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비정규직을 몇 년 떠돌다가 비록 2년 계약직일망정 그나마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27세의 여성이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 여성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근무시간이 지나서는 일하지 못하게 했고, 휴일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고급차를 끌고 가족여행을 다녀온 직장 상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서장이 바뀌자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최근의 실태를 파악해보니 실제적인 정년이 46세였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30대 후반의 직원들도 전전긍긍했습니다. 하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일자리로의 이직이 어디 쉬운가요?”


 그 여성의 말은 이어집니다. “결혼한 친구의 아이가 너무 예뻐서 나도 결혼해볼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내 인생은 이제 끝났다며 마구 울어대는 친구 때문에 포기했어요. 몇몇 친구들은 학자금 대출도 갚지 못해 허우적대고 있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그 여성의 해답은 남들이 선망하는 ‘10차선 도로’가 아니라 평생 자신이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을 이제라도 찾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성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해주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부러워했습니다.


1%를 제외한 모든 국민을 불안에 떨게 만든 총체적 난국의 이명박 정권은 이제 끝나갑니다. 진보적인 경제학자 김기원은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창비)에서 “권모술수만 쓸 줄 알았지 올바른 길을 가겠다는 자세가 없는 이명박 정권” “ ‘747’(매년 7% 성장, 10년 후 4만달러 소득, 세계 7위 경제규모) 따위 장사치 수준의 헛공약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울 만큼 비전을 결여했던” 이명박은 “이상 자체가 없는 인물”이라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저자는 이명박 정권이 도대체 뭘 잘했는지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불법사찰, 국책연구원의 자율성 훼손, 마음에 들지 않는 시민단체 탄압, 방송 장악, 미네르바 구속, 용산참사, 건설업자는 살찌게 했으되 나랏돈을 탕진하고 환경파괴의 우려를 낳은 4대강사업, 감세정책, 양극화 심화, 전쟁의 위기까지 초래한 반실용적인 ‘비바람정책’ 등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일일이 열거했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민주주의 후퇴, 경제 위기의 심화,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정리됩니다.


(경향신문DB)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10년은 어땠을까요? 저는 그것을 알아보려고 김대중 평전인 <새벽>(김택근, 사계절)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8년 동안 ‘김대중 글 감옥’에서 분투한 이가 정리한 평전이라 잘 읽혔습니다. 우리도 이만한 평전을 갖게 되었구나, 하는 감동도 느꼈습니다. “김대중의 삶이 산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산맥이었다”는 고백에도 공감했습니다. 특히 햇볕정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노태우 정부 시절 남북기본합 의서 채택을 이끌어낸 주역인 임동원이라는 인물을 영입한 대목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평화통일을 말하면 그 순간부터 빨갱이가 되고, 민주화를 외치면 과격분자가 되고, 정치하겠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야만의 세월을 의연히 버텨 온 그(김대중)가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고 고백하는 임동원을 인재로 알고 끌어들인 ‘삼고초려’는 “한반도를 바꾸는 대단한 사건”이 맞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런 사건만 저질렀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김대중 대통령은 햇볕정책 하나만으로도 역사에 길이 평가받을 것입니다. 그도 2009년 2월23일의 일기에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반민주, 반국민경제, 반통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1년밖에 지나지 않은 정권의 말로를 정확하게 내다본 역대 최고의 경륜을 지닌 정치인의 혜안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죽는 사람은 있어도 산에 걸려 죽은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품은 이상이 아무리 높고 커도 결국은 사소한 사건에 걸려 넘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어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비리와 가족비리라는 돌부리가 결국은 거대한 산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는 노무현 정권과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쓴소리를 마음껏 늘어놓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책입니다. 열정과 감동으로 치면 노무현 대통령만 한 인물이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대연정 제안과 기자실 파동, 대북송금 특검 수용,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추진, 인사정책의 부실 등은 결국 그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자는 노무현 정권의 정치력 부재는 ‘선거시기’와 ‘통치시기’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한 잘못이 크다고 말합니다. 


김대중과 노무현의 산은 높았습니다. 그들의 꿈과 이상을 어찌 “이상 자체가 없는” 이명박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산이 아닌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이명박이라는 치욕적인 역주행을 낳았습니다. 그 바람에 이 땅의 젊은이들을 비롯한 모든 세대가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분명한 사실을 집권을 꿈꾸는 진보진영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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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문화와 소비의 시대인 1990년대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가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자마자 책 제목에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가 ‘나’였으니까요. 이 시기를 가장 압도했던 사상은 아마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른바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이 출판시장을, 젊은 여성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경자의 <혼자 눈뜨는 아침> 등은 ‘사랑(결혼)’이라는 전통적 가치보다 ‘일’이라는 자기실현을 중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후 소설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나날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천년 동안 못다 이룬 사랑을 완성하려는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인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이 등장한 것은 1995년이었습니다. 이때 하병무의 <남자의 향기>, 김상옥의 <하얀 기억 속의 너>, 백금남의 <천상의 약속> 등 남자로부터 무한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상한가를 쳤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여성들은 드디어 남자를 ‘고르기’ 시작합니다. <모순>(양귀자)의 25세 주인공 안진진은 ‘몽상’과 ‘현실’을 상징하는 두 남자를 저울질하다가 ‘현실’을 선택합니다.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 진희는 바람처럼 가볍고 분방한 사랑을 추구합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입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정도로 지위가 오른 여성은 최상의 멘토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기도 하고, 여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천 매뉴얼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때마침 알파걸, 골드미스 등 이들을 칭송하는 신조어도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비혼주의자도 늘어났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경향신문DB)


<브리짓 존스의 일기> <섹스 앤드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젊은 여성을 위한 문학이라는 ‘칙릿’이 큰 흐름을 이룬 것은 2000년대 중반입니다. 영상화된 이 소설들은 런던, 뉴욕, 맨해튼 등 대도시에 살며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20~30대 미혼여성들의 세속적인 욕망과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거침없이 보여줬습니다. 이런 흐름이 국내에도 자연스럽게 이식됐습니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와 백영옥의 <스타일>은 드라마로도 방영되었습니다.


