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당원 3명의 댓글조작 사건 파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17일 국회 본청 앞에 천막을 설치하고 ‘김경수 특검’ 관철을 위한 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당은 “개인의 일탈 사건”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간 정치공방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고, 개점휴업 상태인 국회 공전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의혹을 키우고 궁금증이 증폭된 건 수사당국이 자초한 면이 크다. 경찰은 구속된 ‘드루킹(필명)’ 김모씨와 공범 등 3명을 체포한 3월21일부터 한 달이 다 되도록 민주당 김경수 의원에 대해 수사하지 않았다. 서울경찰청장은 “(드루킹이 보낸 텔레그램 문자 메시지를) 김 의원이 거의 확인하지 않았다”고 두둔하듯 언급했다. 김씨 등의 민주당원 여부 확인에는 20일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해 5월 김씨가 운영하는 파주 출판사에서 불법선거운동을 한다는 혐의에 대해 선관위가 수사를 의뢰했으나 지난해 11월 불기소 처분했다. 이러니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커지고, 검경이 정권의 눈치를 보며 수사에 미온적인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18일 (출처:경향신문DB)

항간에는 드루킹이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으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요청했을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의원은 그런 청탁을 받아 청와대에 전달했다. 단순한 자발적 지지자를 뛰어넘는 관계가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지금 이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 의원과 김씨의 관계, 조직적 개입과 배후의 존재 여부, 자금의 출처, 구체적인 활동 내용 등이 명명백백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김씨가 지난 대선 때도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한 댓글조작을 했는지도 밝혀야 할 대목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에 이명박 정부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돕기 위해 댓글공작을 했다고 거세게 몰아붙였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여당 국회의원 비서진이 선관위 홈페이지를 디도스 공격한 사건에 대해서는 특검을 요구한 바 있다. 여론조작이란 중대범죄에 너, 나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민주당도 무조건 야당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진상규명에 앞장서 소모적 공방을 빨리 종식시켜야 한다. 김 의원 연루설을 보도한 언론사의 정보 입수 경위 따위를 문제 삼는 건 당치 않다. 청와대도 “당의 소관”이라고 먼 산 바라보듯 지켜만 볼 게 아니라 한 점의 의혹도 없도록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 만에 하나 검찰과 경찰이 정치적 고려로 미적거릴 경우 야당 요구대로 특별검사의 수사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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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언젠가 이 나라가 망한다면 나는 그 이유가 언론 때문일 거라 확신한다. 당연히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이 나라가 망한다면 그 과정은 커다란 배가 침몰하는 풍경과 흡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침몰하던 그 배의 마지막 언론… 그러니까 선내 안내방송을 우리는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사고 이후 나는 이 나라의 언론을 눈곱만큼도 믿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그랬을 것이다. ‘기레기’라는 명사는 그때 한국 언론이 보여준 비굴함과 역겨움의 마땅한 부산물이자, 역사적 기록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명사의 탄생이 늦었을 뿐 기레기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아니, 애초부터 한국의 언론은 왜곡되고 뒤틀린 현대사의 공범이자 앞잡이였다. 국가수반이 야반도주하고 한강인도교를 폭파해버린 1950년 서울에는 ‘안심하고 민생에 전념하라’는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고, 1980년 광주에서 학살이 자행되던 그 순간에도 언론은 침묵했다. 숱한 간첩조작사건은 정부의 지침 그대로 발표되었고 진짜 기자, 진짜 언론인들은 해직되어 투옥을 당하거나 고문당하고… 거리로 내몰렸다. 언론은 없었다. 애초부터 이 나라는 권력과 돈의 잡새 철새 기레기들의 서식지였다. 허문도라는 이름도 떠오른다. 언론통폐합이란 전대미문의 언론학살극도 그래서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비굴한 것들이 살아남아 예컨대 ‘땡전 뉴스’ 같은 걸 만들었다. 매일 만들었다. 하도 열심히 만들어서 또 예컨대 ‘참 잘했어요’ 같은 소릴 들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마에 콩콩 도장도 받았을 것이다. 진급을 하고 상전이 되면서 그 비굴한 것들이 또 자신의 하수인을 키웠을 것이다. 족보도 생기고 파벌도 생겼을 것이다. 비굴한 것들이 또 동기간 정은 많아 서로의 치부와 약점은 절대로 들추지 아니했다. 누가 떠들면 매장하고 여론을 갖고 노는 게 일도 아니었다. 보수연 진보연 해대며 정적(政敵)은 있어도 언론의 적은 없어 이보다 좋은 장사가 세상에 없어보였다. 그래서 그, 비굴한 것들이 무소불위의 권위를 가지게 된 상황…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의 언론환경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결코 기득권을 내려놓지 못한다. 오랜 세월 정경과 유착하여 만들어 온 대한민국, 자체가 그들의 기득권이기 때문이다.

44년 전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외쳤던 동아투위 해직언론인들의 삶은, 그래서 마치 해방 후 이 땅에 남은 독립운동가들의 고단한 삶과 닮아 있다. 끝내 자신의 자리를 지켰던 113명의 언론인들은 결국 복직하지 못했고, 투옥과 고문후유증, 생활고 등에 시달리며 빛나는, 그러나 쓸쓸한 생을 마감 중이다. 언젠가 동아투위의 중심이셨던 성유보 선생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작고하시기 얼마 전이었으므로 내겐 마치 유언과도 같은 인터뷰였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겠지만 ‘독재가 스스로 물러가지 않듯, 언론도 절대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오직 깨어 있는 시민의 힘만이 이를 바꿀 수 있다’고도 말했다. 

40년이 지나도록 끝내 복직하지 못한 진짜 기자의 이 말은,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을 우리에게 일러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 겨우 정권을 바꿨을 뿐이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을 우리는 얻었을 뿐, 기레기 울어예는 하늘이 구만리다.

별 희한한 일들이 다 있을 것이다. 늘 그랬듯 갑자기 큰 이슈들은 사라지고 느닷없는 프레임이 뉴스를 지배한다거나, 죽기 직전 노망난 늙은이의 벽에 똥칠 같은 뉴스들도 보게 될지 모르겠다. 10년의 모진 세월을 보내면서, 하지만 시민들도 너무 많은 경험치를 쌓아버렸다. 삼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건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건 맘대로 해라. 그 하늘이 장장 구만리라 해도 어느날 어느 순간, 이제 시민들이 기레기 전원을 구조했다는 오보를 트윗으로 날려주겠다. 11시까지 잠 푹 자고 일어나 날려주겠다. 다시 4월의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이제 누구도 언론의 말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언론을 찾고, 판단하고, 구할 것이다. 이들이 찾은 언론만이 언론이 될 것이고 뭐, 그게 아니라도 전원 구조 되겠지 뭐.

사실 기레기는 성립될 수 없는 명사이다. 기자라는 명사는 기레기와 가장 거리가 먼 위대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보다 진실을 말하자면 기자의 가장 큰 적이 기레기였고, 기레기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기자들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80년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사이비 기자 척결’이었다. 

어쩌면 지금 가장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기레기 언론 환경 속에서 끝끝내 자신의 펜을 지키고 있는 진짜 기자들일 것이다. 기레기란 말에 상처받을 기레기들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간 오직 기자들만이 기레기란 말에 상처받고 괴로워했을 것이다. 이 어지러운 환경 속에서 그들을 발견하고 지지해주는 것까지가 성유보 선생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일 것이다. 그리고 시민들의 힘과, 진짜 기자들의 힘이 만나는 그 순간이 이 나라의 언론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힘들더라도 그 길을 가야만 한다. 그것이 44년 전 우리가 단 한 사람도 지켜주지 못했던 113명의 언론인들에 대한 역사적 보답이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우리가 비로소 우리의 언론을 가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판단하기 바란다.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볼 것인가. 그리고 식별하기 바란다. 누가 우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

<박민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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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족이라고 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포함된 대가족이었다. 집안이 항상 가족들로 북적거려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지금 나는 집에 오면 혼자이다. 언니들이 혼자 사는 장애인 동생을 위해 안부를 묻는 일도 스마트폰이 생기자 전화 대신 카톡으로 바뀌었다. ‘별일 없지?’라고 물으면 ‘그럼’이라고 짧게 대답하다가 그것도 귀찮아서 미소 이모티콘을 날린다.

이 변화가 어찌 나 혼자에게만 일어났으랴. 요즘 우리 사회는 가족이 있어도 학교나 직장 등의 이유로 혼자 사는 1인 가정이 많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인 가구가 주된 가구유형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이에 따라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혼자 하는 생활 패턴이 우리 사회의 경제와 문화를 바꾸어가고 있다.

