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간 동양경제’ 2011년 송년호는 ‘2012년 대예측’을 특집으로 꾸리고 113가지 테마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유럽의 벼랑 끝 위기’ ‘블록 경제화’ ‘커지는 격차’ ‘정치 원년’ ‘전력 격진(激震)’ 등 다섯 가지를 주요 테마로 설정했는데, 그중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 사진을 배경으로 제시된 세 번째 테마 기사의 제목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양극화가 심해지는 미국사회 3명 중 1명은 빈곤층으로.”


저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중산층의 나라 미국이 미연방 국세(國勢)조사국이 밝힌 신빈곤 기준에 따르면 3명 중 1명이 빈곤층이거나 빈곤예비군이 된다는 지적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사에는 스탠퍼드대학교의 보고서를 인용해 “1970년대에 미국의 65%를 차지하던 중산층이 2007년도에는 20% 이하로 격감”하고 “부유층과 빈곤층이 각각 2배로 확대”되었다는 사실도 적시되어 있었습니다.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가 불평등이 날로 심화되는 오늘의 미국사회를 분석한 책입니다. “우리는 99%다”라는 슬로건의 출현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에 대한 논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말하는 스티글리츠는 “1%에 속하는 사람들은 막대한 부를 움켜쥔 채 승승장구하면서 나머지 99%는 불안과 걱정만을 안겨주었다”고 미국사회를 격렬하게 비판했습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신명호 소장의 <빈곤을 보는 눈>(개마고원)은 “한국 사회의 가난에 대한 진실과 거짓”을 담은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도 3명 중 1명은 빈곤층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루 평균 생활비 1.25달러라는 유엔의 절대빈곤 기준을 대입하면 우리나라에서 빈곤층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 최저한의 삶이란, 그저 간신히 목숨만 부지하는 삶이 아니라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를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란 전제를 대입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입니다.


OECD의 통계에 따르면 국민소득 2만달러를 겨우 넘긴 우리나라의 빈곤율(중위소득의 50% 이하 소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율)은 15%로,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월등히 높은 미국(4만9600달러)의 17.3%와 일본(4만6972달러)의 15.7%보다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저소득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서기 어려워지고 청년 취업난,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 빈곤의 대물림 등이 굳어지고 있어 이제는 우리도 “빈곤을 준비해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빈곤은 개인적 차원으로만 설명해서는 곤란합니다. 가난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불평등의 한 극단적인 양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 간 불평등한 계급적 관계가 늘 재생산될 뿐만 아니라, 각종 자원(재산·권력·학벌·연줄·건강 등)을 많이 가진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에, 그리고 남성과 여성, 주류와 소수자 그룹 사이에 언제나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법 아닌가요.


'빈곤을 철폐하라'(출처 :경향DB)


빈곤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입니다. 198만가구로 추정되는 ‘하우스푸어’와 전세대란으로 애간장을 태우는 ‘렌트푸어’ 등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공간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빈곤층에 포함시킨다면 우리 사회의 빈곤층은 크게 늘어날 것입니다. ‘푸어(poor)’층을 빈곤층과 동일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이지만 심정적으로는 빈곤층이 아닐까요.


빈곤을 낳는 가장 큰 연원은 부족하고 불안정한 일자리입니다. 물론 고용의 질도 중요하겠지요. 한국은 비정규직 비율이 32~35% 수준으로 OECD 34개국 가운데 단연 1위입니다. 저임금 근로자 비율과 계층 간 근로소득격차도 세계 1위인 데다 자살률, 상대빈곤율, 불평등지수 등과 함께 고용불안정에서도 부끄러운 최상위권 순위에 올라 있습니다. 일자리 가운데 자영업자 비율이 25% 수준을 오르내리지만 그중 90% 이상이 영세자영업자라 열에 아홉은 망해가기 일쑤입니다.


신 소장은 “노동자를 공생의 동반자로 보지 않고 한낱 소모품으로 여기는 대자본의 태도와 기업문화는 늘 그들 편에만 섰던 정치권력이 방조하고 조장한 결과물”이며 “개발독재정권은 과거의 가난을 몰아내는 데 기여했지만, 오늘날 새로운 가난이 생겨나는 원인을 제공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미국의 경영자들은 “노동자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계약직 고용, 저임금 및 성과급 체제, 상시적 구조조정 등을 활용하는 한편 후생 복리 같은 것은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낮은 임금을 주다가 아무 때고 해고할 수 있는 ‘노동 유연화’ 전략에 간혹 노동조합이 맞서는 경우에는 가차 없이 대응”해왔습니다. 경제의 글로벌화와 과학기술의 변화가 미국의 불평등과 빈곤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그 덕에 G1 미국이 3명 중 1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치욕을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사회안전망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철도파업이나 전교조를 대하는 작금의 태도를 보면 개발독재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신 소장은 빈곤은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로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차원의 문제라고 역설합니다. 바야흐로 ‘신빈곤층의 시대’, 이제 새로운 대처가 필요할 때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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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판시장을 다소 식상하게 표현하자면 ‘단군 이래 최악의 불황’을 겪었습니다. 출판 산업의 생산·유통·판매 지표가 크게 악화되어 이구동성으로 그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출판 생태계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12월9일 대한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는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연구소 공동 주최로 ‘한국 출판의 위기 극복 방안 대토론회’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출판물류업체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한 연구자는 “지난 4년간 평균 10%씩 매출이 감소해왔다. 특히 1만부 이상 출고 도서의 총 출고부수와 종수는 지난 4년 사이에 절반 이상 감소했다. 1000부 미만 출고 도서의 경우는 출고부수는 소폭 감소했지만 종수는 18.3%나 늘었다”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이른바 베스트셀러의 판매부수와 종수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2009년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9개월 만에 밀리언셀러에 오른 이후 2010년의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샌델), 2011년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2012년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혜민 스님) 등의 책이 해마다 밀리언셀러에 오르는 기간을 단축해왔지만 실제로 1만부 이상 팔리는 책의 종수는 크게 줄었다는 것입니다. 올해 밀리언셀러에 오른 책은 세 권 합쳐 100만부를 돌파한 조정래의 <정글만리>가 유일합니다. 출판사들의 극단적인 베스트셀러 중심주의가 한계에 다다라 사실상 밀리언셀러가 실종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한기호 _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출처 :경향DB)


다른 도매 기구의 한 간부는 “현재 전국적으로 (교양도서의) 신간을 전시하는 서점은 200개 안팎”이라며 “공공기관과 지역 서점 간 도서납품 의무화 등을 통해 지역 서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한때 5700개로 정점을 찍었던 서점 수는 현재 문방구를 겸하는 서점까지 포함해 1700여개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제 출판사가 신간을 펴내도 책을 진열할 서점이 없습니다. 그러니 갈수록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온라인서점의 초기 화면에 책이 노출되는 것을 최고의 마케팅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간이 나오면 서둘러 온라인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장 잘나간다는 온라인서점의 MD(머천다이저)는 책의 겉모습만 대강 훑어보고도 “이걸 책이라고 만들었어요?”라거나 “이 책이 팔린다고 생각하세요?”라며 핀잔을 일삼았지만 수많은 영업자들이 오로지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모욕을 감수했다지요.


하지만 모두가 모욕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출판사들은 책 광고의 90% 이상을 온라인서점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그러니 광고를 많이 하는 출판사, 책 출고가를 대폭 낮춰주는 출판사, 각종 이벤트 비용을 잘 부담하는 출판사들과의 ‘협조’는 잘 이뤄졌습니다. 추천을 빙자한 광고를 심하게 하다가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벌금을 물기도 했지요.


저는 지난 10월29일에 출판, 유통, 작가, 소비자단체 및 주요 업체 대표들이 모여 ‘책 읽는 사회 조성 및 출판 유통질서 확립 자율 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사재기의 주범인 온라인서점들에 면죄부를 주는 행위를 그만두라”고 비판했습니다. 일반 교양서를 도서정가제 예외도서인 실용서로 둔갑해 과다 할인을 하거나 출간된 지 18개월이 지난 도서를 과다하게 할인하는 행위도 사실상 ‘유사 사재기’입니다. 사재기가 의심 가는 도서를 적발할 때 증거로 삼는 것의 대부분은 온라인서점의 판매데이터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4대 온라인서점의 대표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번의 협약에서 아주 특별했던 것은 “출판·유통업계는 유통과정에서 불건전 유통 행위를 조사할 수 있도록 ‘건전 유통 감시인’ 제도를 두기로 한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온라인서점 안에 건전 유통을 감시하는 외부인을 두자는 것을 협약안에 넣어야 할 만큼 온라인서점이 책 사재기 범죄의 공동정범 혹은 방조자로 여긴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제가 좀 심한가요? 하지만 책값에 대한 불신이나 베스트셀러에 대한 의심이 책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요? 게다가 출판인들이 정말 우려하는 것은 승승장구하던 온라인서점들의 매출마저 폭락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는 감히 주장합니다. 이제 한국의 출판사들이 온라인서점 몇 개 살리려고 고혈을 짜내는 일은 하루빨리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출판생태계를 살리는 최상의 길은 완전 도서정가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지금 정가의 10% 이내에 모든 할인과 경품을 포함시키는 불구의 도서정가제가 국회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이 법안만이라도 수정 없이 통과되기를 정말 많은 출판인들과 서점인들이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온 가족이 서점에 방문해 서로 책을 고르는 기쁨을 누리는 일이 늘어날 것입니다. 각자가 책을 고른 이유를 밝히는 일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가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이 늘어나면 책의 다양성, 창의성, 의외성이 점차 늘어날 것입니다. 양질의 책을, 언제 어디서나, 값싼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출판사들은 경쟁적으로 책값을 내려야만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까요. 제발 서둘러 법을 통과시켜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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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잘 지내셨나요? 아직 한 달여 남았지만 송구영신의 준비를 하느라 바쁘시지요. 저도 그런 심정으로 이번 주말에 미래 예측서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전에는 이런 책이 꽤나 나왔는데 이제는 이마저도 빈약하군요. 마치 달력을 얻기 어려운 것처럼요.


경제전문가들은 2013년부터 2015년 사이에 다시 글로벌 경제 침체가 올 수도 있다고 예상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마다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은 바 있는 우리는 올해도 무척 걱정했습니다. 다행히 아직 심각할 정도의 파탄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연말의 정국이 걱정입니다. 위기가 잠시 미뤄졌을 뿐인데 과연 우리가 이러고 있어도 될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습니다.


<앞으로 5년 결정적 미래>(머니투데이 특별취재팀, 비즈니스북스)에서는 급변할 미래 5년의 한가운데에 ‘저출산 고령화’가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우리나라는 2001년 이후 10년째 초저출산 기준인 출산율 1.3명을 밑돌고 있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 반면 부양해야 할 노인들이 급증할 뿐만 아니라 연금 제도가 발달되지 않은 채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는 특성이 있는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의 40%가 연금을 받지 못할 정도로 노인 빈곤율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리 정부는 여성과 고령층에 대한 양질의 일자리 제공과 양육비 지원 등을 저출산 고령화 문제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과연 그게 해결책이 될까요? 이 책에서는 경제예측 전문가인 해리 덴트도 글로벌 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가 ‘고령화’라고 지적하고 있더군요. 그는 베이비붐 세대의 존재 여부가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다고 단언합니다. 고등 교육을 받은 외국인들의 이민을 장려하라는 한국에 대한 그의 충고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1차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가 이미 은퇴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현실은퇴시점(57세)과 희망은퇴시점(63세)이 달라 소득 공백이 예상되고, 노후 준비가 상대적으로 덜 되어 있어 구매력이 낮을 것”으로 보여 소비가 둔화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래서일까요? <트렌드코리아 2014>(김난도 외, 미래의창)와 <라이프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김용섭, 부키)는 한목소리로 40대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트렌드코리아 2014>는 2014년의 키워드로 ‘스웨그(SWAG)’한 마력, 육체노동에의 회귀, 젊음을 추구하는 중년층, 노동복에서 명품으로의 재해석, 직구적인 솔직함 등의 느낌을 가장 잘 전달하는 ‘다크호스(DARK HORSES)’를 선정했습니다. 이 책이 내세운 참을 수 없는 스웨그의 가벼움, 몸이 답이다. 초니치(ultra-niches) 틈새의 틈새를 찾아라 등 10가지 전망 가운데 “‘어른 아이’ 40대”라는 전망이 가장 솔깃했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40대는 1966년부터 1974년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1차 베이비붐 세대보다 50여만명이 많은 최다인구층이면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하고 ‘잊힌 세대(forgotten generation)’라 해서 ‘F세대’로 불리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에 PC, 20대에 인터넷을 경험하는 등 늘 시대의 변혁 속에서 기술 혁명의 중심에 놓여 있었기에 이들 40대는 “변화를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가장 빠르게 적응해온 세대”이며 “언제나 시대를 이끄는 얼리어답터”이기도 했습니다.


