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20일 예정에 없던 보도자료를 내놨다. 전시인 양 제목부터 비장하다. ‘40~50대 가장의 마지막 피난처 건설현장 강력단속 - 불법 체류·취업 외국인 대책 발표.’

법무부는 자료에서 “건설업 노동시장에 불법체류자들의 취업이 증가함에 따라 40~50대 국민의 단순노무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며 “내국인 건설업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이르러 특별대책을 발표하게 됐다”고 밝혔다. “건설업 불법취업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해 첫 적발 시에도 바로 출국조치하겠다”며 “(소극적) 고용창출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지난달 취업자 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00명 증가하는 데 그치며 ‘고용대란’ 비판이 이어지고 이번 달엔 마이너스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법무부도 덩달아 ‘일자리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대책이 ‘불법체류 외국인 강제추방’이라니. 난국을 이방인 탓으로 돌리는 편협한 당국의 인식에서 사회 불안기면 슬며시 고개를 들던 파시즘이 엿보이는 건 망상일까?

불법체류자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따로 있다. 노동시장에선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다. 원청부터 하청에 재하청을 수차례 거쳐 일용직 노동자까지 철저히 수직구조화한 건설업에서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착취 구조의 말단인 건설 노동자를 조금이라도 값싸게 부리길 원한다. 중국동포가 선호되다가 최근엔 동남아시아 출신 불법체류자가 각광받는다. 한국인 절반값이면 부릴 수 있고, 산업재해나 임금체불 등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신분상 약점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외국인 없으면 현장이 안 돌아간다”며 아우성이다.

정부가 건설현장의 불법 하도급과 산재·임금체불 문제를 원청에까지 책임을 묻는 등 강력한 조치에 나선다면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려는 기업이 나올까? 법무부 본연의 임무는 ‘고용창출’보다는 건설현장의 불법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 더. 2013~2017년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연보에 나타난 ‘출입국 사범 처리현황’을 대륙별로 보면, 아시아주 출신의 강제퇴거(강제출국)율이 17~20%로 통계 집계 이후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았다. 반면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오세아니아주 출신은 매년 1% 안팎에 그쳤다. 정부가 법을 어긴 모든 외국인에게 똑같이 ‘강력대응’하지는 않는다는 합리적 의심을 해봐도 좋을 듯하다.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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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동 유치원’은 하나의 대명사가 될 듯하다. 안전불감증, 무사안일주의, 개발주의가 응축된 대명사. 위태로운 흙 낭떠러지를 옆에 두고 기우뚱 옆으로 무너진 건물은 ‘유치원’이라는, 건물의 외양과 부조화를 이루는 이름과 만나 더욱 극단적 느낌을 자아냈다. 건물이 한밤중에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면 정말 참혹한 결과가 초래됐을 터였다.

유치원 측에서 이미 이상징후를 포착하고 공사업체에 항의했지만 공사업체는 무시했다. 구청에서도 제대로 된 현장 점검조차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눈앞에서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건물을 두고 아무도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상도동 유치원은 결국 철거되어 폭삭 무너져내렸다.

인근 공사장의 흙막이가 붕괴되면서 건물이 기울어진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에서 사고 닷새째인 10일 파손된 부분의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무너진 유치원을 보고 퇴근하던 날, 내 삶의 지반에도 균열이 느껴졌다. 전염병에 걸려 어린이집을 일주일째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가 길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할머니·할아버지와 집에만 계속 있자니 답답하고 지겨웠던 것 같다. 할머니 손을 잡은 아이를 보는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가 돌볼 수 있어야 한다’지만, 현실은 그와 거리가 멀다. 휴가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 아이는 전적으로 조부모의 손에 맡겨졌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년에 접어든 조부모의 삶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이 무너진 건물 틈으로 훤히 드러난 유치원 내벽처럼 선명히 드러났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왜 내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기 위해 남의 가랑이를 찢어져라 붙잡고 있어야 하는가. 내 삶을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이제 점점 늙어가는 조부모의 노동이었다.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누군가의 노년을 착취하면서 바늘 하나 꽂힐 여유 없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나는 모르고, 대책 없이 맞이했다. 미리 알았다면, 그때도 같은 선택을 했을까? 이것은 내 모성애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대한 질문이다.

무너져내린 유치원을 보면서 매번 최저치를 갈아치우는 출산율이 떠오른 건 그래서다.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은 0.97명을 찍었다. 정부가 내놓는 ‘저출산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출산율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여성의 삶이 근본적으로 좋아지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오르지 않는다. 성평등지수가 높은 북유럽 국가에서 출산율이 높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그러니까, 출산을 하는 여성의 자궁과 여성의 삶을 분리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삶은 얼마나 종합적인가. 각종 성차별, 남녀 임금격차, 여성의 높은 비정규직 비율, 유자녀 여성이 겪는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차별 등 모든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임대주택 몇 채와 출산수당으로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제1야당 원내대표가 ‘출산주도성장’을 대안이랍시고 이야기한다. 출산장려금 2000만원, 출산수당 1억원을 지급하자는 것인데, 논박하기도 입이 아프다. ‘출산주도성장’은 출산율 하락 위기에 대한 안전불감증과 성장중심주의가 결합한 가장 천박한 형태의 말이다.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환원시키며, 아이를 낳는 여성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성의 변증법>을 쓴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1970년대에 비혼이나 저출산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미 젊은 여성들은 ‘비비탄(비혼 비출산 탄탄대로)’을 삶의 전략으로 택하고 있다. 정상가족 중심의 복지제도, 남녀 임금격차 등을 생각하면 ‘비비탄’의 앞길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이 가져오는 여성의 삶의 변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출산율은 그 결과다.

무너지는 것들은 장기간에 걸쳐 이상징후를 드러내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출산율에 관하여 우리 사회는 이상징후를 여러 차례 보냈다. 무너진 유치원이 되지 않으려면, 근본적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이영경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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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아침. 출근을 하니 “환율이 폭락한 터키를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정신없이 표를 끊고 옷가지도 제대로 못 챙긴 채 노트북만 들고 황망히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막막했던 그 취재에서 나를 구해준 이는 ‘보미’씨였다. 21살의 대학생인 그녀는 터키이름 대신 ‘보미’라는 한국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보미씨는 한국말을 정말 잘했다. <미녀들의 수다>에 나왔던 일본인 사유리나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는 벨기에 청년 줄리안 못지않았다.

그녀가 한국말을 어떻게 배웠는지 궁금했다. 답은 이랬다. 남자친구와 헤어져 힘든 시기에 친구가 위로한다며 한국드라마가 담긴 CD 하나를 건네줬다. 그게 <시크릿가든>이었는데 너무 재밌더란다. 다른 한국드라마도 보게 됐는데 터키어 자막을 읽는 게 거슬리더란다. 한국어를 날것으로 듣고 싶어 유튜브를 검색해 한국어를 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보미씨 같은 이가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유튜브에 보면 이런 식으로 한국말을 배웠다는 외국인이 정말 많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25일 서울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러브 유어셀프(LOVE YOURSELF)’ 콘서트에서 공연하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뜻하지 않게 지난여름 출장과 휴가로 해외 몇 곳을 다녀왔다. 해외에서 접한 한류열풍은 상상 이상이었다. 프랑스에서 만난 한 한인은 “방탄소년단이 9월 파리공연을 하는데 3분이면 매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 소호의 레스터스퀘어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수백명이 즉흥적으로 말춤을 췄다. 유럽 최대 M&M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K-팝이었다.

