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립 이진아기념도서관은 미국 유학 중 사고로 숨진 이진아 학생 가족의 기부로 세워졌다. 책을 좋아하던 딸을 위해 도서관을 지어 이름 석자라도 남겨주려는 소박한 부정이 깃든 도서관이다. 올해 설립 10주년을 맞는 이진아도서관은 공공도서관의 전범으로 자리를 잡으며 ‘가장 멋진 이름의 건물’이자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불리고 있다.

사람을 포함한 생물과 자연물, 인공물 등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를 명명권(命名權)이라고 한다. 개인은 자기가 낳은 아이라든가 소유한 물건 등에 대한 명명권을 갖는 게 당연하다. 공공영역은 좀 다르다. 새로 발견된 천체나 원소의 명칭, 생물의 학명 등은 보통 발견자에게 명명권이 부여된다. 이를테면 폴로늄은 퀴리 부인이 발견해 모국 폴란드의 이름을 붙인 것이고, 목성과 충돌한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은 발견자인 슈메이커 부부와 데이비드 레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물론 여기에는 일정한 원칙과 관행, 승인이라는 절차가 따른다. 화성에는 지구의 지명을 딴 곳이 많은데, 낙동계곡이나 진주·나주분화구 등 한국식 이름도 있다.

서울 서대문구 ‘이진아기념도서관’의 전경. 23살이던 딸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버지가 딸의 이름이라도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재 50억원을 기증해 지은 건축물이다. (출처 : 경향DB)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보듯이 개인이나 기업이 공공시설에 기부하고 명명권을 얻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최근 기업에서 주로 문화·스포츠 시설이나 서비스의 명명권을 확보하는 사례가 두드러지고 있다. 프로야구 경기장을 비롯한 스포츠 시설에서 대학 내 건물, 강의실, 공연장, 미술관에 이르기까지 기업 이름을 넣고 있다. 브랜드 홍보와 이미지 제고라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기대해서일 것이다. 공공영역으로서도 부족한 재원을 채워주는 셈이니 말하자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라고 할 만하다.

오는 6월 완공 예정인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명명권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현대산업개발이 300여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면서 명명권을 받아냈지만 수원 시민단체와 예술계는 특정 브랜드명이 들어가면 예술의 공공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진아도서관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가 정작 거기에 ‘이진아’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파크미술관에 ‘아이파크’가 없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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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지원되는 예산을 지난해 14억6000만원에서 올해는 8억원으로 절반 가까이나 줄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는 당장 지난해 영화제에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이빙벨>을 상영한 데 대한 ‘괘씸죄’를 떠올리게 한다. 영진위가 전체 지원 예산이 줄어들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제 지원금을 대폭 삭감한 것은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보복성 조처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부산영화제를 제외한 전주국제영화제 등 다섯 개의 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은 모두 지난해보다 늘어났다.

알다시피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정부와 계속 마찰을 빚어왔다. 부산시와 감사원이 잇따라 부산영화제에 대한 강도 높은 ‘표적 감사’를 벌였고, 서병수 부산시장이 이용관 집행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전방위적인 부산영화제 옥죄기가 이뤄졌다. 지난 2월 영진위에서 등급분류면제추천 제도 개정을 추진했을 때도 영화제 외부에서 상영작을 사전 검열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런 판에 이번엔 영진위가 국고 지원 성격의 영화제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하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영화제에 탄압을 가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법영화인대책위원회가 '표현의 자유 사수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영화인들은 부산시의 부산국제영화제의 파행,영화제 자동심의면제추천제도 수정 및 독립예술영화관 지원 축소 시도등 영화계에 자행되고 있는 일련의 움직임들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생각하고 입장을 밝혔다. (출처 : 경향DB)


영진위 측은 총 지원예산이 특정 영화제에 과도하게 집중되는 현상을 완화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그렇다면 사업 평가위원들이 어떤 자료를 토대로 평가했는지 그 기준을 명확히 제시했어야 한다. 그동안 지원금을 1억~2억원 증감할 때도 여러 차례의 조정단계와 협의를 거쳤다는 사실에서도 영진위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예산 삭감을 통해 눈엣가시 같은 부산영화제를 손보는 동시에 다른 영화제에는 ‘말을 듣지 않으면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엄포가 될 듯하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부산영화제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부산영화제는 그동안 해마다 15억원 안팎의 적은 국고 지원으로도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국제영화제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1년 넘는 집요한 정치적 압력에 이어 예산 지원을 빌미로 거듭 부산영화제를 흔들어대는 것은 현 정부의 한심한 문화정책 수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누차 강조하지만 문화예술은 결코 외압에 길들여지지 않는다. 정부와 영진위는 자랑스러운 부산영화제 20년 전통에 먹칠하는 일을 당장 멈추고 영화제 지원 예산을 제자리로 돌려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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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하게 전해져 오는 몸이라지만 그 안에는 변변한 방(房) 하나가 없다. 이 천지간에 무량한 햇빛도 그냥 주르륵 흘러내리고 만다. 저 곱고 따뜻한 햇살을 보관할 창고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구규(九竅)라고 했던가.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외부와 소통하지만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욕망이야 그득가득하지만 한 톨의 엽록소도 없는 몸. 그저 몇 움큼의 따뜻한 온기만 쬘 뿐 햇빛의 에너지를 활용해서 한 숟갈의 먹이도 만들 능력이 없다.

그런 운명의 나는 음식을 외부에서 조달해야만 한다. 그래서 그런가. 삼겹살을 입이 불룩불룩하도록 먹을 줄만 알았지 상추를 몰랐다. 소주 한 잔 털어 넣고 마늘과 쌈장을 얹기만 했지 상추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아지매, 여기 상추 좀 더!”라고 소리칠 줄만 알았지 상추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추는 어엿한 현화식물. 꽃이 피고 열매도 맺는다. 잎차례는 어긋나기. 오래전 우리나라에 상륙한 국화과의 한해살이 식물이다.

친구의 주말농장에는 호박, 고추, 오이를 비롯해 각종 채소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었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통통한 줄기가 올라와 넓은 잎을 무성히 달고 있는 상추. 손바닥에 올려놓기에 맞춤하도록 꼭 그만큼의 넓이였다. 상추가 자라는 데 땀 한 방울 보태지 않았지만 내 욕심은 사납게 발동했다. 염치를 모르는 손은 수시로 상추 근처를 들락날락거렸다. 다시 말해 줄기 가까이에서 잎자루를 비틀어 잎을 땄다는 뜻. 그러자 그 단면에서 우유처럼 흰 즙이 나왔다. 미세한 먼지와 함께 상큼한 냄새도 피어올랐는데 그 냄새 끝에 뒤따라 나오는 게 있었다.

태백산에서 만난 피나물이었다. 피나물은 4장의 노란 꽃잎을 달고 5장의 잎은 가장자리에 물결 모양의 톱니가 있다. 그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피처럼 붉은 즙이 나온다. 보기엔 참 탐스럽고 이름도 나물이라 여느 산나물처럼 먹음직스럽지만 먹어서는 안되는 독초이다.

