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위기’로부터 시작됐다. 즉 인류에 의해 생성된 유형과 무형의 문화유산들을 또 다른 난개발로부터 지켜내고 보존하자는 것에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스완댐으로부터 지켜낸 이집트 고대유적이다. 단순히 이집트가 지켜낸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동으로 지키는 노력을 했다. 즉 ‘위기’에서 지키기 시작한 세계유산은 어느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유산을 떠나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산으로 승화한 것이다.

지금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이 문화적, 역사적, 정치적 자긍심이 되지만 특히 관광객 증가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러한 자랑거리인 세계유산이 유독 갈등이 되는 지역이 있다. 중국과 한국,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이 대표적인데, 이들 삼국의 고대문명 갈등이 현대에까지 재연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인류가 만든 문명은 자의와 타의에 의해 수많은 노동력이 동원됐다.

최근 들어 근대산업 현장들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그 갈등의 양상은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유네스코는 이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어떤 민족에게는 치욕과 죽음을 부른 현장이 다른 민족에게는 근대화의 산실이라고 기념한다는 것인데, 지금처럼 유네스코가 “기념할 것”과 “기억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갈등만 더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한국 외교부나 문화재청은 이러한 문제를 유네스코에 정식으로 의제화해서 수정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이 인류 보편적인 문화인가? 죽이고 강제 동원한 것이 인류 보편적인 문화로 인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강력한 문제의식을 제기해야 한다.

외교부는 처음으로 ‘강제 동원’이라는 문구를 넣었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나선화 신임 문화재청장이 27일 오전 정부대전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해 취임사를 하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일본이 근대산업기지를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전부터 냉정하고 치열한 외교전략을 구사했어야 했다. 항상 언론이나 민간단체에서 먼저 시작하고 나중에 뒷북을 치는 모습이 지속된다면 곤란하다.

또 본문에 ‘강제 동원’이라는 문구를 넣지 못하고 주석에 남긴 것은 외교적 성과라고 하기에는 미흡하다고 본다. 예상했듯이 유네스코의 지적에 당황한 일본은 무조건 등재하고 보자는 전략으로 일관했고, 일본 외상은 등재 후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강제 동원’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고 궤변을 늘어놓고, 일본 언론도 군국주의 유산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고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정한 힘의 논리만 지배하는 국제관계에서 무조건 등재 반대를 주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 상황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다시 말하면 한·일 양국의 민족적, 문화적, 정치적, 인류사적 갈등에 대해 국제사회는 “미래로 가는 화합”을 강조하며 일본의 주장에 무게를 더 실어주는 듯하다. 즉 한·일 간의 문제를 인류사적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양국 간 과거 감정 문제로만 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판을 깔아주고 넓혀주었으니 어찌 기회가 아니겠는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강제징용, 수탈과 살인에 대해 우리는 국제사회에 냉정하고 차분하되, 적극적이면서도 품위 있게 알려야 한다. 단순 감정이 아닌 인류사적으로 저지를 수 없는 만행에 전 세계인이 함께 반성을 촉구하고, 일본이 반성을 모른다면 반성하도록 동참하게 해야 한다.

또한 유네스코가 권고한 ‘강제 동원’ 정보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지, 또 이행 사항을 준수하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가 전 세계 다양한 언어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일제 군국주의 시절의 산업유산’을 보다 냉정하게 소개하는 방법도 고려하면 좋을 듯싶다.

황평우 | 은평역사한옥박물관장·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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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근. 1978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시대가 좋지 않았다. 세 번의 제적과 복교 끝에 11년 만에야 겨우 졸업했다. 여러 번 체포됐고, 고문과 수감의 고통도 겪었다. 호구지책으로 책방을 열었다. 최초의 직업이었지만, 경찰은 그냥 두지 않았다. 수시로 책방을 뒤지고, 책을 집어 갔다. 불온서적을 판다며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되기도 했다. 3년 넘는 재판 끝에 전부 무죄를 받았지만, 경찰은 압수해간 3000여권의 책을 돌려주지 않았다. 태워버렸다고만 했다. 더러운 시절이었다. 배상을 받는 게 당연했지만, 그저 더는 괴롭히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에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였지만, 보상 신청도 하지 않았다. 광주에서 죽어간 사람들도 있는데 부끄러웠단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 가두 시위 현장에서 전경과 시위대가 몸싸움을 벌이는 광경 _ 경향DB

김형근 선생. 사범대학에 입학한 지 21년 만에 늦깎이 교사가 됐다. 작은 시골 중학교에 발령받았다. 농촌지역은 가난했고, 학생들은 방치됐다. 겨우 돈 몇 푼에 몸을 파는 여학생도 있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지만, 김 선생은 그럴수록 열심이었다. 도서관 담당을 자청했다. 학생들을 도서관에 잡아두고 늦은 밤까지 공부를 시켰다. 단지 교과공부만 하지 않고, 함께 놀기도 하고 상담도 했다. 학원 강사 경험을 살려 글쓰기 교육도 했다. 학생들은 빠르게 변해갔다. 학생들이 변하니, 학부모와 지역이 함께 변하기 시작했다. 학부모들은 도서관에 나와 학생지도를 거들었고, 자체적으로 산악회를 만들어 활동했다. 학생들은 교육부장관상, 경찰청장상을 휩쓸었다. 오랜 고초를 겪었지만, 모처럼 기쁨과 보람이 함께하는 살 만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너무 짧았다. 그동안 일곱 번이나 체포됐고, 숱한 고문도 겪었지만, 진짜 시련은 따로 있었다.

2007년 12월, 대선 직전이었다. 조선일보가 갑자기 김형근 선생을 찍었다. 중학생들을 빨치산 추모제에 참석시키고, 교사들에게 주체사상을 전파하는 e메일을 보냈다는 거다. 다 이긴 선거판인데도 그들은 집요했다. 전교조를 겨냥한 색깔론 공세를 위해 1년6개월 전 행사까지 끄집어냈다. 허위 왜곡보도였지만, 수사기관은 조선일보의 요구에 충실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지 두 달 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없는 현직 교사를 덜컥 구속한 거다. 그렇지만, 원심과 항소심은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애초 잘못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다. 집권 한나라당은 무죄 선고에 대해 종북 판사, 좌익 판사 운운하는 막말을 쏟아냈다. 박근혜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대법원은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과거 범민련에 가입한 적이 있으니 이적성이 있다고 대법원이 구체적인 사실 판단에 개입했다. 2013년 가장 나쁜 판결 중의 하나였다. 김 선생의 운명은 이렇게 뒤틀어졌다.

빨치산 운운하는 모략이 먹혀들지 않자, 국가정보원은 북한을 이롭게 하는 이적표현물을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며 별건으로 구속했다. 연합뉴스 등의 보도물을 옮겨 놓은 것에 불과했지만, 이적성을 가진 사람이니 북한에 이롭다는 거다. 어떻게든 엮어보려는 속셈이었다. 국정원은 김 선생을 엮기 위해 휴대전화 위치추적과 e메일 감청 등을 통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샅샅이 훑었다. 몇 년 동안의 인터넷 활동을 모두 모아 짜깁기하며 혐의를 덧씌운 거다. 국가보안법은 이럴 때 신통한 무기가 된다. 대학에 입학한 1978년부터 지금까지 꼬박 37년 동안 김 선생은 국가폭력의 희생양이었고, 공안세력의 먹잇감이었다. 그의 삶은 깨졌고, 피폐해졌다. 국가의 공권력은 정당성을 잃는 순간, 그저 몹쓸 폭력이 된다.

