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버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어놓거나, 재활용품으로 분류해 놓으면 다음날 사라지던 쓰레기다. 거대한 집게에 매달려 5t 트럭에 실린 채 시야에서 멀어지던 쓰레기는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는 없어진 것인가?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은 “쓰레기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사라진다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매립지에 이르러 환경을 파괴하고, 독성 화합물을 공기와 토양에 퍼뜨리고, 그 상품들을 만들기 위해 쓰였던 자원을 헛되게 만들며, 처리하는 데 매년 수십억달러가 들어간다”고 쓰레기의 사후를 설명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달 초 불거진 재활용 쓰레기 수거거부 사태는 ‘쓰레기의 존재감’을 유례없이 드러냈다.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자 그제서야 ‘버린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재활용 쓰레기의 수거·선별·재활용 과정을 차례로 추적했다.

쓰레기를 쫓기 시작하자, 왜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에 관심을 갖기 힘든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그것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쓰레기 관련 업체들은 하나같이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쓰레기를 다루는 일은 거의 이주노동자들이 하고 있었다. 먼지와 냄새가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미세먼지 수치 등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 선별장에서 대표는 “사고가 잦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9일 뒤, 수도권의 한 선별장에서 노동자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트병 재활용 공장은 4000여평 규모에 설비비만 20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공정은 간단했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색상별로 분류하고, 부수고, 씻어낸다. 하지만 총천연색 페트병, 알루미늄 뚜껑, 잘 떼어지지 않는 라벨은 단순한 공정에 거대한 설비를 필요케 했다. 잘게 부서진 페트병 조각은 물로 세척된다. 그 폐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천, 경기 해안과 낙동강 하구가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2, 3번째로 높은 곳이라는 연구 결과와 과연 무관할까.

‘쓰레기의 사후’를 보고 나자, 더 이상 예전처럼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됐다. 비닐은 운이 좋다면 고형연료가 되어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져 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매립되거나 소각장으로 가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킬 것이다. 1회용 커피컵은 대부분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것이며, 어쩌면 스페인 해변에 떠오른 향고래의 배 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 중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쓰레기의 처리 과정은 재활용 마크처럼 명쾌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동이 들어가고, 또 그 과정에서 폐기물이 생산됐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의 저자 애니 레너드는 “쉽게 고장나고 재활용하기 어려우며 유독한 제품을 과도하게 포장해 판매하는 기업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계속 치워주면서 그들의 나쁜 행동을 강화하지 말자”라고 말한다. 쓰레기가 될 물건을 생산한 기업이 책임지도록 하면 애초에 더 좋고 더 오래가고 독성이 덜한 물건을 만들게 될 것이란 것이다.

정부가 쓰레기 재활용 정책을 장기적 안목에서 검토하고 있다. 과도한 1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일상에서 몰아낼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생겨난 것이다. 이 틈새가 커다란 문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지구상에는 한 사람이 연간 420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서울 같은 도시도 있지만, 연간 4개의 비닐봉지만 사용하는 핀란드 같은 나라도 있다. 그 차이가 개인의 선택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쓰레기는 그 사회의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 환경과 지구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니까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영경 토요판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직후인 지난 1월 말 대검찰청이 꾸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활동이 마무리돼 간다. 조사단은 이번주 서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안태근 전 검사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그간 파헤쳐온 검찰 내 성범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사단의 ‘1호 기소 사건’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던 김모 부장검사의 강제추행 사건이었다. 김 부장검사는 작년 6월 법무연수원 교수 시절 알게 된 변호사를 노래방에서 강제추행했다. 지난 1월에는 술취한 후배 검사를 회식 자리에서 강제추행했다. 조사단은 지난 2월12일 사무실에 있던 김 부장검사를 이례적으로 긴급체포했고, 사흘 만에 구속한 뒤 엿새 후인 같은 달 21일 재판에 넘겼다. 체포부터 구속기소까지 9일 만에 이뤄진 대단히 신속한 조치였다. 출범 초기 조사단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김 부장검사는 지난 11일 수감된 지 정확히 두 달 만에 풀려났다.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김 부장검사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상실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피해자들이 더는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것도 유리한 양형 요소가 됐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두 차례 강제추행을 저지른 김 부장검사에게는 징역 6월에서 3년까지 선고될 수 있었다. 김 부장검사에 대해 징역 1년을 구형했던 조사단은 항소기간인 지난 18일까지 항소하지 않았다. 조사단 측은 구형량의 3분의 1 미만의 형이 선고됐을 때 항소한다는 ‘통상적 기준’을 들며 “이런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의사가 매우 중요한데 피해자들이 더 이상의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법원에 밝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구형량의 3분의 1 이상의 형이 선고됐을 때도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사례는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무수히 많다. ‘같은 법조인이라 봐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신분이 보장된 검사를 긴급체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까지 들으며 의지있게 수사해 재판에 넘긴 조사단이 끝내 온정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이래서는 안 전 검사장 재판에서 공소유지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조사단 출범을 지시할 당시 검찰 조직 내 성범죄가 근절될 때까지 무기한 운영하겠다고 했다. 조사단이 검찰 내 성범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검찰 밖의 사람들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았을 때 ‘근절’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내가 원하는 건 컴퓨터야! 빌어먹을 평범한 컴퓨터!”

“…랩톱을 쓰셔야겠죠?” “아니. 난 ‘랩톱’을 원하는 게 아냐. 컴퓨터를 원한다고.”

“랩톱이 바로 컴퓨터예요.” “너 내가 그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지?”

태블릿이 ‘컴퓨터냐 아니냐’를 놓고 매장 직원을 진땀나게 하고 있는 이 남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깐깐한 원칙주의자 ‘오베’다. 자신이 보기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40여년을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오베는 랩톱이 컴퓨터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임을 짐작 못한다. 태블릿은 키보드가 없어도 화면에서 조작 가능하다는 말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에게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상상하지는 않았다. 제품 설명을 이해 못해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든다며 툴툴대는 ‘구닥다리’는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계속 그런 착각 속에 살기란 쉽지 않다. 나이를 더할수록 내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때때로 불안해진다. 이대로 나이를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연령차별’(에이지즘)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에 근거한 사회적 차별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이 들 때 찾아오는 변화를 수치스러워하도록, 무수한 걸림돌을 용인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노인에 대한 연령차별은 자신 역시 나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는 연령차별이 교묘하게 내면화돼 있다는 것이다. 성차별·인종차별과는 달리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데는 “너 몇 살이야?”라며 어깃장을 놓는 것 말곤 별 도리가 없다. 물론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은 연령차별의 수혜자일 수도 있다. 이는 세대 간의 반목을 조장한다. 노인들 뒷바라지하느라 젊은 세대 허리가 휠 것이란 우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이 든 세대가 겪는 궁핍과 적대감은 결국에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고령화를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세계는 노인을 위한 도시를 건설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국제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스위스 제네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등 37개국 500여개 도시가 회원도시로 가입했다. 한국은 서울시가 2013년 처음 가입한 데 이어 전북 정읍, 경기 수원, 부산 등이 회원도시로 가입했지만 아직 개념조차 생소하다.

미국 등에서는 이미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사업이 활발하다. 뉴욕은 일부 구역을 노령자를 위한 개발지구로 선정해 상점 안내판이나 메뉴판 글자를 크게 인쇄하는 등 사소한 것부터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 연장 등 고령층을 배려한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범 사업으로 선보인 고령 친화상점 ‘오래오래’도 이와 비슷하다. 상점 출입구 턱을 없애고, 돋보기나 지팡이 거치대 등의 물품을 비치했다. 인근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속도를 늦추고, 지하철 노선 안내도와 지도 크기는 키웠다. 서울시는 올해 고령친화 상점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갈 길이 멀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누구나, 공평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 듦에 대해 ‘프로불편러’가 되자. 좌석에 앉기 전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면 기사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일찌감치 “한 인간이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했다. 연령차별은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한 편견이다. 우리 안에는 노인이 산다.

