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소송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전관 변호사를 구해야 한다. 전관 변호사들이라고 해서 패소를 승소로, 유죄를 무죄로 바꿔내지는 못한다. 그래도 판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를 쓰면 재판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법정에서 할 말을 다 할 수 있고, 증거를 봐달라는 요청이 잘 받아들여진다. 재판에 미련이 남지 않는다. 무엇보다 재판이 빠르게 진행된다. 세상의 모든 진실과 권리, 행복마저 시간과 함께 소멸한다. 가게 하다 떼인 돈은 5년이 지나면 내 돈이 아니고, 어렵게 소송을 하더라도 판사가 3년만 끌면 가정부터 엉망이 된다. 재판의 속도는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다. 판사는 미뤄서 조진다는 말이 그래서 있다.

미뤄 조지기의 정점에 대법관이 있다. 지난 4월 대법원은 4년 넘게 끌어온 18대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 사건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의 결론을 내릴 실익이 없어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대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미 (지난달) 헌법재판소 탄핵 인용 결정으로 파면돼 지난 대선의 무효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했다. 선거소송은 대법원이 1심이자 최종심이므로 재판을 열어야 했다. 김창석 대법관은 주심으로서 직무유기한 것이다. 대법원이 선거를 무효로 결론 내지도 않을 거면서, 사건을 오래 쥐고 있던 이유가 뭘까. 박근혜 청와대를 겁주려 했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대법원은 소심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곳이다. 선거무효 소송의 쟁점은 국가정보원이 심리전단을 통해 대선에 개입했는지다. 2012년 원세훈 국정원의 선거개입 전모는 2013년 윤석열 검사의 수사와 2015년 김상환 판사의 판결로 사실상 드러났다. 대법원은 이것이 대선을 무효로 할 일인지 판단해야 됐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은 원세훈 사건이 오자 유죄인지도 무죄인지도 밝히지 않고 파기부터 했다. 반대가 없는데도 전원합의체를 소집해 전원일치로 시간끌기 결론을 냈다. 이런 금시초문 판결의 재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그러다 정치상황이 급변해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자, 대법원은 대선무효 사건을 각하해버렸다.

이런 의혹의 시절을 살아온 사내가 있다. MBC 해직기자 이용마다. 2012년 김재철 사장에게 공정한 방송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주도했다. 이를 이유로 정영하, 최승호, 박성제, 박성호, 강지웅과 함께 해고됐다. 다른 38명은 정직 등 징계를 받았다. 이용마는 해고가 무효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이에 맞서 박근혜 정부는 이들을 업무방해로 기소했고, MBC 사측은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들 재판에서 이용마는 모두 이겼다. 해고처분은 무효이고, 업무방해는 무죄이며, 손해배상은 기각됐다. 각각의 1심과 2심 모두, 즉 6개 재판부가 이렇게 판단했다.

세 항소심 재판장들인 김대웅, 김상준, 김우진 판사는 하나같이 밝혔다. “문화방송은 방송법 등의 관계법령 및 단체협약에 의하여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하고 그 구성원들의 방송의 자유를 침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인 근로자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을 악화시켰다 할 것이므로, 피고인들을 비롯한 문화방송의 근로자들은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쟁의행위에 나아갈 수 있다.” 판결들이 나온 때가 2015년 4·5·6월이다. 대법원은 이번에도 사건을 쥐고 3년째에 들어섰다. 그러던 지난해 9월 이용마는 복막암을 진단받고 길어야 16개월이란 통보를 받는다.

어린 두 아들을 위해 이용마는 글을 남겼다. “나의 꿈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너희들이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우리는 공동체를 떠나 살 수 없다. 그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나의 인생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이 사건을 거머쥐고 어설픈 정치판단을 하는 동안,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공동체가 병들어가고 있다.

<사회부|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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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황금연휴’를 시작하던 지난달 1일 부모와 놀이공원에 놀러온 4살짜리 아이가 숨졌다.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 주차장에서 SUV 차량이 부모와 함께 있던 아이를 덮쳤다. SUV 차량에는 운전자가 없었다. 경사가 진 주차구역에 차를 세운 운전자는 사이드브레이크를 제대로 채우지 않은 채 내렸다. 이 사고로 아이는 숨졌고 엄마와 아빠도 다쳤다. 엄마는 당시 임신 20주인 상태였다.

지난 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및 제안’란에 글이 올라왔다. 한 달여 전 서울랜드 주차장 사고로 아이를 잃은 엄마라고 했다. 아이 엄마는 “가해자는 기어를 드라이브(D)에 넣고 사이드브레이크도 안 잠근 채 자신의 가족과 매표소에 갔다”며 “그 끔찍한 일은 그 사람이 잘못한 게 맞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 엄마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올린 이유는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원해서가 아니었다. 아이 엄마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겪는 사람이 없게 하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며 청와대에 청원을 넣었다.

아이 엄마는 “매일 울며 이 지옥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닥칠 수 있는 불행을 막으려 했다. 아이 엄마는 “첫째로 경사진 주차장 특히나 아이들이 많이 있는 마트와 놀이동산 등 다중이용시설 주차장에는 사이드브레이크나 제동장치에 대한 안내문과 방송 등이 법으로 의무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둘째로는 “자동차 사이드브레이크나 제동장치로 인한 사고 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길 바란다”고 했다.

관련법은 이미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지난 2월 더불어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이 9월에 상정됐다. 이 법은 ‘경사진 곳에 정차하거나 주차하려고 하는 자동차의 운전자는 고임목을 설치하거나 조향장치(操向裝置)를 도로의 가장자리 방향으로 돌려놓는 등 미끄럼 사고의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 심의와 ‘더 중요한 법률’ 등에 밀려 온전히 처리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아이 엄마는 호소했다. “경사가 있는 주차장에 주차 방지 턱이라도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누군가 주차방지턱을 타넘는 차를 보며 소리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경사진 곳이니 사이드브레이크를 반드시 채우라는 방송이나 안내문이 곳곳에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이 끔찍한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청원했다. “이런 끔찍하고 어이없는 사고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됩니다. 지금 제 아이가 있는 납골당에는 사이드브레이크로 인한 사고로 천국에 간 아이가 또 있습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하루 수백건의 ‘국민청원 및 제안’이 올라온다. 이 중 ‘30일 동안 20만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서만 각 부처 장관이나 대통령 수석 비서관, 특별보좌관 등이 답변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지난 9월에는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비서관과 김수현 사회수석비서관이 ‘소년법 개정청원’에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9월30일부터 10월30일까지 23만5372명의 청원을 받은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도입’은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 6일 마감되는 ‘조두순 출소반대’ 청원은 이미 40만명을 넘겼다.

지난 6일 올라온 ‘경사진 주차장에 경고문구 의무화와 자동차 보조제동장치 의무화를 요청합니다’란 청원은 열흘이 지난 15일까지 5만명도 모으지 못했다. 마감시한인 12월6일까지 20만명을 채우지 못하면 아이를 잃은 엄마의 청원은 그대로 사라질 것이다.

아이 엄마는 청원글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아이를 더 낳는 세상이 아니라 있는 아이나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는 사회가 되길 원합니다. 제 아이처럼 이렇게 허망하게 가는 아이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됩니다.” 청와대와 정부의 답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책사회부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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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같은 제목의 기사에 눈길이 끌렸다. 훈훈한 로맨스 이야기인가 싶어 클릭해 몇줄 읽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욕설을 쏟아내고 말았다. 여중생을 성폭행해 임신까지 하게 만든 40대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내용. 법원은 피해자였던 여학생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 했고, 순수한 사랑을 나눴다는 남성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에는 무수한 댓글이 줄을 이었고 분노로 들끓었다. 2년 전의 일이었다.

며칠 전 같은 사안에 대한 대법원 최종 판결이 확정됐다. 달라진 건 없다. 아니, 통념상 납득되기 힘들거나 상식의 기준을 넘어서는 관계라도, 경우에 따라 위계나 강압에 의한 성폭행일지라도 법률가들이 사용하는 게임의 룰만 잘 파악한다면 ‘순수한 사랑’으로 포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만천하에 확인시켜 줬다.

이 무게를 짊어지는 것을 도와줘요.’ 2014년 10월29일 대학 캠퍼스 성폭행 반대를 위한 전국 행동의 날 시위의 포스터.