1인 가구 가운데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젊은 층으로 이유 있는 혼족이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독거노인, 독거장애인으로 원치 않게 버려져서 복지 사각지대에 내몰린 혼족이다. 사람들은 독거노인은 처음부터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독거노인 가운데에는 한때 중산층으로 멋지게 살았던 분들이 많다. 예전에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다가 늙어서 힘이 없어지면 일을 놓고 자식들의 봉양을 받으며 노년을 편안히 보냈으나 베이비붐 시대 사람들은 급속한 산업 발전으로 큰 재산을 모았지만 그것을 자식들에게 몽땅 물려주고 노년에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를 모시기 어려워진 사회 변화 속에서 독거노인으로 전락한 노인층은 온갖 회한을 가슴에 품고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비루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가 OECD 국가 가운데 노인자살률 1위라는 가슴 아픈 결과를 낳았다.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로 몇 달 후에야 죽음이 발견되고 가족과 연결이 되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여 무연고 처리가 되어 뼛가루가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혼자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오늘, 우리는 진지하게 가족과 가족이 살고 있는 가정에 대하여 생각해봐야 한다.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가족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공부를 조금 못해서 또는 성격상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해 사회생활이 어려울 수도 있고, 건강이 나빠서 혹은 장애를 갖고 있어서 특별한 돌봄이 필요한 가족도 있다. 그리고 누구한테나 다 찾아오는 노화로 노인이 된 가족도 있는데 이런 가족의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끼리 지지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정부의 사회복지제도이다. 가족 단위의 사회적 지원으로 가정이 해체되지 않도록 해주어야 그들이 버림받지 않고 가족이 있는 가정에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모든 사회문제는 가정의 해체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는 가정의 해체를 부추기고 있다. 국민생활기초수급자가 되려면 부양가족이 없어야 한다. 있어도 서로 연락이 단절되어야 한다. 장애인을 돌봐주는 활동보조서비스제도도 가족은 활동보조인이 될 수 없다. 독거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이 더 많이 지원되기 때문에 장애인은 사회적 서비스를 받기 위해 혼자 살아야 한다.

이렇듯 독거생활이 지원 조건이 되자 복지서비스를 받기 위해 1인 가구가 되고, 그런 과정에서 가족들과 멀어져 진짜 고독한 독거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독거 상태의 노인이나 장애인을 지역사회 복지기관의 사회복지사 한두 명이 보살핀다는 것은 역부족이다. 가족이 돌봐줄 수 있도록 사회복지서비스제도가 가족 지원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우리 가족은 가족이 아니다. 우리에게 가족이란 것이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어려울수록 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수록 떨쳐버린다. 먹고살기 힘들어서 가족을 보살필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한다. 돌봄서비스 비용을 가족에게 지급해서 가정이 직장이 되게 한다면 우리 가정이 좀 더 가정다워지지 않을까 싶다.

<방귀희 | (사)한국장애예술인협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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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의 빛나는 명문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은 법문을 따라가지 못한다. 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투쟁의 역사가 바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다.

민주주의는 과정이다. 이를 협의로 구현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조차도 지난한 변태와 확장의 과정을 달려오고 있다. 1987년 직선제 쟁취 이후 30년. 대한민국 국민은 스스로의 손으로 선출했던 무능한 지도자를 광장의 정치를 통해 끌어내렸다. 역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여전히 정치는 엉망진창이다.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인지, 아득하고 또 숨이 가쁘다.

그러나 달려갈 곳이 있다는 이 숨가쁨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한편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주권자의 의미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민주주의는 과정이라 할 만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초창기 ‘1인 1표’의 원칙에서 그 ‘1인’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르주아 백인 남성에 국한되어 있었다. 주권재민의 원칙을 실천할 수 있는 국민의 의미가 계급과 인종, 성별에 의해 제한되어 있었다는 말이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그들에게 국한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오직 그들만이 ‘인간’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가장 협소하게 민주주의가 실천되던 시대에 목숨을 건 치열한 투쟁을 통해서 그 ‘인간’의 경계를 확장시켜온 것이 노동자 투쟁, 페미니즘, 흑인 민권운동, 그리고 제3세계의 독립운동 등이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역사 굽이굽이마다의 사건을 우리는 ‘혁명’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4주기를 맞이하는 2018년 4월16일의 아침. 또 하나의 혁명이 이 땅에서 진행되고 있다. 나이라는 허구적 기준을 철폐하려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2018년 3월22일, 국회 앞.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 보장을 주장하면서 삭발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 농성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에서 청소년들은 “참정권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뿐만 아니라 일터, 학교, 가정 등 모든 사회 구성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중이 아닌 지금 당장 존중받고 독립된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참정권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 싸움의 의미를 세월호 4주기와 연결하여 함께 생각해 보자고 요청하는 것은, 사회의 주체적인 구성원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으로만 존재할 때 청소년들은 역설적으로 계속해서 열악한 삶의 조건과 위험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험사회’를 살고 있다. 울리히 벡에 따르면 현대인은 문명이 초래하는 위험을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되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같은 인재는 위험사회의 현실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에서 위험은 평등하게 닥쳐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은 권력과 자원이 분배되는 위계와 질서에 따라 분배된다. 한국 사회의 대형 참사에서 유독 10대에서 20대 초반에 이르는 피해자가 많은 이유를 숙고하게 되는 이유다. 우리는 다시 한번 평등하지 않다면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안전은 동등한 시민권의 다른 말이기도 한 셈이다.

청소년 참정권은 청소년들이 이 사회에서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정치적 조건 중의 하나다. 물론 역사적으로 참정권 운동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동등한 권리의 획득만으로 갑자기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100년 전에 참정권을 쟁취했지만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 그러나 대의제 민주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세계에서 동등한 권리의 획득은 그 과정 자체로 이미 의미가 있다.

청소년 참정권이라는 혁명이 하나의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또 한번 민주주의가 힘겹게 스스로의 경계를 밀어내고 조금 더 커진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확장된 민주주의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비청소년들에게도 더 넓은 세계를 열어주리라 믿는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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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어놓은 길고양이 사료를 비둘기들이 연신 쪼아 먹길래 후여 쫓았더니 근처 나무 위로 올라가 안 가고 기회만 엿보더군요. 그 굵은 목에 내리깔듯 쳐다보는 모습이 꽤나 거만해 보였습니다. 제가 가면 분명 다시 내려와 눈알 굴리며 굽실굽실 목 흔들고 먹을거리로 다가가겠지요. 흔히 다른 것에 정신 팔려 정작 이 자리에서 해야 할 것은 건성으로 할 때 하는 말이 ‘마음이 콩밭에 있다’입니다. 이것은 ‘비둘기 마음은 콩밭에 있다’는 속담을 줄여서 말하는 것인데, 이 속담도 사실 줄어든 것입니다. 원래는 ‘비둘기 몸은 나무에 있어도 마음은 콩밭에 있다’입니다. 비둘기란 녀석은 유독 다른 새들보다 콩을 그렇게 좋아합니다. 콩밭을 망쳐놓는 것은 물론이고 갓 파종한 콩알도 귀신같이 파헤쳐 찾아먹습니다.

콩 맛을 안 비둘기라면 가지에 앉아 자나 깨나 콩 생각밖에 안 날 겁니다. 사람 역시 재미 하나에 빠져들면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고스톱에 빠져들면 닭 한 마리만 봐도 자기도 모르게 ‘똥광’을 떠올리고(사실은 닭이 아니라 봉황과 (벽)오동나무입니다), 당구에 처음 재미 들리면 강의실 녹색 칠판이, 누워서 천장이 온통 당구대로 보이며 머릿속에서 저절로 큐대 각도 재듯 말입니다.

각기 다른 기사로 뜬 두 장의 사진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 사진에서는 ‘도와주십시오’ 팻말을 건 후보가 굽실굽실 불쌍한 표정을 짓고, 얼마 뒤 기사 사진에서는 당선 국회의원이 처우개선 좀 해달라 팔 붙든 청소노동자이자 국민에게 목 빳빳이 세우고 눈 내리깔며 ‘감히!’라는 거만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지요. 높이 앉은 비둘기가 저 아래 콩알에만 정신 팔렸듯, 국회의원 후보 중에는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삶보다는 금배지가 주는 권력과 돈이란 콩 맛에만 빠진 이도 있을 것입니다. 고고하게 높이 앉아 주워 먹을 콩만 살피는 ‘닭둘기’ 눈에는 저 높은 이상보단 그저 바닥의 콩알만 눈에 들어오겠죠.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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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난 유리식탁에서 1식3찬의 아침을 받는다. 보리를 섞은 쌀밥, 된장을 푼 쑥국에 무깍두기, 머위나물 그리고 고등어 한 토막. 보름달 같은 접시에 골고루 담긴 것들의 이름을 전혀 모르고 먹는다면, 숟가락이 국맛을 모르듯 혀가 제대로 맛을 알겠는가. 매일 반복되는 이 행위를 거룩한 식사(食事)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젓가락 왕복운동과 어금니 저작운동이 연속되는 행동(行動)에 불과하지 않을까.

며칠 전 한식이라 고향으로 향했다. 대진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무주에서 내려 국도로 접어드니 느낌이 달라진다. 벚나무 가로수가 내 속도에 맞추어 다투어 피어나는 건 아닐 테지만 구천동 지나 덕유산 빼재터널을 지나면서 거창으로 가까워질수록 꽃들이 더 풍성해지는 것 같다. 아예 꽃터널인 곳도 있다. 벚꽃구경 하겠다고 여의도 갈 게 아니네요! 큰형수님이 한마디 던지는데 벌써 오무마을 동청이다. 농사가 아직 본격 시작되기 전이라 조금 여유가 느껴지는 시골내음을 흠씬 들이마셨다. 사과향도 조금 섞인 듯 달콤한 벚나무 꽃공기!

