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도 다시 그 길로 들어선다. 전쟁은 산하를 잿더미로 만들고 가정을 파탄낸다. 그런데도 전쟁은 계속된다. 수많은 전쟁에서 무엇을 배운 것일까.

기원전 5세기. 아테네는 민주정치가 꽃피고 시민들은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우친 때였다. 500만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로 승리한 뒤 그들은 신에게 감사하고 살아남은 데 고마워했다. 그런데 감사의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테네는 자신들이 저주하던 페르시아와 같은 길로 들어섰다. 그들은 같은 그리스어를 쓰는 헬라인이고 전우였던 스파르타를 적으로 전쟁에 나선다. 이유는 스파르타가 강성해지기 전에 싹을 없애야 한다는 일종의 예방전쟁이었다.

아테네는 승리를 장담하고 삼단노선에 올랐으나 참혹하게 패배했다. 스파르타 연합군에 이리저리 쫓기다 결국에는 목숨을 구걸했지만 스파르타는 칼로 응답했다. 출병한 대부분의 아테네인들은 도륙당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아테네인들은 도주 끝에 앗시나로스강 가에 도달했다. 이 강만 넘으면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테네인들은 살겠다고 강을 건너다 서로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자신의 창에 찔려 죽거나 장비와 함께 강물에 떠내려갔다. 스파르타 연합군은 강 맞은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건너오는 족족 도륙했다. 강물은 피로 오염됐지만 이들은 피로 물든 흙탕물을 마셨고 더러는 서로 마시기 위해 싸우기까지 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는 “이긴 자에게는 가장 빛나는 승리였지만 패배한 자에게는 비할 데 없는 재앙이었다”고 적었다. 스파르타의 승리도 오래가지 못했다. 곧이어 테베와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해 지배권을 넘겼다. 그리고 이들 헬라인은 결국 자신들이 야만인이라고 말했던 마케도니아에 굴복했다. 헬라인들은 전쟁으로 모두가 망하는 비운을 맞았다.

인간이 문명을 시작한 이래 전쟁이 멈춘 시간을 찾기 힘들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원전 3500년부터 20세기까지 1만4500회의 전쟁이 발발했고 35억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평화의 시기는 고작 300년에 불과하다. 한 전투에서 수만명이 한꺼번에 죽은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중세 십자군은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출정했지만 도적질과 살인으로 얼룩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사꾼의 농간에 놀아나 막장극으로 치달은 4차 원정 때는 십자군에 의해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이 초토화됐다. 성전은 인간을 구원하기는커녕 도탄에 빠뜨렸다. 또 20세기 들어 양차 세계대전에서 1억~1억2500만명이 전쟁의 제물이 됐다. 특히 인종주의에 의해 600만 유대인들이 죽음을 면치 못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한 병사의 기록은 ‘전쟁에 의해 어떻게 인간성이 말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다섯 명의 프랑스 병사가 꽁꽁 언 말 다리 하나를 가지고 개처럼 싸웠다. 병사가 가득 찬 헛간에 실수로 화재가 발생하자 문밖의 병사는 헛간 주위로 몰려들어 몸을 녹일 뿐 안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아우성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기 위해 병약한 병사를 집 밖으로 쫓아냈고 혹한으로 이들 중 많은 수가 얼어죽었지만 동정하는 이는 없었다.” 모두가 자신만 생각할 뿐 인간으로서의 동정심은 사라졌다.

인간은 전쟁의 명분이 없으면 조작했고, 작다면 크게 만들었다. 시대와 환경에 따라 애국심, 민족애, 신을 위한 전쟁, 전우애로 포장됐다. 군주가 땅을 위해 싸울 때 인간의 목숨은 하찮은 소모품일 뿐이었다. 전장에서의 죽음은 조국과 신의 대의명분을 위한 숭고한 희생으로 포장됐다.

전쟁의 참상은 회의와 환멸을 불러일으킨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전장을 보여주라고 말한다. 그 참혹한 모습을 보고 난 뒤에는 감히 전쟁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서다. 하지만 이는 희망사항일 뿐일지 모른다. 문명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에서 전쟁 경험이 인간과 역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썼다. 그는 ‘전쟁을 통한 깨우침이 인간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믿음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지난 200년간 전쟁 문화는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노출했지만 전쟁의 재발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구문명 최초의 문학은 전쟁에 관한 서사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는 트로이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수많은 역사서와 문학이 전쟁을 고발했으나 전쟁은 계속된다. 전쟁은 지구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유효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현실세계에서 여전히 힘은 총구에서 나온다. 전쟁 유전자를 가진 인간에게 평화는 일시적인 환상일 뿐일지 모른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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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전쟁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횡행한다. 어법에도 맞지 않고 출처도 알 수 없는 이 말은 어느덧 ‘한반도 문제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고 당사국인 한국은 논의에서 배제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점점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북·미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부 각료들이 내뱉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 1일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방송에서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거기서 일어나는 일이고 수천명이 죽는다 해도 거기서 죽는 것”이라는 말을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면전에서 했다고 전했다. 여기서 말한 ‘거기’는 한반도다. 미국이 아닌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니 누가 죽든 상관없다는 의미다.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북한에 대해 국제법에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예방 타격’을 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다. 이쯤 되면 동맹국이자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한국의 존재 자체가 안중에 없다고 봐야 한다.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항상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위협받아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에는 한국을 스스로 위축시키는 요소가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그에 따른 균형감 상실이 그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미국에 인정받는 진보 정권이 되려는 듯 한·미 정상회담에 총력을 기울였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할 때 곧이어 따라올 한·중 정상회담을 함께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짰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일단 한·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르고 보자는 태도로 임했다. 결국 한·미 정상회담 결과는 매끈매끈하게 나왔지만, 그 안에는 중국을 자극할 만한 내용이 가득했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한국이 주변국으로부터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미국과 한 몸처럼 밀착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그런 시절은 지났다. 한국이 존재감을 가지려면 한국 고유의 입장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미국과 같은 입장이라면 주변국들이 한국을 상대할 이유가 없다. 미국과 해결하면 되는데 굳이 한국에 의견을 묻고 이해를 구하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가장 믿고 의지한다는 미국조차 한국을 가벼이 보고 있는데 다른 나라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중국은 사드 문제가 불거진 이후 한국을 미국의 하수인쯤 취급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한국은 제치고 미국만 보고 가면 된다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남북관계 당사자인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군사회담·적십자회담 제안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지난 6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연설에서 “미국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생존방식으로 하고 있는 일본과 남조선 당국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미국과 담판하면 한국은 저절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정부도 인정하고 있듯이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사안에서 한국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한국이 미·중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균형감을 갖고 중심을 잡을 수는 있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자격으로 미·중이 받아들일 수 있고 북한도 관심을 가질 만한 창의적 해법을 꾸준히 개발하고 제시하고 설득해 판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한국의 역할이다. 특히 지금처럼 미국의 대북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상태에서는 한국의 행동반경이 넓어질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동결과 한·미 군사훈련 축소를 교환하는 방안은 적극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 이 방법은 미국 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타당성을 인정받았다. 중국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며 북한이 원하는 요소도 포함돼 있다. 문재인 정부도 당초 이 방안을 구상했지만 국내 보수층과 미 행정부 일각의 반발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접어버린 상태다.

정부는 북한의 ‘불법적’ 핵·미사일 활동과 ‘합법적’ 방어훈련은 교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자가당착이며 현실부정이다. 그런 논리라면 북핵 문제 자체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과거 제네바 합의, 2·13 합의를 통해 북한에 중유와 경수로 제공을 약속하고 테러지원국 해제 등의 조치를 취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이런 논리를 고수하는 것은 현실 타개를 외면하는 것이며 위기 극복의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 지난 지금 정부의 외교안보 분야에는 후한 성적을 주기 어렵다. 전임 정부로부터 가혹한 외교환경을 물려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젠 더 이상 변명이 될 수 없다. 이제는 정말로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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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아줌마’ 하면 공원에서 단체로 광장무를 추는 모습이나 테이블에 둘러앉아 마작을 하는 이미지가 떠오를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는 오로지 욕설로 채무 상환, 의료 사고, 재개발 갈등 등 각종 분쟁을 조정해 온 욕쟁이 아줌마 해결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허난(河南)성 상추(商丘)시 일대에서 활약하던 아줌마 욕쟁이 해결단원들은 평균 나이 50세의 중년 여성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주로 욕설, 모욕, 공갈을 사용해 빚 독촉을 하는데 하루 ‘출장비’는 100∼200위안(약 1만7000∼3만4000원).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씩 ‘현장’으로 몰려가 “나쁜 놈” “남자 구실 못하는 병신” 같은 욕설을 폭탄처럼 쏟아내면, 이를 견디지 못한 채무자들이 당일에 빚을 청산했다. 빠르면 1시간 안에 받아내기도 했다. 처음에는 품앗이 성격이었지만 해결 능력을 인정받아 점차 규모가 커졌다. 2013년 1건이었던 의뢰 건수는 5건(2014년), 20건(2015년)으로 늘어났고, 지난해에는 한 달에 3건씩 일감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의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인기를 모으던 아줌마 해결단은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허난성 후이(輝)현 법원은 지난달 1심 판결에서 주요 조직원 14명에게 2년에서 11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표면적으로 보면 농촌 부녀자들이 불법 채권 추심에 뛰어든 단순한 사건이지만 이면을 살펴보면 중국의 느슨한 금융법 집행, 장애인 복지 문제, 부족한 사회보장제도, 무계획적인 뉴타운 개발 같은 현존하는 사회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1심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조직원 가오(高)는 45세 때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모두 잃었다. 욕쟁이 해결단원이 된 것도 우연이었다. 4년 전쯤 지인의 빚을 받아내는 데 따라갔다가 ‘욕’ 도움을 준 게 시작이었다. 그는 ‘나 같은 장애인도 쓸모가 있구나’라는 자존감이 생겼고, 끼니를 해결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남편은 일찌감치 세상을 떠났고 딸은 직장 때문에 도시에 살고 있어 시력장애인 혼자 끼니를 챙긴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수입은 매월 기초 생활 수급비로 지급되는 200위안이 전부였다.