2000년대 초반 <가을동화> <겨울연가>가 일본을 강타하고 <대장금>이 동남아를 사로잡았을 때 지나가는 유행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3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뒤흔들 때도 ‘두 번 다시없을 기적 같은 일’로 치부했다. 생각이 짧았다. 한류는 더 뜨거워졌다. 한류는 유럽을 넘어 북미와 남미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노래와 드라마, 그리고 화장법은 유튜브를 통해 무한 전파되고 있다. 지난 2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폐회식에는 슈퍼주니어와 아이콘이 6만명의 떼창을 이끌어냈다. 놀라운 일이다.

폭도 넓어졌다. 터키 취재에서 큰 도움을 준 또 한 명의 대학생, 살리흐는 한국이 e-스포츠를 잘해서 좋다고 했다. 한국의 e-스포츠 스타들은 세계 청소년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스포츠 한류도 있다. 박항서 감독은 9000만 베트남인을 사로잡았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는 한 친구는 “요즘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인기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해왔다. 문학콘텐츠도 기회가 생겼다. 최근 만난 애플북스 관계자는 자신들이 펴낸 수십 종의 책이 태국, 베트남, 대만에 팔려나갔다고 했다. 동남아에서 번역출판되는 책의 겉면에는 한글제목이 표기된다고 한다. 그래야 잘 팔리기 때문이다. 그는 “20여년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류스타를 좇아 한국을 찾는 관광객도 확실히 많아졌다. 지하철 홍대입구역 내 한류스타의 전광판 앞에는 셀피를 찍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만성 여행수지적자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고마운 손님들이다.

중국과 일본 틈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된 한국경제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조선, 자동차, 가전 등이 다 따라잡히고 이제 반도체 하나 남았는데 새로운 성장동력이 통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을거리를 중후장대의 제조업에서만 찾으니 그렇다. 고개를 돌려보면 기회가 있다. 드라마, 영화, K-팝, 게임, 웹툰 등 이른바 ‘소프트파워’에서 길이 보인다.

정부가 마련한 내년도 예산안에는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이 일부 담겼다. 반갑기는 한데 기왕이면 화끈하게 담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200’에서 석 달 만에 다시 1위를 했다고 한다. 확실히 한류를 따라 물이 들어오고 있다. 제대로 노를 저어야 할 때다.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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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벌어진 쌍용차 노조 과잉진압 사건을 조사해온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 28일 6개월에 걸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당시 경찰 진압이 위법한 공권력 행사였음을 공식 인정했다. 파업 이후 9년. 지난 6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김주중 조합원까지 서른명의 해고자와 그 가족이 세상을 등지는 비극이 이어지고 난 뒤였다.

각종 대테러장비로 무장한 경찰특공대가 테러 현장이 아닌 노동자들의 쟁의 현장에 투입됐다. 더 나아가 경찰은 노사 자율 원칙에 의해 해결해야 할 노동쟁의 현장에서 쌍용차 사측과 노동자들을 함께 진압하는 ‘합동 작전’을 펼쳤다고 한다. 사측이 고용한 경비용역의 폭력에 눈을 감았던 경찰은 파업 농성에 참여한 노조원들을 ‘폭력집단’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댓글부대’까지 운영하며 여론전을 벌였다. 

쌍용자동차 희생자추모 및 해고자복직 범국민대책위가 28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가진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쌍용차 진압 보고서 발표에 따른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2009년 쌍용차 노조 진압 당시 조립공장 옥상 위에 있던 해고노동자 김선동씨가 발언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당시 자행된 국가폭력의 실체가 뒤늦게 드러나게 됐지만, 해고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달라진 것이 없다.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해고자가 119명에 이르고, 진압 과정에서 파손된 경찰 장비를 물어내라며 국가가 이들을 상대로 낸 16억7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역시 ‘파업 이후의 삶’을 옥죄고 있다. 

해고자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소액을 기부하는 ‘노란봉투 운동’이 이어졌지만, 국가의 손배·가압류 남용을 막아달라며 시민들이 입법청원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손배소를 취하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민갑룡 경찰청장은 여전히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이미 1·2심에서 승소한 상황인 데다 경찰 내부의 반대 여론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공권력 행사가 위법했음이 확인된 마당에 계속 소송을 이어가는 것은 국가에 의한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진상조사위는 “손배소 금액의 90%를 차지하는 헬기·기중기 파손비용을 노조원이 물어내야 한다고 인정한 1·2심에서 헬기를 동원한 진압이 위법했다는 사실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조사위에 따르면 쌍용차 파업 진압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최종 승인했다고 한다. 쌍용차 해고자들이 제기했다 대법원에서 결과가 뒤집혀 패소한 해고무효 소송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거래’ 대상이었다는 정황도 드러난 상태다. 청와대와 경찰, 기업과 법원까지 공조한 지난 9년의 ‘벼랑 끝 해고자 내몰기’를 지금이라도 바로잡기 위해선 정부와 경찰의 결단이 필요하다.

<선명수 | 사회부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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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명박 정부는 자고 나면 오르는 물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물가상승률은 상반기에만 정부 저지선인 4%를 훌쩍 뛰어넘더니 3분기에는 4.8%까지 치솟았다.

민심은 들끓었고 장관들은 동분서주했다. 난데없이 물가감시기구를 자처한 공정거래위원회가 ‘가격불안품목 감시·대응 대책반’이라는 거창한 조직을 신설, 라면 제조사들과 “왜 비싼 라면을 출시했느냐”며 드잡이를 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교육비 안정화 점검단’이라는 걸 꾸려서 원비를 올린 유치원의 리스트를 뽑아 교육청에 통보, 원비 안정화를 ‘당부’했다.

대형외식업체에는 가격 인상 자제를 ‘협조요청’하고, 편승인상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골목식당들의 밥값 인상 억제를 ‘계도’하는 등 갖가지 구식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현장에 투입됐다. 말이 당부와 요청·계도였지 사실상 값을 올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윽박지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잡히지 않았다. 애초에 ‘잡는다’는 말에 어폐가 있었던 것이 당시 국제유가·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불안한 물가국면을 겪던 나라가 한국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술 같은 일이 벌어졌다. 치솟던 물가상승률이 갑자기 한국은행이 내놓은 연간 물가상승률 예상한계치인 4.0%에 오차 없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해 11월 구성 품목들을 새로 넣고 빼서 내놓은 ‘소비자물가지수 개편안’ 때문으로, 통계청은 “새 지수에 따라 10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라고 공표했다.

통계청은 “국제기준 권고에 따른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1993년에 등장한 권고를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갑자기 이행한 이유까지 설명해내지는 못했다. 지수 구성은 더 합리적으로 바뀌었지만, 그 수상한 시점 탓에 꼼수 개편이라는 비아냥을 들으며 한참이나 난타당했다.

청와대가 최근 단행한 통계청장 교체 인사가 논란이다. 악화된 고용 통계가 쏟아지는 가운데 최근 저소득층 소득분배까지 악화됐다는 나쁜 소식 때문에 경질된 것 아니냐는 게 야당에서 제기하는 비판의 골자다.

여기에 “통계가 정치적 도구가 되지 않게 심혈을 기울였다”거나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들었던 편은 아니었다”는 황수경 전 통계청장의 말까지 더해지며 논란은 증폭되는 형국이다.

“통상적인 인사일 뿐”이라며 말을 아끼던 청와대는 파문이 확산되자 “통계청 독립을 훼손할 지시를 내린 적이 전혀 없다”며 부랴부랴 차단에 나섰다. 황 전 청장의 발언에 대해서도 “그분의 생각”이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통계청의 최근 생산물에 불신의 눈초리를 보여왔다. 소득분배지표 악화와 관련해 표본추출이 제대로 이뤄졌느냐며 구체적인 설명과 빠른 대처를 주문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여당의 불만이 금시초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청와대는 어쨌든 이번 인사를 ‘통상적인 인사’라고 했다.

