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반가운 소식에 오히려 화가 치밀 때가 있다. 지난 4일 들려온 소식이 그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가 끝난 다음날 교육부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을 직접 언급한 후 교육부가 ‘교복 실태 조사’에 나선 것이다. 여학생 교복의 불편함은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 언급하기 이전에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학교 관계자들은 과연 이 문제를 몰랐을까.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을 둔 집이라면 고구마 수십개를 먹은 것 같은 답답함을 느껴왔을 것이다.

특히 여고생들의 셔츠는 일상의 옷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진열을 위한 마네킹용 같다. 활동하는 사람이 입을 것이 못된다. 가슴선을 강조하고 잘록한 허리선이 드러나도록 디자인한 옷은 편히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다. 꽉 조인 저 옷을 입고 버스 손잡이는 어떻게 잡고, 수업시간에 질문이 있으면 팔을 어떻게 올리지? 이런 상황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동구매한 치마의 경우는 통이 너무 좁고 길이가 짧아 심지어 학교 주선으로 수선집에서 무료로 길이를 늘였을 정도다. 바지를 입고 싶은 여학생이 있다면? 대부분 여학생용 바지 제작을 하지 않는다. 남학생용 바지를 입으라고 한다. 교복 상의를 다림질하다가 분노 게이지가 임계점에 오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도한 디자인 탓에 등판조차도 평면이 아니어서 아이가 고등학교 2·3학년 때는 아예 다림질을 포기했다.

그간 사정을 몰랐던 이들이라면 ‘나 같으면 가만있지 않았을 텐데 왜들 참았지’ 하며 답답해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가만있지 않았다. 수년간 학교에, 교육청에, 교복 제작업체에 항의하고 건의해왔다. 나 역시 교육청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엉터리 같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몇몇 학교에서 개선의 움직임이 있지만 대개는 그대로다. 오죽하면 대통령이 직접 시정을 지시했겠나.

그런데 이 일이 대통령이 나서야만 해결될 일이었던가. 소비자가 불편하면 의견을 반영해 개선하는 것이 당연하다. 굳이 최근의 ‘탈코르셋’(화장, 몸매 등 여성에게 강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자는 것) 운동까지 갖다 붙일 일이 아니다. 학교와 관계 당국이 뭉개고 있는 사이, 아이들의 인권은 무시돼왔다.

대통령의 교복 지시사항을 접하며 2005년 썼던 기사가 떠올랐다. 당시 소아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지훈이(8)의 사연을 소개한 기사였다. 지훈이는 근육 경직과 경련의 고통을 덜기 위해 보톡스(보툴리눔 톡신 제제) 시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미용성형용으로 분류돼 있는 보톡스는 건강보험 적용이 되지 않았다.

한 병에 50만~60만원으로 워낙 고가인 탓에 지훈이처럼 생활이 어려운 집의 아이들은 치료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가난한 부모들은 생계를 팽개치고 싸울 시간도 물적 능력도 없어 자신들만 탓할 뿐이었다. 지훈이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문제점을 고발한 기사였다.

다행히 기사를 접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다음날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실에 ‘고통받는 어린이를 도와줄 방법이 없는지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취재 당시까지 ‘(소아뇌성마비용 보톡스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던 보건복지부는 즉각 검토에 들어갔고 3개월 만인 그해 9월부터 소아뇌성마비 치료에 한해 건강보험 적용이 시행됐다. 물론 기뻤지만 한편으로 씁쓸하고 더 안타까웠다. 기사가 나가지 않았다면, 대통령의 즉각적인 지시가 없었다면…. 온당히 치료받아야 할 아이들의 고통과 부모들의 슬픔은 한동안 더 이어졌을 것이다.

어리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높은 곳에 닿고 멀리까지 울려 퍼지기 힘들다. 주변의 침묵과 때론 반대의 아우성으로 잦아들기 십상이다. 지금은 인터넷이란 수평적 공간을 통해 발언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이런 까닭으로 교복 청원을 비롯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의 활성화가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만큼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황당한 청원 사례들도 많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이들이 국민청원 게시판을 찾는다. 상식적인 통로가 막혀 있다는 얘기다.

건강한 나무는 아무리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더라도 ‘세상 부드러운’ 뿌리를 갖고 있다. 보드랍고 열린 그 끝으로 흙 속의 수분과 영양분, 바람을 걸러내고 통과시킨다. 우리 사회의 뿌리는 보드랍고 열려 있는가.

<김희연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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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혐의로 기소된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의 1심을 맡은 이영훈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부장판사는 선고를 내리는 자리에서 “판결 이유를 설명하기에 앞서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경향신문의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이 ‘국정농단’ 재판…부적절 지적> 보도(7월9일자 4면)를 언급하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전산정보관리국장으로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겨냥해 법원 내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를 올린 당사자다. 전산정보관리국은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사건 수임 내역 조회에 관여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경향신문은 해당 기사에서 ‘사법농단’ 의혹과 연루된 이 부장판사가 ‘국정농단’ 사건을 재판 중이라는 사실에 대해 국민들이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판사는 재판 발언에서 “(전산정보관리국이 하 전 회장 수임 내역을 조회하려 했다는) 문건 내용은 저도 정확히 모른다”면서 “이번 재판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것은 지금 법원이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도가 국정원 특활비 뇌물사건에 무죄 판결이 선고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 것이라고 오해될 여지가 있다”고도 했다.

누구나 자신을 해명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의혹을 법정에서 반박한 것은 공적인 자리를 사적으로 이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도 법원행정처가 이정현 의원(무소속)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를 청탁했던 정호성 전 비서관 등 ‘국정농단’ 의혹 피고인들의 재판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의혹 제기가 특활비 무죄 판결에 대한 불만 때문일 수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기사가 ‘다른 뜻’을 가지고 작성된 것 아니냐고 호도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명의로 올린 연구회 중복가입 금지 공지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대상자가 될 수도 있는 이 부장판사가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 법정이란 장소를 이용한 것은,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지금 사법부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 문제를 바로잡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유희곤 | 사회부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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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겨울이었던 것 같다. 수습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단체로 부서원 지인이 운영하던 술집에 갔다. 그 부서원이 술집 주인에게 부서장부터 인사를 시키려던 찰나 주인이 대뜸 나를 보며 말했다. “부장님, 어서 오십시오!”

‘이마가 훤하게 까진’ 노안은 기자 생활에 도움 될 때가 많았다. 여러 취재원이 ‘연차가 꽤 있는’ 기자가 직접 현장에 취재하러 온 줄 알았다. 이들은 나중 내 나이를 듣곤 속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취재 목적은 이룬 뒤였다. 지금은 차장인데 현장에 나가면 “국장님, 어서 오세요” 인사를 듣곤 한다.

‘노안’에 얽힌 일을 떠올린 건 프랑스 사회학자 클로딘 사게르 <못생긴 여자의 역사>(호밀밭)에 나온 이브 몽탕의 동갑내기 아내 시몬 시뇨레의 일화 때문이다. “어느 날 보니 나는 늙어가는 것이고, 그 사람(몽탕)은 성숙해가는 것이더라고요. (…) 남자의 주름살은 자랑할 만한 연륜이지만 여자의 주름살은 그냥 추한 거죠.”

미투의 시대 남자의 주름살은 연륜을 나타내는 표시가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의 주름살이 혐오나 교정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여자의 경우는 다르다. 자연스러운 존재 양태인 ‘노화’를 지연시켜야 하는 부담을 더 크게 느낀다. 사회는 ‘아름다움’의 기준과 잣대를 여자에게 더 강하게 들이댄다. ‘아름다움’이나 ‘추함’은 동전의 양면이다. 한쪽을 찬양하면 다른 한쪽을 혐오하게 된다. 광고나 드라마 같은 미디어와 이벤트가 미추 판별에 개입한다.

미스코리아는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대표 이벤트다. 1주일 전 미스코리아조직위에서 개최 안내 e메일을 보냈다. 미술 담당이라 ‘아름다움’을 담당하는 줄 알고 보냈나? 외모에 관한 글을 쓰기로 한 터라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홈페이지는 비키니 사진으로 도배됐다. 후보자 32명의 키와 몸무게가 일일이 나왔다. ‘후보자 신체 정보 실측값 변경’. 키, 몸무게를 본인 기재에서 ‘실제 측정값’으로 바꾼다는 공지다. 건축물에나 쓰는 ‘실측’이란 말이 이 대회의 은폐된 본질을 보여준다.

“화장품 광고는 타고난 자신의 외모로는 행복해질 수 없으며 자기들의 화장품을 써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사게르)고 선전한다. 구원의 문구는 때로 도를 넘는다. ‘김 비서는 왜 그렇게 예쁠까. 부회장님 키스를 부르는 메이크업 시크릿’ ‘부회장님 시선을 강탈하는 출근광채 시크릿’. 시세이도코리아의 광고 문구다. tvN 드라마 <김 비서가 왜 그럴까>의 맥락을 끌어온 광고라지만, 왜 비서가 ‘시선 강탈’을 해야 하는지 아무 문제의식이 없다. 성역할과 성·직업 차별 관념이 든 광고가 탈코르셋 운동 와중에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는 이 문제에 둔감하다.