직접 수확하고, 피나물과 비교하고, 흰 즙을 생각하면서 우악스럽게 먹은 오늘 아침의 상추. 그 맛? 굳이 내 입으로 말해야겠나? 양귀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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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으로 전 세계가 연결되고, 하늘에서는 드론으로 물건 배달을 하며, 프로그래밍으로 신흥 부자들이 생기고 있는 21세기에 전 세계적으로 초등학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될까? 5700만명이다. 이들의 절반은 분쟁 지역에 있다. 스티브 잡스가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지금의 애플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알리바바의 마윈이 초등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감히 전자상거래의 왕이 될 꿈을 꿀 수 있었을까?

25년 전 EFA(Education For All) 운동이 시작되었고, 2000년 다카르 세계교육포럼(WEF)에서 초등교육 완료를 목표로 한 기한이 2015년에 끝난다. 각국의 노력으로 현재 초등교육 완료의 목표는 90% 달성되었다. 25년 만에 이 정도 달성되었다면 초등교육 보장은 우리의 노력만 있다면 이룩할 수 있는 목표인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1999~2008년의 증가율이 2015년까지 이어졌다면 100% 초등교육이 완료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초등교육 완성이 90%라지만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최종 학년까지 이르는 비율은 25% 정도뿐이다(2010). 아랍권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여자어린이 중 3분의 2가 영영 학교에 가지 못한다. 초등학교 졸업기록으로 보면 훨씬 나빠진다. 90개국 중 단 13개국만이 보편적 초등학교 졸업을 달성한다. 이런 실상에도 90% 목표 달성이라는 명목하에 교육에 대한 자금 투입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의무교육하고 있다. 가난했던 시절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였고 교육열로는 세계에서 손꼽는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도 원조를 받던 나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힘들었던 당시에 원조를 받지 못했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현재는 먼 미래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는 19일부터 22일까지 세계교육포럼이 인천에서 열린다. 이전까지의 목표를 마감하고 2030년까지 세계 교육을 이끌어나갈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중 한 가지 계획은 세계 어린이들에게 초등, 중등 교육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매년 22억달러가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에 대한 지원은 2010년 이후 6%가 줄어들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는 있지만 자본 투입은 줄어든 상황이다.

새로운 교육 목표가 세워지는 2015년에 일본과 노르웨이는 공적개발원조(ODA)의 10%를 초등, 중등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그런 사례를 가진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할 때이다.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부설초등학교에서 열린 ‘엄마와 함께하는 어린이 안전교육’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소화기 사용법을 배우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15 세계교육포럼의 개최국으로서, 어느 국가 못지않은 교육에 대한 열정을 가진 나라로서, 그리고 원조 수여국에서 공여국으로 탈바꿈한 나라로서 솔선수범하여 ODA의 10%를 초등, 중등 교육에 투입하는 것이 진정한 교육 리더 국가로 거듭나는 길일 것이다.


권미정 | 안양대 영어영문학과 학사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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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와 우정사업본부는 지난달 14일 1350여명의 우체국 공무원 감축안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여유인력 1023명은 감원하고, 나머지 327명은 국민안전, 경제살리기, 복지 등 국민이 꼭 필요로 하는 분야에 전환배치한다고 밝혔다. 과연 우체국에 여유인력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현 정부에 대한 행자부와 우정사업본부의 과잉 충성인지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우정사업본부는 인력감축의 근거로 통신기술로 인한 우편물량의 지속적 감소와 이로 인한 우편수지 적자를 예로 들었다. 2014년 우편사업에서는 349억원 적자를, 금융사업에서는 3280억원 흑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우체국 통합 수지는 수천억원 흑자인데, 민영화 논리를 앞세운 특별회계를 근거로 우편분야 적자를 문제 삼으며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우체국은 대표적으로 만성적인 인력 부족 기관이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5~2014년) 우체국 노동자 75명이 사망했다. 이는 비정규직을 뺀 수치다. ‘산재사망대책 마련 공동 캠페인단’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최근 가장 많은 노동자가 숨진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했는데 1~3위가 건설업체였고, 4위가 정부기관인 우정사업본부였다.

우체국 노동자들은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2013년 12월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밝힌 집배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64.6시간이었다. 지난해 2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우정종사원의 근로시간, 일, 생활균형 실태조사 및 균형방안’에 따르면 우체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952~3216시간이다. 이는 법정 근로시간을 166일 초과하는 것이다.

창구인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여년간 아예 채용하지 않았다. 창구인력은 2008년부터 다시 채용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격년에 한 번씩이며, 지난해 2200여명의 명예퇴직자에 비하면 충원이 아주 적다. 우정사업본부는 끊이지 않는 집배원 사망사고와 중대재해가 있을 때마다 집배원을 증원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다.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우정사업본부 인력 1000명 증원을 약속했지만, 2년이 지나 오히려 1000여명을 감축한다는 발표가 이뤄졌다.

우정사업본부는 봄을 맞아 전국 1만 6000여 개의 우체통 도색, 대텅소 등 우체국 시설에 대한 환경정비를 실시했다. (출처 : 경향DB)


이번 구조조정 발표에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감축은 전혀 언급이 없었다.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4월 말 현재 우편집중국별로 우편분류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강제전보 형식의 해고 통보가 진행 중이다.

행자부는 이번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조직개편을 정부 3.0 기반의 정부조직 효율화의 우수 사례”로 평가하며 칭송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우정사업본부가 국민들에게는 우체국을 따뜻한 이미지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직원들을 해고로 내몰고, 구조조정에서는 가장 약한 여성 비정규직 우선 해고에 앞장서고 있다. 가식적인 우정사업본부의 두 얼굴이다. 현업에서 일하는 직원과 비정규직들에게 피눈물 흘리게 한 우정사업본부장은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할 것이다.


고웅 | 집배원장시간중노동없애기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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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도 아름다울 때가 있다. 기쁨과 슬픔, 고통과 절망의 눈물이라 해도 그 안에 누군가의 정성을 다한 곡진한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말하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착하고 총명한 동생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헌신한 누이의 삶으로부터 오는 깊은 울음에는 아무리 삼류 드라마라 해도 감동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 감동과 아름다운 마음의 어디쯤에 우리가 잃어버린 휴머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휴머니즘은 ‘사람’을 향한 간절한 마음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전 지구적 자본화가 진행되면서 생활이 편리해지고 삶이 풍요로워졌다는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우리가 꾸준히 잃어온 것이 있다면 휴머니즘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랑과 감동의 휴머니티가 사라져가고 있다는 말에 동의하게 된다. 자기 자신부터가 그 상실감으로 인한 쓸쓸함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상실감과 쓸쓸함은 역설적이게도 편리함과 풍요로부터 온다. 편리함과 풍요로움에 대한 갈망은 인류의 초기 자연 자체가 커다란 위협이었을 때부터 생겼을 것이다. 생명에 대한 위협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발현되기 시작했고 그것은 순수하게 인간의 삶의 안전성을 위한 테크놀로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편리함과 풍요가 삶의 필요조건을 넘어서 인간의 탐욕과 연결되면서 탐욕은 근대에 이르러 자본주의라는 당의를 입고 편리와 풍요를 앞세워 시대적 정당성을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는 우리의 구체적 일상까지도 자본에 종속되어 가치관의 변화와 함께 공동체의 파괴가 진행되고 있고 개인이기주의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휴머니즘은 급격하게 그 지위를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편리와 풍요는 삶의 최종 목표나 된 것처럼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것이 되면서 우리는 한시도 쉬지 않고 ‘개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개발은 고대에 재해와 같은 삶의 위협으로부터 사람을 지키려는 휴머니즘이 잠재된 ‘개발’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탐욕이라는 이름의 ‘개발’이며 지금까지 자연을 꾸준히 침탈하여 자연의 순환질서를 흔들고 있는 개발이다. 말하자면 생존을 위한 테크놀로지가 지금은 편리와 풍요를 위한 개발로 변했으며 그것은 인간의 탐욕을 각색한 자본주의의 존재 방식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현재 이러한 본질적 문제의 사회적 표피에는 ‘개발과 보존’이라는 대립과 갈등이 있다. 국립공원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에 따른 찬반 문제의 본질도 결국은 개발이라는 자본가치 중심의 삶과 자연보존이라는 인본가치 중심의 삶이 충돌하고 있는 21세기 전 지구적 상황의 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 뒤에는 반드시 자본의 논리가 들어 있고, 이제는 거의 노골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개발논리를 펼친다. 이는 분명 ‘필요’의 한계를 넘어선 ‘탐욕’이다. 전 세계가 자본화되면서 인간의 탐욕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중 하나라는 명분으로 정당성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개발’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전락했다.

