛처럼, 나는 진실이 비추고 있는 여러 색깔 중 마음에 드는 색만 골라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했던 단원고 학생들이 7일 세월호 참사 1000일 추모 11차 촛불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발언하자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다가가 안아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연구자가 진실을 분석하고자 할 때는 사실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개별적 삶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되면 어떤 정책이나 이론도 허무한 맹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가의 말에는 늘 추상성이 있다. 추상화된 언어는 사실 권력자들만 구사할 수 있다. 권력자의 힘이 강할수록 구체성과 사실은 감추고 뻔뻔하게 사실을 추상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추상성의 정도가 곧 권력의 정도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을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이 단어는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이 사람들의 의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뜻한다. 개인들이 과학적 증거들보다 감정에 쉽게 설득당할 수 있게 되면 진실에 대한 판단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르게 된다. 진실은 온데간데없거나 ‘저마다의 진실’들이 너무 많아져, 감정의 설득력이 더 커지는 것이다.

탈진실은 공적 정보 및 자료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냉소가 팽배해질 때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의 상호작용을 통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댓글과 ‘좋아요’ 횟수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감정 묻은 정보들이 진실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지식은 점점 세분화되어 파편화된 진실의 조각들은 각 개인들을 설득하기가 너무 가벼워졌다. 작은 진실의 조각들은 범람하고 있는데 우리는 점점 더 진실을 갈구하게 됐다.

이러한 탈진실의 시대에 위험한 것은 권력가의 현혹이다. 이 때문에 탈진실의 시대에 권력자의 말은 위험하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사실보다 감정이 개인들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 시대에 최고 권력자가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라고 추상적인 말 한마디를 한다면, 그 효과를 그가 모를 리가 없거니와 몰라서도 안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저마다의 진실이 공존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저마다의 진실들이 경합하는 경우 각 개인들이 이성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열린 토론과 원활한 정보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매체들, 시민단체, 학자 그리고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진실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지속적으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사실을 검증해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 잘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문인과 예술인들조차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니 제대로 된 진실 경합은 언제 시작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이미 닳고 있는 진실이 만질 수도 없는 안개 속으로 영영 사라질까 두렵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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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24일 오후 2시38분. 여성 수천명이 아이슬란드의 거리로 뛰쳐나왔다. 남성에 비해 평균 14~18% 적은 임금을 받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임금격차로 보자면 여성들은 매일 2시38분 이후부터는 공짜로 일하고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11월7일 오후 4시34분에는 프랑스 여성들이 손에서 일을 내려놓았다. 성별임금격차 15.5%를 기준으로 봤을 때, 여성들은 이날, 이 시간부터 연말까지 무급 노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항변이었다. ‘이퀄 페이 데이(Equal Pay Day·동일임금의 날)’로 불리는 이 시위는 같은 해 11월10일 영국으로도 이어졌다. 이뿐 아니다. 호주의 한 대학 여성 모임은 ‘페미니스트 주간’을 맞아 임금격차분을 반영하여 남성에게는 컵케이크를 더 비싸게 파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는 왜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이야말로 성별임금격차 3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가 아닌가? 그런데 며칠 전, 3월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국 여성 노동계에서 조기 퇴근 시위 ‘3시 STOP!’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최 측에서는 집회와 행진을 예고했고, 거리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각자의 자리에서 ‘3시 알람 맞추기, 3시 되면 회의하다 멍 때리기, 괜히 탕비실 가기’ 등 태업으로 동참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남녀 성별 간 노동의 질과 조건의 차는 심각하다. 원인에 대한 분석은 분분한데, 크게는 다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남녀 사이에 능력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의 유독 높은 임금격차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는 명백하게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신광영은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동일한 조건에서 여성 임금이 남성에 비해 30% 정도 낮게 나타나며, 이 가운데 50% 이상이 차별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직접적인 성차별은 많이 사라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노동은 남성 노동에 비해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여성 노동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가를 받으며, 인사고과 불이익 등 남성중심적인 노동 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차별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경력단절 등의 성별화된 문제는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한국의 노동정책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의 성인지적 노동정책은 ‘여성노동정책’으로 바로 치환되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일·가정 양립정책’이었다. 사적 영역인 ‘가정’과 공적 영역인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여성으로 하여금 둘 다를 책임지기를 사회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불안정한 여성 일자리를 양산하고, 여성을 ‘과로사 권하는 사회’로 내몰았다. 한 가지도 인간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사회에서의 일·가정 양립은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3시 STOP!’ 조기 퇴근 캠페인이 던지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노동시장에서의 남녀 차별은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입지를 남성의 입지로까지 끌어올린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의 드라마틱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서야 가능해진다.

이제 노동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한다. 매일 야근하고, 회식에 시달리며, 무한히 경쟁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일이라는 판타지는 깨져야 한다. 공과 사, 남성과 여성 등으로 나뉘어 있는 분리의 벽을 깨고 노동 성격 전반을 바꿔내야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것의 핵심은 남녀 노동자 공히 적용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대선 정국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한 ‘남성 육아 휴직’은 노동 시간 단축의 한 예다. 우리는 저출산 패러다임의 외부에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국, 노동자 보편의 삶의 질을 바꾸는 것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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