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영 |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


 

‘드디어’ 론스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ISD 중재재판을 청구했다. 여기서 ‘드디어’라고 표현한 이유는 론스타가 ISD를 청구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작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론스타가 예상과 달리 한·미 FTA가 아니라, 자신들의 페이퍼 컴퍼니가 소재한 벨기에와 우리와의 투자협정을 근거로 일종의 우회 제소를 선택한 점이다. 


 2006년 12월 서명한 뒤 지난 2011년 3월에야 발효된, ‘대한민국 정부와 벨기에·룩셈부르크 경제동맹 간의 투자의 상호증진 및 보호에 관한 협정’인 한·벨기에 투자협정은 그 문언만 놓고 보면 한·미 FTA와 비교해 그나마 좀 ‘착한’ 편에 속한다. 하지만 이는 협정의 적용범위, 절차 등 일반론적인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론스타가 한국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하기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아마 론스타로서도 자신에 대한 매우 좋지 않은 국내 여론 등 각종 ‘정치적’ 고려 끝에 이런 꼼수를 부리지 않았을까 싶다. 


론스타 쟁점 (경향신문DB)

론스타 측이 밝힌 것처럼 중재재판은 미 워싱턴 DC에 소재한 세계은행 산하기구인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당장 우리 정부를 대표해 법무부가 세계은행에 불려간 것은 아니다. 지금 단계는 한·벨기에 투자협정 제8조에 나와 있는 바로 그것이다. “…어느 한쪽 체약당사자와 다른 쪽 체약당사자 투자자 간의 모든 분쟁은 처음 행동을 취하는 분쟁 당사자가 서면으로 통보하며, 가능한 한 분쟁 당사자 간에 우호적인 방법으로 해결한다. 통보에는 충분히 상세한 각서가 첨부되어야 한다.” 즉 이 제8조에 의거해 론스타 측은 벨기에 한국대사관에 ‘통보’를 했고, 이제 ‘가능한 한 우호적인 방법으로’ 분쟁 해결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협정문에 규정된 통보시 첨부한 ‘상세한 각서’ 내용은 정부가 공개하지 않는 한 당장 알기는 어렵다.


아무튼 론스타가 제기한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론스타는 과거 외환은행을 국민은행, HSBC은행에 매각하고자 했지만 금융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계약단계에서 실패했고, 최종적으로는 올 1월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4조6634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론스타는 지금껏 한국 금융당국의 매각 반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시간보다 수년 더 길게 주식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래서 가격이 극적으로 하락했다”고 주장한다. 둘째, 론스타의 양도차액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가 “자의적이고 위법적이며 몰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미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양도소득세 3900억원을 돌려달라며 국세청에 청구한 상태다.


아마 올 11월쯤이면 누군지도 모를 3인의 중재 재판관이, 그들끼리 세계은행 밀실에 모여앉아 우리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매각 불승인이 옳았는지를 판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슴졸이며 그저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 99%는 ISD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또 이로부터 터럭만큼의 혜택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재판에서 패소한다면 4조6000억원을 ‘먹고 튄’ 론스타라는 사모펀드에 다시금 피같은 세금을 모아 배상을 해 주어야 한다. 혜택볼 일은 없지만, 물어줘야 할 의무는 있다. 먹튀자본에 대한 금융당국의 공익적 결정과 론스타의 사익 추구 사이의 분쟁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초국적 자본의 사익 앞에 공익과 공공성이 끊임없이 위협받는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일상이 이제 탄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ISD가 논란이 될 때마다 정부 측은 말했다. 우리가 체결한 수많은 투자협정이나 FTA에 ISD가 포함되어 있지만 단 한번도 소송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이다. 이제 이들이 발언하게 하자. 만에 하나 대한민국 제1호 ISD소송에서 패소하면 어떻게 할 건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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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독일 등 서유럽 국가에서는 노동자들이 직업병으로 사망할 경우 ‘기업에 의한 살인’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인체에 치명적으로 유해한 작업환경에서 오랫동안 일하도록 방치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살인이나 다름없다는 뜻일 터이다. 또한 이 표현에는 직업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은 반드시 막을 것이며, 해당 기업에는 강력한 법적 제도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담겨 있다고 하겠다.


삼성전자 액정화면(LCD) 천안공장에서 일하던 중 재생불량성빈혈에 걸려 13년 동안 투병해온 윤슬기씨가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하다가 악성 뇌종양에 걸려 투병하던 이윤정씨가 사망한 것이 불과 4주 전인데 또다시 윤씨의 부음을 접하게 되니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윤씨의 사망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및 LCD 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백혈병 등 업무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질병으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모두 56명에 이르게 됐다. 어떻게 해서 단일 업체에서, 그것도 세계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잇따라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학계와 법조·의료·노동계 인사들이 삼성 직업병 피해 인정 촉구 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2010년도. (경향신문DB)



삼성은 이제 56명의 인명이 희생된 이 중대한 사안 앞에서 직업병에 대한 인식과 발상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한다. 삼성은 그동안 직업병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사망자 속출로 비판이 거세지자 2년 전에는 ‘인바이런’이라는 해외 업체를 통해 ‘반도체 공장 노출평가’라는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결론은 “모든 위험요소는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안전한 곳이라면 어떻게 20대 초반의 젊고 건강한 여성들이 가족력과는 상관없는 질병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삼성은 자신의 입맞에 맞는 업체를 동원해 도출한 결과만을 되뇔 것이 아니라 관련 정부부처와 시민단체 전문가들까지 함께 참여하는 공동 역학조사가 실시되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산업재해 승인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행정소송을 낼 경우 재판에 개입해 방해하거나 유족들을 회유·협박하는 등의 행태와도 결별해야 한다. 


무엇보다 삼성은 직업병에 의한 사망은 ‘기업의 살인행위’라는 뼈아픈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는 정부에도 요구되는 대목이다. 따지고 보면 ‘기업에 의한 살인’이 근절되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 까닭은 정부가 이러한 범죄를 치죄(治罪)하지 않고 묵인·방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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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 한국지방발전연구원 이사장


 

19대 총선을 전후해 터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경기동부연합이라는 특정 정파는 물론 통진당과 민주당, 나아가 진보진영 전체를 커다란 위기로 몰아넣었다. 현재는 통진당 스스로 관련자들에게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고 출당조치에 착수한데 이어 거대 여야 정당들이 관련 의원들에 대한 제명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러한 출당, 의원직 사퇴나 제명 그리고 검찰의 소추로 통진당이 정상화되고 야당과 진보진영 전체가 제자리를 되찾아 한국정치가 건전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 


 우선, 통진당 사태의 본질인 불법적 당 운영과 공직선거에서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종북성’이라는 기준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의 위반’이라는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러한 범죄적 행위에 대하여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실 규명이며, 이는 수사권을 가진 행정부의 책임인 만큼 정부의 수사를 예의주시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경향신문DB



