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조선 후기 선비로 태어나서 과거나 세속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여행에 푹 빠져 일생을 살다간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군위 사람인 정란이다. 남경회가 지은 <정창해전>을 보면 “대장부가 해동에 태어나 비록 사마천처럼 천하를 유람하지는 못할지라도, 해동의 명산을 두루 본다면 그것만으로도 족하다”며 홀연히 길을 떠난 이가 바로 정란이다.


20여년간 나라를 돌아다니는 동안 그와 같이했던 것은 청노새 한 마리와 어린 종 한 명, 그리고 보따리 하나와 이불 한 채였다. 요즘처럼 판초 우의도 트레킹화도, 값비싼 등산복이나 카드도 없이 전국의 산천을 떠돈 그가 밝힌 여행의 의미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활개치고 다니는 것은 정신이요, 사물과 접하는 것은 눈(眼)일세. 그 정신이 막히면 속이 답답하고, 세상 구경하는 것이 협소하면 시야가 좁아지지. 정신과 세상 구경. 둘 다 협소하면 사람의 기운을 크게 펼쳐보지 못하는 법이네. 늙은이의 눈으로 인간 세상에 사는 자들을 보면, 겨우 진흙구덩이의 지렁이나 새우젓 속의 등에에 불과하다네. 허황한 것을 가지고 이리저리 궁리하느니 실제 존재하는 것을 만나는 것이 낫고, 말을 과장하여 하느니 안목을 크게 넓히는 것이 낫네. 해동의 나라가 비록 좁기는 하지만, 내가 힘을 다해 본다면 내 정신을 확 트이게 하여 넓힐 수 있네.”


그는 천하의 어떤 즐거움도 여행의 즐거움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여긴 사람이다. 정란과 가깝게 지냈던 강식준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대자연의 원기를 호흡하며 세상 밖을 자유로이 노니는 것이야말로 천하의 즐거움이라 여겨 그 무엇과도 바꾸려 하지 않았다.”


군산 어청도초교생 10명이 80년만의 수학여행을 떠난다. (출처: 경향DB)


이용휴 역시 오로지 여행에 일생을 바친 정란을 두고 그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


“대장부가 세상에 태어났으면 굳세게 자립하여 품은 뜻을 실천해야 할 뿐, 칠척(七尺)의 몸을 과거시험 답안지나 금전출납부 속에 매몰시켜서야 되겠는가? 그가 탐라에 들어가 한라산을 유람한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비웃었다. 속된 뿌리가 골수까지 파고든 사람은 비웃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수백년 뒤에 비웃었던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을까? 아니면 비웃음을 당하는 사람의 이름이 남아 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일 ‘여행을 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제 둥지만 돌아보는 새와 같이 떠나려다가 망설이며 빙빙 도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정란처럼 자유롭게 세상을 유람하고자 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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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점석 | 비교문학자


 

보름 전쯤 로마에서 열린 국제콥트학회에서 기독교 역사 전문가인 캐런 킹 교수가 초기 기독교 문서로 추정되는 명함 크기의 파피루스를 해석하면서 언급한 ‘예수의 아내’라는 말이 불러온 파장이 만만치 않다. 자신들의 해석이 정통이고 규범임을 내세워 교리상의 틈새를 허용하지 않고, 비판적 시각에 이단의 굴레를 씌워 타자를 배제해온 전력이 있는 로마가톨릭 교황청은 이 문서 자체를 ‘가짜’라고 했다. 예수의 결혼과 아내의 존재를 거론한 초기 문서인 <도마복음>, 결혼은 물론 후손들의 삶을 얘기한 <다빈치 코드> 등을 영지주의에 근거한 한낱 문학적 허구로 폄하하는 기독교 신학자들은, 이 문서 역시 그런 부류일 뿐 예수에겐 아내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예수가 ‘나의 아내’라고 언급한 내용이 담긴 현존 유일한 문서 (경향신문DB)


 “지상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근대 자본주의와 성문화를 보편화시키는 데 공헌한 기독교가 예수의 결혼과 아내의 존재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불경시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상식인의 시각으로 되짚어보면, 그 원인은 기독교 교리상의 한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한 예수는 인간의 성적 산물이 아니었다. 굳이 ‘인자’(son of man)라고는 하지만 예수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성부이자 성령의 아들이면서 그와 일체인 하나님이었다. 유목생활의 특성상 혹은 시대적 편견일 수도 있는 섹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예수의 신화적 탄생을 고집한 것은 아닐까? 누가와 마태가 그들의 복음서에서 요셉을 거쳐 다윗으로, 다윗에서 아브라함으로 예수의 신성한 가계도를 그렸지만, 예수가 성령의 산물인데 요셉 가계의 조상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한 후손을 통해 사회를 존속시키는 생물학적 전제인 결혼과 아내에게 거부감을 갖게 한 요인으로 종말에 대한 예수의 오판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수는 제자와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 인간을 심판할 재림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이며, 그 순간은 그들이 죽기 전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런 까닭에 결혼하지 않고 정결하게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것이 영생을 얻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했다. 하지만 예수의 이런 권고와 경계의 말이 경각심은 불러일으킬지언정 실현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리는 ‘사람 사는 세상’을 지상에 건설하기 위해 아내와 더불어 지혜를 모아야 할 시대에 살고 있다.


젊은 날 연애기간이 길어지고 그런 시절에 대한 책임을 의식하게 되면서 나는 결혼을 했고, 이제는 딸과 아들을 둔 아빠이자 남편으로서 한국인의 자잘한 애환을 경험하고 있다. 


큰애인 딸은 재수생인 까닭에 초인이나 감당할 수 있는 팍팍한 나날을 보낸다. 오전 6시 전에 일어나 밤 12시 넘어 잠자리에 든다. 밤 10시가 넘어 학원수업이 끝나면 딸은 어김없이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소중한 일과를 무사히 마쳤다는 성취감과 안도의 수다를 떨며 기댈 언덕이 엄마이기 때문이리라. 그런 아내가 있어 애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때론 살가운 친구가 된다는 사실에 나는 감동한다. ‘무자식 상팔자’라는 필부의 한숨을 쉬어본 적도 있지만, 그럴 때면 아내는 컴퍼스의 중심축이 되어 행복의 경계를 확장하며 자신의 소중한 자리를 지킨다.


세상에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면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이 아닐까? 신화가 과학을 대체하던 시대의 상상력에 사로잡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는 성적으로 무결해야 하기 때문에 아내가 있을 수 없다는 맹목성이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돼서는 안된다. 


