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각성, 전환. 첫 학기가 끝나가는 6월 중순이면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단어다. 십대의 대부분을 입시 지옥에서 허덕여온 대학 새내기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아닌가라고 자문할 때도 있다. 경쟁이 유전자에 박힌 학생들에게 모둠 활동을 권유하는 것 자체가 무모한 시도라는 지적이 없지 않다. 상대평가와 서열화를 그대로 두고 무슨 교양교육, 시민교육이냐는 비판도 여전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없다. 법과 제도를 탓한다고 해서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학생들의 식습관을 조사 분석해보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기초글쓰기 교과에서 웬 음식 이야기냐고 의아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글쓰기는 1학년 때 이수해야 하는 기초(‘나를 위한 글쓰기’)와 2학년 때 듣는 심화(‘대학 글쓰기’)로 이원화돼 있다.

기초글쓰기 역시 둘로 나뉜다. 중간고사 전까지 자기를 성찰하는 글을 쓰고 기말고사 전까지는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글을 쓴다. 한 학기 동안 A4 한 장 내외의 에세이를 6~7편 쓰는데 매번 주제가 제시된다. 생애 최고의 순간, 잊을 수 없는 장소와 같은 테마를 붙잡고 지나온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어 학생들의 시야는 한국사회의 문제점, 우리가 원하는 미래로 확대된다. 자기성찰 글쓰기가 감정 표현에 비중을 둔다면 학기 후반부 사회적 글쓰기는 관점과 논리를 강조한다.

굳이 거론할 필요도 없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이유는 얼마든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고교에서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 글쓰기를 전공한 교사도 없고 전문적인 양성 프로그램도 없다. 둘째는 독서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그래서 문해력과 창의적 사고력이 바닥 수준이다. 글쓰기에 관한 한 유리한 환경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하나 있다. 학생들이 ‘나쁜 글쓰기 습관’에 전혀 물들지 않았다는 것!

기초글쓰기는 전략과 기술을 우선하지 않는다. 자기 안에 있는 이야기를 스스로 끌어냄으로써 글쓰기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것이 일차 목표다. 학생들은 자기 안에 쌓여 있는 많은 이야기와 직면하면서 놀라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힘이 관계의 (재)발견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자기를 성찰하는 글을 쓰면서 관계의 주체로 거듭나는 학생들의 내면에는 조금씩 자존감이 고인다. 이때쯤이면 얼굴빛이 바뀌고 서로 친밀해진다.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식습관 분석 활동의 정식 명칭은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음식과 산업문명’. 기말고사 3주 전에 조별 활동에 들어간다. 첫 주에는 일주일간 자신이 먹는 음식을 모두 기록해 식습관 패턴을 확인하도록 한다. 학생들의 식습관은 별 차이가 없다. 집에서 다니거나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은 큰 문제가 없지만 자취생들은 열악하다. 채소와 과일을 가까이하지 못한다. 대다수 학생들이 육류와 밀가루 음식을 선호하고 커피를 즐겨 마신다. 참, 술도 많이 마신다.

둘째 주에는 조별로 닭, 돼지, 밀, 커피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 가공되고 또 어떻게 유통, 소비되는지를 조사 분석한다. 이때 몇 가지 주문을 한다. 반드시 관련 저역서와 논문, 대중매체를 참고하라고 한다. 셋째 주에 조별로 조사 분석한 결과를 발표한다. 조별 발표가 끝나면 각자 주제를 정해 에세이를 써서 제출한다. 학생들의 글은 충격과 분노를 거쳐 반성과 각오로 귀결된다.

가령 닭의 평균수명이 10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그런 닭을 불과 5주 만에 잡는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닭이 스트레스를 못 이겨 옆에 있는 닭을 쪼아대기 때문에 부리를 자른다며, 닭이 A4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서 ‘평생’을 보낸다며 분노한다. 우리나라 연간 닭 소비량이 1인당 20마리에 달한다며 “덜 먹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좌절감과 수치심을 느꼈다. 스스로 ‘인간 닭’이 되지 말자고 다짐했고 사회의 이면을 파악하는 눈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의 구조와 작동 방식을 읽어낸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지구 생태계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목격한다. 우리 몸이 왜, 어떻게 시장전체주의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동물복지, 유기농, 협동조합, 공정무역, 식량주권 등 다양한 대안을 내놓는다.

나는 학생들의 분노가 곧장 삶의 방식의 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섣불리 낙관하지 않는다. 기업이 생산력 제일주의를 스스로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국가(들)와 (국제)정치가 대오각성해 지속가능성을 정책 제1순위에 올려놓을 리도 만무하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가 시민으로 거듭난다면 달라질 수 있다. 시민의 목소리가 커지면 바뀐다. 촛불이 그랬듯이.

나는 식습관 분석 활동이 모든 학교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 매일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산업문명의 ‘뿌리’를 미래세대가 마주하길 바란다. 우리 몸으로 무엇이, 어떻게, 왜 들어오는지 알게 된다면 전환이 가능하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라고 물어보자. 생각하고 표현하는 시민, 이웃과 함께 지금과 다른 미래를 상상하는 시민은 그때 탄생할 것이다. 멀리 가지 말자. 식탁에서, 교실에서 시작하자.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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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출판인들은 맨날 아프다고 비명인가. 희망이 없다고 아우성인가. 이 환자병 의식을 바꾸어야만 출판산업의 미래가 있다고 한 출판인이 말했다. ‘단군 이래 불황’은 출판계 입문 때부터 들어온 진부한 말이긴 하다. 그러나 현실은 진부함 속에 실감나게 담겨 있는 법. 지식과 정보와 감동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출판은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과 연계된 출판, 디지털화한 텍스트 그리고 독자의 감수성을 높이 사는 아날로그형 출판, 일관된 논지를 매력적으로 펼치는 강의형 저자의 인문서 등은 시장을 만들어가면서 출판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전체 산업의 시장이 좁아진다고 표현했지만 새로운 인접 시장이 커진다고 말할 수 있다.

출판계에 들어와서 놀랐던 점은 업계에 정보가 넘치는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일어난 특이한 사안은 다음날 바로 퍼져나간다. 근본적으로 출판인은 호기심이 많고 정보에 민감하긴 하다. 이 넘치는 정보를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례도 있다. 한 권의 책은 독과점 상품이기에 경쟁 상품은 없다. 아니 오히려 한 권의 책이 잘 팔려나가며 활성화되면 다른 책도 팔리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 그래서 경쟁 없는, 각각 고유의 책을 만드는 출판인들은 서로의 제작 후기나 영업 노하우 같은 것을 서슴지 않고 공유하려 한다.

최근에는 기획도 공유하고 집행을 함께하는 재미있는 사례도 있다. 작은 출판사 셋이 모여서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것이다. 시리즈란 일관된 형태로 완간을 목표한 기획 편집 출판물인데, 하나의 출판사가 아닌 세 출판사가 &lt;아무튼&gt; 시리즈를 만들어가고 있다. 책 표지의 출판사 이름을 보지 않아도 이 시리즈를 즐길 수 있고, 세 출판사가 출간하고 있으니 규모가 작은 하나의 출판사가 냈을 때보다 출간 속도가 빠르다.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 셈이다. 세 출판사는 서로 상생을 모색하기 위해서 기획의 기본 요건을 논의하고 자유롭게 책을 내고 있다고 한다. 매력적인 산업의 융통성이 발휘되고 있다고나 할까.

내가 일하는 마음산책도 작년 봄에 두 출판사와 머리를 맞대고 이벤트성 출간을 시도했다. 책 제목과 저자를 포장지로 가린 채 세 출판사의 이름을 붙인 ‘X북’을 출간한 것이다. 이 이벤트를 벌이게 된 배경은 이러하다. 재미있게 독자에게 다가가자. 제목과 저자를 보고 고르는 구매의 정석 행위를 배반하는 방식으로 흥미를 던져주어 책에서 멀어지는 독자의 호감을 사보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판매도 좋았지만 표지를 가린 채 판매한 기간 동안 제목과 저자를 알아도 함구해달라는 세 출판사의 요청에 독자가 응한 것이다. 무려 3주일 동안 비공개 상태로 책이 2만부 이상 팔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3주 이후엔 더 이상 포장지를 씌우지 않았지만, ‘바로 그 이벤트 책’이었다는 입소문 때문에 꾸준히 팔리는 즐거움을 맛보았다.