청와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믿으려고 애써봐도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은 지워지지 않는다. 차관급 인사를 둘러싼 그 모든 조건과 환경이 ‘지금이 적기’라고 외치고 있어도 시기적으로 정치적인 오해를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했다면 기다렸어야 한다. ‘다급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자초한 셈이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격언은 너무 구식이라고 생각했던 것인지, 이런 정무적 판단조차 고려하지 못하는 수준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건 결과적으로 이 중차대한 시기에 차관급 인사 하나로 문재인 정부는 통계청의 독립성을 위협하는 정부라는 의혹의 꼬리표를 하나 더 달게 됐다. 가뜩이나 불리한 소득주도성장 담론에서 상대에게 또 선수를 내준 패착이다.

<이호준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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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8일 함승희 전 강원랜드 사장의 법인카드 사용비리(경향신문 8월27일자 1면 보도)에 대해 ‘음모론’을 들고나왔다. 그는 함 전 사장이 재직 중 30대 여성 집 근처에서 상습적으로 법인카드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사태를 “강원랜드의 치졸한 정치공작”으로 몰아붙였다.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바람직한 시행 방향은? 토론회에 앞서 김성태 원내대표와 이야기하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김 원내대표의 음모론은 1992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된 황인오씨와 관련돼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24일 ‘간첩 전과자를 공기업 상임감사에 앉히려는 정부’라는 제목 아래 황씨가 강원랜드 상임감사 후보 2명에 포함된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결국 김 원내대표의 음모론은 강원랜드가 조선일보 보도에 따른 파장을 덮기 위해 경향신문에 함 전 사장의 3년치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흘려줬다는 추측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2개월 전 비리 제보를 접하고 추적 취재를 해왔던 기자 입장에서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다. 김 원내대표 추측대로라면 강원랜드는 두 달 전부터 조선일보 보도를 예상하고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경향신문에 제공했어야 한다. 하지만 법인카드 사용내역은 지난 2일 정보공개 요청을 통해 받아낸 것이다. 함 전 사장 인터뷰는 조선일보 보도 하루 전인 8월23일 이뤄졌다. 그래도 김 원내대표가 음모론을 고집하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다. ‘함승희 사건’에 묻혀 ‘종북몰이’의 호기를 놓친 한국당 입장에서 음모론을 쉽게 포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다만 제1야당 원내대표라면 실체도 불분명한 ‘음모론’의 덫에 빠지기 앞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국민적 공분’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점은 주문하고 싶다. 매 주말 관용차량을 타고 30대 여성 집을 찾아가 밀회를 즐기고 비서진을 통해 결제를 시키고도 탈이 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함 전 사장은 한국당 정권이 키운 ‘괴물’이다.

“저희는 처절한 진정성으로 더 낮은 자세로 국민들이 부를 때까지 쇄신과 변화의 노력을 할 것이다.”

김 원내대표가 지난달 11일 여의도 당사 현판을 철거하면서 한 말이다. 아직도 그 다짐이 유효한지 묻고 싶다.

<강진구 탐사전문기자 kangj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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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2월7일 치러진 전기 중학 입학시험에 나온 자연과목 문제 가운데 ‘엿기름 대신 넣어서 엿을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항이 있었다.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들이 문제의 보기로 나온 무즙으로도 엿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자녀가 이 문제를 틀려 시험에 떨어진 이 학부모들은 서울고등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와 시위도 했다. 결국 디아스타아제와 무즙 둘 다 정답이라는 판결이 나왔고 무즙으로 정답을 써서 시험에 떨어진 학생 38명은 경기중학교에 재입학했다. 이 파동으로 당시 서울시 교육감 등 8명이 사표를 냈다.

일명 ‘무즙 파동’이다. 이는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입시경쟁이 얼마나 과열됐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무즙 파동이 일어난 지 3년 뒤 같은 입시에선 ‘창칼 파동’도 일어났다. 미술 문제 중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쓰고 있는 그림은 어느 것인가”라는 문항이 출제됐는데 경기·서울중학교 낙방생 학부모 549명은 정답이 두 개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 사안은 무즙 파동과 다르게 패소했고 낙방생들은 불합격 처리됐다.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회원들이 3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대학입시와 관련해 정시 45% 확대와 수능상대평가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최근 ‘정시 30% 확대’를 골자로 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개편안 발표를 지켜보면서 이 두 개의 사건이 머리에 떠올랐다. ‘무즙 파동’과 ‘창칼 파동’은 문제 하나로 상급학교의 당락이 결정되고, 합격하면 인생이 달라지는 우리 사회의 씁쓸함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서열화된 중학교 입시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살벌해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극심한 과외공부에 시달렸다. 1967년 부산에선 5학년 초등학생이 밤 10시 즈음 과외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나 사회적 반향이 컸다고 한다.

지난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해도 여러 면에서 사회적 변화가 있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기대했다. 특히 교육 문제와 관련해 새 정부는 학생 줄 세우기로 대표되는 수능의 폐해를 없애고자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하고 학교 수업은 고교학점제를 임기 내 시행해 토론 수업을 안착시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이제 아이들은 보수정권 시절보다 더한 입시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입시 변별력과 공정성을 높이라는 일부 여론을 받아들여 점차 감소하던 정시비율을 다시 확대키로 했기 때문이다.

전국 198개 대학 중 교육부의 정시 확대 권고를 받는 대상은 35개로 최상위 학교가 대부분 포함돼 있다. 이 대학들이 정시를 30%로 늘릴 경우 총 5354명이 수능 전형으로 추가 입학하게 된다. 2022년 대학 입학정원 41만여명 중 1.2%에 해당되는 수치다.

1.2%에 포함되는 이들은 누구일까. 교육현장과 입시학원가에선 그동안 내신의 불리함을 호소하며 정시 확대를 요구해온 외고·자사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 절대적인 수혜자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사교육 중심지인 강남 지역의 학교들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 권고안에 따라 정시 비율을 확대할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진 이달부터 서울의 아파트 값은 강남을 중심으로 다시 폭등하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가 갖는 의미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누가 (개천에서) 용이 될 것인가를 가려내는 선발 수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시가 확대되면 앞으론 과거와 달리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경우도 잘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나마 학생부종합전형(수시)일 때에는 공부는 다소 못해도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게 확실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지만 정시 확대 기조 속에선 이마저도 어렵기 때문이다.

1년 만에 정책 기조가 180도 바뀐 부분에 대해 설명 한마디 없는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그들의 눈엔 1.2%를 뺀 98.8%의 학생들은 더 이상 학생들로 보이지 않는 듯하다.

<문주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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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7월 고용쇼크와 관련, “청와대가 현 고용부진 상황을 엄중히 직시하고 있다”며 “정부를 믿고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입장을 밝히자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 입장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조만간 발표하겠다”는 메시지보다는 낫다는 생각이다.

2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ㆍ보좌관회의에서 장하성 정책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일자리 관련 발언에 먼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윗선에서 국민들의 체감을 강조하면 부처들은 대책들을 한꺼번에 내놓는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재정지출은 늘리겠다는 식이다. 최저임금은 올리면서 가격이 지역 평균보다 낮은 식당을 ‘착한식당’으로 지정해 홍보해주려 한다. 공평과세를 강조하면서 비과세 혜택을 늘리고 자영업자 세무조사 면제라는 정책을 내놓는다. 소상공인을 보호하겠다면서 소상공인을 몰아낼 혁신을 가져올 창업은 장려한다.