아울러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만 아내와 엄마로서의 경험이 없는 박근혜 후보에게 아쉬운 것도, 막연히 ‘국민 대통합’을 외치며 “나는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는 말로 근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흉내 내며 아버지에 대한 딸의 도리에만 몰두할 게 아니라, 남편과 자식들에게 부대끼며 때론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여성들이 경험하는 인지상정을 체득하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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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벌써 12번째 원자력발전소의 고장·사고가 발생하면서 원전 관리에 대한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엊그제 오전 8시10분쯤 부산 기장군의 신고리 1호기에서 원자로 출력을 제어하는 제어봉 제어계통 고장으로, 원자로와 터빈발전기가 정지됐다. 전남 영광군의 영광 5호기에서는 급수를 공급하는 주급수펌프가 정지돼 원자로 및 터빈발전기가 정지됐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하루 만에 2건의 원자로 고장이 발생했음에도 고장 발생 사실만을 짧게 공개하면서 의미를 최소화하는 데 급급했다. 한수원 측은 “새 원전은 설비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기까지 고장이 날 확률이 많다”면서 “고장이 발생할 때마다 시스템을 개선하면 안정화된다”는, 해명 아닌 해명을 버젓이 내놓았다. 원전의 잦은 고장 및 사고도 문제지만 그때마다 정확한 사고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이를 최대한 은폐하거나 그 의미를 최소화하는 한수원의 도덕적 해이가 국민적 불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부산 신고리원전 1호기 (경향신문DB)


한수원은 신고리 1호기의 경우 제어봉 계통 전원공급 장치의 퓨즈를 갈아낀 뒤 정밀테스트를 거쳐 이번 주말쯤 재가동할 방침이라고 한다. 영광 5호기는 주급수펌프 자체는 손상되지 않아 일단 제어시스템 이상으로 진단됐다. 제어봉의 문제가 곧바로 방사능 누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제어봉은 원전 가동상태에서 핵연료의 핵분열 연쇄반응을 제어하는 핵심 안전장치이다. 정확한 고장원인을 규명해 근본적인 대책을 내놓기 전에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광주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영광 5호기는 2002년 5월 발전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17번이나 고장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이번 고장의 원인조차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2월 가동된 신고리 1호기는 처음으로 발전을 시작한 개선형 한국표준형원전이다. 신고리 1호기의 제어봉은 최근 석 달 동안 세 차례나 문제를 일으켰다. 한수원의 해명대로라면 영광 5호기는 낡은 원전이기에 원인 모를 고장이 잇달아 발생하고, 새 원전인 신고리 1호기는 새 원전이기에 고장이 잦은 셈이다.


지난 2월 고리 1호기의 정전사실 은폐에 이어 원전 납품비리와 원전 직원의 마약투여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한수원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장기적으로 재생에너지의 개발과 절전을 통해 원전을 없애는 것이 국가 전략이 돼야 한다. 하지만 당장 다음 정권에서라도 한수원과 원전 감독체계의 근본적인 수술이 없다면 원전불안증은 가시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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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어제 신세계그룹에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계열사 SVN에 부당지원을 했다며 4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물렸다. 신세계SVN은 빵, 피자, 케이크를 만드는 곳으로,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의 딸인 정유경 부사장이 대주주(40% 지분 보유)다. 이번 과징금 부과는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계열사와 내부거래를 한 것에 대한 첫 제재다. 그동안 법인이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제재는 있었다. 하지만 총수 일가가 대주주인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신세계SVN은 지난해 매출 신장률이 54%를 넘었다. 이마트에서 팔고 있는 ‘슈퍼프라임피자’도 지난해 매출 신장률 500%를 기록하면서 피자업계 4위로 뛰어올랐다. 2010년 첫선을 보일 때 ‘반값 피자’로 논란을 빚었던 제품이다. 하지만 이토록 잘나가는 비결이 다른 계열사가 부당하게 도와주었기 때문이라니, 안될 말이다.


(경향신문DB)


공정위는 신세계백화점, 이마트가 입점한 계열사 SVN 빵집이나 피자 판매 수수료를 파격적으로 낮춰주는 방식으로 도와주었다고 밝혔다. 신세계의 부당지원과 관련한 거래 규모는 1847억원, 지원액은 62억원에 이른다는 설명이다. 사실이라면 ‘땅짚고 헤엄치기식’ 영업 관행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번 사안은 총수 일가 및 계열사가 대부분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비상장 계열사가 전국적인 유통망에 손쉽게 들어가 판매 수수료까지 특혜를 받는 관행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총수 일가라는 이유로 부당지원을 받아 골목상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막게 됐다는 것이다. 내부 부당거래는 그동안 대기업의 대표적인 횡포로 꼽혔던 만큼,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신세계 측은 공정위 발표에 억울하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슈퍼프라임피자는 마진이 워낙 낮아 수수료율을 아무리 낮게 받아도 특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신세계SVN 영업이익률이 2006년 이후 계속 줄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지겠지만, 부당지원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문제다. 공정위는 다른 재벌 기업의 불공정 관행이 얼마나 많은지 조사를 확대, 강화해야 한다. 최근 만난 한 중소기업인은 “대기업의 내부 부당거래만 없애면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은 걱정이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대기업의 부당한 내부거래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정유경 부사장은 갖고 있는 지분을 처분하는 게 좋겠다. 아무래도 대기업이 빵집까지 운영한다는 게 요즘 국민 정서에 거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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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인 |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권력과 자본의 횡포로 고통당하고 있는 국민을 대표적으로 꼽으라면 누구를 고를 수 있을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족이 바로 그들이 아닐까? 그들이 이제 “우리가 하늘이다”를 외치며 강정에서 서울까지 2012 생명평화대행진을 하려고 한다. 그 행진에는 스스로 하늘임을 선언한 그들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뜻 있는 ‘하늘님’들이 함께할 예정이다. 행진 마지막 날인 11월3일에는 10만명이 넘는 ‘하늘님’들이 서울에서 함께 걷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중덕 해안가에 위치한 구럼비 바위의 모습. (경향신문DB)


 그들은 소리친다. 이 땅에서 생명평화의 새 세상이 열리려면 권력과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소외되고 억압받는 국민들이 대한민국에서 당당하게 주인 노릇을 할 때 우리가 하늘이 되는 세상이 온다고 부르짖는다. 나는 “우리가 하늘이다”의 기원을 동학혁명에서 찾는다. 봉건적 신분질서 하에서 짓눌려 신음하던 이 땅의 민중들이 역사상 최초로 자신이 하늘임을 자각하고 인내천(人乃天)의 기치 하에 분연히 일어났던 사건이 동학혁명이기 때문이다. 동학혁명에서 시작된 “우리가 하늘이다”의 몸부림은 그 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독재정권시절의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도 그 본질적 성격이 민중이 하늘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운동인 것이다. 그렇다면 소외되고 억압받는 ‘하늘님’들이 주도하는 이번 대행진은 동학혁명에서 시작되어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온 역사의 바통을 이어받는 운동이 아닐까? 미완의 혁명을 완성시키고자 하는 민중의 용트림이 아닐까?


“우리가 하늘이다”는 대한민국 헌법의 최고이념이기도 하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이념적 기초이자 궁극적 목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규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인간의 존엄을 공감대적 가치로 세워진 정치적인 공동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이유는 모든 국민이 하늘처럼 존엄하게 살아가게 하는데 있다. 우리가 하늘이 되는 세상은 대한민국의 꿈이자 비전이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하는 자유와 권리, 즉 각종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기본권이 보장되고 실현되지 않는 한 인간의 존엄은 장밋빛 허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헌법적 관점에서 “우리가 하늘이다”의 핵심은 모든 국민의 기본권 보장 및 실현이라 할 수 있다.