올해 또 세 출판사가 작년과는 다른 형태의 ‘2탄’을 시도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선별해 국내 초역으로 동시에 출간한 것이다. 소설과 산문, 편지를 각각 동시에 출간한 것은 기획부터 편집까지 온갖 에피소드를 만들어냈다. 세 권의 책은 판형과 본문 편집, 표지 디자인에 일관성이 있다. 동시에 출간하는 데 의미도 있지만 하나의 시리즈를 만들어냈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둔 것이다. 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했다면 책의 메시지와 가치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세 출판사가 시리즈처럼 출간함으로써 작가를 새롭게 조명하는 면모와 독자와 즐겁게 만나려는 책 출간을 둘러싼 스토리텔링을 갖게 되면서 매력적인 지점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이제 출판은 시장의 불안정성 속에 창의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어려움 한복판에 있다. ‘단군 이래 불황’의 진부한 표현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독자와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책 자체에 의미 변화가 필요하다기보다 독자가 책을 만나는 방식에 새로움이 필요하다. 세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고 시리즈를 만든 것은 꾸준히 출판하려는, 완창하고자 하는 무대에서 기운과 흥을 북돋는 추임새와 같은 것이다. 읽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즐겁게 불러일으키는 것, 책을 구매하는 것으로 그 즐거운 이벤트에 동참했다는 어떤 뿌듯함이 생길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건강하지 못한 게 아니라 여러 상황으로 환자로 되어버린 출판은 어떻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나. 노력은 작은 데에서, 이를테면 몸을 살리는 운동 같은 데서 시작할 수 있다. 진부함을 버리고 조금 새롭게, 추임새를 넣는 방식을 찾고 싶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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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이문재(1959~)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든 것의 처음은 사소하고 미약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부터 쌓이고 쌓인다. 쌓여서 육중한 무게와 너른 넓이를 만든다. 쌓이면 누구도 꺾을 수 없다. 다발과 묶음과 무더기는 어떤 힘도 견뎌낸다. 마치 서로 의지한 갈대 묶음을 힘센 사람도 쉽게 부러뜨릴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여기가 맨 끝이라고 여기는 때가 맨 처음이다. 끝은 맨 앞이다. 끝에서 생겨난다. 실뿌리에서 생겨나 잔가지와 우듬지가 된다. 새순에서 생겨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아, 이제 이곳이 끝이구나라고 자신을 아주 허물어버리지 않는다면 거기 그때가 맨 앞이 된다. 그리고 매 순간 놀랍고, 기적과도 같은 진전이 이뤄진다.

개개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낱낱의 존재들이 동일하게 소중하다. 이문재 시인은 시 ‘어떤 경우’에서 “어떤 경우에는/ 내가 이 세상 앞에서/ 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 세상 전부가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다”라고 썼다. 우리는 모든 경우에 한 사람이고, 한 세상이고, 맨 앞이고, 당당한 정면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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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는 국민들의 신뢰를 먹고 산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존립할 수 있는 근거는 오직 공정한 재판을 통해 쌓아올린 국민들의 신뢰뿐이다. 진정한 사법부의 권위도 높은 법대 위의 판사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재판들이 켜켜이 쌓여 형성된 국민들의 신뢰 속에서 세워진다. 국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대는 언덕이 사법부다. 그런 사법부에서 일어난 이번 사법농단 사태이기에 국민들이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이 그만큼 더 큰 것이다.

1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5월25일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3차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법관 사찰의 정황들이 지난 2차 조사결과 발표 때보다 더 구체적으로 확인되었고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판결들을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았다는 의혹을 살 수 있는 여러 정황들도 추가로 더 많이 나왔다. 특별조사단의 조사로 지금까지 밝혀진 사법농단이 크게 ‘법관 사찰’과 ‘재판거래 의혹’ 두 가지라면, ‘법관 사찰’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증거 확보가 된 셈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보면, 문건 정리와 작성을 시킨 것 자체가 형법상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이미 판시했기 때문이다. 문건에 언급된 판사들에게 어떤 인사상 불이익을 줬는지는 직권남용죄의 성립과 관련이 없는 사항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재판거래 의혹’이다. 이 ‘재판거래 의혹’ 부분 때문에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금요일인 6월15일까지 법원의 입장 표명을 미루고 3주간이나 경청과 장고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다. 3차 조사결과 발표 다음 날 김 대법원장은 검찰 고발이나 수사 의뢰까지 고려대상으로 삼겠다고 공언한 후 법원 내·외부의 의견 수렴에 들어갔고, 그 결과 고발이나 ‘수사 의뢰’에서 후퇴한 ‘수사 협조’의 입장을 최종적으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주목할 점은 의견수렴 과정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는 법원 내부의 입장이 검찰 고발 여부를 놓고 노·소장 판사들 사이에서 분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김 대법원장도 담화문에서 “미처 해명하지 못한 의혹들에 대한 외부기관의 수사를 요청하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사법부에 대한 무분별한 수사로 사법부의 독립과 신뢰가 또다시 침해되는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사태를 법관들만의 문제로 보고 법원 자체적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일부 고위법관들의 인식은 이번 사태로 충격과 실망을 느끼는 다수 국민들의 인식과 크게 동떨어져 있는 듯하다. 이미 재판거래에 관한 ‘의혹’만으로도 국민들의 사법부 신뢰는 상당 부분 무너졌다. 또다시 더 무너질 신뢰가 별로 남지 않았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음을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대법원장의 담화문 발표 직후에 같은 날 있었던 대법관들의 입장 발표 또한 국민들의 상황 인식과 간극이 크다. “재판거래 의혹에 대하여는 대법관들은 이것이 근거 없는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물론 대법원 재판을 믿어 달라는 말이겠지만, 이런 말로 재판에 대한 신뢰가 다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놀란 가슴을 달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설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이미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한 고발이 열 건이 넘는다. 재판거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어차피 수사가 진행되면 드러날 것들이다. 검찰은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증거들을 확보해야 한다. 수사에서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배제해야 한다. 검찰은 국민의 혈세로 사들인 최첨단의 디지털 포렌식 장비와 인력을 가지고 있다.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410개의 파일들뿐만 아니라, 이번 일이 터지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법원행정처에 의해 긴급 삭제된 2만4500개의 파일들도 모두 복구해 이번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봐주기 수사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법원이 아니라 검찰이 또 다른 위기를 맞을지도 모른다.

최근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사법부를 불신한다는 국민 여론이 64%이다. 성역 없는 철저한 수사와 기소, 그 후 이어지는 법원의 공정한 재판만이 이번 사법농단 사태로 허물어진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둘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국민들의 사법 불신은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갈지 모른다. 사법부의 존립 근거가 완전히 붕괴되는 상황 말이다. 이 일은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서두르지 말고 한발 한발 나아가자. 다시 말하지만 시작은 열지 못한 나머지 파일들을 복구하고 열어서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 지금은 진상규명에 화력을 집중할 때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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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에서 비행기로 이동수단이 발전하고 지구 반대편인 우루과이에서 한국으로 영상통화도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른 타국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도전이다. 가상체험과 같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함께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글로벌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초연결사회에 살고 있지만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그럴수록 ‘차별화된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저서 <축적의 길>에서 앞으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아니라 남들이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축적한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다. 미래일자리 전문가 칼 프레이 옥스퍼드대학 교수도 경험과 학습을 통해 체계화된 암묵지가 필요한 일자리는 4차 산업혁명 속에서도 안전할 것이라고 했다. 그런 차별화되고 풍부한 경험을 나만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충분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 지난해 베트남,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각각 6.8%, 6.7%로 우리나라의 2배가 넘었다. 인도네시아도 5%대를 달성했다. 해외취업은 글로벌 자산을 쌓을 수 있는 도전이며 특히 우리보다 경제성장률이 높은 나라에는 기회도 풍부하다. 인도네시아 두산찝따에 취업한 백용재씨는 더 큰 시장에서 기회를 창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해외취업에 도전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의 글로벌 통신회사 취업에 성공한 서세나씨는 영업대표로 근무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인턴 생활 후 국내의 핀테크 기업에 취업, 그리고 경력을 살려 다시 해외취업에 성공한 것이다.

과거에는 국내의 취업시장 여건이나 경제적 상황 때문에 해외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글로벌 경험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한 측면이 강하다. 각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정보기술의 발전과 함께 글로벌 노동시장의 개방범위는 계속해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기업 역시 글로벌 경험과 직관을 가지고 있는 인재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외취업은 열정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취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은 자신의 목표와 역량을 연계하여 성공할 수 있는 나라와 직업을 찾아야 한다. 공단이 운영 중인 해외진출정보사이트 ‘월드잡플러스(www.worldjob.or.kr)’와 서울과 부산의 해외취업센터를 활용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정부의 해외취업 지원프로그램을 통한 취업자 수는 매년 증가해 작년에는 5000명을 넘어섰다. 지난달 개최한 일본 해외취업전략설명회에는 800여명의 구직자가 몰려 일본취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드러냈다. 베트남에서 열린 현지 취업박람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일일 특별면접관으로 참여하여 해외진출을 통한 글로벌 역량개발을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 5월21일 코엑스에서 열렸던 ‘글로벌 일자리 대전’에는 일본기업 113개사 등이 참여해 한국의 청년 인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정부도 해외취업정착지원금 등 102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확보해 역점을 두고 있다.

