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고용쇼크와 관련, “청와대가 현 고용부진 상황을 엄중히 직시하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입장을 밝히자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메시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장하성 정책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관련 발언에 먼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윗선에서 국민들의 체감을 강조하면 부처들은 대책들을 한꺼번에 내놓는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재정지출은 늘리겠다는 식이다. 최저임금은 올리면서 가격이 지역 평균보다 낮은 식당을 ‘착한식당’으로 지정해 홍보해주려 한다. 공평과세를 강조하면서 비과세 혜택을 늘리고 자영업자 세무조사 면제라는 정책을 내놓는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면서 소상공인을 몰아낼 혁신을 가져올 창업은 장려한다.

정부가 눈앞의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해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 지향하는 게 뭔지 혼란스러워진다. 대책 발표 당일 수치도 정확하지 않은 엉성한 보도자료가 나오거나, 보도자료에 적혀 있는 대로 관련 부처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담당자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몇 번 들으면 ‘특단’을 위해 ‘급조된 정책’이라는 의구심이 들고 만다.

일자리안정자금 등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 같지만 기한은 한정돼 있고 효과도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는 지출이 많아지는 것도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지출을 늘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복지제도를 탄탄하게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조업 경쟁력 약화, 청년인구 감소, 자영업 과당경쟁, 최저임금 인상 등 여러가지가 고용위기 원인으로 꼽힌다. 장 실장은 이번에 특단의 대책을 약속하지 않았다. 국민은 고통 속에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정부가 그간 쏟아낸 모순적인 정책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서로 충돌하지 않는 빈틈없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으면 한다.

<박은하 | 경제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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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폭염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모두가 똑같이 더위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한 지인은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옮겨 다녀서인지 더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집에서 나온 뒤 자동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고, 역시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같은 날씨를 공유하는 게 당연한 듯싶지만 더위는 사실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부자보다 빈자에게, 건강한 사람보다 병자와 약자에게 더 가혹한 게 더위다.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더위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는 이미 이 같은 위협과 직면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이번 폭염으로 5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대다수가 50대 이상으로 혼자 살았으며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다. 사망자 중 집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통계적으로도 빈곤하고 고립된 사람일수록 더위에 취약했다. 미국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시민권자보다 3배 더 높았다.   

폭염이 이어진 14일 한 관광객이 서울 청계천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집단으로 도시에 사는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를 지목하고 있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에어컨 실외기 등이 합작해 열섬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적하고 초목이 많은 지역보다 기온이 더 높다. 부유층·중산층 거주 지역은 주변에 정원과 공원 등이 조성돼 있어 초목이 열기를 식혀주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거주 지역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가 2017년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내 흑인은 초목보다 아스팔트·콘크리트로 뒤덮인 지역에 살 가능성이 백인보다 52% 더 높았다. 아시아인과 히스패닉도 이런 가능성이 백인보다 각각 32%, 21% 컸다.

이런 환경에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야 한다면 더위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이번 여름 낮 기온이 46도까지 올랐던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가 주민들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질식할 것 같다” “집이 오븐 같다”고 호소했다. 히잡, 부르카 등을 써야 하는 여성 무슬림들에게 더위의 고통은 배가된다. 카이로 슬럼에 사는 한 여성은 “딸에게 히잡을 두 겹만 두르거나 밝은색 히잡을 쓰라고 항상 얘기한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온열질환자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온열질환자 중 32%는 길가, 25%는 논밭에서 쓰러졌으나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사람도 19%에 이르렀다. 정부는 폭염주의보 발령 등 기온이 치솟을 때면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지만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면 실내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2014년 영국 공중보건국은 “냉방 시스템을 구비하는 데 상당한 수준의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냉방 시스템의 분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더위 해소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에선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고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싱가포르는 신축 건물을 지을 때 건축 면적 이상 넓이의 옥상 정원을 조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옥상 정원은 주변 기온을 2~3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미국 뉴욕에선 ‘쿨 루프’(시원한 지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붕에 햇빛을 반사하는 성질의 페인트를 칠해 건물 온도를 낮추자는 취지다. 로스앤젤레스 시당국은 아스팔트 위에 이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도시계획과 주거, 복지 등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만들 때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삶의 질을 제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관점의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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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요새 웬 비옷이 그리 비싸우.”

구보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청계천 빨래터에서 청어(비옷) 값을 탓하는 아낙네의 푸념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벌이가 변변찮은 서민들이다. 5전짜리 동전을 잃어버리고는 주인에게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한약국집 점원 ‘창수’, 이발소 ‘재봉이’, 남의집살이를 하는 ‘만돌이네’….

구보는 <천변풍경>에서 일제강점기이던 1930년대 서민의 삶을 카메라로 찍듯이 소상하게 묘사했다. 당시 청계천변은 가난한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청계천이 복개공사로 자취를 감추면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전기세가 걱정이고, 숨 막히는 뙤약볕 아래서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열기를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는 종일 에어컨을 트느라 늘어난 전기세 걱정이 배부른 소리다.

일제 때 청계천변이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면, 1960년대 이후 서울에서 못사는 동네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는 삼양동이다. 삼양동이라는 이름에는 원래 ‘삼각산의 양지 바른 양쪽 동네’라는 정겨운 의미가 배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달동네’ 이미지가 굳어졌다. 최근 삼양동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살이’로 뜻밖에 핫플레이스가 됐다. 박 시장이 지방선거 때 공약했던 강남·북 격차를 줄일 방안을 찾겠다며 지난달 강북구 내에서도 기반 시설이 취약한 삼양동에 옥탑방을 얻어 거처를 옮기면서다.

그의 옥탑방살이에 ‘보여주기 쇼’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하루라도 살아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마련이니 탓할 일만은 아니다.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그도 땀이 줄줄 흐르는 옥탑방에선 맥을 출 수 없고, 삼양동 오르막길을 ‘따릉이’로 다니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았을 테다. 동네 구멍가게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 ‘솔샘시장’처럼 점포 수가 적은 시장은 ‘전통시장’으로 등록할 수 없단 점도 알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에어컨 아래서 머리로 상상만 했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것들이다.

박 시장은 옥탑방 입주 19일째를 맞은 지난 8일 “대한민국 99 대 1 사회를 실감하고 있다”는 소회를 밝혔다. 마침 그날은 박 시장의 옥탑방 옆집에서 6급 장애를 지닌 40대 남성이 숨진 지 수일 만에 발견된 날이기도 하다. 박 시장은 한달살이가 끝나는 날에 답을 내놓겠다고 했다. “큰 쇠문을 여는 것은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라고 했던가. ‘원순네 옥탑방’에서 그는 ‘열쇠’를 찾았을까.

지도자가 갖춰야 할 조건 중의 하나로 공감 능력을 꼽는다. 하지만 권력자일수록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8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하계올림픽 때 미국 국기를 거꾸로 든 일 역시 이를 보여준다. 박 시장은 옥탑방을 나오면서 자기 시선에 맞게 국기를 거꾸로 드는 것 같은 답을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훔친 가난’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정책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몇몇 집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솔샘시장이 전통시장으로 등록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싱겁게 막을 내려선 안된다. 폭염에 왜 누군가는 에어컨이 있는 쉼터로 갈 수 없었는지, 고독사한 남성이 서울시 ‘찾동’ 사업에서 왜 소외됐었는지를 답해야 한다.

