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수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인근에 있는 유대인 홀로코스트 기념관에는 크고 작은 콘크리트 조각 2700개가 놓여 있다. 나치에 희생된 사람들의 묘석을 상징하는 숫자다. 그 자리를 지날 때 나치 만행을 잊지 말자는 외침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이들은 왜 이렇게 가혹하게 자신의 과오를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현행 역사교과서가 우리 역사를 부정하는 반(反)대한민국 사관으로 쓰여 있다”고 말했다. ‘자학사관’이라는 말도 썼다. 박근혜 정부가 검정해 통과시켰던 교과서를 ‘반대한민국 사관’으로 몰아붙이는 것 자체가 우습지만 질문을 달리해보자. 정부와 여당은 왜 스스로 검정한 교과서까지 ‘좌편향’으로 몰아 역사교과서를 바꾸려고 하는 것일까.


이들이 ‘가리려고 하는 역사, 띄우려고 하는 역사’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다. 김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씨는 일제에 비행기를 헌납했다. 1944년 ‘징병제 시행에 감사해 미국·영국 격멸을 결의하는 공직자대회 발언’을 통해 징병제 참여를 촉구했다. 그렇지만 김 대표는 아버지 평전을 만들면서 이 같은 내용은 뺐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 인터뷰에서 정치를 하는 이유로 독재를 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이라 밝힌 바 있다. 이들이 ‘아버지 행적 지우기’ 목표를 완수하려면 역사교과서에서 친일과 독재 서술을 줄이거나 미화해야 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_경향DB


이렇게 하려다 보니, 같은 역사지만 다른 내용이 줄어들어야 한다. 바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이다. 중학교 역사에서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을 다룬 부분이 없어졌고, 1948년 8월15일을 뉴라이트 학자들의 ‘건국절’ 주장이 담긴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현했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그 후 이뤄진 독립운동을 줄이게 된 것이다. 2015 개정 교육과정에는 ‘독재’라는 말도 없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권위주의 정권’이라 서술하고 있다.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에 대한 서술도 모호하다. 민주화에 대한 서술은 약화시키면서 산업화에 따라붙는 논란은 없애고 경제성장사로 기술하고 있다.

일가의 부끄러운 역사는 가리고 잘했던 일은 몹시 띄우려고 하다 보니 상식적인 역사적 사실들이 뒤틀려 버렸다. 결국 친일·독재를 축소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도 함께 톤과 양을 낮춰 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분량은 50% 아래로 줄게 됐다. 근현대사를 강조하는 국제적 추세와도 반대로 가게 된 것이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지 못하는 역사라면 그런 역사교육은 무슨 소용인가.


임아영 | 정책사회부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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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자동차 보닛이 하얗게 스쳐가는데요
바람은 하늘을
비눗방울처럼 가벼이 치켜올리는데요
사람들은 마주 웃고 햇빛은 창창한데요
나는 얼른 나무 그늘에 숨었어요
나는 입을 꼭 다물었어요
(잇새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아!)
자꾸만 눈물이 흘렀어요
내 얼굴은 으깨어진 토마토
어두워지기 전에는 한 발짝도
예서 나를 끌어낼 수 없을 거예요


(웃음은 웃음을 늘게 하고
눈물은 흘릴수록 많아지는 것)


맨 처음 만날 때의 그를 생각해보았어요
그때의 그가 나를
이렇게 울게 할 수 있었을까요?
두번째는? 세번째는요?

- 황인숙(1958~ )




일 년 중 가장 맑고 푸른 가을날에 그늘에 숨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입을 꼭 다물어도 잇새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슬픔은 웬일일까요. 시의 가장 오래된 소재, 아무리 퍼내도 고갈되지 않는 소재, 오랜 세월 반복되었지만 한번도 지루한 적이 없었던 소재, 바로 사랑 때문이지요. 햇살이 아무리 맑으면 뭐해. 눈앞이 캄캄한 걸. 눈물이 다 가려버리는 걸.

이 사랑이 처음엔 어땠는지 아세요?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수줍은 제비꽃에 벗은 완두콩./ 그에게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 그럼그럼 딸길 살까 바나날 살까?/ 아니면 익살맞은 쥐덫을 살까?/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한 쾌의 말린 뱀, 목에 늘인 할아범./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뽀골뽀골 미꾸라지 시든 오렌지/ 아니면 특제실크덤핑넥타이./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황인숙, ‘시장에서’) 뭐든 보이는 것은 다 그이를 위한 선물이었죠. 발바닥은 늘 땅에서 일 센티쯤 떠 있었고, 얼굴에 그려진 웃음은 잘 때도 지워지지 않았죠. 그 웃는 얼굴이 어떻게 으깨진 토마토가 되었을까요.

봐도 또 보고 싶은 사랑스러운 얼굴을 한 대 갈기고 싶은 낯짝으로 바꿔버리는 이 마술은 대체 뭐죠?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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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렬하고 부박한 주장을 펴느니, 한 줄 보태거나 덜 것 없는 옥고(玉稿)를 옮겨 적는 게 낫겠다. 최근 접한 연설문이 꼭 그렇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9월24일 미국 의회에서 상·하원을 상대로 연설을 했다. 당시에는 난민, 전쟁 반대, 지구온난화 대책 등 현안과 관련된 언급이 주목받았다. 하지만 말씀의 고갱이는 ‘일반론’에 스며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극단’을 우려했다.

“우리는 모든 근본주의를 유념해야 합니다. 종교, 이데올로기, 혹은 경제체제 등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과 싸우기 위해서는 정교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종교적 자유, 지적 자유, 개인적 자유를 보호하면서 말입니다. 특히 주의해야 할 유혹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것을 선과 악, 말하자면 의인과 죄인으로 나누는 단순한 환원주의입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로 고통받는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세상을 두 진영으로 나누는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독재자와 살인자 자리를 차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증오와 폭력을 흉내내는 것입니다.” 개탄은 바로 앞에 있는 의원들을 향했다.

“정치가 진정 인간을 위한다면, 경제와 화폐의 노예가 돼서는 안됩니다. 위대한 공동선을 성취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지엄한 요청의 표현이 바로 정치입니다. 재화, 이익, 사회적 삶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함께 누리기 위해 사적인 이익을 희생하는 그런 공동체 말입니다.”

교황이 생각하는 경영은 무엇일까.

“천연자원의 정당한 사용, 기술의 합당한 적용, 기업 정신의 활용은 경제를 현대화하고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하는 핵심 요소들입니다. 부를 창출하고 세상을 발전시키는 경제활동은 고귀한 천직입니다. 특히 일자리 창출을 공동선에 기여하는 주요한 요소로 볼 때 경제활동은 해당 지역에서 가치있는 번영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미래를 걱정했다. ‘삼포·오포세대’라 칭해지는 한국 젊은이를 측은히 여기는 양.

“젊은이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요청합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길을 잃고, 목표도 없으며, 폭력, 약물남용 그리고 절망의 미로에 빠져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가정을 꾸리지 못하게 압박하는 문화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미래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인 4명을 내세워 이상을 설파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처럼 자유를 수호하고, 마틴 루터 킹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모든 이들이 완전한 권리를 꿈꿀 수 있도록 하는 문화를 길러내는 국가는 위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로시 데이가 부단히 일했듯 억압받는 이들의 정의와 대의를 위해 분투할 때, 토머스 머튼이 묵상적 방법으로 실현했던 것처럼 대화와 평화의 씨앗을 뿌리는 믿음의 과실을 내기 위해 노력하는 국가 또한 위대합니다.”



도로시 데이는 미국 사회당에 입당했고 사회주의 신문 기자로 일했다. 트로츠키를 만나 인터뷰하고 아동노동과 가난한 자들의 현실을 보도했다. ‘가톨릭 노동자운동’을 이끄는 등 평생 좌파사상과 반전활동으로 연방수사국(FBI)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

토머스 머튼은 컬럼비아 대학 시절 젊은 공산주의자들의 모임에 참여하고, 불교 승려와 교분을 맺었다. 26살 때 뉴욕 빈민가 할렘 흑인들에게 자신의 물건을 모두 나눠주고 가톨릭 수도사가 됐다. 평생 빈자들에 대한 헌신, 청빈, 종교 간의 대화를 추구해왔다.

