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수매’는 귀에 익어도 ‘하곡수매’는 낯설다. 늦가을에 파종하여 여름에 거두는 하곡의 대표작물은 맥류로 분류되는 보리와 밀이다. 추곡의 대표작물은 쌀이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추곡수매도 폐지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곡물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정부 수매가 폐지된 작물은 밀이다. 미국밀이 지천에 흔하던 때에도 밀 수매가 이루어져 그나마 희미하게 밀농업이 유지되었다. 하나 그마저도 귀찮았는지 전두환이 1984년 밀 수매를 중단하면서 밀농사는 완전히 맥이 끊길 지경이었다. 그러나 몇몇 농민이 한 알의 밀알이라도 계속 채종하여 심어온 덕분에 지금 우리밀의 뿌리를 지켜냈다. 전국에 흩어져 있던 토종밀을 얻어다 키운 사람들 중에 백남기 농민도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감옥살이를 했던 백남기 농민은 징역살이를 끝내고 자신의 고향 보성군 웅치면 부춘 마을에 내려와 5,000평의 밀밭을 꾸렸다. 1989년 보성의 첫 우리밀 생산자는 백남기 농민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故) 백남기 농민

0.2%니 0.1%니 하는 의미 없는 소수점 수준의 자급률이었던 밀이 절멸할까 걱정스러워 농민과 시민들이 손을 맞잡고 겨우 지켜낸 것이 ‘우리밀’이다. 그 노력 끝에 이제 밀 자급률은 1% 남짓이다. ‘우리밀’이란 예쁜 이름이 보통명사가 된 것도 1990년대 초반 벌였던 ‘우리밀살리기운동’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밀은 쌀과 더불어 식량자급의 큰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그런 우리밀이 또 수난시대를 맞이했다. 쌀값 하락과 2008년 세계의 곡물파동으로 이명박 정부는 쌀 대체작물로 우리밀을 주목했다. 농민들에게는 이모작으로 소득증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 하면서 우리밀 자급률을 10%로 늘리겠다는 허언을 날렸다. 식량자급률이 말로만 올라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비자들이 즐겨 먹을 수 있는 형편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별무소용이다. 이유는 우리밀이 수입밀보다 3배 비싸고 가공 활용도가 낮아서다. 아니 반대로 수입밀은 싸고 산업원료로 오래도록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한때 <제빵왕 김탁구>라는 드라마 열풍과 수입밀 가격 폭등으로 대형 제과회사들도 우리밀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대형 제과기업이 우리밀을 사들이면서 잠시 품귀현상도 있었으나 딱 한철에 그치고 말았다.

작년 우리밀 자급률이 고작 1.6% 정도로 올라오니 바로 재고로 쌓여 우리밀 생산자들이 헉헉거리는 중이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우리밀 자급률 목표를 10%로 잡았던 것일까. 하긴 그 안에 목표 자급률은 5.1%로 후퇴했고 이제 그마저도 흐지부지될 모양이다. 그동안 정부는 목표 자급률을 맞추기 위해 질보다는 양에 치중한 정책을 펼쳐왔다. 그래서 맛과 활용도 면에서 떨어지는 ‘다수확’ 품종인 백중밀 보급에 집중해 왔다. 그렇다 보니 소비 진작이 되지 않는 데에도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나마 백중밀도 밀쳐놓고 이제 농정당국은 ‘적정생산량’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하면 됐으니 우리밀 농사는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뜻으로 읽힌다.

백남기 농민의 1주기가 열흘 앞이다. 2015년 11월, 밀 파종을 마치고 서울 민중대회에 참가했다가 쓰러지면서 손수 갈무리하지 못한 ‘백남기 우리밀’. 그 씨앗을 받아 동료 농민들이 우리밀 농사를 짓고 있다. 그의 숨결이 담긴 ‘백남기 우리밀’ 세트가 절반도 안 팔렸다는 애타는 소식을 들었다. 올 추석은 ‘백남기 우리밀’로 백남기 농민의 뜻도 기리고 우리밀전이라도 부쳐보면 어떨는지.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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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개신교계가 어제 종교인 과세 시행을 2년 유예해달라고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는 공동입장문을 내고 “과세를 강행한다면 심각한 조세저항과 정교갈등을 낳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입장문은 김동연 부총리가 종교인 과세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시민들의 공평 과세 요구를 무시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참으로 뻔뻔한 주장이다. 저항, 갈등 등 분열을 조장하는 표현까지 동원한 것은 정부와 시민사회를 겁박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을 찾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엄기호 목사와 종교인 과세(소득세법 개정안) 관련 면담을 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에 따라 마땅히 시행됐어야 할 종교인 과세가 수십년째 헛바퀴를 돈 것은 신앙을 앞세운 일부 종교단체들의 오만함과 이를 비호해온 정치권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정치권이 뒤늦게 2015년 12월 세법 개정안을 만들었지만 그나마 시행일은 2018년 1월1일로 유예한 터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유예를 거론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위이다. 이는 “종교인 과세는 시종일관 지지”(자승 총무원장), “종교인들이 과세에 반대한 것으로 오해받을까 걱정”(김희중 대주교)이라는 불교계·가톨릭계의 입장과도 대비된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주장도 납득하기 힘들다. 엄기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은 “세무조사 때문에 종교활동이 저해될 수 있다”며 “탈세 제보가 있으면 각 교단에 이첩해 자진납부하게 하고, 세무공무원이 개별 교회와 종교단체를 조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탈세를 묵인해달라는 얘기로, 교회를 정부의 윗자리에 놓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오만한 발상이다.

현행법에 ‘국세청은 공익법인 등이 출연받은 재산을 공익 목적으로 썼는지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교회는 공익법인으로 분류돼 있다. 한국 교회가 위기에 처한 데는 불투명한 재정관리가 큰 원인이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때마침 어제 진보성향 개신교 교단 협의체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종교단체가 투명하게 세금을 신고·납부한다면 세상을 향해 담대한 꾸지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참된 정교분리의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고언이 나왔다. 공감되는 말이다. 종교인은 무법과 불법의 영역에서 사는 존재가 아니다. 과세 유예의 특권을 요구할 자격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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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PD, 아나운서, 리포터, 미술음악치료사. 모두 전문 프리랜서 직업들이다. 언론에서 프리랜서는 주로 유명인사들의 사례가 소개된다. 무엇보다 전문성이나 창의성을 다루지만 고소득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영화나 방송에서 프리랜서 직업은 커피 전문점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노트북 컴퓨터로 일하는 모습들이 자주 나온다. 그런데 프리랜서의 일은 밝기만 한 것일까. 또한 프리랜서는 좋은 일자리(decent work)의 미래상일까.

프리랜서는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회사 직원이 아니다. 비용은 ‘인건비’가 아니라 ‘제작비’로 나간다. 그러니 퇴직금이나 실업급여, 건강검진도 없다. 당연히 연차휴가도 없다. 프리랜서는 회사나 고용주들이 대신 지급하는 형태로 모든 세금을 내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이 누리는 혜택은 받지 못한다. 소득 예측도 어렵고 변동성도 심하다. 합리적인 계약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일하는 곳에서는 신분증이 아니라 출입증을 받는다. 그래서 프리랜서는 보이지 않는 유령에 불과하다.

국내외 통계에서 프리랜서는 취업자의 약 5% 남짓 된다. 적지 않은 규모다. 문제는 전통적인 임금노동자도 아니고, 자영업자도 아닌 모호한 고용형태다. 프리랜서(Freelancer)는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독립계약자’나 자영업자로 불린다.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주로 ‘자유직업인’으로 지칭된다. 프리랜서는 이미 기존 노동자와는 구분되는 특성을 가진 집단으로 고착화된 지 오래다. 명칭상 ‘프리랜서’라고 불리는 순간, 열악한 노동조건과 사회보장의 미비는 고용의 왜곡을 초래한다.

