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종교인 과세법 시행령이 예고되었다. 그 과정에서 파란이 많았고 비판도 많이 일고 있다. 이런 일을 예견하고 기독교계는 1~2년 시행유예를 주장했다. 처음 시행되는 법이기 때문에 충분한 소통과 준비를 하자는 취지였다. 언론은 찬반 논리로 몰고 갔다.

그러나 일반의 인식과는 달리 기독교계는 조세평등원칙과 국민개세주의라는 시대 흐름을 대부분 찬성하고 환영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다만 졸속시행으로 인해 종교의 존엄성과 가치가 훼손당할까 하는 우려를 표시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9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엄기호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과 종교인 과세 관련 면담을 하기 전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구나 필자를 중심으로 한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갑근세를 원천징수하여 세금을 자진 납부해 왔다. 그런데 지난 9월에 정부가 내놓은 세부 과세 기준안은 ‘종교인 과세’보다 ‘종교과세’의 성향이 농후했다. 그래서 종교계의 반발로 종교인 과세의 원칙과 법정신에 맞는 수정 시행안이 나오게 된 것이다.

문제의 요지는 이렇다. 첫째는 종교단체의 장부조사 문제다. 수익단체가 아닌 비영리 종교단체의 장부조사는 종교 활동을 제한하고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이런 지적 때문에 정부는 구분 기장으로 선회하게 됐다.

두 번째는 종교 활동비 문제다. 종교 활동비가 종교인의 개인수입이라면 당연히 과세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종교 활동을 위한 일종의 사역비요, 선교비다.

일각에서는 이것을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유용할 것에 대한 우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부 목회자의 일탈을 보편화한 시각으로, 교회와 목회자 전체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대부분의 중대형교회 내에 건강한 여과장치가 있음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쟁점은 목회자의 양심과 교회의 건강성을 신뢰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를 통한 국가권력의 합법적 종교 길들이기를 허용할 것인가이다. 여름에 나무 잎사귀 몇 개가 떨어진다고 나무 전체가 병들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 대다수의 나뭇잎이 건재한 이상은 나무뿌리와 줄기가 건강하다고 할 것이다.

세 번째 근로장려세제 문제다. 분명히 정부 입장에서는 적은 세금을 거둬들여서 더 많은 저소득층 종교인들에게 근로장려세제 혜택을 주는 것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 저소득층 종교인이라고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겠는가. 종교인과 국민을 편가르는 프레임 형성은 결코 옳지 않다고 본다.

종교인 과세 시행령 개정안이 나오자 일부에서는 정부가 종교인의 요구를 너무 많이 들어주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애당초 수정 전 시행법안의 허점을 확실하게 인식했어야 했다. 시행안은 종교 과세 방향의 원칙에서가 아니라 종교인소득과세의 원칙에서 만들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종교인 과세의 법정신과 원칙을 정부에 전달하고 설득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다. 또한 종교계에 종교인 과세에 대해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이자고 설득했던 사람 중 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비판적인 시각과 쓴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차제에 재정의 투명함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회발전을 위한 종교의 순기능과 종교의 가치 및 존재를 이 시대와 사회가 인정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소강석 |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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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신화의 포르투나(Fortuna)는 운명의 바퀴와 함께 등장한다. 포르투나의 바퀴는 예측할 수 없다. 멋대로 굴러가는 운명의 바퀴가 운(運)이라는 궤적을 남기고, 그 운이 행운과 부를 결정한다.

그래서 포르투나에서 유래한 영어단어 fortune은 행운이자 동시에 재산을 의미한다.

20대에 학자금 융자로 빚을 내기 시작하여 결혼비용을 마련하느라 빚을 늘리고, 아이가 생겨 전세든 자가든 집 마련하겠다고 빚을 또 낸 사람의 인생 동반자는 포르투나가 아니라 빚으로 만든 수레바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빚이라는 수레바퀴를 운행하는 그 사람이 신문을 펼쳤다. 신문기사에 따르면 전체 국민 중 땅 있는 사람이 31.7%이고, 그중 상위 1%가 땅값의 4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상위 1%는 땅을 통해 개인당 평균 33억4000만원의 불로소득을 얻었고, 그 1%의 가구당 불로소득은 평균 1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기사를 접한 그 사람이 불현듯 ‘인생역전’의 꿈에 사로잡힌다. ‘대박’이라는 백일몽은 그를 로또로 안내한다.

국보 1호 남대문을 마주 보고 있는 복권판매소가 있다. 복권판매소 앞엔 1등 당첨자를 수차례 배출했다는 홍보용 안내판이 서 있다. 복권 추첨 당일인 지난 토요일 명당이라는 그 복권판매소 주변을 에드거 앨런 포의 <군중 속의 남자>를 흉내 내며 서성였다.

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우선, 나는 피상적으로 한 바퀴 빙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았으며 그 전체 관계에서 그들을 생각했다. 그러다 나는 세부사항으로 내려와 외형, 옷, 태도, 걸음걸이, 얼굴 그리고 표정 등 수없는 다양성의 세계를 세세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았다.”

과연 로또 추첨일답게 복권판매소 주변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포가 그랬던 것처럼 복권판매소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의 외형, 옷, 태도, 걸음걸이, 얼굴과 표정을 유심히 살핀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지만 그들은 서로 눈길조차 나누지 않는다. 복권을 판매하는 사람과 사는 사람 사이에도 대화가 없다. 어떤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돈과 함께 로또 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네며, 어떤 사람은 그저 “자동이오”라는 짤막한 말을 남긴다. 그들은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은 채 신속히 어디론가 사라진다.

2014년에 발행된 <복권백서>에서 그들이 숫자로 남긴 흔적을 찾았다. 경제적 한계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마지막 비상구로 복권을 살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통계로 드러난 복권구매자의 직업 분포는 다양하다.

무직인 사람은 전체 구매자 중 3.1%에 불과하다. 화이트칼라(25.8%)가 자영업(22.6%)이나 블루칼라(19.7%)를 제치고 가장 복권을 많이 사는 직업군이다. 화이트칼라 못지않게 주부(21.3%)들도 자주 복권을 산다.

가난한 사람만이 복권가게의 단골은 아니다. 오히려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199만원 이하 6.7%)보다, 소득이 낮지 않은 사람들이 부지런히 복권을 산다(월소득 200만원대인 사람 14.4%, 300만원대 34.8%, 400만원 이상 44.1%).

‘일확천금’을 바라는 사람을 비난하기는 쉽다. 왜 근면에 기대하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요행에 맡기려 하냐고 타이르기도 쉽다. 그러나 부모 돈 60억원을 받아 세금 16억원만 내고 결국 300조원이 넘는 삼성전자를 차지한 후계자 이재용이 있는 한 복권 사는 사람만을 비판대에 세우자니 사실 민망하다.

노력하면 대가가 돌아온다는 희망이 있는 사회임에도 운에 자신의 인생을 맡긴다면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노력의 희망이 사라진 사회에선 운에 ‘인생역전’을 기대하는 사람을 나무라기 힘들다. 로또 판매량은 노력의 대가를 믿는 희망이 줄어든 만큼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2005년에 로또는 매회 529억원어치, 한 해 동안 2조7529억원어치 판매되었다. 2016년엔 로또가 매회 679억원어치 팔려나갔고, 그해 누적 판매량은 무려 3조5995억원이나 된다. 그 증가분만큼 희망이 어디론가 사라진 건 아닐까?

매해 연말정산을 하며 한 해 수입을 정리한 ‘건물주’가 아닌 월급쟁이는 깊은 한숨을 쉬고 나면 ‘기승전결’이 아닌 ‘기승전-로또’를 마음에 새기며 짬을 내 복권판매소에 들른다. 나 또한 연말정산이 끝나면 언제나 로또를 샀고, ‘대박’의 백일몽을 꾸고는 했다. 평범한 인생의 연말풍경이다.

<노명우 | 아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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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령화 속도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매우 빠른 편이다. 프랑스는 노인 인구가 7%(고령화 사회)에서 14%(고령사회)에 이르는 데 무려 115년이 걸렸고, 미국은 72년, 영국은 47년, 독일은 40년이 걸린 데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17년 만에 고령사회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속한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전문화된 노인교육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가 되었다. 즉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이해시키고 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또 향후 생산연령인구(15~64세) 감소에 따른 노인 인력의 활용 차원에서도 노인교육의 중요성은 크다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교육은 각종 복지관을 비롯하여 대한노인회와 종교단체 등에서 노인대학, 장수대학, 노인교실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지자체의 보조를 받는 대한노인회 노인대학이 그 수도 많을 뿐 아니라 역할 또한 막중하다.

