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용 | 전남대 교수·철학


신분이나 계급을 분리하는 기준은 명확하지만 계층을 구별하는 틀과 방법은 애매하고 모호하다. 그 이름도 가지각색인데 그중에서 특히 계층을 탈정치화하는 데 가장 애용되는 말이 서민과 중산층이다. 한국인은 대부분 자신이 여기에 속한다고 여긴다. 더구나 자산이 0에 가까운 학생들조차 스스로가 중산층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부채 없이 최소 30평 아파트, 2000㏄ 자동차, 연봉 5000만원이 넘으면서 상류층에 대한 동경을 가져야 중산층으로 불린다. 물론 이 기준은 부유층과 그에 부역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다. 그러니 중산층도 아니면서 중산층 의식을 갖는 것보다 중산층의 기준을 바꾸어야 정치판을 새로 짤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중산층은 크고 작은 뜻을 가지고 정치적 담론에 참여하는 시민, 어떤 주제라도 타인과 30분 이상 소통할 수 있는 교양인, 먹고사는 문제와 상관없는 책을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는 독서인이다. 이처럼 참여, 소통, 배움을 계층의 규범적 기준으로 세워야만 경제적 여건과 무관하게 누구나 자존심, 자부심,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직장인이 한 달에 1.8권의 책을 읽는다는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직업을 가진 대부분이 중산층인 한국은 바람직한 사회처럼 보인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읽는 책은 대부분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자기계발서이지 참여하고 소통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자신의 처지와 관심에 따라 읽고 싶은 책이 각양각색이듯 세상에 나와 있는 책의 종류와 수준 또한 다채롭다. 그렇다고 책이 다 책은 아니다. 현실을 비판하며 새로운 생각을 나르고 낯선 세상과 소통하며 상상 불가능한 이상(理想)을 상상할 수 있는 양서(養書)가 진짜 책이다. 이런 책을 쓰고(저자), 나르며(출판인), 읽는(독자) 이들의 수가 그 사회의 정치와 문화의 수준이다. 그러니 고품격 정치문화를 위해서는 국가가 세 축이 함께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첫째, 광범위한 독서층이 형성되도록 도서관을 늘리고 시민의 정치적 담론을 활성화해야 한다. 둘째, 독서층이 얇을 수밖에 없는 학술도서의 저자와 출판사를 파격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독자와 저자를 연결하는 출판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학술원과 문화체육관광부의 우수학술·교양도서 사업이 큰 의미를 갖는 이유다.


한길사, 창작과비평사, 문학과지성사, 민음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민주주의는 없다. 1970~80년대 독재정권은 이들이 출판한 수많은 학술도서를 금서로 낙인찍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금서만큼은 반드시 찾아 돌려가며 읽었다. 독재의 금서가 민주혁명을 키운 것이다. 그런데 민주주의가 성취되고 금서가 사라지면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가 위기를 겪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다. 정부기관이 선정한 우수학술도서는 읽지 않아도 될 도서목록처럼 보인다. 4대강에 뿌려진 돈 때문에 우수학술도서 지원 사업비가 줄면서 선정된 책의 수준이 중구난방이기 때문이다.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책을 배제한 것도 가련한 일이지만 저자조차 학술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책을 우수학술도서로 선정하는 것은 독서인 모두를 희롱하는 것이다. 정권을 바꿔야 하는 중대한 이유다.


다양성은 출판문화의 생명이다. 그러니 몇 개의 큰 출판사보다 이색적인 담론을 발굴해서 나르는 작은 출판사가 많은 것이 바람직하다. 좋은 글을 알아보고 잘 다듬을 수 있는 훌륭한 편집자 2명만 있어도 세계를 움직이는 출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열악한 조건의 작은 출판사가 현 상황에서 학술도서를 출간하는 것은 자살에 가깝다. 그들의 책을 읽는 이도 적지만 보수 정권의 지원도 너무 조잡하다. 그래서 유명인의 성공일기나 신변잡기 혹은 말랑한 교양서로 돈벌이에 나선 출판사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그린비, 도서출판 길, 돌베개, 동녘, 후마니타스와 같은 몇몇 출판사가 자리를 지키며 자살을 반복하고 있기에 우리 사회의 생명력이 죽지 않고 있다. 실질적 금서가 된 이들 출판사의 책들이 곧 우리가 찾아서 읽고 돌보아야 할 우수학술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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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정대화 상지대 교수·정치학


대선을 46일 앞둔 상황에서 후보단일화가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민들은 선거를 두 번 하게 되는 셈인데, 11월25일 이전에 야권 후보단일화를 하고 12월19일에 야권 단일후보와 여당 후보로 결선투표를 치르게 됐다. 후보도 유권자도 단일화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왜 후보단일화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가? 후보단일화 없이는 이명박 정권의 역주행을 극복할 수 없고, 80년 광주항쟁의 정신과 87년 6월민주항쟁의 정신을 온전히 실현할 수 없고,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보단일화가 대선승리, 정권교체, 민주주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절대적인 변수가 된 것이다. 


왜 단일화가 불가피한가?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를 담당해야 할 세력이 둘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강고한 분단구조와 내연하는 지역대결구조 아래서 모두가 힘을 합쳐도 구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힘겨운 마당에 두 세력으로 분열되어서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 어떻게 단일화를 이룰 것인가? 단일화는 후보들 간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 상황에서는 단일화의 방법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거대한 전환점 앞에서 단일화는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인식의 문제이자 소명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어떤 방식으로 단일화를 이룰 것이냐에 앞서 반드시 단일화를 이루겠다는 결심이 중요하다. 두 후보가 결심만 한다면 나머지는 주변적인 문제이다.


 언제까지 단일화를 완결해야 하나? 대선승리와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후보등록이 시작되는 11월25일 이전에 반드시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후보등록 후에는 단일화의 가능성이 반감되고 단일화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효과는 적다. 시간을 더 끌어 선거 막바지에 이르면 성사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뿐만 아니라 극적으로 타결된다고 하더라도 이미 유권자들은 등을 돌린 상태이고 효과는 극히 미미할 뿐이다.


후보단일화는 대선승리의 보증수표인가? 그렇지 않다. 단일화는 대선승리의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세 가지 조건이 추가돼야 충분해진다. 첫째, 후보등록 전에 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후보단일화를 바라는 국민들을 걱정시키지 않고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두 세력을 합치고 국민들을 결집시키는 확장적 방식이어야 한다. 


후보단일화촉구 교수선언 (출처; 경향DB)


누가 단일후보가 되어야 하나? 대선승리와 정권교체를 바탕으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능동적으로 창조해나갈 사람, 그 역사적 과제를 진정성을 가지고 국민과 함께 추진해나갈 사람, 그러한 역사인식과 의지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단일후보가 되어야 한다. 장강의 앞물은 뒷물이 밀고가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누가 장강의 뒷물을 담을 새 부대가 될지는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다.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11월을 맞이한다. 1987년과 2007년 두 번의 큰 좌절을 겪었기에 두려움은 더욱 크다. 그러나 문재인 후보가 일관되게 후보단일화를 추구하면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언약했고 안철수 후보도 국민이 그 길을 열어주면 흔쾌히 따르겠다고 했으니 두 후보의 결심은 선 것으로 보인다. 시도 때도 없이 연대를 외치는 것은 어리석은 정치에 불과하지만 임박한 결전 앞에서 연대를 외면하는 것은 위험한 정치라는 사실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제 남은 것은 국민들의 몫인데, 두 후보가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루도록 국민들이 충분히 격려하고 충분히 지지하는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다음 대선에서는 결선투표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도록 정치권에서 공직선거법을 조속히 개정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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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2010년 12월 서울 서계동에 위치한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식에서 배우 장민호는 흐르는 눈물을 숨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식순 중 하나로 마련된 장민호의 ‘파우스트’ 독백이 끝난 후 자신에게 쏟아진 기립박수와 뜨거운 환호에 노배우는 지나온 시간을 밟으며 뜨거운 눈물을 닦았다. “생이란 영롱한 반사일 뿐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의무이다. 비록 순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객석을 등진 채 파우스트의 독백을 들려주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 연극의 최고참 배우 장민호는 이날 자신의 이름이 붙은 극장 무대에 오른 순간이 65년 연극인생에서 가장 떨렸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이 극장에서 공연된 <3월의 눈>에 백성희와 함께 출연해 “가장 완벽한 연기의 정석”이라고 호평 받았다. 작품은 연장공연과 지방공연이 이어질 만큼 화제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삼척 공연 전날 심한 기침으로 입원한 그는 더 이상 무대에 설 수 없다. 어제 하늘품에 안겼다.