이 세대의 중심에는 ‘70년 개띠’가 있습니다. 교복을 한 번도 입지 않은 이들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7년 6월항쟁, 1988년 올림픽이 벌어지던 시기에 고등학생이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로 배낭여행도 다녀왔습니다. 20대 후반의 결정적 시기에는 ‘외환위기’, 30대 후반에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정말 힘겨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싱글이 많습니다.


이제 사회적 성공에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은 40대가 “거창한 꿈은 가슴에 묻어두고 소소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추구하며 그 속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려고” 할 것이며, “일에서 찾던 정체성이 수집과 취미활동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발현되고 있”으며, 이제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거대한 포부와 보상이 아니라 일상에서 실현 가능한 작은 행복”이라고 하네요.


한 중년 남성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출처 :경향DB)


<라이프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의 저자도 이들 40대가 강하고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남성이나 가장이라는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있답니다. 탱고라는 탈출구를 찾고, ‘록페’를 달구고, 명품 시계를 탐하고, 시사지가 아닌 패션지를 펼쳐 들고, 행커치프와 보타이와 양말에 신경 쓸 정도로 몸단장에 열중하고, 화장에 네일케어까지 받는 그루밍족이 되기도 한답니다. 그들은 이제 ‘강한 남자’라는 가면을 벗고, 있는 그대로 약한 모습을 보여 주며, 위로도 받고,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찌질남’과 ‘초식남’이 뜨고, 걸그룹에 열광하는 ‘삼촌팬’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정보기술 혁명의 태풍을 선두에서 맞이하고 경제위기의 최대 피해자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40대는 언제나 사회의 중추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거침없이 ‘집’을 나가서 노는 것에만 열중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저는 묻고 싶습니다. “이제 소는 누가 키우나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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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 뉴턴, 로크, 파스칼, 스피노자, 칸트, 라이프니츠, 쇼펜하우어, 니체, 키에르케고르, 비트겐슈타인 등의 공통점은 단 한 가지. 모두 평생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살며 ‘의도된 고독’의 길을 걸었기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철학자들입니다. 


사회학자인 노명우 아주대 교수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사월의책)에서 이 같은 사실을 적시하고는 “이들의 위대함은 결혼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용기, 그리고 그들이 가졌던 의도된 고독인 ‘흰 고독’의 순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노 교수는 “리얼리티가 없기에 일장춘몽에 불과한 ‘화려한 싱글’과 판타지가 없이 고독사에 떨고 있는 ‘독거노인’이라는 양 극단 사이에” 서 있는 다양한 혼자만의 삶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 앞 낙엽거리를 걷는 한 중년 남성 (출처 :연합뉴스)



이 시대 사람들이 모두 철학자가 되고자 하는 것은 아닐진대 1인 가구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40%에 달합니다. 서울시에서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1980년 8만2477가구에서 2010년 85만4606가구로 30년 만에 10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우리나라 전체로 보면 2012년 기준 1인 가구는 453만 가구로 전체의 25.3%입니다.


1인 가구 증가의 원인으로 개인의 부상, 여성의 지위향상, 도시의 성장, 통신기술의 발달, 생활 주기의 확장 등을 제시한 노 교수는 “1인 가구의 증가는 흑사병처럼 퍼져 나가는 독신 풍조의 확산을 의미하지도, 인구 감소로 인한 사회 몰락의 징조도 아니”며 “이타주의의 몰락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나 익숙해져 있던 가정중심성이 약화되는 징후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노 교수는 미혼, 비혼, 만혼, 이혼 등의 옆에다 독립, 자율, 권능, 홀로서기 등의 긍정성을 강조한 단어를 연결합니다.


노 교수가 지적한 바대로 우리 사회는 개인이 삶의 양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확대되면서 혼자 사는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혼자 산다는 것은 단순히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 노처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요구하는 보편적인 미래의 문제”입니다.


<완벽한 싱글>(김용섭, 부키)은 “혼자 살든 결혼해서 살든 단순히 혼자라는 의미를 넘어 스스로 사회적, 경제적 독립성을 유지하며 자유를 지향하는 이들”입니다. 결혼은 하되 완벽한 싱글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부부를 ‘코시스’(CoSis=Couple+Single)로 부른다네요. ‘완벽한 싱글’은 결혼을 해도 싱글 라이프의 독립성이란 핵심 요소를 유지하며, 외벌이일지라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수입과 지출을 나눠 ‘경제적 싱글’로 사는 등 자녀와 배우자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누구나 혼자는 두렵습니다. 더구나 불안정한 고용이 증가하고 장기불황이 진행되면서 타인과 함께 사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셰어하우스>(구보타 히로유키, 퍼블리싱컴퍼니클)는 다수가 한집에 살면서 침실 같은 개인적인 공간은 따로 사용하고, 거실과 화장실, 주방 등은 함께 사용하며, 방세와 전기요금 같은 생활비를 함께 부담하는 생활방식입니다.


구보타 히로유키는 “‘자유’를 타인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을 인정받는 것이라 한다면, ‘자립’을 정도껏 타인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 한다면, ‘친밀감’을 함께 생활하면서 상대에게 느끼는 경애의 마음이라고 한다면, 그것들은 가족을 포함한 타인과 함께 사는 생활에서만 존재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타인과의 삶은 혼자 사는 것보다, 가족과 사는 것보다, 훨씬 자유롭고 자립할 수 있고, 친밀한 것이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며 셰어 생활이 필요한 이유를 ‘자유’와 ‘자립’, ‘친밀감’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젊은이들은 원룸과 같은 ‘나만의 공간’에서 독립해 사는 것을 즐겼지만 이제는 ‘나 혼자’보다는 ‘공유’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건물 외벽에 암벽등반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텐트먼트 셰어하우스’, 베이비시터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공동 육아와 서로 육아 품앗이를 하는 ‘싱글맘 전용 셰어하우스’, 연주자나 음악가를 위해 방음시설을 갖춘 ‘음악가 셰어하우스’ 등 취미와 라이프스타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특화된 ‘셰어하우스’도 늘어나고 있답니다.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각자의 생활공간을 유지하며 정기모임과 공동식사, 그룹 활동 같은 자율적인 소통을 통해 고립에 대한 불안감, 가사와 육아 문제에 대한 걱정 등을 해소하는 <컬렉티브하우스>(고야베 이쿠코 외, 퍼블리싱컴퍼니클)도 ‘제3의 주거’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 교수는 “혼자서 해야만 하는 것과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삶은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홀로서기’에 성공한 사람들이 네트워크(연대)로 이어진 사회가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완벽한 싱글’의 부부나 ‘셰어하우스’와 ‘컬렉티브하우스’는 그런 연대의 모습이 아닐까요? 김용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싱글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제 개인은 우주공간이라는 퍼즐에서 ‘나’라는 존재의 위치부터 찾아야 하는 시대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곧 ‘가족’이라는 단어가 사전에서 사라지지 않을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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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계의 뜨거운 키워드가 ‘북유럽’이라고 합니다. 먼저 교육 하면 핀란드입니다. 교육계에 핀란드 열풍을 불러온 계기가 된 책은 2008년 국내에 소개된 후쿠타 세이지의 <핀란드 교육의 성공>(북스힐)입니다. 핀란드 교육의 무엇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을까요? 후쿠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개인의 능력 차이는 물론 인정한다. 그러나 아이의 성장에 영향을 주는 사회적·경제적 배경의 차이는 어떻게 해서든 없애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회가 확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사회가 바로 핀란드다.”


복지도 북유럽입니다. 올해 9월, 유엔이 156개 국가를 대상으로 국민 행복도를 조사해 발표한 ‘2013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덴마크가 1위, 노르웨이가 2위, 네덜란드가 4위, 스웨덴이 5위, 핀란드가 7위로 북유럽이 상위를 휩쓸었습니다. 이러니 문화, 라이프스타일, 육아, 여행, 교육, 인테리어, 가구 등도 북유럽이 ‘방방’ 뜨고 있습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국내에서 그래도 웬만큼 팔렸다는 북유럽 소설로는 덴마크 작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마음산책)이 처음 아닐까 싶습니다. 요즘 북유럽 소설의 인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인구 900만의 나라 스웨덴에서 100만부 이상 팔린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열린책들)은 벌써 제목만큼이나 대단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네덜란드 국민작가로 일컬어지는 헤르만 코흐의 <디너>(은행나무)와 노르웨이 국민작가 요 뇌스베의 <스노우맨>(비채)도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북유럽 소설입니다. 세 소설 모두 흡인력이 정말 대단합니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출처 :경향DB)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젊은 시절에 프랑코, 트루먼, 마오쩌둥, 스탈린, 김일성과 김정일 등을 만나 격동의 현대사를 바꿨다고 주장하는 알란 칼손이 자신의 100세 축하 파티가 열리기 한 시간 전에 양로원을 탈출한 뒤에 이어지는 대책 없는 도피행각을 그린 소설입니다. 탈출한 그가 처음 다다른 버스터미널에서 한 갱단의 돈가방을 우연찮게 손에 넣게 됨으로써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의 2막이 시작됩니다.


폭약 전문가로 원자탄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경험이 있는 알란은 99세에 닭을 괴롭히는 여우를 잡으려고 폭탄을 설치했다가 집을 송두리째 날려버립니다. 사건이 나자 한 시간도 안되어 현장에 나타난 사회복지사 헨리크 쇠데르는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노인 알란을 시 예산으로 시내 중심가의 호텔에 잡아두었다가 일주일 만에 말름셰핑 양로원으로 데려다 줍니다. 흡연과 음주를 금지하고 지켜야 할 각종 규칙이 많아 결국 알란이 탈출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사회적 시스템이 부럽지 않나요?


차기 수상(총리)이 유력한 정치인 형과 전직 역사교사인 동생의 부부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나 서양의 정찬요리를 먹는 순서, 즉 아페리티프, 애피타이저, 메인 요리, 디저트, 소화제, 팁의 순서로 전개되는 <디너>는 처음에는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며 다소 느슨하게 전개됩니다. 그러나 두 부부의 아들이자 열다섯 살짜리 동갑내기 사촌 형제가 벌인 노숙자 살인사건의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이 TV는 물론 인터넷에까지 퍼지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소설은 격랑 속으로 빠져듭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들 외에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들 형제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네요.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한국보다 결코 덜하지 않다는 것 말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 속의 어머니 이상의 어머니가 이 소설에 등장합니다. 소설의 화자인 동생은 외국인들이 네덜란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것이 렘브란트나 빈센트 반 고흐 같은 화가이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유일한 네덜란드 사람은 안네 프랭크”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화가가 반 고흐이고, 가장 많이 팔린 일기가 <안네의 일기>인 것이 결코 우연만은 아닌 것 같지 않나요?


일러스트 : 김상민


<스노우맨>은 오슬로 경찰청 최고의 형사인 해리 홀레 반장이 노르웨이 첫 연쇄살인범을 쫓는 이야기입니다. 첫눈이 올 때마다 아이가 있는 여자들이 살해되거나 사라집니다. 현장에는 어김없이 집 안을 들여다보는 눈사람이 등장합니다. 스칸디나비아의 냉혹한 겨울만큼이나 범인 ‘스노우맨’의 차가운 살인이 계속되고 경찰이 추정한 범인이 자꾸 바뀌는 바람에 독자는 미혹에서 헤어나기 어렵습니다.


해리는 타고난 워커홀릭에다 알코올홀릭입니다. 범인은 심각한 정신질환자입니다. 소설이 파국에 이른 지점에서 범인은 해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같은 일을 했다는 사실. 병균과 싸우는 일. 하지만 너와 내가 싸우는 병균은 절대 박멸되지 않아. 우리가 거두는 모든 승리는 일시적이지. 따라서 우리 일생의 과업은 싸움 그 자체야.”