이 해결단이 주로 맡았던 일은 허난성의 뉴타운인 류장(劉庄)촌과 관련된 채무였다. 평범한 농촌이었던 이곳은 시내와 가까운 이점 때문에 고층 빌딩이 들어서는 등 개발 붐이 일었다. 그러나 현지 부동산 경기가 요동치고, 미분양 사태가 속출하면서 공사장에서 일하다 임금을 떼인 노동자, 건설업자에게 자재 대금을 받지 못한 사업가 등 각종 채무 사건이 넘쳐났다. 지방 정부는 주로 수백만원 규모인 이들의 빚까지 해결해 주지 못했다.

채권 추심 회사에는 15∼40%의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욕쟁이 해결단은 100∼200위안의 일당만 주면 빠르게 일을 처리했다. 아줌마들이 몸값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공안 당국의 무관심도 한몫했다. 쌍방이 모두 폭력을 쓴 경우가 아니면 기소하지 않고 현장 조사로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욕’으로만 무장한 아줌마들의 채권 추심에는 오랜 기간 공권력이 닿지 않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피해자들이 이들의 욕설과 모욕적 언행으로 심각한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무 분담이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상하 위계질서가 있었다는 점에서 조직폭력배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며 범죄단체 조직죄를 적용했다. 피고인들은 “우리가 위법 행위를 한 것은 맞지만 조직폭력배는 아니다”라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이들의 행동은 불법이다. 그러나 장애가 있거나 저소득층인 농촌의 중년 아줌마들에게 조직폭력배 혐의를 적용한 것은 과도해 보인다. 중국 법원은 아줌마라는 이름 속에 숨은 채권 추심 조직 폭력배라고 판단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여러 사회문제가 만든 빗나간 ‘변종’이라는 설명이 더 타당해 보인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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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사다 놓고 밀쳐 둔 책을 이제야 읽었다.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다. 4년 전에 상영한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 <링컨>의 원본이다. 아마 <링컨>을 보고 나서 책을 샀던 것 같다. 느리고 게으른 독서였지만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 즈음해 읽은 것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링컨은 문 대통령 앞에 놓인 과제를 뚜렷이 드러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닮은 링컨을 좋아했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로 한정하면 문 대통령이 더 링컨을 닮았다. 링컨은, 남북대립에 노예 해방 문제로 정치가 극심하게 분열하는 상황에서 취임했다. 문 대통령 역시 여소야대에 불평등 심화, 보수정권 적폐, 외교 난맥의 산적한 과제를 안은 채 취임했다. 정치 경력이 일천한 변두리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미국인은 부적격자를 뽑았다고 걱정했다. 정치경험이 부족하고 선거전에서 자기 비전과 리더십을 각인시키지 못한 문 후보가 당선됐을 때도 많은 이들이 적임자인지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거듭났듯이 문 대통령도 100일 만에 ‘문재인 회의론’을 깨뜨리는 반전을 보여주었다. 두 사람 모두 감동적이고 설득력 있는 연설로 지지를 받았고, 그 지지는 또한 개혁 추진의 동력이 되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도 어떻게 시민을 설득하고 단합시키는지 입증했다.

<권력의 조건> 원제는 <Team of Rivals>, 즉 적수들로 구성한 내각이라는 뜻이다. 링컨은 사람들이 대통령감이라고 여겼던 당내 경쟁자, 야당인 민주당 출신에게 주요 자리를 맡겼다. 문 대통령도 당내 경쟁자를 배려한 인사로 당의 결속을 꾀하며 개혁을 이끌었다. 하지만 링컨처럼 정치적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것이 문재인 100일이 드러낸 최대 약점이다. 야 3당은 대선 패배와 당내 분란으로 정신 차릴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조기에 공고한 반문재인 대열을 구축할 수 있었던 건 상당 부분 야당의 도움을 원치 않았던 문 대통령 때문이다. 이 점에서 그는 링컨과 다르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즉시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짐을 함께 질 훌륭한 사람이 필요했다.”

100일 이후는 첫 100일과 다를 것이다. 우선 허니문이 끝났다. 야당과 보수세력은 총공세를 시작했다. 재벌개혁 등 합의 이슈는 탈원전과 같이 나라를 흔드는 갈등 이슈로 대체될 것이다. 큰 갈등이 한번 사회를 지배하면 합의 이슈도 방법론을 둘러싸고 대립할 여지가 많다. 100대 국정과제에는 그런 것들이 수두룩하다. 링컨은 느리지만 꾸준히 목표에 다가갔다. 문 대통령은 빠르지만 끝까지 목표를 향해 갈지 아직 알 수 없다. 이는 개혁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정치적 토대를 구축했느냐, 못했느냐의 차이다. 링컨은 협치했기에 목표를 달성했지만 문 대통령은 대결정치에서 소수파로 남아 있기에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치가의 덕목은 시민이 맡겨준 과제를 해결하는 책임윤리에 있다. 그걸 실천한 이가 링컨이다. 노예해방·연방 유지라는 목표에 도움이 되는지만 따진 링컨은 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다. 노예해방을 위한 헌법수정안 통과에 두 표가 모자란다는 보고에 링컨은 말했다. “나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그는 야당의원을 집무실로 불러 압박하고 설득했으며 선거에 낙선해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야당의원에게는 관직, 선거자금, 사면을 제의해 표를 모았고 결국 노예의 사슬을 끊었다.

막스 베버는, 정치란 악마적 힘과 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했다. 자신의 신념과 맞는지, 정치적 태도가 올바른지를 중시하는 문 대통령은 야당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을 바꾸는 일은 천사들에게 맡겨져 있지 않다.

중과부적이라고 했다. 앞으로 문 대통령은 점점 더 많은 적들과 마주하고, 더 많은 소모적 갈등에 빠져들 것이다. 최근 안보위기를 맞아서도 야 3당은 대통령이 잘 헤쳐 나가도록 힘을 모아주는 게 아니라 힘을 빼는 데 열중하고 있다. 야당을 이대로 방치하다간 큰 화를 부른다. 하루라도 빨리 적을 퇴치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는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링컨은 자신을 “긴팔원숭이”라고 조롱한 사람을 요직에 앉혔다.

“저는 전당대회에 참석했던 사람 중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인지라 모든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링컨에게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다. 문 대통령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칼자루 아닌 칼날을 쥐고 싸울 이유가 없다. 문재인, 당신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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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학의 85%는 사립대다. 그러니 고등교육이 잘되려면 사학의 정상화가 필수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사학의 정상화는 “교육의 공공성의 관점에서 교육기관답게 운영하는 것”이다. 실상은 어떤가. 다수 사학이 공공성은커녕 비리와 비민주적 학사 운영으로 병들어 있다. 사학 퇴행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재단에 있다. 학교를 사유재산으로 간주하고 전제군주처럼 군림하며 운영한 탓이다. 김문기 재단이사장 시기의 상지대가 대표적이다. 입시부정과 땅투기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사학비리와 함께 교수·교직원 충성서약과 학생 간첩 매도 등 갖은 황당한 학교운영 행태가 드러났다. 이런 상지대 재단의 20여년치 학교 전입금은 단돈 3000원에 불과했다. 재단 돈은 쓰지 않고 학생 등록금과 국가보조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 몰염치가 놀랍다.