오늘도 원순네 옥탑방은 민원인들로 북적인다. 어떤 부탁은 ‘사소’하고, 어떤 부탁은 ‘중’하다. 딜레마는 그 부탁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쇼면 어떤가. 나는 삶에서 피어나는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쇼. 그런 쇼라면 얼마든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순씨의 한 달’이 서민의 고충을 아는 데 그쳐선 안될 일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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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얼마 전 개·고양이 식육금지 집회에 맞불을 놓으러 나온 이들의 손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다보면 참 답이 없는 시빗거리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인식론 차원이라면 그나마 낫다.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윤리 의 문제라면 정말 끝이 없다. 개고기 논쟁이 일례다.

얼마 전 털북숭이 한 녀석이 우리 집에 왔다. 키우자는 가족들의 잇단 요구를 수년째 거부하며 “진짜 데려오면 물 올려놓고 있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았던 터라 설마 했었다. 그런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 녀석이 꼬물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두 손을 들고 무장해제됐다. 3개월이 안된 몰티즈다. 이름은 숍에서 부르던 대로 ‘소다’. 몸무게는 900g대였다. 배내털이 더부룩하다. 생존본능인지 모르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따른다. 미처 아이를 키울 때는 크게 생각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고민을 이 ‘댕댕이’를 통해 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참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는 유모차 앞자리에 서너 살배기 아들을 태우고, 뒤칸에는 강아지를 태우고 다녔다. 강아지 나이가 12살이라는데 사람으로 치면 약 70대 어르신이다. 아들과 반려견을 유모차에 함께 태워 밀고 다니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안은 채 스스로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 불편했다. 그런 내가 소다가 집에 온 후부터 스스로를 “아빠”로 부르고 있다. 전용 먹이 분배기(디스펜서)도 사고 폐쇄회로(CC)TV까지 들였다. 그렇게 이 녀석은 내게로 와 ‘존재’가 됐다. 오히려 그를 통해 내가 대자연 속 작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스타필드고양의 ‘몰리스’가 소다의 제2의 고향인 셈인데, 불현듯 이 녀석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이른바 공장사육의 산물이라면 씁쓸하다. 약 한 달 전 궁금해서 몰리스에 가봤다. 그런데 소다 바로 옆에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던 녀석이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 포메라니안 ‘후추’다. 그나마 앞에 있던 포메라니안과 같은 2월10일생이던 몰티즈 ‘설탕’은 새 가족을 만난 모양이다. 포메라니안은 5개월이 돼서 이미 부쩍 커버렸다. 소다를 데려올 당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졸라대던 녀석이었다니, 우리 가족이 됐을 수도 있다. 아직 친구가 쇼윈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소다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얼마나 심정이 짠할까 싶다.

16일은 말복이다. 옛 문헌에 보면 이날엔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우리네 문화의 일부로 보인다. 충청 사투리라는 ‘개 혀?’라고 말하는 건 자유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을 ‘야만스럽다’고 비난했다고 해도 인습과 전통을 가를 잣대는 따로 없다. 맞불집회에 나온 팻말이 맞을 수도 있다. 반면, ‘개나 사람이나 존재의 귀함은 동일하다’고 말할 자격 또한 있다. 심지어 종교 차원으로 보자면, 강아지를 키우면서 불교가 친근하게 여겨진다. 윤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산짐승, 들짐승은 물론 풀벌레까지 새삼 귀히 여겨졌다. 지난주에는 2년여 키운 어항 속 버들치를 공릉천에 풀어줬다. 뿌듯하면서도 찡했다.

사실 식용 논란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반려동물 유기다. 준비 없이 무턱대고 반려동물을 입양해 키우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다. 반려동물 유기는 벌금 300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버리는 행위라는 말에 공감한다. 과연 자신이 반려동물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맞는지 솔직히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버린 반려동물의 상당수가 식용으로 둔갑한다는 사실 또한 알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쩌다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이 작은 소다를 통해 새삼 세계관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요즘 좀 섬뜩하게 다가온다.

<전병역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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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올 시즌 연봉이 3557만1429달러다. 우리 돈으로 397억9000만원쯤 된다. 1년에 32번 정도 선발 등판한다고 계산하면 1경기당 12억4000만원가량 된다. 선발 투수는 한 경기에 공을 100개 정도 던지니까 공 1개를 던질 때마다 1200만원 정도 버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미국프로농구(NBA)의 르브론 제임스는 LA 레이커스와 4년 동안 1억5400만달러에 계약했다. 연평균 연봉이 3850만달러다. 커쇼보다 더 많다.

한국프로야구(KBO리그)도 연봉이 공개된다. 리그 최고 연봉 선수는 롯데 이대호다. KBO 홈페이지에서 이대호를 검색하면 이대호의 연봉 25억원이 명시돼 있다.

일반 회사에서도 연봉 계약을 한다. 연봉 계약할 때 대개 조건이 붙는다. ‘자신의 연봉을 공개하지 말 것.’ 옆자리 앉은 동료의 연봉을 물어보는 것도 실례다. 그런데 스포츠에서는 ‘연봉 공개’가 일반적이다. 메이저리그, NBA 등에서 연봉을 공개하는 이유는 연봉의 크기로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리그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다.

NBA는 팀 연봉 총액을 제한하는 ‘샐러리캡’ 제도를 두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연봉 상한선을 두지 않지만 연봉 총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사치세’ 혹은 ‘부유세’(luxury tax)라고 불리는 일종의 ‘벌금’을 매긴다. ‘균형 경쟁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단주 측과 선수 노조가 합의한 내용이다. 2018시즌 연봉 총액 기준선은 1억9700만달러다. 팀 총연봉이 이 기준을 넘으면 초과액에 대한 일정 세율의 돈을 내야 한다. 3회 위반 때는 세율이 50%나 된다. 초과금액이 4000만달러를 넘으면 40%가 넘는 부가세가 또 붙는다. 다저스가 올 시즌 적극적인 선수 영입에 나서지 못한 것도 돈이 무서워서다. 이미 연속 위반 전례가 있어서 올해 또 넘기면 5000만달러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한다(편의상 세금이라 부르지만 세금은 아니다. 이를 모아 일종의 야구발전기금으로 사용한다).

그래도 ‘돈을 쓰겠다’는 팀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사치세 위반 팀에 자유계약선수(FA) 보상제도에도 불이익을 준다. FA 선수에 대한 보상제도인 드래프트 순서에서 사치세를 내는 팀은 뒤로 밀린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스포츠로 불리는 야구에서 어쩌면 가장 ‘비자유주의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얼핏 자본 투입에 대한 경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수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흥행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프로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어제 강했던 팀이 오늘 패하고, 오늘 약했던 팀이 내일 강해지는 게 스포츠의 묘미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리그의 전력 균형’이다. 연봉 총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선수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최적의 경기 운영 방식을 찾는 경쟁을 유도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정작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연봉이 낱낱이 공개되는 이유는 돈을 이만큼 받으니 돈값을 하라고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여자 전체로 하여금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운동장의 기울기를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 사회에서 어딘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는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편의점으로 대표되는 자영업자를 둘러싼 논란이 복잡하다. 이 역시 더 큰 자본을 쥐고 있는 쪽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커쇼가 열심히 던지는 건, 연봉의 무게를 어깨에 얹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 무게를 지지 않으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것이야말로 더 질이 나쁜 무임승차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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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드루킹 댓글 공작 의혹을 수사 중인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박상융 특검보(53)가 특검보 임명 전 수행하던 사건의 소송대리인에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2018년 7월20일자 10면)했다.

