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을 하다가 손님의 차를 긁었다. 폭이 그다지 넓지 않은 기계식 주차장에서 차를 빼다가 그렇게 됐다. 아무래도 조수석의 사이드미러가 긁힌 것 같았다. 손님, 그러니까 차의 주인은 이거 어쩌지, 하는 한숨을 쉬면서 창문을 열어 긁힌 데를 살폈다. 사실은 그가 “여기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그래서 엑셀을 밟은 것이었다. 무언가 억울하기도 했으나 나는 죄인이 되어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손님은 나에게 어두운 표정으로 “조금 긁힌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목적지로 가는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불편한 타인의 운전석이었다. 여러 감정들이 복잡하게 교차했다. 우선은 나의 미숙함으로 소중한 차에 흠집을 냈으니 미안했고, 그러면서도 외제차가 아니라는 데 안도했다. 나는 왜 고작 1만2000원을 벌자고 이 밤에 나와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손해를 보고 있나 싶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손님의 그 ‘조금’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저 사람의 조금은 과연 어느 정도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뭐 괜찮네요, 하고 웃고 지나갈 수 있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도색비를 어느 정도 받겠다는 것인지, 아예 보험처리 절차를 제대로 밟겠다는 것인지 답답했다. 그렇다고 대놓고 “당신의 조금은 얼마입니까?”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괜히 그의 심기를 건드릴 것 같아서 묵묵히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운전만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서는 손님과 함께 사이드미러를 살펴보았다. 거뭇한 자국이 손톱 크기만큼 묻어 있었다. 과연, 조금이라면 조금이라고 할 수 있는 정도였다. 손님은 손가락으로 흠집을 몇 번 문질러 보았고 그에 따라 자국이 조금씩 지워졌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나에게 “그냥 가세요…”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고는 빠르게 거기에서 나왔다. 보험처리를 원하면 연락을 달라고 하거나 하다못해 감사의 인사라도 정중하게 했어야 하지만, 그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웠다. 나약한 한 인간은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심호흡을 하며 걷는 동안 처음으로 ‘조금’이라는 적당한 말이 주는 폭력에 대해 상상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 모호한 부사를 습관처럼 자주 써 왔다.

“설탕은 조금만 넣어주세요”, “조금 후에 갈게요”하는 일상의 언어. 그러나 그것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유통될 때는 을의 자리에 있는 이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갑이 을에게 “조금 생각해 보자”, “이건 조금 마음에 안 드는데”라고 할 때의 ‘조금’은 우리가 아는 조금이 아니다. ‘적당히’, ‘많이’, ‘잘’과 같은 언어들이 모두 그렇다. 갑의 자리에서 하고 을의 자리에서 듣는 모호한 언어는 폭력이 된다.

그날 이후, 나와 타인을 위해 ‘조금’은 더 조심히 운전하고 있다. 그에 더해 말조심은 갑의 자리에 있을 때 오히려 더욱 해야 하는 것임을 알았다.

모호한 언어뿐 아니라 헛기침이나 하품과 같은 몸짓에도 누군가는 상처받는다.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고 해도 거기에서 감정을 읽어내고 아파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언어를 가지고 발화할 수 있는 편안한 자리에서 우리는 가장 불편하게 존재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단어가, 몸짓이, 아니면 그 무엇이 타인에게 불필요한 두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규정하자면, 그것은 일상화된 ‘갑질’이다. 내가 편안하다면 누군가는 불편하다.

오늘도 어느 사장님이, 연예인이, 재벌 3세가 ‘갑질’을 했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우리는 거기에 분노한다. 그러나 나도 그렇듯 정작 스스로 행하는 일상의 갑질에는 관대하다.

그것이 훨씬 우리의 삶을 위험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나는 이제야, 타인을 향한 나의 언어와 몸짓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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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 있으면 해봐.” 길에서 누군가가 훈계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이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은 잔뜩 풀 죽은 채 함구하고 있었다. 모종의 권력이나 권위가 작용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누군가 힘을 내 입을 열었다. “아시다시피 그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어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어르신의 입에서 날카로운 말이 튀어나왔다. “아시다시피? 그게 할 말이야? 너희가 아직 어려서 그래.” 젊은이들의 입이 더욱 굳게 닫혔다.

다시 가던 길을 재촉하는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할 말만 하라는 것도 우습지만, 할 말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주체가 발화자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기가 막혔다. 젊은이들의 생각은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여지가 아예 없었던 것이다. 권위주의적 발언에 선뜻 입을 열어 또박또박 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 발언을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할 말 있으면 해봐”라는 말은 어쩌면 ‘해서는 안될 말’이었을 것이다.

지난 11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인용 등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지난주 촛불집회 현장에서 저 말을 다시 들었다. 손에 태극기를 든 어른들이 손에 촛불을 든 젊은이들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 사는 게 다 누구 덕분인데. 뭘 몰라도 한참 몰라서 그래. 어릴 땐 학교 가서 공부를 해야지. 이래서 이 나라에 내일이 있겠어? 어디 할 말 있으면 해봐.” 촛불은 이미 꺼졌다며 더 이상 국론을 분열시키지 말라는 외침도 들려왔다.

젊은이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입을 모아 외쳤다. “촛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광장은 시민의 것입니다.” 매운바람이 온몸을 휘감았지만, 촛불은 활활 타올랐다. 단 한순간도 꺼지지 않았다. 말들이 뒤섞여 현장은 내내 뜨거웠다.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이 있었다.

할 말을 제때 한 사람은 속 시원하게 ‘사이다 발언’을 한 사람으로 추앙받지만, 해서는 안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저 가만히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할 말을 제때 잘하는 것만큼이나 해서는 안될 말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해서는 안될 말을 들은 사람은 상처를 받고 의지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일할 의지, 공부할 의지, 무엇보다 내일을 향할 의지. 김빠진 사이다처럼 삶의 동력을 상실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할 말은 하는 신문’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신문이 있었다. 그 신문에서 했던 말들이 과연 할 말이었는가? 오히려 해서는 안될 말에 가깝지 않았는가?

소셜미디어에 ‘아무 말 대잔치’라는 이름으로 올라오는 글들은 그저 아무 말에 불과한가? 정말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었던 말의 다른 표정이 아니었을까? 이처럼 해서는 안될 말이 권위를 등에 업고 응당 해야 할 말처럼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반대로 할 말을 하지 못하게 막는 분위기는 아무 말이라도 발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낳기도 한다.

다큐 PD 김현우가 쓴 <건너오다>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어떤 이에겐 너무나 일상적이고 평범한 단어가 다른 이에겐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로 아픈 단어일 수도 있다. ‘바늘’ ‘손가락’ ‘불’ ‘바람’, 이런 평범한 단어들에 세상의 사람 수만큼 많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에게 바늘은 칼날처럼 치명적일 수 있고 또 다른 어떤 이에게 바람은 인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무시무시한 단어일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 ‘축하’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도, 중요한 시험을 앞둔 이에게 잘해야 한다고 압박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잘 모른다는 단정적인 말에 젊은이들의 입은 닫힐 수밖에 없다. 내일을 이야기하며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앞세울 때, 그 말 안에 젊은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은 없다. 어떤 ‘할 말’은 남에게 결코 해서는 안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때의 할 말은 고작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한 공허한 말일 뿐이다.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 사이에 말을 하는 자와 그 말을 듣는 자가 둘 다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해서는 안될 말은 삼키고 할 말을 입 밖으로 꺼낼 때, 비로소 말은 힘을 얻는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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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 장래희망은 ‘욕쟁이 할머니’였다. 대중매체로 접한 욕쟁이 할머니들은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지만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나는 그게 부러웠다. 소비자 갑질 사건이 빈번히 발생하는 대한민국에서, 식당 주인이 퉁명스럽게 면박 줘도 손님들이 얼굴 찌푸리지 않고 넉살 좋게 대응하다니!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이놈, 저놈 해도 관용의 대상이 됐다. 모든 권력관계로부터 해방된 존재로 보였다.

하지만 ‘어떤’ 욕쟁이 할머니는 불쾌감을 선사하는 존재였다. 얼마 전 허리 언저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의 남자 친구와 같이 동네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곳 주인 할머니가 식당에 있는 사람들 모두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남자야, 여자야?” “남자요.” “안 들려 크게 대답해, 이놈아.” “남자요!” “뭐? 남자라고? 못 믿겠는데? 벗겨봐야 알겠네.” 그러고는 혼자 낄낄대는 것이었다.

나는 정색했다. ‘혼자만 재밌으면 답니까? 저는 하나도 안 웃긴데요? 남자는 머리가 길면 안 됩니까? 도대체 그게 왜 놀림거리인지 모르겠네요. 게다가 그거, 성희롱입니다’와 같은 말들을 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친구에게 더 불편한 상황을 초래할까봐 참았다. 자리를 박차고 다른 식당을 찾아가야 하나, 굳은 얼굴로 5초 정도 고민했지만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길거리에서 헤매면 기분을 더 잡칠 것 같았다. 친구의 기분을 살피며 넌지시 물어봤더니 그 역시 그냥 빨리 먹고 자리를 뜨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곧 먹음직스러운 찬과 찌개가 나왔고 우리는 금세 헤헤 웃었다.

불편한 기분은 휘발됐지만 생각의 잔상은 남았다. 내가 ‘그냥’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나는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강자에게 꼿꼿이 맞서며 할 말 다 하지만 상대적 약자에게는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여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봐서 할 말을 삼키지는 않지만 무엇이 ‘해야 할 말’인지에 대해 스스로 성찰할 수 있는 지혜, 부당한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해학이라는 무기를 활용하여 기어코 균열을 만드는 능란함을 갖춘 존재.

이것은 근래에 등장한 ‘프로불편러(pro+불편+er)’라는 단어가 호명하는 존재와도 닮아 있다. 프로불편러는 “이거 나만 불편한가요?”라는 제목으로 관심을 끌고, 본문에 디테일한 사연을 풀어내며 다른 누리꾼의 공감을 기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다. 처음 언어가 만들어졌을 때는 분명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도 있었다(“별걸 다 불편해하네, 프로불편러세요?”). 그러나 불편의 경험이 공유되면 될수록 ‘나만 느낀 불편’이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받는 이들이 늘어났고, 기록되지 않았으면 ‘별것 아닌 일’로 치부됐을 사안들이 누적됐으며, 폭력과 억압의 구조를 탐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됐다. 더욱 ‘프로답게’ 불편을 말하는 법에 대한 전술도 공유됐다. 위로와 학습의 공동체가 형성됐다.