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실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국가기관을 두고 그 국가기관에 기본권 보장 및 실현에 필요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권력은 기본권 보장 및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현실을 돌이켜 보면 바로 그 국가권력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족 등 국민의 기본권을 자의적으로 침해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고 있다. 국가권력이 그 본분을 망각하고 하늘을 능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헌법은 종이장식품으로 전락할 것이고 대한민국의 존립 정당성 자체가 부정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이다”를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대행진은 국민의 힘으로 헌법의 정신을 바르게 실현하고 대한민국을 제대로 세우는 역사적인 대장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인간의 존엄’이라는 헌법 이념이 박제화된 장식품이 아니라 국민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쉴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해 본다. 미완의 혁명이 영글어져 국민 모두가 하늘처럼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성큼 다가오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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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원 산업부 기자 jwhong@kyunghyang.com


 

구본무 LG그룹 회장 입장에서는 심기가 불편할 만하다. 주력인 LG전자는 스마트폰에서 실기해 분기당 1조원씩 올리던 이익이 반토막났다. 그나마 적자 터널에서 겨우 탈출한 것이다. LG디스플레이는 액정(LCD) 과잉투자로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할 형편이다. 삼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전자계열사의 부진은 구 회장으로선 뼈아플 수밖에 없다. 


그는 최근 임원들을 호되게 나무랐다. 구 회장은 “대부분의 사업이 선도기업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앞으로 1등 제품으로 임원들을 평가하겠다”고 했다. 한번 밀리면 끝없이 밀리는 요즘 시장에서, 2등도 모자라 아예 존재감마저 사라지는 사업 현황을 이대로 방치할 거냐는 질책이다. 실적에 따른 평가를 강조하는 건 그동안 LG가 강조해온 ‘인화’와는 사뭇 달라진 흐름이다. 계열사엔 비상이 걸렸다. 


(경향신문DB)


 그런데 이런 소란에서 예외인 곳도 있다. 굳이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더라도 LG 내에서는 통상 ‘괸 물’로 불리는 곳이다. 구 회장이 올 초부터 직접 나서 ‘앵그리버드 구본무’란 별명까지 얻었지만, 그룹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이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아는 이는 없다.


이 조직은 구 회장을 오랫동안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왔다. 


물론 이들의 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들은 그동안 LG의 통합작업을 맡아 체제를 뿌리내는 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어느 틈엔가 ‘존재만 하는’ 조직으로 바뀌었다. 지금의 위기를 예견하지도, 방향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룹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변화에 무풍지대인 이들 집단이 존재하는 한 LG의 혁신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 관계자는 “최근 경쟁사가 제기한 소송 탓에 주력계열사 임직원의 사기가 땅에 떨어질 판국인데도, 이들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며 정면대응을 피해왔다”고 꼬집었다. 되레 언젠가부터 ‘아무개 사단’이니 ‘아무개 라인’이니 불리면서, 그룹 내부에 장기간 뿌리내린 중심부 인사들의 파워가 거론되고 있다. 아랫목 따로, 윗목 따로다.


이런 분위기에선 LG가 1등 자리를 되찾기 어렵다. 사업은 고꾸라지는데 조직은 얼어붙으니 ‘전자제품 하면 LG’라던 그 시절은 멀어져간다. 


멀리 있는 일선 장수들도 명에 따라 목을 바친다. 그러나 바로 옆 참모에겐 닿지 않는 군령이라면 따를 이가 없다. 제갈량이 마속부터 벌한 것은 리더십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꿰뚫어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 회장은 이들 조직이 어디인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구 회장의 잇단 질책이 그저 신경질적인 호통인지, 또는 추락한 20만 LG맨의 자존심을 일으켜세우려는 몸부림인지는 이 대목을 지켜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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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경 기자 sunkim@kyunghyang.com


 

완연한 가을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고개 숙인 벼들이 수확의 계절이 왔음을 알린다. 잇단 태풍에도 다행스럽게 올해 쌀농사는 풍년이란다.


지난해에 수확한 곡식은 ‘묵은 곡식’, 그리고 올해 농사를 지어 거두어들인 곡식은 ‘햇곡식’이라고 한다. 


(경향신문DB)


우리말에서 ‘그해에 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해’나 ‘햇’이 쓰인다. ‘해쑥’ ‘해콩’ ‘해팥’처럼 첫소리가 된소리나 거센소리인 명사 앞에서는 ‘해’가 붙고, ‘햇감자’ ‘햇과일’ ‘햇사과’처럼 두음이 예사소리인 명사 앞에서는 ‘햇’이 쓰인다.


그런데 왜 그해에 난 쌀은 ‘해쌀’이 아니라 ‘햅쌀’일까? 그 답은 글자 ‘쌀’에 있다. ‘쌀’의 옛말은 지금처럼 첫 자음이 쌍시옷(ㅆ)이 아니라 비읍과 시옷(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현대어로 오면서 ㅄ이 ㅆ으로 변했는데 복합어(해+쌀→햅쌀)가 만들어지면서 옛말의 흔적이 살아난 것이다.


이처럼 쌀과 복합어를 이루는 낱말에는 대부분 ‘ㅂ’이 붙어 있다. ‘좁쌀’은 ‘조’와 쌀, 멥쌀은 ‘메’와 쌀, 입쌀은 ‘이’와 쌀이 결합하면서 ‘ㅂ’이 살아난 경우이고, 찹쌀은 ‘찰’과 쌀이 복합어를 이룰 때 ‘ㅂ’이 되살아나면서 리을(ㄹ)이 탈락해 만들어진 말이다.


‘그해에 난 어떤 것’을 가리킬 때 ‘해’나 ‘햇’을 붙인다. 다만 ‘쌀’과 결합할 때는 옛말의 흔적이 나타나 ‘햅’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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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효친은 한국적 가치의 핵심이며 세계적인 자랑거리였다.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지구에서 꼭 가져가야 할 제일의 문화는 한국의 효(孝)문화”라며 아널드 토인비가 부러워했던 우리의 독보적인 문화이자 전통이었다. 어제 제16회 노인의 날을 맞아 살펴본 우리 ‘어르신’의 현주소는 이런 찬사가 낯 뜨거울 지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평균(15%)보다 무려 3배나 높은 45%로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노인 자살률도 10만명당 81.9명으로 부동의 1위 자리를 차지한 지 오래다. 이는 일본(17.9명)의 4배, 미국(14.5명)의 5배가 넘고, 우리나라 전체 평균(33.5명)보다도 2.4배나 높은 수치다.


굳이 한국적 전통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 노년세대는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전쟁과 폐허와 가난 속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지금의 경제적 부를 일구었고, 멀게는 일본의 압제, 가깝게는 군사독재 속에서 피 흘려 독립과 민주주의를 이룩한 주역이다. 자식 교육과 성취에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자신의 행복과 노후 준비를 희생한 고귀한 세대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보상이 가난과 질병과 무위와 고독의 이른바 ‘4고(苦)’라면 이들에게 자녀와 국가·사회는 과연 무엇인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인가.