<스노우맨>은 선과 악을 이분법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 겪은 우연한 아픔을 평생 짊어지게 된 인간들이 가해자나 피해자를 가릴 것 없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냉혹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해리 반장이 범인과 함께 사선을 넘다가 정신을 잃은 후 깨어나자마자 “전 여자친구의 목을 뎅강 자르려고 했던” 범인의 생사 여부부터 확인하는 것에서 우리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근원적 성찰의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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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전도사’인 토머스 L 프리드먼은 국내에 2005년 말 소개된 <세계는 평평하다>에서 “국경과 민족의 경계를 뛰어넘는 지구촌 경제체제, 즉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와 자유가 주어지는 세계화”를 거스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책을 움직이는 축은 한마디로 ‘아웃소싱’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소개한 한 신문의 기사 제목은 “인도 가난한 소년이 하버드 여대생 일자리를 빼앗는다”였습니다.


이 책이 나온 후 보수 논객 공병호 박사는 “세계화는 세계 전체가 자원 배분의 합리성을 더욱 높여가는 일련의 과정이란 특성을 갖고 있다. 협소한 시야에서 보면 날아가 버리는 일자리에 분노할 수 있지만 시장의 확대는 대다수 사람에게 전문화와 분업의 이점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며 프리드먼의 주장을 적극 옹호하는 글을 한 신문에 발표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 (출처 :경향DB)



공 박사는 “평평한 세계에서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것은 조직이나 국가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며, 그 누구도 자신을 대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늘 자신의 일이 ‘아웃소싱의 대상이 될 수 없도록 하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은 사람들이 바로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 세계는 세상을 어두컴컴하게 보는 사람들에게 암울함과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변화의 흐름을 직시하고 본질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대단히 역동적인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고 속삭였습니다.


필립 브라운, 휴 로더, 데이비드 애쉬턴 등 세 사람이 함께 쓴 <더 많이 공부하면 더 많이 벌게 될까>(개마고원)에서는 프리드먼이 제시한 긍정적인 미래인 ‘평평한 세계’를 ‘기회의 바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지식전쟁은 경쟁을 통해 미국인들의 기량을 더욱 향상시킬 것이고, 가장 뛰어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할 것”이기에 인도와 중국 같은 “신흥국과의 경쟁에 미국의 중산층마저 휘말릴 것이라고 걱정할 아무 이유가 없다”는 프리드먼의 가설은 틀렸다고 주장합니다. ‘기회의 바겐’은 ‘기회의 덫’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책의 원제는 ‘글로벌 옥션’으로, “국경을 뛰어넘는 노동자 고용 시스템”, 즉 “가장 값싼 임금을 제시하는 사람이 고용되는 역경매 시스템”을 말합니다. 미국 기업의 일을 인도나 중국의 노동자가 자국에서 아웃소싱으로 처리하는 세상이 되긴 했습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신흥국의 대졸자들이 고급 노동력을 염가 할인하는 역경매 방식으로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바람에 미국의 대졸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하고 있으며, 설사 취업을 하더라도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미국) 사회는 개인들에게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빚을 지도록” 권유하고 있지만 이제 그런 구조에서의 승리자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이 책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옥션’으로 말미암아 관리자급 노동자, 전문직, 기술자들은 일자리 시장에서 입지가 점차 약화되고 있어 “성실하고 능력 있는 노동자들이 높은 생활수준을 누릴 수 있다는 약속”은 깨졌다는 것을 저자들은 입증해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로 저자들은 ‘디지털 테일러리즘’을 제시합니다. “자동차·컴퓨터·텔레비전과 같은 제품의 부품을 전 세계에서 나눠서 생산하고 고객의 수요에 맞게 조립·판매하는 방식”이 서비스 업무에도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바람에 회계사·교수·엔지니어·변호사·컴퓨터 전문가와 같은 직업도 이제는 더 이상 수입·직업안정성·커리어 전망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오로지 1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구조로 빠져들고 있답니다.


대학생 취업박람회 (출처: 경향DB)


한때 유학생 세계 1위를 기록했던 우리의 현실은 어떨까요? 불경기와 중화권 유학생의 증가로 유학생 수는 세계 1위에서 4위로 내려앉았지만 유학생 규모는 18만2300여명으로 여전히 많습니다. 이중 절반가량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졸업 후 현지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라 서둘러 귀국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유학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기러기 아빠’가 크게 증가하는 바람에 이들의 고달픈 삶을 조명한 <수상한 가족>이라는 드라마가 어제부터 방영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제 남아도는 고급 인력의 처리가 문제입니다. <잉여사회>(최태섭, 웅진지식하우스)는 도무지 쓸 데를 찾을 수 없는 ‘잉여인간’을 화두로 우리 사회를 명쾌하게 정리해낸 책입니다. 


저자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가 취업마저 포기해 ‘사포세대’로 진화했다고 말합니다. 잉여인간들은 “우리들의 시대에 가장 대중적이고 절박한 문학의 형식”인 ‘자기소개서’를 창작하느라 바빠 책을 읽을 시간도 없습니다. “기술의 발전을 통해 과거 10명이 할 일을 혼자 떠맡게 된 사람이 과로로 죽어가는 동안, 다른 9명은 손가락을 빨고” 있다가 “누군가가 과로로 쓰러질 때만 나머지 9명 중 1명에게 과로할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니까요.


저자는 잉여의 존재론적 위상은 ‘좀비’와 ‘유령’일 뿐이랍니다. “살아 있음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오늘날 잉여들의 상징이다. 잉여는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도 살지 못한다. 잉여가 세상에 줄 것은 오로지 역설뿐”이라네요. 우리는 언제쯤 이 잔혹한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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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일본의 올해 나오키상 수상작은 아사이 료의 장편소설 <누구>(은행나무)입니다. 이 소설에는 미야마 대학교 4학년생 다섯 사람의 치열한 ‘취활’을 그리고 있습니다. 취활은 취업활동, ‘혼활’은 결혼활동의 준말입니다. 취업이나 결혼이 너무 힘드니 격렬한 활동을 해서라도 꼭 이뤄내야 하는 환경을 반영하는 조어들입니다. <누구>에서는 이들의 취활 이야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내용과 격자무늬처럼 반복되고 있습니다.


주인공 다쿠토는 월세를 절약하기 위해 고타로의 룸메이트가 됩니다. 고타로의 헤어진 여자 친구인 미즈키의 취활 동료인 리카는 다카요시와 동거합니다. 미즈키가 리카에게 놀러 온 날, 미즈키를 짝사랑하는 다쿠토가 미즈키에게 전화를 하는 바람에 이들이 같은 건물의 위아래층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리카의 집에서 함께 취활을 본격적으로 전개합니다. 외국유학과 인턴이라는 장점이 있는 미즈키와 리카의 주도로 대학 취업 정보 센터에서 받아온 엔트리시트(입사원서)를 미리 써보기도 하고 면접의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도 함께 준비합니다.


그들은 트위터를 통해 140자 이내로 간결하고 짧은 말로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세대답게 자신의 키워드부터 찾아내고자 합니다. 1차 합격자만을 대상으로 집에서 치러지는 국어, 수학, 영어에 대한 웹 테스트도 함께 풉니다. 이런 것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네요. “이것은 실력을 재는 게 아니라 협력해 줄 친구가 있는가를 조사하는 테스트”에 불과하다는 것이 상식이랍니다.


그들의 협력 전선은 미즈키가 합격통보를 받은 다음부터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축하해주지만 속으로는 질투하거나 조롱합니다. 빨리 취업해야 할 남다른 이유가 있는 미즈키가 승진할 수 있는 코스인 ‘종합직’이 아닌, 전근이 없고 승진이 어려운 ‘에리어직’으로 합격한 것과 고타로가 대형 출판사가 아닌 중견 출판사에 취업한 것을 알고는 안도하기도 합니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들이 속마음을 담은 글을 어디에 쓸까요? 그렇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이야기는 트위터에도, 메일에도, 그 어디”에도 쓰지 않습니다. 오로지 익명으로 개설된 트위터 계정에 속마음을 냉소적으로 털어놓습니다. ‘누구’는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다쿠토의 또다른 계정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리카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여러분이 소설의 끝에 붙어 있는 ‘누구’ 계정의 트위터 글을 읽는다면 놀라운 반전과 인간의 악마성에 경악을 금치 못하실 것입니다.


일본 최대 서점 중 하나인 이케부쿠로 소재 준코도 서점의 문고본 전용 서가. (출처 :경향DB)


2008년에 발표된 이시다 이라의 장편소설 <스무 살을 부탁해>(노블마인)는 와시다 대학의 3학년생 7명이 취업동아리를 결성해서 벌이는 1년 동안의 눈물겨운 취업기입니다. 그들은 1000 대 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언론계에 전원 합격하자고 결의합니다. 그룹면접 토론, 인턴 연수,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한 합숙, 언론계 입사에 성공한 선배 방문, 취업 과정 등 모든 경험을 공유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한 친구가 히키코모리가 되어 집 밖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는 바람에 ‘전원 합격’의 공동 목표에 잠시 이상이 발생했지만 눈물겨운 동료애를 발휘해 결국 전원 합격의 공동 목표를 달성합니다. 동아리 리더인 도미즈카 게이가 여섯 군데에 합격하고도 논픽션 작가가 되겠다며 ‘골든 루트’를 차버리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소설은 5년의 시간차를 두고 발표됐습니다. 그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고, SNS의 등장이 있었습니다. 1991년에 시작된 ‘잃어버린 10년’은 ‘장기불황 20년’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2011년에는 동일본대지진과 쓰나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습니다. 그러니 일본 국민들이 심각한 열패감에 빠져드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취업은 정말 중요합니다. 신입사원 일괄입사 전통이 센 일본은 중도채용이 적습니다. 고용시장이 매우 경직돼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평생 고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무 살을 부탁해>에서 미즈코시 치하루는 최고의 직장이라는 한 민영방송국 최종 면접에서 아주 사소한 실수로 탈락합니다. 겨우 몇 분 동안 진행되는 면접에서 어떻게 답하느냐로 인간성 전체를 평가받고, 그 결과로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우리 인생의 축소판 같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최근 도쿄에서 실시한 합동 취업설명회. (출처: 경향DB)


대기업의 정규직으로 입사하면 평생 고액연봉을 받으며 떵떵거리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으로 밀려나면 죽을 때까지 저임금의 하루살이 인생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생임금은 1억엔 이상 차이가 납니다. 게다가 해고는 언제나 비정규직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니 <누구>에 등장하는 것처럼, 12월1일에 문을 연 취업사이트가 순식간에 서버가 다운되기도 합니다.


일본은 집단주의 전통이 매우 강합니다. 지금도 전국시대나 막부 말기 무사들이 할복하는 정신을 리더십의 바람직한 모델로 내세우는 나라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빛나는 전통이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음을 <누구>는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단으로 등장한 SNS가 관음증과 노출증만 잔뜩 보여주고 실제로는 인간관계를 얼마나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아마 소설을 읽은 독자는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서둘러 SNS 계정을 닫아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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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기억을 컴퓨터 속에 무한대로 외재화(外在化)함으로써 순간적인 정보처리가 가능한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이미 웬만한 개념어나 사물의 이름을 입력해 검색하면 너무나 많은 정보가 떠서 도저히 소화하기가 어렵습니다. 컴퓨터는 불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삭제하지 못합니다. 꼭 필요한 핵심을 제외한 것을 삭제할 수 있는 능력은 유일하게 인간만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물리적인 시간과 심리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쳐 핵심적인 내용을 정리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준다면 정말 좋겠지요.


그래서 미래의 책은 “바로 이 ‘시간’과 ‘여유’와 ‘시행착오’를 대신하는 것이 돼야만 할 것”입니다. 2001년 졸저 <디지털 시대의 책 만들기>에서 처음 언급한 이래 저는 누누이 이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잘게 쪼개진 하나의 주제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힘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책, 풍부한 사례를 예시하되 이야기성이 강한 책이어야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두 권을 한꺼번에 내놓았습니다. 두 권은 책을 편집하는 과정까지 포함해 불과 5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답니다. 1권은 북규슈 3박4일과 남규슈 2박3일, 2권은 아스카와 나라를 3박4일 동안 다녀온 답사여행의 보고서 형식입니다. 물론 글에는 유 교수가 평생 동안 다녀온 경험과 습득한 지식이 잘 녹아 있습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


아마 유 교수의 머릿속에는 일본을 여행하면서 직접 본 것이나 책에서 읽은 것들이 켜켜이 쌓였을 것입니다.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스기우라 고헤이 선생은 이것을 ‘중층성’(다층성, 다중성)이라고 말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모아쥔 손가락이 하나로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 있다는 뜻이죠. 그렇게 되면 보는 것은 듣는 것과 같으며 듣는 것은 만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공감각 체험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사람이 어떤 ‘외부 자극’ 때문에 “‘깜짝 놀랄 때’에는 눈이나 귀, 손과 다리, 뇌와 내장… 그런 구별 따윈 문제가 되지 않지요. 피부로 싸인 전신이 ‘와!’ 하고 놀랍니다. 날아오른다는 말처럼 한순간 신체는 한 덩어리가 되어 공중에 뜹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하나’가 되는 것, 이렇게 하나가 되는 순간은 온몸이 최고조에서 움직이는 한순간입니다.” 여기서 ‘외부 자극’을 출판 기획이라 칩시다. 그런 자극이 왔을 때 유 교수는 자신의 주먹 안에 중층적으로 쌓인 것을 한순간에 펼쳐 내보였습니다. 그것이 이번에 나온 책입니다. 스기우라 선생은 “꼭 쥔 하나의 주먹, 이것이야말로 전 우주이며, 전 세계를 담은 진실한 자신”(이상 인용은 <현재 진행형 디자인>, <기획회의> 168호, 2006·1·20)이라고 말했습니다.