선두에 서서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알파걸들의 피로감이 극도로 치솟아서일까요? 지극히 반페미니즘적인 소설 하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E L 제임스, 시공사) 시리즈는 시간당 10만달러쯤 버는 27세의 억만장자 크리스천 그레이와 대학을 갓 졸업한 21세의 아나스타샤 스틸의 파격적인 사랑을 관능적인 묘사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소설에는 다양한 섹스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와 빌 게이츠를 합쳐 놓은 듯한 하버드 중퇴의 천재사업가인 크리스천 그레이는 섹스로 여자의 몸을 완전히 소유해버리는 마법의 소유자입니다. 아나는 “아름답고 죽이게 섹시하고 부자이며 고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천박한” 그레이에게 점차 빨려 들어갑니다. 그레이는 채찍과 체벌까지 동원한 섹스를 받아들이는 아나에게 “넌 내게 희망을 줬어”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네 살 때 ‘약쟁이 창녀’인 엄마를 잃은 크리스천 그레이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부부가 변호사와 소아과 의사인 집으로 입양됩니다. 그 집에는 입양된 형과 누이가 있었는데 다섯 식구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아나의 어머니는 ‘불치의 낭만주의자’로 네 번째 남편과 삽니다. 친아버지는 아나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아나는 의붓아버지를 엄마보다 더 의지합니다.


크리스천 그레이는 15세부터 엄마 친구인 중년 여성에게 온갖 성적 학대를 당합니다. 그는 그 고통을 아나에게 되돌려주는 셈이지요. 이들의 로맨스는 오로지 섹스로만 이뤄집니다. 이렇게 성에 지배당하는 ‘섹스 판타지’를 20~30대 여성, 특히 도회적이고 교육받고 진취적인 여성들일수록 더 열렬하게 읽는다고 합니다. 이 소설이 유행하면서 ‘성적 복종’이라는 욕망이 하나의 확고한 주제로 떠오른다고 하네요. 


아마존닷컴 사상 최초로 전자책으로 밀리언셀러가 된 이 소설은 종이책으로 인기가 옮겨 붙어 석 달 만에 2100만부나 팔렸습니다. 일본에서는 온라인서점 등장 초기에 <세상에서 제일 쉬운 섹스 어매이징 강좌>가 온라인서점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결국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불이 붙었지요. 그렇다면 억눌려 있던 ‘섹스 판타지’에 대한 잠재적인 욕망이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드디어 폭발하는 것일까요? 


자본 증식을 위해서라면 못하는 것이 없는 과학문명에 대한 절망감과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뢰감 붕괴로 말미암아 인간의 관심이 ‘몸’과 ‘마음’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9·11 테러 직후입니다. 지루한 일상에서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개인이 힘겨운 현실에 대한 절망감으로 ‘몸’에 대한 욕망을 키웠다지요. 시대를 거꾸로 가는 ‘섹스 판타지’의 대단한 인기는 굴욕적인 섹스가 ‘해방(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의 증거일까요? 한때 세상을 주도했던 페미니스트들에게 꼭 한 번 던져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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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다시 읽었습니다. 가상의 전체국가인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빅 브러더’는 독재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면서 정치권력을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마이크로폰, 사상경찰, 스파이단 등을 이용해 철저한 사상통제를 자행합니다. 방, 거리, 광장 등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스크린과 산이나 야외에 숨겨져 있는 마이크로폰은 시민의 모든 행동을 철저하게 감시합니다. 어린이로 조직된 스파이단은 부모의 대화나 행동, 심지어 잠꼬대까지 엿듣고 사상경찰에 고발하도록 훈련받습니다. 


오세아니아의 통치주체는 ‘당’입니다. 만능인 ‘당’이 말하는 것은 무조건 진실이며 사실입니다. 당은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마저 만들어 생각과 행동을 속박합니다. 개인은 당이 말하면 것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합니다. 당이 2+2는 4가 아니라 5라 해도 말입니다. 그걸 ‘이중사고’라고 하지요. 심지어 당은 인간의 성욕마저 통제합니다. 


 조지 오웰이 1949년에 발표한 <1984>는 국내에는 1968년에 출간되었지만 별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84년이 가까워지면서 언론에 스탈린과 히틀러 시대 이상의 전체주의가 1984년을 지배한다는 조지 오웰의 예언이 한국의 정치 상황에 맞아떨어진다는 기사가 자주 게재되면서 판매가 급증해 베스트셀러에 올랐지요. 광주를 피바다로 만들고 집권한 ‘5공 정부’를 <1984>의 ‘당’과 다름없다고 본 것은 틀린 지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어떨까요? 연말 대선의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박근혜씨는 항구적인 권력을 추구한 아버지의 쿠데타가 정당하다며 역사 왜곡을 꾀합니다. 이명박 정권도 민간인 사찰을 광범위하게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5공 정부’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소셜미디어가 일반화된 지금 그런 통제는 저항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폭압적인 정권이라 해도 정치권력은 집권기간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자본권력이야말로 항구적인 권력을 추구합니다. 국내 최고의 한 기업은 노동조합의 설립을 결코 허용하지 않습니다. 직원들이 백혈병으로 줄줄이 죽어가도 산업재해를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기업의 홍보를 위해 언론인을 끊임없이 영입하고 있습니다. 대형로펌인 김앤장의 변호사가 160명에 불과하지만 이 기업에는 변호사가 700명이나 활동하고 있답니다. 지적재산권 문제가 첨예한 시대이긴 해도 과연 700여명 모두 그런 분야의 전문가인지는 확인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런 기업이 과연 오세아니아의 ‘당’보다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일러스트 _ 김상민


