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광훈 | 충북대 교수·독문학


귀가 멍하여 지난 주말에는 멍하니 보냈다. 병원에 갔더니 ‘중이염 초기’라고 했다. 흔히 ‘감각의 기만’을 얘기하지만, 오감(五感)은 피상적인 채로 가장 직접적이고 확실한 경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귀가 안 좋으니 많은 게 실감나지 않았다. 들을 수 있다는 게 새삼 고마웠다. 사실 지난 10여년간 음악이 없었더라면, 내 삶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특히 고전음악은 가장 평화롭고 깊이 있는 위로를 준 듯하다.

그 가운데 지난 2~3년 즐겨 들었던 것은 피아노곡이었던 것 같다. 여러 작곡가와 장르가 있지만, 거듭 들은 것에는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 슈베르트의 ‘즉흥곡’ 그리고 슈만의 피아노곡들이 있다. 니콜라예바가 연주하는 이들 곡은 어느 것이나 좋다. 루빈스타인의 브람스 ‘피아노 4중주’도 내 몸처럼 곁에 있다. 하지만 요즘 가장 좋아하는 것은 ‘피아노 협주곡’이다.

 

피아노 555대의 하모니 l 출처:경향DB

몸이 지치거나 세상일이 복잡하게 여겨질 때, 하루 일이 끝나거나 주말이면 나는 습관처럼 피아노 협주곡을 듣는다. 모차르트든 베토벤이든 라흐마니노프든 바흐의 건반음악이든 다 좋아한다. 그러나 가장 즐겨 듣는 ‘피아노 협주곡’은 베토벤의 다섯 곡 가운데 ‘4번(op.58)’, 브람스의 ‘1, 2번’ 그리고 쇼팽의 ‘1, 2번’이다. 어떻게 그리 엄격하면서도 풍성하고, 정교하면서도 동시에 과감할 수 있으며, 유연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지. 이 모든 것은 계속되는 선율 속에서 한 고리를 이루며 다음 선율로 나아간다. 어느 것이나 깃털처럼 여린 것으로부터 폭풍처럼 세찬 것에 이르기까지 장대한 규모의 건축적 구조를 선율로 그려낸다.

한때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만 리히터(S. Richter)나 길렐스의 연주로 반복해 듣다가, 미켈란젤리나 루빈스타인의 연주와 비교해 듣기도 했다. 폴리니나 침머만도 훌륭하다. 그것은 철학적이면서도 전원시 같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도 그렇다. 이들에게 서정성과 깊이, 절제와 자유는 별개가 아니라 선율의 화음 속에 통합돼 있다. 진정 위대한 예술은 많은 대립적 요소를 조화시킨다고 했던가.

음악의 매 순간은 드러나거나 숨은 리듬을 탄다. 세계가 보이는, 보이지 않는 리듬으로 차 있다면 음악가는 이 세상에서의 경험을 선율로만 표현하는 사람이다. 소리의 장단과 강약과 높낮이와 속도로 온 세상을 파악할 수 있다니. 음악가만큼 현실을 섬세하게 느끼고 세계와 깊게 화응하는 이는 없는 듯하다. 그들은 최상급 상태를 ‘각자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창조하는’ 것이다. 이 세계와 만나려면 신중해야 하고, 침착함 속에서 삶의 바닥에서부터 천상의 저 끝까지 나가야 한다. 음악을 즐긴다는 것은 침잠 가운데 세계의 깊은 흐름과 우주의 숨은 질서에 닿아 있다는 뜻일까. “음악의 본질은 우리를 세속적인 것보다 더 높게 고양시키는 힘에 있다”고 포레는 썼다. 이것은 거장의 연주에서도 확인된다.

뛰어난 연주자는 아예 눈을 감거나 허공을 쳐다보며 무심하게 연주한다. 이것은 스스로 리듬을 타고 즐기며 누리지 않으면 안된다. 때로는 열 손가락이 열 개의 다른 건반을 ‘동시에’, 그것도 1초에 서너 번씩 치며 화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세계는 베토벤의 것이면서 베토벤을 연주하는 리히터의 것이기도 하고, 리히터를 넘어 세계의 질서이기도 하다. 소리 속에 세계가 담겨 있고, 선율 속에 음악가가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그 신중함과 추진력, 집중력과 비애감은 무시무시하다. 이것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30분쯤 되지만, 브람스에서는 50분이나 이어진다. 한 시간 가까이 감동받을 수 있는 예술장르가 음악 외에 달리 또 어떤 게 있는가?

거장들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나는 세계의 가장 깊고도 머나먼 한구석을 건드리는 듯 희열과 경외감을 느낀다. 음악가에게서 나는 전체적 조화에 대한 감각을 배운다. 리듬은 세계에 있으면서 우리 마음속에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여기는 얼마나 좁고 얄팍한 것인가. 어지러운 마음이 음악을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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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드디어 일제 강제 징용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들이 2000년과 2005년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 각각 12년, 7년 만이다. 징용피해자들이 일제 당시 자신들을 강제로 끌어왔던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소송에서 우리나라 최상급 법원인 대법원이 1, 2심을 깨고 징용자들의 오랜 한(恨)을 풀어준 것이다. 역사의 이름으로 징용자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그리고 이 같은 판결을 이끌어낸 징용피해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일제강점기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단체 관계자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DB)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당연하다. 1, 2심은 일본 법원들이 이미 유사한 소송에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것을 들어 이와 모순된 판결을 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이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으로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주권국가의 법원이라면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결론을 대법원이 내린 것이다.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원폭 피해를 입은 히로시마의 미쓰비시중공업 징용자들에게 일본 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사상 처음으로 징용을 반인도적 행위로 규정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당시 최고재판소는 징용자들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을 나타냈다. 


대법원은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개인배상 청구권 소멸 여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했다. 즉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은 식민지배 배상을 위한 협상이 아니라 정치적 합의에 의해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또 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 근거로 청구권협상 과정에서 한·일이 일제의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꼽았다. 한일 청구권협정 2조 1항이 ‘양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고 되어 있다. 일본 법원은 이 조항을 바탕으로 위안부, 징용·징병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을 무시해왔다. 당사자들로서는 땅을 치고 통분할 일이다. 이번 판결로 강제 징용피해자들이 청구권을 행사할 길이 열렸다. 


이제 공은 한·일 정부와 일본 기업들의 손으로 넘어갔다. 대법원이 배상청구권 문제에 대해 기준을 제시한 만큼 양국 정부와 해당 기업은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당사자들은 물론 한국민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과 분노를 줄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초·중·고 교과서와 참고서 개편을 통해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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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정 | 미술평론가


 

지난 SBS 시사고발프로의 심층보도로 문대성 국회의원 당선인의 학위논문 표절의 문맥이 드러났다. 압축 요약하면 학위논문 표절은 체육계의 암묵적 관행이고 문씨도 문제의식없이 그 관행을 따랐던 것이다. 아마 문씨는 이 문제로 탈당까지 한 자신에게 언론의 집중포화가 멈추지 않는 걸 불공정한 처사라고 느낄 것 같다. 실은 나도 그렇게 느낀다. 그의 처지를 조롱하거나 두둔할 목적으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스포츠계 기존 관행을 따른 죄밖에 없는 문씨로선 현재 자신이 직면한 비난이 부당할 만하다. 죄질의 경중을 따지면 문씨보다 조직의 관행이 훨씬 무겁다. 잊힐 만하면 녹화된 영상 유출로 세상을 뒤집어 놓는 체대 폭력문화도 가해자 입장에선 억울한 일일 게다. 피해자의 단계를 거친 후 당당히 ‘관행’에 따라 후배들을 ‘교육’시킨 건데 사법 처리라니! 


이론보다 실기의 기량을, 원칙보다는 조직의 위계를 중시하는 체육계의 고질적인 관행이 있다. 지금 쟁점은 원칙보다는 관행에 지배되어 일탈을 꾸준히 양산하는 조직문화에 있다는 점이므로, 조직의 체질 개선을 논할 때라는 것이다. 병원균은 개인이 아니라 문화 속에 있으니까. 


 


출강 나가는 대학의 복도에서 안면도 없는 어린 학생이 내게 구호에 가까운 소리로 인사하는 걸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안녕하십니까! 15기 아무개입니다!”라며 상체를 90도 꺾어 인사를 하길래 나도 엉겁결에 “아… 네”라고 맞인사를 했다. 연극영화전공 신입생이었다. 그 후로도 쩌렁쩌렁 울리는 목청 인사를 영문도 모른 채 받거나, ‘습니다’로 끝나는 군대식 어투로 (선배로 보이는) 누군가와 깍듯한 통화를 나누는 어린 학생들을 목격할 일이 간간이 있었다. 


