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가 어제 새벽(한국시간) 열린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한국영화계의 쾌거이자 김 감독 개인으로서도 크나큰 영예가 아닐 수 없다.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국제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은 이래 한국영화는 국제무대에서 꾸준히 주목을 받아오긴 했으나 위 두 영화제와 칸국제영화제 등 이른바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평단의 논란과 흥행 부진에 시달리던 ‘충무로의 이단아’ 김 감독이 국제무대에서 크게 인정받은 이번 수상은 우리 사회와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일 만하다. 초등학교 졸업에 연출부 경험도 없이 32살에 처음 영화를 보고 감독의 길로 들어선 그의 영화 인생은 그 자체가 영화 같기도 하다. 스스로의 표현처럼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자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인간의 본능을 날것 그대로 까발리는 그의 영화 또한 평단과 관객들을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였다. 이번 수상작 <피에타>도 악마 같은 남자와 어느 날 엄마라고 찾아온 여자를 통해 극단적 자본주의 세계의 황폐함과 그 안에서 인간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물은 작품이다. 국내 현실과 타협하거나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구축해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베니스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서 김기덕 감독과 조민수, 이정진이 인사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저예산 독립영화를 대표하는 점도 김 감독의 영화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영화는 10억원 이하의 제작비로 단기간에 만든 것이 대부분이다. <피에타>도 한 달 동안 12회차 촬영을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저예산 독립영화 내지 비상업적 예술영화가 처한 국내 환경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제작비 마련과 개봉관 확보는 물론 객석 채우기조차 쉽지 않은 게 여전한 현실이다. 김 감독이 한때 “앞으로 내 영화를 국내에 개봉하지 않겠다”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최근 한국영화가 중흥기를 맞고 있는 듯하다. <도둑들>이 사상 6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해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던 <괴물>을 뛰어넘을지 주목되고 있다. 지난달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70.2%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런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피에타>의 예술적 성취는 한국영화의 수준을 높이고 영역을 넓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예술영화가 세계의 찬사를 받기 전에 국내에서 먼저 인정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수준 높고 풍부한 문화는 다양성에서 나온다는 걸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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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는 문화적이고 심리적이다. 중국인에게 붉은색은 행운을 불러들이는 색이다. 한국인에게 붉은색은 벽사의 의미를 지녔고 죽음과 연관된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분단 이후 붉은색은 ‘빨갱이’의 색이라 금기의 색이 됐다. 


이세현은 온통 적색의 물감 하나만으로 풍경화를 그렸다(학고재, 8·29~10·14). 캔버스에 붉은색채가 여백 사이로 섬처럼 떠 있다. 화면 가득 펼쳐진 이 산수는 강렬한 시각적 화려함으로 터질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고 괴이하다. 붉은색 산속에는 또 다른 풍경이 마구 출몰한다. 가로등 불빛에 드러난 산동네가 있고 논과 밭이 펼쳐지는가 하면 정자와 군함, 등대와 거북선, 그리고 핵폭탄이 터지는 장면이 숨어 있다. 풍경과 시설물만 가득하고 사람은 부재하다. 외형적으로는 무척 낭만적이고 유토피아를 떠올려주는 풍경이 기실 불길하기 그지없고 낯설어서 두려움을 안긴다. 전통적인 산수화에 서양의 풍경화가 접목됐고 먹색이 아니라 붉은색을 사용했으며 대상에 대한 묘사 방식은 산수화의 준법이 아니라 서양화의 사실적인 묘사이고 평면적인 전통 동양화의 다시점과 서양화의 원근법이 결합돼 기묘한 낯섦을 자아낸다. 그래서 그림을 보는 이들의 시선은 극도로 불안하게 부유한다. 이른바 ‘총체성과 단편화 사이의 기묘한 공간’을 보여준다. 


 

(출처: 경향DB)

작가는 군복무 시절 군사분계선 근처 전략지대에서 야간투시경을 쓰고 야간 보초를 서곤 했는데 그때 세상이 온통 붉게 보였다고 한다. 


그 비무장지대(DMZ)의 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한 비현실적인 풍경이었고 절대로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장소였다. 그는 그 경험을 재구성했다. 여기에 고향인 거제도와 유년시절을 보낸 부산 앞바다의 풍경에 대한 기억을 섞었다. 지금은 분별없는 개발과 건설로 죄다 사라지고 잊혀진 기억 속의 풍경이 현실 풍경과 조우했다. 그렇게 해서 수상쩍은 붉은 산수풍경이 생겨났다. 실재하면서도 결코 실재하지 않는 풍경이자 매혹과 두려움의 양가적인 공존을 지닌 풍경이고 나아가 분단 상황을 불길하게 암시하고 자연에 각인된 역사의 상처를 들춰내고 있다. 이 풍경은 아직도 냉혹한 분단논리와 반공이데올로기가 이곳 현실 풍경을 모조리 붉은색으로 물들여버리듯 작동하고 있음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날카로운 정치적 메시지가 아름다운 풍경이란 형식 속에 피처럼 스며들어가 마구 흘러다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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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과거의 예술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아름다운 예술과 만나기 위해 공연이나 전시 혹은 관람에 나선 사람은 크게 실망하거나 좌절하기 십상이다. 새로운 예술은 대부분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충격을 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이제 기괴하고 기형적이며 더럽고 험한 세계를 적나라하게 들추고 고발하면서 스스로 추해지고 있다.


예전엔 참하고 착한 사람을 예쁘다고 했다. 진·선·미가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니체의 말처럼 현대는 어떤 이가 참하고 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예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참하거나 착하지 않기 때문에 예쁘다고 말하는 사회다. 


 그만큼 진·선·미를 함께 갖추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진과 선을 지향하는 예술은 점점 추해질 수밖에 없다. 거꾸로 세상이 더러워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예쁜 것에만 현혹되니 예술이 설 자리만 좁아진다.


‘나는 예쁘지 않다, 나는 아름답다’는 카피로 많은 이를 유혹한 광고가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내 기억에 광고 모델은 아름답기보다 그저 드물게 예쁜 여인이었다.아름다움과 예쁨을 나눌 수 있는 하나의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만들어 볼 수는 있다. 겉으로라도 조화와 균형의 형식을 갖춘 말끔한 사물이나 사람을 예쁘다 하고, 겉과 속 모두 자유롭지만 알 수 없는 긴장에 휩싸인 비극적 사물이나 그런 방식으로 참(착)한 사람을 아름답다고 하면 어떨까? 그러면 대부분이 예쁘기보다 아름다워지고 싶다할 것이다. 기만이다. 


우선 예뻐지고 보자. 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몸의 형체를 통째로 바꾸거나 얼굴 모양을 다양하게 고칠 수 있는 성형수술이 있다지만 지불해야할 대가와 위험이 작지 않다. 


아마도 수많은 방법 중에 적은 비용으로 가장 안전하게 예뻐지는 길은 미용(이용)일 것이다. 실제로 미용실은 이제 많은 이들에게 단순히 머리카락을 자르는 곳이 아니라 자기를 찾아서 가꾸고 표현할 수 있는 ‘자기 디자인’의 장소다.