그런데 현재 많은 이들은 통진당 사태의 본질을 ‘종북성’이라는 단어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이 ‘종북성’이라는 단어부터 잘 따져 볼 필요가 있다. 문자의 뜻은 “북한을 따른다”는 것인데, 그것이 북한의 사상과 체제를 선호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한 정부의 지령을 따라서 행동한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단순히 종북성이라는 말로 얼버무릴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는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민주국가에서 개인은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가지며, 모든 사상과 신념은 건전한 시민적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논의되고 국민적 선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북한의 사상과 체제에 대한 선호를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먼저 우리의 민주적 기본 질서 속에서 ‘사상의 자유를 부인하는 사상’까지 수용할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만약 그러한 사상까지도 수용하겠다면 그러한 사상을 대변하는 세력이 국정운영 즉 국가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사상의 자유를 부인하는 사상이 국가의 공권력 즉 강제력에 참여하여, 다른 사람이 가진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고 제약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여기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은, 북한모델은 말할 나위도 없이 레닌주의도 반대하는 유럽식 민주사회주의와 심지어 사회민주주의까지 ‘종북성’이라는 단어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다. 의회주의를 존중하는 흐름까지 종북으로 매도하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으로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통진당 사태는 일차적으로 진보진영 스스로에 책임이 있다. 지난날 민주화 투쟁과정에서 복원된 급진적이고 극단적인 사상을 진작에 정화하여 걸러내지 못한 책임이다.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몰락이라는 첫번째 기회를 맞아 대부분이 이른바 전향을 하였지만, 극소수로 남은 과거의 동료에 대한 연민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이들 잔존세력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애써 눈감아 왔기 때문에 오늘 진보진영 전체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진보진영은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는 나라 전체를 책임질 수 있는 성숙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자신만이 진리와 선을 독점하고 역사의 흐름을 선도할 수 있다는 의식을 내려놓아야 하며, 일부 극단적인 세력에 대해서는 과거 민주화의 동지였다는 점만을 의식하여 비호할 것이 아니라 단호하게 꾸짖고 확고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야권연대 등의 일회적 대선전략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상기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이 진보진영이 살고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보수진영 역시 금도를 발휘해야 한다. 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반한 행위에 대한 정부의 사실 규명과 더불어 진보진영의 자정 노력을 조용히 지켜보는 양식을 발휘하는 것이 오히려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성숙하고 당당한 자세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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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 |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


 

세계 일등을 자랑하는 대형 교회 큰 목사님이 사주인 신문에 ‘석가탄신일을 맞이한 불교계와 불자들께 축하드립니다’라는 광고가 실렸다. 드디어 기독교도 다른 종교에 화해의 손길을 뻗었구나, 라고 생각하며 광고를 보는데 어이쿠, 이건 꺾기도(모든 것을 뜬금없이 꺾어 상대방을 공황상태에 빠져들게 하는 기술)! 그중에서도 광고를 이용한 축꺾(축하꺾기) 아니던가!


 꺾기도를 시전한 주체는 모 교회 담임목사와 교역자, 당회원, 성도 일동이다. 제목만 보면 이웃 종교의 경축일을 축하해 주는 화해의 메시지처럼 보인다. 그런데 본문을 조금만 읽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꺾인다. 석가탄신일은 ‘이웃집의 아름다운 경사’이고, 따라서 세계인들이 지키는 성탄절과 차이가 있다며 포문을 연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 국민 네 사람 중 한 사람이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며, 정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 구제 기관의 70% 이상이 기독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고 한다. 세상에. 성경에서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고, 자기를 높이기보다는 낮아지라고 했는데 이들은 성경의 말씀도 대놓고 꺾는다.


연등으로 뒤덮인 청계천 (경향신문DB)



하이라이트는 연등행사 전기료에 대한 질문이다. 올해부터 석가탄신일 연등행사를 정부 주도의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행사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야 되는데, 이를 거부하는 국민들 소송이 있을 때 정부는 책임질 수 있느냐고 물어본다. 정신이 혼미해진 다람쥐~. 축하하는 척하며 깨알같이 꺾는다.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가 국가의 세금에 그렇게 민감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민망하다.


불교도 지지 않는다. 축하꺾기도에 맞서 스님으로 구성된 쌍둥사를 보냈다. 마치 쌍둥사처럼 비슷해 보이는 여러 스님들이 관광호텔 스위트룸에 모여 밤새 도박을 하고, 맥주도 마른 오징어 안주에 드시고, 담배까지 태우셨다. 문제가 드러나자 도박은 간단한 놀이, 술은 곡차, 담배는 연초로 꺾어주신다.


축하하면서 전기료 내 놓으라는 축하꺾기와 산사를 나와 관광호텔에서 밤을 새우며 도박과 술과 담배로 정진하시는 정진꺾기는 물질주의 탐욕에 빠져든 한국 종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들은 종교를 꺾어버린다. 아니, 그 반대다. 종교가 젊은 세대를 뜬금없이 꺾어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축하꺾기와 정진꺾기에 치명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우리는 어디서 치유를 받아야 할까? 누구에게는 불온하거나 불경할지도 모를 만화 한 편을 소개한다. <세인트 영맨>이라는 일본만화다. 2008년 시작된 만화로 일본에서 크게 히트했는데, 무려 5년 만에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세기 말을 무사히 넘긴 예수와 붓다, 붓다와 예수가 서로 절친이 되어 하계(지상)에 휴가를 와서 함께 산다는 이야기다. 기독교도이건, 불교도이건 그야말로 초대박급 신성모독일까?


상상력은 전복적이지만, 근본을 뒤집지 않는다. 어떤 개그라도 그 종교의 본질에서 나온다. 예컨대 비 오는 날 극장에 간 붓다와 예수. 붓다는 스포일러를 광적으로 싫어해 예수가 사온 팸플릿을 덮어버린다. 그러자 예수는 스포일러를 당해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 이유인 즉, 예수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세계의 종말을 대놓고 스포일러하고, 책으로도 내버렸기 때문이란다. 예수는 붓다에게 “너는 성서를 읽지 않는 게 좋아”라고 충고한다. 영화 스포일러를 종말에 대한 성서의 예언으로까지 연결하는 탁월한 조크다. 


이어 붓다가 자신의 전기영화를 꼬박꼬박 체크한다고 하자, 예수는 보기는 봐야 되겠지만 못 본다고 말한다. “나는 고어라거나…피나고 아픈 건 진짜 못 봐서…”라며, 속으로 ‘<패션오브크라이스트>는 예고편만 봐도 기절이야…’라고 말한다. 골고다의 기억이 트라우마가 된 사랑의 예수답다. 이렇듯 <세인트 영맨>은 예수의 가르침을 꺾지 않는다. 오히려 그대로 정확하게 전하려고 한다. 단지 그 안에서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문제는 예수와 붓다가 친구라는 상상력이다. 전복적 상상력은 상대방에 대한 인정에서 시작된다. 사랑의 종교인 기독교, 자비의 종교인 불교. 두 종교가 친구가 되어 상대방을 인정한다면, 사랑과 자비가 상호작용해서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평안해질 것이다. 더불어 지난 5월에 있었던 광고를 통한 축하꺾기나 호텔에서 벌어진 정진꺾기와 같은 공격에 대한 내상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와 붓다, 붓다와 예수가 절친이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상상력을 권한다.


그래도 여전히 이 상상력이 못마땅한 분들이 계시다면 한번 생각해 보자. 예수님이 타인에 대한 사랑도 배려도 구제에 대한 숨김도 없이 모든 걸 쏟아 놓은 광고를 보며 즐거워하셨을까? 부처님이 산사에서 내려와 밤새 도박을 하다 새벽 예불에 참석한 스님들의 예불을 받으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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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 | 칼럼니스트


 

잡지사 기자 생활을 하며 가장 재미있었던 순간은 2002년 무렵인가, ‘나쁜 남자들, 결혼을 폭로하다’라는 기사를 쓸 때였다. 겁도 없이 결혼적령기의 처자로서 결혼 제도를 불신하고 동거를 예찬하는 글을 몇 번 쓰고 났더니 한 영화사로부터 제안이 왔다. 당시 화제의 영화였던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개봉을 앞두고 원작자인 이만교씨를 중심으로 ‘결혼과 성에 대해서 가장 솔직하게 얘기해 줄 수 있는 다섯 남자들을 한자리에 모아줄 터이니 화끈한 기사를 한 번 만들어보라’는 요청이 들어온 거다. 