미디어와 사회가 조장한 ‘아름다움’은 ‘미추’를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의 문제로 만든다. 고든 파크스는 1947년 미국 뉴욕 할렘에서 심리학자 케네스 클락이 흑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인형 테스트’ 장면을 촬영했다. 사진 속 어린이는 흑백의 아기 인형 중 백인 인형을 가리킨다. ‘인형 테스트’에서 대다수 흑인 어린이들은 하얀 인형에 “좋아요”라며 긍정 반응하며 선택했고, 검은 인형은 “나빠요”라고 부정 반응하며 거부했다. 키리 데이비스의 2005년 다큐멘터리에서도 흑인 어린이들은 백인 인형을 선호한다. 유튜브에 영상이 올라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검은 피부 때문에 자신을 추하다고 여겼어요.” 결국 ‘성소수자인 흑인 장애인 여성’이 혐오 희생의 정점에 서게 된다.

몸은 존재다. 성별, 장애, 인종, 성정체성, 몸과 외모 같은 ‘타고난 있음’은 미추 판별의 대상이어선 안된다. 당장은 그 존재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며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이 차별과 혐오 철폐의 시작일 수 있다. ‘아름다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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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나는 두려움을 느꼈다. 지난 21일 저녁 예멘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던 난민 하니와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허리를 다쳐 똑바로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어둠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던 제주 초여름의 해도 저버렸다. 바깥에 있던 다른 난민들이 하나 둘씩 방으로 들어와 대화에 동참했다. 통역을 담당한 예멘인까지 포함하면 모두 6명의 ‘젊은 아랍 남성’들이 방 안에 함께 있었다. 여성은 내가 유일했다.

순간 나는 위축됐던 것 같다.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낯선 이방인 남성들이 다수가 되자 실제 이들이 내게 위협적인지 여부와 관계 없이 마음은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예멘에 두고 온 가족, 전쟁이 벌어지기 전의 온전했던 삶에 대한 그리움, 예멘 땅에 가득한 죽음과 비참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들은 전쟁으로부터 도망쳐 나왔지만, 불안한 현재와 기약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 “무슬림은 평화를 뜻한다”고 힘주어 말하던 이들은 누구보다 예멘 난민의 일탈적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난민 반대 여론의 증폭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예멘 청소년 난민 하산(가명)이 여권으로 얼굴을 가린 채 촬영에 응했다. 정지윤 기자

내가 느꼈던 공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성으로 살면서 몸과 마음에 각인된 공포다. 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공포의 실체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내가 느꼈던 ‘막연한 공포’와 내 앞에 앉아있는 예멘 난민들을 동일시하는 것은 곤란했다. 이들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도움을 요청하는 자들이었고, 두려움은 내가 아니라 이들의 몫이었다. 이들은 이땅에서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약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제주는 고립된 난민의 섬이 됐다. 법무부는 제주도에 들어오는 예멘 난민이 급증하자 이들의 무사증 입국을 금지하고 체류지역을 제주도로 제한했다. 출도제한 조치는 예멘 난민 문제를 우리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만들었다. 팽배한 난민혐오 여론 속에서 제주도는 난민 문제를 풀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난민들을 흡수할 수 있는 아랍 커뮤니티나 산업적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제주도는 난민수용 능력에 한계를 보이고 있지만 법무부는 “무사증 제도는 관광객을 유치해서 제주도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출도제한 조치는 당연하다”고 선을 그었다.

일자리를 구했지만 힘든 일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난민이 급증하면서 지낼 곳이 없는 난민들의 숙소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어렵게 이방인에게 대문을 열고 머물 곳을 내어주던 주민들도 외부에 이 사실이 알려지고 반대 여론이 증가하자 이들을 도와주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난민에 과도한 혐오와 지나친 온정주의는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선의에 의해 어렵게 난민들에 대한 원조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지나친 온정주의’를 경계하는 것은 난민 혐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적절했다.

3년 전, 시리아의 세살배기 난민 쿠르디가 차가운 시신으로 터키 해안가에 떠올랐을 때, 우리는 연민과 애도에 인색하지 않았다. 난민 수용에 소극적인 서방국가들을 비판하며 난민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머나먼 이국의 해변이 아닌, 제주도에 들어오자 태도가 달라졌다. 배타와 혐오의 정서가 팽배하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은 “외국인이라고 무조건 불온하게 여기는 것은 혐오이고 인종주의”라며 “인종주의에 기반한 차별과 혐오는 외국인에게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안의 약자와 소수자에게로 확산되기 때문에 허용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머나먼 나라 해변에서 숨진 쿠르디에게 연민과 온정을 느낄 수 있다면, 제주도에 당도한 500명의 예멘 난민들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나아가 난민을 수용하고 보호하는 것은 온정주의가 아니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약속이고 의무다.

한 외국인 원어민 강사의 도움으로 지난달까지 주택에 머물던 하니와 동료들은 더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어 지금은 긴급구호숙소로 향했다. 그들이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 수 있을지, 제주에 머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 답은 좁게는 제주도의 6명의 난민심사관의 손에 달려있고, 넓게는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달려있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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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에 대한 기억 한두 가지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내 기억 속 자전거는 초등 5학년 때 아버지가 어디선가 구해온 중고자전거다. 말끔하게 칠까지 새로 한 자전거를 처음 탄 날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잡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아버지의 말에 속아 ‘씨익씨익’ 앞만 보고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가 더 이상 뒤뚱거리지 않을 때쯤, 뒤에서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그날로 자전거는 나의 ‘애마’가 됐지만, 얼마 타보지도 못하고 도둑맞는 바람에 자전거를 찾아 동네를 샅샅이 뒤졌던 기억이 더 많다. 누군가는 저녁노을이 질 무렵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내달렸던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연인과 자전거를 타며 나눈 속삭임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탈것 중 자전거에는 그만큼 각별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돌아보면 자전거는 발명 이후 가장 진보하지 않은 이동수단일 것이다. 지금의 모습을 갖춘 자전거가 대중화된 게 1890년대쯤이라고 하니 12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페달을 발로 구르는 형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전거 여행>에서 김훈이 말한 대로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자전거는 한때 자동차의 증가와 함께 이용률이 급락했지만, 친환경 탈것이라는 이미지와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시 이용이 늘어나는 추세다. 자전거의 천국으로 알려진 네덜란드는 국민 1인당 1.1대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전거 사랑은 환경 의식이 남달라서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교통비가 워낙 비싸고 대부분이 평지여서 자전거만큼 훌륭한 이동 수단이 없어서다. 게다가 ‘탄소 제로’ 교통수단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결국 시민들은 스스로의 삶에 더 이로운 것을 찾은 것이다.

한국에서는 공유자전거가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공유자전거의 인기 역시 건강이나 환경보호 같은 거창한 목적보다는 값싼 데다 편리성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에겐 자전거가 교통수단의 하나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자전거 도로 등 일상에서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는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마침 지난 3월 행정안전부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면서 자전거 헬멧 의무화도 포함시켰다. 오는 9월28일부터는 자전거를 타려면 헬멧을 써야 한다. 헬멧 의무 착용에 대해선 벌써부터 말이 많다.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2만대 이상 운영하는 서울시는 다음달부터 여의도 일부 따릉이 대여소에 헬멧을 시범 비치하기로 했다. 공공자전거가 안전 문제를 도외시한다는 따가운 시선을 피하지 못해 내놓은 대책이다. 그러나 찜통 같은 더위에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이용할 이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덴마크에는 ‘사이클 시크’라는 말이 있다. 2006년 코펜하겐에서 시작된 라이프 스타일 운동으로 ‘패셔너블한 일상복을 입고 도심과 어울리게 자전거 타기’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이클 시크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자전거 외에 관련된 제품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헬멧을 착용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헬멧의 의무착용이 오히려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이용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유럽 등에서 자전거가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은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것은 자전거 이용자들에 대한 배려다. 헬멧을 쓰지 않아도 안전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자전거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 말이다.

서울은 어떤가. 자전거 전용도로는 부족하고, 도로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니 자전거를 타려면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불편함으로 자전거를 포기하지 않도록 도시 환경을 조성해야 자전거 이용자가 늘어날 것이다. 값비싼 자전거에 몸에 붙는 쫄바지, 헬멧을 착용해야만 자전거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다. 따릉이를 타는 당신도 ‘자전거 시크’ 못하란 법 없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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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골이었다. 92년생 손흥민의 왼발 끝을 떠난 볼이 그림처럼 휘어지며 오른쪽 골네트에 꽂히자 93분간 답답해하며 맥주만 들이켜던 아저씨들은 “골~”을 외치며 벌떡 일어섰다. 반가움도 잠시, 두 손으로 무릎을 짚으며 숨을 헐떡이는 손흥민의 모습을 보니 애잔해졌다. 손흥민은 이제 스물여섯의 청년이다.

