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극복 의지가 남다른 것처럼 보였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 장·차관이 지난 18일 서울 구로구청 내 사랑채움어린이집을 ‘우르르’ 방문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아이들에게 동화책까지 읽어줬다. 그러면서 “저출산 문제는 범정부적으로 다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소아암·희귀난치병 환아 가족들은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이들은 한달 전 김 부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백혈병, 뇌종양 등을 앓아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아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주로 화상을 통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시설이 열악하다. 국공립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이 걱정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부모들의 바람이다. 환아 부모들은 김 부총리를 만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소아암·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초·중·고 학생 부모 모임인 ‘전국건강장애부모회’는 부총리 측에 공문도 보냈다. 사석에서 이들의 사연을 전해 들은 김 부총리는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만남이 쉽게 성사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재부에서 돌아온 답변은 “일정이 도저히 안된다”였다. 그리고 더 이상 연락도 없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개인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리고 있다. 자신이 소장했던 책을 선착순 접수를 받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SNS에 글 쓸 시간은 있으면서 소외받는 환아 부모를 만날 시간은 없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태어난 아이조차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부를 믿고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을까.

기재부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선다”고 했지만 아직 멀었다.

<박병률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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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지방선거가 다가오자 지방자치의 재도약을 바라는 국민적 기대가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제2국무회의 신설, 지방이양일괄법 제정, 주민 직접참여 확대 등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도지사 출신인 이낙연 총리가 앞장서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부처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52년 전쟁의 와중에 지방의회를 도입했고, 1960년 제2공화국 출범 이후 전면적으로 지방자치를 실시했다. 하지만 1961년 쿠데타로 군사정부가 수립되면서 오랜 동면기를 보내야 했다. 1991년 30년 만에 지방의회를 재가동하고 1995년 민선 자치단체장을 선출하면서 주민들은 지방자치 부활의 기쁨을 만끽했지만 중앙집권의 장벽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행정학 이론이나 국내외 사례가 역설하듯이 지방자치는 굿 거버넌스를 촉진하는 최고의 제도적 장치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국가 주도의 유럽식 단체자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간 자율의 영·미식 주민자치에 비해 직접민주주의 요소가 미약한 편이다.

우리는 역대 정부의 지방분권 노력이 일극체제라는 경로 의존에 함몰되어 이벤트로 전락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해 왔다. 실제로 세종시나 혁신도시의 부진도 기득권의 반발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지방분권에 기반한 특화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플러스 알파가 요구된다. 일례로 교육의 공공성을 중시하는 국립대학 연합체제의 구축이나 지역 혁신체제의 중핵인 연구기관의 강화를 우선 고려할 수 있다.

미국이나 스위스의 주민자치에 대한 벤치마킹이 우리의 역사제도적 특성에 비추어 과도하다면 유사한 발전경로를 경험한 독일이나 일본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들은 위계적 정부 간 관계에도 불구하고 지방 무대의 성공이 중앙 진출을 담보하는 공존과 협력의 거버넌스를 구현해 왔다. 물론 우리 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의 중앙 진출은 자력보다 발탁에 의존해 왔지만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변화를 예고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자치도 연륜이 쌓이면서 중앙부처나 세계 각국이 부러워하는 우수 사례를 창출하고 있다. 최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여부를 둘러싼 정책 결정에 도입한 공론조사도 서울특별시의 선구적 활용에 기인한다. 또한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명품 지하철에는 버스나 택시보다 공공성을 중시하는 지방공기업 임직원들의 헌신이 투영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치나 행정에 대한 뿌리 깊은 우려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수백을 상회하는 지방자치 무대 곳곳에서 표출된 불협화음이 연일 언론의 표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획일성이 연출한 하모니에 대한 편향을 탈피해 다양성의 불협화음을 수용하는 전향적 자세로 뒤이어 제시할 ‘4대 자치권’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첫째, 자치입법권 강화를 위해서는 지방의회의 권한 강화와 의원들의 자기성찰이 요구된다. 집행부에 필적하는 의회의 전문성 확보나 의원들의 신중한 언행을 결부시키는 방식으로 확실한 입법역량을 창출해야 한다.

둘째, 자치재정권 강화를 위해서는 현재 8 대 2 수준인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 대 4까지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세의 지방세 전환에 부가해 일본에서 활용한 고향사랑기부제를 도입해 도시인들의 고향의식에 호소해야 한다.

셋째, 자치조직권 강화를 위해서는 행정규제를 개혁해야 한다. 자율적 조직 재설계를 토대로 굿 거버넌스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시장이나 시민사회에 대한 규제개혁만큼이나 중요한 정부 간 관계의 규제개혁을 통해 상향식 문제 해결을 독려해야 한다.

넷째, 자치행정권 강화를 위해서는 지방사무의 지방 이양이 필요하다. 핀란드처럼 자치단체의 능력이나 필요에 따라 행정권한을 차등해 부여하거나 그동안 중앙정부가 독점해 온 경찰이나 복지 업무에 대한 지방의 독자적인 관할권도 허용해야 한다.

<김정렬 대구대 교수·도시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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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면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원자력 안전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대통령 직속 장관급 위원회로 출범했던 원안위가 박근혜 정부 때 국무총리 산하 차관급 위원회로 격하되었던 것을 복원하고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 출범 이후 중소벤처기업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내각 개편이 마무리되어 가지만 원안위는 여전히 옛 구조 그대로이다. 탈원전 논쟁 속에 원안위라는 규제부서가 실종되어버린 느낌마저 든다.

원안위는 원자력발전소와 방사능폐기물 등 원자력 이용에 관련된 모든 안전 규제를 책임지는 합의제 행정부처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립기구로 발족되었다. 그러나 규제기관으로 독립된 지 6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부처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년간 ‘이명박근혜’ 정권이 원자력 진흥에 앞장서온 인사를 위원장으로 임명하고 규제기관을 원전산업의 보조기구처럼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원자력공학자나 원자력 친화적인 인사들로 대거 구성된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 원전산업계와 정권의 요구에 순응해왔다. 그 결과 원안위 위원 전체 9명 중 위원장을 포함, 정부·여당이 7명을 추천한 위원들로 구성된 박근혜 정부에서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신고리 3·4호기 운영허가,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가 다수결로 결정되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다음에도 원안위의 규제권한을 무력화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 4월 원안위는 미래부 산하 원자력연구원이 몇 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방사능폐기물의 무단폐기와 우수관 배출, 고철매각, 방사능 감시기 조작 등 수십건에 이르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해 과징금과 과태료를 부과하는 행정처분을 했다. 그런데 원자력연구원은 자신들이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반성은커녕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원안위 결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자력연구원의 불복 사태가 보여주듯이 건설 중인 원전을 포함하면 29기의 원전과 원자력 이용시설의 안전을 책임지는 규제기관의 위상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지난 세월 원자력 진흥을 국가 목표로 추진해오는 동안 규제기능이 원전산업의 보조적 수단으로 치부되었던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활성단층지대에 원전이 가동되는 세계 최고 원전밀집 국가이다. 늙어가는 원전도 늘어나고 있다. 24기 원전 중 2029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이 11기에 이른다. 활성단층지대 원전의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최근 잇달아 확인된 격납건물 콘크리트 내부를 둘러싸고 있는 플레이트 철판 부식과 격납건물 콘크리트 구멍 발생, 증기발생기 내 망치 발견 등의 문제가 20년 이상 아무도 모른 채 방치되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원전 확대에만 집중해왔기 때문에 원전 해체와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방안에 대해서 제대로 된 안전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신규 원전의 건설과 수명연장 금지 말고도 세계 6위 원자력 국가인 한국이 해결해야 할 안전 문제는 차고 넘친다.

