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취미를 알게 됐다. 일명 ‘돈 되는 취미’. 방법은 간단하다. 식당이나 핫 플레이스를 갈 때마다 영업시간, 테이블 수, 주력 메뉴 객단가, 손님 평균 체류시간, 직원 수, 입지 등을 관찰하면서 그 가게의 매출과 이익을 계산해보는 것이다. 취미를 넘어선 놀이도 있다. 동네 상가 건물에 빈 곳이 생기면 앞으로 어떤 업종이 들어올지 맞혀보는 ‘상가 맞히기 놀이’다. 주변 상권을 분석하고 가게가 몇 평인지, 보증금이나 월세는 얼마인지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생각했던 업종이 입점하면 자신의 부동산 감각을 확인할 수 있고, 틀렸다면 반성하는 기회로 삼고 그 가게가 잘되는지 지켜보는 과정까지 포함한다.

유튜브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실소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는데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한 번 해볼까? 그래서 작정하고 며칠간 매의 눈으로 들르는 가게들을 관찰해 보기로 했다. 공교롭게 구도심의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음악 공연을 볼 수 있는 행사와 시기가 딱 맞았다. 이틀간 다양한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공연들을 신나게 관람했는데, 결과는 대실패. 나 자신이 워낙 그쪽으로 감이 없기도 했지만 계산 자체가 불가능했다. 들렀던 가게들이 소극장, 카페, 재즈클럽, LP카페 같은 문화공간들이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2시간은 기본으로 앉아있는 손님들이 가득한 곳, 평소에 술을 판다고 해도 객단가와 테이블 회전 수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곳들이다. ‘돈 안되는’ 공간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돌아다닌 결과, ‘돈 되는’ 취미 계발에는 실패했지만 대차대조표로 계산할 수 없는 공간들의 소중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페스티벌처럼 한 곳에 집중된 대규모 행사가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간들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보는 기획 그 자체다. 그래서 관객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서 그 동네를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며 군것질하는 즐거움은 옵션, 지도를 들여다보고 계단을 오르고 골목골목 숨어 있는 작은 가게들을 찾아다니는 발품은 필수다. 관객들은 자기 돈을 내고 티켓을 사서 낯선 동네를 돌아다니는 수고를 즐겁게 감수한다. 뮤지션들은 연극 무대에 쓰인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무대에서 노래하고 드럼을 두드리고 기타를 친다. 좋아하는 뮤지션을 기다리다가 새로운 뮤지션을 우연히 발견하는 기쁨도 누린다. 새로운 무대에서 내 노래가 누군가에게 가 닿는 그 느낌을 통해 ‘한 번 더 음악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은 뮤지션의 ‘사운드(sound)’가 무대 위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작은 공간에서의 경험으로 일상을 충전한 관객들과 만나면서 ‘바운드(bound)’한다.

이처럼 공간에는 역사가 남고, 뮤지션과 관객들에게 기억이 남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누군가 공들여 가꾸고 매만지던 공간, 구석구석 쓸고 닦고 만지면서 생긴 생활의 결이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가게만이 가진 세월의 무게든, 새로 문을 연 가게의 반짝반짝한 설렘이든 애정이 담긴 일상의 공간과 만날 때 비로소 음악은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다. 아무 데나 버려져 있던 공간에 큰 무대 세우고 의자 깔아서 사람들을 앉혀 놓는다고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실 ‘돈 되는’ 걸로 따지고 들자면야 이런 행사는 애초에 계산기를 두드릴 견적도 나오지 않는다. ‘돈 되는’ 취미를 가진 이들이 보기에 이런 공간들은 운영 자체가 말이 안되는 곳이니까. ‘돈 주는’ 높은 분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수많은 관객이 한군데에 모여 장관을 연출하는, 소위 ‘그림이 되는’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인사할 큰 무대도 없으니 말이다. 취미마저 ‘돈 되는’ 세상에서 ‘돈 안되는’ 일을 하려니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실적도 안되고 돈도 안되는 게 사실이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새로운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건 아닐까? 나는 ‘돈 되는 취미’ 갖기에 실패했지만, 이런 ‘돈 안되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의 시도만은 실패하지 않았으면, ‘돈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배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안되는’ 즐거움에도 “슈퍼울트라그뤠잇!”을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그날까지 ‘돈 안되는’ 음악여행이 계속되길 응원한다.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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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될 수 있을까? 관계, 나이, 위치, 상대방의 동의 등 맥락을 지우고 발달장애인을 지칭할 때 흔히 쓰이는 ‘우리 친구들’ 말고 동료로서 ‘친구’. 발달장애여성과 함께하는 활동이 많아질수록 내게 드는 고민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현실, 나와의 차이를 눙치고 친구가 되기엔 서로가 직면해야 할 과제가 많다.

지난 10월27일 5회 전국발달장애인자조단체대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열렸다. 피플퍼스트는 발달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활동하는 조직과 운동을 말한다. 1974년에 미국 오리건주 자기권리주장대회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자신을 ‘mentally retarded(정신지체)’로 부르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그의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라는 발언에서 PEOPLE FIRST(피플퍼스트)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한국은 2009년 한·일 피플퍼스트 교류대회를 열었고, 몇 년 전부터 피플퍼스트 운동이 확산되어 도전과 토론의 과정을 겪어가고 있다.

“장애인도 사람이다. 때리지 마라! 발달장애인에게도 일자리를 달라! 발달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다! 말로만 시설을 폐쇄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라! 모든 사람들에게 평평한 길을 만들어 달라!” 이번 대회 슬로건이다.

피플퍼스트 대회에서 발달장애인들은 권리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행사를 직접 준비하여 치른다. 공적 공간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이 대회라는 큰 행사를 그들의 속도와 방식으로 만들어간다. 그러나 이 시간이 사회통합을 목표로 규범과 태도를 학습하는 자리라고 기대해선 곤란하다.

발달장애인으로서 자기다움을 존중받는 곳. 때론 갈등이 생겨 조율이 필요해 혼란스러워하고, 감정을 드러내거나 파악하기 어려운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하는 실패의 경험을 보장하는 곳. 그렇게 공적 공간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지지와 갈등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경험을 쌓는 네트워크. 눈치보고, 허락받아야 했던 몸은 말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몸으로 변화한다. 비록 대회장 밖 사회의 변화는 더디지만 말이다.

단순한 삶은 없다. 하지만 발달장애라는 의학적 진단과 장애인복지법상 장애개념으로만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면, 발달장애인의 삶은 단순할 거란 편견이 생기기 쉽다. 발달장애인 중에서 지원, 조력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는 것은 맞지만, 도움을 받는 이로만 여긴다면 그들의 주체성과 욕구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장애여성 학자 수전 웬델은 ‘한 사람이 혼자 많은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 도달하기 어려운 수행에 대한 기대치의 표준이 장애를 사회적으로 구성한다’고 했다.

그 표준이라는 기대치에 발달장애인만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의존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고, 표준의 기대치로 압박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거 알아요.” 한 발달장애여성의 말이다.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동의, 나이, 성별, 취향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우리 친구들’ 말고, 동료 시민으로서 발달장애인의 삶에 다가가고 관계맺기를 연습하는 것부터 사회구성원들이 시작해야 할 때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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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9월23∼24일) 222년 만에 처음으로 완벽하게 재현된 ‘정조대왕 능행차’를 아시리라. 서울시와 수원시, 화성시가 공동 주최하고 6개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여 59.2㎞의 대장정에 연인원 4580명과 말 690필이 동원된, 역대 최대 규모의 문화행사.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과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 참배를 위해 연 행사였지만, 수원 화성 축성의 점검 및 장용영 군사력을 재정비하여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속내도 있었던 듯하다. 조선왕조가 남긴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번역했기에 이 같은 재현행사가 가능한 것은 불문가지.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대제’(매년 5월 첫째 일요일에 행함)도 <종묘의궤>를 번역했기에 의식을 치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네스코에서 2007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조선왕조 의궤>도 익히 아시리라. 의궤는 조선왕조 500여년 중 300년간의 각종 왕실의례를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다. 의례 준비, 시행, 사후 처리 등과 관련한 왕명, 공문, 논의 내용, 동원 인원, 업무 분장, 소요 기물과 비용, 제작과 조달, 의식의 제도와 절차, 시행방법 등이 글과 그림으로 요즘 말로 엄청 디테일하게 기록돼 있으므로 오늘날의 ‘백서’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가례, 국장, 연회, 궁궐 건축, 왕릉 조성 등에 관한 630여종의 기록물이 서울대 규장각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여기에는 일본 궁내청에서 반환한 의궤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의 의궤도 포함돼 있는데, 1975년 박병선 박사가 프랑스국립도서관에서 처음으로 확인하여 영구임대방식으로 반환되기도 했다.

의궤는 왕실사, 생활풍속사, 사회경제사, 미술사, 음악사 등을 망라한 조선시대 역사연구의 기초사료이자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 원천 자료로 가치가 높다. 하지만 현재 전체 630여종 가운데 38종(전체의 6%선)만이 번역되어 있는 실정이다.