기억 속의 첫 월드컵은 초등학생 때인 1985년 11월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전이다. 골이 들어가자 최순호 선수가 껑충껑충 뛰었고, 경기가 끝나자 김주성 선수 등이 대형 태극기를 들고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돌았다. 그리고 나오던 TV의 아나운서 멘트. “국민 여러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나갑니다. 한국 축구의 ‘숙원’을 이뤘습니다.” 당시는 말레이시아, 태국도 쉽지 않은 상대였다.

그리고 32년이 지났다. 한국은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숙원’이라던 월드컵 본선을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았다. 4년마다 정례화된 본선 진출은 시민들에게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32년간의 개근은 대단한 성과다. 이탈리아도 진출하지 못한 러시아 월드컵 본선이었다. 페루는 36년 만에, 파나마와 아이슬란드는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월드컵 본선은 시작부터 식어 있었다. 대표팀에 대한 여론은 줄곧 냉소적이었다. 이해는 된다. 역대 본선 중 가장 나쁜 성적이 예상됐다. 자칫 본선에도 못 나갈 뻔한 팀이었다.

월드컵 얘기를 길게 꺼낸 것은 한국 축구가 처한 상황이 한국 경제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묘하게도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시기도 1986년부터다. 한국은 3년 연속 10% 성장을 이루며 ‘숙원’이라던 1인당 국민총생산(GNP) 5000달러를 돌파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본격적으로 경제격차를 벌렸다. 이제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는 “말레이시아는 과거 한때 한국과 같은 수준이었지만, 지금 한국은 우리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제성장을 일궜다”며 부러워한다.

하지만 국내 어디에서도 축하의 말은 없다. 비관론이 비등하다. 내수는 죽고, 성장동력은 떨어졌다고 한다. 기업 간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7만개 수준으로 축소됐고, 청년실업률은 10%를 넘어섰다. 당장 내년이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한다. 이러다 선진국 문턱에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있다. 그러니 샴페인을 터트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동반 성장해온 한국 경제와 한국 축구가 ‘선진국 깔딱고개’에서 함께 힘들어하는 것을 우연으로 보기 힘들다. 경제도, 축구도 선진국 클럽에는 들어갔지만 체질전환을 채 이뤄내지 못했다. 투혼과 정신력을 앞세운 단기성과주의는 여전하고, 인맥과 학맥으로 점철된 인사구조도 유효하다. 낯설더라도 고효율의 고부가가치로, 공정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그 작은 시작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최장 근로시간, 최저 생산성의 고리를 끊지 않고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논하기 어렵다. 재벌의 반칙에 단호히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도 적극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그런 토대 위에서 노동유연화와 규제완화 같은 난해한 문제의 해법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저항이 만만찮다.

“오늘의 결과가 지금 대한민국 축구의 현실이다. 이제 한국 축구는 ‘보여주기식’에서 벗어나 우리의 인프라와 노력을 점검해보고, 시스템부터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4년 후에도 이러한 패배는 거듭될 것이다.” 해설가로 변신한 박지성 선수의 일침에 뜨끔해진다. 자문해보자. 우리는 지금 개혁을 위한 준비가 돼 있는가.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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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이맘때는 통일부 출입기자였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통일부는 ‘약간 과장을 보태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자생활 중 보람도, 재미도 없던 시기를 딱 1년만 꼽으라면 이때다. 부지런히 기사를 쓰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도 기억에 남는 기사는 없다. 단지 남북관계를 다룬 기사 대부분에서는 ‘단절’ ‘중단’ ‘폐쇄’ ‘불허’ 등의 단어가 핵심을 차지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경향신문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과 현인택 당시 통일부 장관의 이름을 함께 넣어 검색해보았다. 2010년 5월24일에는 ‘통일부, 대북 신규투자 금지…방북도 불허’란 기사를 썼고, 그 다음날에는 ‘통일부, 체류목적 방북 25일부터 불허’란 기사를 썼다. 두 달 뒤에는 ‘개성공단 체류 80~90명 증원, 실익 없는 생색내기’란 제목으로 위기에 빠진, 그러나 폐쇄까지는 되지 않았던 개성공단의 소식을 전했다. 같은 해 3월 일어난 천안함 침몰사건이 그나마 남아 있던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해 5월24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홀을 결의에 찬 표정으로 걸어나와 대국민담화를 읽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도 쉽지 않았다.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8년 전에는 ‘미지의 인물’이었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의 셋째아들에게 후계자 자리가 돌아갔다는 소식까지는 나왔으나 얼굴도 몰랐다. 심지어 이름도 김정은인지 김정운인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을 정도였다.

김 국무위원장의 후계자 지위가 공식 확인된 것은 2010년 9월28일이었다. 북한은 이날 개최된 당대표자회의에서 김 국무위원장을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3대 세습을 대내외적으로 공표했다. 김 국무위원장은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이후에야 전면에 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어느 것 하나 명확히 알려진 것이 없었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것도 2012년 4월이 되어서였다. 그달 15일 북한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맞아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인민군 열병식에서 김정은 당시 노동당 제1비서가 연설을 하는 모습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김 국무위원장의 목소리와 외모, 행동을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의 생전 모습과 비교하는 분석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김 국무위원장은 대외적으로 ‘잔인한 면모’를 먼저 보여줬다.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전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전격적으로 처형했다. 지난해 2월에는 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공항에서 독살됐다. 김 국무위원장은 도저히 상종할 수 없는 인물로 전 세계에 각인됐다.

북한의 차기 지도자로 알려진 뒤에도 10년 가까이 ‘미지의 인물’이었고 ‘미친 독재자’였던 김 국무위원장이 지난봄부터는 한국의 언론에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4월27일과 지난달 26일에 연달아 열린 남북정상회담, 지난 12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가 가능한’ 북한의 지도자로 인정을 받았다. 앞으로도 갈 길이 멀어보이지만, 그는 어쨌든 밖으로 나왔다. 남북관계는 지난해에 비하면 상전벽해 수준이 됐다. 최소한 당장 내일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사라졌다.

따지고 보면 이런 변화는 지난해 5월9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시작됐다. 대부분의 정치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북한의 독재자를 비난할 때 누군가는 희망을 이야기했고, 유권자들은 그 희망을 선택했다.

13일 1년여 만에 다시 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선거를 통한 선택은 어쩌면 대통령보다 우리 삶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유권자들의 이번 선택은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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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이 입구를 가로막았다. 까만색 유리문이라 안쪽이 보이지 않는다. 업종을 바꿨을까? 문을 열어 보았다. 갤러리가 맞았다. 작품 수가 기대보다 적었다. 직원에게 다른 공간은 없느냐고 물으니 건물 구조를 그린 종이를 건넨다. 아무리 둘러봐도 통로를 찾을 수 없다. 문밖에 나가도 부속 건물은 없다. 안으로 돌아와 고민을 거듭하다 다시 물었다. 직원이 가리킨 방향에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문이 열리자 식당이 나온다. 어디지? 층수를 잘못 눌렀나? 두리번거리며 식당으로 나오니 다른 갤러리 공간이 비로소 드러났다.”

지인이 어느 갤러리에서 겪은 일을 e메일로 전했다. 갤러리 입구에서 ‘어디 가냐’며 저지를 당한 내 경험에 비하면 별일도 아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림 애호가’가 아니라 ‘그림 도둑’처럼 생겨서 그런 것 아니겠냐고, 농담 반 한다.

갤러리인가? 식당인가? 지인의 에피소드엔 갤러리 공간의 본질에 관한 의문이 담겼다. 갤러리 일반에 관한 여러 함의도 들었다. 그도 나도 성낼 이유가 없다. 갤러리는 미술품을 사고파는 곳이다. 갤러리 대표는 옛말로 화상(畵商)이고, 영어로 딜러(dealer)다. 미술품을 팔아 이윤을 추구한다. 근대 이후 상품 아닌 예술이 어디 있나? 책도, 영화도, 무용도, 연극도 마찬가지다. 갤러리만 상업적인가? 국립미술관에도 재벌이 그 이름을 그대로 달고 스폰서를 한다.

지인은 ‘전시’를 향유하지 못해 화가 났다. 설명도 듣지 못하고, 자료도 받지 못했다. 이것도 갤러리를 탓할 일이 아니다. 갤러리는 그림만 보러 오는 이들을 환대하는 곳이 아니다. 미술관 보도자료와 갤러리 보도자료는 비슷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다. 갤러리 자료엔 ‘관람’이란 말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자 ‘간담회’(懇談會, 정답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라니!) 때 관람을 독려하는 일도 없다. 갤러리 ‘전시’는 컬렉터, 언론이나 미술 관계자들을 위한 것이다. 컬렉터들은 따로 약속을 잡고 와 안내를 받는다. 보도는 스크랩돼 작품 ‘가치’(라고 쓰고 ‘가격’이라 옮긴다)를 높이는 지표가 된다. 어느새 ‘그들만의 리그’에 포섭된다.