(경향신문DB)


실버푸어, 노인자살, 고독사, 독거가구 등의 신조어가 이제 새롭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노인문제는 심화되고 구조화했다. 소외계층을 위한 노인복지망을 촘촘하게 구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노년세대 편입이 시작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압축적 고령화’를 겪고 있는 국가적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노년세대 스스로 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정책적 고려와 사회의식의 변화가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 있었다. 청년유니온에 이어 두 번째로 세대별 노동조합을 추구하며 지난달 24일 창립한 노년유니온이 어제 서울지방고용청에 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했다. 고령화사회에서 노인은 시혜적 복지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 복지의 대상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인일자리사업 기간 7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 기초노령연금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게 지급,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 완화, 보편적 복지 실현을 위한 증세 등 요구사항도 당당하다. 노년유니온은 기초노령연금과 노인일자리 확대를 위해 대통령 선거일까지 1인시위를 진행하고, 노년세대와 마찬가지로 실업과 일자리 불안으로 고통받는 청년세대 노조인 청년유니온과도 적극적 연대를 추구한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역동적 변화를 이끌어온 이들 세대의 새로운 도전에 기대를 건다. 노인을 위한 나라가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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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전 10대 고교 중퇴생이 학급회의 중인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4학년 교실에 난입해 흉기를 마구 휘둘러 학생 6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학생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까지 받았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평일 정상수업 중인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정말 어이가 없다. 피의자는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입한 장난감 권총과 길이 60㎝의 야전삽을 들고 학교에 들어갔다. 명찰이 달린 고교 교복을 입고 머리는 덥수룩하게 길러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이상하게 여겨질 모습이었지만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피의자는 학교 증설 공사 차량이 드나드는 후문을 통해 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문에는 경비원이나 학교지킴이가 배치되지 않았다. 학교보안이 그만큼 허술했다는 얘기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2010년 6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2학년 여아가 범인의 집으로 끌려가 성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한 뒤 수차례에 걸쳐 학생안전 강화 대책을 내놓았다. 폐쇄회로(CC)TV 등 보안시설 증설과 보안인력 보강, 학교 출입 시스템 강화 등이 핵심이다. 한마디로 ‘위험 인물’이 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듯 학교보안은 너무 쉽게 뚫렸다. 허술한 학교보안은 CCTV의 부실 운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학생안전 강화학교’ 사업으로 보안시설이 많이 설치된 두 초등학교를 현장 조사한 결과 CCTV는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카메라가 나무에 가려지거나 모니터가 너무 작아 상황 파악이 어려울 뿐 아니라 모니터링하는 사람도 제대로 없었다. ‘위험 불감증’이 여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보안관이 학생들의 등교를 지도하고 있다. (경향신문DB)


학교의 안전은 평소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번 사건처럼 안전망이 한 번 뚫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선 학교의 안전 의식이 확고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보안시설과 보안인력부터 충분히 확보해야 할 것이다. 그런 시설이나 인력을 학생안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운영하는 일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전국 시·도 교육청은 모든 학교의 CCTV 관리 및 보안인력 근무 실태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2000년부터 ‘학교공원화 사업’으로 담장이 없어진 서울시내 800여 학교의 담장 복원 사업도 속도를 내 학부모와 학생의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다시는 학교에서 학생의 안전이 위협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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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 소설가


20대 때 일이다. 당시 여수에 살고 있었는데 추석 전전날 거문도 동창이 전화를 해왔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온 그 친구는 어렵사리 서울의 어느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러니까 번듯한 직장인이 되고 나서 첫 번째 귀향인 셈이었다(거문도 가는 배는 여수에서 탄다). 그가 묵고 있다는 여관으로 가니 아닌 게 아니라 새 양복이 옷걸이에 걸려 있고 구두는 얼굴이 비칠 정도로 반짝였다. 텔레비전 옆에는 백화점에서 포장한 것으로 보이는 선물 꾸러미가 세 개나 놓여 있었다. 내려올 때도 비행기로 왔단다. 

 


그 친구는 다음날 아침 배 탈 때까지 심심해서 전화를 했다지만 자랑하려고 부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워낙 번듯해서 사실 조금 부럽기도 했다. 스탠드바 같은 곳에 가서 한잔 하자는 것을 억지로 눌러앉혔던 것은 내 주머니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밤 사이 느닷없이 풍랑이 일었다는 것. 풍랑주의보는 이틀이나 계속되었다. 결국 그 친구는 폼 나는 귀향 대신 2박3일간 여관에 박혀 싸구려 무협 영화만 보다가 밤기차 입석을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선물 꾸러미를 모두 든 채.


섬이 고향인 이들에게는 몇 번씩 있었던 풍경이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술병과 과일 꾸러미를 든 정장의 어른과, 색동옷 차려입은 아이들로 여객선이 꽉 차곤 했다. 미어터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안부를 묻는 장면이나 섬마을 선착장마다 마중나와 서성이던 주민들 모습은 지금도 내 기억에 깊이 박혀 있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이 누구네 사랑채에서 날밤을 새우던 것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호박 넝쿨처럼 풍성해지고 무조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그게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요즘은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우선 오지를 않는다. 이번 추석만 해도 여객선이 주민과 낚시꾼 몇 명만 싣고 들어왔다. 온 가족이 이주해 가버린 집이 많아서 그렇고, 섬마을 노인들이 직접 나가는 역귀성을 하고부터 그렇기도 하다. 이 때문에 이곳에 추석이 오면 섬이 아주 조용하다. 아침 나절 성묘와 윷놀이가 끝나면 죽어버린 섬처럼 변해버린다. 여차하면 사람 구경도 어렵다. 나는 이 고요가 좋아 혼자 싸돌아다니기도 하고 낚시를 하기도 하는데 어쨌든 유쾌하고 어수선했던 풍경을 잃으면서 세상이 지나치게 삭막하게 변질되어 버린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머잖아 고리타분한 그 장면을 몹시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공동체의 가장 큰 특징은 심심하지 않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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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연구년을 맞아 현재 스웨덴 룬드 소재 라울 발렌베리 인권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웨덴을 우리가 가야 할 미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한 세기 인류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 왔다. 하나는 보편적 자유이고, 또 하나는 보편적 평등이다. 전자에 치우친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고, 후자에 천착한 나라는 사회주의를 실험했다. 어떤 나라도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성공시킨 곳은 없다. 하지만 스웨덴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 왔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스웨덴은 보수연립정당이 의회를 지배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이 이곳까지 불어온 결과이다. 그러나 60년 이상 스웨덴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온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은 비록 보수정권이라 해도 그 본질을 훼손할 수 없다. 평등을 지향하며 경쟁을 존중한다는 이상에서 경쟁의 가치가 다소 중요하게 작용하는 정도의 변화이다. 그럼 스웨덴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 원인 중 하나를 우리와는 사뭇 다른 역할을 해온 스웨덴 재벌에서 찾고자 한다. 발렌베리 가문, 이것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전설이다. 150여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스웨덴 경제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불세출의 가문이다. 지금도 스웨덴 GDP의 30%, 스웨덴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 40%에 해당하는 돈을 이 가문이 움직인다고 한다.


(출처: 경향DB)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웬 공룡재벌이 있다는 말인가. 그 답이 바로 스웨덴 패러독스에 대한 것이다. 공룡재벌이 있으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국민의 평등에 기여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부의 철저한 사회환원이다. 이를 위한 것이 공익법인 발렌베리 재단인데, 이것은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하는 모든 기업의 이윤이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종착역이다. 이 재단은 공익기부를 통해 사회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협조하는 역할을 무려 100년간 지속해 왔다. 매년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기부하는 기부금 총액이 지난 5년간만 무려 8500억원에 달한다. 그러니 스웨덴 과학기술은 이 재단이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발렌베리 가문을 유명케 한 것은 사회적 처신이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이 말은 웬만한 스웨덴인이라면 다 아는 발렌베리 가문의 좌우명이다. 따라서 이 가문은 기업소유와 관련하여 사회적 룰을 위반하거나 탈세를 해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없다. 한 가지 더, 이 가문에는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인물이 있다. 바로 내가 있는 연구소 이름의 주인공 라울 발렌베리다. 2차 대전 중 헝가리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수만 명의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한 인물이다. 그는 중립국인 스웨덴의 위치를 이용하여 당시 생사의 기로에 선 유태인들에게 가짜 여권과 비자를 대량으로 발급해 줘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종료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라울 발렌베리는 지금 서구 사회에서 인권과 평화의 대명사다. 그의 이름을 딴 연구재단, 연구소 등이 십여 개나 있으니 말이다.


