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명태가 잡혔다고 한다. 강원도 고성 앞바다에서 12월 중순 이후 일주일째 매일매일 올라온다고 한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백, 수천 마리가 잡히고 있다.

예로부터 명태는 동지가 지나 장이 열린다고 했으니, 연말을 지나 1월까지 추이를 지켜보면 명태의 귀환 여부를 판단내릴 수 있을 것이다.

명태는 1990년대 후반부터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국민생선이라 불릴 정도로 흔했던 명태는 어느 날부터 금태가 되었다가 이제는 전량을 러시아에서 들여오는 남의 나라 생선이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 명태는 수입해서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러던 차에 거의 20년 만에 대량으로 명태가 잡힌다는 소식을 접하니 놀랍고도 반가운 일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다. 아예 머나먼 알래스카로 떠나버린 줄 알았던 명태는 어떻게 돌아왔을까. 명태가 계속 잡히길 바라는 마음만큼 그간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일 강원 고성지역 어민들이 죽왕면 공현진 연안의 수심 60~80m에 쳐 놓은 그물에 1340여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고성군 제공 지난 20일 강원 고성지역 어민들이 쳐 놓은 그물에 1340여마리의 명태가 잡혔다. 고성군 제공

명태의 어획량이 정점을 찍은 것은 1981년이다. 이 해에 잡힌 명태 중 절반이 성어였고 절반이 새끼였다. 그런데 마릿수로 보면 90%가 새끼였다. 일명 노가리. 노가리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면서 명태 어획량은 매해 줄었다. 마침내 2008년부터 어획량은 쭉 ‘0’을 기록했다. 나는 이 ‘제로’라는 수치가 충격이었다. 명태 한 마리가 한 해에 수십만개의 알을 낳고 죽을 때까지 120만개를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제로라니.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명태를 잡아왔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수온 상승을 원인으로 꼽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느 정도 자란 명태가 서식하는 동해 400~500m 수심은 오히려 0.5도 낮아졌다고 한다. 그러니 다시 화살은 노가리를 찢어 먹은 우리에게 향할 수밖에.

어머니 고향이 속초이고 어려서부터 명태와 그 부산물을 먹고 자라온 나는 명태를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 명태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렸다. 2014년부터 명태 양식 연구가 착수되었다. 수조에서 수정시킨 알이 치어로 부화해 자라는 걸 다큐멘터리로 지켜보며 설레기도 했다.

남해에서 씨가 마른 대구가 치어 방류 이후 다시 풍어를 이룬다는 소식은 명태의 귀환에 더욱 희망을 걸게 했다. 어획량으로 볼 때 대구와 명태는 세계 1, 2위다. 아마 지난 1000년간은 그랬을 것이다. 그만큼 종 유지가 탄탄하게 되고 있다는 얘기니, 명태 회유노선의 포물선을 강원 앞바다에 다시 살짝 걸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실제로 2015년 세계 최초로 명태 양식에 성공해 그해 12월19일 고성 앞바다에 첫 방류를 한 이후 정확히 3년이 지난 올해 겨울 벌써 2만마리가 잡혔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들이 방류한 명태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좀 더 자세히 따져보자. 어류도감에 따르면 명태는 보통 3~8년생이 알을 낳는데, 가장 많이 낳는 연령은 4~6년생이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들은 약 6개월 얕은 바다에서 자라다가 점차 깊은 바다로 간다. 1년 자란 명태는 15~20㎝, 2년 자란 명태는 25~35㎝, 3년은 35~40㎝, 4년은 40~45㎝, 8년이면 60㎝ 이상까지 자란다.

그렇다면 이번에 잡힌 명태는 몇 년쯤 자란 것이며 어느 정도 크기일까. 직접 고성에 가서 취재한 보도에 따르면 30㎝ 안팎이다. 겨우 2년 자란 명태라는 얘기이며 아직 산란할 시점에 도달하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 명태가 잡힌다는 소식이 들리자 너도나도 조업에 나서 벌써 2만마리나 잡아들였다고 한다. 실로 걱정스럽다. 잡힌 명태 중에는 표식을 부착해 방류한 개체도 4마리가 발견됐는데, 모두 이달 10일에 갓 방류한 것들이었다.

다행히 해양수산부가 올해 7월 내놓은 수산자원관리법 개정안이 내년 1월 중 통과되면 1년 내내 명태를 잡을 수 없다. 이후엔 종수 회복을 판단해 허가가 내려질 전망이다. 관건은 요즘 잡힌 명태 중 40㎝ 전후의 개체가 과거 방류한 것인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그래야 방류 이후 최소 1~2년 깊은 바다에서 자란 명태가 돌아온 것임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산란까지 한 게 밝혀지면 완전양식 및 종 회복 사이클이 정상 궤도에 오르는 것이니 말이다.

10여년 전 새벽, 을지로 골목 인쇄소에서 필름 검판을 마치고 출출한 속을 달래러 혼자 동태매운탕을 먹으러 갔다. 꽤 노포였는데 냉면 대접에 동태국이 벌겋게 담겨 나왔다. 간이 들어가 국물이 기름졌고 대파가 듬성듬성 크게 썰어진 국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였고 밖에는 눈이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그날 허전한 속을 달래준 진한 동태국 맛을 잊을 수 없다.

<강성민 |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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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내일부터 나는 마흔두 살이다. 사십대 중반의 길목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다. 나이 앞자리가 4로 바뀐 지가 어느덧 2년이다 보니 불혹이라는 말도 예사롭지 않게 이해된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세상 풍파에 연연하지 않고 의젓하게 살고 싶다. 사실 이 말은 무엇에 도전하기에는 이미 늦은 나이임을 인정하고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자,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체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마흔둘이면 자타공인 아재다.

그런데 오랜 외국생활을 정리하고 최근에 귀국한 동년배 친구는 나보다 훨씬 젊게 산다. 친구는 내게는 예전이었던 ‘사십대의 시작’이 기대된다면서, 이를 기념하고자 제주 올레길을 무작정 걸을 예정이라 했다. 느낌이 좋으면 해남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도보로 올라오겠단다. 내가 국토대장정은 젊은 애들이나 하는 거라면서 ‘우리 나이쯤 되면’이라는 추임새를 멈추지 않자 친구는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의 차이를 간단하게 설명한다. “나, 한국 나이 안 써.”

나는 1978년 9월생이고 친구는 11월생인데 한 명은 이미 사십대의 삶에 익숙해져서 느낌 운운하는 결정을 꺼리고 고작 2개월 차이인 다른 한 명은 인생을 자신이 만들면서 살아가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다. 친구의 정신상태가 남달라서가 아니라, 그가 태어난 세월이 딱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40세1개월, 친구는 자신의 나이를 살아온 기간만큼 계산했고 그 숫자에 맞춰 살았다. 새해가 되어도 40세2개월에 불과하니 스스로를 삼십 대라고 착각할 만하다. 하지만 1978년에 태어났다면 동시에 새해 첫날부터 마흔둘이 되는 이상한 전통에 길들여진 나는, 몇년 후에는 “내일모레면 반백년을 살았으니”라고 말할 태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게 아니라, 숫자가 곧 자신이더라. 한국식 나이로 살다 보니 너무 빨리 늙는다. “곧 마흔이네”라는 말을 한국 나이 서른여덟이 되는 해의 첫날부터 했었다. 진짜 나이는 36세4개월에 불과했는데 말이다. 삼십대의 정점에 있을 시기였지만 8이라는 숫자의 무게감 때문에 스스로를 사십에 밀착시켜 이해했다. 26개월 군복무를 마쳤을 때가 고작 21세8개월이었는데, 왜 그렇게 애늙은이 흉내를 내며 학교를 다녔는지 모르겠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 나이는 34세7개월에 불과했는데, 서른여섯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참으로 두려움이 많았다.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 나이’는 사라져야 한다. 동양에서는 숫자 0의 개념이 달라서 나이를 다르게 계산했다는 설도 있지만 중국과 일본이 전통을 무시했기에 이를 폐기했겠는가. 찬성론자들 중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1세가 된다’는 너무 진지한 해석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역사가 곧 인권투쟁의 시간이었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를 듣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재미난 것은 원래 나이보다 ‘더’ 셈하는 법을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찬성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나이 어리면 사람 무시하는 사회에서 하루빨리 ‘높은 숫자’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세태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학생다움’의 규율에 짓눌린 이들에게 ‘이십대’는 자유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2000년 12월에 태어난 이들에게 내일은 18세1개월이 아니라, 청소년보호법의 대상에서 벗어나 음주와 흡연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만 19세, 아니 스무 살이다. 스물이 되고 싶었던 간절함 덕택에 당연히 사십도 오십도 빨리 된다. 나이가 어리면 무시당하는 세상에 적응하고자 우리는 다 함께 ‘더’ 나이가 들어버렸다. 이 셈법이 아니었으면 나는 이제 갓 사십대에 접어든 팔팔한 사람인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년인 내일이 되더라도 마흔두 살이 아닌 40세4개월로 스스로를 바라볼 생각이다. 새로운 10년을 기념하는 여행을 떠날 채비나 해야겠다.