국가폭력으로 모든 것을 빼앗긴 김형근 선생은 지금 말기 암으로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의료진조차 더 이상의 진료가 무의미하다며 손을 놓아버렸다. 의사는 그에게 다만 몇 개월의 시간이 남았을 뿐이라고 했다. 김형근 선생이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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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이 음악 청취의 대세가 되면서 인류는 그 어떤 때보다 가장 편하게 음악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음반을 사는 수고는 물론이거니와 다운로드해서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일조차 불필요해졌다.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다면, 필요한 앱만 깔려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음악이든 들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급격하게 변하는 시장 환경이 이렇듯 편리함만을 제공하는 건 아니다. 대신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인 물성의 소유가 안겨주는 쾌감을 박탈한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아우라’가 음악에서 사라지는 것이다. 이 아우라에 대한 갈망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공연장으로 이끈다. 네트워크에서 나와 네트워크로 가는 음악이 아닌, 무대에 선 가수의 복제할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그 모습을 보며 비로소 진짜 음악을 만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공연이란 일회적이라는 특성을 가진다. 느낄 수는 있으되 소유할 수는 없다. 사진을 찍고 녹음을 해도 그건 이미 복제된 순간일 뿐, 원본이 될 수 없다. 인간의 역사란 곧 소유의 역사,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저장이라는 개념을 전제하는 다운로드의 유사 소유감마저 스트리밍은 제공하지 않는다. 즉 스트리밍이 시장을 장악할수록 역으로 소유의 결핍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27일, 28일 서울 가양동 한일창고에서 열린 레코드 페어는 이 결핍을 채우려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올해로 다섯 번째 행사를 치른 레코드 페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음반 중심의 음악 축제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음반의 가치를 느끼려는 이들이 서로 음반을 사고팔며 기쁨을 느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넓은 창고로 장소를 옮기며 어느 때보다 많은 참가자들이 셀러로 참여한 이번 행사에 다녀왔다.


4인조 밴드 혁오_경향DB



지난번 행사까지와는 여러 가지로 다른 모습이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지난번에 비해 압도적으로 LP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판매자들의 매대에도 CD보다는 LP가 많았다. 아예 LP만 가져다놓은 판매자들도 대폭 늘어났다. 구매자들 또한 그랬다. CD보다는 LP를 고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턴테이블 판매량도 대폭 늘었다고 한다. 총 열 종의 레코드 페어 한정 LP 중 최근 음악계의 대세로 떠오른 밴드 혁오의 음반은 반나절도 안되어 품절됐다. 이 말은 곧 한국 음반 애호가들의 축제인 레코드 페어가 보다 LP 중심의 행사가 되어 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참가자들 중 20~30대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도 흥미롭다. 메르스의 여파로 40~50대, 즉 어릴 때부터 레코드로 음악을 들어온 세대의 참여가 줄어든 대신 어쩌면 첫 음악 청취의 경험을 mp3플레이어로 시작했던 세대의 방문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국의 매체에서 LP를 다루는 방식이 틀렸음을 시사한다. 많은 매체에서 LP붐을 이야기할 때 추억이란 단어를 엮곤 한다. 하지만 현재 20~30대는 LP에 대한 추억이 없는 세대다. 오히려 휴대용 CD플레이어나 MD플레이어가 유년 시절의 음악 소비에 대한 추억일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이 세대에게 LP는 오히려 새로운 음악 플랫폼이다. 디지털은 물론이거니와 CD조차 주지 못하는 압도적인 물성의 플랫폼. 30×30㎝라는 압도적 크기에 담긴 커버 아트가 주는 시각적 흐뭇함,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늘을 얹어 나오는 소리를 듣는 제의적 과정은 비로소 음악을 소유한다는 만족감을 극대화한다.

현재 미국에서 성장하는 음악 플랫폼은 스트리밍과 LP뿐이다. 감상으로서의 음악과 소유로서의 음악이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고 있는 형국이다. IT가 아직까지 오감을 두루 만족시키는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과 관련된 콘텐츠가 대세가 된 이유 중 하나도 그런 경험에 대한 결핍 때문이 아닐까. 가상 세계의 간접 경험보다는 실제 세계의 직접 경험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질로 인한.

김작가 |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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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 끝에 박힌 눈

깨진 유리컵에 베인 손가락
점자책을 더듬을 때 아파서
며칠째 한 페이지도 넘어가지 못한
내 손가락 끝에 박힌 눈

본 적 있다 이맘때쯤, 그 봄날
베인 상처를 파고드는 소독약에
자르르 퍼지는 통증처럼
한나절 봄비 내린 후
대지에 돋아나던 새싹들

그 푸른빛의 살점들
떠오르는 햇볕 한 줌이라도 더
부서지는 저녁놀 한 줌이라도 더
동공 속에 담으려다가 끝내는
두 눈처럼 꽉 닫혀버린 창문 밖
저 나뭇가지에 앉아 재잘대는 새들처럼
저마다 소리 내고 만져지는 건
그만큼 통증을 삼킨 상처다

거기서 솟아오른 살점들이다




△ 시각장애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눈이 손가락에 달린 사람이구나. 시력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손가락에 돋아나는 것이구나. 서른 살에 시력을 잃은 손병걸 시인은 손가락으로 책을 읽으며 시를 써왔다. 손가락의 눈에 점자 하나하나는 밤하늘의 별과 같아서 점자책을 펼치면 별들의 이야기가 와르르 쏟아져 ‘빛의 경전’이 된다고 그의 시는 말한다. 손가락 눈은 상상력을 달고 퍼져 나가 산과 나무, 꽃과 새, 물과 구름 등 세상의 온갖 ‘살점들’을 만지고 껴안는다. 닫힌 눈의 절망과 어둠의 통증을 겪어서 알고 있기에 손가락 눈은 세상의 상처를 더 잘 느낄 수 있으리라.

그래서 그의 시 쓰기는 ‘아무도 찾지 않는 어둠 속/ 비루한 생활의 문을 열고/ 빛나는 경전을 집필하는 것’이 된다. 시를 쓰며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고 할 만큼 그에게는 여유와 유머가 생겼다. “촉각은 제한적이지만 가식이 통하지 않는다. 손으로는 가짜 표정을 지을 수 없다. 촉각으로는 섣불리 전체를 판단할 수 없기에 항상 겸손해진다.” 다큐멘터리영화 <달팽이의 별>에 출연했던 시청각중복장애인 조영찬씨의 말이다. 만진 만큼만 보는 손가락 눈은 정직하고 겸손하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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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스물다섯 청춘의 워킹홀리데이 분투기>(정진아), <홀리 워킹데이>(이희원). 요즘 흥미롭게 본 책과 영화의 배경이 우연의 일치인지 모두 호주다. 대체 호주에 뭐가 있길래? 작년 한 해에만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사람이 3만명이 넘는다. 한 달에 3000명 가까운 사람이 호주행 비행기를 타고 있는 셈이다. 비자 발급이 쉽고 영어권 국가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 1년을 머물 수 있으니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와 책을 쓰거나 영화를 찍고, 호주로 이민을 가는 소설 속 주인공 모두 20대 여성이다. 왜 그럴까? 소설에서 이유를 찾아봤다. “접시를 닦으며 살아도 호주가 좋다 이거지. 사람대접을 받으니까”는 남녀 공통의 사유지만 여성은 하나가 더 붙는다. “어차피 난 여기서도 2등 시민이야. 강남 출신이고 집도 잘살고 남자인 너는 결코 이해 못해.” 소설가가 20대 여성 ‘계나’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가장 큰 이유다. 남성들과 달리 ‘한국에서 누리던 기득권’이 없다는 것, 외모에 대한 한국 사회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한몫한다.

