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버이날을 맞아 불효에 대해 생각했다. 자식이 부모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주먹과 발길질을 내리꽂는 일은 명백한 불효이다. 나로서는 이런 불효만큼은 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 행위 전반을 불효로 본다면, 범주가 넓어도 너무 넓다. 한국 사회는 ‘효’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데다 불효의 범주가 넓고 모호하다 보니 자식으로서 죄책감이 쉬이 발생하고, 부모가 장래를 멋대로 기획하며 몸과 마음을 통제하려 들 때 무력하게 끌려가기 쉽다. 나는 이것이 한국 사회에 불행한 사람들이 많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조건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자유롭다는 감각,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의 형성,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담대히 펼치는 상상력이 행복의 요건이라는 점에는 널리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족은 때론 행복을 주는 공동체지만, 오롯한 개인으로 행복해지는 일을 어렵게 만드는 굴레가 되는 일 또한 잦다.

내 주변만 봐도 친구의 자식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깎아대는 부모를 둔 A, 며느리에게 바라는 것이 많은 모친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미루게 된다는 B, 성장 과정 동안 방임했으면서, 성인이 되자 노후는 자식이 책임지는 거라며 기대는 부친 때문에 속이 문드러지는 C는 빙산의 일각이다. 대중매체가 재현하는 수위를 훌쩍 뛰어넘는 구체적 불행을 보고 듣는 것은 나를 번번이 숨 막히게 한다. 나 역시 양육자의 미숙함이 남긴 상처가 남아있음은 물론이다.

거대한 빙산 앞에 서면 질문하게 된다. 인간은 왜 자식을 낳아 기를까? 전근대사회에서는 자식을 노동력 수급이나 가문 간의 거래를 위한 자원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개인’이 발명되고, 아동인권의 중요성이 대두된 뒤에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행복을 위한 개인의 선택이자, 성체의 돌봄 없이 생존할 수 없는 여린 생명체에 대한 책임을 떠맡는 대업이 됐다. 현대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는 부모들이 어느 정도 희생과 인내를 감수한 채 내리는 (특히 여성의 경우는 경력 단절의 높은 가능성까지 감수하는) 결단인 것이다.

경계해야 할 부분은, 무리한 희생은 보상 심리로 흐르기 쉽다는 사실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마음이 삐죽이 올라오는 일. 자식이 전문직을 갖거나 유명 기업에 입사하기를 바라며, 배우자의 부모까지 ‘받들어 모시는’ 이와 결혼하여 손주를 안기고, 궁극적으로 본인을 빛내주는 장식이 되기를 욕망하는 일. 이런 부모의 바람과 요구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삶을 꾸리고 싶은 성인에게는 억압과 착취가 될 수 있다.

자식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태어날 수 없다. 탄생 자체가 부모에게 달려있기에 부모는 책임의 무게를 지게 된다. 즉, 자식을 일정 시기까지 돌보는 일은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다하는 것일 뿐, 자식을 도구로 휘두를 권리를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것. 당연하다는 듯 요구하고, 충족되지 않으면 비난하는 일의 반복은 가족을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만들 뿐이다. 오히려 ‘가족 같은 회사’를 믿고 거르는 작금의 현실을 돌이켜 볼 때, 가족일수록 남처럼 상호 예의를 차리는 태도가 좀 더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부모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일마저 불효라면 나는 차라리 불효자가 되겠다.

부모와 자식이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사회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아이를 낳지 않는 타인의 선택에 손가락질하며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때마다 어리둥절하다.

사회적 약자를 온전히 함께 돌보는 공동체 내에서도 개인의 선택을 두고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폭력일 텐데, 공동체의 존재가 흐릿한 한국 사회에서 그런 말과 행동이 유통되는 일은 부조리의 극치다.

경쟁이 극심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투여하는 자원의 양과 질이 자식의 계급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한국에서 자식의 보육과 교육에 큰돈을 쓰고, 독립할 때 보증금이라도 마련해주려 애쓰다 보면 부모는 노후의 불안에 더욱 취약해지는데, 이는 자식들의 죄책감으로 귀결된다. 악순환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기대한다.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그런 순간이 내게도 왔다. 불현듯. 문득 걸음이 멈춰지더니 사방이 새하얘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무엇에도 무기력해지는 순간. 그러고선 애초에 걷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붙박이게 되는 순간. 축축한 안개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못한 채, 그저 안개가 되어가는 시간. 이토록 화창한 봄날에 때아닌 우박처럼 상습적인 미세먼지처럼 낯설고도 싫은 공격.

여느 때처럼 토마토를 갈고 새우 껍질을 깠다. 소스와 양념들을 일렬로 늘어놓고 테이블 세팅을 마치고 손님을 기다렸다. 거리에 인적이 없었다. 바람은 차고 거칠었다. 지나가는 계집애의 얇은 치맛자락이 함부로 나부꼈다. 예약은 없었다. 전화도 울리지 않았다. 익숙한 음악소리만이 빈 테이블 위로 흐르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 빈 시간을 틈타 냉장고 정리를 하거나, 새로운 메뉴를 시험해 보거나, 와인 리스트를 새로 짜거나 하면서 미뤄두었던 일들을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기다렸을 것이다. 약속이니까. 내가 열어놓고 있기로 한 시간. 혹시라도 뒤늦게 올지도 모를 사람들을 배반하는 일이니까. 그런데 나는 앞치마를 벗었다. 그리고 말했다. 문 닫는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야. 머릿속의 말을 무시했다. 물론 그래서는 안 되었다. 안다. 아는데도 그렇게 되었다. 문을 닫기 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나는 여기 없는 사람. 들키지 않으려고 벽에 몸을 숨기고 숨을 참았다. 전화벨 소리가 멈춘 후 그곳을 나왔다. 범죄현장을 빠져나가는 사람처럼 재빨리. 되돌아보지는 않았다. 식당을 나와 장례식장으로 갔다. 친구의 시부상. 따지고 보면 잠시 들러 조의만 표하고 오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한구석에 혼자 자리를 잡고 꽤 오래 앉아 있었다. 고인에 대해 장례 절차와 장례 전후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고, 그동안 미처 말하지 못한 일상들에 대해 밀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타까움은 있지만 비통함 같은 것은 생기지 않는 일상에 가까운 애도였다. 친구가 예를 갖추러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떡이나 마른안주 같은 걸 습관적으로 집어먹으며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냈다.

식은 우거짓국을 먹다가 문득, 먼 나라에 사는 아픈 시인을 생각했다. 학생 기숙사 시절에 생일을 맞아 취사실에서 미역국을 끓였는데, 다른 독일 학생들이 몰려와 마늘 냄새고 뭐고 다른 요상한 음식 냄새는 참아주겠는데, 그 미역국 냄새만큼은 참아줄 수가 없으니 제발 멈춰 달라 했다고, 그래서 혼자 굳이 끓인 생일미역국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던 이야기가 휙 지나갔다. 지난한 학생 시절이 끝나고 이젠 미역국도 마음대로 끓여먹을 수 있고, 웬만한 채소들은 작은 텃밭에서 키워먹을 수 있는데, 고향에서 즐겨먹던 방아만큼은 씨앗을 구할 수 없더라던 그에게, 돌아가면 방아씨를 구해 보내주겠다 했던 약속도 뒤따라왔고, 내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방아씨를 보내주기로 했었는데. 우리집 텃밭에는 올해도 방아가 지천인데. 그게 뭐라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걸까.

그의 시를 가슴에 품고 다니던 습작 시절이 있었다. 어느 시 한 구절에 어떤 생을 통감하고, 어느 시 한 구절을 내가 가닿고 싶은 이상으로 삼고, 읽는 것만으로 맞닿아 있다는 촉감을 느꼈던 수많은 문장들. 그와 함께 보낸 먼 나라에서의 시간을 추억했다.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이윽고 도착한 황량한 기차역에서의 만남과, 첫 만남이었는데도 낯설지 않게 서로 손을 덥썩 잡아버렸던 그 순간의 짜릿함. 함께했던 새벽 숲 산책과 거기서 들려주었던 소소한 이야기들. 자전거전용 길을 걷고 있는 나에게 슬며시 팔짱을 끼고 제 쪽으로 끌어당겨 멀리서 오던 자전거를 피하게 만들던 그 세심한 손길 같은 것. 너무도 아득하고 지독히 생생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운영 문학을 너무 무겁게 지고 있지 마. 한밤중 비좁은 테라스에서였는지, 칼바도스라는 술을 연거푸 비우던 어느 바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말에 모든 것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울어버렸던 것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그 조그만 사람의 품에 안겨 울었던가.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처음 전해들었을 때, 나는 주방 싱크대 밑에 숨어 한참을 울었다. 좁은 싱크대가 그의 품처럼 여겨졌다. 말기암 항암치료 이어오는 절망적인 말들과 가닿기에 머나먼 그곳. 그 후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를 기억해내고 그의 문장들을 소환해내는 것뿐. 내내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아온 지인을 통해 그의 소식을 묻고 전해듣는 것만이 유일한 끈이었다.