물론 언론을 통해 보도된 사건의 개요만을 본 나는 이 사안의 실체적 진실을 모른다. 또 다른 극적인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건지, 정말 그들의 관계가 순수한 사랑이었던 건지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40대의 유부남이 15세의 여자 중학생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뭐가 정상이고 상식인지 뒤죽박죽인 세상이 됐다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지 않나.

법적 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근거로 해야 함도 옳다. 하지만 이번 사안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법을 다루는 이들 사이에 뿌리내린 성폭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이다. 행위가 발생한 그 순간의 위력이나 협박 유무, 피해자의 대처 정도가 처벌과 판단의 주된 근거가 된다는 점 말이다. 어린 여학생이 쓴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와 문자메시지는 판결의 중요한 증거가 됐다. 그런데 첫 만남에서부터 임신, 가출, 출산까지의 과정에서 그 여학생이 겪었을 무력감과 고통의 무게는 그 판단에 얼마나 작용했을까. 같은 판결문이 여학생에게는 “왜 그 정도 나이 먹고 앞가림도 못하냐”는 질책으로, 40대 남자에게는 “순애보의 주인공”이라는 감탄으로 들리는 것은 나뿐만일까. 성폭행 피해 여성을 두고 ‘흔들리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없다’는 식의 가공할 망언을 일삼으며 능멸하던 우리 사회의 수준은 여전히 한발도 진전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의제강간 연령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강해지고 있다. 의제강간은 사랑이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강간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현행 법령에선 만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적용된다. 즉 이 나이 미만은 성적 행동이나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없으므로 이런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관계는 처벌받는다. 정치권이나 시민단체에서는 이 연령을 16세로 높이자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해왔고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논란은 분분하다. 그렇다면 성숙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적절한 연령대는 몇살인가. 문득 드는 의문은 정치적 결정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연령의 판단기준이다. 투표권과 같은 정치적 결정권은 19세, 성적 자기결정권은 14세다. 둘 다 중요한 판단력이 필요한 일인데 그 차이가 너무 커 종잡을 수 없다.

성폭행에 대한 처벌은 엄정해야 하고 법적 장치도 잘 정비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에 앞서 청소년이 성폭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이 시급하다. 위계관계에서 권력이나 경제력을 무기로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일은 너무나 흔한 일상이 됐다. 그 기반엔 “어릴수록 좋다” “딸 같아서…”라는 말로 통용되는 남성들의 그릇된 성적 가치관이 도사리고 있다.

얼마 전 코미디언 유병재씨가 낸 <블랙코미디>에 실린 시 한 편을 소개한다. 맘 같아선 국회의사당과 법원, 검찰청, 경찰서마다 붙여놓고 싶다.

‘딸 같아서 만졌다니, 딸 치려고 만졌겠지.’(‘딸 같아서 만졌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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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성폭행

보수는 지난 60여년간 냉전반공에서 자유주의, 국가주의에서 공동체주의, 산업화에서 선진화로 끊임없이 탈바꿈했다. 흔히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이지만 보수는 하나만 같아도 동지”라는 말처럼 혁신과 변화 앞에선 보수가 진보보다 유능했다. ‘천막당사’ ‘뉴밀레니엄, 뉴○○○’ ‘○○○○ 연대’ 등 변화라 할 만한 행보는 대부분 보수가 주도했다.

그랬던 보수가 사라졌다. 정치컨설팅 민 박성민 대표는 “보수우위를 지탱해 온 지식인, 문화, 보수언론, 재벌, 권력기관, 기독교라는 물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며 아예 ‘보수는 죽었다’고 규정했다. 탄핵과 대선 패배는 수순일 뿐이라는 말이다. 보수의 부활사를 기억하는 한 변화가 곧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기대난망이다.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이 선택한 정권을 주사파라고 막말하는 집단, 그 집단을 ‘보수’해 보겠다고 나섰다가 스스로 투항한 집단. 변하면서 지키는 게 보수의 본령이라면, 낡은 과거를 부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게 혁신이라면 지금 보수는 보수가 아니고, 그들이 말하는 혁신은 혁신이 아니다.

보수의 퇴행을 지켜보며 13년 전 한나라당을 떠올린다. 2004년 4월29일, 17대 총선 패배 후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엔 보수 혁명이 움트고 있었다. 프로젝트명은 ‘신보수를 위한 사상전(思想戰)’. 당선자 121명은 침울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차떼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주도로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겨우 사지를 넘긴 했지만 보수의 암울한 미래는 가늠조차 어려웠다. 두 번의 대선에 이어 총선 패배까지 2007년 집권은 먼 꿈이었다. 박세일 당선자가 연단에 섰다. 총선 공동선대위원장, 보수의 경세가로 불린 인물이었다. 그는 “사상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보수는 집권할 수 없다”고 선포했다. 앞으로 정당 경쟁을 ‘20세기 과거 민주화세력 대 21세기 미래 선진화세력의 싸움’이라고 규정하며 당을 가치집단으로 바꾸자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공동체주의, 실용적 개혁이라는 4대 가치와 ‘공동체 자유주의’ 이념을 사상전 토대로 제시했다. ‘박세일발(發)’ 사상전은 보수의 토양을 빠르게 갈아엎었다. 오로지 북한과 자본이라는 프리즘만 정치에 투영했던 보수정당이 ‘따뜻한 대북정책’을 채택했다. 보수정치 외곽도 꿈틀댔다. 그 무렵 뉴라이트 조직이 탄생했고 우파 매체가 앞다퉈 창간됐다. 뉴라이트와 우파 매체는 외연 확대, 세대교체를 실천하며 사상전 진지 역할을 했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이명박 당선자는 대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가야 한다. 이것이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박세일판’ 사상전이 대선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국정 화두로 채택된 것이다. 실패한 선진화가 보수의 부활을 이끈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 해도 보수의 치열한 내부 투쟁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후 보수세력은 선진화조차 못 받아들이는 풍토였냐고 반문하게 된다.

유례를 찾기 힘든 보수의 위기다. 상대도 동반 하락이 불가피해졌다. 여권은 공공연히 “우리가 실력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나. 후진 야당이 있는데”라고 한다. 사람에겐 저마다 치명적 향기와 치명적 독이 함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강한 보수와 강한 야당이, 강한 진보와 강한 여당을 만들게 마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은 보수 핵심 자산을 놓고 치열하게 싸웠던 ‘박근혜 한나라당’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세기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군림한 데는 보수당의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자유당의 윌리엄 글래드스턴이라는 맞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촛불이 만든 다원화·분권 정치가 양당제, 지역주의라는 낡은 유산을 다시 끌어올릴 태세다. 정치의 불행도 예고돼 있다. 그런데도 해묵은 색깔론을 덧칠하며 수구와 개혁조차 가르지 못하는 한국 보수. 언제까지 치명적인 독만 품고 있을 텐가.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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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기자분들이 지적을 하도 많이 해서 퇴직해도 아무 데나 바로 못 가요.”

지난 9월28일 열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 배석한 국토부 고위 관료가 한 말이다. 그는 이날 명예퇴직한 실장(1급)을 가리켜 “한동안 집에서 쉬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사실일까.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에서 받은 ‘2013~2017년 9월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재취업 현황’을 보면 76명이 산하기관과 이익단체에 재취업했다. 6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에 확인한 결과 지난달 국토부 퇴직 공직자 2명이 산하 공공기관과 대형 건설사 자회사에 재취업했다.

국토부 고위 공무원이 재취업한 곳은 산하기관뿐 아니라 SR, 이레일, 공항철도 같은 민자사업 기업도 있다. 이익단체는 더 많다. 교통투자평가협회, 한국골재협회, 자동차산업협회, 항공진흥협회 등 20곳도 넘는다.

