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13일 댄 베이커 수석편집국장 이름으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자사 기자들의 트위터·페이스북 사용 안내다. 핵심 사항 첫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기자들은 당파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관점을 고취하고,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뉴욕타임스의 명성을 깎아먹는 어떠한 공격적인 코멘트를 해선 안된다. 뉴욕타임스가 객관적으로 다루려는 이슈를 두고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언론인 E P 데이비스가 “기자들은 개인 의견이나 언론사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예외적인 경우를 빼곤 불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게 1884년이다. ‘기자 개인’ 의견 표명 자제는 저널리즘의 오랜 원칙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디지털 저널리즘’에서 기자와 소셜미디어는 논쟁적인 사안이다. 언론사들은 독려하든가 자제시키든가, 또는 둘을 조합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뉴욕타임스가 ‘제한 사항’을 늘린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건 왜일까? 가이드라인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우리 기자들과 에디터들의 트윗은, 비록 트럼프 담당이 아니더라도, 뉴욕타임스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썼다. 베이커가 가이드라인 발표 전날 조지워싱턴대 포럼에서 한 발언에선 더 구체적인 이유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베이커가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절대로 소셜미디어에 말해서는 안된다. 신문의 (비판 보도) 동기가 대통령에 대한 ‘벤데타’(vendetta·보복)가 아니라 ‘건전한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분명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맹렬한 비판 보도’를 이어가는 뉴욕타임스는 몇몇 기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팩트에 근거한 비판 보도나 불편부당 원칙에 흠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뉴욕타임스를 ‘가짜뉴스’를 만드는 곳이라고 여러 차례 비난한 트럼프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이드라인은 뉴미디어와 저널리즘, 표현 자유, 독자 소통, 권력 비판, 진보·보수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다. 보수 쪽은 공격했다. 미디어리서치 센터 부회장 댄 게이너는 “트위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는데 뉴욕타임스는 이제야 직원들이 멍청하고 좌파적인 것들을 트윗한다는 걸 깨달았나”라고 했다. 보수매체 폭스뉴스가 대표로 지목한 기자는 백악관 담당 글렌 트러시다. 이 매체가 문제 삼은 트윗 하나는 “당신은 인종주의자, 반유태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와 거리 두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상관과 계속 일할 것인가”다.

‘편향’과 ‘정치 의견’의 기준이 무엇인지 되묻는 의견이 나온다. 진보 성향의 트위터 이용자는 “기후변화, 편견, 불법이민자 말살에 어떻게 ‘한쪽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나”라며 비판한다.

나는 KBS·MBC 노조원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찬성한다. 둘 다 ‘정치 의견’이다. 한국 사회 한쪽에선 ‘편향’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칼럼에 밝히는 것은 괜찮고, SNS에 글을 올리면 안되는 것일까? 한편으론, SNS를 ‘눈팅’만 하고 글을 올리지 않게 된 건 내 의견과 경향신문의 입장을 동일시하는 시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경향신문 소속이라 팔로한 이들에게 ‘SNS 글은 개인 의견이니 회사 입장과는 무관합니다’라며 무작정 편의를 봐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소속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SNS를 한다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

SNS에 다시 글을 올린다면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의 16가지 핵심 사항 중 다음을 새기려 한다. “소셜미디어 독자들을 항상 존중하라. 독자의 기사·포스트에 관한 질문이나 비판에 응답하려 한다면, 사려 깊게 하라.”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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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1박2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 백악관의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 순방 일정 발표 때 이미 결정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백악관 발표 몇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공지했을 때도 “한·미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도착 및 출발 일정을 계속 협의 중”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보안 브리핑을 한 후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는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이 2박3일~3박4일로 예상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도착 시간을 7일 오전에서 6일 저녁으로 앞당겨줄 것을 요구해왔다. 방한 일정이 1박2일에 그치면 일본과 비교된다는 이유였다.

백악관 발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숙박 일수를 늘리는 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모양새나 의전이 외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들르지 않는다면 모를까 한국보다 일본에 더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미국이 한·미동맹에 부여하는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모양새가 좋다고 실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의전, 모양새에 신경을 쓰며 귀중한 외교적 자산을 트럼프 숙박 일수 늘리기에 쏟은 정부도 실질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이른 시점인 취임 50일 이전 미국을 방문한 것에 야단스럽게 공고한 한·미동맹 의미를 부여한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외교안보 라인이 ‘신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다자외교 무대(G20)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강하게 주장해 문 대통령은 정책 기조나 전략은 물론, 외교안보 인선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치밀한 준비 없이 정상 방미를 했다. 그 결과 미·일의 의도대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구도가 강화됐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았던가.

<정치부 |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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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세기에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휴가 두 달. 육아휴직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던 때였다. 요즘이야 출산 1~2주 전부터 휴가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땐 출근길에 양수가 터져서야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두 달밖에 안되는 휴가 기간에서 하루도 허투루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무 야만적인 환경이었네요.” “출산하고 고작 두 달 만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나요?” 동정과 놀라움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자 후배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20세기 출산 경험자’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떠들어댔다. 사무실에서 담배도 마구 피워대던 시절이었다는 둥, 유세 떤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 야근도 다 했다는 둥. 기업의 한 간부는 “ ‘임신=퇴사’였던 때라 6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다”고 해서 듣는 이들을 기함하게 했다.

여러 직종의 20~40대 여성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모인 자리. 하지만 몇몇이 침을 튀기는 동안 저들의 눈빛은 “그래서요?”라고 되묻는 듯했다. 어쩔거나, 이 싸한 분위기. 예전에 밭 매던 호미로 아이 탯줄 끊고 마저 밭을 맸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시큰둥함. 딱 그것이었다. 그 찜찜함이 느낌이 아닌 ‘실화’라는 것은 며칠 뒤 40대끼리 다시 모인 자리에서 확인됐다. “불편했대요. 자기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나 뭐라나.” “우리야 물어보니 옛날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좀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그러네요. 예전 상사들에 비하면 우린 정말 괜찮은 편 아닌가요.” “앞으로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그것도 단답형으로.”

맞장구는 쳤지만 절감했다. 멘토고 뭐고 간에 그냥 우린 ‘꼰대’였던 거다. 조언이나 연륜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착각했을 뿐, 그저 내면화된 꼰대 근성이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지 않으냐”며 확인받고 싶어했고 딸아이는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되물었다. 난 그럴 때마다 “너희들이 밀레니얼 세대면 난 ‘영포티(young forty)’다”라고 응수했다.

