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서 방학이나 하교 후, 휴일을 맞아 중·고생들이 사회 경험도 쌓고 용돈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부모에 의지하지 않고 자립심을 키우면서 용돈이나 학비를 벌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저임금·폭언·노동 착취에 시달려 마음의 상처를 입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아르바이트는 편의점이나 음식점 배달업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청소년들은 돈의 유혹에 못 이겨 학생 신분에 맞지 않는 호프집이나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경우도 있어 각종 범죄에 노출되어 있다. 현행 법규상 청소년이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하지만 일부 청소년들이 부모의 동의 없이 몰래 일하거나 다른 직종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업주 또한 청소년을 시간제로 고용할 경우 성년에 비해 낮은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어 선호하고 있고, 당초 계약 당시 약속한 임금과 대우가 다르더라도 아르바이트생들이 쉽사리 법에 호소하지 못하는 현실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 

첫 사회생활을 하며 임금을 받는 학생들의 미숙한 법적 상식을 악용해 부당한 노동을 강요한다면 장차 이들 청소년들은 사회 전반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갖는 계기가 되고 말 것이다.

자립심을 키우는 등 건전한 사회생활 경험에 활용돼야 할 노동력이 이처럼 악용되고 있는 현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된다. 청소년 자신부터 명품 구입, 유흥비 벌이 등을 위해 학업에 전념해야 할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스스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기성세대 또한 세상살이가 다 그런 것이라며 지나치기보다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에 대한 올바른 직업관과 노동관을 심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이 노동력을 착취당하지 않고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도록 관계 당국의 철저한 지도와 단속이 요망된다.

<김덕형 | 장성경찰서 정보보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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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호환(虎患)이 끊이지 않던 조선시대에도, 도성에 사는 일반인이 직접 호랑이를 보기란 흔한 일이 아니었다. 1741년 어느 날, 서울 정동의 민가에 호랑이 사체가 운반된다고 해서 구경꾼들이 운집하는 일이 있었다. 이용휴 집안에서 사냥꾼에게 후한 값을 치르고 가져오게 한 것이다. 그런데 마당에 눕혀놓은 호랑이를 이리저리 살펴본 이용휴는 적잖이 실망하고 만다. 맹수다운 이빨과 발톱을 지니고 있긴 했지만, 상상했던 것만큼 괴기스러운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그리던 호랑이가 그렇게나 기이하고 공포스러운 모습이었던 것은, 책이나 그림을 통해 전해진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용휴는 말한다. “책에 실린 그 현명하고 뛰어나다는 인물들 중에도 이 호랑이 같은 경우가 많겠군.”

대단한 이미지로 신화화된 이들도 막상 한 꺼풀 벗겨보면 보통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심각한 허물이 드러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왜곡되거나 일부만 과장된 이미지로 인해 부정적으로 매도된 인물의 경우도 역으로 마찬가지다. 온갖 매체의 발달로 정보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실상과 이미지의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나아가 그 정보들이 누군가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조작되고 널리 유포된다면, 게다가 거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할 때,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파괴력을 지닌다.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나서야 판단할 수는 없다. 정치는 물론 사회관계와 경제생활 곳곳에 넘쳐나는 이미지들에 눈을 감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주어진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실과 허는 어디에 있는지 늘 따져볼 필요가 있다.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 이미지에 속수무책 속아 넘어가거나 심지어 그로 인한 폭력에 동참하게 될 수도 있다.

이미지의 진실성을 알아보는 데에 특별한 안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내 눈을 가리는 무언가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무시무시한 모습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세속의 호랑이 그림을 보여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개들이 호랑이의 본모습을 진솔하게 묘사한 낡은 그림을 보고는 벌벌 떨며 도망가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며, 이용휴는 묻는다. “저 개들도 속일 수 없거늘, 사람이 가짜 이미지에 현혹되어 그저 휩쓸려 떠들어대기만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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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아마도 특정 공공기관의 이사장 자격을 대선 공약에 담은 후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유일할 듯하다. 공약집에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깨끗하고 개혁적인 인사로 임명”하겠다고 명시했다. 마침 지난달 연금공단이 설립 30주년을 맞았다. 국민연금이 어느새 한 세대의 역사를 지녔다. 이제는 노후가 막막한 서민들에게 믿음직한 의지처로 자리 잡았을까? 아마도 대답은 부정적일 듯하다.

현행 국민연금에서는 오래 가입할수록 순혜택이 크다. 고용이 안정된 사람일수록 가입기간이 길기에 불안정 노동자, 영세 자영자보다 혜택을 더 얻는다. 국민연금이 젊었을 때의 격차를 노후에 심화시키는 ‘역진성’을 띤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에 정부와 국회가 불안정계층의 사각지대를 개선하는 여러 보완책을 마련해 왔으나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새 이사장의 취임을 시작으로 연금공단의 혁신적 변화를 보고 싶다. 공공기관은 집행기관이라며 제도 관리에만 머무는 건 곤란하다. 지난 몇 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혁 활동을 본받자. 고소득층에 유리하고 서민 지역가입자에게 불리한 부과체계의 개혁을 선도했다.

연금공단도 일선에서 현실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조직이다. 현행 제도가 지닌 틈새를 발견하고 해법을 적극 제안하는 활동에 나서야 한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다. 연금재정도 더 필요하고 의사 결정은 국회 몫이기도 하다. 그래도 사안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해 국민들과 공유하는 일은 가입자를 직접 접하는 연금공단의 소임이다.

예를 들어 사업주의 국민연금 보험료 체납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라. 자신은 보험료를 원천 납부했음에도 사업주가 체납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한 해 무려 100만명이다.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보험료를 체납할 경우 노동자에게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는데 유독 국민연금만 체납의 피해를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이를 호소하는 민원에 연금공단은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한 답변에 머물지 말자. 체납 실태, 유형별 특성, 해법 등을 알려나가야 한다.

도시 지역가입자의 체납에도 관심을 갖자. 현재 농어업인에게는 보험료가 일부 지원된다. 농어촌의 어려운 형편을 감안한 정책이다. 그런데 가입자의 작년 평균소득을 보면 농어촌은 월 108만원, 도시지역은 129만원으로 큰 차이가 없다. 도시 가입자도 대부분 영세 자영자여서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기 어려운데 지원은 없다. 소득신고자 중 체납자 수가 농어업인은 10명 중 1명이나 도시지역은 4명인 까닭이다. 현재 도시지역 체납자가 약 160만명에 달한다. 노동자는 회사가 절반, 농어업인은 국가가 일부를 보조하듯이, 도시에 사는 영세 지역가입자에게도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소득파악의 한계를 이유로 들었지만 앞으로 건강보험료가 소득 중심으로 부과되고 국세청의 과세인프라도 개선되는 흐름에 맞춰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사업장 가입자의 보험료 지원에도 틈새가 존재한다. 현재 월소득 140만원 미만의 저임금노동자의 경우 노사에 각각 본인부담 보험료의 약 절반이 지원되는데 대상이 10인 미만 사업장으로 한정된다. 그 결과 같은 저임금인데도 사업장 규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보험료 지원에서 원천 배제당하는 노동자가 약 160만명이다. 국회에 관련 법안도 제안돼 있으므로 10인 이상 사업장의 저임금 가입자 실태를 꼼꼼히 진단해 입법의 근거를 제공하는 건 연금공단의 몫이다.

아예 가입에서 배제된 사각지대도 더 이상 방치하지 말자. 대표적으로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택배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사업장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한다. 현재는 법률적 제약이 존재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특수고용노동자의 권리를 강조하고 국회에서도 입법 논의가 진행되므로 연금공단도 현장의 목소리를 풍부히 전달해야 한다.

이렇게 찾다보면 크고 작은 제도의 틈새들이 많을 것이다. 사실 연금공단이 이미 알고 있는 문제들이다. 400만명에 달하는 납부예외자를 어찌할지, 일용노동자 가입을 둘러싼 사업주와의 다툼을 어떻게 풀지 등 무엇이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의 눈으로 국민연금을 보자. 사업주 체납으로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 보험료 지원에서 제외된 저임금 노동자와 도시지역 가입자, 가입 자격을 얻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입장에 서면 연금공단이 나서야 할 일들이 분명해진다. 이제 서른 살이다. 대선 공약에도 특별히 명시된 이사장의 임명을 계기로, 연금공단이 서민들의 노후 벗으로 거듭나기 바란다.