공무원이 휴직하며 민간기업에서 경험을 쌓게 하는 ‘민간근무 휴직제’를 경제부처가 얼마나 이용했는지 취재하던 지난달 29일 국회를 통해 자료를 요청했다. 민간기업과 공무원의 유착 통로가 됐다는 지적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국토부만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하창훈 국토부 인사팀장은 지난 1일 “국정감사로 바빴고 상부의 결재도 받아야 하며 인사혁신처와 협의도 필요하다”고 했다. 전형필 국토부 운영지원과장은 이튿날 “국정감사 기간이 끝났는데 자료 요청에 급히 응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냐”고 했다.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국토부 고위 공직자 2명은 지난해 손해보험협회와 현대건설에서 1억원 넘게 받으며 일했다. 최근 국토부 내부에선 산하 한국도로공사 간부급 퇴직자들이 휴게소 사업을 독점한 소수 업체에 재취업했다는 올해 국감 지적을 쉬쉬하는 분위기도 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퇴직 공직자와 민간기업의 유착이 꼽히면서 재취업을 규제하는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다. 국토부는 세월호 교훈을 잊었는지 ‘내 사람’을 챙기는 시대착오적 온정주의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퇴직해도 아무 데나 못 간다’는 국토부 고위 관료의 말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경제부 |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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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예산안 심사가 본격 시작됐다. 언제나 그랬듯 올해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야당은 공무원 일자리 증원, 최저임금 지원, 사회간접자본(SOC) 삭감 등을 놓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이를 일부 언론은 ‘눈먼 나랏돈 새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회 심의가 시작된다’고 썼다.

예산안을 칭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 ‘나랏돈’이다. ‘나랏돈 국민 위해 푼다’, ‘나랏돈 마중물로 일자리 늘린다’, ‘사람 중심 소득주도 성장에 나랏돈 푼다’. 문재인 정부의 429조원짜리 첫 예산이 공개된 지난 8월, 상당수 언론은 예의 ‘나랏돈’이라는 용어를 썼다.

새 정부 예산안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꽤 고민했다. 경향신문이 정한 제목은 ‘시민으로부터 받은 세금을 시민에게 되돌려 준다’였다. 예산은 정부가 한 해 동안 쓸 돈이니까 ‘나라살림’이나 ‘나라곳간’은 맞다. 

그런데 예산 자체를 나랏돈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어폐가 있다. 나랏돈이라고 하면 국가소유의 돈으로 시민과는 상관없는 돈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벌어서 시민들에게 베푸는 돈이라면 맞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정부 재정은 경제주체인 개인과 기업이 낸 세금을 모아서 마련된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었을 때 소득세와 법인세를 낸다. 세금을 떼고 남은 돈으로 소비를 하면 부가가치세를 낸다. 그러고도 남은 돈이나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면 증여세나 상속세를 낸다. 집을 사면 취득세와 거래세를, 집을 갖고 있으면 보유세를, 팔 때 차익이 남는다면 양도소득세를 낸다. 이렇게 해서 정부가 내년에 걷어들일 국세 총액이 268조원이다. 시민과 기업이 잘못해 내는 벌금과 과태료 등 국세외수입과 각종 기금수입까지 합치면 내년 447조원의 총수입이 예상된다. 여기에 정부관료가 해외에 나가서 벌어들인 돈은 단 한 푼도 없다. 기업도 시민이 운영하는 것이고 보면 결국 모두가 시민의 돈이다. 정부는 이렇게 모은 돈을 내년에 쓰기로 했다. 그게 예산 429조원이다.

시민들은 429조원을 정부에 상납한 것이 아니다. 그저 위탁했을 뿐이다. 정부는 이 돈을 분배할 권리는 있지만 소유할 권리는 없다. 그래서 나라살림은 맞지만 나랏돈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아버지와 아들, 딸이 벌어온 돈을 어머니에게 맡겼다면 그 돈을 ‘가정살림’으로는 표현할 수 있지만 ‘어머니 돈’으로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시민들이 정부에 돈의 분배권을 주는 이유는 한국사회에 대한 정부의 정보력과 분석력이 개인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한국사회 어디에서 돈을 필요로 하는지, 어떻게 쓰면 더 가치가 있을 것인지를 안다고 시민들은 기대한다. 당연히 그 돈은 사사로이 쓰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박근혜 정부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얘기는 그래서 충격적이다. 특수활동비는 어디에 쓰는지 용처를 묻지 않는다. 시민들은 정부가 밝히기는 어렵지만, 좋은 일에 쓸 것이라 철석같이 믿고 국정원의 주머니에 꽂아줬다. 그런데 그 돈이 ‘문고리 3인방’을 거쳐 대통령의 주머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한다. 역대정부에서도 그랬다는 것은 변명이 안된다. 박근혜 정부는 쓸 데가 많다며 담뱃값을 올렸고, 연말정산 세액공제도 도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둑부터 줄였어야 했다.

박근혜 정부는 예산을 ‘나랏돈’이 아니라 ‘나라님 돈’으로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예산은 나랏돈이 아니라 시민의 돈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내 돈이다. 누가 대낮 노상에서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자기 주머니로 ‘인 마이 포켓’을 했다는 데 가만있을 사람은 없다. 나의 분노는 정당하다.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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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중국은 지금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과 경쟁하는 기업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어요. 인터넷은 국내가 아닌 전체 시장을 봐야 합니다.”

네이버 ‘총수’ 이해진 전 이사회 의장은 지난달 31일 이틀간의 국회 국정감사를 마친 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회사와 내가 부족했다’는 전제를 달고 한 말이었지만, 짧은 말에는 안팎의 지적을 대하는 이 전 의장의 본심이 녹아 있는 듯했다. “지금은 해외 기업과 대결해야 하니 지적보다 힘을 실어줄 때”란 것이다. 하루 종일 네이버 검색광고 폭리부터 자사 결제서비스에 대한 특혜, 웹 생태계 파괴 문제 등을 지적한 의원들은 맥이 빠지는 상황이 됐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글로벌 투자책임자가 31일 오후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 감사에서 증언대에 서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전 의장의 발언은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해외를 상대로 맞설 힘을 달라’고 했던 기존 재벌의 구태의연한 논리와 닮았다. 삼성 역시 박근혜 정부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익을 지키는 것”이라며 애국심 마케팅을 벌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최순실 게이트와 연결돼 있어 시민의 공분을 불렀다.

재벌의 애국심 마케팅은 구시대의 유물이 돼 가고 있는데, 기존 재벌과 다르다던 네이버는 구시대의 핑계를 또다시 들고나온 것이다.

네이버가 해외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애국을 할 수 있는지도 미지수다. 네이버의 해외 진출 성공작이기도 한 계열사 라인의 자산총계는 2조6000억원대인데 일본 현지법인이다. 라인은 국내 법인으로 잡히지 않아 네이버가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위기 때마다 한국 기업임을 홍보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지법인 형태로 자산을 해외에 쌓으며 국내 기여를 늘리지 않는 기존 재벌의 행태가 연상된다.

무엇보다 국내에서의 불공정 문제 해소를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와 양립하기 힘든 것인 양 생각하는 틀이 문제다. 국내에서 자사의 행태로 피해를 받는 다른 경제주체를 살피는 것도 중요한 애국이고, 성장 못지않은 기업의 중요한 가치다. 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회사를 키우는 게 먼저이고, 국민 경제에 기여하겠다고 주장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 전 의장은 국감에서 ‘엔지니어이기에 사회적 문제는 잘 알지 못한다’고 해명했고,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네이버가 미래의 산업이라 장기적으로 신중히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총수가 엔지니어라고 해서 사회적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미래 산업이라고 대중에게 당장의 피해를 감내하라고 할 수는 없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말한 대로 기술의 존재 이유는 ‘인간’에 있다. 해외 진출 등 허울 좋은 핑계를 대기 전에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그것부터 살펴보는 것이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기본적 도리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네이버는 ‘미래의 흉기’ ‘외세보다 무서운 애국자’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박용하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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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에게 물었다.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의 92%가 남성이며 작년에 추가된 환자도 남성이 1002명, 여성이 32명인데 감염경로 분석은 이성 간 성접촉 때문이 54%, 동성 간 성접촉이 46%로 돼 있다. 이건 기초조사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 질병관리본부 보고서를 봐도 정확하게 동성 간 접촉으로 전파된다고 돼 있으며 동성애를 터부시하는 관행 때문에 감염경로 조사에서 동성애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든다고 돼 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왜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나.”

정 본부장이 답했다. “감염경로에 대해서는 이성 간 접촉과 동성 간 접촉을 구분해서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에이즈는 성병이며, 안전하지 않은 성 접촉은 모두 위험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성 의원이 다시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 에이즈는 정말 위험한 질병이다.”

