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라고 한다. 대통령 인사권의 막강한 힘을 이르는 말이다. 실제 대통령은 장차관, 헌법기관 고위직 등 7000여명의 임면권을 쥐고 있다. 이 말의 본질은 대통령 인사권이 정권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역대 정권은 ‘같은 색깔’만 칠하진 않았다.

전략적 고려도 입혔다. 김대중 정부의 김중권 청와대 비서실장과 강인덕 통일부 장관, 노무현 정부의 고건 국무총리와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대표적이다. 소수정권 한계 극복, 정치적 안정, 우방국 달래기용이었다. 그러나 이조차도 정체성 강화의 우회로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보안 인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낙점한 인물도 언론에 하마평이 오르면 단칼에 지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여론 인사’를 선호했다. 마음에 두고 있던 후보 명단을 슬쩍 언론에 흘려 평판이 좋으면 인선을 강행했다. 평이 엇갈리면 민간업체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시스템 인사에 관심이 많았다. 인수위원회 때 5단계 절차를 밟는 장관인사추천제를 도입했고, 집권 후엔 청와대 인사수석 비서관직을 신설해 인사 추천을 전담케 했다. 그전까지는 민정수석이 인사 추천·검증을 도맡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파격 인사는 ‘속전속결’ 개혁, 김대중 전 대통령의 심사숙고 인사는 ‘역사적 평가’를 중시한 개혁으로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인사 정책만 봐도 균형인사, 인재 데이터베이스(약 12만명) 구축 등 시스템 정치를 구현했다.

위력이든 전략이든 스타일이든 인사는 결국 정권의 방향타이자 대통령의 국정철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 논란에 이어 뉴라이트 사관 문제 등 '이념논란'이 불거진 박성진 초대 중소기업벤처부장관 후보자가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논란 해명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문재인 정부 인사가 방향을 잃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을 비롯해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장하성 정책실장 이름이 발표될 때만 해도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김상조 위원장은 기득권층 저항을 고려해 천천히 발표하자는 참모들 제안에도 문 대통령은 조기 인선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그러나 박기영·이유정·박성진 후보자가 나오면서 국정철학은커녕 무슨 메시지인지조차 읽히지 않았다. 이해관계 집단은 물론 지지층 반발도 거세졌다. 여권 내에선 다양한 진단이 쏟아졌다. ‘참모들이 대통령 눈치를 본다’ ‘(전방위 평판이 담긴) 국가정보원 존안자료를 거부했으니 이 정도 비용(부실 검증)은 지불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복심들이 빠져서 손발 맞출 인사를 가려내기가 힘들다’…. 문 대통령은 결국 지난 4일 인사시스템 개선을 주문했다. 인사 원칙과 검증 기준을 구체화하고, 인사 추천의 폭을 넓히라는 내용이었다. 이 기회에 청와대 인사기획비서관실도 신설하고, 임기를 보장해야 할 자리와 대통령 국정철학을 반영해야 할 자리를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오작동 문제가 더 심각하다. 인사가 한 정권의 국정철학을 담는다고 할 때 적어도 인사는 ‘시민 동의’가 중요한 기준이다. 재벌이 아닌 노동자, 전쟁이 아닌 평화, 갑이 아닌 을…. 촛불이 만들고, 시민들이 동의한 문재인 정부의 방향이다. 향후 인사에서 이 틀을 벗어날 경우 대통령이 인사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사원칙(철학)과 다투는 건 이해도, 수용도 가능하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커지는 것은 청와대 해명 자체가 이를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때문이다. 생활 보수, 소시민이라는 논리는 문 대통령의 인사철학도, 원칙도 아닌 ‘희한한’ 변명에 불과했다.

더 보탠다면 인사를 협치의 기반으로 삼길 바란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김윤철 교수는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을 공약 이행에만 쓰면 안된다. 인사가 협치의 주요 항목이 돼야 할 때다”라고 했다. 당장 정기국회부터 국회의 계절이다. 대통령 의제를 관철하려면 싫든 좋든 국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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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이 관리하는 국가기록유산 사이트(www.memorykorea.go.kr)는 한국의 우수한 기록문화유산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만든 곳이다. 예를 들어 검색창에 ‘삼국유사’를 넣으면 삼국유사의 서지, 해제, 원문 텍스트를 볼 수 있다. ‘이순신’을 치면 난중일기는 물론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언급된 부분도 금세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이 사이트에 오른 국보 제76호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중 상당수에 오·탈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자를 같은 발음의 다른 글자로 표기하거나, 아예 글자나 문장 전체가 누락된 사례도 있었다.

이는 초서체의 난중일기를 정자화해 디지털로 입력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류로 보인다. 애초 디지털화의 저본으로 삼은 난중일기에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화재청은 오류 지적이 잇달아 나오자 이를 수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난중일기를 시작으로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에 오른 기록문화유산의 오류 수정 작업을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소수의 연구자들을 제외한다면 난중일기 속 한자 오류를 알아낼 시민은 많지 않다. 국가기록유산 사이트의 난중일기에 오·탈자가 있다고 해당 유산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디테일이다. <이순신의 일기>를 펴낸 최희동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기존 자료를 참고했더라도 오류가 있었다면 개선되어야 한다”며 “난중일기 원본을 보면 아름다움이 있는데, 웹사이트는 그저 글자만 전달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문화의 오랜 정수를 세심히 살펴야 하는 문화재 분야 특성상 떠들썩한 홍보보다는 진중한 연구와 무오류가 필요하다. 일제강점기에 재제작된 것으로 뒤늦게 밝혀진 덕종어보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 역시 엄밀한 조사와 연구에 앞서 ‘환수’ 자체를 홍보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음식은 못 만들면서 홍보만 요란한 음식점은 결국 문을 닫는다. 진중하고 또 진중해야 하는 문화재 관련 기관은 말할 것도 없다.

<백승찬 |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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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홀트아동재단(복지회) 등을 포함해 우리 아이들을 입양해주는 해외기관에 대해 정기적으로 감사편지를 보내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또 “고마움을 알고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미 보훈처에는 6·25 참전국 또는 참전용사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자녀의 한국 취업이나 유학 시 배려하는 등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를 주는 방안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도 밝혔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해외입양이 ‘6·25 참전국’에 비견될 정도로 감사를 표할 일일까.

심지어 지난 5월에는 미국에 입양됐다가 불행하게 생을 마감한 김상필씨(43·미국명 필립 클레이)의 일이 알려지면서 과거 주먹구구식 해외입양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한 터다.

5월21일 경기 고양시 한 아파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씨는 10세 때인 1984년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으로 갔다. 그러나 양부모가 시민권을 얻어 주지 않아 미국 국적이 없었다. 김씨는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가 시민권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 2011년 7월 한국으로 추방됐다. 언어 등의 문제로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김씨는 노숙자 쉼터와 복지시설, 정신병원, 교도소 등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져보면 김씨가 불행했던 책임은 한국 사회에 더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통계에 잡힌 입양인 24만5600명 중 국내입양은 7만9088명에 불과하다. 3분의 2가 넘는 16만6512명은 해외로 나가야만 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국내입양 아동수가 해외입양을 넘어서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입양아 880명 중 334명(38%)이 한국 밖에서 새 가정을 찾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해외입양기관에 감사편지를 쓰는 것이 큰 도움이 될까. 그 시간에 입양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고,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는 등 국내입양을 한 명이라도 더 늘이는 데 힘을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국가 이미지’는 그 다음이다.

<홍진수 |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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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년 대법원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을 통해 회사에 970억원 손해를 끼친 혐의였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이 사건을 수임해 변호한 경력이 있었다. 그와 함께 삼성을 방어한 김종훈 변호사는 이번 이재용 부회장 사건의 변호인이기도 하다.

이용훈 대법원의 핵심은 삼성사건 공동변호인 김종훈 비서실장, 광주일고 후배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전임 최종영 대법원장을 상대로 연판장을 돌린 이용구 송무심의관 등이다. 이들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멤버다.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행정처는 비대해지고 권력기구화했다고 평가받는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을 포함한 개혁·소장 법관들이 행정처 요직에 기용되거나 기타 권력의 주류에 편입되면서 (중략)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과 행정처 중심의 관료적 승진구조를 통한 법관 사회 관료화는,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에 더 심화되었다. (중략)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라, 비판이 더 어려워졌다”고 법원 내부통신망에서 판사들은 말한다.

