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codemo@snu.ac.kr  
                                                                                                           2010-06-25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은 희망에너지, 행복에너지, 녹색성장의 힘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TV 광고를 통해 원자력이 연간 12조4000억원의 수입대체효과가 있어 경제를 살리는 에너지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화석연료의 1~2%밖에 되지 않으므로 환경을 지키는 에너지라고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원자력 홍보에 362억원을 투입했다. 이런 광고와 홍보 때문일까? 원자력문화재단의 국민인식조사에 의하면 우리 국민의 원자력 지지도는 꾸준히 80%를 넘는다.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0년 1월 조사에서는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과 원전 건설 계약을 했다는 사실에 고무된 때문인지 원전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응답자가 무려 93%로 높아지기도 했다. 원자력 발전이 안전하다고 믿는 응답자도 꾸준히 증가해 2009년 말에는 61.1%, 2010년 1월에는 71.1%에 달했다. 급기야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은 강력한 수출 효자품목으로서 국부를 창출하는 우리 기술이라는 이미지를 얻으며 애국주의와 결합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전의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논의는 거의 실종된 채, 원전에 대한 문제제기를 불경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를 방문해 현황보고를 받고 있다. (경향신문 DB | 2009-12-04)


그런데 정말 원자력은 희망에너지이자 행복에너지일까? 주목할 만한 사실은 원자력 발전소를 자신의 거주지에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자가 2009년 조사에서 26.9%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묘한 이중성”을 발견하게 된다.
원자력이 필요하고 안전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에 들어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 입지시킬 것인가? 원전 입지에 성공하더라도 소비지까지의 고압송전선 설치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원자력은 현재의 셈법에 따르면 가장 저렴한 전력원이다. 하지만 이 비용에는 사용후 핵연료를 포함해 고준위 핵폐기물 처분 비용이 온전히 들어가 있지 않다. 세계 어느 나라도 고준위 폐기물을 처분해본 경험이 없고 이제껏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어 있지 않기에 비용 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저탄소 에너지가 곧 친환경 에너지인 것은 아니다. 원자력 발전에서는 다른 에너지원과 달리 방사능 물질이 발생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분과 안전한 관리에 필요한 시간 범위가 짧게는 1만년, 길게는 10만년 이상이어서 자연에 엄청난 부담을 가하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에 소요되는 우라늄 또한 고갈되어 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를 재활용법의 하나로 논의하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는 핵확산 우려로 국제사회의 승인을 얻기 쉽지 않은 데다 그만큼 위험이 증가하며 비용도 엄청나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열린 핵안전보장 정상회의의 주요 화두는 핵확산 위험과 핵테러 위험이었다. 분단국가인 한국에 국토 면적에 비해 가장 조밀하게, 그것도 소수 지역에 여러 개의 원자로가 집중적으로 핵단지를 이뤄 입지해 있다는 사실은 테러의 위험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력의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일방적인 홍보와 광고에서는 이런 사실을 외면한다. 더 위험한 길로 들어서기 전에 보다 긴 안목에서 균형잡힌 정보를 바탕으로 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다. 원전을 늘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지금 낭비하고 있는 전력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 당장의 편리하고 쾌적한, 게다가 낭비적인 삶을 위해 원전 주변지역 주민은 물론 미래세대의 안전한 삶까지 저당잡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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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jhk@handong.edu 


지난 번 칼럼에서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선택을 다루었다. 불과 5주 만에 또 다른 국가를 다루게 만드는 중동의 급격한 변화가 진정 놀랍다. 작금의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1990년대 초 동유럽을 연구하라고 지시한 오바마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물결은 냉전붕괴에 비견되는, 또는 더 나아가 완결판이 될 수 있는 충분한 함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와는 달리 현재 리비아는 결말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녹록치 않은 국내외 여론

오바마는 카다피에게 권좌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군사개입을 포함해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집트 사태에 대해서는 무바라크의 퇴진을 단호하게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할 필요 없이 독재는 종식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이런 결말에 대해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루이 14세를 떠올리게 하듯 ‘자신이 곧 리비아’라고 선언하는 과대망상의 카다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민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독재에 대한 분노와 민주화 열정으로 기세등등하던 반군은 정부군의 무기 및 수적 우세에 점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리비아 사태는 미국 현대사를 통틀어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직면했던 해외 개입의 문제를 오바마에게도 제기한다. 늘 그랬지만 이 문제는 결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며, 그런 만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A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매우 신중하다. 그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또 다시 중동문제에 군사개입을 한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악화된 이슬람과의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벌써 일부 비판론자들은 미국의 중동장악을 위한 음모이론과 연결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미 치르고 있는 2개를 포함해 3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카다피의 광기는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개입을 정당하게 만들고 있지만, 국내외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은 군사개입 반대를 표명했으며, 나토 역시 유엔 결의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내 의견도 갈린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60% 이상이 개입에 반대하지만,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의 유력인사들은 오바마의 소극적 태도에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더욱 부담인 것은 같은 당 소속이며 외교에서 늘 원군이었던 존 케리 상원의원과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오바마의 보다 과감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재임시절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르완다에 대한 개입시기를 놓친 것이라고 했다.
반면 공화당 성향의 게이츠 국방장관은 불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지상군 투입 같은 본격적 개입은커녕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놓고도 이렇게 찬반양론이 갈린다. 프린스턴대의 국제정치학자 게리 베이스의 지적처럼 개입을 해도 오버액션이라고 비난을 받을 것이고, 하지 않아도 학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딜레마 상황이다.


신의 지혜가 함께 하기를

리비아 사태의 개입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미국 단독이 아니라 국제공조가 있어야 하고, 두번째는 리비아 내부에서 스스로 개입을 요구할 때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특히 후자는 반군 내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아니 반군의 구심체조차 분명하지 않은 실정이다.
반정부세력의 가장 큰 과제는 물론 카다피를 무너뜨리는 것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새로운 리비아를 건설할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은 결코 선후가 분리된 과제라고 할 수 없다. 후자는 전자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에게는 신의 지혜가, 리비아인들에게는 신의 보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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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채 |경제 에디터
 

1995년 1월17일 새벽. 효고(兵庫)현을 중심으로 한 일본 간사이(關西) 지역에 규모 7.2의 강진이 강타했다. 당시 현지 취재에 나섰던 필자는 지진의 참혹상을 첫 체험했다. 옆으로 기운 고가도로, 종잇장처럼 우그러진 대형 건물, 형체를 알 수 없는 목조가옥. 그리고 그 밑에 파묻힌 생명. 지진 발생 뒤에는 며칠째 규모 5~6의 여진이 이어졌다. 땅울림의 괴이함은 체험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는 두려움이었다.

훗날 한신(阪神) 대지진으로 이름 붙여진 이 지진으로 6400여명이 사망했고 14조엔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도쿄 특파원으로 부임했던 2002년 봄. 일본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지진 대피요령을 교육받고 돌아와 짐짓 아는 체를 했다. “책상 아래로 몸을 숨기고, 가스밸브를 차단하고, 탈출구를 확보하고….”

일본에서 지진은 다반사다. 사람이 체감 못하는 것까지 포함하면 하루 300건이 발생한다. 지진과의 공생인 셈이다. 규모 8 안팎의 대지진이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얘기는 너무도 흔했다. 2008년 도쿄를 떠날 때 지인들은 “비겁하게 혼자 내뺀다”며 ‘남겨진 자’의 불안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지난 11일. 긴급 속보로 전해지는 도호쿠(東北) 대지진은 입을 다물게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 그리고 이어진 초대형 쓰나미. 도호쿠 지역 해안가 마을이 통째로 유린됐다. 육지에 있어야 할 자동차가 물위로 떠다니고, 바다에 있어야 할 배가 육지에 처박혔다. TV 화면으로 생중계되는 쓰나미 현장은 공포와 전율이었다. 잘 알고 지내는 일본 언론사의 한 기자는 “어머니가 도호쿠 지역 이와테현 출신”이라며 “그쪽에 외가 친척이 많은데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안절부절못했다.



“이웃에서 도와주면 큰힘 될 것”

지진 발생지에서 400㎞ 떨어진 도쿄는 교통과 통신 두절로 수백만명이 걸어서 움직였다. 유·무선 전화가 모두 끊긴 채 인터넷 메신저에 의존하던 후배 특파원은 “건물이 흔들려요. 집기가 떨어집니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스프링클러가 터졌습니다. 기사를 보내야 하는데, 어떡하지요”라며 다급함을 전했다. 규모 8에도 끄떡없다고 자랑하던 최신 건물이었다.

지진 발생 사흘이 지나면서 대형 쓰나미는 해제됐지만 이번에는 원자력발전소의 방사능 유출과 폭발로 이어지고 있다. 지진과 핵. 일본인에게 잠재된 두 가지 트라우마가 동시에 발현된 셈이다.

지금까지는 일본 특유의 침착함이 유지되는 듯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쓰나미가 빠지고 대재앙의 피해가 구체화되면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 다가올 게 뻔하다. 복구 엄두가 나지 않는 피해지의 상황, 쓰나미가 할퀴고 간 지역에서 발견될 수많은 시신들은 일본인 모두에게 잿빛 기억이 될 수밖에 없다. 살아남은 자에게 그 충격은 평생 갈 것이다.

이런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뭘까. 젊은층이 주로 이용하는 트위터 등의 공간에는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얘기가 쏟아지는 분위기다. 과거 한신 대지진 때 정부 차원의 지원과는 달리 이번에는 민간 차원의 지원도 활성화되는 것 같다. 지인으로 이병헌씨의 광팬이기도 한 일본인 모리 교코는 “한국을 자주 찾는데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 참 좋다. 이웃에서 도와주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움직였으면 한다. 이번 사태로 일본 산업은 궤멸적 상황에 놓였다. 도요타, 혼다 자동차의 가동이 중단됐다. 소니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제2의 제철소이자 세계 5위인 JFE의 지바제철소 등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일본 동북부에 위치한 부품 소재 산업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소니를 롤모델로 삼아온 삼성전자, 미쓰비시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현대자동차, 신일본제철을 목표로 했던 포스코 모두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방법이다.

굳이 과거사를 떠올릴 필요 있나

일본 참의원에 야마모토 이치타(山本一太)라는 의원이 있다. 일본의 국제적 역할을 강조하는 우파적 성향을 갖고 있지만 전후세대로 한·일교류에는 적극적이다. 흥이 나면 곧잘 노래도 하는 그는 몇 해 전 ‘일의대수(一衣帶水)’란 제목으로 음반을 취입했다. 한국과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 가까운 이웃이다. 이웃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 돕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더구나 자연의 재앙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함께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과거사를 떠올리는 것은 파편적이다. 간바레 닛폰(힘내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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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관 논설위원


동물들은 천재지변에 앞서 이상행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잇따른 지진참사에서도 동물들이 미리 사인을 보냈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달 19일 뉴질랜드 해안에서는 떼죽음 당한 고래 109마리가 발견됐다. 3일 후 대규모 지진이 크라이스트처치 시를 강타했다. 이달 10일에는 중국 윈난(雲南)성에서 지진참사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중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뱀, 지렁이 등이 집단 출몰했다는 보도가 줄을 이었다. 2008년 쓰촨성 대지진 때도 두꺼비 수십만마리가 이동하며 도로를 뒤덮는 소동이 있었다.

“지진 전날 물고기가 그물에 무더기로 걸렸다.” “밤새 개가 짖었다.” “며칠 전부터 쥐가 사라졌다.” 이렇게 눈귀로 알 수 있는 지진 징후를 ‘굉관(宏觀) 이상현상’이라고 일컫는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수액이 변하는 등 지진 예측 ‘초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를 연구해 지진을 예측하려는 시도가 옛날부터 있었다. 그 대표적 동식물이 메기와 자귀나무다.

 

“메기는 지진 3~10일 전에 날뛴다.” 일본 도쿄 수산시험장이 16년 동안(1976~92년) 연구해서 얻은 결론이다. 그 기간에 도쿄에서는 규모 3 이상의 지진이 95회 있었는데, 메기는 29회에 걸쳐 이상행동을 보였다고 한다. 자귀나무의 지진예측 적중률은 이보다 훨씬 높다. 일본 과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77~89년 규모 6 이상 지진 27회 중 자귀나무가 이상현상을 나타낸 것은 14회로 적중률이 50%가 넘었다. 다른 동식물의 다양한 지진 선행현상을 연구하면 적중률은 더 높아질 것이다.

올해 초 지구촌 곳곳에서 동물들이 떼죽음해 재앙을 예고하는 ‘다잉(dying) 메시지’ 아니냐는 말들이 있었다. 미국 찌르레기 집단 추락사, 브라질 정어리·메기 떼죽음, 영국 꽃게 의문사 등이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있을 수 있는 자연현상”이라고 했지만 우연의 일치인지 재난이 빈발해 인터넷에서는 종말론까지 나도는 등 억측이 분분했다. 이번 일본 대지진과 관련해서도 해변에 고래 50마리의 사체가 밀려왔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는 사실무근이었지만 나중에 어떤 동물이 지진을 예고한 것으로 드러날지는 아직 속단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인간의 불행은 미래를 모른다는 데 있지 않다. 곧 닥칠 재앙을 알고도 손놓고 있다는 게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동물의 ‘다잉 메시지’를 인간이 놓친 적이 어디 한두 번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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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욱 (일본마쓰야마대 교수·경제학)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수주의 경우 정부에도 저가격 및 고정가격의 계약에 따른 손실을 다른 대형공사 수주로 장기적으로 보충하려는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이 점은 인정하자. 하지만 최근 국내보도를 보면 여전히 계약의 기본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은 채 일방적인 홍보만이 난무하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건설 준비를 앞둔 일부의 예비공사를 마치 본공사가 시작된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현재 UAE에서 진행 중인 건설작업은 단지 부지 준비를 위한 것으로 UAE원자력발전회사(ENEC)가 원자력규제청(FANR)에 지난해 4월에 신청해 7월에 허가된 것이다. 이때 원자로, 증기발생기 등 일부 기기의 제조도 승인돼 두산중공업이 수주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칼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 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경향신문 DB)


그러나 아직 원자로, 터빈, 발전기와 같은 원전시설의 본공사에는 착수할 수 없다. UAE원자력발전회사가 본공사의 건설허가를 신청한 것은 지난해 12월27일이다.
현재 원자력규제청은 미국과 영국의 원자력기술 자문회사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신청 내용을 검토 중이다. 또 본공사의 경우 지난해 4월에 신청한 환경청(EAD)의 환경영향평가 실시 결과도 기다려야 한다. 원전 같은 대규모 시설의 경우 결과가 나오기까지 선진국에서는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원자력규제청의 주요 인원은 미국·일본·유럽 출신으로 구성돼 있는데 본공사의 건설허가에 대해 면밀한 검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의 전문잡지에 따르면 UAE원자력발전회사는 1호기의 착공시기를 2012년 중반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또 건설허가의 검토 중에 설계에 대한 변경 또는 수정의 요구가 있을 경우에는 착공시기가 더 연장될 수도 있다.

한편 필자가 2월7일자 경향신문 시론에서 언급한 UAE 원전수주의 의문 중에서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를 다시 들어 본다. 왜냐하면 한번으로 끝나는 손실이 아니라 누대에 걸쳐 후손들의 생명과 환경을 위협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째, ‘사용후 핵연료의 최종 처분의 책임’이 어느 나라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140만㎾의 원전이라면 연간 30t 이상의 사용후 핵연료가 나오는데, UAE의 4기 원전에서 60여년 동안 약 7200t이 발생한다. 만약 우리가 인수하는 조건이라면 일정(?)의 비용을 받더라도 경제성이 전혀 없으며, 또 좁은 국토에서 환경적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가져 올 수 있다. 1978년부터 가동한 국내 원전들에서 나온 사용후 핵연료가 약 1만1000t에 달하나 아직 그 처분방법조차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60년간의 가동 보증조건’ 내용이다. 일본의 전문잡지에 따르면 한국은 원전의 가동 중에 ‘긴급 정지가 발생했을 경우의 복구와 보상도 제안했다’고 한다. 또 일본기업의 관계자는 한국처럼 원전의 전 수명을 보증하는 조건은 ‘주주들이 납득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단순히 낙찰에 실패한 측의 구차한 변명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만약 위와 같은 보증조건이 포함돼 있다면, 미완성 기술의 원전에 대해 이처럼 확신을 가지는 근거는 무엇인가?
한편 보증조건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난해 3월 프랑스정부가 파리에서 개최한 원자력이용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UAE 외무장관이 ‘원전의 생애에 걸친 계약은 처음이다’라고 한 발언의 취지를 정부는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근거없는 낙관주의와 경직된 정책이야말로 국익을 해치는 자해행위이다. 국민들이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면 정부에는 기본적인 내용의 공개로 국민을 납득시킬 의무와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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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석춘/새사연 이사장



악마. 신화적 존재가 아니다.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자연에게 악마는 살아있었다. 장자연이 죽은 뒤에도 살아있다. 지금 이 순간도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서민의 딸과 누이, 아내들에게 탐욕의 눈길을 번득이고 있다.

                                                                                  <출처 : 경향신문>
 

장자연의 편지가 공개되면서 악마의 정체를 찾는 뉴스가 줄을 잇는다. “일간지 신문사 대표”를 명시해 “복수”를 당부한 젊은 망자의 편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도 무겁게 한다. 진실을 밝혀야 할 이유다.