데이와 머튼이란 이름을 들으니, 세속적이고 얄궂은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전직 대통령을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하고, 제1야당 대표에게는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고 하고, 5·16쿠데타를 “정신적으로 혁명”이라고 하는 이가 국내에 있다. 공안적 신념을 자랑스러워하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다.

그의 눈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떻게 비칠까. ‘급진’ 좌파 데이와 머튼을 칭송하고, 재화, 이익과 사회적 삶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함께 누려야 한다고 주창했으니 말이다.

마침 교황이 답한 바 있다. 9월22일 한 기자가 “미국 보수 논평가들 중에는 교황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는 교회의 사회적 교리를 넘어서는 어떤 말도 한 적이 없다고 확신한다”며 “나는 (가톨릭)교회를 따르고 그런 점에서 내가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아마도 내가 약간 왼쪽으로 치우쳤다는 인상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게 사도신경을 외워보기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문현답이다.                                                


최우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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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십수년 전, 필자가 듣는 전공 수업에 현직 검사님이 특강을 하러 오신 적이 있었다. 아마 Q&A 시간에 검사 수를 늘리는 것과 관련한 질문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특강을 하러 오신 분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쓰레기 치우는 일에 예산을 많이 쓸 수 없죠.” 그리고 다들 웃는 분위기. 당시 필자는 대부분 법조인이 될 사람들이 저런 농담에 웃을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수사받는 사람을 쓰레기에 비유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2015년 현재, 오늘의 상황은 어떠할까. 직업 때문에 아무래도 수사절차에서의 권리 보호, 수사 중 변호사의 참여권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2009년과 2010년에 걸쳐 양천경찰서에서 수사과정 중에 ‘고문’을 한 사실이 밝혀진 사실도 있고, 2014년에 검찰 수사를 받다 자살한 사람이 22명으로 2013년에 비해서 2배에 이른다고 하니, 여전히 수사절차는 심리적으로도 큰 압박이 됨이 분명하고,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보호를 위해서 변호인의 조력권이 너무나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여전히 검찰사건직무규칙 등은 ‘부당하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간략한 메모를 넘어서는 메모를 하거나’ 하여 ‘신문 방해’, ‘수사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수사 중 변호인의 참여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수사 참여 중에 의뢰인이 기존에 상담했던 내용과 달리 오락가락 진술을 해, 그 부분을 지적하다가 “변호사님도 똑같이 조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라는 황당한 이유로 제지당한 경험이 있다.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청사_경향DB


2015년 10월23일과 24일 스위스에서 한국 정부의 자유권규약(정식 명칭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이행에 관한 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의가 진행된다. 심의를 진행할 자유권규약의 조약기구인 자유권위원회는 국가보고서에 대해 사전 질의를 하기도 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수사절차에서 변호인의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지, 그러한 제한이 자유권규약과 부합하는지 여부를 묻는 것이었다.

자유권위원회는 심의 이후 국가에 대해 권고를 하는데, 2006년 심의 직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대테러방지법 문제, 여성의 지위 향상, 가정폭력, 이주노동자의 권리, 정신병원을 포함한 모든 구금시설에서의 처우, 긴급체포절차,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공무원의 결사의 자유, 인권교육 등의 내용을 포함하는 권고를 한 바 있다.

필자는 자유권규약의 심의 과정을 참관하고 심의에 앞서 자유권규약과 관련한 이슈를 알리기 위하여 다른 시민사회 참가단과 함께 다음 주에 제네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과연 정부는 자유권위원회의 질문들에 어떠한 답을 하고 어떠한 권고를 받게 될 것인가.

정부가 질문에 어떤 답을 하고, 권고를 어떻게 이행할지는 결국 시민사회가 얼마나 두 눈을 뜨고 정부 활동을 잘 살피는지에 달려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으로 비약적인 민주화를 이루어 왔던 시민사회의 저력으로 정부권력을 감시해야 할 때이다.


장영석 | 민변 국제연대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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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어사전을 이용하세요?” 이렇게 물으면 열에 아홉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이용하지요”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종이사전 이용자들은 어떤 사전을 즐겨볼까. 통계가 없어 정확히 말하긴 어려워도 민간 출판사들에서 발간한 중·소형 국어사전일 것이다. 신년 새 학기 때 팔리는 국어사전은 대부분 이들 작은 사전이다. 그렇다면 큰 사전 가운데 이용도가 가장 높은 것은? 아마도 <표준국어대사전>(전 3권)일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1999년 정부 산하기관인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했다. 정부가 정책연구기관을 앞세워 사전을 내놓자 민간의 사전 편찬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사이 정부의 권위에 기댄 <표준국어대사전>은 우리 말글생활의 ‘표준’이 되어버렸다. 실제 언론·출판사의 어문규정은 물론 국립국어원의 어문 규범 제정, 가나다 상담 전화 등은 모두 이 사전을 준용하고 있다. 정부 기관이 발행한 국어사전이 사전 시장을 평정하면서 민간의 사전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이 때문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이 소요되는 ‘대사전’을 발간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나 기관은 없는 실정이다.

한 사전편찬자는 “<표준국어대사전>의 발간은 국립국어원의 최대 실책”이라고 말한다. 정부 기관의 권위에 눌려 민간연구기관이나 출판사에서 사전편찬에 나서지 않으면서 경쟁을 통한 국어사전의 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돌이켜 보면 1956년 한글학회가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 사전>을 계승한 <큰 사전>을 완간한 이후 1990년대까지 국어대사전 출간은 민간에서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당시 대형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우리말 큰사전>(한글학회), <국어대사전>(이희승 편), <새 우리말 큰사전>(신기철·신용철 편저), <금성판 국어대사전> 등 각기 특색 있는 대형 국어사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99년 이후 국어대사전 출간 붐은 사그라들었다. 21세기 들어 간행된 국어대사전은 2009년 나온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유일하다.


더 큰 문제는 우리 국어생활의 ‘표준’이 된 <표준국어대사전>이 유통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초판이 발행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사전은 품절상태다. 그렇다고 개정판이 나온 것도 아니다. 당연히 시중 서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을 구입할 수 없다. 국립국어원은 웹사전으로만 사전을 증보, 수정하고 있을 뿐 지금까지 한번도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은 발간하지 않았다. 예산이 없다는 게 이유다. 정부의 별도 지원이 없는 한 종이로 된 <표준국어대사전>은 더 이상 만나기 어려울 듯하다. <고지엔(廣辭苑)>, <현대중국어사전(現代漢語詞典)>과 같은 일본과 중국의 대표 국어사전들이 5~6년을 주기로 개정판을 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겨레말큰사전 남북 공동편찬사업 회의 개회사하는 고은 위원장_연합뉴스


2005년 이후 남북은 <겨레말큰사전> 편찬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 사업은 언어 통일을 위해 남북이 최초로 힘을 모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교류 중단조치로 사전 편찬 목표 연도가 연기됐지만, 최근 험난한 남북관계를 감안하면 편찬 사업은 순조로운 편이다. 남북한 어휘 약 33만개가 오를 <겨레말큰사전>은 2019년 사전 편찬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렇다고 목표 연도에 종이로 된 두툼한 대사전의 출간을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2019년의 기한은 종이사전 발간이 아니라 원고 집필이기 때문이다. 종이책으로 출간되려면 사업 기한을 연장하고 예산을 다시 편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준국어대사전>처럼 웹사전으로 끝날 수도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이 나와야 하듯이, <겨레말큰사전>도 종이책으로 출간돼야 한다. 그 사전을 남북의 학교, 도서관, 언론사에 비치해 남측, 북측의 사람들이 서로 다른 어휘나 언어생활을 비교하며 공부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글의 역사는 근 600년을 헤아린다. 장구한 역사만큼 생성되고 소멸된 우리말도 무궁무진하다. 큰 사전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어휘가 부족하지도 않고, 용례가 적지도 않다. 우리라고 해서 일본 국어대사전(20권), 중국어대사전(24권), 옥스퍼드 영어사전(20권), 그림형제 독일어사전(100권) 등과 같은 거질의 국어사전을 내지 못할 것도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을 가꾸고 사용해야 한다는 의지이다. 우리말을 쉽게 익히고 편하게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을 보는 일이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어제 서문에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새겨야 할 한글 창제자의 유훈이다.


