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반가운 소식에 오히려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지난 4일 들려온 소식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날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을 직접 언급한 후 교육부가 ‘교복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이다.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언급하기 이전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학교 관계자들은 과연 이 문제를 몰랐을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을 둔 집이라면 고구마 수십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껴왔을 것이다.

특히 여고생들의 셔츠는 일상의 옷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진열을 위한 마네킹용 같다. 활동하는 사람이 입을 것이 못된다. 가슴선을 강조하고 잘록한 허리선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옷은 편히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다. 꽉 조인 저 옷을 입고 버스 손잡이는 어떻게 잡고, 수업시간에 질문이 있으면 팔을 어떻게 올리지? 이런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동구매한 치마의 경우는 통이 너무 좁고 길이가 짧아 심지어 학교 주선으로 수선집에서 무료로 길이를 늘였을 정도다. 바지를 입고 싶은 여학생이 있다면? 대부분 여학생용 바지 제작을 하지 않는다. 남학생용 바지를 입으라고 한다. 교복 상의를 다림질하다가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에 오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도한 디자인 탓에 등판조차도 평면이 아니어서 아이가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아예 다림질을 포기했다.

그간 사정을 몰랐던 이들이라면 ‘나 같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왜들 참았지’ 하며 답답해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수년간 학교에, 교육청에, 교복 제작업체에 항의하고 건의해왔다. 나 역시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몇몇 학교에서 개선의 움직임이 있지만 대개는 그대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시정을 지시했겠나.

그런데 이 일이 대통령이 나서야만 해결될 일이었던가. 소비자가 불편하면 의견을 반영해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굳이 최근의 ‘탈코르셋’(화장, 몸매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자는 것) 운동까지 갖다 붙일 일이 아니다. 학교와 관계 당국이 뭉개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인권은 무시돼왔다.

대통령의 교복 지시사항을 접하며 2005년 썼던 기사가 떠올랐다. 당시 소아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지훈이(8)의 사연을 소개한 기사였다. 지훈이는 근육 경직과 경련의 고통을 덜기 위해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미용성형용으로 분류돼 있는 보톡스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한 병에 50만~60만원으로 워낙 고가인 탓에 지훈이처럼 생활이 어려운 집의 아이들은 치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생계를 팽개치고 싸울 시간도 물적 능력도 없어 자신들만 탓할 뿐이었다. 지훈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문제점을 고발한 기사였다.

다행히 기사를 접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날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에 ‘고통받는 어린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취재 당시까지 ‘(소아뇌성마비용 보톡스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던 보건복지부는 즉각 검토에 들어갔고 3개월 만인 그해 9월부터 소아뇌성마비 치료에 한해 건강보험 적용이 시행됐다. 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고 더 안타까웠다. 기사가 나가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즉각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온당히 치료받아야 할 아이들의 고통과 부모들의 슬픔은 한동안 더 이어졌을 것이다.

어리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높은 곳에 닿고 멀리까지 울려 퍼지기 힘들다. 주변의 침묵과 때론 반대의 아우성으로 잦아들기 십상이다. 지금은 인터넷이란 수평적 공간을 통해 발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교복 청원을 비롯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활성화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황당한 청원 사례들도 많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는다. 상식적인 통로가 막혀 있다는 얘기다.

건강한 나무는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더라도 ‘세상 부드러운’ 뿌리를 갖고 있다. 보드랍고 열린 그 끝으로 흙 속의 수분과 영양분, 바람을 걸러내고 통과시킨다. 우리 사회의 뿌리는 보드랍고 열려 있는가.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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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서 궤멸적 참패를 당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자유한국당은 지리멸렬 속에 계파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소속 의원 모두 책임을 공유하며 처절한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의원총회만 열렸다 하면 친박·비박으로 나뉘어 네탓 공방만 벌이고 있으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다. 지난 12일 의총에선 친박계 의원들이 김성태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꺼내자, 김 원내대표가 친박계 의원들의 불미스러운 과거를 들춰내는 것으로 맞받아쳤다. 알량한 당권을 쥐겠다고 서로 “네가 나가라”며 죽기 살기로 진흙탕싸움을 벌이는 꼴이 목불인견의 끝을 보는 것 같다. 이런 당에 지난 9년간 나라를 맡겨놓았다고 생각하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김성태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국민에게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당은 그간 온갖 외부 인사들에게 비상대책위원장을 퇴짜 맞은 끝에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 박찬종 변호사, 이용구 당무감사위원장, 전희경·김성원 의원 등 5명의 비대위원장 후보를 선정했다. 이 중 누가 비대위원장을 맡는다고 한들 뼈를 깎는 진정한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한국당 내에서도 별로 없을 것이다. 당 지도부는 16일 의총에서 최종 의견수렴을 한 뒤 17일 전국위에서 비대위를 발족시킬 계획이지만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또 한 번의 난장판이 벌어질 수도 있다.

선거 참패 직후 한국당 의원들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현수막 아래 무릎을 꿇는 ‘사죄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그 이후 한국당은 당사를 여의도에서 영등포로 옮긴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책임을 느낀다면 가진 것을 다 내려놓고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행동으로 보여줘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 혁신과 개혁은 인적 쇄신과 세대교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무늬만 바꾼다고 한국당과 보수가 재건될 수는 없다. 그것을 모른다면 바보이고, 알고도 못한다면 폭삭 망하는 길밖에 다른 수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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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기소된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의 1심을 맡은 이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부장판사는 선고를 내리는 자리에서 “판결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경향신문의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이 ‘국정농단’ 재판…부적절 지적> 보도(7월9일자 4면)를 언급하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전산정보관리국장으로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해 법원 내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를 올린 당사자다. 전산정보관리국은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사건 수임 내역 조회에 관여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사법농단’ 의혹과 연루된 이 부장판사가 ‘국정농단’ 사건을 재판 중이라는 사실에 대해 국민들이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판사는 재판 발언에서 “(전산정보관리국이 하 전 회장 수임 내역을 조회하려 했다는) 문건 내용은 저도 정확히 모른다”면서 “이번 재판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지금 법원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도가 국정원 특활비 뇌물사건에 무죄 판결이 선고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고 오해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누구나 자신을 해명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의혹을 법정에서 반박한 것은 공적인 자리를 사적으로 이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법원행정처가 이정현 의원(무소속)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를 청탁했던 정호성 전 비서관 등 ‘국정농단’ 의혹 피고인들의 재판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가 특활비 무죄 판결에 대한 불만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기사가 ‘다른 뜻’을 가지고 작성된 것 아니냐고 호도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명의로 올린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대상자가 될 수도 있는 이 부장판사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법정이란 장소를 이용한 것은,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지금 사법부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희곤 | 사회부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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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대선에 이어 2008년 총선에서 참패를 당해 존망의 기로에 처했던 통합민주당 의원들이 영국 보수당을 찾아갔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밀려 위기에 빠졌던 보수당이 혁신과 노선 전환을 통해 집권의 길을 열어가던 시점이다. 민주당은 보수당의 부활을 가져온 ‘개혁 노선’에서 잃어버린 길을 찾고자 할 만큼 절박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이면서 현재도 집권당이지만 20세기에는 100년 중 68년을 집권했던 영국 보수당의 힘은 “보수주의의 커다란 원칙을 견지하되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 과감한 개혁을 주도함으로써 만들어진 것”(박지향 <정당의 생명력>)이다. 실제 1997년 총선에서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에 참패한 뒤 실권, 역사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보수당은 가히 혁명적 노선 전환을 했다. 데이비드 캐머런의 보수당이 취한 정책과 노선은, 기존 보수당이면 생각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것들이다. 양극화 해소, 사회적 약자에 중점이 두어졌고 세금과 금융 정책은 노동당보다 더 왼쪽이었다. ‘보수의 자살’로 비치기에 족했지만, 이렇게 ‘진보적인 보수’ ‘진짜보수 같지 않은 보수’로 탈바꿈한 보수당은 2010년 13년 만에 집권에 성공했다.

