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해가 다가왔다. 십이지에 속하는 가축 가운데 소나 돼지, 닭 등은 도시인의 일상에서 보기 어렵지만, 개는 여전히 우리 가까이에 있다. 주로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 사이를 뜻하던 반려(伴侶)라는 말이 요즘은 개에게 더 많이 사용되는 듯하다. 오늘날 개는 이처럼 접촉과 교감의 대상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주거문화가 바뀌기 전까지 개의 역할은 주로 마당에서 집을 지키는 일이었다. 다른 동물과 달리 개는 낯선 이를 보면 짖어대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중국 고대의 철학자 양주에게 양포라는 동생이 있었다. 하루는 양포가 하얀 옷을 입고 집을 나섰다가 비에 흠뻑 젖는 바람에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 집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짖어대는 것이었다. 양포가 화가 나서 개를 때리자 양주가 말했다. “때리지 마라. 너 같아도 흰 개가 검은 개가 되어 돌아오면 낯설어서 몰라볼 수 있지 않겠니?” 겉모습이 바뀐다고 속까지 바뀐 줄 아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만큼 일찍부터 개는 낯선 것을 보면 어김없이 짖어대는 동물로 알려졌다.

촉견폐일(蜀犬吠日)이라는 말이 있다. 촉 지역은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워낙 많아서 이곳의 개들은 어쩌다 날이 개면 해를 보고 마구 짖어댄다고 한다. 구름에 가린 것일 뿐 하늘 아래 해가 없는 곳은 없는데, 해를 보고 짖어대다니 참으로 멍청한 개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인식 역시 늘 경험하는 익숙한 것들에 길들어 있다. 자신이 본 것이 다인 줄 알고 낯선 것을 보면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심지어 다르다는 이유로 비난부터 하는 일도 적지 않다. 문제는 소인은 많지만 군자는 드물며, 부조리가 일상인 세상에서 개혁은 낯설고 불편한 일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만세의 사표 공자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비방과 곤욕을 당한 것도 그 때문이다.

천하의 악당 도척이 키우는 개는 훌륭한 요임금을 보면 짖어댈 수밖에 없다. 주인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낯선 이를 보고 짖는 것이 책무인 개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미덕이다. 그러나 사람이 자신의 경험에만 갇혀서 가치 분별을 하지 못한 채 비방을 일삼는다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고 낯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성찰과 독서를 할 줄 아는 인간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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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살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해 미국 워싱턴 DC에 세워진 홀로코스트 박물관은 일 년에 딱 이틀, 유대교가 정한 속죄일인 욤 키푸르와 기독교의 축일인 크리스마스에만 문을 닫는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유난히 깊은 침묵에 빠져 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 4000켤레의 낡은 신발이 뒤죽박죽으로 켜켜이 쌓여 벽을 이룬 곳. 성인 남자의 출근용 구두, 젊은 여성이 신었을 법한 펌프스, 소년의 운동화,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아이가 신었을 법한 꼬까신…. 폴란드 마자넥 강제수용소에 끌려간 유대인들이 도착하자마자 벗어 나치 군인에게 압수당했던 것들이다. 신발 더미에서는 신발 주인의 체취 같기도 한 고무냄새가 스며 나와 관람객을 몸서리치게 만든다. 멍해진 관람객들을 돕는 것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노년의 자원봉사자들이다. 그들은 신발의 주인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져 갔으며 어떻게 자신들은 살아남았는지를 담담하게 증언한다.

이철성 청장을 비롯한 경찰 지휘부가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둔 13일 오전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을 찾아 박 열사가 숨진 인권센터 509호에 헌화와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일부터 청와대 국민 청원 페이지에는 ‘경찰이 운용하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사회가 운영하는 인권기념관으로 바꿔달라’(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78392)는 국민 청원이 진행 중이다. 1987년 스물두 살 청년 박종철이 경찰의 물고문 도중에 살해당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은 ‘남영동 인권센터’로 이름이 바뀌었을 뿐 여전히 경찰이 운영하는 기관이다. 박종철기념사업회 등 인권단체들이 시민들을 위한 탐방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 시민들 대다수는 경찰의 안내를 받는다. 시민들이 찾을 수 있는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다가 그나마 2017년 7월부터 토요일 개방이 이뤄지고 있다.

인권경찰로 거듭나겠다는 경찰의 다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온전히 실토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의 ‘남영동 인권센터’는 여실히 보여준다. 경찰 스스로 ‘인권의 메카’로 부르는 인권센터의 1층 홍보 전시물은 1985년 이곳으로 끌려와 물고문, 전기고문을 당했던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을 이렇게 소개한다. “1985년 민청련 김근태 의장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 배후조종 혐의로 23일 동안 조사(고문)받은 것이 세계 언론에 알려져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11.12.30 타계 소식이 있자 추모하기 위해 그가 고문을 당했던 5층 515호실 앞에 인권센터 소속 경찰관들이 올려놓은 조화가 화제가 된 바 있다.”

23일간의 고문과 경찰이 사후에 올려놓은 조화를 등가로 연결하는 이 두 문장 속에서 “이런 잔인한 고문이 아니라면 정말 죽음에 처넣어지는 것, 고문 없이 살해되는 것조차 받아들이겠다”(김근태 저 <남영동> 중)는 피해자 김근태의 비명은 말끔히 소거된다.

박종철 열사가 죽어간 509호실은 그나마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다고 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세면대, 변기가 놓여 고시원 방 한 칸을 연상시키는 이런 방으로 끌려왔던 사람들이 ‘칠성판’이라고 불리는 고문대 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관람객들은 알 수 없다. 누우면 세면대 위로 얼굴이 바로 떨어지도록 설계된 이 칠성판 위에서, 두들겨 맞아도 맞은 흔적이 남지 않도록 담요로 꽁꽁 묶인 사람들이 얼굴에 수건이 덮인 채 샤워기로 쏟아지는 물이 입과 코를 막는 물고문을 당했다.

고문은 은유가 아니다. 피해자의 고통도 은유가 아니다. 워싱턴 DC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신발 무덤과 그 역겨운 고무냄새가 관람객들로 하여금 범죄의 잔혹함에 토할 것 같은 실감을 갖게 만드는 것처럼, 한국의 공권력이 독재 권력의 손발이 되어 저지른 잔혹한 고문도 피해자의 시선으로 세세하게 기록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경찰의 안내가 아닌 살아남은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을 통해 지난 시대 한국 땅 곳곳에 존재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어떤 폭력이 저질러졌는지 지금의 관람객들에게 증언되어야 한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간 사람들이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5층의 조사실로 끌려 올라갔을 때 밟았던 좁은 나선 계단은 72개다. 악은 구체적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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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2016년에도, 2017년에도 새해는 찾아왔었다. 어떻게 보냈는지 까마득하지만, 해가 바뀌었다고 해서 새해가 곧바로 헌 해가 되지는 않는다. 날짜를 기재하는 칸에 작년을 적어 넣고 뒤늦게 아차 하는 경우도 빈번히 생긴다. 그러다 올해가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작년은 마침내 지난해가 된다. 지났다는 것은 시간이 흘러 해당 시기에서 벗어났음을 뜻한다. 어제를 거쳐 오늘을 맞이하고 겨울을 어렵사리 넘어 봄이 오듯 말이다. 지났다고 해서 변했다고 지레 단정할 수는 없다. 시간의 흐름이 반드시 변화를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보통 나한테 소중한 존재인 경우가 많다. 보통 그 대상은 가족이나 친구처럼 사람이지만, 반려동물이나 반려식물처럼 동식물인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오래전 주고받았던 편지나 선물처럼 사물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새해가 되면 그들에게 안부를 묻는 것도, 따뜻한 볕을 한 번이라도 더 쐬어주려는 것도, 바래지는 않았을까 노심초사하며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는 것도 남아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새해에도 여전한 것들 덕분에 우리는 살아갈 힘을 얻는다. 개중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것들은 나를 북돋우기도 하고 의기소침하게 만들기도 한다. 익숙한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 여기는 안전하다는 느낌, 곁을 내어주고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잘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게 해준다. 불신과 불평등, 예의 없음과 배려 없음, 불안함과 두려움, 불필요한 신경전과 불합리한 제도 등 우리 힘으로 어찌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이런 여전함은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한 것과 여전하지 않은 것 사이에서, 여전해서 좋은 것과 여전해서 슬픈 것 사이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심리적으로 작년과 더욱 가깝고 내년은커녕 올해를 맞이할 준비도 안 된 내가 있다. 올해의 나는 좀 더 근사할 줄 알았는데, 하릴없이 나이만 한 살 더 먹은 것 같다. 그런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 미련으로 남는다. 매년 1월에는 십중팔구 이런 나를 직면한다. 작년의 1월에도 나는 의기소침했었다. 그러다 마음을 다잡고 올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우리는 해가 바뀌면 습관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이리라.

부침이 심한 한 해를 보냈다면 새해를 맞이하는 자세가 더욱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어떤 희망도 품지 않은 채, 1월1일에 눈을 뜬 사람도 있을 것이다. 희망이 아예 없는 상태에서는 앞날을 내다보는 일 자체가 공포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하게 된다. 작년보다 더하지는 않겠지, 올해는 조금 낫겠지, 태양이 나를 비추는 때도 있을 테지…. 그러곤 돌아가는 것이다. 처음의 마음으로, 초심으로. 처음의 마음은 이내 자신감으로 변모하게 되고 성실함을 만나면 추진력을 얻게 된다.