국가적 차원의 종합적 계획 없이 개별 기관이나 연구자의 단발성 번역 추진 등으로 인해 동일 서종을 중복 번역하거나 번역 품질이 균일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또한 소장기관과 번역 추진기관과의 협조체계가 원활치 못하여 제때 번역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의궤는 관련 분야 연구자의 번역에 대한 수요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이 지대하므로, 현재의 어지러운 번역 상황을 개선하려면 국가적으로 종합계획을 수립하여 관련 예산을 지원하고, 그 계획을 바탕으로 관련 기관들의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만시지탄이라 하겠지만, 지금이라도 630여종 중에서도 번역이 시급한 중요 의궤 200종 400책을 선정하여 우선적으로 번역, 출간하는 것이 ‘제2의 한류’를 추동할 뿐만 아니라 인문학 인력의 고용 창출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영록 | 한국고전번역원 홍보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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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시 낭독이 이 대목에 이르자 청중들 사이에서는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지난주 어느 저녁 일산 호수공원 옆의 작은 책방에서였다.

김이듬 시인이 본인 표현대로 ‘겁도 없이’ 차린 책방이듬에 그날 모인 사람들은 서른 명이 넘었다. 평론가 임우기 선생이 먼저 기형도의 시들에 대해 길안내를 하고,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한 편씩 그의 시를 읽는 모임이었다. 어깨를 맞대거나 무릎을 부딪치지 않고는 도저히 서른 명이 앉을 수 없는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은 기형도의 ‘나리 나리 개나리’에서 시작하여 두 시간이 넘는 동안 꼼짝 않고 자리를 지켰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여름 막바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시인이 자문을 청해왔을 때 나는 무작정 말렸다. “책도 팔고 커피도 팔고 강연회도 열고 하는 중고책방 겸 카페예요.” 책방인지 북카페인지 정체부터가 아리송한 카페를 하겠다는 시인의 낭만주의에 나는 어줍지 않게 ‘고상한 밥벌이’라는 말을 써가며 훈수를 두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여도 결국은 온갖 잡일과 세무서와 식품위생법과 월세에 관련된 일들에 몸과 마음을 탕진해야 하는 밥벌이라면서 비관적인 말만 잔뜩 늘어놓았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서 시인은 정말로 책방 겸 카페를 열었다.

책방이 자리 잡은 곳이 출판사 인근인 탓에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그곳을 드나들었다.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커피 한잔 청하며 문을 열고 들어갔고, 와인코르크가 막혀 발을 구른다는 소리에 부리나케 가서 마개를 따주고 돌아왔다. 늦은 저녁 술이 조금 더 필요해서 들른 작가와는 처음 인사를 나누는 주제에 흰소리를 늘어놓으며 맥주 몇 잔을 비우기도 했다.

책방이듬을 드나들며 몇 가지 놀란 점들이 있다. 책을 만들고 팔면서 나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랐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한탄하는 버릇이 입에 밴 출판인으로서, 나는 어디서 이렇게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지 새삼 놀랐다.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책의 판매지수와 독자연령대와 지역별 분포를 늘 분석하면서도 정작 그 사람들이 어떤 기대와 요구와 경험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믿을 만한 누군가가,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경험을 제공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시인의 책방은 안성맞춤이었다. 풍광이 좋은 공원 옆의 우리 동네에 시인이 작은 책방을 열었다고 하자 사람들은 신기해서 들어오고, 궁금해서 들어오고, 들어와서는 한 시간씩 책을 읽다 갔다. 동네주민도 들어오고, 작가들도 찾아오고, 시 한 편을 낭독하겠다고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 늦은 시간의 책방을 가득 채웠다. 자율방범대로 봉사하는 엄마들 셋은 밤거리를 순찰하다가 이 동네에 20년 넘게 살았는데 이런 모습 처음이라며 사진을 찍어갔다.

동네에 책방이 하나 생기면 무표정하던 그 거리에 ‘의미’가 생겨난다. 내가 사는 동네에 뭔가 마음을 줄 만한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은 음식점이 하나 생기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건이다. 공간적 동질성 외에는 아무런 공감대도 없는 지역이 책방 하나로 인해 뭔가 의미의 공동체로 바뀐다.

사람들이 책읽기를 힘들어하는 것은 그것이 혼자서 수행해야 하는 어렵고 고립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생각을 나누는 방식의 책읽기, 믿음직한 큐레이터로서 주인장이 길잡이해주는 책읽기는 사람들에게 기대를 갖게 한다. 좋은 동네책방은 그런 역할을 한다. 그곳이 시인의 책방이라면 더할 게 없다.

나부터가 시집을 안 읽은 지 10년은 넘은 것 같다. 원래 문학에 대해서는 정제되지 않은 감정의 낭비가 싫어서 그다지 가까이하지 않는 터였다. 이성의 사도 플라톤이 시인과 문학을 폴리스로부터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차라리 동감하곤 했다. 그러나 마사 누스바움은 <시적 정의>에서 플라톤과는 반대로 ‘감정의 합리성’이란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공리적 계산에 따른 정의가 아니라 공감과 연민에서 나오는 정의가 더 합리적일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른다면 공동체적 가치는 문학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나는 문학의 효용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일산 한구석에 자리 잡은 시인의 책방에서 말이다.

그날 내가 10년 만에 펼쳐든 시는 기형도의 ‘늙은 사람’이었다.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안희곤 |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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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가 얼마 전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안)’을 발표하고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었다.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에 따라 5년 주기로 마련하는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앞으로 정부의 외국인 정책을 종합한 밑그림에 해당하는데, 올해 결정되는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적용된다. 법무부는 이번 3차 기본계획의 정책 비전을 ‘국민 공감! 인권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안전한 대한민국’으로 선언하고, ‘상생’ ‘통합’ ‘안전’ ‘인권’ ‘협력’을 정책의 핵심가치로 발표했다.

일단 ‘인권과 다양성 존중’을 기본계획의 정책 비전으로 선언하고, 핵심 가치 중 하나로 ‘인권’을 강조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국내에 체류하는 이주민의 취약한 인권 상황은 지난 10년 동안 국내 인권단체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ILO),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유엔 자유권위원회 및 유엔 사회권위원회 등 국제적으로도 매번 지적되어온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미 후보시절 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변경 불이익 없는 법 개정,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 강제노동 철폐를 위한 ILO 핵심협약 비준,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 인권침해에 대한 점진적 개선을 약속했다. 나아가 과거 어느 정부보다 ‘인권’을 국정의 중심 가치로 강조하고 있어 그동안 지적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에 발표된 ‘제3차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안)’은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을 개선할 수 있는 변화된 정책으로 평가하기에 부족함이 많다. 우선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여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부터 아쉬움이 남는다. 공청회를 마련한 것은 의미 있는 변화이나 단 한 번의 공청회 이후 한 달 만에 기본계획을 통과시킬 계획이라고 하니 공청회를 통해 수렴된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지 의문이다. 시민들의 참여를 바라는 온라인 설문 문항을 살펴보면 국가 정책을 마련하기 위한 설문 수준이라기엔 너무 부끄러울 정도로 외국인 혐오와 인종차별적인 질문들로 가득하다.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지적된 외국인 노동자 운영제도(고용허가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치료해야 할 병의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올바른 생활 습관만 강조한다고 몸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앞으로 5년의 미래를 그리는 정부의 ‘기본정책’이라면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이 아니라 사회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품격이 있어야 한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장(직장) 변경을 제한하고, 체류자격을 유지하기 위한 권한을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직과 퇴사의 자유가 있는 한국 노동자들도 직장에서 사업주에게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는 노동조합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직의 자유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주에게 찍히면 퇴사가 아니라 한국을 떠나야 하는 위험에 처한다. 제도의 설계 자체가 노동권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주의 ‘선의(善意)’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열악한 제도에서조차 밀려나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인권과 노동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해외투자기업연수생, 농축산업노동자, 어업노동자, 선원노동자, 계절노동자등 법 밖의 이주민이 많다는 것이다.

다문화사회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를 맞아, 장기적인 정부정책의 바탕이 될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에는 고용허가제 문제뿐만 아니라 사각지대에 있는 수많은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고민도 담겨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이 존중되고, 공존을 위한 우리 사회의 지혜가 담긴 외국인정책 기본계획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조영관 | 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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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뒤에 숨어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비좁은 장롱 속에 들어가는 것은