지인은 갤러리 전시 기사를 보며 상업공간을 관람공간으로 착각했다. 문화공간처럼 오도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미술 저널리즘’을 고민한다. 더 확대해 ‘문화 저널리즘’이라고 할 때, 그 작동 방식은 비슷하다. 책이든, 공연이든, 영화든 창작자가 새 창작물을 내놓으면 출판사나 기획사, 영화사는 ‘간담회’를 열고, 마케팅한다. 수용자의 구매 과정에 저널리즘은 비판이든, 호평이든, 정보 전달이든 개입한다. 다만, 미술품은 다른 ‘문화상품’보다 훨씬 비싸다. 대량 복제할 수도, 자주 반복할 수도 없다. 컬렉터만 보는 전문지가 아니라면, 미술 전시 기사에서 중요 기준은 ‘관람’이어야 한다.

갤러리가 ‘관람’에서 미술관을 대신하던 시대가 있었다. 지금은? ‘시장미술’에 집중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내놓은 ‘미술진흥 중장기계획’을 보면, “대형 화랑들이 경매를 겸업, 독과점에 따른 불공정이 심화”됐다고 나온다. 신진 작가 발굴을 등한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체부도 전시공간으로 보지 않는다. 누구든 미술품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는 미술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갤러리를 두곤 ‘중저가 미술품 소비·대여 확대’ 같은 목표만 세웠다.

미술을 좋아한다면 갤러리를 외면할 수만은 없다. 한국 거장과 해외 유명 작가들이 종종 갤러리를 통해 ‘소개된다’. ‘좋은 작품’을 볼 기회가 ‘주어진다’. 환대받지 못한들 어떤가? 갤러리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을 이끌어낼 일도 아니다. 갤러리 모두가 ‘관람객’을 냉대하지도 않는다. ‘식당에 딸린 갤러리’ 구조가 아니라 미술관을 지향하는 갤러리도 있다. 그저 관람객에 무심할 뿐이다. 지인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런 것이다. 무심히 또 담담히 작품 관람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갤러리로 가는 발걸음을 멈출 필요가 없다.

<김종목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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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딘은 10년 전 친구의 소개로 한 남성을 만났다. 필리핀인 제럴딘은 어학원 영어교사였고, 남성은 한국에서 필리핀으로 와 수학 교사로 일했다.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하지만 제럴딘이 임신을 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 임신 소식을 알게되자, 남성은 한국으로 떠났다. 아들 제라드는 아버지 없이 여덟 살까지 자랐다. “아빠는 왜 없을까”라는 의문은 제라드의 정체성에 큰 구멍으로 남았다. 모자는 한국으로 왔다. 낯선 나라의 국회 앞에 서서 피켓을 들었다. “코피노에게 행복을 찾아주세요.” 지난해 한국일보에 소개된 사연이다.

제라드는 ‘코피노(Kopino)’다. 한국인 아버지와 필리핀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일컫는 코피노는 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코피노 아이들이 아빠를 찾습니다’란 사이트에선 공개적으로 아이의 아빠를 찾고 있고, 현재 32명이 친부를 찾았다. 

  

낙태 합법화를 지지하는 아일랜드 시민들이 26일(현지시간) 더블린성 앞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 금지 헌법 조항 폐지’가 결정되자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더블린 _ AP연합뉴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법에 대한 논란을 보자니, 코피노가 떠올랐다. 하나는 청와대 청원에 올라온 ‘히트앤드런방지법’이다. 국민청원에 21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비혼모에게 친부가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 정부에서 우선 지급하고 당사자에게 원천징수하는 법을 만들어달라는 청원이었다. 정부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방안이라고 밝혔다.

또 하나는 낙태죄다.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는 헌법소원의 공개변론에 법무부가 낙태죄를 폐지하자는 것은 “성교하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 논란이 됐다. SNS에선 ‘#법무부장관_경질’ 해시태그 운동이 일었다.

‘성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무엇인가? 코피노가 떠오른 건 바로 이 대목에서다. 필리핀은 엄격한 가톨릭 국가로 낙태뿐 아니라 이혼도 금지돼 있다. 그 결과 비혼모 비율이 높고, 불법 낙태에 의한 여성 사망률도 높다고 한다. ‘성교의 책임을 진’ 여성들은 홀로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라난다. 4만명 코피노는 ‘성교에 책임을 진’ 행위의 결과인가, 그렇지 않은가. ‘히트앤드런방지법’도 마찬가지다. ‘성교의 책임을 진’ 비혼모들은 사회의 편견과 차별 속에 어렵게 아이를 키운다. 한부모가족 가운데 77.5%는 법적으로 양육비를 받을 권리인 ‘양육비 채권’을 갖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 사회에서 ‘성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왜 그 책임은 여성에게만 요구되며, 남성은 자유로운가. 정상가족 밖의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해서는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그 책임만 여성에게 묻는 것, 이 지점에 여성들이 분노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현행 법제는 모든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 법무부 측 참고인으로 정현미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가 나와 해프닝을 연출했다. 정 교수는 “출산·낙태는 국가가 강요할 수 없다”며 법무부 입장에 반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정 교수는 스스로도 “낙태에 대해 제가 연구한 결과들이 알려져 있는데도 법무부 참고인으로 선정돼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보수적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가 이뤄져 66%의 지지로 낙태금지 헌법조항이 폐지됐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여성들이 귀국해 투표를 했고, 그 결과에 환호했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2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여성들은 여성에 대해 폭력적인 사회 구조가 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투 운동, 그리고 ‘몰카 범죄’에 대한 공정한 처벌을 요구하는 ‘붉은 시위’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낙태죄 폐지에 대해 해묵은 논리를 반복하고 자신의 대리인으로 ‘반대 입장’을 지닌 학자를 내세우며 자기분열적인 모습마저 보이는 법무부는 보수적이기 이전에 게을러 보인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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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 장소에 대한 애착을 뒤늦게 깨달을 때가 있다. 사라진 장소에 대한 그리움이 클수록 상실감도 크다. <장소의 재발견>의 저자인 앨러스테어 보네트 영국 뉴캐슬대학 교수는 이러한 애착을 ‘토포릴리아’, 장소에 대한 본질적인 사랑이라고 정의한다.

경향신문 맞은편 새문안 일대가 내겐 그런 장소들 중 하나다. 이 지역은 몇년 전만 해도 골목의 정취가 살아 있는 ‘먹자골목’이었다. 할머니의 손맛으로 먹던 ‘콩비지’집, 주 종목은 삼겹살이지만 미리 전화만 하면 회 한 상쯤 거뜬히 차려내는 ‘제주 오름집’이 단골 식당이었다. 비오는 날 ‘문화칼국수’에서 먹던 파전과 걸걸한 막걸리는 왜 그리 맛나던지. 고깃집들만 있던 골목에 어울리지 않게 들어선 이탈리안 레스토랑 ‘아지오’와 ‘비스’는 어쩌다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면 가던 곳이었다. 정갈한 한정식을 내놨던 ‘미르’,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 ‘깡통’…. 이 골목엔 주변 직장인들의 곳간 노릇을 하던 집들이 여럿 있었다. 고층 건물이 들어선 광화문 인근과는 달리 개발에서 밀려난 탓에 주택을 개조한 음식점들이 하나둘씩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들 식당은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이 시작되면서 모두 골목을 떠났다. 돈의문 뉴타운 끝자락에 위치한 이 지역은 공원이 되면서 사라질 뻔했다가 서울시가 도심 개발로 사라져가는 옛 골목을 보존하기로 하면서 지금의 ‘돈의문 박물관 마을’이 들어서게 됐다.

박물관 마을이 조성된 새문안은 1422년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옆에 돈의문이 생기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새문’(돈의문)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새문안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지역엔 1800년대에 작성된 옛 지적도상의 좁은 골목길과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목조건물, 개량한옥, 1970~1980년대 유행한 ‘슬래브집’ 등 국적불명의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서울시가 또 다른 피맛골이 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존 건물들을 철거하지 않고 도시재생사업으로 개발계획을 변경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도시재생으로 방향을 바꿔 조성된 박물관 마을은 내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달랐다. 지난달 마을 안에 문을 연 ‘돈의문 전시관’은 이탈리아 식당과 한정식집 건물을 전시실로 바꾸면서 전시실 이름도 ‘아지오’ ‘한정’ 등 옛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 아지오 1층에는 전차의 개통과 사라진 돈의문 등 근대 교통·외교 중심지였던 돈의문의 변화상을 담았다. 적어도 이 지역의 과거를 아는 사람이라면 옛 동네의 모습을, 수많은 추억이 담긴 음식점들을 모형으로 되살린 전시관에서 마주하고 싶지는 않을 테다. 장소에는 사람들만의 오래된 기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이 떠나고 들어선 박물관 마을은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열리며 한때 북적였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들이 뜸하다. 마을은 대부분의 건물이 공실로 남아 있다. 게다가 돈의문 전시관은 부실공사로 비가 샌다. 기존 음식점들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마을에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서울시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양각색의 도시재생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서울형 골목길 재생사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용산구 후암동과 성북구 성북동에서 시범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우리는 기억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사업이 ‘또 다른 개발’을 경유하는 과정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낡은 건물과 오래된 거리들이 보여주기식 ‘박물관’으로 바뀌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이다. <파리의 장소들>에서 사회학자 정수복은 “오래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장소’들이 많은 기억의 도시일수록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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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대한의사협회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담은 e메일을 보냈다. 전국 의사 대표자들이 서울에 모여 ‘문재인 케어’ 등을 주제로 대토론회를 연 뒤 그 내용을 당일에 정리한 것이었다. 여러 한글파일 중 ‘제1분과 토의 회의결과’에 눈길이 갔다. 소제목이 ‘문케어의 대회원 및 대국민 홍보’였다.