비 부슬부슬 내릴 때의 산소는 그 어딘가로 연결되는 장소이다. 무덤은 식물과 곤충들에게도 명당이다. 그늘 하나 없고 통풍과 배수가 잘된다. 또한 물은 이렇게 직방으로 들이쳐 공급된다. 양지꽃, 민들레가 잔디 사이에 숨어 있다. 두리번거려 보지만 아쉽게도 할미꽃은 없다. 그간 잘 계셨나요? 어머니 보내신 고들빼기, 뽀리뱅이가 무덤에 납작하게 붙어 있다. 아버지 따라주시는 첨잔인가. 음복하는 제주(祭酒)에 빗물이 섞인다. 두 해 전 꽂아둔 개나리가 이제는 대가족이 되었다. 눈으로 왕창 들어오는 노란 개나리.

외가로 가는 길에 폐교된 지 오래된 허전한 공터에 잠깐 차를 세웠다. 부산으로 전학 가기 전 3학년까지 다닌 곳이다. 우람했던 플라타너스는 그루터기만 남았다. 운동장에서 반짝거리던 모래들은 힘을 잃었다. 겨우 발등 높이의 풀이 심심하게 놀고 있다. 애기똥풀, 뚝새풀, 고깔제비꽃. 학교는 없어져도 이름은 남는다. 완대초등학교. 돌담 바깥으로 축축 늘어져 텅 빈 완행버스를 물끄러미 배웅하는 개나리, 개나리, 노오란 개나리. 물푸레나무과의 낙엽관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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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어떤 나라, 어떤 시대,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날지 우리는 선택할 수 없다. 나의 노력으로 선택할 수 없는 외부적이고 선천적인 요인들로 인해 우리 삶의 큰 줄기가 결정된다. 매 학기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에게 ‘역사 속의 나’라는 주제로 자기소개서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이것이 과제가 아니라 부탁인 이유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이자 누군가의 삶에 점수를 매길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과제가 아니기에 학생 대부분은 자신의 생애를 투박하지만 정직하게 반추한 짤막한 글을 제출한다. 나는 그들의 삶을 하나씩 읽고 이들을 학번 대신 존재로 기억하려고 애쓴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나름대로 힘겨웠을 대한민국에서의 삶을 생각한다.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는 학생 대부분은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전후해 태어났다. 어떤 학생은 국가 경제 붕괴로 가족이 해체되는 힘겹고 어려운 상황에서 배 속의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의 빛을 보게 해준 부모에게 감사의 마음을 적었다. 누군가는 부채 때문에 갈라선 부모 이야기를, 또 누군가는 어린 시절 뇌리에 박힌 압류 딱지의 기억을 토로한다. 이들에게 외환위기가 경제적 고민을 상징한다면,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은 역사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생애사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기억되는 사건은 2014년 4월16일에 겪은 세월호 참사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들을 ‘세월호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 나는 한 부모당 한두 명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마음껏 풍요를 누리며 자랐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에게는 검소함과 경제감각이 몸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그중 한 학생은 자신의 짧은 생애를 ‘알바’라 부르는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했다. 그가 자신의 시간을 최초로 팔 수 있었던 곳은 유명 대기업에 부품을 납품하는 안산의 작은 부품 공장이었다. 2013년 당시 최저시급이 4860원이었는데, 이보다 140원을 더 쳐주어 시간당 5000원을 받았다. 함께 일하는 외국인 이주 여성은 그보다 못한 시급이었지만, 해고당할까봐 최저임금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줄 수 없었다. 2013년 그는 비굴함을 배웠다고 적었다.

2014년 모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최저시급은 350원 올라 5210원이었지만, 3개월 수습 기간 동안 자체규정이란 명목으로 최저시급에서 500원을 떼어 시급 4710원으로 계산되었다. 유니폼을 갈아입고, 외모를 단정하게 하려고 15분 일찍 출근해야 했지만, 출근 등록 지문만은 정시에 찍도록 했다. 복장 규정에 따라 검은색 구두, 립스틱, 머리망이 필요했지만, 자비로 샀다. 3년이 지나 미지급된 임금이라며 30만원이 입금되었다. 누군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부당한 업무규정에 맞서 투쟁한 결과였다. 2016년 최저임금은 6030원이었지만, 동네 편의점 사장은 손님이 없다는 이유로 시급 5000원을 제시했고, 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그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대한민국 주정뱅이 아저씨들의 취미가 여자 알바생 괴롭히기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건물주란 사람은 자신과 데이트해주면 대학 졸업까지 시켜준다는 제안을 건네기도 했다.

2017년의 최저시급은 6470원이었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평일엔 호프집, 주말엔 약국에서 알바를 했고, 성실함을 눈여겨본 교수가 일감을 주어 한 주에 3가지 일을 하기도 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 몸이 붓고, 피곤하여 좋아하는 책도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학생이지만 강의시간엔 졸고, 일터에선 억지로 웃으며 버텨야 했다. 2018년 올해 최저시급은 7530원이다. 세월호 사건 이전과 세월호 사건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고, 변했다고 말한다. 그로부터 4년, 대한민국은 변했는가? 살아남은 세월호의 아이들은 여전히 살아가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힘겨운 분투를 이어가고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하늘의 별이 되어야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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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은 유독 ‘속숨허라(조용히 해라)’라는 말을 많이 쓴다. 말을 해봐야 도움은커녕 일신의 위협만 받고 가족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었다. 4·3 70주년, 3만명의 죽음. 국가권력의 폭압으로 무참히 몰살당했던 그 역사. 70년 동안 그들은 조용했다. 무서워 울지도 못했다. 두려움에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말하지 못했다. 옆집의 비극을 애써 모른 척했다. 그렇게 ‘호썰 속숨헙써(좀 조용히 해)’라고 했다. 제주 사람은 역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살암시난 살앗주’, ‘살암시민 살아진다’라고. 조용히 살다 보니 그래도 살게 되었다고.

일주일간의 4·3 해원상생큰굿이 열렸다. 험악한 세상 만나 들로 산으로 굴속으로 바닷속으로 내몰렸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몰아쳤다. 어찌 살아남은 사람조차 산 게 아니었다. 70년 전에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오라방과 누이, 아방과 어멍, 서방과 각시, 물애기, 삼촌과 고모님의 이름을 일일이 불렀다. “잘도 곱닥한 우리 애기, 보고정허다.”

살아남은 자의 눈물수건은 흥건하고 제단에는 망자를 위한 저승돈이 쌓인다. 속숨할 일이 아니다. 70년 맺힌 눈물을 더 크게 왈칵 쏟고 비참의 시간을 증언해야 한다. 왜 그랬는지 말하고 밝혀야 해원상생이 가능하지 않은가. 10년 뒤, 4·3 80주년에는 그 할망들이 살아 있을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시인 이종형은 4월의 섬 바람에 대해 ‘이 바람 어디서 오는 거냐고’ 묻는다. ‘수의 없이 죽은 사내들’과 ‘관에 묻히지 못한 아내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은 아이의 울음’에서 온다고 했다. ‘돌담 아래 제 몸의 피 다 쏟은 채 모가지 뚝뚝 부러진 동백꽃 주검’에서 온다고 했다. 그래서 ‘살갗을 쓰다듬는 손길에도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었다. 제주 4월의 바람을 맞이하는 건 고통스럽다. 제주 중산간 까마귀 떼는 소름 돋는 죽음의 전조다. 다랑쉬오름의 바람, 사려니숲과 거문오름의 봄 야생화, 정방폭포와 서우봉, 송악산과 알뜨르 비행장, 한라산의 절경은 다 학살의 장면과 겹친다. 아름다운 곳마다 학살터였다.

4·3을 겪은 제주 사람과 국민은 ‘정명(正名)’, 이름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요구한다. 4·3평화공원의 추모비는 아무런 글귀가 없는 ‘백비(白碑)’의 상태다. 아직도 4·3의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찾지 못해서다. 4·3은 공산주의자의 폭동이거나 어쩌다 발생할 수 있는 사적인 일이 아니다. 4·3은 ‘사건’이나 ‘사태’, ‘불의’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학살에 대항한 ‘정의로운 저항’, ‘항쟁’으로 기록되어야 올바르다. &lt;까마귀의 죽음&gt;과 &lt;화산도&gt;를 쓴, 조국에 살아보지 못한 디아스포라, 작가 김석범은 일갈한다. 이제 우리의 힘으로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찾고 새겨 누워있는 백비를 일으키자고.

가해자는 떳떳하고 피해자는 숨죽였다. 왜 학살의 피해자가 속숨해야 하는가. 4·3 정명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 바로잡는 것에서 시작한다. 국가의 역할은 학살의 책임을 통감하고 깊이 사죄하며, 4·3의 가해자인 이승만 정권과 미 군정의 행태를 분명히 밝히는 데 있다. 해원상생, 원한을 풀고 더불어 살아갈 일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오늘은 세월호 참사 4주기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4년은 ‘속숨허라’는 4·3 70년의 역사와 닮았다. 우리는 오늘, 4·3과 세월호의 백비에 무어라 쓸 것인가. 세월호 떠오르고 동백꽃 다시 핀다. 그래야 봄이다.

