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었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니시카와 미와의 장편소설 <아주 긴 변명>이었다.

지난 2월 개봉한 동명 영화의 원작 소설로,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내를 잃은 인기 소설가(사치오)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몇 번이나 울컥했다. 아예 책을 덮고 잠시 울기도 했다.

여운이 길게 남는 소설이었다. 자극적인 묘사도, 극적인 반전도 없이 여러 등장인물이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읽는 내내 세월호 이후의 현실이 계속 겹쳐 생각났다. 사실 소설과 현실은 거의 겹치는 장면이 없는데도, 갑작스러운 비극 이후 남아있는 자들이 살아내야 하는 삶의 구체성이 감정선을 건드렸다.

겨우내 광장에서 외쳤던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구호는 봄이 오면서 실현됐다.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도착했고, 예정된 봄꽃축제를 취소한 목포 거리에 노란 깃발이 휘날리고, 하루 평균 1만여명이 목포를 찾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아직도 9명의 미수습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해수부와 선체조사위원회의 불협화음, 선체 훼손 논란, 계속 나오는 의문의 동물 뼈까지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영화 <아주 긴 변명> 스틸 이미지

주인공 사치오는 아내가 죽을 때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장례식 때 직접 쓴 추도사를 낭독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나 슬픈 척 연기를 했고, 장례를 마친 후 자신의 이름을 검색창에 넣고 반응을 살피는 비겁하고 열등감 가득한 인간이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여전히 사고 당일 행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전직 대통령,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로 비하했던 공영방송 보도국장, 단식투쟁하는 유족들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고 인증샷을 찍던 일베 회원들, 미수습자 가족들만 만나고 사라진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다행히 소설의 주인공은 죽은 아내 친구의 아이들을 보살피며 ‘감미로운 충족감’과 위로를 얻고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면서 비극을 똑바로 마주하고 견뎌내는 법을 배우지만, 3년이 흐른 지금도 현실 속 인물들은 반성 없이 모습을 바꿔가며 출몰 중이다.

사실 일본 영화계는 3·11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일본이 겪은 ‘사회적 상실’을 계속해서 다루고 있다. <아주 긴 변명> 역시 ‘이 시점에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감독의 무력감에서 쓰인 소설이라고 한다.

그에 비해 한국은 세월호를 다룰 준비가 여전히 부족해 보인다. 바로 얼마 전까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해양재난’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슬퍼할 수 있는 휴먼드라마’를 내세워 제작 계획을 발표했던 영화 <세월호>가 버젓이 후원을 받고 있었으니까. 비극적 참사를 상업영화의 소재로 이용한다는 논란에 휩싸여 후원이 중단되긴 했지만, 웃고 넘어갈 해프닝으로 취급하기에는 뒤끝이 너무 씁쓸하다.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바다 호랑이>(가제)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무력감이 창작자로 하여금 이렇게 담담한 소설을 내놓을 수 있게 한 동력이라면, 한국 사회는 세월호를 세월호 자체로 바라보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이 아내가 일하던 미용실에 뒤늦게 찾아가 아내가 늘 해주던 스타일대로 머리를 다듬고, 아내의 평소 사진을 받아와 인화해 액자에 담고 그제서야 늦은 울음을 터트리는 것으로 끝난다.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또 회한 때문이 아니라 그저 아내를 생각’하는 순수한 울음 그 자체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세월호 이후의 부재와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는 아직 세월호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남은 자들이 기억할 장면은 여전히 많다. 우리는 아직 그 기억들에 대해 제대로 기록하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미수습자 다윤이 어머니의 절규에 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 말이다. 누군가는 사과 대신 ‘아주 긴 변명’을 늘어놓을지도 모르지만, 언제든 들을 준비는 되어 있다. 다만 너무 늦지 않길 바랄 뿐이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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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0년 9월27일 조선 숙종의 사망 소식을 청에 알리기 위해 파견된 연행사의 정사 이이명, 부사 이조, 서장관 박성로, 아버지 이이명을 따라온 이기지가 북경의 천주교 남당을 방문한다. 포르투갈 신부 수아레즈, 마갈렌스, 카르도소, 그리고 독일 선교사 쾨글러가 이들을 정중히 맞았다. 이기지는 1720년 7월27일 출발부터 1721년 7월1일 귀국에 걸친 일지를 기록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기지는 일행이 돌아가고도 홀로 남아 서양인과 수다를 떨었다. 간식도 나왔다. 노란 빛깔이 인상적인 과자, ‘계란병’으로 기록된 과자였다.

이기지에 따르면 “부드럽고 달콤하며 입에 넣자마자 사르르 풀려 정말 색다른 맛이었다”. 만드는 법을 물으니 설탕, 계란, 밀가루를 섞어 만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영락없는 스펀지케이크 또는 카스텔라이다.

순간 이기지의 머릿속에 계란병의 기억이 반짝했다. 숙종이 말년에 입맛을 잃자, 어의 이시필이 계란병을 만들어 본 것이다. 이시필은 북경에서 계란병을 접한 바 있다. 그러나 제맛은 나지 않았다. 어디서 실패했을까? 당밀을 잘 뺀 설탕도, 제과용 밀가루도 조선 사람이 쉬이 얻기 힘든 재료였다. 어깨너머로는 어떤 품위의 재료가 필요한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으리라. 계란이 있다 해도, 계란을 거품이 나게 치다 반죽을 이루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익힐 수 없다.

스펀지케이크며 카스텔라를 굽기까지는 세월이 더 필요했다. 조선의 문호가 열리자 정제당과 구미산 과자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제과 기술이 있는 화교와 일본인도 조선에 들어왔다. 가사 실습에도 제과가 껴들었다.

이윽고 1921년, 일찌감치 조선 음식의 체계화에 뛰어든 방신영 선생이 <조선료리제법>(광익서관판)에 전통적인 병과와는 구분되는 서양 과자 제법을 싣기에 이른다. 선생의 ‘조선료리’란 조선 당대의 요리였다. 이 책에는 카스텔라, 팬케이크, 컵커스터드, 코코아케이크, 초콜릿케이크, 버터케이크, 롤스펀지 등 다양한 서양과자 또는 일본식 양과자가 등장한다. 아울러 버터, 마가린, 라드와 같은 새로운 유지에 팬, 제과용 성형틀, 화덕 등 새로운 용구의 쓰임이 자세히 소개된다. 계란과 우유를 과자에 쓴다는 감각도 전에 없던 것이다. 이때 카스텔라는 가장 많은 문단이 할애된 과자였다. <조선료리제법>의 카스텔라는 거품기로 계란을 치고, ‘상등 밀가루’를 풀어 반죽을 만들고, 틀에 버터를 발라 화덕(오븐)에 앉히고, “한 반 시간쯤 구운 후 지푸라기로 찔러 보아 속이 다 익었거든” 완성되는 ‘상등 과자’였다. 이시필이 계란빵 굽기에 실패한 이후, 조선 사람이 카스텔라의 재료와 제법을 정확히 기술하는 데 이르기까지 실로 200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고는 백년쯤 흐른 오늘, 카스텔라는 누구나 한마디씩 하는 나쁜 화제로 떠올랐다. 이제 누가 무슨 말을 붙이든 애초에 나쁜 화제를 만든 쪽만 좋은 일 시키는 눈치다. 기획한 쪽에서 바란 ‘노이즈 마케팅’의 승리 아닌가. 몇 백년 전 카스텔라의 시초, 그리고 나열할 수 있는 모든 제법을 따지는 말도 허무하다. 이 땅의 제과 역사, 그리고 그 속에서 꽃핀 케이크류와 카스텔라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와 시각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나 둥근 물체를 차고 놀았다. 그렇다고 둥근 물체 차고 놀기 일체가 곧 축구는 아니다. 김치에 대한 고민은, 김치라고 하기 뭣한 아득한 김치의 원형도 아니고, 기무치도 아니고, 김치에서 시작할 일이다.

방신영 선생은 주의사항을 곳곳에 묻은 카스텔라 항목을 이렇게 마쳤다. “주의치 아니하면 되기는 할지라도 잘되지 못할 염려가 있느니라.” 카스텔라를 둘러싼 나쁜 화제를 뒤쫓은 담론은, 카스텔라의 정체와 속성을 고민하고 카스텔라 ‘되기’만이 아니라 ‘잘되기’에 애쓴 제과 전문가를 유령 취급했다. 제과사의 말은 간단히 생략됐다.

음식을 쉽게 보는 세태도, 서민대중이 무작정 음식업에 뛰어드는 현실도, 싸고 양 많고 맛있는 음식이라는 주술에 지핀 소비자도 아리고 쓰리다. 그 틈에서 챙길 것 챙기는 먹방에 소름이 돋는다. 그 뒤를 쫓아가는, ‘염려’보다 자기현시가 돋보이는 2차먹방, 파생먹방도 아리고 쓰리다. 내 뒷북 또한 그리 되지 않을까 염려할 뿐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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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로 되풀이되는 로맨스의 공식처럼 누구나 현실의 누추함에서 나를 구원해줄 멋진 이성과의 사랑과 결혼을 꿈꾼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신분과 인종, 문화 차이 등을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는 경우는 흔치 않다. 즉 어떤 사회에서든 모든 것을 극복하거나 초월하는 열정적 사랑이 결혼의 합당한 관습으로 인정된 적이 없다는 것이 사랑 연구자의 연구 결과이다.