취재 당시 “변호사 휴직계를 냈고 다른 변호사를 담당변호사로 지정하는 등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기사가 나가면 책임을 묻겠다”던 박 특검보는 기사가 나간 날 슬그머니 재판부에 ‘담당변호사 지정철회서’(사임계)를 제출했다.

박 특검보는 친구 사이라고 밝힌 심모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관이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직처분 취소소송에서 같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2명과 함께 지난 2월부터 심 전 정책관 측 담당변호사를 맡아왔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특검보에 임명된 뒤에도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앞선 특검에 참여한 변호사들은 왜 통상 수행하던 모든 재판의 변호인에서 사임했을까. 박 특검보 말대로 사임계만 내지 않았을 뿐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데 왜 문제가 될까. “실제 재판에 관여하느냐와 무관하게 특검보인 사람이 담당변호사로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그 자체로 해당 재판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의심을 받게 된다. 영리 업무와 겸직을 금하는 특검법 조항은 공직의 신뢰성·윤리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란 한 고위 법관의 지적은 곱씹어볼 만하다. 특검보를 지낸 한 변호사는 “의뢰인이 친구 사이여서 사건을 맡겼다면, 박 특검보가 담당변호사에서 빠질 경우 이 사건을 박 특검보가 속한 법무법인에 맡길 필요가 없다. 사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이해관계를 고려한 결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보란 그렇게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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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반가운 소식에 오히려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지난 4일 들려온 소식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날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을 직접 언급한 후 교육부가 ‘교복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이다.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언급하기 이전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학교 관계자들은 과연 이 문제를 몰랐을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을 둔 집이라면 고구마 수십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껴왔을 것이다.

특히 여고생들의 셔츠는 일상의 옷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진열을 위한 마네킹용 같다. 활동하는 사람이 입을 것이 못된다. 가슴선을 강조하고 잘록한 허리선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옷은 편히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다. 꽉 조인 저 옷을 입고 버스 손잡이는 어떻게 잡고, 수업시간에 질문이 있으면 팔을 어떻게 올리지? 이런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동구매한 치마의 경우는 통이 너무 좁고 길이가 짧아 심지어 학교 주선으로 수선집에서 무료로 길이를 늘였을 정도다. 바지를 입고 싶은 여학생이 있다면? 대부분 여학생용 바지 제작을 하지 않는다. 남학생용 바지를 입으라고 한다. 교복 상의를 다림질하다가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에 오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도한 디자인 탓에 등판조차도 평면이 아니어서 아이가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아예 다림질을 포기했다.

그간 사정을 몰랐던 이들이라면 ‘나 같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왜들 참았지’ 하며 답답해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수년간 학교에, 교육청에, 교복 제작업체에 항의하고 건의해왔다. 나 역시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몇몇 학교에서 개선의 움직임이 있지만 대개는 그대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시정을 지시했겠나.

그런데 이 일이 대통령이 나서야만 해결될 일이었던가. 소비자가 불편하면 의견을 반영해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굳이 최근의 ‘탈코르셋’(화장, 몸매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자는 것) 운동까지 갖다 붙일 일이 아니다. 학교와 관계 당국이 뭉개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인권은 무시돼왔다.

대통령의 교복 지시사항을 접하며 2005년 썼던 기사가 떠올랐다. 당시 소아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지훈이(8)의 사연을 소개한 기사였다. 지훈이는 근육 경직과 경련의 고통을 덜기 위해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미용성형용으로 분류돼 있는 보톡스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한 병에 50만~60만원으로 워낙 고가인 탓에 지훈이처럼 생활이 어려운 집의 아이들은 치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생계를 팽개치고 싸울 시간도 물적 능력도 없어 자신들만 탓할 뿐이었다. 지훈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문제점을 고발한 기사였다.

다행히 기사를 접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날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에 ‘고통받는 어린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취재 당시까지 ‘(소아뇌성마비용 보톡스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던 보건복지부는 즉각 검토에 들어갔고 3개월 만인 그해 9월부터 소아뇌성마비 치료에 한해 건강보험 적용이 시행됐다. 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고 더 안타까웠다. 기사가 나가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즉각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온당히 치료받아야 할 아이들의 고통과 부모들의 슬픔은 한동안 더 이어졌을 것이다.

어리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높은 곳에 닿고 멀리까지 울려 퍼지기 힘들다. 주변의 침묵과 때론 반대의 아우성으로 잦아들기 십상이다. 지금은 인터넷이란 수평적 공간을 통해 발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교복 청원을 비롯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활성화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황당한 청원 사례들도 많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는다. 상식적인 통로가 막혀 있다는 얘기다.

건강한 나무는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더라도 ‘세상 부드러운’ 뿌리를 갖고 있다. 보드랍고 열린 그 끝으로 흙 속의 수분과 영양분, 바람을 걸러내고 통과시킨다. 우리 사회의 뿌리는 보드랍고 열려 있는가.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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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기소된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의 1심을 맡은 이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부장판사는 선고를 내리는 자리에서 “판결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경향신문의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이 ‘국정농단’ 재판…부적절 지적> 보도(7월9일자 4면)를 언급하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전산정보관리국장으로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해 법원 내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를 올린 당사자다. 전산정보관리국은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사건 수임 내역 조회에 관여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사법농단’ 의혹과 연루된 이 부장판사가 ‘국정농단’ 사건을 재판 중이라는 사실에 대해 국민들이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판사는 재판 발언에서 “(전산정보관리국이 하 전 회장 수임 내역을 조회하려 했다는) 문건 내용은 저도 정확히 모른다”면서 “이번 재판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지금 법원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도가 국정원 특활비 뇌물사건에 무죄 판결이 선고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고 오해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누구나 자신을 해명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의혹을 법정에서 반박한 것은 공적인 자리를 사적으로 이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법원행정처가 이정현 의원(무소속)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를 청탁했던 정호성 전 비서관 등 ‘국정농단’ 의혹 피고인들의 재판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가 특활비 무죄 판결에 대한 불만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기사가 ‘다른 뜻’을 가지고 작성된 것 아니냐고 호도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명의로 올린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대상자가 될 수도 있는 이 부장판사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법정이란 장소를 이용한 것은,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지금 사법부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희곤 | 사회부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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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수습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단체로 부서원 지인이 운영하던 술집에 갔다. 그 부서원이 술집 주인에게 부서장부터 인사를 시키려던 찰나 주인이 대뜸 나를 보며 말했다. “부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마가 훤하게 까진’ 노안은 기자 생활에 도움 될 때가 많았다. 여러 취재원이 ‘연차가 꽤 있는’ 기자가 직접 현장에 취재하러 온 줄 알았다. 이들은 나중 내 나이를 듣곤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취재 목적은 이룬 뒤였다. 지금은 차장인데 현장에 나가면 “국장님, 어서 오세요” 인사를 듣곤 한다.