<윤상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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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그날, 바다>를 개봉 당일 관람했다. 과학적 관점으로 배의 출항에서 침몰까지의 시간대를 추적해 침몰 원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진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하고, 가열차게 탐구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낸 김지영, 김어준 이하 제작진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침몰한 지 4년, 배를 건져낸 지도 1년의 시간이 흘러버려 더 이상 밝혀낼 것이 없다고 다들 포기하는 심정이 되었는데 이 영화는 남아 있는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침몰 원인’에 집중함으로써 진실의 강력한 조각을 극적으로 구조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라기보다는 검찰에 제출할 증거자료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영화의 핵심은 AIS(Auto Identification System)의 항적기록이 조작됐다는 사실과 조작되기 전 원래의 기록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드러내는 데 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탄식을 금치 못했다. 거짓말쯤은 밥 먹듯이 하는 이명박근혜 정부였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증거를 조작하고 거짓으로 일관한 것인가 싶어 큰 충격을 받았다.

생떼 같은 아이들이 300명이나 죽든 말든, 가슴 아파하는 유족과 국민이 진상을 알고 싶어하든 말든 ‘덮어야 한다’는 일념에 하나부터 열까지 체계적으로 조작하고, 거짓 위에 거짓을 쌓는다면, 이와 같은 일은 대체 어떤 종류의 범죄에 속하는 것일까.

거짓투성이가 민관 합동의 객관적 보고서가 되고, 전문가들의 결론이 되고, 이에 대한 문제제기는 음모론이 되는 기막힌 사태는 세월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 천안함도 마찬가지다.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에 따른 폭침이라는 게 정부의 결론이다. 하지만 폭발에 의한 격침이었으면 마땅히 있어야 할 화약 냄새, 이비인후과적 손상, 폭발음, 수중 폭발에 따른 물기둥, 물고기들의 떼죽음, 고열, 화염 등 어떤 것도 관찰되지 않았다.

파괴된 배에서 눈으로 관찰된 것은 외부 물체와의 충돌 흔적이다. 배가 첫 좌초 이후 표류할 때 또 다른 잠수함이 들이받아 사고를 낸 후 도주했다는 정황 증거가 조사단에 의해 증거로 제출되어 있다. 그런데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선언은 회수되지 않고 재조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오직 관심은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에만 있다.

이제는 정말 세월호와 천안함에 대하여 과학적인 재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그냥 두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이미 나온 증거만 상식적으로 귀납해도 큰 윤곽은 그려진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것을 덮으려고 했던 이들을 잡아내고 법적 책임을 지우는 일이다. 이는 내부 양심선언의 도움 없이는 쉽지 않다.

왜 이렇게 국민이 쉽게 보일까, 속여먹기 좋은 호구로 보일까. ‘바보’가 되어버린 듯하여 괴롭다. 우리 사회는 지금 공인에 대하여 거의 가혹할 정도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뻔뻔스러울 정도의 거짓말, 말 바꾸기가 횡행하고 있다. 여전히 진실이 잠겨 있는 세월호와 천안함 사태, 국가를 이용해 조 단위의 자원사기극을 벌인 것으로 의심되는 전임 대통령,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의 재벌 2세의 폭언 등.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성’이 아니라 ‘최소한의 양심’이다.

그들에게 최소한의 양심을 요구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도덕적 완벽함’으로 무장해야 하는 것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번 금감원장 사태에서도 그렇듯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이들, 더욱 하자가 많은 이들이 주도가 되어 하자 운운하며 목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 어떻게 도덕의 도자도 모르는 이들이 도덕을 손에 쥐고 무기로 휘두르도록 놔둘 수밖에 없는가.

양심, 진정성, 도덕성 이런 말들은 당분간 의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그래야 덜 괴로울 것 같다. 그 대신 ‘참’과 ‘거짓’을 걸러내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우는 사회 시스템을 위한 공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싶다. 거짓은 드러낼 수 있고, 입장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짓은 거짓일 뿐이다. 이렇게 명확한 것을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로 삼자는 것이다. 법적 처벌을 강화하든, 헌법을 개정할 때 공직자의 거짓말에 대한 처벌 규정을 넣든, 거짓의 종류를 세분화하여 모든 행위에서 하나의 검열 장치로 작동하도록 하든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고 상상력을 동원하고 총의를 모았으면 한다. 너무 심한 거짓말에 당하고도 당했나보다 넘기게 되는 그런 사회가 되게 내버려두지 말자.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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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봄이 올까 싶었는데 꽃샘추위가 지나간 전국에는 진한 봄내음이 그득하다. 거리에는 벚꽃, 진달래가 봄바람에 나부끼고 밥상에는 두릅이며 쑥, 냉이 같은 봄나물 향이 물씬 퍼진다. 계절의 변화를 먼저 느끼는 농촌에도 봄이면 백색옷을 입은 배꽃과 분홍빛의 복사꽃 등이 만개해 장관을 이루곤 한다. 많은 상춘객들이 농촌을 찾아 자연을 느끼고 체험활동을 즐기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 경관이 주는 행복과 이로움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게 된다.

지난 3월 발의된 대통령 개헌안에 농업계의 염원인 ‘농업의 공익적 가치’가 반영되었다. 식량 생산이라는 본원적 기능 이외에 경관 및 환경보전, 전통문화 계승 등 162조원에 달하는 공공재적 역할을 수행하는 농업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하고 육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근래에 농업·농촌의 가치는 안전한 농산물 생산은 물론이고 국민의 휴식처이자 마음의 고향으로서 쾌적한 전원 환경 제공 등으로 커지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67.3%가 농촌을 ‘자연과 전원 환경이 보전되고 휴양에 도움이 되는 곳’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고 답변했다. 2016년 농촌체험휴양마을 방문객 수가 1000만명으로 전년보다 약 15% 증가했다는 통계청 발표도 이러한 흐름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국민들이 농업의 가치를 느끼고 스스로 농촌을 찾을 수 있도록 농촌 환경을 잘 가꾸는 일이 시급한 시점이다. 스위스도 헌법에 농업의 가치를 보장하고 국가직불금으로 농업인의 소득을 보장하는 대신 경관 보전 등의 상호준수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농촌은 영농 폐비닐 수거율이 66%에 불과할 정도로 아직까지 환경보전에 대한 인식이 낮은 실정이다.

이에 농협은 오는 4월30일 ‘깨끗하고 아름다운 농촌마을 가꾸기 캠페인’을 전국에서 동시에 실시한다. 이를 통해 농촌을 농업인의 삶터이자 전 국민의 쉼터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우선 농촌지역 클린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한다. 환경위생 전문업체와 제휴하여 팜스테이 마을을 대상으로 클린인증사업을 도입해 올해 20개 마을을 시범인증하는 등 매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농촌마을 담벼락과 건물 외벽에 벽화 그리기 사업을 활성화하고, 주민들과 함께 꽃밭 조성에도 적극 나선다. 하천 주변과 마을을 지속적으로 청소하는 한편, 축사 주변에는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어 냄새를 제거하고 미관도 살려나갈 계획이다.

필자는 농촌 현장에서 40여년을 보낸 농업인으로서 이제는 농업·농촌이 사회적 보호대상이 아니라 공익적 가치 공여자로서 국민들 앞에 당당하게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농촌을 국민들에게 선물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될 것이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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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가에 냉이꽃이 피었습니다

냉이꽃 저만치 조그만 돌멩이가 있습니다

 

돌멩이는 담장 그늘이 외로워서

냉이꽃 곁으로 조금씩 조금씩 굴러오는 중입니다

종달새도 텅 빈 하늘이 외로워서

자꾸 땅으로 내려오는데

 

그것도 모르는 냉이꽃이

냉이꽃이 종달새를 던지는 봄날입니다

유금옥(1953~)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유금옥 시인의 동시를 좋아한다. 전교생이 열 명 남짓한, 대관령 골짜기의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은 걸작이다. 동시 ‘왕산초등학교’에서 “우리 학교는 산이 있네/ 우리 학교는 책이 많네/ 우리 학교는 놀이터가 있네/ 우리 학교는 새들도 많네// 우리 학교가 지지배배 웃네”라고 썼다.

시 ‘냉이꽃’에도 아이의 맑고 순수한 동심의 나라가 있다. 냉이에게는 흰 꽃들이 잇달아 피었다. 돌멩이는 담장의 그늘에 있으면서 말을 나눌 친구를 아직 사귀지 못했다. 그래서 무거운 몸을 굴려 냉이꽃 곁으로 조심스럽게 조금씩 가고 있다. 물론 꽤 오래 걸리겠지만. 높은 하늘을 날던 종달새도 혼자 하는 놀이가 심심해서 땅으로 포르릉 날아 내린다. 그러나 냉이꽃은 다가오는 종달새를 봄 하늘로 되던져 돌려보낸다. 종달새는 솟아오르며, 마치 마음에 들지 않아 삐치고 토라진 듯 날아간다.

냉이꽃의 마음이 있고, 돌멩이의 마음이 있고, 종달새의 마음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서로의 마음을 잘 몰라 “그것도 모르는” 일을 하곤 하지만, 이즈음은 외로운 마음들이 한 군데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친하게 지내려는 봄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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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요청’이라는 제목의 e메일을 여는 순간 동공이 흔들렸다. 딱 50분만 대기업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찬강연을 해달라면서 ‘약소해서 죄송하다’는 표현과 함께 제안된 강연료는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사람들이 기업 전문강사가 되려고 기를 쓰는 이유를 알 만했다. 게다가 너무 논쟁적인 주제는 피해달라면서 평소 책에서 하던 이야기를 가볍게 언급하면 충분하다니 체력적으로 힘든 것도 없다. 최저임금으로 하루 8시간씩 한 달을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을 1시간 만에 벌 수 있다니 어찌 호흡이 가빠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수락을 못했다. 하필 그날이 대학교 개강일이었다. 수업시간인 9시까지 도착할 수 없는 일정이라 아쉽지만 거절했다. 휴강의 유혹도 있었으나 내가 그래도 대학 교육자라는 사실을 차마 스스로 부정할 순 없었다.