(경향신문DB)



솔직히 이게 웬 호박이냐, 싶었다. 때는 바야흐로 5월 웨딩 시즌, 결혼에 대한 다섯 남자들의 이야기가 어찌나 신랄하고 웃기던지 나중엔 2시간짜리 대담 육성 파일을 잡지 부록으로 붙이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때는 제법 경제적으로 활기찬 시절이라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진 구속력이 쟁점이었다. 


“연애 감성은 자꾸 새로워지는데 제도는 업데이트가 전혀 안 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새로운 감성과 욕망으로서의 인간이 등장했는데, 제도는 여전히 구닥다리라 문제다, 그래서 제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책을 낸 거구요.” 


원작자 이만교의 말을 잇는 뮤지션 M의 얘기가 압권이었다. 


“까놓고 얘기하면, 동의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사랑하고 섹스하고 싶어요. 하지만 전 회사원들처럼 ‘오방’ 예쁜 ‘나가요’ 하고는 정말 ‘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결혼에 대한 중압감, 법적인 제한, 이런 것부터 싹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누굴 만났을 때, 정말 사랑하면 섹스 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때 우리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어떤 사람들한테 결혼은 확실히 미친 짓이다, 


하지만 제도가 가진 구속력이라든가 인습에 그다지 얽매일 필요는 없다. “진정 사랑이라 여기면 그게 불륜이든 미친 짓이든 마음대로 해라. 나름대로 갈등하고, 실수도 하고, 고민도 하면서 자기 식대로 인생을 완성하는 거다.” 음, 좋다. 누군가는 이런 말도 했다. “관습적으로 모범적인 결혼 생활만으로 일생을 마치면 그것만큼 한심한 삶도 없는 것 같다. 찌라시 같은 도덕만큼 신물나는 게 없으니까, 도덕은 주체적이어야 하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의문점도 있지만 그땐 개인의 자율성을 억압하고 꼬장꼬장한 인습이나 관습을 워낙 재수 없다고 생각하던 때여서 박수 치며 좋아라 했던 속 시원한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여 년이 흐른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결혼 그 자체를 기피하는 시대가 됐다. 그것도 매우 경제적인 이유로. 남자들은 비정규직이라거나 아직 번듯한 전셋집을 마련하지 못해서 결혼을 미루고, 여자들은 직업적인 커리어를 쌓다보니 서른을 훌쩍 넘기게 되었는데 이젠 쓸 만한 남자가 도대체 남아 있지 않다는 거다. 특히 이래저래 기피 대상인 고학력 여성들과 고졸 출신 남자들이 문제란다. 결국 학벌과 돈의 있고 없음이라니 시시하다.


그래서 결혼 대신 동거를 해보라고 권하고 싶지만 이게 또 그리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장치가 제대로 갖추어 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선 여성에게 더욱 불리하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독립할 나이가 됐다 해서 일단 동거를 한다 치자. 그러다가 덜컥 아이가 생기면? 결혼까지 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복잡해진다. 그러나 이런 모든 점을 서로가 미리 충분히 상의하고 그에 따른 대비책을 세워 놓는다면 동거가 최선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동거를 하면 일단 몇천만원씩 든다는 예식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전셋집도 필요없다. 월셋집이면 충분하다. 심지어 내 친구는 가방 하나 싸들고 남친의 하숙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우리 시대의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가난과 결핍을 무서워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무슨, 번듯한 직장과 돈이 있어야지” 하는 어른들 말씀도 헛소리만은 아닐 거다. 그렇다면 철저하게 부모 도움 없이 방 한 칸짜리 월세방에서 가난을 함께 경험하며 알아보는 거다. 과연 사랑보다는 돈이 중요한지, 돈보다는 역시 사랑인지. 아무도 모른다. 경험하지 않고는 누구도 그 답을 줄 수 없는 거다. 각자 다 다르니까.


동거는 사랑하는 남녀가 타인과 함께 산다는 것의 문제를 탐색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서로 극복해야 할 차이와 태도, 봐주기 힘든 습관, 가사 분담의 문제, 돈을 둘러싼 치사한 갈등 등 함께 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문제들을 경험하며 한 여자, 한 남자를 거짓 없이 알아가는 거다. 그렇게 한 사람을 알며 배우며 살을 맞대고 사는 거다. 그 기간이 길어지면 어쩜 권태기를 맞고 누군가 바람 피우는 문제까지 경험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러고도 아직 얼굴을 맞대고 웃을 수 있고 대화할 수 있다면 그때 결혼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 


니체 오라버니가 하신 말씀이 있다. “결혼을 선택하기 전에 이런 자문을 해봐야 한다. 너는 이 여자(남자)와 늙을 때까지 함께 이야기할 자신이 있는가. 사랑은 일시적이지만, 함께 지내는 대부분은 대화이기 때문이다.”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결혼은 마흔이 아니라, 50, 60세까지 미뤄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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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일구 | 회사원


 

요즈음 도시농업이 화두가 되고 있다. 도시농업 선포식을 개최하고, 세미나를 열고, 도시농업교실을 개강하고, 텃밭을 분양하고, 텃밭이 조성된 아파트도 생겨나고 가히 붐이라 할 만하다. 


도시농업은 도시민이 도시지역의 유휴공간을 활용하는 농사활동을 말한다. 도시민에게 쾌적한 녹색공간을 제공하고 소일거리와 정서순화를 통하여 도시민의 삶의 질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농사를 ‘락(樂)’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농사를 ‘업(業)’으로 하고 있는 농업인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걱정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서울 강동구 주요 도시농업 사업 (경향신문DB)



 첫째, 도시와 농촌 간의 교류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농업인은 주5일 수업제가 전면 실시되면서 도시민의 농촌체험이 늘어나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 기대와 달리 도시농업이 활성화되면서 도시민이 농촌이 아닌 도시텃밭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도농 간의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주요인은 수입개방에 따른 과잉공급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2020년까지 도시텃밭, 주말농장을 3000㏊ 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면적은 도시텃밭에 주로 재배되는 품목인 상추의 국내 총 노지재배면적(709㏊)의 4배보다 많다. 농산물은 생산량이 조금만 증가해도 가격이 크게 하락하는 특성 때문에 도시농업으로 인해 일부 엽채류의 가격이 하락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예산과 행정력의 분산을 걱정하고 있다. 도시농업은 도시민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농촌, 농업, 농업인을 지원하는 부서에서 도시텃밭을 조성하고, 도시민을 대상으로 농사교육을 하고, 도시농업 전문가를 육성한다고 하니 농업인이 답답한 것이다.