명동예술극장 개막작 <맹진사댁 경사> 출연하는 신구 장민호씨 (출처 : 경향DB)


장민호는 1966년 10월 옛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괴테 원작의 연극 <파우스트>에 주인공 파우스트로 출연 후 1997년까지 4차례에 걸쳐 파우스트 역을 맡았다. 별명이 ‘파우스트 장(張)’일 만큼 그의 연기는 ‘파우스트 역의 배우가 아니라 진짜 파우스트’였다. <파우스트>는 노학자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젊음을 얻은 후 아름다운 처녀 그레첸과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의 연기철학은 연습 중에 특히 빛났다. 1997년 <파우스트> 공연을 앞두고 눈물을 쏟으며 그레첸과 키스하는 장면을 연습할 때마다 노배우는 거친 수염이 난 턱으로 어린 여배우의 뺨을 문지르며 강렬한 키스를 했다. 실제 공연에서도 입맞추는 소리가 또렷이 객석에 들릴 만큼 열중했다. 연극 대본에 ‘3개의 계단을 올라가서’라는 지문이 나오면 연습장에 3개의 계단을 설치해놓고 올라가야 직성이 풀리는 배우였으니 키스 연습을 얼마나 실감나게 했을지 상상이 간다. 


“빈손으루 혼자 내려와서 자네두 만나구, 손주, 증손주까지 보았으니, 이만하면 괜찮지, 괜찮구 말구…. 이젠 집을 비워줄 때가 된 거야….” 고인의 마지막 작품이 된 <3월의 눈>에서 그가 전했던 대사다. 무슨 역이든 소화하는 ‘잡식성 위장’을 가졌다던 노배우의 부재는 그리움의 무게를 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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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쇄신과 관련해 야권의 주요 후보가 모두 기득권을 내려놓는 것을 주요 과제로 제기했다. 그러나 무엇이 기득권인가를 명확하게 하지는 못해 정치쇄신 방안의 초점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문제가 되는 정치적 특권 혹은 기득권에는 두 가지 다른 양상이 있다. 정치제도에서 이익을 보고 있는 사람 혹은 세력의 문제와 야권 내에 존재하는 기득권이다.


전자의 문제는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피하기 어렵다. 대의제를 택하고 있는 이상 대표자들이 정치과정에 일반 시민들보다 많은 권한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특권과 기득권 문제는 대의를 하는 대표들의 구성이 민의와 큰 괴리가 있고 이들의 행태가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할 경우에 커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정치제도에서 비롯된다면 사람을 줄이는 방향의 개혁보다는 민의가 반영되도록 하는 제도개혁이 더 중요하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선거제도 문제이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선거구제 위주의 현행 선거제도에서는 다양한 정치적 가치가 공정하게 대표되기가 어렵다. 최소한 비례대표제의 비중을 증가시켜 소수세력이 원내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확대시키는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지역구 출신 의원들의 기득권을 축소시켜야 한다. 지역구 의원을 246석에서 200명으로 줄이면 100명을 정당명부투표에서 선출할 수 있다. 이를 전제로 국회의원 정수를 증가시켜 비례대표의 비중을 더 크게 높일 수 있다. 100명을 비례대표로 증가시킨다면 지역구 200명과 비례대표 200명으로 의회를 구성해 다양한 민의가 대표될 수 있다. 대통령 선거 등에서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최근 주요 의제로 제기되는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일정 조정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정치효율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기득권 극복과는 거리가 있다. 


안철수 대선 후보가 정치쇄신안을 발표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기득권의 다른 한 측면인 야권과 민주당 내의 기득권 문제도 일차적으로는 위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현재 선거제도가 주요 정당 사이에 지역분점을 가능하게 만들고 주요 정당 내에 경쟁에 노출되지 않는 기득권을 형성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상이 미치는 영향은 여당과 야당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여당의 경우는 당내 기득권 세력이 정당의 주요 지지세력과 조직적으로나 가치적으로 잘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야권 내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의 지지기반과 여러 면에서 괴리가 크다.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여당보다 훨씬 넓은데 야당은 이러한 다양한 지향을 수용할 수 있는 정당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이 지지율 변동에서 여당보다 훨씬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민주당이 정당정치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의 필요성을 강변할 것이 아니라 공천 등의 당내 의사결정에서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정당혁신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과제는 인적쇄신과 정당의 개방화 개혁이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인적쇄신은 특정인의 자질 문제가 아니라 민주당의 의사결정이 소위 친노와 호남 기득권에 의해 좌우된다고 보이는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정당 개방화는 모바일 참여 등 새로운 참여방식을 제도화하고 정당의 조직기반을 혁신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대선국면에서 선거제도 개혁보다 정치적으로 파급력이 더 클 것이다. 우선 이는 여당과의 협의가 없이 스스로의 결단에 의해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가 아니라 당장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진정성을 평가받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단일화 과정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야권에서 민주당이 갖고 있는 기득권 그리고 민주당 내의 기득권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없이는 안철수 후보가 민주당과의 조직적 결합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 쉽다. 반면 이러한 혁신방안과 실천의지가 국민에게 평가를 받게 되면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후보단일화의 질을 높이는 데도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위로부터는 비례대표제 확대, 아래로부터는 정당의 개방화가 정치적 기득권을 극복하기 위한 핵심 과제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앞으로 정치쇄신에 대한 논의는 이 문제에 집중하고 여기서 단일화로 나아가는 동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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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사람의 마음속에는 매 순간 일어나는 수만 가지 생각들이 있다. 어느 것에도 휩쓸리지 않으려는 고요한 생각들이 책장에 꽂힌 책처럼 가지런히 나열되는가 하면, 두려움과 공포, 오만과 방종의 생각들이 폭풍처럼 일어나 아무리 멈추려 해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면서 정제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마음의 분란을 일으키는 감정이 득세할 때마다 그 감정을 부드럽게 때로는 엄혹하게 다스리려 하지만 그것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것이 사람이라서, 문제의 원인을 내 안보다 다른 곳에서 찾게 되므로 폭발하는 감정을 쉬이 억누를 수가 없는 것이다.


조선 후기 사람인 박두세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요로원야화기>에 그러한 감정의 흐름을 통제하는 법이 나온다.


“내 소싯적에 성질이 급하여 고치려 해도 쉽게 고치지 못하였으나, 어느 날 아침에 깨닫자 어렵지 않았소이다. 마음이 노(怒)하였을 때 참을 인(忍) 자를 생각하면 노한 마음이 자연히 없어지기에 이때부터 아홉 가지 글자를 써서 늘 보고 외우고 있소, 그릇된 생각이 날 때 ‘바를 정(正)’ 자를 생각하면 사벽하기에 이르지 않고, 거만한 마음이 날 경우 ‘공경할 경(敬)’ 자를 생각하면 거만함에 이르지 않고, 나태한 마음이 들 때 ‘부지런할 근(勤)’ 자를 생각하면 나태해지지 않으며, 사치스러운 마음이 날 때 ‘검소할 검(儉)’ 자를 생각하면 사치함에 이르지 않으며, 속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경우 ‘정성 성(誠)’ 자를 생각하면 속이기에 이르지 않고, 이익을 구하려는 마음이 날 때 ‘옳을 의(義)’ 자를 생각하면 이욕(利慾)에 이르지 않으며, 말할 때 ‘잠잠할 묵(默)’ 자를 생각하면 말의 실수에 이르지 않고, 희롱할 마음이 일 때 ‘영걸 웅(雄)’ 자를 생각하면 가벼움에 이르지 않고, 분노의 마음이 일 경우 ‘참을 인(忍)’ 자를 생각하면 급하게 죄를 짓지 않게 되오.” 