<전국사회부 ㅣ 이명희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벌써 20년도 더 된 기억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1995년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 기념 국제청년행사였다. 한국대학생 20여명이 초청됐는데 운좋게 거기에 포함됐다. 우리 일행은 행사참여를 위해 자카르타에서 지방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일행 중 한 명이 비자를 분실했다. 아마도 날치기를 당했던 모양이다. 다른 일행들은 떠나고 룸메이트였던 내가 그와 함께 남았다. 그런데 뭘 아나. 낯선 이국땅. 첫 해외여행.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데 누군가가 말을 붙였다. “무슨 일이 있나?”

경상도 사투리가 진했던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자카르타에서 신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우리가 쩔쩔매는 모습이 애처로웠나 보다. “걱정하지 마라, 한국 대사관 가서 얘기하면 새 비자 금방 내줄끼다. 니들 돈없재?” 그는 택시를 잡은 뒤 불쑥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를 건네줬다. 당시 돈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연락처 가르쳐 주시면 돈을 보내드리겠다”고 말하자 그는 “씰데없는 소리 한다”며 택시문을 닫았다.

그제서야 긴장이 탁 풀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호의가 너무 고마워서였다. 내 눈에 비친 그는 ‘어른’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 아파트에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건’이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붙었다. 서울시가 짓는 청년임대주택을 이들은 ‘빈민아파트’라 불렀다. 들리는 얘기로 주민의 70%가량이 여기에 동의한단다. 강동구 천호역 인근에 들어서는 청년임대주택도 반대가 심하다. 주민들은 여러 이유를 댄다. 지반이 약하고, 교통혼잡이 우려되고, 원래 다른 용도로 쓸 땅이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기다. 속내는 ‘집값’ 아닌가.

서울시내 17평짜리 방 두 개 빌라 전세가 2억원이 넘는다. 지방 아파트 한 채 가격이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청년이 이런 돈이 있을 리 없다. 이들이 빈민인가.

대구 경북대 인근에는 ‘경북대기숙사건립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경북대가 짓고 있는 재학생 기숙사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인근에 원룸 공실이 4000여실에 달하는데 민자기숙사가 건립되면 공실이 6000~7000개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근주민의 생계를 무시하고 대형건설사 배만 불리는 기숙사’라는 게 이들의 반대 이유지만 역시 진짜 이유는 아니다. 서울의 한양대, 고려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상반기 서울시내 대학가 원룸 평균 임대료는 보증금 1378만원에 월세 49만원에 달했다. 청년이 돈주머니인가.

강원 양구, 경기 연천 등 접경지역에서는 상인들이 군 위수지역 폐지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장병들이 외출·외박 때 위수지역을 벗어나게 되면 상권이 죽는단다. 병사들과 부모들은 “위수지역 내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불만이다. 택시비도, PC방 이용료도 서울보다 비싸다고 장병들은 주장한다. 나라 지키러 군에 간 청년장병들이 봉인가.

이 정도면 어른들의 ‘갑질’이라 부를 만하다. 내 재산권, 내 생존권을 위해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겠다는 것 아닌가. 부끄럽고, 참담하다. 따지고 보면 내 아들이거나 한 다리 건너 내 조카일 텐데 말이다. 자기욕심만 채우는 어른들이 존경을 받을 리 없다. 기초연금 증액은 찬성하면서 청년수당 도입은 반대한다. 젊음이 죄인가.

하지만 반전이 있다. 20년쯤 뒤 노인이 된 지금의 기성세대는 결국 지금의 청년들에게 기대야 한다. 그때 가서 ‘우리 좀 부양하라’며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설사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할 수도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지금 갈라 버린다면 말이다. 청년을 윽박지르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단언컨대 시간은 기성세대의 편이 아니다. 청년의 편이다.

<박병률 경제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신문을 봉 모양으로 말아접은 뒤 허벅지에 ‘탁’하고 쳐서 가지런하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은 속도다. 손목, 팔목을 쓰지 않고 어깨 힘으로 허벅지부터 풍차 돌리듯 빠르게 들어올린 뒤, 목표각에 도달하면 신문을 쥔 손을 놓는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다른 집으로 날아가고, 너무 느리면 날아가던 신문이 펼쳐지면서 쏟아져 내린다. 초등학생 시절 신문 배달을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터득했던 기술이다. 잘만 활용하면 3층은 물론 빌라 4층까지도 계단을 오를 필요 없이 베란다에 신문을 안착시킬 수 있어서, 체력은 물론 시간 절약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어렵사리 2·3층까지 꾸역꾸역 신문을 던져 넣을 만큼 익숙해졌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빌라 3층에 사는 한 구독자가 하루가 멀다하고 보급소로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놨다. 1면이 반듯하게 펼쳐진 신문이 현관 앞에 놓여 있기를 바라는데, 접힌 흔적이 남은 신문을 받아보는 것이 영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스포츠 신문을 서비스로 넣어준다는 제안도 통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툴툴거리며 계단을 올라 신문을 배달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였는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해주냐’며 어린 마음에 꽤나 야속해했던 기억이 난다.

10일 오후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택배 물품이 쌓여 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에서 택배 차량 사고가 발생할 뻔한 뒤 택배차의 지상 진입을 막고 정문 근처에 주차한 후 카트로 운반해 배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택배업체들이 난색을 표하며 정문 인근 도로에 택배를 쌓아 두고 가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택배 대란’ 사진 한 장으로 온·오프 세상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다. 한 신도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막아서자 택배 기사들이 배송을 거부, 택배 상자가 단지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모양이다.

주민들은 자동차의 지상 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만큼 택배 차량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들었다. 택배 차량에 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니 카트나 수레에 실어 배송하거나 아예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는 택배 차량으로 바꿔 배송을 하라는 요구다. 실제로 이 아파트는 지상에 아예 차도가 없다. 아이들이 뛰노는 단지 내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차량들이 오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일관성이다. 차량 지상 통행 금지라는 해당 아파트 단지의 원칙에는 몇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소방차는 당연히 들어올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도 진출입이 가능하다. 이사 차량과 가전제품 배송차량도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서비스 차량에는 예외를 다수 붙여둔 셈이다. 여기에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로 시작하는 단지 내 ‘택배 차량 통제 협조 안내문’은 집값을 염두에 두고 택배 기사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단 이 아파트 단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좋은 아파트를 표방하며 지상을 공원으로 꾸미는 아파트들이 늘면서 이 같은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좋은 주거 환경을 갖추고 싶은 욕망을 지적할 대목은 없어 보인다. 다만 더 나은 환경이 누군가의 더 많은 수고와 노력,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거기에 대한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이 문제다. 쾌적하고 더 안전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는 대가로 관리사무소에서 각 가정이 택배를 직접 수령하는 방법이 먼저 떠오른다. 이게 불편하다면 택배비를 조금 더 받는 방법도 있겠다. 많은 택배 회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이 있는 도서·산간지방에 추가 배송비를 받는다고 하니 그 비용을 참조해보면 어떨까.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무인택배함이나 단지 입구에서 집 앞까지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식도 들리니 고려해 볼 만하다.

