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2일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한 SK케미칼과 애경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2012년, 2016년 이명박·박근혜 정부 공정위가 두 차례 조사에서 각각 무혐의·심의절차종료 처분으로 기업에게 면죄부를 준 결론을 7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직접 브리핑에 나서 “공정위가 (지금껏) 소극적 판단을 한 것은 심각한 문제”, “피해자분들께 깊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려 재조사에 나선 모양새였지만 이전과는 180도 다른 조사 결과를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 가습기 살균제 관련 공약 (출처: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2016년 두 번째 가습기살균제 조사 과정에서 정재찬 전 공정거래위원장의 ‘사건 축소 처리’ 외압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 전 위원장은 전원회의로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을 올려 심도 있게 논의하자는 소회의 주심 위원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소회의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게 했다.

소회의는 3명의 상임·비상임위원이 의사결정을 한다. 반면 전원회의는 9명 위원이 참석하는 공정위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논의가 더 심도 있게 이뤄진다. 정 전 위원장은 “(허위·과장 광고를 다루는) 표시광고법은 소회의 심의가 원칙이고, 전원회의에 상정하면 공소시효를 넘길 수 있다”는 이유로 전원회의 심의를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12일 브리핑에서 “가습기살균제 TF가 정 전 위원장을 직접 면담한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직원 1대1 면담으로 확인한 바 외압은 없었다”고 밝혔다. 외압 논란의 핵심 인물을 조사하지 않고 ‘외압 없음’ 결론을 내렸다고 자인한 셈이다. 가습기살균제 TF는 공정위 결정에 논란이 일자 사건 전반을 재검토한다는 취지로 만든 태스크포스다.

이날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소회의-전원회의 안건 변경은 위원장 권한이다. 저도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전환한 적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장 역시 소회의나 전원회의를 선택할 권한을 가졌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설명은 절반만 맞다. 공정거래법 37조는 전원회의에서 다뤄야할 안건으로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 등을 열거하고 있다.

법에는 소회의에서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수 있다고 돼 있지만 소회의 안건을 전원회의로 올릴 때, 공정거래위원장이 이를 막을 근거는 명시돼 있지 않다. 가습기살균제 허위·과장 광고 안건은 ‘소회의가 전원회의에서 처리하도록 결정한 사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 파급효과가 중대한 사항’에 속한다.

법에서 찾을 수 없는 위원장의 권한은 공정위 고시(사건절차규칙)에서 등장한다. 사건절차규칙은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안건을 전원회의→소회의 혹은 소회의→전원회의로 바꿀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법률과 행정규칙이 충돌할 땐 법률은 행정규칙에 우선한다. 공정거래법은 전원회의→소회의 안건 변경에 대해 규정하지 않았고, 고시 역시 위원장이 소회의 안건이 전원회의에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명시하지도 않았다.

애당초 공정거래법이 규정한 범위를 넘어선 행정규칙을 만든 공정위가 문제다. ‘법에 없는 권한’, ‘제멋대로 해석’은 공정위가 7년 넘게 가습기살균제 광고 문제를 끌어온 또다른 이유가 아니었을까.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L 전 장관님, 안녕하십니까. 아마 안녕할 수도, 안녕하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2010년 안태근 전 검사가 장례식장에서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이를 법무부에서 조직적으로 은폐한 사건’에 대해 검찰 내부에서 조사단이 꾸려져 조사를 벌이고 있으니까요. 조사단은 그 자리에 함께 있던 L 전 장관님도 조사 대상이라고 밝혔습니다. 조사단에 출석하는 일이 번거롭고 성가시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들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8년 전 당신을 수행하던 안태근 전 검사가 후배 검사를 성추행하던 그 시간과 장소에서 L 전 장관님은 무엇을 보고 들으셨는지요. “내가 이놈을 수행하는 건지 이놈이 나를 수행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신 발언은 무슨 뜻이었는지요. 아마 조사단에서 답변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안녕할 수도 있습니다. 성폭력 사건에서 지금까지 안녕하지 못했던 쪽은 주로 피해자였으며, 안녕했던 쪽은 가해자였으니까요. 하물며 일개 ‘목격자’에 불과한 당신의 안녕 여부에 이 사건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군요.

목격자에 불과한 당신을 수신인으로 하는 이 글이 불쾌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때로 아무런 일도 안 하는 것이 가장 큰 잘못입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렇습니다. 당신은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 선배로서 후배 검사가 강제추행을 당하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성추행 사건이 조직적으로 은폐되는 동안 법무부를 총괄하는 장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눈감고 귀 막은 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안 전 검사가 성추행하는 장면이 보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모멸감과 수치심, 혼란과 고통으로 일그러진 서 검사의 모습과 그가 속으로 내지르던 비명이 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검찰 조직 내의 만연한 성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까요. 그저 술자리에서 벌어질 수 있는 ‘흔한 풍경’ 중 하나로 특별할 것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8년 전 그 자리에서 당신이 한마디만 했더라면, 성추행을 제지했다면, 백번 양보해 성추행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그 이후 문제가 됐을 때 가해자를 확실히 문책했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침묵은 서 검사에게 성추행으로 인한 고통에 더해 인사 불이익이라는 ‘2차 가해’를 했습니다. 나아가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줬습니다. 법무행정을 담당하는 부처의 수장이 함께한 자리에서 버젓이 성추행이 이뤄졌다는 것은 우리 사회와 법제도가 얼마나 성폭력에 무감각한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죠. 당신은 어쩌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워오는 데 가장 앞장서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당신만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당신을 장관으로 임명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여성 비하적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습니다. “마사지걸을 고를 때 얼굴이 덜 예쁜 여자를 골라야 서비스가 좋다”는 이른바 ‘마사지걸 발언’ 등으로 여성단체가 주는 ‘꿰매고 싶은 입’ 상을 두 차례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대통령에 그 장관’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문화계라고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문학계의 대표 시인, 영화계의 대표 감독이 성추행과 폭력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러니 이 글의 수신인은 당신과 비슷한 얼굴을 가진 수많은 남성, 성폭력을 방조하고 묵인한 사회 구조이기도 합니다.

“한 여자가 자기 삶에 대해서 진실을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세상은 터져버릴 것이다.” 미국 시인 뮤리엘 루카이저의 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파괴되고 무너진 것은 오히려 피해자들의 삶이었습니다. 이번만은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진실’을 외쳐온 수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거센 물살이 되어 조금씩 둑을 무너뜨리기를 바랍니다. ‘진실’을 말하기를 멈춘 적 없는 여성들은 계속 외칠 것입니다. 정말 세상이 터져버릴 때까지.

<토요판팀 | 이영경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영화 <국가대표>는 2009년 여름에 개봉했다. 주인공 밥(하정우 분)은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와 국가대표가 됐다. 태극마크를 단 건, 아파트가 필요해서다. 금메달을 따면 아파트가 생긴다고 믿었다. 귀화해 차헌태로 이름을 바꾼 밥은 “그러니깐 엄마, 조금만 기다려. 내가 올림픽 나가서 내가 메달 따가지고 내가 아파트 사가지고 내가 갈 테니깐, 무조건 기다리고 있어”라고 목놓아 외쳤다. 소년 가장 강칠구(김지석 분)는 할머니와 동생을 돌봐야 했다. 금메달을 따면 군대를 안 가도 된다. 1차 시기에서 다리를 다쳤다. 대신 경기에 나선 동생 봉구(이재응 분)가 주저하자 뺨을 때리며 외쳤다. “뛰어, 이 새끼야. 니가 뛰어야 내가 군대를 안 갈 거 아냐!”

영화 <국가대표>

영화의 배경은 스키점프다. 건물 20층 높이에서 출발해 아무런 도구 없이, 양발에 신은 스키에 의지해 하늘을 난다. 스키점프 센터에 따라 나는 길이는 달라지지만 남자 라지 힐 종목 세계 최고 기록은 250m를 넘는다. 하늘을 나는 시간은 8초에 육박한다. 라이트 형제가 자신들의 첫 비행기로 난 시간은 12초, 거리는 36m였다.

글라이더의 날개 역할을 하는 스키는 크고 길수록 유리하다. 중력에 반하는 종목이기 때문에 몸무게는 가벼워야 유리하다. 1998년 일본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일본 대표팀은 가벼운 체중과 긴 스키로 금메달 2개, 은메달, 동메달 1개씩을 땄다. 선수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몸무게를 줄였다. 국제보건기구(WHO)가 규정한 건강한 체질량지수(BMI)에 한참 모자라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스키점프는 멀리 나는 정도를 겨루는 종목이지만, 점점 줄어드는 몸무게는 선수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국제스키연맹은 몸무게를 제한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선수가 사용할 수 있는 스키의 최대 길이는 신장의 145%다. 대신 최대 길이 스키를 사용하려면 BMI(몸무게/키의 제곱) 지수가 21 이상이어야 한다. BMI가 0.125 모자랄 때마다 사용 가능한 최대 스키 길이가 0.5%포인트씩 줄어든다.