6·1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참패한 자유한국당이 본격 노선 투쟁에 진입했다. “수구적 보수, 냉전적 보수 다 버리고 합리성에 기반한 새로운 이념적 지표를 세우자”(김성태 원내대표)는 포문에, “보수이념 해체, 수구냉전 반성 운운은 보수의 자살이자 자해”(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라는 반격이 자욱하다.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춰 ‘정의로운 보수’를 주창하는 것과, 반공과 재벌 중심의 성장정책에 기반한 우익보수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자는 주장에는 좁혀질 수 없는 간극이 자리한다. 노선 차이가 이런 정도면 갈라서는 도리밖에 없는데, 그럴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거창하게 노선 투쟁으로 포장하지만, 실은 ‘친박’과 ‘비박’의 생존 투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궁금하다. 분명 보수당인 한국당은 탄핵당했는데, 아직도 ‘보수의 자살’을 운위할 만큼 지켜야 할 무엇이 남은 것일까. 혹시 아스팔트우파에 기댄 ‘가짜보수’의 기득권 아닐까.

<양권모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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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2, 그 이상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다만’이라는 부사에 대한 설명이다.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자주 쓰는 단어도 아니고, 뜻을 보니까 무슨 말인지 더 헷갈리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이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다만’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는 두 문장을 이어주는 데 놀라운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강씨(32·남)는 올해 1월7일 오전 2시20분께 제주 시내 한 마트 맞은편 도로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피해자 A씨(58·여)에게 다가가 갑자기 욕설을 하며 주먹을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피해자의 옷과 머리채를 잡아 길바닥에 넘어뜨린 후에도 얼굴과 몸을 수차례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차 코뼈를 부러뜨린 것으로 조사됐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강씨는 피해자인 A씨와 전혀 알지 못하는 관계였다. 그런 강씨가 환갑에 가까운 여성에게 막무가내로 폭력을 저질러 코뼈를 부러뜨린 것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강씨에게는 비슷한 범죄 전력까지 있다. 이런 사람이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건 그 자체로 사회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으니, 엄격한 처벌이 필요할 터였다. 송 판사 역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징역 3년에 처한다’ 정도는 돼야 문장 흐름이 자연스러울 텐데, 송 판사가 내린 판결은 놀랍게도 집행유예였다. 송 판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며,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이같이 형을 정했다.” 그러니까 ‘다만’은 롤러코스터를 방불케 하는 아찔한 반전을 가능케 하는 단어였다. 제주도에 가면 마트 맞은편에서 택시를 기다리지 말자.

또 다른 사례. 대구의 시내버스에 탄 A군(18·남)은 옆에 선 B씨(62·여)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B씨는 해당 사건으로 얼굴, 머리, 어깨 등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합병증으로 끝내 숨졌다. 당시 폭행을 만류하던 C씨(22)도 A군의 구타로 전치 2주 진단을 받았는데, 재판부의 판결은 이번에도 집행유예였다. “죄질이 나쁜 데다 유족이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여 피고인의 죄책이 절대 가볍지 않다. 다만 아직 10대에 불과한 피고인이 전과가 없고 초범인 점, 비기질성 정신병적 장애상태에서 범행한 점, 유족이나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고려했다.” 대구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분들은 가급적이면 숨을 부드럽게 쉬자. A군이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사법부를 ‘다만’에만 의존하는 집단으로 보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씨(39·남)의 경우를 보자. 그는 지난해 7월, 집에서 여자친구 ㄱ씨(47)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ㄱ씨는 이씨에게 주먹으로 얼굴 등을 수차례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숨졌다. 재판부는 고심했을 것이다. 사람을 죽인 범죄에 집행유예를 선고하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그래서 재판부는 우리에게 친숙한 ‘그러나’를 등장시킨다.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상반될 때 쓰는 접속 부사’인 ‘그러나’는 전혀 이어질 수 없을 것 같은 문장을 부드럽게 연결시켜 준다. “피해자의 고통, 유족들의 처참한 심정, 여자친구를 가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을 고려하면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 그러나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긴 사실을 확인하고자 다그치는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인다. … 고심 끝에 피고인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돌아갈 기회를 주기로 했다.” 여기서 ‘그러나’를 쓰니까 집행유예란 판결이 좀 더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전처럼 ‘다만’을 썼다면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다음 사례에도 ‘그러나’가 등장한다. 최씨(66·남)는 잠든 아내의 머리를 둔기로 수차례 내리쳐 살해하려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유인즉슨 자신의 외도 사실을 안 아내가 밥을 차려주지 않았기 때문인데, 물론 이 판결에도 집행유예가 나왔다. “피고인이 자신을 피해 도망치는 아내를 쫓아가 머리를 계속 때리는 등 범행 방법이 무자비하고, 이 때문에 다친 피해자가 피를 많이 흘려 사망할 위험도 컸다. 그러나 범행이 다행히 미수에 그쳤고, 피해자가 입은 상처도 치료돼 현재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

여기서 ‘그러나’는 피해자의 빠른 회복력과 더불어 이 판결을 이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지금도 사법부는 많은 범죄자들을 사회로 돌려보내고 있는 중이다. 여기엔 ‘다만’과 ‘그러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글쓰기 책을 냈던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다만’과 ‘그러나’의 올바른 용법을 가르쳐 드린다. “사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다만 그 국민이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러나 사법부는 여전히 자신들이 국민들을 위한다고 믿는다. 국민 여론과 배치된 판결이 계속 나오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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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사법부

국가에서 세금이 중요한 까닭은 존립 기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국방이 뼈라면 세금은 피와 같다. 피가 부족하면 국가를 지탱할 수 없다. 이 중요한 피는 어디서 수혈해야 하나.

민주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에는 민초들만이 이를 담당했다. 이들의 부담이 너무 커서 혁명이 일어났다.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1776년 미국 독립운동,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등이 모두 세금 때문에 발생했다. 이러한 시민혁명의 결과 세금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걷자고 약속했다. 이것이 근대 법치주의의 역사다.

현대국가의 세금은 법치주의 정신에 터를 잡아 납세자의 소득, 소비, 재산에 기초하여 ‘효율(效率)’과 ‘공평(公平)’이라는 잣대 아래 그들의 담세력(擔稅力·ability to pay)에 따라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효율의 다른 말은 세금 인상이 미치는 경제적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보면 정부의 7·6 종합부동산세 개편 방안 중 1주택자에 대해 가급적 세금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노력은 돋보인다.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는 1주택 보유자에 대한 과중한 종합부동산세 부담 시도는 자칫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추구권이나 거주이전의 자유를 하위법인 세법이 부당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평이란 담세력이 같은 사람은 같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미이면서 또한 재산이 많은 자는 적은 자보다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하여 3주택자에 대해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권고안보다 더 강화한 점은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종합부동산세법의 존재 목적 중 하나가 부동산 투기 방지다. 그런데 이번 개편 방안은 부동산 투기 근절이라는 측면에서 미흡한 측면이 있다. 투기세력을 응징하기 위해서는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고 이들이 부동산시장에서 철수할 때 부담하는 양도소득세 인하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 대신 장래 투기자들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강화된 종합부동산세라는 높은 진입장벽을 둘러야 한다.

