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114건

  1. 11:22:40 [시론]대북 제재 속 남북경협 모델
  2. 11:13:17 [김호기 칼럼]포용국가의 정치적 조건
  3. 10:56:35 [사설]남북관계 발전, 비핵화 진전 기대케 한 남북정상회담 첫날
  4. 10:54:11 [사설]은산분리 완화, 재벌 사금고화 원천봉쇄 장치 마련돼야
  5. 10:46:09 [사설]가계동향조사 개편, 통계 신뢰도 높이는 계기 되길
  6. 2018.09.18 [사설]평양 남북정상회담, 비핵화·평화정착의 주춧돌 되기를
  7. 2018.09.18 [사설]국가균형발전 제대로 해야 ‘서울 집중’ 막을 수 있다
  8. 2018.09.18 [사설]‘댓글 지시’ 녹취록 나온 이명박, 결국 그가 ‘몸통’이었나
  9. 2018.09.17 국회·정당개혁으로 ‘촛불 2돌’ 맞이하자
  10. 2018.09.13 [사설]심화되는 고용쇼크, 최저임금 영향도 있다면 보완해야
  11. 2018.09.12 [구혜영의 이면]이해찬에 반(反)하다
  12. 2018.09.11 무너진 것이 유치원뿐일까
  13. 2018.09.11 [김민아 칼럼]‘들어라, 문재인 정부여’
  14. 2018.09.11 [사설]야당의 평양 남북정상회담 동행 불참 결정 안타깝다
  15. 2018.09.10 [사설]자유한국당의 자가당착적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반대
  16. 2018.09.07 [사설]야권의 판문점선언 비준동의 추진을 환영한다
  17. 2018.09.06 [사설]여야의 선거제도 개혁 표명,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해야
  18. 2018.09.05 [이대근 칼럼]실시간 민주주의, 그 불안과 역설
  19. 2018.09.05 [사설]체육·예술 병역특례제도, 근본적인 대책 마련해야
  20. 2018.09.05 [사설]‘비자금’까지 나온 양승태 사법농단, 끝은 어딘가

문재인 대통령의 역사적인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대기업 주요 인사들이 동행했다. 의미가 크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주는 메시지다. 한국이 북한 경제를 진심으로 도울 것이라는 의지를 직접 보였다. 동시에 대기업 경영자도 북한 지도부를 만나 핵문제 해결 의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또 북한 경제를 현지에서 파악하는 중요한 기회다.

그런데 대북 제재가 있어 남북경협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조화를 이루는 남북경협은 가능하다. 제재만으로는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남북경협은 반드시 필요하다. 제재 속에서 최상의 남북경협 모델을 찾아야 한다. 

먼저, 유엔 제재가 북한에서 일체의 경제활동을 금지하는 건 아니다. 지금 평양에선 제13회 가을 평양 국제무역전이 열리고 있다. 많은 외국 기업들이 참여했다. 대북 제재 때문에 북한에서 일체 사업이 안된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평양에서 북한 리룡남 내각 부총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유엔 제재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개발과 관련된 경제활동을 금지한다. 그리고 북한에서의 외국 은행 영업을 금지한다. 그러나 북한의 ‘발전’을 위한 도로·철도 건설은 금지하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에 가장 기본적 산업인 농업에 대한 제재를 하지 않는다. 환경 보존을 위한 산림녹화 사업도 허용한다.

미국의 단독 제재에선 어떤가? 최근 북한산 석탄이 밀수된 사건에서 크게 염려했던 것이 한국의 은행이 관련되었나 하는 점이었다. 미국의 대북 제재에선, 은행이 북한산 석탄 거래인지 알고도 고의로 신용장 개설이나 국제 송금 등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했다면 국제 금융망에서 사실상 퇴출될 위기에 놓인다.

그러나 미국의 단독 제재는 한국 정부가 북한에서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농림축산 협력을 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민간이 산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제재 대상이다. 미국 제재에서도 미국 정부의 공공정책은 일반적 허가 사항으로 승인해 놓았다.

대북 제재에서도 남북경협은 가능하다. 제재와 조화를 이루면서도 최상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남북경협 모델을 찾아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농림축산 협력을 밀접하게 연계하여 북한의 주요 거점을 발전시키고 생활의 질을 높이는 지역개발 모델을 제안한다.

이 모델은 참여정부 시기에 북한의 북고성과 개성시 일대에서 진행한 농업개발 협력 사업을 뿌리로 한다. 당시 통일농수산사업단(이태헌 사무총장)이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진행한 이 남북경협은 한국농어촌공사, 농촌진흥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등 공공기관과 40개의 민간회사들이 함께했다. 사업은 식량 증산, 영농기반 확충, 농업기술 협력, 지역 소득원 개발의 네 가지 영역으로 진행했다. 그 백미가 2007년에 진행한 개성시 송도리 협동농장 관리위원회와의 협력사업이었다. 당시 벼 생산량이 ㏊당 2t에 못 미치던 것을 5t까지 끌어 올렸다. 송도리 협동농장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 그 성공은 인근 협동농장에도 알려졌고, 추가 협력을 요청받았다. 이 성과를 바탕으로 동쪽으로는 고성군, 서쪽으로는 개성과 해주 지역을 연결하는 남북 농업협력 벨트를 추진하는 결실이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등장으로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참여정부의 북한 지역 개발 모델을 현대화해서 계승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새 남북경협 모델은 북한의 산업화 전망과 함께 간다. 도로와 철도가 새로 나는 북한 지역에 새로운 거점도시가 생긴다. 신도시의 지속가능한 삶의 질을 보장하도록 배후지 농촌이 함께 발전한다. 동시에 산림에서도 큰 산 중심이 아니라, 생활권 중심의 산림녹화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 현재 북한의 농업 인구는 800만명이지만 북한의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북한의 농촌에서 대량의 노동력이 도시로 이주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이 다시 가동하여 100만명의 근로자 공단으로 발전할 때, 지역 농업이 그들을 먹일 식량을 생산하는 농업구조 개선이 따라야 한다.

새 남북경협 모델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김정은 위원장이 야심차게 발표한 중앙급 특구와 지방급 개발구 개발을 실현하는 의미가 크다. 지속가능한 북한 발전과 잘 맞는다.

정부 주도 사회간접자본 건설과 농림축산 협력을 결합한 북한 지역개발 모델은 대북 제재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인프라는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다. 농업은 급속한 산업화를 감당할 구조 개선을 이룩할 거다. 지역 거점도시에 사는 주민의 삶의 질은 높아질 거다. 대북 제재가 있어 남북경협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은 틀렸다.

<송기호 | 변호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정부가 ‘포용국가’를 내걸었다. 포용국가는 사회정책의 국가비전이다. ‘모두를 위한 나라, 다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이 비전의 이름이다. 포용국가의 목표는 세 가지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배제와 독식이 아니라 공존과 상생을 도모하며, 미래를 향해 혁신하는 사회를 일구겠다는 것이다.

포용국가는 3대 비전으로 이뤄져 있다. ‘사회통합 강화’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 ‘사회혁신 능력 배양’이 그것이다. 이 비전들은 다시 각 3개씩의 세부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 이른바 ‘9대 전략’이다. 정부는 포용국가의 실현을 위해 ‘국민 전 생애 기본생활보장 3개년 계획’을 마련하고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포용국가론에서 내 시선을 끈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이다.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어느 정부든 집권 5년의 시간을 고려한 국정 운영 로드맵을 마련했다. 그 로드맵은 대개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 먼저 국가비전에 걸맞은 정책을 추진하고, 이어 이를 통해 도약을 모색한 다음, 마지막으로 안정적으로 국정을 마무리하려는 장기 계획이 그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집권 2년에 제시하는 비전과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청사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앞선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에 ‘친서민 중도실용’을,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과 ‘규제 개혁’을 내걸었다. 현재 시점에서 친서민 중도실용, 통일 대박, 규제 개혁이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주목할 건 정부의 입장에서 집권 첫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이다.