더없이 쉬운 일이다

이불 밑에 납작하게 누워 있어도

피아노의자 아래 네 발로 기어들어가

새끼 고슴도치로 웅크려 있어도

금세 웃음소리를 찾아낼 수 있다

발코니 구석에서 은빛 물방울이 되고

유리창에 달라붙은 햇빛이 되고

발가락까지 오그린 투명한 숨소리가 되는 아이들

그렇게 아무리 숨어 있어도

가면을 몇 개씩 찾아 쓰고 있어도

얘들아 이 집에서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단다

물풀 같은 하얀 종아리가 다 자라고 나면

굳이 숨으려 하지 않아도

이 세상은 너희들을 사라지게 할 거야

보이지 않게 만들 거야

다른 그 무엇이 될 수 없게 서류 속에 집어넣을 거야

그때까지만이라도 숨은 그림을 그려야지

유령과 싸워야지 커튼 뒤에서 장롱 속에서

 - 김태형(1970~ )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술래가 되어 어디 있는지 모르게 사라지는 즐거움. 그러다 갑자기 몸을 입고 나타나 사람들 놀래어 주는 즐거움. 숨고 싶은 마음과 들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 술래잡기의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숨는 즐거움보다 들키는 즐거움이 더 크지 않을까. 들키는 순간의 놀람과 희열,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던 긴장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맛보고 싶어 유령도 되어 보고 투명인간도 되어보는 것 아닐까. 그러나 시인은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겪을 슬픈 술래잡기를 예감한다. ‘나’라는 고유한 존재는 없어지고 명함이나 서류에 이름으로만 존재할 때, 있어도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될 때, 그래서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술래 ‘나’를 찾아야 할 때,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두려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정신이 없을 그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셰익스피어, <리어왕>)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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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학원 소속인 한림대 성심병원 간호사들이 재단체육대회에 동원되어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요구받았다는 호소가 잇따르고 있다. 시민단체인 ‘직장갑질 119’의 카카오톡 채팅방에는 간호사들이 해마다 ‘일송가족의 날’ 장기자랑 코너에 짧은 바지나 배꼽티 차림으로 춤을 추는 동영상과 함께 그동안 자행된 인권침해 사례를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긴 테이블에 앉아있는 재단의 고위인사 앞에서 짧은 의상을 입고 어떻게 하면 유혹적인 표정과 제스처를 지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기 싫다고 하면 “유난을 떤다”는 식의 핀잔을 들었다. 장기자랑에 참여하지 않은 간호사들도 근무를 마친 뒤 응원연습에 동원됐다. 병원 측은 해마다 열리고 있는 재단행사 중 하나인 장기자랑에서 간호사들이 그런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간호사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환자들을 최일선에서 돌보는 전문 의료인이다. 자칫하면 의료사고에 노출될 수 있는 고위험 직업군이다. 더욱이 병 때문에 약해진 환자들의 투정까지도 늘 웃는 낯으로 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만성적인 인력부족 때문에 임신 및 육아까지도 남편이 아닌 동료와 상의해야 할 정도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시달리고 있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업무에 몰두하고, 나머지 자투리 시간을 쪼개 휴식을 취해야 할 판에 해마다 재단 체육행사에 참석해서, 그것도 선정적인 춤까지 춰야 했다. 이것은 관행이라는 미명 아래 절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간호사들의 고발과 병원 측의 해명은 한국 사회가 조직 내 인권침해 문제에 얼마나 무지몽매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장기자랑인데 뭐 어떠냐는 인식은 여성을 눈요깃감으로 표현해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받아들여지는 시대착오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웅변해준다. 싫으면 거절하면 되지, 왜 끌려다니다가 이제와 고발하냐는 시선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남이 아닌 제 자식, 제 손녀가 당한 이야기라면 이런 몰염치한 말을 생각 없이 툭툭 내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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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팅게일’ ‘백의의 천사’로 불리며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간호사가 언제부터 ‘섹시’ ‘저임금’의 아이콘이 됐을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지난달 31일 핼러윈데이 파티를 홍보하는 게시물에서 ‘간호사 복장을 하면 할인’ ‘섹시한 간호사 환영’ 등의 홍보 게시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게시글에는 노출이 심하게 변형된 간호사 복장의 여성들 사진이 함께 올라왔다. 누리꾼 ‘@dw****’는 “간호사나 선생님, 승무원 등 실제 있는 직업군을 대상화하는 옷차림은 자제해 달라”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자신을 간호사라고 밝힌 ‘@ti****’는 “가슴골이나 엉덩이가 다 보이는 옷을 입고 일하는 간호사가 세상에 어디 있냐”며 “일반 직장에서도 그런 옷 입고 출근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간호사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과 차별은 병원 내에서부터 시작된다. 지난 10일 한 종합병원의 재단 체육대회에 간호사들이 동원돼 짧은 옷을 입고 선정적 춤을 추도록 요구받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SNS는 비판여론으로 들끓었다. ‘@qw****’는 “간호사를 성적 대상으로만 희화화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병원에서 치열하게 환자를 치료하는 간호사들은 일할 의욕마저 사라진다”고 토로했다.

턱없이 적은 임금 문제도 제기됐다. 서울대병원 간호사 최원영씨는 지난달 22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벽부터 밤까지 종일 일하고 받은 ‘첫 월급’이 31만원이었다고 고백했다. 수많은 간호사들이 3~4시간씩 초과근로를 해도 수당이라는 걸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도 말했다.

‘@ru****’는 “간호사도 의사만큼 힘들다”며 “그에 맞는 대우를 해줘야지 병원과 의사만 배불려서는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dw****’는 “최근에는 간호사가 민폐 캐릭터로 나오는 드라마도 있었는데 간호사에 대해 갖는 사회적 편견이 씁쓸했다”고 밝혔다. 아내가 종합병원 간호사라고 밝힌 ‘@sw****’는 “남성 간호사도 늘고 있는 시대에 간호사를 여성이 아닌 의료인으로 존중해줬으면 좋겠다”고 글을 남겼다.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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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칼바람처럼 싸늘하고 날카로운 소식 하나가 날아들었다. 배우 김주혁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訃音)이다. 한낮의 도심에서 그가 탄 차량은 앞차와 경미한 충돌 후 인도로 돌진해 아파트 단지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난간이나 가로수를 들이받고 멈출 수도 있었을 텐데, 야속한 네 바퀴는 하필 계단 아래를 향해 굴러갔다. 불운이고 또 비운이다.

동료 연기자와 영화인, 방송인들은 물론이고 스크린과 TV를 통해 그의 모습을 오래 봐왔던 국민들까지 모두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불과 사흘 전 한 시상식에서 “연기 생활 20년 만에 처음 상을 받는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서 주신 것 같다”며 상기된 얼굴로 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감격하던 사람이었다. 삶과 죽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죽음은 늘 반걸음 뒤에서 삶을 따라온다. 우리는 모두 살면서 죽고, 죽으면서 산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배우 김주혁의 연기를 처음 본 것은 영화 <싱글즈>에서였다. 그를 세상에 알린 드라마 <카이스트>를 보지 못한 탓에 그가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이미 나타내던 무렵에야 김주혁이라는 이름을 알게 됐다. 이후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그가 연기한 소심한 남자 ‘광식’에게 나를 투영하면서, 그는 내 이십대의 한 자화상이 되었다. 영화 속 광식이처럼 짝사랑만 하며 연애 한 번 못하던 시절이다.

가장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역할은 <청연>에서의 ‘한지혁’이다. 동경 유학생인 지혁은 일본군 장교로 복무하던 중 훗날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조종사가 되는 ‘경원’(장진영 분)과 사랑에 빠진다. 행복의 나날도 잠시, 일본 정부 요인 테러 사건을 주도한 저격범과 친구 사이라는 이유로 지혁은 물론 경원까지 함께 끌려 가 모진 고문을 받는다. 지혁은 사랑하는 여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조선적색단원’이며 경원은 그 일과 무관하다는 허위 자백을 하고 홀로 사형 당한다. 그러나 지혁의 유골을 품에 안고 조선을 향해 비행하던 경원마저 추락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주검이 되면서까지 연인을 지키려 했던 지혁의 처절한 눈빛과 경원이 사라져 간 서쪽 하늘 석양이 지금까지 뇌리에 박혀 있다. 극중에서처럼 두 주연배우 모두 짧은 생을 살다 세상을 떠났기에 더욱 가슴 아프게 기억되는 영화다.

김주혁은 진지하고 열정적인 연기자였다. 우리는 그가 연기한 인물들을 통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보았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감격하고, 억울해하고, 두려워하고, 용기 내는 얼굴들을, 소심하고 못난 형을, 희생적인 남편을, 매력적인 연인을, 옆집 아저씨를 보았다. 연기가 아닌 인간 김주혁을 좀 더 볼 수 있던 예능 프로에서는 ‘이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그는 따뜻하면서 유쾌하고 또 진솔했다. 20년간 활동한 배우로서, 또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그는 우리 기억 속에 다양한 ‘얼굴’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마치 여러 이웃들이 한꺼번에 세상을 떠난 것만 같은 슬픔과 황망함이 몰려왔다.

시간은 무심하게 빠르며, 세상은 끝없이 분주하다. 중요한 일들로 넘쳐나는 우리 일상은 금방 슬픔의 자리를 떠났다. 실시간 검색어에서 그의 이름이 어느새 사라지고, 우리는 또 다른 영화와 배우들에게 환호한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추모의 형식인지도 모른다. ‘동물원’의 김창기가 김광석 죽음 이후 만든 노래 ‘나에게 남겨진 너의 의미’가 떠오른다. “또 나의 삶은 아주 말끔히 포장되고, 우리의 추억은 멀어지고, 모두 제 갈 길을 떠나고, 아침 출근길에 문득 너의 노래를 들으며 아주 짧은 순간 호흡이 멈춰질 듯하지만, 난 단지 날 가끔 내가 원하던 대로 봐주던 널 잃었다는 것이 안타까웠을 뿐인 걸.” 우리가 보길 원하는 다양한 사람의 얼굴을, 울고 웃으며 최선을 다해 보여주던 이를 잃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병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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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자취하는 진만이 앓아누운 것은 지난주 목요일의 일이었다.

휴게소 아르바이트 출근 시간이 다 되도록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진만을 툭툭 건드려 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깨까지 벌벌 떨면서 애벌레 모양으로 이불을 제 몸에 감았다.

