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훈 | 건축가



책이란 속을 읽어야 제맛이지만 겉을 구경하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책방에서의 책 구경을 책이름에서 시작하니, 책이름에 ‘책’ 자가 들어간 책이 꽤 많더라. 동명이책(同名異冊)의 ‘책’은 여러 종이고, ‘한 권의 책’은 한 권으로 끝나지 않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청소년 시기에 나를 깨우쳐준 한 권의 책’ 또는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등과 이어지며 ‘책 열 권을 동시에 읽으라’고 말하더라. ‘글쓰기가 재미있는 글쓰기 책’을 읽으며 ‘책으로 크는 아이들’이 ‘같은 책 다른 생각’을 키우도록 ‘책 읽어 주는 할머니’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책 읽어주는 여자’와 ‘책 읽어주는 남편’은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으로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책으로 세상읽기’를 한다는 것은 ‘책을 읽을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리라. ‘강철로 된 책’은 ‘책이 무거운 이유’와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인지도 모른다.


요즘, 종이책이 팔리지 않는단다. ‘책 즐겁게 읽는 법’의 안내도 ‘종이책 읽기를 권함’도 약발이 작은 모양이다. 그럴수록 ‘오래된 새 책’들과 ‘내일의 책’을 응원하려면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고 말하며 ‘행복한 책읽기’에 들어야 하리. 그것이 ‘책의 유혹’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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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모두 해고해서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없앨 모양입니다.” 연말연시가 되자 계약해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고 선언한 공공부문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보건복지’ 분야에서 곡소리가 줄을 잇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으로서 보건복지 분야 정보시스템을 통합 운영하는 보건복지정보개발원은 최근 계약직 상담원 42명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계약기간 만료가 이유일 뿐이다. 일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또다시 1~2년짜리 계약직을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칠곡의 경북대병원에서는 노사합의로 상시 업무인 진료보조를 맡는 사람을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정원 확보 과정을 거쳐 정규직화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병원 측은 2년이 도래하는 비정규직 6명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신규 채용된 비정규직으로 대체했다. 해고자들은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경향신문DB)


취약계층을 방문해 상담과 진료를 하는 방문건강관리사. 2007년 제도 시행 후 전국에서 2700명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말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해 300명이 쫓겨났다.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가 이 직종을 무기계약 전환 대상에 포함하라는 공문이 나온 직후였는데, 해고를 단행한 일부 지자체들의 답변은 기가 막히다. “올해부터 시작해 2년 지나면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라는 지침일 뿐이다.” 그러고선 또 10~11개월짜리 계약직 채용 공고를 낸다.


16만명으로 추산되는 학교 비정규직의 경우, 연말연시에 해고된 인원만 1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방과후 코디 노동자들이, 광주에서는 방과후 전담강사·전문상담사들이 집단해고돼 농성을 벌였다. 경기도와 경북에서도 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무려 160여명이 해고된 충남에서는 도교육청 앞에서 이 추운 날씨에 노숙 단식농성이 벌어지고 있다.


공공부문만이 아니다. 지난해 여름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피해가려고 1500명에 달하는 근속 2년 미만 하청노동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꼼수를 썼다. 그런데 이제 6개월 만에 곳곳에서 곡소리가 나고 있다. 해고를 한 달 앞둔 계약직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성실하게 일하면 5년이고, 10년이고 일할 수 있다는 말에 1년11개월간 지각·조퇴 한 번 하지 않고 연장근무는 물론 철야근무 한 번 빠진 적이 없습니다. …월급은 반만 받아도 괜찮습니다. 평생 계약직으로 일해도 괜찮습니다. 일만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하청으로 일한 기간까지 합해 2년을 넘기지 않도록 모조리 해고하는 것이다. 이들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해고된 자리에 또다시 1~2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이 투입된다. 앞에 든 공공부문 사례처럼 ‘비정규직 돌려막기’가 자행된다. 지난 한 해 441만대의 자동차를 판매하고, 9조원대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공룡재벌 현대차에서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지난 대선, 가난한 노동자들의 다수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민주노조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야권연대의 정치도, 노동계급의 정치도 가난한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음은 사실이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권을 거치며 삶의 피폐를 겪어온 이들은, 여야 후보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민생’과 ‘안정’을 강조한 박근혜 후보 쪽으로 쏠림현상이 벌어졌다.


하지만 대선이 끝난 지 한 달도 안돼 ‘민생’과 ‘안정’을 향한 가난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했다. 세계 경제위기가 한반도에 상륙하고 있기에 이들의 열망과 박근혜 정권의 실제 모습은 내내 충돌하고, 모순과 긴장이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가난한 노동자들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다시 한번 해고를 앞둔 현대차 계약직 노동자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노동조합은 조합을 위한 조합입니까, 노동자를 위한 조합입니까. 자동차 부품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곳에서 곧 버려지게 된 노동자입니다. 도와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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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그룹이 10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비정규직 직원 204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한화그룹의 결정은 연간 20억원씩 추가비용을 부담하면서도 노사 상생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대상자 60%(1200여명)가 여성이어서 여성인력 고용안정에 보탬이 된다. 이번 정규직 전환으로 한화그룹의 비정규직 비율은 전체 17%에서 10.4%까지 줄어든다. 한화그룹은 앞으로 상시적인 업무는 계약직 대신 바로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입장이어서 비정규직 비중은 계속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배임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승연 회장의 상황과 연관짓는 견해도 있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비정규직을 줄이려는 한화의 노력은 다른 대기업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규직 전환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가장 큰 것은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32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연간 5조4000억원이 들어간다는 분석도 있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추가 부담으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투자, 청년 일자리 만들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16년까지 사내하청 6800명 가운데 3500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비정규직 노조와 철탑농성 노동자들이 전원 채용을 주장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울산 현대차 고공농성 아래 비정규직 콘서트 (경향신문DB)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시대적 과제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600만명, 임시·일용직을 포함하면 860만명에 이른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하는 엄청난 규모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은 평균 60%에 불과하다. 복지 혜택은 누리지 못한 채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종업원의 고용안정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이대로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기업의 고통분담과 상생노력을 주문하고 있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2015년까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을 합쳐 비정규직 비율을 전체 10%까지 줄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굳이 누가 시킨다고 해서 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들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나서야 한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생산성 향상으로 화답할 경우 건전한 노사관계가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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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가 ‘2012~2021년 댐 건설 장기종합계획’을 지난해 말 확정해 예산 확보에 나섰다는 보도다. 그 내용도 문제지만 그것이 알려진 과정이 우선 황당하기 짝이 없다. 10년 동안 6개의 댐을 건설하겠다는 국가적 계획을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로소 국민이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심 의원이 공개한 ‘댐 건설 장기계획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 등에 따르면 국토부는 환경영향평가법은 물론 환경부의 보완·조정 요청까지 묵살하고 계획을 독단적으로 확정했다. 정부가 바뀌는 시기에 중요한 국가계획을 밀실에서, 그것도 법과 절차를 무시하면서 밀어붙인 저의가 수상하다.