이런 뒷배를 생각하면, 지금 당장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의 자아로 사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느껴진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현실적인 제약을 떠올리며 어깨를 떨어뜨렸다. 젊은이로서 자신의 주장을 강경하게 밀고 나가면 “어린 년이 한 마디도 안 지려고 따박따박 대든다”고 노여워하는 연장자를 마주하기 쉽다. 어쩌면 한 대 얻어맞을 수도 있다. 또한 어린 ‘년’은 ‘현모’처럼 너그럽고 ‘양처’처럼 상냥한 태도까지 강요받고,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거세게 비난받는다. 얼굴을 드러내고 발화하면, 내용은 경청하지 않고 외모 평가 및 모욕을 하는 뜨내기와 맞닥뜨리게 된다. 이래저래 자기검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청년은 정녕 중장년층, 노년층과 상호 예의를 기반으로 해 토론할 수 없는 것인가? 왜 예의는 일방향이어야만 하나? 여자는 스스로의 감정과 사회적 요구와 문화의 개선에 대해 떠들면 안 되는 존재인가? 나는 할머니가 돼서야 이런 부당함으로부터, 사회적 억압과 강요로부터 벗어날 거라고 일찍이 짐작했던 것이다.

오늘도 장래희망은 정의로운 욕쟁이 할머니다. 그러나 그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지는 않겠다고 다짐한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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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의 작은 도시, 스플리트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른 아침, 텅 빈 거리를 걷다가 한글 간판을 발견했다. 딱 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가게 앞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가게를 열기까지의 고생담과 크로아티아 행정에 대한 성토가 쏟아졌고, 계산대에 서 있던 아내 분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부가 방금 전까지 심하게 다퉜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남편은 이 도시에 단 3명밖에 없는 한국인 중 2명이 바로 자신들이며, 나머지 한 명은 현지인과 결혼한 분이어서 자신들보다 낫다고 했다. 그래도 한국 사람이라고 10% 할인을 해주는 가게에서 몇 가지 물품을 사서 나왔지만, 무거워진 마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눈앞에서 외국 생활의 생생한 민낯을 목도한 후에도 ‘외국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능력만 된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기술과는 거리가 멀고, 현지 언어도 뛰어나지 않은 내게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새로운 나라에 가볼 때마다 ‘여기도 좋다’ 싶다가도 ‘결국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사는 건 마찬가지 아닐까’를 반복하는 패턴이니, 진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도피에 가깝다.

외국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자꾸 외국에서 사는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은 아직은 내가 낭만적이거나 철이 없기 때문일까? 요즘은 세계일주를 하면서 각 나라에 정착한 한국인 이민자들을 인터뷰하는 부부의 글을 자주 읽는다. 내 소셜미디어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해외 생활기가 자주 올라오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제주부터 말레이시아, 아프리카까지 여행 중이거나 생활 중인 사람들이 올린 소소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낯선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한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는 ‘다른 삶’ 연재기사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이다. 호주의 ‘워홀러’로 변신한 기자, 도쿄에서 바를 운영하며 4남매를 키우는 부부, 포틀랜드에 정착한 일러스트레이터와 작가 부부까지…. ‘떠남’을 감행한 그들의 용기와 선택이 부럽다가도 ‘흥칫뿡!’ 유치한 질투가 생기기도 하고, ‘나도 갈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갈팡질팡할 때마다 생각나는 작가가 있다. ‘눈물’로 총알을 만드는 작가, 네덜란드의 첸 위 페이다. 첸은 이방인으로 살았던 유학 생활 동안 힘들어하며 흘린 눈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눈물 총’을 통해 시각화했다. 그녀의 졸업작품이기도 한 ‘눈물 총’은 실리콘 깔때기를 얼굴에 착용해 눈물을 모으고, 극저온 액체로 이뤄진 통 안에서 눈물을 냉각시켜 총알로 발사한다. 자신의 고통을 작품으로 시각화한 첸의 도전은 화제가 됐고, 나는 그 강렬한 이미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물 총을 얼굴에 부착한 첸이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됐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어차피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에 살아도 이방인인 건 똑같지 않으냐고. 이번에는 그녀가 아니라 마음속의 목소리가 묻는다. ‘그럼 어떻게 다르게 살 건데?’ 나는 망설인다.

사실 나는 누구보다도 사회의 기준이나 통념을 잘 따르며 살아온 사람이고, 그렇다 보니 그 선을 넘는 것이 어렵고 무서운 사람이다.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것조차 한국에서는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평균’이나 ‘정상’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삶을 존중할뿐더러 대단할 정도로 다르게 살 자신도 없다. 다만 그 기준에서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나가는 순간 끊임없이 시달려야 하는 ‘한국식 오지랖’이 피곤할 뿐이다. 끝내 나는 마음속 목소리의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살아가면서 답을 찾게 되겠지만, 일상에 익숙해지는 대신 지금처럼 머릿속으로나마 세상의 다른 곳을 끊임없이 주유하면서 살고 싶다. 누군가의 삶도 공식처럼 딱 떨어지게 명쾌하지는 않고, 선택의 연속인 삶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으니. 떠날 수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론을 빨리 내기 위해 조급해하지는 않으려 한다. “한국에서 내가 가장 잘했던 일은 ‘사람 사는 데 다 똑같지’라는 말들을 믿지 않았던 것이었다”는 전직 기자이자 현직 워홀러인 김여란씨의 말을 되새기면서.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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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설날이 지나갔다. 입춘이 코앞이고 대보름이 바라보인다. 대보름도 지나면 2월14일, 한순간에 대중의 일상에 파고든 밸런타인데이가 온다. 이날을 유래불명, 국적불명, 정체불명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중은 어느새 이날을 명절로, 기념일로 만들어버렸다. 비판에도 일리가 있다. 유래. 불분명하다. 황제가 군인의 혼인을 금지했다고? 이치에 닿지 않는 소리다. 이날의 아버지라는 발렌티노가 여러 발렌티노 가운데 과연 누구인지도 분명치 않다. 국적. 불분명하다. 최근 100년 유럽 여기저기에서 이날은 연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지를 위한 기념일이었다. 이날이 연인을 위해 돈 쓰는 날로 변한 곳은 미국이다. 여기에 일본이 초콜릿을 더했고, 대만과 한국이 일본의 뒤를 따랐다. 이제는 대륙 중국에서도 전통적인 대보름과 칠석을 따돌리고 연인의 기념일로 자리를 잡은 눈치다.

다만 정체를 따지기란 만만찮다. 한국인이 공동체가 부과한 의무와 부담에서 벗어난 명절을 누려본 적이 있었나. 사랑, 연애, 애틋한 마음, 수줍은 고백, 에로티시즘에 집중한 하루가 있었나. 화려한 과자라든지 꽃송이 같은 명시성 강한 물건을 손에 든 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거리를 활보할 기회는 있었나. 이날이 출처 불분명하고, 별안간 주어졌으며, 상품 판촉 활동에 잇닿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한국에서, 대중에게, 정체만큼은 분명하다. 이날은 갑오개혁을 지나서도, 해방을 지나서도 없었던 ‘연인의 날’이다. 너랑 나랑 둘이서 주인공이 되는 하루를 바란 대중의 마음이 만든 날이라는 속내가 있다. 해방 이후 특정 종교와 정부가 손잡고 일방적으로 선포한 몇몇 공휴일보다 그 속내가 훨씬 선명하기도 하다.