오색케이블카 재추진 논란 (출처 : 경향DB)


그래서 국립공원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현상적 사안만이 아닌 결국 우리 현대문명의 본질적인 문제와도 닿아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보면 자본가치 중심의 삶과 인본가치 중심의 삶이라는 대립이며, 현재 우리에게는 어떠한 삶을 선택해야 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개발이라는 자본가치 중심의 삶을 선택한 현재의 삶이 진정한 삶의 정답이 아니라면, 인본가치 중심의 삶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세상,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세상, 눈물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 대한 선택이 될 것이다.


박두규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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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이 이미 10년 전 용도 폐기된 사회보호법 부활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3월31일 국무회의를 통과했으니, 국회 통과도 멀지 않았다. 정작 살려야 할 것은 외면한 채, 독재의 유물을 되살리는 데 골몰하는 꼴이 엉뚱하다. 사회보호법은 전두환의 삼청교육대를 뒷받침하기 위해 1980년에 만든 법이다. 삼청교육대에 끌고 간 사람들을 가두기 위해 만들었다. 재범의 우려를 핑계로 이미 형기를 다 채운 사람들을 7년까지 다시 가둘 수 있게 했다. 사회보호법은 독재정권에만 쓸모가 있던 반인권 악법이었다. 당연히 사회보호법 폐지 목소리가 높았다. 도대체 고쳐서 쓸 수 있는 법이 아니었다. 밥그릇이 걸린 법무부가 세게 반발했지만, 여야 합의로 2005년 전면 폐지되었다. 나중에 해양수산부 장관을 한 이주영 의원이 특히 열심이었다.

사회보호법에서 보호수용법으로 이름은 살짝 바꿨지만, 형기를 마친 사람을 재범의 우려가 있다며 7년을 더 가두겠다는 핵심은 그대로다. 법무부가 전두환의 사회보호법을 다시 만들겠다는 건,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렇지만 연쇄살인범이 다시 흉악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현실에선 전혀 없다. 연쇄살인범은 법이 허용하는 가장 무거운 형벌을 받을 테니, 교도소에서 생을 마치게 될 거다. 재범의 우려를 그토록 걱정하는 법무부가 사면이나 가석방을 해줄 리도 없으니 걱정할 일도 없다. 아동성폭력범들 역시 예외 없이 중형을 선고받으니,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법무부는 조두순이 2020년에 석방되면 어쩔 거냐고 겁박하지만, 여론의 주목을 받는 69세 노인이 예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그게 아니더라도 어떤 범죄자가 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은 누구도 측량할 수 없다. 미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2020년 여름에 몇 차례나 태풍이 닥칠지를 맞히는 게 훨씬 현실적일 게다. 알 수 없는 비현실적인 위험 때문에, 죗값을 치른 사람을 다시 처벌할 수는 없다.

소망교도소에서는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기초인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사진은 인성교육의 한 장면. (출처 : 경향DB)


법무부는 보호수용이 사회보호법의 보호감호와는 전혀 다른 제도라고 강변하고 있다. 대상자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수용된 사람들이 면회와 전화를 맘대로 할 수 있는 등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에 인권침해도 아니란다. 단지 자유를 제한하는 것 말고는 다른 불편은 없다는 거다. 그런데 징역이나 금고 등 자유형(自由刑)의 본질이 바로 자유를 제한하는 거다.

사람을 한 곳에 가둬두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 형벌이 될 수 있기에 근대 사법은 자유형을 가장 대표적인 형벌로 규정하고 있다. 면회와 전화의 횟수가 아무리 늘어도 갇혀 있다는 사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갇혀 있으면, 그곳이 곧 구금시설이다. 구금시설에 갇힌 사람은 그저 재소자일 뿐이다.

대상자를 엄격하게 제한한다는 것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법무부가 늘 하는 소리다. 흉악범죄에 대한 시민의 두려움을 이용해, 일단 제도를 시작하려는 꼼수다. 연쇄살인, 아동성폭력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라고, 전자발찌나 유전자 강제 채집 등을 내놓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시민의 관심이 떨어지면, 곧바로 그 대상을 확대해버렸다. 새로 만드는 게 어렵지,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에서 그 대상을 좀 더 넓히는 것은 쉬운 일이다. 바로 미끄럼틀 원리다.

그래도 법무부는 2013년 한 해 동안 살인범죄가 966건이나 벌어지는 상황이니,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2013년에 벌어졌다는 살인범죄 966건은 예비, 음모, 미수 등 ‘살인’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범죄를 모두 합한 것이다. ‘진짜’ 살인사건은 354건이었다. 위험을 세 배나 과장한 거다. 이렇게 위험을 과장하고, 공포를 동원하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이 뭘까? 더 많은 인력과 예산, 그리고 권한을 챙기는 것 말고, 떠오르는 게 없다. 결국은 또 밥그릇이 문제다.


오창익 |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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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의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합의한 데 대해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합의의 한쪽 당사자인 여당은 다소 유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9월 국회에서 반드시 타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메아리가 크지 않다. 이러다가는 여야와 노동계까지 참여해 어렵게 타결한 사회적 대타협이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문제에 대한 당정의 소극적 자세는 이해가 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에 대한 우려는 현실적 근거가 충분하다. 소득대체율을 10%포인트 올리면 월급여 300만원 직장인의 연금액은 현행 월 12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크게 늘어나지만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안된다. 현행 9%에서 16.7%로 인상해야 한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이와 달리 보험료를 현재보다 1%포인트만 올려도 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 섣부른 단정은 금물이다.

