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검증은 매우 중요하다. 유권자들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각 후보의 정책과 공약, 과거 행적 등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공영방송 후보 검증 작업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KBS에서 후보 검증 프로그램 하나가 편파성 시비에 휘말려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결의하는 등 사달이 벌어졌다. 


전말은 이렇다. KBS는 지난 4일 <시사기획 창>을 통해 ‘대선 특별기획-대선 후보를 말한다’란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이튿날 KBS 임시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은 박근혜 후보에게 불리한 편파방송이었다고 공격했다. 이 자리에는 본부장이나 임원도 아닌 김진석 대선후보진실검증단장이 책임자로 불려왔다. 길환영 신임 사장은 편파 시비의 소지가 있다, 게이트키핑에 문제가 있다며 동조 발언을 했다. 튿날 김 단장은 사의를 표명하고 잠적했다. KBS 기자협회는 이날 기자총회를 열어 압도적 비율로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이유는 대선후보진실검증단에 대한 부당 개입 규탄, 대선 보도의 공정성 확보와 제작 자율성 수호였다. 


길환영 사장 반대하는 KBS노조 (출처: 경향 DB)


KBS, MBC 두 공영방송의 선거 관련 보도가 공정성을 잃고 특정 후보에 치우친 것은 새로운 게 아니다. 때마침 그 편파방송 때문에 사상 초유의 대선 직전 제작거부 결의 사태까지 초래됐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 편파성 문제가 거꾸로 여당 추천 이사들로부터 제기됐다는 부분이다. 


문제는 그들이 제기한 편파성의 설득력이다. 이들은 박근혜 후보에 대한 검증 편이 문재인 후보에 비해 너무 속속들이 파헤쳐졌다는 것 등을 질타했다고 한다. 이는 이사회의 권한을 크게 넘어선 방송 편성과 내용에 대한 간섭이다. 본디 이 후보 검증 방송은 길 사장 등의 부정적 태도로 보류되는 곡절 끝에 나간 것이었다. 방송 내용도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등 관련 의혹과 역사관 등을 다뤘고, 문 후보의 경우 한·미 FTA 등에 대한 말바꾸기 논란을 조명하는 등 사실에 기초해 양측의 문제들을 균형있게 다루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편파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달 새누리당 문방위원들이 방송사들에 몰려가 ‘편파보도’에 항의했던 일을 떠올리게 만든다.


KBS 대선후보진실검증단은 이날 낸 성명에서 “무엇이 편파적이며 게이트키핑을 못했다는 게 무슨 말인가”라고 물었다. 또 “(이 프로는) 평균 14년차의 기자들이 고민과 토론을 하며 내놓은 기획물”이라며 “정치적인 충성심에 눈이 멀어 공영방송을 망치고 기자정신과 저널리즘을 모욕하는 짓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내년부터 무상보육(누리과정)이 3~5세로 확대되지만 수용 시설의 절대 부족과 예산 확보 차질 우려로 학부모의 불만과 불안은 커지고 있다. 자녀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무상보육 확대로 유치원에 가려는 어린이가 급증하면서 입학 경쟁률이 높아진 탓이다. 게다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내년에 늘어날 보육료 부담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무엇보다 정치권이 필요 예산이나 시설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무상보육 확대를 추진한 결과다. 후속대책을 제때 제대로 마련하지 않은 정부에도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지금이라도 정치권과 정부는 사태 해결에 신속하게 나서야 할 것이다.


한 학부모가 유치원에서 열린 내년 입학생 추첨에서 당첨번호를 뽑은 뒤 기뻐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최근 서울 등 수도권의 유치원에서는 치열한 입학 경쟁이 펼쳐졌다. ‘추첨대란’ ‘추첨전쟁’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유치원 입학 희망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수용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치원들이 같은 날 입학 추첨을 하는 바람에 가족은 물론 친·인척까지 동원해 여러 곳에 지원한 학부모들도 있었다고 한다. 경쟁률이 높아 추첨에서는 당첨자보다 탈락자가 더 많았다. 특히 추첨에서 탈락한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녀 보육이 당장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어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원망이 클 것이다. 어떻게 3세 유아 때부터 이 같은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지 참으로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내년에 누리과정이 확대되지만 필요한 예산 확보는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 보육비를 마련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정부에 추가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미 충분한 지원을 해줬다며 맞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지방의회는 내년도 교육청 예산 심의를 대선 이후로 보류하는가 하면, 지방자치단체가 짜서 올린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삭감까지 하고 있다. 이 같은 지방의회의 움직임은 정부 지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한 ‘항의’로 보이지만 학부모로서는 행여 ‘보육대란’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누리과정 확대는 3세부터 사실상 공교육이 시작된다는 데 의미가 크다. 따라서 준비 부족으로 나타난 문제에 대해서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학부모의 불만이나 불안을 없애면서 새로운 제도를 조기에 안착시킬 수 있다. 무엇보다 수용 시설을 크게 늘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가 보육비 부담을 놓고 벌이는 갈등도 원만하게 정리돼야 한다. 두 가지 사안 다 결국은 돈, 예산의 문제다. 정치권이 나서서 적절한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이유다. 결자해지 차원에서도 그렇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하도록 놔두는 것은 무책임하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볼썽사납게 힘겨루기나 할 때가 아니다.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로 타협안을 도출하기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어제 부산에서 안철수 무소속 전 후보의 지지자 모임에 참석해 한 표를 호소했다. 부산에서 열린 의원총회에는 당초 예상보다 20명이 넘는 의원들이 참석했다고 한다. 안 전 후보가 문 후보에 대한 적극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2인3각 경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문 후보 측 우상호 공보단장은 “주말을 기점으로 역전의 발판이 마련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러나 문 후보 측 계산법은 아직 희망사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안 전 후보가 본격적으로 지원에 나서면서 ‘잘해야 해볼 만하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문 후보의 지지율을 많아야 3~4%포인트가량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판세를 뒤집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안 전 후보가 지원에 나설 적절한 시점을 놓쳤다거나 문·안 두 사람 지지층의 화학적 결합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다만 안 전 후보의 지원 형식과 내용뿐만 아니라 문 후보 측이 내놓는 대응책은 변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앞서 정치권에 ‘개인 안철수’가 아닌 ‘안철수 현상’을 보라고 주문한 바 있다. 같은 맥락에서 문·안의 연대와 공조만으론 국민을 감동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문재인-안철수, 아름다운 동행 (출처: 경향DB)


문 후보로 상징되는 ‘친노 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반감은 여전하다. 친노의 핵심인 이해찬 대표가 용퇴했고, 참여정부 출신 친노 인사 9명이 선거전에서 2선 후퇴를 천명했으나 중도·부동층의 많은 유권자들은 친노가 아직도 문 후보의 배후에 진을 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않고 있다. 친노 인사들로선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근거가 없는 얘기도 아니다. 참여정부의 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가 페이스북에 ‘민주당과 참여정부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던 인사들은 기득권을 내려놓자’고 올린 글이 묘한 파장을 일으키는 것도 그런 흔적이라 할 수 있다.


