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발표한 국가정보원·검찰·경찰 등 권력기관 개혁 방안에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빼는 데만 초점을 맞춰 경찰 권한이 지나치게 커졌으며, 국정원의 대공수사 역량이 현저히 약화된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경찰에 대공수사를 맡기는 것은 1987년 박종철씨를 고문해 사망케 한 남영동 대공분실을 되살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사개특위 전면 보이콧까지 거론했다.

청와대의 권력기관 개혁안에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빠졌다. 게다가 개혁안을 담은 법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은 국회이기 때문에 적어도 여당과는 사전에 협의하는 게 바람직했다. 개혁 방안도 당사자인 국정원·법무부·행정안전부 장관이 발표했다면 모양새가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개혁안 핵심에 대한 야당의 비판은 억지다. 이번 개혁의 핵심은 국정원과 검찰의 힘을 더는 일이다. 따라서 권력기관 간 견제라는 기본원칙을 지켰다는 사실을 무시한 채 경찰의 비대화만을 걱정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성격이 짙다.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당은 “대공수사에서 정보 수집과 수사를 분리하는 것은 간첩 수사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라고 하지만 정보기관에 수사 기능까지 두는 것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한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인권과 반인권의 문제다. 국경출입기록을 조작해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둔갑시킨 것이 불과 5년 전 일이다. 권력기관의 독립성 확보 방안이 빠졌다는 주장도 제 얼굴에 침뱉기다. 그들은 현직 검찰총장을 외압으로 강제 퇴진시킴으로써 검찰 독립성을 무너뜨린 전력자들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시민 위에 군림한 권력기관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데 당리당략이 개입될 수 없다. 야당이 절차적 결점을 핑계 삼아 권력기관 개혁을 저지한다면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고, 대공수사 역량을 유지할 방안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여권도 권력기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인사원칙을 밝히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여야 모두 인권을 강화하는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권력기관 개혁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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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시절의 일이다. 바로 인접 학과에는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교수가 가르치고 있었다. 그분의 강의가 어떤지 궁금해져서 그 학과 학생에게 물었다. “그 과목은 제도(institution)지.”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거기에는 많은 뜻이 응축되어 있었다. 그 학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야 하는 과목, 그 과목이 필수라면 다른 과목은 선택, 그 과목에서 가르치는 이론이 토대라면 다른 이론은 응용, 이런 것들 말이다. 제도란 그런 것이다.

지난 2주간 경향신문 지면에는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시작은 1월4일자에 실린 정치 컨설턴트 박성민 대표의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라는 글이었다. 역사적으로 항상 주류였던 한국의 보수우위 시대가 지나가고 정당으로 치면 ‘민주당 대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진보부터 보수까지 30 대 20 대 30 대 20의 네 집단으로 구분하는데, 보수정당은 선거 때마다 왼쪽에서부터 시작해 조금씩 유권자 지지를 빼앗기다가 마침내 탄핵과 2017년 대선에서는 중도보수라고 할 세 번째 30%마저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리한 정치적 입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할 경우 세 번째 30%의 대안이 될 가능성, 그리고 자유한국당 내부의 폐쇄성을 보면 가까운 시일 안에 보수의 시대를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며칠 후 정용인 기자는 “386세대의 주류 등극으로 한국 민주화는 완성됐을까”라는 기사를 내놓았다. 그도 역시 위에 언급한 박 대표의 글을 언급하면서 시작하는데, 그의 문제제기는 단순하고 그래서 힘이 있다. 국정농단 사태가 드러나기 이전까지 우리는 오랫동안 보수세력에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기울어진 운동장’을 걱정해왔고, 보수의 장기집권을 우려해왔다.

그런데 불과 1~2년 만에 보수가 궤멸하고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구체적으로 ‘그 시절’을 경험한 독특한 세대적 연대를 가진 386세대가 주류로 등극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정 기자가 이전부터 주장해오던 ‘장기 386시대’의 시작인지도 모른다.

과연 한국의 주인은 바뀌고 장기 386시대는 현실이 될까? 핵심은 문재인이라는 개인을 빼놓고 생각했을 때 앞선 모든 전망들이 그대로 성립하느냐에 달렸다. 임기가 끝나고 문 대통령이 퇴장했을 때, 45%를 넘나드는 지금의 민주당 지지율은 유지될까? 정권의 핵심 포스트를 채운 386은 문재인이라는 개인이 없이도 시대정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 질문들에 쉽게 ‘그렇다’고 답하려 한다면, 불과 얼마 전까지 세상이 바뀌기 이전에는 왜 그리도 ‘기울어진 운동장’과 ‘보수의 장기 집권’을 걱정했었는지 함께 답해야 한다.