과거에 떨어진 선비가 귀향길에 소사를 지나 요로원에 이르러 먼저 온 양반을 만났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서로 뜻이 통했다. 위의 글은 그들이 밤을 새워가면서 해학을 곁들인 문답을 주고받은 내용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여름날 탁족을 즐기는 모습을 재현 (출처; 경향DB)


마음에 변화가 있을 때마다 한 자의 글을 써놓고 다스린 옛사람의 지혜가 부럽다. 하지만 마음에 정한 척도가 과연 ‘바른지’ 아니면 ‘그른지’조차 불확실한데 무엇을 가지고 판단하며 세상을 살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알 수 없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세상을 혼돈(混沌)이라는 말로 표현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마음에 가장 필요한 글자는 무슨 글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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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우 | 서평가, 필명 ‘로쟈’

가을이 깊어가면서 올해의 달력도 마지막 두 장을 남겨놓았다. 하지만 출판계 기준으로는 이달이 마지막달이다. 보통 전년 12월부터 올 11월까지 출간된 책 가운데 올해의 책을 선정하곤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12월에는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대선이 있기에 책은 대중의 관심사가 되기 어렵다. 화제를 모을 만한 책이라면 그런 ‘경합’을 피해 출간을 앞당기거나 대선 이후로 미루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특별한 주목거리가 된 책이 있다.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으로 알려지면서 신간이 아님에도 종합베스트셀러에까지 오른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란 책이다. 1998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국내에서도 스테디셀러의 자리를 굳힌 명저이지만 이만한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없다. 묵직한 인문서가 ‘서울대 대출도서 1위’라는 타이틀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가. 생리학자로 출발했지만 조류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에도 정통한 저자는 조류의 진화를 연구하기 위해 뉴기니 섬에 체류하다가 한 원주민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는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쇠도끼와 성냥, 의약품에서 우산에 이르기까지 백인들이 들여온 온갖 새로운 물건을 뉴기니 사람들은 ‘화물’이라고 불렀다. 왜 한쪽에는 화물들이 있고 다른 쪽에는 없느냐는 원주민의 물음을 저자는 “인류의 발전은 어째서 대륙마다 다른 속도로 진행됐을까?”란 질문으로 바꾸고 25년 만에 그 해답을 내놓는다. 바로 <총, 균, 쇠>이다. 


저자는 민족마다 다른 역사 진행의 차이가 생물학적 차이가 아닌 환경적 차이 때문에 빚어졌다고 본다. 지리적 환경과 생태 환경의 차이가 궁극적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역사학자들은 흔히 환경결정론이라고 무시하지만 저자는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지식과 자료, 그리고 현장탐사의 경험을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그에 따르면 BC 1만1000년경에 시작된 농경(식량 생산)이 모든 변화의 시발점이었다.


BC 10-8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시대 농경용 관개수로 (출처; 경향DB)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의 지배적 형태를 바꿔놓는다. 다이아몬드는 사회형태를 무리, 부족, 추장사회, 국가로 구분하는데, 농경으로 인한 인구 증가는 점점 더 규모가 큰 사회로의 이행을 촉진했다. 이렇게 규모가 커지면서 계급이 형성돼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나뉘는 비평등사회가 탄생한다. 추장사회와 국가를 특징짓는 비평등사회는 개인이 엄두를 낼 수 없는 일도 해치우지만 한편으론 평민들에게서 빼앗은 것들로 상류층을 살찌우는 ‘도둑정치’의 기능도 갖는다. 대규모 사회는 복잡한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사회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거나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 가장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중앙집권화를 통해서 권력이 집중되면 권력자는 자신과 친척 및 주변사람들의 배를 불릴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이것은 현대사회의 여러 집단들을 보더라도 자명한 일”이라고 저자는 말하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장물 논란을 빚고 있는 정수장학회 문제도 그렇고, ‘은닉재산’으로 의혹을 받고 있는 시가 30억원 상당의 땅을 딸에게 증여한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나 내곡동 특검에 가족들이 줄줄이 소환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일가를 보아도 그렇다.


국가와 같은 대규모 사회는 중앙집권화될 수밖에 없고 또 이 중앙집권화는 도둑정치로 귀결되기 쉽다면, 진정한 문명과 새정치의 척도는 ‘도둑정치’와 어떻게 단절할 것인가이다. 그런 혁신의 기회를 우리는 잡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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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을 둘러싸고 지난 10년 동안 논란을 빚었던 영리병원이 결국 경제자유구역에 들어설 모양이다.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자, 지식경제부가 지난 4월 영리병원 관련 시행령을 바꾼 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10월29일 시행규칙을 관보에 실어 공포하는 ‘편법’을 통해 영리병원을 허용한 것이다. 정부가 돈벌이를 위해서는 아무나 투자할 수 있도록 한 주식회사형 병원이 들어설 수 있도록 ‘합법적인’ 물꼬를 터준 셈이다. 


정부는 그동안 영리병원이 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며, 경제자유구역에만 있는 만큼 국내 의료제도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왔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영리병원은 외국의료기관이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실제 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아니다. 국내 기업이 지분 50%까지 투자할 수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지난해 3월 영리병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투자자도 일본 다이와 증권에다 삼성증권, 삼성물산, KT&G다. 영리병원은 100% 내국인 진료가 가능하다. 전체 의료진의 10%만 외국 면허를 가진 의사를 두면 된다. 외국인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국내기업이 운영하고 우리나라 의사가 내국인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는 국내 영리병원인 셈이다.  


경제자유구역에만 들어선다고 하지만, 경제자유구역은 인천 송도뿐 아니라 이미 전국 6곳에 이른다. 더욱이 경제자유구역에만 들어선다는 보장도 없다. 병원협회는 외국자본에만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면서, 전면적인 영리병원 허용을 부르짖고 있다. 


영리병원 도입 추진 일지 (출처; 경향DB)


정부는 영리병원을 도입해야 서비스 질도 높아지고,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갖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 일단은 의료비 부담이 문제다. 국책연구원인 보건사회연구원은 개인병원의 20%만 영리병원으로 전환해도 연간 1조5000억원의 의료비가 오른다고 전망했다. 지방 중소병원 100개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난 30년 동안 우리나라 의료복지를 지탱해온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영리병원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자기 마음대로 의료비를 비싸게 받을 수 있다. 영리병원의 고용효과도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정부 방침에 대해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은 일제히 전면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김용익 의원은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설립을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여당이 반대하면 통과가 어렵다. 설사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정부가 허가를 내준 다음이어서 기나긴 소송전을 예상할 수 있다. 현 정부의 계획을 저지하려면 대선후보들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부작용 우려가 큰 영리병원 도입을 막기 위해 후보들이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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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 중학교의 87.8%와 고교의 88.9%가 학교규칙(학칙)에 색깔이나 모양, 길이 등 두발 제한 규정을 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중·고교의 90%가량이 지난 1월 공포된 서울학생인권조례(인권조례)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조례는 12조(개성을 실현할 권리)에 ‘학교장과 교직원은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복장, 두발 등 용모에 대해 규제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두발에 관한 한 인권조례는 이미 무력화된 셈이다. 학교 사회가 아직도 ‘학생 통제’를 구실로 인권과 자유, 자율 중시라는 세계적,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인권조례가 제대로 시행되지도 않고 무력화된 것은 정부의 방해 때문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올해 초 조례를 공포하고 일선 학교에 학칙을 개정하라고 지시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조례 무효 소송을 내고 장관 권한으로 그 지시를 정지시켰다. 이어 4월에는 학생과 학부모, 교원의 의견을 들어 두발 등에 관한 사항을 학칙에 기재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쳤다. 그러자 교육청과 교과부 방침 사이에 혼란을 겪던 학교 현장의 흐름은 두발 규제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시행령 어디에도 ‘두발을 규제하라’는 내용은 없다. 대부분의 중·고교가 인권조례를 포기하고 교과부의 ‘의중’에 따른 것이다. 일선 학교의 학생 인권 의식이 그만큼 낮다고 볼 수밖에 없다.