‘노안’에 얽힌 일을 떠올린 건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호밀밭)에 나온 이브 몽탕의 동갑내기 아내 시몬 시뇨레의 일화 때문이다. “어느 날 보니 나는 늙어가는 것이고, 그 사람(몽탕)은 성숙해가는 것이더라고요. (…) 남자의 주름살은 자랑할 만한 연륜이지만 여자의 주름살은 그냥 추한 거죠.”

미투의 시대 남자의 주름살은 연륜을 나타내는 표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의 주름살이 혐오나 교정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여자의 경우는 다르다.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인 ‘노화’를 지연시켜야 하는 부담을 더 크게 느낀다. 사회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잣대를 여자에게 더 강하게 들이댄다.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을 찬양하면 다른 한쪽을 혐오하게 된다. 광고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와 이벤트가 미추 판별에 개입한다.

미스코리아는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대표 이벤트다. 1주일 전 미스코리아조직위에서 개최 안내 e메일을 보냈다. 미술 담당이라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줄 알고 보냈나? 외모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터라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홈페이지는 비키니 사진으로 도배됐다. 후보자 32명의 키와 몸무게가 일일이 나왔다. ‘후보자 신체 정보 실측값 변경’. 키, 몸무게를 본인 기재에서 ‘실제 측정값’으로 바꾼다는 공지다. 건축물에나 쓰는 ‘실측’이란 말이 이 대회의 은폐된 본질을 보여준다.

“화장품 광고는 타고난 자신의 외모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며 자기들의 화장품을 써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사게르)고 선전한다. 구원의 문구는 때로 도를 넘는다. ‘김 비서는 왜 그렇게 예쁠까. 부회장님 키스를 부르는 메이크업 시크릿’ ‘부회장님 시선을 강탈하는 출근광채 시크릿’. 시세이도코리아의 광고 문구다. tvN 드라마 <김 비서가 왜 그럴까>의 맥락을 끌어온 광고라지만, 왜 비서가 ‘시선 강탈’을 해야 하는지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 성역할과 성·직업 차별 관념이 든 광고가 탈코르셋 운동 와중에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이 문제에 둔감하다.

미디어와 사회가 조장한 ‘아름다움’은 ‘미추’를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로 만든다. 고든 파크스는 1947년 미국 뉴욕 할렘에서 심리학자 케네스 클락이 흑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형 테스트’ 장면을 촬영했다. 사진 속 어린이는 흑백의 아기 인형 중 백인 인형을 가리킨다. ‘인형 테스트’에서 대다수 흑인 어린이들은 하얀 인형에 “좋아요”라며 긍정 반응하며 선택했고, 검은 인형은 “나빠요”라고 부정 반응하며 거부했다. 키리 데이비스의 2005년 다큐멘터리에서도 흑인 어린이들은 백인 인형을 선호한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검은 피부 때문에 자신을 추하다고 여겼어요.” 결국 ‘성소수자인 흑인 장애인 여성’이 혐오 희생의 정점에 서게 된다.

몸은 존재다. 성별, 장애, 인종, 성정체성, 몸과 외모 같은 ‘타고난 있음’은 미추 판별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당장은 그 존재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며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차별과 혐오 철폐의 시작일 수 있다. ‘아름다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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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난 21일 저녁 예멘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던 난민 하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를 다쳐 똑바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어둠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던 제주 초여름의 해도 저버렸다. 바깥에 있던 다른 난민들이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와 대화에 동참했다. 통역을 담당한 예멘인까지 포함하면 모두 6명의 ‘젊은 아랍 남성’들이 방 안에 함께 있었다.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

순간 나는 위축됐던 것 같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낯선 이방인 남성들이 다수가 되자 실제 이들이 내게 위협적인지 여부와 관계 없이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예멘에 두고 온 가족, 전쟁이 벌어지기 전의 온전했던 삶에 대한 그리움, 예멘 땅에 가득한 죽음과 비참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지만, 불안한 현재와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무슬림은 평화를 뜻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이들은 누구보다 예멘 난민의 일탈적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난민 반대 여론의 증폭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예멘 청소년 난민 하산(가명)이 여권으로 얼굴을 가린 채 촬영에 응했다. 정지윤 기자

내가 느꼈던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으로 살면서 몸과 마음에 각인된 공포다. 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공포의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내가 느꼈던 ‘막연한 공포’와 내 앞에 앉아있는 예멘 난민들을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도움을 요청하는 자들이었고, 두려움은 내가 아니라 이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이땅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약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주는 고립된 난민의 섬이 됐다. 법무부는 제주도에 들어오는 예멘 난민이 급증하자 이들의 무사증 입국을 금지하고 체류지역을 제주도로 제한했다. 출도제한 조치는 예멘 난민 문제를 우리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팽배한 난민혐오 여론 속에서 제주도는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난민들을 흡수할 수 있는 아랍 커뮤니티나 산업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제주도는 난민수용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법무부는 “무사증 제도는 관광객을 유치해서 제주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도제한 조치는 당연하다”고 선을 그었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힘든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지낼 곳이 없는 난민들의 숙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어렵게 이방인에게 대문을 열고 머물 곳을 내어주던 주민들도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반대 여론이 증가하자 이들을 도와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난민에 과도한 혐오와 지나친 온정주의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선의에 의해 어렵게 난민들에 대한 원조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지나친 온정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난민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했다.

3년 전, 시리아의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가 차가운 시신으로 터키 해안가에 떠올랐을 때, 우리는 연민과 애도에 인색하지 않았다.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서방국가들을 비판하며 난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머나먼 이국의 해변이 아닌, 제주도에 들어오자 태도가 달라졌다. 배타와 혐오의 정서가 팽배하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불온하게 여기는 것은 혐오이고 인종주의”라며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는 외국인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안의 약자와 소수자에게로 확산되기 때문에 허용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머나먼 나라 해변에서 숨진 쿠르디에게 연민과 온정을 느낄 수 있다면, 제주도에 당도한 500명의 예멘 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나아가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것은 온정주의가 아니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약속이고 의무다.

한 외국인 원어민 강사의 도움으로 지난달까지 주택에 머물던 하니와 동료들은 더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어 지금은 긴급구호숙소로 향했다. 그들이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 수 있을지, 제주에 머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 답은 좁게는 제주도의 6명의 난민심사관의 손에 달려있고, 넓게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달려있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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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대한 기억 한두 가지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내 기억 속 자전거는 초등 5학년 때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온 중고자전거다. 말끔하게 칠까지 새로 한 자전거를 처음 탄 날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잡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속아 ‘씨익씨익’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더 이상 뒤뚱거리지 않을 때쯤, 뒤에서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날로 자전거는 나의 ‘애마’가 됐지만, 얼마 타보지도 못하고 도둑맞는 바람에 자전거를 찾아 동네를 샅샅이 뒤졌던 기억이 더 많다. 누군가는 저녁노을이 질 무렵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내달렸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연인과 자전거를 타며 나눈 속삭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탈것 중 자전거에는 그만큼 각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돌아보면 자전거는 발명 이후 가장 진보하지 않은 이동수단일 것이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자전거가 대중화된 게 1890년대쯤이라고 하니 1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페달을 발로 구르는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이 말한 대로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자전거는 한때 자동차의 증가와 함께 이용률이 급락했지만, 친환경 탈것이라는 이미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자전거의 천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국민 1인당 1.1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전거 사랑은 환경 의식이 남달라서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교통비가 워낙 비싸고 대부분이 평지여서 자전거만큼 훌륭한 이동 수단이 없어서다. 게다가 ‘탄소 제로’ 교통수단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시민들은 스스로의 삶에 더 이로운 것을 찾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유자전거가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유자전거의 인기 역시 건강이나 환경보호 같은 거창한 목적보다는 값싼 데다 편리성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자전거 도로 등 일상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마침 지난 3월 행정안전부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서 자전거 헬멧 의무화도 포함시켰다. 오는 9월28일부터는 자전거를 타려면 헬멧을 써야 한다. 헬멧 의무 착용에 대해선 벌써부터 말이 많다.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2만대 이상 운영하는 서울시는 다음달부터 여의도 일부 따릉이 대여소에 헬멧을 시범 비치하기로 했다. 공공자전거가 안전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해 내놓은 대책이다. 그러나 찜통 같은 더위에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이용할 이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덴마크에는 ‘사이클 시크’라는 말이 있다. 2006년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라이프 스타일 운동으로 ‘패셔너블한 일상복을 입고 도심과 어울리게 자전거 타기’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이클 시크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자전거 외에 관련된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헬멧의 의무착용이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 등에서 자전거가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것은 자전거 이용자들에 대한 배려다. 헬멧을 쓰지 않아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자전거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 말이다.

