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이면서 독서운동가로 맹렬하게 활동하던 한 교사가 2월28일 스스로 학교를 떠났습니다.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독서모임을 가졌던 경험을 정리한 <책으로 크는 아이들>과 가정 독서모임의 경험을 학교 현장에 접목해 실천했던 이야기를 담은 <도란도란 책모임> 등의 책을 펴낸 바 있는 백화현 교사입니다. 1년만 더 교사로 일하면 명예퇴직의 자격을 얻지만 사태가 너무 엄중하다며 그마저 뿌리치고 서둘러 학교를 떠났습니다.

백 선생은 인간에게 ‘성적’과 ‘돈’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존재함, 그 자체’라고 말해왔습니다.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존재의 소중함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신이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들이 타인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집단따돌림, 집단폭력, 자살 등이 계속 늘어난 것이 증거입니다. 최근에는 자신이 책을 읽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책 읽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책따’가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군요.

백 선생이 ‘책모임’을 꾸린 이유는, “ ‘책 속 인물들’을 빌미 삼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고민과 생각들을 굽이굽이 풀어놓을 수 있고, ‘책 속 사건들’을 핑계 삼아 마음껏 웃고 울 수 있”었으며, “내가 아닌 ‘너’의 마음과 생각 속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며 그가 물건이 아닌 사람, 많은 사연과 생각과 아픔과 고뇌와 꿈을 지닌 나와 같은 ‘사람’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백 선생은 ‘엄마’부터 바뀌지 않으면 아이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는 엄마들과 교사들을 자유롭게 만나 아이들의 미래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기 위해 교직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백 선생은 학교를 떠났으되 떠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학교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미 4월에는 엄마와 교사들을 만날 일정으로 수첩에 빈틈이 없다는군요.

저는 백 교사의 포부를 들은 날, 밤늦게 사무실에 들어와 김경집 선생의 <엄마 인문학>(꿈결)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에서 25년 이상 ‘인간학’을 가르쳤던 저자는 2012년 2월 말에 대학 교단을 자진해서 떠났습니다.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습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해 그가 선택한 일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독서운동을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엄마가 시작하는 인문학 혁명”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인문학은 “문학·역사·철학이 아니라 인간에 관한 모든 분야를 망라한 학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의 생각이 변하고 세상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을 때,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임계점을 넘은 지금이 혁명의 최적입니다. 혁명하려면 연대해야 합니다. 틀을 깨려면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요.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엄마들의 혁명입니다. 엄마부터 시작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대통령도 아니고 재벌 총수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들입니다! 동시에 가장 유연한 사람도 엄마들입니다. 그러니까 가장 멋지고 유연하게 혁명할 수 있는 주인공은 엄마들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지 않으세요?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내 아들을 위해서!”

그는 세속적으로 성공하는 “단 3퍼센트의 확률을 위해 최소 15년에서 20년 동안을 투자해야” 하는 지금의 교육은 ‘가정 파괴범’이라고 말합니다. ‘속도’와 ‘효율’의 낡은 패러다임에 맞춘 교육을 받았던 아이들은 이제 연애·결혼·출산·주택·취업에 이어 꿈과 희망까지 잃어버린 ‘7포 세대’로 불리고 있습니다. 단군 이래 최장 시간 공부를 해서 최고의 스펙을 쌓은 결과가 고작 이렇습니다. 자식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은 부모들은 은행 부채가 딸린 집 하나만 달랑 있는 하우스푸어로 전락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그는 최근 펴낸 <생각의 융합>(더숲)에서 “인간의 두뇌는 속도와 효율의 측면에서 볼 때 컴퓨터 알고리즘에 뒤지는 것으로 판명”되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많은 지식들과 정보들을 섞고 묶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여전히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영역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하여 컴퓨터 알고리즘의 한계를 채우는 것이 미래 가치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융합의 가치이고 힘”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텍스트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콘텍스트로 엮어보고 해석하는 것이 창조와 융합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생각의 융합>은 콜럼버스와 이순신, 코페르니쿠스와 백남준, 히딩크와 렘브란트, 정약용과 김수영 등이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생각의 점을 잇는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줍니다.

두 독서운동가는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혁명은 엄마의 서재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엄마는 ‘읽히는’ 존재를 넘어서 ‘읽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가 책을 읽고 세상을 읽고 사람과 삶을 읽어야 합니다.

이제 엄마들이 진정한 본색을 드러낼 때입니다. 엄마가 변하면 아빠도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고, 나아가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그 세상에서는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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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을 잘 보내셨는지요? 긴 연휴 동안 반가운 가족들을 만나서 행복하게 회포를 푸셨는지요? 아니면 혹 서로 다투다가 깊은 상처를 입지는 않으셨는지요? 가족들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야 할 시간에 가정불화, 생활고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는 온통 가족 이야기 일색입니다. 공중파를 통해 전파를 탄 <가족끼리 왜 이래> <펀치> <장미빛 연인들> 등의 드라마는 모두 ‘3개월 시한부 삶’을 사는 부모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병역비리의 아들을 구하려다가 자신이 파멸하는 국무총리 후보자도 등장했습니다. 1400만 관객을 넘긴 <국제시장>도 자신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인터스텔라>는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과 딸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 덕분에 시공간을 뛰어넘어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가족 담론이 넘치는 걸까요? 제왕적 권력을 휘둘러대며 부와 혈통의 세습을 꿈꾸는 1% 초상류층의 속물의식에 질려버린 국민들이 진정한 가족을 갈구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전통적 의미의 가족 해체가 워낙 심각하게 진행되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이순구는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너머북스)에서 “조선에서 가족은 절대적인 그 무엇이었다. 조선은 사회 운영의 일정 부분을 가족에게 일임했다. 부부가 중시되고 교육과 복지가 많은 경우 가족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러다 보니 조선에서 가족은 절대적 가치가 되었다. 심지어 조선 말기에는 국가는 없고 집안만 있을 정도였다. 조선에서 사람들은 개인이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살았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최근에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못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을 청문회를 통해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정말 많은 국민들은 가족을 지켜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가족해체가 급격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정을 꾸리는 것 자체를 포기합니다. 통계청은 올해 전국의 1인 가구가 500만가구(27.1%)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10년 후에는 3분의 1의 가구가 1인 가구가 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때 1~2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70%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부부와 자녀들로 구성된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모델은 사실상 완전히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몸문화연구소가 엮은 <우리는 가족일까>(은행나무)에서는 10명의 인문학자와 필드워커들이 지금 변화하고 있는 가족의 참모습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가족은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동거, 독신자, 미혼모, 편모나 편부 가정 등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도 가족은 해체될 수가 없다. 가족의 첫 번째 기능이 사랑과 정서적 결속감, 안정감에 있다면 동거나 동성결혼이 가족 위기의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에 가족에게 위기가 있다면, 그것은 가족의 형태가 아니라 정서적 결속의 부재”라고 말입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화목한 가족의 역사는 약 150년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그 가족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 인간관계, 집 등을 포기한 ‘5포 세대’는 가정을 꾸릴 의욕조차 없습니다. 통계청이 13세 이상 남녀를 조사한 결과 결혼을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38.9%로 2년 전보다 5.3%포인트나 높아졌습니다. 작년에 이뤄진 이 조사결과는 설 연휴기간에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비율까지 더하면 40% 이상이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나 결혼적령기인 30대는 50.7%로 절반이 넘었다고 합니다.

“가족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며, 한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라고 합니다. 이제 1인 가구가 “한국 사회와 가족관계의 현실을 가장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결정적인 고리, 즉 ‘독신사회’의 탄생을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혼싱글맘이나 미혼싱글맘이 이끄는 가족이 불완전한 미완의 가족이라는 인식부터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은 가장 따뜻한 공간으로 경험되는 동시에 큰 상처를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상처만 안겨주는 가족은 거듭나야 합니다. 해체를 뒤집으면 재구성이 됩니다. 가족은 구성원의 “해체와 재구성의 과정을 통해 폭력과 증오가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 아름다움과 사랑이 들어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1960년대 후반에 유럽을 휩쓸었던 공동체 실험처럼 실험 가족도 가능하다는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동성애자 커플, 동거, 공동주거 등의 형태로 새로운 유형의 가족이 출현”하고 있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혈통의 재생산이 아니라 정서적 유대감이 가족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세상에서는 “베를린 장벽보다 더 높고 두터운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남녀부모와 자녀라는 하나의 구조로 이상화되었던 가족이 다양한 가족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구성원이 평등하고 정서적 유대가 이뤄지는 조직이라면 형식과 내용이 어떻든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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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 시절만 해도 말을 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샘 리스의 <레토릭>(청어람미디어)은 아테네에서 국가가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아 시민이라면 누구나 다른 시민을 제소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이거나 노골적으로 앙심을 품은 재판이 잇달았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아테네의 배심원들은 “당파심이 강하고 유죄 선고에 안달하기로 악명이 자자했을 뿐만 아니라, 재산 많고 유명한 사람들의 콧대를 콱 꺾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호전적인 성향”이었기 때문에 난장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소송 당사자들은 재판정에서 스스로를 변호해야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출현으로 피투성이가 된 아테네의 귀족들은 “거대한 무리 앞에서 이야기하는 요령”을 배워 자신을 방어해야만 했습니다. 심지어 돈을 주고 전문가에게 진술문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수사학은 급성장하여 산업의 중심이 되었고 수사법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소피스트들은 잘나가는 강사들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떤가요? 박성희 이화여대 홍보학부 교수는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사회의 논쟁법”을 알려주는 <아규멘테이션(argumentation)>(이화출판)에서 “문자와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의 구전 시대에는 글자 그대로 ‘말’이 주된 소통의 도구였으나, 매체와 전달기술의 발달로 ‘말’과 ‘글’이 함께 보완하며 인간의 주요한 소통 미디엄이 되었고, 여기에 소리와 영상이 새로운 상징으로 가세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SNS 등의 소셜미디어는 구전의 전통을 다시 살려내어 혼잣말이 글이 되고, 대화가 공적 텍스트(public text)가 되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표현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소통의 태초에는 ‘말’이 있었다”라며 말이 더욱 중요해졌음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저마다의 (소셜)미디어를 갖고 세상의 모든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김종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가 <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진성출판)에서 지적했듯 “사람이 있는 자리에는 말이 있고 말이 있는 곳에는 늘 소통이 문제가 되고 소통이 필요한 곳에는 늘 수사학”이 있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스필버그가 어릴 때 하루는 담임교사가 스필버그의 어머니를 학교로 오라고 해서는 스필버그가 수업시간에 잘 집중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느라 정신없이 보낸다고 말했답니다. 이런 말을 들은 한국의 ‘헬리콥터맘’들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아마도 “어떻게 했기에 선생님이 학교로 오라고 한 거니? 뭐, 수업시간에 그림이나 그리고 낙서나 하고 있다고? 나 원 참 기가 막혀. 너 때문에 엄마는 속상해 죽겠다. 살맛이 안 난다”라고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스필버그의 어머니는 “얘야, 오늘 선생님께서 네가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다고 걱정하시던데 사실 엄마는 조금 속상했단다. 네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데 선생님께서 왜 걱정하실까? 네가 좋아하는 행동을 선생님과 네 친구들이 모두 인정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얘야, 선생님과 네 친구들이 네 그림과 글을 인정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수업시간에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게 좋지 않겠니?”라고 말했답니다.