한편, 대통령 직속 재정개혁특별위원회와 기획재정부의 업무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같은 일을 두 곳에서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국민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 전자는 국가가 제공할 복지수준의 정도, 국가의 재정건전성 유지 방안, 소득불균형 해소 방안 등 거대 담론을 제시하는 등 방향성을 제시하고 공론화위원회 등을 통해서 확정하면 될 일이다. 그 뒤 세율 인상 등 세법과 관련된 사항은 기획재정부가 책임지고 하며 이를 국회에 제출해서 국민적 동의를 얻으면 된다. 앞으로 두 기관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서 효율적이고 원활한 정책운영이 되었으면 한다.

<안창남 | 강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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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세금

국정을 살피시느라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남북 문제 해결과 적폐청산 등 개혁적인 정책에 힘입어 집권 여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선거 이후 드러난 최근의 정부정책 방향은 많은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홍장표 경제수석의 경질, 규제프리존법이나 은산분리 완화 등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 재추진, 고용지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 부동산 보유세 제도의 퇴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 방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인도 면담 등 그 증거는 도처에 있습니다. 이런 조짐은 지방선거 이전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최저임금법 졸속 통과가 그것입니다. 노동자의 노동서비스에 대한 보상 중 어떤 것을 기본급으로 하고 어떤 것을 별도의 수당으로 처리할 것인가는 기본적으로 노사가 결정하면 됩니다. 복잡한 임금체계를 간소화해야 한다는 정책목표 때문에 일부 수당을 기본급에 포함시키는 것을 수긍하더라도, 그것이 최저임금의 실질적 감소를 목표로 하지 않는 한, 감소되는 최소임금만큼은 보전해 주었어야 합니다.

혁신경제라는 이름하에 재추진되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도 큰 문제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은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대표적인 금융산업정책입니다. 자본적정성 규제를 완화시켜 주어서 산업정책이 감독정책을 압도한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중금리 대출시장 개척’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지금의 성과는 전통적인 은행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정보통신기업이 은행을 경영해야 한다고 하지만, 금융행정혁신위원회는 이미 지난해 12월에 최종보고서를 통해 “인터넷 전문은행과 핀테크를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고용증대 효과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노동절약적인 ‘비대면 방식의 영업’을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 은행이 어떻게 고용증대의 핵심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혹자는 은산분리는 2002년 은행법 개정 때 도입된 낡은 규제라고 폄하하면서, 이것을 완화하는 것이 ‘개혁’이고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발목잡기’라고 치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참여정부 금융감독정책의 대표적 실패사례인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는 정확히 은산분리 규제를 위반했던 위법행위인데, 그 결과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사건에서 정부가 패소할 경우 국민세금이 또 나가야 합니다. 왜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시려 합니까.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개인정보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헌법적 권리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추진해야 합니다. 물론 복잡한 중복규제의 그물을 잘 정비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측면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비식별 개인정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할 당연한 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중복규제의 문제를 별론으로 할 경우,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의 강도는 유럽의 규제와 엇비슷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입니다. 다만 유럽은 지난 5월부터 종전보다 강화된 개인정보보호 규제(GDPR)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오히려 개인정보보호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국제규제의 추세와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정보통신산업의 부흥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으나, 최근 정보기술의 발전은 개인정보의 보호와 활용을 상충관계로 인식하는 기존의 시각을 뛰어넘어 양자를 모두 충족하는 정보처리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암호화된 상태에서도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하는 동형암호 기술은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첨단을 걷는 분야입니다. 섣부른 규제완화는 이런 암호 기술의 발전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는 점을 왜 외면하십니까.

이번 정부는 여러 가지 점에서 성공할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참여정부라는 ‘한 번의 값진 실패’를 경험한 적이 있고, ‘10년 보수정권의 실패’라는 또 다른 반면교사의 혜택도 받고 있습니다. 일부 새로운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청와대에 포진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께서 보이는 모습은 이 정부의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국민을 믿지 않고, 관료와 재벌을 믿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반대의 목소리를 가까이하십시오. 그 속에 더 많은 진실이 있습니다. 정당한 반대의 목소리를 권력으로 내치는 자를 멀리하십시오. 그것은 지도자의 길이 아니라 독재자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국민을 믿고 앞으로 가십시오. 국민의 염원만이 바른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정당성을 주기 때문입니다. 늘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전성인 | 홍익대 교수·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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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0일 탄핵정국 때 국군 기무사령부가 위수령과 계엄 검토 문건을 작성하고 세월호 유족을 사찰한 데 대해 독립수사단을 꾸려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하라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인도 국빈방문 중 전날 밤 국내에 있는 청와대 참모진의 회의 결과를 보고받고 이같이 지시했다고 김의겸 대변인이 발표했다. 군 수사를 위해 독립수사단이 구성되는 것은 창군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1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국군기무사령부의 계엄령 검토 문건과 세월호 유족 사찰 의혹 등에 대한 독립수사단 구성을 촉구한 문재인 대통령 특별지시 관련 입장을 밝히고 있다. 권도현 기자

문 대통령은 비육군, 비기무사 출신 군 검찰관들로 수사단을 구성하고 국방부 장관이 수사 지휘를 하지 않도록 했다. 그만큼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은 긴급지시 배경으로 “현 기무사령관이 계엄령 검토 문건을 보고한 이후에도 수사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이 사건을 보고받고도 수사할 사안이 아니라며 넉 달을 그냥 보낸 국방부의 개혁 의지를 의심한 것이다. 국방부와 군 상층부가 연루됐을 가능성도 고려해 독립적인 수사단의 설치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드러난 기무사의 행태는 문민통제의 원칙을 따르는 민주주의 체제의 군대 모습이 아니다. 우선 세계가 경탄해 마지않은 평화시위가 폭동으로 변질될 것으로 예상하고 계엄령 발동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것 자체가 그렇다. 세월호 유족 등 민간인도 불법적으로 사찰했다. 시민의 군대를 자임하면서 뒤로는 군사독재 시절의 군대나 할 법한 일을 자행한 것이다. 명백한 반헌법 행위로 단죄가 불가피하다. 군은 그동안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해 달라거나, 안보 전문집단으로서의 능력을 믿어 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군은 자정 능력은 물론 개혁의 진정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거꾸로 시민을 옥죄려 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이런 문제와 관련된 군인사는 전·현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히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 특히 계엄 검토 문건을 작성한 기무사령부 관계자들과 당시 군 수뇌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번 문건을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검토한 것일 뿐이라며 되레 문건 유출 과정의 불법성을 수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구세력은 또한 과거 방식대로 안보역량 약화나 이적 행위 운운하며 수사를 물타기하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민주주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그 어떤 존재, 어떤 집단도 이런 비논리적 주장으로 군의 반헌법적, 반민주적 행태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군이 진정 시민의 군대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스스로 뼈를 깎는 개혁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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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일 이어진 ‘국회 부재’ 상태를 가까스로 벗어났다. 여야가 어제 원구성에 합의함에 따라 20대 후반기 국회가 늦게나마 출범하게 됐다. 마지막 쟁점으로 남아 있던 법제사법위원회 문제를, 법사위의 월권적 관행을 일부 수술하는 대신 법사위원장은 자유한국당 몫으로 정리함으로써 타결을 이뤄냈다. 법사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법안마저 체계자구 심사를 무기 삼아 무기한 계류시키는 등 정쟁에 악용되어 왔다는 점에서 법사위 제도 개선을 하기로 한 건 평가할 만하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한국당 등 야당의 리더십 갈등으로 여야 협상이 늦어진 데다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벌이느라 국회는 원구성조차 못한 채 허송세월했다. 국회가 7월에야 원구성을 한 것은 2002년 16대 후반기 국회 이후 16년 만이다. 그나마 국회의장 공백 속에서 70돌 제헌절 행사를 치르는 낯 뜨거운 장면은 피하게 돼 다행이다.

