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패션에 관심은 많은데, 정작 입고 다니는 옷은 거의 똑같아 보인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한국에 정착한 어느 프랑스인 패션 디자이너가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사 댓글을 보다가 웃음이 터졌다. “관심은 많다. 다만 내 옷보다 남이 뭐 입었는지 관심이 많을 뿐이다.”

한국식 ‘똑같은’ 패션의 정점인 ‘김밥 패딩’을 입는 겨울이 오고 있다. 기후이변으로 북극 얼음이 많이 녹아 올해도 제트기류가 한반도로 흘러내려올 것이라고 하니 이제 겨울철 롱패딩은 ‘생존템’ 내지 ‘국민복’으로 자리 잡을 듯하다. 롱패딩을 남과 다르게 개성 있게 입기는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혹한에는 그저 애벌레 고치 짓듯 껴입는 게 최고다. 하지만 아주 조금, 남과 똑같은 복장이 ‘몰개성’의 증거가 아닌지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곤 한다.

개인주의는 각각의 고유한 개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남과 똑같은 것은 미덕이 아닌 게으름이므로, 자기만의 특질을 가꿔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가 더 두드러지는 사회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명제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를 분석한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의 저서 <차별의 언어>에 따르면 한국어에는 유독 ‘우리’라는 표현이 많다. 엄마, 집, 회사 같은 단어 앞에 ‘나’가 아닌 ‘우리’가 붙는다. ‘우리’는 ‘울타리’와 어원이 같다. 나와 같은 울타리 안에서 정체성을 공유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한국인들은 유독 민감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패션은 ‘개인’보다는 ‘집단’의 동질감을 확인하는 소소한 의식처럼 보인다. ‘개성만점 에지 있는’ 유행 패션을 함께 소비하면서 한 사회 안에 연결된 너와 나를 확인하는 것이다. 쨍한 빛깔 등산재킷 차림의 단체관광객, 체크남방에 뿔테안경 쓴 공대생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은 직장 여성들이 ‘복제 패션’의 ‘유머짤’로 소비되곤 하는데 사실 다들 크게 다르지 않다. 약간의 변주만 있을 뿐이다. 김밥 패딩의 경우 허리선을 강조하거나, 라쿤이나 여우 같은 동물의 털을 달거나 하는 정도다.

이렇게 모두가 한꺼번에 소비 축제에 뛰어들면 회사의 명운이 바뀌기도 한다. 스포츠용품 업체 ‘휠라’는 국내 10~20대 소비자들 사이에서 2~3년간 크게 유행하면서 기울던 사세를 한 방에 역전시켰다. 김밥 패딩이 스트리트 패션에 밀려 고전하던 아웃도어 업체들의 둘도 없는 효자가 된 건 잘 알려진 얘기다.

군중의 소비를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널리스트 마이클 본드는 <타인의 영향력>에서 ‘군중심리’라고 하면 중심 없이 휩쓸리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사실 그보다 순기능을 가질 때도 적잖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뇌는 타인과 연결되고 소통해야 제 기능을 하도록 설계돼 있다. 나와 상대방이 같은 취향을 갖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패션은 즉각적인 소속감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한국처럼 내수시장이 그리 크지 않은 곳에서 ‘개성 넘치는’ 스타일의 차별화되는 제품은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비슷비슷하게 입는 게 이득인 셈이다.

다만 똑같이 입더라도 똑같은 사고를 하지는 않는다는 걸 서로 이해할 상상력이 있다면 모두가 사시사철 ‘김밥 패딩’ 같은 옷을 입더라도 별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애플의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는 검은색 터틀넥에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 패션만 고집했지만 누구보다도 창의적인 인간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고 패션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고유한 서로를 마주하기 위해서, 우리는 눈에 보이는 복장을 넘어 나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타인의 삶에 귀기울이는 ‘환대’의 마음만 가지면 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당신은 지금 입고 있는 옷 이상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머금은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민영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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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아저씨가 밤새 퍼마시고 집에 들어오니 곤히 자던 부인이 벌떡 일어나 고함을 내질렀다. “새벽 두시예요. 차라리 더 마시고 곧바로 출근을 하지 그러셨수. 집에는 왜 들어와서 달그락거리고 잠을 깨냐고요. 나도 술을 못 마셔서 이런 줄 아슈?” 그러자 아저씨 대답.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시간에 문을 열어주는 집이 이 집뿐이라서 들어왔소. 미안해요잉.”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개 꺼내더니만 텁석 식탁 의자에 앉더라는…. 그 말이 우스워서 둘이 그 맥주 한캔을 나눠 마셨다는 훈훈한 결말.

밤을 새우는 열정. 무어라도 하나 열심히 끈기 있게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 없지.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이면 쉽게 쓰러지진 않을 사람. 연말연시 모임들이 많을 때다. 연말에 한번쯤은 꼭 만나 맑은 술 한잔 나누고 지나가야 섭섭하지 않은 벗들이 있다. 자주 만나진 못해도 소중한 인연은 꼭 지켜가야 한다.

인디언 기우제는 신기하다. 호피족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몇날 며칠을, 아니 몇달이라도 계속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그날까지 간절한 마음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정성. 냉정하던 하늘도 어찌할 수 없는 이 오기와 끈기. 애타하는 마음들이 모이면 하늘도 움직인다. 

호주 눙가바라 원주민들의 창조 신화는 재미있다. 어느 날 땅이 무지개뱀을 낳았다. 뱀은 이곳저곳 다니며 강줄기를 냈다. 강물 속에 개구리알 보따리가 생겨났고 뱀이 개구리의 옆구리를 간질이자 개구리는 웃음보를 참지 못해 보따리가 터져버렸다. 개구리들이 온 강줄기에 가득 찼다. 이제 개구리떼는 비를 내려달라고 간절하게 울기 시작했다. 주구장창 울어댔다. 결국 비가 가득 내렸다. 나무와 풀과 꽃들, 캥거루와 코알라, 암사슴과 새들이 강물줄기에 기대어 살게 되었다. 비도 그렇지만 첫눈도 간절한 마음으로 빌 때 ‘펄펄’ 내린다. 첫눈 내리는 날 보자고 약속한 사랑이 세상에 있는 한, 첫눈은 올해도 어김없이 내릴 게다. 간절한 사랑과 소원이 없다면, 더는 비도 눈도 이 세상에 내리지 않으리라.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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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일본처럼 구역방식 주소를 사용해오다가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라 물류와 서비스 배송에 효율적인 도로방식 주소를 도입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도로명주소는 여전히 일본의 구역방식 주소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소체계는 세계적으로 구역방식과 도로방식으로 나누어진다. 구역방식 주소는 동양권에서 국가의 행정을 위해 지역을 행정구역 등의 구역으로 구분하여 호를 표시하는 방식이다. 일본의 주소를 보면 구역방식으로 OO현 OO시 OO구 OO정 O정목O번O호의 형식으로 나누어서 건물을 표시한다. 이 주소체계는 응급출동이나 물류배송에서 정확한 위치와 경로를 표현할 수 없는 방식으로 국제주소표준화에도 문제가 되고 있다.한편 도로방식 주소의 유래를 보면 1666년의 런던 대화재 후에 좁은 골목길에도 도로명을 붙여서 출동지령을 하면 소방마차가 도로명을 따라 긴급출동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세계적으로 효율적인 물류배송을 위해서도 도로방식 주소체계를 사용하고 있다. 도로방식 주소체계는 도로에 이름과 번호를 부여하여 정확한 위치표현과 경로표현을 할 수 있다. 도로명은 찾는 길을 안내하고 건물번호는 찾는 건물을 안내하여 사회적 서비스 배송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할 수 있다. 이제 새주소 사업이 1차적으로 완료되었는데 기본적인 문제가 드러났다. 소방서와 경찰, 우체국에서 도로방식 주소를 출동과 배송체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건물을 찾아갈 때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주소가 경로안내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도로방식 주소체계로 완전하게 구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행안부는 건물을 찾아갈 때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이용하는 비율을 조사는 하지 않고 새주소를 적는 비율만 조사한다. 이런 새주소 사업의 실태를 보면 행안부가 주소정책 시행에서 구역방식 주소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냐 하면 전국적으로 구역방식의 개념으로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묶음으로 부여하였다는 것이다. 국민의 70% 이상이 살고 있는 공동주택 건물군 안과 대학 캠퍼스 등의 건물군 안은 물류배송이나 출동서비스 배송이 많은 구역이다. 이런 구역 안의 개별 도로에 대해 길안내를 위한 도로명을 부여하지 않았고 개별 건물에 대해서 건물안내를 위한 건물번호를 묶음으로 부여하였다. 그래서 그 구역은 효율적 물류와 서비스 배송이 불가능한 구역방식 주소체계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행정구역상 이(里·법정리) 지역의 마을 안에도 개별 도로에 대해 길안내를 위한 도로명을 하나로 묶어서 부여하였고 도시지역에도 한 지역 안의 여러 도로에 대해서 도로명을 하나로 묶어서 부여한 데가 많다. 전국 곳곳의 여러 도로에 대해서 도로명을 묶어서 하나로 부여하였으니 도로명과 건물번호로 정확한 위치와 서비스 배송의 경로안내를 할 수가 없다. 결국 새주소사업은 제도의 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되어버렸다.