남의 장례식장에 와서, 먼 나라에서 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한 시인을 떠올리는 시간,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낯선 느낌이었다. 눈물이 차고 넘치는 내가, 문학이든 생활이든 삶이든 관계든 그 모든 것을 무겁게 지는 것이 습관이 된 내가, 슬픔조차 느끼지 못하게 무기력해져버린 것일까? 그가 결국 병을 이겨내고 이곳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웃으며 시를 읊어주리라는 기대와 바람 때문인지, 문학이든 인생이든 너무 무겁게 지고 있지 말라던 그의 당부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내게 들이닥친 무기력과 무의미함의 안개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벌세우는 것 같아, 난 괜찮으니 이제 그만 집에 가봐, 내일 또 일할 준비 해야잖아. 친구가 나를 일으켜세웠다. 빈소에서 나와 장례식장 입구의 전광판을 보며 먹먹히 서 있었다.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머쓱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켜자 작업 중이던 원고와 자료 화면들이 펼쳐졌다. 아무것도 이어 하고 싶지 않은 시간. 열린 창을 하나씩 닫았다. 그러다 우연인 듯 필연인 듯 경고인 듯 위안인 듯, 인용하기 위해 적어놓은 산초의 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맙다 산초.

“저는 적어도 혼자 그냥 죽게 내버려두고 싶지는 않아요. 그보다는 차라리 구두장이가 하는 짓처럼 이빨로 가죽을 물고 자기가 원하는 데까지 끌려오도록 끌어당기겠어요. 하늘이 정해놓은 마지막 순간이 오는 날까지 계속 먹으면서 내 인생을 끌고 가겠다는 겁니다. 제 말을 들으세요. 식사를 하시고 이 풀밭의 파란 이부자리 위에서 잠깐 한숨 눈 붙이세요. 그러고 나서 잠을 깨시면 마음이 좀 편해지신 것을 알 겁니다.”

<천운영 소설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동무들이랑 눈싸움하고 들어온 밤. 어머니는 동동구루무를 손에 잔뜩 발라주셨다. 트고 갈라진 손에 기름기가 물큰하니 퍼졌다. “아가. 손은 밥 먹을 때와 일할 때,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때, 기도할 때도 이렇게 두 손을 모으잖니. 몸 중에서 가장 성스러운 게 손이란다.” 노랗고 노란 달빛 아래서 어머니는 내 손을 오래도록 만지셨다. 함박눈이 내리다가 그치고 또 내리다가 그치고 하던 밤이었다. “낼 누가 오실랑가부네.” 아니나 다를까 먼 나라에 일하러 가셨던 외삼촌이 불쑥 찾아오셨고, 어머니는 편찮으시다는 외할머니 소식에 눈물 지으셨다. 두 분이 조금씩 흘린 소금들로 간이 맞아선지 저녁밥은 정말 풍성하고 맛있었다. 눈이 그치자 달이 둥시럿 떴다. 봉창엔 따스한 불빛이 어렷다.

갓방에서 외삼촌이랑 같이 잤는데, 오들오들 추운 밤에 삼촌은 사우디 사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모래가 산처럼 쌓인 나라. 물이 없이도 길고 먼 여행을 한다는 낙타라는 동물.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사람들 이야기. “저도 가보고 싶어요.” “그러면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해봐. 뭐든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 언젠가 백 프로 이루어진단다.” 삼촌은 미신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고 다음날 일찍 새벽길을 떠나셨다. 그런데 삼촌 말이 자꾸 맘에 걸렸다. 기도할 때마다 손을 모으게 되었다.

붓다께서 여행하실 때 전다라 신분의 사람, 게다가 똥치기인 한 청년의 집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청년은 붓다를 한번 뵙고자 간절히 바라 왔었다.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그를 갠지스 강으로 데려갔다. 악취로 코를 찌르는 몸을 친히 닦아주었다. “이제부터는 나를 따라오라. 너를 제도하여 사문을 만들겠다.” 천민 신분으론 수행자가 되는 일조차 허용되지 않았는데, 붓다는 완전히 달랐다. 출요경에 따르면 “똥치기 청년은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부지런히 수행한 끝에 열흘이 못 되어 번뇌를 완전히 끊어버린 성자가 되었다”. 똥을 치던 손으로 스님들의 밥을 짓고, 스승 붓다를 따라 걸으면서 손을 모아 정진했다. 이후 청년의 손에선 세상에 없는 가장 아름다운 향내가 났다. 아무도 그가 똥치기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임의진 | 목사·시인>

'일반 칼럼 > 임의진의 시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0) 2018.05.24
늙은 군인의 노래  (0) 2018.05.17
향내 나는 손  (0) 2018.05.10
판문점 와이파이 비번, 99882314  (0) 2018.05.03
‘게미’ 맛집과 평양 동무  (0) 2018.04.27
당나귀 귀  (0) 2018.04.19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글을 쓰는 시간보다 아직은 글을 읽는 시간이 많은 것 같다. 내가 글을 읽는 이유는 영감을 받기 위해서고 영감이 필요한 이유는 글을 쓰지 못해서다. 글을 쓸 수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삶의 일부를 낭비해버린 듯 허탈하기까지 하지만 좋은 글을 읽게 되면 외려 과분한 보상을 받은 것처럼 송구하기까지 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많은 글을 읽었다. 내가 읽은 글들은 대부분 소설이다. 한국소설이든 외국소설이든 동시대의 소설이든 오래된 소설이든 가리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읽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다면 고전을 읽는 것이다. 사전은 고전을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작품이라 정의하지만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내게 고전이란 영감을 주는 작품을 뜻한다. 그러므로 고전이 반드시 오래된 작품일 필요도 없고 많은 이들이 아는 작품일 필요도 없다.

최근에 읽은 소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베트남의 소설가인 바오 닌의 단편 ‘물결의 비밀’이다. 단편이라 하기에는 너무 짧은 탓에 미니픽션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좋은 작품은 언제나 그렇듯이 비록 원고지 스무 장에 불과하다 해도 이천 장 못지않은 무게를 지니게 되는데 아마도 그 이유는 읽은 이가 언제까지나 그 작품을 되풀이하여 곱씹어서 실제보다 두껍게 기억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처럼 이 소설은 처음 내 안에 자리 잡은 뒤 수백수천 번 불려나와 나와 대면하였기에 이제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래지고 말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좀 절망적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소설가라면 이런 소설 한 편쯤은 남겨야 할 것 같았고 이런 소설 한 편 쓰기가 난망하기 이를 데 없음을, 어쩌면 평생을 다해 쓰더라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임을 잘 알아서였다.

그러나 나는 이 절망이 다른 한편으로는 강렬한 유혹임을 느낀다.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이 도달한 지점에 나 역시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절망에서 일으켜 세워줄 것임을 느낀다. 아니 그럴 것이라 믿고 싶다. 소설가가 바랄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은 여느 소설가들을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 자신을 능가하는 것임을. 오늘 내가 단어 하나에 일 분을 문장 하나에 십 분을 바쳤다면 내일의 나는 단어 하나에 십 분을 문장 하나에 한 시간을 바쳐야 한다. 바오 닌 역시 그런 방식으로 스스로를 능가했을 테고 아름다운 소설을 결코 쓰지 못하리라는 불안을 견뎠을 테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인데도 글을 쓰려는 열망만이 가득할 때 그 사람을 죽이는 건 글을 쓰려는 열망이므로 살기 위해서는 글을 쓰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사뮈엘 베케트와 필립 로스의 말을 떠올린다. 베케트의 “실패하고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는 문장에는 이어져야 할 문장이 있다. “더 나은 실패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실패하고 실패하여 최악에 이르러 끝장날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므로 나는 베케트의 문장을 신입사원 연수회에서 정력적인 강사가 주장할 법한 성공하는 사람의 자세와 같은 것으로 읽고 싶지는 않다. 실패가 분명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를 지닌 사람, 창의적으로 실패하여 실패조차 인간적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읽고 싶다.

필립 로스는 파리 리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거침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일어나고 있지 않다는 증표입니다. 거침없이 글을 쓴다는 것은 실제로는 글쓰기를 멈춰야 한다는 증표이지요. 한 문장에서 다른 문장으로 넘어갈 때 어둠 속에서 헤매게 되면, 계속 글쓰기를 해야 한다는 확신이 생깁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글쓰기를 의심해야 하고 글을 쓰지 못하는 동안에는 진정으로 글쓰기가 이뤄지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순간 사실 우리는 무언가를 이루기 직전에 있는 셈이다.

<손홍규 | 소설가>

 

'일반 칼럼 > 문화와 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집, 자기 감각의 결정체  (0) 2018.05.17
기꺼이 헤매다  (0) 2018.05.10
남북이 공유하는 음악  (0) 2018.05.03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형상화하다  (0) 2018.04.19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  (0) 2018.04.12
4월의 진혼곡  (0) 2018.04.05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남북관계에 해빙의 분위기가 역력하다.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로 나온 판문점선언의 내용을 살펴볼 때, 남북 화해와 경제협력의 기본적 전제가 되어야 할 부분은 아마도 상호신뢰의 구축이라고 여겨진다. 여기에는 인적교류와 함께 물적교류, 즉 물류의 남북 간 소통이 필수적이다.