그런데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노인대학의 강사료는 아주 옛날 그대로다. 그래서 강사들에게 정말 교통비에도 미치지 않는 강사료를 지급하는 곳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인대학 학생들 또한 전문적이고 질 높은 강사의 강의를 듣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므로 지자체에서는 노인교육의 전문화와 질적 향상을 위해 노인대학의 강사료를 하루 빨리 현실화해 주기를 촉구하는 바이다.

<배연일 | 경안신학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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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외교관계가 풀리면서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들이 부쩍 눈에 띈다. 실제로 중국에 있는 지인들 중에도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아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여행을 앞둔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한국에서 꼭 구매해야 하는 물건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필자는 그때마다 고민하지만 결국 김, 라면과 같은 식품류나 화장품을 추천하곤 한다. 한국 문화를 제대로 담은 기념품을 알려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상품이 없다.

필자가 한국관광공사에서 외국인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점은 많은 외국인들에게 한국 문화는 아직 K팝이나 드라마 정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아이돌 소품을 기념품으로 사고, 드라마에 나왔던 장소를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이 또한 한국 문화의 일부지만 한국의 전통적인 멋, 한식이 가진 깊은 맛, 한국인의 섬세함을 담은 상품을 보고 느끼며 생활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안타까움이 크다.

한국이 선진 관광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깨달은 결론은 상품 하나, 장소 한 곳에서도 한국의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짧게 체류하는 여행객이 한국 문화의 매력을 모두 직접 경험하기는 어렵다. 이럴 때 좋은 문화상품은 한국을 찾은 여행객에게 고국에서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연결고리이자, 본인이 느꼈던 한국 문화를 타인에게 전하는 선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한국 정부도 문화상품의 중요성을 공감하고 우수 문화상품 지정제도를 시행함으로써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외국인인 필자의 시각에서 본다면 정부에서 지정한 문화상품은 여러 심사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고,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기대할 수 있어 긍정적이다.

한국이 품격 있는 문화국가 이미지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제도뿐만 아니라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도 필요하다. 정부에서는 해외 귀빈 선물로 우수 문화상품을 활용하고 국가적인 행사에서 제도를 알리는 등 다양한 홍보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민간에서는 외국인과 교류가 많은 관광산업 종사자들부터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채단 | 한국관광공사 외국인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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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달력을 떼어내다가 ‘이게 뭐지’ 하고 들여다본다.

12월20일이 공휴일이다. 자세히 보니 빨간 글씨로 ‘19대 대통령 선거일’이라고 쓰여 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린다.

1년 전, 광장의 촛불이 없었다면 이날 선거를 해야 하는 것이었구나! 지금쯤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웠을까?

우리는 역사를 흔히 거대한 강물, 대하(大河)에 비유한다. 거대한 강물은 겉보기엔 유유자적하는 것 같지만 밑바닥에선 끊임없이 급류와 역류, 소용돌이가 꿈틀댄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평온하게 흐르는 것 같지만 저변에서는 또 어떤 혁명이나 반역이 잉태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역사의 강물은 평화롭게 유유자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밑바닥에서 꿈틀대던 역류는 순식간에 촛불광장을 통해 분출하면서 모든 것을 일거에 흔들고 뒤집어 삼켜버렸다.

이런 극적인 순간이 아니더라도 거대한 강은 저변을 흐르는 급류와 역류 덕분에 풍요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대하의 흐름을 거스르는 역류와 소용돌이가 오히려 풍부한 자양분을 만들어내어 물고기를 살찌우고, 주변의 문명은 그것을 먹고 번성한다.

역사에서도 역류와 소용돌이는 인간사를 풍요롭게 하는 자양분인 새로운 사상과 시대조류를 만들어낸다. 이것들은 물속에 잠잠히 있으면서 서서히 양적으로 몸을 키우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여 질적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렇듯이 변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밑바닥에서는 끊임없이 변하고, 극적인 혁신이 오는 것 같다가도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는 것이 역사임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2017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지난겨울 전국에서 치솟아 오른 급류와 역류의 메시지는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매일매일의 일상 속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적 생태계를 총체적으로 혁신하자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87년체제에 안주하여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선거철에나 한 표를 행사하는 정도의 미적지근한 참여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 사회 요소요소를 썩어문드러지게 만들고 있는 크고 작은 적폐들을 더 이상은 짊어지고 갈 수 없다는 것, 입시제도 등 시스템의 문제로 처절한 불행에 시달리고 있는 아이들을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달콤한 포장으로 계속 기만할 수는 없다는 것, 하루벌이와 불안정한 고용으로 극한의 불안장애와 막장심리로 살아가고 있는 일용직과 임시직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것, 농사꾼의 자식은 노가다가 되고 노가다의 자식은 임시직 노동자가 되는 가난의 대물림을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는 것, 더 이상은 강대국 사이에 끼어 전쟁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살 수는 없다는 것 등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직 이 거대한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수의 국민이 이해하고 있는 것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통찰력의 부족 때문인가, 아니면 이해관계의 차이 때문인가? 예를 들어 우리 삶의 토대를 바꾸는 근본적 혁신을 위해서 국민 주도의 헌법 개정이 제안되었지만, 국민이 주도하는 헌법 개정은 시기적으로 이미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촛불이 제시한 거대 담론에 대해서 정치권은 여전히 과거의 사고틀과 잣대를 들이대고, 자잘한 미시적 수준의 대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7년 우리에게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기대한 만큼의 거대한 혁신이 오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것인가? 70%대의 지지율이면 족한 것인가? 수많은 민원들이 각 부처 대신에 청와대로 직접 몰려드는 현상이 즐길 만한 것인가?

2017년은 준비의 시간이었다고 치자. 그러나 다가오는 2018년엔 ‘매일매일의 일상 속 민주주의’를 위해 사회적 생태계를 총체적으로 재설계하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신좌섭 | 서울대 의대 교수·의학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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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군함도’ 등 자국의 근대산업시설에서 조선인들을 강제노역시킨 사실을 숨겼다. 당시 일본은 군함도 등 7개 시설에서 조선인 수만명이 강제노역한 점을 인정하고, 그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런 조치에 대한 경과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 ‘강제 노역(forced to work)’이라고 약속한 표현 대신 “2차대전 때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일본의 산업을 ‘지원(support)’한 많은 수의 한반도 출신자가 있었다”고 기술했다. 불과 2년 반 전 국제사회를 향해 했던 약속조차 뒤집은 일본 정부의 처사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12월6일 (출처:경향신문DB)

‘강제노역’이라는 표현은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노동을 어떻게 규정할지를 놓고 한·일 양국이 타협점을 찾은 결과다. 그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 대표는 공식회의에서 “1940년대에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노역을 당했다”고 시인했고, “그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정보센터 설립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따라서 이를 뒤집는 것은 한국과의 약속 위반인 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신뢰를 깨는 행위다. 보고서에서 확인된 일본의 약속 위반은 이뿐이 아니다. 강제징용 사실을 설명할 정보센터를 징용 현장인 규슈가 아니라 도쿄에 설치하겠다고 했다. 산업시설의 긍정적·부정적 역사를 알리라는 유네스코의 권고에 반하는 행위다. 범행 현장을 은폐하려는 치졸한 꼼수이자 역사왜곡이다. 나아가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을 위해 증언과 사료 조사가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한국인 강제징용을 ‘확인된 사실’이 아닌 ‘확인해야 할 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의도적인 책임 회피로, 일본의 과거사 반성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번 보고서는 내년 개최되는 제42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검토된다. 유네스코는 두 달 전 한국과 중국 등 9개국이 공동제출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의 유산 등재를 보류한 바 있다. 유네스코가 분담금을 많이 내는 일본을 두둔했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유네스코가 일본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세계인들이 지켜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외교부 대변인 논평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고 약속한 후속 조치를 조속히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더 강력한 비판이 필요하다. 강경화 외교장관의 방일 등을 통해 반드시 일본 측의 시정조치를 이끌어내야 한다. 일본은 이렇게 약속을 뒤집으면서 한국을 향해 위안부 문제 합의를 지키라고 할 자격이 있는지부터 자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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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펄, 펄, 펄 내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눈사태. 공중을 살피니 쉽게 그칠 눈은 아니었다. 꾸물꾸물한 기세에 발길을 돌리려다 이런 날이 아니면 언제 오리무중의 산중을 헤매겠더냐. 희방사 부도탑을 지나는데 눈 사이로 지상의 모든 소리가 꼬리를 감추어 적막만이 탑처럼 우뚝 섰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조성모의 노래, <가시나무>의 첫 소절이다. 평지를 걸을 땐 몰랐는데 가파른 깔딱고개를 오르자니 어느새 그가 또 나타났다. 헉, 헉, 헉 숨소리. 등 뒤에서 누가 따라붙었나 돌아보면 어느 새 가슴을 빠져나간다. 내 속에는 정말 나도 모르는 이가 살고 있는가 보다. 사타구니에서 걸음을 자꾸 꺼내면 산의 정상에 오를 수 있듯, 이 과격한 자를 쫓아내면 그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처음 오르는 산이 아니었지만 눈 속의 소백산은 새로운 산이었다. 점점 희미해지는 길을 어림으로 짚으며 무사히 연화봉대피소에 도착했다. 하늘에 무슨 벽이라도 있는가. 딱, 딱, 딱 공중에 튕겨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밤을 건넜다. 또 하루 늙은 몸으로 연화봉-비로봉-천동계곡으로 하산하는 길. 인간들의 등산로를 가로질러 눈밭으로 걸어간 어느 짐승의 발자국이 뚜렷하다.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 어제의 노래를 다시 꺼내어 흥얼거리다가 어느덧 다래교에 도착했다. 꽃이 사라진 이 산중에서 내내 겨냥했던 나무가 멀리 보였다. 가시나무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노래 속의 가시나무는 가시가 많은 나무를 통칭하는 것이지만 실제 참나무과의 가시나무도 있다. 하지만 남쪽 해안이나 제주도에서만 드물게 자생한다.