“너무 추워. 보일러 좀 올리면 안 될까?”

11월이었지만, 아직도 낮에는 20도까지 기온이 올라갔다. 정용은 반팔 차림으로 멀거니 진만을 내려다보았다. 감기 걸렸나 보네. 알바 또 잘리겠군. 정용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보일러 전원을 켰다. 그러곤 그 길로 나가 곧장 PC방으로 향했다. 알바 자리를 검색해볼 마음이었지만, 거의 아홉 시간 가까이 오버워치만 하다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진만은 그때까지도 계속 이불을 친친 감고 있었다. 옆머리가 땀에 흠뻑 젖어 있었지만, 정용은 힐끔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을 뿐, 별다른 말은 걸지 않았다. 대신 오랫동안 보일러 컨트롤 기를 쳐다보았다. 실내온도는 28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다음날에도 진만은 일어나지 못했다. 정용은 라면을 끓여 진만 앞으로 가져갔다.

“이거 좀 먹고…. 증상을 말해봐. 약국이라도 갔다 올 테니까.”

그제야 진만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이부자리 위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시큼한 땀 냄새가 났지만, 잠을 푹 자서 그런지 피부는 좋아 보였다.

“목도 좀 아프고, 근육통도 있고, 몸살이지, 뭐….”

진만은 냄비 뚜껑에 라면을 덜어 천천히 먹었다.

“어제 너 나가고 없을 때, 아파 죽을 거 같았는데 누가 막 방문을 두들기는 거야. 신경 안 쓰고 계속 누워 있었는데 생각해보니까 너 같은 거야. 네가 열쇠를 안 갖고 나갔나? 그래서 몸을 질질 끌며 문을 열어주었는데….”

정용은 묵묵히 라면을 덜어 먹었다. 이거 옮는 거 아닌가, 잠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웬 아주머니 한 명이 서 있는 거야. 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교회 주보를 내밀면서 예수님 믿고 천국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아주머니 저 추워요, 그랬지…. 그랬더니 흠칫 놀라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더라고.”

정용은 진만이 라면을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물도 떠다 주고 설거지까지 모두 혼자 했다. PC방에 나갔다가 돌아올 땐 약국에 들러 종합감기약을 샀다. 그리고 죽집 앞을 지나다가 소고기야채죽도 하나 샀다. 자취방에 돌아오니 진만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컴퓨터로 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정용이 죽을 내밀자, 뭐 이런걸…. 하면서 바닥까지 득득 긁으며 깨끗이 비웠다. 정용은 빈 용기를 보고 어쩐지 좀 억울하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진만은 밤늦게까지 축구 중계를 봤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정용은 진만을 거의 부축하다시피 해서 택시를 타고 인근 종합병원으로 갔다. 새벽 무렵부터 진만이 계속 구토를 하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도 다시 펄펄 끓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응급실이라도 가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또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온 죽이 잘못된 것일까, 밤에 자다 깨서 보일러를 끈 게 문제였던 것일까, 정용은 진만의 옷을 대충 챙겨 입히면서 알 수 없는 죄책감마저 느꼈다. 아이 씨, 이래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건데….

병원에 도착해서 진만은 체온을 재고 의사의 진료를 받고 난 후, 곧장 외래 채혈실 앞으로 이동했다. 염증 수치 검사를 위한 것이었는데, 대기 환자가 제법 많았다. 정용과 진만은 외래 채혈실 앞 기다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대기 순번을 기다렸다. 의자에 앉아서도 진만은 계속 힘이 빠지는지 정용의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무슨 큰 병이 아닐까?”

진만이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뭐 큰일 아닐 거야. 병원이라는 게 다 겁주고 그러잖아.”

정용은 계속 정면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젊은 남자 둘이서 어깨를 내어주고 앉아 있는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색해 보였다. 복도를 지나가는 간호사와 환자들이 힐끔힐끔 진만과 정용을 쳐다보았다. 앞 의자에 앉은 머리가 짧은 중년 남자는 팔짱을 낀 채 노골적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대학 다닐 때부터 막 밤새우고 오후에 일어나고 그랬잖아. 술도 많이 마시고 식사도 제때 안 하고.”

진만은 그렇게 울먹거리면서 말하다가 급기야 정용의 가슴에 이마를 묻고 본격적으로 울기 시작했다. 아, 이걸 어쩌나. 네가 대학 때 밤새 게임한 것도 좋고, 술 많이 마신 것도 좋은데, 그런데 이 얼굴 좀 치워주면 안 되겠니. 그렇게 말해야 하나? 아침부터 젊은 남자 두 명이 병원에 붙어 앉아서 이러고 있으면 사람들이 오해하잖니. 정용은 아예 시선을 천장에 두었다. 진만이 얼굴을 묻고 있는 왼쪽 가슴은 이미 축축하게 변해 버렸다.

그날 진만은 채혈을 한 후, 화장실에서 소변을 받아오라는 간호사의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칸막이 화장실까지 진만을 따라 들어간 정용은(진만이 그것을 원했다), 진만이 소변을 받을 동안 내내 뒤에서 부축해주어야만 했다. 아이 씨, 혼자 살고 싶다. 정용은 그 생각뿐이었다. 이러다간 나도 병에 걸리고 말지.

진만의 병명은 ‘급성장염’이었다. 병원에서 타온 약을 먹은 지 사흘 만에 진만은 다시 예전 모습 그대로 돌아왔다. 하지만 정용은 그렇지 않았다. 진만이 말을 걸어도 침묵하기 일쑤였고, 라면도 같이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진만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정용은 끝끝내 말하지 않았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자신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기호 소설가·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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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는 40대 젊은 여자가 흔치 않다. 오르막도 내리막도 많은 강원도 산골 같은 경우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도 드물고 개 끌고 다니는 사람은 더더욱 흔치 않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을에 젊은 여자가 나타나 개 두 마리를 끌고 다니는가 싶더니 이내 자전거를 타고 개를 끌고 다니는 일이 벌어졌다. 그게 그해 조용한 그 시골마을의 최대 사건이며 구경거리였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모두들 밭일하던 일손을 멈추고 기이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듯 ‘그 여자’를 바라봤다.

그 이후 우리 동네에서 나는 ‘개 끌고 다니는 여자’로 통하게 됐다. 무슨 체호프 소설의 주인공처럼 여전히 미스터리한 구석이 많은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라는 여자는…. 개를 데리고 아침저녁으로 마을을 산책한 지 4년이 지났건만 동네 아주머니는 아직도 4년째 같은 질문을 하신다. “근데 개는 왜 끌고 다니는 거래? 덩치가 산만 한 녀석들을…. 고생스럽게 뭐하러…. 게다가 두 마리씩이나…. 내가 당최 알 수가 없어서 말이야.”

경기 용인시 기흥호수공원에 조성된 반려견 놀이터에서 반려견들이 뛰어놀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런 질문에 처음에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개의 마음으로 생각해 보면 맨날 끈에 묶여 있으면 답답하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요. 다행히 저도 산책을 좋아하고 개들도 좋아하니 같이 다니면 좋잖아요?”

그런 생각으로 아침저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지어 마감이나 숙취로 몸과 마음이 괴로운 날이라도 개와 함께 산책하는 일을 웬만해서는 거르지 않았다. 그 때문일까? 우리 개들이 바뀌었다. 길에서 만나는 마을 사람들을 향해 공격적으로 짖어대던 녀석들이 이제는 누구를 만나든 해맑게 웃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덕분에 요즘은 교대로 한 마리씩 풀어서 다니기에 이렇게 답변할 수 있게 됐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행복해서요. 개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해서 둘 다 같이 하니까 너무 좋아요.”

말하자면 나는 이른바 개를 사랑하는 애견인이다. 요즘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서 탈도 많고 말도 많은 문제의 애견인.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개의 문제라기보다는 반려인들의 문제라는 걸. 한마디로 개통령이라고 불리는 사람 말이 맞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나쁘거나 생각이 짧은, 혹은 이기적이거나 게으른 견주가 있을 뿐.”

고백하자면 나의 개도 무는 개였다. 갈색개 나무와 검정개 개울이 중에서 더 소심하고 더 겁이 많은 개울이가 사람을 두 번이나 물었다. 한 번은 택배 아저씨를 물었고 한 번은 세탁 세제를 팔러 온 방문판매원을 물었다. 그때 남편은 매정하게 사람 무는 개는 안된다며 안락사를 고민했고, 나는 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울면서 사죄하고 만류했다.