지난달 90도 인사를 안 했다고 후배를 샤워실로 끌고 가 폭언하고 얼차려를 시킨 어느 무용과 선배들의 ‘교육 현장’이 단신으로 보도된 걸 봤다. 몸을 쓰는 집단의 교육 철학이 타 단대와 동일할 순 없을 것이다. 


2005년 출강했던 또 다른 대학에서 체대 학생들이 선배에게 함성에 가까운 인사를 올리는 장면을 보며 대략 감을 잡았다. 그때 해당 대학 학보에 서열 과시형 선후배 간 폐습을 비난하는 글을 썼더니, 선배로 보이는 학생이 내 홈페이지를 찾아와선 익명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선후배 간 전통으로,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수차례 항의하더라. 항의한 학생은 뭐가 잘못인지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 


원점으로 돌아가자. 군사 문화의 관행을 고수하는 연극영화과건 무용과건 명목상 예술 창작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다. 육체만큼이나 사유의 유연성이 요구되는 예술교육에서 위계를 봉건적으로 확인하는 폐습이 엄존한다면, 졸업 후 제대로 된 성과를 낳긴 어려울 거라고 나는 본다. 요행히 자기 분야에서 명성을 얻은들, 논문 표절 사건에 임하는 문대성씨의 경우처럼, 문제의 본질을 자각하지 못한 채 어이없이 주저앉고 말지도 모른다. 


위계를 중시하는 유교문화 전통이 강한 한국사회에 살면서 어린 제자들의 교칙에도 없는 복종심을 일사불란하게 발휘한다면 마다할 교수도 적을 것 같다. 고학년 학생들이 기틀을 세운 군기를 교수들이 방임하는 건 그 때문일 게다. 하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이런 반예술적 문화 안에서 잉태된 예술이 온전히 생존할 가능성은? 나는 낮다고 본다. 


이런 폐습은 큰 사고로 연결되지 않는 한 계속 지속될 터인데, 설령 불미스러운 결과를 낳는다 한들 전공 교수들은 “정말요? 몰랐던 일인데요”라고 해명하면 끝난다. 예술계에 몸담은 이로서 수치심과 자존감의 최소치는 지키자. 거침없고 당찬 예술대생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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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 | 우리땅걷기 대표·문화사학자


 

도보 답사에 나서면 온통 여자들 세상이다. 열이면 아홉이나 여덟 명이 여자다. 우리 역사 속의 여자들 중, 산천을 제일 많이 답사한 사람은 아무래도 송도 기생 황진이 같다.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황진이는 금강산이 천하 명산이라는 말을 듣고 한 번 찾아가 맑은 흥취를 만끽하고 싶었지만 함께 갈 사람이 없었다. 당시에 이생원(李生員)이라는 재상의 아들이 있었다. 사람됨이 호탕하고 소탈해서 명승지 유람을 함께할 만하다고 여겼다. 진이가 이생원에게 조용히 말했다.



LK:금강산의 끝자락의 석양 (경향신문DB)



“저는 중국 사람도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을 한 번 보기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으로 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신선이 사는 산을 지척에 두고 진면목을 보지 못한대서야 되겠습니까?”


이생원이 같이 동행한다고 하자, 그로 하여금 하인 없이 베옷에 초립을 쓰고 양식 보따리를 짊어지게 했다. 그러고는 송라(松蘿)를 머리에 쓰고 베적삼에 무명치마를 입고서 죽장망혜로 뒤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이 금강산에 들어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여러 절에서 걸식하고 혹 스스로 자신의 몸을 팔아 승려에게 양식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생원은 탓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조차 산천을 유람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여자의 몸으로 대갓집 자제를 길동무 삼아 산천을 유람했던 사람이 황진이였다. 더구나 여자라는 점을 활용해 몸을 팔아 유람 비용을 마련했다니 놀랍다.


금강산 유람길에 길이 엇갈려 이생원과 헤어진 황진이는 다시 정처 없이 유람에 나섰다. 그 다음 여정을 보자. 


‘일찍이 산수를 유람하면서 풍악(楓嶽·금강산)에서 태백산과 지리산을 지나 금성(나주)에 오니, 고을 원이 절도사와 함께 잔치를 벌이는데, 풍악과 기생이 좌석에 가득하였다. 황진이는 해어진 옷에다 때 묻은 얼굴로 바로 그 좌석에 끼어 앉아 태연스레 이를 잡으며 노래하고 거문고를 타되 조금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으니 여러 기생들이 기가 죽었다.’


허균의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 하권에 실린 글이다. 


황진이처럼 파격적인 삶을 살면서 그처럼 빼어난 시를 남긴 사람도 흔치 않다. 황진이의 그 뛰어난 문학적 감각은 오랜 시간 단련을 통해서가 아니고,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분방함과 파격적인 행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세계의 곳곳을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누비고 있다. 그들의 가슴속에 황진이의 열정과 패기가 전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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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철 디지털뉴스팀장

 

48세 주부 ㄱ씨. 최근 뒤늦게 스마트폰 사용자가 됐다. 인터넷은 집에서 컴퓨터로 쓰면 족하다고 생각해 요금 비싼 스마트폰을 안 사려 했다가 구형 휴대전화가 고장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바꿨다.


하지만 손 안에 스마트폰이 들어오자 예상이 빗나갔다. 종전에는 좀 한가하다 싶은 시간을 골라 PC 앞에 앉아서 검색하던 뉴스와 정보를 수시로 손 안에서 보게 됐다. 최근 분양받은 아파트 시세는 어떤지, 동네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한 학원의 평판은 어떤지, 요즘 어떤 드라마가 뜨고 있는지….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고 빠르게 최신 뉴스를 접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다.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외국에 사는 지인들과 국내외 소식을 실시간으로 주고받기도 한다.


 15살 중학생 ㄴ군. 스마트폰 없는 게 요즘 가장 큰 스트레스다. 같은 반 35명 중 스마트폰을 안 가진 아이는 6명뿐이다.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에 몇몇 아이들이 폰으로 게임하는 건 별로 부럽지 않다. 매일 밤 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프로야구 경기 결과와 관련 뉴스를 곧바로 확인하지 못할 때가 제일 답답하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 아이는 귀가하자마자 컴퓨터를 켜면서 스마트폰을 사달라고 또 조른다.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가 최근 2700만명을 넘어 3000만명을 향해 가고 있다. 휴대전화를 보유한 총 인원의 절반을 웃도는 수치라고 한다. 젊은층은 웬만하면 스마트폰을 쓴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경향신문DB)



손 안에서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스마트폰이 폭넓게 퍼지면서 개개인의 일상 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출퇴근길, 등하굣길이나 사무실, 집에서 언제라도 어딘가에 접속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대화하며 노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 뉴스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최근 ‘국내 모바일 뉴스 이용 특성 분석’ 연구에서 “스마트폰 사용자의 95.5%가 포털사이트, 58%가 뉴스·미디어의 모바일 웹을 이용한다”고 밝혔다. 뉴스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는 16%선이었다. 미국에서는 지난 3월 “미국인 중 27%가 스마트폰·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다”는 조사가 나왔다.


경향신문 뉴스를 보는 누리꾼 독자 중에도 모바일 접속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토·일요일에는 모바일 뉴스 독자가 인터넷 웹사이트 접속자와 맞먹거나 넘어서고 있다. 외출 여가시간이 많은 주말·휴일에는 집에서 컴퓨터를 켜기보다 모바일로 손쉽게 뉴스를 접하는 독자가 상당히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모바일 뉴스의 최대 장점은 간편함이다. 언제 어디서나 좁은 공간에서도 기기 조작이 쉽다는 것이다. 또 짧은 시간에 신속하게 최신 뉴스들을 주욱 훑고 지나갈 수 있기도 하다. 물론 단점도 있다. 일단 화면이 작아서 자세히 보기가 불편하다. 또 시간과 인터넷 접속 제약 탓에 다소 어렵고 긴 글을 차분히 읽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모바일 뉴스가 짧고 가벼운 내용 위주로 채워지는 양상을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언론재단은 “네이버·다음·네이트 등 3대 포털의 모바일 웹 초기화면 기사의 62.4%가 연예·스포츠 분야”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회 분야 14.6%, 국제 6.6%, 정치·경제 각 5.5%로 나타났다.