과거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결혼계약의 기초가 된 것은 경제와 신분을 둘러싼 가족 간의 거래이지 ‘사랑’은 아니었다. 계급과 부의 결속이 아닌, 개인의 의사에 바탕한 ‘자유연애’가 결혼의 조건으로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근대 들어서이며 우리의 경우 이광수의 <무정>이 나온 뒤로도 지난한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젊은이들은 최초의 근대인들이 환호작약했던 것처럼 사랑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삼으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각종 자료를 보면 서양은 90% 이상, 우리의 경우 70% 이상의 청년이 ‘부모가 반대해도 결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실제 결혼 당사자들이 순수한 사랑만을 전제로 하기보다는 부모를 대신해서 스스로 결혼조건을 따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시장’, 즉 결혼을 교환과 경제관계의 산물로 보고 있는 연구자 준 카르본과 나오미 칸에 의하면, 미국의 현재 결혼시장은 19세기 이전의 신분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즉 자유연애라는 근대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은 낭만적 방식이 아닌, 계급 장벽을 높이는 현실적 방식을 따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책 <결혼시장>(시대의 창, 2016)에 의하면 결혼시장의 현재적 동향은 미국의 불평등과 계급격차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전반적으로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결혼율은 낮아지며 이혼율은 높아지고 있으나, 이 일반적인 통계가 모든 계급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상층, 즉 소득분위 상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집단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이혼율, 혼외출산율이 낮아졌으며 결혼과 가정을 중시하고, 그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하위 3분의 1에 해당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집단의 경우, 결혼율은 급격히 낮아졌으며 혼외출산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경우 전체 출산의 70%, 고등학교 중퇴자의 96%를 차지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의 가족 재구성이 철저히 미국 경제적 변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즉 고소득층이 더 결혼에 충실하고 계급 장벽을 높이게 된 것, 그리고 극빈층에 거의 결혼이 사라지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꼽고 있다.

실업이 하층민 가족 붕괴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이들의 분석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유의미하게 적용될 수 있다. 청년실업자 수 100만9000명(2017), 비혼 여성 35.5%(2010), 출산율 1.17(2016), 그리고 지난해 혼인율이 역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최근 통계는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이 한국 청춘들을 결혼과 출산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여성의 비혼을 고스펙 탓으로 돌리고 하향 결혼을 권장하는 문화 콘텐츠를 만들자는 국책연구기관의 백색 음모론, 행정자치부의 ‘가임기여성분포지도’ 등은 아직도 결혼과 가족을 개인의 문제와 문화현상으로, 또는 생물학적 세포로 보고 있는 안일한 사고방식이다. 또한 고스펙이라 하면 다 골드미스일 거라는 생각도 착오다.

사람들은 준과 나오미의 분석이나 각종 통계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여전히 신데렐라 드라마를 즐기고 있을지라도 내게 주어진 현실적 선택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선택지에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넘쳐나고 있다면? 합리적 판단을 하는 여성이라면, ‘낭만적 사랑’에 눈이 멀어 경제와 육아를, 게다가 성인 한 명을 동시에 책임져야 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비혼 현상은 ‘그럭저럭’ 가정을 꾸릴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를 가진 남자와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괜찮은 여성 일자리가 없는 탓이지, 여성의 눈이 높아진 탓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럭저럭’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의 붕괴, 격변하는 한국의 결혼시장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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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따스한 우리 집 바깥에서 좁은 계단을 바삐 오르내리는 신문 배달부의 발소리가 들린다. 그는 몇 시에 일을 시작했을까 생각하는 사이 동이 튼다. 베란다 밖에선 버스가 정차했다가 출발하며 오늘의 순환을 시작한다. 오늘은 반올림 스타일로 머리를 묶어달라는 딸아이와 한번만 더 놀고 씻겠다는 둘째를 달래 안락한 집을 나선다. 큰아이는 학교로, 막내는 어린이집으로 가기 위해 나와 함께 차에 올라타고 아파트 정문을 지난다. 흰머리만 조금 남아 있는 경비원에게 인사까지 하고 나면 우리는 우리가 속해 있던 세계에서 나와 공허한 명랑함이 깃든 도시로 들어선다.

활기찬 공기에 어쩐지 한기가 서려 있다. 흰 장갑을 끼고 신기한 것에 올라탄 ‘야쿠르트’ 아주머니, 막 지나가는 지하철, 택배 오토바이를 보며 환호하는 막내를 데리고 비로소 어린이집에 들어서면 선생님이 다가와 따뜻한 세계로 아들을 데리고 간다. 잠시 들른 카페에서 주문받는 점원의 핏기 없는 열정을 어색하게 느끼고 있을 때 잘 아는 연구교수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난다. 그녀가 불안한 고용상태 때문에 하고 싶은 연구가 미뤄지는 자신의 처지와 개학하고 내내 분식집에서 저녁을 사먹고 있는 초등학생 아들 처지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아픈지 저울질하는데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나의 세계는 어째서 그의 것보다 안정적이어도 되는 것일까. 도망치듯 헤어지고 강의실에 들어선다.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이 한가득 앉아 있다. 이들에게 최고치를 경신 중인 한국의 청년실업률, 그리고 저임금 일자리로 여러분과 같은 청년이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공중에서 두 개의 세계 같은 것이 잠시 엉켰다가 풀어진다.

기이하다고 생각하며 다음 일정으로 발을 옮긴다. 오늘은 학교 내 청소미화원과 경비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 청소미화원이 자신의 동료가 강도 높은 노동을 하다 쓰러져 지금은 반지하방에 누워 있다고 설명한다. 이어 경비노동자가 자신의 월급은 왜 그렇게 낮은지, 대학이라는 한 공간에서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하는 사람의 월급이 왜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야 하는지 묻는데 내 목에 뭔가 턱 걸린다. 말끔히 청소된 나의 밝은 세계와 더러운 것들을 청소하는 사람들의 어두운 세계가 포개졌다가 다시 갈라선다. 집으로 가기 전 들른 마트의 계산대 앞 중년 여성은 나와 눈을 맞출 새가 없다. 줄줄이 서 있는 고객들은 이미 바쁜 발을 구르고 있다. 5000원 남짓을 손에 쥐기 위해 손수레에 위태롭게 쌓아올린 폐휴지를 억척스럽게 끌고 가는 노인을 오늘도 어김없이 만난다. 아슬아슬하게 나의 세계로 들어오니 불편한 안도가 집 한가운데에 서려 있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70%가 임금노동자인데 이중 절반에 가까운 45%가 비정규직이다. 2000만명 중 1000만명 가까이가 불안정하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30%는 자영업에서 일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90% 이상이 종업원 5인 미만의 영세자영업이다. 신문 배달원, 버스기사, 경비원, 야쿠르트 아주머니, 지하철 기관사, 택배 청년, 기간제 교사, 어린이집 선생님, 카페 점원, 비정규직 연구자, 청소미화원, 마트 계산원, 폐휴지 할아버지와 같이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그 숫자를 만든다. 이런 사람 다섯 명 중 한 명은 임금이 낮고 고용관계도 불확실하며, 사회보험에서 제외돼 있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지옥 같은 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것이다. 색깔과 감촉이 다른 두 개의 세계가 어떻게 이토록 가까이에 공존할 수 있을까. 불안정노동자 50%라는 그 단순해 보이는 숫자 뒤에는 하나같이 사무치는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내가 속한 세계는 그 이야기들이 겹겹이 더해져 색이 더 어두워진 다른 세계 때문에 연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공존의 골목을 지나면 공멸이 기다리는 것은 아닐지. 두 세계가 서로 만나 화해할 수는 없을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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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민희와 영화감독 홍상수가 서로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을 열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장에서 받은 기자의 질문에 “저희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라고 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축복받지 못했다. ‘불륜’이라는 단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홍상수는 부인과 자녀가 있는 유부남이고, 그에 따라 김민희는 아직 유지되고 있는 남의 가정에 끼어든 불청객이 되었다.

대리운전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나는 함께 차에 오른 남녀가 부부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눈이 생겼다. 유심히 그들을 관찰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겉보기에는 모두가 평범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우선 앉는 자리부터가 다르다. 부부는 자연스럽게 남편이 조수석에, 아내가 뒷좌석에, 그렇게 한 사람이 굳이 뒤통수를 보며 따로 앉는다. 가는 동안 대화도 별로 없고 휴대폰을 꺼내서 각자의 일을 한다. 하지만 부부가 아닌 이들은 뒷좌석에 같이 앉아 나를 기다린다. 가끔은 내가 온 줄도 모르는지 서로를 바라보는 데 열심이다. 시선뿐 아니라 무엇으로든 서로를 꼭 붙들고는 목적지까지 간다. 가끔 민망한 행위를 하는 것도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운전을 한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가 13일 오후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 시사회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는 연인관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식적으로 연인사이임을 인정했다. 이석우 기자

유부남녀들이 왜 대개의 경우에 같이 앉지 않는지, 서로 즐겁게 대화하지 않는지,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웃지 않는지 하는 것이 궁금했다. 물론 그러한 데면데면함을 오랜 시간 다져온 익숙함으로 포장하거나 삶의 고단함으로 핑계 삼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들도 어느 한때는 뜨겁게 사랑했을 것이다. 뜨거운 적이 없어 식을 것조차 없는 사이라면 그것은 서글픈 일이다. 부부이든 아니든, 사랑하는 이들은 같이 앉아 즐겁게 대화하며 함께 웃는 모습이 가장 어울린다.

그런데 정작 김민희와 홍상수를 손가락질하는 우리는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 같이 앉아 사랑하고 있습니까?” 하는 단순한 질문에 당신은 당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 제도와 법리와 도덕을 굳이 끌어들일 필요는 없다. 그런 구차한 핑계는 서로 사랑하지 않고 있음을, 나아가 이미 일종의 ‘불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징표와도 같다.

두 사람은 시사회장에 같이 앉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지을 수 없는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그들이 ‘미안하다, 죄송하다’고 사과하지 않아서 나는 좋았다. 미안함과 죄송함을 우리에게 말할 필요는 없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이고 감정의 전달은 이해 당사자들끼리 나누고 풀면 그만이다. 결과에 따른 책임 역시 ‘그들’이 짊어질 것이다.