보수의 자멸이나 386의 대안이 될 세대가 없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답이 아니다. 세상의 변화가 제도로 남아야 한다. 영원할 것 같던 보수집권도 9년 만에 끝났다. 민주당 정부가 5년을 갈지, 10년을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제도를 어떻게 만들어놓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문재인 없이도 더 좋은 세상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으려면 좋은 변화들을 제도로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인적 청산도 중요하겠지만, 케인스의 말처럼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는 죽고 없을 것이다. 제도를 만든다는 것은 그 사회의 움직일 수 없는 ‘상수’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에 성공한다면 한국의 주인은 바뀔 것이고 386은 역사를 바꾼 사람들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한때의 출세주의자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개헌, 선거법 개정, 국정원·검찰 개혁 같은 것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장 딱한 것은 자유한국당이다. 의석 116석에 지지율 20% 미만. 유일하게 가진 것이라곤 비토권밖에 없다. 그 비토권이 유지되는 기간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다음 총선까지 2년 남짓이다. 6월 지방선거에서 대패하기라도 한다면 더 일찍 비토권을 잃어버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지금과 비슷한 121석을 가지고 비토권에 의지해 버텨냈던 17대 국회의 추억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에는 박근혜가 없고, 지금의 자유한국당은 그 당시 한나라당보다 훨씬 폐쇄적이다. 건강한 보수정당의 등장을 바라는 입장에서, 새로운 제도를 써내려가는 데에 적극 참여하고 자신들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전략이라고 충고하고 싶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첨예한 전쟁이다. 비토만 하다가 새로운 제도가 정해지고 나면 아주 긴 시간 동안 주류로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다. 386에나 보수정치세력에나, 제도화는 전쟁이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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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날은 31년 전 22살 청년 서울대생 박종철군이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진 날이다. 그는 영장 없이 불법체포돼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가 수배 중인 선배 은신처를 대라는 추궁과 함께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당시 검찰과 경찰, 안기부는 관계기관대책회의 등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했다. 영화 &lt;1987&gt;에 나온 내용 그대로다. 문재인 정부가 박종철군 31주기에 맞춰 그간 정권의 도구 노릇을 했던 국가 권력기관을 시민을 위한 기관으로 재탄생시키는 개혁방안을 발표한 것은 의미가 크다. 조 수석은 “민주화시대가 열린 후에도 권력기관은 조직 편의에 따라 국민의 반대편에 서 왔다”며 “촛불시민혁명에 따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악순환을 끊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14일 춘추관에서 권력기관 구조개혁안을 발표한 뒤 자료를 짚으며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혁안은 권력기관이 갖고 있던 기존 권한을 분산하고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 남용을 막을 수 있도록 바꾸는 게 핵심이다. 이 방안대로라면 최대 수혜자는 경찰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기존 조직과 권한은 그대로 둔 채 수사권에 국정원의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게 된다. 또 하나의 새로운 공룡기관이 탄생할 것이란 우려가 나올 만하다. 청와대가 밝힌 자치경찰제 도입과 수사·행정경찰 분리, 경찰위원회 실질화 등 권한 분산과 견제장치 외에도 시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 등 다양한 안전장치를 더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검찰개혁의 큰 줄기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담긴 것은 이미 예견됐던 바다. 공수처 신설 전까지는 경찰이 검사를 수사할 수 있게 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은 2차·보충적 수사권을 갖게 되며 직접 수사는 경제범죄 등으로 대폭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경찰개혁위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고,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면 보완수사 요청 등 사후통제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수사권 조정안을 내놓은 바 있다. 앞으로 보다 정밀한 조정이 필요해 보인다. 국정원은 국내정치·대공수사에서 손을 떼고 오로지 대북·해외에 전념하면서 시민과 국가를 위한 최고수준의 전문정보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새 정부 출범 8개월 만에 비로소 권력기관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종합 청사진이 마련된 셈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청와대 개혁안은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사항이 대부분이다. 이를 주도할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이번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여야 간 견해차가 큰 탓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공수처에 대해 ‘옥상옥’이라며 강력 반대하고 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방안도 안보수사 역량 저하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한국당의 반대가 거듭되면 논의는 겉돌 수밖에 없다. 사개특위는 6월 말이 활동 시한이다. 정치권이 조만간 6월 지방선거 정국으로 빨려 들어갈 경우 정상 가동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이제는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권력기관의 기본원칙은 견제와 균형이다. 권력기관을 정치와 단절시키고 본연의 임무에만 전념토록 하자는 것은 온 시민의 염원이다. 민주화 30년이 지나도록 이를 완수하지 못한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권력기관 개혁이 이뤄질지 기약하기 어렵다. 여당은 야당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협치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야당은 시민 다수가 검찰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무작정 반대는 시대착오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이 아니라 시민들의 인권과 편익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권력기관 개혁은 시민의 일상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사안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개혁을 이뤄낼 힘은 시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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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한국 정부가 혼자 감당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정부가 해결하겠다고 나설 일이 아니었다.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 제도의 희생양이 된 여성은 26개국 출신 40만명 이상이다. 중국인 20만명을 포함해 독일·영국·미국 간호사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다. 따라서 일대일 양자협상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할머니들이 우리 문제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과 국교를 단절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고, 국제사회에서 한·일 간에 합의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이런 국제적인 인권문제를 졸속 합의로 땡처리한 당사자가 1965년 한일협정을 강행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9일 오후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을 발표하는 모습을 TV로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쩌면 그런 박근혜 전 대통령이어서 별다른 일이 없으리라고 우리는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 4월부터 12차례 국장급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시민단체들도 적극적으로 개입할 생각을 못했다. 한·일 양국에 입장차가 있다는 언론 보도만 있었기에 별다른 결과가 나올까 싶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전쟁범죄를 다루는 협상테이블에 앉은 적이 없는 만큼 미국의 요구든 뭐든 협상테이블에 나온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결과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 기림비를 세우는 등 이 문제 해결에 진력해온 우리는 실망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 7개월 만인 지난 9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발표하면서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합의 파기를 선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장 10억엔을 일본에 돌려주고 화해·치유재단도 해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선언한 한·일 합의에 사망선고를 했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한국이 합의를 파기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세계인권에 관한 것인 만큼 두 나라의 합의로 해결됐다고 볼 수 없으며, 앞으로 국제기준에 맞춰 피해자 중심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또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전액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고, 기금의 향후 처리 방안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와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한·일관계 안에 위안부 문제를 가두는 2015년 양국 합의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는 것을 국제무대에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위안부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사업부터 재개해야 한다. 우리도 캘리포니아 교육부가 채택한 10학년 교과과정 2016년 개정판에 포함된 한·일 합의에 대한 일본 외무성 링크를 없애달라고 다시 요청할 것이다. 한·일 양국 정부가 공동으로 요청해서 포함된 이 링크를 삭제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간단히 풀 수 있는 첫 번째 과제이기도 하다.

위안부 문제는 피해자와 피해 당사국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세계의 인권문제다. 가장 앞장서서 가장 오랫동안 싸워온 할머니를 모시고 있는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에 맞는 해결을 이루도록 능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 본다. 더 늦기 전에.

<김현정 미국 가주한미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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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은 6월항쟁과 그 전후의 역사적 맥락에 비춰볼 때 큰 흐름과 세부 사실 모두 흠잡을 대목이 드문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교과서적이라는 평가가 작품의 성취를 깎아내린다며 불만을 품을 관객도 있겠지만, 내 말은 시간이 지나면 고전의 자리에 올라설 것이라는 뜻이다. 어쨌든 사람마다 제각기 할 말이 많은 영화가 <1987>이다.

영화 <1987>은 전두환 정권에 항거해 민주주의를 쟁취하려는 사람들의 열망을 담았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영화의 뛰어남은 최근의 수작 <택시운전사>와 비교해도 두드러진다. 후자에 등장하는 1980년 광주의 택시 기사들이 도대체 왜 군대가 광주 시민에게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모습은 실감 나지 않는다. 실제로 당시 택시 기사들은 직업의 특성상 시위 진압의 잔혹한 실상을 직접 목격하기 쉬웠을뿐더러 부상자를 병원으로 옮기다 계엄군에게 걸려 죽고 다쳤다. 강경 진압의 정치적 의미를 명확히 인식한 그들은 마침내 목숨을 걸고 차량 시위의 선두에 서서 공수부대 정예 병력을 수세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실제 역사와 달리 <택시운전사>는 무고한 시민과 사악한 권력이 맞서는 감상주의적 구도에 갇히고 말았다. 반면에 <1987>은 다양한 인물상을 훨씬 생생하고 입체적으로 그리면서도 기록영화처럼 냉정하기도 하다.

그러나 <1987>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그중에는 귀담아들을 얘기도 있지만, 오독에 가까운 발언도 없지 않다. 특히 이 영화가 다루는 승리의 서사가 ‘586세대’(옛 ‘386세대’)의 신화를 굳힐 위험이 있다는 (SNS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는) 비판은 좀 지나치다. 586세대의 일부가 1980년대 학생운동의 경험과 성과를 과장하고 독점하려는 경향 탓에 신화화의 위험은 물론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과하면 피상적인 세대론의 함정에 끌려 들어갈 수 있다.

영화에서도 명백히 드러나듯 6월항쟁은 586세대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들이 도화선이요, 주력이기는 했지만, 6월항쟁은 어디까지나 전 국민적 사건이었다. <1987>에 세대론의 틀을 들이대는 비판적 평가에 자신의 경험을 여전히 과잉해석하는 586세대와 그 언저리 연령대의 (다분히 남성적) 감수성이 숨어 있을 역설적 가능성을 냉철히 따져볼 일이다.

의외로 별로 언급되지 않지만, 연희(김태리 분)가 교도관인 삼촌(유해진 분)과 다투다가 아빠의 죽음을 입에 올리는 장면도 지나칠 수 없다. 노동조합을 주도한 아빠가 등을 돌린 동료들 탓에 상심해서 술을 가까이하다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노조를 탄압하던 사람들을 미워해야지 왜 아빠 친구들을 미워하느냐는 삼촌의 말은 옳지만, 이 장면에서는 실패와 상처를 두려워하는 연희의 현실적인 자세가 관객에게 더 와닿는다. 이처럼 세심한 연출 덕분에 연희 아빠의 죽음이 지금 이 순간도 노동현장에서 숱하게 터지는 일임을 환기하는 효과도 은연중에 확보되며, 힘겨운 과정을 거쳐 항쟁의 현장에 합류하는 연희의 모습이 미화되는 느낌이 없다.