서울 혜화역 앞에서 중고등학생들의 두발 자유화를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인권조례의 무력화에는 곽 교육감 사퇴 후 교육감 권한대행을 맡은 이대영 부교육감의 책임도 크다. 교과부가 지난달 8일 개정된 시행령에 따라 학칙이 제·개정됐는지 파악하라는 공문을 보내자 그대로 일선 학교에 내려보냈다. 교과부 공문이 사실상 학칙의 두발 규제 확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 뻔한 이상 시교육청으로서는 ‘인권조례에 맞게 제·개정하면 된다’고 부연설명해야 했다. 더욱이 인권조례는 시행되고 있고 교과부가 낸 조례 무효 소송은 진행 중이므로 일선 학교의 조례 준수를 지도·감독해야 옳다. 그러나 이 부교육감은 어이없게도 “상위법인 시행령을 따르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최근 일부 학교에서는 교문 지도가 강화되면서 ‘두발 가위질’이 되살아나고 있다 한다. 무엇보다 두발 규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학생으로서는 다시 살아난 ‘가위질 폭력’에 좌절할 수도 있다. 학생 지도가 조금 어렵더라도 변하는 세상의 가치에 적극 적응할 필요가 있다. 사실 두발 자유화가 상징하는 학생인권은 진보만의 가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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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와 기강해이가 밝혀질 때마다 습관적으로 은폐해온 군의 병폐가 다시 한번 확인됐다. 이번엔 군내 권력기관으로 군림하는 국군기무사령부가 도마에 올랐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엊그제 경찰에 성매매 혐의로 적발되자 민간인 지인들을 대신 형사처벌 받도록 한 국군기무사령부 장교 2명을 성매매 및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군 검찰에 넘겼다. 기무사는 지난 5월 내부 감찰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내부에서 봉합했다. 보스를 보호하기 위해 부하가 대신 사법처리를 받는 마피아 집단을 연상시키는 범죄 내용도 문제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기무사의 특권의식이다. 기무사는 지난 5월 내부 감찰에서 이들의 범죄행위를 적발하고도 ‘대외노출 시 부대 위상이 실추된다’는 이유에서 수사기관에 넘기지 않고 소속부대로 복귀시키는 인사조치만 취했다고 한다. 부대예산 4500만원을 횡령한 부사관과 음주운전으로 경찰에 적발된 영관급 장교 역시 같은 이유로 사법처리를 받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국군 기무사령부 (경향신문DB)


군이 이처럼 부끄러운 자화상을 스스로 공개한 것은 물론 아니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어처구니없는 비행과 은폐 기도가 백일하에 드러난 뒤에야 조사에 나선 것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뒤늦게 진상을 확인했으면서도 이를 묵인한 지휘부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림으로써 한계를 노출했다. 조사본부는 배득식 사령관이 은폐를 최종 승인한 것이 “적법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소속 간부들의 위법사실을 내부종결하겠다고 사령관에게 보고한 대령급 중간간부들만 징계위에 회부했다. 그나마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이 아니라 기무사 자체 징계이다. 은폐를 내부종결토록 묵인한 사령관에게 징계권을 쥐여준 셈이다. 배 사령관은 김관진 국방장관의 구두 경고를 받는 데 그쳤다. “일반 부대였으면 당연히 지휘관이 엄중하게 처벌받아야 마땅한 사안”이라는 지적이 군 안팎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군 병사의 ‘노크 탈북’에서 드러났듯이 잘못을 축소·은폐하는 군의 병폐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특히 부대 위상을 운운하며 치부를 감추려 한 기무사령관의 ‘정무적 판단’은 죄질이 나쁘다. 그렇지 않아도 이명박 정부 들어 사령관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부활하면서 기무사의 정치색이 더욱 짙어졌다는 지적을 받아온 터이다. 기무사이기에 소속 간부들의 비행을 감추고, 기무사이기에 처벌에 예외를 둔다면 군율은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일벌백계만이 군의 고질적인 은폐 악습을 고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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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조상들은 술을 신성한 음식이고 복을 주는 징표로 여겼다. 관혼상제를 지낼 때 술이 없으면 의식을 행할 수 없었다. 조상을 기리는 차례나 제사상에 술을 올리는 기원은 <삼국사기>에서 확인된다. 술은 신에게 바치는 음식이고, 음복(飮福)을 매개로 인간은 신과 하나가 됐다. 미사를 집전하는 천주교 신부들이 포도주를 마시며 예수의 피(희생)를 기리는 의식도 예수와 성직자의 합일을 의미한다. 혼례에서 신랑신부가 술을 나누며 앞날을 맹세하는 의식도 ‘합일’의 상징이다. 흔히 “술이나 한잔하자”는 말도 ‘너’와 ‘나’의 내적 동질화를 이루자는 ‘친밀함’을 담고 있다.


조상들은 또 새해 첫 보름날 아침에 술을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고 믿었다. <성호사설>이나 <청장관전서> 등 고서에도 술을 마시면 기혈 순환이 잘되고 묵은 병이 낫는다며 음주를 권장한 기록이 나온다. 손님을 맞거나 떠나보낼 때 인정의 표시를 술로 대신하는 민속례, 어른 공경을 위한 주도(酒道) 등은 생활규범이 된 지 오래다. 


술은 이렇듯 ‘백약지장(百藥之長)’이지만 ‘광약(狂藥)’이기도 하다. 술기운을 빌려 하고픈 말을 고백하는 취중진담(醉中眞談)은 ‘백약’에 가깝다. 그러나 살인이나 성폭행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후 “술김에 저질렀다”고 술 탓을 하는 정신나간 행위는 지탄받아야 할 ‘광약’ 수준이다. 이쯤 되면 취중무천자(醉中無天子·술에 취하면 하늘 아래 두려운 사람이 없음)의 뻔뻔함이 극에 달한 셈이다. ‘광약’ 방지를 위해 미국·캐나다·호주·프랑스 등에선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의 음주행위에 대한 규제법이 시행되고 있다. 


충북 경찰과 주민들이 유흥가를 돌며 주폭 척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환경부가 국립공원을 포함한 79곳의 자연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음주로 인한 실족 사고 등을 줄이기 위해 금주지역을 지정하는 규제안이다. 그러나 등산객들은 “높은 산에 오르는 이들은 술을 먹지 않는다. 설사 술을 마신다 해도 산의 정상까지 단속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한다. “국가가 과도한 금주정책을 추진할 경우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무시하고 개인의 기본권인 마실 권리까지 간섭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과잉규제 대신 계도 차원으로 그치기엔 이 땅의 애주가가 과다한 걸까. 조만간 음주 등산객을 단속하기 위한 주(酒)파라치, 산(山)파라치 등 신종 일자리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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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 | 소설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육지에 다녀왔다. 거문도 동창의 아들 결혼식이었다. 이제는 이런 경우가 한 번씩 생기는데 여자 동창의 아들딸들이 결혼 적령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혼식은 동창회를 겸해서 치러졌다. 초등학교 동창회는 물만 뿌리면 환하게 되살아나는 말린 꽃다발 같은 것이다. 역시나 말린 꽃 같은 중년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그리고 생생하게 피어났다.


내가 다닌 곳은 거문도 안에서도 동도초등학교였다(거문도 안에는 초등학교가 지금도 네 군데 있다). 빼깽이라고 불렀던 생고구마 잘라서 말린 것, 허연 버짐 자국, 건빵 배급, 왕자표 고무신, 커다란 꽃무늬가 그려진 책보자기 따위가 그 시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2학년 때 임시교사로 오신 여선생님은 우리반 아이들을 개울가로 데리고 가는 것으로 첫날 수업을 대신했다. 차가운 냇물에 손을 담그게 한 다음 매끈한 조약돌로 아이들 얼굴과 손에 묵어 있는 때를 벗겨내 주신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더러웠고 그날만큼은 아주 깨끗해졌다. 가르치려는 선생님은 많았지만 깨끗하게 만들어주셨던 선생님은 평생 그분 한 분이셨다.