여성들이 외국에서 가장 먼저 느끼는 건 ‘시선의 자유’다. 유럽 여성들은 ‘몸매가 펑퍼짐’해도 이를 드러내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을뿐더러, 누구도 그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 일단 거리에서 누군가를 집요하게 쳐다보는 일 자체가 드물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고개를 돌려가면서까지 쳐다보고 품평(?)하느라 바쁜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사람이다. “저렇게 뚱뚱한데 왜 저렇게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느냐”며 수군대는 사람도 없고, 옷 사이즈도 다양하다. 내 돈 내고 택시를 타도 “아가씨는 왜 화장을 하지 않느냐”며 기사에게 한소리 듣고, 공중파 드라마에서조차 이름 대신 ‘뚱녀’라는 명칭으로 버젓이 상영되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허벅지와 엉덩이에 살이 많아서 콤플렉스였던 계나 역시 호주에 오자마자 “윗도리로 하체 가리고 다닐 필요”도 없고 “못 입던 옷도 막 입을 수 있겠구나”를 깨닫는다. 번화가에 10분만 서 있어도 유행하는 옷이나 아이템을 알 수 있는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고용노동부가 공식 블로그에 “성형이 취업 7종 세트로 자리 잡은 시대, 기업들은 어떤 얼굴상을 선호하고 있을까요?”라며 ‘취업 성형’을 권장하는 내용이 담긴 게시물을 올려 물의를 빚고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는 촌극이 벌어진 것이 지난주다. 이는 대기업들이 선호하는 얼굴형이 있고 이에 맞춰 성형하는 ‘○○기업 성형’까지 성행한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기업만 그런 것도 아니다.

며칠 전에는 카페에 앉아 있다가 우연찮게 그 카페의 직원 면접 장면을 목격했다. 면접자를 돌려보내고 남은 사람들의 대화는 실제로 이러했다. “서비스 업종은 아무래도 외모를 안 따질 수가 없어”, “근데 저분은 경력이 그래서 그런가 진짜 편의점이 딱이야. 그냥 단순 판매 스타일?” “그러게 말이야. 아무래도 안 되겠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 ‘외모’와 ‘분위기’라니…. 뭐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마저 얼굴이 좀 되면 카운터, 안 되면 청소를 시킨다는 불문율(?)은 나 역시 경험으로 알고 있는 터다.

취업자·실업자 수 증가폭 _경향DB


계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호주로 간다”며 “아직 행복해지는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호주에서라면 더 쉬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어”라고 말한다. 물론 호주는 지상낙원이 아니고 그곳 현실 역시 녹록지 않다. 하지만 어차피 일자리 없고(문과), 있어도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에(이과) 다들 치킨집을 차리는 것으로 끝나는 ‘치킨집 수렴의 법칙’이 지배하는 한국이 아닌가. 하루 8시간씩 일해도 한 달에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편의점 알바도, ‘베스트 슬리머상’을 받기 위해 살을 빼야 하는 직장인도 떠날 이유는 차고 넘친다. 그러니 ‘한국이 싫어서’,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라며 떠나는 이들을 잡을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국민을 내쫓는 국가’라면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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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부여·익산 등 백제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유적들을 묶은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백제유적지구는 한·중·일 고대 동아시아 삼국의 상호교류를 보여준다는 점과 백제의 내세관과 건축기술, 그리고 예술미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것은 일본 근대산업시설물의 등재를 둘러싸고 한·일 간 뜨거운 외교전이 벌어지던 와중에 전해진 낭보였다. 백제유적 등재가 자칫 일본 근대시설물의 등재와 연동되는 게 아니냐는 일말의 우려도 말끔히 정리됐다.

이번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국내에서조차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됐던 백제 역사의 위상이 높아지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다. 그동안 남북한의 세계문화유산(15곳)은 고구려(고분군), 신라(석굴암·불국사·경주), 고려(해인사장경판·개성), 조선(왕릉·종묘·창덕궁·남한산성) 등의 역사를 대표했다. 유독 백제만 빠져있었다. 세계문화유산 차원에서 고구려·백제·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 역사의 정체성 공백을 메운 것이라 평가할 수 있겠다. ‘등재 이후’의 과제도 만만치 않다. 당장 등재유산이 2개 도(충남·전북)와 3개 도시(공주·부여·익산)에 걸쳐 있어 무분별한 복원 및 개발 방안이 쏟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계유산이 됐다고 해서 맹목적인 보존만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산의 가치 공유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유산의 가치는 역시 제대로 된 보존에 달려 있다. 백제유적들이 가치를 인정받은 것도 신라(경주) 유적과 달리 대부분 땅속에 묻혀 있어 ‘완전한 보존’이 가능했다는 측면도 고려됐다. 유네스코 세계위원회도 “방문객 관리계획을 마련하고 고분벽화의 모니터링 주기를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무분별한 개발 및 복원을 우려한 것이다. 문화재청과 해당 시·도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보존 계획을 세우는 데 힘을 써야 하겠다. 이번 등재는 전체 백제역사(678년) 가운데 후반부 185년(475~660년)의 역사만 대상으로 하고 있다. 한성백제(기원전 18~기원후 475년)의 역사는 빠졌다. 뒤늦게 서울시가 한성백제의 도읍지로 알려진 풍납토성 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등재된 백제유산지구의 ‘확장 개념’으로 한성백제의 추가 등재가 가능하다니 세계문화유산에서의 ‘백제역사 합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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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이가 부패할 기라는 거, 박근혜가 무능할 기라는 거, 누가 모르고 찍었나? 우리 바보 아니대이. 오죽하면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 했겠나? 하지만도 대안이 없었다 아이가? 조선왕조가 아무리 부패하고 무능했어도 일본 놈 통치보단 난 것 맹키로.”

1961년 이래 지금까지 단 5년을 빼고는 내내 영남 출신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 전부가 영남 출신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지당한 일일 뿐 자부심을 갖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노무현, 문재인, 박원순, 안철수는 단호히 ‘배신자’로 규정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대통령 개인의 출신지가 아니라 ‘영남 정권의 정통성’이었다. 평소 꼭꼭 숨겨 두었던 내심을 취중에 드러내면서도, 그는 ‘호남 지역감정에 비하면 영남 지역감정은 양반’이라는 말로 자기의 비교우위를 강조했다. 물론 그도 맨정신일 때에는 지역감정이 망국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간간이 이런 단단한 내심에 접하곤 한다. 그때마다 20세기초 근왕주의자의 결기를 보는 듯해 한편 감탄하면서도, 그의 의식 깊은 곳에 지역감정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고려시대에는 호남인을 차별했고, 조선시대에는 서북인을 차별했다. 하지만 통일왕조 국가에서 수도가 아닌 특정 지역의 권력 독점을 당연시하는 문화는 없었다. 혹자는 박정희 정권이 권력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이용했다며 그에게 원죄를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연원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 시점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박근혜,대탕평,영남 _경향DB



1945년 이전의 일본 제국은 일본 본토와 조선, 대만, 만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다른 인종이 사는 땅에 식민지를 만든 유럽 제국주의와는 달리,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가까운 지역들을 점령한 일본 군국주의는 점령지를 항구적 영토로 삼아 거대 제국을 건설하려는 ‘내지연장주의’를 채택했다. 이를 위해서는 식민지 원주민을 궁극적으로 일본인화하기 위한 ‘국민통합’이 필수적이었다. 그들은 조선에서는 ‘일본 왕은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뜻의 일시동인(一視同仁)과 ‘일본과 조선은 하나’라는 뜻의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내걸었고, 만주에서는 ‘일본인, 조선인, 한인, 만주인, 몽골인이 서로 협력하며 화합하자’라는 뜻의 ‘오족협화(五族協和)’를 천명했다.

그러나 이런 국민통합의 구호들은 식민지에서나 통용되었다. 조선인도 대만인도 일본 국민이었으나, 본토의 ‘내지인’들은 이를 내심 인정하지 않았고 마지못해 인정하더라도 ‘1등 국민’과 ‘2등 국민’으로 나누었다. 대일본제국의 ‘1등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준 것만으로도, 천황제 군국주의 국가권력은 내지인들의 다함 없는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국가권력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의 경제개발 과정은 마산, 울산, 포항, 창원, 구미 등 영남권에 대규모 산업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경제성장의 과실은 주로 수도권과 영남권에 분배되었다. 현재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재벌가문 대다수도 영남에서 기원했다.