전남 옥과장 초입에 있는 10여㎡ 남짓한 미용실 (출처: 경향DB)


어느 문화에서나 한 사람의 머리모양은 그의 사회적 신분, 지위, 역할만이 아니라 그의 처지를 나타내는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가짐과 상태를 드러내는 윤리적 기호였다. 조선인이 1895년 반포된 단발령을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리를 자르라는 사형선고로 받아들인 까닭이다. 조선에도 다양한 형태의 머리모양을 연출하는 미용이 있었으니 자연스레 머리카락을 줄이고 보태는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모양을 낸 장발과 단발은 미용이지만 강제로 잘린 머리카락은 한 개인만이 아니라 국가의 머리와 같다.


그렇다고 단발을 택한 사람이나 이를 도와준 이발사들이 매국노였던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비록 타율적 단발령에는 반대했지만 그것이 봉건적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는 미용이 되길 바랐다. 


실제로 앞서 단발을 했던 유길준은 개화 교육과 계몽 운동을 이끌며 조국의 광복을 위해 끝까지 헌신했다. 고종 황제와 세자의 머리카락을 잘랐던 양반 이발사 안종호를 비롯해 진업미용공사(眞業美容公私)나 상해정안사로미용공사(上海靜安寺路美容公私)에서 일했던 대부분의 미용사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미용실에는 더 이상 신분 질서의 고통이나 단발의 굴욕 따윈 없다. 미용은 이제 진·위와 선·악의 저편에서 예쁨을 추구한다. 더구나 예술을 지향하는 미용은 예쁜 자기표현이나 아름다운 자기 디자인에 만족하지 않고 미·추의 경계에서 새로운 충격을 전시한다. 450여점의 유물이 전시된 국내 유일의 ‘한국미용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미용의 역사는 곧 예술사다. 


그 곳에는 20년간 유물을 모으고 상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여인의 머리모형과 복식을 재현하며 홀로 꿋꿋하게 박물관을 만들어온 이순이라는 참(선)한 미인이 있다. 광주에는 90만이 넘는 현재의 헤어디자이너만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미용인의 자존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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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어제자 1면에서 ‘아파트 분양난민 이순우씨의 눈물’이라는 기사를 다루었다. 이순우씨는 인천 중구 영종하늘도시에 짓고 있는 아파트에 10월 입주 예정이지만 눈물만 흘리고 있다고 한다. 병원이나 학교를 비롯한 기반시설은커녕 슈퍼마켓조차 없는 허허벌판에 서 있는 ‘나홀로 아파트’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3년 전 분양 받을 당시만 해도 영종하늘도시는 인천 국제공항이 자리잡은 영종도 19.3㎢(585만평)에 4만5000가구(12만명 입주) 아파트가 들어서는 화려한 신도시였지만 지금은 ‘섬 속의 유령도시’로 불린다.


하지만 당장 문제가 풀릴 기미는 없다. 인천시는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책임이 크다는 것이고, LH는 금융위기 여파로 투자가 부진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인천시와 LH의 개발 청사진을 믿고 분양한 만큼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인천 중구 영종도 영종하늘도시 건설 현장 (출처: 경향DB)



1990년대 초 수도권 1기 신도시(분당·일산·평촌·산본·중동) 입주 당시 ‘장화 신고’ 아파트에 들어가야 했던 상황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수도권 90여곳에서 이순우씨와 같은 분양난민이 쏟아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아파트값이 오르는 덕분에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분양을 받으면 아파트값이 올랐고, 입주자들도 장화를 신고 집에 가는 한이 있어도 그때만 넘기면 됐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침체로 아파트 분양가가 시세보다 높은 곳이 수두룩하다. 한 부동산정보업체에 따르면 2009년 이후 입주한 수도권 아파트 23만가구 가운데 55%가 분양가보다 시세가 내린 상태다. 투자가치는커녕 앉아서 손해를 보는 셈이니 누가 참을 수 있겠는가.


영종하늘도시의 경우 일단 인천시와 LH가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책임을 서로 떠넘길 게 아니라 기반시설을 서둘러 지어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해야 한다. 앞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지을 때는 주거단지, 상가, 기반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복합용도개발(MXD)을 활성화해야 한다. 근본적인 잘못은 국토해양부에 있다.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도시개발 계획을 마련하지 않은 채 주택공급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허허벌판에 들어서는 아파트라도 분양만 받으면 고마워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1기 신도시 입주 당시 서둘렀던 잘못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고치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도시개발계획을 새로운 틀로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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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영 전국부 기자 mooni@kyunghyang.com


 

둘째 아이가 올해 세 살, 법정 나이로는 만 1세다. 큰아이도 우리나라 나이로 4살 되던 만 2세 때 어린이집에 보냈던 터라 몇 달 전부터 주변 어린이집을 기웃거렸다. 하루 종일 베이비시터에 의존해 아이를 맡기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구립 어린이집 두어 군데에는 이미 재작년에 대기 신청을 해놨다. 그러나 국공립 어린이집은 아기의 주민번호가 나오기 무섭게 신청해야 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맞벌이 1순위인데도 순위가 한참 처져 있어 민간 어린이집이라도 알아봐야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큰아이가 다녔던 민간 어린이집에서 이상한 말을 들었다. 큰아이가 그곳에 재밌게 다녔고 또 유치원으로 옮길 때 “둘째도 언제라도 키워줄 테니 오라”며 살갑게 작별 인사를 했던 원장의 말이 기억에 남아 이곳에라도 둘째를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참 달라져 있었다. 언제쯤이면 들어갈 수 있는지 묻자 어린이집 측은 대뜸 “순위에 상관없이 아파트 해당 단지 주민의 자녀가 더 앞선다. 협회를 통해서 질의해 그렇게 답변을 받았다”고 말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돼 “그럼 1순위인 맞벌이보다 3순위 전업주부라도 단지 주민이면 우선권을 갖는다는 것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서울시 보육과에 여러 차례 물어봐도 공무원들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만 했다. 무상보육으로 인해 민간 어린이집에 대해서도 정부 지원금이 100% 나가기 때문에 국공립 어린이집과 동일한 기준으로 아이들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무상보육 실시 이후 어린이집에서 저녁 늦게까지 돌봐줘야 하는 직장맘 자녀들을 회피한다는 이야기가 들릴 때마다 설마 했는데 내가 직접 그런 일을 겪으니 당황스러웠다. 해당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어린이집 운영비를 지원해주는 것도 아닌데 법정 순위를 무시하고 주민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말은 어린이집이 원하는 아이들을 골라 받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이 안됐다.


