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합헌 결정 때문에 소셜미디어(SNS)가 시끄럽습니다. 밥은 3만원 미만짜리밖에 먹지 못하게 하고 선물을 5만원 미만으로 한정하면 내수경제가 무너진다고 언론이 아우성치니 누리꾼들이 조롱을 하고 나선 게지요. 비싼 술집에서 폭탄주 돌리던 일이 사라지니 집에 일찍 들어가 책도 볼 수 있어 좋을 것 같은데 세상사가 마냥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입니다.

출처: 경향신문DB

어찌됐든 이번 법을 입안함으로써 많은 사회적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는 김영란 전 대법관은 한국 최초로 여성으로서 대법관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의 부패를 근절하려면 법을 통하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생각해서 ‘김영란법’을 입안한 분입니다.

그는 최근에 출간된 <책 읽기의 쓸모>(창비)에서 여행 도중에 가지고 간 책을 다 읽어버리면 금단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책 중독, 활자 중독에 시달렸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행갈 때 비행기 안에서 그동안 못 읽었던 가장 어려운 책을 골라 읽습니다. 반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내기 힘든 평소에, 일을 하던 도중에는 비교적 가벼운 책을 읽습니다. 저는 대가족으로 살아온 기간이 긴 탓에 가사노동을 제법 해온 편이어서 차분히 앉아서 책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긴 버릇이 책을 여기저기 놓아두고 읽는 것이었지요. 부엌에도 책이 있고 화장실에도 책이 있고 방에도 책이 있습니다. 서재가 따로 없지요. 서재에 들어박혀 있을 여유가 없이 늘 개방된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주부의 특징 때문이지요.”

그는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온 것이 ‘쓸모없는 책 읽기’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왜 책을 읽었을까요?

“생각해보면 슬픈 일이 있어도 책을 읽으면 다 잊어버리고 없었던 일이 되는 적이 많았습니다. 제게는 독서가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현실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던 것이지요. 책을 읽으면서 힘든 일을 잊어버린다는 것만 해도 굉장한 쓸모이긴 합니다. 또 최근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쓸모없는 책들을 제가 법률에 관한 책을 쓰는 데 써먹었더군요.”

책이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해온 저에게 이만한 실제 증거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책을 읽었을까요? 어려서는 동화책을 많이 읽었지만 사춘기 시절부터는 문학서적으로 말을 갈아탔습니다. 이때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토마스 만, 톨스토이 등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현실에서 구현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들을 특별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 미셸 투르니에의 <흡혈귀의 비상>,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 마사 누스바움의 <시적 정의>, 어슐러 르 귄의 <빼앗긴 자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등입니다. 대부분 ‘이분법 놀이’를 통해 복잡다단한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그는 법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이 제시한 ‘공평한 관찰자’란 개념에 꽂힌 것 같습니다.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존중과 질적인 것으로부터 양적인 것으로의 환원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 세계에서 개인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 그리고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마치 개미나 기계 부품의 움직임이나 동작같이 개관적인 외부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자신의 삶에 다층적 의미를 부여하듯 삶 속에서 우러나오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묘사”가 누스바움이 정리한 소설의 특징이라고 소개하고 있으니까요.

누스바움이 말하는 ‘공평한 관찰자’는 “문학작품을 읽는 독자와 비슷한 관찰자의 능력을 지닌 재판관”, 즉 ‘문학적 재판관’입니다.          

“모두 똑같아 보이는 집들이지만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고, 그 각각의 이야기들은 인간의 정념에 관한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가령 누가 사람을 죽였다고 할 때, 같은 살인이라 해도 그 배경을 보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아버지를 죽인 아들도 있을 수 있고, 아이가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마구 때리고 몇날 며칠을 방치해두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부모도 있지요. 그렇게 개별적인 이야기가 다 다릅니다. 재판관은 그런 개별성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소설을 많이 읽어서 ‘공감’이라는 훈련을 한 그가 우리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 ‘김영란법’을 입안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상상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이 없으면 ‘이미 있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익히는 일밖에 남지 않을 테니까요. 물론 그것만 하기도 바쁜 세상이지만, 그러기만 해서는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언가 더 나은 것에 대한 상상, 다음에 나아갈 행보에 대한 상상, 그것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책, 특히 소설을 많이 읽읍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또 같은 책을 읽더라도 각자가 듣는 이야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한한 세상 속을 여행하는 일”이자 “나 자신을 찾는 일”이면서 “나에 대해 기록한 단 하나의 책을 찾는” 행위이자 “세상을 통해서 나 자신을 찾는 공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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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한 지방의 8층짜리 대형 회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자리를 옮기려는데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약 2㎞를 걷는데 폐허가 된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몇몇 관공서가 보이긴 했지만 사람이 산 흔적이 없는 건물이 즐비했습니다. 일행인 한 역사학자가 “모든 도시가 ‘강남 개발붐’을 그대로 닮은 복제품”이라고 말했습니다.

강남을 최초로 다룬 연구서를 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강남, 낯선 대한민국의 자화상>(인물과사상사)에서 “강남은 한국의 얼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는 “독특한 아파트 문화의 선구자이자 리더는 단연 강남이다. 강남의 아파트 거주율은 80%에 육박한다. 강남은 욕망의 용광로다. 구별짓기의 아성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가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거나 하지 않으려 했듯이 강남이야말로 가장 ‘한국적’이라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왜 강남의 진실을 피하려는 걸까? 진실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강남을 제대로 천착한 연구서가 왜 나오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의 심장 도시는 어떻게 태어났는가?’가 부제인 강남만을 다룬 최초의 역사서 <강남의 탄생>(한종수·계용준·강희용, 미지북스)에서 저자들은 “강남은 한국 현대사의 얼굴”이며, “강남을 안다는 것은 한국 현대사를 안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우리는 ‘강남’을 의외로 잘 모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 소위 ‘강남 3구’를 ‘강남’으로 보고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원래 “강남은 과수원과 채소밭 천지”였습니다. “1968년까지만 해도 강남은 일반 가정에 전화기는커녕 지역 전체에 공중전화 한 대도 없는 ‘벙어리 동네’”였습니다.

그랬던 곳이 “압구정, 반포, 서초, 잠원, 신사, 논현, 역삼, 개포, 삼성 등 오늘날 쟁쟁한 부촌이 된 셈인데, 지난 ‘강남 개발의 시대’는 실로 ‘뽕나무밭’이 ‘강남’이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강 교수도 “강남은 한국의 초고속 성장을 온몸으로 드라마틱하게 웅변하는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이 보릿고개에서 ‘세계 10대 경제국’으로 달려왔듯이 강남은 ‘말죽거리’에서 ‘타워팰리스’까지 달려왔다. 전자의 달리기는 피땀으로 이룬 반면 후자의 달리기는 일확천금의 투기 광풍이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할 것이나 욕망의 대질주라고 하는 본질에 있어선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강남의 탄생>은 바로 그런 ‘욕망의 대질주’를 세세하게 정리한 역사서입니다. 저자들은 1969년 12월25일 준공된 제3한강교가 ‘강북’으로부터 ‘강남’이라는 지역을 잉태하는 탯줄이 되었는데, 이 다리는 훗날 ‘말죽거리 신화’로 불리는 땅값 폭등의 중요한 요인이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그보다 먼저 착공한 경부고속도로와도 이어져 그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검찰청, 국정원, 한국은행 전산본부 등 주요 기관과 경기고, 서울고, 숙명여고 등 강북 명문고의 강남 이전, 지하철 2호선을 강남을 관통하는 순환선으로 바꾼 일 등이 작용해 강남은 명실상부한 서울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여의도는 ‘강남의 원조’이며, 노원은 ‘실패한 강남’이고, 목동은 ‘성공한 강남’이라고 말하는 저자들은 “강남의 성공은 우리나라 도시사(史)에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고 말합니다. 한때 서울을 강타한 뉴타운 광풍은 “강남을 닮고 싶어 하는 강북 시민들의 ‘욕망’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고 보기도 합니다.

‘강남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광역시는 물론이고 인구 10만명도 안되는 소도시도 모두 마치 비법이라도 배운 것처럼 신도심을 개발해 시청, 법원, 방송국, 터미널 등 알짜 시설을 옮겨 놓”는 바람에 “구도심에는 옮길 수 없는 기차역과 전통시장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고도 경주와, 성곽이 있는 전주나 공주, 진주, 호수를 끼고 있는 춘천, 몇몇 항구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지방 도시들은 특징이 없는 그저 그런 붕어빵 도시들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어느 도시 할 것 없이 ‘구도심 활성화’가 단체장 선거의 단골 공약이 되기에 이르렀지만 “구도심이 활성화되었다는 도시가 있다는 소식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둘 수는 없겠지요. 앞으로 투기나 욕망에 의한 도시 개발은 지양하고 도시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마을>(이승훈 외)은 공릉청소년문화정보센터를 중심으로 마을의 청소년들이 ‘시작된 변화’ 프로젝트에 참가해 마을을 바꾼 지난 5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버려지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땅에 꽃과 잔디를 심고, 놀이터에 적힌 낙서를 지우고, 어두컴컴하고 음침한 굴다리에 벽화를 그려 넣고, 얼굴을 모르는 아파트 주민에게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동네의 자전거도로를 조사해 구청에 민원을 넣는 아이들의 노력 덕분에 “잠만 자는 곳”이자 “아이들에게는 얼른 벗어나고 싶은 변두리 동네”에 불과했던 공릉동이 이제 좋은 삶과 좋은 교육을 가꾸는 터전이 되었다고 자부합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마을은 작은 세계이며, 가장 큰 학교”라고 말하는 저자들은 “경험이 최고의 학습이고, 최고의 경험은 마을 안에서, 일상 속에서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최고의 학습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인 마을 속에서 쌓이는 풍부한 경험은 역량을 키우기 마련인데 그것이 ‘마을 교육력’이라고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마을에 도서관과 청소년센터가 결합된 공간부터 만들어놓고 폐허가 된 도시를 살 만한 도시로 바꿔보시지 않겠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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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면 좋은 점이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에게는 연애가 삶의 전부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좋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러니까 연애해’ ‘연애하지 않는 너는 불쌍해’로 넘어가는 것이 연애지상주의의 문제점이다. 나는 이 연결고리를 끊고 싶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를 모두 ‘무죄’로 석방하고 싶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21세기북스)의 저자인 이진송은 ‘행복한 비연애생활자를 위한 본격 싱글학’을 표방합니다. “내가 이 구역의 ‘홀로’다”라는 선언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홀로는 “어떤 형태로든 연애하지 않는 비연애인구”를 말합니다. 이진송은 3년째 ‘비연애생활자’를 위한 독립잡지 ‘계간 홀로’를 펴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진송은 “연애는 발명되고 학습된 것으로서, 한국에서의 역사는 겨우 100년 남짓 되었고, 절대적인 것이거나 운명적인 것이 아니다. 연애는 때로는 자본주의와 공모하고, 때로는 자아 발견 욕구와 만나고, 때로는 국가 통치 정책과 공명하기도 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개념”이라고 말합니다. 연애에는 ‘황금, 용모, 재지(才智)’라는 세 가지 조건이 개입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연애의 자격을 다 갖춘 사람에게만 허용하지 말고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허용하라는 것입니다.

이진송이 진정 주장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연애를 가로막는 억압”일 것입니다. “그토록 연애하라고 등을 떠밀면서도, 정작 한편으로는 우리의 자유로운 사랑을 가로막고 착취하는 것들. 고용 불안정이나, 특히 성적 취향에 대한 억압, 비만 인구나 장애 인구에 가해지는 연애 금기…. 지금 이 순간도 너무나 뻔뻔스럽게 벌어지는, 이중의 억압들”로 말미암아 “너무나 많은 기회비용 때문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있다. 사랑을 불가능하게 하는 구조를 은폐하고, 그것을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돌려 비난하고 조롱하는 시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니까요.