혹시라도 이도저도 다 싫고 지금처럼 누군가 문 앞까지 짐을 옮겨다 주길 바란다면 그건 지하주차장 층고나 택배 회사 이전에 이기심의 문제라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경제부 ㅣ 이호준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최근 한 데이터 회사가 페이스북 이용자 5000만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해 선거에 활용한 사건이 보도됐다. 페이스북 등 데이터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에 논란이 붙었다. 이용자들이 동의했다지만 이용자들은 정치 선전에 활용하라고 동의한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라 불리는 데이터. 데이터를 활용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주장하는 기업들의 논리와 자신의 데이터가 곧 ‘개인정보’이자 ‘사생활’인 개인들이 정보를 보호하고자 하는 논리가 부딪친다.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는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개인정보에 가명화·익명화·범주화 등 비식별 조치를 하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이를 활용·유통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을 우회해 개인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지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가 ‘빅데이터의 안전한 활용을 모색하기 위한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 기술 세미나’를 열었다. 이 민감한 시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안전한’ ‘활용’이라는 병립되기 어려운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이라는 딜레마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비식별 조치’ 대신 ‘익명처리’ ‘가명처리’로 용어를 통일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또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해커톤 끝장 토론에서도 ‘비식별 처리’라는 모호한 용어 대신 개인정보, 가명정보, 익명정보로 구분해 정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시연회에서는 정작 ‘비식별’ 정보를 만드는 기술만 강조했을 뿐이다. 더구나 최근 금융위원회, 방통위, 과기정통부 등이 관련 권한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건다는 얘기도 들린다.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가장 기본적인 해커톤 합의 내용도 지키지 않고 있다면 오해라고 할까. 그리고 하나 더. 부처 간 헤게모니 다툼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쪽은 누구일까.

<임아영 | 산업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단 한 번 ‘망루’에 오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송전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013년 2월26일, 평택의 쌍용차 공장 맞은편 송전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자들을 찾았다.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9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의 건강검진과 치료를 위해 송전탑을 찾은 의료진과 동행했다.

덜컹거리는 크레인을 타고 오른 송전탑에 설치된 천막은 좁고 불안정했다. 천막 벽에 붙어 있던 쌍용차 관련 신문 기사들, 한 전 위원장의 동상 걸린 발에 신겨 있던 분홍색 수면양말, 힘차게 말하던 도중에도 스치듯 지나가던 굳은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한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쌍용차 갈등을 해결해 대통합 정치의 첫발을 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71일을 송전탑 위에서 지낸 그는 지금 감옥 속에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바닥과 벽, 비닐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딛고 있을 단단한 땅이 없다는 데서 오는 아득함. 그런 풍경은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새벽 찬 공기 속에 남 몰래 송전탑을 올랐던 해고자들이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에 대해서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고작 몇 시간을 그곳에 머물렀던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떠오른 건 김지은씨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하기 위해 JTBC 뉴스룸에 나온 김씨의 모습은 훅 불면 꺼져버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뉴스룸으로 나왔다고 했다.

어쩌다 JTBC 뉴스룸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을까. 김씨가 뉴스룸에 나오기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장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안 전 지사는 ‘미투 운동’을 언급하며 미안하다고 한 그날에도 성폭력을 저질렀다. 김씨를 구제할 시스템은 그곳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뉴스룸에 나오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처벌하고 막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억울함을 더 이상 호소할 곳이 없어 하늘에 오른다. 망루는 그들에게 허용된 마지막 싸움터다. 성폭력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법체계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폭로를 택한다. 망루에 오른 노동자들에게 불법점거, 업무방해 등의 압박이 가해지듯 성폭력 피해자들 역시 무고와 명예훼손 압박에 시달린다. ‘꽃뱀’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2차 가해가 이뤄진다. 김씨 역시 ‘합의한 관계이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폭로’라는 소문이 퍼지며 2차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

“‘그 길을 택하면 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끔찍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내 삶이 갈가리 찢길 테고, 내 생활의 모든 것이 사람들 앞에 낱낱이 드러날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이기기 가장 힘든 종류라고 했습니다.” 미국 몬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을 다룬 르포르타주 <미줄라>에서 피해자가 변호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지금 성폭력 폭로라는 망루에 오른 피해자들이 맞딱뜨린 풍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서 보지 못한 곳의 풍경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타인이 선 곳의 풍경이 어떤 지를 짐작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는 여성으로서 겪은 성차별, 성폭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해고자·성소수자·이주민들의 고통은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오롯이 들어야 하며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와 고통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합의’니 ‘의도’니 함부로 말하길 멈춰야 한다.

노동자들이 망루에 오르는 것을 막는 방법은 하나다. 부당한 노동권 침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위태로운 성폭력 폭로를 멈추는 방법은 단 하나다.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감수한 폭로를 하지 않고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성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저 너머로 가기 위한 과정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성공한 고공농성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309일간의 싸움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크레인에 오른 그는 두 발로 걸어서,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땅으로 내려왔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을 찾은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씨를 비롯해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만의 망루에 올라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안전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고 성폭력을 방지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 말이다. 나는 눈감지 않겠다.

<이영경 토요판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본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의 주인공 마이는 매일같이 무언가를 버리지 못해 손이 근질거리는 ‘버리기 마녀’다. 학창 시절 졸업앨범부터 남편과 연애할 때 주고받은 커플링까지 필요 없는 것은 일단 버리고 본다. 일본에서 정리 노하우를 소개한 블로그로 인기를 끈 일러스트레이터 유루리 마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마이는 최소한의 물품만 갖춘 집에서 살고 있다. 결론은 필요 없는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집도 넓어지고, 청소하기도 편해 오히려 머물고 싶은 집이 됐다는 해피엔딩이다.

무엇을 채울지보다 어떻게 비울지는 비단 사적 공간인 집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공적 공간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대표적인 공적 공간으로는 광장을 꼽을 수 있다. 광장 역시 깨끗이 비워질수록 매력적이다. 비어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으로 다시 채워지는 공간, 그곳이 사람들이 내 집처럼 머물고 싶은 광장이다. 서울 도심에도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이 있다. 안타깝지만 두 곳 다 머물고 싶은 광장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광장은 사방이 도로로 둘러싸여 접근성이 떨어지고, 광화문광장은 차량소음으로 시끄럽다. 무엇보다 꽃밭, 전시관, 동상 같은 화려한 시설물만 있을 뿐 한여름 뙤약볕을 피하기도 어렵고, 편히 앉을 수 있는 공간도 마땅하지 않다.

버리기 마녀에게 광장 정리를 맡겨보자. 아마도 광장에 있는 시설물을 다 없애자고 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서울광장의 잔디를 가장 먼저 치우자고 할 것이다. 애초 광장에 잔디를 심은 것은 아이러니다. 그나마 잔디보호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때도 많다. 광화문 도로 한가운데에 중앙분리대로 만들어 놓은 광화문광장 또한 그렇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세종대왕 동상이 광화문을 가로막고 있어 시야를 가린다.