최근 ㄱ방송사 프리랜서와 대화를 하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사실 화가 났다. 그녀에게는 1년에 3일의 휴가가 주어졌다. 유급이 아닌 무급이다. 그런데도 다행이라고 한다. 정말 중요한 일이나, 취업 때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그녀의 삶 속에 ‘휴가’는 낯선 단어였다. 휴가는 곧 소득의 단절, 경제활동의 단절을 의미한다. 1주일에 6일 출근하면서 고작 주급 40만원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저 사용하는 휴가지만, 그녀에게는 정말 ‘소중한 3일’이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프리랜서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컸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와의 차별은 마지막 남은 자존감조차 상실케 한다. 야간이나 주말 혹은 명절 근무는 모두 프리랜서의 몫이다. 싫다고 할 수도 없다. 봄·가을 프로그램 개편 때 자칫 실업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리랜서의 고용불안정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회사 인력이 아닌자. 한마디로 회사의 편의대로 쓰고 필요 없으면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일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막막해졌다. 그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도 이제 ‘보호를 필요로 하는 고용’에 관심을 가질 시기다. 지난 4월15일 미국 뉴욕시는 ‘프리랜서보호법’을 제정했다. 주요 내용은 서면계약, 임금 적시 지급, 보복으로부터의 자유, 고용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리와 법률 서비스 등이다. 법의 취지는 “신분이나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은 프리랜서에게 건강보험과 퇴직연금 혜택을 제공하는 곳도 있다. 유럽의 몇몇 협회들은 프리랜서 수익의 일정 금액을 상호부조 성격으로 공제하기도 한다. 프리랜서 재교육 비용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다행스럽게 최근 국내에서도 프리랜서 권익보호를 위한 활동들이 전개되고 있다. 아직은 소수이나 프리랜서 권익보호를 위한 움직임의 시작이다. 프리랜서에게도 일터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현재 MBC와 KBS에서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파업이 마무리되면 작가나 리포터 등 내부 구성원에게도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결방으로 급여를 받지 못한 프리랜서에게 최소한의 휴업수당이라도 지급하면 어떨까. 그 정도의 작은 희망을 기대해 본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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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회의는 다섯 번째 안건이 나올 때까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었다. 다섯 개의 안건은 전년도 결정안을 그대로 답습하고 어휘만 다듬은 것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부서라고 말들은 하지만 실제로는 늘 뒷전으로 밀리고 마는 위원회, 즉 교육위원회의 오늘은 1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원장은 저전력 스크린페이퍼를 살짝 흔들어 다음 안건을 눈앞에 띄웠다. 한 시간 만에 처음으로 위원장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다음은… 이게 무슨 뜻이죠? 발안자가 최정안 위원이군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최정안은 의자를 조금 뒤로 밀어 등받이에 체중을 맡기고 최대한 천천히 대답했다.

“안건 명은 최대한 간단하게 작성했는데요. ‘인공지능 교사 도입을 위한 준비작업 - 개요부터 결론까지.’ 제목에 오해할 여지는 없는 걸로 보이는데요.”

“누가 말뜻을 모른답니까. 이미 과목별로 인공지능들이 도입돼 있잖습니까. 학습 효율은 거의 최대치에 도달했고요. 궁금하거나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인공지능이 즉석에서 답을 내주고, 평가도 과목별 인공지능이 전부 해주는데 뭘 더 도입하자는 겁니까. 혹시 교육 현장을 전혀 모르는 거 아니에요?”

정안을 윽박지른 건 위원장이 아니었다. 한국교육위원회에서 가장 오래 위원직을 맡고 있는 손현식이었다. 교육 관련 이사장 이력만 열두 가지가 되는, 말하자면 사학계의 최고 원로였다. 손현식은 학습 특화 인공지능을 납품하는 ‘에듀아이’사의 대표이기도 했다.

정안은 심호흡을 하고 회의 시간 전부터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말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제가 오 년 이상 교사로 일했다는 걸 아신다면 현장을 언급하실 순 없었을 겁니다. 과목별 인공지능을 말씀하신 걸로 보아 아마 에듀아이사의 ‘런소프트’ 시리즈를 염두에 두신 모양인데요. 그렇다면 제가 제출한 안건을 미리 검토해보시지 않았다는 얘기겠죠.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인공지능 ‘교사’입니다. 학습 도우미 프로그램이 아니고요. 제가 인공지능 교사 후보로 제시한 건 인문과학계에서 개발을 마친 ‘만학 1.0’입니다.”

손현식과 위원장을 비롯한 교육위원들은 즉석에서 ‘만학’을 검색했다. 그리고 정안의 의견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만학은 교육 목적으로 제작된 인공지능이 아니다, 인류의 문화를 고루 학습하도록 만든 인공지능이니만큼 교사보다는 학생에 불과한 것 아니냐, 아이들은 나이에 걸맞은 학습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이건 인공지능을 학습 도우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선생’으로 인정하자는 것 아니냐…. 정안은 소란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하고픈 말을 꺼냈다.

“실시간 검색이 우리 삶에 완전히 녹아든 뒤로 기계적인 정보 습득 능력은 아주 크게 향상됐습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정보 습득과 재활용이 교육의 전부인가요?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미 교육 과정을 전부 이수한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을 통해 사회를 배우고, 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과연 무엇인지 깨달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 역할을 누가 하고 있나요? 저 같은 현장 교사들은 런소프트 활용법을 알려주고, 평가에 오류가 없는지 검사하고, 인성검사 소프트에 큰 오류는 없었는지 점검해주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선생들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교장들은 뭘 하죠? 상위 계층의 안위나 걱정해서 그들을 옹호하는 훈시를 하거나 비슷한 내용의 메일이나 보내는 게 전부입니다. 만학이라는 프로그램은 적어도 그러지 않을 겁니다. 인간의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건 물론이고, 사람의 역사와 문화를 분석적으로 학습해서 평가까지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사람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능까지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학은 상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악행을 옹호하거나 약자층을 폄하할 이유도 없습니다. 위원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서 결론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대신 공청회 안건화를 신청하겠습니다. 그러면 선생으로서 만학이 얼마나 부족한지, 우리 어른이 아이들의 선생으로 얼마나 충분한지 많은 사람들이 의논해볼 수 있겠죠.”

****************************************

요즘 기술적 특이점과 새 산업혁명이라는 용어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오가고 있다. 한편에서는 급격한 변화가 갑자기 도래할 거라 주장하고, 다른 편에서는 기술 발달의 영향은 조금씩 꾸준히 누적되는 것이니 유난을 떨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어느 쪽이든 변화가 다가올 거라는 데에는 많이 공감하는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변화가 무엇일지 아무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한다. 우리는 아직 디지털과 정보기술이 전면적으로 우위를 점한 세상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싶다면 이것 한 가지는 생각해보자. 과학기술과 우리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몸이었다. 동그란 바퀴가 그랬고 화약이 그랬고 전기기술이 그랬다. 기술이 야기하는 큰 변화란 판잣집에서 고급 아파트로 이사가는 것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SF가 그려왔듯 사람과 사람의 소통은 이미 디지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앞으로는 현 자본주의 사회의 구성 요소인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 노동의 의미도 완전히 재정립될 수 있다. 그러면 그보다 더 기본적인 관계는 온전할까? 부모와 자식, 상급자와 하급자, 학생과 선생, 연인 사이 역시 새로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열린 자세로 준비하라는 말은 가볍지 않다. 문을 열면 내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를 담고 싶다면 녹슨 자물쇠가 완전히 부서질 수도 있다는 상상도 한 번쯤 해봐야 할 것이다.

<김창규 SF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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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섭섭해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논어>를 열자마자 보이는 공자의 한마디다. 나는 군자 발끝에도 못 미쳐 내가 하는 일, 그러니까 음식 문화사 탐구를 잘 가늠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잘 삐진다. 가령 “설렁탕은 선농제에서 시작됐다” “한국사상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이다” 하는 사람 앞에서는 순간 얼굴이 발그레해지고 한 번은 쏘아붙이게 된다. “낭설 수집을 음식 문화사 공부로 착각하면 그 다음이 없어요.”

부끄럽게도, 내 군자답지 못한 면모를 자주 들키는 계절이다. 추석을 앞두고 차례 상차림을 묻는 전화가 잦다. 대중매체는 여전히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실은 동쪽에 흰 과실은 서쪽에), 조율이시(棗栗梨시:대추·밤·배·감의 차례로 놓기) 같은 진설법을 가르치려 든다. 이 철만 오면 무엇이 차례상에 오를 수 있고, 무엇은 올라서는 안되는가 하는 문제에 정답을 내야만 차례를 지낼 수 있는 것처럼 군다. 다시금 발그레한 얼굴로 단언한다. 홍동백서, 조율이시 같은 말은 꺼낸 쪽에서 증명하라고. 예서는 이런 규약을 논한 적이 없다. 명절 앞두고 기억할 말은 딱 한마디, “가가례(家家禮)”뿐이다.

추석 열차 승차권 예매가 시작된 8월 29일 오전 서울역 매표소 앞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김창길 기자

가가례, 집집마다 예가 다르다, 집집마다 저마다의 예를 따른다는 말이다. 추석의 차례와 손님맞이를 두고 남의 집에다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할 것도 없고, 내 조상께 예 갖추고 오랜만에 겨레붙이 모이는 데 남의 집 눈치 볼 것 없다는 뜻이다. 고려시대 이후 예서의 기본으로 자리 잡은 <주자가례(朱子家禮)>, 18세기에 이를 조선화한 <사례편람(四禮便覽)> 어느 책도 차례 상차림을 규범화한 적이 없다. 이이는 1577년에 간행한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차례에는 지내는 그때 나는 식료로 음식을 해 올리되 별다른 게 없으면 떡과 과실 두어 가지면 된다고 설명했다.