그랬던 녀석이 지금은 얼마나 온순해졌는지 모른다. 심지어 이젠 맨날 보는 가족보다 새로운 얼굴의 손님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우리 집을 찾아오는 낯선 사람들과 잘 지낸다. 잘 모르는 자동차와 함께 손님이 도착하면 집으로 손님을 안내하고 고기를 굽거나 마당에서 공놀이하는 이들의 발치에 누워 있다가 함께 산책을 나간다. 처음엔 개가 무서워 자동차에서 내리기를 주저하던 아이들도 이내 개의 친구가 되어 단짝 친구인 듯 함께 놀다가 집에 돌아갈 때 개울이와 나무에게 편지를 써 놓고 갈 정도다. 개 때문에 집에 가기 싫다고 우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개 때문에 부모를 졸라 다시 찾아오는 아이들도 있으니 홍보와 영업을 겸한 중독적인 매력의 ‘개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우리 개들을 이른바 학교에 보낸 일이 없다. 훈련사에게 특별 과외를 시키지도 않았다. 다만 집 안에 갇혀 살면서 인간의 방식과 규율만을 강요받는 현대의 개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키웠다. 개울이와 나무는 늑대의 후예다운 그들의 본성이나 행동방식을 충분히 존중받으며 컸다. 개의 마음으로 판단하건대 하루에 두 번, 세 번 산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야생에서 끈 없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줬고 그 때문에 마음고생이 크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둘 중 한 마리를 교대로 풀어 키울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이후로도 산책은 계속됐고 사랑한다는 확신 아래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자주 웃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때로는 울면서 걱정이나 슬픔을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개와 인간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함께하는 삶의 행복감과 위안을 귀히 여겼고 그 행복감을 기꺼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두려움 없이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모든 것이 저절로 좋아졌다. 물론 시골이기에 가능했지만 시골이라도 개를 대부분 묶어 키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환경보다는 네 발 달린 짐승답게 움직이고 뛰고 싶은 개의 본성과 욕구를 존중하는 마음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개와 인간이 보다 평화롭고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하는 책 <당신의 몸짓은 개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개에겐 운동이 필요하다. (중략) 내가 보아 온 수많은 개의 행동상의 문제들이 권태로움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개들을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더 많이 돌봐 줄 때 더 심각해지는 문제다.” 그게 바로 아파트에 살며 오늘날 회자되는 그런 엄청난 비극을 초래한 그 프렌치불독과 진돗개가 가진 문제의 본질 아니었을까 싶다.

<김경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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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1985년 영화 <란>은 한 영주 집안의 비극적 몰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는 늙은 영주가 땅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주며 시작합니다. 서로 도우라는 당부가 무색하게 내분과 살육으로 이어지죠. 게다가 그 내분으로 가족과 영토를 잃는데, 영주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와 복수를 꿈꾸던 이의 계책이었다는 스토리도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 정세를 살펴보면 강력한 지도자의 강경한 외교가 힘을 얻는 분위기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공산당 내 입지를 굳히면서 더욱 자신감 넘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도 총선 압승을 통해 기존 우경화 외교를 더 밀어붙일 테죠. 북한 김정은 위원장 또한 경제 회복과 군사력 증강에 탄력을 받아 더 큰 목소리를 낼 듯합니다. 여기에 큰 목소리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방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각종 언행과 스캔들, 독단적인 외교 행보 등을 보면 걱정이 앞섭니다. 일본 방문에서도 노골적으로 미국 무기 구매 확충과 무역적자 해소를 되풀이했죠. 북핵 위기를 장사 기회로 삼는다는 비판이 커지는 만큼 미국의 국제적 지도력에 대한 불신도 늘 수 있습니다. 특히 일본이나 한국처럼 국방을 미국에 기대고 있는 처지에서 속앓이가 깊어질 수밖에요. 미국 안에서도 걱정은 깊습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있느냐, 대선에서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느냐 등의 논란이 그치질 않고 있죠. 게다가 행정부 자체를 위축시키고 있어서 제도적 문제로 번지고, 또 그 여파마저 오래가리라는 걱정도 나오고 있습니다.

그 걱정과 혼란은 대선 다음 날 바로 시작됐습니다. 각 정부 부처에서는 정권 이양에 분주했습니다. 당장 다음 날 인수위 맞이에 나섰죠. 주차장, 인터넷, 사무실 등 모든 준비를 마쳤지만 정작 인수팀은 오질 않았습니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말이죠. 다들 당황하고 어이가 없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농무부의 경우 한참이 지나 기껏 나타난 이들이 부서 업무에 문외한들이었습니다. 엉성한 준비는 엉성한 부서 구성으로 이어졌죠. 농무부 최고 관료 직책 중 장관 딱 한자리 빼고는 대부분 국회 인준조차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농무부 책임 과학자에 지구 온난화뿐 아니라 과학 자체에 깊은 회의를 가진 이데올로그이자 극우 라디오 진행자가 임명되는 해프닝까지 벌어졌습니다. 농업과 자원 관리 업무를 떠나 과학 연구에 주요 역할을 하는 농무부를 크게 위축시켰다는 비판이 거세죠.

비슷한 상황은 국방부를 제외한 전 부서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관리하는 에너지부, 외교의 난제를 풀어가는 국무부 등 한국의 입장에서 너무나 중요한 부서도 포함해서 말이죠. 에너지부 장관이 된 릭 페리는 후보자 시절 에너지부를 아예 없애겠다고 공언한 인물입니다. 거대 에너지 회사인 엑손모빌 최고경영자로 국무부 장관이 된 틸러슨은 국무부 축소를 주요 목표로 내세워 국무부 관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습니다. 덕택에 고위 관리들이 은퇴하거나 물러나면서 전문가가 모자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가 아직 공석인 게 우연이 아닙니다.

영화 <란>의 며느리처럼 일부러 정부를 약화시키려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 때문에 연방정부는 큰 혼란을 겪고 주요 업무에서 손을 놓다시피 하고 있죠. 그사이에 백인우월주의 목소리, 흑백갈등, 좌우대립 등 정부의 개입이 절실한 문제는 악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냐는 논의는 오래됐습니다. 그만큼 미국의 지배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하지만 영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트럼프 정부의 행보는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문제는 미국의 세계 질서에 어떤 나라보다 기대왔고 그래서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대응입니다. 한국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논의는 북핵 문제를 넘어 지역 정세를 큰 틀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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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닌 너와 관계라는 것을 맺으며 ‘우리’가 되면 느낄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너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성찰의 기회, 차곡차곡 쌓이는 우리의 이야기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소중하다는 느낌만큼이나 나도 누군가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주는 즐거움은 우리를 생기발랄하고 살아있게 한다. 나와 너, 우리와 같은 말들은 어쩐지 따스하고 달콤하다.

그런데 자유로운 듯 하늘거리는 이 환희가 마냥 가벼운 것은 아니다. 모든 관계에는 커져가는 즐거움만큼이나 같이 자라는 책임이 있다. 관계 속에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너의 행복에 대한 나의 책임도 어느새 배어 있다.

기쁨이 하늘 위로 마냥 두둥실 날아가지 않도록, 책임은 우리에게 의무를 지우고 때론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책임은 힘들고 싫은 것, 무거운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 나를 홀로 두기보다는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더불어 살고자 하는 것은 손익계산상 그래도 관계가 주는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나와 너, 우리, 가족, 동료, 이웃과 같이 수많은 관계들이 촘촘한 픽셀로 모여 만들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이제는 즐거움과 책임이 빛과 어둠처럼 양분되어 공존하는 것 같지 않다. 오직 책임만이 더없이 가벼워졌고 또 계속해서 한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 점점 만연하고 있는 하청, 파견, 그리고 아웃소싱 방식의 계약관계망에서 업체, 고용주, 그리고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 간의 관계를 살펴보면 책임의 비대칭성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하청과 외주화는 현재 한국에서 주요 제조업뿐만 아니라 건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가전 수리, 통신, 보안, 청소 등의 서비스업 그리고 공공부문에까지 놀랄 만큼 확대되어 있다. 이러한 다단계방식의 하청구조가 실제로 원청업체에 얼마나 양적으로 질적으로 이득이 되는 것인지는 잘 따져봐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원청업체가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은 곧바로 계산되는 원청업체의 이득분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노동자의 임금이나 퇴직금이 체불되어도, 심지어 일하다 사고로 사망해도 그건 하청업체 고용주와 노동자들끼리 알아서 어떻게 해결할 일이다. 근로환경 개선, 임금 인상과 관련된 일 등 골치 아플 수 있는 갈등도 고용주가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 않으면 신경을 끌 수 있다. 원청업체는 다만 낮은 단가로 같은 일을 해내줄 업체와 계약만 맺으면 그만이다.

파견직도 마찬가지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에 파견나온 제빵사가 빵을 굽다가 화상을 입어도 가맹점주는 산재의 책임에서 자유롭다.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도 가벼워지고 있다. 공공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상시적인 업무조차 상당 부분 민간 위탁으로 외주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제한된 시간에 하청업체가 지시한 일을 끝내려다 사망한 김모군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서울메트로의 법적 책임은 가벼웠다.

꼭 복잡한 다단계 방식의 하도급과 아웃소싱의 구조 속에서 관계가 갖는 모호성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기계약으로 관계를 맺으면 고용주는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더 쉽다. 계약이 만료되거나 해고시켜 버리면 더 이상 책임질 일도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청년들이 성폭력과 폭언,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들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책임을 묻는 것조차 두려워 개인에게 책임을 지워버린다.

한쪽에서 너무나도 가벼워진 책임들은 결국 약한 개개인들에게만 비대칭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남은 것은 오로지, 모두 필사적으로 피하려고만 하는 법적 책임일 뿐이다. 우리도 일상에서 매일 마주치는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과 불안정한 삶에 내가 직접 고용한 것도 아니라면, 그리고 법적 책임이 없다면 역시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워도 되는 것일까.

결국 우리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야 나는 누구이고, 왜 살고 있고, 또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보다 대칭적인 관계들로 촘촘하게 이루어진 사회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연대감이 강하게 흐르는 사회다.