발길을 멈추고 오래 바라본 나무는 산개벚지나무다. 작년 5월에 왔을 때 인사를 나누었던 나무. 다닥다닥 달리는 흰 꽃도 꽃이지만 오늘 이 나무의 특징은 단연 수피다. 슬픔의 울혈처럼 피가 배어나오는 듯, 칭칭 감은 붕대 사이로 푸른 멍자국이 보이는 듯한 나무의 껍질. 지금은 겨울이라 그 느낌이 더욱 강했지만 산개벚지나무는 찬 기운을 뚫고 하늘로 ‘짱짱히’ 걸어가고 있었다. 산개벚지나무, 장미과의 낙엽 교목.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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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보내는 시절에는 잘 몰랐다. 사람들이 ‘보통 인간’에게 기대하는 바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는 것을. 그리고 보수적이라는 것을.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이쪽’ 세상이 책에 펼쳐진 ‘저쪽’ 세상과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 가끔 혼자서 놀라고는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을 했는지, 아이는 몇인지, 연령에 따라 조금 달라지긴 하지만 마찬가지이다. 타인들의 질문은 조심스럽지만, 그 조심스러움에는 응당 그러해야 마땅하다는 완강한 의식이 묻어 있다. 그 완강한 의식을 <편의점 인간>은 석기시대부터 지속된 인간의 보수성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편의점 인간>은 2016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데, 작가 무라타 사야키는 실제로 18년 동안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썼다고 한다. 편의점을 통해 바라본 인간 사회란 작가에 의하면 석기시대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현대사회니 다양성이니 해도 사냥을 하지 않는 남자,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를 무리는 가만두지 않고 ‘보통 인간’이라는 규격품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을 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풀어가는 시점과 코믹한 문체이다. 화자인 게이코는 결코 평범하다고 볼 수 없는 기계적 인물인데, 18년을 편의점 알바로 지내오고 있지만 어떤 결핍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서른여섯 살의 게이코의 알바인생을 끊임없이 의아해하고 염려한다. 그리하여 어느 날 그녀는 그 반복되는 질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일을 감행한다. 혼활(결혼활동)을 위해 편의점 알바를 하다 쫓겨난 껄렁한 청년을 집 안에 들인 것이다. 연인이 아닌 이들의 동거는 위장에 불과한 것이지만, 주변 사람들은 기뻐하고 우려하면서 그들에게서 하나의 채찍을 거둔다. 동거 소식에 “잘됐다! 난 걱정했어”라는 친구의 반응, 그리고 이어지는 백수 애인에 대한 복잡한 표정과 다른 충고들을 접하면서 게이코는 “다들 내가 비로소 진정한 ‘한패’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나는 모두에게 ‘저쪽’이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 무감한 게이코의 시선에 비치는 인간세상의 기묘함은 철저히 ‘이쪽’ 세상에 속하면서 루저의 원한으로 똘똘 뭉친 백수 청년 시라하의 것과 대비되면서 강조되는데, ‘너무도 인간적인’ 그의 관점에 의하면 게이코는 그보다 못한 이단자이다. “자신이 부끄럽지 않아요? 알바만 하다가 할망구가 되어 이제 시집갈 데도 없잖아요. 당신 같은 여자는 처녀라도 중고예요. 너저분한. 석기시대라면 자식도 낳을 수 없는 나이 든 여자가 결혼도 하지 않고 무리 속을 어정거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요. 무리의 짐일 뿐이죠. 나는 남자니까 아직 만회할 수는 있지만, 후루쿠라씨는 이제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요.”

<편의점 인간>은 일종의 편의점에서 바라본 인간학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편의점의 점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제복을 입고 매뉴얼대로 행동하는 것. 그 매뉴얼이란 유년, 청년, 중년 등의 시간대별로 할 일이 정해지고, “어서오세요”와 같은 접객용어로 무장한 기능인이다.

어느 평자의 말대로 이 소설은 ‘우습고 귀엽’지만, ‘대담하고 무섭다’. ‘이쪽’의 삶의 밑자리를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삼포세대, 미혼, 백수 등의 호명도 일종의 편견일 수 있겠다. 주변에는 남녀 구분 없이 결혼을 못해서가 아니라 ‘안’ 하는 이들도 많고, 또 결혼한 부부 중에서도 경제적 이유와 상관없이 아이를 원치 않는 이들도 많다. 그 나름 다른 이들과 결코 다르지 않은 생의 두꺼운 층이 있을 터인데, ‘보통 사람은 보통이 아닌 인간을 재판하는 게 취미예요’라는 소설의 한 대목처럼 사람들은 대번에 걱정하거나 힐난하곤 한다. 아이를 갖지 않는 젊은이들을 이기적이라고 재단하거나 비혼이나 무직이 당연히 우려할 만한 사태라는 식으로 말이다.

‘저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며 노동을 거부하는 바틀비(<필경사 바틀비>)는 성과사회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아이콘으로 언급되곤 한다. <편의점 인간>의 게이코는 정상의 삶이라고 일컬어지는 인류의 오랜 보수성과 불화하는, ‘아니요’들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보통 사람의 우려와 비난에는 어쩌면 ‘이쪽’ 세상에서의 고난과 견딤이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는 불안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타인을 해치지 않는, 각자 추구의 행복을 이쪽 방식과 다르다고 비난하지 말아야 하는 것, 그것은 잘 먹고 잘 사는 것 이외에 인간이 가꾸고 추구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유토피아가 아닐는지.

<정은경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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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1일 서울대학교에서 ‘적정기술 국제콘퍼런스’가 열렸다. 정부의 해외개발원조 자금을 받아 열리는 이 콘퍼런스는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져 올해는 하루에 무려 55개의 발표가 이루어졌다. 오래전부터 적정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도 한 꼭지 맡아 발표하였다. 발표를 하면서도 왠지 잘하고 있는 남의 잔치에 쳐들어가 훼방 놓는 기분이 들어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발표가 제3세계의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발표 첫 마디를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도둑질로 집안을 일으킨 아버지가 자식에게 도둑질만큼은 하지 말라고 타이르면 자식이 말을 듣겠습니까?” 우리는 부지런히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들여와 경제를 부흥시켜 놓고 이제 돈 좀 벌었다고 후진국을 도와주면서 “당신들은 아직 수준이 안되니 적정기술을 사용하도록 하시오”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내 발표의 논지는 간단하다. 선진국이야말로 적정기술이 가장 시급한 곳이라는 것이다.