서울은 어떤가. 자전거 전용도로는 부족하고, 도로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니 자전거를 타려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불편함으로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시 환경을 조성해야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날 것이다. 값비싼 자전거에 몸에 붙는 쫄바지, 헬멧을 착용해야만 자전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릉이를 타는 당신도 ‘자전거 시크’ 못하란 법 없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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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골이었다. 92년생 손흥민의 왼발 끝을 떠난 볼이 그림처럼 휘어지며 오른쪽 골네트에 꽂히자 93분간 답답해하며 맥주만 들이켜던 아저씨들은 “골~”을 외치며 벌떡 일어섰다. 반가움도 잠시,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숨을 헐떡이는 손흥민의 모습을 보니 애잔해졌다. 손흥민은 이제 스물여섯의 청년이다.

기억 속의 첫 월드컵은 초등학생 때인 1985년 11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전이다. 골이 들어가자 최순호 선수가 껑충껑충 뛰었고, 경기가 끝나자 김주성 선수 등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돌았다. 그리고 나오던 TV의 아나운서 멘트. “국민 여러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갑니다. 한국 축구의 ‘숙원’을 이뤘습니다.” 당시는 말레이시아, 태국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리고 32년이 지났다. 한국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숙원’이라던 월드컵 본선을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4년마다 정례화된 본선 진출은 시민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32년간의 개근은 대단한 성과다. 이탈리아도 진출하지 못한 러시아 월드컵 본선이었다. 페루는 36년 만에, 파나마와 아이슬란드는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월드컵 본선은 시작부터 식어 있었다. 대표팀에 대한 여론은 줄곧 냉소적이었다. 이해는 된다. 역대 본선 중 가장 나쁜 성적이 예상됐다. 자칫 본선에도 못 나갈 뻔한 팀이었다.

월드컵 얘기를 길게 꺼낸 것은 한국 축구가 처한 상황이 한국 경제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시기도 1986년부터다. 한국은 3년 연속 10% 성장을 이루며 ‘숙원’이라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 5000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본격적으로 경제격차를 벌렸다. 이제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말레이시아는 과거 한때 한국과 같은 수준이었지만, 지금 한국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제성장을 일궜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국내 어디에서도 축하의 말은 없다. 비관론이 비등하다. 내수는 죽고, 성장동력은 떨어졌다고 한다. 기업 간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7만개 수준으로 축소됐고, 청년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당장 내년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이러다 선진국 문턱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그러니 샴페인을 터트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동반 성장해온 한국 경제와 한국 축구가 ‘선진국 깔딱고개’에서 함께 힘들어하는 것을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경제도, 축구도 선진국 클럽에는 들어갔지만 체질전환을 채 이뤄내지 못했다. 투혼과 정신력을 앞세운 단기성과주의는 여전하고, 인맥과 학맥으로 점철된 인사구조도 유효하다. 낯설더라도 고효율의 고부가가치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그 작은 시작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최장 근로시간, 최저 생산성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재벌의 반칙에 단호히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도 적극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노동유연화와 규제완화 같은 난해한 문제의 해법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저항이 만만찮다.

“오늘의 결과가 지금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이다. 이제 한국 축구는 ‘보여주기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인프라와 노력을 점검해보고, 시스템부터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4년 후에도 이러한 패배는 거듭될 것이다.” 해설가로 변신한 박지성 선수의 일침에 뜨끔해진다. 자문해보자. 우리는 지금 개혁을 위한 준비가 돼 있는가.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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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맘때는 통일부 출입기자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는 ‘약간 과장을 보태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자생활 중 보람도, 재미도 없던 시기를 딱 1년만 꼽으라면 이때다. 부지런히 기사를 쓰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에 남는 기사는 없다. 단지 남북관계를 다룬 기사 대부분에서는 ‘단절’ ‘중단’ ‘폐쇄’ ‘불허’ 등의 단어가 핵심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경향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의 이름을 함께 넣어 검색해보았다. 2010년 5월24일에는 ‘통일부, 대북 신규투자 금지…방북도 불허’란 기사를 썼고, 그 다음날에는 ‘통일부, 체류목적 방북 25일부터 불허’란 기사를 썼다. 두 달 뒤에는 ‘개성공단 체류 80~90명 증원, 실익 없는 생색내기’란 제목으로 위기에 빠진, 그러나 폐쇄까지는 되지 않았던 개성공단의 소식을 전했다. 같은 해 3월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나마 남아 있던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해 5월24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홀을 결의에 찬 표정으로 걸어나와 대국민담화를 읽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8년 전에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에게 후계자 자리가 돌아갔다는 소식까지는 나왔으나 얼굴도 몰랐다. 심지어 이름도 김정은인지 김정운인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을 정도였다.

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지위가 공식 확인된 것은 2010년 9월28일이었다. 북한은 이날 개최된 당대표자회의에서 김 국무위원장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3대 세습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 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에야 전면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도 2012년 4월이 되어서였다. 그달 15일 북한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인민군 열병식에서 김정은 당시 노동당 제1비서가 연설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와 외모, 행동을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생전 모습과 비교하는 분석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김 국무위원장은 대외적으로 ‘잔인한 면모’를 먼저 보여줬다.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지난해 2월에는 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공항에서 독살됐다. 김 국무위원장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인물로 전 세계에 각인됐다.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알려진 뒤에도 10년 가까이 ‘미지의 인물’이었고 ‘미친 독재자’였던 김 국무위원장이 지난봄부터는 한국의 언론에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27일과 지난달 26일에 연달아 열린 남북정상회담, 지난 12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가 가능한’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그는 어쨌든 밖으로 나왔다. 남북관계는 지난해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이 됐다. 최소한 당장 내일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이런 변화는 지난해 5월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북한의 독재자를 비난할 때 누군가는 희망을 이야기했고, 유권자들은 그 희망을 선택했다.