이제 문제는 우리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언젠가 이 가문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발렌베리 가문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우리사회에서 재벌만큼 큰 힘은 이제 없다. 정치권력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영원한 게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탐욕스러운 재벌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 사회는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러니 재벌이 변해야 한다. 만일 자발적인 변화가 요원하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정치권력에 다시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은 그 시험대다. 누가 재벌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바로 그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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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귀향이 시작되었다. 필자도 토요일에는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위에서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내려가고 있을 것이다. 지칠 만하면 요즘 세계적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흥얼거리면서. 명절이면 되풀이되는 귀성전쟁을 겪다보면 이 난리법석이 언제 끝나나 하다가도 여기저기 흩어진 혈육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이 회동이 명절이라는 동원력이 없으면 언제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가족친지가 만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서울과 지방, 도시와 농촌사람들이 섞이고, 세대 사이의 만남이 대규모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에, 추석은 정치적으로도 큰 의미를 띠게 되었다. 특히 대선을 앞둔 올해 ‘추석민심’이 정치권의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런데 추석명절의 사회학이든 정치학이든 이 회동의 의미를 말할 때 빼놓기 쉬운 것이 하나 있다. 이 귀향이 남성중심의 질서를 확인하는 행사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가족재회는 남자쪽 집안에 우선권이 있고 여자쪽은 차후로 밀리기 마련이다. 여성은 명절에 자신의 부모형제를 만나기는커녕 각자의 시댁에서 음식장만과 설거지 및 갖은 뒤치다꺼리를 담당하게 된다. 대부분의 집안에서 겪는 일이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도 여기서 생겨나는 부작용을 해소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결혼 초 한때는 집안의 장남으로서 명절문화 혁신을 외치며 어머니와 며느리들이 일하는 부엌으로 진입했다가 결국 어머니의 밀어내기에 마지못한 척 물러났고, 설거지를 하자 해도 아주버님 우리가 할게요 하는 제수씨들을 쉽게 제압할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차츰 혁신 의지도 옅어지고 내 실패를 워낙 완강한 가부장질서 탓으로 돌리고 마는 것이다. 더구나 친족들이 다 모이는 문중제사에 참여하게 되면 그 엄숙한 집단의례 앞에 무슨 혁신을 꺼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기자회견을 마친 가수 싸이가 말춤을 추며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런데 이 기득권 질서에 안주하게 된 필자를 삐딱한 시선으로 노려보는 눈이 있으니 바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다. “뭘 좀 아는” 개념 있는 놈임을 자처하는 싸이의 ‘오빠’는 그렇다면 당신은 무슨 스타일이지? 가부장 스타일인가? 라고 묻는 것이다. 필자는 싸이의 이번 성공이 대중문화에서 한국적 특수성과 세계적 보편성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의미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기성질서에 대한 풍자와 질문, 가식과 세련에 대한 뒤집기, 전통적인 흥과 해학이 녹아 있다. 강남으로 대변되는 기득권과 엘리트의식을 뒤집어 투박하지만 개념 있는 내가 진짜 강남스타일임을 내세우는 유쾌한 반전.


이번 추석모임에서 조카들의 말춤을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우리 세대도 서울에서 내려간 개념 있는 강남스타일의 남자가 되는 반전을 꿈꾸어보면 어떨까? “전 부치는 정도야 우리도 하지, 이리 좀 줘봐!” “설거지는 우리에게 맡기고 여자들은 빠져요, 고스톱도 좋고!” 어머니가 기겁하고 밀어내면 “왜 이러세요, 저리 가서 손주한테 말춤이나 배우시지요.”


하긴 미국 공화당의 롬니 후보도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도 말춤을 추고 나섰다니, 그리 신선한 제안은 못될 듯도 하다. 그렇지만 필자가 명절마다 내려가는 곳은 보수의 텃밭인 영남권이다. 문중제사가 있는 자리에선 요즘 정치를 논하는 형님들 사이에서 되도록 다소곳이 있는 편이 신상에 이로운 동네다. 세칭 TK 출신인 필자가 고교동창회에서 그럴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싸이의 삐딱한 시선을 느끼는 순간, 이 묻지마 식 지역주의를 한번 흔들어봐? 하는 속살거림이 들려온다. “있잖습니까, 사과는 사과고 거 대법원 판결이 둘이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건 좀 그렇잖아요? 기본이 안 돼 있는데….” 이렇게 ‘우리가 남이가’의 담장을 쿵 한번 치는 것이다. 경험상으로는 이러면 대개 분위기가 좀 싸늘해지는데, 뭐 어떤가? 추석 교통체증의 짜증을 달래려고 싸이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내려온 덕분에 뭔가 반전 있는 남자가 되고 싶은 ‘오빤 강남스타일’ 신드롬의 희생물이 되어 있으니. “근육보다 사상이 울퉁불퉁한 싸나히! 그런 싸나히!”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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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기업은 712개라고 한다. 2006년(76개)과 비교하면 5년 만에 10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일시적으로 자금난에 빠진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법정관리와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이 있다. 이중에서 법정관리에 많은 기업들이 몰리는 것은 2006년 만든 통합도산법 덕분이라고 한다. 기존 대주주 경영권을 인정받으면서 기업 스스로 정상화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법원의 감시를 받기는 하지만, 채권 회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채권단이 간섭하는 워크아웃보다는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기업을 살리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경영권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점에서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는 태생적인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웅진그룹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와 계열사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계기로 법정관리 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리 있는 지적이라고 본다. 공교롭게도 회사 측이 일부러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이 아니냐는 여러 가지 의혹이 일고 있다. 기업을 살리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법정관리 제도가 기업들의 고의적인 도피수단이 되면서, 회사채를 산 투자자들이나 하청을 맡았던 협력업체들은 돈을 제대로 받지 못해 피해를 입게 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웅진의 법정관리 신청과 관련해 가장 대표적인 의혹은 법정관리 신청 직전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현행 통합도산법은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당시 대표를 대부분 관리인으로 선임하고 있다. 또다른 의혹은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 신청 직전 계열사인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에서 빌린 돈 530억원을 예정일보다 앞당겨 갚았다는 점이다. 법정관리 신청대상이 아닌 다른 계열사로 현금을 옮긴 셈이다. 웅진홀딩스는 법정관리를 통해 살리는 한편 훗날 우량 기업을 주력 기업으로 재편하려는 의도였다는 해석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웅진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 논란이 일자 법정관리 신청과정에서 부당행위가 있었는지를 점검하고 있다고 한다. 기다려 볼 일이기는 하지만, 이번 기회에 법정관리에 대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기업이나 대주주는 살고 투자자와 협력업체를 죽이는 행태는 어떻게든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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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하 | 시인 cheche2003@hanmail.net


만약 내 친구가 어떠한 이유로든 내일 투신자살하겠다고 한다면…? 그럼 과연 오늘 내가 그런 친구를 말리지 않고 유서까지 대신 써주며 자살을 부추길 수 있을까? 이것은 ‘유서대필’의 가능성 이전에 그 발상 자체가 너무 엽기적이어서 사이코패스조차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내 주위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른바 1991년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다. 물론 16년이나 흘러 진실이 밝혀진, 검찰과 법원의 음모조작극이었다. 이런 조작극들은 그동안 안전기획부가 전담해온 것과는 달리, 이때부터 검찰이 직접 자기 손에 피를 묻혀가며 창작하기 시작한 권력 아부용 인지수사였다. 검찰공화국 탄생의 예광탄이자 공안통치의 후폭풍이었다.


