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어디 그런가요. 전체 결과만 보면 민주당이 크게 이길지 모르지만, 하나하나 선거구별로 보면 결국 비슷하게 붙지 않을까 싶어요. 선거는 선거더라고요.”

6·13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종종 하게 되는 말이다. 여당의 일방적 게임 같은 선거 양상이 끝까지 이어질지 궁금해들 한다. 15년 동안 열번 선거를 치르며 한번도 똑 떨어지게 맞혀본 적 없는 ‘신기(神氣) 없는 점쟁이’(정치부 기자)에게 큰 기대 없이 묻는 것일 테지만, 역시 큰 자신 없이 대답하곤 한다.

몇번의 선거가 그랬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지금보다 더 일방적일 것 같던 총선 결과는 여당의 152석 턱걸이 과반이었다. 존망을 걱정하던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지고도 이긴 듯’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도 여론조사들은 내내 여당(새누리당)의 압승을 가리켰지만, 결과는 원내 1당조차 더불어민주당(123석)에 내주는 여당의 참패(122석)였다. 당시 수백~수천표차 초접전 지역구들이 널렸고, 그 대부분에서 야당이 승리한 결과였다. 2014년 6·4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 두 달 뒤였지만, 광역단체장 성적표는 여당인 새누리당(8석)과 새정치민주연합(9석)이 팽팽했다.

선거의 이 같은 기묘한 복원력은 어떤 정치세력도 선거 앞에서 좌절하고 비관하지 않도록 하는 동력일 게다. 국정농단의 직격탄을 맞은 자유한국당이 어떤 변신 몸부림도 없이 똑같이 낡은 선거를 되풀이하는 것도 이 관성에 대한 맹신 때문일 것이다.

“가짜 여론”(한국당 홍준표 대표) 주장처럼 여론조사가 틀린 것일까. 무응답 변수가 있지만, 사실 여론 지형 자체가 틀리거나, 갑자기 달라지는 일은 없다. 사람들 마음이란 게 그리 쉬 바뀌지 않는다. 특히 ‘정치적 기호(嗜好)’는 더 그렇다. 참 미스터리하지만 정치적 식견을 바꾸는 걸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거나, 때로는 변절처럼 여긴다.

다만 이 같은 완고한 정치적 기호가 표로 연결되지 않기도 한다. 특정 지지층이 방심에서든, 부끄러움에서든 투표장에 안 나가는 선택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정 심판’도 가능하다. 이런 탓에 선거는 전혀 다른 ‘로직’(논리구조)을 가진 생물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선거를 예측한다는 건 이처럼 위험천만하다. ‘선거는 선거다’식 예측이 조금은 비겁해도 정치적으론 모범답안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선거 역시 그런 ‘생물 같은 선거’인가 하는 의문은 든다. 지금은 과거 데이터들이 모두 무용한 ‘혁명적 상황’이 아닐까.

지금까지 ‘선거적 복원력’을 가능케 했던 것은 모두 과거를 평가하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정책선거나 미래 선택 등은 미사여구였을 뿐이다. 이런 구조 탓에 선거는 늘 진영 대결이고, 좌우, 보수·진보식 분석과 전망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는 드물게 ‘미래에 대한 고민’을 강요하는 선거일 수 있다. 선거 바깥에서 한반도 평화냐, 전쟁이냐는 미래를 결정하는 거대 드라마가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택 결과물은 천지개벽 수준의 차이가 될 것이다. 한반도 미래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 선거를 지켜보는 듯한 상상이 든다.

이처럼 지금은 선거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버린 정치·사회적 변혁의 상황이다. 과거 여야 틀이나 보수·진보와 다른 여론 층위들이 실제 감지되기도 한다. 정치적 기호가 아닌 민심 성향 자체가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다. 혁명적 상황이라면 정치의 태도는 전혀 달라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선거적 복원력’에 기대고 있다간 큰 낭패를 당하기 쉽다. 한반도 미래가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이번 선거를 여전히 ‘냉전의 놀이터’로 만들고 있는 한국당이 실패한다면 이 때문일 것이다.

영국 보수당 윈스턴 처칠(총리)과 노동당 클레멘트 애틀리(부총리)가 전쟁 앞에서 망설임 없이 거국내각을 구성했듯 한반도 미래 앞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이, 보수·진보가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그게 그 미래를 불변의 현실로 붙잡는 길이 될 것이다. 전쟁보다 평화 앞에서 하나가 되는 게 몇십배 빛난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으니 이번 선거는 ‘선거적 복원’ 없이 일방적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한국당과 수구보수들은 북·미 정상회담 전후로 줄곧 ‘볼턴교도’(강경파 존 볼턴 추종자)가 되어 ‘어설픈 타협’론으로 정상회담 결과와 한반도 미래를 평가절하하는 데 골몰할 것이다.

그 결과는 선거 한번의 패배가 아니다. 정치세력으로서 그들의 정치적 기억과 미래가 모두 ‘딜리트’(삭제)되는 궤멸 상황이 될 것이다. 답은 너무 간명하지 않은가. 지금 한국당의 일은 과거에 머물지 않는 것이다. “5G 시대에 ‘재난문자 수신’도 안되는 2G폰 들고 선거하는 딱 그 지경”만은 면해야 한다.

<김광호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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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장소에 대한 애착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사라진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클수록 상실감도 크다. <장소의 재발견>의 저자인 앨러스테어 보네트 영국 뉴캐슬대학 교수는 이러한 애착을 ‘토포릴리아’, 장소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경향신문 맞은편 새문안 일대가 내겐 그런 장소들 중 하나다. 이 지역은 몇년 전만 해도 골목의 정취가 살아 있는 ‘먹자골목’이었다. 할머니의 손맛으로 먹던 ‘콩비지’집, 주 종목은 삼겹살이지만 미리 전화만 하면 회 한 상쯤 거뜬히 차려내는 ‘제주 오름집’이 단골 식당이었다. 비오는 날 ‘문화칼국수’에서 먹던 파전과 걸걸한 막걸리는 왜 그리 맛나던지. 고깃집들만 있던 골목에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와 ‘비스’는 어쩌다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면 가던 곳이었다. 정갈한 한정식을 내놨던 ‘미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깡통’…. 이 골목엔 주변 직장인들의 곳간 노릇을 하던 집들이 여럿 있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선 광화문 인근과는 달리 개발에서 밀려난 탓에 주택을 개조한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식당은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모두 골목을 떠났다. 돈의문 뉴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은 공원이 되면서 사라질 뻔했다가 서울시가 도심 개발로 사라져가는 옛 골목을 보존하기로 하면서 지금의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들어서게 됐다.