20층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종목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는 착지자세가 중요하다. 다리를 살짝 벌리고 한쪽 무릎을 구부리면서 착지하는 자세가 가장 충격을 덜 받는다. 오스트리아의 지역 이름을 따서 ‘텔레마크 착지자세’라고 부른다. 착지자세를 아예 규칙으로 정했다. 다리를 지나치게 넓게 벌리거나 무릎을 제대로 구부리지 않으면 감점 대상이다. BMI에 따른 스키 길이 제한과 마찬가지로 선수의 안전을 앞세운 규칙이다.

스포츠의 규칙은 대개 해당 기술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피겨는 고난도 점프에 높은 점수를 부여한다. 야구가 투수의 어깨·팔꿈치를 보호하기 위해 최대 구속을 제한할 수 있을까. 스키점프는 누가 멀리 나느냐를 겨루는 종목이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규칙으로 만들어 제한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안전은 스스로 지키라고 내버려두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쟁은 제한이 없다. 욕망은 미덕이고, 노력은 의무다. 건강과 안전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취지를 위협하는 것은 법이 눈감고 있는 무시무시한 재산권과 그에 따른 임대료다. 비트코인 열풍 속에 “위험은 각자가 책임질 몫이니 내버려두라”는 목소리는 더욱 섬찟하다.

영화 <국가대표>에서 주인공들은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기대하지 마요. 나도 대한민국한테 기대하는 거 없으니까”라고. “말했잖아요, 찢어버리고 싶다고. 대한민국”이라고. 희뿌연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많은 이들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다.

머지않은 올림픽을 통해, 금메달의 환호가 아니라, 건강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스포츠 정신이 조금 더 큰 울림을 갖길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이용균 ㅣ 스포츠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00년대 대학가에도 운동권이 있었다. 학생회는 때가 되면 4·19를 기념하고 6월 항쟁을 기념했다. 과거 민주화를 위해 피땀을 바친 선배들, 시민과 노동자를 기리는 집회에서 외쳐진 구호 중에는 “김대중 정권 퇴진” “노무현 정권 퇴진”도 있었다. 이와 함께 짝을 맞춰 외쳐진 구호는 “비정규직 철폐” “신자유주의 철폐” 같은 것들이었다.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하던 민영화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던 발전노조 조합원들은 경찰을 피해 학교로 숨어들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노동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대량 양산할 것이란 우려를 현실화시켰다. 학생들은 시설노동자(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해 집회를 벌였다. 2000년대 초반의 대학가에서 외쳐지던 구호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 1987 > 연희역 김태리

10년도 더 된 기억을 꺼내든 것은 6월 항쟁을 그린 영화 <1987> 때문이다. <1987>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인기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등 내각 인사들이 영화를 관람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7일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노제에 참여했던 우상호 의원(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나란히 영화관을 찾았다. 이한열 역의 강동원씨와 나란히 무대에 선 문재인 대통령은 “6월 항쟁을 완성시켜준 게 촛불 항쟁”이라고 말했다. ‘87년 6월 항쟁=2017년 촛불 항쟁=문재인 정권’의 등식이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1987년부터 2017년까지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민주적 정권 교체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꾸준히 나빠져왔다. 전 정권이 물려준 외환위기의 유산 속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재편에 충실했다. 비정규직은 양산되고, 일자리는 사라졌다. 젊은이들의 삶은 88만원세대에서 77만원세대로 추락했다. 

‘꾸준한 나빠짐’의 결과 1987년 투쟁이 그토록 열망했던 직선제에 의해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섰다. 이명박은 우리가 상상 못한 스케일로 국토를 망쳐놨고, 박근혜는 우리가 상상 못할 수준으로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했다. 더 이상 나빠지는 삶을 용인할 수 없었던 시민의 힘에 의해서 촛불항쟁이 이뤄지고 그 결과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우리가 청산해야 할 ‘적폐’ 속에는 30년간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도 포함돼 있다. 30년 전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쳤고, 지금은 우리 사회 기득권이 된 386들이 해결 못한 ‘미완의 과제’들인 것이다. 

영화 <1987>은 두 가지 지점에서 문제적이다. 하나는 1987년 항쟁을 특정 사건과 인물들의 영웅적 스토리로 요약해버리는 데 있다. ‘연희’로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으로 표현되지만, 노동자의 존재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87년 항쟁이 현재 완성된 듯한 착시현상이다. 영화는 이한열 열사의 노제에 모인 사람들이 ‘그날이 오면’을 열창하는 가운데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비치며 막을 내린다. 6월 항쟁의 결과로 ‘그날’이 기어이 오고야 만 것 같다. 이 착시현상은 영화 자체의 태도이자 <1987>을 소비하고 추억하는 386세대의 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박종철·이한열 열사,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숱한 죽음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한다. 열사를 추모한다는 것은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가치를 현재적으로 해석하고 싸움을 이어가는 것이다. <1987>은 아쉽게도 우리에게 현실의 어떤 문제도 환기시키지 못한다. 한상균 민주노총 전 위원장은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고,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은 아직도 차별에 시달리며 기본권 보장을 위해 싸우고 있다. 불안정 노동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청년들은 여전히 미래를 꿈꾸기 힘들다. 성소수자는 아직 ‘반대’되는 지위에 머물러 있다. 그러니 <1987>을 보고 추억에 빠지기엔 이르다. 이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과 싸움들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1987년을 기리기 위한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영화 <1987>. 몇 번을 망설였다. 끝까지 볼 배짱도, 울지 않을 자신도 도무지 없었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이었던 유시춘 선생 손을 잡고 영화관에 들어서기 전까진. 유 선생은 시사회를 봤지만 후배를 위해 기꺼이 동행했다. 숨소리까지 고문당하던 그때와 두 번이나 마주하게 해 미안했다. “괜찮아, 뜨거웠던 한 계절이 내 인생의 정수였어. 살아서 이런 시절 봤으면 된 거지.”

몇 겹의 장면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박종철의 죽음과 49재, “종철아 아비는 할 말 없대이”, 이한열의 죽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의 폭로, 열사 26인을 호명했던 문익환 목사의 절규, 전국적 추모 투쟁을 관통하던 ‘그날이 오면’.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은 군사정권에 맞선 청춘들의 사랑과 투쟁이었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유 선생은 화장실을 찾았고 난 돌아서서 포스터만 쳐다봤다.

세밑 주말 저녁, 눈송이가 흩날렸다. 한참을 걷다 발길 머문 커피숍에 앉았다. “<1987>은 보통사람들의 서사네요. 선과 악의 순간순간이 일궈낸 변혁 그 자체가 역사겠지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린 고개를 끄덕였다. 유 선생은 6·10항쟁 당일 아침 연행됐다. 구로경찰서에서 장안동 대공분실을 거쳐 강동경찰서로 끌려갔다. 부채꼴 모양 유치장 앞에 붙은 유 선생 죄목은 ‘집시법 위반’. 반대쪽 유치장에 갇힌 여성들이 유 선생 죄명을 보더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여성들의 박수를 들으니 ‘매운 계절의 채찍을 딛고 북방에 선’ 것처럼 울컥했다고 한다. 신민당사 점거 농성으로 일찌감치 서대문구치소에 있던 YH노조 사무장 박태연도 그립다고 했다. 유 선생은 여사 21사동 통풍구 위에 올라서서 6월항쟁을 들려줬다. 서울구치소 여사 ‘소지’(일본어로 ‘청소’)는 지금 살아 있을까. 구치소 목욕은 일주일에 한 번뿐이었다. 그나마 정치범은 마지막 순서였다. 목욕물이 남았을 리 없었다. 한 ‘소지’가 유 선생에게 물 양동이를 건네며 몸을 돌려세우더니 “마, 세상 안 디비지겠나. 함 바까 보자”며 등을 밀어주는 게 아닌가.

눈발이 잦아들 무렵에야 우린 눈 얘기를 꺼냈다. “민주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눈송이처럼 떨어진 게 아니란 걸 젊은 친구들이 알았으면 좋겠어.” “그럼요, 알 거예요. 알아차렸을 거예요.” 그새 커피잔은 세 번 정도 비워지고 채워졌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걸 유 선생이 눈치채길 바랐다. ‘그로부터’ 1년 후를 묻고 싶었다. <1987>의 1년 후 말이다.

혁명은 유토피아를 만들지만 혁명 스스로의 유토피아도 있다. 반동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항쟁의 반동은 너무도 잔인했다. 정치의 책임이 크다. 시민들이 열어준 민주주의를 오로지 권력게임의 도구로 활용한 탓이다. 1987년 대선의 노태우 후보 당선, 1988년 13대 총선의 지역주의 부활은 혹독한 대가다. 반면 노동자들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은 직선제 쟁취로 수렴됐지만 그해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생존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노동의 현실을 드러냈다. 노태우 정권에서 분신한 노동자 규모만 전체 정권의 84%를 차지한다(임미리 <열사, 분노와 슬픔의 정치학> 중).