#2. 2011년 대법원은 시국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사건을 줄줄이 깼다. 피해자들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만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도움으로 재심 무죄를 받았다. 이들의 손해배상금을 대폭으로 깎은 대법원은 새로운 논리를 만들었다.

보통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에서 법원은 피해시점부터 판결일까지의 이자를 주도록 한다. 판결 전까지는 5%, 판결 후로는 20%이며 지연손해금이라 부른다. 그런데 대법원이 과거사 사건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 이자가 많으니 깎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준시점을 손배소송 항소심 변론이 끝난 날로 미루라고 했다.

더구나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보내지 않고 대법원 스스로 이자를 계산해 재판을 끝냈다. 이 판결은 이후 인혁당 피해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한 전직 대법관은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이다.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이 있다면 해야 할 사안”이라고 했다. 판결은 한날 4건이 동시에 나왔고 주심은 모두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 박시환 대법관이다.

#3. 몇 해 전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판사들이 인사를 돌았다. 이 법원에 새로 발령난 판사들은 관례대로 부장판사들 사무실에 들어가 줄줄이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한 부장판사가 손사래를 치며 말렸다. 자신이 직접 밖으로 나와서 판사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눴다. 인사의 대상도 부장판사가 아니라 재판부라며 자신의 배석판사를 데려나와 인사시켰다.

부장판사는 이후 법정에서 난동꾼을 막다가 다친 법정경위 소식을 듣고 배석판사와 재판연구원을 데리고 문병에 나섰다. 쓸쓸히 병실을 지키던 경위는 고위법관의 등장에 감동했다. 부장판사는 책임을 다하다 부상한 법정경위를 표창해야 한다고 법원에 주장해, 표창장을 받아주었다. 이 사람이 김명수 새 대법원장 후보자이고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그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에 단독 출마했을 때 만장일치 추대 대신 투표를 하자고 했다. 투표함을 여니 반대표가 있었다. 하지만 김명수 후보자는 반대표가 나온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국제인권법학회는 소수자도 견해를 밝히는 건강하고 자유로운 조직이라는 것이다.

지금 법조계에 김명수 후보자에 관해 물으면 세 가지를 듣는다.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다는 것과 출세하려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사법개혁 저지 의혹 사건에 관여한 세력들이 그를 붙잡으려 한다는 것이다. 이 의혹의 핵심에는 과거 우리법연구회 멤버들도 있다. 누군가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결국 기대도 우려도 모두 김명수 후보자 자신의 몫이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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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나랏돈 빼먹는 꼴이지요.” 초로의 목사님은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마른침을 몇번 삼키더니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다. 그 목사님의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부터 자신의 교회에 나오기 시작한 한 교인이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하겠다며 그 액수의 몇배나 되는 기부금 증명서 발급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기부금 증명서가 있으면 세금이 공제된다며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니냐”는 설명까지 곁들였다고 한다. 평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한다”고 설교해 왔지만 새 신자의 면전에 대고 단칼에 거절하기도 민망해 잠시 머뭇거리는 틈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목사님. 다들 그러고 살아요. 예전에 납품했던 한 교회 목사님이 물건값 깎아주면 기부금 증명서 발급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윈윈’해 왔는걸요. 죄송한 얘기지만 이 교회에서 1년에 이만큼 헌금할 수 있는 사람도 없잖아요.”

시쳇말로 이런 교인 몇명만 있으면 교회 살림은 펴진다. 소도시에서 수십년째 목회를 한 그 목사님은 세속적 기준으로 성공과 거리가 멀었다. 교인 수는 200명이 채 안됐고 형편 좋은 사람도 없었다. 예배당도 임대한 공간이었다. 사실 이 목사님도 속으로는 잠시 흔들렸다고 했다. “그게 세상살이의 요령인지는 몰라도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면 안됩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게 마음이 아픕니다.”

그는 이전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기부금 액수를 부풀려달라거나 증명서를 허위 발급해달라는 요구를 받아왔고 그때마다 가차 없이 거절했다고 했다. 듣기 좋은 말로 ‘융통성’이고 ‘세상 사는 이치’일 뿐, 교회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조직적 범죄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순간이지만 유혹에 흔들렸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고 여전히 많은 교회가 그런 탈법을 일삼고 있는 것이 참담하다”고 털어놨다. 이 목사님의 교회에는 소위 잘나가고 돈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확률이 높지 않다. 그 때문에 몇년 전 만난 목사님의 형편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를 두고 압도적인 여론은 종교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일부 종교인, 엄밀히 말해 개신교의 대형 교회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만큼의 이유를 대며 반발한다. 소통 부재, 준비 부실부터 종교탄압 우려까지 나온다. 제각기 감춰놓은 속뜻이야 뭐가 됐든 표면적으론 “성직자가 담당하는 영적인 일을 세속적인 노동과 같이 취급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성직은 영적인 일이다. 시간에 따른 노동의 투입을 통해 효율을 따지는 일반적인 노동과 동일하게 취급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방적’ 과세에 반대하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그러니 이건 어떤가. 연말정산을 할 때 종교단체에 낸 기부금은 소득공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다. 국가가 알량한 세금 몇푼으로 영적인 영역에 해당하는 헌금의 고귀한 정신을 훼손해서야 되겠는가. 어차피 헌금은 신과 나의 영적 관계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이고 믿음의 표현이다. 목사를 보고,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신앙적 양심으로 내는 헌금이라면 세금 몇푼에 좌우될 리 없다. 그게 교회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이다. 교회 입장에선 탈세를 부추기는 온상이라는 사회적 비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  

성경 마태복음 6장에 이런 말씀이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이다. 십일조를 강조한 말라기 3장과 함께 교회에서 헌금을 독려할 때 자주 인용되는 내용이다. ‘아낌없이 바치면 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목회자들의 설교에 많은 신자들은 순종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한국 교회는 성장했다. 이젠 그 과실을 딴 교회들 차례다. 걱정과 근심 모두 하나님께 맡겨라. 하나님의 영광 가리지 말고.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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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없이 우리는 제72주년 8·15 광복절을 기념했다. 기념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행위이다. 기념일 제정, 기념관 설립, 갖가지 기념행사에는 개인의 사적기억을 넘어 사회집단으로 기억을 공유하겠다는 뜻이 녹아 있다. 망각에 맞서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보다 적극적인 행위인 것이다.

기억하려는 행위는 그저 과거를 떠올리는 차원을 넘어선다. 과거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역사인식과 맞물려 있어서다. 이는 역사의 서술, 역사적 진실 문제와도 직결된다. 따라서 과거를 어떻게 인식·기억하느냐 하는 한 사회의 집단기억은 사회적 의미와 더불어 정치성을 지닐 수밖에 없다. 기억하려는 행위의 중요성, 엄중함은 여기에서 나온다.

지배권력은 그 속성상 기억, 특히 집단기억에 내재한 정치성을 간파해낸다. 통치와 지배에 유리한 집단기억을 만들려고 한다. 다양한 선전선동 활동을 동원하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기도 한다.

반면 지배권력이 원치 않는 기억, 기억하려는 행위는 철저하게 배제시킨다. 배제를 넘어 물리적 힘을 통해 망각을 강요한다. “권력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맞서는 기억의 투쟁”이라고 작가 밀란 쿤데라는 통찰했다. 기억담론이 대두되면서 역사학계에서도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 역사’라는 주장이 나온다.

기억투쟁은 망각에 대항해 기억을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불러내는 행위이다. 지배권력의 망각 시도에 맞서 배제된 기억들을 소환함으로써 묻혀진 역사적 진실을 드러낸다.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다.

실제 홀로코스트, 과테말라 내전의 진상이 규명되고 진실이 밝혀진 것은 국제적 기억투쟁의 산물이다. 홀로코스트는 지금 같은 의미로 우리에게 기억되기가 쉽지 않았다. 나치는 자신들의 만행 관련 증거물을 없애는 데 혈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이 불러낸 기억 조각들, 그들의 기억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종과 지역을 뛰어넘어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귀하게 여긴 많은 ‘기억투쟁가’들이다.