댐 건설은 논란이 많은 사업이다. 이번 계획에 포함된 한강 오대천, 낙동강 장파천·대서천·임천, 금강 지천, 섬진강 내서천 수계의 댐 가운데 세 군데는 이미 주민과 언론, 환경단체 등에서 강하게 문제를 삼았던 곳이다. 장파천의 영양댐은 180㎞나 떨어진 경산시 물 공급용, ‘형님댐’이라는 별명을 얻은 대서천의 달산댐은 포항 공업용수용, ‘지리산댐’ ‘50층 빌딩댐’ 등으로 불리는 임천의 문정댐은 부산 식수 공급용이라는 의심과 함께 타당성·사업성 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환경부도 오랜 노력 끝에 지난해 7월 법제화한 ‘전략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장파천 수계 댐(영양댐)은 계획에서 제외, 지천·내서천·임천 수계 댐은 불필요 의견을 낸 것으로 되어 있다.


세계적 추세와 동강댐 백지화 이후 사실상 동결됐던 국내 흐름을 거슬러 댐 건설이 활발해진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서다.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댐과 다를 바 없는 16개의 보가 들어섰고, 한탄강·영주·보현산·부항·성덕댐과 담양·화순홍수조절지 등 수많은 댐이 완공됐거나 공사 중이다. 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며 천문학적인 국고를 투입해놓고 그것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다시 같은 이유로 댐을 무더기로 짓겠다는 것은 4대강 사업의 목적 자체가 터무니없음을 자인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파문이 커지자 국토부는 어제 “전문가 검토, 관계기관 협의, 심의 등 법적 절차를 모두 완료하여 계획을 수립했다”며 “향후 타당성조사 시 환경부 전략환경영향평가 협의의견을 구체적으로 검토하여 다시 협의하겠다”고 해명했다. 이런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해명보다 이미 확보한 영양댐 예산 집행부터 중단하고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는 게 맞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댐건설부’라고 이름을 바꿔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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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새누리당이 어제 오후 연석회의를 열었다. 그간 정부조직 개편안 마련 등의 과정에서 인수위와 당의 소통이 부족했다는 등의 지적이 잇달아 마련한 양자 간 첫 회의라고 한다. 예상된 바이나 회의에서 인수위 측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원만한 국회 처리와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통과 등에 대한 당의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순조로운 새 정부 출범을 위한 ‘예비 당정’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새누리당과 인수위 연석회의 (경향신문DB)

정당정치의 본령을 감안하면 연석회의 개최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것마저 눈길을 모으는 것은 박 당선인과 당 사이에 소통이 없다는 지적이 비등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실제 당 소속 일부 의원들이나 친박 인사들이 개인적 연을 바탕으로 박 당선인의 새 정부 구상과 인수위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하고 있을 뿐 당 차원의 통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 전 박 당선인과 당 지도부가 오찬을 했으나 덕담을 나누는 수준이었고, 지난 주말 인수위가 이례적으로 원고지 75장 분량에 해당하는 박 당선인의 회의 발언을 공개했지만 일방적 전달이지 소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박 당선인이 지난해 말 “앞으로 국회를 존중하는 대통령이 돼 여야가 힘을 합쳐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과 거리가 멀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같은 현상이 보안을 최우선시하는 박 당선인의 리더십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점이다. 19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말한 것으로 알려진 ‘촉새가 나불거려서’라는 표현이 그의 리더십을 잘 설명해준다. 그런 비밀주의가 오히려 ‘빈틈’을 만든다는 얘기다. 지금은 국정 운영이 아닌 정권 인수의 ‘허니문 기간’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박 당선인의 입만 쳐다보게 하는 방식은 민주적 리더십이 아니다. 

당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는 ‘찍히면 죽는다’며 엎드려 지낸다는데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고 있는 마당에 사익을 위해 권력을 향유하겠다는 속내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처사다. 개인보다 당을, 당보다 국가를 입에 올리고자 한다면 당선인과 당 사이에 드리워진 폐쇄 구조를 깨는 데 앞장서는 게 급선무 아닌가.


정당정치는 당을 앞세워 여론을 청취·수렴한 뒤 이를 정책으로 구체화하는 게 핵심이다. 대통령은 여당과의 이러한 공조를 바탕으로 야당을 설득하고, 협력을 구하는 자리다. 우리 의회정치의 실패는 여야 간 불통·불화보다 대통령의 그릇된 대여당 또는 국회 인식에서 비롯된 측면이 작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국회 존중을 외치다가도 고비 때마다 ‘국회=통법부’라는 편의주의에 빠져들면서 만사를 망치곤 했다. 

대통령이 먼저 변하는 데 타성에 안주해 이를 외면할 여당은 없다. 여당이 변하면 야당도 바뀔 수밖에 없다. 성숙한 의회문화는 대통령 하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러한 변화들이 모일 때 비로소 새 정치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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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주말 현재 차관급이 수장을 맡는 청와대 경호처를 장관급의 경호실로 승격시키는 청와대조직 추가 개편안을 발표했다. 인수위는 지난 21일 청와대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큰 정부 작은 청와대’를 지향한다고 중점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1주일도 안돼 현재의 2실(대통령실·정책실)을 3실(비서실·국가안보실·경호실)로 확대개편했다. 이는 인수위가 애초 박근혜 당선인의 뜻과는 동떨어진 청와대 조직안을 무턱대고 홍보하는 데 급급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김영삼 정부 이후 15년 만에 경호실 수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킴에 따라 권위주의 정권 시대의 청와대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경호실 위상 승격은 단순히 장관급 실장이 1명 추가되는 데 따른 청와대의 비대화에 그치지 않는다. 박정희 정권 당시 관행이 굳어진 장관급 경호실장 자리는 차지철·장세동 등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아 숱한 부작용을 낳은 바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이 경호실 위상을 일관되게 제한해온 것도 이러한 폐단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문민정부는 경호실을 장관급 기관으로 존치시키되 민간인 실장을 임명했고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차관급 인사를 경호실장에 임명했다. 이명박 정부는 아예 법개정을 통해 경호실을 차관급 경호처로 격하시켰다. 경호실 책임자는 대통령과 늘 함께하면서 모든 면담자들을 보고받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권력 속의 권력’ 역할을 하기 쉽다. 외부 공개를 최소화하고 재택근무를 선호해온 박 당선인의 성향을 감안할 때 경호실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차지철씨의 생전 모습. (출처 : 경향DB)