군사독재 시절 비리와 부패 없는 분야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김씨 퇴진 후 11년간 상지대가 강원도 입시경쟁률 최고대학, 학교민주화 등 양적, 질적 도약을 한 것을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그 후 다시 재단을 장악한 김씨가 운영하는 동안 상지대가 대학평가 최하위, 모든 대학지원사업 탈락 등 나락으로 떨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잘못된 제도도 사학을 망친 책임이 크다. 바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다. 2008년 설립된 사분위는 애초 사학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오로지 비리재단의 원대복귀에 몰두했다. 이 때문에 사분위 활동 10년 동안 28개 대학, 32개 초·중·고 등 60개 학교를 비리재단이 다시 장악했다. 김문기씨의 상지대 복귀도 사분위 작품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다. 

돌아온 비리재단은 사학을 유신시대로 몰고 갔다. 반교육적 운영을 되풀이했고 학교는 새로운 비리로 넘쳐났다. 과거 비리재단 퇴진 후 구성원들의 눈물겨운 헌신과 희생으로 정상화된 대학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자연히 반발과 갈등이 재연되고 사학분규가 급증했다. 이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사분위 10년간 분규로 인한 임시이사 파견 대학이 40곳인데, 이는 그 이전 36년간의 임시이사 파견 대학과 맞먹는다.

이런 상태에서 연구와 강의활동은 크게 위축되고 재단줄대기와 눈치보기가 난무했다. 대학은 상아탑이 아니라 감시와 사생활침해의 온상으로 변질됐다. 총장실 도청장치 설치와 교수·교직원 언행 감시가 일상이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분규대학의 교수·직원들은 학내 e메일과 구내전화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소설 <1984년>의 빅브러더를 연상시킨다. 비판적인 구성원에 대한 재단 측의 탄압은 상상을 넘어선다. 상지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정대화 교수는 지난 10년간 40여건의 고소·고발을 당했고, 소환장과 출석통지서는 400통 넘게 받았다. 이런 인내와 투쟁으로 상지대는 정상화의 길을 가고 있지만 이는 비정상적인 사학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사분위는 태생부터 반교육적이고 반민주적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사학의 건전성과 민주화를 확충하는 내용으로 개정한 사립학교법에 반발한 사학재단과 한나라당이 결탁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분위가 사학 민주화를 저해하고 비리재단 복귀에 앞장선 것은 예고된 사태였다. 이명박 정부 때 출범한 사분위는 사학을 재단의 소유주로 간주하는 인사들이 주도했고, ‘사학을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정상화’가 속속 이뤄졌다. 사학의 민주화나 공공성, 교육적 책무는 무시된 채 비리재단의 재산찾기 운동으로 변질된 행태를 정상화라고 한다면 이는 언어 모독이다.

사분위는 무소불위의 기구다. 법적으로는 교육부 소속이지만 교육부 장관은 사분위 구성과 운영에 일절 관여할 수 없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기구가 시민과 정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니 말이 안된다. 시민들은 땅투기와 입시장사, 공금횡령, 회계부정, 비자금 조성 등 교육자라기보다 악덕기업주나 다름없는 비리재단이 마음대로 비리를 저지르도록 세금으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사분위의 망동적 행태는 부패한 보수정권의 또 다른 적폐일 뿐이다.

사분위는 최근 ‘착해졌다’. 비리재단 친화적 인사가 아닌 합리적 인사들을 임시이사로 내보내는 ‘정상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성신여대에서는 재단 측 사람을 총장으로 앉히려던 기도를 임시이사들이 무산시키기도 했다. 사분위원은 그대로인데 정권이 바뀌자 상식적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사분위는 또다시 태도가 바뀔 것이다. 불가역적 조치가 필요하다. 사분위는 당장 폐지하는 게 맞다.

<조호연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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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어떻게 하다가 달리기 시작했는지 자기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여왕과 손을 잡고 달렸는데 여왕이 너무 빨리 달려 따라가느라 힘들었다는 것뿐이었다. 여왕은 “빨리, 더 빨리”라고 외쳤지만 앨리스는 그 이상은 빨리 달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나무와 주변의 다른 것들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앨리스는 점점 숨이 차서 다시는 말을 못할 것만 같았다. 여왕은 “지금이야 빨리 더 빨리”를 외쳤다. 앨리스는 숨이 막히고 어지러워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지난 주말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읽다가 이 대목에서 이마를 탁 쳤다. 과열된 우리 부동산 시장과 너무 닮아서다.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는데 집값은 저만치 가 있다. 다시 열심히 모았지만 집값은 또 한참 달아났다.

돌아서면 집값이 뛰었다. 두어 달 전 1억8000만원 아파트가 지난주 2억4000만원이었는데, 이번주는 2억8000만원이라고 했다. 몇 번 망설이는 사이 집값은 3억원을 넘어섰다. 부랴부랴 부동산 중개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매물이 없다”고 했다. 요즘 얘기가 아니다. 12년 전인 2005년 얘기다.

올해 서울 집값 파동은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집값이 올랐다는 각인효과는 선명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부동산에 대한 기대가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구성원은 그때 그 사람들이다. 당시 그들은 시장을 이기지 못했다. 강남사람들이 외쳤던 구호가 “이대로”였다.

문재인 정부가 취임 100일도 안돼 두번째 부동산 대책을 낸 것은 그래서 이해가 된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각오도 남달랐을 것이다.

8·2 대책이 꽤 강력했던 모양이다. 서민들의 불만이 많다는 보도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중 압권은 “(빚내서) 집을 사려고 했지만 살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이전에는 6억원짜리 집을 사는 데 내돈 1억8000만원(30%)만 있으면 됐지만 이제는 3억원(50%)이 필요하니 ‘언제 3억원을 모으겠느냐’는 식이다. 이는 “서민들의 서울 진입을 막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대출이 갚을 필요가 없는 돈이라면 이 주장은 맞다. 하지만 대출은 빚이다. 서민들에게는 빚 3억원도 크다. 3억원이면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만 대략 150만원이다. 하물며 4억2000만원은 쉽게 갚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빚을 주렁주렁 달고 어떻게 중산층이 된다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된다. 내집이 하나뿐인 실수요자에게 빚은 영원히 빚일 뿐이다. 더 좋은 집으로 옮겨가려면 또 빚을 내야 한다. 내집도 오르지만 남집도 오른다.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처럼 말이다.

정부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축소가 적절했다고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득 증가를 웃도는 과도한 집값 상승을 따라가자면 대출을 해서 메울 수밖에 없다. 더 많은 빚을 내 더 비싼 집을 사는 경쟁은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금리를 올리는 묘수도 있지만 경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많아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관 빼고는 은행 것’이라는 우스개가 있다. 새집을 샀지만 너무 많은 대출을 일으켜 실제 자기 지분은 얼마 안된다는 자조감 섞인 표현이다. 어느 날 집들이가 사라진 것도 내집 마련이 마냥 축복만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2002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서민들도 누구나 내집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빚의 경제를 찬양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아무리 금융기법이 발달했다고 해도 빚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교훈이다. 우리가 벌써 잊어버렸는지도 모르는.

<경제부 |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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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8·27 전당대회 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당내는 안 전 대표의 출마·불출마 논쟁으로 들끓고 있다. 대선에서 패한, 그것도 3등 후보가 최소한의 성찰도 없이 조기 등판하는 건 옳지 않다는 게 불출마론 요체다. 반면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에 창업주가 결자해지하는 게 책임 있는 태도라는 주장은 출마론의 핵심이다.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벌거벗은 권력정치’를 보는 느낌이다. 명분의 옷을 입지 않은 채 오직 권력의 논리로만 움직이는…. ‘안철수 등판’ 논란은 호남 (결별), 더불어민주당 (연대), 제3지대 (위상), 중도보수 (통합) 등이 얽히고설킨 문제 아닌가.

이 아슬아슬한 ‘파국적 균형’(안토니오 그람시)의 시작은 안철수다. 2011년 기성정치에 균열을 내며 등장했던 새 정치, 지난해 총선 정당 지지율 2위를 이끌었던 돌풍, 그리고 대선 패배와 제보조작 사건이 몰고 온 위기 이 모두는 안철수 이름 석 자를 빼고 국민의당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 전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 반대파 의원들과 만나 “나는 완전히 바뀌었다. 새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복귀와 출마 비판에 대한 단호한 답변이다. 내겐 안철수의 지난 6년을 되짚어 봐야 하는 역설로 들렸다. 안철수의 시간은 과연 변화와 혁신의 궤적이었나.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3일 여의도 당사에서 8·27 당대표선거 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2012년 18대 대선 무렵은 제3지대 기대치가 커지던 시기였다. 대선 자체가 양강 구도, 이념전으로 흐른 데다 박정희 대 노무현 대리전이라는 유훈 정치 조짐까지 보태지면서다. ‘안철수 브랜드’인 새정치는 그 틈을 비집고 제3지대를 거머쥐었다.