정 본부장이 다시 대답했다. “그렇지만 에이즈는 콘돔 사용으로 예방 가능한 성병인 것도 맞다.”

성 의원의 말은 맞다. 에이즈는 위험한 질병이며 동성 간 성접촉은 이성 간 성접촉과 함께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의 주요한 경로로 꼽힌다. 그러나 정 본부장의 말도 맞다. 에이즈는 콘돔 사용으로 예방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740명이었던 신규 에이즈 환자는 지난해 1062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10대 환자 수는 2007년 99명에서 지난해 417명으로 10년간 약 4.2배나 늘었다. 같은 기간 20대 환자도 2.8배 증가했다.

에이즈 환자 증가는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당국이 원인을 파악해 대처해야 하는 문제가 맞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동성 간 성접촉이 주요 감염경로이니 이를 막아야 할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엄연히 불법인 이성 간 성매매도 완벽하게 막지 못하는데 법에 저촉되지도 않는 동성 간 성접촉을 막을 방법이 있을 리 없다.

정 본부장이 합법적이며 완벽에 가까운 해결책을 제시해줬다. 콘돔을 쓰게 하면 된다.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그들의 연령이 10대든 20대든 파트너에 대한 100% 신뢰가 없으면 성관계 때 콘돔을 쓰면 된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는 성관계 과정에서 생기지 않는다. 다른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염될 뿐이다. 인플루엔자처럼 공기를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옮지도 않는다.

최근 들어서는 ‘죽음의 병’이란 악명도 조금씩 벗고 있다. 대한에이즈예방협회에 따르면 이미 HIV를 강력하게 억제할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되어 있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HIV에 감염되었어도 치료를 잘 받고 약을 잘 먹으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20살을 기준으로 치료를 받는 HIV 감염인의 기대수명은 일반 인구의 기대수명에 가까운 70대 초반이란 연구결과도 2013년에 나왔다.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하면 보건당국은 외출 뒤 손발을 잘 씻는 등 개인 위생에 더 신경쓰라고 홍보한다. 야생진드기로 인한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사망자가 발생하면 야외활동 시 긴팔·긴바지를 입고 돗자리를 쓰라고 권유한다. 아예 외출을 못하게 하면 더 확실하게 예방이 되겠지만, 그건 불가능하니 더 현실적인 방법을 찾아 알려준다.

에이즈라 해도 마찬가지다. 다른 잣대를 들이댈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왜 자꾸 에이즈와 동성애를 같이 묶어서 언급하는 것일까. 에이즈에 대한 공포로 동성애에서 ‘탈출’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일까. 말리고 싶다. 지금은 2017년이다.

<정책사회부 홍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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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여름 부산에서 문재인 변호사를 만났다. 당시 나는 다니던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전업 작가로 논픽션을 쓰고 있었다. 헌법재판소 20여년 역사를 기록한 <헌법재판소, 한국현대사를 말하다>를 쓰면서 헌법재판관과 주요사건 당사자를 인터뷰했다. 이 가운데 문 변호사도 있었다. 그해 7월20일 오전 10시20분부터 오후 3시5분까지 법무법인 부산에서 그와 마주했다. 사전에 보낸 질문에 대한 깊고 상세한 답변을 들었다.

질문들 가운데 지금 논란인 헌재소장 임기문제가 있었다. 2006년 8월 노무현 대통령은 헌재소장에 재판관 임기 3년째이던 전효숙 후보자를 지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전 후보자는 재판관직 사표를 냈다. 청와대가 새 헌재소장의 임기가 6년이기를 원한 때문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일개 (전해철) 민정수석의 전화를 받고 사표를 내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며 임명동의를 거부하고, 결국 11월에 노무현 대통령이 지명을 철회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전효숙 후보자 지명 철회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전까지 역대 헌재소장 3명의 임기가 모두 6년이라는) 과거의 예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장에게 6년 임기가 부여될 수 없었다. 재판관 상태에서 소장으로 임명하면 3년 소장이 되는데 헌재 위상 면에서도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중략) 결코 승복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게 계속 국정 전반을 발목 잡게 되어 버리니까, 나중에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명 철회를 했다.”

지난 5월 문재인 변호사는 대통령에 당선해 취임했고, 새 헌재소장에 임기 5년째인 김이수 재판관을 지명했다. 헌재소장 임기는 재판관 잔여 임기인 1년3개월이었다. 나는 헌재소장 임기에 관한 문재인 대통령 입장이 달라진 게 아닌가 생각했다. 추측이 맞다면 이유는 전임 박한철 헌재소장이 잔여 임기 3년10개월만 채운 선례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임기 6년이 옳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헌법 112조1항에 따라 재판관을 연임시키면 헌재소장 임기가 거의 6년이 된다. 1953년 3월생인 김 재판관은 2023년 3월 정년을 맞는다.

하지만 김이수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확인할 길이 없어졌다. 그러다 추석 연휴 이후 헌재소장 대행체제 논란 당시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헌재소장 임기의 불확실성은 그간 계속 문제되어 왔고,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중 헌재소장을 임명할 경우 다시 소장의 임기문제가 불거질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차제에 헌재소장의 임기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헌재소장 임기는 6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이런 설명은 적잖은 공격을 받는다. 대통령의 헌재소장 임명권과 국회의 헌재법 개정권은 연동하지 못한다는 반론, 헌재소장 임기를 헌법이 아닌 헌재법 개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 등이다. 근본적으로 부당한 위계구조인 대법원의 대법원장-대법관 체제와 달리, 헌재는 재판관 9명 지위가 동등한 가운데 누군가 헌재소장을 더하는 식이라 헌재소장 임기 6년을 따로 정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 이론과 실무에 누구보다 정통하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신행정수도법 헌법소원 등 수많은 헌법소송에도 관여했다. 국정 경험까지 풍부한 문 대통령이니 헌재소장 임기 6년 주장에 합리적 이유가 있을 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것이 헌재소장 공석 연장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더구나 헌재소장 후보자들이 낙마한 근본 원인은 임기문제가 아닌 보수야당의 맹목적 정치 공세다. 그해 여름 인터뷰에서 그 역시 말했다. “야당이 (중략) 청와대 결정이라 좌절시키겠다고 맹목적으로 덤빈 것”이라고.

이러는 동안 헌법재판소만 정치에 시달리면서 황폐화하고 있다. 그래서 슬픈 헌재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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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가 13일 댄 베이커 수석편집국장 이름으로 소셜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자사 기자들의 트위터·페이스북 사용 안내다. 핵심 사항 첫째는 다음과 같다. “우리 기자들은 당파적 의견을 표현하거나 정치적 관점을 고취하고,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뉴욕타임스의 명성을 깎아먹는 어떠한 공격적인 코멘트를 해선 안된다. 뉴욕타임스가 객관적으로 다루려는 이슈를 두고 한쪽 편을 드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도 특별히 주의해야 한다.”

새삼스러운 내용은 아니다. 언론인 E P 데이비스가 “기자들은 개인 의견이나 언론사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예외적인 경우를 빼곤 불필요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을 한 게 1884년이다. ‘기자 개인’ 의견 표명 자제는 저널리즘의 오랜 원칙 중 하나다.

소셜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디지털 저널리즘’에서 기자와 소셜미디어는 논쟁적인 사안이다. 언론사들은 독려하든가 자제시키든가, 또는 둘을 조합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왔다. 뉴욕타임스가 ‘제한 사항’을 늘린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건 왜일까? 가이드라인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우리 기자들과 에디터들의 트윗은, 비록 트럼프 담당이 아니더라도, 뉴욕타임스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썼다. 베이커가 가이드라인 발표 전날 조지워싱턴대 포럼에서 한 발언에선 더 구체적인 이유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베이커가 “뉴욕타임스 기자는 그들이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절대로 소셜미디어에 말해서는 안된다. 신문의 (비판 보도) 동기가 대통령에 대한 ‘벤데타’(vendetta·보복)가 아니라 ‘건전한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대중에게 분명히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맹렬한 비판 보도’를 이어가는 뉴욕타임스는 몇몇 기자들의 소셜미디어 활동이 팩트에 근거한 비판 보도나 불편부당 원칙에 흠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뉴욕타임스를 ‘가짜뉴스’를 만드는 곳이라고 여러 차례 비난한 트럼프에게 빌미를 주지 않으려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이드라인은 뉴미디어와 저널리즘, 표현 자유, 독자 소통, 권력 비판, 진보·보수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다. 보수 쪽은 공격했다. 미디어리서치 센터 부회장 댄 게이너는 “트위터가 생긴 지 10년이 되었는데 뉴욕타임스는 이제야 직원들이 멍청하고 좌파적인 것들을 트윗한다는 걸 깨달았나”라고 했다. 보수매체 폭스뉴스가 대표로 지목한 기자는 백악관 담당 글렌 트러시다. 이 매체가 문제 삼은 트윗 하나는 “당신은 인종주의자, 반유태주의자, 백인우월주의자와 거리 두기를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상관과 계속 일할 것인가”다.

