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에 해당되는 글 4182건

  1. 2018.11.16 [사설]국회 본회의 파행, 여·야·정 ‘협치 약속’ 어디로 갔나
  2. 2018.11.16 [사설]출발점에 선 사법농단 재판, 역사에 부끄럽지 않도록
  3. 2018.11.15 [사설]쇄신은 고사하고 계파 싸움 수렁에 빠져드는 한국당
  4. 2018.11.13 [사설]법원행정처 부활, 꿈도 꾸지 마라
  5. 2018.11.12 [사설]징용배상 판결 이후 확산하는 한·일 갈등을 우려한다
  6. 2018.11.12 [사설]재판부 증설로 ‘사법농단 재판’ 공정성 담보 어렵다
  7. 2018.11.12 [아침을 열며]한국당과 한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8. 2018.11.12 [여적]북녘으로 가는 제주 감귤
  9. 2018.11.08 [사설]‘선거연령 18세 하향’ 더 미뤄서는 안된다
  10. 2018.11.07 [서민의 어쩌면]남자 역차별론은 허구다
  11. 2018.11.07 [사설]남북협력 예산을 퍼주기로 매도하는 막무가내 한국당
  12. 2018.11.07 [사설]세월호 민간인 사찰 확인된 기무사, 이래도 두둔할 텐가
  13. 2018.11.07 [사설]여·야·정 합의한 탄력근로제, 성급한 확대를 경계한다
  14. 2018.11.06 [양권모 칼럼]참으로 ‘낯선’ 대통령 비서실장
  15. 2018.11.06 미국 민주주의의 실패에서 배우기
  16. 2018.11.06 [사설]협치의 제도화 첫발 뗀 여·야·정 협의체, 기대가 크다
  17. 2018.11.02 [사설]“함께 잘살자”는 문 대통령 시정연설, 정책으로 성과 내야
  18. 2018.10.31 [구혜영의 이면]박용진, 과감한 전환
  19. 2018.10.31 [조호연 칼럼]자유한국당, 또 북한이 필요해졌나
  20. 2018.10.31 [사설]역사적 정의 확인한 ‘강제징용’ 판결, 늦었지만 다행이다

국회가 15일 열기로 한 본회의가 무산됐다. 정기국회 전체 일정에 대한 여야 합의에 따라 소집된 국회 본회의가 파행된 것은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보이콧 방침을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장관 인사 강행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 청와대 인사검증 책임자인 조국 민정수석 해임, 공공기관 고용세습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상태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를 트집 잡아서 협박을 하고 있다”고 맞서 정국이 얼어붙는 양상이다. 본회의가 무산됨에 따라 어린이집의 평가인증제의무화를 담은 영유아보육법 등 90여건의 비쟁점 민생법안 처리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국회 파행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정치가 개입될 여지가 없는 순수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마저 정쟁의 볼모로 잡혀 개탄스럽다. 문제는 두 야당이 요구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국회 일정에 협조할 수 없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고, 민주당도 ‘수용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야의 날선 대치가 한동안 이어질 분위기다. 내년도 예산안 심의와 민생법안이 산적한 처지에 협치는커녕 정쟁의 진흙탕에 빠져들 판국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지난 5일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경제·민생 입법과 예산에 초당적 협력’을 다짐하며 12개 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여·야·정 최고지도자들 간 ‘협치 약속’이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뒤집히고 있으니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다.

본회의 무산 등 국회 파행의 책임은 야당에 더 있는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의 인사 등을 빌미 삼아 여·야·정 상설협의체 실무회의에 일방 불참을 선언하고, 청와대 민정수석 해임 등 요구 조건 수용 여부에 국회 일정까지 연계시키는 것은 명분이 없다. 청와대와 여당도 정국 경색의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제기한 야당의 요구가 하나도 관철된 게 없다”는 야당의 지적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두 야당의 ‘고용세습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 민주당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고 한다.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여당이 좀 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두 야당도 조건 없이 실무회의에 참여하고, 국회 보이콧을 풀어야 한다. 여야 모두 ‘경제·민생 입법과 예산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다짐한 협치의 약속을 되새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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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농단’으로 기소된 첫 피고인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가 결정됐다. 서울중앙지법은 15일 임 전 차장 사건을 ‘적시처리가 필요한 중요 사건’으로 지정하고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에 배당했다. 법원은 “연고관계와 업무량, 진행 중인 사건 등을 고려해 일부 재판부를 배제하고 나머지 재판부를 대상으로 무작위 전산배당했다”고 설명했다. 형사36부는 법원이 임 전 차장 등 사법농단 사건 관련자들의 기소에 대비해 신설한 3개 형사합의 재판부 중 한 곳이다. 사법농단의 진원지인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없는 판사들로 구성됐다. 기존 형사합의부 중 사법농단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6개 재판부는 배당 대상에서 미리 배제했다고 한다.

15일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 피해자단체 연대모임 시민들이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사법농단 특별법 등을 요구하는 노숙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법원이 나름의 고육지책을 쓴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셀프 재판부’를 구성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다. ‘누구든 자신의 사건에 관해 판관(判官)이 될 수 없다’는 법언(法諺)을 떠올려보라. 바로 얼마 전까지 법관 인사권을 쥐락펴락하던 전직 고위법관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임 전 차장보다 더 고위직에 있던 전직 대법관과 대법원장도 같은 법정에 불려올 가능성이 크다. 담당 재판부가 법원행정처·대법원에 근무한 적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전폭적 신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신규 재판부 증설 자체도 법원이 선제적으로 계획했던 조치는 아니다. 국회에서 특별재판부 도입을 추진하자 이를 회피하기 위해 급조한 대안이다. 사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재판의 출발부터 개운치 않은 게 사실이다. 향후 재판부는 심리 과정에서 불편부당한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공정성 시비를 불식해야 할 것이다.

임 전 차장의 재판은 긴 단죄의 시작이다. 다른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기소가 이어질 터이고, 최종 확정판결이 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다. 당연히 사법 신뢰 회복의 책임은 개별 사건 담당 재판부에만 있지 않다. 대법원은 최종심에 이르기까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담보할 수 있는 조치들을 강구하고 공표해야 한다. 법원 구성원들은 자신의 오류를 덮기보다 직면하고, 제 살을 도려내겠다는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한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줄줄이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하는 식의 ‘제 식구 감싸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다. “사법부 구성원 스스로 행한 재판독립 침해가 위헌적 행위였음을 국민에게 고백해야 한다”는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사들의 호소를 모두가 경청하기 바란다. 사법농단 재판은 역사와 시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정의 실현의 과정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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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의 쇄신작업이 갈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인적 쇄신의 방향을 놓고 빚어진 김병준 비대위원장과 전원책 전 조직강화특위 위원 간 갈등이 끝내 ‘전원책 해촉’으로 파탄나자, 이를 기점으로 친박계와 복당파 간 계파 쟁투가 노골화되고 있다. ‘전원책 파동’으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르는 틈새를 타고 친박계가 본색을 드러내면서 파열음이 커지고 있다. 친박계 중심의 잔류파 중진 의원들이 13일 ‘우파재건회의’를 열고 김 위원장의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를 주장한 데 이어 14일 초·재선 의원 모임 ‘통합과 전진’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나왔다. 인적 청산의 대상으로 내몰린 친박계가 반격에 나선 모양새다. 속셈은 뻔하다. 비대위의 쇄신 동력 자체를 무너뜨려 친박계를 향한 청산의 칼날을 부러뜨리겠다는 계산이다.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비대위의 혁신 작업을 “전당대회를 위한 땜빵 정도”로 규정하고 나선 것도 그 때문일 터이다.