홍상수와 그의 부인, 홍상수와 김민희,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그가 어떠한 길을 함께 걸어왔는가는 당사자인 두 사람만이 안다. 거기에 대고 타인들이 사과를 요구할 자격도, 당위성도 없다. 특히 우리가 굳이 ‘남편을 위해 희생한 아내’, ‘불쌍한 아내를 배반한 남편’이라는 틀을 억지로 덮어씌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조강지처의 역할을 강요해 온 남성중심의 서사이고 욕망일 뿐이다. 오직 여성만이 여기에서 희생양이 되는데, 그러한 틀 안에서 김민희와 홍상수를 비난할수록 그의 부인도, 누군가의 부인도 결국 더욱 초라해진다.

우리가 손가락질해야 할 대상은 타인의 사랑에 분노하거나 열광하는 스스로의 오지랖일 것이다. 그보다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돌아보는 편이 오히려 자신을 위한 일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김민희와 홍상수를 응원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무수한 타인들을 그만 놓아주고 내 곁에 앉은 나의 소중한 사람만을 신경 쓰기로 한다. 나는 나의 사랑을 하기에도 벅차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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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단편 ‘우렛소리’(<레이 브래드버리>, 현대문학, 2015)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이런 하찮은 것 하나 때문에!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인데!” 2016년에 있었던 일련의 사태부터 2017년의 탄핵 인용에 이르기까지의 상황을 돌이켜보다 문득 저 대목이 떠올랐다. 처음에 일이 불거졌을 때, 박근혜를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은 ‘하찮은 것’의 입만 틀어막으면 될 거라 낙관하거나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이니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알다시피 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정운호에서 출발한 법조 비리는 우병우와 정유라를 거쳐 소용돌이가 되었고 최순실로 인해 급기야 태풍으로 변모했다. 언론의 특종, 노승일과 고영태의 증언은 태풍이 금세 지나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암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누리꾼이 업로드한 동영상은 ‘법꾸라지’라 불리는 김기춘의 증언이 거짓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태풍에 맞서지 않으면 더 크고 지독한 태풍이 불어올 것이 불 보듯 빤했다. 이에 시민들은 불씨를 품고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나비 한 마리’가 아니었다. 광장은 수백만마리 나비들로 가득 찼다.

실제로 ‘우렛소리’에서는 중생대의 나비 한 마리 때문에 대통령 선거 결과가 바뀌어 히틀러 같은 전체주의자가 당선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기상천외하고 어찌 보면 허무맹랑하기까지 한 상상이 소설 속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발표된 지 64년이 지난 2016년, 대한민국에서 더한 사건들이 줄줄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아무도 모르고 지나갔을지도 모를, 하지만 누구나 알았어야 할 그 일들이. “상상하라, 그 이상을 보여주겠다”라는 말이 그대로 현실에 적용된 셈이다. 막장 드라마를 보고 손가락질을 하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드라마는 안 보면 그만이지만, 삶은 그렇지 않으니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채널을 돌릴 수 없는 게 다름 아닌 삶이다.

2016년 12월9일,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7년 2월17일, 우리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는 장면을 보았다. 삼성 창립 이래 총수가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스무 차례 진행된 촛불집회에 약 160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모였다. 그리고 2017년 3월10일, 박근혜가 파면되었다. 드라마는 일차적으로 막을 내렸다. 매주 토요일,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드라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적은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은 나비들이 한데 모여 팔랑거렸다. 촛불과 나비는 닮은 데가 있다. 촛불이 꺼지지 않기 위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하늘거리듯, 나비 또한 살기 위해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한다.

나비효과가 본디 과학 이론이었으나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광범위한 용어가 된 것처럼, 우리는 이제 한 명 한 명의 시민이 잠재적인 나비임을 누구보다 잘 안다. “우리가 해냈다”나 “우리가 이겼다”라는 구호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힘없는 존재들에게 승리의 경험은 중요하다. 그것은 ‘다음’을 꿈꾸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나비가 모이고 모여 나비떼가 됨으로써, 실낱같은 희망이 실타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나비효과가 가시적 성과로 드러나려면 무수한 나비들이 필요하다.

앞으로 더 많은 나비들이 필요하다. 날갯짓은 더 요란해져야 한다. 극적인 드라마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속 믿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 서두에 언급한 ‘우렛소리’는 이렇게 이어진다. “나비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훌륭한 곤충이었다. 작은 동물이지만, 균형을 흐트러트려 작은 도미노의 줄을 무너트리고, 이어서 큰 도미노를,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도미노까지, 시간의 물결 속에서 모든 것을 무너트릴 수 있는 존재였다.” 사회의 균형추이자 지렛대라는 점에서, 시민도 그런 존재다.

우리는 무너진 도미노를 차근차근 다시 세울 것이다. 나비는, 나비들은 이제 막 날기 시작했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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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않는다’는 규범에 따라 행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평화로운 곳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개인마다 살아오는 동안 쌓아온 경험이 다르기에, 역지사지라는 단순명쾌해 보이는 윤리적 태도를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대상은 선별되고, 이입의 강도도 사안별로 달라진다. 

역지사지를 더욱 폭넓게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가 경험하지 못했기에 모를 수 있는 다른 이의 입장이 있음을 고려하고, 그것을 알기 위해 타인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고백들을 경청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피로할 수도 있는 과정이다.

팍팍한 ‘헬조선’에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으로 출렁이기 쉽다는 것 역시 역지사지를 실천하기 어려운 요건이다. 나 역시 누군가 툭 건드리면 왈칵 감정이 세어 나올 때가 많다. 그 감정의 뜨거움이나 서늘함은 타인을 상처 입히고야 만다. 나는 감정이 진정된 뒤에야 후회하고 자책한다. 스스로의 감정도 돌보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입장과 감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기로 했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위해 애쓰고 인식의 외연을 확장하려 노력하며, 무심결에 저지르는 실수를 경계해도 어려운 것이 역지사지인데, 눈 감고 귀 닫고 모르는 채로 사는 것을 선택한 이들은 타인에게 ‘유해한’ 사람이 될 확률이 더욱 높을 것이다. 스스로의 갱신을 거부하고 타인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 이들에게 ‘미러링’이 유효한 교육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5년 ‘메갈’이 미러링이라는 전술과 함께 등장했을 때 깊이 감명을 받았다. 메갈은 ‘김치녀’ 같은 자국 여성에 대한 혐오언어의 대칭을 이루는 ‘한남(충)’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여성에 대한 편견과 멸시를 내포하는 진부한 표현을 주어를 바꿔 패러디했으며(“자고로 남자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나대지 말아야지”, “남자는 집에서 과일 깎고 애나 봐야지” 등), 여성에게 가해지던 성희롱의 방식으로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며 평가하는 글과 ‘남동생 몰카’를 찍었다는 허구의 글(‘소라넷’이나 ‘일베’에 올라온 여성 혈육 관련 게시물의 패러디)을 업로드하는 활동을 했다. 이 모든 것이 미러링이었다. 대칭이 되는 상을 들이밀며, 상대의 의식이 ‘당해 보니 기분 나쁜데? → 나도 비슷한 짓을 했던 것 같은데? → 앞으로 하면 안되겠군’으로 흐르기를 기대하는 것.

근래에는 미러링을 오인하고 오용하는 사례를 목격하기도 했다. 선제공격을 가한 특정 개인에 대한 보복 폭력이 미러링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인 예다. 나는 폭력적 언행을 일삼는 이들에게 그것이 왜 폭력적인지 설득하는 것을 목적에 두고, 특정 개인을 향한 조롱과 인신공격이 아니라 관습적 표현을 비틀어 ‘보여주는 것’이 미러링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것이 미러링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해당 원본이 무엇인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레 활용한다 할지라도, 미러링이 누구에게나 통하는 교육법이 될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종종 폭력적인 언행으로 ‘선빵’ 날리는 노인을 접할 때, 청년에 대한 과도한 요구나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한 비방을 비틀어 미러링을 ‘시전하는’ 상상을 한다. “요즘 노인들은 노력을 안 해. 노인수당 타려면 토익 700점 넘기고 어학연수 다녀오고 봉사활동도 해야지”, “먹고살 만한가 보지? 태극기 집회나 하고 말이야” 같은 말들. 하지만 이것을 한 명의 노인과 안전한 공간에 있을 때 시도해도 위험한데, 태극기 집회 한복판에서 한다면? 죽창에다 태극기 다신 분도 있던데, “이거 다 미러링인 거 아시죠? 허허”라는 덧붙임은 나의 유언이 될지도 모르겠다.

미러링은 상대에 대한 신뢰를 기반에 둔다. 상대가 문해력과 최소한의 공감능력 및 학습능력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존중. 하지만 최근에는 회의감이 든다. 어쩌면 그 정도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메갈의 탄생과 강남역 살인 사건 같은 굵직한 일들을 접하며 이미 인식의 균열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역지사지를 거들기 위한 강력한 정서적 요법마저 무용하다면(다음 단계로 의식이 흐르지 않고 ‘기분 나쁨’에만 머물러 있다면), 도대체 ‘설득’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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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485. 최근 일주일 동안 걸어다닌 결과의 평균이다. 날이 추워서, 날이 더워서, 비가 와서, 피곤해서…. 각종 핑계를 대며 하루에 5000보 걷기도 힘들던 ‘귀차니즘’은 사라지고, 틈만 나면 ‘좀 걷다 올까’ 궁리하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다. 갑자기 부지런해진 이유는 단 하나, ‘포켓몬고’ 게임 덕분이다. 조금이라도 덜 걷기 위해 꾀를 내던 내가 자발적으로 더 먼 거리를 걷기 시작하다니 놀라운 변화다. 시작한 지 한 달도 안돼 100㎞를 걸었다는 메달을 받았으니, 짧은 기간 동안 내 일상과 습관을 완전히 바꿔버린 셈이다.