운송수단은 인간의 역사적 발전에 기여한 것 중 하나이다. 시간적, 공간적 간격을 해소함으로써 상호 간의 물리적 격차를 줄이고 있다. 현대와 같이 생산의 중요성이 점점 약화되고 유통의 기능이 중요한 시기의 경영활동에서는, 물류비용이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현재 남북한 간의 물류활동이 기능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려 한다. 우선 생산시설의 관점에서 볼 때, 개성공단을 비롯해 향후 구축될 북한 내의 설비들에 대한 원자재와 부자재의 조달 과정과 생산 이후의 판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운송의 역할이 강조될 수 있다. 이에는 육상과 철도, 그리고 항공과 해상 등 여러 형태의 운송수단이 활용될 수 있다.

육상 및 철도 운송의 역할을 살펴보면, 동서독의 경우에서 경제협력과 통일의 시금석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경우 경의선이나 동해선을 통한 유럽 지역으로의 운송의 적용 가능성을 살펴볼 수 있다. 만일 개성공단과 같은 대규모 시설이 더 건설된다면 해상을 통한 운송에 대한 기대도 가능하다. 이에는 북한의 항만시설에 대한 남한의 설비와 자본 그리고 기술력을 통한 투자와 건설, 그리고 이후 항만운송활동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연안운송의 개념으로 부산을 환적항으로 해서 북한의 수출입을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항공운송이 또한 언급되고 있는데, 현대는 항공화물의 물동량이 점점 고부가가치 형태로 증가일로에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평양과 인천의 노선 개설은 환적공항으로서도 필수적인 사항이다.

물적유통의 활성화를 통해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를 기대하는 것은 남북한 국민들의 염원이다. 동서독의 경우에서처럼, 남한은 기술과 자본력 그리고 에너지 등을 공급하는 형태로 북한의 경제발전에 나름의 형태로 이바지할 것이며, 북한은 양질의 노동력과 지하자원 등을 제공하며 경제적 개발의지를 대외적으로 표방하는 차원의 상호 간 발전모델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경제교류의 활성화는 곧 인적교류의 흐름으로 나타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들이 명심해야 할 부분은 상호 간의 경제적 실익을 추구하는 수지타산적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분단조국의 민족적 동질성과 통일을 위한 사전비용 지출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보아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다.

<김진환 | 한국방송통신대 강원지역대학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여느 때와 달리 5월은 감정의 외출이 잦은 달이다. 어린이날에 이어 어버이날, 스승의날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짬을 내 우리는 인간의 유전자 혹은 인류의 지식이 대물림되는 현장을 애써 기억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노력은 다소 소모적인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삶의 고명이자 향신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대물림은 ‘닮음’을 지속하는 과정이다. 자식은 부모를 닮게 마련이다. 닮았다곤 해도 자식은 부모와 꼭 같지는 않다. 바로 이 ‘같지 않음’ 때문에 지구가 생물학적으로 다양성을 띠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저 대물림의 주체는 세포다. 지구에 사는 75억이 넘는 인간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하나의 세포로부터 시작했다. 엄마로부터 하나, 아빠로부터 하나 이 두 개의 세포가 합쳐져 하나 된 세포인 수정란으로부터 인간은 발생을 시작한다. 한 개의 세포가 두 개가 되고 그것이 다시 네 개, 여덟 개… 이런 식으로 아홉 달이 지나야 비로소 하나의 인간이 탄생하게 된다.

늘 그렇지는 않지만 한 세포가 두 개가 될 때에는 세포가 가진 가구 일습을 두 배로 불린 다음 그것을 공평하게 반으로 나누어 갖는다. 그렇게 세포는 서로 닮는다. 이제 나눠 갖는 세포의 가구 면면을 살펴보도록 하자. 대물림을 얘기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유전자는 고이고이 포개져 핵 안에 보관된다. 이 유전자에 담긴 정보를 풀어 단백질 노동자를 만드는 장소는 소포체다. 단백질을 만들 때 쓰이는 에너지는 주로 미토콘드리아가 공급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흔히 미토콘드리아를 세포 내 발전소로 비유한다. 그것 외에도 단백질을 가공하는 골지체와 생체 물질의 재활용을 담당하는 리소좀이 있다.

이런 가구를 하나도 구비하지 못한 채 오직 산소만 운반하는 적혈구가 있기는 하지만 인간의 세포 대부분은 저런 세포 소기관 가재도구를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 인간은 부모로부터 세 종류의 유전 정보를 물려받는다. 엄마와 아빠로부터 물려받는 각각 한 가지의 유전체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도 자신만의 독특한 유전체를 가지고 당당하게 한몫 끼어든다. 바로 여기에 생물학의 가장 미묘한 수수께끼가 숨어있다. 미토콘드리아는 ‘불균등하게도’ 오직 모계를 통해서만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미토콘드리아는 난자를 통해서만 후대로 전달된다. 따라서 아들만 있는 엄마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는 궁극적으로 진화의 무대에서 가뭇없이 사라진다.

왜 미토콘드리아가 문제가 될까? 그것은 인간이 물질과 에너지를 계속해서 공급해 주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체계이고 우리가 먹은 음식물은 최종적으로 미토콘드리아에서 화학적 에너지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전기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미토콘드리아의 위력을 능히 가늠할 수 있다. 앞에서 발전소에 비유했던 점을 떠올리면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미토콘드리아에서 평생 계속되는 에너지 생산 과정에는 한 가지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미토콘드리아 안에 전자 고압선이 흐르기 때문이다. 피복이 벗겨진 채 운반되는 전기가 위험하듯 자리를 벗어난 미토콘드리아의 전자들은 세포 안팎의 단백질과 지질 혹은 유전자 가릴 것 없이 공격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활성 산소라 부르는 것의 실체가 바로 궤도를 ‘벗어난’ 전자이다.

인간이 가진 수백 가지 세포 중 유일하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난자 안에는 미토콘드리아가 가득 들어차 있다. 자신의 유전자와 함께 엄마는 그 미토콘드리아를 자식에게 물려준다. 한 달에 한 번씩 난소를 나온 난자는 나팔관이라 불리는 길을 따라 움직인다. 중도에서 수정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자궁까지 오는 데 며칠이라는 시간이 더 걸린다. 머나먼 거리를 움직이지만 그동안 난자는 거의 에너지를 만들지 않는다. 앞에서 설명했듯 에너지를 만드는 동안 불가피하게 미토콘드리아 안에서 활성 산소가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자는 활성 산소가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를 공격하여 태아에게 심각한 손상을 입힐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대물림 방식을 채택했다.

그렇다면 나팔관을 따라 난자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그것은 바로 섬모(纖毛·cilia)라 불리는 또 다른 세포 소기관의 움직임에서 나온다. 숨 쉴 때 공기에 섞여 들어오는 미세먼지를 붙잡아 점액과 함께 몸 밖으로 내보내는 일을 담당하는 것이 기도(氣道) 세포의 섬모이다. 마찬가지로 나팔관에서도 갈대 이삭처럼 늘어선 섬모가 일사불란하게 한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난자를 이끌어 간다. 난자는 마치 가마에 탄 새색시처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 사용을 극소화하면서 행여나 미토콘드리아나 난자에 들어 있는 유전체가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렇게 금지옥엽처럼 고이 간수한 미토콘드리아를 물려받은 수정란은 아홉 달 동안 완결체로 자라난다. 분열하여 그 수를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난자에서 온 종잣돈 미토콘드리아는 태아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안에서 쉼 없이 에너지를 만드는 평생 사업에 종사하게 된다. 이렇게 일사불란한 한 방향 섬모의 움직임에 기댄 난자의 미동 없음을 기리어 인간들은 기꺼이 어버이날을 만들어 냈다. 하늘 푸른 5월이다.

<김홍표 |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일반 칼럼 > 과학의 한귀퉁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가 물려준 미토콘드리아  (0) 2018.05.09
낮의 길이  (0) 2018.04.11
정온식물  (0) 2018.03.14
‘바이러스 스나이퍼’ 크리스퍼  (0) 2018.02.14
코딱지  (0) 2017.12.20
미세플라스틱의 거대한 세계  (0) 2017.11.22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결혼 예정인 영국의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결혼 선물을 일절 사절하고 대신 기부를 해달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사회 변화, 여성 인권, 환경, 노숙인 인권, 에이즈 문제, 군대 문제를 비롯해 자신들이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를 상징하는 7개의 자선단체를 선정해 이 단체들에 기부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기부 가뭄’인 상황이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의 기부금 신고 현황에 따르면 2016년 기부금 신고자 수는 71만5260명이다. 연말정산을 위해 기부금 신고를 한 사람의 수가 1년 만에 6만8722명(―8.8%) 줄어든 것이다. 이는 2006년 관련 현황을 처음 집계한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라고 한다.