개봉 영화를 두고 찬사와 비판이 엇갈리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그저 이 영화를 보지 않는 선택에 머무르지 않고, 절대 보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가 대통령 일행이 영화를 관람하는 자리에 함께하고서도 차마 영화는 볼 수 없어 발길을 돌린 사연은 누구나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 광주항쟁에 참여했고 나중에 간첩조작 사건에 얽혀 긴 감옥살이를 한 강용주씨의 입장을 아는 사람은 적다. 그에 따르면, 박종철 고문사의 진상 규명을 돕는 의인으로 묘사된 교도소 보안계장의 실제 인물은 ‘간첩사건’으로 갇힌 재소자들에게는 혹독한 방식으로 전향을 강요하는 인권 침해를 저질렀다. 강용주씨만이 아니라 그에게 당한 공안 사건 연루자들 여럿이 입을 모아 증언하는 사실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불법 고문수사를 총지휘한 치안감 박처원(김윤석 분)은 ‘빨갱이’를 서슴없이 때려잡는 명분으로 월남한 자신이 북에서 겪은 비극적 가족사를 강조한다. 반공을 앞세운 박처원 일당의 광기 어린 행태는 생생하면서도 너무 낯설어 우리는 이 야만적 시대가 이제는 사라졌음을 영화가 증언한다고 잠깐 오해할 지경이다. 그러나 (지금은 MBC 사장이 된) 최승호 감독의 영화 <자백>(2016)은 간첩조작이 바로 엊그제까지도 노골적으로 벌어졌음을 폭로했다. 박처원과 고문 기술자 이근안, 공안검사 김기춘은 방심하면 언제든지 우리 곁에 돌아온다. 그러니 <1987>은 우리 현대사의 한 장을 마무리하는 작품이 아니라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는 문제작이다. 1987년을 비롯한 한반도의 현실을 뿌리 깊이 제약하고 있는 ‘우리 안의 휴전선’까지 무너뜨리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작품들이 나오면서 촛불시민혁명을 진전시키길 빈다.

<김명환 서울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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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갈림길 위에 서 있다.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 새로운 길 사이다. 새로운 길이 여는 세상은 ‘유러피안 드림’이라고 하는 유럽인들이 지향하는 미래다.

우리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길들여져 있다. 누구든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꿈을 좇는 시스템이다. 신세계를 찾아 유럽을 떠났던 이민자들은 대서양을 건너며 ‘신분제’라는 멍에를 바다에 버렸다. 그리고 ‘기회’ ‘평등’ ‘경쟁’ ‘자수성가’ ‘돈’이라는 새로운 마법이 그들의 신앙이 되었다. 미국은 대국으로 성장했고 빈부 격차도 커졌다. 그런데 꿈이 깨진 소외 계층마저도 기회의 땅이라고 믿는 사회가 현재의 미국이다. 그들은 돈이 신분을 대신한다고 믿는 사회에서 산다. 언제라도 그 문을 열 기회가 있다고 믿는다. 경제적인 성공은 최고의 가치로 여겨진다. 대부분 개인재산의 축적으로 종결되는 ‘미국식 축복’을 꿈꾸는 것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그들은 유럽을 병들고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유럽은 놀고먹으며, 경쟁을 하지 않고, 노조의 보호에 안주하며, 연금만 타먹으려고 하는 사회다. 미국인들은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은 수입을 얻으려고 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은 혜택을 국가로부터 받으려고 한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1970년대 이후 유럽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부를 축적할 기회를 잃었다고 말한다. 생산성과 개혁은 경쟁에서 나오지만 경쟁을 회피하고, 규제를 만들어 현실에 안주한다는 것이다. 노조는 노동 시간, 휴가 기간, 초과 근무, 퇴직 연령 등에 대한 규제를 강제하면서 새로운 일자리에 청년층 등 신규진입자를 막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펼친 팽창 일변도의 복지프로그램은 그들에게 ‘정부는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믿음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문제의 해결은 정부의 지출확대이지만 이는 한계가 있고 연금시스템은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놀고먹는 유럽인이 부지런한 미국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유럽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비판은 미국이 이기적이며 승자독식의 ‘정글 자본주의’ 체제라는 평가에서 출발한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간 이주민들은 경쟁을 신봉했지만, 남은 유럽인들은 공존을 택했다. 유럽인들에게 미국시스템은 개인의 물질적 성장에만 크게 의존하고 인간 전체의 보편적 복지를 등한시하는 제도다. 또한 다양성과 서로 간의 종속성이 확대되는 세계와 맞지 않는 제도다. 유럽사회는 세계에 대한 열린 마인드와 관용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꿈을 키웠다. 유러피안 드림이다. 그들에게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된 낡은 아메리칸 드림은 유효기간이 지났다. &lt;유러피안 드림&gt;을 쓴 제레미 리프킨은 유러피안 드림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개인의 자율보다는 공동체의 관계를, 문화적 동화보다는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을, 제한된 물질적 성장보다는 지속적인 발전을, 일만 하기보다는 놀면서 발전하는 것을, 일방적인 권력행사보다는 세계적 협력을 우선시하는 사회다.’ 유럽은 새 시대로 나가는 길목에서 미국에게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아메리칸 드림이 과거만 바라보며 마비되는 동안 새로운 유러피안 드림이 탄생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가난한 사람은 스스로 잘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가난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사회가 가지는 인식의 차이가 다양한 논란의 출발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걸고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 성장이란 가계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시키고 이것을 통해 생산을 유발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소득을 늘리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 나섰다. 정부의 재분배기능을 강화하기로 했다. 아동수당, 기초연금, 청년 구직촉진수당, 저소득층 기초생활보장 등도 신설·확대됐다. 경쟁을 넘어 인간이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작부터 덜컹거리고 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첫 수석·보좌관회의는 최저임금인상에 따른 일자리 안정대책이었다. 문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최저임금 인상은 극심한 소득불평등과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다. 하지만 돌출변수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사회로 나가는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는 유럽인들도 수백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꽃피운 것이다. 지금까지 이기적인 유전자로 역경을 헤쳐나왔다면 이제는 이타적 유전자를 이식시켜야 하는 시대가 됐다. 시장경제는 사회적 책임을 수반할 때 미래가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꽃길이 아님은 분명하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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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집권 2년 차 국정운영 구상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새해, 정부와 저의 목표는 국민의 평범한 일상을 지키고 더 나아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한 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적폐청산’에 주력했다면, 집권 2년 차인 올해는 ‘삶의 질 끌어올리기’에 국정의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 적폐청산을 강조했던 것과 비교된다. 이번 신년사에서 ‘적폐’란 단어는 단 두 차례만 언급됐다. 대신에 “이제 국가는 국민에게 응답해야 한다”면서 총 11번 ‘국가’를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치매국가책임제, 의료·주거·교육과 보육에 대한 국가 책임과 공공성 강화를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국정의 큰 방향이 궤도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에서 손을 든 기자들 중 질문자를 선택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기자회견은 내외신 기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전 각본 없이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날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는 미국 백악관 방식으로 자유분방하게 진행됐다. 200여명의 내외신 기자가 사방에서 손을 흔드는 진풍경은 보기에도 신선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안보·정치·경제·사회 분야의 17개 즉석 질문에 막힘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남북관계 개선과 북핵 문제 해결은 함께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를 위한 노력도 계속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특히 오는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약속에 변함이 없음을 천명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국회가 정부와 함께 협의한다면 최대한 넓은 범위의 개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국회와 정부가 합의되지 않고, 정부가 개헌안을 발의하면 국민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정권과 달리 국회에서 개헌에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정부 주도로 개헌에 나서겠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정치권으로서는 압박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대야 관계를 포함한 협치와 통합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는 설명이나 메시지를 전할 필요가 있었다. 각종 복지 정책과 증세 등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가진 야당과 시민들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짧은 기자회견에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추후 다양한 소통을 통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날 회견은 국정 전반에 걸쳐 대통령의 구체적인 생각을 듣는 한편 산적한 과제들을 절감케 해 준 자리이기도 했다. 여러 과제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과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개혁이 구체화돼 시민이 효능과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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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바라볼 때 수많은 구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을 본다. 취업난이 가중되는 요즘 전쟁을 하다시피 본인의 구슬을 만든다. 어학, 자격증, 사회봉사, 인턴까지. 그러나 정작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채 구슬을 만든다. 직업에 대한 목적의식이 없이 바쁜 학창생활을 보낸다.