인수위 측에서는 당선인이 사기 진작 차원에서 위상 승격을 요구한 경호처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부처마다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특정 기관의 ‘민원’을 수용했다는 설명은 균형감을 잃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비서실장에게 과도한 권력이 실리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비서실 권력과 경호실 권력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부모는 물론 본인 역시 테러의 피해를 입었던 당선인의 경험을 경호실 위상 격상의 배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전 국민의 치안을 책임진 경찰청장(차관급)보다 대통령 1인의 치안을 맡을 경호실장의 직급을 높이는 것은 민주화 이후 시대흐름이나 국민정서와는 맞지 않는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선인은 지금이라도 경호실 위상 격상 문제를 재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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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 같다. 지난 23일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이 채택되자 북한은 민망할 정도의 위협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미국을 향해서는 핵실험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남한을 향해서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까지 결의안 찬성대열에 가담한 데 대한 불만의 표출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3차 핵실험과 대남도발을 감행한다면, 이는 국제사회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북한에 대한 인내심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한·미·중·일의 새 지도부에게 초장부터 대북정책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들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선거기간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제시했다. 이 정책의 핵심은 남과 북 사이에 신뢰를 쌓자는 것이다. 추상적이라는 비판도 받았고 목표와 방법론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그러나 남북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장애물을 고려한다면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 최대 장애물이 바로 북핵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은 몇 가지 전제 위에 있다. 우선 북한의 급변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북한이 건강한 경제를 갖고 민생을 챙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둘째, 통일 역시 흡수통일이 아니고 남북이 교류협력을 확대시키면서 자연스레 통일의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최근의 양안관계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셋째,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 대응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 공약을 시험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넷째, 북핵문제를 선결 조건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과의 차이점이다.


박 당선인은 2002년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화내용은 김정은 제1비서도 잘 알 것이다. 당선인은 이 대화를 통해 남북 간에 신뢰가 가능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교류협력을 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어렵더라도 반드시 그 길로 가야만 한반도에 지속가능한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북핵문제가 우리 민족 전체와 대한민국의 국익을 해치는 중차대한 문제임을 인식하면서도, 그 때문에 남북이 신뢰를 쌓아야 하는 과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북과 남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서로 나누고, 진심을 갖고 대화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실험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된다. 박근혜 당선인이 신뢰프로세스를 가동시키는 기회를 갖기도 전에 북이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신뢰프로세스는 언제 가동될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진다.


혹자는 최근 박 당선인이 “북핵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것을 두고 이명박 정부와 다를 바 없으며, 결국 대북 압박정책을 구사하려는 것이 아닌가 해석한다. 그러나 선거 막판에 국제사회 모두가 반대하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핵실험 징후가 포착되는 상황에서도 교류협력만을 강조한다면 적절한 대응이었을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신뢰도 한 쪽의 일방적인 조치로 쌓아지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그 과정은 단번에 벌어지는 사건이나 이벤트로 이뤄질 수 없다. 남과 북도 동행의 기간이 필요하다. 먼 길을 함께 가면서 서로 이해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오해를 불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적어도 북한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출범 전부터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일단 만나서 대화해 본 연후에 박근혜 정부의 의지와 구상을 평가해도 늦지 않으며, 북한에도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바람이기도 하다. 북한의 핵실험은 북의 기회와 남의 바람 모두를 날려버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이 현명하게 행동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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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들이 불거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1993년 공직자 재산공개 과정을 통해 드러난 재산 변동과 자녀 병역 문제다. 김 지명자는 1975년 대지 674㎡(204평)의 서울 서초동 주택을 장·차남에게 매도하고, 1974년 경기도 안성의 땅 7만3388㎡(2만2238평)를 장남 앞으로 명의 변경한 것으로 되어 있다. 주택은 두 아들이 각각 8·6세, 땅은 장남이 7세 되던 때에 매매 또는 증여된 것으로 그 경위와 세금 납부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장남이 1989년 신장과 체중 미달로, 차남이 1994년 통풍으로 각각 병역 면제를 받은 것도 석연치 않아 보인다. 


중요한 공직 인사가 있을 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김 지명자를 둘러싼 의혹은 결코 적당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과도 다른 문제다. 납세와 병역은 국가가 존립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기본 중의 기본 요소다. 싫어도 짊어져야 할 국민의 엄중한 의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꿈꾸는 ‘복지국가’나 ‘법치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만에 하나 부동산 매매 또는 증여 과정의 세금 탈루와 병역 면제의 위법성 의혹이 사실이라면 김 지명자는 총리로서 적합한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박 당선인 기다리는 총리지명자 (출처: 경향DB)


박 당선인은 김 지명자를 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이유로 법치와 원칙의 확립, 사회 안전과 불안에 대한 국민 불신 해소,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내세웠다. 김 지명자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은 이 가운데 어느 것과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본다. 국정을 통괄하는 총리가 이런 의혹을 해소하지 않은 채 국민에게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고 군복무를 하라고 하는 것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책임총리로서의 적합성이나 과거 판결 성향에서 드러난 가치관, 행정 경험, 부처 장악력 등 국정 능력과 자질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본다.