그해 5월30일 당시 부산대 강연에서 “정치가 과거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했다. 10년째 한쪽에선 어떤 분 자제라고 공격하고 한쪽에선 싸잡아 좌파세력이라고 공격하는 구태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정치 데뷔 무대에서 정치권을 ‘낡은 프레임, 낡은 체제’라고 직격하며 스스로 ‘양쪽을 다 긴장시키는 정치쇄신의 촉매’라 규정했다. 안철수의 등장으로 정치권 주류질서도 변했다. 보스 주도의 엘리트 관료집단, 민주화 세력 중심에서 벗어나 전문가 집단과 디지털 세대가 자발적으로 합류했다. 크고 작은 부침이 있었지만 적어도 20대 총선까진 ‘안철수식 새 정치’가 통했다.

2017년 대선 전후, 정치권은 과거와 달라졌다. 보수 진영은 초유의 분당(분화) 사태를 맞았다. 바른정당은 극단적 보수를 거부하며 자유한국당과 갈라섰다. 9년 만에 정권을 잡은 진보개혁 진영은 실용 노선을 거부감 없이 껴안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김현종·박기영 인사 등이 대표적이다. 여야 어디에서도 ‘중도를 확보하라’는 구호가 들리지 않는다. 이미 양극단을 거부한 채 각자 필요에 따라 좌우를 넘나들고 있기 때문이다. 제3 정당 처지에선 진보와 보수를 배격하는 중도적 태도로는 설 자리가 없게 됐다.

그런데 안 전 대표는 지난 3일 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할 것”이라며 “다당제의 축은 국민의당이 살아야 유지되는 것”이라고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나는 좌우파가 아니다”라는 근본주의적 중도주의에 빗대 ‘극중주의’를 선언했다. 지난 6년 동안 정치는 변했지만 ‘정치인 안철수’는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의 제자리걸음이 남긴 후과는 결코 작지 않다. 정치 신상품 ‘안철수 현상’은 낡았고, 국민의당은 제3 정당 가치를 잃었다. 출마 논란에 가려졌을 뿐이다. 김태일 당 혁신위원장은 이 시기를 “친안철수 세력과 호남의 파국적 균형이 깨지면서 완전한 파국으로 갈 것인지, 새로운 합의를 통해 재균형으로 수렴될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채 갈등만 장기화할 것인지 갈림길”이라고 진단했다.

재균형으로 수렴되려면 안철수의 목표는 탈안철수여야 할 것 같다. 국민의당이 서 있는 ‘파국적 균형’의 끝도 결국 안철수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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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는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됐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성평등 정도가 높을수록 출산율이 높아지는데 아빠들의 육아휴직이 잘 안되고 있다”면서 “‘독박 육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은 “저출산 극복 종합 대책도 좋지만 문제는 사랑하는 아이와 함께할 시간도 없다는 것”이라며 “노동 시간을 과감하게 줄여야 일자리도 늘고 가족공동체도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 후에는 여름휴가를 한 달간 사용하는 대한민국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앞서 지난달 28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에서 “연차 휴가를 모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마음놓고 휴가를 쓸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겠다는 의미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은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한국의 2015년 기준 국내 취업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2113시간으로 OECD 회원국 34개국 평균(1766시간)보다 347시간이나 많았다. 이러니 남녀를 불문하고 아이를 낳을 시간도 돌볼 시간도 부족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이 청와대에서 저출산 문제를 논의하면서 노동시간 단축과 휴직·휴가 문제를 언급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러나 논의 내용을 들어보니 뭔가 아쉽다.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장려하고, 노동자들의 연차휴가 사용률을 높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번에는 빠진 것 같다. 바로 제 시간에 퇴근하는 일이다. 당장 퇴근 후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다음달에 예정된 휴직이나 휴가보다 오늘의 ‘칼퇴근’이 더 절실하다.

지난해 7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직장인 169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를 보면 이들은 일주일에 평균 3.6번 야근을 하고, 야근 1회당 3시간42분씩 초과 근무를 하고 있었다. 주 5일 근무를 한다고 치면 3~4일은 밤 9~10시에 퇴근하는 셈이다.

야근을 하는 이유로는 업무량 과다(54.1%·복수응답)가 가장 많았고, 야근을 강요하는 분위기(34.5%)도 한몫했다. 상사가 퇴근하지 않아서(21.3%) 야근을 하기도 했고, 퇴근 시간에 임박해 업무 요청이 들어오는 경우(21.1%)도 적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는 엄마·아빠가 시간을 낼 수 있는 휴가나 휴직기간에만 자라지 않는다. 평일에도 자라고 똑같이 누군가의 손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 손은 가능하면 부모의 것이어야 한다.

‘칼퇴근’을 가끔씩이라도 해본 부모들은 안다. 평소보다 1~2시간 더 일찍 집에 가는 것만으로 ‘깨어 있는’ 아이를 만날 수 있고, 자기 전까지 함께 뒹굴 수 있다. 하루종일 ‘독박육아’에 시달린 배우자에게 작게나마 여유를 줄 수도 있고, 함께 유모차를 밀며 동네산책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야근문화는 이 소소하지만, 큰 행복을 ‘불가능한 일’로 만들어 버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후보 시절 ‘칼퇴근법’을 공약했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약집을 통해 ‘눈치야근’ 잡는 출퇴근시간 기록 의무제를 도입해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애석하게도 이 공약은 지난 19일 공개된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100대 국정과제에 들어가지 못했다. 물론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거셌을 것이고, 더 시급하다고 판단한 정책도 있을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퇴근’은 다른 어떤 정책보다 앞에 있어야 했다. 12시간짜리 어린이집 종일반 제도는 부모가 직장에 있는 동안 아이들을 돌볼 수는 있지만, 온전히 그 가치를 대신해주지는 못한다. 저출산 해결, 그리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아이와 부모에게 함께할 저녁시간부터 주는 것이 먼저다.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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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를 넘긴 퇴근길.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데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내일 밥 있어?” “당연히 없지.” “그럼 뭐 먹어?” “밥해서 곰탕하고 먹어.” “밥 없다며?” “쌀은 있어.” 이 무슨 생뚱맞은 대화인가 싶을 분들을 위해 구차한 설명을 좀 해야겠다. 나는 퇴근이 늦었고 남편은 이날 한 달에 두어 차례 돌아오는 야근 당번이었다. 야근을 하면 새벽 3~4시에 퇴근해 하루를 쉬는데 남편은 보통 점심때쯤 일어나 그날의 첫 끼를 먹는다. 평소 아침은 선식으로 해결하고 주말 외엔 집에서 밥을 먹는 날이 없는지라 평일엔 집에 밥이 없다. 물론 쌀은 있다. 그러니 남편의 말은 ‘내일 먹을 밥 좀 해놓으라’는 것이고, 내 답은 ‘피곤해 죽겠는데 지금 밥을 하라고?’하는 되물음이었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별도 달도 따 줄 기세이던 시절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어느 누구든 그렇듯 이 로맨틱한 감정 상태와 관계는 영구적이지도, 영속적이지도 않다. 퇴근 후 샤워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달콤한 수박을 함께 맛보는 부부의 안온한 일상. 광고 같은 이 한 장면의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누군가는 냄새나기 전에 수박 껍질을 조각조각 잘라 치워야 하고 화장실 하수구가 막히지 않도록 수시로 머리카락이며 구석에 낀 물때를 닦아내야 한다. 땀으로 젖은 옷가지를 방치했다간 눅눅한 날씨에 곰팡이 피기 십상이다.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해도 해도 표시나지 않는, 하지 않으면 엄청나게 성가신 결과가 초래되고 마는 블랙홀 같은 ‘가사노동’이 전제되어야 유지되는 일상이다.

대다수 가정에서 가사노동은 여성의 몫이다. 한국 남성들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0분으로 OECD 최하위인 반면 여성들은 퇴근 후에도 3시간 넘게 허덕거려야 한다. 엄마, 며느리라는 지위에 부여되는 의무는 사실상 ‘독박’ 수준에 가깝다. 가사노동 불균형 고착화의 상당부분은 모성애를 담보로 하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이러니 누가 결혼을 하려 하며 아이를 낳고 싶어 할까.