돌아보면 지난 1년여 동안 문재인 정부가 주력했던 세 과제는 적폐 청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한반도 평화 정착이었다. 적폐 청산이 낡은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라면, 나머지 두 과제는 국정의 양대 영역인 경제정책과 대외정책에 관한 것이다. 집권 중반기로 향해가는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과제에 더하여 사회 분야 비전으로서의 포용국가를 내놓은 셈이다.

둘째는 포용국가를 이루기 위한 조건이다. 앞서 말했듯이 포용국가는 9대 전략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소득 불평등 완화를 위한 소득보장제도 개혁, 공정사회를 위한 기회와 권한의 공평한 배분, 사회통합을 위한 지역균형발전 추진이 ‘사회통합 강화’를 위한 3대 전략이라면, 저출산·고령사회 대비 능동적 사회시스템 구축,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신뢰성 강화 및 일자리 창출, 일상생활의 안전 보장과 생명의 존중이 ‘사회적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3대 전략이다. 그리고 ‘사회혁신 능력 배양’을 위한 3대 전략으로는 인적 자본의 창의성·다양성 증진, 성인기 인적역량 강화와 사람 중심의 일터 혁신, 경제-일자리 선순환을 위한 고용안전망 구축이 제시된다.

2018남북정상회담평양’의 첫 날인 18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이 환영나온 평양 시민들에게 손흔들어 답례하는 장면이 이날 서울 중구 DDP프레스센터에 생중계 되고 있다. 연합뉴스

9대 전략은 현재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국가적 과제들인 일자리 창출, 불평등 해소, 인구절벽 대응 등을 적절히 고려하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포용이 우리 사회에 요구되는 시대적 가치임은 분명하다.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도 포용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오늘날 서구사회에서 평등은 ‘배제’에 맞서는 ‘포용’으로 재정의돼야 하고, 정부의 일차적 과제는 ‘찢겨진 사회’를 ‘포용적 공동체’로 재구조화하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러한 포용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조건이다. 포용국가를 성취하기 위해선 정책 구현을 위한 법적 제도의 정비 및 구축이 요구되고, 이를 위해선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문제는 정치사회의 현실이다. 현재 정치사회는 국민을 둘로 나누는 능력은 탁월해도 이견을 조정하고 타협을 도출하는 역량은 허약하다. 더욱이 여소야대 상황은 새로운 법적 제도를 완비하는 데 작지 않은 어려움을 안겨준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포용적 정치의 중요성이다. 지난 1년여의 국정 운영을 돌아보면 역시 ‘문제는 경제’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쟁에서 볼 수 있듯, 정부에 이른바 ‘먹고사니즘’만큼 더 중요한 대내적 과제는 없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에서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 것인지에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달려 있으며, 이 과정에선 무엇보다 국회와의 협치가 필수조건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포용적 성장과 포용적 복지를 일궈야 한다. 이를 위해선 경제학자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주장한 바 있는 포용적 정치를 정부든 여당이든 야당이든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문제는 경제’인 만큼 ‘문제는 역시 정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시작됐다. 두 정상은 18일 평양국제비행장 환영행사와 정상회담, 공연관람, 만찬 순으로 첫날 일정을 소화하며 비핵화 방안 등을 논의했다. 두 정상은 김 위원장의 집무실이 있는 조선노동당 본부청사에서 2시간 동안 정상회담을 했다. 문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8000만 겨레에 한가위 선물로 풍성한 결과를 남기는 회담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도 “북·미 (정상) 상봉의 역사적 만남은 문 대통령의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로 인해 주변 지역 정세가 안정되고 더 진전된 결과가 예상된다”고 화답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역사적 회담이 순조롭게 출발한 것이다.

무지개차에 탑승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 순안국제공항을 출발해 백화원 초대소로 이동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서성일기자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의전과 행사 내용, 시민의 표정 등 모든 면에서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북한군 의장대는 예포와 분열 의식 등 최상의 예우로 문 대통령을 맞았다. 연도에 선 평양시민들 손에는 인공기와 더불어 한반도기가 들려 있었다. 고층아파트가 들어선 여명거리 등 평양 시내 모습과 정상들의 활동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로 중계됐다. 시민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고, 거리는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가 넘쳤다. 김정숙·리설주 두 퍼스트레이디들은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별도 행사를 치렀다. 김 위원장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연 것도, 김 위원장 내외가 공항에 영접을 나온 것도 처음이다. 북한이 정상국가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두 정상이 첫날부터 바로 회담에 들어간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세번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친밀감이 형식을 뛰어넘은 밀도있는 협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회담 결과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갖게 한다. 두 정상은 이날 비핵화와 남북관계, 군사 긴장완화 등 3가지 주요 의제 등 현안을 논의했다. 19일에는 남북 군사당국이 실무적으로 협의한 군사긴장 완화 방안에 최종합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예정대로 진행되면 안정적인 남북관계와 항구적 평화로 가는 결정적 전기가 마련된다. 군사 긴장 해소가 각 분야의 남북 간 협력으로 확대될 경우 한반도 평화 기조는 불가역적인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나아가 북한에 대한 제재가 풀려 남북 경협이 진행되면 명실공히 남북이 공동번영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 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석달째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반드시 북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이번 회담에서 그 자신의 목소리로 비핵화 의지와 실천 방안을 밝힐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방북 직전 서울공항에서 “이번 방북으로 북·미대화가 재개되기만 한다면 그것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의 중재 노력이 김 위원장의 호응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계속 이어져 한반도 비핵화라는 결실로 귀결되기를 염원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들이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제한하는 ‘은산분리’ 규제를 대폭 완화한 인터넷전문은행규제특례법안을 처리하기로 지난 17일 합의했다. 여야가 합의한 인터넷전문은행법안의 골자는 산업자본의 인터넷은행 지분 보유 한도를 현행 의결권 있는 지분 4%에서 34%로 높이는 것이다. 다만 시행령에 자산 10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기업(재벌)의 진입을 막고, 카카오와 KT처럼 정보통신기술(ICT)업 자산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만 허용한다는 규정을 담기로 했다.

이에 진보진영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재벌은행 탄생의 길을 열어준 것이라는 반발이 나온다. 시행령은 정부가 국회 동의 없이 언제든지 변경할 수 있고, ICT 주력 기업도 재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은산분리 원칙은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가 되면 발생할 부작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시민들의 예금으로 조성된 막대한 은행 자금이 재벌 뜻대로 운용된다면 자금배분의 왜곡과 부실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재벌이 은행의 건전한 운용은 뒷전이고 몸값만 높여 매각하려는 경영을 한다면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인터넷전문은행법에 금융관계법과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자에 대해 대주주 자격을 제한하도록 명시해 부도덕한 산업자본의 진입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현행 은행 대주주 자격요건보다 강화된 내용이다. 또한 은행법의 대주주 신용공여 한도 25% 규정을 인터넷전문은행법에서는 전면 금지하는 등 재벌의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장치도 강화했다는 입장이다.