13일 1년여 만에 다시 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선거를 통한 선택은 어쩌면 대통령보다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의 이번 선택은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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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이 입구를 가로막았다. 까만색 유리문이라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업종을 바꿨을까? 문을 열어 보았다. 갤러리가 맞았다. 작품 수가 기대보다 적었다. 직원에게 다른 공간은 없느냐고 물으니 건물 구조를 그린 종이를 건넨다. 아무리 둘러봐도 통로를 찾을 수 없다. 문밖에 나가도 부속 건물은 없다. 안으로 돌아와 고민을 거듭하다 다시 물었다. 직원이 가리킨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문이 열리자 식당이 나온다. 어디지? 층수를 잘못 눌렀나? 두리번거리며 식당으로 나오니 다른 갤러리 공간이 비로소 드러났다.”

지인이 어느 갤러리에서 겪은 일을 e메일로 전했다. 갤러리 입구에서 ‘어디 가냐’며 저지를 당한 내 경험에 비하면 별일도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림 애호가’가 아니라 ‘그림 도둑’처럼 생겨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농담 반 한다.

갤러리인가? 식당인가? 지인의 에피소드엔 갤러리 공간의 본질에 관한 의문이 담겼다. 갤러리 일반에 관한 여러 함의도 들었다. 그도 나도 성낼 이유가 없다. 갤러리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곳이다. 갤러리 대표는 옛말로 화상(畵商)이고, 영어로 딜러(dealer)다. 미술품을 팔아 이윤을 추구한다. 근대 이후 상품 아닌 예술이 어디 있나? 책도, 영화도, 무용도, 연극도 마찬가지다. 갤러리만 상업적인가? 국립미술관에도 재벌이 그 이름을 그대로 달고 스폰서를 한다.

지인은 ‘전시’를 향유하지 못해 화가 났다.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자료도 받지 못했다. 이것도 갤러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갤러리는 그림만 보러 오는 이들을 환대하는 곳이 아니다. 미술관 보도자료와 갤러리 보도자료는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갤러리 자료엔 ‘관람’이란 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자 ‘간담회’(懇談會, 정답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니!) 때 관람을 독려하는 일도 없다. 갤러리 ‘전시’는 컬렉터, 언론이나 미술 관계자들을 위한 것이다. 컬렉터들은 따로 약속을 잡고 와 안내를 받는다. 보도는 스크랩돼 작품 ‘가치’(라고 쓰고 ‘가격’이라 옮긴다)를 높이는 지표가 된다.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에 포섭된다.

지인은 갤러리 전시 기사를 보며 상업공간을 관람공간으로 착각했다. 문화공간처럼 오도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미술 저널리즘’을 고민한다. 더 확대해 ‘문화 저널리즘’이라고 할 때, 그 작동 방식은 비슷하다. 책이든, 공연이든, 영화든 창작자가 새 창작물을 내놓으면 출판사나 기획사, 영화사는 ‘간담회’를 열고, 마케팅한다. 수용자의 구매 과정에 저널리즘은 비판이든, 호평이든, 정보 전달이든 개입한다. 다만, 미술품은 다른 ‘문화상품’보다 훨씬 비싸다. 대량 복제할 수도, 자주 반복할 수도 없다. 컬렉터만 보는 전문지가 아니라면, 미술 전시 기사에서 중요 기준은 ‘관람’이어야 한다.

갤러리가 ‘관람’에서 미술관을 대신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시장미술’에 집중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을 보면, “대형 화랑들이 경매를 겸업, 독과점에 따른 불공정이 심화”됐다고 나온다. 신진 작가 발굴을 등한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체부도 전시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누구든 미술품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는 미술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갤러리를 두곤 ‘중저가 미술품 소비·대여 확대’ 같은 목표만 세웠다.

미술을 좋아한다면 갤러리를 외면할 수만은 없다. 한국 거장과 해외 유명 작가들이 종종 갤러리를 통해 ‘소개된다’. ‘좋은 작품’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 환대받지 못한들 어떤가? 갤러리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을 이끌어낼 일도 아니다. 갤러리 모두가 ‘관람객’을 냉대하지도 않는다. ‘식당에 딸린 갤러리’ 구조가 아니라 미술관을 지향하는 갤러리도 있다. 그저 관람객에 무심할 뿐이다. 지인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무심히 또 담담히 작품 관람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갤러리로 가는 발걸음을 멈출 필요가 없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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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딘은 10년 전 친구의 소개로 한 남성을 만났다. 필리핀인 제럴딘은 어학원 영어교사였고, 남성은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와 수학 교사로 일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하지만 제럴딘이 임신을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 임신 소식을 알게되자, 남성은 한국으로 떠났다. 아들 제라드는 아버지 없이 여덟 살까지 자랐다. “아빠는 왜 없을까”라는 의문은 제라드의 정체성에 큰 구멍으로 남았다. 모자는 한국으로 왔다. 낯선 나라의 국회 앞에 서서 피켓을 들었다. “코피노에게 행복을 찾아주세요.” 지난해 한국일보에 소개된 사연이다.

제라드는 ‘코피노(Kopino)’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코피노는 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란 사이트에선 공개적으로 아이의 아빠를 찾고 있고, 현재 32명이 친부를 찾았다.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아일랜드 시민들이 26일(현지시간) 더블린성 앞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금지 헌법 조항 폐지’가 결정되자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더블린 _ AP연합뉴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법에 대한 논란을 보자니, 코피노가 떠올랐다. 하나는 청와대 청원에 올라온 ‘히트앤드런방지법’이다. 국민청원에 21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비혼모에게 친부가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부에서 우선 지급하고 당사자에게 원천징수하는 법을 만들어달라는 청원이었다.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방안이라고 밝혔다.

또 하나는 낙태죄다.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의 공개변론에 법무부가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것은 “성교하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 논란이 됐다. SNS에선 ‘#법무부장관_경질’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다.

‘성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무엇인가? 코피노가 떠오른 건 바로 이 대목에서다. 필리핀은 엄격한 가톨릭 국가로 낙태뿐 아니라 이혼도 금지돼 있다. 그 결과 비혼모 비율이 높고, 불법 낙태에 의한 여성 사망률도 높다고 한다. ‘성교의 책임을 진’ 여성들은 홀로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라난다. 4만명 코피노는 ‘성교에 책임을 진’ 행위의 결과인가, 그렇지 않은가. ‘히트앤드런방지법’도 마찬가지다. ‘성교의 책임을 진’ 비혼모들은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 어렵게 아이를 키운다. 한부모가족 가운데 77.5%는 법적으로 양육비를 받을 권리인 ‘양육비 채권’을 갖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사회에서 ‘성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왜 그 책임은 여성에게만 요구되며, 남성은 자유로운가. 정상가족 밖의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해서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 책임만 여성에게 묻는 것, 이 지점에 여성들이 분노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현행 법제는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정현미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가 나와 해프닝을 연출했다. 정 교수는 “출산·낙태는 국가가 강요할 수 없다”며 법무부 입장에 반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 교수는 스스로도 “낙태에 대해 제가 연구한 결과들이 알려져 있는데도 법무부 참고인으로 선정돼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보수적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가 이뤄져 66%의 지지로 낙태금지 헌법조항이 폐지됐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여성들이 귀국해 투표를 했고, 그 결과에 환호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2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은 여성에 대해 폭력적인 사회 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 그리고 ‘몰카 범죄’에 대한 공정한 처벌을 요구하는 ‘붉은 시위’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낙태죄 폐지에 대해 해묵은 논리를 반복하고 자신의 대리인으로 ‘반대 입장’을 지닌 학자를 내세우며 자기분열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법무부는 보수적이기 이전에 게을러 보인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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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장소에 대한 애착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사라진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클수록 상실감도 크다. <장소의 재발견>의 저자인 앨러스테어 보네트 영국 뉴캐슬대학 교수는 이러한 애착을 ‘토포릴리아’, 장소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경향신문 맞은편 새문안 일대가 내겐 그런 장소들 중 하나다. 이 지역은 몇년 전만 해도 골목의 정취가 살아 있는 ‘먹자골목’이었다. 할머니의 손맛으로 먹던 ‘콩비지’집, 주 종목은 삼겹살이지만 미리 전화만 하면 회 한 상쯤 거뜬히 차려내는 ‘제주 오름집’이 단골 식당이었다. 비오는 날 ‘문화칼국수’에서 먹던 파전과 걸걸한 막걸리는 왜 그리 맛나던지. 고깃집들만 있던 골목에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와 ‘비스’는 어쩌다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면 가던 곳이었다. 정갈한 한정식을 내놨던 ‘미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깡통’…. 이 골목엔 주변 직장인들의 곳간 노릇을 하던 집들이 여럿 있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선 광화문 인근과는 달리 개발에서 밀려난 탓에 주택을 개조한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식당은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모두 골목을 떠났다. 돈의문 뉴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은 공원이 되면서 사라질 뻔했다가 서울시가 도심 개발로 사라져가는 옛 골목을 보존하기로 하면서 지금의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들어서게 됐다.