<오찬호 | <진격의 대학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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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비가 와서 바깥은 경극의 배경과 잘 어울렸다 찻잎을 물에 띄울 때 고요의 눈썹은 내가 그린 듯 가깝다 먹구름과 싸우면서 제 높이를 슬슬 키웠던 능선 그림자도 한 움큼 불러 물에 담갔다 물은 언제 뜨거워지는가 물이 쉽게 끓기나 할까마는 물이 펄펄 끓으면 영혼은 현실과 마주친다 양철 주전자가 물의 온도에 접근하면서 마침내 쇠붙이까지 물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주둥이에서 쇄쇄 김이 올라오고 때마침 뚜껑은 들떠서 십 리쯤은 도망갈 기세이다 물도 주전자도 뜨겁다고 뜨거워 못 견딘다고 이제 너희가 외쳐라 송재학(1955~)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비가 오는 날이어서 날씨는 마치 경극의 극적인 장면을 보는 듯하다. 찻잎을 우려 차를 마실 때에 시인은 푸른 찻잎에서 고요의 가느스름한 눈썹을 본다. 찻잔에는 능선의 그림자도 비쳤다. 시인은 맑은 물을 찻주전자에 부어 끓인다. 끓으면서 물과 주전자가 격해지는 것을 바라본다. 찻주전자 주둥이에서는 김이 몰아쳐 나오고, 뚜껑은 들썩들썩하며 곧 말처럼 멀리 달아날 기세다. 이 펄펄 끓는 물과 몹시 요동하는 찻주전자를 보면서 시인은 말한다. 뜨거워 견딜 수 없는 속내를 숨기지 말고 모두 털어놓으라고. “사물의 안에 원래 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발견 이상의 것을 시인은 해야 한다”라고 송재학 시인은 말한 적이 있다. 내년에는 다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을 잘 살펴야겠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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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돼지만큼 제물(祭物)로 많이 사용된 가축도 드물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추수의 신, 고대 그리스인들은 곡식의 신 데메테르에 공양물로 돼지를 바쳤다. 로마시대에는 돼지와 함께 양과 소를 산 채로 바치는 종교의식이 행해지기도 했다. 중국인들은 집에서 기르는 ‘육축’ 가운데 제사에 소, 양, 돼지 고기를 가장 중요시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다. <삼국사기>에 ‘고구려는 항상 삼월 삼일에 낙랑의 구릉에 모여 사냥하고 돼지와 사슴을 잡아 하늘과 산천에 제사한다’는 기록이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산돼지가 조선시대에 제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이유에서 꺼리는 경우도 있다. 이슬람에서는 돼지를 정결하지 못한 동물로 여겼다. 이슬람의 경전 <쿠란>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돼지고기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썩은 고기, 피와 함께 돼지고기는 금지된 음식이다. 이는 발굽이 없고, 되새김질을 하지 않는 가축을 금지하는 유대교 전통에서 왔다고 한다. 유대교에서는 소, 산양, 양 등은 먹어도 되지만, 발굽은 있어도 반추하지 않는 돼지를 금기 대상으로 삼았다.

돼지는 편견도 많다. 배가 불러도 계속 먹는다, 더럽고 지능이 낮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돼지는 일정한 양을 채우면 그 이상 먹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공간이 충분하면 잠자리와 배변 장소를 가릴 수 있고, 지능이 개보다도 높다고 한다. 돼지우리 주변이 습하고 더러운 것은 돼지의 땀샘이 발달하지 못해 수분을 소변으로 배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9년은 기해(己亥)년, 돼지의 해이다. 그것도 6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라고 한다. 동양문화권에서는 하늘을 뜻하는 천간(10개)과 땅을 뜻하는 지지(12개)를 조합해 그 해의 이름이 정해진다. 오행에 따르면 기(己)는 황색을, 해(亥)는 돼지를 뜻한다. 12년 전인 2007년은 정해(丁亥)년이었다. 정(丁)은 붉은색을 뜻하므로 ‘붉은 돼지의 해’였다. 당시 황금돼지의 해라며 열을 올렸는데 짝퉁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운수가 좋은 해라면서 출생률이 높았다. 진짜 황금돼지의 해가 온다. 풍요롭고 다복한 한 해가 되기를.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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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아직 영리병원이 없다. 의술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정서, 그리고 돈 없는 사람도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국 녹지그룹이 세운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건물을 완공하고도 개원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우려는 여전하다. 지난 6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정부에 규제개혁 과제를 건의하면서 제일 앞에 내세운 구호가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의료행위’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가? 초현대적 시설과 고가의 의료기기들, 그리고 ‘과잉진료’다. 전문성 없는 의료 소비자는 병원과 의사로 대표되는 ‘공급자’의 의도에 끌려가는 경향이 높고, 따라서 의료시장은 공급자가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구조다. 우리나라의 주의력 결핍 및 과잉행동장애(ADHD) 관련 진료 건수는 2002년 이후 10년 만에 4.5배로 증가했다. 한국 사람들의 집중력이 갑자기 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별난 성격 정도로 여겼던 것이 ‘질병’이 되었고, 대표적인 소아 질환이 어느 날부터 성인에게도 ‘치료를 요하는’ 병이 되었기 때문이다. 콜레스테롤이나 혈압의 ‘정상범위’는 지속적으로 좁아졌다. 콜레스테롤 정상치 기준을 10 내릴 때마다 ‘환자’는 1000만명씩 늘어난다고 한다. 영리병원 설립보다 더 유효한 이윤 극대화는 환자가 아니던 사람을 환자로 명명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의료사회학자 피터 콘래드는 이를 ‘의료화 사회’로 지칭한다.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던 증상이 질병이라는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고 치료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한다. 특별한 신체적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탈모가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증상’으로 정의된 것이 한 예이다. 노화로 인한 불가피한 신체적 변화들도 이제 치료의 대상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탈의료화’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미국정신의학회(APA)는 한때 자위행위나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했다. 이제는 의료적 처치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판정하여 질병 목록에서 제외시켰다. 질병으로 지정하는 과정이 전적으로 의학적 고민의 결과는 아님을 알 수 있다.

APA는 5년 전 ‘인터넷게임장애’를 “(질병으로 지정하기 위해) 추가 연구가 필요한 영역”으로 지정했다. 흔히 ‘게임중독’이라 부르던 증상이다. 그리고 올해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장애를 ‘국제 질병 분류’ 최신판(ICD-11)의 ‘중독성 행동장애’ 범주에 포함시킨다고 발표했다. 지난 5년 동안 어떤 추가 연구가 이루어졌길래 게임 플레이는 질병이 되고 게이머는 환자가 되었는가. 답을 찾기 위해 지난 5년 동안 발표된 게임 중독 관련 논문 869편을 분석했더니 단순한 결론에 도달한다. ‘질병으로서의 게임 중독’은 병리학적 근거에 대한 학자들의 합의가 아닌 권위 있는 기구의 결정과 하향적 확산에 의해 제도화되었다는 점이다. 게임 중독의 ‘병리적’ 정의에 동의하거나 이를 무비판적으로 전제한 채 행해진 연구의 비율은 2015년까지 50% 수준에 머무르다 APA의 결정 이후 70%로 증가했다. 올해에는 80%를 상회했다. 학술적 연구가 ICD-11을 유도했다기보다는, APA와 WHO의 결정이 학술담론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나마 연구결과들은 5년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논쟁적이다. 게임 중독의 원인 규명이나 치료를 위해서는 “무엇이 게임 중독인지” 진단 기준이 있어야 하지만 다수 연구자들이 동의하는 일관된 기준은 없다. ‘중독’ 유병률이 0.7~15.6%로 들쭉날쭉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탈모나 비만보다도 ‘질병스럽지’ 못하다.

과잉 의료화는 인간의 이상적 모습을 표준화하여 차이를 질병화한다. 콘래드의 지적처럼, 가슴 크기나 키가 작은 사람, 머리숱이 적은 사람, 학습 능력이 부족한 사람, 성욕이 크지 않은 사람에게도 모두 환자 이름표를 붙이게 된다. ‘게임 장애’의 질병화도 전형적인 의료화, 혹은 ‘환자 만들기’ 과정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개인’에 집중한다. 알코올 의존도가 높은 어른이나 산만하고 집중 못하는 어린이가 있을 때, 폭음을 부추기는 사회환경이나 적절치 못한 교육체계를 건드리기보다는 이들을 알코올중독이나 ADHD로 분류해 치료하는 방식이 더 간편하기 때문이다. 게임 중독의 주원인이 학업 스트레스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때 게임 행위를 중단시키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가?