처음의 마음대로만 했으면 나는 수영도 할 줄 알게 되고 자전거를 잘 타게 되었을 거다. 혼자서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을 거고 더 많은 책을 읽고 썼을 것이다. 지금보다는 다부진 체구를 갖게 되었을 것이며, 구사할 줄 아는 외국어의 숫자도 늘어났을 것이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돈독해지는 것은 물론, 화목한 가정을 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1년에 한 달 정도는 외국에서 긴 휴가를 보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온다. 이 모든 일을 다 해내기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했다는 핑계를 대는 옹졸한 나만 남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는 심정으로 또다시 처음의 마음을 품는다. 처음이라는 말은 흰색이나 검은색에 가깝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상태, 동시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아무것도 거리끼지 않는 상태. 처음의 마음이 없었다면 나는 시를 쓰지도, 곁을 만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새하얘서, 새까매서 멋모르고 달려들 수 있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 해가 바뀌어야 1월이 찾아오듯,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여전히 어떤 것을 꿈꾸고 있다. 막연하거나 불확실할지언정, 꿈을 꾼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오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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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역사적 경험과 시대적 사명으로부터 도출한 국가의 핵심 가치를 정의 인도 동포애로 규정하고, 그에 입각하여 국가가 수행할 제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과제들을 제시한다. 그런데 정의 인도 동포애란 무엇인가? 이것들은 누구나 그 의미를 명료히 이해할 수 있는 초역사적이고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다. 민족이 분단되어 대립하는 상황에서 ‘동포애’는 비교적 쉽게 체감되는 개념이지만, 정의와 인도는 그렇지 않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정의란 무엇인가>조차도 ‘정의’가 무엇인지 명백한 답을 주지 않는다. ‘인도’가 삼강오륜으로 압축되는 유교의 인륜과 다름은 분명하지만, 이를 몇 개의 단어나 문장으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1987년 헌법은 이것들을 국가의 핵심 가치로 정했다. 왜 그랬을까? 당시 국민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동의했을까?

사실 정의 인도 동포애를 국가의 핵심 가치로 명기한 것은 1948년의 제헌헌법이었다. 1987년의 헌법 전문은 제헌헌법 전문을 일부 수정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헌헌법에서 규정한 정의와 인도는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정의의 군(軍)과 인도의 간과(干戈)’라고 표현한 ‘인류통성(人類通性)과 시대양심’이었다. 인류통성이 인도(人道)요, 시대양심이 정의(正義)다.

인도란 휴머니즘의 번역어인 인도주의를 줄인 말이다. 역사상 크게 보아 세 차례의 인도주의 고조기가 있었다. 첫째는 그리스 로마 시대. 둘째는 르네상스 시대. 셋째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 앞 두 시대의 인도주의가 신에게 속박되어 있던 인간의 자립을 지향한 반면, 세 번째 인도주의는 그와 정반대 방향, 동물적 삶을 극복한 인간을 전망했다.

1859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하여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동물에서 진화한 ‘동물의 일종’임을 선언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 진화의 원인으로 생존투쟁과 자연선택을 제시했는데, 이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경쟁 중심의 세계와 무척 정합적이었다.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회과학자들은 이를 생물 진화의 원리를 넘어서는 사회와 역사 발전의 일반 원리로 정립했다. 이른바 ‘사회진화론’의 탄생이다. 모든 생명체의 삶은 자체로 동종 사이의 생존경쟁이며,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끊임없는 경쟁을 통해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승자만이 살아남는 것은 종의 진화뿐 아니라 역사와 문명 발전의 철칙이다. 더 날카롭고 튼튼한 이빨이 호랑이의 경쟁력이고, 더 빠른 발이 사슴의 경쟁력이며, 더 많은 재화와 지식이 인간의 경쟁력이다. 사회진화론의 세계관과 역사관은 약육강식(弱肉强食), 우승열패(優勝劣敗), 적자생존(適者生存)이라는 사자성어 세트로 한자 문화권에 침투하여 사람들의 의식을 장악했다. 경쟁만이 역사를 발전시키며, 강자만이 살아남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세계를 지배했다. 이런 생각에서는 자본이 노동을 착취하는 것도,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수탈하는 것도, 백인이 유색인을 학살하는 것도 결코 죄가 아니었다. 이것들은 자연법칙에 충실한 행위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제국주의는 이런 생각이 지배하는 세계를 즐겼다. 그런데 제국주의의 식민지 분할이 예선이라면, 제1차 세계대전은 승자들끼리 싸우는 본선이었다. 경쟁의 최후 형식은 전쟁이다. 경쟁이 문명 발전의 유일한 동력이라는 생각은, 문명의 성취들을 무참히 파괴하는 전쟁을 겪으며 여지없이 깨졌다. 사람들은 무한 경쟁의 종착점이 인류의 공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의 삶을 동물적 생존경쟁과 다른 차원으로 옮겨 놓는 일은 절체절명의 시대적 요구였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임을 자각하는 것이 인도주의가 되었다. 약한 민족에게도 자기 운명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민족자결주의도, 인도주의의 한 구성요소였다.

1919년 기미독립선언서는 사회진화론이 퇴조하고 인도주의가 부상하는 상황을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대기운’으로 규정하고 ‘위력의 시대가 거(去)하고 도의의 시대가 래(來)하도다’라고 선언했다.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가 모두 ‘공존동생권’을 갖는 것이 3·1운동이 주창한 ‘인도’이며, 이 인도에 부합하는 것이 ‘정의’였다. 정의는 힘이 아니라 배려와 이해, 연대와 협력으로 구현되는 것이었다. 1948년 제헌헌법은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국했다고 선언했을 뿐 아니라, 3·1정신의 요체인 정의 인도를 국가의 핵심가치로 천명했다. 이 가치는 1987년 헌법에 그대로 승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사회는 사회진화론을 소생시키고 경쟁 만능의 세계를 재구축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사회진화론이 무덤에서 나와 신자유주의 뉴라이트로 부활했다.

개헌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정의 인도 동포애라는 핵심가치는 바꾸지 않기 바란다. 삼일절 100주년이 이제 13개월여밖에 안 남았다. ‘구사상 구세력에 기미(羈미)된’ 이전 정권은 건국절 제정 운운하며 민간의 100주년 기념사업 준비조차 백안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초 현충원 방명록에 “건국 100년을 준비하겠다”고 썼지만, 제대로 준비하기에는 시일이 너무 촉박하다. 그래도 서울에 기념관과 기념탑 하나씩은 세웠으면 한다. 3·1운동 100년이 되도록 발원지인 서울에 3·1운동을 오롯이 기념하는 구조물이 하나도 없다는 건, 우리 자신과 후손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이는 정의 인도의 가치를 되새기고, 전 인류 공존동생권, 즉 모든 인간이 함께 살 권리를 누리는 세상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 공동체의 이상이라는 생각을 공유하며 전승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전우용 |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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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 갔다. 예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포로수용소 유적지로 더 들어갔다. 이제는 사라진 사람들과 아직도 살아있는 나무들을 더듬어보겠노라, 정문을 통과했다. 포로라니! 듣도 보도 못한 신분으로 죽기 일보 직전의 삶을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 어떡하겠는가. 아수라 같은 곳에도 때는 꼬박꼬박 찾아와서 떼를 지어 밥을 먹고 중인환시리에 용변을 보아야 했다. 그러고도 오늘날까지 그 장면이 적나라하게 전시되고 있는 고약한 운명이었다.

자료관에 들렀다. 수용소 철조망의 경고판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NO TALKING OR PASSING OF ARTICLE BETWEEN THE FENCE 철망 넘어로 말 혹은 물품을 교환치 말 것.” 그 사진을 보는데 이곳에 잠시 수용되었던, 영어를 잘했다는, 말을 아주 잘 다룬 어느 시인 생각이 났다.

사람은 곤죽이 되어도 산천은 의구하다. 혹 당시를 지켜본 나무가 있지 않을까. 포로들과 사람들 사이로 휩쓸리는 동안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관광지로 조성된 곳이라 식재된 관상수가 대부분이었다. 당시의 주춧돌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에 나이 지긋한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의 수피며 굵기며 자태로 볼 때 최근에 심은 나무는 분명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처음 보았을 때 구슬처럼 알록달록한 연보라색 꽃을 피운 나무. 지금 한겨울에는 총알 같은 열매를 주렁주렁 장착하고 있는 나무. 멀구슬나무였다.

낯선 곳을 여행할 때 전봇대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포로수용소에도 철조망 따위는 훌쩍 건너뛰어 전봇대가 있었다. 전봇대는 무슨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가. 고향으로 연결된 포로들의 간절한 눈빛을 그 전봇대는 얼마나 받아냈을까.

휘적휘적 걷다보니 유적지 내 철조망에 화살표와 함께 &lt;출구&gt; 표시가 나왔다. 수용소에서의 짧은 한나절이었지만 여느 곳과는 색다른 의미와 교환되는 단어가 아닐 수 없었다. 틀림없이 그때의 나무일 것 같은 멀구슬나무. 대한민국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362번지의 포로수용소에서 오래 거주해 온 멀구슬나무를 네 번 뒤돌아보았다.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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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열린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은 ‘각본’ 없이 진행됐다. 질문하는 매체부터 순서, 내용까지 마치 방송 시나리오처럼 철저히 마련해놓았던 지난 정부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에 많은 이들은 환호했다.