박물관 마을이 조성된 새문안은 1422년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옆에 돈의문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새문’(돈의문)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새문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지역엔 1800년대에 작성된 옛 지적도상의 좁은 골목길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목조건물, 개량한옥, 1970~1980년대 유행한 ‘슬래브집’ 등 국적불명의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시가 또 다른 피맛골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도시재생사업으로 개발계획을 변경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바꿔 조성된 박물관 마을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지난달 마을 안에 문을 연 ‘돈의문 전시관’은 이탈리아 식당과 한정식집 건물을 전시실로 바꾸면서 전시실 이름도 ‘아지오’ ‘한정’ 등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아지오 1층에는 전차의 개통과 사라진 돈의문 등 근대 교통·외교 중심지였던 돈의문의 변화상을 담았다. 적어도 이 지역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옛 동네의 모습을, 수많은 추억이 담긴 음식점들을 모형으로 되살린 전시관에서 마주하고 싶지는 않을 테다. 장소에는 사람들만의 오래된 기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이 떠나고 들어선 박물관 마을은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며 한때 북적였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들이 뜸하다. 마을은 대부분의 건물이 공실로 남아 있다. 게다가 돈의문 전시관은 부실공사로 비가 샌다. 기존 음식점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마을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도시재생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용산구 후암동과 성북구 성북동에서 시범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우리는 기억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이 ‘또 다른 개발’을 경유하는 과정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낡은 건물과 오래된 거리들이 보여주기식 ‘박물관’으로 바뀌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파리의 장소들>에서 사회학자 정수복은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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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대한의사협회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전국 의사 대표자들이 서울에 모여 ‘문재인 케어’ 등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연 뒤 그 내용을 당일에 정리한 것이었다. 여러 한글파일 중 ‘제1분과 토의 회의결과’에 눈길이 갔다. 소제목이 ‘문케어의 대회원 및 대국민 홍보’였다.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놓고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 초 정부, 병원협회 등과 함께 앉아 있던 대화 테이블에서 홀로 빠졌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가 빠지자 개별 학회 등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23일 ‘극우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대집 후보가 제40대 회장으로 선출된 뒤에는 투쟁 기조가 더 강해졌다. 남북정상회담일(4월27일)에 집단 휴진을 하겠다 예고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유보했다. 의사협회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큰 기대 없이 의사협회가 보내온 자료를 열었다. 그동안 수차례 내놨던 입장을 다시 되풀이하겠거니 지레 짐작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꼼꼼히 읽어봤다.

깜짝 놀랐다. 그간 의사협회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아쉬워했던 것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특히 ‘대국민 홍보 시의 전략적 고려사항’ 항목에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들어 있었다. ‘의사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자’며 ‘서울지하철 노조의 홍보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서울지하철 노조가 임금 인상요구를 직접 하지 않고 기관사의 근로여건과 안전요원 확충을 앞세우듯이 의사들도 수가 인상을 요구하지 않고 정부가 스스로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대국민 홍보방식’은 30가지로 정리했다. 문재인 케어 철폐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케어를 찬성하면서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재정 지원 방안 등에 대해 강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4대강 등 역대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열거하고 이 정권의 문케어도 잘못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홍보에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상회담을 축하하고 평화 번영을 기원하고 남북의료에 대해서는 의사가 책임지겠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로 홍보를 하는 것이 필요함. 통일 이후의 의료에 대해서도 준비를 통해 주도적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필요함’이라는 의견이 홍보방식으로 제시됐다.

앞서 최대집 의협회장은 해당 토론회가 열리기 이틀 전인 4월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북정상회담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틀 사이 의사협회의 입장에 큰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반가운 마음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반가움은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무진의 실수로 공식 입장이 아닌 내용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었다. 다시 보니 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은 다른 파일에 들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13만 회원은 정부가 문케어와 관련된 모든 정책 추진을 중지하고 (…) 총파업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는 전국의사 대표자 일동 명의의 결의문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 철폐를 주장하면서 내놓은 이유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적도 있다. 기득권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억울할 것이다. 그렇다고 싸우려고만 든다면 외로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일수록 여론을 살피고, 스스로 주변도 돌아봐야 한다. 의사협회 내부에서조차 저런 의견이 나왔다면 과감하게 채택하고 실행도 해볼 일이다. 의사협회의 주장대로라면 어차피 지금도 최악의 상황에 있지 않은가.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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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4일이었으니까 약 석 달 전이다. 인천 선학 빙상경기장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스웨덴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경기장 밖이 시끌시끌했다. 환영 집회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대한애국당 당원 수십명은 차량 앰프 볼륨을 잔뜩 높여두고 욕설 섞인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경호가 삼엄했다. 남북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선수단이 도착했고, 격리나 다름없는 경호 속에 줄을 지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몸을 푸는 모습을 통유리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양쪽 선수들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지만, 신발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북한 선수들은 자국 운동화를 신었다. 흰 운동화를 신은 이들이 한쪽에 따로 모였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도, 선수들 마음 사이의 거리도 아직은 좁혀지기 전이었다.

4월 27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 서성일 기자

평창 올림픽이 시작됐다. 훈련을 마칠 때마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취재구역에 선 그들에게 취재진은 “얼마나 가까워졌냐”는 질문을 채근하듯 쏟아냈다. 비슷한 답이 반복됐다. “잘 지내고 있다”, “많이 친해졌다”, “남과 북 그런 거 없다”. 가끔 날 선 대답이 삐져나오듯 툭 튀어나왔다.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할 일 아니다”. 그럴 때면 긴장감이 돌았다.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간 듯했다.