<오건호 |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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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추석 연휴를 보내다가 하릴없이 지난 달력을 들춰보니, 작년 10월29일 토요일이 광화문에서 제1차 촛불집회가 열린 날이다. 아직까지도 광장의 함성이 귀에 울리는 듯한데,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러버렸다. 금년 5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우리는 한없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북한 핵실험을 둘러싸고 한반도의 긴장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고, 이곳 대학로는 매주 주말마다 태극기 집회로 떠들썩하며, 경제는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상조차 하기 싫은 전쟁의 위협 속에서도 미래를 위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할 것은 있다.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지만 다급한 일이 많다고 해서 중요한 일을 내팽개치면 언젠가는 큰 후환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해 크게 준비해야 할 일은 바로 헌법 개정이다. 그런데 대선 전까지는 5개 정당 모두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헌법 개정이 국정현안, 한반도 주변 정세 등 다른 사안들에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지난겨울의 촛불혁명은 우리 사회와 국가의 총체적 혁신을 바라는 강렬한 요구였다. 최순실 사태와 박근혜 퇴진, 적폐청산이 전면에 있었지만 광화문 거리 이곳저곳 모인 군중들의 외침은 다양하고 폭넓었다. 군중의 외침에 담긴 강력한 메시지는 ‘대통령제를 포함한 정치체제를 혁신하자’ ‘검찰과 사법부 등 권력기관을 개혁하자’ ‘기본권을 보장해 사람답게 살자’ ‘안전한 국가를 만들자’ ‘국민의 주권을 강화하자’ ‘독점 재벌을 개혁하자’ ‘분권과 협치가 가능한 정부를 만들자’는 것 등등이었다. 군중의 외침은 총체적 변혁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수준의 변혁은 나라의 근본적인 틀, 즉 헌법을 바꾸지 않고는 달성될 수 없다.

정치권 일각에선 개헌을 선거제도 정도에 국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 국민이 달을 가리키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격이다.

촛불혁명은 변혁의 중대 과제들과 더불어 변혁에 대한 접근방법도 제시했다. 촛불혁명을 토대로 한 변혁은 밑으로부터, 국민이 주도하는 변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촛불혁명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는 국민주도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헌법 개정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개헌 장터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 규모나 움직임에서 매우 미흡해 보인다.

지금 헌법까지 개정할 필요가 있는가를 묻는 사람도 있다. 헌법은 국가사회를 작동시키는 근간으로 정치, 사회, 경제만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규정한다. 지금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새로운 동북아 국제관계의 형성 등 외부환경 변화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신세대의 진출, 급속한 인구 고령화, 외국인 노동자 급증, 가치관의 급속한 변화 등 내부환경 변화도 만만치 않다. 87년 체제를 만들어낸 현재의 50~60대와 촛불혁명을 만들어낸 현재 30~40대의 세계관과 철학이 아주 많이 다르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체제가 외부, 내부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사례는 흔히 볼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에 가면, 낡은 국가체제와 국민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맞지 않아 조직이 잘 기능하지 못하고 삶이 왜곡되어 가는 것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국민은 시장경제체제로 한참 나아가 있는데, 시스템이 이를 따라가지 못해 사람과 시스템이 끊임없이 마찰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 헌법은 앞으로 30년 아니 50년을 내다보고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에 의하면 어떻게든 개헌은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촛불혁명이 제시한 중대 개혁과제들을 다루어내지 못하는 개헌이라면, 그것은 부질없는 국력 소모전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또한 그것은 촛불혁명이 모범적으로 제시한 것처럼 밑으로부터의, 국민주도에 의한 혁신이 되어야 한다.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가 공정성, 전문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고 해서, 국민주도적 접근 자체를 포기할 일은 아니다.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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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쌀국수를 먹을 때나 보는 고수가 밭에 졸졸 심어져 있었다. 한 평 남짓한 밭에 뿌리를 내린 고수는 새파랗게 잘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다보록하게 자라고 있는 얼갈이배추 어린잎 같은 채소는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라우 무이 뚜이라고 했다.

집 뒤꼍 푸서리에 일군 손바닥만 한 밭을 보여준 아이는 좁은 두둑을 사분사분 걸었다. 아이는 네 살짜리 동생을 보느라 토요일마다 나오는 공부방을 빠졌다. 어쩌면 내내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아이는 혼자 귀화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벽에 바짝 붙여 놓은 매트리스 위에는 귀화시험 대비 참고서가 펼쳐져 있었다. 베트남어와 한국어가 섞여 있는 참고서에는 여기저기 쪽지가 붙여져 있고, 밑줄도 그어져 있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나 보다고 했더니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험 보려면 삼십만원을 내야 하는데, 두 번만 볼 수 있어요. 두 번 다 떨어지면 다시 돈을 내야 해요. 비싸요.”

한국에 온 지 일 년 좀 넘은 아이는 한글도, 한국말도 꽤 잘했다. 가장 어려운 게 한국 역사라는 아이는 한국의 맨 처음 나라 이름이 뭔지, 고려 다음에 어떤 나라가 세워졌는지도 척척 잘 맞혔다. 아이는 국민의 4대 의무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어놓았다. 4대 의무를 묻자 어른들은 멋쩍게 웃기만 했다. 아이만 4대 의무를 정확하게 말했다.

“다 외워야 해요. 면접 보려면 애국가도 외워야 해요.”

한국 땅에서 몇십 년을 산 어른들은 애국가를 웅얼거렸지만, 가을 하늘 공활한데를 넘어서지 못했다. 귀화시험 보면 다 떨어질 판인 어른들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구두덜댔다. 귀화시험비가 너무 비싼 거 아니냐고. 고등학교 다니는 애가 그런 시험을 굳이 봐야 하냐고. 그 말에 아이는 배시시 웃었다.

아이를 두고 골목길을 빠져나오면서 빌었다. 낯선 땅에 꿋꿋하게 뿌리를 내린 고수처럼, 라우 무이 뚜이처럼 아이도 이 땅에서 의연하게 잘 자라길. 그러려면 국민의 의무뿐만 아니라 국민의 권리도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참고서에 그게 있었나?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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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가족 또는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은 다른 가족이나 공동체와 시비가 붙었을 때이다. 합리적 이성주의에 의하면 제3자의 입장에서 잘못한 쪽을 나무라는 것이 정상이다. 이럴 경우 잘못한 쪽이 상대방이면 별문제 없으나 우리 쪽이면 아주 곤란해진다. 잘못한 우리 쪽을 편들자니 양심이 찔리고 상대방을 편들자니 우리 쪽의 원성을 산다. 부부나 친구 사이처럼 범위가 좁아지면 어디 도망갈 데도 없다. 처세술에는 무조건 우리 쪽을 편들고 난 다음 나중에 흥분이 가라앉으면 차분히 잘잘못을 일러주는 것으로 나와 있다. 성격이 냉정하거나 판관 기질이 있는 사람은 이를 잘 못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처세술대로 한다고 해서 만사가 늘 원만하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 상대방이 완강하게 나올 경우 큰 창피를 당할 수 있다. 이런저런 경우를 다 겪고 보면 처세술이란 것이 특정한 조건에서만 유효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개인이나 가족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설사 잘못 대처하여 낭패를 보아도 그 피해가 개인이나 가족 주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일이 국가 사이에 벌어져서 잘못되면 국민 모두가 고통스러운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북한과 미국 사이에 핵미사일을 두고 벌이는 실랑이가 그렇다. 사소한 개인 간 다툼에도 나름 역사와 배경이 있거늘 국가 사이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북·미 간에 다툼이 벌어졌다 하면 앞뒤 맥락과 상관없이 무조건 미국 편을 든다. 어느 정도냐 하면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마저 ‘빨갱이’로 매도될 지경이다. 동족상잔의 트라우마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사회적 또는 심리적 피해가 너무도 크다. 사회 전체가 어느 한쪽을 절대선과 절대악으로 규정해놓고 선택을 강요하다보니 제대로 된 외교전략이나 사회정책을 수립할 수가 없다. ‘사드 배치’ 사건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미국의 필요에 의해 배치되는 것이라 미국의 가상 적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이 예상됨에도 한국 정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거부했다가는 든든한 후견자인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음과 동시에 흑백논리에 길들여져 있는 자국민으로부터도 외면당할 것이 빤히 보인다. 덕분에 한국은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 변변히 항의도 못하는 가운데 미국으로부터는 고가의 새로운 무기들을 들여와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국내 문제도 외교적 딜레마 못지않게 복잡하고 어렵다. ‘적폐청산’을 하는 과정에서 밝혀진 국정원의 치졸한 행위들은 극단적 이분법 논리를 고수하려는 자들의 심리 상태가 어떠한지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하면 국민들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국정원 뺨치는 정보검색 능력을 가지고 있는 디지털시대의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짓들을 한다. 돈을 주고 관제데모를 조직하고 ‘키보드 워리어’들에게 가짜정보를 제공하여 인터넷 공간을 흑백논리의 각축장으로 만든다.

