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0일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발표했다. 차선을 편측으로 옮기고 광화문 전면에 역사광장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2016년 출범한 민관논의기구인 광화문포럼에서는 차도의 지하화를 통해서 전면 보행광장을 제안한 바 있다. 이번 계획은 비용과 공사기간 등 여러 이유에 의해 보차혼용으로 절충된 것으로 안다. 지금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의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국가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게 된 이 시점이야말로 절반만 완성된 우리의 국가 중심공간을 수복할 최적의 때라 생각한다.

모든 수도에는 국가의 정당성과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를 표상하는 중심공간이 배치된다. 조선시대 이 터는 남북으로는 광화문과 황토현, 동서로는 육조 관가에 의해 위요된 공간이었다. 닮은꼴인 워싱턴의 ‘더 몰(The Mall)’은 국회의사당을 정점으로 하여 관가와 공공 문화시설들이 둘러싸고 있다. 

박근혜정부 출범 4주년인 2017년 2월 25일 저녁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 대규모 촛불 집회를 열고 있다. 17차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촛불과 레드카드를 들고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다시금 알렸던 이곳이 온전히 회복된다면 우리는 세계사에 전례 없는 유교적 왕조 공간과 시민민주주의 공간이 공존하는 광장을 얻게 될 것이다.

광장은 권력의 표상인 동시에 그 자체가 권력이다. 군중이 만드는 스펙터클은 어떤 무기보다 강하다. 1987년 넥타이부대는 군사독재를 종식시켰고 1989년 체코 바츨라프광장의 프라하 시민들은 철의장막을 거두었다. 그래서 독재권력은 종종 광장을 정치적 도구로 쓴다. 1938년 뉘른베르크 나치당 대회 사진은 지금 보아도 섬뜩하다. 빛의 기둥으로 연출된 공간의 초월적 스케일과 70만 군중, 개인이란 전체에 비해 얼마나 사소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하여 맹목적 충성을 이끌어낸 장치였다.

우리도 동원된 지지군중과 국군의날 열병식 풍경으로 여의도광장을 기억한다. 이 같은 ‘관조적 스펙터클’에서 군중은 수동적이며 비자발적이다. 한편 우리는 2002년 누구의 지시도 없이 하나의 색으로 광장을 물들인 장관을 선보인 바 있다. 자발성과 능동성의 진수라 할 ‘참여적 스펙터클’이다. 군중의 시선은 다초점이며 카오스모스(chaosmos)적이다. 광화문 촛불집회는 이를 계승한 것이다. 소란했음에도 깨끗했고 즐거웠으나 장엄했다. 광화문광장은 이러한 장소성을 오롯이 담는 공간으로 다시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광장은 시대의 산물이며 진화한다. 차로로 둘러싸인 섬일지언정 광화문광장은 오세훈 시장의 업적이다. 또 청계천과 서울광장을 통해 차로를 줄인 도심도 작동함을 보여준 이명박 시장의 공도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과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중앙청 철거가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 앞길로 바뀌며 국가 중심공간을 잃은 이후 지난한 수복의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광화문광장은 미래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한다. 도시는 유기체와 같다. 세포가 바뀌어도 모습과 정체성은 유지되듯 건축이 변할지언정 도시의 틀은 장구하다. 길과 광장이 항상성을 유지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장은 ‘무계획의 계획’이어야 한다. 지금처럼 동상, 꽃밭, 분수, 전시장 등의 디자인 요소로 시민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대신 적극적 비움을 통해 다양성과 주체적 이용을 이끌어내야 한다. 광장이 재구조화되어야 할 두 번째 이유이다.

세 번째, 광화문광장은 지금의 박제된 공간에서 탈피해야 한다. 차로에 의해 잘리고 청진, 무교, 도렴동의 도심재개발에 의해 옛 골목길들이 와해되어 지금은 도시적 맥락을 잃은 외톨이 공간이다. 광장 외연의 확장을 통해 시민의 일상적 삶과 광장의 비일상적 경관이 어우러져야 한다. 또한 주변부 건물의 저층부를 활용하여 시민편의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인접 블록들의 재정비를 통해 보행네트워크를 회복시켜야 한다.

제시된 안은 차로를 6차선으로 줄여 한쪽으로 몰고 사직로를 우회시켰다. 고작 월대와 해태상을 복원하기 위해 차량 흐름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다. 그러나 이는 서울 역사도심을 차로부터 해방시키는 기획의 출발점이라고 달리 읽을 수도 있다. 언젠가 줄인 차로조차 필요 없게 된다면 서울의 미세먼지도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친환경 차량 우선통행제를 실시하되 서울시는 단기 교통대책이 아닌 장기적인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해서 시민을 이해시켜야 한다.

광화문광장을 얻어낸 주인공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가장 빠른 기간에 이룬 우리 시민이다. 시민의 자부심과 우리의 국격에 상응하는 세계 최고의 광장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함인선 | 한양대 건축학부 특임교수·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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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보름 넘게 지났음에도 그날의 감회는 여전히 생생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 벌어져서 놀랐고,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너무 자연스럽고 익숙하게 느껴져서 더 크게 놀랐다. 지구상에서 서로를 가장 경계하고 적대시했던 사람들이, 마치 오랜만에 모인 가족 친지들 같았으니 말이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한 민족, 한 뿌리라는 것을 느끼는 데 말과 음식이 같다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을 테니까.

음악도 오랫동안 대립한 둘을 하나로 묶어주는 데 큰 몫을 했다. 남북 정상이 이동할 때는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음악인 ‘대취타’가 연주되었고, 사열을 할 때는 ‘아리랑’이 흘렀다. 이질적인 피아노와 사물놀이가 어우러진 환송 공연 역시 감동적인 한 편의 음악 서사였다. 어색하고 서먹한 분위기를 깨고 우의를 다지기에 노래만큼 좋은 것이 없다. 예로부터 음주가무를 즐겼던, 흥이 많은 우리 민족이 아니던가. ‘고향의 봄’을 부를 때는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속의 아늑한 고향 마을을 떠올렸으리라. 분단의 세월이 아무리 길어도 아직 함께 기억하는 노래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축복이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중요한 국가 행사가 있을 때마다 국악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의 전통을 전 세계에 소개하고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이제까지의 공연들이 그다지 커다란 감동을 주지는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청중의 마음에 다다르는 울림이 되기에는 어딘가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 전통에 대한 과도한 강조나 세련되지 못한 편곡도 거기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음악은 특별한 위치를 가진다. 국악(國樂)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렇다. 국사(國史)나 국어(國語)가 아닌, 자국의 전통음악을 국악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을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 역시 적지 않다. 초·중·고 음악 교육과정에서 국악의 비중은 30%가 넘는다. 국가 차원에서 국악원을 두고 있고, 국악만 방송하는 방송국이 따로 있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지원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음악생활에서 국악의 비중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작년 한 해 인터파크를 통해 판매된 공연 티켓 중에서 국악 공연이 차지하는 비율은 채 1%를 넘지 않는다. 국악방송의 청취율은 다른 방송국의 청취율과 아예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국악은 행사 때나 필요한 것일 뿐 우리의 일상과는 상관없게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결혼식을 빼고는 아무도 더 이상 입지 않는 한복처럼.

상황은 안타깝지만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민족적 전통의 중요성만 강조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이들도 스마트폰에서 하루 종일 신나고 재미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세상이니까. 빠르게 움직이는 동영상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4시간 반이나 되는 종묘제례악이나 6시간짜리 춘향가에 공감하기를 바라기 어렵다. 광속 기술의 삶과 리듬에 이미 익숙해진 아이들이니까.

국악의 현대화는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민했던 문제이기도 하다. 북한은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민족음악 악기를 포함시킨 배합 관현악이라는 특이한 오케스트라 편성을 만들어낸 바 있다. 그것이 가장 폭넓고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편성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선뜻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민족악기를 위주로 하는 편성으로 서양악기를 조선음악에 복종시키겠다”는 대담성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우리나라 국악계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전통악기를 개량하고, 대학에 전공을 두어 창작국악이나 신국악 같은 현대식 국악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옛 장단을 사용하고 국악기로 연주하는 것만으로 전통음악의 정신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통은 절대로 훼손되면 안된다는 원칙이 작품의 독창성이나 참신함을 가로막는 원인이기도 하니까. 절대적 원칙과 자유로운 창작 정신은 양립하기 어렵다. 전통은 자연스럽게 묻어나야지 멋이 살아난다. 억지로 강제할 일이 아니다. 국악을 진정으로 보존하려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국악이 그러했던 것처럼. 과감한 변신을 두려워해서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양한 시도들이 허용되고 장려되어야 한다. 우리의 자랑스럽고 훌륭한 전통이 행사용으로 전락하거나 박제화되는 불행을 피하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런 여정에 남과 북이 함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혜는 나눌수록 커지고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법이니까.