인터넷전문은행법은 문재인 대통령의 규제개혁 1호 법안이다. 문 대통령이 대선공약 위배라는 비판을 무릅쓰며 이를 추진한 것은 자본확충과 책임경영 강화로 인터넷은행의 경쟁력을 높여 금융시장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이런 취지를 살리면서 재벌 사금고화는 차단하는 확실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여야가 합의한 시행령이 제대로 마련돼야 하는 건 물론이고, 금융감독당국은 법에 명시된 대주주 자격요건과 편법적인 경영 여부 등을 철저하게 심사·감시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통계청이 18일 ‘가계동향조사 통합작성방안’을 발표했다. 가계동향조사란 가계의 소득과 지출을 조사해 살림살이 현황 및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번 개편안의 골자는 가계동향조사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전용표본’을 만들어 소득부문과 지출부문을 통합조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통해 표본응답률을 높이고 시계열 비교를 가능하게 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통합조사결과는 2020년 1분기부터 발표하기로 했다. 통계청은 가계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동향조사를 통해 통계청장 교체까지 빚어졌던 ‘부실 표본조사’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것이다.

18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강창익 사회통계국장(왼쪽) 등 통계청 직원들이 '신뢰 논란'을 빚었던 가계동향조사 개편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분기 가계소득조사 결과와 관련돼 불거진 통계청장의 경질 논란은 문재인 정부에 오점을 남겼다. 정부는 ‘오비이락’격이라면서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통계청장이 교체된 것을 최악으로 드러난 소득조사결과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 사건으로 정부가 내놓는 통계를 시민들이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만든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통계는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평가하는 데 기준이 돼야 한다. 기초적인 통계마저 의심을 받으면 국가정책의 신뢰성은 무너진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선 안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 개편안에 국가의 다양한 자료를 충실히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국세청이 관리하고 있는 소득통계자료를 활용하면 훨씬 더 정확한 통계를 산출할 수 있다. 그런데 개편안에는 정부 부처 간 협력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가지고 있는 원자료의 개방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려는 시도가 없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통계청은 조사방식을 면접에서 다시 가계부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하는데 이는 오히려 정확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통계청은 개편안을 다음달 국가통계위원회에 상정한 뒤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각계의 다양한 의견들을 모으고 논의해야 한다. 통계의 생명은 신뢰성에 있다. 조작된 통계는 구호나 선전문에 불과하다. 신임 강신욱 통계청장은 “좋은 통계로 경제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좋은 통계는 누군가의 입맛에 맞는 통계가 아니라 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통계여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8일 평양에서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연다. 문 대통령의 방북은 대통령으로서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세번째다. 앞선 두 대통령의 방북에 비해 문 대통령의 이번 평양행 발걸음은 가볍지 않을 것이다. 2000년 정상회담 때는 핵 문제가 현안이 아니었고, 2007년에는 6자회담과 북·미 후속합의로 비핵화 해결의 가닥이 잡힌 터라 남북관계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핵화 의제가 정상회담을 짓누르고 있다. 게다가 방북 첫날 유엔에서 대북 제재 이행을 논의하기 위한 안보리 긴급회의가 열리는 등 대외여건도 ‘맑음’이 아니다.

달리 보자면 문 대통령의 역할이 그만큼 더 커지고 무거워졌음을 방증한다. 남북대화가 북·미 협상에 종속돼온 과거와는 전혀 다른 구도하에서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비핵화가 정식 의제로 다뤄진다는 점이 그 증거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지난 17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핵화 의제는 북·미 간에 다뤄지고 비핵화 문제를 우리가 꺼내는 데 대해 북·미도 달가워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비핵화가 매우 중요한 중심의제가 돼 있다”고 했다. 4·27 판문점 정상회담에서도 핵 문제가 다뤄지긴 했다. 하지만 ‘완전한 비핵화’라는 포괄적인 방향을 확인하는 정도였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는 협상이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정상회담을 하기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제공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비핵화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예단하기 어렵다. 깊숙한 논의가 오간다 해도 합의문에 명시적으로 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이를 북·미 협상의 담판 카드로 남겨두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비핵화에 조속히 나설 것을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천명하는 장(場)으로 이번 정상회담을 활용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에 자신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을 국제사회가 의심하고 있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풍계리 핵실험장 및 동창리 미사일 발사 실험장 폐기 등 선제적 조치들이 저평가되고 있음을 가리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정상회담을 국제사회의 대북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답보 국면을 돌파할 수 있는 대담한 조치를 기대한다.

군사적 긴장완화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지난 13~14일 군사 실무회담에서 의견접근이 이뤄진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철수와 공동유해발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비무장화 등은 물론 입장 차가 있는 서해 평화수역 조성도 정상 간의 담판으로 매듭지을 필요가 있다. 군사적 긴장완화는 남북평화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뿐 아니라 북한이 안심하고 비핵화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다. 남북 경제협력 방안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한계가 있지만 경제공동체의 청사진을 그리는 수준으로는 얼마든지 협의가 가능하다. 남북경협이야말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의 주요한 활로가 될 수 있음을 이번에 분명하게 증명할 필요가 있다.

보수세력들도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이번 회담의 무게를 감안해 대승적 태도로 지켜볼 것을 당부한다. 그런 점에서 보수 정치권을 중심으로 “김정은 입맛에 맞게 꾸려진 방북단”(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라는 비아냥이 나도는 것은 유감스럽다. 초당적 지지는 못할망정 분명한 성과조차 폄훼하는 식의 정치공세는 자제해주기를 희망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송재호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이 17일 ‘균형발전정책과 포용국토’ 국제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은 ‘서울 집중’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송 위원장은 서울·수도권 집중과 관련해 “수도권이 국토면적의 12%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50%를 차지하고, 1000대 기업 본사의 74%가 밀집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읍·면 소재 학교 학생이 급격히 줄고, 앞으로 30년 내 228개 시·군·구 중 85개가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지고 보면 최근 서울과 일부 수도권 중심의 주택가격 급등도 불균형한 국가발전이 초래한 부작용의 산물이다.

국가균형발전은 지속 가능한 한국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의지는 공감이 간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노무현 정부보다 발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최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교섭단체 연설에서 수도권 공공기관 122곳의 이전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몇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정부는 ‘혁신도시 시즌2’를 계획하고 있다. 그에 앞서 그동안 추진된 혁신도시 실태를 점검하고, 시행착오는 없었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공기업을 지방에 내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허허벌판에 건물만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은 지방에 주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공공기관이 내려가 지방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의료, 교육, 문화시설과 교통 인프라 완비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앞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추세도 감안한 ‘지방도시 생존플랜’이 있어야 한다. 도시를 확장만 할 게 아니라 기존 도시를 압축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국가균형발전 논의가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에 집중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공공기관 이전이 국가균형발전의 전부인 양 받아들여져선 곤란하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터전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명박 정부 시절 자행된 국가정보원과 군·경찰 등의 인터넷 댓글 조작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의 지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을 검찰이 확보했다. 검찰은 댓글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을 재판에 넘겼으나, 이 전 대통령이 직접 관여한 증거는 찾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지난 4월 이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될 때도 댓글 관련 혐의는 포함되지 않았다. 댓글조작은 민주주의 토대인 여론 형성 과정을 왜곡하는 중대 범죄다. 더구나 대통령이 그 범죄행위를 직접 지시했다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경찰의 댓글공작을 지휘한 혐의를 받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검찰은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인 이명박 정부 청와대 기록물을 압수수색하다 이 전 대통령이 포털사이트 댓글에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수석비서관회의 녹취록 등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열린 2008년 하반기 회의에선 “댓글 이런 것이 중요하다”, 2012년 대선 전 국정원 댓글조작이 정점에 달할 무렵에는 “다른 기관들도 국정원처럼 댓글 이런 걸 잘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녹취록대로라면, 사실상 이 전 대통령 임기 내내 청와대 지시나 독려 아래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조직적 왜곡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확인된 국정원·국군사이버사령부·경찰 외에 댓글조작에 개입한 국가기관이 더 없으란 법도 없다.