2006년 일본 베스트셀러 1위인 <국가의 품격>은 경제지상주의와 글로벌화를 비판하면서 무사도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역설한 책입니다. 저자인 후지와라 마사히코는 무척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출판기획자는 그에게 처음부터 책을 펴낼 목적으로 두 차례의 강연을 부탁했습니다. 이 기획자는 엄청난 베스트셀러인 <바보의 벽>도 펴낸 바 있는데 저자인 요로 다케시는 “내가 ‘쓴’ 책은 아니지만 내가 ‘말한’ 책은 맞다”는 취지로 서문을 썼습니다.


두 책이 700만부나 팔리는 공전의 인기를 끌자 일본에서는 ‘과거에 실력 있는 편집자는 유명 저자의 화장실 문고리를 많이 잡아본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저자에게 말을 잘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편집자에게는 무엇보다 ‘북앵커’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돌았습니다.


영상시대는 시청각의 시대입니다. ‘듣는’ 행위는 ‘말하는’ 행위와 연결됩니다. 말하는 이는 듣는 이와 대면하면서 눈높이를 맞추어야 합니다.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물과 사건의 형태인 적절한 사례(팩트)를 잘 제시해야 합니다. 추상적이지 않은 구체적인 사례여야 이해가 쉽습니다. 구체적인 사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경향DB)


지금은 대중이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시대입니다. 활자문화 시대에는 만인이 우러러보게 만드는 ‘문체’가 중시됐지만 지금은 단숨에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이야기’여야 합니다. 소설이라고 다르지 않겠지요? 올해 여름에 인기를 끄는 소설도 이야기성이 강한 것 일색입니다. 트위터의 짧은 문장도 영화 한 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대중의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을 수 있습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국내편 모두는 잡지에 연재한 다음 책으로 묶었습니다. 책으로 묶으면서 정교하게 다듬었기에 단단한 구성이 강점이었습니다. 잘 짜인 단편들을 묶어 놓았다고나 할까요? 7권은 여러 번의 경험을 녹여낸 복합적 구성의 이야기라 잠시 내려놓고 쉬지 않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으로 읽어야만 했습니다.


일필휘지로 단숨에 토해냈다는 일본편은 느슨한 구성의 장편소설을 읽는 것처럼 편안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는 장점이 대단했습니다. 유 교수가 글쓰기의 여러 층위를 다양하게 보여주는 것 같지만 어쩌면 말하는 방식을 자주 바꾸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게 20년 이상 인기를 끄는 비결이 아닐까요? 신구어(新口語) 시대에 말입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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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도 돈을 쓰려 하지 않는다. 샐러리맨 월급은 제자리걸음이고, 매일 퇴직자 수천명이 거리에 쏟아진다. (중략) 주가가 오르면 친구에게 삼겹살이라도 한턱 내겠지만, 마음에 여유가 없다. 집값은 떨어지는데 전셋값은 폭등한다. 집주인, 전세입주자 모두 불안해서 더욱 허리띠를 졸라맨다. 돈을 안 쓰니 동네 슈퍼, 음식점, 빵집, 노래방도 몽땅 불황으로 아우성이다. 그러니 세금도 안 걷힌다.”


지난 7월10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김영수 조선경제i 대표의 칼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에서는 지금의 경제위기가 심각함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미국의 저리자금과 중국의 강력한 성장률에 의존하던 이머징 국가들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도 연일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출 의존도는 중국이 25%, 미국 10.7%, 유럽연합(EU) 11.5%, 일본 6.1%의 순서이니 위기이지 않을 리 없겠지요.


정치권도 아우성이긴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부처간 이견이 있는 사안들에 대해 현오석 부총리가 제대로 정책조율을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현 경제팀으로는 난제 해결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다는 새누리당 중진들의 질타가 줄을 이었습니다. 자질과 리더십 문제로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을 능력이 출중하다며 임명을 강행할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능력이 부족한 경제관료 한 사람만 교체하면 어려운 경제문제가 술술 풀려나갈 것처럼 말하고들 있네요.


부처간 협업 강조하는 박근혜대통령 (연합뉴스)


우리 경제에 중국은 이제 가장 큰 변수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2010년에 G2 자리를 꿰찼습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 걸출한 한국현대사 3부작의 작가 조정래가 20년여의 장구한 취재 끝에 최근 발표한 장편소설 <정글만리>(전3권, 해냄)에는 중국이 2016년에 G1에 올라설 것이라는 예측이 나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미 오바마가 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마지막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사실과 함께요.


‘정글만리’는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 원칙인 ‘정글’과 만리장성의 ‘만리’에서 온 것으로 중국의 현주소를 상징합니다.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이 소설은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14억 인구의 중국을 무대로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등 다섯 나라의 비즈니스맨들이 벌이는 숨 막히는 경제전쟁의 현장을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워낙 속도감이 있어 긴 소설임에도 단숨에 읽힙니다.


작가는 소설에서 “새로운 개성공단을 10개쯤 만들어내면 된다. 교통이 편리하고, 북쪽 체제보장에 아무 탈이 없도록 서해안 쪽에 5개쯤, 그리고 동해안 쪽에 5개쯤 새로 만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그 일의 성취는 북쪽의 경제난을 극복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며, 남쪽에서는 2만 달러로 도약하는 결정적인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경제협력은 서로의 통일비용을 줄여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칼럼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경제의 숨통을 트는 데는 무능한 경제 관료의 교체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중국과의 협력을 통한 남북 경제교류 활성화가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입니다. 정치와 군사를 중시하는 하드파워 전략을 펼친 미국과 달리, 중국은 경제와 문화를 중시하는 소프트파워 전략을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정통성을 갖춘 시진핑 주석은 부국부민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부국부민을 최초로 이룩한 재상인 제나라의 관중을 역할모델로 삼고 있을 것입니다. 아시아나 비행기 사고로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이 죽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떠들어도 모른 척하며 봐주고 있는 이때가 우리에게는 최고의 호기일 것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세계 분쟁을 끊임없이 조성한 미국이 몰락해가고 있는 역사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을 자세입니다. 세계 각국에 설치되는 ‘공자학원’을 보십시오. 그들은 정치의 칼날이 아닌 경제의 칼날을 휘두르려 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이 우리에게 실망해 경제적 보복을 가하려는 순간 우리는 한없는 추락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가 탄생한 이후, 그러니까 서기 2000년 동안에 중국은 2세기 정도만 빼고는 1800년 동안 GDP가 세계 1위였어요. 세계에서 1등 가는 부자나라였던 거지요.” 그렇습니다. 한나라에서 청나라까지 중국은 경제규모가 세계 1위였습니다. 지금 중국 전체의 GDP는 5000달러에 불과하지만 상주인구가 2000만 명인 상하이는 2만 달러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중국에서 2만 달러 수준인 사람이 이미 2억 명을 넘어섰다고 말합니다.


“우리 중국사람들이 한국사람들을 좀 석연찮게, 좀 뜨악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그 점 때문이야. 돈은 중국에서 다 벌어가면서, 방위는 중국을 견제해 대는 미국편에 서 있는 것 말이야. 그래서 어느 지식인이 이렇게 비판했잖아. 한국은 도자기점에서 쿵푸를 하고 있다. 그거 얼마나 표현을 잘했어. 도자기점에서 쿵푸를 하면 어떻게 되겠어? 도자기들 다 박살내는 거지. 한국이 계속 그런 식으로 했다간 중국과의 관계는 도자기점이 될 수밖에 없잖아.”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방과 외교를 완전 장악하고 있는 군 출신의 매파들이 우리 국민 모두를 쪽박 차게 만들 것 같은 두려움에 전율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남북문제에 속수무책인 이 정부의 관료들부터 <정글만리>를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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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넘게 지났습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후 실물 경제가 갈수록 침체되고 있음에도 정치권은 소모적인 정치적 이슈만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래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큰 위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한심한 정치권 때문에 올해도 그런 위기를 겪을 것 같은 공포감이 우리를 엄습하고 있습니다.


증거를 대라고요. 큰 위기에는 소설이 잘 팔립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이우혁의 <퇴마록>이 등장하며 판타지 소설이 크게 떴고, 2003년의 카드대란 때는 ‘귀여니 신드롬’이 불면서 인터넷소설 열풍이 불었으며, 2008년의 글로벌 외환위기로 경제성장이 멈추다시피 했을 때에는 성장소설 붐이 대단했습니다.


작년만 해도 독자들은 소설을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초여름에 접어들면서 소설이 출판시장을 주도하기 시작했습니다. <7년의 밤>의 작가 정유정은 <28>(은행나무)을 내놓았습니다. 조정래의 <정글만리>(해냄), 김려령의 첫 성인소설 <너를 봤어>, 정이현의 <안녕, 내 모든 것>(이상 창비),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이정명의 <천국의 소년>(열림원) 등의 신작소설은 신경숙의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문학동네)와 박범신의 <소금>(한겨레출판) 등과 혈투를 벌일 태세입니다.


높은 선인세로 화제의 중심에 오른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는 예약판매만으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넬레 노이하우스의 <사악한 늑대>(북로드), 댄 브라운의 <인페르노>(문학수첩),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문학동네),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오후세시), 제임스 설터의 <가벼운 나날>(마음산책) 등 외국 소설의 강세도 만만찮습니다. 베르나르 피보가 격찬했다는 조엘 디케르의 <해리쿼버트 사건의 진실>(문학동네)도 곧 가세할 것입니다.


하루키 신작을 사자 (경향DB)


출판사들의 기대작이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 휴가철을 겨냥해 출간되는 바람에 소설을 즐기는 독자들은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할 판입니다. 이리하여 연말에는 2013년 출판시장을 소설이 주도했다는 정리를 미리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어떤 소설이 과연 승리자가 될까요? 지난 15년간의 소설 시장의 변화를 통해 한번 예상해보겠습니다.


1998년과 2003년 사이에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순애(純愛)소설 붐이 대단했습니다. <국화꽃 향기> <가시고기>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의 밀리언셀러는 IMF 외환위기로 가족 해체의 위기를 겪은 이들의 진정한 속마음을 알려줬습니다.


장진영, 박해일이 출연하는 영화 '국화꽃향기'


2003년과 2008년 사이에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필두로 한 팩션소설의 열풍이 대단했습니다. <칼의 노래>(김훈)를 비롯한 한국형 팩션과 인문서들도 큰 인기를 끌었지요.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라는 단어가 2003년에 처음 등장한 이래 삼팔선, 삼초땡, 이태백 등 직장인의 고뇌를 알려주는 단어의 나이가 밑을 잊은 것처럼 낮아지자, 현실의 고단함에 지친 개인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해체된 팩션으로 고통을 잠시 잊고 싶었던 게지요.


