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칼럼'에 해당되는 글 8559건

  1. 2012.08.22 [시론]2009년과 2012년, 달라지지 않은 것
  2. 2012.08.22 [사설]전자발찌도 막지 못한 성범죄 전과자의 주부 살해
  3. 2012.08.22 [사설]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 참배한 박근혜 후보
  4. 2012.08.22 [사설]교과서 통제 또다시 획책하는 교과부
  5. 2012.08.21 [한창훈의 거문도 편지]강철 여인
  6. 2012.08.21 [이일영 칼럼]역사전쟁의 무기 ‘전시회’
  7. 2012.08.20 [더글러스 러미스 칼럼]테러와의 전쟁과 ‘살인’
  8. 2012.08.20 [경향마당]청소년 국제교류, 관광으로 변질 안되게
  9. 2012.08.20 [경향마당]대통령 친·인척 비리 막을 제도 마련돼야
  10. 2012.08.20 [경향마당]건보료 부과체계, 소득 중심 단일화 필요
  11. 2012.08.20 [별별시선]만화책을 펼치자
  12. 2012.08.20 [한기호의 다독다독]‘성적 복종’이라는 욕망 (1)
  13. 2012.08.20 [사설]98%가 계층 상승을 포기한 듯한 설문조사 결과
  14. 2012.08.20 [사설]이 와중에 용역폭력 행사하는 현대차 제정신인가
  15. 2012.08.20 [시론]학교폭력 기록 ‘삭제 제도’ 필요 (1)
  16. 2012.08.20 [경향시평]‘대별왕’이 이승을 다스렸다면
  17. 2012.08.19 [경향마당]자영업의 위기, 대기업들 책임 커
  18. 2012.08.19 [지인논세(知人論世)]중용(重用)의 의미
  19. 2012.08.17 [사설]투명한 공직사회 위해 ‘김영란 법’ 필요하다
  20. 2012.08.17 [사유와 성찰]책의 ‘독자’는 자기 삶의 ‘저자’

김일란 | 다큐 ‘두개의 문’ 감독


2009년 1월19일, 사회와의 모든 소통이 불가능했고, 국가와 제도로부터 외면당했던 용산4구역 철거민들은 남일당 건물에 망루를 지었고, 농성 25시간 만에 화재가 나 6명의 아까운 목숨이 희생되었다. 비록 재판과정에서 간과되었지만, 그 화재의 원인으로 유력하게 제기된 것은 성급한 과잉진압으로 발생했던 유증기였다. 그러나 지금 그 유증기는 망루 안이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억압하고 있는 한국 사회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지난 7월10일, 용산참사 유가족 및 구속자 가족들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현병철 인권위원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현병철은 2009년 12월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 과반수의 인권위원들이 의견제출에 찬성했음에도 회의를 일방적으로 폐회시키고, “독재라 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퇴장했었다. 이렇듯 용산참사 현장의 반인권적인 상황에 대한 의견표명을 회피하고, 연임 청문회 준비를 위해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려고 했던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과 구속자 가족들은 현병철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그의 사무실로 갔다. 그러나 사무실로 통하는 모든 출입문은 막혀 있었다. 


유리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외치는 유가족들을 향해, 유리문 안쪽의 공익근무요원은 ‘어디 열 테면 열어보라’는 식으로 한쪽 입술 끝을 살짝 올리면서 비웃었다. 유가족 한 분이 소리쳤다. “지금 웃음이 나와? 여기가 어디야? 여긴 인권위야? 인권위에서 이렇게 사람을 차별할 수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익근무요원은 비웃는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3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도중 야당의원들이 현병철 인권위원장의 업무보고를 거부하며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출처: 경향DB)

2012년 여름, 국가인권위는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무시와 모욕의 현장이었다. 이 소통불가능한 상황에서, 공익근무요원은 눈앞에서 우리를 비웃는 현병철이었고, 국민을 무시하는 이명박이었고, 국민을 하찮은 존재로 만드는 모든 국가권력으로 보일 정도였다. 정말 모욕적인 순간이었다. 아비샤이 마갈릿의 말처럼,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넘어서 보다 인간다운 사회, 품위있는 사회는 권력에 의해 형성된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고, 그 권한 아래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그런 면에서 국가인권위는 최소한의 ‘인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다. 


국가인권위의 가장 기본적인 업무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인권 감수성의 확장’으로, 어떤 행위가 차별적 행위인지를 인지하고 해석하고 해결하면서, 그 과정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자존감이 훼손될 수 있는 조건의 해석과 그것에 대한 시정에 있다. 그 때문에 국가인권위는 대통령 산하 일개 행정부처가 아니며, 업무 수행에 있어서 독립적이어서, 하나의 국가기관으로서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지난 8월13일, 이명박 대통령은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연임을 재가했다. 국민의 83%가 반대하고, 국가인권위 내부에서는 90% 이상이 반대했으며, 심지어는 새누리당에서조차 연임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지만 결국 연임됐다. 연임에 대해 청와대가 밝힌 이유는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이었다고 한다. 국민을 무시해도 이 정도일 순 없다.


우리에겐 국가와 제도로부터 모욕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 권리가 지켜지지 않는 한국 사회는 남일당의 망루를 가득 메웠던 그 유증기로 가득한 사회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용산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마지막 2분, 망루 안 철거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어야 하는 그 2분처럼 절박하다. 남일당의 유증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하는 것이 바로 국가인권위의 역할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국가인권위를 바로잡고, 현병철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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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를 차고 있던 성폭력 전과자가 자신의 주거지에서 불과 1㎞ 떨어진 곳에서 주부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죄로 7년6월을 복역한 뒤 지난해 11월 만기출소한 서모씨가 서울 중곡동 주부 ㄱ씨의 집에서 ㄱ씨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흉기로 마구 찔러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서씨는 복역 중에 전자발찌를 착용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받았는데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범죄를 저질러 정보공개 대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성범죄 재발 방지를 위해 고심 끝에 마련된 대책 가운데 하나가 전자발찌였는데 흉악한 범죄를 예방하고 인명을 보호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던 셈이다. 


전자발찌와 재택추적장치 (출처: 경향DB)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자발찌를 비롯한 성범죄 재발을 막기 위한 갖가지 제도와 대책의 허점이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용의자 서씨의 담당 보호관찰관은 통상 한 달에 한 번 실시하는 상담을 5차례씩 했는데도 그의 범행을 막지 못했다. 보호관찰관 인력을 대폭 늘리거나 경찰 등의 도움을 받아 감시를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케 하는 대목이다. 또 서씨는 자신의 주거지에서 1㎞ 떨어진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지만 전자발찌의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전자발찌 부착자에게는 야간시간 외출 제한, 주거 제한 등의 특별준수사항이 부과돼야 하는데도 서씨에게는 아무런 조처도 이뤄지지 않았다. 법원의 특별준수사항 부과에는 특별한 법적 기준이 없어 사안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허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서씨는 신상공개 대상이 아니었지만 설령 공개 대상이었다 하더라도 피해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범죄자가 이사를 오게 되면 행정구역상 같은 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만 고지된다고 한다. 그런데 서씨의 주거지는 면목동이지만 범행장소는 1㎞ 거리라고 하더라도 행정구역이 다른 중곡동이었다. ‘행정편의주의’가 범행을 도운 셈이다. 신상정보 고지 대상을 행정구역 대신 ‘성범죄자 주거지에서 반경 몇 ㎞’ 식으로 바꿔야 한다. 


성범죄 사건 때마다 강조한 바 있지만 성폭력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방안은 우리 사회의 그릇된 성 인식과 성 문화를 바로잡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신체를 성적 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결국 그 사람의 전인격을 말살하는 짓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자연스러운 교육을 통해 체득해야 한다. 법과 형벌은 어쩌면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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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첫 공식 행보로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다. 앞서 서울 국립현충원 방문 때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도 찾았다.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다는 실용 행보의 일환이라는 박 후보 측 설명대로 그가 대선 후보로 선출된 직후 일성으로 밝힌 국민대통합을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자 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평소 보여주기 위한 정치적 이벤트에 대한 박 후보의 반감을 감안한다면 가히 파격이라 할 만하다.