썩고 구린 저들에게 대한민국은 천국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중국 상하이에서 일어난 한국 외교관들의 행태 또한 장자연의 악마들 못지않게 역겹다. 대한민국의 방귀 깨나 뀌는 자들이 나라 안팎에서 얼마나 추한 작태를 저지르고 있는지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그래서다. 자칫 잊어버리기 싶지만 오늘 아침 내 가슴을 울린 작은 기사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세계일보> 전상후 기자가 쓴 “장애인 엄마의 안타까운 모성” 제하의 기사(2011년3월9일자)는 썩고 구린 대한민국에 태어난 한 아기의 운명을 있는 사실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준다.
 
“제대로 먹이지 못해 죽은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묻나요.”

중증 정신장애를 가진 30대 여성이 갓 태어난 뒤 영양결핍으로 숨진 자식을 20여일 동안 품에 안고 부산 지하상가에서 노숙한 사실이 밝혀져 상가주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지난 7일 오후 8시40분쯤 부산진구 부전동 롯데백화점 인근 지하상가 내 분수대 옆에서 A(32·여)씨가 담요를 껴안고 배회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확인한 결과 숨진 영아를 확인했다고 8일 밝혔다. 상가경비원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강하게 저항하는 A씨에게서 겨우 담요를 빼앗아 안을 들여다보고 숨진 지 20일이 지나 보이는 심하게 부패한 영아의 상태를 보고 경악했다. 경찰조사 결과 경기도 안양 출신인 A씨는 6년 전 친구의 소개로 건설노동자인 O(32)씨를 알게 돼 동거해 오던 중 지난해 5월 동거남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A씨는 동거남과 함께 여관과 고시텔을 전전하다 지난 1월 중순 부산 부전동 S여관에서 임신 7개월 만에 미숙아를 낳았다. 병원에 갈 형편이 안 돼 남편이 빈 커피캔을 반으로 잘라 예리하게 만든 날을 이용해 탯줄을 잘랐다. 영양분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한 아이는 결국 태어난 지 한 달 만인 지난달 17일쯤 숨을 거뒀다. 이 부부는 지난 수년간 남편 O씨가 건설현장 일용근로자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 일자리를 잃으면서 고시텔에서 쫓겨나와 부산역과 서면 지하상가 등을 떠돌며 노숙생활을 해 왔다. 남편은 아이를 묻어주자고 했으나 A씨가 “제대로 먹이지도 못하고 죽은 아기가 너무 불쌍하다”며 아이를 품에서 떼어놓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면역력이 약한 아이가 영양결핍으로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사망시기 등 정확한 사망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8일 오후 부검을 하기로 했다.
 
기사를 읽은 뒤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으로 태어난 그 아기는 마지막 몸마저 부검으로 갈기갈기 찢겨졌다. 어린 천사의 영혼에, 그 가여운 삶과 죽음 앞에 스멀스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장자연의 몸을 더럽힌 악마들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복지’를 도입하자는 사람들에게 살천스레 ‘포퓰리스트’로 몰아치는 청와대와 국회, 부자신문사의 기름진 사람들은 저 어린 천사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경향신문 DB>
 
아니, 어찌 그들뿐이겠는가.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에 늑장 부리는 나는 어떤가. 진보대통합에 온 몸을 던지지 않는 나는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가, 저 악마의 대열에서.

                                                         출처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http://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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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아랍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이 금괴를 갖고 해외로 도피하고, 30년 철권통치의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도 물러났다. 42년째 집권하는 리비아의 카다피는 지금 자신의 국민들을 상대로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카다피는 당초 자살하거나 곧 붕괴되리라는 서방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 그것은 특이한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카다피가 리비아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너무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AP 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청년시절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


나는 카다피를 세 번 만났다. 대학원 재학시절 카다피가 창안한 제3의 보편이론에 관심을 두고 그의 저서인 <그린북>에 관한 한 편의 논문을 쓴 것이 인연이 됐다. 초청을 받을 때마다 장장 3시간이 넘는 연설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천부적인 웅변가이자 대중 선동가였다.
1969년 9월1일, 27세의 청년 카다피가 혁명을 성공시키고 반외세 반굴종의 기치를 내걸며 국민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도덕적 자주국가를 표방했을 때, 리비아 국민들은 물론 많은 제3세계 청년들에게 카다피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였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대신한 국민집회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도덕적 경제와 이슬람 사회주의, 여성 해방과 남녀역할 분담론, 완고한 이슬람 율법체계에 대한 과감한 개혁 등을 통해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또 하나, 카다피가 행한 아랍세계를 위한 큰 공헌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자극해 원유 제값 받기 운동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다. 그는 메이저 석유회사 대신 주로 리비아 석유에만 의존하던 개별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원유가 인상을 성사시켰다.
1970년대까지 국제유가는 배럴당(약 169ℓ) 겨우 2달러 수준이었다. 그 결과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우리나라와 서방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지만 배럴당 15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며 누적된 가격 착취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장기집권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불변의 진리처럼 카다피의 이슬람 사회주의 통치방식도 1980년대 말 구소련의 사회주의 블록이 붕괴하면서 변질됐다. 무모하게 반미와 반서구를 부르짖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공공연히 지원하면서 테러지원국으로 낙인찍히고 경제제재도 받게 됐다.
국민들은 고통과 불만을 토로했고, 카다피는 가혹한 통제와 검열, 야당 인사에 대한 탄압으로 맞섰다. 가장 큰 정권 위협세력인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을 감금하고 추방해 버렸다. 알 카에다가 카다피의 목숨을 노리는 배경이 됐다. 결국 카다피는 1980년대 이후부터 서방세계와 이슬람 세계 모두에게 적으로 남았다. 아프리카와 일부 라틴아메리카의 닮은꼴 지도자의 지지가 있었지만 이것은 그들만의 향연에 불과했다.


최근 20년, 독선과 아집의 전형

이처럼 카다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혁명 초기 20년 동안의 두터운 국민적 지지와 최근 20년간의 독선과 아집으로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독재자라는 명암의 두 축을 갖고 있다. 적어도 리비아에는 절망의 시기에 희망의 빛을 준 카다피에 대한 충성스러운 국민들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카다피 붕괴를 속단하던 서구가 놓친 부분이다.

그러나 국민들을 학살하는 카다피가 물러설 곳은 더 이상 없다. 충성파 국민들이 혁명 지도자의 과거 영광을 기억한다 해도, 옆에서 죽어가는 가족과 이웃들의 학살에 더 이상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직접 군사개입을 한다면 리비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아랍연맹이나 중립적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당사자 사이의 협상을 통해 카다피 출구전략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물론 카다피의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리비아 내전과 시민학살은 너무나 끔찍해 민주화 투쟁 이후가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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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3일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가 개설한 봄학기 강좌를 여는 첫 '오픈 강좌'를 했습니다. 강연의 주제는 <조국이 조국의 미래를 말하다>. 

조 교수는 사람들이 지금의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비관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2012년에 2017년을 생각하면 이미 게임은 진 것"이라면서 "비관,냉소가 아닌 낙관, 긍정으로 바꿔보자"고 합니다. 

그는 시대의 화두를 '민생민주'라고 규정했습니다. "주거, 일자리, 교육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영양실조에 걸린 민주주의"라는군요. 

조 교수는 2012년 진보진영의 집권을 위한 해법으로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연정을 제안하면서 시민들의 '진보적 상상력'을 주문했습니다. 
'정치'를 정치인들만의 놀이나 이권나누기로만 보지 말고 당파를 넘어 민생고를 해결해 줄 실력 있는 '라인업'을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 정치권에 역제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조 교수가 예를 든 '라인업'은 농림부 장관에 강기갑 의원, 법무부장관에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MBC사장에 손석희씨, 공정거래위원장에 김성조 교수 등입니다. 상상만 해도 재밌지요?

경향신문과 세상이 만나는 곳 KHross가 조국 교수의 강연 전문을 소개합니다. 

사진은 참여연대 제공



2012년이 다가옵니다. 2012년 4월에 총선이 있고 이어 대선이 있죠. 입법·행정권력이 한해에 동시에 바뀌는 경우가 아주 드문데 그만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를 잘 못 보내면 여러가지로 암담할 것 같아서 책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정치가 단순히 정치권, 상층부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밑에서 붐이 일어나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 친서민·중도 정치를 얘기했는데 시장가서 어묵도 드시고 중도라고 했습니다. 저로서는 공인, 정치인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말보다는 행동을 봐야 한다고 봅니다. 이 사람이 정말 친서민·중도인지 따져봐야 됩니다. 그래서 책을 냈습니다.  
왜 친서민이 아닌가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죠. 여러분, '고소영' 알죠. 모든 인맥을 고려대, 소망교회로 묶어내고 있구요. 고소영씨가 마침 장동건씨하고 결혼했는데 교회 중에서도 장로회, 고교 중에서도 동지상고, 모든 기업이 아니라 건설업...이렇게 고소영에서 출발해서 장동건으로 나가고 있다고 봅니다. 고소영, 장동건씨 두분에게는 죄송합니다.ㅎㅎ 이 두분을 누가 중매를 섰느냐. '강부자'가 섰습니다. 강남의 부자죠. 이런 3개의 집단을 친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명박 대통령은 이 3개 집단을 위한 정책만 일관되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집행하는 여러 정책을 보면 정치·사회 세력을 적군과 아군으로 분명히 나누는 것 같습니다. 중도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적군은 축출을 명하고 있죠. 지금 법원에서 판결이 났지만 임기가 남은 기관장을 망신주고 쫓아냈습니다. 법원에서 보니 다 엉터리였죠. 초반에 밀어내면서 '저 사람이 뭔가 구린게 있겠지'라는 인상을 주는 거죠. 나중에 아니라고 판결이 나도 그런 이미지만 남을 뿐인 거죠. 
이창동 감독 잘 알겠지만 큰 상을 타지 않았습니까.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정부지원을 신청했을 때 몇번을 떨어뜨렸지만 다른 사람은 돈을 주는 거죠. 문화 ·예술계도 니편, 내편 나누고 내편은 질과 관계없이 무조건 지원하고 반대쪽은 질과 관계없이 무조건 쳐내는 거죠. 

날치기를 볼까요. 김성회 의원이 2회 연속했습니다. 야당 의원은 김의원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고 하죠. 이분이 한국특공무술협회 회장이거든요. ...이렇게 다수결을 관철하는 방식이 김성회를 동원해서 집어던지는 거냐. 그런 것이 다수결이라고 한다면 저는 야당에게 이걸 권하고 싶습니다. 추성훈을 영입해야 합니다. 격투기 선수를 비례대표로 선발해서 '김성회 전담 마크맨'으로 삼아야 할 것이냐... 웃기는 일이죠. 
현재 중도라고 하지만 정책을 관철하는 방식이 중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 사설을 인용해보자면 “대통령은 돌격 신호를 보내고 집권당을 고민할 줄 모르는 하수인 집단으로 전락시켰다. 독재와 민주주의는 반대를 다루는 방법의 차이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가 과거 독재사회는 아닙니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을 수 있습니다. 부정투표는 없습니다. 대의 민주주의 틀은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다수파가 정책을 관철시키는 게 옳은 것인가...저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공정사회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명을 받았다고 했죠. 그러면서 공정사회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실제 총리실 민간인 사찰이 일어났습니다. 총리실은 국정원도 아닙니다. 국정원도 대북사업만 하도록 돼 있고 민간인 사찰 못하게 돼 있습니다. 외국에서 지금처럼 민간인 사찰했다고 하면 탄핵사유입니다. 
저는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 법학자로 저는 격분했는데요. 저는 형법학자이고 수사 어떻게 할지를 가르치는데 총리실 민간인사찰을 수사한다면 먼저 총리실 하드디스크를 빨리 가져와야 합니다. 그런데 압수수색을 최대한 늦춥니다. 압수수색 들어갔을 때는 하드디스크가 레이저로 다 없어졌습니다. 
이영호 청와대 전 고용노동비서관이 청와대 연결핵심고리인데 한번 소환조사하고 끝냈습니다. 이 사람이 민간이 사찰 왜 했는지, 심심해서 했을 리 없죠. 공무원이 누군가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전화통화건, 이메일이건 확인할 수 있는데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전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청와대는 재수사를 거부했습니다. 이유가 매우 궁금합니다. 어느 정부가 들어서든 이 문제는 재수사하고 특검을 통해 밝혀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정권이든 총리실을 정보부처로 사용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청와대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합니다. 이영호도 안했다고 하고 수사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명박 정부가 국가안보에 대해 유능할 줄 알았습니다. 국지전은 항상 터져왔어요.과거 김대중 정부 때부터 연평도에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쪽, 대한민국 영토 안에 포탄이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북쪽에 무력도발을 선호하는 군사주의적 집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만 있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국지전은 예상됩니다. 그걸 전제로 대한민국의 국방정책 펼쳐가야 합니다. 
북이 그런 성격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도발을 억제하고 대화하고 협상해야 하는데 지금은 무조건 대화를  끊어버리고 말도 안하죠. '3대 세습 이뤄졌다', 곧 망할거라고 보는 거죠. 
지금 통일정책은 무위정책입니다. 지금 통일부 장관이 뭘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르죠. ‘반통일, 무통일 장관’ 비슷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북 정책 의 이니셔티브를 다 중국이 가져갔죠. 북한에 대해 어떤 통제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얼르거나 겁을 주거나 논쟁도 하고 타협도 하면서 북한을 남한이 관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렛대를 스스로 빼버렸습니다. 북은 중국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고 우리는 어떤 지렛대로 가지지 못한 상태가 돼버렸죠. 북이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하면 ‘그래? 우리도 하겠다’면서  말싸움만 합니다. 그러다 사고 터질까봐 걱정이 되는 거죠. 
 
왼쪽 사진(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연평도 현장에 갔다가 검게 탄 보온병을 들고 있는 사진) 다 아시죠. 유명한 안상수 대표 사진입니다. 저는 안상수 대표 충분히 이해됩니다. 이분의 병무청 기록 보면 2번에 걸친 행불(행방불명)이 있고 그에 기초해서 군대를 안갔기 때문에 이 포탄이 뭔지 알 수 없습니다. 무지는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알수가 없는 거죠. 그러나 왼쪽 이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포병 여단장 출신이고 비례대표가 되신 분입니다. 포병 여단장으로 별을 다신 분이. 보온병을 두고 몇㎜ 포라고 설명했죠. 
오른쪽 사진(이명박 대통령이 군대를 방문해 총 개머리판에 얼굴에 댄 사진)은 저도 장교로 군대 짧게 갔다 왔지만 개머리판을 얼굴에 대고 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시죠. 얼굴이 다 찢어집니다. 기관총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통령에게 누가 저렇게 가르쳐줬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꼭 군대를 갔다와야  대통령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능한 국방정책을 펴고 있느냐...진보, 보수를 떠나서 유능한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북한을 관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로는 전쟁하자고 하죠. 중앙일보 김진 논설위원은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개전 15분만에 서울 시내 위로 포탄 4만발이 날아다닙니다. 

제 생각으로는 난폭우회전이 시작됐다고 봅니다. 보수정부가 보수정책 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보수정부로 품격갖춘 정부인지 매우 의문이 있습니다. 교통 법규 지키지 않고 마구 우회전 하고 중앙선 넘어서 역주행도 하고 있다고 봅니다. 

정치적 기본권의 후퇴, 특히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후퇴했습니다.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고 미네르바를 감옥에 넣었습니다. 전세계에서 이런 나라 없습니다. 
정부 비판한 언론인을 감옥 넣겠다는 나라 OECD 나라 중에는 없습니다. 언론의 보도 중에 오보가 있다면 사과 광고를 내고 보도 피해자에게 민사 배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걸 감옥에 넣겠다?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그래서 무죄가 난 겁니다. 
MBC <PD수첩>사건의 첫번째 수사검사가 임수빈 검사인데요. 수사를 하다가 “이건 사건이 안됩니다. 수사하면 무죄 난다”고 해서 중앙지검장하고 계속 싸웁니다. 그러다 옷 벗습니다. 임 검사가 운동권 출신에 좌빨 검사냐, 소영웅주의자냐 비난하는 사람 있었죠. 그렇지 않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에 검사가 되서 평생을 국가보안법 위반자와 노동관계법 위반자를 잡은 유능한 공안 검사이고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 입장에서도 이건 수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건을 맡은 판사도 위헌 제청을 했죠. 실제 위헌이 됐죠. 만약 권위주의 시대 때 이런 사건이 났으면 수사하고 기소하고 유죄에 중형이 내려졌을 겁니다. 우리 정치적 상태는 수사되고 기소까지 되는데 무죄가 납니다. 그래서 파시즘 정권은 아닙니다. 그런데 기소까지 되죠.그런데 무죄가 난다고 해도 수사하고 기소되면 매우 고생을 하거든요. 
그래서 많은 시민은 이런 사건이 터지면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게 됩니다. ‘미네르바가, <PD수첩>이 저렇게 됐지’하면서 자기검열을 하게 됩니다. 그 효과를 노렸다고 봅니다. 마지막에 풀려난다고 해도 그 전까지 모든 시민은 위축될 수 밖에 없죠. 잡혀가면 손해잖아요. 