정부가 눈앞의 불을 끄는 데만 급급해한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면 지향하는 게 뭔지 혼란스러워진다. 대책 발표 당일 수치도 정확하지 않은 엉성한 보도자료가 나오거나, 보도자료에 적혀 있는 대로 관련 부처의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담당자가 아니다”라는 대답을 몇 번 들으면 ‘특단’을 위해 ‘급조된 정책’이라는 의구심이 들고 만다.

일자리안정자금 등 당장 무언가를 하는 것 같지만 기한은 한정돼 있고 효과도 의심스럽다는 비판을 받는 지출이 많아지는 것도 조바심 때문일 것이다. 지출을 늘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복지제도를 탄탄하게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조업 경쟁력 약화, 청년인구 감소, 자영업 과당경쟁, 최저임금 인상 등 여러가지가 고용위기 원인으로 꼽힌다. 장 실장은 이번에 특단의 대책을 약속하지 않았다. 국민은 고통 속에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정부가 그간 쏟아낸 모순적인 정책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보고, 서로 충돌하지 않는 빈틈없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했으면 한다.

<박은하 | 경제부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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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폭염의 기세가 대단했지만 모두가 똑같이 더위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한 지인은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옮겨 다녀서인지 더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집에서 나온 뒤 자동차에 올라 에어컨을 켜고, 역시 냉방이 잘되는 사무실로 출근하기 때문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은 같은 날씨를 공유하는 게 당연한 듯싶지만 더위는 사실 그렇게 공정하지 않다. 부자보다 빈자에게, 건강한 사람보다 병자와 약자에게 더 가혹한 게 더위다. 지구온난화로 폭염이 일상화되면서 더위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는 이미 이 같은 위협과 직면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이번 폭염으로 50여명이 사망했다. 이 중 대다수가 50대 이상으로 혼자 살았으며 신체적 또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았다. 사망자 중 집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없었다. 통계적으로도 빈곤하고 고립된 사람일수록 더위에 취약했다. 미국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시민권자보다 3배 더 높았다.   

폭염이 이어진 14일 한 관광객이 서울 청계천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AP연합뉴스

전문가들은 가장 큰 위험에 노출된 집단으로 도시에 사는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등 사회적 약자를 지목하고 있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에어컨 실외기 등이 합작해 열섬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에 한적하고 초목이 많은 지역보다 기온이 더 높다. 부유층·중산층 거주 지역은 주변에 정원과 공원 등이 조성돼 있어 초목이 열기를 식혀주지만 저소득층이나 소수인종 거주 지역은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가 2017년 내놓은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내 흑인은 초목보다 아스팔트·콘크리트로 뒤덮인 지역에 살 가능성이 백인보다 52% 더 높았다. 아시아인과 히스패닉도 이런 가능성이 백인보다 각각 32%, 21% 컸다.

이런 환경에서 에어컨 없이 선풍기로만 여름을 나야 한다면 더위는 그야말로 고문이다. 이번 여름 낮 기온이 46도까지 올랐던 이집트 카이로의 빈민가 주민들은 영국 가디언 인터뷰에서 “질식할 것 같다” “집이 오븐 같다”고 호소했다. 히잡, 부르카 등을 써야 하는 여성 무슬림들에게 더위의 고통은 배가된다. 카이로 슬럼에 사는 한 여성은 “딸에게 히잡을 두 겹만 두르거나 밝은색 히잡을 쓰라고 항상 얘기한다”고 했다.

이런 사정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지난달 말 발표한 온열질환자 통계를 보면 65세 이상 온열질환자 중 32%는 길가, 25%는 논밭에서 쓰러졌으나 집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사람도 19%에 이르렀다. 정부는 폭염주의보 발령 등 기온이 치솟을 때면 ‘외출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지만 냉방 시설을 갖추지 못했다면 실내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2014년 영국 공중보건국은 “냉방 시스템을 구비하는 데 상당한 수준의 보조금이 지급되지 않는다면 냉방 시스템의 분포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취약계층의 더위 해소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뜻이다.

장기적 관점에선 지구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고 도시의 열기를 식히는 정책이 시행돼야 한다. 싱가포르는 신축 건물을 지을 때 건축 면적 이상 넓이의 옥상 정원을 조성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옥상 정원은 주변 기온을 2~3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미국 뉴욕에선 ‘쿨 루프’(시원한 지붕)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붕에 햇빛을 반사하는 성질의 페인트를 칠해 건물 온도를 낮추자는 취지다. 로스앤젤레스 시당국은 아스팔트 위에 이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이제 지구는 도시계획과 주거, 복지 등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만들 때 기후변화 요소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삶의 질을 제고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기 어려운 곳이 되고 있다. 한국도 이 같은 관점의 정책 수립이 필요한 때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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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니, 요새 웬 비옷이 그리 비싸우.”

구보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청계천 빨래터에서 청어(비옷) 값을 탓하는 아낙네의 푸념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벌이가 변변찮은 서민들이다. 5전짜리 동전을 잃어버리고는 주인에게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한약국집 점원 ‘창수’, 이발소 ‘재봉이’, 남의집살이를 하는 ‘만돌이네’….

구보는 <천변풍경>에서 일제강점기이던 1930년대 서민의 삶을 카메라로 찍듯이 소상하게 묘사했다. 당시 청계천변은 가난한 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청계천이 복개공사로 자취를 감추면서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연일 이어지는 폭염에 전기세가 걱정이고, 숨 막히는 뙤약볕 아래서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열기를 견뎌야 하는 이들에게는 종일 에어컨을 트느라 늘어난 전기세 걱정이 배부른 소리다.

일제 때 청계천변이 도시 빈민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면, 1960년대 이후 서울에서 못사는 동네로 손꼽히는 곳 중 하나는 삼양동이다. 삼양동이라는 이름에는 원래 ‘삼각산의 양지 바른 양쪽 동네’라는 정겨운 의미가 배어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달동네’ 이미지가 굳어졌다. 최근 삼양동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살이’로 뜻밖에 핫플레이스가 됐다. 박 시장이 지방선거 때 공약했던 강남·북 격차를 줄일 방안을 찾겠다며 지난달 강북구 내에서도 기반 시설이 취약한 삼양동에 옥탑방을 얻어 거처를 옮기면서다.

그의 옥탑방살이에 ‘보여주기 쇼’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하루라도 살아보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마련이니 탓할 일만은 아니다.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자신했던 그도 땀이 줄줄 흐르는 옥탑방에선 맥을 출 수 없고, 삼양동 오르막길을 ‘따릉이’로 다니려면 얼마나 힘든지 알았을 테다. 동네 구멍가게가 모두 사라졌다는 것, ‘솔샘시장’처럼 점포 수가 적은 시장은 ‘전통시장’으로 등록할 수 없단 점도 알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에어컨 아래서 머리로 상상만 했다면 미처 알지 못했을 것들이다.

박 시장은 옥탑방 입주 19일째를 맞은 지난 8일 “대한민국 99 대 1 사회를 실감하고 있다”는 소회를 밝혔다. 마침 그날은 박 시장의 옥탑방 옆집에서 6급 장애를 지닌 40대 남성이 숨진 지 수일 만에 발견된 날이기도 하다. 박 시장은 한달살이가 끝나는 날에 답을 내놓겠다고 했다. “큰 쇠문을 여는 것은 힘이 아니라 작은 열쇠”(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라고 했던가. ‘원순네 옥탑방’에서 그는 ‘열쇠’를 찾았을까.