행안부는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여 주소체계를 아날로그 구역방식에서 디지털정보체계의 도로방식으로 구축하여야 한다. 바른 도로방식 주소체계는 서비스 배송을 신속 정확하게 하여 재난안전과 물류소통의 혁신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것은 스마트시티 구축의 근간을 만들고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 체제가 된다.

<김선일 | 과실연 사회제도 과학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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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길을 닦올라면 쇠시랑괭이로 길을 닦아 높은 데는 깎아닦고 깊은 데는 돋궈닦아 불쌍하신 금일망자 생왕극락으로 가옵시네.” 진도 씻김굿에서 길닦음을 하며 풀어놓는 사설이다. 씻김굿은 망자의 한을 달래는 것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이를 떠나보내고 애달파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진도에 길을 낸다고 했을 때 씻김굿이 떠올랐다. 4년 전 세월호 참사로 황망하게 수많은 이들을 잃은 그 바다가 보이는 자리, 눈물과 절규 속에서 처참한 시신을 옮기던 그 자리를 에둘러 걷는 길을 낸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은 또 ‘떠난 이들을 기억하자’는 얘기냐며 뒤로 물러섰다. 이제 할 만큼 하였으니 그만하자며 언제까지 그 섬을 상갓집 분위기로 고통받게 할 거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섬에 살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먼저 한다고 나서면 안된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을 낸다고 나선 이들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사실 그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추모하는 글과 그림을 새긴 타일을 모아 팽목항 방파제에 ‘기억의 벽’을 만들면서 어떤 이들보다도 진도 주민들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진도에서 나온 미역을 나서서 팔고, 진도 초등학교에 책을 보내준 것도 주민들과 고통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그들이 내고자 하는 길은 과거에만 머무르는 길이 아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참혹한 고통의 순간에 나로부터 우리로 향한 걸음을 내디뎠던 세월호 가족들의 고통의 서사를, 그들을 품고 희망과 사랑을 실현한 진도와 수많은 이들의 서사가 아로새겨진 현장, 팽목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고 했다. 그들의 뜻을 잘 아는 진도 주민들은 함께 길을 나섰다. 지난해 겨울부터 묵묵히 그 길을 함께 걸은 이들은 올봄 ‘팽목바람길’을 열었다. 그들은 이리 말한다. 길은, 걸으면 사라지지 않는다고.

아픔을 딛고 함께 가는 그 길, 바다도 바닷바람도 하늘도 나무도 풀도 모두 산 자들에게 위로가 될 것이다. 어제 ‘팽목바람길’이 노동당의 레드어워드를 수상했다고 한다. 길을 내느라 고생한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해원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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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한 따귀소리가 더해진 동영상이 반복 재생되며 아나운서의 흥분된 음성이 화면을 꽉 채운다. ‘양진호의 갑질’. 며칠째 뉴스를 장식하는 헤드라인이다. 퇴사한 직원을 무릎 꿇려 풀스윙 뺨을 때리고 현직 교수를 린치해 폭행하고 얼굴에 침을 뱉고 구두를 핥게 했다고 한다. 거기에 산 닭을 활로 쏴 죽이게 하고 일본도로 닭 목을 쳐 죽이기도 했단다. 이런 사람이 국내 웹하드 업계 1·2위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이며 탑승형 직립보행 로봇을 개발해 자칭 우리나라 로봇 사업을 이끌고 있다는 한국미래기술 회장이라니!

순간 몇 달 전 한바탕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 영상이 겹쳐진다. 또 몇 달간 검찰 조사 운운하며 시끌시끌하다 조용해지면 슬그머니 ‘무혐의’ 또는 벌금 몇 푼에 집행유예라는 결말을 생각하니 씁쓸해진다.

국내 웹하드 업체인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위디스크의 전 직원 얼굴을 손으로 내리치고 있다. 뉴스타파 영상 캡처

시각을 바꿔보자.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은 그저 일가의 단순 일탈행위였던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갑질은 대한항공이라는 거대기업의 든든한 백그라운드하에 이뤄졌다. 즉, 그들의 갑질은 대한항공 구성원이라는 든든한 공범의 암묵적 지원하에 가능했다. 양진호 갑질의 본질도 같다. 양진호라는 희대의 인물과 그가 소유한 기업 구성원들이라는 공범들이 있었기에 그의 갑질의 힘은 더욱 세진 것이다. 최초 폭로된 동영상이 2015년 4월의 일이었으니 지금으로부터 3년도 넘었다. 당시 동영상을 촬영한 자나 동영상 속 많은 직원들도 그 폭행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은 한 인격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여태껏 침묵했다.

또한 이번 사건의 본질 중 하나는 그가 운영했던 업체가 불법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로 ‘저작권 없는 불법음란물’ 유통을 통해 돈을 벌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불법촬영물이나 리벤지포르노를 유통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론 그 때문에 유출된 불법촬영물이나 리벤지포르노를 없애 달라는 사람들에게 사이버장의사 업체를 운영하며 돈을 벌었다고 하니 병 주고 약 주고 어르고 뺨 때려 돈을 챙긴 것이다. 한마디로 남의 불행을 팔아 돈을 번 범죄집단이나 다름없다. 저런 자들이 세운 기업에 들어간 몇몇 청년들은 IT 기업 입사라고 기뻐했을 테고, 이들을 보고 많은 청소년들은 미래 로봇산업에 관심을 가졌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를 넘어 걱정이 앞선다.

양진호는 법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한다. 또한 검·경은 이번 기회에 온갖 불법의 온상인 웹하드 업체를 철저히 수사해 불법을 차단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그와 함께했던 직원들에게 부탁한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양진호의 악행을 낱낱이 증언해주길 바란다. 범죄인 줄 알면서도 방관하며 모른 체하는 것도 암묵적 폭행이다. 어쩌면 집단으로 방관하며 저지르는 암묵적 폭행이 직접적 폭행보다 피해자에겐 더 절망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다.

<전병호 | 생각공작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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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사회학은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분야다. 아직 두 달 정도 남아 있지만 2018년은 내게 지식인 최인훈과 김윤식이 세상을 떠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만큼 두 사람의 사상이 나의 사회학적 연구에 미친 영향이 컸다. 단언컨대, 최인훈과 김윤식은 광복 이후 한국 모더니티를 탐구해온 가장 뛰어난 작가이자 가장 탁월한 국문학자였다. 내가 이 글을 쓰는 까닭도 두 사람의 지적 모험을 통해 한국 모더니티의 과거와 현재를 반추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모더니티란 16~17세기 서유럽에서 시작해 지구적으로 확산된 사회제도와 의식을 말한다. 제도로서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의식으로서의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는 이 모더니티의 중핵을 구성한다.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서 19세기 후반부터 부여된 시대사적 과제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가 바탕을 이룬 ‘근대적 국가와 사회 만들기’였다. 우리는 어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어떤 개인주의와 민족주의를 일궈온 걸까. 소설이든 평론이든 문학의 힘이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을 구하는 데 있다면, 최인훈과 김윤식은 바로 이 문제를 평생 천착해 왔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사멸했습니다. (…)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명준이 북한에서 발견한 것은 잿빛 공화국이었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에 나오는 말들이다. 이 구절들은 광복 이후 4월혁명까지 남과 북의 현실을 날카롭게 전달한다. 살아 있되 이기적 욕망만 넘치는 사회와 혁명을 앞세우나 인간은 죽어 있는 사회, 다시 말해 ‘광장 없는 밀실’(남한)과 ‘밀실 없는 광장’(북한)은 1950년대 한반도에 존재한 두 자화상이었다.