‘미혼’은 결혼을 하지 못한 것이지만 ‘비혼’은 불안정한 결혼이라는 기반을 원천적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회운동가나 페미니스트, 또는 삶의 상처로 일시적인 반항심리에 젖어든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던 비혼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책은 2009년에 출간된 <언니들, 집을 나가다>(언니네네트워크 엮음, 에쎄)입니다. 이 책에는 가족이라는 구조는 유지하면서 독립하고자 하는 사람들, 레즈비언 커플과 공동가족 등 ‘정상 가족’이라 여겼던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형의 가족, 지속가능한 비혼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때 저는 ‘비혼’이 과도기적 현상이 아니라 새로운 생활의 발견이며 거대하게 저변을 넓혀가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굳어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완벽한 싱글>(김용섭, 부키)이라는 종족이 등장한 것은 2013년입니다. 싱글은 “연애 여부와 상관없이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지만 ‘완벽한 싱글’은 “자신이 싱글임을 자각하고 계획적, 자발적으로 싱글 라이프를 누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완벽한 싱글’은 “싱글이든 더블이든 대가족의 일원이 되든, 매사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선택하며 그 중심에는 항상 자신의 행복과 독립성, 자유라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화려한 싱글’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헬렌 브라운의 <나는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좋다>가 등장한 1994년입니다. 이즈음 정보화와 세계화라는 새로운 거센 물결이 시작됐지요.

몇 년 뒤인 외환위기 직후에는 30~40대의 높은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골드미스’가 등장해 화제가 되었지요.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결혼이 아니라 연애마저 완벽히 거부하는 비연애 담론이 등장했습니다. 비연애주의자들은 인간이 아닌, ‘종이 인간’(만화의 캐릭터), 아이돌, 반려동물 등을 연애 대상으로 삼거나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덕후’(마니아)가 되어 “하루에도 수십번씩 천국과 지옥에 동시에 담갔다 뺐다 하기도 하는 덕질”하기에 바쁩니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모두가 ‘비연애 선언’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결국 인류의 종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만 할 수도 없습니다. 2016년 1월18일 스위스 다보스포럼을 주관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은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 “인공지능·로봇기술·생명과학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향후 5년간 선진 15개국에서 일자리 710만개가 사라지게 하고, 신규 일자리 200만개가 새로이 창출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서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전 세계 7세 어린이의 65%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일자리에서 일하게 될 전망”이라고 했습니다.

<노오력의 배신>(조한혜정·엄기호 외,

창비)에서는 “헬조선이 처해 있는 현실이자 삶의 조건이라면, 노오력은 지옥의 늪에 빠진 이들에게 할당된 몫”이라고 말합니다. 100%만 달성하면 합격이던 시대에서 벗어나 200%, 300%를 초과 달성해도 “삶은 발가벗겨지고 법 밖으로 추방”되는 “생존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배제와 추방이라는 두 죽음 사이의 선택”만 존재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근대는 ‘하면 된다’의 노력으로 출발해 ‘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을 지나 ‘해야 한다’는 ‘노오력’으로 결국 삶을 파괴하는 파국에 도달”했습니다.

더구나 미래마저 불투명한 세상에서 자신이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취득한 지식마저 하루아침에 무용지물이 되는 세상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 아닐까요? 남들이 강권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빠지거나 말을 잘 듣는 동물에게만 헌신하는 것 말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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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미국 사람들은 칠면조 요리를 먹습니다. 추수감사절 하루 전날, 칠면조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 1년 동안 칠면조들은 행복했습니다. 농부가 아침 6시면 먹이를 줬어요. 아무리 똑똑한 칠면조라도 그 농부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추수감사절 아침, 자신의 인생이 급격하게 바뀔 것이라고 예상하긴 어려워요. 1년 내내 똑같은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죠. 하지만 추수감사절 아침 칠면조의 인생은 급격한 변화를 겪습니다.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죠. 이것이 특이점입니다.”

인공지능에 대해 다룬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동아시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김영사)에서 2045년에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지금은 빠르면 10년 이내일 것으로 예측됩니다. 우리가 일상을 즐기던 칠면조처럼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았으니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착각하다가는 칠면조처럼 한순간에 목숨을 잃게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김대식 교수는 인공지능 시스템이 도입됐을 때 가장 위험한 직업으로 콜센터 직원들을 꼽습니다. 지금 미국의 대기업들은 애프터서비스를 접수하는 콜센터를 인건비가 싼 인도나 필리핀에 두고 수십만 명을 고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Her>에서 인공지능이 8316명과 동시에 마음을 나누고, 그중 641명과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기계가 동시에 수백만 명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다면 수십만 명의 일자리는 하루아침에 없어져”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김 교수는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화이트칼라족, 데이터를 가지고 일을 하는 직업들이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직업이 위기를 맞더라도 세 카테고리의 직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첫째, 사회의 중요한 판단을 하는 직업들인 판사, CEO 등은 자동화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둘째, 인간의 심리, 감성하고 연결된 직업들은 살아남을 것입니다. 약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상상하기 때문이죠. 셋째, 가장 큰 카테고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직업입니다.”

딥러닝을 기반으로 만든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그런데 딥러닝의 기반은 데이터입니다. 그러니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데이터가 없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데이터를 만들어내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방영되고 있는 뻔한 드라마는 딥러닝 기계가 1분에 1000편을 쓸 수 있기에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스토리를 쓸 수 없는 방송작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이런 일이 “20~30년 후에는 벌어질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이 아닐까요? 지난 3월9일 이세돌과 알파고가 첫 대결을 벌이고, 총 다섯 판의 바둑을 둔 이후 우리는 인공지능에 대해 크나큰 두려움을 갖게 됐습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큰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이런 이벤트가 한국에서 벌어진 것이 어쩌면 천만다행이지 싶습니다.

여러분 주변을 둘러봅시다. 이미 모든 분야에 ‘알파고’가 속속 도입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축설계사가 설계도면을 그리려면 평면도, 단면도, 입면도를 따로 그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네댓 명으로 구성된 팀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시스템의 도입으로 3D 상태의 도면이 만들어지게 되자 이런 일은 창의력 있는 한 사람이 혼자서 해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돈벌이가 되던 고난도의 일이 빠르게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지금 ‘알파고’는 잘나가던 중산층의 일자리부터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누굴까요? 바로 강남의 1% 부자들입니다. 강남부자들은 이미 아이들의 조기유학과 명문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을 터득하는 사교육을 남들보다 앞서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진짜 걱정해야 될 세대는 기계가 못하는 것을 할 줄 알아야 하는 지금의 10대라고 주장합니다. 10대들은 “언제든지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세상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무엇이 필요하다고 최대한 빨리 결론을 내서 거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김 교수는 “약한 인공지능, 인지자동화가 실천되는 순간 창의성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립니다. 창의적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여기서 창의적이란 새로운 가치, 즉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 혹은 처한 상황과 세상을 냉철하게 분석할 수 있는 능력, 또는 분석해서 얻어낸 결론을 내가 실천할 수 있는 도전정신과 같은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얼마 전 치른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보수적인 중산층이 살던 지역에서 의외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라 불리는 강남에서도 야당이 승리해 큰 화제가 되었지요. 물론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대착오적인 노동법이나 사이버테러방지법 등에 집착하고 있는 정부와 새누리당에 기대할 바가 없어서는 아닐까요? 일부에 그치고 있지만 ‘딥러닝’을 시작할 정도로 미래의 대처가 빠른 이들이 밥그릇 싸움에만 혈안이 된 정치인들에게 지쳐 그들에게 경각심을 안겨 주려 한 것은 아닐까요? 선거 결과는 ‘여당의 참패’로 끝났습니다. 이제는 현실을 직시하고 국민을 불안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대책들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 누구보다 정치인들에게 ‘창의성’이 시급해 보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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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사는 80대의 어머니에게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50대의 아들이 찾아왔습니다. 농촌의 오래된 집이어서 방은 충분했습니다. 처음에 어머니는 아들의 귀향을 무척 반겼습니다. 그러나 곧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알량한 연금으로 생활하다보니 적자가 계속되었고, 얼마 되지 않는 연금은 곧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반년이 지나 아들이 뇌경색으로 쓰러졌습니다. 주변의 도움으로 아들의 병원비는 겨우 해결했지만 퇴원한 아들은 후유증으로 재취업이 어려워 집에만 틀어박혀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노후파산>(NHK 스페셜 제작팀, 다산북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고령인구가 3000만명을 돌파해 초고령사회가 된 일본에서는 600만명의 고령자가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중 절반인 300만명이 생활보호수급 이하의 연금수입자인 일본에서 생활보호수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70만명에 불과합니다. 200만명 이상이 목구멍에 풀칠하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알량한 연금은 계속 줄어들고, 의료·간병비의 부담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저금도 없이 살아가는 고령자들은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런 노인들에게 직장을 잃은 자식이 찾아와 부모와 자식이 동반 추락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돈이 있는 사람도 불안감에 빠져 평생 저축을 끌어안고 살다가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재산을 상속하는 사람들의 평균연령이 67세니 상속받은 이는 다시 그 돈을 끌어안고 살다가 죽는 일이 반복됩니다. 그러니 소비시장은 얼어붙고 사회는 활력을 잃어 갑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2060년이면 60세 이상 인구가 위쪽에 몰려 있는 ‘역피라미드’형이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지난 3월23일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지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중위연령’(전체 인구를 나이에 따라 한 줄로 세웠을 때 중간에 있는 사람의 연령)은 2014년에 40.2세로 처음으로 40세를 넘어섰지만 2040년이면 52.6세, 2060년이면 57.9세가 됩니다.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인구는 2015년에 17.9명이었지만 2040년 57.2명, 2060년 80.6명으로 급속히 불어납니다.

작년에 생산가능인구 5.6명이 노인 1명을 부양했다면 2060년에는 생산가능인구 1.2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합니다. 이미 노인 빈곤율이 절반에 육박하는 우리나라에서도 100만명의 독거노인 중 하루 한 끼의 식사로 살아가는 노인이 30만명이나 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건강문제로 노인 10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로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는데, 이것은 단순히 이야깃거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중산층의 일자리를 급속하게 빼앗고 있습니다. 인공지능까지는 아닐지라도 돈벌이가 되는 고난도의 일들이 소프트웨어로 대체되고 있어 지식노동자들의 불안감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2014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된 한 인문학자의 ‘엄마가 세상을 바꾼다’는 강연을 들은 이들의 약 80%가 중장년의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들 중에는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안정된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례는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이들마저 심각한 위기감 속에서 헤쳐나갈 방안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보고서 ‘2015 해외 주요국의 독서실태 및 독서문화진흥정책 사례 연구’(책임연구자 김은하)에 따르면 우리나라 16~24세의 독서율은 87.4%(OECD 평균 78.1%)로 조사국 중 가장 높습니다. 하지만 25~34세는 85.1%(OECD 평균 77.7%), 35~44세는 81.4%(OECD 평균 77.7%), 45~54세는 68.8%(OECD 평균 75.8%), 55~65세는 51%(OECD 평균 73.9%)로 연령이 높아지면서 독서율이 점점 하락합니다. 특히 45세 이후에는 급감해 55~65세의 독서율이 조사국 중 꼴찌여서 우리나라 전체 독서율 평균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중·노년층의 비독자에 대한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다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독서와 도서관 문화에 익숙한 선진국의 중·노년층과 달리, 우리나라의 45세 이상 중·노년 세대는 학교 수업에서 교과서 외 도서를 수업 교재로 사용한 적이 없고, 어린 시절 도서관의 경험도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은퇴 이후의 독서가 주는 지적·정서적·실용적 유용성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요.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미래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미래학자들은 앞으로 인간이 120세까지 살면서 29~40종의 직업을 전전할 것이라고 예측하지요. 이제 우리는 어떤 자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읽고, 쓰고, 토론하는 일이야말로 인간이 진정한 생존법을 터득하는 길이겠지요.