도시농업은 도시를 생태적으로 건강하게 해줄 것이다. 또 도시민은 도시농사라는 ‘락’을 통해서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민의 ‘락’을 위해서 농업인의 ‘업’이 위축되지 않는 방향으로 도시농업을 접근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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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옥 | 경기대 교수·국가보훈학


지금 왜 사는가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현재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개인과 가족의 안락한 삶을 위해 애쓰며 살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애국심, 조국애, 국가를 위한 헌신과 충성 같은 단어들은 교과서에나 나오는 낯설고 딱딱한 문구가 되어 버렸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지난 시절, 개인의 안락함을 접어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했던 분들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태극기물결 (경향신문DB)



 그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얻어진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을 잊고, 감사해야 하는 것에 무관심한 채 몰염치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애국심과 국가 발전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래서 강대국을 이루었던 모든 국가들은 언제나 국민들의 애국심 고취를 위해 노력했고, 국가유공자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은 강대국이 되기엔 아직 한참 멀고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은 아직까지 국가유공자와 그 유가족에 대한 적법한 예우와 지원이 어떠해야 한다는 보훈에 관한 기본법조차 부재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일관성이 결여된 보훈정책이 난무하게 되었고, 국민통합과 애국심 고양의 근간이 되어야 할 국가보훈정책이 오히려 보훈 대상자들과 일반 국민에게 불신과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가는 그간 국가보훈 이념과 목적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당시의 정치·사회적 필요에 따라 임시방편으로 제정된 개별법들을 체계적으로 일원화하는 일에 먼저 주력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근대화와 민주화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국가 정체성과 국민통합의 근간을 이루는 보훈정책을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면, 이제라도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외적 성장에 걸맞은 보훈 기본법과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은 한반도에서 아직 전쟁이 완전히 종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급속한 경제적 성장과 함께 가치관의 변화를 거치면서 국가공동체적 의식과 국가를 위한 헌신과 희생에 대한 당위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져 가고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 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며, 우리에게 애국심의 의미와 필요성은 무엇인지, 그 소중한 가치가 대대손손 이어질 토대는 제대로 마련되어 있는지 우리 모두 진지한 성찰을 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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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 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운전대 잡으면 적자인생·신용불량자요, 더러워서 운전대 놓으면 실업자에 노숙인생.” 요즘 화물트럭·덤프트럭을 모는 운송노동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얘기다. 지난 5년간 기름값은 60%나 폭등했는데, 임금에 해당하는 운송비는 제자리걸음이라 화물운송·건설운송 기사들의 삶은 결딴나고 있다. 신문에는 연일 스페인·그리스 위기로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있다는데 주유소 기름값은 요지부동이다. 운송노동자들 삶이 결딴난 것과는 정반대로 4대 정유사는 수조원대 이윤을 올리며 돈벼락을 맞았다.


이게 어디 화물·건설 운송노동자만의 문제인가? 요즘처럼 노동자·서민들이 먹고살기 팍팍한 시절은 없었다. 법정 최저임금(시급 4580원)을 받거나 그것조차 못 받는 노동자가 500만명에 이른다. 건설 현장과 조선소 곳곳에서 폐업이 벌어지고 하청업체가 부도나서 못 받는 체불임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사장들은 근속 1년이 되기 전에 자르거나 업체 이름만 살짝 바꿔서 피 같은 퇴직금을 떼어먹는다. 요즘은 아예 일감 없으면 나오지 말라며 임금도 안 주는 무급휴가(속칭 ‘데마치’)가 판을 친다.


(경향신문DB)

주 40시간제라는 미명 아래 유급이던 토요일 임금을 강탈당한 노동자가 수백만명이다. 틈만 나면 야근에 휴일까지 나와서 일하는데 시간외수당도 못 받는 공짜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부지기수다. 한때 장시간 노동을 근절하고 노동시간 단축해서 일자리를 만들자던 고용노동부도, 재벌들과 경제부처의 십자포화를 맞아 꼬리를 내린 상태이다.


지금이야말로 ‘민생 살리기 국토대장정’을 해도 모자랄 판인데, 총선 때 열심히 표를 구걸하던 정당들은 대권·당권 다툼에 여념이 없다. 한국의 1000대 기업 등기임원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3억7670만원으로 전년보다 무려 23.8% 올랐다고 한다. 지난 4년간 법정 최저임금은 고작 평균 5%가 올랐는데 말이다. 먹고사는 것 자체가 팍팍한 노동자들 속에선 열불이 난다.


참다못한 운송노동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화물연대와 건설노조가 이달 말 총파업을 벌이기로 한 것이다. 이들의 요구는 △노동기본권 보장 △기름값 인하 △운송료 인상, 다시 말해 먹고살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기름값’을 ‘물가’로, ‘운송료’를 ‘임금’으로 바꾸면 이들의 주장은 국민 모두의 절실한 염원인 셈이다. 이런 게 바로 ‘민생(民生)’ 아닌가!


“우리더러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이랍니다. 시키는 대로 일하는 신용불량 사장도 있나요?” 화물·건설 노동자들은 ‘특수고용’이라는 굴레까지 짊어지고 있다. 먹고사는 것은 물론 노동조합 활동도 못하게 해놓은 것이다. 물량과 일감이 줄어들어도 그 손실을 고스란히 물어야 하고, 기름값·도로비가 올라도 운송노동자에게 책임을 지운다. “운전대 잡으면 적자인생”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는 생활, 과로와 스트레스로 병들고 죽어가는데, 노동자가 아니라며 산업재해 인정도 안 해준다. 게다가 요즘 건설현장은 수천억원대 체불임금까지 발생하고 있다. “하청업체가 나몰라라 하고 도망갔으니 당연히 체불임금은 원청이 책임져야죠. 그런데 자기들은 책임 없다며 발뺌하니 어쩝니까. 죽어라 일했는데 돈도 못 받는다면, 원청이 해결할 때까지 운전대 놓을 수밖에!”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통합진보당도 놓아버린 민생 살리기 최전선에, 노동조합 결성의 권리마저 봉쇄당한 화물·건설 노동자들이 섰다. “먹고살 임금과 노동3권을 모든 노동자에게!” 이달 말, 서울광장과 전국의 건설현장 및 부두에서, 운송노동자들이 먼저 길을 연다. 먹고살기 팍팍한 모든 노동자들, 운전대를 놓은 이들을 따라 희망의 길을 함께 열어보자.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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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형철 |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환경부의 존재감이 없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환경기자들조차 환경부를 찾는 일이 드물 정도다. 물론 환경 이슈가 없거나, 상황이 좋아진 건 아니다. 환경부가 ‘자연환경, 생활환경의 보전 및 환경오염방지에 관한 사무(정부조직법 34조)’를 오랫동안 방치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결과다. 


환경부의 일탈은 4대강사업 추진 과정에서 명백히 두드러졌다. 4계절 조사를 원칙으로 하는 환경영향평가를 불과 3개월 만에 끝내는 등 환경 행정의 기본이 되는 제도를 무력화시켰다. 나중엔 4대강사업을 하면 수질이 좋아진다는 거짓말까지 했다.


대강 사업 환경영향평가 주요 협의내용과 환경단체 주장 (경향신문DB)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립공원, 수변구역 등 법적보호지역의 면적이 줄어든 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이명박 정부가 처음이다. 이는 기존 미개발 지역들을 전국적으로 개발하는 과정에서 제동을 걸거나 보호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하다못해 환경오염 단속조차 허술해졌는데, 폐수 배출이나 매연점검 건수는 물론, 적발률과 행정조치 강도도 현저히 낮아졌다. 