마야 문명의 발상지인 과테말라는 1960년대부터 30여년 동안 군사정부와 이에 맞선 반군의 충돌로 수십만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하는 참혹한 내전을 겪었다. 내전 후 정부군·반군의 민간인 학살, 인권유린을 조사하기 위한 ‘진실위원회’(유엔 역사규명위원회)가 구성됐다. 진실위원회는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들’이란 3600쪽의 방대한 조사보고서를 펴내 민간인 희생의 진상을 규명해냈다. ‘과테말라, 침묵의 기억들’도 수만명에 이르는 주민들의 끈질긴 기억투쟁으로 가능했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기억투쟁은 선명하다. 한때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폭도였고, 민주화운동은 반란이었다. 지배권력은 힘으로, 선전으로 진실을 은폐한 집단기억을 만들고 또 강요했다.

제주 4·3사건도 마찬가지다. 지배권력은 민간인 학살을 둘러싼 진실이 드러나지 않기를 원했고, 4·3 기억은 망각됐다. 하지만 기억투쟁은 결국 사건 발생 50여년 만에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을 이끌어냈다.

기억투쟁은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다. 지난 지배권력은 “그만 잊으라”고 했다. 지배권력에 동조한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냉소한다. 하지만 유가족과 많은 시민들이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2기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이 주목된다.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사건, 홀로코스트 등은 기억투쟁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기억투쟁이 얼마나 긴 시간과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도 말해준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을 불러내 현재화시키는 기억투쟁으로 역사를 다시 썼다.

지난 8·15 광복절 기념 행위에서 기억투쟁과 관련한 의미 있는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을 기억하려는 상징물 ‘평화의 소녀상’이 11개 더 세워진 것이다. 2011년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시작으로 이제 국내에 51개, 해외에 7개가 서 있다.

그 숫자보다 ‘소녀상의 진화’가 돋보인다. 설립 주체가 다양해지고, 주체들의 특성을 반영한 다양한 양식과 상징성을 녹여낸 소녀상들이 조성됐다. 소녀상은 할머니들의 쓰라린 기억을 불러내는 매개체다. 일본제국주의의 만행을 잊지 않겠다는, 반성 없는 일본의 반인권적 처사를 비판하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광복 후 지금까지 진행 중인 기억투쟁의 생생한 상징물이다. 그런 소녀상의 진화는 결국 우리의 기억투쟁 승리를 담보하는 듯하다.

<도재기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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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건 1993년 3월이다. 자대 배치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 사찰 요구를 거부했고 미국은 팀스피릿 훈련 중단 약속을 파기했고 따위의 한반도 정세 얘기는 듣지도 못했다. 전쟁 위기가 ‘원자로 건설’ 때문인지 ‘핵미사일 개발’ 때문인지 몰랐다. 장교들은 “북한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했다. 전투준비태세 단계가 높아졌다. 군장을 꾸린 채 취침하기도 했다.

개별 인간의 가치와 의지가 무력할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세상, 특히나 정세는 ‘나’라는 존재는 안중에도 없이 돌아갔다. 전쟁과 죽음, 핵의 공포를 체감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호전성을 곧잘 드러내던 선임병은 보초를 서며 욕설 한마디를 내뱉고 흐느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1994년 6월 전쟁 직전까지 갔다는 건 제대하고 수년이 지나서 알았다.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핵무기 개발을 막으려고 북한 영변 폭격을 계획했다가 격론 끝에 취소했다. “(폭격이) 북한 당국을 자극해 100만명이 희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전쟁을 불러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1999년 CNN 보도를 읽곤 섬뜩했다. 남북한 사람 100만명이 죽을 수도 있는 폭격을 두고 미국은 ‘외과적 수술’이란 완곡어법을 썼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의 이유로 ‘무지’ ‘무기력’을 들었다. 미래에 무슨 불행이 닥쳐 큰 상처를 입힐지 모르는 무지와, 그 불행이 닥쳤을 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기력이 공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고조시킨 최근 위기에서 무지와 무기력을 다시 느꼈다.

‘무신경’도 공포스럽다. 미디어는 미국의 전략무기를 곧잘 소개한다. 스포츠 경기 중계하듯 예상 시나리오를 전한다. 어느 유력 언론은 외신기사를 ‘남한과 북한이 전쟁하면 누가 이길까’라는 제목을 달아 내보냈다. ‘전개’ ‘충돌’ ‘정밀타격’ 같은 용어는 ‘나뒹구는 시체’를 은폐한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원격 조작 무기를 두고 “우리의 정서적인 심층은 집게손가락의 발사 신호가 타인의 창자를 찢는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고 했다. 저널리즘 언어도 그 ‘집게손가락’처럼 움직이는 듯하다.

어떤 이들은 공포에 공포로 대응하자고 말한다. 현실 정치를 지배한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에 기댄 핵무장론이다. 북핵이 그런 논리의 결과였다. 남한의 핵잠수함 추진도 예외일 수 없다. 한반도 위기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는 교훈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지 전쟁 준비를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핵무기 없는 세계’? 2000년대 후반 이상주의적인 이름의 성명서를 내놓은 건 헨리 키신저, 조지 슐츠, 윌리엄 페리 같은 국방·외교를 오래 한 현실 정치인들이다. 미·소의 수소폭탄 실험 이후 버트런드 러셀과 아인슈타인이 주도해 1955년 발표한 ‘핵무기 없는 세계와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호소하는 선언’은 전면적 군비 축소와 핵무기 폐기를 위한 협약 체결을 제안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지식과 지혜가 지속적으로 진보하느냐 퇴보하느냐가 결정된다”고 했다. 50년이 지나서도 유효한 선언이다.

바우만이 말한 공포의 세 번째 이유는 무지와 무기력에서 비롯된 굴욕감이다. 그는 “(굴욕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불행에 따른 손상의 많은 부분이 신호를 제때 탐지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부주의, 지나친 꾸물거림, 게으름, 의지 부족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우리의 자존심과 자신감에 입게 되는 상처”(<도덕적 불감증> 책읽는 수요일)라고 했다. 군축·핵폐기를 위한 실천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최우선 과제가 되길 바랄 뿐이다.

<김종목 모바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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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다시 그 길로 들어선다. 전쟁은 산하를 잿더미로 만들고 가정을 파탄낸다. 그런데도 전쟁은 계속된다. 수많은 전쟁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민주정치가 꽃피고 시민들은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우친 때였다. 500만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로 승리한 뒤 그들은 신에게 감사하고 살아남은 데 고마워했다. 그런데 감사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테네는 자신들이 저주하던 페르시아와 같은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같은 그리스어를 쓰는 헬라인이고 전우였던 스파르타를 적으로 전쟁에 나선다. 이유는 스파르타가 강성해지기 전에 싹을 없애야 한다는 일종의 예방전쟁이었다.

아테네는 승리를 장담하고 삼단노선에 올랐으나 참혹하게 패배했다. 스파르타 연합군에 이리저리 쫓기다 결국에는 목숨을 구걸했지만 스파르타는 칼로 응답했다. 출병한 대부분의 아테네인들은 도륙당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아테네인들은 도주 끝에 앗시나로스강 가에 도달했다. 이 강만 넘으면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테네인들은 살겠다고 강을 건너다 서로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자신의 창에 찔려 죽거나 장비와 함께 강물에 떠내려갔다. 스파르타 연합군은 강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건너오는 족족 도륙했다. 강물은 피로 오염됐지만 이들은 피로 물든 흙탕물을 마셨고 더러는 서로 마시기 위해 싸우기까지 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이긴 자에게는 가장 빛나는 승리였지만 패배한 자에게는 비할 데 없는 재앙이었다”고 적었다. 스파르타의 승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곧이어 테베와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해 지배권을 넘겼다. 그리고 이들 헬라인은 결국 자신들이 야만인이라고 말했던 마케도니아에 굴복했다. 헬라인들은 전쟁으로 모두가 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인간이 문명을 시작한 이래 전쟁이 멈춘 시간을 찾기 힘들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원전 3500년부터 20세기까지 1만4500회의 전쟁이 발발했고 35억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평화의 시기는 고작 300년에 불과하다. 한 전투에서 수만명이 한꺼번에 죽은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중세 십자군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출정했지만 도적질과 살인으로 얼룩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사꾼의 농간에 놀아나 막장극으로 치달은 4차 원정 때는 십자군에 의해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초토화됐다. 성전은 인간을 구원하기는커녕 도탄에 빠뜨렸다. 또 20세기 들어 양차 세계대전에서 1억~1억2500만명이 전쟁의 제물이 됐다. 특히 인종주의에 의해 600만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한 병사의 기록은 ‘전쟁에 의해 어떻게 인간성이 말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섯 명의 프랑스 병사가 꽁꽁 언 말 다리 하나를 가지고 개처럼 싸웠다. 병사가 가득 찬 헛간에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자 문밖의 병사는 헛간 주위로 몰려들어 몸을 녹일 뿐 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아우성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병약한 병사를 집 밖으로 쫓아냈고 혹한으로 이들 중 많은 수가 얼어죽었지만 동정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자신만 생각할 뿐 인간으로서의 동정심은 사라졌다.