모바일로 뉴스를 보는 독자가 늘어나면서 독자들의 눈높이와 요구에 맞춘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모바일 뉴스를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고 급한 과제다. 그러나 단지 모바일 클릭 수를 올리기 위해서 독자들이 별 깊은 생각 없이 가볍게 지나칠 기사만 다량 배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양한 분야의 관심사와 입장을 고르게 살펴볼 수 있도록 보다 특화된 뉴스 콘텐츠와 장르를 선보여야 할 일이다.


모바일 기기의 특성만 앞세우면 모바일 뉴스 보기도 오락이나 놀이일 뿐이다. 그런데 뉴스가 놀이에 그치는 게 과연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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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강 | 성공회대 노동대학장


지난해 말, 인천지역 고속버스 파업 현장을 방문했던 날, 바다를 메운 매립지에 자리잡은 농성장에 바닷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몰아치던지, 말을 하려고 입을 열 때마다 흙먼지가 입안에 들어와 버석거리며 씹혔다. 빗물이 샐까봐 천막을 둘러싼 커다란 비닐 조각이 쫘악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람에 찢겨 나갔다. 천막 모서리마다 고속버스 기사들이 달라붙어 거대한 마녀의 치맛자락처럼 펄럭대는 비닐을 천막 기둥에 붙들어 매느라고 씨름을 했다.


농성장 한쪽에 나란히 서 있는 고속버스 창에 붙어 있는 벽보들의 구호가 눈에 들어왔다. 

“하루 22시간 버스 운전, 4시간만 줄입시다” 

“최저임금 4320원, 10년을 일한 고속버스 기사 시급 4727원”

당시 인천지역 버스 기사들의 평균 시급이 6722원이었다. 이게 과연 사실인가 싶어 물었더니, 사실이란다. 하루 22시간 운전은 예사고 24시간 운전도 해봤다고 한다. 졸면서 운전하는 경우가 많아 “막차 타는 손님은 목숨 걸고 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동안 파업하지 않고 참아온 게 오히려 신기했다.



노동조합이 엄연히 활동해온 회사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답은 간단하다. 어용노조였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어용노조’와 ‘민주노조’를 구별하는 기준은 단순하고도 쉽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자신의 이익을 챙기느라고 조합원들의 이익을 외면하면 어용노조요, 그렇지 않으면 민주노조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회사 간부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직장 생활 좀 편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노조 간부로 올라오는 사람들이 어용노조 집행부에 더러 있다. 회사 임원들과 상부상조하며 ‘노사화합’의 모범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와중에서 피해를 입는 사람은 조합원들이다.


어용노조 간부들은 반짝거리는 새 버스를 운행할 수 있도록 회사가 배려해주는 경우가 많다. 노동조건 개선이나 임금인상 활동을 게을리 해, 회사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협조해준 공로에 대한 보상이다. 노조위원장 자가용이 최고급 승용차로 바뀌기도 하고, 반지하 전셋집에 살다가 번듯한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반면, 민주노조 간부들은 폐차 직전의 낡은 차를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꼭 그런 것은 아니니, 혹시 새 차를 배정받아 운행하는 민주노조 간부님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마시라.)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이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사용자 측은 서울 시내버스 기사들의 월 급여가 타 지역에 비해 높은 편이라며 반박 자료를 냈다. 경기지역 229만8580원, 인천지역 283만7184원인 데 비해 서울지역 기사들은 325만8955원이나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500일이 넘는 장기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북지역 버스 기사들은 그 반박 홍보물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또 무너져 내렸다. 비슷한 조건으로 일하고 있는 전북지역 버스 기사들의 월 급여 역시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주공설운동장 인근에서 버스 노조원들이 파업 해결 촉구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경향신문DB)



장기 투쟁 과정에서 이미 몸을 많이 상한 전북고속 남상훈 지부장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쉰이 훌쩍 넘은 나이에 “이번에 버스노동자의 노예 사슬을 끊어야 한다”며 망루에 올라갔다. 결국 코피를 쏟으며 단식 49일째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지역 토호 세력들인 버스회사 경영자들과 도지사 등 기관장들의 유착관계가 없었다면 벌써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것이 버스 노동자들의 주장이다.


파업 중인 버스 기사들의 간절한 목표는 일터에 복귀하는 것이다. 민주노총에서 탈퇴하면 복귀할 수 있으나 노동자들은 “죽어서라도 민주노조를 지키고 싶다”고 마음을 벼린다.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 자기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을 기도했던 노동자는 경찰서로 연행된 뒤, 면회 온 부인을 보자마자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 들어가 버렸다. 그 부부의 마음이 오죽 아팠을까? 오죽하면 알몸시위조차 마다하지 않았을까? 노동자들의 돌출행동을 비난하기 전에 그 간절함에 눈을 돌리는 것이 도리다. 


이제 곧 6월이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 25주년을 맞는다. 6월항쟁과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성과에 대해서는 그동안 정치적 민주화와 노동운동 역량의 비약적 성장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사실 성장 일변도의 한국 경제가 분배의 물꼬를 트기 시작한 최초의 계기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었다. 울산지역 한 회사에서는 4년 동안 40원밖에 오르지 않았던 노동자 시급이 1987년 파업 뒤 무려 한꺼번에 124원이 오르기도 했다. “과도한 임금인상으로 회사가 도산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다가 회사가 흑자 경영 성과를 발표하자 오히려 놀란 노동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임금이 오르면서 노동자 구매력이 높아지자 외식산업 등 자영업과 레저산업 등 서비스업이 고속으로 성장했고,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가계저축률이 1988년에 25%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노동자들은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고 했다. 시민의 발을 책임지는 버스 노동자들을 노예 사슬에서 푸는 것은 지역사회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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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영 전국부 기자 moooni@kyunghyang.com

 

지방자치단체의 ‘호화청사’가 국민적 비난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공사비 1000억원을 훌쩍 넘는 호화청사 건립은 지난 민선 4기 때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다. 3200억원의 공사비가 소요된 성남시를 비롯해 용인시, 서울 용산구 등의 호화청사가 도마에 올랐고 100층짜리 청사를 세우겠다던 안양시도 질타를 받았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길에 가림막이 얼추 철거된 서울시 신청사를 바라보니 문득 호화청사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신청사 공사비가 3000억원 가까이 되니 액수만으로 따지면 분명 호화청사다.

에너지 낭비의 주범으로 꼽히는 유리 7000여장이 건물 전체를 덮고 있는 것도 마뜩지 않아 보였다. 유독 추웠던 지난 겨울 유리 건물 청사에서 근무하는 한 구청 직원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직원은 “건물 방향에 따라 어느 부서 직원들은 담요를 덮고 일하지만 반대쪽에 위치한 부서에선 너무 더워 반팔을 입더라”고 토로했다.

 

모습 드러내는 서울시청 ㅣ 출처:경향DB

신청사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건물 위쪽이 물결처럼 굽은 특이한 모양을 놓고 설계자인 건축가 유걸 아이아크 대표는 한옥 처마의 모양을 살려 곡선미를 강조했다고 설명했지만 인터넷 공간에선 거대한 ‘쓰나미’가 떠오른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유리 질감의 화려한 신청사와 회색빛 콘크리트의 본관 건물이 부조화스럽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옛 건물과의 조화가 애매하고 뒤로 올라가는 새 건물이 휘어져 있어 앞 건물을 덮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서울시 신청사 건립 과정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설계안은 덕수궁 경관보호 등을 이유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치며 5번이나 바뀌었고, 2009년 신청사 터에서 조선시대 무기 등 유적이 발견되자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건물이 다 올라간 마당에 이제 와서 디자인의 정체성, 구청사와의 조화, 역사성 보존 등을 재점화하기에는 뒤늦은 감이 있다. 예술 작품인 건축물이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도 현재로선 예단하지 못한다. 파리의 상징으로 세계인의 부러움을 받는 에펠탑도 건축 당시엔 우아한 파리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철골 덩어리로 비난받지 않았던가.

오세훈 전 시장이 선언했듯이 신청사가 ‘100년 후를 내다본 서울의 상징’이 될지는 향후 노력에 달려있다. 다행히 신청사를 맞이하는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를 시민품에 돌려주겠다며 당초 계획보다 시민공간을 대폭 늘렸다. 지하 1~2층에 ‘서울시민청’을 만들어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참여공간을 마련하고 본관 전체는 도서관으로 탈바꿈시킬 예정이다. 해외처럼 시청 투어프로그램을 개발해 시민·관광객들에게 시청을 소개한다는 방안도 내놓았다.