20대 초·중반,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에 심취해 있던 나와 내 친구들은 막연한 착각을 했었다. 우리의 결혼생활에 함께할 남자는 당연히 제 손으로 집안일을 해내고 냉장고의 재료로 간단한 끼니는 뚝딱 차려낼 수 있을 거라고. 닭고기를 오븐에 굽고 연어통조림과 미역, 버섯을 손질해 필라프를 만들어 낼 정도는 아니더라도 휴일 오전 커피를 내리고 간단한 샐러드를 만들어 나를 깨워줄 그런 사람일 거라고. 물론 우리들은 일찌감치 깨달았다. 하루키가 그린 초자연적인 세계가 판타지가 아니라 한국의 결혼제도하에서 ‘하루키형 남자’가 실존하리라 희망을 갖는 것이 판타지임을 말이다. 얼마 전 발표된 그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를 읽으면서도 그가 만들어내는 ‘날조된 일상’에 괜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따지고 보면 하루키형 남자들은 이유식을 만들지도, 젖병을 삶지도, 중 2병 아이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지도, 처가나 일가친척의 대소사에 간여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한 남자 후배가 페이스북에 올린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는 제목의 시 한 편에 ‘웃펐던’ 기억이 난다.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고 읊조리는, 40대 초반 남자가 시적 화자로 추정되는 시다. 그저 긴 노동시간에 지친 이들과 ‘저녁이 있는 삶’을 나누고픈 순수한 의도였지만(보증하건데 이 후배는 높은 성평등 의식을 가진, 이상적인 남편감이다) 댓글엔 ‘그럼 밥은 자기가 안 하는가 보다’며 여자 후배들의 농담 섞인 비판이 쏟아졌다.

사람답게 먹고 입는 평범한 일상. 누구나 꿈꾸는 저녁이 있는 삶. 하지만 가사노동 없이는 구현되지 않는 판타지의 세계다.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들에게 가사노동은 생래적으로 받는 서비스가 아니다. 최소한의 앞가림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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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새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의 잊혀졌던 서사가 쏟아지고 있다. 1970~1980년대 강렬했던 혁명의 기억이다. 하나같이 아픈 기억으로 돌아왔다.

1991년 그해 봄은 잔인했다. 4월3일 천세용, 26일 강경대, 29일 박승희, 5월1일 김영균…. 막바지에 다다른 노태우 정권은 수많은 청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는 5월8일 공안통치에 항거하며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분신했다. 정권은 김씨의 유서 2장을 위기돌파용 카드로 삼았다. 검찰이 김씨의 전민련 동료 강기훈씨를 유서대필자로 지목해 기소한 것이다. 지난 7일 법원은 유서대필 조작사건 희생자 강기훈씨에게 국가의 민사 보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심 무죄 판결 2년, 사건 발생 26년 만이다. 하지만 국가와 문서감정인의 손해배상 책임만 인정했을 뿐 위법수사를 지휘했던 검사들 책임은 묻지 않았다. 시효 종결이 이유였다. 강씨는 짐작이나 했을까. 고작 6억원 보상에 26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을 거라고.

강씨에게 위로 메시지만 보냈을 뿐 차마 심경까진 묻지 못했다. 강씨는 “26년간 이토록 집요하게 국가, 사법부, 검찰이 약올리고 불리하면 시간을 끌고 이젠 잔머리까지 쓴다”고 했다. 강씨의 26년은 암흑이었다. 반면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강신욱 강력부장은 대법관으로, 곽상도 수사검사는 청와대 민정수석, 국회의원으로 승승장구했다. 강씨는 그 세월을 “(1994년) 출소 후 3년은 복수심이 그 후 10년은 분노가 일상을 지배했다. 15년이 넘어가던 때 인간사에 회의가 시작됐다. 스무 해 되던 5월 내가 엎어졌다”고 돌아봤다. 강씨는 간암 투병 중이다. 몇 해 전 전남에 내려가 “밤하늘 쳐다보는 낙”으로 살며 병을 다스리고 있다.

긴급조치 시대, 오직 민주주의라는 첫사랑만 품고 살았던 ‘영초언니’는 코스모스 같았던 사람이었다. “민주주의 쟁취, 독재타도”를 외치고 교도관들에게 입이 틀어막히면서도 불의한 권력과 맞짱 떴던, 후배들에게 전태일과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과 담배 맛을 가르쳤던 ‘영초언니.’ 그녀가 2002년 캐나다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두 눈을 잃고 뇌 기능의 70%를 잃은 채 나타났다. ‘영초언니’는 간혹 옛일을 떠올렸지만 귀퉁이만 맴돌았다. 먹먹한 가슴을 부여잡고 나선 순간 흘러간 가요 한 곡이 골목에 울려퍼졌다. ‘어느 꿈같은 봄날에 처음 그대를 만난 날부터…’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일행 모두는 영초가 누군지, 영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온전히  기억해내리라 다짐했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책 <영초언니>를 통해 ‘영초언니’의 어느 꿈같은 봄날을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렸다.

이제라도 이들의 기억을 불러올리게 된 건 지난해 광장을 밝혔던 촛불 때문일 테다. 보수정권은 이들의 상처를 비틀고 공격하기 일쑤였다. 검찰이 불처벌의 역사를 누리게 된 배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에 못다 한 과거사 진실규명을 약속했다. 강기훈씨와 영초언니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첫걸음이다. 보태자면 과거사 진실규명의 최종 목표는 오늘을 밝히기 위해서다. 사회적 약자들의 이름과 몸값이 당대에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최근 문 대통령 일부 지지자들이 버스 노동자 해고를 규탄하는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9년 동안 찍소리 못하다가 1년을 못 참고 국민 눈을 어지럽히냐”고 했다. ‘세대(정권)가 바뀔 때마다 새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어슐러 르귄, <빼앗긴 자들> 중)는 말로 돌려주고 싶다. 오죽하면 강씨가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진다 믿는 건 판타지”라고 했을까.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신주류 ‘486’ 그룹도 이런 차원에선 우리 사회의 1%일지 모른다. 강기훈씨와 영초언니처럼 혁명세대 99%는 여전히 가난과 고통을 짊어진 채 지하로 흐르는 물처럼 살고 있다. 우리는 아직, 새 시대 첫차를 타기 위해 환승역에 도착했을 뿐이다.

구혜영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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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법관인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3월7일 판사들을 상대로 공지글을 올렸다. 판사들의 사법개혁 논의를 저지하라는 대법원 지시를 거부한 판사의 인사가 부임 당일 취소됐다는 보도가 나온 다음날이다. “법원행정처는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하여 어떠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 거짓말이었다. 이에 대해 이 사건 진상조사위원장인 이인복 전 대법관은 4월18일 보고서에서 고의는 아니라고 했다. “정식의 확인 없이 해명글을 게시한 사정에 비추어 (중략) 사건 은폐 목적으로 볼 수 없다.”

이렇듯 신뢰하기 어렵기는 이인복 전 대법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3월24일 조사 시작 이후 이모 판사가 ‘판사 블랙리스트’ 관리를 지시받자 이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는 진술을 받았다. 하지만 4월7일 언론에 보도될 때까지 조사 요구를 무시하고 있었다. 보도가 있고서야 법원행정처 컴퓨터와 e메일 서버를 조사하겠다면서 ‘정식의 확인 없이 해명글을 게시하는’ 고영한 처장에게 요청했다. 고영한 대법관은 당일로 거부했고 이인복 위원장도 그걸로 끝이었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이인복 위원장에게 조사 전권을 위임했다고 했다. 그러니 “전권 위임이 말뿐인 위임이거나, 대법원장이 뒤로는 행정처 기조실 컴퓨터 자료 등은 주지 말라고 행정처장에게 지시했거나”라는 판사들의 비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블랙리스트가 관리됐다는 컴퓨터를 보지도 않은 이인복 위원장은 “사법부 블랙리스트가 존재할 가능성을 추단케 하는 어떠한 정황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결론냈다. 판사들은 “블랙리스트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도 아니고 없다는 결론이 어떻게 나오냐”고 항의했다.

전국의 법원에서 판사회의가 잇따라 소집됐다. 각급 법원의 판사들은 토론과 투표를 통해 ‘판사 블랙리스트’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결의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민형사 전문가들은 법원행정처 컴퓨터를 합법적으로 조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심지어 이인복 위원장에게 조사방법을 자문받았던 공과대학 출신 판사는 “(합법적인 조사가 가능하다는) 저의 법적 판단이 오판이라고 판명된다면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제가 마땅히 사직을 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재조사 결의를 전국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려야 했다. 판사들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법관대표회의를 소집해달라고 했다. 이 나라에는 법원에 어떠한 일이 생겨도 대법원장의 허락이 없으면 법관들이 의사를 모을 수 없다. 어렵사리 열린 6월19일 법관대표회의에서 98명 가운데 84명 찬성으로 추가 조사를 결의했다. 이 기회에 법관대표회의도 상설화하자고 했다. 그런데 양승태 대법원장은 추가 조사는 이유 없이 거부하면서, 대신 법관대표회의 상설화를 논의해보라고 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포함한 이번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비서 조직인 법원행정처가 주도한 것이다.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의에서도 인정했다. 그런데도 양승태 대법원장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어떠한 조사도 안된다고 버티고 있다. 전국의 법관 2900여명이 선출한 판사 대표 100명이 하루 내내 토론해 85% 찬성으로 의결한 일이 이렇게 간단히 무시된다.