소설 <화두>는 <광장>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인훈의 한 정체성인 <광장>의 주인공이 남과 북을 관찰했다면, 또 다른 정체성인 <화두>의 주인공은 이제 미국과 소련을 여행한다. <화두>의 화두는 민족의 재발견이다. <화두>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낯선 미국 땅에서 이뤄지는 민족과의 조우다. 버지니아에서 우연히 만난 한 도지(道誌)에 실려 있는 ‘장수 잃은 용마의 울음’이란 아기장수 설화는 최인훈으로 하여금 민족을 재발견하게 하고 그리운 조국으로 결국 돌아오게 한다.

최인훈이 뛰어난 작가인 까닭은 광복 이후 한국 모더니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남과 북의 분단 시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를 깊이 있게 성찰했다는 데 있다. 분단과 냉전은 지난 20세기 후반 한국 현대사를 규정해온 두 겹의 시대적 구속이다. 이러한 구속 아래 모더니티의 제도와 의식인 자본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변동해 왔는지를 최인훈은 생생히 재현하고 조명한다. 문학평론가 김현과 국문학자 김윤식이 ‘한국 문학사’에서 최인훈을 ‘전후 최대의 작가’라 평가한 것은 결코 과찬이 아닌 셈이다.

김윤식의 관심은 우리 사회에서 모더니티란 무엇인가에 맞춰져 있다. 이 물음은 사실판단의 질문이자 규범판단의 질문이다. 사실판단의 관점에서 김윤식은 지난 20세기 한국 모더니티가 자본주의, 국민국가, 민족주의, 전통주의의 십자 포화 한가운데 놓여 있었다고 파악한다. 그는 이러한 모더니티의 제도와 의식이 소설과 비평 등 문학에 어떻게 담겨 있었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200여 권에 달하는 저작들은 더없이 고독하면서도 고통스러웠을 그의 지적 탐험을 직접적으로 증거한다.

사회학적 시각에서 한국 모더니티는 서구와 다른 경로로 진행돼 왔다. 한국 자본주의는 압축적 산업화였고, 한국 민주주의는 보수적 민주화였다. 한국 개인주의는 공동체주의에 압도돼 빈곤했으며, 한국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한국 모더니티는 그 출발부터 외부로부터 이식된 과정이었던 동시에 ‘한국적 표준’을 창출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광수와 임화 해석에서 이청준과 박완서 비평에 이르는 김윤식의 방대한 문학 연구들은 바로 이 한국 모더니티의 계보학에 대한 인문학적 탐색이었다.

최인훈 선생은 2008년 <최인훈 전집>을 펴내면서 <화두> 제1권 말미에 나의 사회학적 비평인 졸고 ‘관념의 세계시민과 현실의 세계시민’을 싣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김윤식 선생은 2002년 교수신문에 실린 나의 짧은 에세이인 졸고 ‘그람시와 김윤식’을 읽고 따로 연락해 격려해주셨다. 규범판단의 차원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성숙한 민주주의, 연대적 개인주의, 개방적 민족주의는 한국 모더니티가 마땅히 가야 할 길이다. 이러한 모더니티의 심층적 탐구와 현실적 구현이 나를 포함한 후학들에게 부여된 과제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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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음식은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로 빈번히 사용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을 방문한 영국왕 조지 6세에게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서민 음식인 핫도그와 맥주를 대접했다. 도도한 영국 왕실의 이미지를 미국사람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기 위해서다. 당시 미국인들은 전쟁에 나서는 것에 반대했다. 이 같은 반대여론을 무마하고 영국을 지원하는, 참전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시도였던 것이다. ‘핫도그 외교’는 성공적인 식사외교로 회자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지난 미 대선기간 중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치킨을 먹는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내보냈다. 그런데 손으로 뜯어먹는 서민들과 달리 은색 포크와 나이프로 먹는 모습이어서 ‘서민 코스프레’라는 비아냥을 샀다. 또 그는 히스패닉 표심을 공략하려고 멕시코 대중 음식 타코 볼을 먹는 사진을 “난 히스패닉을 사랑해요”라는 말과 함께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나 정책에서는 ‘멕시코 장벽을 설치하겠다’는 등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해 오히려 반감만 키웠다.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 간의 회의 뒤 오찬에서 메뉴로 탕평채가 나왔다. 청와대는 “치우침이 없는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탕평은 <서경>에 ‘무편무당 왕도탕탕 무당무편 왕도평평(無偏無黨 王道蕩蕩 無黨無偏 王道平平)’에서 유래한다. 탕평채는 녹두묵에 고기볶음과 데친 미나리, 구운 김 등을 섞어 만든 청포묵 무침이다. 이들 음식의 색깔은 조선시대 권력을 잡았던 당파로 알려진 서인, 남인, 동인, 북인을 대표하는 색이라고 한다. 영조는 탕평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 음식을 내놓았다고 한다. 당파 간의 갈등 해소를 기원한 것이다.

정조는 선왕인 영조의 탕평을 이어받았다. 침전에 ‘탕탕평평실’이라고 쓰인 편액을 달았을 정도다. 그러나 정조는 “선왕조 만년까지만 해도 바른말과 격한 논쟁들을 많이 했다. 요즈음에는 감언(敢言)하는 자가 없으니 아마 과인이 과실을 지적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그러는 것인가?”라며 한탄했다. 아첨꾼은 있으나 바른말 하는 신하가 없음을 아쉬워한 것 같다. 탕평은 백화제방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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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종전과 함께 영국 정부는 전후 복구 계획을 사회 각계각층으로부터 제출받았다. 존 볼비라는 정신과 의사도 동료들과 함께 복구 계획안을 제출하였다. 전쟁 후 국가 재건과 복구 계획에 정신과 의사는 무엇을 복구하자고 계획을 냈을까. 그는 주거를 위한 건물 복구뿐 아니라 국민의 마음 복구도 같은 비중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한 고아와 아동들의 정신적 충격과 교육에 대한 복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아원이나 시설에 있는 아동 수를 대폭 줄이고 이 아이들이 위탁가정과 공공유치원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펼쳤다. 건물만이 아니라 마음과 교육도 복구하라는 그의 정책이 오늘날 영국 정부의 외로움부 장관이나 자살예방부 장관 임명으로까지 이어지는 문화적 전통이 아닌가 생각한다.

60년 전 아동들의 마음 복구를 주장했던 존 볼비의 문헌을 보다 국내 뉴스를 보니 마음이 울컥한다. 세계 최고의 저출생국인 이 나라에서 일부 유치원 운영자들이 벌인 행각이 기막혀서다. 원아들을 위해 써야 할 돈을 보석 구입 등 개인 치장하는 데 쓰고 자녀 용돈도 주는 등 비리백화점과 다름없었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일부 운영자들의 비리를 밝힌 이들은 초선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엄마들이었다.

“교육부는 사죄를”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들이 교육부의 비리유치원 비호·방조에 대해 감사를 청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아이들에게 먹일 빵을 가로채는 동화 속 악당들의 일을 관행으로 여기는 사회였다니! 그 관행이라는 부도덕의 카르텔에 오랜 기간 서로 협력하며 지내온 관료와 정치인들에게 놀란다. 또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눈을 감았던 국가의 무관심에도 놀란다.

정부의 우선순위 설정 기능도 걱정이다. 고등학교 무상교육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공공화와 무상화가 국가교육의 차원에서 훨씬 우선 순위가 높은 일 아니던가. 작금의 결혼기피, 저출산, 국가의 위기상황을 보면 아이 키우기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은 위기대응의 제일 과제이지 않은가. 지금 이 나라는 아이들의 삶을 복구하고, 부모로서의 삶도 복구하는 가장 혁신적인 정책이어야만 구제될 수 있다.