그러잖아도 국민연금 기금은 고갈 논란에 휩싸여 있다. 현재 운용 방식대로라면 2060년에 완전 고갈될 것이란 추정이 일반화돼 있다. 2007년 개혁 때 2028년까지 소득대체율을 40%로 떨어뜨리는 현행 운용구조를 만든 이유다. 공무원연금을 개혁하라고 했더니 엉뚱하게 국민연금 제도 개선책을 들고나왔다는 항간의 비판도 따갑게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국민연금의 존재 이유를 가름하는 핵심 사안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당장 국민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여야 합의를 계기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니 국민 반발의 부담도 덜 수 있다. 사실 여야는 물론 노동계까지 참여한 사회적 대타협 기구 합의 사항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무산된다면 무책임한 일이다.

여야가 공무원연금 개혁과 함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합의한 것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4일 시민들이 여의도 국민은행 앞 전교조 천막 농성장 앞을 지나가고 있다. (출처 : 경향DB)


국민연금의 현재 소득대체율로는 노후 빈곤 해결이라는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게 돼 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등 공적 연금에 퇴직연금 등 사적 연금까지 합쳐도 노후 소득대체율이 국제적 권장치에 한참 못 미친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퇴직연금의 합계 소득대체율은 대졸 중위소득 기준으로 39~53% 수준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이 설정한 적정 소득대체율 60~70%에 비해 크게 낮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 폭을 반드시 10%포인트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민연금의 노후생활 보장성과 이를 가능케 하는 재정건전성이 더욱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추후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된다면 얼마든지 적정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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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

세계가 자신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 얼마나 덜 가야 할지 모르는 채로 더 멀리 가버리는 새처럼

세계지도처럼 당당하게

비행기는 날고
구름이 피해가고

볕은 사람을 비추었다

숫자처럼 엉켜 있어
만져지는 허공을

해석되지 않는

세계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어느 날 풍경에서는 세계가 틀림없이
멈춰서고

그래 그런 삶도 있겠지 싶은 골목으로

바람이 걸어 나갔다

- 유이우(1988~)


△ 설명할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말해보겠다는 과감한 선언이나 용기, 집착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혁명의 입구 앞에 서 있다.

유이우의 시가 그렇다. 통쾌하게 말하지 못함으로써 통쾌해져버리는 ‘없는 육체’를 갖게 되기 때문에, 그 없음에 대해 매혹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세계’라는 관념태를 주체로 설정한 이 시는 재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아를 호출한다. 여기서 세계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읽어야 할까. 세계는 자아의 다른 명명일 수도 있고, 바람 혹은 새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겠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얼마만큼 온 것인지도 모를 때, 다만 멀리 왔다는 아득한 예감만으로 가득할 때, 그런 어리둥절하고 불안함 같은 곳에 서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장소도 명명할 수 없고 나의 위치조차 분명히 해결되지 않을 때, 내 안에서 나를 불렀으되 내가 이미 바깥처럼 느껴질 때! 뭐라 쉽사리 형용할 수 없는 모든 마음의 진통을 우리는 이렇게 ‘구멍’이라 불러보면 어떨까.

도무지 해결되지 않은 세계 앞에서 다시, 세계가 자신을 바라본다. 내가 나를 바라본다. 지도나 질서 따위로 측량할 수 없는 바깥들에게, 그런 미래들에게 스스로를 투신하는 환한 구멍이 있다. 다른 세계의 입구가 있다.


박성준 |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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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학교 영양사 선생님이 좀 무뚝뚝해”라고 말을 꺼냈다. 전임 영양사 선생님은 아이들과 친해서 “돈가스 지겨워요!”라고 아이들이 말하면, “그럼 함박스테이크 더 자주 줄게”라고 대답하고 했다는데, 이번 영양사 선생님은 아직 아이들과 살갑게 친해지질 않았다는 말이다. 중·고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모두 급식을 먹는다. 그래서 집에 오면 오늘 먹을 만한 급식이 나왔다, 아니다를 곧잘 이야기한다. 이야기하다 보면 두 아이 모두 한 학년에 한 반만 있었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린다. 선생님과 학생 모두가 서로를 아는 작은 학교에서, 급식은 마치 집밥 같았다. 제철 재료를 사서 최대한 좋은 음식을 먹이려 했다. 학교급식은 당연히 그렇다고 생각하다가 큰 학교에 들어가니 상황이 달라졌다.

학생에게 제공하는 급식비용을 세금으로 보전할 것인가, 아니면 소득수준에 따라 별도의 비용을 징수할 것인가의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문제는 ‘무상급식’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급식정책의 초점이 ‘돈 문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급식정책, 그러니까 학교에서 먹는 밥의 가장 큰 고민이 ‘돈 문제’여야만 할까? 오히려 더 중요한 건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밥을 먹게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맛있는 밥을 먹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를 교육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서 급식은 경제가 아니라 교육이다.

일본은 2005년 의원입법으로 ‘식육(食育)법’을 제정했다. 식육(食育)이란 새로운 개념인데, 교육(敎育)의 한자가 가르칠 교(敎)에 기를 육(育)인데, 이를 먹을, 밥 식(食)으로 바꿨다. 음식교육을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개념화한 것으로 먹는 것, 운동하는 것, 친환경농산품 학교급식 등에 중점을 두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걸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공부하고, 왜 먹어야 하는지를 공부하며, 인스턴트가 아닌 음식의 참맛을 느끼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정책은 제대로 먹어야 질병 없이 일하다 잘 죽을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일본의 식육정책은 정부와 민간이 동시에 다각도에서 진행하고 있다.

다시, 급식이야기를 해 보자. 학교급식의 음식물 쓰레기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부는 이를 두고 보편급식의 질저하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학교 음식물 쓰레기는 보편급식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였다. “학생 1인당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이 2008년 12.7㎏, 2009년 13.1㎏, 2010년에는 13.6㎏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고 분석했다.(윤선재, 김현아 ‘학교급식 음식물 쓰레기에 대한 인식 및 잔반율 영향 요인 분석’ <대한영양사협회학술지>, 2012) 보편급식은 2011년 서울시에서 전면적으로 실시되었고, 위 연구에 따르면 학교 음식물 쓰레기는 2008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보편급식 때문에 급식 질이 떨어져서 잔반이 많이 나온 것이 아니라, 돈을 받아도 애초에 학교 급식이 학생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이 늘어난 것이다.

13일 낮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정천초등학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식판을 들고 친환경 무상급식을 받고 있다. (출처 : 경향DB)


급식을 교육에서 분리해 급식비용을 누가 낼 것인가의 문제로만 접근하면 결국엔 이기심을 자극하는 세금 논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진짜 중요한 건 급식이 교육 체계 안으로 편입되는 일이다.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음식 교육체계가 만들어지고, 그 중심으로 학교에서 먹는 밥이 들어와야 한다. 급식의 핵심 이슈가 밥값이 아니라 교육이 되어야 한다. 학교에서 어떻게, 무엇을 먹을 건가에 대해 공부하고 그에 걸맞은 급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 공교육에는 예산을 사용해야 한다. ‘왜 아이들의 밥을 뺏느냐’는 주장은 ‘학교에 공부하러 오는 거다’라는 주장과 타협할 수 없다. 우리가 급식에 대한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밥이 교육이다’라는 주장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해 음식 교육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적 입장에서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우리 아이들이 더 건강하게 좋은 음식을 먹는 일에 반대할 리 없다.