조운찬 | 경향후마니타스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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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영국의 진보 정치에서 버니 샌더스와 제러미 코빈이 힘을 몰아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현상이 시사하는 바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중에서 특히 착목해야 할 지점은 정당정치의 구조 변동, 즉 ‘카르텔 정당’의 위기 혹은 몰락으로 보인다.

1990년대 이후 중도의 좌우 정당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경제 개혁의 의제들에 합의하면서 사회·경제 정책에 있어 서로 비슷하게 수렴하는 길을 밟아나간다. 그러한 정책들 때문에 서민 대중들의 삶의 질이 악화돼 그에 반대하는 여론과 행동이 아래로부터 터져나왔다. 하지만 중도 좌파 정당이 이를 의제로 받지 않고 기존 합의된 의제들만을 고수하는 바람에 별 소용이 없었다.

본래 노동운동 등에 기초해 생겨난 중도 좌파 정당이 어떻게 이렇게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요지부동일 수 있을까. 이는 ‘카르텔 정당’으로의 변화 때문이다. 정당의 의사결정구조와 정책 생산 과정은 형해화되거나 크게 왜곡되고, 정당의 주요한 의사결정 과정은 물론 여러 권력 자원도 당권을 장악한 소수와 그 주변 세력에게 집중돼 버린다.

최근 치러진 영국 노동당의 당 대표 선거는 이러한 지난 몇 십년간의 흐름에 근본적 구조적 변화가 임박했음을 알리고 있다. 1990년대 이후 토니 블레어가 이끄는 영국의 ‘신노동당’은 노동조합 등 전통적 대중 기반과 거리를 멀리 두면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출신으로 시장주의 정치경제를 지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정치 노선이라고 믿는 정부 각료들이 지배하는 정당으로 변해갔다. 여기에 대해 각종 비판이 터져나오면 노동조합이나 구좌파 등과 같은 낡은 세력의 구시대적이고 비합리적인 선동이라고 무시해 버리곤 했다.

이번 선거에서 중심 쟁점이었던 내핍(austerity) 정책의 문제가 이러한 카르텔 정당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영국 보수파는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영국 경제의 살길은 오로지 엄혹한 경제 긴축 정책뿐이라고 주장했지만, 폴 크루그먼이 여러 번 역설했듯이 이는 억지에 가까운 논리였다.

그럼에도 블레어의 후예들이 이끄는 노동당은 이러한 정책 기조를 진리인 양 받아들였고, 당내 좌파라고 여겨졌던 ‘붉은 에드’ 전 대표도 기껏해야 그 정책으로 인한 서민들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자는 정도의 주장을 내놓았을 뿐이다. 이리하여 내핍 정책은 영국 정치의 ‘전 국민적’ 합의가 되어 버렸고, 내핍 정책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목소리는 비합리적인 극단주의로 몰려 정치적 의제에서 배제됐다.




하지만 이는 다수 서민들의 생각과 큰 차이가 있었다. 제러미 코빈 후보의 돌풍 속에서 노동당의 당권파들이 가장 당혹스러워했을 사실 하나는, 코빈이 내핍 정책 자체를 분명히 반대하면서 내건 정책 각론들이 여론조사로 밝혀지는 영국 국민들의 민심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내핍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는 비합리적인 극단주의가 아니라, 기실 영국의 진보 정치 진영에서 가장 중심으로 삼았어야 할 의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의제를 지금까지 효과적으로 배제해 왔던 ‘카르텔 정당’의 메커니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노동당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해 코빈을 지지하겠다는 이들이 무더기로 입당한 것이다. 이 상황을 보는 당권파들의 심정을 ‘인디펜던트’의 한 논평가는 “큰일이다! 정열과 비전이 넘치는 젊은이들이 떼지어 우리 당으로 몰려오고 있다! 우리 당은 이제 망했다!”고 익살스럽게 표현하기도 했다.그 결과 블레어의 자식들이라고 할 후보들은 모두 창피할 정도의 득표율로 참패를 당하고 말았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 또한 앞으로 민주당이 예전과 똑같을 수 없을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복마전같이 복잡하고 불투명한 내부구조로 악명이 높지만, 그 터줏대감이라 할 클린턴 집안은 이미 7년 전에도 풋내기 오바마에게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미국의 사회·경제적 위기와 크게 동떨어진 양당 구조의 낡은 정치 의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리자는 사람들의 흐름 때문이었다.

지금은 이 흐름이 듣도보도 못하던 노인 정치가 버니 샌더스에게 몰리고 있다. 높은 지지율뿐만 아니라 힐러리에 못지않게 2600만달러를 모금한 그는 이제 금방 사라질 반짝 현상을 넘어 유력한 후보로 발돋움하고 있다. 그가 설령 패배한다고 해도, 미국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내걸고 사회·경제적 평등 강화를 주장한 목소리는 결코 정치적 의제에서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공화 양당 간의 타협, 정당 엘리트들 및 그 주변 세력이 대중적 열망을 도외시한 채 정치적 의제를 마음대로 정하는 ‘카르텔 정당’ 또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우리의 정당들이 깊이 생각해 볼 지점이다.


홍기빈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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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헬조선’ 담론의 여파 때문일까? 며칠 전 열린 대한민국 미래 대토론회에서 저명한 개혁 보수주의자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반가웠다. 마치 무너진 나라를 새로이 세우려는 독립운동가들의 모임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국회 헌정기념관을 나오면서 나에겐 계속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과연 그들은 민주공화국 구축을 위한 혁명가로 변신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 말이다. 물론 이 물음은 개혁과 혁명이란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이라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혁명가의 태도를 가지지 않으면 개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이다. 국내외적으로 기존 교과서를 새로이 써야 할 정도로 핵심 전제가 무너져내리는 대전환기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사물까지 다 연결되는 만물 네트워크의 시대는 시공간 관념과 감각 자체를 바꾸고 있다. 미래가 현재로 물밀듯 침투해 들어오는 ‘가속도의 문명’ 시대에서는 오늘은 혁명가여도 내일은 퇴행적 복고주의자가 될 수 있다. 영구적인 혁명가여야 하는 삶의 트레드밀 속에서 우리는 숨 가쁘게 뛰고 있다. 오죽하면 요즘 글로벌 전위 기업가들이 레닌같이 말하곤 할까. 테슬라의 머스크 회장이나 알리바바 마윈 회장이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자고 말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나는 마치 제정러시아 시대 ‘봉인 열차’ 에 앉아 있는 백 투 더 퓨처의 느낌이다. 이 ‘기업좌파’들은 소심한 정치가들에게 <설국열차>의 디스토피아 시대를 뒤엎자고 선동 중이다. 다만 그들의 유토피아는 지금 이곳이 아니라 화성이란 차이만을 가진다.

굳이 글로벌하게 조망하지 않더라도 지금 대한민국에서 뭔가를 하려면 마치 혁명가의 태도처럼 큰 결심이 필요하다. 국회나 정당이 하루아침에 청와대의 거수기가 되어야 하고 정치적 죽이기를 동원한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가 지배하는 이 기막힌 현실에서 개혁 보수라도 하려면 영화 <암살>의 독립운동가 같은 결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의 개혁 보수주의자들이 혐오스러운 트럼프의 유세를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결국 오늘날 미국에 트럼프주의라는 미국판 일베 대통령 후보를 양산한 것은 개혁 보수주의자들이 소멸했기 때문이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외롭게 저항하다가 결국 선거 현실 앞에서 자신도 반은 괴물이 되어야만 했다. 과연 한국은 다를 수 있을까? 자꾸만 보수의 본산인 대구의 유승민과 애리조나의 매케인의 이미지가 겹쳐 보인다.