안전불감증의 만연과 사고로 이어지지 않으면 문제될 게 없다는 원자력계의 인식과 규제시스템 아래에서 원전 안전을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새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 정책 핵심은 국민 안전과 생명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다. 원자력 안전 규제기관의 강화와 원전 안전성 확보가 없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은 공허하다. 새 정부가 원자력계와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밀려 원자력 규제기관 위상 강화를 포기한다면 ‘정권은 바뀌어도 원자력계는 영원하다’라는 원자력계의 정설이 사실임을 입증하게 된다.

시민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 시대에는 원자력계의 정설이 통하지 않아야 에너지 전환과 원자력 안전의 초석을 세울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원자력 안전을 챙기겠다는 약속이 실천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혜정 원자력안전위원회 비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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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 의원들이 대거 찬성표를 던진 데 힘입은 결과였다. 그러나 막판까지 동의안 통과를 예상할 수 없는 불투명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다시 한번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운영이 얼마나 지난한지 입증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1일 오후 후보자 사무실이 마련된 서초구의 한 건물을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새 대법원장으로서의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임명동의안 표결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부결 때와 다른 점은 여당이 적극 나섰다는 것이다. 김 헌재소장 후보자 표결 때는 여권이 대야 설득 노력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야당이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추미애 당 대표, 우원식 원내대표 등 여권 지도부가 총출동해 야당을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뒤늦게나마 여권이 야당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나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앞으로도 온 정성을 기울여 야당을 상대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원만한 국정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여권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인준 과정에 아쉬운 대목이 있다. 문 대통령의 대야 설득 노력이 특정 야당에 한정되었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출국 전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에게는 전화를 걸어 협조를 당부했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에 대해서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보수야당들에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야 3당이 힘을 모으면 여당의 발을 꽁꽁 묶을 수 있는 구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과반수보다 더 까다로운 의결 정족수가 필요한 경우 국민의당 의원들의 지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항구적인 협치의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점에서 국민의당과의 개혁을 위한 연대도 검토할 만하다. 여권은 김명수 대법원장 인준을 성공 모델로 삼아 여야 협력을 지속적으로 살려내야 한다. 현안이 있을 때마다 마음 졸이게 하는 국정운영으로는 시민을 안심시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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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21일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가 사법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의 뜻을 받든 것이다. 환영의 뜻을 표한다. 국회는 이날 무기명투표를 실시해 출석 의원 29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134명, 기권 1명, 무효 3명으로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표차로 가결된 것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보수야당 의원들조차 김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보인다.

대법원장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3000여 법관들의 리더로, 대법관 13명과 함께 최고·최종심 법원인 대법원의 재판도 담당한다. 대법관 제청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 등의 권한도 갖고 있다. 김 후보자는 이 같은 막중한 임무를 앞으로 6년간 수행하게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1일 오후 서초구 사법발전재단에 마련된 사무실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어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무기명 투표를 실시, 출석 의원 29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134명, 기권 1명, 무효 3명으로 가결 처리했다. 연합뉴스

작금의 사법부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의 신뢰를 상실한 사법부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김 후보자 앞에는 산적한 과제가 놓여 있다. 김 후보자는 무엇보다 ‘판사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양승태 사법부’의 적폐를 일소해 세계 최하위 수준인 사법 신뢰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전관예우를 근절해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료화된 사법행정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법부는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재판하지 않는’ 판사들이 장악했다. 경향신문이 법원행정처 출신 판사 456명을 전수조사한 결과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100%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법원행정처 차장은 10명 중 8명이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에 올랐다. 행정처 판사들은 퇴직 후 절반 이상이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들어갔다. 사법행정은 재판 지원이라는 본래의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법원장 스스로 제왕적인 권력을 내려놓고, 대법원장의 사조직으로 전락한 법원행정처를 축소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전체와 헌법재판관 3명을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김 후보자는 ‘50대 서울대 출신 남성 법관’ 일색인 사법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제청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세대·성별·직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법원의 구성이 새로이 바뀔 때마다 해당 시기에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라는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내년 1월1일 임기가 끝나는 김용덕·박보영 대법관 후임자 제청부터 그 약속을 실천했으면 한다.

헌법은 다수결이나 힘의 논리에 구애받지 말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사법부에 맡겼다. 당연히 김 후보자도 약자 및 소수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최근 하급심에서 잇달아 무죄가 선고되는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모호한 기준으로 노동현장에 혼란을 야기하는 통상임금 사건의 판례 변경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달리 대법원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그래서 사법부는 시민 앞에 더 겸허해야 한다. 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밝힌 것처럼 ‘약자에게 편안하고 강자에게 준엄한 사법부’를 구현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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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칼럼에서 사면초가의 외교 난맥상을 논한 적이 있다. 당시 국정공백 속에서 미국의 사드 알박기와 중국의 제재, 일본의 평화의소녀상 철거압박에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등 사방에서 우리를 물어뜯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위대한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지금도 상황은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북한은 핵미사일 완성을 위해 가속페달을 밟고 있고, 미국은 전에 없었던 위협인식과 패권국으로서의 자존심 훼손과 무력감이 겹치면서 군사적 옵션까지 들먹이는 말폭탄으로 긴장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이 변화라면 변화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외교는 국내권력용이었고, 냉전적 진영논리를 기반으로 맹목의 친미신화와 무전략의 대중정책으로 일관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이래선 안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이 떠나지를 않는다.

국민의 힘인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고래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호구 신세를 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무엇이 잘못된 걸까? 촛불정부의 외교는 달라야 한다는 역사적 당위성에 비해 당면한 현실은 우리의 외교운신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정말 최악인가? 그렇다면 현 동북아 구도에서는 그냥 두 손 놓고 강대국의 힘자랑에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북한의 핵보유를 향한 질주가 도를 넘을 정도라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친미강경의 외곬으로 반복하는 것일까?