무엇보다도 그 시절 아이들은 콧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하루 종일 누런 콧물이 흘러내렸던 내 친구 하나는 덕분에 별명이 ‘코부리’였다. 양쪽 소매로 콧물을 닦아낸 탓에 입은 옷마다 번들번들 코팅이 되곤 했다. 다른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체구보다 더 큰 나뭇짐을 지고, 물동이도 지고, 밭을 매야 했던 내 여자 동창들은 민망할 정도로 짧게 쳐올린 단발머리에 디디티 뿌려진 머리카락, 그리고 팔이나 다리에 늘 두 군데 이상은 염증을 앓고 있었다. 그 섬 소녀가 자라서 처녀가 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다가 이윽고 결혼을 시킨 것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자 동창은 한눈에 봐도 우아했다. 주름과 새치는 나이보다는 원숙과 품격을 보여주었다. 순한 눈빛, 조심성 있는 행동. 친구들도 하나같이 다르지 않았다. 세월이 잘 흘러갔다는 증거이다.


5년 전 대선이 끝났을 때 연도를 헤아려보았다. 다음 대선이 되면 쉰 살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게 마치 제로에서 시작해서 50년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만큼이나 까마득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어느새 오십이 되었고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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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오랜만에 노동계 현안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냈다. 이채필 노동부 장관이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국정감사 기간에 제기된 문제에 대한 향후 조치 계획을 설명하면서다. 이 장관은 철탑 농성 사태로 번진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해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과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을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현대차를 비롯해 중노위의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법정 최고액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겠다고도 했다. 노조 파괴 컨설팅 사태에 대해서는 고발된 사업장뿐 아니라 의혹이 있는 사업장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하고, 노무사와 노무법인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해 ‘노무사 사건수임 신고제’를 도입할 뜻도 밝혔다. “노사관계의 암세포가 부당노동행위”라며 이의 근절 의지를 분명히 하기도 했다.


이채필 노동부 장관 (경향신문DB)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강도 높은 근절 의지를 밝힌 이 장관의 말이 진정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반가운 일이다. 최근 노조 파괴 컨설팅 사례나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등에서 보듯이 사용자의 불법행위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제 경향신문은 노조 파괴 공작이 진방스틸·청주교차로 등 중소사업장에까지 뻗쳐 있는 정황을 보도했다. 대법원 판결과 중노위 결정을 무시한 현대차 불법파견에 항의해 노동자 2명이 14일째 철탑 농성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노동부가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 것은 다행이지만 실효성 있는 조치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런 사태를 부른 근본 원인이 노동부가 사용자의 불법·탈법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데 있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최병승·천의봉씨의 철탑 농성 사태는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과 중노위 결정을 회사 측이 무시한 데서 비롯됐다. 최씨는 7년에 걸친 소송 끝에 지난 2월 대법원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았다. 사법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 현대차는 최씨 및 최씨와 같은 조건에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것이 도리다. 노사 문제를 떠나 이 장관의 말대로 “(사법부에 의해) 결론이 난 사안에 대해서는 당연히 이행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의 의무”인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는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2015년까지 300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를 신규채용 형식으로 정규직화하겠다는 입장만 고수해왔다. 그마저도 어제는 노조와 교섭하기도 전에 400명 신규채용을 강행할 뜻을 밝혀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노동부가 진정으로 사용자의 불법행위를 엄단할 의지가 있다면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부터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검찰 지휘로 2년 넘게 하고 있는 현대차 불법파견 조사부터 조속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 장관의 말이 단순히 현 국면을 모면하려는 립서비스가 아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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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남 여수시 회계과 8급 공무원 김모씨(47)가 3년간 76억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 지역주민을 허탈하게 하고 있다. 말단 공무원이 거액의 공금을 빼돌릴 수 있도록 방치한 자치단체의 회계관리와 인력관리 방식, 그런 일을 조기 차단하지 못한 감사 시스템의 부실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아내가 사채를 빌려 돈놀이를 하다 수십억원의 사채를 제때 갚지 못하자 2009년 7월부터 공금을 빼돌리기 시작했다. 상품권 회수와 소득세 납부, 급여 지급 과정에서 관련 서류를 위조하는 등의 치밀하고 지능적인 수법을 사용했다. 그동안 여수시 회계과는 전남도의 정기감사와 시의회의 행정사무감사, 시 자체 감사 등 10여 차례 감사를 받았지만 김씨의 공금 횡령 사실을 찾아내지 못했다. 감사원의 감사에서도 적발되지 않았다면 김씨의 범행은 끝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경향신문DB)


가장 큰 문제는 여수시의 회계관리 시스템에서 찾을 수 있다. 일반·특별회계는 상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전국 공통의 지방재정전산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으나 김씨가 맡은 ‘세입·세출외 지출’ 부문에는 수기(手記) 방식을 택했다. 김씨는 상급자가 전산시스템으로 전환할 것을 수차례 독려했으나 “수기가 더 빠르고 정확하다”며 수기 방식을 고집했다 한다. 여수시가 회계 분야에 7년 이상 근무한 김씨를 순환근무시키지 않고 ‘회계 전문가’라는 이유로 계속 같은 업무를 보게 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가의 탈을 쓴 도둑에게 곳간 열쇠를 맡긴 꼴이기 때문이다. 전남도와 여수시 등 자치단체 차원의 감사가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뤄져 김씨의 범행 사실을 잡아내지 못한 것도 큰 문제다. 결과적으로 자치단체가 김씨의 범죄를 방조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수시 공금 횡령 사건은 전국의 자치단체에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무엇보다 회계관리 시스템을 정부가 권장하는 전산시스템으로 바꾸고 횡령 사고 등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회계 업무는 복수의 공무원이 맡도록 하고, 회계 담당자는 순환근무제를 철저히 시행해 회계 부정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인력 확충이나 외부 전문가 활용 등을 통해 자치단체의 감사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자치단체의 자금 흐름을 추적해 비리를 조기 적발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번 김씨 사건 관련자와 책임자에 대해서는 일벌백계 차원에서 엄중문책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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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윤정 문화부 차장


 

“노벨상이 조선에 온다면 누가 받을까.”


“이불 속에서 활개치기로 주마고 하지 않는 노벨상의 예선(豫選)은 쑥스러울 듯하여 그만둡니다만, 우선 이학상을 타도록 힘쓰십시다.”


질문을 한 이는 일제시대의 대표적 문학잡지인 ‘삼천리’의 편집자이고, 대답한 이는 소설가 염상섭(1897~1963)이다. 이 설문은 1930년 1월호에 실렸다. 이뿐 아니다. ‘삼천리’ 1936년 4월호는 “조선문학의 세계적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물었고, 작가 이무영은 “어느 사람의 어느 작품을 어느 나라의 어느 사람의 어느 작품과 비교하느냐”고 반문하면서도 굳이 답하자면 “민촌(이기영), 현민(유진오), (박)화성, (이)효석, 춘원(이광수), (김)동인, (염)상섭”이라고 꼽는다. 


 이런 사실로 미뤄볼 때 우리 문학이 노벨상을 염원한 역사는 적어도 1930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문학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한국(조선)문학이 세계의 인정을 받는 날, 곧 노벨상을 받는 날을 꿈꾸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01년 만들어진 노벨문학상은 국가가 아니라 작가에게 주는 상이다. 그럼에도 작가 개인의 수상은 그가 창작하는 모국어의 영광이라는 점에서 소속 국가의 영광으로 받아들여졌다. 뜻 있는 이들이 아무리 노벨문학상을 국가 간 올림픽으로 여기지 말자고 해도 수상을 향한 꿈과 열망은 쉽사리 식지 않는다.


노벨상이 작가 개인에게 한정되기 힘든 이유는 그 역사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상이 만들어진 20세기 초반은 강대국의 제국주의와 약소국의 민족주의가 맞서던 시대이며,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수단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자결과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고유한 정체성과 문화를 만들어내야 했다. 문학은 그 중심에 섰다. 자연스럽게 한 민족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그 문화를 이해하는 지름길로 여겨졌다. 각 민족국가의 작품들을 골라서 구성한 ‘세계문학’은 무지개처럼 인류의 다채로운 정신세계를 보여준다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다.