건설정책은 토건국가식 발전전략을 계속하고 있죠. 지금은 지식기반사회라고 해서, 어떻게 일자리를 창출할지가 문제인데 토건국가식으로 해결하려고 해서 문제라고 보구요. 재벌 프랜들리 정책 계속 펴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에서 어묵 드시면서 20만원어치 김밥과 어묵을 청와대에 사갔습니다. 그걸 나눠먹으면서 ‘친서민’이라고 서로 좋아했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상인들이 대통령에게 SSM규제법 만들어달라고 요청하니, 대통령과 수행원이 ‘법 위반이어서 안된다’, ‘WTO규정 위반이어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큰 정치적 쟁점이 된 뒤에야 SSM규제법이 통과됩니다.이미 SSM은 다 깔린 뒤였어요. 
저는 WTO 위반이라고 하는게 이해 안됐습니다. 프랑스 파리 시내에 가보면 어떤 SSM도 시내에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작은 까페, 치즈가게 등 작고 개성 있는 가게를 소상인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라파랭법이라고 대형마트가 못 들어오도록 법으로 금지시켜놨어요. 프랑스는 하고 있는데 우리는 왜 못하는 것인지. WTO위배? 아닙니다. 그러니 프랑스도 라파랭법을 시행하고 있죠. 그래서 법학자로서 화가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몬(mammon)은 돈의 신이죠. 경제적 양극화, 부익부 빈익빈 문제는 이명박 정부 전부터 심해지고 있었죠. 현재 우리나라 부자 5%가 전체 부동산 자산의 64.8%를 소유하고 있고 금융자산은 절반이상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민주공화국이냐,삼성왕국이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도 “권력이 시장권력으로 넘어갔다”고 한 적이 있죠. 이제 대통령은 5년제 고용사장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이건희씨는 횡령, 배임, 탈세로 유죄판결을 2번이나 받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2월에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나는 정직한데 국민은 부정직하고 거짓말한다”는 것이죠. 
이런 말을 하는 심리적 상태를 생각해보시죠. 저는 잘 이해가 안됐습니다. 횡령, 배임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인데 자기는 억울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함해서 자기를 잡아넣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대에는 정부가 재벌 하나를 세웠다, 없앴다 했지만 지금 재벌은 권력에 의해 통제받지 못하고 일반 국민들도 말하길 두려워하고 있죠. 이마트가 이마트 피자 팔고, 롯데마트도 통큰 시리즈 계속하고 있잖습니까. 재벌이 치킨, 피자 다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요. 소상인들은 무얼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인가요.  

작가 최고은씨가 쪽지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2층 주인집에서 김치랑 밥을 들고 내려갔더니 죽어 있었죠. 이 분이 우리나라 유명한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을 졸업하고 상도 탄 유망한 시나리오 작가였습니다. 이 현상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명천지에, G20이라고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한예종을 졸업한사람이 밥과 김치를 좀 달라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아동, 학생을 비교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양지마을 은경이와 대치동 수미입니다. 은경이는 한달에 합계 8만원으로 사는데 수미는 휴대폰 비용보다 못합니다. 수미는 통상 개인 용돈으로 한달에 40만원을 씁니다. 이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어느 사회나 부익부 빈익빈이 있었고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격차가 벌어지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습니다. 통계보다 이 두아이 상황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죠. 
또 과거에는 ‘개천에서 용난다’고 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계층이동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조건에서 은경이가 계층이동을 할 수 있을까요? 봉쇄되버리는 거죠.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현실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난폭 우회전에 대해, 빈익빈 부익부에 대해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도 “2012년에 되겠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분노하면서도 비관합니다. 진보진영은 사분오열이고 저쪽은 “박근혜가 있잖아.아무도 못따라가”라고 합니다.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었다”라고 얘기하고 “소득분배구조가 약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사회통합이 와해되고 막대한 경제사회적 비용이 클 것이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매우 보수적인 정치인인 박근혜도 이런 말을 할 정도로 우리 상황이 문제되고 있다는 것이죠. 박근혜가 복지 얘기를 할 정도로 사회 문제가 심각한 거죠. 또 박근혜씨는 아주 영리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니까 오히려 ‘진보, 개혁을 얘기하는 사람이 되겠냐’고 스스로 회의를 하는 거죠. 

진다고 생각하고 게임에 임하면 그 게임에 무조건 진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에 2017년을 생각하면 무조건 안됩니다. ‘다음 게임에 이겨야지’라고 하면 그 게임에 지고 그 다음게임도 진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이 매우 중요합니다. 입법·행정권력이 동시에 바뀝니다.  어떤 사람이 국정의 책임자가 되서 우리사회의 문제를 바꿀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문제거든요. 지더라도 멋지게 져야합니다. 그래야 그 다음게임도 보장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2012년에 손놓고 ‘안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 도 내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도 이런 마음, 비관·냉소가 아니라 ‘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량을 최적화해서 ‘최대한 해보자’, ‘낙관·긍정·희망으로 바꿔보자’는 뜻에서 책을 냈습니다. 

진보라고 해서 무조건 표를 줘야 하냐, 무조건 이겨야 하나, 무조건 정권 줘야 하냐...그렇지 않습니다. 유권자, 시민들이 판단할 문제죠.  MB가 잘못했으니 줘야 한다? 그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진보진영에 뭘 바라는지 생각해봐야 됩니다. 
‘MB싫다’, ‘X박이’...이런식으로 말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을 욕한다고 해서 권력이, 사회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MB반대를 넘어서는 정책이 없이는 유권자들은 밀어주지 않을 겁니다. 김대중·노무현 노선으로 그대로 하면 문제가 해결되냐, 그렇지 않죠.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활성화되고 남북 문제가 많이 개선됐지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문제는 더 심해졌습니다. 부족한 게 많았죠. 진보진영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성과는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할 때만 시민들이 밀어줄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몇년전에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해줬어요. 왜? 노무현 정부에 실망했기 떄문이죠. 노무현을 택한 사람들이 실망한 이유는 민생 문제에서 노무현 정부가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원가 공개를 거부하니, 부동산값이 폭등하고 짧은 시기에 엄청난 사람이 비정규직이 되고 집값이 뛰고 물가가 오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민생이, 삶 자체가 무너지니 이명박이라는 사람이 CEO출신이라고 하니 부자로 만들어주리라 믿었던 거죠. 
지난 대선을 전후로 우리사회 시대정신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탤런트 김정은씨가 나온 광고에서 나오는 말  “부자되세요”입니다. 바로 저거라는 거죠. ‘내가 부자가 되야겠다’는 겁니다. ‘부자되세요’가  시대적 화두라는 것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거죠. 대통령을 뽑을 때도 전과 몇범인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도자느 시대정신을 몸으로 인격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이명박 대통령을 뽑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정신이 지난 총선까지 끌고 갔습니다. 서울에서 김근태 대신 신지호가 됩니다. 노회찬이 떨어지고 홍정욱이 됩니다. 한방으로, ‘뉴타운’으로 끝났습니다. 강남 아파트값만 오를게 아니라 강북의 우리 아파트값도 올려야겠다는 거죠. 

그런데 실제 이명박 정부 이후 부자가 안됐죠. 이명박 대통령은 무슨 얘기만 하면 ‘내가 해봤는데’라고 합니다. ‘봐라.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도 되고, 권력도 잡았다’고 합니다. 하루에 4~5시간만 자고 열심히 일하라는 메시지만 보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는 구조가 아니죠. 그런 사회는 끝나버렸습니다.
(대통령은) ‘내가 청소부, 군밤장수 했는데 왜 너희는 못하느냐’고 비난하시죠. 무슨 문제만 나오면 다 해봤다고 해요.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이 해병부대를 방문했는데 거기서는 군대를 안 갔으니 그 말을 못해요. 그래서 ‘(대통령이)무슨 말을 할까’...궁금했는데 들어보니까 해병대 부대 장병과 장교 앞에서 ‘내가 어린 시절에 해병대 부대 옆에서 살았는데 ,내가 잘 압니다’라고 얘기를 시작합니다. 모든 걸 잘 아는 분이예요. 정말 걱정이 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언이 뭐였는지 아세요. 노 전 대통령은 서거 전에 2권의 책을 냅니다. 자기 재임시 정책에 대해 비판했죠. 노동과 복지 정책에 대해 실패했다고 스스로 얘기합니다. 복지와 비정규직 문제를 딱 집어서 얘기했습니다. 



지금 시대의 화두는 뭡니까. 사회경제적 민주화, 민생에 있습니다. 이계안 전 의원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 시민들에게는 4개의 개미지옥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사교육을 거쳐야 합니다. 대학 들어간 뒤에도 청년실업이 기다리고 있고, 집 문제가 있고 불안한 노년이 기다립니다. 
현재 아동교육, 사교육 때문에 출산 파업이 진행 중입니다. 다른 나라, 내전상태에 있어서 전쟁을 벌이는 나라의 출산율보다 낮은 게 현실입니다. 
사교육 부담이 엄청납니다. 전세계 우리 등록금이 세계 2위입니다. 1등이 미국이다. 엄청나게 비싼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 수준이 세계 2위냐. 아니죠. 그런데 고려대 총장이라는 분은 우리나라 등록금이 교육수준에 비해  너무 싸서 올려야 한다고 했죠. 전 정말 이해가 안됐는데요. 등록금 1000만원 냈습니다. 
청년실업 100만입니다.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집 문제가 남아 있다. 장기 임대주택 전체 주택의 3% 밖에 안된다. 아무리 월급을 모아도 집을 사기 힘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 열심히 뜁니다. 전세계 OECD통계를 보면 우리 학생들의 학습시간, 성인의 노동시간도  최장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지하게 일하고 공부합니다. 보통사람들은 놀고 지내는 사람 없고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왜 모두가 불안합니까. 개인이 게으른 문제, 불성실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저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 대학을 다녔는데요. 매일 캠퍼스에 가면 경찰 다니고 데모하면 때리고 좋아할리 없죠. 딱 하나 좋은 게 과외를 금지한 겁니다. 과외하면 감옥갑니다. 그랬더니 전국 모든 사람이 과외하면 안됐어요. 모두가 사교육을 할 수 없어요. 모두 안하니 안 불안하고 모두가 돈 안 쓰죠. 쟤도 학원 안가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기분 좋게 ,편안하게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옆집에 (학원)하나 가면 나도 하나, 둘 가면 나도 둘 가죠. 그래서 전국의 모든 아이들이 다 학원가죠. 그래도 1등과 100등은 있죠. 돈을 같이 써도,모두가 열심히 쓰고 있지만 아이도 어른도 불안합니다. 결과는 행복하지 않다는 거죠. 이걸 바꿔야 합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제도의 문제죠. 쳇바퀴는 잘라서 펴야 사람이 나갈 수 있죠. 이걸 해결하는게 시대적 과제죠. 진보가 이 시대적 과제를 제시하지 못하면 안됩니다.  권영길 의원이 “살림살이 좀 나아졌습니까”라고 말해서 유행한 적이 있죠. 진보가 살림살이를 낫게 해줬는지 구체적 정책과 비전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저는 민생민주의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 문제 문제 많습니다. 중요합니다. 폐지되야죠. 사실상 사문화됐습니다. 예전에 처벌받던 것이 지금을 집행유예로 다 풀려납니다.  법자체가 문제가 있지만 그 문제 때문에 모두 분노하는 상태는 지나버렸습니다. 
정치라는 게 뭘까요. 특정 사회에서 구성원이 느끼는 고통을 해결하고 꿈을 실현시켜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의 고통은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민생에 있고 그건 4개의 개미지옥을 해결해줄 수 있는가에 달렸습니다. 교육, 일자리, 주거 문제가 해결 안되면 그 민주주의는 영양실조에 걸린 민주주의입니다.  
 
어떻게 우리 사회가 나아갈지 통계를 좀 보겠습니다. 지금 정부는 토건으로  문제를 풀고 있는데 산업별 경제성장 기여율에서 2009년을 보면 보건,복지 기여율이 92.1%인데 토건은 34.7%밖에 안됩니다. 관념상 짓고 헐고 하는게 도움이 될 거라고 보는데 경제성장에서 복지, 보건이 더 크다는게 정부 통계로도 나오는 겁니다.  

칠레의 경우는 보면 국민소득 1만불 이전에는 부수고 짓고 하면 성장하지만 경제가 좀 성장해서 2만불 수준이 되면 대부분 방향을 바꿉니다. 칠레는 국민소득이 우리의 절반입니다. 지금 우리는 복지얘기를 하면 ‘그건 북유럽에서나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럽니다. 그런데 칠레가 저 시점에서 어떻게 경제정책을 폈는가. 바첼레트는 카톨릭 국가인 칠레에서 미혼모 출신으로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이분이 집권하자마자 0~4세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료를 제공하고 국립보육시설을 수천개  지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지방선거에서 한  무상급식 얘기가 여기서는 이미 했던 얘깁니다.  그 나라에서도 ‘우리가 돈이 남아도느냐’고 이른바 ‘반복지동맹’이 생기고 보수파가 비판했지만 지금 모두가 박수칩니다. 왜 그랬냐. 간단합니다. 
복지가 바로 성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경제정책을 입증한 것인데요. 수천개 보육시설 만들면 고용된 사람이 대부분 여성입니다.보육시설당 5명을 채용한다고 해도 전국에 몇명이 채용됐겠습니까. 일자리가 확 늘어나게 되고 돈이 돌겠죠. 아이는 0~4세가 제일 손이 많이 가는데 여성들은 아이를 맡길 수 있으니까 출산율이 3~5배까지 뜁니다. 아이를 맡긴 여성들은 다 일자리로 나갈 수 있습니다. 여성들의 노동참여가 급증하니 돈을 벌고 돈을 씁니다. 급속한 경제성장이 이뤄집니다. 칠레에서 바첼레트의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무상급식 하나 한다고 난리죠. 아주 정말 황당한 겁니다. 우리가 칠레보다 돈이 없냐, 우리가 훨씬 잘사는 나라예요. 이걸 못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제 정치얘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저는 연정이 필수라고 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만 해도 단독집권이 불가능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DJP연합해서 밀약하고 내각자리를 줬죠. 노무현 대통령도 정몽준과 러브샷하지 않았습니까. 연합 안하면 집권 못한다는 것을 판세상 알았다는 거죠. 
외국의 연정을 말하기 전에 우리 정치경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이 한나라당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표가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쳐서 살려달라고 해서 겨우 선방했죠 거의 패당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남았습니다. 선거 결과가 열린우리당 152석. 민노당이 10석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을 합하면 과반수가 넘었죠. 행정권력은 노무현 대통령이 쥐고 의회권력도 다수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있고 한나라당이 다수파죠.그 상태에서 고소영· 강부자 정책을 팍팍 만듭니다. 자신의 지지기반과 계층을 위해 안면몰수하고 밀어주는 거죠. 저는 17대 총선 이후에 왜 그렇게 안했는지 모르겠어요. 왜 반값 등록금 안했는지, 무상급식 안했는지. 저도 좀 그때 비판했는데요.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게 연정 제안하니 지지기반이 떨어져나가버렸죠. 반대파로부터는 비웃음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2011년 재보궐 선거와 총선, 대선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회 민주주의의 연정 필요합니다. 이걸 다 합해도 쉽지 않다고 봅니다.그래서 연정은 필수라고 봅니다. 어떻게 통합할지, 여러 방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5개 정당을 가지고는 정말 힘듭니다. 지방선거만 해도 그때는 광역단체장부터 기초단체장, 기초의원까지 나눠먹을 게 많습니다. 그런데 총선은 자리가 하나밖에 없죠. 한당이 한쪽에서 나오고 진보개혁을 얘기하는 쪽이 사회·경제 민주화를 얘기하고 노동·복지 강화를 말한다고 해도 5명 다 나오면 결과는 너무 간단합니다. 이런 상태로 문제를 풀기 쉽지 않기 떄문에 통합이 필요하죠. 그래서 정치권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안팎에서 다양한 압박을 해야 하지 않는가하는 겁니다. 

정치를 단순히 정치인들의 놀이, 이권나누기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민주당, 국민참여당  모두 노무현의 후예라고 하면서 갈라져 있잖아’, ‘민노당, 진보신당은 얼마나 싸워’ ...그렇게 보면 안되는 쪽으로 가게 돼 있어요. 긍정적으로 가야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시민들의 진보적 상상력입니다. 상상하고, 그걸 힘으로 만들어내고 정치권을 압박해야 합니다. 
입법·행정권력의 다수파가 되서 민생 민주를 해결해보자고 하려면 ‘라인업’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농림부장관, 강기갑 의원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당파를 떠나서 강기갑 의원이 도포 입고 수염 기르고 하면서 농민들과 대화도 잘할 것 같아요. 
법무장관?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잘할 것 같아요. 검찰을 개혁해야 하는데 왠만한 뚝심 없이는 안되죠. 이 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서울에 올라왔을 때 집 한칸 없었습니다. 이분은 또 UDT출신입니다. 김성회하고 맞짱 떠도 될 것 같은데. ㅎㅎ 왠만해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이런 제안을 하니, 글쟁이 고종석씨가 ‘여성 드림팀’을  만들어서 조각을 했어요. 교과부장관에 심상정 전 의원, 노동부 장관에 이정희 의원을 얘기했어요. 이런 모습이나 진용 갖춰지면, 그런 사람이 권력을 쥔다면 우리 사회 민생이 해결되지 않을까 상상하는 겁니다. 진보적인 상상을 해서 정당을 바라봐야한다는 거죠. 
제가 약간 사심이 낀 제안을 하겠습니다.ㅎㅎ MBC사장? 손석희씨가 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대통령을 누가 할지만 관심 있습니다. 그건 제가 뭐라고 말을 못하겠어요. 보수를 말하는 사람은 박근혜라는 미래 권력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요. 저쪽은 30% 이쪽은 5% 래요. 그런데 이쪽은 밀집수비해서 묶어버리면 스타플레이어가 못 뛰고 골 넣는 거거든요. 우리 쪽에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봐야 하는거죠. 저는 친박파는 도대체 무슨 정책을 펼지 모르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 ‘박근혜’만 보고 있는데, 실질을 봐야죠. 박근혜 밑에 누가 노동부 장관을 하겠습니까. 겁나는 사람이 올지도 몰라요. 민생민주 정책을 펼수 있는 사람을 꺼내보자는 거죠. 박근혜 밑에서 MBC 사장? 누가 나올지 몰라요. 
이것도 약간 사심이 낀 것인데, 공정거래위원장 김성조 교수. 삼성과 가장 철저하게 싸웠죠. 공정거래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원칙 지키는 분입니다. 잘 하실 것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위에 당파를 넘어서 그림을 그려보자는 거죠. 희망을 갖자는 얘깁니다. 2010년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 해보면 팀에서 한명씩 안 뽑죠. 소속팀으로 안 뽑고 실력으로 뽑죠. 그렇게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학자, 버트란드 러셀의 말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문구인데요.