이런 역사 과정에서 영남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 과거 ‘내지인’들이 가졌던 것과 비슷한 상대적 우월감과 자부심이 자리 잡은 것은 오히려 당연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영영 내지와 외지, 본토와 식민지로 구성된 ‘소제국’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망국적 지역감정’이라는 말이 나온 지도 수십 년이 지났다. 이제는 지역감정을 선거에 이용하는 정치인들만 탓할 때가 아니다. 지금 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반일감정에 비하면 일본인의 혐한감정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한다.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호남 정치’ 운운하는 사람들도 한심하기로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자치’를 주장했던 자치론자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나는 고 육영수 여사와 동향(同鄕)이고 외가도 충청도이며, 처가는 경기도다. 조선시대 과거 시험 치르는 것도 아닌데, 이런 얘기를 하면 묻지도 않고 ‘홍어’로 낙인찍어 버리는 사람들 때문에 구차하게 삼족(三族)의 출신지 정보를 밝혀야 하는 ‘현대 국민국가’ 국민으로 산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고 참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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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씨의 표절을 둘러싼 일대 사건이 여전히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논쟁을 불붙인 건 문단의 일이었으나, 문학 소비자들의 가세로 일이 커졌다. 다른 분야의 표절 문제도 새로 제기되거나, 과거의 일도 입길에 올랐다. 사회 전체적인 관심사로 확대되고 있다. 유명 가수의 히트곡 표절 사건이 다시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국민적 관심을 얻고 있지만 표절은 아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표절로 인해 겪는 손해(?)보다 그것으로 얻는 이익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표절죄에 대한 처벌이 약한 것도 한몫한다. 표절을 판정하는 법적 행위가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표절을 바라보는 법의 시선이 그다지 엄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표절은 다른 이의 창작물에 대한 절도 내지는 강도 행위이지만, 그것이 사실로 밝혀져도 처벌은 대개 가볍다. 표절로 수갑을 찼다(신체형을 받았다)는 얘기는, 나는 들은 바가 없으며, 벌금도 약하다. 표절로 얻은 이익보다 훨씬 적다.



표절은 원 창작자의 정신적 산물을 빼앗는 일인데, 그 사후 결과는 매우 독특하게 진행된다. 절도와 강도질은 대개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자비를 구하지만, 표절은 대개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거나 부인한다. 어떤 이는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은 한국의 법의 특성 때문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법관은 (이미 만들어진) 법률과 판례를 통해 재판하므로 창작물에 대한 이해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어떤 만화가의 대작 만화를 텔레비전 작가가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 만화가의 술회에 따르면, 너무도 유사점이 많아 법원에서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법원의 판결은 원고(만화가) 패소였다. 이 작가는 그 후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표절은 도둑질이지만 더 악질적인 이유는 범죄행위의 목표가 대개는 생계가 아니라 명성을 얻기 위함이라는 점이다.

요리 동네도 표절이 적지 않다. 언젠가 내가 일하는 식당에 유명 식당 주인이 들러 문어요리를 자꾸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자기 식당에 돌아가 이렇게 외쳤다. “○○○○(내 식당 이름) 같은 문어요리 좀 해봐.” 그의 식당 주방에 내 후배가 마침 일하고 있어서 생생하게 그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요리는 다른 분야와 달리, 표절에 덜 민감하다. 먹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늘 아래 새로운 재료가 어딨어, 이런 시각이 일반적이다.

나는 보잘것없지만 내 요리를 누가 흉내내면 기분 나쁜 일은 아니다(기왕이면 더 잘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디어디서 영감을 받았다거나 참조했다는 말이라도 하면 다행이겠다. 하기야 제철 요리를 표방한 한식 브랜드가 생겨나자 우후죽순처럼 유사 브랜드가 넘쳐나지만, 다들 표절 혐의를 추궁한다면 펄쩍 뛸 게 뻔하다. 치킨은 또 안 그렇겠는가. 베끼는 일에 대한 최소한의 양심을 기대하기에는, 이 시대는 그다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박찬일 |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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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당시 고려대 총장이 삼성과 기업인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고려대 학생들이 벌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명예철학박사 수여 반대 시위에 대한 사과였다. 그리고 1년 뒤, 이 시위에 적극 동참한, 나를 포함한 7명의 학생들이 출교됐다. 입학 기록까지 사라지는 초강경 징계였다. 올해까지 거의 10년에 이르는 길고 긴 줄다리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징계의 표면적 이유는 2006년 4월 본관에서 벌어진 밤샘집회였다. 고려대와의 통폐합으로 하루아침에 불안정한 처지에 내몰린 고려대병설보건대 학생들과 본교 학생들이 총학생회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일부 교수님들은 보건대생들을 두고 “2년제” 운운하며 무시했고, 결국 처장단 교수님들은 요구안이 적힌 서류조차 받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본관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운 다음날, 우리는 교수를 ‘감금’한 ‘패륜아’가 됐다. 고려대 당국은 우리가 하지도 않은 일을 적은 ‘감금 일지’를 학교 웹사이트에 게시했고, 진상조사는커녕 소명기회도 주지 않은 채 우리들을 학교 밖으로 내쳤다.

2년여의 천막 농성과 법원 판결로 다시 복학이 이뤄지기 전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배움의 기회를 놓쳤고 큰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학교 당국의 비난에서 시작된 “패륜” “감금범” 꼬리표는 감당키 어려웠다. 지금도 온라인에서 이런 비난은 재생산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우리를 짓눌렀다. 먼저 졸업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고통은 커져갔다. 만성 위염과 허리, 무릎 통증이 우리를 괴롭혔다. 면담을 요청하러 갔다가 직원들의 억센 손아귀에 끌려 나가는 우리들을 본 가족들의 가슴도 무너졌다.

다행히도 법정에서 진실이 일부 드러났다. 학교 당국은 출교가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출교된 학생들이 ‘이건희 회장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 반대 등을 주도’한 것을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학생활동의 성향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점 등을 기록한 문서도 법원에 제출했다. 증인 심문을 통해 ‘감금 일지’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도 밝혀졌다. 결국 2007년 10월 법원에서 출교 무효 판결이 나왔다. 학교 측은 그 뒤에도 퇴학, 무기정학 등 징계를 반복했지만, 이 역시 수년 동안의 법정 소송 끝에 모두 무효화됐다. 온갖 곡절을 겪으며 징계 기록은 사라졌지만 당시 겪은 고통까지 사라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고민 끝에 학교 측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용기를 냈다. ‘일단 쫓아내고 보자’는 식의 징계로 인해 학생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만은 아니다. 중앙대와 동국대에서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한 학생들이 퇴학되는 것을 보며, 대학의 징계권 남용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국철도노조 소속 노조원들이 해고자 복직과 구조조정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_경향DB



지난 3월 대법원은 우리 손을 들어줬던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긴급조치 9호에 따른 국가 배상 불인정, 쌍용차와 KTX 해고 노동자 부당해고 패소 등 권력이 약자를 힘으로 억누르는 것에 면죄부를 주는 판결들이 최근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건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다행히 국회의원과 지식인, 사회운동가 등 많은 분들로부터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7월8일, 파기환송심 첫 재판이 열린다. 부디 재판부가 무책임한 반교육적 처사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내리기를 바란다.

김지윤 | 고려대 출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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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기본법 이 2012년 12월 시행된 지 2년7개월이 지났다. 이 법에 따른 협동조합이 6월 말 기준 7364개가 설립됐다.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출발했으나 매일 7~8개가 설립되는 걸 보면 희망적이다. 이 중 사회적협동조합이 차지하는 비율은 4.1%(304개) 정도이다. 나머지는 모두 일반 협동조합이다. 지역별로는 서울시(1890개)와 경기도(1123개)가 전체의 40.9%를 차지하고 있다. 세 번째는 광주광역시(482개)인데 인구 대비 가장 많다. 7월 첫주 토요일 ‘협동조합의 날’을 맞이해 협동조합의 가치를 짚어보자.