이 책에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공감과 소통의 수사학”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저자는 “수사학이 과거에도 학문의 여왕이라는 지위를 누렸지만 앞으로도 계속 학문의 여왕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때 스필버그의 어머니가 한국의 엄마들처럼 말했다면 저자의 지적처럼 아마 우리는 나 <쥬라기 공원> 같은 영화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수사학 책들을 읽으며 떠오른 생각은 지난 몇 년, 베스트셀러 중 구어체 문장이 아닌 책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소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베스트셀러들이 구어체 문장입니다. 최근에는 <일빵빵 기초영어>(서장혁, 토마토), ‘과학하고 앉아있네’ 시리즈(동아시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채사장, 한빛비즈) 등 팟캐스트 방송을 글로 풀어서 펴낸 책들이 속속 출간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저는 말을 글로 옮길 때의 방법론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특히 <지대넓얕>은 ‘현실 세계’(역사·경제·정치·사회·윤리)와 ‘현실 너머’(철학·과학·예술·종교·신비)를 각각 다룬 두 권이 연달아 출간되었는데, 인문서로 방대한 지식을 다루고 있지만 책명, 지명, 사람 이름, 연도 등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육화시켜 머릿속에 담아놓았던 지식을 하나로 이어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암기할 지식의 나열이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말은 모름지기 이래야겠지요.

수사학 책들을 연달아 읽고 박근혜 대통령의 올해 신년 기자회견문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2015년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모든 것을 극복하고 청양의 새해를 맞이하였습니다.” 과연 국민들은 2015년을 희망차다고 느껴졌을까요? 국민들은 작년의 어려움들을 극복했나요? 그들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고 있을까요? 대통령이 말한 “해결 방안 마련”이 공감이나 소통 없는 공허한 말로만 그치지 않도록, 국정을 담당하고 책임지는 사람들이 제가 소개한 수사학 책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보기를 바랍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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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게 인생인 거지.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날들을 매일매일 의미 있게 만들어 가는 것. 그게 인생인 거지!” 3개월 시한부로 삶을 겨우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 차순봉씨(유동근 분)는 피를 토하며 창문에 기대서서 막내아들이 두부를 파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렇게 혼자 중얼거립니다.

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서는 98세 노인이 89세 아내와 지고지순한 사랑을 펼칩니다. 1000만 관객 돌파를 코앞에 둔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씨(황정민 분)는 고희를 넘겼습니다.

성석제 장편소설 <투명인간>의 주인공 만수씨도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가 차에 치여 인생을 마감합니다. 이렇게 잘나가는 문화상품의 주인공은 모두 노인 일색입니다.

지금 뜨고 있는 문화상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죽었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드라마의 주인공은 젊고 싱싱했습니다. <시크릿 가든>(2011년), <해를 품은 달>(2012년), <내 딸 서영이>(2013년)의 젊은 주인공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을 성취했습니다.

한국 사회는 정말 갑자기 늙어 버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불과 9개월 전에 벌어진 6·25 전쟁에 버금간다는 ‘세월호 참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인 <금요일에 돌아오렴>(창비)을 펴낸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책에서 이런 깨달음의 말을 내놓았습니다. “인간에게만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도 영혼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희생자들과 우리 하나하나는 뿌리가 같은 영혼의 나무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 한 사회에서 함께 산다는 건 이렇게 서로 깊게 연결되는 것이구나.’”

처음 참사가 터졌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이 땅에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나 반년도 지나지 않아 침체된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딸을 잃은 ‘유민 아빠’를 비정한 아빠로 내몰기 시작하더군요. 참척의 화를 당하고 단식 투쟁을 벌이는 유가족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는 불한당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들이 살리겠다는 경제는 어찌됐나요? 디지털 혁명의 주도자는 이제 스마트폰이 아닌 사물인터넷으로 말을 갈아타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시계, 자동차, 가전제품, 전기, 가스, 수도 등의 인프라와 화장실 등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물인터넷 말입니다. 사물인터넷의 선두주자는 구글, 아마존닷컴, 애플 등 미국의 IT기업입니다.


가정용 온도 컨트롤(사모스타트)을 개발하고 있는 벤처회사 네스트를 사들인 구글은 인터넷에 접속해 고객의 집 온도를 최적으로 유지하면서 소비전력을 절약하는 디바이스를 개발해 100만대 이상 판매하는 실적을 올렸습니다. 이 간단한 디바이스를 미국의 각 가정에 보급하면 전 미국의 전력소비 상황에 대한 ‘빅데이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 데이터를 전력회사에 팔면 막대한 수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마존은 태블릿 단말기 ‘킨들’이나 ‘파이어폰’을 통해 고객의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애플은 자동차를 겨냥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아이튠즈를 연결한 ‘탑재 시스템’은 이미 페라리나 BMW가 이용을 결정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높은 이익을 내는 플랫폼은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한편 체력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단말기 시장은 저가 공세를 펴는 중국과 인도가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한국과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공멸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마저 등장하고 있습니다. 각종 사회지표 또한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더욱 심각해지는 저출산·고령화, 소득격차 확대, 높은 자살률, 65세 이상의 20%를 넘는 131만명의 독거노인, 48%나 되는 노인 빈곤율,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가계부채, 국내총생산(GDP)의 약 60%를 차지하고 있는 개인소비의 급락 등 문제가 한둘이 아닙니다. 수출 기업의 어려움을 풀어주고 소비를 활성화하려고 작년 8월에 금리 인하까지 단행했지만,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들끼리 권력투쟁을 벌이던 구중궁궐의 ‘환관’들은 그게 사달이 나자 자신들의 잘못은 ‘지록위마(指鹿爲馬)’마저 일삼으며 위기를 모면하려 들면서도 반대파들은 초법적인 자세로 제거하고 있습니다. 이미 헌신짝처럼 내던져 버린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라는 공약에 대해서는 되레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힘이 없는 국민들은 그저 죽음이나 떠올리며 애도하기에 급급한 게지요.

빌헬름 슈미트는 <나이든다는 것과 늙어간다는 것>(책세상)에서 “세속적으로 또는 종교적으로 이해되는 초월을 경험하기 위해 들어가는 관문”인 죽음은 “삶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경계선을 그어준다”고 하네요. 지금 한국 사회는 그 경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극도로 허약해지다 보니 이생에서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것을 다가올 다른 생명에게 맡기거나 환하게 트인 저승에서의 ‘새로운 삶’에 가능성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상처는 온전히 끌어안아야 하고 애도는 무조건적인 우정이어야 한다지만 죽음의 유령만 너울거리는 한국 사회가 과연 희망이 있는 것일까요? 새해에는 모욕당하는 죽음이 모두 사라지고 젊음이 넘치는 충만한 삶만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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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4권 ‘교토의 명소’편이 출간되면서 완간되었습니다. 4권의 띠지에는 “NFC 기능을 켜고 스마트폰을 올려보세요”라고 적혀 있습니다. NFC란 교통카드, 휴대폰 결제 등에 널리 쓰이는 근거리 무선통신을 말합니다. 독자가 책에 스마트폰을 올리면 무료로 제공되는 ‘사진으로 보는 일본 답사기’와 ‘북토크’를 보고 들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창비는 NFC 기능을 통해 오디오북, 슬라이드 강연, 서평, 북토크나 북콘서트 영상, 독자투고 영상이나 사진과 저자의 코멘트 등을 추가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독자들이 서평이나 단평을 올리며 토론을 벌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한 권의 종이책은 곧 미디어입니다. 몇 백 원이면 붙일 수 있는 태그가 이렇게 책의 가치를 증진시킵니다. 책이 출간되었다고 바로 그걸로 끝일까요? 책은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연결되는 매개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저자와 독자가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계속 내용을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비는 8월 초에 출판사 26곳과 연대해 영아부터 초등 저학년 대상의 364권의 책에 오디오북을 NFC로 제공하는 ‘더책’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황정은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와 황석영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개정판에 오디오북을, 탁석산의 <달려라 논리>(전3권)에 저자의 동영상 강의를 NFC로 제공했습니다.

온라인서점이 등장한 이후 우리 출판시장은 오로지 가격 할인으로 독자를 유혹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11월21일부터 새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면서 그런 방식은 거의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콘텐츠 제공자(출판사)도 변해야 합니다.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이 스마트폰으로 집중되면서 사용자(독자)는 수준 높은 콘텐츠를 요구함과 동시에 모든 채널에서 브랜드의 일관성 유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콘텐츠 제공자는 다양화되는 사용자의 욕망에 부응하는 동시에 즉각 능동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상품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뿌리는 브로드캐스트 시대가 지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우리는 제5의 미디어라 불렀습니다. 그 이후에도 무수한 미디어가 새로 등장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축제나 이벤트가 없었던 적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미디어가 되어 정보를 발신할 수 있는 세상이 되면서 누구나 유익하고, 공익적이며,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전 세계의 독자와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자신이 ‘지난여름에 한 일’을 감출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세계는 1등만 살아남고 1%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1%는 곧 0.1%로 줄어들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세상에서 지배당하는 느낌을 받는 99.9%는 자주 분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과거에는 ‘죽창’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겠지만 지금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폭발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정보의 바다를 헤엄치다가 상대의 잘못을 트집 잡아 공격하는 데 열을 올리는 ‘삐딱한 사람들’이 넘치고 있습니다.


지금 디지로그 세상에서는 기사가 자동 생성되어 큐레이션 미디어에서 편집되어 SNS 등에서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유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실수로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공격을 받아 곧바로 루비콘강을 건너는 기업이나 명망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제 콘텐츠 제공자(편집자)는 퍼블리터(publitor), 즉 에디터(editor)이면서 퍼블리셔(publisher)여야 합니다. 실력 있는 에디터는 콘텐츠 생산의 프로입니다. 달리 말하면 에디터는 상품(또는 기업)의 매력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독자가 흥미를 느낄 만한 콘텐츠를 개발하여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퍼블리셔는 정보를 많은 사람이 읽게 만드는 유통의 프로여야 합니다.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었더라도 읽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상품은 기획 단계에서 읽히는 것부터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상품이 출발하는 시점의 발상이 그 상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상이 되었기에 올해 초에 ‘퍼블리터의 시대’가 열린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제 상품을 떨이로 판매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최상의 상품을 만든 다음 상품 정보에 부가가치나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결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기획자는 ‘콘텐츠 메이커’에게 액셀러레이터를 강하게 밟을 수 있을 정도로 과감해질 수 있는 용기, 기시감이 드는 콘텐츠 피하기, 밸런스 감각,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는 용기와 편집력 등을 갖출 것을 주문했습니다. 이미 미국의 기업들은 편집력을 갖춘 사람을 CCO(Chief Contents Officer, 웹사이트 콘텐츠 수집 및 제작 부문 최고 경영자)로 영입해 광고를 포함한 기업 정보, 상품의 노출 방식, 기업 대표의 미디어 노출 등 모든 정보를 총괄하는 업무를 맡기고 있습니다.

김정운은 <에디톨로지>(21세기북스)에서 “모든 창조적 행위는 유희이자 놀이다. 이같이 즐거운 창조의 구체적 방법론이 바로 에디톨로지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나도 없다. 창조는 편집”이라고 말했습니다. 통섭, 융합, 크로스오버, 큐레이터, 콜라보레이션, 브리콜레르 등도 편집의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가격 경쟁’이 아닌 ‘가치 경쟁’을 벌일 줄 아는 ‘퍼블리터’의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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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부모들은 자식 걱정이 태산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목표가 뚜렷했습니다. 일류 대학에 입학만 하면 그래도 밝은 미래가 보장된다고 보았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일류대에 입학한 사람들이 더 고민한다고 합니다. 해외 유명 대학 졸업이라는 스펙으로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세상이니까요.

지금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세상은 엄청난 규모와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 100년에 걸쳐 일어났던 변화가 단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래학자 최윤식은 김건주와 함께 쓴 <2030 기회의 대이동>(김영사)에서 “변화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를 바라보는 제대로 된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1학년 학생이 4학년이 되었을 때 1학년 때 배운 것의 대부분은 낡은 지식이 되어”버리는 세상, “현장 근로자들은 2~3년 단위로 새로운 기술 지식을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 세상, “10년 후 현재 지식 근로자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해결해줄” 세상에서 제대로 된 ‘시선’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그동안 잘나가던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직은 큰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10년 후에는 현재의 직업 80%가 소멸하거나 다른 형태로 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결혼 적령기 여성의 상대가 교수라는 것을 알고 온 가족이 결혼을 반대했다는 얘기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전문화 시대에서 융합 시대로 바뀐 마당에 한 ‘구멍’만 파는 대학교수가 인기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더구나 대학에는 겸임, 연구, 특임, 강의 등의 형용어가 붙은 임시직의 ‘워킹푸어’마저 넘치니 전문성이라는 것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형편입니다.