영리병원의 설립과 게임 중독의 질병화는 한 원인의 두 결과이다. 둘 다 공공의 건강과 건전한 사회구조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는 거리가 멀다. 의학의 발달이나 의사 개인의 전문성과는 무관하게, 이미 우리는 과잉 의료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게임을 즐기면서도 잠재적으로 의학적 감시의 대상이 되는 시대.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윤태진 |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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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이목이 쏠린 곳은 국회였다. 유치원 3법은 어찌되는지, 김용균씨의 참담한 죽음에 대한 답은 찾을 수 있을지 가슴을 졸여야 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호소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기준을 확립하고,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여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하고 증진하자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 국가가 거듭날 계기를 만들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이 법이 개정되어 산업재해 사망이 줄어든다면, 그건 온전히 김용균과 어머니 덕분이다.

그동안 산업재해를 줄이려는 노력은 그저 무의미한 구호에만 그치곤 했다. 노동자가 알아서 조심하라는 투였다. 안전모를 꼭 쓰고 각종 안전장비도 잘 챙겨서 산업재해를 피해보라는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하청·재하청 업체의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만 돌리는 위험의 외주화가 만연한 상황에서 각자 알아서 주의만 기울인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산업안전을 위해 주의를 당부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구조를 바로잡지 않고 주의만 당부하는 건 산업재해의 원인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노동자에게 전가하고픈 자본의 고약한 심보가 반영된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교과서는 자아실현 운운하지만, 누구에게나 노동은 먹고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일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 정도로 무모한 사람도 없다. 노동자가 주의를 기울이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목숨 부지하기 어려운 고약한 산업현장의 구조다.

12월10일 밤. 김용균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참변을 당했다. 그날은 마침 세계인권선언 제70주년 기념일이기도 했다. 인권의 생일날, 인권은 저 깊숙한 탄가루 속에 처박혔다.

태안화력발전소는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공기업이다. 여기에도 낙하산이 잔뜩 내려앉았다. 상임감사와 비상임이사는 노무현 정권 시절 청와대 행정관이 맡고 있다. 비상임이사는 한 달에 한 번 회의에 참석하는 것만으로 연간 3000만원을 받는다. 김용균이 기본급 165만원에다 연장, 휴일, 야간 수당을 다 합해서 받은 돈은 월 211만원이었다.

김용균의 죽음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고맙게도 경향, 서울, 한겨레가 1면에 보도했다. 그렇게라도 젊은 넋을 달래고 싶었던 게다. 조선, 동아가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것과 크게 달랐다. 역시 신문이라고 다 같은 신문은 아니다.

그리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가족들이 싸움을 시작했다. 놀랍게도 싸움의 선두엔 어머니가 있었다. 김용균씨의 어머니는 자기 자식은 그렇게 보냈지만, 다른 자식들의 목숨은 지켜야 한다며 싸움에 나섰다. 어머니는 빈소를 지키면서도 집회나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도 했고, 언론에 출연하기도 했다. 국회를 찾아 농성 아닌 농성도 했다. 어머니의 피눈물 덕에 세상은 아주 조금 움직이려 한다.

돌이켜보면 매번 이런 식이다. 어디선가 문제가 터진다. 문제가 터진다고 매번 여론의 주목을 받는 건 아니다. 심지어 누군가 죽었고 어머니가 통곡한다고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도 아니다. 젊은이의 죽음, 어머니의 절규, 그리고 언론보도 등 몇 가지 극적요소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참혹한 죽음마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채 묻히고 만다.

세월호의 참극이 마라도 해상에서 침몰한 선박의 전원 구조로 이어진 건 고마운 일이지만, 매번 이런 극단에만 기댈 수는 없는 일이다. 1인당 소득 3만달러와 세계 10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가 이런저런 변수에 기대어 공동체의 진로를 가늠할 수는 없다.

방법이 없을까. 당연히 있다. 가장 확실한 대안은 노동조합에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아주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여전히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겨우 10% 남짓, 복지국가들의 90%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다. 노동조합이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산업재해나 노동조건에 있어 노동조합만큼 확실한 안전장치는 없다. 노동조합이 활성화되고 노동조합이 힘을 갖는다면, 그만큼 산업재해는 줄어든다.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조합은 가성비 좋은 안전장치가 된다. 조합비를 내고 노조의 이런저런 교육이나 행사에도 참여해야 하지만, 그런 약간의 비용과 수고의 결과는 엄청나다. 노동조합은 노동자가 사람답게 살 수 있느냐, 아니 한국적 현실에서는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도 협동조합이나 협회 등을 통해 자기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혼자서만 잘산다는 것은 사회구조가 엄연한 사회에서는 허망한 일일 뿐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주거비, 교육비, 통신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구조 때문이다. 이 구조를 깨뜨리고 살 만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은 조직된 시민의 힘밖에는 없다. 깨어 있는 시민이, 조직된 시민이 세상을 바꾼다. 아니 세상을 바꿀 유일한 근거는 깨어 있는 시민, 조직된 시민이다.

시민사회단체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더 많은 시민들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가들의 처우는 개선되어야 한다. 문제도 있고, 사실 답도 다 나와 있다. 문제는 그 문제를 지혜롭게 푸느냐 아니냐에 있다. 더 이상 극단적인 사건사고에 기대고, 어쩌다 주어진 비상한 상황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세상을 밝게 만드는 것이 누군가의 참혹한 죽음이어선 더더욱 곤란하다.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몫이 있다면,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단체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는 것일 게다. 이건 우리의 삶을 지탱해줄 튼튼한 진지를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게 기본이고, 여기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곧 새해다. 모두들 뭔가 다른 새해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변화는 대통령의 위대한 결단이나, 정치인들의 훌륭한 리더십 같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참여하는 시민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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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대구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 요청을 받고 스튜디오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PD는 말할 것도 없고 방송작가도 없이 아나운서 혼자 모든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구조조정한다고 인원감축을 해서 그렇단다. 아니 각자 전문 영역이 따로 있는데 어떻게 아나운서가 혼자 다 하냐고 다시 물었다.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경영이 어려워서 그럴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대구·경북 지역의 암울한 현실이 떠올랐다. 대구·경북 지역의 방송미디어 관련학과에서 매년 쏟아져 나오는 졸업생만 해도 수백명이다. 하지만 정작 방송사에서는 어떻게 하면 새로 좋은 사람을 뽑아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대신 있던 일자리마저 아예 없애버리고 있다. 국가는 대학에 취업률을 올리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시장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졸업해도 취업할 곳이 없는 지방대생들은 지역을 떠나 서울로 가거나 공무원시험에 몰두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한국 사회에는 기업가적 자아를 가지고 끊임없이 혁신하라는 정언명령이 지배했다. 논리는 이랬다. 모두 기업가적 자아를 가지고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끊임없는 혁신을 수행하라. 그러면 시장에 불안정성과 위험이 증대되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역동적인 불균형 상태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때 종래 방법을 완전히 혁신한 창조적 기업가가 나타나 한국 사회의 성장을 이끌어갈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라 한동안 벤처붐이 불었다. 누구나 자신의 자아를 기업가로 만들어 창조적 혁신을 계속해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가 횡행했다. 하지만 현실은 참담했다. 초기의 반짝 성공은 있었으나 결국 장기적으로 볼 때는 대개 실패했다. 그러자 기업들이 혁신 대신 손실 회피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급속한 외부환경 변화에 섣불리 대응했다가 실패할 수 있다. 이를 기회 삼아 성장할 수도 있지만, 성공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쉽게 이 행로를 선택할 수 없다. 손실을 회피하면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기업들은 기술 혁신을 위해 투자하는 대신 비용을 줄이는 전략을 취하기 시작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모든 영역이 이러한 생존주의 기업 원리를 따라 운영되고 있다. 핵심 조직에서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핵심 자원을 유지하고 보호할 수 있는 성과주의 연봉제를 실시한다. 반면 주변 조직에서는 유연한 관리를 한다며 비정규직과 계약직을 늘린다. 소수의 핵심 노동력만 빼고 대다수 노동력이 불안정성에 빠진다. 합리화를 기치로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구조조정은 자본에는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비용을 외부로 떠넘김으로써 사회 전체를 비합리적 상태로 빠트린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주변 조직에서 일하는 한시 노동자로 전락했다. 자신의 자아를 아무리 기업가로 설정하고 자기계발해 보아야 성공할 수 없다. 주변 조직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은 영원히 반복될 뿐만 아니라 승리해 보아야 잠시 생존을 연장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핵심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안정된 것이 아니다. 여럿이 하던 일을 혼자 하니 과로할 수밖에 없고 좋은 품질의 생산물이 나올 수 없다. 경쟁력이 더 떨어지니 또 인원을 줄이고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이러다가 온 나라가 기업가적 혁신은커녕 생존주의 습속에 젖어 살아갈까 두렵다. 생존주의는 기존에 있는 사람을 불태울 뿐만 아니라 새로 오는 사람의 진입을 막기 때문에 결국 한국 사회를 소멸로 이끌 것이다. 고용을 이윤 갉아먹는 단기 비용으로 저주하면서 인력 감축에만 몰두하는 게 무슨 기업가적 혁신인가? 이 나라에 진정 혁신이 활짝 꽃피길 바란다면 새로 오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환대하는 수밖에 없다. 새로 오는 사람은 새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와서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고용에 대한 이런 문화적 관점을 가질 때에만 희망이 보일 것이다. 지금처럼 청년이 비정규직에 시달리다 죽어나가는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 얼마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생존주의 나라에서 불타고 소멸되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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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청이 27일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관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과 두 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이다. 이들은 명품 등을 들여오면서 대한항공 회사 물품인 것처럼 속여 세관에 신고하지 않는 수법 등을 동원했다. 밀수액은 고가의 소파와 탁자·욕조, 반지·팔찌에서 그릇과 과일까지 1193품목에 걸쳐 7억2000만원어치나 된다. 이들은 ‘국내에서 샀다’거나 ‘선물 받았다’면서 증빙자료도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한항공 직원 2명도 총수 일가의 밀수를 돕다가 공범으로 함께 고발당했다. 총수 일가가 대한항공을 ‘밀수 조직’으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수백억원대 상속세 탈루와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9월 20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항공은 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이자 세계 굴지의 항공사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국적항공사이기도 하다. 모범을 보여야 할 총수 일가가 밀수까지 했다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진그룹 일가의 일탈은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에서 출발해 조현민 전 진에어 부사장의 ‘물벼락 갑질’과 이 이사장의 ‘직원 폭행’을 거쳐 밀수까지 확대됐다.