기부 감소 현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통계청에서 2년에 한 번씩 기부 경험 등을 묻는 사회조사를 실시하는데 ‘기부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지난해 26.7%만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대해 2011년 36.4%가 ‘기부 경험이 있다’고 했으나 2013년 34.6%, 2015년 29.9%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약 6명꼴로 향후 기부할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기부 감소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 추세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정치인들에 대한 후원기부금은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서다. 일부 출판기념행사에서는 현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카드 단말기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최근 정치 관련 인터넷 여론조작 사건의 주범인 ‘드루킹’이 아닌 ‘기부의 왕-도네이션 킹’이 우리 사회에 많이 생기길 간절히 기원한다.

<정석윤 |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오는 22일은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불교가 수용된 시기는 4세기 고구려 때이다. 이후 삼국의 다른 나라에도 전파되면서 정치, 문화, 군사 등 거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불교는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종교 이상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이후 남북국 시대와 후삼국, 고려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는 국교로서 역할을 해오면서 백성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오랜 기간을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불교는 처음 도입 시기부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호국불교’의 성격을 가졌다. 고려 시대에는 여러 외세 침략에 나라를 구하고자 했다. 초조·재조·팔만대장경 등을 만들어 불력에 의한 국가 수호를 빌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의병을 조직해 싸우기까지 했다. 승려 김윤후는 처인성 전투에서 몽골군의 사령관 사르탁을 사살하여 몽골군 전체를 후퇴시켰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탄압받았음에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또다시 외세 침략에 맞서 싸웠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한 투쟁에도 불교가 있었다. 2009년 진관사에서 일장기 위에 핏빛 자국이 있는 태극기가 발견되었다. 그 태극기를 숨긴 주인공은 백초월 스님이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군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다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수행했다. 특히 중일전쟁에 강제로 징용된 사람들과 물자들이 실린 군용열차에 ‘대한독립만세’를 쓰는 대범한 기획을 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구속되어 옥중에서 순국했다. 이 밖에도 대한승려협회에서는 불교계 자체적으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불교는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위기 때마다 앞장서 왔다. ‘호국불교’는 한국불교가 가지고 있는 아주 독특한 특징일 것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을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다.

최근 진관사가 있는 은평구에서 초월 스님의 이야기를 웹툰과 태극기 게양 등의 다양한 문화사업으로 만들어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문화사업이 발굴되기를 기원한다.

<김윤형 | 서울 동대문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미국동포사회도 남북정상회담을 적극 지지한다고 단언한다.

보수성향이 강한 동포사회 일간지 및 라디오방송 등은 마치 미주동포사회가 전반적으로 남북정상회담과 그 합의 내용에 대해 우려하는 것처럼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동포사회 전체 분위기를 올바로 대변한다고 보기 힘든 반평화정서 몰아가기로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이를 무시하고, 시대의 흐름과 민족적 정서가 올바로 반영된 독창적인 여론조사를 펼친 결과, 동포사회는 남북정상회담에 큰 관심이 있는 것은 물론 비핵화를 이루고 평화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는 진실을 밝혀냈다. 일명 ‘냉면’ 여론조사 방법이다. 정상회담이 이루어질 당시 필자는 미 동부 볼티모어에 있었는데, 한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워싱턴 지역, 그 후 캘리포니아 주도인 새크라멘토를 거쳐 필자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 ‘냉면’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실태를 파악했다. 각 지역의 한인타운에 위치한 한인식당을 돌며 끼니 때마다 시원한 냉면을 즐기면서 각 업주들에게 냉면 판매량의 변화에 대해 물었더니, 그 결과 7개 대표 식당의 냉면 판매는 모두 남북정상회담 이후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 전국에 흩어져있는 한인커뮤니티 지도자들을 상당수 포함하여 거의 170여명의 동포가 속해있는 카톡방에서는 평소의 정치성향을 초월하여 전격적인 지지 발언들이 쏟아졌고, 상당수는 달려가 냉면을 드셨다고 밝히면서 일부는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대규모 한인동포사회가 형성되어 있는 대표 도시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의 한인회 등은 이미 동계올림픽 때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하는 기자회견 등을 잇따라 열었고,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져 있던 로스앤젤레스 평통에서는 지역구 미 연방하원을 직접 만나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지지해 줄 것을 호소했으며, 연방청사 앞에 가서 소규모 평화집회를 열기도 했다. 또 미국 내 반대여론을 바로잡고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 진보 언론 등에 글도 쓰고 인터뷰도 하면서 각방으로 지지여론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숨은 노력 속에서 나온 것이 툴시 가바드 의원(민주당)의 주도로 미 연방의회에서 발의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외교 노력을 지지하는 결의안이다. 미국 내에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반트럼프 정서를 뛰어넘어 이런 결의안이 나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우연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 워싱턴에서 미주한인들의 풀뿌리 운동을 선도해 온 ‘미주한인 풀뿌리콘퍼런스(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의 숨은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아주 오랫동안 미국의 동포사회는 한국의 보수정권과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언론의 영향 속에서 반북 선전에 젖어 왔고, 또 동시에 미국 주류언론의 맹목적인 대북 비방 여론에 노출되어 왔다. 그럼에도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 이렇게 신이 나서 연대 차원의 냉면을 드시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미국과 북한의 관계도 정상화되도록 노력하는 풀뿌리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미주동포사회가 자랑스럽다. 이를 바탕으로, 조만간 성사될 북·미 정상회담과 그 이후에 이어질 협상을 통해 북·미관계도 정상화되고 조국에 평화가 영구히 정착하는 데에도 미국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로이 홍 | 미국간호사노조 조직국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제강점기 때 여학생들은 교복으로 한복을 입었다. 양장을 하지 않은 것은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일제가 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면서 총독부는 여학생들에게 몸뻬를 입도록 강요했다. 저고리에 몸뻬라니 그 모양새도 우스웠겠지만, 무엇보다도 몸뻬는 학생들에게 신민으로서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전쟁터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일본의 불온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한 여학교는 몸뻬를 거부하고, 무궁화를 상징하는 보라색 한복을 입었다. 보라색 한복은 전쟁에 반대하며 결코 일제의 신민이 되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근현대사에서 국가가 백척간두에 놓여 있을 때 맨 먼저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거리로 나와 싸운 이들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일제강점기 때 만세운동을 이끌었으며, 독재에 맞서 싸웠고,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교복을 입은 그들은 지금 우리나라가 있게 한 주역이었다.

“그런데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절대로 주지 않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잖아요. 그들도 이 나라 시민인데요.”

벚꽃 잎이 떨어지던 봄날, 국회 앞에서 선거 연령 하향을 요구하며 농성 중인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의 말이었다. 나는 말을 들으면서 천막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듯 앉아 있는 이를 힐끔댔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한 그는 농성에 들어가기 전 삭발을 한 이들 중에 하나였다. 가냘픈 목이 그대로 드러난 그의 모습은 어쩐지 애처로웠다. 밥은 잘 먹고 있는지, 잠은 어찌 자는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차마 묻지 못했다. 길 위에서 싸워야 하는 이들에게 걱정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까. 교복을 입고 투표하는 것은 어떻게든 막겠다며 나이를 들먹이는 이들과의 싸움에 지쳤을 그들에게 할 말은 하나밖에 없었다. 끝까지 함께하겠다.

농성장을 떠나면서 머리 짧은 그에게 악수를 청하자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맞잡았다. 응원하겠다고 간 것이었는데, 그의 웃음이 도리어 내게 위안이 되었다. 부당하고 불합리한 세상과 맞서 싸우는 그들은 봄보다 아름다웠다.

<김해원 | 동화작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삼일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던 해 태어나신 외할머니는 “내가 만주 봉천으로 느그 외할아버지 따라서 신혼여행 갔을 때…”라는 말씀을 하실 때마다 의기양양했다. 한반도의 남쪽 바닷가 통영에서 나고 자란 외할머니에게 경성도 아닌 만주까지 기차를 타고 달려 보았다는 사실은 잊을 수 없는 모험이었다. 부산역에서 출발해 서울과 신의주를 거치며 북으로 치오를수록 달라져가던 차창 밖 풍경을 회고할 때면 칠순을 넘긴 할머니의 얼굴에 스무 살 여자의 표정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곤 했지만 내게는 할머니의 ‘경이’가 도무지 잘 전염되지 않았다.