87년 함성에서 2017년 촛불항쟁을 떠올리게 된다.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눴던 군사정권, 총구는 겨누지 않았지만 시민을 버렸던 이명박·박근혜 정권. 30년 전 촛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갔던 우리는 30년 후 지금은 촛불을 끄지 않고 그대로 광장에 서 있다. 적폐청산, 비정규직 문제 등 시민들이 직접 제기한 사회 문제는 정치 의제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은 다신 맘 편히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우리의 다짐일 테다. “그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직 감옥에 있는 촛불항쟁 1년은 참 안타깝지.” “맞아요. 성장하지 않는 민주주의는 달빛에 바랜 신화일 뿐이죠.”

<정치부ㅣ 구혜영>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전 합의보다 진전된 것이며 현실적으로 최상의 결과였다는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의 항변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서 결론짓도록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 문제의 본질과 한·일 합의의 근본적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정치적 합의로 해결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이 문제를 정치적 협상으로 결말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는 것이 비극의 시작이며 위안부 합의의 근본 문제였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1월 1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등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위안부 해결 없이는 일본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턱없이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여자로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단심(丹心)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고, 친일 논란을 빚은 선친의 전력을 의식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국민 정서에 편승해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정치 행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일 기조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외교적 자충수라는 게 문제였다. 미국의 아시아재균형 정책에 첨병 역할을 하는 일본과 각을 세우는 것이 한·미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고 미국의 압박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박 전 대통령은 탈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그가 택한 방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해결했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협상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이 협상은 구조적으로 한국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박근혜 정부가 대일 외교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바람에 생긴 일이다.

초기 단계에 박 대통령에게 ‘일본과 외교를 이렇게 하면 나중에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된다’고 경고하고 이를 막았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했어야 하는 사람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수장이던 윤 전 장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국민 모두가 수용할 수 없는 합의가 이뤄졌을 때는 장관직을 걸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윤 전 장관은 협상 결과 평가가 박하다고 항변할 것이 아니라, 외교장관으로서 한국 외교가 이길 수 없는 전쟁터로 끌려나가는 것을 막지 못한 책임을 생각해봐야 한다.

<유신모 | 정치부>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용은 왜 나야 하는데?”

지난 19일부터 24일까지 3회에 걸쳐 경향신문이 내보낸 “‘시험사회’ 문제를 풉시다” 기획을 본 한 독자가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이 기획은 ‘개천용 신화’가 통했던 과거와 달리 시험 ‘한 방’으로 계층 상승을 이루기 힘든 현실을 다뤘다. 댓글 중에는 “일단 판검사가 ‘용’이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폐기할 때가 됐다”는 내용도 있었다.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듯했다. 그러나 속내는 모두 ‘그나마 시험이 공정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험이 제일 공정하다. 이 나라에선 다른 건 안돼.” “부모 잘 만나는 게 최고의 스펙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놀랐다. 지인들 역시 “나도 요즘 그렇게 느끼던 참이다” “학부모 입장에선 이것저것 보느니 시험이 제일 깔끔하다”고 했다. ‘학력고사 세대’는 예전이 좋았다고 회상했다. 한 독자는 메일을 보내왔다. “점점 더 신분의 상하이동이 없는 경직을 넘어 강직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사회가 역동적이지 못하면 폐망에 진입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 역시 “로스쿨은 빈민에겐 별나라 이야기”라며 사법시험이 더 공정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차라리’ 시험이 낫다고 말했다. 물론 다양한 요소를 평가하면 좋지만 학연·지연·혈연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시험점수밖에 없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시험으로 국가 엘리트를 키우는 고속성장 시대는 지났다. 창의성·독창성·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오로지 시험으로 평가하는 것은 모순이다. 시험으로 ‘개(천)룡’이 탄생하기 힘들다는 사실은 굳이 통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안다. ‘정시 확대·사시 부활’을 주장하는 수많은 댓글에 공감하면서도 동조할 수 없는 이유다.

‘개룡’이라는 표현을 다시 생각해본다. 개천은 어디고 용은 누구인가. 언제까지 개천은 개천이고 용은 용이어야 하나. 사회는 가난하고 낙후된 곳을 ‘개천’으로, 소위 명문대 출신에 출세한 인물을 ‘용’이라고 단정지어 왔다. 꼭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런 차별적 표현이 계층을 굳히는 데 일조했을 수도 있겠다. ‘개룡 신화’는 약해졌지만 시험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의 격차가 여전한 걸 보면 말이다.

“개인들의 시험 경쟁력은 엄청난데 사회 전체의 생산적인 경쟁력은 떨어졌다”는 이번 기획의 지적처럼 ‘시험사회’는 개조가 필요하다. 시험으로 출세해 이미 보상을 거머쥔 이들과 장벽에 가로막혀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 모두에게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 따윈 없다. 팍팍한 현실을 ‘할 수 있다’는 ‘정신승리’로 이겨내라는 주문도 통하지 않는다. ‘그나마’ ‘차라리’ 시험이 낫다는 이야기는 정답이 될 수 없다.

단순히 교육제도와 선발방식 변화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사회경제적 차별을 해소하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경제, 노동, 복지 등 우리 사회 모든 요소를 이야기해야 한다. 계층과 상관없이 안정된 성취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노도현 | 정책사회부 hyunee @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젖은 23일 아침 9시30분. 필리핀 남부 다바오시의 랜드마크인 4층짜리 대형 쇼핑몰 NCCC몰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3층 가구매장에서 시작된 불은 삽시간에 위층으로 번졌다. 4층에는 미국에 본부가 있는 시장조사회사 SSI의 필리핀 지부 사무실이 있었다. 25일 현재 사망자 37명 중 대부분이 이곳 콜센터 직원들이었다. 소방관들은 화염과 연기에 4층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막말과 무자비한 마약범 단속으로 ‘악명’을 얻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도 유족들을 찾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위로하지만 해결하지는 않는다. 필리핀 시민들은 화재 경보는 울렸는지, 비상구는 열려 있었는지, 스프링클러는 작동했는지, 정부가 건물주나 임대업자를 위해 눈감아준 것은 없었는지 묻고 있다. 다바오는 두테르테가 지난해 6월 대통령 취임 전까지 20년 넘게 시장을 지낸 곳이다. 지금은 딸과 아들이 이어받아 각각 시장, 부시장을 맡고 있다.

화재로 2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충북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에 26일 오전 높이 2m의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진, 홍수, 화재 같은 재난은 가장 극적이고, 가장 흉한 방법으로 그 사회의 모순을 까발린다. 2015년 5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외곽 발렌수엘라의 슬리퍼 공장 입구에서 용접 작업 중 불꽃이 튀어 근처 화학약품이 폭발했다. 노동자들은 2층으로 몰려갔지만 2층 창문에는 쇠창살이 단단히 둘러쳐져 있었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300페소(약 6400원)를 주는 공장에 스프링클러가 있을 리 없었다. 74명이 질식해 죽었다.

지난 6월 70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국 그렌펠타워 화재는 공공주택 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런던의 부촌 켄싱턴첼시에 세워진 공공 사회주택 그렌펠타워는 노후되면서 관리가 민간회사에 넘어갔다. 이후 세입자를 더 받기 위해 아파트가 개조되고 출구와 계단은 하나만 남았다. 거주자들이 직접 단체를 만들어 안전 관리가 부실하다고 주장했지만 지자체는 법적 대응으로 압박했다.

2012년 11월 방글라데시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된 다카 타즈린 공장 화재와 이듬해 4월 라나플라자 붕괴 사건은 주요 외화벌이이자 ‘노동착취 공장’이라는 비난을 듣는 의류산업의 현실을 고발했다. 월마트, 베네통, 망고 등 미국·유럽의 다국적 의류 기업에 옷을 납품한 라나플라자의 여공들은 관리인들에게 등 떼밀려 사고 전날 이미 금이 간 건물에 들어가야 했다. 110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재난이 모순을 드러낼 때는 극적이지만 모순을 풀어가는 과정은 전혀 극적이지 않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지지부진하기 일쑤고 정의는 원하는 만큼 구현되지 않는다.

라나플라자 사고 직후 글로벌 기업과 노조는 안전협약을 맺었다. 전반적으로 노동환경 안전이 개선됐다고들 하지만 비슷한 사고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최저임금은 한 달 38달러에서 68달러 수준으로 올랐다. 하지만 파키스탄(116달러), 인도(137달러) 등 주변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필리핀 슬리퍼 공장 화재 조사위원회는 지난해 발렌수엘라 시장과 고위공무원 6명을 해임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법원은 해임 처분을 중단시켰다. 그렌펠타워 이후 영국 전역 고층건물은 전수 조사에 들어갔다. 그렌펠타워와 유사한 외장재를 쓴 18m 이상 고층건물 173곳 중 안전점검을 통과한 곳은 8곳뿐이었다. 건축 규정은 총체적 재검토에 들어갔다. 테레사 메이 총리가 약속한 책임규명은 지켜봐야 한다.