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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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천천히 더 내고 천천히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합의했다. 매달 내는 연금 보험료인 기여율을 현재 7%에서 향후 5년 동안 9%까지 순차적으로 올리고, 퇴직 후 받는 연금액을 결정하는 지급률은 현재 1.9%에서 향후 20년간 1.7%로 단계적으로 내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월 300만원을 받는 공무원이 30년 근무한 경우 보험료는 월 6만원을 지금보다 더 내고, 연금은 월 18만원 적게 받게 된다.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국민연금과의 통합 등 구조 개혁이 아니라 현재 틀을 유지한 채 수치만 조정하는 모수 개혁으로 흐르면서 애초의 취지가 퇴색됐다는 평가다. 기여율 등의 조정도 정부의 재정건전성 강화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제고라는 목표에 비춰 상당히 미흡하다. 연금의 적자 운용을 막고 세금 보전을 중단하기 위해서는 기여율은 10%, 지급률은 1.65%가 돼야 하는데, 이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야는 이번 개혁을 통해 330조원의 재정절감 효과를 볼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매년 2조원을 세금에서 대주는 비정상적인 연금 운용 현실을 당장 정상화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기여율 인상과 지급률 인하 조치도 당장 하는 것이 아니라 몇 년에 걸쳐 시행하겠다는 것이니 일반 국민 입장에서 보면 ‘반쪽 개혁’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지난 2일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최종 합의되고 6일 국회 본회의 처리를 남겨놓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언주로 공무원연금공단 서울지부. (출처 : 경향DB)


하위직이 고위직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이 받는 소득재분배 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하기로 하는 등 눈에 띄는 내용도 있으나 비판의 목소리에 묻히고 있다.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한 최초의 사회적 대타협도 의미가 크지만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반발하고 있어 빛이 바랜다. 여기에는 많은 시간을 두고 국민적 토론과 협상을 통해 도출해야 할 공무원연금 개혁을 불과 몇 개월 만에 졸속 추진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

그럼에도 명심할 것은 아무리 공무원연금 개혁이 중요하더라도 그것이 공적 연금의 본디 기능인 사회안전망 구축을 손상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돼선 안된다는 점이다. 초고령사회가 임박한 상황에서 공무원연금이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소득원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연금 개혁의 정당성은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과 달리 퇴직금이 없는 공무원은 이 점을 특히 중시해야 한다. 이처럼 공무원연금 개혁을 위한 기여율 인상 및 지급률 인하의 폭과 시기 문제는 연금의 수지 개선이나 재정절감 차원에서만 조정하기 어려운 성격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보험료를 얼마나 더 많이 걷고 연금을 얼마나 덜 지급하는 것이 적정한가에 대해 이해당사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정답은 없는 셈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이제 막 첫발을 뗐을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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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돈을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전달한 인물로 지목된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홍 지사의 다른 측근과 이완구 전 국무총리의 핵심 측근들도 차례로 부를 것이라고 한다. 당사자인 이 전 총리와 홍 지사에 대한 소환 역시 임박한 형국이다.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 전 총리에게 3000만원, 홍 지사에게 1억원을 건넸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수사팀이 출범한 지 3주일 만에 수사가 본궤도에 오르는 듯하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순항 여부를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홍 지사는 어제 “나를 수렁에서 건져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번에는 팻감으로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검찰 수사를 바둑의 패싸움에 비유하며 자신이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이다. 홍 지사는 그동안 “성 전 회장의 메모는 반대심문권이 보장돼 있지 않아 증거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등 여론전을 펴왔다. 앞서 주변 인사들이 윤승모씨와 접촉해 회유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을 땐 “회유 운운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 했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도 방어권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홍 지사의 행태에선 방어권 행사 수준을 넘어선 오만함이 감지된다.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올라 있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1일 경남도청에 출근해 기자들에게 “이제는 수사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집무실로 향하고 있다. _ 연합뉴스


역시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에서 “이름 석 자가 (리스트에) 올랐다고 자리를 내려놓기에는 제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이 우리나라가 더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다. 대통령의 최측근인 비서실장이 현직을 유지할 경우 검찰 수사의 공정성이 의심받게 되는 상황이다. 그런 터에 개인의 ‘자존심’을 방패막이 삼거나 ‘깨끗하고 투명한 나라’ 운운하는 게 책임 있는 자세인가. 금품 수수 의혹에 휩싸인 고위 공직자들이 이렇게 당당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 검찰의 역할에 시선이 모일 수밖에 없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압승함에 따라 수사가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터다. 검찰은 엄정한 수사로 이러한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불법 대선자금 의혹까지 겹친 이번 사건은 선거가 끝났다고 어물쩍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검찰은 오로지 법과 원칙대로 수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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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주체가 아니라 갈등의 원인이자 당사자이다. 지리멸렬한 야권은 비판하기조차 민망하다. 언론 또한 기능을 상실하고 권력의 입맛대로 대립과 싸움을 부추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무력화할 시행령을 내놓은 정부, 권력의 속셈대로 유가족에게 지급될 돈의 액수부터 외워대는 언론, 그리고 인양을 반대하는 이유는 건져낸 배 안에 실종자 시신이 없을 경우의 허망함까지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여당 의원의 발언은 글로 옮기기조차 불편하다.

불의 앞에 솟구치는 분노는 증오와 엄연히 다르다. 의롭지 못한 자들은 분노와 증오의 구분을 교묘히 흐리면서 분노의 원인을 숨기려 든다. 그러나 분노가 불의를 물리치는 길을 찾지 못한 채 분노에 머무는 순간 맹목적인 미움으로 변질되기도 쉽다. 나라를 운영하는 집단이 국민들 사이의 갈등을 무책임하게 부추기는 지금이 그런 위기의 시간이다.

그래서 미국의 베트남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은 좋은 생각거리이다. 2012년부터 2025년까지를 50주년 기념기간으로 하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선포문을 포함한 사업의 성격은 참전군인들의 용기와 희생에 감사와 경의를 보내는 쪽에 치우쳐 있다. 물론 격렬한 반전운동에 부딪히는 가운데 참전군인들이 이중으로 상처를 입은 과거에 대한 깊은 배려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의 용기와 애국심만 강조하는 가운데 명분 없는 전쟁의 역사적 진실이 손쉽게 가려진다. 300만명이 넘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인명 피해는 까맣게 잊힌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미국 정부의 기념사업은 자기 땅을 지키려 싸운 베트남 민중과 잘못된 전쟁에 반대한 수많은 자국 시민에 대한 무시와 모욕, 증오를 감추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명분 없는 전쟁을 벌여 온 미국의 실상이 새삼스럽다.