그나마 수질문제가 불거지지 않은 것은 지난 3년 동안 강수량이 많았고, 특히 봄철 강수량이 풍부했던 탓이다. 하지만 초겨울에도 녹조가 발생하고, 낙동강 하류 주민들의 식수원 불신은 최고조일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8년 세계 9위에서 2010년에 7위까지 올랐고, 국민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최고라는 미국보다도 더 많아졌다. 몇 년 동안 한국에서는 환경 정책과 담당 부서가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환경부의 관심은 전기차 생산지원, 물산업과 4대강사업의 해외진출 지원 등이다. 친환경골프장 인증제도 추진, 개발업체들을 위한 ‘환경영향평가 고객초청 설명회’, 4대강사업의 후속 작업인 4대강 생태축 조성사업(2조5000억원 규모, 수변 조경사업)도 주요 사업이다. 또한 국립공원 케이블카 건설지원에 나서면서 북한산국립공원은 직접 운영할 계획까지 마련한 상태다. 환경부가 환경보존과 보호의 책임을 외면한 채, 환경관련 산업육성부서로 변질된 것이다.


환경부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권력을 탐한 인사들이 환경부를 장악한 탓이 크다. 한반도대운하와 4대강사업의 전도사였던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도 그렇지만, 주요 현안이나 환경부의 방향에 대해 침묵하는 유영숙 현 장관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다. 기껏 “플러그 뽑고 종이컵 안 쓰고… 녹색 생활 나부터 실천을”, ‘친환경패션 인증샷’ 등의 기사에나 등장하는 그는 환경부 장관이 아니라, 환경부 홍보대사를 맡았어야 했다. 차관들과 고위직 공무원 발탁, ‘강을 운하로 만들면, 배가 다녀서 수질이 좋아진다’고 주장해 ‘스크루 박’이란 별명을 얻은 박석순 교수의 환경과학원장 취임도 환경부가 4대강사업 주역들을 위한 전리품쯤으로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영숙 현 환경부장관 (경향신문DB)

더 근본적인 문제는 환경부의 정체성 혼란이다. 환경부 일부에서는 예산이 늘어난 것을 두고(2008년 3조516억원, 2012년 5조1515억원) 부서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개발사업과 4대강사업의 후속조치로 하수처리시설이 늘어나고, 전기차 개발에 예산을 지원하는 것으로 우리의 환경이 어떻게 살아난다는 것인가? 건설과 기업을 위한 부서에 환경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이 정도의 일을 위해 정말 장관까지 두어야 하나. 


환경부 폐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환경부는 해체되어야 한다. 미국의 EPA(환경청)는 예산과 인력이 아니라, 규제와 보전에 대한 확고한 자기 위상과 역할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권력과 권세를 위해 감시와 견제의 짐을 내려놓은 한국의 환경부는 그 존재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6월5일 환경의 날. 화려한 기념식에서는 수많은 훈장과 표창들이 뿌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향연일 뿐, 그것이 환경부의 존재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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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훈 건축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개인을 국가가 기억하고 배려하는 것은 지극히 아름답고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일은 올곧게 지속해야 하며, 관련 시설의 필요에 대비하고 유지관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립묘지 관리에 땀 흘리는 일꾼들께 박수! 그리고 절! 


현충원이 비좁아 모실 수 없는 국가유공자를 위해 마련한 국립묘지 중 하나인 국립이천호국원엘 갔다. 묘역별로 야외벽면 납골당 형식을 갖추었는데 줄 맞추어 여러 단으로 모시고 있더라. 좁은 면적에 여러분을 모시는 데 효과적인 고밀도 납골방식, 말하자면 납골 아파트다. 세상이 변하면 안장하는 방식도 바뀐다. 아니 삶의 방식이 바뀌니 죽음을 기리는 방식이 바뀌는 것이다. 그렇다,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라 그렇게 붙어 있고 이어지는 것이다. 죽음도 삶처럼 당연하고 지극한 일이다.



자연스러운 죽음이 어디 혐오할 일이겠는가. 그러니 도시에도 꼭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시설만 갖출 것이 아니라 죽음과 관련된 시설이 있어도 괜찮겠다. 아니, 죽은 자를 위한 시설이야말로 살아 있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시설 아닌가. 도시 한가운데 장묘시설(납골당이나 공동묘지)이 있다면 우리는 늘 죽음을 지켜보며 오늘을 되짚고 곱씹을 것이다. 당장 사는 것만 다투지 않고 죽음까지도 보듬고 살피는 도시가 진정 사라지지 않을 삶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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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배 | 조선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세계 소프트웨어(SW) 시장 규모는 2012년 1조1081억달러(1200조원)로 휴대폰 시장의 10배가 넘고, 메모리와 비메모리를 합친 반도체 시장보다 4배나 더 크다. 또 SW는 높은 부가가치율, 취업 유발 효과와 함께 제조·서비스업과 융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SW의 부가가치율은 49.6%로 제조업(24.6)의 두 배가 넘고 매출 10억원당 고용창출은 16.5명으로 제조업 10.5명보다 훨씬 높다. 


오늘날 세계 경제는 SW가 강한 나라가 지배하고 있다. 세계 SW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기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새로운 SW의 생태계를 만들어 지금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SW 산업 현실은 어떤가. 대한민국에는 ‘SW 산업이 없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 SW 시장 규모는 1.8%인 20조원에 불과하다. 또한 임베디드 SW는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패키지 SW도 해외 기업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75%에 달한다. 불법 복제율도 40%를 넘어 여전히 후진국 수준이다. 세계 SW 시장에서 IT 강국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 중 14위로, 2010년 글로벌 500대 SW 기업 중 한국 기업은 하나도 없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국지사가 국내 벤처기업 등에 보낸 우편물 중의 하나. (경향신문DB)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경제부는 여전히 하드웨어 제조업 마인드와 조직 시스템으로 움직이고 있다. 근본적으로 SW 산업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하드웨어 머리를 가진 관료들이 SW 산업 정책을 입안하고 일선에서 이를 집행하고 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전 세계적인 IT 재편과 트렌드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까닭에 지금과 같은 분산된 정부 정책 구조하에서는 제대로 된 대응과 정책 방향을 잡을 수 없다. 


따라서 IT 산업이 ‘외화내빈’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SW의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철폐하고 지적재산권 인정, 국내 상용 SW 유지보수율의 현실화, SW 개발 고급 인력 양성, SW 전문 싱크탱크 설립 등 정부와 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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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구 | 연세대 교수·정보산업공학


 

최근 고령운전자의 안전을 다룬 기사가 자주 눈에 띈다. 기사의 대부분은 고령운전자의 현황과 전체 교통사고에서 고령운전자들이 차지하는 부분을 부각시키고, 사회적·제도적 측면에서 고령운전자들의 안전운전을 강조하는 것들이었다.


고령운전자들의 사고율과 사망률은 다른 연령대보다 높고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도로환경 개선, 고령자 안전교육프로그램의 도입, 그리고 운전면허의 갱신제도 등이 제시된다. 그런데 상당수의 방안들은 고령운전자를 도로 위에서 배제하려는 측면이 강하다. “당신은 이제 70세가 되었으니 운전면허를 박탈하겠다. 남은 생애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는가? 고령운전자 문제를 단순히 은퇴 세대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된다. 운전에 대한 기능적 측면에서 접근해 운전기능을 최대한 도와줌으로써 안전운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그 대처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경향신문DB)



각종 첨단 기능들을 장착한 신차들은 운전의 편리함과 안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첨단 장비로 무장한 자동차들은 운전이라는 일차적인 목적보다 운전 이외의 이차적인 일에 몰두하게 한다. 그 결과 운전의 복잡도 증가와 주의력 분산을 야기하여 운전의 안전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 최근 DMB시청으로 인한 사이클 선수들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은 이러한 위협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신체적 나이가 증가하거나 정보통신기기들에 대한 친숙성이 떨어질수록 위험도는 더 증가한다.. 