이번에 총수 일가의 밀수 사실을 앞다퉈 제보한 이들은 전·현직 직원들이었다고 한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인데 직원들마저 총수 일가에 등을 돌렸다. 그동안 직원들을 온당하게 대하고 일을 적법하게 처리했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총수 일가의 범죄 사실이 명백한 데다 안하무인식으로 회사를 경영한 후과다. 직원들은 그룹 총수 일가의 목불인견 행태에 더 이상 침묵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조사도 ‘조씨 자매가 인터넷쇼핑으로 산 명품이 해외지점에 배송되면 대한항공 1등석에 실었다가 직원이 세관신고 없이 국내로 반입했다’는 등의 구체적인 제보가 쏟아져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밀수임을 입증할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데도 총수 일가가 발뺌하는 것을 보면 죄의식조차 없는 것 같다.

사법당국은 일벌백계로 다스려 유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총수 일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는 데 급급할 게 아니라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또한 밀수가 장기간 이어진 데는 한진그룹과 세관 간의 커넥션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놓쳐선 안된다. 관세청은 유착 관계가 의심되는 세관직원에 대해 비위 사실이 확인돼 징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철저히 조사해 발본색원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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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경향신문의 같은 지면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겠다고 나선 이유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생애 첫 해외여행을 기대하며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10만8300원에 구매했지만 아이의 병원 일정이 출국 하루 전으로 잡혀 가지 못하게 되었다. 여행사에서는 1만8000원을 환불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그러느니 차라리 타인에게 양도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했다. 1) 대한민국 남성일 것, 2) 그의 이름이 김민섭일 것, 3) 두 사람의 여권에 표기된 영어 이름의 철자가 모두 같을 것, 이었다. ‘섭’이라는 이름이 SEOP, SEOB, SUB, SUP 등 다양하게 쓰이는 것을 염두에 두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평범한 이름으로 태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페이스북의 개인 계정과 경향신문에 “김민섭씨를 찾습니다, 후쿠오카 왕복 항공권을 드립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에 이른다.

‘김민섭씨 찾기 프로젝트’로도 알려진 이 일도 어느덧 만 1년이 지났다. 그래서 그 후의 이야기를 간단히 기록해 경향신문의 독자들께도 알리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글을 올린 지 3일 만에 나와 정확히 10살 차이인 1993년생 김민섭씨가 나타났다. 사실 포기하고 있던 즈음이었다. 기다림 끝에 나타난 1993년생 김민섭씨는 자신이 휴학생 신분이며 졸업전시비용을 준비하기 위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어째서 1년에 1000만원 내외의 등록금을 내면서도 졸업을 하기 위한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여행을 가기에 가장 적합한 김민섭씨가 나타났음을 알았다.

항공권 양도를 위한 절차를 밟는 동안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행히 김민섭씨가 아니었다. 자신을 고등학교 교사라고 소개한 그는 다음과 같은 정중하고 다정한 제안을 해왔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는 형편이 어려워 항공권을 지원해 주어도 여행을 갈 수 없을 만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김민섭씨도 항공권 외의 다른 비용이 부담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결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가 숙박비를 부담해 드리고 싶습니다.” 두 사람을 연결해 드리고, 나는 “김민섭씨를 찾았습니다”라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축하의 댓글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했던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1) 저에게 12월31일까지 유효기간인 후쿠오카 그린패스권(일일 버스 승차권)이 있어요. 저는 어차피 올해 다시 갈 일이 없을 테니 등기로 보내드릴게요. 2) 저는 와이파이 렌털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김민섭씨가 꼭 우리 회사의 제품을 사용하면 좋겠어요. 3) 얼마 전 후쿠오카타워에 다녀왔는데 참 좋았어요, 입장권이 한 장 남아 있는데 보내드리고 싶어요. 1만8000원을 돌려받느니 차라리 이름이 같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항공비에 더해 숙박비, 교통비, 통신비 등을 후원하겠다는 개인들이 나타난 것이다. 나중에는 카카오에서도 스토리펀딩을 통해 그의 여행을 후원하겠다고 했고, 결국 여행을 다녀오고도 한 청년이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이 모였다.

공항에서 만난 대학생 김민섭씨는,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고 말했다. 저 사람이 나를 도와주지 않았을까, 저 사람 덕분에 내가 여행을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저 사람들이 잘되면 좋겠다고, 그렇게 수백번의 생각을 하면서 공항까지 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가 몹시 피곤해 보여 설레서 잠을 못 잔 모양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친구들과 준비하는 공모전이 있는데 여행을 가기 전 자신의 몫을 하느라 거의 밤을 새웠다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왜 수백명의 사람들이 이 청년의 여행을 도왔는지를 알았다. 지금도 내가 아는 많은 20~30대들이 취업 준비와 각종 시험들 때문에, 불편한 마음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한다. 1993년생 김민섭씨를 도운 많은 이들은 그에게서 주변의 평범한 청년을, 자신의 자녀를, 무엇보다도 평범한 스스로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가 여행을 잘 다녀오는 것은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김민섭씨는 나에게 “왜 작가님을 비롯해 수백명의 사람들이 저를 도와줬을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모두가 생각했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고 그의 여행을 도운 모두의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잘 다녀올게요. 그리고 언젠가 2003년에 태어난 김민섭씨를 꼭 찾아서 제가 여행을 보내줄게요”라고 말하고는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2018년, 나의 한 해는 어느 한 청년 덕분에 무척 행복했다. 그는 얼마 전 학사 과정을 수료했고, 취업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제 곧 2019년이다. 나는 여전히 그가 잘되기를 바란다. 그의 잘됨은 우리 사회가 잘되고 있다는 증거처럼 나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 역시, 잘되면 좋겠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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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허가를 해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 왜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연구윤리에 위배되어서 안됩니다!

- 실험 자원자들이 스스로 각서를 쓴다니까요!

- 다 소용없어요. 사망 사고가 나도 피해자가 증언할 수 없잖아요. 각서와는 상관없이 형사사건으로 경찰이 개입할 겁니다. 연구소 차원에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고요!

- …답답하네, 진짜. 그럼 어쩌라고요? 동물실험도 다 끝났어요. 안전성은 97%까지 확보했고, 사실상 절차 표준화 단계까지 왔단 말입니다. 지금 인체실험을 시작해야 예정대로 화성 선발대를 보낼 수 있어요.

- 그건 이미 관계부처 협의회에서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화성 선발대는 인공동면을 하지 않는 걸로.

- 뭐라고요?

- 애초부터 이번 화성 유인탐사 계획에 인간의 인공동면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거 모르셨나요?

- 그럼 왜 동물실험은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한 겁니까?

- 그야 당연히 선행되어야 할 연구니까요. 하지만 동물실험 단계가 끝났다고 해서 자동으로 인체실험으로 넘어가는 건 아니죠. 더구나 화성탐사 같은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더더욱 말썽의 빌미를 둘 수 없고요.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인공동면은 장거리 우주여행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2001 우주의 오디세이>나 <에일리언>, <인터스텔라> 등 숱하게 많은 SF에도 등장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개발될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복제인간이나 유전자 맞춤아기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 때문에 과학연구의 윤리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안이었다. 인공동면에 들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경우를 당연히 예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걸 알면서도 연구를 진행하는 건 곤란했다. 인공동면 기술이 완전히 검증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나올지도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최대한 인간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포유류 동물들로 선행 실험을 해서 위험 요소를 최소화한다 해도 그것이 인체실험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 인공동면 실험 자원자들이 빨리 연구를 진행하라고 1인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 그 사람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화성 이민에 목숨 걸었나?