질문자도 ‘미국식’으로 대통령이 직접 지명했다. 이날 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제각기 ‘대통령의 눈에 띄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한 지역언론 기자는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인형을 손에 번쩍 들고 질문권을 얻기도 했고, 튀는 색깔 옷을 입거나, 자신을 지목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나 질문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회견에서 이토록 질문이 넘치는 장면은 다소 낯설다.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을 콕 찝어 질문할 기회를 줬지만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질문도 나오지 않았던 일로 한때 “질문 없는 한국 교실”에 대한 성찰까지 이끌어냈던 기자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질문은 많았지만 ‘좋은’ 질문은 적었다는 평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 본인에게 “대통령 지지자들의 악플 공세로 기사를 쓸 수가 없다. 말려 달라”고 한 기자는 SNS에서 소속 회사와 이름, 기존에 썼던 기사들이 ‘신상 털이’하듯 털리기도 했다. 한 트위터리안은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의 의도는 출입 기자들에게 제대로 질문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을 텐데…(국민이) 욕하기 좋게 실명을 공개하는 효과만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 언론인은 트위터에 “오늘 기자들은 신년 기자회견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도 않았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 보인다”고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외신 기자들의 눈으로 바라본 기자회견의 풍경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BBC의 한 기자는 기자회견이 끝난 뒤 자신의 트위터에 “문 대통령은 자유롭게 열린 질문에 답하는 것에 한 시간을 사용했고, 언론에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고 올렸다. 트럼프의 백악관에 비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워싱턴포스트의 파이필드 기자는 “주요 언론뿐 아니라 소규모 지역 미디어도 참여하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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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가정법원 이혼조정위원이다.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는 현실을 반영하듯 끊임없이 새로운 사연으로 이혼을 원하는 부부를 만나고 있다.

부부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서로간의 이해와 공감이다. 그런데 요즘 ‘소통의 부재’가 과연 재판상 이혼의 사유가 될 것인지가 화두가 되고 있다. 소통이라는 것은 상호적인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가정생활은 사회의 가장 작은 구성단위로서 어디까지나 사회생활인 것이다. 소통이 없다면 사회생활은 그야말로 고통이 되는 것이고, 이것은 가정생활에서 먼저 드러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이혼은 원칙적 유책주의이다. 즉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만약,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원한다면 상대방 배우자에게 진심어린 마음으로 충분한 보상과 설득을 통해 협의 이혼만 가능하고 법원을 통한 재판상 이혼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협의 이혼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소통의 부재로 이혼을 청구하는 사건이 종종 있다. 아내는 이혼을 원하는데, 남편이 이혼을 거부하는 사건들이 주로 그렇다. 아내는 이미 부부간 소통 부재로 인해 신뢰관계가 무너졌으며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파탄에 이르게 되어 이혼을 청구했다는데, 남편은 전혀 이혼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그중 한 사건은 고교 동창으로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부부의 이야기다. 결혼 후 아내는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러다 혼인 생활 10년 만에 경력단절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다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서 점점 집안일에 소홀해졌다. 말다툼 끝에 남편이 아내에게 “이 집에서 당장 나가”라고 했다. 남편의 말대로 아내는 며칠 후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고,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남편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아내가 가출을 하여 오히려 부부동거의무를 저버리고 있으며, 다툼은 있었지만 이혼에 이를 정도가 아니었고, 단 한 번도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혼인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건은 이렇다. 남편과 아내는 4~5년간 연애생활 끝에 결혼을 했지만, 맞벌이 부부로서 자녀의 육아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정신없이 지내다보니 자연스럽게 부부간에 대화가 줄어들었다. 그 후 남편이 직장에서 실직했는데 남편은 ‘아내가 나를 무능력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한다’며 아내와의 의사소통을 모두 단절한 채로 지냈다. 아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그야말로 대화가 단절된 상태로 한집에서 2년 가까이 지낸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교통사고가 발생해 남편에게 급히 연락을 했으나 남편은 평소처럼 아내의 연락을 무시했다. 이로 인해 아내는 충격을 받고,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부부간의 신뢰관계가 깨졌다며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소통과 공감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산소와도 같다. 인간으로서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서는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 결혼율을 높이면서 이혼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소통과 공감’이라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신유진 | LNC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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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99일.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에 세워진 작은 텐트를 찾았다. 기타 생산업체인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농성장이다. 4000일, 예정된 특별한 행사는 없다고 했다. “해탈한 것 같아요. 4000일이라고 뭔가 요란스레 할 것도 없고.” 그리고는 언제부턴가 시작한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의 해야 할 일을 할 뿐이라고 했다.

나오는 길에 책 한 권을 받았다.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임재춘씨의 농성일기를 묶어 펴낸 것이다. 집에 돌아와 한쪽한쪽, 그러니까 이들의 하루하루를 읽어가며, 나는 억울했던 날, 희망찼던 날, 정의를 울부짖던 날을 보았다. 그러다 책 제목을 다시 보고 알았다. 3999일이라는 긴 시간에도 가질 수 없었던 날이 있었음을. 하루를 이어 붙여 4000일을 만들어도 이를 수 없는 날이 있었음을. 그건 바로 ‘내일’이다. 해고된 날 사장이 빼앗아간 ‘내일’ 말이다.

5년 전쯤 이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송년행사에 이들이 결성한 밴드 ‘콜밴’이 왔다. 그때 표정이 너무 밝았기에 나는 그 해에 대법원의 끔찍한 판결문이 나왔다는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투쟁을 안 했다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겠어요? 악덕 사장 만난 덕에 이 나이에 밴드도 하고 연극도 해보고….” 정말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즐겁게 투쟁한다면 힘든 싸움이지만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주 콜트콜텍의 농성이 4000일이 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4000일이라는 긴 시간은 날을 늘리지 않기 위해 이들이 필사적으로 몸부림쳐온 시간이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가수, 연극하는 배우, 고추장 만드는 농사꾼, 책 쓰는 저자가 되었던 것은 이들이 노동자로 남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기 때문이다.

5년 전쯤 내가 가수가 되고 배우가 된 노동자들에게 감탄하던 때, 이들은 그전 5년을 본사를 점거하고 철탑에 올라가고 분신을 하고 목까지 맸던 사람들이다. 악기박람회, 록페스티벌을 찾아다니며 해외 원정 투쟁도 벌였다. 그 후 다시 5년, 이들은 더 이상 잘 할 수도 없고 더 이상 잘 할 필요도 없는 묵묵한 해탈의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무슨 복잡한 사정이 이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걸까. 큰 억울함은 복잡한 것에서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것에서 온다. 너무나 뻔한 불의를 인정하지 않고 더 나아가 그것을 정의로 포장할 때 우리의 밑바닥 정의감이 뒤집어지는 것이다.

콜트콜텍의 사정도 단순했다. 2006년 4월 콜텍에 노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자꾸 창문을 쳐다보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며 창문 하나 만들지 않은 공장. 이런 공장이 어떻게 운영되었을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다. 각종 유기용제와 분진이 가득한 작업장, 강제된 잔업, 성차별과 추행. 거기에 대규모 구조조정까지 시작되었다. 이때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이었다.

그런데 노동조합 설립 1년 후 노사협의회가 예정된 날 사장은 공장의 모든 출입문을 폐쇄하고 폐업절차에 들어갔다. 그리고 모회사인 콜트에서도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했다. 더 이상 주문량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것은 당연했다. 물량을 중국이나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돌렸기 때문이다. 매년 순이익을 60억원 이상씩 내고 폐업 직전에도 주문량이 늘었다며 임금인상에 합의한 회사가 물량이 없다며 폐업신고를 한 것이다. 지방노동위와 중앙노동위는 콜텍의 직장폐쇄와 콜트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법정싸움이 이어졌다. 당연한 것이 뒤집힐 수는 없었다. 그런데 2012년 대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교묘하게 비틀었다. 사실상 한 회사인 콜트와 콜텍을 분리하고, 콜트악기에 대해서는 부당해고를 인정했지만, 콜텍에 대해서는 “장래의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감축도 정당”하다며 하급심 판결을 뒤집었다. 고등법원에서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다며 부당해고라고 했던 것을 대법원은 ‘긴박함’을 ‘장래에 있을 수도 있는 위기’로까지 확대했다.           

모두가 ‘긴박함’이라는 말뜻에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사장은 콜트악기 공장까지 매각해서 그나마 대법원이 부당해고를 인정한 노동자들의 복귀도 막아버렸다.

이것을 인정할 것인가. 이 단순한 질문이 지난 4000일간 농성노동자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미래의 점을 치듯 서초동 대법관이 내린 판결에 내 양심의 법관이 펄쩍 뛰는데 달리 어쩌겠는가. 그래서 이들은 내일로 못 간 채 오늘을 붙들고 수천 일을 보내고 있다. “아이들에게 오늘을 물려줄 수는 없어요.” 너무나 뻔한 부당해고와 위장폐업, 너무나 어이없는 판결문을 쥐고 오늘 아플지언정 내일로 넘겨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2012년 이들은 <햄릿>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햄릿은 그의 사명이 ‘이음매가 어긋난 시간’을 바로잡는 데 있다고 했다. 시간이 어긋나니 과거는 어제가 아닌 오늘을 살고 미래는 내일이 없는 오늘에 붙는다. 이 불의의 시절이 4001, 4002로 숫자를 이어간다면, 그래서 우리가 오늘을 늘려 내일로 삼는다면,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시간을 바로잡아야 한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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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연극의 대본이다. 따라서 연극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하지만 희곡은 하나의 완결된 문학 작품이기도 하다. 문학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은 고대 그리스,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일인데 어쩐 일인지 출판되는 희곡집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내로라하는 문학 출판사들도 어쩌다 고전이라 할 수 있는 희곡들을 모아 선집을 내는 경우는 있어도 현장에서 상연되는 뜨거운 목소리를 담는 경우는 드물다. 문학으로서의 희곡이 독자를 잃고 공연의 대본으로만 남았다.