박 후보의 노 전 대통령 묘소 참배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를 새겨볼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국민대통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점에서 봉하마을 방문의 의미는 폄훼될 수 없다고 본다. 박 후보는 3년 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봉하마을을 찾았다가 문상을 저지당한 바 있다. 이번 방문이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국민 화합을 도모하는 작은 디딤돌이라도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에 못지않게 주목되는 대목은 그 이면에서 읽히는 ‘이대로는 안된다’는 박 후보의 다짐이다. 박 후보의 봉하행은 대선 캠프의 제안을 박 후보가 전격 수용한 데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내내 ‘소통부재’ ‘사당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박 후보로서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인식의 일단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후보 고 노무현대통령 묘역 참배 (출처: 경향DB)


문제는 국민대통합 메시지가 여전히 구호에 머무는 인상이 짙다는 점이다. “과거만 보지 말고 미래를 이야기 하자”는 식이 아니라 국가 최고지도자 후보에게 요구되는 과거와 역사에 대한 박 후보의 인식이 수반돼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5·16 논전을 비롯해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이나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등 미래로 가기 위해 선결해야 할 과제들에 대한 박 후보의 보다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박 후보가 봉하마을 방문을 유족들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거듭 강조할 필요도 없이 국민대통합은 연말 대선이라는 파고를 타고 넘으면서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구호나 다짐만으로 해결될 과제 또한 아니다. 이날 박 후보의 봉하마을 방문에서도 박 후보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잠시 충돌하는 소란이 일었다. 국민대통합의 길이 멀고 험하다는 징표이기도 하지만 이번 방문이 그 첫걸음이 된다면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대통합이라는 화두를 선점한 박 후보가 “진정성 없는 정치쇼”라는 야권 공세를 누그러뜨릴 만한 후속조치를 내놓아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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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검정 교과서를 교과부 장관의 강력한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고 한다. 장관이 교과서 수정을 명령할 수 있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검정합격을 취소하며 3년간 검정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검인정 교과서 체제를 무력화해서 정권의 입맛대로 교과서를 편찬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국가가 교과서를 전일적으로 통제하는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국정교과서 체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부는 검정 교과서 관련 사항이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각종 행정처분의 근거를 마련하기 어렵다고 개정 이유를 들고 있다지만 설득력이 없다. 핵심은 기존의 대통령령에 명시돼 있는 교과부 장관의 교과서 수정 명령 권한을 아예 상위 규범인 법으로 못박고 교과서 제작업자들에게 사업 취소라는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다.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교과서 제작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명령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번 개정안은 18대 국회 시절인 2010년 9월 국회에 제출됐다가 야당이 장관의 자의적 수정명령권을 비판하며 반대하는 바람에 폐기된 바 있다. 이를 현 정권 임기말과 19대 국회의 개원 초기, 대통령 선거 정국 등이 겹치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틈타 은근슬쩍 다시 불러낸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교과서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교과부의 집념과 끈기가 놀랍기만 하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설명 (출처: 경향DB)


이명박 정권의 교과서 개정을 통한 역사 왜곡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 친정부 학자들의 요구에 따라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거나,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을 미화하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정권의 이러한 행태는 법원조차도 제동을 건 바 있다. 2009년 9월 서울중앙지법이 “교과부의 수정 명령이 있더라도 저자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교과서 내용을 바꿔서는 안된다”고 밝힌 것이다. 


교과부는 교과서를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를 즉각 철회해야 한다. 과거의 국정교과서 체제를 검인정체제로 전환한 것은 권력의 자의적 개입을 막고 교육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하며, 변화하는 사회의 다양성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마당에 교과서를 장관 마음대로 고치겠다는 것은 군사독재정권 시절로 되돌아가겠다는 뻔뻔스러운 시대착오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교과서를 그대로 두라. 이것이 임기말 정권의 교과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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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 소설가

김애숙씨는 한마디로 강철여인이다. 오랫동안 공공근로를 다녔기에 길 가다보면 커다란 모자를 쓰고 팔 토시 낀 채 일하고 있는 그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잡초 제거, 파도에 떠밀려온 쓰레기를 정리하고 미관사업의 일종으로 개양귀비 심는 일을 했다. 하루도 빠진 적이 없다.


일이 끝나면 호미 들고 밭으로 부리나케 달려가서 상추와 시금치를 한 다발 안고 내려오기도 한다. 물이 나면 갯것을 수확하러 간다. 특히 커다란 토종 홍합을 따는 데는 독보적인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홍합은 마을 뒤 깎아지른 절벽 아래와 조간대의 암초에 많이 있다. 밀물이면 사라지고 썰물이면 나타나는 곳을 조간대라고 한다.


홍합을 따려면 힘과 뱃심이 좋아야 하고 재빠른 손놀림과 상황판단도 필수이다. 파도 밀려오는 절벽이나 갯바위 아래 약간 튀어나온 곳에 발을 디디고 서서 (몸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파도가 심한 날에는 할 수가 없다) 빗창이나 호미로 재빠르게 따야 한다. 그리고 배를 대면 불룩한 마대자루를 던져올린 다음 쏜살같이 올라타야 한다. 그래야 배도, 사람도 다치지 않는다.



(출처: 경향DB)

 


그녀는 그렇게 모든 현장에서 빛이 난다. 무엇을 하더라도, 누구보다도 수확물이 많다. 여자들은 그녀의 능력을 부러워하고 남자들은 그녀의 남편을 부러워한다. 말수도 적다. 해야 할 일이 앞에 있으면 거리낌 없이 다가가서 깊은 몰입을 한다. 일이 끝나면 그 다음 일을 향해 움직일 뿐이다. 얼마 전 공공근로 기간이 끝났다. 그녀는 그 다음날부터 공사 현장에 나간다. 벽돌을 지고 사모래도 친다. 비가 와서 그마저도 쉬어야 할 때는 식당 서빙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제는 일 많이 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아닌 세상이니 좀 쉬며 놀며 하라고 해도 고개를 젓는다.


며칠 전에 이 강철여인을 모시고 갯것을 채취하러 가게 되었다. 방파제를 돌아 나가자 거대한 파도가 연달아 밀려왔다. 자그마한 배는 미친 듯 춤을 추었다. 우리의 애숙씨는 순간 몸을 날려 갑판에 납작 엎드렸다. 엎드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싼 채 떨기 시작했다. 세상 그 무엇도 안 무섭고 심지어는 이런 파도에 헤엄치는 것도 두려울 게 없는데 딱 하나, 파도 위에서 배가 요동치는 것만큼은 너무 겁이 난단다. 느닷없이 갑판을 향해 몸을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일행은 웃었는데 나는 어느 누구도 무서워하는 것 하나씩은 있다는 사실 때문에 따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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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올여름 여러 ‘전시회’가 있었다. 여수엑스포나 런던올림픽도 전시회의 일종이다. 일본 우익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전시 행사이다. 전시회는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보여준다. 역사는 쓰여서 읽히는 것만이 아니고 전시되고 이미지화되기도 한다. 전시회는 역사와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다. 박람회나 박물관의 전시는 교육의 역할을 하지만 그 자체에 정치성이 들어 있다.


지난주 경복궁 옆 국립현대미술관 신축 현장에서 불이 났다. 당장 사람이 피해를 보았고 나라의 체면도 손상되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전시하는 장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 경복궁 일대나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나라의 얼굴에 해당할 것이다. 경복궁 가까운 곳이 화마의 먹구름에 싸인 모습을 보니, “나라가 만년 되고 큰 복 받기를”(君子萬年, 介爾景福) 바라는 기운이 흐트러지는 것 같아 착잡했다.


경복궁 일대는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경복궁에 국립고궁박물관이 위치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경복궁 앞에 일본총독부 청사가 들어서고 해방 후 그 건물이 정부청사가 되었다가 다시 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이제는 과거 총독부·중앙청·박물관으로 쓰였던 건물은 철거되고 경복궁에는 고궁박물관이 남았다. 미술관은 경복궁에서 덕수궁으로 갔다가 과천에 신축 이전했다가 다시 서울관을 짓고 있는 중이다. 부수고 짓고 이사 다니느라 정신이 없고, 정작 “우리는 누구인가”를 진지하게 묻지 못하고 있다.