역사상 가장 젊다는 40대.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의 문화자본을 충만히 누리며 자란 나이든 X세대들. 그때 데뷔했던 이병헌, 정우성, 박진영이 여전히 대중문화를 주름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린 위 세대와는 다르고 젊은 세대와는 통한다고 자족했다. 하지만 ‘영포티’를 다룬 기사에 붙어있던 “그래 봤자 나잇값 못하는 꼰대”라는 댓글이 아프게 와닿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안이나 뉴스,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해 여혐 문제를 지적하거나 젠더감수성의 부재를 문제 삼는 논의 앞에 말문이 막히는 사례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나름 상식적으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는 사안들이 늘어나면서 그저 막막했다. “선배, 이건 정말 문제 아닌가요”라고 심각하게 지적하는 후배 앞에서 “으응, 그러게” 하고 얼버무린 뒤 지적의 핵심을 파악하려 애쓰는 딱한 내 모습은 내게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을 매섭게 묻고 있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입을 닫는 것, 그리고 머리와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명제가 천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고 지혜가 쌓여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절로 깨치지 못한다.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책을 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을 뒤적이다 눈에 번쩍 뜨이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한 온라인 콘텐츠 회사에서 발간한 이 유료 콘텐츠를 덥석 결제했다. ‘요즘 애들의 사적인 생각들’, 궁금하지 않은가.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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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가 온통 부정부패와 친일 독재로 점철된 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북한 이탈주민 학생들마저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렇게 자세히 배울 줄은 몰랐다’고 할 정도다.”

2015년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행정예고 기간에 ‘국정화 찬성 의견’으로 제출된 내용이다.

의견서의 작성자는 ‘이완용’으로, 주소는 ‘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다. 전화번호는 경술국치일 1910년 8월29일을 딴 ‘010-1910-0829’였다. 찬성 의견을 올린 사람 중에는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에 사는 ‘박정희’와 ‘박근혜’도 있었다.

또 찬성 의견서 작성자 이름에는 ‘대통령말씀대로하는게맞습니다’와 ‘뻘짓’ ‘미친짓’ 등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정부가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작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의견서를 지어낸 이들도 잘못했지만, 더 큰 문제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이런 찬성 의견들을 ‘심사’해놓고도 정상적인 의견서로 분류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육부는 동일한 기관과 단체, 개인의 서명은 1건으로 처리했다고 했으나, 하나의 주소로 찬성 의견을 낸 1613장을 ‘정상 의견서’로 분류했다.

교육부는 의견서들을 살펴보고 유효심사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완용’과 ‘박정희’를 버젓이 두었다면 직무유기다. 당시 찬성 의견서는 그대로 둔 채 반대 의견서만 집중적으로 걸러냈음을 의심하게 한다. 실제 걸러진 반대 의견서는 걸러진 찬성 의견서의 수십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인쇄소에서 찬성 의견서 한 트럭 분량이 무더기로 ‘제작’돼 제출된 일명 ‘차떼기 제출 사건’이 불거졌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사실무근이라며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 정책대로 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이 무슨 책임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임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달 출범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차떼기 제출 사건’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이르면 16일 사건을 일선 지방검찰청에 보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이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경학 | 정책사회부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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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의 숙명이겠지만 늘 거대담론에 둘러싸여 산다. 명절은 이 팍팍한 늪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일상의 소박한 결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예외였다. 이명박(MB) 정부의 ‘적폐’라는 거대담론에 단단히 포위된 채 보내야 했다.

군까지 동원된 정치개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전직 대통령 비하 청부….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비리도 모자라 국가기관이 보수단체와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다는 정황마저 불거졌다. 권력이란 게 아무리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이 본질이라지만, 그래서 적과도 거래하는 진흙탕 싸움도 불사한다지만 정치적 부관참시까지 하다니. <징비록>과 <난중일기>가 시사하듯 왕조·식민지 지배세력들도 품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게 우리 역사였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도 반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항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지 않았고 독재의 실체적 진실이라도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테러방지법 등을 동원해 체제를 바꾸려 했던 신념 보수이기라도 했다.

그렇다면 온갖 적폐로 통칭되는 ‘MB의 시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한 것인가. ‘MB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그 시절, 우리는 국가를 잃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중단으로 광주를 뺏겼고 5월 정신을 뺏겼다. 건국절 논란은 뿌리 없는 국가 만들기 시도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공무원들을 민간인 사찰, 댓글 공작이라는 사적 이익에 동원하면서 공권력을 무너뜨렸다. MB 정권의 ‘국가 무용론’은 인수위 시절, 임기 말 노무현 정부와 ‘큰 정부, 작은 정부’ 싸움을 벌였을 때부터 예견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 소설가는 “국가는 국민의 마음을 닮게 마련이다. 이토록 국민의 마음을 배반하고 국가를 무력하게 한 지도자가 있었던가 절망했던 때”라고 돌아봤다.

시민의 가치가 송두리째 짓밟힌 세월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쳤던 시민들은 생명권과 검역주권을 박탈당했다.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들고 수많은 언론인을 해고하고 마스크 금지법, 댓글 처벌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가뒀다. 균형발전의 싹을 잘라 분권을 향해 나아가던 지역의 발걸음을 막았다. 한 지인은 “가슴 밑바닥까지 온통 불신밖에 없었다. 사회의 진보가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진보를 믿어야 할지조차 의심했던 때”라고 했다.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했던 5년이었다. 부실 자원외교는 에너지 공기업에 조 단위가 넘는 부채를 안겼다.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투기세력의 배만 불렸다. 덤핑 낙찰과 납품 비리에 얼룩진 원전 비리는 막대한 손실로 되돌아왔다. 국가 운영을 이익 중심의 비즈니스로 인식한 ‘장사치 보수’였다. 이로인한 상실감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말로 대신한다. “대규모 부패는 청렴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다. 신뢰가 파괴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냉소와 체념으로 힘겨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MB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온통 괴물의 악행을 성토하는 것뿐이면 안된다는 자성도 든다. 이런 세월을 지나고도 진보개혁 진영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정치권이 성찰하고 혁신하지 않는 동안 촛불이 세상을 일으켜 세웠다. 한편에선, 보수 지지층 결집 징후를 전하는 추석 민심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짐을 지고 인당수에 빠진만큼(구속) 보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을 거두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역할을 불신하는 미국에서도 ‘정부는 국민을 섬긴다’는 공민학 제1의 원칙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보수층이 앞장서 ‘MB의 시간’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일 테다.