- 그게… 우주여행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실업자들에게 인공동면에 들어갈 권리를 달라는군요.

- 뭐라고?

- 일자리가 없으면 먹고살기도 힘드니, 차라리 경기가 좋아질 때까지 인공동면을 하겠다고 합니다.

세계 최초의 시험관아기는 1978년에 영국에서 탄생했다. 만약 이 시술이 지금 시대에 연구되었다면 윤리 문제로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험관아기 시술은 착상에 실패할 것에 대비해서 여러 개의 배아를 만드는데, 이때 남은 배아들은 냉동되거나 폐기처분된다. 그런데 이 폐기 과정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살인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해야 하는 시점을 언제부터로 보아야 하는가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떤 종교에서는 이런 이유로 지금도 시험관아기 시술을 권장하지 않고 있으며, 1978년 당시에도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세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었다. 심지어 ‘시험관아기는 영혼이 없다’고 하거나 가족에게 저주의 편지를 보낸 사람들까지 있었다. 물론 이런 반응은 지나친 것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과학연구에서 인간실험의 윤리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이슈이다.

그렇다면 전망은 어떨까? 시험관아기 시술의 경우, 그 덕분에 전 세계의 숱한 난임부부들이 2세를 얻는 행복을 누리게 되었다. 즉 인간은 새로운 과학기술을 통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고 판단하면 기꺼이 수용하는 윤리적 상상력을 발휘해 왔던 것이다. 그러면 결국은 이와 비슷한 추세로 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인공동면이나 유전자 맞춤아기, 복제인간 등이 언제까지 금기의 영역에 남아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영원히 봉인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고, 빠르면 금세기 중반에 실현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중국에서는 얼마 전에 한 과학자가 유전자 편집 아기를 태어나게 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미 몇 년 전에 전 세계의 관련 학자들이 윤리적 문제로 시도하지 말자고 합의했던 것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라 중국 정부에서조차 강하게 비판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두 번 세 번 거듭되면 상황은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과학기술은 우리가 미처 짐작하지 못한 또 다른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만들어낼지도 모른다. 위 시나리오의 마지막처럼.

<박상준 서울SF아카이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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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강용주 보안관찰 면제’(경향신문 12월17일자) 기사를 보면 ‘법무부는 강씨의 주거와 직업이 일정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점을 고려해 공식 심사를 거쳐 보안관찰처분을 해제했다’고 쓰여 있다. 강용주는 1999년, 14년간의 감옥생활에서 풀려나자, 보안관찰 대상자가 되어 3개월마다 소관 경찰소장에게 어디 가서, 누구를 만나고, 뭘 했는가 등 소상한 동정을 ‘신고’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강용주는 동법이 이중처벌이자 재판받을 권리에 대한 유린이며 기본권에 대한 침해라며, 신고를 거부해 벌금을 부과받아왔다. 2016년에 신고의무를 위반했다고 재판에 넘겨졌으나, 법원은 올해 2월 ‘직업도 거소도 분명하고, 재범의 우려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보안관찰처분은 2년마다 무제한 갱신할 수 있어 무죄판결이 나와도 소송하는 동안에 2년이 지나버리면 검찰이 다시 갱신할 수 있다. 그러니 마치 바위를 밀어 올려도 정상 직전에 반복적으로 굴러 떨어져버리는 시시포스의 신화 같은 ‘영원한 형벌’인 것이다.

광주에서 태어나서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강용주는 개업의로서 생업에 지장이 없고, 광주 트라우마센터 초대 소장, 인권단체 ‘진실의 힘’ 이사, 국가인권위원회 홍보대사 등을 지낸 사회적 명사다. 처분을 갱신하는 것은 비상식적이고 악마적이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법무부는 이번에 강용주에 대한 보안관찰처분 면제를 결정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광주·전남에서는 150여 시민단체들과 정당들이 ‘5·18 고교시민군 강용주의 보안관찰 면제’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내는 법석을 떨고, 각 신문은 이 사실을 특별한 일처럼 일제히 보도하니, 나는 의아하기까지 했다. 처분 해제보다, 구시대의 반인권적인 보안관찰법이 버젓이 살아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 뉴스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보안관찰법은 국가보안법이나 간첩죄, 내란죄 등을 위반한 이른바 ‘정치범’에 대하여 ‘재범의 위험성을 예방하고 사회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보안관찰처분을 함으로써 국가의 안전과 사회의 안녕을 유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동법 제1조)고 표방한다. 근대 형벌은 인간의 사상이 아니라 행위에 대해서 과해지는 것이므로, 재범의 우려가 있다고, ‘사회방어’라는 미명 아래 죄 없는 사람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악법이다.

보안관찰법은 일제의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1936)에 그 기원을 두고, 유신시대에 일제가 발명한 사상전향제도를 본받아, 사상전향을 하지 않는 정치범들을 만기가 되어도 계속 구금하는 사회안전법(1975)에 계승되었다. 사상전향이란 혁명이나 개혁 등을 지향하는 정치행위가 사상이 불령하고 잘못했기 때문에 생기며, 그 사상을 포기하게 하면 사상범죄는 없어진다는 일본 검사의 엉뚱한 생각에서 1935년에 만들어졌다. 인간의 머리가 잘못돼서가 아니라, 사회의 현실이 잘못돼 사회에 대한 비판이나 개혁의 목소리가 일어나는 것인데, 일제 검사가 생각해낸 것이 나치 독일에도 없던 사상전향제도였다. 일제가 패망하자 미점령군사령부가 일본 군국주의의 가장 잘못된 제도로 치안유지법과 함께 무엇보다도 먼저 폐지한 법과 제도를 소중하게 계승한,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정부가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권이었다.

박정희가 암살되고, 유신체제가 붕괴한 다음, 사회안전법의 ‘보안감호’와 ‘주거제한’을 빼고, 관찰처분을 남긴 것이 보안관찰법이다. 그러나 관찰처분 자체는 재판도 거치지 않고, 피처분자들의 기본적 자유를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2월 법원의 무죄선고와 이번의 처분 해제는 보안관찰법 자체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여러 차례 이 악법을 없애라고 촉구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보안관찰법의 폐지·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 해제에 대해서 강용주는 ‘민주화된 이 세상에 아직 보안관찰법이 있다’고 알리는 구실은 했다고 하지만, 강용주가 살아온 용감하고 험난한 길에 비추어 볼 때 공권력으로부터 ‘위험성 없는 보통 인간’으로 인증받은 것에 만족한다면 너무 왜소해 보인다.

내가 강용주를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악명 높은 대전교도소에서였다. 5년간 엄격한 정치범 수용사동에서 여린 감수성과 명석한 두뇌, 투철한 투쟁정신을 가진 그와 고락을 함께했다. 출소 이후에도 내가 가장 아끼고 존경하는 후배로 관계를 맺어왔다. 그는 ‘구미유학생간첩단사건’ 공범 속에서도 구미에 가보지도 못한 하바리인데도 홀로 사상전향을 거부하고 가장 긴 징역을 살았으며, 한국 학생으로 예가 없는 비전향 장기수로 14년의 옥살이를 견디면서 권력의 온갖 탄압과 회유에 항거하여 사상전향과 준법서약, 반성문을 끝끝내 거부하여 싸웠다. 옥중에서 단식은 물론 헌법소원, 유엔 인권위원회에 대한 개인통보 등 갖은 수단으로 사상전향제도를 고발하고 폐지로 몰아넣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투쟁은 한국의 정치범 감옥 투쟁사뿐만 아니라 일본을 포함한 세계 옥중투쟁사에서 빛나는 위업을 이루어낸 것으로서 서준식 등 소수를 제외하면 예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처분면제조치의 취지는 잘못됐으며, 왜소해 보인다. 아마도 그도 내심 특혜적인 권력의 예외조치를 씁쓸하게 받아들이면서 해제 결정 후, 갈릴레오처럼 되돌아서서 “그래도 국가보안법이나 보안관찰법 같은 반인권적이고 반통일적인 법 자체가 문제다!”라고 뇌까렸을 것이다. 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총을 들고 전남도청 앞 전투에 참여하고 옥중 14년과 보안관찰 19년의 힘겨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의 바람은 평범하고 즐겁게 인생을 사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그렇지 못하게 한 세상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컸을 것이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괴롭고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면 보안관찰법의 묵시적인 용인이라는 전선이탈을 탓할 수 없다. 그를 외로운 처지에 몰아넣은 것은 우리 모두의 탓일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이 버젓이 위세를 떨치는 사회에 대해서 ‘촛불혁명’이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사람들의 의식을 얼마나 바꾸었을까 깊이 자성할 때가 아닌가.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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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라보라레(Laborare)’에는 ‘일하다’라는 뜻과 함께 ‘고생하다’라는 뜻도 포함된다. 수도승 ‘프란체스코 드 살’은 말하기를 “각자의 구두에 작은 돌멩이들을 집어넣은 뒤 그걸 신고 길을 나선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이라고 했다. 다들 발바닥이 얼마나 아플까. 어느 라디오 방송에선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인사말로 방송문을 연다. 찡하니 마음에 위로가 되는 멘트다. 고생 끝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들. 세밑 창가에 앉아 집으로 돌아가는 불빛들을 바라본다.