인간은 전쟁의 명분이 없으면 조작했고, 작다면 크게 만들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애국심, 민족애, 신을 위한 전쟁, 전우애로 포장됐다. 군주가 땅을 위해 싸울 때 인간의 목숨은 하찮은 소모품일 뿐이었다. 전장에서의 죽음은 조국과 신의 대의명분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됐다.

전쟁의 참상은 회의와 환멸을 불러일으킨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전장을 보여주라고 말한다.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난 뒤에는 감히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일지 모른다. 문명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에서 전쟁 경험이 인간과 역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썼다. 그는 ‘전쟁을 통한 깨우침이 인간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200년간 전쟁 문화는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노출했지만 전쟁의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구문명 최초의 문학은 전쟁에 관한 서사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트로이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수많은 역사서와 문학이 전쟁을 고발했으나 전쟁은 계속된다. 전쟁은 지구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유효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현실세계에서 여전히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 전쟁 유전자를 가진 인간에게 평화는 일시적인 환상일 뿐일지 모른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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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전쟁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횡행한다. 어법에도 맞지 않고 출처도 알 수 없는 이 말은 어느덧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당사국인 한국은 논의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부 각료들이 내뱉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 1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방송에서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거기서 일어나는 일이고 수천명이 죽는다 해도 거기서 죽는 것”이라는 말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면전에서 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말한 ‘거기’는 한반도다. 미국이 아닌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니 누가 죽든 상관없다는 의미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국제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예방 타격’을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이쯤 되면 동맹국이자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존재 자체가 안중에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항상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위협받아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에는 한국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요소가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그에 따른 균형감 상실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에 인정받는 진보 정권이 되려는 듯 한·미 정상회담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곧이어 따라올 한·중 정상회담을 함께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짰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일단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보자는 태도로 임했다. 결국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매끈매끈하게 나왔지만, 그 안에는 중국을 자극할 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한국이 주변국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미국과 한 몸처럼 밀착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지났다. 한국이 존재감을 가지려면 한국 고유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미국과 같은 입장이라면 주변국들이 한국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해결하면 되는데 굳이 한국에 의견을 묻고 이해를 구하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가장 믿고 의지한다는 미국조차 한국을 가벼이 보고 있는데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은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을 미국의 하수인쯤 취급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한국은 제치고 미국만 보고 가면 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남북관계 당사자인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군사회담·적십자회담 제안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연설에서 “미국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생존방식으로 하고 있는 일본과 남조선 당국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미국과 담판하면 한국은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도 인정하고 있듯이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사안에서 한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한국이 미·중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균형감을 갖고 중심을 잡을 수는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자격으로 미·중이 받아들일 수 있고 북한도 관심을 가질 만한 창의적 해법을 꾸준히 개발하고 제시하고 설득해 판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한국의 역할이다. 특히 지금처럼 미국의 대북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는 한국의 행동반경이 넓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교환하는 방안은 적극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은 미국 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중국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며 북한이 원하는 요소도 포함돼 있다. 문재인 정부도 당초 이 방안을 구상했지만 국내 보수층과 미 행정부 일각의 반발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접어버린 상태다.

정부는 북한의 ‘불법적’ 핵·미사일 활동과 ‘합법적’ 방어훈련은 교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자가당착이며 현실부정이다. 그런 논리라면 북핵 문제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과거 제네바 합의, 2·13 합의를 통해 북한에 중유와 경수로 제공을 약속하고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이런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현실 타개를 외면하는 것이며 위기 극복의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 지난 지금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에는 후한 성적을 주기 어렵다. 전임 정부로부터 가혹한 외교환경을 물려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정말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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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아줌마’ 하면 공원에서 단체로 광장무를 추는 모습이나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작을 하는 이미지가 떠오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는 오로지 욕설로 채무 상환, 의료 사고, 재개발 갈등 등 각종 분쟁을 조정해 온 욕쟁이 아줌마 해결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허난(河南)성 상추(商丘)시 일대에서 활약하던 아줌마 욕쟁이 해결단원들은 평균 나이 50세의 중년 여성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주로 욕설, 모욕, 공갈을 사용해 빚 독촉을 하는데 하루 ‘출장비’는 100∼200위안(약 1만7000∼3만4000원).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씩 ‘현장’으로 몰려가 “나쁜 놈” “남자 구실 못하는 병신” 같은 욕설을 폭탄처럼 쏟아내면, 이를 견디지 못한 채무자들이 당일에 빚을 청산했다. 빠르면 1시간 안에 받아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품앗이 성격이었지만 해결 능력을 인정받아 점차 규모가 커졌다. 2013년 1건이었던 의뢰 건수는 5건(2014년), 20건(2015년)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한 달에 3건씩 일감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의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기를 모으던 아줌마 해결단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허난성 후이(輝)현 법원은 지난달 1심 판결에서 주요 조직원 14명에게 2년에서 1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농촌 부녀자들이 불법 채권 추심에 뛰어든 단순한 사건이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중국의 느슨한 금융법 집행, 장애인 복지 문제,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무계획적인 뉴타운 개발 같은 현존하는 사회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조직원 가오(高)는 45세 때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모두 잃었다. 욕쟁이 해결단원이 된 것도 우연이었다. 4년 전쯤 지인의 빚을 받아내는 데 따라갔다가 ‘욕’ 도움을 준 게 시작이었다. 그는 ‘나 같은 장애인도 쓸모가 있구나’라는 자존감이 생겼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고 딸은 직장 때문에 도시에 살고 있어 시력장애인 혼자 끼니를 챙긴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입은 매월 기초 생활 수급비로 지급되는 200위안이 전부였다.

이 해결단이 주로 맡았던 일은 허난성의 뉴타운인 류장(劉庄)촌과 관련된 채무였다. 평범한 농촌이었던 이곳은 시내와 가까운 이점 때문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등 개발 붐이 일었다. 그러나 현지 부동산 경기가 요동치고,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면서 공사장에서 일하다 임금을 떼인 노동자, 건설업자에게 자재 대금을 받지 못한 사업가 등 각종 채무 사건이 넘쳐났다. 지방 정부는 주로 수백만원 규모인 이들의 빚까지 해결해 주지 못했다.

채권 추심 회사에는 15∼40%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욕쟁이 해결단은 100∼200위안의 일당만 주면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아줌마들이 몸값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공안 당국의 무관심도 한몫했다. 쌍방이 모두 폭력을 쓴 경우가 아니면 기소하지 않고 현장 조사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욕’으로만 무장한 아줌마들의 채권 추심에는 오랜 기간 공권력이 닿지 않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해자들이 이들의 욕설과 모욕적 언행으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무 분담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상하 위계질서가 있었다는 점에서 조직폭력배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며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했다. 피고인들은 “우리가 위법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조직폭력배는 아니다”라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들의 행동은 불법이다. 그러나 장애가 있거나 저소득층인 농촌의 중년 아줌마들에게 조직폭력배 혐의를 적용한 것은 과도해 보인다. 중국 법원은 아줌마라는 이름 속에 숨은 채권 추심 조직 폭력배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가 만든 빗나간 ‘변종’이라는 설명이 더 타당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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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사다 놓고 밀쳐 둔 책을 이제야 읽었다.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다. 4년 전에 상영한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링컨>의 원본이다. 아마 <링컨>을 보고 나서 책을 샀던 것 같다. 느리고 게으른 독서였지만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즈음해 읽은 것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링컨은 문 대통령 앞에 놓인 과제를 뚜렷이 드러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닮은 링컨을 좋아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로 한정하면 문 대통령이 더 링컨을 닮았다. 링컨은, 남북대립에 노예 해방 문제로 정치가 극심하게 분열하는 상황에서 취임했다. 문 대통령 역시 여소야대에 불평등 심화, 보수정권 적폐, 외교 난맥의 산적한 과제를 안은 채 취임했다. 정치 경력이 일천한 변두리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미국인은 부적격자를 뽑았다고 걱정했다. 정치경험이 부족하고 선거전에서 자기 비전과 리더십을 각인시키지 못한 문 후보가 당선됐을 때도 많은 이들이 적임자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거듭났듯이 문 대통령도 100일 만에 ‘문재인 회의론’을 깨뜨리는 반전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연설로 지지를 받았고, 그 지지는 또한 개혁 추진의 동력이 되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도 어떻게 시민을 설득하고 단합시키는지 입증했다.

