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열전 이사편에 이르기를 ‘태산은 흙 한 덩이도 마다치 않기에 태산이 되고, 바다는 물 한 방울도 가리지 않기에 바다가 된다’고 하는데, 서로 다른 생각을 토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서 어떻게 검찰의 발전을 기대하고, 소통을 통한 조직 상하의 일체화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2012년 검찰 내부망에 올린 ‘여는 글’ 일부입니다. 제가 당시 근무하던 중앙지검, 직전 근무지인 법무부에서 목도한 현실은 상명하복의 조직문화에 눌려 준사법기관인 검사들이 존재 이유를 망각한 채, 청와대 등 상부의 지시에 수사를 억지로 끼워 맞추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절박함, 거대한 조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으로 고심하다가,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죽어가는 검사게시판을 되살려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달리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매달 글을 올렸다가 수년간 지독히도 시달렸지요. 썼다고 부르고, 쓸까봐 부르고…. 고단한 순례자처럼 검사장실, 차장실, 부장실을 수시로 오갔습니다. 검찰 수뇌부의 외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조직의 분열을 조장한다며 징계하겠다는 직속상관의 경고는 용광로인 듯 뜨거웠습니다. ‘마치 자신만이 투사이고 올바른 발언을 하는 양한다’ ‘정치하려고 저런다’ 등 저를 비난하는 동료들의 말은 가시가 되어 촘촘히 박히니 어느새 저는 고슴도치가 되었지요. 아무리 밀어내도 절망이 제 마음 깊이 스며들어 휘청거리곤 했습니다.

2012년 12월 과거사 재심사건 무죄구형을 강행하기 위해 중앙지법으로 가기 직전, 무죄구형의 당위를 설명하는 글을 내부망에 올렸습니다. “중징계를 받아 검사직을 내려놓게 되더라도, 이로써 과거사에 대한 검찰의 입장이 전향적으로 재검토되는 전기가 마련된다면, 하여 검찰이 재심사건을 포함한 모든 사건에 있어 일관되게 죄에 상응하는 구형을 하게 된다면, 검사로서 제가 할 도리를 다한 것 같아 여한이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간절한 고언을 덧붙였지요. 수뇌부는 ‘마치 검찰이 부당한 구형을 하고, 과거사에 대한 입장도 잘못되었다는 글을 내부망에 올려 외부로 전파되게 하여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시켰다’는 징계결정서로 답장을 대신했습니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 출석하여 글 게시만은 징계사유가 되어서는 결단코 안된다고 간곡히 당부했는데, 그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아 얼마나 허탈하던지요!

5년에 걸친 소송으로 결국 징계를 취소하였지만, 제게 위법한 지시를 하거나 징계권을 남용한 간부 그 누구도 저에게 사과하지도, 문책당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수뇌부의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을 썼다고 저를 꾸짖던 분들이 차기 총장 후보군 물망에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9월 15일 서울 정동에서 만난 임은정 검사는 2012년 과거사사건 재심에서 ‘백지구형’을 하라는 상부 지시를 어기고 ‘무죄구형’을 한 후 겪은 일들과 검찰개혁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으려면 위법한 명령을 내린 자와 기꺼이 굴종한 자들에게 책임을 반드시 물어 위법한 명령에 따르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길 기자

지난해 9월 저는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과정은 늘 그랬듯 고단했지요. 어떤 검사들에게는 쉽게 허락되는 인터뷰가 저에게는 감히 꿈꿀 수 없는 금단의 열매였습니다. 서글프지만, 기득권은 철옹성과 같이 여전히 강고하고, 그 성에선 세상을 향한 창이 대개 닫혀 있어 신선한 바람이 창턱을 넘어서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게 현실이지요.

‘검찰청 공무원 행동강령’상의 인터뷰 사전 승인제가 적법한지를 두고 수뇌부와 두 달에 걸친 치열한 논쟁 끝에 승인을 받았고, 끝내 신고제로 바뀌어 내부게시판 글 게시로 징계받던 제가 자유롭게 언론 기고까지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부딪쳐 가다 보면, 철옹성 그 철벽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역사의 물꼬가 결국 트이는 걸 봅니다.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백지구형이 최선인 양 주장하고 무죄판결에 불복해온 검찰이 무죄구형하는 것을 우리가 지금 보고 있잖아요! 그간 ‘도가니 사건’ 등 이런저런 참혹한 사건들을 담당하며, ‘세상은 물시계와 같구나, 사람들의 눈물이 차올라 넘쳐야 초침 하나가 겨우 움직이는구나, 사회가 함께 울어줄 때 비로소 역사가 한 발을 떼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불의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깨우는 죽비소리가 불협화음이 아니라 아름다운 합창을 위한 하모니로 인정될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따뜻한 정의가 넘치는 사회가 되겠지요.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민원왕’ 옥분(나문희)은 공무원 민재(이제훈)를 졸라 영어를 배운다. 영화사 시선 제공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영어를 배워 세상을 향해 진실을 외치는 내용입니다. 할머니의 간절한 외침은 진실을 외면해온 사람들의 고개를 돌려놓았지요. 이렇듯 시대의 변화는 사람들의 행동에서 시작되고, 행동은 말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또한 부족한 말을 용납할 수 있는 사회여야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겠지요. 더 이상 징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 제게 주어진 귀한 기회를 살려 좀 더 용기 내어 부족한 생각이나마 나누어 보려 합니다. 아이 캔 스피크!

<임은정 |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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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정부 예산이 처리되지 않아서 필수 분야를 제외한 업무가 일시적으로 정지된 지 3주가 다 됐습니다. 멕시코 국경 장벽이 이 사태의 발단입니다. 현실적이지도 않고 아무 소용도 없지만, 정치적 이유로 이를 세우겠다는 트럼프 대통령과 야당인 민주당 주도의 의회가 충돌한 겁니다. 트럼프가 정치경험이 전혀 없는 탓에 이런저런 탈도 많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엉뚱한 질문을 던지곤 하죠.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미군 한국 배치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매년 35억달러나 쓰면서 남을 지켜주는 게 장사꾼 트럼프로서 이해가 안 갔던 겁니다. 당황한 참모들은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려 안간힘을 썼죠. 한 경제참모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항공모함을 더 배치해야 하며 10배가 넘는 돈이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부 협조 덕에 민감한 첩보도 덤으로 얻는다고 했죠. 한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은 미국 안보를 위해 매년 40억달러를 후원하는 셈이라고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트럼프의 엉뚱한 질문이 주한미군의 가치를 조명해준 셈입니다.

그 가치는 ‘미국’ 수호입니다. 미군이 미국 이익을 위한다. 이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이 유독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군이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를 것처럼 믿기도 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입니다. 2017년 4월 이제는 고인이 된 매케인 상원의원과 그레이엄 상원의원을 백악관으로 초대한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매케인은 “아주 복잡합니다. 북한 재래식 무기 도발로 서울 시민 100만명이 사망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그레이엄은 “100만명이 죽는다면 여기 말고 거기서 죽어야 합니다”라고 맞섰죠. 미국 매파의 시각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미군 주둔은 한국 안보가 그 목적이지만, 한국 안보만을 위하지 않습니다. 애초 주둔 결정도 한국 안보보다는 한국전쟁을 빨리 끝내고 지역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죠. 휴전 협정이 마무리되어가자 불안해진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요구했습니다.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경우 휴전협정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미국을 위협했습니다. 반공포로 석방 등 일련의 시위까지 벌이고서 얻어냈습니다. 이 조약은 미군의 남한 주둔 근거가 됐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왔던 미군은 또 그렇게 떠날 겁니다. 영원히 있기야 하겠습니까? 설마 그러랴 하겠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원한 제국은 없습니다. 수백년 동아시아를 호령한 청 왕조도 19세기가 되면서 급격히 쇠약해졌고, 청일전쟁 패배로 조선에서 군사를 물렸죠. 아프가니스탄 공산당 정권을 지키던 소련군도 무자히딘의 저항에 철수했습니다. 이라크전쟁에서 승리한 미군도 정치적 비용이 커져 철수했죠. 필리핀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1986년 민주혁명으로 탄생한 아키노 정권은 100년간 주둔한 미군에 결별을 선언했죠. 민주체제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민족주의가 정치권을 움직인 덕이었습니다. 미국은 주둔 연장을 사정하며 수억달러를 제시했지만, 필리핀은 거부했습니다. 미군 주둔지 경제, 즉 상권, 임금 등의 손실도 감수하고 말이죠. 자의건 타의건 미군은 한국에서도 떠날 겁니다.