(경향신문DB)


무상보육, 취지 좋고 기꺼이 환영한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활동 높이기냐, 아니면 출산 장려냐에 따라서 정책의 세부 방향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어린이집 보육료 지원 중심의 무상보육 정책은 결과적으로 직장 다니던 여성들도 직장을 그만둬야 어린이집에 애를 맡길 수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무상보육의 목적이 저출산 탈출을 위해서라면 지금처럼 직장맘 자녀를 위한 종일반 체제의 어린이집들이 일반 가정에서도 양육이 가능한 자녀들을 함께 돌보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주부들이 장보기, 병원 가기, 운동하기 등 일이 있을 때마다 잠깐씩 또는 반나절씩 맡길 수 있는 시간제 보육시설을 만들든지, 아니면 베이비시터 인력을 제대로 양성해 필요한 가정에 무상 파견해주는 형식으로 다변화해야 할 것이다.


솔직히 지금처럼 ‘무상보육’할 것이라면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차라리 제 돈 내고 정말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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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경향신문이 칼럼 필진을 크게 보강했다. 새로운 필진이 다양한 칼럼을 통해 국내외 이슈와 현안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진단해 독자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줄 것으로 보인다.


신문의 지면에 글이나 그림 등을 싣기 위해 마련된 자리를 ‘란(欄)’이라고 한다. 그런데 ‘란’의 쓰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다.


‘란’은 홀로 쓰이거나 말의 첫머리에 올 때는 두음법칙이 적용돼 ‘난’으로 적는다. ‘독자의 소리를 싣는 난’ ‘빈 난을 채우다’ 따위로 쓴다.


그런데 ‘란’이 어떤 말 뒤에 붙어 한 단어가 될 때는 ‘란’ 또는 ‘난’으로 달리 적는다. 즉 앞말이 한자어이면 ‘란’으로, 고유어이거나 외래어일 때는 ‘난’으로 적는다. 광고란·독자란·투고란은 한자어 뒤이기 때문에 ‘란’으로 표기한다. 이와 달리 어린이난·칼럼난·가십난은 고유어와 외래어 뒤에 있어 ‘난’으로 적는다.


‘란’은 한자어와 친하다. 그래서 앞말과 항상 붙어 다닌다. 이 때문에 한 단어로 인식해 ‘란’으로 표기한다. 하지만 고유어와 외래어 뒤에서는 어린이 난, 칼럼 난, 가십 난처럼 별개의 단어로 인식한다. 이 경우 첫머리에는 ‘란’이 올 수 없다는 두음법칙 규정에 따라 ‘난’으로 적는다. 한자어 뒤엔 ‘란’, 그 외에는 ‘난’으로 적는다고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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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숙 전 라디오21 대표의 공천 관련 금품수수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표류하고 있다. 검찰은 당초 민주통합당 공천헌금 의혹이 수사 대상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양씨와 친노무현(친노) 인사들의 자금 거래 내역 추적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다. 수사의 본류는 사라지고 지류만 남은 격이다. 특수수사의 총본산이라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하는 수사치고는 엉성하기 짝이 없다.


민주통합당 공천헌금 관련 양경숙씨 구속 (경향신문DB)


대검 중수부는 지난달 27일 이번 사건 첫 브리핑에서 “(수사 대상은) 공천헌금 관련”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양경숙씨가 이모씨 등 3명에게 민주당 공천을 약속하며 돈을 받았고, 이 돈이 민주당 핵심인사들에게 전달됐을 것이란 시나리오를 내비친 셈이다. 그러나 검찰이 문제의 자금에 대해 계좌추적에 착수한 것은 다음날인 28일이었다. 수사보안 문제 때문에 늦어졌다고 해명했지만, 돈의 종착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자금의 성격부터 규정한 것은 본말이 전도된 행태다. 야당을 겨냥한 표적수사가 아니라면서 ‘사건 명명 작업’은 왜 그토록 서둘렀는가.


검찰 수사의 틀이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공천 희망자들이 2월9일 수신했다는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 명의 문자메시지가 양씨의 ‘사칭 메시지’로 확인되면서다. 검찰은 이때부터 양씨가 복수의 친노 인사들에게 송금한 내역을 쫓는 쪽으로 수사 방향을 틀었다. 돈 거래의 성격은 관련자 조사를 통해 드러날 것이지만, 이들 거래 중 상당수가 명의 도용이나 송금 내역 위·변조, 통상적 자금거래일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검찰은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에 “이번 주말쯤 ‘2차 보너스’를 기대한다”고 했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언을 잊어버린 모양이다. 검찰은 지금 ‘개봉박두’성 발언을 할 때가 아니다. 수사의 곁가지는 쳐내고 원가지로 돌아갈 때다. 최종 수사 결과를 기다려봐야겠지만, 사건의 실체가 ‘공천헌금’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솔직히 인정하고 수사를 마무리하는 것이 옳다.


우리는 돈 공천을 최악의 정치범죄로 규정하고, 소속 정당과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엄단할 것을 촉구해왔다. 다만 누구에게든 균일한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중앙선관위가 수사의뢰한 새누리당 돈 공천 사건은 부산지검에 내려보내고 ‘제보’로 시작된 양씨 사건은 대검 중수부가 맡으면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뢰성은 이미 훼손됐다. 검찰은 더 이상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을 만한 행태를 보여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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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소설가


이번엔 제대로 왔다. 15호 태풍 볼라벤 말이다. 저번에 7호 태풍 카눈 이야기를 할 때 혼자 사는 여자 집단속 해주러 갔다가 영원히 보살피게 된 사내가 이곳에 적지 않다고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내 후배이다. 2003년 태풍 매미가 중매를 섰던 후배는 식당을 한다. 파도가 일고 바람이 강해지기 시작하던 8월27일 저녁 그 집에서 밥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있었다. 가보니 갈비찜과 생선구이로 상이 푸짐했다.


날씨가 나쁘면 장사는 쉬기 마련이다. 그런 날은 이렇게 잘 차려먹으며 관광객들에게 지친 심신을 달래기도 한다지만 밥상이 무슨 기념일 같았다. 그들 부부는 결혼기념일 같은 것도 기념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러자니 9년 전 몰아쳐왔던 태풍을 기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그 말을 하자 잡채도 하려고 했는데 재료가 없어서 못했다며 제수씨는 웃었다.





밥 잘 얻어먹었으나 나는 그만 내 집으로 넘어오지 못했다. 본격적인 광풍이 불기 시작해버린 것이다. 미쳐 날뛰는 바람은 밤 내내 불었다. 파도는 제방을 넘어오고 고도와 서도를 잇는 교각에서는 귀곡성 같은 울음이 계속되었다. 주민들은 태풍 단속에 도가 튼 이들이다. 거문슈퍼의 테이프와 밧줄이 진즉 동이 났을 정도이다. 그렇게 꽁꽁 묶어두었어도 집과 배가 걱정되어 어판장에 모인 채 뜬눈으로 밤을 샜다. 육지에서 온 이들은 바람소리가 무서워 잠들지 못했다.


밤중에는 정전이 되어서 식당 수족관의 물고기가 모두 죽어버렸다. 모텔 간판은 떨어지고 가두리 그물이 찢어져 애써 키운 능성어가 모두 빠져나가 버렸다. 어떤 할머니가 사는 집은 지붕이 거꾸로 뒤집힌 채 옆집 지붕 위로 넘어갔고 배도 여러 척 부서져버렸다고 한다.