2008년과 2013년 사이에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소설들만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오죽했으면 소설은 그 자체의 힘으로 팔리는 ‘본원적 상품’이 아니라 영상작품에 기댄 ‘파생상품’에 불과하다는 자탄의 소리가 쏟아져 나왔을까요? 하여튼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왕 역할을 했던 김수현이 팬덤의 규모를 엄청나게 키우는 바람에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인기도 정말 대단했습니다.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제공 <은밀하게 위대하게> _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제공


그렇습니다. 소설에서 영상의 힘은 점차 강화됐습니다. 1998년에는 <편지>를 비롯한 영화 원작을 소설화한 영상소설이 인기를 끌었다면, 2003년에는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비롯한 카툰 붐이 대단했습니다. 2008년에는 이름 있는 작가들은 모두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 장편소설을 연재했지만 스토리텔링 자체를 바꾸지 않는 바람에 동력은 곧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웹툰 원작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최고의 기록을 쓰고 있는 올해는 웹툰이 상한가를 치고 있습니다. <레 미제라블> <안나 카레니나> <위대한 개츠비> 등 영화의 원작 고전들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리지요. 저는 소설 내부에 영상적인 서사를 건축적인 구조처럼 강고하게 구축한 소설이 앞으로 문학 시장을 평정할 것으로 봅니다. 인구 29만명의 화양시가 불과 28일 만에 피폐화되는 과정을 그린 정유정의 <28> 같은 작품 말입니다. 이 소설은 인물의 시점이 바뀔 때마다 카메라 앵글이 바뀌는 것 같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 경우에 시나리오를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접속사를 발견할 수 없는 빠르게 반복되는 짧은 문장의 심리 묘사, 울림이 강한 사회적 메시지, 힘이 넘치는 웅장한 문체, 상상력을 자극하는 적절한 대비와 은유, 등장인물들의 물고 물리는 대립 구도, 시선의 차이를 통해 안겨주는 넉넉한 상상력, 사선을 넘나드는 공포 속에서도 결코 잃지 않는 따뜻한 인간애, 스스로 진화한 완벽한 구성의 스토리텔링, 액자처럼 자주 등장하는 에피소드의 강렬함 등도 <28>이 지닌 강점들입니다.


정유정은 드디어 한국 대표작가의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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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웹툰 원작의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5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해서 서둘러 보았습니다. 역시 어머니 이야기더군요. 어려울 땐 웃고 울리는 감동의 가족 이야기가 뜨게 되어 있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 등장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대표적입니다.


“평범한 나라에, 평범한 집에, 평범한 아이로 태어나서, 계속 평범하게 살다 죽는” 게 꿈인 간첩 원류한(김수현)은 어머니의 안전만 책임져 주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는 사람입니다. 밤마다 북의 친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그는 남쪽의 엄마인 달동네 슈퍼 주인에게 “엄마 아프지 마요”라는 글을 담벼락에 새겨놓고 떠납니다. 엄마에게 매달 20만원씩 받은 월급 모두를 입양간 아들을 그리워하는 동네 여인에게 줍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남의 엄마가 몰래 챙겨준 월급통장을 넘겨봅니다. 그 통장에는 “동구 월급 … 우리 동구 월급 … 우리 둘째아들 … 아들 장가밑천”으로 명목이 바뀌며 월급도 10만원씩 올라가 있더군요. 


그러면 아버지 이야기는 어떨까요? 1996년 김정현의 <아버지>에서 아버지는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버림받고 쓸쓸히 죽어갑니다. 2000년대 초 <가시고기>(조창인)에서는 간암에 걸린 아버지가 각막을 팔아서까지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살리려고 합니다. 이들은 사실상 무능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들이었습니다. 


2003년에 ‘카드대란’이 터지자 드디어 <남자의 탄생>(전인권)이 이뤄집니다. 여기서 남자는 아버지입니다. 평생을 ‘권위주의’와 ‘자기애(나르시시즘)’라는 동굴에 갇혀 주위를 살펴보지 못한 인생이니까요. 젊은 작가 김애란의 첫 소설 <달려라, 아비>(2005)의 아버지는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고 집을 나간 뒤 죽을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인간입니다. 이렇게 아버지는 언제나 ‘폐기품’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들이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버킷리스트’를 실천하는 힐링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이 폐지되고 아빠가 아내 없이 자식과 함께 여행하는 <아빠! 어디 가?>가 MBC의 간판 오락프로그램으로 떠올랐습니다. 하기 싫은 일도 적극적으로 하는 아빠가 드디어 제 역할을 찾기 시작한 것입니다.


MBC <일밤-아빠! 어디가?>


박범신의 소설 <소금>(한겨레출판)의 주인공인 선명우의 인생은 가출 전과 가출 후로 나뉩니다. 가출 전의 아버지는 빨대 하나 들고 세상의 구조에 충직하게 복무하던 아버지였습니다. 자식들에게 겨우 은행의 지불 창구 직원이나 가사 도우미 취급을 받았습니다. “불가사리 같은 자본 중심의 체제에 기생해 그 역시 빨대를 꽂고 죽어라 빨았으나, 넷이나 되는 처자식이 그의 몸뚱이에 빨대를 또한 꽂고 있었으므로 그가 빨아올리는 꿀은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체제는 그에게 약간의 꿀을 제공하는 대신, 그를 계속 노예 상태로 두고 부려먹기 위해 그의 후방에 있는 처자식을 끊임없이 부추겨 그가 빨아 오는 꿀을 더 재빨리 소모시키도록 획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은 모두 체제가 만든 덫에서 헤어나기 어려웠습니다. 위정자들은 일반인보다 더 큰 빨대인 ‘깔때기’, 일종의 ‘괴물 빨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본주의적 세계 구조에서 아버지들은 그 체제에 항거할 능력이 전무”했습니다. 


소금밭에 쓰러져 죽어가는 아버지를 향해 “달려갈 수도 없고 뒷걸음질 쳐 도망갈 수도 없었던” 경험이 있는 선명우는 막내딸의 생일날 실종됩니다. 아니 딸의 생일 선물을 찾으러 가다가 소금 자루가 실린 트럭의 가족과 조우한 그는, 그들로 인해 드디어 ‘통각’의 아버지를 떠올리고는 새로운 아버지로 다시 탄생합니다. 생산성이나 효율 따위를 집어던지고 모든 불안에서 벗어난 새 가족의 아버지가 되어 ‘삶의 주체’로 거듭납니다.


<도중하차>(기타무라 모리·새로운현재)의 주인공은 30대 후반에 잘나가는 잡지의 편집장이 된 아버지였습니다. 아들이 여섯 살 되도록 놀아준 적이 없습니다. 매일같이 마감에 쫓기다보니 깨어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폐소공포증에 시달리게 되면서 비행기와 기차을 탈 수 없게 됐습니다. 공황장애 판정을 받은 그는 조용히 회사에 사표를 냅니다. “참 어렵게 올라갔는데,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여섯 살의 아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아빠와 놀지 않으려 했던 아들이 네 번째의 동반여행에서 “아빠는 나를 제일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해 아버지는 7시간의 힘겨운 기차여행마저 거뜬히 이겨냅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병을 숨기려 했지만 어린 아들은 처음부터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는 항상 그렇듯, 어른의 생각 그 이상”입니다.


<도중하차>에 “상사도 부하도 아니고, 친구도 지인도 아니며, 가족도 아닌 입장. 모든 관계로부터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인간을 성장시킨다”는 조언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빨대를 빨아대는 아버지의 자리를 포기할 때 진정한 아버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모두의 생명을 살리는 소금 같은 진정한 아버지의 자리로 돌아와 감동적인 귀가를 하시지 않으렵니까?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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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선배인 한 고등학교 교사를 30년 만에 만났습니다. 도덕 교사인 그는 이제 퇴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2011년부터 초·중·고교에 적용된, 사회 과목 수업 등을 특정 학기 또는 학년에 몰아서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집중이수제’로 말미암아 도덕 과목의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답니다. 정년을 몇 년 앞둔 나이에 이 학교 저 학교 떠돌아다니며 수업을 해가면서까지 버티고 싶지 않다는군요.


그는 2006년부터 초·중·고교에서 정규 교육과정 이외의 시간에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교육체제인 ‘방과후학교’도 비판했습니다. 방과후학교가 사교육비를 경감하고 양극화에 따른 교육격차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대로 운영된 것은 첫해뿐이었답니다. 다음해부터는 영어와 수학 등 주요 과목의 보충수업으로 변질되었답니다. 그는 대학 진학을 위해 영어, 수학의 시간을 늘리는 것 자체는 이해할 수 있지만 적어도 서양철학의 중요한 사상가나 한국사상의 주요 개념 정도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개탄했습니다. 예술 과목 또한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더군요. 이같은 정책이야말로 탁상행정의 본보기이지만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여고에서 방과후 수업을 하고 있다. (경향DB)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제 머릿속에는 최근 출판시장의 ‘소프트 인문학’ 붐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시작하는 인문학>(더좋은책)은 6개월 만에 10만부 이상 팔리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저자인 주현성씨는 평범한 출판기획자입니다. 그가 심리학·회화·신화·역사·철학·글로벌 이슈 등 인문학 전반에 걸쳐 각 분야의 큰 줄기를 잡아 그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요약 정리한 이 책은 전문가적 식견보다는 편집적 안목이 돋보이는 책입니다. 이제 ‘CEO 인문학’ ‘청소년 인문학’ ‘어린이 인문학’ ‘부모 인문학’ 등 인문학 독자의 대상은 전 세대로 확산되고 있으며, 사진·미술관·돈·숲·일상 등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붙는 책의 영역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요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인문학 강좌를 듣는 사람의 90%가 주부랍니다. 지금의 인문학 붐은 여성·지방대 출신·백수·노숙인·저소득자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놓인 시민들에게 힘입은 바가 큰데, 이 열풍을 가장 열성적으로 주도하는 ‘공부하는 주부’를 줄인 ‘공주’가 뜨고 있다고 말한다는군요. 인문학 붐은 고전 열풍과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영화 개봉에 힘입어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번역본 여러 권이 일제히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부와 지위에 집착하는 신기루 같은 세상에서 과거의 사랑을 되찾으려다 배신당해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개츠비의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카를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5년의 징역형을 받고 탈옥을 시도하다 다시 14년의 형을 더 받은 장발장이 등장하는 <레미제라블>(빅토르 위고)과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던 안나가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던지고 젊은 장교 브론스키와 격렬한 사랑에 빠지는 <안나 까레리나>(톨스토이)의 인기를 이어받은 것이지요. 세 소설의 캐릭터가 강한 주인공들은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격렬한 욕망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출판시장에는 ‘셀프힐링’ 바람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오죽하면 출판시장의 유일한 트렌드가 ‘셀프힐링’이었다고 말했을까요? 셀프힐링의 대표적 사례가 ‘버킷리스트’ 실천하기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아무리 힘들어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일에만 집착할 수는 없지 않나요? 산목숨들이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하면서 어떻게든 일어서려는 움직임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스탠딩’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스탠딩하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문학·역사·철학 등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기반지식’인 인문학은 삶의 길을 터줍니다. 하지만 대학 진학을 위한 정거장으로 전락한 고등학교나 취업을 위한 스펙쌓기의 정거장으로 추락한 대학에서는 이런 인문학이 소외된 지 오래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세파에 지친 밑바닥 인생들이 스탠딩하려다보니 인문학 붐이 점차 거세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011년 말 한 언론사의 정치부장은 <운명>을 썼다는 문재인의 서재에 초청받아 가보았는데 신간은 거의 보이지 않고 1970~1980년대의 책만 가득 차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그 사실이 표면에 드러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더군요. 박근혜 후보의 집에는 아예 서재 자체가 없다는 사실만이 잠시 알려지기는 했지만요.


박근혜 대통령은 5월15일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른바 ‘윤창중 스캔들’과 관련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을 환기시키며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인재도 인연을 만나야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제나라 환공처럼 밤새 불 밝혀놓고 인재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정료지광(庭燎之光)’의 지혜를 박 대통령에게도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그 전에 젊은이와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학교에서 기반지식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신다면 더 이상 여한이 없겠습니다.


"허리를 툭 한번 친것뿐" (경향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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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인 5월에 우리가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지요. 50대 시인 장석주는 <마흔의 서재>(한빛비즈)에서 “여든을 코앞에 두신 어머니의 세상을 꿰뚫는 지력(知力)과 방안에 앉아서도 천리 밖을 내다보는 경륜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지요. 아직도 미망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저는 어머니의 지력과 경륜에 견주면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에 불과”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 딸을 둔 신달자 시인의 에세이 <엄마와 딸>(민음사)은 꿈을 반쪽도 이루지 못하고 너무 빈곤한 처지에서 35년 전에 눈을 감으신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사모곡입니다. 이제 고희에 이른 시인은 식어 가는 엄마 손을 잡을 어떤 힘도 없을 정도로 자신이 가장 불행했을 때 어머님이 세상을 뜨신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신 시인은 “이 세상에 엄마라는 존재의 소화력”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슬픔과 눈물과 고통의 뼈뿐만 아니라 “천둥도 벼락도 폭풍도 폭우도 다 가슴으로 삭여 내면서 침묵하는 이 세상의 엄마들”은 “딸의 행복을 온몸으로 빌고 있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엄마라는 존재의 무게감은 엄청납니다. 유대의 어떤 아들은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네요.