복권 당첨을 눈앞에서 놓치는 경우를 예방하려면 앞으로 대학 강의를 그만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한 번에 75분 강의를 하기 위해 왕복 3시간을 이동한다. 이 짓을 한 달에 여덟 번을 하고 시간당 6만원 기준으로 72만원(세전)을 4개월 동안 받는다. 한 번 강의에 9만원인 셈이다. 과제와 시험을 채점하고 첨삭하여 돌려주는 초과노동은 기본이다. 출결사항을 학교 시스템에 직접 입력하고 사이버 캠퍼스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과제도 시험도 없는 기업 강연을 1시간만 하면 대학 시간당 강의료의 30배가 넘는 돈을 벌 수 있다. 알고 보니 내가 제안받은 금액은 방송에 자주 나오는 스타강사나, 석학 수준의 명사들이 받는 금액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대학 시간강사 월급의 3개월치보다 많았다. 재미난 건 내가 대학에서 받는 시급 6만원은 사립대학 중 그리 나쁘지 않은 수준이라는 것.

배알이 꼴려서가 아니라 대학이 너무 우습다는 거다. 객관적으로 지식 노동에 대한 단가가 너무 낮다. ‘규정상 어쩔 수 없다’면서 제안하는 고등학교 특강도 30만원 아래로는 강사 초빙 자체가 언감생심이다. ‘비영리 조직이라 형편이 좋지 않다’는 시민단체에서도 최소 20만원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딱 한 번만 와 달라고 부탁한다. 대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 대상으로 과외교습을 하면 주 2시간 2회 기준으로 최소 50만원은 받는다. 시간강사와 이들은 진배없다.

12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좋게 생각하려고도 했다. 단순하게 최저임금에 비하면 시간당 높은 급여라고 위로하며 전국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강의를 9개(27학점)나 맡아 그저 매달 들어오는 돈을 보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강사 경력은 교수 채용 과정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책 읽고 논문 쓸 시간에 강의나 돌아다녔다는 책임만을 혹독하게 질 뿐이다. 그렇기에 평생 시간강사만 해야 될 운명과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 사십이 넘어가면 몸과 마음이 지쳐서 여기저기 떠돌기도 어렵다. 대학생을 가르친다는 것은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노동이겠으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티지 못하는 영광이 무슨 소용인가.

대학은 시간강사 없이는 자신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줄 수 없는 구조다. 기능적으로 시간강사는 대학의 필요한 존재지만 대우는 형편없다. 대학이 교수가 아닌 연구자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이를 증명하다. 강의전담교원이나 연구교수 같은 이름만 그럴싸한 타이틀을 얻고 1~2년 후 해고될 사람들이 받는 급여는 한 달에 250만원 남짓이다. 나 역시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직장인처럼 출퇴근하면서 연봉 3000만원을 받고는 가족을 부양할 자신이 없어서 거절한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 사회학인지라 나는 강의 때마다 최소 1분은 “내가 이 돈으로 강의해야 하나” 하면서 신세한탄 중이다. 수업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했다고 학생들이 학교에 항의해 강사 재위촉이 되든 말든 상관없다. 그 돈은 ‘없어도’ 사람의 생활을 아프게 할 수준조차 되지 않는다.

<오찬호 | 작가·<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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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때는 19세기 말이다. 여러 추정들이 있지만,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처음 커피를 접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한다. 카페의 형태를 처음 갖춘 곳으로 알려진 ‘손탁 호텔’의 1층 카페는 1902년에 생겼다. 우리나라의 카페 역사도 100년을 훌쩍 넘긴 셈이다. 작년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의 카페 수는 주스·전통차 전문점까지 합해 9만개를 넘는다.

국내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중 부동의 1위는 ‘스타벅스’다. 연간 매출이 1조원 이상이다. 전국에 115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인데, 최근 이 중 한 매장이 유독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12일 문을 연 노량진 매장이다. 각종 임용·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몰려있는 이 지역에 유독 스타벅스가 없었다는 것도 이야깃거리였지만, 개장한 매점이 여느 스타벅스와는 다르다는 보도 때문에 더 화제를 모았다. 테이블이 낮고 콘센트가 몇 개 없어서 노트북을 들고 오는 손님들이 오래 앉아 공부할 수 없다는 보도였다. 공시생들이 행여 오래 앉아있을까봐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다는 의혹이 얹어졌다.

스타벅스 로고.

기사를 읽은 사람들이 흥분해서 스타벅스 불매운동이라도 벌였을까? 아니다. 이 기사에 대한 대다수 댓글러들의 비난 화살은 스타벅스가 아닌 소위 ‘카공족’, 즉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향했다. 공부는 도서관에서 해라, 걔네들 때문에 맘놓고 떠들지도 못한다, 넓은 자리 주야장천 차지하니 꼴불견이다, 카페 주인들 화병 나는 것 아느냐 등등.

사람이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은 늘 변했다. 그 시대, 그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며 바뀌었고, 종종 문화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1674년 카페 ‘프로코프’의 탄생은 집 안에만 있던 파리의 여성들이 마음 놓고 들어갈 수 있는 ‘공공장소’가 됨으로써 이들의 일상 모습을 바꿨다. 이후 파리의 카페는 지식인들이 모여 철학과 시사를 논하는 공간이 되어 사상과 학문 발전에 기여했다. 197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의 다방은 전문 DJ가 신청곡을 받아 음악을 들려주던 유흥공간이었고, 같은 시기 역전이나 읍내의 다방은 한복 입은 마담과 짧은 치마의 ‘레지’가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풀어 서비스하던 끈적끈적한 공간이었다.

스타벅스의 조상뻘이 되는 커피전문점은 ‘난다랑’이었다. 1979년 지금의 대학로에 처음 등장한 뒤 이대입구와 이태원에 지점을 열었고, 1980년대 후반에는 서울에만 20곳 이상 있었다. 밝고 세련된 인테리어, 은은한 음악과 ‘비엔나커피’로 젊은이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적 공간을 사적으로 점유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던 시기였다. 카페에 책을 들고 들어와 긴 시간 혼자 앉아있는 이는 없었다. 카페도 커피를 팔기보다는 쾌적한 데이트 공간과 유유자적한 시간을 팔았던 시기였다.

시간이 흘러 이제 카페는 하나로 설명하기 어려운 공간이 되었다. 전문적인 바리스타가 다양하고 맛있는 커피를 ‘요리’해주는 아담한 카페도 있고, 도서관 이상의 경건함을 과시하는 북카페도 있다. 아저씨, 아줌마 몇몇이 모여 박장대소하며 수다를 떠는 사랑방식 카페도 여전히 건재하다. 카공족의 ‘열공’과 동호회의 뒤풀이와 연인들의 데이트가 공존하는 스타벅스 같은 공간도 있다. “카페는 원래 차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곳”이라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제한된 시기, 제한된 공간에서만 참이었다.

언젠가부터 카페를 점령하기 시작한 카공족은 이 시대의 전형적인 시공간 활용술이 몸에 밴, 그래서 이 시대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이다. 마치 지하철에서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으로 드라마를 보듯, 이 시대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을 게릴라처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가 훌쩍 떠나기를 반복한다. 그런 모습이 못마땅한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들 또한 젊었을 때는 음악 들으며 공부한다고 야단맞았을지 모른다.

노량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공부하는 이들이 준비하는 시험도, 그들이 숙식을 해결하는 방식과 모습도 바뀌었다. 싼값에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스터디카페’가 많이 생긴 것도 최근의 변화상이다. 그러니 스타벅스가 스터디카페 역할을 거부한다고 비판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넓은 자리를 독차지하거나 잡담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부라리지만 않는다면) 부득부득 거기서 공부하겠다는 이들을 흉볼 이유도 없다. 그보다는, 노량진 스타벅스가 지금 한국 사회의 모습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 안에는 시험에 인생을 건 젊은이들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공간과 그들을 유혹하는 공간의 괴리, 이를 극복하려는 전술들이 있으며, 옆에서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 과정을 서사화하는 언론이 있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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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006년 10월9일 1차 핵실험을 하자, 대응책으로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취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흘러나왔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중단이 아닌 정상 가동을 선택했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의 인고도 모르는 채 그 후에도 2차 핵실험,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3차 핵실험, 4차 핵실험 등 꾸준히 남북관계를 위협하는 행동을 이어나갔다. 그럴 때마다 개성공단은 남북 양측에서 ‘북핵의 지렛대’가 되어 최소인원 체류, 잠정 중단, 재가동 등을 반복하다가 2016년 2월 ‘전면 중단’에 처해지는 운명을 맞았다. 전면 중단의 사유는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이 북한 핵개발 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부품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확신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도 미처 보지 못한 개성공단의 진면목이 있다.