요직 중에 요직이라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발탁된 젊은 판사가 블랙리스트 관리를 요구받았다. 충격에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때로는 울었다. 그렇게 힘들어하다가 양심을 지켜 불법에 가담하기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고립이 계속되자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법복을 벗고 휴직했다. 알량한 법관대표회의 상설화가 이 젊은 판사의 양심을 팔아 얻는 것이라면, 나는 상설화에 반대한다. 지금 보고 있는 대법원의 타락도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면서 시작된 것이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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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문화예술인과 판사들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운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러나 두 사람의 처지는 확연히 다르다. 김 전 실장은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고 있고, 양 대법원장은 임기가 끝나가지만 여전히 3부 요인인 사법부 수장이다.

양 대법원장은 지난달 28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추가 조사해야 된다는 전국법관대표회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강경했다. 그는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를 열어 조사한다면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사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하다. ‘법관’이 사용하던 컴퓨터라고 해서 일반 공무원이 업무용으로 사용하는 컴퓨터와 특별히 다르지 않을 텐데 왜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모두 국가 예산으로 구매해 사무실에 비치한 것들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연루자들은 특검 수사로 기소까지 된 마당에 사법부만 ‘성역’으로 둬야 하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파일 제목만 읽은 뒤 열람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조사방식도 무시됐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7년 4월 7일 (출처: 경향신문DB)

정작 판사 블랙리스트 당사자인 대법원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최종적으로 심리한다. 1심 법원이 3일 재판을 종결하고 이달 중순쯤 선고한다. 자신들의 블랙리스트 의혹에 관대한 사법부가 김 전 실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양 대법원장이 입장을 발표하던 그날, 김 전 실장은 법정에서 신문을 받았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를 “몰랐다”며 억울하다고 했다.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김 전 실장에게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비서실장이 알지 못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가능하냐”며 날을 세웠다. 사법부에도 뼈아픈 대목이다.

차성안 판사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사법부가 블랙리스트 논란을 묻어두고 간다면 내가 판사의 직을 내려 놓을지를 고민하겠다”고 했다.

지난 4월 말 판사 블랙리스트 조사 방법을 제시하며 “저의 법적 판단이 틀렸다면 판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니 사직 하겠다”던 오모 판사도 있었다. “절망스럽다” “이렇게 끝나고 마느냐”는 한숨이 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사회부 |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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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우들과 함께하는 산책시간이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푸른 하늘 아래 봄바람이 콧등을 스치며 꽃내음 화사할 때 환우들이 왁자지껄 떠들며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도 같은 웃음을 지으면 나의 마음은 봄에 피는 진달래꽃과 같이 화사해졌다.”

지난달 보건복지부가 연 ‘제1회 정신질환 인식개선을 위한 사회복귀 체험수기 공모전’에 응모한 김태욱씨의 수기 ‘고난이 변하여 나의 소망이 되고’의 한 대목이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지루한 ‘난관극복기’들을 읽다가 이 문장을 접하고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렇다. 정신질환자들도 평범한 이들처럼 봄을 느끼고, 아름다운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자신의 느낌을 유려한 문장으로 표현할 줄도 안다. 그런 당연한 사실들을 잊고 있었다. 보건과 복지 분야를 취재하면서 정신질환 관련 기사를 곧잘 썼다. 기사에는 차별을 경계하고 비판하는 내용도 습관처럼 넣었다. 그러나 기사와 달리 나는 그들을 다른 존재, 조금은 뒤떨어진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다시 김씨의 수기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중학교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우울증을 앓았다. 치료를 미루다 16살에 처음 입원했고,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다 요양시설에 들어갔다. 병이 호전된 뒤엔 요양시설을 나와 검정고시로 중·고교 과정을 마치고 경기 양주시에 있는 정신과병원에 환자보호사로 취직했다. 지금은 병원일을 그만두고 한국방송통신대에 진학해 행정학을 공부하고 있다. 김씨의 수기는 문장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내용도 흥미진진했다. 김씨는 어느날 병원에서 새벽 근무를 하다가 장애인 복지카드를 잃어버린다. 사실 그는 병원에 취직을 할 때 정신장애 3급이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 카드를 발견하면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멘붕’에 빠진다. 밤새 병원 곳곳을 뒤지던 김씨는 날이 밝도록 카드를 찾지 못하자 경기도에서 서울까지 택시를 타고 도망쳐 버린다. 김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마음이 너무 조급해졌고 어떻게 해서든지 찾으려고 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의 간절한 마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체험수기라고 했지만 스릴러 소설을 읽는 것처럼 손에 땀이 났다. 어느새 김씨를 응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다행히 김씨의 수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다음날 김씨를 병원으로 부른 원장은 잃어버린 복지카드를 건네며 “그동안 성심성의껏 일해 준 것과 환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괜찮다면, 계속 일해달라”고 말했다. 문제의 복지카드는 간호사실 책상 밑에서 발견됐다.

김씨의 수기는 담긴 내용 외에도 많은 것을 말해준다. 정신질환은 치료가 어렵더라도 무작정 격리해야 할 병은 아니다. 사회가 받아들여주기만 한다면 언제라도 그들은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어떤가. 수기를 읽을 당시는 ‘정신보건법 개정안’이 시행을 보름여 앞두고 있을 때였다. 강제입원 절차를 강화한 개정안을 놓고 각계에서 많은 우려가 쏟아졌다. 그중에는 ‘정신질환자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와 혼란이 일 것’이란 내용도 있었다. 다행히 지난달 30일 법이 시행된 이후 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들이 앞다투어 사회로 쏟아져 나왔다는 소식도, 또 퇴원한 환자들이 사고를 일으켰다는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전히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은 법이지만, 정신질환자들의 인권과 우리 사회의 수준은 한 단계 더 올라갔다.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심사위원으로서 난 김씨의 수기에 만점을 줬다. 부끄러운 편견을 깨준 답례이기도 하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김씨의 수기는 이번 공모전에 나온 79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홍진수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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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칼럼니스트 리처드 골드스타인은 키가 작고 뚱뚱하며 머리가 벗어진 사람이었다.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에 보낸 글에 자신의 외모를 이렇게 표현했다. “높이가 다르고, 모낭이 제 기능을 못하는, 몸집 있는 사람.”

2011년 번역 출간된 <루이비통이 된 푸코>의 여러 내용 중 유독 이 사례가 지금껏 기억에 남는 건 내 몸 몇몇 특징이 골드스타인의 그것과 비슷해서다.

“모낭이 제 기능을 못한다” 같은 말을 듣는다면? 탈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지 오래지만 시비나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골드스타인의 비유는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운동에 따른 경멸과 차별,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언어의 규범화’가 과해진 점을 자신에 빗대 농반으로 지적한 것이다. 골드스타인이 ‘정치적 올바름의 정치학’이란 제목의 이 글을 쓴 건 1991년, 미국의 PC운동이 절정일 때다. 조지 오웰의 <1984>의 사상경찰 같은 ‘PC경찰’이란 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미 대선에서는 PC가 새로운 대접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주류가 된 PC의 위선을 심판한 결과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해피 홀리데이는 구석에 버려두면 된다”고 한 것은 비기독교인을 감안해 ‘해피 홀리데이’를 더 사용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PC를 겨냥한 전략이었다. 트럼프는 PC를 정치적 이득을 노린 언행이나 억압 기제를 가리키는 틀(프레임)로 만들어 활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승리를 PC의 패배로 그냥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PC의 결과인 차별제도 철폐나 문화적·종교적·민족적 다양성 존중을 폐기할 일도 아니다. 과도함을 인정하며 PC의 필요성을 다시 주장하는 이도 나타난다.

영국의 문화평론가 아르와 마흐다위는 트럼프식의 공격과 모멸의 언어를 두고 ‘포퓰리즘적 올바름(Populist correctness)’이라고 규정했다. 인종차별주의자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부르지 못하고, ‘대안 우파(alt-right)’라고 지칭해야 하는 포퓰리즘적 올바름의 문제를 지적한다. 

골드스타인의 비유가 떠오른 건 미 대선 결과를 연결해 한국 사회 PC의 과도함을 지적하는 몇몇 글을 보고서다. 한국 사회에서 PC는 주류인가? PC를 제대로 논의라도 해봤는가?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같은,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민 학생을 위한 대학 특별전형을 시도할 수 있을까? 외국인 관광객이나 외국인 아이돌 팬을, ‘외국인’에 ‘바퀴벌레’를 더해 ‘외퀴’라는 합성어로 부르는 사회에서 말이다.

