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가 바뀌는 데 14년이 걸렸다. 대법원이 종교나 신념에서 우러나온 목소리를 귀담아듣고 드디어 응답한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여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기까지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다. 사법의 원초적 보수성 때문에 판례변경이 쉽지 않은 전례에 비추어보면 이제라도 사회 변화를 수용한 사법부의 결단은 박수받을 만하다.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호소하면서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연 판결이다. 이로써 그동안 형벌과 맞바꿔온 수많은 젊은이들이 양심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양심에 따르다가 전과자가 된 그들이지만 이제 양심을 지킨 자신을 대견해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판결을 계기로 다수와 다르다고 배제하고 차별할 것이 아니라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기대한다. 다원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임을 깊이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사처벌을 해선 안된다는 판결을 내린 후 소송의 당사자인 오승헌씨가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 기자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법원 판결 이후에 논란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비논리적이고 모순적인 판결 비판과 합리성을 잃은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가 그렇다. 군대 간 사람은 비양심적이냐는 비아냥거림이 대표적이다. 병역을 거부한 것이 양심이라면 병역의무를 다한 것은 비양심이냐는 비판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대립구도 조작이다. 병역거부가 양심에 따른 결정이라는 의미인데, 의도적으로 ‘양심적’과 ‘비양심적’을 대칭시킨 것이다. 신성한 국방 의무 앞에 열외가 없고 누구나 평등해야 국가안보가 굳건히 세워질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 남북의 대치상황을 들먹이며 판결을 비난한다. 진영논리로 사법을 재단하기도 한다. 분노와 비판의 목소리를 과대 포장해 판결의 의미를 깎아내려는 언론도 문제다. 있는 그대로를 기사화하는 것이 언론의 할 일이라고 하더라도 대법원의 무죄판결에 비난일색인 것처럼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책무와는 거리가 멀다. 국민의 반응이 비논리적이고 반인권적이라면 일침을 가하는 것이 언론의 할 일 아닌가.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도 마찬가지다. 여호와의증인 신도가 증가할 것이라거나 누가 나라를 지키나 등의 반응을 부각시키거나 양심을 판 병역기피의 불복종 사회가 초래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대체복무에 징벌성을 가하려는 기획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양심을 빙자한 병역기피로 보게 되면 양심을 파는 징병대상자를 막기 위해서 현역복무보다 훨씬 더 힘든 대체복무로 만들어야 할 정당성이 생긴다. 그래서 지뢰제거 작업이나 복무기간 2배, 3배가 합당한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렇게 되면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처벌로 둔갑하는 것이다. 징벌적 대체복무로 형벌이 대체되는 꼴이다. 그야말로 명칭사기다. 대체복무 논의에도 비논리가 끼어들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양심을 파는 병역거부자가 생길 것을 우려하여 대체복무의 종류와 기간을 정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병역거부가 정당하다면 현역복무에 상응하는 대체복무를 부과하면 된다. 대체복무의 종류와 기간을 정하는데 정당하지 않은 병역거부를 상정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함부로 양심을 파는 비양심적 징병대상자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정당한 병역거부자에게는 징벌이 된다. 마치 엄한 형벌을 부과해야 잠재적 범죄자들이 겁을 먹고 범죄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흡사하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의 형사처벌 여부 논란은 대법원의 사법적 판단으로 종결되었지만 대체복무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체복무 논의도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양심적 신념을 존중하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의 취지에 맞게 인권의 관점에서 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각자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줄 임무가 있다. 바로 양심의 자유가 인간의 존엄과 기본권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하여 올바른 행동으로 인도하고 결정해주는 나침반인 양심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들이 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결정은 이제 법적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그들이 이행해야 할 대체복무도 병역의무다. 따라서 징벌성을 띠어서는 안된다. 20대 젊은이들에게는 1~2개월도 황금 같은 시간이다. 할 일 많은 그 시기에 양심을 팔기에는 9개월도 너무 길다. 엄청난 불이익으로 느껴질 것이다. 현역 18개월의 1.5배인 대체복무 27개월도 현역복무를 상쇄하고도 넘친다. 정당한 병역거부자에게 정부안처럼 36개월 징벌적 대체복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현역병이 느낄지도 모를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해 줄 것이 아니라 병영문화 혁신과 군 인권향상이 우선이어야 한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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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달구는 사안들은 주로 형사처벌에 관한 것이다. 특히 20만명이 넘는 누리꾼들의 동의를 얻은 청원은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것들이다. 목숨을 빼앗아간 끔찍한 범죄 뉴스를 보면서 자신이 피해자가 된 것 같은 동질감과 동정심이 든 사람들은 범죄자를 응징해야 한다며 분노한다. 응당 같은 값으로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불안감 때문에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오래도록 격리시키길 원한다. 그래서 여전히 사형제를 찬성하는 여론이 우세하다. 응징과 보복의 감정에 기댄 것이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소년법을 폐지해 성인처럼 처벌하라고 한다. 곧 형기를 마치게 될 조두순을 더 가두어달라는 청원도 수십만을 넘었다.