김 지명자에 대한 재산·병역 의혹은 국회 인준청문회 등을 통해 철저하게 검증돼야 한다. 국회는 무엇보다 불법·탈법·편법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할 것이다. “상당한 재산을 갖고 계셨던 어머니가 손자들을 위해 매입한 것”이라는 김 지명자의 해명이나 “병역 면제에 위법한 사항이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총리실의 소명 정도로 될 일이 아니다. 김 지명자는 진솔하게 경위를 설명하고 검증에 성의껏 협조해야 한다. 모든 의혹을 국민 눈높이에서 규명한 뒤 여론과 국회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본인뿐만 아니라 새 정부를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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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기어코 일을 낼 모양이다. 이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에 대한 특별사면안이 내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가 이미 특별사면안 심의를 마쳤으며, 이 대통령의 최종 결심만 남은 상태라고 한다. 절대다수 여론이 특사에 비판적이고 차기 대통령 측마저 반대 입장을 밝혔음에도 강행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국민이야 뭐라 하든 내 갈 길 가겠다는 청와대의 뻔뻔한 태도에 분노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15년간 대통령을 보좌한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 등이다. 정치적 범죄도 아니고 권력을 이용해 거액의 돈을 챙긴 전형적 부패사범들이다. 더욱이 최 전 위원장과 천 회장은 건강이 나쁘다는 이유로 형기의 상당 부분을 종합병원 VIP병실에서 보내는 등 ‘귀족 수인’ 생활을 해왔다. 어떠한 이유로도 은전을 입을 자격이 없는 인물들이다. 오직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풀어준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법치에 대한 도전이요 모독이 될 것이다.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이 삼성서울병원에서 휠체어에 탄 채 MRI 검사실로 향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특별사면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특사 절차를 진행해왔다”고 말했다고 한다. 앞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임기말 특별사면 관행의 고리를 끊을 필요가 있다. 특히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한 데 대한 대응이다. ‘비리 측근’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차기 권력과의 일전조차 불사할 태세다.


신구 권력 간 갈등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더 우려스러운 것은 청와대의 오만하고 초헌법적인 발상이다. 특별사면이 일반사면과 달리 국회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권한으로 간주한다면 법의 절차에 치우친 기계적 해석이 된다. 헌법은 제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 데 이어 제69조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로 시작되는 대통령 취임 선서 내용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것이며 대통령은 헌법에 따라 이를 거스를 수 없음을 적시한 것이다. 이래도 대통령의 고유권한 운운하며 국민 뜻에 반하는 특사를 강행할 텐가.



청와대는 용산참사 구속자들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애타게 호소할 때는 외면하다가 뒤늦게 ‘측근 특사’에 끼워넣겠다니 참으로 착잡하다. 우리는 이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사면권을 행사할 대상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측근이 아니라 힘없고 아프고 억울한 국민이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용산참사 구속자 석방으로 ‘원죄’를 씻되 측근 특사는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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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희 | 실학21연구소 대표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갔을 때다. 패루를 지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에워싸고 떠들썩하다. 얼핏 보니 싸우다 죽은 송장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하늘에서 복숭아를 훔치다가 수위에게 맞아서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연암은 해괴한 소리라 여기고 얼른 자리를 떴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것은 환술(幻術), 즉 마술이었다. 연암이 조선에 없는 구경거리를 놓칠 리 없었다. 중국 관리의 안내로 본격적인 관람을 했다. 마술사가 계란을 눈에 넣었다가 귀로 빼내고 콧구멍으로 넣었다가 뒤통수로 빼내는가 하면, 기둥을 등지고 두 팔을 뒤로 둘러서 묶어 놓았는데, 두 손이 묶인 채 감쪽같이 기둥에서 떨어져 나왔다.


매우 위험해 보이는 상황도 있었다. 칼을 하늘 높이 던지고 칼을 향해 입을 벌리니, 수직으로 떨어진 칼이 입속으로 내리꽂혔다. 칼을 더욱 삼켜 배 안에서 칼끝이 꿈틀거렸다. 구경꾼들은 기겁을 했다. 서서히 뽑아낸 칼끝에서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또 종이가 개구리로 변하고, 양탄자 밑에서 새들이 나오는가 하면, 점점 더 깜짝 놀랄 마술들이 이어졌다. 마지막엔 뭘 시도하다 실패해서 잔뜩 긴장했던 구경꾼들을 한바탕 웃게 했다. 모든 마술이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구경꾼들이 새삼 깨닫도록 일부러 그런 것이다.


조선시대 학자 연암 박지원 (출처 : 경향DB)


연암은 자신이 본 스무 가지의 마술을 <열하일기>의 ‘환희기’에 기록해 전했다. 여기에 함께 관람한 중국 관리와의 대화를 덧붙였다. “눈을 뜨고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군요. 눈이란 믿을 수 없는 겁니다. 마술사가 사람들을 현혹시킨 것이 아니라, 구경하던 사람이 스스로 현혹된 것이지요.” “세상에는 광명안(光明眼)과 진정견(眞定見)이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중국 관리는 역사 속의 여러 마술들을 열거했다. “조고는 사슴을 말이라 하여 반대파를 숙청하는 마술을 부렸고, 맹상군은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의 활약으로 탈출에 성공하는 마술을 부렸습니다.” “누구든 저마다 한 가지 마술을 갖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천하에 두려운 마술은 아주 간사한 자가 충성스러운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며, 덕 없는 자가 덕 있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에 연암이 천하의 간신배를 거명하며 응답했다.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것이 입속에 칼을 삼키는 마술보다 혹독한 것이겠지요!” 


현실 세상에서는 마술무대보다도 더 심한 마술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스스로의 경험과 선입견에 갇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질 못한다. 연암은 ‘소완정기’에서 “눈으로 보지 말고 마음에 비추어 보라”고 했다. 그러자면 마음을 비워 맑게 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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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방 |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지금 한라산 노루의 개체수 조절 문제로 제주도가 떠들썩하다. 


먼저 노루로 인해 농작물 피해를 입고 있는 농민들은 하루빨리 소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소탕 주장은 전형적인 인간 중심의 태도이다. 인간=목적, 동물=수단이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이면에 깔려 있다. 