경복궁 옆 공사현장에서 불 (출처: 경향DB)



가까운 이웃인 중국과 대만은 문화재 전시를 통해 치열한 정체성 투쟁을 벌인 바 있다. 청나라가 멸망하자 왕실의 모든 재산은 중화민국 정부로 이관되었고 왕실 문화재를 기초로 고궁박물원이 설립되었다. 1925년 베이징의 고궁에서 소장품이 민간에 최초로 공개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면서 문화재를 남쪽으로 이동시켰다. 일본에 승전한 후 문화재는 베이징으로 돌아왔으나,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리게 되자 총 24만점의 중요 문화재를 대만으로 옮겼다. 당시 국민당은 병력 이동보다 문화재 수송을 우선했다고 한다. 국민당 정부는 ‘국보’를 통해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대만은 문화대혁명을 계기로 박물관 전시를 보다 적극 활용하게 되었다. 대만에 옮겨진 문화재는 타이중의 저장고에 보관되다가 마침 1965년 타이베이에 지어진 고궁박물원으로 옮겨 갔다. 1966년 대륙에서 문화대혁명이 발발하자 타이베이의 고궁박물원은 문화재를 ‘보관’하는 곳에서 ‘전시’를 하는 장소로 전환하게 된다. 대만은 중국 대륙의 문화대혁명에 대결해 대만인이 중화문명의 일원이자 수호자임을 일깨우고자 했다. 이에 따라 고궁박물원은 대만인을 ‘중국 국민’으로 만드는 기지가 되었다.


그러나 정세 변화는 대만에 국가 정체성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1987년 계엄 해제 이후 대만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요구가 본격 제시되었다. 이후 대만 정치권에서는 국민당과 민진당이 경쟁하고 있고, 전시회에서도 자신들이 중화문명인가 해양대만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대만은 토착 유물이 아니라 인접 국가의 최고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것을 자랑할 일인가 아니면 대만의 역사와 전통을 새로이 보여주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대륙 중국이 조국인가 아니면 타국인가 하는 물음과 연결되어 있다.


중국 대륙도 전시를 국가 만들기에 적극 활용했다. 중요 문화재는 대만으로 옮겨갔으나 베이징의 고궁에는 700여개의 건축물과 100만점의 문화재가 남았다. 1959년 중화인민공화국 10주년을 맞이해 톈안먼 광장 동쪽에 중국역사박물관을 건립했으며 그 이듬해 같은 건물에 중국혁명박물관을 개관했다. 베이징이라는 도시 자체가 국민을 만들고 국가를 견고하게 하는 전시의 공간이 되었다.


여름밤을 흥분시키는 올림픽도 대대적인 국가들의 전시회가 되고 있다. 물론 올림픽도 초기에는 교육혁신과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올림픽운동의 창시자 쿠베르탱은 독일을 공공연한 적으로 간주하는 프랑스의 교육에 반발했다. 그러나 정작 올림픽운동은 국가주의에 편승하면서 성공하기 시작했다.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의 국력을 결집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과시하는 매개체로 활용됐다. 런던올림픽에서도 선수들은 청년의 일원이라기보다는 국가의 대표로 경쟁하고 각국 국민들은 이에 열광했다.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방문하고 일왕 사죄를 요구했다. 청와대는 독도라는 보물을 ‘보관’만 할 게 아니라 ‘전시’ 이벤트도 한번 벌여 보자는 의도였던 것 같다. 일본 정부는 갖가지 보복조치를 강구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에게는 세력 결집의 호재가 되겠지만, 한국과 동아시아 모두에 경복(景福)이 되지 않을 일들이다. 치열했던 여름 더위가 가시고 나면 국가주의적 역사 전쟁의 소모적 흥분도 가라앉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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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 | 정치학자·오키나와 거주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이 어째서 전쟁 방식과 법 집행 방식의 어색한 조합인지 밝혔다. 그 논지를 거듭 말하자면, 법 집행의 경우 수사관들은 증거를 찾아, 용의자를 가려내고 그들의 위치를 알아내도록 훈련받는다. 증거가 충분할 경우 그들을 체포하게 된다. 미국 영화에서 수사관들은 종종 용의자를 사살하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저항하지 않는 용의자를 사살하는 것은 살인이다. 용의자는 법정에서 유죄로 선고받은 뒤에야 처벌받는다.


반면 전쟁의 경우, 다른 규칙들이 적용된다. 적군은 범죄자가 아니다. 군인들은 전쟁법을 위반하지 않는 이상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군복을 입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대편 군인에게 합법적으로 죽임을 당할 수 있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적(敵)은 ‘테러리스트’ 또는 ‘불법적 전투원’으로 정의된다. 그 말은 그들이 적군도 되고 범죄자도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어느 쪽의 권리도 갖지 못한다. 그들은 군인과 같이 현장에서 사살될 수 있지만, 생포될 경우 군인과 달리 전쟁포로가 아니라 범죄인처럼 대우받는다. 


하지만 범죄 용의자와 달리 그들은 재판이나 인신보호영장 없이도 구금될 수 있다. 따라서 테러와의 전쟁은 새로운 범주의 인간을 만들어냈다. 어떠한 법적 권리도 갖지 못한 사람 말이다.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가 이들을 수용하는 미국 감옥으로 선정된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가진 법적 지위 때문이라고 한다. 미군이 100년도 넘게 보유한 그 기지에서 쿠바법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국 형법이 적용되지도 않는다.(그곳은 법적으로 미국이 아니다.) 미군 법도 적용되지 않는다.(수감자들은 미군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제법도 적용되지 않는다.(수감자들은 전쟁포로가 아니고, 미국 정부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법의 블랙홀에 있는 셈이다. 어떠한 법도 그들에게 가닿을 수 없다.


손이 묶이고 입에 재갈이 물려진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수감된 테러 용의자들 (경향신문DB)


이 수감자들이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 아래와 같은 수감자와 간수 사이의 대화를 예로 들어보자.


수감자: 왜 내가 재판도 없이 이 감옥에 갇혀 있는 거죠?


간수: 왜냐하면 당신은 재판받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죠.


수감자: 왜 내가 재판의 권리가 없죠?


간수: 불법적 전투원이기 때문이죠.


수감자: 내가 불법적 전투원이라는 결정이 어떤 공판에서 어떤 증거에 기반해서 이뤄졌죠?


간수: 당신은 그런 공판에 대한 권리가 없어요. 증거를 확인할 권리도 없고.


수감자: 왜 나는 그런 권리가 없죠?


간수: 왜냐하면 당신은 불법적 전투원이기 때문이에요.


일부 용기있는 미국 인권 변호사들이 이 수감자들의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이 포로들 중 일부를 풀어준 것도 사실이다. 미국이 풀어준 이들은 대개 실수로 잡은 사람들이었다. 인권 사각지대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그리고 사살도 계속되고 있다. 신문들은 미국 대통령과 그의 보좌관들이 그 사살 리스트에 누구를 포함시킬지 논의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모인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최고위 관리들은 각각의 용의자에 대해 수집된 정보를 평가한다. 그 정보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스파이와 다른 정보기관에서 나온다. 용의자들은 그런 회의가 열리는지도 알지 못한다. 대통령이 각각의 건에 대해 직접 승인하거나 불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사형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 사람은 로봇 비행기의 로켓에 의해 사살된다. 그 사살 자체는 무작위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 자체를 ‘테러’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이것의 명칭은 ‘암살’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번역 | 손제민 기자>



 The War on Terror (continued)


In my last column I described how the US-led “war on terror” is an awkward mixture of the methods of warfare and the methods of law enforcement.


To repeat the argument: in the case of law enforcement, investigators are trained to search for evidence, to identify suspects, to locate them and, if the evidence is sufficient, to arrest them. In American movies, investigators regularly kill suspects, but in the real world, to kill an unresisting suspect is murder. A suspect may be punished only after being convicted in a court of law.


In the case of war, on the other hand, a different set of rules apply. Enemy soldiers are not criminals, and what soldiers may have done or not done (so long as they have not violated the laws of war) is not relevant. Anyone wearing a soldier‘s uniform may be legally killed by a soldier on the other side.