지도자가 갖춰야 할 조건 중의 하나로 공감 능력을 꼽는다. 하지만 권력자일수록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2008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하계올림픽 때 미국 국기를 거꾸로 든 일 역시 이를 보여준다. 박 시장은 옥탑방을 나오면서 자기 시선에 맞게 국기를 거꾸로 드는 것 같은 답을 내놓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훔친 가난’이 실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 정책으로 녹아들어야 한다. 도시가스가 들어가지 않는 몇몇 집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솔샘시장이 전통시장으로 등록될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싱겁게 막을 내려선 안된다. 폭염에 왜 누군가는 에어컨이 있는 쉼터로 갈 수 없었는지, 고독사한 남성이 서울시 ‘찾동’ 사업에서 왜 소외됐었는지를 답해야 한다.

오늘도 원순네 옥탑방은 민원인들로 북적인다. 어떤 부탁은 ‘사소’하고, 어떤 부탁은 ‘중’하다. 딜레마는 그 부탁을 다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시장은 “쇼면 어떤가. 나는 삶에서 피어나는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쇼. 그런 쇼라면 얼마든지 계속돼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원순씨의 한 달’이 서민의 고충을 아는 데 그쳐선 안될 일이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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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얼마 전 개·고양이 식육금지 집회에 맞불을 놓으러 나온 이들의 손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살다보면 참 답이 없는 시빗거리가 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인식론 차원이라면 그나마 낫다. 가치판단이 개입되는 윤리 의 문제라면 정말 끝이 없다. 개고기 논쟁이 일례다.

얼마 전 털북숭이 한 녀석이 우리 집에 왔다. 키우자는 가족들의 잇단 요구를 수년째 거부하며 “진짜 데려오면 물 올려놓고 있을 줄 알라”고 엄포를 놓았던 터라 설마 했었다. 그런데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 녀석이 꼬물대며 돌아다니는 모습에 두 손을 들고 무장해제됐다. 3개월이 안된 몰티즈다. 이름은 숍에서 부르던 대로 ‘소다’. 몸무게는 900g대였다. 배내털이 더부룩하다. 생존본능인지 모르지만 사람을 무척 좋아하고 따른다. 미처 아이를 키울 때는 크게 생각하지 못한, 생명에 대한 고민을 이 ‘댕댕이’를 통해 하게 됐다.

이전까지는 참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마주친 동네 아주머니는 유모차 앞자리에 서너 살배기 아들을 태우고, 뒤칸에는 강아지를 태우고 다녔다. 강아지 나이가 12살이라는데 사람으로 치면 약 70대 어르신이다. 아들과 반려견을 유모차에 함께 태워 밀고 다니는 모습이 참 낯설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안은 채 스스로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영 불편했다. 그런 내가 소다가 집에 온 후부터 스스로를 “아빠”로 부르고 있다. 전용 먹이 분배기(디스펜서)도 사고 폐쇄회로(CC)TV까지 들였다. 그렇게 이 녀석은 내게로 와 ‘존재’가 됐다. 오히려 그를 통해 내가 대자연 속 작은 존재로 거듭나고 있다.

스타필드고양의 ‘몰리스’가 소다의 제2의 고향인 셈인데, 불현듯 이 녀석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졌다. 이른바 공장사육의 산물이라면 씁쓸하다. 약 한 달 전 궁금해서 몰리스에 가봤다. 그런데 소다 바로 옆에서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있던 녀석이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 포메라니안 ‘후추’다. 그나마 앞에 있던 포메라니안과 같은 2월10일생이던 몰티즈 ‘설탕’은 새 가족을 만난 모양이다. 포메라니안은 5개월이 돼서 이미 부쩍 커버렸다. 소다를 데려올 당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듯 졸라대던 녀석이었다니, 우리 가족이 됐을 수도 있다. 아직 친구가 쇼윈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소다가 알아채기라도 하면 얼마나 심정이 짠할까 싶다.

16일은 말복이다. 옛 문헌에 보면 이날엔 개고기를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우리네 문화의 일부로 보인다. 충청 사투리라는 ‘개 혀?’라고 말하는 건 자유다.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한국을 ‘야만스럽다’고 비난했다고 해도 인습과 전통을 가를 잣대는 따로 없다. 맞불집회에 나온 팻말이 맞을 수도 있다. 반면, ‘개나 사람이나 존재의 귀함은 동일하다’고 말할 자격 또한 있다. 심지어 종교 차원으로 보자면, 강아지를 키우면서 불교가 친근하게 여겨진다. 윤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산짐승, 들짐승은 물론 풀벌레까지 새삼 귀히 여겨졌다. 지난주에는 2년여 키운 어항 속 버들치를 공릉천에 풀어줬다. 뿌듯하면서도 찡했다.

사실 식용 논란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반려동물 유기다. 준비 없이 무턱대고 반려동물을 입양해 키우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다. 반려동물 유기는 벌금 300만원이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인격을 버리는 행위라는 말에 공감한다. 과연 자신이 반려동물보다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맞는지 솔직히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이 버린 반려동물의 상당수가 식용으로 둔갑한다는 사실 또한 알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쩌다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이 작은 소다를 통해 새삼 세계관을 다시 세우는 중이다.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한 것은 사람’이라는 말이 요즘 좀 섬뜩하게 다가온다.

<전병역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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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일자 지면기사-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올 시즌 연봉이 3557만1429달러다. 우리 돈으로 397억9000만원쯤 된다. 1년에 32번 정도 선발 등판한다고 계산하면 1경기당 12억4000만원가량 된다. 선발 투수는 한 경기에 공을 100개 정도 던지니까 공 1개를 던질 때마다 1200만원 정도 버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미국프로농구(NBA)의 르브론 제임스는 LA 레이커스와 4년 동안 1억5400만달러에 계약했다. 연평균 연봉이 3850만달러다. 커쇼보다 더 많다.

한국프로야구(KBO리그)도 연봉이 공개된다. 리그 최고 연봉 선수는 롯데 이대호다. KBO 홈페이지에서 이대호를 검색하면 이대호의 연봉 25억원이 명시돼 있다.

일반 회사에서도 연봉 계약을 한다. 연봉 계약할 때 대개 조건이 붙는다. ‘자신의 연봉을 공개하지 말 것.’ 옆자리 앉은 동료의 연봉을 물어보는 것도 실례다. 그런데 스포츠에서는 ‘연봉 공개’가 일반적이다. 메이저리그, NBA 등에서 연봉을 공개하는 이유는 연봉의 크기로 선수들에게 책임감을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리그의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다.

NBA는 팀 연봉 총액을 제한하는 ‘샐러리캡’ 제도를 두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연봉 상한선을 두지 않지만 연봉 총액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사치세’ 혹은 ‘부유세’(luxury tax)라고 불리는 일종의 ‘벌금’을 매긴다. ‘균형 경쟁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단주 측과 선수 노조가 합의한 내용이다. 2018시즌 연봉 총액 기준선은 1억9700만달러다. 팀 총연봉이 이 기준을 넘으면 초과액에 대한 일정 세율의 돈을 내야 한다. 3회 위반 때는 세율이 50%나 된다. 초과금액이 4000만달러를 넘으면 40%가 넘는 부가세가 또 붙는다. 다저스가 올 시즌 적극적인 선수 영입에 나서지 못한 것도 돈이 무서워서다. 이미 연속 위반 전례가 있어서 올해 또 넘기면 5000만달러에 가까운 세금을 내야 한다(편의상 세금이라 부르지만 세금은 아니다. 이를 모아 일종의 야구발전기금으로 사용한다).