디지털 인프라로 보면 한국 사회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지만 사회심리학적으로는 70년 전 좌우익 대결 상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적어도 기성세대가 물리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젊은 세대의 발언을 검색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일방적인 바람인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세대인 이들은 ‘팩트’라는 정보를 앞세워 이전 세대보다 더욱 심한 흑백논리를 구사하고 있다. 예컨대 ‘세계 평화의 수호자’ 또는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역할과 위상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런 미국의 보호를 받는 것은 선량한 시민이 정의로운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한국이 사드 배치를 두고 중국의 눈치를 보는 것은 ‘사대주의’이지만 미국의 뜻에 따르는 것은 ‘주권 행사’로 본다. 북한에 대한 인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북한과 미국이 똑같은 핵무기를 갖고 으르렁대고 있는데 북한 것은 ‘악마의 독화살’로, 미국 것은 ‘근엄한 아버지가 드는 회초리’ 정도로 보고 있다. 트라우마가 육체의 소멸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를 이어 내면화 또는 사회화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는 교주의 발언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는 종교적 광신과 무척 닮았다. 절대 진리 앞에서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적 판단은 힘을 쓸 수가 없다. 진실로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 펼쳐지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이 민족과 땅을 하루아침에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핵전쟁일지라도 절대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 편을 들어야 한다. 이런 경우 다 지나고 난 뒤에 “실은 당신이 잘못했지만 사랑하는 당신이기에 편들어주었어. 다음부턴 이런 곤란한 상황 만들지 않았으면 해”라고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처세술은 개인의 사회화 과정을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충고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충고이므로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다. 그런데 그 많은 처세술의 목록을 훑어보면 대체로 인간의 감성을 고려한 충고가 많다.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감정을 쓸데없이 건드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위가 국가 정도로 커지면 거꾸로 감성보다는 이성에 기초한 판단이 더 유효하다. 정치인이건 일반인이건 대중의 정서나 통념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거대 집단의 감성이 통제할 수 없는 광기로 이어진 경우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고집 세고 다혈질인 두 국가 지도자가 핏대를 올릴수록 우리는 더욱 이성적이고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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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재난현장에 자원봉사자 말고 꼭 나타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정치인들입니다. 홍보용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서입니다. 화재현장에서 숨진 동료를 슬퍼하는 소방관들을 뒤에 세우고 표정 잘 나오게 사진 찍습니다. 참사현장에 가서도 실질적 도움은 주지 않고 ‘아무개 왔다가다’로 악수에 인증샷만 찍고 옵니다. 안전태세 점검을 구실로, 명절이라 병사들이 모처럼 쉬는 부대에 방문한 정치인이 예비역들의 공분을 사기도 합니다.

‘염불에는 관심 없고 잿밥에만 관심 있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같은 속담으로 ‘제사에는 관심 없고 젯밥에만 관심 있다’도 있지요. 정작 해야 할 일에는 신경 쓰지 않고 자기의 이익에만 쏟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재(齋)는 불교에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비는 천도의식으로 제사의 제(祭)와 자주 혼동합니다. 그래서 ‘49제’로 잘못 쓰기도 하고 불교 신앙이 아님에도 49재를 지내기도 합니다.

염불(念佛)은 마음을 다해 깊이 부처를 떠올리며 경을 외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천도의식 끝나고 먹을 저 공물들 생각에 입에 염불과 군침이 공존한다면 과연 그 승려의 공염불에 극락왕생의 기원이 깃들 수나 있을까요? 제사상 앞에서 절하는 머릿속에 조상님 대신 제사 음식만 그득하게 들었다면 허울 좋게 조아리는 헛제사지요.

신심(信心) 없이 입으로만 하는 염불을 공염불이라고 합니다. 실행 없이 말만 번지르르한 것도 공염불이라 합니다. 정치인의 존재 이유는 국민을 안전하고 잘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목적이 다른 데 있으면 정치행동은 않고 정치행보만 합니다.

결혼식은 맛있었다와 맛없었다로만 기억된다고 합니다. 축하가 아니라 얼굴도장 찍기 위해 온 거니 신랑·신부는 중요치 않지요. 몸은 그곳에 마음은 헛곳에 있으니 조문을 구실로 상갓집에서 명함 돌리며 영업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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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시인에게는 ‘땅’이 있다. 시의 원적지이자 시인의 근거지로서의 땅. 예컨대 백석 시의 활동 무대는 평안북도와 만주 일대다. 시와 장소, 시인과 지역의 연관은 거의 숙명에 가깝다. 미당의 질마재, 용악의 ‘두고 온 북쪽’, 신동엽의 금강은 물론이려니와 김준태의 무등산, 이상국의 동해바다, 최승호의 탄광촌, 김용택의 섬진강…. 한국 현대시의 명편 대부분을 대한민국 전도 위에 배치할 수 있다.

지리산을 시적 재산권으로 등재한 시인들도 있다. 20년 전 지리산에 깃든 이원규 시인이 그중 하나다. 이 시인의 ‘땅’에 대한 애착은 도를 넘어선다. 그의 족적을 돌아보면 한반도 남쪽이 다 자기 영토다. 낙동강 줄기를 두 번, 지리산 둘레를 세 번 돌았다. 4대강 줄기를 다 걸었고 1년간 탁발순례를 하며 남도 땅을 밟았다. 그뿐 아니다. 새만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 지리산에서 임진각까지 오체투지를 했다. 가히 ‘걷기의 제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걷는 시인은 라이더이기도 하다. 두 발로 걷는 사이사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이 땅을 누빈다. 2010년 일간지에 연재를 할 때에는 6개월 반 동안 서울과 제주를 제외한 전국의 길을 달렸다. 총 주행거리 2만5000㎞. 지구 반 바퀴를 돈 셈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뒤엔 여러 직함이 붙는다. 도보순례자, 라이더, 활동가, 유발승(有髮僧), 대학강사. 최근 하나 더 생겼다. 야생화 사진가.

지난 9월 중순, 이원규 시인 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10여년 만에 ‘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사연인즉슨, 내가 전에 몸담았던 시사주간지가 창간 10주년을 맞아 현장을 떠난 ‘예비역’들에게 지면을 내줬다. 나는 ‘지리산 850리 도보순례’ 후일담을 쓰기로 했다. 2001년 5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7대 종단이 모여 ‘지리산 위령제’를 지냈다. 15일간 진행된 도보순례는 위령제의 일환이었다. 수경 스님과 이원규 시인이 순례단을 이끌었고 나는 취재기자로 따라나섰다. 지리산 기슭을 밟으며 6·25 전후 좌우 대립으로 스러져간 넋을 기리고 ‘생명 평화’를 염원했다.

그 후 서너 번 지리산을 다녀왔지만, 이원규 시인의 근황은 그때마다 풍편으로 전해 들었다. 몇년 전, 그가 카메라를 메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토바이에서 카메라로? 하지만 도보순례자와 라이더 사이처럼 멀어 보이진 않았다. 시와 사진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그중 하나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아내는 능력이다. 여기에 집중력과 인내심이 보태져야 한다.

이 시인과 지리산 둘레길을 둘러본 뒤 섬진강 건너 광양, 그의 집으로 향했다. 일곱 번 이사한 끝에 지난해 마련한 시인의 집은 작은 갤러리를 겸하고 있었다. 우리의 이야기는 지리산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에 이어 사진으로 옮아갔다. 탁발순례 후유증이 그에게 카메라를 안겨줬다고 한다. 2009년 결핵성 늑막염에 걸려 1년간 치료를 받으면서 야생화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학이었다. 사용설명서를 백 번 넘게 읽었고 하루에 만 컷 이상을 찍어댔다.

3년쯤 지나자 ‘감’이 잡혔다. 하지만 야생화 사진의 진입장벽은 높았다. 고수들이 수두룩했다. ‘이원규만의 사진’이 필요했다. 발상을 전환했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끼면 사진가들은 산에서 내려온다. 나는 그때 산으로 올라갔다.” 안개 속에 피는 꽃을 찍는 일은 야영의 연속이었다. 혹독한 기다림의 나날이었다. 2015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그의 ‘몽유운무화’를 찾는 이들이 생겨났다.

3년 전, 그의 역발상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둠을 찍기로 한 것이다. 그는 요즘 밤하늘의 별과 지상의 나무가 한 프레임에 들어가는 ‘별나무’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야생화보다 훨씬 까다롭다. 반경 40㎞ 이내에 도시가 없어야 한다. 달이 뜨거나 날이 흐리면 1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 한 나무를 3년 이상 지켜봐야 겨우 한 컷이 나온다. 그는 ‘별나무’를 발견하고 희귀 야생화에 등을 돌렸다. 그의 사진이 자연을 파괴하는 데 일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희귀 꽃 사진은 그 위치가 알려지기 마련이다. 한 번 알려지면 훼손된다. 촬영하고 나서 다른 사람이 찍지 못하게 꽃을 죽여버리는 이들도 있다.