문 후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제대로 겨뤄볼 요량이라면 ‘안철수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문 후보 측이 제시한 비례대표 증원이나 의원 정수 조정, 중앙당 폐지 등 정치쇄신은 응당 필요하다. 승리할 경우 거국내각을 구성한다는 약속도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가 아닌 지금 당장, 국민들의 손에 잡히는 쇄신책이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친노 인사들의 주요 임명직 진출 포기를 비롯해 친노 색채를 빼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구체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안 전 후보는 교수직도, 후보직도 내던졌다. 더 이상 뭘 망설이는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눈이 쏟아지는 길을 차 몰고 나섰다가 5분 거리를 빠져나오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겨울엔 돌아다니지 말고 겨울잠이나 자는 게 최상책이라는 걸 실감한 날이었다. 분명 대설주의보는 인간들에게 돌아다니지 말고 집에서 자숙하며 지내라는 하늘의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시간 낭비, 기름 낭비, 탄소 배출에 스트레스로 기운만 빠지니 자연을 거스른 대가가 너무 크다. 집에 돌아와 마당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려는데 삽살개가 온갖 귀여움을 떠는 모습에 비로소 첫눈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염화칼슘 뿌린 도로의 칙칙한 눈발은 한숨만 나오게 하지만 흙마당과 소나무 잎에 쌓인 순백의 눈발은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김장 배추를 수확하면 대개 다듬은 배추 겉잎들을 아무렇게나 밭에다 버리고 간다. 풀 나지 말라고 깔아놓은 덮개용 비닐도 그냥 방치한다. 이런 것들은 벌레와 병균이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하는 이불 역할을 한다. 탄저병 걸린 고춧대도 밭에 그대로 둔다. 이듬해 또 탄저병에 걸리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겨울의 맹추위는 생태계에서 중요한 청소꾼 역할을 한다. 벌레도 죽이고 균도 죽이고 소독 역할을 한다. 그래서 무서운 동장군이 밭 곳곳을 쓸고 가도록 밭을 깨끗이 청소해 두어야 한다. 특히 도랑 청소가 중요하다. 도랑은 벌레가 월동하기 더 좋다. 여름 장마로 인해 도랑 바닥이 높아져 있는데 그 흙을 밭에다 뿌려주면 밭 흙을 좋게 해준다. 도랑의 흙은 숲의 좋은 거름 흙이 비에 쓸려와 쌓인 것이다.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도랑의 잡초 검불을 없애 통풍 잘되게 하고 바닥을 준설했으니 배수에도 좋다.



보리 이모작이 안되는 추운 지방에선 논에도 수확 뒤 흙을 깊게 간 다음 물을 담아둔다. 물을 담아두면 논의 대표적인 풀인 둑새풀이 줄고 논 흙은 얼었다 녹았다 하며 고와지고 벌레 등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진다. 새들이 찾아와 벌레를 잡아먹고 똥을 싸니 거름도 된다. 


그래서 농사의 끝은 수확이 아니라 수확 후 청소를 깨끗이 하거나 흙을 갈아두는 것이다. 땅이 얼기 시작하는 동지 전에는 꼭 해야 하는 논밭청소는 어쩌면 농사의 끝이 아니라 더 중요한 시작일지 모른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구용|전남대 교수·철학

민주화 이후 정치인들이 대통령 선거 때마다 홀대받고 있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끝없이 비정치인을 현혹한다. 정주영, 조순, 이회창, 정몽준, 문국현, 고건 등은 비정치인의 이미지로 대통령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오직 이명박만 ‘반정치, 친경제’ 구호로 성공했다. 하지만 시장논리로 무장한 그의 실용정치는 소수 강자에겐 성장의 결실을, 다수 약자에겐 고통과 절망을 안겨주는 부패 정치로 끝났다. 그래선지 시장에서 성공하고도 깨끗한 경제인 안철수가 정치개혁의 적임자로 호명된다.


국민의 부름에 응답하며 희망의 상징적 기호로 급부상한 안철수가 맥없이 주저앉다 다시 일어서고 있다. 사퇴 후 자신이 내세운 새 정치를 포기한 듯했지만 단일화 마무리로 새 길을 찾은 것이다. 안철수가 생각하는 새 정치의 핵심은 부패 정권과 기득권 정치의 심판이다. 새 정치는 특권층과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사다리는 빼앗고 미끄럼틀만 내미는 시장독재정부를 끝장내기 위해 새누리당의 재집권을 막음과 동시에, 지역을 볼모로 낡은 체제와 썩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판을 갈아엎어야 한다.


 




그런데 ‘진심의 정치’를 위한 ‘안철수의 약속’에서 제안된 7대 비전, 26개 정책 과제, 178개 정책 약속을 하나씩 따져보면 수사만 현란할 뿐 새로울 것이 없다. 그의 정책 방향은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수가 아니라 둘 사이의 틈을 메우는 중도다. 실제로 그의 정책 내용은 새누리당과 함께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친화적이다. 그러나 안철수는 새누리당의 부도덕성과 토목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국민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민주통합당과의 연대를 통해 정권심판을 먼저 한 다음 정당을 해체하고 새판짜기를 하겠다는 치유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 전략은 원칙적으로 바르지 않다. 새 정치를 하려면 오래전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서 두 기득권 정당을 향해 ‘헤쳐 모여’를 선언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동지를 많이 모아 대통령이 되면 최선이고, 실패하면 정당과 의회에서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너무 빨리 정치권력의 극점에 도달한 안철수는 쉬운 길을 택했으며 결국 그가 심판하려던 기득권 정치에 의해 밀려나고 말았다. 정권교체보다 기득권 수호를 중시하는 민주당의 일부 권력자들과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서다. 안철수의 생각은 기득권자들보다 새롭지만 민주당 지지자들보단 진부하다.


후보직을 사퇴한 후 안철수는 한동안 딜레마에 빠졌다. 만약 정권심판을 위해 문재인을 최대로 지원할 경우 구정치 심판이 아니라 담합이라는 비난이 그의 미래를 어둡게 할 것이다. 반대로 정치판과 거리두기를 위해 문재인을 소극적으로 지원할 경우 정권심판이 아니라 정권연장의 책임이 그를 추궁할 것이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고 새 정치의 대변인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거듭나기 위한 그의 고민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지난 목요일 오후 그는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한 출구로 단일화의 완성을 선택한다. 정권과 정치를 함께 바꾸겠다는 약속을 기초로 문재인의 손을 다시 잡은 것이다. 올바른 선택이지만 감동이 부족하다.


안철수는 식당이 아니라 광장에서, 문재인이 아니라 민주당으로부터 새 정치 프로그램을 약속받아야 한다. 정권을 바꾸고 기득권을 해체하려면, 헌법이 규정한 것처럼 국회의원이 지역대표가 아니라 국민대표가 되도록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한 늘리고 지역구는 최소로 줄일 것, 소수자의 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정당투표의 효력을 강화할 것, 정치꾼들의 단일화 놀이를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 결선투표를 도입할 것, 이러한 개혁을 위해 집권 여부와 무관하게 선거 후 6개월 안에 민주당을 해체하고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라고 밀어붙였어야 한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단일화로 잔치가 싱거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아름다운 동행’이다. 여기까지 올라온 사다리를 버리고 온몸을 던지는 안철수와 문재인, 그리고 심상정의 동행이 갖는 큰 뜻과 가치를 알아보는 성숙한 시민을 믿을 수밖에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정연우|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정책적 목적은 실패하고 정략적 목적은 성공했다. 대다수 국민들과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날치기 편법으로 미디어법을 개정한 뒤 보수 신문사들에 안겨준 종편 방송의 허가 과정과 출범 1년에 대한 평가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정략적 의도는 보수적인 여론 지형의 완성이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글로벌 미디어기업 육성, 다양한 콘텐츠 제공,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은 겉으로 내건 정책적 목적일 뿐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정책 목적은 그럴듯하게 포장해 방송 진출 욕심에 눈이 먼 보수언론을 앞세워 연일 부각시켰고, 정략적 속셈은 철저히 감추었다. 학자들을 앞세워 온갖 거짓 자료와 궤변을 동원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정책적 목적은 달성하면 좋겠지만 안되더라도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 올해 큰 선거 때 이용하려고 아직 준비도 덜 되어 있는데도 개국을 서둘렀다. 