의사협회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방안’,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놓고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3월 초 정부, 병원협회 등과 함께 앉아 있던 대화 테이블에서 홀로 빠졌다.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가 빠지자 개별 학회 등과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3월23일 ‘극우 발언’으로 논란이 된 최대집 후보가 제40대 회장으로 선출된 뒤에는 투쟁 기조가 더 강해졌다. 남북정상회담일(4월27일)에 집단 휴진을 하겠다 예고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이를 유보했다. 의사협회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큰 기대 없이 의사협회가 보내온 자료를 열었다. 그동안 수차례 내놨던 입장을 다시 되풀이하겠거니 지레 짐작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꼼꼼히 읽어봤다.

깜짝 놀랐다. 그간 의사협회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아쉬워했던 것들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특히 ‘대국민 홍보 시의 전략적 고려사항’ 항목에는 정확한 현실 인식이 들어 있었다. ‘의사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자’며 ‘서울지하철 노조의 홍보방식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서울지하철 노조가 임금 인상요구를 직접 하지 않고 기관사의 근로여건과 안전요원 확충을 앞세우듯이 의사들도 수가 인상을 요구하지 않고 정부가 스스로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대국민 홍보방식’은 30가지로 정리했다. 문재인 케어 철폐만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케어를 찬성하면서 제대로 시행할 수 있는 재정 지원 방안 등에 대해 강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고 ‘4대강 등 역대 정권의 잘못된 정책을 열거하고 이 정권의 문케어도 잘못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남북정상회담을 홍보에 이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국민에게 다가가기 위해 정상회담을 축하하고 평화 번영을 기원하고 남북의료에 대해서는 의사가 책임지겠다라는 내용의 메시지로 홍보를 하는 것이 필요함. 통일 이후의 의료에 대해서도 준비를 통해 주도적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필요함’이라는 의견이 홍보방식으로 제시됐다.

앞서 최대집 의협회장은 해당 토론회가 열리기 이틀 전인 4월2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북정상회담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았다. 이틀 사이 의사협회의 입장에 큰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반가운 마음에 확인 전화를 걸었다. 반가움은 금세 실망으로 바뀌었다. 실무진의 실수로 공식 입장이 아닌 내용을 함께 보냈다는 것이었다. 다시 보니 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은 다른 파일에 들어 있었다. ‘대한의사협회 13만 회원은 정부가 문케어와 관련된 모든 정책 추진을 중지하고 (…) 총파업 등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는 전국의사 대표자 일동 명의의 결의문이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의사협회가 문재인 케어 철폐를 주장하면서 내놓은 이유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정부가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적도 있다. 기득권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의사들이 불필요한 오해를 받고 욕을 먹는 경우도 있다. 너무나 억울할 것이다. 그렇다고 싸우려고만 든다면 외로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럴 때일수록 여론을 살피고, 스스로 주변도 돌아봐야 한다. 의사협회 내부에서조차 저런 의견이 나왔다면 과감하게 채택하고 실행도 해볼 일이다. 의사협회의 주장대로라면 어차피 지금도 최악의 상황에 있지 않은가.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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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4일이었으니까 약 석 달 전이다. 인천 선학 빙상경기장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스웨덴과 연습경기를 가졌다. 경기장 밖이 시끌시끌했다. 환영 집회와 반대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대한애국당 당원 수십명은 차량 앰프 볼륨을 잔뜩 높여두고 욕설 섞인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경호가 삼엄했다. 남북의 거리는 여전히 멀었다. 선수단이 도착했고, 격리나 다름없는 경호 속에 줄을 지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몸을 푸는 모습을 통유리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양쪽 선수들의 표정이 여전히 굳어 있었다. 같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지만, 신발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북한 선수들은 자국 운동화를 신었다. 흰 운동화를 신은 이들이 한쪽에 따로 모였다. 서울과 평양의 거리도, 선수들 마음 사이의 거리도 아직은 좁혀지기 전이었다.

4월 27일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인 옥류관 평양냉면. 서성일 기자

평창 올림픽이 시작됐다. 훈련을 마칠 때마다, 경기를 치를 때마다 취재구역에 선 그들에게 취재진은 “얼마나 가까워졌냐”는 질문을 채근하듯 쏟아냈다. 비슷한 답이 반복됐다. “잘 지내고 있다”, “많이 친해졌다”, “남과 북 그런 거 없다”. 가끔 날 선 대답이 삐져나오듯 툭 튀어나왔다. “잘 모르겠다”, “내가 대답할 일 아니다”. 그럴 때면 긴장감이 돌았다. 찬 바람이 훑고 지나간 듯했다.

단일팀은 급조됐다. 정치권이 서둘렀다. 선수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삐걱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막연한 설득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 없다. 쓰는 말이 달랐다. 전력 강화를 위해 귀화한 선수들이 여럿이었다. 영어와 남한 말과 북한 말이 얼음 위에서 자꾸 엉켰다. 전술 회의 때는 통역의 시간이 있지만 쉼없이 움직이는 경기 속 여유는 없다. 급하면 자기 말이 튀어나왔다. 패스가 빗나갔고, 수비 라인이 정돈되지 못했다. 빈 공간이 생겼고, 자꾸 골을 먹었다. 경기는 다 졌다. 어린 선수들은 엉엉 울면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일본전에서 첫 골을 넣었고, 0-8로 졌던 스위스를 만나 0-2로 잘 싸웠다. 단일팀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말보다 몸으로 먼저 상대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마지막 경기 스웨덴전에서 2피리어드 막판까지 승리를 노려볼 만했다. 마지막 경기를 끝냈을 때 선수들은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서로 다른 색의 신발끼리 모여 있던 어색함은 많이 사라졌다. 마지막 경기를 앞둔 훈련 때는 여기저기 모여서 ‘셀카’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을 가깝게 만든 것은 몸을 부딪치며 함께한 스킨십과 훈련이 아니었다. 마음을 열게 한 것은 함께 먹은 ‘밥’이었다. 경기 일정이 모두 끝난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단일팀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을 묻는 질문에 랜디 희수 그리핀은 “이틀 전 아침 식사 때 선수촌 식당에서 북한 선수들을 만났다. 다들 맥도날드 앞에 줄 서 있길래 우리도 같이 줄 섰다. 아침 식사인데, 북한 선수들이 맥플러리(아이스크림)를 먹길래 같이 먹었다. 아침으로 맥플러리를”이라며 웃었다. 마지막 회식은 고깃집에서였다. 후식으로 시킨 냉면이 별로였단다. 북한 선수들은 “평양 오면 옥류관 냉면을 사주겠다”고 했다. 김희원은 “(김)향미 언니도, (정)수현 언니도 곱빼기로 사준다고 약속했다. 언니들이 진짜 평양냉면은 면발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틀 뒤 북한 선수들이 버스에 올랐다. 선수들은 마지막까지 잡은 손을 쉽게 놓지 못했다.

오랜 세월 갈라져 있던 틈을 메운 것은 햄버거와 아이스크림, 냉면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옥류관 수석 요리사가 직접 면발을 뽑은 ‘평양랭면’은 미식의 단계를 뛰어넘는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화해와 평화는 당위에 기반한 구호와 선동에서 오지 않는다. 깔깔거리며 함께 먹는 아이스크림과 랭면이 시작이다. 단일팀이, 스포츠가 찾아 보여준 길이다.

<이용균 ㅣ 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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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를 버린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종량제 봉투에 넣어 내어놓거나, 재활용품으로 분류해 놓으면 다음날 사라지던 쓰레기다. 거대한 집게에 매달려 5t 트럭에 실린 채 시야에서 멀어지던 쓰레기는 내 머릿속에서도 사라졌다.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는 없어진 것인가?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의 저자 비 존슨은 “쓰레기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지는 몰라도,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사라진다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매립지에 이르러 환경을 파괴하고, 독성 화합물을 공기와 토양에 퍼뜨리고, 그 상품들을 만들기 위해 쓰였던 자원을 헛되게 만들며, 처리하는 데 매년 수십억달러가 들어간다”고 쓰레기의 사후를 설명한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이달 초 불거진 재활용 쓰레기 수거거부 사태는 ‘쓰레기의 존재감’을 유례없이 드러냈다.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이 사라지지 않자 그제서야 ‘버린 이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재활용 쓰레기의 수거·선별·재활용 과정을 차례로 추적했다.