먼 훗날 시민들이 두 팔 벌려 옛 모습까지 감싸안는 ‘포용’의 관점에서 신청사를 평가할 수 있도록 마무리를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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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수 | 변호사


지리산에 사는 이원규 시인은 “그대가 백무동의 산안개로 내리면 나는야 속눈썹에 이슬이 맺힌 산처녀가 되고”라고 노래했다.

그 깊고 신비로운 백무동 계곡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는 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백무동뿐만 아니다. 국립공원 곳곳이 케이블카 추진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리산에 4개, 설악산에 1개, 월출산에 1개가 추진 중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부처는 환경부이다. 환경을 보존해야 할 환경부가 나서서 케이블카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한 일이다.

2010년 환경부는 자연공원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노선길이를 2㎞에서 5㎞로 늘렸고 케이블카 정류장의 높이제한도 9m에서 15m로 완화했다. 국립공원 안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2011년 12월에 국립공원 케이블카를 시범적으로 설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올 3월에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신청을 받았다. 그리고 6월 말까지 시범 지역을 선정하겠다고 한다. 10년 이상 논쟁이 된 사안을 정권 말에 졸속으로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환경단체들이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반대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ㅣ 출처:외부제공/경향DB

한 곳에서 시범적으로 설치되면 다른 곳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결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 설악산, 월출산 곳곳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국립공원 케이블카 사업은 지역의 개발심리에 중앙정부의 무책임하고 독선적인 정책결정이 더해지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케이블카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수백억원의 돈을 들여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을 더 어렵게 만들 뿐이다. 국내 대부분의 케이블카는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현재 국립공원에 추진 중인 케이블카는 길이가 4㎞가 넘는 것들이라 탑승료가 상당히 비싼 수준일 수밖에 없다.

지역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도 희박하다. 케이블카를 타러 온 관광객은 체류시간이 짧기 때문에 금방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그런 식의 관광이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기는 어렵다. 케이블카 사업은 업자에게만 좋은 일이 될 뿐이다. 지방자치단체와 환경부는 케이블카가 ‘친환경 사업’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이용하게 되면 그만큼 등산객이 줄어들어 등산객으로 인한 환경훼손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궤변일 뿐이다. 케이블카는 국립공원의 경관과 환경을 파괴하는 환경파괴 사업이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지리산 노고단, 설악산 대청봉 부근에 높이가 15m에 가까운 정류장이 들어서게 된다. 자연경관을 훼손할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환경부의 가이드라인도 지키지 않고 있다. 설악산의 경우에는 대청봉 정상에서 불과 5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정류장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산 정상부에 탐방객이 몰리게 되고 환경훼손은 심각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지리산의 경우에는 반달가슴곰 특별보호구역에 케이블카가 설치될 계획이다. 한편으로는 반달가슴곰을 보호한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절차의 비민주성도 심각하다. 지방자치단체는 제대로 된 공론의 장도 열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서 초안검토, 민간전문위원들의 검토,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3개월 내에 마무리하겠다고 한다. 한마디로 졸속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얘기들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대신 기존 등산로를 폐쇄 또는 축소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지리산을 좋아하는 시민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여러 가지 논란을 안고 있는 국립공원 케이블카는 이 정부가 했던 많은 사업처럼, 일방통행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국토의 4.9%에 불과한 국립공원조차 지키지 못하는 국가는 상처투성이의 땅만 후세에 물려주게 될 것이다.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 제도를 도입한 미국에는 국립공원 안에 케이블카가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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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기 경북대 교수·사회학


 

주지하다시피 지금 유로존은 그리스로 인해 그야말로 비상사태다. 그런데 유로존 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며 다소 안이한 시각이다. 과연 그리스 사태가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첫째, 세계화 때문이다. 이제 전 세계는 지구촌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특히, 경제영역은 발군이다. 비록 그리스가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라고 할지라도 이번 위기로 전 세계가 떨고 있는 것은 바로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세계화 때문이다. 이렇게 세계 각국이 촘촘히 연결된 상황에서는 아무리 존재감이 미미한 나라라 할지라도 까딱 잘못될 경우 그것이 주는 파괴력은 실로 지대하다. 이는 도미노를 연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더군다나 세계화의 선두주자 노릇을 하고 싶어 안달하고 있는 ‘대한민국’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따라서 그리스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스 아테네에서 반정부 시위 참석자들이 긴급세금통지서 사본을 태우고 있다. (경향신문DB)



 둘째,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의 농간 때문이다. 그리스 사태의 원인으로 흔히 부채문제가 먼저 거론된다. 그러나 그것이 현 사태의 근본 원인은 아니다. 현 사태는 바로 그리스가 단일 통화인 유로를 쓰는 유로존에 무리하게 가입하면서 비롯되었다. 1981년 유럽연합(EU) 가입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유로존 진입을 염원하던 그리스는 마침내 2001년 유로존에 입성한다. 그런데 여기에 흑막이 있었다. 가입 요건을 절대로 충족시킬 수 없었던 그리스를 골드만삭스가 분식회계를 통해 그 요건을 갖춘 것으로 둔갑시켜 주었다. 대신 골드만삭스는 그리스 국채 매각과 관련한 수수료와 공항 및 고속도로 사용료 등을 넘겨받았다. 


이때 골드만삭스가 동원한 것이 바로 파생금융상품이다. 자력으로 국력을 키우기보다는 손쉽게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외양만을 키움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다지려 들었던 그리스 위정자들의 구미에 딱 들어맞았던 것이 바로 골드만삭스의 파생금융상품이었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그리스를 돕는 척하다가, 다른 한편으론 그리스가 부도를 내는 쪽에 내기를 거는 파생금융상품을 개발해 팔고 사는 파렴치한 행각을 벌였다. 그 파생금융상품이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활개를 치고 있다. 금융감독기관은 첨단금융상품으로 환영해 마지않고 있으며 일반인들은 대박의 호기로 알고 뛰어들고 있다. 참고로 3년 연속 파생금융상품 거래량 1위를 한 곳이 대한민국이다. 이를 놓고 볼 때 어찌 그리스가 남의 나라 일로 보일 수 있을까?


셋째, 부동산 거품 때문이다. 유로존 가입으로 그리스 국민들은 부동산 가격이 올라 처음엔 희희낙락했다. 잘사는 나라와 동일한 통화를 사용함으로써 그와 같은 체급으로 인정받은 그리스는 저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었고, 그 돈은 또다시 싼 이자로 일반 대중에게 대출되었다. 그렇게 시중에 풀린 돈은 한탕으로 일확천금을 거머쥘 수 있는 마땅한 투기처로 보이는 부동산에 흘러들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로존의 부자 나라 국민들이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의 그리스 같은 나라의 값싼 부동산을 사들여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블룸버그는 유럽에서 부동산 거품이 심하게 생긴 대표적 국가로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 프랑스를 꼽았다. 결국 거품은 미국의 금융위기가 불거지자 갑자기 꺼지기 시작했고, 그 여파는 현재의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의 위기를 잉태했다. 이는 부동산 거품의 대명사라고 불려도 전혀 손색이 없는 대한민국과 직결돼 있다.


이래저래 그리스의 위기는 대한민국과 깊이 연결돼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한민국은 늘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와도 눈치채지 못한 어리석음을 수도 없이 범했다. 임진왜란도 그랬고 일제강점도 그랬고 6·25전쟁도 그랬다. 외환위기나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닥치고서야 실감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어리석음을 범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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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웅재 한양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


 

최근 국내외 유명 인사들의 표절 문제가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필자의 불만은 이에 대한 공론이 표절 의혹을 받은 사람들 개인에 대한 공격과 책임 추궁의 차원에서 진전이 없다는 데 있다. 물론 이들의 명백한 과오에 대해 인간적으로 동정해야 한다거나 직업적 윤리와 기율, 또는 원칙의 확립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왜 이러한 표절의 문제가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복되는지, 불명예스러운 혐의를 받거나 이로 인해 현실적인 불이익을 감수하는 이들은 왜 이러한 위험천만한 가능성 앞에서도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실수를 반복하는지, 이에 대한 좀 더 깊고 넓은 사회적 공론이 부재함에 대한 의구심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제 몇 명의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데 대한 성찰과 차분한 공적 담론이 필요하다. 