사실 나는 포켓몬 세대가 아니다. 피카츄나 꼬부기 정도만 알았고, 포켓몬 애니메이션도 거의 안 봤다. 그런데 왜 이렇게 포켓몬고를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게임을 즐기지도 않는 편인데 말이다. 가장 큰 매력은 이 최첨단 게임의 아날로그적인 성격이다.

일단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어딘가에 가야 한다. 게다가 몬스터볼이나 기타 아이템은 돈 주고 살 수도 있지만 포켓몬 강화에 꼭 필요한 별의 모래는 포켓몬을 잡아서 차곡차곡 모으는 수밖에 없다. 포켓몬들을 하나씩 도감에 등록해나가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250마리에 달하는 모험 도감을 채워나가는 행위가 수집욕을 자극한다고나 할까.

광화문 인근에서 포켓몬을 잡는 모습. 연합뉴스

요즘은 체육관을 점령하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어폰을 꽂고, 효과음과 음악 설정을 켠 후 내 것보다 훨씬 센 포켓몬들이 포진한 체육관에서 한바탕 싸운다. 센 상대가 필살기를 써서 한 방에 나를 쓰러뜨리더라도 또 다른 포켓몬이 있으니 괜찮다. 이 체육관에서 지더라도 다음 체육관에서는 내가 이길 수도 있고, 같은 체육관에서도 상대가 바뀌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력의 조각과 상처약을 사용하면 기절한 포켓몬은 금방 회복되니, 얼마든지 더 경기를 할 수 있다. 실패해도 점수가 깎이지 않을뿐더러, 아이템은 또 받으면 된다. 걸어다니기만 하면, 실패를 얼마든지 극복하고 재도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이 없다.

개인적인 흥미 외에도 포켓몬고를 주시하게 되는 몇 가지 지점들이 있다. 우선 게임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거다. 그동안 게임은 “청소년들이 방에 틀어박혀서 게임만 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떨어진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사회악’ 취급을 받아왔는데, 최소한 포켓몬고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일본의 ‘히키코모리’들을 자발적으로 방 밖으로 이끌어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니 효과는 검증된 셈이다.

게임 비용의 측면에서도 혁신적이다. 그동안 게임은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하거나 돈을 들이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는 방식으로 작동해왔다. 그런데 포켓몬고는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만 깔면 되고, 돈을 쓴다고 해서 레벨이 갑자기 올라가기 어려운 구조다. ‘모험을 떠난다’는 말에 걸맞게 ‘현질’ 효과보다는 직접 걸어다니거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실과 가장 밀접한 게임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관광과 가장 상관없는 영역으로 여겨졌던 게임을 관광 산업과 연계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었다는 점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본에서는 이미 각종 이벤트로 ‘포켓코노미(포켓몬고+이코노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모바일 게임이 화면에 세상을 구현해내려 했다면, 포켓몬고는 화면에 세상을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현실 세상을 화면과 만나게 하는 위치기반 증강현실(AR)의 속성을 영리하게 이용한 것이다. “인간의 행동을 바꾸겠다”던 개발사 나이앤틱의 야심은 일단 꽤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포켓몬고에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운전할 때 켜 놨더니 자꾸 눈이 가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포켓몬이 나타나면 나도 모르게 잡으려고 하다보니 실제로도 너무 위험했다. 최소한 운전할 때만은 아예 켜놓지도 않는 게 정답이다.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포켓몬고는 게임이다. 봄을 맞아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걸으면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파트너 포켓몬과 걷기를 추천하고 싶다. 게임을 즐기는 이유는 다를지라도, 포켓몬 트레이너의 문은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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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과 손잡은 한식은 권력자를 위한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권력자에게 한식을 바친 사람은 중세 궁중의 하인에 지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 김윤옥이 끼어든 한식 세계화 사업,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아래 사라진 미르재단의 “‘한식 DNA’를 품은 글로벌 셰프 양성” 기획 속의 한식은 그들만을 위한 한식을 대변한다. 여기서 만들어진 한식은 한국인이 먹어본 적도 없고, 한국인이 먹을 일도 없는 한식이다. 다만 사진과 영상은 잘 받아서, 특정 인물을 위한 장식품으로는 꽤 쓸 만한 소품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통해 범죄의 내막이 새로 밝혀지고, 장관과 재벌이 재판에 넘겨지자 많은 사람들이 시원해했다. 하지만 한식은 여기서도 찬밥이었다. 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은 국정조사 특위 제4차 청문회에서 미르재단 관계자와 프랑스 요리학교 에콜 페랑디 분교 유치를 논의했음을 인정했다. 한식 세계화를 매개로 한 최순실·정유라 의혹의 한 고리가 드러난 순간이었지만 그뿐이었다. 미르재단 전 사무총장이 “에콜 페랑디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는 최순실-차은택”이라고 말했어도 그뿐이었다. 이를 둘러싼 의혹은 특검의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여기서 음식 시중을 들던 사람들이 보잘것없는 심부름꾼, 하찮은 말석의 인물로 보였는지 모르겠다.

온갖 매체가 요 몇 년 사이에 요리사를 연예인으로 떠받들고 있다. 덩달아, 성공했다는 0.1%의 한식당,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한식당 몇몇 곳만이 매체와 일간지 문화면을 수놓는 즈음이다. 그런 가운데 대화를 나눈 청년 요리사는 자신의 처지와 사뭇 다른,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한식 세계화 담론, 한식 담론 앞에서 지독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울러 지독한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가령 그동안 대통령 부인에서 대통령, 그리고 기관장이 주인공으로 둔갑한 ‘한식 화보’ ‘한식 홍보물’은 어떤가. 주인공이 마땅히 음식이어야 할 자리에, 요리사가 드러나 마땅할 자리를 특정 인물이 차지한다. 음식 하는 사람이라면 입지 않을 옷을 입고, 머리 장식을 하고, 짙은 화장을 하고, 어색한 동작으로 음식 주무르는 사진을 찍는다. 음식이 있을 자리, 요리사가 있어야 할 자리를 권력 있는 사람이 독차지한 화보를 펼쳐 놓고, 청년 요리사가 탄식했다. “우린 하인이니까.”

매체의 시대, 영상의 시대에 음식의 매력과 본질을 드러내는 연출은 필요한 작업이다. 그러기에 청년 요리사는 더욱 화가 났다. “음식을 찍어야지 왜 그 사람을 찍어요? 그럼 한식 화보가 아니라, 그 사람 화보잖아요. 그 사람 홍보잖아요.”

외국인 취향 한식, 외국인 입맛에 맞는 한식이라는 식의 한식 세계화 담론 앞에서는 거의 절망했다. “외국인 입맛에 맞춘다고 제 나라 음식을 바꾼 나라가 있어요? 그게 가능은 해요? 그리고 그 외국은 어디래요. 그냥 미국, 유럽, 일본인이 외국인의 다인가요?”

실제 여행 경험으로나, 한국 속 국제 경험으로나, 인터넷 경험으로나 이전 세대하고 전혀 다른 ‘외국’을 감각하며 오늘에 이른 청년 요리사의 세계는 미국, 유럽, 일본을 못 벗어난 사람들의 세계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실감하며 걱정했다. “푸드 트립(식도락 여행)? 낯선 데 가는 게 여행이죠. 낯선 음식도 먹고. 낯설어서 한식을 기대할 수도 있을 텐데. 서울에서 맥도날드 못 찾아 굶어죽을 외국인은 없을 거고.”

이윽고 청년 요리사는 보다 근본적인 물음으로 들어섰다. “세계화가 뭐예요? 아직 한식은 무언지 한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데. 한식을 세계화하는 게 뭔지, 왜 세계화해야 하는지 물어본 적도 없잖아요.” 근본은 실제로 건너갔다. “배울 데나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코르동블루, 시아이에이, 츠지, 핫토리 수준의 한식 학교가 없는데. 실습 나갈 마땅한 한식당도 전혀 없고요.”

외국인 입맛에 맞춘 한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는 관계자들끼리의 호언장담, 관계자만 아는 구미, 일본 출신 외국인이 인사로 건넨 “맛있어요”가 출발선일 수 없다. 한식이 2월28일 수사를 종료한 특검한테도 버림받았다며 쓰게 웃는 청년 요리사는 “내 처지, 현실, 근본적인 질문, 앞으로 할 일을 정직하게 확인하는 데가 출발선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만 음식에, 한식에 머물 말이 아니었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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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페미니즘과 관련된 프로젝트 제의를 받으면서 갈등한 적이 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갈등은 다소 복잡한 것이었다.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대단한 페미니스트라고’라는 겸양도 들어있지만, 한편에는 페미니스트라고 분류되는 순간 감당해야 할 많은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늘 올바르고 도덕적이며 자기주장이 강한 여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남녀가 함께 모여 사는 세상에서 분리되어 여자로만 가득 찬 울타리 안에서 옳은 소리만 하는 운동가의 이미지도 떠오른다. 나는 아직 그곳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인권 운동가나 투사가 되기에는 너무 자기중심적이며 멋대로인 데다 그렇게 도덕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남자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다. 많은 의미에서 나는 아직은 남자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그러니까 페미니스트라는 꼬리표에 대한 불편함에는 완벽함에 대한 강박보다는 어떤 부정적 이미지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이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 나는 <디아스포라 문학>이라는 가벼운 에세이를 낸 적이 있는데, 이후 나는 본의 아니게 ‘디아스포라 문학 전공자’가 되어버렸다. 고마운 일이지만, 한편 내가 문학에서 애초에 지니고 있던 다양한 관심은 삭제되고 이후 그것에 한정된 글을 주로 쓰게 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어떤 ‘주의자’를 경계하는 편이다. 어떤 특정 부분을 지향할 수는 있으나 어떤 인간도 그것만일 수는 없고, 우리는 조금씩 흔들리면서 살아가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DB

‘페미니스트’란 것도 그와 유사하다. 그 모자를 쓰는 순간, 다른 정체성은 보이지 않고 호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페미니즘이 불편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어떤 공격성과 부정성이라는 단 하나의 이미지만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말 많고 따지기 좋아하고 남자들과 적대하는.’ 그러나 그 단 하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또 내가 왜 불편했는지에 대해 최근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라는 책인데, 여기에서 그녀는 주류 페미니즘, 근본주의 페미니즘이라는 완벽한 페미니즘 대신 결함이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복수의 페미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그녀는 스스로를 “핑크색을 사랑하고 섹스를 좋아하고 가끔은 여성을 끔찍하게 표현한 노래에 엉덩이를 흔들기도 하고 때로는 정비공이나 수리 기사에게 마초 대접을 해주면 내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부러 더 멍청한 척을 하는” 나쁜 페미니스트라 자처하면서, 그 불완전한 대로의 페미니스트이기를 원한다고 공표한다.