또한 오늘날 유치원, 어린이집의 중요성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더욱 커졌다는 사실을 국가는 기억해야 한다. 유치원은 국가가 주체로서의 시민과 만나는 첫번째 교육적 접촉점이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을 포함한 반편견교육, 세계시민교육도 유치원 수준에서 가장 효과가 높다. 그래서 사회통합교육도 유치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미국 교육부는 이미 1980년대에 강조한 바 있다.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에서부터 공공문화를 가르치고, 시장과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 협력과 상생의 공동체를 경험하고 공감을 배우는 것도 나이가 어릴수록 더 효과가 좋고 오래가는 것으로 밝혀졌다. 온갖 디지털 기기에 대한 감수성과 문해력도 달라서, 유치원부터 디지털 문화에 대한 문해력을 배워야 향락적 소비자가 아니라 상호적 생산자가 되면서 창의적인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사립유치원에 다니며 교사와 부모로부터 떠받듦만 받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갑질한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 부가적 사교육비를 대느라 엄마들이 알바를 하면 할수록 아이는 더 비뚤어진다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다.

우리는 더욱 아동을 위한 나라가 되어야만 국가가 회생할 수 있다. 존 볼비는 “사회는 아동이 가정다운 가정을 경험하게 해줄 의무가 있고, 배워야 할 좋은 것들을 공적인 학교에서 배우게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즉 국가는 마땅한 육아와 교육환경을 아동에게 제공해야 하고, 가정다운 가정을 경험할 수 있도록 아버지와의 저녁시간을 돌려주어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부지런한 엄마의 번호표 뽑기에 아동의 유아교육을 맡긴다는 말인가. 온갖 사교육에 시달리며 아동 본인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거만한 사교육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또 속임수와 학대가 빈번한 교육현장에서 자라나는 슬픔을 아동의 가슴에 맺히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번 비리로 상처받은 부모의 마음까지도 국가와 유치원들은 복구해 주기를 바란다. 조속히 유치원 교육은 무상·공립화되어 걱정 없게 해야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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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에는 대형 문학행사가 둘이나 잇따라 펼쳐지고 있다. 하나는 작고 50주기를 맞은 시인 김수영의 삶을 회상하고 그의 문학을 다시 들여다보는 행사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베트남·몽골·팔레스타인 등 10개국의 문인과 한국 문인들이 참가하는 ‘제2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11월6~9일)이다. 나는 두 행사에 조금씩 관여가 되어 있는 데다, 지난 10월19일에는 충남 부여에서 진행된 신동엽문학제에서도 특별강연이라는 걸 했다. 그러다 보니 이 행사들 전체를 꿰뚫는 주제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되고, 특히 내 경우 젊은 날 김수영·신동엽 두 시인과 짧지만 날카롭게 맺어졌던 인연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알다시피 김수영 시인은 6·25전쟁 때 부득이하게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우여곡절 끝에 포로수용소를 거쳐 석방되었다. 이런 끔찍한 경험에다 유난히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였으니 김수영에게 1950년대의 냉전반공체제는 숨막히는 질곡이자 견디기 힘든 억압이었다. 따라서 우리 나이 마흔에 맞이한 4·19혁명은 당연히 그에게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기 이전에 무엇보다도 자신의 억눌린 인격에 주어진 해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무렵 그의 시들이 모두 혁명의 추이에 관련되어 있지만, 산문 중에서도 ‘책형대에 걸린 시’(경향신문 1960년 5월20일자) 같은 글은 김수영의 생애에서 4·19가 결정적 분기점이었음을 실감 있게 증언한다. 이로부터 작고하기까지 7, 8년 동안 그의 시적 사유와 창작활동은 우리 문학사상 유례없이 치열한 심화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의 문학행사들은 그가 이룩한 미학적·사상적·인간적 성취를 분석하고 그것을 변화된 현실 속에서 계승하려는 후배들의 새로운 모색이라 평가하고 싶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김수영보다 아홉 살 아래인 신동엽에게도 분단과 전쟁의 시련은 비켜 가지 않았다. 다니던 사범학교에서는 동맹휴학 사건으로 퇴학을 당했고 전쟁이 나자 악명 높은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병든 몸으로 귀향하다 배가 고파 생으로 잡아먹은 민물게 때문에 간디스토마에 걸려 결국 요절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병고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겪은 고난의 아픔 너머를 상상했고 그것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했다. 명작 ‘껍데기는 가라’는 50여년 세월을 건너뛰어 이제 남과 북의 온 겨레가 함께 애송할 날을 목전에 두게 되었다.

신동엽 시의 진가를 공식석상에서 맨 처음 인정한 사람은 김수영이었다. 월평 같은 글에서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신동엽을 거론했고 평론 ‘참여시의 정리’에서는 “소위 참여파의 다른 어떤 시인보다도 확고부동한” 업적을 내놓는 시인으로서 신동엽의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내게는 두 분의 관계에 대한 개인적인 추억도 있다. 계간 ‘창작과비평’은 창간 3년째 되던 1968년 봄호부터 시를 게재하기 시작했는데, 김수영이 잡지의 자문에 응해 추천한 시인은 원로로서 김현승·김광섭과 신진으로서 신동엽이었다. 나는 그 무렵부터 주간인 백낙청 교수의 요청으로 편집을 거들게 되었다. 1968년 봄 창덕궁 돈화문 건너편 2층 다방에서 백 교수와 함께 신동엽의 신작시 5편을 건네받던 일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중의 한 편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은 올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진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의 세 차례 회담을 예견하고 쓴 듯이 생생하다. 말을 꺼낸 김에 한두 대목 읽어보자.

“술을 많이 마시고 잔/ 어젯밤은/ 자다가 재미난 꿈을 꾸었지.// 나비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다가/ 발아래 아시아의 반도/ 삼면에 흰 물거품 철썩이는/ 아름다운 반도를 보았지.// 그 반도의 허리, 개성에서/ 금강산 이르는 중심부엔 폭 십리의/ 완충지대, 이른바 북쪽 권력도/ 남쪽 권력도 아니 미친다는/ 평화로운 논밭.”(제1~3연)

“꽃 피는 반도는/ 남에서 북쪽 끝까지/ 완충지대./ 그 모오든 쇠붙이는 말끔히 씻겨가고/ 사랑 뜨는 반도,/ 황금이삭 타작하는 순이네 마을 돌이네 마을마다/ 높이높이 중립의 분수는/ 나부끼데.”(제7연)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의 꿈,이라고 둘러댄 것은 그 시절 군사정권의 검열을 의식한 한갓 둔사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시의 형식으로 위장한 중립화통일론으로만 보는 것은 편협한 도식주의에 가깝다. 물론 신동엽의 문학에 정치적 이상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50년 전 놋쇠하늘 밑에서 시인들이 갈망해 마지 않던 표현의 자유는 민주화 이후 시대인 오늘날에도 국가보안법의 통제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동엽이 꾸었던 꿈이 이제 실제상황 속에서 불가능의 철조망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며칠 전 판문점 비무장화 합의에 따라 남과 북의 경비병력이 철수한 것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지난 9월19일 능라도 5·1경기장에서 15만 평양 시민을 앞에 두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 연설의 다음 대목을 떠올리면 시인이야말로 바로 시대의 예언자임을 알 수 있지 않은가.

“오늘 김정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습니다. 또한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칼럼이 신문에 나가는 오늘부터 나흘간 광주에서 열리는 아시아문학페스티벌을 각별한 눈으로 보게 된다. 페스티벌 참가 작가들의 소속국가는 대부분 한국과 험악한 수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식민지, 전쟁, 분열, 독재, 가난은 우리만 겪은 고통이 아니었다. 어떤 나라, 어떤 지역에서는 제국주의 강대국의 침략과 수탈이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그 제국주의의 타도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 없는 세상’을 가져오기 위해서, 모든 부문에서의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실현을 위한 지혜를 모으기 위해서 아시아의 작가들이 입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번 문학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의 다음과 같은 발언은 이 행사가 단지 문학인끼리만 즐기는 지역축제가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새로운 문명전환의 호소임을 깨닫게 한다.

“아직도 세계문학은 구미 중심이다.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것은 옳지 않다. 아시아 문학인들끼리는 모이는 것이 의미가 큰 이유다.”