(경향DB)


신의 대리인 역할까지 하는 엄마들의 기세가 등등합니다. 한때 아이들을 키우는데 꼭 필요한 덕목으로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할아버지의 재력”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었지요. 인생의 주인공이어야 할 아이들을 소품으로 밀어놓고 엄마들이 직접 피나는 전투를 벌이는 세태를 풍자한 것입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의 초등성적 관리에서부터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성공적인 결혼까지 도맡아 지휘하려 듭니다. 이제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젖을 물릴 때부터 온갖 공부를 시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엄마들은 죽은 자식을 장례 치러주고서야 드디어 안심할 태세입니다.


이런 엄마들에 대한 반성이 없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3년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했지만 고등학교가 특목고와 외고, 특성화고 등으로 분화된 다음부터는 진로 고민이 ‘중2’ 시기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남한에 행동 통제도 어렵고 예측하기도 어려운 ‘중2’가 있어서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여서, ‘중2병’은 엄마들 사이에 공포의 대상이라고 합니다.


<엄마도 힘들어>(메디치)의 저자인 문경보 문청소년교육상담연구소장은 “교실만한 공간에 돼지 삼사십 마리를 한꺼번에 집어넣고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불안에 사로잡힌 채 살아가게 하면 그 돼지들의 성격은 어떻게 될까? 아니 그 돼지들은 생존할 수 있을까? 숨을 쉰다고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현실은 어떻습니까? 하루에 열여섯 시간 이상 형틀에 묶여 지내는 아이들도 많지 않나요?


문 소장은 “내 자녀를 흠 없는 존재로 만들고 싶다면, 먼저 어머니는 자신이 신이라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한 걸음 뒤에서 자녀가 걸어가는 길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부모가 자식에게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것은 안타까움과 눈물, 바라봄뿐이며 그렇게 부모는 부족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아이들은 자식을 이끌어주는 엄마보다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면서 자신과 함께 꿈을 찾아갈 수 있는 엄마를 원한다는 것이지요.


<엄마는 어쩌면 그렇게>(이충걸, 예담)의 엄마가 그렇습니다. 이 감동적인 에세이는 서로에게 투정을 많이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50대 초반의 아들과 그의 엄마가 마치 부부처럼 살면서 벌이는 ‘세기의 전쟁’기입니다. 아들과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타인”처럼 행동합니다. 엄마를 업고 응급실에 달려가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지만 아들은 엄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여전히 털게 안주를 핑계 삼아 집안에 있는 모든 알코올을 함께 해치우기도 합니다. “함께 산다는 건 도약하는 것, 개인적인 질문을 딛고 서로를 향해 묻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라고 주장하는 아들은 늘 술과 일을 핑계로 늦게 귀가하곤 합니다. 그런 아들에게 엄마는 “전에는 자지 않고 너 기다렸어. 언젠가부터 불 하나만 끄고 하나는 안 끄고 너 기다렸지. 그런데 이제는 너 기다리는 거 포기하고 불 끄고 자잖아”하고 통렬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은 “밤새 살짝 내렸다가 아침에 사라지는 이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밥도 따로 먹고 죽을 때도 따로 죽는다. 각자의 곤경은 각자의 것. 그것이야말로 진실된 인간의 명예”라는 삶의 철학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지금 많은 이들이 ‘엄마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생명장난감’ 엄마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진 동화 <엄마사용법>(창비)의 주인공 현수는 아빠의 도움으로 청소, 빨래, 요리 등 집에서 필요한 모든 힘든 일을 완벽하게 대신 해주는 생명장난감 엄마를 구입합니다. 현수는 웃기만 해도 바로 불량품으로 수거되는 장난감 엄마를, 아들을 안아주고, 책도 읽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진짜 엄마’로 만들어 갑니다. 아, 이제 엄마가 변하지 않으니 아들이라도 나서야 할 모양입니다. 그래서라도 좋은 가정이 꾸려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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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인사불성으로 취해서 남보다 일찍 귀가하는 버릇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술자리에서마저 이런 행태가 잦으니 그에 대한 소문이 좋을 리 없었습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인기 있는 몇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화끈하게 술을 샀을 뿐만 아니라 일일이 택시비도 나눠줬습니다. 다음날 페이스북에는 술자리 참석자들이 그를 칭송하는 글들이 일제히 올라왔습니다. 많은 사람이 열심히 ‘좋아요’를 눌러댔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속게 되고,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공격적인 목소리에 시달리고, 모욕당하고, 비방당하는” 일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소통의 도구인 소셜미디어가 “어린 누리꾼들을 고독과 우울증으로 내몬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속합니다. 그런데 “장기적으로 페이스북이 사회적 두뇌의 축소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 소지도 있다”고까지 말하는 이가 있네요. 지난해 발표한 <디지털 치매>(북로드)의 저자인,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뇌과학자 만프레드 슈피처입니다.


국내 스마트폰 보급대수가 올해 말이면 4300만대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현재 전체 휴대전화 보급대수이기도 합니다. 2010년 4월3일에는 스마트패드가 처음으로 등장해 우리를 놀라게 했지만 이제는 이 또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됐습니다. 이제 6월이면 둘의 기능이 하나로 모아진 ‘패블릿’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이런 기기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알코올과 니코틴, 각종 불법 마약의 소비는 감소 추세인 반면, 컴퓨터와 인터넷 중독 현상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5년 사이에 게임 중독자는 세 배나 증가했는데 주로 실직 상태의 젊은 남성이라 합니다. 이들의 생활은 디지털 미디어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더구나 기억력 장애와 주의력 결핍 장애, 집중력 장애는 물론 감수성 약화를 겪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질병 양상을 ‘디지털 치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지요. 2007년에 한국의 의사들이 말입니다.


저자는 이 질병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디지털 치매’는 컴퓨터, 스마트폰, 비디오게임, 텔레비전 등의 디지털 미디어와 SNS의 과용으로 기억력과 학습 능력이 현격하게 떨어져서 사실상의 바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디지털 치매’는 “무엇보다 무능함의 증가로 인해 정신활동을 이용하고 제어하는 능력, 즉 생각하고, 원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퇴보시킬 것”이며 결국 “삶의 질이 저하되고 조기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의 이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인 한국”의 초등생 12%가 이미 인터넷 중독으로 드러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저녁 자리에서 수십 편의 한시를 줄줄 외워 나를 놀라게 한 한문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한시 모두를 할아버지 무릎에서 배웠다고 했습니다. 저자는 학습을 하면 시냅스, 그러니까 신경세포들 사이의 연결부가 변하고 뇌의 능력은 증대된다고 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에는 더욱더요. 치매환자들이 어린 시절은 잘 기억하지만 최근의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겠지요. 그러니까 저자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디지털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일종의 마약을 투여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지당해 보입니다.


“유치원에 다닐 정도의 어린 나이에 컴퓨터를 이용하면 집중력 장애는 물론 유치원을 졸업할 무렵에는 읽기 장애까지 겪을 수 있”으며 “미국과 독일의 연구에서도 확인되듯, 취학 연령의 어린이에게는 사회적 고립이 자주 관찰”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평생 학습의 기본이 어린이와 청소년 시절의 훌륭한 교육”이라는데 그 훌륭한 교육은 무엇일까요. “인지하기, 생각하기, 체험하기, 느끼기, 행동하기” 등을 통해 기억에 흔적을 남겨야 합니다. 이런 일은 스크린과 마우스가 아닌 종이와 연필로 이뤄져야 효과가 크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는 실제로 뚱뚱하게, 어리석게, 공격적으로, 외롭게, 아프게 그리고 불행하게 만든다. 어린이들에게는 이용 시간을 제한하라. 이것만이 그나마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린이가 디지털 없이 지내는 하루하루는 선물 받은 시간이나 마찬가지”라고 책의 마지막에서 우리에게 간절하게 충고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스마트 교육 추진전략’에 따라 2015년까지 모든 초·중·고 교과의 종이 교과서가 디지털 교과서로 바뀔 전망이다. (경향DB)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는 2015년부터 모든 취학 아동들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하고 전자교과서로 수업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계획은 학교 현장의 교사들로부터 격렬한 반발을 불러와 실행이 다소 늦춰지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계획은 하루빨리 취소되어야 마땅합니다.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을 통해 은밀하게 국민들의 치매를 꾀함으로써 국민들을 손쉽게 통치하려 한다는 사악한 음모론”에서 벗어나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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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회학자 엄기호는 “편만 남고 곁이 파괴된 사회”를 분석한 <단속사회>(창비)를 펴냈습니다. 단속은 ‘쉴 새 없이 접속하고 끊임없이 차단하는(斷續)’ 것을 의미합니다. 같고 비슷한 것에는 언제나 접속해 있지만 낯선 것(타자)이나 공적인 것과는 단절합니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아예 제시하지 않거나 불가피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드러내기 위해 자기검열 혹은 스스로를 단속(團束)하는 경향”이나 삶의 연속성을 잃은 “ ‘연속의 반대’로서 단속의 뜻도 갖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동일성에 대한 과잉접속’과 ‘타자성에 대한 과잉단속’으로 양극화된 사회가 단속사회입니다.

이런 사회가 된 것은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스마트TV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호모스마트쿠스’의 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새 종족은 스마트기기의 재생장치를 이용해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만은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소비합니다. 시간을 놓치면 볼 수 없었던 텔레비전 연속극이나 라디오 프로그램마저도 그들은 좋아하는 것만 연속으로 듣습니다. 아니 이제 라디오를 버리고 자신의 구미에 맞는 ‘팟캐스트’만 열렬히 듣습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다운로드 세대가 아닌 업로드 세대입니다. 주어진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데이터베이스화된 정보 중에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정보를 찾아 그것들을 연결해 ‘2차적 생산’을 한 다음 이 세상에 유일한 그것을 열렬히 즐깁니다. 아즈마 히로키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문학동네)에서 이를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라고 일컬었습니다. 특히 날로 진화하고 있는 스마트 기기가 제공하는 다양한 기능이 독자와 콘텐츠 제공자의 새로운 관계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요즘 한 명의 철학자가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철학자 강신주는 처음에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그린비) 같은 철학서로 실력을 인정받다가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이 인문서로서는 단시간에 10만부를 넘겼습니다. 이 책이 인기를 끌자 강연은 크게 늘어났습니다. 체제비판적인 그가 삼성경제연구소의 강연자로도 초대받았습니다. 이후 2011년 MBC 라디오의 <김어준의 색다른 상담소>(‘색담’)에 패널로 초대됩니다. 이 프로는 6개월 만에 폐지됐지만 <색담>이 2012년에 김어준의 ‘벙커1’에서 <강신주의 다상담>으로 거듭나면서 강신주는 패널에서 진행자로 격상합니다. 이렇게 강신주라는 브랜드가 확실하게 형성된 다음 <아침마당> 등에 출연하다가 <힐링캠프>에까지 등장했습니다.

강신주가 <힐링캠프>에 등장하자 그의 책은 곧바로 인기가 폭발했습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민음사)은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잠시 오른 이후 줄곧 5위 이내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물론 그의 다른 책들도 인기가 급증했습니다. 소셜미디어에서도 그와 ‘접속’하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강신주의 ‘힐링 인문학’은 ‘성령부흥회’와 강력한 유사성이 있다거나 ‘자아성형산업’에 불과하다는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비판도 등장했습니다.



강신주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무기나 그의 안티들이 비호감으로 꼽는 것은 모두 돌직구와 막말의 경계를 쉼 없이 넘나드는 그의 ‘독설 화법’입니다. 그의 안티들은 철학에 정답이 없는 법인데 강신주는 너무 직설적으로 정답을 제시한다고 말합니다. 강신주 또한 이를 모르지 않습니다. 그는 <강신주의 다상담>(동녘) 1권에서 “만일 제가 C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의견인 A와 B는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저는 철학자입니다. 그러니 제 말을 믿으세요. C가 옳습니다. 나머지 A와 B는 일고의 가치도 없이 잘못된 것입니다.’ 독선적으로 보일 만큼 단호한 제 어투 때문에 오해도 많이 샀지만, 그래도 가장 효과적인 강연 방법이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강신주의 전략은 웹 공간에서는 매우 적절한 전략입니다. 사사키 노리히코 <동양경제> 온라인 편집장은 <5년 후 미디어는 돈을 벌까?>라는 책에서 웹에서는 “여운보다 단언, 건전보다 속내가 더 인기가 있다”고 말합니다. 종이책에서는 ‘내 생각은 이렇다’ ‘이것이 옳다’고 단언하는 것은 심하다거나 품위가 없다고 여겨지지만 웹에서는 ‘…일 것이라 생각한다’라거나 ‘…가 아닐까 한다’와 같은 말은 큰 인상을 남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을 단순화시키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이다’라고 단언해야 독자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습니다.