자유한국당 조직강화특별위원에서 해촉된 전원책 변호사가 14일 서울 여의도의 한 사무실에서 입장발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김 위원장은 사퇴 요구를 일축하면서 인적 쇄신과 관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신뢰가 담보되지 않는 호언으로 들린다. 가치 재정립도, 혁신 작업에서도 방향과 의지를 잃고 헤매온 비대위의 행적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 전원책의 인적 청산 실험이 한 달 만에 좌초한 것은 표면상으론 전당대회 시기 이견에서 비롯되었지만, 본질은 인적 쇄신의 강도와 방향에 대한 메꿀 수 없는 당내 계파 간 간극 때문이다. 해촉된 전원책 변호사는 1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당은 정파가 있는 정당이 아닌 계파가 있는 정당이다. 한국당은 일종의 사조직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렇기에 도저한 당의 위기 앞에서도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기희생은커녕 한 줌도 안되는 당권을 차지하기 위한 계파 싸움에만 매몰될 터이다.

‘비상’대책위는 갈등을 적당히 봉합하면서 차기 당권을 세우기까지 관리자 역할을 하라는 게 아니다. 지난 선거에서 정치적 파산선고를 받은 당을 재건하기 위해 뼈를 깎는 성찰을 바탕으로 기득권을 잔멸하는 ‘인적 쇄신’이 비대위에 주어진 사명이다. 비대위가 친박과 친홍, 복당파, 거기에 ‘태극기부대’까지 뒤엉킨 당권 싸움에 휘둘릴 경우 쇄신은 물 건너간다. 벌써 비대위의 종착지에는 분칠만 새로 한 ‘도로 새누리당’이 어른거린다. ‘김병준 비대위’가 보수 재건을 위해 필수인 인적 쇄신의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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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행정 개혁과 관련해 법원 내 의견수렴에 나서기로 했다. 김 대법원장은 12일 “국회에 사법행정제도 개선 방안에 관한 최종 의견을 표명하기에 앞서 법원 가족으로부터 의견을 듣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사법발전위원회는 ‘사법행정회의’ 위상에 관해 단일안을 채택하지 못했고, (사법발전위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 역시 완전히 의견을 모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후속추진단은 사법농단의 진원지인 법원행정처(행정처)를 폐지하고, 비법관이 참여하는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대부분 넘기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공개한 바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사에서 “저의 대법원장 취임은 그 자체로 사법부의 개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사법부의 변화는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1년2개월이 흐른 지금, 사법부의 변화와 개혁을 체감하는 시민은 없다. 그나마 지난 7일 후속추진단이 발표한 사법행정 개혁안은 사법관료화의 폐해를 없애고 수평적·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로의 변화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법원 내 의견을 수렴하겠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언제까지 말로만 개혁을 외치며 도돌이표를 반복할 텐가.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이 경향신문의 ‘행정처 부활 프로젝트’ 보도 이후 나온 것은 의구심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대외비 문건을 보면, 대법원은 기존 행정처 기능 상당 부분을 사법정책연구원과 사법연수원으로 옮겨 현직 법관이 계속 맡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문건 내용대로라면, 향후 사법정책연구원과 사법연수원은 사실상 ‘미니 행정처’ 노릇을 하게 된다. 사법농단을 촉발한 행정처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알면서도 이를 유지하겠다는 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발상일 뿐이다. 대법원은 “행정처 부활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해당 문건을 공개하지 않았다.

법원 내 의견을 듣는다 해도 단일한 방향으로 수렴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최종 결단은 대법원장 몫이다. 김 대법원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사법개혁의 뚜렷한 방향을 세워야 한다. 기존 체제의 온존을 바라는 일부 법관들에게 휘둘려서는 안된다. 법관들은 사법행정에서 손을 떼고 재판 업무에 집중하는 쪽으로 가는 게 옳은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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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등 일본 정치인들이 대법원의 강제징용 노동자 배상 판결을 “폭거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일본 정부가 ‘징용공’이라는 공식 표현을 ‘한반도 출신 노동자’로 바꿨다. 또 지난 9일 한류를 대표하는 그룹 방탄소년단의 TV아사히 출연이 전격 취소됐다. 멤버 한 명이 지난해 입은 ‘광복 티셔츠’를 문제 삼았다. 연말까지 잡혀 있던 NHK 등 다른 방송의 출연 일정까지 줄줄이 백지화할 것이라고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문화교류까지 막아선 일본의 처사에 유감을 표하며, 양국 간 갈등 확산을 우려한다.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일본 정부가 징용 노동자 명칭을 바꾼 것은 징용의 강제성을 은폐하려는 꼼수다. 지난 1일 아베 신조 총리가 의회 발언을 통해 일본은 할당모집, 관 알선, 국민징용 등 3가지 방식으로 노동자를 데려갔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 이런 구분은 무의미했다. 일제가 할당받은 정원을 채우기 위해 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갔고, 이후 기업에 배치된 징용자들이 죽음에 이르는 강제노역을 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모집 형식으로 동원된 노동자들이 귀국을 원해도 강제로 붙들어두고 노역을 시켰다. 방탄소년단의 TV 출연 취소 역시 갈등을 부추기는 부적절한 대응이다. 일본 우익단체가 문제 삼았다는 티셔츠에는 광복을 맞아 만세를 부르는 한국인들과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버섯구름 사진에 PATRIOTISM(애국심) LIBERATION(해방) 등의 영문 문구가 들어있다. 원폭 투하 사진을 담은 것은 부적절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티셔츠를 뒤늦게 찾아내 문제 삼는다고 방송 출연을 금지시킨 것은 졸렬하다. 혹여 한류 열기를 식히려는 의도가 개입돼 있다면 그야말로 세계적인 조롱거리다.

방탄소년단의 지민이 입은 ‘광복 티셔츠’ 온라인 캡처

한국인의 뜻은 일본이 새롭게 사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과거사에 대한 진솔한 반성의 태도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진정 한국과의 갈등을 피하고자 한다면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서는 안된다. ‘징용공’ 같은 용어 하나를 바꿔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부터 멈춰야 한다. 그리고 방탄소년단 출연과 같은 문화교류는 막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감정에 이끌린 과도한 일본 비판은 한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 정부는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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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재판 1심을 맡게 될 서울중앙지법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기소를 앞두고 형사합의 재판부 3곳을 늘리기로 했다. 사건이 배당될 수 있는 재판부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겠다는 것이다. 신설된 3개 형사합의부의 법관 9명은 모두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경력이 없다. 기존 13개 형사합의부 재판장 가운데 6명(46%)이 사법농단 관련자들과 함께 근무했거나 참고인·피해자 신분인 것과 대비된다. 결국 형사합의부 3곳 증설은 국회와 재야법조계·시민사회의 ‘특별재판부’ 도입 압박에 대한 응답으로 읽힌다. 앞서 법원행정처는 국회에 낸 의견서에서 “특별재판부는 헌법상 근거가 없고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등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공식화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2일 (출처:경향신문DB)