문화부는 올해 중장년층의 독서율을 끌어올리려는 여러 정책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전자책의 등장 이후 종이책 종말론은 끊이지 않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건재한 것처럼 기술이 발달해도 인간은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계속 찾아낼 것입니다.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후파산’이라는 비극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책 읽는 습관을 길러 무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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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시장의 세계화를 이끈 아마존닷컴(이하 아마존)이 온라인에서 책을 팔기 시작한 것은 1995년 7월입니다. 이 해에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95를 출시했고, 세계무역기구(WTO)도 출범했습니다. 1995년은 그야말로 정보화와 세계화의 운명적인 해였습니다. 그로부터 20년이 막 지났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발명으로 시작된 종이책의 역사에 비하면 겨우 출발점에 선 것에 불과하지만 지난 20년의 변화는 너무 가팔랐습니다.

20세기 말에 종이책의 종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에 종이책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한 사람들은 디지털 기술로 열풍을 일으켜 일확천금을 노려보려는 정보상업주의자들, 신문과 책에 놓이는 정보가 같다고 보는 언론인들과 신문방송학과 교수들, 그리고 천방지축 날뛰던 일부 출판인들 등 네 부류였습니다.

종이책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지만 책 세계의 유통, 생산, 소비 시스템에는 엄청난 혁명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심에는 책을 미끼상품으로 활용해서 세계 최강의 종합 인터넷 유통업체로 성장한 아마존이 있습니다. 아마존은 이제 구글, 애플과 함께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플랫폼 기업이 되었습니다.

아마존은 2005년부터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직접 단편을 의뢰해 만든 종이책을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2010년 킨들을 출시한 이후부터는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임프린트)를 차려 종이책과 전자책을 동시에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아마존은 판매만이 아니라 책의 기획부터 소비까지 출판 전체를 지배하는 세계적인 체제를 다져나가고 있습니다.

제이슨 머코스키가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흐름출판)에서 지적했듯이 아마존이 생산한 전자책은 “소설, SF소설, 연애소설, 뉴욕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포르노물” 등에 불과했습니다. 아동·청소년용 교과서나 교양서는 “의미 있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제이슨 머코스키의 지적처럼 “전자책 혁명의 핵심적 모순”입니다. 지금 미국 전자책 시장 매출의 절반은 성행위에 큰 비중을 둔 로맨스소설을 뜻하는 ‘에로티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책의 유통과 생산에 있어 아마존이 주도권을 잡은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책 소비 자체를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닙니다. 아마존이 2015년에 시애틀에 평점과 사전주문량, 판매량 등을 토대로 엄선한 6000권의 책을 진열한 오프라인서점 ‘아마존북스’를 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서점에서 지금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내세웠지만 아마존조차도 전자책마저 독자가 눈으로 직접 책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속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비슷한 시기에 뉴욕 독립서점의 상징이던 리졸리서점도 다시 문을 열었으며, 세계 최대 출판사인 펭귄랜덤하우스는 오프라인 독립서점의 출점과 독립서점을 통한 독자들의 커뮤니티를 돕고 있습니다. 국내 최대의 온라인서점 예스24도 이제 오프라인서점을 개설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에 그랬듯 앞으로도 종이책과 전자책 어느 일방의 승리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책 세계는 종이책이 중심이되 종이책에 디지털 감성을 입히는 방향으로 진전되고 있습니다.

두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스마트페이퍼’는 종이가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노트에 손으로 쓴 글을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바로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되어 자동으로 보관, 검색이 가능해집니다. 이 노트들을 편집해 세계 유일의 종이책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미디어창비에서 최근 펴낸 인간과 동물(곰)의 아름다운 우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그림책 <위니를 찾아서>는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날로그 종이책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책들이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실용서와 사전, 오락용 도서들은 구태여 종이책으로 생산되지 않는 세상이 올 수도 있지만 말입니다.

수많은 정보가 컴퓨터 안에 존재한다고 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의미를 발생시키지 못합니다. 정보화 사회라는 말을 최초로 만들어낸 우메사오 다다오는 정보는 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아 인간이 일부러 끄집어내서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가치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상식이자 본질입니다. 검색으로 간단하게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책장을 손으로 넘기며 찾아가는 감동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한 권의 종이책을 플랫폼으로 활용한 새로운 상품들이 줄줄이 등장해 인간의 독서행위를 돕게 될 것입니다.

최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으로 취임한 이기성 원장은 1차 목표로 ‘향후 10년을 내다 본 전자출판의 인프라 마련’을 제시했습니다. 2000년대 내내 전자책 산업을 키운다며 밑 빠진 항아리에 물을 붓듯 직접 지원비를 쏟아부었지만 한국의 전자책 업체들은 거의 망했습니다. 전자책 관련 학자들이나 단체, 업체는 한마디로 ‘세금 약탈자’에 불과했습니다. 그 약탈자들과 함께했던 신임 원장이 다시 그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고 있는 형상이지요.

지금 출판사들은 종이책과 전자책을 구분하지 않고 종이책과 다양한 미디어를 연계하는 ‘원 소스 멀티 포맷’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부디 신임 원장도 새로운 출판 미래를 준비하는 출판사들을 지원하는 제대로 된 인프라를 마련해주시길 바랍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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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정당들이 새로 영입한 인물들을 세워놓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일이 거의 날마다 벌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직업이 변호사 등 법조계 출신입니다. 대부분 시험 하나를 잘 봐서 세상에 위세를 떨치며 살아온 이들입니다. 극악무도한 독재 권력의 시대에는 ‘법정에서의 민주화 투쟁’으로 많은 감화를 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요? 주로 가진 자들의 이익이나 챙겨주며 살아온 이들 아닐까요? 그런 사람들에게 과연 우리들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제가 이들의 실력을 깡그리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공정한 시험’이라는 ‘사법시험’의 관문을 통과한 ‘수재’들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시험이 과연 공정했을까요? 인간성까지 살펴보는 정성평가가 아닌 정량평가인데다가 컷오프로 통과자만 가려내는 객관적 시험이 과연 무엇을 평가했을까요? 어쩌면 ‘굉장히 편협’한 시험이 아닐까요?

우리 출판시장에서는 늘 ‘공부’라는 키워드가 가장 확실한 블루오션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다룬 베스트셀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회학자 엄기호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의 대담집 <공부 중독>(위고)은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그런 공부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외려 삶을 질식시킨다”고 충고합니다.

“공부의 과정은 삶의 무능력자들만 체계적으로 양산하고 있다. 똑똑하되 멍청하며, 언변은 좋되 무능하다. 시험 문제는 잘 풀되 삶의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은 형편없으며, 남을 품평하는 데는 날카로운 날을 세우되 자신을 성찰하는 데는 무디기 짝이 없다. 하나를 배워 다른 하나에 적용할 줄 아는 게 아니라 다른 하나가 내가 배운 하나와 다르다고 멘붕하고 열폭한다. 그건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배울수록 무능력해지고, 배울수록 화만 내는 처지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엄기호)

“공부의 블랙홀에 빠진 부모는 공부에 중독된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온다. 공부 백 퍼센트짜리 순도 높은 존재일 뿐, 사회성, 공감능력, 유연성 같은 요소는 상대적으로 결핍된 상태다. 공부로 승부하는 나이는 이십대 중반까지이고 그 후에는 다른 요소들이 더 중요할 수 있는데, 이 요소들이 모자란다고 느끼면 역시 공부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기며 책과 학원을 찾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런 악순환에 빠져 있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다. 공부라는 블랙홀이 학교를 넘어서 사회와 인생을 빨아들이고 있다.”(하지현)

이 책에서 하지현 선생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연애연구소를 운영하는 분이 기업 교육을 나가서 ‘연애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가르쳤습니다. 제일 반응이 좋은 직업군이 판검사와 의사였습니다. ‘이럴 땐 이렇게 하고, 저럴 땐 저렇게 해라’라고 이야기해주는 것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장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이마트 직원들이었습니다. 이분들은 늘 사람을 대하고 있으니 연애 기술(즉 사람 대하는 기술) 같은 것은 배울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더욱 문제인 것은 과거에 굉장히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노선’들이 거의 다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 선생은 “10년 전에 비하면, 법률직, 의사직, 교사직, 심지어 공무원들조차도 이제 안전성이 불확실해지고 있어요. 그래봤자 길어야 15년에서 20년”이라며 이들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봅니다. 이게 시험 하나로 세상을 편하게 살아온 ‘수험엘리트’들에게 마냥 미래를 맡길 수 없는 결정적 이유 아닐까요?

최근 개성 공단 폐쇄의 과정에서도 수험엘리트들은 공감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즉흥적이고, 통찰력 없고, 구호만 요란”(경향신문 2월13일자 1면 머리기사 제목)한 일방적인 주장만 늘어놓았습니다.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 그들이지만 삶의 과정에서 터득한 것이 거의 없기에, 아니면 최고 권력자의 정신분열적인 결정에 무리한 답을 꿰맞추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대안은 감성을 자극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간접 경험이 되는 소설 읽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흔이 되어서야 노년과 삶에 관한 <어떻게 늙을까>(뮤진트리)를 펴낸 영국의 전설적인 편집자이자 작가인 다이애너 애실은 “소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독자를 붙든다. 스릴이나 이국적인 것을 제공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도 해주고, 풀어야 할 수수께끼를 던지기도 하고, 몽상의 소재들을 제공하고, 인생을 돌아보게도 해주고, 자신과는 다른 삶들을 보여주고, 인생을 판타지로 볼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기도 한다. (…) 또 최고의 책들은 독자를 완벽히 현실처럼 보이는 세계로 데려가 생생한 경험을 하게 해준다”고 말했습니다.

주제 사마라구의 마지막 장편소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여 최초의 살인자가 된 카인이 전지전능한 하나님에게 왜 끊임없이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느냐고 대드는 소설입니다. 이처럼 소설은 하나님의 논리에서마저 허점을 찾아내며 상상력을 무한대로 키워줍니다. 최근 한국소설은 너무 팔리지 않았습니다. 소설을 읽지 않아 공감 능력을 키우지 않으니 지옥의 축생처럼 서로 나뉘어 미친 싸움만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니 제발 소설 좀 읽읍시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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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시장이 심각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과잉생산이 심각한 제조업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출판시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에 출판의 ‘명가’로 군림하던 출판사일수록 직원과 신간 종수를 줄이며 겨우 버텨 나가는 상황입니다. 과연 이런 방식으로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거에 ‘골목’을 지키며 대장노릇을 할 때는 잘 하면 호가호위도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글로벌 상상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이른바 전 세계를 압도하는 창조력이 발휘된 상품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입니다.