지난 학기에 ‘페미니즘과 여성문학’이라는 강의를 맡았는데, 이 수업은 애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다소 재미가 없이 흘러갔다. 왜냐하면 분석방법과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불행, 고통과 원한에 ‘남자’라는 타깃을 달아주면 모든 것은 해결 가능해 보인다. 고민 끝에 그러한 일률적인 분석틀을 버리고 텍스트를 매개로 각자의 경험에 대해 토론하는 것으로 바꾸자 수업은 훨씬 더 흥미로워졌다. 그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우리들은 로맨스를 즐기고 외모를 가꾸고, 나쁜 남자를 좋아하고 예쁜 여자를 좋아해도, 전업주부를 열망해도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었다. 페미니즘이 오직 여성의 직장, 육아와 가사의 평등, 여성의 대상화 등에 대해 똑같은 주장과 원망을 갖고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육아, 가사, 그런 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건……’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듯 여성의 수만큼 수많은 갈등과 원망이 있고, 그것은 때로 근본주의 페미니즘이 말하는 그것과 일치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한국 청년들의 고통을 전부 ‘청년실업’으로만 치부할 수 없듯이 말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워 모든 것의 교정을 요구하는 것이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은 오류이다. ‘논리정연하고 도덕적이며 일과 가정에서 완벽한 여자, 남성과 적대하고 스커트를 입지 않는 남자 같은 여자, 희생없이 끊임없이 권익만 요구하는 이기적 페미니스트’와 같은 추상적 이미지도 환상일 뿐이다. 여성 혐오는 그러한 관념 속에서 자라난다. 다 큰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생을 쓸쓸해하는 어머니, 직장 일 때문에 늘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아내, 씩씩한 딸 등의 구체적인 모습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편린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록산 게이의 말처럼, 어떤 완벽한 모델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각자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인 채로 이 세상에서 가장 보고 싶은 페미니스트가 될 필요가 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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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가 어느 순간 떠나고 나면 남는 것은 ‘진실’에 대한 기억뿐이다. 건너가지도 못한 진실, 건너갔으나 닿자마자 변형된 진실, 나에게 비로소 도달했으나 알 수 없었던 그의 진실. 상호모순되는 진실들이 어느 순간 뒤죽박죽 엉키면서 안개가 어리기 시작한다. 우리의 진실이 어느 시공간에서 부유하고 있는지 어디선가 공허한 바람 소리도 난다. 그때의 진실을 이제 와 감정으로 만져본 것뿐이데 어느새 해지고 있다. 진실은 본래 그토록 연약한 것일까.

박사 과정 초기 시절 꽤나 여러번 지도교수들과 사회과학에서의 ‘사실’과 ‘의견’에 대해 논쟁을 했다. 어느 날 나는 두 분의 지도교수들에게 한국과 일본의 비정규직 확대에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해보겠다고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분이 나에게 “너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것이 맞니?”하고 물었다. 다른 한분은 키득 웃으시며 “우리는 왜 자꾸 네가 정치가 같을까?”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그 에피소드는 연구할 때마다 나를 긴장하게 한다. 증거가 되는 자료, 사실 등을 찾아내어 들여다보고 만지작거리다 보면 진실이 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햇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보여주는 예쁜 무지갯빛처럼, 나는 진실이 비추고 있는 여러 색깔 중 마음에 드는 색만 골라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 당시 생존했던 단원고 학생들이 7일 세월호 참사 1000일 추모 11차 촛불집회에서 무대에 올라 발언하자 희생된 학생들의 부모들이 다가가 안아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연구자가 진실을 분석하고자 할 때는 사실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것이어야 한다. 특히, 사회과학에서는 개별적 삶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되면 어떤 정책이나 이론도 허무한 맹목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가의 말에는 늘 추상성이 있다. 추상화된 언어는 사실 권력자들만 구사할 수 있다. 권력자의 힘이 강할수록 구체성과 사실은 감추고 뻔뻔하게 사실을 추상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추상성의 정도가 곧 권력의 정도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2016년을 ‘탈진실(post-truth)’이라는 단어로 정의했다. 이 단어는 ‘객관적 사실보다 감정과 개인적 신념이 사람들의 의견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상황’을 뜻한다. 개인들이 과학적 증거들보다 감정에 쉽게 설득당할 수 있게 되면 진실에 대한 판단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따르게 된다. 진실은 온데간데없거나 ‘저마다의 진실’들이 너무 많아져, 감정의 설득력이 더 커지는 것이다.

탈진실은 공적 정보 및 자료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과 냉소가 팽배해질 때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나 온라인상의 상호작용을 통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댓글과 ‘좋아요’ 횟수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감정 묻은 정보들이 진실의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이 흔한 일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지식은 점점 세분화되어 파편화된 진실의 조각들은 각 개인들을 설득하기가 너무 가벼워졌다. 작은 진실의 조각들은 범람하고 있는데 우리는 점점 더 진실을 갈구하게 됐다.

이러한 탈진실의 시대에 위험한 것은 권력가의 현혹이다. 이 때문에 탈진실의 시대에 권력자의 말은 위험하고 동시에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사실보다 감정이 개인들의 의견에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 시대에 최고 권력자가 ‘북한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라고 추상적인 말 한마디를 한다면, 그 효과를 그가 모를 리가 없거니와 몰라서도 안된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에서 저마다의 진실이 공존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저마다의 진실들이 경합하는 경우 각 개인들이 이성에 따라 판단할 수 있도록 열린 토론과 원활한 정보검증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표현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어 매체들, 시민단체, 학자 그리고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진실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지속적으로 정보공개를 요청하고 사실을 검증해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에 대해 잘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문인과 예술인들조차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니 제대로 된 진실 경합은 언제 시작될 수 있을지 답답하다. 이미 닳고 있는 진실이 만질 수도 없는 안개 속으로 영영 사라질까 두렵다.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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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24일 오후 2시38분. 여성 수천명이 아이슬란드의 거리로 뛰쳐나왔다. 남성에 비해 평균 14~18% 적은 임금을 받는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임금격차로 보자면 여성들은 매일 2시38분 이후부터는 공짜로 일하고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어서 11월7일 오후 4시34분에는 프랑스 여성들이 손에서 일을 내려놓았다. 성별임금격차 15.5%를 기준으로 봤을 때, 여성들은 이날, 이 시간부터 연말까지 무급 노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항변이었다. ‘이퀄 페이 데이(Equal Pay Day·동일임금의 날)’로 불리는 이 시위는 같은 해 11월10일 영국으로도 이어졌다. 이뿐 아니다. 호주의 한 대학 여성 모임은 ‘페미니스트 주간’을 맞아 임금격차분을 반영하여 남성에게는 컵케이크를 더 비싸게 파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우리는 왜 거리로 뛰쳐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국이야말로 성별임금격차 3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가 아닌가? 그런데 며칠 전, 3월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한국 여성 노동계에서 조기 퇴근 시위 ‘3시 STOP!’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최 측에서는 집회와 행진을 예고했고, 거리에서 함께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는 각자의 자리에서 ‘3시 알람 맞추기, 3시 되면 회의하다 멍 때리기, 괜히 탕비실 가기’ 등 태업으로 동참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다.

한국에서 남녀 성별 간 노동의 질과 조건의 차는 심각하다. 원인에 대한 분석은 분분한데, 크게는 다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남녀 사이에 능력차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의 유독 높은 임금격차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는 명백하게 성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자 신광영은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동일한 조건에서 여성 임금이 남성에 비해 30% 정도 낮게 나타나며, 이 가운데 50% 이상이 차별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고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직접적인 성차별은 많이 사라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노동은 남성 노동에 비해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여성 노동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낮은 대가를 받으며, 인사고과 불이익 등 남성중심적인 노동 체계 안에서 발생하는 간접적인 차별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경력단절 등의 성별화된 문제는 전혀 시정되지 않았다.

한국의 노동정책은 이런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지 못하다. 지금까지의 성인지적 노동정책은 ‘여성노동정책’으로 바로 치환되어 ‘여성’만을 대상으로 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정부의 ‘일·가정 양립정책’이었다. 사적 영역인 ‘가정’과 공적 영역인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여성으로 하여금 둘 다를 책임지기를 사회적으로 요구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불안정한 여성 일자리를 양산하고, 여성을 ‘과로사 권하는 사회’로 내몰았다. 한 가지도 인간적으로 수행하기 힘든 사회에서의 일·가정 양립은 죽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3시 STOP!’ 조기 퇴근 캠페인이 던지고자 하는 또 하나의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 노동시장에서의 남녀 차별은 공적 영역에서의 여성의 입지를 남성의 입지로까지 끌어올린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오히려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의 드라마틱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서야 가능해진다.