지난해 해외취업자를 대상으로 공단이 실시한 설문결과를 보면 해외취업에 만족하는 이유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다’가 79.2%, ‘경력개발에 도움이 되었다’는 46.2%로 경험확대 측면에서의 답변이 많았다. 청년들은 해외취업 경험을 통해 금전적인 측면보다는 글로벌 역량을 쌓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어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공단은 올해 3월에 이들의 경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력관리시스템을 구축했다. 해외취업 경력을 국가의 자산으로 운영함으로써 해외취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글로벌 인재육성의 모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해외취업은 일자리 영토를 넓히는 동시에 청년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도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새로운 도전을 통해 삶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과 세계무대에서 리더로서 당당하게 활동하는 글로벌 한국 청년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국가경쟁력과 함께 대한민국의 위상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김동만 |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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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의 투표율은 ‘역대급’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야당을 심판하자는 민심은 더불어민주당의 압승, 한국당 등의 참패로 이어졌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그래도 대구·경북은 지켰다고 자위할지 모르나 대구·경북 지역의 균열도 만만치 않다. 이대로라면, 어디서든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이 민심을 통해 정확히 드러났다.

그동안 한국당, 바른미래당 등의 야당들은 그야말로 딴 세상 사람들 같았다. 역사적인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폄훼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개혁마저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민심을 거스르며 자기들만의 성에 갇혀 살았던 셈인데, 그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지방선거 결과가 알려주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당 같은 민심의 무풍지대가 한둘이 아니다. 제 밥그릇만은 절대 내놓지 못하겠다며 저항하는 검찰이 그렇고, 요즘엔 법원의 모습이 꼭 그렇다.

발단은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라는 자기들만의 숙원사업을 놓고 박근혜 정부와 어떻게 내통했는지 조금씩 밝혀지면서부터였다. 박근혜 정권에 조금이라도 부담되는 사건들이 있다면 대법원이 앞장서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는 거다. 재판 결과에 명운을 걸고 있는 숱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피해자들의 처지나, ‘법의 지배’와 같은 철칙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KTX 여승무원, 전교조 조합원, 제주 강정마을 주민과 경남 밀양 주민 등은 정교한 국가시스템에 의해 함부로 내쳐졌다. 피해자는 차고 넘칠 만큼 많다.

문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다. 법원행정처장이 조사단장을 맡은 셀프 조사로도 이 정도이니, 좀 더 객관적인 곳에서 들여다봤다면, 아마 더 흉측한 결과와 직면했을 거다.

이를테면 사건관계자에게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받은 판사에 대한 처리를 보면, 그동안 법원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있다. 양승태 시절의 법원행정처는 사건관계자에게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수십차례 받은 현직 부장판사의 비위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해당 판사는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고 멀쩡하게 법원을 떠나 변호사로 개업해 지금도 잘나가고 있다. 제 식구 감싸기도 이 정도면 ‘역대급’이다.

법원은 삼권분립의 한 축이지만, 선출직인 대통령이 지휘하는 행정부나 구성원 전원이 선출직인 국회와는 차원이 다른 조직이다. 민주적 정당성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법원은 뭔가 다를 거라는 믿음, 법을 전공한 사람들은 다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때로 판결에 승복할 수 없어도 시민들은 참아왔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보듯, 사람 목숨마저 쉽게 앗아버리는 사법살인을 저질러도, 그 막연한 믿음 때문에 법원을 존중하기도 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최종 가해자는 법원이었지만, 그 비난은 온통 박정희와 그의 비밀정보조직에만 쏟아졌다. 법원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이번에 산산이 깨져버렸다.

엄청난 일이 밝혀지고 있는데도 법원의 행태는 완전히 딴 세상 사람들의 것이다. 명백한 범죄가 양승태 대법원에서 자행되었고, 그 증거가 숱하게 쌓여있는데도, 판사들의 대응은 딴판이었다. 명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판사들은 연일 회의를 반복했다. 수석부장회의, 전국법원장회의, 대법관 간담회, 법관대표회의에다 외부 인사로 구성된 사법발전위원회까지 잇따라 열었다. 해법도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형사고발이 필요하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형사고발은 곤란하되, “형사절차를 포함하는 성역 없는 진상조사와 철저한 책임 추궁이 필요”하단다. 뿐만 아니다. 고위급 판사들은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와 문제 판사에 대한 탄핵이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양승태 본인과 양승태 시절의 법원행정처장들이 이미 법원을 떠나 탄핵할 수 없는데도 탄핵 운운하고 있다.

이런저런 회의만 열면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말을 아끼고 있다.

도대체 어떤 범죄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 그 범죄를 단죄하는 일이 여러 번의 서로 다른 회의를 거쳐야 하는 일인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동안 판사들은 시민들을 향해 준엄한 심판을 내려왔다. 사람에게 죄를 묻는 일에 과감했던 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 사람들이 정작 자기가 속한 조직의 범죄에 대해서는 시간을 끌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달래보려는 꼼수만 부리고 있다.

어쩌면 대법원장은 보다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지방선거의 살벌한 결과를 보니, 더 이상 버티다간 더 큰 조직적 위기를 자초할 거라 여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내리든 법원은 이미 틀렸다. 양승태가 틀린 것은 물론이고, 김명수도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 명백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연일 회의를 거듭했던 것은 마치 법원은 남다른 조직인 것처럼 여기는 오만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론을 달래며 돌파구를 찾으려는 꼼수를 모를 사람은 없다.

법원의 사활적 관건은 신뢰다. 판결을 믿지 못하면 결코 승복할 수 없다. 갈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법원의 판결에 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교과서에서나 봤던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세상이 될 것이다.

힘 있는 사람들이야 법이 없어도 살 수 있겠지만, 약자, 소수자, 아니 대부분의 시민들은 법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 없다. 법원에 대한 불신은 그래서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질 거다. 공동체가 붕괴되는데, 법원이라고 무사할 리 없다. 그러니 지금의 사태가 법원에는 절체절명의 위기다. 각종 인연으로 끈끈하게 엮인 법원이라지만, 그런 소소한 인연 따위에 조직의 명운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심각한 사태를 두고도 연일 회의만 거듭하는 법원이 안쓰럽다.

잘못이 있다면 어떤 잘못이 있는지 빠짐없이 밝혀내면 되고, 그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면 된다.

단순한 잘못이 아닌 범죄라면, 죄에 맞는 죗값을 치르면 그만이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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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지방선거 이후 진보 교육감들이 이번 선거에 이르기까지 계속 약진하고 있다. 2010년 6명, 2014년 13명, 2018년 14명의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불안하다.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이다. 진보와 보수, 경쟁과 협력의 가치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다. 국민 전체의 이해관계와 욕망이 얽혀있기에 부동산 문제만큼 풀기 어려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한번쯤은 진보의 약진이 꺾이고 보수의 반격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 학생인권조례, 무상급식, 혁신교육으로 대표되는 진보의 교육은 최근 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고 정체되는 느낌이다. 새로운 꿈을 꾸던 교사들의 실천이 학부모의 지지를 통해 시너지를 내지 못하고 민원과 학생안전, 학교폭력 문제에 포위되고 있는 상황이다. 삶을 통해 교육혁신을 꿈꾸던 교사들이 모여 학교 변화의 다양한 시도들을 했었다. 혁신학교를 이끌어가는 교사들의 고군분투가 있지만 지쳐가고 있고, 새로운 에너지원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이 점점 거세지고 있고, 갈등이 새로운 교육개혁 에너지로 승화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에 남을 2번에 걸친 남북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의 여파로 교육계의 이슈는 사라지고 대통령을 지지하고 평화의 노력에 발목을 잡는 야당과 보수세력을 심판해야 한다는 표심이 교육감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진보 교육감의 무능에 대한 심판이 주춤한 것일 뿐 없어진 게 아니란 점을 교육감 당선인들이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4년간의 새로운 기회를 주었으니 이 기간 동안 교육감들이 시대적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다음 선거의 결과가 결정될 것이다.

교육감마다 지역 상황에 맞게 혹은 선거기간 동안 국민들과 한 약속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시대적 과제가 각기 다를 수 있지만 현장 교사로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는 교육의 질 개선이다. 교육의 질 개선의 핵심은 ‘최소인의 최소고통’이다. 교육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학생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다. 4.5%에 해당되는 난독증이나 난독증 위험군 아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학교 밖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감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일들은 시·도 교육청 자치에서 시·군·구 교육청 자치로 발전해야 가능하다. 새로 당선된 기초자치단체장들과 시·군·구 교육지원청이 함께 지역의 학령기 청소년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돌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학교가 혁신지구로 발전해야 하고 혁신지구사업이 마을교육공동체의 핵심 사업이 되어야 한다.