박물관 마을이 조성된 새문안은 1422년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옆에 돈의문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새문’(돈의문)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새문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지역엔 1800년대에 작성된 옛 지적도상의 좁은 골목길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목조건물, 개량한옥, 1970~1980년대 유행한 ‘슬래브집’ 등 국적불명의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시가 또 다른 피맛골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도시재생사업으로 개발계획을 변경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바꿔 조성된 박물관 마을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지난달 마을 안에 문을 연 ‘돈의문 전시관’은 이탈리아 식당과 한정식집 건물을 전시실로 바꾸면서 전시실 이름도 ‘아지오’ ‘한정’ 등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아지오 1층에는 전차의 개통과 사라진 돈의문 등 근대 교통·외교 중심지였던 돈의문의 변화상을 담았다. 적어도 이 지역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옛 동네의 모습을, 수많은 추억이 담긴 음식점들을 모형으로 되살린 전시관에서 마주하고 싶지는 않을 테다. 장소에는 사람들만의 오래된 기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이 떠나고 들어선 박물관 마을은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며 한때 북적였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들이 뜸하다. 마을은 대부분의 건물이 공실로 남아 있다. 게다가 돈의문 전시관은 부실공사로 비가 샌다. 기존 음식점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마을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도시재생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용산구 후암동과 성북구 성북동에서 시범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우리는 기억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이 ‘또 다른 개발’을 경유하는 과정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낡은 건물과 오래된 거리들이 보여주기식 ‘박물관’으로 바뀌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파리의 장소들>에서 사회학자 정수복은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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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천명한 이후 미국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북한을 자극하는 주장을 중구난방 쏟아내면서 마치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꺾는 게 목적인 양 행동했다. 존 볼턴은 맡겨 놓은 물건이라도 되는 듯 ‘북한 핵을 폐기해 미국 땅에 묻어버리겠다’는 식의 말을 했다. ‘핵폐기 전 보상은 없다’는 말은 수없이 했다. 북한의 비핵화 선회를 약점 잡힌 것으로 보고 항복을 받아낼 기세다. 그러나 김정은의 비핵화 의사가 약점이 되는 것만큼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시키겠다는 트럼프의 의지도 약점으로 작용한다. 북·미 정상회담 실패는 트럼프에 치명적이다. ‘애초 안될 일을 무모하게 밀어붙였다’는 역풍에 직면할 것이다. 11월 중간선거는 아무런 국정 성과 없이 온갖 트럼프 스캔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치러야 한다. 미리 자신에게 수여한 노벨 평화상도 반납해야 한다. 게다가 김정은은 이미 선제 조치로 트럼프를 깊은 골짜기로 유인했다. 돌아갈 길이 없다. 트럼프는 짐짓 “핵 포기 안 해도 상관없다. 대북 압박을 계속 하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되돌리기 버튼은 고장 났다. 지금의 북한은 비핵화 천명 이전의 북한이 아니다. 고립무원이었던 북한은 이제 중국이라는 조력자를 확보했다. 비핵화에 실패한다면 미국도 책임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건 대북 압박을 재개해도 중국이 동참을 거부할 명분이 생긴다는 뜻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핵폐기를 안 하면 카다피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자못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한국의 반대를 무릅쓴 전쟁, 쉽지 않다.

☞ ‘이대근의 단언컨대’ 팟캐스트 듣기

문재인·김정은·트럼프는 이제 서로에게 인질이다. 누구는 패자가 되고 누구는 승자가 되는 일은 없다. 모두 패자이거나 모두 승자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오직 한 길, 전진뿐이다. 나아가려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 첫째, 비핵화 우선의 원칙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핵 문제 외에 북한 인권, 생물화학무기, 중단거리 미사일, 심지어 해킹, 나아가 ‘북한 정권의 위험한 행동 모두’가 북·미회담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언컨대 트럼프가 이 보따리를 다 풀어놓으면 김정은은 협상장을 박차고 나갈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보고 싶지 않으면 비핵화를 촉진시키지 않는 의제는 비핵화와 묶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핵 문제를 풀지 않으면 나머지도 해결되지 않는다. 인권 문제는 북·미 수교 협상 때 인권대화 채널을 설치하는 것으로 돌리고, 생물화학무기 및 미사일 문제는 남북 간 군축 협상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러면 트럼프·김정은 두 사람은 북한 문제의 본질인 핵에 집중할 수 있다. 둘째, 병행의 원칙이다. ‘선 폐기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 모델에 북한이 반발하자 미국은 엉겁결에 트럼프 모델을 제시했다. 물론 트럼프 모델은 실체가 없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그런 준비 부족은 장점이다. 서로 만족할 만한 걸 담을 공간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속도를 내면 된다. 단, 조건이 있다. ‘선 폐기 후 보상’ 주장을 접는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는 미국이 원하는 빠른 속도를 낼 수 없다. 핵폐기를 2년 내 마치려면 핵폐기, 북·미 수교, 평화협정을 동시 진행해야 한다. 가령 비핵화 진전에 따라 미국이 자동적으로 상응 조치를 하는 것이다.

다만, 비핵화와 상응 조치의 시차는 최소화하고, 그 절차를 미리 합의해야 한다. 그러면 미국의 관점에서 ‘선 비핵화’가 되고, 북한의 관점에서는 ‘동시적’이 된다. 이렇게 중첩적 과정으로 로드맵을 짜면 타협이 가능하다. 셋째, 상호 신뢰의 원칙이다. 북한은 핵 억지력 확보가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 때문이라고 설명해왔다.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했기에 미국이 적대 정책 철회 의사를 밝혔고, 그 때문에 핵을 보유할 이유가 사라졌다. 북한은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핵무기는 비핵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미국의 압박에 북한이 굴복한다는 인상을 주면 북한 인민 앞에서 핵폐기를 정당화할 수 없다. 미국의 대북 압박은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승리를 안겨줘야 한다. 그래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 김정은이 핵폐기를 망설이지 않도록 선제적 행동을 하면 더 좋을 것이다. 그래야 검증 과정도 수월하게 넘어간다. 사실 김정은이 개혁의 길로 선회한 이상 핵을 은폐할 이유는 없다. 핵 억지력은 상대가 핵보유 사실을 인지해야 발휘된다. 상대가 모르는 핵은 아무런 힘이 없다. 그런 쓸모없는 핵은 숨길 필요도 없다. 김정은은 전면적인 사찰·검증을 과감히 수용, 미국의 신뢰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상호 믿음이 있어야 ‘비핵화-체제보장 교환’을 원만히 진행할 수 있다. 게임은 시작됐다. 게임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배신은 공멸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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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투표일이 20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후보들의 표심잡기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런데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초대형 이슈로 시민들의 선거에 대한 관심은 저조하다. 경기와 경남, 제주 등지에서는 과열양상을 띠고 있지만 나머지대부분 지역에서는 낮은 투표율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선거운동도 정책이나 공약을 둘러싼 건강한 토론보다는 후보들 간 비방이 중심이 되고 있다. 풀뿌리민주주의 실현은 요원한 구호가 되고 있다.

지방선거는 지역의 현안을 점검하면서 향후 4년 동안 지방정치를 이끌 일꾼을 뽑는 과정이다. 지역의 특성에 부합하고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정책과 대안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후보들이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이번 선거는 지방분권 실현이라는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다. 지역주민이 지역 문제 해결의 중심이 되는 것을 넘어 지역 주도로 국가발전을 모색하는 단계로 도약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지방선거의 핵심 의제는 지역이 아닌, 중앙 정부와 관련된 것들뿐이다. 여당은 국정을 힘있게 이끌어나갈 힘을 달라고 하고, 야당은 지도부건 후보건 모두 독주하는 정부를 견제하자는 말만 외치고 있다. 정당정치를 통한 풀뿌리민주주의 구현, 또는 민주주의의 훈련이라는 취지도 바래고 있다. 지방의 발전이 중요하다면서 모두가 중앙을 지향하는 지방자치의 역설적 현실을 웅변하고 있다. 1995년 전면적인 지방자치제 실시 후 20년 넘게 발전시켜온 지방자치 전통이 무의미해질 판이다.