이제 노동에 대한 이해가 달라져야 한다. 매일 야근하고, 회식에 시달리며, 무한히 경쟁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일이라는 판타지는 깨져야 한다. 공과 사, 남성과 여성 등으로 나뉘어 있는 분리의 벽을 깨고 노동 성격 전반을 바꿔내야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것의 핵심은 남녀 노동자 공히 적용되는 노동시간 단축이다. 대선 정국에서 공론화되기 시작한 ‘남성 육아 휴직’은 노동 시간 단축의 한 예다. 우리는 저출산 패러다임의 외부에서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여성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국, 노동자 보편의 삶의 질을 바꾸는 것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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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을 하다가 손님의 차를 긁었다.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기계식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그렇게 됐다. 아무래도 조수석의 사이드미러가 긁힌 것 같았다. 손님, 그러니까 차의 주인은 이거 어쩌지, 하는 한숨을 쉬면서 창문을 열어 긁힌 데를 살폈다. 사실은 그가 “여기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그래서 엑셀을 밟은 것이었다. 무언가 억울하기도 했으나 나는 죄인이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손님은 나에게 어두운 표정으로 “조금 긁힌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목적지로 가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편한 타인의 운전석이었다.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우선은 나의 미숙함으로 소중한 차에 흠집을 냈으니 미안했고, 그러면서도 외제차가 아니라는 데 안도했다. 나는 왜 고작 1만2000원을 벌자고 이 밤에 나와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손해를 보고 있나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손님의 그 ‘조금’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저 사람의 조금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괜찮네요, 하고 웃고 지나갈 수 있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도색비를 어느 정도 받겠다는 것인지, 아예 보험처리 절차를 제대로 밟겠다는 것인지 답답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당신의 조금은 얼마입니까?”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서 묵묵히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운전만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서는 손님과 함께 사이드미러를 살펴보았다. 거뭇한 자국이 손톱 크기만큼 묻어 있었다. 과연, 조금이라면 조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손님은 손가락으로 흠집을 몇 번 문질러 보았고 그에 따라 자국이 조금씩 지워졌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에게 “그냥 가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빠르게 거기에서 나왔다. 보험처리를 원하면 연락을 달라고 하거나 하다못해 감사의 인사라도 정중하게 했어야 하지만, 그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웠다. 나약한 한 인간은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심호흡을 하며 걷는 동안 처음으로 ‘조금’이라는 적당한 말이 주는 폭력에 대해 상상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 모호한 부사를 습관처럼 자주 써 왔다.

“설탕은 조금만 넣어주세요”, “조금 후에 갈게요”하는 일상의 언어. 그러나 그것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유통될 때는 을의 자리에 있는 이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갑이 을에게 “조금 생각해 보자”, “이건 조금 마음에 안 드는데”라고 할 때의 ‘조금’은 우리가 아는 조금이 아니다. ‘적당히’, ‘많이’, ‘잘’과 같은 언어들이 모두 그렇다. 갑의 자리에서 하고 을의 자리에서 듣는 모호한 언어는 폭력이 된다.

그날 이후, 나와 타인을 위해 ‘조금’은 더 조심히 운전하고 있다. 그에 더해 말조심은 갑의 자리에 있을 때 오히려 더욱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모호한 언어뿐 아니라 헛기침이나 하품과 같은 몸짓에도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고 해도 거기에서 감정을 읽어내고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발화할 수 있는 편안한 자리에서 우리는 가장 불편하게 존재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단어가, 몸짓이, 아니면 그 무엇이 타인에게 불필요한 두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규정하자면, 그것은 일상화된 ‘갑질’이다. 내가 편안하다면 누군가는 불편하다.

오늘도 어느 사장님이, 연예인이, 재벌 3세가 ‘갑질’을 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우리는 거기에 분노한다. 그러나 나도 그렇듯 정작 스스로 행하는 일상의 갑질에는 관대하다.

그것이 훨씬 우리의 삶을 위험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나는 이제야, 타인을 향한 나의 언어와 몸짓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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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으면 해봐.” 길에서 누군가가 훈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잔뜩 풀 죽은 채 함구하고 있었다. 모종의 권력이나 권위가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누군가 힘을 내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그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르신의 입에서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왔다. “아시다시피? 그게 할 말이야? 너희가 아직 어려서 그래.” 젊은이들의 입이 더욱 굳게 닫혔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할 말만 하라는 것도 우습지만, 할 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주체가 발화자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기가 막혔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여지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발언에 선뜻 입을 열어 또박또박 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발언을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할 말 있으면 해봐”라는 말은 어쩌면 ‘해서는 안될 말’이었을 것이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지난주 촛불집회 현장에서 저 말을 다시 들었다. 손에 태극기를 든 어른들이 손에 촛불을 든 젊은이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 사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래. 어릴 땐 학교 가서 공부를 해야지. 이래서 이 나라에 내일이 있겠어?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봐.” 촛불은 이미 꺼졌다며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는 외침도 들려왔다.

젊은이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입을 모아 외쳤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광장은 시민의 것입니다.” 매운바람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촛불은 활활 타올랐다. 단 한순간도 꺼지지 않았다. 말들이 뒤섞여 현장은 내내 뜨거웠다.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이 있었다.

할 말을 제때 한 사람은 속 시원하게 ‘사이다 발언’을 한 사람으로 추앙받지만, 해서는 안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할 말을 제때 잘하는 것만큼이나 해서는 안될 말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해서는 안될 말을 들은 사람은 상처를 받고 의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일할 의지, 공부할 의지, 무엇보다 내일을 향할 의지. 김빠진 사이다처럼 삶의 동력을 상실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할 말은 하는 신문’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문이 있었다. 그 신문에서 했던 말들이 과연 할 말이었는가? 오히려 해서는 안될 말에 가깝지 않았는가?

소셜미디어에 ‘아무 말 대잔치’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글들은 그저 아무 말에 불과한가? 정말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의 다른 표정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해서는 안될 말이 권위를 등에 업고 응당 해야 할 말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반대로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막는 분위기는 아무 말이라도 발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낳기도 한다.

다큐 PD 김현우가 쓴 <건너오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어떤 이에겐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가 다른 이에겐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단어일 수도 있다. ‘바늘’ ‘손가락’ ‘불’ ‘바람’, 이런 평범한 단어들에 세상의 사람 수만큼 많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 바늘은 칼날처럼 치명적일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이에게 바람은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단어일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축하’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이에게 잘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는 단정적인 말에 젊은이들의 입은 닫힐 수밖에 없다. 내일을 이야기하며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앞세울 때, 그 말 안에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은 없다. 어떤 ‘할 말’은 남에게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때의 할 말은 고작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공허한 말일 뿐이다.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 사이에 말을 하는 자와 그 말을 듣는 자가 둘 다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해서는 안될 말은 삼키고 할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 비로소 말은 힘을 얻는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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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 장래희망은 ‘욕쟁이 할머니’였다. 대중매체로 접한 욕쟁이 할머니들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지만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게 부러웠다. 소비자 갑질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는 대한민국에서, 식당 주인이 퉁명스럽게 면박 줘도 손님들이 얼굴 찌푸리지 않고 넉살 좋게 대응하다니!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이놈, 저놈 해도 관용의 대상이 됐다. 모든 권력관계로부터 해방된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어떤’ 욕쟁이 할머니는 불쾌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얼마 전 허리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의 남자 친구와 같이 동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곳 주인 할머니가 식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야, 여자야?” “남자요.” “안 들려 크게 대답해, 이놈아.” “남자요!” “뭐? 남자라고? 못 믿겠는데? 벗겨봐야 알겠네.” 그러고는 혼자 낄낄대는 것이었다.

나는 정색했다. ‘혼자만 재밌으면 답니까? 저는 하나도 안 웃긴데요? 남자는 머리가 길면 안 됩니까? 도대체 그게 왜 놀림거리인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그거, 성희롱입니다’와 같은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친구에게 더 불편한 상황을 초래할까봐 참았다. 자리를 박차고 다른 식당을 찾아가야 하나, 굳은 얼굴로 5초 정도 고민했지만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길거리에서 헤매면 기분을 더 잡칠 것 같았다. 친구의 기분을 살피며 넌지시 물어봤더니 그 역시 그냥 빨리 먹고 자리를 뜨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곧 먹음직스러운 찬과 찌개가 나왔고 우리는 금세 헤헤 웃었다.

불편한 기분은 휘발됐지만 생각의 잔상은 남았다. 내가 ‘그냥’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는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강자에게 꼿꼿이 맞서며 할 말 다 하지만 상대적 약자에게는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여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서 할 말을 삼키지는 않지만 무엇이 ‘해야 할 말’인지에 대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지혜, 부당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해학이라는 무기를 활용하여 기어코 균열을 만드는 능란함을 갖춘 존재.

이것은 근래에 등장한 ‘프로불편러(pro+불편+er)’라는 단어가 호명하는 존재와도 닮아 있다. 프로불편러는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고, 본문에 디테일한 사연을 풀어내며 다른 누리꾼의 공감을 기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처음 언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분명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도 있었다(“별걸 다 불편해하네, 프로불편러세요?”). 그러나 불편의 경험이 공유되면 될수록 ‘나만 느낀 불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 이들이 늘어났고, 기록되지 않았으면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됐을 사안들이 누적됐으며, 폭력과 억압의 구조를 탐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됐다. 더욱 ‘프로답게’ 불편을 말하는 법에 대한 전술도 공유됐다. 위로와 학습의 공동체가 형성됐다.