이 방법은 결코 근원적인 해결책도 안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생계에 지장을 줄 만큼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지 않는 바는 아니다. 피해보상 대책은 행정당국이 중심이 되어 적절하게 마련해야 한다. 나의 이익에 피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노루의 생명권을 박탈하는 방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원시적 접근이다. 인간에게만 생존권이 있고, 인간만이 유일한 존엄성을 갖는다는 근대적 인권론은 이제 효력을 잃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에 맞서고 있는 환경단체는 농민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소탕 작전을 통한 해결 방식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제주도가 개발 위주의 정책을 통해 노루 서식지를 많이 줄어들게 만든 것이 문제의 원인으로 진단하며, 토지이용 변화에 대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주 생태관찰원의 노루들 (출처: 경향DB)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로 서울대공원의 돌고래 ‘재돌이’ 사례나 ‘돌고래 쇼’로 잘 알려진 제주의 관광명소 퍼시픽랜드의 ‘돌고래’에 대한 제주지법의 판결처럼 ‘동물의 권리’라는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대립하고 있는 가치는 농민의 재산권과 노루의 생명권이다. 농민의 재산이 중요하듯이 노루의 생명도 중요하다. 우리가 여기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동물의 이익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농작물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해법의 하나로 노루에게 불임수술을 하거나 불임을 야기하는 미끼를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불임수술이라든지 피임용 미끼 사용은 노루가 느끼게 될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고, 따라서 농민의 피해 또한 줄일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생활터전을 위협하는 동물들이라 하더라도 잔인하게 죽여서는 안된다. 그 동물들의 개체수를 제한하는 식의 좀 더 인도적인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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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노동자는 일하고 싶은 시간에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사장이나 점장은 노동자의 불평불만을 듣고, 이를 해결하는 것이 업무이다. 이런 꿈같은 회사가 있을까? 있다. 얼마 전 나는 일본 미에이현 스즈카시의 ‘에즈원커뮤니티’를 방문했다. 이들은 ‘도시락배달’ 회사를 창업했고, 정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개인과 사회 모두가 만족해야 한다는 회사 운영 목적을 세웠다. 


이에 따라 폭설이 내린 날 사고를 각오하면서 배달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이 같은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며 양해를 구한다. 어느날 문득 직원이 회사에 나오기 싫다고 하면 그럴 수 있는 일이니 기다려주는 것이 어떠냐고 고객을 설득한다. 그러나 이 회사는 좋은 재료와 맛,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한 덕에 하루 1000개 이상의 도시락을 판매하는 중견 회사가 됐다.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가지기 위해 후안무치를 일삼는 기업가들과 정부의 관료들에 익숙한 한국인 방문단에 그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는 놀라움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했다.


 

평택, 울산으로 향하는 희망버스 (출처 : 경향DB)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었다. 특별한 이유와 기준은 없었다. 의자놀이 또는 러시안룰렛게임처럼 운이 나쁘면 죽는 게임일 뿐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오는 억울함, 피폐함, 분노 등으로 사람들은 몰락해 갔다. 


그렇게 쌍용차에서 23명, 아니 얼마 전 회사 내에서 자살을 시도한 이가 돌아가셨으니 24명이 죽었다. 멀쩡한 회사를 회계조작으로 고의부도 처리하고, 이를 이유로 대량 해고가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쌍용차에서 오늘도 노동은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희망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노동이 그렇다. 그런데 스즈카를 다녀온 나는 희망을 다시 품게 됐다. “노동자가 행복해야 회사가 망하지 않는다”,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시스템은 굴러간다”는 단순한 진리를 확인했다. 


지난 26일 쌍용차와 현대차로 희망버스가 다녀왔다. 타인의 고통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이들이 만들었던 희망버스, 그것이 다시 시동을 건 것이다. 스즈카와 평택, 울산…. 어느날 밤 함께 살고 싶어서 어깨 들썩이며 울고 있는 그대들을 향해 우리는 신발끈을 다시 묶는다. 우리가 이제 유일하게 사는 방법은 공존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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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학생인권조례가 오늘로 공포된 지 1년을 맞았다. 도입 과정부터 계속된 논란과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는 현실이 우선 안타깝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무효확인소송 등을 제기해 조례 폐기를 꾀하고 있고, 새로 취임한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시의회와 갈등을 빚으며 조례 수정을 시도하고 있다. 오늘 학생인권조례의 성공적인 안착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와 공포 1주년 기념식도 문 교육감의 외면 속에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위원회와 학생참여단 주최로 열린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비판과 우려가 있었지만 학생인권조례는 교육 현장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었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학생·교사·학부모들의 인권의식이 높아지고 소통문화도 바뀌고 있다는 데 진보·보수 진영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게 그 근거다. 교내 체벌이나 규제가 크게 줄고 자율적인 학교 분위기가 형성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으며, 학교폭력·자살·왕따 등 각종 학원 문제를 풀어나가는 새로운 접근법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요 내용 (출처: 경향DB)


도입과 시행 과정에서 반대자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교사들의 학생 지도가 어려워져 ‘교실 붕괴’나 ‘교권 침해’로 이어진다는 일부 주장과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지 못한 것이 그런 예다. 학생인권이라는 근본 정신보다 복장이나 두발, 휴대폰, 동성애, 임신, 체벌 문제 등 단편적인 논란거리로 사안이 확대된 점도 부족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참여단의 실태조사에서 드러났듯이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조례 위반 사례가 빈발하고, 조례 내용을 잘 알지 못하는 학생이 태반인 것도 숙제로 남아 있다.


시행 1년을 거치면서 크고 작은 명암이 있었지만 학생인권조례의 가장 큰 성과는 그 취지나 방향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이룬 것이라고 본다. 학생인권조례를 통해 학교가 생존경쟁의 장이 아니라 민주시민을 기르는 터전임을 인식했고, 학생은 규제·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교육의 대상임을 자각해 나가고 있다. 이는 온갖 병폐에 시달리는 우리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단초이기도 할 것이다. 더 이상 학생인권조례를 놓고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 교육의 실패는 이념이나 정파의 진영 논리가 교육 현장에까지 작용해 갈등과 논란의 불씨가 된 데도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문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를 또다시 논란의 도마에 올려놓기보다 이를 안착시키는 데 힘써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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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이 지난 17일 4대강 사업은 총체적 부실덩어리였다는 요지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4대강 사업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고, 잘못된 설계를 바탕으로 4대강 공사를 부실하게 했으며, 공사 후 유지관리도 적절하지 못했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국민 세금 22조원이 강물에 떠내려간 셈이다. 참으로 허망하다.


하천 수질을 개선하고 물을 확보하고 홍수를 예방함으로써 우리나라 물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4대강 사업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감사원은 하천에 설치한 보가 물의 흐름을 차단해 물이 정체되어 수질이 악화된다는 평가를 했다. 보를 건설하면 물의 양이 많아져 수질이 개선된다는 정부의 주장은 빛을 잃었다. 구체적 활용 계획도 없이 4대강 본류에 8억㎥의 물을 확보한 것은 4대강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었다는 증거다.