안전운전에 대한 첨단 기능들을 보면 대표적으로 차선이탈방지, 충돌방지, 주차보조 시스템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첨단 시스템보다 자동차에 장착된 각종 기본 기능들에 고령자들의 안전운전을 방해하는 측면은 없는지, 새로운 첨단 기능에 고령자들의 안전운전을 저해하는 요인은 없는지 체계적으로 연구해 고령자 친화형 자동차 개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신체적 기능 저하뿐 아니라 감각과 지각, 그리고 인지적인 능력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지침도 포함해야 한다. 고령자의 배제가 아니라 배려를 통해 안전한 운전을 돕고 사회적 활동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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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어떤 기관인가. 좁은 의미에선 3심제 사법시스템의 최고법원이지만, 넓은 의미에선 시민의 삶을 좌우하는 가치에 관한 판단을 내리고 이를 통해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추천위)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추천한 대법관 후보자 명단을 보면, 대법원이 관료사법의 승진체계에 정점을 찍는 최종 목적지로 전락한 듯하다. 13명 중 현직 법관이 9명, 현직 검사가 3명에 이른다. 교수 1명이 들어갔지만 그 또한 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출신 대학을 살펴보니 서울대가 9명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성과 변호사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전교조 소속 교사들에 대한 판결을 밝히고 있다. (경향신문DB)


대법원이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고루 반영하려면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 확보가 필수적이다. 학력과 경력이 비슷하면 갖고 있는 생각도 비슷해지기 때문이다. ‘다른 삶’을 살아온 여성 법조인과 재야법조인의 대법원 입성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후보로 거론된 여성 법관에 대해 ‘재산이 많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배제론을 폈다고 한다. 특정 법관의 경우 남편이 야당 정치인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민일영 현 대법관은 임명 당시 부인(박선영)이 자유선진당 의원 신분이었다. 배우자가 보수 성향이면 괜찮고, 진보 성향이면 결격사유인가. 여성 후보군이 협소하다면 ‘기수 파괴’를 통해 후보군을 늘려 인선하면 된다. ‘하늘의 절반’이 여성인데, 13명 중 단 한명도 여성으로 채우지 못했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득력이 없다.


추천위는 “대법관으로서 갖춰야 할 법률지식이나 인품은 물론 국민과 소통하고 봉사하는 자세까지 심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추천위가 회의를 시작한 지 두 시간도 안돼 후보자 명단을 내놓은 걸 보면, 자료에서 밝힌 대로 “치밀하고 강도 높은 검증작업”이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당연직 추천위원인 법원행정처장과 법무부 장관이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뜻을 대변했을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다수 후보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고 BBK 사건 수사책임자까지 포함된 점이 이를 방증한다.


우리는 이번 대법관 후보 인선이 ‘대법원 구성의 다양화’라는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따라서 이번 후보 추천은 철회돼야 하며, 대법원은 새로운 추천위를 구성해 재추천을 의뢰하는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시 추천되는 후보 명단에 여성과 변호사가 포함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기존 후보 중 4명을 선택해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할 경우 국회는 인사청문 절차를 통해 이를 저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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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4대강 사업 입찰 때 대형 건설회사들이 담합한 사실을 확인하고 5일 전원회의를 열어 제재 수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4대강 사업에 참여한 20여개 건설회사 가운데 현대건설 등 12개사의 혐의가 드러나 1000억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되고 담합을 주도한 일부 회사와 담당 임원은 검찰에 고발될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신문DB)



공정위 조사 결과 대형 건설회사 담당자들이 음식점에서 여러차례 모여 누가 특정 공사구간을 맡을지 미리 정한 다음 입찰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15개 공사구간을 건설회사들에 골고루 배분하고, 실제 입찰 때 나머지 업체들은 들러리를 섰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건설공사 담합 수법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밝힌 바에 따르면 15개 공사구간의 총 낙찰금액은 4조1000억원으로 낙찰가가 예정가의 93.4%에 이른다. 일반 경쟁입찰의 낙찰가가 예정가의 65% 수준임을 고려하면 공사비가 1조원 넘게 뻥튀기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같은 담합의 줄거리는 이미 2009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석현 민주당 의원에 의해 폭로됐다. 당시 이 의원은 “4대강 턴키 공사와 관련해 입찰금액 차이가 거의 없어 담합의혹이 짙다”고 밝혔다. 그는 한달 뒤 “6대 대형 건설회사들이 2009년 5~6월 서울 시내 호텔 등에서 수차례 회의를 열어 15개 공구를 나눠 맡기로 합의했다”고 폭로를 구체화했다. 공정위는 곧바로 조사에 들어갔고, 당시 정호열 위원장도 “담합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다음해인 2010년 2월에는 공정위 국장이 건설회사들을 대상으로 3차례에 걸쳐 조사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2년8개월 만에 담합 사실을 공표하고 제재에 나선 것에 정치적 의혹이 쏠릴 수밖에 없다. 공정위는 증거확보 등 조사의 실무적 어려움을 거론하는 모양이지만 4대강 공사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내에 차질없이 마무리될 수 있도록 사실상 ‘방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입찰 결과를 보면 공사구간은 건설회사에 골고루 배분됐고 낙찰률은 이례적으로 높았다. 현대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이 대통령이 이런 입찰 결과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를 리 없다. 결국 4대강 사업을 예정된 시간 내에 마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건설회사의 담합을 방조한 혐의가 짙다. 이제 공사는 다 끝났고, 이 대통령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임기 내에 털고 가자’는 속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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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식 논설주간



19년 전 섬유공장에서 일하다 행려병자(行旅病者)로 오인돼 6년 넘게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네팔 여성 찬드라 쿠마리 구룽. 그는 어느 날 음식점에 갔다가 서툰 한국말로 식대문제를 놓고 다투다 경찰로 넘겨졌다. 찬드라는 ‘네팔 사람’이라고 주장했지만 누구도 초라한 행색의 그를 외국인으로 보지 않았다. 네팔인 동료들이 실종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기억조차 못했다. 찬드라를 수용한 병원 측은 그의 영문 이름(Chandra Kumari Gorum)을 출입국관리소에 보냈으나 “그런 이름이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관리소에 등록된 이름은 ‘Chandra Kumari Gurung’이었다는 것이다. 찬드라의 코리안 드림은 산산조각이 났다. 


(경향신문DB)



찬드라가 당한 인권침해는 이렇듯 주변 사람들의 총체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평범한 우리네 일상에서도 이런 황당한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엊그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한 임미남씨의 사연이다. 1987년 2월12일 오토바이를 타고 집을 나간 19세의 청년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신원불상의 ‘무명남(無名男)’으로 분류돼 이송된 탓에 가족은 그를 찾지 못하고 죽은 줄로 알았다. 병원 측은 그를 수술해 생명을 건졌으나 연고가 없는 그는 결국 교통사고 후유증을 이유로 정신병원에 보내졌다. 그렇게 25년이 흘렀다. 임씨는 줄곧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대며 가족을 찾아달라고 했다. 하지만 병원 측도 담당 구청도 신원 확인을 위한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임씨는 40대 중반이 돼서야 한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돼 세상에 나왔다. 자신의 이름을 ‘수풀 림, 아름다울 미, 사내 남’이라고 밝힌 그가 이토록 오랜 세월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것은 정말 미스터리다.