그러나 신문사들에 방송 진출은 달콤한 선물이 결코 아니었다. 시청률은 참담한 형편이고 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었다. 양질의 콘텐츠는커녕 재방송을 통해 근근이 방송시간 때우기에도 급급해한다. 드라마 편성을 대폭 줄이고 제작비가 적게 드는 시사·보도·대담 프로그램 편성을 크게 늘렸다. 여기에는 신문사의 취재보도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을 것이다.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지상파 뉴스 형식에서 벗어나 오락성 강한 쇼처럼 만들었다. 공정한 보도와 비판이라는 저널리즘 정신은 아예 없다.



서울 용산전자상가에 전시된 TV에 종편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출처; 경향DB)

 



미국의 여론 시장을 왜곡하고 보수적 목소리를 퍼뜨리는 폭스뉴스처럼 될 것이라는 불행한 예상이 현실로 나타났다. 폭스뉴스의 시장 전략은 편향적이고 선동적이며 자극적인 보도다. 종편은 대선을 앞두고 편향적 여론몰이에 앞장서고 있다. ‘안철수 후보 사퇴’에 항의하는 20대 남성의 투신 소동을 1시간여 동안 생중계하거나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로 내보내기까지 했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갈등을 부추기고 지지세력을 분열시키기 위한 의도이다. 종편 4사는 지난 1년 동안 총선이나 대선과 관련해 선거방송심의위로부터 모두 22건의 제재를 받았다. 이들은 보수 편향의 출연자들을 앞세워 보수세력을 결집한다. 심의기구로부터 가장 많은 제재를 받고 있는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가 대표적이다. 시청률이 낮다고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종편의 많은 시사 프로그램이 쇼로 포장되어 재미를 주니 쉽게 우리의 의식으로 파고들어온다. 편향적 내용일지라도 심리적 저항감이 적다는 것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진 시청자들은 정치에 관심이 높기 때문에 여론 파급력이 크다. 더구나 방송은 신문보다 훨씬 임팩트가 강하기 때문에 여론을 왜곡할 우려가 매우 높다. 선거가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을 때는 판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종편이 알아둘 게 있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보도·시사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시장이 그리 크지 않다. 폭스 채널처럼 편향적 선동 방송을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시장에서 성공할 수는 없다. 지상파의 영향력은 여전하고 ‘뉴스타파’ 등 대안 매체들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편이 뉴스와 시사를 중심으로 하는 방송으로 자리잡기는 어렵다. 지금 당장 대선이라는 큰 정치적 이벤트에 힘입어 약간의 재미를 보는지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큰 시장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선동적 편향 방송을 이어가는 것은 종편사에도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특정 세력의 정략적 들러리 구실이나 하니 국민들의 불신과 외면은 날이 갈수록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최소한의 공정성도 지키지 않고 여론 시장을 교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유인화 논설위원


“사람이 살며는 몇백년 사나 개똥같은 세상이나마 둥글둥글 사세 …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영화 <서편제>(1993년)에서 부녀로 출연한 김명곤과 오정해가 시골길에서 부르는 ‘진도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시대의 애절한 철학이었다. 


지난 9월 김기덕 감독이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받고 수상 소감 대신 부른 ‘아리랑’은 전 세계 미디어를 통해 울려퍼졌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최고상을 받은 순간이었지만 말이 필요없었다. 수상의 기쁨도, 고생스러운 작업에 대한 만감도 ‘아리랑’ 한 소절로 충분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이 '아리랑'을 부르고 있다. (출처:경향DB)


아리랑은 ‘이상한’ 노래다. 부르는 이의 기분에 따라 슬프게도 기쁘게도 들린다. 빠르기도 ‘고무줄’이다. 시대와 장소, 상황과 상대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부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경기아리랑’ 1절을 부르는 데 30초면 충분하지만, 그 울림은 무한하다. 600여년 전 최초의 아리랑인 ‘정선아리랑’ 이후 아리랑은 영혼으로 부르고 가슴으로 듣는 민족의 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다. 가락과 노랫말이 달라도 지역과 세대를 아우르고, 부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가사를 지어 부를 수도 있다. 우리말을 모르는 해외동포나 남북한이 함께 부르는 소통의 문화코드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노래가 아니라 정신이다. 음악이고 문학이며, 민속이고 역사다. 


그동안 아리랑은 너무 흔한 노래여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엊그제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계기로 아리랑 전승을 위한 활성화 방안이 시급하다. 무엇보다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기·예능 문화재 지정은 해당 기·예능을 갖춘 보유자나 보유단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아리랑이나 김치·무예 등은 전승인과 전승단체가 많아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를 지정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유자나 보유단체 없이도 문화재 지정이 가능하도록 법개정이 되어야 한다. 문화재청이 내년에 아리랑을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니 적극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또 등재가 이뤄지지 않은 북한의 아리랑도 연구·보존되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전쟁터에 나간 전사는 총이나 칼을 잃어버리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에게 시력이 약해져서 글이 보이지 않는다면 그런 절망, 그런 슬픔이 또 어디에 있을까? 


괴로움도 즐거움도 다 책 속에만 있는데, 눈앞에 있는 책의 글자가 안 보인다면, 평생을 책만 읽으며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당혹스럽고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지겠는가? 그 시력의 중요성을 글로 남긴 사람이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이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가장 끔찍한 것은 시력이 약화되어, 자기가 쓴 글이나 남이 쓴 글을 읽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읽지 못한다’는 것은 문자 이상의 뜻을 갖고 있다. 밀턴 같은 천재는 눈이 안 보여도 위대한 작품을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지만 나 자신만 하더라도 남이 쓴 글이나 내가 쓰고 있는 글을 내 눈으로 봐야 사고가 수월하게 진행되어 나가지, 남의 말을 듣고 무엇을 이해할 때 사고는 거기서 크게 멀리 나가지 못한다. 나는 눈을 통해 몽상하고 철학한다. 눈으로 볼 때, 우리는 손으로 교정할 수 있다. 귀로 들을 때 그 교정은 그리 쉽지 않다.”


<책 읽기의 괴로움>에 실린 글이다. 평생을 공부만 하다가 세상을 하직한 김현 선생의 글을 보면 ‘책을 못 보는 서러움’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훗날 <행복한 책 읽기>를 펴냈다. 


독서와 함께 가을비 즐기는 프록터 (출처:경향DB)


내 생각도 그분과 다르지 않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자 행복이라면 보고 싶은 책을 시도때도 없이 보며 살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한다. 