<권력의 조건> 원제는 <Team of Rivals>, 즉 적수들로 구성한 내각이라는 뜻이다. 링컨은 사람들이 대통령감이라고 여겼던 당내 경쟁자, 야당인 민주당 출신에게 주요 자리를 맡겼다. 문 대통령도 당내 경쟁자를 배려한 인사로 당의 결속을 꾀하며 개혁을 이끌었다. 하지만 링컨처럼 정치적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것이 문재인 100일이 드러낸 최대 약점이다. 야 3당은 대선 패배와 당내 분란으로 정신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조기에 공고한 반문재인 대열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상당 부분 야당의 도움을 원치 않았던 문 대통령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링컨과 다르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즉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짐을 함께 질 훌륭한 사람이 필요했다.”

100일 이후는 첫 100일과 다를 것이다. 우선 허니문이 끝났다. 야당과 보수세력은 총공세를 시작했다. 재벌개혁 등 합의 이슈는 탈원전과 같이 나라를 흔드는 갈등 이슈로 대체될 것이다. 큰 갈등이 한번 사회를 지배하면 합의 이슈도 방법론을 둘러싸고 대립할 여지가 많다. 100대 국정과제에는 그런 것들이 수두룩하다. 링컨은 느리지만 꾸준히 목표에 다가갔다. 문 대통령은 빠르지만 끝까지 목표를 향해 갈지 아직 알 수 없다. 이는 개혁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적 토대를 구축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다. 링컨은 협치했기에 목표를 달성했지만 문 대통령은 대결정치에서 소수파로 남아 있기에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치가의 덕목은 시민이 맡겨준 과제를 해결하는 책임윤리에 있다. 그걸 실천한 이가 링컨이다. 노예해방·연방 유지라는 목표에 도움이 되는지만 따진 링컨은 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다. 노예해방을 위한 헌법수정안 통과에 두 표가 모자란다는 보고에 링컨은 말했다. “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그는 야당의원을 집무실로 불러 압박하고 설득했으며 선거에 낙선해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야당의원에게는 관직, 선거자금, 사면을 제의해 표를 모았고 결국 노예의 사슬을 끊었다.

막스 베버는, 정치란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의 신념과 맞는지, 정치적 태도가 올바른지를 중시하는 문 대통령은 야당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을 바꾸는 일은 천사들에게 맡겨져 있지 않다.

중과부적이라고 했다. 앞으로 문 대통령은 점점 더 많은 적들과 마주하고, 더 많은 소모적 갈등에 빠져들 것이다. 최근 안보위기를 맞아서도 야 3당은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가도록 힘을 모아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는 데 열중하고 있다. 야당을 이대로 방치하다간 큰 화를 부른다. 하루라도 빨리 적을 퇴치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는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링컨은 자신을 “긴팔원숭이”라고 조롱한 사람을 요직에 앉혔다.

“저는 전당대회에 참석했던 사람 중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인지라 모든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링컨에게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문 대통령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칼자루 아닌 칼날을 쥐고 싸울 이유가 없다. 문재인, 당신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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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학의 85%는 사립대다. 그러니 고등교육이 잘되려면 사학의 정상화가 필수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사학의 정상화는 “교육의 공공성의 관점에서 교육기관답게 운영하는 것”이다. 실상은 어떤가. 다수 사학이 공공성은커녕 비리와 비민주적 학사 운영으로 병들어 있다. 사학 퇴행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재단에 있다.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간주하고 전제군주처럼 군림하며 운영한 탓이다. 김문기 재단이사장 시기의 상지대가 대표적이다. 입시부정과 땅투기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사학비리와 함께 교수·교직원 충성서약과 학생 간첩 매도 등 갖은 황당한 학교운영 행태가 드러났다. 이런 상지대 재단의 20여년치 학교 전입금은 단돈 3000원에 불과했다. 재단 돈은 쓰지 않고 학생 등록금과 국가보조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 몰염치가 놀랍다.

군사독재 시절 비리와 부패 없는 분야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씨 퇴진 후 11년간 상지대가 강원도 입시경쟁률 최고대학, 학교민주화 등 양적, 질적 도약을 한 것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그 후 다시 재단을 장악한 김씨가 운영하는 동안 상지대가 대학평가 최하위, 모든 대학지원사업 탈락 등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잘못된 제도도 사학을 망친 책임이 크다. 바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다. 2008년 설립된 사분위는 애초 사학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오로지 비리재단의 원대복귀에 몰두했다. 이 때문에 사분위 활동 10년 동안 28개 대학, 32개 초·중·고 등 60개 학교를 비리재단이 다시 장악했다. 김문기씨의 상지대 복귀도 사분위 작품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돌아온 비리재단은 사학을 유신시대로 몰고 갔다. 반교육적 운영을 되풀이했고 학교는 새로운 비리로 넘쳐났다. 과거 비리재단 퇴진 후 구성원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희생으로 정상화된 대학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자연히 반발과 갈등이 재연되고 사학분규가 급증했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사분위 10년간 분규로 인한 임시이사 파견 대학이 40곳인데, 이는 그 이전 36년간의 임시이사 파견 대학과 맞먹는다.

이런 상태에서 연구와 강의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재단줄대기와 눈치보기가 난무했다.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감시와 사생활침해의 온상으로 변질됐다. 총장실 도청장치 설치와 교수·교직원 언행 감시가 일상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분규대학의 교수·직원들은 학내 e메일과 구내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설 <1984년>의 빅브러더를 연상시킨다. 비판적인 구성원에 대한 재단 측의 탄압은 상상을 넘어선다. 상지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정대화 교수는 지난 10년간 40여건의 고소·고발을 당했고, 소환장과 출석통지서는 400통 넘게 받았다. 이런 인내와 투쟁으로 상지대는 정상화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사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사분위는 태생부터 반교육적이고 반민주적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사학의 건전성과 민주화를 확충하는 내용으로 개정한 사립학교법에 반발한 사학재단과 한나라당이 결탁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분위가 사학 민주화를 저해하고 비리재단 복귀에 앞장선 것은 예고된 사태였다. 이명박 정부 때 출범한 사분위는 사학을 재단의 소유주로 간주하는 인사들이 주도했고, ‘사학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정상화’가 속속 이뤄졌다. 사학의 민주화나 공공성, 교육적 책무는 무시된 채 비리재단의 재산찾기 운동으로 변질된 행태를 정상화라고 한다면 이는 언어 모독이다.

사분위는 무소불위의 기구다. 법적으로는 교육부 소속이지만 교육부 장관은 사분위 구성과 운영에 일절 관여할 수 없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기구가 시민과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니 말이 안된다. 시민들은 땅투기와 입시장사, 공금횡령, 회계부정, 비자금 조성 등 교육자라기보다 악덕기업주나 다름없는 비리재단이 마음대로 비리를 저지르도록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사분위의 망동적 행태는 부패한 보수정권의 또 다른 적폐일 뿐이다.

사분위는 최근 ‘착해졌다’. 비리재단 친화적 인사가 아닌 합리적 인사들을 임시이사로 내보내는 ‘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성신여대에서는 재단 측 사람을 총장으로 앉히려던 기도를 임시이사들이 무산시키기도 했다. 사분위원은 그대로인데 정권이 바뀌자 상식적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사분위는 또다시 태도가 바뀔 것이다. 불가역적 조치가 필요하다. 사분위는 당장 폐지하는 게 맞다.