“세상에 문제가 생기는 근본적 원인은 어리석은 자들은 확신에 차 있고 아닌 사람들은 의문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로부터 ‘우리 사회 과제가 뭐고, 어떤 정치세력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나와야 합니다. 정치는 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는 식으로 한자리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사람들이 권력이 바뀌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게 됐어요. 정치는 우리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것이고 우리 삶과 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심지어 투표하지 않는 사람조차 정치적입니다.  투표하지 않음으로써, 기존 질서를 유지하길 원하는 겁니다. 
정치적 문제는 우리 삶의 문제고 우리는 모두 세금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을 어떤 절차로 어떻게 쓸지 결정하는 것이 정치죠. 의원이, 대통령이 그걸 결정합니다. 우리 세금문제거든요. 우리가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다면 정치를 외면할 수 없다. 우리 모두가 2012년 과제가 뭔지 같이 고민하면서 논의하고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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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가 3일 참여연대 아카데미 '느티나무'가 개설한 봄학기 강좌를 여는 첫 '오픈 강좌'를 했습니다. 강연의 주제는 <조국이 조국의 미래를 말하다>. 

조 교수는 20대 청년들에게 "스펙 경쟁에 투자하는 (에너지)의 5%만 공적 문제에 써보자"면서 "20대의 88%가 투표하면 자신의 처지를 88% 바꿀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정치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 말이 그나마 먹히는 것은 정당에 가입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미 서울대 교수라는 지위를 갖고 있는데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는 솔직한 답변도 있었구요. 
'폴리페서'라고 비판에 대해서는 "저는 법학을 하고 법과 제도는 정치인이 만드는데 오히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 우스꽝스러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경향신문이 세상과 만나는 곳, KHross가 조국 교수의 '열강' 전문을 소개합니다. 다음은 강연 후 오간 질문과 답변. 

사진은 참여연대 제공



"어떻게 해야 엄마들이 진보의 편이 될까요." 

제가 법륜스님을 며칠 전에 만났어요. 법륜스님이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 세상, 한국사회의 변화를 일으키려면 40~50대 주부를 잡아야 한다. 40~50대 주부들은 우리 사회의 모든 모순을 온몸으로 맞서 버티면서 모든 부담을 어깨에 진 사람이다. 40대 아주머니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 진보든 보수든 안된다." 지금 40~50대 주부가 가진 고통이 뭘까요. 아까 말한 4대 개미지옥입니다. ‘자기와 남편이 어떻게 될 것이고 자식이 어떻게 될 것인가’하는 것은 자신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벅찬 거죠. 이 문제를 제도가 풀어줘야 합니다. 
우리 시민의 모든 생존전략은 야근하고 투잡해서 돈을 많이 벌어오는 거죠. 그런데 벌어와봤자 집값으로, 사교육비로 나가고 가구당 가용 소득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많이 벌어도 집값이 떨어지면 그만입니다. 적게 벌어도 OECD국가 중 60%의 국민들이 국가가 지어준 주택에서 삽니다. 그러면 소득이 늘죠. 그런데  한국의 LH공사는 시민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기관인데 장기임대주택 은 요~만큼 밖에 안짓습니다. 우리가 왜 LH공사에 장기임대주택을 50%까지 짓게 할 수 없는지 생각해야 됩니다. 이런 문제를 알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소위 스펙을 위해서 학점, 어학연수 경쟁에 시달리다보니, 사회 돌아가는데 무관심한 학생이 많습니다. 친구들 중에도 돈 많이 버는 게 최고라는 친구가 많습니다. 이런 친구들이 사회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방법은 뭘까요." 

첫 질문과 맥락이 같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 사회 20대 청년의 스펙은 단군 이래 최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대학다닐 때? 해외 나갈 수가 없었어요. 여권 받는 데 오래 걸리고 안기부 가서 교육 받아야 했습니다. 매우 힘들었어요. 고교 때까지 영어회화 수업 받아본 적 없습니다. 원어민을 만나본 적도 없어요. 컴퓨터도 만진 적도 없습니다. 제 20대 스펙에 비하면 지금 20대들이 10배쯤은 잘할 겁니다. 저는 지금 20대들이 갖고 있는 스펙이 10배라고 확신합니다. 
그런데 상태는 매우 열악하죠. 스펙을 높이면 소수는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절대 다수는 이미 고용시장 자체의 정규직, 비정규직 비율이 달라져서 다수는 그럴 수 없는 겁니다. 다수는 열패감을 갖게 되고 토익 몇점 더 올리자고 하면서 자학하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청년 자살율이 급증합니다. 제도적인 문제구요. 

구체적으로 보자면, 청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지금 박원순 변호사님이 여러 방식으로 청년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걸 한번 들어보고 책을 한번 사봤으면 좋겠습니다. 소위 다들 말하는 스펙만 갖고 (인생을)결정하면 정말 그걸로 결정납니다. 하지만 스펙 관리 차원에서라도 다른 스펙으로 해보라는 겁니다. 다른 스펙에 대해서 박 변호사의 제안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모든 우리 사회의 문제는 사적인 스펙 경쟁으로 해결 안되는 공적 문제가 많습니다. 스펙 경쟁에 투여하는 5%만 공적 문제에 썼으면 좋겠다. 20대를 88만원 세대라고 하는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투표율이 50% 밖에 안됐을 겁니다. 88% 투표하면 자신의 처지를 88% 바꿀 수 있을 겁니다.  

"현 정권을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난 격'이라고들 합니다. 앞으로 또 어떤 차를 보게 될지 암담합니다. ‘진보세단’을 보고 싶은 정당과 국민에게 어떤 바람이 있는지. 진보개혁진영의 통합 연정이 안되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지, 그를 위해 시민이 할 수 있는 노력은 뭐가 있을지요."

저는 정치를 매우 존중합니다. 야유도 비난도 하지만 저는 직업 정치인을 존중합니다. 그들의 일상생활을 보면 지역 주민 만나고 민원도 들어야 하고 이해관계를 타협해서 법안도 통과시켜야 하고 매우 소중한 직업입니다. 무시하면 안됩니다. 

그런데 통합이 안되는 이유는 뭘까요. 통상 노선 차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뿐만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이익 문제와 개인적 사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논쟁을 격령하게 했기 때문에. 이른바 보수정치의 기본 맥은 이익이 같으면 무조건 뭉친다는 거죠. 진보를 얘기하는 사람은 이익보다는 가치의 정치를 합니다. 가치의 정치는 세밀하게 나눠야 해요. 니가 맞니, 내가 맞니... 그러다보면 분열하기 쉽거든요. 저는 진보정치가 보수정치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견이 있지만 연대하고 공유하고 ,차이는 남겨두고 같은 것부터 먼저하고.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노선 차이는 별로 없을 겁니다. 의견 차는 분명히 있죠. 하지만 정당 밖에서 보면 ‘갸가 갸(그애가 그애)’예요. 지금 5개 정당으로 나눠져야 할 가치 차이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정치권이 자구적인 노력을 할 겁니다. 정치권도 이 상태로 가면 내년 총선에서 다 망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뭔가 현실적 자구책을 마련할 겁니다. 냉정한 현실 판단이죠. 

또 밖에서 진보개혁진영 통합 연대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거든요. 문성근씨의 백만 민란도 있고, 저도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든 ‘무브온’처럼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가수도 연예인도 아닌데 왜 순회공연을 하고 다니습니까. 요샌 가서 노래도 하고 다녀요. 문성근씨는 왜 장터에서 마이크 잡고 있겠습니까. 이 상태로는 절박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012년에 진보개혁진영이 실패해서 박근혜가 집권하게 되면 2017년까지 제 나이를 생각해보니 어떻게 살지...개인적 스트레스 좀 많이 쌓일 것 같아요. 그러니 힘을 모아서 한번 해보자고 돌아다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시작됐다고 봅니다. 비관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책 내고 순회공연하고 하는 것이 제가 잘나서가 아닙니다.  정치권 밖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1년 정도 꾸준히 모이면 소기의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북유럽 국가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이 한국도 가능할까요? 복지와 노동을 중시하는 국가를 하려면 국가재정이 파탄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는데 복지·노동 친화적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 극복이 가능한지."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 정말 심각하다고 봅니다. OECD에서도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이 너무 높아서 줄이라고 권고한 적이 있습니다. 현대차 공장에 가보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양의 노동을 합니다. 소나타가 지나가면 양쪽에서 바퀴를 붙이는데 조끼 색깔이 다릅니다. 한쪽은 다른 한쪽 임금의 절반을 받습니다.  비정규직은 비정규직하고만 결혼하고 정규직은 정규직하고만 결혼한다고 합니다.  신분이 되고 있는 거죠. 공장지역의 유치원, 유아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이와 정규직 노동자의 아이가 따로 노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실제 있는 일입니다. 
이걸 해결하지 못하면 사회통합은 없습니다.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고 봅니다. 정규직으로 한꺼번에 다 옮겨지면 신규채용이 불가능하지 않겠어요. 그러면 아버지, 삼촌 세대는 정규직이 되도 아이세대는 정규직이 안되고 한참 기다려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북유럽도 모두 정규직 신분 보장이 되는 것은 아니고 임금이 같은 것입니다. 각종 복지시설이나 보너스는 없죠. 그래도 노예제 같은 문제가 해결되기 떄문에 우리도 빨리 법을개정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에서 무상급식, 무상의료 같은 ‘3무 정책’ 외에 노동법 개정을 무조건 넣어야 한다고 봅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없이는 복지가 없습니다. 노동이 있는 복지로 가야 합니다. 진보진영이 4월 총선에서 다수파가 된다면 노동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제가 재정 전문가는 아니지만 복지 하려면 돈이 필요하죠. 돈을 마련하려면 세금을 증세하는 것인데, 모든 시민은 증세를 싫어하고 복지는 많이 받길 원합니다. 당연한 인간의 본성이죠. 증세를 먼저 얘기하면 조세 저항에 부딪쳐서 안뽑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북유럽도 그랬습니다. 이 국가들은 일단, 현재 가능한 세금을 재정개혁으로 확보해서 여러 복지 정책 중 하나를 확 실현해버립니다. 그런 다음 국민들에게 내가 낸 세금으로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 뒤에 다음 단계의 복지를 하려면 세금을 몇 % 올려야 한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증세할 때는 (세율을) 위쪽(소득이 높은 쪽)을 높게 아래쪽은 작게 해야겠죠. 
선대인씨의 <프리라이더>라는 책을 보면 증세하지 않아도 현재 재정구조로 몇조원의 돈이 남는지 입증한 것이 있습니다. 복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 상태에서도 재정개혁을 안하겠다는 얘기라고 봅니다.  


" "조국 교수 당신 역시 폴리페서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사람 있다면 어떻게 얘기하겠나." 

2가지 질문인 것 같다. ‘너가 (정치)해라’..그런 얘기 많이 듣죠. 제 선·후배 중에서도 직업 정치인이 많습니다. 저는 그동안 의도적으로 하지 않겠다는 얘길 공개적으로 해왔습니다.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 교수, never  say no.’ 무조건 말하지 말라는 현실적 조언을 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의도적으로 (정치)안한다고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정치권에서 먹히고 시민들이 들어주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당에 가입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당에 가입하면 ‘쟤, 총선 준비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겠죠. 그러면 제 목소리가 n분의 1로 줄어들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제 말이 좀 먹힌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저는 서울대 교수라는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가진 자라고 생각합니다. 감옥에 갔다온 적도 있지만 다 벌충받고 보충받았습니다. 그래서 의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더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폴리페서 얘기는...제가 '설레발치고' 다니니까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이 직격탄을 날렸더군요. ‘대 동아일보’에서 조국 교수에게 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ㅎㅎ일단, ‘폴리페서’라는 정의에서 출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폴리페서’는 아마 학교에서 강의도 제대로 안하고 논문도 안 쓰면서 비례대표나 지역구 얻으려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비난한 것이라고 보는데 그런 의미에서 제가 그렇게 행동한 적은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 지식인 중 저는 법학을 합니다. 법과 제도는 정치인이 만듭니다. 정치에 관심 없다고 하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얘기라고 봅니다. ‘폴리페서’라고 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제가 나이가 이제 40~50이 넘어서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반 MB 연대’를 위해 시민들을 각성시키려면 뭐가 가장 중요하고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요." 

너무 큰 질문이어서 딱 맞는 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합니다. 자기가 할 수 없는 것은 못하죠. 각자 자기가 하는 일이 있을 텐데 짬을 내서 정당이나 시민단체 회원가입을 하거나 강좌에 가보거나...이런 데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참여연대 시리즈 강좌를 한번 들어보는 거죠. 그러면 사람도 만나게 되고. 

작게 시작하다보면 세상은 변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늘에서 부처님이나 하나님이 뚝 떨어져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거든요. 작은 노력이 세상을 해결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 자원 봉사든 뭐든 지금 이 자리에서 한걸음만 내딛어보는 겁니다. 해보다가 자신감 있으면 한걸음 더 나가면 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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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이택광 |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
(원문: http://wallflower.egloos.com/)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세계 각지에서 칭송 받았던 이집트 혁명이 '도덕적인 오점'을 남겼다. 미국 CBS기자인 라라 로건이 무바라크 퇴진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 틈에서 성희롱과 폭행을 당한 것이다.
한국 언론은 이 사건을 가십처럼 다루고 넘어갔지만, 지금 이 문제는 이집트 사회의 민주화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 여성의 인권을 위해 강력하게 투쟁해왔던 페미니스트들에게 이 사건은 '18일 간의 봉기'에서 보여줬던 그 해방과 자유의 순간을 뒤로 하고 이집트 사회가 다시 과거의 보수주의로 복귀하는 징후처럼 보여서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무바라크 독재시절 이집트에서 여성에 대한 억압은 일상화되어 있었고, 성희롱이나 성폭행이 발생해도, 공권력은 여성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실 한국도 이 문제에 관해서 그렇게 큰 소리 칠 자격은 없지만, 여하튼, 이집트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는 그 '민주주의'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이번 사건으로 선명하게 부각된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완성체라기보다 그 개념을 쟁취하기 위한 서로 다른 정치세력이나 계급 간의 갈등 자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로건 사건은 민주화 과정에서 돌출한 하나의 특이 사항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대하는 '서방 언론'의 태도에서 이집트 민주화에 대한 하나의 시선을 읽어낼수 있을 것 같다. 과연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편승하고 있는 국가들이 이집트의 민주화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겉으로 이 사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페미니즘의 마이크를 빌리고 있지만, 기실은 이집트 민주화가 진행되어야할 '방향'에 대한 서방세계의 희망사항을 담고 있다.


물론 봉기 마지막 밤에 발생한 이 사건을 두고, 그럴 수도 있다거나, '외국 여성'에 대한 민족주의적 조롱이었다는 식으로 옹호하는 도착적 논리를 용납할 수는 없다. 보편적 인권의 기준을 이 사건에 적용하는 것은 무조건 정당한 일이다.
다만, 이집트에서 발생한 정치적 시위를 '민주주의 혁명'이라고 자연스럽게 칭송하는 그 시선에 담겨 있는 이데올로기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이집트 인민을 변화시킨 이 정치적 봉기에서 서구인들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무슬림 복장을 한 남성과 청바지를 입은 여성이 나란히 서서 무바라크 퇴진을 외치는 그 '자유의 공간'이었다. 런던이나 뉴욕, 또는 파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이 장면에서 이들은 이집트 혁명의 '완벽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 상상적 이미지를 깨트리고 출몰한 로건 사건은 그러므로, 이들이 꿈꾸는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항상 위기이며, 혁명이라는 것은 선악의 저편에서 작동하는 리얼리티라는 사실을 각성시킨 것이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미완성이고, 혁명은 길들이기 힘든 야수이다. 서방세계가 애써 외면하고 싶은 이 진실을 어떻게 대접해야할지, 함께 고민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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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홍익대 학생인 백지홍씨가 홍대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들의 농성과 관련해, 홍대 내부에서 바라본 홍대 사태의 모습에 관한 글을 보내왔습니다. 이 글은 노동자들과 용역 업체간 업무복귀 타결이 있기 전에 쓴 글입니다.