단일팀은 급조됐다. 정치권이 서둘렀다. 선수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삐걱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막연한 설득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쓰는 말이 달랐다. 전력 강화를 위해 귀화한 선수들이 여럿이었다. 영어와 남한 말과 북한 말이 얼음 위에서 자꾸 엉켰다. 전술 회의 때는 통역의 시간이 있지만 쉼없이 움직이는 경기 속 여유는 없다. 급하면 자기 말이 튀어나왔다. 패스가 빗나갔고, 수비 라인이 정돈되지 못했다. 빈 공간이 생겼고, 자꾸 골을 먹었다. 경기는 다 졌다. 어린 선수들은 엉엉 울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일본전에서 첫 골을 넣었고, 0-8로 졌던 스위스를 만나 0-2로 잘 싸웠다. 단일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말보다 몸으로 먼저 상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 스웨덴전에서 2피리어드 막판까지 승리를 노려볼 만했다. 마지막 경기를 끝냈을 때 선수들은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의 신발끼리 모여 있던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훈련 때는 여기저기 모여서 ‘셀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을 가깝게 만든 것은 몸을 부딪치며 함께한 스킨십과 훈련이 아니었다. 마음을 열게 한 것은 함께 먹은 ‘밥’이었다. 경기 일정이 모두 끝난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단일팀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묻는 질문에 랜디 희수 그리핀은 “이틀 전 아침 식사 때 선수촌 식당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났다. 다들 맥도날드 앞에 줄 서 있길래 우리도 같이 줄 섰다. 아침 식사인데, 북한 선수들이 맥플러리(아이스크림)를 먹길래 같이 먹었다. 아침으로 맥플러리를”이라며 웃었다. 마지막 회식은 고깃집에서였다. 후식으로 시킨 냉면이 별로였단다. 북한 선수들은 “평양 오면 옥류관 냉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김희원은 “(김)향미 언니도, (정)수현 언니도 곱빼기로 사준다고 약속했다. 언니들이 진짜 평양냉면은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틀 뒤 북한 선수들이 버스에 올랐다.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오랜 세월 갈라져 있던 틈을 메운 것은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냉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직접 면발을 뽑은 ‘평양랭면’은 미식의 단계를 뛰어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화해와 평화는 당위에 기반한 구호와 선동에서 오지 않는다. 깔깔거리며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과 랭면이 시작이다. 단일팀이, 스포츠가 찾아 보여준 길이다.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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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쓰레기를 버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어놓거나, 재활용품으로 분류해 놓으면 다음날 사라지던 쓰레기다. 거대한 집게에 매달려 5t 트럭에 실린 채 시야에서 멀어지던 쓰레기는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는 없어진 것인가?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은 “쓰레기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사라진다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매립지에 이르러 환경을 파괴하고, 독성 화합물을 공기와 토양에 퍼뜨리고, 그 상품들을 만들기 위해 쓰였던 자원을 헛되게 만들며, 처리하는 데 매년 수십억달러가 들어간다”고 쓰레기의 사후를 설명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달 초 불거진 재활용 쓰레기 수거거부 사태는 ‘쓰레기의 존재감’을 유례없이 드러냈다.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자 그제서야 ‘버린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재활용 쓰레기의 수거·선별·재활용 과정을 차례로 추적했다.

쓰레기를 쫓기 시작하자, 왜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에 관심을 갖기 힘든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그것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쓰레기 관련 업체들은 하나같이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쓰레기를 다루는 일은 거의 이주노동자들이 하고 있었다. 먼지와 냄새가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미세먼지 수치 등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 선별장에서 대표는 “사고가 잦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9일 뒤, 수도권의 한 선별장에서 노동자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트병 재활용 공장은 4000여평 규모에 설비비만 20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공정은 간단했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색상별로 분류하고, 부수고, 씻어낸다. 하지만 총천연색 페트병, 알루미늄 뚜껑, 잘 떼어지지 않는 라벨은 단순한 공정에 거대한 설비를 필요케 했다. 잘게 부서진 페트병 조각은 물로 세척된다. 그 폐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천, 경기 해안과 낙동강 하구가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2, 3번째로 높은 곳이라는 연구 결과와 과연 무관할까.

‘쓰레기의 사후’를 보고 나자, 더 이상 예전처럼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됐다. 비닐은 운이 좋다면 고형연료가 되어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져 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매립되거나 소각장으로 가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킬 것이다. 1회용 커피컵은 대부분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것이며, 어쩌면 스페인 해변에 떠오른 향고래의 배 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 중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쓰레기의 처리 과정은 재활용 마크처럼 명쾌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동이 들어가고, 또 그 과정에서 폐기물이 생산됐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의 저자 애니 레너드는 “쉽게 고장나고 재활용하기 어려우며 유독한 제품을 과도하게 포장해 판매하는 기업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계속 치워주면서 그들의 나쁜 행동을 강화하지 말자”라고 말한다. 쓰레기가 될 물건을 생산한 기업이 책임지도록 하면 애초에 더 좋고 더 오래가고 독성이 덜한 물건을 만들게 될 것이란 것이다.

정부가 쓰레기 재활용 정책을 장기적 안목에서 검토하고 있다. 과도한 1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일상에서 몰아낼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생겨난 것이다. 이 틈새가 커다란 문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지구상에는 한 사람이 연간 420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서울 같은 도시도 있지만, 연간 4개의 비닐봉지만 사용하는 핀란드 같은 나라도 있다. 그 차이가 개인의 선택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쓰레기는 그 사회의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 환경과 지구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니까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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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직후인 지난 1월 말 대검찰청이 꾸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활동이 마무리돼 간다. 조사단은 이번주 서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안태근 전 검사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그간 파헤쳐온 검찰 내 성범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사단의 ‘1호 기소 사건’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던 김모 부장검사의 강제추행 사건이었다. 김 부장검사는 작년 6월 법무연수원 교수 시절 알게 된 변호사를 노래방에서 강제추행했다. 지난 1월에는 술취한 후배 검사를 회식 자리에서 강제추행했다. 조사단은 지난 2월12일 사무실에 있던 김 부장검사를 이례적으로 긴급체포했고, 사흘 만에 구속한 뒤 엿새 후인 같은 달 21일 재판에 넘겼다. 체포부터 구속기소까지 9일 만에 이뤄진 대단히 신속한 조치였다. 출범 초기 조사단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김 부장검사는 지난 11일 수감된 지 정확히 두 달 만에 풀려났다.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김 부장검사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상실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피해자들이 더는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것도 유리한 양형 요소가 됐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두 차례 강제추행을 저지른 김 부장검사에게는 징역 6월에서 3년까지 선고될 수 있었다. 김 부장검사에 대해 징역 1년을 구형했던 조사단은 항소기간인 지난 18일까지 항소하지 않았다. 조사단 측은 구형량의 3분의 1 미만의 형이 선고됐을 때 항소한다는 ‘통상적 기준’을 들며 “이런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의사가 매우 중요한데 피해자들이 더 이상의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법원에 밝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구형량의 3분의 1 이상의 형이 선고됐을 때도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사례는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무수히 많다. ‘같은 법조인이라 봐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신분이 보장된 검사를 긴급체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까지 들으며 의지있게 수사해 재판에 넘긴 조사단이 끝내 온정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이래서는 안 전 검사장 재판에서 공소유지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조사단 출범을 지시할 당시 검찰 조직 내 성범죄가 근절될 때까지 무기한 운영하겠다고 했다. 조사단이 검찰 내 성범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검찰 밖의 사람들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았을 때 ‘근절’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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