<민은기 |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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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남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깊고 씻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을 남겼다. 정부는 이와 같은 대형사고를 예방하고 국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는 매년 1000여명에 이르고,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21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3%, 국가 예산의 5.4%에 이르는 규모다. 또한 노동자 1만명당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 비율인 사망만인율은 독일·일본 등 선진국의 2~3배 수준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인 ‘안전한 사회’와 ‘지속가능한 사회’의 실현은 요원하기만 하다. 이제 다시 한 번 근원적인 접근과 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10일 오후 전남 목포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가 직립작업을 시작하여 4시간여만에 완전 직립에 성공, 세월호가 참사 4년여만에 바로섰다. 김기남 기자

필자는 우리나라 기간산업을 이끌어 온 전력산업에 30여년을 몸담아 왔다. 수많은 산업재해를 목격한 당사자로서, 되풀이되는 비극적 사고와 재해를 끊어내기 위해 다음 세 가지를 제안한다.

먼저 성숙한 안전문화의 정착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안전을 바라보는 의식수준 향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자신의 생명과 안전이 본인과 가족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깊이 인식하는 자기존중의 자세가 필요하다. 미국의 듀폰사는 1802년 화약회사로 출발해 나일론, 타이벡 등을 개발한 세계적인 기업이다. 듀폰사는 모든 사고는 예방가능하다는 신념에 투철하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동료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최고 수준의 안전문화를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듀폰의 창업자 E I 듀폰은 화약공장 인근에 자신의 자택을 지어 가족들과 함께 거주했다. 폭발사고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과 동료의 생명과 안전을 동일시하는 안전철학을 몸소 실천했다.

4년 만에 바로 세워진 세월호의 내부 모습이 공개됐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내부 안전조치를 마치는 다음달 10일 이후 미수습자 수색과 정밀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4·16가족협의회 제공

다음으로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안전이론에 스위스 치즈 이론이 있다. 스위스 치즈는 많은 기포로 인해 구멍이 뚫려 있다. 스위스 치즈를 여러 겹으로 배치했을 때 우연히 구멍이 동시에 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안전 측면에서 다양한 요인의 결함이 동시에 발생할 때 재해가 일어난다. 이러한 모든 불확실성의 최소화를 위해서는 인적, 제도적, 관리적으로 다양한 시스템이 상호보완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실제 현장에서 설계·작업 전·작업 중 등 단계별 안전 매뉴얼이 실효성 있게 작동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위험을 찾아 개선하는 프로세스를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외부전문가의 객관적인 관점에서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빈틈 없는 안전사고의 예방이 가능하다.

끝으로 협력기업에 대한 안전지원 체계가 절실하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발전산업 현장은 고소작업, 중량물 및 유해화학물질 취급 등 위험요소가 많은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업재해가 영세 협력기업 및 일용직 작업자와 같은 안전취약계층에게 발생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안전취약계층을 단순한 하도급 관계가 아닌 상생의 파트너 관계로 생각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이들의 안전역량 강화를 위해 안전관리비는 낙찰률 적용을 제외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나아가 맞춤형 안전체험교육을 제공하고 현장의 위험 발견 시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는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상생의 안전지원 확대를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안전을 비용이 아닌 투자로 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안전조치를 비용이나 규제로 보는 성장지상주의, 성과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값싼 드라이비트 외장재나 폴리에스테르 천막이 아니었다면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대구 서문시장에서 소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성숙한 안전문화와 실행력 있는 안전시스템, 그리고 상생의 안전지원체계 구축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김병숙 | 한국서부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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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 있게 설명한다’는 말에서 ‘조리(條理)’라는 단어를 풀어보면 나뭇가지(條)가 뻗어가듯 체계적이며, 앞뒤가 맞게 잘 다듬는(理) 것을 뜻합니다.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모두 아울러야 그 나무를 온전히 알 수 있고, 필요에 맞게 손을 봐야만 누군가에게 쉽게 와닿습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누가 어떻게 설명하느냐에 따라 아아! 하는 깨달음이 오거나 졸음만 오기도 합니다.

아기가 잘 받아먹지 못한다고 ‘떠먹여줘도 못 먹냐!’며 억지로 숟가락 욱여넣을 부모는 없습니다. 이해 못하는 학동이라면 훈장님은 회초리 대신 차근한 비유를 들어야겠지요.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보다 더 많이, 깊고 넓게 공부해야 한다는 ‘한 자를 가르쳐주려면 천 자를 알아야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서 ‘한 자’는 ‘한자(漢字)’, ‘천 자’는 ‘천자문(千字文)’도 뜻합니다. 한자 한 글자를 가르치려면 당연히 천자문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니, 가르침이란 배움의 천 배 노력이라 해도 옳을 것입니다. 한자 천 자를 달달 외웠다고 천자문을 아는 게 아니듯, 많이 암기했다고 원리와 이치를 아는 건 아닐 텝니다. 단순 지식보다 여러 갈래 사이를 풍성하게 타넘으며, 한두 가지로 열을 만드는 창의와 융합이 훨씬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검색 한 번이면 다 나올 걸 여전히 달달 외워 시험을 칩니다. 그리고 어느 학생이 “하늘 천은 왜 검을 현이죠? 하늘은 파랗지 않아요?”라고 물으면, “그냥 외워!” “시험에 안 나와!” 또는 “진도 나가자!” 같은 실망스럽고 뻔한 답을 듣기도 할 겁니다.

스승의날은 천자문 대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탄신일에 맞춰 날짜를 잡은 것입니다. 어두운 밤 ‘어린 백성’의 등불을 만들고자 잠도 잊은 스승이 어찌 대왕뿐이겠습니까. 하나를 옳게 알려주려 천 번을 생각하는 이들도 대왕님의 그날에 함께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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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탈주범 지강헌은 돈이 권력인 세계를 향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다. 지금 온라인에서는 국민들이 “유○무죄 무○유죄”를 외치고 있다. 이 기막힌 구호는 어떻게 등장하게 된 것일까?

사건의 시작은 이랬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몰카가 한 장 올라온다. 대학의 크로키 수업에서 찍힌 누드 사진이었다. 커뮤니티 유저들은 그 사진을 보고 낄낄거리며 피해자를 희롱했다.

2014년까지 이런 정도의 사진은 그저 ‘보고 즐길 수도 있는 포르노’로 여겨졌다. 범죄라는 인식도 크지 않았다. 하지만 2015년 메갈리아 이후 여성들은 몰카 촬영과 공유가 개인의 존엄을 침해하는 범죄임을 강조하고 ‘디지털 성범죄’ 혹은 ‘불법촬영범죄’로 재명명했다.

더불어서 ‘몰카’가 범죄로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성폭력대항단체인 DSO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등 청년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의 활동 덕분이었다. 그렇게 달라진 인식 속에서 2018년 5월에 벌어진 이 ‘크로키 모델 사건’은 크게 화제가 된다.

경찰은 유례없이 발 빠르게 행동했고, 사건 발생 열흘 만에 범인을 잡아 포토라인 앞에 세웠다. 놀라운 일이었다. 언론은 신이 났고, 사람들은 돌을 던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페미니즘이 세상을 바꾼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범죄인지 몰랐던 것을 범죄라고 각성시킨 것은 확실히 페미니즘의 역할이다. 다만 한 가지 변수가 있었다. 피해자가 남성이었고, 가해자가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2017년 기준 ‘불법촬영범죄’ 가해자 98%가 남성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좀 특이한’ 사건이었던 셈이다.

지금 국민들은 바로 이 문제를 질문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반대의 경우에도 이처럼 기민하고 엄정한 대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는 그토록 무능했던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야말로 자신의 유능을 입증하지 않았는가?

나는 지금 이 글을 30만1487명의 대한민국 국민과 함께 쓰고 있다. 이는 2018년 5월14일 오전 9시36분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올라온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에 참여한 이들의 숫자다. 이 청원에서 국민들은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동일범죄 동일수사 동일처벌. 이는 페미니즘의 그 유명한 구호인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남성과 여성에게 동일한 노동이 허락되지 않는 구조를 문제 삼고, 동일한 노동을 하더라도 그 노동력이 같은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저항한다.

2018년 대한민국의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여성은 여전히 불평등하다. 얼마 전 밝혀진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 채용비리 사건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국민은행은 채용과정에서 남성 지원자 100명의 서류전형 점수를 높여주었고, KEB하나은행은 합격자 성비를 남성 4 대 여성 1로 맞추기 위해 점수를 조작했다. 그 결과 여성 커트라인이 남성 커트라인보다 48점이나 높아졌다. 그야말로 성별이 스펙인 셈이다.