<염무웅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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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나렌드라 모디 총리 예방에 이어 6일 아요디아에서 개최되는 ‘허왕후(許王后) 기념공원’ 착공식에 참석한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김 여사를 수행하고 있다. 일개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주제로 벌어지는 수수께끼 같은 일에 일국의 대통령 부인과 장관이 국가를 대표한 외교사절로 참가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초청으로 인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5일 오후(현지시간) 뉴델리 총리 관저에서 모디 총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삼국유사> ‘기이(紀異)’편에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가락(일명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결혼하여 허왕후가 됐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기이’란 말 그대로 기이한 설화이다. 우선 허황옥이 142세에 사망했다는 것부터 실재성이 없다. 아유타국 공주라고 하는데 아유타국은 인도의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허왕후 기념공원이 만들어지는 ‘아요디아(Ayodhya)’는 네팔에 인접한 인도 북부의 인구 6만명인 소도시이다. 이곳 사람들이 일부 한국인의 아요디아설을 근거로 한국과의 친선 관계를 도모하기 위해 한국의 고사에 나오는 허황옥의 모태가 자기 지역이라고 주장하면서 기념공원까지 만들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설화 속의 허황옥은 오늘날 한국·인도의 역사적인 유대의 상징처럼 되었다.

국내 학자들은 일연(一然, 1206~1289) 스님이 <삼국유사> ‘기이’편에 가락국기를 쓸 때 시조 김수로왕의 출생과 성장에 불교적인 설화를 가탁(假託)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연 스님은 ‘기이’편에 “수로가 알에서 깨어나 10여일 만(踰十餘晨昏)에 키가 9척 크기로 자라서 같은 달 보름에 왕위에 올라 가락국 시조가 됐다”고 신비롭게 묘사하였다. 6세의 김수로가 아유타국에서 3개월 동안 배를 타고 온 16세의 여자와 결혼한다는 내용도 현실성이 희박하다. 일부는 아유타국을 인도의 아요디아라고 주장하는데 아요디아라는 지명도 여러 곳에 있다고 한다. 또 설사 인도 북부의 아요디아가 아유타국이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기원 48년에 네팔 접경에 가까운 인도의 최북단에서 한반도의 최남단인 김해까지 배를 타고 이동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여정이다.

일개 가탁된 설화를 갖고 국가 간의 혈연관계를 주장하고 일국의 수장이 이를 역사적 사실로 긍정하고 지지하여 외국의 정체불명 행사에 대통령 부인이 정부의 장관을 대동하고 참석하는 것은 신중치 못한 행동이다. ‘허황옥 도래설’은 우리나라 최대 성씨인 김해 김씨들이 긍정적으로 믿고 있다. 근세에도 일부 정치인들이 호사하고 있다. 김해 김씨 중에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도 김수로왕과 허왕후의 후예라고 자처했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가 원수 신분으로 김수로왕과 허왕후 제전에 참배하였고, 김종필씨는 현직 국무총리 신분으로 김수로왕과 허왕후 제전에 제관으로 참배하였다. 국가 수장 신분으로 제복을 갖추고 씨족의 문중제사에 참배한 사실은 다시금 되새겨 볼 일이다.

일부가 김수로왕 설화를 실제 있었던 일처럼 주장하는 것을 가지고 국가가 나서서 역사적 사실로 인정한다면 마땅히 같은 <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오는 단군왕검도 국가가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여 지난 10월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의 단군릉에 가서 참배했어야 하지 않는가? 학문적 합의 없이 몇 사람의 가설을 가지고 국가의 원수가 나서서 노골적으로 국가적인 외교행사로 비화하는 것은 엄연한 역사의 왜곡이다.

<이형구 | 동양고고학연구소장·전 선문대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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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하려는데, 오디세이학교 학생 몇몇이 출판사에 남아 있다. 일본 대안학교 탐방을 준비하는 팀이다. 필수수업은 빠지면서 자기들 하고픈 일은 저렇게 열심이라고 길잡이 교사가 웃으며 눈을 흘긴다. 때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중요한 경험을 하는 중이다. 누가 어째서 이것을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정해놓았단 말인가. 듣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이 질문들은 주체적인 판단, 선택과 책임을 연습하는 과정이다.

오디세이학교는 민들레출판사에서 파생된 대안학교 ‘공간민들레’가 협력하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이다. 고1 학생들이 1년 동안 지정 대안학교에서 공부한 후 원래 학교로 돌아가면 학력이 인정되어 2학년으로 진급한다. 4년 전 고교자유학년제로 시작해 지금은 각종학교로 분류된 오디세이학교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다른 시·도교육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오디세이학교를 다니면서 뭐가 제일 좋은지를 묻자 한 학생이 답했다. “제 생각이 뭐냐고 묻는 거요.” 여행이나 프로젝트수업 등 공교육에서 접해보지 못한 특정 교육과정을 손꼽을 거라는 예상을 빗나가는 답이었다. 그동안의 학교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고. “왜”냐고 묻는 행위는 대드는 것, 버릇없는 것, 되바라진 것, 당돌한 것으로 취급되어 질문을 거세당하는 경험만 하다 이곳에서 들은 “넌 어떻게 생각해?”라는 질문은 신선했다. 존중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고도 했다.

오디세이학교에서 제일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 묻자 학생은 같은 답을 내놓았다. “제 생각이 뭐냐고 묻는 거요” 어떤 사안에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덧붙여본 적이 없어서 스스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살피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고. 슬쩍 친구들 사이에 묻혀서 잘 수도 있고, 멍하니 딴 생각하며 앉아 있기만 해도 되는 공교육 교실이 그립기도 했단다.

“그냥, 뭐 하라고 정해주면 안돼요?” 많은 선택권을 가지고 있는 대안학교 학생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사뭇 복에 겨운 투정이라고도 할 수도 있지만 그 심정도 이해가 가는 것이, 주체적 삶은 피곤하다. 선택에는 적극적 의지가 필요하며, 반드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1년의 오디세이학교를 마친 후 대부분의 학생들은 원래 학교로 돌아간다. 두 주먹 불끈 쥔 투사가 되기도 하고, 무기력한 친구들을 리드하는 적극적인 학생이 되기도 한다. 더러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는 친구들도 있다. 학교 밖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수업보다는 생활로 접근하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들이다. 살아 있는 학교가 되려면 삶이 스며들어야 한다. 삶이란 먹고 자고 놀고 싸우고 화해하고 사랑하는 것의 다른 말이다. 이런 방식이라면 오디세이학교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나 그 시도는 가능하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고 선택의 권리를 아이들에게로 돌려주면 된다.

12년의 학제 틈에 이런 제도가 있다는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정책적으로 이런 선택지가 있다는 것은 ‘삶의 전환과 탐색’을 사회적으로 허용하고 응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인생은 숱한 갈림길 위에 선다. 잘 알지 못하는 길을 선택하는 일은 늘 두렵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선택의 여지없는 인생’은 단조롭고 불행하다는 사실이다.

<장희숙 | 교육지 ‘민들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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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3일. 학생의날을 맞이하여 교사들의 교내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해결 및 예방책 마련을 촉구하는 ‘스쿨미투’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은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고 외쳤다.

2015년 이후 대중 페미니즘 운동은 대체로 익명의 청년 여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운동의 형태였다.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했을 때 여성들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와 2차 가해, 무고죄 고발, 그리고 조리돌림이었으므로 이는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미투에 이르러 여성들은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내걸고 싸우기 시작했다. #스쿨미투도 마찬가지다. 교사의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한 이후에 학생들은 진학과 취업 등을 빌미로 2차 가해를 당해왔다. 그들의 싸움은 이런 현실적 위협을 감수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페미니즘을 그저 ‘배부른 투정’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지금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젊은 여성들을 그저 낯선 존재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3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전국청소년행동연대 ‘날다’ 등이 주최한 ‘스쿨미투’ 집회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교육 당국의 책임있는 자세와 대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의 한 진보단체에 강의를 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강의가 끝나고 한 여성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중학생 딸이 최근 혜화역에서 열렸던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딸의 정치적 행동을 존중하는 어머니로서 그 서울행을 막지는 않았지만, 시위 다음날부터 그분이 즐겨듣는 한 뉴스 방송이 혜화역 시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걱정은 심해졌다.

디지털 성범죄 편파수사에 대항하는 여성들의 집회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그 방송은 3차 시위 직후 3일 연속 진행자의 오프닝 멘트에서 혜화역 시위에 대해 언급했다. “문재인 재기해”라는 구호를 비롯하여 진행자 자신이 워마드 사이트에서 관찰한 몇 가지 정황을 바탕으로 극우 단체가 혜화역 시위에 개입되어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토로했던 것이다.