둘째는 교육청 안에 존재하는 소위 전문직(교사 출신)과 일반직(교육행정공무원)의 갈등구조 해소이다. 교사 출신의 장학사나 장학관들과 교육행정공무원들 사이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어느 조직이나 파벌과 계파가 있지만 파벌과 계파를 서로 화합시켜 조직의 목표를 달성시키는 것이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교육청 안의 두 그룹 간 갈등이 심화되어 학교를 지원하는 조직인 사실을 잊어버리는 상황이다. 인수위 과정에서 대부분의 교육감 당선인들은 조직개편을 하게 되는데 이때 업무의 효율성과 학교교육의 지원이라는 사명보다는 두 조직 간의 갈등을 봉합하는 것이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

셋째는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과 학부모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학교교육의 권위주의가 상당히 해체되고 있다. 언제나 권위주의의 해체는 한번에 균형이 맞춰지기보다는 좌우로 비틀거리면서 전진하기 마련이다. 권위주의의 해체 과정에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경계를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위의 세 가지 제안은 교육감들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좋은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홍인기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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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성실하게 답변하겠습니다.” 2016년 11월6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기자를 노려보며 쏘아붙인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7년 3월21일 검찰 포토라인에 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무구한 표정으로 내뱉는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018년 2월26일 검찰청에 들어서던 안태근 전 검사장이 무심한 표정으로 내던진다.

“성실히 조사를 받겠습니다.” 2018년 5월28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석하던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포토라인에 서서 읊조린다.

한국 사회에 때아닌 ‘성실인’이 넘쳐나고 있다. 성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정성스럽고 참됨’, 한국어기초사전에는 ‘태도나 행동이 진실하고 정성스러움’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근데 성실인의 면면을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하나같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요리조리 저지르며 권력, 금력, 위력을 마구잡이로 휘둘러왔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성실을 다짐하고 나서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위기에 처하면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켜줄 보다 근원적인 문화 코드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이들이 활용하는 성실 코드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뉴스에 나오는 성실인을 볼 때마다 의문을 품곤 했는데, 지방대생 부모를 연구하다가 불현듯 성실 코드의 ‘한 기원’을 발견했다.

내가 연구한 지방대생 부모는 공교롭게도 차남과 딸이 대부분이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이들은 가부장의 권위에 짓눌려 살아왔다. 가부장과는 상호 공감을 바탕으로 한 쌍방향적 의사소통을 해보지 못했다. 차남은 형처럼 서울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다 된통 혼났고, 딸은 대학 보내달라고 졸랐다가 ‘지지배’가 쓰잘 데 없는 소리 한다며 지청구를 들었다. 울분이 솟구쳤지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성실하게 고된 노동을 하는 가부장을 보고 마음을 다스렸다. 게다가 무능한 가부장 탓에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집안 살림을 성실히 꾸려나가는 가모장을 보고 연민을 품었다.

자신이 존중할 수 없는 상황, 그럼에도 그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선택지는 두 가지. 상황에 적당히 관여하며 설렁설렁 살거나, 상황이 요구하는 정해진 규칙만을 따라 성실히 사는 것. 어릴 때는 반항심으로 ‘적당’히 살았지만, 부모에 대한 연민이 생긴 후부터는 ‘성실’히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하지만 부모처럼 되지는 않으리라. 경제 능력을 키워 진정한 가부장의 길을 가리라. 경제 능력이 있는 가부장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리라. 차남과 딸 모두 가족 밖 세상과 담쌓고 주어진 ‘가족인’의 삶의 행로를 따라 성실하게 살아간다.

온 가족의 성실을 발판 삼아 서울로 진출한 장남.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통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둔다. 기고만장 살다 어느 날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그제야 떠나온 고향의 성실 코드를 떠올린다.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지.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 봐봐. 가진 게 변변찮은데도 엄청 성실히 살았잖아. 하나씩 실타래가 풀려 지금은 나름 잘 살잖아. 나도 성실히 조사를 받다보면 살길이 열릴 거야.

현재 한국 사회에는 성실 코드에 기대어 위기를 벗어나려는 ‘예비 성실인’이 가득하다. 실제로 최근 검찰 포토라인에 선 유명 인사들은 하나같이 성실 코드에 의지한다. 그만큼 성실 코드가 지방사회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에서 문화적 호소력이 크다는 거다. ‘성실’이란 무엇인가?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묻지 않고 그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사는 것. 그게 개인에게 ‘자율’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책임’을 강제하는 조직 사회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방책이 아니다. 세상에 대해 ‘모르려는 의지’로 넋 놓고 살다보면 위법, 편법, 탈법, 불법, 초법을 일삼는 조직 사회의 우두머리에게 ‘직싸게’ 당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 참사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라. 이제 우리 모두 잠시라도 멈춰 서서, ‘가치론적 질문’으로 자신의 삶을 톺아볼 때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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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 청문회 취소되고 바로 검찰 조사 받는다면서?

- 어 그래. 나도 들었어. 의사가 증거를 공개했다지.

- 그런데 그거 공소시효가 지난 일 아니야?

- 아니래. 다른 일로 싸우다가 의사가 엿 먹이려고 확 불어버린 거래.

- 예전부터 소문이 돌더니 진짜였구나.

- 순진하긴, 당연히 진짜지. 아마 지금 떨고 있는 사람들 많을걸?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유전자 맞춤 아기가 제한적이나마 허용되기 시작하고서 채 10년도 안 지났다. 선천적으로 특정 질병에 취약한 유전자를 지녀 아이 갖기를 망설이던 부모들에게는 복음과 같은 조치였다. 집안 대대로 심장이 약하다, 간이 안 좋다 등의 얘기를 하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더 심한 유전병 때문에 아예 결혼조차 포기했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좋지 않은 유전자들을 미리 제거한 유전자 맞춤 아기로 2세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유전자 조작을 하는 과정에서 지능이나 신체 기능들이 남들보다 우수하도록 하는 편법이 틀림없이 나타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정부에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감독, 관리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매우 엄격한 절차와 인증 과정을 거치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해서 시행된 유전자 맞춤 아기는 의료 복지의 신기원을 열었다는 찬사와 함께 빠르게 제도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그런데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취학 연령에 들어설 즈음부터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재벌이나 유력 정치인들 집안에서 태어난 몇몇 유전자 맞춤 아기들이 처음부터 ‘유전자 마사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 애들은 원래 집안에 내려오던 선천적 유전 질환이 인정되어 유전자 맞춤 아기로 태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몰래 지능도 더 높고 근지구력이나 골격 등도 훨씬 뛰어난 유전자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전자 시술 과정은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의무였지만 사실 의사를 매수하거나 병원 차원에서 조작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결국 한 종합병원의 의사가 양심선언이라는 명분으로 유전자 맞춤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이면 거래가 있었다는 점을 폭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목된 당사자는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을 지낸 유명 정치인이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단호하게 잡아뗐지만 의사의 증언이 워낙 구체적이라 결국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폭로했던 의사가 그 정치인과 다른 일로 법적 분쟁을 하는 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론은 정치인에게 우호적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사가 유전자 맞춤 시술과 관련된 비밀 의료 기록을 모두 공개하면서 일거에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 우리 어쩌지? 그냥 아이를 낳으면 유전병에 걸릴 확률이 50%인데….

- 괜찮을 거야. 설마 이번 일로 유전자 맞춤 시술 그 자체를 다시 전면 금지시키기야 하겠어?

- 바로 두 달 뒤가 총선이라서 그래. 선거 때마다 다시 금지시키겠다는 공약이 계속 나왔잖아.

- 하긴 그 정당이 이번에 의석수가 많이 늘어날 거라고 하지. 정말 어떻게 될까 불안하네.

- 만약 다시 금지된다고 해도 법률안 통과되고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리니까, 우리 그 전에 바로 아이를 갖자.

- 유전자 맞춤 아기 낳으려면 아직 저축을 더 해야 하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당신 말대로 서두르는 게 낫겠어. 그렇게 하자.

****************************************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밝히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된 지는 이미 15년이 지났다. 섬세한 유전자 편집을 가능하게 해 주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가 이미 등장했으며, 작년에는 세계 최초로 미국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편집 시술이 시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듯이 유전자 편집 기술은 인류의 의료 복지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그러나 세기적 과학기술은 늘 세기적 윤리 문제와 쌍둥이로 태어난다. 이런 유전공학 기술들이 사회에 전면적으로 수용된다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유전적 금수저, 흙수저 논란이 일어날 것도 틀림없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늘 우리에게 어려운 선택을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윤리적 상상력은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21세기는 무엇보다도 거대한 시행착오의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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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생 청년 김정은은 53년생 문재인을 만났고 46년생 트럼프를 만났다. 83년생인 나보다 한 살이 어린 그는, 좋든 싫든 한반도 현대사의 중심에 놓였다. 내가 그라면 많이 두렵고 외롭고, 막막할 것 같다. 그래서 정상회담에 나선 그의 발걸음, 표정, 단어 선택 같은 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이 되어 지켜보았다. 젊은 그가 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역사적 개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 젊은 사람 치고는 잘하네, 하는 수준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나선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다. 기성세대 정치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수를 놓으며 어떻게든 함께 한 발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분투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북한에 84년생 김정은씨가 있다면, 2018년의 대한민국에서 이름을 알린 80년대생 청년은 아마도 82년생 김지영씨겠다. 그는 실존 인물은 아니고 소설 속 허구의 인물이다. 연예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만큼 눈에 띄는 청년도 별로 없었다. 78년생인 작가가 친구나 선후배들, 그리고 자신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다고 후기를 남겼지만, 그 무수한 김지영씨와 그 친구들은 소설 바깥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경계에만 계속 머물러 있고 중심부로 나오지 못한다.