초콜릿도 읽어볼 만한 주제다. 과자는 인류 음식 문화사의 진화와 함께 꽃핀 문명의 꽃이다. 과자를 못 먹는다고, 안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기어코 과자를 만들고, 과자를 먹는다. 밥, 빵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노동을 들여 굳이 만들어냈고 먹었다. 과자는 택할 수 있는 한 그 풍미, 질감, 형태 모든 면에서 화려한 쪽을 택하는 음식이다. 생존과 상관없는 명시적인 색상, 밑도 끝도 없이 품을 들여 이룩하는 조형미, 오로지 쾌락으로 수렴하는 단맛 중심의 풍미가 과자의 삼박자다. 생존만을 위해 이루고 먹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노는 인간, ‘호모루덴스’를 단박에 드러내는 음식이기도 하다. 과자 가운데서도 초콜릿은 과자 세계의 정점에 선 과자이다. 판촉을 처음 기획한 사람이 처음부터 이를 염두에 두고 초콜릿을 가져다 댔는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사이를 위해 이만한 정표도 다시 없을 것 같다. 아무려나, 이제 반전이 필요하다. 이왕 벌어진 판에서 보다 지혜롭게 나와 너의 하루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서, 초콜릿의 녹는점은 체온과 같다. 입속에 넣었을 때 이물감 없이 사르르 녹아 풀리고 특유의 단맛과 향이 올라오는 과자, 그게 초콜릿의 조건이고 정체다. 식물성유지, 레시틴, 합성착향료는 유사초콜릿 또는 준초콜릿에 들어가는 첨가물일 뿐이다. 초콜릿은 카카오버터, 카카오매스, 설탕 이 세 가지 원료로 충분하다. 밀크초콜릿은 분유만 더한다. 오늘날 상품의 가격대란 넓게 벌어지게 마련이고, 소비자도 저마다 형편에 맞는 소비를 해야 할 테지만, 그래서 유사초콜릿 또는 준초콜릿도 필요하지만, 한 번쯤 나와 너를 위한 사치를 하겠다면 원재료만큼은 한 번 유심히 살펴보기 바란다. 딱 두 가지다. 초콜릿의 녹는점이 사람 체온과 같다는 점, 초콜릿에는 원래 카카오빈에서 나온 카카오버터 이외에 어떤 다른 유지도 쓰지 않는다는 점. 이를 기억하면 ‘예뻐서’ 샀는데 어이없이 ‘비싼 거’를 사는 어리석음은 조금 줄일 수 있다. 굳이 초콜릿의 원료인 ‘커버처’를 구해, 내 손으로 초콜릿을 만들 분들은 제과가 어마어마한 기술 숙련의 세계임을 실감하는 보람까지 거두길 바란다. 전문 초콜릿 제과사는 대리석에 섭씨 40도에서 50도로 녹인 액상의 초콜릿을 부어놓고, 다시 27도쯤에서 굳기를 기다려 순간적으로 작업을 해낸다. 초콜릿은 워낙 사람 손을 잘 타야 잘 나오는 과자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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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사연을 품고 있다고 했던 톨스토이의 글을 흉내 내자면, 명절 한국 가정의 모습 또한 불행의 디테일은 다르지만 행복의 표정은 대체로 비슷하다. 과일 박스와 선물 꾸러미를 들뜨고 그리운 마음과 함께 실은 출발은 산뜻하다. 극심한 정체가 계속되고 ‘가다 서다’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시간이 오면 그것은 그것대로 왠지 우리가 헤쳐가야 할 숭고한 고난의 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중간중간 부모님께 보란 듯 정체 상황을 보고할 때는 ‘이렇게까지 하면서 우리가 갑니다’라는 생각도 들고, 1년간 다하지 못했던 효도를 속죄하고 빚을 탕감받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 닿은 고향집의 문턱에서 반가움을 짐과 함께 부리고 나면, 이제 목표는 그 집을 탈출하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미션을 완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두 100개 빚기, 모둠전 200장 부치기, 나물 다섯 가지 무치기, 산더미 같은 설거지 하기 등등. 미션은 과도한 육체적 노동에 그치지 않는다. 화장실 못 가기, 미소 짓기, 언제나 순종적일 것, 때로는 보고 듣고 때로는 못 보고 못 듣는 신공 발휘하기. 이 놀라운 감정 센서는 명절 내내 작동하지만 대체로 음식을 놓고 둘러앉은 저녁시간 이후 그 기능을 최대한 발휘한다. ‘사촌이 땅을 샀다더라’ 유(類)의 시샘과 걱정, 잔소리 등이 오가고 가끔 언성이 높아질 때 특히 그러하다. 그렇게 이틀을 보내고 나면 지친 몸과 마음은 탈출을 명령한다. 그것은 며느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아들, 딸,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다. 불편함의 끝에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설 아침 차례와 세배가 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안녕’ 하고 돌아 나오는 정체길에서는 효도빚을 탕감받고 출옥한 죄인의 푸념이 있게 마련이다. 과도한 육체적, 감정적 노동에 시달렸던 아내의 논평이 정체길만큼이나 무한정 이어지게 마련인데, 대개는 남편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그 분노가 정체길의 짜증과 버무려져 ‘명절망국론’과 같은 말도 안 되는 논쟁에 이어 냉전에 이르렀을 즈음, 차가 여자의 집에 당도한다. 시댁에서 주눅 들고 남편에게 화가 나있던 여자는 친정집에 들어서자마자 소리가 커지는데, 짐들을 던져놓고 널브러지면서 게으르고 말 많은 여자로 변신한다. 그리고 딸은 엄마에게 이것저것 명령하기 시작한다. ‘느끼해 죽겠어, 커피 좀 끓여줘’로 시작해 이틀 내내 묵언수행하던 여자의 말문이 터진다. 시댁에서 무뚝뚝하고 철부지 아들 같았던 남자는 처가식구들 앞에서 붙임성 있고 믿음직하며 배려심 많은 썩 괜찮은 사위로 변신한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있다. 한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한국 사회에서 ‘여자’, ‘며느리’, ‘엄마’로 길들여지고 결국 ‘맘충’이 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사회학적 보고서 같은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를 상징하는 ‘김지영’은 그 무한한 존재의 가능성을 상실하고 ‘맘충’으로 전락해 우울증을 앓는데 결국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자들의 말을 복화술처럼 대신 말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가령 명절에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라고 하는 시어머니에게 그녀는 친정엄마로 빙의되어 이렇게 대답한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명절은 가족이라는 사적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축제이자 의례이다. 그러나 명절은 가족의 구성원을 규율하고 훈육하는 살벌한 현장이기도 하다. 날것의 욕망을 드러내고 결핍과 충족을 재단하는 심판대. ‘누구는 어떻다더라’로 상징되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가족은 지극히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며 속물적인 세계관 위에 세워진다. 좋은 직장, 좋은 학교, 좋은 집 등 구성원들을 자극하고 다음 1년을 다짐하게 만드는 ‘좋은 것’의 목록이란 ‘자본주의’의 규율과 다를 바가 없고, ‘나, 우리’의 배타성으로 연결된다. 명절에 흔히 도마에 오르는 취준생과 미혼의 문제는, 다시금 가족 구성원들을 납작하고 보수적이며 방어적인 세계관 위에 세운다.

속죄, 속물, 쇼윈도, 비교와 경쟁, 배타, 이기심, 보수, 자본, 교묘한 폭력으로 이루어진 한바탕의 신파가 또 한 차례 지나갔다. ‘이것이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하나의 교본에 또 어떻게 저항하고 쳐내야 하는지의 미션은 남아있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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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봄부터 재작년 겨울까지, 나는 대학(원)에 있었다. 연구실과 강의실에서 청춘의 날을 거의 보냈다. 그러는 동안 나를 대학의 구성원으로 굳게 믿었다. 논문을 쓰는 일도 강단에 서는 일도 즐거웠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나는 여기에서 무엇인가, 노동자이자 사회인으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고 물었던 어느 날, 나는 답을 하지 못하고 연구실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강의실에서 나의 호칭은 ‘교수님’이나 ‘선생님’이었다. 건강보험도 보장되지 않는, 재직증명서 발급이 되지 않아 제대로 대출심사를 받을 수도 없는 나를 학생들은 그렇게 불렀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건강보험을 보장받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에서 새벽부터 물류하차 일을 했다. 오후 수업에 들어가면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나는 교수님이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쓰고는 연구실을 정리했다. 대학에서 보낸 청춘의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하면서, 대학에서 나왔다. 어느 동료 연구자는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왜 그런 글을 썼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마음으로만 “우리 삶이 오히려 연구 대상인데 뭘 연구한다고 연구실에 있기도, 강의실에서 학생들 앞에 서기도, 저는 민망하네요” 하고 답했다.

얼마 후, 나는 대리운전을 시작했다. 우선은 생계를 위해서였다.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아이의 기저귀와 분유를 살 수 없었다. 하지만 왜 굳이 대리운전이었느냐고 하면 ‘대리’라는 단어가 갑자기 나의 지난 시간을 규정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제대로 된 노동자로, 주체로서 존재하지 못했다. 내가 아닌 어느 괴물의 욕망을 ‘대리’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대리운전, 내가 주체가 될 수 없음을 선언한 그 노골적인 대리노동을 통해 새롭게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작년 5월31일 밤 11시에, 첫 콜을 받았다. 손님은 1.5㎞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고 나는 출발지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그런데 3분 만에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나에게 두 마디를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아저씨, 왜 아직도 안 와요?”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라는 호칭은 아직 대학에 한 발 걸치고 있는 나의 몸을 거리로 패대기쳤다. 교수님, 선생님, 아니면 이름이 유일한 호칭이었던 한 인간은 초면의 누군가에게 아저씨가 되었다. 호칭을 결정할 권리가 이미 그에게 귀속된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나는 신호를 무시하고 뛰었다.

손님의 차에 도착해서도 나는 여전히 ‘아저씨’였다. 모든 관계는 호칭에서부터 그 범위가 상상되고 확장 또는 축소된다.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그러한 호칭에는 한 대상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대학에 있는 동안 나를 은밀하게 주체로서 고양시켜 왔음을 알았다. 그것이 허상임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환각에 빠진다. 반복되다 보면 위화감이나 그 어떤 서글픔도 점차 옅어진다.

호칭은 한 인간의 주체성을 대리하는 수단이 된다. 자신을 그 공간의 주체라고 믿게 만드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여러 구조적 문제들을 덮어 버린다. 나 역시 내가 속한 공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나는 그 구성원이라는 환상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근사한 호칭들은 그렇게 한 개인을 쉽게도 잡아먹곤 한다.

권력의 위계를 구분하기 위해 스스로를 호칭하는 일도 흔하다. “오빠가 생각하기에는” “형은 말이야” 하고 굳이 ‘나’를 은폐한다. 군복무 중에는 “연대장은 너희에게 아주 실망했다”거나 “소대장은” “포반장은” 하는 자기 호칭의 서사를 참 많이도 들었다. 그러다 보면 조직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게 되기 쉽다. 개인은 사라지고 호칭으로서 상상된 대리인간이 남는다.

타인의 운전석에서 내리면서, 나는 얼마나 너의 이름을 불러 왔는가를 떠올린다. 호칭 너머의 한 개인을, 인간을 상상하기로 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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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청년 루카치가 말했던, 우리의 영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이 하늘에 빛나는 별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속성이라서 창공의 별들을 보고 우리가 어디쯤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았던 그런 시대가 정말로 우리에게 있었을까. 영혼, 빛나는 별, 그리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는 아름다운 말들이 너무나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여러 번 좌표를 잃었던 것 같다. 한국 사회와 대학은 내가 어떤 연구를 하길 원하는 것인지, 나에게 과연 ‘스승’이 되길 기대는 하는지, 나는 여러 번 고민하고 좌절하기도 했다. 숨 막힐 듯한 위계질서는 교수 간, 교수와 학생 간의 자유로운 토론을 상상하기 어렵게 했다. 연구 활동에 ‘실적’이라는 단어가 적용돼 여러 달 여러 해를 고민해 완성한 논문들이 단순한 숫자로 표기되고 이 숫자들이 곧 대학 서열매기기에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낯섦은 지금 돌아보면 시작에 불과했다. 학생들은 까다로운 ‘고객’이라고 숙지되고, 전국의 대학들이 이러한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들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대학은 그리고 사회는 애초부터 내가 ‘스승’으로 성장해나가길 바라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대학에 막 임용돼 시작한 교양수업에서 한 학생은 나에게 ‘순진하다’는 강의평가를 했다. 이 수업은 학생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조사하고 서로 토론하며 해결방안을 함께 고안하는 것이 과제였는데 경쟁체제에 익숙한 학생들은 이러한 팀 활동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1~2점의 성적보다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그 학생은 “우리의 인생은 소수점 1~2점으로 갈리는데 교수님은 현실도 모르고 공생을 말하니 참 순진하다”는 평가를 남겼다. 학생들이 배를 곯는 사람들에 대해 애통함을 느끼고 지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영혼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꿈꾸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을까. 최근 가장 섬뜩했던 것은 연구결과에 따라 판단하고, 믿는 바를 발언하고, 주장을 펼칠 때 나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였다. 나의 ‘조교수’ 직위가 유독 불안정하게 느껴지고 정체 모를 누군가로부터 ‘찍힐 수 있다’는 의구심을 언제부터 가지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사상, 그리고 이념과 관련된 자유로운 지식활동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갈수록 실감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의 존재 이유, 그리고 지식인, 지성인, 교육, 연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민 없이 우리 모두 어디론가 끊임없이 마냥 질주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가 원하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대학의 모습이 세계 대학 랭킹에 하나라도 더 진입시키고, 연구실적을 높여서 연구비·사업비 수주를 늘리고, 학생들의 ‘스펙쌓기’에 기여해 어디든 취업시키는 것이라면 그 다음 장의 이야기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사회적 불의를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이웃들에 대해 양심을 느낄 수 있는 지성인이 더 이상 길러지지 않고, 창의적인 연구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고 적극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죽어간다면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져도 행복하지는 못할 것 같다.