<조호연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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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어떻게 하다가 달리기 시작했는지 자기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여왕과 손을 잡고 달렸는데 여왕이 너무 빨리 달려 따라가느라 힘들었다는 것뿐이었다. 여왕은 “빨리, 더 빨리”라고 외쳤지만 앨리스는 그 이상은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나무와 주변의 다른 것들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앨리스는 점점 숨이 차서 다시는 말을 못할 것만 같았다. 여왕은 “지금이야 빨리 더 빨리”를 외쳤다. 앨리스는 숨이 막히고 어지러워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지난 주말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이마를 탁 쳤다. 과열된 우리 부동산 시장과 너무 닮아서다.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집값은 저만치 가 있다. 다시 열심히 모았지만 집값은 또 한참 달아났다.

돌아서면 집값이 뛰었다. 두어 달 전 1억8000만원 아파트가 지난주 2억4000만원이었는데, 이번주는 2억8000만원이라고 했다. 몇 번 망설이는 사이 집값은 3억원을 넘어섰다. 부랴부랴 부동산 중개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매물이 없다”고 했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12년 전인 2005년 얘기다.

올해 서울 집값 파동은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올랐다는 각인효과는 선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부동산에 대한 기대가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구성원은 그때 그 사람들이다. 당시 그들은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 강남사람들이 외쳤던 구호가 “이대로”였다.

문재인 정부가 취임 100일도 안돼 두번째 부동산 대책을 낸 것은 그래서 이해가 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각오도 남달랐을 것이다.

8·2 대책이 꽤 강력했던 모양이다. 서민들의 불만이 많다는 보도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중 압권은 “(빚내서) 집을 사려고 했지만 살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이전에는 6억원짜리 집을 사는 데 내돈 1억8000만원(30%)만 있으면 됐지만 이제는 3억원(50%)이 필요하니 ‘언제 3억원을 모으겠느냐’는 식이다. 이는 “서민들의 서울 진입을 막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대출이 갚을 필요가 없는 돈이라면 이 주장은 맞다. 하지만 대출은 빚이다. 서민들에게는 빚 3억원도 크다. 3억원이면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만 대략 150만원이다. 하물며 4억2000만원은 쉽게 갚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빚을 주렁주렁 달고 어떻게 중산층이 된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내집이 하나뿐인 실수요자에게 빚은 영원히 빚일 뿐이다.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려면 또 빚을 내야 한다. 내집도 오르지만 남집도 오른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처럼 말이다.

정부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축소가 적절했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득 증가를 웃도는 과도한 집값 상승을 따라가자면 대출을 해서 메울 수밖에 없다. 더 많은 빚을 내 더 비싼 집을 사는 경쟁은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금리를 올리는 묘수도 있지만 경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많아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관 빼고는 은행 것’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새집을 샀지만 너무 많은 대출을 일으켜 실제 자기 지분은 얼마 안된다는 자조감 섞인 표현이다. 어느 날 집들이가 사라진 것도 내집 마련이 마냥 축복만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서민들도 누구나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빚의 경제를 찬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리 금융기법이 발달했다고 해도 빚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교훈이다. 우리가 벌써 잊어버렸는지도 모르는.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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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8·27 전당대회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는 안 전 대표의 출마·불출마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대선에서 패한, 그것도 3등 후보가 최소한의 성찰도 없이 조기 등판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불출마론 요체다. 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 창업주가 결자해지하는 게 책임 있는 태도라는 주장은 출마론의 핵심이다.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벌거벗은 권력정치’를 보는 느낌이다. 명분의 옷을 입지 않은 채 오직 권력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안철수 등판’ 논란은 호남 (결별), 더불어민주당 (연대), 제3지대 (위상), 중도보수 (통합) 등이 얽히고설킨 문제 아닌가.

이 아슬아슬한 ‘파국적 균형’(안토니오 그람시)의 시작은 안철수다. 2011년 기성정치에 균열을 내며 등장했던 새 정치, 지난해 총선 정당 지지율 2위를 이끌었던 돌풍, 그리고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사건이 몰고 온 위기 이 모두는 안철수 이름 석 자를 빼고 국민의당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 전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 반대파 의원들과 만나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새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복귀와 출마 비판에 대한 단호한 답변이다. 내겐 안철수의 지난 6년을 되짚어 봐야 하는 역설로 들렸다. 안철수의 시간은 과연 변화와 혁신의 궤적이었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8·27 당대표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2012년 18대 대선 무렵은 제3지대 기대치가 커지던 시기였다. 대선 자체가 양강 구도, 이념전으로 흐른 데다 박정희 대 노무현 대리전이라는 유훈 정치 조짐까지 보태지면서다. ‘안철수 브랜드’인 새정치는 그 틈을 비집고 제3지대를 거머쥐었다.

그해 5월30일 당시 부산대 강연에서 “정치가 과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10년째 한쪽에선 어떤 분 자제라고 공격하고 한쪽에선 싸잡아 좌파세력이라고 공격하는 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정치 데뷔 무대에서 정치권을 ‘낡은 프레임, 낡은 체제’라고 직격하며 스스로 ‘양쪽을 다 긴장시키는 정치쇄신의 촉매’라 규정했다. 안철수의 등장으로 정치권 주류질서도 변했다. 보스 주도의 엘리트 관료집단, 민주화 세력 중심에서 벗어나 전문가 집단과 디지털 세대가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지만 적어도 20대 총선까진 ‘안철수식 새 정치’가 통했다.

2017년 대선 전후, 정치권은 과거와 달라졌다. 보수 진영은 초유의 분당(분화) 사태를 맞았다. 바른정당은 극단적 보수를 거부하며 자유한국당과 갈라섰다. 9년 만에 정권을 잡은 진보개혁 진영은 실용 노선을 거부감 없이 껴안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김현종·박기영 인사 등이 대표적이다. 여야 어디에서도 ‘중도를 확보하라’는 구호가 들리지 않는다. 이미 양극단을 거부한 채 각자 필요에 따라 좌우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3 정당 처지에선 진보와 보수를 배격하는 중도적 태도로는 설 자리가 없게 됐다.

그런데 안 전 대표는 지난 3일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며 “다당제의 축은 국민의당이 살아야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나는 좌우파가 아니다”라는 근본주의적 중도주의에 빗대 ‘극중주의’를 선언했다. 지난 6년 동안 정치는 변했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의 제자리걸음이 남긴 후과는 결코 작지 않다. 정치 신상품 ‘안철수 현상’은 낡았고, 국민의당은 제3 정당 가치를 잃었다. 출마 논란에 가려졌을 뿐이다. 김태일 당 혁신위원장은 이 시기를 “친안철수 세력과 호남의 파국적 균형이 깨지면서 완전한 파국으로 갈 것인지, 새로운 합의를 통해 재균형으로 수렴될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채 갈등만 장기화할 것인지 갈림길”이라고 진단했다.

재균형으로 수렴되려면 안철수의 목표는 탈안철수여야 할 것 같다. 국민의당이 서 있는 ‘파국적 균형’의 끝도 결국 안철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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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성평등 정도가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아지는데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잘 안되고 있다”면서 “‘독박 육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저출산 극복 종합 대책도 좋지만 문제는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라며 “노동 시간을 과감하게 줄여야 일자리도 늘고 가족공동체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 후에는 여름휴가를 한 달간 사용하는 대한민국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앞서 지난달 28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에서 “연차 휴가를 모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마음놓고 휴가를 쓸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겠다는 의미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은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2015년 기준 국내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34개국 평균(1766시간)보다 347시간이나 많았다. 이러니 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를 낳을 시간도 돌볼 시간도 부족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이 청와대에서 저출산 문제를 논의하면서 노동시간 단축과 휴직·휴가 문제를 언급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러나 논의 내용을 들어보니 뭔가 아쉽다.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노동자들의 연차휴가 사용률을 높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번에는 빠진 것 같다. 바로 제 시간에 퇴근하는 일이다. 당장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다음달에 예정된 휴직이나 휴가보다 오늘의 ‘칼퇴근’이 더 절실하다.

지난해 7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6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3.6번 야근을 하고, 야근 1회당 3시간42분씩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주 5일 근무를 한다고 치면 3~4일은 밤 9~10시에 퇴근하는 셈이다.

야근을 하는 이유로는 업무량 과다(54.1%·복수응답)가 가장 많았고,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34.5%)도 한몫했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아서(21.3%) 야근을 하기도 했고, 퇴근 시간에 임박해 업무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21.1%)도 적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는 엄마·아빠가 시간을 낼 수 있는 휴가나 휴직기간에만 자라지 않는다. 평일에도 자라고 똑같이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손은 가능하면 부모의 것이어야 한다.