안 가본 길을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나은 곳을 찾고 먼저 가보는 게 지도자의 책무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삐걱대고 있습니다. 9600억원 수준인 한국 분담금을 1.5배, 즉 1조4000억원 정도까지 올리려고 한다죠. 다른 나라에 비해 이미 높은 수준을 부담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당장 한·미동맹을 걱정하는 절규가 터져 나오고 협상은 지지부진합니다. 한국 정부가 이렇게까지 끌려다닐 필요가 있을까요? 주한미군을 더 요구하는 게 혹시 미국 아닐까요? 미군이 떠난다고 북한이 쳐내려올까요? 중국이 미사일을 쏠까요? 일본군이 독도를 점령할까요? 미군을 언제,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한·미동맹을 건국신화로, 종교로 숭배하며 반세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고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미국 눈치를 안 볼 수야 없겠죠. 하지만 새로운 사고와 유연한 상상력이 더더욱 필요합니다. 2018년 남북 화해는 1953년에 화석처럼 굳어버린 동아시아 정세 전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에 휩쓸리는 대신 변화를 이끄는 정부가 필요합니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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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말에 출판된 김난도 교수의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청년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끌어내며 우리 사회에 힐링 열풍을 몰고 왔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고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청년들에게 위로가 필요하고, 불안을 달래는 이야기가 필요했으리라. 그 이후로 힐링과 관련된 책이 쏟아져 나오고, 비슷한 강연이 잇따르고, 이른바 문화계는 힐링의 홍수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러한 힐링이라는 것이 방황하는 젊은 시기 용기를 주고,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는 객관화를 부여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이러한 흐름의 밑바닥에는 찬찬히 문제를 파악·분석하여 현실을 타개하려는 노력보다는 일시적인 감성 속에서 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면이 또한 존재한다. 그래서 힐링 열풍은 곧 많은 지식인, 평론가들의 공격을 받게 된다. 청년들도 아프지 않은 청춘이 필요하다며 이 책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2010년대 중반부터 힐링 열풍이 문화계에서 급속히 사그라들었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2010년대의 마지막을 고하는 2019년 현재 과연 힐링 열풍이 사그라졌는지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갖게 된다. 과연 대한민국이 그때의 힐링 열풍에 대한 반성으로 인하여 더 찬찬히 사유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회가 되었을까? 불행하게도 필자는 대한민국이 오히려 힐링과 공감과 증오와 재미와 편싸움이 아니면 관심을 끌지 못하는 “감성의 나라”가 되고 있다는 증거를 너무나 많이 보게 된다. 물론 그만큼 아직도 청년들과 국민에게 답이 안 보이고,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회현상이겠지만, 김난도 교수의 책에 대한 지식인들의 비판 역시 비판에서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한 반작용 정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선 사유와 대안을 모색해야 할 지식인들이 오히려 더 많이 감성적이 되어가고 있다.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요즘 말로 엔터테이닝하지 않으면 독자를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글의 논리나 참신한 생각보다는 글의 아름다움과 재미, 또 나와 같은 편에 있는가가 독자 수를 결정한다. 소위 비판적 지식인들이 만드는 세계이지만 사유와 대안의 세계라기보다는 아직도 힐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감에서 힐링을 하고, 재미에서 힐링을 하고, 같은 편이라고 확인하면서 힐링을 하고, 수려한 문장에서 힐링을 한다. 이러한 힐링의 세계는 방송매체에서 다루는 소위 인문학 강연이나 세상을 바꾼다는 강연 등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새로운 연구 성과와 새로운 통찰을 주로 소개하면서 강연 장르에 새바람을 일으킨 TED라는 미국의 프로그램과 달리 우리의 비슷한 유형의 프로그램은 역시 공감과 재미와 감성, 위로에 치중해 있다. 새로운 연구 성과나 사고의 전환을 접하면서 자극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터넷, SNS 공간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자극적인 내용이나 사진을 통해 조회 수를 올리며 위안을 받고 돈을 버는 공간이 된 지는 이미 오래이고, 토론도 배우고 대안을 찾는 진정한 의미의 논쟁이기보다는 편을 나누어 이겨야 하는, 그래서 승리의 짜릿함으로 위안을 받는 게임이 되고 있다. 증오와 저주의 댓글과 포스팅도 일종의 힐링이다. 대학의 강의도 명강의는 재미있는 강의이고, 내가 생각하기보다는 선생님이 대신 생각해주는 강의이다. 그리고 그다지 힐링에 도움이 되지도 않아서 대학이 공허해진 지도 꽤 되었다. 전문서적이나 잡지는 안 팔리고, 심지어 전문가들끼리도 잘 읽지 않는다. 학회는 사교장이나 여행 프로그램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감성과 힐링과 자극과 공감만이 넘치는 사회를 ‘반지성주의 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반지성주의 사회가 도래한 것은 삶이 빡빡해진 탓도 있지만,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에는 사회가 너무 복잡해졌고 또 처리해야 할 정보가 너무나 많아졌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그다지 사유를 좋아하지 않기에, 자신을 개발하기보다는 남이 대신 해주길 바라고, 더 쉬운 감성의 길을 택한다. 그걸 알고 이런 감성을 더 자극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인과 장사꾼들이 나오고, 인간을 인공지능의 심부름꾼으로 만들려는 과학자와 사업가가 나온다. 이 추세가 더 깊어지기 전에 지성주의 사회를 만들지 못하면 대부분의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감성과 인공지능에 휘둘리는 신종 노예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아직 김난도 교수를 극복하지 못했다. 지식이 비즈니스가 된 시대의 숙명일지도 모르겠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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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사법농단 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에서 피의자로 조사받는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중앙지검에 나가기 직전 인근 대법원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검찰청사 앞에 설치될 포토라인에선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대법원장 재직 중의 범죄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기소 후 재판을 맡게 될 법원을 들러리로 세워 ‘시위성 퍼포먼스’를 벌이겠다니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도 청와대 앞이 아닌 검찰 포토라인에서 소회를 밝혀왔는데, 이 무슨 망발인가.

양승태 전대법원장이 11일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 조사를 받기 이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본인이 최근까지 오래 근무했던 대법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게 좋겠다”는 이유를 댄 모양이다. 하지만 그 속내를 짐작 못하겠는가. 사법부를 대표하는 대법원 건물을 등에 지고 입장을 표명함으로써 검찰을 겁박하고, 사법농단 수사에 반대해온 법원 내 적폐세력을 결집하려는 의도임이 명백하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당초 대법원 경내에서 기자회견을 하려 했으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정문 앞에서 강행키로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법원노조)는 “사법농단 몸통 양승태의 오만이 극치에 달했다”며 원천봉쇄를 예고했다. 사법농단에 분노한 일반 시민까지 현장에 몰릴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해치고 헌정을 문란케 한 중대 범죄의 피의자다. 검찰 조사를 앞둔 그가 대법원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여론전을 펴는 일은 또 다른 사법농단에 다름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제라도 기자회견을 포기해야 마땅하다. 회견을 강행해 불상사가 빚어진다면 온전히 그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3월 이명박 전 대통령 출석 때와 같은 안전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 또한 과잉의전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헌법 11조는 ‘법 앞의 평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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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매일 먹는 것이라고는 조밥에 나물 반찬에 지나지 않는다. 몹시 힘들여 별식을 만들어 봐야 뭉텅이로 썬 떡에 형편없이 싱거운 술이다. 귀공자가 이 모습을 보고 비웃는다. ‘이렇게 하찮은 것을 먹으니 어찌 병이 나지 않을까?’ 부잣집은 하루 식비로 일천전(錢)을 써 기린을 삶아 죽 끓이고, 용을 썰어 젓갈 담근 듯한 천태만상의 기이하고 야릇한 음식을 밥상에 벌여 놓는다. 시골에서 글깨나 읽은 사람이 이 모습을 보고 탄식한다. ‘저렇게 사치를 부리니 어찌 망하지 않을까?’”