개성공단의 공장구역은 우리나라 산업단지 총면적에서 2%가 채 안되고, 입주기업 125개사가 점유한 면적 비중은 1%에도 이르지 않는다. 그런데 꼼꼼히 살펴보면 남과 북에서 개성공단만큼 내실 있는 알짜배기가 없다. 개성공단은 60대 1의 높은 입주경쟁률을 보였다. 개성공단 첫 생산품인 통일냄비는 세계 명품들도 매장을 잡기 어렵다는 유명 백화점에서 단 하루 만에 완판되기도 했다. 또한 단기간에 이룬 높은 공장 가동률과 생산량 증가세 등은 기존 산업단지와 비교할 수 없는 혁혁한 성과였다.

개성공단은 해외생산지에 대한 입지 대안으로서 우리 기업들의 선택권을 넓혀준다. 임금수준이 나날이 상승하고 있는 중국, 베트남, 인도 등 현지 생산지로부터 본국회귀(리쇼어링)를 결정한 기업들이 안착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대상 업종의 미래 확장성도 높다. 비록 지금은 중소기업형 업종, 즉 섬유, 가죽제품, 전기부품 등이 주류를 이루지만 서울로부터 60㎞ 떨어진 수도권 지역의 대규모 개성공단 공간은 어떤 산업의 입지조건으로도 매력적이다. 미래 4차 산업시대에서도 삼성동 테헤란밸리, 여의도 금융센터 등과 연계해 생산 테스트베드 및 지원서비스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

산업단지의 리모델링은 수시로 일어난다. 과거의 구로공단이 현재의 구로디지털단지가 된 것처럼, 또 삼성전자의 수원사업장처럼 향후에 개성공단 내에 삼성전자 개성사업장이 들어서지 말라는 법은 없다. 순수 산업입지로서도 독립적 경제성을 지닌 최고 투자프로젝트라는 것이 개성공단에 대한 일반적 평가다.

북한에서 남북협력 경제특구의 성과는 남한에서보다 훨씬 혁혁하다. 남측에서 개성공단 중단의 빌미가 될 정도로 경제적 측면에서 외화가득 성과도 쏠쏠했지만 정치적으로도 3대에 걸친 선대의 유훈사업을 존중하고 계승해나가는 어린 지도자의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도 일조했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특구이자 남한의 특구이다. 지리적으로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 지역에 위치하며 북한 법치의 특구이지만 기반시설 건설의 투자 주체나 생산활동은 남한의 기업가와 경제인이 담당한다. 북한특구의 성공 자체가 남한의 성공인 것은 개성공단이 가진 이와 같은 독특한 속성에 기인한다.

개성공단 폐쇄는 비단 기업가뿐 아니라 남과 북의 근로자 개인에게 너무 큰 피해를 입혔다. 그들의 일상을 없앤 것이다. 직장에 출근하고, 동료들과 어울리고, 월급을 받아 가족을 부양하는 등등 많은 일들이 개성공단 가동으로부터 시작되고 영위됐다. 남한에서 한때 볼 수 있었던, 종로에서 개성공단으로 출근하기 위해 줄지어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광경을 이제는 볼 수 없다. 북한 근로자들이 개성 시내에서 공단까지 이동수단으로 운행됐던 순환버스들은 공단 내에 방치됐다. 멈춰버린 통근버스처럼, 방치된 순환버스처럼 남과 북 근로자의 삶도 멈추고 버려져서는 안된다. 다시 소생시켜야 한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번쯤 다루어봄직한 주제이다.

<임성훈 |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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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4주기를 맞는다. 4년 전 그날 인천을 출발해 제주로 향하던 배가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서 침몰했고,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탑승객 등 304명이 영영 가족의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도 진도 팽목항에는 추모객들이 마르지 않는 눈물을 훔치고, 사람들은 가방과 휴대전화 등에 노란리본을 달고 있다. 완전한 사고수습과 진상규명, 아직 돌아오지 못한 5명의 귀환과 ‘안전한 대한민국’을 희구하는 마음이 리본에 깃들어 있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문자메시지는 109만건이 넘었다. 바쁜 일상을 보내다가도 문득 미안한 생각에 하늘에 있는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지난 12일 개봉된 세월호 다큐멘터리 <그날, 바다>는 4일 만에 15만명 넘게 관람했다. 사람들은 4년 전과 다름없이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4월16일 (출처:경향신문DB)

지난 4년간 우여곡절을 거치며 사고수습과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다. 3년 가까이 누워 있던 세월호는 참사 1091일 만인 지난해 4월11일 목포 신항부두로 옮겨졌다. 단원고 고창석 교사와 조은화·허다윤 학생, 이영숙씨 유해가 수습돼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세월호의 선체 직립(直立)작업이 내달 말 이뤄지면 기관실 등에 대한 마지막 수색작업이 가능해진다. 참사 이후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들과 청해진해운 직원이 법의 심판을 받았다. 재난 관리의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정부 인사의 잘못은 뒤늦게나마 진상이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조지시가 골든타임인 오전 10시17분을 넘겨 이뤄진 사실도 얼마 전에야 확인됐다. 지난달 출범한 ‘2기 특조위’는 의구심이 말끔히 가시지 않은 침몰과 늑장구조 원인을 밝혀내는 데 최선을 다해줄 것을 당부한다.

하지만 세월호가 남긴 과제, ‘안전한 대한민국’의 염원은 과연 이뤄지고 있는가. 기억과 다짐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상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지난해 말 15명이 숨진 영흥도 해상 선박충돌 사고, 29명이 사망한 제천 화재, 끊이지 않는 건설현장 안전사고에서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확인하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죽음을 바라보며 생명의 존엄함을 되새겨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생명과 안전이 가장 고귀한 기본권이 되는 사회를 만드는 책무는 살아남은 우리에게 있다.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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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국토 개발을 경험한 사회가 갖는 공통적 특징은 ‘새것에 대한 맹목적 숭배’로 나타난다. 1970년대 이후 ‘새로운 도시’의 창궐은 ‘신’(新)이나 ‘뉴’(New)라는 접두사를 무한대로 사용케 했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1990년 처음 서울을 방문했을 때 본 대단지 아파트에 충격을 받아 저서 <아파트 공화국>을 쓰면서 아파트가 그 거대함을 어떻게 확장해 나가는지 방식을 이렇게 분석했다. “현대화의 매개체 또는 수단이며 상징”인 한국의 아파트는 동시에 “재화”이고 “어떤 의미에서 투기의 목적”이라는 이야기도 책에 담았다.

이방인의 눈에도 목격된 아파트의 ‘욕망’은 결국 단지 밖 사람들을 배척하는 촉매가 돼 이곳을 섬처럼 고립시켜버리기도 한다.

경향신문 자료사진.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진 서울 영등포구 한 아파트의 주민 안내문을 보면 아파트 안팎의 괴리감이 뚜렷해진다. 이들은 인근에 새로 지어질 청년임대주택을 ‘5평형 빈민아파트’라고 규정하며 ‘아파트 가격 폭락’ ‘아동, 청소년 문제, 불량 우범지역화 우려’에 따라 막아야 한다고 했다. 도시의 주거빈곤층이 된 청년들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하는 주택에 ‘빈민’이라는 수식어가 붙자 비판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다. “집값은 (어른들이) 폭등시켜 청년들이 주거 안정이 되지 않아 집이라도 구해주려는 것인데…”(@by***), “청년혐오다. 언제부터 청년이 슬럼가를 형성하고 질이 나쁜 존재였나. 자신들의 청년 시절도 그랬나”(@se***). 논란이 커지자 해당 안내문을 떼어냈지만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까지 되돌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 건’이라는 제목의 안내문. 페이스북

경기 남양주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택배차량의 진입을 금지했다. 택배차에 주민이 치일 뻔한 사고가 발단이 됐다. 단지에는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 지상 차량을 통제한다는 공문이 붙었다. 사실상 집 문 앞까지 접근할 수 없게 된 업체들은 정문에 물건을 놓고 가거나 이곳을 ‘배달불가 지역’으로 지정해 맞대응하면서 갈등이 커졌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택배가 쌓여 있다. 이 아파트 단지는 택배 차량 지상 진입을 통제하고 정문 근처에 주차 후 카트로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지만 택배 업체들은 아파트 정문 인근 도로에 택배를 쌓아두고 가는 방식으로 맞서면서 갈등을 빚었다.연합뉴스

아파트 측은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와 택배함에 놓고 가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차고가 높은 택배차량은 지하로 진입할 수 없다. 그러자 “차량을 바꾸면 된다는 주민도 있던데 기사가 자기 차량을 택배회사와 계약을 맺고 배달하는 구조에서 차까지 개조하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며 “2500원(택배비)의 갑질”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또 차 대신 수레로 택배를 가지고 온다면 된다는 주민에 대해선 “안전을 우려해 차량 진입을 막는다면 집 앞까지 택배가 도착하지 않는 불편은 주민들이 감수해야지 불편함은 택배기사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서울 강남 및 동부이촌동, 경기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서는 ‘우리 아파트를 싸게 내놓지 마라’ ‘싸게 팔면 매물을 주지 말자’며 부동산 중개업소를 압박하다 법적 분쟁으로 번지는 일도 일어났다. ‘내 아파트의 품격’을 항한 결연하고 강렬한 욕망이 이제 사회 갈등이 되는 수위에 다다랐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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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사학재단스캔들로 검찰의 추적대상이 된 것이다. 아사히신문의 3월 여론조사에 의하면 아베내각 지지율은 31%로 급락했으며, 아베의 퇴진을 외치는 집회가 연일 열리고 있다. 우파의 아이콘으로 건재하던 노회한 정치가에게 위기가 닥쳤다. 그는 이번에도 상황을 반전시킬 돌파구를 찾아낼까. 일본을 쥐락펴락하는 아베정치의 탄생배경을 알아보자.