2년 전쯤, 남산예술센터의 우연 극장장이 극장에서 상연되는 희곡을 출간하자는 이야기를 했다.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창작 희곡을 실제로 무대에 올리는, 우리나라에 몇 개 되지 않는 제작 극장의 제안이었기 때문에 기꺼이 응했다. 희곡을 읽는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판매를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다시 사람들이 희곡을 읽을 수 있도록 출판이 버팀목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연극을 배우는 학생들이 복사지를 들고 희곡을 읽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문학 독자들에게 희곡의 즐거움을 돌려주고 싶었다. 입말로 이루어져 소리 내어 읽기 좋고 대화로 이루어져 그 사이를 독자의 상상력으로 채울 수 있는 희곡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 읽는 즐거움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이음 희곡선>은 출발부터 쉽지는 않았다. 첫 권으로 준비했던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도화선이었고 가장 큰 논쟁을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이 희곡을 촛불 정국 이전에 출간하면서 직접 극장에 오지 못하는 독자들에게도 작품의 진가를 알릴 수 있었으면 했다. 책의 가격은 극장에 직접 온 관객들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도록 5500원으로 정했다. 도서정가제를 고려하면 현장에서 5000원에 판매할 수 있었다. 관객들은 연극을 보고 희곡집을 손에 들고 가서 다시 연극을 떠올리기도 하고, 연출과 다른 방식으로 마음속의 연출을 해 보기도 했으리라. 극장에 직접 온 관객들에게는 호응이 좋았지만 서점에서는 독자들이 아직 희곡을 많이 찾지는 않는다.

실제로 무대에 작품을 올리면서 희곡집도 같이 출간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기기도 했다. 고연옥 작가의 희곡 <처의 감각>을 출간 준비하면서 고선웅 연출이 실제로 무대에 올리는 작업을 함께하고 있을 때였다. 작가와 연출이 따로 있을 때, 현장의 조건과 배우, 스태프들의 상황, 그리고 연출의 의도 때문에 희곡이 원본과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처럼, 텍스트로 고정한 희곡의 출간과 작품의 상연이 함께 이루어질 때, 둘 사이의 조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잠시 고민을 했다. 물론, 독자들에게 주어진 책은 고연옥 작가의 텍스트였고, 극장의 관객들은 실제 연극과 희곡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서 둘 사이의 간격 속에서 나름의 의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남산예술극장과 시작한 협업은 두산예술센터 강석란 감독과의 협의 끝에 김은성 작가의 <선샤인의 전사들>을 출간하는 것으로 극장의 범위가 늘어났다. 최근에는 서울시극단의 김광보 예술감독과 함께 극단에서 공연할 장우재 작가의 <옥상밭 고추는 왜>를 출간하는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국립극단의 이성열 예술감독에게 극장에서 상연할 창작희곡이 있으면 함께 책도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볼 생각이다. 이성열 감독이 연출한 고영범 작가의 <에어컨 없는 방>이 이미 <이음 희곡선>으로 출간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작업의 의미를 잘 알고 계시리라 기대하고 있다. 책의 표지에 희곡을 출판한 출판사 이름과 극장 이름을 함께 올리는 이 프로젝트가 어려운 시대의 문학과 공연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행하고 있는 제안들의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가장 예민한 촉수인 작가들의 창작물을 책으로 만드는 것은 그동안 잃어버렸던 독자와 관객을 찾는 일로 중요하다고 믿는다. 시를 한 번도 읽지 않았던 독자들이 시의 독자들로 돌아오고 있고 베스트셀러도 등장하고 있다. 이 독자들은 짧지만 강렬한 드라마를 담고 있는 희곡도 좋아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희곡은 무대를 상상하고 쓰기 때문에 극적인 긴장감이 있고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과 추상성 사이를 오가는 감정적인, 혹은 지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데 그만이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오디오 콘텐츠에 바로 적용이 가능한 가장 좋은 텍스트이다. 희곡의 즐거움을 읽고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 흥분을 안고 극장으로 향해 보는 것도 떨리는 일이다.

<주일우 | 이음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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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이미지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이 칼이다. ‘검찰의 칼날이 ○○을 향하고 있다’ ‘○○이 검찰의 칼을 피하지 못했다’ 등등 검찰 수사를 칼에 비유하는 표현들이 관행적으로 쓰여왔다. 검찰의 첫 글자 ‘검(檢)’과 칼을 뜻하는 ‘검(劍)’은 발음도 같고 한자 모양도 비슷해 더더욱 검찰과 칼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인다.

검찰의 심벌마크에도 칼이 들어가 있다. 대검찰청 홈페이지는 이 심벌에 대해 ‘중앙의 직선으로 칼을 형상화해 균형 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2004년 이 심벌이 만들어질 때 검찰을 출입하고 있었다. 당시 심벌 제작은 수개월이 걸렸는데, 당초 검찰이 시안으로 공개한 후보 8개 중 절반가량에 칼이 있었고, 나머지에는 칼이 없었다. 과연 검찰이 어떤 선택을 할까 기대했는데 결국 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질 못했다. 그런데 당초 시안에는 아래를 향하고 있던 칼끝이 최종 결정된 심벌에서는 아래위를 모두 향하게 그려졌다. 시안을 공개할 때 검찰은 칼끝을 위로 하면 공격적으로 보여 아래쪽으로 향하게 했다고 설명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칼끝이 심벌 밑에 쓰여 있는 ‘검찰’이라는 글자로 향하게 돼 자신들을 찌르는 모양새가 되다 보니 확정판에서는 칼끝이 위아래 모두에 달리게 됐던 것이다.

그렇게 검찰은 스스로 칼이 됐다. 실제 수사를 잘하는 특수통 검사를 ‘칼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의료계에서 유능한 외과의사를 그렇게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검찰의 본질적 기능은 칼을 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칼날(수사기관의 수사)에서 국민들을 보호하는 것이 검찰의 진짜 핵심 역할이다. 이런 인권보호 기능은 프랑스혁명 이후 근대 검찰 제도가 태동할 당시의 기본 취지였다. 그런데 검찰 스스로도 그렇고, 대부분의 국민들도 검찰은 수사를 하는 기관, 칼을 휘두르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막말로 유명한 한 정치인은 얼마 전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를 ‘망나니 칼춤’이라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검찰의 막강한 권한에서 초래됐다. 그리고 이 무소불위의 권한이 비판을 받으면서 이제 검찰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2004년 검찰이 새 심벌을 만들 때 칼끝이 자신들을 향하는 것을 걱정했던 것이 현실화된 셈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 검찰은 나름의 역사적 소명을 수행했다. 2003년 불법대선자금 수사 이후 어느 정당도, 어느 대기업도 선거 때 뭉칫돈을 받을 생각도, 줄 생각도 안 하게 됐다. 현재 진행되는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정치공작 수사가 마무리되면 앞으로 어떤 권력자도 정보기관을 선거나 정치에 이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검찰 수사가 역사 발전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할 만한 예다. 영화 &lt;1987&gt;에서 경찰의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은폐를 막은 최 검사처럼 검찰은 과거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주도한 고문과 불법이 난무했던 수사 행태를 법에 의한 형사사법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데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검찰의 역할도 역사적 임계점에 왔다. 수사와 기소와 관련된 모든 권한을 쥐고 있으면서, 검찰총장 1인이 지휘하는 일사불란한 단일조직이라는 검찰의 무소불위 위상은 민주화되고 탈권위화되고, 인권친화적이고 다양화된 현재의 우리 사회와는 더 이상 양립하기 어렵다. 맷돌이 인류의 생산력 발전에 큰 기여를 하며 중세 봉건시대를 발전시켰지만 결국 증기제분기에 자리를 내주며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처럼 검찰개혁도 역사의 필연적 흐름이 된 것이다.

억울해하는 검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조차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만큼 권력의 시녀가 되고 사건을 ‘엮는’ 검사들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지금 대중들이 검찰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얼마 전 국회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청와대가 14일 권력기관 개편안을 강도높게 발표하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검찰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본격적인 논의가 불붙게 될 것이다. 검찰개혁은 현 정부의 최대 공약이고 여당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최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공수처 설립 등을 반대하고 있어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지난 십수년 동안 반복됐던 것처럼 또다시 검찰개혁이 흐지부지되거나 여야가 주고받기식으로 정치적 타협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왕 할 거라면 하루라도 빨리, 그리고 제대로 하는 것이 낫다. 어차피 검찰개혁은 시간이 문제일 뿐 갈 수밖에 없는 길이다.

<김준기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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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눈 오는 날 청계천 헌 책방엘 갔다 김종삼 특집 낡은 시 잡지 표지에 이름도 없는 내가 김수영 전봉건 김종문 신동문 김광림 시인과 함께 섞여 내다보고 있었다 움, 무우순, 무순(無順), 번외(番外)라고 금방 끼룩거렸다 성중천(性中天)이 거기 있었다 맨 꽁무니 기러기 한 마리여

그즈음 어느 겨울날 아리스 다방 골목길 과일 가게에서 김종삼 시인이 하얀 손수건 꺼내 조심스럽게 싸들던 홍옥 한 알과 김하림 시인도 이 겨울 생각났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열애 중인 그들이었다

 -정진규(1939~201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시인은 눈 오는 날에 찍었던 옛 사진 두 장을 기억의 서랍에서 꺼낸다. 한 컷은 헌 책방에 들렀던 때이고, 또 한 컷은 과일 가게에 들렀던 때이다.

시인은 책방에 가서 본 잡지의 표지에 자신이 여러 시인들 속에 섞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비록 이름이 다른 시인들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고, 또 밑천도 없는 때여서 자신이 기러기 행렬의 끝자리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그 모임의 한데 섞임에는 배열이나 분류의 차례가 없고, 순번도 없고, 다만 하늘 아래 타고난 마음의 본바탕이 자연스럽게 드러났었다고 회상한다. 또 하나의 필름에는 홍옥 한 알을 손수건으로 감싸서 들던 김종삼 시인이 있다. 사과를 흰 손수건으로 둘러싸 들어 올렸으니 사과의 빛깔이 더욱 더 선명하게 붉었을 것이다. 눈이 내리던 겨울 어느 날의 풍경들이었다.