나는 다음날 오전에 교각을 넘어가려고 시도하다가 되돌아서고 말았다. 여전히 돌멩이가 날아 올라오고 바람에 몸을 지탱하기조차 어려웠다. 보통 태풍이 닥치면 몇 시간 후려치다가 순간 잠잠해지는데 이번 것은 워낙 반경이 넓어서 12시간 넘게 계속되었던 것이다.


오후에 간신히 집에 왔는데 얼마나 파도가 강했는지 복어와 조개, 심지어는 오분자기까지 밀려와 죽어있었다. 한 끼 반찬거리는 생겼지만 섬마을이 온통 시름에 잠겨버려서 먹어지지가 않았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후배 부부의 기념도 무색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 살아갈 테고 태풍도 또 올 것이다. 혹 아는가. 이 와중에 또 한 쌍의 부부가 탄생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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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증원 문제를 둘러싸고 의·정 갈등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엊그제 연세대 의료복지연구소가 보건복지부의 의뢰로 작성한 의사 수급 추계 보고서를 통해 현재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포함) 정원을 20%가량 늘릴 것을 주문하면서다. 이에 앞서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주최 정책토론회에서도 의대 입학 정원을 4000~6000명 수준으로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의사협회는 즉각 성명을 통해 “향후 의사 인력 공급 과잉에 따른 사회적 비용 낭비를 예상치 못하는 비효율적이고 근시안적인 해결책”이라며 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SBS 드라마 <신의>출연을 앞두고 ‘의사 수업’을 받고 있는 김희선. (출처: 경향DB)


30년 해묵은 논쟁이 새삼 불거진 것은 의사단체의 반발과 정부의 미온적인 정책으로 공공의료 인력 수급문제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0년 의약분업 시행 과정에서 의료계의 요구를 수용해 의대 입학 정원 감축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그동안 의료 현실은 정반대로 나타났다. 국민의 의료 이용과 요양병원, 외국인 환자 등의 증가로 의료 수요는 더 늘어났다. ‘피안성·정재영’이라는 유행어가 말해주듯이 전공의 수급 불균형 문제라든가 지방병원 기피 현상도 심화됐다. 특히 의대 여학생 비율 증가로 공중보건의 확보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의사 수가 부족해서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의사협회는 전혀 다른 논리를 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 의사 증가율이 5배 높고 국토 면적당 의사 밀도, 인구 증가율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의사 과잉’이라는 것이다.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030년이면 OECD 평균을 넘어설 것이며, 의사 밀도도 2009년 현재 OECD 회원국 중 2위로 의료접근성이 뛰어나다는 게 의사협회의 주장이다. 따라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보건장학의사제도나 시니어닥터 등 기존 인력의 효율적 활용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정 간의 이런 공방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대형병원, 수도권, 인기 과목에 의사 인력이 집중되고 의료취약지역의 사정은 더욱 열악해지는 현실을 외면한 숫자놀음일 따름이다. 민간의료가 90%가 넘는 우리 의료 현실에서 정부는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데 더욱 집중하고 의사단체는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논리보다 국민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맞다. 의사 증원 문제는 공공성과 지방 발전을 돕는 방향으로 풀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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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모두는 고통스럽다. 소녀라고 부르기에도 어린 여자아이가 집에서 자다 납치돼 성폭행당한 사건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흉악범을 사형으로 응징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어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흉악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저지른 사람도 ‘죽을 수 있다’는 경고 차원에서도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우리 사회가 사형 집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관심있게 보고 있다”며 집행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리는 “흉악범이 감옥에서 발 뻗고 자는 게 정의냐”며 울분을 터뜨리는 피해자 가족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드라마 <추적자>의 주인공 백홍석처럼 범인을 직접 응징하고 싶은 마음을 왜 모르겠는가. 문제는 이러한 분노에 편승해 선정적 여론몰이를 하는 일부 세력이다. 범죄를 척결하려면 원인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살펴야 한다. 처벌 강화가 범죄 예방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다짜고짜 사형 집행부터 재개하자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포퓰리즘이다.


출처: 경향DB


사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부인하는 야만적 형벌이다. 흉악범죄 억제 효과도 입증된 바가 없다. 유엔은 1988년과 1996년 제출한 보고서에서 “사형 집행이 종신형보다 더 큰 예방효과를 갖는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캐나다는 1980년대 사형제를 폐지한 이후 살인이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흉악범은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이 취약한 사람들이어서 처벌 수위를 높인다 해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형제를 법률적 또는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국가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이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조사 대상 198개국 중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10년 이상 집행하지 않은 나라가 한국을 포함해 141개국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사형을 실제 집행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뿐이다.


아동 대상 성범죄를 줄이는 근본적 대책은 아동을 홀로 방치하지 않는 일이다. 방과후 돌봐줄 보호자가 없는 어린이들에겐 학교와 사회에서 체계적인 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초등학교 ‘돌봄 교실’의 운영을 내실화하고, 지역공동체 차원에서도 주민자치조직과 지자체가 연계해 촘촘한 돌봄 네트워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성범죄자들의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선 가해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지금도 성범죄자 치료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지만, 선진국에 비해 기간이 짧고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장기간 고통을 겪게 될 피해자와 그 가족의 신체적·정신적 치유를 위해 관련 예산을 늘리는 일도 시급하다. 제2, 제3의 나주 사건을 막으려면 이성과 인내심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정의를 실현하는 데 지름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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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 성북문화재단 대표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2리에는 500여 사람이 삽니다. 이분들 중에는 50년째 이발소를 운영하는 주인장이 있어요. 외관부터 소품까지 모두 근대 박물관인 이발소를 지키며 강화 토박이로 살아온 67세 이발사는 숨 쉬는 역사 교과서예요. 과묵한 인상과 달리 입만 떼면 강화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지요. 직접 키운 순무와 신선한 야채를 파는 천막 가게의 67세 주인장은 전에 물레 양장점을 오래 해서 동네에선 “물레야~”로 불려요. 쾌활하고 붙임성 좋은 주인장은 도시에서 온 낯선 청년들에게 순무 김치 담그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길가다 훈수 두는 이웃들을 끌어들여 잔치판을 벌이지요. 배우는 청년들보단 사실 이분들이 한 가득씩 순무 김치를 휘리릭 버무리고 끝낸답니다. 


 분홍색 지붕집에서 병아리와 닭을 키우며 동네 고양이들 밥상도 같이 차려주는 75세 주인장은 “닭이 크지 않아 걱정”이고 손님들이 오면 “고양이들이 오지 않아 걱정”이라면서도 활달하게 웃으세요. “도라지는 묵히면 약이 되는데 사람은 묵히면 바보가 된다”와 같은 명언을 쏟아놓는 유창한 달변가지요. 불쑥 찾아온 도시 청년들에게 담에 올 땐 떡을 해놓겠다고 약속했어요. 나란히 붙어 있는 은하 미장원과 은하 악기사는 부부가 운영하는데 안쪽엔 늘 대문이 열려 있는 가정집이 있어요. 장사보다는 가게문을 열어둔 채 마실 나가는 게 일이라서 부부가 순무가게나 길에서 만날 때가 더 많다며 수줍게 웃는 은하 미장원의 65세 주인장은 지금도 새댁 같아요. 