▲ 자본권력이 국가권력을 지배하는 시대

상업적 감시보다 무서운 기술적 감시

인간은 ‘파놉티콘’에 갇힌 신세로 전락


<감시사회-대한민국에서 벌거벗고 살아가기>(한홍구 외, 철수와영희)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최철웅은 기업들의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구축한 ‘상업적 감시’ 체제가 벌이는 일은 우리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을 수도 있다고 경고합니다. 은행, 보험회사, 자동차 회사, 대형마트, 휴대전화 회사 등이 확보한 개인정보는 언제든 개인의 목을 옥죌 수 있습니다. 개인 정보의 ‘상품화’ 시대가 되다 보니 개인이 사용하는 카드정보만 추적해도 개인의 일상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어 상업적 감시의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새누리당의 ‘돈 공천 파문’도 내부의 고발이 있긴 했지만 ‘상업적 감시’ 시스템 때문에 실체가 조금이나마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상업적 감시보다 더욱 무서운 것은 ‘기술적 감시’입니다. 폐쇄회로(CC)TV는 텔레스크린의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언제든 자사가 확보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개인의 성향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제 인간은 푸코가 창안한 개념인 파놉티콘에 갇힌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일망감시체제를 갖춘 원형감옥인 파놉티콘에서는 간수는 보면서 보이지 않지만, 수인은 볼 수 없으면서 일방적인 보임만 당합니다. 수인은 간수가 보지 않고 있어도 간수의 눈 또는 권력의 시선을 통해 내면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인터넷의 익명성이 누리꾼들의 조사로 권력자들을 감시하는 시놉티콘이 가능해지긴 했지만 그런 순기능보다 개인이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사생활 노출로 인한 자발적인 감시체제로의 편입이라는 역기능이 더 큽니다.


원래 정보기술은 돈과 정보의 민주화와 균형 있는 욕망의 해방을 가져올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대기업에 의한 돈과 정보의 독점과 쾌락의 끝없는 중독만 확산되고 있습니다. 정보기술은 관련 분야의 숙련노동자를 소프트웨어로 대체하고 있어 ‘고용 없는 성장’을 낳고 있습니다. 


국가권력기관들은 대기업의 수하에 놓인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우리는 ‘고용 없는 성장’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대기업의 상업적인 기술적 감시의 노예가 되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끔찍한 디스토피아입니다. <1984>의 ‘당’을 대기업으로 치환하면 우리의 미래는 이렇게 끔찍합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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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작은도서관’이란 잡지를 기억하실지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2007년 말에 4호까지 펴내고 중단된 잡지입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권양숙 여사는 작은도서관 운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작은도서관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예산도 점차 늘어났지요.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인수위는 작은도서관 지원 예산이 ‘권양숙 여사’ 예산이라면서 전액 삭감해버렸습니다. 아마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이명박 정부가 출판계에 안겨준 재앙의 시초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의 ‘김윤옥 여사님’ 예산은 한식 세계화로 바뀌었습니다. ‘4대강 사업’처럼 한식 세계화는 혈세만 낭비하고 아무런 소득도 남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판계에 안겨준 본격적인 재앙의 시발점은 ‘일제고사’ 도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대에 우리 아동출판은 급격하게 성장했습니다. 1990년대에 우리 출판계는 장기간의 군사정권이 지배한 이 땅에 바람직한 아동서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환경을 바꿔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책, 순간적이고 찰나적인 즐거움을 전하고 억지웃음을 강요하는 TV와 연결된 즉물적 기획상품, 공포물, 유머(?) 소화류(笑話類) 등의 아동서적이 서점 서가의 대부분을 장악했습니다.

1990년대 아동출판의 성장은 세계 저작권협약(UCC) 가입과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른 저작권 개념의 명확한 확립,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들의 아동출판 대거 진입, 386세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히려는 열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합법화에 따른 학교 현장의 긍정적 변화, 좋은 책을 골라 읽히려는 시민단체들의 노력, 아동서적 전문 서점과 전문 도매상의 등장, 일간신문의 아동서적 소개면 신설 등에 힙입은 바 큽니다. 이 시절에 좋은 그림책을 읽고 자란 세대가 그림책 작가가 되어 지금은 세계적인 그림책 관련 상을 해마다 수상하고 있기도 합니다.

일제고사는 학교 현장을 압박했습니다. 그 바람에 아동출판은 해마다 30%씩 매출이 격감하기 시작했습니다.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도 동반해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학교도서관에는 시설과 자료(책) 이상으로 사서교사라는 전문 인력이 필요합니다. 2006년 109명, 2007년 104명, 2008년 109명 등 3년간 총 367명의 사서교사 신규 임용이 있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2009년 9명, 2010년 24명으로 급격하게 줄었습니다. 2011년에는 단 한 명도 뽑지 않았고, 2012년에는 결원보충으로 전북에서 딱 한 명만 뽑았습니다.