세습문화의 특징은 장인정신에 있다. 조상의 직업을 물려받아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장인의 삶을 이어간다. 음식, 운동, 예술 분야에서 이러한 세습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아베 역시 마찬가지로 삼대로 이어지는 정치가문의 유산을 톡톡히 받은 인물이다. 여기에 세습문화를 자랑스레 여기는 일본의 사회분위기가 맞물려 아베라는 정치거물이 탄생한다.

학생 시절 아베 신조는 유순한 성향을 가졌지만 정치토론에서만은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당연히 아베의 자서전에서는 후자의 이미지만을 강조하고 있다. 토드 로즈의 신간 <평균의 종말>은 사회에서 평균적인 인간의 유효성만을 맹신한다고 비판한다. 인간의 복잡성을 평균치에 억지로 짜맞출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아베 신조는 평균치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성장했다.

“가벼운 남자가 아니었다. 실로 무게가 있는 사람이었다. 권력에 아첨하는 짓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의 길을 쭉 밀고 가는 사람이었다.” 이는 비리사건의 주인공 아베 신조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책 &lt;아베 삼대&gt;에 등장하는 그의 친할아버지 아베 간에 대한 지인의 평가이다. 그래서일까. 아베 신조는 반골 평화주의자였던 아베 간에 관한 언급을 아낀다. 정치적 수혜는 입었지만 자신과는 가치관이 다르다는 연유에서다. 중의원을 역임했던 아베 간은 1946년 5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3년 후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는 아들 아베 신타로는 신문사 정치기자로 입사한다. 이후 정치인의 딸과 정략결혼하는 아베 신타로. 아버지와 장인의 후광을 업은 아베 신타로는 친한파 정객으로 활동하면서 63세에 자민당 간사장에 취임한다. 그는 아들 아베 신조를 자신의 정치비서로 전격 채용한다.

그렇다면 세습문화의 단점은 무엇일까. 양지바른 장소에서 바르게 자란 화초는 겉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비바람을 동반한 악천후가 닥치면 쉽게 뿌리가 드러나는 한계를 노출한다. 모양 사납게 엉겨붙은 잡초의 성장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서민현실에 대한 이해도가 심각하게 떨어지는 정치인의 상당수가 세습정치의 적자가 아니었던가. 대학 졸업 후 직장과 미국 유학생활을 맛본 아베 도련님은 정치가문의 길을 택한다. 문제는 자신의 친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정치관을 장착했다는 데 있다. 아베가문이라는 이름만으로 정치활동을 손쉽게 시작했다고 치자. 2대가 이뤄놓은 150억원에 달하는 정치후원금도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정치초년병 아베 신조의 백지와 다름없는 뇌구조였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유명정치인일 뿐 정치 자체가 아니었다.

작금의 아베는 ‘아름다운 일본’을 외치던 10년 전의 나약한 정치인이 아니다. 2012년 12월 자민당의 거두로 다시 태어난 아베 신조. 그는 2차대전 패망 후 미국이 관여한 평화주의 헌법을 갈아치우는 데 주력한다. 자민당은 2018년 3월25일 자위대 보유를 명문화하는 문구를 삽입한 개헌안을 당대회에서 표명했다. 대한민국 독도와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아베는 억지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노가미 다다오키는 정치란 최고권력자의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A급 전범이었던 외조부를 존경한다는 아베 신조. 순혈주의가 유별난 섬나라의 침략 역사. 그들만의 공동체에서는 늘 새로운 희생양이 필요한 것일까. 일본은 아베라는 유령을 전면에 내세우고 전쟁국가로 회귀하려는 미혹에 빠져 있다.

아베라는 이름의 유령이 일본 안팎을 떠돈다. 군국주의라는 붉은색 유령이.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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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백화점 앞을 지나가다 보면 유명 브랜드들을 접하게 된다. 호기심에 백화점에 들어서면 명품 화장품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대부분 글로벌 외국 기업의 제품이다. 샤넬, 에스티로더, 랑콤, 디올, 시세이도, 클라란스, 록시탕 등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다.  국내 백화점에는 미국과 프랑스에 본사를 둔 화장품 4사 브랜드 매장 수만 950개 정도 된다.

특히 샤넬은 70여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전체 직원이 1100명을 넘는 대기업이다. 샤넬이 국내에 진출한 지는 벌써 30년이 다 되어간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을 자처하는 샤넬의 경영전략은 지탄받아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인권 침해와 불성실한 노사관계 인식을 지적해야겠다.

10여년간 회사 매출은 지속적으로 성장했음에도 노동조건은 매우 열악한 상태다. 매장 판매직 5명 중 1명은 비정규직이며, 최저임금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 2018년 1년차 신입 직원의 통상임금을 확인해보니 월 170만원에 불과했다. 샤넬 매장 직원 10명 중 7명이 최저임금 수준이라니 누가 믿겠는가. 게다가 현재 초과근무 수당 미지급 문제가 불거져 소송까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백화점 매장의 노동현실은 더욱 암울하다. 3년 전 국가인권위원회의 유통업 실태조사 결과 중 샤넬 내용은 충격적이다. 1주일 51.3시간 근무, 연차휴가 사용일 4.6일, 신입 직원 퇴사율 40%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년 동안 몸이 아파도 매장에 일할 사람이 없어 출근한 경험이 67.8%나 되었다. 최근에는 임신 여성의 단축근무가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산한 직원도 있다고 한다. 지난 10년 동안 현장에서 육아휴직을 사용한 직원은 10명도 채 안된다고 한다. 회사 규정과 업무 수칙은 더욱 황당하기만 하다. 손톱 길이부터 머리 모양과 색상까지 엄격하게 관리 지침으로 두고 있다. 아침에 메이크업부터 머리 모양까지 규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최소 30분 일찍 출근해야 한다.

기업의 고속 성장 그늘 속에 묵묵히 일했던 여성들. 지금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백화점 샤넬 매장에 가면 낯선 복장의 판매원을 접하게 된다. 평소 같으면 검은색 유니폼과 짙은 화장의 직원을 접할 수 있지만, 지금은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있다. 바로 옆엔 “저희는 지금 쟁의행위 중입니다”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노동조합이 파업 중임을 알리는 팻말이다. 지난 4개월간 노사협상에서 월 6000원, 연간 7만2000원의 차이를 회사가 수용하지 않아 파업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샤넬이라는 기업이 고작 1년에 1인당 7만원의 비용을 감당 못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샤넬은 연간 매출액이 약 1700억원으로 동종 업계 1위 브랜드다.

최근 파업 기간 중 일부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회사가 노조 탈퇴를 종용한 것이다. 회사는 지난 9일 노조 탈퇴자 소수를 대상으로 호텔에서 임금설명회를 개최했다. 노조 탈퇴자들은 소위 좋은 매장으로 올해 초 인사 이동된 바 있다. 노사 교섭과 파업 중에 흔치 않은 일이다. 회사가 노동조합의 조직 및 운영에 지배·개입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행히 노동부 근로감독관과 노조가 현장을 확인하고 법적 절차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부당노동행위일 가능성이 농후한데 위법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최근 언론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밝혀진 삼성처럼, 샤넬의 ‘노조 와해’ 시나리오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샤넬은 국내 최고의 ㄱ로펌이 법률 대리를 맡고 있기에 이런 추측을 해본다.

자국에서는 노동자 권리를 공화주의 정신처럼 중시하면서도, 정작 우리나라 국민의 헌법적 권리는 무시하는 샤넬의 오만한 태도를 묵과해서는 안된다. 촛불혁명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국정과제로 채택한 바 있다. 최근 정부의 헌법 개정안에는 국민의 ‘기본권’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글로벌 샤넬의 민낯을 보고 있다. 전국 백화점 샤넬 매장 앞에 “고객님도 응원해주세요”라는 샤넬 노동자들의 팻말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야 할 이유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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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최고 난제인 대학입시 개편과 저출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른바 ‘서울대 입학 보장 출산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실망감, 교육부란 정부 조직이 과연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제도 발상의 단초였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이 제도를 도입하면 노인 복지, 교육 양극화 해소, 부동산시장 안정 등의 효과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제도는 간단하다. 자녀가 없거나 하나·둘인 가정은 해당 사항이 없다. 셋째 이상 낳는 가정에 혜택을 준다. 구체적으로 셋째 아이는 지방 거점 국립대와 ‘인(in)서울’ 대학 입학을 보장한다. 넷째는 연세대나 고려대 입학증을 준다. 다섯째는 서울대 입학을 허가한다. 다음 순서 아이는 취업 부담까지 덜어준다. 여섯째는 의·치대 입학 우선권을 주고, 일곱째는 공무원으로 임용한다. ‘먹튀’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조건이 붙는다. 대학 입학과 공무원 임용 특혜를 받은 사람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 부모를 모시지 않거나 불효를 저지르면 즉시 자격을 박탈한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학입시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하고 있다. 교육부는 국가교육회의에서 선발 방법, 선발 시기, 수능 평가 방법 등에 대해 숙의·공론화하고 그 결과를 제안해 줄 것을 요청했다. 강윤중 기자