재지 않고 터놓고 어울리고, 눈빛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고, 서로를 격려하고, 멋스러운 데도 좀 있게 살았던 그 시절의 얼굴들. 열렬하게 생업과 세상을 사랑하며 살았던 때의 사진들이 따뜻하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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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마지막 기회다. 열심히 해보자.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 알지?” 고3 여름방학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이렇게 마무리하자 뒤에 앉은 친구가 말했다. “안되는 게 어떻게 돼요?” 캐나다 고속도로에서 ‘Zero Tolerance’라는 표지판을 볼 때마다 이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음주·과속 운전 금지 표지판 옆에 적혀 있는 이 문구는, 보통은 ‘무관용’이라 번역되지만 ‘안되는 건 절대 안된다’ 또는 ‘절대 안 봐준다’로 해석해야 더 실감이 난다.

평소 토론토는 서울보다 운전하기가 여러모로 편하고 수월한 도시이다. 인구 밀도가 낮고 덜 복잡하기도 하거니와 교통 법규가 비교적 ‘널널하고’ 운전자에게 자율성을 많이 보장하니 그럴 것이다. 도로 중앙선을 넘어 좌회전도, 유턴도 할 수 있다. 하지 말라는 것만 안 하면 문제될 것이 없다. 대신 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는데도 그것을 어기면 가차 없는 처벌이 뒤따른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지 않은 초기 이민자들은 범칙금을 수업료처럼 내가며 교통 문화를 배우고 익히는 경우가 많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토론토에 살러온 직후 나도 단속 티켓을 연달아 받았다. 제한속도 20㎞의 공원 도로에서 38㎞로 달리다가 경찰을 처음 만났다. 며칠 후에는 빨간불에서 그냥 우회전했더니 경찰차가 비상등을 켜고 따라왔다. 일단 멈춤 위반. 처벌이 범칙금과 벌점으로 마무리된다면 별일 아니겠으나 문제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단 보험료가 껑충 뛰고, 티켓이 여러 장 쌓이면 보험사에서 이듬해 재가입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 지경에 이른 운전자는 말썽꾸러기 전문 보험사를 찾아가야 한다. 보험료가 몇 배 비싸다.

보통의 경우가 이 정도이니 어린이 보호라든가 공공의 안전과 직결된 위반은 처벌 강도가 훨씬 더 높다. 비상등을 번쩍이며 경적을 울리는 소방차와 구급차, 멈춤 표지판을 올린 스쿨버스가 보이면 도로 위 모든 차량은 얼어붙은 듯 정지한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토론토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참 높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봄이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산책이라도 나가면 겨우내 눈 속에 파묻혀 있다가 드러난 개똥이 지천이다. 동네 숲길에서는 사시사철 똥 밟기 십상이다. 물론 개를 끌고 나온 주인이 방치한 것이다.

빨간불만 보면 휴일 새벽 아무도 없는 좁은 도로에서도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는 사람들, 보는 사람 없으면 개똥을 그대로 두고 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 평범한 토론토 시민들이다. 법규 준수 여부는 개인의 양식 문제일 수도 있겠으나, 개똥의 경우를 보면 단속과 처벌의 영향을 확실히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경찰이든 공무원이든 눈에 불을 켜고 단속에 나선다면 개똥은 봄눈처럼 사라질 것이다.

느슨한 개똥 단속과는 반대로, 시민들을 늘 긴장하게 하는 단속이 있다. 물론 1순위는 시민 안전과 관련한 단속이다. 소화전 앞이나 소방도로에서 실수로라도 위반했다가는 인생이 피곤해질 만큼 가혹한 조처가 따른다. 운 좋게 단속을 피할 확률은 ‘제로’에 가까워서, 소방서 앞 같은 곳에 주차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2018년 새해 첫날 강릉소방서 앞에 차량들이 불법 주차했다는 보도(경향신문 1월1일자 ‘119 긴급차량 진출입 막은 해돋이 관광객의 안전불감증’)를 접하고 많이 놀랐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경포119안전센터 관계자의 말이었다. “새해 첫날임을 감안해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계도·주의 조치만 했다.” 이 말은 관광객의 안전불감증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널리 퍼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재가 새해 첫날을 알아보고 비켜가는 것도 아닌데, 소방서 앞에 불법 주차를 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알려주었으니 말이다. 캐나다에서 대형 참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되는 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안되기 때문이다.

<성우제 | 재캐나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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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시립병원 앞길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 비쩍 마른 몸을 어찌나 웅크려 접었는지 얼핏 검은 배낭처럼 보였는데 어라 움직인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하나 줍더니 신통치 않은지 이내 내버린다. 좀 더 장초가 없나 찾고 있다.

로비에 들어서니 일찍 나온 사람들이 접수대가 열리기를 기다리며 TV를 보고 있다. 아는 얼굴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분이 생각나 안부를 여쭈었다. “조○○씨는 잘 계시지요?” 그는 눈을 끔벅끔벅하며 뭔가 말하려 한다. 순간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했지만 말하기를 기다렸다. 겨우 말문을 뗀다. “형님 돌아가셨어요.”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왈칵하며 두 손을 맞잡았다.

형님이라 불린 사람은 우리 병원에서 유명한 분이다. 오래전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다쳤는데 후유증으로 대퇴골 골수염이 생겨 이십년이 넘도록 허벅지에서 계속 고름이 나오는 만성병을 앓고 있었다. 병원에 와서 가끔 약을 타가기도 했지만 대개는 집에서 혼자 고름을 짜고 소독하고 드레싱을 해오던 차였다. 그는 자신도 형편이 넉넉지 않으면서도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넘기질 못했다. 갈 곳이 없어 그의 집에서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신세를 진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자신의 다리가 불편한데도 더 불편한 사람을 보면 휠체어를 밀어주곤 하였다. 그의 부음을 들은 사람들 몇이 고개를 숙인다. “회장님 명복을 빕니다.” 형님이라고도 불리고 회장님이라고도 불리던 그의 죽음에 여러 사람들이 숙연해졌다.

오후에는 호스피스 병동의 사별가족 지지모임이 있었다. 저마다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는 ‘기억여행’ 자리였다. 참여자들은 사별한 지 6개월에서 1년 사이의 분들로서 서로 별칭을 만들어 부르고 있다. 미소가 화사한 햇님이언니, 말끝마다 그러게 하는 그러게언니, 하늘하늘 소녀 같은 풀잎이언니, 어릴 적 고향 신의주에 가보고 싶다는 만세오빠… 어르신들이다.

풀잎이언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떨리고 스릴이 있었어. 그이가 해군 세일러복을 입고 나를 찾아왔어. 어찌나 멋지던지… 팔남매 가난한 집 장남인데 내 짝이 되어 주겠냐고 물었지.” 꿈꾸는 눈이 되어 말을 이어간다. “매일 가마솥에 밥해 가지고 머리에 이고 밭에 날랐어… 보증 섰다가 사업이 망했는데 어찌나 술을 먹던지… 한강 가서 같이 죽자 하는데 난 안 죽겠다고 했어. 그래도 술 깨면 우리 마누라가 최고라고 했었어. 혼인 50주년 되면 같이 여행 가자고 했는데 몇 달 남기고 갔어.” “동생들 셋 태어나 늘 애 업고 다녔어요. 아버지는 폐병치료 받느라 누워있고 열살 때부터 베 짜는 공장에 다녔는데 매일 늦게까지 광목을 짰어요. 자정 넘어 집에 가는데 너무 무서워 철둑에서 엄마 부르며 뛰어가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 홍역으로 동생 셋이 다 죽었고….” 그러게언니의 옛이야기에 함께들 눈물 짓는다. “스무살로 돌아간다면요? 저는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했던 게 서글퍼요. 보통의 놀이를 놀아보고 싶어요.”

“도둑결혼에 식도 못 올리고 시댁으로 출발했는데 도착하니 한밤중이었어요. 시어른이 신랑한테 이 문둥아 하길래 정말 문둥병 걸렸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글을 몰라요. 공부 못한 게 철천지한이에요. 글만 알았어도 아이를 맥없이 뺏기진 않았을 텐데….” 햇님이언니는 그래도 웃는다. “언제로 돌아가고 싶냐고요? 지금이 좋아요. 전 지금이 최고로 좋아요.”

“석양에 강에서 그물 치던 아버지 뒷모습이 생각나. 잉어 놓치고서 서운해하던… 애가 태어났는데 죽은 줄 알고 윗목에 놔뒀대. 근데 침 맞히고서 꼬물꼬물 살아나더라지 뭐야. 그게 나야. 할멈 얘기? 하려면 많지!” 만세오빠는 벌어진 앞니 사이로 허허 웃는다. “선생님도 팔십 되어봐. 사랑하면 버티며 가는 거야.” 잊지 않고 덕담도 해주신다.

폭설뉴스가 요란하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지고 공항에는 발 묶인 사람들이 즐비하다. 전 세계가 한파에 이상기후라고 한다. 이상하게도 원체 눈이 많이 오는 나라에는 눈 피해 소식이 없다. 핀란드 아이슬란드에서 폭설로 지붕이 폭삭했다는 뉴스 본 적 있나? 신랑은 그런 나라에선 너무 흔한 일이라서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추운 지역에선 눈이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서 대비가 잘되어 있기 때문일 거라고 했다. “지붕이 뾰족하잖아. 아예 눈이 쌓이지 않거나 쌓이더라도 중력대비 단위면적당 무게가 덜 나가도록 설계된 거라고.” 문과생과 이과생의 흔한 대화가 오간다.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은 더 길다. 어서 봄이 왔으면! 나무도 꽃도 구름도 바람도 별도 아닌 바로 사람들이 답이다. 우리가 빚어내는 따뜻한 온기와 활기로 겨울을 녹여내고 봄을 피워내자.