 

파주 출판단지를 찾은 가족 ㅣ 출처:경향DB

2010년 4월26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유인촌 장관은 국내 시판도 되지않은 아이패드를 이용해 ‘전자출판산업 육성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근본적인 시스템 조성을 위한 방안이 없이 그저 곁가지 대책만 나열하면서 5년동안 60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예산 확보없이 발표한 것이라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올해는 ‘국민독서의 해’입니다. 강단학자들에게 수천만원을 주고 만든 몇 가지 이벤트가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이 행사에 문화부가 투입한 전체 예산이 국민 1인당 10원에 불과한 5억원이었습니다.

최광식 문화부 장관은 지난 7월9일 “한류 확산을 위해 앞으로 유형은 물론 무형의 산업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내년 50개 사업에 5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영화나 게임 산업, K팝 등의 문화산업을 지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모든 문화산업의 근간인 출판에 대한 홀대는 이명박 정부 내내 너무 심화됐습니다.

지난 18일, 정부는 출판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을 출범시키면서, 초대 원장에 이재호 동아일보 출판국장이 내정됐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출판에 문외한인 특정 대학 출신의 보수 언론인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습니다. 인사 발표 후 반발하는 출판단체를 찾아온 박영석 문화산업국장은 “출판계가 이렇게 반발하면 출판계만 손해”라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출판계가 더 손해 볼 것이 남아 있나요? 어차피 망할 수밖에 없는 출판인들이 ‘낙하산 인사 규탄 및 출판문화 살리기 실천대회’를 벌인 것이지요. 그들은 원장 자리 하나 꿰차지 못해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낙하산 인사가 도화선이 되어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정부의 홀대에 출판인들의 분노가 드디어 폭발한 것입니다.

온라인서점의 할인 경쟁이 가속화된 다음 출판계는 뒤늦게 도서정가제만이 출판 산업이 살기 위한 최소안의 안전장치라고 수없이 아우성쳤습니다. 하지만 문화부는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공정위나 규제개혁위의 반대를 핑계로 문제를 봉합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그 바람에 서점의 휴·폐업이 속출하면서 출판시스템은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이제야 출판인들은 한마음으로 분연히 일어섰습니다. 낙하산 인사 철회뿐만 아니라 도서정가제 확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의 도서관 장서구입 예산 확보, 독서진흥기금 조성, 학교 독서교육의 강화, 출판유통의 현대화 등을 위해 열심히 싸우기로 했습니다. “한숨 대신 함성으로, 걱정 대신 열정으로, 포기 대신 죽기 살기로”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말입니다. 양서 출간이 늘어나기를 기대하시는 국민들의 많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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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호시노 도모유키 장편소설 <오레오레>(은행나무)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레오레’는 그냥 ‘나(오레)’로는 부족하여 ‘나야 나’ ‘나, 나라니까’ ‘내가 내가’ 하며 자신의 존재를 강조하는 표현이랍니다. 작가는 이 소설로 ‘제5회 오에겐자부로상’을 받으면서 한 인터뷰에서 ‘오레오레’는 “개인이 소멸되는 시대에 겁먹은 개인들이 지르는 비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인공 ‘나’(히토시)는 언제나 맥도널드에서 혼자 점심을 해결합니다. ‘나’는 어디를 가나 동일한 인테리어로 편안하게 맞이해주는 맥도널드가 집처럼 편안합니다. 맥도널드의 빨간색과 노란색이 눈에 들어오면 조난 중에 사람이 사는 섬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느 날 ‘나’는 맥도널드에서 옆에 앉은 사람(다이키)의 휴대전화를 자신도 모르게 들고 나왔습니다.

쓸데없는 걸 가져온 것을 후회하며 버리려는 순간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렸습니다. 액정화면에는 ‘어머니’라고 떴습니다. 처음에는 받지 않았지만 맥도널드에서 들은 ‘다이키’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연습을 한 다음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아들인 척 거짓말을 내뱉었습니다. 돈이 급히 필요하다는 말에 전화 속의 어머니는 아무런 의심 없이 아들 ‘다이키’를 위해 돈을 보내왔습니다. 일종의 ‘보이스피싱’이 성공한 것입니다.

며칠 후 ‘다이키’의 어머니가 내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나를 진짜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당황한 나는 2년 동안 찾지 않았던 진짜 엄마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당신, 스토커 짓은 범죄라는 것 몰라?” 하면서 ‘나’의 행세를 하던 젊은 남자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습니다. 그는 오늘 내가 지겹도록 봐온 바로 ‘나’였습니다.

 