올 들어 국회는 공전과 개점휴업 상태를 반복하고, 국회 원구성조차 늦어지면서 입법을 비롯해 각종 현안들이 적체되어 있다. 당장 경찰청장과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기다리고 있다. 상가임대차보호법과 미세먼지특별법, ‘미투’ 관련법, 규제개혁 관련법 등 민생과 경제에 직결된 법안들에 먼지만 쌓이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관련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 부동산 보유세 개편안 등 개혁 안건들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회 차원의 대응도 시급하다.

모처럼 타협을 통해 원구성에 합의, 후반기 국회가 출범하게 된 만큼 이제는 민생 법안 처리와 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협치의 가치를 살려야 한다. 20대 국회는 어느 한 정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는 구조에서, 국회선진화법이 유효한 이상 여든 야든 단독으로 쟁점 법안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정 당을 고립시키고 숫자로 밀어붙이려는 유혹을 떨쳐야 한다. 지리멸렬한 야당이지만 협치의 대상으로 삼아야 개혁 입법의 동력을 살릴 수 있다. 야당은 정부·여당의 정책이나 법안에는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 보는 습속을 버려야 한다. 반대와 태업으로 일관한 야당에 대한 민심의 분노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섭게 확인된 바 있다. 으레 원구성을 이루고 국회가 출범할 때면 다짐하는 ‘일하는 국회’ ‘민생 국회’ ‘개혁 국회’가 이번만은 빈말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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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수습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단체로 부서원 지인이 운영하던 술집에 갔다. 그 부서원이 술집 주인에게 부서장부터 인사를 시키려던 찰나 주인이 대뜸 나를 보며 말했다. “부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마가 훤하게 까진’ 노안은 기자 생활에 도움 될 때가 많았다. 여러 취재원이 ‘연차가 꽤 있는’ 기자가 직접 현장에 취재하러 온 줄 알았다. 이들은 나중 내 나이를 듣곤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취재 목적은 이룬 뒤였다. 지금은 차장인데 현장에 나가면 “국장님, 어서 오세요” 인사를 듣곤 한다.

‘노안’에 얽힌 일을 떠올린 건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호밀밭)에 나온 이브 몽탕의 동갑내기 아내 시몬 시뇨레의 일화 때문이다. “어느 날 보니 나는 늙어가는 것이고, 그 사람(몽탕)은 성숙해가는 것이더라고요. (…) 남자의 주름살은 자랑할 만한 연륜이지만 여자의 주름살은 그냥 추한 거죠.”

미투의 시대 남자의 주름살은 연륜을 나타내는 표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의 주름살이 혐오나 교정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여자의 경우는 다르다.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인 ‘노화’를 지연시켜야 하는 부담을 더 크게 느낀다. 사회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잣대를 여자에게 더 강하게 들이댄다.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을 찬양하면 다른 한쪽을 혐오하게 된다. 광고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와 이벤트가 미추 판별에 개입한다.

미스코리아는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대표 이벤트다. 1주일 전 미스코리아조직위에서 개최 안내 e메일을 보냈다. 미술 담당이라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줄 알고 보냈나? 외모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터라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홈페이지는 비키니 사진으로 도배됐다. 후보자 32명의 키와 몸무게가 일일이 나왔다. ‘후보자 신체 정보 실측값 변경’. 키, 몸무게를 본인 기재에서 ‘실제 측정값’으로 바꾼다는 공지다. 건축물에나 쓰는 ‘실측’이란 말이 이 대회의 은폐된 본질을 보여준다.

“화장품 광고는 타고난 자신의 외모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며 자기들의 화장품을 써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사게르)고 선전한다. 구원의 문구는 때로 도를 넘는다. ‘김 비서는 왜 그렇게 예쁠까. 부회장님 키스를 부르는 메이크업 시크릿’ ‘부회장님 시선을 강탈하는 출근광채 시크릿’. 시세이도코리아의 광고 문구다. tvN 드라마 <김 비서가 왜 그럴까>의 맥락을 끌어온 광고라지만, 왜 비서가 ‘시선 강탈’을 해야 하는지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 성역할과 성·직업 차별 관념이 든 광고가 탈코르셋 운동 와중에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이 문제에 둔감하다.

미디어와 사회가 조장한 ‘아름다움’은 ‘미추’를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로 만든다. 고든 파크스는 1947년 미국 뉴욕 할렘에서 심리학자 케네스 클락이 흑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형 테스트’ 장면을 촬영했다. 사진 속 어린이는 흑백의 아기 인형 중 백인 인형을 가리킨다. ‘인형 테스트’에서 대다수 흑인 어린이들은 하얀 인형에 “좋아요”라며 긍정 반응하며 선택했고, 검은 인형은 “나빠요”라고 부정 반응하며 거부했다. 키리 데이비스의 2005년 다큐멘터리에서도 흑인 어린이들은 백인 인형을 선호한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검은 피부 때문에 자신을 추하다고 여겼어요.” 결국 ‘성소수자인 흑인 장애인 여성’이 혐오 희생의 정점에 서게 된다.

몸은 존재다. 성별, 장애, 인종, 성정체성, 몸과 외모 같은 ‘타고난 있음’은 미추 판별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당장은 그 존재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며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차별과 혐오 철폐의 시작일 수 있다. ‘아름다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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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출신의 정치학자 존 킨은 최근 우리말로도 번역된 대작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양현수 옮김, 교양인)에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겸손한 자들의, 겸손한 자들에 의한, 겸손한 자들을 위한 통치”라고 풀이한다. 그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통상적으로 이해되는 ‘대의 민주주의’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파수꾼 민주주의’라고 규정하는데, 이것은 무엇보다도 권력을 가진 자들에 대한 공적 감시와 통제에서 성립한다. 그래서 단지 권력의 오만함을 경계하고 타인에 대한 지배의 야망을 멀리할 줄 아는 겸손한 사람들만이 민주주의를 누리고 꾸려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큰 도약을 가져온 촛불혁명이 왜 문재인 대통령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를 향한 국민들의 신뢰가 왜 식을 줄 모르는지를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문 대통령만큼 ‘겸손의 정치’를 모범적으로 실천한 지도자가 또 있을까? 우리는 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예상을 뛰어넘은 민주당의 압승을 보고 문 대통령이 ‘등골이 오싹해지는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을 때, 그 말은 결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그런 심정 토로는 지난 선거의 가장 빛나는 의미가 오만한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냉엄한 심판이었음을 꿰뚫어 본 겸손한 지도자의 너무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 게다.