원래 적정기술 개념은 전문가와 관료가 지배하는 거대기술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생겨났다. 그런데 1960~70년대의 제3세계 원조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는 비판이 일자 돈과 소비 물자가 아니라 원주민이 스스로 벌어 먹고살 수 있는 적절한 기술을 전해주자는 주장이 널리 퍼지면서 지금은 마치 적정기술이 제3세계를 위한 기술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선진국이 전해주는 적정기술이 예측한 대로 실효를 거두고 있을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것이 적정기술이건 저급기술이건 외부에서 만들어져 수입되는 한 원주민들에게는 그저 ‘외래기술’일 뿐이다. 원주민들은 기술보다는 기술을 가지고 들어온 선진국 사람들과 선진국의 문물에 관심이 있지 기술 그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자기들도 선진국처럼 잘살 수 있을까 하고 부러워하거나 선진국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 신분 이탈을 꿈꾸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만들어준 적정기술 시설과 장비들은 몇년 후에 가보면 쓰레기처럼 방치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몇몇 성과물을 일반화하여 정부 자금을 가지고 뻔질나게 제3세계를 드나들며 적정기술 전도사 노릇을 하는 것은 미안한 말이지만 자기만족에 더 가깝다. 진정으로 적정기술 원조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현지로 이민을 가서 원주민들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다가 현지에서 생을 마감한 슈바이처 박사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적정기술은 인간척도(human scale)에 기초한 소규모이면서 사회적으로도 위화감을 주지 않는 기술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전문가가 지배하는 중앙집중식 거대기술에 대한 대안기술이다. 오늘날 지구적 규모의 생태위기는 거의 모두가 선진국의 거대기술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선진국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오염물질과 방사능, 유전자변형생물(GMO) 등이 생태계를 회복불능의 상태로 몰아가고 있는데 자신들은 거대기술을 그대로 쓰면서 가난한 나라에 생태계를 살리는 기술을 쓰자고 말하는 것은 이만저만한 후안무치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선진국은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적정기술을 전면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혹자는 이미 거대도시로 발전한 데다 고도로 복잡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선진국에서는 거대기술이 적정기술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일면 맞는 말이지만 선진국 사회가 자연생태계와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면 적정기술이 될 수 없다. 자연생태계의 입장에서 볼 때 거대기술은 일탈에 지나지 않는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거대기술을 고집하는 이유는 거대기술 창안자들의 제국주의적 지배욕망 때문이다. 후진국이었던 서양은 거대기술의 우위를 앞세워 동양을 지배하고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로 인해 세계는 끊임없는 전쟁과 분란에 시달리고 있다. 거대기술은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 평화는 물론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생태적이면서 평화로운 세계를 원한다면 모든 나라들이 적정기술을 중심에 놓고 한 나라의 기술을 어떻게 재편성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후진국은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자기 실정에 맞게 업그레이드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선진국은 문제가 복잡하다. 기술은 고유의 방향성을 가지고 있어 다운그레이드가 안된다. 한번 높은 수준의 기술을 맛본 사람은 절대 그보다 낮은 기술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개념이 기술의 내면화 또는 내실화이다. 말하자면 기술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하여 생활 속에서 적정기술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저급한 기술이 아니다. 선진국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과 기술을 다 동원해야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첨단 디자인일수록 형태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선진국의 적정기술은 여기에 비용과 생태계와의 조화, 인간척도, 사회적 수용성, 노동가치의 실현까지 다 집어 넣어야 하므로 굉장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여 이것을 전문가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시민대중의 다양한 연구와 시행착오 속에서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생활밀착형 적정기술이 된다. 당연히 국가는 일반시민들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를 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선진국과 후진국이 적정기술을 중심에 두고 서로 수렴함으로써 보다 평등하고 평화로운, 그리고 생태적으로 조화로운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황대권 | 생명평화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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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을 고치자는 움직임이 나올 때마다 헌법을 쉽게 풀어써야 한다는 주장이 빠짐없이 나왔다. 지난 1980년 봄에도 그런 주장이 있었고 1987년 6월 항쟁 이후에도 그런 주장이 고개를 들었으나 뜨거운 쟁점이 너무 많고 이런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마저 적어서 그냥 스쳐 가는 주장에 지나지 않았다.

30년도 더 지난 이제 이런 여론이 한글문화 단체를 중심으로 다시 일어나고 있다. 얼핏 보기에 별 것 아닌 이 문제는 오랜 우리 역사의 병폐와 맞물려 있는 해묵은 과제라고 하겠다.

우리 헌법은 1940년대 문체로 돼 있다. 그때만 해도 한글로만 쓰기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중국 글자를 섞어 썼고 어려운 한문 투 일본어 번역 투 표현도 많다. 헌법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우리말다워야 한다. 우리말글의 헌법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헌법을 고칠 때 쉽게 풀어써야 할 가장 큰 까닭이다.

우리가 헌법을 쉽게 풀어쓴다면 ‘전문’(前文)을 ‘앞글’로 바꾸고, “1948년 7월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를 “1948년 7월12일에 제정하고 여덟 번 고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따라서 고친다”로 바꿀 수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3조)를 “한반도와 그에 딸린 섬으로 한다”로,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11조2항)는 “사회적 특수 계급 제도를 인정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도 이를 새로 만들 수 없다”로 바꿀 수 있다.

“개정하다”를 “고치다”로 바꾸고 “도서”를 “섬”으로 바꾸는 데 머뭇거리는 한 요인은 두 낱말의 뜻이 서로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뜻에서 미묘한 차이가 이런 식으로 바꿀 수 없는 까닭은 될 수 없다. 오늘날 의미론에서 낱말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그 가변성의 폭이 무척 크다는 데 거의 모두가 동의한다. 뜻같음의 기준을 엄격하게 요구하면 언어 사이의 번역이나 뜻같음이란 개념 그 자체를 부정하게 만든다. 우리말 어휘는 나날삶의 어휘와 전문 용어의 거리가 멀기로 유명하다. 이렇게 전문 용어가 어려워진 이유는 지나치게 많은, 주로 중국이나 일본식 한자어에 특권을 주기 때문이다. “겨울 올림픽”하면 될 것을 “동계 올림픽”으로 바꾸어 부르고 “싼 값”하면 될 것을 “저렴한 가격”으로 바꾸어 말한다.

법제처에서 2006년부터 알기 쉬운 법령 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예산도 줄어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개헌을 앞두고 술술 읽히는 헌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하찮은 일로 여기는 생각이 문제다. 우리에겐 고유어로 새말을 만드는 전통이 매우 약해 낯선 어휘를 한자로 조립하는 버릇이 자꾸 이어지고 있다.

나날삶의 어휘와 전문 용어 사이에 가로놓인 장벽은 변함이 없다. 한글로만 쓰기를 하는 요즈음에도 우리 현실을 보는 어휘마저 중국인의 작품인 경우가 많다. “한류, 한한령, 쌍중단, 삼불일한” 같은 식의 새말이 자꾸 생기고 있다. 이러니 한글 전용에 대한 시비도 가라앉지 않고 한자를 알고 한글 전용을 해야 한다는 언론도 나온다. 우리식 어휘를 만들지 못하는 건 애짖는 힘이 우리에게 모자란다는 뜻이다. 우리 눈으로 현실을 보는 눈을 아직도 갖지 못했다는 뜻이다.

법률을 쉬운 글자로 쓰는 문제는 법치주의의 탄생과 함께 늘 문제가 되었다. 전제군주정에서도 알지도 못하는 법을 지키라고 인민에게 요구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최만리의 상소문이나 정인지의 <훈민정음> ‘서’에서 진술서나 판결문에 새로 지은 쉬운 문자를 쓰자는 진지한 논의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독립신문 창간호 논설에서는 국가에서 내는 법령을 죄다 한문으로 써 한문 모르는 인민을 바보로 만든다고 비판하였다. 쉬운 글자 쉬운 말은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이다.

헌법은 우리 모두가 읽어야 하는 글이다. 내년 6월에 새로 바뀔 헌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철저히 보장하면서 아울러 우리말답게 쉽게 쓴 헌법으로 다시 나기를 바란다. 시민 단체, 학술 단체, 법제처가 서로 힘을 합쳐야 할 때이다.

<김영환 | 한글철학연구소장·부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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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헌법

‘우리 시인들이 아무리 좋은 시를 짓더라도 세상 속물들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태백이 친구 왕십이(王十二)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것(시)을 듣고 모두 고개를 흔드니 이는 마치 동풍(봄바람)이 말 귀에 듦과 같음이라.’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의 유래입니다.

말의 귓가에 미려한 시구를 읊어준들 미련한 말이 무엇을 알겠습니까. 그저 숨결이 귀에 드니 고개 흔들어 간지럽다 하겠지요. 이 마이동풍과 같은 속담으로 ‘소귀에 경 읽기’가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하거나 건성으로 듣는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힘들다, 괴롭다 하소연을 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해법을 구합니다. 하지만 사람도 역시 미련한 동물이라서 당장은 솔깃하게 귀 기울이지만 대개는 거기서 끝입니다.