유승민 의원이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_연합뉴스



한국 보수진영의 최근 최대 패착은 미국의 철지난 뉴라이트 이념을 수입한 점에 있다. 그 당시 <뉴라이트 네이션>이란 신간을 들고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난 절망스러웠다. 기득권의 카르텔과 양극화의 추세는 테오도르 루스벨트 같은 위대한 개혁 보수주의자가 등장해도 무너뜨리기 힘든 지형인데 시대착오적이고 야비한 권력주의 이념을 벤치마킹하려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은 반대로 그럼 당신네 진보주의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사실 다들 헬조선이란 과격한 말만 옮길 뿐 그 절망적 시대인식에 비례한 과격한 태도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저 미국의 샌더스와 영국의 코빈을 보면서 마치 영화 <매드맥스>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 듯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아니면 최동훈 감독이 영화 <암살>로 청년과 탁월하게 소통에 성공한 그 시간에 그저 민주화운동이나 민주정부 시대 패러다임이나 늘어놓고 있다. 당분간 매혹적인 진보의 블록버스터 정치는 오기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혁 보수주의 진영 내에 결기 있는 실천과 비전이 약간씩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민주공화국의 의회정치 가치를 존중하려는 정의화 국회의장이나 유승민 의원의 태도나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수준 높은 국가담론(공진 국가론)이 바로 그러한 예들이다. 과거 개혁보수의 선두에 선 박세일 교수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외로운 고투는 천민 보수진영으로부터 이미지만 차용당한 채 본질적 아젠다는 외면당한 바 있다. 김성식 전 의원의 안철수를 통한 실험도 결국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이 하나의 거대한 움직임으로 결집될 수 있는 시대적 흐름이 조금씩 형성되고 있다. 심지어 극단적 보수들도 양극화와 한반도 통일, 헬조선을 상식처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걸출한 보수 철학자인 뤽 페리는 최근 저서에서 미래 세대에 대한 사랑과 책임의 새 철학을 절절하게 토해낸 바 있다. 과연 한국의 개혁 보수주의자들은 미래 세대를 구하기 위한 사랑의 대장정을 시작할 수 있을까? 진정성 있고 과감하게 돌파하려 한다면 시민들이 도와주리라 난 믿는다. 보수가 혁신해야 진보도 새로움에의 창조적 긴장이 생겨난다.


안병진 | 경희사이버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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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71)이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한 다음날(9월4일) 산둥성 태산(泰山)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제와서 새삼스레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가 있다.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반 총장이 중국 역대 황제가 봉선(封禪), 즉 하늘신(封)·땅신(禪)에게 제사를 지낸 태산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 산은 대망을 품었던 김대중·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 손학규·김중권씨 등 유력 정치인들이 오른 경험이 있다. 반 총장이 태산에 올랐을 때 비가 내린 것도 ‘참새들의 입방앗거리’가 됐다.중국에는 ‘태산에 오를 때 비를 맞으면 큰 뜻을 이룬다’는 우중등태산(雨中登泰山)의 속설이 있다는 것이다. 한데 이 속설이라는 게 석연치는 않다.


중국 산둥성 태산 정상부에 들어서 있는 유교, 불교, 도교의 건축 경관_경향DB


기원전 195년 진시황이 봉선을 위해 태산에 오를 때 폭풍우를 만났다. 시황제는 큰 나무 아래서 비를 피했다. 시황제에게 배척받고 있던 유생들이 ‘꼴좋다’고 비아냥댔다. 유생들은 “황제가 태산에 올랐지만 폭풍우의 저지를 받아 봉선을 행하지 못했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사마천은 “덕행을 갖추지 못한 황제에게는 봉선의식을 올릴 자격이 없음을 폭풍우로 알려준 것”이라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시황제가 봉선제를 거행한 뒤 12년 만에 진나라가 망했다”고 했다(<사기> ‘봉선서’). 지존인 황제가 비를 흠뻑 맞고 허둥대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큰 낭패였을까. 사마천은 시황제의 태산 등정 때 비바람이 분 것을 분서갱유에다 포학정치로 민심을 잃은 황제에게 망국의 조짐을 보여준 것이라 해석했다. 그러고 보면 ‘우중등태산’의 최근 속설은 중국인 특유의 덕담으로 해석하면 좋을 것 같다. 비를 흠뻑 맞으면서 등정한 인사에게 ‘나쁜 조짐’ 운운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잘되면 좋고, 안되면 그만이고….


이왕 말 나온 김에 근거없는 속설보다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태산의 금언을 떠올리면 어떨까. 먼저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登泰山而小天下)’(<맹자> ‘진심’)는 공자왈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의 한마디도 새겨볼 만하다. ‘사람의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惑重于泰山 惑輕于鴻毛)’(<한서> ‘사마천전·보임안서’)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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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국정감사는 ‘허무극’으로 끝났다. 야당이 제기한 대통령의 검찰 독립성 훼손이라는 의혹에 검찰은 버티기로 일관했고, 야당은 빈손으로 돌아섰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은 이날 국감 초기에 법무부가 대검에 ‘대통령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이에 관한 후속대책·추진 계획 등을 요구하는 문건 12개를 보냈고, 대검이 후속대책·추진 계획 문건 4개를 회신했다면서 공개를 요구했다. 대통령이 검찰에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지시사항을 수시로 전달해 지시함으로써 검찰의 독립성을 해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검찰청법은 법무부 장관만 구체적 사건과 일반적 업무에 대해 각각 검찰총장과 검사를 지휘·감독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_서성일 기자


김진태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관계자들은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시도 아니었고, 노무현 정부 때부터 늘 있어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야당 의원들이 해당 문건 공개를 요구하면서 국감은 중단됐다. 1시간30분가량 정회되는 동안 일부 의원은 대검이 표본으로 제공한 일부 공문을 확인했다. 그러나 대검이 공개한 공문은 제목과 부제뿐이었다.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조차도 공개된 내용이 부실하다고 질타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르면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 등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내용이 아니면 정부는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그럼에도 검찰은 “범죄 단속 계획 등이 있어 공개하기 어렵다”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검찰이 떳떳하다면 공개를 못할 이유가 없다. 처음 자료 공개를 요구한 이춘석 의원과 이상민 위원장은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자괴감은 더 크다. 정작 자신은 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는 준법을 요구하는 검찰을 어떻게 해야 할까.


김경학 | 사회부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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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한국 민주주의를 수십년 전으로 퇴행시키려 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공론화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의 자유를 옥죄려 한다. 매카시즘을 신봉하는 극우 인사에게 공영방송 감독기구 이사장을 맡겨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기어코 역사의 시계를 되돌릴 참인가.

■ 민주주의 모독하는 시대부적응자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의 망언 릴레이가 가관이다. 고 이사장은 그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지난 2일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공산주의자” “사법부가 좌경화” “국사학자 90%가 좌편향” 등의 발언을 쏟아낸 데 이은 것이다. 누가 그에게 개인이나 집단의 이념성향을 재단하는 ‘칼’을 쥐여주기라도 했나. 아무런 논리도 근거도 없는 막무가내식 매카시즘에 충격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6일 열린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_강윤중 기자


고 이사장은 이번 사태 이전에도 ‘문제적 인물’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공안검사 출신인 그를 끊임없이 ‘활용’해왔다. 고 이사장은 ‘통진당 해산 국민운동본부’ 상임위원장을 맡아 통합진보당 해산 청원서 작성·제출을 주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새누리당 추천)으로 활동하며 세월호 유가족을 ‘떼쓰는 사람’에 비유했다. 정권의 신임을 얻은 그는 마침내 공영방송 MBC를 장악하라는 사명까지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집권세력은 지금 고영주라는 한 시대부적응자를 통해 ‘청부 공안통치’를 시현하고 있다.

‘고영주 사태’는 그러나 정권의 취약성 또한 드러낸다. 모름지기 품격 있는 보수정권이라면 최소한의 상식과 지성을 갖춘 ‘정상적’ 보수 인사를 기용해서 국가를 운영해야 옳다. 고 이사장은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날선 비판을 할 만큼 시민적 상식에 위배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인사다. 박 대통령이 고 이사장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자신이 ‘비정상적’ 극우 인사에게 통치를 의존해야 하는 궁박한 처지임을 고백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주권자의 48%가 지지한 야당 대선후보를 근거 없이 공산주의자로 매도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 이사장은 당장 물러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사퇴나 해임은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고 본다. 고 이사장의 배후에서 그를 조종하고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세력을 가려내 함께 심판해야 한다.

고 이사장의 잇단 망언은 문 대표나 노 전 대통령이라는 특정인,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특정 정당에 대한 모독을 넘어서는 차원의 문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행태야말로 보수세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그것은 또한 이념 갈등 조장, 사회 분열, 시민 감시로 열린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적대 행위이기도 하다. 시민과 야당은 작금의 사태를 직시하고 비상한 결의로 민주주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 다시금 이런 언명을 해야 하는 시대가 부끄러울 뿐이다.