 

낙동강 합천보 파이핑 현상 (출처: 경향DB)



낙동강 상류구간에서는 사업 전 법정 홍수방어 능력을 이미 확보했음에도 홍수를 예방한다는 명목으로 대규모 준설을 했다. 법정계획인 유역종합치수계획에 근거해 홍수방어 기준을 설정하고 이 기준을 만족하는 ‘필요최소 준설계획량’을 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는 낙동강의 경우 최소 수심 6m를 확보할 수 있는 특정 준설단면을 미리 설정하고 일괄 준설하는 준설계획을 수립했다. 낙동강 하류부인 ‘함안보∼합천보’ 구간(43㎞)에서 감사원이 수심을 측량한 결과 최근 1년간 38%가 재퇴적된 것으로 드러났다. 유지관리 차원에서 추가로 준설할 경우 약 3000억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헛준설을 한 것이다.


4대강 사업을 위한 설계는 밀실에서 6개월 만에 뚝딱 만들었다. 국제 규격으로 중·대형 댐(dam)에 해당하는 하천 구조물을 보(weir)라 규정하고 설계를 한 것이 부실 설계의 시작점이다. 댐은 모래를 다 퍼내고 암반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해 만드는데, 4대강에 건설한 보는 암반에 말뚝을 박고 그 위에 콘크리트로 만든 육중한 구조물이다. 즉 보 아래에는 모래가 있기 때문에 모래 위에 건설한 보라 할 수 있다. 보 주변에 있는 모래는 세굴되고 보 아래로는 물길이 생겨 모래가 파여 나가는 파이핑 현상이 발생했다. 총 16개 보 가운데 15개 보에서 보의 일부인 바닥보호공이 유실되거나 침하됐다. 12개 보에서는 수문 개폐 시 발생하는 유속으로 인한 충격 영향 등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아 수문 운영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는데, 많은 보에서 수문이 정상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관계자의 제보가 있었다. 


보는 수압 등에 직접 저항하는 대규모 콘크리트 구조물이므로 균열, 누수 방지 등 품질 관리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함안보 등 6개 보의 경우 자료를 왜곡해 균열 억제 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또한 공주보 등 11개 보는 유실된 바닥보호공에 대한 보수공사도 부실해 2012년 하반기 수문 개방 시 6개 보에서 다시 피해가 발생했다.


생명평화대행진 참가자들이 공주보를 둘러본 뒤 이동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결론적으로 감사원은 ‘4대강 사업에서 반드시 보완이 필요한 보의 안전성, 수질관리 및 유지관리 등과 관련된 주요 사항에 대하여 전반적인 개선 방안을 제시’하라고 지적했다. 총체적인 부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보의 안전성에 대한 보다 정밀한 조사가 필요했고, 4대강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국가 재정법 등 많은 법령을 위반한 사실에 대한 감사가 빠져 아쉽다. 특히 8조원의 예산으로 보 건설을 주도한 수자원공사가 수자원공사법을 위반한 내용에 대한 검토가 없었다. 이런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국회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이명박 정부는 비판에 귀를 막아버렸다. 대부분의 언론은 4대강 사업의 실체에 눈을 감았다.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와 청문회가 필요하고,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4대강 사업의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보아야 한다. 무모한 개발이 환경을 파괴하고 예산을 낭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22조원이란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러나 우리가 얻은 교훈은 오래된 상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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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문제가 국정조사 논란 속에 원점을 맴돌고 있다. 지난 10일 455명의 무급휴직자 복직으로 새로운 돌파구 마련이 기대됐으나 국정조사를 놓고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단체가 둘로 나뉘어 논쟁을 벌이면서 엉뚱한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진영은 “국정조사는 쌍용차 경영 정상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연일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 민주통합당과 쌍용차범국민대책회의는 이에 맞서 박근혜 당선인과 새누리당을 향해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쌍용차 문제는 경영 정상화와 해고자 복직, 구조조정을 둘러싼 책임자 처리 문제 등이 얽히고설켜 있는 복잡한 사안이다. 국정조사가 해법의 전부도 아니다. 국민여론이 둘로 나뉘어 감정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는 그래서 더 안타깝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국정조사는 절대 안된다. 나라 망할 일 있느냐”고 했다. 멀쩡한 사람들 불러 혼내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논리다. 쌍용차는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팔린 게 불행의 시작이라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기술 유출 및 ‘먹튀’ 우려가 제기됐지만 매각은 강행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상하이차는 자기 돈 들이지 않은 채 핵심기술을 빼돌린 뒤 회사를 부도내고 야반도주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같은 우려가 끝이 아니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는 지금까지는 상하이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제2의 상하이차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따질 건 따져야 한다.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몰린 2000여명 해고자들의 응어리진 가슴도 누군가는 쓰다듬어줘야 한다. 국정조사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먼저 제안한 해법의 하나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이 원내대표가 이제 와서 딴소리하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심상정 의원 등이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촉구 (출처:경향DB)


쌍용차는 적자를 보는데 어떻게 해고자 복직이 가능하냐고 주장한다. 또 “제2의 한진중 사태로 비화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해고자가 복직해도 일감이 없다는 얘기다. 따지고 보면 무급휴직자 복직은 생색낼 일도 아니다. 2009년 노사가 합의한 ‘1년 후 복직’ 약속을 뒤늦게 이행한 것일 뿐이다. 자동차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지만 투자의 대부분이 신차 개발에 들어간다. 신차 하나에 2000억~3000억원의 투자비가 든다. 쌍용차는 어떤가. 지난 몇년간 신차다운 신차가 거의 없었다. 신차 기근-판매부진-영업적자의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영업적자는 투자 부족이 원인이다. 쌍용차가 살려면 신차 투자-판매량 증가-영업이익의 선순환 구조로 바꿔야 한다. 마힌드라가 쌍용차 인수 후 9억달러의 투자를 약속했지만 돈이 들어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국정조사장에 당당히 나와 9억달러 입금확인서를 보여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마힌드라의 적자타령이 계속되는 한 쌍용차의 근본적 해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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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 1월1일자로 조세특례제한법을 고쳐 지정기부금의 소득공제(과세소득에서 빼는 것) 한도를 크게 낮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더욱이 기부금을 주택자금, 교육비, 신용카드비용 등과 함께 묶어 공제 상한을 2500만원으로 정했다. 항목별로 수천만원까지 하는 주택자금, 교육비와 합칠 경우 기부금은 사실상 소득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이는 새해 예산안 통과 때 함께 처리된 것으로 정치권과 정부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은 천문학적인 복지재원을 마련하고, 기획재정부는 소득공제 한도를 최대한 줄여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 부랴부랴 법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복지를 외치면서도 복지시설과 시민단체에 대한 기부를 위축시키는 데 정치권과 정부가 앞장선 셈이다. 어이없는 일이다. 기부를 했다고 세금을 많이 물린다는 여론이 빗발치자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소득공제 제한을 재검토해보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기획재정부는 기부금을 많이 낼 형편이 안되는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결혼 축의금 기부로 건립된 미얀마 학교를 찾은 배우 유지태, 김효진 부부(출처 : 경향DB)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재원 135조원을 마련하려면 부자증세를 적극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비과세 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한 세수확보로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아무리 재원 마련이 급하다고 해도 이래서는 안된다. 졸속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다. 그동안 숙원사업이었던 종교인 과세는 슬그머니 내려놓은 정부가 기부금에 세금폭탄을 안기는 것은 너무나 안이한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본다. 