변화를 만드는 거대한 힘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술 혁명입니다. 기술 혁명이 불러온 변화는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이지요. 그야말로 ‘테크놀로지 실업’의 시대입니다. 타일러 코웬은 에서 기계의 지능이 인간의 일과 소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의 일본어판(<대격차>) 서문에서 중산층이 사라지는 이유가 ‘오토메이션(자동화)’이라고 말합니다. 코웬이 말하는 오토메이션은 로봇 기술만이 아니라 고성능의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 등의 테크놀로지를 모두 포함합니다.

코웬은 “지금까지 중산층이 주로 일했던 직업은 피가 흐르는 인간이 아니라 기계나 소프트웨어가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공장노동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로봇이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노인을 보살피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자동차를 운전하거나 병을 진단하는 소프트웨어, 짐을 문 앞까지 배달하는 무인 항공기 등이 곧 등장할 것입니다.


미래를 주도하는 신부유층은 누구일까요? 코웬은 “기계와 함께 일할 수 있고, 기계를 발명할 수 있고, 기계에 관한 지적 재산을 소유하고, 기계의 산물을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배달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부유해질 것”이지만 저임금의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젊은 남성들은 만족스러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미래가 부정적이기만 할까요? 코웬은 “테크놀로지가 진화해서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이 필요없어진다면 우리들이 창조성과 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면도 있다. 억압적인 상사에게 착취당하며 일할 필요가 없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그 변화의 덕을 볼 수 있을까? 앞으로 다가오는 것은 새로운 르네상스 시대일까, 아니면 빈곤에 허덕이는 시대일까? 어쩌면 그 양면 모두가 현실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특이점이 온다>(김영사)의 저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컴퓨터가 인류를 초월하는 일이 2045년에 온다고 예측한 바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와 유럽연합(EU)이 인공지능 개발에 거액을 투입하고 있으니 ‘2045년 문제’는 더 빨리 실현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45년은 영국의 투자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의 평균 연령이 50세가 되어 세계 최고령 국가로 등극할 것이라고 예측한 해이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로봇과 차별화되는 인간의 능력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문학, 역사, 철학, 인류학, 고고학 등 인문학입니다. 이런 학문을 기술과 결합해 사유할 수 있어야 하니 과학도 절대 필요합니다. 지금은 인간의 뇌(머리)만 움직이면 되는 이성의 시대가 아니라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감성의 시대입니다. 그러니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도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지금 당장은 기계와 차별화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철학적 담론에 대한 천착부터 필요한 것 같습니다.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은행나무)에서 인간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말하는 한 인간의 존엄성이란 “주체로서의 자립성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을 제대로 찾아내려면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의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부터 찾아내야 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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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로버트 패티슨은 <On Literacy>(1984)에서 “읽고 쓰는 능력은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시대 이후 아직 한번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오직 변화되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책자본의 등장, 인쇄술의 발견, 디지털 혁명 등 책의 혁명이 세 차례 있었지만 읽고 쓰는 일의 중요성은 늘 강조되었습니다.

아르만도 페트루치는 <읽는다는 것의 역사>(1997)에서 “여기에 기술된 책과 독서의 미래, 즉 개인적인 실행, 개인적인 선택, 규칙과 계층의 거부, 생산 면에서의 혼란과 규율 없는 소비, 축적된 각기 다른 지식과 정보의 혼합, 매우 다양하면서도 유사한 수준의 생산 등이 혼합된 미래를 얼마나 긍정적인 현상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이 시점에서 묻는다는 것은 정말로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이어서 “사실 독서는 광범위하고 복잡한 현상이다. 앞으로 10년 또는 20년 안에 그 방향은 의심할 나위 없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리고 50년 또는 100년만 지나면 독서가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하고자 한다면 그 현상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하며 ‘읽기’의 미래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가 판단을 유보한 1997년과 인문학자 김용규가 <생각의 시대>(살림)에서 “지식이 3일마다 2배씩” 늘어난다는 2030년의 가운데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디지털 혁명에 따른 읽기의 실체를 판단해 보아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요?

마침 최근에 읽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나 읽은 책의 독후감을 담은 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여성학 연구자인 정희진은 <정희진처럼 읽기>(교양인)에서 “여러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오히려 한 분야만 공부한 전공자보다 더 깊게, 더 많이 알게 된다. 개인이 축적한 지식의 양 때문이 아니다. 이는 구조적으로 당연한 일인데, 여러 학문을 두루 접하면 지식의 전제와 지식이 구성되는 역사적 과정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며 관점을 중심으로 “모든 분야의 지식”을 다룬 책 읽기를 권합니다.

정희진은 책을 읽는 방법은 크게 ‘습득(習得)’과 ‘지도 그리기(mapping)’의 둘로 나뉜다고 말합니다. ‘습득’은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을 익히고 내용을 이해해서 필자의 주장을 취하는(take) 것”이고, ‘지도 그리기’는 “책 내용을 익히는 데 초점이 있기보다는 읽고 있는 내용을 기존의 자기 지식에 배치(trans/form 혹은 re/make)하는 것”입니다.

정희진의 설명은 이어집니다. “습득은 객관적, 일방적, 수동적 작업인 반면에 배치는 주관적, 상호적, 갈등적이다. 자기만의 사유, 자기만의 인식에서 읽은 내용을 알맞은 곳에 놓으려면 책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책의 위상과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을 이해하는 자기 입장이 있어야 하고, 자기 입장이 전체 지식 체계에서 어떤 자리에 있는가, 그리고 또 지금 이 책은 그 자리의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지난 시절 독서운동은 주로 ‘습득’에 방점이 찍혀 있었습니다. 상업주의적인 독서운동단체와 독서운동을 벌이는 일부 교사단체에서 ‘독서능력검정시험’을 도입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 대표적입니다. 작년에 KBS와 일부 교육청이 연합해 시행하려 했던 ‘KBS 어린이독서왕’도 책의 내용을 단순하게 암기시키려는 정말 한심한 이벤트였습니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만으로도 평생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가 폭발하는 시대입니다. 게다가 100세 시대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이끌고 나머지가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시대가 아닙니다. 여럿이 함께 책을 읽고 공감을 나누는 수평적 관계의 시대입니다.

정희진은 “책 속에 진리가 있다는 말은 역사 최대의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책 속엔 아무것도 없다. 저자의 노동만 있을 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사상에서 이데올로기(‘거짓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담론이 있다. 저자의 입장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보다 저자와 갈등적(against) 태도를 취할 때 더 빨리, 더 쉽게,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젠, 함께 읽기다>(신기수 외, 북바이북)의 저자들도 책에는 정답이 없고, 그저 생각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골방독서에서 광장독서로, 지적 영주에서 교양시민”으로 바뀌어야 하며, “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를 지향하는 독서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 속의 함께 책을 읽어 인생을 바꾼 이들의 경험담은 우리를 감동시킵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안찬수 사무처장은 한 좌담에서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시대에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핵심적인 교육 내용” 두 가지는 ‘책 읽기’와 ‘손노동’이라고 말했습니다. “책으로 표현되는, 앞선 시대의 지혜, 지식, 정보, 스스로 문제를 설정해서 탐구해 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사회가 점점 발달하면서 기계가 감당하는 게 늘어날 텐데,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예를 들어 손으로 글쓰기, 붓글씨, 조형물 만들기, 목공, 텃밭 가꾸기, 악기 다루기” 같은 기계가 하지 못하는 일이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가까운 이들과 함께 책을 읽은 다음 ‘○○○처럼 읽기’란 담론을 한번 만들어 보시지 않으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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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반쯤 담긴 컵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물이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다고 보는 낙관주의자들입니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아도 남은 인생을 실컷 즐기자며 광란의 파티를 즐길 사람들입니다. 다른 한 부류는 물을 단 한 번만 홀짝여놓고도 컵에 물이 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비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인생은 한숨과 고난의 연속입니다.

이들 말고 제3의 시각이 있습니다.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아 있다는 말도 맞고, 반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말도 옳다고 말하는 그룹입니다. 그들은 개개인의 의견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깁니다. 아니, 심지어 문명의 퇴보로 여깁니다. “개개인의 주관적인 의견들 때문에 지금까지 애써 가꾸어온 조화로운 문화와 문명이 무너질 수 있다고, 제3차 세계대전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인류의 분열을 조장하고 인류 문화를 지금보다 야만적이고 미개한 것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그들은 <결정장애 세대>(올리버 예게스·미래의창)로 불립니다. 이 책의 원제는 ‘메이비 세대(Generation Maybe)’입니다. 메이비 세대는 모든 걸 공개하고 공유하는 최초의 세대입니다. 그들에게 사생활은 없습니다. 온라인 친구들과 삶의 모든 것을 함께합니다. 그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닙니다. ‘빅브러더’가 모든 것을 조종하는 상황이나 ‘보이지 않는 손’(즉 시장)이 지닌 무한한 힘도 믿지 않습니다. 그들 앞에는 너무 많은 선택의 기회가 놓여 있습니다. 울트라모던한 세상,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의 수많은 유혹들이 그들을 향해 손짓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든, 그들이 바라는 게 무엇이든 마우스 클릭 한 번이면 대체로 해결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어딘가에 잘 정착하지도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잘 집중하지도 못합니다.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것은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은 그들의 나침반이자 내비게이션인 동시에 중앙관제탑이자 항해일지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접근하는 소셜미디어는 잠깐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단순한 현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몸에 좋은 음식, 편안한 집, 안정된 직장, 시원한 쾌변, 감동적 섹스만큼이나 삶의 필수 요소에 속합니다.

그들은 신을 믿지 않으니 종교도 없습니다. 대신 그들의 가슴속에는 신비주의나 축구, 건강, 환경보호, 애플, 소셜미디어 같은 ‘대안 종교’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는 대신 토요일마다 축구 경기장을 찾고, 아이패드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실리콘밸리의 애플 본사 앞에 반원형으로 둘러서서 실시간 중계를 감상하곤 합니다.

‘메이비 세대’는 독일의 1982년생 저널리스트인 올리버 예게스가 독일 일간지 ‘디 벨트’에 기고한 한 편의 칼럼이 열렬한 호응을 받으며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타고 삽시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바람에 세상에 널리 회자되었습니다. 이 세대는 사실 지난날 ‘자기계발’ 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던 이전 세대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레나타 살레츨은 <선택이라는 이데올로기>(후마니타스)에서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여성들은 특히 선택의 문제에 포위되어 꼼짝도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풍부한 소비 선택지들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사생활에서도 완벽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몸매를 가꾸는 법, 욕망을 억제하는 법, 인생의 행로를 조종하는 법, 특히 죽음을 막는 법”에 관한 자기계발서들의 조언이 넘치는 가운데 사랑, 정서, 몸과 건강, 심지어 자녀마저도 선택의 문제로 제시되다 보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레나타 살레츨은 선진국 소비자들이 선택 앞에서 무력해지는 이유는 선택할 수 있는 물품이 지나치게 많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오늘날 만연한 선택 이데올로기가 점점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부족감(부적절하며 남보다 못하다는 느낌)을 증가시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일류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탄력 있는 몸, 자기 집, 심지어는 근사한 남편이 있음에도 몹시 불만족스러워하면서 다시 수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것에 불안해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런던의 유명 레스토랑이 한 가지 메뉴만 제공하기 시작하자 문전성시를 이루고, 한국의 중국집이 만든 아이디어인 ‘짬짜면’이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일본의 ‘동양경제’ 2013년 7월27일자의 특집 ‘U40은 어떤 사춘기를 보내왔는가-주요 디지털 기기·서비스와 U40의 역사’는 휴대전화 세대(20대 후반)와 스마트폰 세대(20대 전반)의 차이를 분석한 바가 있습니다. 무리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만 하려는 경향이 있는 스마트폰 세대는 자신들을 ‘얕잡아 보는 시선’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는 상사를 원한다고 합니다. 이 세대는 적당히 출세하자거나 적당히 사귀자는 등 ‘적당’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답니다.