 나는 등단 이후 지금까지 수백편의 시를 썼지만, 아직 공안검찰의 이 엽기적 상상력을 능가하는 시를 써본 적이 없다. 또 그 빈약한 상상력으로 가공할 만한 권력에 맞서 펜을 들었다는 게 새삼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사건이 일어난 당시 난 몇몇 작가들에게 푸념처럼 말했다. “작가들의 상상력이 공안검찰의 상상력도 못 따라가는 주제에 무슨 글을 쓰겠느냐.” 아마도 검찰의 이런 허를 찌르는 ‘공안상상력’을 예측해 미리 독화살을 제거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자책성 질문일지도 모른다.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진실규명에 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에서 강기훈씨가 그동안의 심경을 말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그 사건으로 도덕적 급소를 강타당한 민주세력은 휘청거리다가 쓰러졌다. 게다가 서강대 총장인 박홍 신부가 “죽음을 선동하는 어둠의 배후세력이 있다”며 근거 없는 모략을 했고, 1970년대 저항의 상징적 존재인 김지하 시인마저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고 불난 집에 휘발유를 뿌렸으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곧 안기부의 용공상상력과 검찰의 공안상상력이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대목이 왔다. 대선과 총선 직전이다. 예상대로 1992년 12월 대선은 민자당 김영삼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검찰이 각본을 쓰고 주연한 공안상상력의 압승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침묵이었다.


이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잘 알려져 있듯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과 아주 유사하다. 그래서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두 사건은 모두 단지 종이 몇 장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강기훈은 분신자살한 친구인 김기설의 유서를, 드레퓌스는 군사기밀이 적힌 명세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모두 필적 감정 결과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강기훈은 국가보안법 위반 및 자살방조 혐의로 구속돼 3년을 복역했고, 드레퓌스는 반역죄로 종신유배형을 받았다.


그런데 드레퓌스는 12년 만에 무죄를 받아 진급도 하고 훈장도 받았고, 이제 그를 기리는 동상도 있다. 그러나 강기훈은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의 무죄성 재심 결정이 내려졌음에도 대법원은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 침묵에 전염된 듯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입도 셔터가 내려져 있기는 마찬가지다. 드레퓌스에게 무죄판결이 내려진 배경에는 작가 에밀 졸라의 목숨 건 투쟁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통해 프랑스의 양심에 호소하고 절규했다. 


“불타오르는 나의 항변은 내 영혼의 절규다. 나를 심판한다 해도 두렵지 않다!”


반면 한국의 양심적인 지식인들, 특히 작가들의 모습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에밀 졸라처럼 양심선언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김지하 시인이나 박홍 신부처럼 마녀사냥 선동에 앞장섰다. 오래전부터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이 거듭 강조하고 호소했지만 작가들은 여전히 대답이 없다. 오늘의 판결문이 내일은 고발장이 되듯 그 침묵이 결코 묵시적 동의나 방관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독재정권과 검찰이 먼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한 인간의 모든 것을 유린했다. 이제 우리가 그 상자 속에 유일하게 남은 ‘희망’을 꺼내기 위해 다시 뚜껑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쇠사슬에 묶인 강기훈의 영혼을 푸는 것이요, 같은 인간으로서 나와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이산하 시인 cheche200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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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환 | 귀농본부 텃밭보급소장


추석은 우리 명절 중 유일한 순수 국산이다. 추석이 되면 영락없이 날이 맑다. 대개 보름달이 뜰 때면 비가 적게 오는데 추석엔 유독 날이 맑다. 추석에 비가 오거나 흐린 것은 흉년의 예고다. 


우리 명절은 대개 농사와 관련이 깊다. 특히 추석은 단오, 백중과 함께 가히 벼농사의 명절이라 할 만하다. 단오가 되면 모내기와 함께 본격적인 농번기에 앞서 기운을 내는 잔치를 벌이고, 백중엔 마지막 논 피사리를 끝내고 노동의 시름을 달래는 잔치를 벌인다. 추석에는 벼의 이삭이 잘 익어 풍작이 되기를 바라는 잔치를 연다.





양력 절기로는 추분, 음력 명절로는 추석 즈음이면 가뭄이 온다. 이는 벼 이삭이 익는 데 꼭 필요한 날씨다. 요즘은 온난화 등으로 일기가 불순해져 2차 장마 걱정이 커졌다. 원래 여름 장마, 가을 장마라 하여 장마가 두 번 찾아오는 것은 일본 날씨의 특징이다. 일본 열도에서 더운 북태평양 고기압과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이 전선을 이루며 오락가락 힘겨루기를 하기 때문에 생기는 날씨다. 


가을이 되면 물러가야 할 북태평양 고기압이 온난화로 인해 힘이 남아 시베리아 고기압과 막판 대치를 하면서 우리나라도 2차 장마가 찾아온다. 우리는 6월 하순 하지 후 본장마가 들고 8월 초 입추 지나서는 장맛비라기보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가 정상이었다. 어쩌다 태풍이 닥쳐 가을 장맛비가 오기도 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1차 장마는 벼와 곡식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비지만, 2차 장마는 익은 벼를 쓰러뜨리고 갓 심은 김장작물에 타격을 입히는 나쁜 비다. 


원래 8월 하순인 처서를 지나면 벼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아주 맑은 날이면 이삭이 한꺼번에 패어 옛 속담에 ‘처서 이삭 패는 소리에 온 동네 강아지들이 짖어댄다’고 했다. 맑은 처서날이 되면 고추도 빨갛게 익기 시작한다. 그런 맑은 가을 기운이 처서에 일어나기 시작해 추분과 추석에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해 벼와 고추를 무르익게 만드는 것이다. 2차 장마가 무섭게 와도 추석이 되면 영락없이 둥근달이 휘영청 떠올라 온 세상을 비춰주니 보름달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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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 여성학 강사


박근혜 후보의 선거 키워드 ‘대통합’은 매우 적절한 전략인 것 같다. 문재인 후보의 ‘일자리’나 안철수 후보의 ‘혁신 경제’는 이미 국민통합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따로 강조할 필요가 없다. 박 후보에게만 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요구가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한동안 흔들림 없는 대세론의 주인공이었으며 지지자 숫자가 가장 많은 후보가 ‘많은 사람을 보듬는다(?)’는 통합을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녀는 옛날 옛적, 한반도 남동쪽 일부 고을을 장악한 영주의 딸, 공주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 영주의 공덕에 대해서는 지면상 생략하고, 아버지가 측근에 의해 살해된 후 평소 그의 유지(지역 차별)를 지나치게 계승한 아버지 후배들이 다른 고을 사람들을 마구 죽인 후 새 영주가 되었다.