제천 화재 참사는 알지만 고치지 못한 고질을 보여줬다. 9층 건물에 투입된 제천소방대 대원은 왜 4명일 수밖에 없었는지, 소방차 통행을 막지 못하게 하는 법안은 왜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지, 소방점검 시정명령은 왜 무시되는지, 비상구는 왜 늘 닫혀 있거나 물건이 쌓여 있는지. 민감하게 주시하고 끊임없이 요구해야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간다.

<이인숙 뉴콘텐츠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며칠전 한 유명가수가 사망했다. 경찰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결론내렸다. 가족들도 이를 받아들여 바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 가수는 나쁘다. 자살이란 최악의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나쁘다. 앞으로 그의 가족들은 물론 그를 좋아했던 팬들도 슬픔과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그는 남은 사람들에게 불행만을 더해주고 떠났다. 그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는 관심 없다. 그가 친구에게 남겼다는 유서 따위도 보고 싶지 않다.

지난 8월 경기 광명시 자살예방센터가 하안동에서 ‘찾아가는 희망상담소’를 열어 우울증 자가검진을 진행하고 있다. 광명시 자살예방센터 제공

이렇게 부정적으로 쓰는 것은 그에게 악감정이 있어서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한국기자협회, 한국자살예방협회가 함께 만든 <자살보도 권고기준>은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한다’고 기자들에게 강조한다. 또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한다’고 권한다. 왜냐하면 자살은 또 다른 자살을 부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언론보도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널리 퍼지는 유명인의 자살 소식은 그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크다.

그의 죽음이 알려진 날, 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 담당자들은 밤새 언론에 나오는 기사를 모니터링 했다. 특히 자살 방법과 장소 등을 자세히 묘사한 기사를 찾아낸 뒤 해당 기자나 매체에게 연락해 수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온갖 인터넷 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사들을 모두 처리할 수는 없었다. 복지부 담당자는 “수능이 끝난지 얼마 안된터라 청소년들이 한창 예민할 때인데 어쩌면 좋냐”며 걱정했다.

2013년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이후 한국의 자살자 수가 어떻게 변하는지 조사했다. 2005~2008년 목숨을 끊은 배우와 가수 5명이 조사 대상이었다. 그들이 명을 달리한 뒤 2개월간 발생한 한국의 자살자수를 전년도 같은 기간, 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전년과 후년의 평균치보다 30% 가량이나 자살자수가 많았다. 특히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씨가 명을 달리했을 때에는 49%나 자살자수가 늘어났다. 이른바 ‘베르테르 효과’다. 자살을 한 사람이 유명하면 유명할 수록, 화제가 되면 될 수록 영향을 받는 사람의 수도 급속히 늘어난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언론이 아예 자살 보도를 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유명인의 죽음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다. 또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그 이유만 빼먹을 수도 없다. 차선책은 보도를 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 악영향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자살보도 권고기준>이다. 물론 여기에서도 첫번째로 ‘자살보도 최소화’를 권고하고 있기는 하다

우선 자살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를 해서는 안된다. 자살장소도 가급적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 자살자를 미화하거나 영웅시하는 것 역시 금물이다. 자살자의 유서를 소개하는 것 역시 자살미화가 될 수 있다. 자살이 어떤 문제의 해결책으로 작용했다는 인상도 줘서는 안된다. 억울한 피해자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고, 결국 가해자가 처벌을 받았다는 소식은 누군가에게는 속시원함을 주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살의 폐해와 고통을 아주 정확하게 알려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경향신문부터 실천하면 될 것을 이리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이유가 있다. ‘일부’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한다고 해도 SNS에서 유통되는 선정적인 기사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발표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 전문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자살사건이나 자살과 관련된 사안을 보도하는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로 그러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사람, 특히 삶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청소년을 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이 문장이 너무 길다면 아주 간단하게 줄여서 마음에 담아두자 ‘자살은 나쁘다. 아주 나쁘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일본 록밴드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는 1999년 아키히토 일왕 즉위 10주년 국민제전에 출연했다. 봉축곡으로 피아노 협주곡 애니버서리(Anniversary)를 만들었다. 일왕 거처인 고쿄(皇居) 광장에 2만5000여명이 모였다. 연미복 차림의 요시키가 등장하자 젊은 여성들의 탄성이 터졌다. 아키히토의 다양한 모습이 연주와 함께 TV로 전국에 전해졌다. 한신대지진 피해자를 위로하고 아이를 끌어안는 등의 화면이었다. 20세기 마지막 해를 앞둔 거대한 쇼였다.

국민제전 전날인 11월11일 요시키에게 공개 질문장이 날아들었다. 발신인은 도쿄대 교수인 문예비평가 고모리 요이치,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 등이다. 요시키가 더 많은 사람을 동원하려는 주최 측의 정치적 의도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러한 행사가 일본국헌법의 핵심인 상징천황제를 변질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주장에는 반론이 적지 않았다. 요시키에 대한 질문이 과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상징천황은 1945년 일본 패전 이후 1947년 시행된 일본국헌법 1조에서 나온다. 이전까지의 일본제국헌법 1조는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이를 통치한다’였다. 이 조항으로 절대권력을 확보한 쇼와 일왕은 전쟁을 일으켜 2000만명을 희생시켰다. 그런데도 전범으로 기소되지 않았고 상징천황으로 살아남았다. 새로 만들어진 일본국헌법 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이며, 이 지위는 주권을 지닌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가 됐다. 전쟁에 책임이 있는 천황제도를 살려내려는 일본이 맥아더 사령부(GHQ)를 설득한 결과다.

그리고 일본이 GHQ 헌법안을 결정적으로 뒤집은 부분이 ‘국민’이다. GHQ 초안의 주어는 영어로 피플(people), 일어로 인민(人民)이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에서 처음으로 국민을 주어로 만들었다. 일본에 남은 조선인의 기본권을 박탈하기 위해서였다. 일본국헌법 시행 전날인 1947년 5월2일 쇼와 일왕이 조선 호적자를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마지막 칙령을 발표했다. 기본권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한 헌법을 만들려 GHQ를 속이기까지 했다. 같은 단어를 다르게 번역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한정한 두 번째 헌법이 이듬해 한반도에서 탄생한다. 대한민국헌법이다. 제헌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박사는 말했다. “인민이라는 말은 구 대한제국 절대군주제하에서도 사용되던 말이고 미국헌법에 있어서도 인민(people, person)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citizen)과는 구별되고 있다.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의 인민을 의미하므로 국가 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권리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

기본권을 국민에 한정한 것은 처음부터 부당했고 마지막 개헌인 1987년에도 고치지 못했다. 결국 1988년 설립된 헌법재판소는 국민에 외국인이 포함된다고 결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현행 헌법에서 국민은 외국인을 포함한다. 통상적인 언어 의미를 완전히 벗어나는 이런 비정상을 해소하는 방법은 헌법을 고치는 것뿐이다. 그래서 기본권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수정하라고 2014년 19대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도 밝혔다. 손을 대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조항이 쌓여가고 있다.

헌법은 헌재의 해석과 국회의 입법으로 보완되는 것을 안다. 후진국 헌법일수록 조항이 길고 문장이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도를 넘어선 낡은 헌법은 헌재에 과도한 권한을 갖게 하고 헌법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 헌법이 다수 국민과 사람을 벗어나 소수 헌법재판관과 국회의원의 손에 들어간다. 요시키는 상징천황제를 무력화할 힘이 없었지만 헌재와 국회는 기본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헌법을 새로 써야 할 시간이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두 점 차로 지고 있는 8회말 무사 1·2루. 감독은 타석에 들어선 6번 타자에게 강공 사인을 보냈다. 7번 타자가 미덥지 못해서다. 결국 유격수 땅볼로 더블 플레이가 나오면서 천금 같은 기회를 날리고 게임도 잃었다. 해설자는 보내기 작전을 왜 안 했냐고 열을 올리지만 무슨 소용이 있나.

야구도 그렇지만 역사에서도 지나간 상황에 대한 가정은 사실 무의미하다. 그럼에도 굳이 따져보는 것은 그 과정에서 교훈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1년 전 국정농단 사태가 촉발한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지금쯤 한국은 19대 대통령 선거(12월20일)를 앞두고 뜨겁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정치권의 합종연횡이 정리가 되면서 아마도 여권의 반기문 후보와 야권의 문재인·안철수 후보가 치열하게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국가정보원 사이버 외곽팀과 국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열심히 올려대는 댓글은 대선을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깨어 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은 1년 전에 이 나라 역사의 물꼬를 돌렸다. 이후 우리는 어떻게 바뀌었고, 얼마나 나아졌을까.