다행히도, 모든 것이 멈추어 있을 때야 들리는 저음의 파동처럼, 나는 사회의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연구자들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시민사회 운동가,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그리고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미세하지만 강인한 물줄기들을 만나게 됐다. 고요하고 따뜻하게 흐르는 물줄기들을 느끼며, 나 그리고 새로운 ‘우리’는 어떻게 또 다른 물줄기를 만들어 더욱 큰 흐름으로 키워갈 수 있을지 고민한다. 자기완성의 달성은 동시대 사람들의 행복을 함께 추구할 때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 영혼의 가장 맑은 부분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빛과 같은 속성이라면 함께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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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묵은 것들이 많아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흔히 새해와 함께 언급되곤 하는 희망이라는 단어는 요원한 것처럼 보인다. 호기롭게 새 출발을 하기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너무나 많다. 앞날을 향한 기대보다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크고,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보다는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앞선다. 새해 인사말을 뭐라고 건네야 할지 고심하다가 나는 겨우 “평안하다”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새해 복을 받는 것보다 탈이 없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무사히 잘 있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았다.

청문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문제는 청문회에 소환된 주요 증인들은 불출석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리 코치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연출을 잘해서인지 몰라도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과히 평안해 보였다. 중요한 질문에는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 소관이 아니다같이 준비된 답변을 했다. 청문회는 말 그대로 문제의 내용을 ‘듣는’ 자리인데 물어보는 사람만 있었다. 침묵 혹은 침묵을 가장한 회피가 청문회 내내 이어졌다. 계속해서 청문회를 시청하다가는 화병이 날 것 같았다.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특위가 9일 개최한 7차 청문회에 안봉근·이재만 전 청와대 비서관 등 핵심 증인들이 대거 불참해 텅 빈 증인석에 명패만 놓여 있다. 김창길 기자

입에 자물쇠를 걸고 침묵하는 자는 도리어 화를 내고, 진실을 말한 자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잠적을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침묵은 하나의 표현 방식이고, 그것이 믿음이나 기대감을 가져다줄 때도 있다.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상대방의 침묵은 더없이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큰일이 닥치면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함구하게 된다. 이때의 침묵은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반면 청문회에서의 침묵은 신중함이 아닌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었다. 침묵이 대책 없이 길어지면 얼마나 답답한지를 절절히 깨닫는 현장이었다.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침묵의 소중함에 대해 역설하는 말이지만, 그들은 침묵을 통해 자신들의 이권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 금을 그었다. 이때의 침묵은 금(金)이 아니라 너와 나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고 긋는 금이었다. 그들의 침묵은 정치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대화에서 소통이 될 리가 없다. 우리가 박근혜 정부에 가장 크게 실망한 것도 다름 아닌 ‘불통 정치’, 그야말로 막무가내식 정치가 아니었던가.

영국의 역사가이자 비평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침묵은 말보다 웅변적이다”라고 했다. 원래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청문회를 지켜보며 확실히 침묵이 웅변적이라고 느끼는 때가 많았다. 침묵이 긍정임을, 국정농단이 분명히 이루어졌음을, 우리가 피땀 흘려 낸 세금이 사익을 위해 사용되었다는 게 사실임을 다시금 깨닫게 만들었다. “말할 수 없다”거나 “모른다”는 말이 아무런 숙고 없이 기계적으로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너무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침묵을 깨뜨린 것은 다름 아닌 시민들이었다. 광장에 모여 촛불을 높이 들었다. 해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토요일마다 광장에 모이는 시민들을 보면 경이롭다. 새 마음을 가지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시민들은 광장에 모였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랐으면 하는 바람이, 무너져버린 희망을 어떻게든 재건하기 위한 의지가 맹추위에도 시민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집회 도중에 소등 행사를 하기도 했다. 기나긴 웅변 속에서 잠시 침묵이 있을 때 침묵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시민들은 알고 있었다. 역사는 이렇게 계속된다. 묵묵하게, 그러나 또박또박.

촛불은 침묵이되 침묵이 아니다. 하나의 촛불은 한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기에는 작고 힘없는 존재일지 모른다. 꺼질 듯 말 듯 하늘거리기 때문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하나둘 모여 한 공간에서 타오르기 시작하면 간절한 ‘말’이 된다. 우리의 ‘대화’가 된다. 정부를 향한 힘찬 ‘웅변’이 된다. 여기서 타오르고 저기서 흔들리며 촛불은 더 생생하게 말하고 있다.

에밀 졸라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쓴 글 <나는 고발한다>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진실이 땅속에 묻히면 그것은 조금씩 자라나 엄청난 폭발력을 획득하며, 마침내 그것이 터지는 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것입니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땅속에서는 무서운 속도로 진실이 자라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땅 위에 있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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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제가 있다고 합니다.” 페이스북 친구가 ‘새해부터 오피니언면이 새로워집니다’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알림글을 타임라인에 링크하며 남긴 말이다. ‘오호! 나도 여기 2017년부터 고정 기고하기로 했는데, 이분도!’라고 생각하며 해당 링크를 클릭했다. 그러나 그곳에 내 사진은 없었다.

‘뭐지? 분명 오피니언팀으로부터 2017년 고정필자임을 암시하는 e메일이 왔었는데, 마감일에 대한 알림도 받았는데 왜 나는 없지? 사진으로 10장씩 5열, 미적으로 깔끔한 직사각형을 만들고 싶어서 신규 필진 중 50명을 부득이 선별해야만 했을까? 소개된 인물들은 교수, 평론가, 변호사 등 뭔가 전문가답고 지식인 같은 직함을 가진 분이거나 이름을 들으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직관적으로 알 만한 단체의 소속으로 보이던데 나는 잉여라고 무시했나?’ 이에 대해 문의를 했다면 이런저런 추측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혼자 찌질대며 추측과 고민을 거듭했다. 그래도 덕분에 자아에 대한 탐구와 사회·문화에 대한 고찰까지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매체에 글을 쓰거나 인터뷰이가 될 때, 나는 주로 ‘월간잉여’ 편집장으로 소개되곤 했다. 거기에는 어떤 기대가 존재한다고 느꼈다. ‘잉여’가 범람하는 시대, 실업자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한 넘쳐나는 사회, 지금 이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청년들을 ‘대표’해서 사회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존재일 것이라는 기대. 조금 부담스럽고 갑갑했다. ‘월간잉여’는 스스로 잉여라고 느끼는 모든 연령대의 글을 담는 것을 지향했으나 대다수가 청년의 글이었고, 나부터가 청년이므로 잡지의 월별 주제는 청년 당사자의 관심사가 반영된 것이었을 테다. 그러나 잡지에 담긴 글 전반을 읽고 청년 문제나 잉여 문화의 경향성을 느끼는 것과 한 개인의 사례를 청년이나 여성 같은 명사로 일반화한 뒤 집단 전체를 안다고 확신하는 것은 다르다. 눈앞에 놓인 사람의 구체적인 말은 귀담아듣지 않고, 대표자(라고 믿고 싶은 귄위자)를 통해 얻은 ‘지식’만을 고수하는 태도는 불통을 초래한다.

매체의 이름이 나라는 개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언어가 되는 것에도 경계심을 가진다. 어떤 틀에 갇히는 느낌이다. 게다가 작년부터 ‘월간잉여’를 휴간 중이다. 복간이 언제일지 장담도 못하겠다. 다른 활동들에 더욱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정치의 중요성을 실감한 뒤로는 스스로의 필요를 말로 요구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 보드게임 ‘수저게임’을 만들었다. 자기 경험 바깥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의 계기를 제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껴 단편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보드게임 디자이너’나 ‘영화감독’이라는 직함을 쓰기는 적절치 않다고 느낀다. 전문성이나 권위를 획득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그래서 ‘아마추어 창작자’나 ‘비인증 예술인’과 같은 언어를 고민하고 있다.

나는 또한 ‘헬조선’이 좀 더 살 만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프로불편러’이기도 하다. 성차별주의자들의 언행에 막막하고 속 터질 때가 많은 여성이며, 위로가 되는 관계를 맺으며 보람과 즐거움으로 일상을 채우고픈 시민이다. 그러므로 어떤 수식어도 단 한번에 내 존재를 일축하고 온전히 규정지을 수는 없다고 본다. 결국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텐데, 글의 맥락에 따라 그때그때 어울리는 수식어로 바꿀 수는 없을까? 이런저런 고민 끝에 담당자와 통화를 하게 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고정필진으로는 처음이지만 앞서 간헐적으로 기고를 한 적이 있어서 신년 ‘사고’를 통한 소개 대상에서는 빠졌다고 했다. 역시 직접 대화하는 게 빠르다. 불통을 기반에 둔 추측은 오해의 근원이다!

그래도 이번 ‘삽질’을 통해 가다듬은 관점은 여전하다. 일간지에서 실직자, 백수, ‘프로불편러’ 등 권위나 전문성을 담지 않은 수식어로 스스로를 설명하는 사람들의 글을 더 자주 보고 싶다는 것. 스스로 ‘보통’ 내지 ‘주류’의 범주에 속한다고 믿는 독자가, 자신이 타자로 규정한 이들 역시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 느끼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공동체라는 감각의 외연이 확장되길 바란다. 나 역시 거기에 일조하고 싶다.