쓰레기를 쫓기 시작하자, 왜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에 관심을 갖기 힘든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그것들은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쓰레기 관련 업체들은 하나같이 멀리 떨어진 외딴 곳에 있었다.

쓰레기를 다루는 일은 거의 이주노동자들이 하고 있었다. 먼지와 냄새가 가득한 가운데 마스크도 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미세먼지 수치 등을 논하는 것은 의미 없어 보였다.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실은 트럭이 왔다 갔다 하는 선별장에서 대표는 “사고가 잦으니 조심하라”고 말했다. 9일 뒤, 수도권의 한 선별장에서 노동자가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페트병 재활용 공장은 4000여평 규모에 설비비만 200억원이 들었다고 했다. 공정은 간단했다. 이물질을 제거하고, 색상별로 분류하고, 부수고, 씻어낸다. 하지만 총천연색 페트병, 알루미늄 뚜껑, 잘 떼어지지 않는 라벨은 단순한 공정에 거대한 설비를 필요케 했다. 잘게 부서진 페트병 조각은 물로 세척된다. 그 폐수는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인천, 경기 해안과 낙동강 하구가 세계에서 미세플라스틱 농도가 2, 3번째로 높은 곳이라는 연구 결과와 과연 무관할까.

‘쓰레기의 사후’를 보고 나자, 더 이상 예전처럼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됐다. 비닐은 운이 좋다면 고형연료가 되어 시멘트 공장에서 태워져 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운이 나쁘다면 매립되거나 소각장으로 가 토양과 공기를 오염시킬 것이다. 1회용 커피컵은 대부분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것이며, 어쩌면 스페인 해변에 떠오른 향고래의 배 속에서 나온 플라스틱 조각 중 일부가 될 수도 있다. 쓰레기의 처리 과정은 재활용 마크처럼 명쾌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비용과 노동이 들어가고, 또 그 과정에서 폐기물이 생산됐다.

<너무 늦기 전에 알아야 할 물건이야기>의 저자 애니 레너드는 “쉽게 고장나고 재활용하기 어려우며 유독한 제품을 과도하게 포장해 판매하는 기업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계속 치워주면서 그들의 나쁜 행동을 강화하지 말자”라고 말한다. 쓰레기가 될 물건을 생산한 기업이 책임지도록 하면 애초에 더 좋고 더 오래가고 독성이 덜한 물건을 만들게 될 것이란 것이다.

정부가 쓰레기 재활용 정책을 장기적 안목에서 검토하고 있다. 과도한 1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일상에서 몰아낼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생겨난 것이다. 이 틈새가 커다란 문으로 확대되길 기대한다. 지구상에는 한 사람이 연간 420개의 비닐봉지를 사용하는 서울 같은 도시도 있지만, 연간 4개의 비닐봉지만 사용하는 핀란드 같은 나라도 있다. 그 차이가 개인의 선택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쓰레기는 그 사회의 생산과 소비, 생활방식, 환경과 지구와도 연관돼 있다. 그러니까 ‘쓰레기를 버린다’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윤리적 행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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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 직후인 지난 1월 말 대검찰청이 꾸린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 활동이 마무리돼 간다. 조사단은 이번주 서 검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안태근 전 검사장을 재판에 넘기면서 그간 파헤쳐온 검찰 내 성범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조사단의 ‘1호 기소 사건’은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에 근무하던 김모 부장검사의 강제추행 사건이었다. 김 부장검사는 작년 6월 법무연수원 교수 시절 알게 된 변호사를 노래방에서 강제추행했다. 지난 1월에는 술취한 후배 검사를 회식 자리에서 강제추행했다. 조사단은 지난 2월12일 사무실에 있던 김 부장검사를 이례적으로 긴급체포했고, 사흘 만에 구속한 뒤 엿새 후인 같은 달 21일 재판에 넘겼다. 체포부터 구속기소까지 9일 만에 이뤄진 대단히 신속한 조치였다. 출범 초기 조사단의 강력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김 부장검사는 지난 11일 수감된 지 정확히 두 달 만에 풀려났다. 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주영 판사는 김 부장검사가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고, 이 사건으로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상실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피해자들이 더는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견을 밝힌 것도 유리한 양형 요소가 됐다.

대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두 차례 강제추행을 저지른 김 부장검사에게는 징역 6월에서 3년까지 선고될 수 있었다. 김 부장검사에 대해 징역 1년을 구형했던 조사단은 항소기간인 지난 18일까지 항소하지 않았다. 조사단 측은 구형량의 3분의 1 미만의 형이 선고됐을 때 항소한다는 ‘통상적 기준’을 들며 “이런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의사가 매우 중요한데 피해자들이 더 이상의 엄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법원에 밝혔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이 구형량의 3분의 1 이상의 형이 선고됐을 때도 양형 부당을 이유로 항소한 사례는 인터넷만 검색해 봐도 무수히 많다. ‘같은 법조인이라 봐주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다. 

신분이 보장된 검사를 긴급체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까지 들으며 의지있게 수사해 재판에 넘긴 조사단이 끝내 온정주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들린다. 이래서는 안 전 검사장 재판에서 공소유지가 제대로 되겠느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조사단 출범을 지시할 당시 검찰 조직 내 성범죄가 근절될 때까지 무기한 운영하겠다고 했다. 조사단이 검찰 내 성범죄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등 성과를 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검찰 밖의 사람들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았을 때 ‘근절’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정대연 | 사회부 ho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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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건 컴퓨터야! 빌어먹을 평범한 컴퓨터!”

“…랩톱을 쓰셔야겠죠?” “아니. 난 ‘랩톱’을 원하는 게 아냐. 컴퓨터를 원한다고.”

“랩톱이 바로 컴퓨터예요.” “너 내가 그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지?”

태블릿이 ‘컴퓨터냐 아니냐’를 놓고 매장 직원을 진땀나게 하고 있는 이 남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깐깐한 원칙주의자 ‘오베’다. 자신이 보기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젊은이들에게 밀려 40여년을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오베는 랩톱이 컴퓨터를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임을 짐작 못한다. 태블릿은 키보드가 없어도 화면에서 조작 가능하다는 말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나에게도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는 걸 상상하지는 않았다. 제품 설명을 이해 못해 물건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든다며 툴툴대는 ‘구닥다리’는 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계속 그런 착각 속에 살기란 쉽지 않다. 나이를 더할수록 내겐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남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때때로 불안해진다. 이대로 나이를 더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고.

‘연령차별’(에이지즘)이라는 말이 있다. 나이에 근거한 사회적 차별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이 들 때 찾아오는 변화를 수치스러워하도록, 무수한 걸림돌을 용인하도록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다. 노인에 대한 연령차별은 자신 역시 나이 들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는 연령차별이 교묘하게 내면화돼 있다는 것이다. 성차별·인종차별과는 달리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는 데는 “너 몇 살이야?”라며 어깃장을 놓는 것 말곤 별 도리가 없다. 물론 나이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은 연령차별의 수혜자일 수도 있다. 이는 세대 간의 반목을 조장한다. 노인들 뒷바라지하느라 젊은 세대 허리가 휠 것이란 우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나이 든 세대가 겪는 궁핍과 적대감은 결국에는 우리 모두에게 닥칠 일이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다.

고령화를 피할 수 없게 된 지금, 세계는 노인을 위한 도시를 건설 중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9년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해 ‘국제고령친화도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스위스 제네바, 미국 뉴욕, 일본 도쿄, 중국 상하이 등 37개국 500여개 도시가 회원도시로 가입했다. 한국은 서울시가 2013년 처음 가입한 데 이어 전북 정읍, 경기 수원, 부산 등이 회원도시로 가입했지만 아직 개념조차 생소하다.

미국 등에서는 이미 고령친화도시 조성을 위한 사업이 활발하다. 뉴욕은 일부 구역을 노령자를 위한 개발지구로 선정해 상점 안내판이나 메뉴판 글자를 크게 인쇄하는 등 사소한 것부터 횡단보도 보행 신호 시간 연장 등 고령층을 배려한 인프라 구축을 시도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시범 사업으로 선보인 고령 친화상점 ‘오래오래’도 이와 비슷하다. 상점 출입구 턱을 없애고, 돋보기나 지팡이 거치대 등의 물품을 비치했다. 인근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속도를 늦추고, 지하철 노선 안내도와 지도 크기는 키웠다. 서울시는 올해 고령친화 상점을 더 늘릴 계획이지만 갈 길이 멀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누구나, 공평하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이 듦에 대해 ‘프로불편러’가 되자. 좌석에 앉기 전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면 기사에게 기다려 달라고 말해보면 어떨까.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일찌감치 “한 인간이 노년에도 인간으로 남아 있기 위해서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이 항상 인간으로 대우받는 사회여야 한다”고 했다. 연령차별은 우리 자신의 미래에 대한 편견이다. 우리 안에는 노인이 산다.