차례는 원래 축문도 읽지 않고 술도 한 번만 올리는 간소한 의식이었다. 이는 그동안의 민속학 조사가 밝힌 바이고, 오늘날 성균관 전례연구위원회에서 되풀이해 강조하는 바다. 추석 차례는 별 탈 없이 한 해의 수확을 앞두고 있음을 조상에게 알리는 의식이었다. 추석은 농번기를 앞두고 모두가 쉬어가는 휴일이었다. 차례 음식은 올벼로 빚은 술, 구할 수 있는 과일, 그리고 지역이나 집안의 특색 있는 음식으로 충분했다. 퇴계 이황은 간소한 제사와 차례를 강조했다. 그 뜻을 진성 이씨네는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파평 윤씨 윤증(尹拯·1629~1714) 고택에 전해오는 차례에 쓰는 상은 가로 99㎝, 세로 68㎝에 지나지 않는다. 후손들은 이 상에 과일 셋, 나물, 밥과 국, 그리고 어포와 육포만으로 제물을 차린다. 차례 상차림은 집안 형편과 사는 곳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다른 게 당연하다. 낙지, 문어, 상어, 홍어, 통북어, 꿩, 부꾸미, 파인애플, 바나나, 카스텔라 등 홍동백서며 조율이시에 들지 않는 제물이 보이는 편이 도리어 자연스럽다. 1970년대 이후 대중매체가 추석 차례에 무슨 대단한 규약이 존재하는 듯 굴었으나 이는 소비와 과시의 시대를 맞아 새로 “만들어낸 전통”일 뿐이다. 감히 동포에게 낯을 붉히랴. 낭설로 쌓은 억지가 불편할 뿐이다. 낭설과 억지가 빚은 가짜 전통은 명절에 깃든 평화와 휴식의 풍경, 공동체의 정다운 마음을 바래게 했다.

이에 더욱 삼삼한 문헌이 정학유(丁學游·1786~1855)의 가사 <농가월령가>이다. 정학유는 산과일이 익어가는 음력 8월을 “뒷동산 밤대추는 아이들 세상”으로 노래했다. 명절 쇠며 쓸 식료는 북어와 젓갈용 조기로 충분했다. “신도주(햅쌀술), 올벼송편, 박나물, 토란국”만으로 차례 지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제물은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다. 차례를 지내고서 며느리는 “말미”, 곧 휴가를 받아 친정으로 떠났다. 삶은 개고기에 떡고리와 술병을 챙겨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남의 집 따님에게, 시적 자아는 얼굴은 좀 폈는지 묻는다. 그러고는 위로 겸해 당부한다. “중추야 밝은 달에 지기 펴고 놀고 오소.” 보름달 아래서 마음껏 놀다 오란 말이다. 밤과 대추를 차지한 아이들, 이웃과 나누는 소박한 제물, 그리고 가사와 농사에 지친 여성의 휴식, 여기 추석의 본래 뜻 명절의 원래 모습이 깃들어 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았으면 해서다. 그 마음으로 굳이 문헌을 불러내 낭설과 억지부터 물리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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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3대 유리왕 때 추석에 대한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있다고 한다. 추석은 수확의 기쁨과 풍년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주위 이웃과 함께 음식을 나누는 2000년이 넘는 우리 전통문화이다.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추석에는 이웃 친지와 음식을 나누고 우리 농축산물을 선물로 주고받는 미풍양속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런 연유로 우리 농축산물 소비의 많은 부분이 추석에 이루어지고 있어, 농업인들도 추석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요즘 우리 농업인들은 추석에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최근 시장 개방과 소비 트렌드 변화에 따라 우리 농축산물로 하던 선물이 오렌지, 체리와 같은 수입과일로 점차 바뀌고 있다. 바나나를 차례상에 올리는 등 차례 문화도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추석을 앞두고 백화점업계가 선물세트 예약판매를 마무리하고 본판매에 돌입했다. 업계는 추석 명절 인기 상품인 한우, 굴비를 비롯한 합리적 가격의 선물세트를 선보인다. 사진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고객이 추석 선물세트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또한 지난해 9월 시행된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우리 농축산물 선물 수요는 더욱 감소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주요 대형마트, 백화점의 지난 설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액은 전년에 비해 25.8%나 감소하였다. 또한 가액기준인 5만원으로는 한우 갈비 등 일부 농축산물은 선물세트를 구성하지 못하다 보니, 가격 경쟁력이 높은 수입 농축산물 선물세트 판매량이 늘어난다고 한다.

특히 올 한해 가뭄과 때늦은 폭우로 인해 농업인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노심초사하며 어렵게 농사를 지은 농업인들이 수확의 기쁨을 누리기보다 판매를 걱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설과 같이 농축산물 선물 수요가 줄어든다면, 농업인들의 피해는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농업인단체와 공동으로 다양한 소비촉진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청탁금지법 가액기준에 맞는 농축산물에 ‘착한선물’ 스티커를 붙여서 직무 관련자도 사교·의례의 목적인 경우에는 안심하고 선물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국민들께서는 이웃·친지 간에 선물을 주고받거나, 직무 관련성이 없는 공직자에게 선물을 해도 청탁금지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5만원 이하의 다양한 소포장 상품을 개발하고, 전국 2100여개의 농협 하나로마트 등에서는 선물세트를 할인판매한다. 지자체에서도 다양한 직거래 장터를 운영할 계획이다.

특히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광화문광장에서 전국의 우수 농축산물을 한자리에 모은 ‘추석맞이 직거래 장터’가 열린다. 여성·청년 농부를 비롯한 전국 각 지역의 농업인이 땀과 노력으로 키운 농축산물들을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판매할 계획이다. 많은 소비자께서 직거래 장터에 오셔서 농업인의 따뜻한 마음을 느끼시고, 양손에는 이웃·친지에게 선물할 우리 농축산물을 한가득 안고 돌아가시길 바란다.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청탁금지법의 취지는 존중한다. 하지만 취지가 좋다고 하더라도, 사회적 약자인 농업인이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가액기준을 현실화하고, 전체 수수한도를 낮추는 등 제도 개선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번 추석, 우리 땅에서 우리 농업인들이 정성으로 키워낸 농축산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우리 농업과 농촌에도 웃음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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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가 2012~2013년 채용한 신입 사원 518명 가운데 95%인 493명이 국회의원 청탁 등으로 부정 입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상상을 초월하는 채용비리 규모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자신의 비서관 출신을 포함해 10명 이상을 청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도 80여명의 인사를 청탁해 20~30명이 채용됐다고 한다.

도박 중독 등의 폐해에도 강원랜드를 설립한 것은 폐광 지역에 일자리를 마련해 서민들 생계에 도움을 주자는 취지이다. 내국인 카지노를 독점 운영하는 강원랜드의 영업이익률은 40%에 육박한다. 올 상반기에만 3000억원의 수익을 냈고 임직원 연봉이 7000만원 안팎에 이른다. 이런 기업의 일자리가 그동안 권력자나 지역 유지의 자제들로 채워지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강원랜드는 청탁 대상자의 자기소개서 점수를 높여주는 방법으로도 안되면 인사팀 컴퓨터에 직접 접속해 각종 점수를 조작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심각한 것은 검찰이 이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도 면죄부를 줬다는 점이다. 2014년 함승희 사장이 취임한 뒤 강원랜드는 이 같은 비리를 자체 감사로 밝혀내고 2016년 2월 춘천지검에 수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검찰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1년 넘게 시간을 끌다가 박근혜 정권 탄핵 후인 지난 4월에야 최흥집 전 사장과 권모 전 인사팀장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데 그쳤다. 권 의원이나 염 의원 등 청탁자들에 대해서는 소환조사도 하지 않았다. 최 전 사장은 강원랜드 사장에서 물러난 뒤 2014년 5월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강원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검사 출신인 권 의원과 염 의원은 모두 당시 여당 소속으로 지역구가 강원이다. 집권정당 인사인 데다 지역의 현역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검찰이 눈감아줬다고밖에 볼 수 없다.