조언을 듣고 나서의 행동이 그 사람의 자질이라는 말을 합니다. 될 사람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맞아, 맞아 공감하고 손뼉을 치지만 전혀 실천하지 않는 이, 고개 끄덕여 들어놓고 시간 지나면 잊어버리는 이, 애초에 하소연이 목적이라 건성건성 듣는 이들이라면 그 어떤 조언도 소귀에 읽은 경전에 불과할 뿐이겠지요.

무예를 익히려 스승을 찾아가면 3년 동안 물 긷고 밥하는 것만 시킨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힘든 무도의 길을 걸을 만한 자질을 갖추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이들은 조언을 섣불리 하지 않고 오래 뜸을 들이며 딴 얘기를 한다고 합니다. 화를 벌컥 내고 가버릴 사람이라면 굳이 아까운 시간을 들일 만큼 다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당의정(糖衣錠)이 아닌 약은 쓴맛을 각오한 이만 맛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절실한지조차 모르는 이에게는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조차 고개 흔들게 하겠지요. 답을 듣는 귀는 마음에 있습니다.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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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소득 상위 10%에 해당하는 아동 25만3000명은 내년 9월부터 지급되는 아동수당을 받지 못하게 됐다. 여야는 4일 내년 예산안 협상과정에서 소득 상위 10% 가구를 아동수당 지급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합의했다.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나 양해를 구하지 않고 보편적 아동수당 지급 원칙을 포기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아동수당은 0~5세 아동 253만명에게 매달 10만원을 지급하는 복지제도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7월부터 부모의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국민의당은 “고소득 가구의 자녀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은 예산낭비”라며 선별적 아동수당 지급을 주장해왔다. 아동수당 지급시기도 지방선거가 끝난 뒤인 내년 10월로 늦출 것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아동수당 지급 시기를 내년 9월로 조정하고, 소득 상위 10% 가구는 아동수당 지급대상에서 제외하는 선별적 복지로 한발 물러섰다. 여야는 아동의 보편적 권리를 정략적 협상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10월 1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서울학생 더불어 큰 숲 놀이 대축제에서 어린이들이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득 상위 10% 가구를 제외하면 내년 아동수당 예산 1조1000억원에서 1000억원가량을 절감할 수 있지만 부작용이 만만찮다. 소득 상위 10%를 가려내려면 0~5세 자녀가 있는 모든 가구를 대상으로 소득·재산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막대한 행정력과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소득이 많은 맞벌이 가구는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소득 역전 현상을 막기 위해 일부 수급자는 월 10만원이 아닌 감액된 금액을 받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보편적 복지 원칙을 훼손한 것은 여야 모두 비판받을 일이다. 시민들은 이미 무상급식을 통해 보편적 복지의 중요성을 확인한 바 있다. 아동수당도 부모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고, 재원이 부족하면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거두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 중 20개국은 부모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국가와 사회가 아동의 양육을 함께 책임진다는 데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보편적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여야는 향후 아동수당 차별 지급 방안 철회를 검토해야 한다. 모든 시민이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고, 고른 혜택을 받는 보편적 복지 원칙이 무너지면 사회통합으로 가는 길이 막힐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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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제주 해군기지, 밀양 송전탑, 용산 화재참사, 사드 배치, 세월호 등 5가지 특정 집회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자들에 대한 특별사면 절차가 진행 중이다. 성탄절은 시기적으로 어렵지만 설날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코드사면’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직업적 전문 시위꾼에 대해 특별사면을 추진한다면 법치가 무력화되고 국가 공권력이 해체되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보수언론도 그들은 양심수가 아니라 국가보안법 위반자이자 폭력사범이라면서 원칙과 기준 없는 사면이 법치주의를 해친다는 취지의 사설을 쏟아내고 있다. 진보시민사회에서는 특정인을 거명하며 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이 조속히 단행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 대상자는 적폐청산과 인권회복을 위한 양심수 전원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촛불광장의 뜻을 받들어 양심수 특별사면으로 적폐청산의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비리와 부패에 연루된 재벌회장,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은 특별사면의 시혜를 받았는데, 정작 민주주의·인권과 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 양심수들은 단 한 명도 사면을 받지 못했다며 촛불정부는 이전 정부와는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특별사면을 둘러싼 논쟁이 특별사면의 목적인 국민대통합은커녕 이념대립과 갈등만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면정국을 돌파하고 첫 사면으로 정당한 사면의 좌표를 설정할 시험대에 서 있다. 특별사면의 대상과 범위 한정, 대법원의 의견을 듣는 절차 마련, 사면심사위원회 구성 다양화와 회의록 공개 등 사면법도 개정해야 한다.

사면의 원형은 ‘법에 앞서는 은사’로서 절대군주가 자신의 주관에 따라서 베풀었던 은전이나 시혜였다. 그렇다면 은사(恩赦)는 정의의 지주(支柱)인가 아니면 정의와 대립하는 것인가. ‘세상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져야 한다’며 정의를 확립하는 데 단호한 입장을 견지한 칸트에 의하면 은사는 정의에 반하는 것이다. 법치국가의 장애물로 보는 시각이다. 이에 반해서 은사는 법이나 정의보다 더 깊은 근원에서 나와 법이나 정의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하는 가치 있는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은사 없는 법은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이처럼 사면을 둘러싼 논쟁은 쟁점은 다르지만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과거 절대군주가 자신의 의향에 따라 베풀던 은전과 시혜로서 사면을 바라보게 되면 대통령이 재판의 절차와 결과를 뒤집어 사법을 지배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이에 반해서 사면권자가 법 또는 법의 적용과정에 내재한 오류나 오류가능성을 교정하여 보다 완벽한 정의를 실현한다는 입장에 따르면 오늘날 민주적 법치국가에서도 유용한 법제도인 것이다. 더 이상 법치국가의 장애이자 군주국가시대의 유물이 아닌 것이다. 우리 헌법은 후자의 입장에서 사면을 법제도로 인정하고 있다. 헌법 제79조1항에 따라 대통령은 법률에 따라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

이처럼 사면권은 사면법에 따라 행하는 국가원수의 헌법상 권한이며 통치행위다. 그러나 그동안 사면이 일반사면은 외면되고 특별사면에 치중하여 너무 자주 정치적 목적으로 행사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 침해를 제거해주는 법의 안전판이 아니라 마치 군주시대 국왕의 시혜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그 권한 남용이 문제되는 것이다. 이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대한 왜곡을 가져왔고 형사사법 정의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게 되었다. 사법 절차와 판결을 무시하고 통치행위라는 이름으로 베푸는 은사는 제왕적 권력으로 권력분립의 이념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면은 절대적 예외상황에서 엄격한 한계 내에서 형벌면제를 위한 다른 법적 수단이 없을 때 보충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 그래야 법 앞의 평등원칙도 위배하지 않는다. 오판을 호소하는 사형수나 자신의 신념이나 사상을 어떤 폭력이나 무력에 호소하지 않고 표현한 혐의로 교도소에 갇힌 양심수에게 은사가 내려질 때 정당화된다. 그래야 사면권은 입법과 사법을 뛰어넘어 국가원수에게 인정된 고유권한이라는 점에서 법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법칙 없는 기적이 될 수 있다. 사면이 자의적으로 남발되면 기적으로 와 닿지도 않는다. 양심수나 정치적·종교적 확신범을 가두어 둠으로써 야기된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는 기능도 한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사면권 행사여야 정의의 지주가 될 수 있다. 그래야 대통령의 은사는 법 밖의 세계에서 법의 영역 속으로 비춰 들어와 법의 세계의 추운 암흑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다.

<하태훈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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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는 전쟁을 겪지 않았다. 가난했다. 나는 두어 번 크게 아팠지만 행운이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잘못된 선택에도 내 삶은 크게 망가진 적이 없다. 배우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청운동이란 좋은 환경에서 살았고, 상업고등학교를 나와서 좋은 회사에서 일했다. (…) 외환위기 때 국가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기업이 도산해 실업자가 쏟아졌지만 우리 회사는 탄탄해서 안전했다. (…) 어쨌든 살면서 사기꾼을 만나지 않고, 폭력이나 재난에서 내 목숨과 재산을 지켜냈다. ‘그만하면 잘 살지 않았는가!’ 앞으로 남은 세월은 남을 도우며 살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장석주의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yeondoo)에 등장하는 56년생인 이 남자의 아버지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다. 전립선암 수술을 마치고 회복 중인 이 사람은 두 아들에게 25세까지만 투자할 것이니 그 뒤에는 독립하라고 말했지만 아직 독립하지 못했다.