올리버 예게스의 지적대로 ‘메이비 세대’는 일시적인 ‘청년의 위기’가 아니라 ‘평생의 위기’에 빠져 있을 겁니다. 그는 “우리가 지닌 능력보다는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준다”는 조앤 K 롤링의 <해리포터>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교장 알버스 덤블도어가 한 말을 인용했습니다. 아마도 이 말에 문제 해결의 해법이 담겨 있지 않을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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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는 고객의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 작가입니다. 그는 고객의 마음을 정말 잘 어루만지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 표현에는 서툽니다. 아내와의 이혼도 주저하는 중입니다. 그런 그에게 몸은 없고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인공지능 운영체제(OS)인 새 애인이 나타납니다. 조그만 휴대전화라고 보시면 됩니다. 애인은 나타나자마자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아기 이름 짓기>란 책을 읽고 0.2초 만에 18만개의 이름 중에서 ‘사만다’를 골라냅니다.

사만다가 테오도르의 어떤 말에도 귀 기울여주고 모든 것을 이해해주니 서로의 사랑은 깊어만 갑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쓴 글들을 골라 <그대 삶으로부터 온 편지>란 책을 펴내주어 감동시킵니다. 그러나 사만다는 자신이 분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8316명의 고객을 한꺼번에 만나면서, 그중의 641명과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고 말합니다. 물론 테오도르를 진정으로 깊이 사랑했다고 말합니다.

이제 이런 세상이 우리 가까이 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TV, 냉장고, 에이컨 등의 가전제품, 시계와 안경, 자동차, 공장 설비 등 모든 사물에 컴퓨터가 내재되어 서로 네트워킹하는 세상이니까요. <사물인터넷>(커넥팅랩, 미래의창)의 저자들은 “지금은 사물에 부착된 센서와 유·무선 통신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 초기 단계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사람이 판단하거나 지시하지 않아도 사물과 공간이 센서로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스스로 환경을 분석하고 상황을 판단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이제 겨우 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스마트의 시대였다면, 앞으로 펼쳐질 세상은 ‘사물’이 중심이 된 진정한 스마트 세상이 도래할 것이랍니다. 주머니 안의 스마트폰이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면, 사물인터넷은 인간 주변의 모든 사물을 연결하고, 인간과 상호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사물인터넷 시대와 만물인터넷 시대를 지나, 만물지능인터넷 시대까지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모든 사물이 ‘지혜’를 가진 존재로 거듭납니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오기 전에 ‘지혜를 가진 사물’의 시대, 즉 ‘싱즈 사피엔스(Things Sapiens)’의 시대가 먼저 오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알아서 일을 해주면 일의 형태와 인간의 사고가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2025년쯤에는 여러 개의 직업을 동시에 갖는 개인이 크게 늘어날 것이랍니다. 호주에서는 10~15년 후, 한 사람이 평균 29~40개의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미국 정부는 10년 후에는 현재 직종의 80%가 소멸하거나 현재와는 다른 형태로 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합니다. 회사원은 줄어들고 자영업은 늘어나며, 유럽에서는 1인 기업이 90%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는군요.


<빅 스위치>(동아시아)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청림출판)에서 디지털 기술의 명암을 명쾌하게 분석한 바 있는 니콜라스 카는 신작 <유리감옥(The Glass Cage)>(한국경제신문)에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통해 가속화되고 있는 자동화가 인간의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가 말하는 ‘유리감옥’은 우리를 자동화로 유도하는 ‘컴퓨터 스크린’과 스마트폰 액정 같은 ‘터치스크린’을 말합니다. 무인 항공기나 무인 자동차의 시대가 눈앞에 와 있는 지금,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웨어러블 디바이스, 빅데이터 등을 통해 가속화되고 있는 ‘자동화’에 우리가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니콜라스 카는 “유리감옥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우리 몸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것은 아니고 쇠약해질 뿐”이기에 결국 우리는 ‘존재론적 궁핍’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물질적 편안함과 기술적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시대는 목적이 없고 우울한 시대”라는 것이지요.

과학 전문기자 겸 편집자인 패트릭 터커는 <네이키드 퓨처(The Naked Future)>(와이즈베리)에서 우리는 빅데이터 시대를 지나 텔레메트리 시대에 진입했다고 말합니다. 텔레메트리란 “한 장소에서 수치를 측정하여 이를 기록하거나 표시하기 위해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 전달하는 과정이나 업무로, 수치를 측정하는 장치가 전달 업무도 실시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그녀>에서의 사만다처럼 “마치 감지하는 듯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패트릭 터커는 “로봇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몇 초 후, 몇 분 후, 어쩌면 몇 년 후에 내가 어디에 있을지 예측한다거나 순찰차에 탄 경찰이 내게 눈을 흘기며 향후 1시간 내에 내가 부도수표를 발행할 확률이 10퍼센트라든가 주차 위반을 할 확률이 80퍼센트라고 예견”하는 세상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침에 커피를 사러 가서 카드를 긁는 순간 의료보험회사가 당신이 고혈압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오고, 바로 이어서 “정부가 세금고지서 보내오는” 세상이 과연 바람직한 사회일까요? 저는 사만다 같은 애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지만 결국 ‘피가 흐르는’ 인간의 뜨거움만 사랑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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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이어진 새파란 하늘, 날개를 쫙 편 까마귀, 그 위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아이와 토끼”의 모습이 펼침면으로 전개된 그림은 <시리동동 거미동동>(제주도꼬리따기 노래, 권윤덕 그림, 창비)의 인상적인 클라이맥스입니다. 그림에서 까마귀는 바다로 물질 나간 엄마를 발견한 듯 아래를 바라보며 방향을 바꾸는데, 정작 아이는 엄마가 아니라 정면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서 있습니다.

저널리스트이자 그림책 평론가인 최현미는 “이 장면을 펼칠 때 저는 종종 딸에게 심호흡을 해보자고 합니다. 그냥 넘기기엔 참 깊고 긴 시간이 담겨 있는 그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들숨과 날숨의 그 순간, 딸이 높은 곳을 날고 있는 주인공이 되길 바랍니다. 그 옆에서 저도 깊은 호흡을 합니다”라는 감상을 적은 바가 있습니다.

벤자민 라콩브의 <나비 부인>(보림)은 가로 275㎜, 세로 390㎜인 대형 그림책입니다. 자코모 푸치니의 대표 작품 <나비 부인>과 피에르 로티의 <국화 부인>을 각색한 이 그림책은 일본인 게이샤 나비 부인이 “아름다운 것을 탐하는 서양 수집가의 변덕스러운 욕망”으로 자신을 선택한 미군 해군 장교와 결혼했다가 “곧 돌아오겠다”는 한마디 말만 남기고 본국으로 떠나가 버린 그를 기다리는 슬픈 사랑과 애틋한 마음을 그린 작품입니다. 모두 펼쳐 놓으면 10m 병풍이 되는 그림은 한 장면 한 장면 우리를 숨죽이게 만듭니다. 마치 한 권의 화집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나비의 형상을 표지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등장시켜 마치 독자의 시선이 나비 떼의 동선을 따라 다음 장면으로 인도되는 듯한 강렬한 표현으로 이미지화하고 있”(그림책 작가 류재수)기에 이 책은 그림책이 맞습니다. 그림책과 화집의 경계를 해체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이런 그림책의 장면들을 영상화면으로 비춰주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방금 본 것도 잊게 만드는 영상으로는 이런 감동을 도저히 느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날 그림책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한층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만드는 팝업북의 수준도 일취월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국내에는 출간되지 않은 프랑스의 그림책들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 그림책을 이렇게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북디자이너 정병규는 20세기 말에 “움직이는 것(영상)이 움직이지 않는 것(평면의 이미지)보다 우월하다는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정적 이미지 이후에 발견된 동적 이미지인 영상은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정적 이미지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영상상업주의의 영향이다. 이러한 이미지와 영상의 특질을 상대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금, 바로 시급한 책의 문화에 대한, 디지털 시대에 만연한 책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인식의 출발점”이라고 충고한 바가 있습니다.


지금 출판 현장에서는 이미지의 적절한 편집과 디자인을 통해 움직임을 시각화시키는 실력이 날로 출중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책의 제작 기술도 놀랍게 발달하고 있습니다. 편집과 디자인과 제작을 결합한 ‘만들기’를 통해 아날로그 그림책은 영상이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영역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림책을 전자책으로 만드는 순간 그림책의 ‘맛’은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출판계는 그림책만큼은 전자책으로 만들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 출판계는 아동서적을 전자책으로 만드는 시도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증강현실을 도입한 영상화가 시도된 적이 있으나 비용 대비 수익이 나지 않으니 벌써 접은 상태이지요.

하지만 아날로그 그림책도 디지털 감성을 입힐 필요는 있습니다. 창비를 비롯한 출판사 26곳이 함께 참여해 영아부터 초등 저학년 도서까지 364권의 책으로 시작한 ‘더책’ 서비스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더책’은 아날로그 종이책에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디지털 기술을 입힌 것입니다. ‘더책’은 책에 스마트폰을 대기만 하면 책에 부착된 NFC(교통카드, 휴대폰 결제 등에 널리 쓰이는 근거리 무선통신) 태그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해 책의 내용을 오디오북으로 듣거나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서비스입니다. 기존의 오디오북처럼 CD와 같은 저장매체와 별도의 재생장치가 필요하지 않고 번거로운 인증 절차 없이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저는 졸저 <디지털과 종이책의 행복한 만남>(2000년 출간)에서 “디지털 사회는 그 어떤 누구(anyone), 언제(anytime), 어디서나(anywhere), 어떤 기기(any medium)를 통해서든지 모든 콘텐츠(any contents)를 쉽게 이용하려 드는 ‘유비쿼터스 인터넷’ 시대이다. 따라서 출판사는 모든 콘텐츠를 디지털 환경에 맞게 생산해야 한다.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면서 종이책이라는 한 방식으로만 생산하려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any’의 파도를 주도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야흐로 그런 시대가 온 것입니다.

출판(publication)은 ‘공적인’(public) 성격이 강하게 적용되는 업종입니다. ‘더책’이 유아나 시각장애인, 다문화가정의 자녀 등 소외자들을 염두에 두고 개발된 것이기에 우리는 더욱 환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책’을 가까운 도서관에서부터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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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87’이 지고 ‘97’이 뜬다는 칼럼을 한 신문에 쓴 적이 있습니다. 87은 민주화의 원초적 체험인 6월항쟁을 말하고, 97은 세계화의 원초적 체험인 IMF 외환위기를 말합니다. ‘87’이 민족이나 국가가 지향하는 ‘정상’이나 ‘중심’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 이들이 주도한 시대였다면, ‘97’은 오솔길일지언정 자기만 만족하면 그만인 사람들이 욕망을 한껏 발산한 시대였습니다. 삶의 방향성을 추구하던 사람들도 삶의 무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말을 바꿔 탔습니다.

제가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저는 2005년 말에 블록버스터 영화 <태풍>을 막내딸과 함께 보았습니다. 딸은 이 영화가 남북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알고 싶어 <태풍>을 본다고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때까지의 대형 블록버스터 영화는 <쉬리>(1999), <공동경비구역>(2000),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동막골>(2005) 등 모두 남북문제를 다룬 것뿐이었습니다.