장 자크 상페의 <사치와 평온과 쾌락>에 실린 글귀를 저 꽁무니마다 달아주고 싶어라. “내 포부는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라오. 이렇게 겨울비가 내리는 날엔 정든 낡은 스웨터를 걸치고 지내면 좋지. 오래전부터 즐겨했던 음반들도 좋아. (중략) 언제나 똑같은 꿈을 꿔. 펠레가 상대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플라티니에게 공을 패스하지. 기차게 좋은 상황에서 내게 골을 넣으라고 다시 패스를 해. 나는 냅다 슛을 날려요. 그런데 비웃으면서 한 손으로 공을 막는 골키퍼는, 바로 내 마누라예요.” 가족들이나 가까운 친구가 믿어주고 지지해주고 위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생하고 와서도 정작 쉴 데가 없다.

하늘에 구름 떠가는데, 구름 속에 세계 최장기 고공 농성장. 파인텍 노동자들이 누리고픈 아주 소박한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 있다면 어서 지상에 내려와 흙을 밟는 일. 대지의 사람들과 국밥 한 그릇 나누는 일. 매번 국회의원들이 공을 가로막는 골키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 시절 고생한 모든 이들에게 평화가 찾아오는 그믐밤. 세상에 ‘고생 끝 낙’이 한 번이라도 있었으면 바라며 축복을 빌어본다. 축복이란 밥상에 초대하는 것. 노동하는 이들에게, 배고픈 이들에게, 정에 굶주린 아이들에게, 외로운 친구에게 같이 밥 먹자는 약속의 말. 인류의 성인들이 날마다 했던 똑같은 말. 같이 밥 먹자는 말. 수고하고 고생한 노동자들은 밥 먹을 자격이 충분해. 종교인이나 정치인들도 밥 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과 좀 식사자리를 같이하길. 침을 뱉고 멸시하며 무시하는 세계에서는 모두가 굶주리고 아플 따름이다. 서로들 세심하게 존중하고 귀담아들어야 한다. 수고한 손들을 매만지는 밤이 되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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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24세 김용균씨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이 기계에 끼여 숨졌다. 2년 전 19세 김모씨는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매년 평균 2000명이 넘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다치고, 병들고, 목숨을 잃는다. 한국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10만명당 7.9명으로 OECD 회원국 중 항상 1, 2위다.

국회에서 몇 개월째 잠자고 있던 산업안전보건법 전면개정안이 김용균씨 사망으로 다시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영계에서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하고 있어 연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그러나 현재의 산안법 개정안도 산재 사고를 줄이기에는 턱도 없다. 지난 10월 말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사업주에 대한 처벌 하한선이 빠지고 위험 작업 예외조항이 신설되는 등 누더기 법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제대로 노동자를 보호하려면 산안법에 반드시 다음과 같은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 첫째, 일하는 사람 모두를 보호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산안법의 보호대상에서 빠져 있는 택배기사, 배달원처럼 다양한 유형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비정형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 사각지대에서 사고에 노출되기 쉬운 경제활동 인구를 모두 포괄해야 한다. 유럽연합과 영국의 산안법도 법적보호대상을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둘째, 원청 사업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원청 사업주가 안전 조처를 해야 할 곳을 일부 위험장소에서 사업주가 지배하는 사업장 공간 전체로 넓혀야 한다. 현재 산안법에서 원청 사업주가 안전보건조치의무를 책임져야 할 사업 종류는 달랑 22개다. 위험 작업을 단순히 다양한 형태의 기계, 장소, 업무로 특정하기 때문이다. 스크린도어는 사고 당시 위험 작업에서 제외돼 있었고,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작업은 지금도 제외돼 있다.

셋째, 반복적 산재사망은 징벌적 의미를 더해 처벌해야 한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비슷한 사망 사고가 10건 이상 반복적으로 일어났다. 징벌적 규제가 있었다면 김씨를 보호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질환경측정회사 노동자가 샘플을 채취하다 웅덩이에 빠져 사망하자 영국 법원은 연간 매출액의 250%에 달하는 징벌적 벌금을 부과했다. 2007년 제정된 영국의 기업살인법은 벌금의 하한은 있어도 상한은 없다. 반면 한국은 반복적으로 사망사고가 일어나도 징벌적 규제가 불가능했고, 사례도 없었다.

넷째, 유해·위험한 화학물질을 제조·수입하는 자가 위험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기업이 영업 비밀 여부를 스스로 판단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비율이 60%가 넘었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는 자가 직접 정보(물질안전보건자료)를 작성하고 정부에 제출해 영업 비밀로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심사받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가 안전보건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 위험한 노동환경을 피할 수 있는 노동자의 권리다. 어떠한 불이익도 받아서는 안되는 실질적 권리여야 한다.

산안법 개정만으로 노동자의 안전을 온전히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고의 실질적인 책임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지게 하는 기본적인 원칙을 세워야 ‘안전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만들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악의적 사고를 막고 기업이 떳떳하게 책임을 지게 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국회가 이를 인지하고 하루빨리 통과시키기를 촉구한다.

<박동욱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환경보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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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여섯 평 남짓한 공간에 탁자 너덧 개와 작은 수족관을 들여놓은 해물뚝배기집 벽에 맨 처음 걸려 있던 안내판은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2% 부족한 맛’이었다. 조미료를 쓰지 않는다는 소신이야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었지만, 그래서 맛이 부족하다는 자신감은 처음이었다. 식당 주인은 주방에서 직접 요리를 했고, 간간이 배식구에 얼굴을 내밀어 손님들에게 인사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식당은 그 동네 맛집으로 소문이 나서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운 좋게 빈자리가 있어 다시 찾은 식당에는 새로운 안내판이 여러 개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음식을 나르는 아르바이트생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수족관에는 식당에서 절대 쓰지 말아야 할 금지어가 적힌 색종이가 붙어 있었다.

여기요, 저기요, 저희요, 아저씨, 아줌마, 이모, 고모, 삼촌, 사장님, 누나, 언니, 어이, 야, 아가씨.

식당에 들어가면 으레 튀어나오던 말들이었다. 그러니까 이 식당에서는 일하는 사람들을 터무니없는 지시대명사나 인칭대명사, 감탄사 따위로 부르지 말라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일하는 이들 앞가슴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이름을 부르는 게 어색해서 끝내 반찬을 더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 식당은 날로 번창하는 듯했고, 길 건너 제법 큰 자리에 2호점까지 냈다. 그리고 그 2호점 벽에도 똑같이 금지어와 일하는 이들의 이름이 씌어 있었다. 예쁜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단 이는 저녁 시간이지만, 손님이 없어 점심 메뉴가 가능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나는 괜한 호기심으로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곳에서 일하는 게 어떤지. 그는 은밀하게 말했다.

“이름 불러주라는 것도 좋고요, 최저임금보다 더 줘요. 실은 이번 달부터 사장님이 저는 조금 더 올려주셨어요.”

그의 밝은 표정을 보면서 이름표의 의미를 생각했다. 유별난 식당 주인은 일하는 이들이 그저 무수한 명사 중의 하나가 아니라 고유한 이름이 있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올 1년도 나는 이름을 알지 못하는 그저 한낱 명사로 불린 수많은 이들 덕분에 편안할 수 있었다. 저마다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을 그들에게 감사드린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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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는 90g의 쌀에 적당량의 물과 불을 가해 이빨과 턱의 부담을 한껏 줄일 수 있게 조리된 한 공기의 밥을 먹었다. 얼추 210g에 해당하는 양이다. 그 뒤 입가심으로 사과 두어 쪽을 먹었다. 배안에서 소화 과정을 거친 쌀이 되살아나 싹을 틔울 가망은 전혀 없겠지만 사과의 씨앗은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사과는 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달고 상큼한 과일에 투자하는 전략을 택했기 때문이다. 대도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디 ‘과일이 의도하는 바’를 가볍게 무시하면서 재활용봉투에 담아 씨앗을 내버린다. 하지만 여전히 나무 위에서 과일을 따 먹었던 먼 과거 조상들의 행적을 잊지 않고 자주 과일 진열대로 모여든다.