그래도 ‘돈을 쓰겠다’는 팀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메이저리그는 사치세 위반 팀에 자유계약선수(FA) 보상제도에도 불이익을 준다. FA 선수에 대한 보상제도인 드래프트 순서에서 사치세를 내는 팀은 뒤로 밀린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스포츠로 불리는 야구에서 어쩌면 가장 ‘비자유주의적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얼핏 자본 투입에 대한 경쟁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수 없다는 데서 출발했다. 흥행을 사업 목적으로 하는 프로스포츠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측 불가능성’이다. 어제 강했던 팀이 오늘 패하고, 오늘 약했던 팀이 내일 강해지는 게 스포츠의 묘미다. 이를 지키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리그의 전력 균형’이다. 연봉 총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선수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최적의 경기 운영 방식을 찾는 경쟁을 유도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정작 제대로 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연봉이 낱낱이 공개되는 이유는 돈을 이만큼 받으니 돈값을 하라고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여자 전체로 하여금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다. 운동장의 기울기를 어느 정도 맞추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 사회에서 어딘가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는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저임금과 편의점으로 대표되는 자영업자를 둘러싼 논란이 복잡하다. 이 역시 더 큰 자본을 쥐고 있는 쪽의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다. 커쇼가 열심히 던지는 건, 연봉의 무게를 어깨에 얹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 무게를 지지 않으려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것이야말로 더 질이 나쁜 무임승차다.

<이용균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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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은 드루킹 댓글 공작 의혹을 수사 중인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박상융 특검보(53)가 특검보 임명 전 수행하던 사건의 소송대리인에 계속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보도(2018년 7월20일자 10면)했다.

취재 당시 “변호사 휴직계를 냈고 다른 변호사를 담당변호사로 지정하는 등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기사가 나가면 책임을 묻겠다”던 박 특검보는 기사가 나간 날 슬그머니 재판부에 ‘담당변호사 지정철회서’(사임계)를 제출했다.

박 특검보는 친구 사이라고 밝힌 심모 전 문화체육관광부 체육정책관이 문체부 장관을 상대로 제기한 정직처분 취소소송에서 같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2명과 함께 지난 2월부터 심 전 정책관 측 담당변호사를 맡아왔다. 하지만 지난달 15일 특검보에 임명된 뒤에도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앞선 특검에 참여한 변호사들은 왜 통상 수행하던 모든 재판의 변호인에서 사임했을까. 박 특검보 말대로 사임계만 내지 않았을 뿐 재판에 관여하지 않는데 왜 문제가 될까. “실제 재판에 관여하느냐와 무관하게 특검보인 사람이 담당변호사로 이름이 올라가 있으면 그 자체로 해당 재판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의심을 받게 된다. 영리 업무와 겸직을 금하는 특검법 조항은 공직의 신뢰성·윤리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란 한 고위 법관의 지적은 곱씹어볼 만하다. 특검보를 지낸 한 변호사는 “의뢰인이 친구 사이여서 사건을 맡겼다면, 박 특검보가 담당변호사에서 빠질 경우 이 사건을 박 특검보가 속한 법무법인에 맡길 필요가 없다. 사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것은 이해관계를 고려한 결정일 수 있다”고 말했다. 특검보란 그렇게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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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반가운 소식에 오히려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지난 4일 들려온 소식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날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을 직접 언급한 후 교육부가 ‘교복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이다.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언급하기 이전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학교 관계자들은 과연 이 문제를 몰랐을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을 둔 집이라면 고구마 수십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껴왔을 것이다.

특히 여고생들의 셔츠는 일상의 옷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진열을 위한 마네킹용 같다. 활동하는 사람이 입을 것이 못된다. 가슴선을 강조하고 잘록한 허리선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옷은 편히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다. 꽉 조인 저 옷을 입고 버스 손잡이는 어떻게 잡고, 수업시간에 질문이 있으면 팔을 어떻게 올리지? 이런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동구매한 치마의 경우는 통이 너무 좁고 길이가 짧아 심지어 학교 주선으로 수선집에서 무료로 길이를 늘였을 정도다. 바지를 입고 싶은 여학생이 있다면? 대부분 여학생용 바지 제작을 하지 않는다. 남학생용 바지를 입으라고 한다. 교복 상의를 다림질하다가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에 오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도한 디자인 탓에 등판조차도 평면이 아니어서 아이가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아예 다림질을 포기했다.

그간 사정을 몰랐던 이들이라면 ‘나 같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왜들 참았지’ 하며 답답해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수년간 학교에, 교육청에, 교복 제작업체에 항의하고 건의해왔다. 나 역시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몇몇 학교에서 개선의 움직임이 있지만 대개는 그대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시정을 지시했겠나.

그런데 이 일이 대통령이 나서야만 해결될 일이었던가. 소비자가 불편하면 의견을 반영해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굳이 최근의 ‘탈코르셋’(화장, 몸매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자는 것) 운동까지 갖다 붙일 일이 아니다. 학교와 관계 당국이 뭉개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인권은 무시돼왔다.

대통령의 교복 지시사항을 접하며 2005년 썼던 기사가 떠올랐다. 당시 소아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지훈이(8)의 사연을 소개한 기사였다. 지훈이는 근육 경직과 경련의 고통을 덜기 위해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미용성형용으로 분류돼 있는 보톡스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한 병에 50만~60만원으로 워낙 고가인 탓에 지훈이처럼 생활이 어려운 집의 아이들은 치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생계를 팽개치고 싸울 시간도 물적 능력도 없어 자신들만 탓할 뿐이었다. 지훈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문제점을 고발한 기사였다.

다행히 기사를 접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날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에 ‘고통받는 어린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취재 당시까지 ‘(소아뇌성마비용 보톡스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던 보건복지부는 즉각 검토에 들어갔고 3개월 만인 그해 9월부터 소아뇌성마비 치료에 한해 건강보험 적용이 시행됐다. 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고 더 안타까웠다. 기사가 나가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즉각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온당히 치료받아야 할 아이들의 고통과 부모들의 슬픔은 한동안 더 이어졌을 것이다.

어리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높은 곳에 닿고 멀리까지 울려 퍼지기 힘들다. 주변의 침묵과 때론 반대의 아우성으로 잦아들기 십상이다. 지금은 인터넷이란 수평적 공간을 통해 발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교복 청원을 비롯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활성화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황당한 청원 사례들도 많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는다. 상식적인 통로가 막혀 있다는 얘기다.

건강한 나무는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더라도 ‘세상 부드러운’ 뿌리를 갖고 있다. 보드랍고 열린 그 끝으로 흙 속의 수분과 영양분, 바람을 걸러내고 통과시킨다. 우리 사회의 뿌리는 보드랍고 열려 있는가.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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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기소된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의 1심을 맡은 이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부장판사는 선고를 내리는 자리에서 “판결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경향신문의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이 ‘국정농단’ 재판…부적절 지적> 보도(7월9일자 4면)를 언급하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전산정보관리국장으로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해 법원 내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를 올린 당사자다. 전산정보관리국은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사건 수임 내역 조회에 관여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사법농단’ 의혹과 연루된 이 부장판사가 ‘국정농단’ 사건을 재판 중이라는 사실에 대해 국민들이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판사는 재판 발언에서 “(전산정보관리국이 하 전 회장 수임 내역을 조회하려 했다는) 문건 내용은 저도 정확히 모른다”면서 “이번 재판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지금 법원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도가 국정원 특활비 뇌물사건에 무죄 판결이 선고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고 오해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누구나 자신을 해명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의혹을 법정에서 반박한 것은 공적인 자리를 사적으로 이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법원행정처가 이정현 의원(무소속)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를 청탁했던 정호성 전 비서관 등 ‘국정농단’ 의혹 피고인들의 재판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가 특활비 무죄 판결에 대한 불만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기사가 ‘다른 뜻’을 가지고 작성된 것 아니냐고 호도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명의로 올린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대상자가 될 수도 있는 이 부장판사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법정이란 장소를 이용한 것은,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지금 사법부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희곤 | 사회부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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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수습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단체로 부서원 지인이 운영하던 술집에 갔다. 그 부서원이 술집 주인에게 부서장부터 인사를 시키려던 찰나 주인이 대뜸 나를 보며 말했다. “부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마가 훤하게 까진’ 노안은 기자 생활에 도움 될 때가 많았다. 여러 취재원이 ‘연차가 꽤 있는’ 기자가 직접 현장에 취재하러 온 줄 알았다. 이들은 나중 내 나이를 듣곤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취재 목적은 이룬 뒤였다. 지금은 차장인데 현장에 나가면 “국장님, 어서 오세요” 인사를 듣곤 한다.