인건비를 비롯한 제반 비용은 증가하는데 책값은 올리기 어렵습니다. 경제는 조금이나마 성장한다고 하는데도 물가가 떨어지는 ‘디플레이션’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그랬습니다. 모타니 고스케가 <일본 디플레이션의 진실>(동아시아)에서 밝히는 논지는 간단합니다. “경제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경기의 파도가 아니라 인구의 파도, 즉 생산가능인구=현역세대 수의 증감”이라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고령자의 급증’을 몰고 온 것은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입니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448만명의 단카이 세대가 은퇴했지만 그로 인한 빈자리를 대졸자 등 신규 인력이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1973년에 209만명이던 출생자 수는 2007년에 109만명까지 떨어졌습니다. 저자는 “일본인의 노화에 따른 인구의 파도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해수면의 상승처럼, 장소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를 덮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일본 경제를 좀먹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 따른 내수 축소”에 대한 처방으로 제시되기 쉬운, “생산성을 올려라, 경제성장률을 올려라, 경기대책으로 공공공사를 늘려라, 인플레이션을 유도해라, 친환경에 대응하는 기술 개발로 제조의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지켜라 등에는 실효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추세를 조금이라도 둔화시키기, 생산가능인구에 해당하는 세대의 개인소득 총액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 (생산가능인구+고령자에 의한) 개인소비 총액을 유지하고 증가시키기라는 세 가지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대책으로는 고령 부유층에서 젊은 세대로의 소득 이전 촉진, 여성 취업의 촉진과 여성 경영자의 증가, 외국인 관광객 및 단기 체류자의 증가 등을 내놓았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젊은이들의 소득을 늘려주고 고령자들의 소비를 촉진하거나 ‘장롱예금’ 같은 고령자의 자산을 젊은 세대에게 서둘러 상속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축을 끌어안고 살다가 죽게 되는 노인들의 재산을 상속하는 이의 평균연령이 67세라고 합니다. 상속받은 이가 다시 그 돈을 끌어안고 살다가 죽는 일이 반복되니 그 돈의 일부라도 미리 세상에 풀어서 젊은 세대가 활용하게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여성의 일자리를 늘려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혹여 “국제경쟁력 유지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현역세대를 대상으로 한 상품을 헐값에 팔아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기업”은 자살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저자는 일본이 ‘동네의 보석가게’라고 말합니다. 이웃들에게 돈이 없으면 보석가게는 손님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웃인 한국, 중국, 대만이 성장하면 할수록 비싼 제품이 잘 팔려서 일본은 돈을 벌었습니다. 미국을 비롯한 중국, 한국, 대만, 러시아,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대일본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프랑스와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대일본 흑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는 천연자원의 수출국가도 아니고 첨단기술 제조업 입국(立國)도 아닙니다. 저자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에는 일본 제품이 브랜드력에서 따라잡지 못하는 고급품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첨단기술 제품이 아닙니다. 식품, 섬유, 가죽공예품, 가구와 같은 ‘경공업’ 제품이 일본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식품 중에서도 가장 원시적인 물, 저는 딱히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에비앙’조차 일부러 프랑스에서 운송해 팔고 있습니다. 와인도 일본의 가정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 그런 이유에서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프랑스나 이탈리아나 스위스의 제품입니다. 그것도 식품, 섬유, 가죽공예품, 가구와 같은 ‘경공업’ 제품에서 ‘브랜드력’으로 승리하는 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80% 이상이 가업을 승계한 기업 경영자들은 오로지 직원들을 해고해서 인건비라도 줄이며 겨우 살아남으려 안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건비 절감을 통해 몇 년은 겨우 버틸 수 있겠지만 과연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오로지 시험을 잘 봐서 고위 관직에 진출한 ‘수험엘리트’들은 죽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부동산 경기를 부추기는 것으로 경제를 운용하다가 그마저도 힘들어지니 이제 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려고 국민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마저도 그들의 하수인이나 되는 것처럼 거리에서 ‘파견노동’이 가능하도록 노동법을 개정하라고 서명하며 국회를 압박했습니다. 지금의 현실에서 무엇보다 고민해야 할 것은 진정한 ‘창조경제’가 아닐까요. ‘브랜드력’은 ‘파견노동’으로는 절대 키울 수 없으니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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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있다. (…) 대학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만인의 관심을 받던 남학생, 또는 교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여학생을 20년 후에 만나면, 냉소적인 알코올 중독자나 지친 모습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중산층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방향 감각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경제적 여유도 있고 탄탄한 자격증도 있는 개인이 오늘날 안전망도 없으며 언제라도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느끼는 까닭은, 자립하려는 노력과 공동체적 연대감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기”에 중산층은 단순한 분열의 차원을 넘어 갈가리 찢어졌다는 것이지요.

일본의 예를 볼까요? 일본은 대다수 기업이 ‘잃어버린 20년’의 긴 터널 속에서 인건비를 철저하게 삭감하면서 이익을 확보하는 경영 전략을 수행했지만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양육비에, 주택비 부담, 부모 부양비 등이 더욱 가중되었지요.


일본에서 은퇴를 한 단카이세대(1947~1949년생)는 전체 인구의 약 5%를 차지하고 고령 인구 비율은 거의 30%에 이릅니다. 젊은 세대가 투표장을 찾지 않기 때문에 고령자의 투표를 통한 발언권이 상당하지요.

데라시마 지쓰로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은 <2016년의 논점>(문예춘추)에 실린 “단카이세대, 책임을 다하라”는 글에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의사결정의 핵심을 현역에서 은퇴한 단카이세대가 짊어지는 실버데모크라시의 시대로 돌입했다고 말합니다.



그는 2016년에 “단카이세대가 과연 일본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는 우산 위의 눈이 될 것인가, 눈을 털어내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는 데 급급하여 세금의 분배에 열을 올릴 것인가, 일본 전체의 미래를 생각하여 행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인데, 그 선택이 일본의 명운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단카이세대에게는 뛰어넘어야 할 두 가지 큰 벽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정치신념이나 사상·철학, 이념, 나아가 문화적 가치보다 경제를 중시하는 가치관인 ‘경제주의’입니다. 일본은 패망 이후 오로지 부흥과 성장에 매진하며 경제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사회를 만들었는데 단카이세대는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살아왔습니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966년 1000달러를 넘어섰고, 1981년에는 1만달러를 기록했습니다. 이 ‘황금의 15년’ 동안 10대에서 30대의 청춘기를 보내면서 성장하는 경제가 가져온 풍요를 누린 단카이세대는 경제만이 현실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생활주의’입니다. 이것은 서구 근대에서 태어난 ‘개인주의’와 유사하면서도 다릅니다. “‘개인주의’에는 국가 권력과 대립하는 긴장과 갈등 속에서 ‘개인’을 확립하려는 기개가 있었지만, ‘사생활주의’에는 그것이 없”습니다. 단지 ‘내 뜻대로 살고 싶다’ ‘아무에게도 간섭받고 싶지 않다’고 주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도 단카이세대는 지금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국가에 복지를 요구하면서 정년 후에도 유유자적 취미 생활을 즐기며 살고자 하니 사회는 기능을 잃어버리고 표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연초에 60세가 넘은 <은퇴자의 공부법>의 저자들과 함께 여행을 하며 우리 사회의 노인의 역할에 대한 토론을 벌였습니다. 저는 한 독자가 이 책의 독후감에서 지적한, “갖고 있는 돈 움켜쥐고 은퇴 후에 더 악착같이 벌어야 한다는 식의 사회분위기, 인생 100세 시대를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아느냐면서 개인에게 공포심을 자극하는 사회, 여유란 사후세계에나 가능한 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노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강연과 토론을 하며 인생의 새로운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그들은 겸손한 자세로 자식 같은 젊은이들과 문학서와 인문서적을 함께 읽으며 토론을 벌이니 스스로가 변하게 되면서 일도 점차 늘어났다는 경험담을 털어놓더군요.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덩달아 변한 것은 당연했고요.

지금 고령자들은 크게 늘어난 수명을 어쩌지 못해 불안해하면서 돈에만 집착하거나 사생활만 중시합니다. 하인츠 부데와 데라시마 지쓰로는 불안 극복의 해결책으로 ‘공동체적 연대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결론내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을 공동체’에서 불안을 극복할 지혜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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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밖에 남지 않은 2015년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은 80만부를 넘긴 <미움받을 용기>(인플루엔셜)입니다.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들러의 가르침을 철학자인 기시미 이치로와 프리랜서 작가인 고가 후미타케가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 형식으로 풀어낸 이 책은 올해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렸습니다. 이제 기시미 이치로의 책들이 원서에도 없는 ‘용기’라는 이름을 줄줄이 달고 번역 출간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1월21일에 발표한 한 글에서 이 책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은 것은 아들러의 주장이 ‘사토리(득도) 세대’의 의식구조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썼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성적보다 자율성을 강조하는 ‘유토리 교육’을 받은 이 세대는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스마트폰 세대’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검색으로 거의 모든 정보를 얻고, 언제 어디서나 엄지손가락으로 글을 써서 주변 사람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액정화면을 통해 이성이 아닌 감성을 느끼는 세대입니다.

일본은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65세가 넘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노령화되고 있는 나라입니다. 2060년에는 그 비율이 40%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생활보호기준에 해당하는 고령자 및 그 우려가 있는 고령자”로 불리는 ‘하류노인’이 700만명, 혼자 사는 노인이 500만명인 나라입니다. 올해에도 NHK에서는 고령자의 빈곤을 다룬 프로그램을 몇 편 잇달아 방송했고, 여러 미디어에서는 ‘간병 퇴직’이나 ‘노후 파산’을 메인 특집으로 내세우며 고령자의 빈곤과 격차의 문제를 제기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미디어의 주된 관심은 ‘노인세대’였습니다.

책 시장에서도 103세의 고령임에도 현역에서 맹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미술가 시노다 도코가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엄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법과 즐기는 법을 전수하는 <103세가 돼서 알게 된 것? 인생은 혼자라도 괜찮아>가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달렸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아온 시노다는 이 책에서 “100세를 넘으면 어떤 식으로 나이를 먹으면 좋을까, 저도 처음이라 경험이 없어서 당황”한다면서 “모두 스스로 창조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또 “100세가 넘으면 인간은 차츰 ‘무(無)’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하나의 예로 나는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면 전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과 나와의 사이에는 붓이 있을 뿐, 단지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 무의식중에 자연스럽게 완성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경지의 작품”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이른바 ‘지성’이나 ‘윤리적 판단 능력’이 아닙니다. 오로지 인간적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남는 것입니다. 너무 길어진 수명 때문에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교양’의 개념부터 달라지고 있습니다.

모리모토 안리 국제기독교대 학무부학장은 <2016년의 논점 100>(문예춘추)에 실린 ‘대학교육과 반지성주의’라는 글에서 “교양이란, 요컨대 인간이 손에 넣을 수 있는 지식 같은 게 아니다.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그 지(知)를 얻은 사람의 인격에 반드시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방식으로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교양은 어떻게 터득할 수 있을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청년들이 “흔들리는 실존의 물음에 직면하면서 고통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결단의 순간 고려해야 할 선택지를 찬찬히 바라보며, 그것이 가져올 파장을 가늠해”볼 때 사람은 “자신의 가능성과 한계를 알게” 됩니다. 이때 바꿔야 할 것을 바꾸고 받아들여야 할 것을 받아들이면서 양자를 구분하는 통찰력을 기르게 됩니다. 모리모토는 결국 교양이란 “이렇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지성”이라고 결론내립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미움받을 용기>도 한 ‘교양’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겠다는 의욕이 없고, 도박을 하지 않고, 해외여행에 관심이 없고, 대도시보다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관심이 많고, 연애에 담백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사토리 세대’는 ‘지금 여기’라는 신변에서 가까운 행복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남에게 무시당하는 일입니다. 그들이 욕을 먹을 각오로 일을 하면 못 이룰 것이 없다는 것을 철학자의 말을 빌려 하고 있으니까요.

이런 성향을 가진 ‘사토리 세대’를 한 보수신문은 ‘달관세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빼닮은 한국의 젊은이들은 ‘절망세대’가 맞습니다. 이제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어 ‘N포세대’로도 불리는 그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던 ‘이케아 세대’(1978년생 전후)가 대부분 비정규직에 머물며 방황하는 모습을 목도하고는 어떤 시도조차 포기한 채 좌절하고 있습니다.