대선이나 지방선거나 뽑는 대상이 다를 뿐 주권행사라는 점에서 우열이 있을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지방을 위한 정책으로 승부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지방선거에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선 안된다. 적어도 지방선거에서만큼은 지역의 정책이나 의제들이 부각되어야 한다. 우선 후보들의 면면과 주요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서 투표하려는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지방선거에서 지방논리가 실종되면 그 손실은 1차적으로 지역주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중앙당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지방을 부축해 국가 전체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특히 야당 지도부는 철 지난 이념공세나 일방적인 정부 공격을 자제하고 지역주민을 다독이는 정책과 의제를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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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홍문종·염동열 두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표결에 참석한 의원 275명 중 홍 의원은 141명, 염 의원에 대해선 172명이 반대표를 행사함으로써 과반 찬성을 요하는 체포동의안 가결을 무산시켰다. 민생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과 특검법안 심의는 한 달 넘게 방치하면서 동료의원 감싸기에는 재빠른 정치권의 이율배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번 표결을 분석해보면 한국당 113명뿐 아니라 다른 야당과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도 20명 이상 부결에 가세했다. 겉으론 싸우는 척하면서 뒤에선 서로 감싸주는 정치권의 온정주의가 확인된 것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 2018년5월22일 (출처:경향신문DB)

이번 체포동의안 부결은 특권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할 국회가 대표권을 위임해준 주권자 시민을 배신하는 행위이다. 홍 의원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학재단을 통해 불법자금 19억원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염 의원은 강원랜드 교육생 선발 과정에서 수십명의 지원자를 부당 채용하도록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다. 평범한 시민이라면 볼 것 없이 쇠고랑을 차야 하는 사안이다. 특히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특권층의 개입으로 수사가 지지부진해 시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그 수사 방해의 원인 제공자 중 한 사람이 바로 염 의원이다. 이런 사안을 두고 동료의 체포를 막는 데 앞장선 한국당 의원들의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안이하게 표결에 임한 민주당의 태도도 유감스럽기는 매한가지다. 홍영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권고적 가결 당론을 정하는 것으로 그쳤다. 적극적인 표 단속을 했어야 한다. 혹여 추경예산안 처리를 위해 한국당의 부결에 묵시적으로 동의했다면 용서할 수 없다.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야는 정치개혁을 외칠 때마다 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거론해왔다. 하지만 지난 4년 가까이 이를 행사하지 않아 그 논의가 잦아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처럼 불체포특권을 방패막이로 쓰면 폐지론에 다시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현역 의원의 구속을 봉쇄하는 특권을 인정할 시민은 없다.

강원랜드 채용청탁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한국당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안이 곧 국회로 넘어온다. 권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이번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의심받는 ‘몸통’이다. 방탄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으려면 여야는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또다시 부결된다면 국회를 향한 시민의 분노가 어디까지 갈지 예측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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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과 물관리기본법, 물산업육성법 등 ‘물관리 일원화 3법’을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의 수자원국을 환경부로 옮기고, 총리실 산하에 국가 물관리위원회를 두어 수량·수질을 통합관리하며, 정부가 물시설 및 산업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수량은 국토부, 수질은 환경부라는 이원화 체계가 20여년의 논쟁 끝에 환경부로 일원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정부조직법에 ‘하천관리법은 제외’라는 단서조항이 붙은 것을 두고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우선 ‘하천관리법을 국토부에 남긴다’는 여야 원내대표들의 합의문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하천관리법’은 애초 존재하지 않는다. 원내대표들이 현행 ‘하천법’을 ‘하천관리법’으로 착각했는지, 합의문 작성상의 단순 오타인지 알 수 없지만 어떤 경우든 합의 과정이 얼마나 어이없는 졸속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일각의 우려처럼 하천과 관련된 모든 법, 즉 하천법은 물론 수자원조사법 및 공사법 등까지 그냥 국토부에 남겨둔다는 의미라면 ‘빈껍데기 일원화’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하천관리법이 기존의 ‘하천법’을 지칭했다 해도 ‘반쪽 합의’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천법을 국토부에 남겨둔 채 물관리 일원화 업무를 환경부에 넘기는 것은 실속은 그대로 두고 앙상한 뼈대만 넘겨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즉 국토부가 하천법에 따라 하천시설인 제방·댐·호안·하굿둑·수문·홍수조절지·지하하천의 관리권을 행사하면 4대강 재자연화 등 환경친화적인 물관리는 또다시 난항을 겪을 수 있다. 보의 수문개방 등을 통해 4대강의 수질과 수생태계의 복원을 꾀하려면 국토부의 협조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물산업육성법 또한 도마에 올랐다. ‘물산업 허브’의 기치를 내세웠다가 암초에 부딪힌 대구만을 위한 특혜예산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짙다. 정치권이 ‘물관리 일원화’라는 대의를 내세우면서 특정 지역을 위한 선심성 예산을 끼워넣은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물관리의 패러다임은 과거 개발시대의 수량 중심에서 건강과 친수, 행복을 강조하는 수질 중심으로 바뀌었다. ‘하천 관리’만을 뚝 떼어 국토부에 남겨놓을 명분은 부족하다. 따라서 수량과 수질을 통합관리할 주체는 오롯이 개발 위주인 국토부가 아니라 환경 및 생태를 강조하는 환경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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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26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을 발의하고 공고했다. 헌법은 개헌안 공고 후 60일 이내에 국회가 이를 의결하게 하고 있다. 국민투표에 앞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의결을 먼저 거치게 한 것이다. 이번 목요일인 5월24일이 60일째가 된다. 이에 대해 24일까지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번 개헌안이 자동 폐기되게 된다는 주장이 들린다.

아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해서 개헌안에 대해서는 시한 경과로 인한 자동 폐기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 우리 헌법 제130조가 개헌안 공고 후 60일 이내의 국회 의결을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24일까지 대통령 발의 개헌안은 국회 본회의에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어야 하고, 국회의원들은 표결을 통해 찬성이나 반대 의사 표시를 하든가, 아니면 하다 못해 기권 의사 표시라도 해야 한다.

헌법 제128조부터 규정된 헌법개정 절차조항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이번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 대한 국회 대응의 몇 가지 문제점들을 짚어보자.

첫째, 개헌안 발의 절차다. 헌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나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선거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획득한 두 축인 국회와 대통령에게 헌법개정안 발의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는 국민의 여론을 수렴한 국민헌법자문특위의 자문안을 참고해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적법하게 이루어졌다. 헌법이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을 규정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적법한 개헌안 발의는 국회에 의해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고 또 존중받아야 한다.

둘째, 개헌안 공고 절차다. 헌법은 대통령이 제안된 개헌안을 20일 이상 공고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의 최고법이자 기본법인 헌법이 어떤 이유로, 어떤 내용이 이번에 개정되는지를 국민들에게 충분히 주지시키고 국민들 사이에 개헌안에 대한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단계인 것이다.

셋째, 이 20일 이상의 공고기간을 포함해 공고 후 60일 이내에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을 거치게 한 것이 개헌안 의결 절차이다. 국회 의결에 앞서 최장 60일 동안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토론 및 비판을 통해 국회가 국민 참여를 유도하고 개헌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끌어낸 후, 거기서 드러난 민의를 확인하고 이를 반영해서 그 개헌안에 대한 가부를 엄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단계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60일 가까운 기간 동안 국회가 개헌안과 관련해 이러한 노력들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아마 별로 없을 것이다. 추경안이니, 특검 법안이니 하는 당파적 쟁점들로 소모적 정쟁을 일삼느라 60일이 거의 다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류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고, 급기야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이 24일까지 이루어지지 않아 개헌안이 자동폐기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 제130조 제1항은 대통령이 발의했건, 국회가 발의했건 국회가 개헌안이 발의되고 공고된 날로부터 60일 이내에 이를 “의결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지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즉 공고 후 60일 이내의 의결은 국회의 헌법상 의무인 것이다. 본회의 상정 없이 60일의 기한 마지막 날인 24일이 지나면 개헌안은 자동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국회가 헌법상의 의무를 방기한 위헌상태가 시작되는 셈이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도 변명이 불가능한 국회의 중대한 직무유기일 수밖에 없다.

특히 국회법 제112조 제4항에 의해 개헌안에 대한 국회 의결을 기명투표로 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헌안에 대한 개별 국회의원들의 의사표시는 이름을 걸고 하는 ‘기명투표’ 방식을 통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대한 사안이고, 따라서 국회의원 각자에게는 개헌안 표결이 무엇보다 중요한 헌법상 의무인 셈이다. 더욱이 국회 의결이 없으면 나머지 개헌절차인 국민투표나 대통령의 공포절차로 나아갈 수 없다. 국회의 직무유기가 개헌안에 대한 주권자 국민의 정당한 의사표시권 행사 자체를 가로막는 셈이다.