온라인에서 혐오와 차별·배제의 말들은 빈도나 정도에서 심해진다. 여성이나 성소수자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들이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낼 때면 존재 자체를 공격받는다. 욕설은 덤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자처하는 이들도 정파 논리에 따라 그 기준이 들쭉날쭉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에게 더 올바른 표현이 뭘지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난무하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시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억압의 실체를 철폐하는 제도화도 과제다. 한국의 PC는 진행형이며 투쟁 중인 셈이다.

내가 탈모로 겪은 일을 입 밖에 꺼낸 건 민망하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소수자가 당하는 차별, 폭력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30대 이후 머리숱에 관해 들은 별의별 말은 책 한 권으로 정리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십수 년 전 “곧 대머리 되겠다. 그렇게 까져서 장가는 가겠냐” 같은 ‘노골적인 걱정’이 최근 “관리 좀 해야겠다”는 ‘완곡한 우려’로 바뀐 게 변화라면 변화다. 내 탈모를 언급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PC의 영향일 것이라고 본다. 다른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부터 다시 시작할 때다.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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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직함을 가진 문정인 연세대 특임교수의 지난 16일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 연설과 특파원 간담회 발언 내용에 국내 보수층과 야당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교환할 수 있다는 내용과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조건이 다르다는 것,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과정에서의 문제 지적 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발언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려면 현실적 방안이 있어야 한다. 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해 가장 시급한 문제인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시키고 대화의 단초로 삼으려는 구상은 상식적이고 타당하다. 남북대화와 북·미관계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지 공동의 원칙에 지배당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또 절차적 투명성도, 군사적 효용성 검증도 없이 사드 배치를 결정해 북핵 해결을 어렵게 하고 수십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는 상황을 한·미동맹 때문에 그대로 둬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의 심각성은 문 교수 발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문 교수의 발언을 ‘학자로서의 개인적 견해’라고 선을 그은 것에 있다. 문 교수는 정부의 외교안보 방향과 정책기조를 설계한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문 교수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따라서 문 교수 발언이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더 이상 외교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선거 이후 문 교수는 권한도, 의무도, 심지어 사무실도 없는 비상근 특보로 밀려났다. 청와대 안보실은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을 입안했던 인물들이 모두 물러나고 관료 출신들로 채워져 ‘미국 우선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먼저 만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전략이 정해지기도 전에 한·미 정상회담을 갖도록 했다. 또한 사드 배치 과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도 전에 미국에 “기존 배치 결정을 뒤집지 않겠다”고 서둘러 약속했다.

정부는 문 교수 발언에 선을 그을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정부의 정책기조로 삼아 대미·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다른 분야에서는 매우 개혁적 성향을 보이면서 유독 외교 분야에서는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외교 분야에 관한 한 청와대는 초심을 잃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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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준 논란을 보며 프랑스 대혁명 당시 처형됐던 올랭프 드 구주가 떠올랐다. 페미니스트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구주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혁명 정신이 여성을 소외시켰다며 인권선언문을 다시 썼다. ‘여성의 인권과 시민권 선언문’이다. 하지만 절대왕정은 구주를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은 사람’으로 단죄하고 1793년 단두대에 세웠다. 구주는 선언문 10조에서 “여성은 교수대에 설 권리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외쳤다.

강 후보자가 올랭프 드 구주와 같다는 게 아니다. 구주가 단두대에서 희생됐던 배경과 강 후보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반동 정치와 여성 혐오(여혐)다.

혁명 뒤엔 늘 반동 정치가 횡행했다. 특히 성별 문제가 개입될 때 역사는 빠르게 전복 수순을 밟았다. 미국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던 백인 여성들은 정작 노예해방선언이 열리는 대회의장에 출입이 금지됐다. 프랑스 혁명 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구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촛불혁명 뒤 지금 한국 사회에선 ‘강경화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혐오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지없이 목도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문성을 의심하고,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전문성 문제는 강 후보자가 현안 경험이 없어 외교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논리였다. “얼굴마담”(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민간 여객선 선장이면 몰라도 전시 항공모함 함장을 맡길 수 없다”(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식이다.

관료적 조직 유엔에서 강 후보자의 위상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직 외교부 장관들이 역량을 입증했다. 개혁의 적임자라며 외교부 노조가 지지 성명을 냈다. 무능 외교로 평생 상처를 안고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강 후보자 임명을 촉구했다. 더 이상 외교부 장관에게 필요한 전문성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그뿐인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앞이라 생각하고 설득해 보라”고 모욕성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국은 얼마나 더 있는지, ‘누락해야 할’ 정보는 또 없는지, 누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강대국에 끌려다녔던 외교를 벗어나기 위해, 제재가 아닌 소통하는 안보를 위해 오히려 유엔 출신 외교부 장관이 필요한 때라고 대신 답하고 싶다.

도덕성 문제는 분명히 흠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치명적 흠은 아닌 것 같다. 위장전입은 부동산 투기, 학군 편입용이 아니라고 판명됐다. 증여세 늑장 납부도 황교안 전 국무총리,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례에서 보듯 고위 공직자 낙마 사유는 아니었다.

이젠 강 후보자의 대응 방식까지 문제 삼는 분위기다.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 작가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국가 앞가림을 어떻게 하나”라며 미심쩍어했고, 야권은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몰아세웠다. 도덕성 문제로 공격받았던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선방’했고 강 후보자는 선방 못했다는 비교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잘못은 사과와 반성이 중요하다. 잘 막고, 잘 버티는 대응 방식이 잣대가 될 순 없다.

더 심각한 건 강 후보자 논란이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문제를 비롯해 추경, 정부조직개편 연계설마저 감지된다. 이는 ‘강 후보자가 (야당의) 존재감을 위한 제물’이라는 엄포나 다름없다. 아무리 정치가 권력을 좇는,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분야라 해도 ‘딜’이라는 말이 버젓이 나돌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224년 전 올랭프 드 구주가 외롭게 섰던 그 단두대 위에 ‘강경화가 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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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에서 여성의 생리를 묘사한, ‘문제의 그 단락’을 본 것은 수개월 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에 ‘말도 안된다’며 올렸던 글에서다. 뭔가에 홀렸던 건지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이랬다. 자동차 조수석에 앉은, 몸이 불편한 언니가 설사를 해버린 난감한 상황에서 그것을 군말 없이 살뜰히 치워주는 배려심 깊은 동생. 그렇게 몸이 망가져가다 나중에 폐경을 맞게 되는 언니와 동생이 자신들의 삶을 쓸쓸하게 관조하는 이야기겠거니 했다.

잊고 지냈던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그 소설이 소셜미디어를 달구면서다. 그 ‘설사장면’이 뭐가 어떻길래 이 야단법석인가 싶었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한국 문단을 대표한다는 작가가 객관적인 현상을 묘사하는 수준, 그리고 내 황당한 독해력 수준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이다. 해당 부분을 몇차례 곱씹다보니 내 독해력이 그렇게 비루하지는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졌다. 이게 어딜 봐서 생리를 묘사한 것이라 상상할 수 있느냐고. ‘예기치 못한 설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쪽이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느냐고. 가뜩이나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작가가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는 매우 서투르다”고 털어놓자 여성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소설가, 게다가 위상을 생각하면 그의 인식 수준은 몹시 실망스럽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그런 편향적이고 뒤틀린 사고가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생리는 피해갈 수 없다. 선택권이 없이 생래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남자들은 없겠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 생리혈이 파란색인 줄 아는 중학생이건, 문단의 거장이건 간에 인식 수준은 별 차이가 없다. 얼마 전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이 이야기는 화제에 올랐다. 한 친구가 “생리통 때문에 끙끙대고 있는데 그렇게 못 참겠으면 가서 좀 싸고 오라는 인간이랑 계속 살아야 하느냐”며 포문을 열자 이내 대화는 ‘배틀’ 양상으로 이어졌다. 압권은 30대 중반인 한 후배의 이야기였다. “남편에게 생리대 좀 사다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뭐라는 줄 아세요? 출산하고 났는데도 계속 생리를 하는 거냐고 물어요.”

생리에 대한 무지만이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생리, 혹은 생리대라는 단어조차 거북하다는 괴상망측한 엄숙주의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은 도외시된다. 더 짜증스러운 것은 생리대 광고다. TV 속 생리대 광고는 깨끗함, 순수함을 극도로 강조하며 성적 대상으로서의 환상을 심어준다. 최근 몇 년 새 남성 스타들까지 생리대 광고에 출연하면서 연애 판타지의 정점을 찍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감하고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한 여성의 현실은 싹 감춰진 채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지속시키는 데 오히려 충실하다. 한 제품 광고에서 남자 모델이 세련된 목소리로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데선 울화가 치밀었다. 그날에도 빛이 나면 뭘 어쩌려고?