경향신문DB

이는 오늘날 우리 대학들의 결과 지향의 평가 및 제도와 관행 등에서 기인한 근원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일례로 대부분의 대학, 특히 수도권에 근접한 유명 대학일수록 신임 교수 채용이나 승진·승급 시 SCI, SSCI, A&HCI 등 영미권 학술기관이 요구하는 국제인용색인에 등재되어 있는 소위 해외 유명 논문(특히 대부분이 영어로 씌어진)을 요구한다. 필자도 이러한 과정을 거친 터라 ‘누워 침 뱉기’식의 독백이 될 수 있겠지만, 대학의 연구 문화 중 가장 큰 문제는 타자의 언어와 시선에 의존해 우리의 문제를 우회해서 풀어가는 데 있다. 


 많은 연구자들이 당면한 현안과 문제에 대해 모국어를 통한 정치한 논구와 통찰 대신, 타자의 관점과 관심을 반영하는 글쓰기 관행을 따른다. 이는 나아가 일종의 자기검열로 연결되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양질의 연구결과를 생산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특히 공학이나 자연과학에 비해 언어의 사용이 연구 주제와 이론, 그리고 방법론 등과 유리되기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더욱 그렇다. 


또 다른 문제는 논문 수만 중시하고 전문서적, 번역서, 교양서 등의 저술활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풍토다. 계량화된 실적 위주의 평가, 특히 영어논문에 압도적으로 높은 평가점수를 부여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할당된 논문 편수를 채워야 하는 제도는 성과 달성을 위한 전투적 논문쓰기를 강요한다. 이는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위한 논문’을 양산해 논문 자체의 질은 물론 교육과 학문 자체의 질 하락도 가속화할 뿐이다. 저술활동을 어렵게 하는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또 다른 ‘분서갱유’라 할 만하다. 


오늘날 학제 간 융합 및 통섭이 강조되는 학문적 트렌드를 십분 인정하지만, 이를 충분히 구현하기 어려운 학제 간 특수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대학과 교수의 능력을 획일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학의 정체성과 존재방식을 부정하는 일이다. 대학과 교수의 평가를 위해선 최소한의 보편적 기준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신문사의 대학 평가를 과도하게 의식해 교육과 연구의 실제성과 유용성, 이를 통한 대학의 사회 공헌이라는 큰 명제를 소홀히 한다면, 대학 스스로 대학의 존재 근거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일들이 지금 우리 대학사회 안에서 ‘글로벌 경쟁력’ 제고라는 유력한 담론의 자장에 휩쓸려 진지한 의심이나 도전 없이 정당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는 대학의 위기이며 한국 사회가 당면한 지적 역량의 위기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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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주 영화감독


 

우연히 과방에서 보게 된 광주항쟁에 관한 불법 유인물의 희미한 사진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수업시간에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복경찰에 의해 이름도 모르는 어떤 학생이 끌려갈 때 누구도 그걸 막거나 항의할 생각조차 못하던 그날의 부끄러움이 시작이었을 수도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청 및 시내곳곳에서 벌인 시민들의 시위현장 (경향신문DB)



점심시간, 같이 점심을 먹을 누군가도 없는 상태. 혼자 밥을 먹는 게 뭐해서 학교식당 한편에서 열심히 신입생을 대상으로 자신의 서클을 선전하던 어느 선배의 선한 눈매가 좋아 보여 시작했던 것일 수도 있고, 가본 적도 없지만 안개 가득한 런던의 아침이 이런 걸까라는 심정으로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매캐한 최루가스 사이를 방황하던 어느 날의 서슬 퍼런 결심일 수도 있다. 


 그렇게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니던 나 혹은 누군가에겐 세상의 모든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던 그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된 어떤 날이 있다. 내 경우 시작은 시시껄렁했다. 여대를 다니던 나에겐 안전하고 지속적인 흡연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차이가 무엇이겠는가! 더 이상 화장실이 나의 흡연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해선 안된다는 어떤 미래에 대한 부푼 희망이 나에게 있었다. (흡연은 잘못된 습관입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서클 생활.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분명히 나를 노리고 놓아 둔 것임이 분명한 광주항쟁 자료집. 그 자료집을 집으로 가져가기까지의 그 파란만장한 여정. 시작이 시시껄렁한 만큼 난 누구보다 겁이 많았고 언제나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앞에 선 친구들이 다치고 연행당할 때 가장 비겁한 위치에 나는 서 있었다. 


그런 시간들, 이를테면 파란 하늘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부끄럽던 그 시간이 지나고 영화를 만드는 일을 선택한 이후, 언제나 내 소원은 ‘이제는 비겁하지 않은 선택과 행동을 하는 나였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소원의 언저리엔 항상 그때 내 앞에서 세상을 향해 전진하던 멋진 친구들, 선배들의 모습이 기준점이 되곤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아주 많이 흘렀다. 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30년이 훌쩍 넘었지만 발포 명령자는 아직도 모든 권력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말도 안되는 억울한 죽음들은 우리 곁에 놓여있다. 고작 스무 살 주제에 세상의 모든 고민을 껴안고 있는 듯이 결연한 결심을 하던 우리보다 지금의 스무 살이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동안, 현실적 조건과 욕망의 기준점이 이미 시대를 넘어 너무도 달라져 있음에도 “투표도 안 하는 20대 어쩌고”하며 어른인 척 욕을 하는 당신이, 어느덧 당신의 투쟁 경력이 권력으로 보상받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당대의 다양함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과거의 영웅담에 둘러싸여 누구한테나 충고부터 하려는 당신의 그 무게 잡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기필코 당신을 이해하려 애써왔다. 나의 세대니까, 내가 도망쳤던 현실을 이끌어온 당신이니까. 



경향신문DB



그러나 이젠 정말 못 참겠다. 나는 요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모습을 보며 이제 나의 세대 즉 1980년대 세대에 대한 존경을 버리려고 한다. 그토록 비겁했던 나의, 아직까지 남아있는 부채와 죄의식은 고스란히 당신들이 아니라 세상의 해고된 모든 분들과 20대에게 드리려고 한다. 정확하게 말해보자. 지금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모습은 소위 엔엘(NL)과 피디(PD)의 사상투쟁이 아니다. 정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답게 애쓰며 살려는 태도의 문제다. 민주주의의 문제다. 그렇다. 우리가 적어도 간직해야 할 최소한의 것을 당신들은 버렸다. 


과거의 투쟁경력이, 당신의 청춘이 차가운 감옥에서 소모되던 그 역사가, 당신의 희생이, 한낱 중세 교황이 날려주던 면죄부처럼 현재의 모든 것을 덮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라면 당신은 이미 당신의 청춘이 그토록 경멸하던 그 괴물이 된 것이다. 최소한의 가치도 증발된 당신에겐 더 이상 자유와 권리를 말할 자격조차 박탈되었다. 그 치욕스러운 부정과 반민주적인 폭력사태를 목도한 그날 나는 하염없이 존 레넌의 ‘God’라는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존 레넌 스스로가 믿고 신뢰하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비틀스마저도 믿지 않는다는 그의 통렬한 자기고백에 감정이 끊임없이 동요되었다. 그리고 이제 나 역시 현재를 믿기로 결심한다. 왜냐하면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신뢰는 어느 순간 증명서처럼 발급되어져 유통기한 없이 인증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순간의 결기 같은 선택 속에서 시험받고 선언되어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가 적어도 우리의 후배세대들을 걱정하는 심장이 있다면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니라 바로 지금 내가 딛고 서있는 공간에 대해 증명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40대라면 지금까지 해온 무엇보다 해야 할 무엇이 더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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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덕 건보공단 급여상임이사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인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민의료비의 증가율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크게 상회하는 상태가 매년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명목 GDP는 2002년 721조원에서 2010년 1173조원으로 63%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건강보험 총진료비는 18조8317억원에서 43조6283억원으로 132% 증가했다. 이처럼 진료비가 크게 증가한 데는 만성질환자의 급증이 큰 몫을 하고 있다. 인구 고령화와 생활습관의 변화로 2010년 기준 만성질환자는 1376만명, 진료비는 15조2000억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36.3%에 이른다.