대형 수족관 안의 정어리떼 ㅣ 출처:경향DB

점점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는 ‘나’는 무수한 ‘다른 나’를 만나게 됩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 내가 되어 있고, 그 ‘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식’됩니다. 그렇게 증식되는 ‘나’는 정어리와 다름없습니다. 직접 소설 속의 표현을 읽어볼까요. “자유자재로 바다를 헤엄치는 것 같지만, 실은 나는 주위의 정어리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리더가 있어서 움직임을 결정하는 게 아니다. 모든 정어리가 주위를 따라 한 결과 전체적으로는 구름같이 부풀거나 줄어들거나 옆으로 흘러가거나 오로지 멀리 헤엄쳐 가거나 하는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생각은 없다.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면 잡아먹힌다. 그러니까 나는 주위의 정어리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열심히 움직인다. 전후좌우 위아래 어디를 봐도 같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그러는 사이 어느 정어리가 자신인지 모르게 된다. 자신이 거기에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결국 ‘나’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구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바깥이든 집 안이든 전철 안에서든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나, 나, 나. 자기 자신으로 뒤덮인 곳에서 서로 상처 입히고 서로 삭제하게 됩니다.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자신을 누구보다도 잔혹하게 괴롭힙니다. 옆도 돌아보지 않고 똑바로 오직 절멸을 향해 돌진합니다. 나를 삭제해버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질리지도 않고 우리끼리 서로 삭제경쟁을 벌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소셜미디어에서 무수한 친구를 만들다가도 한순간에 많은 사람을 삭제해버리기도 합니다. 상처를 입으면 자신의 방을 폐쇄해버리기도 하지요. 언제나 상대의 의중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날마다 맥도널드에서 똑같은 점심을 먹는 히토시는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는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자신의 껍질에 틀어박히듯이 오로지 눈앞의 먹을 것을 획득하는 데에만 몰두해온” 우리는 “앞날이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먹어온” 것 아닌가요?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우리는 ‘부모’에게 성공적인 삶을 강요당해왔습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성공의 이미지에 나를 맞추고 그 속에서 만족을 추구하려고만 했습니다. 그 결과는 일류대 입학과 안정된 직장. 우리는 늘 주위의 색깔에 물들 뿐 아무것도 스스로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나 같은 것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주향은 <그림 너머 그대에게>(예담)에서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버지의 탑에 갇혀 있습니다. 돈의 탑에 갇혀 있고, 시선의 탑에 갇혀 있습니다. 갇혀 있는 우리는 탐욕의 노예고, 권력의 노예고, 시선의 노예고, 체면의 노예고, 시간의 노예고, 하다못해 다이어트의 노예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먹고, 놀고, 편하게 자지 못합니다. 많이 벌어도 언제나 2퍼센트 부족하고, 한 목숨 살리기 위해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지만 ‘나’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합니다. 활동적 자폐가 아버지의 탑에 갇혀 있는 현대 도시인의 특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가 자폐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소설에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먹히기 전에 우리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것이라고 말하는군요. 이주향은 내 속의 하늘을 품어야 ‘아버지의 탑’에서 해방되어 혁명 같은 사랑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제의 ‘경험’이 내일은 ‘쓰레기’가 되는 세상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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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여성작가 여섯 사람이 섹스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단편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문학사상)를 읽어보았습니다. 빨간색 표지가 무척 자극적이었지만 내용은 “아주 은밀한 섹스판타지”라는 도발적인 광고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욕망과 한계를 인정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선을 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돈, 섹스, 권력에 대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것은요?

자신이 욕망 덩어리라는 것을 인정했다가는 하루아침에 매도되기 쉬운 세상에서 검사 출신의 법학자 김두식은 욕망을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겠다는 결심의 결과물로 <욕망해도 괜찮아>(창비)를 내놓았습니다.

김두식은 <헌법의 풍경>(교양인)에서 직접 체험한 법조계의 어두운 현실을 용기 있게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기득권층과 결합해 ‘불멸의 신성가족’을 만들고는 법과 시민 위에 군림하는 모습을 통렬하게 고발해 우리에게 많은 울림을 안겨주었지요.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달려있는 <욕망해도 괜찮아>에서 김두식은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말’과 ‘글’의 교감 이상으로 ‘살(몸)’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소설가들이 자기 욕망을 정직하게 털어놓기 위해 소설이라는 우회로를 선택하고서도 자신의 ‘색(욕망)’을 털어놓기가 쉽지 않은 마당에 말입니다.

“욕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끝없이 통제하는 문화 속에서 평생을 보낸” 김두식은 우리 사회의 경계선을 넓히는 도구로 자신의 삶을 이용하겠다는 의지를 밝힙니다. 자신의 억눌린 욕망과 분노를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작은 연대가 싹트고 나면, 험한 정글의 삶도 한결 견딜 만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이지요.

 

섹스 테마 소설집 <이브들의 아찔한 수다>를 펴낸 여성작가들 l 출처:경향DB

김두식은 지금은 중산층의 터전’으로 변한 성북동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교사였던 김두식은 “중산층동네와 산동네의 접경지역”에서 살았지만 “삼중당 문고를 품고 살다시피한 똑똑한 문학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 시절에 부자동네 아이들의 화사한 세계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부자 동네 출신 아이들은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명한 ‘재벌 3세’에서부터 그럭저럭 괜찮은 중소기업의 아들들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유학을 마치고 아버지 회사를 이어받았습니다. 중산층동네 친구들은 판사, 벤처회사 연구 책임자, 성악가, 헌법연구관 등이 되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자만 셋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부자 동네 아이들이 가업으로 이어받은 회사에서 부장이나 과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두식은 “부자동네 아이들이 앉아 있는 사장실에 결재받으러 드나드는 걸 피하려는 무의식이 우리를 사법시험 합격으로 이끈 건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합니다.

산동네 출신 친구 중에는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공부를 잘해서 최고로 꼽히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졸업과 동시에 무조건 돈을 벌어야 했던 그 친구에게는 미래를 위해 투자할 돈과 시간이 전혀 없었습니다. 산동네 출신 친구들은 근본적인 출발선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말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김두식은 성급한 일반화를 우려하면서도, 친구 부모님들의 소득수준에 따른 순위가 그 자녀인 자신 세대에서도 크게 변화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평준화와 과외금지 조치로 그나마 활발한 신분변화가 일어났다는 학력고사 세대”인 자신 세대의 ‘계층 고착화’가 이렇게 굳어져 있는데 이후 세대는 어떨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합니다.

지금은 로스쿨의 등장으로 “성적 하나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무식한 제도(사법시험)가 가졌던 투명함”마저 사라졌습니다. 고등학교도 철저하게 서열화되었습니다. 이제 서열화는 점점 내려가 머지않아 태어나는 순간부터 서열이 정해질지도 모릅니다.