In the war on terror, the enemy are defined as “terrorists” or as “illegal combatants”. That is, they are seen as both enemy soldiers and as criminals. But the result is that they have the rights of neither. Like soldiers they may be killed on sight, but unlike soldiers, if they are captured they are treated as criminals, not as prisoners of war. But unlike criminal suspects they can be kept in prison without trial, and without the right of habeas corpus (the right to be released if there is insufficient evidence to bring charges). Thus the war on terror has produced a new category of human being - people with no legal rights whatsoever. It is said that one of the reasons the US military base at Guantanamo Bay in Cuba was chosen for the main US prison for these people was its legal status. In that base, which the US has held for more than a century, the laws of Cuba do not apply; US criminal law does not apply (it’s not legally the US); US military law does not apply (the prisoners are not members of the US military); and international law does not apply (the prisoners are not POWs, or so the US government has claimed). The prisoners are in a legal Black Hole. It is also said that some prisoners are being held on US navy ships, for the same reason: no law can reach them there.


To get a grasp of the situation these prisoners are in, imagine this conversation between a prisoner and his jailer.


Prisoner: Why am I being kept in this prison without a trial?

Jailer: Because you have no right to a trial.

P: Why do I have no right to a trial?

J: Because you are an illegal combatant.

P: At what hearing, on the basis of what evidence, was it decided that I am an illegal combatant?

J: You have no right to such a hearing, nor do you have a right to see the evidence.

P: Why do I have no such right?

J: Because you are an illegal combatant.


It is true that some brave American human rights lawyers are fighting to have these people‘s rights restored, with some success. It is also true that the US has released some of the captives - mainly those who had been captured by mistake. But there are still many who remain in this black hole of human rightlessness.


And the killing goes on. The newspapers have recently told us that the US President and his advisors meet once a week to discuss who to include on the kill list. Information is collected about each suspect, and evaluated by this group of top government officials. Unlike at a trial, this evidence does not come from witnesses who are sworn to tell the truth, and there is no one there to speak for the suspect. Information comes from the CIA’s spies and those of other intelligence agencies. The suspect does not know that the meeting is taking place. The President, we hear, personally approves or disapproves each case. If the sentence is death, the person is killed by rockets from robot airplane.


As the killing is not random, you cannot call it terror. The proper term for this is assassin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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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일 | 흥사단청소년연구원 운영위원


 

최근 들어 국제교류 행사가 청소년단체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부상하면서 방학을 맞아 외국으로 출국하는 청소년과 청소년단체가 증가하고 있다. 


청소년 국제교류의 활성화는 우리 청소년들의 글로벌 마인드를 넓히고 한류로 급부상한 한국 문화를 외국 청소년들에게 효과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방문국의 유명한 관광지 위주의 견학 일정과 수백만원에 달하는 참가비로 편성된 외국 방문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청소년계 스스로 한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설사 관광지가 아닌 역사유적지 탐방 등의 프로그램이라 해도 방문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역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참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준비가 스스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 이는 말만 국제교류이지 사실상 단순한 해외 관광 프로그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에 나가보는 것 자체가 이미 국제적 시각을 넓히는 계기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내실 있는 일정이라면 참가비가 수백만원이라도 찾는 사람은 많을 수밖에 없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방문국에 대한 이해와 우리 문화와 방문국의 문화에 대한 차이, 현지 청소년들과의 교류와 문화체험, 참가자들 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세밀한 기획의 결과물이 투영되지 않은 해외 방문 프로그램은, 아이들에게 아무런 경험도 추억도 남기지 못한 채 거대한 사진 촬영을 위한 돈쓰기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경향신문DB)


그런 측면에서 최근 하이서울유스호스텔의 프로그램은 인상적이었다. 


캐나다와 호주에서 온 청소년 13명이 참여한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들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음식을 충분히 맛보고 만끽했으며 우리 청소년들과의 교류행사도 했다. 그들은 자국으로 돌아가 13명이 아닌 130명 이상의 코리아 홍보맨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의 유스호스텔도 숙박시설의 역할을 넘어 외국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맛과 멋을 전달하고 있다. 청소년의 국제 교류가 반드시 고가의 해외방문 프로그램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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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 | 중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로 국민 앞에 사과하는 모습은 정권 말기 익숙한 풍경이 되어버렸다. 특히 가장 도덕적인 정부를 표방했었고 공정사회를 줄기차게 외쳐온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와 같았다.


(경향신문DB)


 한국 경제의 초고속 압축성장은 정치·행정 엘리트들이 국가발전을 주도했고, 그 역할과 공은 상당하다. 이 상황에서 부패는 경제발전의 윤활유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부정부패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가 됐고, 이를 치유하고 개혁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한국전에 파병한 필리핀의 경우를 보자. 필리핀은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 생활을 했지만 높은 교육열과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으로 국난을 극복하여 한때 아시아 국가의 경제선진국이 되었고 건축기술도 대단했다고 한다.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이나 장충체육관을 필리핀이 건설했다면 놀랄 것이다. 그런 나라가 지도자를 잘못 만나 아시아 빈국으로 전락하게 됐고, 고학력의 필리핀인들은 선진국으로 가서 노동자로, 가정부로 일하며 달러를 벌어 고국에 송금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영국 유학서 돌아온 리관유는 조국 싱가포르의 부정부패 척결에 일생을 바쳤다. 매춘 ,마약, 조직범죄, 부정부패에 온통 썩어 문드러지는 싱가포르를 반부패법과 제도화된 시스템으로 아시아 국가 최고의 청렴국으로 만들어 놓았다. 반부패 성공정책 때문에 그의 장기집권과 독재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 시민들도 서방언론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부정과 부패로 대한민국이 좌초한다면 가장 불행한 것은 누굴까? 우리 국민들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권력형 부정부패나 친·인척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와 공직자 재산심사를 실질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치를 국회나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담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논의되고 있는 공직자비리수사처는 검찰과의 권한 다툼이나 법에 규정된 공소권과 상치되어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검찰은 반부패 수사권을 확실히 하도록 검찰 중립성을 더욱 강화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두 번째로는 반부패 유발문화가 확산되도록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청렴은 교육과 문화가 변화돼야 이루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치인과 공직자의 윤리적 의사결정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직업윤리와 행동강령을 강화해야 한다. 공직자의 높은 수준의 윤리적 행동과 품위를 기대하는 것은 국민의 권리이자 당연한 요구이다.


  ※ <이렇게>는 열린 지면입니다. 경향신문에 대한 비판, 제언 등 소재와 글의 형식에 관계없이 독자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회 흐름을 짚을 수 있는 독자 여러분의 살아 있는 글로 충실히 지면을 꾸미겠습니다. 적극적인 참여 바랍니다. 글은 op@kyunghyang.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02)370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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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학 | 국민건강보험공단 마포지사 과장


 

건강보험제도 시행 35주년이 지났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인 12년 만에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달성하였으며, 의료 접근성이 크게 높아져 국민 누구나 보편적으로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선진국에 살고 있는 교포들도 치료를 받기 위해 귀국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고,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배우러 오는가 하면 세계로 수출까지 되고 있을 정도로 모범적인 제도로 칭송받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우수한 건강보험제도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막대한 급여비 지출 증가로 최근 몇 년간 재정이 불안정하여 적자와 흑자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수입부문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보험료 인상, 국고지원 확대 등) 지출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제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경향신문DB)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구 고령화로 노인진료비가 급증하고 있으며(2011년 33.3%), 질병 패턴도 급성기 질환에서 만성질환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치료 중심의 급여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높은 약제비(35.3%), 치료 재료의 비중, 취약한 1차 의료 및 의료전달체계, 대형병원 쏠림현상, 행위별 수가제 등은 무분별한 의료이용을 통제할 아무런 기전이 없다.


가입자는 보험급여 여부, 가격 결정 등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되고 있으며 보험자는 가입자의 대리인으로서 선량한 재정관리 책임자 역할을 수행해야 함에도 수입과 연동된 합리적인 지출관리 기전이 매우 취약하다.


