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칼럼니스트 리처드 골드스타인은 키가 작고 뚱뚱하며 머리가 벗어진 사람이었다. 주간지 ‘빌리지 보이스’에 보낸 글에 자신의 외모를 이렇게 표현했다. “높이가 다르고, 모낭이 제 기능을 못하는, 몸집 있는 사람.”

2011년 번역 출간된 <루이비통이 된 푸코>의 여러 내용 중 유독 이 사례가 지금껏 기억에 남는 건 내 몸 몇몇 특징이 골드스타인의 그것과 비슷해서다.

“모낭이 제 기능을 못한다” 같은 말을 듣는다면? 탈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지 오래지만 시비나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 같다. 골드스타인의 비유는 미국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운동에 따른 경멸과 차별, 폭력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언어의 규범화’가 과해진 점을 자신에 빗대 농반으로 지적한 것이다. 골드스타인이 ‘정치적 올바름의 정치학’이란 제목의 이 글을 쓴 건 1991년, 미국의 PC운동이 절정일 때다. 조지 오웰의 <1984>의 사상경찰 같은 ‘PC경찰’이란 조어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미 대선에서는 PC가 새로운 대접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당선은 주류가 된 PC의 위선을 심판한 결과라는 것이다. 트럼프가 “해피 홀리데이는 구석에 버려두면 된다”고 한 것은 비기독교인을 감안해 ‘해피 홀리데이’를 더 사용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PC를 겨냥한 전략이었다. 트럼프는 PC를 정치적 이득을 노린 언행이나 억압 기제를 가리키는 틀(프레임)로 만들어 활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승리를 PC의 패배로 그냥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 PC의 결과인 차별제도 철폐나 문화적·종교적·민족적 다양성 존중을 폐기할 일도 아니다. 과도함을 인정하며 PC의 필요성을 다시 주장하는 이도 나타난다.

영국의 문화평론가 아르와 마흐다위는 트럼프식의 공격과 모멸의 언어를 두고 ‘포퓰리즘적 올바름(Populist correctness)’이라고 규정했다. 인종차별주의자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부르지 못하고, ‘대안 우파(alt-right)’라고 지칭해야 하는 포퓰리즘적 올바름의 문제를 지적한다. 

골드스타인의 비유가 떠오른 건 미 대선 결과를 연결해 한국 사회 PC의 과도함을 지적하는 몇몇 글을 보고서다. 한국 사회에서 PC는 주류인가? PC를 제대로 논의라도 해봤는가? 미국의 소수집단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같은, 한국에서 태어난 이주민 학생을 위한 대학 특별전형을 시도할 수 있을까? 외국인 관광객이나 외국인 아이돌 팬을, ‘외국인’에 ‘바퀴벌레’를 더해 ‘외퀴’라는 합성어로 부르는 사회에서 말이다.

온라인에서 혐오와 차별·배제의 말들은 빈도나 정도에서 심해진다. 여성이나 성소수자들은 공격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이들이 다수와 다른 의견을 낼 때면 존재 자체를 공격받는다. 욕설은 덤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따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자처하는 이들도 정파 논리에 따라 그 기준이 들쭉날쭉한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에게 더 올바른 표현이 뭘지는 고민거리가 아니다. 난무하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시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억압의 실체를 철폐하는 제도화도 과제다. 한국의 PC는 진행형이며 투쟁 중인 셈이다.

내가 탈모로 겪은 일을 입 밖에 꺼낸 건 민망하다.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소수자가 당하는 차별, 폭력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30대 이후 머리숱에 관해 들은 별의별 말은 책 한 권으로 정리해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다. 십수 년 전 “곧 대머리 되겠다. 그렇게 까져서 장가는 가겠냐” 같은 ‘노골적인 걱정’이 최근 “관리 좀 해야겠다”는 ‘완곡한 우려’로 바뀐 게 변화라면 변화다. 내 탈모를 언급하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PC의 영향일 것이라고 본다. 다른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부터 다시 시작할 때다.