2014년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과 입법촉구 결정으로 효력을 상실한 국민투표법 제14조 제1항 개정안이 아직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아 국회 의결이 있어도 어차피 국민투표에 부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들린다. 헌재가 제시한 법 개정 시한이 2년 반 가까이 지나도록 국회가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고 있는 것도 직무유기다. 직무유기가 또 다른 직무유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국회는 개헌안 의결 안건을 이번 24일까지 국회 본회의에 상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헌 국회’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국회도 헌법 아래에 있다는 진리를 국회 스스로가 되새겨야 할 때다.

<임지봉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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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코앞에 두고 북한이 연일 한국과 미국을 향해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지난 19일 적십자 중앙위원회 대변인 명의로 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식당에서 일하다 집단탈북한 북한 종업원들의 송환을 요구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의 국회 발언을 비난한 데 이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예상을 뛰어넘는 북한의 공세에 남북 고위급회담 개최가 연기된 데 이어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도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22일 열릴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연합뉴스

북한의 공세가 비핵화 판 자체를 흔들겠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위성관측에 따르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에 폭파 관측을 하기 위한 전망대를 설치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이 한국 취재진의 접수를 거부했지만 다음주 핵실험장 폭파를 예정대로 하겠다는 신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내놓는 북한의 강경 조치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 분위기에 적지 않은 우려를 던지고 있다. 북한은 이미 미국이 ‘선 핵포기, 후 보상’을 강요할 경우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역시 한편으로 북한을 달래면서도 언제까지 인내할 수만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이틀 앞두고 긴급통화한 것이 상황의 절박성을 잘 말해준다. 이런 점에서 한·미 정상이 20분간의 통화 후 곧바로 비핵화 달성 의지를 재천명한 것은 적절한 대응이다.

21일 방미길에 오르는 문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일은 북·미 간 이견을 좁히는 것이다. 북한의 압박을 미국이 오해하지 않도록 설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리비아식 비핵화를 고집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트럼프 대통령도 비핵화 합의 시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과 한국형 경제발전모델 등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이 제공할 체제안전 보장과 경제적 보상책을 명확히 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 뒤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있다는 미국의 비판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식의 ‘중국 책임론’은 북핵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국은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역할을 해야 하는 중요한 나라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북한과 중국이 연대해 한·미와 대결하는 구도가 연출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 대통령의 표현대로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처신하되 대담한 발상으로 난국을 돌파하고 비핵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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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21일부터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에 들어간다.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고용노동소위원회가 이날부터 심의할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인상 무력화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무분별한 확대를 경계해야 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는 노사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다. 정부와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를 벌였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국회로 공이 넘어온 이유다. 특히 정부 태스크포스(TF)가 매달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을 포함하는 권고안까지 만들었으나 이후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가 생산적으로 이뤄지지 못한 것은 노사가 기존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해야 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임금체계의 불합리성을 감안하더라도 연봉 4000만원 이상인 노동자가 최저임금의 대상이 된다면 말이 안된다. 최저임금 인상 취지를 감안할 때 정부 TF의 권고안은 타당성이 있다. 권고안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킨 대법원의 2013년 판결과도 맥이 닿아 있다.

하지만 산입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하다보면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매달 받지 않는 상여금이나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 성격의 급여까지 기본급에 포함시키자는 재계의 주장이 지나친 것은 이 때문이다. 기본급을 줄이고 상여금이나 수당을 늘려온 임금체계의 왜곡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과 연결시키는 것은 부당한 왜곡일 뿐이다. 이런다고 기업의 애로가 해소되고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런 오산도 없을 것이다. 국회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의를 계기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사회적 노력이 요구된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수입과 소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업의 이익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언제까지고 논란만 계속할 수는 없다. 노사정 모두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피하고 저임금 노동자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합심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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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성원으로 출범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정부는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사회정의를 구현하고 무너진 국민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든 힘을 쏟아 왔다. ‘안보’ 분야에서도 희망적인 새 시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굳건한 안보’를 지탱해 온 국방부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전개될 국방개혁에 대한 기대도 매우 크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는 장병들의 인권보장, 복무여건 개선과 더불어 미래전에서 이길 수 있는 유능하고 강한 군을 구현하기 위한 인력·조직 등 군 전반에 걸친 개혁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최근에는 병사들에게 일과 후 외출개념을 도입한다, 휴대폰 사용을 허용한다, 군 복무기간을 단축한다 등 국방개혁에 포함된 놀라운 소식들이 들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위 ‘너무 풀어주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도 존재하지만 병영문화 개선이 군 기강 해이와 동의어가 될 수 없고, 21세기 젊은이들에게 20세기 의식을 입힐 수 없다는 점에서 필자는 개혁 방향에 공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관저 소회의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연합뉴스

필자는 3년간 국방부 ‘국민소통전문가단’의 일원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국방부가 국방개혁에 대해 임하는 온도를 느끼기에 충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느끼기에 이번 정부에서의 국방개혁은 뜨겁다. 제일 강렬한 모습은 위에서부터 보이는 솔선수범이다. 장관이 직접 직원식당에서 식판을 드는 모습이나, 장군 정원을 스스로 줄이는 것은 이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드라마다.

개혁이란 ‘달리는 자동차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것’과 같이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동력이 없으면 실행이 어렵다는 것이다. 다행히 대통령과 장관의 국방개혁 의지는 충만하다. 숙제는 ‘국민의 성원’이다. 국민들의 국방부와 군에 대한 시각은 여전히 날카롭다. 날 선 비판을 뚫고 전진하기 위해서는 역시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행히 국방부는 다양한 국민 참여를 통해 국민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국방개혁 홈페이지를 개설해 개혁안을 알리고, 국방개혁 공모전을 통해 국민들의 제안을 받기도 했다. 더불어 국방부 장관은 지난 2월 기자간담회에서 전문가의 의견수렴은 물론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듣고 국방개혁에 대해 검증, 보완하는 등 소통을 통한 국민공감대 마련에 힘쓰겠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개혁에 대한 의지와 변화를 위한 노력을 국민들과 소통한다면 ‘국민의 성원과 지지’라는 국방개혁의 추진에서 가장 중요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4월 남북정상회담으로 국방환경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곧 있을 북·미 정상회담도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국방부’와 ‘군’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국민과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 그 어떤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지켜나가야 할 우리 군의 소명이다. 국방개혁 2.0은 대한민국의 현재를 지키는 자물쇠이자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지난 3월, 육사 졸업식에서 대통령께서 언급한 ‘튼튼한 국방 없이는 평화를 지킬 수도, 만들 수도 없다’는 문구를 간과하지 말고 국민의 힘을 모아 시대적 소명을 이뤄야 할 것이다. 국방개혁 2.0의 성공을 진정으로 기대한다.

<이종민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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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로병사(生老病死). 인간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지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 복지국가에선 이 숙명을 좀 더 순화시키려는 집단적 노력을 지속적으로 행해왔다. 아마도 그중에 질병에 대한 대처가 가장 성과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영국 복지제도의 자존심인 국민보건서비스제도, 이른바 무상의료제도라 불리는 NHS처럼 경제적 문턱 없이 진료와 치료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방안부터, 사회적 보험의 형태로 운영하여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픈 이들의 병원비 부담을 돕는 상부상조의 미덕을 현대판으로 제도화한 방안도 있다. 국민의료비의 총량을 통제하고 의료계 내부에서 각각의 몫을 알아서 결정하게 하는 프랑스 방식은 우리로선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방식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 1년을 돌아볼 때 외치가 더욱 돋보이지만, 결국 국민들의 삶을 책임지고 바꾸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목표라면 이를 위해서는 복지정책이 가장 주효하다.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문재인케어(문케어)’, 즉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개혁정책의 성과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정부가 밝힌 바에 따르면, ‘문케어’ 정책의 핵심 방향은 건강보험에서 보장하는 치료의 범위를 확대하고 환자들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병원에 가면 내던 특진비가 없어졌고, 초음파 사용 시의 환자부담이 일부 경감되었다. 앞으로 4인실이 아닌 상급 입원실의 병실료 인하와 MRI 비용의 경감 등이 시행될 것이고 아동,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인구집단별 그리고 소득수준별로 본인이 부담하는 의료비의 상한선을 더욱 낮추게 된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본인이 전액 부담해야 하는 3800여개에 이르는 진료항목들, 소위 비급여항목들을 건강보험의 관리항목으로 넣어 환자부담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인 현재 시점에서 문케어가 아직도 피부에 와닿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년의 시간이란 갈급한 국민에겐 긴 시간이고 제도의 개혁과 성과 도출에는 여전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지치고 속아온 민생은 그러한 집권세력의 이유있는 변명에 관대하지 않다.