깜짝 놀란 그분은 딸에게 방송을 들어보라고 권했지만, 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모녀 사이의 갈등이 심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던 와중에 우연히 페미니즘 강의를 듣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분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강의를 들어보니 딸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갑질 폭력의 최고치를 갱신하면서 연일 충격을 주고 있는 한국미래기술의 양진호 회장은 디지털 성범죄와 전쟁을 벌여온 청년 여성들이 끊임없이 지적했던 웹하드 카르텔의 중심에 있는 자였다. 그는 웹하드 ‘위디스크’와 ‘파일노리’의 실소유주로 ‘몰카 헤비 업로더’들을 조직적으로 관리하여 돈을 벌었고, 디지털 장의업까지 손을 대고 있었다. 디지털 성범죄물을 올려서 돈을 벌고, 지워주면서 또 돈을 벌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번 돈이 1000억원이다. 갑질을 할 수 있는 위력은 그렇게 번 돈으로부터 나왔다.

지난 7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내용을 방송한 후에도 한국사회는 침묵했다. 찍은 사람, 올린 사람, 받아본 사람, 그렇게 번 돈을 나눠 먹은 사람, 모두가 공범이기 때문일 터다. 지금 여당에서도 ‘갑질 폭력’만 언급할 뿐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물로 벌어들인 돈이 도대체 어디까지 흘러들어간 것일까?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단 폭력과 차별에 맞서 싸우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말하는 청년 여성들에 대해 기성세대는 너무 쉽게 겁을 먹는다. 어쩌면 그들이 적폐청산의 핵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양진호 사건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성적폐야말로 한국사회 적폐의 설정값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그대로 두면서 갑질만 해결할 수는 없다. 그 갑질은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로부터, 그렇게 여성의 존엄을 가볍게 여겨온 문화로부터 가능해지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겁을 먹어야 할 것은 청년 여성들의 날것의 언어가 아니라, 자신들의 성적폐 카르텔을 가려온 그들의 세련된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손희정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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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시계는 거꾸로 매달아놔도 돌아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겹고 힘들고 까마득한 군생활이지만 견디다 보면 끝날 때가 오긴 꼭 온다는 위로이자 다짐이죠. 옛날 괘종시계는 추가 진자운동 해야 태엽 풀리며 작동된다지만, 아무리 시계 거꾸로 매단들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지납니다. 또한 소속 집단이나 인터넷 게시판 등에 자신에 대한 터무니없는 소문과 비난들이 나오는 일도 있습니다. 아니라고 핏대 세워봤자 되레 반동(反動)으로 트집거리만 되니 마주서지 말고 비껴서야 할 때도 있겠지요.

살다보면 너나없이 한두 번은 참기 힘든 시기를 겪습니다. 그때 간혹 어떤 이들은 도저히 못 견뎌 귀 막고 틀어박히거나, 살아 뭐하나 싶은 자포자기에 목숨까지 버리려 듭니다. 하지만 힘들고 사나운 시절도 시간 지나면 수그러들고, 무성한 입방아도 그러라 놔두면 제풀에 사그라집니다. 속담에서는 이를 스쳐가는 바람에 빗대 ‘바람이 불다 불다 그친다’고 하지요.

바람은 머무르지 않습니다. 폭풍이 잦아들고 태풍이 소멸하듯, 가만가만 참다보면 ‘그런 때가 있었지’ 돌아보는 어느 한때로 지나 있습니다. 지금이 힘겹다면 종잇장 꺼내 무엇 때문에 이토록 곤비한지 한번 낱낱이 적어보십시오. 머릿속에선 온갖 미친바람이 휭휭 회오리쳐도, 막상 적어 놓은 걸 내려다보면 돌개바람 하나에 나머지는 먼지바람 건들바람 소슬바람들이기도 할 겁니다. 비바람 맞서 우산 붙들고 악전고투하다가 ‘케세라세라’로 시원하게 젖어버리는 것이 외려 해방감을 줄지도 모릅니다. 어디서 누가 내 욕 하나 귀 한번 후비적해버리고요. 어찌어찌 하다보니 한 해가 지나고 별거 아니었습니다. 풍문과 풍파도 시간의 바람결에 흐리마리 흩어집니다. 힘겨운 오늘을 무심한 노래로 흘려버립시다. Speaking words of wisdom, let it be-. 그렇게, 이 또한 지나가리니.

<김승용 | <우리말 절대지식>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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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다. 절에서는 마주치는 이도 있지만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이 주로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내려놓으려는지 어깨도 유난히 처져 보인다. 멀리 우뚝한 일주문 근처에서는 사람들이 지하로 푹푹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다.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행사에 참석하러 경주 가는 길. 김천의 직지사 사하촌에서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교실을 벗어난 이후 처음 보는 친구들과도 어울려 경내를 잠깐 거닐었다. 탑으로 가는 눈길을 빼앗아가는 단풍잎들. 아아, 벌써 40년이라니! 희끗희끗 영감으로 넘어가는 후줄근한 모습들이었지만 이름을 대면 졸업앨범에서의 앳된 얼굴들이 그냥 훅, 튀어나왔다. 흥건한 기분으로 신라의 달밤을 떠들썩하게 건넜다.

ⓒ최영민

골프, 관광 조와 헤어져 삼릉에서 남산 금오봉에 올랐다. 돌아드는 바위마다 심상찮은 기운이더니 실제 바위 바깥으로 외출한 부처들도 있다. 한 가족이 소풍을 나왔는가. 꼬마가 가파른 경사에서 외친다. 고만 집에 가자. 경상도 사투리의 투정을, 이 자슥아 이 길 아니고는 집에 갈 수 없데이, 다독이는 젊은 엄마의 슬기로운 거짓말은 이 지방 특유의 억양이다. 여기가 경주이고, 이곳이 남산이라 그런지 집이라는 말은 졸업과 얽히며 사무치게 귀에 들어왔다. 천년이 퇴적된 경쾌한 풍경을 가리키는 바위에 철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줄기와 가지, 어린 나뭇잎은 희한한 무늬를 연출해낸다. 사람 인(人), 큰 대(大), 마음 심(心)이 함께 어울렸다. 바람에 불어 철쭉이 흔들리면 따라서 일렁이는 오묘한 글자들 속에 철쭉이 전하는 큰 소식이 있는 듯!

어제부터 내심 떠올리며 공글린 꽃이 있으니 동래엉겅퀴이다. 몇해 전 상주 황금산 입구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이름에 특별하게 꽂힌 건 엉겅퀴 앞에 얹힌 두 글자가 바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엉겅퀴는 동래(東萊)에서 처음 발견되어 그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마침 부산의 꽃동무가 이기대 해변에 한창이라며 동래엉겅퀴를 보내주었다. 50주년에도 모두들 저 동래엉겅퀴처럼 싱싱하게 모일 수 있을까. 이래저래 동래엉겅퀴와 얽히고설킨 하루였다. 동래엉겅퀴,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이굴기 |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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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10월17일 오후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황급히 헬기에 올라 전방 1사단으로 날아갔다. 군 당국이 이날 새벽 2시반쯤 임진강을 통해 침투하려던 북한군 1명을 사살했다며 현장을 공개한 것이다. 사살된 북한군 옆에는 잠수복과 검은색 오리발이 놓여 있었다. 이날은 김영삼 대통령이 유엔본부 방문길에 오른 이튿날이었다. 당국은 북한이 대통령 부재 시 전투준비 태세를 정찰하기 위해 침투조를 내려보냈다고 분석했다. 그런데 이 사건으로 당국이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해 1차 저지선으로 임진강 수중에 철조망을 쳐놓은 사실이 드러났다. 군은 철조망이 떠내려갈 때마다 보수해왔다고 밝혔다. 이 북한군은 수중 철조망을 통과한 뒤 절벽을 타고 오르다 발각됐던 것이다.

한강 하구 지역은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남북한 민간선박의 자유로운 항행이 허용되는 곳이다. 그러나 남북 대치가 극심해지면서 누구도 들어가지 못하는 금단의 구역이 됐다. 군 당국의 입장에서는 군사분계선을 그을 수 없는 해상이라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매우 높아 접근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한강과 임진강이 섞이는 이곳은 얕은 수심에 하루에 두 번씩 조수가 바뀌고 수위 차이가 3~7m에 이르는 데다 유속까지 빠르다. 여기에 해도조차 없으니 출입이 허용된다 해도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북한군의 수중 침투가 중단돼 수중 철조망이 무용지물이 되었어도 지금껏 ‘민감수역’으로 관리돼온 것은 이 때문이다.