영화를 본 딸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딸은 곧이어 개봉하는 <왕의 남자>를 빨리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딸의 말대로 <태풍>은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든 반면, 사실과 허구를 뒤섞어 현실의 중압감과 버릴 수 없는 꿈의 판타지를 호소력 있게 전달한 <왕의 남자>는 모든 세대에게 각기 다른 이유로 호응을 얻으며 전인미답의 관객을 맞이했습니다. 이걸 보고 저는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07’(2007년) 체제에 저는 ‘개중(個衆)화’란 문패를 달아주었습니다. ‘개중’이란 개인과 대중을 합한 말입니다. 대중은 세중(細衆)의 단계를 거쳐 개중이 되었습니다. 2006년 말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당신(You)’이 바로 개중이었습니다. 혼자 원룸에 살면서 휴대전화나 메신저로 타인과 대화를 나누고 블로그를 통해 자신을 발신하는 등 철저하게 ‘1인용’으로 생활하지만 외로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개인 말입니다.

군중(crowd)과 아웃소싱을 합한 ‘크라우드소싱’이라는 신조어의 등장이 증명하듯이 지혜가 필요할 때는 대중에게 손을 내밀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 ‘88만원 세대’라는 비극적인 신조어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개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세계화의 전도사인 토머스 L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지금 이 시대를 이끄는 역동적인 힘은 국가나 대기업이 아닌 개인과 소규모 기업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술의 발전, 통신기술의 혁명적 진화, 인터넷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지역이나 국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개인이 더욱 강력한 힘을 갖추게 되면서 세계는 축소되고 평평해진다는 것이 프리드먼의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터진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개인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완전히 드러냈습니다. ‘개중화’가 성립하려면 개인을 살려낼 수 있는 인문학적 반성부터 필요했습니다. 개중화는 이전 체제인 ‘97’ 체제의 반성을 통해 총체적 모순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이명박 정권이라는 구체제, 즉 추악한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잡고 모든 일을 농단했습니다. 그로 인해 개중화로의 변신은 함몰되고 말았습니다. 박근혜 정권도 이명박 정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참사”로 일컬어지는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는 구악의 기득권 세력이 글로벌 위기라는 ‘예외상태’를 악용해 ‘97’ 이전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마지막 끝물까지 빨아먹으며 저지른 온갖 패악을 적나라하게 노출했습니다. 가진 자들의 온갖 불법과 탈법, 이른바 ‘해피아’의 적폐, 국민과 소통할 줄 모르는 대통령의 제왕적인 통치 스타일, 받아쓰기만 할 줄 아는 국무위원과 청와대 비서들, ‘기레기(기자+쓰레기)’란 비난을 들어야 했던 언론,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 체제와 삶의 방식 등 상시적인 임계 상태에 이른 우리 사회의 민낯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 제2기 내각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것이라고는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된 조급함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머지않아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17년’(2017년)을 맞이합니다. 우리는 그 체제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그 체제에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염원을 담아야 합니다. 인문학자 김경집은 <사회를 말하는 사회>(북바이북)에 ‘적법한 반칙을 깨뜨리자’는 글을 발표했습니다. 그 글에서 그는 우리 사회는 “누구든 먼저 앞으로 달려가 선진 지식을 습득하고 다른 사람을 향도하여 빠르게 따라잡으면 성공할 수” 있었던 ‘패스트무빙(fast moving)’의 산업화 사회에서 벗어나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한 사람의 천재성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영감과 아이디어와 에너지가 결합되는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공멸”하는 퍼스트무빙(first moving)의 21세기에 발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경집은 “인간의 가치와 주체성, 그리고 인격적 연대가 필수적”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저는 그 사회에 감히 ‘인간화’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1등만 잘사는 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중세의 촌락’에서처럼 훈훈한 마음을 드러내며 더불어 잘살고자 노력하는 사회를 반드시 만들어야만 합니. 그 세상을 맞이하려면 지금부터 이전의 세 체제에 대한 총체적인 분석과 그에 따른 반성이 있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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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5일 페이스북에는 한 공중파 방송이 보도한 <‘지혜의 숲’을 걷다…책 권하는 진짜 도서관>이란 기사가 링크되어 있었다. 기사를 링크한 이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도서관은 ‘가짜란 말인가’라며 분개하고 있었다. ‘지혜의 숲’은 지난 6월19일 파주출판도시에 문을 연 공간이다. 만든 이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창조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신개념의 도서관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도서관의 3대 구성 요소는 시설, 자료(책), 인력이다. 이미 존재하는 시설(건물)에 거대한 책장을 설치하고 책만 진열해놓으면 도서관인가? 자료는 데이터베이스화되어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혜의 숲’은 처음부터 데이터베이스화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8m 높이에 책을 진열해놓아 일부러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지 않는 한 찾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진열된 20만권의 책은 모두 기증된 책이다. 앞으로 100만권으로 규모를 늘린다지만 학자들이 기증한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파주출판도시에 입주한 출판사들의 책을 전시한 것에 불과하다. 이곳에는 호텔과 커피숍이 있다. 건물의 마감재를 책으로 장식한 호텔은 기념사진을 찍기에는 좋아 보인다. 한 출판인은 “실제 북카페에 가보면 책은 그냥 장식이고 누구도 펼쳐볼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냥 전시만 되어 있을 뿐”인 이 공간은 “한국에서 제일 큰 커피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책은 대출이 되지 않는다. 24시간 개방한다지만 밤에는 극히 일부 공간만 개방할 뿐이다.

24시간 개방한다 해도 밤에 그곳을 들르는 사람이 있기가 어렵다. 출판평론가 변정수는 “끼니를 거르면서도 명품으로 치장하는 이른바 ‘된장×’를 연상시키는 허세, 또는 이웃은 빈사상태에 허덕이는데 제 잇속만 챙겨 쌓은 알량한 여유를 부끄러움도 없이 자랑하는 다분히 졸부스러운 ‘돈지×’. 어느 쪽이든 속으로 골병들어 죽어가는 환자를 색동옷 입혀 보란 듯이 앉혀놓곤 하는 한국 출판의 황폐한 맨얼굴을 상징한다. 교통, 주거, 의료, 보육, 위락 등 기본적인 ‘도시기반시설’은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허허벌판에 건축전람회 도록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건물 몇 십동 지어놓고 ‘도시’라고 우기는 뻔뻔함은 <어린 왕자>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너희들은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어”(‘기획회의’ 361호(2014·2·5)의 특집 ‘출판 생태계 사전’)라며 파주출판도시를 조롱한 바 있다.

그의 지적대로 이 도시는 밤에는 적막강산이다. 건물 내부도 많이 비어 있다. 최근에는 빈 공간에 북카페를 차려놓고 경쟁을 하는 바람에 입주자들끼리 의가 상해 다툰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출판사가 책의 질이 아닌 커피의 질로 경쟁한다는 것은 가히 토픽감이다. 태생부터 생활친화적인 도시가 아니었기에 출판사 종사자가 아닌 저자나 번역가 등은 그곳에 들르는 것마저 기피한다. 따라서 그곳에서 창의적인 상상력이 나오기가 어렵다.


‘지혜의 숲’은 사서가 아닌 ‘권독사’라 명명된 인력이 관리한다. 권독사는 차비와 점심값만 지급받는 자원봉사 수준의 임시직이다. ‘지혜의 숲’을 기획한 사람들은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펴내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인간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자는 내용이 담긴 책을 꾸준히 펴낸 것은 오로지 돈만 벌기 위함이었는가? 그들은 이제 양극화, 격차사회, 승자독식사회, 위험사회, 부품사회 등의 단어가 들어간 책을 펴낼 자격조차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백번 양보해 이런 시설 하나 존재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국비가 7억원이나 투입될 명분은 없다. 책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에게서 ‘진짜 도서관’은커녕 ‘책무덤’이나 ‘책납골당’, 나아가 ‘종이무덤’에 불과하다는 비판까지 받는 공간에 말이다. 게다가 ‘경향신문’을 제외한 대부분 언론이 규모와 이미지에 놀라 격찬하는 바람에 5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투입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지금 출판시장은 최악의 위기에 몰려 있다. 이럴 때에는 국가 예산은 출판이 근본적으로 가능성을 열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인프라에 투입되어야 한다. 가령 출판의 미래라고 여겨지는 전자책을 활성화하려면 디지털 공간에 맞는 서체가 다양하게 개발되어야 하고 디지털 저작권 관리(DRM) 시스템도 정비되어야 한다. 이런 일에는 그리 많은 예산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산이 없다며 지원을 거부했다. 그저 출판사들이 전자책 제작비를 신청하면 ‘닭모이’(혹은 새우깡) 주듯이 직접 지원하는 것으로 전자책 시장이 저절로 살아날 것처럼 행동해왔다. 그런 사람들이 ‘지혜의 숲’에는 없던 예산을 만들어 지원하려 든다. 국가 예산이 전시행정에 의해 집행되는 대표적인 사례라 아니할 수 없다.

변정수의 조롱은 이어진다. “한국 출판산업을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이 랜드마크는, 작금의 출판 트렌드를 주도하는 책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서가에 꽂아놓거나 들고 다니기에는 제법 멋져 보이지만, 정작 집중해서 읽기에는 사뭇 불편한, ‘독서용’이라기보다는 ‘장식용’에 가까운 ‘아름답지만 텅 비어’ 있는 그 책들”이라고 말이다. 이 도시에 더욱 자극적인 랜드마크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지혜의 숲’이라는 ‘종이무덤’ 말이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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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사회>(갈라파고스)의 저자인 강수돌 교수는 이 시대 가정의 이미지는 더 이상 ‘보금자리’가 아니라 ‘버스정류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일중독에 내몰리는 처지인지라 집이라는 ‘버스정류장’에 간간이 들러 냉장고 문을 열고 먹을 것만 챙겨 먹고 가볍게 떠난다는 것이지요.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기 위해 사는 그들은 앞만 보고 달려가다 옆 사람을 팔꿈치로 가격해 좌절시키는 것을 일상화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은 밥이다>(RHK)의 저자인 김경집 전 가톨릭대 교수는 ‘팔꿈치 사회’를 화두로 한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서열 매김이 한심하지만 이른바 ‘좋은 대학’에 지원이라도 하려면 내신이 2등급은 되어야 한다. 그런 대학을 졸업해도 이른바 ‘좋은 직장’에 들어갈 확률은 아무리 넉넉히 잡아줘도 20%가 되지 않는다. 100명의 학생 가운데 고작 두세 명만 그런 직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승자가 된 두세 사람마저도 40대 중반이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부닥칩니다. 피 터지는 경쟁의 승리자들이 겨우 20년의 ‘안정적인 삶’을 누리다 가만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강 교수의 주장대로 내면화된 경쟁이라는 천박한 탐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많은 학부모의 그런 욕구가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을 대거 당선시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은 2년 기한의 비정규 일자리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소리치는 정치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일자리가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자리인가가 더욱 중요해졌으니까요.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새물결)에서 “인간이 생산한 모든 것이 쓰레기가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 자체가 쓰레기화되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당신의 미래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제 인간은 산업폐기물이나 생활쓰레기처럼 1회용으로 이용되고 곧바로 버려지는 처참한 처지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이런 경고가 없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보수적인 중상류층 출신이면서도 오랫동안 저소득의 빈곤 국가를 전전한 경험이 있는 데이비드 C 코튼이 20세기 말에 집필한 <경제가 성장하면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질까>(사이)에서 ‘성장’이라는 담론에 집착해 “기업들이 인간의 삶을 장악하고 지구의 생명 유지 장치와 이 사회의 구조, 수십억 인류의 생명을 파괴해 왔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해놓았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코튼은 재미있는 우화를 소개합니다. 아다나 행성의 지도자들은 지표면 높은 허공에 떠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도시 ‘스트라토스’에서 예술에만 전념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아래 아다나의 황폐한 지표면에 살고 있는 거주자 ‘트로글리테스’들은 스트라토스의 지도자들이 사용하는 사치품들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행성 간 교역권을 얻기 위해 폭력이 난무하는 비참한 광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전체 행성은 지표면에 사는 사람들과 그 지역으로부터 용케도 자신들을 분리시키고 그들의 노동에 의지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사치품들을 공급받는 지도자들에 의해 식민화되었습니다.