모든 권력은 적절한 감시와 견제가 없으면 언제든 오만해질 수 있고, 오만은 반드시 응징되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 같은 겸손한 지도자가 정점에 있는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권력도 예외일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이 점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느꼈으리라. 바로 그래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지방정부에 대한 특별감찰을 계획하고 나섰을 테다. 청와대가 나서서라도 민주당이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지방 권력에 긴장감과 절제를 주문하려고 말이다. 겸손함에 대한 단순한 호소만으로는 민주당 권력이 오만의 유혹에서 스스로를 지켜내기 힘들 것임은 너무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별감찰 정도로 충분할까? 결코 그러지 못하리라는 점은 역시 문 대통령부터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민주당은 TK 지역을 제외한 전국에서 압도적인 집권당이다. 호남 지역에서는 오랜 집권 탓에, 부·울·경 지역에서는 새롭게 민주당 쪽으로 넘어온 토호 세력 중심의 기층 조직들 때문에, 민주당의 지역 정치는 언제든 관성과 오만과 부패의 늪에 빠질 우려가 크다. 우리 주권자들은 지역 의회에서 정당정치 수준의 감시와 견제가 구조적으로 작동하기 힘들게 민주당에 압도적인 의석을 주었다.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최근 불거진 국회의 특활비 문제를 보면 여야 정당들끼리의 상호 감시와 견제도 허울로만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과연 무슨 수로 오만의 늪에 빠지는 걸 피할 수 있을까?

정당정치 차원에서만 해법을 찾지는 마라. 우회로, 아니 오늘날의 파수꾼 민주주의 시대에 맞는 유일한 정답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상설화하고 구조화하며, 일상적인 시민의 참여와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더 많은 공간을 마련하는 데 말이다. 말하자면 더 많은 ‘참여연대’를 민주당이 앞장서 불러내고 장려해야 한다. 상설화된 공청회나 협의회 같은 것은 물론이고, 시민참여 예산제, 시민 발안, 시민 소환, 옴부즈맨 제도 등 실천하고 실험해볼 만한 많은 방안들이 있다.

사실 이런 정당정치와 시민정치의 ‘협주’에 대한 필요는 지역정치 차원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한 협주는 민주주의의 세계적 모범을 보여준 촛불혁명을 이끈 원동력으로서, 우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한다. 우리의 역사적 경험이 보여준 바, 시민정치는 정당정치의 안티테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민정치의 에너지야말로 정당정치의 가장 확실한 자양분이었다. 시민정치는 정당정치를 지지하면서도 감시와 견제에 나서고, 정당정치는 스스로에게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시민정치를 더 강화하고 형성하도록 돕는 바로 이런 긴장적 상호강화야말로 우리 촛불혁명이 보여준 새로운 민주주의의 정수였다.

물론 두 차원의 정치는 서로 다른 문법에 따라 작동한다. 시민정치는 시민의 생활세계가 요구하는 인권, 평등, 공생, 삶의 인간적 질 같은 근본적인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반면, 정당정치는 국정운영을 겨냥한 안정, 번영, 법치, 갈등의 해소 같은 실질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두 문법은 그저 모순하고 대립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실천적인 역할 분담을 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조율되어야 한다. 겸손의 정치는 단지 이렇게만 완성될 수 있다.

<장은주 | 와이즈유(영산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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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일 뉴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2공장 준공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만난 것은 물론 삼성그룹 행사에 참석한 것도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 만남은 문 대통령이 전략시장인 인도를 국빈방문하는 와중에 현지에 진출한 삼성이 행사를 열면서 이뤄졌다.

대통령이 경제의 핵심 주체 중 하나인 기업인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답보상태인 일자리 확충과 소득격차 해소, 미·중 무역전쟁의 후폭풍 등 한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것도 절실한 시점이다. 또한 정부가 대기업과의 거리 좁히기에 나서는 것도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중국 현대자동차 공장 방문 때 정의선 부회장의 안내를 받았고, 올 2월 한화큐셀 방문 때는 김승연 회장을 만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중순 청와대에서 열린 정책기조점검회의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기업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자주 소통하고 기업 애로를 청취해 해소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도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뉴델리 인근 노이다 공단에서 열린 삼성전자 신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이재용 부회장 등과 함께 테이프 커팅에 앞서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이 부회장, 강경화 외교·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문 대통령, 모디 총리. 연합뉴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만남이 정부의 정체성이나 경제정책 기본방향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번 만남이 경제정책 변화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가 집권 2년차를 맞아 대기업 관련 정책 기조를 바꾸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더군다나 최근 청와대가 정통 관료 출신인 윤종원씨를 경제수석에, 정무적 감각이 높은 정태호씨를 일자리 수석에 앉히면서 소득주도 성장 기조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 터다.

특히 지금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혐의로 2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이 부회장이 대법원 최종심을 앞두고 있다. 검찰의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공작 수사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번 만남이 자칫 대법원과 검찰에 잘못된 신호를 줘서는 안된다.

정부는 대기업을 적으로 봐서도 안되지만 대기업에 의존하려는 유혹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한국 경제에서 대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태 등에서 불거진 ‘갑질’ 논란 등 재벌의 폐해가 무시될 수는 없다.

노무현 정부가 삼성의 영향력을 끊지 못한 것이 경제개혁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라는 해석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지난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시작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간 ‘독대’에서 시작됐다는 점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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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원내대표는 9일 후반기 국회 원구성을 위한 막판 협상을 벌였지만 또다시 합의에 실패했다. 20대 국회 전반기가 종료된 5월30일부터 국회의장도 없고 상임위도 구성되지 않은 입법부 공백 사태는 벌써 40일을 넘기게 됐다. 이 바람에 시급한 민생·경제법안은 물론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조 논의를 뒷받침할 국회 차원의 대응은 올스톱이다. 경찰청장과 대법관 3명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부지하세월이다. 여야 간 협상이 결렬되는 주원인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법사위원장을 서로 차지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효율적인 개혁입법을 위해 여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한국당은 일당 독주를 막기 위해 법사위를 사수해야겠다는 입장이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안의 체계와 형식, 자구(字句)에 관한 심사를 맡고 있다. 소관 상임위 중심으로 심사된 법률안이 타 상임위 법률과 내용상 충돌하거나 조문 간의 모순 또는 부조화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법안 형식에 관한 검토가 아니라 실질적 내용까지 좌우하거나, 상임위 위에 상전처럼 버티고 앉아 국회 의사결정 과정을 왜곡시킨다는 갑질, 월권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마치 양원제 국가에서 하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상원에서 수정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다. 실제 모든 법안은 법사위를 거쳐야 본회의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여야 이견이 없는 무쟁점 법안마저도 다른 법안과 연계시켜 정치적으로 활용했던 일이 다반사였다.