남북의 군·해양 당국이 5일부터 한강 하구 공동이용수역에 대한 수로조사를 시작했다. 김포반도 동북쪽 끝에서부터 강화도 너머 교동도 서남쪽까지 강과 바다의 수심을 측정한 뒤 해도를 작성해 남북이 함께 이용하자는 것이다. 무장 북한군이 침투해오던 살벌한 장소가 평화수역이 된다니 격세지감이다. 원래 이곳은 황복과 참게로 유명하다. 모래 등 골재가 풍부하고 관광지로 개발할 여지도 높다. 첫날 남북 전문가들이 6척의 선박에 함께 타기로 돼 있었는데 북한 쪽 인원들이 썰물 때문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65년 만에 처음 만나는 데다 해도까지 없으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이제 남북이 한배를 탔으니 순풍에 돛단격으로 성과를 내기 바란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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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막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광고회사에 다닐 때의 일이다. 거래처 사장과 앞으로의 제작 일정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일정 중 설 명절이 있어서 기한 내 제작의 어려움을 설명하는데 눈앞으로 갑자기 커피 잔이 날아왔다. 내 기억으로 피하지 않았거나 피하지 못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손목을 꺾었는지 잔은 내 등 뒤로 날아가 산산이 깨졌다. 당황한 나에게 그는 핑계처럼 “네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고 했다. 중·고등학생 시절 다소 반항적인 인간이었던 탓일까. 어려서부터 누나에게 “너 눈 좀 그렇게 뜨지마”라는 지청구를 듣긴 했었다. 커피 잔이 영화 속 슬로모션으로 내 옆을 스쳐지나간 뒤, 나는 사장을 탓하는 마음에 앞서 ‘내 눈빛이 그렇게 안 좋은가?’란 생각을 했었다. 그것이 과연 내 몹쓸 눈빛 탓이었을까, 요즘도 가끔 생각나는 사건이다.

출처:경향신문DB

조현민이 광고사 직원에게 이른바 ‘물컵 갑질’을 했지만,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이 사건에 관한 세 가지 혐의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 단순폭행, 둘째 업무방해, 셋째 특수폭행이다. 단순폭행은 피해자랑 합의하면 끝, 업무방해는 그것이 당사자의 업무였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업무를 방해했으니 끝, 남은 것은 특수폭행 하나뿐이지만, 결국 이것도 무혐의가 되었다. 보통 일반인이 유리컵을 던지면 빼도 박도 못하게 특수폭행(특수협박)이 된다고 하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손목을 꺾었는지 이조차 무혐의로 풀려났다. 사건이 일어난 뒤 이걸 가지고 칼럼을 쓸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사건이 사건을 덮는 ‘다이내믹 코리아’니까, 이마저도 시일이 조금 지나면 잊힐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또 다른 ‘갑질폭력’ 사건이 알려졌다. 놀랍지도 않았다. 대한민국에선 이런 사건이 해마다, 달마다, 매일 어디선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건 당사자가 단순히 ‘갑질폭력’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제일의 웹하드 업체 소유자이며, 웹하드 플랫폼을 통해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을 유포하여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는 업체란 사실이다. 2015년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의 웹하드 서비스 음란물 이용현황에 따르면 웹하드 업계 전체 매출액은 약 2000억원, 그중 70~80%를 상위 5개 업체가 차지한다. 수십개의 웹하드 업체가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소유주는 몇 명 되지 않는다. 폭력을 휘두른 사람도 그중 하나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에 따르면 웹하드에서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은 저작권료 없는 콘텐츠로 매우 수익성 높은 상품이다.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은 전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웹하드 업체가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은 유포가해자인 헤비업로더들을 회사 차원에서 관리하고, 경찰 수사에서 보호하는 등 범죄행위에 동참해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 업체에서는 이와 같은 피해촬영물을 기술적으로 걸러주는 필터링업체와 인터넷에서 삭제해주는 대행업무로 수익을 올리는 디지털장의사 업체까지 직접 소유하거나 관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피해촬영물을 유포하여 수익을 얻고, 이를 유포하는 범죄자들을 관리하고 보호해왔으며, 피해자들에게는 돈을 받고 피해촬영물을 삭제해주는 방식으로 다시 수익을 얻는 구조란 것이다.

웹하드 커넥션은 단지 필터링업체, 디지털장의사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십수년 동안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동안 이들이 쌓아온 돈(자본)의 힘은 어느새 정치권, 언론, 법률시장, 모바일결제시장, 통신사 등등 웹하드와 연계하여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곳들과 연계되어 왔다. 그동안 사이버성폭력 피해촬영물 유통 근절이 불가능한 것처럼 이야기되어 왔던 까닭은 기술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권력과 수익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법이 명백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말할 때,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말할 때 이것은 결코 진심이 아니며 진실일 수도 없다. 그것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을 정도로, 처벌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권력차가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말로 바꿔 읽어야 한다.

<전성원 |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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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고정관념이 일상에 얼마나 만연한지를 확인하는 글쓰기 강의를 대학에서 하고 있다. 만연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로서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만큼 가해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상한 문화를 쉽사리 거부하지 못한 채 관성에 젖어 저지르는 자신의 과오를 ‘모름지기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는 학생들이 사회학을 현미경 삼아 자신의 순간순간을 관찰하여 차별과 혐오의 씨앗을 발견하고 성찰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학력차별에 둔감한, 성별 차이를 분류하는 데 익숙한, 거대 자본의 소비문화에 길들여진 ‘한국 사람들’에 자신이 예외일 리 있겠는가.

솔직한 자기 고백을 글로 표현하는, 방향성이 비교적 명료한 수업이지만 도무지 적응이 어렵다는 ‘요즘’ 학생들이 많다. 대면 첨삭을 하는데 이렇게 토로하는 취업준비생이 있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그런 글쓰기를 해 본 적이 없잖아요.” 그런 글이란 무엇이냐고 묻자 사회적 의미를 듬뿍 담은 답이 돌아온다. “스스로가 보잘것없다고 말해야 하잖아요. 이 수업의 글쓰기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경쟁하는 식인데, 그건 우리 세대에 금기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긍정의 기운’이 넘실거리도록 한쪽의 방향으로만 글쓰기를 해서 자신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야 하는 요즘의 취업 준비를 생각하면 얼토당토않다고 할 수 없는 하소연이었다. 이들에게 부족함은 극복했을 때나 혹은 극복 중일 때만 스토리의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를 거부하고 자기를 있는 그대로 소개하는 순진한 자기소개서는 없다. 언제나 자신의 장점만을 도드라지게 다뤄야 한다. 단점을 나열한다는 건 ‘귀사에 입사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요구하는 장점이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이면 애써 자신을 포장하는 게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그렇게라도 모범상이 만들어지고 모두가 이를 좇는다면 인류는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자기소개서에서 다루어야 할 장점은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과 무관하다. 경쟁과 승자독식을 인정하고 학력차별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소신을 지녔다는 문장만이 공백을 채우는 데 허락된다. 협력의 정신은 내부고발은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서 강조되어야 하며, 성차별은 반대는 하지만 전통을 존중하기에 예민하게 굴지 않겠다는 각오를 드러내야 한다. 이런 태도는 사회 탓은 하지 않고 열정으로 도전하겠다는 그릇된 ‘외향성’ 신화와 결합하여 바른 가치로 둔갑한다.

취업이야 언제나 기득권의 눈치 보는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굴욕을 겪는 시기가 너무 빨라졌다. 대학입시는 물론이고 고등학교 진학에도 지켜지지도 않을 학업계획서와 자기부정의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 그러니 고등학생들이 전문 컨설턴트에게 상담을 받고 이를 인터넷에서 공유한다. 이제는 학생들끼리도 이런 분류가 익숙해져서인지 학생회나 동아리 가입에 자기소개서가 요구되는 지경이다. 중학교에서도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라고 해서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들이 자신을 허상으로 만들어야 하는 고뇌에 빠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포장지로 자신을 덮을 수밖에 없는 게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팔자일지도 모르나 그 허무를 이른 나이에 마주한다는 건 우려스러운 일이다. 어른들조차 자신들의 장점이라고 포장하면서 떠벌리던 ‘버티기’를 하려다가 이리저리 치여서 힘들어한다. 그래서 산골짜기 묵언 수행자들이나 실천할 수 있는 삶에 득달할 방법을 찾으면서 무너진 자존감을 애써 끌어올리려고 발버둥인데, 이 모순을 사회로 들어오기 전부터 뼈저리게 느끼는 자들이 남은 생애 동안 기성세대와 공동체를 불신하고 나아가 자신조차 혐오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성찰의 자기소개서가 아닌 패기의 기운만이 지배하는 자기소‘설’서 과잉의 시대가 만든 끔찍한 결과다.