문케어 성공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는 비급여항목을 없애고 환자부담 수준을 낮추는 데 필요한 건강보험재정을 늘리는 데 누가 기여할 것인가에 있다. 우선은 20조원 가까이 쌓여있는 건보재정 여유분과 재정지출 절약분, 그리고 7조원에 이르는 국고지원의 확대 등으로 성과를 낸다지만 국민이 체감할 만한 재정의 확보가 가능할지 친복지진영에서도 의구심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성공의 첫걸음은 보수정부 10년 동안 서툰 개입과 재원부담 회피로 의료공급자와 시민사회·노동단체로부터 불신을 받아왔던 정부가 건강보험의 공공성 확보라는 철학하에 일관되고 신뢰감 있게 이해당사자를 대해 나가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국고지원 폭을 파격적으로 확대하여 국민의 체감도를 높이고 의료계의 불균형적인 수지구조를 맞추는 일에도 노력해야 한다.

문케어의 성공은 단지 건강보험제도 내의 개혁이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 및 건강보장체계의 정상화와 함께한다. 공공보건 강화를 통해 지역주민의 질병을 지역사회 안에서 예방하도록 하고, 보건복지의 결합을 통해 통원 및 입원 수요를 줄여나가고 공공병원 비중을 높여 영리로 치닫는 구조를 적절히 제어하고, 공공성을 수용하는 의료공급자의 양성, 의료기관 간의 역할 분담, 적정 수가에 대한 과학적 접근, 국민의료비 적정 수준 합의, 주치의사제나 상병수당 같은 필요한 제도의 도입, 빈곤층의 보험료 부담 경감책 등이 함께 연동되어 개혁되어야 한다.

올해로 우리나라에 건강보험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 40년이 지나고 있고, 전 국민에게 적용된지 햇수로 30년에 이른다. 한국 복지의 자부심으로 건강보험제도가 자리매김하고, 우리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품위를 지키며 살 수 있도록 문케어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이태수 꽃동네대학교 교수 사회복지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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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자 수가 3개월 연속 10만명대 증가에 그쳤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고용 쇼크’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 취업자 수마저 큰 폭의 감소세로 돌아서 고용시장 불안이 상당 기간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통계청이 16일 내놓은 ‘4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12만3000명 늘었다. 올해 2월(10만4000명)과 3월(11만2000명)에 이어 취업자 수 증가폭이 10만명대에 그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8년 8월~201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정부가 제시한 연간 취업자 수 증가 목표치(32만명)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난달 취업자 수 증가폭이 둔화된 것은 교육서비스업과 제조업의 고용 부진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교육서비스업에서는 학생 수 감소와 대학 구조조정 여파로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10만명이나 줄었다. 그동안 고용시장을 떠받쳐온 제조업 취업자 수가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지난해 6월부터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던 제조업 취업자 수는 6만8000명 줄었다. 조선·자동차·의료기기 부문 등에서 고용이 크게 감소한 영향이 컸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정부는 지난해 추가경정예산 11조2000억원과 일자리 안정자금 3조원을 투입하며 고용 확대에 주력해왔다. 올해도 1분기에만 일자리 예산의 35%를 투입하고,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3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하지만 나랏돈을 풀어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어느 정도 효과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정부는 단기적인 일자리 확충에 연연하기보다는 고용유발 효과가 큰 서비스업 지원을 강화하고, 혁신산업을 육성하는 등 산업구조 개편에 적극 나서야 한다. 경제체질이 바뀌어야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될 수 있다. 일자리 정책의 방향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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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 특검법과 추가경정예산안의 18일 동시 처리에 합의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싸우고 있다. 특검의 규모와 수사 기간을 놓고 여당은 ‘2012년 내곡동 특검’을 모델로 제시한 반면 야당은 ‘2016년 최순실 특검’ 수준으로 꾸려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내곡동 특검은 수사 기간 30일에 검사 10명이 파견됐고, 최순실 특검은 90일간 검사 20명이 활동했다. 특검 수사 대상으로 합의한 ‘관련자의 불법행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를 놓고서도 논란 중이다. 야당은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이란 호재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고, 거꾸로 여당은 최소화하겠다는 심산이니 양측이 부딪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민주평화당까지 추경안의 상임위·예결위 심사를 사흘 만에 마무리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고, 5·18 기념식이 맞물려 있는 점을 들어 18일 처리 합의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3조9000억원에 달하는 추경안 심의를 뚝딱 마치는 건 졸속 심사의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추경안은 국회에 계류된 지 이미 한 달이 넘었다. 42일 만에 국회를 정상화한다면서 합의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 딴소리를 하는 건 어떤 이유로든 적절치 않다.

국회가 걸핏하면 당리당략으로 멈춰서는 모습은 이제 진저리가 난다. 여야는 남은 회기 동안 밤을 새워서라도 산더미같이 쌓인 숙제를 해야 한다. 구체적인 특검법 마련과 추경안 심의가 또 다른 정쟁 유발 없이 예정대로 처리될 수 있도록 전력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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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족 중 한 명이 큰 병에 걸리면, 아주 부잣집이 아닌 이상 집안이 거덜난다. 건강보험이 있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 건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비율(이를 보장성이라 한다)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에서 보장성이 80%를 넘지만, 우리나라의 보장성은 60% 남짓이다. 치료비가 총 5000만원이 든다면 2000만원을 본인이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높여서 환자의 부담을 줄여준다면 적극 환영할 일, 문재인 대통령의 야심작 문재인 케어(문케어)는 이런 취지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돈이 든다는 것. 국민들이 문케어로 혜택을 보는 것이니만큼 이는 건보료를 인상함으로써 해결하는 게 맞다. 도대체 얼마나 올려야 할까?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국회 예산처에 따르면 보장성을 70%로 올리는 데만도 3.2%의 인상이 필요하단다. 게다가 문케어에 포함된 비급여 보장,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지원 확대 같은 정책들, 그리고 고령인구 증가 같은 환경적 요인을 감안한다면 이보다 더 큰 인상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건보료는 2017년에 비해 2.04%, 직장인 기준 월평균 2000원이 올랐을 뿐이다. 더 황당한 것은 앞으로도 인상률을 예년 수준을 넘지 않게 관리하겠다는 복지부의 공언이다. 이 정도 인상률로 문케어가 가능할까? 정부는 그간 모아둔 건강보험 적립금 21조원을 사용하면 된다는데, 이건 당장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문케어가 시작되면 적립금은 곧 바닥이 날 테고, 그때가 되면 보험료를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말이다. 정부가 당장의 인상을 꺼리는 까닭은 지지율이 떨어질까 걱정해서다. 실제로 우리 국민들 10명 중 8명은 문케어로 인해 혜택을 보는 건 좋지만, 추가적으로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런 식이면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왜 비판했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는 건보료 인상의 불가피함을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어야 했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훨씬 더 좋게 바꾸는 일인데, 지지율이 좀 떨어진들 어떠랴.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는 대신 당장의 지지율을 선택함으로써 보험료 인상의 부담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기로 한 모양이다. 재정불안에 허덕이는 문케어가 제대로 작동할지 의사들이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용·성형을 제외한 비급여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것 역시 우려스럽다. 비급여는 당장 생명에 지장이 없어서 국민건강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이다. 환자 개인이 좀 더 편하고자 돈을 더 내고 선택하는 게 비급여란 얘기인데, 6인실 대신 2인실에 입원한다든지, 회복기간을 약간 단축시켜주는 추가적인 약을 부담하는 게 그 예다. 개인의 편의를 위한 선택에 국민이 내는 보험료를 쓰는 게 과연 온당할까? 더 우려스러운 일은 비급여 여부의 판단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한다는 사실이다. 심평원은 의사의 정당한 진료행위에 과도한 개입을 하곤 했다. 환자에게 꼭 필요한 약을 써도 “왜 이 약을 썼느냐?”며 따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줄 돈을 안 주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런데 비급여마저 심평원이 관장한다면, 환자들이 돈을 더 내고 좋은 치료를 받는 건 불가능해진다. 또한 의사들이 그동안 원가 이하의 진료수가를 비급여로 메꿔 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문케어에 대한 의사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의사들의 반발은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의사들, 이기심의 극치네요”라는 댓글에서 보듯, 국민들은 의사를 적폐세력처럼 취급한다. 이건 문케어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반대투쟁을 이끄는 최대집 의협회장이 ‘박사모’라는 게 더 큰 이유다. 박근혜가 무죄이며 억울하게 탄핵당했다고 주장하고,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하는 등 그가 했다는 일련의 말들엔 그저 한숨만 나온다. 그가 회장이 되고 나서 첫 번째로 추진한 ‘문케어 반대 의사파업’을 하필이면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4월27일로 잡았던 것도 의협의 앞날이 어둡다는 걸 말해준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의협회장이 된 것일까? “내가 선거에 무관심했다.” “설마 박사모가 되겠냐고 방심했다.” 얼마 전 만난 동료 의사들은 이런 반성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정부 측에 의사들의 우려를 전달하고, 이를 문케어에 반영하려면 정부와의 줄다리기가 필요한데, 여론에서 외면받는 의협회장의 말에 정부가 얼마나 귀를 기울여줄지 의문이다. 