우리 사회에서도 협동조합은 성장 모델이 될 수 있다. 경기 침체와 저성장 시대, 위기에 강한 조직이 바로 협동조합이다. 재정위기 때 스페인의 전체 기업 파산율은 2.4%였으나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0.8% 정도였고, 그들도 모두 타 기업으로 전환배치되었다. 이탈리아는 일반 기업 파산율이 2.0%였으나 협동조합 레가는 파산하지 않았다. 협동조합 중심의 볼로냐시는 큰 흔들림이 없었다. 금융협동조합 중 유명한 네덜란드의 라보뱅크는 금융위기 중 오히려 수신액이 3배가량 늘었다. 라보뱅크는 거의 배당을 실시하지 않고 100여년 동안 자본을 축적해온 결과로 보고 있다.

협동조합은 성격상 자금 조달과 운용이 내부 중심이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 강하고 그만큼 고용도 안정적이다. 협동조합의 나라로 불리는 덴마크는 국내총생산(GDP)과 행복지수에서 세계 최고로 꼽힌다. 이들은 우리가 추진 중인 신생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의 모델이며 벤치마킹 대상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기업의 동반성장과 상생의 가치 구현에도 협동조합이 최선이다.


성공하는 협동조합은 기본 원칙에 충실하다.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제시한 가입 자유의 원칙, 민주적 절차, 자치와 독립, 경제적 참여, 교육·홍보, 협동조합 간 협력, 지역사회와의 협력 등 7대 원칙을 늘 염두에 두고 사업을 해야 한다. 명패만 협동조합으로 바꿔 달거나 이상으로 꿈만 꾸어서도 안되며 조합원과 직원, 그리고 사업 현장에서 기본원칙이 실천돼야 본래 협동조합의 모습이다. 우리 사회의 신생 조합은 이념의 공유하에 인적 유대를 끈으로 사회적 경제를 창조하고 도전해 가야 하는 개척자의 운명에 있다. 자본주의 방식을 답습했던 2002년 미국의 500대 기업에 들었던 ‘애그웨이와 팜랜드’가 연속 도산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사회적 경제의 선두인 미국의 캘리포니아 베네피트 기업 ‘파타고니아’는 기업에 사회적 경제를 접목시킨 모델이다. 미국은 18개 주에서 주주의 투자가치에 몰입하는 경영을 넘어 사회적, 친환경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기업을 보호해주고 있다. 정부 등 공공기관의 영역에 비영리조직이 개입해 재화 및 서비스에 기본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이런 조직의 경영자들은 예술, 식품, 건강 등의 전문가 출신으로 조직 목표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사람들이다. 실험 단계에 있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직 우리의 협동조합은 실험 단계다. 기존 조직에서 전환한 협동조합들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대다수의 소규모 조합들은 회계보고서를 만들기 어렵다.

그러나 설립의 강도를 보면 협동조합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분위기다. 시간이 걸리고 구조조정이 이뤄지겠지만 결론적으로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정점을 지나 이미 공유사회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른다.


명정식 | 농협안성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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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의 국내 확산은 여러 면에서 매우 충격적이었다. 세계적으로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26개 국가 중에서 발원지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외하면 모든 국가가 1~2명, 많아야 4명 이하로 사망자를 줄일 수 있는 사건을 우리가 차단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48년째 바이러스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필자는 장관이 관장하던 업무를 연구기관 수준의 산하 기관에 내려보내고 오랜 전통의 전염병 관리 전문 기관인 국립보건원을 전염병 전담 기관에서 보건 분야 혼합 기관으로 만든 것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혼합 기관으로서는 전문가 양성, 자신 있는 판단과 의사 결정 그리고 보고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도 전염병 전담 기구가 없었던 것이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쳐서 쇠퇴해 왔다. 이를 약술해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개국 이후, 최초로 만든 기관이 전염병 관리 전문 기관인 지석영 선생의 종두의(種痘醫) 양성소였다. 당시 가장 문제가 된 천연두 박멸을 위하여 1895년에 법령이 만들어졌고 1898년부터 종두의가 배출되었다. 그 기관은 일제의 총독부 세균실을 거쳐 1946년부터 1963년까지 보건사회부 산하 국립방역연구소로 지속되었다. 이 기간 중 국가 경제의 낙후에도 불구하고 콜레라, 일본뇌염 등 수많은 전염병 관리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1962년 당시 보건사회부 장관은 산하에 연구기관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방역연구소, 화학연구소 등 4개 기관을 통합하였다. 이들 4개 기관은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enter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CDC), FDA(식품의약국) 그리고 EPA(환경보호청)를 모두 합친 기관으로서 여기에 미국의 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 명칭을 붙인 것이 구 국립보건원이다.

이 거대한 혼합 기관은 잃어버린 3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일부 분야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다. 즉 식품과 약품 업무는 식약처로, 환경 분야는 국립환경과학원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구 국립보건원은 고유 기능인 전염병 연구 업무에 추가하여 장기 관리, 난치성 질환, 대사 영양 질환 등 온갖 업무들이 주어졌다. 이들 업무가 추가됨에 따라 전염병 분야의 정원은 다른 분야 이관으로 실제적으로 축소되었다.

현 보건복지부 장관 문형표 2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질병통제센터(CDC) 등 고위급 방역 전문가들과 감염병 대응체계와 방역체계 개편방안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왼쪽은 세계보건기구(WHO) 실비 브리앙 범유행전염병 국장_경향DB



2004년 구 국립보건원에 보건복지부 보건국의 방역 관리 업무를 내려보내어 개편한 것이 현재의 질병관리본부이다. 원래 있던 국립보건원은 국립보건연구원으로 명칭은 남아있으나 하나의 부서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감염병 관리 전담 조직과 업무는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고 전문 영역의 업무는 침범당해 왔다. 전염병 예방의 최선진국인 일본에서는 감염증연구원이 지속되고 독립성이 유지되어온 반면, 우리나라는 끝없이 통합되고 전담 기관은 축소되어 왔다.

이러한 모순을 유원하 전 국립보건원 원장은 어느 책자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세계에서 선진국 쳐놓고 제대로 된 국립보건원(전염병 관련 대법원)이 없는 국가가 어디에 있는가? 국민들이 잘 모르는 보건 분야라고 해서 이런 식의 임시방편적이고 본말전도적(本末顚倒的)인 행정 발상을 해서는 국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 없다.” 그는 이미 수년 전에 오늘의 사태를 예측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의 개편이 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개편의 목적은 메르스와 같은 온갖 전염병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전염병 전담 기구를 만드는 데에 있다. 행정 전문가, 전염병 관리와 진단 전문가 모두가 참가하는 공청회를 통하여 중지가 모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신영오 |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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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사람들은 도대체가 밥을 안 먹는다. 그러니까 밥심이 있을 수가 없지. 검은 물 커피와 설탕 바른 빵조각으로 어떻게 연명들을 하는지 원. 빼빼 마르고 야윈 여성이 절세 미인이란다. 저른 궁둥이로 애를 어뜨케 낳겄소잉, 할매들은 며늘아기들을 보고 혀를 찰 따름. 이런 세태를 꾸짖기 위함이라도 나는 밥 말리, 밥 딜런, 밥으로 한번 나가보는 것이다. 레게의 전설 밥 말리의 온 러브. 나도 말리처럼 레게 파마를 하고 머리를 흔들어대며 온 러브에 맞춰 춤을 추고 싶어라. 예전에 전주 모악산 살던 형이랑 같이 머리를 새하얗게 염색한 적이 있었는데, 독주를 즐기는 통에 늙어죽지는 못할 것 같아 그런 객기를 부려보았던 게지. 그런데 지금은 염색을 하지 않아도 수염과 머리가 벌써 자작나무 껍질만큼 하얘. 레게 파마를 하자니 머리숱도 별로 없어. 대머리 총각이 아닌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

동네 할망구들은 레게 파마만큼 촘촘한 파마를 하고 댕기신다. 파마 값을 아끼고자 함이리라. 보글보글 파마를 하고 도라지 밭에 앉아 풀을 매고 계시는 뒷밭 할매는 뵐 때마다 인사말이 한결같다. “밥은 해자시오?” 먹고는 사냐는 말씀.