이 시인은 ‘천생 사진가’가 될 운명이었는지 모른다. 전국을 걸으며 장소 헌팅을 해놓은 데다, 언제든 달려갈 수 있는 기동력이 있다. 게다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50대에 접어들어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그가 한층 미더워 보였다. 어둠을 찍는 사진가와 헤어지면서 ‘시는 밥이 안되지만 사진은 밥이 되니까 참 다행’이라고 말하려다 말았다. 대신 앞으로 나올 그의 시와 글, 사진이 우리에게 축복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처럼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가뿐했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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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때 판소리에 빠져 소리를 꽥꽥 질러댈 때가 있었다. 그 어름에 곁따름으로 배운 어느 민요의 가사에 특히 마음이 걸렸다. 그리하여 경상의 북도를 지나칠 때면 그곳에 한 번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다녔다. 지난 추석 이틀 전 문경의 조령산에 가서 가을이 이슥하도록 꽃을 활짝 피운 가는잎향유를 보았다. 일행은 하행선, 나는 상행선. 그냥 헤어지기 아쉬워 머리를 굴리니 오랜 숙제를 풀기에 딱 맞을 것 같은 거리요 시기인 것 같았다.

삼국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상주의 공갈못은 그 명성에 비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관광지로서의 요란한 시설도 하나 없었다. 하나의 큰 저수지일 줄 알았더니 여러 구역으로 나뉜 연못이 여러 개 있었다. 이 못을 축조할 때 ‘공갈’이라는 아이를 둑에 묻었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간직하여 그 이름을 얻었다는 공갈못. 경운기가 넉넉히 비켜갈 만한 공갈못의 사잇길을 걸었다. 잘 순환이 되지 않는 듯 거무튀튀한 물에 통발, 물달개비 등등의 수중식물이 빽빽했다. 혹 귀한 풀이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리다가 길섶에 난 며느리배꼽의 알록달록한 열매를 보는 순간 퍼뜩 알아차렸다. 여기에서 무슨 사연을 엮겠다고 잔머리를 굴리는 건 모두 췌언에 가깝다는 것을. ‘옛 여성들의 서글픈 탄식과 애환을 담은 민요’인 ‘상주 함창가’를 얼른 불러내었다. “상주 함창 공갈못에 연밥 따는 저 처자야/연밥 줄밥 내 따 주마 우리 부모 섬겨다오//고초 당초 맵다 해도 시집살이만 못 하더라/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는 안 할라네(…)”

노래가 끝날 무렵 압도적인 연꽃 무리와 맞닥뜨렸다. 오로지 연꽃뿐인 큰 연못. 이웃한 곳에서는 물에 젖은 수련의 꽃잎이 아직 몇 송이 피어있다. 연꽃은 물을 떨치고 일어나 키가 껑충하다. 꽃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연밥이 몇 개 연꽃의 잎 아래 우두커니 서 있었다. 물을 헤치고 들어가 견준다면 연밥은 내 어깨를 두드릴 것 같고, 연꽃잎은 내 얼굴을 보쌈할 것 같고. 문득 한 무리의 철새가 북쪽으로 날아가고 멀리 인가에서 저녁연기가 피어올랐다. 하늘은 쌀쌀했고 땅은 쓸쓸했다. 연꽃, 수련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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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헌법 개정 논의가 소리 없이 한창이다. 정부 형태에 관심이 더 많지만 기본권 신설 및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핵심내용인 생명권과 안전권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10조의 내용이다.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의 정점이 바로 생명권이다. 생명은 인간존재의 근원이다. 인간의 생명은 절대적이다. 사람은 그가 누구임에 상관없이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를 때까지 생명권의 주체다. 생명권은 국가나 누구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태어나면서 당연히 갖는 권리다. 헌법에 생명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로부터 당연히 도출된다. 인간의 존엄은 생명·신체의 안전과 자유가 보장될 때 지킬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생명권이 보장되어야 그 존엄한 삶도 누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헌법에 생명권을 선언해야 한다.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 사회권, 생명신체의 안전과 자유 등이 분명히 도출되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권이 보장된다는 것은 국가가 함부로 국민 개개인의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인공적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도 인위적으로 생명을 박탈하는 것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생명권을 신설하면서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 서로 모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에도 반한다.

사형이란 형벌은 무엇보다 고귀한 인간의 생명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빼앗는 제도 살인의 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흉악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장치가 사형제라고 주장한다. 범죄에 대한 복수와 응보의 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는 것이다. 살인범의 생명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생명권 신설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죽음의 문화에 속하는 안락사, 자살, 낙태 등도 걸림돌이다. 특히 낙태의 합법화 주장과 서로 충돌한다. 태아도 생명권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생명권을 신설하고 낙태는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두어 예외를 인정하면 된다.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를 강화해야 매일 50명 이상이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 등으로 삶을 마감하는 죽음의 문화와 생명경시 풍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명의 문화가 싹트는 출발점이 바로 사형폐지다.

10월10일은 세계사형폐지의날이다. 향후 헌법 개정 논의에서 생명권을 신설하고 사형폐지의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대한다. 사형폐지는 국제사회의 대세다. 실체도 불분명한 국민의 법 감정에 기대어 더 이상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국가의 형벌권이 피해자의 분노와 복수심을 해소하는 수단에 그쳐서는 안된다. 상황에 따라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여론과 사형이 흉악범죄를 막아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등에 업고 버틸 수 있는 때는 지났다. 범죄로 불안해진 시민은 자신도 범죄자가 될 수 있음을 배제한 채, 자신을 잠재적 피해자로 상정하고 살인자를 사회로부터 영원히 제거할 수 있는 사형을 찬성한다. 그러나 사형집행이 중단된 지난 20년간 살인범죄가 급증했다는 증거도 없다. 오히려 사형이 집행되던 그 이전시기보다 살인범죄의 증가폭이 감소했다는 보고가 있다. 유엔 인권위원회도 1988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조사결과 사형제가 살인범죄 등 반인륜적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가 없다고 분명하게 지적한 바 있다. 사형의 범죄억지력은 환상에 불과하다. 돈 안 들이고 불안을 잠재우는 임시방편적 형사정책일 뿐이다.

법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에게 생명의 고귀함과 유일무이함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법살인의 잔인함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국민의 생명을 박탈하는 극형을 유지하는 것은 법치국가임을 자부하는 문명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식물인간의 생명이든, 살인자의 생명이든 그 누구의 생명이라도 절대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이 생명권의 요청이다. 살인자의 죽음으로 피해자의 원혼이 달래지고 그 유족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정의가 세워지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진정 피해자와 유족들을 위한다면 그들의 고통을 살피고 보듬고 지원해야 생명존중의 문화가 살아날 것이다.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행하는 살인을 형벌의 종류에서 영원히 추방시킨다면 국민들에게 생명의 존귀함을 일깨워줄 것이고, 그것이 살인과 폭력을 멈추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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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NH농협은행, KB국민은행, KEB하나은행, IBK은행, DROPTOP, GS25, MG새마을금고, CU, Tous les Jours, Paris Baguette, Tworld, CGV, MINI STOP, 웰피부과, olleh, Hug Gallic, 프라이덴 치과, 킹노래방, 크리스탈 사우나, MADELENE, URBAN Bakery, 디지털 프라자, ETOOS#수학학원, K2, Hyundai Oilbank, 삼천리 자전거, Marley Coffee, MILLET, Eider, 꿀잠, SIEG, adidas, Reebook, BRONX, TARR TARR, FM치과, KOLON SPORT, NIKE, 다비치 안경, 창조의 아침 미술학원, 날씬한 요가, 재능교육, 다이소, ART BOX, 중앙보석, Olive Young, 정관장, McDonald’s, 샹떼 PC, ABC MART.

추석의 긴 연휴 동안 식구랑 근처에 생겼다는 대형 서점에 나들이 겸 산책을 갔다. 서점에는 오랜만인지라 긴 시간 책구경을 하고 몇 권의 책을 충동구매하고 나오려다보니 슬그머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뭐 필요한 거 없냐’고 물었더니, 뜬금없이 ‘영어공부책’ 이야기를 꺼내신다.

‘한국어 독해도 잘 안되는 분이 웬 영어인가, 한국인의 영어강박이 70대 노인에게까지 불어닥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러 가는 해외여행에서 불편함을 느끼셨나 하는 생각에 애써 고르고 골라 영어회화책 한 권을 내밀었다. 해외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쇼핑 등의 상황 중심으로 발음을 한글로 병기해놓은 시니어용 책자였다. “글쎄다, 너무 글자가 많은데…”라며 돋보기를 꺼내시는 엄마 옆에 서있던 언니가 냉큼 나서서 퉁을 준다. “얘얘, 엄마는 알파벳도 모르는데 이런 걸 어떻게 보라고.”

엄마를 모시고 사는 언니 말에 따르면, 엄마에게 필요한 것은 해외여행용이 아니라 A동, C동으로 구분지어진 건물이나 주차지역, 점포상호를 구분해낼 수 있는 정도의 영어란다. 어디어디로 오라고 얘기를 해도, 알파벳을 모르니 길눈도 어두운 노인들과의 약속이 어그러지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하소연이다.