<김현정 | 서울특별시동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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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다. 치열하게 보낸 2017년의 조각들을 떠올려 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체력은 떨어지고 집중력 또한 예전 같지 않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바로 독서라는 행위다. 신간 서적은 매일 쏟아지고 읽어야 할 책은 500권 넘게 대기표를 달고 있다. 과학의 힘으로 수면시간이 사라지거나 자면서도 독서를 할 수 있다면 적어도 1년에 300권 이상의 책읽기가 가능할 텐데.

독서의 목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가장 피곤한 인간형은 지식자랑에 심취하는 자다. 책에서 얻은 자투리 지식을 전가의 보도처럼 아무 때고 휘두른다. 무술영화로 치면 저잣거리에 처음 등장한 칼잡이와 다를 바 없다. 고가의 명품이 인격 형성의 필요악인 것처럼 단순히 지식 차원에서 맴도는 말을 무한반복한다. 독서와 인격이 따로국밥의 모양새를 취하는 격이다.

다음은 자기계발서 외에는 상종하지 않는 자칭 현실주의자다. 자기계발서는 독자에게 환상을 강요한다. 누구나 ‘1만 시간의 법칙’만 따른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목받는 존재로 변한다는 유혹의 언어를 뿌려댄다. 당신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기 짝이 없는 실패작이기에 자기계발서를 완독하라고 겁박한다. 현실주의자의 독서란 1등만을 기억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학습과정이다.

수집형 인간도 빼놓을 수 없다. 틈만 나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낸다. 생활비보다 책값에 더 많은 돈을 쓴다. 읽은 책보다 산 책이 압도적으로 많다. 원하는 절판서적을 발견하면 가차 없이 지갑을 연다. 가족으로부터 모진 무시와 박해를 당해도 끄떡없다. 그는 인생의 빈 공간을 책으로 채워야 한다는 철학의 소유자다. 문제는 흡연처럼 눈을 감아야지만 수집벽이 멈춰진다는 거다.

독서를 연중행사로 여기는 인간도 있다. 이들은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바쁘다는 언어를 자기과시나 자기포장 용도로 소비한다. 번잡한 상황을 마음껏 자랑하는 동시에 독서를 멀리할 핑계로 악용한다. 당연히 대화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단어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물론 생계를 위해 장시간의 노동을 해야만 하는 ‘진짜로 바쁜’ 경우는 예외다.

베스트셀러만 읽는 독자는 어떨까. 이러한 쏠림현상은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공통의 관심사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베스트셀러를 찾는 경우도 허다하다. 아쉬운 점은 영화시장처럼 베스트셀러에 파묻혀 독서시장에서 자취를 감춰버리는 양서가 부지기수라는 거다. 독서 초심자에게 베스트셀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독서의 폭이 넓고 깊어진다면 해결 가능한 사례다.

이러한 경우 외에도 다양한 독서행위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독서가의 정의는 무엇일까. 필자가 생각하는 독서가란 독서 자체를 사랑하는, 목적 없는 독서에 심취한 사람이다. 그들에게 책은 두 번째 세상과 만나는 지혜와 사유의 공간이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책을 품고 마신다. 당연히 자신만의 시간을 거둘 줄 아는 후회 없는 인생을 택한 인물이다.

대통령의 독서가 화제에 오르고는 한다. 책 &lt;대통령의 독서법&gt;에 의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독가였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문서를 좋아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은 피터 드러커류의 경영서를 읽었다. 독서 성향에 따라서 정치인의 색깔과 사상이 드러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요점은 독서를 멀리하는 정치인치고 국민으로부터 오래도록 존경을 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거다.

올해도 어김없이 빛나는 신간들이 서점에 등장할 예정이다. 그만큼의 독서가가 탄생할 것이고, 그만큼의 지식사회가 형성될 것이다.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고 말했다. 영혼과 육체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다면 독서가 우선이다. 잠시 휴대폰을 내려놓고 텔레비전 전원을 끄자. 이번 주말에는 하워드 진의 책과 함께 아래로부터의 역사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 보자.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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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 ‘호순이’ 시대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올림픽을 떠올리면 지긋지긋하다. 86 서울 아시안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 마치 내 또래가 태어난 역사적 숙명인 줄 알았다. 공책을 비롯해 모든 문구류에 언제나 오륜기 같은 올림픽 심벌이 새겨져 있었다. 요즘말로 하면 나름 ‘올림픽 굿즈’였던 셈이다. 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포스터 대회부터 합동체육 율동 음악도 김연자의 ‘모이자, 모오오이자,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후렴구가 지겹게 반복되는 ‘아침의 나라에서’였다. 그런데 30년 만에 또 올림픽이라니. 엄청난 돈이 들어가고 자연 훼손에 더해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기까지 한 평창 동계올림픽이 탐탁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오랜만에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였다. 선수단과 취재진, 그리고 북한 ‘걸그룹’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모란봉악단’ 참가도 예상되니 이래저래 흥행카드 몇 장을 한국에 선물한 셈이다. 평범한 생활인으로 살면서 ‘통일’이란 문제를 깊게 고민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북핵 실험 같은 극단적인 소식이 들려오면 걱정보단 짜증이란 익숙한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통일 포스터가 아니라 반공 포스터를 그렸던 우리는 그 시절에서 얼마나 걸어 나왔을까.

1985년 큰 수해가 있었다. 천변 지척이었던 우리 동네에도 물난리가 났다. 그해 아주 낯선 일이 벌어졌는데 대체로 늑대나 이리로 그리곤 했던 ‘김일성’이 남한 수해 복구 지원을 한다며 쌀과 옷감을 보내온 것이다. 상습 수해지역인 우리 동네에 북한 옷감이란 것이 흘러들어 왔다. 새마을지도자 역할을 열심히 하던 아버지 덕분이었던 듯하다. 다소 난감한 꽃분홍색의 나일론 천이었는데 아마도 한복용 옷감이었을 것이다. 옷을 지어 입을 수는 없어 엄마는 가장자리에 오버로크를 쳐서 밥상 보자기를 만들었다. 그런데 북한 옷감 좀 구경하자며 이웃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그 천을 조금씩 얻어 갔다. 그해 지독한 수해 끝에 남은 것은 북한산 꽃분홍 밥보자기였다. 기성복을 사서 입던 시대이니 사실 북한산 옷감에 어떤 용처가 있었겠는가. 그래도 남측은 흔쾌히 그 선물을 받았고 적대적인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는 후일담을 들었다. 선물이란 것이 본래 그렇잖은가. 딱히 쓰임새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그 행위와 태도 자체에 의미가 있어서 선물이다.

농민운동 조직인 ‘전국농민회총연맹’ 소속 농민들은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도 통일쌀 농사를 지어왔다. 정부미로 부르던 ‘통일벼’가 아닌 정말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쌀’이다. 농사를 지어 북한에 쌀을 보내자는 취지의 공동 농사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매년 평균 40만t의 쌀을 차관 형식으로 북한에 지원하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에 쌀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도 농민회 소속 농민들은 매년 ‘통일 모내기’를 하며 남북대화를 촉구해왔다. 수확된 쌀이 북한 인민 전체의 식량을 책임질 정도의 양은 아니지만 ‘쌀’이라는 강력한 민족의 상징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남한 농민들이 북녘 동포들에게 쌀밥 한 그릇을 꼭 선물하고 싶은 그 마음조차 닿지 못한 지 10년째다. 그래서 이번 남북대화를 계기로 ‘통일쌀’을 선물할 수 있다면 좋겠다. 명절에 남녘은 떡가래를 뽑아 떡국을 끓이고 중부지방은 떡만둣국을, 북녘은 만둣국을 먹는다 들었다. 이 통일쌀로 떡을 뽑아 올라가겠으니 이북 만두를 빚어 내려오면 좋겠다. ‘통일 떡만둣국’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설날이 어서 오기를. 아! 그 밥상에는 꽃분홍 밥상 보자기가 제격이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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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민영화하는 것은 어떨까? 국가가 결혼 공인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단체나 사회단체도 인증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종교인이라면 교회나 성당, 사찰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종교단체로부터 인증을 받으면 되는 식이다. 커플은 자신들의 필요와 열망에 가장 부합하는 결혼 허가 조직을 선택할 수 있다.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 단체에서 결혼을 인증받으면 된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이것은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리처드 세일러가 자신의 대표작 <넛지>에서 ‘결혼의 민영화’란 이름으로 한 장을 할애해서 한 제안이다. 그는 결혼 대신에 이성과 동성에 관계없이 두 사람의 동거 협약을 지지했다.

경향신문은 신년기획으로 ‘우리도 가족입니다’를 게재했다. 미혼 입양모, 비혼 동거, 동성혼 부부, 공동체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소개했다. 오랜 세월 동안 결혼은 가족을 이루는 첫 단추였다. 하지만 이제 결혼에 대한 생각도, 가족의 형태도 바뀌고 있다. 1인 가구는 대세다. 2025년이면 3인 가구와 4인 가구를 합쳐도 30%를 넘기 어려울 것이란 게 인구학자들의 의견이다. 2016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의 48%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중 20~30대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60%를 넘었다.

결혼·가족제도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과거에는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제도도 있었다. 고구려와 부여에는 형사취수제도가 있었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 제도다. 고구려 사람들이 형수를 넘볼 정도로 유독 음흉해서? 아니다. 성경에도 나온다.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에게 묻는다. 모세가 정해준 법에는 형이 자녀가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형의 대를 이어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큰형, 둘째 형, 셋째 형…. 막내까지 일곱 명이 한 여자를 아내로 삼으면 부활한 뒤 이 여인은 누구 와이프가 되나요?(마가복음) 이런 제도가 생긴 것은 여자를 재산으로 생각했고, 어떻게든 출산을 통해 인구를 늘리는 게 힘을 키우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또 결혼으로 맺어진 세력 집단 간의 합의를 깨트리지 않기 위해서였고, 여성 혼자 정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어렵기도 했다. 흔히 알고 있는 데릴사위, 민며느리뿐 아니라 다양한 결혼풍습(제도)이 있었다.