왜 부럽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정년도 없고 명퇴도 없잖아요.” 그때마다 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그 대신 나는 월급도 없고, 연금도 없으며 오로지 정직하게 한 자 한 자 쓴 원고료밖에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것만도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눈이 나빠지고 기억력이 감퇴되면 그게 바로 정년이요, 명예퇴직이다. 눈이 나빠지면 책 읽기는 고사하고 가까이 있는 사람도 잘 안 보일 테니 얼마나 갑갑하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아직은 나에게 세상 도처에 즐거운 일이 수두룩한 것 같다. 눈이 잘 보이는 것도, 귀가 잘 들리는 것도, 냄새를 잘 맡는 것도, 특히 말을 할 수 있는 것과 다리가 튼튼해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도 하나 하나가 다 행복이다. 그 행복을 더 먼데서 찾다보니 세상은 항상 불만족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펼쳐진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이 순간,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배병삼 | 영산대 교수·정치사상


조선후기 정조는 군사(君師)라, ‘임금이자 스승’으로 불렸다. 임금이란 지고의 권력자이고, 스승은 최고의 지식인이다. 권력에다 지식을 겸한 ‘군·사’는 얼핏 플라톤의 ‘철학자·왕’처럼 정치가의 이상형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의 조정은 임금의 혼잣말로 넘쳐났다. 어느 신하도 ‘임금이자 스승’인 정조의 말에 감히 대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학자로 알려진 정약용도 실은 정조의 ‘어용 지식인’에 불과했다. 


외려 정조의 통치 행태는 권모와 술수였다. 연전에 발굴된 영의정 심환지와의 비밀편지 속에서 그의 마키아벨리적 면모가 잘 드러났다. 정조가 죽자 ‘세도정치’가 시작되었다. 세도기의 경직된 반동정치는 조선을 일제의 식민지 처지로 몰아갔다. 그래서 우리는 영·정조 대의 짧은 황금기를 내내 안타까워한다. 그러나 짧은 막간은 정조의 통치 스타일 때문이었다. 혼자 고민하고, 혼자 결정하고, 혼자 지시하는 ‘헤드십’, 이른바 카리스마 콤플렉스가 잉태한 추락이었다.


 

광화문 광장에 놓이게 될 세종대왕 동상 모습. (출처 : 경향DB)




조선초기 세종에겐 쓸 만한 사람이 없었다. 왕립대학, ‘집현전’을 설치해 인재를 길러야 할 형편이었다. 장관급 신하들의 직함이 여러 개였던 것도 인재 부족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영의정이란 공식 직함 뒤에 ‘겸(兼) 관상감, 겸 대사성, 겸 성균관장’이라는 직책들이 쭉 따라붙는 식이다.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도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륜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물이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최고의 명군’이 된 데는 까닭이 있으리라. 왕위에 오르자마자 첫 번째로 한 말이 ‘의논하자’였다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우의정과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관리를 임명하고자 한다”는 <왕조실록>의 기록이 세종 리더십의 성격을 잘 전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학자 박현모는 “신하들의 의견을 들음으로써 그들의 동참을 촉구하는 한편, 정치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불어 함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세종처럼>) 


그렇다면 정조의 통치 스타일은 ‘홀로 리더십’으로, 세종은 ‘함께 리더십’으로 이름 붙일 수 있겠다. 나아가 혼자 고민하고 혼자 말하는 정조의 통치 행태를 ‘입의 리더십’이라면, 함께 더불어 정치를 행하는 세종의 스타일은 ‘귀의 리더십’이라고도 이를 수 있으리라. 정조의 시대가 막간극으로 끝나버린 것과 세종의 ‘함께 의논하기’ 방식이 500년간 초석이 되었다는 것 사이에는 주목이 필요하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통치자는 지시하고 인민은 이에 복종하는 상명하복 체제가 아님은 물론이다. 국민이 함께 참여하여 의사를 결집해내는 과정의 정치체제이기에 ‘민주-주의’다. 이 대목에서 대통령의 영어식 표현인 ‘프레지던트’의 본디 뜻이 ‘사회자’임은 눈여겨볼 만하다. 즉 대통령이란 위에서 지시하고 명령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입을 열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말하게 만드는 사회자, 또는 회의의 조정자라는 뜻이다.


이른바 ‘지식경영 시대’를 맞은 오늘날, 기업가 리더십도 여기서 멀지 않다. “참된 지도자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모든 것을 자기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피터 드러커 자서전>) 팀을 이루어 회의를 통해 의사를 결집하는 것이 기업 경영가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라는 지적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리더십을 갖춘 후보가 없다는 푸념을 종종 접한다. 야당 후보에 대해서는 난관을 돌파하는 카리스마적인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는 비난도 있다. 하긴 사퇴한 안철수, 심상정 후보나 박근혜, 문재인 후보들의 면면도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나는 카리스마가 부재한, 무력해 보이는 정치가들의 출현이야말로 참된 민주주의 시대로 접어드는 유쾌한 현장이라고 보고 싶다.


최근 한 언론은 두 후보의 리더십에 대한 조사를 보도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국가원수로서 나라를 대표하는 대외적 리더십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대국민 소통과 친화력 등 소통 리더십에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것(조선일보). 조사를 이끈 한국정책학회 박성희 교수가 “박 후보는 오랫동안 당대표, 유력 대선주자로 주목받으면서 ‘힘 있는 사람’ 이미지가 강하고, 문 후보는 정치인 이미지가 약해 앞으로 소통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고 있다”고 평가한 부분도 눈에 띈다. 이 연구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강한 리더십이냐, 약한 리더십이냐를 고르는 셈이다.


나는 이번 대통령 선거를 민주주의의 본령에 걸맞은 리더십 선택의 기회로 본다. 차후 한국 정치의 지형이 상명하복적인 정조 리더십의 형태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함께 더불어 행하는 세종의 리더십으로 갈 것인지 판가름하는 분수령 말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시대적 의의가 중차대한 까닭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지하 시인의 언행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선 국면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를 공표하는가 하면 진보적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노골적으로 매도하는 등 어지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아래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저항시인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만하다. 신산의 세월을 거치며 몸과 마음이 많이 상한 것으로 알려진 일흔한 살 노시인의 돌출적 행보가 의아하다. 하지만 그의 이런 변신을 ‘그럴 수 있는 일’로 보고 침묵하기에는 도가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한다. 


가장 큰 문제는 그의 현실인식이 몹시 부분적, 파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말 보수단체의 시국강연회에서 박근혜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며 그는 “이제 여자가 세상일 하는 시대가 왔다. 여자에게 현실적 일을 맡기고 남자는 이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박 후보가) 나에게는 ‘원수의 딸’이다. 그러나 총탄에 부모를 잃고 혼자 외롭게 살아온 내공을 높이 사고 싶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서도 비슷한 발언을 했지만 박 후보의 여성성을 강조하는 것 그 이상의 논리는 찾기 어렵다. 그의 치열한 저항정신을 흠모했던 사람들로서는 실망스러운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보수단체 초청 김지하 시국 강연회 (출처: 경향DB)


물론 민주화 전력 여부와 상관없이 시인도 유권자로서 그 선택은 존중돼야 한다. 우리가 꼭 진보 개혁진영의 구미에 맞는 후보를 김 시인이 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들은 김지하 시인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물을 권리가 있다고 본다. 그의 발언이 시와 문학이 아닌 다음에야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그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상상력이 아니라 논리와 사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 개혁진영이 박근혜 후보에게 갖고 있는 의구심의 큰 몫은 민주화 의지에 관한 것이다. 그가 뒤늦게 5·16, 10월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가치를 훼손했음을 인정한 것은 여론에 떠밀린 인상이 짙다. 우리의 현실인식은 민주화의 많은 부분이 미완이며 진행형이란 것이다. 기세 좋게 제시됐던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는 본질적 요소들이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잠수함 속 토끼 같은 존재여야 할 시인의 인식이 이런 문제들을 감지하지 못한 채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해원 같은 개인 차원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그의 이런 불완전한 인식은 균형감각 결여와 독선 탓으로 의심된다. 그 단초는 이미 20년 전 변절 논란을 지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란 칼럼에서 찾을 수도 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오는 16일 일본 총선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 과거보다 더 오른쪽으로 경도된 아베 신조의 자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다. 극우 정당 일본유신회 역시 약진할 것으로 점쳐진다. 아사히 신문을 비롯해 일본 주요 신문들은 어제 자민당이 중의원의 과반을 훨씬 웃도는 압승을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열흘 동안 부분적인 변동은 있겠지만 사실상 윤곽은 드러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일본 총선 사흘 뒤에 치러지는 한국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든 일본의 우경화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여야 대선 후보들은 일본 극우·보수세력의 집권에 대해 이렇다 할 관심과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대선 후보 첫 TV토론회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모두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인 입장을 촉구하는 한편 미래지향적인 양국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그쳤다. 