나는 밥 말리만 들어도 배가 둥시럿. 말리처럼 흥겹게 축구공을 차면서 노래하고, 레게 파마를 찰랑거리는 목사. 이 아니 멋질손가. 저 단정한 차림의 근엄한 양복쟁이들은 돈을 세고 셈을 할 때나 날렵하고 얍삽하지.

배신이란 말이 유행인가 보다. 배신 배반. 밥의 배신인 이 빵의 남쪽나라에서 밥 한 술 뜨고 파마를 매만지며 사장나무 그늘을 찾아 손부채를 부치는 주민들. 표를 구걸할 때와는 딴판으로 배신 배반을 당한 어르신들은 고등어 한 마리도 못 드신 표정들. 그나마 밥심으로 간신히 목숨만 유지. 알량하게 밥심으로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외지인이 한 명이라도 그 앞을 지나가면 정자에 있던 모든 주민들의 눈알이 슝슝. 꽁무니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본다. 사람이 그립고 축제가 그리운 것이다. 꽹과리나 한판 쳐드릴까.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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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봤다. 요즘 한창 주가를 높이는 요리연구가 ‘백주부’ 백종원씨가 요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요리하면서 채팅창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장면이 재미나고 참신했다.

방송 중 ‘고급진 재료’ ‘고급진 음식’이란 말이 나왔다. ‘고급지다’라는 말은 사전에 없다. ‘품질이 뛰어나고 값이 비싼 듯하다’를 뜻하는 말은 ‘고급스럽다’이다. ‘고급하다’도 같은 의미다. ‘고급지다’는 사전에 없는 말이지만 비표준어는 아니다. ‘지다’는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성질이 있음, 또는 그런 모양임’의 뜻을 더한다. 따라서 ‘값지다’나 ‘기름지다’처럼 ‘고급’에 접미사 ‘지다’를 붙여 ‘고급지다’라는 단어를 만들 수 있다.




해서 국립국어원은 올 3월 ‘고급지다’를 신어사전에 올렸다. 그리고 ‘고급지다’에 ‘고급스러운 멋이 있다’란 뜻풀이를 달았다. ‘신어(신조어·새로 생긴 말)’는 표준어와 비표준어로 나누기 이전 단계의 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신어의 사용 양상을 관찰한 후 사전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즉 ‘신어’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사용한다면 ‘표준어 대접’을 받게 되고, 사전에 표제어로 오르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비표준어로 남게 된다.

우리말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우리말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신어를 사전에 올리는 게 맞다. 하지만 사전에 올리기 전 우리말법에 맞는지 꼼꼼히 살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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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컨테이젼>(2011년)은 감염재난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블록버스터다. 4년 전 개봉했던 이 영화가 최근 다시 주목을 끄는 이유는 한 달 이상 전국을 혼돈으로 몰아 넣고 있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여파 때문일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의 사소한 접촉을 통한 최초감염, 바이러스의 급속한 전파, 정보 차단 상태에서의 공포, 안이한 초동대응까지 메르스 사태를 너무나 많이 닮았다.


<컨테이젼>에서는 미국 질병통제센터 역학조사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들이 바이러스뿐 아니라 온갖 소문과 공포가 퍼지는 상황에서 감염현장을 지휘할 수 있었던 비결은 강력한 행정 통제권한에 있다. 미국은 센터 산하에 역학전문요원 양성과정(2년)을 두고 매년 80여명을 선발한다. 경쟁률이 10 대 1에 달한다. 이 자리에 의사는 물론 역학, 생물통계학, 환경과학, 사회과학, 행동과학, 영향과학 등 다양한 학위소지자들이 도전한다. 카운티 폐쇄와 이동권 제한에 필요한 행정능력은 물론 주민설득과 공포통제를 위한 미디어 대응능력 등 질병수사관으로서 임무수행에 필요한 모든 교육이 실시된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 CDC_ 경향DB


1951년 한국전쟁 당시 생화학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도입된 역학조사관제는 상시감시체계를 갖추고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감염병 발생과 확산을 차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001년 탄저테러, 2003년 사스(SARS),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확산 사태 때 드러났듯 이들에 대한 미국민들의 믿음은 거의 절대적이다.

우리 사정은 어떨까. 5월29일 메르스 14번째 감염자를 급히 추적하기 위해 삼성서울병원을 찾아간 역학조사관 3명은 보안요원들이 출입문을 열어주지 않고 응급실 환자 명단도 제때 받지 못해 애를 먹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간병원에서조차 문전박대를 당한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17개 시·도에 걸쳐 역학조사에 동원된 역학조사관 인력 역시 34명에 불과했고 이 중 질병관리본부 소속 정규직은 고작 2명뿐이었다. 지난달 25일 뒤늦게 국회에서 역학조사관 인원을 2배로 늘리고 위험지역 폐쇄, 통행차단 조치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하는 법률이 통과되긴 했지만 ‘만시지탄’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강진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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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가 어제 공개한 북한인권백서에는 악명 높은 북한 전거리교화소 내 구타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증언이 담겨 있다. 이곳에 수감됐다가 출소한 사람에 의해 인권침해 실태가 외부 세계에 알려지면서 교화소 내 사망사건이 적극 관리되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석방된 사람들이 “‘99% 잘못이 있어도 1% 양심이 있으면 봐준다’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방침에 따라 석방된 것”이라는 발언도 있다.

북한인권조사위원회 공개 청문회에 나와 증언을 하면서 눈물짓고 있다_경향DB


북한이 자국의 인권에 대한 외부 비판을 의식하고 미미한 수준이나마 실질적인 개선 조치를 시행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권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체제 전복 기도라며 반발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외부 비판에 나름의 고민을 하고 개선하려는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 개선 사례를 들어 북한 인권 상황이 긍정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 것이다. 북한인권백서도 정권 차원의 공개 처형과 고문, 강제 구금이 여전히 횡행하고, 식량권과 건강권도 개선 조짐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거나 지도자상을 부각하려는 정치적 조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이 외부 세계의 지적을 수용한 적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주목해 볼 만한 일이다. 배경이야 어떻든 김정은 정권이 인권 개선의 필요성을 인식했음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제사회도 좀 더 정교한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 압박 일변도로 가면 북한 정권이 주민통제를 강화하고 그 결과, 인권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다. 그보다는 북한이 실질적 개선 조치를 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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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도 샌프란시스코 시민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여름 내내 일요일 오후면 ‘스턴그로브 음악 축제’에 갈 수 있는 샌프란시스코 시민 말이다. 그들처럼 초여름 저녁 나무 그늘 풀밭에 모포를 깔고 싶었다.

파란 하늘 아래 비스듬히 누워서 라이브로 연주되는 바흐나 모차르트, 혹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듣는 거다. 100여년 전에 심어진 유칼립투스와 레드우드가 빽빽이 들어선 숲속 한복판에서 울려퍼지는 천상의 소리들.

그러나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공급되는…. 손에 맥주나 와인이 들려 있다면 더 좋겠지? 음악을 들으며 아예 잠들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려면 모포보다는 텐트가 낫지 않나?… 해봐야 소용없지만 그냥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한여름 밤의 음악 축제.