이처럼 부모보다 더 많이 배운 자식들이 좌표를 잃고 흔들리고 있다. 남이 아닌 자식세대를 위해 베이비부머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이디어 소설’ <한 생각>(이헌영,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야당인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허장훈은 방송연설에서 경제양극화, 계층 간 갈등, 일자리 부족, 심각한 저출산, 세계 1위의 자살, 만성적인 내수 불황, 복지, 고령화사회, 심각한 가계부채, 늘어만 가는 국가채무, 교육불평등, 중산층 붕괴현상, 국민연금 고갈, 남북통일 비용 등 우리나라의 심각한 사회적 문제들을 나열한 다음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문제들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또 다른 수많은 문제들까지 그 많은 문제들의 원인은 놀랍게도 단 하나였습니다. 오직 단 하나뿐인 원인! 그것은 ‘경제양극화’였습니다. (…) 사람의 몸도 피가 잘 돌아야 건강하듯이 국가의 피 역할을 하는 돈이 잘 돌아야 할 텐데, 국가의 피, 즉 돈이 부유층에게만 쏠려서 뭉친 채로 고여 있으므로 나라가 동맥경화에 걸려 그 여파로 많은 곳에 병이 들었던 것입니다.”

여당인 공화당의 정관영 후보 또한 종이 그래프 퍼포먼스를 통해 양극화의 정도를 보여준다. 대한민국 제1부호의 재산이 18조1000억원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10억원을 뜻하는 1m짜리 그래픽 종이를 이어붙인 1만8100장을 펼치는 데만 9시간15분이 걸리는 것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언론이 중계한다. 그것을 본 국민들은 분노한다. “우리의 재산은 단 1㎝도 안되는데 18㎞라니! 해도 해도 이건 너무하다. 엎어야 한다!”

“국제 구호단체인 옥스팜이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2016년을 기점으로 세계 상위그룹 1%의 재산이 나머지 99%의 재산총액과 같아지고, 그 이후로는 점점 더 많아지리라는 것이다. 더 자극적인 내용도 있었다. 전 세계 하위 50%에 해당하는 35억명의 재산을 다 합쳐봐야 세계 최고 부자 61명의 재산 정도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요점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가 이미 한계에 이르렀는데도 상황은 지금도 계속해서 극점인 1%에서 초극점인 0.1% 쪽으로 쏠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허장훈 후보는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우리 국민 5000만명 중 하위 50%의 국민, 즉 2500만명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국가 전체예산의 1.7%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계속 위로 쏠려가는 이 쏠림현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국가의 돈(세금)을 사용하지 않고, 부유층과 중산층만 있고, 빈곤층이 없는 나라를 만드는 아이디어”이자 “양극화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골칫덩어리 문제들을 한꺼번에 거의 깨끗하게 해결하는 방법”이 바로 ‘한 생각’이다. 그것은 상위 부유층 30%가 하위 30%를 직접 도와서 빈곤층을 없애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한 생각’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 지지율이 월등하게 높은 여당 후보가 “야당 후보가 적임자”라며 전격적으로 사퇴한다.

국민을 현혹하고 선동해서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려는 좌파적인 공약”을 재벌들의 모임인 전경련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동참하기로 결의한다. 전경련은 한 술 더 떠서 “지원받는 빈곤층 30%를 40%로 상향 조정하고, 지원하는 부유층은 15%에서 5%로 조정하는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대다수 보수언론은 격렬하게 비판한다.

소설에서는 ‘한 생각’이 실제로 구현된다. 그 결과 자살률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내수경기가 살아난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출도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외국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한다. 내수경기가 좋아지자 일자리가 늘어났으며 자연히 임금이 점점 오르는 추세로 변했다.

‘한 생각’이 현실에서 실제로 구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재산이나 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세금으로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보다는 ‘한 생각’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은 어떤가? 국회에서 야당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임금 인상분을 정부가 보조하는 4조원대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삭감하려 들며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집권만을 목적으로 한 정치권의 극한 대립을 막기 위해 국민의 직접투표로 뽑힌 상위 2명만을 놓고 추첨을 통해 대통령을 뽑는 ‘한 생각2’라는 아이디어도 신선했다.

권력은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이 뽑아주지 않으면 권력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권력을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다. 따라서 권력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 또한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 생각’은 한 번쯤 생각해볼 아이디어가 아니겠는가!

<한기호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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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연말 분위기는 뭇사람을 설레게 만든다. 거리를 가득 채우는 따뜻한 조명과 행복을 노래하는 캐럴은 함께할 누군가, 돌아갈 장소, 기다릴 무언가를 생각나게 한다. 나는 그것들이 참 싫었다. 너는 돌아갈 따뜻한 집이 있느냐고,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느냐고 다그치는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당장 돌아갈 그러나 곧 떠나야 할 6평짜리 내 월세방 생각이 났다.

나는 유랑단의 일원이다. 제 명의로 된 집이 없는 사람들은 모두 유랑단의 단원이 된다. 어떤 유랑자는 1년을 마무리할 때마다 월세방 계약이 언제 끝나는지를 가늠한다. 계속 살고 싶어도 집주인이 나가길 원하면 군말 없이 나가는 것이 이곳의 상식인지라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떠날 채비를 갖춰야 한다.

또 다른 유랑자는 월세를 올리길 원한다는 집주인의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을 때마다 또 어디로 이사가야 할지를 궁리한다. 월급 오르는 속도가 물가 오르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시대에 물가보다 더 빨리 오르는 부동산 시세를 감당해낼 수는 없었다. 임차인은 그저 집주인이 부르는 값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거나 본인의 소득이 넉넉하지 않거나 대출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 유랑단의 단원이 된다. 학교나 직장을 위해 방이나 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 중 절반이 그러했다. 과거 정부는 이런 임차인들의 현실을 진즉에 알아챈 듯했지만 그간 내놓았던 대안은 공공주택 입주 자격을 새로 만들거나 월세와 전세 자금 대출 한도를 높이는 선에서 마무리되곤 했다.

조금 늦은 시기인 11월, 현 정부는 사회통합형 주거사다리를 회복하겠단 포부로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했다. 기대했던 변화는 없었다. 당장의 유랑자들에게 필요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인상률상한제는 제외되었다. 전체 기조는 공공주택 100만호 공급이었다. 이마저도 모두 공공주택일 순 없었다. 상당수의 집들은 시간이 지나 다시 부르는 게 값인 부동산 시장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아무런 보호 없이 임대주택시장에 내던져지는 것은 결국 유랑자들이었다.

올 한 해 6·19 부동산 대책, 8·2 부동산 대책, 10·24 가계부채 종합대책 등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한 직간접적 대처들이 쏟아졌다. 실제 적용된 효과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임대주택 시장의 개선과 안정을 위한 일종의 주거대책으로 시행된 것들이었다. 이번 임기 동안 정책 설계도의 역할을 할 주거복지 로드맵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주거대책의 본질을 제시해야 할 본연의 역할이 있었음에도 임대주택 시장 안정에 가장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인상률상한제를 제외한 것은 정부 스스로 제 역할을 유기한 것에 불과하다.

주거권은 인권이다. 이는 헌법으로도 보장되어 있다. ‘불만이면 너도 빚내서 집 사든가’라며 집 몇 채를 가졌다는 자가 집 하나 없는 자를 함부로 대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의 역할은 구성원의 불가침적 권리를 나서서 보호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삶은 언제나 연속하기에 삶의 권리를 위한 정책은 일시적인 대책으로 메워질 수 없다. 끊임없이, 끝없이 제 역할을 하라고 시민들이 다그치는 이유다. 곧 이어질 주거복지 로드맵 2차 발표에서는 가진 것 없는 몸을 비집고 스며든 한파에 떨어가며 어딘가를 유랑하고 있을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길 빈다.