추석 연휴에 만난 어린 조카에게 “오래 놀아서 좋겠네”라고 묻자, 퉁명스레 한마디 한다. “그냥 놀게 하면 좋을 텐데 선생님이 간판 200개를 조사해서 순우리말과 외래어를 분류해오래요.” 집에 돌아와 엄마 일도 있고 해서 내심 궁금해진 나는 하루 저녁 산책 삼아 번화가에 나가 간판 상호를 적어보았다.

위의 목록은 내가 사는 작은 도시의 번화가에서 무작위로 찾아 적어본 50개의 상호들이다. 의미와 상관없이 우리말로 적은 상호가 14개, 우리말과 영어 혼용이 8개, 영어 상호가 28개이다. 이 중에서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는 순우리말 상호는 ‘삼천리 자전거’ ‘꿀잠’ 등 7개에 불과하다. 한글로 써있다지만 ‘프라이덴, 웰, 다비치’ 등의 뜻을 모르니 이들 간판은 뜻 모를 깃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은행은 물론 가장 흔한 편의점, 빵집, 휴대폰 매장의 거개가 다 영어니, 어찌 영어공부가 무지한 노인들을 강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이 공용문자로 채택할 정도로 한글은 전 세계적으로 그 가치와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이 단순하고 과학적인 한글 덕분에 한국의 문맹률이 0%에 육박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늘 자랑스럽게 생각해왔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한글에 대해 진정으로 자부심을 느끼고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 자부심이란 것이 명절에 친척들이 모여서 누구는 어디 학교를 가고, 취직하고 등의 대외 홍보용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을까. 0%에 육박한다는 한국의 문맹률은 지금 우리가 놓인 일종의 이중언어 상황에서 보자면, 거짓에 가깝다. 언어가 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이 이중언어 상황이 포섭하고 배제하는 독자와 청자가 누구인지는 금세 알 수 있다. 잘살지 못하고 그래서 배우지 못한 자들, 첨단 문화에 어두운 자들과 노인들. 이 현실은 골목이나 재래시장을 조금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다. 후미진 동네에는 영어 상호가 거의 없다. 국어시간에 암송하던 저 한글창제의 정신, 즉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성이 니르고저 할 빼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다. 내 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라던 세종대왕의 ‘어여삐’ 여김은 다 어디 갔을까. 더불어 소수자, 약자의 정체성 정치의 약진은 엘리트의 것만이 아닌, 무식을 부끄러워하며 뒤로 숨는 또 다른 하위주체에게도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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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나는 백인이긴 하나, 북동부에 거주하는 미국의 주류 지배 계급의 와스프는 아니다. 나는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인의 핏줄을 타고 난데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수백만 백인 노동 계층의 자손이다. 우리에게 가난은 가풍이나 다름없다. 우리 조상들은 대개 남부의 노예 경제시대에 날품팔이부터 시작하여 소작농과 광부를 거쳐 최근에는 기계공이나 육체노동자로 살았다. 미국인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을 힐빌리, 레드넥, 화이트 트레시라고 부르지만, 나는 이들을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른다.”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의 저자인 J D 밴스는 쇠락한 공업 지대인 러스트벨트에 속하는 오하이오 철강 도시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결혼생활이 파탄에 이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밴스의 엄마는 전도유망한 고등학생이었지만 열여덟 살에 임신을 하는 바람에 대학 진학을 미루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자 친구와 결혼했습니다.

엄마의 두 번째 남편에게서 태어난 밴스가 막 걷기 시작할 즈음에 부모는 이혼을 했습니다. 아빠는 밴스가 여섯 살 때 돈 때문에 친권을 포기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두 아이를 두었습니다.

아빠와 헤어진 지 2년 만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 엄마에게 이후에도 수많은 아버지 후보자들이 들락거리며 하나같이 공허함과 사람에 대한 불신만 심어주고 떠날 때도 밴스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꾹 참았습니다.

마을에서 서로 욕하고 고함치고 어떤 때는 치고받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는 건 그저 일상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집에서도 폭력이 난무하는 바람에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불면의 밤이 계속됐습니다. 학교에 가는 것도 싫었지만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릴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로 집은 밴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주는 장소였습니다. 엄마는 약물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자신도 가정폭력으로 고통받았던 엄마는 열두 살의 아들을 죽이겠다고 폭행하는 바람에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밴스는 ‘할모’(외할머니)와 함께 지내야 했습니다.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할모네 집이 일시적인 피난처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향한 희망을 심어준 장소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병대에 입대한 손자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지를 쓰는 할모의 애정이 있었기에 밴스는 결국 명문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의 전도유망한 젊은 사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힐빌리의 노래>는 “모르는 사람이나 다름없는 남자와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뻔한 여자에게서 버림받은 자식”의 인생 유전과 ‘성공의 여정’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살았던 세상은 “정말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가득한 곳”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살림에서 지출을 늘려나간다. 거대한 텔레비전과 아이패드를 산다. 이자가 센 신용카드나 고리대금을 얻어서 자식들에게 좋은 옷을 입힌다. 필요하지도 않은 집을 매매하고 그걸로 재융자를 받아 소비를 더욱 늘리다가 결국 쓰레기로 가득 찬 집을 떠나며 파산 선고를 받기에 이른다”는 것이지요. 파산한 사람들은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신분 상승이 평생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고 일찌감치 미래를 포기해버립니다.

그런 그들이 “오바마가 탄광을 폐쇄했기 때문이라느니, 중국인들이 일자리를 죄다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하는 이유”를 댈 뿐 시궁창 같은 삶에서 벗어날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들이 “낙오자가 된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정부의 실패”라고 외치고 모든 잘못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즘 우파 정치인의 득세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극빈가에 거주하는 백인 노동계층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70년에는 백인 어린이의 25%가 빈곤율이 10% 이상인 동네에 거주했다. 2000년에는 그 수치가 40%로 증가했다. 현재의 수치는 이를 훨씬 웃돌 게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은 사회 양극화에 따른 소외 계층의 증가와 가정의 해체가 심각한 지경에 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권은 이에 따른 불만을 외부에 전가하려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북핵 공조를 빌미로 ‘한·미 FTA’를 폐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미치광이 전략’으로 우리를 불안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미국 민주당의 테드 리우 하원의원이 북한과 전쟁을 벌이면 “210만명이 죽고 770만명이 부상당하게 되는데 그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느냐”며 경고했다지만 트럼프에게 이런 말이 통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 사회가 갖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무엇일까요? 최근 58명을 죽이고 527명을 다치게 한 사상 최악의 라스베이거스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부유하고 단조로운 은퇴 생활에 염증이 난 성공한 백인 남성 스티븐 패덕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는 트럼프가 ‘경멸’해 마지않는 이슬람국가(IS) 테러조직원이나 이민 노동자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미국은 사회적 차별과 모욕과 억압을 안겨주는 가난에서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힐빌리들이 ‘외로운 늑대’가 되어 무고한 생명을 살상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힐빌리의 노래>는 그런 가능성을 경고하는 슬픈 노래로 들립니다.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아픈 과거를 가감 없이 까발리면서 우리가 처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려준 저자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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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미국 대선후보였던 트럼프와 클린턴이 첫 TV토론을 하기 전인 작년 8월이었다. 이 지면에 ‘김정은의 핵과 트럼프의 핵’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트럼프의 등장을 경고했다. 그가 작년 3월에 ‘솔직히 말하자면’ 일본 핵무장을 허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발언했음을 지적했다. 안보의 끈을 한국이 잡아 당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추석 명절 전, 9월에 대통령의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총회에서 연설했다. 그 자리에서 미국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국제법적으로 매우 충격적이며 불법적인 사건이다. 세계 평화를 위한 기구인 유엔에서 유엔 회원국의 대표가 다른 유엔 회원국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유엔 헌장을 정면으로 위반한 발언이다. 예방적 선제공격은 불법이다. 물론 그의 발언에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그 조건이 충족되었는지 역시 그가 결정할 것이므로 조건은 별 의미가 없다. 북한에는 2500만명의 사람이 살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한 달 전에 북한이 미국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지 않으면 ‘세상이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파멸적 핵무기를 투하하면서 ‘지구상에 없던’ 폐허의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던 미국의 과거가 떠오른다.

트럼프는 놀랍게도 바로 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란을 위협했다.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타결한 이란 핵개발 동결 협정을 비난했다. 그는 이란과의 핵 협정을 ‘미국에 낭패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란을 부패한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올 9월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는 자리에서, 이란 핵 협정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렸고 곧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15일이면 트럼프의 결론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날은 미국이 이란과의 핵 협정 체결의 대가로 이란에 준 경제 제재 유예를 계속할 것인지 결정하는 시한이다.