공기업 채용비리는 비단 강원랜드만의 문제는 아니다. ‘친박계’ 이정현 의원의 조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 점수 조작으로 입사한 정황이 드러났다. 한국디자인진흥원도 감사원으로부터 채용비리가 적발돼 최근 원장이 물러났다. 한국가스안전공사도 사장이 지명한 수험생들의 면접 점수를 조작하다 감사원에 적발됐다. 8월 현재 청년실업률은 9.4%로 18년 만에 최악이다. 채용비리가 근절되지 않으면 젊은이들의 절망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기업 채용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검찰도 기득권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강원랜드 등 공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사로 비리 관련자들을 엄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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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없다가 오늘은 다시 구름이 꼈다. 낮에는 하얗다가 노을이 스며드는 저녁때면 분홍빛으로 바뀌는 구름. 바라보자니 분홍 스웨터를 입은 윤 초시네 증손녀딸이 생각난다. 갈밭 사잇길을 갈꽃 꺾어 들고 함께 걷던 소년과 소녀. 황순원의 단편소설 <소나기> 이야기. “산이 가까워졌다. 단풍잎이 눈에 따가웠다. ‘야아!’ 소녀가 산을 향해 달려갔다… ‘이게 들국화, 이게 싸리꽃, 이게 도라지꽃…’ ‘도라지꽃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난 보랏빛이 좋아! 근데 이 양산같이 생긴 노란꽃이 뭐지?’ ‘마타리꽃.’ 소녀는 마타리꽃을 양산 받듯이 해 보인다… 따가운 가을 햇살만이 말라가는 풀냄새를 퍼뜨리고 있었다.” 소녀는 병상에서 죽으며, 땅에 묻힐 때 분홍 스웨터 그대로 입혀 달라고 했었다지. 스웨터에는 풀냄새 꽃냄새, 소년의 등에 업혔다가 옮은 검붉은 진흙물도 함께.

밤에는 구름 뒤로 수십억광년 먼별이 반짝거린다. 황순원의 다른 소설 <별>은 엄마 생각에 눈물나게 한다. “하늘에 별이 별나게 많은 첫가을 밤이었다. 아이는 전에 땅위의 이슬같이만 느껴지던 별이 오늘 밤엔 그 어느 하나가 꼭 어머니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수많은 별을 뒤지고 있었다.”

먼별이 우리 눈앞에 보이는 것은, 고작 6000년이 아니라 6억년, 60억년 오랜 세월을 빛의 속도로 부지런히 달려온 것이렷다. 상식 밖의 얼토당토않은 유사과학 창조과학이 아니라 오래 묵은 사랑인 은하의 별들. 수수한 꽃별들의 사랑 얘기. 분홍 스웨터 입은 소녀도 별이 되어 수십억광년 성운 속에서 반짝거린다. 교리나 교조가 아닌 사랑들로 세상엔 노란 마타리꽃이 피어나고, 그 노란 양산과 우산으로 따가운 햇살과 소나기를 피했던 인생. 소녀는 분홍 스웨터 구름이 반짝거리는 서녘에 서서 ‘해로운 신앙’이 아닌 ‘온기 있는 사랑’으로 소년을 기다려주겠지. 사랑하는 사이들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다. 그립고 그리운 것들마다 은총 있으라. 만나면 볼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내 사랑. 노란빛 분홍빛 꽃들과 별과 구름으로 벙그러진 대우주. 눈에 보이지 않는 백색왜성, 중성자 별이라도 분홍 스웨터 입은 소녀를 서녘 노을에서 만나듯 결국엔 깜짝이야, 만나게 되리.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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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저마다의 소리를 품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베를린 유학 시절, 거리 곳곳에서 우연히 접한 심금을 울리는 노래나 연주는 칙칙한 날씨에도 그곳 생활을 견디게 한 힘이었다. 지하철역이나 카페, 관광지나 극장 앞에서 마주친 이름 모를 음악가들이 전해 준 행복. 물론 아바도와 베를린 필이 들려줬던 잊지 못할 말러 9번 교향곡까지, 20년 전 살았던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내게 이런 음악적 경험들로 기억된다.

예술 체험이 공연장이나 미술관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맞닥뜨린 낯선 음악이 잠시 다른 세상을 맛보게 할 수도 있고, 그 찰나의 경험이 때론 삶의 활력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연주회장을 벗어나 색다른 장소에서 벌어지는 공연에 눈길이 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북촌일대 한옥이나 갤러리에서 클래식과 재즈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몇 년 전 국악앙상블 ‘불세출’은 종로구의 이색적인 공간들(옥인상영관·은덕문화원·보안여관)에서 도심 속 풍류방 문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쇠락하던 철공소 골목에 모여든 젊은 예술가들에 의해 특유의 감성을 지닌 곳으로 탈바꿈한 문래 창작촌의 크고 작은 공간에서도 실험적인 사운드와 퍼포먼스 공연이 열리곤 한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왼쪽에서 두번째)가 7월 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에 있는 윤이상 선생 묘지 앞에 동백나무를 심고 참배한 뒤 윤 선생 제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베를린 _ 서성일 기자

최근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서울 도심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는 ‘프롬나드 콘서트’ 역시 도시의 소리풍경을 풍성하게 만든다. 문화역서울284, 윤동주문학관, 서울로7017, 복합문화예술공간 행화탕, 다시세운광장 등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윤이상 음악을 문학·힙합·국악 등과 접목해 선보이고 있다. 특히 청운동 시인의 언덕에서 열렸던 ‘100년의 예술가, 윤이상×윤동주’ 공연은 시와 연극, 음악이 함께하며 주말 가족 단위 관객들에게 특별함을 선사했다. 밤하늘을 쳐다보며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진 음악을 듣고 있자니, 작년 가을 지리산 ‘화엄음악제’의 잊지 못할 순간이 떠올랐다. 깊은 산사에서 달빛 아래 듣는 음악소리는 도시에서는 접할 수 없는 참으로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음악을 듣는다는 건 청각만이 아니라 인간의 온 감각이 총체적으로 작동하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1960년대 말 캐나다 작곡가 머레이 셰이퍼가 제창한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라는 용어는 바로 그런 상황을 포착하기 위해 나온 말이다. 셰이퍼는 만드는 것만큼이나 주위 소리를 잘 ‘듣는 것’이 중요함을 인식한 음악가였다. 1950년대 초 존 케이지도 ‘4분33초’라는 침묵 음악을 써서 음악으로 가려졌던 일상의 소리, 존재하나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역설한 바 있지만, 셰이퍼는 인간과 소리 환경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했다. 점차 심해지는 소음공해에 대처하기 위해 그는 삼라만상의 소리를 예민하게 들음으로써 일상의 환경과 생생하고 풍부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어린이와 성인을 위한 ‘듣기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고, 유네스코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도시의 소리풍경을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자신이 살던 밴쿠버의 소리풍경을 음반으로 남기기도 했다. 청각을 통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지각하고 인식하게 만들려 한 그의 문제의식은 이후 음향생태학과 환경운동으로 이어졌고, 도시 디자이너나 사운드 아티스트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요즘 우리는 주변의 소리를 차단하고 살아간다. 현대인들에게 필수품이 된 이어폰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이자 동시에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원치 않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그만큼 소리 환경이 열악하다는 반증일 터. 난무하는 소리들 가운데 정작 가까이 있는 것들은 무심히 흘려버린다. 한번쯤 귀를 열고 주변의 소리에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윙 돌아가는 컴퓨터 소리, 이웃의 발자국 소리, 교실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공사장 굴삭기 소리, 다양한 내연기관의 소리, 풀벌레와 새소리….

소리를 듣기 위해선 고요함이 필요하지만, 그 고요함 위에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소리들이 펼쳐질 수도 있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요즘, 살고 있는 곳의 소리풍경을 만끽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려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희경 | 한예종 강사·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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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가방을 둘러멘 여자아이가 숨 가쁘게 달려오다 내 옆에서 걸음을 늦추며 숨을 몰아쉬었다. 미술 학원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영어, 중국어, 피아노, 발레 학원도 다닌다길래 힘들지 않으냐고 묻고 보니 머쓱했다. 어른들은 선행 학습을 하지 않으면, 남다른 것을 하나라도 더 배우지 않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떨며 아이들을 집 밖으로 내몰았고, 아이들은 그 두려움이 진실이라고 믿은 지 오래되었다.

우리 사회의 사교육은 복된 미래를 줄지 모르는 토테미즘이다. 제단 앞에 바치는 양에게는 어떤 기대도 없이 오로지 신의 전지전능함만을 바랐던 이들처럼 어른들은 불안할 적마다 보다 용한 선생과 밝은 앞날을 보장하겠다는 학원을 찾아 나선다.

오늘은 미술 학원, 내일은 피아노 학원과 중국어 학원에 가야 한다는 아홉 살 아이도 이미 그 두려움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힘들지 않으냐는 의례적인 질문에 의젓하게 대꾸했다.