나와 관계 맺은 이를 소중하게 여기며 책임을 다할 때는 그도 나를 소중하게 여겨줄 것이라는 믿음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이런 막연한 믿음이 주는 안정과 평온함이 있는 사회는 발밑의 따뜻한 땅과도 같이 또 다른 차원의 행복과 즐거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이승윤 이화여대 교수 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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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공장 내부에 설치된 고화질 카메라가 조립 공정을 꼼꼼하게 훑고 지나간다. 움직이는 물체의 대부분은 기계장치이다. 유려하고 반짝이는 근육질의 기계 팔들이 부품을 정확하게 집어 필요한 곳으로 옮긴 후 나사를 조이거나 용접을 하고, 도색 작업으로 마무리한다. 기계 팔들의 정밀한 움직임은 이미 인간이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화면에 잡힌 인간 노동자들은 대개 기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거나, 심지어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빈둥대고 있다. 지난주에 끝난 백남준아트센터 기획전 ‘우리의 밝은 미래-사이버네틱 환상’의 일부로 전시된 박경근 작가의 작품 ‘1.6초’의 일부이다. 작가는 “공장에서 가장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로봇이고 생기 없는 회색빛의 얼굴은 인간”이라고 지적한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실업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최근 높아졌지만, 사실 미래는 이미 여기 와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는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수학자 노버트 위너(1894~1964)가 이미 예측했던 일이었다. 그는 17세였던 1912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집합론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정보의 피드백을 통해 기계장치를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대공포 사격을 자동화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적기가 빠른 속도로 날아올 경우 인간의 제한된 인지능력만으로 대공포를 조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비행기의 과거 움직임으로부터 근미래의 움직임을 예측해 자동으로 조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위너는 이러한 연구를 통해 정보의 피드백을 중심으로 한 기계장치의 작동 원리가 동물 또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방식, 더 나아가 인간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과 근본적인 의미에서 동일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는 <사이버네틱스>(1948)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설파했다.

위너는 이 책의 서문에서 2차대전을 통해 발전된 기계·컴퓨터 기술을 통해 “이미 거의 모든 수준의 정교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즉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인간 노동자가 필요없는 자동화된 조립 공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위너는 이와 같은 기술적 변화를 ‘제2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다. 첫 번째 산업혁명이 인간의 근력을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었다면, 20세기 중반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인간의 두뇌를 대체할 것이었다. 첫 번째 산업혁명을 통해 다수의 육체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듯, 두 번째 산업혁명이 완수된다면 사무직 노동자와 과학자들 중에서 “평균 이하의 성과를 가진 사람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없게 될 것이다”. 위너는 자신이 목도하고 있는 20세기 중반의 기술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충격에 대해 경고했다.

위너가 1948년에 던졌던 경고는 2017년 현재 우리의 현실이 되었다. 그의 시기 구분에 따르자면 우리는 1948년 무렵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의 영향력하에 살고 있다. 위너가 사이버네틱스를 구상할 무렵 트랜지스터가 발명되었고 디지털 컴퓨터가 개발되어 이용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 트랜지스터는 집적회로로 만들어져 밀도가 점차 높아지기 시작했고, 18개월에 두 배씩 반도체 칩의 성능이 높아진다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컴퓨터 성능이 고도화되고 인터넷 기술이 보편화되면서 데이터의 생산과 수집 과정이 획기적으로 변화했고, 이는 한동안 답보 상태에 빠져 있었던 인공지능 기술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위너는 집적회로가 처음 개발된 직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이후의 변화에 대해 그리 놀랐을 것 같지는 않다.

위너의 구분을 받아들인다면 1980년대 이후 나타난 각종 시기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 인간과 기계를 가르는 명확한 경계는 이미 20세기 중반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은 시기 구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정부의 의제 설정이라는 의미가 크다(맹미선 <‘알파고 쇼크’와 ‘4차 산업혁명’ 담론의 확산> 참조).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담론은 과거의 정보화 사회, 녹색성장, 창조경제 등 정치적 유행어들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이러한 유행어를 기준으로 과학과 기술의 역사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무의미하다.

오히려 우리는 해당 유행어가 제시하는 미래의 모습과 그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현재의 자원을 재배분하는 정치적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를 주창하는 과학자로서 자신이 만들고 있는 테크놀로지가 가지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그는 사이버네틱스가 이루어낼 2차 산업혁명이라는 미래가 “선과 악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 그 미래는 인류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계 노예”들을 제공해줄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노예 노동력과의 경쟁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이는 모든 노동력은 노예 노동력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노예 노동”과 다르지 않게 될 것이었다. 편안한 노예의 처지가 되는 미래를 받아들일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제3의 길을 찾을 것인가? 위너가 1948년에 제기했던 오래된 문제가 이제 우리 눈앞에 놓여 있다.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최형섭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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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케묵은 이야기를 하게 생겼다.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해의 이야기니까 벌써 36년 전, 1981년의 이야기다. 그래도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것은 대학입시의 기억이 온몸에 새겨진 듯 생생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네시간 자면 합격, 다섯시간 자면 불합격. 그래서 밤을 새우기 위해 독서실에 다니던 기억. 당시까지만 해도 통금이 있어서 새벽 네시 통금이 해제되는 시간에야 독서실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 스산한 새벽거리를 걷던 기억, 졸면서 쓰러질 듯이 만원버스에 시달려가며 학교에 가던 기억,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침으로 범벅이 되게 만들며 책상에 엎어져 잠들었던 기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게 사는 건가 싶던 기억.

서울 대치동 학원거리에서 학생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합격이 되면 다행이겠으나 떨어지면 통째로 잃어버릴 시간들이었다.

나는 학력고사 시대에 대학에 들어갔고, 또 졸업정원제 세대이기도 했다. 민망하게 고백하자면, 졸업정원제 혜택을 대단히 봤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입학정원을 졸업정원의 30% 이상 선발해 졸업 때까지 그 30%를 탈락시키겠다는 것이 졸업정원제의 취지다. 대학을 공부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 목적이 실은 대학 내 반정부 학생운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건 누구나 알았다.

놀라울 것도 없이, 학생운동은 불어난 인원만큼이나 배가되었다. 내가 졸업정원제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늘어난 30%의 입학정원에 해당되어 원하던 학교에 합격할 수 있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하여 그때까지는 입시에 파묻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었던 시대의 이면을 마침내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그렇다.

졸업정원제가 계속 시행되던 1983년, 84년 캠퍼스는 학생들로 넘쳐났고, 그 넘쳐나는 학생들은 넘쳐나는 물결처럼 시위대열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6·10항쟁이 있었다.

지금은 시대가 다른가.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고, 시위의 현장은 대학 캠퍼스가 아니라 촛불이 빛나는 광장이 되었다. 지난해 촛불집회가 있을 때, 광화문광장에는 고등학생들도 있었다. 대단히 많았다. 그들은 피켓을 들고 있었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고, 집회가 끝난 후에는 쓰레기도 치웠다. 억눌려 있는 목소리, 가장 크게 목소리를 내야 할 사람들은 아마도 그들일지도 모른다. 아직 발을 담가보지도 못한 사회, 그들로서는 아무 잘못도 보태지 않은 사회, 그 사회의 부조리함이 그들의 인생을 통째로 틀어쥐고 있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얘기해서 뭐하나. 그 아름다운 10대, 그 찬란한 10대를 학생답게만 사는 게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사회, 그런 세상에 대한 외침인 것이다.

오래전 한국 순방길에 올랐던 해외 외교사절을 수행했던 한 교포가 들려줬던 일화가 있다. 한국이 그토록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고 묻는 그 외교사절에게 그가 자랑스럽게 한 대답은 ‘교육’이라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밥은 굶어도 책은 사줬다. 그때 그에게 질문을 했던 외교사절의 나라는 어머니들이 돈이 있다면 축구공을 사주는 곳이라고 했다.

한 나라의 발전과 성장이 단지 축구공과 책의 차이일 리는 없다. 어머니들이 축구공 대신 책을 사줬다고 해서 크게 자랑스러워해야 할 일도 아니다. 그 책이 그저 참고서나 문제집이기만 했다면 더욱 그렇다. 한 나라의 성장동력이 교육에 있다는 말에는 백번 동의하지만, 교육이라는 말이 얼마나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느냐는 데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교육환경은 외국인들을 경악하게 만든다. ‘세상에 이런 일이’ 수준이다. ‘한국의 학생들은 언제 놀아요’가 아니라 ‘언제 살아요’라고 물어야 할 수준이다.

불행히도, 교육환경은 35년 전 내가 대학에 들어가던 때와 거의 달라보이지가 않는다. 입시의 이름이 바뀌었고, 입시의 항목이 바뀌었을 뿐, 아이들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통째로 저당 잡히고 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온 것은 정말 까마득히 옛날의 일이고, 그 영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그 영민한 주인공이 살았다면 지금은 기성세대가 되어있을 터인데, 그 기성세대들이 이끌어가는 사회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달라진 것은 오히려, 끔찍하게도, 성적순으로 붙잡을 수 있는 기회의 폭이고, 그 기회의 근본이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건, 그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싶은 건 그런 환경에 있지 못한 사람들뿐이다.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들. 차별받고 있는 사람들, 애시당초 기회에 근접할 수 없는 사람들.