■ 교과서를 이념도구로 삼는 정권

청와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균형 잡힌 역사교과서를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교육부 업무보고에서 이같이 지시한 것을 소개하면서 “이것이 청와대의 최종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국정화 추진 방침이 사실상 확정됐다는 얘기다. 청와대 발표는 국정화 방침을 밀어붙여온 사람이 다름 아닌 박 대통령이었음을 시사한다. 국정화 시사 후 사회적 반발에 부딪혀 꼬리를 내렸던 여권의 기류가 최근 갑자기 국정화 쪽으로 선회한 것이 이해된다.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현 검정교과서가 북한에 우호적이고 대한민국을 깎아내리는 서술이 많으며 좌편향 집필진이 많다는 이유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현행 검정체제를 왜곡하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아무리 검정교과서라고 해도 출판사 마음대로 서술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정부가 제시한 교과서 집필기준과 편수 용어 등을 지켜야 하고, 집필이 끝나면 교육부의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게다가 교육부는 2013년 논란이 되는 부분을 고치도록 해 이미 현장에서는 바뀐 교과서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 여권의 검정교과서 평가는 자가당착일 뿐이다. 백번 양보해 아직도 교과서에 이념편향적 내용이 들어 있다면 현행 검정체제를 통해 걸러내면 그만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다원성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다양성은 역사교과서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역사만을 고집한다면 교과서를 보수정권의 이념도구로 삼으려는 목적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이유로 북한 등 비민주적, 비정상적 국가 외에 정상적인 국가 대부분이 검정교과서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야당은 국정화 강행 시 ‘유신 잠재세력’으로 규정하고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어제 밝혔다. 앞서 시민사회와 언론계, 학계 등 사회 전반이 강력한 반대 입장을 천명했다. 박 대통령은 이런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기 바란다. 그럼에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다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시민감시 빅브러더 꿈꾸는 권력

지난해 검찰의 감청영장(통신제한조치) 집행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했던 카카오가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검찰에 협조하기로 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그제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두 기관이 (감청영장을) 원만하게 제대로 집행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밝히면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양쪽 실무진 간 합의에 따르면 검찰이 법원에서 감청영장을 받아 카카오에 통신 자료 제출 협조를 요청하면 카카오는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해 자료를 제공한다. 수사 대상자 이외 대화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은 보호되지만 대화 내용은 모두 넘긴다. 검찰이 자료를 검토해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추가로 나오면 다시 공문을 통해 그 신원확인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검찰과 카카오가 합의했다는 내용을 보면 지난해 논란이 됐던 것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감청 요건과 절차를 강화했다고 하지만 3900만명에 이르는 국내 카카오 이용자 누구든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감청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자기가 한 일과 무관하게 통신 내용이 노출됨으로써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비판을 받았던 ‘편법 감청’, 즉 대화 내용을 저장했다가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지도 않았다. 시민의 권익에 영향을 주는 협상이 몰래 진행되었다는 것도 문제다. 이 밀실 협상 때문에 인터넷은행 진출을 추진 중인 카카오가 정부와 타협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페이스북 등 외국 업체와 달리 검찰이 들여다볼 수 있는 국내 사회관계망의 경쟁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헌법 17조, 18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정보 기관의 감청과 압수수색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유엔도 디지털 통신 비밀보호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집권당은 네이버 등 포털들이 편향돼 있다며 포털을 옥죄고 검찰은 카카오 감청으로 시민권을 훼손하고 있다. 권력은 시민의 일상을 감시하는 ‘빅브러더’가 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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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독재정권이 심어놓은 악성코드 때문에 야당 의원들과 반체제 인사들의 노트북 내용이 고스란히 한곳으로 흘러나갔다. 비밀번호는 물론 일급 정보, 타이핑과 대화 내용 스크린샷까지. 게다가 자연스럽게 웹캠과 마이크를 통해 촬영된 영상도 시리아 국영통신공사 IP주소로 전송됐다.

더 이상 007 같은 스파이가 필요치 않은 세상이다. 현존하는 안티바이러스 엔진으로 감지가 불가능한 기밀문서를 탈취하는 악성코드 ‘코어봇’도 등장했다. 사물인터넷이라는 미래사회의 진행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에 맞서 바이러스나 악성코드 등의 진화는 빛의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사이버 무기들은 한순간 통째로, 혹은 오랜 시간에 걸쳐 사물인터넷의 취약점을 갉아먹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자동차나 의료기기가 해커에게 장악돼 공격당하면 생명까지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나아가 호텔 온도제어시스템에 대한 공격도 가능하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만일 우리가 샤워실에서 물을 틀었을 때 급탕된 물이 우리 몸을 덮친다면 큰 화상을 입게 되거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 모두 사물인터넷의 디바이스들이 해킹, 조작당했을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PC에 침입, 중요 문서를 암호화시킨 후 이것을 인질 삼아 결제를 해주면 문서를 돌려주는 렌섬웨어.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해외 사이트에서 판을 치던 크립토로커(cryptolocker) 렌섬웨어가 최근 우리 시장을 노리고 한글화돼 국내에 상륙했다. 또 ATM기에 바이러스를 심어 원하는 시간에 자동으로 ATM기가 열리도록 해서 돈을 빼내는 놀랄 만한 해커집단들의 활약상을 CCTV에서 확인하기도 했다.


보안전문업체 직원이 악성코드를 이용한 컴퓨터 해킹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_경향DB



안전지대가 사라지고 있다. 온통 바이러스와 악성코드가 지뢰처럼 숨겨진 사이버 세상, 아니 경계 없는 세상의 자화상이다. 얼마 전 중국 휴대폰 업체인 샤오미의 경우 신규 제품에서 악성코드가 발견돼 중국이나 샤오미가 의도적으로 스파이 활동을 하기 위해 제조과정에서 악성코드를 심어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샤오미를 비롯한 화웨이, 레노버 등 20여개의 신규 스마트폰에서 악성코드가 설치된 것을 확인한 지데이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유통과정 중에서 벌어진 일로 밝혀졌다. 중국 정부가 기업과 결탁해서 악성코드를 심었다고 생각했던 일부 전문가들의 경우 한편으로는 안도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통과정에서 허술하게 공격당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홈오토메이션의 주요 제품인 세탁기, 스마트TV, 냉장고 등 적지 않은 제품들 역시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안이하게 사물인터넷 세상을 맞이하고 있는 순간, 사이버 범죄자들은 다른 한쪽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설레고 흥분돼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화이트해커는 “보안의 중요성은 알지만, 보안은 모든 것에 투자하고 난 뒤 돈이 남으면 투자하는 게 현실이다. 그것은 사물인터넷 체계의 가장 위험한 취약점이자 구멍”이라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업은 오로지 해킹당한 것을 알고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으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만은 아니다”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2020년쯤이면 인터넷에서 연결장치가 적어도 500억개의 천문학적 숫자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IPv6 체제로 그동안 부족했던 주소체계가 늘어남에 따라 바다의 모래알과 하늘의 별 하나에도 IP주소가 부여돼, 본격적인 사물인터넷 시대가 열리게 됐다.

불안정한 보안 인프라와 샤오미 등의 운송과정에서 보여준 보안 불감증은 여전히 보안이 어떻게 취급당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연결장치가 보안보다는 간편한 디지털 사용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점에서 잠재적 취약점과 위험은 상존한다. 공격범위는 확장되고 해킹은 산업화되고 있다. 산업화되고 있는 해킹의 타깃 대부분은 사물인터넷이다. 미국 노동부 고용통계에 따르면 2012년에서 2022년까지 보안전문가 채용 규모는 37% 증가할 것이고, 또 다른 보고서는 2017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200만명의 숙련된 보안전문가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밝혔다.

종종 우리는 나한테만은, 우리집만은 예외일 것이라는 이상한 안도감에 사로잡혀 산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언젠가 재해와 위험이 무참하게 우리 인생을 덮칠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아무 데서나 덮치는 묻지마 살인이나 중앙선을 침범해서 돌진해오는 음주운전자의 차량처럼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자연재해나 사이버공격, 인생의 불행이나 위기에서 살아남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만일 다가오는 사물인터넷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누리기만 하고, 최소한의 의무와 책임들을 회피하려 한다면, 머지않은 훗날에 다른 행성을 찾아 헤매게 될는지 알 수 없다.