급증하는 진료비를 조달하고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정한 수준의 보험료 부담을 통해 재정 건전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험료 부과기준이 상이하여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행 부과체계는 직장과 지역 간에 부과기준이 상이하고 지역가입자는 다시 연간소득 500만원 이하자와 초과자로 다르게 부과함으로써 직장 퇴사 시 소득은 감소하나(집, 자동차 등을 보유한 경우) 지역보험료가 더 높아지는 모순이 발생하여 보험료와 관련된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부과체계를 소득중심으로 단일화해야 안정적 재원마련이 가능하며 더 나아가 형평성 문제 해소와 제도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형평성은 부담능력에 비례한 부담이다. 형평성은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제도 발전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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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1990년대 중반, 만화가 좋아 만화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글을 쓰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일간지 신춘문예 만화평론 부문에 당선됐다. 순전히 ‘운빨’이라고 생각한다. (신춘문예 만화평론은 다섯 해인가 지속됐다가 사라졌다.) 햇병아리, 얼치기 평론가이지만, 다른 글쟁이들의 만화에 대한 비유는 영 거슬렸다. 특히 영화평에 자주 등장한 문장이었는데, 뭔가 이야기 전개가 느슨하거나 황당한 연출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만화 같은’이라는 수식이 등장했다. 난 이 수식을 참 싫어했다. 만화를 무시한다고 분개하기도 했고, 그런 표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자본과 비평이 만나 활짝 피어나던 영화산업, 영화문화가 부러웠고 배아팠다.만화 같은 영화, 만화 같은 드라마, 만화 같은 뮤직 비디오, 만화 같은 인생…. 리얼리티가 떨어지거나, 스테레오 타입이거나 아무튼 뭔가 좀 부족한 모든 것들을 전부 만화 같았다고들 했다. 그게 정말 싫었고, 만화 안에 내재한 가치를 찾으려 동분서주했다.


 만화 같은 것들을 경계하며 세상은 만화가 꿈꾸던 21세기가 됐다. 요즘은 만화 같다는 표현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아마 그만큼 만화의 시민권이 회복되었기 때문이리라. 지금 생각해 보면, 지난 시절 만화 같다고 한꺼번에 정의된 사람, 이야기, 사건, 표현 등은 뭔가 유사한 맥락에 존재했다. 그건 조금은 부족하지만 악의적이지 않은, 어수룩한 낭만과 순수한 열정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만화 같은 것들을 광속으로 밀어냈다. 빠름 빠름 빠름! 아파트 가격이 오르면 재빨리 아파트를 사고팔았고, 주식이 오르면 얼른 주식과 펀드에 돈을 넣었다. 만화 같은 것들을 밀어낸 자리를 차지한 건 빛나는 돈의 아우라를 두른 욕망. ‘부자 되세요’ 따위의 카피가 CF에 지겹게 나올 때부터 우리 삶은 망가지기 시작했다. 휘황찬한한 돈의 아우라는 모든 추악한 걸 감추어 버렸다. 그렇게 어떤 이는 대통령이 됐고, 1% 살찌고 99%는 야위어갔다. 심지어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누구는 폐쇄된 직장을 지키고, 누구는 그 직장을 빼앗고 노조를 깨기위해 소화기를 뿌린다. 시끄러운 컨택터스 사건을 보라. TV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용역들을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이유는 ‘돈’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밀어낸 만화 같은 것들이다. 1970~1980년대에 만화를 본 40대들이라면 명랑만화를 기억할 것이다. 꺼벙이의 어리숙함, 고집세의 밉지 않은 고집, 두심이의 모험, 요철발명왕의 황당한 상상력, 번데기 야구단 주인공들의 끈기, 오학년오반 삼총사의 우정. 아마 하나하나 기억날 것이다. 


1980~1990년대에 만화를 본 30대들이라면 아마 이런 만화가 기억날 것이다. 새엄마를 오해하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오늘도 달리는 소녀 하니, 낯선 이방인들의 짓궂음이 함께하는 고길동씨네, 말썽꾸러기 학동들을 달래기 위해 늘 선대왕 이야기를 해 주는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 저 멀리 그린우드에서 이 세상으로 온 요정 핑크. 덧붙이자면 수도 없이 나올 그 시절의 만화들이다.


길창덕의 만화 <꺼벙이> (경향신문DB)


꺼벙이처럼 어리숙해지면 삶이 행복해진다. 고집세의 밉지 않은 고집은 공동체의 가치를 지킬 것이다. 두심이의 모험은 새로운 창의로 미래를 개척하게 할 것이고, 요철발명왕의 황당한 상상력은 놀라운 벤처정신과 다를 바 없다. 번데기 야구단 주인공들의 끈기는 좌절하는 당신의 오늘을 이길 힘이 된다. 오학년오반 삼총사의 순전한 우정은 경쟁이 아닌 협업의 사회를 만들 것이다. 소녀 하니와 새엄마의 화해는 무너지고 있는 가정을 새롭게 돌아보게 할 것이고, 모든 이방인들을 품어주는 소시민 고길동씨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그들의 모습과 다름없다. 맹꽁이 서당 훈장님의 모습에서 공교육의 모델을 보고, 그린우드에서 온 요정 핑크를 통해 환상과 만난다.


우리는 이런 만화 같은 것들을 모조리 내 삶에서 밀어내고 팍팍하게도 살았다. 만화 같은 것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만화를 보자. 어떤 만화라도 좋다. 만화를 통해 내 삶을 느슨하게 풀어보자. 증오와 분노를 잠시 내려놓고, 허망한 키보드질도 그만두고, 만화를 보자. 가족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 만화를 보자. 어느 순간, 내가 밀어냈던 만화 같은 것들을 다시 만날 때, 우리 삶은 행복의 길로 한 발 더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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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문화와 소비의 시대인 1990년대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의 수위가 고조되던 시기였습니다.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자마자 책 제목에 가장 많이 들어간 단어가 ‘나’였으니까요. 이 시기를 가장 압도했던 사상은 아마 ‘페미니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른바 ‘공격적 페미니즘’ 소설이 출판시장을, 젊은 여성의 마음을 뒤흔든 것은 1992년이었습니다.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경자의 <혼자 눈뜨는 아침> 등은 ‘사랑(결혼)’이라는 전통적 가치보다 ‘일’이라는 자기실현을 중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후 소설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나날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천년 동안 못다 이룬 사랑을 완성하려는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인 양귀자의 <천년의 사랑>이 등장한 것은 1995년이었습니다. 이때 하병무의 <남자의 향기>, 김상옥의 <하얀 기억 속의 너>, 백금남의 <천상의 약속> 등 남자로부터 무한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상한가를 쳤습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여성들은 드디어 남자를 ‘고르기’ 시작합니다. <모순>(양귀자)의 25세 주인공 안진진은 ‘몽상’과 ‘현실’을 상징하는 두 남자를 저울질하다가 ‘현실’을 선택합니다.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하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주인공 진희는 바람처럼 가볍고 분방한 사랑을 추구합니다. 


21세기는 ‘여성의 시대’입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을 정도로 지위가 오른 여성은 최상의 멘토로 자기 자신을 설정하기도 하고, 여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실천 매뉴얼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때마침 알파걸, 골드미스 등 이들을 칭송하는 신조어도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비혼주의자도 늘어났습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경향신문DB)


<브리짓 존스의 일기> <섹스 앤드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 젊은 여성을 위한 문학이라는 ‘칙릿’이 큰 흐름을 이룬 것은 2000년대 중반입니다. 영상화된 이 소설들은 런던, 뉴욕, 맨해튼 등 대도시에 살며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20~30대 미혼여성들의 세속적인 욕망과 자유분방한 성생활을 거침없이 보여줬습니다. 이런 흐름이 국내에도 자연스럽게 이식됐습니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와 백영옥의 <스타일>은 드라마로도 방영되었습니다.


선두에 서서 거친 세파를 온몸으로 막아내던 알파걸들의 피로감이 극도로 치솟아서일까요? 지극히 반페미니즘적인 소설 하나가 세계를 강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E L 제임스, 시공사) 시리즈는 시간당 10만달러쯤 버는 27세의 억만장자 크리스천 그레이와 대학을 갓 졸업한 21세의 아나스타샤 스틸의 파격적인 사랑을 관능적인 묘사로 그려낸 소설입니다.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이 소설에는 다양한 섹스 장면이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와 빌 게이츠를 합쳐 놓은 듯한 하버드 중퇴의 천재사업가인 크리스천 그레이는 섹스로 여자의 몸을 완전히 소유해버리는 마법의 소유자입니다. 아나는 “아름답고 죽이게 섹시하고 부자이며 고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천박한” 그레이에게 점차 빨려 들어갑니다. 그레이는 채찍과 체벌까지 동원한 섹스를 받아들이는 아나에게 “넌 내게 희망을 줬어”라고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네 살 때 ‘약쟁이 창녀’인 엄마를 잃은 크리스천 그레이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릅니다. 부부가 변호사와 소아과 의사인 집으로 입양됩니다. 그 집에는 입양된 형과 누이가 있었는데 다섯 식구 모두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습니다. 아나의 어머니는 ‘불치의 낭만주의자’로 네 번째 남편과 삽니다. 친아버지는 아나가 어릴 때 돌아가셨고, 아나는 의붓아버지를 엄마보다 더 의지합니다.