‘금수저’나 ‘다이아몬드 수저’라는 스펙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극단적 비관을 하게 된 그들이 가장 열심히 읽은 책이 <미움받을 용기>입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도 곧 지식 생산 기능을 상실한 학자가 아니라 후반생의 문을 화려하게 연 이들에게서 교양이나 지혜를 갈구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그것에다 ‘스토리두잉(storydoing)’이란 문패를 달아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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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교육이야말로 성공의 열쇠이며 능력주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우수한 교육을 받고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면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고 그 덕분에 한 단계 높은 계층으로 올라서고 있다고 강력하게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교육은 능력적 요인이 될 수 있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사이)의 저자들은 이런 능력주의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배경, 학교와 교육 시스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부의 상속, 특권의 세습, 차별적 특혜, 사회 구조적 변화 등 비능력적 요인이 능력을 이겨버리는 세상에서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오히려 학교와 교육은 “불평등한 삶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일 뿐이라고 단언합니다.

나이 서른셋의 지방대 시간강사가 대학원에서 공부한 과정과 시간강사로서의 처참한 삶을 담담하게 정리한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309동1201호, 은행나무)는 그런 단언이 사실임을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이 책이 들려주는 대학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정년을 채운 교수들이 퇴임하면 기다렸다는 듯 그 자리를 지우고 비정년 트랙 강의 전담 교수를 채워 넣는다. 그리고 ‘해임’한다. 대학은 나름대로의 신자유주의적 생태계를 구축해가고 있는 것이다. 학부생과 대학원생, 심지어는 졸업생의 값싼 노동력으로 행정의 최전선을 채운다. 4대 보험이나 퇴직금 명목조차 없는 4개월짜리 계약서를 받아든 시간강사들이, 2년짜리 비정년 트랙 교수들이 강의를 책임진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주에 60시간만 일해도 건강보험이 되는데 이 땅의 대학에서는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라 할 수 있는 4대 보험조차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면, 참 슬픈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교수의 책을 나르다 다쳤지만 모든 책임을 자신이 져야 했던 슬픈 고백을 털어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참고 일해도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가 된다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힘든 세상입니다.



이런 대학에 전망이 있을까요? <빅 픽처 2016>(김윤이 외, 생각정원)은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온라인 공개강좌인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로 인해 “15년 내에 미국 대학의 50가 사라질 수 있다”는 <혁신 기업의 딜레마>의 저자이자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하버드 교수의 주장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여와 개방’을 표방하는 무크는, 무료로 전 세계의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에 교육 불평등을 다소 해소할 수 있으며, 학점·크레디트와 상관없이 지식 향상, 교육 기회 확대, 교육의 접근성 증대 등을 위한 사회적 서비스이며, 교육 방식이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평생교육 시장을 확대하고 있고, 수강생이 불특정 다수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곧 무크가 활성화될 것이기에 우리나라의 대학은 곧 셋 중 둘은 도태될 것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 지방 강연을 끝내고 50대 초반의 수강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한 지방 명문고의 성적 우수자들이 이른바 ‘스카이’ 진학을 포기했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지방대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면 부모의 등골도 보호해주고 부모님 생전에 가족끼리 훈훈한 삶을 좀 더 길게 살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더군요.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학력지상주의’라는 공고한 장벽에 드디어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5년 이내에 셋 중 한 사람은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자리에서 제 이야기를 들은 이는 이미 부잣집 아이들은 5명 정도가 모여 새로운 학습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려주더군요.

또 다른 이는 한 사교육업체가 35개의 프랜차이즈를 두고 이와 비슷한 교육을 펼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신호가 파란불일 때는 건너고 빨간불일 때는 건너지 말라는 단순 지식만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교육업체는 그런 약속의 의미와 함께 창조적인 방법으로 다양한 약속을 만들어내는 창조력을 가르칩니다. 이제 지식을 단순하게 전달하는 학교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앞서나가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몇 년 이내에 학교는 맞벌이로 아이를 돌봐줄 수 없고 사교육도 시킬 수 없는 가난한 집의 아이들만 득실거리는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걸 이기는 방법이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함께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글을 써보는 것입니다. 마을마다 작은도서관을 만들어놓고 그곳에서 동년배끼리, 혹은 여러 세대가 함께 책을 읽고 토론부터 벌이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터넷으로 모든 지식의 공유가 가능해진 시대에 ‘흙수저’가 ‘금수저’를 이겨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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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저는 지방 여러 곳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이동거리가 길어서 힘들었지만 무척 뿌듯했습니다. 주로 40~50대의 사람들이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제 강의를 열심히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60~70대의 남성들도 다수 참여해 열심히 들어주시는 모습에 당혹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강연투어에서 저는 한 지방 명문사립고에서 성적이 매우 우수한 학생들이 ‘스카이’에 원서 내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는 이야기에 크게 감동했습니다. 비싼 돈을 들여 서울 유학을 해도 취업도 되지 않는 마당에 무리할 필요 없이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진학해 부모의 부담이라도 덜어주겠다고 했다더군요. 가족들과 하루라도 더 같이 지내며 함께 책을 읽어보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하더군요.

2010년 3월에 창간되어 6년째에 접어든 월간지 ‘학교도서관저널’의 발행인인 저는 지난해 9월부터 성인들의 독서와 관련된 책을 여러 권 펴냈습니다.

<이젠, 함께 읽기다> <책으로 다시 살다> <서평 글쓰기 특강> <문학은 노래다> <은퇴자의 공부법> <당신은 가고 나는 여기> 등은 오로지 함께 책을 읽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책들입니다. 이 책들의 기획자들은 독서공동체를 지향하는 숭례문학당의 참여자들입니다.

요즘 숭례문학당의 학인들도 무척 바쁩니다. <서평 글쓰기 특강>의 공동저자인 김민영씨는 지난 토요일에 부산 영광도서에서 강연을 하고는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는 소감을 전해 왔습니다. 대전과 김천에서도 독자들이 달려와서 자리를 꽉 채웠다더군요. 책을 읽고 나서 정리가 안된다고 하소연하는 학생들에게 아무 조언도 할 수 없어 갑갑했다던 한 교사는 이런 강의를 아이들에게 직접 들려주어야 한다며 좋아했다더군요.




저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성적지상주의’라는 견고한 성에 이제 본격적으로 균열을 내는 일이 확산되는 것 같아 무척 기뻤습니다. 함께 책을 읽으며 스스로 밝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점차 늘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독서운동을 하는 몇 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더니 그들도 우리 사회에 책을 함께 읽어야 한다는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심지어 “도서관이 중심이 아닌 학교는 학교도 아니다”라고 말하는 분도 계신다더군요.

우리 사회에 균열을 내는 일은 또 있습니다. JTBC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송곳>입니다. “어쨌든 나는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이었다”는 푸르미마트 일동점 과장 이수인과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고 말하는 노동상담소장 구고신이 연대해 벌이는 노동쟁의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여러분 곁에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일 시킬 땐 가족이고 내쫓을 땐 가축이냐” “우리가 쉬워보이지?” “내 목 굵다 잘라봐라” “과장은 접대받고 주임은 징계받고”라는 팻말을 들고 노동자들이 시위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막장 드라마 일색인 현실에서 이젠 이런 드라마라야 장사가 될 만큼 우리 현실이 험악해진 것은 아닐까요?

드라마 덕분에 저는 책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여기나 저기나 어차피 최저임금인데 잘린다고 아쉬울” 것이 없는 한국에서 취업을 해도 평생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이들이 주인공들입니다.

“여기서 더 졸라매면 한강 다리 가려고 해도 차비가 없어서 걸어가다 굶어죽을 판인데 당신들 힘든 건 당신들이 못나서 그렇다. 왜 더 졸라매지 않느냐”는 핀잔만 듣는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를 내쫓아내고 그 자리에 계약직이나 외주업체서 보내온 파견직을 꽂아 알량한 비용절감을 시도하는 회사에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꼭지만 틀면 나오는 수돗물처럼 마음대로 쓰다가 아무 때나 갖다버릴 수 있는 이 좋은 세상”을 사용자들이 스스로 포기할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 조직의 부조리에도 두려움에 떨며 노예처럼 비굴하게 충성만 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한 해고노동자가 “지는 것은 안 무서워요. 졌을 때 혼자 있는 게 무섭지”라고 내뱉는 대사에서 이 시대 두려움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포세대’가 ‘9포세대’로 진화하더니 더 이상 포기할 것이 없다 해서 ‘N포세대’로 불립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자살해서 부잣집에서 다시 태어나는 편이 낫다는 자조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50대 이상의 부모들은 세상살이에 지칠 대로 지쳐 보따리를 싸서 다시 들어오는 ‘캥거루족’ 자식들 때문에 지쳐갑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부모세대’의 일자리를 줄여 ‘자식세대’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며 세대갈등만 조장하고 있습니다.

책 속의 구 소장은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인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라고 희망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송곳 같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균열이 매우 필요한 때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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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내년부터 학교 현장에서 고전 읽기를 강화하는 인문소양교육에 중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저는 지난 6월 초 열린 교육부 주최의 ‘전국 초·중등 인문소양교육 포럼’에서 ‘대중 인문학과 대학 인문학’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발표자는 요즘 교사들의 중·고등학교 때 성적이 너무 좋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했습니다. 정년이 보장되는 교사라는 직업이 인기를 끌다 보니 우수한 학생들이 교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교사들이 학창시절에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를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사들이 교실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들만 챙기고 있는 것이야말로 문제라는 지적을 하면서 성적만으로 교사를 뽑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일제고사를 도입했습니다. 단순히 학업성취도를 측정한다고 했지만 모든 학생을 성적으로 줄을 세우는 제도였습니다. 학교평가와 연계하다 보니 교사가 성적을 조작하는 일마저 발생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산업화 시대라면 이런 제도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양질의 교육을 통해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속도와 효율의 교육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교육의 기본은 읽기 능력의 배양일 것입니다. 책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과서는 “인류문화의 정수를 모아놓은 표준지식”을 단순히 알려주며 암기시키기보다 “다양한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고 더 깊은 지식 습득의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특정한 이념을 주입하려는 의도를 버리고 가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교과서여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좀 더 진취적으로 생각하면 지식의 양이 3일 만에 2배로 증가할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지식기반사회에서 교과서가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우리나라도 이제는 미국이나 프랑스처럼 교과서 자유발행제로 가야 한다고 봅니다. 뜻이 있는 모든 출판사가 자유롭게 교과서를 발행하고 학교에서는 무수한 교과서 중에서 자유롭게 골라 적절한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학교에서는 일제고사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내년부터 전국의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됩니다. 교육부의 설명에 따르면 자유학기제란 “중학교 수준에서 한 학기 동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등 시험부담에서 벗어나 토론과 실습 등 직접 참여하는 수업을 받고 꿈과 끼를 찾는 다양한 체험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입니다. 자유학기제는 진일보한 제도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를 도입한 교육부가 어이없게도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한다는 자가당착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다양하게 출간되는 교양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며 스스로 자신의 진로를 정해 가야 할 것입니다. 2013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빅히스토리’ 시리즈(전 20권, 와이스쿨)는 “우주·생명·인류 문명, 그 모든 것의 역사”입니다.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이명현), <생명은 왜 성을 진화시켰을까>(장대익), <세계는 어떻게 연결시켰을까>(조지형) 등 세 권으로 출발한 책이 어느덧 12권이나 나왔습니다.