주로 보이는 것은 82 ‘학번’들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더욱, 80년대생을 찾아보기는 어렵고 그 시기에 대학을 다닌 80년대 학번들만이 주류를 이룬다. 이른바 386세대들이다.

‘386’은 1990년대라는 특정 시기에 ‘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이라는 조건을 그럭저럭 만족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다. 기성세대의 동의어처럼 인식될 만큼 이 사회의 중추를 이룬다. 이번 2018년 지방선거에도 386을 비롯해 그 선배 세대들이 많이 출마했다.

반면 20·30대 출마자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의 범위를 넓혀 만 39세 이하까지로 설정하더라도 9300여명 중 656명, 전체의 7%에 불과하다. 거대 정당의 공천을 받은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이들의 당선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대개는 몇 %의 지지를 받느냐에 관심이 맞추어져 있는 수준이다.

단순히 청년을 위해서만 청년정치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고 혁신을 불러온 여러 발견들은 청년의 호기심과 상상력에서 비롯되었다. 경험이나 관록 같은 미덕들도 중요하겠으나, 주변을 둘러보면 그것이 별로 좋은 방향으로 쌓이는 일도 없는 듯하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하는 식의 발화는 거의 틀림없이 좀 더 나은 제안들을 없던 일로 만드는 힘을 가졌다.

지금의 386세대가 30대 젊은 날에 한국 사회를 변혁시켜왔듯 지금의 30대에게도 그러한 힘이 있다. 386이라는, 2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어느 특정 세대만을 지칭해 온 그 용어는 이제 그 권력과 함의를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때가 되었다. 이른바, 포스트 386을 맞이할 때가 된 것이다. ‘30대·80년대 출생·60세가 된 부모를 둔’, 그런 청년들이 존재한다.

80년대에 태어난 이 386들은 이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막 벗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하기도 했고, 오전에는 반공교육을 받고 오후에는 평화통일 포스터를 그릴 만큼 무언가 계속 좌우의 중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를 감각했다. 중·고등학생이던 90년대에는 전에 없던 무한경쟁의 시기를 거쳤고, 대학생이거나 사회인이 된 2000년대 이후에는 자기계발의 서사와 함께 찾아온 최악의 취업난을 맞이해야 했다. 2018년의 386들은 거기에서 살아남은, 당사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역량을 갖춘 세대다. 그에 더해, 이제 환갑이 되어 은퇴를 준비하는 그들의 부모들은 청년 이상의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자식-부모 간 부양의 역전을 걱정해야 할 만큼, 경쟁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큰 조력자이기도 하다. 포스트 386은 20세기의 386들보다 훨씬 더 복잡다단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어느 시대에나 2030의 나이에 5060의 부모를 둔, 평범한 청년들이 있다. 386에서 의미를 갖는 숫자는 3과 6이다. 특정 세대에게 굳이 부여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보편이 되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는 이 3N6과 2N5들을 조금 더 현실정치로 끌어내야 한다.

386을 비롯한 기존의 세대들이 이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은퇴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김정은과 문재인이 손을 맞잡았듯, 그들이 정상회담이라는 형식을 통해 동등한 눈높이로 만났듯, 길을 열어두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적어도 이번 지방선거처럼 93 대 7이 아니라, 비슷한 숫자가 되어 만나야 한다. 여기에는 만 25세 이상에게만 주어지는 지방선거 피선거권 연령이나 200만~5000만원에 이르는 선거기탁금을 낮추는 방안이 함께 고민되어야 하겠다.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다. 그 시대의 가장 평범한 청년들이 주변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기 위해 고민하고 직접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들이 동등한 권력을 가지고 발화할 수 있을 때,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하고 정중하고 힘 있는 제안을 할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 출마한 386들의 분투를 기억하며, 건투를 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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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왕실의 금기를 깨트린 파격이자 세기의 결혼으로 전 세계의 관심을 모은 영국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 결혼식 전 언론에서는 신랑과 신부의 복장에 관심이 쏠렸다. 해리 왕자의 예복은 다름 아닌 군 예복이었다. 7년 전 윌리엄 왕세손도, 그 아버지 찰스 왕세자도 결혼식에서는 모두 군의 제복을 택했다.

왕가의 남자들이 나라와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는 데 솔선수범하겠다는 뜻을 제복으로 내보인 것으로 필자는 이해한다. 제복에는 공익을 위한 헌신, 명예 그리고 책임정신이 깃들어 있고 또한 이를 구현할 권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제복에 대한 국민적 존경과 무한한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같은 달, 우리나라에서는 안타까운 제복공무원 사고가 발생했다. 119 구급대원이었던 고 강연희 소방경이 응급 이송 중이던 주취자의 이유 없는 폭력으로 생명을 잃었다.

비단 소방공무원뿐만 아니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을 신고자가 흉기로 찌르고, 불법조업 단속에 불만을 품은 선원이 해양경찰관을 바다로 밀어버리는 등 이유 없는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행 사례가 연평균 700여건에 달한다.

특히, 해양경찰의 경우 이런 폭력 행위가 주변 시선이 없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이루어지고 바다라는 공간적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의 현장 직원들이 이러한 이유 없는 폭력을 ‘감수해야 할 일’로 여겨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존경하는 부모이고 자랑스러운 자녀이며 사랑스러운 친구이자 연인이기도 한 제복공무원이 멱살을 잡히고, 물리고, 뺨을 맞으며 ‘이놈, 저놈’으로 취급받는데도 말이다.

마침내, 도를 넘어선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력과 사망사고 발생으로 지난 4일 행정안전부 장관과 함께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사회 안전을 지키는 제복공무원의 적법한 공무수행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제복공무원에 대한 폭력은 어느 한 개인에 대한 폭력이 아니라 사회 안전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다. 공공서비스를 받아야 할 대다수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로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을 인식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국민들에게 존중과 격려를 요구하기 전에 제복공무원 스스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정하고 정당한 공무집행이 우선 되어야 한다. 대다수의 선량한 국민들에게는 보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우리 해양경찰은 제복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먼저 노력할 것을 약속한다. 신뢰는 싸라기눈과 같아 쌓이기는 어렵지만 흩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조심스러운 심정으로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다짐한다.

먼저, 바다 안전을 온전히 책임지는 해양경찰이 될 것을 약속하며, 우리 제복공무원들이 명예와 긍지를 갖고 국민들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격려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책임을 완수할 수 있다는 용기와 사명감은 오로지 제복공무원을 믿고 따라주는 국민들의 응원과 격려 때문임을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

그 어떤 화려하고 값비싼 예복보다 국민의 신뢰와 응원을 받는 제복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으로 평가받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박경민 해양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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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미국의 정상 간 첫 만남이었다. 70년이나 이어온 전쟁이 종결되고 새로운 동아시아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다. 제재 속에서 고립되어 세계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으로 고슴도치처럼 바늘을 곤두세웠던 나라가 드디어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서 이런 광경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 대사변’을 눈앞에 두고, 통일의 열망에 불타던 젊은 날처럼 내 가슴은 뛰지도 않고 뜨거운 눈물이 솟구치지도 않았다. 이번 조·미(조선과 미국) 회담은 통일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고, 통일의 전제인 평화를 논하는 자리였다. 겨우 6·25전쟁 종결의 문턱에 들어섰다. 싱가포르에서 조·미 합의가 이루어졌어도 앞으로 핵무기 해체의 길고 지루한 실무교섭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 트럼프의 변덕을 비롯해 무수한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비핵화 대 안전보장이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톱니바퀴가 맞물리듯이 순조롭게 돌아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미국이라는 거인의 패권에 맞섰던 다윗이 너무나 힘겨워서 싸우기를 그만두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위세를 부리고 고개 숙인 조선을 밟으려고 한다면 자존심을 걸고 결사 저항을 할 수도 있다. 미국이 조선을 하나의 독립된 인격으로 대하면서 공동의 안전과 평화를 실현하려고 하는 겸허하고 진지한 자세가 요망된다.