중국 작가 모옌 (경향신문DB)


올해 노벨문학상도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났다. 특이한 대목은 동아시아 작가들의 경쟁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의 무라카미 하루키가 줄곧 유력 수상후보로 거론됐으나 영광은 막판에 급부상한 중국 작가 모옌에게 돌아갔다. 무라카미도, 모옌도 한국에서는 매우 잘 알려진 작가다. 무라카미는 천문학적인 책 판매량에도 한번도 한국에 오지 않았지만, 모옌은 지한파로 일컬어질 만큼 자주 내왕했다. 그의 편안한 인상과 소탈한 면모는 노벨상 수상작가의 근엄하고 진지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모옌의 수상이 의외라는 듯 일부에서는 스웨덴 한림원이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화가 난 중국을 달래려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논리는 납득이 안된다. 그보다는 누가 민족문학의 대표자로서 적합한지가 관건일 것이다. 고향을 배경으로 작품을 쓴 모옌은 일찌감치 감각적인 메트로폴리탄이 된 무라카미보다 훨씬 유리하다. 일본에서 ‘공항서점용 작가’로 폄하되던 무라카미가 몇 년 사이 후보로 거론되면서 일본의 학자, 평론가들은 그의 작품에서 ‘일본적인 것’을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다.


한국문학이 ‘민족문학의 대표 작가’를 갖지 못하는 가운데 국내에서 들리는 소식은 우울하다. 지난해 소설 출간종수는 전년도에 비해 19%가 줄었다. 출간부수가 아니라 출간종수가 줄었다는 건 시장상황에 밀려 아예 출간을 포기했다는 뜻이다. 최근 베스트셀러(한국출판인회의) 집계에서 20위에 든 한국소설은 김연수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 유일하다. 현재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시행하는 문학나눔사업도 앞으로 문학 전문가들이 책을 선정하는 대신 시민들의 신청을 받는 쪽으로 바뀐다는 소식도 들린다. 문학의 위축은 큰 흐름이다. 단, 상황을 이렇게 내버려둔다면 노벨상의 꿈도 함께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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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지역 전체 목수들에게 적용되는 임금 협약을 한번 만들어보자!” 지난 6월25일부터 1주일간 파업을 벌였던 대구지역 건설노동자들이 여름 내내 외쳤던 구호다. 건설노조가 이런 주장을 내놓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있었다. 2000명에 달하는 대구지역 건설노동자 중 조합원은 400명. 그러나 비조합원들은 임금 협약이 적용되지 않아, 조합원보다 1만5000원가량 낮은 일당을 받는다. 따라서 모든 목수들에게 동일한 임금 협약을 적용한다 함은, 비조합원의 임금 인상폭이 조합원보다 높아야만 가능하다.


대구건설노조는 이를 위해 1년 가까이 새벽부터 건설 현장을 누비며 선전과 교육, 토론을 진행했다. 비조합원들에게 “이번에는 모든 건설노동자가 뭉쳐보자”며 설득을 반복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굳게 닫혀 있던 비조합원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400명이던 조합원 규모는 파업 돌입 시점에 550명, 파업 기간에 700명으로 늘더니, 파업이 끝난 뒤에도 줄기차게 늘어나 1000명을 넘어서게 됐다.


 파업 결과 기존 협약보다 일당을 1만3000원 올리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기존 협약을 적용받던 조합원은 1만3000원이 올라가지만, 새로 가입한 조합원은 기존에 차별받던 1만5000원까지 합해 2만8000원 인상이 이뤄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희생과 헌신으로 노조를 지켜왔던 고참 조합원들의 임금 인상폭이 가장 낮았지만, 이 합의는 무려 90% 가까운 찬성으로 가결됐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었던 걸까?


“(비조합원과) 일당만 1만5000원 차이가 나고, 조합원은 투쟁을 통해 각종 권리를 누린다. 그러다보니 노동자들 사이에 격차와 계급이 생겨난다. 조합원들은 어느새 현장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돼버렸다. 이렇게 가다가는 열악한 조건의 비조합원에게 둘러싸여 고립되고 말 것이다. 고립을 탈출하는 길은 뭘까? 조합원을 확대하고 모든 건설노동자에게 똑같은 임금 협약을 적용시키자. 조직화에 모든 강조점을 두었고 고참 조합원들도 잘 이해해 주었다.


파업을 이끈 대구건설노조 지부장의 설명이다. 애초 노조는 일당 2만5000원 인상을 요구했지만, 절반의 성과에 만족할 조합원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구건설노조 조합원들은 자신보다 열악한 미조직 노동자에게 손을 뻗어 단결을 확대하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올해 임금 인상폭은 높지 않지만, 영리하게도 이들은 1000명으로 늘어난 조직력으로 내년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챈 것이다.


세간에 ‘귀족노조’라 비난받아온 대기업 노조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아무리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한 성과라 항변해도, 날로 늘어가는 비정규직에게 둘러싸여 고립은 심화되고 있다. 올해 단체교섭에서 따낸 ‘돈’만 봐도 최저임금 노동자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니 말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들이 송전철탑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DB)


대법원 판결조차 지키지 않는 현대차에 맞서 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30m 송전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벌인 지 열흘이 넘었다. 법도 무시하는 거대 재벌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지금이야말로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귀족’이라는 오명을 벗을 중요한 기회다. 사복경찰이 공장 안에서 비정규직 지회장을 강제 연행하자 곧바로 항의와 잔업 거부에 나선 것은 훌륭한 출발점이다.


“불법파견·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다시 한번 비정규직 파업에 나설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본의 대체인력 투입을 함께 저지해달라! 정규직·비정규직의 단결을 확대하자!” 고공 농성 철탑 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호소하고 있다. 길게 보면 이 싸움은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절실한 문제이다.


이웃한 현대중공업에서 관리직 희망퇴직이 시작됐다.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가 곧이어 현대차와 전 산업으로 확대될 것임을 노동자들도 직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 옆에서 일하는 비정규직과 어깨를 겯고 정규직 전환을 이뤄내는 것이야말로, 더욱 단결된 힘으로 자본의 위기 전가에 맞서는 영리한 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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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옥 | 경기대교수·국가보훈학


 

우리나라의 보훈대상자는 6·25 전몰·전상군경 등 15만명에서 점차 확대돼 2012년 10월 말 현재 215만명(유가족 포함)에 이르렀고, 제대군인(의무복무자 포함) 지원 등 업무영역 확대로 재향군인회, 호국보훈단체 등을 포함할 시에는 1000만명을 상회한다. 보훈업무의 범위는 국가보훈대상자를 넘어 제대군인, 재외동포, UN참전국(용사) 등 국외까지 확대되고 있다.


러나 국가보훈처 업무는 정부조직 원리상 부(部)나 원(院)으로 격상돼야 적합함에도 국무총리실 소속의 처(處)에 머물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가보훈 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나라의 상징적 업무를 일반 사회복지대상 중 하나로 치부하는 현 정부의 형태로 인해 과거 정권 때보다 국민대통합 기능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UN참전용사 전사자 명비 앞에서 묵념 (경향신문DB)


 그 원인은 국가보훈처장이 국무위원으로서 국무회의에서 발언권, 의결권 및 부서권 행사와 독자적 부령권 발령을 통한 정부 내 소관사무의 독립성을 보유하여, 행정각부와 관련된 정책에 관한 협의·조정권 행사 및 지방자치단체 등과 업무 조정·협조처리가 안되는 한계계에 있다. 그러다 보니 관련된 위임사무 부여 및 지방정부의 장에 대한 지휘감독권 행사에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국가보훈처의 위상 격하가 국가유공자에 대한 홀대로 인식해 왔으며, 이러한 이유 등으로 국가보훈처를 ‘부와 원으로의 승격’요구는 보훈단체 및 보훈대상자들이 가장 많이 건의한 사항 중에 하나였다. 국가보훈처가 부나 원으로 격상돼야 부령발령권 등 권리·의무에 관한 사항에 대해 법령상의 영향력 행사가 가능해져 국보훈정책의 실효성 확보가 가능해진다. 


외국의 경우 미국·캐나다·호주는 장관급이며, 대만의 경우는 부총리급으로 조직되는 등 강대국일수록 국가공동체 유지·발전에 필수적인 국가기능을 다하고자 국가에서 끝까지 책임을 지고 물질적 보상과 함께 정신적 예우를 병행하고 있다.