아니다! 대외환경의 열악함을 백번 인정하더라도 외교력 부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이 북한의 도발, 미국의 압박, 중국의 제재 속에서 최선을 다해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현재의 난맥상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는 어렵다. 문제핵심은 3가지인데, 현재의 위기에 대한 정확하고 일관된 인식의 결여,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비전이 담긴 어젠다와 이를 실현할 정책비전의 부재,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에 자신 있게 밝히고 협상할 담대함의 실종이다. 매일 몰려드는 현안에만 매몰되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의외라는 듯이(?) 놀라고 일관성 없는 반응을 반복적으로 노정하는 모습은 매우 안타깝다.

한마디로 외교안보팀의 전문성과 전략적 마인드가 부족하다. 속도가 빠르다는 것 외에 북한의 도발은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어야 하는데, 진정성과 대화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는 북한에 대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분노한다면 그것은 상황인식부터 틀렸다는 말이 된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대미정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점이다.

한·미동맹이 중요하지만, 워싱턴 보수정권의 오해 또는 프레임을 푸는 것에만 집중함으로써 처음부터 미국의 강경책에 끌려갔고, 군사옵션이라는 엄포에 놀라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어젠다는 힘을 잃어버렸다. 한·미 공조는 오직 강경책에만 적용되어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순응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하고, 한국의 주도적 역할론은 국내외 대화파에는 희망고문과 절망거리가, 강경파에는 조롱거리가 되었다. 치열한 외교무대에서 선의로 대한다고 선의로 돌아오는 법은 없으며, 그것은 북한뿐 아니라 미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한·미 전략대화를 마친 후 미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찬자리에서 필자는 약간의 도발적 발언을 했다. 현재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문근혜’나 ‘도로 박근혜’라는 말을 듣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서, 미국의 압박이 과할 경우 한국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번 정부는 보통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힘이 만들어낸 촛불정부임을 간과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양국 공조를 위해 한국의 책임만 거론할 것이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가 만들어내는 파열음의 해악부터 관리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결국 우리 문제 아닐까라는 아쉬움이 깊어졌다. 무엇이 두려운 것인가? 이미 두 번이나 국민의 강력한 추인이 있지 않았던가? 대선 승리와 초기 지지율 80%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높은 지지율에 매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심기를 어기면 죽을 것 같은 관성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 자기 검열의 친미순응을 지속하고 있다.

우리가 주도권을 행사하고, 북한이 우리를 의식하게 만들려면 미국과 중국의 힘을 이용해야 한다. 이 말은 결국 북한 설득이나 한·미·일 공조가 우선이 아니라, 한·미·중 공조를 통해 미·중이 제재를 강화하고 한국이 대화의 유일창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의 강경책에 편승하고 한·미·일 협력을 강화할수록 해결의 중요한 키를 가진 중국의 협력을 더욱 요원하게 할 뿐 아니라, 한·중관계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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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이 한국의 핵잠수함 도입에 합의했다는 보도가 나와 논란이 일자 정부가 곧바로 이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핵잠수함 도입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음을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핵잠수함을 도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고, 청와대 관계자도 “전략방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 중 가장 위협적인 게 핵추진 잠수함이라는 건 내부적으로 합의됐다”고 말했다.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하는 근거는 북한의 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추진 잠수함이 북한 인근 해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이 도발을 못하게 하는 억지력을 갖출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하는 2000t급 잠수함을 보유한 북한이 핵잠수함을 건조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 뒤부터 핵잠수함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더욱 힘이 붙고 있다. 북한이 원자력 잠수함에 핵탄두 SLBM, 핵어뢰를 보유할 것을 상정해 핵잠수함 건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북핵 대응책이 될 수 없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는 날아오는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능이 있지만 핵잠수함은 북한의 잠수함을 탐지하는 것이다. 미사일 자체를 직접 막는 무기체계가 아니다. 특히 군 스스로 핵잠수함 건조에 10년 이상 걸린다고 하면서 당면한 위협인 북핵에 대응하는 카드인 양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더구나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설정하고, 탈핵을 외치면서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한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핵무기 개발이 아닌 핵추진 잠수함 개발이라는 점을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통보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핵잠수함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등 핵무기를 갖고 있는 6개국만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핵잠수함의 주요 기능은 먼 거리를 이동해 핵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다. 핵보유국도 아닌 한국이 핵보유국 수준의 무기를 갖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핵잠수함 보유 자체로 중국, 러시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

핵잠수함의 효용도 과장되고 있다. 축전지를 이용해 기동하는 해군의 디젤 잠수함은 하루 2번 이상 수면 위로 부상하기 때문에 적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항상 원자로를 가동해야 하는 핵잠수함의 소음은 더 커서 노출 위험을 회피할 대안이 될 수 없다. 북핵 대응에는 연안 중심의 활동에 적합한 디젤 잠수함이 더 효율적이다. 해군은 이미 림팩 훈련 등에서 디젤 잠수함으로 가상 적국의 잠수함을 탐지해낸 바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면서 핵잠수함 건조에 나설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비밀사업으로 핵잠수함을 도입하려던 명분은 대양해군론이었다. 한반도 평화도 지키지 못하면서 대양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은 망상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연안 중심의 해상작전이지 태평양을 누비는 게 아니다. 수개월간 지속적으로 잠수할 이유도 없다. 북핵 대응에 효과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핵잠수함 사업에 집착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즉각 비현실적인 생각을 버리고 북핵 해결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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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큰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특수학교 설립을 결정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여기에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같은 자리에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주장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란 단어를 쓰긴 했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여론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 온라인 기사 등에 달린 댓글로만 보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집값에 미친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집값 하락을 염려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이웃으로 자리잡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뿐일까.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장애인 학교 건립을 밀어붙여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그 학교를 매일 다녀야 할 장애학생과 부모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를 보다 서울 중곡동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생각났다. ‘센터’라는 ‘폼나는’ 이름을 달아 새로 짓기 전에는 ‘국립서울(정신)병원’으로 더 잘 알려졌던 곳이다. 특수학교와는 비교가 안되는 ‘혐오시설’이기도 했다.

국립서울병원은 2002년까지 타지역으로 이전이 추진됐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도 원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도 내치려는 시설을 다른 지역이 달가워할리가 없었다.

2006년부터는 ‘재건축’이 추진됐다. 현재 있는 자리에 정신병원을 더 크게 지으려 하자 주민들은 다시 난리가 났다. 주민들은 정신질환 치료에는 도심이 아닌 자연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란 소리였다. 병원 때문에 집값이 하락한다는 말은 그때도 나왔다. 복지부와 병원 측은 ‘국가 땅에, 지금 병원이 있는 곳에 다시 짓는데 주민들이 왜 반대하냐’고 반박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거쳐 국립서울병원은 지난해 3월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개편해 문을 열었다.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 10여년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남윤영 박사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서울병원에서 기획홍보과장을 지냈다. 재건축추진 실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가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았다고 했다. ‘고발’을 당하기도 했고, 얻어 맞기까지 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난 18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남 박사를 찾아갔다. ‘혐오시설’을 지으면서 그만큼 많이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도 없을 터였다.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남 박사는 “주민들을 무조건 많이 만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병원 측은 먼저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새 정신병원 부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렇게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설득했다. 이어 정신병원 재건축을 지역발전과 연계시켰다. 재건축 계획은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을 거쳐 종합의료복합단지로 확장됐다. 개원 후에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했고, 정신과 외 다른 진료과도 개설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이제 중곡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학생들은 병원 내부를 지름길 삼아 통학한다. 동네 노인들은 저렴한 병원 구내식당을 즐겨찾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병원 1층 카페에서 잠시 여유를 맛보기도 한다.