국회법상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 규정은 1951년 제2대 국회 당시 법률전문가가 드물었던 상황에서 만들어진 게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법사위 기능을 뜯어 고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때가 됐다. 법사위가 갖고 있는 타 상임위 처리 법안에 대한 심의를 국회의장 직속의 입법지원처를 신설해 맡긴다든지, 쟁점이 없는 법안은 우선 처리하는 등의 방법은 생산성 있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생각해볼 만하다. 법사위 권한 축소는 지난 19대 국회에서부터 제기됐지만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 여야의 지위가 바뀔 때마다 다른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법사위가 더 이상 다른 상임위의 ‘상원’ 역할을 하며 법안 발목잡기를 할 수 없도록 제도적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 여야가 법사위원장을 놓고 으르렁대는 지금이 적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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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한 구체적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는 대법원장과 대통령의 독대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친박근혜계 핵심인사와 접촉하고, 국정 협조를 약속하는 별도 자료까지 건넸다고 한다. 이후 청와대에서 이뤄진 박근혜·양승태 회동은 이 같은 로비의 결과물일 공산이 크다. 양측의 유착 정황은 사법농단의 핵심인 재판거래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을 짙게 한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에 따르면, 2015년 6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서울의 한 식당에서 친박계 핵심인 이정현 의원을 만났다고 한다. 임 전 차장은 이 의원에게 ‘창조경제정책에 협조할 테니 상고법원 설치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 의원은 그 자리에서 ‘문고리 3인방’ 일원인 정호성 당시 청와대 부속비서관에게 전화해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통령 간 독대 일정을 잡아달라고 했다. 법원행정처는 며칠 후 기획심의관을 이 의원 사무실에 보내 ‘사법한류를 통해 창조경제정책에 협조하겠다’는 자료까지 전달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인 8월6일 양 전 대법원장은 청와대에서 박 전 대통령과 오찬 회동을 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이뤄진 ‘사법농단’ 때문에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가면을 쓰고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가 박근혜·양승태 회동에 주목하는 것은 재판거래 의혹과의 연관성 때문이다. 2015년 7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 문건에는 대법원이 심리 중이던 ‘발레오만도 노동조합 조직형태 변경 사건’이 등장한다. 문건은 이 사건의 결론에 따라 “향후 노동조합 운영방식 전반에 큰 파급력이 예상”된다고 썼다. 이 문건이 만들어진 직후 청와대 회동이 이뤄졌다. 그리고 2016년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노조 손을 들어준 원심 판결을 뒤집었다.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을 높이려 만든 ‘산업별 노조’ 소속 지부·지회를 과거의 ‘기업별 노조’로 쉽게 전환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회동을 앞두고) 청와대와 (사전에) 교감을 나누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동 성사를 위한 법원의 집요한 로비 행태에 비춰볼 때 그의 발언을 사실로 믿기는 어렵다.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등 관련자들은 이제라도 모든 진실을 털어놓는 게 도리다. 검찰은 재판거래 의혹의 규명을 위해서라도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청와대의 커넥션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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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 제22조에 따르면 시·도의원을 뽑을 때 자치 시·구·군에 최소한 1명의 시·도의원은 배정해야 한다. 인구가 극히 적은 지역이라도 최소한의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르면 시·도의원 선거구 간의 인구편차는 4대 1의 범위에서 인정되어왔다. 다만 이 기준은 지난 6월28일 새로운 헌법재판소 결정(2014헌마189)에 의하여 선거구 간의 인구 편차 기준이 최대 3대 1로 더욱 엄격하게 제시되었다. 이 때문에 2022년 지방선거에서 시·도의원 선거구 개편의 주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데 새로운 헌법재판소 결정의 의미와 효과를 분석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흔히 언론에서 즐겨 쓰는 표현으로 ‘단독’의 느낌이 온다. 지난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이뤄진 시·도의원 선거구 가운데 기존 4대 1 기준을 중대하고 명백하게 위반한 지역이 있다. 인천광역시와 경상북도가 그 주인공이다. 

대표적으로 인구가 적은 도서지역인 옹진군과 울릉군이 소재한 까닭이다. 경상북도 울릉군의 인구는 1만명이 조금 넘는다. 말하자면 경북의 도의원 선거구는 최대 인구 4만명을 넘어설 수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경북 도의원 선거구 중 4만명을 넘는 경우는 54개 지역구 중 30개가 넘는다. 인천광역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천 옹진군의 인구는 2만1000명이 조금 넘지만, 인천에서 8만4000명을 넘는 시의원 선거구도 절반이 넘는다. 인천광역시와 경상북도 시·도의원 선거를 위헌이라고 볼 만한 충분한 이유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런 위헌적인 선거구 획정이 용인되어 왔을까? 예전 통계자료 확보가 여의치는 않지만 제7회 지방선거뿐 아니라 제5회와 제6회 지방선거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짐작해본다. 도대체 국회, 행정안전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무엇을 한 것일까?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일단 진상규명은 언론계의 몫으로 남겨두고,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공직선거법 제22조에서는 시·도의원 정수에 관한 원칙을 몇 가지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원칙들을 준수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최대 인구편차 4대 1이라는 기준까지 충족할 방법이 경북과 인천에서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따라서 국회가 했어야 할 일은 공직선거법 제22조 자체를 뜯어고치는 일이었는데, 올 초에 국회가 한 일은 공직선거법 제26조에 있는 선거구 획정 작업만 부랴부랴 한 것이다.

국회와 행정안전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렇게 일을 그르치고 있는 동안 권력감시 역할을 다했어야 할 시민사회는 무엇을 했던가? 필자 역시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가 벌어진 가장 주요한 원인은 선거구 획정 과정이 국회의 밀실협상으로 이뤄져온 관행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와 정부는 선거구 획정 과정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국민들에게 제공하지도 않고 있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았다. 시·도의원 정수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제22조뿐 아니라 선거구 획정에 관한 시민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전반적인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어차피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새로운 기준에 의하여 공직선거법 개정은 불가피해졌다. 표의 등가성 및 비례성을 증진하면서도, 지역 대표성을 적절하게 보장하기 위한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 

더구나 농촌지역의 인구감소 경향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땜질식 처방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새로운 결정으로 인하여 경기도 연천군·경상남도 의령군·전라북도 장수군 등도 더 이상 1명의 시·도의원을 배출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론의 장이 필요한 셈이지만 국회와 정부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대안은 있겠지만 더 이상 국회와 정부가 선거법 논의를 독점하지 말고, 지역과 시민사회가 이 문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방향이 필요해 보인다. 다음 지방선거는 부디 제대로 준비하자.

<김준우 |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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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사무처가 공개한 국회 특수활동비 지급 내역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각종 구실을 만들어 ‘제2의 월급’처럼 혈세를 챙겨간 것으로 나타났다. 교섭단체 대표는 특수활동을 했는지와 관계없이 매월 6000만원을 꼬박꼬박 받아갔고, 상임위원장도 매달 600만원씩 타갔다. 법사위원장은 여기에 매달 1000만원씩 추가로 받아 여야 간사에게 100만원, 위원들에게 50만원씩 나눠 줬다. 예결위는 예산·결산 시기에만 열리고, 윤리특위는 1년에 한두 번 열릴까 말까 한데도 월 600만원씩 위원장 앞으로 지급됐다. 영수증 없이 쓸 수 있고, 어디에 썼는지도 공개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눈먼 돈’이요, ‘깜깜이 예산’이다. 이렇게 쓰인 돈이 2011~2013년 3년간 총 240억원이다.