조선 문인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이 쓴 <제향루집서후(題香樓集敍後)> 속 한 구절이다. 아주 정통적이고 고답적인 글쓰기와 보다 가벼운 글쓰기 사이의 차이, 그 둘의 엇갈림에 관한 맥락에 놓인 구절이지만 ‘컵밥’과 ‘파인다이닝’이 엇갈리는 시대에 굳이 다시 읽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글쓴이는 실로 잘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잘 먹고 산 사람이다. 소고기라면 구이·전골·산적·육포·장조림 등 갖가지로 해 먹어치웠다. 구이용기는 벽장에 따로 보관했다. 돼지고기에 대해서는 라드를 입속에 녹여 먹는 한편 비계를 저며 불에 구워 먹는 섬세한 미각을 발휘했다.

수산물로는 철철이 잉어·청어·전복·복어·도미·게장·어리굴젓을 즐겼다. 쑥국, 미나리강회도 즐겼고 보기 드문 차 애호가였다. 수박·참외·대추·밤·배·감 또한 제철을 놓치는 법 없이 되들이로 먹어치웠다. 성균관대 안대회 교수에 따르면 심노숭의 별명 가운데 하나가 ‘감에 미친 바보(枾癡)’다. 쉰 살 넘어서도 감 60~70개를 먹어치웠기 때문이다. 미식가답게 김치 취향도 남달랐다. 서울의 음력 2월 미나리소 김치는 꿩고기보다 양고기보다 맛나다고 했고, 여기다 청포묵이며 탕평채를 곁들일 줄도 알았다. 이 김치는 거위알보다 흰 일등급 분원 사기에 내야 했다. 그의 음식 기호, 취향에 대한 고백은 메밀국수 앞에서도 번뜩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메밀국수이다. 메밀국수를 품평하면 평안도 지방 것이 최고이고 차게 조리한 것이 더욱 좋다. (중략) 며칠 사이에 한 번이라도 먹지 못하면 마음이 즐겁지가 않다.”

그가 남긴 식료의 목록, 음식의 이름, 조리 방식, 관능과 미각의 표현은 오늘날의 음식 글쓰기에 견주어 빠지는 데가 없다. 오늘날 통념의 평균이 모여 있는 위키피디아 영어판에 따르면 ‘음식 글쓰기(food writing)’란 넓은 뜻에서든 좁은 뜻에서든, 음식이라는 글감에 집중해서 쓴 글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음식평론가적인 작업과 음식 역사가의 작업 둘 다가 포함된다. 심노숭이야말로 음식에서 표현에다 품평에다 당대 기록을 겸한 인물 아닌가.

그러므로 더 궁금해진다. 서울 귀공자의 비웃음과 시골에서 글 좀 읽은 시골 사람은 어디서 만날지, 만날 수 있을지. 그런데 귀공자는 비웃다 말았다. 시골 사람은 탄식하다 말았다. 조밥과 용죽은 서로 등을 대고 서 있을 뿐이다. 모양 없이 덩이지게 썬 떡과 기기묘묘한 음식 사이에 접점도 통로도 없다.

위 인용문은 바로 <논어> 향당(鄕黨)편 속 한 구절인 “밥은 잘 찧은 쌀로 지은 것을 싫어하지 않았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는 공자(孔子)의 식생활로 이어진다. 귀공자나 시골 사람이나 공자의 일상 식생활을 배우면 된다고 했다. 이는 컵밥도 필요해서 나왔고 파인다이닝도 찾는 사람이 있으니 있다는 식의, 원칙론에 원칙론을 포갠 미봉이다. 그래서 섭섭한가, 아쉬운가 내 속내를 들여다본다.

섭섭하다. 아쉽다. 그런데 그만큼 고맙기도 하다. 오늘날 저마다 심노숭이다. 제 기호와 취향을 드러내는 연출 방법과 말글의 수사에서 그렇고, 그 드러냄을 통해 음식에 대한 제2, 제3의 욕망과 선망을 만들어가는 데서도 그렇다. 문자를 뛰어넘는 영상 덕분에 심노숭보다 더한 점도 있다. 그러고서는, 기호와 취향을 드러낸 다음은 여전히 공백이다. 모색과 상상력의 미봉이 그의 찬란한 수사 덕분에 더욱 또렷해진다. 아쉬움이 이정표다. 새해 하고도 며칠, 미봉한 채로 흐른 200년을 음미한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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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춘의 ‘吾書吾談 (오서오담)’, 600×420㎝.


노래 만들기를 접고 가죽을 몇 년 잡았었다. 또 칼과 바늘과 실… 무념무상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그걸 접고 카메라를 잡았었다. 작은 사진전도 했었다. 또 몇 년.

그걸 또 접고 만난 게 붓이었다. 한문 공부를 한다고 펜글씨를 너무 하다가 손가락 뼈들에 무리가 와서 볼펜도 못 잡게 되어 붓을 잡게 되었다. 하여, 그 십 년 가까이에 붓 맛도 알게 되고 한시도 조금 알게 되고….

이제 붓은 쉬이 놓지 않을 것 같다. 난 ‘말하는 사람’이란 걸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음악도, 사진도, 붓도 도구일 뿐이었다.

한데, 가죽 일도 누구에겐가 제대로 배운 바 없고, 사진도 그렇고 붓도 그렇다. 그저 조금 익숙해질 때까지 혼자 애쓰고 궁리했을 수밖에. 물론, 이야기도 그렇다. (어? 이야기는 누구에게서 배운단 말인가. 내 속에서 그저 줄줄 나오는데, 이리 허튼 소리들이…).

아무튼, 이제 시작한다.

붓으로 쓰는 노래, 내 이야기들.

<정태춘 싱어송라이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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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히로카네 겐시’는 오십대 중년 시기를 잘 사는 6가지 비법을 소개했는데, 1. 작은 욕심 부리기(예컨대 따뜻한 찌개를 안주 삼아 마시는 술 한 잔의 즐거움. 싸고 맛있는 세계의 즐거움이 있음), 2. 과거 따위 돌아보지 않기(묵은 감정 깨끗이 정리하고 이름조차 잊기. 가슴 뛰지 않는 물건 버리기), 3. 망설임 없이 즐거움으로 향하기(언제 죽을지 모르니 매일을 진지하게 즐기고, 오래 살지 모르니 배우는 일에도 새삼 도전하기), 4. 방황하지 않기(제발 좋아하는 일만 찾아서 하고, 피차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기), 5. 감정 온화하게 다스리기(섭섭한 마음이 들지 않도록 뭘 줘도 아깝지 않은 존재를 갖기. 뭘 받을까가 아니라 뭘 줄까에 관심 쏟기. 자식이 있다면 부모 품을 떠나도록 놓아주기), 6. 인생은 일장춘몽임을 깨닫기(평소에 유서쓰기. 가급적 이별은 산뜻하게). 나나 당신이나 버릴 것 하나 없이 6가지가 빠짐없이 필요하겠다.

촌락에서는 오십대도 이팔청춘. 환갑은 돌잔치나 비스무리. 품바 몸뻬 바짓가랑이를 걷어 입고 이태리 가짜상표가 붙은 오일장 목도리를 펄럭이고서 활개를 치는 아낙네들. 어깨허리치마를 해 입고 만세를 부르던 3·1운동 여학생들의 피가 흐르는 분들. 후반생을 이리 산다고 생각하니 없던 정도 생겨나고, 미운 정은 미운 정대로 고마워라. 어쩌다보니 오십대에 와 닿은 나는 젊고 대찬 ‘차도녀’는 ‘무섬증’부터 덥석 든다. 또 젊은 사내의 원대한 꿈이나 패기에 찬 언변을 감상하는 자리도 얼른 피하고 보는 게 상책. 냉대를 할 것 같으면 냅다 망설임 없이 집으로 향하기. 방황하지 않기, 인생은 일장춘몽. 방어가 최선의 공격. 수비가 튼튼한 축구는 재미가 없으나 결승전에는 그런 팀들이 남더라.