모바일팀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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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 직함을 가진 문정인 연세대 특임교수의 지난 16일 워싱턴 우드로윌슨센터 연설과 특파원 간담회 발언 내용에 국내 보수층과 야당이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문제 삼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과 한·미 군사훈련 규모 축소를 교환할 수 있다는 내용과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의 조건이 다르다는 것,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과정에서의 문제 지적 등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발언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북한을 대화로 유도하려면 현실적 방안이 있어야 한다. 군사훈련 규모를 축소해 가장 시급한 문제인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시키고 대화의 단초로 삼으려는 구상은 상식적이고 타당하다. 남북대화와 북·미관계는 선순환 구조를 이루는 것이 관건이지 공동의 원칙에 지배당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또 절차적 투명성도, 군사적 효용성 검증도 없이 사드 배치를 결정해 북핵 해결을 어렵게 하고 수십조원의 경제적 피해를 입는 상황을 한·미동맹 때문에 그대로 둬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일의 심각성은 문 교수 발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문 교수의 발언을 ‘학자로서의 개인적 견해’라고 선을 그은 것에 있다. 문 교수는 정부의 외교안보 방향과 정책기조를 설계한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시절 문 교수와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따라서 문 교수 발언이 ‘개인적 견해’에 불과하다는 청와대의 입장은 더 이상 외교안보 공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선거 이후 문 교수는 권한도, 의무도, 심지어 사무실도 없는 비상근 특보로 밀려났다. 청와대 안보실은 문재인 정부 외교정책을 입안했던 인물들이 모두 물러나고 관료 출신들로 채워져 ‘미국 우선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대통령보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을 먼저 만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면서 현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전략이 정해지기도 전에 한·미 정상회담을 갖도록 했다. 또한 사드 배치 과정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도 전에 미국에 “기존 배치 결정을 뒤집지 않겠다”고 서둘러 약속했다.

정부는 문 교수 발언에 선을 그을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정부의 정책기조로 삼아 대미·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다른 분야에서는 매우 개혁적 성향을 보이면서 유독 외교 분야에서는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적어도 외교 분야에 관한 한 청와대는 초심을 잃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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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준 논란을 보며 프랑스 대혁명 당시 처형됐던 올랭프 드 구주가 떠올랐다. 페미니스트이자 인권운동가였던 구주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혁명 정신이 여성을 소외시켰다며 인권선언문을 다시 썼다. ‘여성의 인권과 시민권 선언문’이다. 하지만 절대왕정은 구주를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은 사람’으로 단죄하고 1793년 단두대에 세웠다. 구주는 선언문 10조에서 “여성은 교수대에 설 권리를 가졌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도 가져야 한다”고 외쳤다.

강 후보자가 올랭프 드 구주와 같다는 게 아니다. 구주가 단두대에서 희생됐던 배경과 강 후보자가 처한 환경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려는 것이다. 반동 정치와 여성 혐오(여혐)다.

혁명 뒤엔 늘 반동 정치가 횡행했다. 특히 성별 문제가 개입될 때 역사는 빠르게 전복 수순을 밟았다. 미국 노예해방을 위해 싸웠던 백인 여성들은 정작 노예해방선언이 열리는 대회의장에 출입이 금지됐다. 프랑스 혁명 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는 구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촛불혁명 뒤 지금 한국 사회에선 ‘강경화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빌딩에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 혐오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지없이 목도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문성을 의심하고,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합리적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전문성 문제는 강 후보자가 현안 경험이 없어 외교 수장으로 부적절하다는 논리였다. “얼굴마담”(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민간 여객선 선장이면 몰라도 전시 항공모함 함장을 맡길 수 없다”(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식이다.

관료적 조직 유엔에서 강 후보자의 위상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직 외교부 장관들이 역량을 입증했다. 개혁의 적임자라며 외교부 노조가 지지 성명을 냈다. 무능 외교로 평생 상처를 안고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강 후보자 임명을 촉구했다. 더 이상 외교부 장관에게 필요한 전문성이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그뿐인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 시진핑 주석 앞이라 생각하고 설득해 보라”고 모욕성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사드 배치국은 얼마나 더 있는지, ‘누락해야 할’ 정보는 또 없는지, 누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강대국에 끌려다녔던 외교를 벗어나기 위해, 제재가 아닌 소통하는 안보를 위해 오히려 유엔 출신 외교부 장관이 필요한 때라고 대신 답하고 싶다.