하지만 참전군인의 경험이 그저 헛된 것이었다고 맞받아치면 증오의 정치라는 악순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미국의 양심적인 역사학자들은 미국 국민이 참전용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구한다고 해야 옳다고 주장한다. 정의롭지 못한 전쟁에 나가 싸우게 한 데 대해, 이후의 삶이 후유증으로 망가진 일에 대해, 살아남은 참전용사들을 돌보는 일에 등한했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자세가 먼저라는 것이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우리도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는 1980년 광주에서 경찰관 4명과 계엄군 23명을 잃었다. 계엄군 전사자의 절반은 5월24일 매복 중이던 광주 지역의 군 병력이 장갑차를 앞세우고 나타난 특전사 병력을 시민군으로 오인해 대전차포 등으로 기습한 사건에서 나왔다. 이미 특전사 부대는 어린이도 섞인 길가의 주민들에게까지 총격을 가하면서 이동 중이었다. 하지만 계엄군 간의 교전으로 수십명이 죽고 다친 참변 직후 아예 제정신을 잃고 인근 마을을 뒤져 죄 없는 청년들을 끌어내 사살했다. 극우 인사의 저서도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고 기록한 일이다. 그 눈먼 증오의 순간이 수십년이 지나도 참혹하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89년 초 광주항쟁의 진실을 알리는 <어머니의 노래>(MBC)와 <광주는 말한다>(KBS)가 언론민주화 운동에 힘입어 어렵사리 방영되었다. 철저한 언론 검열 탓에 진상을 잘 몰랐던 국민들 사이에 엄청난 반향이 있었다. 두 기록영상물 중 하나는 당시 사망한 군경의 어머니들을 진심으로 위로하는 말씀을 마지막 자막에 담았다. 학살의 참상에 충격받고 분노하던 그 시점에서 아무도 27명의 어머니와 가족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이 극심한 슬픔과 고통에 시달렸을 그들을 기억했다. 분노가 자칫 증오로 변질되지 않게 막는 법을 일깨워주었다. 진실의 전모를 규명하려 노력하는 가운데 미움을 극복하는 화해와 평화의 작은 촛불을 밝혔다.

군사반란에 동원돼 잔혹한 행위를 저질러야 했던 계엄군들의 무너진 삶 또한 위로받아야 한다. 만약 우리 사회의 민주역량이 더 성숙하고 더 강했더라면, 신군부는 감히 그처럼 잔인하고 공격적인 진압을 통해 민주화운동의 싹을 자르려 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시민뿐만 아니라 군경의 희생도 피할 길이 있었던 것이다.

4·16가족협의회가 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후 가진 세월호 가족 결의 의식에서 단원고 희생자의 어머니가 삭발을 하며 울고 있다. (출처 : 경향DB)


화해와 평화에는 진실이라는 대전제가 필요하다. 언론민주화를 위해 애쓰던 이들이 27명의 어머니에게 깊은 위안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광주의 진상을 규명하는 노력과 성과 덕분이었다. 오늘 이 순간 슬픔과 분노를 딛고 세월호의 어머니와 아버지들도 진실의 길을 열고 있다. 정부의 시행령을 당장 폐기하고 진상조사를 보장해야 마땅하다.


김명환 |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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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천심인가? 도대체 민심은 있기라도 한 것일까?

선거가 치러질 때면 떠올리게 되는 복잡한 생각 가운데 하나다. 이겨서는 안되는 선거를 이기는 쪽이나 질 수 없는 선거를 대책 없이 망쳐버리는 쪽을 보면서 드는 선거에 대한 회의이기도 하다. 대의민주주의 체제가 의외로 취약할 수 있고, 선거가 민의를 반영하는 데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민심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토로했듯이 “박근혜 정권의 경제실패와 인사실패, 부정부패에 분노하는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제1야당의 책임이 크다. ‘분노한 민심’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제1야당이 그동안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한 탓이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성완종 리스트’라는 초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특별사면 논란으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을 물타기하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청와대가 박 대통령의 가벼운 신병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이나, 박 대통령이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선거 막판에 직접 나서 성완종 특사 논란을 부추기면서 여당 구하기에 나선 것도 한몫을 했음직하다. 재·보궐선거의 낮은 투표율을 고려할 때 조직에서 앞서고 투표에 열심인 노장년층에 지지층을 갖고 있는 새누리당이 유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새누리당의 지지층이 워낙 탄탄하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이렇게 맹목적일 수 있을까 싶다. 이런 표심이 민심을 대변하는 것으로 고착된다면 한국 사회의 미래는 암담하다.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아끼는 사람들이야말로 이번에야말로 집권세력의 무능과 실정, 독선, 파렴치함에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박 대통령과 집권세력에게 대오각성과 일대 쇄신의 계기를 부여하는 게 아니었을까. 유권자의 선택은 그 자체로 존중돼야 하겠지만, 오도된 표심이 민심을 대변한다고 보긴 어렵다.

새누리당에 대승을 안긴 표심이 민심의 도저한 흐름과는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은 새누리당 스스로도 직감하고 있는 듯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선거일 직전 “25%밖에 안되는 투표율로 지역 대표를 뽑는 것은 지역 주민의 지지율이 왜곡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이러니다. 그가 대승을 거둔 후 “승리의 기쁨보다는 솔직히 내년 총선이 더 걱정”이라며 한껏 몸을 낮춘 것 또한 요동칠 수 있는 민심의 저변을 읽고 있기 때문일 터다.

문제는 야권이다. 새정치연합의 문 대표는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고 절체절명의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민심을 불러세우기에는 미흡하고 부족했다는 자성일 터.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과연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각에서는 문 대표 등 지도부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비단 지도부만 탓할 일은 아니다. 계파 탓만도 아니다. 당의 체질 자체가 전반적으로 너무 굳어 있다. 투지도 약하다. 메시지도 분명치 않다. 계파 다툼 이외는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도 좀처럼 듣기 어렵다. 초·재선 의원들의 존재감은 거의 찾기 어렵다. 정치인은 없고, 직업 의원들만 눈에 보인다. 그런 체질을 새정치연합이 바꿔낼 수 있을까.

활짝 웃는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왼쪽)와 굳게 입을 다문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 (출처 : 경향DB)


수도권에서 야권의 패배는 분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분화는 이미 시작됐다.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텃밭인 광주에서 천정배의 당선은 야권의 분화를 돌이킬 수 없음을 예고하고 있다. 정치에 흥미를 잃고, 침묵하고 있는 민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라도 야권의 정치적 분화는 필요한지 모른다. 통합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민심은 그리 복잡할 것 같지는 않다. 보다 평온하고 조금은 더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것. 세상이 순리대로 돌아가고, 정의로움이 정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같은 것. 일자리를 찾지 못해 좌절하고 고통받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살아갈 희망을 얻는 것 등등.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가 그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야권은 표심만으로는 이기기 어렵다는 게 이번 재·보선에서 확인됐다. 다음 총선, 대선도 표심은 새누리당이 더 셀 것이다. 민심의 바람을 타지 않고선 야권의 정치적 미래는 기약하기 힘들다. 바짝 타들어가고 있는 민심이라는 너른 들판에 불을 지를 배짱과 비전, 각오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정치를 접는 게 좋겠다.


백병규 | 미디어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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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종교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이 제기된 지 오래다. 최근 개신교·가톨릭·불교의 3대 주요 종교 전문가들이 참여한 종교포럼에서는 “한국 종교에 지배층은 있지만 지도층은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주 화쟁문화아카데미가 연 종교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경계 너머, 지금 여기’에서다.