기실 국정원 등 복수의 국가기관이 비슷한 시기에 선거에 동원된 것은 누가 봐도 정권 핵심부의 승인이나 독려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전 대통령이 댓글공작의 배후일 것이란 ‘심증’이 짙었던 이유다. 이제 심증을 뒷받침할 물증도 나오기 시작했다. 검찰은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을 추가 기소해야 한다.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라는 헌법유린 행위가 다시는 없도록 하려면 ‘최종 윗선’에 대한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10월이면, 분노한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광장으로 모인 지 2년이 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그 이전부터 쌓여가고 있었다.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소수의 특권층들이 사실상 지배하는 국가가 된 지 오래였다. 그 결과 사회 곳곳에서 불공정이 심각해졌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야 할 정치는 문제해결 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래서 ‘이게 나라냐’는 외침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그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조기 대선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선출됐다. 변화는 있었다.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던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는 평화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것만 해도 큰 변화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 1년을 기념하는 촛불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적폐청산 사회대개혁이라고 적힌 컵을 받친 촛불을 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러나 국내 문제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정치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 행정개혁, 지방분권 등 실질적인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시스템 개혁과제들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이런 개혁들이 실행되지 않으면, 기득권 공화국인 대한민국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뿐만 아니다. 치솟는 집값은 성실하게 일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에게 ‘뼈저린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집을 결코 장만할 수 없다는 것만큼 분노와 좌절감을 안겨주는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1년 동안 받는 급여보다 1주일 사이에 뛰는 집값이 더 크다는 사실만큼 ‘일할 의욕’을 꺾는 일이 있을까?

더 화가 나는 것은 정부의 고위직과 국회의원의 상당수가 서울 강남에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을 잡아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오르는 집값의 수혜자가 되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실 행정부보다 더 문제가 큰 것은 국회다. 청와대나 정부 부처에 있는 사람들은 전국 모든 지역에서 골고루 임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은 전국의 지역구에서 골고루 뽑게 되어 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 중 64명이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에 아파트를 갖고 있다고 한다. 강남3구에서 선출되는 지역구 국회의원 정원은 8명인데, 그보다 8배의 국회의원들이 서울 강남에 집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지금의 답답한 상황을 극복할 돌파구는 국회개혁과 정당개혁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래 국회의원을 선출직으로 뽑는 이유는 민심이 고르게 반영되는 의회를 구성해서 법률을 만들게 하고, 기득권 엘리트화되기 쉬운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의 국회는 행정부보다 더 기득권화돼 있다. 물론 국민들이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회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찌를 정도다. 국회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커진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임기 5년의 단임제 대통령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픈 얘기일 수 있지만, 이제는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국민들도 대통령에게 과도한 기대를 갖지 않는 것이 좋다. 대통령이나 주변 참모들도 ‘우리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 최선을 다하되,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임기 5년의 대통령은 전임 정권의 한계 위에서 출발하고, 후임 정권의 불확실성 속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책의 책임성과 지속성을 담보해야 하는 것은 결국 국회이고, 국회를 구성하는 정당이다.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들의 근본 원인은 국회가, 정당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데 있다. 집값이든, 일자리든, 미세먼지든 관련된 법률을 만들고, 예산을 심의해 배분하는 것은 국회의 역할이다. 그런데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니, 대통령에게 모든 기대가 쏠릴 수밖에 없고, 대통령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밟게 된다. 국민들의 분노도 국회로 향해야 하는데, 애시당초 기대가 없기 때문에 분노도 그쪽으로 향하지 않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다.

또한 정치 선진국의 경우 선출직들은 교체되지만, 정당들이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한다. 장기간의 노력이 필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정당들이 치열한 논쟁을 해 가면서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당들은 아무런 기능을 못한다. 국고보조금만 받아먹는 ‘세금 먹는 하마’로 전락했다. 그러다가 다음번 선거 승리에만 목을 맨다. 국민들의 삶이 파탄나도 자신들이 권력만 쥐면 된다는 행태다.

이런 국회와 정당을 두고서,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촛불 2주년의 슬로건은 ‘특권·기득권 국회 개혁’이 돼야 한다. 해법도 이미 나와 있다. 표심을 왜곡시키고 거대 정당들의 기득권만 유지시켜주는 현행 소선거구 제도를 바꿔야 한다. 각 정당들이 받은 득표율대로 전체 국회 의석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정당들이 책임있게 정책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마침 국회에서도 정치개혁특위 구성이 예정되어 있는 등 선거제도 개혁이 뜨거운 쟁점이 되어 있다.

그래서 촛불 2주년을 맞아 시민들이 행동한다면, 광화문이 아니라 국회 앞에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회 앞에는 정당들의 사무실도 몰려 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곳은 이들이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달 취업자가 1년 전에 비해 3000명 늘어나는 데 그치는 등 고용 부진이 심화되고 있다. 급기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저임금 속도조절론까지 제기하고 나섰다. 최근의 고용 악화는 조선·자동차 등 제조업의 구조조정과 불황이 서비스업으로까지 번지는 경기적 요인에 생산가능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요인,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책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 같은 원인에 맞춰 당장의 추락한 고용지표를 회복시킬 단기적 처방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고용 여건을 개선할 중장기 대책도 고민해야 한다.

2018 서울국제트래블마트 관광산업 취업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그랜드힐튼 호텔을 찾은 구직자가 12일 채용정보 게시판을 보고 있다. 김영민 기자

통계청이 12일 발표한 ‘8월 고용동향’을 보면 외환위기 이후 최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년 동월 대비 취업자 증가는 3000명으로 지난 7월 5000명에 이어 사실상 제자리걸음이다. 실업자는 1년 전보다 13만4000명 늘어난 113만3000명으로 8월 기준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36만4000명) 이후 가장 많았다. 청년(15~29세) 실업률도 10.0%로 8월 기준으로 1999년(10.7%) 이후 가장 높다. 무엇보다 도·소매업 취업자가 12만3000명 감소하는 등 서비스업이 큰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 불황으로 내수가 줄면서 서비스업 부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아르바이트생 고용 등이 줄어든 이유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곤혹스러운 입장이 드러난다. 김동연 부총리는 이날 열린 경제장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기 위해 당·청과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최저임금이 고용에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에둘러 표현해 오던 김 부총리가 속도조절론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다만 김 부총리는 이미 결정된 내년도 최저임금은 바꿀 수 없고 최저임금 결정 제도의 개선 등을 예시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부총리의 언급에 대해 “소득주도성장의 각론에 대해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처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며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 악화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저임금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최저임금 정책에서도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인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개선방안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확실히 달라졌다. 이해찬 대표 취임 이후 더불어민주당 말이다. 이 대표는 종부세, 공공기관 이전 등 ‘표’ 계산을 해야 할 사안에 정면 대응하고 있다. 부동산, 전교조 합법화, 최저임금 등 청와대와 정부가 엇박자를 내거나 주저하는 정책에도 거침이 없다. 집권여당도 안정궤도를 순항 중이다. 지방선거와 전당대회 때만 해도 민주당은 내분이 불가피해 보였다. 차기 대선주자들이 조기 등판했고, 지지층 내부는 상대 당 후보를 찍자고 할 정도로 대립했다. 이 대표는 강한 여당과 20년 집권론을 앞세워 군기반장을 자임했다.