인생 중반이 되면 개그도 하나 외울 줄 알아야 한다. 소가 죽으면 다이소. 얼음이 죽으면 다이빙. 김밥이 죽으면 김밥천국. 아몬드가 죽으면 다이아몬드. 죽기 전에 외우라. 실없이 웃다가 잠들면 꿈자리도 좋지. 밤새 싸우다가 한을 품고 등져 눕는 오십대 부부도 많다더라. 등이 가려울 때는, 여깃다! 효자손. 오십대 필수품 가운데 하나인데 편의점에서는 왜 팔지 않는지 모르겠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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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 드라마 한 편이 한국을 들썩인다. 드라마는 세간의 분위기를 가볍고도 빠르게 담아내는 덕에 사람들은 드라마 한 편을 통해 미처 본인이 자각하지 못했던 시대적 유행과 분위기를 훑곤 한다. 드라마 <SKY 캐슬>은 대학입시가 갖는 의미를 21세기 한국사회에 투영시켜 교육이 갖는 세속성을 이야기한다. 교육이 더 이상 계층 이동을 위한 ‘유연한’ 사다리가 아닌 계층 유지 또는 계층 확대를 위한 ‘배타적인’ 사다리가 됐을 때 어떤 현상들을 낳게 되는지 말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시선이 멈춘 지점은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폐해도, 자식교육을 향한 엄마들의 그악스러움도 아닌 바로 아빠들의 무기력함이었다. 아빠들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얼굴들을 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 속 아빠들은 의사·교수 등으로 사회적으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

JTBC 드라마 의 한 장면.

하지만 ‘돈만 잘 벌어다 주면 가장 노릇 다 한 줄 알았다’는 극 중 영재 아버지의 고백처럼 그들은 여전히 집안일과 자식일에 별 관심이 없다.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건 오직 성적표가 나올 때뿐이다.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나 학생회장 당선 소식 등은 아빠의 사회적 지위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에 지나지 않는다. 가짜 하버드생인 딸이 아빠한테 눈물을 흘리며 소리친다. “공부 잘하는 자식만 자식이라는 생각 들게 했잖아!”

과정을 공유하지 않은 채 성과의 기쁨만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힘들 때 옆에 있어주는 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은 가족에게도, 심지어 가족의 리더 격인 아빠들에게도 통용된다.

미국 연수 시절 미국 아빠들이 외계인처럼 보였다. 평일 축구·농구 수업에 오는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이 아빠들과 함께 왔다. 한국처럼 직업강사가 아닌 자원봉사 체제로 꾸려지는 스포츠 클럽 성격상 축구 코치, 농구 코치는 대개 누구 누구의 아빠들이었다.

축구 매치가 있던 어느 토요일 놀라운 광경을 봤다. 상대편 축구팀 코치가 아기띠를 맨 채로 호루라기를 불며 경기 심판을 보고 있었다. 그의 배 위엔 돌도 채 되지 않은 작은 아기가 매달려 있었고,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큰아이는 축구 경기를 뛰고 있었다. 싱글 대디인지, 엄마의 부재 때문인지 추측할 새도 없이 입이 쩍 벌어졌다. 동료 이웃이 털어놓은 목격담도 보통은 넘었다. 농구수업에 갔더니 젊은 아빠가 무려 4명의 아이를 유모차와 아기띠를 동원해 홀로 돌보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언제쯤 이런 풍경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 지표로만 봐도 한국 아빠들의 가사노동 분담률은 현저히 낮다. 남성 가사 분담률은 1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3.6%)의 절반 수준이다. 덴마크(43.4%), 핀란드(40.7%) 등 유럽 복지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자유주의 첨병인 미국조차 아빠들의 가사분담률(38%)은 평균을 웃돈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엄마의 역할, 돈의 역할로 극한까지 밀고 온 것이 우리 교육의 모습”이라며 “아직 사용해볼 여지가 남은 것이 아빠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아빠와 대화하고 여행하고 공부하는 생활, 아빠가 자녀교육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사교육의 고통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아빠들이 안 돌아오고 싶어서, 돌아오는 길을 몰라서 오지 않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단순히 여유로운 일상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밥벌이를 하는 아빠가 자신의 건강을 살피고, 가족을 돌보고,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삶의 필요조건이다. 그러나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엔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각박하고 부족하다.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불거진 후폭풍만 봐도 그렇다. 한국 사회의 아빠들은 언제쯤 가정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문주영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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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쇼트트랙 3000m계주 금메달리스트 심석희 선수(22)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팀 코치(38)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했다. 성폭행은 심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평창 올림픽 개최 직전까지 4년간 계속됐다고 한다. 심지어 한국체육대학교와 국가대표선수촌 빙상장 라커룸 등 국가체육시설에서도 버젓이 자행했다고 한다.

그렇잖아도 조 전 코치는 심 선수 등을 주먹과 아이스하키채 등으로 상습 폭행한 혐의로 지난해 9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인물이다. 그가 체육 지도자라는 지위를 이용, 폭력을 일삼고 성폭행까지 자행했다니 참담하다. 조 전 코치는 성폭행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심 선수가 강간·상해 등의 혐의로 그를 고소한 터라 수사와 재판을 통해 진실은 곧 드러날 것이다.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왼쪽)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행 혐의 관련 대책을 발표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준헌 기자

심 선수는 성폭행 피해사실을 끝까지 숨기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여성으로서 견뎌야 할 고통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 가족들이 입을 상처 때문에 최근까지도 혼자서 감내해 왔다는 것이다. 심 선수는 지난달 17일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계속되는 폭행으로)‘이러다 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울먹이기까지 했다. 그는 그러나 성폭행에 따른 신체적·정신적 피해가 너무 크고, 앞으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성폭행 피해사실을 밝히기로 용기를 냈다고 한다. 그의 용기 있는 고백에 박수를 보낸다.  

여자쇼트트랙의 세계적 스타가 이렇다면, 일반 선수들이 당하는 고통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대한체육회에 접수된 폭력·성폭력 피해 신고·상담건수는 지난 한 해 동안 348건에 달했다. 이 중 성폭력 신고·상담건수는 93건이다. 대한체육회는 그러나 수사 의뢰나 고발은 단 1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8일에는 ‘2018년 스포츠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내놓으면서 “스포츠계 성폭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하기까지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뒤늦게 “민간주도 특별조사를 진행하고 예방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사후약방문식 처방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번 사건을 ‘심석희 성폭행 의혹 사건’이 아닌 ‘조재범 성폭행 의혹 사건’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성범죄 피해자가 입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 프레임을 짜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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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동북부의 가난한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사실 그곳까지 간 이유는 버림받은 마을을 살려낸 공동체 은행의 성공사례를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마을 사람들이 살던 곳은 원래 해변가에 있는 어촌마을이었다. 1970년대 초 정부가 해변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후 이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뿌리째 뽑혀났다. 사람들은 물도, 전기도, 집도 없는 허허벌판으로 집단 강제이주를 당했다.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들은 주민회를 조직하고 직접 돌을 날라 학교를 세웠다. 집을 짓고, 수도를 놓고, 전기를 연결했다. 공동체 은행에서 무담보로 소액대출을 받아 기술을 익혔다. 지역 경제가 조금씩 선순환을 이루기 시작했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할머니는 그 마을의 ‘산증인’이었다. 그는 황망히 그곳까지 빈손으로 밀려나 천막을 짓고 살아야 했던 시절의 옛 기억을 더듬었다. 공동체 은행에서 배운 재봉기술과 소액대출이 그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나는 할머니가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추임새처럼 “그건 대략 몇년도쯤의 일이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의 지난 삶을 통해 마을의 역사를 좀 더 생생히 보여주려 했던 것이니 불필요한 질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사실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마치 한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라도 받은 양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아주 대략이라도 좋아요. 몇십년대였다고만 이야기해주셔도 돼요.” 

그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단 하나의 시점도 대답하지 못했다. 연세가 많아 혼동하거나 헷갈린 것이 아니었다. 마치 연도에 대한 감각이 백지 상태인 것 같았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에게 오히려 더 당혹해한 건 나였다.

나는 1980년대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1990년대에 대학을 다녔으며, 2000년대에 직장인이 되었다. 나의 삶은 새로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시작과 마무리라는 단계를 거쳐가며 시간과 함께 앞으로 흘러왔다.