최서윤 아마추어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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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망가진 회사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회사가 퇴행을 거듭하는 동안 친구의 일상은 확 달라졌다. 그림 그리기, 서예, 요리 등 각종 취미생활을 섭렵하고 있다고 했다. 이렇게라도 다른 짓을 하면서 버티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니기 힘들다며 웃는데, 그 덤덤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 열정 넘치던 신입은 사라지고, 못 볼 꼴을 많이 본 자의 씁쓸함이 가득했다. 회사에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바로 징계다. 저항하는 자는 제거되고, 따르는 자는 이익을 얻으며, 시스템이 그 지시를 충실히 이행할 때 개인이 버티기란 쉽지 않다. 말이 안되는 것을 알면서도 무력함에 순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핵심이니까.

‘블랙리스트’도 비슷하다. 다들 심증은 있되 물증이 없었을 뿐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짐작하고 있었다. 아예 명단을 만들어 배제할 사람과 지원할 사람을 지명해 하달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는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은 여전하다.

이혁진의 소설 <누운 배>에 나오는 구절을 떠올린다. “사실은 사실로 판가름나지 않았다. 사실을 판가름하는 것은 힘이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세상은 성기고 흐릿한 실체였다. 그것을 움켜쥔 힘만이 억세고 선명했다. 힘은 우스운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우스운 것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 힘이었다.” 소설의 구절을 빌린다면 ‘아무리 우스운 리스트여도 우습지 않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힘이고, 이 정부가 내세우던 ‘문화융성’이었을 것이다.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상을 탔어도 5·18을 다룬 소설을 쓴 이상 리스트에 포함될 사유가 충분해지는 식이다. 그 결과 조악하고 엉성한 수준의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고, 일단 한 번 만들어지자 리스트가 사실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결정할 수 있는’ 윗분의 뜻에 따라, 일은 착착 처리되었다.

문화예술인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증거인멸 중단 및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검은 비닐봉지를 머리에 덮어쓴 후 벗어서 하늘로 날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정지윤 기자

차은택이 ‘문화계 황태자’로 수천억원의 문화예술 예산을 주무르며 ‘문화융성’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블랙리스트에 오른 현장 문화예술인들은 얼마 되지 않는 지원조차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받지 못했다. 문화예술지원사업의 대부분이 공적 기금, 그러니까 국고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외부 지원 자체가 끊겼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예술인들이 바로 오늘(10일),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문을 연다.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은 연극인들에게 무대를 빼앗고 관객들에게 공론장으로서 공공극장을 빼앗았지만, 동시대 고통받는 목소리들이 사라진 공공극장을 광장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 이 극장의 취지다.

오스카 와일드는 이기심을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더러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블랙리스트와 반대로 적극 지원하거나 추천하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까지 만들어 화끈하게 지원했다는 이 정권이야말로 이기심의 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블랙리스트를 만들 필요도 없이 마음대로 검열하고 탄압할 수 있었던 지난 시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국가가 예술과 문화에 대해 어떠한 가치 판단도 해서는 안된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는 네덜란드의 문화정책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문화예술지원의 오랜 명제인 ‘팔길이 원칙’(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만 지켜져도 감사하겠다.

앞서 언급한 친구의 직장은 MBC다. 간판뉴스 시청률이 2%대로 추락하는 와중에도 ‘특검 블랙리스트 수사’에 딴지를 걸고 있는 ‘대단한’ 언론사다. “블랙리스트 운영을 언론, 사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 범죄로 보고 있다”는 특검의 수사에 희망을 걸다가도, 친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광화문광장의 블랙텐트가 사라지기 전에 이 친구는 극장을 취재하러 갈 수 있을까? 문화계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꼼꼼하게 뿌려져 작동 중인 블랙리스트들을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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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몇 오라기 수염은 더 돋았지만(忽然添得數莖鬚)/ 여섯 자 키는 도무지 더 자라지 않는군(全不加長六尺軀)/ 거울 속 얼굴은 해마다 달라져도(鏡裡容顔隨歲異)/ 철부지 같은 마음속은 지난해의 나 그대로(穉心猶自去年吾)”(박지원, ‘원조대경’(元朝對鏡·설날 아침에 거울을 보며))

아차 하는 사이에 새해 하고도 또 며칠이 지났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새해 첫날에 먹은 마음이 벌써 옅어지는가 싶어 부끄러움을 느끼며 떠올리느니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시다. 박지원은 스무 살을 맞은 설날 아침 거울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위의 시를 읊었다. 새해가 밝았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심만으로 새로워질 일상은 없다. 시간은 천체의 운행을 따라 흐를 뿐이다. 사람은 구체적인 일상을 살아가며 시간에다 저마다의 매듭을 짓는다. 이 매듭이 모여 역사가 된다. 막연한 작심은 사흘 못 가 풀어지게 마련이다. 하루아침에 나와 사회가 달라지고 새로워지길 바라는 막연한 마음이야말로 철모르는 마음일 테다.

3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주남저수지 일대에서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화생방지원대 소속 장병들이 K-10 제독차로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먹는 얘기를 하자고 해도 그렇다. 지난해 11월16일 전남 해남과 충북 음성에서 처음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는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졌고, 해 바뀐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1월3일까지 닭 2582만마리가 살처분·매몰되었다. 두 달이 못 되는 사이에 전국에서 사육되던 닭 가운데 16.6%를 사람 손으로 죽여 파묻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죽은 닭 가운데 산란계, 곧 달걀을 받자고 기르던 닭이 2245만마리나 된다. 그러더니 가정에서 그나마 마음 놓고 먹던 단백질원인 달걀을 아끼고, 백반집에서 거저 주던 달걀말이며 달걀부침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사정은 간단하지 않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는 2003년 이래 거의 매해 발생하고 있다. 거의 2년 주기로 몇천만마리의 닭, 오리, 메추리를 죽여 파묻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밀식사육, 곧 햇빛도 들지 않을 만큼 좁은 사육장에 빽빽하게 가금류를 가두어 키우는 방식에 있다는 분석은 진작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렇게 쉽게 말해버리는 것으로 분석을 마쳐도 될까. 달걀로 논의를 좁혀 보자. 정은정 사회학 연구자에 따르면, 오늘날 생산지 일선의 농민이 달걀 한 알을 생산하는 비용은 120원쯤이 된다. 그런데 중간 상인에게 달걀이 넘어갈 때에는 채 100원이 못되는 90원 선에 넘어간다고 한다. 그러고도 한참 더 복잡한 유통 단계를 거쳐 달걀은 우리 밥상에 오른다. 생산자는 가격에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가격 조정력은 유통 부문이 쥐고 있는 셈이니, 농민은 더 많은 닭을 쳐 더 많은 달걀을 받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복잡한 말을 통으로 외우거나, 몇 년 치 살처분 통계를 일일이 살필 수는 없다. 하지만 상황이 여기에 이르러서도 “그래서 달걀 한 판이 얼마예요?” 말고 다른 의문이 없다면 합리적인 소비를 할 준비도 안된 것이다.

오로지 “얼마예요?”에 갇혀서는 생산의 일선, 방역의 일선에서 지금 죽을 만큼 힘든 사람들이 매일 피땀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살필 수 없다. 그간 우리가 적정한 달걀 가격을, 정말 치러야 할 곳에 치러 왔는가 하는 반성을 할 기회를 잃는다. 그저 “그래서 얼마예요?”가 질문의 전부라면, 그 대답은 “그러면 수입합시다”가 전부가 된다. 이 간단한 대답 뒤에는 그 다음이 없다.

달걀은 그냥 단백질 공급원이 아니다. 거칠게 요약해, 달걀은 한국인이 100% 자급하는 몇 안되는 ‘식량’이기도 하다. 쉬운 결론은 진짜 공부해야 할 데를 아예 가리는 나쁜 결과를 불러온다. 우리는 “얼마예요?”를 벗어나 확인해야 한다. 농민은 그동안 현장에서 100원도 못 받고 달걀을 유통에 넘겼다. 이런 현실이 밀식사육 및 사육두수 조절 실패의 원인일 수 있다. 나아가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새해의 달걀 수입이 100% 자급하던 달걀의 생산 기반을 무너뜨릴 위험은 없는지. 몇 달 뒤 달걀값 폭락의 빌미가 되지 않을지. 이 물음 없이 오로지 10년 전과 다름없는 장바구니 달걀값을 바라는 것은 다만 철모르는 마음일 뿐이다. 철모르는 마음으로는 달걀 하나에서도 지난날과 정말로 다른 오늘과 내일을 기획할 수 없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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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은 망했어’라고 생각한 지 오래다. 십대 후반이었을까 아니면 이십대 초반이었을까. 아무튼 철들고 주위를 둘러보고 난 뒤, 긴 한숨 끝에 셈해본 내 미래는 그다지 가망이 없었고 지금 유행하는 ‘이생망’의 선언을 비수처럼 품고 주저앉았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건 아마도 딱히 부와 권력으로부터의 소외의식이라기보다는 ‘인생은 고해이다’라는 수준의 탈유년의 감각이었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이생망’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자각하고 받아들였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지는 게 없다는 것이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묘비명을 둘러쓰고 죽은 척해도 또 다른 태양은 뜨고 사람들은 분주하고 세상은 무표정하다. ‘너는 망해라’라고 비웃듯 세상은 더 윤기 나고 타인들은 더 분주히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 아닌가. 더 큰 절망과 심술이 미움을 만들고, 그 미움이 타인보다는 스스로를 향해 자멸과 자폭을 일삼던 시절이었다. 문제는 이 비장한 몰락의 순간에도 세상은 여전히 냉혹하다는 것이다. 나의 ‘정신승리법’(혹은 정신몰락법?)과 무관하게 다음 순간은 어김없이 닥쳐오고 공평무사하게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그 역행의 시절 어느 날 니체의 아모르 파티를 만났다. ‘운명애’라고 번역되는 이 구절에는 다음과 같은 무시무시한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즐거운 지식>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최대의 무게-어느 날 혹은 어느 밤, 한 악마가 가장 적적한 고독 속에 잠겨 있는 네 뒤로 살그머니 다가와 다음과 같이 네게 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온 생을 다시 한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되살아야만 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 크고 작은 일들이 다시금 되풀이되어야 한다.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로 되돌아 올 것이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아찔했다. ‘지금 생이 한순간도 달라지는 것 없이 모조리 그대로의 순서대로 되돌아올 뿐 아니라 수없이 되살아야 된다고?’ ‘죽음조차 허용되지 않고, 다음 생도 없다니?’ 맙소사, 그것은 지옥보다 더한 지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예!’라고 답해야 한단다. “생이여, 다시 한번”이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운명애이고, 허무를 넘는 진정 강인한 자라는 것.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생망’ 그대로의 생을 수용하고 받아들이라는 권고가 아니다.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기 위해, 즉 수백번, 수만번 다시 반복되어도 될 만큼 생을 긍정하기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최종적인 삶인 것처럼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는 이것이 다시 한번, 또는 수없이 계속 반복되기를 원하느냐?’라는 질문은 가장 무거운 무게로 너의 행위 위에 가로 놓일 것이다! 아니면 이 최종적이요 영원한 확인과 봉인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기 위해 너는 얼마만큼 너 자신과 인생을 사랑해야 할 것인가!”라는 니체의 말을 나는 그렇게 해석했다.