아무리 사투리가 제각각이라지만, 하나의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삶이 이다지도 다를 수 있는가라는 놀라움이 어떤 것이었을지를 나는 외할머니를 통해서가 아니라 시인 백석의 놀란 눈을 통해 뒤늦게 체감했다. “간밤에 섬돌 아래 승냥이가 왔었다는 이야기/ 어느메 산골에선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이야기”(시 ‘가즈랑집’ 중)를 아무렇지도 않게 듣고 자란 평안북도 정주 사람 백석. 외할머니보다 일곱 살 연상인 그가 통영이 고향인 한 처녀를 경성에서 만나 사랑했었고, 그녀를 보기 위해 1935년에서 1936년 어름 통영을 몇 번 방문했었다는 것을 뒤늦게 책으로 읽어 알았다. 북녘 내륙에서 자란 그에게 왁자지껄한 남도 선창(船艙)의 활기는 가슴을 설레게도 하고 두렵게도 만들었던 모양이다.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 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집집이 아이만 한 피도 안 간 대구를 말리는 곳/ 황화장사 영감이 일본말을 잘도 하는 곳/ 처녀들은 모두 어장주(漁場主)한테 시집을 가고 싶어한다는 곳…”(시 ‘통영’ 중)

조부모와 부모의 고향인 통영에서 커다란 대구를 겨울 좋은 볕에 내어 바닷바람에 말리는 풍경은 지금도 흔하다. 그 고장 사람의 눈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섬돌 아래 승냥이가 오가는 것도, 곰이 아이를 본다는 얘기도 대수롭잖게 들어 넘기던 북쪽 남자의 눈에 얼마나 신기했으면 집집이 말리는 대구가 아이만 해 보였을까.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어쩌면 삶의 어느 지점에서 하나의 시공간에 잠시라도 함께 있었을지 모를 백석과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각자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했을 공간에 타자(他者)로 잠시나마 비집고 들어섰을 두 사람. 철학자 레비나스의 시선을 빌리자면, “주체가 그 사건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지만 그러면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에마뉘엘 레비나스 <시간과 타자> 중)에 있었을지도 모를 두 사람. 혹시라도 각자의 공간에서 조우했다면 다른 존재인 두 사람은 서로의 세계를 어떻게 발견했을까.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을 남한의 언론매체들은 실시간으로 현장중계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목소리와 웃음, 악수와 포옹 등은 날것으로 남한 사람들에게 보이고 들렸다. 클로즈업된 그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사람이었고(“멀리서 온 평양냉면…멀다고 하믄 안되갔구나”), 북의 “교통이 불비”해 문재인 대통령이 육로로 오기에 불편할 것 같다는 궁색한 사정을 말하는 처지에도 스스럼이 없었다.

남한의 실시간 중계와는 달리 유튜브에 공개된 33분13초 분량의 북한 조선중앙TV ‘북남수뇌상봉’ 기록영화에서는 동일한 장면들을 찍었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김정은 위원장의 육성이 소거돼 있었다. 요란하게 터지던 카메라 플래시 소리, 만찬에 참여한 남북 인사들의 웃음소리도 아나운서의 내레이션과 배경음악으로 대체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 주민들처럼 부산 사투리를 쓰는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었더라면,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 것인가.

새로운 시작은 남과 북이 서로의 같음보다는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그 다름이 위협이 아니라 경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석이 통영의 말린 대구를 놀랍게 바라보았듯이, 나는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평안도 정주 땅에 여전히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국수’를 먹는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사람’들이 사는지, 궁금하다.

<정은령 | 언론학박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방부가 8일 병영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한 ‘성범죄 특별대책 TF’ 운영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월부터 두 달간 모두 29건의 성범죄 사건을 접수했는데, 성희롱이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강제추행 11건, 준강간 2건, 인권침해 1건이라고 밝혔다. 가해자는 영관 장교 10명, 위관급 7명, 원·상사 7명, 중·하사 2명, 일반직 군무원 12명이었다. 상급자에 의한 성폭력은 20건으로 전체의 70%였다. 피해자 35명 모두 여성이었으며 그 절반은 여군 부사관이었다. 군 간부 중 최하위 계급인 중·하사가 성폭력 피해에 가장 취약하며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많다는 사실이 새삼 확인된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성범죄 신고 자체를 가로막는 군 구조이다. 피해자들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해봐야 소용이 없으며, 신고하려면 전역을 각오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직급이 낮을수록, 신분이 불안한 비정규직일수록 신고를 꺼렸다. 이는 신고된 성폭력 사례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또 다른 문제는 신고해도 가해자에 대한 신속한 조사·처벌은커녕 2차 피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간담회에서 여군들은 “누가 성폭력을 당해도 신고하라고 권하지 않겠다”며 눈물로 2차 피해 경험을 호소했다고 한다. 조사과정이 신속하지 않을 뿐 아니라 피해자 신원이 다 노출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솜방망이 처벌까지 더하니 군내 성폭력은 은폐되지 않을 수 없다.

TF는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장병 선발 과정에서부터 성인지 평가 항목을 반영하고, 성범죄가 온정적으로 처리되지 않도록 징계기준을 세분화하는 등 정책개선을 권고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TF가 지적했듯 성희롱 예방교육이 질적으로 제고되어야 한다. 지휘관에 대한 성인지 교육이 우선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성폭력 피해에 모범적으로 대응한 부대도 꽤 있었다는 TF의 진단은 지휘관에 따라 성폭력에 대한 대처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남성 지휘관들이 여군 부하를 기피하는 현실도 극복돼야 한다. 군대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성비 불균형 사회다. 이런 환경에 따른 권력의 우열이 군내 성평등을 방해하고 있다. 성희롱 없는 상태를 넘어 남성과 여성이 조화롭게 군 생활을 하는 조직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햇살 내린 너른 물에 황금 빛깔 넘실대고 바람 치는 봉우리엔 푸른 옥이 흩뿌리네. 서호를 서시에 견줄 만하구나. 강산이 끄는 흥취를 어이하리오.” 서거정이 양화나루에 배 띄우고 지은 시이다. 햇살에 빛나는 강물과 빗방울 날리는 봉우리가 펼쳐진 풍경을 멋지게 묘사했다. 서호를 춘추시대 미녀 서시(西施)에 견준 이는 소동파다. 서호의 경치를 즐기며 종일 술자리를 이어가는데, 그렇게 맑던 날이 갑자기 어둑어둑해지며 비가 쏟아진다. 좌중의 흥취가 깨지려는 때 소동파는 시를 읊는다. “맑은 날엔 물빛 넘실거려 아름답고, 비 오는 산의 뿌연 어둠도 장관이네. 서호를 서시에 견주어 보자면, 옅은 화장 짙은 화장 어느 때고 좋도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모처럼의 연휴, 제주도에 다녀왔다. 첫날 맑디맑은 하늘 아래 본 제주의 풍광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그러나 둘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쏟아졌다. 창밖을 보며 실망과 걱정에 싸여 있을 때, 일행 중 한 분이 “오늘 같은 날 위로가 되는 시입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소동파의 이 시를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찾아간 큰엉 해안. 세찬 폭우를 맞으며 바라본 바다는 화장 전혀 안 한 서시의 성난 얼굴 같았지만, 그 역시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어느 때고 좋도다”로 번역한 소동파 시의 마지막 구절 “총상의(總相宜)”는 특정한 조건에만 적절한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이든 그것대로 적절하다는 뜻이다. 늘 좋은 날만 있을 수는 없다. 좋은 날 좋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궂은 날 거기에 맞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만들기란 쉽지 않다. 넉넉한 마음과 매인 데 없는 균형감각을 갖추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첫머리에 인용한 서거정의 시는 음풍농월에 그치지 않는다. 1476년 명나라 사신을 맞는 원접사로서 정사 기순(祁順)의 시에 화운한 작품이다. 자연을 읊기는 했지만 나라의 자존심을 걸고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긴장 속에 지은 것이다. 변화가 시작된 남북관계에 맑은 날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위태롭더라도 가야만 하는 길, 살얼음을 밟듯 외줄을 타듯 조심스럽게 균형 잡으며 우선 가능한 분야의 교류부터 차근차근 해나가야 할 것이다. 고착화된 관념과 제도들을 내려놓고 사안마다 거기에 맞는 적절함을 찾아가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일반 칼럼 > 송혁기의 책상물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숙려에 대한 우려  (0) 2018.05.23
어느 때고 좋도다  (0) 2018.05.09
질문의 힘  (0) 2018.04.25
자리가 사람을 만들까  (0) 2018.04.11
불행을 견디는 힘  (0) 2018.03.28
중용의 이름으로  (0) 2018.03.14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소확행’ ‘워라밸’ ‘케렌시아’, 지난 몇 달 내 사회학적 그물망에 걸린 말들이다. 소확행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말한다면, 워라밸은 일과 생활이 조화로운 균형을 갖는 것을 뜻한다. 케렌시아는 나만의 휴식 공간을 지칭한다. 세 말들은 각각 의미의 초점이 다르다. 하지만 공통점도 존재한다. 개인과 여가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크게 보아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는 개념들인 셈이다.

이 가운데 현대사회론을 공부하는 내 시선을 특별히 끄는 말은 소확행(小確幸)이다. 이 개념의 기원은 1986년에 발표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겔한스섬의 오후>다.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서 먹는 것, 겨울밤 부스럭 소리를 내며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고양이의 감촉 등이 바로 행복이라는 메시지다. 하루키다운 감성이다. 우리 사회에선 지난해 김난도 교수 등이 ‘트렌드 코리아 2018’에서 소개하여 널리 알려졌다. 대만에서는 지난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소확행은 일종의 소비 트렌드다. 소확행에 앞서 ‘웰빙’ ‘힐링’ ‘욜로’ 등이 존재했다. ‘트렌드 코리아 2018’이 지적하듯, 소확행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욜로가 구체화된 모습이다. 소확행을 바라보는 데는 서로 다른 시각이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의 발견을 주목한 반면, 다른 이들은 젊은 세대의 좌절이 담겨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포스트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라는 과감한 주장까지 나와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경우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확행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자기 방식의 휴식을 취하는 평범한 일상들이다. 길게 본다면 1950~1960년대에 추구됐던 ‘소시민적 행복’이 ‘한국적 소확행’의 역사적 기원일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려 했던 산업화의 목표 중 하나도 개인적 차원에선 소확행의 실현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이 재발견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였다. 저성장과 불평등이 구조화되고 불안과 분노가 일상화되는 과정에서 삶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진행되고, 행복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됐다. 학업·취업·결혼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의 자연스러운 진화가 어려워지면서 중산층의 삶을 누리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 채워지기 어려운 미래의 욕망보다 당장 이룰 수 있는 현재의 행복이 더 중요한 소확행이 부상한 맥락이다.