열심히 살아왔는데 졸업시즌에는 결국 똑같은 고민을 한다. 내가 무얼 잘할까, 과연 이 일자리가 내가 원하는 자리였는가. 그리고 모두 대기업과 공무원시험에 열을 올리게 된다. 맞다. 근본적으로는 저 두 일자리가 높은 보수와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한다. 그러나 본인 적성과 맞지 않아 심한 스트레스로 입사 초기에 사직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또한 근무 연수가 늘어날수록 힘들어하는 경우를 목격한다. 한편 본인의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주체적으로 직장을 선택한 학생들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보람을 느끼며 사회인으로서 성장하고 결국 전문가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학교에 구슬을 꿰어 줄 사람이 있는가? 또한 현재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경력단절여성, 청년 재취업과 같은 공공부문 교육사업에서 다양한 학생들의 진로와 스펙 그리고 산업동향에 따른 일자리 분석까지 할 수 있는 전문가적 식견을 갖춘 사람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없다.

우리의 직업 교육을 돌아보자. 우리는 단지 교육시설과 과정 등 하드웨어 투자만이 능사인 줄 안다. 피교육자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관과 애로, 이를 극복하고 직업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전문가에 대한 투자는 없다. 얼마 전 방문한 호주의 기술전문학교(TAFE·Technical And Further Education)는 최상의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기관으로 손꼽힌다. 여기서는 학생들의 개별적인 커리어를 관리하여 일자리와 연결시키는 전문가가 있다. 장기간 학생들과 상담하며, 자격증과 학과성적, 본인의 적성에 대해 함께 고민하여 적정한 일자리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고 학생이 교과에 대해 적성이 없거나 흥미를 잃을 경우 이를 담당 교수와 의논하여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한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학교시설이 낡은 점이었다. 학교의 외형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피교육생 즉 사람에게 투자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현재 정부에서는 일자리위원회를 통한 청년실업 개선과 각종 교육프로그램을 이용한 취업 취약계층의 재취업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에는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있지만 대부분 교육 시설투자에 집중되어있다. 이에 일자리 전문가의 확충을 제안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한 주장 외에도 산업의 불균형한 인력배치에 대한 적정한 해소 방안 중 하나라고 본다. 다양한 학생들의 진로를 이해하고 여기에 맞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대기업과 공무원으로 쏠려있는 현재의 구직활동의 과녁을 넓힐 수 있으리라 본다.

한 사람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결정 중 하나다. 본인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면 전문가로서의 성장과 더불어 잠재적으로는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재목이 된다.

그곳에서 만난 한 상담전문가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아른거린다. “장기간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해결하여 과정을 무사히 마쳐 직업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낍니다.”

<김용현 | 한국폴리텍대학 교수·부산캠퍼스 자동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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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 <1987>을 보았다. 필자에게 있어서 1987년은 아주 특별한 한 해이기도 하고, 전두환 정권에 의해 고문당하고 살해된 학생 박종철은 필자가 대학시절 이끌었던 ‘대학문화연구회’의 후배이기도 하다. 그래서 영화 개봉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극장을 찾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이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잘 안다. 광주민주화운동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전두환 정권은 1987년이 다가올 때까지 정보기관과 경찰을 장악하여 정권에 저항하는 민주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민주화운동을 질식시켰다.

영화 <1987>의 실제 모델인 안유 전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오른쪽)과 한재동 전 교도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박종철기념관 5층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과거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이었던 이곳에서 1987년 1월14일 박종철씨가 물고문을 받던 도중 숨졌다. 김영민 기자

그러나 1987년 벽두에 터져 나온 박종철 고문살해사건은 전두환 정권의 잔혹성을 모든 국민의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시켰고, 민주인사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까지 정권퇴진운동에 발 벗고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그해 6월9일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피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침내 전두환 정권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6·29 항복 선언을 하였다.

오늘날 우리 국민이 비록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로나마 민주시대를 구가할 수 있게 된 것은 박종철과 이한열의 고귀하고 안타까운 죽음 덕분이다. 그들의 죽음은 민주적 정당성을 갖지 못한 정권이 정권유지를 위해 저지르는 극단적인 만행을 잘 보여주었고, 이러한 만행을 생생히 목격한 평범한 시민들의 총궐기로 세상이 바뀐 것이다.

그런데 박종철과 이한열 외에도 전두환 정권에 의해 목숨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죽음은 대부분의 국민에게서 잊혀졌고, 외면당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그들은 촉망받는 학생이 아니었고, 경찰이 직접 고문하다가 죽이거나 최루탄을 쏘아 죽인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히 전두환 정권에 의해 타살되었다.

전두환은 무자비한 군사반란과 내란을 통해 집권한 후 정권을 스스로 미화하는 일에 크게 공을 들였다. 전두환은 취임사에서 국정지표의 하나로 ‘복지사회 실현’을 내세운 후 전두환식 복지사회 실현에 매진하였다. 그는 1981년 4월10일 총리에게 지시하여 전국의 부랑인들을 모두 잡아가두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길거리의 부랑인과 노숙인을 깡그리 잡아가두고 나면 대한민국의 길거리는 모두 말쑥한 차림의 선남선녀들로 넘쳐날 것이다. 그에게는 이것이 바로 복지사회가 제대로 실현된 나라였다.

형제복지원은 3000여명이 수용되어 있는 전국 최대의 부랑인시설이었다. 말이 부랑인시설이지 부랑인이 전혀 아닌 멀쩡한 어린아이들과 사회인들도 수백명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왔다. 그들은 외부와 단절된 채 기약 없는 강제노동과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병사하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은 수시로 맞아 죽었으며, 죽지는 않았어도 정신과 육체에 심각한 장애를 얻었다.

필자는 울산지청 검사로 재직하면서 1987년 1월17일, 그러니까 대학 동아리 후배 박종철이 전두환에 의해 살해당한 날로부터 3일 뒤 형제복지원 원장 박인근 일당을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구속하였다. 그때로부터 5개월 남짓 뒤 박인근은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6억8178만원을 선고받았지만, 그 뒤 이어진 재판에서 대법원은 전두환 정권의 충견 역할을 자임하여 특수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였고, 박인근의 형량은 2년6월로 줄었다.

형제복지원에서 1985년과 1986년에만 각각 90명 정도가 죽었다. 필자는 검찰지휘부의 악랄한 수사방해 때문에 그 진상을 밝힐 수는 없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에 비추어 볼 때 그 절반 또는 그 이상이 맞아 죽은 것으로 판단한다. 필자가 한참 사건을 수사 중일 때조차 형제복지원에서 폭행치사 사건이 2건 발생했다. 형제복지원 등 부랑인시설은 물론 민간업체가 운영한 시설이었다. 그러나 그런 시설의 운영은 위헌적이기는 하지만 내무부훈령이라는 국가의 법령에 따른 것이었고, 운영비 전액을 국가가 지원하였고 국가의 감독을 받았다. 전두환 정권은 그런 시설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설치하였으며 수용자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렸다.

전두환 정권 때 전국의 부랑인 수용시설은 전두환식 ‘복지사회 실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 시설들 덕분에 길거리에서 노숙인이나 부랑인을 찾아보기 힘들었고, 세상은 그 허울이 아름답게 비쳤다. 우리는 전두환 정권 시절 전국의 부랑인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잔혹한 인권유린에 대하여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이 전두환 정권의 부랑인시설에 끌려가 희생되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크게 보호를 받아야 했던 사람들 아닐까. 지금이라도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상조사와 함께 적절한 보상을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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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부터 인상된 최저임금이 적용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선 마치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 정책추진인 것처럼 비판하지만 사실 최저임금 인상은 대선 당시 모든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고, 박근혜 정부의 최근 3년간 평균 인상률을 적용해도 2023년이면 9990원으로 인상된다. 이런 점에서 새 정부가 목표로 하는 최저임금 1만원은 지나치게 과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당장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부담이겠지만 비정규직과 저임금 노동이 양산된 지금 상황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진통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정책 운영의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새 정부 노동정책의 핵심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은 그 방향에서 옳다. 그러나 그와 같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이 소비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가 선순환하기까지 중소기업과 자영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보완대책이 함께 가야 한다.