“이제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그런데 중국어 학원은 다 3, 4학년이에요. 2학년은 저밖에 없어요.”

아이 표정을 봐서는 언니 오빠들과 나란히 공부하는 게 자랑스럽다는 것인지, 나이 먹은 이들을 따라잡는 게 어디 쉽겠냐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토요일에는 발레 하나만 해도 돼요.”

아이는 그 말을 하면서 빙긋 웃었다. 마치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냐는 듯. 나는 앞서 걸어나가는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으면서, 블라인드 채용으로 불안감에 휩싸인 취업준비생들 중에는 승마나 펜싱을 배우는 이들이 있다는 신문기사를 떠올렸다. 그 기사를 본 누군가는 요즘 출퇴근할 때 말을 타냐면서 객쩍은 소리를 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란 것을. 말도 좀 탄다고 하면, 칼도 좀 휘두를 줄 안다고 하면 아니 두려움에 그 정도 비용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보여주면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믿어준 적 없는 사회에서 자신을 믿어본 적 없는 이들은 믿음을 사려고 값을 치러야 한다. 바삐 걷는 아홉 살 아이의 뒷모습이 애잔하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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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흉포하고 잔인한 10대들의 범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처벌 위주의 형사정책이 범죄 예방에 미치는 실질적 효과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소년법 폐지 같은 다소 감정적인 대응은 현실 직시를 통한 구체적 대안이라고 볼 수 없다. 청소년기의 비행은 본인에게서만 원인을 찾을 수 없고, 찾아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비행을 하는 범죄소년들은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며, 거짓말을 반복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속이는 사기성이 있다. 대체로 무책임하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합리화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반복한다. 이러한 성격장애는 충동성이나 공격성 같은 선천적 기질의 영향도 있지만,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나 학대, 가정폭력 등 환경 결핍요인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 범죄소년의 가정은 한부모 가정이나 경제적 빈곤으로 인해 교육 주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입시경쟁에 바쁜 학교는 문제 학생 폭탄 돌리기를 통해 책임을 회피하고, 배금주의를 숭배하는 일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유흥업소 출입, 모텔 혼숙, 장물 취득 등의 비행하위문화를 제공한다. 아이들이 공감 능력과 죄의식을 상실하고 범죄를 반복하는 데는 사회공동체의 기능 상실과 해체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한다.

미래의 성인범죄로 인해 발생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의 일부로 범죄소년들을 교정·교화하여 학교와 사회로 돌려보내는 일은 국가의 책임이다. 이러한 보호처분의 내실화를 위해 보다 많은 시설과 전문 인력이 필요하지만, 발상의 전환을 통한 국민적 공감대가 더욱 절실하다.

<최원훈 |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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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과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것 같다. 필자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조인으로서 새 정부의 개혁과제 중 가장 관심있게 지켜보는 분야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지금과 같이 사법개혁에 대한 요구와 시도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부터 수차례에 걸쳐 그 필요성이 역설되면서 사법개혁이 추진되었지만, 그때마다 각 권력기관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좌초되었고 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개혁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기존의 사법개혁은 검경의 수사권 조정,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전관예우 근절 등에 많은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사법개혁에 가장 중대한 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배심제의 확대 도입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에도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대상 사건을 형사 합의부 관할 사건(재판관 3인이 재판부를 구성하는 사건으로 주로 중대사건들이 이에 해당한다)으로 제한하고 있고, 피고인이 이를 원하지 않거나 재판부의 배제 결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도 시행하지 않는다.

또한 배심원들이 고심해서 평결을 내리더라도 그 평결과 양형에 관한 의견은 권고적 효력을 가질 뿐 법적 구속력이 없어 재판부는 그 평결에 따라 판결해야 할 의무가 없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그 판결에 항소라도 하게 되면 항소심 재판부가 그 결과를 달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꿔야 할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와 존경을 회복하는 일은 그 권력을 내려놓고 이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배심제를 형사 단독재판에도 확대하고 배심제의 평결과 양형 의견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법관은 단지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되게 하는 심판 역할에 충실해야 하고, 세부적으로 작성된 양형기준표에 따라 광범위한 재량의 여지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배심원의 평결에 의한 무죄판결의 경우, 검찰의 항소를 제한하여 이중위험의 금지(같은 죄로 두 번 기소당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리)를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신진욱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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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쏟아지는 비와 따가운 햇살 아래 446.44㎞를 묵묵히 걷는 사람들이 있다. ‘부랑인’으로 낙인찍혔던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들이 부산 주례동 형제복지원 터 앞부터 청와대까지 22일 동안 국토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외친다. “우리를 왜 가두었는가? 특별법 제정으로 형제복지원 진상을 규명하라!”

행진을 시작하기 전, 피해 생존자 한종선씨가 나를 찾아와 감기약, 진통제, 해열제를 챙겨 갔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열한 살 누나와 함께 끌려간 한종선씨는 84-10-3618이다. 1984년 10월에 3618번째 입소한 ‘부랑인’이란 뜻이다. 그는 2012년 여름, 국회의사당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 형제복지원의 민낯을 다시 세상에 알리고 망각의 벽을 깨뜨렸다. ‘84-10-3618’이란 숫자가 아니라 ‘한종선’이란 인간으로 살고 싶다고 절규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사회정화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을 목표로 해서 국가가 밀어붙인 것입니다. 전국의 공권력이 움직였기에 가능했던, 대한민국의 어두운 역사입니다. 형제복지원의 기억이 저로 인해 다시 파헤쳐지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알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이 트라우마 없이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프레모 레비가 증언했듯, 유태인들도 수용소에 끌려가면 이름 대신 왼쪽 팔뚝에 문신으로 헤프틀링(포로) 번호를 새겼다. 레비의 왼쪽 팔뚝에 새겨진 ‘174517’은 그의 묘비명이 됐다. 아우슈비츠도, 형제복지원도 끌려가면 머리를 빡빡 깎인다. 레비의 표현처럼 ‘머리카락도, 명예도 이름도 없이, 날마다 구타당하고 추접하게 사는’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는 것이다. 숫자가 된 사람은 짓밟고 학대해도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물화된 존재’일 뿐이다.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리는 형제복지원의 수용자들도 이름 대신 78-374, 82-2222 등 숫자로 불렸다.

형제복지원은 사회복지시설이라는 간판을 달고 1975년부터 1987년까지 12년간 운영됐다. 1975년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고아·장애인뿐 아니라 밤늦게 역에서 TV를 보는 사람, 술 취해 거리에서 자는 회사원도 주민등록증이 없으면 연행해서 수용했다. 형제복지원은 12년 동안 1만8000여명, 많을 때는 한꺼번에 3146명이나 수용했다.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정부 보조금을 따내기 위해 상품처럼 분류되는 숫자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박인근 원장이 챙긴 정부 보조금은 1987년 한 해에만 무려 20억원이었다. 불법 감금된 수용자들은 하루 10시간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저항하면 굶기고, 구타하고, 심지어 살해하여 암매장했다. 형제복지원 서류로 밝혀진 공식 사망자만 최소 513명인데, 대부분은 굶어 죽거나 맞아 죽었다니 생지옥이 따로 없었던 것이다. 시신 중 일부는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 해부 실습용으로 팔려나갔다.

6월항쟁 30년, 원생 35명의 집단 탈출로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0년이지만 ‘숫자로 남은 사람들’은 잊히고 있다. 가해자인 박인근 원장은 특수감금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고, 수감 중에도 사우나를 하는 호사를 누리며 횡령죄로 2년6월의 징역을 사는 데 그쳤다. 박 원장과 그의 가족들은 수백억원대 재산을 소유하고 형제복지원의 이름만 바꿔 사회복지법인을 최근까지 운영했다. 반면 피해 생존자들은 여전히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국가폭력의 진상은 여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은 민주인사로 대접받았지만, 그 독재하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은 문전박대를 당했다. 독재정권은 민심을 얻기 위해 부랑인 청소나 범죄 척결을 단골로 써먹었다. 이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은 세월호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5·18민주화운동 유가족과 마찬가지로 고통과 아픔을 위로받을 권리가 있다. “가축처럼 새겨진 기억 속의 숫자를 떨쳐내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 이들의 외침에 언제까지 귀를 막을 것인가? 우리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모르는 게 아니라, 알기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하여, 독재정권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인권 유린에 ‘묵시적 공범자’가 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6월항쟁 30주년, 다시 민주정부가 들어선 지금, 구조되었으나 여전히 ‘가라앉은 자’인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그 먼 길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닐까?