‘편향’과 ‘정치 의견’의 기준이 무엇인지 되묻는 의견이 나온다. 진보 성향의 트위터 이용자는 “기후변화, 편견, 불법이민자 말살에 어떻게 ‘한쪽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나”라며 비판한다.

나는 KBS·MBC 노조원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찬성한다. 둘 다 ‘정치 의견’이다. 한국 사회 한쪽에선 ‘편향’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칼럼에 밝히는 것은 괜찮고, SNS에 글을 올리면 안되는 것일까? 한편으론, SNS를 ‘눈팅’만 하고 글을 올리지 않게 된 건 내 의견과 경향신문의 입장을 동일시하는 시선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경향신문 소속이라 팔로한 이들에게 ‘SNS 글은 개인 의견이니 회사 입장과는 무관합니다’라며 무작정 편의를 봐달라고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소속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SNS를 한다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다.

SNS에 다시 글을 올린다면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의 16가지 핵심 사항 중 다음을 새기려 한다. “소셜미디어 독자들을 항상 존중하라. 독자의 기사·포스트에 관한 질문이나 비판에 응답하려 한다면, 사려 깊게 하라.”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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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SNS, 기자

청와대는 1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1박2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는 전날 백악관의 트럼프 대통령 아시아 순방 일정 발표 때 이미 결정된 내용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백악관 발표 몇시간 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을 공지했을 때도 “한·미 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확한 도착 및 출발 일정을 계속 협의 중”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보안 브리핑을 한 후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정부는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일정이 2박3일~3박4일로 예상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도착 시간을 7일 오전에서 6일 저녁으로 앞당겨줄 것을 요구해왔다. 방한 일정이 1박2일에 그치면 일본과 비교된다는 이유였다.

백악관 발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숙박 일수를 늘리는 데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모양새나 의전이 외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들르지 않는다면 모를까 한국보다 일본에 더 오래 머무른다고 해서 미국이 한·미동맹에 부여하는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모양새가 좋다고 실질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의전, 모양새에 신경을 쓰며 귀중한 외교적 자산을 트럼프 숙박 일수 늘리기에 쏟은 정부도 실질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이른 시점인 취임 50일 이전 미국을 방문한 것에 야단스럽게 공고한 한·미동맹 의미를 부여한 것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당시 외교안보 라인이 ‘신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다자외교 무대(G20)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며 강하게 주장해 문 대통령은 정책 기조나 전략은 물론, 외교안보 인선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치밀한 준비 없이 정상 방미를 했다. 그 결과 미·일의 의도대로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구도가 강화됐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않았던가.

<정치부 |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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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세기에 출산을 경험했다. 출산휴가 두 달. 육아휴직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도 없던 때였다. 요즘이야 출산 1~2주 전부터 휴가에 돌입하기도 하지만 그땐 출근길에 양수가 터져서야 병원으로 실려가는 경우도 꽤 있었다. 두 달밖에 안되는 휴가 기간에서 하루도 허투루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 역시 출산 전날까지 출근을 했고, 뒤집기도 못하는 아이를 두고 회사로 복귀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너무 야만적인 환경이었네요.” “출산하고 고작 두 달 만에 몸이 정상적으로 돌아오나요?” 동정과 놀라움으로 질문을 던지는 여자 후배들 앞에서 나를 포함한 ‘20세기 출산 경험자’들은 무용담을 늘어놓듯 떠들어댔다. 사무실에서 담배도 마구 피워대던 시절이었다는 둥, 유세 떤다는 이야기 듣기 싫어 야근도 다 했다는 둥. 기업의 한 간부는 “ ‘임신=퇴사’였던 때라 6개월까지 임신 사실을 숨겼다”고 해서 듣는 이들을 기함하게 했다.

여러 직종의 20~40대 여성들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모인 자리. 하지만 몇몇이 침을 튀기는 동안 저들의 눈빛은 “그래서요?”라고 되묻는 듯했다. 어쩔거나, 이 싸한 분위기. 예전에 밭 매던 호미로 아이 탯줄 끊고 마저 밭을 맸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느꼈던 시큰둥함. 딱 그것이었다. 그 찜찜함이 느낌이 아닌 ‘실화’라는 것은 며칠 뒤 40대끼리 다시 모인 자리에서 확인됐다. “불편했대요. 자기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나 뭐라나.” “우리야 물어보니 옛날이야기를 한 것뿐인데, 좀 어이없고 당황스럽고 그러네요. 예전 상사들에 비하면 우린 정말 괜찮은 편 아닌가요.” “앞으로는 그저 묻는 말에 대답만, 그것도 단답형으로.”

맞장구는 쳤지만 절감했다. 멘토고 뭐고 간에 그냥 우린 ‘꼰대’였던 거다. 조언이나 연륜을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고 착각했을 뿐, 그저 내면화된 꼰대 근성이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회사뿐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다르지 않으냐”며 확인받고 싶어했고 딸아이는 “도대체 그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거냐”고 되물었다. 난 그럴 때마다 “너희들이 밀레니얼 세대면 난 ‘영포티(young forty)’다”라고 응수했다.

역사상 가장 젊다는 40대.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의 문화자본을 충만히 누리며 자란 나이든 X세대들. 그때 데뷔했던 이병헌, 정우성, 박진영이 여전히 대중문화를 주름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린 위 세대와는 다르고 젊은 세대와는 통한다고 자족했다. 하지만 ‘영포티’를 다룬 기사에 붙어있던 “그래 봤자 나잇값 못하는 꼰대”라는 댓글이 아프게 와닿기 시작한 것은 얼마 전부터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사안이나 뉴스,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해 여혐 문제를 지적하거나 젠더감수성의 부재를 문제 삼는 논의 앞에 말문이 막히는 사례가 잦아졌기 때문이다. 나름 상식적으로 산다고 생각했지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조차 인지할 수 없는 사안들이 늘어나면서 그저 막막했다. “선배, 이건 정말 문제 아닌가요”라고 심각하게 지적하는 후배 앞에서 “으응, 그러게” 하고 얼버무린 뒤 지적의 핵심을 파악하려 애쓰는 딱한 내 모습은 내게 존재의 의미와 정체성을 매섭게 묻고 있었다.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입을 닫는 것, 그리고 머리와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는 명제가 천명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을 살던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고 지혜가 쌓여도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절로 깨치지 못한다. 자신을 내려놓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며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책을 사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른 글을 뒤적이다 눈에 번쩍 뜨이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한 온라인 콘텐츠 회사에서 발간한 이 유료 콘텐츠를 덥석 결제했다. ‘요즘 애들의 사적인 생각들’, 궁금하지 않은가.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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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역사가 온통 부정부패와 친일 독재로 점철된 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북한 이탈주민 학생들마저 ‘김일성 주체사상을 이렇게 자세히 배울 줄은 몰랐다’고 할 정도다.”

2015년 11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위한 행정예고 기간에 ‘국정화 찬성 의견’으로 제출된 내용이다.

의견서의 작성자는 ‘이완용’으로, 주소는 ‘대한제국 경성부 조선총독부’다. 전화번호는 경술국치일 1910년 8월29일을 딴 ‘010-1910-0829’였다. 찬성 의견을 올린 사람 중에는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에 사는 ‘박정희’와 ‘박근혜’도 있었다.