<오찬호 |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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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강원 속초에서 함께 자라난 친구들은 34년이 흐른 후 중년이 되어 부부동반으로 집들이 모임을 갖는다. 친구들은 모두 좋은 대학을 나와 성형외과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선생님이 되고 사업가가 되었다. 어릴 때 함께 보았던 월식이 일어나는 어느 날 저녁. 이들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거리낄 것이 없고 비밀도 없다”며 정말 친한 관계를 과시하다가 저녁을 먹는 동안 서로의 전화 통화와 문자, 카톡, e메일까지 고스란히 공유하는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게임과 함께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의 속사정이 하나하나 드러난다. 정신과 전문의 아내를 두고도 남몰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성형외과 의사, 자신의 성 정체성을 말하지 못하는 전직 교사,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아온 바람둥이 레스토랑 사장,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않은 변호사…. 한강이 보이는 멋진 고급빌라에서 홍게와 물곰탕 등 내내 푸짐한 음식들로 속을 채우지만 모두 말하지 못할 비밀이 있다.

지난주 개봉한 영화 <완벽한 타인>의 이야기다. 2016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가 원작인 이 영화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심리 코미디물로 의외의 흥행가도에 들어섰다.

영화 ‘완벽한 타인’ 공식포스터,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한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화장실을 같이 쓰는 부부와 부모자식 사이, 어릴 적부터 흉허물 없이 자라나 우리집 숟가락 젓가락 숫자까지 알고 있을 법한 절친 사이에서도 서로 말하지 못한 비밀이 존재한다. 그 비밀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때론 성장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대부분 누군가 타인에게 공개하면 더 큰 상처가 돼 돌아오는 것들이다. “말을 하지….” (영화 속) 친구는 왜 말하지 않았느냐며 서운해하고 화를 내지만 말해봤자 돌아오는 것은 조롱과 비아냥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비밀은 그대로 비밀로 남는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도 넉 달째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0년 넘게 기분부전장애(경도의 우울증)와 불안장애를 앓고 있는 저자가 정신과 전문의를 찾아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며 나눈 상담 내용을 환자 시각에서 써내려간 책이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한 적이 있는 저자는 별일 없이 사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 공간에 대해서 털어놓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동안에도 울적한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지 않고 그 때문에 힘들어하는 과정을 찌질한 것까지 하나하나 보여주며 치료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내 얘기라는 생각에 많이 공감했고 울고 싶어졌다” “나도 고백하고 위로받고 싶다” 등등 독자들은 공감을 표시하며 열광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4일 기준 출간 넉 달 만에 25만부를 기록하며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에 힘입어 내년 1~2월 2권까지 출간할 예정이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솔직히 드러내지 않을까? 너무 힘들어서 알릴 만한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걸까? 난 늘 알 수 없는 갈증을 느꼈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공감이 필요했다.” 작가의 자문자답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 개의 삶을 산다. 공적인 나, 개인적인 나, 그리고 비밀의 나.”(<완벽한 타인>의 마지막 자막) 사람들에게 보이는 공적인 나의 모습, 친구나 지인들에게만 보여주는 사적인 나의 모습,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나의 모습이 있다는 얘기다. 그 비밀은 불륜일 수도 있고 동성애일 수도 있고, 낮은 나의 자존감일 수도 있다.

소셜네트워크 시대에 점점 더 많은 관계와 정보 속에 살면서도 항상 외로움을 호소하는 현대인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생판 모르는 사람이 어제 저녁 누구와 익선동 레스토랑에서 토마토가 아닌 크림 소스로 만든 해물파스타를 무슨 와인과 곁들여 먹었는지도 훤히 알며 공유하는 시대의 서글프고 불편한 아이러니다. 아픈 상처들은 누구보다도 가까운 이에게 위로받으며 치유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정작 많은 이들이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그 비밀스러운 모습은 누구에게나 있는 별것 아닌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스스로 아파하고 말하지 못하며 누군가에게는 위로받고 싶어 하고, 때론 가식적인 것들에 둘러싸여 상처받는다. 결국 모두가 이런 상태의 사회적 우울증에 놓이게 되는지도 모른다.

쇼비즈니스의 선구자인 미국의 서커스단장 피니어스 테일러 바넘(1810~1891)은 서커스 시작 때 항상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있다”란 말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가졌던 마음의 여유와 공감처럼 나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 마음의 문을 더 연다면 우울하고 고독한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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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의 태권도는 체계와 수련 방법이 흡사하지만 다른 점도 꽤 있다. 우선 용어가 다르다. 한국에서 ‘품새’라고 부르는 기본동작을 북한에서는 ‘틀’이라고 한다. 한국의 ‘겨루기’도 북한에서는 ‘맞서기’라고 한다. 내용에서도 차이가 있다. 겨루기에서는 공격이 완전히 몸에 닿아야 포인트가 인정되지만, 맞서기 규칙은 몸에 닿기 직전 공격을 멈추도록 하고 있다. 한국에선 손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것이 금지되는 반면 북한에서는 얼굴 공격이 가능한 것도 다르다. 북한 태권도에서는 보호대가 없고, 가격을 위해 장갑과 신발을 착용한다. 한국 태권도가 발 기술 위주로 화려한 반면 북한은 실전을 방불케 한다. 한국 태권도가 스포츠에 가깝다면 북한 태권도는 격투기 성격이 짙다.

하지만 남북 태권도의 이런 차이가 본질적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태권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수박희(택견)에 대한 고려시대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택견에 무예와 스포츠 두 가지 성격이 모두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고려사는 “이의민이 맨주먹으로 기둥을 치니 서까래가 움직였고, 두경승이 주먹으로 벽을 치니 주먹이 벽을 뚫고 나갔다”고 적고 있다. 무신정권을 이끌었던 두 사람이 모두 택견의 고수였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의민이 택견을 잘해 승진했다거나, 문신과 무신이 단체로 겨루기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승부를 가리기 위한 규칙이 있었다는 말이다. 택견은 화약 발명 후 신무기가 등장하는 고려말에 이르면 무술로서의 가치가 쇠퇴한다. 결국 택견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무예도, 스포츠도 되었던 셈이다. 지금 남북 태권도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남북 태권도가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육군 소장 출신으로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한 고 최홍희씨의 캐나다 망명 이후다. 망명한 최씨가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하자 박정희 정권은 고 김운용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앞세워 세계태권도연맹(WTF)을 설립했고, 이후 두 단체가 세계 태권도계를 양분해왔다. 지난 2일 두 단체의 대표자들이 평양에서 만나 통합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민족의 무예인 태권도가 통일을 선도한다니 의미가 각별하다. 남북이 동질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 태권도뿐이 아니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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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끝내자마자 그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나는 창 바깥을 쳐다보았다

백색의 햇살 너머 북한산을 보았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뭘 보고 있는지 묻는 그에게 나는 날씨가 좋다고 말했다

 

버스에 그를 태워 보내고 나는 걸어서 집에 돌아왔다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책을 얼굴에 덮고 잠이 들었다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들과 우정을 나눌 차례가 왔고 아침이 왔다

주워온 조약돌 하나를 꺼내어 마주했다 돌이 말을 할 때까지

김소연(1967~)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미묘한 움직임들이 생활을 만든다. 모래알들이 모여 모래사장을 이루듯이. 미묘한 움직임에는 마음의 율동이 일어난다. 높고 낮은 파도가 바다에 일어나듯이. 대개는 이러한 움직임들에 무심하지만 이 시는 그렇지 않다. 가만히 움직이는 것을 바라본다. 원경(遠景)과 근경(近景)을 모두 바라본다.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옛사람에게 가기도 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돌에게까지도. 별것 아닌 듯한 데서 모든 게 생겨난다. “백색의 햇살”에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는 것이, 속마음의 능선과 골짜기를 바라보는 것이 썩 잘 어울리는 요즘이다.

<문태준 | 시인·불교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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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