행복은 정의하기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이다. 행복이란 만족감·즐거움·기쁨이 존재하는 마음의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 방식으로 말하면 ‘최상의 좋음’, 다시 말해 최고선이 행복이다. 그런데 행복이 간단하지 않은 것은 사람마다 그 최고선이 다르다는 데 있다. 행복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존재한다. 만족감·즐거움·기쁨의 대상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조건 또한 다양하다. 어떤 이는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 반면, 다른 이는 노력을 기울여도 행복에 다가서기 어려울 수 있다.

소확행이 소비 트렌드 이상의 의미를 갖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가 진전하게 되면서 개인주의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 바 있다. 개인은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만 그 독립적 정체성을 이루는 삶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끝없는 경쟁으로 이어진 정글 사회에서 자기만의 행복의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개인이라는 ‘실존적 공화국’의 행복 추구 열망은 후기 현대사회가 가져온 결과다.

소확행의 출발이 소비에 있다면 소비에 대한 새로운 성찰 또한 필요하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미셸 드 세르토는 소비가 생산에 따른 수동적 행위가 아니라 일상생활의 능동적 구성 요소임을 주장한 바 있다. 소비는 계급에 구속된 행위이자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행위다. 그러나 동시에 소비는 자신에게 만족감·즐거움·기쁨을 선사하는 주체적인 행위이기도 하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는 부정하기 어려운 21세기 소비사회의 자화상이다.

소확행의 의미를 과장하려는 게 아니다. 내년이 되면 새로운 트렌드가 나타날 수 있다. ‘큰 서사’인 계몽주의의 자장 안에서 성장한 내게 ‘작은 서사’인 소확행은 여전히 낯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확행이 제기하는 행복의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삶은 일상의 연속이며, 일상은 본디 거룩한 것 아니겠는가. 자신의 일상과 행복을 돌아보게 하는 것만으로도 소확행은 한 번쯤 그 의미를 생각해볼 만한 개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액트 오브 킬링>(2013) <침묵의 시선>(2014) 연작은 근년에 본 가장 무섭고 어려운 영화였다. 개봉 당시 세계영화제를 휩쓴 영화지만, 너무 예민하거나 심약한 분들한테는 권하지 못하겠다.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VOD로 보다 몇 번을 중단했다.

인도네시아 군부독재 시절(특히 1965~66년)에 저질러진 매카시 선풍과 대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반미·반소 비동맹 노선을 견지하던 당시 인도네시아에서, 군부는 공산당 쿠데타 음모라는 것을 적발하고 배후 세력을 척결한다며 50만명(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100만명이 넘는다는 기록들도 여럿이다)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한다.

군부는 자기 손에만 피를 묻힌 게 아니라 마치 대한민국 서북청년단을 연상시키는 ‘애국 청년’들을 이용했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영화의 대부분의 시간은 이제 노인이 된 그 ‘애국 청년’ 살인귀들이 스스로, 어떻게 ‘빨갱이’와 노동조합원, 또 그들과 관계가 있었다는 이유로 농민·화교·여자들을 죽였는지를 설명하고 재연하는 데 소용된다.

늙은 인간사냥꾼들은 참회는커녕 낄낄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학살 행위(Act of Killing)를 스스로 ‘재연’ 해보인다. 그저 말로써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으로 자기 몸과 도구를 써서 ‘기억’하고 묘사한다. 바로 그 점이 충격적이고 역겹다. 큰 칼로 사람의 목과 성기를, 또 여자들의 젖가슴을 자르고 토막 내어 강에 버린 이야기, 귀신들까 봐 피해자의 피를 마신 이야기, 철사줄을 사용하는 ‘가장 쉽게 인간을 죽이는 방법’ 등.

그래서 영화의 관객은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적 재현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답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잘 모르겠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망가진 삶에 대해서도 생략한다. 다만, 그런 일이 어떻게 저런 방식으로 죄의식 없이 기억되고 재연될 수 있게 되었을까만 생각하기로 한다.

영화에 나온 것만 보면 우선 그 나라의 정치 상황에 답이 있는 듯하다. 가해자들은 정부로부터 또 부통령 같은 권력자로부터 여전히 비호를 받는다. 또는 그 자신들이 정치권력의 일부였다. 그래서 당당하다. 돈도 많고 건강한 듯한 학살자들은 자기들이 ‘애국자’임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은 듯하다.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권력’이다.

무고한 사람을 대량으로 죽인 반인륜 국가범죄나 ‘무반성’은 물론 인도네시아의 비극만이 아니다. 한반도에서도 해결되지 못한 과거요 ‘현실’이다. 그래서 광주항쟁의 5월에 또다시 생각해본다. 제주·여순, 그리고 보도연맹과 한국전쟁기의 학살 그리고 군부독재 시절 국가범죄 가해자들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과연 그들은 얼마나 반성하거나 합당한 처벌을 받았나?

분단국가의 형성 시기(1946~53년) 국가범죄를 주도한 자들은 경찰·군인·자본가·지주 등의 상하층의 친일파, 그리고 분단이 낳은 극단의 극우·반공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참회하거나 진실을 말할 기회 없이 죄악을 묻어버리고 늙어 죽었을 것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인적·제도적·정신적 유산을 남겼다. 한국식 반공주의·국가주의, 제도화된 국가폭력의 기구와 그 담당자들, 또 그들이 형성한 권력과 재산과 그것을 누리는 후예들. 그런 유산들은 죄의식을 없이 하는 데 쓰였을 것이다.

지난 1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보도한 바, 자유한국당 여상규 의원은 간첩 조작 사건의 가해자들인 고문 기술자와 배후 등을 추적하며 취재진이 피해자의 망가진 삶에 대한 생각을 묻자 “웃기고 있네”라 일축했다. 여 의원은 그땐 판사로서 법복을 입었었고 지금도 살아있는 강력한 권력이니 문제제기가 “웃기”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조금 다른 경우도 있다. ‘역사비평’ 121호(2017년 겨울)에는 노영기 교수(조선대)가 국방부 과거사규명위원회에 참여하여 광주항쟁 진실규명 조사 중 11공수여단 출신들을 집단·개별 면접한 경험을 쓴 글이 있다. 1980년 5월 19일 광주역에서부터 21일 집단발포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살인·고문·사체유기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바로 그 부대다. 노 교수에 의하면 부대원들 중 대부분은 사진 등의 증거가 있는 데도, 가해 사실에 대해 ‘모른다’ ‘할 말이 없다’는 거짓말을 했다. 심지어 자신들을 피해자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한다.

왜 그럴까? ‘민주화’와 과거청산이 어느 정도는 수행된 대한민국에서 이제 가해자는 뻔뻔하게 자신의 행위를 자랑하거나 ‘애국’으로 치장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가해+무반성의 네트워크와 세력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진심으로 반성하지는 않는(못하는) 것이다.

건국대 이재승 교수의 역저 &lt;국가범죄&gt;(엘피, 2010)가 말해주듯, 민주화야말로 진실을 규명하고 잘못된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아니, 민주화란 국가범죄 청산과 정의 회복의 과정 그 자체다. 적폐청산이 중단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학살 가해자들의 후손에겐 앞의 두 경우(상층 간접 가해자와 하층 직접 가해자)와 달리 법적·정치적 책임이 없다. 자신이 가해자의 후손인지 모르는 경우도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식 암흑 정치의 이데올로기나 행태, 이를테면 지역주의와 보수주의가 순수히 지역과 보수의 가치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무고한 민간인들의 피로 칠갑한 가해를 눙치거나 둔갑시킨 것이라는 사실은 중요하다.

한국의 가해자들은 ‘보수’ 깃발과 태극기 뒤에 숨어 왔다. 국가범죄 가해자들의 권력과 네트워크, 그들의 가문과 재산이 ‘보수’의 자원으로 오용되거나, 보수와 지역의 시민을 인질로 잡아왔던 것이다.