<민선영 | 청년참여연대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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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 상암동에서는 농업인과 자원봉사자 등 200여명이 모여 1만포기의 김치를 담그는 장관이 연출됐다. 독거노인과 복지시설 등 소외계층에게 김치를 전달한다는 보람 때문인지 ‘국민행복나눔 김장축제’ 내내 참가자들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났고, 오랜 전통인 김장문화를 알린다는 자부심도 가득해 보였다. 농업인들이 땀 흘려 키운 우리 농산물로 이웃 간 따스한 정을 나누고 건강을 챙기는 모습에서 농업의 가치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일시적인 수급 불안에 ‘금배추’ ‘금상추’ 같은 표현으로 농산물을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하거나, ‘농업은 생산성이 낮다’ ‘국가경제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농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움과 함께 농업에 대해 여전히 적지 않은 오해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나아가 농업의 소중한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본격적인 김장철을 맞아 지난달 13일 강원 강릉시 농촌 들녘에서 김장배추 수확이 한창이다. 연합뉴스

이런 오해들은 말 그대로 오해일 뿐이다. 1980~9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 시절, 농업 분야 희생의 바탕 위에서 비농업 분야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며 생긴 편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정 이후 농산물 시장 개방의 충격 속에서도 농업은 꾸준히 성장해 왔다. 농업생산액은 44조5188억원으로 지난 20년간 70.5%, 연평균 2.8%씩 성장했다. 통계를 보면 1990년 이후 농업부문 노동생산성은 4배, 토지생산성은 2배 높아졌고, 농업생산성이 비농업 부문보다 빠르게 증가하여 농업과 비농업 부문 간 생산성 격차도 크게 줄고 있다.

또 혹자는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농업 선진국인 미국(1.3%)과 프랑스(1.7%), 캐나다(1.5%)보다 높은 것을 감안하면 우리 농업의 국민경제 기여 정도가 결코 작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민경제 전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부가가치유발계수도 농업이 0.842로 자동차(0.689)나 컴퓨터(0.568)보다 높다. 농업이 다른 산업 성장에 미치는 효과도 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울러 농업은 먹거리 생산이라는 본원적 기능 이외에도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공익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유사시 식량안보는 물론이고 아름다운 농촌 경관과 생태환경을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수자원 확보와 홍수 방지, 지역사회 유지와 전통문화 계승에도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도시민의 62.1%가 이러한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인정하고, 절반 정도가 농촌에서 살고 싶다고 답한 설문조사 결과도 있을 만큼 농업·농촌은 우리의 후손에게 길이 남겨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수천년을 이어오며 민족의 혼이 깃든 소중한 농업을 지키기 위해 농협은 ‘농업가치 헌법 반영 1000만명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농업 선진국 스위스처럼 농업의 공익적 가치와 국가의 지원 의무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이제는 정·재계와 시민단체, 일반 대중에게로 공감대가 확산되어 한 달 만에 목표한 1000만명이 훨씬 넘는 국민들이 서명에 동참해 주셨다. 눈물나도록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많은 이들의 간절한 뜻이 모여 농업의 가치가 헌법에 반영되고, 5000만 국민 모두가 마음의 고향인 농업·농촌에 담긴 소중함과 애틋함을 더 많이 품고 아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병원 | 농협중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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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는 다양하고 보편적이고 또 뿌리 깊었다. 서울시와 함께하는 시민대학 글쓰기 가을학기. 강좌가 후반부로 접어들면 사회적 분노를 주제로 에세이를 쓴다. ‘한국사회의 (  )이 나를 분노하게 한다.’ 괄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이른바 한국병에 해당하는 고질적 문제들이다.

이번에도 교육 현실을 비롯해 종교, 고령화, 영세 자영업, 사생활 침해, 취업난, 시민운동 등 우리 주변에서 수시로 목격되는 이슈들이 등장했다. 수강생 대부분이 중년 여성이어서 그런지 교육 문제에 대한 비판이 압도적이었다. 학교폭력에 이어 정답만 강요하는 교육, 오로지 입시와 취업을 위한 공부. 자신의 경험에 바탕한 수강생들의 글은 진솔하다 못해 충격적이었다.

특히 영·유아를 소비 대상으로 삼는 교육 시장이 두드러졌다. 일부 부유층에서는 생후 9개월 된 아이에게 과외를 시키는가 하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교육을 시킨다고 한다. ‘영어학원 10개가 생기면 소아정신과 한 개가 늘어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한다. 비뚤어진 어른들의 욕망이 아이들의 미래를 망친다는 내용의 글은 어린이놀이 운동가 편해문씨의 권고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편해문씨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반드시 되돌려줘야 할 세 가지가 있다고 강조한다. 안전하게 놀 수 있는 장소, 마음껏 놀 수 있는 시간, 함께 놀 수 있는 친구. 그런데 이 세 가지 요건은 아이들뿐 아니라 이 시대 모든 연령대에 필수적인 것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좋은 장소와 의미 있는 시간,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절실하다. 나는 이 세 가지가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절대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분노를 함께 읽는 8주차 강의실은 분위기가 무거웠다. 검은 색안경을 끼고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색안경을 벗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의 인지 능력은 한계가 분명하고 또 우리의 의식과 외부 세계는 평면이 아니다. 입체다. 안타깝게도 우리 눈은 입체를 한꺼번에 다 볼 수가 없다. 관점을 여러 차례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안경 색깔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멋진 사람’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기로 했다.

지난 11월29일, 9주차 강의실은 모처럼 밝았다. 평생 나무를 심어온 예수회 신부님, 자기만의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젊은 학자, 여고 동창생을 위해 헌신하는 중년 여성, 30년 넘게 어머니처럼 보살펴주는 비구니, 중학교 때 만난 가야금 선생님, 뒤늦은 나이에 직종을 바꾼 직장 선배, 농성장은 물론 마을 대소사를 해결하는 만능 일꾼, 아프리카 오지에서 활약하는 젊은 여선교사, 평생 한글 글꼴을 개발해온 선생님, 지속가능한 마을 만들기에 투신한 활동가, 한국 역사를 사랑하는 중국 대학 교수 등등. 분노의 대상 못지않게 멋진 분들의 삶도 다채로웠다.

수강생들로부터 호응을 받은 멋진 사람 중 하나가 꽃집 총각이었다. 이 총각은 화초를 팔고 나서도 세심하게 사후 관리를 한다. 전화를 걸어 정기적으로 나무 상태를 점검한다. 심지어 직접 방문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글은 프로의 아름다움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이 글을 쓴 분은 “글을 쓰면서 제 삶 곳곳에 고마운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고 말했다. 수강생들의 후기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다들 멋진 사람이 있어 든든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듯, 누구에게나 멋진 사람이 있다. 수강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올 한 해 내가 만난 멋진 사람을 떠올렸다. 지리산에서 사진가로 거듭난 시 쓰는 친구, 자기 산문집에 ‘울어요, 우리’라고 서명해주는 시 쓰는 후배, 창간 10주년을 남다르게 기념한 시사주간지 후배들, 융복합 학과 설립을 주도한 젊은 교수님, 북한학대학원에 들어간 영문학자, 생태환경 전문지에 적지 않은 기금을 쾌척한 선배, 경복궁 옆 그 비싼 땅에 심야책방을 낸 친구, 재건축아파트 부지에 남겨진 나무들을 기억하자는 작가들. 내게도 멋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송구영신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또 해마다 다를 것이다. 시민대학 글쓰기 덕분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괜찮은 방법을 하나 터득했다. 한 해 동안 내가 만난 멋진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고마운 사람,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사람, 찾아뵙지 못해 고개를 들 수 없는 선생님, 존경하는 분, 닮고 싶은 전문가가 있다. 그뿐이랴,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친구와 선후배도 있다.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멋진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한 해의 비망록은 궁색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와 멋진 삶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연관성이 없지 않다. 사회적 분노를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키면 멋진 삶이 된다. 그래서 멋진 사람들은 저마다 1인 혁명가다. 지난 세기 중반, 미국의 기독교 아나키스트 애먼 헤나시는 뉴욕 한복판에서 1인 시위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없겠지만 세상 또한 나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시민대학에서 읽은 멋진 사람들, 그리고 지난 한 해 내가 만난 멋진 사람들이 그러했다. 다른 자리에서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보다 세상에 의해 바뀌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런 멋진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는 새해가 되었으면 한다.

<이문재 | 시인·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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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내려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꽤나 어려워했던 것 하나가 말을 알아듣는 일이었다. 아버지 고향이 경상남도여서 어지간한 말은 알아들을 성싶었는데, 이야기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몇 번이나 되묻다가, 약간 과장된 몸짓을 하면서 알아들은 척을 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십 년이 지났으니 그래도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처음 듣는 낱말이 적지 않다.