물론 재원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마른 수건’을 짜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고 한다. 올해 말로 끝나는 40개 안팎의 비과세 감면제도를 중단한다고 해도 1조6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더욱이 비과세 감면 혜택은 저소득층을 비롯한 경제적 약자를 돕는 제도가 많다. 그래서 성형외과 의사, 변호사와 같은 고소득 개인사업자와 고소득 근로자에 대한 소득공제 한도를 추가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세입과 세출을 쥐어짜더라도 상황이 여의치 못하면 부자증세를 적극 추진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자 한다. 증세를 피하기 위해 이런저런 편법을 생각하다보면 제2의 기부금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세금과 관련된 정책은 정밀하게 접근해야 조세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고, 세수확보라는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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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관 | 덕성여대 교수·영문학

미국과 한국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새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며칠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80만명의 미국 시민들 앞에서 취임연설을 했고, 박근혜 당선인은 취임식을 준비 중이다. 두 나라 모두 집권세력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했다. 물론 전자는 재선에 성공한 데 비해 후자는 현 대통령과의 차별성을 내세우며 당선된 점이 다르긴 하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두 사람 다 선거과정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국민통합이었다.


한 국가의 지도자라면 국민들을 통합해내는 데 힘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이 통합이라는 말만큼 의미를 확정짓기 어려운 것도 드물 법하다. 다같은 국민이라도 서로 차이도 있고 차별도 존재한다. 적대관계가 있고 때로는 사활을 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 때문에 통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평등과 부정의의 현실을 호도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통합이라는 아름다운 얼굴의 이면에는 무시무시한 폭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국민이 필요로 하는 통합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박근혜, 오바마 미 대통령과 통화 (출처: 경향DB)



국민의 통합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면서 미국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의 부조리극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를 떠올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올비는 그릇된 환상의 허울을 벗어버린 살아 있는 삶의 맨얼굴이 주는 두려움을 그려내고자 한다.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이 환상 없는 현실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누가 두려워하랴’라고 외치지만 이 큰소리에 오히려 두려움이 실려 있는 셈이다. 만약 통합이라는 허상 너머에 현실의 불평등구조가 야기하는 처절한 대립과 폭력의 현장이 존재한다면, 도대체 그 통합이 무엇을 위한 통합인지 되짚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정치인들이 통합을 소리 높여 외치던 선거 중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철탑에서 죽음을 무릅쓴 농성을 벌여왔고 지금도 그렇다.


사실 오바마가 취임연설에서 내세운 국민통합은 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와 국민의 평등권 강조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그의 통합 주장은 결국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평도 나온다. 한편 박근혜의 통합 논리 근저에는 기득권구조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보다 서서히 개선해 나가겠다는 보수주의가 깔려 있다. 같은 통합을 말하고 있지만 진보적인 미국 정권과 보수적인 한국 정권 사이에 그 역점의 차이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통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요인을 빈부격차와 양극화로 보는 것은 미국과 한국이 마찬가지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산층 복원을 이번 정부의 주요 과제로 제시한 것과 유사하게 박근혜 당선인도 중산층 70% 시대를 약속한 바 있다. 특히 지난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가 여야를 막론하고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도 양극화를 완화하지 않고는 사회통합이 불가능하고 국가의 활력도 살려낼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명목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통합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이것이 배제된 통합이라면 다수 국민에 대한 억압의 다른 이름이 될 뿐이다. 최근 여야가 특히 복지부문의 공통공약을 함께 실천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 그런 지향의 단초가 되기를 바란다.


올비의 작품 제목에 나타난 두려움의 대상은 원래 ‘버지니아 울프’가 아니라 ‘빅 배드 울프’(나쁜 큰 늑대)였다. 잘 알려진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가 그 배경인데, 허술하게 집을 지은 돼지 두 마리를 집어삼킨 늑대는 셋째 돼지마저 잡아먹으려 하나 셋째가 튼튼한 집을 지어둔 터라 실패하고 만다. 국민통합이라는 어렵고도 두려운 과업은 마치 우리 앞에 나타난 늑대와 같다. 그 늑대는 우리를 시험한다. 양극화 현실을 그냥 둔 채 얼버무리며 말만의 통합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부의 편중을 막는 단호한 조치를 통해 국민이라는 틀을 튼튼히 할 것인가의 질문이다. 누가 통합을 두려워하랴! 새 정부가 가짜 국민통합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방법은 선거과정에서도 확인된 경제민주화의 민의를 받들고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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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 시인


“아버님, 죄송합니다.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제가 철이를 대신하겠습니다.”


20대의 젊은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시울이 젖은 50대의 어른에게 목멘 음성으로 말했다. 88올림픽이 끝난 12월 중순의 양평동 한겨레신문사에서였다. 이날 먼저 와서 기다리던 50대의 어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20대의 남자를 처음 보는 순간, 눈물을 왈칵 쏟아내며 뜨겁게 포옹을 했다. 그때부터 젊은 남자는 어른의 새 가족이 되었고, 수시로 찾아가 자식 노릇을 대신했다. 50대 어른은 1987년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박정기)였고, 20대 남자는 4년간의 수배가 해제된 박 열사의 대학 선배 박종운이었다. 