이 사건을 보고 “기업이 뽑고 싶은 사람을 뽑는다는데, 그게 문제인가?”라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정체성이나 신체적 특징 등 한 개인의 특성에 따라서 기회를 박탈하고 선택을 제한하며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을 민주주의사회에서는 ‘차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국가는 법을 만들어 차별 행위를 처벌한다. 하지만 우리는 법도 믿을 수 없는 사회를 산다.

“유○무죄 무○유죄”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대한민국이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차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디지털 성범죄에 있어서 늘 뭉그적거렸던 경찰이 전광석화와도 같이 움직인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피해자가 남자여서? 가해자가 여자여서? 혹은 언론의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에?

이유가 무엇이든 ‘남성’이라는 성별이 파워가 되어 공정한 법 집행을 막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민은 요구한다. 동일한 범죄에 동일한 수사와 처벌을.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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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의 재발견이었다. 2018년 4월27일. 그날의 일은 모두 녹화되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그 맥락을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금 지난 후에라야 객관적 거리도 확보되고 그 전모가 눈으로 들어온다. 한차례 흥분이 지나고 돌이켜 보면 인상적인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그것은 처음 만나 악수한 뒤 잠깐 북측으로 월경(越境)하는 사진이었다. 이제껏 적대적이었던 두 정상이 손을 잡은 채 금단의 선을 넘는 뒷모습.

사람의 진면목은 뒷모습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이 광명한 세상에서 유일한 맹점이 있다면 그건 본인(本人)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오지(奧地)인 뒷모습. 그것은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법이다. 뒷모습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 <뒷모습>이다. 뒷모습만을 찍은 사진도 좋지만 밀도 높은 글이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십쯤에 <뒷모습>을 접했다. 오십이면 그 경지에 오르기를 소망했건만 육십을 목전에 두고도 아직도 요원하기만 하다. 다만 시골에서 벌초할 때, 풀을 베고 난 뒤 모두에게 부탁해서 뒤로 돌아선 모습을 찍는다. 어쩌면 무덤은 한 인생의 총체적인 뒷모습이기도 하겠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뒷모습. 거기에는 홀가분하면서도 숨길 수 없는 쓸쓸한 표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돌아서 있는 형님들은 아버지의 생전 모습과 얼마나 닮았던지!

지난주에는 평창의 마을 근처를 돌아다녔다. 남북회담의 물꼬를 터준 올림픽의 열기는 옛일이 되었고 봄맞이 준비로 바쁜 어느 무덤가에 뛰어들었다. 살아서 흩어졌던 피붙이들이 헤어지지 말자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형제간의 우애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 아래 여러 봉분 사이로 야생화가 퍽 다양했다. 지하로 가는 통로인 듯 구슬붕이, 무덤 봉우리엔 노란 솜방망이, 할미꽃, 쥐오줌풀 등등. 그중에서도 나를 단박에 바닥으로 쓰러지게 만든 건, 아주아주 희귀한 대성쓴풀이었다. 손가락만 한 키이지만 네 장의 야무진 꽃잎에 범상치 않은 기운을 담고 있는 대성쓴풀. 굳이 입에 넣지 않아도 이름에서부터 쓴맛이 왕창 풍겨 나오는 대성쓴풀. 멸종위기 2급, 용담과의 여러해살이풀. (그림ⓒ이해복)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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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한 마리 날아왔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지난해 한반도를 엄습했던 전쟁의 공포를 생각해보면 불과 일 년 만에 천지개벽할 소식이 줄을 잇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야당이 선거 전략을 비롯해 당의 정체성까지 고심하게 되는 것 역시 당연하다. 그런데 출구가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당 대표라는 중임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이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지난 5월2일 창원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지방선거 필승결의대회에서 홍준표 대표는 손팻말 시위를 하던 이들을 보고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고 발언해서 또다시 막말이 화제에 올랐다. 홍 대표의 창원 빨갱이 발언을 접하자 예전에 읽었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1958년 9월15일자 경향신문 1면에는 ‘왜 국민을 억지로 공산당으로 만드는가?’라는 제목의 사설이 게재되어 있다. 이와 같은 사설이 게재되었던 이유는 당시 삼천포 전 시의회 의장을 비롯한 극우 인사 사백삼십팔명이 자유당 중앙당부와 대법원에 “삼천포 오만여 시민 중에 그 팔할(八割)에 해당하는 사만여명이 적색분자”이고, “민의원 이재현씨는 현재 자유당에 입당하였으나 실질적으로는 진보당원”이며 “삼천포는 불원간 ‘제2의 모스크바’가 될 듯하니 이들을 조치하여 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사천시의 일부가 되었지만, 삼천포는 고려 성종 때 조세미를 수송하는 조세창(漕稅倉)이 설치되면서 항구로 발전했다. 1931년 사천군 삼천포읍이 되었지만, 인근의 사천군, 고성군, 남해군보다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 시 승격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1956년 당시 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정갑주(鄭甲柱)는 몇 차례의 시도 끝에 삼천포를 어렵게 시로 승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2년 후인 1958년 5월2일에 치러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그는 이재현 당시 무소속 후보에게 밀려 5827표를 얻는 데 그쳐 2위로 낙선하고 말았다.

당시 경향신문은 “도대체 삼천포는 대한민국이 아니란 말인가. 대한민국 정부의 통치 아래 있는 한 도시 시민의 팔할이 공산당이라고 하면 그 도시를 다스리고 있는 행정기관은 무엇을 하였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이유가 사실은 “삼천포 시민들이 자유당의 공천자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보복”이 아니면 무엇이냐고 되묻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는 굳이 따져 묻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에서 보수정치세력이 정권 안보를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한마디가 바로 ‘빨갱이’라는 호명이었다. 이것이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는 까닭은 고발하기는 쉽고 변호하기는 어려워서 부당한 권력이 사회를 통제하는 데 언제나 유용한 수단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한편으로 남한의 우월성과 체제경쟁 승리를 자신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이 이념적으로 취약하다며 위기의식을 부풀려왔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모호한 존재들을 색출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보낸 세월이 70년이다. “창원에는 원래 빨갱이가 많다”란 발언이 단순한 말실수가 아닌 까닭도 거기에 있다. 이제 선거에서 패배라도 하면 다른 정당을 지지한 국민들은 죄다 빨갱이가 될 판이다. 오늘날 홍준표 대표로 상징되는 한국 보수진영의 자화상은 너무도 오랜 세월 동안 퇴행을 거듭하여 큰 틀에서나마 생존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어느덧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조차 진부하게 들리는 시대다. 지난 세기말 베를린 장벽에서 시작한 냉전 해체의 바람이 거의 30년의 세월이 걸려 이제야 극동(極東)의 판문점에 이르고 있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물론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중요한 시대, 민족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보수의 참모습이라면 지금이야말로 그런 보수가 필요할 때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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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7일은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여성들로부터 무시를 당했다’는 이유로 여성을 선별해 살해한 사건이었음에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조현병 때문’이라며 엉뚱한 대책을 내놨다. ‘여성혐오 살해’라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제대로 된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지 않은 채 2년이 지난 2018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사회는 더욱 심각하고 폭력적인 여성혐오의 장면들을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일상의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다.

5월10일에는 작가 은하선씨의 강연이 취소됐다. 강연 주최자인 서강대 총학생회가 밝힌 취소 이유는 ‘연사들과 주최 측에 대한 혐오 발언과 백래시, 총학생회 구성원 개개인과 관련인을 향한 폭력을 더 견딜 수 없어서’였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겪었을 고통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난 4월에는 한 게임업체 원화가가 여성단체의 SNS를 팔로우했다는 이유로 사장으로부터 사상을 검증받고 사과문을 쓴 사건도 있었다.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성차별적인 일상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한다는 이유로 사상검증, 불이익, 배제, 해고 등을 경험한 사례를 제보받았다.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 동안 수집된 사례는 총 182건이었고, 욕설 등 폭언을 듣는 것은 기본이고 심각한 노동권 침해사례도 14건이나 있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이유가 너무나 어이없다. “미투를 지지하는 의견을 내거나 여성인권에 대해 말해서”(62건), “카톡프로필을 ‘Girls can do anything’이라고 했거나 이 문구가 들어간 핸드폰케이스나 티셔츠를 입어서”(34건), “SNS에서 페미니즘 글을 RT 또는 마음찍기하거나 여성단체를 팔로우해서”(19건), “페미니즘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었다고”(15건),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거나 홍보한다”(6건)는 등의 이유로 여성들은 “계약을 일방적으로 해지당하”거나 “아르바이트비를 받지 못하고 해고되”기도 하고, “독서시간에 책을 읽다가 선생님께 책을 뺏기”고, “동아리에서 강제로 쫓겨나고 행사 대관을 취소당하는”가 하면, “배지를 떼라는 선생님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교내봉사와 예정된 전시가 무산되는” 피해를 입었다. 여성들은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메갈’이라고 낙인찍히고 온갖 욕설과 혐오의 말,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으며 표현의 자유,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와 일할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대통령이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정의로서의 페미니즘과 성차별 구조 개혁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민주주의 과제이고 사회적 정의다. 그럼에도 아직도 ‘메갈’ 프레임을 씌워 여성들의 정당한 목소리를 지우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려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 이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메갈’ 프레임은, 과거 폭력과 인권 침해를 정당화하는 도구였던 ‘빨갱이’라는 말이 ‘메갈’이라는 단어로 대체된 것이고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된 것일 뿐이다. ‘메갈’ 프레임은 허구이고 여성혐오이며 폭력이다.