이 대표는 초선 시절부터 독불장군, 면도칼이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까칠하다. 교차로에서 불법유턴한 자신의 차에 ‘의원님’이 탔다며 딱지를 끊지 않은 의경을 경찰서에 넘겼다. 국회 상임위에서 비밀리에 설계됐던 ‘안면도 핵폐기장 건설 계획’을 파헤쳐 아버지 친구인 심대평 충남지사의 사퇴를 끌어냈다. 압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반항했던 사건이다. 13대 국회의원 시절 당시 평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의 사당화를 겨누며 탈당을 감행했다. 되돌아오긴 했지만 김 전 대통령 눈 밖에 나 비주류로 밀려났다. 조직가 기질, 즉 대중성이 있어야 리더에 오를 수 있는 한국 정치풍토에선 한마디로 출세할 수 없는 성격이다. 실제 이 대표는 ‘기획’ 이상의 일을 도모했을 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교육부 장관, 책임 총리까지 올랐다. ‘쿨하게 출세하기’(인물과사상사, 박창식 저)를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이해찬 대표가 11일 수원 경기도청에서 열린 민주당·경기도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집권여당 대표다. ‘쿨해선 출세할 수 없는’ 자리란 걸 알았기 때문일까. 이 대표가 부드러워졌다는 호평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사실이라면, 본질까지 달라진 거라면 그의 변화가 그리 달갑지 않다. 이 대표는 왜 전당대회에 출마했을까, 어떻게 당선됐을까를 짚어보면 더욱 그렇다.

이 대표는 전당대회 기간 지인들을 만나 “내가 대표를 안 했을 때 당이 잘못되면 그 책임은 어떡할 건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측근은 “민주정부가 두번 집권하고도 박정희 패러다임에 편승한 기득권 구조는 여전했다. 이를 청산하지 않으면 정권 재창출도 소용없다. 독재정권 때보다 더 큰 소명의식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전당대회 키워드는 ‘민주당’이었다. 당을 위한 선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원과 지지층은 이해찬이라고 화답했다. ‘강한 여당’, ‘20년 집권론’의 실체이다. 이 대표는 후배들에게 “노선을 버리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면 안된다”고 했다고 한다. 누구를 위해 정치할 것인지 잊지 말라는 충고일 테다. 이 대표도 비껴갈 수 없는 명제라 믿고 싶다. 그렇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도 분명해진다.

문재인 정부 국정 2기가 경제 문제로 휘청이고 있다. 당·정·청 엇박자는 차치하고라도 경제체질을 바꾸겠다는 건지, 경제지표만 끌어올린 뒤 물러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온갖 성장론이 쏟아지고 있지만 성장의 열매는 늘 기득권 차지였다. 최저임금 인상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의 절규는 자영업 과실을 정작 자영업자들이 차지하지 못하는 분배 구조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처럼 분배가 핵심인데도 여전히 성장의 주술에 갇혀 있다.

규제완화, 은산분리가 여권발로 나온다. 이 대표는 심지어 부동산 해법으로 신자유주의 개발경제의 상징인 ‘그린벨트 해제’까지 거론했다. 노무현 정부는 종부세 도입을 공론화한 뒤 시장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후퇴를 거듭하다 집값 폭등의 빌미만 제공했다. 속된 말로 ‘골목에서 껌 한번 씹고 뱉었을 뿐인데 건달 취급’만 받았다. 차라리 모든 수단을 동원해 골목을 휘어잡기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정·청마저 시장 영합주의 정책에 화음을 넣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경제기득권, 시장권력과 치열한 가치논쟁을 벌여야 할 때 아닌가. 당원과 지지층의 언어로 풀어쓴다면 “제발 휘둘리지 말고 응원할 수 있는 명분을 달라”는 뜻이다. 숱한 가능성 중 정권의 철학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선택하는 것이 정책의 본질이다. 경제는 외교와 달리 제로섬 게임 특징이 강하다. 문재인 정부의 철학이 가장 선명해야 할 분야라는 의미다.  

곧 이 대표 취임 한 달을 맞는다. 대통령제, 그것도 정권 초반에 당이 정국을 주도하는 ‘드문’ 현상은 계속될 것 같다. 복잡한 정치공학을 떠나 ‘정치인 이해찬=독립변수’라는 명제가 깨지지 않는다면. 기왕 나선 길이라면 원칙을 틀어쥐되, 까칠한 성격이 부담이라면 ‘미소짓는 호랑이’ 정도로만 변하시라. 원칙을 훼손하는 모든 반대자들에게 ‘그건 아니지요’라며 웃어 보이되, 단호하게 제 갈 길을 가는….

이 과정에서 이 대표가 유난히 강조하는 ‘최고의 협치’도 다시 생각해달라.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구하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것이 협치여야 한다. 지분이 필요하다면 보수야당이 이를 위해 자신들의 지지층을 설득할 수 있을 만큼 챙겨주는 게 ‘최고의 협치’ 아닐까. 그저 각자의 이해관계를 위해 지분을 주고받고, 여당 대표가 몸을 낮추는 게 협치가 아니라는 걸 분명히 보여달라.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상도동 유치원’은 하나의 대명사가 될 듯하다. 안전불감증, 무사안일주의, 개발주의가 응축된 대명사. 위태로운 흙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기우뚱 옆으로 무너진 건물은 ‘유치원’이라는, 건물의 외양과 부조화를 이루는 이름과 만나 더욱 극단적 느낌을 자아냈다. 건물이 한밤중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정말 참혹한 결과가 초래됐을 터였다.

유치원 측에서 이미 이상징후를 포착하고 공사업체에 항의했지만 공사업체는 무시했다. 구청에서도 제대로 된 현장 점검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눈앞에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건물을 두고 아무도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도동 유치원은 결국 철거되어 폭삭 무너져내렸다.

인근 공사장의 흙막이가 붕괴되면서 건물이 기울어진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에서 사고 닷새째인 10일 파손된 부분의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무너진 유치원을 보고 퇴근하던 날, 내 삶의 지반에도 균열이 느껴졌다. 전염병에 걸려 어린이집을 일주일째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가 길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와 집에만 계속 있자니 답답하고 지겨웠던 것 같다. 할머니 손을 잡은 아이를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돌볼 수 있어야 한다’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휴가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는 전적으로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년에 접어든 조부모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이 무너진 건물 틈으로 훤히 드러난 유치원 내벽처럼 선명히 드러났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내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기 위해 남의 가랑이를 찢어져라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내 삶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이제 점점 늙어가는 조부모의 노동이었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누군가의 노년을 착취하면서 바늘 하나 꽂힐 여유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모르고, 대책 없이 맞이했다. 미리 알았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 이것은 내 모성애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이다.