 

박종운 한나라당 경기 부천·오정 당협위원장 (출처:경향DB)



박종운은 민주화추진위 사건(‘깃발사건’)으로 수배 중일 때 서클 후배인 박종철의 하숙집에 며칠간 ‘은닉’했고, 그 정보를 입수한 대공수사요원들은 한밤중 급습해 박종철을 강제연행했다. 박종철은 5명의 수사관들로부터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선배의 거처를 ‘불지’ 않았다. 당연히 고문의 강도는 높아졌고, 그러고는 끝내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지난주 일요일(1·13)에 마석 모란공원과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박종철 열사 26주기 추모제가 기일 하루 먼저 열렸다. 그러나 박종철기념사업회 운영위원을 맡아 부지런히 행사를 준비하던 박종운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2000년 갑자기 수도권 소장파의 ‘젊은피’로 부상되는가 싶더니 한나라당에 입당했고, 그 후 몇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아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지켰던 ‘또 다른 아들’의 행보를 지켜보는 아버지로서의 심정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착잡했을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국회의원 후보 당시 그의 홈페이지에 실린 글을 보면 아예 넋을 잃을지도 모른다. 대충 다음과 같은 요지의 글이다.


“종철이가 살아 있었다면 나와 같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것이 현재의 민주화투쟁이다.”


박종철 열사가 숨진 대공분실 509호 조사실은 현재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고교 후배인 그를 나는 장시 ‘한라산’을 준비하던 1986년 여름, 신림동 생맥주집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가 감옥에서 석방된 직후였는데, 그게 그만 마지막 술잔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독주를 하다보면 불쑥불쑥 종철이의 얼굴과 그의 선배 얼굴이 술잔 속에 맺힌다. 그러면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화두가 겹쳐진다. “사람은 왜 변하는가…?”


한때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싸웠으나 지금은 ‘변절자’로 조롱을 받는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그리고 최근 “내 머리는 김지하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김지하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라고 개사곡을 부르며 멸시받는 김지하 시인까지. 특히 1991년 발간된 그의 책 <타는 목마름에서 생명의 바다로>의 다음과 같은 서문을 보면 가슴이 무너진다. “아아, 산다는 것이 왜 이리도 어려운가? 끝끝내 자유천지를 보지 못하고 나 역시 더러운 먹물 시궁창에서 굶주린 개처럼 허덕이다 죽고 말 것인가? 별 뜨듯 꽃 피듯 살날은 그 언제인가?”


보수단체 환영받는 김지하 (출처:경향DB)


난 다만 앞으로 김지하 시인의 입에서 “이근안은 훌륭한 고문기술자이자 애국자다”라는 말만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것이 내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자신의 한계 앞에 겸허히 고개 숙일 줄 아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득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 속의 자베르 경감이 부러워진다. 법이 정의였고 누구보다 그 정신에 철저히 복무하다가 양심의 가책으로 자발적 죽음을 선택한 그가 그나마 의식 있는 보수주의자로 보인 탓이다. 호시탐탐 색깔론으로 마녀사냥을 일삼는 ‘변절한 진보’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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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25~30년(출처: 경향DB)


‘수태고지(annunciation)’는 단순히 종교화가 아니다. 그것은 메타회화, 즉 그림에 관한 그림이다. 그저 진부한 성화의 주제로 무심코 지나치기 마련인 수태고지가 어찌하여 그림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준다는 말인가? 수태고지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신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고 전한 일이다. 정혼한 사람이 있는 처녀가 임신이라니, 게다가 당시 유대의 풍습에서 처녀의 임신은 돌로 쳐 죽일 만큼 끔찍한 스캔들이었다.


보통 수태고지 도상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날개를 펄럭이며 홀연히 마리아의 거처에 나타난다. 주로 백합이나 홀(지휘봉처럼 생긴 지팡이)을 들고 나오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마리아는 너무도 놀라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가슴에 대거나, 거부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거나, 의자에서 떨어질 것 같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녀는 반드시 책을 들고 있는데, 구약성서의 아가서(솔로몬이 하느님께 바친 사랑의 시)를 펼쳐 보이고 있다. 신실한 믿음의 증표다.


이런 수태고지는 성서의 가장 핵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바로 말씀(logos)이 육화되는 순간을 담은 것! 즉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로 변하고, 비물질이 물질화된다는 뜻이다. 예술, 특히 물질이 기본이 되는 조형미술이야말로, 영혼(정신 혹은 의식이어도 좋다)이 육화되는 수태고지와 똑같은 원리를 지닌다. 그림을 한 점 걸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그저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림이 말을 걸어오고, 위안을 주고, 심지어 괴롭히기까지 한다. 물질에 영혼을 투사했으니 어찌 그림 그린 사람의 심리가 그대로 전해오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림이야말로 예수의 탄생처럼 최고의 미스터리이며, 예수의 기적 같은 최상의 감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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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응 산업부 기자


국무총리실이 23일 감사원의 4대강 감사결과를 반박하며 ‘총리실이 중심이 돼 다시 한번 검증을 하겠다’고 밝혔다. 총리실은 “수자원과 토목 관련 학회가 중심이 돼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검증이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기자는 총리실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는 2011년 11~12월 한국시설안전공단에 4대강 9개 보에 대한 긴급안전점검을 맡겼다. 지난해 2~3월에는 민관 합동 특별점검단을 구성해 16개 보에 대한 점검을 벌였다. 점검 이후 국토부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점검단을 통해 4대강 안전 등을 확실히 체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국토부의 발표는 감사원 감사 결과 과장되거나 거짓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시설안전공단이 “강바닥이 내려가는 원인 분석과 보강 대책은 제시하지 않고 단지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만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공단은 상주보에 대해서는 아예 현장조사도 실시하지 않았다. 


 

보수공사중인 낙동강 상주보 (출처 : 경향DB)



4대강 보의 물받이공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자 국토부는 민간 전문가들을 대거 참여시켜 공동조사를 했다. 하지만 이 조사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감사원 감사결과를 보면 조사단은 보 안전에 영향을 미치는 물받이공 길이에 대한 적정성 검토를 하지 않았고, 이포보 등 한강 수계의 3개 보들은 바닥보호공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다. 


낙동강 구미보는 보강 공사 구간을 직접 확인하지 않고 보완 설계 내용으로 검토했다. 금강 백제보와 공주보의 경우 수심 측량을 계획했으나, 실제로는 점검 기간 전 측량 자료를 활용했다. 


감사원이 이렇게까지 지적한 마당에 다시 정부가 중심이 된 조사단을 꾸려 부실을 점검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이해하기 힘들다. 4대강 사업은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부실을 인정하면 정권의 실패를 자인하는 셈이 된다. 정부 조직인 국무총리실이 검증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 정부는 4대강 사업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 부실하다는 지적이 억울하다면 이에 대한 검증은 차기 정부에 맡기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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