우리는 사법농단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고 독립적·중립적 법관에게 심리를 맡겨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재판부가 위헌적이라는 법원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임 전 차장 기소 이전 특별재판부 도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법원 차원의 특단의 조치가 절실하다고 본다. 1심 재판부 몇 군데 늘리는 정도로는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우선 서울중앙지법 차원에서 사법농단 사건 배당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제척·기피·회피 사유도 구체적으로 정하고 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법원행정처·대법원 근무 경력이 없는 법관으로 재판부를 늘려놨으니 법원을 믿어달라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출신 학교·사법연수원 기수 등의 인연을 매개로 촘촘한 연고관계를 형성하는 법관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사법농단 재판의 공정성 문제는 서울중앙지법에만 맡겨놓을 일도 아니다. 임 전 차장을 필두로 전직 대법관들은 물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줄줄이 기소될 가능성이 짙다. 사상 초유의 사건이고 피고인이 법률가인 만큼 치열한 법리다툼이 예상된다. 2심은 물론 3심까지 가게 될 공산이 크다. 마땅히 대법원 차원에서 사법농단 재판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지난 9월 사법부 70주년 기념사)을 하겠다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법원과 법관에 대한 믿음이 뿌리째 흔들리는데, 대법원장은 팔짱만 끼고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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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해서인지 ‘barmy’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는 것을 바른미래당 덕분에 처음 알았다. 이 단어의 뜻은 ‘약간 제정신이 아닌’이라고 한다. 이도 저도 아닌 ‘바미스럽다’는 신조어를 낳은 바른미래당은 당명부터 미래를 예고했던 것이다. 대주주인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도 앞날을 내다봤다. “~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요즘 바른미래당의 모습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다. “자유한국당과 한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바른미래당의 처연한 모습을 보면서 1990년대 유행가의 한 구절을 흥얼거리게 된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사실 출발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바른미래당의 모태인 국민의당은 ‘중도개혁’ ‘다당제’를 내세웠지만 구성원들의 마음속엔 정치적 속셈만 그득했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에서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이 희박했던 안 전 대표는 대선 출마를 위해 당을 만들었다. 동조한 의원들이 얼마나 안철수 정치를 알았는지도 의문이다. 일부 의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에서 공천받을 가능성이 낮았고, 일부는 당시 호남에서 인기가 높았던 안철수의 그림자에 기대는 것이 목적이었다. ‘제3당, 다당제를 지향한다’는 명분을 마음에 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대선 패배 후 안 전 대표는 당을 접었다. 국민의당 그릇에서 더는 미래가 없었기 때문이다. 호남 민심은 여권에 통째로 넘어갔고, 진보진영은 안철수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안 전 대표는 새로운 시장인 보수로 눈을 돌렸고, 그의 선택은 국민의당보다 오른쪽으로 이동한 바른미래당이었다. 국민의당 의원 다수는 안 전 대표를 따라 다시 짐을 쌌다. 딱히 정치적 소신이 있어서라기보다 대부분은 갈 곳이 없어서 일단 몸을 실었다는 시선이 많았다. 여하튼 이들은 지금 바른미래당의 다수다.

또 다른 축인 바른정당은 아예 가설정당으로 출발했다. 탄핵 국면에서 궤멸을 모면하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에 내세워 권력 한번 더 잡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자유한국당을 떠난 33명이 만든 당이다. 낡은 보수와 결별하자더니, 반 전 총장이 낙마하자 본색을 드러냈다. 자기들이 대선후보를 뽑고도 13명이 대선 과정에서 낡은 보수당에 돌아갔다. 눈치만 보던 나머지도 대선 이후 같은 길을 걸었다. 이들은 공·사석에서 유승민 대선후보의 협량함이 가장 큰 탈당 이유라고 핑계를 댔다. 춥고 배고파 견딜 수 없었다는 진실은 끝끝내 숨겼다.

그렇다고, 한국당에 돌아가지 않은 9명 의원 모두가 보수개혁 가치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각자 속사정이 있다고들 했다. 어떤 의원은 한국당에 돌아가는 것이 ‘가오’가 상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원은 특정인에 대한 의리로 남았다고 했다. 일부는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한국당에서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외톨이가 된 이들은 안 전 대표가 내민 손을 덥석 잡을 수밖에 없었다.

뿌리가 이럴진대 이파리가 잘 자라겠는가. 지난 지방선거 공천 및 본선 과정에서 안 전 대표가 보였던 독선은 어두운 앞날을 예견하는 전주곡이었다. 안 전 대표가 독일로 떠났음에도, 당은 비틀거린다. 지도부가 판문점선언 비준·특별재판부 설치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 의원들이 뒤집고, 한국당 쪽으로 기운 듯한 결론이 내려지는 상황들이 반복됐다. ‘바미스럽다’ ‘바미하다’ 등 비아냥은 자초한 것이다. “우리는 설렁탕 집인가, 짜장면 집인가, 아니면 냉면 집인가” “설렁탕도 짜장면도 냉면도 그 어떤 것도 맛이 없다고 한다”(지상욱 의원)는 당내 자조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쓴소리가 길었지만 당을 접으라는 저주는 절대 아니다. 명분 없던 과거를 인정하고, 지질한 현재를 반성해 거듭나라는 충고쯤으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어쨌든 당신들이 내세우는 보수개혁의 구호나 가치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유한국당 때문에라도 당신들은 이렇게 없어져서는 안된다. 한반도 평화무드에 색깔론을 덧씌우고, 쇄신을 위해 삼고초려했다는 인사를 밥그릇 싸움 때문에 내쫓은 한국당은 탄핵 이전보다 더 뒷걸음쳤다. 음식으로 치면 불량식품이다. 바른미래당이 맛없는 음식이라지만, 불량식품처럼 배탈은 안 난다.

그러니 일단 살아남으라. 한국당과 닮아가는 게 아니라, 더 거리를 둬야 할 것이다. 한국당이 바라는 형태의 보수통합에는 콧방귀를 뀌어라. “박정희가 훌륭했다”고 떠드는 모 의원이 한국당행을 원한다면 주저없이 놓아줄 것을 권한다. 그래야 이성 있는 보수가 될 수 있다.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한국당이라는 것은 국민들에게도 슬픈 일이다.

<이용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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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29일 쌀 포대를 가득 실은 북한의 트럭들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줄줄이 넘어왔다. 최악의 홍수피해를 입은 남측 이재민을 돕기 위해 북한이 보낸 구호물자였다. 한국전쟁 이후 첫 남북 간 물자교류는 ‘깜짝’ 성사됐다. 당시 북한은 방송을 통해 수해지역 이재민들에게 쌀 5만석, 옷감 50만m, 시멘트 10만t 등을 보내겠다고 전격 제의했다. ‘아웅산 사태’가 일어난 지 겨우 1년이 지난 적대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성사가 어려워 보였다. 정부 내에서도 북한의 정치선전에 이용될 것이란 반대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는 북한의 구호물자 지원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반도의 평화 환경 조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배경이야 무엇이든, 이 물자교류는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구실을 했다. 곧바로 1984년 남북 경제회담이 성사됐고, 1985년에는 최초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공군 C-130 수송기가 11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서 제주산 귤 50t을 싣고 있다. 정부는 9월 평양정상회담 때 북측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것에 대한 답례로 제주산 감귤 200t을 이날과 12일 이틀에 걸쳐 북으로 보낸다. 국방부 제공

당시 정부가 북한의 제의를 수용하면서 내세운 명분이 “우리가 주기 위해서는 받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1995년을 필두로 2000년과 2006년, 2010년에 대북 쌀 지원이 이뤄졌다.

쌀보다 더 자주 분단선을 넘은 남측의 산물이 제주 감귤이다. 1998년 12월 처음으로 제주 감귤 100t(10㎏짜리 1만상자)의 북송이 성사 됐다. 시민단체와 감귤생산자단체 등 민간이 주도해 일궈낸 ‘북한 감귤 보내기’ 사업의 시작이다. 이후 12년간 지속된 이 사업을 통해 제주산 감귤 4만8328t이 북한 주민들에게 보내졌다. ‘가장 성공적인 비타민C 외교’(미국 월스트리트저널)라는 평가를 받은 ‘감귤 보내기’ 운동은 남북관계가 동결되면서 2011년부터 중단됐다.