‘칼퇴근’을 가끔씩이라도 해본 부모들은 안다. 평소보다 1~2시간 더 일찍 집에 가는 것만으로 ‘깨어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고, 자기 전까지 함께 뒹굴 수 있다. 하루종일 ‘독박육아’에 시달린 배우자에게 작게나마 여유를 줄 수도 있고, 함께 유모차를 밀며 동네산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야근문화는 이 소소하지만, 큰 행복을 ‘불가능한 일’로 만들어 버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칼퇴근법’을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집을 통해 ‘눈치야근’ 잡는 출퇴근시간 기록 의무제를 도입해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석하게도 이 공약은 지난 19일 공개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거셌을 것이고, 더 시급하다고 판단한 정책도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퇴근’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앞에 있어야 했다. 12시간짜리 어린이집 종일반 제도는 부모가 직장에 있는 동안 아이들을 돌볼 수는 있지만, 온전히 그 가치를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저출산 해결,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이와 부모에게 함께할 저녁시간부터 주는 것이 먼저다.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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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를 넘긴 퇴근길.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내일 밥 있어?” “당연히 없지.” “그럼 뭐 먹어?” “밥해서 곰탕하고 먹어.” “밥 없다며?” “쌀은 있어.” 이 무슨 생뚱맞은 대화인가 싶을 분들을 위해 구차한 설명을 좀 해야겠다. 나는 퇴근이 늦었고 남편은 이날 한 달에 두어 차례 돌아오는 야근 당번이었다. 야근을 하면 새벽 3~4시에 퇴근해 하루를 쉬는데 남편은 보통 점심때쯤 일어나 그날의 첫 끼를 먹는다. 평소 아침은 선식으로 해결하고 주말 외엔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없는지라 평일엔 집에 밥이 없다. 물론 쌀은 있다. 그러니 남편의 말은 ‘내일 먹을 밥 좀 해놓으라’는 것이고, 내 답은 ‘피곤해 죽겠는데 지금 밥을 하라고?’하는 되물음이었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별도 달도 따 줄 기세이던 시절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어느 누구든 그렇듯 이 로맨틱한 감정 상태와 관계는 영구적이지도, 영속적이지도 않다. 퇴근 후 샤워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달콤한 수박을 함께 맛보는 부부의 안온한 일상. 광고 같은 이 한 장면의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누군가는 냄새나기 전에 수박 껍질을 조각조각 잘라 치워야 하고 화장실 하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수시로 머리카락이며 구석에 낀 물때를 닦아내야 한다. 땀으로 젖은 옷가지를 방치했다간 눅눅한 날씨에 곰팡이 피기 십상이다.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해도 해도 표시나지 않는,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성가신 결과가 초래되고 마는 블랙홀 같은 ‘가사노동’이 전제되어야 유지되는 일상이다.

대다수 가정에서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이다. 한국 남성들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0분으로 OECD 최하위인 반면 여성들은 퇴근 후에도 3시간 넘게 허덕거려야 한다. 엄마, 며느리라는 지위에 부여되는 의무는 사실상 ‘독박’ 수준에 가깝다. 가사노동 불균형 고착화의 상당부분은 모성애를 담보로 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러니 누가 결혼을 하려 하며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

20대 초·중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심취해 있던 나와 내 친구들은 막연한 착각을 했었다. 우리의 결혼생활에 함께할 남자는 당연히 제 손으로 집안일을 해내고 냉장고의 재료로 간단한 끼니는 뚝딱 차려낼 수 있을 거라고. 닭고기를 오븐에 굽고 연어통조림과 미역, 버섯을 손질해 필라프를 만들어 낼 정도는 아니더라도 휴일 오전 커피를 내리고 간단한 샐러드를 만들어 나를 깨워줄 그런 사람일 거라고. 물론 우리들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하루키가 그린 초자연적인 세계가 판타지가 아니라 한국의 결혼제도하에서 ‘하루키형 남자’가 실존하리라 희망을 갖는 것이 판타지임을 말이다. 얼마 전 발표된 그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면서도 그가 만들어내는 ‘날조된 일상’에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따지고 보면 하루키형 남자들은 이유식을 만들지도, 젖병을 삶지도, 중 2병 아이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지도, 처가나 일가친척의 대소사에 간여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한 남자 후배가 페이스북에 올린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는 제목의 시 한 편에 ‘웃펐던’ 기억이 난다.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고 읊조리는, 40대 초반 남자가 시적 화자로 추정되는 시다. 그저 긴 노동시간에 지친 이들과 ‘저녁이 있는 삶’을 나누고픈 순수한 의도였지만(보증하건데 이 후배는 높은 성평등 의식을 가진, 이상적인 남편감이다) 댓글엔 ‘그럼 밥은 자기가 안 하는가 보다’며 여자 후배들의 농담 섞인 비판이 쏟아졌다.

사람답게 먹고 입는 평범한 일상. 누구나 꿈꾸는 저녁이 있는 삶. 하지만 가사노동 없이는 구현되지 않는 판타지의 세계다.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사노동은 생래적으로 받는 서비스가 아니다. 최소한의 앞가림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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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새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의 잊혀졌던 서사가 쏟아지고 있다. 1970~1980년대 강렬했던 혁명의 기억이다. 하나같이 아픈 기억으로 돌아왔다.

1991년 그해 봄은 잔인했다. 4월3일 천세용, 26일 강경대, 29일 박승희, 5월1일 김영균…. 막바지에 다다른 노태우 정권은 수많은 청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는 5월8일 공안통치에 항거하며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분신했다. 정권은 김씨의 유서 2장을 위기돌파용 카드로 삼았다. 검찰이 김씨의 전민련 동료 강기훈씨를 유서대필자로 지목해 기소한 것이다. 지난 7일 법원은 유서대필 조작사건 희생자 강기훈씨에게 국가의 민사 보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심 무죄 판결 2년, 사건 발생 26년 만이다. 하지만 국가와 문서감정인의 손해배상 책임만 인정했을 뿐 위법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들 책임은 묻지 않았다. 시효 종결이 이유였다. 강씨는 짐작이나 했을까. 고작 6억원 보상에 26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고.

강씨에게 위로 메시지만 보냈을 뿐 차마 심경까진 묻지 못했다. 강씨는 “26년간 이토록 집요하게 국가, 사법부, 검찰이 약올리고 불리하면 시간을 끌고 이젠 잔머리까지 쓴다”고 했다. 강씨의 26년은 암흑이었다. 반면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강신욱 강력부장은 대법관으로, 곽상도 수사검사는 청와대 민정수석,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강씨는 그 세월을 “(1994년) 출소 후 3년은 복수심이 그 후 10년은 분노가 일상을 지배했다. 15년이 넘어가던 때 인간사에 회의가 시작됐다. 스무 해 되던 5월 내가 엎어졌다”고 돌아봤다. 강씨는 간암 투병 중이다. 몇 해 전 전남에 내려가 “밤하늘 쳐다보는 낙”으로 살며 병을 다스리고 있다.

긴급조치 시대, 오직 민주주의라는 첫사랑만 품고 살았던 ‘영초언니’는 코스모스 같았던 사람이었다. “민주주의 쟁취, 독재타도”를 외치고 교도관들에게 입이 틀어막히면서도 불의한 권력과 맞짱 떴던, 후배들에게 전태일과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과 담배 맛을 가르쳤던 ‘영초언니.’ 그녀가 2002년 캐나다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고 뇌 기능의 70%를 잃은 채 나타났다. ‘영초언니’는 간혹 옛일을 떠올렸지만 귀퉁이만 맴돌았다.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나선 순간 흘러간 가요 한 곡이 골목에 울려퍼졌다. ‘어느 꿈같은 봄날에 처음 그대를 만난 날부터…’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일행 모두는 영초가 누군지, 영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온전히  기억해내리라 다짐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책 <영초언니>를 통해 ‘영초언니’의 어느 꿈같은 봄날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렸다.