2008년 주요 만성질환자수와 진료비 (단위:명, 억원) 경향신문DB



우리나라의 만성질환자 관리체계는 너무 미흡하다. 독일, 영국 등 주요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만성질환 관련 의료비의 증가 추세를 억제하고, 국민들의 건강수준 향상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관리하지 않는 환자는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환자에 비해 합병증 발생위험이 고혈압은 3배, 당뇨병은 2.3배 높다. 사전에 질병을 관리했다면 한 달에 몇 만원이면 될 것을 방치함으로써 중증으로 발전해 수천만원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고, 심지어 다리를 절단하거나 실명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만성질환은 지속적인 치료와 관리가 중요함에도 현재의 건강보험 급여체계가 사후치료 중심으로 되어있어 만성질환의 관리와 서비스 제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는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제도는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가까운 동네의원을 정해 꾸준히 건강상담을 받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새로운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이 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는 하루 아침에 어느 일방에 의해 나온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 가입자, 정부, 의료공급자인 의협이 수많은 논의와 협의, 수정과 보완을 거듭한 결과물이다. 2009년 보건복지부와 의협이 논의를 시작한 이래 3명의 장관을 거치면서 커다란 진통을 극복한 산물이다.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에 대한 불필요한 갈등이나 오해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자는 환자와 동네의원일 것이다. 의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원들이 이 제도에 동참하고 있다. 이 제도의 취지와 의미를 바로 인식하고 발전시킨다면 환자와 동네의원 모두에게 직접적이고 지속적인 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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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광주지역 MBC, KBS 노조가 1980년 당시 5·18 왜곡보도에 대해 공식 사죄하는 행사를 금남로에서 가졌다. 이들은 사과문을 통해 “계엄군이 휘두른 대검에 찔린 시민들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사실 보도 한 줄 없었다”며 “우리는 언론이 아니었다”고 사죄했다. 이어 “방송은 계엄군이 써준 대로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묘사했다”면서 “만약 방송사들이 단 1초, 단 한 줄이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했다면 군인이 자국민을 향해 총을 쏘는 비극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이들은 현실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정권에 아부하는 김재철 MBC 사장, 김인규 KBS 사장이 물러나지 않는 한 32년 전과 같은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며 끝까지 투쟁해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방문진 이사회 출석하는 김재철 MBC 사장 (경향신문DB)



왜곡보도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광주MBC과 광주KBS 사옥에 불을 지른 날에 맞춰 열린 행사 소식은 다시금 왜곡보도와 오보의 폐해를 성찰케 한다. 그것은 그저 폐해란 표현 정도로는 부족한 가공성을 갖는다. 사과문이 진실보도의 외면이 광주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지적한 대로다. 


오늘날 거개의 왜곡보도와 오보는 방송 종사자들의 알아서 기기와 결합해 나타난다. 30여년 전엔 거의 외압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낙하산 사장과 권력의 결탁·야합 성격이 강해진 것이다. 우리는 지난주 MBC ‘뉴스데스크’에서 그 가공스럽고 극단적인 실제 사례에 맞닥뜨렸다. 지난 17일 권재홍 기존 앵커(보도본부장)를 대신해 임시 앵커를 맡은 정연국 앵커는 “어젯밤 권재홍 앵커가 뉴스데스크 진행을 마치고 퇴근 중 노조원들의 퇴근 저지를 받는 과정에서 신체 일부에 충격을 입어 당분간 방송 진행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배현진 아나운서는 “권 본부장이 20여분간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어야 했다”고 상보를 전했다. 권 앵커의 부상 소식을 톱뉴스로 다루면서 노조원들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그러나 노조가 그날 상황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하며 신체 접촉 사실을 전면 부인하자 회사 측은 말을 바꿨다. “권 앵커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두통과 탈진으로 치료 중”이란 것이다. 


이런 보도행태는 광주시민을 폭도로 규정한 옛날 방송의 그림자를 감지하게 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필요하다면 공공 이슈를 다루는 ‘뉴스데스크’마저 사유화해 국민을 상대로 노조원들을 ‘폭도’ 비슷한 존재로 모는 왜곡보도조차 거리낌없는 이들을 도대체 무엇이라 규정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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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


공영방송사들의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MBC노조의 파업은 112일, KBS새노조의 파업은 75일, YTN의 파업은 73일을 기록 중이다. KBS1노조도 5월4일 자정부터 파업에 가세했다. 그동안 방송사들의 파업은 몇 차례 있었지만 공영방송들이 ‘공정방송 복원, 사장 퇴진’이란 같은 목표를 내걸고 장기간의 총파업을 벌이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방송사 측에서는 “노사협상 대상이 아닌 요구를 내세운 불법파업”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번 파업은 정치적인 파업이다. 그런데 방송사가 파업을 벌이는 이유를 되짚어 올라가보면 사장 임명 과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정치권의 욕심 때문이었다. 이 정부가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통해 방송을 장악한 것도 행정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다. 무리한 사장 교체와 이들을 통한 시사 프로그램 폐지나 비판적 언론인들의 해고, 좌천 역시 경영이 아니라 정치적인 권력행사였다. 그러니 정치적인 파업임을 자인하는 노조 측과, 정치적인 파업이라 타협할 수 없다는 사측의 주장이 맞서 있으니 이번 방송 파업은 오래갈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프로그램들의 결방이나 뉴스 파행을 지켜보고 있는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MBC 권재홍 보도본부장의 퇴근 저지 등의 돌발사고도 파업의 피로도가 높아진 데서 발생한 일이다. 이대로 나가면 아무도 바라지 않는 심각한 일들이 발발할 수도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국가적 망신이다. 그러니 정치권에서 나서서 원만한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적인 파업은 정치적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송사 희망텐트 투쟁ㅣ 출처:경향DB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은 최시중의 ‘앙시앵 레짐’이 무너진 후 공황상태인 것 같다. KBS의 이사회나 MBC의 방송문화진흥회 그리고 YTN의 공기업 대주주들도 권위를 상실했다. 그러니 이들이 나선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장이 자발적으로 사퇴하고 또 새 인물을 임명한다 해도, 지금의 방송사 사장 임명 체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공영방송을 공영방송답게 만드는 제도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선거캠프의 특보 등을 사장에 임명하여 방송을 장악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일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공영방송 사장 임명방식은 폐기해야 한다. 누가 다음 정권을 잡든 방송의 공정성, 공익성, 중립성을 지켜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19대 국회 원 구성에 앞서, 여야 수뇌부가 나서서 새로운 공영방송 제도의 구축에 합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영방송 개혁을 위한 현인(賢人)회의’ 같은 것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 각계로부터 학식과 덕망 있는 후보를 추천받되,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중립적인 인사로 구성하는 것이다. 2009년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의 경험을 보면, 여야에서 위원을 추천하면, 피추천인은 추천해준 당을 대변했다. 학자들도 진영논리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모색해야 한다. 여는 야쪽에 편향된 인사를 비토하고, 야는 여쪽에 치우친 인사를 비토하는 식으로 하여 양쪽 모두 거부할 수 없는 중립적인 ‘현인’들로 회의체를 구성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이들로 하여금 우리나라에 가장 적합하고 바람직한 형태의 공영방송 운영방안을 도출케 하고,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들 ‘현인회의’가 가동에 들어가는 대로 노조는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하여야 한다.

국격은 G20이나 핵안보정상회의 등의 이벤트를 통해 높아지는 게 아니다. BBC, NHK와 같은 제대로 된 공영방송이 있을 때 국격도 높아지는 것이다. 우리 시청자는, 방송계는 공정하고 품격 있는 공영방송을 가질 때가 되었고 또 가질 자격도 충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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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 전문가


사마천은 지준이라는 고매한 인품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군자가 귀하게 여기는 인생의 바른 길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최고의 가치 기준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立德)이요, 그 다음은 책을 써서 자기주장을 세우는 입언(立言)이며, 그 다음은 공업을 세우는 입공(立功)입니다”라고 했다. 이것이 사마천의 이른바 ‘삼립’이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셋 중에 하나라도 이루기 위해 평생을 노력한다. 사회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켜내며 나름대로 업적을 쌓게 되면 입신 내지 입공했다 할 것이며, 어느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자기주장으로 일가를 이루었다면 입언했다 할 것이다. 사마천은 덕행을 수립하는 입덕을 최고의 가치기준으로 보면서 자신은 감히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할 수 없고, 그저 입언할 수 있다면 뜻한 바를 이룬 것이라며 자신을 낮추었다. 그러나 그가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치른 대가를 생각하노라면 그의 입언은 입덕의 경지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그런데 사마천이 말하는 입신(공)이든, 입언이든 그 결과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은 자신과 남을 기만하지 않는 도덕의 수립과 강화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안되면 입공한 자는 권세와 돈으로 세상을 해치고, 입언한 자는 글과 말로 혹세무민하여 사회를 부도덕하고 부정한 쪽으로 이끌게 된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논문표절 실태 조사 결과 ㅣ 출처:경향DB

사마천은 입덕은 언감생심이니 입언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물이 <사기>라는 절대 역사서이다. 하지만 입언도 입공도 입덕으로 가는 과정임을 분명히 했다. 말하자면 입공과 입언은 선택이지만 입덕은 필수라는 것이다. 그래야 입공도 입언도 세상에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언의 중요한 과정 내지 그 결과라 할 수 있는 학위논문을 표절로 도배를 하고도 당당한 자들을 보노라면 ‘덕’이 실종된 입신출세가 얼마나 위험한지 절감하게 된다. 입언은 자기주장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을 표절한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것을 훔치는 절도행위의 단계를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과 영혼을 파는 행위다. 이런 사람들은 못할 짓이 없다.