제주 감귤이 다시 북녘으로 간다. 청와대가 9월 평양정상회담 때 북측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데 대한 답례의 표시로 제주 감귤 200t을 북에 보냈다. ‘선물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은 미디어’라고 한다. ‘감귤 선물’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 등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을 터이다. 그런 ‘정치’에 앞서, 북녘 동포들이 제철 제주 감귤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남도의 향취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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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의 숙제로 남아있는 ‘선거연령 18세 하향’ 이슈가 다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선거연령 18세 하향을 논의하고 대표성과 비례성을 확대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협력한다’고 합의하면서다. 선거연령 하향은 그간 찬성 입장을 보인 다른 4당과 달리 자유한국당이 미온적 태도를 보여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한국당이 선거연령 하향 논의에 나서기로 함에 따라 어제 3차 회의가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게 됐다. 마침 정개특위원장인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이런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정개특위 관련 첫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선거연령을 19세로 묶어두는 것은 참정권 확대라는 세계적 흐름에 반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선거연령이 19세인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선거연령을 낮추는 환경은 충분히 조성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진즉에 선거연령 하향 권고의견을 냈다. 중앙선관위는 2016년 선거법 개정 의견을 내면서 “18세 청소년은 이미 독자적 신념과 정치적 판단에 기초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소양을 갖췄다”고 밝혔다. 정치적 판단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선거연령 하향에 반대하는 척박한 논리를 반박한 것이다. 만 18세는 취업과 혼인, 운전면허 취득, 공무원 시험 응시 등을 할 수 있고 병역 의무자로서 군입대가 가능한 연령이다. 국방, 교육, 납세, 근로 등 국민으로서 주요 의무를 지니고 있음에도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할 권리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은 부당하다. 고령화되는 한국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정치적 의견들이 미래의 정책 결정에 더 반영되어야 할 당위성도 커지고 있다. ‘더 넓은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선거연령을 낮추는 게 옳다.

‘선거연령 18세 하향’ 논의에 참여하기로 한 한국당은 더는 목전의 작은 이해에 급급해 시대적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이번 정치개혁특위에서 무엇보다 선거연령 하향 문제를 논의해 입법화의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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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이었던 지난 10월27일, 서울 혜화역에 남성들이 집결했다.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이하 당당위)가 주최한 이 모임은 소위 곰탕집 성추행 판결을 규탄하기 위해 기획됐다. 곰탕집에서 일어난 성추행 가해자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된 것에 항의하는 차원으로, 여성의 말만 듣고 유죄판결을 내린 이 판결이 남성들의 삶에 위협이 된다는 게 당당위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곰탕집 가해자의 부인이 남편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을 때, 인터넷은 이에 동조하는 남성들의 글로 도배됐다. 수많은 남성들이 ‘이러다간 무서워서 밖에도 못 나가겠다’며 울분을 터뜨렸는데, 이는 청와대 청원으로 이어져 31만명의 동의를 받기까지 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당당위의 집회는 전국에서 몰려든 남성들로 미어터져야 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하지만 막상 집회에 나온 남성들의 수는 60여명에 불과했다. 많은 이들이 이 숫자에 놀랐다. 청원에 동의한 사람들의 1%만 나왔어도 이렇게 민망한 수준은 아닐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남자들이 경제활동을 많이 하니까” “원래 처음엔 사람이 없다” 등등의 변명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이전에 혜화역을 점거했던 불법촬영 규탄 시위와 비교하면 설득력이 없다. 참고로 불법촬영 규탄 시위는 5월에 열린 첫 집회에서도 1만명을 동원했고, 더위가 한창이던 8월4일에는 무려 7만명이 모이기까지 했다. 당당위는 12월8일에 2차 집회를 열겠다고 했다가 11월24일로 일정을 앞당겼는데, 이는 연말에 참여율이 떨어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해서 2차 집회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 같지 않은 이유는 그들에게 ‘절실함’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저 사람이 당하는 일이 자칫하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고 여길 때, 그리고 국가와 사회가 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때 사람들은 거리로 나선다. 삼복더위에도 여성들이 불법촬영 규탄 시위에 참여한 이유다. 하지만 남성들 중 성추행 가해자가 될까봐 불안해하며 사는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조만간 성추행을 저지를 야심이 있는 이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은 착실하게 일상을 영위하리라. 그렇게 본다면 인터넷에 표출됐던 뭇 남성들의 분노는 방구석에서 여혐을 시전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남성들의 이런 행태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건 5년 전 있었던,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의 죽음에서도 드러난다. 여혐이 이슈화되기 시작했던 2008년, 성재기는 온라인에 남성연대를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남성이 차별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라는 게 존재해 더 큰 차별을 만들어낸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우리는 막걸리 한잔 하고 흩어질 겁니다. 여가부가 사라지면 우리나라 남녀는 모두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게 될 겁니다.” 그의 주장에 동조하는 남성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남성들의 많은 수가 경제활동을 하고, 여성에 비해 임금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성연대가 돈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남성연대는 쭉 가난했다. 월 2000원 이상의 회비를 내는 이가 170명에 불과할 정도였는데, 이는 사무실 운영비조차 충당하지 못하는 액수였다. 설립한 지 5년이 지났을 무렵 그의 부채는 2억원으로 불어났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성재기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데, 그건 바로 한강에 투신하는 퍼포먼스였다. “이제 저는 한강으로 투신하려 합니다. 남성연대에 마지막 기회를 주십사 희망합니다. … 시민 여러분들의 십시일반으로 저희에게 1억원을 빌려주십시오.” 한마디로 남성연대의 진정성을 알아달라는 뜻. 그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명구조 자격증 소지자를 한강에 대기시킨 걸 보면 진짜로 죽을 마음은 없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퍼포먼스는 성재기의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성재기는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갔고, 필사적인 수색 끝에 사흘 뒤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성재기를 죽게 만든 원인은 뭘까? 무모한 퍼포먼스가 가장 큰 이유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벌이도록 만든 건 바로 남성들이었다. 인터넷에서만 소리 높여 남성 역차별을 외치는 대신 단돈 얼마라도 남성연대에 후원했다면 그가 한강에 뛰어드는 일은 없었으리라. 수많은 여성단체들이 여성들, 그리고 그 이념에 동조하는 일부 남성들의 후원으로 잘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남성이 정말로 역차별당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더 어이없었던 건 성재기의 죽음 후 남성들이 보인 행태였다. 최소한의 양식이 있다면 남성연대에 후원금이 폭주해야 마땅하건만, 그들은 여가부 홈페이지로 몰려가 무차별 공격을 퍼부은 끝에 결국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 번지수를 잘못 찾은 화풀이의 예로 이보다 더 적합한 게 있을까? 이후 남성연대는 양성평등연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 글을 쓰는 김에 링크를 타고 가보려 했지만 ‘이 페이지에 연결할 수 없음’이란 안내문만 뜬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한다. 남성 역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입을 막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 정부가 여성의 말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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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내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남북협력기금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자유한국당이 비핵화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협력기금이 과도하게 편성됐다며 ‘대북 퍼주기 예산’이라고 비판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지난 5일 “과도한 남북관계 예산을 삭감·조정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남북협력기금을 올해(9592억원)보다 14%(1385억원) 증액한 1조977억원으로 책정해 국회에 보고했지만, 한국당은 이 중 6400억원을 깎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남북협력기금 사업비가 2017년, 2018년을 제외하고 항상 1조원대였던 점을 돌이켜 본다면 한국당의 주장은 과거 부정과 다름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듬해인 2009년 남북협력기금을 1조1181억원으로 전년보다 137억원 늘렸다. 2010년 천안함 사건에 따른 5·24조치로 남북교류와 경제협력을 중단시켰음에도 불구하고 2011년 사업비를 1조153억원으로 9% 줄이는 데 그쳤다.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2016년 1조2550억원까지 늘어났다가 북핵사태 영향으로 2017년 사업비가 9587억원으로 감액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5일 청와대 본관 회의실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를 하며 정기국회 처리 법안, 내년도 예산안, 저출산·아동 복지 문제 등 현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남북관계가 최악이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사업비로 매년 1조원 안팎이 책정됐음을 감안하면 남북관계가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지금 1조원대 사업비가 과하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에서 나온 건지 한국당에 묻고 싶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 기금규모는 남북관계가 동결됐던 2016년보다도 1573억원이나 적다. 그런데도 ‘과도한 대북 퍼주기 예산’이라는 한국당의 주장이야말로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아닐 수 없다. 남북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태도로밖에 달리 이해하기 어렵다. 