촛불집회의 결과물들은 곳곳에서 눈에 띈다. 대통령이 바뀌었고, 여야가 교체됐다. 과거 권력의 핵심에 있던 많은 이들은 구치소 신세를 지고 있다. 최저임금이 크게 올랐고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도 그 어느 때보다 기대가 커지고 있다. 검찰도 경찰도 서로 인권지킴이가 되겠다며 경쟁하고 있다. 해고자였던 최승호 PD가 MBC 사장이 된 것은 새옹지마, 상전벽해라는 말이 제격이다.

이런 모습이 달갑지 않아 비난하고 비아냥거리고 저주하는 이들도 있고, 이 정도 변화로는 택도 없다며 더 많은 채찍질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다. 어찌됐건 중요한 것은 대통령과 정부만 바뀐다고 우리가 촛불집회에서 바랐던 세상이 올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라를 구성하는 주체들인 국민들, 정치인들, 기업들, 사회단체들이 모두 바뀌어야 한다. 물론 이를 선도하는 것은 정부다.

얼마 전 만난 서울시내 한 사립대의 총장에게서 지난달 포항 지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연기됐던 긴박한 상황에 대해 들을 기회가 있었다. 수능 하루 전날 포항에서 강진이 발생하자 정부는 전격적으로 수능 1주일 연기를 결정했다. 많은 대학들이 수능 직후 주말에 논술시험을 잡아 놓고 있었기에 고심이 컸다. 대학 입장에서 논술시험 연기는 매우 힘들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호텔에 들어가 있던 논술문제 출제 교수들과 검증 교사들은 시험이 재개될 때까지 호텔에 더 갇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논술시험일 이후 호텔방이 이미 모두 예약이 돼 있어 이들은 더 머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이들을 해산하면 기존에 마련했던 문제는 모두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원점에서 출제 교수와 검증 교사들을 다시 구성해 문제를 새로 내야 하는 것이다. 200여명이나 되는 시험 감독관들의 일정을 다시 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대학들의 동향을 알아보니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곳도 있고, 연기하겠다는 곳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 교육부에서 논술시험 연기 요청이 들어왔다. 강제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 연기 결정을 했다. 전국의 모든 주요 대학이 논술시험 연기에 동참했고, 일정이 흐트러진 수험생과 학부모들 중 항의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 대학 총장은 당시 상황을 보면서 1997년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이 연상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로 싸울 땐 상대에게 지독하지만 위기에서는 뜻과 힘을 모으는 우리 국민들의 저력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바로 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이다.

이번 사태는 정부의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와 불편과 불이익을 감수한 국민들의 협조가 빛을 발하며 최선의 결과를 냈다. 이는 정부 결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부가 앞으로 또 일어날지 모를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신뢰가 먼저라는 얘기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도 6개월이 넘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가고 있는 셈이다. 연애 때는 눈도 멀고, 귀도 멀지만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생활이 지옥과 천당 중 어디로 향할지는 당사자들이 얼마나 신뢰하고 힘을 합쳐 어려움을 극복하느냐에 달렸다. 사랑에 빠지긴 쉽지만 믿지 못하면 그때부턴 지옥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김준기 사회부장>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시민, 촛불

“혹시 좋은 맛집 알아?” 송년회 시즌이다. 과거 여행 담당 기자를 했다는 이유로 동료들로부터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음식과 식당을 평가하는 데는 여러가지 잣대가 있을 것이다. 제철 재료, 요리사의 정성, 식당의 청결, 맛의 향토성…. 해외의 음식 칼럼니스트 책이나 TV를 보면, 요즘 요리사는 예술가고, 음식은 마치 예술작품처럼 거창하게 포장된다. 20~30년 전 맛집 얘기엔 셰프가 아니라 욕쟁이 할머니가 단골로 등장하곤 했다. “복스럽게 좀 처먹어, 이놈아!” 손님이 욕쟁이 할머니에게 느끼는 것은 불쾌감이 아니라, 정이란 게 욕쟁이 할머니 이야기의 골자다. 여기서 식당 손님은 소비자가 아니라, 배가 고파 찾아온 ‘사람’이다.

요즘 맛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난 밥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밥은 기본이다. 둘째, 음식은 정성인데, 밥은 생각보다 꽤 정성이 필요하다. 게다가 취향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평양냉면처럼 호불호가 확 갈리는 음식도 아니고, 홍어나 과메기처럼 향토적 특성이 깊은 음식도 아니다. 그래서 밥맛을 평가하는 데는 미식가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쌀값은 재료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생활물가가 급등해 음식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언론 보도는 있었지만, 지금까지 쌀값 올라서 밥값 올려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육칠천원짜리 국밥집 밥이, 몇만원짜리 고깃집이나 횟집의 밥보다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이유는? 묵은쌀로 밥을 짓거나 형편없는 쌀로 밥을 짓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요리는 타이밍이다. 아무리 좋은 쌀로 밥을 지어도 시간이 지나면 밥맛은 급속히 떨어진다. 미리 해놓은 밥은 군내 난다. 갓 지은 밥이 가장 맛있다. 그래서 신선도를 따져야 하는 것은 생선회가 아니라 밥이다. 대량으로 쪄낸 밥도 맛이 없다. 

10년 전쯤 일본 출장 때 밥집 주인에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료칸 주인이 손님들에게 좋은 밥을 내놓기 위해 다른 음식을 먹고 있을 동안 숯과 냄비를 들고 와 다다미방에서 밥을 지어줬다. 그래야 밥이 맛있다고. 주인은 밥맛이 제일 좋다는 니가타현 어느 지역의 쌀로 밥을 지었다고 했다.

그동안 우린 왜 밥에 신경 쓰지 않았을까. 맛집도 유행이 있고, 시대나 사회적 환경에 따라 변한다. 서울 시내 곳곳에 있던 안동찜닭, 조개구이집은 많이 사라졌다. 한국의 외식문화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것은 먹고살 만해진 1980년대부터다. 물론 예전에도 갈빗집, 불고깃집이 있다. 한데 ‘마이카 시대’라는 1980년대부터 서민들도 맘 놓고 먹지 못했던 음식들이 인기를 끌었는데, 고기와 생선회 같은 거였다. 돼지고기도 과거에는 머리 고기나 수육으로 먹었다. 대개 잔치·제사음식이었던 거다. 회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삼겹살은 1970년대 중후반부터 유행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등심 등을 수출하고 남는 나머지 부위를 삼겹살로 가공해 팔았다는 건데, 이게 크게 히트했다는 거다. 수입쇠고기의 등장으로 LA갈비란 것도 나타났다. 이후 밥은 고기나 생선회를 먹고 위장에 여유가 있으면 먹는 탄수화물이 됐다.

밥보다는 고기였고, 생선회였다. 고깃집, 횟집에선 밥은 디저트처럼 후순위로 밀려서 코스 요리 중 마지막이었다. 배가 부르면 안 먹어도 그만인 셈이 됐다. 한데 분명한 것은 밥맛 좋은 식당이 대개 다른 음식도 맛있다.

또 하나, 음식에는 윤리적인 면이 있다. 거창한 동물복지 차원이 아니라 조리 방식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나라들에서 소나 돼지, 양을 도살할 때 최소한의 고통을 느끼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간과 비슷한 고통을 느낀다고 판단되는 척추동물에게 함부로 고통을 줄 때, 동물학대라고 규정한다. 그렇다면 뜨거운 해물탕에서 꾸물거리는 산낙지는?

“최근에는 낙지, 오징어, 문어 같은 두족류가 사실상 ‘명예 척추동물’이 되었다. 같은 연체동물인 대합조개, 굴 따위와는 달리 대단히 정교한 신경계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대니얼 대닛, <주문을 깨다>)

낙지도 포유류 못지않게 고통을 느낀다는 얘기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펄펄 끓는 해물탕에서 산낙지가 꿈틀거리며 죽어가는 모습이 잔인하고 혐오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10~20여년 전 식당 소개 정보를 보면 주차·카드 가능 여부였다. 요즘은?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는지를 본다. 남녀 공용화장실은 남성도 불편하다. 여성은 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식당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청결이다. 인테리어는 번듯한데 기름때나 반찬 자국이 묻어 있는 손님용 앞치마를 내놓는 맛집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주방은 깨끗할까?”

<최병준 문화에디터>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지난여름 취업준비생이던 그대의 글을 읽었습니다. 인터넷 시민언론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휴가 시즌이 서글픈 취준생의 여름나기’였지요. 20대 여성 취준생인 듯한 그대는 글에서 청년들을 취업절벽으로 내몬 ‘헬조선’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자소서를 수백번 썼다” “광탈을 밥 먹듯이 했다”는 ‘넋두리성 푸념’도 늘어놓지 않았지요. 작가 김훈이 쓴 에세이 <라면을 끓이며>의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는 대목을 인용하며 시작한 글은 취준생인 그대가 처한 상황이 어떠한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편의점에서 3000원 넘는 메뉴를 선뜻 고르지 못하는 취준생들은 ‘쓸쓸한 맛’에 길들여져 있다고 했지요. 맥주 한 캔을 마시며 다운로드받은 영화를 본 뒤 잠드는 게 취준생들이 만끽하는 일상의 행복이라고 일러주기도 했습니다.