 

지금, 홍대에서 바라본 풍경

경향신문 DB




10년 만의 한파가 기승을 부리는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홍익대학교는 일상이라는 장막아래 가려 볼 수 없었던 대한민국, 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관찰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라는  지금까지 내가 알 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다가왔다. 지금부터 써내려가는 글은 비록 휴학생이긴 하지만 홍대생 중 한 명으로서 홍대 내부에서 바라본 홍대,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1.하나의 진실?

  2011년 1월 2일 홍익대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설, 경비, 환경 분야 계약직 노동자 노조 170여명이 집단 해고 또는 계약해지 또는 계약파행으로 인한 해고를 당했다. 분명 2011년 1월 2일에 일어난 사건은 하나인데 사건 발생이후 묘사되는 사건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그전에 누군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시간을 보름정도 거슬러 올라가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조를 만든 노동자들은 최저 임금도 보장 받지 못하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러나 학교 측의 설명을 들은 총학생회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들 중 한 쪽의 말은 거짓이여야 하지 않을까.

경향신문 db


  한 가지 사건에 대한 여러 주장은 <라쇼몽>이나 <영웅>같은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여러 이야기 중 끝내 ‘하나의 진실’을 제외한 나머지 거짓들을 밝혀내는 이들 영화는 진실이 아니면 거짓이라는 변현된 흑백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와 달리 단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상충하는 듯이 보였던 주장들은 사실 하나의 큰 사건을 각자의 시각에서 바라본 ‘파편’들에 지니지 않으며 이들의 주장을 종합할 때만이 사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을 때도 있다. 이럴 경우 하나의 진실과 나머지 거짓이 존재하는 것이 아
니라 그들 각자의 진실들이 존재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능력이다.

  ‘최저 임금 문제의 경우를 보면 노동자들이 한 달 임금은 75만2000원을 받아왔으므로 명목상 최저임금 이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므로 노동자들의 문구는 수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1달 임금이 적정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휴게 공간 미비와 잡무로 인해 휴게시간 명분으로 시급에서 제외된 3시간 동안 제대로 쉴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하루 10시간을 캠퍼스 밖으로 나가는 것이 금지된 상황에서 식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을 볼 때 법이라는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 시켰을 뿐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다고 볼 수 있으며 노동환경 등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최저임금을 보장 받지 못한다.’나 ‘최저 임금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된 주장이다’보다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해고 문제의 경우에도 단순한 ‘계약해지’ 혹은 ‘부당해고’라고 말하는 것보다 홍익대학교와 용역업체의 계약이 만료됨에 따라 용역업체에서 노동자들을 해고한 것이며 선례 없는 전원해고가 일어난 점과 그로인해 시설, 경비, 환경 노동자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을 볼 때 계약해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며 노동자들의 계약조건 상향요구가 재계약이 되지 않은 것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1차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2차적으로 협상 결렬과정에서 학생회가 학교 측으로부터 70%임금 인상이 협상 결렬의 이유였으며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이 요구한 10만원보다 많은 50만원을 상여금으로 신청하는 등 노조 측의 무리한 요구로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설명들은 반면, 노조 측은 협상 중 학교 측의 일방적 협상 결렬 통보를 받았다 설명했다. 이 역시 70% 인상률은 최저임금 인상분, 성과금이 포함된 상승률이고 실질 월금 인상 요구는 75만원에서 108만원으로 인상이었다는 것을 밝혀야 하며, 민주노총이 개입하여 성과급 요구가 10만원에서 50만원으로 증가함에 따라 협상 결렬 요소가 되었다 하더라도, 학교 측의 재계약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면 협상간 조절할 수 있는 문제였다는 사실과 협상과정에서 아쉬운 측은 돈을 받아야 하는 용역업체 측이었을 것이란 것까지 추측 가능하다. 이것은 단순이 해고 혹은 계약해지라는 단어를 반복하는 것보다 사건의 본질에 다가간 것일 것이다.


  홍대 노동자 문제의 핵심요소이자 사건의 출발점인 ‘최저임금’과 ‘집단해고’ 문제는 ‘진실’로 다가가기 위해서는 단편적인 관점이 아닌 모든 관점을 꿰뚫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다양한 입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수록 한 쪽의 주장만이 진실이고 나머지는 것이라는 태도로는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힘들어지며 수많은 주장 속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기도 힘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대논란에서 최저임금과 해고문제는 전체를 바라볼 능력이 없거나 혹은 일부러 보지 않는 학교 측과 노조 측이 서로 자신의 주장을 반복할 뿐, 1월 2일에서 한 치도 진전된 것이 없이 홍대를 부유하고 있다.


2.정치혐오라는 정치적 입장

  계약 관계를 보았을 때 홍익대학교 노동자 문제의 주체는 학교-용역업체-노동자로 구성된다. 그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은 대상은 홍익대학교 당국이 아닌 총학생회였다. 민주노총 등 외부세력에 대한 배타적 입장과 문제에 대한 소극적 대처방식은 사람들이 기대하던 대학생의 모습과 달랐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학교를 대신하여 도덕적 타락의 상징이 되어 홍익대학교 노동자 문제 관련 기사의 머리말을 장식하게 되었다. 어떤 이유로 신생 총학생회는 여론의 뭇매를 맞아 가면서까지 소극적인 행보를 보인 것일까.

  홍익대학교 노동자 문제는 12월 중순 학교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홍보가 시작되고 노조가 결성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1월 2일 노동자들이 계약해지 됨에 따라 1월 3일부터 노동자들은 농성 시위를 시작하였다. 총학생회의 농성 시작 전 움직임은 최저임금 문제에 대한 사실여부 확인에 그쳤다. 노동자들이 민주노총의 도움을 받아 홍익대학교 학생처 점거 농성을 시작한 후에는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게 조용히 해달라는 발언과 외부세력은 허용하지 않는 다는 2차 성명서 발표, 1월 10일 홍대생을 대상으로 한 총학생회 간담회와 이후 진행된 비상대책위원회 설치 과정 까지 시위참가나 홍익대학교 규탄 성명 발표 등보다는 학교 측과의 협상 등 온건한 방법을 사용하였다. 농성시작 3주가 지난 뒤 학교 측에 대한 규탄이 들어간 3차 성명서를 발표한 지금도 민주노총과의 연대 등의 문제에서 소극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활동에 대한 총학생회 측의 입장은 학생의 여론을 따른다는 것이다. 2011년도 홍익대 총학생회는 정치적 활동보다는 도서관 시설 개선 등 학습 환경 개선을 공약으로 내걸고 ‘비운동권’으로서 선거 운동을 하였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힘차게 발을 내디딘 학생회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치적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회는 학생 전체 여론이 합의되지 않는 이상 외부세력과 연대하는 것을 거부하는 등 정치적 입장을 띄지 않는 방향을 잡아 자신들이 선거 공약으로 내건 학습권에 대한 발언을 먼저 하였고, 그로인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비운동권인 자신들을 뽑아준 학생들은 암묵적으로 학생회가 정치성향을 띄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 판단하여 온건하게 움직인 학생회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큼 많은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더구나 1월 10일 학생간담회를 통해 현재 총학생회의 미온적 태도에 비판적 입장을 지닌 학생들이 많음을 확인한 동시에 ‘민주노총’ 등 정치 조직의 개입에 대해 거부감을 지닌 학생들 역시 적지 않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학생회는 외부세력과 함께하는 등의 정치색 강한 입장을 지지하여 민주노총에 배타적 시선을 가진 학생들의 지지를 잃는 것보다는 노동자 들을 순수하게 지지 한다는 ‘무색’에 가까운 입장을 띔으로서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을 하나로 묶는 방향을 선택했다. 그러나 총학생회의 서명운동에 전체 학생의 1/10도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이(2월 17일 현재 801명 참여) 참여하면서 총학생회의 이러한 접근 방법은 효과적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은 여론 합의에 대한 학생회의 전후관계 파악 오류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구성원들 사이에서 어떠한 문제에 대한 의견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의견 조율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여론을 수렴하는 ‘장’이 필요할 것이고 수렴된 여론을 바탕으로 행동을 시작하고 그에 대해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적어도 누군가 나서서 토론자리는 열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총학생회는 1월 10일 간담회를 제외하면 이러한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자연스럽게’ 여론이 하나로 수렴되면 학생의 대표로서 그것을 따르겠다는 학생회의 입장은 너무나 쉽게 본 것이다.


  이러한 모든 현상의 바탕에는 ‘정치 혐오’라는 현재 20대를 대표하는 정치적 입장이 있다.  이러한 입장은 정치적 색을 띄지 않겠다고 공약한 학생회의 당선을 이끌었고, 다시 한 번 학생회의 움직임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이번 노동자 문제와 관련하여 학생이 왜 이 문제에 관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을 정도로 정치적 무관심은 일반적인 것을 넘어서 ‘쿨 함’의 상징이 되고 있다.


  어떤 정치적 현안이 나타났을 때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나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혹은 “저는 중립적입니다.”라는 발언은 비록 특별한 의도가 담겨있지 않을지라도 이미 일어난 일을 암묵적으로 지지해주는 정치적 발언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정치적 현안에 대한 모든 의견은 정치적 견해라는 것, 특히 강자와 약자의 싸움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강자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임을 배울 기회가 우리에겐 너무나 적으며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해야만 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점거농성이 1달 동안 지속되는 동안 한파 속에도 많은 학생들이 농성장을 찾았고 그 이상의 학생들이 관심을 보냈다. 하지만 그보다 많은 학생들은 학교 도서관과 학원에서 자기계발을 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사회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부하는 이들은 실제로 바쁘기에 자신들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일에 신경 쓸 틈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핑계가 아니다. ‘노동자들의 현실’ 그 자체에 대한 무관심에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면 나 역시도 당당할 수 없다. 문제는 자신들이 직접 피해를 입는 순간에도 그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며 어떤 일인지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현실이다.

  어떤 학생은 노동자 분들은 불쌍하다. 하지만 위협적인 시위 모습과 지저분한 플랜카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며, 많은 학교 중 하필 홍익대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언론에 노출된 것이 기분 나쁘다고 한다. 불쾌감만 드러낼 뿐 그 이상 관여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동정심을 느끼지만 시위, 플랜카드, 기자가 있는 정치는 싫다는 것, 이것이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적지 않은 젊은이들의 정치 입장이다. 짜증을 내지만 분노할 여유는 없는 이들은 사회 속에서 너무 바쁘고, 그 바쁜 사회 속에서 홍익대 노동자 들은 조금씩 잊혀지고 있다.



3.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홍익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 ‘홍익인’을 비롯하여 온/오프라인을 통해 나타나는 홍익대학교 노조 운동에 대한 비판적 시각 중에는 극단적으로 ‘월급 75만원이 부족하다고 시위를 하면 그보다 못한 처지의 분들을 고용하면 되지 않겠냐’는 주장도 있다. 내 개인적 가치관과 상충하는 화가 나는 주장이다. 하지만 나를 무섭게 하는 주장은 따로 있다. 소극적 움직임을 보이는  학생들을 다시 무관심하게 만들거나, 자신의 처음 입장과 반대 방향에 서게 만드는 ‘처음에 소식을 접했을 때는 노동자 분들이 안됐다고 생각했고 화가 났지만 알아본 결과 불법은 아니니 큰 문제가 없지 않냐, 감성에 치우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는 하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경향신문 DB



  앞서 나를 화나게 했던 ‘대체 인력을 사용하면 되지 않나’하는 주장은 주장하는 이가 자신이 옳다 여기는 바를 설명할 나름의 이성적 논리를 지닌, 직관적 판단과 반성 결과가 일치를 이룬 주장이다. 따라서 주장에 진정성이 있다면 그의 주장은 나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가치관 중 하나로 인정받아야 한다. 만일 경제 원리 혹은 법리를 중심 가치관으로 가지는 이가 있다면 도덕적 가치를 중시하는 가치관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홍대에 쏟아지는 도덕적 비난은 반박할 필요가 사라진다. 논점을 벗어난 주장이기 때문이다. 이들과 달리 반성과정에서 처음 가졌던 ‘문제의식’을 법적인 문제가 없다거나 사회 전반적 현상이라는 이유로 ‘정상’으로 여기는 입장은 어떠할까.


  사람들은 어떤 사건을 처음 받아들일 때 직관을 통해 판단한다. 홍익대 노동자 문제를 접한 많은 이들이 느낀 안타까움 혹은 분노는 노동자들의 1달 월급이 알바비보다도 적다는 사실, 학교 다니는 동안 경험한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 노동자들과의 유대감, 홍익대학교의 적립금 상황 등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내려진 직관적 판단으로 많은 이들이 공감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직관적 판단 결과는 이성의 반성과정을 통해 이러한 판단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첫인상이라 할 수 있는 직관은 합리적 근거가 부족하고 이성의 활동을 통한 반성이 필요하다. “홍익대학교 노동자들이 받는 대우는 잘못되었다.”고 직관적으로 판단하였을 경우, 우리는 그것이 옳은 판단인지 반성하는 과정을 겪는다. 그 과정을 통해 합리적 언어로 정제되어 타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 형태로 변형되고 자신의 의견을 논리로써 타인에게 설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노동자 문제에 대한 반성과정에서 법적 문제를 바탕으로 판단결과를 변경시켰다면 “법적 문제가 없으므로 도움을 줄 필요가 없다.”라는 판단이 도출되고 동일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돕고 싶지만 합법적이므로 도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내적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한 주장에 여전히 대립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논리적 반성을 통해 가치관이 확고히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감성적 반성이 다시 필요하다. 우리는 역사적 경험을 통해 ‘믿음’으로 변질된 이성이 행할 수 있는 수많은 악행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의 경우 개개인의 감성적 판단을 통해서는 불가능하였을 잔혹행위를 민족주의, 우생학, 법리 등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된 대표 사례이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사례이고 우리는 이성이 폭주하기 전에 막을 수 있을 거라 쉽게 말한다. 그러나 이성의 이름을 빌린 잘못된 믿음이 우리들의 확고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성의 폭주를 돕게 될 것이다.

   우리의 이성이 어떠한 논리가 옳다는 아무리 많은 이유를 말한다 해도 그것이 우리의 감성과 도덕관념에 충돌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재고해봐야 한다. 물론 충돌이 계속된다면 도덕관념 역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러한 반성과정 자체의 부재이다. 어떠한 제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한 주장 내에서 결점이 없어 보이는 논리도 다른 분야에 적용할 경우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또한 직관의 경우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가 담겨 있는 만큼 조금 더 신뢰해도 된다 생각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가지고 토론의 장으로 나설 수는 없을까.

  사실, 지금의 20대에게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 실정법을 대거 어긴 경험이 있었다.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장’으로 뛰어든, 지금까지의 운동과는 다른 주목할 만한 모습을 보였던 그 사례는 어떠한 변화도 이끌어 내지 못하고 끝났다. 어쩌면 20대가 보여주는 무기력함과 정치혐오는 옳다고 여긴 일을 위해 움직여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홍익대 노동자 문제를 정상이라고 판단할 사람은 극소수 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마치 이성의 탈을 쓴 맹수가 되기를 장려하는 듯 타인을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 사람들에게 도덕을 외치는 것은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는 것만 같아 두렵다. 소극적 정치적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실정법을 벗어나지 않기에 문제가 없다는 믿음을 넘어, 자신이 옳다고 여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많기를 바란다.


4.투쟁을 현장을 넘어, 하나의 ‘장’으로

  노동자 문제에 적극 동참하는 이도 그렇지 않은 이도 드물게 동감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지금 행하고 있는 노동 운동이 캠퍼스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불편을 준다는 사실이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학생처(?)는 노동자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위를 계속하기 위해 필요한 곳이다. 반면 그 외의 현수막, 선전전 등 모든 장치, 활동은 노동자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내부 결집력을 높이는 역할 역시 무시할 수 없지만,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강자에 맞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노동자들의 노력은 관심과 참여를 잘 이끌어 내고 있을까.


 민주노총을 주축으로 한 홍익대 시위 현장은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 민주노총은 점거농성을 1달 넘게 지속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노동자들의 노력은 많은 이들의 노동자 문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이 참여로 이어지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만 생각하기 힘든 것 역시 사실이다. 외부로 공개되는 시위의 목적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참여를 유도하는 것, 적어도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시위활동이 대중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준다면 그래서 행동에 대한 반대가 나타난다면 그것은 안하느니만 못한 헛고생이 될 것이다.