이제라도 이들의 기억을 불러올리게 된 건 지난해 광장을 밝혔던 촛불 때문일 테다. 보수정권은 이들의 상처를 비틀고 공격하기 일쑤였다. 검찰이 불처벌의 역사를 누리게 된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에 못다 한 과거사 진실규명을 약속했다. 강기훈씨와 영초언니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첫걸음이다. 보태자면 과거사 진실규명의 최종 목표는 오늘을 밝히기 위해서다. 사회적 약자들의 이름과 몸값이 당대에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문 대통령 일부 지지자들이 버스 노동자 해고를 규탄하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9년 동안 찍소리 못하다가 1년을 못 참고 국민 눈을 어지럽히냐”고 했다. ‘세대(정권)가 바뀔 때마다 새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어슐러 르귄, <빼앗긴 자들> 중)는 말로 돌려주고 싶다. 오죽하면 강씨가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진다 믿는 건 판타지”라고 했을까.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신주류 ‘486’ 그룹도 이런 차원에선 우리 사회의 1%일지 모른다. 강기훈씨와 영초언니처럼 혁명세대 99%는 여전히 가난과 고통을 짊어진 채 지하로 흐르는 물처럼 살고 있다. 우리는 아직, 새 시대 첫차를 타기 위해 환승역에 도착했을 뿐이다.

구혜영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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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법관인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3월7일 판사들을 상대로 공지글을 올렸다. 판사들의 사법개혁 논의를 저지하라는 대법원 지시를 거부한 판사의 인사가 부임 당일 취소됐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날이다. “법원행정처는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 거짓말이었다. 이에 대해 이 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인 이인복 전 대법관은 4월18일 보고서에서 고의는 아니라고 했다. “정식의 확인 없이 해명글을 게시한 사정에 비추어 (중략) 사건 은폐 목적으로 볼 수 없다.”

이렇듯 신뢰하기 어렵기는 이인복 전 대법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3월24일 조사 시작 이후 이모 판사가 ‘판사 블랙리스트’ 관리를 지시받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는 진술을 받았다. 하지만 4월7일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조사 요구를 무시하고 있었다. 보도가 있고서야 법원행정처 컴퓨터와 e메일 서버를 조사하겠다면서 ‘정식의 확인 없이 해명글을 게시하는’ 고영한 처장에게 요청했다. 고영한 대법관은 당일로 거부했고 이인복 위원장도 그걸로 끝이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인복 위원장에게 조사 전권을 위임했다고 했다. 그러니 “전권 위임이 말뿐인 위임이거나, 대법원장이 뒤로는 행정처 기조실 컴퓨터 자료 등은 주지 말라고 행정처장에게 지시했거나”라는 판사들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블랙리스트가 관리됐다는 컴퓨터를 보지도 않은 이인복 위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결론냈다. 판사들은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고 없다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냐”고 항의했다.

전국의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잇따라 소집됐다. 각급 법원의 판사들은 토론과 투표를 통해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결의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민형사 전문가들은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합법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이인복 위원장에게 조사방법을 자문받았던 공과대학 출신 판사는 “(합법적인 조사가 가능하다는) 저의 법적 판단이 오판이라고 판명된다면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제가 마땅히 사직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재조사 결의를 전국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려야 했다. 판사들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법관대표회의를 소집해달라고 했다. 이 나라에는 법원에 어떠한 일이 생겨도 대법원장의 허락이 없으면 법관들이 의사를 모을 수 없다. 어렵사리 열린 6월19일 법관대표회의에서 98명 가운데 84명 찬성으로 추가 조사를 결의했다. 이 기회에 법관대표회의도 상설화하자고 했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는 이유 없이 거부하면서, 대신 법관대표회의 상설화를 논의해보라고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포함한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비서 조직인 법원행정처가 주도한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의에서도 인정했다. 그런데도 양승태 대법원장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조사도 안된다고 버티고 있다. 전국의 법관 2900여명이 선출한 판사 대표 100명이 하루 내내 토론해 85% 찬성으로 의결한 일이 이렇게 간단히 무시된다.

요직 중에 요직이라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발탁된 젊은 판사가 블랙리스트 관리를 요구받았다. 충격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때로는 울었다. 그렇게 힘들어하다가 양심을 지켜 불법에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립이 계속되자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법복을 벗고 휴직했다. 알량한 법관대표회의 상설화가 이 젊은 판사의 양심을 팔아 얻는 것이라면, 나는 상설화에 반대한다. 지금 보고 있는 대법원의 타락도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면서 시작된 것이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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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문화예술인과 판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처지는 확연히 다르다. 김 전 실장은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고, 양 대법원장은 임기가 끝나가지만 여전히 3부 요인인 사법부 수장이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달 28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추가 조사해야 된다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강경했다. 그는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사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라고 해서 일반 공무원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와 특별히 다르지 않을 텐데 왜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두 국가 예산으로 구매해 사무실에 비치한 것들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연루자들은 특검 수사로 기소까지 된 마당에 사법부만 ‘성역’으로 둬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파일 제목만 읽은 뒤 열람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조사방식도 무시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정작 판사 블랙리스트 당사자인 대법원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최종적으로 심리한다. 1심 법원이 3일 재판을 종결하고 이달 중순쯤 선고한다. 자신들의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대한 사법부가 김 전 실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양 대법원장이 입장을 발표하던 그날, 김 전 실장은 법정에서 신문을 받았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몰랐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김 전 실장에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비서실장이 알지 못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가능하냐”며 날을 세웠다. 사법부에도 뼈아픈 대목이다.

차성안 판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법부가 블랙리스트 논란을 묻어두고 간다면 내가 판사의 직을 내려 놓을지를 고민하겠다”고 했다.

지난 4월 말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 방법을 제시하며 “저의 법적 판단이 틀렸다면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사직 하겠다”던 오모 판사도 있었다. “절망스럽다” “이렇게 끝나고 마느냐”는 한숨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사회부 |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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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들과 함께하는 산책시간이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푸른 하늘 아래 봄바람이 콧등을 스치며 꽃내음 화사할 때 환우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면 나의 마음은 봄에 피는 진달래꽃과 같이 화사해졌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연 ‘제1회 정신질환 인식개선을 위한 사회복귀 체험수기 공모전’에 응모한 김태욱씨의 수기 ‘고난이 변하여 나의 소망이 되고’의 한 대목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지루한 ‘난관극복기’들을 읽다가 이 문장을 접하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렇다. 정신질환자들도 평범한 이들처럼 봄을 느끼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의 느낌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할 줄도 안다. 그런 당연한 사실들을 잊고 있었다. 보건과 복지 분야를 취재하면서 정신질환 관련 기사를 곧잘 썼다. 기사에는 차별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내용도 습관처럼 넣었다. 그러나 기사와 달리 나는 그들을 다른 존재, 조금은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시 김씨의 수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우울증을 앓았다. 치료를 미루다 16살에 처음 입원했고,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다 요양시설에 들어갔다. 병이 호전된 뒤엔 요양시설을 나와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경기 양주시에 있는 정신과병원에 환자보호사로 취직했다. 지금은 병원일을 그만두고 한국방송통신대에 진학해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다. 김씨의 수기는 문장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김씨는 어느날 병원에서 새벽 근무를 하다가 장애인 복지카드를 잃어버린다. 사실 그는 병원에 취직을 할 때 정신장애 3급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 카드를 발견하면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멘붕’에 빠진다. 밤새 병원 곳곳을 뒤지던 김씨는 날이 밝도록 카드를 찾지 못하자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도망쳐 버린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조급해졌고 어떻게 해서든지 찾으려고 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의 간절한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체험수기라고 했지만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손에 땀이 났다. 어느새 김씨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김씨의 수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다음날 김씨를 병원으로 부른 원장은 잃어버린 복지카드를 건네며 “그동안 성심성의껏 일해 준 것과 환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괜찮다면, 계속 일해달라”고 말했다. 문제의 복지카드는 간호사실 책상 밑에서 발견됐다.

김씨의 수기는 담긴 내용 외에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정신질환은 치료가 어렵더라도 무작정 격리해야 할 병은 아니다. 사회가 받아들여주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그들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수기를 읽을 당시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을 보름여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강제입원 절차를 강화한 개정안을 놓고 각계에서 많은 우려가 쏟아졌다. 그중에는 ‘정신질환자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와 혼란이 일 것’이란 내용도 있었다. 다행히 지난달 30일 법이 시행된 이후 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들이 앞다투어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는 소식도, 또 퇴원한 환자들이 사고를 일으켰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법이지만, 정신질환자들의 인권과 우리 사회의 수준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심사위원으로서 난 김씨의 수기에 만점을 줬다. 부끄러운 편견을 깨준 답례이기도 하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김씨의 수기는 이번 공모전에 나온 79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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