그러나 트럼프가 그런 성인군자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부서지기 쉬운 싱가포르 합의를 확고하게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이나 러시아 등을 보증인으로 세우는 방법도 검토해볼 만하지만, 무엇보다도 남북이 일체가 되어 분명한 평화의지로 미국의 변덕이나 갑질을 누르는 것이 가장 유효할 것이다. 또한 그것을 위한 남북의 깊은 신뢰구축과 공조의 실행이 한국이 오랜 대미 종속에서 벗어나고 참된 주권국가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남북이 합심하면 미국이 기를 쓰고 방해하는 명분도 없어질 것이다. ‘스스로 욕되게 한 연후에 남에게 욕을 먹는다’고 했다. 외국에서 미군의 주둔과 군사적 농단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면 미국은 늘 “여러분들이 와달라고 해서 온 거지, 나가라고 하면 언제든지 나가주겠다”고 큰소리치곤 한다. 그러니 우리 남북이 힘을 모아 이 땅의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는 주권자는 ‘우리’임을 상기시키고, 불가침, 평화, 남북교류와 협력사업의 추진, 조·미(한·중) 평화조약 체결, 통일의 길로 나가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

해방과 더불어 우리 머리 위에 분단이라는 부조리가 마른 하늘에 번개처럼 떨어졌다. 그러기에 그 부조리와 분단의 현실에 분노하여, 통일을 열망했다. 통일이라는 대사변으로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에게 통일에로의 길은 앞을 내다보기도 어려운 길고도 머나먼 길이다. 따라서 통일은 남북의 소통과 협력으로 민족적 응집력을 제고하고, 통일에 대한 희망을 젊은이들과 공유하면서 남북을 아우르는 우리 역량을 증대시켜 나가는 일이 급선무다. 그 과정이 바로 통일이다. 통일이란 두 개로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는 것이라기보다, 실질적으로 분단의 고통을 하나하나 해소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젊은이들의 통일 의식이 희박해져 가고 있다고 하니 큰일이다. 한구영은 ‘한겨레 프리즘’ ‘청년, 왜 평화에 냉담한가’에서 “지금의 청년세대에게 남북 화해와 통일은 당연한 정언명령이 아니다”라고 한다. 판문점선언 다음날의 조사를 보니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보인 행동이나 발언에 신뢰가 가느냐’라는 질문에 ‘신뢰가 간다’는 응답이 전체 평균 77.5%인 데 비해 20대는 65.3%로 가장 낮았다. 지난 1월의 조사도 비슷했다. “북한에 대해 압박보다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전체 61.8%가 동의하는데, 20대는 54.8%로 가장 낮았다. 평창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 거부감을 나타낸 것도 20대였다.

젊은이들의 이 반응은 오랜 세월 속에서 분단의 아픔의 기억도 희미해졌으며, 분단이 일상화되어 무감각해진 탓도 있겠으나, 한구영 기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방을 열렬히 맞이한 원인을 일제와 일본지주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는 경제이익에 구하고 있으며, “통일이 열망의 대상이 되려면 독립이 약속했던 ‘자기 땅’에 대한 희망 정도의 약속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인간의 행동 동기 중에서 물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유물론적인 과학적인 사고다. 그러나 해방에 대한 열광을 물질적인 동기에서만 구하는 것은 왜소화가 아닌지? 나는 해방의 열망을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생존본능에 있으며, 인간적인 자존심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민족을 통째 말살하려 한 일제에 대한 당연한 항거다.

한 기자는 젊은이의 통일 의식에 대해서도 “재벌들의 돈잔치로 귀착될 한반도 비전 앞에서 청년의 가슴은 뛰지 않는다. 공동의 자산을 나눌 비전 없이 청년의 냉소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경제적 동기부여만 하면 젊은이들의 통일 의식은 고조될까?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젊은이들은 한 푼의 이득도 없이 기꺼이 목숨을 내던진 사례도 많다. 그리고 2030세대의 개인주의적이고 취미적인 성향은 왜곡된 교육이나 정보기기에 지배당한 문화환경 탓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을 극도로 소외시키고 분단하는 신자유주의에 그 책임이 있다고 하겠다. 가상적인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젊은이들은 소모적인 학력이나 스펙 획득 경쟁에 내몰린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항상 지극히 소수만이 성공할 수 있고 대다수가 탈락해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신자유주의체제 속에서는 우리가 통일된다 해도 무한경쟁이 확대되어 인간소외와 파괴가 확산될 뿐이다. 상대평가나 업적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아, 모두가 함께 승자가 될 수 있는 공동체주의적인 ‘윈윈’(win win)의 원리로 모두 함께 통일시대를 지향해야 한다. 아울러 분단시대가 얼마나 처참하고 비인간적이었는가 역사교육도 해야 한다. 전쟁과 군대가 없는 사회의 전망이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큰 희망과 기회를 줄 수 있는가! 거기서 통일된 미래에 희망을 품은 젊은이들을 배출할 수 있는 것이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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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관은 판결로 말한다.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건만, 오히려 법관이 판결로 말할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의혹’으로 말미암아 비판대에 올라서이다. 관련자 검찰수사 여부에 대한 논의도 중요하지만, 이 자리에선 작금의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대법원장 1인에게 집중된 권한과 사법관료주의, 그리고 이와 맞물린 법관인사 특히 대법관 인사가 문제이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은 대법원장이 제청한 자를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법관으로 임명한다. 대법원장의 독단적 제청권 행사를 제한하고자 법원조직법과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규칙은 다음과 같은 절차를 두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는 대법원장에게 후보자를 비공개 천거하면, 대법원장은 명백한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을 추천위에 제시한다. 추천위는 적격 여부를 심사한 후 3배수 이상을 대법원장에게 추천하고, 대법원장은 그중 1인을 제청한다.

5월29일자 개정규칙은 대법원장이 적합하다고 판단한 자를 독자적으로 추천위에 제시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대법원장의 권한을 일부 축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법원장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위원 10명 중 3명만 변호사 자격이 없는 각계 전문가이고, 나머지 위원은 법조인과 법학교수이다. 위원의 구성 면면이나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도록 하고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감안했을 때, 대법원장이 원하는 자를 최종적으로 후보자로 제청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는 대법원장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과정에서 대법원장의 권력은 비대해진다.

대법원 판결이 국민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막대한 파급력과 영향력을 고려할 때, 대법관 인사를 1인 내지 소수가 좌지우지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판사들이 판결보다는 대법원장의 의중과 동향에 더 신경을 쓰기 쉽고, 재판을 하는 것보다는 법원행정처에 근무하며 사법부의 고위직들과 연줄을 맺는 걸 선호할 공산이 크다.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형식적인 권한에 머물 때, 대법관의 위상도 더욱 올라가고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이 확고하게 보장된다.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견제하기 어렵다. 문호를 개방하자. 천거를 받을 것이 아니라, 대법관의 자격을 가진 자라면 자유롭게 공모할 수 있어야 한다.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자. 10인의 위원을 포섭하는 것은 비교적 쉬울 수 있다. 위원회의 규모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아울러 위원회에 비법조인과 무작위 추첨된 일반인의 참여를 늘려 국민 눈높이에 맞는 심사를 할 필요가 있다.

위원회는 판사의 일생을 판결로 평가해야 한다. 출신학교, 출생지역, 사법시험 성적, 사법연수원 등수, 도덕성 등도 대법관 추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보다는 판사 재직 동안 행했던 수많은 판결로 법관을 판단해야 한다. 법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하지만, 각양각색의 판결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득권을 위한 판결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판결, 단순히 튀기 위한 판결과 사회변화와 현상을 잘 담아내는 판결, 고루한 판결과 시대를 선도하는 판결. 전문가와 일반인이 후보자들의 판결들을 면밀하게 평가하고 대법관 후보자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치열하게 거쳐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특정 정치세력이 제도를 악용하여 대법관을 독식하려고 할 것이란 비판이 있을 수 있다. 세 차례의 정권교체를 이뤄낸 국민들의 수준을 감안하면, 한쪽에 치우친 대법관들이 득세할 것이란 우려는 기우에 가깝다. 오히려 자유로운 공모방식과 일반인이 심사에 참여하는 후보자 추천방식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대법관을 만들어갈 것이다. 대중영합적인 판결이 늘어날 것이란 걱정도 있을 수 있다. 하나 대법관은 튀는 판결로 인기몰이를 했다고 해서 쉽게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위원회에 전문가집단의 심사가 중요한 과정이므로 집단지성이 작동할 것이다.

법원 내부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 게임의 규칙이 변하기 때문이다. 대법관 중 일정 수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도입하고, 시행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대상자를 확대해가는 방식도 고려해 봄직하다.

법관은 판결로 말해야 한다. 법정 내에서 판결이 권위를 갖는 것을 넘어서 판사의 일생이 판결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야 법관은 판결에 더욱 심사숙고할 테고, 진정한 의미에서 법관이 판결로 말하는 것이 된다.