10여년 전 정신병원이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하던 풍경이다. 그러나 누군가 상상력을 발휘했고, 동의했고, 현실이 됐다. 남 박사의 멱살을 잡았던 일부 주민들은 나중에 가장 큰 우군이 됐다고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기념관 동판에는 남 박사와 주민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남 박사는 “저희는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특수학교는 그보다는 훨씬 빨리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면”이라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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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둘러싸고 논란이 고조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통일부는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관계기관과의 논의를 거쳐 지원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고 한다.

논란의 주된 이유는 타이밍으로 보인다. 교추협 개최 계획 발표가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에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일본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인도적 지원 시기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북 제재에 대한 ‘한·미·일 동맹에 이상기류가 감지된다’는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과거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한 ‘무분별한 퍼주기’ 논란이 다시 등장하는 듯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요즘 유행어로 하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처럼 들리기도 한다. 같은 행동도 어느 정부가 하느냐에 따라 ‘퍼주기’ 또는 ‘원칙에 부합한 행동’으로 해석된다. 이른바 인도적 지원의 정치화이다. 힘을 모아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 시점에서 비생산적인 소모적 이념 논쟁으로 타이밍을 놓칠까 우려가 된다.

이럴 때일수록 ‘팩트’와 ‘원칙’에 따른 결정이 중요해진다. 먼저 팩트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과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이 ‘여전히’ 필요한가”라는 질문이다. 최근 북한의 경제상황에 대한 평가가 국내에서 엇갈려 객관적 평가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375호는 “영양실조 위험에 처한 상당수의 임신·수유 중인 여성 및 5세 이하의 아동과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전 인구의 거의 4분의 1에 달하는 주민들을 포함하여, 주민의 절반 이상이 식량 및 의료 지원에 있어 중대한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는 유엔인도지원조정실(UNOCHA)의 조사 결과에 주목하며, 이러한 차원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민들이 처한 심각한 어려움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답하고 있다. 초강력 경제제재를 결정한 유엔 안보리의 ‘객관적’ 평가이다.

둘째, “왜 하필 지금인가”라는 논란이다. 이번 지원 결정은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의 연례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핵실험과 경제제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주에 결정을 하더라도 곧바로 원조가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국제기구의 내부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시기 조절이 충분히 가능하다.

셋째, 인도적 지원의 효과성에 대한 질문이다. 원조가 북한의 군사비로 전용되지 않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취약계층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느냐는 것이다. 이 또한 이제는 원조 분야에서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은 이미 엄격한 투명성 기준에 따른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현금이 아닌 현물, 군사적으로 전용될 수 없는 의약품과 아동 영양식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원칙의 문제를 살펴보자.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고려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1860년대 국제적십자가 창설된 이래 국제적인 원칙을 넘어 상식이 되었다. 이번 2375호 결의안이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된 이유는 북한의 무모한 핵실험에 대한 경고의 의미도 있지만 결의안 내용에 이러한 인도적 지원 조항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으로 유엔은 경제제재에 대해 소극적이거나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해왔다.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국제평화와 안보와 함께 유엔이 추구하는 핵심적 가치이자 원칙이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에서 보듯이 경제제재는 의도와 달리 제재 대상국 아동과 산모 등 취약계층에게 우선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힌다.

과거 진보와 보수 정부 모두 국가안보 논리로 북한 인권과 인도적 지원 문제를 다루곤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국가안보에서는 적국의 위협 수준과 의도에 따라 자국의 방어 수준과 대응 방식을 결정한다. 즉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권과 인도적 지원은 다르다. 인도적 지원은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미 문 대통령은 지난 7월 독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보건·의료분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핵실험과 같은 안보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그러한 행동이야말로 만장일치로 채택된 안보리 결의안을 가장 성실하게 이행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성훈 | 한국인권재단 상임이사·경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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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시절 여론조작을 위해 민간인을 동원해 댓글부대를 운영한 민병주 전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장이 19일 새벽 구속됐다. 원세훈 원장 시절인 2010~2012년 외곽팀을 운영하면서 불법 선거운동과 정치관여 활동을 하도록 하고 수십억원의 활동비를 지급한 혐의다. 그는 2013년 박근혜 정부 검찰 수사에서 구속을 면했지만 4년 만의 재수사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 때 광범위하게 진행된 추악한 여론 공작 실태는 도대체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이번엔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김관진 당시 국방부 장관이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댓글작업을 직접 지시하고 보고받았다는 증거가 담긴 군 내부 문건이 새롭게 공개됐다. 국방부 2급 비밀문서인 ‘2012 사이버 심리전 작전 지침’이란 문건에는 ‘총선·대선 개입’이라는 활동 목표가 분명히 적시돼 있다. 국정원 외에 국방부 장관까지 군 댓글공작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9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가진 민주당 적폐청산TF(태스크포스) 회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고발한 취지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수준일 줄은 몰랐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알몸 합성사진에 얼굴이 오른 배우 김여진씨는 “그 추함의 끝이 어딘지 똑바로 눈뜨고 보고 있기가 힘들다”고 했다. 시민들의 생각도 그와 똑같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합성 사진 제작·유포 계획을 상부에 보고하면서 ‘특수공작’이란 표현까지 썼다. 좌파 낙인을 찍은 문화예술인을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는 방식의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와는 전혀 다른 악질적 행태이다. 시민 세금으로 민주주의의 기초를 파괴하고 시민의 기본권을 난도질했으니, 국가기관의 탈을 쓴 범죄집단이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은 “무슨 법적 권능과 근거로 국정원 기밀사항을 뒤지느냐. 제대로 하려면 국정원이 도청했던 이전 정권 때 일도 공개해야 한다”며 반발했다고 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만 봐도 청와대와 국정원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은 대통령의 지시가 없었다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정원의 문화예술인 퇴출공작은 ‘VIP(대통령) 일일보고’ 형태로 청와대에 보고된 사실도 드러났다. MB의 수족인 원세훈 전 원장은 이런 혐의로 이미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도대체 뭐가 더 나와야 순순히 범죄를 인정할 것인가. 재임 중 입만 열면 ‘국격’ 타령이더니 정작 자신이 나라를 망신시킨 대표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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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무 국방장관이 또 사고를 쳤다. 그제 국회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에 대해 “학자로서 떠드는 느낌이지 안보특보로 생각되지는 않아 개탄스럽다”며 “상대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핵 위기 속에 국방장관이 공개 석상에서 인신공격성 비하발언을 하는 자중지란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청와대가 개입해 엄중 주의 조치를 내리고 송 장관이 사과했지만 여기서 끝낼 일은 아닌 것 같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9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 장관의 원색적 비난은 자신의 ‘김정은 참수작전’ 표현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한 문 특보에게 작심하고 되받아친 것이라고 한다. 물론 한솥밥을 먹는 외교안보라인이라 하더라도 정책적 이견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내부 조율을 통해 이견을 해소하지 못하고 갈등을 거칠게 드러냈다면 외교안보라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송 장관의 좌충우돌은 이미 호가 나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언급해 평지풍파를 일으켰고, 국회에서 이를 추궁하자 “다양한 방안 중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가 며칠 안돼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면서 “미국의 핵확산 억제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협상용으로 얘기했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보다 앞서 지난 7월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도 환경영향평가 결과에 따라 배치 지역이 바뀔 수 있는 것처럼 말했다가 수정한 적도 있다. 북한의 전자기펄스(EMP) 공격에 대응한 레이저무기를 “비밀리에 개발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비밀이라며 공개하는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다. 송 장관은 자신이 입을 열 때마다 국론이 분열되고 정책 혼선을 빚는 것을 알고는 있는지 모르겠다.