언젠가 유럽을 여행하다 가본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노천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었다. 때론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럽 광장이 좋아 보이니 무조건 베끼자고 조르는 건 아니다. 광장이 일상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두 광장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긴 하다.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 시절 광장을 조성하면서 사실상 폐쇄형 광장으로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자. 그래도 광장이 여전히 전시행정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일년의 대부분 전국 특산물을 파는 시장이나 이벤트성 홍보 행사가 열린다. 정작 시민이 광장을 이용하려면 서울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 도시의 품격>의 저자 전상현은 ‘공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 인식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시민들은 공공 공간을 통제하는 권력의 부당한 태도에 그다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 민주 시민사회의 공공 공간은 분명 시민이 요구하고 전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도 말이죠.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공공 공간을 정부가 계획·통제·관리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건축학자 프랑코만 쿠조는 <광장>에서 “광장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라고 했다. 다행히 지난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밝혔던 서울시가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된 한양도성 내부 주요 도로를 올해 4∼6차로로 줄이고 보행 공간으로 바꾼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광화문광장은 그동안의 고립된 ‘교통섬’에서 벗어나 찻길 없는 ‘진짜’ 광장이 된다. 자동차 방해를 받지 않고 잠시 쉴 수 있는, 허가받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광장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러다 촛불을 들어야 한다면 광장에 모여 다시 촛불을 들면 된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한 SK케미칼과 애경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 2016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공정위가 두 차례 조사에서 각각 무혐의·심의절차종료 처분으로 기업에게 면죄부를 준 결론을 7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직접 브리핑에 나서 “공정위가 (지금껏) 소극적 판단을 한 것은 심각한 문제”, “피해자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려 재조사에 나선 모양새였지만 이전과는 180도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 가습기 살균제 관련 공약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2016년 두 번째 가습기살균제 조사 과정에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사건 축소 처리’ 외압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 전 위원장은 전원회의로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을 올려 심도 있게 논의하자는 소회의 주심 위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회의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게 했다.

소회의는 3명의 상임·비상임위원이 의사결정을 한다. 반면 전원회의는 9명 위원이 참석하는 공정위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논의가 더 심도 있게 이뤄진다. 정 전 위원장은 “(허위·과장 광고를 다루는) 표시광고법은 소회의 심의가 원칙이고, 전원회의에 상정하면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다”는 이유로 전원회의 심의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12일 브리핑에서 “가습기살균제 TF가 정 전 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직원 1대1 면담으로 확인한 바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다. 외압 논란의 핵심 인물을 조사하지 않고 ‘외압 없음’ 결론을 내렸다고 자인한 셈이다. 가습기살균제 TF는 공정위 결정에 논란이 일자 사건 전반을 재검토한다는 취지로 만든 태스크포스다.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소회의-전원회의 안건 변경은 위원장 권한이다. 저도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전환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장 역시 소회의나 전원회의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절반만 맞다. 공정거래법 37조는 전원회의에서 다뤄야할 안건으로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 등을 열거하고 있다.

법에는 소회의에서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때,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를 막을 근거는 명시돼 있지 않다.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은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에 속한다.

법에서 찾을 수 없는 위원장의 권한은 공정위 고시(사건절차규칙)에서 등장한다. 사건절차규칙은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안건을 전원회의→소회의 혹은 소회의→전원회의로 바꿀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법률과 행정규칙이 충돌할 땐 법률은 행정규칙에 우선한다. 공정거래법은 전원회의→소회의 안건 변경에 대해 규정하지 않았고, 고시 역시 위원장이 소회의 안건이 전원회의에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명시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공정거래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선 행정규칙을 만든 공정위가 문제다. ‘법에 없는 권한’, ‘제멋대로 해석’은 공정위가 7년 넘게 가습기살균제 광고 문제를 끌어온 또다른 이유가 아니었을까.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L 전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아마 안녕할 수도, 안녕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2010년 안태근 전 검사가 장례식장에서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이를 법무부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건’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조사단이 꾸려져 조사를 벌이고 있으니까요. 조사단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L 전 장관님도 조사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사단에 출석하는 일이 번거롭고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8년 전 당신을 수행하던 안태근 전 검사가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던 그 시간과 장소에서 L 전 장관님은 무엇을 보고 들으셨는지요. “내가 이놈을 수행하는 건지 이놈이 나를 수행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신 발언은 무슨 뜻이었는지요. 아마 조사단에서 답변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안녕할 수도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지금까지 안녕하지 못했던 쪽은 주로 피해자였으며, 안녕했던 쪽은 가해자였으니까요. 하물며 일개 ‘목격자’에 불과한 당신의 안녕 여부에 이 사건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목격자에 불과한 당신을 수신인으로 하는 이 글이 불쾌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때로 아무런 일도 안 하는 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당신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 선배로서 후배 검사가 강제추행을 당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성추행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동안 법무부를 총괄하는 장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눈감고 귀 막은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안 전 검사가 성추행하는 장면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모멸감과 수치심, 혼란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서 검사의 모습과 그가 속으로 내지르던 비명이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검찰 조직 내의 만연한 성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요. 그저 술자리에서 벌어질 수 있는 ‘흔한 풍경’ 중 하나로 특별할 것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8년 전 그 자리에서 당신이 한마디만 했더라면, 성추행을 제지했다면, 백번 양보해 성추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그 이후 문제가 됐을 때 가해자를 확실히 문책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침묵은 서 검사에게 성추행으로 인한 고통에 더해 인사 불이익이라는 ‘2차 가해’를 했습니다. 나아가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줬습니다. 법무행정을 담당하는 부처의 수장이 함께한 자리에서 버젓이 성추행이 이뤄졌다는 것은 우리 사회와 법제도가 얼마나 성폭력에 무감각한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죠. 당신은 어쩌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워오는 데 가장 앞장서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당신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을 장관으로 임명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여성 비하적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마사지걸을 고를 때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서비스가 좋다”는 이른바 ‘마사지걸 발언’ 등으로 여성단체가 주는 ‘꿰매고 싶은 입’ 상을 두 차례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대통령에 그 장관’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문화계라고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문학계의 대표 시인, 영화계의 대표 감독이 성추행과 폭력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러니 이 글의 수신인은 당신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수많은 남성, 성폭력을 방조하고 묵인한 사회 구조이기도 합니다.

“한 여자가 자기 삶에 대해서 진실을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미국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의 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파괴되고 무너진 것은 오히려 피해자들의 삶이었습니다. 이번만은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외쳐온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거센 물살이 되어 조금씩 둑을 무너뜨리기를 바랍니다. ‘진실’을 말하기를 멈춘 적 없는 여성들은 계속 외칠 것입니다. 정말 세상이 터져버릴 때까지.

<토요판팀 | 이영경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영화 <국가대표>는 2009년 여름에 개봉했다. 주인공 밥(하정우 분)은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와 국가대표가 됐다. 태극마크를 단 건, 아파트가 필요해서다. 금메달을 따면 아파트가 생긴다고 믿었다. 귀화해 차헌태로 이름을 바꾼 밥은 “그러니깐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올림픽 나가서 내가 메달 따가지고 내가 아파트 사가지고 내가 갈 테니깐, 무조건 기다리고 있어”라고 목놓아 외쳤다. 소년 가장 강칠구(김지석 분)는 할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했다. 금메달을 따면 군대를 안 가도 된다. 1차 시기에서 다리를 다쳤다. 대신 경기에 나선 동생 봉구(이재응 분)가 주저하자 뺨을 때리며 외쳤다. “뛰어, 이 새끼야. 니가 뛰어야 내가 군대를 안 갈 거 아냐!”

영화 <국가대표>

영화의 배경은 스키점프다. 건물 20층 높이에서 출발해 아무런 도구 없이, 양발에 신은 스키에 의지해 하늘을 난다. 스키점프 센터에 따라 나는 길이는 달라지지만 남자 라지 힐 종목 세계 최고 기록은 250m를 넘는다. 하늘을 나는 시간은 8초에 육박한다. 라이트 형제가 자신들의 첫 비행기로 난 시간은 12초, 거리는 36m였다.

글라이더의 날개 역할을 하는 스키는 크고 길수록 유리하다. 중력에 반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몸무게는 가벼워야 유리하다.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일본 대표팀은 가벼운 체중과 긴 스키로 금메달 2개, 은메달, 동메달 1개씩을 땄다. 선수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몸무게를 줄였다. 국제보건기구(WHO)가 규정한 건강한 체질량지수(BMI)에 한참 모자라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스키점프는 멀리 나는 정도를 겨루는 종목이지만, 점점 줄어드는 몸무게는 선수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국제스키연맹은 몸무게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선수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키의 최대 길이는 신장의 145%다. 대신 최대 길이 스키를 사용하려면 BMI(몸무게/키의 제곱) 지수가 21 이상이어야 한다. BMI가 0.125 모자랄 때마다 사용 가능한 최대 스키 길이가 0.5%포인트씩 줄어든다.