또 찬성 의견서 작성자 이름에는 ‘대통령말씀대로하는게맞습니다’와 ‘뻘짓’ ‘미친짓’ 등도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 정부가 국정화 찬성 여론을 조작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의견서를 지어낸 이들도 잘못했지만, 더 큰 문제는 교육부 공무원들이 이런 찬성 의견들을 ‘심사’해놓고도 정상적인 의견서로 분류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육부는 동일한 기관과 단체, 개인의 서명은 1건으로 처리했다고 했으나, 하나의 주소로 찬성 의견을 낸 1613장을 ‘정상 의견서’로 분류했다.

교육부는 의견서들을 살펴보고 유효심사를 했다고 했다. 그런데도 ‘이완용’과 ‘박정희’를 버젓이 두었다면 직무유기다. 당시 찬성 의견서는 그대로 둔 채 반대 의견서만 집중적으로 걸러냈음을 의심하게 한다. 실제 걸러진 반대 의견서는 걸러진 찬성 의견서의 수십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울 여의도의 한 인쇄소에서 찬성 의견서 한 트럭 분량이 무더기로 ‘제작’돼 제출된 일명 ‘차떼기 제출 사건’이 불거졌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사실무근이라며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이제 새 정부가 들어서자 ‘정부 정책대로 할 수밖에 없는 공무원이 무슨 책임이 있겠느냐’고 말한다. ‘영혼 없는 공무원’임을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달 출범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는 ‘차떼기 제출 사건’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검찰은 이르면 16일 사건을 일선 지방검찰청에 보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이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김경학 | 정책사회부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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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기자의 숙명이겠지만 늘 거대담론에 둘러싸여 산다. 명절은 이 팍팍한 늪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일상의 소박한 결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예외였다. 이명박(MB) 정부의 ‘적폐’라는 거대담론에 단단히 포위된 채 보내야 했다.

군까지 동원된 정치개입,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전직 대통령 비하 청부…. 끝도 없이 터져나오는 비리도 모자라 국가기관이 보수단체와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다는 정황마저 불거졌다. 권력이란 게 아무리 자기 극대화와 영속성이 본질이라지만, 그래서 적과도 거래하는 진흙탕 싸움도 불사한다지만 정치적 부관참시까지 하다니. <징비록>과 <난중일기>가 시사하듯 왕조·식민지 지배세력들도 품격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게 우리 역사였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때도 반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항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지 않았고 독재의 실체적 진실이라도 알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역사교과서, 테러방지법 등을 동원해 체제를 바꾸려 했던 신념 보수이기라도 했다.

그렇다면 온갖 적폐로 통칭되는 ‘MB의 시간’은 누구를 위해 존재한 것인가. ‘MB의 시간’은 도대체 무엇이었나.

그 시절, 우리는 국가를 잃었다. ‘님을 위한 행진곡’ 중단으로 광주를 뺏겼고 5월 정신을 뺏겼다. 건국절 논란은 뿌리 없는 국가 만들기 시도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할 공무원들을 민간인 사찰, 댓글 공작이라는 사적 이익에 동원하면서 공권력을 무너뜨렸다. MB 정권의 ‘국가 무용론’은 인수위 시절, 임기 말 노무현 정부와 ‘큰 정부, 작은 정부’ 싸움을 벌였을 때부터 예견됐던 건지도 모르겠다. 한 소설가는 “국가는 국민의 마음을 닮게 마련이다. 이토록 국민의 마음을 배반하고 국가를 무력하게 한 지도자가 있었던가 절망했던 때”라고 돌아봤다.

시민의 가치가 송두리째 짓밟힌 세월이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를 외쳤던 시민들은 생명권과 검역주권을 박탈당했다. 공영방송 시스템을 흔들고 수많은 언론인을 해고하고 마스크 금지법, 댓글 처벌법으로 표현의 자유를 가뒀다. 균형발전의 싹을 잘라 분권을 향해 나아가던 지역의 발걸음을 막았다. 한 지인은 “가슴 밑바닥까지 온통 불신밖에 없었다. 사회의 진보가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진보를 믿어야 할지조차 의심했던 때”라고 했다.

천민자본주의가 지배했던 5년이었다. 부실 자원외교는 에너지 공기업에 조 단위가 넘는 부채를 안겼다.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시작한 4대강 사업은 투기세력의 배만 불렸다. 덤핑 낙찰과 납품 비리에 얼룩진 원전 비리는 막대한 손실로 되돌아왔다. 국가 운영을 이익 중심의 비즈니스로 인식한 ‘장사치 보수’였다. 이로인한 상실감은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의 말로 대신한다. “대규모 부패는 청렴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파괴한다. 신뢰가 파괴되면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냉소와 체념으로 힘겨운 삶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MB의 시간’을 기억하는 방법이 온통 괴물의 악행을 성토하는 것뿐이면 안된다는 자성도 든다. 이런 세월을 지나고도 진보개혁 진영은 2012년 대선에서 패배했다. 정치권이 성찰하고 혁신하지 않는 동안 촛불이 세상을 일으켜 세웠다. 한편에선, 보수 지지층 결집 징후를 전하는 추석 민심도 적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든 짐을 지고 인당수에 빠진만큼(구속) 보수 정치권에 대한 실망을 거두자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역할을 불신하는 미국에서도 ‘정부는 국민을 섬긴다’는 공민학 제1의 원칙에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보수층이 앞장서 ‘MB의 시간’을 성찰해야 하는 이유일 테다.

적국(미국)조차 ‘위대한 혁명가’로 인정했던 체 게바라의 50주기에,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 취소를 모의했던 ‘MB의 시간’을 돌아봐야 하는 지금. 참으로 부끄럽고 괴로운 계절을 지나고 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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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10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긴 추석 연휴, 영화관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영화는 <남한산성>이다. <남한산성>은 청이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에 불만을 품고 공격해온 병자호란(1636년)이 배경이다. 강화도로 채 피란 가지 못한 인조는 혹한의 남한산성에서 버티지만 결국 47일 만에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영화는 항복할 것이냐, 항전할 것이냐를 놓고 설전을 벌이는 주화파 최명길과 척화파 김상헌을 주목한다.

영화 <남한산성> 스틸 이미지

<남한산성>은 마음 편한 영화가 아니다.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패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139분간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마음은 다들 비슷했을 것이다. 선조들의 무능함이 안타깝다가도 화가 나고, 그랬다가 한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저렇게 시대 흐름을 못 읽었느냐고. 저무는 명과 떠오르는 청이라면 당연히 청을 따랐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깟 명분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김상헌의 척화를 이해는 하지만, 최명길의 화친이 더 현명했다고.

이미 역사의 진행 결과를 알고 있는 후대로서는 이렇게 말하기 쉽다. 하지만 당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똑같은 판단을 할 수 있었을까. 결과를 보고 앞선 선택을 평가하는 것을 행동경제학에서는 ‘사후확신편향’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후견지명(後見之明)’이다.

그냥 역사 영화라면 킬링타임한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지금 한반도 상황이 381년 전과 빼박도록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가 명이 저물고, 청이 떠오르는 명청 교체기였다면 지금은 미국이 비틀거리고 중국이 무섭게 부상하는 미·중 교체기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5년 즈음에는 중국이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와 있다. 지금 20대가 40대 후반이 될 즈음이면 중국이 패권국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선택이 쉽지 않다. 한국에 미국은 6·25전쟁 때 같이 피를 흘린 혈맹이다. 명분과 의리로 보자면 미국을 외면하기 힘들다. 언론과 사상,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의 절차적 민주주의와 서구적 합리성은 중국을 앞선다. 중국의 공산당 전체주의는 앞선 모델이 아니다. 명과의 의리를 앞세우며 오랑캐국 청을 받들 수 없다고 하던 척화론자들의 고민과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문제는 선택의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한반도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반발하고 있다. 한·미는 북한 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시스템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미국이 중국 본토를 들여다보기 위해 사드를 설치했다고 믿는다. 중국의 경제보복은 이미 노골화됐다. 롯데가 쫓겨나오고 현대차도 어렵다. 중국인 관광객의 한국 방문은 끊긴 지 오래다. 미래권력 중국을 달래야 하는데, 그렇다고 혈맹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힘들다. 한·미동맹은 현실이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다시 17세기 초로 되돌아가 보자. 역사가들은 명과 후금(청) 사이에서 실용외교를 편 광해군을 주목한다. 광해군은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한 파병을 요청하자 고민 끝에 응한다. 하지만 조선군은 후금과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고, 조선의 부득이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양해를 얻어낸다.