핵심 정책에 대해 사전에 조율되지도 않은 사적 견해를 밝히는 그의 행태는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는 그제 국회에서 800만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 시기를 통일부가 늦출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지원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표출한 것인지, 왜 그런 의견을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발언했는지는 그만이 알 것이다. 어쨌든 통일부는 그의 발언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송 장관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월 3000만원의 자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지만 국방개혁의 기대 속에 장관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국방개혁은 차치하고 주요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국무위원으로서 최소한의 자질이 있는지, 부처 간 정책조정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언행을 계속해왔다. 누란의 한반도 위기 속에 국방장관의 좌충우돌과 그를 둘러싼 자중지란은 이제 새로운 안보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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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군형법을 보면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밖의 추행’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동성애를 퍼뜨릴 위험인물’이라는 증거가 됐다.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이 같은 논리가 별문제 없이 통용되는 분위기, 게다가 급격히 퇴행하는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가는 청문회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후보자, 항문성교를 연상하게 하는 후배위를 선호하죠? (녹취 파일을 흔들며) 그동안 관계했던 여성의 증언이 확보돼 있어요. 인정하세요.”

“저는 상식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말자,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조문을 정비하자. 현재 동성애와 관련한 논의의 수준은 이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동의가 군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또 이것이 물꼬가 되어 소아성애, 수간, 시체상간까지 비화되리라 단언하고 군대 가야 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을 강변한다. 

듣다 보면 동성애자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 페스트 저리 가라 할 만한 치명적 역병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그 순간부터 동성만 보면 흥분해서 들이댈 좀비 같은 존재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통제불능 성도착자들이다. 좀 있으면 ‘나는 동성애자가 싫어요’ 외치다 죽임을 당했다는 군대 괴담까지 나올 기세다. 이렇게 끔찍한 존재들이 널렸는데 그동안 사우나는 어떻게 다녔으며 화장실 소변기는 어떻게 이용했나. ‘항문성교하면 처벌한다’는 얄팍한 보호막 하나로 안심하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이성애자들은 이성만 보면 흥분해서 껄떡거리는 존재들이다. 남녀가 함께 모이는 학교, 회사, 각종 공동체는 언제든 난교파티가 벌어질 공간이다.

우려해야 하는 것은 남의 성적 지향이 아니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물리력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기득권,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탄압이다.

동성애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데는 보수 개신교계가 큰 몫을 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에 물들어가는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떨쳐 일어날 만큼 ‘순수’한 신앙심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냉전·반공체제를 발판으로 함께 성장했던 수구보수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유통기한 지난 색깔론과 종북 타령을 대신해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성경에 언급된 그 수많은 죄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횡행하는데 왜 동성애에만 목숨 거는 건지 이해할 길이 없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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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8일 “제 발언으로 마음 상한 분이 계시다면 심심한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우원식 원내대표도 “저의 과도한 얘기로 국민의당을 불편하게 한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그동안 국민의당은 두 사람의 사과 없이는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준안 협의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문재인 대통령까지 전날 입장문을 내고 “국회와의 원활한 소통에 노력했지만 부족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정도면 국민의당이 김 후보자 인준 절차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요구는 모두 충족됐다고 볼 수 있다. 늦게나마 국민의당 측이 인준 절차 협의에 응하겠다고 한 것은 당연하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18일 국회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강원 강릉 석란정 화재사고로 순직한 소방관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공은 국민의당으로 넘어왔다. 보수야당은 ‘사법부 코드 인사’ 등을 이유로 김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이다. 원내 40석으로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찬반 당론을 정하지 않은 채 의원들의 자유투표에 부치겠다는 입장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인준 부결 때와 똑같은 태도다. 당시 안철수 대표는 인준 부결 직후 “국민의당은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고 했다. 그 당의 원내대표는 “그분은 법관으로서 훌륭한 분”이라며 문 대통령이 문제였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후보자는 문제가 없는데 당의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 반대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논리도 명분도 없이 그저 ‘문재인 정권을 혼내주자’는 식의 정략적 발상이란 비판을 받을 만했다. “멀쩡한 학생을 퇴학시켜 놓고 ‘참 괜찮은 학생인데 문제는 그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유도 나왔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후보자가 대법원장직을 수행하기에 부적절한 흠결이 드러난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사법부 독립에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고, 소장 법관들의 두터운 신망을 얻고 있어 시대적 요구인 사법부 개혁의 적임자로 꼽을 만하다.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김 후보자 인준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53.3%로, 반대 28.7%보다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구보수세력의 저항 속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경쟁할 건 하면서도 촛불개혁엔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게 양당에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다. 국민의당은 이번엔 캐스팅보트를 분별력 있게 행사해야 한다. 고작 한풀이나 존재감을 위해, 정치적 이득 따위를 챙기기 위해 써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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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안을 마련해 법무부에 권고했다. 개혁위 방안은 박상기 법무장관에게 권고하는 형식이지만 박 장관이 최대한 반영하기로 한 만큼 정부안이나 마찬가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의 검찰 모습은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공수처 설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친 ‘박영수 특별검사팀’ 같은 조직을 상설화하는 것이다. 옥상옥(屋上屋)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권력자와 검찰의 비리를 단죄하고 방지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박상기 법무부장관이 9일 정부 과천청사 법무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법무.검찰 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 발족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기위해 위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준헌 기자

한국 검찰만큼 힘이 센 수사기관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검찰은 수사·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다. 경찰 수사도 지휘한다. 검찰이 정권과 부정하게 결탁하고, 검사들이 권한을 남용해 ‘공공의 적’이 되면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홍만표·진경준 등 전·현직 검사장들의 비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개혁위 방안을 보면 공수처는 검사 50명을 포함해 최대 122명의 수사 인력으로 구성된다. 수사 대상은 대통령과 국회의원, 판검사, 경찰 고위간부 등이다. 공수처는 수사권 외에도 기소·공소유지권을 갖는다. 수사 사건이 검찰·경찰과 겹칠 때는 검경보다 우선적으로 수사할 수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검경의 ‘셀프 수사’를 원천 봉쇄했다.