“지식 없는 열정은 무모하며, 열정 없는 지식은 무의미하다. 과장된 지식은 허망하며, 거짓된 지식은 사악하다. 그리고 분별없는 지식은 위험하다.”

지금 우리 지식사회와 지식인들은 총체적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병폐가 벌써 골수에까지 사무쳐 도저히 손쓸 수가 없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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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욱 | 충북도립대 교수·전자통신


오는 6월1일자로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별 취업률 통계 조사가 발표될 것이다. 전국 모든 대학이 이 결과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있다.

각 대학의 취업률은 대학의 생존과 직결된 정부의 각종 재정지원 사업 평가에 가장 중요한 지표로 활용된다. 그러다보니 대학마다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 결과 온갖 편법까지 동원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전체 졸업생의 8% 이상을 교내에 취업시킨 경우도 있고, 일부 교수들은 할당된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에게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졸업생들을 지인 업체 직원으로 등록하는 유령 직원까지 만들고 있다.

 

서울 삼청동에서 열린 '대졸자 취업대책 회의'에 참석한 전국 대학 총장들 ㅣ 출처:경향DB

취업률 제고와 관련된 업무가 대부분 교수들에게 떠넘겨진다. 교수들은 연구업적평가와 강의평가, 산학협력, 연구비 수혜 실적, 봉사 실적, 장학금 모금 등 이중 삼중 사중의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심지어 모 대학 조사결과에 따르면 교수들이 스승으로 인정받는 것은 고사하고 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갑과 을의 관계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믿고 싶지 않고 슬픈 일이지만 이것이 대학의 현실이다.

오늘날 대학은 취업률, 기업 맞춤형 인재양성의 요람이 된 지 오래다. 학생들에게 대학은 더이상 학문의 전당이 아니다. 다만 ‘취업의 전당’에 불과할 뿐이다.

대학까지 나온 제자들을 백수가 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교수들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뛰는 것은 행복한 의무일 수 있다. 그러나 대학교수들이 뛴다고 취업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까. 어림없는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대졸자 취업률을 제고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모든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부의 태도는 ‘나(정부)는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걷어 돈을 가지고 있다. 너희(대학)는 대졸자 취업에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라. 그래서 취업률이 높은 대학은 살려줄 것이고 낮은 대학은 죽이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대졸자들의 취업률은 교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듭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의무는 없는가? 경제를 살리고 기업에 더 많은 일자리를 독려하는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할 일을 대학과 교수들에게 모두 떠넘기고 있다는 게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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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식 | 한국외대 교수·언론정보학


신문은 시민으로 하여금 특정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하고해당 사안에 관한 관점 형성에 도움을 주는 다양한 사실과 의견을 제공한다. 신문에서 현저하게 다뤄진 공적 사건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공공의 관심사로 전이되는데, 신문의 의제는 일정 기간의 뉴스들을 검토하면 파악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추가적인 정보는 개별기사의 헤드라인, 기사의 크기, 게재 면과 같은 단서에 의해 제공된다.

구독료 인상과 더불어 독자서비스 강화를 약속한 5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일까지 1면과 종합면에 게재된 기사의 내용분석을 통해 경향이 설정하고자 노력했던 의제가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이 기간 동안 경향이 반복하여 빈번하게 다룬 공적 사건들은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파이시티’) 건축 인허가 로비 의혹,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미국의 광우병 발생, 민주통합당의 ‘이해찬-박지원 담합’ 논란, 부실 저축은행 추가 영업정지, 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 망명, 아이들 삶의 질 향상(‘아이를 살리는 7가지 약속’), 프랑스 좌파 올랑드 집권 등이었다.

기획기사와 외국 관련 기사 2건을 제외하면 경향이 구축하고자 했던 핵심의제는 대통령 주변 인사의 비리개입 및 정부의 잘못된 정책집행, 야권의 정치적 갈등 두 가지이다. 첫째, 여권인사의 비리개입 의혹과 부실 저축은행 추가 퇴출은 집권여당 관계자와 시장의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안들이다. 따라서 경향은 먼저 관련 사안에 관한 과거의 보도가 어떠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경향신문 2012년 4월 11일 1면 ㅣ 출처:경향DB

권력을 가진 개인과 관료들의 정책집행에 대한 감시는 언론의 기본적 책무이다. 따라서 경향은 집권여당 내에서의 문제제기를 권력 갈등 차원에서 조명하고 관련자들의 입을 빌려 갈등을 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았는지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지금처럼 문제가 발생한 후 취재원(실명, 익명)의 입을 빌려 사건을 정의하는 취재 관행은 가장 낮은 수준의 저널리즘 실천이다. 그보다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되풀이되어 발견되는 구조적 문제점을 고발하고 근본적 해결책 모색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프로모션하는 기획 혹은 탐사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의제를 적극 구축해야 한다.

가령, 광우병 이슈에 관한 보도를 예로 들 수 있다. 일부에서는 경향을 포함한 진보언론의 광우병 보도를 과도한 ‘집착’이라며 그 배경을 의심하고 비판한다. 하지만 국민건강권 보호 차원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감시견으로서 경향의 ‘짖음’은 언론이 마땅히 수행해야만 하는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신뢰할 만한 간접취재원(서울대 수의대 용역보고서)을 인용하여 광우병 발생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육골분 수입현황을 진단(1일 7면)하고 정부의 잘못된 정보제공(2일 3면)과 허위사실 유포(9일 2면)를 비판하며 국가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을 비교(3일 9면)한 것은 적절했다. 특히 광우병이라는 과학적 이슈를 데이터와 팩트를 통해 조명한 것은 안전문제를 이념으로 왜곡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태도와 분명히 달랐다.

둘째, 야권의 정치적 갈등 보도와 관련하여 관계자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전하는 데 그치거나 전략적 관점에서 사건을 조명한 것은 적절하지 못한 보도태도였다. 먼저 ‘이해찬-박지원 담합’ 논란 보도의 경우 민주통합당 당선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1일 1, 8면)에 높은 뉴스가치를 부여했다. 하지만 당선자들의 출신지역에 기초하여 그들의 평가적 의견을 전하는데 그쳤다. 일반 유권자의 비판적 정서는 지역의 정치적 이해를 뛰어넘는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아울러 언론 인터뷰 내용을 간접 인용하면서 ‘이해찬-박지원 담합’에 반대하는 후보들의 연대소식(2일 6면)을 전했는데, 그 과정에서 손학규 전 대표와는 인터뷰도 하지 않은 채 기자가 예상한 그의 발언을 인용부호를 통해 보도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부정경선은 ‘파이시티’ 건축 인허가 로비의혹과 더불어 경향에서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핵심의제였다. 2일자 1면에서 진상조사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도를 시작으로 19일까지 98건의 기사를 보도했다. 무엇보다 기획보도를 통해 진보정치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 모색의 필요성을 촉구한 것은 아주 적절했다. 특히 이념의 포로가 된 채 추상적 구호만을 내세우는 진보정치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라는 지적(17일 최장집 교수 인터뷰)과 민주주의 규범에 적응 못한 채(17일 3면) 정파·관료화된 진보정치(18일)의 현실을 냉정하게 짚은 것은 진보정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해석적 관점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었다.