이건 꼭 의협만의 일일까? 다들 알다시피 우리는 단지 경제전문가라는 이유로 돈밖에 모르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가 큰 낭패를 봤다. 거기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다음 선거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는 분을 대통령으로 만듦으로써 ‘이게 나라냐?’는 탄식을 하게 만들었다. 문 대통령이 다시금 나라를 일으키고 있지만, 잃어버린 9년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가 치솟는다. 6·13 지방선거가 얼마 안 남았다. 신중하게 투표해 의사들처럼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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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남성 사회의 반발이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다. 지하철에서 여성학 책을 읽는다고 봉변당한 여고생부터 “오해 받으니 여성을 멀리하겠다”는 ‘펜스룰’까지. 대개 이러한 현상을 반격(反擊·백래시)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백래시(backlash)는 1970년대 미국에서 치열했던 여성운동과 진보세력을 몰아내고자, 정부와 미디어 등 사회 전반이 주도한 반동의 물결이었다. 이때 등장한 단어 중 하나가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PC)’인데, 당시 미국에서 냉소와 좌절의 용어였다면 한국에서 ‘PC’는 지향해야 할 가치로 사용되었다. 요컨대 상황이 다르다는 얘기다. 우리는 미국의 1970년대 같은 경험이 없으며, 레이건 정부는 안티페미니즘의 선봉장이었지만 우리 정부와 언론은, 특단의 대책은 없을망정, 미투에 우호적이다.

나를 포함한 여성주의 강사 두 명이, 얼마 전 모 대학 학생회로부터 인권 강의를 요청받았다. 그런데 해당 대학의 학생 204명이 그녀의 강연을 취소하지 않으면 학생회를 탄핵하겠다고 서명했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익명의 학생들은 강사의 ‘신상을 털고’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 결국 학생회는 그 압력을 견디지 못했다(다행히 학내 여성주의 모임은 강연 취소에 항의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나는 그녀와 “연대한다”는 뜻에서 강연 거부를 통보했지만, 사실 나도 같은 처지이고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이 아닌가. 페미니즘은 인문학의 핵심이고, 학문과 사상의 자유라는 명분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지면에 담기엔 복잡한 논의지만, 만일 학교 당국이 홍준표씨를 특강 강사로 불렀다면 어땠을까. 학생들은 반대 시위를 했겠지만, 홍씨를 불렀다는 이유로 학생회 탄핵과 같은 누군가의 사퇴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모 보수 정치인의 특강을 둘러싸고 학생들이 반발해 충돌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학교 측은 강사의 신변 보호에 최선을 다했고 강연 취소를 요구한 학생들은 비난받았다.

얼마 전에는 ‘코뮌주의’를 내건 모 연구 공동체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 관련 토론회가 열렸다. 흥미로운 사실은 토론회 분위기였다. 가해자와 조직을 옹호하는 이들은 억울한 듯 다소 흥분한 얼굴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피해자를 지원했던 여성들은 ‘쿨’했다. 이들은 토론회 내내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이 안 통하는 이들과의 시간이 아깝다는 듯, 답답해했다.

대학생들의 여성주의 강연 저지는, 반격일까. 또한 이미 당사자 두 명이 모두 인정한 사안에 대해 들뢰즈와 데리다, 칸트를 인용해가며 “우리는 문해력이 뛰어난 집단인데, 우리가 못 알아들었으니 당신들이 틀렸다는 증거”라고 ‘논증’하는 이 조직의 행위는, 과연, 반격일까.

한국 사회의 일부 진보 진영이 크게 오해하고 있는 개념 중의 하나가 ‘대화’와 ‘폭력’이다. 이들은 대화와 폭력을 대립시키면서, 자신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민주주의 세력으로 자칭한다. 노! 민주주의는 폭력 대신 대화를 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삶에서 대화로 해결되는 문제는 거의 없다. 평화학자 신시아 인로는 “완벽한 대화는 군대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합의 가능한 대화는 명령뿐이라는 얘기다.

‘을’은, ‘갑’과 말이 안 통하는 일상을 산다. 대화가 안되기 때문에 저항하는(‘폭력을 쓰는’) 것이다. 위 공동체도 일부 여성 회원이 남성과의 대화에 절망하여 탈퇴했는데, 남성은 “왜 우리 몰래 토론회를 개최하느냐”는 말을 반복했다. 모두가 동등한 관계에서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면, 유토피아다.

민주주의는 대화의 조건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대화를 쉽게 생각하는 이들은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글로벌 시대 미국인처럼 자기 언어가 보편적이라고 믿는다. 남성 중심적인 인식과 용어는 ‘영어’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남성’ ‘백인’ ‘이성애자’들은 ‘여성’ ‘유색인’ ‘동성애자’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통념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남성들의 미투 운동에 대한 반감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목소리’에 대한 불안, 당황, 겁먹은 심정의 산물이 아닐까. 백래시? 반격하려면, 논리가 있어야 한다. 자기 논리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래된 관행과 IT의 익명성에 의존한다. 한국 남성들은 새로운 무지의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고, 남성의 심기에 민감한 미디어는 이들의 퇴행을 “반격”으로 과대평가하고 있다.