개혁위는 공수처를 견제하는 장치도 동시에 마련했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위해 국회에 공수처장 추천위원회를 두고, 공수처 검사들은 인사위원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했다. 공수처장이나 공수처 검사가 저지른 범죄는 검찰에서 수사하도록 했다. 권력과 공수처의 결탁을 막기 위해 공수처장의 임기를 3년 단임으로 못 박고, 공수처 검사는 퇴직 후 3년간 검사로 임용될 수 없도록 했다.

공수처 설치는 과거 몇 차례 시도됐다. 그러나 검찰을 활용해 야당 등을 탄압하려는 집권세력과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검찰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공수처 설치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유승민·심상정 후보 등도 공수처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여론도 공수처 설치 찬성이 86~87%에 이른다. 이번 정기국회에서는 공수처 신설 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그래야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고 정의를 바로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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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을 촉구하는 10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 9일, 15일 서울과 대구에서 전술핵 재배치를 촉구하는 장외집회를 연 데 이어 23일에는 부산에서 그 경과를 보고하는 대회를 연다. 홍준표 대표는 “1000만명이 서명하면 전술핵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이) 안 주면 자체 핵개발도 할 수 있다”며 연일 서명을 독려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 이철우 위원장(왼쪽에서 세번째) 등 방미단이 17일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에서 방미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당이 주장하는 전술핵 재배치나 핵무장은 타당성은 물론 현실성도 없는 주장이다. 지난주 방미한 한국당 의원들에 앞서 한국 언론인들을 만난 미국 조야의 한반도 정책 담당자들은 한결같이 전술핵 재배치는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선택지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 우선 미국의 핵무기 감축 정책에 따라 한국에 배치할 전술핵 자체가 없다고 했다. 전술핵 재배치에는 무기뿐 아니라 이를 다룰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이 또한 준비가 안돼 있다고 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괌에서 핵무기를 싣고 출격하면 2시간 만에 한반도에 도착하는데 왜 재배치에 목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핵무장은 더더욱 대안이 될 수 없다. 핵무장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무너뜨리는, 국제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가져올 위험한 발상이다. 일개 정당이 책임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견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시민을 속이는 일이다. 그건 불가능한 걸 가능한 것처럼 말하면서 그걸 실천하지 않는 쪽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를 지속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구실이다.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시민들의 막연한 불안심리를 더욱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얄팍한 정략적 계산만 하는 정당이라면, ‘안보 중시’ 세력이 아닌 ‘안보 위해’ 세력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미국을 찾아가 전술핵을 재배치해달라고 구걸하는 세력에 다른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미국을 방문했던 의원들은 실상이 어떤지 그대로 시민에게 보고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 핵무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요구인지 왜 그들 스스로 고백하지 못하는가. 한국당은 이제 현실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한국당은 지난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로 민주당 의원들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안보 문제에 초당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며 매국적 행위라고 비난한 바 있다. 북핵이야말로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다. 한국당이 진정 안보정당을 자임한다면 정치적 간계를 부리거나 국제적 망신을 자초하는 서명운동을 할 게 아니라, 보수적 관점과 통찰을 응축한 제대로 된 대응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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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의 핀란드는 대한민국과 유사한 면이 많은 나라다. 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핀란드는 곧바로 좌·우 간의 내전을 치르게 된다. 당시 핀란드 인구가 300만명 정도이던 시절이었는데, 내전의 와중에 3만6000명의 핀란드인이 사망했다. 인구의 1%가 넘는 숫자였다. 전투 중에 죽은 경우뿐만 아니라, 테러와 질병, 포로수용소에서의 굶주림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비참한 상황이었다. 내전에는 독일, 소련의 외국군대까지 개입했다. 내전의 결과는 우파의 승리였다. 우파는 왕이 있는 군주국을 선호했다. 그러나 우파를 지원했던 독일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핀란드는 공화국의 길을 가게 된다.

그러나 공화국의 권력구조를 둘러싸고도 이견들이 존재했다. 내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강력한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그것에 반대하는 입장이 존재했다. 그런 와중에 치러진 1919년 핀란드 총선에서는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수 없었다. 핀란드가 택하고 있던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덕분이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이 배분되는 선거제도인데, 1위를 차지한 정당이 얻었던 득표율은 40% 정도였다. 그래서 여러 정당들이 타협해서 내각을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19년에는 핀란드 헌법이 만들어졌다. 이 헌법은 양쪽 입장의 타협물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제와 의회제가 혼합된 형태를 택했다. 이원집정부제(준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불린다)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 군통수권, 총리임명권 등 강력한 권한을 갖지만, 총리 중심의 내각은 의회 주도로 운영되는 모델이었다.

이와 같은 타협안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1919년 핀란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카를로 유호 스톨베리’였다. 그는 당시 외국의 헌법과 정치제도를 깊이 연구했던 법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우파였지만, 자유주의자였다. 여성참정권을 지지했고, 공화국을 지지했다. 그는 혼합형 정부형태라는 타협안이 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다만, 스톨베리는 대통령 직선제를 지지했지만, 이 부분에서는 그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았다. 당시 핀란드는 대통령 간접선거제를 택했고, 1994년에야 대통령 직선제로 바뀐다(결선투표제까지 도입됐다). 스톨베리는 1919년 간접선거를 통해 핀란드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스톨베리는 내전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핀란드에서 입헌주의 정치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1925년 대통령 연임 시도를 하지 않고 물러난다.

그러나 핀란드의 시련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1930년에는 극우파들이 스톨베리 전 대통령을 납치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쿠데타까지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좌절되었다. 핀란드는 1939년과 1941년 소련과 두차례 전쟁을 치르면서 영토의 15% 정도를 잃고 전쟁배상금까지 물어주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그러나 핀란드는 내전과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복지국가를 만들어 왔다. 핀란드의 교육은 세계적인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없는 나라에 속하고, 행복도나 ‘삶의 질’도 높은 편에 속한다. 핀란드가 시련 속에서도 지금의 핀란드를 만들 수 있었던 원인은 정치인들의 높은 책임감 등에도 있지만, 선거제도를 빼놓을 수 없다. 핀란드는 처음부터 국회 구성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정당득표율대로 의석을 배분하는 이 제도는 표심이 그대로 반영되는 의회 구성을 가능하게 했다.