하긴 그런 서열이 싫어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지만요. 저는 김두식의 고백을 통해 검찰이 “권력의 화장지 노릇”이나 하는 원인을 유추해볼 수 있었습니다.

73세의 소설가 김주영은 <잘 가요 엄마>(문학동네)에서 새아버지의 등장으로 인한 좌절감과 수치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방황하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야 어머니라는 존재의 실체를 정확하게 깨닫고 “어머니에 대한 참회록”을 털어놓을 수 있었답니다. 한때 원망을 넘어 저주까지 했던 어머니와 화해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서술한 이 소설의 솔직한 고백은 큰 감동을 안겨줍니다.

김려령의 장편소설 <가시고백>(비룡소)에서 18세의 주인공인 천재 도둑 민해일은 친구 허지란의 새아빠 전자수첩과 친아빠 넷북을 연이어 훔칩니다. 해일은 자신이 훔친 사실을 지란에게 고백함으로써 드디어 구원을 얻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움을 떨치고 제 심장의 가시고백을 뽑아내야만 그때서야 믿어주고, 들어주고, 받아주는 연대가 이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너무 늦어 곪아터지기 전에 저마다의 ‘가시고백’을 뽑아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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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khhan21@hanmail.net


지난 5월 19일 안면도에서는 누동학원의 총동창회가 열렸습니다. 누동학원은 1975년 6월 15일 문을 열어 모두 8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1년 8월 30일 문을 닫은 중학교 과정의 농촌야학입니다. 제도화된 교육을 비판하며 바람직한 교육의 모델을 제시하려 했던 누동학원을 유신정권은 ‘사설강습소법’을 핑계로 강제 폐교시켰습니다.

저는 6년여 동안 누동학원을 거쳐간 80여명의 교사 중 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학년 9명의 담임이었지요. 마지막 졸업식이 있은 뒤에 한 학생이 저에게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떠나시는 선생님을 볼 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이 작은 소녀의 가슴에서 벅차 올랐어요. 선생님, 저는 그때 배움의 힘이 크고 돈의 위력이 큰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적어도 11월까지는 지탱이 될 거라고 하시던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나고 사람이 진실성을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가르치시던 생각도 나고….”

이 편지를 보낸 소녀는 이제 48세의 나이로 대학에서 청소년 교육을 공부하는 3학년 학생입니다. 51세의 남편은 대학 교수이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두 아이도 대학생입니다. 온 가족의 전공이 같은 계열이랍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뒤 졸업하고,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다른 졸업생은 지금 박사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제가 가르치는 동안 세 번이나 가출했습니다. 저는 당시 우등상과 개근상을 없앴습니다. 바쁜 농사일에 일손이 없어 허덕이는 부모를 모르쇠하고 학원에 오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런 상은 아이들을 나쁜 심성의 소유자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지요.

 

서울 서대문구 안산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와 함께 교문 밖을 나서고 있다. l 출처:경향DB

도시락도 못 싸오던 두 아이가 이번 모임을 이끌었습니다. 제가 자신들의 담임이었다고 저부터 인사를 시키더군요. 저는 50여명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4세의 철없는 사람이 1년 남짓 교사를 했다고 평생 스승으로 여겨주는 경우가 세상 어디에 있나요? 제가 스승이 아니라 여러분이 제 삶의 스승입니다. 제가 ‘학교도서관저널’ 같은 잡지를 3년째 펴내며 세상에 헌신하며 살 힘을 여러분이 제게 주었습니다.” 그날 참석한 다른 교사들도 저와 비슷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들과 헤어지고 저는 이 시대 교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오늘의 교육> 6호(2012년 1~2월)의 특집 ‘교육 불가능 시대, 교사는 가능한가’는 좋은 교사를 꿈꿨던 이들마저도 그냥 공무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특집에서 ‘스승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엄기호는 “교사가 학생과 위계적인 관계를 떠나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이 큰 기쁨이듯이 학생들 또한 교사와 우정을 맺는 것이 배움의 도약을 이루는 큰 전환점이 된다”고 말합니다. “제자의 능동성을 배려하며 진실에 대해 용기를 내게 하는” 교사가 진정한 스승이라고 규정한 엄기호는 “우리 교육 현장에서 스승이 되는 것은 지극히 힘들고 거의 불가능”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교사의 고통은 크겠지요. 한 교사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 딱 한 가지만 포기하면 교사가 정말 괜찮은 직업”이라고 말합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올해 ‘스승의 날’을 맞이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사 5명 중 4명은 “교직의 만족과 사기가 떨어졌다”고 대답했습니다. <학교의 풍경>(교양인)에서 “학생 안전의 책임을 교사에게 묻는 제도적 안전망이 없는 환경, 힘 있는 학부모들의 교권침해, 수업에 들어와 다과를 들며 수업을 감상하는 이상한 교원평가, 국·영·수 외에는 설 자리가 없는 교육 과정, 학교 밖에서 이미 곪아 터진 문제로 아파하는 학생을 지원하는 체제의 부족함” 등을 질타한 12년차 교사 조영선은 “사랑하는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서로 어깨를 겯는 동지로 거듭나는” 올바른 관계를 꿈꿉니다.