“세상은 거의 주관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실명으로) 주관을 내세우는 일을 두려워한다면 언론공간은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곳일 뿐이다. 이러한 무미건조한 콘텐츠가 넘치는 사이트에는 아무도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다. 주관이라는 것은 속내와 같다. 분위기에 맞춰 건전하게 가는 사람은 웹 공간에서 외면당한다”고 주장하는 사사키는 “자신의 생각에 믿음이 있다면 도망갈 길을 만들지 않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끄는 사람들은 모두 독설적이고 단언적인 주관(속내)을 맘껏 펼치는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정보의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주관적이고 확실한 속내를 즐기는 세상입니다. 극단적인 속내가 넘치는 모습, 그게 바로 ‘단속사회’의 자화상 아닐까요?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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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요즘 그림책을 읽으시는지요? 오십대 중반인 저는 올해 팔순이신 어머님과 자주 그림책을 펼칩니다. 치매예방에 좋다고 하는 그림책이 글과 그림의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깊은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수준 높은 그림책은 펼칠 때마다 늘 색다른 감동을 줍니다. 약 10여 년 전의 어느 토요일, 저는 붐비는 일본의 대형서점에서 그림책을 넘겨보다가 발랑 넘어져 있는 고슴도치를 모든 동물들이 둘러서서 “재! 왜 저래!”라며 놀라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압도적인 장면에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제목마저 잊어버린 그 그림책을 저는 다음 날 호텔의 텔레비전 화면에서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동물의 모습을 이리저리 비춰주었지만 전날의 감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날로그 그림책은 디지털 시대에 더욱 빛나 보입니다. 펼침면에다 그려놓은 임팩트가 강한 그림을 보다 보면 누구나 다음이 궁금해져 자연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되지요. 특히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유아들은 그림만으로도 환상이나 상상에 젖어들곤 합니다. 그래서 2차원의 평면 그림이 정교한 편집을 통해 하나의 책으로 묶여지면 4차원의 공간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이런 장점을 영상 화면은 도저히 따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일본 출판계가 그림책은 전자책으로 만들지 않기로 암묵적 합의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작가의 역량에 크게 의지하는 문학작품과 달리 그림책은 글과 그림 작가의 예술적 감각뿐만 아니라 편집자의 연출력, 출판사의 마인드 등이 잘 녹아들어야 우수한 그림책이 탄생합니다. 그래서 얇은 그림책 한 권을 몇 년에 걸쳐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최근 출간된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시공주니어)을 읽으면서 그 사실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 동화작가 이상희, 문화부 기자 최현미, 출판칼럼니스트 한미화 등 네 사람이 한국의 대표적 그림책 작가 29명을 소개한 이 책은 우리 그림책 작가를 제대로 조명한 최초의 책입니다. 

(경향신문DB)


우리 창작그림책으로 최초로 밀리언셀러가 된 <강아지똥>(권정생 글, 정승각 그림, 길벗어린이)이 출간된 것은 1996년이었습니다. 돌담 골목길에 강아지가 눈 똥이 봄비를 맞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노랗고 환한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름이 된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은 우리 그림책의 고전으로 손꼽힙니다.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이 그림책은 왕자나 공주 이야기가 판을 치던 교실의 분위기를 혁명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그 즈음에 주옥같은 그림책이 대거 탄생했습니다. 거대 담론이 지고 “일상, 문화, 환경, 생태, 여성, 소수자와 대안적 삶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던 문제적 시절에 김재홍, 김환영, 권윤덕, 이억배, 이영경, 이태수, 이호백 등은 저마다의 강점을 보여주는 그림책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땅에서 본격 그림책 시대를 연 이들의 작품은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났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압축적 성장을 일궈낸 한국 그림책을 이제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책 문화의 절정기를 지나 완숙기에 접어든 영미권이나 일본의 그림책은 열정이나 역동성을 잃었지만, 우리 젊은 작가들의 생동감과 빛나는 상상력을 담은 그림책은 해마다 세계적인 그림책상을 수상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하고 있는 그림책 작가들은 성장기인 1990년대에 국내외의 좋은 그림책을 맘껏 읽으며 성장한 사람들입니다. 그때 경험한 글과 이미지의 ‘조화로운 공명’을 잊지 못하고 그림책의 세계로 뛰어든 세대입니다. 이들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떤 책을 읽히는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작품으로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글로벌한 감수성을 지닌 대형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소재와 틀거리는 분명 전통에서 가져왔지만 결과물은 더할 나위 없이 풍자적이고 도발적인 이상한 나라의 그림책”인 <망태 할아버지가 온다>와 <피노키오는 왜 엄펑소니를 꿀꺽했을까?>의 박연철, “가족 간의 사랑을 담은 따뜻한 이야기를 반입체 인형과 소품들을 통해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구름빵>과 <장수탕 선녀님>의 백희나, “시간이 흐를수록 더 넓어지고 더 유쾌”해지는 환상 세계를 보여주는 ‘현실과 환상 경계 그림책 3부작’인 <거울 속으로> <파도야 놀자> <그림자놀이>의 이수지 등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꿈을 떠올렸습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작가들을 각기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작가는 누가 키워야 할까요? 바로 우리가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우리 시장에서 인정받은 책이어야 세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책이 팔리지 않는 한국의 유통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과도한 할인경쟁을 벌이면서 무조건 싸게 공급된 책만이 서점의 서가를 압도하는 대형서점에 우리 출판기획자들은 심장이 멈춰질까봐 도저히 가볼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시민단체들이 좋은 책을 골라 소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좋은 책만을 판매하는 어린이책 전문서점이 방방곡곡에 들어서고, 교사와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좋은 책을 읽히려는 열의가 넘쳐나 수준 높은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던 1990년대 후반이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 그리워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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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2002년,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도쿄에서 디지털 시대의 출판 비즈니스 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일본 소각칸의 멀티미디어 책임자는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아시아 출판사들이 일본 출판만화를 불법 복제해 출판 자본을 형성했지만 앞으로는 그런 일이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세계가 네트워크로 연결된 이상 앞으로는 자신들이 저작권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책을 직접 판매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지요.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0년에 소각칸은 인기 만화가인 마쓰모토 다이요의 <넘버 파이브> 애플리케이션(앱)을 29개 나라에서 동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회는 무료로 볼 수 있지만 2회부터는 유료로 보는 방식이었는데 언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휴대전화로 자동번역으로 볼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각칸은 이미 부동의 업계 1위였던 고단샤를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라섰습니다.


제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등 여섯 중견 만화가가 함께 그린 만화집 <내가 살던 용산>(보리)이 출간됐습니다. 평범한 이웃들이 그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망루에 올랐다가 다섯 사람(경찰특공대 한 사람 포함해 여섯 사람)이나 망루에서 목숨을 잃은 지 1주년이 되는 날에 말입니다. 거센 불길 속에서 타죽은 이의 주머니 속에 있던 라이터가 터지지 않았고, 지문이 그대로 살아있는 이의 장갑도 벗기지 않고 신원을 확인하려고 부검했다는 천인공노할 사실을 그 만화를 통해 처음 알았습니다.




그해에는 ‘돈도 재능’인 시대에 가난한 계층 출신의 아이들이 만화가가 되기 위해 다니는 미술학원의 애환을 그린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사계절)이 출간됐습니다. 만화를 그리는 기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촌철살인으로 연출된 이 만화는 그해 제51회 한국출판문화상에서 만화로는 최초로 수상작으로 선정됐습니다.


저는 이 만화들을 통해 처음으로 만화라는 거대한 세상의 존재감과 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기 시작했습니다. 만화의 우수한 표현력과 위대한 예술성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글과 이미지가 상생하는 디지털 시대여서일까요? 만화에서는 소설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상상력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해 10월에는 제가 주도하는 출판전문 잡지 ‘기획회의’에 ‘만화, 세상의 창이 되다’라는 특집을 꾸리기도 했습니다.


작년 말에 제가 참여하는 다른 잡지인 ‘학교도서관저널’은 <만화책 365>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그동안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읽히려는 만화는 주로 ‘학습만화’였습니다. 덕분에 수천만 권이 넘게 판매된 학습만화가 꽤나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오랫동안 만화는 ‘불량’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우는 만화가 적지 않음에도 늘 ‘출판의 서자’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니까 교사와 학부모가 주도하여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만화를 골라준 <만화책 365>는 우리 ‘만화’에 붙어 있는 ‘불량’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


한국의 만화는 여전히 ‘찬밥’ 신세입니다. 만화가 예술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번 보고 버리는 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만화는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만화시장은 하나로 통합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킬러콘텐츠 만화는 출간 즉시 국내에 바로 상륙하는 시대이니 한국에서 인기를 얻는 만화는 세계적인 만화로 볼 수 있습니다.


음식과 취재와 사진이 결합한 허영만의 <식객>(전27권, 김영사)은 만화산업에서 비소설 단행본 만화로 유의미한 성과를 낸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2007년 <이끼>(한국데이터하우스)로 여러 만화상을 휩쓴 윤태호의 신작 <미생-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위즈덤하우스)의 성장세도 무섭습니다. 바둑 입단을 위해 7년을 허송한 주인공이 종합상사에 낙하산으로 입사해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이 만화는 탁월한 ‘인생교과서’입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이상 재미주의) 등 생활만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강풀의 만화들과 저승이라는 전통소재를 현대 생활에 상큼하게 녹여낸 주호민의 <신과 함께>(애니북스)도 우리 만화의 녹록지 않은 실력을 보여줬습니다.


웹툰 <신과 함께> 저승편(출처 : 경향DB)


우리 사회는 이미 스마트폰 사용자가 3000만 명을 넘어선 지 한참 지났습니다. 스마트패드도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기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개인은 이들 스마트기기로 만화, 게임, 애니메이션, 음악, 영상을 결합한 앱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만화산업의 성장세는 무섭습니다. 일본에서는 전자책 전체 매출의 85%는 휴대전화로 내려받아 보는 것인데 그 중 80% 이상이 만화라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일본은 전자책 만화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하여 세계를 장악할 태세를 확립해가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우리도 만화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입니다. 만화(특히 웹툰)야말로 산업으로서 가장 가능성 있는 매체라는 인식이 절실합니다. 만화가 산업이 되기 위해서는 만화를 웹에서 무료로 볼 수 있는 매체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능력 있는 만화가들이 늘어나고 우리 만화가 세계를 주무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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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우리는 스스로 치유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방송, 영화, 연극, 미술 등 전 문화 영역에 ‘셀프힐링’의 거대한 열풍이 휘몰아쳤습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철학’으로 물꼬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저에게 <화에 대하여>(사이)라는 책이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약 2000년 전에 유행했던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입니다.


세네카는 화에 대한 최고의 치유책은 유예와 숨김이라고 말합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처음에 끓어오르던 기세는 누그러지고 마음을 뒤엎었던 어둠은 걷히거나 최소한 더 짙어지지 않게 된다고 하네요. 출간 즉시 인문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에는 이런 일화가 등장합니다. 


(경향신문DB)


고대 로마제국 3대 황제인 독재자 카이사르는 멋 부린 차림새와 유난히 공들여 손질한 머리모양이 자신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로마의 기사 파스토르의 아들을 감금합니다. 파스토르가 아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그는 마치 생각났다는 듯이 사형 집행을 명하고는 곧바로 그의 아버지를 만찬에 초대합니다.