그러나 할머니 삶의 8할은 ‘어제’가 없는 삶이었다. 살아남는 것만이 목표인 똑같은 하루하루의 반복. 할머니의 삶에 ‘작은 기적’이 일어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삶은 언제나 고달팠다. 화려한 호텔이 즐비하게 늘어선 해변 관광지와 그곳에서부터 불과 23㎞ 떨어진 그 마을은 지금도 여전히 딴 세상 같다. 어제 같은 오늘과 오늘 같은 내일이 끝없이 반복돼 온 그에게 해가 바뀌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으리라.

“전 마포구 아현동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입니다.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습니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지난해 12월3일 서울 망원유수지에서 철거민 박준경씨(37)의 유서가 발견됐다. 그가 살았던 동네는 저소득층이 저렴한 주거비를 찾아 모여드는 도심 속 달동네 같은 곳이었다. 재건축 사업시행 인가가 떨어진 후 한때 2357가구가 살았던 그 동네는 폐허가 됐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10년 동안 세들어 살았던 집에서 지난해 9월 쫓겨났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25만원으로는 서울 하늘 아래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철거촌을 떠나지 못하고 물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빈집을 전전해야 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합니다.”

그 한 줄의 문장 속에 담겨있는 절망의 무게가 가슴속에 박혀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말은 사실 ‘오늘 같은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내일이 오지 않는 것이 두렵다’는 뜻이다.

우리는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더 나아질 내일을 꿈꾸면서 다가올 새해 계획을 짠다. 그렇게 우리의 삶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움직여왔다. 그러나 우리 곁에는 당장 눈앞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워 ‘내일’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에 갇혀 새해를 빼앗긴 사람들. 우리는 그들에게 새해를 빚지고 있다.

지금의 법대로라면 2019년에도 재건축 지역의 세입자들은 박준경씨처럼 이주비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24세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씨가 사망했지만, 태안화력발전소 1~8호기 컨베이어벨트는 해가 바뀐 지금도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박준경과 김용균을 잃은 2018년에 멈춰 서 있다.

어제가 지나가고 오늘이 끝났다고 해서 내일이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내일이 오지 않으면 어제도 없다. 새해가 새해가 될 수 있는 것은 지난 해들이 과거가 될 때만이다.

새해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정유진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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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한낮의 서울 광화문은 한적했다. 이른 아침 지하철로 버스로 이곳에 달려온 사람들은 높은 빌딩 숲으로 꼭꼭 숨어버렸고, 점심때 잠시 거리를 휩쓸고 지나간 그 사람들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이 바쁜 도시는 광화문 한가운데 놓인 영정 속에서만 존재하게 된 스물넷의 청년을 벌써 잊었을지 모른다.

안전모를 쓰고 마스크를 한 채 자신의 간절한 바람을 적은 종이를 들고 서 있는 영정 속의 청년, 그 청년도 그날이 아니었다면 월요일 한낮 자신의 일터에서 점심 한 끼 급하게 때우고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계 아래 서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일하기에 도시는 일을 하고, 밥을 먹으며, 살아 숨 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곳에 없다.

“여기 있는 분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셨어.”

세월호 분향소를 둘러보던 가족의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그가 영정 속 청년 앞에서 고개를 숙이자 두 아이가 얼른 그 뒤에 섰다. 초등학생 아들은 엄마의 도움을 받으면서 서툴게 향에 불을 피워 영정 앞에 놓았다. 아마 아이는 분향소를 떠난 뒤 부모에게 물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저 형은 일하다가 왜 죽었는가? 아이의 물음에 과연 부모는 뭐라고 답할까? 우리 사회는 고작 나이 스물넷 된 청년이 죽은 이유를 제대로 답할 수 있을까?

작업장에서 쓰는 손전등조차도 지급받지 못한 비정규직 청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리고 동료들이 딛고 서 있는 곳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곳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외쳤을 것이다. 당신들은 언제까지 모른 체할 거냐고.

해가 떨어지고 광화문을 메운 수많은 빌딩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졌다. 온종일 분향소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음이 아파 똑바로 마주하지 않은 청년의 영정을 바라봤다. 그의 형형한 눈빛이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간절했던 눈빛을 진즉에 세상이 받아줬더라면, 그는 이곳에 이리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죽음으로 세상이 조금 바뀐다 해도, 그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그게 비통하다.

<김해원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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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새해 소망은 소박해진다. 거창한 계획을 세우면 오히려 연말에 씁쓸해진다고 경험으로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12월31일과 1월1일 사이의 그 언제쯤 “아는 척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지난 한 해를 치밀하게 반성하고 생각해낸 계획은 아니었다. “SNS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자”도 새해 계획의 후보로 떠올랐으나 도저히 지킬 자신이 없어서 “아는 척하지 말자”를 거의 억지로 새해 계획으로 생각해낸 것 같다.

대충 생각해냈기에 참으로 빈틈이 많은 계획이었다. 겸손하게 살자는 다짐 정도로 이해하면 슬쩍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새해가 지난 며칠 후 어느 책에서 비트겐슈타인의 그 유명한 명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를 다시 만나게 되자, 나의 새해 결심은 이른바 무식해서 용감한 경우에 해당됨을 깨달았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가르치는 게 직업인 사람은 “설명할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순간 존재의 이유가 의심받는다고 생각하기에, 무엇이든 반드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설명할 수 없음’을 숨기려고 오히려 더 열성적으로 설명하려 들 때, 더 이상 해서는 안되는 악행 중 하나로 꼽히는 이른바 ‘훈장질’이 시작된다.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단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척하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훈장 취급받는 것이다. 그 훈장이 “설명”할 수 없기에 ‘말할 수 없는 것’에 부딪히면 설명하지 않으면 된다. 훈장질을 하지 않도록 돕는 유일한 방법이다. 단순한 이치인데도 설명의 입이 유독 발달한 사람은 이렇게 쉬운 해결책을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빅이슈’, 이른바 주거취약계층 재활 잡지이다. 1991년 영국에서 창간되어 현재 11개국에서 발행되고 있다. 주거취약계층에게 합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서 경제적인 자립의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지는 잡지다. 한국어판은 2010년부터 발행되기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지하철역 입구나 거리에서 판매원으로부터 구입할 수 있고 다른 지역의 경우 정기구독이 가능하다. 홈리스가 ‘빅이슈’ 판매원이 되기로 결심하면 2주 동안의 임시 기간을 거친 후 정식으로 ‘빅이슈’를 팔 수 있다. ‘빅이슈’는 한 권에 5000원에 판매되는데, 5000원 판매액 중 절반인 2500원이 ‘빅이슈’를 판매하는 사람 즉 ‘빅판’에게 돌아간다. ‘빅이슈’는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정보에 의거해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빅이슈’는 사물이다. 사물은 설명이 가능한 대상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빅이슈’를 판매하는 사람, 즉 ‘빅판’을 설명할 수 있을까? 직업 명칭은 그 사람이 수행하는 기능은 가리켜도 그 사람의 인생을 설명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수행하는 기능과 그 사람 사이의 격차를 무시하고 혹은 외면하고 감히 그 사람을 기능만으로 설명하려 든다면 오만하다. 오만함을 감지했다면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게 필요하다.

‘빅판’이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임상철’씨라는 사람이 있다. 18년 동안 홈리스였고 6여년간을 ‘빅판’으로 지내고 있다. 임상철씨는 현재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빅이슈’를 팔고 있다. 그는 자신을 설명하는 혹은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고, 그 글과 그림을 ‘빅이슈’에 끼워 판매했다. 설명의 대상이기만 했던 사람이,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글은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된다.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으로 이 책의 원고를 읽었다. 아니 임상철씨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사회학자의 오만을 되돌아보는 반성문의 형식으로 추천사를 썼다. “설명”하는 입만 발달한 전문가로만 가득 찬 사회, 자신에 대하여 발언할 기회를 골고루 보장하지 않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늘 자신이 수행하는 기능이 “설명”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은 귀하다. 그 귀하고 흔하지 않은 순간을 맞이하면 우리는 설명하는 입을 잠시나마 닫고 경청의 귀를 쫑긋 세워야 한다.

오늘 ‘빅이슈’를 팔고 있는 임상철씨를 홍대입구역 3번 출구로 만나러 갔다. 그리고 이 책의 독자에게 꼭 전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사람들은 길거나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저도 저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나는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나갈 생각”이라며 자신의 인생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빅판’ 임상철은 ‘빅이슈’를 팔지만, 사람 임상철은 예술가가 되려는 꿈을 포기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 그가 파는 ‘빅이슈’엔 ‘빅판’의 기능과 사람 임상철의 꿈이 담겨 있다. 그렇다. 누구나 기능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다. 임상철씨 덕택에 새해 결심을 바꾸었다.