<전국사회부 ㅣ 이명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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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도 더 된 기억이다. 나의 첫 해외여행은 1995년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인도네시아 독립 50주년 기념 국제청년행사였다. 한국대학생 20여명이 초청됐는데 운좋게 거기에 포함됐다. 우리 일행은 행사참여를 위해 자카르타에서 지방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일행 중 한 명이 비자를 분실했다. 아마도 날치기를 당했던 모양이다. 다른 일행들은 떠나고 룸메이트였던 내가 그와 함께 남았다. 그런데 뭘 아나. 낯선 이국땅. 첫 해외여행.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는데 누군가가 말을 붙였다. “무슨 일이 있나?”

경상도 사투리가 진했던 40대 중반의 아저씨는 자카르타에서 신발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멀리서 보기에도 우리가 쩔쩔매는 모습이 애처로웠나 보다. “걱정하지 마라, 한국 대사관 가서 얘기하면 새 비자 금방 내줄끼다. 니들 돈없재?” 그는 택시를 잡은 뒤 불쑥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를 건네줬다. 당시 돈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연락처 가르쳐 주시면 돈을 보내드리겠다”고 말하자 그는 “씰데없는 소리 한다”며 택시문을 닫았다.

그제서야 긴장이 탁 풀리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호의가 너무 고마워서였다. 내 눈에 비친 그는 ‘어른’이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한 아파트에 ‘5평형 빈민아파트 신축건’이라는 제목의 안내문이 붙었다. 서울시가 짓는 청년임대주택을 이들은 ‘빈민아파트’라 불렀다. 들리는 얘기로 주민의 70%가량이 여기에 동의한단다. 강동구 천호역 인근에 들어서는 청년임대주택도 반대가 심하다. 주민들은 여러 이유를 댄다. 지반이 약하고, 교통혼잡이 우려되고, 원래 다른 용도로 쓸 땅이었다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 하기다. 속내는 ‘집값’ 아닌가.

서울시내 17평짜리 방 두 개 빌라 전세가 2억원이 넘는다. 지방 아파트 한 채 가격이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청년이 이런 돈이 있을 리 없다. 이들이 빈민인가.

대구 경북대 인근에는 ‘경북대기숙사건립반대 대책위원회’가 꾸려졌다. 경북대가 짓고 있는 재학생 기숙사 건설을 반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인근에 원룸 공실이 4000여실에 달하는데 민자기숙사가 건립되면 공실이 6000~7000개는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인근주민의 생계를 무시하고 대형건설사 배만 불리는 기숙사’라는 게 이들의 반대 이유지만 역시 진짜 이유는 아니다. 서울의 한양대, 고려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상반기 서울시내 대학가 원룸 평균 임대료는 보증금 1378만원에 월세 49만원에 달했다. 청년이 돈주머니인가.

강원 양구, 경기 연천 등 접경지역에서는 상인들이 군 위수지역 폐지를 결사반대하고 있다. 장병들이 외출·외박 때 위수지역을 벗어나게 되면 상권이 죽는단다. 병사들과 부모들은 “위수지역 내 물가가 너무 비싸다”고 불만이다. 택시비도, PC방 이용료도 서울보다 비싸다고 장병들은 주장한다. 나라 지키러 군에 간 청년장병들이 봉인가.

이 정도면 어른들의 ‘갑질’이라 부를 만하다. 내 재산권, 내 생존권을 위해 청년들의 등골을 빼먹겠다는 것 아닌가. 부끄럽고, 참담하다. 따지고 보면 내 아들이거나 한 다리 건너 내 조카일 텐데 말이다. 자기욕심만 채우는 어른들이 존경을 받을 리 없다. 기초연금 증액은 찬성하면서 청년수당 도입은 반대한다. 젊음이 죄인가.

하지만 반전이 있다. 20년쯤 뒤 노인이 된 지금의 기성세대는 결국 지금의 청년들에게 기대야 한다. 그때 가서 ‘우리 좀 부양하라’며 손을 내밀 수 있을까. 설사 지금의 청년세대들이 돕고 싶어도 돕지 못할 수도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지금 갈라 버린다면 말이다. 청년을 윽박지르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단언컨대 시간은 기성세대의 편이 아니다. 청년의 편이다.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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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을 봉 모양으로 말아접은 뒤 허벅지에 ‘탁’하고 쳐서 가지런하게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은 속도다. 손목, 팔목을 쓰지 않고 어깨 힘으로 허벅지부터 풍차 돌리듯 빠르게 들어올린 뒤, 목표각에 도달하면 신문을 쥔 손을 놓는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다른 집으로 날아가고, 너무 느리면 날아가던 신문이 펼쳐지면서 쏟아져 내린다. 초등학생 시절 신문 배달을 시작하면서 선배들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터득했던 기술이다. 잘만 활용하면 3층은 물론 빌라 4층까지도 계단을 오를 필요 없이 베란다에 신문을 안착시킬 수 있어서, 체력은 물론 시간 절약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어렵사리 2·3층까지 꾸역꾸역 신문을 던져 넣을 만큼 익숙해졌을 무렵 문제가 생겼다. 빌라 3층에 사는 한 구독자가 하루가 멀다하고 보급소로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놨다. 1면이 반듯하게 펼쳐진 신문이 현관 앞에 놓여 있기를 바라는데, 접힌 흔적이 남은 신문을 받아보는 것이 영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스포츠 신문을 서비스로 넣어준다는 제안도 통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툴툴거리며 계단을 올라 신문을 배달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요구였는데, ‘그 정도도 이해 못해주냐’며 어린 마음에 꽤나 야속해했던 기억이 난다.

10일 오후 경기 남양주 다산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택배 물품이 쌓여 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에서 택배 차량 사고가 발생할 뻔한 뒤 택배차의 지상 진입을 막고 정문 근처에 주차한 후 카트로 운반해 배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택배업체들이 난색을 표하며 정문 인근 도로에 택배를 쌓아 두고 가면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택배 대란’ 사진 한 장으로 온·오프 세상이 동시에 요동치고 있다. 한 신도시 아파트에서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막아서자 택배 기사들이 배송을 거부, 택배 상자가 단지 입구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는 모양이다.

주민들은 자동차의 지상 출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만큼 택배 차량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이유로 들었다. 택배 차량에 아이들이 다칠 수 있으니 카트나 수레에 실어 배송하거나 아예 지하주차장에 진입할 수 있는 택배 차량으로 바꿔 배송을 하라는 요구다. 실제로 이 아파트는 지상에 아예 차도가 없다. 아이들이 뛰노는 단지 내에 하루에도 몇 차례씩 차량들이 오간다는 사실은 충분히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일관성이다. 차량 지상 통행 금지라는 해당 아파트 단지의 원칙에는 몇 가지 예외가 존재한다. 소방차는 당연히 들어올 수 있고,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량도 진출입이 가능하다. 이사 차량과 가전제품 배송차량도 드나들 수 있다고 한다. 주민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한 서비스 차량에는 예외를 다수 붙여둔 셈이다. 여기에 “우리 아파트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위해”로 시작하는 단지 내 ‘택배 차량 통제 협조 안내문’은 집값을 염두에 두고 택배 기사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논란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비단 이 아파트 단지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좋은 아파트를 표방하며 지상을 공원으로 꾸미는 아파트들이 늘면서 이 같은 사태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더 좋은 주거 환경을 갖추고 싶은 욕망을 지적할 대목은 없어 보인다. 다만 더 나은 환경이 누군가의 더 많은 수고와 노력,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거기에 대한 정당한 값을 치러야 한다. 그렇다면 방법이 문제다. 쾌적하고 더 안전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는 대가로 관리사무소에서 각 가정이 택배를 직접 수령하는 방법이 먼저 떠오른다. 이게 불편하다면 택배비를 조금 더 받는 방법도 있겠다. 많은 택배 회사들이 배송에 어려움이 있는 도서·산간지방에 추가 배송비를 받는다고 하니 그 비용을 참조해보면 어떨까.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는 무인택배함이나 단지 입구에서 집 앞까지 배달을 하는 아르바이트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소식도 들리니 고려해 볼 만하다.

혹시라도 이도저도 다 싫고 지금처럼 누군가 문 앞까지 짐을 옮겨다 주길 바란다면 그건 지하주차장 층고나 택배 회사 이전에 이기심의 문제라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어 보인다.

<경제부 ㅣ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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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데이터 회사가 페이스북 이용자 5000만명의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이용해 선거에 활용한 사건이 보도됐다. 페이스북 등 데이터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에 논란이 붙었다. 이용자들이 동의했다지만 이용자들은 정치 선전에 활용하라고 동의한 것이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원유’라 불리는 데이터. 데이터를 활용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주장하는 기업들의 논리와 자신의 데이터가 곧 ‘개인정보’이자 ‘사생활’인 개인들이 정보를 보호하고자 하는 논리가 부딪친다.