크리스천 그레이는 15세부터 엄마 친구인 중년 여성에게 온갖 성적 학대를 당합니다. 그는 그 고통을 아나에게 되돌려주는 셈이지요. 이들의 로맨스는 오로지 섹스로만 이뤄집니다. 이렇게 성에 지배당하는 ‘섹스 판타지’를 20~30대 여성, 특히 도회적이고 교육받고 진취적인 여성들일수록 더 열렬하게 읽는다고 합니다. 이 소설이 유행하면서 ‘성적 복종’이라는 욕망이 하나의 확고한 주제로 떠오른다고 하네요. 


아마존닷컴 사상 최초로 전자책으로 밀리언셀러가 된 이 소설은 종이책으로 인기가 옮겨 붙어 석 달 만에 2100만부나 팔렸습니다. 일본에서는 온라인서점 등장 초기에 <세상에서 제일 쉬운 섹스 어매이징 강좌>가 온라인서점에서 먼저 인기를 끌고 결국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불이 붙었지요. 그렇다면 억눌려 있던 ‘섹스 판타지’에 대한 잠재적인 욕망이 디지털 기술에 힘입어 드디어 폭발하는 것일까요? 


자본 증식을 위해서라면 못하는 것이 없는 과학문명에 대한 절망감과 합리적 이성에 대한 신뢰감 붕괴로 말미암아 인간의 관심이 ‘몸’과 ‘마음’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9·11 테러 직후입니다. 지루한 일상에서 도저히 탈출할 수 없는 개인이 힘겨운 현실에 대한 절망감으로 ‘몸’에 대한 욕망을 키웠다지요. 시대를 거꾸로 가는 ‘섹스 판타지’의 대단한 인기는 굴욕적인 섹스가 ‘해방(구원)’을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의 증거일까요? 한때 세상을 주도했던 페미니스트들에게 꼭 한 번 던져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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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려워도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기에 견뎌내는 게 삶이다. 그런데 그런 희망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엊그제 현대경제연구원이 성인 101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향후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올라가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응답이 98.1%나 된 것으로 나왔다. 이 중엔 20대 청년층도 있었는데, 96.3%가 계층 상승 가능성에 대해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무교동 거리를 오가는 건설 노동자의 흙묻은 신발과 사무직 종사자의 말끔한 옷차림. (경향신문DB)


어째서 그런 비관적인 답변이 나온 것일까. 계층 상승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36.3%가 ‘양극화의 진행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그 뒤로는 체감경기 부진(21.5%), 좋은 일자리 부족(12.1%), 과도한 부채(11.4%), 불공정한 기회(9.0%) 등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미래의 희망에 가장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세부적인 분석에 앞서 응답자들이 계층 상승을 포기한 듯한 태도를 보인 것 자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계층 이동이 비교적 활발한 사회로 꼽혀왔다. 많은 사람들이 계층 상승을 꿈꾸며 불철주야 노력해왔다. 우리의 유난히 높은 교육열도 그 열망의 발로로 여겨졌다. 그런데 청년들까지 계층 상승 가능성에 극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양극화와 함께 한국 사회가 역동성을 잃은 닫힌사회로 가고 있는 징표 아닌가. 그것이 나쁜 상황을 탈출할 가능성이 봉쇄됨으로써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사회를 의미한다면 섬뜩하다.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의 말에 공감한다. 


이 시대의 삶이 팍팍함을 보여주는 자료들은 오늘도 쏟아지고 있다. 7월 전국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19만6000명 늘어나 증가 폭이 2002년 4월(22만명) 이후 10년3개월 만에 가장 컸다. 특히 혼자 또는 무임금 가족과 함께 영업하는 영세 자영업자의 증가 폭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였다. 서울의 실업자 수는 금융위기 발생 직전 해인 2007년(207만명)보다 20% 가까이 증가한 243만명으로 집계됐다. 새로운 빈곤층이 계속 양산되는 사회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우린 아무리 해도 안된다’는 뼈저린 좌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 하나를 침소봉대할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을 던질 계기로 삼기에는 충분하다고 본다.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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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위가 크나큰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여론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을 때 평소에는 그런 짓을 하던 사람도 당분간은 자제하게 마련이다. 공직자의 무분별한 골프가 여론의 지탄을 받으면 아무리 골프광 공직자라도 한동안은 골프채를 손에 잡지 않는다거나, 도박이 사회문제가 되면 도박중독자라도 단 얼마 동안이나마 화투장을 멀리하는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결의대회에서 정규직화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DB)


노사분규 사업장에서 회사 측이 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용역깡패를 동원하는 용역폭력이 초미의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는데도 이러한 폭력을 행사한 기업이 있다고 한다. 불법파견 문제로 사내 비정규직 노조와 대립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가 바로 그 장본인이다. 현대차는 그제 경비용역 30여명을 동원해 노조간부들을 강제로 버스와 승합차에 태운 뒤 공장에서 20분 거리의 장소에 내려놓았다고 한다. 회사 측은 지난 10일에도 농성 중인 노동자와 노조간부들을 승합차에 강제로 태워 밖으로 내쫓았는데 이 과정에서 노조간부들이 용역이 휘두르는 폭력에 근육과 인대를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은 “불법파업을 주도한 노조간부들을 퇴거시키는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을 뿐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지만 설득력이 없다. 우선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로 회사 밖으로 쫓아내는 행위 자체가 폭력이다. 또 용역폭력에 가담했다가 노조 측에 붙잡힌 3명이 GNFM이라는 용역경비업체 직원으로 밝혀진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깁스를 하거나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노조간부들의 모습이 가장 명백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여론의 분노 속에서 형성된 일종의 ‘용역폭력금지령’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담하게 용역폭력을 휘두른 회사 측의 만용과 도덕적 불감증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경찰은 경비용역들뿐만 아니라 폭력행위를 계획하고 사주한 회사 측 관계자들을 철저히 수사해 법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또한 지금과 같은 시기에 보란듯이 용역폭력을 일삼았을 때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것이니만큼 관할 관공서 등의 비호가 있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때마침 경찰이 경비업법 개정안을 마련했으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고 한다. 폭력전과자를 용역경비원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경비업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다고는 하나 용역업체를 고용한 회사 측의 책임을 묻는 조항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폭력범만 제재하고 ‘교사범’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현대차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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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오 | 좋은교사운동 대표


 

국가인권위가 학교폭력과 관련한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한 것이 인권 침해의 요소가 있으므로 졸업 전 삭제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 등의 도입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러한 권고안에 대해 교과부는 곧바로 거부한다고 통보를 했다.


교과부는 가해학생의 긍정적 변화 모습도 함께 기록하도록 했고, 학생부 기재 기간을 졸업 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기 때문에 낙인효과, 상급학교 진학시 불이익, 인권침해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가해학생의 긍정적 변화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인 기술이 추가됐다고 해서 학교폭력과 관련해서 처벌을 받았다는 객관적인 기록이 얼마나 상쇄될 수 있을 것이며 대학과 기업이 이를 얼마나 반영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리고 학생부 기재 기간을 졸업 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인 것은 인권침해와 낙인효과의 기간을 축소한 것이지 이를 해소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교과부의 또 다른 명분은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경각심을 부여해 학교폭력 예방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조치가 학생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효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교과부 학교폭력 종합대책 현황 (경향신문DB)



사실 학교 현장에서는 일진에 의한 계획적 폭력 못지않게 아이들이 좁은 공간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생활하는 가운데 우발적인 폭력도 많이 발생한다. 이러한 우발적인 폭력들에 대해서는 이전 같으면 학교나 교사의 판단에 근거해 상호 화해나 학교 차원의 일정한 처벌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사안들도 반드시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야 하고 그 결과를 학생부에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단 한 번의 실수에 의해 학생부에 폭력학생으로 기록되는 억울한 경우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학교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가해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가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결사적으로 버티거나 가해학생 학부모들끼리 담합을 하기도 하고 학교의 작은 실수라도 꼬투리를 잡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쳐 교사와 학생, 학부모 관계가 파괴되고 학교는 이로 인한 몸살을 앓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학교폭력 조치 사항을 학생부에 기록하는 것이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효과가 매우 크다 해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학교가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임을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현재 만연해있는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가 주목해야 할 것은 학생들의 마음속을 지배하고 있는 분노와 증오, 좌절감과 이기적인 마음이다. 그러므로 장기적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이렇게 만든 원인을 분석하고 고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도 가해학생들에 대한 적절한 교육적 벌과 함께 그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 폭력학생이라는 주홍글씨와 함께 이들의 진학과 취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위협이 주는 억제 효과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의 억제 효과는 볼 수 있을지 몰라도 학교와 교사에 대한 아이들의 불신만 쌓여가고 학교는 학교폭력에 대응하는 교육적 문제해결 능력만 잃어버리게 된다.