핀란드 국회는 자연스럽게 다당제 국회가 되었다. 좌파, 우파, 중도파 모두 국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어느 한쪽이 마음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숱한 갈등 속에서도 토론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 수밖에 없었다. 극단적인 주장은 자연스럽게 도태되게 되었다. 이런 국회를 가능하게 한 선거제도야말로 핀란드 민주주의 시스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선거제도 개혁과 개헌이 동시에 논의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정치개혁특위와 개헌특위가 가동 중에 있다. 그러나 국회 내부에서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의 국회는 생산성이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고, 이 난국을 헤쳐 갈 ‘정치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지만, 대통령 탄핵 같은 상황을 겪고도 정치시스템을 개혁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퇴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핀란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100년 가까운 핀란드 공화국의 역사에서 가장 지속성을 갖고 있는 것은 선거제도이다. 오히려 권력구조는 계속 변화해 왔다. 초기에는 내전과 전쟁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 대통령이 상대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냉전이 종식되고 평화분위기가 만들어지자 핀란드는 헌법을 정비하여 대통령의 권력을 의회로 좀 더 분산시키는 개헌을 했다. 권력구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대내외적인 여건에 따라 변동가능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제도이다.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민심을 반영하는 선거제도를 갖추지 못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이다. 그래서 정치시스템 개혁의 입구는 선거제도 개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을 이뤄내야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부패를 없애고, 토론이 가능하고 문제해결 능력이 있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 국회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주권자들이 나서서라도 이것 하나만은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그래야 촛불혁명이 완성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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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과거 시국사건 6건에 대해 직권으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6년부터 4년 동안 재심을 권고한 73건 중 당사자 일부가 재심을 청구해 이미 무죄판결이 내려진 사건들이다. 함께 기소됐던 공동 피고인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는데도 아직 신청하지 않은 18명을 대신해 재심을 청구해주는 것이다. 검찰이 과거 시국사건에 대해 먼저 재심을 청구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어찌 보면 재심 청구를 대행해주는 것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검찰로 거듭나기 위한 의미있는 걸음이라 평가한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초 “검찰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일부 시국사건 등에서 적법 절차 준수와 인권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다. 검찰의 재심 청구는 과거사 반성의 후속 조치라 할 수 있다. 검찰은 불과 5년 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백지 구형’ 방침을 어기고 ‘무죄 구형’을 했다는 이유로 임은정 검사에 대해 정직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번 재심 청구에선 재판부에 무죄 구형을 할 것이라고 한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검찰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이미 법원에서 무죄가 내려진 사건 중 몇 건을 추려 재심을 대행 청구해준다고 과거가 청산되는 게 아니다. 과거사 반성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못했는지 규명하는 절차가 병행되어야 한다. 유서대필 사건의 경우 24년 만에 누명을 벗었지만 당시 검찰 수사관계자 누구 한 사람 사과 한마디 없다. 검찰은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선 조봉암 사건 재심을 권고한 진실화해위에 대해 “결론에 꿰맞춘 궤변”이라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부끄러운 과거 청산에 책임을 져야 할 검찰이 되레 적반하장의 태도였다. 이제 정권이 바뀌자 다시 태도를 바꾸니 선뜻 믿기가 어렵다. 새 정부 들어 검찰이 적폐청산 1순위로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을 누그러뜨리려는 생각이라면 큰 오산이다.

검찰의 과거사 반성은 여론무마용이거나 잘못을 희석하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과오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청산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법적으로 바로잡고, 명예를 회복시키고, 재발방지를 위해 제도를 고쳐야 진정한 청산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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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끝난 지 닷새가 지났지만 국회 임명동의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김 후보자가 사법부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며 심사경과 보고서 채택조차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후보자가 특정 이념 성향이 있는 법원 사조직을 이끌었고 국민 상식에 어긋나는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가 동성애를 옹호하고 지지한다는 얘기도 흘리고 있다. 보수야당의 색깔론과 성소수자 혐오에 신물이 난다. 김 후보자가 회장을 지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등은 판사들의 대중적인 학술모임에 불과하다. 동성애와 관련해서도 김 후보자는 “동성애를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해서도 안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도 하나의 권리로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회 시작 전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국민의당의 모호한 태도는 사태를 더욱 키우고 있다. 당이나 당 대표의 알량한 존재감 부각을 위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때처럼 반대표를 던질 태세다. 시민들의 사법개혁 열망을 짓밟고,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반민주적인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른바 ‘땡깡 발언’에 대한 사과와 김 후보자 인준 문제를 결부시키고 있지만 이 둘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은 김 후보자가 지난 31년간 내린 판결 중에 함량 미달이나 반인권적·비양심적인 것이 있는지, 특정 정파에 유리하거나 사상적으로 치우친 것이 있는지, 성소수자에게 특혜를 주거나 차별한 것이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를 대기 바란다. 지금과 같은 엄중한 시기에 정략적으로 대법원장 후보자를 비난하고 국회 임명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이다. 

역대 대법원장 후보자 인선은 정권 성향에 관계없이 전임자 퇴임 전에 이뤄졌다. 여야가 정파를 떠나 대승적으로 협력을 해왔기 때문이다. 6년 전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보수성향의 양승태 현 대법원장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면서도 임명동의안을 처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헌정 초유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달라”며 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통과를 국회에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국회와의 협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도 인정했다.

이제 국회가 화답할 차례다. 바람직한 삼권분립을 위해서는 인준 절차와 과정에서 사법부에 예우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양 대법원장 임기는 오는 24일 종료된다. 시간이 별로 없다. 국회는 김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을 조속히 통과시켜 사법부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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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덜컹. 차가 돌부리에 걸리거나 푹 꺼진 땅을 지나며 흔들릴 때 쓰는 말이다. 넉 달이 갓 넘은 문재인 정부에서의 세상살이를 두고 전화 너머로 친구와 공감한 단어는 ‘덜컹’이었다. 북녘의 6차 핵실험, 남녘과 중국에서의 사드 후폭풍, 김이수·박성진 후보자의 인사 파동…. 맏이가 교대 다니고 막내가 중3인 친구는 여러 얘기 끝에 여름 내내 꽤 속 끓인 듯 교육 얘기를 더했다. 통제선을 넘은 ‘북풍’이 있고, 보수 3당의 ‘완력’이 보이고, 정부가 자초한 ‘화(禍)’가 섞여 있다. 친구의 넋두리처럼, “잠시 세상사는 숨통이 틔었다가 다시 숨이 막혀오는 나라 꼴”이다.