새해는 나에게 입을 여는 시간만큼이나 귀를 활짝 열고 듣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노명우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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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류층 저택 단지에서 입시를 두고 벌어지는 암투를 그린 드라마 <SKY 캐슬>이 화제다. 과장된 상황 전개에도 불구하고 이게 바로 우리 교육의 현실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이 드라마의 웃음 코드 가운데 하나는,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이면서 허당 기질이 다분한 정준호 분 강준상 교수의 행태다. 나의 전공 탓이겠지만, 그중 유독 눈에 들어온 장면이 있다. 미리 입수한 정보를 활용해서 국회의원의 환심을 사려던 강 교수가 한자로 적힌 여주(驪州) 신륵사(神勒寺)를 마천 신혁사로 잘못 읽는 해프닝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화백

그러나 ‘驪’와 ‘勒’을 쉽게 읽을 수 없는 시청자라면 그냥 웃어넘기기엔 뭔가 찜찜하다. 한글로 쓰면 될 것을 굳이 한자로 써서 망신을 주는 설정이 와 닿지 않아서일까, 오히려 강 교수의 볼멘 항변에 공감이 간다. “저희 땐 한자를 안 배웠습니다. 학력고사 과목에 없었거든요.” 학력고사 전국 1등의 수재라 하더라도, 대학 입시와 상관없는 내용은 몰라도 당당한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국권을 빼앗기고 타의에 강제된 근대화를 겪으면서 한문으로 표기된 전근대 문물은 부정의 대상이었고, 이는 해방 이후 한글 전용의 전격 시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라도 한문 교육은 여전히 필요하다.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에 한문 교육의 의의와 내용이 실려 있고, 이를 흥미롭게 구현한 교과서들이 나와 있으며, 전공 교육을 충실히 받은 교사들이 양성되고 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의 한문 교육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대학 입시에 영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글 전용이 세대를 넘긴 지금, 한문 교육이 우리의 민족 자존감을 무너뜨리거나 전근대적 가치관으로 회귀시킬 것이라 우려할 필요가 있을까? 그보다는 동아시아의 일국으로서 어휘 및 문화 교육의 측면에서 한문 교육의 실용성이 다시 부각되는 시대다. 교육과정의 선택과목 체계에서 한문과의 위상을 재배치하고, 대학 입시에 편중되는 중·고등학교 시수 편성을 정상화하는 원칙 수립이 시급하다. 대학들도 온전한 고등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한문 실력을 입시 전형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교육이 철학과 비전 없이 방향성 없는 경쟁으로만 치닫다 보면, 여주를 마천으로 읽는 실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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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전쟁 후 귀향길에 나선 오디세우스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가 사는 동굴에 갇힌다. 거인에게 잡아먹힐 위험에 처하자 오디세우스는 불에 달군 말뚝으로 거인의 눈을 찔렀다. 누구냐고 소리치는 거인에게 오디세우스는 ‘우티스’(Outis)라고 말했다. 비명을 듣고 달려온 거인의 친구들이 누구의 소행이냐고 묻자, ‘우티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아무도 안 찔렀다니 어쩔 수 없네”라며 돌아가버렸다. ‘우티스’는 ‘아무도 아닌 자(Nobody)’라는 뜻. 오디세우스는 자신을 ‘우티스’라고 호명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압록강을 건넌 연암 박지원이 요동에 묵을 때의 일이다. 이슥한 밤,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 “거 누구냐”고 소리 지르니, 청나라 순찰병이 “도이노음(島夷老音)이오”라고 대답한다. 연암은 그 말이 “되놈”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면서 청나라 사람들이 ‘되놈’이 자신들을 낮춰 부르는 호칭인 줄 모르고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을 보고서 포복절도한다.

어떻게 부르고, 불리느냐가 존재를 규정한다. 신분을 규정하고, 때로는 오디세우스처럼 생사를 가른다. 호명은 호칭을 통한 관계 맺기이다. 호칭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동시에 구별짓는다. 그것은 서열과 연령, 친밀감, 격식에 따라 다르다. 한국 사회가 특히 심하다. 처한 위치와 부부관계에 따라 아내 호칭은 여보, 당신, 아무개 아빠, 자기 등으로 갈린다. 상대에게 말하는 아내 호칭도 아내, 마누라, 와이프, 안사람, 내자 등으로 달라질 수 있다. 직장, 학교와 같은 조직에서 구성원을 어떻게 부르느냐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한국어의 복잡한 존칭에는 수직적 위계를 중시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이 배어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한국어 학습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존칭법을 꼽곤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교사, 학생 등 구성원 사이 호칭을 ‘○○쌤’이나 ‘○○님’으로 통일하기로 했다. 구성원들이 원할 경우 교장선생님과 학생 간에도 ‘○○님’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수평적 호칭제를 통해 직위와 직급의 구분을 없애고 상호존중하고 배려하는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다. 서울교육청의 실험이 성공해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풍토를 이뤘으면 한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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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마지막 날, 나는 강남의 한 심리상담소를 찾아갔다. 취재 때문에 혹은 그 밖의 여러 이유로 몇 군데의 심리상담소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내가 유독 그런 곳만 방문한 건지, 대부분의 심리상담소가 그런 곳에 있는 건지, 찾아가는 곳마다 좁은 복도에 굳게 닫힌 문들만 늘어선 오피스텔에 있었다. 사무실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직원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상담사 혼자만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대개의 상담이 일대일 만남이니 당연할 수는 있는데, 굳게 닫힌 오피스텔 사무실을 여자 혼자 방문하는 데에는 일말의 불안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곳에 지인이 살고 있다고 해도 그럴 텐데, 만나는 사람이 그전까지는 모르던, 누군가의 소개가 알고 있는 전부인 낯선 사람이라면 공간의 폐쇄성은 유독 강하게 와 닿기 마련이다.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안에 누가 있을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데,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 중에 특이한 사람도 많다던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디로 어떻게 도망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된다. 실제로 우려했던 불운을 겪은 적은 없고, 오히려 문을 열고 나면 그 이전의 의심과 의혹이 미안해지기 마련인데도 번번이 그렇다. 특이한 사람을 만난 적은 있지만 그 정도의 경우는 일상의 만남에서도 존재한다.

그날도 역시 그런 비슷한 과정을 거친 만남이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길에 나는 기분이 묘해졌는데, 우울증 이력을 가진 이가 자신의 전문의를 흉기로 살해한 기사를 읽게 된 탓이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건 새삼 좁은 복도에 굳게 닫힌 문만 있는 사무실에서 마음을 앓는 이를 기다리는 상담사들의 마음도, 그 복도를 걸어서 처음으로 문을 열어야 하는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였다. 환자와 의료진으로 붐비는 대형병원도 환자들의 폭력에 그토록 무방비 상태라면 저런 곳은 거의 사각지대에 가깝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그들의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우울은 왜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궁금증이 든다. 치료가 필요한 사람에게도 치료를 하는 사람에게도 그렇게 닫힌 공간은 여러 의미로 위험해 보인다. 심리상담에 관심을 가지면서 나는 이런 형태의 심리상담소가 매우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런 상담소를 찾아가는 이가 제법 많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심리상담 문화가 생각보다 꽤 보편화되어 있는 셈인데 특이한 건 대부분의 상담이 개인 상담소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입원을 필요로 하는 중증의 상태가 아니라면 대체로 병원을 꺼렸다. 개인 심리상담의 비용이 병원보다 높은 경우에도 그렇다. 사람마다 이유가 다르겠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병원 진료를 받을 시 남는 치료 이력과 약물 처방에 의존하는 병원의 진료방식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대안처럼 선택되는 많은 개인 상담소들은 과연 적당하고 합리적인 치료를 받기에 안전한 곳일까. 유감스럽게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현재 한국의 심리상담사 자격증은 면허제가 아닌 자격증제로 이뤄진다. 물론 자격증을 얻기 위해서 일정 시간의 연수 등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지만 어느 곳이 신뢰할 만한 곳인지는 경험으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우울과 공황이 감기만큼이나 흔한 현대인의 질병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 질병에 대한 대책이나 치료에 대한 공신력 있는 안내는 딱히 찾을 수가 없는 셈이다.