정규직 임금구조의 개편 없이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인상 정책을 지속하기 어렵다. 자영업자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시켜 주는 모바일 직불카드 전면 도입과 같은 실효성 있고 체감도 높은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자영업자의 가장 큰 부담인 임대료 관련 정책과 법령이 조기에 추진, 입법되지 못하고, 최저임금 인상 못지않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의 부담을 경감하고 지원하려 노력한다는 새 정부의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정무적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문제도 노사관계의 측면에서만 본 아쉬움이 있다. 제빵기사가 본사직원이 될 경우 가맹본부와 가맹점주 간의 갑을관계에 미칠 영향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것이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과 일자리 창출 정책은 좋다. 그러나 공공부문 개혁이 함께 가야 한다. 공공부문이 양질의 대국민서비스와 일자리를 담보하는 것은 옳지만 존재하는 비효율과 기득권을 방치해서는 안된다. 개혁을 해야 국민의 지지가 지속된다. 공공부문이 혁신과 효율이 배제된 채 단지 안정된 직장이 되고, 그런 공공부문에 젊은 인재가 몰리는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 산업이 강조된다. 그러나 누차 강조하지만 우리 경제는 여전히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조선 등 5대 기간산업이 중요하고, 그 비중은 향후 최소한 10년은 대체 불가다.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과 5대 기간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유지, 발전시키는 정책적 노력이 조화되어야 한다. 중소기업과 벤처 지원 정책과 함께 5대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대기업의 역할에도 주목하는 정책적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와 기존 산업통상자원부의 역할 분담을 분명히 해야 한다. 공 따라 몰려다니는 동네축구 하듯 산업부, 중기벤처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모두 4차 산업혁명과 중소기업, 벤처에 매달려서는 안된다.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은 필요하지만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명확한 역할 분담하에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아동수당 도입 좋다. 그러나 10만원의 아동수당이 출산율 제고에 효과가 있는지, 기존 보육지원 정책과의 통합적 고려를 통해 정책적 효과와 수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치매안심센터 역시, 지금도 복지기관 간 연계성 부족과 복지서비스의 분절성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분절된 서비스와 기관을 추가하는 것은 아닌지, 기존 노인복지서비스 및 기관과 연계하는 방안이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방 분권 좋다. 그러나 분권이 지역 간 불균형을 심화시켜 국가적 수준에서 복지와 삶의 질을 제고하려는 방향을 훼손하지 않게 해야 한다. 분권과 함께 자치의 확대가 고려되어야 한다. 아니면 권력이 중앙 엘리트에서 지방 엘리트로 좀 더 많이 이전되는 것뿐이다. 적폐청산 해야 한다. 적폐청산에 시한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미래 비전이 함께 가야 한다. 우리 사회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한다. 대·중소기업관계, 갑을관계, 노사관계가 모두 그렇다. 시장이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곳이라면, 정부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도 조화와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

백화점식 종합대책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사안의 여러 측면에 대한 종합적 검토, 정책의 조화와 균형은 국정 운영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제 대통령의 인기와 탁월한 소통, 공감능력만이 아니라 국정운영의 성과와 정책으로 점수를 내야 하는 시점이다.

<김기식 | 더미래연구소장·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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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평창 동계올림픽 때 북측이 대규모 대표단을 파견하고, 군사적 긴장상태 해소를 위해 군사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또 향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고위급회담과 각 분야의 회담들을 열기로 했다. 남북은 9일 판문점에서 고위급회담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 남북이 고위급회담에서 도출한 합의들은 당초 기대를 넘어선다. 북한 선수단과 대표단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넘어 군사당국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확보한 것은 의미가 크다. 남북이 개성공단 전면가동 중단 때 차단된 서해지구 군통신선을 복원한 것도 적지 않은 성과다. 남북이 전방위적으로 대화와 교류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북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오른쪽 세번째)이 9일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는 남측 평화의집으로 가기 위해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으며 남측 연락관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 _ 김기남 기자

물론 남북이 음력설 계기 이산 상봉에 대해 명시적인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 회담이 10년 가까운 남북관계의 공백을 뛰어넘어 재개된 데다, 한반도 위기 상황을 맞아 문재인-김정은 시대에 처음 열린 대화의 장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이산 상봉은 설 이후 얼마든지 다시 추진할 수 있다.

남북이 합의한 북측의 평창 올림픽 대표단 파견은 단순한 체육행사 참가를 넘어 10년 가까이 단절됐던 남북교류를 재개한다는 의미가 있다. 북측이 밝힌 북측 대표단은 고위급 대표단과 민족올림픽위원회 대표단, 선수단, 예술단, 응원단, 참관단, 태권도시범단, 기자단 등으로 대규모인 데다 구성도 다양하다. 이들은 1차적으로 평창 올림픽 참가를 목표로 방문하는 것이지만 부가적인 활동도 예상된다. 평창 올림픽 기간에 남북 당국 간 접촉이나 북 대표단의 문재인 대통령 예방도 가능하다.

이날 남북 회담은 양측 수석대표 모두발언이 끝난 직후 공동보도문 초안을 교환할 정도로 속전속결로 진행됐다. 이런 분위기는 북측 수석대표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모두발언에서 “회담에서 온 겨레에 새해 첫 선물로 값비싼 결과물을 드리자”고 다짐했을 때부터 감지됐다. 남측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거론하자 리 위원장이 “미국과 조선의 문제”라며 강하게 불만을 표시하는 등 이견을 노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회담 진행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비핵화 문제는 북측의 인식과 달리 남측도 당사자인 만큼 향후 지속적으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 

남북은 고위급회담을 통해 단절의 시대를 마감하는 첫발을 뗐다. 남북 최고지도자의 결단과 의지가 큰 역할을 했다. 남북은 이번 회담 성과가 남북 화해의 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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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이 9일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유사시 한국군 자동개입이 포함된 비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털어놨다. 김 전 장관은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당시 원전 수주를 위해 MOU를 체결했으며, 그 내용은 “UAE에 군사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 한국군이 가기로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장관은 “지금 시각에선 문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땐 국익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중동국가의 전쟁에 자동개입하는 군사협정을 비밀리에 체결해놓고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하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1월10일 (출처:경향신문DB)

UAE와의 비밀 MOU 체결은 헌법 위반이다. 헌법 60조는 ‘국회는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등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국회로 가져가기보단 내가 책임지고 비공개로 하자고 했다”고 했다. 분쟁이 상시화된 중동국가에 장병들을 보내는 위험천만한 협정을 국회가 아닌 일개 장관이 결정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협정문을 번역한 외교부가 “국방부가 미쳤다”고 한 게 당연하다. 게다가 김 전 장관은 협정의 존재를 끝까지 숨겼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이 2010년 11월1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UAE가 공격을 당했을 때 군사적으로 도움을 준다든지 파병한다고 약속했다면 헌법(위반)의 문제”라며 8차례나 질의했지만 김 전 장관은 끝까지 부인했다. 김 전 장관은 국회와 시민을 능멸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국가 간 협정은 준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김 전 장관은 “(UAE에 군사지원을 약속했지만) 실제론 국회의 비준이 없으면 군사개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지키지 않을 약속을 했다는 뜻이다. UAE에 국제 사기를 쳤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이런 비밀협정 체결이 국방장관의 단독 결정이 아님은 불문가지다. 그런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원전 수주에서) 이면계약은 없었다”고 거짓말했다. 그는 “내가 말하면 국익에 도움이 안된다. 현 정부가 잘 알아서 할 것”이라고 했다. 원전을 수주했는데 불법이 대수냐며 뒷수습은 현 정부가 알아서 하라는 격이다. UAE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 등 다른 4개 중동국과 체결한 협정도 내용에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칼둔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의 방한으로 이번 갈등이 마무리되고 있지만, 진상만은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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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처리 방향을 9일 발표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당시 합의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다면서도 양국 간의 공식 합의였던 만큼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또 일본 정부가 출연한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엔은 한국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되 기금 처리는 향후 일본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스스로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촉구했다.