국가인권위가 학교폭력 조치 사항에 대한 학생부 기록 자체를 폐지하라고 권고하지 않고 학교폭력 기록에 대해 졸업 전 삭제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 등의 도입을 권고했을 뿐이다. 학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주고자 하는 교과부의 의도를 살리면서도 학생인권 문제와 교육 기관으로서의 학교 역할을 고려한 조치로 보인다. 교과부는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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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 동화작가


 

아주 오랜 옛날, 하늘에 해가 둘이요 달도 둘이던 시절의 이야기다.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다스리는 온 세상의 임금이 기이한 꿈을 꾸었다. 해와 달이 입속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암만해도 아들 둘을 낳을 꿈 같았다. 임금은 배필을 찾아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아름답고 지혜로운 총명 아가씨를 만나 혼인을 하고 스무하루 동안 함께 지냈다. 그러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며 임금은 이런 당부를 남겼다. 쌍둥이 형제를 낳을 것이니, 큰 아들은 대별이라 하고 작은 아들은 소별이라 하시오. 


 세월이 흘러 두 아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그런데 세상에, 그 아버지가 예사 아버지가 아닌 것이다. 무려 온 세상을 다스리는 임금이란다. 두 아들은 아버지가 남기고 갔다는 박씨를 심었고 거기서 자라난 덩굴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아버지, 공과 사가 여간 엄격한 게 아니다. 십수년 만에 가까스로 상봉한 아들이 반갑지 않을 리 없건만, 우선 어려운 시험부터 통과하란다. 이승과 저승을 다스릴 소임을 맡겨야 하니 실력을 보겠다는 뜻이다. 


결국 두 아들은 무게가 천근이나 되는 활과 화살을 들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갔다. 해와 달이 두 개씩이나 되어 세상 만물이 고통받고 있으니, 세상을 위해 활시위를 당기기로 하였다. 형인 대별이는 해를, 소별이는 달을 쏘아 떨어뜨렸다. 그것으로 인간 세상은 해와 달이 각각 하나가 되어 조화롭고 살기 좋은 땅이 되었다. 


(경향신문DB)


비로소 대별이와 소별이는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았다.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려는 태도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식견과 능력. 두 아들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자격을 증명한 뒤에야 임금의 아들로 인정받은 것이다. 왕조체제인 듯한데 이 임금님, 썩 괜찮다. 옥황상제라고 불리기도 하는 바로 그 분, 천지왕이다.


이것은 우리 신화다. 잘 알려진 것처럼,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야기다. 단군신화처럼 문자로 기록된 경우도 있지만, 그것조차 기록 이전에는 사람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일종의 집단창작 또는 공동창작물이라 할 수 있겠다. 대별왕, 소별왕 이야기에는 그 기나긴 세월을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다. 이를테면 세상을 다스리려는 자에게 필요한 자격은 혈통 같은 게 아니라 그 자질이라는 사실 같은 것. 


그리고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천지왕은 두 아들에게 이승과 저승을 각각 다스리게 하려 했는데, 문제는 둘 다 이승의 왕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자 천지왕은 다시 두 아들의 자질을 시험하기 위해 꽃나무를 심은 은대야를 하나씩 주었다. 꽃을 더 잘 키우는 사람에게 이승을 다스리게 하겠노라는 것이었다. 두 아들은 그렇게 내기를 했는데, 대별이가 훨씬 우세했다. 그러자 소별이는 형이 잠든 사이에 형의 꽃을 제 것과 바꿔치기해 버렸다. 그렇게 대별이는 저승왕, 소별이는 이승왕이 되었다. 이승의 왕으로 자질이 부족한 소별이가 그 자리를 훔쳐낸 셈이다. 그 결과, 대별왕이 다스리는 저승은 선과 악의 분별이 지엄한데, 이승은 뭐… 이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지고! 술수 따위 모르는 성품에다 생명을 살릴 줄 아는 대별왕이 이승을 다스렸다면, 우리는 지금 선과 악의 분별이 분명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하지만 이제라도 바꿀 수 있는 거 아닐까? 이를테면, 비겁한 술수를 쓰는 소별왕은 자질이 부족하니 땅으로 쫓겨 내려갔다거나… 이승의 백성들이 소별왕의 술수를 알고서 다들 한목소리로 그 잘못을 천지왕에게 고했다거나… 뭐, 이렇게. 


신화란, 본질적으로 그 공동체의 이야기다. 우리 공동체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천지왕 신화는 해피엔딩으로 바뀔 수 있다. 옛사람의 경고에 귀기울인다면 앞으로의 우리는 다른 신화를 만들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다른 세상을 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쩐지 자꾸만 대별왕, 소별왕 신화가 떠오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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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근 | 경제민주화 민생연대 대표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 2월 ‘생계형 자영업의 실태와 활로’란 보고서를 냈다. 주내용은 1인당 국민소득이 비슷한 OECD 국가와 비교했을 때, 약 229만명의 공급과잉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보고서 제목에서 언급하는 생계형 자영업자의 증가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기업만 빼고 모두가 다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IMF 외환위기 시 재벌대기업은 축적의 위기를 맞으면서 강력한 수출주도형 성장을 꾀함과 동시에 국내에서 자본의 집중을 가속화했다. 중소기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동물원 수준의 원·하청관계를 정착시키고, 자영업자들에는 신용카드 수수료를 착취하고 제2금융기관을 설립해 초고금리 장사를 일삼았다. 낙수효과는커녕 진공청소기처럼 온 나라의 화폐를 대기업 금고로 흡입해버렸다.


서울 관악구 인헌동의 한 커피집에 점포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출처 :경향DB)


게다가 재벌대기업계 대형마트 공세에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은 거의 붕괴돼버렸다. 대형마트 한 곳이 들어서면 인근 600여개 가게가 쓰러져간다는 연구가 잇따라도 이들은 멈출 줄을 모른다.


또 최근에는 유망상권에 아무리 높은 값을 불러도 빌딩을 사재기하는 재벌가의 딸들이 주변 임대료를 천정부지로 끌어올린다. 소위 안테나숍을 곳곳에 만들어가는 그들로 인해 그동안 생계형이 아니라 제대로 된 중소사업을 운영하던 자영업자들마저 추풍낙엽처럼 넘어지고 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 정책의 실현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수적 여론의 주춧돌이었던 이 민초들이다. 이들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본능적으로 원하고 있다. 단지 재벌들이 부자라서, 불법을 밥 먹듯이 저질러대 미워서가 아니다. 자신들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당정치가 실종된 것도 바로 이들의 생존위기 때문임을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명심해야 한다. 만일 자신들이 그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국민들이 선택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기꺼이 맞을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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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전문가


춘추 말기, 진(晉)나라의 실권자 조간자(趙簡子)가 마차를 타고 산길을 따라 사냥에 나섰다. 길이 하도 험하다 보니 급기야 사냥에 따라온 신하들까지 나서 마차를 밀어야만 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 호회(虎會)라는 대신은 마차를 밀기는커녕 긴 창을 어깨에 둘러멘 채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유유자적 마차 옆을 거닐었다.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앞에서 리허설 연습을 하는 진나라 병사 복장의 공연단 모습 (출처: 경향DB)


조간자가 그를 노려보았지만 호회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간자는 기분이 나빠져 거친 목소리로 “내 마차가 힘든 산길을 오르지 못해 신하들까지 나서 힘을 보태고 있는데, 호회 당신 혼자만 힘을 보태기는커녕 노래까지 불러가며 사람들을 놀리다니 이게 신하가 군주를 기만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신하가 군주를 기만하는 것은 어떤 죄에 해당하는가”라며 호회를 나무랐다. 호회는 황망히 “신하가 군주를 기만하면 그 죄는 죽고 또 죽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조간자가 “죽고 또 죽어야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라고 물었다.