(경향신문DB)


사는 데는 인천이나 온수리에 정을 붙인 지 10년차인 과일 트럭의 60세 주인장은 파란만장 인생사를 들려주면서도 사진을 찍으면 미소를 날리지요. 전기공사 사업을 하다 IMF로 접은 뒤 옷장사로 떠돌다가 몸이 아파 한 군데서 오래 단골 장사를 하기로 맘먹었는데 그곳이 온수리였대요. 가난해서 공부 대신 일찍 시계 기술을 배워 가족을 건사했고 아들은 서울대 나와 특파원한다며 자랑하는 광명당 주인장은 아직 이름과 나이를 안 알려주었어요. 한창 때는 장사하러 김포를 나가는데 배를 못 타면 맨몸으로 바다를 건넜다면서 이젠 벌이가 안 된대요. 그래도 매일 광명당을 열고 있었더니 동네 사람들이 모이는 마을의 중심 복덕방이 되었다면서 싫지 않은 표정이에요. 


지금까지 소개한 이분들을 다시 소개하지요. 이발소의 유길희 교수님, 순무가게의 김정자 교수님, 분홍색 지붕집의 고정숙 교수님, 은하 미장원의 유영원 교수님, 과일 트럭의 김희규 교수님, 광명당의 ○○○ 교수님입니다. 가르치는 과목은 손수 이발하는 법, 순무 김치 담그는 법, 닭 기르고 고양이 밥 주는 법, 값싸고 튼튼한 시계 사는 법부터 강화에서 이웃되는 법, 전쟁 통에 살아가는 법, 사기당하지 않는 법, 부부로 오래가는 법, 인생을 알아가는 법 등 갈수록 늘어나네요. 그런데 이분들이 자청해 교수님이 된 건 아니에요. 서로를 많이 알지도 않았고 교류가 잦았던 것도 아니고요. 이분들이 줄줄이 교수님이 된 사연에는 작년 8월부터 온수2리 마을을 쏘다닌 두 청년이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의 우민정, 우민희 자매. 파주에 사는 이 자매는 작년부터 이곳에 온수리대학을 열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교수가 되고 도시에서 찾아오는 청년과 청소년들이 학생이 되는 이상하고도 재미있는 대학이지요. 올해 8월엔 수도권의 중1 청소년부터 대학생과 30대 청년까지 14명이 2박3일간 온수리대학 캠프에 참여했네요. 이 캠프를 계절별로 열고 월별로 특화해서 온수리대학 교수님들께 지속적인 강사료와 수입을 드리는 것이 우씨 자매의 목표더군요. 온수2리만 봐도 교수님들이 무궁무진하다면서 이분들의 경험과 이야기가 곧 우리 시대의 청년과 청소년에게 긴요한 산지식이자 기술이라면서요. 이 사례를 접하는 순간 한 방에 감이 옵디다.


뭔 감이냐고요? 700만을 웃도는 베이비 부머 은퇴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할 게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감이지요.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 중반에 난 이분들은 온수리대학의 교수님들 세대와 또 다른 지식과 네트워크와 자산이 많지요. 이분들의 경험을 불안에 내몰리는 자영업과 단순 근로가 아닌 제3섹터로 안내하여 적정 노동과 적정 임금의 창의적 생태계로 가꾸는 것, 이것은 이분들의 인생에 녹아든 희로애락의 가치와 쓸모를 재발견하는 정중한 태도와 꼼꼼한 관계 재형성을 통해야만 작동될 겁니다. 그 가능성을 우씨 자매가 세대 간 연대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네요. 


고정숙 교수님 말대로 베이비 부머도 청년도 따로 묵혀야 될 이유가 없어요. 같은 부류끼리 무리지어 경계에 갇혀 있으면 더 외로워져서 웰빙에 이어 힐링 상품을 소비하다 끝날 뿐이에요. 그러나 이렇게 세대가 서로 만나면 누구도 바보가 되질 않고 도리어 총기가 살아나며 살맛이 나요. ○○은대학이 번지는 사정도 이거지요. 잉여 바보가 아니라 내 인생의 주인장들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그 희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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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아동포르노 유통국 수준을 넘어 주요 생산국이라는 보도는 충격적이다. 영국 인터넷감시재단(IWF)의 온라인 아동음란물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전 세계 유통 물량의 2.16%를 생산해 미국·러시아·일본 등에 이어 6위라고 한다. 사실이라면 매우 놀랍고 심각한 일이다. 경찰을 비롯한 관계 당국은 낱낱이 실태를 파악해 일벌백계하고 근절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동을 성적 대상으로 삼는 포르노인 이른바 롤리타물(物)의 제작·유통은 외국 음란사이트에서도 극도로 금기시하는 사항이다. 살인이나 폭력, 성폭력 등의 실제 상황을 담은 스너프물과 마찬가지로 인터폴 등의 강력한 수사 및 엄벌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법망을 피해 유사 롤리타물이 범람하고 있으나 이 역시 그냥 두어서는 안된다. 최근 나주 어린이 성폭행 사건의 고모씨와 통영 어린이 납치·살해 사건의 김모씨, 2010년 대낮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1학년 어린이를 성폭행한 사건의 김수철 등 아동 성범죄자들이 하나같이 아동포르노를 다량 보유하고 있었거나 범행 전 이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는 이들 소아기호증 성도착자에게 아동포르노가 별 제한 없이 노출돼 있었던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에서 초등생을 납치·성폭행한 김수철이 검거 직후 조사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DB)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규제 대책이 마땅찮다는 점이다. 외국 서버를 통해 들어오는 아동포르노는 막을 방법이 없고 이를 유통시키는 파일공유(P2P) 사이트 운영자와 ‘헤비업로더’에 대한 단속도 한계가 있다고 한다. 아동포르노 제작·배포자는 징역 5~7년형, 단순 소지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는 등의 느슨한 처벌 규정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컴퓨터에서 내려받기만 해도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미국과 대조적이다. 그나마 아동포르노를 소지한 혐의로 처벌한 사례가 이제까지 국내에서는 한 건도 없었다고 한다. 