트럼프가 이란과의 핵 협정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한국에 위험하다. 북한 핵 문제 해결에서 매우 나쁜 영향을 줄 것이다. 북한이 보고 있는 앞에서 이란과의 핵 협정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그런 미국을 보면서 북한은 미국과 핵 협상을 할 이유가 없게 된다.

트럼프는 2018 예산안에서 환경보호청과 노동부의 예산을 무려 31%, 21%나 깎으면서, 국방예산은 10%나 늘렸다. 두 자리 숫자로 늘렸다. 그는 유엔이 핵무기금지조약을 출범시켰는데도 미국은 핵무기를 현대화할 것이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대규모 군사력을 ‘재구축’할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는 모든 폭탄의 어머니라고 하는 가공할 폭탄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했다.

안보의 끈을 한국이 더 세게 잡아 당겨야 한다. 한·미동맹이 한국 안보의 근간임은 현실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상징하듯이 안보를 타국에 의존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와는 상관없는 내재적 위험이다. 외부 위험이 클수록 안보 의존은 더 위험하다는 본질을 용기있게 인식해야 한다. 북한 핵 보유에 대비하는 일본도 일·미동맹을 한·미동맹처럼 의존적으로 운용하고 있지 않다. 대미 안보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지체하지 말고 한국군의 일체의 작전통제권을 환수해야 한다. 나아가 한·미동맹을 법치화해야 한다. 트럼프의 결정에 따라 움직이는 동맹이 아니라, 나토와 같은 공동 의사결정 시스템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주한미군의 주둔 목적과 그에 대한 정기적 평가도 법제화해야 한다. 끈질기게 국제법을 이용해야 한다. 트럼프를 국제법의 바다로 띄워올려야 한다. 트럼프가 북한 완전 파괴 발언을 한 이틀 후에 유엔의 53개 회원국은 사상 최초로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아시아에서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서명국에 참여했다. 64년의 정전협정을 끝내고 평화를 정착시킬 국제적 평화협정의 체결이 최종적인 트럼프 리스크 해결 방법이다. 트럼프의 임기가 지나가기를 앉아 기다리기에는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오로지 국민을 믿고, 안보의 끈을 한국이 더 세게 잡아 당겨야 한다.

<송기호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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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 지난 9월5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주민토론회에서 반대를 주장하는 사람들 앞에 장애 아동 부모들은 무릎 꿇고 호소했다. 침통한 이 장면은 장애인의 교육권이 확보되기 위한 현실적인 과정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지역에서 장애인 공교육을 담당할 특수학교는 기피시설이 되었다. 예정 부지에 ‘국립한방병원 설립’을 지난 총선 공약으로 내건 김성태 국회의원은 반대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장애인에 대한 오랜 편견과 혐오는 노골적인 차별로 이어져 관련 시설 설립 예정지가 되면 반대는 당연한 수순처럼 전개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에 대해 헌법 제11조 ‘교육기본법’, 제4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특수학교 설립 반대 행위는 헌법의 평등정신에 위배’된다고 표명했다. 이 결정이 즉시 갈등을 해결해주고, 잘못한 이를 골라내거나 차별을 일소하진 않는다. 그러나 장애인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사회적 약속과 국가의 책임이 무엇인지 확인시켜 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불평등하게 살아간다. 차별이 장애인, 이주민, 여성, 10대, 성소수자, 빈민 등 일부 소수자만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한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권리의 문제가 아니라 동정과 시혜의 문제로 접근할 위험도 있다. 그러나 누구나 한번쯤 모난 돌로 찍히거나 불이익을 당할까봐 눈치 보며 부당함을 말하기 어려웠던 경험이 있을 거다. 학교, 일터, 집, 관공서, 거리, 카페, 영화관, 화장실…. 차별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불쑥 나의 삶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왜 나는 차별받고 있다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어려울까? 언제부턴가 차별받는 경험은 실패나 무능, 운명, 성격의 문제로 개인이 겪어내야 할 과제로 남겨지고 있지는 않은가? 이제 인권의 문제로, 불평등에 대한 저항으로 고민은 이동해야 한다. 그 진전을 위한 시작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받는 사람들의 경험을 법에 근거해 말할 수 있는 토대이다. 차별과 모욕 앞에서 주저해야 했던 많은 사람들이 나서서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법이다. 그러니 차별금지법은 모두를 위한 법이다.

‘차별은 안된다.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은 단계와 합의가 필요하다’라는 말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유예시키는 논리가 얼핏 합리적으로 들린다. 어떤 이는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기다리면 나중에 해줄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미래에 현재를 빼앗길 수 없다. 불평등한 일상을 감내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다. ‘동성애 찬성법, 일부만을 위한 법’이라는 주장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세력이 동성애를 희생양 삼는 동시에 차별의 문제를 찬반 문제로 만드는 효과를 가진다. 차별 경험을 개별로 고립시키고, 차별해도 되는 사유와 그렇지 않은 사유를 구분하며 차별을 위계화한다.

국가가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국가의 책임으로 인정하고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것이 차별금지법이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다. 혐오와 차별을 방관하고 평등실현의 책무를 외면하는 국회와 정부에 민주주의와 다양한 인권을 보장하는 삶을 기대할 수 없다. 나라다운 나라, 촛불민주주의를 앞세운 문재인 정부와 20대 국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 차별금지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

<이진희 |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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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최장 10여일에 달하는 추석 ‘황금연휴’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던 연휴가 끝나가고 일터로, 학업으로 복귀할 날이 다가온다.

이번 추석은 첫날부터 ‘하루 공항 출국인원 최고치를 경신한’ 기록적인 연휴인 만큼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들이 많았다. 특히 직장인 휴가라면 일본이나 동남아 등 가까운 곳을 다녀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이번엔 모처럼 연휴가 긴 만큼 유럽 등 먼 곳으로 떠난 이들이 눈에 띄었다. “추석에 같은 팀에서만 스페인 갔다 온 사람이 세 명” 등의 글에서 ‘장기 여행’의 들뜬 분위기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 추석 연휴가 긴 만큼 “이틀은 고향에 내려가고 나머지는 따로 국내여행”을 다녀오는 등 연휴를 나누어 살뜰하게 쓰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모든 걱정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연휴가 ‘그림의 떡’인 사람들도 있었다. 추석 연휴에도 쭉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는 한 트위터리안은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데 최저(시급) 주면서 연휴에도 특별 수당이 없다”고 한탄했다. 자신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일한다고 밝힌 한 유저는 “이번 추석 연휴에 평소처럼 일요일만 쉬라는 방침에 불평하니까 특별히 하루 더 쉬게 해주겠다는 말에 기뻤다”며 “하지만 곧 왜 기뻐해야 하는 건지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긴 추석인 만큼 자녀들의 애달픈 ‘경험담’들도 SNS를 달궜다. 추석을 앞두고 SNS상에 떠돌던 ‘잔소리 가격표’와 관련해 “진짜 저 가격표만큼 받았으면 가방이라도 하나 샀겠다”는 한탄이 나왔다. ‘잔소리 가격표’란 “취업했니” “결혼은 언제할 거니” “애는 언제 가지니” 등 명절 단골 잔소리들에 메뉴판처럼 가격을 매겨 놓은 글로 “잔소리할 거면 돈으로 달라”는 취지의 게시물이다.

아직 완전히 연휴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다음 황금연휴’를 기다리는 움직임도 눈에 띈다. “다음 황금연휴는 8년 뒤”라며 10일 연속 빨간 글씨가 이어지는 2025년도 10월 달력을 첨부한 한 트위터리안(@sch***)의 글은 3만건 이상 리트윗되며 높은 관심을 받았다. 이에 “올해 여행 못 갔으니 8년 뒤에는 꼭 여행을 가야겠다”는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김지원 기자 deepdeep@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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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긴 연휴 동안 마을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저녁마다 집집이 마당에 불이 환했다. 아이들 웃고 떠드는 소리도 나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자동차 트렁크에서 집 마당으로 짐을 날랐다. 할매 할배들도 바빴다. 챙길 것이 많고, 볼 것이 많고, 짬짬이 이야기도 풀어놓고.