아, 그런데 이게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이번 주말, 우리 동네에서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린다.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시골 마을에 전교생 모두 오케스트라 단원인 초등학교가 있다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데, 그 학교 앞마당에서 클래식 축제가 펼쳐진다니….

현대차 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프로젝트’의 주요 프로그램인 계촌 클래식 축제. 더구나 정명화가 함께하는 축제다.




연극배우 출신의 계촌 이장님이 말씀하셨다. “정명화가 얼마나 대단한 첼리스트입니까. 그분이 그냥 참여 정도가 아니라 한예종 음악원 출신의 연주자들이랑 함께 아이들을 가르쳤다니까요.”

계촌초등학교 전교생으로 구성된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좋겠다.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 3년간, 어쩌면 더 길게 그 쟁쟁한 선배 연주자들에게 매주 1회씩 지도를 받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무대에도 설 예정이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 파랗게 예쁜 친구들이 이번 축제에서는 어떤 곡을 연주할까? 지난해 ‘한여름 밤의 음악회’에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헝가리안 무곡 5번’ ‘윌리엄 텔 서곡’ 등을 들려줬던 그들이다. 계촌을 상징하는 음악 ‘송어’나 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자주 연주하는 곡 ‘위풍당당 행진곡’은 어떨까?

얼마 전 학교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던 곡이 뭐였더라? 제목은 잘 모르겠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왈츠곡 같았다. 아담한 시골 정경 속에서 춤추듯 울려퍼지는 음표들이 굉장히 예뻐서 어쩐지 목이 메는 느낌이었다. 혹시 그 곡을 다시 듣게 될까?

시골에는 없는 게 너무 많다. 책방이나 도서관, 미술관이 없는 것은 물론 카페나 베이커리, PC방조차 없다.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극장에 가려면 자동차로 왕복 2시간을 달려야 한다. 문화적 결핍 정도가 아니라 아예 공백 상태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예술 황무지.

하지만 결핍이나 공백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 그 ‘누군가(계촌초등학교 같은 경우 강릉시교향악단 창단 멤버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권오이 교장과 원주리코더교육연구회 회장이었던 이경우 교사)’에 의해 시골 학교 학생들이 처음으로 악기를 배우고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고 클래식 공연의 주역이 된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 ‘결핍’에서 되레 ‘꿈’과 ‘낭만’을 발견하고 ‘부재’에서 새로운 문화적 에너지를 만들어낸 내 이웃의 누군가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기쁜 소식을 전한다.

7월10일부터 12일까지 평창군 방림면 ‘계수나무마을’ 계촌에서 클래식 축제가 열린다. 시골 축제치고는 라인업이 굉장하다. 한국 클래식계의 새로운 바이올린 여제 신지아, ‘젊은 거장’의 대열에 들어선 실력파 피아니스트 김태형, 각종 국제콩쿠르를 휩쓴 ‘첼로 영재’ 여윤수를 비롯해 세종문화회관 세종유스오케스트라, 서울심포니브라스, 강릉소년소녀합창단 등이 계촌 별빛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참고로 여건상 마을에 오기 힘든 클래식 마니아들을 위해 마을 현지와 서울을 연결해 공연 실황을 온라인 중계한다는 소식도 전한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유행에 집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에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음악이나 풍경은 매우 영속적이고 고전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런 점에서 시골 마을과 클래식 음악은 아주 잘 어울린다. 밭 갈던 농부와 그의 아내, 인근 펜션에 놀러 온 도시인 가족이 함께 어울려 음악의 환희에 마음을 열 수 있는 축제의 날. 그날을 위해 난 모처럼 원피스를 꺼내 입으려고 한다.

첼로 소리와 함께 초여름 저녁 어스름이 밀려올 때 가방 속에 숨겨 온 와인이나 맥주를 홀짝이게 될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부터 줄곧 클래식을 듣고 자란 우리 개들을 데려가면 혹시 동네 사람들이 욕할까? 뭐 어떤가? 축제일인데…. 도시의 대형 콘서트홀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소박한 환희가 그곳에 있으리라.

김경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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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하다. 부인의 말이 아니다(異哉 非婦人語).” 1590년(선조 23년) 서애 류성룡은 허난설헌(1563~1589)의 시를 읽어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류성룡은 난설헌의 남동생 허균에게 “집안의 보배로 간직해서 후세에 전하라”고 일러두었다. 허균은 27살에 요절한 누이의 유고를 모아 최초의 여성문집인 <난설헌집>(사진)을 출간했다(1608년).

시집은 중국대륙까지 열광시켰다. “난설헌의 시는 하늘에서 떨어진 꽃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다”(<열조시집>)고 할 정도였다. “당나라 대표시인 이태백을 뒤로 물러나게 한다”(<고금야사>)는 극찬까지 이어졌다. 중국의 편집자들이 난설헌의 시를 앞다퉈 실었다. 가히 ‘허난설헌 열풍’이었다.




그런데 1652년 명나라 전겸익이 편찬한 <열조시집>에 심상찮은 평론이 실렸다. 기녀 출신 여류시인인 유여시(1616~1664)가 표절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유여시는 우선 ‘명나라 문사들이 오랑캐 여인(난설헌)의 솜씨에 놀라 표절 여부를 가리지도 않고 열광하고 있는 한심한 작태’를 꼬집었다. 그러면서 “허난설헌의 시 대부분은 당나라 시인들의 시구를 표절한 것”이라고 비평했다. 그러자 조선에서도 난리가 났다. 난설헌과 동갑내기인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난설헌의 시 2~3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위작”이라고 폄훼했다. “중국인의 글을 산 채로 집어삼킨 것”(홍만종의 <시화총림>)이라는 무시무시한 표현도 나왔다.

허난설헌에게 이 같은 낙인은 억울할 것이다. 아니 누가 시집을 낸다고 했던가. 허난설헌은 “내 저작물을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했는데 동생인 허균이 사후에 펴낸 것을 어쩌랴. 어렸을 때부터 옛 시를 바탕으로 끄적였던 습작이 허균이 엮은 시집에 섞였을 것이다. 허균의 흔적도 알게 모르게 삽입됐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죽은 몸이라 독자들 앞에서 입장표명을 할 수도 없었다. 당대 표절의 기준도 모호했다. 조선 전기의 문인인 서거정은 “옛 시를 많이 읽으면 마치 자기의 시처럼 생각되는 게 있으니 표절이라 욕할 수 없다”(<동인시화>)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허난설헌의 명성은 바래지 않았다. 1695년(숙종 21년) 청나라 강희제는 사신을 파견하면서 “조선 고금의 시문들과 <동문선>, <난설헌집>, 그리고 최치원·김생·안평대군의 필적을 가져오라”는 특명을 내렸을 정도다. 혹독한 비평 속에서도 허난설헌의 작품은 살아남아 생명력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기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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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수의견>의 주인공은 신문사 기자가 자신의 동의도 없이 쓴 기사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 문제로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한다.

“그냥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지, 그 말이 그렇게 안 나옵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영화 속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간 논쟁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 작가의 작품 ‘전설’이 일본 우익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소설가 이응준의 비판은 신경숙 개인의 작가윤리뿐만 아니라 한국 문단의 구조적 문제까지 주목하게 했고, 표절임을 확신한 많은 독자들은 신경숙 작가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경숙 작가는 자신은 이 논란과 전혀 상관없으며, 대응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거기에 더해 출판사 창비는 표절을 부인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신경숙 작가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와 같이 표절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인 소설가와 출판사가 모르쇠 입장을 보이자, 사회적 비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출판사는 표절에 대한 입장을 다시 번복했다.