국토대장정 8일차인 오늘, 이들은 성주군청에서 농소면 사무소까지 25.95㎞를 걷는다. 이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괴롭고 힘들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국토대장정을 이어간다.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이 조속히 규명되도록 돕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떠올리며 환하게 서울로 걷고 또 걷는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국토대장정 후원계좌> 우리은행 이은애 1002-557-424264

<강용주 | (재)진실의힘 이사·아나파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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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이후 보릿고개를 겪은 세대들에게 C레이션에 대한 기억은 새롭다. ‘국방색’ C레이션 상자의 포장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다. 그래서 선우휘는 소설 <불꽃>에서 “어린애 같은 경탄. 원더풀 C레이션”이라고 말했는지 모른다. C레이션은 전쟁 필수품이었다. 황석영은 월남전을 다룬 소설 <탑>에서 “우리는 헬리콥터가 떨군 이틀분의 C레이션과 탄약을 받고, 길게 늘어진 로프에 시체를 달아 매어올렸다”고 했다. C레이션은 미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보급되는 ‘전투식량’이다. 미군의 전투식량은 크게 A, B, C, D 등 네 가지다. A레이션은 냉장이나 냉동식품으로 현장에서 요리해 제공하는 것. B레이션은 진공포장된 상태에서 현장에서 요리되는 것. C레이션은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것. D레이션은 간식류를 말한다. 이제 C레이션에 대한 열광은 없다. 전투식량에 묻어 있는 과거 향수를 느끼고 싶거나, 별난 맛을 보려는 이들이 찾을 뿐이다.

그런데 전투식량이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경주 지진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는데 북핵 파장까지 겹치며 생존 물품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비상시 행동요령, 생존법 등 정보가 공유되는가 하면 비상식량, 라디오, 휴대용 전등과 같은 재난대비 비상용품 구입이 늘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재난용품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개그우먼 강유미씨가 유튜브에 올린 ‘전쟁가방 샀어요’라는 동영상은 수십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강씨는 방독면을 쓴 모습과 함께 자신이 구입한 재난용품을 모은 이른바 ‘생존배낭’을 소개했다. 23만원을 주고 구입했다는 배낭에는 진공포장 비빔밥, 미니구급함, 정수필터 등이 들어 있다. 생존배낭은 고열량 비스킷·통조림·생수 등 비상식량과 칼·손전등·라이터와 같은 생활용품, 바람막이·담요 등 보온장구와 조명탄·야광봉과 같은 통신장비로 구성된다. 몇만원에서 수십만원까지 다양한 상품이 나와 있다.

생존배낭은 오지체험이나 서바이벌체험 등에 관심이 있는 일부 사람들에게 국한된 물건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해 관심을 갖는 실제 상황이 되고 있다.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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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987년 6월항쟁 30년과 1997년 외환위기 20년이 된다. 여러 매체들에서 6월항쟁 30년을 기리는 기획이 제법 진행됐지만, 외환위기 20년을 돌아보는 기획은 드문 편이었다. 외환위기가 1997년 10월 이후에 본격화됐기 때문에 다음 달부터 외환위기 20년을 평가하는 기획들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외환위기가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은 넓고 깊었다. 6월항쟁이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면,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가져왔다. 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사회모델은 흔히 ‘97년체제’라 불린다. 체제(regime)란 경제와 사회가 조응된 관계를 말하며, 특히 물적 기반인 축적체제를 중시한다. 체제의 관점에서 볼 때 외환위기를 계기로 하여 우리 사회는 정부가 발전을 선도하는 ‘전통적 발전국가’의 61년체제에서 발전국가의 요소와 신자유주의의 요소가 혼합된 ‘신자유주의적 발전국가’인 97년체제로 변화했다.

97년체제가 갖는 주요 특징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신자유주의 발전전략이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는 구조조정·규제완화·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신속하게 추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처방한 이 신자유주의 전략은 단시간 안에 경제위기를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금융자본의 영향력 확대,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 사회 양극화의 강화 등 새로운 문제들을 낳았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지구적 차원에서 무한경쟁·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절정을 구가했기에 우리 경제 역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부과하는 구조적 강제로부터 자유롭기 어려웠다.

둘째는 중산층의 쇠퇴다. 중산층이란 평균소득의 70~150%에 달하는 중간층과 50~70%에 머무는 중하층을 말한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위기 발생 직전인 1996년 중산층의 규모는 전체 인구의 68.73%를 차지했지만, 위기 직후 2000년에는 61.11%로 줄어들었고, 2006년 상반기엔 54.61%로 더욱 감소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경유하면서 중산층 쇠퇴에 따른 양극화는 구조화됐고, 그 결과 불평등 해소는 시대적 과제로 부상했다. 이런 중산층 쇠퇴가 공동체 구성원의 자존감을 훼손시키고 상대적 박탈감을 증대시키며, 나아가 사회통합을 약화시켰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셋째는 불안사회의 도래다. 무한경쟁의 경제체제와 중산층 쇠퇴의 계층구조는 시민사회의 불안을 확산시켰다. 일상화된 고용의 구조조정, 자녀의 경쟁력을 위한 사교육비 증가,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는 적응 압박의 강화는 국민 다수에게 불안감과 열패감을 안겨줬다. 밤 10시가 넘어야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갈 직장이 없어도 빼곡히 스펙을 늘리는 청년세대,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퇴출의 공포에 시달리는 30대, 마흔이 넘어서도 외국어학원 문턱을 서성이는 장년세대, 그리고 빠른 사회변동으로부터 소외된 채 빈곤 상태에서 살아가는 노년세대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민낯들이었다.

97년체제가 낳은 그늘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열어야 하는 것은 외환위기 20년을 맞이한 우리 사회의 시대적 과제다. 97년체제의 그늘은 20년 동안 구조화돼온 것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극복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북핵 위기,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포퓰리즘의 지구적 확산이란 구조적 강제가 97년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내건 대내적 국정목표는 소득주도 성장, 포용적 복지국가, 국민주권 정부의 구현이다. 특히 소득주도 성장은 97년체제의 그늘을 넘어서려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이다. 외환위기 20년을 돌아볼 때 분명한 것은 97년체제가 불평등을 구조화하고 불안을 증대시켜온 발전전략이라는 점이다. 97년체제 극복의 필요성에 동의한다면, 이제 우리 사회는 부채주도 성장 전략과 낙수 효과에만 의존하는 성장 전략과는 다른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포스트-발전국가 이후의 새로운 발전전략을 추진하는 게 중대한 국가적 과제라는 점을 고려할 때,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을 추구하는 소득주도 성장에 대해 지식사회는 물론 정치사회에서 활기찬 토론이 이뤄져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외환위기 20년을 맞이하는 사회학 연구자로서의 바람은 하나다. 97년체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국민적 관점에서 소망스럽지도 않다. 이번 가을에는 97년체제 이후의 우리 사회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을 기대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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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두고 소년법 개정 논란이 갑론을박을 다투던 무렵 SNS에서 인상 깊은 글을 읽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이가 가난과 좌절이 어떻게 아이들을 일탈시키는가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쓴 글이었다. 가난과 소외 속에 풀 데 없는 울분을 폭력으로 터트리는 것밖에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 엄격한 처벌만이 과연 옳은 답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고 그보다는 내재된 울분과 에너지가 폭력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발산될 수 있도록 문화적, 예술적, 교육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느냐는 제안도 들어 있었다.

대부분이 공감했으나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가난한 애들은 그래도 된다는 말이냐는 오독도 있었고, 어쨌거나 지은 죄는 나이에 상관없이 처벌을 받는 게 옳다는 정의파도 있었고, 그 동네 그렇지 않다고 왜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서 멀쩡한 동네를 흠 있는 동네로 만드느냐며 지역 이미지를 우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나는 조금 엉뚱한 생각을 했다. 처벌 규정이 약한 소년법이 청소년 범죄를 가중시키고 있다면 그보다 강력한 처벌규정이 적용되는 성인들의 사회는 현재 어떤 상황일까. 처벌이 보다 강력하고 엄격한 만큼 안전하고 평화로워야 마땅할 텐데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도 더러 있고, 그런 이유로 성인들의 범죄에 대한 처벌 규정도 더욱 엄격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고 어떤 판결에는 나 또한 흥분해서 더욱 강한 처벌을 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구심이 생긴다.

어느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라야 사회가 안전해지는 걸까. 처벌의 수위와 사회의 안전이 정비례하는 거라면 역사상 가장 강력한 처벌 조항이라고 할 수 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함무라비 법전이 존재하던 시대는 그렇다면 역사상 가장 태평성대여야 했던 것 아닐까. 딱히 그랬던 것 같지는 않다. 수위를 높인 형벌이, 비할 바 없이 가혹한 징계가 있다면 그로 인한 두려움으로 범죄를 축소시킬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 어떤 가혹한 형벌도 두려워하지 않는 무소불위의 범죄 집단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유명무실한 처벌 규정이 범죄에 대한 담대함을 기르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강력한 처벌만으로 문제의 싹을 자를 수 있다는 믿음에도 선뜻 동의하게 되지는 않는다.