“추석도 추석이라고는 별로 안 하고, 그냥 팔월이라고 했지, 팔월. 아직 일이 바쁘니까. 먹고 노는 거는 백중이 크고. 백중에는 집집이 풀 거름 마련하고 나서 놀고, 추석은 식구들하고, 친척들하고 지내는 날이고 그랬지. 추석에는 집안 살림 싹 깔끔시럽게 해야지. 여기서는 송편 같은 거는 잘 안 해 묵었어. 송편 말고, 올벼 가져다가 콩고물해서 찰떡하고, 박나물하고, 토란국 끓이고 그랬지.” 추석이 가까워오면 그 바쁜 때에 집안 정리하는 것부터 한다고 했다. 이불 홑청을 다 벗겨서는 삶아 빨아서 가을볕에 말려 너는 것부터. 마당에 희고 너른 광목이 펄럭이는 것으로 명절이 시작인 셈이다. 문짝을 하나씩 떼어다가 종이를 벗기고, 수세미로 문살을 하나씩 다 문질러 닦은 다음 새 종이를 바르기까지 하는 집도 있었고. 새 종이를 발라 문틀에 끼우면 방안으로 맑은 빛이 든다. “밝은 보름밤이면 문살이 더 빛이 나지.” 이곳에 이사를 와서 낡은 집을 고치고, 새 문종이를 발라 잠이 들었던 날에도 달빛이 밝았다. 10년 지난 지금도 종이 바르는 문짝을 쓰고 있으니 할매 하는 소리를 조금은 알아듣는다.

추석맞이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은 일찌감치 모여 청소를 했다. 도로 공사 때문에 방앗간이 허물어진 첫 번째 추석. 공사판을 앞에 두고 지난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마을 사람들끼리야 백중에 더 놀아. 추석이야 피붙이 보는 날이잖아. 그러니까 다 같이 일하고, 다 같이 노는 날은 백중이지. 동네 사람들끼리 보신하고, 놀고, 그랬어. 아이들도 그날 기다리지. 먹을 게 많으니까. 냇가 좋은 마을은 천렵도 하고.” 설날 가까운 대보름이 그랬던 것처럼, 추석 가까운 백중은 여름 대보름 같은 날이었을 터. 하지만 대보름은 남았어도 백중은 이름만 남았다. 이제는 들에서 일하는 사람 먹으라고 참을 마련하는 일도 없고, 냇가에 모여서 천렵을 하는 일도 보기 어려우니.

새로 포장하는 길 아래 차곡차곡 사라진 논 이야기도 나온다. 누구네 집 논이 어쩌고 하다가, 당신들 어릴 적 한두 대목이 올라온다. “그게, 메뚜기가 흔했어. 논둑에 나가 가지고 메뚜기가 후두둑 날 때, 손으로 휙 거므면 몇 마리씩 잡혔다고. 그거 마른 냄비에 넣어서 구워 먹었지.” “도랑에 물 뺄 때, 이제 가서 소쿠리를 댄다고. 그러면 새우가 많이 잡혔어. 속이 다 보여. 자잘해 가지고. 익으면 빨개지는데 것도 맛이 좋았어. 벼 베고 나면 도랑에 흙 치면서 미꾸라지도 잡고, 논고둥도 잡고. 벼 베고 있으면 또 금방 밀, 보리 갈잖아. 그러니 그때는 기다렸다가 얼른 잡아왔지.” “참게가 이제 개울에 살다가 비 많이 오고 물 불고 그러면, 논으로도 막 가고 그런다고. 그러면 그냥 손으로 딱 잡고 그러지. 많았어. 제 딴에는 숨는다고 풀섶에 가 숨어. 그래 봐야 다 보여. 게나 꿩이나 한가지야.” 지금 농사짓는 논에도 약을 치지는 않는다. 10년 가까이 되었으니, 어지간한 벌레들은 바글대는 것 같고, 미꾸라지나 멧밭쥐나 이런 것들도 종종 보이기는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논에 나락 말고 이 많은 것들이 어디서 살았다는 것인지 어른들 말만 들어서는 도무지 알기 어렵다.

온갖 것이 모여 살았던 논도, 젊고 어리고 늙고 하는 사람들 골고루 모여 살았다던 마을도 이야기 몇 대목으로만 적어 둘 수 있을 뿐이다. 통계로 나온 숫자로만 헤아려 보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농사꾼이 농사지어서 얻은 농업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농사짓는 데에 써야 하는 돈(농업경영비)은 40%쯤 늘어났고. 아직 연휴는 끝나지 않았지만, 마을은 다시 조용해졌다. 아이들도, 젊은 사람들도 없고, 금세 깨 터는 소리, 밤 고르는 소리가 나고, 길가에는 고추며 토란대가 널렸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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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자장가는 왜 이리 슬플까

그건 꿈에서 왔기 때문이지

이루지 못한 꿈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자장가는 전생에서 오는 것

세상이란 슬픈 곳이며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지

태어나기 전부터 알기 때문이지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자장가는 태반에서부터 빙글빙글 돌아가는 음반

바늘이 운명의 표면을 긁을 때 나는 소리

하늘의 별도 그렇게 태어나고 그렇게 소멸한다지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자장가는 아기의 귀에 수면의 묘약을 흘러보내며 말하지

세상 같은 거 잊으라 잊으라

지구는 회전하고

세상의 모든 자장가는 그 회전축을 따라 돌고 있지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 정철훈(1959~ )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러시아 가수가 불러도, 조수미가 불러도, 코사크 자장가(‘까자끼’는 ‘코사크’의 러시아어 발음)는 한결같이 슬프다. 많은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지만 여러 나라로 흩어져 살아야 했던 코사크족의 애환이 이 자장가에 스며 있기 때문일까.

그 슬픈 곡조에는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나 전장에서 싸우다 죽을 아기의 운명에 대한 어머니의 깊은 연민과 애도가 있는 것 같다. 아기를 재우는 노래이면서 전쟁에서 희생된 젊은이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노래 같다. 가장 깊고 편안한 잠은 죽음과 같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장렬하게 전사한 후 오래오래 잠들었다가 이제 막 아기로 환생한 청년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같기도 하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처럼 세상은 시끄럽고 네가 누운 곳은 누추하지만, 아가야, 필사적으로 편안하게 자거라. 자장 자장 자장, 바유시키 바유 바유시키 바유.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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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개미를 나타내는 한자는 옳을 의(義)에 벌레 충(蟲)을 합친 의(蟻)이다. ‘의로운 벌레’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개미의 특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1억년 넘게 지구상에 존재해온 개미의 종수는 1만4000여종에 이른다. 벌과 함께 ‘사회성 곤충’으로 분류되는 개미는 인간 사회를 뺨칠 정도로 분업화·전문화된 조직생활을 한다. 때론 적과 목숨을 건 싸움을 한다. 개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에드워드 윌슨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의 지적대로 “자연생태계의 균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해온 개미는 인간과 함께 지구의 2대 지배자”라고 할 만하다.

개미제국의 지배자는 여왕개미다. 여왕개미의 평균수명은 10년 안팎이다. 번식력도 왕성하다. 중남미에 서식하는 가위 여왕개미는 평생 1억5000만개, 아프리카에 사는 장님 여왕개미는 3억개의 알을 낳는다. 여왕개미는 ‘짝짓기 비행’을 통해 수개미에게 받은 정자를 저정낭에 모아놓고 산란할 때마다 꺼내 사용한다. 정자를 이용하지 않고 알을 낳는 처녀생식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낳은 미수정란은 수개미가 된다. 여왕개미와 일개미는 똑같이 암컷이다. 하지만 여왕개미로 선택된 개미는 많은 양의 먹을거리를 제공받는다. 일개미가 알을 못 낳는 것은 생식기관이 발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여왕개미가 ‘여왕물질(Queen substance)’이라는 일종의 페로몬을 분비해 일개미들이 생식기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통제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28일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외래 붉은 불개미가 발견돼 추석 연휴 동안 검역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크기가 3~6㎜인 붉은 불개미의 독침에 쏘이면 심할 경우 호흡곤란 등으로 숨질 수 있다. 북미에선 한 해 100여명이 붉은 불개미에게 쏘여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역당국은 붉은 불개미 1000여마리가 서식하던 개미집을 제거했다. 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하루 1500여개의 알을 낳는 여왕개미의 행방이 묘연하기 때문이다. 남미에서 미국과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건너온 붉은 불개미는 ‘의로운 벌레’가 아니다. 인간 생명을 위협하는 ‘해충’이다. 검역당국은 “여왕개미는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생사 확인 전까지는 안심할 일이 아니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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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9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쉬면서 10월을 맞는 마음은 여유롭다기보다는 시무룩했다. 연말의 들뜨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곧 찾아들 테고 가을의 독자들이 낙엽처럼 흩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인디언 부족마다 10월을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는데, 크리크족은 ‘큰 밤 따는 달’, 카이오와족은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달’이라고 불렀다. ‘어린 밤 따는 달’이 가고 큰 밤을 딸 희망에 찬 부족과 ‘나뭇잎 떨어지기 시작하는 달’을 보낸 후 추위를 걱정하는 부족의 자연관이 이렇게 다르다. 살아가는 태도도 달랐을까.

연휴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 중국 우전 출장을 다녀왔다. 인문서를 출간하는 동아시아 5개국 6개 지역이 모인 콘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전 세계를 시장으로 삼고 도서정가제가 없어 거대한 글로벌출판 트렌드를 휩쓸고 있는 영미권 출판인보다 한자문화권의 전통을 공유하고 도서정가제라는 유통 방식을 유지하는 동아시아의 출판인들 이야기에는 아무래도 공감하기 쉬웠다.