중형으로 겁을 주어야 일벌백계가 되고, 잠재적 범죄자가 범죄로부터의 유혹에서 벗어날 것이라 믿는다. 대통령도 최근 음주운전 피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재범 가능성이 높은 음주운전 특성상 초범이라도 처벌을 강화하고 사후 교육시간을 늘리는 등 재범방지를 위한 대책을 주문했다. 더 엄하고 중한 형벌에 대한 여론, 언론, 정치의 요구가 빗발친다.

왜 엄벌과 강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일까. 흉악 범죄로부터의 불안감 때문이다. 자연재난, 질병, 대형 교통사고, 산업재해의 위험에 더해 급증하는 범죄위험은 평화로움을 원하는 시민을 불안하게 한다. 사건보도를 접하는 국민들은 자신은 절대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지만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다양한 안전장치들을 요구한다. 범죄수법에 관한 선정적 보도에 더해 범죄피해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가감 없이 노출시키면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응징 욕구는 치솟는다. 범죄자를 사회에서 배제해야 할 악마와 적으로 낙인찍는다. 잔혹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가장 강력한 통제수단으로 여기는 형벌에 거는 기대는 커진다.

이럴 때 정치는 돈이 적게 드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다. 신속하게 뭔가 하고 있음을 유권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인기영합주의가 발동돼 입법으로 해결하려 한다. 여론에 즉각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는다. 정치는 강성화 형사정책을 사회통제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범죄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형법은 날로 비대화되지만 역으로 과잉범죄화가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기도 한다. 입법자뿐만 아니라 국민들은 어떤 금지행위든 형사처벌 규정을 두어야 실효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유해하거나 반사회적인 행위까지 형벌을 확대하려는 경향이 만연하다. 경범죄 처벌, 자전거 음주운전, 자전거 헬멧 미착용, 자동차 안전벨트 미착용이나 심지어 부동산 투기행위에 대해서도 형사제재의 수단을 투입하려고 한다.

정치권과 입법부가 여론의 풍향에 너무 민감하다. 조문 몇 개만 고치는 단발성 입법 발의가 수두룩하다. 그러나 언론과 여론의 폭풍만 지나가면 그 법이 잘 집행되고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다. 일단 입법자로서 할 일을 다 했으니 끝이다. 그러는 사이 법은 서서히 생명력을 잃고 법에 대한 신뢰는 떨어진다. 형사처벌법을 만드는 것에 그치면 그것만으로 범죄가 예방될 리 없다. 처벌법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 때와 장소를 가리고 누구에게 적용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면 법에 대한 신뢰는 사라진다. 항시성과 일관성, 그리고 공정성이 핵심이다. 어쩌다 단속해서 처벌하거나, 처벌도 들쭉날쭉하면 법에 대한 불신만 생겨 준법의식은 옅어진다.

성범죄의 예를 보자. 1990년대 중반부터 특별법 제정, 형법 개정, 신상공개 및 전자발찌와 화학적 거세 등 처벌수단을 강화하고 다양화하는 등 중형주의의 연속이었다. 아동·장애인 성폭력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법정형도 강화하고 제재수단을 총망라했지만 성범죄는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늘고 있다. 범죄자를 가두어 두는 형사정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슈가 되고 있는 음주를 포함한 위험운전치사상죄도 그렇다. 살인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지만 10년 전에도 그랬다. 음주운전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사망자의 수가 증가하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위험운전치사상죄를 신설했다.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느슨하게 적용되니까 오히려 음주운전 사고는 증가추세다. 엄격한 단속과 법적용 및 처벌이 뒤따라야 처벌법의 효과가 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그래야 학습효과가 나타난다. 단속, 수사, 처벌이라는 법집행이 총체적으로 제대로 돌아가야 규범의식과 준법의식이 생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법대로 살면 나만 손해’ 등 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지 않는 한 법을 제정하여 선포하는 것만으로는 입법의 홍수만 겪게 될 뿐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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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손톱 밑 가시, 암 덩어리’에서 이제는 ‘붉은 깃발법’이 등장했다. 규제를 이르는 전·현직 대통령의 화법이다.