강남역 2주기, 과거의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모든 이의 일상에서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미래를 상상해 본다. 민주주의가 떠도는 말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 그것이 촛불혁명 이후 우리가 만들어갈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이다.

<김민문정 |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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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월, 드라마 <모래시계>는 대구에서 방송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고의 화제작을 놓칠 리 없는 비디오 대여점에서는 녹화테이프를 당당하게 유통시켰고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이를 통해 작품을 접했다. 불법이지만 드라마 안에 장엄하게 펼쳐지는 ‘불법의 대한민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 솔직히 국가권력이 개인의 역사에 어떻게 침투하는지, 그래서 우리는 이 빌어먹을 사회에 끊임없이 상식을 요구해야 한다는 묵직한 감상은 이후 나이가 들어 재방송을 보았을 때의 느낌이었고 당시에는 드라마가 나열하는 조각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울렸다. 학교에는 이정재와 하나도 안 닮은 친구가 검도 목검을 들고 나타났고 나는 대구에서 정동진까지가 기차로 참으로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 고현정.

그 추억만이 이 드라마의 가치는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책에서, 방송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주장을 하는 게 업이지만 자본의 논리에 진격하라는 우주의 기운에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런 회의감에도 이 노동을 계속할 수 있는 건 <모래시계>, 그중 광주에서 1980년 5월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려준 7, 8회 덕분이다. 후배를 만나러 광주에 갔다가 얼떨결에 시민군이 된 태수는 민주주의가 삶의 언어임을 보여주고 계엄군으로 광주를 짓밟는 데 동참한 우석은 훗날 검사생활 내내 이때의 원죄의식에 힘들어하며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태수가 시위에 참여하려는 후배에게 총 든 군인을 상대할 수 없다면서 말리자 후배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해야죠. 그 총은 우리가 세금 내서 산 총인데 국민한테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해야죠. 가만두면 그 자식들이 또 그럴 게 아니오. 요렇게 해도 된다고 할 것 아니오.” 그제야 알았다. 왜 선거에서 전라도는 김대중에게 몰표를 주는지, 왜 해태 타이거즈의 팬들이 잠실구장에서 그렇게도 김대중을 외쳤는지.

“내게 광주를 알려주는 사람이 왜 없었지?” 내가 진실을 알고 던진 질문이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성당의 신부님도, 뉴스나 신문도 15년 전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은 몰라서, 아는 사람은 말할 수 없어서였을 게다. 그 틈을 파고든 것은 입에도 담기 싫은 더러운 말들이었다.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무장을 했으니 총을 쏠 수밖에’ ‘그래도 전두환 때가 경제는 좋았잖아’ 등등. 하찮은 말들에 죄를 묻지 않으니 나쁜 대통령 9년의 시절에는 북한 개입설까지 주장이랍시고 여기저기서 등장해 여론을 어지럽혔다. 몇 년 전 5월18일에 강의 전 10초 묵념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한 학생이 ‘논쟁 중인 사건을 일방적으로 가르친다’고 강의평가를 한 적도 있었다. 민주화운동을 논쟁할 수도 있는 세상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었는데 이때도 <모래시계>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나는 드라마 한 편이 엄청난 힘을 가졌음을 경험했다. 사소한 대중매체가 내게 엄청난 사실을 알려줬듯이 사소한 나에게도 영향받을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작아도 중요한 한 조각으로서의 역할을 내가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사회를 당당하게 비판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내가 마주한 현실을 늘 의심하고 또 나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서는 좋은 역사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선생님이 바로 <모래시계>였다. 하지만 드라마 외에는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슬픈 15년이 있었기에 여전히 광주의 진실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 건물에 있는 총알 자국을 보고 ‘이게 총알 자국이야’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데만 수십 년이 걸렸다. 시민을 향해 총을 쏘라고 했던 ‘누구나 다 아는’ 발포명령자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다. 모두가 <모래시계>처럼 사람에게 다가가 국가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해야지만 진실은 규명될 것이다.

<오찬호 |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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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것을 도둑맞은 것 같다

거친 숨 몰아쉬며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다녀간 것일까

 

아무것도 없다

공허뿐이라고

그냥 가 보는 거라고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구구구 모이 몇 알 주워 먹느라

할퀴며

깃털 뽑히며

두 날개 뭉개졌는데

벌써 떠나야 한다고 한다

 

어디를 흔들어야 푸른 음악일까

가랑잎도 아닌데

자꾸 떨어져 내리다가

내일은 어디일까

정말 어디를 흔들어야

다시 푸른 음악일까

 

문정희(194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이 술술 풀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간곡한 기대는 곧잘 도둑맞는다. 그럴 때는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되기도 한다. 허허벌판에, 폐허에 홀로 서게 되기도 한다. 무엇이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이끌었을까. 시인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탄식을 실어서 시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을 썼고, “모래언덕이라는 이름의 모텔에서/ 솨아솨아 하룻밤을/ 한 생애처럼/ 모래알을 읽었다//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에 파묻혀 모래가 되었다”라고 노래했다.

그러나 허탈감과 무력감이 높은 파도처럼 닥쳐왔더라도 우리는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야생처럼 뜨겁고 생생하게 살아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흔들었을 때 우리 삶의 실내(室內)에 푸른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란다. 마치 악기를 흔들면 아름다운 선율이 나오듯이. 산들바람이 버드나무를 부드럽게 흔들면 연녹색의 싱그러움이 나오듯이. 푸른 음악은 어디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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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직업환경의학 의사이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노동자에 대한 특수건강진단을 하고 있다. 출장검진을 하러 사업장을 방문하면 보통 10분 정도 미리 사업장 유해물질 관리실태를 살펴본다. 지난주에 방문한 사업장은 자동차 부품공장인데 공장 한쪽에 드럼통이 있었고, 화학물질이 들어있는 드럼통은 화학물질을 나누어 담기 편하도록 뚜껑이 열린 채 놓여 있었다. 선반 작업을 하는 작업자에게 물었다. 무슨 물질인지 알지 못하고 CNC선반 작업을 하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냄새를 맡으면 어지럽다는 얘기를 했지만 건강상 어떤 위험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보관된 장소 주변에는 물질안전보건자료가 게시되어 있지 않았다.

물질안전보건자료란 화학물질의 특성, 건강상 유해성, 보관방법, 사고 시 대처방법 등이 기재되어 있는 서류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화학물질 공급업자가 구입자에게 제공하고 해당 화학물질의 용기에 경고 표지를 부착해야 한다. 해당 화학물질을 제공받은 사업장은 이 자료를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볼 수 있도록 비치하고 보건담당자는 해당 화학물질을 다루는 노동자에게 교육도 실시하여야 한다.

2005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일하던 23세 여성인 황유미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1년 후 같은 공정에서 근무하던 이숙영씨도 백혈병 진단을 받고 두 달 만에 사망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서 황유미씨가 근무한 공정에서 역학조사를 실시했지만 원인 물질은 알 수 없었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영업비밀이라는 명분으로, 사용된 화학물질의 성분 및 특성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업비밀은 산재인정 시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반도체 팹 공정에서 사용하는 어떤 화학물질의 물질안전보건자료에는 7~17%의 성분이 영업비밀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업비밀인 성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관리도 할 수 없다. 사업주는 노동자가 다루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알권리를 보장할 수 없게 된다. 전문가들은 노동자들이 얼마나 노출되는지 측정할 수도 없고, 건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조치할 수도 없게 된다. 그리하여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자연유산하거나 암이 발생하더라도 그 원인은 영원히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현재 산업안전보건법상 영업비밀로 분류할 수 있는 주체는 화학물질을 양도, 제공하는 사업자이고 구체적인 범위는 고용노동부령에 위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령에는 영업비밀로 분류되는 사유를 물질안전보건자료에 밝혀야 한다고만 돼있어, 화학물질을 제공하는 사업자가 영업비밀로 판단하면 영업비밀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제도상의 허점을 해결하고자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 영업비밀 사전심사제도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최근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반영되었다. 사전심사제도란 화학물질을 양도·제공하는 사업자가 물질을 제조함에 있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온 과정, 공개될 경우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을 기업이 입증하라는 것이다. 유럽과 캐나다·미국·일본에서 사전심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해당국가 다국적기업도 이미 받아들여 사회적으로 정착된 제도이다.