적국(미국)조차 ‘위대한 혁명가’로 인정했던 체 게바라의 50주기에,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던 ‘MB의 시간’을 돌아봐야 하는 지금. 참으로 부끄럽고 괴로운 계절을 지나고 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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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긴 추석 연휴, 영화관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영화는 <남한산성>이다. <남한산성>은 청이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에 불만을 품고 공격해온 병자호란(1636년)이 배경이다. 강화도로 채 피란 가지 못한 인조는 혹한의 남한산성에서 버티지만 결국 47일 만에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영화는 항복할 것이냐, 항전할 것이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을 주목한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남한산성>은 마음 편한 영화가 아니다.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패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139분간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마음은 다들 비슷했을 것이다. 선조들의 무능함이 안타깝다가도 화가 나고, 그랬다가 한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시대 흐름을 못 읽었느냐고. 저무는 명과 떠오르는 청이라면 당연히 청을 따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깟 명분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김상헌의 척화를 이해는 하지만, 최명길의 화친이 더 현명했다고.

이미 역사의 진행 결과를 알고 있는 후대로서는 이렇게 말하기 쉽다. 하지만 당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똑같은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결과를 보고 앞선 선택을 평가하는 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사후확신편향’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후견지명(後見之明)’이다.

그냥 역사 영화라면 킬링타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지금 한반도 상황이 381년 전과 빼박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가 명이 저물고, 청이 떠오르는 명청 교체기였다면 지금은 미국이 비틀거리고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는 미·중 교체기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5년 즈음에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와 있다. 지금 20대가 40대 후반이 될 즈음이면 중국이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선택이 쉽지 않다. 한국에 미국은 6·25전쟁 때 같이 피를 흘린 혈맹이다. 명분과 의리로 보자면 미국을 외면하기 힘들다. 언론과 사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서구적 합리성은 중국을 앞선다. 중국의 공산당 전체주의는 앞선 모델이 아니다. 명과의 의리를 앞세우며 오랑캐국 청을 받들 수 없다고 하던 척화론자들의 고민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문제는 선택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한반도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발하고 있다. 한·미는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시스템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중국 본토를 들여다보기 위해 사드를 설치했다고 믿는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이미 노골화됐다. 롯데가 쫓겨나오고 현대차도 어렵다.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끊긴 지 오래다. 미래권력 중국을 달래야 하는데, 그렇다고 혈맹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힘들다. 한·미동맹은 현실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다시 17세기 초로 되돌아가 보자. 역사가들은 명과 후금(청) 사이에서 실용외교를 편 광해군을 주목한다. 광해군은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한 파병을 요청하자 고민 끝에 응한다. 하지만 조선군은 후금과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조선의 부득이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양해를 얻어낸다.

사드 문제도 큰 틀에서는 성격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경제와 안보, 모두 중요한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사드 배치에 응하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실용적 묘책이 필요하다.

어렵더라도 균형외교를 펴면서 미·중 양국을 달래고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자칫 어느 한쪽 편을 과도하게 드는 순간 또 다른 국난에 봉착할 수 있다. 국난은 총칼이 아닌 경제적 수단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현명한 외교정책을 기대한다.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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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가 반 년을 훌쩍 넘겼다. 중국은 지난해 여름 사드 도입이 결정되기 전부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노골적인 ‘혐한’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군이 롯데그룹의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사용키로 확정한 올해 2월말부터였다.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준 롯데가 보복을 당하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3월4일 하루 만에 4곳의 영업장이 동시에 영업정지를 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 내 112개 롯데마트 점포 가운데 80%에 육박하는 87곳이 지난 6개월간 문을 열지 못했다.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본 롯데는 지난달 중국 철수를 결정했다.

이보다 이틀 앞서 중국 국가여유국은 베이징 일대 여행사를 불러모았다. 그리고 10여일 뒤인 15일부터 중국 여행사들의 홈페이지에서 한국 여행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명동과 강남 거리를 가득 채웠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도 사라졌다. 자연 유커 특수에 상당부분 기대왔던 요식업·숙박업·여행업·유통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매년 20만명 가까운 유커가 한국을 찾았던 중국의 국경절 연휴(10월1~8일)에 올해는 그 절반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혐한 분위기로 공연가와 연예인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불매운동의 타깃이 된 현대자동차는 판매량이 반토막 났다. 지난 8월까지 현대·기아차 중국 내 누적 판매량(57만6974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104만3496대)보다 44.7%나 줄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풀어쓰는 이유는 이 ‘다 아는’ 이야기를 혹시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서다.

노영민 주중 대사가 얼마 전 기자들을 만나 “사드 사태를 보는 첫 번째 측면은 우리 기업 내부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기업이 있고, 오히려 중국 수출이 증가하는 기업도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하나의 변수일 뿐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부진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그 기업들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논리다. 노 대사는 다음날에도 “이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롯데의 경우도 대중국 투자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동주 회장은 롯데의 대중국 투자가 실패했다는 이유를 걸어 신동빈 롯데 회장을 공격한 것 아닌가”라고 부연했다.

이마트의 철수가 사드와 관계가 없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롯데의 중국 철수를 온전히 롯데 책임인 양 끼워넣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경영권 분쟁에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등장했던 일방의 논리를 인용하기도 했다.

사드로 피해를 본 기업의 경우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놀랍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투자 실패’를 운운하며 기업 흠집 내기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사드 정국하에 중국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주중 대사의 발언이다.

발언이 가리키는 목표 지점은 분명하다. ‘전부 정부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노 대사의 소신인지 정부 안에서 공유된 공식 입장인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사실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왔다는 점이다. 피해 기업에 돈을 ‘빌려’ 주고 세금을 유예해 주는 정도가 지금껏 대책의 전부였다. 재계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나 박근혜 정부나 똑같이 무능한 정부일 뿐이다.

사드 해법이 국제정치나 복잡한 역내 관계와 맞물린 난제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래서 국내의 누군가를 비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 책임자를 찾아야 한다면 그 첫 번째는 정부여야 한다. 적어도 이번 사드 정국에서 정부가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사드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있다고 장담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산업부 |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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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말로는 못할 것이 없다. “우리 국문과 교수들이 소설을 안 써서 그렇지, 쓰면 연수씨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소설가 김연수에게 어느 국문학과 교수가 했다는 말이다. 인터뷰집에서 김연수는 써야만 쓰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간절함인데, 그 간절함(은)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일이겠죠.” 그리고 “재능은 큰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서른 살까지 산다면 결정적이겠지만, 대부분은 오래 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의미해지죠”라고 했다.