코튼은 우화가 실제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돈이 정말로 많고 권력이 대단한 자들은 높다란 고층 빌딩의 멋지게 치장한 중역실에서 일하고, 리무진과 헬리콥터를 타고 회의 장소로 이동하고, 구름 위로 높이 오르는 제트기를 타고 대륙을 오가고, 상냥한 승무원들이 가져다주는 최고급 와인을 마음껏 마시고, 환경이 잘 보호되어 녹지가 푸른 교외의 대저택에 살거나 혹은 예술과 미의 중심지에 자체 보안 시스템이 완벽하게 갖춰진 스트라토스의 지도자들이 트로글리테스들의 삶으로부터 분리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 지구의 자원을 고갈시키면서 현실에서 동떨어져 ‘환상의 세계’에 살고 있기에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달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지구는 1%의 ‘스트라토스’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99%다”라는 슬로건의 출현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에서 50년 후 미국의 미래상에 대해 “부유층은 폐쇄된 지역 사회를 이루고 살면서 자녀들을 교육비가 많이 드는 학교에 보내고 일류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반면에, 나머지 계층은 좋지 않은 교육과 제한된 배급제나 다름없는 의료 혜택을 받으며 그저 중병에 걸리지 않기만을 바라는 불안정한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이미 현실입니다. 이제 팔꿈치로 옆 친구를 가격하는 일을 버리고 책을 함께 읽으면서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 현장 교사는 “평등한 독자로서 상대방을 통해 ‘나’를 보기도 하고, ‘나와 다름’도 만나면서 상대방이 가진 지식과 공감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분명히 ‘그’가 되고 ‘나’는 분명히 ‘나’가 되어 소통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자존감을 회복해야 할 이들이 독서모임을 소망하는 이유”라며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 이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자고 역설했습니다. 공독(共讀)의 역사가 바로 학문의 역사가 아닌가요? 그런 세상을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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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사정은 그다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1980년대부터 일본 사회에서는 모든 공동체가 무너져버렸습니다. 친족공동체의 유대는 약해졌고, 도시에서는 지역공동체가 거의 기능을 상실해버렸습니다. 예전처럼 회사가 종신고용제를 채용한 시대에는 몇십 년이나 함께 기거하는 사원들이 의사(擬似) 가족 같았습니다. 그러나 성과주의, 능력주의의 도입으로 점차 연봉계약 사원이 늘어감으로써 가족적인 친밀감은 찾아볼 수 없어졌지요. 도회지의 임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귀속할 공동체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메멘토)의 공동저자인 우치다 다츠루와 오카다 도시오가 한국 독자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잃어버린 20년’을 살아내고 나니 고령화는 세계 최고의 수준이 되었고, 시장은 축소되었으며, 성장 전략은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저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똑똑한 삶의 방식”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냈는데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안전하지도 풍요롭지도 않은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절망적일 만큼 저임금인 데다 잠잘 시간도 확보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과거에는 가장이 혼자 일해서 몇 십 명의 대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살기가 힘들어 결혼마저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본인들은 하나같이 가치의 중심을 잃어버린 채 ‘정어리 떼’가 되어 갔습니다.

일본 사회의 본질이 드러난 계기는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입니다. 저자들은 엄청난 재난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건강이나 안전을 저버리면서 대기업의 수익을 우선적으로 확보하려는 아베 정권의 행태”를 보고 시민들이 생활을 방어하기 위한 ‘자위조직’을 형성해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의 원제가 ‘평가와 증여의 사회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자위적인 공동체 조직의 기본원리는 ‘증여’(기부)로 집약됩니다. 저자들은 상대적으로 자원을 여유 있게 갖고 있는 나이 든 세대가 젊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증여 한 방’으로 사회적인 공평함을 위한 기초를 다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를 바꾸려면>(동아시아)의 저자인 오구마 에이지는 선거를 통해서 법안을 바꾸는 것보다 데모로 세상을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거한 젊은이들이 “우리는 99퍼센트다”라고 외친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듭니다.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에서 지적했듯이 이 슬로건의 출현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울리히 벡이 <리스크 사회>(한국어판 제목은 <위험사회>)를 출간한 것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직후였습니다. 당시 서독은 바람에 실려 날아오는 방사능 물질 때문에 식품오염에 대한 공포감이 널리 퍼졌습니다. “빈곤은 계급적이지만 스모그는 민주적이다”라고 말한 벡의 경고 때문인지 독일은 원전폐쇄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를 주목하는 오구마는 정당이나 노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가한 네트워크형 비폭력 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탈원전 데모에서 일본인들이 바랐던 것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자신들의 안전을 지켜줄 생각이 전혀 없는 정부가 자신들을 무시하고, 기득권을 장악한 이너 서클끼리만 모든 것을 결정하는 상황을 용서할 수 없다. 두 번째는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고, 거기에 따라 바뀌어간다.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 세 번째는 무력감과 따분함을 쇼핑을 하거나 전기를 마구 써대 상쇄하려 드는 식의, 그런 침체된 생활은 이제 그만 두고 싶다. 그 전기라는 것이 극히 일부의 인간을 배불리고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버리고 마는, 그런 방식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이제 정말 싫다.”

오구마는 “어릿어릿하여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환히 눈에 보일 때 인간은 감동=행동(moved)한다. ‘민의’가 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자신의 고뇌에 대한 답을 얻는 순간, 삶을 바꾸는 구체적인 방법을 파악한 순간, 사람은 정치의 영역에 들어서며 감동=행동한다. 그것은 모든 정치, 경제, 예술, 학문 등의 원점”이라며 2011년 원전 데모도 이런 역할을 수행했다고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국민들도 사회의 본질을 알게 되자 크게 분노했습니다. ‘중소기업만이 우리 경제가 살길이다’라고 외쳐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각종 복지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규제는 암 덩어리’라면서 하루아침에 재벌 편으로 돌아섰습니다. 이명박 정부부터 계속된 규제 완화는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분노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에 지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작년 7월부터 초보 변호사임에도 불과 5개월 만에 16억원의 수임을 올렸습니다. ‘관피아’ 척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총리가 전관예우로 호가호위하며 지내던 사람이라면 과연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교만하기까지 한 정부를 각성시키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서는 일은 당분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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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7월10일, 새누리당 대선 후보 출마선언을 하면서 ‘국민 행복’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며, “경제민주화 실현, 일자리 창출, 복지의 확대”를 “국민 행복을 위한 3대 핵심 과제”로 삼으셨습니다. 2012년 11월16일에 다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면서 “경제적 약자 권익 보호, 공정거래 관련법 개선, 대기업 집단 관련 불법행위와 총수 일가 규제, 기업지배구조 개선, 금산분리 강화” 등을 경제민주화 5대 분야로 나누고 35개 실천과제를 제시하셨습니다.

하지만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강수돌, 이상북스)에 따르면 “쌍용자동차 국정조사와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인 기초연금 제공과 4대 중증환자 부담 무료화, 대학 반값등록금과 고교 무상교육, 군복무 기간 단축, 그리고 정리해고 요건 강화와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 공약(公約)이 시나브로 공약(空約)”으로 끝났습니다. “심지어 ‘국민이 반대하면 하지 않겠다’던 공공부문 민영화조차 ‘수서발 KTX 법인화’ 사례와 같이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꽃봉오리 같은 목숨을 대거 앗아간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현장으로 달려가셔서 피해자 가족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공약’을 즉석에서 하셨습니다. 복지부동하는 관료들을 ‘발본색원’ 혹은 ‘일벌백계’하겠다며 으름장을 수없이 놓았지만 부하들이 여전히 눈치만 보며 꼼짝하지 않으니 직접 달려간 충정만큼은 충분히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이 올해 들어서 갑자기 세월호처럼 방향을 급선회하여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하신 모습과 오버랩 되어 나타났습니다.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보수 언론들의 아우성과 함께요. “온 국민이 침통에 빠진 세월호 참사는 MB 정권이 규제를 푼 엉터리 선박개조의 결과”이며 “MB 정권의 기업하기 좋은 ‘비즈니스 프렌드리’의 연장선이라는 일부의 비판을 박 대통령은 귀담아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재앙은 비록 MB 정부가 뿌린 씨앗 때문이라 하더라도 박 대통령도 지금 새로운 악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제발 명심해주셨으면 합니다.

승객들에겐 ‘가만히 있으라’ 안내 방송하곤 자신들만 무전기로 연락하며 먼저 빠져나온 정신 나간 선장과 선원들, 늦장 구조에 나선 해경과 안일하게 초동 긴급대처를 못한 우왕좌왕 재난대책본부,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을 “북괴의 지령에 놀아나는 좌파단체와 좌파 사이버 테러리스트”로 몰아간 새누리당 한기호 최고위원, 기념사진 찍겠다며 피해자 가족들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한 안전행정부 국장 등과 자신이 한 공약을 거의 모두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재벌의 하수인 역할을 자처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차이를 저는 전혀 못 느끼겠더군요.


강수돌 교수는 “규제를 푼다는 것은 돈벌이 기업의 자유를 신장시키겠다는 것이며, 법질서를 세운다는 것은 파업하는 노동자나 비판적 지식인 등 모든 저항 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뜻이다. 겉과 속이 다르다. 이것은 결국 지난 50년간의 성장정책과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대학교수 한 분이 제게 보낸 사발통문 메일에는 “대통령은 그 나라 국민들의 수준이다. 책임지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정치 지도자에게 필요한 절대적 자질은 국민과의 소통과 공약을 지키는 신뢰이다. 안내 방송만 믿고 끝까지 남은 학생들만 희생당한 세월호는 오늘 한국 현실의 표본이다. 진리의 전당인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무얼 가르쳐야 하는지, 깨어 있는 시민교육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제 진정한 지도자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스스로 살아가는 힘>(더난출판)의 저자인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자신의 에너지를 다 소진해버리고 탈진 상태에 빠져버린”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환자가 모든 직업군에서 크게 늘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분석합니다. “자신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마치 계기판에 연료부족을 알리는 경고등이 켜져 있는데도 계속 달리다가 멈춰선 자동차와 같다.” 이게 바로 세월호이기도 하고 한국사회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져 갑니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리는 바람에 정말 대책 없이 당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집니다. 더구나 ‘세월호 침몰’ 같은 놀라운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갈가리 찢어놓습니다.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강수돌 교수는 이런 때에 유행하는 것이 “강한 영웅을 찾는 구세주 담론”과 “자기계발, 웰빙, 힐링 등 개별 경쟁력 담론”이라고 말합니다. 박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는 아마도 ‘구세주 담론’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강 교수는 “구세주건 개인적 힐링이건, 돈과 시간만 들고 결국 공허해진다. 우리에게 절실한 건 정치·경제, 사회·문화, 교육·노동 등 삶의 구조 전반을 혁신하는 ‘사회적 힐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부터’ 창의적 변화에 동참하면서 친구나 이웃과 ‘더불어’ 즐거운 마음으로 ‘사회적 힐링’을 같이 만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남녀노소 모두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공동체,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생태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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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학들은 1, 2학년 교양과정에서 인문과학에서부터 사회과학, 자연과학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일반교양(기초적인 소양)’을 쌓을 수 있는 커리큘럼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교양과정을 영어로는 ‘리버럴 아트’라고 부릅니다. 리버럴은 ‘자유’를 의미하고 아트는 ‘기술’을 뜻하니, 리버럴 아트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학문”이라고 번역됩니다. 이 단어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그리스에는 노예제도가 있어 노예와 비노예를 구분하는 방법으로 학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배움이 없는 자는 노예로 산다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뜻입니다.