2016년 6월 박근혜 정부는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개인정보에 가명화·익명화·범주화 등 비식별 조치를 하면 개인정보가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도 이를 활용·유통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을 우회해 개인정보를 유통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지적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29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가 ‘빅데이터의 안전한 활용을 모색하기 위한 개인정보 비식별 처리 기술 세미나’를 열었다. 이 민감한 시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안전한’ ‘활용’이라는 병립되기 어려운 가치를 내세운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이라는 딜레마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비식별 조치’ 대신 ‘익명처리’ ‘가명처리’로 용어를 통일하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또 지난 2월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해커톤 끝장 토론에서도 ‘비식별 처리’라는 모호한 용어 대신 개인정보, 가명정보, 익명정보로 구분해 정비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날 시연회에서는 정작 ‘비식별’ 정보를 만드는 기술만 강조했을 뿐이다. 더구나 최근 금융위원회, 방통위, 과기정통부 등이 관련 권한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사활을 건다는 얘기도 들린다.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가장 기본적인 해커톤 합의 내용도 지키지 않고 있다면 오해라고 할까. 그리고 하나 더. 부처 간 헤게모니 다툼으로 피해를 입게 되는 쪽은 누구일까.

<임아영 |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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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 ‘망루’에 오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송전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다음날인 2013년 2월26일, 평택의 쌍용차 공장 맞은편 송전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쌍용차 해고자들을 찾았다.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9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문기주 정비지회장, 복기성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의 건강검진과 치료를 위해 송전탑을 찾은 의료진과 동행했다.

덜컹거리는 크레인을 타고 오른 송전탑에 설치된 천막은 좁고 불안정했다. 천막 벽에 붙어 있던 쌍용차 관련 신문 기사들, 한 전 위원장의 동상 걸린 발에 신겨 있던 분홍색 수면양말, 힘차게 말하던 도중에도 스치듯 지나가던 굳은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한 전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쌍용차 갈등을 해결해 대통합 정치의 첫발을 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71일을 송전탑 위에서 지낸 그는 지금 감옥 속에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바닥과 벽, 비닐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 딛고 있을 단단한 땅이 없다는 데서 오는 아득함. 그런 풍경은 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새벽 찬 공기 속에 남 몰래 송전탑을 올랐던 해고자들이 느꼈던 분노와 좌절감에 대해서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고작 몇 시간을 그곳에 머물렀던 나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고공농성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떠오른 건 김지은씨 때문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하기 위해 JTBC 뉴스룸에 나온 김씨의 모습은 훅 불면 꺼져버릴 듯 위태로워 보였다. 그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뉴스룸으로 나왔다고 했다.

어쩌다 JTBC 뉴스룸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최후의 보루가 되었을까. 김씨가 뉴스룸에 나오기까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장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안 전 지사는 ‘미투 운동’을 언급하며 미안하다고 한 그날에도 성폭력을 저질렀다. 김씨를 구제할 시스템은 그곳에서 작동하지 않았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뉴스룸에 나오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성폭력을 처벌하고 막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억울함을 더 이상 호소할 곳이 없어 하늘에 오른다. 망루는 그들에게 허용된 마지막 싸움터다. 성폭력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속한 조직과 사법체계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폭로를 택한다. 망루에 오른 노동자들에게 불법점거, 업무방해 등의 압박이 가해지듯 성폭력 피해자들 역시 무고와 명예훼손 압박에 시달린다. ‘꽃뱀’이라는 꼬리표가 붙고 2차 가해가 이뤄진다. 김씨 역시 ‘합의한 관계이며 정치적 의도가 있는 폭로’라는 소문이 퍼지며 2차 피해로 고통받고 있다.

“‘그 길을 택하면 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끔찍한 싸움을 준비해야 한다.’ 내 삶이 갈가리 찢길 테고, 내 생활의 모든 것이 사람들 앞에 낱낱이 드러날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이런 사건은 피해자가 이기기 가장 힘든 종류라고 했습니다.” 미국 몬태나 대학교 성폭행 사건을 다룬 르포르타주 <미줄라>에서 피해자가 변호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지금 성폭력 폭로라는 망루에 오른 피해자들이 맞딱뜨린 풍경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신이 서 보지 못한 곳의 풍경을 알 수 없다. 하지만 타인이 선 곳의 풍경이 어떤 지를 짐작하는 것은 가능하다. 나는 여성으로서 겪은 성차별, 성폭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해고자·성소수자·이주민들의 고통은 잘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말을 오롯이 들어야 하며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2차 가해와 고통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합의’니 ‘의도’니 함부로 말하길 멈춰야 한다.

노동자들이 망루에 오르는 것을 막는 방법은 하나다. 부당한 노동권 침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위태로운 성폭력 폭로를 멈추는 방법은 단 하나다.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감수한 폭로를 하지 않고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성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저 너머로 가기 위한 과정이며, 그렇게 되어야 한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성공한 고공농성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309일간의 싸움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크레인에 오른 그는 두 발로 걸어서, 양손을 번쩍 들어 흔들며 땅으로 내려왔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을 찾은 수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씨를 비롯해 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자신만의 망루에 올라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이 안전하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다.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고 성폭력을 방지할 시스템을 만들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 말이다. 나는 눈감지 않겠다.

<이영경 토요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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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의 주인공 마이는 매일같이 무언가를 버리지 못해 손이 근질거리는 ‘버리기 마녀’다. 학창 시절 졸업앨범부터 남편과 연애할 때 주고받은 커플링까지 필요 없는 것은 일단 버리고 본다. 일본에서 정리 노하우를 소개한 블로그로 인기를 끈 일러스트레이터 유루리 마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그렇다고 극단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자는 것은 아니다. 마이는 최소한의 물품만 갖춘 집에서 살고 있다. 결론은 필요 없는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집도 넓어지고, 청소하기도 편해 오히려 머물고 싶은 집이 됐다는 해피엔딩이다.

무엇을 채울지보다 어떻게 비울지는 비단 사적 공간인 집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공적 공간도 마찬가지다. 도시의 대표적인 공적 공간으로는 광장을 꼽을 수 있다. 광장 역시 깨끗이 비워질수록 매력적이다. 비어 있지만 사람들의 일상으로 다시 채워지는 공간, 그곳이 사람들이 내 집처럼 머물고 싶은 광장이다. 서울 도심에도 서울광장과 광화문광장이 있다. 안타깝지만 두 곳 다 머물고 싶은 광장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광장은 사방이 도로로 둘러싸여 접근성이 떨어지고, 광화문광장은 차량소음으로 시끄럽다. 무엇보다 꽃밭, 전시관, 동상 같은 화려한 시설물만 있을 뿐 한여름 뙤약볕을 피하기도 어렵고, 편히 앉을 수 있는 공간도 마땅하지 않다.

버리기 마녀에게 광장 정리를 맡겨보자. 아마도 광장에 있는 시설물을 다 없애자고 하지 않을까. 그중에서도 서울광장의 잔디를 가장 먼저 치우자고 할 것이다. 애초 광장에 잔디를 심은 것은 아이러니다. 그나마 잔디보호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때도 많다. 광화문 도로 한가운데에 중앙분리대로 만들어 놓은 광화문광장 또한 그렇다. 이순신 장군 동상 뒤로 세종대왕 동상이 광화문을 가로막고 있어 시야를 가린다.

언젠가 유럽을 여행하다 가본 광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노천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계단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잡담을 나누었다. 때론 떠들썩한 축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유럽 광장이 좋아 보이니 무조건 베끼자고 조르는 건 아니다. 광장이 일상의 연속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두 광장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긴 하다. 이명박 시장과 오세훈 시장 시절 광장을 조성하면서 사실상 폐쇄형 광장으로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하자. 그래도 광장이 여전히 전시행정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일년의 대부분 전국 특산물을 파는 시장이나 이벤트성 홍보 행사가 열린다. 정작 시민이 광장을 이용하려면 서울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서울, 도시의 품격>의 저자 전상현은 ‘공간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 인식이 형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시민들은 공공 공간을 통제하는 권력의 부당한 태도에 그다지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 민주 시민사회의 공공 공간은 분명 시민이 요구하고 전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도 말이죠.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여전히 공공 공간을 정부가 계획·통제·관리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 건축학자 프랑코만 쿠조는 <광장>에서 “광장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라고 했다. 다행히 지난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계획을 밝혔던 서울시가 ‘녹색교통진흥지역’으로 지정된 한양도성 내부 주요 도로를 올해 4∼6차로로 줄이고 보행 공간으로 바꾼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광화문광장은 그동안의 고립된 ‘교통섬’에서 벗어나 찻길 없는 ‘진짜’ 광장이 된다. 자동차 방해를 받지 않고 잠시 쉴 수 있는, 허가받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그런 광장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러다 촛불을 들어야 한다면 광장에 모여 다시 촛불을 들면 된다.

<이명희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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