정부의 발표문은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주의에 서서 장기적 과제로 다뤄 나가되 이 문제가 여타 한·일관계에까지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는 ‘투트랙’ 기조에 부합한다. 발표문에는 정부가 최종단계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흔적들이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지 못하는 데 따른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 발표에 성이 차지 않는 시민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당장 정의당은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출했다.

하지만 정부의 처리방향은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한다. 과거사 문제는 단기적인 외교 협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과제이다. 2015년 한·일 정부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꾀하려 한 것이 오히려 난센스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런 만큼 위안부 문제를 “한·일 양자차원을 넘어 전시 여성 성폭력에 관한 보편적 인권 문제”로 규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 또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정부가 모든 노력을 해나가겠다”며 장기 과제로 삼기로 한 점도 역사 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야 과거사 문제가 양국 관계 전반을 좌우하지 않도록 하면서 미래지향적 협력기조를 유지할 수 있다.

이번 발표에 대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하지 않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토록 상대 입장을 헤아리지 않은 채 성마르게 반응할 사안인지 의문스럽다. 일본 정부가 한·일관계의 복원을 희망한다면 한국 정부가 정치적 부담까지 감당해 가면서 ‘합의 유지’ 방침을 밝힌 취지를 대승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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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1일, 여느 해처럼 방송이 해맞이를 보여주며 새해의 시작을 알렸다. 사람들은 서울 남산이나 북한산에서 혹은 한라산과 동해의 해변에서 새해 소망을 기원했다. 서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새해 소망은 무엇일까?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짐작할 듯싶다. 가족 가운데 아무도 아프지 않고, 가장은 일자리를 계속 갖고, 자녀 취업하고, 내 집 한 칸 갖는 소박한 꿈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북한산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의 새해 소원은 아마도 신년사에서 올해 국정 목표로 밝힌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일 게다.

우리는 서민이나 대통령의 소원이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건강 및 주거복지, 일자리 창출과 가계안정 등은 삶의 질을 높여줄 기본 조건이지만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오래 쌓인 절망이 해가 바뀐다고 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서민들은 오늘보다는 내일이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새해를 맞이한다. 그래서 고은 시인은 ‘새해 두어 마디 말씀’이라는 시에서 그랬다. “새해 왔다고…하루아침에 찬란한 세상에 닿기야 하리오?…새해도…궂은일 못된 일 거푸 있을 터이고…그 가운데 안 변하는 심지 하나 들어 있어서 그 슬기 심지로…마침내 우리 세상 훤히 훤히 밝아”라고.

서민의 희망을 열어줄 ‘슬기 심지’는 무엇일까?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정치보복’, ‘피로감’, ‘미래’가 자주 거론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진행하는 적폐청산의 본질은 정치보복이고, 이를 지속하는 건 국민에게 피로감만 안겨주며,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주장이다. 과연 ‘적폐청산’은 세상을 훤히 훤히 밝히려는 국민의 ‘슬기 심지’를 가로막는 장애물일까? 지난날 기득권 세력이 변화에 저항하며 개혁 지향 정부를 공격하던 ‘개혁 피로감’ 프레임이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니다. 구태가 ‘미래’의 이름으로 옹호되고, 변화는 ‘무질서’가 되어, 결국 개혁은 ‘쓸데없는 짓’으로 호도되었다. 기막힌 의미(意味)의 전도(顚倒)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경험에서 현재 대면하는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함이다. 현재는 과거의 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 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원인 파악과 문제 해결의 힘은 올바른 역사인식에서 출발한다. 반복되는 개혁과제라면 더욱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중요하다.

과거 이른바 ‘민주정부’의 안보정책은 나름대로 일관성을 유지했고, 대북정책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견제에도 일정한 성과를 도출했다. 그러나 사회경제 분야는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야박한 평가라고 타박하더라도 사실이 그렇다. 지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이나 서민 삶의 질 개선 등 사회경제 분야의 많은 개혁과제들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김대중·노무현 정부에도 부여된 과제였다. 그러나 두 정권을 거치는 동안 재벌의 성은 더 강고해졌고, 재벌 위의 재벌이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은 제도화되어 양산되었다. 그 결과 서민들 삶의 질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당시 사회경제 개혁정책들이 좌초한 이유를 꼽자면 여러 가지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핵심은 개혁을 반대하는 소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함께 개혁 주체들의 빈약한 철학이었다. 그로 인해 정권의 정책 기조가 수시로 바뀌고 정책 내용이 목표를 잃고 변질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여 촛불 민심이 요구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 ‘슬기 심지’는 무엇일까? 넓은 안목으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개혁은 법과 제도에 의해 추진되기에 기득권의 양보를 이끌어내야 하고, 개혁을 바라는 집단에는 새 정부에 시간을 주는 인내가 요구된다. 개혁 주체 세력에게는 국민을 이리저리 나누지 않고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과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보여주는 확고한 비전, 그리고 적절한 실천 전략이 필요할 것이다.

진취적 시대정신에 부합한다고 개혁의 방향과 실행이 다 바른 건 아니다. 소리만 요란하고 실질 성과가 미약하면 개혁은 좌초하기 십상이다. 정책의 선후를 잘 가늠하고 촘촘하게 설계하여 국민이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다고 뜸만 들여서는 밥이 되지 않는다. 슬슬 문재인 정부가 ‘결정 장애’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정권의 주체세력이 지난 노무현 정부의 개혁 실패 트라우마가 하도 강해 개혁을 위한 의사결정이 느린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너무 빠른 것도 문제지만 일정한 속도 유지도 중요하다. 그래서 폭넓고 튼튼한 개혁 주체세력의 역량구축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가치의 실현이다.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이끈 국가들의 사회 작동원리는 예외 없이 공동체 구성원들이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가치였다. 그리고 번영했던 국가를 멸망과 쇠퇴로 이끈 배경은 ‘나만의 홀로 성장’이란 뒤틀린 가치가 사회 작동원리였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하고, 2012년 다보스포럼에서 실패했다고 평가받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도 ‘자유경쟁’을 사회 작동원리로 내세웠지만, 실제로 작동한 건 나홀로만의 성장이었다. 나홀로만의 성장은 필연적으로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사회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져서 공동체 사회는 붕괴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책 이름이 무엇이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노력한 만큼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누어서 삶의 질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는 사회 작동원리를 토대로 해야 한다. 국정의 모든 영역에서 끊임없이 국민의 삶에 맞추는 개혁 정책의 각론을 개발하고 실행할 역량을 구축하여, 더불어 성장하고 함께 나눈다는 동반성장의 가치가 사회 작동원리로 구현되기를 주문한다.

<정운찬 |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한국야구위원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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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대학가에도 운동권이 있었다. 학생회는 때가 되면 4·19를 기념하고 6월 항쟁을 기념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피땀을 바친 선배들, 시민과 노동자를 기리는 집회에서 외쳐진 구호 중에는 “김대중 정권 퇴진” “노무현 정권 퇴진”도 있었다. 이와 함께 짝을 맞춰 외쳐진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철폐” 같은 것들이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하던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던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경찰을 피해 학교로 숨어들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할 것이란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학생들은 시설노동자(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해 집회를 벌였다. 2000년대 초반의 대학가에서 외쳐지던 구호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1987 > 연희역 김태리

1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내든 것은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 때문이다. <1987>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인기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이 영화를 관람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노제에 참여했던 우상호 의원(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나란히 영화관을 찾았다. 이한열 역의 강동원씨와 나란히 무대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항쟁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 항쟁”이라고 말했다. ‘87년 6월 항쟁=2017년 촛불 항쟁=문재인 정권’의 등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꾸준히 나빠져왔다. 전 정권이 물려준 외환위기의 유산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충실했다.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삶은 88만원세대에서 77만원세대로 추락했다. 

‘꾸준한 나빠짐’의 결과 1987년 투쟁이 그토록 열망했던 직선제에 의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이명박은 우리가 상상 못한 스케일로 국토를 망쳐놨고,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 못할 수준으로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더 이상 나빠지는 삶을 용인할 수 없었던 시민의 힘에 의해서 촛불항쟁이 이뤄지고 그 결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 속에는 3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포함돼 있다.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고, 지금은 우리 사회 기득권이 된 386들이 해결 못한 ‘미완의 과제’들인 것이다. 