규제완화가 또다시 화두다. 규제를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낙인찍었다. 국가경쟁력을 갉아먹으면서 신성장 산업과 일자리 창출 등 혁신성장의 발목을 잡는 해악으로 여겨지고 있다. 규제완화의 부작용은 감춰둔 채 기업은 물론 보수언론과 정부·여당도 규제완화의 깃발 아래 한 몸처럼 움직인다. 규제가 왜 생겼는지, 왜 존속하고 있었는지, 규제를 없애면 어떤 부정적 효과가 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규제 때문에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고 경제성장이 뒤처진다고 보는 것이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붉은 깃발을 들라는 법이 없었더라면 자동차의 속도에 감이 없었던 시민들이 얼마나 불안해하고 허둥대며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동차 산업의 선두였던 영국이 독일에 자리를 내주었다고 규제를 탓하고 있다.

왜 일자리 숫자와 경제지표에 급급하나. 지지율이 조금 떨어졌다고 조급해하는가. 경기가 둔화되고 각종 지표가 나빠지자 재벌에 기대던 과거 정부의 악습을 답습하고 있는 듯하다. 몰래 만나 주고받던 지난 정권과 다르다면 공개적 만남이라는 것과 금전이 오고 가지 않았다는 것일 뿐 재벌에 대한 특혜이자 특정 기업 봐주기에는 전혀 차이가 없다. 투자와 고용을 압박하는 수법은 이전 정부 판박이다. 하라는 재벌개혁은 제쳐 두고 재벌에 구애하는 모습만 드러내고 있다. 역시 권력을 잡고 보니 먹고사는 것이 제일이던가. 개혁하라고 쥐여준 권력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경제를 외치는 언론과 재벌에 끌려가고 있다.   

지금의 지지율 50%대가 정상이다. 공약이행과 개혁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집권 초반의 70%대에서 한참 빠졌다고 방향을 틀 일이 아니다. 오히려 초심 그대로 나가야 할 때다. 이제는 지지기반마저 이탈할지도 모른다. 아니 벌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역대 최저 지지율은 은산분리 원칙 공약파기와 삼성 껴안기로 개벌개혁이 물 건너가는 것은 아닌지 불만을 느낀 진보 지지층의 거리두기다. 실망한 촛불시민이 하나둘 표심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집권 2년차다. 개혁을 마무리하고 공약을 실천해야 할 때다. 일자리와 혁신성장에 밀려 기업이 하자는 대로 하다보면 규제의 댐은 무너지고 지지층도 균열이 간다. 정부가 약점을 보이면서 기업에 매달리니 벌써 온갖 기업 민원이 쇄도한다. 고용과 투자를 늘리겠으니 대가를 달라고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한다. 경제부총리가 기업총수를 만난 날 미래먹거리인 바이오에 대한 투자와 혁신의 대가로 복제약가를 올려달라는 민원을 들이밀었다. 은산분리 완화는 규제파괴의 서막이다. 개인정보에 관한 규제와 원격의료를 포함한 의료 관련 규제, 규제샌드박스 5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발전산업기본법 등 소위 붉은 깃발 리스트가 대기하고 있다. 찬반의 논란이 적지 않은 분야들인데 너무 성급하다. 혁신 친화적 경제환경을 조성하고 신산업을 육성하는 일은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조급함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 산업이 가져올 영향도 있을 것이고 규제는 여러 이해당사자의 이익이 복잡하게 충돌하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규제는 악이며 규제혁신은 성장과 먹거리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해서도 안된다. 규제만 풀면 혁신성장이 저절로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규제는 국민의 안전·건강·보건 및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다. ‘화학물질관리법’이나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을 규제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그 예다. 기업에는 비용부담의 규제이지만 넘지 못할 규제의 벽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규제완화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세월호 참사, 여전히 높은 산업재해 사망률, 라돈 침대 사태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대참사는 거의 대부분 규제를 완화해준 정부나 국회의 책임이거나 있는 규제를 피해가려는 탈법적 기업운영의 탓이다. 참사로 인한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은 규제완화로 얻을 이익보다 훨씬 크다. 자본의 이익 앞에서 규제는 무력해지기 마련이지만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된 규제는 경제논리가 끼어들어서는 안된다. 규제가 완화되어 기업 활동이 법률과 국민의 감시를 피해간다면 언제 참사의 위험이 현실화될지 모른다. 국민의 생명은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국가가 생명보호의무를 뒷전으로 밀어두고 자본의 이익, 일자리, 성장 논리에 밀려 규제혁신에 드라이브를 걸면 경제지표도 끌어올리지 못한 채 지지층 이탈의 원심력만 커진다. 안전·건강·보건 및 환경에 관한 규제의 장벽이 견고해야 국정운영의 지지기반도 더 단단해질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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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제7대 대법원장에 취임한 이영섭 대법원장은 퇴임사에서 ‘회한과 오욕의 나날’이라는 말을 남기면서 사법부(司法府)를 사법부(司法部)라고 썼다. 그는 짧은 민주화 뒤 들어선 신군부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취임 2년 만에 사임하면서 사법부를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 취급한 것에 대한 수모와 굴욕을 자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 사법부는 어떠한가. 그때는 정권의 외풍에 휘둘려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침해되었다면 지금은 사법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훼손되었다는 점이 다를 뿐 여전히 독립성이 확고하지 못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믿고 싶지 않지만 청와대의 수석비서관과 통화했다는 보도가 사실이라면 대법원장이 아니라 스스로 사법부 장관으로 처신한 것이다. 엄선된 엘리트들이 근무하는 법원행정처에서 법관은 관료적 위계질서 속에서 상관의 지시를 따르고 충성하는 사법행정 공무원이었다. 위법한 지시를 내린 상사나 그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며 받아들인 이들은 스스로 법관이기를 포기한 직권남용의 공범자들이었다. 소위 ‘사법부 블랙리스트’와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한 조사보고서 속의 법원행정처는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행정부처와 같았다.