우울을, 마음의 병을 광장으로 끌어내자는 말은 정말 조심스럽다. 생각해보면 그 병은 오래전부터 광장에 나와 있다. 단지 처벌받고 있을 뿐이다. 지난해 말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고인의 유족들은 그 참담한 슬픔 속에서도 고인의 뜻이 “마음의 고통이 있는 모든 분들이 사회적 편견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쉽게, 정신적 치료와 사회적 지원을 받”는 데 있음을 되새겨주는 발표를 해 마음 아프게, 그러나 더할 수 없는 존경의 마음으로 들었다. 그건 아마도 마음의 고통이 끌려나온 광장이 처벌의 광장이 아닌 치유의 광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지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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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한 친구의 집에는 당시 중산층 가정에서는 볼 수 없던 소니 VCR이나 워크맨, 고급 전축이 갖춰져 있었다. 친구는 이들 기기를 통해 최신의 콘텐츠들을 향유했는데, 주로 해외 영화와 록이나 헤비메탈 등의 팝송, 특히 다양한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된 음악들이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작년 한해 우리 대중문화계에는 굵직한 이슈들이 많았다. 방탄소년단(BTS)의 빌보드차트 1위 수상을 포함한 전 지구적인 인기, 남북 예술단의 평양과 서울 공연, 미투운동 등이 그중 일부이다. 이와 더불어 영화 한편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 문화계에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된 록밴드 퀸의 일대기였다. 특히 그룹의 리더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다룬 이 영화는 한동안 대중의 기억에서 사라진 뮤지션을 대중문화의 전면으로 불러내었다. 

제76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록밴드 ‘퀸’의 메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 역을 맡아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라미 말렉(가운데)이 ‘퀸’의 실제 멤버인 브라이언 메이(왼쪽, 기타), 로저 테일러(오른쪽, 드럼)와 함께 백스테이지에서 수상의 기쁨을 나누고 있다. 로이터 _ 연합뉴스

과거의 아티스트와 음악이 영화를 통해 재해석되고 재구성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일례로 요절한 미국의 로큰롤 가수 리치 밸런스의 짧은 생애와 음악을 다룬 영화 <라밤바>나 아바의 동명의 곡을 소재로 한 <맘마미아> 등이 그랬다. 다만 퀸 열풍은 이들과는 유사하면서도 상이한 면을 보여준다. 우선 이전의 영화들이 전 지구적으로 큰 인기를 구가했던 것과 달리, <보헤미안 랩소디>는 퀸의 본고장 영국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높은 누적 매출액을 기록하며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흥행을 기록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는 단순히 스타의 탄생과 몰락이라는 클리셰를 활용해 한 인간의 굴곡진 삶을 그린 드라마적 감동이나 음악적 완성도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퀸은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올드하지 않고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된,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70~80년대는 퀸만큼이나 뛰어난 록 그룹과 아티스트들이 군웅할거한 시절이기도 했다. 가령 시카고와 이글스, 스모키와 에어서플라이 등 기라성 같은 그룹이 활동했고 이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칼리지 록(College Rock)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REM, 일리노이대학 재학생들이 주축이 된 REO Speedwagon 등도 국내외에서 견고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다. 다만 퀸 현상은 동아프리카의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페르시아계 인도인이었던 프레디 머큐리가 주류 영국사회의 냉소를 실력과 노력으로 이겨낸 감동적 휴먼스토리, 또한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의 양성애자로서의 사생활과 불우한 말년 등 극적인 삶에 대중의 동일시와 공감이 확장된 지점에서 생성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영화 속 “우리는 모두 아웃사이더들이고 세상의 모든 아웃사이더들을 위해 노래하죠. 마음이 쉴 곳 없는 세상에서 외면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퀸은 바로 그들을 위해 존재합니다”라는 프레디의 대사에서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며 음악에의 꿈을 키우던 이민자 출신의 아웃사이더 파록버사라(프레디의 본명)의 삶은 24세 비정규직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목숨을 잃는 일이 그리 특별하지 않게 일어나는 한국사회에서 청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줬을까. 오늘날 다수의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 내집 마련의 꿈조차 꿀 수 없고, 자본과 정보, AI와 네트워크가 많은 것들을 대체하는 생존주의의 차가운 삶과 사회의 작동방식에 무방비로 내던져졌다. 영화는 이렇듯 헬조선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자기 연민과 공감, 다른 삶과 사회에 대한 상상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주는 함의는 아프고도 무겁다.

<류웅재 한양대학교 교수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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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에 전단을 붙이며 돌아다니던 날이 있다. 어린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고 적어놓은 전단이었다. 교사를 소개하는 난에는 내 이름과 전화번호와 경력을 적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잡지사에서 근무했고 작은 문학상에서 작은 상을 탄 사실을 적었으나 미더운 글쓰기 교사로 보이기엔 충분치 않았다. 사실 이제 막 스물세 살이 된 참이었고 카페 알바만으로는 월세를 감당하기가 벅찰 뿐이었다. 가르치는 일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이야기를 듣거나 글을 읽는 것이 좋았다. 뭐라고 어필해야 할지 몰라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아이도 글쓰기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적었다. 내가 썼지만 믿을 수 없는 문장이었다. 나야말로 글쓰기가 싫고 두려울 때가 잦았기 때문이다. 

영등포와 목동 일대에 전단을 돌리자 가뭄에 콩 나듯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한 학부모는 어느 대학을 다녔냐고 물었다. 내가 대학의 이름을 대답하자 그는 심드렁하게 전화를 끊었다. 출신 대학을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 학부모도 있었다. 그런 이의 자녀들이 내 첫 번째 제자가 되었다. 수업준비물을 챙겨서 가정에 방문하면 엄마들은 나 보고 고등학생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수업에 대한 궁금증도 염려도 섞인 말이었다. 별다른 경력 없는 학부생에게 아이를 믿고 맡긴 고용주들이 후회하지 않도록 잘하고 싶었다. 

무언가에 대해 쓰고 싶은 대로 쓰자고 제안하면 아이들은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혹은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기억은 나는데 쓰기가 싫다고도 말했다. 좋은 이야기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었다. 내가 먼저 무언가를 내주어야만 그들도 소중한 것을 나에게 내주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먼저 털어놓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거짓말’이라는 글감에 관해, 또는 ‘방귀’나 ‘눈물’이나 ‘도둑질’이나 ‘질투’나 ‘어떤 냄새’라는 글감에 관해. 어리석은 경험을 한두 개 말하다 보면 그 자리에서 가장 우스꽝스럽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은 날 보며 웃었다. 그때 질문을 건네야 했다. 너희는 어떠냐고. 그럼 그들은 연필을 들고 회심의 미소 같은 것을 지었다. 재미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의 표정은 호기롭기 마련이었다. 어리석고 우스운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으므로 아이들은 원고지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갔다. 그들 중 하나였던 열 살의 최가희는 이런 문장을 썼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 방으로 가니까 왠지 눈물이 나오고 가슴이 찡했다. 뭔가 엄마한테 안기고 싶었다. 자다가 밝은 곳으로 가면 이상하게 눈물이 나온다. 내가 왜 이러는지 나도 모르겠다. 언니랑 동생이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니, 나도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또 다른 하나인 열세 살의 이형원은 이런 문장을 썼다.

“우리는 함께 뒤섞여 놀다가 서로의 여름 냄새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 우리의 두피에서는 찌든 걸레 냄새가 났다. 우리의 옷에선 중학생 남자 옆을 지나가면 맡을 수 있는 냄새가 났다. 우리의 발에서는 가죽에 물을 묻히고 한동안 방치해둔 냄새가 났다. 웃음거리가 되던 우리의 여름 냄새들이었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내 후각까지 생생해지는 느낌이었다. 그의 ‘여름 냄새’ 묘사는 탁월했다. 또 다른 하나인 열세 살 오승린은 이런 문장을 썼다.