20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종목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는 착지자세가 중요하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한쪽 무릎을 구부리면서 착지하는 자세가 가장 충격을 덜 받는다. 오스트리아의 지역 이름을 따서 ‘텔레마크 착지자세’라고 부른다. 착지자세를 아예 규칙으로 정했다. 다리를 지나치게 넓게 벌리거나 무릎을 제대로 구부리지 않으면 감점 대상이다. BMI에 따른 스키 길이 제한과 마찬가지로 선수의 안전을 앞세운 규칙이다.

스포츠의 규칙은 대개 해당 기술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피겨는 고난도 점프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야구가 투수의 어깨·팔꿈치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 구속을 제한할 수 있을까. 스키점프는 누가 멀리 나느냐를 겨루는 종목이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규칙으로 만들어 제한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안전은 스스로 지키라고 내버려두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쟁은 제한이 없다. 욕망은 미덕이고, 노력은 의무다. 건강과 안전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를 위협하는 것은 법이 눈감고 있는 무시무시한 재산권과 그에 따른 임대료다. 비트코인 열풍 속에 “위험은 각자가 책임질 몫이니 내버려두라”는 목소리는 더욱 섬찟하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주인공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기대하지 마요. 나도 대한민국한테 기대하는 거 없으니까”라고. “말했잖아요, 찢어버리고 싶다고. 대한민국”이라고. 희뿌연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

머지않은 올림픽을 통해, 금메달의 환호가 아니라, 건강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스포츠 정신이 조금 더 큰 울림을 갖길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이용균 ㅣ 스포츠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00년대 대학가에도 운동권이 있었다. 학생회는 때가 되면 4·19를 기념하고 6월 항쟁을 기념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피땀을 바친 선배들, 시민과 노동자를 기리는 집회에서 외쳐진 구호 중에는 “김대중 정권 퇴진” “노무현 정권 퇴진”도 있었다. 이와 함께 짝을 맞춰 외쳐진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철폐” 같은 것들이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하던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던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경찰을 피해 학교로 숨어들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할 것이란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학생들은 시설노동자(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해 집회를 벌였다. 2000년대 초반의 대학가에서 외쳐지던 구호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1987 > 연희역 김태리

1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내든 것은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 때문이다. <1987>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인기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이 영화를 관람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노제에 참여했던 우상호 의원(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나란히 영화관을 찾았다. 이한열 역의 강동원씨와 나란히 무대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항쟁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 항쟁”이라고 말했다. ‘87년 6월 항쟁=2017년 촛불 항쟁=문재인 정권’의 등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꾸준히 나빠져왔다. 전 정권이 물려준 외환위기의 유산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충실했다.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삶은 88만원세대에서 77만원세대로 추락했다. 

‘꾸준한 나빠짐’의 결과 1987년 투쟁이 그토록 열망했던 직선제에 의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이명박은 우리가 상상 못한 스케일로 국토를 망쳐놨고,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 못할 수준으로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더 이상 나빠지는 삶을 용인할 수 없었던 시민의 힘에 의해서 촛불항쟁이 이뤄지고 그 결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 속에는 3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포함돼 있다.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고, 지금은 우리 사회 기득권이 된 386들이 해결 못한 ‘미완의 과제’들인 것이다. 

영화 <1987>은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적이다. 하나는 1987년 항쟁을 특정 사건과 인물들의 영웅적 스토리로 요약해버리는 데 있다. ‘연희’로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표현되지만, 노동자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87년 항쟁이 현재 완성된 듯한 착시현상이다. 영화는 이한열 열사의 노제에 모인 사람들이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는 가운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비치며 막을 내린다. 6월 항쟁의 결과로 ‘그날’이 기어이 오고야 만 것 같다. 이 착시현상은 영화 자체의 태도이자 <1987>을 소비하고 추억하는 386세대의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박종철·이한열 열사,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죽음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를 현재적으로 해석하고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다. <1987>은 아쉽게도 우리에게 현실의 어떤 문제도 환기시키지 못한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아직도 차별에 시달리며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다.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청년들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 성소수자는 아직 ‘반대’되는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1987>을 보고 추억에 빠지기엔 이르다. 이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과 싸움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1987년을 기리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영화 <1987>. 몇 번을 망설였다. 끝까지 볼 배짱도, 울지 않을 자신도 도무지 없었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었던 유시춘 선생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진. 유 선생은 시사회를 봤지만 후배를 위해 기꺼이 동행했다. 숨소리까지 고문당하던 그때와 두 번이나 마주하게 해 미안했다. “괜찮아, 뜨거웠던 한 계절이 내 인생의 정수였어. 살아서 이런 시절 봤으면 된 거지.”

몇 겹의 장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박종철의 죽음과 49재, “종철아 아비는 할 말 없대이”, 이한열의 죽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의 폭로, 열사 26인을 호명했던 문익환 목사의 절규, 전국적 추모 투쟁을 관통하던 ‘그날이 오면’.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은 군사정권에 맞선 청춘들의 사랑과 투쟁이었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유 선생은 화장실을 찾았고 난 돌아서서 포스터만 쳐다봤다.

세밑 주말 저녁, 눈송이가 흩날렸다. 한참을 걷다 발길 머문 커피숍에 앉았다. “<1987>은 보통사람들의 서사네요. 선과 악의 순간순간이 일궈낸 변혁 그 자체가 역사겠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유 선생은 6·10항쟁 당일 아침 연행됐다. 구로경찰서에서 장안동 대공분실을 거쳐 강동경찰서로 끌려갔다. 부채꼴 모양 유치장 앞에 붙은 유 선생 죄목은 ‘집시법 위반’. 반대쪽 유치장에 갇힌 여성들이 유 선생 죄명을 보더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여성들의 박수를 들으니 ‘매운 계절의 채찍을 딛고 북방에 선’ 것처럼 울컥했다고 한다. 신민당사 점거 농성으로 일찌감치 서대문구치소에 있던 YH노조 사무장 박태연도 그립다고 했다. 유 선생은 여사 21사동 통풍구 위에 올라서서 6월항쟁을 들려줬다. 서울구치소 여사 ‘소지’(일본어로 ‘청소’)는 지금 살아 있을까. 구치소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그나마 정치범은 마지막 순서였다. 목욕물이 남았을 리 없었다. 한 ‘소지’가 유 선생에게 물 양동이를 건네며 몸을 돌려세우더니 “마, 세상 안 디비지겠나. 함 바까 보자”며 등을 밀어주는 게 아닌가.

눈발이 잦아들 무렵에야 우린 눈 얘기를 꺼냈다.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눈송이처럼 떨어진 게 아니란 걸 젊은 친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그럼요, 알 거예요.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새 커피잔은 세 번 정도 비워지고 채워졌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유 선생이 눈치채길 바랐다. ‘그로부터’ 1년 후를 묻고 싶었다. <1987>의 1년 후 말이다.

혁명은 유토피아를 만들지만 혁명 스스로의 유토피아도 있다. 반동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항쟁의 반동은 너무도 잔인했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 시민들이 열어준 민주주의를 오로지 권력게임의 도구로 활용한 탓이다. 1987년 대선의 노태우 후보 당선, 1988년 13대 총선의 지역주의 부활은 혹독한 대가다. 반면 노동자들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은 직선제 쟁취로 수렴됐지만 그해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노동의 현실을 드러냈다. 노태우 정권에서 분신한 노동자 규모만 전체 정권의 84%를 차지한다(임미리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중).