<변방의 사색>(꾸리에)에서 “이제 웬만하면 비정규직, 아니면 청년 실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모두 16년을 온통 지옥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이 경쟁 교육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비정규직 산업예비군이 되기 위해 이 미친 경쟁에 뛰어들 이유는 없다”고 외치는 이계삼은 이제 우리가 쓸모없는 것으로 내던진 ‘인문학’과 ‘농업’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6년차 교사 안준철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제자들마저 힘겹게 살아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괴로워합니다. <오늘 처음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문학동네)에서 “교권은 학생들을 사랑할 권리”라고 해석한 그는 “교사가 한 아이에 대한 믿음을 버리는 순간 교사로서의 존재 의미는 상당 부분 훼손된다”고 말합니다.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2011년에 하루 209명, 모두 7만6489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습니다. 학교에 남은 아이들도 성적만이 살길이라는 아주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구조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이 책들을 읽으며 저는 교사와 학생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안준철의 지적대로 모두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과 이해”를 하려고 나서는 것이 암담한 교육현실을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이게 바로 키가 훌쩍 커버려 이제는 친구가 되어버린 누동학원의 제자들이 어깨동무하며 제게 알려준 진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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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대략 1991년부터 2002년까지를 말합니다. 한때 일본 경제의 고공행진을 가능하게 했던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급락하자 수많은 기업과 은행이 도산했습니다. ‘고이즈미 정권’이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한 고강도 개혁 정책을 실시해 경기가 잠시 살아나는 듯했지만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시 흔들렸고, 작년 3월11일에는 대지진마저 겪으면서 심각한 리더십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은 이제 ‘잃어버린 20년’이 되었다지요.

로버트 기요사키는 <앞으로 10년, 돈의 배반이 시작된다>(흐름출판)에서 세계 경제대국 가운데 첫 번째로 부도가 날 국가는 일본이라네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부채비율이 가장 높기 때문이라는군요. 2010년의 국가 부채 비율은 일본이 200%, 미국이 58.9%, 영국이 71%였습니다.

4대강 삽질로 일관한 이명박 정권은 작년에만 국가 부채와 공공기관 부채를 약 60조원 이상 크게 늘렸습니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채무는 모두 약 884조원으로 작년 GDP의 71.6%에 달합니다. 우리도 이대로 가다가는 일본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디 부채뿐인가요? 저출산으로 말미암은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 소득이 높고 사회적 지위도 안정된 ‘쌍봉세대’의 은퇴, 자산가치 하락, 개인부채 급증 등 일본의 모습을 뒤따라가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들 l 출처:경향DB

1947~49년에 태어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단카이(團塊) 세대가 은퇴를 앞두었던 시절의 일본에서는 ‘늙음과 죽음’에 대한 우화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1998년에 노인의 건망증과 같은 망각의 힘이야말로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말한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노인력>이 최고 유행어로 뽑힌 것이 계기가 된 이후, 아흔 살의 현역 의사인 히노아라 시케아키가 “나이듦이란 노쇠가 아니라 숙성되는 것”이라며 장수사회를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 <생활에 능숙함>과 일흔 살의 이시하라 신타로가 쓴 <나이듦이야말로 인생>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젊은 시절 치열하게 인생론에 몰두했던 단카이 세대가 노년의 입구에 다다르자 청춘을 회고하며 남은 인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했었지요. 100살을 넘긴 장수자들이 많은 일본에서 이 책들을 인생의 전환점에 선 50대가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그즈음 최고로 인기를 끌던 실버잡지인 ‘사라이’는 정치, 경제, 비즈니스, 질병, 금전 등 다섯 주제는 절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잡지를 읽는 동안만이라도 골치 아픈 이야기는 잊어버리라는 독자에 대한 배려였지요.

‘늙음과 죽음’이 이렇게 시대적 화두가 되는 와중에 40대가 풍요로운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책, <40대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것> <마흔부터 현명한 삶> <마흔부터의 인생설계 가이드> <40살부터의 새로운 노년학> 등의 40대를 위한 다양한 정보서적들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평균연령이 80살을 넘긴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100세 마케팅’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인 40대를 위한 책들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습니다.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신정근, 21세기북스), <마흔에 읽은 손자병법>(강상구, 흐름출판), <마흔살, 행복한 부자 아빠>(아파테이아, 길벗),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이의수, 한국경제신문) 등의 인기는 40대가 책의 중요한 소비층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로버트 기요사키의 지적처럼 우리는 과거에 “학교 교육, 직업 안정성, 급여, 의료보험, 조기 은퇴 그리고 평생 동안 지속되는 정부 지원과 같은 산업화 시대의 유물에 집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보화 사회입니다. 우리는 과연 새 시대에 맞는 사고를 하고 있나요? <정의란 무엇인가>(김영사)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경제국가 반열에 올라선 한국도 경제의 성공에 부수적으로 증가하는 “각종 불만들을 어떻게 완화할지, 공정한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지, 시장가치가 가족·지역사회·공공성을 훼손하거나 잠식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미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정보기술(IT) 혁명이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를 걷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미래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변화가 하도 극심해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가치관은 부챗살처럼 한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일자리, 소득, 집, 연애(결혼), 아이, (미래에 대한)희망이 없는 ‘6무(無) 세대’가 된 젊은이들은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전혀 기대하지 못하자 무수하게 자살을 꿈꾸고 있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몰라 헤매다가 40대가 되어서야 겨우 공부를 시작하거나 운이 좋았던 젊은 시절에 모아놓은 자산이나 소비하면서 여생을 이어가려는 부모세대가 자식에게 알려줄 세상을 이겨낼 지혜가 과연 존재할까요?