일각에선 기금 누적액이 14조원에 달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는 사실관계를 오해하도록 할 소지가 있다. 남북협력기금은 쓰지 않을 경우 적립되는 게 아니라 국고로 반납되기 때문이다. 보수정권이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도 매년 1조원대 사업비를 조성해온 것은 남북관계가 갑자기 활성화될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설사 사용하지 못했다고 해도 국고 낭비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낙연 총리가 6일 “그 돈은 안 쓰더라도 어디 날아가는 게 아니다”라고 한 건 기금의 이런 성격을 가리킨 것이다.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정 상설협의체 회의에서 한국당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의 진전에 따른 현실을 인정하고 협력할 것은 적극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온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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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특별수사단이 6일 옛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무사의 사찰은 2014년 6·4 지방선거 정국이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정권에 불리하게 돌아가자 이런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시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무사의 사전 계획과 청와대의 승인에 따라 지역 기무부대가 실종자 가족과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사찰 첩보를 수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등에 대해 불법감청을 한 사실도 새로이 확인됐다. 밝혀진 것이 이 정도이니 얼마나 더 많은 불법을 저질렀을지 알 수 없다.

전익수 국방부 특별수사단장이 6일 국군기무사령부의 세월호 민간인 사찰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수사는 기무사가 얼마나 철저히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박근혜 정권에 봉사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기무사가 청와대에 올린 보고서는 세월호 실종자 수색 및 세월호 인양 포기를 정국 전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초 목적이 엇나갔으니 이후 활동의 불법성은 불문가지다. 기무사는 유가족은 물론 안산 단원고 학생까지 전방위로 사찰했다. 사이버 사찰도 서슴지 않았다. 적발되면 ‘실종자 가족으로 신분을 위장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기무사가 수사기관이 해야 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검거에까지 나섰다는 점이다. 유 전 회장을 찾기 위해 은신처 근처에서 무차별적으로 무전을 감청했다. 간첩 잡는 장비를 엉뚱한 곳에 쓴 것이다. 청와대는 이런 기무사를 향해 “최고의 부대”라고 칭찬했다. 이런 행태를 감안하면 기무사의 계엄령 발동 검토 문건은 단순한 서류상의 검토가 아닐 개연성이 높다.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정권을 유지하겠다고 나선 기무사가 시민을 총칼로 제압하겠다는 발상을 못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 (출처:경향신문DB)

아직도 기무사 해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수사결과를 보고도 기무사의 행위를 두둔한다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다. 과거 윤석양 이병 양심선언으로 보안사령부를 기무사로 이름을 바꿨지만 불법활동은 근절하지 못했다. 정권이 기무사 정보를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지 못한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기무사를 해체한 취지를 견지해나가야 한다. 남은 것은 계엄령 검토 문건에 대한 수사다. 미국에 체류 중인 조현천 당시 기무사령관은 소재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조 전 사령관을 하루속히 국내로 데려와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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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열린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에서 청와대와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조속한 시일 내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는 데 합의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주52시간제의 문제점을 탄력근로제를 통해 보완하자는 데 여야가 동의한 것”이라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국회가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침체된 경기를 살리겠다는 취지야 이해하지만, 제도 도입을 서두르다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만큼이나 기업에는 큰 변화다. 근무시간을 줄이는 대신 생산성을 높이는 선진국형 근로 방식을 통해 이른바 '워라밸'(일과 업무의 균형)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자는 취지는 대기업들도 대체로 공감하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날로 격화하는 글로벌 경쟁 상황 속에서 신제품 개발, 글로벌 네트워킹 등을 위해서는 몇 개월씩 밤낮으로 집중 근무를 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하면 탄력근무제 적용 확대 등 대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진은 서울 시내의 한 사무실에서 야근하는 직장인들 모습. 연합뉴스

탄력근로제는 일이 많으면 노동시간을 늘리고 없을 때는 줄여 특정 기간의 법정 평균노동시간(주 52시간)에 맞추는 방식이다. 지난 7월 도입된 주52시간제법은 3개월 이내의 단위시간 안에서 법정 평균노동시간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합의의 취지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통해 현행 최대 3개월인 단위시간을 6개월~1년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정부도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6일 언론 인터뷰에서 “탄력근로제를 실시할 때 모든 것을 미리 정하게 하는 부분을 완화하려고 한다. 현재 단위기간이 적절한지, 6개월이나 그 이상으로 늘리는 게 바람직한지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내세우며 탄력근로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던 전임 장관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5일 청와대 본관 회의실에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첫 회의를 하며 정기국회 처리 법안, 내년도 예산안, 저출산·아동 복지 문제 등 현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현장에 주52시간제가 도입된 것은 4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주52시간제가 제대로 시행되어도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여전히 최장이다. 지금은 이 법이 정착되도록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주52시간제 법안이 통과할 당시 탄력근로제 확대는 2022년까지 검토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제도가 안착되기도 전에 서둘러 개선방안을 도입하는 것은 주52시간제를 무력화시킬 우려가 있다. 탄력근로제를 확대한다고 해서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탄력근무가 확대되면 노동이 특정시간대에 집중되면서 산재의 위험성을 높이고 더 많은 과로사를 부를 수 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일제히 성명을 내고 탄력근로제 확대반대 투쟁 의지를 표명했다. 한국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탈퇴까지 경고했다. 여·야·정 협의체에 참여한 정의당도 반노동자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고려하며 시행해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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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권력자 대통령의 비서실장 위상은 여전히 유별하다. 낡은 비유를 빌리면, ‘권부의 꽃’이기도 하고 ‘행정부의 최악의 직책’이기도 하다. 시대와 정권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불변의 롤 모델이 서기도 어렵다. 이후락, 김정렴, 노재봉, 박관용, 한승수, 김중권, 박지원, 문희상, 문재인, 임태희 등. 40여명의 역대 비서실장 중 ‘비서실장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가장 잘 수행한 인물은 누구일까. 한국행정연구원이 2013년 가을 대통령 비서실 연구의 일환으로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를 실시했다. 내로라하는 인사들을 제치고 노무현 대통령의 문재인 비서실장이 맨 윗줄에 올랐다. ‘위임 권한을 적절히 수행하며 권력비리와 멀었던 점’ ‘충성심’ ‘직언’ 등이 이유로 지목됐으나, 최다 의견은 ‘시민사회 등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며 대통령에게 잘 전달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각 부처 및 비서실에 정직하게 전달’에 두어졌다. 다음 순위의 박지원 비서실장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한승수는 ‘전문성과 정책적 역량’, 이후락은 ‘충성심과 강한 리더십’, 최장수 비서실장 김정렴은 ‘대통령 국정철학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지목됐다. ‘문재인 비서실장’의 차별점이 확연하다.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인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0월 17일 오후 강원도 철원군 육군 5사단 비무장지대 GP초소 앞에서 군 관계자로부터 브리핑을 듣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묵은 비서실장 연구를 꺼낸 것은 어느 유형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참으로 낯선 임종석 비서실장의 행보 때문이다. 임 실장이 대통령 유럽 순방 기간 중 정부의 외교·안보 참모들을 대동하고 DMZ를 시찰한 광경은 강렬하다 못해 자극적이다. 국가 의전서열이 더 높은 국정원장, 국방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 등을 거느리고 “군을 격려하기 위한 방문”을 실시했다. 임 실장의 내레이션을 입힌 DMZ 방문 영상은 청와대 홈페이지 첫 장을 장식했다. 여태껏 본 적이 없는 비서실장의 동선이다. ‘그림자 보좌’의 역할과 당위에 익숙한 시선으로 보면 ‘임종석 비서실장’은 분명 특별하다. DMZ 시찰도 ‘자기 정치’라기보다는 위임된 권한을 창의적으로 수행한 결과다. 그만큼 통일, 외교, 안보, 행정, 대국회 등 전방면에서 직접 ‘무대’에 올라 활약하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없었다. 특히 남북 문제에서는 대통령 다음의 ‘주인공’이다. 판문점 회담 당시 수행단의 맨 앞에 선 비서실장, 북한 김여정 특사단의 환송만찬을 직접 주재하는 비서실장이 상징하는 바다. 권력의 지표라 할 ‘인사’에서도 임 실장의 비중은 강력하다.