사드 문제도 큰 틀에서는 성격이 달라 보이지 않는다. 경제와 안보, 모두 중요한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사드 배치에 응하면서도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실용적 묘책이 필요하다.

어렵더라도 균형외교를 펴면서 미·중 양국을 달래고 설득하고, 양해를 구해야 한다. 자칫 어느 한쪽 편을 과도하게 드는 순간 또 다른 국난에 봉착할 수 있다. 국난은 총칼이 아닌 경제적 수단만으로도 충분히 고통스러울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현명한 외교정책을 기대한다.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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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사태가 반 년을 훌쩍 넘겼다. 중국은 지난해 여름 사드 도입이 결정되기 전부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지만, 노골적인 ‘혐한’ 움직임이 본격화된 것은 군이 롯데그룹의 성주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사용키로 확정한 올해 2월말부터였다.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내준 롯데가 보복을 당하는 데는 채 일주일이 걸리지 않았다. 3월4일 하루 만에 4곳의 영업장이 동시에 영업정지를 당했다. 이를 시작으로 중국 내 112개 롯데마트 점포 가운데 80%에 육박하는 87곳이 지난 6개월간 문을 열지 못했다. 1조원이 넘는 손실을 본 롯데는 지난달 중국 철수를 결정했다.

이보다 이틀 앞서 중국 국가여유국은 베이징 일대 여행사를 불러모았다. 그리고 10여일 뒤인 15일부터 중국 여행사들의 홈페이지에서 한국 여행상품이 자취를 감췄다. 명동과 강남 거리를 가득 채웠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도 사라졌다. 자연 유커 특수에 상당부분 기대왔던 요식업·숙박업·여행업·유통업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매년 20만명 가까운 유커가 한국을 찾았던 중국의 국경절 연휴(10월1~8일)에 올해는 그 절반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혐한 분위기로 공연가와 연예인들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불매운동의 타깃이 된 현대자동차는 판매량이 반토막 났다. 지난 8월까지 현대·기아차 중국 내 누적 판매량(57만6974대)은 지난해 같은 기간(104만3496대)보다 44.7%나 줄었다.

이미 ‘다 아는’ 이야기를 이렇게 다시 풀어쓰는 이유는 이 ‘다 아는’ 이야기를 혹시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이 돼서다.

노영민 주중 대사가 얼마 전 기자들을 만나 “사드 사태를 보는 첫 번째 측면은 우리 기업 내부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기업이 있고, 오히려 중국 수출이 증가하는 기업도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하나의 변수일 뿐 중국에서 철수하거나 부진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그 기업들의 경쟁력에 문제가 있어서라는 논리다. 노 대사는 다음날에도 “이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했는데 사드와 아무 관계가 없다”면서 “롯데의 경우도 대중국 투자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동주 회장은 롯데의 대중국 투자가 실패했다는 이유를 걸어 신동빈 롯데 회장을 공격한 것 아닌가”라고 부연했다.

이마트의 철수가 사드와 관계가 없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면서 은근슬쩍 롯데의 중국 철수를 온전히 롯데 책임인 양 끼워넣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경영권 분쟁에서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등장했던 일방의 논리를 인용하기도 했다.

사드로 피해를 본 기업의 경우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도 놀랍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투자 실패’를 운운하며 기업 흠집 내기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사드 정국하에 중국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주중 대사의 발언이다.

발언이 가리키는 목표 지점은 분명하다. ‘전부 정부 책임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노 대사의 소신인지 정부 안에서 공유된 공식 입장인지는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은 중국의 사드 보복과 관련해 우리 정부는 사실상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아 왔다는 점이다. 피해 기업에 돈을 ‘빌려’ 주고 세금을 유예해 주는 정도가 지금껏 대책의 전부였다. 재계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사드 문제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나 박근혜 정부나 똑같이 무능한 정부일 뿐이다.

사드 해법이 국제정치나 복잡한 역내 관계와 맞물린 난제임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래서 국내의 누군가를 비난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누군가 책임자를 찾아야 한다면 그 첫 번째는 정부여야 한다. 적어도 이번 사드 정국에서 정부가 누군가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전략적 모호성’으로 사드 문제를 해결할 ‘복안’이 있다고 장담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산업부 | 이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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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말로는 못할 것이 없다. “우리 국문과 교수들이 소설을 안 써서 그렇지, 쓰면 연수씨보다 훨씬 잘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소설가 김연수에게 어느 국문학과 교수가 했다는 말이다. 인터뷰집에서 김연수는 써야만 쓰는 것이라고 했다.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은 간절함인데, 그 간절함(은) 반복적인 행동으로 나오는 일이겠죠.” 그리고 “재능은 큰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서른 살까지 산다면 결정적이겠지만, 대부분은 오래 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무의미해지죠”라고 했다.

상상력조차도 꾸준함에서 나온다고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말했다. 1982년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리고 있는 그이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여 뛰어간다. 장편소설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속 이어가는 것 리듬을 끊지 않는 것. 이것이 장기적인 작업에서는 중요하다.” 무라카미는 에세이를 쓰는 이유도 비슷하게 설명한다. “나는 글자로 써보지 않으면 어떤 사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누구라도 반복하지 않으면 프로가 되지 못한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2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은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한지 31일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은 후보자로 발표되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31년5개월 동안 법정에서 당사자들과 호흡하며 재판만 해온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수준인지, 어떤 모습인지 이번에 보여드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두 가지 속내를 전달하고 싶었을 테다. 법원행정처 경험이 없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 평생을 재판만 해온 95% 판사들에 대한 응원이다. 이 말에는 사실 이유가 있다. 재판을 잘하려면 재판을 오래 해야 한다는 당연한 명제가 법원에서는 부정되어 왔기 때문이다.

김명수 후보자가 발표되자 행정처에서 일한 전·현직 판사들은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기자를 만나서도 스스럼없이 후보자의 경력을 깔보았고, 사고를 치고 법복을 벗은 처지에 사법부의 미래를 개탄했다. “(청와대가) 사법부를 행정조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가장 혁명적인 조치.” “도대체 법원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행정처 출신들은 스스로도 이렇게 본다. “우리 행정처 판사들이 재판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당신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행정처 출신 판사 가운데 재판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령 강일원 헌법재판관의 재판은 폭포가 떨어지듯 정확하고 신속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이 무난하게 끝난 것도 그의 공이다. 또 다른 행정처 출신인 특허법원 김환수 수석부장판사 재판은 사람의 마음부터 어루만진다. 영어로 심리를 주재하는 실력파이지만 당사자의 긴 얘기를 마음으로 듣는 겸손한 판사다. 무람하지만 내 주례 선생인 김앤장 변호사도 행정처 출신의 그런 판사였다.

하지만 몇몇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해서, 일반적인 현상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재판을 오래 하지 않았어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다. 오히려 이 판사들이 재판에만 집중했다면 더 좋은 재판을 했을 테다. 사법시험에 붙은 판사들의 능력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재판을 오래 한 사람이 잘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도 사법관료들은 “하급심을 아무리 오래 해도 대법원 재판은 다르다. 미국에서도 곧바로 대법원장이 되지만 종신제라 다르다”며 버틴다.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가 걸작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을 내놓은 게 일흔이 넘어서다. 여든아홉에 임종을 앞두고 그는 “하늘이 내게 수명을 다섯 해 더 준다면, 진정한 화공이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했다. 유럽까지 뒤흔든 천하의 호쿠사이도 이렇다. 물감이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재판은 죽을 때까지 해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25일 업무를 시작한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주권자인 국민이 여섯 해를 주었다. 이 시간 동안 약속을 지켜야 한다.

31년 동안 재판만 한 사람의 실력을 보여줄 때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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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저출산 극복 의지가 남다른 것처럼 보였다.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 장·차관이 지난 18일 서울 구로구청 내 사랑채움어린이집을 ‘우르르’ 방문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아이들에게 동화책까지 읽어줬다. 그러면서 “저출산 문제는 범정부적으로 다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을 접한 소아암·희귀난치병 환아 가족들은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이들은 한달 전 김 부총리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백혈병, 뇌종양 등을 앓아 항암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아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주로 화상을 통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시설이 열악하다. 국공립학교를 설립해 아이들이 걱정 없이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 부모들의 바람이다. 환아 부모들은 김 부총리를 만나 이런저런 어려움을 전달하고 싶어 한다.