또다시 새해이다. 이번 정권이 망했어도, 이번 생이 망했어도 시간은 굳건하고 가차없다. 찬란한 몰락 따위는 없고, 그러니 기적 같은 새날도 없다. 지지부진한 하루와 또 다른 지리멸렬한 하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다.

아모르 파티의 철학은 종말론적 사고, 내세에 대한 기대는 물론 현생에서의 환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 환상을 말이다. 우리를 구원해 줄 백마 탄 왕자도, 영웅도, 메시아도, 도깨비도 없다. 둘러보면 모두 조금씩 찌그러져 있고 조금씩 부족한 이생망들이다. 그들만이 현실이고 희망이다. 그러니, 어디 멀리서 동아줄 타고 내려오는 글로벌 리더 따위에 다시 속지 말자, 권력자의 개과천선 따위, 율사의 정의 구현 따위 믿지 말자. 결국 언제나 그렇듯 우리들의 결기어린 목소리와 행동만이 정직하게 우리에게 응답했다.

지난해 마지막으로 읽은 <소태산 평전>은 ‘혁명도 아닌, 초월도 아닌 다른 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의 성자, 후천개벽의 길이고 그것은 이생망의 우리들에게 해당되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금 나와라 뚝딱!’이 아닌, 천지개벽이 아닌, 후천개벽의 길, 그것이 2017년에도 여전히 타오를 촛불의 길, 촛불에 담긴 영성의 빛이라고 나는 믿는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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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나도 자기계발서의 독자였다. 뭐라도 붙잡을 게 필요했던 시기였다. 형편이 좋지 않았고 미래에 내가 원하는 내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희망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자기계발서를 찾았다. 그 안에 어떤 해법이 있을 것만 같았다. 메시지는 단순했다. ‘성공은 습관이다’ ‘소원을 생생하게 그려라. 글로 써라’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읽을 때는 고통이 잠시 멈추고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흘러도 도로 힘이 쭉 빠졌다.

꿈을 꾸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성취를 이룰 수 있을까. 뉴욕대학교의 심리학자 가브리엘 외팅겐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무한긍정의 덫>에서 긍정적 공상의 문제점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긍정적 공상에는 몇 가지 유익이 있다. 현실의 고통을 완화하고 도피의 즐거움을 선사하며 새로운 영역을 탐색해볼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과거 체험과 동떨어진 긍정적 공상은 지속적 동기유발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운을 빼앗아간다. 왜 그럴까. 외팅겐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납득이 간다. 긍정적 공상은 행동의 대타로 기능한다. 소원을 생생하게 떠올리면 뇌는 잠시나마 그 일이 마치 성취된 것처럼 받아들인다. 행동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정보 왜곡이 일어난다. 긍정적 공상을 연장하는 데 도움 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회피하게 된다. 심리적 차원에서만 성취를 즐기는 사이 진짜 현실과 대면하는 힘은 약해진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외팅겐 교수 연구팀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대통령의 연설을 분석했다. 연설문 속의 긍정적 사고의 정도와 실제 경제지표 사이의 상관관계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대통령의 취임사가 긍정적일수록 임기 동안 국내총생산(GDP)은 더 낮아지고 실업률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이 긍정적 사고에 치우치는 것과 경제가 나빠지는 것 사이에 일정한 연관성이 있었다.

우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은 ‘7·4·7 구상’이었다. 그는 ‘연 7% 경제성장으로, 4만달러 소득을 달성해, 세계 7대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하지만 이 중 어느 하나도 임기 내에 달성되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12년에 경제성장률은 2.3%였고, 국민소득은 2만5000달러 선이었으며 경제 규모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표방한 ‘4·7·4 전망’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의 경제팀은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를 공언했다. 하지만 임기 막바지에 접어드는 지금, 국민소득은 3만달러 문턱을 못 넘고 있고 경제활동 참가율은 63%에 머물러 있으며 잠재성장률 역시 꾸준히 낮아지고 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일곱 차례나 ‘꿈’을 언급했다. ‘개개인의 꿈과 끼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며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새 시대를 열겠다고 큰소리쳤다. 취임 후에도 그의 꿈 이야기는 계속됐다. 작년 어린이날 청와대 행사에서는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준다. 그리고 꿈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올해 6월에 있었던 제20대 국회 개원연설에서도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렇게 긍정 전도사 역할을 자처하는 동안 물밑에서는 파국의 발자취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통령의 긍정주의는 역사교과서 논쟁에서도 반복됐다. 박 대통령은 자신과 자기 가족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왜곡하고자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자학사관을 긍정사관으로 바꿔 비정상적인 혼을 정상화한다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태생부터 꼬인 국정교과서는 숱한 오류를 낳고 논란만 불러일으켰다. 무한긍정의 역사를 만들면 긍정 일색의 나라가 될까. 부정적인 과거를 애써 외면한다고 대한민국의 장래가 밝아지는 게 아니다. 과오를 인정하고 현실을 직시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역사의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전망을 앞세우는 이가 있다면 그는 실제로 일을 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법을 무시하고 절차를 생략하며 현장과 소통하지 않는 게 그의 진면목이다. 어쩌면 드라마 속 판타지에 심취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 대선에서는 현실에 밀착하여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자면 언론이 제 역할을 하고 주권자인 국민이 올바르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를 바꾸는 건 지도자의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국민의 실천적 행동이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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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함이라곤 없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말이다. 특히 대기업 총수들을 불러 앉혔던 1차 청문회는 가관이었다. 신념이나 명예를 지키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자들. 증인으로 출석한 자들은 ‘불법’보다는 기꺼이 ‘무능’을 선택한 것처럼 보였다.

비록 사회적 선(善)이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이나 철학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는 고상함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의 ‘정기준(윤제문 분)’을 떠올려보라. 그에게는 ‘악당의 기품’이 있었다. 하지만 증인석에 앉은 자들 중에 그 정도의 품위를 지키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나는 모르오, 나는 무능하오, 나는 꼭두각시였소”를 읊조렸을 뿐이다.

나는 이 처절한 무능의 스펙터클 앞에서 기괴함을 느꼈다. 자유주의와 만난 자본주의의 최고 가치는 기회의 균등과 능력 본위를 기반으로 한 합리성이다. 이 시대에 무능은 도태의 원인으로 여겨졌고, 무엇보다도 수치스럽게 여겨야 할 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발버둥 친다. 그런데 저들은 자신의 무능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저 ‘그 큰 눈’을 껌뻑거릴 뿐이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1차 청문회에 출석한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사진 오른쪽부터)이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수치심은 사회적인 맥락과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성립하는 매우 문화적인 감정이다.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는 공동체가 지정해주며, 타인의 시선은 우리에게 그 기준을 내면화하게 한다.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재벌 총수들이 무능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우리와 사회적 약속의 장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 그들은 우리와는 다른 문법이 작동하는 장에서 살고 있으며, 그러므로 우리를 규율하고 있는 이 세계의 가치는 저들에게 아무런 행동의 지침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벌 총수들의 전시된 무능과 뻔뻔함은 상징적이다. 평등, 능력 본위, 합리성 등을 내세우며 세계에 등장한 자본주의가 처절하게 실패하여 완전한 판타지로 휘발되었다는 것을 ‘한국 자본주의의 리더’인 그들이 몸소 보여주었다. 대물림되는 무소불위의 계급이 상존하는데 ‘개, 돼지들의 세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법망의 공백 안에 몸을 숨겨 어떻게든 당장의 곤란함을 피해가면 그만이다. 이 하루만 잘 버티면 영원과도 같은 부와 권력이 그들 앞에 있다. ‘인간’으로서의 고귀함이나 명예 따위, 중요할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역설적으로 스스로 ‘개, 돼지’가 되기를 선택했다.

그들의 무능을 손가락질하면서 이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를 공고히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기꺼이 무능함을 선택한 자들이 노동자들에게는 온갖 종류의 ‘스펙’과 자기계발의 신화를 강요하는 각자도생의 담론을 생산하고 있음을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무능이 오히려 위세가 되는 순간을 포착해야 한다. 예컨대 이재용 부회장의 얼굴에 때때로 떠오르던 ‘교활한 썩소’는 바로 이런 이율배반이 흘러나오는 틈새였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만들어 우리를 구속하는 ‘유능함’이라는 주술로부터 벗어나되, 그들에게는 무능을 가장한 부정(不正/否定)에 대한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서 봉건적인 계급제가 근대적 자본주의의 탈을 쓰고 부활한 현장을 보고 있다. 정유라가 ‘부모의 돈도 실력’이라고 말했던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실력’이라는 말을 봉건적 언어로 왜곡했다. 이는 그들만의 문법이다. 우리는 그들의 문법이 우리의 문법을 침해해 오염시키는 것을 용인해선 안된다.

수치심은 여성, 장애인,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사회적으로 규정된 ‘정상성’에서 벗어난 소수자들을 억압하고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감정이지만, 동시에 시선을 자기 내부로 돌리고 성찰의 기회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하는 문명의 감정이기도 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즉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 한다.