당국과 정치권은 오늘날 냉전시대의 다원화된 사회에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주고 국가방향에 정체성과 통합을 주는 동기화는 국가보훈 기능만이 가능하다는 점을 직시하고, 국가보훈처를 국격에 맞게 국가보훈부나 ‘원’으로 격상시켜 보람과 사명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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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 칼럼니스트

 


동거녀를 죽여 냉장고에 넣어 버리다니…. 냉장고. 얼마 전 극장에서 본 <피에타>가 생각났다. 자살한 아들을 묻지 못하고 시체를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아들을 죽게 한 놈에게 물리적 복수보다 더한 ‘사랑의 복수’를 하고 나서 자신이 짠 스웨터를 입힌 후에야 아들을 묻을 수 있었던 그 엄마의 눈물도. 현실 속의 이 냉장고 사건의 범인도 <피에타>란 영화를 봤다면 나처럼 울었을까? 잘 모르겠다. 아무튼 <피에타>는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자들도 사랑 때문에 운다는 걸, 그들도 결국 한없이 약하고 가여운 인간 중 하나임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 정도면 우리 시대를 극단적으로 반영한 최고의 비극영화가 아닐까? 이탈리아 고전 영화 <길>처럼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악마의 아들’ 같은 자를 관객으로 하여금 진심으로 동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렇게 고독하고 무서운 인물들을 만들어 내는 이 세계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길>보다 더 높은 점수를 <피에타>에 주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그만큼 <피에타>는 나로 하여금 지독하게 비극적인 예술이 관객에게 선사하는 엄청난 밀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는데 어떤 영화보다 그 후유증이 깊어서 더욱 더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피에타>를 보고 난 다음날부터 운전할 때마다(특히 로드 킬을 당한 동물들의 흔적을 볼 때마다 어김없이) 그 무시무시하게 시적이고 비정한 엔딩 신을 떠올렸다. 죄 지은 자가 스스로 죄 없는 자의 트럭에 매달려 온 세상에 피를 뿌리며 아스팔트에 뼈와 살이 갈리는 고통으로 속죄함을 암시하는…. 그 엄청난 육체적 고통을 어렴풋이 상상하며 나는 여러 번 몸서리를 쳤다. 그때 알았다. 김기덕 감독의 비극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건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 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 같은 거였고 그 때문에 우리는 그를 통해 셰익스피어 못지않은 비극의 정수를 경험했다는 걸.


그런데 재밌게도 우리 커플이 <피에타>를 보고 모처럼 친정집에 간 날은 그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이 웃은 날이기도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가족들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어릴 땐 빨간 머리 앤처럼 차라리 고아가 되어 ‘언덕 위 초록지붕 집’에 입양 가는 꿈을 꿀 정도로 내 처지를 불우하게 여겼고, 다 자라서는 ‘가족이란 누가 안 보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기타노 다케시의 잔인한 농담을 인용하며 조롱 같은 위안을 일삼기도 했다. 그 사이 처지가 달라진 건 없다. 그런데 볼품없으면 없는 채 다들 무사히 거기 살아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위안이 됐다. 관객으로 하여금 느닷없이 겸손하게 자기 처지를 감사하게 만드는 비극 예술의 효과를 단단히 본 셈이다. 


(경향신문DB)


그래도 그렇지, 그날따라 집안 분위기가 말도 못하게 밝고 명랑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다 싸이 때문이었다. 오십이 다가오는 배불뚝이 오빠가 ‘강남 스타일’을 틀어 놓고 “원래 내 건데 싸이가 도용했다”며 자기만의 원조 말춤을 추자, 이제 막 첫사랑의 실연을 조용히 견디고 있는 여대생 조카부터, 방금 전 망해 먹은 호프집 사업에 의기소침한 올케, 허리 수술로 약간 다리를 저는 칠십 노모까지 어찌나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지 모처럼 가족들과 박장대소하며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 방법론은 다르지만 비극과 희극의 목적은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두려움과 열등감을 조장하고, 확대 재생산해 우리를 점점 작아지게 만드는 이 빌어먹을 세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눈을 부라리며 그 얼마나 힘겹게 살고 있나? 그런 와중에 함께 비극으로든 희극으로든 같이 울며 웃으며 공명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냥 좋은 정도가 아니라 일종의 정화이며 힐링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요,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게 인생 아니던가? 따지고 보면 결국 우리 모두가 한배를 타고 있는 셈이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 시대 최고의 비극과 희극을 선사한 김기덕 감독과 싸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진다. 


(경향신문DB)


그러고 보니 김기덕 감독과 싸이 사이에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겉보기에 풍요롭고 자유분방한 집안에서 자란 싸이는 선천적으로 대중친화적 명랑함을, 가난하고 권위적인 집안에서 자란 김기덕 감독은 예술지향적 고독을 요구하는 성장과정을 거친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은 제도권이 요구하는 질서와 교양을 따르지 않았다는 거다. 둘 다 우리 사회가 떠받드는 엘리트들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엄밀히 말하자면 김기덕 감독은 국졸이고 싸이는 고졸이다. 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니다. 아예 안 봤다. 대신 자기 경험과 직관에 의지했다. 김기덕 감독이 공장 생활에 주목한 것처럼 싸이는 나이트클럽에 드나들면서 방종하게 살던 시절에 얻은 경험을 모티브로 삼았다. 그리고 각자 장르는 다르지만 자신의 독특한 삶의 경험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내가 만난 인터뷰이 중에서 제일 웃겼던 인간이 싸이였고 가장 눈물을 많이 보인 사람이 김기덕 감독이었다. 그들이 저마다 다르면서도 같은 방법(다른 건 싸이는 자신의 천성을 즐거움으로, 김기덕은 고통으로 삼았다는 거고, 공통점은 오랫동안 그 천성에 채찍질을 가했다는 것)으로 각자 원하는 걸 성취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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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 대중문화평론가 herland@naver.com


 

아줌마가 돌아왔다. 올해 TV드라마에서 가장 인상적 활약을 펼친 인물군은 단연 아줌마다. ‘시월드’와의 인위적 가족관계에 의문을 제기한 며느리 차윤희(<넝쿨째 굴러온 당신>), ‘아내의 자격’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그 이전에 ‘여자이자 인간’임을 선언하는 윤서래(<아내의 자격>),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재평가하게 한 고봉실(<고봉실 아줌마 구하기>)까지. 


이들은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역할에 한정되며,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뭉뚱그려진 기혼여성들의 익명성과 타자성에 맞서 부단한 실명의 전투를 벌인 올해의 캐릭터들이다.


 여기에 최근 ‘대한민국 아줌마’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전업주부의 고충을 고하는 또 한 여성이 가세했다. KBS 월화드라마 <울랄라 부부>의 나여옥(김정은)이 그 주인공이다. 


<울랄라 부부>는 여옥이 가부장적 남편, 이기적인 시댁, ‘미친 사춘기’ 아들까지 다 챙기느라 지쳐가면서, 결국 주부 파업을 선언하고 남편의 외도에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긴 과정을 1회 안에 담아낸다. 그 속에서 여옥은 마치 앞선 드라마들 속 기혼여성의 수난기를 압축해서 연기하는, 극중극 배우처럼 그려진다. “내가 쌍팔년도 드라마에 나오는 식모야?” 항변하는 그녀 자신의 대사가 말해주듯이. 


(경향신문DB)


여기까지가 도입부였다면 본격적인 드라마는 그 다음부터다. 이 작품은 여옥이 기혼여성 수난담의 압축 재현을 통해 ‘대한민국 아줌마’의 대표성을 획득한 바로 그 자리에서 그녀와 남편의 위치를 뒤바꾼 ‘부부 간 성역할 체험극’이라는 2막을 시작한다. 


그동안 여옥이 아줌마의 자리에서 겪어온 수난과 차별이 이제 고스란히 수남(신현준)의 몫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남편들이 맨 정신으로는 받아들일 리 없는 이 상황을 강제 실행하게 하는 것은 ‘영혼 체인지’라는 판타지 장치다.