<김정현 전북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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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말 줄임 사자성어가 유행. 이부망천이라던가. ‘이’혼하면, ‘부’부가 더 잘되고, ‘망’하면, 알바 ‘천’국에 가면 되징.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수박은 먹고 헤어지자구. 바야흐로 수박이 제철 아닌가. 아점수저. 아침 점심 먹고 수박도 먹고 저녁까지 먹으면 하루가 끝. 저녁 먹고 나서 수박을 먹었다간 자다가 오줌 마려워 깨야 되니까, 수박은 각오하고 먹어야 해.

웅성웅성 모여 나눠 먹을 땐 수박만 한 과일이 없지. 요샌 평화의 길로 접어든 북녘 친구들이 넘 예뻐서 무등산 수박을 한 트럭 보내주고 싶을 정도. 미안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얼굴이 잘 여문 수박을 닮았다. 어떨 땐 백두산 호랑이 같기도 하고 말이지. “동무! 최고 존엄에게 이런 말 해도 되는기오?” 힝. 여긴 자유대한이오.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잉!

나는 사이다를 넣은 수박화채를 잊지 못한다. 고등학교 다닐 때 최루탄 연기를 뚫고 대학가 모퉁이 누나랑 둘이 자취하던 친구에게 갔다. 골목 입구 부식점에서 값싼 쬐고만 수박을 한 통 샀다. 대학생 누나는 마침 일찍 들어와 감은 머리를 선풍기에 말리고 있었다. 사간 수박은 덜 익었나 맛대가리가 영 없었다. 누나는 냉장고에서 얼린 얼음을 꺼내고 사이다를 부어 화채를 만들어 주었다. 우린 박수를 치며 집어먹었다. 마침 기타가 있어 뽐낼 겸 ‘시 코드, 에이 마이너’ 어설픈 노래를 불렀다. 누나가 내 곁에 당겨 앉았다, 나는 숨이 가빠졌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식당을 하는 엄마에게 꼬맹이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개밥을 주자며 조르자 엄마 왈 “저 손님 남은 밥으로 주자. 조금만 기다려봐.” 얼마 있다가 아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 저 손님이 개밥까지 다 묵어버렸어요.” 헉. 수박은 개밥이 못되어 다행인 과일. 그날 다 먹어버리길 잘했지 정말. 누나의 키다리 남자친구가 불쑥 나타났다. 친구는 자리를 비켜주자며 눈치를 줬다. 거리엔 수박 같은 가로등이, 밤하늘엔 수박 같은 보름달이, 내 가슴엔 수박만 한 눈물이 쿵쿵 떨어졌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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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왔다. 아이와 부모의 행복에 대한 의견 차이가 집안 싸움이 된 가족이 또 왔다. 최근 이런 유의 상담이 꽤 비중을 차지한다. 아이는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자신을 그냥 내버려둬달라’고 하고, 부모는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너의 무기력일 뿐이고, 결국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로 행복이 찾아오는 길은 그 길이 아니라고 한다. 아이는 작은 가게로부터 행복이 온다고 하고 부모는 대기업이 행복을 키워준다고 한다. 아이는 래퍼로 데뷔하는 것이 행복이라 하고 부모는 취미 이상일 수 없다고 한다. 젊은 아들은 버스킹으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 행복이라 떠난다고 하는데, 부모는 그런 만행을 저지르기 전에 뼈빠지게 일해서 집부터 사놓는 것이 할 일이라고 한다.

아이는 문신을 해서 멋진 몸을 만들면 행복해질 것 같다는데, 부모는 ‘드디어 범죄조직으로까지 진출하는구나’라고 한다. 아이는 대학을 가지 않고 차라리 그 돈으로 자신의 작은 식당을 열고 싶어한다. 이른바 심야식당을 열어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하는데, 부모들은 TV에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과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차라리 그 열정으로 공부해서 어디라도 대학을 나오라고 한다. 젊은이가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나의 행복에 부모가 너무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부모들이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며 밉다고 역정을 낸다. 그러면서 ‘도대체 요즘 아이들은 자신이 행복하게 살 준비를 하는 것일까? 이런 삶의 자세로 아이들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온통 걱정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은 세대도 달라지고, 시대도 변하여 우리의 행복은 부모들의 행복과 달라졌다고 말한다. 좋아하지도 않는 밥 사주면서, 마치 지금처럼 살면 굶어죽을 것처럼 말하는 부모는 단지 꼰대일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부모세대들 중 일부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다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단지 순간의 기분일 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얼마전 언론에서 전한 ‘사토리(득도)’는 진정한 깨우침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기, 무책임하게 살기에 다를 바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고 한다. 멀리 덴마크에서 왔다는 ‘휘게’, 스웨덴의 ‘라곰’, 프랑스의 ‘오캄’ 등 작은 행복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 방식으로 가볍게 찾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행복은 하드워크이고 고생 끝에 찾아오고, 고진감래의 맛으로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상담 장면에서 행복의 방향을 놓고 다투는 부모와 젊은이들은 조금 낫다. 아예 이번 생에 태어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그룹의 친구들은 행복에 대해 묻지도 않고 행복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헬조선, 흙수저의 이생망 그룹에게 다음 생에는 어떻게 태어나기를 바라는지 물었더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다음 생에는, 돌이나 나무 혹은 무생물로 태어나기를 바란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부모, 기대, 행복… 이런 단어가 없기를 바란다고 한다. 행복은 평화로운 죽음이라고나 할까, 큰 고통 없이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생각보다 빨리 죽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다는데 이유는 살면 살수록 고통만 커지고 해야 할 고생의 숫자만 느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부모들의 삶이라고 한다. 살아갈수록 행복하다고 하는 어른들보다는 ‘헛살았다, 괜히 살았다, 헛고생했다’는 어른들을 더 많이 만났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한국에서 자살을 많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고 한다. 불행하기 때문이고 행복할 가능성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마음은 부모의 식민지이고, 부모의 마음은 옆집의 식민지, 친족들의 식민지라고 한다.

무라카미 류라는 소설가가 자신의 조국인 일본에 대하여 다 있는데, 희망만 없는 나라라고 했듯이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나라에 대하여 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여기는 행복이 없는 나라라고 한다. 기대, 갑질, 태움, 무시, 혐오, 차별 등으로 인하여 행복으로부터 멀어진 사회. 의무와 부담만 가득한 불행한 나라가 바로 이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제안한다. 문재인 정부에. 지금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행복에 대해 논하기 시작해야 한다. 국민행복회의를 열고 국민행복의 다양한 모델을 함께 제시했으면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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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두 다리 뻗고 평온하게 잘 수 있는 이 순간을 지키고 싶습니다.” 방글라데시 쿠투팔롱과 발루칼리 지역에서 로힝야 난민 지원을 위한 현장조사를 하던 중 들었던, 아직도 잊히지 않는 로힝야족 난민 압둘라의 말이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 중 하나로 알려진 로힝야족은 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들이다. 불교도가 다수인 미얀마에서 로힝야족은 종교를 이유로 차별받고 방글라데시계 불법 이민자로 불리는 등 박해를 받아왔다. 미얀마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로힝야족을 미얀마의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이들은 국적이 없는 신세나 마찬가지다.

로힝야족에게 국적뿐 아니라 거주지까지 잃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2016년 10월 라카인주에서 국경초소 습격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수백명의 괴한들이 라카인주 마웅토 등 국경지대에 있는 3개 초소를 습격해 9명의 경찰관을 살해했고, 사건의 배후로 로힝야족의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지목되었다. 이로 인해 미얀마 군부와 로힝야족 사이의 갈등은 심화됐고 미얀마 군부가 무장단체를 소탕하는 도중 로힝야족 민간인들에게도 끊임없는 위협과 폭력, 학살을 자행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콕스 바자르 지역으로 피신했고, 작년 8월27일 이후 이곳으로 넘어온 로힝야족 난민들만 현재 약 91만5000명에 달한다. 방글라데시 내 난민들이 급증하자 난민 주거지역에서는 여러 문제가 생겨났다. 난민들은 방수천막으로 만든 5평도 안되는 임시주거지에서 5~6명이 함께 살고 있다. 하나의 재래식 화장실을 9~10가구가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며, 하수도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악취가 진동한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위한 식량·식수뿐 아니라 보건·위생시설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는 이들을 돕기 위해 수차례 현장조사를 했고, 지방 공무원, 로힝야족의 인도적 지원을 위한 업무 조정 및 정보 관리를 담당하는 유엔 담당자, NGO 이해관계자들과 회의를 가졌다. 회의 이후 우리 단체는 초기 대응으로 작년 10월 초부터 식량과 생필품들을 7회에 걸쳐 5740가구에 배분했다. 또한 식량·생필품과 같은 일시적인 자원 배분을 넘어 이후 난민들을 지속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들을 계획하고 있다.