상상력조차도 꾸준함에서 나온다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1982년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리고 있는 그이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뛰어간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속 이어가는 것 리듬을 끊지 않는 것. 이것이 장기적인 작업에서는 중요하다.” 무라카미는 에세이를 쓰는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나는 글자로 써보지 않으면 어떤 사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누구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프로가 되지 못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지 31일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후보자로 발표되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31년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두 가지 속내를 전달하고 싶었을 테다. 법원행정처 경험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 평생을 재판만 해온 95% 판사들에 대한 응원이다. 이 말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재판을 잘하려면 재판을 오래 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법원에서는 부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김명수 후보자가 발표되자 행정처에서 일한 전·현직 판사들은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기자를 만나서도 스스럼없이 후보자의 경력을 깔보았고, 사고를 치고 법복을 벗은 처지에 사법부의 미래를 개탄했다. “(청와대가) 사법부를 행정조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가장 혁명적인 조치.” “도대체 법원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행정처 출신들은 스스로도 이렇게 본다. “우리 행정처 판사들이 재판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당신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정처 출신 판사 가운데 재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강일원 헌법재판관의 재판은 폭포가 떨어지듯 정확하고 신속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무난하게 끝난 것도 그의 공이다. 또 다른 행정처 출신인 특허법원 김환수 수석부장판사 재판은 사람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영어로 심리를 주재하는 실력파이지만 당사자의 긴 얘기를 마음으로 듣는 겸손한 판사다. 무람하지만 내 주례 선생인 김앤장 변호사도 행정처 출신의 그런 판사였다.

하지만 몇몇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해서, 일반적인 현상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재판을 오래 하지 않았어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오히려 이 판사들이 재판에만 집중했다면 더 좋은 재판을 했을 테다. 사법시험에 붙은 판사들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재판을 오래 한 사람이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도 사법관료들은 “하급심을 아무리 오래 해도 대법원 재판은 다르다. 미국에서도 곧바로 대법원장이 되지만 종신제라 다르다”며 버틴다.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걸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을 내놓은 게 일흔이 넘어서다. 여든아홉에 임종을 앞두고 그는 “하늘이 내게 수명을 다섯 해 더 준다면, 진정한 화공이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했다. 유럽까지 뒤흔든 천하의 호쿠사이도 이렇다. 물감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재판은 죽을 때까지 해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25일 업무를 시작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주권자인 국민이 여섯 해를 주었다. 이 시간 동안 약속을 지켜야 한다.

31년 동안 재판만 한 사람의 실력을 보여줄 때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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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극복 의지가 남다른 것처럼 보였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 장·차관이 지난 18일 서울 구로구청 내 사랑채움어린이집을 ‘우르르’ 방문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아이들에게 동화책까지 읽어줬다. 그러면서 “저출산 문제는 범정부적으로 다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소아암·희귀난치병 환아 가족들은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이들은 한달 전 김 부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백혈병, 뇌종양 등을 앓아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아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주로 화상을 통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시설이 열악하다. 국공립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이 걱정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부모들의 바람이다. 환아 부모들은 김 부총리를 만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소아암·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초·중·고 학생 부모 모임인 ‘전국건강장애부모회’는 부총리 측에 공문도 보냈다. 사석에서 이들의 사연을 전해 들은 김 부총리는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만남이 쉽게 성사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재부에서 돌아온 답변은 “일정이 도저히 안된다”였다. 그리고 더 이상 연락도 없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개인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리고 있다. 자신이 소장했던 책을 선착순 접수를 받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SNS에 글 쓸 시간은 있으면서 소외받는 환아 부모를 만날 시간은 없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태어난 아이조차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부를 믿고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을까.

기재부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선다”고 했지만 아직 멀었다.

<박병률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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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큰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특수학교 설립을 결정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여기에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같은 자리에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주장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란 단어를 쓰긴 했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여론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 온라인 기사 등에 달린 댓글로만 보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집값에 미친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집값 하락을 염려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이웃으로 자리잡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뿐일까.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장애인 학교 건립을 밀어붙여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그 학교를 매일 다녀야 할 장애학생과 부모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를 보다 서울 중곡동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생각났다. ‘센터’라는 ‘폼나는’ 이름을 달아 새로 짓기 전에는 ‘국립서울(정신)병원’으로 더 잘 알려졌던 곳이다. 특수학교와는 비교가 안되는 ‘혐오시설’이기도 했다.

국립서울병원은 2002년까지 타지역으로 이전이 추진됐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도 원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도 내치려는 시설을 다른 지역이 달가워할리가 없었다.

2006년부터는 ‘재건축’이 추진됐다. 현재 있는 자리에 정신병원을 더 크게 지으려 하자 주민들은 다시 난리가 났다. 주민들은 정신질환 치료에는 도심이 아닌 자연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란 소리였다. 병원 때문에 집값이 하락한다는 말은 그때도 나왔다. 복지부와 병원 측은 ‘국가 땅에, 지금 병원이 있는 곳에 다시 짓는데 주민들이 왜 반대하냐’고 반박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거쳐 국립서울병원은 지난해 3월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개편해 문을 열었다.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 10여년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남윤영 박사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서울병원에서 기획홍보과장을 지냈다. 재건축추진 실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가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았다고 했다. ‘고발’을 당하기도 했고, 얻어 맞기까지 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난 18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남 박사를 찾아갔다. ‘혐오시설’을 지으면서 그만큼 많이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도 없을 터였다.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남 박사는 “주민들을 무조건 많이 만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병원 측은 먼저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새 정신병원 부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렇게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설득했다. 이어 정신병원 재건축을 지역발전과 연계시켰다. 재건축 계획은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을 거쳐 종합의료복합단지로 확장됐다. 개원 후에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했고, 정신과 외 다른 진료과도 개설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이제 중곡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학생들은 병원 내부를 지름길 삼아 통학한다. 동네 노인들은 저렴한 병원 구내식당을 즐겨찾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병원 1층 카페에서 잠시 여유를 맛보기도 한다.

10여년 전 정신병원이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하던 풍경이다. 그러나 누군가 상상력을 발휘했고, 동의했고, 현실이 됐다. 남 박사의 멱살을 잡았던 일부 주민들은 나중에 가장 큰 우군이 됐다고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기념관 동판에는 남 박사와 주민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남 박사는 “저희는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특수학교는 그보다는 훨씬 빨리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면”이라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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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군형법을 보면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밖의 추행’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동성애를 퍼뜨릴 위험인물’이라는 증거가 됐다.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이 같은 논리가 별문제 없이 통용되는 분위기, 게다가 급격히 퇴행하는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가는 청문회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후보자, 항문성교를 연상하게 하는 후배위를 선호하죠? (녹취 파일을 흔들며) 그동안 관계했던 여성의 증언이 확보돼 있어요. 인정하세요.”