우리가 주변에서 보는 과일은 그 크기와 형태 및 색깔이 제각각이다. 그러나 과일의 다양성이 어떻게 생기고 유지되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2010년 플로리다 대학의 실비아 로마스콜로(Silvia Lomascolo) 박사는 씨앗을 퍼뜨리는 매개 동물에 의해 무화과(fig)의 다양성이 결정된다는 논문을 미국 과학원회보에 게재했다. 열대우림에 사는 약 90%의 나무는 씨앗을 퍼뜨리기 위해 숲속의 동물들에게 과일을 제공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에서도 과일을 맺는 나무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잔설 뒤로 알알이 붉은 산수유와 아직도 가지에 매달려 있는 감나무 까치밥을 보자. 달고 영양가 높은 과일을 먹은 동물들은 변을 통해 기꺼이 씨앗을 널리 퍼뜨린다. 생태학자들이 공진화(co-evolution)라 칭하는 현상이다. 이는 자신의 씨를 전파하는 매개 동물이 좋아할 만한 몇 가지 특성을 과일이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박쥐가 씨앗을 퍼뜨리는 파푸아뉴기니의 무화과는 새들에게 의존하는 무화과에 비해 향기 나는 물질을 훨씬 더 많이 만들어낸다고 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잠시 더 살펴보자. 후각도 시원찮은 데다 전반적으로 부리가 작고 이빨도 없지만, 새들은 매우 훌륭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빨강, 초록, 파랑의 세 가지 색을 혼합해 색상을 감지하는 삼색각(三色覺) 인간이나 아프리카 유인원보다 새들은 한 가지 색상을 더 구분하고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과일이 익었는지 판단하기 위해 새들이 시각을 선호할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일은 과연 어떤 성질을 지녀야 할까? 작고 부드러운 데다 붉거나 검은색으로 치장해 과일이 주변의 배경색에 비해 도드라져 보이면 좋을 것이다. 향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랬다. 새처럼 날개를 가졌지만 이빨을 가진 포유류 박쥐는 과일을 조각내어 씹어 먹을 수 있다. 게다가 야행성이라 밤에만 활동한다. 시각 장치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대신 박쥐는 섬세한 후각을 발달시켰다. 따라서 박쥐가 선호하는 무화과는 상대적으로 크고 이파리와 구분되지 않게 초록색인 경우도 많으며 줄기가 아니라 나무 몸통에 열매가 달려 있다. 그러나 무화과는 잎이 가득한 가는 줄기에서 목표물을 잃기 십상인 박쥐를 배려한 듯 소량의 알코올이 든 강렬한 향기를 산들바람에 흘려보낸다.

중남미 신대륙 유인원을 조사한 생물학자들도 동물과 식물이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이와 흡사한 사례를 발견했다. 이곳에 사는 원숭이들은 아프리카 구대륙 원숭이들과 달리 삼색각 눈을 진화시키지 못했다. 우리가 보는 세계를 그들은 무채색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따라서 남미에 사는 이들 원숭이가 색 대신 과일 향기로 그것이 먹기 좋게 익었음을 판단하리라는 사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약 1억3800만년 전 현재의 아프리카와 남미가 분리되고 난 뒤 아프리카 유인원들이 삼색각 시각을 진화시켰고 그 능력은 인간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기에 우리 인간은 가고 서라는 신호등을 구분하고 익지 않은 초록색 과일에 섣불리 손을 대지 않게 된 것이다.

일찍이 육상으로 진출한 식물의 조상들은 지금으로부터 약 3억년 전 고생대 석탄기의 습지에서 씨를 발명했다. 그 뒤 약 5000만년 후에야 비로소 과일이 등장했다. 씨가 가뭄과 추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식물의 소극적 대응이었다면 과일은 씨를 더 멀리까지 퍼뜨리기 위한 보다 공격적이고 영토 확장적 전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과일의 주된 전파자인 조류와 포유류가 정온성을 획득한 뒤 더 춥고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점도 그저 우연은 아닌 것이다. 자손에게 더 풍부한 영양소를 주어서 햇볕이 부족한 곳에서도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씨앗의 크기가 점차 커지는 방향으로 식물의 진화가 일어났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큰 씨를 만들기 위해서 나무는 더 커졌고 더 많은 에너지를 선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씨앗은 바람이나 작은 곤충이 멀리 퍼뜨리기가 어려웠다. 바로 이때 식물은 과일을 발명해 덩치가 큰 동물들을 유혹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과일은 우리 인류의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그 흔한 과일은 고사하고 210g짜리 햇반 하나도 없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한 젊은이의 죽음과 함께 우리는 또 안타까운 한 해를 더하고 있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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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서울시에서 ‘스몸비(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바닥신호등을 설치했다. 도로 바닥에 설치된 LED등에 녹색과 빨간색 불빛을 신호에 맞춰 표시해 교통사고 예방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횡단보도 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됐다. 스마트폰에만 열중하다 보면 차량이 가까이 오든,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든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스몸비가 보행자 교통사고의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거나 장애물에 부딪쳐 크게 다치는 경우도 늘고 있다. 편리한 생활도구가 ‘거리 위의 흉기’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보행 중 전체의 33%가 스마트폰을 사용했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전체의 26%가 스마트폰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마트폰을 보유한 초등학생 10명 중 4명이 보행 중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스몸비 관련 교통사고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이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도에서도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 자제 내용을 담은 조례를 공포하는 등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지만, 스몸비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정부와 각 지자체들의 적극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중국에는 아예 스마트폰 이용자를 위한 전용도로가 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보다 다른 보행자와 부딪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또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서는 응급시에만 예외로 할 뿐, 횡단보도와 도로 등에서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할 경우 벌금을 부과하는 법까지 시행중이다. 우리도 일각에서는 스몸비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보다 강력한 규제책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규제책 마련 이전에 사용자 스스로 보행 중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김은경 |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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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었다면 나와 친구를 했어도 좋았을 스물넷의 청년이 사회에 발을 디디자마자 산재의 희생자가 됐다. 이번 사고와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고는 2인1조의 근무 원칙만 지켜졌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어처구니없는 전근대적 재해다. 연간 9만명 정도 발생하는 산재 중 90% 이상은 사고성 산재이며, 도급이 잦은 건설업이나 제조업 분야의 영세기업 등에서 자주 일어나고 있다. 따라서 무분별한 하청으로 위험의 외주화가 되어버린 도급을 제재할 법령 마련이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정부가 28년 만에야 내놓은 안은 도급 금지 대상이 협소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현행법상 도급 인가 대상을 도급 금지로 규정한 것에 불과해 시행령 제26조를 법률로 상향한 것에 지나지 않을 정도다. 지하철 선로 및 승강장 안전문, 화력발전 및 화학물질을 수리·보수하는 등 위험성이 다분한 작업에 대한 도급 금지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

물론 정부안의 의의가 전혀 없지 않다. 변화된 고용구조에 맞게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배달종사자, 가맹점 사업자 소속 노동자로 보호대상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 선구안이 예리하지는 못했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에 전속성 여부를 따지면서 늘어나는 플랫폼노동자 수와 형태에 대응하기 어렵게 됐다. 배달종사자도 이륜자동차로 적용 대상을 제한해 개별 화물운송과 택시 종사자의 경우 보호를 받지 못한다.

무엇보다 탄식한 부분은 정부가 경영계의 반발에 못 이겨 산재 사망 처벌 하한형은 삭제하고, 징역형은 상향했으니 책임을 다했다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산재 사망이 반복된 까닭은 솜방망이 처벌 탓이 크다. 징역형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 평균 500만원 수준의 벌금형을 처분받는 데 그쳤다. 징역형의 상향보다 하한형 도입이 실질적인 처벌 강화에 가깝다는 것을 정부는 유념해야 한다.

<박인규 | 연세대 사회학과 2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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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와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시대를 지나, ‘군주민수(君舟民水)’의 경고가 끝내 현실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일어나서 배를 엎어버린 촛불의 물결이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소망을 담은 배를 새로 띄운 지 다시 1년, 교수신문은 ‘임중도원(任重道遠)’이라는 사자성어를 선택하였다. 비판이나 경고와는 달리, 우려 속에 여전한 기대가 담긴 말이다.