어제 경찰은 ‘성폭력·강력범죄 총력 대응을 위한 종합 대책’을 발표하면서 아동포르노의 국내외 제작·유입·유통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차단 의지를 밝혔다. 아동포르노 전담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그 주요 유통 채널인 웹하드는 물론 서버위탁사업자인 IDC업체에 대해서도 점검과 단속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아동포르노 단순 소지자에 대한 무관용 대응 방침도 밝혔다. 전국 누리캅스 회원을 동원해 집중 모니터링 및 신고를 유도하고 인터폴 및 주요국과 국제공조 체제를 수립하겠다는 내용도 들어 있다. 일과성 전시행정이나 용두사미가 안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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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이달 중 다시 지상파TV의 종일 방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현행 지상파TV의 방송시간은 오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19시간으로 돼 있으나,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5시간을 추가 허용해 24시간 방송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지상파TV의 방송시간을 자율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올해 초부터 종일 방송을 허용키로 방침을 정했지만, 신문과 유선방송업계의 반발 등으로 무산됐다. 지상파TV의 종일 방송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상파TV의 광고시장 독과점을 막고 언론매체 간 균형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허용해서는 안된다.


지상파TV의 방송시간 제한은 박정희 정권 시절이던 1973년 오일 쇼크 이후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시작됐다. 그 뒤 세월이 흐르면서 유선방송 허용으로 방송환경이 변하고 주5일 근무 등으로 국민의 생활 방식이 달라지자 2005년 12월부터 낮방송 4시간이 허용됐다. 이후 종일 방송은 지상파TV의 숙원 사업이었고, 2009년 방통위는 방송시간 자율화 방침을 검토 중임을 밝힌 바 있다. 지상파TV업계는 종일 방송을 해야 하는 이유로 시청자의 볼 권리 확대와 방송 편성의 자율성 확보, 유선방송과의 불균형 규제 완화 등을 들고 있다.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방송시간을 자율화하고 있다는 점도 꼽는다.


(경향신문DB)


이 같은 지상파TV업계의 주장이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식적’인 시청자의 볼 권리 확대나 편성의 자율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송의 질을 확보하는 일이다. 지상파TV는 7년 전 낮방송 허용 이후 더 많은 양질의 프로그램 제공 등으로 시청자의 ‘실질적’인 방송 접근권을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지상파TV의 종일 방송은 광고시장 독과점을 심화시켜 신문이나 유선방송업계에 큰 타격을 준다는 데 있다. 그 결과는 여론 다양화나 국민의 정보 접근권 제한으로 나타날 것이 뻔하다. 방송시간 규제 완화가 능사가 아닌 이유다.


정부가 대통령 임기 말에 찬반 논란이 첨예하게 벌어지는 사안을 굳이 처리하려는 것도 문제다. 제도란 한 번 바꾸면 다시 고치기 어려운 만큼 변경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지상파TV 방송시간 자율화처럼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제도라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국민의 방송 정책 평가에서 이미 낙제 점수를 받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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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 충남도지사


 

지난 6월 대한민국 인구가 500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에 진입한 것이다.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단연코 ‘사람’이라고 답한다. 변변한 부존자원도 없이, 더구나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를 겪은 나라가 세계 10위권대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했다. 우리 국민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에도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 창조적 두뇌와 창의적 감수성으로 만들어가는 지식재산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세계는 이러한 지식재산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에 돌입했다. 가히 지식재산 전쟁시대를 방불케 한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추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정부가 작년에 지식재산기본법을 제정하고 국가지식재산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또 올해를 ‘지식재산 강국 원년’으로 선포하고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식재산 강국의 실현을 위해 몇 가지 짚어야 할 과제가 있다. 먼저 양보다는 질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의 두뇌와 기술은 잠재력 면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원천기술 등 질적인 면으로 본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기술무역수지 적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 번째로 많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고부가가치의 원천기술을 위한 연구개발(R&D) 투자와 소프트파워, 기술인력 확충에 국가적 차원의 좀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 중소기업의 지식재산 창출 및 보호에 힘써야 한다. 기술 개발도 어렵지만, 어렵게 기술을 만들어도 그것을 지식재산으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강소기업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길임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세심한 관심과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끝으로, 지방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도 중요할 것이다. 충남도에서는 이미 2009년 말 충청남도 지식재산진흥 조례를 제정했으며, 지식재산으로 생기 넘치는 충청남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경향신문DB)


지식재산 전쟁은 곧 인재 전쟁이다. 대기업, 수도권 중심의 인재 창출 전략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지식재산 강국의 실현을 위해서는 국가균형 발전전략과 대·중·소 동반성장 전략을 연계해 추진해야 한다. 지식재산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물론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 등이 함께 힘과 뜻을 모아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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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하 | 외교통상부 개발협력국장


공항은 설렘과 즐거움이 있는 공간이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 사업차 해외로 나가는 사람 등 공항을 찾은 이들의 얼굴에는 평소와는 다른 감정들이 가득하다. 현재 국내에서 출발하는 국제선 항공 요금에는 아프리카 질병과 빈곤퇴치를 위한 기여금 1000원이 포함돼 있다. 이는 항공권에 개발원조 목적의 기여금을 부과하는 ‘항공권 연대기금’ 제도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 칠레 등도 동참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이란 명칭으로 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성되는 기금은 한 해 약 150억원으로 국제의약품구매기구, 세계백신면역연합, 우리나라 비정부기구(NGO)의 아프리카 질병퇴치사업에 지원되고 있다. 실제로 후천성면역결핍증, 결핵 등 위험 질병 발병률이 높은 우간다 등은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을 통해 낙후된 보건시설 개선 자금을 지원받아 건강한 삶을 누릴 기회를 갖게 됐다.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은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제고하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국제사회는 지난 2000년, 빈곤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새천년개발목표(MDGs)를 발표했고, 전 세계 인구 7명 가운데 1명은 매일 굶주리고 있는 현실을 개선하고자 공적개발원조(ODA)를 증대시켜왔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공적개발원조 금액을 늘려왔지만 국가 경제규모에 비해 원조 규모가 작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원조 비율은 0.12%로, OECD 23개 국가 중 22위에 머물렀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적 개발재원인 국제빈곤퇴치기여금 제도 운영은 새천년개발목표 재원 마련에 힘을 보탬으로써 우리나라의 위상을 높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질병치료 지원을 받은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기억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고 하니 이보다 더 큰 국위선양이 또 있을까. 


(경향신문DB)


오는 9월 말 일몰시한을 두었던 국제빈곤퇴치기여금 제도는 그 유용성에 입각해 5년 더 연장하는 개정법안이 19대 국회 1호 법안으로 통과됐다. 앞으로도 국제빈곤퇴치기여금을 통해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질병에서 벗어나 새 희망을 꿈꾸게 될 것이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발돋움한 대한민국. 아프리카가 국제사회의 지원이 얼마나 필요한지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아프리카에 희망을 전하는 따뜻한 비행이 이어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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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묻지마 범죄’와 아동 성폭력 사건 끝에 경찰이 거리 불심검문을 2년 만에 부활하겠다고 나섰다. 경찰청은 이달부터 대로변과 지하철역 등 대중운집 시설과 다세대주택가를 비롯한 범죄 다발지역에서 불심검문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라는 지침을 어제 전국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에 내려보냈다고 한다. 불심검문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에 근거한 것으로 범죄를 범했거나 범하려 한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거동 수상자를 경찰관이 정지시켜 질문을 던지거나, 흉기 소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부여한 권한이다. 그러나 영장주의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그 폐해가 끊임없이 지적돼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9월 인권침해를 이유로 인천의 한 경찰서장과 지구대장에게 서면경고와 직무교육을 권고한 뒤 사실상 거리에서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이다.