우리 사회에선 오랫동안 남성이라는 성 자체가 권력이었다. 지금도 그로 인한 부작용과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속출한다. 인격체로는 고사하고 생명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낮은 출산율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나 임산부에 대한 몰배려 역시 그 방증이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 마음을 모르겠다”거나 “여자를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습관처럼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 묻고 싶다. 귀찮으니까 그저 나 좋을 대로 생각하겠다는 의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아닌가. 대단한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야구팀이나 축구팀의 경기 결과에 갖는 관심 10분의 1만 쏟아도 충분할 거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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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로 징계를 받은 전직 부장판사 ㄱ씨가 변호사 등록을 하고 국내 최대 로펌에 들어가는 과정에 대한변호사협회의 등록심사위원회(등심위)를 거치지 않은 사실(경향신문 6월6일자 10면 보도)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등심위는 결격사유가 있는 전직 판검사의 변호사 등록을 심사하는 독립기구다.

통상 재직 중 문제를 일으킨 판검사가 퇴직 뒤 변호사 등록을 신청하면 등심위가 열렸다. ㄱ씨는 ‘감봉 3개월’이란 중징계를 받고 사직한 터라 등심위가 열리는 것은 당연했다.

등심위 관계자들도 ㄱ씨의 등심위가 열리지 않은 데 의아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매매 전력 부장판사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할 수는 있다. 문제의 핵심은 중징계를 받고 사직한 부장판사의 등심위를 열지 않은 것이다.

등심위 회부는 대한변협 회장의 고유 권한이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ㄱ씨 건을 등심위에 넘기지 않았다. 김 회장은 취재 초반에 “등심위가 ㄱ씨에 대해 압도적으로 찬성 의견을 냈다”고 경향신문에 말했다. 이후 등심위가 열리지 않은 것이 확인돼 다시 문의하자 대한변협은 뒤늦게 대변인을 통해 김 회장이 착각을 했다고 해명했다.

7일 법무부·검찰 ‘돈봉투 만찬’ 합동감찰반은 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 당사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조만간 검찰을 나올 것이다. 사법개혁 저지 의혹과 관련해 법원 내 고위 인사의 사직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미 법원을 나왔다.

이참에 등심위 관련 현행 변호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징계를 받거나 위법행위와 관련해 퇴직한 자는 등심위를 거쳐야 한다’고 의무조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비위 행위를 한 법조인의 변호사 활동을 막기 위해 생긴 등심위는 대한변협이 스스로 노력해 얻은 산물이다. 대한변협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경학 | 사회부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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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130번째 대법관이 얼마 전 퇴임했다. 법관 생활의 3분의 1을 사법행정기구에서 보냈다. 26년 판사 생활 중에 9년이 법원행정처 근무이고, 대법관이 되어서도 6년 중에 2년을 행정처에 있었다. 오롯한 재판은 20년 남짓 했다. 사법관료들 사이에서도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는 박병대 대법관이다.

하필이면 행정처를 폐지하라고 전·현직 판사가 국회에 모여 토론하는 시간에 퇴임식이 있었다. 언론 카메라 앞에서 그는 “사법권 독립과 법관 독립을 굳건히 하려는 논의가 자칫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비치지 않도록 스스로 살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박 대법관의 퇴임을 맞아 고위 법관들이 헌정문집을 출판했다. 대법원 산하 사법발전재단에서 세금을 써서 펴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청와대에 다녀온 김앤장 변호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판사들은 글을 써서 올리고 박 대법관에게서 고급 부채를 하나씩 받은 게 전부라고 한다. 자발적 참여인 셈이다.

1600여쪽짜리 헌정문집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법행정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라는 제4부. 230쪽을 넘는 책 한 권 분량이다. 그가 행정처에서 이룬 업적을 소개하고 후배들의 평가를 실었다. 30명에 이르는 사법관료들의 헌사다.

“결단과 용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추진력, 모든 이들을 열성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카리스마와 포용력.” “우리에게 국장님은 너무 큰 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국장님의 번뜩이는 기지와 참신한 아이디어는 항상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을 열어주는 마법의 열쇠였다.” “대법관님께서 일신의 편안함과 개인적인 여유를 포기하셨기에 우리나라, 우리 사법부가 더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대법관님! 사랑합니다!”

“우리는 국장님의 높은 경륜과 넓은 안목에 놀랐고, 추진력과 치밀함에 탄복했다. 우리는 국장님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을 ‘능대능소(能大+能小)’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국장님을 모시는 동안 제가 느낀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석가여래와 손오공입니다. 이른바 철학에서 말하는 창발적 진화의 순간입니다.”

기자는 이 글들을 지난 주말 온라인에 공개하고 의견을 물었다.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10년 넘게 인사권 등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면서 법관과 법원을 사유화한 결과”라고 했다. 익명게시판의 어느 판사는 “사법제도와 재판절차 곳곳에 남겨진 흔적을 보면 그저 용비어천가로 썼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독자들의 지적은 “문제는 박 전 대법관의 공과보다도 이런 글을 떳떳하게 공개까지 하는 판사들의 태도”라는 것이었다. Gang Lee라는 아이디를 쓰는 독자는 “마치 봉건국가에서 왕에게 맹목적 충성을 바치는 신하들의 찬가로 보인다”고 했다. 진즉에 검찰청 조직원인 윤석열 검사조차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법관료들이 평생을 ‘서울특별시 서초대로 219’에 있는 법원행정처에 모여 이런 글들을 주고받는다면야 얼마나 아름답고 훈훈한 일이겠나. 서로가 서로를 극한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급속히 좋아질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재판부로 복귀해서, 진짜 판사들이 해야 할 좋은 자리를 독점하고, 그래서 고위공직자 구속도 판단하고, 재벌가의 상속 문제도 다루다가, 마침내 국회와 언론을 발판으로 대법관이 되고 대법원장까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물이 나도록 슬픈 사실은 이 안쓰러운 헌사라도 끼적거릴 자격이, 대한민국 대다수 진짜 판사들에게는 주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헌사들을 보고 어느 젊은 판사가 내게 말했다. 법원행정처에도, 민사판례연구회에도, 우리법연구회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에도 속하지 않은 그이다. “죄송해요. 제가 부끄러워요.”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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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다지 면식이 없는데도, 부고기사에 가슴이 멍해올 때가 있다. 지난 18일.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딱 그랬다.

1995년 부산 YWCA 대학부에서 진행한 ‘여성영화 읽기’에 한 대학교수가 초빙됐다. 강연을 마치며 그가 말했다.

“곧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릴 텐데, 여기 있는 학생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죠?”

“그런 거는 서울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요?”

학생들이 미심쩍어하자 그가 정색했다. “아니 반드시 할 겁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약속만 분명히 해주세요. 도와주겠다고.” 그가 김지석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부산예술대 교수였다.

칸 해변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6개월쯤 지난 어느날, 학내에 공고가 붙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그와의 약속이 떠올라 무작정 지원했다. 부산 남포동에 있는 극장 몇 군데를 빌려 시작한 제1회 영화제는 참 열악했다. 어떤 영화는 번역이 채 안돼 자막 없이 상영됐다. 예고된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상영이 중단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영화제 진행보다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감독과의 대화에 통역자가 없자 보다 못한 관객이 통역에 나서기도 했다. 경험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맨손으로 일군 축제였다.

그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쑥대밭이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좌파영화제’로 낙인이 찍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때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 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북영화제’로 격상됐다.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친박시장이 이끌던 부산시는 영화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지원을 주저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태풍이 해운대 백사장에 설치했던 야외무대를 날리면서 지난해 영화제는 최악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김 부위원장과 함께 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횡령,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특검은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뒷배경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많은 것을 되돌려놓고 있다. 그간 농락당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새 정부가 시급히 명예회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단순한 축제의 복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낳은 거위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영화제의 성공은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아시안필름마켓을 통해 수많은 영화와 시나리오가 팔려나갔다. 이는 한류붐의 원천이 됐다.

영화는 콘텐츠산업의 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제작, 배급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문화체육관광 분야 자료를 보면 콘텐츠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12.4명으로 전기전자(5.1명)나 자동차산업(5.7명)을 앞선다. 콘텐츠산업 종사자의 32%는 29세 이하 청년들이었다. 새 정부가 찾는 청년일자리의 보고가 여기 있다는 얘기다.

가을 바람이 불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문화예술 분야에 붙여진 블랙리스트를 시원하게 떼주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원칙에 대못을 박아주기를 더불어 기대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바다면서 일자리의 바다다.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국내외 영화가 발전하고, 사상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며,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어쩌면 김지석 부위원장이 꿈꿨던 세계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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