‘노안’에 얽힌 일을 떠올린 건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호밀밭)에 나온 이브 몽탕의 동갑내기 아내 시몬 시뇨레의 일화 때문이다. “어느 날 보니 나는 늙어가는 것이고, 그 사람(몽탕)은 성숙해가는 것이더라고요. (…) 남자의 주름살은 자랑할 만한 연륜이지만 여자의 주름살은 그냥 추한 거죠.”

미투의 시대 남자의 주름살은 연륜을 나타내는 표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의 주름살이 혐오나 교정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여자의 경우는 다르다.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인 ‘노화’를 지연시켜야 하는 부담을 더 크게 느낀다. 사회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잣대를 여자에게 더 강하게 들이댄다.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을 찬양하면 다른 한쪽을 혐오하게 된다. 광고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와 이벤트가 미추 판별에 개입한다.

미스코리아는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대표 이벤트다. 1주일 전 미스코리아조직위에서 개최 안내 e메일을 보냈다. 미술 담당이라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줄 알고 보냈나? 외모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터라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홈페이지는 비키니 사진으로 도배됐다. 후보자 32명의 키와 몸무게가 일일이 나왔다. ‘후보자 신체 정보 실측값 변경’. 키, 몸무게를 본인 기재에서 ‘실제 측정값’으로 바꾼다는 공지다. 건축물에나 쓰는 ‘실측’이란 말이 이 대회의 은폐된 본질을 보여준다.

“화장품 광고는 타고난 자신의 외모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며 자기들의 화장품을 써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사게르)고 선전한다. 구원의 문구는 때로 도를 넘는다. ‘김 비서는 왜 그렇게 예쁠까. 부회장님 키스를 부르는 메이크업 시크릿’ ‘부회장님 시선을 강탈하는 출근광채 시크릿’. 시세이도코리아의 광고 문구다. tvN 드라마 <김 비서가 왜 그럴까>의 맥락을 끌어온 광고라지만, 왜 비서가 ‘시선 강탈’을 해야 하는지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 성역할과 성·직업 차별 관념이 든 광고가 탈코르셋 운동 와중에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이 문제에 둔감하다.

미디어와 사회가 조장한 ‘아름다움’은 ‘미추’를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로 만든다. 고든 파크스는 1947년 미국 뉴욕 할렘에서 심리학자 케네스 클락이 흑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형 테스트’ 장면을 촬영했다. 사진 속 어린이는 흑백의 아기 인형 중 백인 인형을 가리킨다. ‘인형 테스트’에서 대다수 흑인 어린이들은 하얀 인형에 “좋아요”라며 긍정 반응하며 선택했고, 검은 인형은 “나빠요”라고 부정 반응하며 거부했다. 키리 데이비스의 2005년 다큐멘터리에서도 흑인 어린이들은 백인 인형을 선호한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검은 피부 때문에 자신을 추하다고 여겼어요.” 결국 ‘성소수자인 흑인 장애인 여성’이 혐오 희생의 정점에 서게 된다.

몸은 존재다. 성별, 장애, 인종, 성정체성, 몸과 외모 같은 ‘타고난 있음’은 미추 판별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당장은 그 존재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며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차별과 혐오 철폐의 시작일 수 있다. ‘아름다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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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난 21일 저녁 예멘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던 난민 하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를 다쳐 똑바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어둠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던 제주 초여름의 해도 저버렸다. 바깥에 있던 다른 난민들이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와 대화에 동참했다. 통역을 담당한 예멘인까지 포함하면 모두 6명의 ‘젊은 아랍 남성’들이 방 안에 함께 있었다.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

순간 나는 위축됐던 것 같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낯선 이방인 남성들이 다수가 되자 실제 이들이 내게 위협적인지 여부와 관계 없이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예멘에 두고 온 가족, 전쟁이 벌어지기 전의 온전했던 삶에 대한 그리움, 예멘 땅에 가득한 죽음과 비참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지만, 불안한 현재와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무슬림은 평화를 뜻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이들은 누구보다 예멘 난민의 일탈적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난민 반대 여론의 증폭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예멘 청소년 난민 하산(가명)이 여권으로 얼굴을 가린 채 촬영에 응했다. 정지윤 기자

내가 느꼈던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으로 살면서 몸과 마음에 각인된 공포다. 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공포의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내가 느꼈던 ‘막연한 공포’와 내 앞에 앉아있는 예멘 난민들을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도움을 요청하는 자들이었고, 두려움은 내가 아니라 이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이땅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약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주는 고립된 난민의 섬이 됐다. 법무부는 제주도에 들어오는 예멘 난민이 급증하자 이들의 무사증 입국을 금지하고 체류지역을 제주도로 제한했다. 출도제한 조치는 예멘 난민 문제를 우리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팽배한 난민혐오 여론 속에서 제주도는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난민들을 흡수할 수 있는 아랍 커뮤니티나 산업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제주도는 난민수용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법무부는 “무사증 제도는 관광객을 유치해서 제주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도제한 조치는 당연하다”고 선을 그었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힘든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지낼 곳이 없는 난민들의 숙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어렵게 이방인에게 대문을 열고 머물 곳을 내어주던 주민들도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반대 여론이 증가하자 이들을 도와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난민에 과도한 혐오와 지나친 온정주의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선의에 의해 어렵게 난민들에 대한 원조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지나친 온정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난민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했다.

3년 전, 시리아의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가 차가운 시신으로 터키 해안가에 떠올랐을 때, 우리는 연민과 애도에 인색하지 않았다.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서방국가들을 비판하며 난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머나먼 이국의 해변이 아닌, 제주도에 들어오자 태도가 달라졌다. 배타와 혐오의 정서가 팽배하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불온하게 여기는 것은 혐오이고 인종주의”라며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는 외국인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안의 약자와 소수자에게로 확산되기 때문에 허용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머나먼 나라 해변에서 숨진 쿠르디에게 연민과 온정을 느낄 수 있다면, 제주도에 당도한 500명의 예멘 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나아가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것은 온정주의가 아니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약속이고 의무다.