<울랄라 부부>는 그동안 여러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해진 이 설정을, 부부 간 젠더(사회적 성) 관계 역전을 통해 기혼여성의 사회적 조건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장치로 사용한다. 특히 영혼보다는 육체의 교환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체인지 이후 극의 초점은 주로 수남이 체험하는 ‘여성의 몸’이 얼마나 불편한가에 맞춰져 있다. 여옥의 몸을 입은 수남이 느끼는 불편함은 반대 상황의 여옥이 겪는 어색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수남이 갑갑해하는 브래지어처럼 여성 신체에 대한 사회적 제약에서 비롯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남이 체험하는 여성 신체의 제약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 문화를 드러내는 꽤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대표적 예가 6회 호텔 룸메이드 면접신이다. 지배인 자리에서 해고된 수남은 재기를 노리고 메이드직에 지원해 그동안 쌓은 전문지식을 펼쳐 보인다. 그러나 면접관의 눈에 비친 그는 단정치 못한 옷차림과 남자처럼 쩍 벌린 다리가 거슬리는 아줌마일 뿐이다.


이 면접신은 남자일 때의 수남에게는 능력이었던 전문지식과 당당함이 아줌마의 몸일 때는 감점 요인이 되는 모순적 상황을 통해, 여성에게 파편적 기준을 요구하는 성차별적 시선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이 역할극 효과는 한 발 더 나간다. 첫 회에서 철저하게 분리되었던 호텔과 가정이라는 주무대 역시 뒤바뀌면서 두 공간에서의 노동이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점이 밝혀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비가시적이던 여성들의 가사노동이 가시화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가령 수남이 고객에게 제공하던 서비스는 그가 가정에 돌아와 여옥에게 제공받던 노동과 매우 유사하게 그려진다. ‘고객들은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보살폈다’며, 호텔서비스를 가사노동자 입장에서 해석한 여옥의 하소연은 그 점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결국 <울랄라 부부>의 역할극을 통해 드러나는 사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지닌 두 노동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시선의 차이다. 임금을 받는 공적 노동과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노동, 그리고 지배인, 요리사, 메이드 등 전문 인력이 분담하는 노동과 오로지 주부가 전담하는 노동의 차이. 


극중 완벽한 지배인이던 수남이 평소 “집안 일도 일이냐”며 폄하하던 가사노동에 무능하기만 한 모습이 단순한 웃음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이처럼 가사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환기시키는 역할극 효과 때문이다. 물론 이 극에는 여러 불안요소도 존재한다. 여성의 고통을 체험하기 위한 수남의 임신이 단순한 재결합의 계기로 그칠 수도 있고, 부부가 서로의 성역할 차이를 이해하며 화해하는 개인적 차원의 해결로 결말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이 작품의 시선만큼은, 적어도 국내 최초 여성 대통령 배출을 꿈꾸는 여당 선대위원장의 ‘솥뚜껑 운전’ 인식 수준보다는 진보적일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올해 유독 큰 목소리로 돌아온 아줌마들의 귀환을 환영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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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 | 전국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


 

지난 9월27일 노동자 5명 사망, 18명 부상, 1359명 건강이상이 발생한 구미 불산가스 유출사고로 이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사실 유해물질에 대해선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문제만 심각하게 인식하는 수준이지 건설업, 제조업, 석유화학 등 각 사업장들에서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유해성 발암물질은 사회적 관심 밖의 영역이다. 


울산 미포, 온산 공단에는 471개 유독물 취급업체가 있고, 전국 유통량의 33.6%를 취급하고 있다. 액체 위험물은 전국 저장량의 35%에 달하는데, 지난 5년간 울산 국가산단에서 발생한 화재·폭발 사고만 188건이다. 구미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대부분 사람들이 ‘불산가스’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소방관들은 고작 호스로 물만 뿌려대는 정도였다. 그런데 더 큰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유형의 사고들이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불산가스에 고사한 나무 (경향신문DB)


 근로자 자신이 취급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만큼 위험한 발암물질인지도 모른 채 일을 하고 있는 사업장들이 전국에 부지기수이다. 2차, 3차 하청사업장으로 내려갈수록 유해성 물질의 유통경로조차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번 구미 불산가스 유출사고에서 더욱 분노를 사게 하는 것은 사고의 책임을 ‘근로자의 실수’로 인한 재해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업주가 지켜야 할 유해성 물질을 취급하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Material Safety Data Sheet)를 지침으로 만들어 놓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화학물질을 양도하거나 제공하는 자는 해당 노동자들에게 위험성을 주지시키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전 세계 5개 기관(국제암연구소·유럽연합·국립독성프로그램·미국 환경청·미국 산업위생전문가협의회)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작성된 발암물질 목록에는 총 1420종의 화학물질이 지정돼 있다. 유럽에서 사용금지된 물질을 우리나라 사업장들에서는 1000여개나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발암물질을 58종으로 보다가 얼마 전 노동계의 반발로 겨우 184종으로 늘렸을 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정부는 사업주들에게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면제시켜주는 등 계속해서 규제완화를 추진해 왔다. 심지어 중앙부처에서 관장해 오던 안전보건 영역을 아예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겠다”고 밝혔다. 선진국 진입 운운하기 전에 이제부터라도 각종 생산제품 및 건축물을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좀 더 환경친화적인 물질로 대체해야 한다. 아울러 대체물질 개발과 함께 유해성 발암물질 리스트의 체계적인 관리 및 실태조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 <이렇게>는 열린 지면입니다. 경향신문에 대한 비판, 제언 등 소재와 글의 형식에 관계없이 독자 여러분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사회 흐름을 짚을 수 있는 독자 여러분의 살아 있는 글로 충실히 지면을 꾸미겠습니다. 적극적인 참여 바랍니다. 글은 op@kyunghyang.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02)3701-1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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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들어오는 탈북자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작년까지 2000명을 웃돌던 탈북자들이 지난 9월 말 현재 1086명에 불과하다. 많아야 올해 말까지 1500여명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3000명에 육박했던 3년 전에 비하면 반토막이 된 셈이다. 참여정부 때만 해도 탈북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중국 베이징의 한국대사관은 탈북자 무풍지대로 돌변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탈북자 4~5명이 지난 7월 이후 국내에 입국한 뒤 더 이상 한국대사관의 문을 노크하는 탈북자들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한국행의 주요 통로였던 몽골을 통한 탈북자도 지난해 초부터 없어졌다. 중국·몽골·동남아 등 3대 탈북 루트 가운데 동남아 루트만 가동되고 있다고 한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 북한 인권 및 중국 내 탈북자의 조속한 국내 입국을 위해 강한 목소리를 냈다는 이명박 정부 말기에 탈북자 수가 줄어든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북전단 자유로 살포 (출처: 경향DB)


일각에서는 지난해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전후해 북한이 국경 통제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국경 통제가 1990년대 이후 상시적으로 강화되어온 것을 감안하면 그 자체가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 중국 내 탈북자 수가 격감한 가장 큰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별다른 대안 없이 한·중 양국이 2002년 이후 유지해온 탈북자 처리를 위한 ‘조용한 외교’ 합의를 깨뜨린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청와대는 북한 인권과 탈북자 문제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한 데다, 실효없는 국제화의 제스처까지 보였다. 지난 2월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강제북송에 항의하는 장기 농성이 벌어졌을 때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보내 공개적으로 관심을 표했다. 김영환씨의 전기고문 주장 당시에는 국제사회를 움직여서라도 해결할 듯이 요란을 떨더니, 어느 순간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그 결과 국내 정치적 효과를 보았을지 모르지만 임기 내내 줄곧 강조했던 북한 인권 및 탈북자 문제의 해결은 단 1㎜도 진전되지 못했다. 탈북자 수의 격감은 이 문제의 접근이 오히려 퇴보했음을 말해준다. 굶주림과 경제적인 어려움 탓에 국경을 넘어 중국 내에 체류하고 있던 탈북자들이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중국 내 탈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협상 상대는 중국 정부다. 이명박 정부는 그 중국 정부의 우려를 덧들였다. 중국은 부쩍 왕성해진 반북·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보면서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많아질수록 북한 정권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50년 만에 최악의 가뭄과 잇따른 태풍 피해로 식량사정이 더욱 어려워질 내년에는 중국으로 가는 탈북자들이 더욱 많아질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가 한·중 간 ‘조용한 외교’를 복원하는 동시에 중국 내 탈북자 처우 개선을 위한 실질적 노력을 경주하지 않는다면, 탈북자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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