“저는 상식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말자,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조문을 정비하자. 현재 동성애와 관련한 논의의 수준은 이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동의가 군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또 이것이 물꼬가 되어 소아성애, 수간, 시체상간까지 비화되리라 단언하고 군대 가야 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을 강변한다. 

듣다 보면 동성애자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 페스트 저리 가라 할 만한 치명적 역병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그 순간부터 동성만 보면 흥분해서 들이댈 좀비 같은 존재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통제불능 성도착자들이다. 좀 있으면 ‘나는 동성애자가 싫어요’ 외치다 죽임을 당했다는 군대 괴담까지 나올 기세다. 이렇게 끔찍한 존재들이 널렸는데 그동안 사우나는 어떻게 다녔으며 화장실 소변기는 어떻게 이용했나. ‘항문성교하면 처벌한다’는 얄팍한 보호막 하나로 안심하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이성애자들은 이성만 보면 흥분해서 껄떡거리는 존재들이다. 남녀가 함께 모이는 학교, 회사, 각종 공동체는 언제든 난교파티가 벌어질 공간이다.

우려해야 하는 것은 남의 성적 지향이 아니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물리력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기득권,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탄압이다.

동성애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데는 보수 개신교계가 큰 몫을 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에 물들어가는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떨쳐 일어날 만큼 ‘순수’한 신앙심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냉전·반공체제를 발판으로 함께 성장했던 수구보수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유통기한 지난 색깔론과 종북 타령을 대신해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성경에 언급된 그 수많은 죄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횡행하는데 왜 동성애에만 목숨 거는 건지 이해할 길이 없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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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이 지난 12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에 대해 “많은 부분이 오보”라며 “그 오보도 상당히 치밀한 계획 아래 나오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해당 기사는 대법원이 법원행정처로 인사 발령이 난 판사에게 일선 판사들의 사법개혁 관련 학술대회를 축소·저지하라는 부당한 지시를 내렸고, 이에 해당 판사가 반발해 사표를 내자 다시 원소속 법원으로 돌려보냈다는 내용으로 법원 안팎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관계자와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주 의원은 이 기사의 어떤 부분이 오보이고, 오보라고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전혀 제시하지 않으면서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러곤 “국제인권법연구회 활동을 하는 법관들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기자가 무슨 귀신도 아니고 어떻게 기사를 쓰겠느냐”고 몰아갔다. 이는 취재원으로부터 자료나 제보를 받아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 활동 자체를 부정하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다. 언론은 기관이 내는 공식 보도자료나 공식 브리핑만 베껴 써야 한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다.

이 기사가 제기한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의혹은 대법원 스스로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권한을 위임해 조사를 벌였던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 보고서에서 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대책 마련과 법원행정처로 발령난 판사의 겸임 해제 의혹, 인권법연구회를 타깃으로 한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조치의 부당성 등에 대한 법원행정처의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 6월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한발 더 나아갔다. 학술대회 축소에 직접 개입하고 이 판사에게 부당한 지시를 한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사실상 지시’를 받았다고 확인한 것이다. 임 전 차장은 이미 사직한 상태였고, 이 전 상임위원은 징계를 받았다.

“(기사 때문에) 법관들도 충격을 받고 놀라고 있다”는 주 의원 말에 되레 의문이 든다.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아니라, 이를 보도한 언론이 문제라는 것이라 황당할 따름이다.

주 의원은 이처럼 생각하는 판사가 있다면 그를 국회에 증인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이혜리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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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대통령 인사권의 막강한 힘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대통령은 장차관, 헌법기관 고위직 등 7000여명의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말의 본질은 대통령 인사권이 정권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역대 정권은 ‘같은 색깔’만 칠하진 않았다.

전략적 고려도 입혔다.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인덕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와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소수정권 한계 극복, 정치적 안정, 우방국 달래기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정체성 강화의 우회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보안 인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낙점한 인물도 언론에 하마평이 오르면 단칼에 지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론 인사’를 선호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후보 명단을 슬쩍 언론에 흘려 평판이 좋으면 인선을 강행했다. 평이 엇갈리면 민간업체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스템 인사에 관심이 많았다. 인수위원회 때 5단계 절차를 밟는 장관인사추천제를 도입했고, 집권 후엔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직을 신설해 인사 추천을 전담케 했다. 그전까지는 민정수석이 인사 추천·검증을 도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파격 인사는 ‘속전속결’ 개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사숙고 인사는 ‘역사적 평가’를 중시한 개혁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인사 정책만 봐도 균형인사, 인재 데이터베이스(약 12만명) 구축 등 시스템 정치를 구현했다.

위력이든 전략이든 스타일이든 인사는 결국 정권의 방향타이자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초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논란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문재인 정부 인사가 방향을 잃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이름이 발표될 때만 해도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은 기득권층 저항을 고려해 천천히 발표하자는 참모들 제안에도 문 대통령은 조기 인선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기영·이유정·박성진 후보자가 나오면서 국정철학은커녕 무슨 메시지인지조차 읽히지 않았다. 이해관계 집단은 물론 지지층 반발도 거세졌다. 여권 내에선 다양한 진단이 쏟아졌다. ‘참모들이 대통령 눈치를 본다’ ‘(전방위 평판이 담긴) 국가정보원 존안자료를 거부했으니 이 정도 비용(부실 검증)은 지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복심들이 빠져서 손발 맞출 인사를 가려내기가 힘들다’…. 문 대통령은 결국 지난 4일 인사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 인사 원칙과 검증 기준을 구체화하고, 인사 추천의 폭을 넓히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회에 청와대 인사기획비서관실도 신설하고, 임기를 보장해야 할 자리와 대통령 국정철학을 반영해야 할 자리를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오작동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인사가 한 정권의 국정철학을 담는다고 할 때 적어도 인사는 ‘시민 동의’가 중요한 기준이다. 재벌이 아닌 노동자, 전쟁이 아닌 평화, 갑이 아닌 을…. 촛불이 만들고, 시민들이 동의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다. 향후 인사에서 이 틀을 벗어날 경우 대통령이 인사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사원칙(철학)과 다투는 건 이해도, 수용도 가능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커지는 것은 청와대 해명 자체가 이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때문이다. 생활 보수, 소시민이라는 논리는 문 대통령의 인사철학도, 원칙도 아닌 ‘희한한’ 변명에 불과했다.