무너져내린 유치원을 보면서 매번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출산율이 떠오른 건 그래서다.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명을 찍었다.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여성의 삶이 근본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오르지 않는다. 성평등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에서 출산율이 높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그러니까, 출산을 하는 여성의 자궁과 여성의 삶을 분리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삶은 얼마나 종합적인가. 각종 성차별, 남녀 임금격차, 여성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 유자녀 여성이 겪는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차별 등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임대주택 몇 채와 출산수당으로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1야당 원내대표가 ‘출산주도성장’을 대안이랍시고 이야기한다. 출산장려금 2000만원, 출산수당 1억원을 지급하자는 것인데, 논박하기도 입이 아프다. ‘출산주도성장’은 출산율 하락 위기에 대한 안전불감증과 성장중심주의가 결합한 가장 천박한 형태의 말이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환원시키며, 아이를 낳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성의 변증법>을 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1970년대에 비혼이나 저출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미 젊은 여성들은 ‘비비탄(비혼 비출산 탄탄대로)’을 삶의 전략으로 택하고 있다. 정상가족 중심의 복지제도, 남녀 임금격차 등을 생각하면 ‘비비탄’의 앞길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 가져오는 여성의 삶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출산율은 그 결과다.

무너지는 것들은 장기간에 걸쳐 이상징후를 드러내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출산율에 관하여 우리 사회는 이상징후를 여러 차례 보냈다. 무너진 유치원이 되지 않으려면, 근본적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영경 문화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졌다. 한국갤럽이 지난 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잘하고 있다’(49%)와 ‘잘못하고 있다’(42%)의 격차는 한 자릿수(7%)로 좁혀졌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부동산 폭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권 2년차에 70%를 웃도는 지지율이 이례적이었던 측면도 있다. 잠시, 한 걸음, 멈춰 서서 돌아볼 때다.

미국의 역사학자이자 정치분석가인 토머스 프랭크는 2016년 미 대선을 앞두고 낸 저서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원제 Listen, Liberal·들어라, 진보주의자들이여)에서 빌 클린턴·버락 오바마 집권기 민주당이 최대 이슈인 불평등 문제를 뒷전으로 미뤘다고 지적했다. 동성결혼 합법화 같은 문화적 쟁점에는 거리낌이 없지만, 경제민주주의에만 직면하면 행동을 멈춘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변화를 기대했으나 “다시 포식자들이 설치기 시작했고 거의 모든 것이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고 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은 깨어나야 한다. 트럼프가 클린턴의 ‘집토끼’들을 훔쳐가고 있다”며 민주당의 패배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한국 현실과 닮은, 이 책의 문장들을 소개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9월 11일 (출처:경향신문DB)

“불평등이란, 당신이 아등바등 살고 있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떵떵거리고 살고 있다는 뜻이다.” ‘당신’은 한국에도 있다. 집값 폭등을 넋놓고 바라보는 대다수가 해당한다. ‘다른 누군가’는 사들이고 되팔고 사들이는 투기꾼, 임대료를 서너배씩 올려달라는 ‘갓(god)물주’다.

“그들(민주당 지도자들)은 불평등이 만연해 있고 끔찍한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데 필요한 일을 벌일 만큼 확신이나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한국의 집권세력으로 바꿔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기대를 저버리고 역사적 방향 전환을 공식 포기한 순간을 특정할 수 있다. 대통령이 (금융위기 주범인) 월스트리트 최고경영자들을 만났을 때다.” 비슷한 풍경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 대통령은 인도 순방 중이던 지난 7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항소심에서 풀려나 상고심을 앞둔 터다.

“2009년의 상황은 대담함과 상상력을 요구했지만 모든 문제들이 임시방편으로 수습되었을 뿐이다.” 지난 7월 정부는 시가 17억원 아파트(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부담을 ‘연 5만원’ 늘리겠다고 했다.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최고치인 171.6까지 치솟았다. 매수우위지수는 집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을 때 높아진다.

“민주당원과 엘리트와 금권정치가를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리면 교차하는 공간은 (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 섬이 될 것이다.” 한국판 마서스비니어드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강남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송파구)이 아파트를 보유한 ‘서울 강남’ 아닐까. 장 실장은 그럼에도 “모든 국민이 강남 가서 살아야 될 이유가 없다. 저도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2년마다 공화당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유권자들을 자신들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민주당도 내심 ‘유권자가 설마 자유한국당으로 가겠느냐’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장 매력적인 문장은 이것이다. “경제는 생태계가 아니다. 경제 규칙을 만드는 것도 인간이다. 경제는 정치적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얼마든지 우리 입맛에 맞추어 경제라는 밥상을 차릴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정치의 힘, 시민의 힘을 믿어야 한다. 지난해 문 대통령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을 제안했을 때 실현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이 구성되고 북한에서 김영남·김여정이 왔다. 만약 문 대통령이 국내 보수진영이나 미국 ‘전문가’들 눈치를 보며 ‘북측이 미사일 쏘면 남측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여는’ 관행만 답습했다면 남북 정상에 이어 북·미 정상까지 마주앉는 역사의 진전은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런 담대함이 경제에선 발휘되지 않는가. 소득주도성장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세력 앞에 규제완화를 선물한다고 그들이 물러설 리 없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보유세의 획기적 강화라는 근본 대책을 내놔야 한다. 정부는 시민 모두에게 봉사해야 하지만, 우선순위는 있다. 먼저 누구를 위한 ‘굿 캅(좋은 경찰)’이 될지 선택해야 한다. 답은 자명하다. 부유층보다 중산층·서민, 다주택자·고가주택 보유자보다 1주택자·세입자, 서울보다 지역, 강남보다 비강남이다. 방향과 원칙을 갖고 뚜벅뚜벅 걸어가면 지지율은 돌아온다.

<김민아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1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국회의장단과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등 9명에게 동행을 요청했으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야당 대표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바람에 문희상 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장단도 방북하지 않기로 했다. 야당 대표들이 한반도 정세의 고빗길에서 열리는 중요 행사에 참여할 기회를 포기한 것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번 초청 대상에는 강석호 국회 외교통일위원장,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등 보수야당 인사들이 포함됐다. 임종석 실장은 “저희가 초청하는 분들이 일정의 어려움도, 정치적 부담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남북 간 새 장이 열리는 순간이며 특히 비핵화 문제도 매우 중대한 시점인 이 순간에 대승적으로 동행해주길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바른미래당 김관영·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왼쪽부터)가 10일 국회의장실에서 진행된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회동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남북관계 발전은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뒷받침해야 안정화될 수 있다. 그래야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대북정책이 ‘급변침’하지 않고 일관성이 유지된다. 일관성은 남북관계에서 가장 필요한 신뢰구축을 위해서도 긴요한 덕목이다. 옛 서독이 동방정책을 부침 없이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정당들 간 합의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한국당 김병준 위원장은 “비핵화 조치에 대한 어떤 진전도 없기 때문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 손 대표는 “당 대표들이 지금 나서봤자 들러리밖에 안된다”고 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이 11일 국회를 찾아 대상자들에게 직접 초청 의사를 전달하기로 했지만 결정이 번복될 여지는 많지 않다. 청와대가 공개 초청에 앞서 충분한 사전 설득 노력을 했는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의문시해온 야당이 이번 기회를 포기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진정성이 있는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기회 아닌가.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국면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들러리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태도라면 앞으로 ‘의원외교’는 입에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김병준 위원장과 손학규 대표는 평소 한반도 평화협력을 강조해 왔음을 시민들은 기억한다. 이제 두 사람은 ‘한반도 대전환’의 중대 국면에서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어깃장만 놨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9일 긴급기자간담회를 열어 “한국당은 북한의 비핵화 약속 이행도 없이 국민에게 엄청난 재정 부담만 지우는 정부의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 밀어붙이기를 결코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판문점선언을 국민적 합의 과정을 생략한 채, 비핵화 이행에 대한 확실한 담보도 없이 비준동의해줄 수 없다”고도 했다. 판문점선언의 내용과 국회 처리 절차에 다 문제가 있다며 비준동의 처리를 거부한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10일 (출처:경향신문DB)