이런 뒷배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의 자아로 사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느껴진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현실적인 제약을 떠올리며 어깨를 떨어뜨렸다. 젊은이로서 자신의 주장을 강경하게 밀고 나가면 “어린 년이 한 마디도 안 지려고 따박따박 대든다”고 노여워하는 연장자를 마주하기 쉽다. 어쩌면 한 대 얻어맞을 수도 있다. 또한 어린 ‘년’은 ‘현모’처럼 너그럽고 ‘양처’처럼 상냥한 태도까지 강요받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거세게 비난받는다. 얼굴을 드러내고 발화하면, 내용은 경청하지 않고 외모 평가 및 모욕을 하는 뜨내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래저래 자기검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청년은 정녕 중장년층, 노년층과 상호 예의를 기반으로 해 토론할 수 없는 것인가? 왜 예의는 일방향이어야만 하나? 여자는 스스로의 감정과 사회적 요구와 문화의 개선에 대해 떠들면 안 되는 존재인가? 나는 할머니가 돼서야 이런 부당함으로부터, 사회적 억압과 강요로부터 벗어날 거라고 일찍이 짐작했던 것이다.

오늘도 장래희망은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다. 그러나 그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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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작은 도시, 스플리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른 아침, 텅 빈 거리를 걷다가 한글 간판을 발견했다. 딱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가게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가게를 열기까지의 고생담과 크로아티아 행정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고, 계산대에 서 있던 아내 분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부가 방금 전까지 심하게 다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남편은 이 도시에 단 3명밖에 없는 한국인 중 2명이 바로 자신들이며, 나머지 한 명은 현지인과 결혼한 분이어서 자신들보다 낫다고 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고 10% 할인을 해주는 가게에서 몇 가지 물품을 사서 나왔지만, 무거워진 마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서 외국 생활의 생생한 민낯을 목도한 후에도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능력만 된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기술과는 거리가 멀고, 현지 언어도 뛰어나지 않은 내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나라에 가볼 때마다 ‘여기도 좋다’ 싶다가도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사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를 반복하는 패턴이니, 진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깝다.

외국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 외국에서 사는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은 아직은 내가 낭만적이거나 철이 없기 때문일까? 요즘은 세계일주를 하면서 각 나라에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들을 인터뷰하는 부부의 글을 자주 읽는다. 내 소셜미디어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해외 생활기가 자주 올라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제주부터 말레이시아, 아프리카까지 여행 중이거나 생활 중인 사람들이 올린 소소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낯선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다른 삶’ 연재기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이다. 호주의 ‘워홀러’로 변신한 기자, 도쿄에서 바를 운영하며 4남매를 키우는 부부, 포틀랜드에 정착한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 부부까지…. ‘떠남’을 감행한 그들의 용기와 선택이 부럽다가도 ‘흥칫뿡!’ 유치한 질투가 생기기도 하고, ‘나도 갈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갈팡질팡할 때마다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눈물’로 총알을 만드는 작가, 네덜란드의 첸 위 페이다. 첸은 이방인으로 살았던 유학 생활 동안 힘들어하며 흘린 눈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눈물 총’을 통해 시각화했다. 그녀의 졸업작품이기도 한 ‘눈물 총’은 실리콘 깔때기를 얼굴에 착용해 눈물을 모으고, 극저온 액체로 이뤄진 통 안에서 눈물을 냉각시켜 총알로 발사한다. 자신의 고통을 작품으로 시각화한 첸의 도전은 화제가 됐고, 나는 그 강렬한 이미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물 총을 얼굴에 부착한 첸이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어차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살아도 이방인인 건 똑같지 않으냐고. 이번에는 그녀가 아니라 마음속의 목소리가 묻는다. ‘그럼 어떻게 다르게 살 건데?’ 나는 망설인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사회의 기준이나 통념을 잘 따르며 살아온 사람이고, 그렇다 보니 그 선을 넘는 것이 어렵고 무서운 사람이다.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것조차 한국에서는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평균’이나 ‘정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할뿐더러 대단할 정도로 다르게 살 자신도 없다. 다만 그 기준에서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끊임없이 시달려야 하는 ‘한국식 오지랖’이 피곤할 뿐이다. 끝내 나는 마음속 목소리의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살아가면서 답을 찾게 되겠지만, 일상에 익숙해지는 대신 지금처럼 머릿속으로나마 세상의 다른 곳을 끊임없이 주유하면서 살고 싶다. 누군가의 삶도 공식처럼 딱 떨어지게 명쾌하지는 않고, 선택의 연속인 삶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으니. 떠날 수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론을 빨리 내기 위해 조급해하지는 않으려 한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잘했던 일은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라는 말들을 믿지 않았던 것이었다”는 전직 기자이자 현직 워홀러인 김여란씨의 말을 되새기면서.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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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설날이 지나갔다. 입춘이 코앞이고 대보름이 바라보인다. 대보름도 지나면 2월14일, 한순간에 대중의 일상에 파고든 밸런타인데이가 온다. 이날을 유래불명, 국적불명, 정체불명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중은 어느새 이날을 명절로, 기념일로 만들어버렸다. 비판에도 일리가 있다. 유래. 불분명하다. 황제가 군인의 혼인을 금지했다고? 이치에 닿지 않는 소리다. 이날의 아버지라는 발렌티노가 여러 발렌티노 가운데 과연 누구인지도 분명치 않다. 국적. 불분명하다. 최근 100년 유럽 여기저기에서 이날은 연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지를 위한 기념일이었다. 이날이 연인을 위해 돈 쓰는 날로 변한 곳은 미국이다. 여기에 일본이 초콜릿을 더했고, 대만과 한국이 일본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대륙 중국에서도 전통적인 대보름과 칠석을 따돌리고 연인의 기념일로 자리를 잡은 눈치다.

다만 정체를 따지기란 만만찮다. 한국인이 공동체가 부과한 의무와 부담에서 벗어난 명절을 누려본 적이 있었나. 사랑, 연애, 애틋한 마음, 수줍은 고백, 에로티시즘에 집중한 하루가 있었나. 화려한 과자라든지 꽃송이 같은 명시성 강한 물건을 손에 든 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기회는 있었나. 이날이 출처 불분명하고, 별안간 주어졌으며, 상품 판촉 활동에 잇닿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에서, 대중에게, 정체만큼은 분명하다. 이날은 갑오개혁을 지나서도, 해방을 지나서도 없었던 ‘연인의 날’이다. 너랑 나랑 둘이서 주인공이 되는 하루를 바란 대중의 마음이 만든 날이라는 속내가 있다. 해방 이후 특정 종교와 정부가 손잡고 일방적으로 선포한 몇몇 공휴일보다 그 속내가 훨씬 선명하기도 하다.