수오지심은 모멸감과는 또 다르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그의 아내가 청문회 후 드러냈다는 감정은 모멸감이었다. 모멸감은 억울함과 분노, 짜증 등을 동반한다. 그들은 모른다. 그들의 일생이 수치의 기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기록 앞에서 모멸감을 느껴야 할 것은 시민들이라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이 모멸의 시대를 뒤집을 봉기의 시공간을 열었다. 이 혁명의 시공간이 그들에게 수오지심을 가르칠 수치심의 학교가 되기를 바란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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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으레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어떻게든 살아낸 스스로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해주고 싶어진다. 내년에도 상황이 더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지금보다 더 나빠질 리는 없을 거라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보기도 한다. ‘당신이 놓쳤을지도 모르는 것들’이나 ‘올해가 가기 전에 꼭 해봐야 하는 것들’과 같은 리스트가 안도감을 주기도 하고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들기도 한다. 나는 남들과 비슷한 속도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하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길을 지나다 초등학생 둘을 만났다. 기말고사를 치르고 나오는 모양이었다. 책가방이 유독 무거워 보이는 아이가 입을 열었다.

“시험 망쳤어. 이러려고 공부했나 자괴감 들어.”

옆에 있는 아이가 맞장구쳤다.

“나도 자괴감 들어! 밤새워서 공부했는데, 공부한 데서 하나도 안 나왔어.”

이렇게 자괴감에 사로잡힌 아이들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자괴감을 느껴야 할 대상은 정작 아무렇지 않은데 자괴감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할 아이들의 입에서 앞다투어 자괴감이라는 단어가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10월 25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의혹'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 전 원고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괴감은 올해 하반기에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단어일 것이다. “이러려고 대통령 하려고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라는 담화문 속 대통령의 말은 국민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러려고 주식투자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이러려고 직장인 했나 피로감 들고 괴로워”처럼 자기 자신과 관련된 토로부터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이러려고 세금 냈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처럼 정부를 향한 따끔한 일침까지 곳곳에서 패러디가 이루어졌다. 패러디의 끝에는 해학이 남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뒤끝은 늘 씁쓸했다.

자괴감은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대통령은 이 단어를 원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 것 같다. 하긴 담화는 본디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을 상정하는 것인데, 대통령은 일체의 질의응답을 허용하지 않은 채 자기 말만 하고 들어가 버리지 않았는가. 나는 대통령이 담화문을 읽을 때 자괴감이라는 단어를 ‘부끄러움’이 아닌 ‘분노’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은 분명 화가 나 있었다. 자기 자신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여기저기서 칼끝을 겨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때문에 정작 자괴감을 느낀 것은 국민들이었다.

인간이 자괴감을 품을 수 있다는 점은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마음 없이 어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겠는가, 자괴감을 건너지 않고 어떻게 자부심에 가닿을 수 있겠는가. 부끄러움은 다음을 기약하게 해주는 마음이다. 부끄러움이 있어야 반성을 할 수 있다. 조금 더 떳떳하고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괴감은 ‘앞으로’를 내다보는 마음이다. 대통령의 자괴감은 앞이 아닌 뒤를 향해 있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억울하고 화가 난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은 양심이 없는 사람 아니면 양심에 거리낄 게 없는 사람이다. 나는 대통령의 자괴감을 인정하지 못하겠다.

국민들의 자괴감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혼란스러운 정국 때문에 사람들은 언젠가부터 주말을 반납하고 광장에 모이기 시작했다. 자책감을 느끼고 배신감을 참을 수 없어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도 보인다. 무너지고 난 후에야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힘든 상황일수록 그것을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히 깨닫게 된다. 자괴감이 심화되면 심한 자책이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포기하고 돌아보지 않는 상태 말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다시 모였다. 역설적으로, 이 또한 우리가 자괴감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다음 세대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도록, 우리는 촛불을 더 높이 들었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날, 우리는 입을 모아 외쳤다. 촛불이 이겼다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침묵은 진실을 덮을 수 없다고. 이기는 경험을 했다는 것, 다음을 기약해도 된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경험이다. 희망이 아직 남아 있음을 온몸으로 깨닫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자괴감이, 내가 바로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괴감이 만들어낸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다. 자괴감 이후에 찾아오는 것은 성찰의 시간이다. 우리는 광장에서 작년과는 다른 우리의 존재감을 이미 재확인했다. 국민들은 자괴감을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자괴감이라는 말 뒤에 숨어 있는 대통령과 얼마나 다른 품격인가.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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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유명한 책의 서문을 빌려 지금의 대한민국을 나는 이렇게 규정하고 싶다.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 세월호라는 유령이.’ 지금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을 흔들고, 광장을 사람들로 메우고, 촛불과 횃불을 타오르게 만드는 것은 최순실의 국정농단 이전에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현재 열리고 있는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라는 정식명칭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들은 거듭 ‘세월호 7시간’을 추궁하고 있다. 매스컴도 연일 최순실 국정농단과 함께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해부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2014년 4월16일 참사로부터 2년 반이 지난 현재, 왜 세월호는 자꾸 돌아오는가.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분석한 어느 글에서 이렇게 얘기한 바 있다. 햄릿이 우울증과 광기에 시달리는 것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햄릿은 아버지를 떠나보내지 못했고, 그는 유령이 되어 거듭 그 앞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아마도 하야와 탄핵을 외치는 촛불에 세월호 7시간의 민낯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우리 사회가 304명의 원혼을 충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국가수반이자 책임자인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진심 어린 애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촌각을 다투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한 대응을 진두지휘하기는커녕,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데 발견하기가 그렇게 힘든가요?”라는 황당무계한 질문을 던졌다. 이어 세월호 유가족에게 그가 보여준 냉대와 외면은 전 국민의 무의식을 곧장 우울증과 광기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로부터 한 시도 그 장면에서 떠날 수 없었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연대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세월호는 왜 자꾸 돌아오는가, 그리고 어떻게 돌아오는가. 누군가 좋아한다는 샤머니즘적으로 말하자면 세월호 아이들로 가득 찬 우주의 기운이 태블릿 PC를 찾아내 최순실을 꿇어 앉히고, 광장에 촛불을 밝히고, 셈이나 하고 있는 정치인들을 꾸짖고, 다시 촛불을 활활 타오르게 하고 있다. 인양되지 못한 선체처럼 전 국민의 저 깊은 곳에 내려앉은 세월호의 영령들이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우리를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어떤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 그 사건을 자꾸 되새기는 ‘반복강박’은 그 사건을 이해가능한 것으로 돌려놓고 안전한 것으로 처리하기 위한 방어적 심리기제이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 주체는 그 사건에 의해 압도되고 사로잡히지만 계속적인 추체험과 반복을 통해 그 괴물스러움은 이해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반복강박의 효과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수백 번, 수천 번의 호명과 되새김은 희생자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우리가 미치지 않기 위해 수행하는 일종의 몸부림이다. 이 반복강박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작업, 그리고 집단적 우울과 광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애도의 첫걸음은, 정확한 ‘사실의 재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지 않고 있다. 오보·괴담 바로잡기라는 청와대의 ‘이것이 팩트입니다’는 ‘굿판을 벌였다, 성형시술을 했다, 잠을 잤다’ 등등의 의혹에 대해 “아니다”라고 부정만 했을 뿐 그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팩트라며 밝힌 7시간의 일정표에 대통령의 육성과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상대로 무슨 스무고개라도 하자는 것인가. “아니다”라고만 말하는 그 끝에는 무엇이 있길래, 그토록 수많은 루머와 의혹에도 끝내 밝히지 못하는 것일까. 이제까지의 모든 의혹을 뛰어넘는 더 무시무시한 무엇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지난달 26일 광장에 나갔다. 촛불행렬을 따라 줄줄이 걷는 그 길에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추모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야가’를 부르고 퇴진을 외치던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나도, 내 앞의 사람도, 내 옆의 사람도, 내 뒤의 사람도, 선뜻 따라 부르지 못했다. 양희은의 ‘상록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전인권의 ‘애국가’보다 더 먹먹한 선율. 감히 떼창도 할 수 없는 그 노래가 광장의 사람들을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과연 그러한가. 과연 그렇다고 나는 말할 수 있는가. 국가수장이 광장에 무릎 꿇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한 우리가 함께 묻은 그 아이들은 영영 우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노래는 계속될 것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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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시험에서 수능 비중이 줄어들고 학생부종합전형이 강화되면서 정시보다 수시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에 따라 진로 탐색이 활성화되고 체험 학습과 교실 수업에 대한 참여도가 높아지는 등 교과, 비교과 활동 모두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일찌감치 진로를 설정하여 자신의 활동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입시 전문가들은 이에 편승하여, 중학교 때부터 진로를 준비해야 고등학교에 올라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리 설정된 진로에 따라 자신의 활동 전반을 대학 전공과 미래 직업에 부합하도록 맞추어 가야 ‘일관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원하는 대학, 원하는 학과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고등학교 선택이 선행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중학교 때부터 적극적으로 진로 탐색을 시작해야 한다. 중학교는 이미 늦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시작해야 한다는 말까지 돈다. 꿈을 꾸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빨리 꾸는 게 지상과제가 됐다.

하지만 이른 진로 탐색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세상에는 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꿈꿔왔던 일이어도 실제 손발을 움직여서 해보면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잠시 해보는 것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공부나 일이어도 그중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싫은 부분들로 구성돼 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참을 수 없는지까지 아는 것을 말한다. 특정 학과나 직업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그 일의 모든 면이 그렇다기보다 도저히 참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적성에 맞는다는 말 역시 전적으로 만족스럽다기보다 그럭저럭 싫지 않다는 뜻일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모든 면이 자신에게 꼭 맞는 꿈의 학과나 직업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두 번째, 세상에는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자신이 지망했던 학과와 기업이 해당 산업 지형의 급속한 변화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기도 한다. 조선업 관련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최근에 처한 현실이 그렇다. 조선 업황의 악화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이들 마이스터고를 졸업한 학생들의 진학 역시 불투명해졌고 관련 학과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는 조선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고 산업의 트렌드가 변화하면서 관련 직업이 사라지는 일이 앞으로도 종종 일어날 것이다. 반대로 머지않은 미래에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세계의 변화를 개인이 예측해 일일이 전략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세 번째, 세상만 변화하는 게 아니라 시간 속에서 우리 자신도 변한다. 호기심, 열정, 체력이 매년 다르고 관심사도 시시때때로 새로운 방향으로 가지치기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고 잘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평생 끝나지 않는다. 나이 먹고도 고민이 여전한 건 자기가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도 그러한데 하물며 청소년 시기에 진로 고민을 끝내라는 건 과한 주문이다.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를 아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고 직관과 이성이 충분히 성숙하기 전까지 넓게 탐색할 필요가 있다.