87년 함성에서 2017년 촛불항쟁을 떠올리게 된다.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던 군사정권, 총구는 겨누지 않았지만 시민을 버렸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30년 전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갔던 우리는 30년 후 지금은 촛불을 끄지 않고 그대로 광장에 서 있다. 적폐청산, 비정규직 문제 등 시민들이 직접 제기한 사회 문제는 정치 의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은 다신 맘 편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일 테다. “그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직 감옥에 있는 촛불항쟁 1년은 참 안타깝지.” “맞아요. 성장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달빛에 바랜 신화일 뿐이죠.”

<정치부ㅣ 구혜영>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전 합의보다 진전된 것이며 현실적으로 최상의 결과였다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의 항변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서 결론짓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의 본질과 한·일 합의의 근본적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합의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 문제를 정치적 협상으로 결말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며 위안부 합의의 근본 문제였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1월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등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위안부 해결 없이는 일본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턱없이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여자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단심(丹心)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고, 친일 논란을 빚은 선친의 전력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국민 정서에 편승해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정치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일 기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외교적 자충수라는 게 문제였다.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정책에 첨병 역할을 하는 일본과 각을 세우는 것이 한·미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미국의 압박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가 택한 방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협상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이 협상은 구조적으로 한국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대일 외교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바람에 생긴 일이다.

초기 단계에 박 대통령에게 ‘일본과 외교를 이렇게 하면 나중에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다’고 경고하고 이를 막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했어야 하는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수장이던 윤 전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국민 모두가 수용할 수 없는 합의가 이뤄졌을 때는 장관직을 걸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윤 전 장관은 협상 결과 평가가 박하다고 항변할 것이 아니라, 외교장관으로서 한국 외교가 이길 수 없는 전쟁터로 끌려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생각해봐야 한다.

<유신모 | 정치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용은 왜 나야 하는데?”

지난 19일부터 24일까지 3회에 걸쳐 경향신문이 내보낸 “‘시험사회’ 문제를 풉시다” 기획을 본 한 독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 기획은 ‘개천용 신화’가 통했던 과거와 달리 시험 ‘한 방’으로 계층 상승을 이루기 힘든 현실을 다뤘다. 댓글 중에는 “일단 판검사가 ‘용’이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폐기할 때가 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러나 속내는 모두 ‘그나마 시험이 공정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험이 제일 공정하다. 이 나라에선 다른 건 안돼.”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의 스펙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놀랐다. 지인들 역시 “나도 요즘 그렇게 느끼던 참이다” “학부모 입장에선 이것저것 보느니 시험이 제일 깔끔하다”고 했다. ‘학력고사 세대’는 예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한 독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점점 더 신분의 상하이동이 없는 경직을 넘어 강직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사회가 역동적이지 못하면 폐망에 진입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 역시 “로스쿨은 빈민에겐 별나라 이야기”라며 사법시험이 더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차라리’ 시험이 낫다고 말했다. 물론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면 좋지만 학연·지연·혈연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시험점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시험으로 국가 엘리트를 키우는 고속성장 시대는 지났다. 창의성·독창성·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오로지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은 모순이다. 시험으로 ‘개(천)룡’이 탄생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굳이 통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안다. ‘정시 확대·사시 부활’을 주장하는 수많은 댓글에 공감하면서도 동조할 수 없는 이유다.

‘개룡’이라는 표현을 다시 생각해본다. 개천은 어디고 용은 누구인가. 언제까지 개천은 개천이고 용은 용이어야 하나. 사회는 가난하고 낙후된 곳을 ‘개천’으로, 소위 명문대 출신에 출세한 인물을 ‘용’이라고 단정지어 왔다. 꼭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런 차별적 표현이 계층을 굳히는 데 일조했을 수도 있겠다. ‘개룡 신화’는 약해졌지만 시험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격차가 여전한 걸 보면 말이다.

“개인들의 시험 경쟁력은 엄청난데 사회 전체의 생산적인 경쟁력은 떨어졌다”는 이번 기획의 지적처럼 ‘시험사회’는 개조가 필요하다. 시험으로 출세해 이미 보상을 거머쥔 이들과 장벽에 가로막혀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 모두에게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 따윈 없다. 팍팍한 현실을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로 이겨내라는 주문도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차라리’ 시험이 낫다는 이야기는 정답이 될 수 없다.

단순히 교육제도와 선발방식 변화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경제적 차별을 해소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경제, 노동, 복지 등 우리 사회 모든 요소를 이야기해야 한다. 계층과 상관없이 안정된 성취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노도현 | 정책사회부 hyunee @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젖은 23일 아침 9시30분.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의 랜드마크인 4층짜리 대형 쇼핑몰 NCCC몰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3층 가구매장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위층으로 번졌다. 4층에는 미국에 본부가 있는 시장조사회사 SSI의 필리핀 지부 사무실이 있었다. 25일 현재 사망자 37명 중 대부분이 이곳 콜센터 직원들이었다. 소방관들은 화염과 연기에 4층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막말과 무자비한 마약범 단속으로 ‘악명’을 얻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유족들을 찾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위로하지만 해결하지는 않는다. 필리핀 시민들은 화재 경보는 울렸는지, 비상구는 열려 있었는지, 스프링클러는 작동했는지, 정부가 건물주나 임대업자를 위해 눈감아준 것은 없었는지 묻고 있다. 다바오는 두테르테가 지난해 6월 대통령 취임 전까지 20년 넘게 시장을 지낸 곳이다. 지금은 딸과 아들이 이어받아 각각 시장, 부시장을 맡고 있다.

화재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 26일 오전 높이 2m의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진, 홍수, 화재 같은 재난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흉한 방법으로 그 사회의 모순을 까발린다. 2015년 5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 발렌수엘라의 슬리퍼 공장 입구에서 용접 작업 중 불꽃이 튀어 근처 화학약품이 폭발했다. 노동자들은 2층으로 몰려갔지만 2층 창문에는 쇠창살이 단단히 둘러쳐져 있었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300페소(약 6400원)를 주는 공장에 스프링클러가 있을 리 없었다. 74명이 질식해 죽었다.

지난 6월 70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국 그렌펠타워 화재는 공공주택 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런던의 부촌 켄싱턴첼시에 세워진 공공 사회주택 그렌펠타워는 노후되면서 관리가 민간회사에 넘어갔다. 이후 세입자를 더 받기 위해 아파트가 개조되고 출구와 계단은 하나만 남았다. 거주자들이 직접 단체를 만들어 안전 관리가 부실하다고 주장했지만 지자체는 법적 대응으로 압박했다.

2012년 11월 방글라데시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된 다카 타즈린 공장 화재와 이듬해 4월 라나플라자 붕괴 사건은 주요 외화벌이이자 ‘노동착취 공장’이라는 비난을 듣는 의류산업의 현실을 고발했다. 월마트, 베네통, 망고 등 미국·유럽의 다국적 의류 기업에 옷을 납품한 라나플라자의 여공들은 관리인들에게 등 떼밀려 사고 전날 이미 금이 간 건물에 들어가야 했다. 110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재난이 모순을 드러낼 때는 극적이지만 모순을 풀어가는 과정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지지부진하기 일쑤고 정의는 원하는 만큼 구현되지 않는다.