국회 사무처는 그간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를 완강히 거부하다 1·2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고 국회활동은 투명·정당해야 한다”고 판결하자 마지못해 자료를 공개했다. 이제 보니 왜 그렇게 특활비 내역을 숨겨왔는지 알 듯하다. 얼마 전 친박계 실세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임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최 전 장관이 받은 돈은 예산편성을 기대하며 국정원이 건넨 뇌물이지만, 시민들의 눈엔 그 돈이나 이 돈이나 다 똑같아 보인다. 시민들은 시장에서 콩나물 값을 깎느라 실랑이하며 살고 있다. 제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면 이렇게 아낌없이 나눠주고 받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해 특수활동비가 문제되자 특활비 예산을 22.7% 줄였다. 정부도 올해 예산안에 각 부처 특수활동비를 17.9% 줄어든 3289억원으로 책정한 바 있다. 정부 예산은 국회의 감시와 점검을 철저히 받고 있다. 국회만 예외일 수는 없다. 국회도 정부의 방만한 예산 운영을 지적하기에 앞서 스스로 투명해져야 한다. 도대체 의원들의 연구활동에 왜 특수활동비를 지급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업무 특성상 꼭 필요하다면 정책개발비나 특정업무경비에서 사용하고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될 일이다. 정부나 국회나 특수활동비는 폐지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사용 뒤엔 반드시 증빙자료를 남기도록 해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여야가 늦게나마 5일 특수활동비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잘못된 관행이었다”며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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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소야대 현실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두 가지 선택지를 앞에 두고 있었다. 하나는 연정 혹은 여야 협치다. 진보·보수 시민 모두가 참여한 촛불혁명의 취지에 맞게 여러 정당이 손을 잡고 국회 다수파를 구성, 개혁을 추진하는 방법이다. 연정론은 촛불혁명에 담긴 연대의 정신을 받들 수 있다는 점에서 지지를 받았다.

다른 하나는 대선에서 선택받은 쪽이 더불어민주당이니, 민주당 단독으로 국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민주당정부론이다. 이 경우 개혁입법은 유보해야 한다. 국회를 우회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행정명령을 통해 빠른 변화를 보여줌으로써 새 정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자를 택했고, 청와대가 1년간 적폐청산을 주도했다. 정권 인수 과정 없이 출범한 정부였다. 새 정부 비전을 공유한 인물이 포진한 청와대가 국정을 진두지휘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했고, 효율적인 측면도 있었다. 최고의 지지율이 입증한다. 하지만 그건 국회 우회, 정당 배제, 내각 무시의 대가였다.

민주당도 자의 반 타의 반 배제되었다. 지난 1년간 정부 성격에 합당한 이름은, 모두가 정확하게 부르고 있듯이 문재인 정부다. 어떤 관점에서도 당초 구상했던 민주당 정부는 아니다. 문 대통령의 뒤에 펼쳐져 있는 병풍 같은 존재로서 민주당이 한 게 있다면, 딱 하나. 무위(無爲)의 정치. 인내와 침묵의 긴 시간을 보낸 민주당은 ‘수다는 반역’이라는 신조를 가슴 깊이 새겼던 것 같다.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상당한 보상을 받았다. 민주당은 천장에 닿고, 보수야당은 바닥에 붙은 지지율이 잘 말해준다.

절정의 순간이 계속되는 법은 없다. 지방선거는 끝났다. 누구도 최고점에 영원히 머무를 수 없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는 게 좋을 것이다. 벌써 세상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정부 발목을 잡고 있던 보수세력을 떨쳐내는 데 힘을 보탰던 시민들이 보수야당의 궤멸을 직접 목격했다. 정부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고 정의당 지지율이 창당 이래 최고치인 10%에 달했다. 정부를 상대로 협력과 견제를 적절히 잘했다는 평가를 받은 결과로 해석되지만, 지방선거 이전에는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다. 정의당 평판이 좋아도 꼭 찍을 수 없었다. 보수 심판을 우선시한 시민들이 자기 선호를 무시하고 정부와 여당을 지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음의 빚을 갚았다는 생각에 자유롭게 자기의 가치와 선호를 따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시민들은 삶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더 많이 생각하고, 개혁 조치는 누가 더 실행했는지 단단히 따질 것이다. 이런 질문도 던질 것이다. 그동안 쌓아놓은 지지율은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가? 삶의 개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숫자에 불과하다. 지방선거 이후 시민의 관심사는 선거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정치공간의 이동이라 할 만하다.

이런 국면에서 청와대의 국정 주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곧 다양한 이해와 요구가 분출할 것이고, 그런 현실은 민주주의의 두 제도인 국회와 정당 없이는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청와대의 자장에서 벗어나야 한다. 침묵을 깨고 민주당이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을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은 국회에서 혁신의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젊은이의 높은 정치참여, 곧 다가올 냉전구조의 해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면 개혁경쟁의 무대에 오르지도 못한다.

자기 색깔을 맘껏 드러내고, 실력대로 의석을 배분받아 공정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선거제 개혁도 해야 한다.

통치의 시간이 끝났다. 청와대와 행정부가 선한 의지로 시민을 위해 홀로 일하는 시간은 이미 흘러갔다. 그것은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힘의 일부만 사용해서 사회의 일부 문제만 손대는 것이다.

게다가 임기가 제한된 청와대의 행정적 조치는 한시적이다. 얼마든지 되돌릴 수 있는 변화다. 겨우 그 정도 하자고 촛불혁명이 일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변화, 더 깊은 개혁을 해야 한다. 그러자면 더 많은 힘을 빌려야 한다. 가능한 모든 것들의 협력과 연대가 필요하다. 중심무대는 청와대가 아닌 국회가 되어야 하고, 행동의 주체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한 경쟁과 연대의 경연,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정치의 계절이 오고 있다. 정치의 귀환을 환영한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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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연일 제왕적 대통령제를 청산해야 한다며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김성태 한국당 대표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촛불명령을 까먹지 않았다면 개헌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행은 “개헌이 성사된다면 (다른 야당들이 주장하는)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한국당의 입장도 통 크게 바뀔 수 있다”며 선거구제 개편에 응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이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한국당이 이 시점에 개헌론을 띄우는 의도는 뻔하다. 원구성 협상에서 여당을 압박하는 카드로 쓰는 동시에 6·13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당내 분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민주평화당, 정의당과 더불어 ‘개혁입법 연대’를 모색하는 민주당에 ‘개헌 연대’로 맞섬으로써 여소야대 구도의 판을 다시 짜보겠다는 뜻도 있다.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을 그토록 반대하던 한국당이 뒤늦게 개헌을 주장하다니 참으로 황당하다. 시민들이 개헌하라고 할 때는 방해만 하다가 뒤늦게 개헌을 요구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 달라진 현실에 맞춰 헌법을 개정할 필요성은 있지만 20대 국회에서 다시 개헌을 논의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개헌에 쏠렸던 시민의 관심이 식어버린 마당에 해체된 국회 개헌특위를 다시 열고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한국당이 개헌과 연계해 언급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간과할 것이 아니다. 6·13 지방선거에서 드러났듯 현행 소선거구제는 표의 독식을 허용하는 맹점이 있다. 이런 제도를 그대로 두면 거대 정당의 독식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표의 등가성에도 문제가 있다. 지방선거 결과 정당 득표율은 20%가 되는데 10% 의석도 얻지 못한 경우가 여러 지역에서 나타났다.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면서 비례성을 강화할 수 있는 선거제도가 절실하다.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정치개혁은 현실성 낮은 개헌 논의에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결실을 가져다줄 것이다.