한 외국인 원어민 강사의 도움으로 지난달까지 주택에 머물던 하니와 동료들은 더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어 지금은 긴급구호숙소로 향했다. 그들이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 수 있을지, 제주에 머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 답은 좁게는 제주도의 6명의 난민심사관의 손에 달려있고, 넓게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달려있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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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대한 기억 한두 가지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내 기억 속 자전거는 초등 5학년 때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온 중고자전거다. 말끔하게 칠까지 새로 한 자전거를 처음 탄 날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잡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속아 ‘씨익씨익’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더 이상 뒤뚱거리지 않을 때쯤, 뒤에서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날로 자전거는 나의 ‘애마’가 됐지만, 얼마 타보지도 못하고 도둑맞는 바람에 자전거를 찾아 동네를 샅샅이 뒤졌던 기억이 더 많다. 누군가는 저녁노을이 질 무렵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내달렸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연인과 자전거를 타며 나눈 속삭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탈것 중 자전거에는 그만큼 각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돌아보면 자전거는 발명 이후 가장 진보하지 않은 이동수단일 것이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자전거가 대중화된 게 1890년대쯤이라고 하니 1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페달을 발로 구르는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이 말한 대로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자전거는 한때 자동차의 증가와 함께 이용률이 급락했지만, 친환경 탈것이라는 이미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자전거의 천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국민 1인당 1.1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전거 사랑은 환경 의식이 남달라서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교통비가 워낙 비싸고 대부분이 평지여서 자전거만큼 훌륭한 이동 수단이 없어서다. 게다가 ‘탄소 제로’ 교통수단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시민들은 스스로의 삶에 더 이로운 것을 찾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유자전거가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유자전거의 인기 역시 건강이나 환경보호 같은 거창한 목적보다는 값싼 데다 편리성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자전거 도로 등 일상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마침 지난 3월 행정안전부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서 자전거 헬멧 의무화도 포함시켰다. 오는 9월28일부터는 자전거를 타려면 헬멧을 써야 한다. 헬멧 의무 착용에 대해선 벌써부터 말이 많다.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2만대 이상 운영하는 서울시는 다음달부터 여의도 일부 따릉이 대여소에 헬멧을 시범 비치하기로 했다. 공공자전거가 안전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해 내놓은 대책이다. 그러나 찜통 같은 더위에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이용할 이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덴마크에는 ‘사이클 시크’라는 말이 있다. 2006년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라이프 스타일 운동으로 ‘패셔너블한 일상복을 입고 도심과 어울리게 자전거 타기’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이클 시크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자전거 외에 관련된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헬멧의 의무착용이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 등에서 자전거가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것은 자전거 이용자들에 대한 배려다. 헬멧을 쓰지 않아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자전거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 말이다.

서울은 어떤가. 자전거 전용도로는 부족하고, 도로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니 자전거를 타려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불편함으로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시 환경을 조성해야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날 것이다. 값비싼 자전거에 몸에 붙는 쫄바지, 헬멧을 착용해야만 자전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릉이를 타는 당신도 ‘자전거 시크’ 못하란 법 없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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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골이었다. 92년생 손흥민의 왼발 끝을 떠난 볼이 그림처럼 휘어지며 오른쪽 골네트에 꽂히자 93분간 답답해하며 맥주만 들이켜던 아저씨들은 “골~”을 외치며 벌떡 일어섰다. 반가움도 잠시,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숨을 헐떡이는 손흥민의 모습을 보니 애잔해졌다. 손흥민은 이제 스물여섯의 청년이다.

기억 속의 첫 월드컵은 초등학생 때인 1985년 11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전이다. 골이 들어가자 최순호 선수가 껑충껑충 뛰었고, 경기가 끝나자 김주성 선수 등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돌았다. 그리고 나오던 TV의 아나운서 멘트. “국민 여러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갑니다. 한국 축구의 ‘숙원’을 이뤘습니다.” 당시는 말레이시아, 태국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리고 32년이 지났다. 한국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숙원’이라던 월드컵 본선을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4년마다 정례화된 본선 진출은 시민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32년간의 개근은 대단한 성과다. 이탈리아도 진출하지 못한 러시아 월드컵 본선이었다. 페루는 36년 만에, 파나마와 아이슬란드는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월드컵 본선은 시작부터 식어 있었다. 대표팀에 대한 여론은 줄곧 냉소적이었다. 이해는 된다. 역대 본선 중 가장 나쁜 성적이 예상됐다. 자칫 본선에도 못 나갈 뻔한 팀이었다.

월드컵 얘기를 길게 꺼낸 것은 한국 축구가 처한 상황이 한국 경제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시기도 1986년부터다. 한국은 3년 연속 10% 성장을 이루며 ‘숙원’이라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 5000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본격적으로 경제격차를 벌렸다. 이제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말레이시아는 과거 한때 한국과 같은 수준이었지만, 지금 한국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제성장을 일궜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국내 어디에서도 축하의 말은 없다. 비관론이 비등하다. 내수는 죽고, 성장동력은 떨어졌다고 한다. 기업 간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7만개 수준으로 축소됐고, 청년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당장 내년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이러다 선진국 문턱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그러니 샴페인을 터트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동반 성장해온 한국 경제와 한국 축구가 ‘선진국 깔딱고개’에서 함께 힘들어하는 것을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경제도, 축구도 선진국 클럽에는 들어갔지만 체질전환을 채 이뤄내지 못했다. 투혼과 정신력을 앞세운 단기성과주의는 여전하고, 인맥과 학맥으로 점철된 인사구조도 유효하다. 낯설더라도 고효율의 고부가가치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그 작은 시작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최장 근로시간, 최저 생산성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재벌의 반칙에 단호히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도 적극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노동유연화와 규제완화 같은 난해한 문제의 해법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저항이 만만찮다.

“오늘의 결과가 지금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이다. 이제 한국 축구는 ‘보여주기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인프라와 노력을 점검해보고, 시스템부터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4년 후에도 이러한 패배는 거듭될 것이다.” 해설가로 변신한 박지성 선수의 일침에 뜨끔해진다. 자문해보자. 우리는 지금 개혁을 위한 준비가 돼 있는가.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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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8년 전 이맘때는 통일부 출입기자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는 ‘약간 과장을 보태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자생활 중 보람도, 재미도 없던 시기를 딱 1년만 꼽으라면 이때다. 부지런히 기사를 쓰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에 남는 기사는 없다. 단지 남북관계를 다룬 기사 대부분에서는 ‘단절’ ‘중단’ ‘폐쇄’ ‘불허’ 등의 단어가 핵심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경향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의 이름을 함께 넣어 검색해보았다. 2010년 5월24일에는 ‘통일부, 대북 신규투자 금지…방북도 불허’란 기사를 썼고, 그 다음날에는 ‘통일부, 체류목적 방북 25일부터 불허’란 기사를 썼다. 두 달 뒤에는 ‘개성공단 체류 80~90명 증원, 실익 없는 생색내기’란 제목으로 위기에 빠진, 그러나 폐쇄까지는 되지 않았던 개성공단의 소식을 전했다. 같은 해 3월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나마 남아 있던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해 5월24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홀을 결의에 찬 표정으로 걸어나와 대국민담화를 읽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8년 전에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에게 후계자 자리가 돌아갔다는 소식까지는 나왔으나 얼굴도 몰랐다. 심지어 이름도 김정은인지 김정운인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을 정도였다.

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지위가 공식 확인된 것은 2010년 9월28일이었다. 북한은 이날 개최된 당대표자회의에서 김 국무위원장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3대 세습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 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에야 전면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도 2012년 4월이 되어서였다. 그달 15일 북한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인민군 열병식에서 김정은 당시 노동당 제1비서가 연설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와 외모, 행동을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생전 모습과 비교하는 분석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김 국무위원장은 대외적으로 ‘잔인한 면모’를 먼저 보여줬다.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지난해 2월에는 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공항에서 독살됐다. 김 국무위원장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인물로 전 세계에 각인됐다.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알려진 뒤에도 10년 가까이 ‘미지의 인물’이었고 ‘미친 독재자’였던 김 국무위원장이 지난봄부터는 한국의 언론에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27일과 지난달 26일에 연달아 열린 남북정상회담, 지난 12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가 가능한’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그는 어쨌든 밖으로 나왔다. 남북관계는 지난해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이 됐다. 최소한 당장 내일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이런 변화는 지난해 5월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북한의 독재자를 비난할 때 누군가는 희망을 이야기했고, 유권자들은 그 희망을 선택했다.

13일 1년여 만에 다시 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선거를 통한 선택은 어쩌면 대통령보다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의 이번 선택은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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