더 보탠다면 인사를 협치의 기반으로 삼길 바란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공약 이행에만 쓰면 안된다. 인사가 협치의 주요 항목이 돼야 할 때다”라고 했다. 당장 정기국회부터 국회의 계절이다. 대통령 의제를 관철하려면 싫든 좋든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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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기록유산 사이트(www.memorykorea.go.kr)는 한국의 우수한 기록문화유산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예를 들어 검색창에 ‘삼국유사’를 넣으면 삼국유사의 서지, 해제, 원문 텍스트를 볼 수 있다. ‘이순신’을 치면 난중일기는 물론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언급된 부분도 금세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사이트에 오른 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중 상당수에 오·탈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자를 같은 발음의 다른 글자로 표기하거나, 아예 글자나 문장 전체가 누락된 사례도 있었다.

이는 초서체의 난중일기를 정자화해 디지털로 입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류로 보인다. 애초 디지털화의 저본으로 삼은 난중일기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은 오류 지적이 잇달아 나오자 이를 수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난중일기를 시작으로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에 오른 기록문화유산의 오류 수정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소수의 연구자들을 제외한다면 난중일기 속 한자 오류를 알아낼 시민은 많지 않다.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의 난중일기에 오·탈자가 있다고 해당 유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이순신의 일기>를 펴낸 최희동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기존 자료를 참고했더라도 오류가 있었다면 개선되어야 한다”며 “난중일기 원본을 보면 아름다움이 있는데, 웹사이트는 그저 글자만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문화의 오랜 정수를 세심히 살펴야 하는 문화재 분야 특성상 떠들썩한 홍보보다는 진중한 연구와 무오류가 필요하다.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덕종어보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 역시 엄밀한 조사와 연구에 앞서 ‘환수’ 자체를 홍보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음식은 못 만들면서 홍보만 요란한 음식점은 결국 문을 닫는다. 진중하고 또 진중해야 하는 문화재 관련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백승찬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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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홀트아동재단(복지회) 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주는 해외기관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고마움을 알고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미 보훈처에는 6·25 참전국 또는 참전용사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자녀의 한국 취업이나 유학 시 배려하는 등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해외입양이 ‘6·25 참전국’에 비견될 정도로 감사를 표할 일일까.

심지어 지난 5월에는 미국에 입양됐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김상필씨(43·미국명 필립 클레이)의 일이 알려지면서 과거 주먹구구식 해외입양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한 터다.

5월21일 경기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씨는 10세 때인 198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양부모가 시민권을 얻어 주지 않아 미국 국적이 없었다. 김씨는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가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1년 7월 한국으로 추방됐다. 언어 등의 문제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김씨는 노숙자 쉼터와 복지시설, 정신병원, 교도소 등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져보면 김씨가 불행했던 책임은 한국 사회에 더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통계에 잡힌 입양인 24만5600명 중 국내입양은 7만9088명에 불과하다. 3분의 2가 넘는 16만6512명은 해외로 나가야만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국내입양 아동수가 해외입양을 넘어서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입양아 880명 중 334명(38%)이 한국 밖에서 새 가정을 찾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해외입양기관에 감사편지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될까. 그 시간에 입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국내입양을 한 명이라도 더 늘이는 데 힘을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는 그 다음이다.

<홍진수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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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대법원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통해 회사에 970억원 손해를 끼친 혐의였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을 수임해 변호한 경력이 있었다. 그와 함께 삼성을 방어한 김종훈 변호사는 이번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하다.

이용훈 대법원의 핵심은 삼성사건 공동변호인 김종훈 비서실장, 광주일고 후배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전임 최종영 대법원장을 상대로 연판장을 돌린 이용구 송무심의관 등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멤버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행정처는 비대해지고 권력기구화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을 포함한 개혁·소장 법관들이 행정처 요직에 기용되거나 기타 권력의 주류에 편입되면서 (중략)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과 행정처 중심의 관료적 승진구조를 통한 법관 사회 관료화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 더 심화되었다. (중략)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라, 비판이 더 어려워졌다”고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판사들은 말한다.

#2. 2011년 대법원은 시국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줄줄이 깼다. 피해자들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만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도움으로 재심 무죄를 받았다. 이들의 손해배상금을 대폭으로 깎은 대법원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었다.

보통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에서 법원은 피해시점부터 판결일까지의 이자를 주도록 한다. 판결 전까지는 5%, 판결 후로는 20%이며 지연손해금이라 부른다. 그런데 대법원이 과거사 사건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 이자가 많으니 깎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준시점을 손배소송 항소심 변론이 끝난 날로 미루라고 했다.

더구나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보내지 않고 대법원 스스로 이자를 계산해 재판을 끝냈다. 이 판결은 이후 인혁당 피해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한 전직 대법관은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있다면 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판결은 한날 4건이 동시에 나왔고 주심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 박시환 대법관이다.

#3. 몇 해 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판사들이 인사를 돌았다. 이 법원에 새로 발령난 판사들은 관례대로 부장판사들 사무실에 들어가 줄줄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한 부장판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자신이 직접 밖으로 나와서 판사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인사의 대상도 부장판사가 아니라 재판부라며 자신의 배석판사를 데려나와 인사시켰다.

부장판사는 이후 법정에서 난동꾼을 막다가 다친 법정경위 소식을 듣고 배석판사와 재판연구원을 데리고 문병에 나섰다. 쓸쓸히 병실을 지키던 경위는 고위법관의 등장에 감동했다. 부장판사는 책임을 다하다 부상한 법정경위를 표창해야 한다고 법원에 주장해, 표창장을 받아주었다. 이 사람이 김명수 새 대법원장 후보자이고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그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에 단독 출마했을 때 만장일치 추대 대신 투표를 하자고 했다. 투표함을 여니 반대표가 있었다. 하지만 김명수 후보자는 반대표가 나온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국제인권법학회는 소수자도 견해를 밝히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조직이라는 것이다.

지금 법조계에 김명수 후보자에 관해 물으면 세 가지를 듣는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다는 것과 출세하려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법개혁 저지 의혹 사건에 관여한 세력들이 그를 붙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의혹의 핵심에는 과거 우리법연구회 멤버들도 있다. 누군가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기대도 우려도 모두 김명수 후보자 자신의 몫이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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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나랏돈 빼먹는 꼴이지요.” 초로의 목사님은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몇번 삼키더니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부터 자신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교인이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하겠다며 그 액수의 몇배나 되는 기부금 증명서 발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기부금 증명서가 있으면 세금이 공제된다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는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평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해 왔지만 새 신자의 면전에 대고 단칼에 거절하기도 민망해 잠시 머뭇거리는 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목사님. 다들 그러고 살아요. 예전에 납품했던 한 교회 목사님이 물건값 깎아주면 기부금 증명서 발급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윈윈’해 왔는걸요. 죄송한 얘기지만 이 교회에서 1년에 이만큼 헌금할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