 

 

그대는 한껏 기울어진 세상의 불평등은 ‘빽다방 커피’와 ‘스타벅스 커피’의 차이를 넘어선다고 했습니다. “부모의 재력이 다르고, 졸업한 학교가 다르며, 체득한 문화적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소수에게 집중되는 부와 권력, 기회는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시킨다.” 그대의 지적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현실이 그러하니까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계층이동의 사다리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지난달 통계청이 내놓은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민의 65%가 노력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끌어올릴 수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이쯤 되면 ‘수저계급론’이 고착됐다고 봐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소득과 부, 의무와 권리, 권력과 기회가 공정하게 분배되는 정의”(마이클 샌덜, <정의란 무엇인가>)가 실현되길 기대하는 것은 허망한 일입니다. “상위 1%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는 게임의 규칙”(조지프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특권과 편법, 금수저들의 탐욕이 득세하는 한국은 반칙의 나라입니다.

취준생들의 가슴에 피멍이 들게 한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반칙의 나라가 보여준 ‘추한 민낯’이었지요. 채용비리를 저지르다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공공기관은 석탄공사·디자인진흥원·석유공사·서부발전 등 20여곳에 달합니다. 특히 강원랜드의 채용비리는 범죄나 다름없습니다. 2012~2013년 지원자의 95%가 ‘빽’으로 입사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금융감독원 채용비리는 또 어떠했습니까. 청탁받은 지원자를 합격시키려 채용 정원을 늘리는가 하면 필기시험 4등은 떨어뜨리고, 11등은 합격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지요. 우리은행도 지난해 신입행원 공채에서 금감원·국정원 등의 유력 인사와 VIP 고객에게 채용 청탁을 받아 16명을 합격시킨 사실이 드러났지요. 든든한 ‘뒷배’가 없는 취준생들은 금수저들의 들러리만 선 셈입니다. 공공기관과 시중은행에서 ‘뒷문 채용’ ‘봐주기 채용’이 횡행했다니 분통 터질 일입니다. 불합격 통보를 받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며 낙담에 빠졌을 취준생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채용비리가 터진 뒤 그대가 쓴 글을 다시 읽었습니다. “지금 사회가 주는 독(毒)이 있다. 필기에서, 면접에서 불합격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에 멍이 든다. 겉으로는 태연해도, 속은 곪아 터지기 직전이다. 취준생들은 가슴에 시한폭탄을 품고 매일 아침 독서실로 향한다. 멀쩡한 사람도 괴물이 되기 쉬운 환경이다.” 그럼에도 그대는 다짐했습니다. “괴물 같은 세상에서 살지만 무얼하든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걸 확인하며 살자”고 했지요. 취준생에게 절망만을 안기는 괴물 같은 세상에서도 그대는 희망의 근거를 찾으려 했던 것이지요.

그대의 글을 읽은 지 두 계절이 지났습니다. 올해 취업 시즌도 거의 끝나갑니다. 그대가 ‘취준생 꼬리표’를 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부디 취업에 성공해 사회인으로서의 첫발을 뗐으면 합니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무릇 모든 아버지들은 자녀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려면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권과 편법이 난무하는 반칙의 나라에 사는 청년들은 꿈을 꾸지 않습니다.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원할 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라는 말을 모든 취준생이 공감하는 날이 올까요? 반칙의 나라 취준생들은 가수 박기영의 <취.준.생> 노랫말처럼 당당하게 외쳐야 합니다. “준비가 다 됐는데 어디를 가도 모자란다고 하네요. 하지만 그건 나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마디 거들자면 “대한민국은 청년을 위한 나라가 아닙니다. 아직까지는….”

<박구재 논설위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개신교 교인으로서 이런 메일을 보내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하는 망설임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보하는 것이 한국 개신교회의 앞날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며, 하나님도 이를 기뻐하실 일이라 판단하여 다소간의 두려움 속에 펜을 듭니다.’

며칠 전 받은 독자의 e메일은 이렇게 시작했다. 기획재정부가 종교인과세에 ‘종교인활동비’는 제외하는 내용을 담은 입법예고를 했다는 보도를 한 다음날이었다. 종교인활동비가 입법화되면 종교인들이 세금을 탈루할 수 있는 합법적인 길이 열린다. 임금을 적게 받고 활동비를 대폭 늘려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일부 대형교회는 목사들에게 증빙 않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교회 명의의 법인카드를 준다. 종교인활동비는 그래서 목사님의 ‘특수활동비’로 불린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과 개신교 대표들이 1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CCMM빌딩에서 열린 종교인 과세 간담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교회에 다닌다는 이 독자도 속이 많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는 e메일을 통해 “제가 다니는 교회는 목사님에게 지급하는 급여를 더 올려주기로 했는데 그만큼 선교활동 등 다른 곳에 쓰일 헌금의 일부가 전용되는 셈”이라며 “박봉에 시달리는 부목사님, 전도사님, 강도사님이라면 이 같은 소득대납에 전혀 이의가 없지만 담임목사님은 이미 고소득자인데, 소득세만큼은 자신이 납부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 참 씁쓸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런 제보성 메일을 보내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지만 이와 관련된 취재를 꼭 부탁드린다”고 끝맺었다. 종교인들의 절세 꼼수는 신실한 신자들의 자부심과 신앙심마저도 흔들고 있었다.

입법예고안은 종교인 특혜 보물찾기 같다. 파면 팔수록 숨어 있는 특혜가 또 나온다. 소속 종교단체에서 받은 돈만 과세하기로 한 것도 크다. 다른 교회나 절에 가서 설교나 설법을 하고 받는 돈에는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는 얘기다. 입법예고를 통한 추가적인 조치가 없어도 종교인은 이미 일반인보다 세금을 적게 내도록 설계됐다. 근로소득이 아닌 기타소득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고 경비의 80%까지 비용으로 인정해줬다. 그 결과 원천세액 기준으로 종교인들은 일반인의 절반밖에 안 낸다. 뭔가 이상해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입법예고안은 교회 지출을 작성한 교회회계와 목사에게 건넨 금품을 기록하는 목사회계를 따로 작성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면서 교회회계는 들여다볼 수 없도록 막았다. 모태신앙을 가졌다는 국세청 관계자는 “차라리 세무조사 금지를 못박지, 눈 가리고 아웅 하기라 부끄럽다”고 말했다.

국회는 한술 더 떴다. 국회는 지난 1일 본회의에서 기타소득으로 신고한 종교인들에게도 근로·자녀장려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이 아니라서 근로소득세를 내지 못하겠다고 하더니 근로·자녀장려금은 깨알같이 받아간다. 그야말로 ‘그뤠잇’이다.

종교인과세를 누더기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감탄이 나온다. 누가 이리도 세세히 절세법을 만들었을까. 종교인과세를 주도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해 아주대 총장 때 680만원의 기부금을 영동교회에 냈다. 세무업계에 문의해봤더니 그의 지난해 연봉(1억8600만원)을 감안하면 종교기부로 돌려받은 소득세가 110만원(지방세 포함)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부총리가 개신교 신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시늉만 하는 짓거리 가증스럽다’는 의견이 올라와 있다.

리얼미터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78.1%가 종교인과세를 찬성한다. 2014년(71.0%)보다 찬성 응답이 높다. 이 같은 지지를 받고도 누더기 과세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딴 식으로 과세하려면 차라리 종교인과세를 하지 말자.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평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가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이다. 정부에 묻고 싶다. 종교인과세는 과연 이 국정철학에 부응하는가.

<경제부 | 박병률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살다가 소송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전관 변호사를 구해야 한다. 전관 변호사들이라고 해서 패소를 승소로, 유죄를 무죄로 바꿔내지는 못한다. 그래도 판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쓰면 재판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법정에서 할 말을 다 할 수 있고, 증거를 봐달라는 요청이 잘 받아들여진다. 재판에 미련이 남지 않는다. 무엇보다 재판이 빠르게 진행된다. 세상의 모든 진실과 권리, 행복마저 시간과 함께 소멸한다. 가게 하다 떼인 돈은 5년이 지나면 내 돈이 아니고, 어렵게 소송을 하더라도 판사가 3년만 끌면 가정부터 엉망이 된다. 재판의 속도는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판사는 미뤄서 조진다는 말이 그래서 있다.