소아암·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초·중·고 학생 부모 모임인 ‘전국건강장애부모회’는 부총리 측에 공문도 보냈다. 사석에서 이들의 사연을 전해 들은 김 부총리는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만남이 쉽게 성사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재부에서 돌아온 답변은 “일정이 도저히 안된다”였다. 그리고 더 이상 연락도 없다고 한다.

김 부총리는 개인 페이스북에 글을 자주 올리고 있다. 자신이 소장했던 책을 선착순 접수를 받아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SNS에 글 쓸 시간은 있으면서 소외받는 환아 부모를 만날 시간은 없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태어난 아이조차 제대로 돌봐주지 못하는데 어떻게 정부를 믿고 아이를 더 낳을 수 있을까.

기재부는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범부처 차원의 총력 대응에 나선다”고 했지만 아직 멀었다.

<박병률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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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신설하는 문제를 놓고 큰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특수학교 설립을 결정했지만 해당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여기에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같은 자리에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주장하면서 갈등은 더 커졌다.

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특수학교 먼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논란’이란 단어를 쓰긴 했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여론은 일방적으로 흐르고 있다. 온라인 기사 등에 달린 댓글로만 보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은 ‘집값에 미친 사람들’일 뿐이다. 단지 집값 하락을 염려해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이 이웃으로 자리잡는 것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 뿐일까. 사실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판단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장애인 학교 건립을 밀어붙여서는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그 학교를 매일 다녀야 할 장애학생과 부모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다.

관련 기사를 보다 서울 중곡동에 있는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생각났다. ‘센터’라는 ‘폼나는’ 이름을 달아 새로 짓기 전에는 ‘국립서울(정신)병원’으로 더 잘 알려졌던 곳이다. 특수학교와는 비교가 안되는 ‘혐오시설’이기도 했다.

국립서울병원은 2002년까지 타지역으로 이전이 추진됐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해당 지자체도 원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현재 자리잡고 있는 지역에서도 내치려는 시설을 다른 지역이 달가워할리가 없었다.

2006년부터는 ‘재건축’이 추진됐다. 현재 있는 자리에 정신병원을 더 크게 지으려 하자 주민들은 다시 난리가 났다. 주민들은 정신질환 치료에는 도심이 아닌 자연이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란 소리였다. 병원 때문에 집값이 하락한다는 말은 그때도 나왔다. 복지부와 병원 측은 ‘국가 땅에, 지금 병원이 있는 곳에 다시 짓는데 주민들이 왜 반대하냐’고 반박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거쳐 국립서울병원은 지난해 3월 국립정신건강센터로 개편해 문을 열었다. 재건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 10여년만이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던 사람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남윤영 박사는 2006년부터 2016년까지 국립서울병원에서 기획홍보과장을 지냈다. 재건축추진 실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담당했다.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도망’가고 싶을 때가 수없이 많았다고 했다. ‘고발’을 당하기도 했고, 얻어 맞기까지 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지난 18일 국립정신건강센터로 남 박사를 찾아갔다. ‘혐오시설’을 지으면서 그만큼 많이 시행착오를 겪어 본 사람도 없을 터였다. 강서구 특수학교 논란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남 박사는 “주민들을 무조건 많이 만나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립서울병원 측은 먼저 반대하는 주민들과 함께 새 정신병원 부지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렇게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설득했다. 이어 정신병원 재건축을 지역발전과 연계시켰다. 재건축 계획은 국립정신건강연구원을 거쳐 종합의료복합단지로 확장됐다. 개원 후에는 국립정신건강센터 주차장을 주민들에게 개방했고, 정신과 외 다른 진료과도 개설했다.

국립정신건강센터는 이제 중곡동의 ‘랜드마크’가 됐다. 학생들은 병원 내부를 지름길 삼아 통학한다. 동네 노인들은 저렴한 병원 구내식당을 즐겨찾고, 아이를 학교에 보낸 엄마들은 병원 1층 카페에서 잠시 여유를 맛보기도 한다.

10여년 전 정신병원이 있을 때는 상상도 못하던 풍경이다. 그러나 누군가 상상력을 발휘했고, 동의했고, 현실이 됐다. 남 박사의 멱살을 잡았던 일부 주민들은 나중에 가장 큰 우군이 됐다고 한다. 국립정신건강센터 기념관 동판에는 남 박사와 주민들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남 박사는 “저희는 10년이 넘게 걸렸어요. 특수학교는 그보다는 훨씬 빨리 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면”이라고 말했다.

<홍진수 기자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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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정치권의 동성애 호들갑을 보노라니 좀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하다. 마치 오랫동안 외항선이라도 타다 내린 것 같다. 언제부터 동성애 문제가 고위 공직자의 역량과 자질을 판단하는 절대 기준이 됐나 싶어서다. 동성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라고 거칠게 다그치는 국회의원, 곤혹스러운 표정의 대법원장 후보자, 그리고 21세기 한국 사회에 등장한 황당무계한 ‘후미에’(17세기 일본 에도막부가 기독교 신자를 색출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을 국민들. 이미 후미에의 피해자도 나왔다.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졸지에 ‘동성애 옹호자’로 몰렸다. 군형법의 ‘군대 내 동성애 처벌’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위헌 의견을 냈던 것이 동성애 찬성으로 ‘둔갑’한 것이다. 모호한 법으로 피해 보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단이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과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군 형법 92조의6 폐지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군대 내에서 합의에 따른 동성 간 성적 관계까지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군 형법 제92조 6항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해당 군형법을 보면 ‘군인이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 밖의 추행’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이 ‘동성애를 퍼뜨릴 위험인물’이라는 증거가 됐다.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다. 이 같은 논리가 별문제 없이 통용되는 분위기, 게다가 급격히 퇴행하는 정치인들의 수준을 보노라면 다음과 같은 문답이 오가는 청문회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후보자, 항문성교를 연상하게 하는 후배위를 선호하죠? (녹취 파일을 흔들며) 그동안 관계했던 여성의 증언이 확보돼 있어요. 인정하세요.”

“저는 상식과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하지 말자, 애매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법조문을 정비하자. 현재 동성애와 관련한 논의의 수준은 이 정도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동의가 군대의 기강을 무너뜨리고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와 동일시된다. 또 이것이 물꼬가 되어 소아성애, 수간, 시체상간까지 비화되리라 단언하고 군대 가야 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불안감을 강변한다. 

듣다 보면 동성애자만큼 무서운 존재가 없다. 페스트 저리 가라 할 만한 치명적 역병이다.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그 순간부터 동성만 보면 흥분해서 들이댈 좀비 같은 존재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통제불능 성도착자들이다. 좀 있으면 ‘나는 동성애자가 싫어요’ 외치다 죽임을 당했다는 군대 괴담까지 나올 기세다. 이렇게 끔찍한 존재들이 널렸는데 그동안 사우나는 어떻게 다녔으며 화장실 소변기는 어떻게 이용했나. ‘항문성교하면 처벌한다’는 얄팍한 보호막 하나로 안심하고 살아왔다는 말인가. 같은 논리라면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이성애자들은 이성만 보면 흥분해서 껄떡거리는 존재들이다. 남녀가 함께 모이는 학교, 회사, 각종 공동체는 언제든 난교파티가 벌어질 공간이다.

우려해야 하는 것은 남의 성적 지향이 아니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물리력이나 지위 등을 이용해 상대에게 가하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기득권, 다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차별과 탄압이다.

동성애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 데는 보수 개신교계가 큰 몫을 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죄악에 물들어가는 세상을 두고 볼 수 없어서 떨쳐 일어날 만큼 ‘순수’한 신앙심 때문일까. 안타깝게도 냉전·반공체제를 발판으로 함께 성장했던 수구보수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헤게모니를 되찾으려는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유통기한 지난 색깔론과 종북 타령을 대신해 혐오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한 동성애를 선택했다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게 아니라면 성경에 언급된 그 수많은 죄들이 지금도 도처에서 횡행하는데 왜 동성애에만 목숨 거는 건지 이해할 길이 없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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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