저자들은 ‘빅히스토리’가 아닌 ‘빅퀘스천(Big Questions)’이라 해야 옳다고 말합니다. 나(개인), 가족, 민족, 세계, 인류로 점차 관심을 넓혀가는 것이 아니라 인류라는 ‘큰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되면 인간 존재에 대한 본질과 나라는 존재가 나아갈 바를 저절로 찾아낼 것입니다. ‘전체적인 상’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만이 이 복잡다단한 세상에서 스스로의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요즘 학생들이 읽고 토론하기 좋은 교양서가 꾸준히 출간되고 있습니다. <철의 시대>(강창훈, 창비)는 철과 함께한 인류 4000년의 역사를 매우 압축적으로 잘 정리하고 있습니다. 철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철이라는 임팩트가 강한 ‘앵글’을 통해 인간의 욕망을 비추어 보고 철과 인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20억년 전에 탄생한 철은 단짝 친구인 산소와 만나 산화철이 되었습니다. “산화철은 물과 분리되어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바다를 표류하던 철은 산소를 만나서야 정착에 성공합니다. 철을 산화하고도 남은 산소는 오존(O3)을 만들어 냈고, 오존층이 형성되어 태양에서 오는 자외선을 차단했습니다. 생명체가 더 이상 바다에 갇혀 살 필요가 없어지면서 육상 생물이 출현하게 됐지요.” <철의 시대>는 이렇게 우주 공간에서 철이 처음 생성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해 철이 인류의 문명과 일상생활을 장악하게 된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제 학교교육은 권력을 가진 자의 특정 이념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교양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입니다. 아직은 우리 교육이 교양서에 완전히 의존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의 다양성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가 올바른 방향만 설정해준다면 정말 다양한 책들이 빠른 시간 안에 출간될 것입니다.

교육부가 허튼 교과서에 투입할 예산을 이런 방향 설정에 서둘러 전환해 투입하시기를 간절하게 권고하는 바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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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hell·지옥)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예,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희망, 꿈 포기한 7포세대의 자본주의 정글에서 살아남기>(공진규·유토피아)라는 자기계발서가 등장할 정도로 요즘 젊은이들은 미래의 꿈을 하나둘 접어야만 했습니다. OECD 가입국 중에서 자살률, 청년자살률, 노인자살률, 노인빈곤율이 1위인 나라에서 극단적으로 내몰리는 젊은이들이 ‘멘붕’(2012년)에 이어 ‘헬조선’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입니다.

인문학자인 김경집은 <고장난 저울>(더숲)에서 “밝은 미래를 열어줄 결정적 열쇠”인 수평사회의 저울이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합니다. “여기 저울이 있다. 저울은 무게를 재고 값을 정한다. 저울은 판단과 측정의 기준이고 객관성과 보편성의 잣대가 된다. 저울은 수평을 유지했을 때 제 기능과 역할을 완수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앞의 저울은 기울어져 있고 추는 저울을 쥐고 있는 사람 마음대로 정한다. 그런 저울은 현재를 망칠 뿐 아니라 미래까지 깡그리 망쳐버린다.”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많은 욕망을 갖게 마련입니다. “본능적 욕망뿐만 아니라 의지적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특권이고 특징인 의지적 욕망은 대개 권력, 재력, 명예 등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을 획득하려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지만 노력해도 그런 욕망을 달성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면 “절망, 분노, 체념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80 대 20’의 사회에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사례가 많았지만 “신분의 상승과 순환은 거의 구조적으로 막혀 있고 부자가 될 가능성은커녕 부의 재분배조차 왜곡된 상태에서 가난을 대물림하기 십상”인 ‘99 대 1’의 사회에서는 절망과 좌절만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에게는 성욕과 식욕 같은 본능적 욕망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거나 비정규직 일자리에 겨우 진입한 젊은이들에게는 “사랑마저 사치인 시대”입니다. 그러니 식욕만이 유일하게 남아 텔레비전에서는 ‘먹방’이니 ‘쿡방’이니 하는 먹는 프로그램이 난무합니다. “먹는 것조차 연명을 위해 쑤셔 넣는 수준의 식사”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고 안내하는 방송에서 ‘존재감’을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일 따름입니다.

저울이 작동하지 못하니 “거짓이 참을 능멸하고 탐욕이 정직한 노동을 우롱하며 불의가 정의를 조롱”하는 일이 넘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누가 이 고장난 저울을 고칠 수 있을까요? 마침 2017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어 저울을 고칠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김경집은 우리 사회를 수평사회로 되돌리기 위한 현실적이며 심각하지 않고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경제, 교육, 세대 등 세 가지 긴급의제를 제시합니다.

흔히들 ‘보수’가 경제는 잘 알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보수정권은 ‘4대강’ 같은 시대착오적인 토목공사를 경제를 살린다는 독선과 아집에 빠져 민주적 절차와 토론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그 결과 경제를 망쳤고 미래는 파괴됐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탐욕의 경제는 정치의 타락을 가속화시켰습니다. 김경집은 우리 사회를 ‘자유로운 개인’이 연대하는 팀제와 같이 수평적이고 자발적인 조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더 나은 경제를 만들고 더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보다 창조적으로 선도하는 삶과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기본요소”이며 “그게 진정한 경제민주화의 바탕”이니까요.

“소수의 우등생, 그것도 부모의 신분과 재력, 지역의 선별성에 따른 우등생만 양성하는 교육은 오히려 계급을 상속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바람에 “창의력과 상상력이라는 중요한 미래 가치는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아이는 죽이고 부모의 욕망만 채우는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하고 자신을 설계하도록 하며, 자유로운 개인들 간의 연대의식을 정립시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수평사회의 가치와 체제를 체감하고 훈련해야 한다.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태도를 학습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에서의 민주주의 교육은 필수적”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노인세대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세력으로 굳어졌습니다. 김경집은 청바지와 통기타로 상징되는 ‘세시봉’ 세대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억압과 통제의 굴레에서 벗어나 저항과 풍요, 그리고 창조의 혜택을 누린 이 세대, 최초로 수평사회의 기초적 교육을 받았고 불의와 맞서 목숨 걸고 싸운 경험이 있는 이 실버세대가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인권을 유린하며 법치를 조롱하고 모든 이익을 독점하며 사회를 병들게 하는 특권층의 탈법 행위와 더불어 망국적 지역감정을 깨뜨려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김경집은 모든 세대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할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과 도서관은 우리 사회에서 삶을 재설계하고 리빌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대안”입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그 사안에 대한 책을 “5권쯤 읽으면 윤곽이 보이고 이해도 따르며 10권쯤 읽으면 그 분야 전문가의 어깨쯤으로 수준이 높아지니” 서둘러 도서관으로 가서 책을 읽으며 자기교육과 미래 설계의 그림부터 그려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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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의 불황을 떠올릴 때마다 늘 유로화의 위기가 함께 거론됩니다. 최대 진원지는 그리스입니다. 재정위기가 시작된 2010년부터 긴축으로 인한 실업과 경제난에 시달리던 그리스 정부는 결국 자체 통화 도입이라는 ‘그렉시트(Greek+Exit,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하겠노라는 벼랑 끝 전술을 벌이면서 국민투표에 부쳤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구제금융 긴축 반대(OXI)에 60% 이상의 표를 던졌습니다. 그리스 국민들은 잠시 승리감에 도취됐습니다.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그리스 서민층과 청년들의 승리”라는 현지 분위기를 전달했습니다.

선거가 끝난 직후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만났지만 그리스가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승리가 아니라 처절한 패배였습니다. 이후 3차 구제금융 협상이 가까스로 타결되면서 그렉시트 위기와 그리스 국가부도가 봉합됐지만 그리스에 대한 주변국의 경멸적인 태도와 그렉시트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독일의 완강한 입장만 확인한 꼴이 됐습니다.

독일의 강경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패전국이던 독일이 1991년의 재통일 후 매우 짧은 기간에 경제 강국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습니다. 한스 쿤드나니는 <독일의 역습>(사이)에서 강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수출 호황과 임금 상승 억제 등으로 남아돌게 된 독일의 돈이 전 세계를 떠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결국 이 돈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정크 증권에도 흘러들어갔고 이때부터 남유럽에도 상당한 규모의 악성 대출을 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자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와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은 통일로 거대해진 독일을 견제하기 위해 유럽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두 사람은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주권을 확보하는 최선의 길은 ‘단일 통화’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도입된 것이 유로화입니다. 강한 마르크화 때문에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던 독일 기업들은 유로화가 도입되자 날개를 달았습니다. 유로존 주변국들의 고통을 이용해 유로화의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가져간 덕에 수출로 엄청난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무임승차’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한 독일이 앞장서 “유로채권을 발행해서 상호부조 형태로 부채를 관리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독일 정치인들과 메르켈 총리는 그 해결책이 “현실적으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채무국들에 더욱 강력한 구조 개혁을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의 정치를 부활하려는 메르켈을 이념보다는 국가 간의 힘과 실리에 기반을 둔 외교정책을 펼친 비스마르크나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에 비유하고, 패전국에서 ‘유럽의 병자’가 되었다가 경제 강국으로 도약한 독일을 ‘양의 탈을 쓴 늑대’로 지칭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독일의 첫 통일이 이뤄졌던 1871년부터 패전국으로 몰락한 1945년에 이르는 기간에 “공격적인 권력으로 행동하는 강대국의 모습 그 자체”였던 독일의 대외정책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책이 또 다른 ‘대재앙’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합니다. 세계대전이 발발할 정도의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독일 문제’에 대한 관심의 환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분단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독일 민족의 정수가 언젠가는 세계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는 ‘독일 승리주의’의 재출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중국과 러시아와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신경제와 금융서비스에만 치중한 미국과 영국 중심의 앵글로색슨 경제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게르만 경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강상중은 <고민하는 힘>(사계절)에서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가 살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와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걸쳐 살고 있는 지금의 ‘두 세기말’이 너무 닮았다고 말합니다. “19세기 말에 장기 불황과 내란 상태로 어지러웠던 유럽 여러 나라는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몰려갔습니다. 일본도 비슷한 이유로 만주 등지로 몰려갔습니다.” 이른바 ‘제국주의’의 출현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국경을 넘어 ‘글로벌 머니’가 세계를 종횡무진 ‘배회’하고 있으며 그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강상중은 막스 베버가 ‘금융 기생적 자본주의’를 “근대 자본주의의 ‘정통’ ”이라고 간주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에는 “그것이야말로 좀 더 ‘선진적인’ 자본주의의 시스템”이라고 말합니다. 한스 쿤드나니는 유럽이 “지정학적(geo-political) 딜레마에서 지경학적(geo-economic) 딜레마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합니다. 1871년의 문제는 ‘지정학적 버전’이었지만 지금은 ‘경제 제국주의’라는 ‘지경학적 딜레마’로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패전국의 고통을 겪었던 독일은 절반의 주권이 아닌 온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정상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경화되어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해 자신들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일본의 ‘보통 국가’론과 닮아 있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공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어쩌면 이제 새로운 수난을 겪을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한기호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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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14일 ‘경향신문’에는 최경환 경제팀에 “더욱 과감한 소득 분배 정책”을 요구하는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그는 칼럼에서 “지금까지 경제성장은 오로지 투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며, 분배와 소득 향상은 오로지 그 결과로 생겨나는 것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정책을 쓴다고 해도 분배 구조를 바꾸어 대다수 국민들의 소득 흐름을 개선시키지 않는다면 백약무효이거나 일시적인 미봉책으로 끝날 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홍 소장은 “소득 분배 구조를 개선하려면 응당 실질임금을 인상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 최저임금의 인상은 물론 노·사·정의 많은 논의와 합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만약 이러한 대책이 한계 상황에 있는 기업들을 어렵게 하거나 수출 경쟁력과 투자 의욕에 해롭게 작용한다는 우려가 크다면, 그 다음에는 체계적인 증세를 통해 복지 정책을 강화해 국민들의 실질 소득과 구매력을 고르게 늘리면 된다”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그즈음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더숲)였습니다. 시골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저자는 돈이 지닌 부자연성과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마르크스 자본론’과 ‘천연균’에 비유해 하나씩 풀어냈습니다. 저자는 “자본주의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부패하지 않는’ 돈이 자본주의의 모순을 낳는 주범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돈과 경제를 ‘부패하게’ 만들어버리면 어떨까? 이것이야말로 발효의 힘을 빌려 발효와 부패 사이에서 빵을 만드는 나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발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깨달은 저자가 운영하는 시골빵집은 “단순함을 지향”했습니다. “만드는 자에게는 직업으로서, 소비하는 자에게는 먹거리로서의 풍성한 즐거움을 지키고 키워가기. 그러기 위해 비효율적일지라도 더 많은 손길을 거쳐서 공 들인 빵을 만들고, 이윤과 결별하기. 그것이 부패하지 않는 돈을 탄생시킨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난달 출간된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동아시아)는 “예전부터 인간이 가지고 있었던 휴면자산을 재이용함으로써 경제 재생과 공동체의 부활에 성공하는 현상”을 말하는 ‘산촌(里山)자본주의’가 우리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버려진 산에 널린 나뭇조각이나 톱밥 등 목재 폐기물을 압축해서 펠릿(pellet)이라는 연료를 만들어 난방과 취사를 하고, 목재 폐기물로 건축재를 만들어 고층건물을 짓기도 하고, 경작 포기 농지를 활용해 물고기를 키우거나 지역 토산물을 재배하고, 지역의 노인들이 텃밭에서 키운 채소나 단호박, 감자 등을 지역의 복지시설이 구매하고, 빈집을 노인들의 쉼터로 활용하고, 노인들이 쉼터 옆에 있는 보육원의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 등은 ‘산촌자본주의’의 여러 모습입니다.