시쳇말로 이런 교인 몇명만 있으면 교회 살림은 펴진다. 소도시에서 수십년째 목회를 한 그 목사님은 세속적 기준으로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교인 수는 200명이 채 안됐고 형편 좋은 사람도 없었다. 예배당도 임대한 공간이었다. 사실 이 목사님도 속으로는 잠시 흔들렸다고 했다. “그게 세상살이의 요령인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이전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부금 액수를 부풀려달라거나 증명서를 허위 발급해달라는 요구를 받아왔고 그때마다 가차 없이 거절했다고 했다. 듣기 좋은 말로 ‘융통성’이고 ‘세상 사는 이치’일 뿐, 교회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조직적 범죄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순간이지만 유혹에 흔들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여전히 많은 교회가 그런 탈법을 일삼고 있는 것이 참담하다”고 털어놨다. 이 목사님의 교회에는 소위 잘나가고 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확률이 높지 않다. 그 때문에 몇년 전 만난 목사님의 형편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를 두고 압도적인 여론은 종교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 엄밀히 말해 개신교의 대형 교회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만큼의 이유를 대며 반발한다. 소통 부재, 준비 부실부터 종교탄압 우려까지 나온다. 제각기 감춰놓은 속뜻이야 뭐가 됐든 표면적으론 “성직자가 담당하는 영적인 일을 세속적인 노동과 같이 취급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성직은 영적인 일이다. 시간에 따른 노동의 투입을 통해 효율을 따지는 일반적인 노동과 동일하게 취급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방적’ 과세에 반대하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그러니 이건 어떤가. 연말정산을 할 때 종교단체에 낸 기부금은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국가가 알량한 세금 몇푼으로 영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헌금의 고귀한 정신을 훼손해서야 되겠는가. 어차피 헌금은 신과 나의 영적 관계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고 믿음의 표현이다. 목사를 보고,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적 양심으로 내는 헌금이라면 세금 몇푼에 좌우될 리 없다. 그게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이다. 교회 입장에선 탈세를 부추기는 온상이라는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성경 마태복음 6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십일조를 강조한 말라기 3장과 함께 교회에서 헌금을 독려할 때 자주 인용되는 내용이다. ‘아낌없이 바치면 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목회자들의 설교에 많은 신자들은 순종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는 성장했다. 이젠 그 과실을 딴 교회들 차례다. 걱정과 근심 모두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말고.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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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우리는 제72주년 8·15 광복절을 기념했다. 기념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행위이다. 기념일 제정, 기념관 설립, 갖가지 기념행사에는 개인의 사적기억을 넘어 사회집단으로 기억을 공유하겠다는 뜻이 녹아 있다. 망각에 맞서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기억하려는 행위는 그저 과거를 떠올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역사인식과 맞물려 있어서다. 이는 역사의 서술, 역사적 진실 문제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과거를 어떻게 인식·기억하느냐 하는 한 사회의 집단기억은 사회적 의미와 더불어 정치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기억하려는 행위의 중요성, 엄중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지배권력은 그 속성상 기억, 특히 집단기억에 내재한 정치성을 간파해낸다. 통치와 지배에 유리한 집단기억을 만들려고 한다. 다양한 선전선동 활동을 동원하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반면 지배권력이 원치 않는 기억, 기억하려는 행위는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배제를 넘어 물리적 힘을 통해 망각을 강요한다.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작가 밀란 쿤데라는 통찰했다. 기억담론이 대두되면서 역사학계에서도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 역사’라는 주장이 나온다.

기억투쟁은 망각에 대항해 기억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러내는 행위이다. 지배권력의 망각 시도에 맞서 배제된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묻혀진 역사적 진실을 드러낸다.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실제 홀로코스트, 과테말라 내전의 진상이 규명되고 진실이 밝혀진 것은 국제적 기억투쟁의 산물이다. 홀로코스트는 지금 같은 의미로 우리에게 기억되기가 쉽지 않았다. 나치는 자신들의 만행 관련 증거물을 없애는 데 혈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불러낸 기억 조각들, 그들의 기억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종과 지역을 뛰어넘어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귀하게 여긴 많은 ‘기억투쟁가’들이다.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과테말라는 1960년대부터 30여년 동안 군사정부와 이에 맞선 반군의 충돌로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참혹한 내전을 겪었다. 내전 후 정부군·반군의 민간인 학살, 인권유린을 조사하기 위한 ‘진실위원회’(유엔 역사규명위원회)가 구성됐다. 진실위원회는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들’이란 3600쪽의 방대한 조사보고서를 펴내 민간인 희생의 진상을 규명해냈다.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들’도 수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의 끈질긴 기억투쟁으로 가능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기억투쟁은 선명하다. 한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폭도였고, 민주화운동은 반란이었다. 지배권력은 힘으로, 선전으로 진실을 은폐한 집단기억을 만들고 또 강요했다.

제주 4·3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배권력은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고, 4·3 기억은 망각됐다. 하지만 기억투쟁은 결국 사건 발생 50여년 만에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이끌어냈다.

기억투쟁은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다. 지난 지배권력은 “그만 잊으라”고 했다. 지배권력에 동조한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냉소한다. 하지만 유가족과 많은 시민들이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2기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이 주목된다.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홀로코스트 등은 기억투쟁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기억투쟁이 얼마나 긴 시간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을 불러내 현재화시키는 기억투쟁으로 역사를 다시 썼다.

지난 8·15 광복절 기념 행위에서 기억투쟁과 관련한 의미 있는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을 기억하려는 상징물 ‘평화의 소녀상’이 11개 더 세워진 것이다. 2011년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시작으로 이제 국내에 51개, 해외에 7개가 서 있다.

그 숫자보다 ‘소녀상의 진화’가 돋보인다. 설립 주체가 다양해지고, 주체들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양식과 상징성을 녹여낸 소녀상들이 조성됐다. 소녀상은 할머니들의 쓰라린 기억을 불러내는 매개체다.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반성 없는 일본의 반인권적 처사를 비판하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광복 후 지금까지 진행 중인 기억투쟁의 생생한 상징물이다. 그런 소녀상의 진화는 결국 우리의 기억투쟁 승리를 담보하는 듯하다.

<도재기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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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건 1993년 3월이다.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사찰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팀스피릿 훈련 중단 약속을 파기했고 따위의 한반도 정세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전쟁 위기가 ‘원자로 건설’ 때문인지 ‘핵미사일 개발’ 때문인지 몰랐다. 장교들은 “북한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했다. 전투준비태세 단계가 높아졌다. 군장을 꾸린 채 취침하기도 했다.