20여명의 출판인이 발표하는 내용 모두 생생한 체험담이었는데,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지점이 세 가지로 선명했다.

출판사가 지식 콘텐츠의 디지털 플랫폼을 만들 것인가, 거대 기업의 플랫폼에 올라탈 것인가. 그리고 디지털의 무료 정보와 지식에 익숙한 독자에게 유료 지식은 어떤 차별점으로 다가가고 전달할 것인가. 독자들은 디지털 지식의 내용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접근 방식에 따라 값을 지불할 용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나머지 한 가지는 전통 인문서, 논픽션 장르의 새로운 가치 부여와 혁신이었다. 창작 원고는 말할 것도 없고 인문 저자가 출판사의 개입 없이 자가 출판하는 일이 쉬워질 터인데, 출판인은 가치 있는 원고를 찾아 출판해야 하는 과업이 더 막중해졌으니, 장르에 대한 자각을 유연하게, 또는 새삼 공고하게 해야 할 판이었다. 종이책만이 아닌 전자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을 포함한 출판에 대해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출판인의 고민이 이번 콘퍼런스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출장 단상을 제대로 정리하고 기록할 새도 없이 도쿄의 서점 몇 군데를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다. 도쿄에 머무는 동안 노벨 문학상 발표가 있었다. 일본 나가사키 출신의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수상으로 서점 분위기가 어떠할까 기대하며 발표 다음날 찾아갔으나 막상 이시구로의 일본 번역본은 발표 전 품절 상태였다. 한 권을 구입해 여행 기념으로 삼으려 했으나 아쉬웠다.

도쿄의 중심부에 올봄에 개장한 화려하고 우아한 긴자식스의 쓰타야부터 헌책방 거리인 진보초의 고서점까지, 독자와 책 사이의 맥락을 헤아리며 서성거렸다. 카페나 공원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다른 시각으로 보였다. 이들 중에는 모바일로 출판 콘텐츠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종이책을 펴든 독자만을 독서 풍경으로 붙잡을 수 없다. 다만 정보나 토막 난 콘텐츠를 읽는 일이 흔한 세태에서 출판사가 발행하는 체제를 갖춘 책을 읽는 독자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보았다.

낙엽도 길을 만든다고 했다. “사람들 발길이 낸/ 길을 덮은 낙엽이여/ 의도한 듯이/ 길들을 지운 낙엽이여/ 길을 잘 보여주는구나/ 마침내 네가 길이로구나”. 정현종 시인의 시 ‘낙엽’ 전문이다. 기존의 길을 지우며 의도한 듯이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낙엽이라니.

‘소셜리딩’이란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책에 갇혀 있던 콘텐츠를 풀어내고 함께 읽고 체험하고 공유하는 독서 모임을 떠올리면 이것은 또 새로운 길이 아닌가 희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나 홀로 묵독하는 독자와 강연과 낭독회에 참석하거나 팟캐스트에 적극 참여하여 즐기는 독자가 겹치면서 새로운 길이 생겨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연휴가 끝나간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휴식이었다. 적어도 잔걱정만 하다가 일할 의욕이 꺾인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10월을 “낙엽도 길을 만드는 달”이라고 불러볼까, 이런 싱거운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역시 출판 일이 내 삶을 추동하는 것이 맞나 보다.

<정은숙 |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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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한 야산의 풀밭에 산구절초가 무리지어 꽃을 피우고 있다.

가을이 막 깊어지기 시작하는 즈음, 하루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국립수목원에서는 <수목원의 저녁노을 콘서트>라는 제목의 작은 음악회가 있었다. 수목원 주변 마을에는 자연이 좋아 찾아드신 분들이 많은데 특히 예술가들이 100여분이 되신다고 한다. 그분들이 ‘수목원 가는 길’이라는 문화마당을 만들어 매년 이즈음 예술제를 한다. 행사가 열리는 4일간 말 그대로 국립수목원으로 가는 길 인근의 이곳저곳에서 전시회, 다양한 형태의 공연, 그리고 작가들의 오픈 스튜디오 등등 참으로 정답고 행복한 행사들이 벌어진다. 지자체나 특정한 기관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문화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매년 깊이를 더해가고 참여를 늘려가며 7년째 이어온다는 것은 어찌 보면 기적처럼 의미 있고 아름답다.

국립수목원에서의 작은 음악회는 그 행사 가운데 하나였는데 좀 특별했다. 우리나라 가곡의 대표적인 원로 작곡가 세 분과 젊은 작곡가 한 분을 모시고 여러 성악가들이 그분들의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었다. 최영섭 선생님의 ‘그리운 금강산’ ‘그리운 내님이여’, 신귀복 선생님의 ‘얼굴’ ‘백두산’, 이수인 선생님의 ‘고향의 노래’ ‘국화 옆에서’ 등등 한 곡 한 곡 듣고 있자니 우리의 어린 시절은 그분들의 노래 속에 있었던 듯, 수없이 부르고 듣던 노래들이었고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지난 시간들로 돌아간 듯 추억을 꺼내오며 감동으로 살아났다.

특히 마지막에 이수인 선생님의 지휘로 열명 가까운 성악가와 청중들이 함께 ‘내 맘의 강물’을 불렀는데, 홀로 서 계시기조차 어려워 의자에 앉으신 채 지휘를 하시는 노 작곡가의 손끝 움직임 속엔 긴 세월과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아직 남은 마음속 정열이 고스란히 묻어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 여운의 끝에서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가득 채웠던, 우리의 노래들을 만들어 주신 그분들이 만들어 주신 이 아름다운 순간을 이렇게 조촐하게 마련된 자리에서 뵙게 된 것이 송구했다. 지난달 세종문화회관에서 크게 열렸던 루치아노 파바로티 10주년 추모음악회를 다녀 온 터라, 그 가책이 더했던 것 같다.

이 행사를 총괄하신 윤희철 교수님은 국립수목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씀해주신다. 자리를 내어 드린 일 이외에 크게 기여한 바가 없어 무척 부끄러웠지만, 수백년 동안을 지켜온 광릉숲의 나무와 풀들이 있었기에 장수하늘소를 비롯한 온갖 생물들이 서식하고, 그런 자연을 보전하고 연구하는 국립수목원이 생겨나고, 그 절대적인 자연을 동경하며 사람들이 모여 들어 마을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은 예술가들의 창작이 이루어지고 이것은 다시 사람에게 평화와 위로로 전달되는 선순환의 고리의 시작은 결국 나무들 덕분인 것은 맞다.

많은 이들이 수목원이나 식물원은 식물들을 전시하는 곳, 쉬거나 놀러가는 곳으로 여긴다. 만일 그 기능이 전부라면 좋은 공원이나 휴양림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수목원이나 식물원의 진짜 기능은 자연과 사람의 중간에서 다양한 식물들을 모아 보전하고 연구하는 것이 첫째 임무이다. “왜 보전하느냐!” 얼핏 자연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그 속에는 미래까지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사라지기 전에 현재의 보전, 즉 인간을 위한 관점이 담겨 있다. 이렇게 모인 식물을 연구하고, 가능하면 아름답고 의미 있게 심고 가꾸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저절로 자연을 소중하게 만드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때론 수목원에 보전된 식물들이 훼손된 자생지를 복원하는 데 쓰인다. 모아진 식물들은 신약이나 식용 혹은 관상용 식물을 개발하는 연구 소재로 이용되기도 한다.

이제는 수목원이나 식물원은 기능을 더 보태어 가장 이상적인 자연문화 나눔의 장으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음악회 말고도 몇 해 전, 노란 은행나무 아래서 열렸던 김훈 선생님과 독자들의 만남은 가을 잔상으로 살아 있다. 며칠 후 서울 문학의 집 문인들이 숲산책을 나오신다니 그분들이 풀어낼 숲의 소리가 벌써 기대된다. 뉴욕이나 런던의 식물원에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1년에 한 번 편한 모습으로 대중과 만나는 음악회가 열려 많은 이들이 이를 동경하기도 하는데,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는 광릉숲 국립수목원은 숲속의 동물들에게 방해될 것이 염려되지만 도시형 수목원이나 식물원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여러 방식으로 자연과 공유하며 쌓인 추억들은 ‘위로’ ‘영감’ ‘사유’ 등 여러 모습으로 살아나 우리가 살아가는 평생의 친구가 될 것이다. 한가위에 만난 우리 고향의 풍경, 자연, 사람 그 모든 것들도 차곡차곡 쌓아준 따뜻한 추억들처럼.

고향의 산야에 피고 있을 풍성하고 향기로운 산구절초 모습으로 추석선물을 전하고자 한다.

<이유미 |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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