그런데 경총은 이 개정안을 반대하는 공식의견서를 국무총리실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서 더 이상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이 글을 쓴다. 이 개정안은 노동자뿐 아니라 시민의 건강보호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습기 살균제의 성분도 영업비밀이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기업들이 화학물질을 영업비밀로 하는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책무이다. 하루빨리 사전심사제도를 도입해서 노동자와 국민이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권리가 실현되기를 바란다. 노동부는 법개정에 그치지 않고 모든 작업현장에서 노동자가 취급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가 비치, 게시, 교육될 수 있도록 근로감독을 강화할 것을 촉구한다.

<방예원 | 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 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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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한·일·중 3국 협력에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발원지는 한반도이며 주인공은 한국이다.

지난 9일 제7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가 도쿄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3국 정상회의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며,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사이에 개최된 만큼 국내외의 이목이 집중되었고 그만큼 성과도 컸다.

첫째, 3국 정상은 4·27 남북정상회담의 결실인 ‘판문점선언’을 지지하고 환영하는 특별성명을 채택했다. 3국 정상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특별성명을 발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독일 통일의 예에서 보듯 북핵 해결, 나아가 한반도 평화정착은 주변국 지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에 특별성명의 채택은 의미가 크다.

둘째, 이번 회의는 한·일·중 3국 간 협력의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1999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선도로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2008년에는 각국에서 별도의 3국 정상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만큼 3국 정상회의는 탄생부터 우리 외교의 노작(勞作)이었다. 그러나 3국 간 양자 관계의 부침에 따라 정상회의가 매년 열리지 못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 그때마다 3국 정상회의를 통해 양자 관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돌파구를 마련하였다.

셋째, 이번 정상회의에서 3국 지도자들은 자유무역협정(FTA),산업협력 등 국가차원의 미래를 위한 협력 문제 이외에도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분야의 실질협력 방안에 대해서도 폭넓게 논의했다. 3국은 미세먼지를 비롯한 대기 오염 문제 해결, 3국 간 로밍요금 인하 등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2020년까지 3국 간 인적교류의 규모를 3000만명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합의하였다.

오늘날의 외교는 국민의 지지와 이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외교가 국민들의 실생활과 직접하게 연결된 당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도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할 때 국민들이 보내는 성원과 박수가 커질 것이다.

필자는 이번 3국 정상회의 준비를 위한 고위급대표(SOM)로 참석했다. 우리 정부의 신중하지만 과감한 비핵화·평화외교가 3국 협력의 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것처럼,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가 동북아 3국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위한 새로운 구심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윤순구 | 외교부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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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화제인 옥류관 냉면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옥류관에서 두어 번 먹어봤는데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칡냉면이라 색이 검고 국물도 시큼했다. 얹어서 나오는 다대기 양념을 풀면 약간 달기까지 했다. 먹어본 분들이 왜 그렇게까지 열광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지난 10년 평양냉면을 먹어본 바에 따르면 그 진미는 역시 메밀로 뽑은 면발과 고기육수에 있다.

을밀대, 을지면옥, 필동면옥, 남포면옥, 정인면옥, 우래옥, 봉피양 등등 명가라 불리는 식당을 두루 섭렵해봤는데 내 입맛은 을밀대 쪽이다. 을밀대의 특징은 진한 고기육수다. 살얼음이 낀 고기육수를 한 모금 머금었을 때의 그 풍부한 맛이란. 을밀대의 면발은 다른 냉면집에 비해 쫄깃하다. 녹말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명품 평양냉면일수록 메밀 비중을 높인 순면을 강조하는데 순면은 국수가 힘이 없고 툭툭 끊어진다. 나는 녹말 비중이 높은 쫄깃한 면이 더 좋다. 그 이유는 저작활동을 열심히 할 수 있고, 많이 씹어 메밀향이 입안 가득 퍼지기 때문이다. 한참 씹다 보면 콧김으로 메밀향이 밀려나온다.

우래옥도 고기육수가 강한데 국물을 내는 고기의 부위가 을밀대와 좀 다른 것 같다. 육향이 좀 낯설다. 을지면옥과 능라도는 내 지인의 표현에 따르면 하드코어다. 국물이 맑고 감칠맛은 깊이 숨겨져 있다. 면도 얇고 잘 끊어진다. 흔히 말하는 무심한 맛이라 하수들에겐 고명하게 다가온다. 옛날 사람들도 순면으로 먹었을까? &lt;음식디미방&gt;을 보면 정제한 메밀의 껍질을 벗겨 불린 녹두와 섞어 갈고 더운 물로 눅게 반죽한다고 되어 있다. 그 외에도 시면가루(녹말가루)로 만든 국수가 몇가지 등장한다. 역시 조선시대에도 국수의 쫄깃함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면(누들)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음식 형태이고 역사가 오래되어 보이나 인류 발달단계에서 보면 비교적 최근에 나타난 음식 형태다. 고고학 발굴 결과로 보면 우리 민족의 탄수화물 섭취는 낟알을 맷돌에 갈아 가루로 만든 미숫가루 형태에서 시작했다. 그러다가 벼농사가 개시된 청동기시대에 곡물을 증기로 쪄서 먹기 시작했다. 이는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사실로 알 수 있다. 시루가 쓰이던 시대에는 쌀을 가루 내어 시루에서 찐 떡, 혹은 쪄낸 떡을 돌확에서 친 떡이 평상시의 음식으로 상용되었다. 그러다가 무쇠솥이 개발돼 주방에 걸리면서 본격적인 밥의 시대가 열린다. 상용음식으로서 떡과 밥의 역전은 시루에서 무쇠솥으로의 용기 변화에서 살펴진다. 국수는 고려, 조선시대에나 와서야 먹기 시작했다. 일상식은 아니고 주로 제례음식이었는데 국수의 면발이 길기 때문에 장수와 해로를 바라는 의미에서 생일상, 잔칫상에 올랐다. 양반들이 고량진미로 술을 마시고 입을 개운하게 해주는 마무리 음식으로도 애용했다. 그러던 국수가 현대로 넘어오면서 본격적인 한끼 음식으로 거듭났다. 집에서는 라면과 소면을 먹고 밖에 나오면 칼국수나 자장면, 냉면, 파스타 등을 다양하게 사먹는다. 나도 면을 너무 좋아해 하루에 한끼 이상을 면으로 해결하는 것 같다.

면이 이처럼 우리의 입맛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범박한 추측으로는 촉각과 청각이 한몫하지 않을까 한다. 면은 입술에 닿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밥은 숟가락으로 떠서 혓바닥으로 직행하지만, 면은 혀로 물어 입술을 스치며 빨려 올라가며, 그 과정에서 그 미끈한 면발과 입술이 아주 길게 마찰되는 과정이 있다. 그리고 빨아들일 때 나는 후루룩 소리는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돌게 하여 식욕을 유지시킨다. 마치 꼬리가 달린 것처럼 국수의 끝이 코끝을 때리기도 한다. 밥에 비해 국수는 오감적 차원의 만족감을 높여주는 음식인 셈이다.

떡이나 밥에 비해 곡물 음식의 후발주자이자 미식의 개척자인 국수는 왜 상용음식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까. 가끔 내 머리를 스치던 궁금증이다. 우선 국수는 배불리 먹어도 배가 빨리 꺼진다. 치명적인 약점이다. 대부분의 국수는 밀가루이기 때문에 쌀에 익숙해진 한국인의 소화능력에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먹고 남은 국수를 처리하는 일의 난감함이 클 것이다. 국수든 냉면이든 자장면이든 모든 국수는 불어터진다. 양을 딱 맞게 하지 않으면 버려야 하는 난감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면의 치명적 약점이다.

같은 밀가루라도 빵은 그렇지 않다. 뜯어먹다가 내던져둬도 나 먹어줘 하며 기다린다. 그러니 짧게 피었다 지는 꽃 같은 면은 가정집 식탁의 지배자가 될 운명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면식가들의 더욱 애틋한 사랑을 받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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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8년 만에 혼인신고를 결심했다. 남편이 ‘세대주’가 되고 ‘호주’가 되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며 호기롭게 혼인신고를 거부했던 내가 마음을 바꾸게 된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부모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가 마주하게 될 편견과 차별이 두려워서였다. 유치원에 입학하자 유치원에서는 주민등록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며칠 전에는 가정의달을 맞이해 ‘아빠데이’를 한다며 신청서를 보내왔다. 대수롭지 않게 이루어지는 가족관계 서류 제출 요구와 가족동반행사가 미혼모와 한부모가족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가늠하긴 어렵지 않다.