또 5월이다. 그리고 역사의 대전환기다. 남북이 함께 평화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대한민국은 더욱 정의로운 국가가 될 필요가 있다. 같은 고향이라는 이유 때문에 박정희·전두환 같은 가해자들의 편에 서 있는 일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그래야 영남의 시민들이 도매금으로 ‘극우·수구’로 오해받는 일도 멈춰질 것이다.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자 제1야당은 이를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위장평화쇼”라고 비난하며, 국회에서 비준할 수 없다면서 어깃장을 놓는다. 이른바 보수계의 지도인사라는 사람들도 덩달아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선언 발표 직후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를 보면 88.4%가 이번 선언이 ‘잘됐다’고 평가했고, ‘잘못되었다’는 평가는 7.7%에 불과했다. 또 보수 지지층 81.6%도 판문점선언을 긍정 평가했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의 진정성에는 ‘신뢰한다’ 64.5%, ‘신뢰 못한다’ 29.8%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이번 선언에 보여준 국민의 높은 신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일반적으로 우리가 진정성을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문제 대상은 정치다. 평화주의자로서 나치를 피해 영국을 거쳐 브라질로 망명했던 빈 출신의 유대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있다. 그는 프랑스혁명 때 민중의 증오를 한몸에 받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담은 전기적 소설을 썼다. 이 작품 속에 “진정성과 정치가 한 지붕 아래서 함께 산다는 것은 정말 드물다”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유대인대량학살범으로 예루살렘의 재판정에 선 아이히만을 관찰하면서 ‘악의 일상성’이라는 개념을 제기한 여성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도 진정성은 정치적 덕목에 결코 속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권모술수의 동의어처럼 여겨지는 정치와는 애초부터 인연이 없다고 생각되는 진정성은 그러면 어떻게 정의될 수 있을까. 진정성은 우선 말한 내용 자체의 진위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 대신에 말하는 주체의 인격적인 통일성을 전제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의 진정성이 평가되기 때문에 진정성은 의무나 책임 같은 문제를 당연히 제기하게 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아홉번째 계율에 이어 거짓은 곧 ‘영혼의 죽음’이며 진리의 근거는 신밖에 없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은 기독교문화권의 진정성 이해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신의 자리에 인간의 이성을 올려 놓은 근대 계몽사상은 진정성을 이성적 존재의 의무로 보았다. 특히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을 요청했던 칸트의 실천이성은 이 같은 진정성의 의미를 분명하게 했다. 정신사적 맥락은 다르지만 ‘덕으로 다스리고 예로서 가지런히 하면 부끄러움도 알고 선악의 구분도 한다’는 &lt;논어&gt; 속의 가르침이 있다. 인간의 본래적 속성인 수치심에 의거해서 사회관계를 파악한 유교문화권의 진정성에 대한 대표적인 이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성의 이러한 규범적인 논의를 강하게 비판한 사상적 흐름도 있다. 이런 흐름은 진정성의 과도한 정당화는 단지 진정성으로 포장된 힘의 관계를 숨기려는 의도라고 비판한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거짓말을 못하는 자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며 언어를 매개로 해서 굳어진 관습에 따라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 ‘의무’를 역설적으로 비판했다. 비슷하게 노자의 무명(無名)사상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언어 속에 갇혀 있는 시비선악의 판단이나 진정성도 사실은 사회적 명분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비판이나 지적이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정치문화 현실을 보다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도 종종 받는다. 기성정치가 표방했던 진정성에 대해 냉소적인 분위기를 지금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기치 아래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 소용돌이 속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모순은 더욱 심해졌으며, 살 길을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이주민과 난민의 긴 행렬은 끝이 보이지도 않는다. 불안과 공포, 선동과 증오가 정치의 주요내용을 채우고 있다. 트럼프의 백악관 입성, 유럽 여러 나라에서 노골적으로 인종주의적인 공약을 내세운 극우정당들의 약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무차별 테러 등이 지구촌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충격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인권과 사회정의를 지킬 수 있는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확신을 지닌 많은 투쟁이 지구적 연대 속에서 벌어지고 있고, 깨어난 세계시민들의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지적 노력 역시 활발하다. 진정성에 의거한 정치의 복원을 위한 기획은 그래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우리의 문제로 시선을 돌려보자. 정치에 건 기대나 희망보다는 기피와 멸시, 아니면 체념과 냉소가 지배한 분단체제에서 정치의 진정성이 숨쉴 공간이 과연 있느냐는 질문을 내 자신에게 던져 본다. 적어도 ‘4·19의거’(1960), ‘5·18민주화운동’(1980), ‘6월항쟁’(1987) 그리고 ‘촛불혁명’이 그런 체험공간이 아니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가운데 내가 우리 땅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건은 4·19의거였고 나머지는 모두 먼 외국땅에서 지켜보았다. 내가 특히 눈여겨본 우리의 정치공간은 촛불혁명과 이를 뒤따른 판문점선언이다. 부패와 무능한 정권을 주권자가 평화적인 수단으로 몰아내어 정치에 있어서 진정성을 회복하고, 전쟁의 먹구름도 걷어내면서 평화체제를 정착시킬 수 있는 밝은 전망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정치적인 것의 함의 가운데 가장 어려운 문제는 역시 70여년을 증오와 불신 속에서 시달려왔던 남과 북이 과연 서로 간에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일 것이다.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고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여전히 거짓말이나 속임수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이를 김 위원장의 정치적 결단에서 나온, 진정성을 담은 발언이라고 판단한다. 직접 대화를 나누었던 문 대통령도 상대방의 이러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기에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약하는 판문점선언에 서명했다고 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한 비방이 서로 오갔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도 진정성 있는 대화와 협상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1차세계대전의 재앙을 체험한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강연에서 정치인의 덕목으로 정열,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을 꼽았다. 나는 여기에 진정성을 추가하고 싶다. 정치와 가장 인연이 먼 덕목일 수도 있는 진정성을 내가 꼽는 이유는 평화와 번영을 분명히 약속할 수 있는 한반도 땅에 정치라는 이름으로 너무 오랫동안 불신과 증오, 실망과 냉소를 심어왔기 때문이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7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평가대상 63개국 가운데 29위였고, 그중에서 정부효율성 순위는 28위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2014~2016년 사이 중앙정부의 신뢰도는 35개국 중 32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또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하는 2017년 우리나라 부패인식지수는 180개국 중에서 51위로 100점 만점에 54점이었다. 10년째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투명성과 신뢰도는 정체돼 있었는데 국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인식되는 하나의 요인이 됐다.

지난해 5월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이 주인인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사회적 가치 중시, 참여와 협력, 신뢰받는 정부를 실현하겠다는 정부의 혁신전략도 타당해 보인다. 다만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의 혁신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최근 문 대통령이 보여주고 있는 높은 국정지지율만으로 현 정부가 국민에게 약속한 국정과제를 잘 이행하고 있다 판단하기는 이른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정부혁신’의 성과는 43개 중앙행정기관과 17개 광역자치단체가 사회적 가치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정책적으로 변화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232개 기초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정부예산보다도 1.6배나 많은 641조원을 쓰고 있는 338개 공공기관이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선도적인 변화와 혁신을 하려 노력할 때 이행가능할 것이다. 또한 “이제 말로만 하는 정부혁신을 끝내자”란 언론의 지적처럼 중앙정부의 하향식 혁신의 로드맵과 추진계획만으로는 정부혁신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혁신 과제를 계획대로 실천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보장, 더 높은 공공서비스의 강화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정부혁신은 국민에게 헛된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지역과 각종 사회공동체에서 참여가 동반되는 사회혁신을 야기할 수 있도록 정부와 공공기관의 변화와 혁신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전문가 관점에서 보면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정책환경에 부합하는 정책적, 제도적인 혁신방안을 내놓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접점에 있는 지자체나 공공기관이 변화와 혁신의 성과를 보여주지 않으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유보할 수 있다.

최근 공공기관의 개별 노동 현장에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대한 처우개선과 전환절차에 대한 노사 및 노노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공공기관들이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도 단계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보면, 아직 우리 사회에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또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공공기관들이 효율성과 수익성 중심으로 운영돼 왔지만, 공공기관의 존립 목적인 공공성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근 적극적으로 주요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과 공공성 회복이라는 혁신의 성과가 조만간 나타나길 기대해 볼 수 있다.

<라영재 |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다가오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어떤 당의 후보만 되면 따 놓은 당상이라는 말이 들린다. 이런 지지도는 그 정당이 잘해서라기보다 상대당의 급격한 몰락과 10여년 만에 멀쩡한 대통령이 국정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제발 좀 잘해달라는 애절한 염원이 지지도로 이어진 것이기에 안타깝기도 하고, 때로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피땀 어린 희생과 노력으로 얻은 권력을 낭비해버리지는 않을지 불안하다.

국정농단이 드러나고, 대통령이 탄핵되니 마니 하는 얘기들이 오고 갈 무렵 그 당시 제1야당의 당직자를 사석에서 만날 일이 있었다. 대화 중에 현직 광역단체장에 대한 거취 문제가 나왔다. 그의 기반은 시민사회였기에 당내 세력은 약했지만,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경선을 이겨내고 연임에 성공하였다. 그를 두고 “다시 지방선거에 나온다면 염치가 없는 거지. 그 자리를 A도 노리고 B도 노린다는 얘기가 있는데”라는 얘기를 들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방선출직은 당내인사가 돌아가면서 차지하는 자리, 좀 더 높은 곳을 향하기 위해 거쳐 가는 자리에 불과하다는 저급한 인식에 씁쓸함을 넘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지난 4월1일부터 이틀간, 서울의 한 기초지자체의 지역언론에서 그 당의 예비후보 중 누가 그 지자체의 후보로 적당한지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결과를 살펴보면, 상위 3인의 지지율은 C 19.1%, D 9.0%, E 8.6%였다. 아직 지지자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에게 조금이라도 호감이 가는 사람을 질문한 결과는 C 21.7%, D 5.6%, E 3.0%였다. 후보가 여섯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자면 C에 대한 지지도가 결코 작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C는 컷오프에서 탈락하여 경선에조차 나서지 못하게 되었다. 경선은 D와 E가 치른다.