아베 자민당 총재가 최근 입장을 다소 누그러뜨렸다고는 하지만 총선 압승의 기세를 몰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2월22일)’을 일본 정부 차원으로 격상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분적으로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한다면 과거사 문제는 더욱 엉킬 수도 있다. 자민당의 우경화는 종래의 영토적, 역사적 갈등을 넘어 한반도 주변의 안보 지형에까지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강한 국가, 주장하는 일본’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아베 총재는 헌법9조 개정을 통한 국방군 보유 및 집단 자위권 행사를 다짐하고 있다. ‘아시아 선회’를 공표한 미국은 한·미·일 군사협력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아베 신조 일본 자민당 총재가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출처: 경향DB)


대일문제가 이번 대선의 이슈로 부각되지 않은 것은 일견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있다. 박·문 두 후보가 일본 보수 정치인들의 민족주의적, 패권주의적 발언에 맞대응을 함으로써 우리 국민의 민족주의 감정마저 덧들이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8월 느닷없는 독도 방문 탓에 한·일관계는 꼬인 상태다. 하지만 두 후보가 내놓은 공약이나 공개 발언 어디에서도 중·장기적인 대일정책을 구상하고 있다는 증좌를 발견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문민정부 이후 역대 정권은 임기 초 미래를 함께 보자고 일본에 제안했다가 임기 말 역사적·외교적 갈등에 휩싸이는 궤적을 벗어나지 못했다. 두 후보는 과연 이러한 패턴에서 벗어날 준비가 돼 있는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건범 | 작가·한글문화연대 대표


텔레비전 사극을 보다 보면 쉽게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분 차별에서 오는 갈등. 신분의 벽을 넘어서려는 주인공의 눈물나는 싸움은 신분의 차이를 훌쩍 뛰어넘은 남녀 간의 사랑과 반죽되어 시청자를 분노하게도 하고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극은 대개 이런 구조를 뼈대로 삼고 거기에 밑바닥 출신 주인공의 세속적인 성공이나 출생의 비밀과 같은 막장 요소를 적절하게 비벼 시청자의 밤 시간을 장악한다.


만일 신분 차별 제도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사극이 이만큼의 안정된 인기를 누리게 되었을지 궁금할 정도다. 그런 굴레에서 벗어난 우리로서는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는 종놈으로, 백정으로 온갖 멸시와 구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그 신분 사회에 대해 예외 없이 옳지 않다고 받아들이고, 신분 질서를 극복하려는 주인공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사극은 이 점에서 매우 강력한 감정이입 장치를 우리 현실로부터 얻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를 다룰 미래의 사극에는 무엇을 담게 될까? 출생의 비밀에 뒤덮인 채 무너지는 가족제도? 있는 집안의 자녀 결혼 반대? 아무리 맞아도 결국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18 대 1의 싸움을 승리로 이끄는 현대인의 괴력? 뒤엉킨 불륜과 그보다 곱절은 더 복잡한 원한과 복수의 일상? 



KBS1 드라마 ‘광개토태왕’ 제작발표회에서 이태곤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출처:경향DB)

곰곰이 따져보면 사극이나 현대극이나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와 소재는 고만고만하다. 타고나는 신분의 딱지가 눈에 확 띄지 않을 뿐이지 누구나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오늘날 점점 신화가 되어 간다. 재산과 학벌로 나누는 신분이 이 사회에서 세습되는 경향을 보이니 말이다.사극의 신분차별이나 현대극의 불륜, 출생의 비밀, 신데렐라, 복수, 성공담 등은 모두 이야기를 구성하는 뼈대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서 작가들이 보여주려 하는 인간의 모습은 불의와 거짓과 탐욕과 오만에 맞서는 진정성의 힘이다. 


참 이상하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진정성을 원하고 진실과 인간다움이 승리하길 바라건만 왜 세상은 그렇게 바뀌지 않을까? 나는 우리 정치가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해서라는 조금은 꿈같은 이유를 들고 싶다. 그래서 정치인은 다 그렇고 그런 시정잡배라고 싸잡는 사람들 마음을 이해하지만, 자신의 삶의 환경이 바뀌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정치인들 사이의 섬세한 차이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반응하라고 권한다. 정치는 내 곁의 환경을 바꿔줌으로써 내 삶을 바꿔 준다. 


2008년 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영어몰입교육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다음날이던가, 난 어느 맥주집에서 회식을 하고 있는 직장인 한 무리를 봤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평소의 목소리보다 훨씬 컸을 법한 높이로 떠들고 있었는데, 영어였다. 영어로 술주정을 하는 그의 목소리는 마치 자기 세상이 왔다는 투였다. 주눅들어 있는 어느 부하직원의 표정은 ‘소 왓?(그래서 뭐?)’이었지만, 그이는 막무가내로 혼자 떠벌였다.


정치는 이런 것이다. 대통령이, 국회가 어떤 시대정신을, 정책을 내거느냐에 따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와 눈매와 예절이 달라지는 문제다. 그 진정성의 미세한 차이를 찾아가는 노력이야말로 유권자가 세상을 바꾸는 아주 손쉬운 방법이다. 속성이 비슷하다 하여 과거와 현대의 신분 차별을 똑같다고 여긴다면 이는 “이 천한 놈과 어찌 겸상을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매일 듣는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를 무시하는 태도다.


아마도 100년 뒤의 극작가들은 자신들이 보기엔 너무나도 당연한 진정성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우리 시대를 그릴지도 모르겠다. 마치 신분차별의 벽처럼 진정성의 벽을 넘으려는 현대인의 고뇌가 어떤 소재로 다뤄질지 사뭇 궁금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대선을 10여일 앞두고 여야의 정치쇄신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원 정수를 합리적 수준으로 감축하자”고 제안하자 민주통합당도 국회 정치개혁특위를 설치해 의원 정수 축소와 비례대표 확대 문제 등을 논의하자고 호응했다. 어제 전격적으로 이뤄진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회동 역시 문 후보의 정치쇄신 약속이 고리가 되었다고 한다. 문 후보는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출범식에서 기득권 포기 방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했고, 안 전 후보는 “문 후보가 새 정치 실천과 정당혁신에 관한 대국민 약속을 했다”며 전폭적 지원 의사를 밝히는 것으로 화답했다.