임씨의 사례로 추정컨대 이 밖에도 세상과 격리된 채 무명남, 무명녀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을 애타게 찾으며 통한의 세월을 보내는 가족들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려면 그들에 대한 편견과 불편함부터 버려야 한다.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침대 속에서 거대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임씨처럼 주위의 관심과 도움을 받지 못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이와 비슷한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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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 중국전문가


 

한 나라가 망할 때는 여러 가지 징조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를 ‘망조가 든다’고 한다. 사마천은 이 문제를 국가의 정책과 인재에 연계시켰다.


“안정과 위기는 어떤 정책을 내느냐에 달려 있고, 존망은 어떤 사람을 기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데 정통주의에 매몰된 고대 유학자들은 나라의 멸망 책임을 일쑤 여성에게다 전가시켜 비난을 자초했다. 하지만 의식 있는 사람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멸망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이런 말도 안되는 논리가 무려 2000년 동안 큰 위력을 발휘해왔고, 지금도 세상 곳곳에 그 망령이 어른거리고 있다.



양귀비가 목욕한 뒤 몸단장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경향신문DB)



은나라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걸(桀)과 함께 소위 ‘걸주’라 하여 망국 군주의 대명사로 각인돼 있다. 이 두 임금의 곁에는 각각 말희와 달기라는 경국지색(傾國之色)이 있었다. 하나라와 은나라가 망한 책임 중 상당 부분을 이 두 여인이 졌음은 물론이다. 정작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진 당사자들은 놓아두고 말이다.


주나라 유왕(幽王)은 자신이 아끼는 포사라는 여인을 웃겨 보려고 오늘날 공습경보에 해당하는 봉화를 시도 때도 없이 올렸다가 정작 외적이 쳐들어 왔을 때는 아무도 달려오지 않아 망국을 자초했다. 유왕도 포사도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물론 책임은 포사에게 뒤집어씌웠다.


당나라 현종은 ‘개원의 치’라는 전성기를 구가했던 명군이었다. 격무에 시달려 살이 빠진 모습을 보고 신하들이 안타까워하자 “나는 말랐지만 천하가 살찌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정도로 깨어 있는 군주였다. 하지만 말년에 판단력이 흐려지고 양귀비에게 빠져 나라를 그르쳤다. 안록산의 난이 터지자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수도 장안을 버리고 달아났다. 마외파란 곳에서 병사들이 더 이상 현종을 호위하지 못하겠다며 양귀비와 그 오라비 양국충을 죽이라고 하자 현종은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양귀비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이런 망국의 화를 자초한 책임의 상당 부분을 양귀비가 짊어져야만 했다.


고대사회의 마녀사냥은 권력자에 대한 비판의 글을 쓴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의 노리갯감이었던 여성들에게 집중됐다. 지식인들에 대한 마녀사냥은 권력자에게 아부하는 부패한 간신 모리배들이 앞장섰고, 여성에 대한 마녀사냥은 수구보수적 관념에 찌든 지식인들이 앞장섰다.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런 고대판 마녀사냥보다 못한 사냥질이 횡행하고 있다. 역사가 통곡하는 순간 나라의 안위가 흔들리는 경우를 우리는 숱하게 보았기에 걱정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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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정리해고를 하려면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긴박하고도 불가피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어야 한다. 또한 정리해고를 하더라도 회사 측은 노동자들과 고통을 공유하려는 진정성과 헌신성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업주들은 정리해고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자신의 경영실패에 따르는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일쑤였다. 정리해고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일단 실행되면 이를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 지도위원의 처절한 309일 고공농성과 ‘희망버스’ 시민들의 눈물겨운 연대, 여야 정치권의 압박 등이 한데 어우러진 다음에야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해결된 일이 바로 그것이다. 


KEC 노사 갈등 일지 (경향신문DB)



그런 점에서 경북 구미의 반도체업체인 KEC가 노동자 75명의 정리해고를 전면 철회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KEC는 지난 2월 ‘경영상의 위기’를 이유로 75명을 정리해고했고, 이 때문에 2010년 임금단체협상 결렬 이후 노조파업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던 노사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이번 조처는 반목과 대결로 치닫던 노사 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제공한 셈이다. 정리해고를 단행한 뒤 임원들의 연봉을 올리는 등의 도덕적 해이와 경영진의 비리 의혹으로 비난을 받고 있던 회사 측이 내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해고 철회를 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정리해고를 되돌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회사 측의 결정이 평가절하돼서는 안된다. 


임금이나 근무조건을 둘러싸고 갈등의 소지가 남아 있다지만 노사 양측이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회사 측은 이제부터라도 파업복귀 노조원들에게 체벌이 포함된 ‘정신순화교육’을 실시하거나, 노조를 말살하기 위해 어용노조를 설립하는 등 기존의 반인권적 시대착오적 행태와 결별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된 노조활동을 억압하는 동시에 최소한의 상식과 도덕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노조 또한 어렵사리 지펴진 상생과 화해의 불씨를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과거의 묵은 감정에 지나치게 연연하다가 현재와 미래의 틀을 깨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KEC의 정리해고 철회가 전국의 많은 사업장에서도 기업주와 노동자들이 상대방의 처지를 존중하는 노사상생과 산업평화의 계기로 자리 잡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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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욱|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대선을 앞두고 개헌론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이재오·정몽준 의원, 선진통일당에선 이인제 대표, 그리고 민주당에선 김두관 경남도지사가 개헌론을 주도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과 방안은 물론 서로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권력분산을 핵심으로 하는 개헌론을 제기하고 있고, 개헌공약이 이번 대선의 주요 이슈로 떠오르길 기대하고 있다.


혹자는 이 같은 개헌론을 정략적 발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지만, 나는 이제 우리 시민들이 이 개헌론에 귀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참에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승자독식-패자전몰’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현행 민주주의 제도의 부작용과 폐해, 그리고 그 고비용과 저효율성에 대해서는 보수-진보 구분 없이 누구나 인정하는 바가 아니던가. 언제까지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이른바 ‘대권 몰아주기 정치도박’에 우리 시민들의 삶을 맡겨야 하는가. 사회가 이 정도로 발전하고 다양화되었으면 우리도 이제 시민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효과적인 정치참여가 보장되는 권력분점형 합의제 민주주의를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대통령 개인보다는 정당들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책임내각제가 도입될 시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2011년 1월 여권 내 개헌 3색 스펙트럼 (경향신문DB)



그렇다고 아무 조건 없이 개헌론에 찬성하자는 것은 아니다. 짚어봐야 할 핵심 변수는 정당체제다. 주지하듯, 한국의 정당체제는 여전히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는 전근대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인물과 지역이 중심이 되는 정당정치다보니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선호는 정책결정과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과소대표와 강자들의 과다대표 현상은 매우 심각한 지경이다. 이러한 정당체제를 그대로 둔 채 권력구조만 책임내각제나 분권형 대통령제 등으로 전환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악일 뿐이다. 명망가나 소지역 중심의 지역할거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고, 지역정당들 혹은 그 보스들 간의 정권 나눠먹기 양상이 만연되면서 권력구조는 결국 정치엘리트들 간의 과두체제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러한 체제에서는 권력분점형 합의제 민주주의의 장점인 타협과 합의의 정치가 정책과 이념 중심이 아니라 특정 인물이나 지역이익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의 과소대표 현상이 해소될 여지가 별로 없다. 정당 및 정치가들은 정책기조나 이념에 근거한 신념보다는 정치적 보스의 사적 필요성이나 지역 이기주의적 요구에 타협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시민들이 개헌의 전제 조건으로써 선거제도의 개혁을 먼저 요구해야할 이유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정당체제는 상당 부분 선거제도에 의해 결정된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강화될수록 정당체제는 인물과 지역보다는 정책과 이념 중심의 것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정치개혁은 ‘선(先)선거제도 개혁, 후(後)권력구조 개편’의 순서에 따라 추진돼야 한다. 다만, 분권형 권력구조로의 전환을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로의 개혁과 한 패키지로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수용할 만한 개혁방안이 될 것이다.