교토대학에서 ‘의사결정론’과 ‘기업론’ 강의를 맡은 다키모토 데쓰후미는 벤처기업의 성공사례를 중심으로 한 실천적인 기업경영방법과 그 근거로 삼아야 할 사고를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수강생 중에 도쿄대학 의학부와 쌍벽을 이루는 교토대학의 의학부 학생이 40%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졸업 후 전원이 의사가 되는 학생들이 왜 이 강의를 들었을까요? 일의 보람을 느끼면서 사회적 지위와 보수까지 얻을 수 있어 그야말로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안정된 인생이 보장되어 있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 말입니다. 다키모토가 학생들에게 앙케트를 해보니 “의사가 되어도 행복해질 수 없다”거나 “의사가 부자가 되는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일에서 느끼는 보람만으로 먹고살 수는 없으니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등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가 강의를 토대로 해 쓴 <무기가 되는 결단사고>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의료영리화를 반대하는 의사들이 어제부터 파업을 시작했습니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의사는 기계만도 못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비용이 엄청난 대형 의료기기를 갖추기 어렵고 환자와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조성할 수 없는 동네 병원은 모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미 바이오 기술은 어디까지 발전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 인턴의 노동환경은 열악합니다. 또 의사가 되어도 마녀사냥과 같은 의료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격무에 시달리며 책임도 무거운 데 비해 연봉은 형편없어질 것입니다. 병원을 열어도 시장경쟁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아주 낮습니다. 의료환경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변화가 극심합니다. 따라서 과거의 사고로는 결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의 직장에 입사해도 개인의 행복은 보장되지 않습니다. ‘이케아 세대’를 보십시오. <이케아 세대 그들의 역습이 시작됐다>(중앙북스)의 저자 전영수는 1978년생 만 35세를 중심으로 한 30대를 이케아 가구와 특성이 비슷하다며 ‘이케아 세대’라는 별칭을 붙였습니다.

스웨덴의 이케아 가구는 값이 싸고, 매력적인 디자인이 장점이고,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고, 미완성의 제품이라 직접 조립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으며, 먼 미래를 내다보고 구입하는 가구가 아닙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쌓은 이케아 세대는 낮은 몸값에 팔려나가고,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 유학 등을 경험해 해외 문화에 익숙하고 높은 안목을 지니고 있으며, 스펙 대비 단기고용이 가능하고, 삶의 중간단계에서 헤매고 있으며,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용불안에 지치고 미래에 대한 절망에 빠진 이케아 세대는 취업-연애-결혼-출산-양육이라는 정규 코스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잘 사는 것”을 선택한 그들이 싱글로만 살아간다면 이 나라의 미래가 과연 있을까요? 이케아 세대에게 스펙을 쌓으라고 ‘강요’한 것은 그들의 부모입니다. 자식 잘되라고 그랬겠지만 이젠 스펙으로는 한계가 많습니다. 한때 그들은 ‘성공’을 꿈꾸며 자기계발서도 열심히 읽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계발서 또한 결국 노예가 되는 가르침만 담겨 있었습니다.

이원석은 <거대한 사기극>에서 우리 사회에서 열광적으로 소비되어왔던 자기계발서가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국가와 학교와 기업이 담당해야 할 몫을 개인에게 떠넘김으로써(민영화, 사교육, 비정규직 등), 사회 발전의 동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는 거대한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돕는 ‘자조(自助)’ 사회에서 서로 돕는 ‘공조(共助)’ 사회로 바꿔가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이지성은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고전을 열심히 읽으면 남보다 성공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원석은 <공부란 무엇인가>에서 “고전에 대한 탐닉은 결코 돈과 권력을 벌기 위한 좋은 방법이 아니”라며 이지성과 대척점에 선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노예(하류층)의 두려움”이나 “나도 언젠가는 주인(상류층)이 되겠다는 탐욕(과 이를 떠받치는 착각)”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세상과 맞짱”뜰 것을 촉구하는 이원석은 “ ‘책과 우정’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책을 통해 바르게 공부하고, 이를 위해 좋은 벗들과 함께할 수 있을 때에만, 오직 그때에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어야 합니다. 학문의 역사이기도 한 ‘공독(共讀)’만이 ‘나’의 꿈을 깨닫고, ‘너(타자)’를 이해하면서, ‘우리’라는 공동체의 비전을 함께 찾아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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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를 맞이한 작가 서영은은 <꽃들은 어디로 갔나>에서 1995년에 작고한 30년 연상의 작가 김동리와의 사랑을 써늘한 시선으로 담담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오로지 작가로서 삶의 진실, 인간성의 깊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사실이라는 작가는 “사랑은 목숨 같은 거야. 목숨을 지키려면 의지를 가져야 해. 그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니 목숨을 지킨다고 생각”하라는 연인의 격려에 모든 난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재미교포인 이서희는 자전적 에세이 <관능적인 삶>에서 자기 삶의 관능과 욕망을 농밀하고도 솔직하게 털어놓아 한 작가로부터 ‘한국의 사강’이라는 호칭까지 얻었습니다. 작가가 만약 한국에서 살고 있다면 성장 과정에서의 성 경험까지 쓸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허구와 실제가 혼돈되어 있는 소설로 더 적나라한 글을 쓰고 싶다는 소회를 털어놓았습니다.


자전소설과 자전적인 이야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우리 민족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동족끼리의 전쟁, 장기 군사독재를 겪는 과정에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겪을 수 없는 치욕을 무수히 겪었습니다. 5공화국 신군부에 의해 치욕의 고문을 당한 경험을 적나라하게 그린 한수산의 <용서를 위하여>를 다시 읽어보면서 저는 우리가 모르는 절명(絶命)이 얼마나 많이 벌어졌을까를 생각했습니다. 한수산과 소설책 출간을 이유로 몇 번 만난 것 때문에 잡혀가 받은 고문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뜬 박정만 시인은 길을 가다가 멀쩡한 하늘에서 떨어진 돌을 맞은 꼴이 아닐까요?


저는 어찌 됐든 한국의 고통스러운 현대사가 우리 문학의 수준을 무척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박완서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 30년>을 쓰면서 지난 시절의 베스트셀러를 다시 읽어본 소감으로는 박완서는 삶 자체가 문학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사실감이 높았습니다. 최근에 출간된 작가의 중단편선집 <대범한 밥상>을 다시 읽어보니 특히 생때같은 아들을 잃은 참척의 고통을 그린 단편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서는 한 어머니의 슬픔이 시대의 아픔으로 승화되어 절절한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자전적인 소설로 문명을 얻었습니다. 부랑노동자의 삶을 그린 <객지>, 베트남전쟁의 체험을 담은 <무기의 그늘>, 청년기의 성장과정을 그린 <개밥바라기별> 등의 황석영, ‘제주 4·3 사건’을 다룬 <순이 삼촌> <변방에 우짖는 새>의 현기영, <외딴 방>의 신경숙,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의 공지영, <새의 선물>의 은희경 등은 모두 자전적인 소설이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작가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3년에 절필을 선언했던 박범신이 다시 돌아와 절필 이유를 소상히 밝힌 <흰소가 끄는 수레>와 아버지가 대중작가라고 비판받는 것이 괴로워 가출했던 아들이 돌아오자 함께 대화를 나누는 <제비나비의 꿈>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야말로 작가의 분신일 것입니다.


1974년 베스트셀러 황석영著 '객지' 책표지(출처 :경향DB)


2010년에 네 권으로 구성된 ‘자전소설 모음집’인 <자전소설>(강)이 나왔을 때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자전소설’을 일러 “오로지 소설가로만 살아가도록 운명지어진 어떤 순금의 시간이 발굴되는 현장”이라면서 “세상의 모든 소설은 자전소설”이라고 규정지었습니다. 이 작품집에 실린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은 작가에게 ‘현대문학상’ 수상의 영광을 안기기도 했는데 작가는 작년에 펴낸 <안녕, 내 모든 것>에서도 ‘삼풍백화점’ 붕괴로 친구를 잃은 아픔이 얼마나 질기게 작가의 관념을 지배하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전적인 이야기는 어떤가요? 1993년에 출간된 <역사 앞에서>는 사학자인 김성칠이 6·25 당시 불과 사흘 만에 함락된 서울의 인공 치하 3개월을 사실 그대로 정리한 일기입니다. 언론사마저 황망하게 도주하는 바람에 그 시기에는 일간신문마저 발행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역사 앞에서>가 그 시기를 제대로 정리한 유일한 기록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사적 기록이 공적인 역사가 되기도 합니다.


당시에 이 일기를 읽고 나서 의미 있는 지식인의 일기를 찾아보니 ‘가람(이병기) 일기’가 유일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역사학자 강만길은 팔순을 지척에 앞두고 펴낸 <역사가의 시간>에서 “세상의 상식적인 사람들 모두가 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의 다른 한쪽을 적이 아닌 동족으로 인식하면서 역사학의 전공자로서 정직한 일기를 쓰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세계 최장기 군사독재 권력이 개인의 일기까지 뒤져 사적인 만남을 반국가 조직의 모임으로 몰아가는 일이 다반사였으니 시대를 기록해야 하는 역사가가 일기를 쓰는 것마저 자유롭지 않았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작년에 출간된 <이오덕 일기>를 한 번 보십시오. 1962년부터 2003년에 걸쳐 작고하시기 이틀 전까지 쓰신 200자 원고지로 3만7986장이나 되는 분량의 일기에서 원고지로 6126장 분량만 추려내 다섯 권으로 펴냈답니다. 이 일기는 한국 현대 교육운동사로 읽어도 무방할 것입니다.


자신의 슬픈 개인사를 눈이 내려 완전히 덮어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미덕이 아닙니다. 되도록 솔직하게 온전히 드러낸 것은 우리의 미래를 밝게 열어가는 역사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자서전을 써 보시겠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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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 선생님, 안녕하신지요? 선생님의 <다윗과 골리앗>이 단숨에 자기관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더군요. <티핑 포인트> <블링크> <아웃라이어> 등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폭발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책에 붙은 “강자를 이기는 약자의 기술”이라는 부제가 무색하게 이 책은 처음부터 돈으로 밀어붙이는 강력한 마케팅에 힘입은 바가 큽니다.

한국에서는 출간된 후 18개월이 지나지 않은 신간도서는 정가의 10% 이내의 할인과 10% 이내의 경품(총 할인율 19%)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정가가 1만7000원인 <다윗과 골리앗>은 론칭기간에 5000원짜리 할인쿠폰이 대대적으로 뿌려지는 바람에 독자들은 실제로 51.6%인 8770원에 책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펴낸 21세기북스는 <넛지>의 저자인 캐시 선스타인의 신간 <심플러>도 같은 방식의 마케팅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독자는 1만9800원의 책을 51.4% 할인된 9820원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냐고요. 한국에서는 실용서로 등록하면 얼마든지 할인해도 불법이 아닙니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사재기가 만연해 늘 시끄러우니 이런 편법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게지요. 저는 이런 행위를 ‘유사 사재기’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는 2002년에 ‘재판매가격유지행위가 허용되는 저작물의 범위에 관한 고시’라는 것을 만들어 2005년부터는 취미여가활동관련 도서, 성인용 자격증수험서 등 실용서를, 2007년부터는 초등학생용 참고서를 도서정가제 적용 품목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이후에 가격경쟁범위를 점차 늘릴 계획이었지만 출판·서적계의 강력한 반발로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들 (출처: 경향DB)

공정위는 “책값 과열경쟁이 학술·문예서적 등 고급서적 출간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수용”하기 위해 이 같은 고시를 마련했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니까 실용서는 창의성이 부족한 저급한 서적이니까 무한할인이 벌어져도 괜찮다는 뜻이겠지요. 아니 출간되지 않아도 무방한 책이라고 봤다면 심한 말이 될까요?