초콜릿도 읽어볼 만한 주제다. 과자는 인류 음식 문화사의 진화와 함께 꽃핀 문명의 꽃이다. 과자를 못 먹는다고, 안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기어코 과자를 만들고, 과자를 먹는다. 밥, 빵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노동을 들여 굳이 만들어냈고 먹었다. 과자는 택할 수 있는 한 그 풍미, 질감, 형태 모든 면에서 화려한 쪽을 택하는 음식이다. 생존과 상관없는 명시적인 색상, 밑도 끝도 없이 품을 들여 이룩하는 조형미, 오로지 쾌락으로 수렴하는 단맛 중심의 풍미가 과자의 삼박자다. 생존만을 위해 이루고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노는 인간, ‘호모루덴스’를 단박에 드러내는 음식이기도 하다. 과자 가운데서도 초콜릿은 과자 세계의 정점에 선 과자이다. 판촉을 처음 기획한 사람이 처음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초콜릿을 가져다 댔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사이를 위해 이만한 정표도 다시 없을 것 같다. 아무려나, 이제 반전이 필요하다. 이왕 벌어진 판에서 보다 지혜롭게 나와 너의 하루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서, 초콜릿의 녹는점은 체온과 같다. 입속에 넣었을 때 이물감 없이 사르르 녹아 풀리고 특유의 단맛과 향이 올라오는 과자, 그게 초콜릿의 조건이고 정체다. 식물성유지, 레시틴, 합성착향료는 유사초콜릿 또는 준초콜릿에 들어가는 첨가물일 뿐이다. 초콜릿은 카카오버터, 카카오매스, 설탕 이 세 가지 원료로 충분하다. 밀크초콜릿은 분유만 더한다. 오늘날 상품의 가격대란 넓게 벌어지게 마련이고, 소비자도 저마다 형편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할 테지만, 그래서 유사초콜릿 또는 준초콜릿도 필요하지만, 한 번쯤 나와 너를 위한 사치를 하겠다면 원재료만큼은 한 번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딱 두 가지다. 초콜릿의 녹는점이 사람 체온과 같다는 점, 초콜릿에는 원래 카카오빈에서 나온 카카오버터 이외에 어떤 다른 유지도 쓰지 않는다는 점. 이를 기억하면 ‘예뻐서’ 샀는데 어이없이 ‘비싼 거’를 사는 어리석음은 조금 줄일 수 있다. 굳이 초콜릿의 원료인 ‘커버처’를 구해, 내 손으로 초콜릿을 만들 분들은 제과가 어마어마한 기술 숙련의 세계임을 실감하는 보람까지 거두길 바란다. 전문 초콜릿 제과사는 대리석에 섭씨 40도에서 50도로 녹인 액상의 초콜릿을 부어놓고, 다시 27도쯤에서 굳기를 기다려 순간적으로 작업을 해낸다. 초콜릿은 워낙 사람 손을 잘 타야 잘 나오는 과자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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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사연을 품고 있다고 했던 톨스토이의 글을 흉내 내자면, 명절 한국 가정의 모습 또한 불행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행복의 표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과일 박스와 선물 꾸러미를 들뜨고 그리운 마음과 함께 실은 출발은 산뜻하다. 극심한 정체가 계속되고 ‘가다 서다’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 오면 그것은 그것대로 왠지 우리가 헤쳐가야 할 숭고한 고난의 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부모님께 보란 듯 정체 상황을 보고할 때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가 갑니다’라는 생각도 들고, 1년간 다하지 못했던 효도를 속죄하고 빚을 탕감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닿은 고향집의 문턱에서 반가움을 짐과 함께 부리고 나면, 이제 목표는 그 집을 탈출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미션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두 100개 빚기, 모둠전 200장 부치기, 나물 다섯 가지 무치기, 산더미 같은 설거지 하기 등등. 미션은 과도한 육체적 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 못 가기, 미소 짓기, 언제나 순종적일 것, 때로는 보고 듣고 때로는 못 보고 못 듣는 신공 발휘하기. 이 놀라운 감정 센서는 명절 내내 작동하지만 대체로 음식을 놓고 둘러앉은 저녁시간 이후 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더라’ 유(類)의 시샘과 걱정, 잔소리 등이 오가고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 특히 그러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면 지친 몸과 마음은 탈출을 명령한다. 그것은 며느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다. 불편함의 끝에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설 아침 차례와 세배가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안녕’ 하고 돌아 나오는 정체길에서는 효도빚을 탕감받고 출옥한 죄인의 푸념이 있게 마련이다. 과도한 육체적, 감정적 노동에 시달렸던 아내의 논평이 정체길만큼이나 무한정 이어지게 마련인데, 대개는 남편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그 분노가 정체길의 짜증과 버무려져 ‘명절망국론’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논쟁에 이어 냉전에 이르렀을 즈음, 차가 여자의 집에 당도한다. 시댁에서 주눅 들고 남편에게 화가 나있던 여자는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소리가 커지는데, 짐들을 던져놓고 널브러지면서 게으르고 말 많은 여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딸은 엄마에게 이것저것 명령하기 시작한다. ‘느끼해 죽겠어, 커피 좀 끓여줘’로 시작해 이틀 내내 묵언수행하던 여자의 말문이 터진다. 시댁에서 무뚝뚝하고 철부지 아들 같았던 남자는 처가식구들 앞에서 붙임성 있고 믿음직하며 배려심 많은 썩 괜찮은 사위로 변신한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여자’, ‘며느리’, ‘엄마’로 길들여지고 결국 ‘맘충’이 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학적 보고서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를 상징하는 ‘김지영’은 그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맘충’으로 전락해 우울증을 앓는데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자들의 말을 복화술처럼 대신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가령 명절에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라고 하는 시어머니에게 그녀는 친정엄마로 빙의되어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명절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축제이자 의례이다. 그러나 명절은 가족의 구성원을 규율하고 훈육하는 살벌한 현장이기도 하다. 날것의 욕망을 드러내고 결핍과 충족을 재단하는 심판대. ‘누구는 어떻다더라’로 상징되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가족은 지극히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속물적인 세계관 위에 세워진다.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집 등 구성원들을 자극하고 다음 1년을 다짐하게 만드는 ‘좋은 것’의 목록이란 ‘자본주의’의 규율과 다를 바가 없고, ‘나, 우리’의 배타성으로 연결된다. 명절에 흔히 도마에 오르는 취준생과 미혼의 문제는, 다시금 가족 구성원들을 납작하고 보수적이며 방어적인 세계관 위에 세운다.

속죄, 속물, 쇼윈도, 비교와 경쟁, 배타, 이기심, 보수, 자본, 교묘한 폭력으로 이루어진 한바탕의 신파가 또 한 차례 지나갔다.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하나의 교본에 또 어떻게 저항하고 쳐내야 하는지의 미션은 남아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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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부터 재작년 겨울까지, 나는 대학(원)에 있었다.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청춘의 날을 거의 보냈다. 그러는 동안 나를 대학의 구성원으로 굳게 믿었다. 논문을 쓰는 일도 강단에 서는 일도 즐거웠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나는 여기에서 무엇인가, 노동자이자 사회인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던 어느 날,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연구실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강의실에서 나의 호칭은 ‘교수님’이나 ‘선생님’이었다. 건강보험도 보장되지 않는, 재직증명서 발급이 되지 않아 제대로 대출심사를 받을 수도 없는 나를 학생들은 그렇게 불렀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건강보험을 보장받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새벽부터 물류하차 일을 했다. 오후 수업에 들어가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나는 교수님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고는 연구실을 정리했다. 대학에서 보낸 청춘의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하면서, 대학에서 나왔다. 어느 동료 연구자는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왜 그런 글을 썼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마음으로만 “우리 삶이 오히려 연구 대상인데 뭘 연구한다고 연구실에 있기도, 강의실에서 학생들 앞에 서기도, 저는 민망하네요” 하고 답했다.

얼마 후, 나는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우선은 생계를 위해서였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아이의 기저귀와 분유를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왜 굳이 대리운전이었느냐고 하면 ‘대리’라는 단어가 갑자기 나의 지난 시간을 규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로, 주체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내가 아닌 어느 괴물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대리운전, 내가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한 그 노골적인 대리노동을 통해 새롭게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작년 5월31일 밤 11시에, 첫 콜을 받았다. 손님은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나는 출발지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3분 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나에게 두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저씨, 왜 아직도 안 와요?”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아직 대학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나의 몸을 거리로 패대기쳤다. 교수님, 선생님, 아니면 이름이 유일한 호칭이었던 한 인간은 초면의 누군가에게 아저씨가 되었다. 호칭을 결정할 권리가 이미 그에게 귀속된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나는 신호를 무시하고 뛰었다.

손님의 차에 도착해서도 나는 여전히 ‘아저씨’였다. 모든 관계는 호칭에서부터 그 범위가 상상되고 확장 또는 축소된다.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그러한 호칭에는 한 대상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대학에 있는 동안 나를 은밀하게 주체로서 고양시켜 왔음을 알았다. 그것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환각에 빠진다. 반복되다 보면 위화감이나 그 어떤 서글픔도 점차 옅어진다.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 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환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근사한 호칭들은 그렇게 한 개인을 쉽게도 잡아먹곤 한다.

권력의 위계를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를 호칭하는 일도 흔하다. “오빠가 생각하기에는” “형은 말이야” 하고 굳이 ‘나’를 은폐한다. 군복무 중에는 “연대장은 너희에게 아주 실망했다”거나 “소대장은” “포반장은” 하는 자기 호칭의 서사를 참 많이도 들었다. 그러다 보면 조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기 쉽다. 개인은 사라지고 호칭으로서 상상된 대리인간이 남는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면서, 나는 얼마나 너의 이름을 불러 왔는가를 떠올린다. 호칭 너머의 한 개인을, 인간을 상상하기로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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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청년 루카치가 말했던, 우리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하늘에 빛나는 별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이라서 창공의 별들을 보고 우리가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던 그런 시대가 정말로 우리에게 있었을까. 영혼, 빛나는 별,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아름다운 말들이 너무나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여러 번 좌표를 잃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와 대학은 내가 어떤 연구를 하길 원하는 것인지, 나에게 과연 ‘스승’이 되길 기대는 하는지, 나는 여러 번 고민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숨 막힐 듯한 위계질서는 교수 간, 교수와 학생 간의 자유로운 토론을 상상하기 어렵게 했다. 연구 활동에 ‘실적’이라는 단어가 적용돼 여러 달 여러 해를 고민해 완성한 논문들이 단순한 숫자로 표기되고 이 숫자들이 곧 대학 서열매기기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낯섦은 지금 돌아보면 시작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까다로운 ‘고객’이라고 숙지되고, 전국의 대학들이 이러한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대학은 그리고 사회는 애초부터 내가 ‘스승’으로 성장해나가길 바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대학에 막 임용돼 시작한 교양수업에서 한 학생은 나에게 ‘순진하다’는 강의평가를 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서로 토론하며 해결방안을 함께 고안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경쟁체제에 익숙한 학생들은 이러한 팀 활동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1~2점의 성적보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그 학생은 “우리의 인생은 소수점 1~2점으로 갈리는데 교수님은 현실도 모르고 공생을 말하니 참 순진하다”는 평가를 남겼다. 학생들이 배를 곯는 사람들에 대해 애통함을 느끼고 지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영혼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꿈꾸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을까. 최근 가장 섬뜩했던 것은 연구결과에 따라 판단하고, 믿는 바를 발언하고, 주장을 펼칠 때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나의 ‘조교수’ 직위가 유독 불안정하게 느껴지고 정체 모를 누군가로부터 ‘찍힐 수 있다’는 의구심을 언제부터 가지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사상, 그리고 이념과 관련된 자유로운 지식활동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갈수록 실감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존재 이유, 그리고 지식인, 지성인, 교육, 연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민 없이 우리 모두 어디론가 끊임없이 마냥 질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원하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대학의 모습이 세계 대학 랭킹에 하나라도 더 진입시키고, 연구실적을 높여서 연구비·사업비 수주를 늘리고, 학생들의 ‘스펙쌓기’에 기여해 어디든 취업시키는 것이라면 그 다음 장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사회적 불의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이웃들에 대해 양심을 느낄 수 있는 지성인이 더 이상 길러지지 않고, 창의적인 연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죽어간다면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져도 행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다행히도, 모든 것이 멈추어 있을 때야 들리는 저음의 파동처럼, 나는 사회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연구자들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시민사회 운동가,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그리고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하지만 강인한 물줄기들을 만나게 됐다. 고요하고 따뜻하게 흐르는 물줄기들을 느끼며, 나 그리고 새로운 ‘우리’는 어떻게 또 다른 물줄기를 만들어 더욱 큰 흐름으로 키워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자기완성의 달성은 동시대 사람들의 행복을 함께 추구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영혼의 가장 맑은 부분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빛과 같은 속성이라면 함께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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