금융 전문가와 NHK 취재팀인 저자들은 ‘산촌자본주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돈의 순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전제하에서 구축된 ‘머니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함께 돈에 의존하지 않는 산촌자본주의를 서브 시스템으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인간 생활의 필수품인 물과 식량과 연료를 어렵게 번 돈으로 구매할 것이 아니라 “산의 잡목을 땔감으로 이용하고, 우물에서 물을 긷고, 계단식 논에서 쌀을,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최근에는 사슴도 멧돼지도 많이 늘어나서 사냥을 해도 다 먹지 못”하는 마당이니 이와 같은 “선조들이 산촌에서 부지런히 쌓아올린 숨겨진 자산”을 활용하면 사람을 부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공황의 위기에서 여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은 수출에 의존해 고도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과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출만으로는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그러니 내수시장을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은 크게 기대할 바가 없고, 고령화로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증폭되니 불안감을 느낀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평균 3500만엔의 돈을 남겨놓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간 100만명이 35조엔의 돈을 써보지도 못한 채 다음 세대로 넘겨준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든 것, 즉 “경제적 번영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일본인이 느끼는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동일본 대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 ‘머니자본주의’의 기능을 정지시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이런 ‘궁극의 보험’을 생각해내는 것 같습니다. 산촌자본주의야말로 사람과 자연의 유대를 통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니까요.

경제성장 정책이 사실상 좌절된 박근혜 정부는 최근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을 예고하면서 “청년실업은 기성세대 책임”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쳤습니다. 정부는 이제 이런 혹세무민의 논리로 세대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부자 감세’부터 포기하고 소득 재분배를 통해 내수 소비시장을 키우는 정책으로 전환하는 한편, ‘산촌자본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 조성부터 서두르실 것을 감히 권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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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외국계 은행에서 나름 승승장구하던 장정윤씨는 외환 관련 업무를 하느라 시차 때문에 밤낮 없이 일하다가 여섯 살의 둘째 아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좌절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가니 아이는 거실 한구석에서 이불을 둘둘 말고 혼자 자고 있었습니다. TV를 보며 서서 오줌을 싸고, 발음도 불명확했습니다. 소아정신과에서 진단을 받아보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초기라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의사는 회사와 아이 중에서 양자택일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몇 달의 방황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을 시작하면서 친구의 소개로 독서지도사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집에서 둘째 아이와 실습에 들어갔습니다. 저녁부터 밤까지 매일 아이와 살을 맞대어 안고서 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아이가 특히 사랑한 책은 <프레드릭>(레오 리오니, 시공주니어)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감성을 그림책을 통해 키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천석은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서 <프레드릭>이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가 갖고 있는 이 시대 부모의 보편적 신념을 건드리고 있다며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들쥐 프레드릭은 베짱이와 판박이다. 다른 들쥐들이 겨울을 대비해 먹을 것을 모으려 밤낮 없이 일할 때 프레드릭은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은다. 겨울에 부족한 것이 식량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햇살도 없다. 자연은 무채색의 모습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웅크리고 틀어박혀 있어야 하니 재미난 이야기도 금세 바닥이 나고 만다. 겨울이 오고 눈이 내리자 들쥐들은 돌담 속 틈새에 숨어 들어가 여름철 내내 모았던 옥수수와 짚을 먹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곡식은 떨어져가고 들쥐들은 힘을 잃고 우울해한다. 역시 겨울에 부족한 것이 식량만은 아니다. 프레드릭은 다른 들쥐들에게 자신이 여름에 모았던 햇살과 색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저 이야기일 뿐이지만 모두들 살아 있다는 활기와 따뜻함을 느낀다. 프레드릭이 낭송하는 시를 들으며 들쥐들은 겨울의 추위와 외로움을 이겨낸다.” 장씨와 아이는 <프레드릭>으로 연극도 해보고, 새로운 시도 만들어보면서 수백번을 읽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아이는 일곱 살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책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놀라운 체험이었습니다.




학생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기를 즐기는 초등학교 교사 정소연씨는 아이들에게 <프레드릭>과 <개미와 베짱이>를 비교하며 읽으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독후 활동시간에 프레드릭을 성토하거나 옹호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습니다. “베짱이는 놀기만 했지만, 프레드릭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해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었어요.” “어쩌면 베짱이는 가수가 되려고 노래연습을 한 건데, 우리가 노는 걸로 오해한 걸지도 몰라.” 아이들은 이렇게 빵빵 터졌습니다.

두 사람의 경험은 <책으로 다시 살다>(북바이북)에 나옵니다. 서 전문의는 부모가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를 권합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자연을 보는 경험, 두런두런 나누는 대화, 같이 이야기를 만들며 상상을 펼쳐 나가는 놀이, 불을 어둑하게 해놓고 들려주는 옛이야기, 이런 시간이 존재”한다면 꼭 그림책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시대의 부모가 그런 시간을 갖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러니 “그림책이 그나마 부모가 접근하기 편한 도구”인 셈이지요.

서 전문의는 “아이들의 손이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좋아하는 것일수록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니 아이가 어리다면 잡아당겨도 찢어지지 않고, 물고 빨아도 망가지지 않는 재료로 된 그림책이 좋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정부가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을 제정해 지난 6월4일부터 시행하면서 13세 미만 아이들이 보는 책 모두에 대해 안전 검사를 하고 반드시 KC마크(안전마크)를 발급받아 부착할 것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출판사가 책 용지에 납이나 카드뮴 함유량과 프탈레이트계 가소제의 함유량이 적절한지를 판단하고 날카로운 모서리 등을 자율적으로 없앤 다음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 같은 위임기관에 KC마크 부착권을 신청해 확보하라는 것입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현장(서점)에서 판매한 자에게도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린다고 하니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사람 모두가 범죄자로 전락할 판입니다. 비록 1년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지만 권당 60만원의 발급비용이 들고 발급받는 데 한 달 이상의 시간이 지체되는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취지를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만 13세를 초과하는 소비자가 사용할 가능성이 큰 제품은 비대상”이라고 하니 그림책이 어른용이라고 우겨서 법망을 피해가야 할까요? 아이들이 어린이책만을 물고 빠는 것은 아닐 것이니 제지업체에 용지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두면 그만일 것을 백해무익한 이런 법을 만들어 강제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에 처한 출판사들을 완전히 궁지로 몰아넣어 국민을 우민화하기 위한 심사가 아닐까요?

정부가 하루빨리 이에 대한 시원한 대답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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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앞날이 캄캄합니다. 작년의 ‘세월호 참사’는 국제적인 동정이나마 살 수 있었지만 올해의 ‘메르스 참사’는 국제적 외면을 자초했습니다. 거리나 상가는 한산해지고 소비시장은 잔뜩 얼어붙었습니다. 상황이 이럼에도 국민통합과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양파 껍질을 벗기듯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당의 원내대표마저 ‘벗겨’ 낼 태세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삶의 안전망을 완전히 잃어버려서 불안을 넘어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심각한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스스로 공포의 대상이 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다 강한 존재, 악마 같은 존재에 기대려고 한다지요. 공포가 강할수록 사회가 보수화되는 것이 이런 이치라고 하는군요.

이럴 때 인간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를 갈구합니다. 하지만 한국 소설은 이야기보다 유려하면서도 서정적인 문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바람에 독자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표절’이나 ‘자기복제’의 위험에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신경숙은 그만의 고유한 문체로 지난 시절 대중을 압도한 작가입니다. 오길영이 <힘의 포획>(산지니)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신경숙의 문체는 “서정적이고 섬세”하기에 때로는 “감상성의 위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문에 ‘표절 파동’을 불러온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길영은 좋은 문체는 “아름다운 문체(美文)”가 아니라 “대상의 진실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문체”라고 말합니다.

올해 여름 독서시장에서도 대중은 ‘이야기’를 찾고 있습니다. 올해 여름 출판시장을 달굴 외국 소설 세 권이 그걸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 다산책방)는 59세입니다. 열여섯에 고아가 된 그는 열심히 일해서 모기지도 갚고 세금도 내고 의무도 다했습니다. 소냐와 결혼하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자고, 서로 그렇게 동의했습니다. 4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같은 일과를 보내고, 한 세기의 3분의 1을 한 직장에서 일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젊은 관리자들이 “이제 집에 가서 쉬는 게 좋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늘 똑같은 일만 한 것이 직장에서 쫓겨난 이유가 됐습니다.

반년 전에 소냐가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나자 그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자살을 결행하려는 순간 이웃집에 이사온 젊은 부부와 어린 두 딸이 찾아옵니다. 오베는 자신의 자살을 막은 그들에게 처음에는 까칠하게 대하지만 점점 마음을 열어가며 무심한 듯 열심히 챙겨줍니다. 오베는 근면과 성실을 최고 덕목으로 알고 살아왔지만 이제는 은퇴의 압박을 받는 우리의 평범한 이웃입니다.

<나오미와 가나코>(오쿠다 히데오, 예담)는 가정폭력에 저항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입니다. 가나코 남편의 폭력은 결혼하고 3개월이 지난 무렵부터 시작됐습니다.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갑자기 흥분해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사과했지만 폭력은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해갔습니다. 백화점 외판사원 나오미는 가나코가 ‘유일한’ 대학 동창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맞는 걸 보며 자란 나오미는 가정폭력이 주변 사람들마저 지옥에 빠트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의 아픔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나오미는 가나코를 설득해 가나코의 남편 다쓰로 ‘클리어런스 플랜’(남편 제거 계획)을 함께 세웁니다. 처음에는 겁에 질려 떨던 가나코도 점점 용기를 얻고, 자신을 구하겠다는 각오로 적극적으로 나섭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 포스터_레이디 경향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서는 두 주인공이 그랜드캐니언의 벼랑 끝을 질주해 장렬하게 자살해 해방된 세계를 찾아가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당당하게 맞섭니다. ‘데이트 폭력’이 소셜미디어를 달구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폭력이 실은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임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가르치려 한다>(창비)의 문제의식과도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황금방울새>(도나 다트, 은행나무)에서 열세 살 소년 시오는 엄마와 함께 북유럽 황금기의 명작들을 전시한 미술관에 들어갑니다. 엄마는 시오에게 렘브란트의 제자이자 페르메이르의 스승인 파브리티우스의 ‘황금방울새’가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뛰어난 그림”이자 “내가 정말로 사랑한 첫 번째 그림”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때 미술관에서 테러가 발생해 전시회장은 아수라장에 빠집니다.