최희원 | ‘해커묵시록’작가·인터넷진흥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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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검찰의 감청영장(통신제한조치) 집행에 불응하겠다고 선언했던 카카오가 1년 만에 입장을 바꿔 검찰에 협조하기로 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그제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두 기관이 (감청영장을) 원만하게 제대로 집행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밝히면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양쪽 실무진 간 합의에 따르면 검찰이 법원에서 감청영장을 받아 카카오에 통신 자료 제출 협조를 요청하면 카카오는 수사 대상자를 제외한 나머지 대화 참여자들을 익명으로 처리해 자료를 제공한다. 수사 대상자 이외 대화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은 보호되지만 대화 내용은 모두 넘긴다. 검찰이 자료를 검토해 범죄 관련성이 있는 사람이 추가로 나오면 다시 공문을 통해 그 신원확인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검찰과 카카오가 합의했다는 내용을 보면 지난해 논란이 됐던 것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감청 요건과 절차를 강화했다고 하지만 3900만명에 이르는 국내 카카오 이용자 누구든 수사기관의 판단에 따라 감청 대상이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자기가 한 일과 무관하게 통신 내용이 노출됨으로써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비판을 받았던 ‘편법 감청’, 즉 대화 내용을 저장했다가 제공하는 것을 금지하지도 않았다. 시민의 권익에 영향을 주는 협상이 몰래 진행되었다는 것도 문제다. 이 밀실 협상 때문에 인터넷은행 진출을 추진 중인 카카오가 정부와 타협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페이스북 등 외국 업체와 달리 검찰이 들여다볼 수 있는 국내 사회관계망의 경쟁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_경향DB


헌법 17조, 18조는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모든 국민은 통신의 비밀을 침해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수사·정보 기관의 감청과 압수수색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유엔도 디지털 통신 비밀보호 강화를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집권당은 네이버 등 포털들이 편향돼 있다며 포털을 옥죄고 검찰은 카카오 감청으로 시민권을 훼손하고 있다. 권력은 시민의 일상을 감시하는 ‘빅브러더’가 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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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한국 민주주의를 수십년 전으로 퇴행시키려 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을 공론화하고, 사이버 공간에서 시민의 자유를 옥죄려 한다. 매카시즘을 신봉하는 극우 인사에게 공영방송 감독기구 이사장을 맡겨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기어코 역사의 시계를 되돌릴 참인가.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의 망언 릴레이가 가관이다. 고 이사장은 그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리켜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지난 2일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공산주의자” “사법부가 좌경화” “국사학자 90%가 좌편향” 등의 발언을 쏟아낸 데 이은 것이다. 누가 그에게 개인이나 집단의 이념성향을 재단하는 ‘칼’을 쥐여주기라도 했나. 아무런 논리도 근거도 없는 막무가내식 매카시즘에 충격과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고 이사장은 이번 사태 이전에도 ‘문제적 인물’이었다. 박근혜 정권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공안검사 출신인 그를 끊임없이 ‘활용’해왔다. 고 이사장은 ‘통진당 해산 국민운동본부’ 상임위원장을 맡아 통합진보당 해산 청원서 작성·제출을 주도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새누리당 추천)으로 활동하며 세월호 유가족을 ‘떼쓰는 사람’에 비유했다. 정권의 신임을 얻은 그는 마침내 공영방송 MBC를 장악하라는 사명까지 부여받기에 이르렀다. 집권세력은 지금 고영주라는 한 시대부적응자를 통해 ‘청부 공안통치’를 시현하고 있다.




‘고영주 사태’는 그러나 정권의 취약성 또한 드러낸다. 모름지기 품격 있는 보수정권이라면 최소한의 상식과 지성을 갖춘 ‘정상적’ 보수 인사를 기용해서 국가를 운영해야 옳다. 고 이사장은 새누리당 의원들조차 날선 비판을 할 만큼 시민적 상식에 위배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인사다. 박 대통령이 고 이사장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자신이 ‘비정상적’ 극우 인사에게 통치를 의존해야 하는 궁박한 처지임을 고백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주권자의 48%가 지지한 야당 대선후보를 근거 없이 공산주의자로 매도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 이사장은 당장 물러나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의 사퇴나 해임은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고 본다. 고 이사장의 배후에서 그를 조종하고 정치적 이익을 노리는 세력을 가려내 함께 심판해야 한다.

고 이사장의 잇단 망언은 문 대표나 노 전 대통령이라는 특정인,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특정 정당에 대한 모독을 넘어서는 차원의 문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빨갱이’라고 낙인찍는 행태야말로 보수세력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그것은 또한 이념 갈등 조장, 사회 분열, 시민 감시로 열린 사회를 무너뜨리려는 적대 행위이기도 하다. 시민과 야당은 작금의 사태를 직시하고 비상한 결의로 민주주의 후퇴를 막아야 한다. 다시금 이런 언명을 해야 하는 시대가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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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여친이 없는 대학생 아이가 외로워 미치겠다 그래서 내가 한마디. 훌륭한 여자를 달라고 기도하면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뿅 하고 나타나실 거고 그럼 넌 ‘오 마이 갓’을 외치겠지. 책도 많이 읽고 지적이면서 야시시한 친구를 원한다면 마릴린 먼로가 나타날 거야. 남자에게 ‘뭘로(무얼로)’ 어필할까? 먼로는 그 ‘뭘로’를 아는 여자였지. 평소 엄청 많은 책을 읽었다고 그래. 케네디 대통령과의 스캔들에서도 단지 육감적인 배우로서가 아니라 평화의 기쁨을 전달하는 지적인 대화 상대였다지. 당신이 가을이면 골백번 듣는 소리. 내가 한번 더 한다고 성질 내시진 않겠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 스마트폰 좀 그만 들여다보시공 제발 책을 가까이. 마릴린 뭘로? 그래 마릴린 책으로….






시인들이여! 찌부러져 쉬려고만 마시고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빨리 글을 쓰시오들. 세상에 정직한 책들이 정방폭포 물줄기처럼 쏟아져야 해. 저들은 정직하지 못한 책들을 내놓겠다고 그러잖아. 부끄러운 사실은 몰래 감추고, 자기 좋을 대로 역사를 미화하고, 허망하고 패배적인 노예의 사상을 퍼트리겠다잖아. 승산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 시인들은 침묵해서는 안 돼!


“시인이란 어떤 경우에도 침묵해선 안 되는 존재다. 가령 ‘자네는 너무 올곧아 그래가지곤 이길 수 없어’, ‘내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하려면 좀 더 부드러운 말투를 써야 해’라고 조언을 해준다. 고맙긴 하지만 틀린 말이다. 승산과 유효성에 관한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 아니라 저 멀리 아득한 곳에 존재하는 루쉰에게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이렇게 살겠다’, ‘이것이 진짜 삶이다’라고 무언가를 드러내야만 한다. … 그것이 시인의 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서경식, <시의 힘>-

노랗고 붉고 자주색 별들로 왁작대는 국화 화분. 들국화의 노래 ‘행진’이 눈앞에 펼쳐지는 날. 눈을 갑자기 오래 쳐다보면 젊었을 때는 “나도 사랑해!” 바로 대답이 튀어나오지만 나이가 들면 “나 돈 없어. 왜 그랴” 이렇게 말이 바뀌게 된다, 흐흐. “책 살라궁….” 이래 버리면 진짜 외면할 방도가 없으리. 책방으로 어서 고고, 마릴린의 책방으로 갑시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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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폭발로 폐허가 된 일본 히로시마에서 가장 먼저 새싹을 틔운 식물이 쑥이라고 한다. 쑥은 생명력과 번식력이 강해 극한 환경이 아닌 곳이면 어디서든 자란다.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도 매우 강하다. 오랫동안 넓은 지역에 야생한 역사를 갖고 있어 변종이 많은 것이 그런 특성을 반영한다. 세계적으로 400여종, 국내에는 약 300종이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반도 생물자원 포털이나 국가 생물종 목록에 등록돼 있는 것만 보더라도 쑥, 참쑥, 산쑥, 사철쑥, 제비쑥, 뺑쑥, 개똥쑥, 더위지기 등 40~50종에 이른다.

쑥은 시경(詩經)이나 구약성서 등에도 등장하지만 단군신화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단군신화에서 쑥은 100일 동안 끼니를 대신하는 구황적 기능과 동물을 사람으로 변신하게 만드는 약리적 내지 주술적 기능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쑥을 대문 옆이나 지붕 위에 놓아 액운을 물리치는 민간 풍습이 바로 최근까지 전해진 쑥의 주술적 기능이다. 식생활에서는 지금도 쑥밥, 쑥국, 쑥나물, 쑥국수, 쑥떡, 쑥차, 쑥술 등 식품 재료로 쓰인다. 쑥한방비누, 쑥화장수 등 생활용품의 재료로도 다양하게 활용된다.