여론조사가 절대적 기준일 수도 없고, 컷오프 과정에서 C에 대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는지도 모른다. 심사과정이 비공개여서 어떤 이유로 C가 탈락하였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만약 당의 지지율이 아직도 지지부진했다면 세간의 주목을 받는 지역에서 여론조사 결과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받고 있던 C를 경선기회도 주지 않고 쉽게 탈락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 여겨진다.

재심을 청구한 C의 하소연을 들어보면 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가 문제가 된 듯하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의 정당, 구성원의 충성도를 저울질하여 자리를 내주는 정당, 그래서 공당으로 보기 어려운 당이 가장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은 떡 주듯이 아무에게나 베풀 수 있는 하찮은 자리가 아니다. 주민의 생활개선을 위해서는 대통령보다도 중요한 자리일 수 있다. 그간 사리사욕만 채우는 선출직이 적지 않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감당해야만 했다. 어떤 기초지자체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공공매입임대주택이 공급되지 않기도 하였다. 공공매입임대주택의 배정을 요청하고 입주자를 선정하는 권한이 기초단체장에게 있는데, 못사는 사람들이 자기 관할구역에 들어오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는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는 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자들은 풀뿌리민주주의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주민자치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C는 중간지원조직에서 마을공동체 활성화와 주민자치의 확대를 위한 활동을 오랜 기간 지속하여 왔다. 하지만 기초지자체의 협조가 없으면 주민자치의 확대가 어렵다는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초단체장에 도전하기로 다짐했다는 얘기를 2년 전에 들었을 때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를 했었다. 우리 사회의 정치구조를 고려할 때 당내 기반이 없는 C가 경선을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경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니 안타깝기도 하고, 다시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단체장을 꿈꿔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막막할 뿐이다.

<강세진 | 새로운사회를여는 연구원 이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며칠 전 중국 베이징에 다녀왔다. 한반도 정세와 문재인 정부의 최근 행보, 한·중관계 전망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는 중국 친구들의 요청 때문이었다. 나 역시 최근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제기한 시진핑 국가주석과 중국 정부의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입장, 그리고 중국 지식계의 시각과 방향에 대한 한·중 토론이 긴요하다고 판단하던 차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집중토론이 가능했던 것은 촛불혁명 이후 그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높은 관심과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해, 그리고 양국 간 축적된 다양한 문제(사드는 물론이고 특히 중·미 간 경제·군사안보적 갈등 속에서 전향적 활로 찾기로 북한의 비핵화 경로 개입 필요성 등)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이번 회동에서 중국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왕후이(汪暉) 교수 등은 중국 지식계와 정치사회 전반을 한국 사회의 활기와 접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고 아울러 한반도-아시아-세계의 전환적 계기를 이끌 새로운 관계상 수립을 위해 한·중 지식계가 지속적으로 사상대화를 할 것을 제의했다.

한국전쟁 이래 가장 위험스러운 전쟁위기 속에서 남북한 주도의 극적 전환으로 남북 정상이 65년차 군사분계선을 넘어 긴 하루의 동행과 평화선언을 이룬 감격이야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반도 분단체제라는 어둠의 시간들. 나의 기억 속에 그것은 7·4남북공동성명의 충격에서 시작됐다. 흑백 TV 속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에 반공 일체로 혹독하게 훈육되었던 어린 우리는 얼마나 당황했던가.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었던 그때의 우리 또래는 올해로 환갑을 맞는다. 그 46년의 시간은 그냥 흘러간 것이 아니다. 분단 모순의 극복과 도전, 굴절의 역사로 점철되었고 이제 발본적 전환이라는 절체절명의 계기를 맞았다. 

혹자는 그 시간성을 “박정희 정부에서 채택한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 3대 원칙이 1989년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의 ‘남북연합’안과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로 이어졌고, 다시 2000년과 2007년의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2018년 판문점선언까지 46년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연속성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4·27선언에 담긴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정책과 통일방안이 박정희-노태우-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그것을 계승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전대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을 계승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 노태우 정권의 남북연합론이 ‘한반도 현실에 부합하는 방안’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6·15선언 당시 김대중 정부의 ‘남북연합’과 김정일 정권의 ‘낮은 단계 연방제’로 대응하였던 것을 토대로 실현가능한 경로로서 ‘남북연합’론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 핵심은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통해 북한이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상호 경제발전의 기초하에 남북 간 경제격차 감소로 통일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체제 간 통일을 준비해가는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과 중국·러시아 등을 연결하는 남북대륙철도 개통, 환동해권 경제협력벨트와 서해권 경제협력벨트 등 경제네트워크 확장과 이를 토대로 한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한다.

그런데 이 남북연합론은 과연 어떤 사회적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것인가. 종북프레임의 무력한 보수세력을 안는 현실정치의 차원에서, 미·중관계의 틈바구니에서 가능한 해결 경로의 모색이라는 자구책의 성격도 있다. 그러나 지난 46년 동안 남북관계가 모두 국가 수뇌부들의 통치행위 차원에서 추동되었고 어떠한 사회적 수렴과정이나 민간 주도 통일 경로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정권교체에 따라 남북관계가 부침을 반복해온 지난 역정이 이를 입증한다.

한편 남한에서 냉전의 시간은 곧 권력과 자본의 시간이었다는 사실도 간과해선 안된다. ‘한반도 신경제구상’은 ‘햇볕정책’과 마찬가지로 국가 주도이든, 자본이 주도하든 “더 이상 ‘바깥’은 없는” 자본의 세계화기획 일환일 수 있다. 한반도 분단 문제는 단지 미·소 냉전체제로의 편제로 인한 민족분단만이 아니다. 냉전분단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분단모순을 격화시켜왔다. 따라서 그 모순에 정박된 민중적 삶의 해결, 사회적 해방통일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촛불항쟁이 열어낸 직접적 민주주의의 정치사회공간을 한반도 해방통일의 상(象)과 경로, 다양한 주체를 일구어내는 생산적 논의광장으로 이끌어내고 진정한 해방통일의 노선을 세우는 사상 대화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이러한 움직임은 다른 세계화, 다원평등과 평화의 세계 구성을 추동해내는 중요한 계기이자 동력이 될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백원담 |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주최로 지난 4일 열린 ‘로스쿨 10년의 성과와 개선 방향’ 간담회에서 로스쿨 전형의 개선 방향에 대한 제언이 나왔다. ‘공익적 법률가 양성을 위한 입학·장학제도 개선’을 주제로 발표한 이재협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해가 갈수록 로스쿨 입학생들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나이가 어리고 (학력·학점 등의) ‘스펙’이 좋은 학생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별전형과 정성평가(定性評價)를 확대해 스펙이 좋지 않더라도 잠재력이 충분한 학생들에게 입학의 문호를 지금보다 개방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타당한 진단과 처방이라고 본다.

사법시험을 폐지하고 로스쿨과 변호사시험 제도를 도입한 것은 다양한 교육적 경험과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법조인으로 키워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법학전문대학원법 26조는 “법학전문대학원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자를 입학시키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며 ‘학생구성의 다양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로스쿨 도입 초기에는 입학생들의 전공이 다양하고 사회 경험을 갖춘 고연령자도 많았으나, 갈수록 대학 학부를 갓 졸업한 ‘고스펙자’들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해력과 암기력이 뛰어나 변호사시험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이유로 로스쿨 측에서 이들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젊은 고스펙자들이 로스쿨을 점령하고, 변호사시험을 더 쉽게 통과하고, 나아가 검사나 재판연구원(로클럭)으로 더 많이 임용된다면 법조계 풍경은 어떻게 될까. 학력과 경력이 비슷하면 갖고 있는 생각도 비슷해지게 마련이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업계의 색깔이 획일화할 경우 집단사고의 오류에 빠질 우려가 생긴다. ‘다른 삶’을 살아온 법률소비자들을 이해하거나 공감하기도 어렵게 된다. 다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로스쿨의 문호를 더 열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로스쿨은 법률가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지, 변호사시험 준비를 위한 수험학원이 아니다. 본말이 전도돼서는 곤란하다. 서울대는 물론이려니와 다른 대학 로스쿨들도 입학전형 방식을 개선하여 학생 구성의 다양성을 높이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법학적성시험(LEET·리트)과 대학 학점 등 정량적 평가지표 외에 사회활동과 경력, 도전정신 등 정성적 평가지표 반영을 확대하거나 별도 전형을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의 다양한 법률서비스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법조인 집단의 다양성이 우선 확보돼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