개별 인간의 가치와 의지가 무력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세상, 특히나 정세는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이 돌아갔다. 전쟁과 죽음, 핵의 공포를 체감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호전성을 곧잘 드러내던 선임병은 보초를 서며 욕설 한마디를 내뱉고 흐느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1994년 6월 전쟁 직전까지 갔다는 건 제대하고 수년이 지나서 알았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고 북한 영변 폭격을 계획했다가 격론 끝에 취소했다. “(폭격이) 북한 당국을 자극해 100만명이 희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쟁을 불러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1999년 CNN 보도를 읽곤 섬뜩했다. 남북한 사람 100만명이 죽을 수도 있는 폭격을 두고 미국은 ‘외과적 수술’이란 완곡어법을 썼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의 이유로 ‘무지’ ‘무기력’을 들었다. 미래에 무슨 불행이 닥쳐 큰 상처를 입힐지 모르는 무지와, 그 불행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공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고조시킨 최근 위기에서 무지와 무기력을 다시 느꼈다.

‘무신경’도 공포스럽다. 미디어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곧잘 소개한다.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예상 시나리오를 전한다. 어느 유력 언론은 외신기사를 ‘남한과 북한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까’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전개’ ‘충돌’ ‘정밀타격’ 같은 용어는 ‘나뒹구는 시체’를 은폐한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원격 조작 무기를 두고 “우리의 정서적인 심층은 집게손가락의 발사 신호가 타인의 창자를 찢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저널리즘 언어도 그 ‘집게손가락’처럼 움직이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공포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현실 정치를 지배한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에 기댄 핵무장론이다. 북핵이 그런 논리의 결과였다. 남한의 핵잠수함 추진도 예외일 수 없다. 한반도 위기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교훈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지 전쟁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2000년대 후반 이상주의적인 이름의 성명서를 내놓은 건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같은 국방·외교를 오래 한 현실 정치인들이다. 미·소의 수소폭탄 실험 이후 버트런드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주도해 1955년 발표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은 전면적 군비 축소와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약 체결을 제안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지식과 지혜가 지속적으로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가 결정된다”고 했다. 50년이 지나서도 유효한 선언이다.

바우만이 말한 공포의 세 번째 이유는 무지와 무기력에서 비롯된 굴욕감이다. 그는 “(굴욕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불행에 따른 손상의 많은 부분이 신호를 제때 탐지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부주의, 지나친 꾸물거림, 게으름, 의지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의 자존심과 자신감에 입게 되는 상처”(<도덕적 불감증> 책읽는 수요일)라고 했다. 군축·핵폐기를 위한 실천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우선 과제가 되길 바랄 뿐이다.

<김종목 모바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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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다시 그 길로 들어선다. 전쟁은 산하를 잿더미로 만들고 가정을 파탄낸다. 그런데도 전쟁은 계속된다. 수많은 전쟁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민주정치가 꽃피고 시민들은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우친 때였다. 500만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로 승리한 뒤 그들은 신에게 감사하고 살아남은 데 고마워했다. 그런데 감사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테네는 자신들이 저주하던 페르시아와 같은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같은 그리스어를 쓰는 헬라인이고 전우였던 스파르타를 적으로 전쟁에 나선다. 이유는 스파르타가 강성해지기 전에 싹을 없애야 한다는 일종의 예방전쟁이었다.

아테네는 승리를 장담하고 삼단노선에 올랐으나 참혹하게 패배했다. 스파르타 연합군에 이리저리 쫓기다 결국에는 목숨을 구걸했지만 스파르타는 칼로 응답했다. 출병한 대부분의 아테네인들은 도륙당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아테네인들은 도주 끝에 앗시나로스강 가에 도달했다. 이 강만 넘으면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테네인들은 살겠다고 강을 건너다 서로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자신의 창에 찔려 죽거나 장비와 함께 강물에 떠내려갔다. 스파르타 연합군은 강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건너오는 족족 도륙했다. 강물은 피로 오염됐지만 이들은 피로 물든 흙탕물을 마셨고 더러는 서로 마시기 위해 싸우기까지 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이긴 자에게는 가장 빛나는 승리였지만 패배한 자에게는 비할 데 없는 재앙이었다”고 적었다. 스파르타의 승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곧이어 테베와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해 지배권을 넘겼다. 그리고 이들 헬라인은 결국 자신들이 야만인이라고 말했던 마케도니아에 굴복했다. 헬라인들은 전쟁으로 모두가 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인간이 문명을 시작한 이래 전쟁이 멈춘 시간을 찾기 힘들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원전 3500년부터 20세기까지 1만4500회의 전쟁이 발발했고 35억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평화의 시기는 고작 300년에 불과하다. 한 전투에서 수만명이 한꺼번에 죽은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중세 십자군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출정했지만 도적질과 살인으로 얼룩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사꾼의 농간에 놀아나 막장극으로 치달은 4차 원정 때는 십자군에 의해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초토화됐다. 성전은 인간을 구원하기는커녕 도탄에 빠뜨렸다. 또 20세기 들어 양차 세계대전에서 1억~1억2500만명이 전쟁의 제물이 됐다. 특히 인종주의에 의해 600만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한 병사의 기록은 ‘전쟁에 의해 어떻게 인간성이 말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섯 명의 프랑스 병사가 꽁꽁 언 말 다리 하나를 가지고 개처럼 싸웠다. 병사가 가득 찬 헛간에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자 문밖의 병사는 헛간 주위로 몰려들어 몸을 녹일 뿐 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아우성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병약한 병사를 집 밖으로 쫓아냈고 혹한으로 이들 중 많은 수가 얼어죽었지만 동정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자신만 생각할 뿐 인간으로서의 동정심은 사라졌다.

인간은 전쟁의 명분이 없으면 조작했고, 작다면 크게 만들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애국심, 민족애, 신을 위한 전쟁, 전우애로 포장됐다. 군주가 땅을 위해 싸울 때 인간의 목숨은 하찮은 소모품일 뿐이었다. 전장에서의 죽음은 조국과 신의 대의명분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됐다.

전쟁의 참상은 회의와 환멸을 불러일으킨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전장을 보여주라고 말한다.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난 뒤에는 감히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일지 모른다. 문명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에서 전쟁 경험이 인간과 역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썼다. 그는 ‘전쟁을 통한 깨우침이 인간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200년간 전쟁 문화는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노출했지만 전쟁의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구문명 최초의 문학은 전쟁에 관한 서사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트로이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수많은 역사서와 문학이 전쟁을 고발했으나 전쟁은 계속된다. 전쟁은 지구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유효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현실세계에서 여전히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 전쟁 유전자를 가진 인간에게 평화는 일시적인 환상일 뿐일지 모른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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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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