김정숙 여사가 10일 오후 을지로 페럼타워에서 열린 ‘한부모가족의날’제정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모니터링한 결과 민간기업의 17.1%, 공공기관의 9.5%가 입사지원서에 혼인 관련 사항을 기입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와 직장에서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하는 것은 우리의 흔한 일상이다. 문제는 한부모가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2017년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 응답자의 90.5%가 혼인 외 가족에 대해 편견이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고 대답했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 실시한 인식조사에서도 91.4%가 미혼모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혼모나 이혼 가정임을 드러낼 수 있는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차별적인 이유이다. 그러나 과다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행태를 금지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법적 조치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미디어 뉴스를 통해 우리는 매일같이 미혼모와 한부모가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얼마 전에 보도된 증평 모녀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탄식했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는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사회적인 미담으로 보도되는 ‘베이비박스’도 ‘유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미혼모와 혼인 외 가족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결과이다. 입양 보내는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가정 출신이라는 통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한부모가족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차별을 금지하고 이를 학교와 사회에서 교육하고,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가져가야 할 기본적인 대책일 것이다. 단기간에 실효를 거둘 수 있는 대책은 정부가 획기적인 지원 정책을 내놓고 이를 실행하는 것을 온 국민이 체감할 수 있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에 미혼모들이 직접 무대에 오른 연극 행사에 김정숙 여사가 참여해 격려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며 개인적으로 환호했다. 대통령 부인이 미혼모와 함께했다는 뉴스가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한부모의 당당한 삶을 응원”한다면서 임신·출산, 자녀 양육, 학업·취업·주거 등 자립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 정책이 꼭 실효성 있게 집행되기를 기대한다. 변화된 법과 제도가 있어도 실질적인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사문화된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한편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한부모가족 대책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지 의문이 들었다. 미혼모나 혼인 외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인식을 감안한 결과 상대적으로 사회적 시선이 온정적인 ‘청소년’에게 집중한 것은 아닐지 추측해본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하기엔 씁쓸하다. 2015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에서 수집한 표본상 한부모가족의 평균연령은 43.1세로, 40대 61.2%, 30대 이하가 25.3%, 50대 이상이 13.5%인 것으로 나타난다. 한부모가족 대부분이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청소년’ 한부모만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여성가족부의 대책이 아쉽다. 제1회 법정 한부모의날(10일)을 보내면서 자문해보자. 우리 사회가 미혼모를 포함한 한부모가족에게 낙태, 베이비박스에 유기, 입양, 양육 중 무엇을 권하고 있는지.

<소라미 변호사,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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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서운 눈매의 남자가 홍콩의 섬으로 향한다. 그는 마약을 조제하고 살인과 인신매매를 일삼는 인물을 체포하는 임무를 띠고 있다. 미국 정보부의 요청으로 문제의 마약소굴에 잠입하는 사나이. 섬에서는 한이라 불리는 마약왕이 3년 간격으로 주최하는 무술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주인공은 대회에 참여한다는 명분으로 본거지에 잠입하여 한의 일당과 사투를 벌인다.

소개하는 내용은 1973년 12월 말 한국에서 개봉했던 영화 <용쟁호투>의 줄거리다. 주연배우는 신장 173㎝, 체중 62㎏의 배우 이소룡(브루스 리·리샤오룽). 그는 이 작품에서 세계 최고의 무술배우로 명성을 굳힌다. 이소룡은 <용쟁호투>에서 직접 연기, 무술지도, 각본, 제작에 참여한다. 이전까지 홍콩 무술영화에서는 배우에게 연기 외에 특별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홍콩 합작영화 <용쟁호투>의 촬영과정은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책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에 의하면 카메라 장비 대부분은 수리 불가 상태였다. 매춘부와 부랑자를 영화에 참여시켜 산만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격투 신에 필요한 에어백이나 매트리스가 없어 스턴트맨은 부상에 시달렸다. 무술배우로 합류한 홍콩 폭력조직 삼합회 조직원 간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영화를 완성하기까지는 이소룡의 존재감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초반부터 이소룡과 갈등을 빚었던 감독 로버트 클루즈는 그가 반사신경이 가장 빠른 배우라고 인정했다. 고질적인 허리통증, 덥고 습한 날씨, 체력 고갈 속에서도 이소룡은 주연배우에게만 제공하는 특식을 거부하고 촬영 보조기사들과 함께 식사하며 우호적인 관계를 다졌다.

우여곡절 끝에 <용쟁호투>는 미국시장에 진출한다. 이소룡은 단순한 액션배우가 아니라 영화 전반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었다. 이소룡의 명성은 <당산대형> <정무문> <맹룡과강>에 이어 <용쟁호투>에서 정점을 찍는다. 워너 브러더스사에서는 이소룡에게 5편의 영화를 추가로 제작하자고 제안한다. 굴지의 영화사들이 왜소한 체형의 액션배우에게 경쟁적으로 손을 내민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항상 뭔가를 배웁니다. 그것은 항상 자신이 되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자신감을 갖는 것입니다. 밖에 나가서 성공한 사람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그를 따라 하려 하지도 마세요. 지금 홍콩에서 널리 유행하고 있는 현상 가운데 우려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남을 모방하려고만 할 뿐 결코 존재의 근원에서 ‘어떻게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이소룡의 생각은 그를 영화계의 전설로 만든 동력이다. 미국 전역에 쿵후 도장 체인을 열 계획을 세웠던 무술가. 자신감, 마음의 평온, 성공 모두를 취하고 싶었던 배우. 그는 유명세라는 자유인이 극복해야만 하는 거대한 장벽과 마주친다. 사업 제안이나 돈을 빌리려는 지인들, 사인 공세에 시달리는 일상, 정서불안과 분노조절장애가 그에게 형벌처럼 내려진다. 그제서야 이소룡은 어머니의 조언을 떠올린다. 유명인의 삶은 생각만큼 편하지 않으며 일반인의 삶과 많이 다르다는 충고였다. 불면증, 두통, 건망증에 시달리던 이소룡은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다는 말을 지인에게 털어놓는다. 1973년 7월20일. 그는 불과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스타의 장례식에는 음악가 프랭크 시내트라, 톰 존스, 세르지오 멘데스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자신의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믿었던 자유인. 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기회를 만들겠다던 승부사. 지식과 의지보다는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했던 무도인. 부정적인 사고는 자신감을 죽이는 마약이라고 일갈했던 예술가. 행복을 추구하되 절대 만족하지 말라던 철학자. 이 모든 생각을 가감없이 영화에서 보여준 브루스 리.

남북 간 소통의 문이 열렸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가의 계산법이 제각각이다. 자유인 이소룡의 생각을 평화 유지에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지금이다.

<이봉호 대중문화평론가, <음란한 인문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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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초상이 났다. 전쟁도 없고 큰 돌림병 돌지 않아도 여전히 줄초상을 겪는다. 

5월1일 ‘영암 미니버스 교통사고’로 운전사를 포함해 여덟 분의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고 일곱 분이 크게 다쳤다. 나이가 가장 적은 분이 58세이고 대부분 70~80대인 여성농민이었다. 최고령은 83세의 어르신이고, 유일한 남성 사망자인 운전자도 72세의 노인이다. 영암 교통사고로 알려져 있지만 사망자 중 영암군 시종면 주민은 3명이고, 나머지는 나주시 반남면의 주민들이다. 가문의 자부심이 높은 ‘반남 박씨’의 시조가 터를 잡았던 그곳이다. 나주 반남면은 영암군과 이웃붙이여서 품을 사고파는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다. 반남면은 165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고 단연 고령화 비율도 높다. 서로 얼굴과 형편은 알고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고를 당했으니 지역사회가 받았을 충격이 클 것이다. 동년배의 노인들이 꽃상여까진 아니어도 태를 묻은 곳에다 몸을 누이는 순한 임종을 매일 기도하고 살았을 텐데 이 깊은 슬픔을 어쩌랴.

지금 영암에서는 총각무 수확이 한창이다. 영암군이 지역의 특산물로 자랑하는 농산물인 ‘영암 알타리무(총각무)’의 수확철이 4~5월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다 참사가 일어났다. 농어촌에서 현금을 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품을 파는 일뿐이다. 미풍양속이라 배웠던 ‘품앗이’ 문화가 사라진 지도 오래고, 한 동리에서도 현금으로 품값을 주고받는다. 새참이나 들밥은 배달음식을 먹곤 한다. 푸성귀가 지천이긴 해도 화폐 없이 삶이 굴러가지 않는 것은 도시나 농촌이나 마찬가지다. 농사도 돈으로 짓는다. 농사의 매 과정마다 기계 부리는 공임, 씨앗, 농약 값이 나가니 현금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이제 모판 낼 힘도 없어서 모를 사와 모내기를 한다. 기초연금이 조금 나오기는 하지만 그 돈으로 생활이 꾸려지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농산물 값이 너무 싸서 그렇다. 그래서 여든이 넘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다. 단순한 용돈벌이가 아니라 생계 차원이다.