  홍익대학교 내부에만 국한하여 보면 노동자 투쟁은 민주노총이라는 세력이 없었다면 시작도 못하고 주저앉았을 가능성이 큰 운동이다. 동시에 민주노총의 투쟁방식이 홍대생들의 참여를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학교 곳곳에 걸린 누덕누덕한 현수막은 흉물스러워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 ‘위협적’이라고 말한 빨간 조끼를 입고 ‘투쟁’과 ‘쟁취’을 외치는 시위현장은 시청각 공해도 다가갈 수 있다. 이러한 공해가 주는 즉각적인 불쾌함은 정치에 무관심한 학생들의 입에서 ‘외부세력’이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발언이 나오게 된 계기라 할 수 있다.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수많은 노력들은 지금까지 비슷한 유형의 운동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켜 왔다. 그러나 운동방식만큼은 한 세대가 넘는 세월이 지나도록 변화하지 않는 것 같다. 시위현장에서 불리는 노래의 스타일은 ‘고전’이 된 민중가요들의 복제품처럼 변함이 없다. 시위 형식에 하나의 규범으로 작용할만한 가치가 존재하는 것일까. 시대도, 사람도 변하였는데 같은 방식의 운동으로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생각한다. 시위 현장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비단 홍익대학교뿐만 아니라 철거촌, 공장 등 처우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되는 곳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시위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과거의 대학생보다 노동문제 등 자신과 밀접한 정치 현안들에 대해서도 관심이 떨어진다. 이는 지금까지 있었던 수많은 노력의 결과로 눈에 보이는 곳만큼은 큰 문제들이 줄어든 것과 대학생들의 취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바빠진 것 모두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을 뺏기려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민주화 이후의 세대인 만큼 획일성에 대해 경계하고 개인으로서 자신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다. 이런 젊은이들에게 과거와 동일한 방식의 누군가 앞서서 나가고 그 뒤를 따르는 방식의 운동방식은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지금 정치 운동 현장에 필요한 것은 하나의 ‘장’이라 생각한다. 지나치게 형식화되고 고착된 운동방식에는 참여하기 거부하지만 스스로 느낀 문제들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이다. 어떤 뜻을 실행하기 위해 더럽혀지는 곳이 아닌 채워지는 장소, 뜻을 같이하는 사람도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곳이 아닌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사람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소, ‘투쟁의 장소’가 아닌 ‘문화 창조의 장소’이 될 수 있는 장이 될 수는 없을까. 점점 형식화 되어가는 지금의 시위 방식은 끊임없이 소모할 뿐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지금의 대학생은 어느 시기의 대학생보다 많이 공부하는 바쁜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동시에 어느 시기의 대학생보다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다. 문화가 익숙한 이들에게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펼치는 것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일임을 깨닫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 홍대에서는 시위현장을 창조의 현장으로 바꾸려는 젊은이들의 작지만 의미 있는 움직임들이 보인다. 누군가 먹고 사는 절실한 문제에 너무나 가볍게, 낙관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 절실하기에 이러한 주장이 필요하다. 홍익대학교가 노동자 문제를 잘 풀어내고 동시에 운동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직접고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홍익대학교는 노동자 간의 협상 불가 방침을 고수하고, 차기 선정될 유력 용역업체로부터 노조 개인들에게 회유 전화가 온다는 말이 들리며, 학생회는 조성되지 않은 여론 따라 어떠한 행동도 적극적으로 조성하지 않고 있으며, 적지 않은 학생들은 노동자 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 2011년 2월, 아직 홍대에 봄은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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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고 확대 전면 재검토 및 일반고 혁신모델 정착이 필요한 때

최민선 humanelife@saesayon.org


“그들이 1년에 1억 원씩 쓰면서 바라는 건 딱 두 가지야. 불평등과 차별. 군림하고 지배할 수 없다면 차라리 철저히 차별 받길 원한다구. 그게 그들의 순리고 상식이야.”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끈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나온 대사다. 스스로 ‘사회지도층’을 자임한 남자 주인공(현빈 분)은 백화점의 VVIP룸 고객의 권리를 이렇게 읊는다. 드라마 속 ‘그들’이 원하는 불평등과 차별은 현실 사회 구석구석에 묻어난다. 사회의 근간이 되는 교육에서조차.

얼마 전부터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율고)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고교평준화에 대한 논의도 재가열되고 있다. 다수의 언론은 이를 교과부와 소위 진보교육감과의 마찰에 초점을 맞춰 보도한다. 그러나 자율고와 같은 특수형태 고교나 고교평준화 제도는 일부 교육관료들의 갈등으로만 치부될 문제가 아니다. 피라미드처럼 서열화돼 있는 고교체제 전반의 문제이며, 나아가 대입경쟁과 학벌구조의 폐해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국민 대다수의 문제다.

그러나 현재 교과부의 주장은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드라마 속 ‘그들’의 논리와 유사하다. 자율고에 대한 최근의 논란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방안을 모색해보자.


자율고에 내재된 세 개의 폭탄

 지난 1월 12일, 교과부는 ‘자율고 운영 내실화를 위한 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주요내용은 ▲2012년까지 100개의 자율고를 지정하겠다는 당초 목표에 연연하지 않고 혁신도시·기업도시·경제자유구역 및 세종시 등에 위치한 사립고를 중심으로 지정, ▲서울을 제외한 평준화 지역의 자율고에 자기주도 학습전형 도입, ▲신입생 충원율 60% 미만인 자율고에는 워크아웃 제도 도입, ▲맞춤형 컨설팅, 우수사례 발굴·확산 등으로 내실있는 운영을 지원한다는 방안이다.

교과부가 이러한 개선방안을 시급히 내놓은 이유는 올해 자율고 입시 경쟁률이 하락하고 몇몇 학교의 경우 입학정원이 미달되는 사태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올해 자율고의 평균 경쟁률(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 제외)은 1.5대 1로, 지난해 경쟁률(2.5대 1)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전국 51개의 자율고 중 27%에 달하는 14개교에서는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 용문고의 경우 200명이 넘는 결원이 발생해 자율고 지정 철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자율고의 입시 경쟁률이 하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그에 앞서 자율고의 문제점을 짚어보자.

애초에 자율고는 탄생 이전부터 무수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미 외고를 중심으로 한 특목고가 고교서열화와 사교육 과열의 진원지로 비판을 받던 차에 자율고라는 특수형태의 고교가 또 하나 보태지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의 핵심정책으로 자율고 도입을 밀어붙였다.

예상대로 자율고는 고교서열의 상위권으로 바로 진입했다. 정부는 자율고의 전신 격으로 외고보다 각광을 받던 자립형 사립고도 자율고로 전환할 것을 유도했다. 일반고 위에 특목고와 자율고 두 가지 형태의 고교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특권학교’로 자리잡은 자율고는 외고와 마찬가지로 ‘입시학원화, 사교육 팽창, 귀족학교’라는 세 가지 주요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그 문제점을 간단히 짚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율고는 학교 측에 자율권이 대폭 부여돼 교육과정의 6분의 5를 학교가 알아서 운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학생들은 입시경쟁에 유리한 학교에 몰리게 돼 있다. 이에 자율고는 신입생을 충원하기 위해서라도 교육과정 자율권을 ‘입시준비를 위한 자율권’으로 악용한다. 영어와 수학과 같은 주요과목 시간을 늘리고 예체능 과목 시간은 줄이는 식이다.

둘째, 자율고가 명문대 진학생을 다수 배출해 입지를 굳히면 학생 수요가 늘고 이에 따른 사교육이 팽창하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외고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을 받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외고는 지금껏 성적 상위 2~3%에 해당하는 중학생이 경쟁했다면, 자율고는 내신 30~50% 이상 지원이 가능해 사교육이 더욱 폭넓게 성행할 수 있다.

셋째, 자율고는 등록금이 일반고의 3배 이내로 규정돼 있다. 대략 350~450만원 선이다. 학교운영비나 보충수업비와 같은 수익자부담 경비를 더하면 4~5배에 이른다. 그야말로 ‘귀족학교’다. 2010년에 자율고로 전환된 서울지역 13개교에서 입학생 아버지의 소득별 분포 비교 결과를 보면 이는 명확해진다. 이들 학교는 자율고로 전환 이후 아버지가 고소득직인 비율이 5.6%p 증가하는 반면, 저소득직인 비율은 8.6%p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고, 경쟁률 하락의 진짜 이유

지난해 외고와 더불어 자율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정부는 올해 초 고교체제 개편의 일환으로 이들 학교의 입시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 외고는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해 영어 내신과 학습계획서, 면접을 바탕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했다. 기존의 입시전형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돼 오던 중학교 전 과목 내신성적 반영이나 영어듣기평가를 금한 것이다.

자율고에 대해서는 비평준화 지역은 필기고사 외 방식으로 학교 자율적으로 선발하도록 하되, 평준화 지역은 선지원 후추첨으로 지원자를 내신(30% 이상)이나 면접을 통해 1차적으로 추려낸 후 추첨하도록 했다. 단, 서울지역은 내신 50% 이상인 지원자 중 추첨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입시제도 개선과 더불어 정부는 일반고 지원 이전에 학생을 선발하는 전기학교는 한 학교 이상 지원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특정 외고와 자율고를 동시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지원한 전기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학생은 일반고로 진학하게 된다.

올해는 이러한 정부의 조치 이후에 처음으로 실시한 고교입시였다. 앞서 밝혔듯, 결과적으로 올해 외고와 자율고는 전반적으로 입시 경쟁률이 낮아졌다. 특히 자율고는 다수의 학교에서 미달사태까지 발생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정부의 입시제도 개선책이 효력을 발휘한 것일까. 그 원인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을 중심으로 자율고가 대거 생겨나면서 공급이 과잉됐다. 실제 서울지역 자율고의 입학정원은 지난해 4,955명에서 올해 1만462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그런데 한 해 중학교 졸업생 12만명 가운데 자율고에 지원 가능한 내신 상위 50% 이내 학생은 6만명이고, 지난해 자율고 신입생 출신학교 내신분포 결과에서 전체 학생 중 약 3분의 2를 차지했던 내신 상위 30% 이내 학생은 3만6천명이다. 그들이 전부 지원해도 경쟁률은 3대 1. 하지만 자율고는 아직 학생의 수요가 대거 몰릴 정도의 차별성을 갖지 못해 올해 경쟁률은 1.5대 1에 그쳤다.

또한 올해부터 자율고와 외고·과학고의 동시지원이 안 되자 학생들은 신중한 선택을 해야 했다. 지난해보다 늘어난 3,000명의 자율고 지원자는 어쩌면 입시제도 개선으로 영어 내신성적이 최상위권인 2~3%에 들지 못해 외고 지원을 포기한 학생들로 채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3,000명의 자율고 추가 지원자는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난 자율고 학생 수에 비해 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올해 경쟁률 1.5대 1이라는 결과는 정부가 학생들의 자율고에 대한 낮은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공급에만 열을 올렸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둘째, 자율고는 도입 후 2년밖에 되지 않아 입시경쟁력이 입증되지 않았다. 학생들이 지원을 원하는 학교는 뭐니뭐니 해도 소위 명문대 혹은 ‘In seoul’이라고 일컬어지는 대학에 다수의 학생을 진학시킨 학교다. 그런데 자율고는 2년 전 입학한 학생이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아 일종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학생들이 집과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자율고를 선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학교 재정이 튼튼하거나 소득이 높은 지역에 위치한 학교 외에는 일반고와 차별성이 없다. 자율고는 정부지원금이 없기 때문에 사학이 투자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나머지 부담은 학부모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안 그래도 등록금이 높은데다 별도의 비용까지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따라서 큰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도 좋은 교육환경에서 교육받기 위해 학부모는 재정 형편이 나은 학교를 선택한다. 또한 흔히 ‘사교육 특구’로 불리는 강남, 서초, 송파, 양천, 노원 등의 고소득층이 밀집한 지역에 위치한 자율고는 주변의 고급 사교육기관들 덕에 인기가 많다.

반면, 학교 재정이 불안정하거나 지역적으로 입시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지 못한 학교의 경우에는 또 다른 학생 유인요소가 필요하다. 교과교실제와 같은 교육시스템이나 질 높은 교수학습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 그 외의 자율고 중에는 이렇다 할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을 갖춘 학교가 거의 없다. 일반고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제2의 외고가 될 것인가 삼류학교로 남을 것인가


<경향신문 DB>

올해 자율고의 낮은 입시 경쟁률은 이와 같은 세 가지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과도하게 자율고를 확대하려 했지만, 자율고의 실상은 학생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반고보다 큰 등록금 부담을 짊어져 가면서 일반고와 다를 바 없는 교육을 받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에는 정부의 입시제도 개선책도 일정정도 효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특목고나 자율고와 같은 특수형태의 고교에 성적 우수 학생을 선별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자 수요가 돌아선 것이다.

그러나 경쟁률 하락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율고가 도입 취지와 달리, 학교에 부여한 다양한 자율권만큼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모델로 정착하지 못하는 데 있다. 자율고의 지원 양상을 보면, 현재 자율고는 크게 진학실적이 좋은 ‘제2의 외고’ 형태의 학교와 일반고와 다를 바 없지만 등록금만 높은 ‘비싼 학교’ 형태의 학교로 나뉜다. 전자의 형태는 학생 지원이 몰리지만 후자의 형태는 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때 정부는 무엇보다 교육과정의 다양화·특성화를 개별학교에서 어떻게 현실화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안을 내놓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율고 경쟁률 하락에 대한 대책으로 자율고 확대는 포기하지 않되 평준화 지역까지 학생선발권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대신 일반지역에서의 확대보다는 혁신도시·기업도시·경제자유구역 및 세종시 등에 위치한 사립고를 중심으로 지정하겠다고 한다.

이번 대책을 통해 정부는 앞서 밝힌 자율고 경쟁률 하락의 첫째 원인인 무리한 자율고 지정 확대에 대한 비판에는 신설도시에서 공급을 늘리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해 교묘히 피해갔다. 여전히 자율고 확대 기조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둘째 원인인 입시경쟁력이 검증이 안 돼 학생 수요가 낮은 문제에 대해서는 자율고에 학생선발권을 줘 성적 우수 학생을 가려 뽑을 수 있도록 했다. 올해부터 외고에서 실시한 ‘자기주도학습전형’을 자율고에도 도입해 오히려 자율고가 ‘제 2의 외고’가 될 수 있는 길을 터준 것이다. 게다가 외고는 ‘외국어에 능숙한 인재 양성’이라는 학교의 목표와 학생 선발기준이 비교적 명확한데 비해, 자율고는 개별학교마다 특성이 다르고 건학이념도 뚜렷하지 않아 ‘자기주도학습전형’을 도입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검토해야 한다.

셋째 원인인 학교 재정이 부실하거나 입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지 않아 미달사태를 겪은 학교에 대해서는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했다. 임시방편으로 신입생 충원율이 60% 미만인 자율고에 학교 운영정상화에 필요한 경비를 국고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율고는 본래 정부로부터 재정결함 보조금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는 학교다. 정부는 대신 자율고에 투자할 정부 보조금을 일반고에 투자해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고 밝혀왔다. 이번 정부의 조치는 이러한 지금까지의 주장을 뒤집는 꼴이다.


차별 교육 아닌 ‘수평적 다양성’ 교육 실현해야

정부는 현재 주요 교육정책으로 공언한 바 있는 자율고가 실패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그 모델을 성공시켜 그 숫자를 늘리는 데에만 혈안이 돼 있다. 학교 측에 학생선발권을 주겠다는 이번 대책은 이러한 정부의 조급증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자율고는 진학실적에 따라 학생 지원이 몰리는 현실에서 입시전문기관화 될 소지가 너무 크다. 일반고와 차별성이 없으면서도 등록금은 일반고에 비해 너무 비싸 서민층 자녀가 지원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자율고 도입 3년차가 지나면 이들 학교의 대학 진학실적에 따라 자율고가 ‘제2의 외고’로 급부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고교서열이 재확립되면서 고교 입시경쟁에 불이 붙을 가능성을 예고한다. 따라서 정부는 자율고를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대신 현 시점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자율고 대책은 다양화·특성화 교육을 제대로 실시하는 학교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가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를 낮추려는 의지가 있다면 자율고를 ‘제2의 외고’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그와 동시에 학생들의 수요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율고가 본래의 취지대로 자율적이고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로 탈바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율고 뿐 아니라 전체 일반고 역시 마찬가지 방향의 혁신이 시급하다. 일반고에도 자율권을 점차 확대해 학교별로 특성화된 교육프로그램과 다양한 교육과정을 갖추도록 한다면 자율고와 일반고의 구별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이를 토대로 지역 내 교육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형성하고 학교 간 교류를 넓혀 각 분야별로 좀 더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각 지역 내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사회나 학부모·학생의 교육적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하다.

정부가 내세우는 수월성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학생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과 적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식 교육이다. 20%의 특권적 학교를 양산하고 80%의 일반고를 삼류학교로 전락시키는 것은 수월성 교육의 방향에 반대될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을 가져온다. 특권학교와 교육여건이 낮은 학교는 줄이고 일반고의 질을 높이는 것, 이것이 바로 ‘수평적 다양화’를 실현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 면에서 정부는 경기도에서 촉발된 혁신학교 모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혁신학교는 일반고와 같은 등록금을 받으면서도 뚜렷한 건학이념을 가지고 학생들이 다양한 적성과 소질을 개발하도록 하는 새로운 교육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한다. 한 명의 학생도 낙오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로 책임교육, 맞춤교육을 실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혁신학교 모델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는 동시에 일반학교로 전파된다면 우리가 소원하는 ‘모두를 위한 수월성 교육’은 눈 앞에서 펼쳐질 수 있다.

최근 경기와 강원 지역에서는 일부 비평준화 지역을 평준화로 전환시키자는 바람이 거세다. 그러나 교과부는 이들 지역의 요구를 끝끝내 거부했다. 평준화로 전환하는데 찬성하는 지역주민이 80% 이상임에도 귀를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자율고 대책과 고교평준화 제동 등 교과부의 이러한 행보는 교과부가 ‘차라리 철저히 차별받기 바라는’ 그들의 편에 서 있음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바로 대다수 국민의 ‘상식’은 차별 없이 수평적이고 다양한 교육체제를 만드는 것임을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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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단비뉴스 민보영 기자 orintee@danbinews.com

학생 블로거 ‘하인리히’, 대학가 정보 집대성해 이슈화

캠퍼스에 봄이 오고 있지만 예년의 봄 같지는 않아 보인다. 개강을 앞둔 대학가 분위기가 뒤숭숭한 곳이 많다. 등록금 책정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학생과 부모가 참여하는 등록금심의위원회들이 파행을 거듭한 데다, 등록금을 동결할 것 같던 대학들조차 상당수가 인상을 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 신분으로 등록금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루는 한 누리꾼이 인터넷 상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에서 각각 ‘Heinrich’, ‘kor_Heinrich’ 아이디를 사용하
는 이(이하 하인리히, 이름을 밝히지 않은 블로거)다.