오늘은 어버이날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이 달아준 카네이션과 건네준 선물에 기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갓 ‘노예의 학문’으로 전락해버린 각종 스펙을 갖추라고 강요해온 부모들이 그런 기쁨을 누릴 자격이 과연 있을까요? 오히려 고통받는 자식들에게 부채만 잔뜩 물려주고 세상을 이겨낼 힘은 스스로 갖춰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는 것을 반성하며 자식의 가슴에 ‘응원’의 꽃을 달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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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요즘 소설이 팔리지 않는다고 아우성입니다. 한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니 베스트셀러 20위 안에 <은교>(박범신, 문학동네), <헝거게임>(수잔 콜린스, 북폴리오), <화차>(미야베 미유키, 문학동네) 등 영화화된 원작소설 몇 편만이 순위에 들어 있네요. 성석제의 신작 장편소설 <위풍당당>(문학동네)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의외로 여겨질 정도입니다.

요즘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진 소설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꾸준히 ‘팔리는’ 몇몇 대형작가가 존재했지만 미국발 금융위기가 유럽발 재정위기로 이어져 이제는 어쩔 수 없이 평생 ‘위기’를 끼고 살아야만 할 것 같은 2010년대에는 대형작가들의 작품마저 ‘임팩트’가 강하지 않으면 곧바로 외면 받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14년째 출판전문지의 발행인으로 있는 저는 소설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는 특집이라도 꾸려보라는 주변의 압력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 꽤나 읽는(아니 읽어야만 목숨을 부지하는) 출판평론가들에게 소설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가가 누군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 인물을 통해 자연스럽게 소설을 살릴 수 있는 묘안을 찾아보자는 취지였지요.

 

대형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러 책들 I 출처:경향DB

그렇게 추천받은 작가가 천명관과 이응준입니다. 천명관은 <고래> <고령화 가족>(이상 문학동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전 2권, 예담) 등 ‘영화 소설 3부작’으로 잘 알려진 작가입니다. <고래>는 훗날 ‘붉은 벽돌의 여왕’으로 불리게 되는 주인공인 벽돌공 춘희와 고향 산골마을에서 가출해 어촌에서 늙은 생선장수와 살림을 차린 후 키가 팔 척이 넘는 장골의 사내 걱정과 악명 높은 건달 칼자국 등을 거치며 굴곡진 삶을 살아야만 했던 그녀의 어머니인 여걸 금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령화 가족>의 화자인 나(이인모)는 영화감독을 하다가 영화가 망하는 바람에 마흔 여덟의 나이에 ‘더 이상 팔 것이 없어’ 일흔이 넘은 엄마의 집으로 들어옵니다. 그 집에는 120㎏의 거구에다 전과 5범의 변태성욕자인 52세의 형 오한모(오함마)가 이미 둥지를 틀고 있었는데 곧이어 화려한 이혼 경력의 소유자이면서도 또다시 남편과 이혼할 예정인 45세의 여동생 미연이 딸과 함께 합류합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의 주인공인 삼촌은 자기 삶의 롤모델인 이소룡을 닮고자 했으나 결국은 액션신 단역배우인 ‘다찌마리’의 인생을 벗어날 수 없었던 인물입니다. 삼촌은 풍만한 가슴으로 값싼 포르노 영화와 액션 영화를 전전하는 삼류 배우 정원정을 만나자마자 그녀에게 완전히 빠져 그녀를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헌신도 불사하는 지극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천명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개성이 무척 강합니다. 그들은 보편적 일상 이상을 꿈꾸거나, 일상 이하에서 고통 받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짝퉁 인생’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지질한 인생들입니다. 천명관은 이들의 삶을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대단한 입담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한편 이응준은 스스로 소설미학과 관념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문학적 성리학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문학적 재능은 진즉 인정받았지만 한 인간으로서 실존적 위협을 느끼자 상업영화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영화판을 경험한 이후에 자신을 부수는 용기를 갖고 쓴 것 같은 소설이 <국가의 사생활>과 <내 연애의 모든 것>(이상 민음사)입니다.

<국가의 사생활>은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 통일한 지 5년 뒤인 2016년 한반도를 무대로 어느 전대미문의 인민군 출신 폭력 조직의 내부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스릴러입니다. 청천벽력같이 찾아든 평화통일의 대혼란 속에서 공화국 군대의 무기 회수와 관리가 허술한 탓에 대한민국에는 어둠의 세력이 마구 활개를 칩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나이 마흔 줄의 미녀 노처녀이자 진보노동당 대표 오소영 의원과 역시 마흔의 미남 노총각으로 판사 출신이자 보수여당인 새한국당의 김수영 의원이 주인공인, 정치권의 좌우대립을 소재로 한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사람일지라도 인간적 이해를 통해 도달한 사랑의 힘이 사람을 얼마나 크게 바꿀 수 있는가를 해학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캐릭터가 강한 인물들의 삶이 마치 영화 스크립트가 빠르게 넘겨지듯 이야기가 재미있게 전개되는 이 소설들은 곧바로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어도 될 것 같습니다. 영화적 과장이 자주 등장하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소설적 진화를 이룬 듯합니다. 이렇게 전통적 소설 기법의 틀을 과감히 깨버린 이들 소설은 이야기가 갖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잘 보여줍니다.

지금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에서는 정치적 공방, 종교와 음모론, 내부고발, 성공담과 실패담 등 무수한 이야기가 범람합니다. 이야기에 대한 갈망이 대단한 대중은 이제 그런 이야기에 곧바로 환호와 비난을 동시에 보냅니다. 지난 4·11 총선 국면에서도 불법사찰, 막말, 표절, 성추행 등의 개인과 일상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판세가 크게 요동쳤습니다.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으로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지요. 이런 세상이니 우리는 천명관과 이응준 같은 작가가 그려내는 소설에 어떤 희망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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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