‘힘 센’ 비서실장은 여론시장에 곧바로 투영된다. ‘시사저널’이 매년 전문가조사를 통해 발표하는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체 영향력 조사에서 임 실장은 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다음으로 3위에 올랐다. 1989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대통령비서실장으로는 최고 순위다. ‘기춘대원군’ 김기춘 비서실장(2014년 6위)도, ‘소통령’으로 불린 박지원 비서실장(2002년 7위)도 못 올라간 위치다. 비서실장이 총리와 여야 대표, 국회의장보다 ‘한국을 움직이는’ 인사에 꼽혔다. 이게 임 실장의 권력 위상일 터이다.

물론 비서실장의 힘은 결국 대통령이 정한다. ‘임종석 비서실장’의 힘은 문 대통령의 신뢰와 권한 위임에서 나올 터이다. 경계는 위임받은 권한을 넘어 스스로 권력화하는 단계이다. 점점 커지는 야당의 공세와 여권 내 견제 기류는, 한편으로 권력화하는 비서실장의 징후가 움트기 때문일지 모른다. 과거 정부에서 대통령이, 총리가, 장관이 하던 것을 비서실장이 직접 하게 될 경우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미래권력 반열에 오르고, 막강 권한을 위임받았다 하더라도 비서실장에서 ‘비서’를 떼낼 수는 없다. 시민사회 등과 소통을 통해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며 대통령에게 ‘잘’ 전달하고 대통령의 의중을 각 부처 및 비서실에 ‘정직하게’ 전달하는 것, 여전히 비서실장 최고 덕목이다.

(문재인처럼) 유연하고 온화한 리더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을 보완할 (임종석처럼) 실력과 정무감각, 열정으로 뭉친 람 이매뉴얼을 초대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발탁했다. 당시 ‘뉴스위크’가 백악관 비서실장을 두 차례 역임한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에게 신임 비서실장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행정부에서 최악의 직책을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에서 두 번째로 막강한 인물일지 모르지만 참모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런 말도 들려줬다. ‘당신은 몸 앞과 뒤에 큰 표적을 달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 누구도 당신을 선출하지 않았으며 당신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사람들은 원치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야권은 물론 슬슬 여권에서도 표적이 되고 있는 ‘임종석’을 ‘당신’ 자리에 놓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숙명을 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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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이 참으로 착잡하다. 우리에겐 너무도 간절한 한반도 평화체제의 성공적 수립을 위해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승리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그 승리가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더 가파르게 무너지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반대로 민주당이 이긴다면 미국 민주주의의 급격한 붕괴는 어느 정도 막아내겠지만, 트럼프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 민주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수립 과정을 방해하고 나서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 미국이 어쩌다 이렇게 민주주의 문제 때문에 세계의 우환 거리가 되었을까?

미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득세한 데 대해 많은 학자들은 하나같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더불어 진행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그 근본 배경으로 지목한다. 그동안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미국의 복지국가 체계를 만들었던 뉴딜 이후의 근간적 사회경제 구조를 흔들면서 그 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숱한 하층 노동자 및 실업자 계층을 양산해 냈는데, 민주당은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그들을 제대로 대변하고 포용하지 못하며 우왕좌왕했고, 그사이 극우 포퓰리즘이 그들을 정치적으로 포획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1일(현지시간) 중간선거에 출마한 공화당 후보들을 지지하기 위해 플로리다주 에스테로의 헤르츠 아리나에서 열린 유세집회에 참석해 경례를 하고 있다. 에스테로_AFP연합뉴스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미국만큼이나 불평등의 정도가 심각하고, 그 완화를 위한 노력도 부족하다. 촛불혁명으로 박근혜 정부 때의 민주주의 파괴 시도를 극복해 내었다고 우리 민주주의가 안전할 거라고 자만해서는 안된다. 지금과 같은 심각한 불평등을 방치한다면 그에 대한 반동으로 더 심각한 민주주의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불평등은 단순히 사회적 불공정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바로 민주주의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다.

다행히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광범위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의 체계를 갖춘 포용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와 민주당은 그동안 증세나 부동산 보유세 강화같이 복지 확충과 불평등 완화를 위한 결정적 조처들 앞에서 늘 머뭇거리기만 했다.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주의 깊고 실효성 있는 실천이다. 단기적인 지지율 관리를 넘어 긴 호흡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운명을 생각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미국식 민주주의가 지닌 근본적인 한계도 놓쳐서는 안된다. 마이클 샌델은 미국이라는 ‘절차주의적 공화국’이 낳은 ‘민주주의의 불만’을 이야기한다. 그는 진작부터 미국의 자유주의 전통이 공정한 절차만 강조하며 정치 과정에서 모든 도덕적 지향을 몰아내려 하는 바람에 그 자리에 시장논리가 들어서 지배하고 결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게 되리라 걱정했다. 샌델이 볼 때 정치가 지향해야 할 도덕적 가치에 대한 관심을 애써 괄호 속에 넣어 두려고만 하는 미국식 자유주의 정치에선 결국 원초적인 민족주의적 언사들만이 대중들을 사로잡게 될 터였다.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고 ‘미국 우선’이라는 기치를 내세워 대통령이 된 트럼프를 보면, 샌델은 오래전부터 그의 등장을 예견했던 셈이다.

물론 우리 민주주의는 미국과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우리 민주주의에서는 오랜 성리학적 전통의 영향 탓인지 미국과는 달리 오히려 정치를 온통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재단하는 도덕정치가 지배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도덕은 너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해야 한다. 법과 공정한 절차도 너무 자주 무시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절차주의의 한계에 대한 샌델의 경고를 약간 초점을 달리해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적 과정을 겪으면서 조밀하게 잘 짜인 견제와 균형의 제도적 체계를 갖추었지만 트럼프 같은 권위주의자를 제대로 걸러내지도, 제어하지도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절차와 제도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 적들로부터 지켜내려 하며 삶의 지향 자체를 기꺼이 거기에 맞추어 내려는 시민들의 태도가 사회적 습관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을 때에만 살 수 있다.

민주주의는 제도이기 이전에 하나의 가치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개혁만큼이나 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한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도 절실하다. 우리나라는 촛불혁명을 통해 전 세계에 민주주의의 한 모범을 보였다고 자랑하지만, 예컨대 절대 다수의 시민들, 특히 청년들은 제주도에 온 예멘인들의 난민 신청을 수용하지 말라는 의견을 갖고 있다. 이런 상태를 계속 방치해 둔다면, 언젠가 한국판 트럼프가 등장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교육의 체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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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참여하는 여·야·정 상설협의체가 5일 첫 회의를 열었다. 오찬을 겸한 만남은 2시간30분 넘게 진행됐다. 야당 원내대표들은 할 말을 다 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경청한 뒤 성의있게 답변했다고 한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경제와 민생상황이 급박하고 엄중하다는 데 정부·여당과 인식을 같이한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성과였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우리 정치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협치”라며 “첫 출발이 좋다”고 했다.