진로 탐색은 양면적이다. 여러 길 중 하나를 선택해 빨리 준비하면 그만큼 깊이 들어갈 수 있겠지만, 그 외 다른 길들은 조기에 닫혀버린다. 변화가 심한 때일수록 개방적인 자세와 유연한 대응이 더 중요해진다. 인생의 특정 시점에 단 하나의 꿈을 정확히 포착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위험하거나 무모한 일일 수 있다.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것과 다양한 길에 자신을 열어두는 것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

조기 진로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마음껏 기획할 수 있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진로 교육의 당사자인 학생들은 지금 어느 때보다 더 분노하고 있다. 이 나라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비선 실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 세상에는 행복해질 수 있는 무수히 다양한 방법이 있다. 전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아갈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소질이 우리 학생들과 청년들에게 있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을 뿐이다. 균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며 차별 없는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더는 꿈을 꾸고 이루는 게 소수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성찬 |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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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정치를 ‘대중문화’로 만들어버린 것은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다. 그것에 제일 능했던 이는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배우 출신의 레이건은 자신이 주인공인 영웅담을 대중에게 선전하는 것이 실제 무슨 일이 있었냐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설, 협상, 그리고 정책에 있어서도 할리우드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을 시청하느라 정상회담용 자료를 검토하지 못했던 일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할 테면 해봐. 오늘은 나의 날이야”라는 대사에 감동을 받아 의회의 조세 인상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심지어 ‘미국의 위대함’을 설파하기 위해 인용하곤 했던 일화는 <날개와 기도>(1944)의 한 장면이었다고 한다. 레이건은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대중에게 어필했고, 이후 할리우드 백인 남성 영웅을 지도자로서의 자기 이미지이자 레이건 행정부의 이미지로 전유했다. 영화학자 수잔 제퍼드는 <하드바디>에서 이를 자세히 분석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17일 (출처: 경향신문DB)

신자유주의의 시작을 알렸던 레이건 이후 36년. 신자유주의가 이제 그 생명을 다해가고 있는 시점에 대중문화가 길러낸 두 번째 미국 대통령이 등장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2000년대 초반. 연이은 부도로 위기에 당면한 부동산 재벌 트럼프는 독특한 생존전략을 선택한다. 스스로를 이미지 상품으로 만들어 ‘트럼프 브랜드’의 가격을 올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하여 출연한 것이 <어프렌티스>라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였다. ‘견습생’이라는 뜻의 이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은 트럼프 눈에 들어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어프렌티스>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의 재산도 늘어갔다. 그리고 그의 성공 신화는 미국의 성공 신화로 다시 쓰여졌다. 이 신화에서 인간 군상은 영웅이 되기 위해 비열한 협잡꾼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어떤 모욕도 견뎌낸다. 그것이 ‘생존’의 의미인 것이다. <어프렌티스>를 경유해 자본의 독재와 신민의 무한경쟁은 오락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10여년 후. 그는 미국 대선이라는 새로운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의 주인공으로 대중 앞에 선다. 레이건이 할리우드의 고전적인 영웅을 자기 이미지로 참고했다면, 트럼프는 미국 대중문화의 가장 저열한 면모인 리얼리티 쇼의 천박한 자본가 이미지를 자원으로 삼았다. 대선 과정에서 전시했던 그의 독설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어프렌티스>의 유행어 “너, 해고야(You’re fired)”와 다르지 않다.

그저 가십일지도 모르는 이런 이야기의 끝에 ‘길라임’을 떠올리게 된다. 드라마 광팬으로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은 일국의 지도자로서 어떤 자기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아온 ‘큰 영애(令愛)’의 이야기는 모든 국민이 알고 있었다.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이런 ‘국민 드라마’ 혹은 ‘우파의 신화’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특히 대통령 후보 박근혜를 믿고 따랐던 유권자들에게는 ‘장사꾼 이명박’과는 다른 ‘진성 정치인으로서의 우아함과 리더십’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고, 그 판타지는 아버지 박정희가 영애에게 남겨준 위대한 유산이었다. “우리 근혜 불쌍해”와 “우리 근혜는 달라”라는 익숙한 말을 떠올려 보라. 박근혜 스토리의 셀링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었다.

그래서 처음 그가 <태양의 후예>의 열렬한 팬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연히 그의 자기 이미지가 ‘유시진’일 것이라 생각했다. 군국주의의 화신이자 비열한 공무원들과는 질이 다른 고귀한 ‘귀족’으로서, 유시진은 우리를 구원할 아버지의 재림이었다. 그리고 그 영웅적 재림의 실현이 박근혜의 자기 이미지이리라 상상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보기 좋게 어긋났다. 박근혜 게이트의 ‘막장 드라마’로 추론해보자면, 그는 ‘길라임’ 혹은 ‘강모연’으로 자기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트럼프보다도 한심스럽다. 지도자로서 아무런 자기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길라임과 강모연은 치열한 자기계발로 얻은 재능과 커리어와 ‘미모’를 전부 다 이성애 연애의 완성을 위한 자원으로 소진하는 신자유주의형 공주다. 그리고 이런 공주 이야기의 핵심은 백마 탄 구원자에 대한 판타지다.

업무를 시작하고, 홈페이지를 개편하는 등 청와대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작됐다. 성실하게 수사를 받겠다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태도다. 옆에서 구원자들이 머리를 굴리고 있기 때문일 터다. 그들까지 발본색원해서 그의 판타지를 철저하게 깨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정치적 과제다. 더 이상 그에게 해피엔딩을 허할 수 없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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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문제집을 풀고 있으면 어른들이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잘되어 가냐?” 그때마다 나는 웃으면서 “네”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에 찔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잘 안되고 있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탕하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잘되고 있지 않으면 걱정과 간섭이 주렁주렁 달릴 게 빤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만은 예외였다. 떡이나 빵, 과일을 건네주며 외할머니는 나직나직이 말씀하셨다. “할 만해?” 이 말이 몹시 따뜻하게 느껴졌다. 하기 힘든데도, 힘에 부치는데도 갑자기 할 만해지는 것 같았다.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나 자신이 중심에 있는 것 같았다. 오늘, 길을 걷다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할 만해?” 선뜻 답하기 힘들었다.

‘만하다’라는 보조형용사에 대해 생각한다. ‘만하다’는 ‘어떤 대상이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할 타당한 이유를 가질 정도로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다름 아닌 발화자의 평가가 들어간다는 얘기다. 가령, 식당에서 나올 때 하는 “먹을 만했다”는 말은 음식을 먹은 이의 만족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한 번이라면 먹을 만하다는 말도 되고 기회가 되면 앞으로도 먹을 것이라는 의지가 반영된 말이 될 수도 있다. 발화자의 말투, 억양, 성격 등이 ‘만함’이 미치는 범위를 결정한다. 믿을 만한 소식, 주목할 만한 작품 같은 표현도 신뢰와 지지를 표명한다는 점에서, 발화자 중심의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만하다’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함을 나타낼 때 사용되기도 한다. 외할머니가 내게 건넸던 “할 만해?”라는 질문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때의 ‘만하다’는 개인의 주관적 평가보다는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나이가 들면서 이 두 번째 ‘만하다’에 더 많이 의지하게 되었다. 오랜 친구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주고받는 말만 해도 그렇다. “살 만해?” “버틸 만해?” 가까운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할 만해?”라고 말을 건넸을 때 자기도 모르게 힘을 얻는 것처럼, 이때의 ‘만함’은 언제든 더 커질 수 있다. 매일매일 우리가 마주하는 숱한 싸움들은 일련의 ‘만함’을 통해 가까스로 이어지기도 한다. 덕분에 스스로와 타자와 사회와, 그리고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의 싸움은 계속될 수 있다.

시국이 어수선한 데다 문단 내 성폭행 사건까지 연일 터지면서 글을 쓸 의욕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꼭두각시 정권을 목도하며 어안이 벙벙했다. 정권에서 숨겨왔던 온갖 비리들이 앞다투어 까발려지는 것은 ‘눈 뜨고 볼 만한’ 성격의 일이 아니었다. 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몸집이 점점 비대해졌다. 문단 내 성폭행은 결코 ‘참을 수 있을 만한’ 것이, ‘눈감고 넘어갈 만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그동안 내가 ‘몰라도 되는 권리’를 누려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몹시 부끄러웠다. 사람이 저질렀다고는 믿기 힘든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혼자서는 미약한 목소리가 연대를 통해 힘을 얻고 ‘해볼 만한’ 싸움이 된 것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다. 문학에 다음이 있다면, 다음의 문학이 있다면 아마도 이들이 그것을 이끌 것이다.

“쓸 만해?” 퇴근하고 돌아온 형이 컴퓨터 앞에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물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말이 중의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저 말은 ‘능력 있고 부리기 좋은’이란 뜻을 갖는다. ‘쓸 만한 인간’이 인적 자원이라는 말을 낳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문득 씁쓸해졌다. 쓸 만하지 않아서 나는 괴로웠고, 동시에 쓸 만하지 않아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애써도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은 괴롭지만, 이럴 때 글이 술술 쓰였다면 종래에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쓸 만한 인간’이라 인정받는 것보다 ‘살 만한 인생’을 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지난 주말에 광화문에 갔다. 촛불을 켜고 목소리를 높이며 우리는 점점 밝아지고 커졌다.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아마도 광장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일을 기대해도 좋을 만한’ 광경이었다. 힘을 합치면 세력이 되듯이 ‘만하다’가 자꾸 모이면 충만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졸시 ‘아찔’에서 나는 이렇게 썼다. “불가능에 물을 끼얹어. 가능해질 거야.” 철옹성에 금이 가는 것을 보는 일은 경이롭다. 철옹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지지는 않을지라도, 우리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자꾸 물을 끼얹어야 한다. 사회에 만연한 차별, 위계에 의한 폭력과 부정부패 등 온갖 병폐들을 없애는 데 미약하게나마 힘을 보태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살 만한’ 세상이 온다. 겨우, 하지만 마침내 온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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