텃밭을 일궈 먹을거리를 조달하는 수준을 넘어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나름의 절박한 이유들이 있다. 오래전 혼자 되신 숙모도 자식들이 도시로 오라 해도 할 줄 아는 노동이 농사일 뿐인데 도시로 가면 폐지나 줍지 않겠냐며 남으셨다. 하긴 호기롭게 어머니를 불러올리려는 사촌들의 형편도 빤하다. 시골 고등학교 나와 도시에서 하는 일들의 거개가 그렇다. 농업 노동도 엄연히 임금노동이다. 하지만 ‘노동’이란 개념이 약해서 법적 제도가 취약하다. 천만다행으로 이번 사고 버스는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동차도 수두룩하다. 농장주가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해 두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것은 생각조차 못했을 것이다. 농촌에서의 보험이란 작물에 대한 재해보상보험이나 의료보험 정도일 뿐 사람에 대한 안전장치가 아니다. 농촌에서는 다치면 병원도 멀어서 장애를 입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더 잦다. 교통수단도 미비해 일상적인 치료를 받는 일도 벅차다. 한꺼번에 약을 지어와 중간 점검도 없이 장복을 한다. 요즘 총각무 경락가가 5㎏에 6000원이다. 할머니들이 받았던 일당 7만5000원. 여기에서 차비와 소개비 떼고 새벽부터 6만원을 벌었다. 그녀들이 마지막에 쥔 것은 돈다발이 아니라 총각무다발이었다. 올해는 총각김치 먹다 보면 눈물 나겠구나, 아니 꼭 울어야겠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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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총선에서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가 이끄는 야권연합 희망연대(PH)가 압승했다. 1957년 독립 후 줄곧 집권해온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를 주축으로 한 집권여당연합 국민전선(BN)이 처음으로 여당 자리를 내주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세계의 눈은 60년 만의 여야 교체보다 ‘개발독재자’ 마하티르의 총리직 복귀에 더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15년 만에 권좌로 돌아오는 마하티르의 나이가 93세다. 최고령 국가정상인 튀니지의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보다 한 살 더 많다. 그의 고령을 집중 부각한 여당의 전략은 먹히지 않았다. 몇 시간씩의 선거 유세 강행군을 거뜬히 해내 노익장을 과시했다.

마하티르 복귀의 결정적 비결은 은원 관계를 뛰어넘은 합종연횡이다. 당초 마하티르는 이번에 실각한 나집 라작 총리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다. 그러나 마하티르는 나집의 비자금 스캔들이 터지자 퇴진 운동을 벌였고, 이 때문에 여당에서 쫓겨났다. 이에 마하티르는 과거 자신의 정치적 동반자였다가 동성애 혐의로 투옥 중인 야당 지도자 안와르 이브라힘 전 부총리와 손을 잡았다. 안와르는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마하티르에 반기를 들다 실각했다. 20년간 숙적으로 지내오던 두 사람이 정권교체를 위해 극적으로 화해한 것이다.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었다.

노정객 마하티르를 다시 불러낸 것은 나집 총리 정권의 부패다. 말레이시아 시민들의 반부패와 변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내는 게 그의 최우선 과제다. 그 외 ‘아시아적 가치’를 외치며 보여온 반미주의적 태도를 그대로 견지할지, 또 말레이시아 경제권을 장악한 중국계와 부상한 중국을 어떻게 대할지도 관심사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다. 고령인 탓에 벌써부터 후임이 거론된다. 다음달 석방되는 안와르가 복권을 거쳐 적절한 시점에 총리직을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철권통치하면서 ‘근대화를 이끈 국부’와 개발독재자란 엇갈린 평가를 받은 마하티르. 변화한 정치 환경에서 마하티르가 예전과 같은 리더십을 펼칠 수 있을까. ‘말레이시아판 박정희’의 귀환은 한국인들에게도 간접 경험이 될 것 같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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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국회에서 감정노동 관련 법안이 통과되었다. 감정노동 논의 10년 만의 결실이다. 법안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하나 그나마 촛불혁명 덕분에 가능한 결과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를 받아 감정노동을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때마침 작년 5월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국회와 노동부에 감정노동 개념을 공식화하고 감정노동자 보호조치를 마련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감정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007년 감정노동 해결을 위한 국가인권위원회 첫 간담회 자리가 기억에 선하다. 당시 한 관계부처 공무원의 “이 세상에 스트레스 안 받고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라는 발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주무 부처 공무원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정책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취업자 가운데 약 740만명이 감정노동자로 분류된다. 그들에게 제조업 중심의 산업안전보건법은 실효성이 없었다.

감정노동이란 용어는 1983년 앨리 러셀 혹실드의 <관리된 마음>이라는 책에서 제기된 이후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책에서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소비자들이 우호적이고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외모와 표정을 유지하고, 자신의 실제 감정을 억압하거나 실제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하는 등 감정을 관리하는 노동”을 일컫는다. 개별 기업과 조직에서는 고객에게 표출하는 감정적 서비스의 양과 질이 ‘매출’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매출이 인격’이라는 조직문화나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고객에게 눈맞춤은 기본이고 무릎을 꿇고 서비스를 제공하게끔 한다. 그 순간 고객과 노동자들은 동등한 인간일 수 없다. 아무리 서비스라는 단어의 어원이 라틴어 ‘노예’(servus)에서 출발했더라도 강요된 서비스는 비인간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서비스 노동자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노동 문제는 감정노동 그 자체보다 감정부조화가 핵심이다. 감정부조화는 실제 감정과 겉으로 표출하는 감정 사이의 격차인데, 외적 현상으로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과 같은 건강장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예방과 사후관리 필요성이 제기된 지 오래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11곳의 지자체에서는 감정노동자 보호 조례가 제정되었다. 과거와 달리 노동을 보는 관점이 바뀌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서울시는 감정노동 조례와 정책 이후 감정노동 가이드라인과 지침을 만들었다.

감정노동 교육 의무화나 시민홍보 등 각 영역별 보호조치를 구체화했다. 대표적으로 폭언이나 성희롱 같은 위험이 발생할 경우 일터에서 벗어날 권리와 같은 업무중지권을 명시한 것은 의미가 있다. 또 심리적인 휴식이 필요할 때 적정휴식을 제공하도록 규정했다. 상품화된 노동이 아니라 인간중심적 노동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의 정책이다. 무엇보다 조직 내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감정노동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노동조사관’ 신설은 의미가 있다. 사실관계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적인 사과 등을 지시함으로써 노동자에게 인격적인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이 담겨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EU)은 노동자와 고객 간의 업무 수행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체적, 정신적 폭력을 중대한 업무상 재해로 구분한다. 독일은 노사정 세 주체가 “노동세계에서의 심리적 건강을 위한 공동 선언”을 한 바 있다.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상시적인 상담 창구를 열어 놓고, 해마다 전국적인 토론회를 개최하고 감시자 역할과 정책제안도 한다. 인간의 감정까지 상품화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유물이자 반사회적 노동형태인 과도한 감정노동은 없애야 한다는 취지다. 앞으로 감정노동자들의 일이 ‘욕먹고, 낭비적인 일’이 아니라,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일’로 바뀔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도 노사정이 함께 지혜를 모아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위한 사회적 대화와 전략을 갖출 시점이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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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탄생시킨 새 정부이지만, 수구세력이 짓밟은 헌정질서를 되살리고 더 나은 나라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공익보다 사익에 집착하는 자들이 사회 구석구석에 건재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안타깝게도, 극소수의 적극 가담자가 아니더라도 공무원들은 상명하복의 명분 아래 권력의 수족 노릇을 합리화하는 관성에 익숙하다. 지금 공무원 사회는 실력 있고 양심적인 개혁파와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수구파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싸움에서 반드시 전자가 승리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의 두 사건은 비리사학과 유착관계인 일부 관료, 즉 ‘교육마피아’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첫째는 교육부가 작년 말부터 운영한 사학혁신추진단에 접수된 비리사학 제보 내용이 제보자 신원과 함께 수원대 등 해당 비리사학에 유출된 사건이고, 둘째는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동국대 한태식 총장(보광 스님)의 연구부정 의혹에 대해 보여준 몰상식한 대응이다.

교육부는 비리사학 제보 내용을 빼돌린 서기관을 직위해제하고 중앙징계위원회에 중징계를 요청하는 동시에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당연한 조치이지만, 그것으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비리사학의 횡포에 큰 고통을 당해온 대학 구성원들이 용기를 낸 제보는 100건이 훨씬 넘는다. 교육부는 비리사학과 싸우는 교직원과 학생들을 속여 함정에 빠뜨린 것과 다름없으며, 수많은 비리사학에 대한 추가 제보나 정상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없도록 조직을 혁신해야 하며, 어정쩡한 후속조치로 봉합해서는 곤란하다.