<정희진 |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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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는 축제이고 민주주의의 꽃이다. 선거시기에는 우리 삶의 미래에 대한 수많은 약속이 펼쳐진다. 또한 정책과 공약이란 꽃을 들고 나온 후보자들은 유권자들에게 구체적인 미래의 풍경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각 후보진영이 제시하는 가장 행복한 청사진을 보고, 마침내 투표를 하게 된다. 많은 시민들이 투표에 참여하고, 가장 많은 표를 획득한 후보는 자신의 정책과 공약을 잘 실현하여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 이런 동화 같은 순진한 선거는 없다. 현재의 선거는 온갖 첨단 선거공학, 정치공학이 동원되고, 심지어 기후와 투표장 교통 등 당선과 관련된 모든 정보들이 고려되는 복잡하고 치열한 싸움의 과정이 되어 있다. 또한 정당하고 긍정적인 방법의 승리가 어려우면 네거티브 전략과 더불어 불법에 대한 유혹을 받기도 한다. 선거와 무관한 후보자의 사생활 파헤치기부터 거짓정보와 중상모략에 의해 선거 자체가 막장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지지자들의 투표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만 된다면 무엇이든 물고 늘어지는 이 한판의 선거싸움은 최악의 경우 상대방을 저주하는 말싸움 대회처럼 되어버리기도 한다. 축제일 줄 알았던 선거가 네거티브로 인해 실망과 충격을 안겨준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가? 실제로 상대 후보의 집안 문제, 사적 취향 문제 등을 포함해 후보자의 정체성에 관한 네거티브 전략이 시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정치심리학의 답은 현재 논쟁 중이긴 하다. 하지만 럿거스대학의 리처드 라우 교수팀은 1990년대~2000년대 초까지 여러 선거에서 네거티브를 주전략으로 쓴 후보자들의 선거를 조사한 결과, 그들 대부분은 낙선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몇 지역 유권자와의 심층 인터뷰에서는 후보자의 부정적 정보를 알게 되어 심리적 충격을 받았으나, 그 이슈 때문에 투표할 후보를 바꾸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지과학적 측면에서 네거티브 이슈가 후보자들의 공약보다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하여, 네거티브 전략은 정책 선거에 가장 방해가 되는 요인이라고 했다. 더구나 그 전략 안에 심각한 불법이 포함되었다면, 선거 후의 정치질서가 교란되어 정치시스템 자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또 네거티브 전략이 선거전의 대부분을 차지할 경우 이를 관망하는 시민들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연구와 정치’라는 저널에서, 리엄 멀로이 등 저자들은 부정적 홍보에 노출된 시민들은 상대방 진영의 후보 및 지지자들에게 더 분노하였고, 선거과정에서 훨씬 높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이로 인해 지역사회의 혐오 범죄나 폭력, 집 안에서의 TV 및 기물 파손과 같은 공격적 행동이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후보자들은 선거전략을 왜 네거티브로 결정하거나 전환할까? 이 주제에 대한 연구는 부족하지만, 네바다대학의 데이비드 다모어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투표율에 영향을 미치거나, 어젠다를 빼앗긴 상황에서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지 못할 때, 자신이 당선되어야만 한다는 지나친 자기애나 집착, 전능적 환상 영향 탓이라고 했다. 미국 정치심리학자들은 2012년 선거에 이어 2016년 선거에서도 과거보다 네거티브 광고가 늘어나면서 공약 없는, 비방과 중상모략의 선거전략에 깊은 우려를 정치권에 표한 바 있다고 한다. 독일은 2016년 총선을 치르며 선거에 사용된 거짓 정보와 차별적인 발언의 심각성 때문에 2017년 일명 ‘가짜뉴스와 혐오발언 방지법’을 제정했고 엄청난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한다. 선거과정에서 오직 집권과 당선을 위해 자신의 품위를 버리고 상대 후보를 비방, 음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정치적 공해이고 유권자들에게는 심리적 학대다. 거기다 선거운동원들에 의해 소셜미디어로 온갖 유언비어가 퍼날라져 순간순간 불안과 짜증을 동시에 견뎌내야 하는 것도 고된 정서적 노동이다. 혹시 그조차도 일부 세력들의 전략일까? 집권을 위해 투표율이 낮아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목표는 정치의 희화화, 정치의 혐오화라고 하니까 말이다.

멀로이는 연구결과상 긍정 전략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고 단언한다. 정치로 국민을 치유하려면, 네거티브의 유혹을 이기고, 최대한 긍정적이고 구체적인 미래를 시민과 함께 의논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라고 한다.

<김현수 |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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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현 의정부지검 검사가 15일 문무일 검찰총장이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의 소환조사를 막으려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안 검사는 “춘천지검 수사팀이 지난해 12월 권 의원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했는데, 문 총장이 춘천지검장을 심하게 질책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강원랜드 채용비리 수사단도 “지난 1일 권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알리자 문 총장이 수사단 출범 당시의 공언과 달리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전문자문단을 구성해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문 총장은 지난 2월 춘천지검 수사가 각종 외압 의혹을 받자 독립된 수사단을 출범시키면서 수사 보고도 받지 않고, 수사지휘권도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대검 대변인은 “수사단의 요청으로 전문자문단의 법리검토 결정을 기다리기로 한 것이지, 지휘권 행사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문 총장은 “이견이 발생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강한 검찰에서 현직 검사와 수사단이 수뇌부의 실명을 거론하며 주장한 것을 보면, 단순한 이견 표출이라고 보기 어렵다.

권 의원은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다. 권 의원은 2013년 11월 자신의 비서관을 포함해 10명 이상을 채용하도록 강원랜드에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당 염동열 의원도 수십명 채용을 청탁한 혐의가 밝혀졌다. 그런데 염 의원은 이미 구속영장이 청구됐는데 권 의원만 자문단 심의에 부치라고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염 의원은 공개소환한 반면, 권 의원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날에 맞춰 비공개 소환했다. 혐의가 유사한 두 사람에 대한 검찰의 대접은 판이했다.

강원랜드 수사는 이전 김수남 검찰총장 때도 1년 이상 질질 끌다가 수사 외압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어 취임한 문 총장도 똑같은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이라면 검찰 신뢰가 훼손될 중대 사안이다.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좌절과 분노를 안겨준 충격적인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검찰의 존재 이유는 이런 거악을 척결하는 것이다. 이런 수사마저 ‘정치권력 눈치보기’로 왜곡된다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얘기하나 마나다. 수사단은 한 치 성역 없이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가려내야 한다.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도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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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몰카 범죄, 데이트폭력 등은 여성의 삶을 파괴하는 악성 범죄”라고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수사당국의 수사 관행이 조금 느슨하고, 단속하더라도 처벌이 강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조금 더 중대한 위법으로 다루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등에서 가정폭력을 다루는 사례를 들며 “우리도 대전환이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 발언은 최근 홍익대에서 발생한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유포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짐작한다.

홍대 사건은 피해자가 남성, 가해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례적 주목을 받았다. 경찰은 수사의뢰 8일 만에 가해자를 구속했다. 이후 ‘경찰이 다른 불법촬영·유포사건에는 왜 그토록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느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신속한 수사는 바람직하지만, 여성이 피해자일 때와는 태도가 다르다’는 게 불만의 초점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는 ‘여성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에 동의한 사람은 15일 오후 현재 34만여명에 이른다. 지난해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불법촬영으로 검거된 사람 중 98%가 남성이었다. 같은 기간 불법촬영 피해자 중 84%는 여성이었다. 문 대통령은 몰카 범죄 엄단을 지시하면서도 국민청원은 언급하지 않았다. 거론할 경우 불필요한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본다.

홍대 사건 수사가 신속했던 것을 두고 피해자가 남성이어서라고 주장하는 건 비약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경찰도 “이번 사건은 일반적인 불법촬영·유출과 달리 시간, 장소, 사람들이 특정돼 빠른 수사가 가능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왜 국민청원에 여성들이 폭발적 반응을 보였는지에 대해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권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성명을 통해 “홍대 사건의 가해자가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하는 동안, 우리가 지원하는 여성 피해자는 포르노 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며 “어째서 이제야 이례적인 일처리와 피해자 보호가 이뤄졌는지 질문을 던져야 할 지점”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은 문 대통령 발언을 계기로 성범죄 수사 관행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 최우선 가치는 피해자 보호이고, 그 다음은 신속한 수사다. 이참에 ‘몰카’라는 용어도 ‘불법촬영’으로 대체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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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 러시아 소설을 읽기가 참으로 난감했던 이유는 등장 인물의 이름 때문이다.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한 흑인 복서는 자신이 백인 농장주의 성을 딴 노예의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개명한다. 훗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복서로 선정된 그의 이름은 무하마드 알리다. 작고한 뮤지션 프린스는 한때 자신의 이름을 기호화된 심벌로 개명한 적이 있다. 부를 수는 없고 그릴 수만 있는 이름이었다.       