공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교화는 그래서 필요한 장치고 제도일 것이다.

누군가의 죄를 벌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죄, 그 자체에 대한 벌이 있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죄를 지은 자가 어떤 벌을 받는지를 공공연하게 알림으로써 유사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년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면 처벌의 경중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 처벌이 교화 혹은 예방에 어느 정도의 현실성과 실효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동시에 검토해봐야 할 것이다.

가해자를 선처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가해자를 만들어내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또한 무엇으로 잠재적 범죄 가해자를 예방할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따지고 보면 함무라비 법전은 내가 당한 피해만큼의 보복을 허락하는 법전인 동시에 내가 입은 손해 이상의 가해는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이기도 했다.

법질서는 다수의 공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안녕과 안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자들을 위한 구제 대책도 법적으로 검토되고 보완되었으면 좋겠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가해자에 대한 응당하고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며 분노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처벌이 이들의 범죄 피해 상황을 바로 구제해주지는 않는다. 이들을 위한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도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안전한 사회란 상처받지 않는 사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회복 가능하도록 도와주는 사회이기도 하다고 믿는다.

<한지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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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1학년 때 일이다. 어느날 서클(동아리)룸에 들렀는데 지금은 유명 정치인이 된 여자 선배가 내 손을 딱 잡더니 어딜 가자고 했다. 순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면서 겁이 났지만 손을 뺄 수가 없었다.

선배 손에 이끌려 중앙도서관을 지나는데 저 멀리서 서클 4학년 남자 선배가 꽹과리를 두드리며 뭐라고 소리치면서 달려오는 것이었다. ‘어? 왜 저러지?’라는 생각조차 끝나기 전, 잠바 차림의 건장한 두 남자(사복경찰)가 번개처럼 달려와 선배의 어깨 죽지를 꺾고 끌고 가는 것이었다. 어디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지. “우리들은 ○○대다 훌라, 훌라~~”라는 ‘훌라송’을 부르며 순간 사방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집회·시위의 모습이다.

경찰이 최근 “평화적 집회·시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라”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를 전격 수용했다. 경찰개혁위원으로 권고안 작성에 참여했는데 작업 중에 대학 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무서운 기억 때문이었는지, 나이가 든 뒤에도 가끔 집회·시위에 참가할 때면 항상 불안했다. 경찰과 마주치면 본능적으로 피하거나 얼굴을 감추었다. 불안감과 소심함은 2008년 광우병 소고기 수입반대 집회 초기에서야 비로소 떨쳐버릴 수 있었다. 가로막는 경찰도, 차벽도 없는 광화문광장을 늦은 시각까지 가족·지인들과 함께 걸으며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만끽하고 나라의 주인임을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이어진 촛불집회에서 그 느낌은 정점을 찍었다.

경찰개혁위의 권고는 경찰이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를 보장하고 옹호할 책무가 있다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헌법 제10조에 명시된 “국가는 국민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이다. 당연한 상식을 왜 권고의 첫 문장으로 넣었을까?

경찰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기관이라고 동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권고문 작성 중에 집회현장의 경찰관을 여럿 만났는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경찰에게 집회와 시위는 전략과 전술을 잘 구사해 통제하고 관리하고 억제하는 것이지, 존중하고 옹호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지 않았다. 권위주의 시대의 경찰은 집회·시위에 참가한 국민을 툭하면 연행하고, 가두고,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집회·시위를 경험한 이들에게 경찰은 공포스러운 공권력의 얼굴로 각인돼 있다. 옛이야기라고 손사래를 치는 경찰도 있지만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직사살수에 맞아 쓰러지고 결국 사망한 것도 불과 2년 전이다.

권고는 집회신고를 간소화하고, 집회금지를 최소화하며, 집회 및 시위 과정상의 사소한 흠결에 대해서는 경찰권 행사를 절제할 것을 제시했다. 일부에서 경찰권 약화를 우려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 경찰 본연의 역할이자 의무일진대 이제야 비로소 경찰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물론 안보와 공공질서를 위해 기본권이 제한될 수 있다. 그 경우에도 법률유보의 원칙 및 과잉금지의 원칙에 따라 법률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돼야 한다. 최상위법인 헌법에 기본권을 명시한 것은 기본권 보장이 우선이라는 뜻이다.

집회·시위는 본질적 속성상 시민의 불편이나 업무 공백을 낳는다. 헌재의 결정에서 보듯 집회·시위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에 불가결한 요소다. 더구나 정치적 소수집단에 정치참여를 보장하는 기본권이란 점에서 집회·시위로 인한 교통체증 등은 민주공동체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이라면 일정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집회·시위가 더 증가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대부분의 집회·시위는 정치권이 갈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생겨난다. 경찰이 평화적 집회·시위를 보장한다고 이유 없이 집회·시위를 벌일 국민이 있겠는가.

경찰도 할 말이 많다. 중요한 결정은 청와대, 법무부, 국정원 등 힘센 기관이 결정하고 경찰에겐 진압하는 악역만 맡겼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인권을 보장하는 데 충실한 인권 경찰로 거듭날 때, 경찰의 목소리는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집회·시위 권고문은 무려 A4 용지 13쪽에 이를 정도로 종합적이고 세밀하다. 경찰 수뇌부는 일단 많은 권한을 내려놓았다. 현장의 경찰은 촛불집회에서 나름 인내하면서 평화시위의 동반자가 되는 소중한 경험을 했다.

이러한 경험을 살리고, 권고문을 숙지하며, 여기에 이를 지켜보는 주권자 국민의 애정과 감시가 보태진다면 인권경찰로의 재탄생도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이 현실로 구현되길 기원해본다.

<문경란 |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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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사립유치원들이 예고한 집단휴업이 다가오면서 보육대란 우려 등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지난 8일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오는 18일과 25~29일 휴업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했다. 이들은 정부가 향후 5년 내 전체 유치원의 25%인 국공립유치원 비율을 40%로 확대한다는 공약을 그대로 시행할 경우 사립유치원의 생존 기반이 위협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정부가 국공립유치원 확대 정책을 접고 사립유치원에 대한 지원금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립유치원들의 문제의식은 이해하지만 그들의 요구와 해결방식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연 '유아교육 평등권 확보와 사립유치원 생존권을 위한 유아교육자 대회'에 참가한 시립유치원 원장들이 '유아학비 공ㆍ사립 차별없이 지원, 사립유치원 운영의 자율성 보장' 등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오는 18일과 25∼29일 두 차례에 걸쳐 휴업을 강행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국공립유치원을 늘리면 사립유치원들의 경영이 어려워질 것은 불문가지다. 사립유치원이 보육에 기여해온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다. 국공립만으로 보육이 불가능한 현실도 무시할 수 없다. 전국 사립유치원의 90%인 3700여곳이 휴업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을 보면 이들의 위기의식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국공립유치원 증설을 반대하는 의견은 수용하기 어렵다. 보육시설 부족으로 수많은 학부모들이 고통을 겪는 현실을 모를 리 없는 유치원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저출산 고착화 등 사회 현실을 감안하면 보육의 국가 책임은 시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립유치원 경영 문제가 있다면 국공립유치원 증설과 별도로 추진해야 할 사안이다.

사립유치원은 학부모들이 이례적으로 강력 반발하는 상황을 무겁게 봐야 한다. 학부모들은 집단휴업 방침 발표 직후 반대 청와대 청원사이트를 만들어 일주일 새 8000명 이상으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이는 사립유치원들이 일방적으로 집단휴업을 결정·통보하고, 국공립유치원 확대정책 반대 탄원서를 학부모들에게 강요한 데 대해 분노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구나 휴가를 내기 어려운 추석 연휴 직전을 휴업시점으로 잡았다. 학부모들의 입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주의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유치원의 집단휴업은 법적 근거도 부족하다. 유아교육법 시행령은 개별 유치원 사정상 휴원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집단휴업에 대한 규정은 없다. 교육당국은 집단휴업이 유아들의 학습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불법 행동이라며 휴업 강행 시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립유치원들은 명분도 실리도 약한 불법 휴업을 재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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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 드라마로 히트를 쳤던 이 제목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니, 이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는 어떻게 다른가. 톨스토이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강변했지만, 내가 보기에 남녀 할 것 없이 사람은 ‘일하며 사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도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이 문제적이라면 그것은 일반 ‘사람’과는 다른 어떤 삶의 지형 속에 놓여있음에 대한 문제의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물음을 제출해야 했던 과거 여성의 삶은 대체로 ‘남자’ 혹은 ‘사랑’을 중심으로 논의되었다. 이는 가족을 중심으로 한 여성의 일과 사랑이 대체로 남자라는 운명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조선희의 <세 여자>를 읽으면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과연 조선 최고의 신여성이자 코뮤니스트였던 단발랑의 이 세 여자가 이전까지 여성에게 강제된 ‘남자라는 단 하나의 운명을 벗어나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살았는가’이다. 이 관점에서 세 명의 이력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첫째, 주세죽. 그녀는 함흥에서 태어나 음악선생이 되기 위해 상해로 유학을 떠난다. 그녀는 박헌영을 만나 결혼하고 공산주의자가 되지만, 모스크바에서 박헌영의 단짝인 김단야와 재혼하고 크질오르다로 강제이주당하는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결국 1953년 생을 마친다.