포럼에서는 개신교의 목사, 가톨릭의 신부, 불교의 스님 등 이른바 성직자들이 항상 높은 곳에서 말하고 듣는 식으로 신자들을 ‘지배하는’ 권위주의가 한국 종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가톨릭 쪽에서는 교회 권위주의와 성직자 권위주의를, 개신교는 합리적이지 않은 대형교회 목사의 카리스마적 권위를, 불교 쪽에서는 실천하지 않는 출가자의 무관심을 문제 삼았다. 성직자들이 이렇다보니 국민들이 존경할 만한 종교 지도자가 없고, 우리 사회에서 종교적 권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5일 서울 명동성당에 만들어진 예수의 탄생을 묘사한 구조물 위로 태양이 밝게 빛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종교적 권위가 공감·실천·희생을 통해 얻어진다는 말은 상식에 속한다. 그게 곧 종교의 핵심 가르침이며 종교 지도자에게 주어진 사명이기도 하다. 예수는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했고, 잘못된 체제에 저항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하는 것으로 권위를 확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개인의 권위를 내려놓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 곁으로 다가가 소통하고 공감하는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최근에 목도하는 종교적 권위의 모범 사례다. 불교 역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어느 종교보다 탁월했다. 하지만 한국의 기독교와 불교 공히 사회적 소통이나 공감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성직자들의 반종교적 일탈행위가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포럼에서 토론자들은 모두가 배타적이고 권위적인 성직자의 리더십을 거부하고 종교의 현 제도와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고민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종교의 개혁과 쇄신 요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종교포럼을 언급하는 것은 종교인 스스로, 그것도 종교 간 벽을 넘어 종교 본연의 역할과 종교 지도자의 사명을 일깨우는 논의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이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좀 더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특별히 경청할 대목이다. 이제는 성직자들이 어려운 이들을 보듬는 일에 적극 나서고,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도 앞장서 종교적 권위를 다시 확고히 세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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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는 지난 29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수정안을 발표했다. 시행령 원안이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위)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조사범위를 제한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비판에 막히자 입법예고 마감일이 3주 지난 뒤에야 내놓은 수정안이다.

해수부는 10개 중 7개 쟁점에서 특위와 가족의 의견을 수용했다고 포장했다. 그러나 해수부가 끝내 수용하지 않은 3개 쟁점이야말로 특위 활동의 본질과 닿아 있다.

해양수산부 손재학 차관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 세월호관련 긴급현안질의에서 답변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특위는 민간인 출신 상임위원이 장을 맡는 소위원회가 각 국의 지휘·감독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해수부는 “특별법 취지에 맞지 않다”며 거부했다. 대신 파견 공무원인 행정지원실장이 각 국의 업무를 총괄토록 했다. 진상 규명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진상규명국 조사1과장도 공무원이 맡도록 했다. 특위의 ‘민간 주도’ 원칙은 정부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과거 활동한 각종 조사위원회도 ‘민간 주도’ 원칙을 채택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내부위임 전결규정으로 ‘소위원장-국장-팀장’ 지휘 체계를 갖췄다. ‘인권침해조사국’ 국장은 민간인이 맡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시행령부터 “상임위원 1인은 조사1·2과 업무를, 1인은 조사3·특별조사과 업무를 지휘·감독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노골적으로 ‘관 주도’를 밀어붙이고 있다. “국·과장을 모두 민간에 맡기면 객관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해수부의 주장은 특위의 조사 과정 및 결과에 정부의 입장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이런 식이니 정부가 진상을 밝히기보다 자꾸만 무언가를 덮으려고 한다는 의심을 사는 것이다.


조형국 사회부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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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논란을 빚은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제품 원료가 가짜로 최종 확인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 회사의 백수오 제품 원료에서 백수오와 다른 ‘이엽우피소’ 성분이 검출됐다는 내용의 재조사 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식약처가 함께 검사한 별개의 13개 백수오 제품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엽우피소는 백수오와 비슷하지만 성분은 전혀 다른 작물이다. 이로써 ‘100% 진품 백수오만 사용한다’는 업계의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알려져 폭발적으로 인기를 끈 이 제품이 알고 보니 엉뚱한 식물을 원료로 사용했다니 충격적인 일이다.

식품의 가짜 원료 사용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 소비자 안전을 도외시하고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기업은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당국은 이번에 문제가 된 모든 식품 회사의 제품제조 공정을 면밀히 검사해 이엽우피소 성분이 포함된 경위를 파악해야 한다. 최근 백수오 수요가 급증하자 재배기간이 백수오보다 짧고 가격은 3분의 1 수준인 이엽우피소를 가짜 백수오로 둔갑시켜 허위 판매했다는 항간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가짜 백수오’ 파동은 땅바닥에 떨어진 기업 윤리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크다.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불법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비뚤어진 기업 문화를 바로잡지 않고는 근절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된다. 특히 내츄럴엔도텍 임원들은 백수오 논란을 전후해 보유 지분을 팔아 수십억원의 차익을 남긴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샀다.

한 기업에서 출시한 갱년기 관련 건강식품들 (출처 : 경향DB)


식품안전을 담당하는 당국의 책임도 크다. 고령화시대에 건강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건강기능식품이 넘쳐나지만 이에 대한 안전 관리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국소비자원의 이엽우피소 검출 발표와 회사 측의 강력 반발로 시작된 이번 파문에서도 식약처는 1차 조사 때 ‘미검출’ 결론을 내렸다가 이번에 정반대 결론을 내놓았다. 식품안전 당국의 ‘우왕좌왕 행보’는 스스로 신뢰를 깎아먹는 일이다.

백수오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300여곳이라고 한다. 당국이 이들 업체에 대한 특별 점검에 들어갔지만 이런 임기응변식 대처보다는 전체 건강기능식품의 안전성을 담보하는 제도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번 사태와 무관한 백수오 재배농가가 엉뚱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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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백수오

이 동네에 사는 모두가 개그맨 개그우먼. 희극인 마을. 입만 열었다 하면 19금 질펀한 농담들. 논에서 밭에서 그렇게들 농을 나누시는데 얼굴에 가득한 주름이 그제야 조금씩 펴지지.

정치 얘긴 아예 꺼내보지 않은 게 오래된 일. 권력의 상중하 층층칸칸 전라도 출신은 희귀하고, 정치인들의 말씨조차 낯설어. 깡패나 식모가 등장하는 장면에만 전라도 말씨가 살짝.

남의 나라에 사는 기분이 든다. 한 달 치로 짧게 웃을 일도 12개월 할부로 웃게 만드는 총리 이야기는 코미디 수준. 그분들은 괴로워 우시는데 국민들은 웃다가 배꼽이 탈옥하여, 이른바 배꼽 탈옥.


슬픈 사건이 많았던 사월과 오월엔 웃을 일도 드물다. 날씨가 좋아 개들도 웃고 염소도 닭도 송아지도 웃는데. 봄날을 맞이하여 지자체마다 축제. 내가 사는 담양도 대나무 축제. 각설이 품바, 민속 개그맨이 나타나 애써 웃게 해 보려고 노력들을 하시는데 웃음 코드는 팟캐스트 개그맨보다 저질. 애들은 가라~잉.