    

▲ '하인리히'의 티스토리 블로그 메인화면


지금까지 등록금 인상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정부나 시민․학생단체가 주축이었는데, 학생 신분으로 블로거를 운영하며 등록금 문제를 이슈화하는 데는 ‘하인리히’가 독보적이다.
현재 대학에 다니는 한 티스토리 이용자는 하인리히에게 ‘내가 다니는 학교인데도 몰랐던 사실을 알려줘 고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대학저널> <한국대학신문> 등 대학 관련 언론사들도 그한테서 자료를 구하고 취재를 한다.


     ▲ 트위터를 이용하는 대학생과 메시지를 주고 받는 '하인리히'(위)와 메일로 제보해온 한 대학생의 메일(아래)


‘하인리히’는 지지난해 말 ‘티스토리’에 블로그(http://heinrich0306.tistory.com/)를 개설해 등록금 문제 뿐 아니라 다른 대학 관련 이슈에 대해서도 자료 등을 대거 포스팅해 왔다. 홍대 노동자 사건, 총학생회 선거 잡음, 이사장 비리 등 현재 이슈가 되는 대학사회의 사건사고와 이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담았다. 트위터에서는 팔로우한 지인들과 대학 현안 관련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ㆍ동결 대학 명단 35차례 업데이트

눈에 띄는 대목은 블로그 메뉴 중 ‘등록금 이야기’에 담긴 2011년 대학가 등록금 인상 관련 자료들이다. 하인리히는 등록금 책정 시기인 작년 말부터 현재까지 실시간으로 등록금 책정 현황을 갱신 중이다.
‘2011년 등록금을 동결/인상한 대학교 명단’은 2월 20일 현재까지 35차례 업데이트된 상태다. 대학정보 알리미(대학정보 공시센터), 중앙일보교육개발연구소 자료와 트위터에 팔로우된 대학생들의 메시지를 바탕으로 정보를 수집했다.

 

    ▲ 35차례 등록금 인상을 갱신한 명단

    

▲ 갱신내역에 대한 세부설명(위)과 한 누리꾼의 반응(아래).


등록금 책정 현황을 실시간으로 알리는 일 말고도 등록금심의위원회 파행, 등록금동결/인하 대학의 시사점 등 등록금 관련 사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글도 돋보인다. ‘등심위 의무화 법안, 빛 좋은 개살구’라는 포스팅은 등록금심의원회 운영이 파행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점을 법령에서부터 집어내고 있다.

등록금심의위원회는 학생과 학부모 등이 등록금책정 과정에서 의견을 낼 수 있는 등록금 심의기구다. 그러나 강제성이 옅고 참가인원수가 확정되지 않는 점, 결정권한이 없는 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하인리히’는 트위터나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대학생들이 ‘이리 많은 대학이 등록금을 동결했는데, 우리학교는 왜 인상하는지 화가 난다’, ‘우리학교 등록금 협상과 관련한 자료를 이메일로 보냈으니 확인 좀 해달라’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20대 초반 휴학생인 그는 현재 개인적인 업무와 블로그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 등록금 인상, 이사장 비리 문제 등 대학 이슈는 불거지는데 ‘패거리 싸움’만 하는 학생회를 두고 회의를 많이 느꼈던 그는 자신이 직접 블로그를 만들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기로 마음먹었다. 140여개에 이르는 포스트들은 정치, 사회, 경제 분야에서 일어나는 이슈에 대한 본인의 의견들로 엮여 있다.

언론인 지망생으로서 대학 관련 여론형성에 기여

   

  ▲ 학생 블로거 '하인리히'의 트위터와 멘션

“저는 언론인을 지망하지만, ‘스펙’을 쌓으려는 목적은 아녜요. 대학 다니면서 부조리하다고 느낀 것들을 다른 대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생각을 정립하는 건 20대 때 할 수 있는 특권이니까요. 제 또래 다른 대학생들이 어떤 의견을 갖고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가 대학사회에서 본 대학생들은 꽤 진취적인 편이었다. 재작년 연세대 총학생회, 작년 고려대 총학생회, 올해 한국외대 총학생회는 운동권 선본이거나, 이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비운동권 후보였다.

“대학생들이 취업해야 하는 현실과 386 기성세대들의 분위기가, 학생들의 의견 표출 통로나 기회를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불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상황이죠.”

그는 등록금 문제 말고도 대학학과 구조조정을 큰 문제로 꼽았다. 중앙대의 민속학과 폐지, 청주대의 어문계열 학과 집단 폐과, 서울대 법인화 등이 그것이다. 대학의 장기적인 존립을 위해 구조조정은 필요하나, 그 대상이 ‘돈 안 되는’ 인문학, 자연과학 등이라는 점이 아쉽다는 것이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배워나가는 교육기관이잖아요. 그런데 자본의 논리로 대학을 운영하다보니 이런 본연의 의미가 자꾸 퇴색되는 것 같아요. 자본도 결국 사람 편하자고 사람이 만든 것 아닙니까?”

‘하인리히’는 3월 초까지 등록금 책정에 대한 정보를 모두 갱신하고, 개강 이후부터는 학내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등록금 책정 과정에서 고려대, 서강대 등 학교측이 등록금심의위원회와 학생측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던 행태와 비슷한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고발한다. ‘서울대 법인화’ 로 불거진 전국 국립대의 법인화 문제도 중점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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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성철|국가인권위 조사관


남녀간 노동차별 개선사례를 연구하고 설 연휴 직전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일들이 연이어 벌어졌습니다. 여성인권 전문조사관 인영이 사실상 ‘해고’ 됐고, 노동인권 전문조사관 태영이 항의성 사표를 냈습니다.

인권위 동료들은 인영과 태영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압니다. 인영은 인권위 10년 역사를 대표하는 조사관이자 인권위 노동조합의 핵심 간부입니다. 2002년 서울지방검찰청에서 피의자가 조사 도중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검찰이 인권위 직권조사를 노골적으로 거부하던 그 무렵, 인영은 검사실에서 끈질기게 버티며 사상 최초로 검찰청 지하 특별조사실 문을 열게 만든 주역입니다. 공권력이 여전히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는 나라에서 인권지기 노릇을 제대로 하려면 그런 정도의 배포부터 길러야 할 것입니다. 여성인권 전문가로서 인영이 쌓아온 실적도 돋보입니다. 인권위 조사관 누구라도 그를 빼놓고 성차별 문제를 논하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인권위는 뒤늦게 “더 이상 그 자리가 필요치 않아 계약을 해지했다”고 강변합니다. 그 자리가 필요치 않다는 건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궤변입니다. 또한 인권위 출범 이후 계약가능기간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계약을 종료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직원들이 이번 사태를 현병철 인권위원장에 대한 노동조합의 비판적 대응과 연결 짓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아가 이번 해고 조치엔 ‘죽어가는’ 인권위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침묵을 강요하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습니다.

태영은 가슴이 따뜻한 조사관입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그의 시선을 엿볼 때마다 세상을 다시 바라보곤 합니다. 인권위에서 노동문제를 전담해온 그는 사내 하도급 노동인권 개선,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 노조설립신고제 개선 등 사회적 쟁점에 대해 새로운 인권기준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는 동료가 부당한 차별로 해고되는 상황에서 양심상 더 일하기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그러하기에 태영의 사표는 인영의 해고가 부른 비극인 것입니다.

요즘 인권위 직원들은 착잡하고 우울합니다. 10년의 성과가 무너지고 힘 있는 권력기관으로부터 조롱당하는 건 그래도 견딜 만합니다. 수많은 직원들이 실명으로 비판해도 위원회 지도부는 묵묵부답입니다. 인권위 노조가 현병철 인권위원장과 손심길 사무총장을 상대로 진정을 접수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도 바로 소통부재에서 비롯됐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등이 현병철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Web DB]

지난 겨울 필자는 인영, 태영과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들의 삶에서 ‘인권’이 얼마나 중요한 화두인지 잘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인영이 차별사건 전문가답게 ‘부당한 차별’을 능히 극복하고 인권위 복직 조사관 1호로 기록되리라 믿습니다. 또한 태영이 노동문제 전문가로서 ‘향후 노동인권이 부재할’ 인권위에 사정없이 회초리를 들어주기를 기대합니다. 그 처절한 양심의 소리를 두 눈 부릅뜨고 낱낱이 기록하렵니다. 인영 그리고 태영. 박노해 시인의 시집 제목으로 짧은 이별의 말을 전합니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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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고려대 교수·사회공공연구소장

“우리 토착민들은 4만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평화로이 잘 살아왔다. 그런데 당신네 유럽인들은 약 500년 전에 우리 토착민들에게 다가와 185t의 금과 1만6000t의 은을 강탈해갔다. 우리는 그것을 ‘우호적 차관’으로 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500년이 지난 지금엔 그것을 돌려달라.” 과이카이푸로 쿠아테목이라는 남미의 한 토착 공동체 후손이 약 10년 전 유럽 대표들에게 행한 연설이다. 그는 과감하게 “200년치는 탕감해줄 터이니 300년치 원금과 이자만 달라”고 했다.


자립 토대 지키려 자경단 탄생

나는 데이비드 보일의 <행복한 돈 만들기>란 책에서 이 연설을 보고 정말 통쾌했다. 두 가지 의미로 ‘통 큰’ 주장이다. 세계사를 단칼에 요리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 세력에게 그토록 관대하다니! 이어 그는 뒤통수를 친다. “과연 당신네들은 우리에게서 그렇게 많은 부를 빌려가 경제발전을 이룩한 결과 우리에게 원금과 이자를 갚을 능력이라도 만들었는가? 당신네들의 경제체제가 합리적이라는데, 맞는 말인가?”

최근 소말리아 해적 사태가 온 사회를 강타하는 시점에 이 얘기가 생각난 건 왜일까? 그것은 해적 문제가 단순히 적대적인 ‘소탕’ 작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근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태의 본질은 자율 공동체 및 민주주의 파괴다. 소말리아는 북으로 아덴만, 동과 남으로 인도양이 있어 3면이 바다다. 해안선 길이만 3000㎞다. 원래 소말리아는 이집트, 그리스와 교역하며 뛰어난 문화를 꽃피운, 북아프리카 문명의 중심지다. 그 자부심과 자치력으로 대영제국에 20년간 맞설 수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영국과 이탈리아 등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를 장악한 해군 청해부대 소속 UDT 작전팀이 21일 해적들을 무장 해제하고 있다. 이번 작전에서 우리 군은 선원 21명 전원을 구출하는 개가를 올렸다. | 국방부 제공 (경향신문 DB)


1960년에 독립은 이루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한 농업의 강제적 구조조정으로 자립경제가 파탄났다.
1988년 이후 이어진 내전과 무질서 상태의 배경이기도 하다.

특히 90년대 초, 유럽 각국은 감시가 소홀한 소말리아 해안에 핵폐기물, 산업폐기물을 버렸고 불법 남획도 심해졌다. 참치와 새우, 가재의 씨가 마르고 바다 생태계가 망가졌다. 여태껏 어업으로 살아 온 소말리아인들은 참을 수 없었다. 자립의 토대가 파괴되니 대내적 갈등도 커졌고, 대외적으론 자경단이 탄생했다. 군벌과 사업가들이 이들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면서 2000년께 마침내 ‘해적 비즈니스’가 탄생한다. 오늘날 해적들도 실은 ‘의용 해안 경비대’로 출발한 셈이다.

이들이 국민의 70%로부터 지지를 받는 일이나 12개 부족장들이 그 배후라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다. 2006년에 자치적인 ‘이슬람연대’ 세력이 해적과의 싸움을 시작한 뒤 해적이 급감했으나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계기로 부패 정권을 지지하면서 새로 급증했다. 소말리아의 면적은 남한의 5배, 인구는 5분의 1 수준이다. 자연만 온전해도 풍요롭게 살 수 있지만 불행히도 그 평균 수명은 50세에 불과하며 1인당 GDP는 고작 600달러다. 인구의 5분의 1이 굶주림에 몰린 난민이다. 제국주의와 부패 권력에 의해 공동체와 민주주의가 파괴된 결과다.


제국주의 권력의 값비싼 교훈

스코틀랜드의 피터 레어 교수에 따르면 “소말리아 해적들은 몸값으로 연간 1억달러 정도를 챙기지만, 유럽과 태국, 한국 등이 이 지역에서 어자원을 남획해 버는 돈은 3억달러”다. 해적질도 ‘비즈니스’다. 지금까지 한국(인) 선박도 10차례 당했다.

아시아와 마찬가지로 남미나 아프리카는 구미 제국의 희생양이었다. 앞의 쿠아테목은 평화적 보상을 원했지만 소말리아 해적들은 폭력적 보상을 원한다. 둘 다 지속가능성은 없다. 지속가능성은 결국, 자율 공동체 및 자립경제의 복원, 민주주의의 회복에 있다. 남의 것을 빼앗아 잘 살려는 한, 세상에 평화는 없다. 살생은 살생을 부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해적 비즈니스의 값비싼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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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근 논설위원

설을 맞은 제주도 고향 마을은 평화로웠다. 200호 남짓한 중산간 마을이지만 공동목장이 개발되면서 땅값이 올라 외지에 살던 젊은이들이 심심찮게 귀향하는 터여서 물산과 인심이 박하지 않았다. 귤 농사는 기본이고 비닐하우스 농사로 한라봉과 키위를 재배하는 데다 400억원이 넘는 공동목장 매매대금과 정부 보조금으로 돈줄이 비교적 마르지 않은 덕분이다.
특별히 누가 면 소재지나 읍내 다방에 자주 출몰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지만, 소위 ‘다방농민’이 있을 만한 조건은 갖춘 셈이다. 어느 집은 육지 사람에게 팔았던 땅을 되샀다는 얘기가 있고, 누구는 골드키위 재배로 꽤 돈을 벌었다는 말이 들리는 걸 보면 실제 다방에 앉아 커피 한잔 하는 사람이 없지도 않겠다 싶었다.
설 전날 동네 청년들이 폐분교 자리에 지은 천장 높은 실내체육관에 모여 족구를 하고 윷놀이판도 벌이는 모습엔 이 고장 출신인 게 뿌듯하기까지 했다.


제주도. (윤대헌기자)


그러나 며칠 동안 ‘다방농민’들을 만나면서 이런 평화로운 인상은 물정 어두운 외지인의 눈에나 비친 겉모습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속깊은 얘기를 나누는 동안 이들에게서 전에 없던 상실감과 분노를 보았다. 사실 고향에 가면 정치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을 소박한 신조로 삼아왔다. 괜히 바깥물 좀 먹었다고 나서다 순박한 마을 인심을 흩어놓기라도 할까봐 적이 걱정한 탓이었다.

외지인이 보기엔 ‘평화로운 제주’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번엔 이런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아니, 피할 수 없었다. ‘구제역’과 ‘석 선장’ 때문이었다. 제주도의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라든지 하는 것 등은 얘깃거리 축에도 끼지 못했다.
상실감의 기저엔 농민이 무시당하는 데 대한 반발심이 깔려 있었다. “무사, 우린 다방에서 커피 마시면 안되여?(왜 우린 다방에서 커피도 못 마시느냐)”라는 항변에서처럼 그들은 다방농민이라는 비아냥에 상처입고, 보상금으로 해외여행 갔다는 말에 속이 문드러져 있었다.
구제역에 이르자 그들의 심사는 더욱 뒤틀렸다. 제주도가 무슨 걱정이냐고 물었다가 “모르는 소리 말라”는 역정까지 들었다. 20여 축산농가가 날마다 축사 주변을 지키고 감시하느라 난리가 났다는 것이다. 축산농들은 수천명의 관광객이 매일 전국에서 비행기와 배로 드나드는 판에 구제역이 닥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설날에도 일부는 마을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축사 주변에서 방역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급기야 다방농민들의 입에선 “대통령은 구제역이 그토록 창궐하는데 왜 걱정하는 시늉만 하느냐”는 울분까지 터졌다.

설 직전 과학비즈니스벨트 충청권 유치 약속은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이었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을 거론하며 “전국 인구의 6%밖에 안되는 농민은 큰 표가 안되니 버리겠다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만 봐도 농민은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 아니냐는 것이다.
불똥은 언론으로도 튀었다. 310여만마리의 소·돼지 등 가축이 생매장됐는데 대통령 지지율이 50%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흥분했다. 방송 등 언론에 대한 믿음을 접었다며 “촌에 산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아느냐”고 했다. 압권은 공항까지 차로 배웅해 준 친구의 말이었다.
“석 선장은 무사 경 하영(왜 그렇게 많이) 테레비에 나왐서(나오는 것이냐)? 해적으로부터 구출이야 잘 했주마는 구제역 보도도 해야 할 거 아니라게.”
“거 누게고, 최시중이 방송을 다 잡아부난(장악해버려서) 경(그렇게) 된 거 아니라.”