미뤄 조지기의 정점에 대법관이 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4년 넘게 끌어온 18대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 사건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의 결론을 내릴 실익이 없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 (지난달)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결정으로 파면돼 지난 대선의 무효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했다. 선거소송은 대법원이 1심이자 최종심이므로 재판을 열어야 했다. 김창석 대법관은 주심으로서 직무유기한 것이다. 대법원이 선거를 무효로 결론 내지도 않을 거면서, 사건을 오래 쥐고 있던 이유가 뭘까. 박근혜 청와대를 겁주려 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대법원은 소심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곳이다. 선거무효 소송의 쟁점은 국가정보원이 심리전단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는지다. 2012년 원세훈 국정원의 선거개입 전모는 2013년 윤석열 검사의 수사와 2015년 김상환 판사의 판결로 사실상 드러났다. 대법원은 이것이 대선을 무효로 할 일인지 판단해야 됐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은 원세훈 사건이 오자 유죄인지도 무죄인지도 밝히지 않고 파기부터 했다. 반대가 없는데도 전원합의체를 소집해 전원일치로 시간끌기 결론을 냈다. 이런 금시초문 판결의 재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그러다 정치상황이 급변해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자, 대법원은 대선무효 사건을 각하해버렸다.

이런 의혹의 시절을 살아온 사내가 있다. MBC 해직기자 이용마다. 2012년 김재철 사장에게 공정한 방송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주도했다. 이를 이유로 정영하, 최승호, 박성제, 박성호, 강지웅과 함께 해고됐다. 다른 38명은 정직 등 징계를 받았다. 이용마는 해고가 무효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에 맞서 박근혜 정부는 이들을 업무방해로 기소했고, MBC 사측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들 재판에서 이용마는 모두 이겼다. 해고처분은 무효이고, 업무방해는 무죄이며, 손해배상은 기각됐다. 각각의 1심과 2심 모두, 즉 6개 재판부가 이렇게 판단했다.

세 항소심 재판장들인 김대웅, 김상준, 김우진 판사는 하나같이 밝혔다. “문화방송은 방송법 등의 관계법령 및 단체협약에 의하여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하고 그 구성원들의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인 근로자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을 악화시켰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을 비롯한 문화방송의 근로자들은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쟁의행위에 나아갈 수 있다.” 판결들이 나온 때가 2015년 4·5·6월이다. 대법원은 이번에도 사건을 쥐고 3년째에 들어섰다. 그러던 지난해 9월 이용마는 복막암을 진단받고 길어야 16개월이란 통보를 받는다.

어린 두 아들을 위해 이용마는 글을 남겼다. “나의 꿈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너희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이 사건을 거머쥐고 어설픈 정치판단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공동체가 병들어가고 있다.

<사회부|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추석 ‘황금연휴’를 시작하던 지난달 1일 부모와 놀이공원에 놀러온 4살짜리 아이가 숨졌다.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SUV 차량이 부모와 함께 있던 아이를 덮쳤다. SUV 차량에는 운전자가 없었다. 경사가 진 주차구역에 차를 세운 운전자는 사이드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채 내렸다. 이 사고로 아이는 숨졌고 엄마와 아빠도 다쳤다. 엄마는 당시 임신 20주인 상태였다.

지난 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란에 글이 올라왔다. 한 달여 전 서울랜드 주차장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가해자는 기어를 드라이브(D)에 넣고 사이드브레이크도 안 잠근 채 자신의 가족과 매표소에 갔다”며 “그 끔찍한 일은 그 사람이 잘못한 게 맞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아이 엄마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며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다.

아이 엄마는 “매일 울며 이 지옥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 불행을 막으려 했다. 아이 엄마는 “첫째로 경사진 주차장 특히나 아이들이 많이 있는 마트와 놀이동산 등 다중이용시설 주차장에는 사이드브레이크나 제동장치에 대한 안내문과 방송 등이 법으로 의무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둘째로는 “자동차 사이드브레이크나 제동장치로 인한 사고 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관련법은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9월에 상정됐다. 이 법은 ‘경사진 곳에 정차하거나 주차하려고 하는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임목을 설치하거나 조향장치(操向裝置)를 도로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돌려놓는 등 미끄럼 사고의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 심의와 ‘더 중요한 법률’ 등에 밀려 온전히 처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아이 엄마는 호소했다. “경사가 있는 주차장에 주차 방지 턱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누군가 주차방지턱을 타넘는 차를 보며 소리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경사진 곳이니 사이드브레이크를 반드시 채우라는 방송이나 안내문이 곳곳에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이 끔찍한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청원했다. “이런 끔찍하고 어이없는 사고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됩니다. 지금 제 아이가 있는 납골당에는 사이드브레이크로 인한 사고로 천국에 간 아이가 또 있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하루 수백건의 ‘국민청원 및 제안’이 올라온다. 이 중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만 각 부처 장관이나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이 답변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지난 9월에는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과 김수현 사회수석비서관이 ‘소년법 개정청원’에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9월30일부터 10월30일까지 23만5372명의 청원을 받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도입’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 6일 마감되는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은 이미 40만명을 넘겼다.

지난 6일 올라온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문구 의무화와 자동차 보조제동장치 의무화를 요청합니다’란 청원은 열흘이 지난 15일까지 5만명도 모으지 못했다. 마감시한인 12월6일까지 20만명을 채우지 못하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청원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아이 엄마는 청원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아이를 더 낳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아이나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원합니다. 제 아이처럼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 아이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됩니다.” 청와대와 정부의 답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책사회부 홍진수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같은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끌렸다. 훈훈한 로맨스 이야기인가 싶어 클릭해 몇줄 읽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욕설을 쏟아내고 말았다. 여중생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하게 만든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내용. 법원은 피해자였던 여학생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 했고, 순수한 사랑을 나눴다는 남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에는 무수한 댓글이 줄을 이었고 분노로 들끓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며칠 전 같은 사안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확정됐다. 달라진 건 없다. 아니, 통념상 납득되기 힘들거나 상식의 기준을 넘어서는 관계라도, 경우에 따라 위계나 강압에 의한 성폭행일지라도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게임의 룰만 잘 파악한다면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천하에 확인시켜 줬다.

이 무게를 짊어지는 것을 도와줘요.’ 2014년 10월29일 대학 캠퍼스 성폭행 반대를 위한 전국 행동의 날 시위의 포스터.

물론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의 개요만을 본 나는 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모른다. 또 다른 극적인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건지, 정말 그들의 관계가 순수한 사랑이었던 건지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40대의 유부남이 15세의 여자 중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뭐가 정상이고 상식인지 뒤죽박죽인 세상이 됐다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법적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거로 해야 함도 옳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법을 다루는 이들 사이에 뿌리내린 성폭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행위가 발생한 그 순간의 위력이나 협박 유무, 피해자의 대처 정도가 처벌과 판단의 주된 근거가 된다는 점 말이다. 어린 여학생이 쓴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와 문자메시지는 판결의 중요한 증거가 됐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부터 임신, 가출, 출산까지의 과정에서 그 여학생이 겪었을 무력감과 고통의 무게는 그 판단에 얼마나 작용했을까. 같은 판결문이 여학생에게는 “왜 그 정도 나이 먹고 앞가림도 못하냐”는 질책으로, 40대 남자에게는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감탄으로 들리는 것은 나뿐만일까. 성폭행 피해 여성을 두고 ‘흔들리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없다’는 식의 가공할 망언을 일삼으며 능멸하던 우리 사회의 수준은 여전히 한발도 진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의제강간 연령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강해지고 있다. 의제강간은 사랑이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현행 법령에선 만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즉 이 나이 미만은 성적 행동이나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없으므로 이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관계는 처벌받는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이 연령을 16세로 높이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고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논란은 분분하다. 그렇다면 성숙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적절한 연령대는 몇살인가. 문득 드는 의문은 정치적 결정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연령의 판단기준이다. 투표권과 같은 정치적 결정권은 19세, 성적 자기결정권은 14세다. 둘 다 중요한 판단력이 필요한 일인데 그 차이가 너무 커 종잡을 수 없다.

성폭행에 대한 처벌은 엄정해야 하고 법적 장치도 잘 정비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에 앞서 청소년이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이 시급하다. 위계관계에서 권력이나 경제력을 무기로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됐다. 그 기반엔 “어릴수록 좋다” “딸 같아서…”라는 말로 통용되는 남성들의 그릇된 성적 가치관이 도사리고 있다.

얼마 전 코미디언 유병재씨가 낸 <블랙코미디>에 실린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맘 같아선 국회의사당과 법원, 검찰청, 경찰서마다 붙여놓고 싶다.

‘딸 같아서 만졌다니, 딸 치려고 만졌겠지.’(‘딸 같아서 만졌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TAG 성폭행

보수는 지난 60여년간 냉전반공에서 자유주의,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 산업화에서 선진화로 끊임없이 탈바꿈했다. 흔히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이지만 보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라는 말처럼 혁신과 변화 앞에선 보수가 진보보다 유능했다. ‘천막당사’ ‘뉴밀레니엄, 뉴○○○’ ‘○○○○ 연대’ 등 변화라 할 만한 행보는 대부분 보수가 주도했다.