정치권의 쇄신 논의는 이번 대선의 주요 화두로 부상한 ‘안철수 현상’을 직시하고 여기에 담긴 민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라고 본다.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 낡은 정치에 대한 실망, 새 정치에 대한 열망 아니던가. 대선이 임박한 만큼 정치쇄신 논의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야가 실천 의지만 있다면 대선 전이라도 정치쇄신의 기본 원칙에 합의하고 일부 사항을 입법화하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다만 정치쇄신 논의가 의원 정수를 줄이는 문제에만 집중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비례대표를 늘리고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함으로써 민심과 표심을 실질적으로 일치시키는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정치권의 기득권 포기가 의회기능의 위축으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국회 차원에서 정치쇄신 논의가 본격화하려면 다수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새누리당의 행보는 미심쩍은 측면이 있다. 이한구 원내대표는 어제 “민주당이 제안한 의원 세비 30% 삭감을 즉시 실천할 것을 약속하자”면서 대선 전에 세비 삭감 관련 법안과 2013년도 예산안을 함께 처리하자고 했다. 세비 삭감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관련법을 개정하면 될 일이지, 굳이 예산안 처리와 연계시킬 이유는 무엇인가. 의원 정수 축소 역시 안 전 후보가 처음 제안했을 때는 새누리당 내에서 부정적 인식이 많았다. 이제 와서 수용 의지를 밝힌 것은 부동하는 ‘안철수 지지층’을 겨냥한 정략적 입장 변화로 비쳐질 만하다. 새누리당은 향후 논의 과정에서 정치쇄신 의지의 진정성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낡은 정치를 바꾸자는 것은 시민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정치쇄신 요구가 ‘안철수’라는 인물을 통해 투사되면서 대선전을 관통하는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 여야는 뒤늦게 불붙은 정치쇄신 경쟁을 ‘선거공학’ 차원으로 끌어내려서는 안된다. 단 한 가지 법안이라도 대선 전 국회를 통과시킨다는 각오로 논의에 임해야 한다.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향후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쇄신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구태를 지양하고 비전과 정책으로 당당히 경쟁하는 것이 ‘새 정치’의 시작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근혜 후보의 눈빛이 흔들린다. 경황이 없어서, 어린 동생들 생각에 30년 전 6억원을 받았고 나중에 돌려줄 거라는 말까지 했다. 만일 어린 동생들 때문에 모든 게 용서된다면 “무전유죄”를 호소하는 대부분의 범죄자는 무죄다. 이처럼 이정희 후보는 송곳처럼 박근혜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찔렀다.


5년 전 유권자들은 무려 14건이나 되는 이명박 후보의 전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떻게든 경제를 살릴 거 같은데 그 어떠랴”는 괴이한 분위기에 휩쓸렸다. 5년이 흐르는 동안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대통령의 모범을 따라 주변인사들은 줄줄이 전과자가 되었다. 이번엔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하겠지…적어도 이명박보다는 낫겠지”, 현직 대통령의 실정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 대상이 되는 요상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어린 지지자와 포옹하는 박근혜 (출처; 경향DB)




1차 토론에서 박 후보는 시종일관 굵은 기조를 유지했다. “위기가 닥쳤다, 신뢰의 정치를 통해 국민통합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핵심어는 위기-신뢰-통합이다. 박 후보의 취약점은 과거에 있지만 미래의 심장은 여기에 있다. 


정치에선 박 후보의 위기-신뢰-통합이 그럴듯해 보인다. 박 후보가 30년 전 청와대에서 나온 이래 한 일이라곤 한나라당-새누리당을 위기의 수렁에서 건진 것뿐이다. 분명 박 후보는 적을 간명하게 규정해서 궤멸시키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고도성장의 추억”은 그를 ‘선거의 여왕’으로 만들었고 보수층을 결집시켰다. 그러나 경제도 그렇게 될까?


현재의 경제위기는 한마디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 때문이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서 양극화를 초래한 결과가 세계경제의 위기이고 곧 한국의 위기다. 박 후보의 “줄푸세”가 “시장만능주의(market fundamentalism)”의 한글 번역이니 당연한 일이다. 최근 새누리당은 “줄”은 빼고 “푸세”만 한다지만 지난 5년 감세액만 82조원(국회 예산처 추산)이었고 세법을 고치지 않는 한 이런 재정상태가 계속된다는 걸 의미한다. 위기에 빠지면 부자에게 증세해서 아래로 돈이 흐르게 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 위기대책을 아예 포기했다는 얘기다. 


박 후보는 “줄푸세와 경제민주화는 다르지 않다”고 강변했다. 최근에는 경제민주화가 재벌의 투자를 가로막는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줄푸세”와 박정희의 “삽질”을 실천한 “불도저”였다. 그러나 주로 돈을 챙긴 재벌의 투자는 그다지 늘어나지 않았고 고용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당연하다. 불황기에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가 늘어나도록 하는 게 즉효약이다.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가 이들의 소비를 가로막고 있다. 박 후보는 18조원의 ‘행복기금’을 조성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정부보증 채권을 발행해 은행의 부실채권을 해결해 주겠다는 데 불과하다. 즉 정부 돈으로 은행의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겠다는 것이다. 올바른 방향은 채무자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필요하면 빚을 탕감해주거나 이자를 줄여주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지난 5년간 천문학적 돈을 번 은행 스스로 조달해야 한다. 여기서도 돈이 채무자에게, 즉 아래로 흐르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경제는요?”가 통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선문답을 알아서 실행할 주변이 모두 “줄푸세”의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직도 돈이 위로 흘러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런 줄푸세가 양극화, 즉 국민 분열을 초래하고 결국 경제위기를 심화한다는 것은 세계와 우리의 역사가 이미 증명했다. 


박 후보의 심장이 여기에 있다. 경제에서 그의 “위기-신뢰-통합”은 더 큰 위기와 불신, 그리고 분열로 이어질 것이다. 1차 토론에선 박 후보가 조연에게 발목을 찔려 중심을 잃었는데도 주연은 그저 겨냥만 했다. 조연만 빛난 드라마는 실패한다. 과연 문재인 후보는 그 심장에 최후의 일격을 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번 선거는 다음주 TV토론에서 또 하나의 결정적 고비를 맞을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류형열 체육부 기자


FC서울은 올 시즌 K리그를 제패했다. 역대 한 시즌 최다승(29승), 최다 승점(96점)을 기록했다. 2위 전북과의 승점 차가 무려 17점이나 될 정도로 완벽한 우승이었다. 관중동원도 1위였다. 서울 홈경기서 총 45만1045명을 불러모았다. 경기당 평균관중은 2만502명. 리그 전체의 평균 관중(7157명)보다 3배 가까이 더 많았다. 성적과 인기,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프로축구 구단으로서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었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상을 주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GS스포츠는 우승이 준 축제를 제대로 즐길 줄 모르는 것 같다. 상이 아닌 칼을 휘둘렀으니 말이다. GS는 최근 최고운영책임자인 한웅수 전무를 퇴진시켰다. 한 전무는 주무로 시작해 사무국장, 단장을 거친 서울의 산 역사와 같은 인물이다. 연고지를 안양에서 서울로 옮기며 프로축구의 서울 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FC서울 선수들이 제주 유나이티드전에서 승리하고 최용수 감독을 헹가래 치고 있다. (출처: 경향DB)




한 축구 관계자는 “한 전무는 안종복 전 인천 사장, 안기헌 프로연맹 사무총장과 함께 프로축구계를 대표하는 3대 전문경영인으로 꼽힌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임원 인사가 아무리 고위층 마음대로라고 하지만 역대 최고의 성과를 낸 프런트를 이런 식으로 내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우승 공로를 감안하면 최소한 1년 정도는 더 기회를 주는 게 인지상정이고, 신상필벌의 원칙에도 맞을 것이다. 토사구팽을 연상시키는 모양새가 영 볼썽사납다. 구단 직원들조차 “우리 심정은 어떻겠어요”라고 입을 닫고 있다.