한국당이 지금 추진해야 할 것은 개헌이 아니라 철저한 자성을 통해 당을 개혁하는 것이다. 개헌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개헌을 무산시킨 것부터 사과해야 한다.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헌과 선거구제 개편을 주장한다면 안될 말이다. 벌써 한국당의 선거구제 개편 주장이 다음 총선에 대비하기 위한 정략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국당은 개헌 주장을 접고 진정성 있게 선거구제 개편에 진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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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난 21일 저녁 예멘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던 난민 하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를 다쳐 똑바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어둠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던 제주 초여름의 해도 저버렸다. 바깥에 있던 다른 난민들이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와 대화에 동참했다. 통역을 담당한 예멘인까지 포함하면 모두 6명의 ‘젊은 아랍 남성’들이 방 안에 함께 있었다.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

순간 나는 위축됐던 것 같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낯선 이방인 남성들이 다수가 되자 실제 이들이 내게 위협적인지 여부와 관계 없이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예멘에 두고 온 가족, 전쟁이 벌어지기 전의 온전했던 삶에 대한 그리움, 예멘 땅에 가득한 죽음과 비참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지만, 불안한 현재와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무슬림은 평화를 뜻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이들은 누구보다 예멘 난민의 일탈적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난민 반대 여론의 증폭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예멘 청소년 난민 하산(가명)이 여권으로 얼굴을 가린 채 촬영에 응했다. 정지윤 기자

내가 느꼈던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으로 살면서 몸과 마음에 각인된 공포다. 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공포의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내가 느꼈던 ‘막연한 공포’와 내 앞에 앉아있는 예멘 난민들을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도움을 요청하는 자들이었고, 두려움은 내가 아니라 이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이땅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약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주는 고립된 난민의 섬이 됐다. 법무부는 제주도에 들어오는 예멘 난민이 급증하자 이들의 무사증 입국을 금지하고 체류지역을 제주도로 제한했다. 출도제한 조치는 예멘 난민 문제를 우리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팽배한 난민혐오 여론 속에서 제주도는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난민들을 흡수할 수 있는 아랍 커뮤니티나 산업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제주도는 난민수용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법무부는 “무사증 제도는 관광객을 유치해서 제주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도제한 조치는 당연하다”고 선을 그었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힘든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지낼 곳이 없는 난민들의 숙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어렵게 이방인에게 대문을 열고 머물 곳을 내어주던 주민들도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반대 여론이 증가하자 이들을 도와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난민에 과도한 혐오와 지나친 온정주의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선의에 의해 어렵게 난민들에 대한 원조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지나친 온정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난민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했다.

3년 전, 시리아의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가 차가운 시신으로 터키 해안가에 떠올랐을 때, 우리는 연민과 애도에 인색하지 않았다.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서방국가들을 비판하며 난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머나먼 이국의 해변이 아닌, 제주도에 들어오자 태도가 달라졌다. 배타와 혐오의 정서가 팽배하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불온하게 여기는 것은 혐오이고 인종주의”라며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는 외국인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안의 약자와 소수자에게로 확산되기 때문에 허용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머나먼 나라 해변에서 숨진 쿠르디에게 연민과 온정을 느낄 수 있다면, 제주도에 당도한 500명의 예멘 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나아가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것은 온정주의가 아니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약속이고 의무다.

한 외국인 원어민 강사의 도움으로 지난달까지 주택에 머물던 하니와 동료들은 더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어 지금은 긴급구호숙소로 향했다. 그들이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 수 있을지, 제주에 머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 답은 좁게는 제주도의 6명의 난민심사관의 손에 달려있고, 넓게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달려있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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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들은 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죠?” 한 30대 여성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가 웃으며 답했다. “잘생겼잖아요. 신사적이고요.”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를 외모나 매너로 결정하다니, 너무 정치의식이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헛짚었다. 이 여성은 10년 이상 시민들의 다양한 정치 참여를 이끌어온 현직 활동가이다. 정치의식이라면 평균적인 한국인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는 꾸미지 않은 대답을 들려주었을 뿐이다.

한국 정치의 균열구조가 바뀌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장기간 지속될 각인인지 아직은 분명치 않으나, 외국 여러 나라의  사례들을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로널드 잉글하트가 1977년에 이미 ‘조용한 혁명(silent revolution)’이라고 불렀던, 근본적인 가치관 변화의 한 부분이다. 경제성장은 사회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다. 일자리의 구조가 달라지고, 문화가 바뀌고,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가족의 구조가 변하고, 성역할의 고정관념이 사라진다. 이 변화는 크게 보아서는 물질주의 가치관에서 탈물질주의 가치관으로의 변화이다. 안보, 성장, 국가를 가장 중시하는 가치관에서 인권, 자유, 개인을 중시하는 가치관으로의 변화를 말한다.

앞의 것이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라면 뒤의 것은 충분조건이다. 앞의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 도입을 위한 환경요건이라면 뒤의 것은 민주주의 공고화의 미시적 기반이다. 자기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자라나는 세대를 배불리 먹이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시작되기조차 어렵다. 그러니 물질주의는 민주주의의 필요조건이자 환경요건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은 모든 사람이 인권과 자유를 누리고 행복하게 살고자 함이다. 그러니 탈물질주의는 민주주의의 충분조건이자 미시적 기반이다.

대통령 지지율이 꾸준히 높지만, 그중에서도 성별·세대별로 높은 집단을 꼽으라면 단연 20대 여성과 40대 남성이다. 정부의 각종 개혁·평화 정책에 대한 지지도 똑같은 패턴을 보인다. 지난 칼럼(‘젠더 정치의 등장’ 3월13일자)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20대 내부에서 정치적 견해의 젠더 갭(성별 분리현상)은 지역 간 차이의 최대치에 근접한다. 여성과 남성의 정치적 견해차가 대구·경북과 광주·전라만큼 커졌다는 말이다.

앞에 소개한 대화를 보고 너무 정치의식이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남성 위주의 정치의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40대 남성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던진다는 생각도 한때는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문 대통령은 도도하게 흘러온 민주화의 역사를 마침내 완성시키는 남성적 거시담론의 영웅일 수 있다. 반면 20대 여성은 ‘신사적’이라는 말 속에 드러나듯이 여성을 포함한 모든 소수자의 권리에 대한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듯한 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할 수 있다.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면, 이것은 외모나 매너 때문에 지지하는 ‘생각 없는’ 지지가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 정치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종류의 민주주의이다. 20대 여성들이 앞장서서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반’이 중요하다고 외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대통령 지지율은 ‘몇 퍼센트’라는 하나의 숫자로 나타나지만, 여성의 문재인과 남성의 문재인은 다르다.

한국보다 20~30년 앞서서 정치적 젠더 갭을 경험했던 외국의 사례들을 보자. 전통적으로는 여성의 정치활동 참여가 남성보다 낮고 더 보수적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일정 단계에 이르면 젠더 간 정치적 견해차가 없어지는 ‘해체(dealignment)’ 현상이 나타나고, 그 단계를 지나면 여성이 남성보다 진보적으로 변하는 ‘재정렬(realignment)’이 이루어진다. 적어도 선진산업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나라들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나타나는 것이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임신과 출산에 대한 자기결정권, 유리천장의 완전한 해체 요구이다. 한국만이 세계사의 유일한 예외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한다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한국 정치의 균열구조를 영원히 바꾸어놓을 것이다.

안보와 성장에만 의존해 살아온 보수야당이 이런 변화에 맞춰 혁신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가치가 젊은 여성들이 요구하는 가치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상태를 바꾸지 못하면 끝장이다. 외국의 경험을 보면, 미시적 차원에서 한번 진보화한 여성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여당에는 운동권의 거대담론 민주주의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미시적인 일상의 ‘습관’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과제가 있다. 한국 정치에서 ‘남자의 문재인’뿐 아니라 ‘여자의 문재인’이 정당한 대접을 받게 해주지 못한다면 지금의 ‘여당(與黨) 지지’는 ‘여당(女黨) 창당’으로 바뀔 수도 있다.

<장덕진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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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