명사는 ‘쎄다’. 정말 강력하다. 평창 올림픽 기간 중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뉴스는 낙지와 오징어에 관한 것이었다. 명사를 반대로 쓴다는 것, 즉 북한의 낙지가 우리의 오징어고 우리의 낙지는 북한에서 오징어란 사실이다. 먼 훗날 어쩌면 남북 통일의 최후 과제는 낙지와 오징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겐세이, 기스, 오뎅…. 7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쓰이는 일본어들이 많다. 국민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명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듯 명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이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일 것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한국 현대사의 수많은 비극도 실은 명사에 대한 몰이해, 명사의 오용과 남용, 명사에 대한 왜곡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한가지 예로 빨갱이란 단어만 놓고봐도 그러하다. 한가지 더 예를 들어보자. 자유 민주주의. 이거 어쩔 거냐, 이 말이다.

한국정당사를 뒤적이면 러시아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머리가 아파온다. 해방 직후부터 우후죽순, 오로지 1946년 발포된 미군정법령(美軍政法令) 제55호에 근거, 당원 수가 3명만 모이면 정당이 성립되던 시기에서 1948년 48개의 정당들이 참가한 제헌국회의원 선거까지…. 오, 이런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알렉세이 표도로비치 카라마조프…를 봤나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보수’와 ‘진보’가 대체 무엇이냐, 언제 어느 때부터 생긴 이름이냐 이를 논하고자 함이 아니다.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과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의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봐야 별 시덥잖은 인물일 게 뻔하고, 어쨌거나 한 50년 우리가 습관처럼 보수와 진보라는 명사를 써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전히 보수와 진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살아갈 게 뻔하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저 두 개의 명사는 살아있을 것이다. 36년 전통의 겐세이와 오뎅보다 더 오래, 우리 입에 착착 붙었기 때문이다.          

내가 따지고자 하는 것은 이 중요한 두 개의 명사가 산이나 물같은 공적인 정의가 아니라 ‘자칭’이란 것이다. 그래서 네가 왜 보수며, 그래서 네가 왜 진보냐는 질문이다. 누가 너한테 보수란 이름을 허락했으며 누가 너에게 진보란 이름을 불러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운동회의 청군과 백군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하물며 스스로 핀 꽃이었더냐? 국민이 너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아도 막무가내로 다가와 50년 우겨서 핀 이런 꽃 같은 명사를 봤나…. 하지만 오늘도 내일도 당신은 보수요 진보요 설문조사를 받아야 하는, 참으로 지지 않는 ‘꽃 같은’ 명사이기 때문이다.

니콜라이 프세블로드비치 스타브로긴 같은 정치적 함의는 차치하고, 가장 쉽고 근원적인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자. 이른바 보수는 새로운 것을 적극 받아들이기보다는 재래의 풍습과 가치, 전통을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는 뜻과 자세를 의미한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지켜야 할 새로운 가치가 생겼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그것이다. 전환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 새로운 역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되어 버렸다. 지난 세월 주적으로 대립해 온 분단체제가 그간 어쩔 수 없이 지켜야 할 우리의 가치였다면, 이제 그것은 빠르게 소멸해가는 과거의 가치이자 세계관이다. 다시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고 지킬 것인가, 그 기로에 모두가 서 있다. 다가올 6월13일 지방선거는 어쩌면 최초로, 국민이 그대들의 이름을 다가가 불러 주는 날이 될 것이다.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인 이 새로운 가치를 ‘중히 여기어’ 유지하려는 국민들이… 지극히 보수적인 국민들이 진정으로 보수라는 이름을 선택하고 불러주는 날일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정신차려라 민주당. 이제 당신들이 보수다. 다가올 선거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실은 얼마나 보수적이고, 보수를 갈망해왔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이제 스스로가 보수임을 선언하면 좋겠다. 그래야 혼란이 없다. 어느 날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 캐시어스 클레이처럼, 새로운 가치를 중히 여기고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든든한 보수가 되어야 한다. 돌이켜보기 바란다. 언제 당신들이 리버럴했고 언제 당신들이 혁명적이었나를. 그러니 니콜라이 프세블로도브나 스타브로기나 같은 고민하지 말고 당당히 보수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를 나는 바란다. 무엇보다 아직도 진보라 여기며 스스로 퍼질러 앉은 그 널찍한 궁둥짝이 부담스럽다. 제발 자리 좀 옮겨주기 바란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데, 당신들 때문에 새 날개가 돋아날 자리가 없다 이 말이다. 그러니 정신차리고 제발 성큼, 견고한 보수로 자리 잡아라. 국민이 너의 이름을 불러줄 때 꽃보다 귀한 보수로 활짝 피어라. 정신차리고 당신들이 보수임을 자각하지 않으면 이 또한 영영 오기 힘든 마지막 기회일지 몰라 하는 얘기다. 지켜야 할 가치가 너무나 크고 중요하다. 새로운 보수의 시대를 열자. 꽃보다 보수다.

<박민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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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중국 내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사건의 재조사 여론이 커지고 있다. 종업원 일부가 JTBC 인터뷰를 통해 “전원이 자유의사로 탈북해 남한에 들어왔다”는 정부 설명을 뒤엎는 증언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여종업원 12명을 데리고 온 중국 저장성 북한 류경식당 지배인 허강일씨는 “2014년 말부터 국정원의 정보원이 돼 1년여간 각종 정보를 넘겨오다 들통날 위기에 처해 국정원 직원에게 귀순을 요청했다”며 “그런데 국정원이 ‘종업원까지 다 데리고 들어오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2016년 4월 중국 저장성 북한 식당에서 집단 탈북한 종업원 13명이 서울에 도착해 경기 시흥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이들의 기획탈북설 논란이 제기되자 통일부가 입국 경위 등을 재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제공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널 기다리신다. 무공훈장을 받고 국정원에서 같이 일하자’고도 했다고 주장했다. 인터뷰에 응한 4명의 여종업원은 “지배인이 며칠 전부터 숙소를 다른 데로 옮긴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며 “말레이시아 한국 대사관에 도착해서야 한국에 가는 것을 알았다”며 남한행은 물론 탈북 계획조차 몰랐다고 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여종업원들은 자유의사가 아니라 ‘약취·유인’을 당해 남한에 들어온 셈이다.

이 사건은 발표 당시부터 의문투성이였다. 탈북민의 제3국 경유 입국이 보통 한달 걸리는데 단 이틀 만에 입국한 것이나, 정부가 비공개 관행을 깨고 사진까지 제시하며 입국사실을 발표한 것을 두고 ‘총선용 기획 탈북’설이 제기됐다. 방송 인터뷰는 이런 의혹을 뒷받침해준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14일 “북한 여종업원의 집단 탈북을 국가정보원에서 기획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박근혜 정부의 이병호 국가정보원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 등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민변은 “선거 승리를 위해 종업원들과 가족들의 인권을 짓밟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은폐하고 방치한 불법행위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일부만 북한으로 돌아가면 남한에 남는 종업원들의 가족이 고초를 당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물론 그런 우려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사건을 묻어두는 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불법행위를 알고도 방치하는 셈이 된다. 정부는 먼저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종업원들의 거취는 그런 다음 지혜를 모아 해법을 모색하면 될 일이다. 북한 주민이라고 해서 원치 않는 선택을 강요당해선 안된다. 이 문제는 남북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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