오래전 그 무지막지했던 군사정권은 학생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그야말로 폭력적으로 교육과 입시제도를 바꿔버렸다. 그리고 역풍을 맞았다. 그 역풍을 일으킨 주역들이 지금 정권의 중추들이고 교육정책 담당자들이다. 그들이 바꾸지 못한다면, 더 낫게 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어디에 있겠나. 촛불집회를 통해 이미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목격한 바 있다. 그 건강함이 발산되는 교육, 그게 미래가 아닌가.

35년 전, 학력고사가 끝나던 날, 소설책을 사러가던 기억이 난다. 문학소녀 취향 때문일 수도 있고, 입시가 끝났는데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그동안 억눌렸던 잘난 척의 폭발일 수도 있다. 동네 서점으로 가던 그 길이 무지하게 쓸쓸하던 기억도 난다.

시험이 끝났는데도 불안한 미래, 더욱 불안한 앞날. 그래서 울음이 터질 것 같던 기억. 한순간에 모든 걸 털어버리기에는 그동안 바쳤던 게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일 내 10대의 시간들을 그런 식으로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수능이 일주일 앞이다. 학생들과 부모님들의 노고에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꿋꿋이 버티시기를 바란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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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을 불통이라고도 한다. 소통 반대 불통과는 다른 말. 풍선 불통이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풍경. 에베레스트 고산이 있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풍선을 닮은 구름이 떠다니고 아이들이 놓친 풍선도 더불어 날아다닌다. 아기 원숭이는 풍선을 쥐어보려고 보리수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엄마에게 혼이 났다. 바람의 말이라는 뜻의 오색 깃발 ‘룽다’가 펄럭이는 나무. 아기 원숭이는 애먼 룽다를 한 번 손바닥으로 쳐보고는 엄마 품으로 쏘옥. 불통이랑은 다른 치통. 길 떠나는 날부터 잇몸이 욱신욱신 아팠다. 치통약을 한 알 삼키고서 집에 돌아갈 날을 세보았다. 여행하면서 어디 몸 한구석 문제가 생기면 고약해진다. 하늘에 별을 보고 빌었다. 잠깐 사랑니 앓듯 스윽 지나가기를….

다이 시지에가 쓴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라는 소설엔 치통 이야기가 배를 쥐게 만든다. 모주석의 문화대혁명 때 치과의사 아들인 뤄는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사상재교육을 받으러 시골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촌장의 교활한 감시를 당하는데, 치통에 시달리는 촌장을 치료하는 대목은 ‘웃프다’. 집에서 보고 배운 게 있을 거라 믿고 아픈 치아를 내맡기는 촌장. 치아를 쪼는 바늘은 재봉틀로 결정했다. 발로 구르는 재봉틀에 촌장을 눕히고 재봉틀 바늘을 이용해 이빨을 쪼아대고 갈아낸다는 해프닝. 그렇게 촌장에게 복수하는 뤄의 야릇한 후기는 이렇다. “촌장은 굵은 밧줄로 침대에 묶였을 뿐 아니라 영화의 고문 장면에서나 볼 수 있는 형태로 재봉사의 강철 같은 손에 덜미를 잡혀 꼼짝 못했다. 촌장은 입의 양쪽 아귀로 거품을 뿜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숨을 쉬면서 신음을 토했다.” 아무리 아파도 이 구절 앞에선 치통이 거짓말처럼 싹 걷힌다. 아프단 말조차 꺼내지 말아야지.

수많은 통증. 분단의 통증, 불평등의 통증. 두통 치통, 때마다 생리통.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풍선 불통을 불며 개운한 세상을 꿈꾼다. 진통으로 태어나서 고통 끝에 죽는 인생. 참고 견디며 꿈을 꾸는 이는 복이 있으리니, 그대! 풍선 불통이 되어 훨훨 새처럼 유성처럼 날아오르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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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연출가 이윤택은 1995년 연산군의 일대기를 다룬 연극을 무대에 올리면서 ‘문제적 인간 연산’이란 제목을 달았다.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려는 의도였다. 연극은 조선의 제10대 왕이었던 연산군이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하들, 아버지 성종의 짙은 그림자 때문에 문제적 인간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출판사 교양인은 2005년부터 <문제적 인간> 시리즈를 펴내고 있다. 목록에는 스탈린, 장칭(江靑), 히틀러, 네차예프, 괴벨스 등 사회변혁을 주도하거나 파멸로 이끈 문제적 인간들이 올라 있다. 시대와 불화하며 이념의 극단을 치달은 이들의 말로(末路)는 한결같이 비극적이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문에 생각에 잠겨 있다. 권호욱 기자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도 극단적인 이념 편향성을 보이는 문제적 인간이다. ‘한국의 매카시’로 불리는 그에게 반공이데올로기는 신념을 넘어 신앙이 된 지 오래다. 방문진을 ‘극우의 놀이터’로 만든 고영주는 MBC 경영진의 불법과 부도덕을 비호하며 방송의 극우화를 부추겼다. 그러니 MBC가 ‘부패권력 부역방송’으로 추락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의 첫 국정감사에서 고영주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증인 신분으로 국회에 출석한 그는 국감 보이콧을 논의하던 자유한국당 의총에 드나드는 기행(奇行)을 서슴지 않았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확증 편향’ 성향도 드러냈다. 여당 의원들이 “MBC가 신뢰를 받고 있다고 보느냐”고 묻자 “MBC가 정상적인 국민들로부터는 신뢰를 받고 있다”고 했다. MBC를 신뢰하지 않는 시민들은 ‘비정상적’이란 뜻이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했던 ‘배째라 소신’도 여전했다. 의원들이 “명예훼손 소송에서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오면 어찌할 것이냐”고 하자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맞받았다. 지동설을 주장해 유죄판결을 받은 갈릴레이를 코스프레한 것이다. 그는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는 것은) 나중에 당연히 드러난다. 내가 평생 공안을 해서 안다”고 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고영주는 달라지지 않았다. 궤변은 여전했고, ‘좌파 혐오증’은 더욱 공고해졌다. 국감 질의가 끝난 뒤 삼각김밥을 나눠 먹은 김진태 한국당 의원 같은 보수세력에게 ‘아스팔트 우파의 자존심’으로 치켜세워질 만하다.

공안검사 시절 고영주는 ‘변형적 출세주의자’로 통했다. 그는 법대가 아닌 공대(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왔다. 유학을 준비하다 대학 3학년 때 부친이 세상을 뜨자 군에 입대했다. 공대 교수가 되려 했으나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읽고 나서 법조인으로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1978년 청주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고영주는 검찰 내 공안이론가로 유명했다. 1981년 부림사건 수사검사를 맡아 용공조작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는 그는 지금도 “부림사건은 빨갱이 사건”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검찰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2006년 서울남부지검장에서 물러나면서 검찰 내부통신망에 “27년간 검사로 일하게 해준 검찰 조직에 감사한다”는 짧은 글을 남겼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노무현 정부에서 5년 내내 핍박받는 게 더러워서 그만뒀다.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검찰총장을 하고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공안검사를 그만둔 이후 고영주는 좌파척결 활동에 매진했다. 2010년 <친북·반국가행위 인명사전>을 편찬했고, 이듬해에는 민주노동당 해산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냈다. 어느 의원의 말마따나 “사법부에 김일성 장학생이 있다” “국사학자 90%가 좌편향” “세월호 유가족은 떼쓰는 사람”이란 발언은 ‘고벨스’(고영주+괴벨스)가 아니면 할 수 없다. 방송 문외한인 고영주는 2015년 8월 방문진 이사장이 됐다. 당시 그는 “이사장을 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맡기신 분의 뜻이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맡기신 분’이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고영주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방문진 이사회는 지난 2일 이사장이던 그를 불신임하고, 이사 해임 건의안도 통과시켰다. MBC를 망가뜨린 고영주의 해임사유는 차고 넘친다. 오죽하면 “방송을 강간한 범인, 사람도 아니다”(신경민 민주당 의원), “철면피, 파렴치, 양두구육”(송일준 한국PD연합회장)이란 극언까지 쏟아졌겠는가. 고영주는 방문진 이사에서 해임되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 안될 일이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자경자계(自警自戒)하는 게 도리다. 고영주의 인생행로를 바꿨다는 <법의 정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덕성에는 품위, 습속에는 솔직함, 행동에는 예의가 있어야 한다.” 그에게 묻는다. 언제까지 품위와 솔직함, 예의를 잃은 문제적 인간으로 남아 있을 셈인가.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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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의 노량진은 좀 특별했다. 활어 수족관 대신 스티로폼 박스가 주욱 늘어선 도매시장을 처음으로 구경했다. 여의도에서 음식점을 하는 친구 따라 간 덕에 TV에서나 보던 경매도 직접 봤다. 귀공자처럼 스티로폼 박스 사이를 누비며 필요한 물건들을 찍어 놓은 그와 시장 뒤편 포장마차로 향했다. 겨울바람에 강바람까지 더해진 노량진에서 그 허름한 포장마차는 이글루처럼 느껴졌다. 상인과 경매인, 트럭 운전사 등 새벽 시장에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이 모여 드는 곳이었다.