진정 ‘제대로 된’ 합의제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원한다면 각 당과 대선주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3년 반짜리 대통령” 공약(필자의 본지 3월10일자 칼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이 점에선 사실 야권의 대선주자들이 더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은 총선 전 이미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포함한 선거제도의 혁신을 야권연대의 공동 공약으로 채택했기 때문이다. 야권의 대선주자가 이 PR(비례대표제)연대를 잘 살려나간다면 그는 진보개혁진영은 물론 정치개혁을 바라는 일반시민들의 지지까지도 극대화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단순한 당내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로 보아 그것의 해결을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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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신|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법관 임명 시즌이다. 후보자들에게 확인할 것이 있다. 판사들은 대법관이든 하급심이든 모두 평등하다고 실제로 믿는지?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재판이 저 모양이니 판사들 확실히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지금 판사들에 대한 인사관리 권한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법원 고위층에게 주어진다. 영화 속의 재판은 법원 고위층이 하급심 판사에게 충분한 자유와 독립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김명호 교수를 엄벌하라는 법원 고위층의 ‘오더’가 내려온 이상 증거신청들을 거부하더라도 구속만기 전에 재판을 빨리 종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기호 판사가 마지막 재판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와 법복을 벗고 있다. (경향신문DB)



서기호 판사의 재임용 탈락은 하급심 판사들이 법원 고위층을 상대로 독립성을 쟁취하기 위해 지난 4년간 벌였던 싸움의 정점에 있다. 박재영 판사가 야간집회 금지조항에 대해 위헌제청 신청을 하자 법원 고위층의 일원인 신영철 법원장은 위헌제청을 무시하고 촛불시민들에게 유죄판결을 내릴 것을 ‘부하’ 판사들에게 요구했고, 이에 대해 서기호를 포함한 전국의 ‘부하’ 판사들이 재판독립을 위해 조직적으로 저항했다. 곧이어 <PD수첩> 광우병 보도 1심 무죄판결이 나오자, 한나라당은 법관들에 대한 통제를 더 엄격히 해야 한다며 2010년 법원조직법을 개정했다. 


개정 이전에는 판사 근무평정은 재임용 심사에서 고려되지 않는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 그런데 개정법에서는 고려되도록 명시한 것이다. 물론 당시 법원 고위층은 법관인사위원회의 외부인사 참여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한다면서 반대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법원 고위층의 판사에 대한 통제를 더욱 심화시킨 법개정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취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은 개정법을 적용한 첫번째 재임용심사에서 서기호를 탈락시킨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한나라당의 법개정 목표였던 좌파 판사 척결의 성공 사례였고 앞으로 모든 하급심 판사들의 ‘군기’를 잡는 본보기였다. 


사법부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존중해 주는 이유는 국민이 다수결이 아닌 합리성에 기초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은 사법부로부터 재판을 받지 않는다. 개별 판사로부터 재판을 받는다. 사법부라는 집단의 독립은 중요하지 않다. 개별 판사의 독립성이 중요하다. 세계 헌법 어디에도 사법부의 독립은 없고 법관의 독립만이 있는 이유이다. 즉 판사들은 행정부나 입법부는 말할 것도 없지만 상급심 판사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상급심 판사는 하급심 판사들의 판결을 파기환송할 수 있을 뿐 하급심 판사들에 대한 인사권한을 가져서는 안 된다.


물론 지금의 근무평정은 법원장이 하고 있지만, 법원장은 실질적으로 법원 고위층으로부터 일선 법원에 ‘파견’나와서 하급심 판사들을 감시하는 자리이다. 결국 이들 법원장은 대법관이 되기 위해 법원 고위층의 입맛에 맞게 하급심 판사들을 감시하게 된다. 신영철 사태도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구조적 동기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법원장을 통한 법원 고위층의 통제로부터 평판사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법개혁 목표이다.


판사들이 공권력을 제대로 감시하려면 모든 외부감시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감시자는 누가 감시할 것인가? 미국 주판사들처럼 직선제나 행정부 임명 후 신임투표도 검토할 수 있고, 미국 연방판사처럼 종신제 또는 독일처럼 평생법관제로 하되 의회가 인사권을 갖도록 할 수도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판사들이 자신의 인사권자를 투표로 선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들 제도의 공통점이면서 우리 제도에 결여되어 있는 것? 판결에 대한 파기환송권 외에는 모든 판사들은 직급과 심급에 관계없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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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을 하나금융에 팔고 떠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의 금융·세금 규제로 피해를 봤다”며 국제중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상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의거해 한국 정부를 국제법정에 세우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와 론스타가 향후 협상에 실패할 경우 자유무역협정(FTA)의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지적돼온 ISD가 현실화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론스타 논란 (경향신문DB)



론스타가 그제 보도자료를 통해 주장한 ‘피해’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2006년 KB금융지주, 2007~2008년 HSBC에 각각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려 했으나 한국 금융당국이 매각 승인을 늦추는 바람에 주식을 제값에 팔지 못해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 첫째다. 론스타는 또 지난 2월 하나금융에 외환은행 주식을 팔아 4조7000억원의 매각 차익을 얻은 데 대해 국세청이 3900억원의 양도소득세를 원천징수한 것을 ‘자의적이고 부당한 과세’라고 주장했다. 천문학적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 한 푼 못 내겠다는 투기자본의 ‘탐욕’을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모든 것이 적법하고 비차별적으로 처리됐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정부가 국제소송에 대비해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니 국가적 자존심을 걸고 치밀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론스타가 제기한 본안 외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돌아봐야 할 대목이 있다. 론스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유죄판결에다 ‘먹튀’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막대한 투자이익을 챙겨 떠났다. 그럼에도 피해를 보상하고 세금 돌려달라며 한국 정부를 국제법정에 세우겠다고 나선 것은 ‘적반하장’ 격이다. 하지만 정부가 그동안 론스타에 베푼 특혜적 조치들을 상기하면 론스타의 이런 자세는 상당 부분 자초한 측면이 있다. 2003년 예외조항을 적용해 외환은행을 넘겨주고, 이후 계속된 자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론스타에 대한 산업자본 판정을 미루고, 결국에는 실효성 없는 주식처분명령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한국 정부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투명하고 공정한 법 집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사례다.


이번 사태는 FTA, 특히 한·미 FTA에서 ISD를 폐기해야 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주체였던 자회사(LSF-KEB)가 벨기에 소재 법인인 점을 들어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상의 ISD 조항을 들고나왔다. 정부가 “론스타의 문제제기는 FTA에 따른 ISD와는 무관하다”고 밝히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가 깨달아야 할 점은 ISD의 위험성이다. 론스타는 외국인 투자자가 국가의 조세주권을 문제삼을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또 미국에 소재한 론스타가 외환은행 인수가 벨기에 자회사를 통한 ‘간접투자’였음을 내세워 한·미 FTA의 ISD를 들고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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