무거운 임무를 맡은 사람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기 마련이다. 더구나 누가 맡아도 호전시키기 어려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때이다.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말의 원출전인 <논어>는 그 요건으로 홍의(弘毅), 즉 넓고 굳셈을 들었다. 넓지 않으면 무거운 짐을 질 수 없고, 굳세지 않으면 멀리까지 견딜 수 없다. 넓기만 하고 굳세지 않으면 원칙과 기준이 무너져서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정립할 수 없으며, 굳세기만 하고 넓지 않으면 독선에 빠져서 사방에 적만 만들 뿐 안정적인 자리를 잡을 수 없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넓음과 굳셈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임중도원’은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한 말이다. 조선 후기 문인 윤기(1741~1826)는 넓고 굳세게 할 방법 역시 증자의 말에서 찾았다. 능력 있다고 해서 부족한 이들을 무시하지 않고, 다수의 지지를 받더라도 소수자를 존중하며, 있어도 없는 듯 꽉 차도 텅 빈 듯해야 넓어질 수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협 없이 원칙을 지키면서 주어진 작은 임무 하나하나를 완수하는 것이 굳세지는 길이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협소한 독선을 비판하고, 일각에서는 개혁 의지의 희석을 우려한다. 관대하게 포용해야 할 대상과 입장이 무엇이고 저버리지 말아야 할 약속과 바람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임중도원의 임(任)이 인(仁)을 이루어가는 일이라는 증자의 말을 상기한다면, 이 시대에 가장 고통스러운 이들이 누구인지 살피는 데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낮은 곳에 함께하고자 한 초심, 거기서 약간만 벗어나도 종착지는 천양지차로 벌어지고 말 것이다. 어디로 향하는 도(道)인지 성찰하지 않은 채 그저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달려가는 데에만 급급하면, 1년 뒤에 주어질 사자성어에서는 일말의 기대마저 사라져버릴 수 있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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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2018년이 저물어가는 요즘, 우울한 세상 속에서도 올해 봄빛 같은 이야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남북한 긴장완화에 관한 것이다. 4월27일에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어 남북의 두 정상이 군사분계선(Military Division Line·MDL)을 넘나들더니, 연이어 북·미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악수를 나누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그야말로 상상력의 폭을 넓혀주는 순간들이었다.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한다는 판문점선언에서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이다”라는 글귀를 읽던 날, 나는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정치적 구조변동이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도 햇살을 비출지는 어떤 철학과 방법으로 과정을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올해 남북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는 군사적 적대관계 개선, 남북경협의 발판 마련, 문화교류 등 다각도에 걸친 것이며 이들은 모두 서로 연관된 것이다. 예를 들면,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지뢰를 제거하고 군사 비무장지대(DMZ)에 있던 감시초소(GP)를 시범 철수하는 것은 군사적 사업이지만 동시에 문화적, 역사적 사업이기도 하다. 남북철도(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사업은 철도와 경제뿐 아니라 평화와 문화 사업이기도 하다. 철도의 별칭을 정하고, 역마다 그 역사를 고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업으로 인식한다면. 이런 견지에서 앞으로 남북경제와 문화협력에 관한 수다한 사업들은 기존의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에 보여줬던 정경 분리의 원칙을 훨씬 넘어서서 개별 행정영역을 뛰어넘는 통합적인 방법으로, 상호존중의 철학으로 다가갔으면 한다.

장소의 사회학에서는 특정한 공공기념물이나 장소는 관찰자를 어떤 역사적 기억과 연결시키고 어떤 역사적 체험으로 이끈다는 것을 말해왔다. 공공기념물에는 이미 어떤 역사에 대한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 담겨 있기에 회고적이자 예언적이다. 이런 견지에서 ‘군사분계선’에 세워진 푯말 1292개의 보존과 공공기념물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해방 직후 강대국 편의로 ‘38선’이 그어졌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군사분계선’으로 고착되었는데, 이 경계는 한반도 서쪽 끝 한강어귀 교동도에서 동쪽 끝 고성 명호리 해변까지 약 248㎞에 이른다.

MDL은 ‘민족’을 갈랐을 뿐 아니라 수없는 마을들과, 12개의 강과 75개 이상의 샛강, 181개의 우마차도로, 104개의 지방도로 등을 갈라놓았다. MDL의 푯말은 시멘트 기둥에 철판이 붙어 있는 형태로서 오랜 시간의 풍화로 그 소재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비록 이 푯말들이 거칠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이들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소중한 기억의 대상이다. 이 녹슨 표지판들이 70여년간 이 땅의 분단과 전쟁, 샛강과 동네의 단절과 연속을 증언하게 된다면, 우리를 과거와 현재, 역사와 나 자신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자로 거듭날 수도 있으리라. 1292개라는 안내 표지에 의지하여 우리는 길고 긴 ‘기억의 길’을 걸어갈 수도 있으리라. 그때가 되면 MDL이라 쓰고 ‘기억연결선(Memory Delivery Line)’이라고 읽고 싶다.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 역사와 사회이론가, 그리고 지역민들이 참여해 지점마다 적절한 이름과 개념을 만들고, 이야기를 발굴하며, 창의적 디자인을 찾아야 할 일이다. DMZ 지역에 올레길을 조성한다는 제안과도 연결되는 이 제안이 실현된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에 비견하는 특별한 아시아의 평화회복의 길이 될 것이다. 

사실 공공기념물의 장(場)은 치열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장이다. 현재에도 이념대립이 계속되는 한국의 포스트냉전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요한 것은 ‘제3의 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은 지역과 일상성, ‘아래로부터의 접근’이고, 여기서 국가건설과 평화협상에서 대거 배제되었던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는 매우 중요하게 보인다. 2000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통과된 1325 결의에 따르면, 전쟁 후 “평화 구축과정에서 여성들의 역할, 그리고 평화프로세스와 분쟁 해결에 있어서 취해야 할 젠더관점에 관하여 연구를 수행할 것을” 요청한다. 여기서 젠더관점이란 여성의 참여뿐 아니라 여성들의 입장, 체험, 감각을 수용하라는 것으로 읽는다. 남북의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 등장할 ‘민족’이란 더 이상 엘리트 남성의 얼굴을 해서는 안된다.

과정은 결과를 예언하게 만든다. 앞으로의 평화구축과정에는 다양한 인력들의 참여와 활발한 의사소통으로 탈분단의 사유를 실험해야 한다. 단기간의 개발이 아니라 공존과 공감, 놀이가 어우러지는 생태문화경제지리영성학으로 평화의 새 얼굴을 그려야 한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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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보름달이 겨울 하늘에 걸린 밤, 그 길을 다시 걸었다. 2년 만에 걷는 광화문광장 앞. 도로는 통제되었고, 깃발들은 나부꼈지만, 축제처럼 촛불로 환하게 밝았던 그때의 설렘은 없었다. 청와대로 향하겠다며 대열을 이룬 3000여명은 선도 차량의 사회자를 따라 외쳤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죽음의 외주화 중단하라!” “우리가 김용균이다, 문재인 대통령 만납시다!” 토요일이었고, 한 해 중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였고, 크리스마스 연휴가 시작되고 있었다.

스물네 살 청년, 김용균씨. 그는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2018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맞았었다. 12월10일 홀로 밤샘근무를 들어갔던 그날 밤, 그의 곁에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는 110만여명의 20대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들 중 한 사람으로 2019년을 맞았을 것이다. 지금은 한국서부발전의 하청업체인 한국발전기술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자신이 꿈꾸는 직장인 한국전력공사의 정규직으로 일하게 될 거라며 기숙사 방에 차곡차곡 쌓아둔 수험서들을 읽어나갈 시간표를 짰을 것이다. 운 좋게 신년 휴일이라도 얻을 수 있었다면, 경북 구미의 본가를 찾았을 것이고, 부모님이 객지에서의 회사생활은 할 만한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를 물으면 ‘일이 다 그렇지 뭐’라며 덤덤하게 웃었을 것이다.

그렇게 흐르던 김용균씨의 시간이 한순간에 멈췄다. 그리고 나는 이제 평생 모르고 살았을 한 청년의 존재를 안다. 작업복인 헬멧과 마스크를 쓰고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라고 쓴 손팻말을 든 그의 사진에서 나를 응시하는 듯한 두 눈동자를 뇌리에서 지우지 못한다.

12월 19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태안화력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故) 김용균 3차 촛불추모제 ‘청년 추모의 날’에서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아들의 직장 동료를 안아주고 있다. 우철훈 기자

김용균씨가 아니었더라면 충남 태안의 한국서부발전에서 내가 사는 수도권에 전기를 공급한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을 것이다. 이 겨울, 단 한순간이라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난방이 되지 않고, 더운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고장난 시스템에 분통을 터뜨리겠지만, 그 시스템이라는 것이 저절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라 김용균씨와 같은 누군가의 노동이라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아들의 일터를 둘러본 어머니는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살인병기에 내맡기겠냐”며 오열했다. 내가 누리는 일상의 평탄함이 매일 살인병기에 빨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삶과 죽음의 외줄타기를 하는 누군가의 하루 위에서 유지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안다. 

김용균씨로 인해 나는, 단 한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았던 숫자들을 마주한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화력발전에서 40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사고 피해자는 90% 이상이 김용균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이 2015년 원청과 하청 기업에서 근로자 1만명당 발생하는 사망자 수의 비율을 조사했을 때 이미 상주 하청업체의 산재 사망은 원청업체의 8배였다. 원청기업에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하청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안전에 대해 이렇다 할 요구도 하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것이다.

2018년 막바지 국회에는 28년 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다. 개정안 제1조는 법의 목적으로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한다고 명기했다. 현행법의 ‘근로자’를 ‘일하는 사람’으로 바꾼 이유는 일은 하되,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수많은 ‘김용균들’을 법의 보호 아래 두기 위함이다. 그러나 법안 처리는 여전히 여야 간 공방 속에 있다.

김용균씨의 부모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세밑의 밤거리에서 “아직도 아들 동료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하루라도 빨리 위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같이해 주세요, 여러분”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사고현장을 찾았던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아들의 동료들을 향해 절박하게 외친 말은 “빨리 나가. 여기서 나가야 한다. 우리 아들 하나면 됐다”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가서는 안된다는 어머니의 애끊는 만류를 뒤로한 채, 오늘도 ‘김용균들’은 살기 위해 묵묵히 일터로 향한다.

<정은령 |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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