 전직 공주의 지위는 애매해졌지만 그녀는 단 한번도 자신이 공주라는 사실을 잊은 적이 없는 듯하다. 33년 만에 권토중래의 기회가 왔다. 아버지는 특정 지역의 영주였고 반대 세력은 온 나라에 퍼져 있으니, 통합을 주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녀로서는 아버지 비판 세력의 주장을 이해할 수도 없는 데다 타 후보들에 비해 비용, 조직 모든 면에서 부족할 것이 없는데, 통합을 호소해야 하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지난 대선 이명박 후보와 당내 경선 때 잠시 ‘여성 대통령’ 여론이 있었다. 당시는 상대가 이명박 후보여서 상대적으로 그녀가 돋보였다. 최소한 ‘생물학적’ 여성인 그녀는 여야를 막론하고 (성)폭력, 술주정, 욕설을 일삼는 남성 정치인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런데, 그녀는 진짜 여성인가? 


생각에 잠긴 박근혜 (출처: 경향DB)


가부장제, 성(차)별, 남성 중심. 이 용어들은 각각 의미가 다르지만, 편의상 ‘가부장제’로 통일하면 가부장제 사회에서 가장 힘 있는 사람은 권력, 부, 명예를 겸비한 최상층 남성이 아니다. 실제 이들의 삶은 피로하고 외로우며, 정상적인 사회일 경우 엄청난 노동과 책임감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돈과 달리 명예와 능력은 쉽게 상속되는 것이 아니어서 본인의 노력으로 획득해야 하는 자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의 수호자, 피해자, 수혜자, 부역자, 저항자 등 다양하다. 5000년 가부장제는 이 다양성으로 인해 지속될 수 있었다. 이 중 대다수 여성들의 로망은 ‘수혜자’이고 그 최고 형식은 아버지의 딸이다. 물론 모든 아버지의 딸이 아니라 권능한 아버지의 딸. 공주! 하지만 이런 아버지는 극소수여서 공주로 태어날 확률은 로또 당첨보다 낮다. 공주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공주병’에 걸리는 것이다. 능력 있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좋겠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 낮은 데다 무엇보다 리스크가 크다. 백마 탄 왕자처럼 보였던 남편은 구타, 외도, 극도의 게으름 등 나중에 ‘이상 행동’을 할 가능성이 많지만, 아버지는 부성이라는 가족제도의 외피 덕분에 안전하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말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즉, 부자 간에는 남성 연대와 동시에 살부(殺父) 욕망까지 있지만, 부녀 간에는 정치적 긴장 대신 친밀감이 있다. 특히 본인의 능력이 뛰어난 아버지일수록 웬만한 아들은 성에 차지 않는다. 못난 아들보다는 똑똑하면서도 순종적인 딸이 훨씬 낫다. 굳이 사례가 필요한가?


공주의 진로는 두 가지다. 아버지가 강대국의 왕이라면 정략결혼을 하거나 힐튼가의 상속녀처럼 현대판 공주로 산다. 약소국일 경우 다시 두 가지로 나뉜다. 영화 <뮬란>처럼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거나 구국의 명분으로 복위하거나. 박 후보는 어디에 해당할까.


박근혜 후보는 여성이 아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첫 숫자가 ‘2’라는 사실 외에는, 여성과 가장 거리가 먼 여성이다. 그녀는 여성도 국민도 대변하지 않는다. 그녀의 몸은 ‘아버지 박정희’를 매개한다. 이런 현상이 바로 “~화신(化身)”이다. 이는 시비, 호오 차원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인식해야 할 중요한 사실일 따름이다.


세습에 대한 세간의 혐오는 북한에만 해당되는 듯하다. 재벌 세습이나 부녀 간 세습에는 관대하거나 심지어 부러워한다. ‘아버지의 딸’은 남녀 모두가 욕망하는 가부장제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부자 간 세습은 아들의 자질과 무관하게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딸은 가문을 재건하고 부패, 추문, 잔학성, 과대망상 같은 아버지의 남근성을 희석시킨다. 플레이보이지(誌) 창업자 휴 헤프너가 딸 크리스티에게 경영권을 맡긴 경우가 대표적이다.


만에 하나 그녀가 당선되더라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운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의 정체성은 공주이지, 여성도 시민도 아니다. 아무리 과거사 ‘해결책’을 제시해도 진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녀의 대권 도전 자체가 ‘충과 효의 갈등’이라는 시대착오적 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간 박근혜’의 불가능성. 이것이 그녀의 실존이자 한국현대사다. ‘대통령 박근혜’는 여성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근대 민주주의의 성과가 아니라 신분사회의 부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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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호 논설위원

“어떠한 이유에서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어쨌든….”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가 부인의 2001년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에 대해 “잘못된 일이고 사과드린다”고 하면서 앞에 붙인 말이다. 보통 잘못을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말 앞에 이떤 종류이건 조건절을 붙이는 건 그리 좋게 보이지 않는다. 뭔가 오해나 억울한 요소가 있다는 뜻으로 들려 그 진정성을 의심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 후보로서는 억울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부동산 다운계약서는 지금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2006년 1월 실거래가 신고제도가 전면 도입되기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문제의 주택 거래가 있었던 2001년 당시 지방세법은 실거래가가 아니더라도 시가표준액 또는 그 이상으로 선택해 신고할 수 있도록 돼 있었다”면서 다운계약서가 납세자들의 입장에서는 ‘법이 허용한 합법적인 절세행위’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 당시 다운계약서로 인한 부동산 거래 질서의 혼탁이나 과세 탈루 등의 책임은 국가의 입법 미비에 있는 것이지 납세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안 후보에 대한 국민 정서의 얼룩이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안철수가 아니라 대선 후보 안철수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법 이상의 높이에 있기 때문이다. 다운계약서는 위장전입·논문표절과 함께 인사청문회 때마다 등장한 ‘비리 3종 세트’의 하나로서 고위 공직자 검증의 엄한 잣대로 기능해왔다. 국민은 “탈세가 드러날 경우 일벌백계로 엄중하게 처벌해서 세금을 떼어먹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안철수의 생각’을 구현할 도덕적 실천력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안 후보는 다운계약서 파문을 본격적인 ‘자기 검증’의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앞으로 좀 더 엄정한 잣대와 기준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고 어제 기자회견에서 밝힌 각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나온 삶과 역정에 대한 엄밀한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다른 후보처럼 거친 검증의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만큼 수많은, 그리고 가혹할지도 모르는 검증 과정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검증대에 오르는 것이 ‘어떤 이유에서든…’이라는 조건절의 사과를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을 예방주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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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 걷기대표·문화사학자


말 때문에 말이 많다.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서 독설과 막말이 난무한다.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고 하지만 차마 보고 듣기가 민망할 때가 있다. 남을 해치거나 비방하는 모질고 악독스러운 말인 ‘독설’이나 나오는 대로 속되게 하는 말인 ‘막말’은 사람들에게 비수가 되고 상처를 준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퐁티니(Pontigny)’에서 머물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에 대하여 아흐레 동안 충분히 되새기며 고치는 풍습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자신있게 의사를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사실 충분한 유예기간이 있어서 자신의 판단을 재검토할 수 있다든지 혹은 그것을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기만 해도 다행한 일일 것이다. 유예기간을 바라는 것은 실체적 측면에서 행위를 되풀이하는 것, 즉 뒤로 되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과 이미 지나온 길을 지나오지 않은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과 흡사하다. 하지만 우리가 행동한 것이 우리의 기억 속에 남고 이것이 쌓여 우리의 성격을 형성하기 때문에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듯 지울 수가 없다. 우리는 종종 피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이 불가피한 일로 되는 것을 보아왔다.


장 그르니에의 산문집 <자유에 관하여>에 실린 글이다. 