이 제도는 복잡다단한 입시를 단순화했다. 수시와 정시모집 비율을 어떻게 할지,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절대평가를 도입할지 말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또 역대 어떤 입시제도보다 공정하다. 유일한 변수가 부모의 출산 노력이다. 집안의 경제력이 자녀의 진학과 취업에 영향을 주지 못하므로 교육을 통한 부의 대물림도 사라진다. 수십년 쌓인 교육 폐단도 일거에 해소된다. 당장 서울대를 정점으로 하는 대학 서열화가 무너진다. 집안의 다섯째들이 주로 다니는 서울대는 부모 봉양 의무를 진 학생들이 ‘실버’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일종의 특성화 대학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높은 교육열에 편승해 땅 짚고 헤엄치기식 경영을 하며 몸집만 불려온 대학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다. 교수들도 마찬가지이다. 평범한 장삼이사들을 인재로 키울 수 있는 교수만이 국립대와 연·고대에 재직할 수 있다. 10대 중·고교생들을 무겁게 짓눌러온 경쟁의 부담이 대학과 교수들에 넘어간다고 생각하면 쉽다. 기업의 채용 문화도 달라질 것이다. 특정 대학 출신자에 가산점을 주기 위해 전국의 대학을 13등급으로 구분한 하나은행 같은 곳은 경쟁력이 떨어져 문을 닫아야 한다.

새로운 제도하에서 사교육은 의미가 없다. 사교육 시스템이 무너지면 학원이 밀집한 서울 강남과 목동의 아파트 가격 거품은 저절로 꺼진다. 부동산 값을 억누르기 위해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민들에게 엄포를 놓을 일도 없고, 금융당국이 복잡한 대출 제도를 만들 필요도 없어진다. 김상곤 부총리가 시세보다 낮게 대치동 아파트를 팔았다지만 집값이 폭락하면 결과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다.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사교육비가 효과적으로 소비되면 3조9000억원짜리 추가경정예산의 국회 통과에 목을 매고 있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고민도 줄어들 것이다.

지난해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은 1.05명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30년 뒤 인구는 절반으로 준다. 장담하건대 정부가 제도 검토 계획만 내비쳐도 출산율이 솟구칠 것이다. 10년쯤 지나면 1950~1960년대 베이비붐 때처럼 5~7명씩 아이를 낳는 가정이 이곳저곳에서 나올 것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끊긴 시골 마을에도 생기와 활력이 돌고, 입양아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주면 버림받고 학대받는 어린 영혼들이 사라질 것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돈이나 권력보다 부부간의 금실, 형제·자매간 우애, 부모에 대한 효도 등이 매우 중요한 가치가 된다. 여러 명의 자녀를 양육하려면 성 평등, 일·가정 양립, 워라밸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존재 자체가 기쁨인 자녀가 노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 고령화로 인한 노인 부양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된다. 어린이와 청소년도 행복해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은 다양한 체험 활동과 독서로 즐겁게 지내고 공부는 대학에 가서 하면 된다.

황당한 얘기라고? 하지만 지난 10여년 출산을 늘리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수많은 대책을 냈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예비고사·학력고사·대학수학능력시험 등으로 입시 제도를 숱하게 바꿨지만 교육 경쟁은 여전하고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정책이 아니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정책이 반드시 지속 가능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정책 중에서도 예산 부족 등으로 지속성이 의심스러운 것들이 많다. 인구가 너무 늘면 어떻게 하느냐고? 이 문제는 그때 닥쳐서 생각하면 된다. 한국의 제도는 대증적 처방과 조변석개가 특징 아니던가.

<오창민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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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노(John Snow)라는 평범한 이름의 의사가 있다. 조지 R R 마틴 원작으로 용이 불을 뿜는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 존 스노(Jon Snow)와는 철자 하나만 다르다. 스노는 19세기 빅토리아 시기 영국의 다른 의료계 명망가와 달리 요크셔 노동자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런던 대학에서 의학사 및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외과의사로 개업했지만 에테르와 클로로포름을 이용한 마취 실력으로 더욱 유명했다. 1853년 봄에는 여덟째 아이를 출산한 빅토리아 여왕의 클로로포름 마취를 담당해 최고의 명의로 신분 상승을 이뤘다.

스노는 마취와 관련된 업적만으로도 의학의 역사에 당당히 이름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그의 지적 탐색 능력이 최고로 발휘되어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야는 역학과 공중보건학이다. 1840년대 말 영국은 콜레라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당시는 콜레라의 원인에 대해 각종 이론이 난무했다. 콜레라가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지는 과정에 감기처럼 매개체가 있을 것이라는 감염론과 비위생적인 공간에 가득 찬 독기(miasma) 때문이라는 독기론이 맞섰다. 에드윈 채드윅이나 윌리엄 파와 같은 공중보건 전문가조차 미신과도 같은 독기론을 지지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스노는 1848년 콜레라 자료에서 뚜렷한 특징을 발견하고 정체 모를 매개체를 통해 옮는다고 생각했다.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의 배설물에 직접 접촉하거나 배설물에 오염된 물을 마셔 생긴다고 믿었다. 감염론을 입증하기 위해 스노는 콜레라가 발생한 빈민촌을 꼼꼼히 조사해 증거를 모았고 런던에 식수를 제공하는 회사의 자료를 모았다. 두 자료를 취합해 스노는 특정 상수회사의 상수도가 오염돼 콜레라 발생이 높다는 가설을 세우고 콜레라가 유행한 브로드가의 펌프를 제거하여 사망자를 줄이는 역사적 성공을 거뒀다.

역학은 개별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임상의학과 달리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질병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찾는 의학의 한 분야다. 스노의 업적은 현대적 의미의 역학 조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모범 사례다. 콜레라 대규모 유행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감염 경로와 원인을 밝혀 콜레라 감염에 대한 새로운 이론과 분석 기법을 창안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콜레라 감염의 원인균인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를 스노가 뇌졸중으로 사망한 지 25년이 지난 1883년에야 독일의 병리학자 로베르트 코흐가 확인했다는 점이다.

150년 전 런던이 직면했던 상황처럼 깨끗한 물을 구하기 어려운 도시 빈민가도 여전히 많다. 안전한 마실 물이 없는 인구가 11억명이 넘고, 상하수도와 같은 공중 위생 서비스를 못 받는 사람이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인 약 30억명이다. 콜레라와 같은 감염성 질환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만 해도 매년 200만명이다. 새로운 지적 탐색에 열정적이었던 스노가 오래 살았다면 콜레라가 아닌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스노의 업적으로 공중 위생 운동은 전기를 맞았다. 생전 스노의 감염론을 격하게 반대했던 채드윅의 공중 위생 개선 주장은 역설적이게도 스노의 업적 이후 한층 강화된 제도로 안착했다.

21세기 세계의 거대 도시는 19세기 런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공중 위생 상태가 개선됐다. 감염병학과 쓰레기 관리 기술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관련 전문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스노가 브로드가에서 집집마다 확인하여 작성한 지도를 지금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컴퓨터 화면에 지도로 그려낼 수도 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인플루엔자 발생에 대한 보고서를 매주 업데이트하고 다양한 도표와 지도로 제공하고 있다. 구글이 개발한 플루 트렌드는 전 세계 구글 이용자들의 검색 데이터베이스를 가공하여 인플루엔자 확산 현황과 예측 정보를 만들고 있다. 현대 역학의 주된 접근 방법은 19세기 중반 스노의 활동처럼 희생자 개인의 이력과 접촉한 사람을 찾아 정보를 얻는 일이다. 2015년 메르스 유행 당시 역학 조사관은 메르스 감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폐쇄회로TV에 찍힌 비디오파일과 카드 사용 내역까지 분석했다. 질병 확산을 이해하고 예측하는 데 이용하는 많은 수학적 모형은 다수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접촉하는 상황만을 가정하고 있다. 개인이 서로 어떤 식으로 접촉하는지 보여주는 현실적 모형이 없고, 수많은 대중의 이동을 모형화하는 데 필요한 기술과 계산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2004년 로스앨러모스국립연구소 연구진은 고성능 슈퍼컴퓨터 클러스터와 애초 도시계획 용도로 개발한 트랜심스(TranSimS)라는 모형을 활용해 몇백만명을 대상으로 개인 간의 접촉을 모형화한 역학 시뮬레이션 모형 에피심스(EpiSimS)를 개발했다. 에피심스에서는 가상의 병원균을 인구집단에 퍼뜨려 병원균이 퍼져나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여러 대응조치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이 퍼지는 과정에 사회 연결망 구조를 포함시키자 질병이 지수적으로 급속히 확산된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모의실험을 통해 질병 확산 중단은 어떤 대응조치를 선택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대응조치를 발동할 것인가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됐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가트너는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의 형상, 성질, 상태 등의 정보를 사이버세계에 동일하게 구현하는 개념인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2018년 10대 전략 기술로 선정했다. 2014년 말 싱가포르는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시작해 도시를 3차원으로 모사한 도시 가상화 모델을 만들어 공개할 예정이다. 2048년 미래 도시에 발생한 신종 감염병 역학 조사를 맡은 존 스노(Joan Snow)는 아마도 의학·보건학 전공자가 아니라 프로그래밍에 능숙한 데이터 과학자일 것이다.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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