버지니아 울프가 그랬다. 외국어로 옮기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게 유머라고. 그만큼 문화적 배경이 다르면 공감을 얻기 어려운 게 유머다.

울게 하기는 쉬우나 웃게 만드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지. 우리는 건강한 웃음이 부족하다. 유대 속담에 하나님 앞에서 울고 사람 앞에서는 웃으란 말이 있다. 유머가 없다면 인간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누가 좀 우릴 웃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어. 정치 빼고 누가 있어 우리를 웃게 만들어 줄까. 희극인들이 본업을 접고 예능 프로에 나와 바보짓을 하거나 생계형 사업에 뛰어드는 건 너무 안타깝다.

수준 높은 것은 바라지도 않아. 수준 있는 개그가 보고 싶다. 권력을 풍자하고 기성 사회를 흔든 희극인 찰리 채플린의 후예들을 만나보고 싶다.


임의진 |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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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새끼가 알에서 부화한 이후 일정 기간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새끼가 다 자라면 어미를 먹여 살린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를 효조(孝鳥)라고도 부른다.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근거다. 이러한 까닭으로 반포지효는 자식이 자란 후에 부모의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반포지효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안갚음’이다.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안갚음’이라고 한다.

‘안갚음’의 ‘안’은 ‘아니’의 준말이 아니다. ‘안’은 ‘마음’을 뜻한다. 하여 ‘안갚음’은 마음을 다해 키워준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다.


‘앙갚음’이란 말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그래서 ‘안갚음’을 ‘앙갚음’의 잘못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안갚음’은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준다’, 즉 ‘보복’을 뜻하는 ‘앙갚음’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안갚음’과 반대되는 말이 ‘안받음’이다. 자식이나 새끼에게 베푼 은혜에 대하여 안갚음을 받는 것을 말한다. 자식이 마음을 다해 부모의 은혜를 갚는 게 ‘안갚음’이라면, 부모가 자식의 봉양을 받는 것이 ‘안받음’이다. 기본형은 ‘안받다’이다.

벌써 5월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부모님께 문안전화를 드리는 것도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안갚음’의 하나다. 지금 부모님께 전화를 해보자.


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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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 대변 안전위, 새벽에 회의 열고
안전 기준 무시 월성1호기 수명 연장
일, 14만명 주민 대피에 자위대 투입
고리·월성 470만명 피할 곳도 없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국민으로서 불안해진 가장 큰 이유는 나와 우리 가족의 ‘안전’을 정부가 지켜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곳곳에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당장의 상황을 벗어나려고만 하는 것 같다. 시설과 설비의 안전성 기준을 명확히 하고 타협 없이 보수적인 안전성 판단을 하는 행정부가 버티고 있다고 해도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전히 ‘안전은 뒷전’이라는 것을 수명 끝난 노후원전 수명연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확인하게 됐다.

원전에서 안전은 최우선이 아니고 사업자의 이익이 국익으로 둔갑돼 폐쇄해야 할 노후원전이 수명연장되고 있다. 지난 2월27일 새벽 1시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월성원전 1호기의 10년 수명연장 가동을 허가해 줬다. 최신 안전기준으로 평가하지도 않았고 원전 주변 62개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과 해양의 활성단층들이 평가에서 제외돼 지진 위험은 축소되었으며 주민들 몸까지 오염시킨 삼중수소 문제 역시 해결되지 않은 채였다. 또한 현재 월성원전 1호기는 안전한 상태가 아니니 32가지의 안전개선사항이 반영돼야 한다는 스트레스 테스트 민간검증단의 의견은 무시됐다. 더구나 개정된 원자력안전법에 명시된, 주민의견이 반영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고 최신 기술기준을 반영해야 한다는 시행령도 무시됐다. 이런 사항들을 무시하고 표결하자는 제안을 한 원자력안전위원은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업에 관여해 2000여만원의 돈을 받아 관련법에 의하면 자격이 없다고 확인된 위원이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는 여객선 사용가능 연한을 늘린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후한 시설을 더 사용하려고 하는 데는 경제논리가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연한을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비용이 더 들어가는 안전성 보완에 인색하다. 원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는 설계수명이 끝난 노후원전 두 기가 있다. 부산광역시 바닷가에 있는 고리원전 1호기와 경주시 바닷가에 있는 월성원전 1호기이다. 고리원전 1호기는 10년 수명연장 가동이 승인돼 운영 중인데 2017년 이후에 10년 더 수명연장하려는 사업자 한국수력원자력은 연장된 수명이 마감되기 2년 전인 오는 6월18일 전에 재수명연장 신청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담당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6월 말에 발표할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수명 끝난 원전 폐쇄계획을 담을지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고리원전 1호기는 국내 고장사고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문제투성이 원전인 데다가 비상 냉각수 투입과 같은 급격한 온도 변화로 핵연료를 담은 원자로가 터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속에 운영 중이다. 2007년 당시 규제기관은 원자로를 평가하는 기존의 방식을 바꿔 안전여유도가 줄어드는 ‘진취’적인 검사 방법을 적용하는 것을 허용해 줬고 그 결과 법적 기준치를 만족한다면서 수명연장을 허가해 줬다.

만약에 월성원전 1호기와 고리원전 1호기를 타협 없이 ‘보수적인’ 최신 안전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사업자는 안전성 보완을 위해 비용을 많이 들이느니 가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캐나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안전성 보완 요구에 젠틸리 2호기 원전사업자는 이미 1조원을 투입했지만 추가 3조원 투입을 못하겠다며 폐쇄를 결정했다.

30년전 부터 원전반대 운동을 해온 일본 이와이시마 모습. 이 섬은 원전반대운동을 넘어 에너지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있다. (출처 : 경향DB)


우리나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어떤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에 국제원자력기구는 한국과 일본에 원전 안전에 대해 권고한 것이 있다. 원전 안전을 담당하는 기구와 원전을 진흥하는 기구는 분리시켜야 한다는 권고였다. 우리나라는 원전을 개발하고 진흥하는 과학부처에 안전부서가 같이 있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 산하에 원전 안전보안원이 같이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한국과 일본 모두 원전 규제기구를 기존의 부처에서 분리했다. 그런데 일본이 원자력규제위원회를 환경성 산하에 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총리실 산하에 두고 있다. 현재 국무총리는 원자력진흥위원장이다. 우리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여전히 원전 안전의 가면을 쓰고 원전 진흥의 들러리를 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안전성이 떨어진 수명 끝난 원전을 가동하는 데 편법이 동원되고 법과 안전성 원칙이 무시된다.

원전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지고 온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사고 수습은 지지부진하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2호기가 심상치 않다는 자료가 공개되고 있는데 인근의 방사능 수치가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체르노빌 원전 역시 사고가 발생한 지 30년이 되어 가지만 사고 당시 방출된 다량의 방사성물질로 인한 오염과 인명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반경 30㎞ 안팎으로 14만명이 대피하는 데 자위대까지 투입됐다. 고리원전 1호기 주변에 340만명, 월성원전 1호기 주변에 130만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디로 피난갈 수 있을까. 대피할 시간이라도 주어질까.

<경향신문·참여연대 공동기획>

<시리즈 끝>


양이원영 | 환경운동연합 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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