권력을 가진 개인과 집단의 최우선 관심사는 다름 아닌 여론이다. 정치적 사건에 대한 개인의 의견은 사건에 관한 언론보도에 의해 결정된다. 권력을 지닌 이들이 자신에 대해 호의적인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미디어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이유이다(2일 13면). 언론의 감시견 역할과 의제설정 역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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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혁수 | 신안산대학교 교수·공학


민영화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소유권 구조의 개편이다. 즉, 공공자산을 민간의 소유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민영화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최근 정부가 도입하고자 하는 KTX 관련 정책을 들여다보면 소유권 구조 개편과는 거리가 멀다. 국가에서 건설하고 관리하는 철도시설은 공기업인 철도공사가 운영권을 부여받아 독점운영하는 구조다. 따라서 경쟁체제가 도입 되더라도 소유권은 여전히 국가가 가지고 있으며 운영권만 제2운송사업자에 대여해주는 것이다. “국가의 자산을 팔아치운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의문이다.

 

지난 1일 부산을 떠난 KTX 열차가 서울역 승강장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하차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이러한 운영권은 제2운송사업자에게 영구적으로 주는 것인가. 그러면 또 다른 독점 아닌가. 제2운송사업자는 철도사업법 제5조에 의거, 철도 운영 면허를 부여받아 일정한 기간의 계약 기간 동안(15년) 운영할 권리를 대여하여 운영하게 된다. 운영권은 국가에서 대여해주는 대신, 사용료를 기존 공기업에서 내던 것보다 더 많이 내도록 유도하고 운임 상한제를 통해 운임을 함부로 올리지 못하도록 하며 오히려 인하할 수 있도록 설계하여 사업자를 모집한다고 한다.

현재 철도요금은 서울~부산 간 주중 5만3300원, 주말 5만7300원이다. 필자만 해도 강연과 세미나 참석으로 이동하게 되는 일이 잦은데 요금 할인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경쟁이 도입되면 지금의 요금보다 10~15% 할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 주변에도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면 철도요금이 오르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는 이들도 많다. 최근 서울메트로9호선이 임의로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나서면서 그 불안은 더욱 심화된 것 같다. 그러나 9호선 사례와 KTX는 차이가 있다. 9호선은 민간자본으로 시설을 건설하였기에 투자비용을 회수하기 위해 운임을 올리고자 하였던 것이고 운임은 신고제로 운영되었지만,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KTX 정책은 운임이 상한제로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민간 기업이 요금에 장난을 칠 수가 없다.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러 있던 산업이, 공정한 경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세계 시장에서도 견줄 만큼의 경쟁력을 확보한 사례도 있다. 따라서 그동안 이뤄졌던 타 분야의 민영화 정책에 대한 불만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있다고 해서 KTX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논의조차 금기시되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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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범 | 작가·출판인


새누리당 대표 경선 방송토론을 지켜보며 참 씁쓸했다. 대학을 나왔고 정치에 제법 관심이 있는 나로서도 실체를 잘 모르는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낱말이 방송 내내 주제어였다. 대통령 후보 경선이 다가오면 더 자주 등장할 말 같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 즈음이면 유권자의 1%도 이해하지 못할 ‘매니페스토’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오리라.

물론 우리 것을 지켜야 할 것 같은 보수진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주의를 중시한다는 야당 인사들이나 시민단체, 시민의 심부름꾼인 행정관계자들 사이에서 뻔질나게 쓰이는 ‘거버넌스’라는 말 앞에서도 기가 죽기는 마찬가지다. 거의 은어 수준이다.

국민의 머슴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이 왜 국민이 알아듣기 힘든 말과 글을 사용하는 걸까? 늘 의식적으로 머슴 자세를 지키려는 긴장감이 없고, 그 긴장감을 불어넣어줄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빨리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서울 명동 거리에 즐비한 영어 간판 아래로 외국인이 지나가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한글은 세계의 언어학자들이 경탄해 마지않는 과학유산이자 한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문화유산이다. 한류의 핵심이다. 신속한 경제 성장에 한글이 생산력의 기초였고 앞으로도 지식경제 발전의 그릇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떤 이유보다도 한글이 민주적 의사소통의 토대로서 민주주의 발전에 크나큰 공헌을 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면 한글의 소중함을 단순히 유산의 차원에 묶어두어서는 안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글의 창제정신은 국민이 소통하는 데에 겪는 어려움을 풀겠다는 애민정신이었다. 국민과의 ‘컨센서스’를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말버릇 때문에라도 하루빨리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

최근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자는 국민운동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공무원노총 등의 노동계와 흥사단, 한국작가회의, 한글학회, 한글문화연대 등을 중심으로 폭넓게 벌어지고 있다. 올 4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국민여론에 따르자면 84%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며칠 전 소설가 이외수씨가 한글날을 공휴일로 만들자고 트위터에 올린 글은 삽시간에 3000회 이상 재전송되었다. 발목을 잡고 있는 건 경제 5단체뿐이다.

문화부 조사에서 20대의 64%가 한글날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결과가 나온 건 당연하다. 한글날은 22년 전인 1990년 노태우 정권이 일 더하기 운동을 벌이면서 노는 날이 많다는 이유로 공휴일에서 빠졌다. 경제단체의 반대는 이 논리의 연장선에 서 있다. 그렇다면 2004년부터 도입한 주5일제(40시간) 이후 한국경제는 곤두박질쳤어야 옳지만, 그런 분석은 없다.

한국은 연중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가장 길다. 평균보다 400시간이나 많은 2200시간을 일하니, 일 년이 열두 달이 아니라 열네 달이다. 네덜란드는 한국의 절반가량인 1300시간을 일한다. 물론 일하는 날 하루가 줄면 그만큼 생산에 차질이 생기고, 이를 메꾸려면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 정도 일하고 있으면 경제계도 양보할 때가 된 건 아닌가?

아이들이 잊어먹었다가는 낭패보는 날들이 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가 그렇다. 제과업체의 상혼을 비판하는 말도 많지만, 반드시 나쁜 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사람들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남들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기념일이란 그 사건이나 사람과 나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되살려 민주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되짚는 장치로 만들어야 한다. 경제계에도 한글날을 브라질 삼바축제에 버금가는 전 세계의 축제로 만들어 국격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는 게 기업에 훨씬 유리하다는 발상의 전환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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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화 논설위원


최근 인터넷 뉴스에 ‘소녀시대 윤아 깜짝 등장에 야단법석’이란 제목이 떴다. 전 세계에 K팝 신드롬을 전파한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방송국에 나타나자 그를 보려고 다른 연예인들까지 야단법석을 떨었다는 내용이다. 이번 주 정치뉴스에도 ‘야단법석’이 자주 등장했다. 진보의 본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통합진보당 사건 때문에 정치권이 야단법석의 아수라장이 됐다는 지적이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 자리를 마련해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불교용어이다.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경우 넓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게 되는데, 이때 많은 사람이 모여 부산하고 시끄러워진 야외법회를 비유한 말이 ‘야단법석’이다. 부처 말씀을 들으려고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인 야단법석은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인도 영취산에서의 법화경 설법에 300만명이 모였을 때다. ‘야단법석’은 원래 불교용어이지만 요즘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이 됐다.

 

연등으로 뒤덮인 청계천 ㅣ 출처:경향DB

최근 승려들의 도박과 음주 동영상 파문이 폭로전으로 확산되면서 조계종 내부가 어수선하다.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엊그제 조계종 호법부장 서리인 정념 스님이 “스님들의 화투는 놀이문화”이고 “판돈은 수억원이 아니고 수백만원”이며 “스님들이 가진 돈은 각각 30만~50만원”이라고 전한 라디오 인터뷰 내용은 도박 사건으로 실추된 조계종의 위상에 더 큰 상처를 냈다.

조계종 ‘자성과쇄신결사추진본부’ 본부장인 도법 스님은 “종단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죽을 힘을 다해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성호 스님이) 폭로할 것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지금 당장 터트리면 되는데 마치 거래라도 하려는 것처럼 행동한다”면서 “부처님오신날 행사를 잘 치른 후 야단법석 등 공론을 통해 사건이 처리돼야 한다”고 했다.

야단법석이 주는 종교적 위로가 절실한 시기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야단법석의 연등회(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가 20일까지 서울 전역에서 펼쳐진다. 19일 밤에는 흥인지문부터 종각까지 서울 종로 일대의 가로등이 모두 꺼진 상태에서 연등회가 이어진다. 화려한 수만개의 연등 불빛이 맑은 향기를 전할 때, 조계종단의 아픔도 깊고 큰 성찰과 참회의 틀 속에서 진정한 야단법석의 마중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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