재정 항목에 구체성이 없다면 제대로 심의하면 된다. 비준동의 후에도 구체적인 사업을 진행하게 되면 사업별로 예산 심의를 받아야 한다. 비핵화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남북경협 예산을 집행할 수 없다는 점은 불문가지다. 한국당에 앞서 시민이 먼저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곧 제출할 재정추계를 보기도 전에 비준동의를 거부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협상 내용에 대한 완전한 공개를 요구하고, 국민적 합의 과정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 과거 한국당이 집권할 때 대북 강경정책을 펴면서 일일이 공개하고 시민의 동의를 얻은 바 없다. 국민적 합의 과정이 필요하다면 설문조사 등으로 시민의 뜻을 물으면 된다. 이제 와서 국민적 합의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케케묵은 ‘퍼주기 논리’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한국당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자 옛날 병이 도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판문점선언이 국회에서 비준되면 정권에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 독일이 일관되게 통일정책을 펼 수 있었던 것은 통일 기본정책을 정당들 간 합의로 국회에서 비준한 덕분이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오는 18일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열어 북핵 해결을 위한 돌파구를 모색한다. 그에 앞서 여야가 국회에서 판문점선언을 비준동의해준다면 비핵화 합의에 그보다 큰 동력이 없을 것이다. 이런 때가 아니면 언제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는 것인가. 벌써부터 소관 상임위인 국회 외교통일위 강석호 위원장(한국당)이 비준동의안 상정을 막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재정추계를 따진다며 동의안 처리를 지연시킬 조짐도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북핵 위기를 키운 데 대한 반성의 기미가 눈곱만큼도 없다. 한국당은 궁색한 핑계만 대지 말고 비준동의안 처리 논의에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바른미래당이 판문점선언 국회 비준동의안 처리를 놓고 논란에 휩싸였다. 손학규 대표가 지난 4일 취임 간담회에서 “남북평화와 4·27 판문점선언 비준에 우리 당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히자 당내 보수파가 그동안 당이 취해온 노선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자 김관영 원내대표가 6일 “비준안 처리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라며 당 공식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 사안의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 지도부가 판문점선언 비준 논의에 새 물꼬를 튼 것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논의의 추이를 주목한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상임고문이 8일 당대표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국회 정론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판문점선언 이행은 북한의 비핵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동력이다. 거기에 국회 비준을 통해 이를 담보하면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 간 합의를 더욱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보수파 등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미동맹에 균열을 가져온다고 하더니, 이제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데 비준안 내용에 구체성이 없다는 둥 논리를 바꾸고 있다. 안보를 걱정한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당리당략이다. 이번 기회에 북핵을 폐기하고 한반도평화를 정착시키지 않으면 언제 하겠다는 것인가. 마침 김 원내대표가 판문점선언 지지를 위한 국회 결의안을 먼저 채택한 다음 비준동의를 논의하자고 절충안을 냈다. 현실적이다. 한국당 등 보수야권은 초당적 태도로 협상에 나서라.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선거제도 개편은 정치개혁의 으뜸 과제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밝힌 대로 “선거구제 개편이 헌정사 70년의 최대 개혁 과제”다. 현행 승자독식의 소선구제는 지역주의를 강화하고, 분열과 적대의 정치를 제도화한다. 거대 기득권 정당을 살찌우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대변하는 소수정당의 진입을 차단한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사표가 발생, 대표성에 심대한 왜곡을 야기한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문제들이 상당 부분 무자비한 승자독식의 다수대표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5일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문희상 국회의장 주최 정당대표 초청 오찬 간담회에서 정의당 이정미(왼쪽부터), 바른미래당 손학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문희상 국회의장,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선거제도 개혁이 실패해온 것은 현행 소선거구제의 수혜자인 거대 정당의 기득권 때문이다. 특히 영남 지역주의에 기댄 자유한국당의 반대가 번번이 선거제도 개혁을 좌절시켰다. 한국당의 반대에 막혀 있던 선거제도 개편을 실현할 절호의 기회가 도래했다. 6·13 지방선거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로 인해 한국당이 손해를 본 드문 선거였다. 현행 소선거구제로 가면 2020년 총선에서 참패할 것이란 불안이 한국당을 선거제도 개편 테이블로 안내할 요인이다.

여야는 농도는 다르지만,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공히 선거제도 문제를 거론했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5일 대표연설에서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동시에 추진해 제왕적 대통령제 폐단을 종식하는 한편 국회의 국민 대표성과 비례성을 강화할 것을 제안한다”고 천명했다. ‘개헌과 동시에’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대표성·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제도 개편에 승선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5당 원내대표 청와대 회동에서 “비례성과 대표성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는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힌 걸 상기하면, 접점이 있다. 변수는 지방선거에서 소선거구제의 달콤함을 만끽한 더불어민주당의 미온적인 자세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일 대표연설에서 ‘5당 대표 회동’의 정례화를 제안하며 “선거법을 포함한 정치개혁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여야 5당 대표는 5일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로 오찬회동을 하고 매달 1회 회동 정례화에 합의했다. 정례화한 대표 회동에서 선거법과 개헌 문제 등이 다뤄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당은 물론 특히 여당인 민주당은 목전의 당리에 매몰되지 말고 한국 정치의 적폐를 청산할 첩경인 선거제도 개혁의 대해로 흔연히 나서길 바란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박근혜 정부 때 강점을 보여주었던 민주주의가 문재인 정부에서 약점을 드러냈다. 인터넷,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미줄처럼 연결된 세상에서 생각은 광속으로 전파되고 공유된다. 박근혜 정부 말기 시민은 초연결성이 낳은 속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경험했다. 서로의 생각이 같다는 걸 알고, 그걸 하나로 모을 수 있음을 확인하고, 집단적 의사를 표출하는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리고 촛불집회→탄핵→조기 대선이라는, 압축적이면서도 순조로운 전환이 있었다. 민주주의의 승리였고, 속도의 승리였다. 시민은 이 속도의 쾌감을 적폐청산에서 다시 맛보았다. 시민이 원하면 새 정부는 지체 없이 이행했다. 요구-해결의 빠른 민주주의였다. 하나의 속도로 달리던 시민과 정부는 적폐청산 정국 이후 어긋나기 시작했다. 시민의 기대 속도는 그대로지만, 정부의 반응 속도는 그렇지 않았다. 도로 위에서 불타는 BMW를 TV로 지켜본 시민은 정부가 당장 달려가 불 끄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고된 쓰레기 대란을 미리 막지 못했으면 쓰레기가 쌓일 때라도 즉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믿었다.

정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부는 더 이상 빠르지 않다. 정부가 모든 부문에서 느리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빠르게 나섰다. 하지만 집값이 더 빨리 뛰었다. 최저임금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늦지 않게 대처했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더 올려야 한다고, 자영업자는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뒤엉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요구 즉시 해결’의 속 시원한 국정은 과거의 일처럼 되었다. 빠른 행동이 필요한 과제들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어려운 것,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다. 정부만이 아니라, 국회, 정당, 이해 당사자, 시민이 협력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것이 있다. 상황에 따른 대응보다 구조적 접근을 해야 할 것이 있다.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장기 효과를 기대해야 할 것이 있다. 우리 앞에 놓인 개혁과제의 상당수가 그런 성격의 것이다. 그런데도 시민은 성마르게 행동하는 것 같다. 정부 대응 하나하나에 즉자적 반응을 한다.