이미 엎질러진 말인 까닭에 재검토가 불가능함이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경우를 말함이다. 그렇다 한들, 솔직하게 실언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려는 용기가 있다면 엎질러진 물이라고 왜 주워담지 못하겠는가? 그럼에도 자신의 실언에 대하여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발뺌한다거나 ‘모르쇠’로 부인하는 이들이 있다.


언젠가 본인이 했던 말이나 무심결에 내뱉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이 많다. 말은 바퀴를 달지 않아도 금세 인터넷을 휩쓸며 세상을 요동친다. 옛말대로 어떤 이는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겠지만, 어떤 이는 잘못 뱉은 한마디로 인하여 파멸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말은 그냥 쏟아낼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은 ‘말’을 두고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사람의 마음이 입에서 나오면 말이 된다. 말이 절주(節奏)를 가지면, 가(歌), 시(詩), 문(文), 부(賦)가 된다. 사방의 말은 비록 같지 않으나, 말을 할 줄 아는 자라면 각기 그 말로서 절주를 삼아, 모두들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을 통할 수 있다.” 


그렇다. 선인들은 좋은 말은 천지를 움직이고 귀신과도 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공자 역시 “명분이 바르면 말이 순조롭다(名正言順)”고 했다. 한마디, 한마디, 말은 생각하며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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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 문학평론가 poetica7@hanmail.net


박근혜 후보의 과거사 관련 기자회견을 보면서 느낀 비애가 이 글을 쓰게 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말투는 거의 기계적이었다. 불과 몇 달 만에 역사관이라는 것이 바뀔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녀에게 그 기자회견은 고통스러운 자기 부정의 연극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좌파인사들의 전향선언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군부독재 시절의 저 악명 높은 사상전향제도는 김대중 정권에 이르러 준법서약제도로 대체됐는데, 군부독재의 퍼스트레이디가 이제와 자기 신념을 일부 부정하며 전향을 선언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기자회견을 보고 난 뒤 그리스의 비극작가 소포클레스의 소위 ‘오이디푸스 3부작’을 새삼스레 떠올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오이디푸스 3부작’은 <오이디푸스 왕>,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로 이어지는 가족사 비극이다. 오이디푸스는 타고난 지혜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되지만, 자기도 모르게 저지른 부친살해와 근친상간 때문에 왕국이 도탄에 빠졌음을 깨닫고 자신의 눈을 찌른 뒤 왕국을 떠난다. 추방된 맹인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최후를 맞을 때까지 그의 곁을 지킨 이는 그의 맏딸 안티고네였다.


과거사 사과기자회견하는 박근혜후보 (출처 : 경향DB)


 3부작에서 2부까지의 내용이 이와 같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의 이야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를 떠올리기 전에 내가 두 부녀의 삶을 세부까지 일일이 대조해본 것은 물론 아니다. 두 아버지 모두 한 나라의 왕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다가 추락했지만, 테바이의 왕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처벌했고 유신체제의 대통령은 부하의 손에 암살됐다. 이것은 큰 차이다. 그러나 세상이 아버지를 어떻게 평가하건 사랑과 존경을 포기하지 않은 두 딸은 닮았다. 박근혜 후보에게서 눈 먼 아비를 부축한 채 벌판을 떠도는 안티고네를 연상하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3부작의 마지막 작품 <안티고네>까지 읽은 이라면 이와 같은 비교가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를 지적하게 될 것이다. 아비의 저주 탓인지 그의 두 아들은 권력을 놓고 전쟁을 벌이다 모두 죽는다. 두 아들 중 하나는 적국에 투항해 조국을 침공한 터다. 배반자에게까지 장례의 예를 갖춰줘야 할 것인가. 테바이의 왕 크레온은 이를 금지하지만 안티고네는 국가의 법보다 친족 간의 인륜을 따르겠다며 두 오빠를 모두 매장하려 한다. 그녀는 끝내 처단되지만, 이 와중에 크레온은 부인과 아들을 잃었으니 그녀의 패배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이 있지만 안티고네가 비극적 영웅이라는 점은 대개 부정되지 않는다. 물론 배반자를 용인할 수 없다는 크레온의 단 호한 태도는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불가피한 선택이라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안티고네를 죽게 한 그의 처사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가 독재자에 가까운 통치자였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바꾸자면 그는 국회의 동의를 얻지도 않은 채 칙령을 공표했고, 공정한 재판을 거치지도 않고 안티고네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안티고네가 영웅인 것은 그와 같은 독재에 저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크레온의 두 가지 조처에서 유신체제 하의 악명 높은 긴급조치와 사법살인으로서의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단호히 선을 긋지 않고 이를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안티고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다. 안티고네를 민주투사라 볼 수 있다면 그때의 안티고네는 (말장난이 용서된다면) ‘안티(anti)근혜’라고 해야 옳다. 유신체제가 조국의 배신자라 낙인찍은 당시의 희생자들을 온전히 매장하는 데 헌신한다면 그때 박근혜 후보는 비로소 안티고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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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후보자 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을 확정했다. 이로써 곽 교육감은 교육감직을 잃고 잔여 형기 8개월을 복역하게 됐다. 서울시교육청은 부교육감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며 교육감 재선거는 12월19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다. 첫 직선제 교육감 선거에서 선출된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불명예 퇴진한 데 이어 후임자인 곽 교육감까지 중도 하차하게 된 것은 경위야 어찌됐든 불행한 일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후보 사퇴 후 그 대가를 목적으로 금전을 제공하거나 받는 행위를 처벌하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곽 피고인과 (상대 후보인) 박명기 피고인이 후보 사퇴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거나 받을 목적으로 2억원을 주고받은 점이 인정된다”고 덧붙였다. 공직선거법상 사후매수죄는 헌법에 위배되며, 2억원을 주고받은 것도 후보 사퇴의 대가가 아니라는 곽 교육감 측 반박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곽노현 마지막 (출처: 경향DB)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은 존중돼야 한다. 우리는 다만 곽 교육감의 낙마가 그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해온 교육혁신 정책의 후퇴로 이어져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무한경쟁의 압박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의 행렬을 보라. ‘학생도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려 한 곽 교육감의 정책방향은 서울은 물론 한국 교육 전체가 지향해야 할 바이다. 학생인권조례와 혁신학교 등의 정책이 중단 없이 지속돼야 하는 까닭이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갖가지 방식을 동원해 곽 교육감을 비롯한 진보교육감들의 혁신정책 추진을 방해해왔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해 곽 교육감이 구속 수감되자 부교육감을 측근인 이대영 교과부 대변인으로 교체했다. 이 부교육감은 3개월가량 권한대행을 맡는 동안 주민 발의로 시의회를 통과한 서울학생인권조례의 재의를 요구하는 등 사사건건 혁신정책의 발목을 잡았다. 이번에 권한대행을 ‘재수’하게 된 이 부교육감은 이 장관과 손발을 맞춰 교육개혁의 성과를 뒤로 돌리고 퇴영적 정책을 부활시킬 경우 시민들이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와 여권도 곽 교육감 사태를 기화로 교육감 직선제를 흔들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된다.


헌법재판소에도 당부한다. 곽 교육감은 사후매수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해달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상태이다. 헌재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 곽 교육감은 법원의 당선무효 판결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만약 재선거로 신임 교육감이 선출된 뒤 위헌이나 헌법불합치가 선고될 경우 교육현장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헌재는 곽 교육감이 낸 헌법소원 사건의 심리를 조속히 진행해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결론을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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