그랬던 보수가 사라졌다. 정치컨설팅 민 박성민 대표는 “보수우위를 지탱해 온 지식인, 문화, 보수언론, 재벌, 권력기관, 기독교라는 물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아예 ‘보수는 죽었다’고 규정했다. 탄핵과 대선 패배는 수순일 뿐이라는 말이다. 보수의 부활사를 기억하는 한 변화가 곧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난망이다.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이 선택한 정권을 주사파라고 막말하는 집단, 그 집단을 ‘보수’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스스로 투항한 집단. 변하면서 지키는 게 보수의 본령이라면, 낡은 과거를 부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게 혁신이라면 지금 보수는 보수가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보수의 퇴행을 지켜보며 13년 전 한나라당을 떠올린다. 2004년 4월29일, 17대 총선 패배 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엔 보수 혁명이 움트고 있었다. 프로젝트명은 ‘신보수를 위한 사상전(思想戰)’. 당선자 121명은 침울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차떼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주도로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겨우 사지를 넘긴 했지만 보수의 암울한 미래는 가늠조차 어려웠다. 두 번의 대선에 이어 총선 패배까지 2007년 집권은 먼 꿈이었다. 박세일 당선자가 연단에 섰다. 총선 공동선대위원장, 보수의 경세가로 불린 인물이었다. 그는 “사상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보수는 집권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앞으로 정당 경쟁을 ‘20세기 과거 민주화세력 대 21세기 미래 선진화세력의 싸움’이라고 규정하며 당을 가치집단으로 바꾸자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공동체주의, 실용적 개혁이라는 4대 가치와 ‘공동체 자유주의’ 이념을 사상전 토대로 제시했다. ‘박세일발(發)’ 사상전은 보수의 토양을 빠르게 갈아엎었다. 오로지 북한과 자본이라는 프리즘만 정치에 투영했던 보수정당이 ‘따뜻한 대북정책’을 채택했다. 보수정치 외곽도 꿈틀댔다. 그 무렵 뉴라이트 조직이 탄생했고 우파 매체가 앞다퉈 창간됐다. 뉴라이트와 우파 매체는 외연 확대, 세대교체를 실천하며 사상전 진지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박세일판’ 사상전이 대선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국정 화두로 채택된 것이다. 실패한 선진화가 보수의 부활을 이끈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 해도 보수의 치열한 내부 투쟁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후 보수세력은 선진화조차 못 받아들이는 풍토였냐고 반문하게 된다.

유례를 찾기 힘든 보수의 위기다. 상대도 동반 하락이 불가피해졌다. 여권은 공공연히 “우리가 실력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나. 후진 야당이 있는데”라고 한다. 사람에겐 저마다 치명적 향기와 치명적 독이 함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강한 보수와 강한 야당이, 강한 진보와 강한 여당을 만들게 마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보수 핵심 자산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던 ‘박근혜 한나라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세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군림한 데는 보수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자유당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라는 맞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촛불이 만든 다원화·분권 정치가 양당제, 지역주의라는 낡은 유산을 다시 끌어올릴 태세다. 정치의 불행도 예고돼 있다. 그런데도 해묵은 색깔론을 덧칠하며 수구와 개혁조차 가르지 못하는 한국 보수. 언제까지 치명적인 독만 품고 있을 텐가.

<정치부 구혜영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요즘은 기자분들이 지적을 하도 많이 해서 퇴직해도 아무 데나 바로 못 가요.”

지난 9월28일 열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 배석한 국토부 고위 관료가 한 말이다. 그는 이날 명예퇴직한 실장(1급)을 가리켜 “한동안 집에서 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일까.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2013~2017년 9월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재취업 현황’을 보면 76명이 산하기관과 이익단체에 재취업했다. 6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지난달 국토부 퇴직 공직자 2명이 산하 공공기관과 대형 건설사 자회사에 재취업했다.

국토부 고위 공무원이 재취업한 곳은 산하기관뿐 아니라 SR, 이레일, 공항철도 같은 민자사업 기업도 있다. 이익단체는 더 많다. 교통투자평가협회, 한국골재협회, 자동차산업협회, 항공진흥협회 등 20곳도 넘는다.

공무원이 휴직하며 민간기업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민간근무 휴직제’를 경제부처가 얼마나 이용했는지 취재하던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해 자료를 요청했다. 민간기업과 공무원의 유착 통로가 됐다는 지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국토부만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하창훈 국토부 인사팀장은 지난 1일 “국정감사로 바빴고 상부의 결재도 받아야 하며 인사혁신처와 협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전형필 국토부 운영지원과장은 이튿날 “국정감사 기간이 끝났는데 자료 요청에 급히 응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국토부 고위 공직자 2명은 지난해 손해보험협회와 현대건설에서 1억원 넘게 받으며 일했다. 최근 국토부 내부에선 산하 한국도로공사 간부급 퇴직자들이 휴게소 사업을 독점한 소수 업체에 재취업했다는 올해 국감 지적을 쉬쉬하는 분위기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퇴직 공직자와 민간기업의 유착이 꼽히면서 재취업을 규제하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다. 국토부는 세월호 교훈을 잊었는지 ‘내 사람’을 챙기는 시대착오적 온정주의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퇴직해도 아무 데나 못 간다’는 국토부 고위 관료의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경제부 |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

국회 예산안 심사가 본격 시작됐다. 언제나 그랬듯 올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공무원 일자리 증원, 최저임금 지원, 사회간접자본(SOC) 삭감 등을 놓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를 일부 언론은 ‘눈먼 나랏돈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회 심의가 시작된다’고 썼다.

예산안을 칭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나랏돈’이다. ‘나랏돈 국민 위해 푼다’, ‘나랏돈 마중물로 일자리 늘린다’, ‘사람 중심 소득주도 성장에 나랏돈 푼다’. 문재인 정부의 429조원짜리 첫 예산이 공개된 지난 8월, 상당수 언론은 예의 ‘나랏돈’이라는 용어를 썼다.

새 정부 예산안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꽤 고민했다. 경향신문이 정한 제목은 ‘시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시민에게 되돌려 준다’였다. 예산은 정부가 한 해 동안 쓸 돈이니까 ‘나라살림’이나 ‘나라곳간’은 맞다. 

그런데 예산 자체를 나랏돈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어폐가 있다. 나랏돈이라고 하면 국가소유의 돈으로 시민과는 상관없는 돈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벌어서 시민들에게 베푸는 돈이라면 맞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정부 재정은 경제주체인 개인과 기업이 낸 세금을 모아서 마련된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을 때 소득세와 법인세를 낸다. 세금을 떼고 남은 돈으로 소비를 하면 부가가치세를 낸다. 그러고도 남은 돈이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증여세나 상속세를 낸다. 집을 사면 취득세와 거래세를, 집을 갖고 있으면 보유세를, 팔 때 차익이 남는다면 양도소득세를 낸다. 이렇게 해서 정부가 내년에 걷어들일 국세 총액이 268조원이다. 시민과 기업이 잘못해 내는 벌금과 과태료 등 국세외수입과 각종 기금수입까지 합치면 내년 447조원의 총수입이 예상된다. 여기에 정부관료가 해외에 나가서 벌어들인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기업도 시민이 운영하는 것이고 보면 결국 모두가 시민의 돈이다. 정부는 이렇게 모은 돈을 내년에 쓰기로 했다. 그게 예산 429조원이다.

시민들은 429조원을 정부에 상납한 것이 아니다. 그저 위탁했을 뿐이다. 정부는 이 돈을 분배할 권리는 있지만 소유할 권리는 없다. 그래서 나라살림은 맞지만 나랏돈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아들, 딸이 벌어온 돈을 어머니에게 맡겼다면 그 돈을 ‘가정살림’으로는 표현할 수 있지만 ‘어머니 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시민들이 정부에 돈의 분배권을 주는 이유는 한국사회에 대한 정부의 정보력과 분석력이 개인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사회 어디에서 돈을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쓰면 더 가치가 있을 것인지를 안다고 시민들은 기대한다. 당연히 그 돈은 사사로이 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박근혜 정부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얘기는 그래서 충격적이다. 특수활동비는 어디에 쓰는지 용처를 묻지 않는다. 시민들은 정부가 밝히기는 어렵지만, 좋은 일에 쓸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국정원의 주머니에 꽂아줬다. 그런데 그 돈이 ‘문고리 3인방’을 거쳐 대통령의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한다. 역대정부에서도 그랬다는 것은 변명이 안된다. 박근혜 정부는 쓸 데가 많다며 담뱃값을 올렸고, 연말정산 세액공제도 도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둑부터 줄였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는 예산을 ‘나랏돈’이 아니라 ‘나라님 돈’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예산은 나랏돈이 아니라 시민의 돈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돈이다. 누가 대낮 노상에서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자기 주머니로 ‘인 마이 포켓’을 했다는 데 가만있을 사람은 없다. 나의 분노는 정당하다.

<경제부 | 박병률 기자>

Related Posts Plugin for WordPress, 

Blogger...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