영화 <1987>은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적이다. 하나는 1987년 항쟁을 특정 사건과 인물들의 영웅적 스토리로 요약해버리는 데 있다. ‘연희’로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표현되지만, 노동자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87년 항쟁이 현재 완성된 듯한 착시현상이다. 영화는 이한열 열사의 노제에 모인 사람들이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는 가운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비치며 막을 내린다. 6월 항쟁의 결과로 ‘그날’이 기어이 오고야 만 것 같다. 이 착시현상은 영화 자체의 태도이자 <1987>을 소비하고 추억하는 386세대의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박종철·이한열 열사,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죽음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를 현재적으로 해석하고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다. <1987>은 아쉽게도 우리에게 현실의 어떤 문제도 환기시키지 못한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아직도 차별에 시달리며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다.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청년들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 성소수자는 아직 ‘반대’되는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1987>을 보고 추억에 빠지기엔 이르다. 이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과 싸움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1987년을 기리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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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12일 대구·경북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은 사설을 통해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매일신문은 “홍 대표는 대구에서 정치를 하고 싶다는 뜻을 누차 피력한 바 있는데, 지방분권 개헌 열망에 찬물을 계속 끼얹는다면 그 꿈 일찌감치 접기를 권고한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이 사설은 개헌을 둘러싼 현재의 논의지형을 잘 보여준다. 지금 자유한국당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지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 홍준표 대표가 원색적인 비난을 하며 제동을 걸고 있고, 그것이 대구·경북지역에서도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국회 개헌특위의 자문위원회 보고서 중 일부 내용을 문제 삼고 있는 것도 이런 비판 여론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개헌을 색깔논쟁으로 끌고 가서라도 비판적인 여론을 잠재워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홍준표 대표가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국민투표를 하겠다’는 자신의 대선공약을 뒤집은 것은 누가 봐도 명분이 없는 일이다.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보수-진보를 떠나서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매일신문은 1월2일에도 사설을 통해 ‘국가의 미래가 달린 지방분권개헌 이슈를 당리당략과 선거 유불리로 접근하고,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정 정치인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는 태도는 온당치 않다”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하라’는 것은 보수-진보를 떠난 요구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들을 보더라도,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동의가 70%를 훨씬 넘는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에 관계없이 찬성여론이 높다.

부산일보 신년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방선거 동시 개헌 국민투표’에 대한 찬성 여론이 부산·경남지역에서 77%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매일신문이 작년 12월 말에 대구·경북지역 여론을 조사한 바에 따르더라도, 이 지역의 찬성률이 61.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자료들을 줄줄이 언급하는 이유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더 이상 국회논의를 기다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국회가 작년 말에 ‘헌법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올해 6월까지 활동하기로 했지만, 이 특위에서 개헌안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1년 동안 국회 개헌특위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개헌과 선거제도 개혁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 측이 새로운 특위 위원장을 맡기로 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런 특위에 무슨 기대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다수가 바라는 개헌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대통령이 나서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헌법이 대통령에게도 개헌안 발의권을 준 이유는, 이처럼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개헌안 발의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대통령의 직무를 소홀히 하는 셈이 된다.

물론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은 많은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벌써부터 자유한국당은 ‘문재인 개헌 반대’와 같은 수준 낮은 정치공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공세가 쉽게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앞서 언급한 근거들을 봐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개헌논의가 본격화되면, 스스로의 대선공약을 어기고 개헌을 사실상 방해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은 더욱 궁색한 처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색깔 덧씌우기’ 등 여러 시도를 하겠지만, 현명한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은 쉽게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 발의를 본격 추진해야 한다. 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1월부터 본격 추진을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시작부터 대통령이 개헌의 내용에 대해 언급할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의 내용은 여·야당의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고, 국민들의 의견도 수렴하여 최종 확정하겠다고 하면 된다. 그러면 반대할 명분이 없다.

개헌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포괄적이고 제한 없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기본권 강화와 지방분권 외에도, 직접민주주의 확대,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의 선거제도 개혁 같은 내용이 논의의 주된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가장 논란이 되는 권력구조(정부형태)와 관련해서도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어차피 개헌과정은 다양한 의견들이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아마도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것인지와 관련해서 가장 고민되는 것은 국회 통과 가능성일 것이다. 국회의원 3분의 2가 동의해야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헌안의 국회 통과 가능성을 처음부터 비관할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헌은 이미 보수-진보의 프레임을 넘어서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운영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진정성 있게 개헌을 추진하겠다면,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이 지지하고 개헌논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개헌안을 논의하는 과정은 민주주의에 관한 거대한 집단학습과 토론의 과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에게는 그런 역량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 논의의 물꼬를 틔워주기를 기대한다.

<하승수 |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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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대한민국에서 근래 보기 드문 매우 독특한 현상이 하나 나타나고 있다. 그건 바로 반미 데모나 반미 여론이 매우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진보계열의 움직임이 그러하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방한 기간 중 반미 시위가 있었고 아직도 반미 여론이 존재하나 그의 자국중심적 발언이나 정책, 그리고 우익적인 가치관과 철학을 보건대 우리 진보세력이 이 정도로 조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반면 미국 내부나 서유럽에서는 반트럼프 여론이 심각하고, 선진국 중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나라는 일본 정도밖에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대한민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로 국내 문제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또 미국이 한국에 노골적이고 강압적으로 뭘 요구하기 이전에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미 외교를 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치인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다른 어떤 대통령에 비해 아직까지 진보세력의 비난을 가장 덜 받는 미국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는 또 하나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상당수 진보세력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정책을 역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을 압박하고 제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비핵화 정책은 기존의 한국 보수세력이 주장해 온 정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고, 오히려 과거 어떤 미국 정부보다도 더 한국 보수세력의 주장에 가까운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왜 상당수 진보세력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반미 데모나 시위를 벌이지 않는 것일까? 미국의 대북 압박이 정권 생존에 위협을 가해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진보세력이 왜 이제는 대북 압박만이 비핵화의 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일까? 정말 급반전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필자의 가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들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즉 대북정책이 무엇이냐보다도 누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전형적인 정체성 정치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한·미 공조에 방점을 찍고 있고, 기조에 있어서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권교체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전 보수 정부와도 큰 차이가 없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국이 한·미 공조노선에서 이탈하면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있고, 그 사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 지지세력은 이렇게 애를 쓰는 문재인 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쟁방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즉 비판적 미국 지지다.

둘째, 가설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혐오와 죄와 벌을 기준으로 하는 징벌적 사고이다. 사실 보수세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진보세력의 입장에서 볼 때도 북한의 왕조정치, 인권유린, 그리고 반인륜적인 핵개발, 갓 30대의 독재자 등이 좋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진보의 가치관에 다 역행하는 일이다. 그리고 국제사회의 규범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북한에 대해 징벌을 가해야 하는 것도 진보적인 가치관에 부합한다. 이 점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지할 만한 정책이다.

아마도 해답은 위 두 개 가설의 교집합쯤에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이러한 대북정책과 세계관은 ‘안보 진보세력’이라는 묘한 정치세력의 탄생을 예고하게 된다. 즉 안보정책은 기존 ‘안보 보수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고 경제정책은 진보적으로 가는 정치세력이다.