한 전무의 퇴진에는 구단 프런트의 전문성을 바라보는 GS그룹 고위층의 인식의 일단이 드러나는 것 같아 더욱 씁쓸하다. ‘누가 가도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없다면 30년 노하우와 경험, 경륜을 이런 식으로 내팽개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깜빡했던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졌다. 서울은 시민구단이 아니었다. 진짜 주인은 서울시민이 아니라 GS그룹이었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김희연 경제부 차장


 

장판과 도배지를 주로 파는 방산시장(서울 중구 주교동)의 허름한 5층 건물. 가파른 계단을 올라 6층 옥탑방 사무실에 들어섰다. 지인이 알려준 곳으로 60·70대 어르신 3명이 젊은 여성들의 옷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지인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가끔 바늘귀 꿰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귀띔했다. 8평 남짓한 사무실 벽 쪽으로 둘러가며 석대의 미싱이 놓여 있고 한쪽에 재단대가 있었다. 벽에는 알록달록한 색실이 한가득이다. 주인들을 닮은 손때 묻은 연장에서 세월의 흔적이 엿보였다. 이번주 초 매서운 한파가 예고됐지만 사무실에는 변변한 난방조차 없었다.


50대 중반이면 은퇴에 접어들어야 하는 사회적 풍토에서 늦은 나이에 돋보기까지 쓰고 까다로운 옷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정부가 정년연장 제안을 내놓았지만 청년실업에 묻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는 분위기에서 불경기에 일거리는 있는지, 이들에게 노동이란 무엇인지, 코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서 마음에 찍어 둔 대통령은 누구인지도 궁금했다.


(경향신문DB)


 최연장자는 미싱사 김모씨(74)였다. 재단과 미싱을 담당하는 신모씨(67)가 중간이었고 재단사 겸 사장인 이모씨(64)가 막내다. 세 사람이 재고 자르고 박으며 십여벌 안쪽으로 쇼핑몰에서 주문받은 옷을 만들었다. 10대 후반 이 일에 뛰어든 김씨가 미싱을 잡은 지는 50여년. 미싱만 돌리던 그가 불쑥 “우린(나는) 파란만장하게 살았다”며 말을 텄다. 서울 화신백화점이 있던 시절, 교복을 만들며 큰돈을 벌었던 그는 집 두세채를 우습게 샀지만 건강식품 사업에 손을 댔다가 망했다. 중년에 다시 미싱 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살기 힘들었다고 해도 옛날에는 열심히 일하면 잘살 기회가 있었다”고 말했다.


‘젊은 사장’ 이씨는 주로 까다로운 부분의 미싱과 재단을 맡아한다. 사무실 월세를 제하고 어떻게든 세 사람이 나눠가질 생활비를 벌려면 영업도 고민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묵은 빚이 있어 매달 이자만 60만원이 나간다. 노년에도 쉴 틈 없이 일하고 있지만 좀체 빚은 줄지 않고 옆에서 빚도 함께 늙어가고 있었다. 요즘은 나이 사십을 바라보는 아들의 결혼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다. “삼성, 현대, 은행에 다니는 사람들은 장가도 잘 가던데…. 제대로 뒷바라지 못한 것 같아 자식한테도 미안해요.” ‘낭만주의자’로 불리는 신씨는 사무실에 없었다. 옆에서 미싱을 돌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어 붙은 별명이 ‘낭만주의자’다. 지금쯤 가까운 청계천을 걷고 있거나 술 한잔을 하고 있을 거라고 했다. 세 사람은 주로 ‘IMF식당’으로 불리는 인근의 가정식 백반집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된장국과 김치, 콩나물, 두부볶음이 나오는 밥상은 수년째 2500원. 그런데 요즘은 불경기 탓에 이곳을 찾는 손님마저 줄었다고 한다. 바지에서 코트까지 다양한 옷을 만드는 데 공임으로 벌당 2만원에서 10만원까지 받는다. 셋이 나누면 한 달 몇십만원을 쥐는 정도다. 그나마 일감이 줄고 있어 걱정이다.


최연장자 김씨의 꿈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미싱을 돌리는 거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찾아가 목욕을 돕기도 한 그는 얼마간의 기부와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싶다. 사장 이씨의 꿈은 건강에도 좋고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옷’을 만드는 것이다. 대통령감을 물으니 다양한 말이 나왔다. “마땅한 욕심은 좋은데 허욕, 과욕은 사람이나 기업이나 나라를 상하게 하지” “노력하고 수고하면 그 대가가 돌아오는 나라를 만들어야 해” “선거 때 말고 평소에도 서민생활을 꿰뚫어보는 대통령이 참대통령 아닌감”. 노년의 그들에게도 노동은 삶이자 행복이고 꿈의 연결다리처럼 보였다. 대선이 끝나고 새로운 새해가 찾아오는 때 젊은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더 많은 꿈의 연결다리를 갖게 됐으면 좋겠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도대체 몇번째인가. 검찰에서 비리가 또 터졌다. 이번에는 ‘브로커 검사’다. 현직 검사가 매형이 근무하는 법무법인에 사건을 알선한 혐의로 대검찰청 감찰본부의 수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감찰본부가 해당 검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공교롭게도 한상대 검찰총장이 “내부의 적과 벌인 전쟁에서 패배했다”며 퇴임한 날이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내부의 적’에 시민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박모 검사는 2010년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불법 투여한 혐의로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박 검사는 당시 김씨에게 자신의 매형이 근무하는 법무법인을 소개해줬다고 한다. 재판·수사 업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직무상 관련자에게 법률사무 수임과 관련한 소개·알선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한 변호사법을 위반한 것이다. 대검 감찰본부는 검사의 매형이 1억원가량 수수한 정황을 포착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전달된 금품 중 일부가 박 검사에게 흘러들어갔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신임 검사들은 ‘우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 범죄로부터 내 이웃과 공동체를 지키라는 막중한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내용의 ‘검사 선서’를 한다. 친·인척이 소속된 법무법인에 사건을 알선한 박 검사의 행태는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사의 직분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뇌물 검사, 성추문 검사 등에 이어 검사의 직업윤리가 땅에 떨어졌음을 보여주는 실례이다.



잇따르는 검사 비리는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거듭 일깨우는 동시에 개혁 방향에 대한 시사점도 던지고 있다. 검찰의 특권을 해체하려면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 기소권 분산과 함께 검찰조직의 투명화·개방화가 절실하다는 점이다. 최근 비리 검사에 대한 감찰·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이준호 대검 감찰본부장은 판사 출신이다. 이 본부장은 검사 비리가 적발되면 단순한 감찰조사 차원을 넘어서는 고강도 수사를 함으로써 검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돼왔다고 한다. 이 본부장이 검찰 출신이었다면 ‘제 식구’들의 비리를 제대로 파헤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검찰개혁 방안의 일환으로 검찰총장직을 외부에도 개방하고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도 과반수를 외부인사로 채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차관급인 검사장급 직위에 대해서도 개방형 임용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대선 이후 본격화할 검찰개혁 과정에서 이 같은 방안이 폭넓게 논의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반 칼럼

유인화 논설위원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내 입술에 영원히 담아둘 꺼야…’ 이은미의 노래 ‘애인 있어요’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뜨거운 가슴을 고백하지 못하고 아파하는 노래다. 가사에 딱 한 번 등장하는 ‘애인(愛人)’이라는 단어가 애절하다. 