그중 하나로, 굿네이버스는 현장의 사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난민 중 가장 취약한 계층인 아동과 여성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난민캠프 내 아동들은 아동노동, 조혼, 유괴 및 아동학대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따라서 난민캠프 내 아동친화공간에서 아동권리 교육 및 재난 후 심리정서지원 사업을 진행하며 아동들이 신체적·정신적 안정을 갖도록 돕고 있다. 또한 여성들은 난민캠프 내에서 성희롱·성폭력 및 인신매매 등과 같은 성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 이에 모든 여성들이 언제든 편히 쉴 수 있는 여성친화공간을 마련하고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 성인지 개선 프로그램, 여성 역량강화 프로그램 등을 제공해 여성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6월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에서 여전히 억압받고, 고통받고 있는 로힝야족을 응원하며 함께 도움을 줄 수 있는 세계 시민들이 더욱 많아지길 기대한다.

<김양희 | 굿네이버스 방글라데시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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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 보니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에서 내려 그곳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였다. 가장 쉽게 찾아가려면 8차선 찻길을 끼고 가다가 샛길로 빠지는 길목에 세워둔 표지판의 화살표를 따라 걸으면 되었다. 그 길에는 이런저런 가게가 늘어서 있었고, 때때로 장이 섰다. 할머니들이 직접 키우고 캐왔다는 채소나 나물 따위를 들고 나와 시끌벅적했다. 그 길 끄트머리에 보육원이 있었다. 보육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아이들은 수시로 들락거렸다. 꽤 자유로워 보였지만, 그곳에는 나름대로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이모들보다 언니와 형들이 동생들을 무섭게 다그쳤다. 특히 남자아이들 방에서는 서열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래도 그 아이는 한 살 많은 형들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도리어 형들이 버릇없이 까부는가 싶으면 가만있으라고 했다. 같이 가게에 가면 형들이 군것질거리를 너무 많이 고른다고 타박하기도 했다. 아이는 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는 가게에 갈 적마다 흰 우유 하나만 집어 들었다. 더 고르라고 해도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는 과묵했다. 하지만 사당역에서 보육원으로 오는 지름길을 알려준 건 그 아이였다. 아이는 다세대주택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뒷골목이 큰길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그날 아이는 비탈진 좁은 골목길을 앞서 걸으며 길잡이를 해줬다. 뒤따라오는 형들이 떠들며 장난을 치면 아이는 얼굴을 찌푸렸다.

나는 보육원에 가지 않게 된 뒤로도 간혹 아이를 밖에서 만나곤 했다. 여전히 아이는 형들보다 의젓한 데다 공부도 꽤 잘하고 있었다. 말썽을 부리던 형들도 잘 자라고 있으니, 아이는 걱정할 게 없어 보였다. 아이는 수월하게 4년제 대학에 들어갔고, 그 핑계로 오랜만에 만나 같이 밥을 먹었다. 그날도 아이는 가장 싼 음식을 주문했더랬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아이가 휴학한 뒤로 형들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껏 그 아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그 아이도 서른네 살이 되었다. 그가 찾은 길이, 걷는 길이 행복한 길이길…. 민기야, 정말 보고 싶구나.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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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요즘 애들’이다. 흙 묻은 당근보단 마트에 진열된 상품이 더 익숙하고, 숲이나 자연보단 빽빽한 고층 건물이 더 자연스러운 그런 세대. 정부와 교육계는 앞으로의 많은 환경 문제를 직면하며 살아갈 우리네 세대들을 위해 환경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아이들은 여전히 습관처럼 에어컨을 찾고, 버려지는 잔반은 해가 갈수록 늘어가며, 학교 축제나 소풍날의 길거리는 버려진 종이컵과 나무젓가락, 비닐로 가득하다. 이처럼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작 자신의 편의를 ‘희생’하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식과 실제 행동 간의 불균형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이는 지금까지의 환경 교육이 정작 ‘대상자’인 아이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교육이란 단지 교과서 지식의 습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며 배우는 그 모든 순간이 아이들에겐 교육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라. 환경 교육이 강조하는 자연, 그 자연엔 ‘아이들’이 없다.

이제 우리네 교실을 한번 살펴보자. 학교에서 환경이 다뤄지는 비중은 굉장히 미미하다. 학생으로서 내가 배웠던 환경은 그저 교과서 몇 페이지, 한두 번의 강연, 얇은 책자 정도가 떠오를 뿐이다. 자신의 이름을 딴 교과목도 없이 다른 과목 교과서에서 살짝 얼굴을 비출 뿐이며, 그마저도 ‘주요’ 과목을 위해 넘겨지기도 한다. 이유? 간단하다. 시험엔 안 나오니까.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이 시행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예산과 인력이 투입된다. 교육 관계자는 많은 노력을 들여 시행한 환경 교육에 왜 효과가 없는지 한숨 쉬기 이전에 지금의 교육과 아이들의 상황이 부합하는지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기존 환경 교육의 문제를 인식해 실제 아이들의 상황을 고려하고, 한국 사회에 보다 적합한 교육 모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은영 | 제주대 행정학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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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부터 만 6세 미만의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기 위해 이번달 20일부터 신청을 받는다고 한다. 아동수당은 찬반양론이 있지만 정부의 취지대로 아동양육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강화하고, 미래 세대인 아동에 대한 사회적 투자를 통해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도입되는 제도라는 데에는 전반적으로 인식을 같이하는 분위기다.

반면 과연 2016년 기준 0.36%를 나타내고 있는 인구 증가율이 보여주는 저출산,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나라는 2017년 8월에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프랑스가 115년, 미국이 73년, 노인의 나라로 불리는 일본이 24년이 걸렸다는데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이후 17년 만에 고령사회가 되었으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노인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으나 출산율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향후 우리나라 인구증가에 기여해야 할 젊은 사람으로서 나도 결혼과 출산이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고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돈 먹는 하마’라고 여겨지는 우리나라 입시제도하에서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교육비 등 경제적 부담이 심하고, 일하는 부부가 애를 키우기에 편하지 않은 보육 환경,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운 사회적 구조,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집값에 따른 주거문제,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된 일자리 부족 등이 두려움의 원인이다.

아동수당이 일정 정도 경제적 지원의 효과가 있을 수는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과감한 개혁과 투자를 통해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우석 | 중앙대 공공인재학부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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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님, 이렇게 황망히 가시다니 너무하십니다. 지난해 필생의 역작 <아잔타에서 석불사까지> 출판기념회에서 책에 저자 서명을 받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가실 줄 몰랐습니다. 변호사님 만나면 서명 받아 제 아이들에게 주려고 따로 구입한 책은 제 방 책꽂이에 있습니다.

선배님, 황인철·조영래 변호사님을 만났을 때인 1988년 처음 인사드렸던 것 같습니다. 보성 후배라 하니 정말 좋아하셨지요. 그리고 보성학교 간송 전형필 선생과 화가, 시인 선생님들, 인문학적 분위기와 전통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최장수 동문회장을 하셨을 정도로 모교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셨지요. 제가 대한변협 인권위원으로 위원장님 모시고 일할 때는 재미있고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위원장님은 후배가 인권위원장이 되었어도 인권위원으로 활동하셨습니다.

회장님, 항상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회장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2002년 FX 사업에 대해 양심선언을 한 조주형 대령 기억하시지요. 당시 구속 군인들은 면회도 제한되고 구속기간도 길었습니다. 회장님 말씀대로 헌법소원과 함께 위헌법률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가처분신청도 했습니다. 면회 제한 규정은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았고 구속기간 규정은 이미 연장되어 가처분이 기각되었지만 결국 위헌결정을 받았지요. 창군 이래 구속 군인들이 받았던 인권침해 문제를 해결한 일이었습니다.

변호사님, 지난 2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명덕상 받으시면서 “법원이 법관을 사찰했다면 사법부 존재 가치를 의심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1971년 1차 사법파동. 판사 대표로 민복기 대법원장을 만났을 때 작성한 문서가 ‘사법부 독립선언서’가 되고 토머스 제퍼슨이라는 별명도 얻으셨지요. 1973년 30대 중반 해직판사로 천안으로 쫓겨가 변호사 사무실을 내셨어도 인권과 정의를 위한 한길을 걸으셨습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사법농단이라 할 정도로 사법부는 무너졌습니다. 부끄럽습니다. 1988년 2차 사법파동, 2009년 5차 사법파동까지 몸살을 앓고도 이 나라 사법부는 바로 설 기미가 없습니다. 사법파동은 판사들 노력만으로는 사법개혁을 할 수 없다는 교훈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제 사법혁명을 외쳐야겠지요. 법원노조 공무원들이 집단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안에서 판사들도 나서고 밖에서는 우리 변호사, 교수, 공화국 주인 모두 나서 사법혁명을 이루려 합니다.

변호사님은 보통 사람 3명의 삶을 사셨습니다. 법조인, 문명여행가, 음악애호가로. 부디 사랑하는 분 모두 만나 천상의 음악 들으시면서 가끔 후배들도 보아 주세요. 국립중앙박물관 ‘겸산 최영도관’에 선배님 애인, 토기 만나러 가면 뵐 수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호로비츠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으며 이덕우가 올립니다.

<이덕우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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