“가끔씩 영화 찍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주로 절벽에서 서로의 손을 놓쳐 떨어지고 마는 시나리오였다. 왜 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꼭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그가 쓴 것 덕분에 나는 이야기의 속성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이야기란 우리를 몇 번이고 다시 살게 할 수 있었다. 다른 세계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볼 수도 있고, 현실에서는 엄두도 안 날 스릴을 잠깐 체험해볼 수도 있고, 가짜로 비극을 겪으며 마음 근육을 키울 수도 있었다. 그사이에 우리는 어쩌면 더 강해지기도 했다. 

그런 문장들을 읽으며 오년간 글쓰기 교사로 지냈다. 서울의 영등포와 목동과 판교와 전라남도의 여수 등을 돌며 보따리장수처럼 글쓰기 수업을 했다. 선생님이라고 불리면서도 가장 많이 배우는 건 나였다.

<이슬아  작가·‘일간 이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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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해전 장면을 보면 갑판 아래서 북소리에 맞춰 노꾼들이 팔이 빠져라 노를 젓습니다. 둥당둥당 빠르기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고, 둥둥둥 당당당 소리에 맞춰 어느 한쪽 더 저어서 배를 돌립니다. 격군(格軍) 여럿이라도 고수(敲手)는 하나여야 전선(戰船)을 민활하게 움직이지요. 너나없이 고수이고 엇박자면 배는 산으로 갑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누구나 아는 속담입니다. “에이, 설마 배가 산으로 가겠어?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웃어넘기지만, 배에서 내리기 힘든 곳이면 거기가 바로 산입니다. 사공(沙工)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모래톱같이 경사가 거의 없는 곳이어야 뱃머리나 뱃전을 대고 정박과 승하선하기 쉽습니다. 뱃전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둔치면 배가 출렁거려 타고 내리기 어렵지요. 그런데 어린이용 속담 책을 보면 죄다 여럿이 우왕좌왕 노 젓느라 배가 산으로 오르는 모습으로 그려놨더군요. 그건 사공이 아니라 노꾼입니다. 사공은 삿대로 강바닥을 밀거나, 노를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처럼 지국총지국총 저어야 하니 고물(선미)에 서야 옳습니다. 물의 저항을 적게 받으려 배 폭까지 좁으니 사공은 많아야 둘이서 노를 맞잡게 되지요.

그럼에도 사공이 많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그건 입만 산 ‘입사공’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에헤~ 내가 해봐서 아는데, 그리 하는 게 아니지.” “거참, 이렇게 이렇게 좀 해보라고.” 듣다듣다 열 뻗친 사공은 젓던 거 팽개치고 뱃머리 가서 삿대질합니다. “그럼 잘나신 댁들이 해보시든가!” 입사공들이 막상 해보니 자신이 알던 그 물살, 그 노, 그 배가 아닙니다. 우왕좌왕 떠내려가던 배는 결국 어느 둔치, 못 내릴 산에 닿고 맙니다. 일단 맡겼으면 실무자가 사공입니다. 한배 탔다, 서툴다, 못 미덥다, 바로 관여하고 나서면 ‘입사공 존문가’라며 실무진이 삿대 던집니다. 기다림은 미덕입니다.

<김승용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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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델 이후, 유전자는 기다란 실에 꿰어진 구슬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고, 돌연변이는 단지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 유전학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여성 생물학자였던 바버라 매클린톡은 오랜 옥수수 관찰 끝에 유전자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튕겨져 나와 서로 자리를 바꾼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현대 유전학의 지도를 바꿔놓았고 그는 1983년 생리의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았다. 

매클린톡은 옥수수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말을 걸었으며 옥수수들이 자신의 숨은 비밀을 말해주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염색체는 점점 더 크게 보였고 어느 순간 자신이 염색체 밖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을 가져야 하고, 그 물질이 당신에게 건네는 말을 이해하려는 인내심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스스로 당신에게 다가오도록 자신을 개방해야 합니다.”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점점 그것 자체가 되어가는 사랑의 과정이라는 것, 이것이 그가 유전자의 비밀을 알 수 있었던 비결이다.

아이들이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와 긴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어떻게 하면 겨울방학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따뜻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을까? 문제는 우리가 매클린톡처럼 자녀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들이 건네는 말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기다릴 인내심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두려움이 있다. 두려움이라는 괴물이 쉬지 않고 우리를 쫓아오고 있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계속 내달리게 된다. 괴물은 뒤에서 계속 부모들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네 아이가 이름도 없는 대학에 가게 되면 어떡할래? 네 아이가 사회에서 낙오자가 되면 어떡할래? 네가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없으면 어떡할래?’ 이제 부모들이 괴물이 되어서 아이들을 쫓는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면서 아이들을 통제하고 불안한 마음에 때로는 협박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점핑하는 유전자’처럼 부모로부터 튕겨 나가 자기 방식대로 삶의 공간을 찾아든다. 그 공간에서 부모를 욕하고 사살하는 패드립 놀이를 하다가 학폭(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또다시 아이들을 훈계해야 할까? 

안타까운 점은 아이를 다그치고 고쳐놓으려 할수록 아이의 내면은 계속 망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 두려움의 타이머를 잠시 꺼두는 것이다. 조금 떨어져서 그저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서로에게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허용해보면 어떨까? 아이가 말을 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으로 들어주면서 고개를 끄덕여주거나 호응해보자. 매클린톡처럼 이제 어른들의 말하기를 멈추고 그 대신 아이가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양보해보자.

“너는 어때? 너는 어떤 방학이 되길 원해? 엄마 아빠가 어떨 때 도와주면 좋겠어?”라고 말이다. 아이는 처음에는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아이를 향한 따뜻한 호기심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아이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자신을 내보여 줄 것이다. 이제 아이는 자신에 대해 말하는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된다. 더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믿는 힘이 생기게 된다. 방학 동안 그런 힘이 자라나서 개학 날 우리 아이들이 좀 더 든든하고 환한 마음으로 새 학년을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춘애 광명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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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그루의 나무를 위해서도 그 나무만큼의 햇빛이 정확하게 드는 법이다. 오늘 내가 찾는 나무는 홀로 우뚝한 교목이 아니라 어울려 사는 관목이다. 그것도 울타리로 심기에 적당해서 일제히 줄을 맞추고 관리당하는 나무이다. 나무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줄기에 날개가 있다. 그 나무를 볼 때면 나는 옛날의 한 시절로 득달같이 달려간다.

@최영민

부산으로 전학 가던 날. 천일여객 낡은 시외버스는 거창 차부를 떠나 합천, 창녕, 밀양, 삼랑진을 거쳐 탈탈거리며 갔다. 차의 진동에 너무 많이 시달렸다. 발등이 조금 부어올랐고 신발은 뻑뻑해졌다. 비슷하게 출발한 해도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세상에서 가장 길다는 구포다리를 건넜다. 여기가 부산의 입구인가. 이리저리 구경거리에 눈을 부라리는데 희한한 광경이 포착되었다. 처음 보는 네온사인 아래 어느 공터에서 둥그런 채를 가지고 하얀 러닝셔츠를 입은 두 사람이 공중에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었다. 아니, 세상에, 백열전등을 저렇게 가지고 놀다니! 역시 도시사람들은 대단해!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배드민턴 공이었다. 산에 입문하고 나무의 특징을 통해 나무를 알아갈 때, 그 나무에 관한 설명을 들을 때 내가 쏜살같이 달려간 곳은 바로 구포다리 근처 어느 공중에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신기했던 백열전등이었다. 그 나무 줄기의 날개와 배드민턴 공, 다시 말해 셔틀콕의 날개는 어쩌면 그리도 서로 닮았는지.

시계가 없다고 시간마저 없어지는 건 분명 아니다. 시간이 시계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는 정도의 분별력만 있었더라면! 여러 우회로를 거친 뒤에 나는 오늘 인왕산의 둘레길을 걷고 있다. 멀리 단정한 그 나무가 보인다. 나무가 저곳에 있기 위해선 나무를 띄우는 햇빛만큼이나 시간도 정확히 필요했다. 새해 지나고 벌써 일주일, 고여 있는 시간의 웅덩이인 듯 첫주는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제 기해년도 제 시간의 봉투를 뜯겼으니 셔틀콕처럼 또 빨리 흘러가겠지. 줄기에 날개가 발달한 화살나무 옆을 지나는 오늘은 소한(小寒)이다. 화살나무, 노박덩굴과의 낙엽 관목.

<이굴기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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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