살림을 꾸리느라 가장 매달리는 일은 여전히 책을 내고 원고를 편집하는 일이다. 일할 때에 늘 곁에 두는 것은 국어사전. 그 가운데에서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이다. 두꺼운 사전을 펼쳐서 하나씩 낱말을 찾아보던 것은 오래전 일이고, 이제는 늘 인터넷 검색을 해서 말을 찾는다. 이렇게 사전을 뒤지고 있으면 늘 마음이 어지럽다. 화가 나고, 어이가 없을 때가 많다. 아마도 편집자로 일을 하거나, 교정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라고 믿는다.

사전은 말을 글로 옮기는 데에 기본이 되는 책이다. 글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때에도 마찬가지. 나라에서 펴내는 사전이라고 하면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편집 일을 하고 교정을 볼 때 모든 기준은 국립국어원 사전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그것을 꼼꼼하게 따르다 보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지기 쉽다. 최근에 기억나는 말 하나는 ‘몸뻬’이다. 시골에서 흔히 입는 바지인 ‘몸뻬’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와서 퍼졌다고 하는데, 사전에는 ‘왜바지, 일 바지’로 순화하라고 풀이해 놓았다. 다만, ‘왜바지’라는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라 있지 않다. 순화어를 찾아도 나오지 않는다. 시골에서 듣게 되는 새로운 말들은 대개 ‘방언’이거나 무슨 말의 ‘잘못’인 경우일 때가 많다. 사전을 만드는 사람이 잘 모르거나 잘 쓰지 않았던 ‘다른’ 말들이 숱한 경우에 ‘틀린’ 말이 된다. 국립 기관에서 펴낸 원칙을 세우는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잘못이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긍하기 어려운 것은, 이 사전을 찾아보기에 가장 좋은 인터넷 홈페이지는 네이버라는 것이다. 더 이상 표준국어대사전은 책으로 나오지 않는다. 판올림은 인터넷을 통해서만 하고 있는데, 국립국어원과 네이버 두 곳에서 이 사전을 본다. 물론 네이버를 통해서 찾는 것이 훨씬 편하다. 여러 자료를 함께 보기에도 그렇고, 판올림된 자료를 정확하게 보기에도 좋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기업에서는 이 사전을 쓸 수 없는 것일까. 국립국어원은 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일개 기업에 떠넘기고 있을까.

처음 출판사에서 일을 배울 때,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반드시 교과서를 기준으로 했다. 그것은 글을 처음 익히는 아이들이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나 제 것이 맞다고 우기기 시작하고, 그래서 서로 다른 질서로 쓰여진 책을 읽게 된다면, 책 읽고 글 쓰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나중에는 으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겠지. 가장 큰 문제는 국립국어원 혼자서도 앞뒤가 맞지 않고, 남을 함부로 업신여기는 식으로 일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게 고스란히 사전에 담겨 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들추며 말을 익히는 아이들이라면 이런 것들을 배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과 저기서 말하는 것이 달라도, 남이 눈치채지 못하거나, 누가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면 괜찮다는 것. 지역에서 서로 다른 말을 쓰는 사람에게 너는 ‘잘못’이라고 낙인찍고 무시해도 괜찮다는 것. 자기 일을 스스로 아퀴 짓지 않고 남에게 떠넘긴다고 해서 별 문제는 아니라는 것. 자기가 해 놓은 일이 남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남을 곤란하게 한다 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이들이 숙제를 할 때마다 네이버를 통해 국립국어원의 사전을 보고 있다.

<전광진 | 상추쌈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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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차장에 들어선 차들은

죽음에 이르러서 자신의 천적을 알게 된다고 해요

차를 부숴본 사람들만이 아는 비밀을

살짝 알려드릴게요. 앞 유리를 부수고

보닛을 찌그러뜨릴 때쯤이면

태어나 그처럼 맞아본 적 없는 차들은

백미러를 보며 길을 그리워한대요

길이 방목해 키우던 그 시절

세상 그 어디에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던 그때를

회상에 빠진 헤드라이트가 그렁거리는 순간

차의 숨통을 끊어주는 게 폐차장에서 하는 일이래요

그러면 찌그러진 차체에 천적의 무늬가 떠오른대요

길의 무늬가 소름 돋듯이 뜬대요

계기판의 주행거리가 단지

오랫동안 길에게 쫓겼다는 증거였던 거죠

질주를 충동질하는 길이

후미등을 흉내 낸

빨간 신호등으로 자신을 길들여왔던 거죠

먹지도 못 하는 깡통을 만들어내는 천적 따위는

천적 축에 못 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폐차를 해본 사람은 잊지 않는대요

언제나 길은 제 위를 달릴 새 차가 필요하단 걸 말이에요

 

은밀한 포식을 즐기고 있는 아스팔트 도로

그 혓바닥 위로 당신도 막 걸음을 옮기고 있군요 -김학중(1977~)

달릴수록 수명이 단축되니, 모든 길은 차를 잡아먹는 포식자인 것. 닳거나 낡은 부속품은 길이 차를 조금씩 갉아먹은 자국인 것. 좁고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던 옛길은 넓고 평평하고 반듯한 고속화 도로가 되어 더 많은 차들이 더 빨리 남은 생명을 길 위에 던지도록 유혹한다. 마음껏 과속할 수 있는 도로는 속도의 진수성찬. 성능 좋은 차는 기꺼이 속도에 쫓기는 스릴을 즐기며 제 죽음을 재촉한다. 도로가 맛나게 포식한 차들이 폐차장에 쌓여 있다. 곧 부서지기를 기다리는 이 차들은 점점 더 빠르게 변화하는 삶에 적응하느라 앞뒤 안 보고 달리기만 한 우리의 자화상 같다.

<김기택 | 시인·경희사이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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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일반 칼럼

오징어는 두족류(頭足類) 십완목(十腕目)에 속하는 해양 연체동물의 총칭이다. <동의보감> <규합총서> 등 옛 문헌을 보면 오징어는 우리말로 오중어·오증어·오직어 등으로 불렸다. 한자로는 까마귀를 해치는 물고기란 뜻에서 ‘오적어(烏賊魚)’로 표기했다. 정약전이 <자산어보>에 소개한 내용이 흥미롭다. “오징어가 물 위에 죽은 척하고 있으면 까마귀가 달려든다. 그 순간 오징어는 발로 까마귀를 휘감아 바닷속으로 끌고가 잡아먹는다.” 예로부터 믿지 못할 말이나 지키지 않는 약속을 ‘오적어묵계(烏賊魚墨契)’라고 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오징어 먹물로 글을 쓰면 나중에는 먹이 없어져 빈 종이가 된다. 사람을 속이려는 간사한 자들이 하는 짓이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강원 강릉시 주문진항에서 해풍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오징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오징어 성어기를 맞아 분주해야 할 주문진항은 어획량 급감으로 어민들이 대부분 조업을 포기해 썰렁한 모습이었다. 정지윤 기자

오징어는 명태와 함께 한국인의 식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수산물이다. 해물파전의 주재료이고, 무와 함께 넣고 끓이면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초장에 찍어 먹는 오징어회도 별미다. 땅콩과 궁합이 잘 맞아 기차 안이나 영화관에서 즐겨 먹는 ‘국민 주전부리’다. 오징어의 타우린·단백질 함유량은 소고기·우유의 수십 배에 달한다. 뇌세포 형성과 혈액순환에도 효능이 있다. 오징어 뼈에는 지혈성분이 있어 상처에 바르면 피를 멈추게 한다. 종기가 아물지 않을 때 오징어 뼈를 갈아 뿌리면 잘 낫는다. 오징어 주산지인 동해안에는 참오징어·무늬오징어·쇠오징어 등 10여종이 산다. 오징어는 산란을 마치면 생을 마감한다. 알은 어미의 도움 없이 부화한 뒤 1년을 산다.

오징어잡이가 제철이다. 하지만 올해는 동해안 어획량이 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감했다. 중국 어선들이 북한수역에서 남하하는 오징어를 싹쓸이한 탓이다. 어민들은 조업할수록 손해라며 출항을 포기하고, 가공업체는 가동을 중단하고 있다. 실직자가 속출하자 강원도는 강릉·주문진시를 고용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오징어 씨가 마르면서 가격도 폭등해 ‘부르는 게 값’이 됐다. 오징어순대·오징어 보쌈집 등은 메뉴판이나 간판을 바꿔달고 있다. ‘금(金)징어 대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칫 오징어가 ‘제2의 명태’가 될 판이다. 남북한, 중국이 마주 앉아 ‘오징어 담판’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박구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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