경찰이 검문검색 강화에 애착을 보여온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10년 5월에는 아예 시민이 정지 검문검색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삭제하고, 검색 대상을 흉기 외에 ‘그 밖의 위험한 물건’ ‘공공의 안전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물건’으로 확대한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가 역시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경찰의 권한이 커지면서 국민 신체의 자유,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수정·보완 권고를 받기도 했다. 일선 경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이 얼마든지 침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검문하는 경찰관 (출처: 경향DB)


‘절망범죄’ ‘은둔형 외톨이 범죄’가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하지만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을 더욱 불안케 하는 것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이번 나주 초등학생 성폭력 사건만 해도 피해 어린이의 집과 영산대교 인근에 CCTV가 1대도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해당 지역에서 평소 2인 1개조로 순찰차를 타고 24시간 순찰을 해왔다고 주장했지만, 사건예방은커녕 대로변에 방치된 피해어린이를 신고한 지 5시간이 지나도록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 4월 수원 중부서 관내에서 발생한 20대 여성 납치, 살해 사건에서는 112신고를 묵살해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경찰은 재발방지를 다짐했지만, 수원 중부서는 불과 두 달 뒤 112를 통한 30대 여성의 구조요청을 또다시 외면한 바 있다. 경찰이 검문검색부터 강화하겠다는 것은 제손에 쥐여준 인원·장비·권한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에 앞서 경찰권만 강화하겠다는, 역발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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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찬 | 문화부장


폴 스위지(1910~2004)라는 경제학자가 있다. 혹자는 그를 진보 월간지 ‘먼슬리 리뷰’의 창간인 겸 발행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먼슬리 리뷰’에 앞서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The Theory of Capitalist Development)이었다. 1942년 쓰여진 이 책은 지금도 마르크스 경제학 입문서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이 책은 1970~80년대 한국 대학가에서 은밀히 유포돼 읽혔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이 책을 독서 목록에 넣어 읽고 토론했다. 당시만 해도 번역이 안됐던 터라 학생들은 이 책을 그냥 ‘스위지’라고 불렀다. 스위지는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과 동의어였다. (책은 2009년 필맥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됐다.)


내가 ‘스위지’를 기억하는 것은 선배 황정하 때문이다. 그는 스위지의 탐독자였다. 키가 훤칠하게 컸던 그는 양복 윗옷 주머니에 스위지 제록스판을 넣고 다니며 보았다. 영어 실력이 뛰어났던 그는 사전도 없이 술술 읽어냈다. 당시 서울 성수동에서 노동야학 교사로도 활동했던 그에게 ‘스위지’는 노동 현실을 이해하는 좋은 도구였던 것이다. 대학 졸업을 3개월여 앞둔 1983년 11월 황정하는 학생 시위를 주동하다 도서관 5층에서 추락해 숨졌다. 그는 시위에 앞서 경찰의 조사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물건을 모두 정리했다. 스위지 책은 한 후배가 전해받았는데, 그의 유일한 유품이 됐다. 해마다 그의 기일이 되면 제사상에 이 책이 놓인다. 


유신과 전두환 군사정권시대에 카를 마르크스는 최대 금기어 가운데 하나였다. 마르크스의 저서는 모두 금서였고, 책을 소지하기만 해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받았다. 마르크스의 <자본>(Das Kapital) 원전을 접할 수 없었던 대학생들은 폴 스위지의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과 같은 <자본> 해설서를 집어들었다. 


 

칼 마르크스 (출처: 경향DB)



1988년 출판물 해금 조치로 <자본>은 빛을 보았다. 이듬해 김수행 서울대 교수가 <자본론> 완역본(비봉출판사)을 내자 도서출판 이론과실천은 곧바로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자본>을 선보였다. 비슷한 시기에 북한판 <자본론>도 수입돼 번역본 경쟁이 치열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2년 뒤 소련이 붕괴하면서 <자본>에 대한 관심은 금세 시들해졌다. 공산권의 몰락을 자본주의 승리로 받아들이는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고들 했다. <자본>이 설자리는 없었다. 


냉전체제가 무너지면서 용도폐기될 것만 같았던 마르크스주의를 불러온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세계 경제가 흔들리자 사람들은 다시 <자본>을 주목했다.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비정규직, 워킹푸어들이 늘어나면서 “마르크스가 옳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자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2010년엔 독일어판 <자본>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이어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 강의>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류동민),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강신준) 등 <자본> 입문서들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주에는 <자본론을 읽어야 할 시간>(아케가미 아키라),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김수행)가 출간됐다.


때맞춰 경향신문은 주말기획으로 ‘오늘 <자본>을 읽다’를 내보내고 있다. 이는 마르크스 <자본>을 독자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는 언론 사상 초유의 시리즈가 될 듯하다. <자본>은 어려운 책으로 정평이 나 있다. 학자들 가운데에도 완독한 이가 매우 드물다. 이 때문에 종합일간지에 <자본> 강좌를 싣는 게 옳으냐는 반문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숨막힐 듯한 작금의 현실은 <자본>이라는 ‘무기’를 필요로 한다. 작가 공지영은 최근 펴낸 <의자놀이>에서 22명의 죽음을 가져온 쌍용자동차의 무법천지와 음모 앞에서 “이 사회가 정상이냐”며 치를 떨었다. 그러면서 23, 24번째 희생자를 부르는 의자놀이를 멈추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 <자본>을 보면 쌍용차 자본주의의 음모를 읽을 수 있다. 세상에 대한 환멸과 무기력에 빠져 죽어가는 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경향신문 <자본> 연재를 맡은 강신준 교수는 20여년간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한 <자본> 전문가이다. <자본>을 완역하고 시민·대학생을 상대로 <자본>을 강의해온 강 교수는 지상강좌를 통해 독자들에게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을 전해준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미 두 차례 지상강좌를 접한 독자들은 강 교수의 친절한 강의에 기대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강 교수는 <자본> 연재를 시작하며 “노동자들이 집집마다 <자본>을 곁에 두고 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신문 연재가 <자본>을 읽는 데 길라잡이가 됐으면 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스위지’와 같은 시중의 정치경제학 입문서가 도움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에 “지금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시대인가를 늘 생각했다”고 썼다. 독자들에게 이 같은 문제의식만 전달돼도 <자본> 지상강좌는 성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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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대 부자들에 대한 기록인 <사기> ‘화식열전’을 보면 인생 삼모작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끈 인물이 나온다. 범려라는 사람이다. 춘추 말기 그는 오나라 왕을 도와 정치와 군사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도 그는 권력의 자리를 미련없이 버리고 장사꾼과 사업가로 변신해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때문에 250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는 부와 재물의 신으로까지 추앙받고 있을 정도다.