시민-정부 간 속도 경쟁에는 청와대도 책임이 있다. 청와대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 청원을 설치, 즉각 해결의 욕구를 부추기고 집단 이기주의를 자극했다. 청와대가 가속 엔진을 단 것이다. 자연히 요구-해결의 차이는 더 커졌다. 속도에 올라탄 정부가 속도에 치이는 역설이 나타난 것이다. 야당 책임은 말할 것도 없다. 야당은 끝없이 ‘즉시 폐기, 바로 대책’을 다그친다. 이렇게 시민, 청와대, 야당이 가속페달만 밟으면 정부 대응은 느릴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따르면 속도는 상대적이다. 실은 정부가 느린 게 아니라, 정부 밖의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속도를 늦출 수도 없다. 반응 속도가 늦으면 지지율이 추락하고 개혁 동력도 떨어진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19세기 미국 민주주의를 목격하고 상찬했던 알렉시스 토크빌도 조바심, 가벼움, 표피적인 일에만 관심 갖는 태도를 발견하고 걱정했다. 민주주의가 대중의 감정적, 즉흥적 판단에 휩쓸려 신속한 결정은 해도 신중한 결정은 못하는 걸 우려한 것이다. 21세기 민주주의도 다르지 않다. 그게 민주주의의 한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관리하며 토론과 숙의로 근본 문제를 풀고 삶의 기회를 확장할 수 있는 것 또한 민주주의다.

그런데 지금 시민-정부 간 속도 경쟁이 민주주의에 내재한 불안과 위험을 키우고 있는데도 모두 지켜보기만 한다. 이러다간 욕망의 폭발로 과잉 민주주의가 되거나, 냉소주의가 넘쳐 과소 민주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 아니면, 과잉 민주주의와 과소 민주주의를 시계추처럼 오가며 불안정성을 키울 수도 있다. 시민-청와대 간 빠른 민주주의는 착시다. 국회, 정당이라는 제도를 배제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배제가 잠시 동안은 가능할 수 있지만 계속될 수는 없다. 시민-청와대 사이에는 국회, 정당 외에 관료조직, 시민사회도 있다. 이 중간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양한 이해와 요구, 관점이 이 조절 장치를 통과하며 일정한 속도와 방향을 유지해야 한다. 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자만의 덫에 빠진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썼다. “민주국가들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칭얼대고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데 그 까닭은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아이는 책임을 떠맡을 때 어른이 된다. 그런데 누구에게서 배우는가. 군주국은 아버지 같은 인물이 지배한다. 민주주의에는 부모도 선생도 없다.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배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이대근 논설고문>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이낙연 국무총리가 4일 국무회의에서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국민의 지혜를 모아 병역특례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내라”고 병무청에 지시했다. 전날에는 기찬수 병무청장이 “체육·예술 분야의 병역특례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의원들은 개선에 대한 의견과 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2018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병역특례 논란이 확산되면서 체육·예술계에 대한 병역특례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이 불가피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73년에 도입된 병역특례제도는 국민적 공감을 받으며 존속해왔다. 과거엔 체육·예술인들이 국제 대회나 무대에서 상위 입상함으로써 국가의 명예를 높인 공로로 국방의 의무를 면제해주는 데 대해 이견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제도가 국민개병제의 원칙을 허문 것 또한 사실이다. 국민의 의무 이행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국위를 선양한 것은 인정하더라도 그에 대한 포상으로 국민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면제해주는 것은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형평성 논란도 심각하다. 국제대회에서 단 한 번 입상했다는 이유로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이나, 올림픽·아시안게임 입상자에게는 병역특례를 주면서 세계선수권대회 등 입상자는 주지 않는 점 등은 분명 불합리하다. 음악 콩쿠르 등 순수예술 분야의 입상만 인정하고 방탄소년단(BTS) 같은 대중예술인들을 대상에서 제외한 것도 문제이다. 최근에는 남성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시대와 환경이 달라졌다. 체육·예술대회 입상을 통해 국가의 명예를 고양한다는 개념 자체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국가를 개인보다 상위에 두는 발상은 더 이상 동의받기 어렵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형평성 논란을 방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병역을 면제받은 체육·예술인들의 영리 행위도 과도한 특혜다.

개선 방향을 놓고 특례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과 형평성을 맞춰 유지하자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운동선수나 예술인들이 사회봉사나 대체복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여러 대회에 걸쳐 점수를 많이 쌓은 선수에게 병역 혜택을 주는 방안도 고려해봄 직하다. 군 복무로 인한 체육·예술인들의 기량 저하라는 현실적 문제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형평성을 맞춰 병력특례 대상자를 선정해도 한계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특례제도를 폐지하는 게 해법이다. 당장 폐지하는 것은 부작용이 클 테니 한시적으로 운용하다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제도개선 추진 방식에 유의해야 한다. 국방부와 대한체육회가 주도할 게 아니라 국민적 여론을 충분히 들어야 할 것이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추진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2015년 대법원이 허위 증빙서류를 꾸며 일선 법원의 예산 수억원을 빼돌린 뒤 유용한 단서를 잡고 수사 중이라고 4일 밝혔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 돈을 상고법원 추진에 나선 고위 법관들에게 대외활동비·격려금 등의 명목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비자금 조성을 엄단해야 할 대법원이 비자금을 조성했다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법원이 범죄자들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범죄의 기술을 익힌 것인가. ‘양승태 사법농단’의 끝은 도대체 어디인가.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9월5일 (출처:경향신문DB)

법원의 행태는 건설회사 등의 비자금 조성 양태와 다를 게 없다. 2015년 당시 행정처는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를 현금으로 인출한 뒤 비밀리에 인편으로 건네받아 행정처 예산담당관실 금고에 보관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법원 재무담당자들이 한 번에 얼마 이상 지출하면 안되기 때문에, 소액으로 나눠 뽑아 대법원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는 2015년 처음으로 책정됐다. 검찰은 행정처가 애초부터 비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신규 예산을 편성한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양승태 사법농단을 둘러싼 의혹은 양파 껍질 까지듯 연일 보태지고 있다. 당초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에서 출발했다가 재판거래 의혹으로 비화했고, 이제는 국고손실 혐의까지 포착됐다. 과거 공공 부문에서 수많은 횡령 범죄가 있었지만, 법원이 조직적으로 예산을 횡령한 의혹이 불거진 것은 처음이다. 당시 대법원 예산 담당자는 검찰에서 “윗선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사안의 엄중함에 비춰볼 때, 그가 언급한 ‘윗선’이 행정처 차장 수준일 리는 만무하다. 당시 행정처장(박병대)과 대법원장(양승태)이 지시했거나 최소한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행정처장은 물론 예산을 지급받은 법관도 모두 불러 사용처를 조사해야 한다. 법원 예산이 법관들의 호주머니를 거쳐 어디로 흘러갔는지 밝혀내야 한다.

사법농단 사태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절실함을 웅변한다. 검찰의 수사와 별개로 법원의 개혁작업도 진행돼야 한다. 현 행정처는 지난 3일 사법농단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개선 작업 경과를 공개했으나, 내부에만 맡겨놓을 일이 아니다. 시민이 참여하는 개혁이 필요하다.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