“자신도 죽고 처자식도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호회는 동요없이 대답한 다음 때를 놓치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지금 주군께서는 신하가 군주를 기만하면 어떤 벌을 받는지 아셨지요? 그렇다면 군주가 신하를 우습게 여기고 업신여기는 행동은 어떤 죄에 해당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순간 조간자는 당황해하며 “군주가 신하를 업신여기면 어떻게 된단 말인가”라고 물었다.


“군주가 되어 자신의 신하들을 경멸하는 일이 계속되면 결국은 이렇게 됩니다. 지혜를 가진 신하는 입을 다물어 버리고 다른 신하들은 자기 몸보신에 급급해집니다.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니 가까운 곳에서 근심이 발생하고 나라는 멸망의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말 잘하는 신하는 사신으로 나서려 하지 않을 테니 이웃나라와의 외교는 불통이 되어 대외적으로 고립될 것입니다. 장수와 병사들은 적과 싸우려 하지 않을 테니 군대는 약해지고 변경은 적의 침략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 겁니다. 군주가 신하를 경멸하면 내정과 외교 그리고 국방 모든 방면에서 힘을 쓰려 하지 않을 테니 나라꼴이 아니겠지요. 그런 나라의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호회의 말에 조간자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는 서둘러 마차를 몰던 신하들을 불러 정중히 사과하는 한편 술자리를 베풀어 위로했다. 호회는 상석에 모셔 그의 조언을 구했다. 인재는 중용(重用)해야 한다. 이때의 중용이란 높은 자리나 많은 녹봉이 아닌 소중하게 대우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부리는 리더는 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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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권익위원회는 그제 공직사회의 금품 수수와 청탁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을 오는 22일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대법관 출신인 김영란 권익위원장이 추진한 이 법안(일명 ‘김영란 법’)은 공직자의 대가성 없는 금품 수수를 처벌할 수 있고, 제3자를 통한 부정 청탁 행위도 엄격하게 금지하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공직자에게 사적인 이해관계가 개입될 수 있는 직무 수행을 금지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처벌 대상이 되는 부패 행위의 범위가 형법 등 현행 부패방지 관련법이 금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다. 현행 형법으로는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은 금품 수수나 금품이 오가지 않은 청탁은 처벌하기 어렵다. 김영란 권익위원장은 “청탁을 하지 말자는 캠페인 같은 법, 청탁 받은 공무원에게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주자는 법”이라고 설명했다.


공직사회의 부패는 관행처럼 굳어져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는 각 부문에서 갑(甲)의 우월적 위치를 차지하고 힘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패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규제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공직자가 업자로부터 많은 금품, 향응을 받아 비난 여론이 비등해도 대가성만 없으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는다. 모범이 돼야 할 공직사회의 부패가 심하니 사회 전체의 청렴도가 어떨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보면 한국은 2010년 39위에서 지난해는 43위로 4단계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는 하위권인 27위에 머물렀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울 종합민원실에서 공무원체험에 나선 김영란씨 (출처: 경향DB)


김영란 법이 시행되면 공직사회의 뿌리 깊은 부패 행위나 부정 청탁은 발 붙일 틈이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국민권익위가 연내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더라도 통과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국회를 포함한 공직사회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될 뿐 아니라 권익위와 법무부 간에도 이견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공직사회의 어떤 저항이나 반대도 명분이 없다. 다만 ‘부정한 청탁’과 ‘정당한 민원’의 구분이 불분명하다거나 부정 청탁 신고 등 사후처리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은 보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무부도 부패 근절을 위해서는 새 법 제정보다 형법 개정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만 고집할 일이 아니다. 보다 실효성과 강제성이 담보된 법으로 투명한 공직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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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내가 하는 일에서 그나마 위로 삼는 게 하나 있다면, 그건 글로 나를 표현하고 내 생각을 말하면서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디 글뿐이겠는가? 사무적인 일이나 이런저런 인연을 통해 만남이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거리를 만들기보다는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 쪽에 선 내게는 글이 사회적 소통의 가장 큰 통로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강연도 글이 계기가 되어 일어나는 만남의 형식이다. 요즘에는 한 학기에 서너 차례씩 하게 되는데, 대부분 시민강좌나 문화단체 혹은 미술관에서다. 이런 모임에서 만나는 청중은 다양하다. 문학이 무엇인지 알려는 고교생이나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대학생·대학원생들도 있고, 예술과 미학을 알고 싶어 하는 30~40대 여성들과 직장인도 있다. 또 그저 책이 좋다는 중·장년층도 드물게 있다. 독서의 경로나 생활환경에서 나와는 전혀 다른 이들 독자와의 만남이 내게는 그 어떤 다른 모임보다 즐겁고 신선하다.


지난주 목요일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열린 강연도 그러했다. 책 광고가 된다면 독자 여러분은 너그럽게 봐주시길. 그것은 최근에 출간된 <사무사(思無邪)>에 대한 것으로, 이 책은 ‘현대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김우창 선생의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 대한 ‘다시 쓰기’다. 나는 몇 개의 열쇠어로 주어진 시간 안에 그 핵심을 간결하게 전달해야 했다. 그러면서 책을 읽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청중에게 되물었다. 개별적 삶이 조각나 있듯이, 오늘날에는 독서도 일정한 틀 안에서 파편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것이 개성이나 자유의 이름으로 자의적으로 행해진다.


 

[포토에세이] 중년의 독서삼매경 (출처: 경향DB)



사물에 대한 느낌이, 사건에 대한 생각과 사람에 대한 인상이 어디쯤 있는지, 그때의 느낌은 어떻게 생각과 이어지고 또 어떻게 표현되는지, 나아가 그것은 어떻게 결정의 납득할 만한 근거가 되어 행동으로 옮겨지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감각과 사고와 언어와 표현과 판단과 실천은 긴밀하게 서로 연결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느낌은 느낌대로 있고 생각은 생각대로 놀며, 판단과 행동은 이 느낌이나 생각과 무관하게 자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들여 글을 읽어도 이렇게 읽은 내용이 독자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날 강연의 마무리도 이렇게 끝맺었다. 글을 읽는 이유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삶의 행복을 확인하는 데 있다고. 그러려면 ‘지식의 자기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독자를 만난다는 것은 저자 쪽에서 보면 낯선 취향과 만난다는 것이고, 자기의 문제의식을 이 취향에 호소한다는 뜻이다. 저자와 만난다는 것은 독자 쪽에서 보면 그의 세계를 재경험한다는 뜻이다. 어떤 쪽이든 거기에는 기존의 감각적 사고적 틀을 교정할 수 있는 변형적 계기가 들어있다. 이 변화는 읽고 느끼고 공감한 것의 자기화를 통해 이뤄진다. 그러려면 심각한 자기개입 - 해석과 선택의 엄정한 여과작용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절실하고 사소한지, 또 어떤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 결정난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시간적으로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면서 오는 것들을 예비하고, 공간적으로는 여기에서 저편의 것들을 상상하고 기획하고 선취한다. 이 시공간적 모험은 오늘의 삶이 이 순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걸쳐 있고, 여기에서 저기로 뻗어 있음을 보여준다. ‘있는’ 현실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현실 - 가능성의 현실을 탐색하는 것이다. 가능성의 탐구는 그 자체로 현실에 부정적(否定的)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일이다. 짧은 생애에서 ‘넓고 깊게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일 것이다.


넓고 깊은 삶은 개인의 개별적 삶이면서 전체로 지양된 개인 - 보편성을 구현한 주체의 삶이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건전한 시민’일 것이다. 세계시민이란 보편성을 지닌 개별 시민에 다름 아니다. 결국 글을 읽는 것은 이 유한한 생애에서 세계시민으로서 넓고 깊게 살기 위한 것이다. 책의 독자는 마땅히 자기 삶의 작자(作者)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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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