법원 내 특정 연구모임에 가입해 활동하거나 대법원장의 사법정책을 비판한 판사의 성향과 동향을 기록한 문건은 지난 정부에서 작성한 문화예술계 인사의 블랙리스트와 다를 바 없다. 일부 보수언론은 진보적이거나 반행정처적 법관목록을 보고도 블랙리스트 의혹의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 대다수 사법부 구성원들이 상상하기 힘든 문건들이 드러나자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권한 없이 법관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성향에 따라 분류하거나, 재판이 재판 외의 요소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것으로 오해받을 만한 일”이라고 정의했다. 법관 개인을 감시하고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유형이나 부류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차별이고 인권침해이자 불법행위다. 사법행정이라는 이름으로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의 방침에 거스르는 법관들에 대한 성향과 행적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분명 직권남용이다.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셀프조사·개혁 약속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여러 건의 고발로 검찰수사가 불가피한 가운데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1995년 인천지법 집달관 비리사건을 시작으로 대법원장은 2006년과 2016년 현직 판사 금품수수 의혹에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했었다. 거의 10년 주기인데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법원공무원과 법관 개인의 비리였지만 지금은 사법부 내의 조직적 사법행정권 남용이다. 그래서 더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한 것이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파일이 수백개에 달한다. 파일명만으로도 의심이 가는 것들이다. 법원행정처 심의관의 컴퓨터는 공용물이자 국가소유다. 공적 업무수행에 제공되는 컴퓨터다. 그 컴퓨터에 작성·저장된 파일은 모두 공적 문서다. 그래서 조사에 작성자의 동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판사 개인이 작성했으므로 개인정보라는 주장은 공과 사의 구별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용자가 사적으로 작성한 파일이 있다면 반납할 때 삭제했어야 하고 혹시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외하고 조사하는 것이므로 사생활 침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권한남용이 구체적으로 의심되는 상황에서 긴급히 대처할 필요가 있는 경우 업무용 컴퓨터 조사를 상당한 범위로 한정한다면 적법한 조사다. 강제개봉도 아니고 강제조사도 아니다.

단언컨대 고질의 뿌리는 관료화된 법원행정처와 제왕적 대법원장에게 있다. 법원행정처는 법원의 인사·예산·사법정책을 다룬다. 고등법원 부장판사제도를 폐지하고 고법판사와 지법판사로 법관인사를 이원화하면 인사업무는 최소화된다. 사법정책은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의 일이다. 예산은 현직 법관이 아니라 전문가가 담당해야 한다. 그러면 법원행정처는 할 일이 대폭 줄게 된다. 인사가 축소되면 대법원장 권한도 줄어든다. 대법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고 대법관회의에서 호선하면 대통령 눈치를 살피지 않아도 된다. 법원장도 각급 법원의 법관회의에서 호선해서 사법행정을 맡기면 법원장 승진인사에 목맬 이유도 사라진다. 이처럼 특단의 개혁방안이어야 거꾸로 가는 사법을 되돌려 바로 세울 수 있다. 대법원장이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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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힘은 막강하다. 언론에 등장하면 곧바로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거나 결정이 난다. 여론이 형성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면 순식간에 입법부도 움직이고 행정부도 굴복한다. 때로는 사법부도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언론은 실로 제4의 권부다. 