궁에 들어온 파스토르는 카이사르가 커다란 잔을 들어 자신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제의하자 아들의 피를 마시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술을 마십니다. 카이사르가 향유와 화관을 하사하자 기꺼이 받습니다. 통풍에 걸린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땅에 묻지도 못한 채 자식들의 생일에도 그렇게 많이 마시지 않았을 포도주를 들이키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며 털끝만큼도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치 아들의 목숨을 살려달라는 탄원이 받아들여진 것처럼 흔연히 식사했습니다. 왜냐고요? 그에게는 또 한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의 최고 집권자가 일제히 바뀌었습니다. 따라서 정책의 불투명성이 걷혔으니 우리가 희망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분위기는 전혀 그렇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특히 한반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커튼 뒤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 드는 ‘교양 없는’ 통치자의 등장에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가슴에 품고 있는 저마다의 ‘아들’ 때문에 구차한 목숨을 억지로 부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새해에 인문서 베스트셀러 1위는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엘도라도)가 독주하고 있습니다. 케이건은 삶은 ‘양’보다 ‘질’이라네요. 그는 영혼은 존재하지 않으니 사랑하고, 꿈꾸고,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놀라운’ 기계이면서 반드시 죽는 인간은 무조건 잘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 번뿐인 삶은 아무도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어진 짧은 시간 동안 진정 가치 있는 목표들을 적절하게 혼합해 성취감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살아야 하는 이유>(강상중, 사계절)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요?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를 통해 “한국 사회는 학력이나 자산, 소득이나 지위의 극단적인 격차와 함께 행복과 불행의 차가 역력하여 과거 어느 때보다 사회 안에 르상티망(원한)이 깊이 퍼져나가고 있”어 살아가는 의미를 찾지 못해 번민하며 고민하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글로벌 착취’로 말미암아 세상에 뿌리조차 내리지 못한 젊은 세대는 민주화라는 것은 어느 정도 이뤄냈지만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아버지 세대를 부정합니다. 지금 젊은 세대가 바라보는 아버지는 ‘할 수 있다’는 이데올로기로 근대화를 추구했던 박정희 시대의 향수에 빠져있으면서 자신의 노후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해 불안에 떨며 ‘찢겨진 삶’을 살아가는 존재일 뿐입니다. 부모세대는 자식세대를 위로하기는커녕 ‘종북좌파’로만 매도하기에 바쁩니다. 나는 매도당한 것이 억울해 우는 자식들의 모습을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정보기술(IT) 혁명은 원천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을 낳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이미 세계 시민의 셋 중 한 사람은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강상중의 지적대로 우리가 “오랫동안 열에 들뜬 것처럼 ‘성장’을 바라고, 죽음을 싫어하고, 삶을 칭송하고, 자원을 탕진하는 데” 열중해왔지만 이제 우리는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힘에 자신의 삶을 처절하게 짓밟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발버둥칠수록 비정규직의 늪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1%를 제외하고는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에 넋을 놓을 뿐입니다.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라며 “지금은 분노하고 저항할 때”라고 말합니다. 그는 <분노하라>(돌베개)에서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라는 마지막 문장을 우리에게 선사했습니다. 창조는 언제나 저항에 부딪히고 저항은 뭔가를 창조할 때만 실현되는 법입니다.


그는 강연집 <분노한 사람들에게>(뜨인돌)에서 세계가 ‘막대한 부’와 ‘전대미문의 빈곤’이라는 두 가지 큰 위험에 직면해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우리가 이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분노하는 것에서 그치지 말고 공감하고 연대하라고 촉구합니다. 참여, 공감, 감정이입, 이해심 등으로 인류가 단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감정인 화에 머무르지 말고 참여하고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는 공감하며 참여해서 세상을 바꿔나가는 데 일조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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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출판시장은 처절하게 추락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성장을 구가하던 아동서적과 청소년 책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지금 우리 출판의 그림책 만드는 수준은 세계 최고입니다. 한때 우리는 영국의 DK나 프랑스의 갈리마르가 만들었던 책들을 놓고 감탄했지만 지금은 우리도 이만큼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우리 그림책이 해마다 세계적인 상을 수상하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정도로 눈부신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아울러 청소년 도서의 수준도 크게 일취월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잘 만들어도 별로 팔리지 않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부활시킨 일제고사로 말미암아 책을 읽히지 않는 학교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을 문제풀이 기계로 만들어버린 일제고사는 성적에 따라 학교를 줄 세우고 학생의 신분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 휴일 등교 등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바람에 코흘리개 유치원생까지 사교육 시장에 내몰리는 형편이다 보니 아이들이 책 읽을 시간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게다가 4대강 사업을 하느라 학교도서관이 책을 구입해야 하는 알량한 예산마저 대폭 삭감해 버렸습니다. 


서울 교보문고의 판매대에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 문제집이 쌓여 있다. (출처;경향DB)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교육을 아예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 정권 후반인 2006년에 109명, 2007년에 104명, 2008년에 109명 등 모두 367명의 사서교사를 새로 임용해 3년 사이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겨우 34명 임명에 그쳤습니다. 그나마 2011년 이후 3년 동안은 결원보충으로 달랑 한 명만 임명했습니다. 이러고서야 바람직한 독서교육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을까요. 그러니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에다 출산율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 된 것 아닐까요. 최근의 정치판을 뜨겁게 달군 안철수는 사실상 자신의 출마 이유를 밝힌 <안철수의 생각>(김영사)에서 한국을 “한마디로 지금 가장 불행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회”로 규정했습니다. 


안철수는 더 구체적으로 우리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경제 양극화와 실업, 비정규직, 가계부채 등 우울한 문제들이 쌓여 있죠. 10대들은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에 시들어가고, 20대는 비싼 등록금과 취업 등으로 고민하죠. 또 30·40대는 자녀의 사교육비와 집값, 전셋값으로 걱정이 태산이고요. 40·50대는 자녀들의 취업 걱정과 준비가 안된 본인들의 노후문제가 있고, 60대 이상은 생계와 건강문제 등 가족 구성원 거의 대부분이 불안한 게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고요.


현실이 이러니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출판시장에서 관통한 유일한 키워드가 자기치유(self-healing)였습니다. 늘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외치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을 농단하는 사이에 국민은 위로의 마음을 담은 공감의 한 줄 어록에 심신을 달랬습니다. 올해는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처럼 여겨지는 스님들의 말씀에 넋을 놓고 말았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말을 하지 못하는 인형인 ‘브라우니’에게 표정을 그려 넣으며 고통을 달랬고, <런닝맨>의 ‘능력자’ 김종국의 초감각에 열광했습니다. <개그콘서트>의 허무개그인 ‘네 가지’의 하소연과 ‘용감한 녀석들’의 용기에 울분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라고 외치는 가짜 왕(이병헌 분)에게 도승지 허균(류승룡 분)이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 드리리다”라고 제안을 하는 모습이나 <늑대소년>에서 47년 만에 마을로 돌아온 백발의 여주인공이 “기다려. 나 다시 올게”라고 쓴 자신의 마지막 편지 하나만 믿고 47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늑대소년을 발견하고 오열하는 모습에 함께 넋 놓고 울기도 했습니다. 또 카카오톡이 유행시킨 애니팡, 캔디팡, 드래곤 플라이트 등의 게임을 하며 시간만 투자하면 게임 실력과 점수 앞에 누구나 평등한 가상현실에 중독되어 밤을 지새웠습니다.


5년 전 이맘때 한 역사학자는 새로 출범할 이명박 정권이 그래도 경제 하나는 살리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기대감에 “바닷물이 짠지 어떤지는 새끼손가락으로 찍어봐서 간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배가 터지도록 바닷물을 마셔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해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새로운 5년을 이끌어갈 대통령 선거가 내일 치러집니다. 지하경제 활성화, 5점8조, 이산화가스, 고위공직처비리수사처, 솔선을 수범, 바쁜 벌꿀, 전화위기의 계기, 민혁당, 대통령직 사퇴 등의 말실수를 연발하는 박근혜 후보에게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대한 의견을 물으니 마치 이미 대통령이나 된 것처럼 “그러니까 대통령하려는 것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더군요. 순발력과 재치는 지적 기반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우리가 과연 박 후보에게 험난한 국제정세를 헤쳐 나갈 지혜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어떠신가요? 다시 5년간 바닥이 드러나도록 바닷물을 퍼마셔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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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겨울호로 100호(창간 25주년)를 맞이한 ‘문학과 사회’는 상업주의 및 문학 대중화와 문학의 사회, 정치적 쓰임을 배격하고 문학주의를 추구하는 ‘소수문학’을 지향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올해 들어 “진보적 문학의 급진적 재구성”을 표방해온 ‘실천문학’은 “작품으로서의 문학과 텍스트로서의 문학이 수명을 다한” 지금, ‘사상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사유의 단초를 마련하는 특집을 꾸렸습니다.


그동안 우리 문학시장은 계간지를 펴내는 몇 출판사가 담론을 주도해왔습니다. 이제 그런 계간지들마저 ‘소수문학’이나 ‘사상으로서의 문학’을 이야기하는 세상이니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 계간지뿐만 아니라 최근 베스트셀러를 펴낸 바 있는 출판사들도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아 보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초판 3000부도 소화하기 어려워지고, 10만 부 판매가 보장되던 작가도 이제 거의 사라지는 마당이니까요.


그러니 소설판은 이제 ‘진영’의 싸움에서 벗어나 근원적인 변화를 꾀해야 할 것입니다. 젊은 독자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젊은 세대는 로맨스나 판타지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영상과 연결된 소설은 그래도 아직 팔리지 않나요? 게다가 소설적인 상상력이 가미되지 않은 논픽션은 읽히지 않고 있습니다. 20년 이상 인기를 누리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유홍준, 창비)가 갖고 있는 빛나는 이야기성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이웃 일본과 중국만 보아도 젊은 세대는 휴대전화로 엄청나게 소설을 읽어댑니다. 일본에서 유통되는 ‘휴대전화 소설’은 서점에 꽂혀 있는 책의 두 배가 넘습니다. 중국에서도 휴대전화로 로맨스나 판타지 작품의 전반부를 무료로 읽어본 다음 1~2위안만 지불하고 끝까지 즐기는 문화가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궈징밍과 한한 등이 주도하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신흥문학’은 문학시장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휴대전화를 통한 결제시스템만 완비하면 일본이나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새로운 책의 시대”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혁명은 정보기술(IT) 혁명을 의미합니다. 마쓰오카 세이고는 이 혁명이 ‘정보의 전후순서배치법’이 달라진 것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이제 독자는 스마트폰이나 스마트패드 등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엄지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인류가 생산한 모든 정보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검색’이라는 읽기 혁명,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는’ 쓰기 혁명, 스마트기기라는 물질성(텍스트)의 혁명 등 3대 혁명이 정보의 생산, 유통, 소비 구조를 완전히 바꾸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소설이라고 다를까요? 원래 읽기와 쓰기는 연동되어 있었지요. 조선시대의 사대부를 보세요. 인간으로 바로 설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과거시험에서의 ‘쓰기’를 위해 평상시에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산업시대에는 ‘소수’가 쓰고 ‘다수’가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읽고 쓰는 시대입니다. 제5의 미디어인 블로그가 등장하면서부터 읽기와 쓰기가 연동된 시스템이 재발견된 셈이지요.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출처: 경향DB)

▲ “아마도 소설은 여러 노력들을 통해 거듭날 것입니다.

지극히 감성적이거나 잘게 쪼개진 정보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은 소설적 상상력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올해 출판시장은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에 매우 적합한 장르인 에세이가 휩쓸었습니다. 이렇게 스마트기기는 저자와 독자의 관계성을 만드는 결정적인 열쇠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유장한 산문’은 지고 ‘경박단소한 단문’의 시대가 제대로 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설은 돌파구가 없을까요? 등단 50년을 기념해 <여울물 소리>(자음과모음)를 펴낸 황석영은 ‘이야기꾼’에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이 소설은 책 읽어주는 전기수나 재담꾼인 강담사 노릇을 하다가 결국 스스로 연희 대본을 쓸 뿐만 아니라 천지도(동학) 혁명에도 참가하는 이야기꾼의 일생을 그리고 있습니다.


게임과 문학을 연결한 <지옥설계도>(해냄)를 펴낸 이인화도 소설가가 아닌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가가 남들이 이해하기 힘든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고 거기에서 공감을 끌어내어 보편성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면, 이야기꾼은 보편성에서 시작한 완결성 있는 이야기로 독자의 개별적인 상처를 위로하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이제 완결된 이야기는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는 그 많은 이야기를 서로 연결해 ‘변형’한 새로운 작품을 내놓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런 일은 누구나 즐길 수 있습니다.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시대가 정착되어 가고 있는 셈이지요.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의 저자인 아즈마 히로키는 이를 유저의 ‘2차적 생산’ 혹은 ‘데이터베이스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무협 작가가 처음으로 발표한 게임 판타지 소설인 <리셋 지구>(이재일, 새파란상상)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신선했습니다. 이 소설은 게임을 즐기며 “파괴와 살육을 통해 맛보는 적나라한 쾌감”을 맛본 이들이 인류 멸망이 이뤄진 지구마저 언제든지 과거의 시점으로 ‘리셋(롤백)’할 수 있다는 사고를 갖게 된 것은 아닌지 제대로 풍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소설은 이런 노력들을 통해 거듭날 것입니다. 지극히 감성적이거나 잘게 쪼개진 정보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은 소설적 상상력을 결코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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