모처럼 발맞춘 국회·정부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5일 여·야·정 협의체 첫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윤소하·바른미래당 김관영·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홍영표·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날 회동 테이블에는 한반도평화, 경제 활성화, 탈원전, 채용비리, 선거제 개편 등 최근 여야 간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정 현안 대부분이 올랐다. 여야는 회의가 끝난 뒤 “경제·민생 상황이 엄중하다는 공통된 인식 아래 국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입법과 예산에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며 총 12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당초 자기 주장만 내세운 채 알맹이 없이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기대 이상이다. 정의당은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과 규제혁신 신속 추진 등 2개항에 반대 의견을 명확히 밝혔다. 이렇게 하면 된다. 시각차가 클수록 대화가 필요하고,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이견을 좁혀 나가는 것이다. 노동계에서 반대하는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은 향후 국회에서 장단점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야당에서 반대하는 판문점선언 비준 동의에 대해 “꼭 처리됐으면 좋겠지만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모처럼 여야가 시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기조를 잘 이어가면 그동안 말만 무성하고 진척이 없었던 협치의 불씨를 살려나가는 것도 기대할 만하다.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웠다고 본다. 남은 과제는 회동에서 나왔던 말들이 결코 구두선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여야 합의는 구체적으로 실천됐을 때만이 가치가 있다. 이 중 일부는 원론적 합의일 뿐 실무 추진 과정에서 다시 충돌할 수 있다. 하지만 큰 틀에서 공감한다면 작은 차이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 이날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들 간의 두 번째 월례모임도 열렸다. 비록 주요 쟁점에서 의견 일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성과가 아주 없지는 않다. 회동 한 번으로 주요 쟁점들에 대한 여야 간 의견 차가 해소될 리는 만무하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논의할 게 생기면 중간에라도 만나자”고 했다. 대통령이 정치권에 협치의 손을 내미는 것은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첫발을 뗀 여·야·정 협의체가 소통과 타협의 정치를 복원하고 국정의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는 구심점으로 자리 잡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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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1일 국회 시정연설은 지향점이 분명했다. 심각해지는 경제, 민생 문제의 해법으로 ‘함께 잘사는’ 포용국가의 비전을 제시했다. 포용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확인, 보수야당 등에서 요구해온 정책기조 전환은 하지 않을 것임을 확실히 했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양극화 문제 해결을 경제 분야의 급선무로 내세웠다. “불평등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을 역대 정부도 인식해 복지를 늘리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기존의 성장 방식을 답습한 경제기조를 바꾸지 않아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양극화 해결 방법으로 대증요법이 아닌 경제적 체질 개선이라는 근본 처방을 제시했다. 심화되는 불평등이 지속 가능을 위협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면에서 온당한 방향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경제기조를 바꿔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힘겨운 분들도 생겼다”면서 “그러나 ‘함께 잘살자’는 정책기조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당장의 어려움을 피하려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 방식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정책기조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장통’으로만 치부하기엔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 시정연설을 마치고 임종석 비서실장, 장하성 정책실장과 함께 국회 본관을 나서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시정연설 때보다 경제와 민생에 집중했다. 경제와 민생의 절박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걸로 받아들인다. 실제 문 대통령은 불평등 해소에만 정책을 올인하지는 않았다. 시정연설 중 ‘경제’를 27번 언급한 문 대통령은 포용(18번)보다 ‘성장’(26번)을 더 많이 언급했다. 실제 “혁신성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며 ‘공급’ 중심의 정책인 혁신성장에 대한 의지를 곳곳에서 피력했다.

무려 470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문 대통령은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설파했다. 경기둔화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재정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방향은 맞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도 재정여력이 있는 국가들은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한국은 2년 연속 초과 세수로 인해 재정 여력도 있다. 내년 예산안에서 최대로 늘어난 부문이 ‘일자리 예산’이다. 양극화 심화와 직결되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확대하자는 취지일 터이다. 하지만 올해도 막대한 일자리 예산을 투입했지만 한계가 뚜렷하다. 벌써부터 야당이 일자리 예산 대폭 삭감을 벼르는 이유이다. 재정 투입을 통한 일자리와 함께 민간 영역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일으키는 실효적 정책이 제시되어야 매머드 일자리 예산안의 당위가 더 확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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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대박’을 터뜨렸다는, 대체로 비슷한 평가였다. 10월5일 ‘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정책 토론회’ 이후 비리 유치원 명단 공개(12일), 유치원 공공성 강화를 위한 정부 종합대책 발표(25일). 국회의원의 문제 제기 이후 정부가 20여일 만에 제도로 응답한 보기 드문 경우다.

‘박용진현상’은 사안 자체부터 인화성이 높았다. 기득권과의 정면 승부였다는 점에서 많은 박수를 받았다. 유치원 문제는 육아, 교육, 복지를 포괄하는 ‘헬조선 프레임’과 맥이 닿아 있다. 여성들의 삶을 옥죄는 핵심고리이기도 했다. 내 아이를 위해 ‘을’을 자처했던 부모들의 분노는 또 얼마나 컸나. 이런 문제를 다뤄야 할 교육위원회는 유난히 높은 전문성을 요구받는다. 그만큼 이해관계가 엉켜 있는 상임위다. 민주당 지도부는 박 의원의 문제 제기 후 사흘이 지나서야 입장을 발표했다. 박 의원의 고군분투를 ‘똘끼’ 정치인의 무모한 돌파로 해석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슈의 파괴력, 분노의 조직화, 기득권과의 싸움이 정치적 성공으로 이어졌다면 좀 더 정교한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까. 국정감사 기간 내내 ‘박용진현상’을 들여다봤던 까닭이다. 그 자리엔 정당과 국회의 전환이 꿈틀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박 의원의 첫 자서전 제목은 ‘과감한 전환’이다.

19일 오전 경남도교육청에서 열린 국회 교육위원회의 경남도교육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의원들은 시민(국민), 정의를 외친다. 정작 이런 소명이 정당을 통해 어떻게 실현되는지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 정당의 언어는  ‘계파’ ‘진영’으로 통할 뿐이다. 정당을 배타적 권력 쟁취의 도구로 삼아 온 후과다. 박 의원은 ‘진짜 권력’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차등과세 부과를 끌어냈지만 정무위에서 밀려났다. 스스로 “무계파, 비주류 출신인 죄”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일부 주류 쪽 의원들은 “다 알고 있는 문제다. 운이 좋았지 뭐”라며 박 의원의 성과를 깎아내리는 데 급급했다. 

정당은 정권획득을 위한 결사체지만 평소엔 갈등해결을 위한 조정기관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념보다 사회경제적 균열이 정당 정체성을 결정하는 변수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범진보의 맏형을 자처해 온 민주당조차 기득권 앞에선 자유한국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 의원은 “민주당 소속 진보교육감들도 유치원연합회 위력 앞에 무너지더라. 최근 2년간 아예 감사를 포기한 곳도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박 의원의 질주로 정당이 변하고 있다. 계파와 진영이 난무했던 자리에 시민(정치하는엄마들, 시민감사관 등)들이 올라섰다.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지만 유권자의 약 30~40%는 투표에 불참한다. 이번을 계기로 이들 중 상당수가 정치 안으로 들어왔을 거라 짐작된다. 사립유치원의 폐원 압박에 공동육아로 대응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정당이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게 된 것만 해도 반가운 일이다. 여기에 “삶과 밀착된 문제를 해결하면 새 질서가 만들어지고 지지도 받게 된다”는 공식까지 추가된다면 정당정치의 ‘전환’이라 할 만하다. 