결혼·가족제도는 정치·경제·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로 된 3~4인 가족은 근대의 산물이다. 아버지는 직장에 나가 일하고, 어머니는 가사를 관리하는 식의 가족 형태는 근대에 발명된 것이다.

세일러에 의하면 공식적인 결혼제도가 생겨난 주요 이유는 결혼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생활 탈퇴를 단속하기 위함이었다. 이혼이 어려우면 부부생활이 안정되고, 자녀들에게 유익하다. 경제·사회적으로도 긍정적 효과가 많다.

지금은 성을 단속할 수도, 단속해서도 안 되는 시대다. 해혼, 졸혼이란 말도 나온다. 세일러는 경제학자답게 결혼의 대차대조표를 따져봤다. 그는 결혼의 혜택이 놀라울 정도로 적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도 그렇다. 아이가 생기면 여성은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을 감수해야 하거나, 사회적 지원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아 돌봄의 책임을 가족이 짊어져야 한다.

문제는 가족의 형태는 급변하고 있는데, 정부는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비혼 또는 비혼 동거 커플이 얼마나 되는지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현실을 알아야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법인데, 지금까지 정부의 가족정책은 출산율에 맞춰져 있었다. 출산율을 중심에 놓고 결혼·가족제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미혼, 비혼, 동성혼을 비정상가족으로 보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상가족, 비정상가족으로 나눌 수도, 나눠서도 안 된다.

결혼·가족의 공식은 ‘1(남편)+1(아내)=3 또는 3+α’가 아니다. 마치 기업과 공장에서 생산성, 생산성 외치듯이 결혼제도·가족정책에서 출산율, 출산율 해선 안 된다. 정부가 2006년 이후 10년 동안 쓴 저출산 예산이 80조원이나 된다는데,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올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비혼 동거 커플에게도 법적·경제적 지원을 한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 출산율이 올랐다.

결혼제도는 영구불변의 법칙이 아니고, 가족정책은 생산성(출산율)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을 노동인구를 찍어내는 공장 같은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출산율이 아니라 행복하고 건강하며 조화로운 삶을 밑돌로 놓아야 한다. 결혼제도·가족정책은 그렇게 가야 한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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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밴드, 텔레그램.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를 침범한 녀석들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60개가 넘는 카카오톡 모임방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카카오톡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단순 문자나 게임, 택시 예약 서비스는 초기 버전이다. 금융 거래와 영화 예매까지 가능하며, ‘헤이 카카오’라는 인공지능 스피커는 원하는 음악도 들려준다. 곧 정부 고지서나 통지서까지 카카오톡을 통해 등기로 배달된다. 이제 카카오톡은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만능 플랫폼이 되었다.

물론 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준다. 그런 행복을 향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혜택 받은 세대인 듯도 하다. 그러나 과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일들은 없는가. 지난 몇 년 사이 ‘카톡 감옥’에 갇힌 직장인들, ‘카톡’이 두려운 노동자들과 같은 흥미로운 기사들을 접할 수 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폐해가 만만치 않다. 퇴근 후는 물론 주말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카톡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휴일이나 업무시간 이외에도 연락을 받거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당장 급한 일이 아닌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대부분 다음날 아침이나 월요일에 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들이다.

소통과 공유를 강조하고, 빠른 정보를 연결하는 수단이지만 직장인들에게 단톡방은 ‘족쇄’나 다름없다. 단톡방 메시지가 업무 관련 내용만 오고 가는 것도 아니다. 개인적인 사생활도 많다. 직장에서 업무상 필요로 인해 그룹방(일명 단톡방)을 만들겠다고 하면 거부할 수 있을까. 업무보고와 지시 때문이라고 하면 거부할 사람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응해야 한다. 부서장의 썰렁한 메시지에 아무런 답을 달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아마도 승진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충격적인 수치도 확인된다. 서비스 노동자 3046명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4명(37.5%)이 퇴근 후 SNS, e메일 등으로 업무 지시를 받고 있었다. 1주일 평균 2.3회, 87분의 부가적 일을 하고 있는데 1년이면 무려 69.6시간이나 된다. 휴일에도 일일이 메시지를 확인해야 하고, 퇴근 뒤까지 이어지는 업무지시는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선을 허문 지 오래다. 일과 삶의 균형은 이렇게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원격근무’나 ‘재택근무’라는 것이 만들어진 이후 이미 카톡에 갇힌 직장인들의 굴레는 시작된 것이다. 최근에는 공공기관조차 사무실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효율적으로 일하라고 ‘스마트 워크’도 앞다퉈 도입했다.

사실 원격근무(telework)는 ‘멀리서(tele)’ ‘일한다(work)’는 의미다. 1973년 미국에서 나온 신조어인데 45년이 지난 지금은 일상화되었다. 그러나 이쯤 되면 카톡이나 e메일, 문자 등으로 업무지시를 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최근 기업들 스스로 규제 움직임도 보인다. 밤 10시 이후나 주말에 SNS로 업무지시를 하지 못하도록 한 곳도 있고, 노사 간 단체협약으로 체결한 곳도 있다. 이미 유럽의 몇몇 기업은 업무시간 이외에 회사가 보낸 e메일이 도착할 경우 삭제하고 있다. 휴가기간에는 보낸 사람에게 ‘부재 중’이라는 정보와 함께 업무를 대체할 사람의 연락처를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업무종료 30분 이후 업무용 스마트폰은 e메일이 중지되고 다음날 근무시작 30분 전에 서비스가 된다.

최근 20대 국회에서도 퇴근 후 SNS 등을 활용한 업무지시 금지법이 3개나 제출된 바 있다. 현실적으로 이런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긴박하고 꼭 필요한 경우’와 같은 단서 조항의 해석을 둘러싼 갈등은 분명 쟁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퇴근 후 혹은 휴일에 업무지시를 내리는 행위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연결되지 않을 권리’ 법안이 통과된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카톡이 침범한 경계 없는 노동시간을 벗어나기 위해 국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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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119상황실과 현장 구조대 간 무선통신망이 부실했던 데다 현장 지휘관이 상황 전파를 소홀히 하는 등 소방당국의 부실대응이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소방합동조사단은 11일 제천 화재 조사 결과 최종 브리핑을 통해 “지휘관들은 상황 수집과 전달에 소홀했으며 인명구조 요청에도 즉각 반응하지 않는 부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소방청은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을 직위해제하고, 간부 4명을 중징계하기로 했다.

브리핑 내용을 보면 화재 직후 2층 여성 사우나에서 충북소방본부 119상황실로 구조요청 전화가 걸려왔지만 상황실과 현장 구조대 간 무전이 되지 않았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조직이 위급 시 통신망을 불통상태로 두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게다가 현장 지휘관은 2층 상황을 전달받은 뒤에도 이를 무전으로 전파하지 않았다. 결국 늑장 구조로 2층 여성 사우나에서 20명의 아까운 인명이 희생됐다. 초기 지휘를 맡았던 간부가 눈앞에 보이는 위험과 구조상황에만 집중하느라 건물 뒤편에 있던 비상구의 존재나 상태도 확인하지 못했다. 운전자가 경험과 훈련 부족으로 굴절차 조작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점도 확인됐다. 아직 석연치 않은 점도 있다. 조사단은 소방대가 비상계단을 통한 진입을 시도했다가 강한 열기와 연기로 후퇴했다고 밝혔지만 유족들은 계단에 화재 흔적이 없다며 조사단의 주장을 반박했다.

화재경보기와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았고, 건물 내 배연창과 비상통로를 잠가 놓은 데다 테라스를 불법증축한 건물주의 과실도 무겁다. 소방대원의 현장 진입을 가로막은 고질적 불법주차도 화를 키웠다. 많은 이들이 참사에 책임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무선통신만 원활하게 가동됐더라도 인명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소방당국의 부실대응 책임은 엄중하다. 인력과 장비 부족 등 소방당국이 처한 어려움은 이해하지만 기본 중의 기본인 통신망 점검을 생략한 과실마저 덮을 수는 없다.

수많은 안전사고에서 확인돼 온 것처럼 매뉴얼이나 규정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구비돼 있다. 문제는 ‘별일 없겠지’ 하며 지키지 않는 안전불감증이다. 안전불감증은 윤리의식의 부재와 다를 게 없다. 이 고질병을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우리 사회의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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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음식은 거저 오지 않는다.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은 내게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 이때 자원이란 농업을 기본으로 인간과 자연과 국제관계와 과학기술 등등이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결과다. 날것 상태의 자원이 먹을 수 있는 밥, 빵, 국수에서 장, 과자, 일품요리 등등이 되기까지 인류는 어마어마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주고받고 이어왔다. 자원의 한계를 다만 감수할 뿐 아니라, 탐구하고 대응하는 가운데 교육도 문화도 인간다움도 태어났다. 음식은 사람답게 살아남기 위한 기본기술(low-tech)이자 1만년 농업사와 함께 이어진 문화의 꽃이다. 그 꽃은 갖가지 모양과 빛깔로 피어나 오늘에 이른다. 위도마다 대륙마다 민족 저마다 서로 다른 일상의 식생활이야말로 거대한 강줄기, 산맥 또는 해양 못잖은 일대장관이다.

한식 또한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돼 온 식재료 및 그와 유사한 식재료를 사용해 한국 고유의 조리 방법 또는 그와 유사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음식으로 한국 민족의 역사적, 문화적 특성을 갖고 생활 여건에 알맞게 창안되어 발전, 계승돼 온 음식”(농촌경제연구원 자료) 같은 말로 한식의 갈피를 잡기 어렵다면 내 점심시간부터 들여다볼 일이다.