동국대 한태식 총장의 논문 표절은 이미 2015년 총장 취임 전부터 학내 갈등으로 번져 학생회 간부가 50여일의 단식까지 한 사안이다. 대학 자체 조사에서 18건의 표절이 인정되었지만, 이사회가 이를 무시하고 총장으로 임명한 후 재조사에서 표절 판정이 뒤집혔다. 당시 박근혜 정권의 교육부는 이 사태를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작년에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나온 한 총장 논문의 부정 의혹이 다시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지난해 11월13일 연구재단이 내린 판정은 눈을 의심할 만하다. 판정문은 서산대사의 정토관을 다룬 2013년 논문이 백과사전을 4쪽(!) 정도 인용 표시 없이 사용한 의혹에 대해 당시 “교육부의 지침, 피조사자 소속기관의 규정·지침 및 불교학(연구)계의 규정·지침에서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적용 기준이 없었”다고 말한다. 남의 글을 적절한 인용 절차 없이 베끼면 잘못이라는 연구윤리의 상식으로는 불충분하고, 백과사전을 베끼지 말라는 친절한 명문 규정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헛웃음이 나오지만, 어쨌든 백과사전 표절을 부정하지 못하고 있다.

뒤이은 내용도 가관이다. “5개 불교학회의 전·현직 학회장 또는 편집위원장 등의 의견을 청취”한 결과, 1개 학회만 표절을 인정했고 나머지 4개 학회 관계자는 백과사전을 “인용표시 없이 인용한 행위에 대하여 당시에는 이를 제재할 수 있는 기준이 부재”하여 표절이 아니라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연구재단이 자문을 구했다는 불교학회 임원들의 의견, 즉 2013년의 연구윤리규정에 해당 기준이 없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2005년 황우석 사건 이후 각 대학과 학회는 연구윤리규정을 만들고 관련 위원회를 설치했으며, 관련 정책은 계속 강화되어왔다.

“다수 불교학계의 통상적인 판단기준”에 따라 한 총장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함으로써 연구재단은 불교학계의 명예를 싸잡아 훼손했으며, 이 수상한 학회들 및 회의록의 정보 공개도 거부했다. 또 해당 논문이 한 총장이 일본어로 발표한 논문의 8쪽가량을 다시 가져다 쓴 중복게재 의혹도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면죄부를 주고 있으니, 이 또한 사실상 중복게재를 인정한 셈이다.

연구재단은 연구윤리의 기본조차 무시했다. 일반 범죄와 달리 연구부정에는 시효가 없다.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연구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연구부정 여부를 판정하지 않는다면, 그릇된 주장이 과학적 연구 결과로 통용되어 후대의 연구나 교육에 막대한 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일까지 해외 사례를 인용하자니 참담한 심정이지만, 이웃나라 일본은 20, 30년 전 논문도 연구부정으로 판정되면 논문을 철회한다.

한 총장 논문 표절의 제보자는 관련 규정에 따라 지난 2월 교육부에 재조사를 요청했다. 교육부가 이번만은 방관하지 말고 신속하게 대응해야 한다. 또 며칠 전 마감된 연구재단의 신임 이사장 공모에 지원한 교수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중책을 맡을 자격이 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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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쌍방이 이 선으로부터 각기 2㎞씩 후퇴함으로써 적대 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설정한다.”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또는 비무장지대로 향하는 어떠한 적대행위도 강행하지 못한다.” “비무장지대 내의 어떠한 군인이나 민간인이거나 그가 들어가려고 요구하는 지역의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 없이는 어느 일방의 군사 통제하에 있는 지역에도 들어감을 허가하지 않는다.”

한국전쟁은 한반도에 새로운 지리적 구역을 만듦으로써 중단되었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휴전협정은 휴전선을 따라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폭 4㎞의 땅을 비무장지대(DMZ)로 정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접근을 엄격하게 제한한다고 명시하였다. “쌍방에 막대한 고통과 유혈을 초래한 한국 충돌을 정지시키기 위하여” 누구도 갈 수 없는 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휴전협정문의 “조건과 규정의 의도는 순전히 군사적 성질에 속하는 것”이었지만 그 효과는 군사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생태환경에 가져온 변화가 대표적이다. 휴전 이후 65년간 사람의 발길이 엄격히 제한된 비무장지대에는 여러 생물들이 터를 잡았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수행된 생태조사 결과들을 취합하고 분석하여 2016년 환경부가 발간한 &lt;DMZ 일원의 생물다양성 종합보고서&gt;에 의하면, 91종의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비롯하여 4800종이 훌쩍 넘는 동식물이 이 좁고 긴 땅에 살고 있다. 이것은 한반도 전체에 서식하는 생물종의 20%, 멸종위기종의 41%에 해당하는 숫자다. 반달가슴곰, 산양, 사향노루와 수달 같은 포유류와 겨울철새인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비무장지대와 민간인통제구역을 서식지로 삼는 대표적인 멸종위기종들이다.

누구도 갈 수 없도록 철책이 둘러진 땅은 그 어느 곳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생물이 사는 곳이 되었다.

전쟁과 환경 변화의 관계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리사 브래디는 냉전의 마지막 남은 유물이라는 정치사적 의미에서 한발짝 벗어나 비무장지대가 갖는 환경사(環境史)적 의미에 주목한 바 있다.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갈등 속에서 만들어진 땅의 환경 변화는 그 남쪽과 북쪽에서 인간 활동의 결과로 나타난 광범위한 환경 변화와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비무장지대는 몇 십 년 동안 외교적 실패를 상징해 왔지만, 환경적 관점에서 본다면 냉전이 가져온 최대의 성공”이기도 하다. 비무장지대의 생태가 잘 보존된 데에는 지속된 군사적 긴장관계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전쟁과 갈등의 결과로 만들어진 땅의 역설이다.

우리는 또 한번 정치문제와 환경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역사적 지점을 지나고 있는 듯 보인다.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구체적으로 ‘통일’이라는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함께 ‘번영’을 강조한 판문점선언문은 당장 남북 간 경제협력과 새로운 개발사업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인프라 건설이다. 경의선과 동해선 철도를 잇는다는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높고, 이것이 남북 모두에 가져올 경제 효과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크다. 분단으로 인해 섬나라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남한 사람들에게는 대륙으로 연결된 철도를 이용해 부산에서 유럽까지 여행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낭만적인 기대감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구상은 ‘평화발전소’ 건설이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정부는 북한의 심각한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중장기 협력방안으로 접경지역 또는 비무장지대에 발전소를 건설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와 같은 사업들은 평화에 대한 열망과 ‘번영’에 대한 기대를 철도와 발전소의 형태로 ‘물화’하는 역할을 한다(최형섭, ‘인프라와 한국의 미래’ 참고).

그러나 한층 고조된 남북 간 화해 분위기는 비무장지대에 사는 다양한 생물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일 수만은 없다. 이미 오래전 과학자들은 비무장지대 안에서 사람들의 활동이 생태계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도로 건설과 같은 개발 사업이 비무장지대를 서식지로, 번식지로, 그리고 월동지로 삼는 멸종위기종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군사적 긴장이 누그러지고, 좁고 긴 땅을 가로지르는 도로가 늘어나고, 사람과 물건의 이동이 잦아질수록 비무장지대 생물들의 자리는 좁아질 것이다.

한반도에 어렵게 찾아온 협력의 기회를 비무장지대의 환경생태 보존을 위해 포기할 수는 없다. 다만 우리가 아주 어려운 이중의 과제에 직면해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정치적 평화를, 다른 한편으로는 생태환경 보존을 모색해야 한다.

철도나 발전소를 짓듯이 평화에 대한 의지로 비무장지대 생태를 보존할 수는 없을까. 우리 정부는 이미 비무장지대를 생태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곳으로 특별히 지정하고 관리하고 있다. 자연환경분야 최상위 종합계획인 자연환경보전기본계획은 비무장지대를 백두대간, 도서연안, 5대강 수생태축과 더불어 ‘국가 핵심 생태축’으로 구분한다. 2016년에 수립된 제3차 자연환경보전기본계획은 2025년까지 비무장지대와 민통선 일대의 지역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유네스코 등재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여러 개발계획이 빠르게 진행될 때 비무장지대의 생태 보존계획 또한 철저히 계획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끊어진 철도를 연결하거나 발전소를 짓는 일만큼 비무장지대 생태환경을 조사하고 보존하는 일은 꼼꼼하고 단호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연둣빛 잎사귀가 막 돋아난 숲을 배경으로 도보다리 위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두 정상의 모습은 새 소리와 함께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박새나 직박구리 같은 텃새들뿐 아니라 되지빠귀 같은 여름철새까지 총 13종의 한반도 대표 여름새들이 내는 소리였다. 미래의 비무장지대에서도 여전히 이 새들을 만날 수 있을까.

<강연실 | 과학잡지‘에피’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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