선생님의 책들은 모두 창의성이 빛나는 책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펴낸 21세기북스는 실용서로 분류했습니다. 엄연한 ‘학술·문예서적’을 실용서로 분류했다는 것은 사실상 이 책을 ‘쓰레기’ 취급한 것이 아닐까요? 아니면 이런 마케팅 기술만은 정말 창의적이라고 칭찬해야 할까요?

이런 빛나는 ‘성공사례’가 있으니 벌써 책을 실용서로 등록하는 사례가 크게 늘기 시작했습니다. <보랏빛 소가 온다>의 저자인 세스 고딘의 <이카루스 이야기>(한국경제신문사)는 사재기 혐의로 고발된 <관계의 힘> 양장 미니북을 증정할 뿐만 아니라 CU(편의점) 3000원 모바일상품권(사전 주문예약할 때에는 5000원이었습니다), 미니 탁상달력, 2000원 즉시 할인쿠폰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자기관리 1위인 <다윗과 골리앗>에 이어 2위에 올라 있습니다.

이제 모든 도서의 실용서화가 이뤄질 추세입니다. 조금만 기다려보십시오. 이제 책을 사면 공짜에다 왕창 선물을 안겨주는 일이 자주 등장할 것이니까요. 문화체육관광부는 이제야 실태조사에 나서는 한편 실용서와 교양서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지만 이미 한국 출판시장은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책을 만든다는 문화인의 자부심이나 출판 윤리는 실종된 지 오래됐고, 오로지 파격할인이나 사재기를 통해 베스트셀러 만들기에 급급합니다. 이런 행위도 유명저자의 책이 아니면 통하지 않으니 과도한 선인세로 유명저자의 책을 잡는 데도 혈안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회에 상정되어 있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일부개정법률안’(최재천 의원의 대표 발의)이 빨리 통과되어야 할 것입니다. 마침 국무총리실도 국가정책개선과제로 2014년 상반기까지 도서정가제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그동안 수수방관만 하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1월22일, 출판·서점, 독서·소비자단체 등이 참석하는 모임을 주재하는 등 직접 해결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니 어디 한번 기대해보겠습니다. 사실 한국 출판은 발등에 더 큰 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아마존은 염동훈 전 구글코리아 대표를 영입하면서 국내 진출을 본격화했습니다. 영미권 시장을 압도적으로 휩쓴 아마존은 일본에 진출한 지 1년 만에 일본 전자책 단말기 시장의 38.3%를 장악하면서 곧바로 일본 내 최대 사업자가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가 많이 거론됩니다. 도서 할인율을 5%로 엄격히 제한하는 특별법(랑법)이 있는 프랑스는 아마존이 진출하면서 서점들이 위협을 느끼자 정부 차원에서 서점 지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을 뿐만 아니라 작년 10월3일 프랑스 의회는 소형 서점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마존 같은 대형 온라인서점이 5% 할인과 별도로 무료배송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독일의 출판사(베텔스만 등)와 서점(후겐두벨, 탈리아 등)과 통신사(도이치텔레콤) 등은 아마존에 대응하기 위한 전자책 컨소시엄 ‘토리노’를 만들어 전용 디바이스를 출시한다고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 선생님, 당신은 이런 한국의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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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주간 동양경제’ 2011년 송년호는 ‘2012년 대예측’을 특집으로 꾸리고 113가지 테마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유럽의 벼랑 끝 위기’ ‘블록 경제화’ ‘커지는 격차’ ‘정치 원년’ ‘전력 격진(激震)’ 등 다섯 가지를 주요 테마로 설정했는데, 그중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 사진을 배경으로 제시된 세 번째 테마 기사의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미국사회 3명 중 1명은 빈곤층으로.”


저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중산층의 나라 미국이 미연방 국세(國勢)조사국이 밝힌 신빈곤 기준에 따르면 3명 중 1명이 빈곤층이거나 빈곤예비군이 된다는 지적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사에는 스탠퍼드대학교의 보고서를 인용해 “1970년대에 미국의 65%를 차지하던 중산층이 2007년도에는 20% 이하로 격감”하고 “부유층과 빈곤층이 각각 2배로 확대”되었다는 사실도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는 오늘의 미국사회를 분석한 책입니다. “우리는 99%다”라는 슬로건의 출현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스티글리츠는 “1%에 속하는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움켜쥔 채 승승장구하면서 나머지 99%는 불안과 걱정만을 안겨주었다”고 미국사회를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신명호 소장의 <빈곤을 보는 눈>(개마고원)은 “한국 사회의 가난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담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3명 중 1명은 빈곤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루 평균 생활비 1.25달러라는 유엔의 절대빈곤 기준을 대입하면 우리나라에서 빈곤층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 최저한의 삶이란, 그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삶이 아니라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란 전제를 대입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OECD의 통계에 따르면 국민소득 2만달러를 겨우 넘긴 우리나라의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은 15%로,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월등히 높은 미국(4만9600달러)의 17.3%와 일본(4만6972달러)의 15.7%보다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서기 어려워지고 청년 취업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 빈곤의 대물림 등이 굳어지고 있어 이제는 우리도 “빈곤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빈곤은 개인적 차원으로만 설명해서는 곤란합니다. 가난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불평등의 한 극단적인 양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간 불평등한 계급적 관계가 늘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각종 자원(재산·권력·학벌·연줄·건강 등)을 많이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그리고 남성과 여성, 주류와 소수자 그룹 사이에 언제나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법 아닌가요.


'빈곤을 철폐하라'(출처 :경향DB)


빈곤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입니다. 198만가구로 추정되는 ‘하우스푸어’와 전세대란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렌트푸어’ 등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공간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빈곤층에 포함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푸어(poor)’층을 빈곤층과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빈곤층이 아닐까요.


빈곤을 낳는 가장 큰 연원은 부족하고 불안정한 일자리입니다. 물론 고용의 질도 중요하겠지요.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32~35% 수준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단연 1위입니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과 계층 간 근로소득격차도 세계 1위인 데다 자살률, 상대빈곤율, 불평등지수 등과 함께 고용불안정에서도 부끄러운 최상위권 순위에 올라 있습니다. 일자리 가운데 자영업자 비율이 25% 수준을 오르내리지만 그중 90% 이상이 영세자영업자라 열에 아홉은 망해가기 일쑤입니다.


신 소장은 “노동자를 공생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한낱 소모품으로 여기는 대자본의 태도와 기업문화는 늘 그들 편에만 섰던 정치권력이 방조하고 조장한 결과물”이며 “개발독재정권은 과거의 가난을 몰아내는 데 기여했지만, 오늘날 새로운 가난이 생겨나는 원인을 제공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계약직 고용, 저임금 및 성과급 체제, 상시적 구조조정 등을 활용하는 한편 후생 복리 같은 것은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낮은 임금을 주다가 아무 때고 해고할 수 있는 ‘노동 유연화’ 전략에 간혹 노동조합이 맞서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대응”해왔습니다. 경제의 글로벌화와 과학기술의 변화가 미국의 불평등과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 덕에 G1 미국이 3명 중 1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치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사회안전망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철도파업이나 전교조를 대하는 작금의 태도를 보면 개발독재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신 소장은 빈곤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고 역설합니다. 바야흐로 ‘신빈곤층의 시대’, 이제 새로운 대처가 필요할 때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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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판시장을 다소 식상하게 표현하자면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을 겪었습니다. 출판 산업의 생산·유통·판매 지표가 크게 악화되어 이구동성으로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출판 생태계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12월9일 대한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연구소 공동 주최로 ‘한국 출판의 위기 극복 방안 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출판물류업체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한 연구자는 “지난 4년간 평균 10%씩 매출이 감소해왔다. 특히 1만부 이상 출고 도서의 총 출고부수와 종수는 지난 4년 사이에 절반 이상 감소했다. 1000부 미만 출고 도서의 경우는 출고부수는 소폭 감소했지만 종수는 18.3%나 늘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른바 베스트셀러의 판매부수와 종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2009년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9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에 오른 이후 2010년의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2011년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2012년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스님) 등의 책이 해마다 밀리언셀러에 오르는 기간을 단축해왔지만 실제로 1만부 이상 팔리는 책의 종수는 크게 줄었다는 것입니다. 올해 밀리언셀러에 오른 책은 세 권 합쳐 100만부를 돌파한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유일합니다. 출판사들의 극단적인 베스트셀러 중심주의가 한계에 다다라 사실상 밀리언셀러가 실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한기호 _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출처 :경향DB)


다른 도매 기구의 한 간부는 “현재 전국적으로 (교양도서의) 신간을 전시하는 서점은 200개 안팎”이라며 “공공기관과 지역 서점 간 도서납품 의무화 등을 통해 지역 서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때 5700개로 정점을 찍었던 서점 수는 현재 문방구를 겸하는 서점까지 포함해 1700여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출판사가 신간을 펴내도 책을 진열할 서점이 없습니다. 그러니 갈수록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온라인서점의 초기 화면에 책이 노출되는 것을 최고의 마케팅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서둘러 온라인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장 잘나간다는 온라인서점의 MD(머천다이저)는 책의 겉모습만 대강 훑어보고도 “이걸 책이라고 만들었어요?”라거나 “이 책이 팔린다고 생각하세요?”라며 핀잔을 일삼았지만 수많은 영업자들이 오로지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모욕을 감수했다지요.


하지만 모두가 모욕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출판사들은 책 광고의 90% 이상을 온라인서점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러니 광고를 많이 하는 출판사, 책 출고가를 대폭 낮춰주는 출판사, 각종 이벤트 비용을 잘 부담하는 출판사들과의 ‘협조’는 잘 이뤄졌습니다. 추천을 빙자한 광고를 심하게 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벌금을 물기도 했지요.


저는 지난 10월29일에 출판, 유통, 작가, 소비자단체 및 주요 업체 대표들이 모여 ‘책 읽는 사회 조성 및 출판 유통질서 확립 자율 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사재기의 주범인 온라인서점들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반 교양서를 도서정가제 예외도서인 실용서로 둔갑해 과다 할인을 하거나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도서를 과다하게 할인하는 행위도 사실상 ‘유사 사재기’입니다. 사재기가 의심 가는 도서를 적발할 때 증거로 삼는 것의 대부분은 온라인서점의 판매데이터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4대 온라인서점의 대표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번의 협약에서 아주 특별했던 것은 “출판·유통업계는 유통과정에서 불건전 유통 행위를 조사할 수 있도록 ‘건전 유통 감시인’ 제도를 두기로 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온라인서점 안에 건전 유통을 감시하는 외부인을 두자는 것을 협약안에 넣어야 할 만큼 온라인서점이 책 사재기 범죄의 공동정범 혹은 방조자로 여긴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제가 좀 심한가요? 하지만 책값에 대한 불신이나 베스트셀러에 대한 의심이 책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요? 게다가 출판인들이 정말 우려하는 것은 승승장구하던 온라인서점들의 매출마저 폭락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는 감히 주장합니다. 이제 한국의 출판사들이 온라인서점 몇 개 살리려고 고혈을 짜내는 일은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출판생태계를 살리는 최상의 길은 완전 도서정가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가의 10% 이내에 모든 할인과 경품을 포함시키는 불구의 도서정가제가 국회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이 법안만이라도 수정 없이 통과되기를 정말 많은 출판인들과 서점인들이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온 가족이 서점에 방문해 서로 책을 고르는 기쁨을 누리는 일이 늘어날 것입니다. 각자가 책을 고른 이유를 밝히는 일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늘어나면 책의 다양성, 창의성, 의외성이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양질의 책을, 언제 어디서나, 값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책값을 내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요. 제발 서둘러 법을 통과시켜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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