10대 청소년들의 무자비한 폭력장면이 신문과 방송을 타더니 소년법 폐지 입법청원이 청와대 홈페이지를 뒤덮었다고 한다. 몇 십만이라고 한다. 여기저기서 청소년 폭력사건이 봇물 터지듯 밝혀지고 분노한 여론은 소년법과 형법 개정을 촉구한다. 비록 나이 어린 청소년이라고 하더라도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면 자유형의 상한을 올려서 엄하게 처벌하거나 무기징역 또는 사형이 가능하도록 소년법을 개정하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형사미성년자의 나이를 낮추라는 목소리도 커졌다. 급기야 여야 정치권이 나서서 불안한 시민을 안심시키고 공분을 잠재우기 위해서 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도 소년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범죄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강성화 형사정책이다. 단죄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라는 언론과 여론의 요구에 굴복하여 엄벌주의로 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절대 가해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혹시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응보감정은 되살아나고 무관용의 형사정책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범죄의 처벌과 예방에 관한 형사정책이 방향을 잃고 일관성 없이 언론과 여론에 끌려다닌다. 가감 없는 선정적 보도가 여론을 형성하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처벌법으로 안전을 약속하는 패턴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형벌을 만병통치약이자 사회갈등의 최우선 수단으로 여기게 되어 사회적 이슈가 생길 때마다 형법을 개정하고 형사특별법을 제정하고 양형기준을 상향하는 것이다. 정치권도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일이다. 국가예산에 부담을 주지 않고 정치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돈 들지 않는 입법에 매달리는 것이다. 일관된 형사정책에 따른 입법이 아니라 유권자를 의식한, 여론에 부응하는 임시방편적 입법이다. 그러다 보니 처벌 법률과 범죄구성요건 사이에 부조화와 불일치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과연 수많은 형사처벌법 입법으로 범죄는 줄어들었는가. 청소년범죄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인가. 법이 만능이고 강력한 처벌만이 능사인가. 그렇다면 벌써 범죄는 예방되고 줄었어야 한다. 자유형의 상한이 15년에서 30년으로 상향조정되고 양형기준은 날로 강화되었지만 강력범죄는 줄어들 기미가 없다. 전자발찌도 채웠지만 성범죄자의 재범은 여전하다. 청소년에게는 형사처벌에 의한 범죄억제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에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면 처벌받는 아이들만 늘어나게 된다.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청소년만 증가한다. 강력한 형벌로 교도소에 가두어두고 교정과 교화에 힘쓰지 않으면 재범률은 감소되지 않는다. 지금도 소년교도소는 포화상태다. 청소년범죄의 재범률은 성인보다도 높다. 형량을 높여 처벌하고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가두어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미다. 당장은 범죄가 잠잠해지고 사회적 공분도 누그러지겠지만 곧 강력범죄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영원히 가두어둘 수 없는 한 사회성을 상실한 청소년이 성인이 되어 출소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범죄의 유혹에 빠져 재범을 저지르게 된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청소년이 지옥 같은 가정과 학교를 등지고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린 가출팸을 찾는 아이들이 수만명으로 추산된다. 가정폭력에 물들어 스스로 폭력 청소년이 되어 버린 아이들도 수없이 많다. 그들과 어울리다 폭력이 일상이 되고 또래와 어울리다가 집단적으로 생계형 절도나 폭력범죄를 저지르고 성매매도 강요당하고 있다.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교도소로 보내는 형사정책이야말로 후진국형이다. 


청소년 범죄자의 처벌과 격리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처방과 대책이 필요하다. 형벌을 가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형사정책은 최후수단이어야 한다. 청소년 범죄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육과 보호가 우선이어야 한다. 그들이 범죄나 악행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경제정책, 교육정책, 사회정책,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전통적으로 교육기능을 수행하는 가정, 학교, 교회가 바로 서야 한다. 경쟁으로 내몰리고 어디에서도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청소년은 범죄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다. 흔들리고 무너진 가정, 공동체 의식이 사라진 학교와 교회의 자리에 경쟁심과 이기심이 자리하는 한 청소년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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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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