약리적 기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인터넷에는 약쑥, 인진쑥, 개똥쑥, 사자발쑥, 해풍쑥 등 쑥의 약리적 효과에 대한 정보가 폭주하고 있다. 고혈압이나 심장순환기계 질환의 치료와 예방, 간 기능 보호, 백혈병성 암과 결장·간암 세포 증식 억제, 항염증 및 진통 작용, 당뇨·고혈당 개선 등에 효과가 있다거나 그런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정보다. 살충이나 타식물 성장억제작용을 하는 쑥의 독소 성분을 유익한 방향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그런 쑥이 마침내 과학분야 노벨상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개발한 말라리아 특효약이 바로 개똥쑥에서 나온 성분이다. 문화대혁명 초기인 1967년께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지시로 연구를 시작한 투 교수팀은 1971년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 효과가 있는 칭하오쑤(靑蒿素·아르테미시닌)를 발견했다. 쑥의 만병통치에 가까운 약리 효과를 애용해온 한국인들은 왜 그걸 몰랐을까?


신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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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간 중 새마을운동을 개발도상국 ‘발전의 모델’로 전 세계에 보급하겠다고 선언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산불처럼 새마을운동이 번지고 있다”고 화답해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새마을운동을 ‘성장의 묘약’처럼 포장해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마을운동이 우리나라 개발원조자금을 다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개 발도상국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우리의 고속 성장을 닮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열망의 틈새를 파고들어 새마을운동을 기적의 묘약으로 전파해왔고 이것을 대대적으로 선전한 것이다. 부친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유엔의 새천년개발목표를 책임지고 있는 반기문 총장마저 동조하는 모습에는 당혹스럽다.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진행된 지붕개량 작업에 한창인 농촌 주민들_경향DB


한 국은 전후 신생독립국가 중에서 원조를 받던 입장에서 원조를 주는 입장이 된 드문 사례다. 개발원조에서 한국이 갖고 있는 장점은 사실 여기에 있다. 첫째, 받아봤기 때문에 받는 자의 입장에서 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둘째, 짧은 기간의 압축 성장 때문에 개발과정과 그 결과가 한 세대의 경험에 녹아 있어서 ‘과정과 결과’를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장점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받았던 경험, 그리고 성장과 발전 과정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새마을운동만 놓고 보더라도 개발독재와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커뮤니티 개발모델로서의 장단점, 그것이 성공한 마을과 실패한 마을의 비교분석 등을 거쳐야만 개발도상국에 모델로 수출하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무 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독재와 개발의 상관관계에 대한 오해다. 실제로 라오스나 미얀마 등 개발도상국의 지식인들은 ‘발전을 위해 독재는 필요악이다. 한국을 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그래서 우리는 독배(毒杯)를 마셨다’고 답을 하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리가 개발과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경제동물이 되어버린 시민성, 끝도 모르는 무한경쟁, 도덕성의 궤멸, 전통의 몰락, 세계 1위의 자살률 같은 부작용들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발전을 위해 독재가 필요악’이라는 오해는 일부 개발도상국의 군부에 독재의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새 마을운동 전에도 커뮤니티 개발모델은 존재했다. ‘억압받은 자들을 위한 교육’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민중해방모델, 대규모 참사를 겪은 지역사회를 위한 치유모델, 낙수효과를 노리는 경제발전모델 등 많은 모델들이 있어왔고, 가장 각광받는 모델은 밑으로부터의 주민의 자발적 참여, 지역사회 구성원들의 협력 증진, 인간적 자유의 확장, 지속가능한 환경보존, 정신-영적 세계의 고양, 경제발전 등을 모두 고려하는 생태계모델이다.

생 태계모델에 비교한다면 새마을운동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것은 위로부터의 동원에 의한, 전시 위주의 모델이었으며, 인센티브를 통해 주민의 분열을 조장하고 전통문화의 급속한 붕괴를 초래한, 참으로 깊이 성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모델이다. 새마을운동에는 위로부터 ‘동원’으로 국민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고, 새로운 문화를 옮겨 이식할 수 있다는 사고, 전통에 대한 배척과 부정의 사고가 숨겨져 있다. 이 때문에 광인, 걸인까지 함께 보듬고 살던 두레마을에는 경쟁과 배척, 한 치의 여유도 없는 ‘빨리빨리’의 문화가 자리 잡았다.

개발도상국에 성장과 발전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발전(human development)이 첫째이자 중심에 서야 하며, 인간발전을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장, 밑으로부터의 자발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또한 우리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무엇을 버리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통찰로부터 개발은 시작돼야 한다. 발전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소중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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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2018학년도 수능의 영어영역 절대평가 방식이 확정됐다. 예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현재 고1 학생들은 절대평가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여러 예측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풍선효과’다. 변별력이 떨어질 영어 대신 수학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지난해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 경감 및 공교육 정상화 대책’을 보면, 영어(44%)보다 수학(45.8%)의 사교육 참여율이 더 높다. 1인당 사교육비도 영어와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수학 학습 부담을 낮추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영어 대신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수학 B형을 더 어렵게 출제하기는 부담스러울 수 있다. 대학도 정부의 이런 입장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중앙대의 경우 2015학년도 정시모집에서 자연계열 수능 영역별 반영비율이 국어 15, 수학 35, 영어 30, 탐구 20%였으나 2016, 2017학년도에는 20, 30, 20, 30%로 변경됐다. 즉 쉬운 출제기조를 유지하는 수학과 영어의 비중을 낮추고 국어와 과탐의 비중을 늘렸다. 그렇다면 자연계열 학생들에게 수학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은 틀릴 수도 있다. 단, 인문계열 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수포자’가 많다 보니 난이도를 크게 조정하지 않고 반영비율만 늘리더라도 변별력 확보가 용이하다. 결론적으로 수학으로 ‘풍선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릴 수 있다.



논술고사에 영어 제시문이 출제될 것이라는 언급도 많다. 이 점은 사실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경희대, 한국외대 등은 영어 제시문을 출제해 왔다. 물론 제시문이 어려워질 수는 있다. 2017학년도 기준으로 논술고사를 통해 선발하는 인원은 전체 197개 4년제 대학 중 28개교 1만4861명(전체 선발인원의 4.2%)이다. 모든 학생이 괜한 불안감에 영어 제시문 출제를 대비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학교 영어 수업시간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해 내신성적은 물론 학교생활기록부 내의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란을 풍성하게 만들어 자신의 영어 실력을 스스로 검증해 보이자. 뿐만 아니라 교내 경시대회에 참가해 수상하거나 영어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전체 선발인원의 20.3%(2017학년도 기준)를 선발하는 학생부 종합전형을 적극 공략하는 것이다. 불안감은 실체를 모를수록 커지기 마련이다. 입시와 관련된 정책이 지나치게 자주 바뀐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이미 정해진 일이다. 현재 고1 학생들은 이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실체와 마주해 어떻게 대비하고 활용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생산적으로 보인다. 그러니 괜히 불안해하지 말고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면서 기초학력을 다지는 편이 옳은 대응이 아닐까 싶다.


한명균 | 교육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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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내놓은 보고서가 문제가 되고 있다. KDI의 ‘수도권 그린히트’ 사업과 KEI의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의 경제성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수도권 그린히트 사업은 서인천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열을 배관망으로 서울 목동과 사당, 강남까지 공급하는 프로젝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KDI가 내놓은 예비타당성 중간보고서는 의문투성이다. 서인천에서 서울까지 57㎞에 달하는 열수송 배관 손실을 고작 2%로 산정했다. 거기에 더해 지역난방 판매수입에 소비자 잉여를 71%로 산정했다.

소비자 잉여는 소비자가 재화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할 의사가 있는 최대가격과 실제 지불가격 간의 차이를 말한다. 어떤 지역난방 소비자가 지금보다 71%나 비싼 요금을 지불하겠는가?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해 편익으로 반영함으로써 수도권 그린히트 사업의 비용편익분석 결과를 1.11로 끼워 맞췄다. 비용편익분석이 1을 넘겨야 경제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하대 박희천 교수는 수도권 그린히트 사업의 열 판매수입은 공급비용의 36.2%밖에 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도 중립성을 갖춰야 할 예비타당성 분석 작업에 한국지역난방공사 인사가 참여했다는 것을 밝혀냈다.