라나플라자 사고 직후 글로벌 기업과 노조는 안전협약을 맺었다. 전반적으로 노동환경 안전이 개선됐다고들 하지만 비슷한 사고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최저임금은 한 달 38달러에서 68달러 수준으로 올랐다. 하지만 파키스탄(116달러), 인도(137달러) 등 주변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필리핀 슬리퍼 공장 화재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발렌수엘라 시장과 고위공무원 6명을 해임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법원은 해임 처분을 중단시켰다. 그렌펠타워 이후 영국 전역 고층건물은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그렌펠타워와 유사한 외장재를 쓴 18m 이상 고층건물 173곳 중 안전점검을 통과한 곳은 8곳뿐이었다. 건축 규정은 총체적 재검토에 들어갔다. 테레사 메이 총리가 약속한 책임규명은 지켜봐야 한다.

제천 화재 참사는 알지만 고치지 못한 고질을 보여줬다. 9층 건물에 투입된 제천소방대 대원은 왜 4명일 수밖에 없었는지, 소방차 통행을 막지 못하게 하는 법안은 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지, 소방점검 시정명령은 왜 무시되는지, 비상구는 왜 늘 닫혀 있거나 물건이 쌓여 있는지. 민감하게 주시하고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인숙 뉴콘텐츠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며칠전 한 유명가수가 사망했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내렸다.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여 바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 가수는 나쁘다. 자살이란 최악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나쁘다. 앞으로 그의 가족들은 물론 그를 좋아했던 팬들도 슬픔과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는 남은 사람들에게 불행만을 더해주고 떠났다.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관심 없다. 그가 친구에게 남겼다는 유서 따위도 보고 싶지 않다.

지난 8월 경기 광명시 자살예방센터가 하안동에서 ‘찾아가는 희망상담소’를 열어 우울증 자가검진을 진행하고 있다. 광명시 자살예방센터 제공

이렇게 부정적으로 쓰는 것은 그에게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강조한다. 또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한다’고 권한다. 왜냐하면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보도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널리 퍼지는 유명인의 자살 소식은 그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날, 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담당자들은 밤새 언론에 나오는 기사를 모니터링 했다. 특히 자살 방법과 장소 등을 자세히 묘사한 기사를 찾아낸 뒤 해당 기자나 매체에게 연락해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온갖 인터넷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었다. 복지부 담당자는 “수능이 끝난지 얼마 안된터라 청소년들이 한창 예민할 때인데 어쩌면 좋냐”며 걱정했다.

2013년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이후 한국의 자살자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했다. 2005~2008년 목숨을 끊은 배우와 가수 5명이 조사 대상이었다. 그들이 명을 달리한 뒤 2개월간 발생한 한국의 자살자수를 전년도 같은 기간, 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년과 후년의 평균치보다 30% 가량이나 자살자수가 많았다. 특히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씨가 명을 달리했을 때에는 49%나 자살자수가 늘어났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다. 자살을 한 사람이 유명하면 유명할 수록, 화제가 되면 될 수록 영향을 받는 사람의 수도 급속히 늘어난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언론이 아예 자살 보도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유명인의 죽음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만 빼먹을 수도 없다. 차선책은 보도를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악영향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첫번째로 ‘자살보도 최소화’를 권고하고 있기는 하다

우선 자살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를 해서는 안된다. 자살장소도 가급적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자살자를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자살자의 유서를 소개하는 것 역시 자살미화가 될 수 있다. 자살이 어떤 문제의 해결책으로 작용했다는 인상도 줘서는 안된다. 억울한 피해자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결국 가해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속시원함을 주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살의 폐해와 고통을 아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경향신문부터 실천하면 될 것을 이리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일부’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한다고 해도 SNS에서 유통되는 선정적인 기사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발표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 전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살사건이나 자살과 관련된 사안을 보도하는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로 그러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사람, 특히 삶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청소년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이 문장이 너무 길다면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마음에 담아두자 ‘자살은 나쁘다. 아주 나쁘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본 록밴드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는 1999년 아키히토 일왕 즉위 10주년 국민제전에 출연했다. 봉축곡으로 피아노 협주곡 애니버서리(Anniversary)를 만들었다. 일왕 거처인 고쿄(皇居) 광장에 2만5000여명이 모였다. 연미복 차림의 요시키가 등장하자 젊은 여성들의 탄성이 터졌다. 아키히토의 다양한 모습이 연주와 함께 TV로 전국에 전해졌다. 한신대지진 피해자를 위로하고 아이를 끌어안는 등의 화면이었다. 20세기 마지막 해를 앞둔 거대한 쇼였다.

국민제전 전날인 11월11일 요시키에게 공개 질문장이 날아들었다. 발신인은 도쿄대 교수인 문예비평가 고모리 요이치,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 등이다. 요시키가 더 많은 사람을 동원하려는 주최 측의 정치적 의도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러한 행사가 일본국헌법의 핵심인 상징천황제를 변질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주장에는 반론이 적지 않았다. 요시키에 대한 질문이 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상징천황은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1947년 시행된 일본국헌법 1조에서 나온다. 이전까지의 일본제국헌법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였다. 이 조항으로 절대권력을 확보한 쇼와 일왕은 전쟁을 일으켜 2000만명을 희생시켰다. 그런데도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았고 상징천황으로 살아남았다. 새로 만들어진 일본국헌법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지닌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가 됐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천황제도를 살려내려는 일본이 맥아더 사령부(GHQ)를 설득한 결과다.

그리고 일본이 GHQ 헌법안을 결정적으로 뒤집은 부분이 ‘국민’이다. GHQ 초안의 주어는 영어로 피플(people), 일어로 인민(人民)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민을 주어로 만들었다. 일본에 남은 조선인의 기본권을 박탈하기 위해서였다. 일본국헌법 시행 전날인 1947년 5월2일 쇼와 일왕이 조선 호적자를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마지막 칙령을 발표했다. 기본권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한 헌법을 만들려 GHQ를 속이기까지 했다.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한 두 번째 헌법이 이듬해 한반도에서 탄생한다. 대한민국헌법이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는 말했다. “인민이라는 말은 구 대한제국 절대군주제하에서도 사용되던 말이고 미국헌법에 있어서도 인민(people, person)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citizen)과는 구별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 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

기본권을 국민에 한정한 것은 처음부터 부당했고 마지막 개헌인 1987년에도 고치지 못했다. 결국 1988년 설립된 헌법재판소는 국민에 외국인이 포함된다고 결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현행 헌법에서 국민은 외국인을 포함한다. 통상적인 언어 의미를 완전히 벗어나는 이런 비정상을 해소하는 방법은 헌법을 고치는 것뿐이다. 그래서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수정하라고 2014년 19대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도 밝혔다. 손을 대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조항이 쌓여가고 있다.

헌법은 헌재의 해석과 국회의 입법으로 보완되는 것을 안다. 후진국 헌법일수록 조항이 길고 문장이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낡은 헌법은 헌재에 과도한 권한을 갖게 하고 헌법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헌법이 다수 국민과 사람을 벗어나 소수 헌법재판관과 국회의원의 손에 들어간다. 요시키는 상징천황제를 무력화할 힘이 없었지만 헌재와 국회는 기본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헌법을 새로 써야 할 시간이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두 점 차로 지고 있는 8회말 무사 1·2루. 감독은 타석에 들어선 6번 타자에게 강공 사인을 보냈다. 7번 타자가 미덥지 못해서다. 결국 유격수 땅볼로 더블 플레이가 나오면서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리고 게임도 잃었다. 해설자는 보내기 작전을 왜 안 했냐고 열을 올리지만 무슨 소용이 있나.

야구도 그렇지만 역사에서도 지나간 상황에 대한 가정은 사실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굳이 따져보는 것은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1년 전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한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지금쯤 한국은 19대 대통령 선거(12월20일)를 앞두고 뜨겁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합종연횡이 정리가 되면서 아마도 여권의 반기문 후보와 야권의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치열하게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국가정보원 사이버 외곽팀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열심히 올려대는 댓글은 대선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1년 전에 이 나라 역사의 물꼬를 돌렸다. 이후 우리는 어떻게 바뀌었고, 얼마나 나아졌을까.