억울할 것이다. 정책 집행자 눈에는 도처에 먼지를 두껍게 쓰고 있는 난제들이 적폐일 게다. 손대려니 공매 맞는 걸 피할 길도 없다. 초등교사 수급만 해도 4년 전 교육부 연구용역에서 이미 교사 수가 정원을 1만명 웃돌고, 갈수록 더 심각해질 거라는 내부 경고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시한폭탄을 묻어두고, 박근혜 정부는 청년들의 파트타임 노동(기간제 교사·강사)을 늘릴 시험터로 학교를 택했다. 그 후과가 지금 3만5000명 웃돌고, 2024년 7만5000명에 달할 거라는 ‘잉여 교사’의 수렁이다. 8월 한 달을 시끄럽게 달구다 1년 유예한 수능개편 작업도 2013년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백년지대계로 시작됐다. 문·이과 통합과 수능 절대평가의 설익은 그림을 담아보려다 퇴짜 판정을 받은 격이다. 그 무섭다는 중2들만 자극하고 “4년간 뭐하다 이제 와서….” 소리가 교육부를 몰아친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억울함은 거기까지다. 상처를 덧내고 매를 버는 일이 줄 잇고 있다. 살충제 계란의 엉성한 관리가 옛 정부의 적폐라면, 혼란과 화를 돋운 사람은 따로 있다. 닷새 후 들통 날 거짓말을 하고 업무 파악도 못해 버벅댄 식약처장이다. 성주 땅에는 대통령이 약속한 국회 비준이나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과연 효용이 있는지 ‘과학의 언어’를 얹지 못한 채 사드 불씨가 밤새 터를 잡았다. 돌이켜 보건대, 교육현장에서 30%밖에 수긍 못할 수능개편안은 새 부대에 담을 술이 못되면 애초 출시를 늦췄어야 했다. “양자택일하라”며 강매한 교육부는 오만·불통의 관료 속성 그대로다.

누적된 교사 과잉 폭탄을 올해 임용고시생에게 던지려 한 ‘행정폭력’도 조급함의 발로다. 교사 연수·파견·휴직을 늘려 임용 숨통만 터보려는 몸짓은 아랫돌로 윗돌 괴기다. 제3자 눈엔 답이 보인다. 적폐를 풀겠다는 정부라면, 처음부터 교사 수와 교대생 기득권을 같이 낮추는 긴 일정표를 내놓고 사회적 대화를 시작했어야 했다. 그것이 혁명이나 행정 독재보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일 게다.

적폐는 쌓인 두께와 시간이 여러 갈래다. 어깨 힘을 뺀 검찰·국정원·감사원·국방부·방통위가 몸소 저지른 악의 뿌리를 당기고 있다. 블랙리스트·댓글·공영방송·4대강에선 ‘검은 팩트’가 쏟아지고,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백서를 쓰고 있다. 청와대 뒷산에서 ‘쇠고기 촛불’을 내려다보며 곱씹었을 MB의 반격과 박근혜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사를 기록하는 장정이다. 해도, 역사는 앞으로만 가지 않는다. 어찌보면, 박수 받는 쉬운 적폐부터 손대기 시작한 격이다. 시끄럽고 난항인 것은 정작 이해와 생각이 엇갈리는 생활·안보 이슈다. 4대강 끝에는 담수와 바닷물이 격하게 부딪치고 섞이는 기수역(汽水域)이 있다. 그 못잖게 추석 연휴 뒤에 ‘과거 9년’과 ‘새 정부 5개월’이 충돌할 국정감사에선 그 밀당이 정점으로 치달을 게다. 길싸움은 이제부터다. 진흙탕 싸움을 불사하는 야당이 있고, 수레바퀴처럼 도는 이슈가 있고, 저마다 눈높이가 다른 민심은 늘 변덕을 품고 있다.

 닻 올리고 128일, 문재인 정부에도 어김없이 호루라기는 울렸다. 저항 세력이 돌출하고, 개혁 피로감이 움트고, 국정지지율은 70 언저리에서 ‘떨리며 내리막’이다. 이맘때, 구중심처에선 호미로 막고 가자는 사람, 물러서면 대통령 힘 빠진다는 사람이 섞인다. 정도는 음수사원(飮水思源)이다. 문재인 정부의 그것은 “이게 나라냐”고 묻던 촛불이다. 겸손한 권력, 찾아가는 정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 문 대통령 취임사에 담긴 키워드이고, 그날 임명된 임종석 비서실장의 일성은 “예스맨이 되지 않겠다”였다. 초심은 유지되고 있는가. ‘3철’을 배제했던 인사 감동이 역사에 무지한 ‘생활보수 소시민’을 국무회의에 앉히는 인사로 저물 것인가. 5·18과 가습기 살균제의 멍울을 풀어준 대통령이 성주 소성리는 외면할 것인가. 생리대·계란·수능개편·박성진 파동으로 이어진 과오는 여름날로 끊을 수 있나. 힘 빠지고 아픈 것은 자살골이다. 운신을 옥죄는 적폐는 억울할 게다. 하나, 그 위에 덧난 상처는 현재의 몫이다. 위정자들이 기대는 “억울한 과거”,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기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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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4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의 부적격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송부받고 임명을 보류했다. 그렇다고 지명을 철회하지도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후보자 임명 문제는 시간을 두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여론을 더 살피겠다는 뜻이다. 박 후보자에 대해 ‘부적격’이라고 명시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는 전날 여당의 묵인 속에 채택됐다. 여당 의원들조차 박 후보자의 자질과 역량 부족에 고개를 저었다고 볼 수 있다. 박 후보자의 낙마는 이제 기정사실화됐다. 만에 하나 임명을 강행한다 해도 장관으로서 리더십 발휘나 정상적인 업무수행은 불가능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가 11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문에 잠시 눈을 감고 답변을 생각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청와대의 구상대로라면 다음주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복귀할 때까지도 박 후보자의 거취는 결론이 나지 않을 수 있다. 이미 부적격 결론이 난 장관 후보자의 거취 문제를 오래 끄는 건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혁신적인 경제 생태계를 만들어가겠다고 새로 만든 부처다. 문재인 정부의 상징과도 같다. 그런데 정권 출범 넉 달이 지나도록 장관 자리를 비워둔다는 건 국정 공백과 혼란을 방치하는 꼴과 다를 바 없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3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북핵 위기에 인사 난맥이 겹친 탓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벌써 6명의 고위공직자가 낙마했다. 추천과 검증 등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과할 건 사과하고, 잘못된 건 바로잡겠다고 말해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후에도 침묵을 지키다 다음 날 밤에야 ‘대통령 입장문’이란 것을 내놓아 많은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바 있다. 대통령의 직접 브리핑은 하고 싶을 때만 하는 게 아니다. 심각하고 어려운 문제일수록 시민에게 솔직하게 입장을 밝히고 이해를 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의 ‘불통 정권’과는 달라야 한다. 지금은 여론의 향배를 살필 게 아니라 여론 앞에 직접 나서 설명할 때다.

이유를 불문하고 국정운영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경색 정국을 풀고 국론을 모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주요 난제들을 시민과 함께 고민하고 해법을 찾아야 문재인 정부가 성공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그 어느 때보다 신속하고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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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