범려가 이렇게 성공적인 삶을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신서(新序)>라는 책에 기록된 다음 일화는 그의 성공 원인을 짐작케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사기'의 저자 사마천 (출처: 경향DB)

위(魏)나라에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군신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그 사람이 유죄라고 판정했고, 나머지 절반은 무죄라고 판정했다. 위왕도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위왕은 “평민의 신분으로 거부가 된 도주공(범려의 별명)에게는 틀림없이 기가 막힌 지혜가 있을 것이다”라며 사람을 보내 도주공 범려를 불렀다. 위왕은 범려가 알현하자 사안의 경위를 소상하게 설명한 다음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냐고 자문을 구했다. 


범려: 저는 일개 평민 백성에 지나지 않아 이런 형사사건을 판결할 줄은 모릅니다. 제 집에 흰 옥이 두 개 있사온데, 색도 같고 크기도 같고 광택도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1000금이 나가고, 하나는 500금이 나갑니다.


위왕: 색도 크기도 광택도 다 같은데 어째서 값이 다르오? 


범려: 그것들을 옆에서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가 좀 더 두껍습니다. 그래서 값이 배나 더 나가지요.


위왕: 옳거니! 죄를 판정하기가 어려우면 사면하면 되고, 상을 줄 것인지 말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우면 그냥 상을 주면 되지!


범려로부터 자극을 받아 후덕의 의미와 치국 방식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얻은 위왕은 “이렇게 보면 담이 얇으면 무너지고, 옷감이 얇으면 찢어지며, 그릇이 얇으면 깨지고, 술이 얕으면 이내 시어진다. 무릇 각박하면서 오래 버티는 자는 없다”는 말로 자신의 깨달음을 정리했다. 위왕은 적어도 말귀를 알아듣는 통치자였다.


범려가 옆에서 살피라고 한 것은 실제로는 늘 하던 관찰 방식, 즉 기존의 시각을 버리고 새로운 각도에서 사안을 다시 봄으로써 기존의 시각으로는 이해관계를 밝히거나 우열을 판단할 수 없음을 깨달으라는 지적이었다.


“눈동자는 다른 곳의 미세한 솜털은 볼 수 있어도 자신의 속눈썹은 보지 못하는 법이다.”(<사기> ‘월왕구천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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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웅 논설실장


언론은 빈발하는 새로운 양상의 범죄들에 적절한 작명을 하느라 분주하다. 절망, 증오, 분노, 묻지마, 자포자기 같은 수식어들이 범죄·살인 앞에 붙곤 한다. 이들 범죄는 각양각색이지만 공통 코드가 있다. 외톨이형 범죄란 것이다. 견해가 다를 수도 있겠으나 나주 아동 성폭행 사건도 그 범주다. 범인이 오랜 기간 PC방을 전전해왔고, 게임광이었다는 점에서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이나 의정부역 흉기 난동은 비교적 ‘신종’이란 이유에서 미국, 일본에서 발생한 선례들과 비교 분석되기도 한다. 여의도에서 전 직장동료와 행인들에게 마구 칼을 휘두른 김모씨 사건은 일본의 도리마(通り魔) 사건과 비슷하다고 한다. 분노 대상을 공개 ‘응징’한 것 등 미국형 다중살인을 닮았다고 보기도 한다. 총이 아닌 칼을 사용했다 뿐, 영락없이 미국식 총기난사 사건이라는 것이다. 


극단 제5스튜디오가 공연하는 도스토예프스키 원작 연극 '죄와 벌' (출처: 경향DB)


절망형 은둔자는 주로 쪽방, 고시원, 지하방 등에서 혼자 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에 등장하는 ‘나’와 비교해볼 만하다.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병든 인간이다. … 나는 악한 인간이다. 생각건대 간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 … 내가 치료 받기를 원치 않는 것은 증오심 때문이다. … 나는 이미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약 20년간을 살아왔다. …” 1864년 나온 이 소설은 무기력하고 자의식 넘치는 독백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그는 지식인이며 고립상태에서 증오에 시달리지만 무슨 범죄를 실행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작가는 결국 <죄와 벌>(1866년)에서 살인을 통해 초인사상을 실현하려다 실패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창조한다. 


시대와 사회적 배경은 달라도 ‘지하생활자’는 항상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 때 지하생활자는 물질문명과 전체주의를 냉소하지만 무기력한 지식인이었다면, 이 시대의 지하생활자는 고시원에 틀어박혀 절망과 증오를 쌓아가는 신용불량자나 게임과 음란물에 중독된 외톨이들일 수 있다. 더욱이 한국 사회는 이 사회적 낙오자, 절망형 은둔자들을 ‘양산’하는 체제다. 청년실업, 가계부채, 신용불량, 비정규직, 사회안전망 등 모든 지표가 그 이유를 말해준다. 높은 자살률과 절망범죄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거기에다 대고 그저 엄벌을 촉구하고 불심검문이나 부활하자는 건 참으로 하지하의 방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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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대 | 서울 양천소방서 홍보교육팀장


지난해 서울시의 화재통계에 따르면 소방시설 미설치 대상인 일반주택이 전체 주택의 41%를 차지하고 최근 3년간 화재 사망자의 54%가 일반주택에서 발생하는 등 일반주택은 화재로부터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화재의 경우 대부분이 심야 취침시간대에 발생하여 화재사실을 조기에 인지하지 못한 채 대피가 지연되어 유독가스 흡입에 따른 다수의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있다. 아울러 아파트와 기숙사 등 공동주택에는 소화설비, 경보설비, 피난설비 등이 의무적으로 법령에 규정돼 있지만 일반주택, 연립과 다세대 등 공동주택의 경우 화재발생 및 인명피해가 높은 실정임에도 소방시설 의무설치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이처럼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왔던 일반주택의 화재피해를 막고자 올해 7월30일부터 주택에 기초 소방시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서울시 주택 소방시설 설치에 관한 조례’가 공포돼 주택에도 층별, 가구별 소화기 1대와 구획된 실마다 단독경보형감지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단독경보형감지기는 화재가 발생하면 연기를 감지해 자동으로 경보음을 울려 신속히 대피할 수 있게 하는 설비로 기존 주택은 5년간 설치 유예기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소방방재청 등 민관 10개 단체가 ‘저소득 화재 취약계층 단독경보형감지기 달아주기 범국민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서울소방재난본부는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등 형편이 어려운 가구를 대상으로 무료로 보급하는 등 화재피해를 줄이기 위한 종합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소방관들이 서울광장 앞 지하공사장에서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실제로 지난 2010년 11월28일 새벽 2시40분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산160번지 산청마을에서 화재가 발생해 판잣집과 비닐하우스 주택 21채가 소실됐으나, 단독경보형감지기가 작동해 인명피해가 없었으며, 2011년 12월14일 강북구 미아동 주택 베란다 보일러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안방에서 낮잠을 자던 주인이 단독경보형감지기 경보 소리에 깨어 초기에 자체 진화해 인명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단독경보형감지기는 개당 가격이 1만20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화재에 취약한 일반주택의 화재 시 소중한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효과적인 안전설비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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