그들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조사해 보아야겠지만 주로 젊은층에 포진한 이 정치세력은 그 세계관으로 인하여 북한과의 협상이나 대화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고, 북한에 유화적인 중국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다. 잘못하면 총체적으로 반북, 반중, 반러라는 매우 냉전적인 세계관으로 흐를 위험도 있다. 더구나 압박만으로는 북핵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기존 진보의 사고와는 달리 최대 압박과 항복으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견지하여 냉전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킬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현실이다. 압박으로 인하여 전운이 감돌고 동북아에 한·미·중·일·북의 군비경쟁이 시작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핵은 그대로 존재할 때 이들은 더욱더 강한 압박을 요구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타개책을 지지할 것인가?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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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청와대에 초청되는 건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 현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1991년 이후 27년 만이다. 문 대통령은 오찬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오찬에 앞서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복동 할머니를 문병했다. 노환으로 오찬 참석이 어렵게 되자 직접 병원을 찾아가 인사를 하고 의견을 들은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함께 오찬을 한 뒤 이용수·안점순(앞줄 왼쪽부터) 할머니를 배웅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과 할머니들의 만남은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로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을 천명한 지난달 28일 입장발표 이후 꼭 일주일 만이다. 하루 전 발표된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보고서’는 한·일 합의 과정에서 피해자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고, 문 대통령 역시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위안부 피해자 초청은 피해자 의사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사안의 근본해결이 어렵다는 ‘피해자 중심주의’ 철학에 서서 문제해결을 위한 첫걸음을 뗀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세월호 피해자 유족을 청와대 영빈관에 초청했을 때와 같이 대통령이 피해 당사자를 직접 만나 국가가 시민의 생명과 권익을 지키지 못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국가의 지도자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매듭을 풀어야 했던 과제였다. 일본 시민단체인 ‘일·한협정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1953년 수교협상 과정에서 한국 측 대표가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전시하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 부족 등 시대적 한계로 인해 묻혀 버렸다. 민주화 이후인 1991년에야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역사적 증언을 하면서 진상규명 움직임이 본격화됐지만 2018년을 맞아서도 미완으로 남아 있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부터 한국 정부가 ‘피해자 중심주의’에서 적극적인 외교노력을 했더라면 이처럼 역사적 정의가 미뤄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청와대 방문이 진정한 문제해결의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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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36억여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로 추가 기소됐다. 박 전 대통령이 상납을 지시하면 국정원이 갖다바치고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돈 관리에 개입했다는 게 검찰이 파악한 사건의 얼개다. 박 전 대통령은 이 돈을 의상비와 ‘비선 치료’ 비용, ‘문고리 3인방’ 격려금 등으로 쓴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안보에 사용하라고 지출증빙 제출의무까지 면해준 예산을 착복한 것만으로도 중범죄인데, 그 돈을 업무와 무관한 사적 용도에 썼다니 기막힐 따름이다.

검찰 수사 결과를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3년 5월부터 국회의 탄핵소추 석 달 전인 2016년 9월까지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게서 총 35억원을 상납받았다고 한다. 이원종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통해 받은 1억5000만원까지 합치면 뇌물액수는 총 36억5000만원에 이른다. 이 중 3억6500만원은 최순실씨 등과의 연락을 위해 사용한 차명 휴대전화 51대 구입 및 통신요금, 기치료·운동치료·주사 비용, 서울 삼성동 자택 관리 비용 등으로 쓰였다. 9억7600만원은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전 비서관 등 최측근들에게 휴가비·명절비 명목으로 흘러갔다. 이들에게 돈을 건네는 과정에 최순실씨가 개입한 정황을 보여주는 최씨의 자필 메모도 발견됐다. 나머지 돈 가운데 일부는 최씨가 운영하던 ‘박근혜 전용’ 의상실 운영비로 전달됐다고 한다.

국정원 특활비 사건이 터졌을 때부터 이런 사태를 예상 못한 것은 아니었다. 국정농단 수사·재판 과정에서 이미 박 전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한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갖가지 주사 비용에서 삼성동 집의 보일러 기름값까지 아우르는 ‘깨알 같은’ 사용내역을 접하고 보니 다시 한번 충격을 금할 수 없다.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못한 지도자의 후과가 추하고 참담하다.

박 전 대통령이 추가 기소된 날, 친박계 핵심인사인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도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최 의원은 “돈 받은 게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에서 할복하겠다”며 의혹을 부인해왔지만 법원은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국정원 특활비가 박 전 대통령과 최 의원 외에 다른 친박계 실세 의원·장관들에게 전달됐는지도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특활비를 사적으로 착복한 경우 모두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마땅하다. 관행으로 치부하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예산 농단’은 뿌리 뽑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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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 몇 번을 망설였다. 끝까지 볼 배짱도, 울지 않을 자신도 도무지 없었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었던 유시춘 선생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진. 유 선생은 시사회를 봤지만 후배를 위해 기꺼이 동행했다. 숨소리까지 고문당하던 그때와 두 번이나 마주하게 해 미안했다. “괜찮아, 뜨거웠던 한 계절이 내 인생의 정수였어. 살아서 이런 시절 봤으면 된 거지.”

몇 겹의 장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박종철의 죽음과 49재, “종철아 아비는 할 말 없대이”, 이한열의 죽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의 폭로, 열사 26인을 호명했던 문익환 목사의 절규, 전국적 추모 투쟁을 관통하던 ‘그날이 오면’.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은 군사정권에 맞선 청춘들의 사랑과 투쟁이었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유 선생은 화장실을 찾았고 난 돌아서서 포스터만 쳐다봤다.

세밑 주말 저녁, 눈송이가 흩날렸다. 한참을 걷다 발길 머문 커피숍에 앉았다. “<1987>은 보통사람들의 서사네요. 선과 악의 순간순간이 일궈낸 변혁 그 자체가 역사겠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유 선생은 6·10항쟁 당일 아침 연행됐다. 구로경찰서에서 장안동 대공분실을 거쳐 강동경찰서로 끌려갔다. 부채꼴 모양 유치장 앞에 붙은 유 선생 죄목은 ‘집시법 위반’. 반대쪽 유치장에 갇힌 여성들이 유 선생 죄명을 보더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여성들의 박수를 들으니 ‘매운 계절의 채찍을 딛고 북방에 선’ 것처럼 울컥했다고 한다. 신민당사 점거 농성으로 일찌감치 서대문구치소에 있던 YH노조 사무장 박태연도 그립다고 했다. 유 선생은 여사 21사동 통풍구 위에 올라서서 6월항쟁을 들려줬다. 서울구치소 여사 ‘소지’(일본어로 ‘청소’)는 지금 살아 있을까. 구치소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그나마 정치범은 마지막 순서였다. 목욕물이 남았을 리 없었다. 한 ‘소지’가 유 선생에게 물 양동이를 건네며 몸을 돌려세우더니 “마, 세상 안 디비지겠나. 함 바까 보자”며 등을 밀어주는 게 아닌가.

눈발이 잦아들 무렵에야 우린 눈 얘기를 꺼냈다.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눈송이처럼 떨어진 게 아니란 걸 젊은 친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그럼요, 알 거예요.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새 커피잔은 세 번 정도 비워지고 채워졌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유 선생이 눈치채길 바랐다. ‘그로부터’ 1년 후를 묻고 싶었다. <1987>의 1년 후 말이다.

혁명은 유토피아를 만들지만 혁명 스스로의 유토피아도 있다. 반동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항쟁의 반동은 너무도 잔인했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 시민들이 열어준 민주주의를 오로지 권력게임의 도구로 활용한 탓이다. 1987년 대선의 노태우 후보 당선, 1988년 13대 총선의 지역주의 부활은 혹독한 대가다. 반면 노동자들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은 직선제 쟁취로 수렴됐지만 그해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노동의 현실을 드러냈다. 노태우 정권에서 분신한 노동자 규모만 전체 정권의 84%를 차지한다(임미리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중).

87년 함성에서 2017년 촛불항쟁을 떠올리게 된다.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던 군사정권, 총구는 겨누지 않았지만 시민을 버렸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30년 전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갔던 우리는 30년 후 지금은 촛불을 끄지 않고 그대로 광장에 서 있다. 적폐청산, 비정규직 문제 등 시민들이 직접 제기한 사회 문제는 정치 의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은 다신 맘 편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일 테다. “그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직 감옥에 있는 촛불항쟁 1년은 참 안타깝지.” “맞아요. 성장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달빛에 바랜 신화일 뿐이죠.”

<정치부ㅣ 구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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