최근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애인, 연애, 연인 등 3개 단어의 뜻을 개정했다. 보름 전까지 사전에서 ‘애인’을 찾으면 ‘이성 간에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이젠 이성이 아닌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를 배려하기 위해 이성애 중심의 낱말 뜻을 바꾼 것이다. 영어사전에서 ‘애인’은 lover, boy(girl)friend이고 우리는 흔히 ‘자기’ ‘여(남)친’으로 표현하는데, 국어사전 개정으로 이런 단어 뜻도 조율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애’의 사전적 정의도 바뀌었다. ‘남녀가 서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사랑함’에서 ‘연인관계인 두 사람이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이 됐다. ‘남녀’가 ‘두 사람’으로 개정됐다. 그렇다면 연인은? ‘서로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남녀’에서 ‘남녀’ 대신 ‘두 사람’으로 바뀌었다. 애인은 ‘사랑하는 상대자’, 연인은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커플 개념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동성애자 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 같은 개정 작업은 국제앰네스티한국지부 대학생네트워크가 펼쳐온 ‘이성애 중심의 표준어 정의 개정’ 캠페인을 바탕으로 했다. 대학생네트워크는 지난 6월 성적 소수자를 위해 열린 퀴어(queer)문화축제에서 ‘애인·결혼·가족의 정의’에 대한 개정 서명을 받아왔다. 이들은 ‘결혼: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 ‘가족: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사전적 정의의 개정도 요청할 예정이다. 동성애자들을 부모로 둔 아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성애적 시각에서 정의된 결혼과 가정의 낱말 뜻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삼각관계’의 뜻도 ‘세 남녀 사이의 연인관계’에서 ‘세 사람 사이의 연인관계’로 바뀔지 모르겠다. ‘정인(情人)’도 더 이상 ‘남몰래 정을 통하는 남녀 사이에서 서로를 이르는 말’로 남지 않을 것 같다. 동성애자의 손주에게는 ‘할아버지’의 뜻을 뭐라고 가르쳐야 하나.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집을 경매로 처분해도 대출금을 다 갚지 못하는 이른바 ‘깡통주택’ 소유자가 19만3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깡통주택을 가진 하우스푸어가 집을 팔아도 못 갚는 대출금도 13조원이라고 한다. 금융감독원이 전체 금융권을 대상으로 처음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다. 깡통주택은 숫자로는 전체 대출자의 3.8%, 금액으로는 3.3%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규모다.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지 않는 한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문제다. 빚잔치를 해도 빚을 다 못 갚는 셈이니 돈을 빌려 집을 산 하우스푸어나,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서로 손해를 보는 셈이다.


하우스푸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금융당국이 직접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라고 본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 저신용층이 세 군데 이상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경우는 23만명, 문턱이 높은 은행은 전혀 이용하지 못한 채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사람은 7만명이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가 한 달 이상 이자를 못 낸 사람은 4만명, 담보가치보다 80% 넘게 돈을 빌린 사람도 4만명에 이른다. 이들 취약계층의 열악한 재정상태는 언제든 우리경제의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다. 


(경향신문DB)


모든 게 집값이 너무 내려가다보니 생긴 일이지만 그동안 대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선거 공약으로 하우스푸어 지분매각제도를 내세웠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다. 부동산을 사들인 사람의 빚을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해결해주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우리은행은 하우스푸어가 집의 소유권을 은행에 넘기는 내용의 신탁 후 재임대를 해법으로 제시했지만 신청자가 전혀 없어 흐지부지 끝났다. 새로운 깡통주택, 하우스푸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공적자금 투입은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는 만큼 채권자인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가 손실을 일정 부분 감수해야 한다.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었을 당시 빌려가는 사람의 신용도와 재정상태를 감안해서 빌려주었어야 했다.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금융사와 채무자인 집주인이 한걸음씩 양보하면서 손실을 분담할 수밖에 없다. 깡통주택도 문제지만 어떻게 보면 깡통세입자가 더 큰일이다. 전세로 살고 있던 집이 경매로 넘어가 전세금조차 되돌려 받지 못하는 세입자들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 피해자다. 도덕적 해이 없이 당사자 간 양보를 통해 문제를 푸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정책위원


 

“미국에서 연비 과장 사건이 폭로되자 곧바로 현대기아차 부회장이 소비자들에게 공식 사과하고 800억원에 달하는 보상 프로그램을 내놓더군요. 한국에서는 대법원 판결이 나와도 불법파견 인정조차 안 하는데….


대법원만이 아니라 노동위원회, 노동부, 여야 정당도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특별교섭’이란 이름으로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거대 재벌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을 받은 한 명에 대해 “절차를 밟아 고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부품에 결함이 생기면 차 한 대만 리콜한단 말인가?


 연비 과장에 분노한 미국 소비자들은 현대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액수가 8000억원에 달한다. “저 돈이면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남는 돈인데!” 두 명의 노동자가 철탑에 오른 지 벌써 40일이 넘었다.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부 모두가 인정한 불법파견의 피해자인 현대차 비정규직만이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도 “회사가 해도해도 너무한다”며 분노했다. 지난 11월29일, 현대차 생산라인 일부가 멈췄다. 불법파견 모르쇠로 일관하는 자들에게 맞서 ‘경고파업’을 벌인 것이다.


현대차는 또다시 이 경고파업을 ‘불법’이라 주장한다. 비정규직 파업에 연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도대체 당신들은 어디 직원이냐”고 몰아붙인다. 그래 좋다. 한번 따져보자.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 판결해서 불법파견 노동 제공을 거부한 것이 불법이라니? 그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불법인지 뻔히 알면서 불법파견 성립에 협조하란 말인가?


함께 혼재작업을 하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노동을 거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숭고한 ‘준법투쟁’을 돕는 것이 뭐가 잘못인가! 그렇다면 옆에서 불법행위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데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를 방치하는 비겁자가 되란 말인가!


“대선 후보마다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더군요. 그런데 복지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는 답이 없어요. 간단한 해법이 있지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모든 노동자에게 생활임금을 보장하면 그만큼 근로소득세를 많이 걷을 수 있잖아요?”


어디 근로소득세뿐일까. 저임금이라 낮게 책정된 4대 보험료도 높아지기 때문에, 사회보험 재원도 추가로 확보된다. 정규직으로 고용할 일자리에 불법적으로 비정규직을 써온 현대차의 경우, 1만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추가 재원만 수백억~수천억원에 달한다. 이를 사회 전체적으로 확대하면 복지재정 확충이란 난제도 해답을 찾게 된다.


지난달 국회에서 고용보험기금으로 무급휴직자 생계를 지원하는 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했다. 하지만 쌍용차를 비롯한 정리해고·무급휴직자 복직을 통해, 이들이 복지재정의 수혜자가 아니라 반대로 세금과 4대 보험료 납부로 재정의 기여자가 되는 길을 여는 것이 급선무 아니겠는가.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4년 12월, 노동부가 “현대차 사내하청 전원 불법파견”을 판정했으니 그로부터 꼭 8년이 지났다. 그때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면 지금까지 추가로 걷었을 세금과 4대 보험료는 또 얼마일까. 노무현·이명박 정권 모두 자본의 불법을 방치해 왔는데, 반성도 제대로 하지 않는 여야 유력후보들은 현대차·쌍용차 철탑농성에도 관심이 없다.


(경향신문DB)


내일(12월5일)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한번 파업, 아니 불법파견 노동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다시 한번 연대에 나설 태세이다. 그들이라고 해고와 구속, 손해배상과 가압류 협박이 두렵지 않겠는가. 하지만 세금 좀 제대로 내보자고, 4대 보험료도 더 가져가라고, 그러니 불법적인 노동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선언한 그들. 대선 후보들이 아니라 이들을 응원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에 성큼 다가가는 길이 아닐까.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