엄마는 즉사하고 시오는 사고 현장에서 만난 기묘한 노인 웰티의 청으로 반지와 작은 그림을 갖고 미술관을 빠져나옵니다. 사실상 고아가 된 시오는 엄마와의 마지막 추억이 살아있는 ‘황금방울새’ 그림을 품에 안고 웰티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반지 주인을 찾아 나섭니다. 시오의 인생유전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은 상실과 집착, 운명에 대해 집요하게 묻고 있습니다.

이야기성이 강한 세 소설의 공통점은 모두 ‘죽음’을 화두로 하고 있습니다. 한없이 지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아툴 가완디, 부키)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즉 존엄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얼 두려워하고 무얼 희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찾으려는 용기”를 갖고자 합니다. 그런 용기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소설들이 품은 이야기에서 위로와 구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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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 참극을 초래한 뒤 출범한 신군부는 1981년에 반도체, 컴퓨터, 통신기, 전자제품 등 4개 부문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장기발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사업 중 당장 돈이 되는 것은 아마 전자사업이었을 것입니다. 1980년 12월의 컬러TV 방영 결정은 그중 전자산업부터 활성화하겠다는 야심이 드러난 결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82년부터 컬러 방송이 시작됐지만 콘텐츠가 문제였습니다. 쇼 프로와 드라마로는 모두 채울 수 없었습니다. 1981년에 88올림픽 유치권을 획득한 5공 정부는 1982년에 프로야구를 출범시켰습니다. 잔디가 깔리지 않고 야간 조명 시설도 없는 운동장에서 서둘러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에는 프로축구와 민속씨름이 뒤를 따랐습니다.

1982년 1월5일 새벽 4시를 기해 37년간 이어져오던 야간 통행금지 조치가 해제되었습니다. 50년 이상 군사독재가 이어지는 나라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것을 국제사회가 비판하자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처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심야 작업 교대가 가능해지자 기업들은 2교대를 3교대로 바꾸어 공장을 24시간 내내 가동할 수 있었습니다. 극장, 술집, 학원 등도 심야 영업이 가능해지자 극장에서는 <애마부인> 시리즈를 비롯한 에로영화가 봇물을 이뤘고, 여관방에서는 포르노테이프가 난무했습니다.

이른바 섹스, 스포츠, 스크린의 3S가 넘쳐나자 섹스 향락산업이 날개를 달았습니다. 때마침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 등 ‘3저 호황’이 맞물리자 기업들은 독재정권의 비호 아래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며 이익을 늘려나갔습니다. 3S가 열기를 띠자 88올림픽이 개최될 때까지 700만대의 컬러TV 수상기가 팔리면서 탄탄한 내수시장이 형성됐습니다. 그렇게 확보한 자금 중의 일부가 권력 상층부로 전달됐습니다. 컬러화로 말미암아 패션, 화장품, 광고 등 새로운 산업이 부상하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들떴습니다.

김홍신의 <인간시장>이 등장한 것은 바로 이때였습니다. 악의 패거리는 언제든 응징할 수 있지만 연약한 애인 오다혜에게는 쩔쩔매는 장총찬의 이야기는 젊은이들의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납본이라는 사전검열 제도로 판매금지도서를 남발하면서도 욕설과 과도한 섹스 장면만은 허용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고도성장의 이면을 그린 <옛날 옛날 한옛날>과 빈민들의 처참한 생활을 담은 <꼬방동네 사람들>과 <어둠의 자식들> 등에서 애타게 하느님을 찾는 소리가 넘쳐날 때 하느님과 ‘맞짱 뜨겠다’는 22살의 장총찬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간시장>이 베스트셀러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1981년 9월에 1권이 출간된 <인간시장>은 1983년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한국 출판 역사상 최초의 공식적인 밀리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영화와 TV 드라마로 제작된 이 소설은 모두 560만부나 팔려나갔습니다. <인간시장> 1부 전 10권이 완간된 지 30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작가는 <인간시장>의 후속편을 쓰려고 했는데 지금의 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재출간을 결심했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 이 소설을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이 소설이 처음 쓰이던 34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더군요. 주인공 장총찬은 돈과 권력에 희생당하는 불쌍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조직폭력배, 돈독에 오른 의사, 부패한 개신교 목사, 권력의 하수인이 된 법관, 교육은 뒷전에 두고 제 배에 기름창고를 만드는 사립학교의 젊은 이사장 등을 응징하기 위해 ‘표창’을 과감하게 날립니다.

장총찬은 하느님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불량 학용품, 교과서 부정, 채택료 받고 교재 선택하는 교수, 자기가 지은 책 안 사면 점수 주지 않는 선생들, 치맛바람에 휩싸여 점수 요리를 하는 치들, 반장 선거를 부정으로 치르는 교사범, 실력보다는 돈으로 입학하는 가진 집 자식들, 월급보다 치맛바람으로 받는 봉투가 커 보이는 양반들…. 젊은이들은 그걸 다 안다고요. 두 눈 감고 아웅 하지 않게 좀 해주세요.”

그 시절에는 이런 사실이 드러나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만성 담마진(두드러기)으로 인한 병역면제, 변호사 시절 전관예우와 고액 수임료, 종교적 편향성, 법무장관 시절 국가정보원 댓글사건 등 정치적 사건에 대한 부적절 대처 논란” 등의 혐의를 받는 황교안이라는 분이 국무총리에 지명되는 세상 아닌가요? 이것만 보아도 엘리트형 부패로의 역주행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황 후보자는 법무법인 재직 3년여간 17억원을 받은 것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비춰 과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급여를 받은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요지를 담은 답변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만 갖고도 조용히 찌그러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해 2014년 11월26일에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시간당 5580원인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전체의 12.1%인 180만여명이나 되고,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 수준인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45.2%인 852만명이나 되는 나라, 그래서 자살률과 저출산율이 세계 1위를 달리는 나라에서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장총찬처럼 소리치고 싶습니다. “하느님, 눈 좀 똑똑히 뜨쇼! 그리고 장총찬 같은 부패 청소부 한 사람만 빨리 내려보내주세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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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아이들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의사, 판사, 교수, 기자, 소설가 등의 직업을 답변으로 내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살아남는 것이 장래희망”이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에세이스트 김현진은 우리 사회에는 단 두 가지 선택만이 남아 있다고 말합니다. “빈둥거리며 시간제 일자리로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남들의 멸시를 감당하거나, 죽도록 일하고 죽어라 돈 벌고 걸레 짜듯 골수까지 짜낸 다음 50대에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지금 젊은이들은 미래의 희망을 접고 있습니다. 연예, 결혼, 출산, 인간관계, 주택구입, 희망, 꿈 등을 모두 포기한다 해서 ‘7포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명문대를 나오거나 해외유학을 다녀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보고 스펙을 쌓으려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았다는 ‘이케아 세대’(1978년생 전후)가 좌절한 이후 그 이후 세대는 자신의 ‘이바쇼(居場所, 거처)’조차 마련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극히 일부는 예외입니다. 한 언론인이 지적했듯 “지위와 부, 계급이 3대 이상으로 세습되는 체제”에서 부모를 잘 만난 소수의 사람들은 이런 걱정에서 처음부터 비켜나 있습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됐을까요? 우리 시대의 스승 신영복은 <담론>(돌베개)에서 “지금까지의 성장 패턴을 지속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미 반복되는 금융위기와 장기불황이 그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발전과 욕망의 해방’ 그리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쌍끌이해온 자본주의의 구조와 운동이 거듭 위기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20대 기업의 300년간의 세무 자료를 분석해 자본이윤이 소득을 초과해 왔음을 입증하고 양극화에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은 국가부채, 가계부채, 양극화, 실업, 경기침체, 집값 하락의 문제에 불과하지만 이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문제입니다.”

경향신문 5월13일자는 지난해에 <한국의 자본주의>라는 문제적 저작을 펴낸 바 있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가 새정치민주연합 싱크탱크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열린 ‘성장과 분배’ 특강에서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소득불평등’을 꼽았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장 교수는 “소득격차 확대는 기업이 돈을 못 벌어서가 아니라 번 돈을 안에 움켜쥐고 있어서다. 이런 구조에서는 다음 세대에 희망이 없다”며 “무엇보다 정부와 정치권이 분배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백낙청이 대전환의 길을 묻다>(창비)는 원로학자 백낙청이 ‘젊은’ 전문가들과 만나 우리 사회가 어떤 전환을 이뤄내야 하는지를 묻는 책입니다.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너무 단기적인 현안에 매몰되어 전체를 보지 못하는 현실에서 시대적 전환의 방향과 우리가 해결해야 할 분야별 과제들에 대한 총체적인 안목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경제편의 대담에서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은 “서민의 사람살이 즉 민생경제가 어려워지고, 중산층이 붕괴되는 것들이 한국 경제의 문제가 되는 거죠.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오래된 주제지만 양극화 문제가 있고, 그와 연관되는 불평등 문제가 있고, 뒤이어 일자리 문제, 특히 아주 좋은 직업이 아니더라도 나쁘지 않은, 괜찮은 일자리가 매우 부족한 상황 등이 겹쳐 있어요”라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최대의 현안으로 제시합니다.

정 소장은 이어서 한국 경제는 “거시경제 쪽에서 보면 세 가지가 핵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첫째가 물가를 올리면서 성장률을 높여왔고, 둘째는 환율을 계속 올리면서 수출을 늘려왔다는 것이죠. 물가나 환율이 오르면 우리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개인의 소득이나 자산가치가 줄어들죠. 셋째는 부동산 가격을 올리고 건설경기를 부추기면서 성장했습니다. 이런 세 가지 정책을 쓰면 단기적으로는 성장률이 조금 더 나아질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자산이나 소득의 분배구조를 크게 왜곡합니다. (중략) 지금까지 한국 경제는 꽤 빨리 성장해왔습니다만, 속으로 세 가지 정책의 부작용이 쌓여왔던 것이지요. 그런 부작용들이 모여서” 양극화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시장이 가장 완벽하게 작동할 때조차 불평등은 심화되며, 그런 의미에서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피케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세습 자본주의’로 명명했습니다. “21세기 자본주의는 부모로부터 부와 지위, 신분을 물려받은 상속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신 빅토리아식 계급사회’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21세기 자본>이 화제를 끈 이후 ‘불평등’이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는 불평등에 대한 책 두 권이 새로 출간됐습니다. 반세기 동안 소득과 부의 분배 문제를 연구해온 앤서니 앳킨슨의 <불평등을 넘어>(글항아리)는 세계가 처한 불평등의 문제를 투명하게 풀어내면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정책들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따위 불평등>(이원재 외, 북바이북)은 불평등 문제를 다룬 25권의 책을 분석하면서 한국 사회가 처한 상황을 냉철하게 지적한 책입니다.

“불평등은 파국으로 가는 급행열차”라고 합니다. 이제 서둘러 우리가 그 열차를 멈춰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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