‘구제역’ ‘석 선장’에 분노한 농심

조용하던 나의 고향 마을도 더 이상 정치에 둔감한 곳이 아니었다. 내년 선거에 대한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단계는 아니다. 민주당과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보편적 복지론도 설득력이 높지 않았다. 농민들은 보편적 복지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시기상조라는 반응이 오히려 많았다. 무상급식에 대한 기대 역시 그다지 높지 않았다. 작은 시골 초등학교여서인지는 몰라도 스스로 재배한 농산물이 학교 급식재료로 소비되면 그 수익이 자기에게 떨어질 것이란 인식은 거의 없었다.

상경하면서 우리 마을이 이 정도면 형편이 어려운 다른 곳은 어쩌랴 싶었다. 농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포기한 듯 보였다. 이 대통령은 결코 레임덕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벌써 레임덕은 시작되고 있었다.
조그만 산골 마을의 이런 기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짐작하기 쉽지 않았다. 단지 사납고 매서운 바람이 농촌에서부터 불기 시작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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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노출 고민되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
정혜승(다음 대외협력실장)


트위터 시작할 때, ‘익명’으로 숨고 싶었다. 누구 비방하거나 허위사실 유포할 생각 없어도 익명 표현의 자유 정도는 누리고 싶었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본질이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관계망이 촘촘히 얽히는데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 문제. 1년여 만에 커밍아웃, 사진도 올리고 실명도 공개했다. 굳이 익명으로 남겠다고 숨기는 게 구차했다. 바야흐로 SNS 전성시대. 개인을 드러내고 '소셜 네트워크'를 만드느라 난리다.

페이스북은 최근 3개월 만에 가입자가 5억 명에서 6억 명으로 늘었다. 비록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SNS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지만 국내 포털도 소셜 플랫폼으로 탈바꿈, 다양한 서비스들을 선보이고 있다. 네이버의 미투데이는 물론 다음의 요즘(yozm)도 해외 SNS에 맞서 애쓰고 있다.

프라이버시 문제 우려되는 SNS

사실 카페가 등장하고 커뮤니티 사이트가 활성화된 10여 년 전에도 소셜 네트워크는 존재했다. 좋은 글과 정보는 온라인 친구들끼리 댓글 달고 퍼 날랐다. 당시에도 소개팅남이 폭탄이라는 둥, 엊저녁 뭐 해먹었다는 둥, 박완서 선생님 새 책이 좋다는 둥 시시콜콜 공유했다.
온라인 지인들 사이에서 검증된, 즉 ‘필터링’된 책과 화장품을 사고 영화를 봤다. SNS는 서비스 자체의 진화에다 스마트폰 덕분에 현장성과 속보성이 더해지면서 더 강력해졌을 뿐이다. 그리고 SNS가 뜰수록 새삼스럽게 각종 우려도 빠르게 번진다. 인터넷은 늘 문제를 일으키고 역기능이 걱정되는 공간인 탓인가.


(경향신문 DB)



한국인터넷진흥원은 트위터 아이디(ID) 200개를 대상으로 나흘간 조사한 결과, 인맥(86%), 사진 등 외모(84%), 위치(83%), 취미(64%), 스케줄(63%), 가족(52%)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지난 17일 밝혔다. 또 의료(29%)나 정치성향(19%) 까지 개인정보 노출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방송통신위원회는 최근 SNS 이용시 개인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SNS 이용자 개인정보 보호 수칙’을 마련했다. 물론 국내 SNS 서비스에서만 공지된 이 수칙(
http://blog.daum.net/yozm/142)은 SNS에 정보를 올릴 때 신중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정부가 고심 끝에 ‘수칙’까지 마련하게 된 정황과 문제의식은 짐작된다. 유럽연합도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있다. 다만 SNS가 가장 활발한 미국에 따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은 이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반증한다.

SNS는 실상 서비스 구조 자체가 자신을 많이 드러낼수록 더 많은 관계가 가능하다. 프라이버시가 문제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대부분 결혼 여부는 물론 출신학교, 전공, 취미 등을 기꺼이 자발적으로 공개한다. 그렇게 해야 SNS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전문가들 조언도 이어진다. 프로필 사진도 그럴싸해야 더 많은 친구가 생기고 인맥 공개는 기본. 외모, 취미 등 정부가 개인정보 노출이 심각하다고 우려하지만 대개 적극적이고 의도적으로 스스로 노출한 정보다.
 
균형 감각 있는 '똑똑한 이용자' 돼야

위치정보는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을 때 반드시 비활성화하라고 수칙에 나오는데, 위치정보 마케팅은 무조건 나쁜 것일까. 근처 식당 쿠폰이라도 뜨게 하려면 위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 주변 친구 위치도 검색되어야 점심 먹자는 메시지 한 번 더 날릴 수 있다. 평소 가는 식당마다 다음 플레이스로 찍고 다니는 내 경우, 뭘 먹고 사는지 현재 어디 있는지 드러낸다. 맛집 정보는 널리 알릴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거란 선량한(!) 생각을 굳이 포기해야 할까.

좋아하는 영화와 책, 공연 정보를 나누는 것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에게 유용한 일인데, 어디까지 숨겨야 할까. 철학과 세계관, 종교에 대한 내 멘션은 그렇게 치명적일까. 어디가 아프다고 올리면, 전문가부터 비전문가까지 온갖 정보와 격려를 전해주는데, 건강정보니까 무조건 노출을 피해야 하는 걸까. 하지만 이런 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대체 어떻게 SNS를 즐기란 말인가.

SNS는 외로운 현대인이 소통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미디어 권력의 재분배, 사회변혁의 도구로도 쓰인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급적 쓰지 말라는 식의 ‘수칙’은 따르기 정말 쉽지 않다.
더구나 법에 따라 인증하는 주민등록번호는 오히려 불법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개인이 스스로 공개한 정보만 문제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프라이버시 보호가 어려운 현실은 직시해야 한다. '페이스북 이펙트'라는 책에는 "공개 동성애자 페이스북 친구를 몇 명 두면 아직 본격 커밍아웃 않은 이도 동성애자로 간주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별 것 아닌 정보 같아도 복잡한 영향을 미치는 시대라는 점을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다르다.

프라이버시를 어디까지 보호하라는 ‘정답’은 없다. 논란만 등장할 뿐 사회적 합의 지점도 아직 모호하다. 개인의 생각도 모두 다르다. 아예 SNS 안 쓰고 살겠다는 분도 있을 게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디지털 아이덴티티를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는 '인식'과 약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익명을 포기한 SNS 세상에서 이런 노력까지 하자니 때로 자기검열이 불가피하고 피곤하다. 편리하고 즐거운 시대, 약간의 비용이랄까. SNS의 새로운 가치를 즐기는 동시에 균형을 잡아가는 것은 결국 ‘똑똑한 이용자’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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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건종 | 숙명여대 교수·영문학

민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는 중도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으로서 상당히 전격적인 것이었다. 복지를 수식하는 ‘무상’이라는 말은 자극적이었고,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같은 당의 일부 의원들은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다. 어쨌든 이 무모함이 보수 여당이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이 논쟁에 개입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복지가 우리 사회 담론의 중심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집권 여당과 보수세력은 ‘친서민’이나 ‘중도실용론’을 내세울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활기를 띠고 있다. 무상복지가 얼마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이며, 비효율적인 정치공학적 발상인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것이 이들의 정체성에 훨씬 잘 어울리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민주당은 ‘무상’이라는 명칭의 적절성에서부터 시작해 당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어 가는 데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것은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진전되면서 우리 사회의 정치집단 간 근본적인 대립의 지점이 선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의 핵심에는 신자유주의 혁명 이후 현 단계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어떻게 대응하고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놓여 있다. 이것은 곧 시장이 우리 공동체가 생산한 부와 자원을 효과적이고 공정하게 관리하고 분배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의 질문이다.




시장자유가 분배를 해결할 수 있나

신자유주의는 자유로운 시장이 경제적 자원 증대의 가장 효율적인 기제일 뿐만 아니라 가장 공정하고 윤리적인 분배의 제도라는 신념에 기초해 있는 체제이다. 자유 경쟁의 효율성과 윤리성, 사적 영역의 자율성, 개인의 권리와 책임과 같은 가치들이 시장의 신뢰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그리고 공공성, 공동체, 평등과 복지는 이 가치들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소유의 자유의 전도사라고 할 수 있는 하버드대 리처드 파이프스는 복지국가 제도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단언한다. “오늘날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독재나 폭정이 아니라 평등이다. 바로 보상의 평등이다.” 보상의 평등에 대한 불만에는 시장의 분배 기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들어 있다. 그에게 복지란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발휘해서 정당하게 자기 몫을 가져간 사람들이 열등한 경쟁의 낙오자들에게 베푸는 시혜이다. 이 시혜가 국가나 공동체에 의해 강요될 때 소유의 자유는 결정적으로 침해받는다.

소유의 자유가 침해받는 것을 용납 못하는 것은 한국의 보수도 마찬가지다. 복지 포퓰리즘, 복지병, 복지 바이러스는 도덕적 분노의 표현이다.


복지국가가 신자유주의 신봉자들에게 알려주려는 것은 시장이 완벽한 체계가 아니라는 것, 따라서 시장에 의해 주어진 소유의 권리도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시장이 공동체의 부와 자원의 분배를 독자적으로 수행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제도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장의 실패를 보완해서 건강한 사회적 생태계를 유지하게 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복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세금밖에 없다.

복지국가가 신자유주의 신봉자에게 알려주고 싶은 또 하나의 팩트가 있다. 모든 노동과 생산은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를 선택했다고 해서 이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회의 전체적 자원과 부는 개별적인 경제 행위자들의 독자적인 이윤 추구 행위를 통해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게 서로 의존하면서 연결되어 있는 노동과 생산의 네트워크를 통해 산출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사회적 부의 생산과정에 함께 참여한 사람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인정해 주는 공동체적 행위다. 이것을 인정해 주는 공동체는 공정한 사회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이기도 하다.


개인 기본권과 사회안전 위한 일

‘무상’이라는 말은 정치적인 수사로도 그리 효과적인 말이 아니지만 무엇보다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복지는 무상이 아니다. 복지는 공짜도 아니고 시혜도 아니다. 복지는 이 땅에 태어나서 일하고 먹는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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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아 


“벌써 점심이네요. 밥시간 때마다 총장님 생각나요.”

“우리 지금 만나! 당장 만나! 홍대에서 만나!”

요즘 장영태 홍익대 총장에게 ‘밥 한 끼 먹자’며 ‘러브콜’을 보내는 트위터 사용자들이 부쩍 늘었다. 지난 21일 홍대 청소노동자를 지지하는 모임인 ‘날라리 외부세력’과 배우 김여진이 <조선일보>에 낸 광고의 영향이다. ‘홍익대 총장님, 같이 밥 한 끼 먹읍시다’라는 제목의 이 광고는 “홍익대라는 한 울타리에서 일하는 식구로서, 청소노동자들과 같이 밥 먹으며 해결 방안을 얘기해 보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 지난 21일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조선일보에 낸 광고.

 


수많은 트위터 사용자들이 이 광고를 앞 다퉈 알티(RT:추종자들에게 전송하기)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노조 탄압 문제가 온라인의 뜨거운 의제로 떠올랐다. 특히 정호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대변인이 ‘운수노동자’라는 필명으로 소셜미디어 사이트 <위키트리>에 올린 ‘개념광고 밥 한 끼 트위터서 폭풍 알티’란 기사는 27일 오전 현재 2000여 건의 리트윗(재전송)을 기록했다. <위키트리> 사상 최고치다. 클릭 2만4000여 건, 트위터 노출 230여만 건의 놀라운 기록도 이어지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withsmsg’는 “알티한 사람들과 한 끼씩만 해도 총장님 여생 혼자 식사하실 일은 절대 없을 듯......”이라고 쓰기도 했다.

     

▲ '밥 한 끼 먹자'는 멘션에 대한 트위터사용자들의 적극적인 리트윗.

 


홍대 청소 및 경비노동자 140여 명은 지난달 2일 노조를 결성하고 ‘한 달 급여 75만원, 하루 식대 300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대학 측이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면서 전원 해고됐다. 이들은 총장과의 대화를 요구하며 지난 3일부터 25일 째 대학 본관인 문헌관에서 농성 중이다.

그러나 노조원들의 농성과 광고를 통한 시민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홍대측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날라리 외부세력’ 회원인 이민우(39) 씨는 “광고를 낸 후 학교 쪽에서 별다른 얘기는 없었다”며 “지난 24일로 예정되어 있던 새 용역업체 선정도 미루는 등 우리들의 힘이 빠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세력’의 힘이 빠지길 바라는 홍대 측의 염원과 달리 홍대 노동자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은 오프라인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 22일 홍대 앞 놀이터에서는 김여진과 ‘날라리 외부세력’이 준비한 ‘우당탕탕 바자회’가 열려 500여만 원의 기금이 모였다.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모여든 300여 명의 시민들이 자원봉사에 나섰고 책과 음반(CD), 옷 등의 판매품을 기증했다. 노무사가 나와서 직무상담을 해주고 네일아티스트는 손톱을 칠해주고 인디밴드와 진행자(MC)는 바자회의 분위기를 띄우는 등 재능 기부도 이어졌다. 오뎅 커피 와플 등을 만들어 팔아 기금에 보탠 시민도 있었다. 이렇게 모인 돈은 농성 중인 홍대 노동자들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 22일 홍대에서 열린 우당탕탕 바자회. ⓒ 이영기


바자회를 기획한 한원(26) 씨는 행사가 끝난 후 참가자들에게 보낸 감사편지에서 “홍대의 풍경은 정치적인 문제도 사회적인 이슈도 아닌 인간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추운 날씨에 초등학생들이 반팔을 입고 노래와 춤을 추고, 귀찮은 일을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난리치는 모습은 잊지 못할 감동이었다”고 썼다.

또 다른 기획자 김정일(41) 씨는 “나도 현재 계약직이기 때문에 해고당한 비정규직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며 “특히 미국에서 공부할 때 청소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그분들 처지가 더욱 이해가 가고, 내 일처럼 생각됐다”고 밝혔다.   

바자회에서 물품 판매를 맡았던 김미영(31) 씨는 “내 어머니와 같은 여성들이 힘든 일을 하다 부당하게 해고됐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느껴졌다”며 “소외된 이들이 권리를 찾기 위해 내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홍대 노동자와 후원자들의 글, 그림, 만화, 사진 등을 기고 받아 책을 낸 뒤 수익금을 노조에 지원하는 방안 등 후속 사업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 27일 오후에는 최근 작고한 인디음악인 이진원(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추모공연장에서 번개(즉석모임)를 갖고 거리에 스티커를 붙이는 등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도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주간지 <시사인> 기자들은 노조경비로 광고비를 내고 ‘날라리 외부세력’이 제작한 광고를 설 합병호(2월5일자)에 싣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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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익 |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 3+1(무상의료·무상보육·무상급식·대학생 반값
등록금) 정책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여당은 물론 보수언론, 고위관료에 대통령까지 나서 비판하고 있다. 반론의 요지는 복지망국론, 세금폭탄론, 포퓰리즘이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줄기차게 들어오던 상투적 비판이다.

복지를 늘리면 나라가 망할까? 아니다. 흥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김영삼 정부 시기부터 양극화로 진행하는 조짐을 보였다. 1998년과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사회적 분열과 갈등, 불신과 대립의 병이 깊어졌다.
이는 단순한 불평등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사회적 자본 축적을 저해하고
성장잠재력을 고갈시키는 현실적 문제다. 또 하나의 큰 문제가 있다. 고령화다. 고령화라면 흔히 출산율 저하와 노인인구 증가를 떠올리지만, 핵심은 생산을 담당해야 할 청장년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다.
15~64세 생산가능 인구는 지금의 약 3500만명에서 2050년에는 2200만명으로 3분의 1가량 줄어든다. 21세기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을 가장 큰 문제는 인적 자본의 위축이다.

인적 자본의 확충을 위해서는 임신, 출생부터 아동, 청년, 여성, 중·고령자, 노인의 평생건강을 일관되게 보살펴야 한다. 학교교육을 창의력 교육으로 혁신하고 교육비 부담을 없애줘야 한다.
중·고령자에 대한
평생교육과 직업능력훈련을 대폭 강화하고 모든 아동과 여성에게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여성, 노인, 장애인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촉진하고 차별을 없애야 한다. 군복무를 단축해 청년의 입직 연령도 낮춰야 한다. 저소득층의 기본소득을 보장해 건강, 교육, 고용으로 나갈 바탕을 마련해줘야 한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오른쪽)이 17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의 무상복지에 대해 ‘세금폭탄’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21세기 복지는 인적자본 형성을 위한 최대 투자처다. 복지를 소비로 보고 복지에 재정을 쓰면 성장이 저해돼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20세기 구시대적 발상이다.
그때는 성장이 소득분배에 기여했다. 청년 남성노동력으로 나라 경제를 운영할 수 있었고 여성, 노인, 장애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복지를 소비로 또는 시혜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복지야말로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위한 투자다.


세금은 벌금이 아니다. 세금은 국가공동체 구성원이 공동의 번영을 위해 부담해야 할 분담금 같은 것이다. 우리들의 나라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발전을 위해 투자할 곳이 있으니 분담금을 더 내자, 하면 더 내야 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비난은 더더욱 맞지 않는다.
나라가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을 여태껏 안 하다가 이제 겨우 하자고 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라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이 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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