촛불집회의 결과물들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여야가 교체됐다. 과거 권력의 핵심에 있던 많은 이들은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고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도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커지고 있다. 검찰도 경찰도 서로 인권지킴이가 되겠다며 경쟁하고 있다. 해고자였던 최승호 PD가 MBC 사장이 된 것은 새옹지마, 상전벽해라는 말이 제격이다.

이런 모습이 달갑지 않아 비난하고 비아냥거리고 저주하는 이들도 있고, 이 정도 변화로는 택도 없다며 더 많은 채찍질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어찌됐건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정부만 바뀐다고 우리가 촛불집회에서 바랐던 세상이 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라를 구성하는 주체들인 국민들, 정치인들, 기업들, 사회단체들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물론 이를 선도하는 것은 정부다.

얼마 전 만난 서울시내 한 사립대의 총장에게서 지난달 포항 지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됐던 긴박한 상황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수능 하루 전날 포항에서 강진이 발생하자 정부는 전격적으로 수능 1주일 연기를 결정했다. 많은 대학들이 수능 직후 주말에 논술시험을 잡아 놓고 있었기에 고심이 컸다. 대학 입장에서 논술시험 연기는 매우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텔에 들어가 있던 논술문제 출제 교수들과 검증 교사들은 시험이 재개될 때까지 호텔에 더 갇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술시험일 이후 호텔방이 이미 모두 예약이 돼 있어 이들은 더 머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을 해산하면 기존에 마련했던 문제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원점에서 출제 교수와 검증 교사들을 다시 구성해 문제를 새로 내야 하는 것이다. 200여명이나 되는 시험 감독관들의 일정을 다시 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대학들의 동향을 알아보니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곳도 있고, 연기하겠다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교육부에서 논술시험 연기 요청이 들어왔다.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 연기 결정을 했다. 전국의 모든 주요 대학이 논술시험 연기에 동참했고, 일정이 흐트러진 수험생과 학부모들 중 항의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 대학 총장은 당시 상황을 보면서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연상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로 싸울 땐 상대에게 지독하지만 위기에서는 뜻과 힘을 모으는 우리 국민들의 저력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바로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이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와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한 국민들의 협조가 빛을 발하며 최선의 결과를 냈다. 이는 정부 결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가 앞으로 또 일어날지 모를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신뢰가 먼저라는 얘기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도 6개월이 넘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가고 있는 셈이다. 연애 때는 눈도 멀고, 귀도 멀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생활이 지옥과 천당 중 어디로 향할지는 당사자들이 얼마나 신뢰하고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하느냐에 달렸다. 사랑에 빠지긴 쉽지만 믿지 못하면 그때부턴 지옥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김준기 사회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시민, 촛불

“혹시 좋은 맛집 알아?” 송년회 시즌이다. 과거 여행 담당 기자를 했다는 이유로 동료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음식과 식당을 평가하는 데는 여러가지 잣대가 있을 것이다. 제철 재료, 요리사의 정성, 식당의 청결, 맛의 향토성…. 해외의 음식 칼럼니스트 책이나 TV를 보면, 요즘 요리사는 예술가고, 음식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거창하게 포장된다. 20~30년 전 맛집 얘기엔 셰프가 아니라 욕쟁이 할머니가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복스럽게 좀 처먹어, 이놈아!” 손님이 욕쟁이 할머니에게 느끼는 것은 불쾌감이 아니라, 정이란 게 욕쟁이 할머니 이야기의 골자다. 여기서 식당 손님은 소비자가 아니라, 배가 고파 찾아온 ‘사람’이다.

요즘 맛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난 밥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밥은 기본이다. 둘째, 음식은 정성인데, 밥은 생각보다 꽤 정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취향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평양냉면처럼 호불호가 확 갈리는 음식도 아니고, 홍어나 과메기처럼 향토적 특성이 깊은 음식도 아니다. 그래서 밥맛을 평가하는 데는 미식가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쌀값은 재료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생활물가가 급등해 음식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언론 보도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쌀값 올라서 밥값 올려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육칠천원짜리 국밥집 밥이, 몇만원짜리 고깃집이나 횟집의 밥보다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이유는? 묵은쌀로 밥을 짓거나 형편없는 쌀로 밥을 짓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요리는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쌀로 밥을 지어도 시간이 지나면 밥맛은 급속히 떨어진다. 미리 해놓은 밥은 군내 난다. 갓 지은 밥이 가장 맛있다. 그래서 신선도를 따져야 하는 것은 생선회가 아니라 밥이다. 대량으로 쪄낸 밥도 맛이 없다. 

10년 전쯤 일본 출장 때 밥집 주인에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료칸 주인이 손님들에게 좋은 밥을 내놓기 위해 다른 음식을 먹고 있을 동안 숯과 냄비를 들고 와 다다미방에서 밥을 지어줬다. 그래야 밥이 맛있다고. 주인은 밥맛이 제일 좋다는 니가타현 어느 지역의 쌀로 밥을 지었다고 했다.

그동안 우린 왜 밥에 신경 쓰지 않았을까. 맛집도 유행이 있고, 시대나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 서울 시내 곳곳에 있던 안동찜닭, 조개구이집은 많이 사라졌다. 한국의 외식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먹고살 만해진 1980년대부터다. 물론 예전에도 갈빗집, 불고깃집이 있다. 한데 ‘마이카 시대’라는 1980년대부터 서민들도 맘 놓고 먹지 못했던 음식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고기와 생선회 같은 거였다. 돼지고기도 과거에는 머리 고기나 수육으로 먹었다. 대개 잔치·제사음식이었던 거다. 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삼겹살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유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등심 등을 수출하고 남는 나머지 부위를 삼겹살로 가공해 팔았다는 건데, 이게 크게 히트했다는 거다. 수입쇠고기의 등장으로 LA갈비란 것도 나타났다. 이후 밥은 고기나 생선회를 먹고 위장에 여유가 있으면 먹는 탄수화물이 됐다.

밥보다는 고기였고, 생선회였다. 고깃집, 횟집에선 밥은 디저트처럼 후순위로 밀려서 코스 요리 중 마지막이었다. 배가 부르면 안 먹어도 그만인 셈이 됐다. 한데 분명한 것은 밥맛 좋은 식당이 대개 다른 음식도 맛있다.

또 하나, 음식에는 윤리적인 면이 있다. 거창한 동물복지 차원이 아니라 조리 방식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소나 돼지, 양을 도살할 때 최소한의 고통을 느끼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간과 비슷한 고통을 느낀다고 판단되는 척추동물에게 함부로 고통을 줄 때, 동물학대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뜨거운 해물탕에서 꾸물거리는 산낙지는?

“최근에는 낙지, 오징어, 문어 같은 두족류가 사실상 ‘명예 척추동물’이 되었다. 같은 연체동물인 대합조개, 굴 따위와는 달리 대단히 정교한 신경계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대니얼 대닛, <주문을 깨다>)

낙지도 포유류 못지않게 고통을 느낀다는 얘기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펄펄 끓는 해물탕에서 산낙지가 꿈틀거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10~20여년 전 식당 소개 정보를 보면 주차·카드 가능 여부였다. 요즘은?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는지를 본다. 남녀 공용화장실은 남성도 불편하다. 여성은 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식당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청결이다. 인테리어는 번듯한데 기름때나 반찬 자국이 묻어 있는 손님용 앞치마를 내놓는 맛집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주방은 깨끗할까?”

<최병준 문화에디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