둘째, 강경의 유복한 집안의 외동딸인 고명자는 이화학당을 다니다가 김단야와 사귀고,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으며 경성에 돌아와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전향하여 친일행로를 걷다가 한국전쟁 중 사망한다.

셋째, 허정숙은 고베 유학을 거쳐 상해에서 경성으로, 모스크바와 뉴욕, 타이베이, 남경, 무한, 연안, 태항산, 연안을 거쳐 평양에서 최고 권력을 누리다가 아흔의 나이로 사망한다. 허정숙의 생은 무장항일투쟁 전력에서 알 수 있듯 단순하게 보자면 투철한 공산주의자이자 독립운동가의 생이지만, 그 면면은 동선만큼이나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가령 ‘조선의 콜론타이’라 불렸던 허정숙의 남편 혹은 파트너가 여러 번 바뀐다든가 일본, 미국, 대만 등지에서 유학하고 연안에서 항일운동을 하는 등의 엄청난 행보가 그러하다.

얼핏 보면, 이 셋 중에 남자와 별개로 자신의 운명을 주체적으로 살아낸 것은 유일하게 허정숙이라 할 수 있다. 주세죽은 박헌영과 김단야라는 혁명가를 뒷바라지하거나 의존하는 헌신적 여성상이었다는 점에서, 고명자 또한 김단야의 행보와 함께하다가 이후 전향 등의 나락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단적으로 이 셋 중에 허정숙만이 누구의 아내나 애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으므로. 그러나 어찌 보면 허정숙의 저 독립적인 행보에는 아버지 허헌이라는 절대적 운명이 어른거리고 있다. 조선 최초의 변호사 중 하나이자 조선 공산주의의 후원자로 또 동아일보 사장과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일성종합대학 총장까지 지냈던 허헌의 존재가 아니었더라면 과연 그녀가 자신의 삶을 찬란한 궤도에 놓을 수 있었을까. 그랬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두 명과 달리 비극적 역사에 희생되지 않고, 역사라는 호랑이에 올라탈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는 특히 평양에서의 허정숙의 삶에 의구심이 든다. 이 작품에서 남로당을 비롯한 소련파, 연안파 등이 숙청당할 때 허정숙의 태도는 회의적이면서도 방관적이다. 첫 번째 남편인 임원근이 형무소에 있을 때 송봉우와 재혼한다든가, 미국 유학을 떠나고 하는 것도 그렇지만 박헌영, 최창익, 임화, 이태준 등이 숙청당하고 김일성 1인숭배체제가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과연 어떤 주체였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이 의구심은 어쩌면 작가가 허정숙의 행보에 무의식적으로 반발하면서 변명의 시선을 얹고 있기 때문에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이 작품에서 그려진 세 여자의 삶이 그다지 주체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세 명의 내면적 동력이 좀 더 핍진하게 묘사되지 못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떤 누구도 주체일 수 없었던 저 폭군의 역사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우면서 끝내는 참담했던 것은, 작가가 애정을 가지고 그려나갔던 숱한 혁명가들이 속절없이 역사의 격랑에 희생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거대한 무력감을 어찌할 것인가. 남성이라는 단 하나의 운명을 열고 나가면 더 폭압적인 역사라는 운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세 여자>를 읽으면서 느낀 새로운 지점이다.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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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셔널지오그래픽 TV에서 ‘이슬람국가(IS)’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시리아 내전이 어떻게 촉발되었고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대한 현장보고였다. 철저히 미국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상이지만 사태의 진행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이야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시리아 내전만큼 처절하고 복잡한 내전은 유례가 드물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촉발되었다고 한다. 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벽에다 ‘독재자 물러가라’고 낙서를 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극적인 뉴스를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기자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많다. 사건을 조작했다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일화를 끄집어내어 기승전결을 가진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랍의 봄’ 자체가 미국이 뒤에서 사주한 음모라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투쟁 주체들이 생겨났고 이를 후원하는 외부세력 또한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다. 피아 구별이 안될 정도로 복잡한 전쟁마당은 결국 미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사이에 ‘이슬람국가’가 끼여 있는 구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 내전으로 인해 지난 6년 동안 시리아 인구의 절반이 ‘난민’으로 전락했고 50만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집안싸움을 해결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였는데 집이 그만 거덜나고 만 것이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시리아 내전을 보며 다음 같은 공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첫째, 먹이가 있는 곳에 내부 갈등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이용하려는 외부세력이 존재한다. 둘째, 내부 갈등의 수준이 높을수록 외세가 이를 이용하기 쉬워진다. 셋째, 외세를 한번 끌어들이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이를 다시 물리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넷째, 외세가 많이 개입할수록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다섯째, 어느 한 외세가 압도적이지 않는 한 갈등은 결코 해소되지 않는다. 여섯째, 폭력적 갈등의 시간이 길어져 더 이상 투자에 대한 이익이 나올 수 없음이 확실해질 때에야 갈등 봉합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이러한 공식이 적용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땅이 되어가고 있다. 일단 남한 내부의 갈등과 남북 간의 갈등이 한국전쟁 이후 최고 수준에 올라있다.

시리아 내전이 휴전을 모색하고 있는 사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단연 한반도이다. 북한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장거리 핵미사일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한이 독자적으로 핵을 가지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제멋대로 전쟁 시나리오를 써대고 있지만 핵전쟁의 예측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아직까지 인류는 핵을 가지고 싸워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패배가 확실한 상태에서 종지부를 찍는 의미로 핵폭탄을 썼을 뿐 핵전쟁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핵전쟁이 벌어지면 초장에 전쟁이 끝날 것으로 예측하지만, 내가 보기엔 절대 그렇지 않다. 핵폭탄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내부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남한 땅에는 1000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호남과 영남의 지역갈등이 있고, 100년 권세를 누리고 있는 친일파 문제와 70년 된 분단 갈등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남쪽은 우파와 좌파, 자주파로 나누어진 위에 지역 및 종교 간 갈등이 더해지고 여기에 외세까지 개입하여 매우 복잡한 분파가 만들어질 것이다. 북한 역시 일당독재라지만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분파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리아도 처음엔 독재자 ‘바사르 알 아사드’에 대항하는 반독재 세력만 있었으나 외세가 개입하면서 수많은 분파들이 생겨나 나중엔 누가 누구를 반대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지난 전쟁과 집회·시위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기질로 보아 시리아 내전의 잔인함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여겨질 것이다.

이런 추측을 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전쟁을 준비하고 예상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전쟁이 누구에게 이익이 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전쟁이 가까워졌다면 지난 70년간 누려왔던 분단에 의한 이익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과 ‘FTA 재협상’ 카드를 동시에 꺼낸 것은 전쟁을 해야 할 만큼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고백이다. 북이 핵미사일에 집착하는 것도 북의 경제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판단이 옳다면 전쟁을 피하는 해법은 나와 있는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상호불가침조약(북·미 평화협정)을 맺고 그 대신 북은 핵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북·미 대결에서 얻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남한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FTA에서 미국에 대폭 양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그림은 전쟁을 피하기는 하지만 남한 민중의 희생이 너무도 큰 데다 대미 종속이 더욱 심화되고 만다. 그래도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핵을 가진 북과 어떤 의미있는 대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남한의 ‘멕시코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겠지만 이는 비핵국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촉발하는 압박요인이 될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전쟁불사론’이나 ‘핵무장론’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반도의 전쟁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모든 전쟁을 뛰어넘는 참혹한 전쟁이 될 것이다. 한국은 FTA를 미끼로 미국으로 하여금 북과 평화협정을 맺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과의 불리한 경제협정이 국내 정치의 불안요소가 되겠지만 이는 중국과 북한, 러시아와의 경제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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