정권교체 후에도 국회는 청와대와 행정부에 종속된 ‘반응 정치’로 일관했다. 소득주도성장, 개헌, 최저임금 등 굵직한 현안은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했다. 국회는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놓고 추상적 담론 경쟁에 빠졌고, 양당제와 다당제의 선악을 매기느라 바빴다. ‘국회=비생산적’이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여의도에서 차기 대선 후보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린다.

국회가 박 의원의 질주로 달라지고 있다. 국회발 의제가 나온 지 20여일 만에 온 나라가 움직였다. 2013년 누리과정이 실시된 이후 교육관료들의 직무유기, 짬짜미 감사 등 묵은 적폐가 민낯을 드러냈다. 국회는 유아교육이라는 공적 가치에 관한 한 대표성을 인정받게 됐다. 촛불 이후 주요 의제에 직접 참여하는 게 낫다는 시민들이 늘었지만, 살다 보면 내 권리를 위임하는 간접 참여도 괜찮겠다는 시민들도 많아지는 추세다. 선거제 개편 논의도 사회적 신뢰가 뒷받침된다면 속도가 빨라질지 모를 일이다. 이 정도면 국회 정치의 전환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다.

박 의원은 2000년 이후 10여년 동안 진보정당 깃발을 펄럭이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2011년 진보정당 울타리를 넘어 거대 정당 광장으로 건너왔다. 한쪽은 배신자, 또 한쪽은 비주류로 낙인찍었다. 진보정당 시절 모두가 독자집권을 외칠 때 홀로 연립정부를 주장했고, 민주당에 와선 배후세력 없는 설움 속에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증명해야 했다. 늘 “1회초 등판만 하고 내려오는 것 아닌가” 가슴 졸여야 했다.

하지만 생각대로 안되는 삶이란, 생각지도 못한 삶이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 정치라고 다르겠는가. 진보정당은 지금 선거제도 개혁을 주도하고 있고,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선 역사라며 자랑스러워하지 않나. 박용진, ‘과감한 전환’을 응원한다.

<구혜영 정치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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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국제법상으로 유엔에 가입한 엄연한 국가다. 반면 국내법은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와 국가보안법에 따르면 반국가단체다. 반면 남북관계발전법은 ‘특수관계국’으로 규정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남북기본합의서가 모태다. 고민 끝에 헌법과 보안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북한과의 교류가 가능해지도록 합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한국 보수는 공식적으로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아왔다. 그렇게 함으로써 안보를 독점했고, 북한을 협상 상대로 보는 남한의 진보를 공격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은 보수의 좋은 먹잇감이 됐다. 북한에 대한 국가성 부정은 보수의 징표가 됐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상의 현상일 뿐이었다. 이면에서 보수와 북한은 적대함으로써 각자의 이익을 취하는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북한이 남한 선거에 개입한 ‘북풍’, 보수가 총선에서 이기려고 총을 쏴달라고 북한에 부탁한 ‘총풍’을 기억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해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을 만들어 달라고 애걸한 것도 남한 보수정권이었다. 보수는 자생력이 부족한 아이나 다름없었다. 늘 북한을 필요로 했다. 거의 중독 수준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북한을 공개 소환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공동선언과 남북군사합의서 비준이 위헌이라고 공격하면서다. ‘국회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의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는 헌법 제60조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조약은 국가 간에 하는 것인데, 국내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므로 위헌이 될 수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당이 계속 위헌 주장을 하려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평소라면 이쯤에서 물러서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 한국당은 한발 더 나아갔다. 헌법재판소에 비준의 효력정치를 구하는 가처분신청서를 냈다. 선행 선언인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 동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평양선언과 군사합의서의 대통령 비준 재가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므로 원인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한 국가 안위에 관련된 군사합의서는 ‘안전보장에 대한 조약’에 해당하므로 헌법상 국회의 동의를 거치지 않으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당의 자가당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먼저 판문점선언을 무조건 거부해 본회의는커녕 상임위 상정조차 못하게 만든 당사자로서 대통령 비준 재가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행위의 자가당착이다. 또한 북한의 국가성을 간접적으로나마 인정한 것은 그간 자임해온 보수정당의 전통을 부정했다. 이념적 자가당착이다. 이것은 철칙으로 강조해온 국가보안법과 헌법 3조에 위배되기도 한다. 법적 자가당착이다. 실제로는 북한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인정을 전제로 정부를 비판하는 것을 한국당은 전략적 행동이라고 자평할지 모른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사기를 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한국당의 처지가 그만큼 궁박해졌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남북관계 발전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가고 있다.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체제 구축의 길도 닦이고 있다. 그 바람에 수구·냉전 보수가 활개칠 서식 공간이 매우 좁아졌다. 결정적인 것은 ‘표준국가’ 미국의 대북관 변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응함으로써 북한의 국가성을 인정한 것이다. 최근에는 ‘마지막 희망’이던 일본 아베 총리마저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강력 추진하고 있다. 한국당 내부 균열도 심상치 않다. 경기 연천 강원 철원 등 접경지역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 4명이 판문점선언의 국회 비준동의를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불합리한 당론보다 지역 민심을 우선시한 결단으로 보인다.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한다.

국내외로 이념적 외톨이가 된 한국당이 마지막으로 북한 카드를 꺼내든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북한 국가성 인정’ 카드는 양날의 칼이다. 정부를 공격하는 데 효율적일지 모르지만 언제든 제 몸을 찌를 수 있다. 특히 70%가 넘는 지지를 받는 판문점선언을 공격하는 것은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당의 유일한 희망은 비핵화협상이 깨지고 북·미와 남북이 대결시대로 회귀하는 것일 테다. 그러나 그러기 전에 한국당은 국민과 싸우게 될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제 한국당에 퇴로가 없다는 사실이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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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3년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로 마무리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이춘식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배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은 이씨 등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일제강점기 형성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효력이 없음을 선언한 판결로, 역사적 의미가 크다. 먼 이국땅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피해자와 후손들의 원통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열린 것도 다행이다. 그러나 사법농단으로 확정 판결이 5년이나 미뤄진 것은 유감스럽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법언(法諺)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0월 31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다. 우선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은 일본 판결의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다. 전원합의체는 “일본 법원의 판결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는 원심 판단은 타당하다”고 밝혔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합법적임을 전제로 내려진 일본 판결은 국내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2012년 이 사건 첫 상고심을 담당한 대법원 제1부도 “일본 판결은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와 정면충돌한다”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또 다른 쟁점은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들의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볼 수 있는지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청구를 위한 협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다.

“마침내 이겼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철주금(구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13년 만에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로 최종 확정된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원고 4명 중 유일하게 생존한 이춘식씨가 소감을 밝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왼쪽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고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씨.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주권국가로서 지극히 온당한 결론을 내리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점이다. 2012년 대법원이 원고승소 취지로 파기 환송한 뒤 이듬해 서울고법은 “피고는 원고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피고 측의 재상고 이후 대법원은 별다른 이유 없이 심리를 미뤘다. 그사이 피해자 4명 중 3명이 세상을 떠났다. 선고공판에 나온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씨(94)는 “혼자라 슬프다”며 오열했다고 한다. 심리 지연 배경은 사법농단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박근혜 정권과 ‘양승태 대법원’이 재판 연기와 법관 해외파견을 맞바꾼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뒤늦게 결론이 내려지기는 했으나, 이 사건은 사법 역사에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법관들은 수사에 협조함으로써 속죄해야 옳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강제징용 손배 소송을 심리 중인 법원들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신속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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