어둑한 내부를 연탄 난로가 덥혔다. 라면 한 그릇 후루룩 먹고 나가는 이들이 있었고, 손맛 좋은 이모가 프라이팬 하나로 만들어내는 계란말이 등을 안주 삼아 소주 한 병 비우는 이들이 있었다. 그 틈에 비집고 앉아 친구가 가져온 고등어를 난로에 구워 소맥을 말아 마셨다. 팔도에서 모여든 이들이 나누는 새벽의 대화는 어떤 활어보다 싱싱했다. 난방 따위 없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찬물에 손을 대야만 살아가는 이들만의 치열함은 난로보다 뜨거웠다. 난 그때 옆에 있던 일행에게 말했다. “이게 진짜 삶이라는, 그 무엇 같아.”

막상 쓰려니 민망한 그 대사를 친 일행과 연애를 하게 됐다. 그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올 무렵이었다. 복잡하다면 제법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연애를 제법 해봤으나, 이전과는 좀 달랐다. 결혼한 사람들에게 가끔 듣는 “왠지 이 사람 하고는 결혼할 것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 떠오르곤 했다. 연애를 시작한 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프러포즈를 했다. 승낙을 받은 후엔 일사천리였다. 시간에 가속도가 몇 배로 붙었다. ‘그래도 한참 남았구나’라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청첩장을 찍고 있었다. 마치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에 들어와있는 기분이었다. 정신 차려 보면 식장에서 사진 찍고 있을 거라고 하더니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을 앞둔 사람들의 최대 고민이 시작됐다.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려야 하나, 몇 년 만에 연락해서 결혼 소식을 전하면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누구나 했을 그런 고민들. 그런 나에게 한 선배는 말했다. “판단은 상대의 몫이야. 일단 연락하는 걸로 너의 몫은 끝이고.” 그 말에 따라 연락처를 쭉 훑었다. 세상에, 꿈에도 몰랐다. 내 전화에 이렇게 많은 사람의 번호가 들어 있을 줄은. 이 사람이 누군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번호도 엄청났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는 자기 얼굴이었던 프로필 사진이, 아기 사진으로 바뀐 사람은 헤아릴 수 없었다. 술잔을 부딪친 기억이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추려내던 중, 역시 한 인생 선배가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결혼을 앞두면 반드시 자기 삶을 되돌아볼 때가 생겨. 넌 나이가 있으니 더할 거야.”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자기 얼굴 대신 아이 얼굴을 정체성으로 내건 사람들은 진작 깨달았을 사실일 테다.

마치 텔레마케터라도 된 양 계속 전화를 돌렸다.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 싶어 카톡까지 동원했다. 다들 이래서 카톡으로 청첩장을 보냈으리라. 그때마다 섭섭하게 생각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김씨를 거쳐 박씨 정도까지 왔다. 그렇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는 여자친구와 노량진으로 향했다. 지난겨울 이후 처음이었다. 우리에게 도매시장의 세계를 알려준 친구와도 함께했다. 다시 이글루 같은 포장마차에서 우리는 소맥을 마셨다. 시큼한 섞박지와 계란말이, 동태찌개, 목살볶음 등을 이모는 계속 내왔다. 손맛이 여전했다. 시장의 풍경 또한 여전했다. 여전한 풍경과 맛에 취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집으로 돌아올 사람이 있다는 것만 달라졌다.

여자친구는 침대에 누워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삶을 되돌아보게 되면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 같아.” 그 말을 하루의 유언처럼 남긴 후, 그녀는 잠들었다. 왠지 찡했다. 나에게 가족이란 존재가 생긴다는 게 다시 한번 실감이 났다. 이게 진짜 삶이라는, 그 무엇 같았다.

<김작가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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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변정수 초대 헌법재판관(재임기간 1988~1994)이 타계하셨다. 나는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5년간 변 재판관을 보좌했다. 변 재판관과의 만남은 법조인으로서 오늘의 내 삶의 자세를 견지하도록 하는데 깊은 영향을 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사건의 배후에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공권력 남용에 맞선 투쟁정신 등이다. 더 나아가 재판은 건전한 상식과 순리에 입각한 단순 명료하고 간단 명쾌한 것이어야 당사자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 논리적이고 현학적 법리에 입각한 재판만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역시 그의 지론이었다.

변 재판관은 한국의 올리버 웬들 홈스다. 홈스는 ‘법은 논리가 아니라 경험’이라고 주창한 미국 연방대법원의 위대한 소수의견자다. 많은 학자들은 그가 재임 중 낸 60여 건의 소수의견과 20여 건의 위헌결정이 오늘의 헌재 위상 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첫 위헌결정으로 검찰권에 대한 헌법적 통제를 가능하게 했으며, 대법원 규칙인 법무사법시행규칙에 대한 위헌결정으로 헌재와 대법원의 관계 정립뿐만 아니라 법률의 하위 법령에 대한 헌법심사를 가능하게 했다.

특히 위 대법원 규칙에 대한 위헌결정이 나오기까지 주심인 변 재판관이 겪었던 고초는 재판 사상 전무후무한 일로서, 그의 불굴의 소신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변호인이 구속 피의자, 피고인을 만날 때 교도관이 입회하여 대화 내용을 적고 사진 찍는 관행을 없앤 것도 그의 공로였다. 억강부약(抑强扶弱), 즉 강자보다는 약자를 위하는 자세와, 국민의 기본권이 국가 권력에 우선한다는 그의 일관된 헌법관은 후학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허약한 체질에다 잔병이 많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이 평생 병에 시달려 왔다. 마음도 몹시 약하고 눈물이 헤프다. 마음은 너그럽지 못하고 소심하다. 사교는 즐기지 않고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기 때문에 말도 잘하지 못한다. 머리의 회전도 느리다.’(변정수 회고록, <법조여정> 중에서)

참으로 겸허한 자기 성찰이다. 곁에서 지켜본 그는 다정다감하고 인정이 넘쳤다. 약자를 편들고 강자를 싫어했다. 고집은 세지만 옹고집은 아니었다. 합리적인 논거와 이유를 제시하면 자신의 주장을 시정하였다. 책임감이 강하고 돈보다 명예를 중히 여기고, 항상 검소한 생활태도를 잃지 않았다. 농촌 풍경, 특히 논두렁, 밭두렁을 너무 좋아한다고도 했다.

그가 낸 소수의견은 대부분 8 대 1의 외로운 길이었다. “뜻을 같이하는 재판관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연구관한테 이런 얘기는 안 해도 되는데….” 평의를 끝내고 종종 나를 불러 한 말씀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재임기간 내내 인간적인 외로움을 감내했다. 퇴임 후에는 장관급 공직자에게 의례적으로 주어지는 청와대의 훈장 제의를 끝내 거절했다.

그가 개척했던 길은 이제 아름다운 동행이 넘치는 길로 헌법재판사(史)에 우뚝 섰다. 법조인으로서 초입에 그를 만나 엄격한 단련을 거쳤던 것은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관용과 진실에 기초한 공동체 정신을 헌법적 가치로 회복해야 할 이 시기에 우리는 헌법의 거목을 잃었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이석연 | 변호사·전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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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우리 동네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일하는 아저씨가 여럿 있었다. 어른들이 ‘사우디에 갔다’는 말끝에 붙이는 형용사에는 대개 안쓰러움이 담겨있었다. 어른들의 오가는 말속에 ‘사우디’는 달걀을 도로 위에 깨트리면 지글지글 익어버리는 뜨거운 태양과 온종일 입안에서 서걱거리는 모래바람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 나라 이름을 들을 때마다 모래바람을 뒤집어쓴 채 끝도 없이 이어지는 파이프 위에 듬성듬성 서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아무튼 뜨거운 사막에서 땀 흘린 이들은 집으로 돈을 부쳐서 모래바람은 집이 되고 텔레비전이 되고 냉장고가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하면 석유와 잘 나가는 축구팀 하나쯤 사는 건 일도 아닌 거부를 떠올릴 테고, 어른들은 가물가물한 못 먹던 시절 얘기를 더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리한테는 잊힌 아니 잊으려고 하는 고달픈 ‘이주 노동’은 지구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김포에 있는 공장에서 몇 년째 일하고 있는 청년은 방글라데시에서 왔다. 다카에서 한참 들어가야 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산다는 그의 ‘이주 노동’은 마치 품앗이와 같다.

“큰형은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일했어요. 형이 번 돈으로 내가 학교에 다니고, 우리 식구 다 먹고살았어요. 지금은 내가 해요.”

그의 서툰 한국말에서 ‘사우디’가 내 귀에 아주 선명하게 박히면서 청년의 까맣고 큰 눈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연대감과 같은 감정이었다. 우리는 모래바람 속에서 일한 이들을 통해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청년은 형이 그랬듯이 월급을 죄다 집으로 보내고, 식비로 받는 20만원으로 생활하지만 괜찮다고 말했다.

“일하는 건 좋아요. 가족들이 보고 싶은 게 가장 힘들어요.”

그러고 보니 사우디아라비아에 몇 번씩 다녀온 우리 동네 아저씨도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애들이 보고 싶어서 정말 또 나가고 싶지 않다고. 거친 모래바람보다 낯선 땅의 서먹함보다 쉼 없이 되풀이되는 노동보다 힘든 것은 여전히 그리움이었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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