KDI는 2008년 경인운하 경제성 보고서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물동량과 여객수를 과다 추정해 1.065의 비용편익분석을 내놓았다. 아라뱃길은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유람선 이용자는 예상했던 60만명의 8%인 5만명에 그치고 있다. 이 사업에 무려 2조2500억원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수도권 그린히트 사업이 제2의 경인운하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설악산 케이블카 추진 일지_경향DB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이 8월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조건부 승인됐다. 설악산 오색탐방로 입구에서 끝청봉 하단 해발 1480m까지 3.5㎞의 케이블카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KEI가 제출한 경제성 분석은 탑승객 숫자를 부풀리고 탑승요금(1만4500원)을 과다 추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이미 두 번이나 부결됐지만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사업 추진을 언급한 이후 환경부도 입장을 선회했다. KEI가 이러한 상황 변화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을까?

국책연구소는 ‘갑’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대통령과 주무부처의 판단이 연구원들의 연구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추진한 사업의 실패로 수조원의 세금이 낭비되는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2008년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 계획이라고 양심선언을 했던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박사는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결과적으로 22조원의 혈세를 쏟은 4대강은 녹조로 ‘곤죽’이 되었지만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갑’질 하는 정부부처는 ‘국책연구원’에게 입맛에 맞는 보고서 작성을 종용하고 있다.

바로잡을 수 있을 때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비용편익분석 숫자 1에 끼워 맞추기에 급급한 경제성 보고서를 사업 추진의 근거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엉터리 경제성 보고서에 기반을 둔 수도권 그린히트 사업과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은 백지화해야 한다.


이유진 | 에너지기후정책硏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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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트의 돛과 조가비 모양인 지붕이 푸른 바다와 조화를 이루는 시드니의 상징 오페라하우스, ‘유리 계란’이란 별명을 가졌으며 시민들로부터는 ‘못난이 건물’로도 불린다는 런던시청사,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반지의 제왕>까지 3층짜리 거대한 책들이 꽂힌 모양의 미국 캔자스시티 시립공공도서관. 모두 정부나 지자체가 발주한 공공건축물이다. 이들 공공건축물은 예쁘기도 하지만, 착하다. 미적인 면도 뛰어나지만, 윤리성에 방점을 두고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건축물 디자인의 윤리성은 건축물이 본래 목적에 맞도록 합리적으로 계획되고 사용자들이 편안하고 쾌적하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친환경 기술 도입, 에너지 고효율, 안전, 지역 커뮤니티 기여, 무장애 공간 설치 등이 ‘착한’ 디자인의 대표적 특성이다. 이러한 윤리성이 공공건축물 디자인에 강조되는 것은 공공건축물이 공공의 자본으로 만들어져 여러 사람들이 이용하는 데다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나 문화적 상징성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와 산업,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이어 최근 한류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에서도 세계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경쟁력을 갖게 됐다. 그러나 전반적인 문화, 특히 건축 분야를 꼽아 세계무대에 내놓을 만한 것이 있는지 스스로 자문한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주된 원인은 수십년간의 압축성장 과정에서 효율성이나 실용성이 경제는 물론 사회 모든 분야에서 최고 가치로 군림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 다각도로 건축문화 진흥정책을 펼쳐나가고 있다. 특히 공공건축의 역할과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진행된 기후변화 환경운동 350 _경향DB


건축은 많은 자원이 투입되는 ‘비싼’ 재화이기 때문에 투자 목적이나 효율성의 잣대, 또는 단기적 안목으로 접근하면 문화적 가치가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공성 구현을 목적으로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하는 공공건축은 사회의 창조적 역량과 문화적 가치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대안이 된다. 특히 공공건축은 해당 지역은 물론 국가적으로도 건축문화의 의미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소수의 이용자로 제한된 일반 건축물과 달리 공공건축은 다수의 대중이 이용하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공공건축의 품격 향상을 위해 작년 6월부터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을 시행해 설계비 추정가격이 2억1000만원 이상인 공공건축물은 디자인 관리 방안에 대해 관련 전문기관의 사전검토를 받고, 설계공모를 통해 최적의 디자인을 선정하도록 했다. 또한 지자체가 공공건축물을 한옥으로 짓는 경우 사업비 일부를 지원해 공공건축의 다양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을 통해 우수 공공건축물 조성에 앞장서온 기관과 부서, 담당자를 격려하여 건축 참여자들의 창의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올해는 지역사회와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건축물의 활용성을 극대화한 순천시의 ‘문화건강센터’가 대상으로 선정되는 등 여러 공공기관이 이 상을 수상했다.

대통령께서 광복 70주년 경축사를 통해 강조했듯이 우리가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제 외에 ‘문화융성’이라는 또 하나의 날개가 필요하다. 공공건축은 민과 관이 함께 호흡하는 접점으로서, 국가 문화적 역량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건축 분야의 문화 진흥과 ‘착한 디자인’을 위한 전도사가 되어줄 것이다.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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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세월호 구조에는 무능력했던 정부가 노동개혁은 왜 이렇게 밀어붙이는 걸까요?” 요즘 노동조합 교육을 다니다 보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이다. 물론 사장님들은 언제나 임금을 깎고 해고를 쉽게 하고 비정규직을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를 원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왜, 2015년 지금일까?

여기에는 이미 화약고가 되어 있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놓여 있다. 미국, 유럽, 중국 어느 곳도 안심할 수 없는 위기의 연속이다. 한국 경제성장률은 2008년 이후 최저인 2.8%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사내유보금 규모는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이윤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이윤율도 하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이 던진 승부수가 바로 노동개혁이다. 아니,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자본의 이윤 보호를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쉬운 해고, 임금피크제, 파견 확대 등 노동개혁으로 포장된 정책 모두 100% 사용자들을 위한 내용이 아닌가.

“정부의 노동개혁이 단순히 임금 깎고 해고 쉽게 하는 게 목표일까요?” 이 역시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이다. 물론 이런 질문은 스스로 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임금피크제, 쉬운 해고를 도입하겠다고 분위기 잡으면서 실제로는 노동조합을 때려잡는 게 진짜 목표 아니냐.”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고, 누구든 저성과자로 포장해 맘대로 해고하는 것! 아무런 규제 없이 비정규직을 몇 년 동안 사용하는 것! 그렇다. 이런 일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정부와 자본 입장에서 이런 일을 새롭게 도입할 필요가 있다면 그건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 특히 대기업들이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대기업 노조들은 중소규모 노조에 비해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대기업 사업장에서 자본의 공격은 취업규칙 변경이나 일반해고로 곧장 직행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현대차·기아차·철도 노조 등에 공통적으로 진행되는 공격은 임금피크제와 성과 차등임금제 등 임금체계를 개악시키는 쪽으로 집중된다.


'노동시장 개혁저지 집중행동 집회'에 참가한 민주노총 조합원들_경향DB



특히 성과 차등임금제를 도입할 수만 있다면, 노동조건 전반에 ‘성과’를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성과를 기준으로 상여금을 차등 지급하고, 성과를 기준으로 승진·승급을 하다 보면, 결국 성과를 기준으로 해고를 할 수 있는 일반해고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놈의 ‘성과’라는 건 사장님들이 엿장수 맘대로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장 맘대로 해고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런 해고가 도입되면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시간문제가 된다. 사장님들은 눈엣가시 같은 노동자들만 골라서 ‘저성과자’로 분류하기 시작하고, 곧바로 해고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 관리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과거 정리해고의 경우 대상이 된 노동자들 중심으로 집단적인 투쟁을 벌였으나 이마저 어려워지는 것이다.

대기업 사업장들의 올해 임단협이 예년과 달리 일정 수준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길어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성과 차등임금제의 교두보를 만들어 놓아야만 일반해고의 길을 틔울 수 있고, 이를 근거로 노동조합을 때려잡을 수 있는 무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으로 인한 한국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 특히 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사장님들에게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제공하려는 것이 박근혜 정권 노동개혁 정책의 핵심이다. 전체 노동자들을 상대로 해고를 맘대로 하고 임금을 쉽게 깎으려는 시도를 막기 위해 대기업 노동자들이 앞장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민규 | 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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