막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한 끼 먹자고 모두의 발길이 다급해진다. 어린이, 청소년, 노인, 학생, 취업준비자, 산업예비군, 자영업자, 봉급쟁이 누구나 이 한 끼만큼은 놓칠 수 없다. 아침 거른 사람도 많다. 이 한 끼를 놓치면 하루가 엉망이 된다. 이때의 한 끼를 감당하는 골목골목, 거리거리의 밥집, 국밥집, 분식집 그리고 학교식당이며 구내식당의 한식부, 더하여 점심시간만큼은 반드시 밥과 반찬이 있는 차림 또는 구이나 찌개를 일품요리 삼아 백반 정식을 준비하는 온갖 형태의 요식업소가 바로 오늘날 한식의 제일선, 최전선이다. 한국인이 소화해 변형한 중식, 일식, 양식도 의미가 깊다. 점심시간에 한해 “매일 반찬이 바뀌는 한식뷔페”를 차리는 맥줏집이 여기서 어찌 빠지랴.

오늘날의 한식은 매일 한식을 선택하는 서민대중의 한 끼에, 스스로 나는 한식에 종사하노라 여기는 종사자들의 인식과 매일 수행하는 일 속에 적나라하고 정직하게 깃들어 있다. 산업혁명과 현대의 충격을 지나 오늘에 이른 한식의 실제는 초·중등 학생과 서민대중의 점심 한 끼가 나오는 구체적인 과정 안에 압축되어 있다. 가정식 또는 한 사람의 자취(自炊)만으로는 못다 먹일 사람을 먹이는 바로 그 사람의 일이 한식의 세목을 이룬다.

그 사람은 장을 본다. 식료 선택과 반찬 구성과 간 보기에서 재량이 있다. 웬만하면 온통으로 재료를 받아 밑손질을 한다. 점심 장사 직전까지 정신이 없다. 저녁 장사 전까지 다시 밑손질을 포함한 준비에 뛰어든다. 장보기와 간 보기에 재량이 있고, 차림에서 임기응변이 가능하다면 주방장급 일꾼이고 실제 요리사다. 하지만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일은 대중매체, 인터넷, 소셜미디어에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방송이 고급 음식 호들갑에 ‘셰프(chief)’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면서 그 존재가 더욱 희미해졌다. 분야를 떠나 식당에서 당연히 하는 일인 재료 손질-준비를 굳이 ‘프렙(prep, preparation)’이라는, 그럴 이유가 보이지 않는 외국어로 바꾸어 부르는 데 이르러 일 또한 희미해졌다.

아줌마 또는 이모로 부르는 그 사람이다. 요식업계가 찬모라 이르는 그 사람이다. 업무 능력과 일의 실제에서 셰프이고 밤낮없이 셰프의 프렙을 수행한다. 서민대중이 하루에 한 번은 만나되, 만난 줄도 모르고 지나치는 셰프다. 그러니 걱정이다. 2018년 최저임금에 대한 어깃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한식의 제일선은 그 어깃장이 특히 심한 곳일 수 있다. 쉬이 역사와 문화 운운하지만, 우리는 너무 쉽게 ‘아줌마’를 노동과 직업의 예외자로 대한다. 이러다 한식의 제일선이 최저시급 7530원 사각의 가장 나쁜 예가 될 수도 있다. “최저임금 줄 수 있으면 셰프 쓰지 아줌마 쓰겠느냐”는 억지가 훗날의 음식문헌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과 직업과 제도의 실제에서 당대를 돌파한 경험이 있는 문화만이 내일을 기약하는 법이다.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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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백종원의 푸드트럭> 그리고 지난주에 다시 시작한 <백종원의 골목식당>을 열심히 보는 중이다. 요식업 사업가이자 요리 전문가인 백종원이 창업하려는 청년이나, 식당을 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방송이다. <푸드트럭>이 소자본으로 창업하려는 청년층을 타깃으로 삼았다면, <골목식당>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후 쇠락한 서울 이화여대 앞 골목 가게들을 찾는다.

두 가지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먼저 <푸드트럭>에서 ‘안 좋은 의미’에서 화제가 된 청년 출연자의 표정이다. 푸드트럭에서 팔려고 내놓은 메뉴와 그 식재료에 대한 질문을 받고 중언부언하고 변명하다 굳어버린 그의 모습은, 결국 참지 못해 화를 내버리고 마는 백종원의 표정과 함께 공유됐다. 방송 이후 청년의 태도를 향한 비난이 많았다. 들으려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비난받기 딱 좋은 모습으로 TV에 출연한 셈이다.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잘 대응하고, 필요하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유재석 같은 태도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악마의 편집’은 그런 모습을 극적으로 집어냈다.

출처: 백종원의 골목식당 홈페이지

두 번째는 지난주 <골목식당>에 등장한 백반집 주인 여성의 표정이다. 그녀는 식당의 메뉴가 백종원의 ‘레시피’를 다 따라한 거라고 너스레를 떨며, 자신이 내놓은 음식을 “주변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라며 손님의 평가에 기대 자랑한다. 백종원이 맛과 위생을 지적하자, 그녀는 자신이 식당을 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한다. “이거 하고 싶어서 시작한 거 아니에요. 어쩌다 보니 하게 된 거지.” 옆에 같이 앉아 있던 남편은 눈물을 훔친다. 사회자와 제작진은 부부를 달래며 가게를 살리려고 한 이야기니 너무 괘념치 말라고 위로한다. 방송 이후 이들의 이야기는 ‘찬란했던 90년대 이대 상권’과 함께 블로그 등에 노스탤지어를 건드리는 이야기로 묘사되었다.

<푸드트럭>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패감이 누적되고 위축된 청년들의 표정이 연상됐다. 경직되어 있고 제대로 된 말로 대응하지 못하고, 언제든 터질 것 같은 표정. 자신이 못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말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의 ‘행위’가 정당했음을 억지로 둘러대서라도 방어하기 일쑤였다. 칭찬을 듣기보다 혼나고 지적받는 데 익숙해서 그렇다. 달리 말해,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특별히 입시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가거나 적성과 특기를 고려해서 진로를 잡지 못한 채, 지방대를 다니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이런저런 일들을 해보겠다고 시도하다 실패만 누적된 많은 청년들이 있다. 10대 어느 순간에 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고 잠을 청했던 숱한 ‘평범한 학생’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힘듦’을 잘 들어주며 ‘희망’을 설계해줄 ‘어른’을 만나기 어렵다. 대개의 평범한 한국 부모는 그저 “뭐든 하고 싶은 거를 해” 정도의 독려만 해줄 뿐 ‘전략적’으로 어떤 ‘선택지’를 제시하진 않는다.

공부 대신 10대 때부터 다양한 알바를 하며 온갖 ‘사회생활’을 경험해본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한 교사의 말을 존중하지 않기도 한다. 그러다 총력 입시체제에서 뒤처지고, 뭐든 하고 싶은 거 하라는 방침 속에서 그들은 붕 뜨고 20대가 되는 셈이다. 실업계나 전문대를 나와 사무보조, 정규직 생산직으로 대표되던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로 들어가기 어려워진 시대와 궤를 함께하는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비숙련노동에 대해 ‘조무사’라고 조롱하거나, 비정규직들에게 정규직 전환을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대못을 박는 멸시까지 넘쳐난다.

그런데 <골목식당>을 보면서 “한국 사회가 아직까지 버틴 이유”가 떠올랐다. 백반집을 하는 여성은 경제성장기를 겪은 ‘건강한’ 세대, 평범한 사람들의 익숙한 천연덕스러움을 갖고 있었다. ‘국제시장’의 시절을 통과한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처신일 것이다.

50~60대 내 부모님 세대에게 늘 듣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들은 대개 농촌사회에서 태어났고 다양한 공동체의 ‘관계’ 속에 존재했다. 도시에 살아도 쌀과 간단한 채소라도 부쳐주는 가족이 있었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보통은 여성이) 희생하여 동생들 공부 뒷바라지를 하기도 했다. ‘고향 사람’이라는 다소 옅거나 짙은 관계도 있었다. 번듯한 직장을 갖지 않고 소소한 장사를 하더라도 상부상조가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친척이든 동네사람들이든 모아서 계를 활용했고, 은행 융자가 안되는 등 ‘사정’이 어려우면 이야기를 해서 곗돈을 당겨 받을 수도 있었다. 이따금 잘못을 했을 때도 적어도 울타리 안에선 ‘사정’을 이야기하고 ‘선처’를 빌면 용서를 받을 수도 있었다. 배신도 당하지만 은혜도 입고 답례도 하면서 관계들을 유지하거나 키워갔다. ‘사정’을 봐줄 수 있는 ‘관계’ 바깥에서 살 엄두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가 왔어도 사람의 감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려울 때마다 이런저런 ‘비빌 언덕’에 서로 의존하며 그 나름대로 ‘버텨온’ 것이다. 근대식 교육을 받아도 사회성 측면에서는 농경사회에서 익힌 관계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안정적인 삶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좀 더 따져 물어야 하는 것은 ‘별일없이 사는 것’이 어려워진 지금 한국 사회에 대한 평가라고 본다. 국가는 물론 좀 더 넓은 그물을 쳐서 폭넓고 효과적인 직업교육을 유도하고, 노동시장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써야 할 게다. 그러나 그 목적은 “모두가 탁월해져야 하는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탁월함을 뽐내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세상”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청년’들도 ‘스스로의 서열’을 매기며 위축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좋은 ‘어른’과 ‘친구’의 중요성을 곱씹게 된다. TV 프로그램을 찾아 조언까지 구해야 하나. 스스럼없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가까이에 있는 어른. 그리고 스스럼없이 의논하고 선물을 주고받고 답례할 수 있는 친구 사이. 대가족과 마을 대신 핵가족과 ‘자기만의 방’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사회성과 풍부한 표정을 지켜낼 수 있는 마지노선이 아닐까 싶다.

<양승훈 경남대 교수·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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