결국 신경숙 작가 역시 자신의 표절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지만, 이미 배신감에 등을 돌린 대중들은 작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논지를 흐리는 비겁한 자세를 보였다고 평하고 있다. 이렇듯 누가 봐도 명확한 잘못에 대해서조차 분명한 사과와 반성이 배제된 채 사건이 적당한 수준에서 수습되는 이유는 과거의 유사한 경험에서 나온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소설가, 출판사 모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실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표절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일한 생각을 했고, 대중들은 그 안일함에 분노했다.




비슷한 시기, 방송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안일함이 대중들을 분노케 했다. 요리방송의 붐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한 셰프로 인해 문제가 불거졌다. 이미 다른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실력 논란을 일으켰던 셰프가 어떻게 요리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에 합류했는가가 주요한 논의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강행했고, 시청자들은 그가 요리실력으로 이 모든 논란을 종식시킬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그의 요리는 실망스러웠다. 시청자들의 불만이 쇄도했지만, 제작진은 안일함으로 대처했다. 셰프의 하차와 제작진의 사과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오히려 논란으로 인해 힘들었을 셰프를 두둔하고 위로하는 제작진을 보며 실망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셰프의 가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명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글은 문제의 본질을 벗어난 내용으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는 데에는 실패했다. 이러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냉장고를 부탁해>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원칙과 제작진이 구현하는 세계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책임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에 지나지 않은 꼴이 되었다.

사과(謝過)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사과하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기 쉽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성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의 수준을 인정하고 배우는 자세를 취하면 전문성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진 셰프,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표절을 인정하지 않는 소설가, 시청률에 힘을 실어준 시청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프로그램 제작에만 몰두하는 제작진,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데에만 집중한 나머지 독자와의 신뢰를 저버리고 권위만을 앞세우는 출판사. 이들은 모두 경쟁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는 우를 범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이다. 만약 통렬한 자기반성을 통한 진정한 사과가 결여된다면 그 실수는 다시 반복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사과가 사라진 사회는 반복되는 실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시청자들의 기대를, 독자들의 기대를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얻는 데에만 활용하려는 이기적인 생각을 버리고, 솔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누군가를 빨리 만나고 싶다.

이종임 | 고려대 미디어학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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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가뭄이다. 그 와중에 날씨를 진압하듯 퍼포먼스는 진행되었다. 논에 물을 대지 않고 공중에 물을 쏘았다. 뿌리가 아니라 어린 잎과 줄기에 직접 물을 뿌린 것이다. 벼에게는 입이 없는 줄을 몰랐다는 것일까. 이런 희한한 일들이 범람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눈길을 끄는 ‘경향신문’의 뉴스. “극심한 가뭄으로 소양강댐의 수위가 역대 최저치에 근접하면서 42년간 물에 잠겨 있던 강원 양구군 수몰지역의 성황당 매차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 양구군 자치행정과장은 ‘가뭄으로 드러난 강바닥 곳곳에서 수몰 전 마을을 지켜주던 성황당 나무의 앙상한 모습이 목격돼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 속의 나무는 나무라는 형태만 간직했을 뿐 동정(同定)할 만한 단서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물속으로 이사한 지 42년 만에 다시 나타난 매차나무. 이름이 생소해서 도감을 뒤적였지만 그런 나무는 없었다.

양구군청에 전화를 했더니 자신들도 정확한 나무 이름은 모른다고 했다. 중학생일 때 마을을 떠난 분이 자신의 할아버지한테 분명히 매차나무라고 그 이름을 들은 바가 있다고만 했다. 성황당나무나 정자나무는 특정한 나무가 아니다. 마을을 수호하고 쉼터가 되는 곳에 우람히 자리하는 나무를 통칭하는 것이다. 매차나무는 아마도 그런 용도로 심은 나무의 한 종류를 양구지역에서 칭하는 이름인 것 같았다.

내게도 그런 나무가 있다. 내 고향인 경남 거창군 주상면 오무마을의 한복판을 지키는 큰 나무. 원래 마을 어귀에 있던 소나무가 까닭 모르게 죽은 뒤 동네 가운데에 새로 심은 뒤 자연스럽게 마을의 의지처로 의젓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어느 해 고향 가서 나무 이름을 물었더니 재종형님이 귀목나무 아이가, 하셨다. 괴목요? 했더니 손바닥에다가 기, 목,이라고 또박또박 적어주셨더랬다. 내 고향에서의 귀목은 서울에 오면 느티가 된다. 가뭄은 하늘에서 기인하는 바이니 거창과 양구의 물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느 공화국의 어떤 시대를 통과하는 중일까. 곧 고향에 가서 귀목나무 아래에서 하늘 한번 우러러보아야겠다. 느티나무, 느릅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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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은 숫자로 기념할 일이 매우 많은 해다. 광복 70주년, 한국전쟁 65주년, 그리고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0년, 세월호 참사 1년, 메르스 국제 민폐국 원년 등. 더 많은 의미가 있는 사건·사고들이 있겠지만, 6·29 삼풍백화점 붕괴 20년은 꼭 기억해야 할 날이다 .

삼풍백화점 붕괴 20년, 우리 사회는 무엇을 남겼을까?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이든 빨리빨리 하려는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을 이뤘다. 얻은 만큼 톡톡히 대가를 치러야 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20년을 맞아 서울 시민청에서 기획전시 '기억 속의 우리, 우리 안의 기억. 삼풍'이 열리고 있다. _경향DB


가족간, 마을간 공동체가 무너지고 경쟁에 내몰린 10대 청소년들이 학교폭력에 노출되고 자살률이 증가하는 등 미래사회를 걱정하게 만든 현상들뿐이다. 20∼30대는 취업과 결혼, 그리고 출산을 포기하는 세대가 되었고, 은퇴를 앞둔 장년들은 노후 걱정을, 은퇴한 노년은 고독과 빈곤에 내몰리고 있다.

또 다른 대가는 바로, 어처구니없는 ‘재해·재난’이 반복되는 것이다. 1995년 6월29일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계기로 재난 관련 기본법이 제정됐고, 사회적으로는 자원봉사가 활성화됐다. 2003년 2월18일에 일어난 대구지하철방화 참사를 계기로 소방방재청이 신설됐고, ‘통곡의 벽’ 등 슬픔을 기억하려는 문화가 형성돼 갔다. 2014년 4월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국가안전처가 신설됐고, 전 국민 추모 열풍을 가져왔다.

반면, 삼풍 참사나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이었지만, 책임지는 정부관료 하나 없이 솜방망이 처벌로 끝났다. 삼풍 희생자들의 위령탑은 참사 현장이 아닌 양재동 한구석에 세워졌다. 대구지하철 참사 사고 현장에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방문한다며 조사가 끝나지도 않은 현장을 깨끗이 씻어버린 일도 있었다. 위 3가지 대형 참사의 주원인은 모두 부실을 조장한 제도와 사람에게 있었다. 삼풍백화점과 세월호는 다중이용시설인데도, 얄팍한 경제논리로 무리하게 설계를 변경했고, 결국 수백명의 인명피해를 초래했다. 대구지하철 참사 역시, 직접 원인은 방화였지만, 사고 당시 열차의 마스터키를 뽑아 가버린 운전자 때문에 승객이 탈출하지 못해 희생자를 증폭시켰다.

20 년 전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참사는 닮은꼴이다. 우리 사회의 부패와 부실한 현상을 그대로 드러냄과 동시에 미흡한 사후처리까지…. 분명 ‘인재’라고 할 수밖에 없는 비윤리적인 원인이 존재했다. 희생자는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는데 사고 관계자나 책임자의 처벌은 미약했다. 무엇보다 소위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준비된 매뉴얼이나 훈련받은 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부의 미흡한 늑장 대처 역시, 국민 신뢰를 얻지 못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로 국제적 망신을 당할 때, 신종플루 때 작성한 매뉴얼이 있었는데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갈수록 재난 상황도 많아질 텐데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전 국민이 체화될 시스템이 절실해졌다.

고진광 |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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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