도덕성 문제는 분명히 흠이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치명적 흠은 아닌 것 같다. 위장전입은 부동산 투기, 학군 편입용이 아니라고 판명됐다. 증여세 늑장 납부도 황교안 전 국무총리,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 사례에서 보듯 고위 공직자 낙마 사유는 아니었다.

이젠 강 후보자의 대응 방식까지 문제 삼는 분위기다.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 작가는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국가 앞가림을 어떻게 하나”라며 미심쩍어했고, 야권은 “위기관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몰아세웠다. 도덕성 문제로 공격받았던 이낙연 국무총리,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선방’했고 강 후보자는 선방 못했다는 비교일 수 있겠다. 그러나 잘못은 사과와 반성이 중요하다. 잘 막고, 잘 버티는 대응 방식이 잣대가 될 순 없다.

더 심각한 건 강 후보자 논란이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문제를 비롯해 추경, 정부조직개편 연계설마저 감지된다. 이는 ‘강 후보자가 (야당의) 존재감을 위한 제물’이라는 엄포나 다름없다. 아무리 정치가 권력을 좇는,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분야라 해도 ‘딜’이라는 말이 버젓이 나돌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224년 전 올랭프 드 구주가 외롭게 섰던 그 단두대 위에 ‘강경화가 있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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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김훈의 소설 <언니의 폐경>에서 여성의 생리를 묘사한, ‘문제의 그 단락’을 본 것은 수개월 전이었다. 누군가 자신의 블로그에 ‘말도 안된다’며 올렸던 글에서다. 뭔가에 홀렸던 건지 내 머릿속에 남은 건 이랬다. 자동차 조수석에 앉은, 몸이 불편한 언니가 설사를 해버린 난감한 상황에서 그것을 군말 없이 살뜰히 치워주는 배려심 깊은 동생. 그렇게 몸이 망가져가다 나중에 폐경을 맞게 되는 언니와 동생이 자신들의 삶을 쓸쓸하게 관조하는 이야기겠거니 했다.

잊고 지냈던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최근 그 소설이 소셜미디어를 달구면서다. 그 ‘설사장면’이 뭐가 어떻길래 이 야단법석인가 싶었다. 다시 찬찬히 읽어보고서야 상황 파악이 됐다. 한국 문단을 대표한다는 작가가 객관적인 현상을 묘사하는 수준, 그리고 내 황당한 독해력 수준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말이다. 해당 부분을 몇차례 곱씹다보니 내 독해력이 그렇게 비루하지는 않다고 항변하고 싶어졌다. 이게 어딜 봐서 생리를 묘사한 것이라 상상할 수 있느냐고. ‘예기치 못한 설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쪽이 훨씬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느냐고. 가뜩이나 논란이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에서 작가가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은 할 수 있지만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는 매우 서투르다”고 털어놓자 여성들의 분노는 폭발했다. 인간의 삶을 다루는 소설가, 게다가 위상을 생각하면 그의 인식 수준은 몹시 실망스럽다. 더 절망스러운 것은 그런 편향적이고 뒤틀린 사고가 여전히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여자로 태어난 이상 생리는 피해갈 수 없다. 선택권이 없이 생래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남자들은 없겠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 생리혈이 파란색인 줄 아는 중학생이건, 문단의 거장이건 간에 인식 수준은 별 차이가 없다. 얼마 전 지인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이 이야기는 화제에 올랐다. 한 친구가 “생리통 때문에 끙끙대고 있는데 그렇게 못 참겠으면 가서 좀 싸고 오라는 인간이랑 계속 살아야 하느냐”며 포문을 열자 이내 대화는 ‘배틀’ 양상으로 이어졌다. 압권은 30대 중반인 한 후배의 이야기였다. “남편에게 생리대 좀 사다 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뭐라는 줄 아세요? 출산하고 났는데도 계속 생리를 하는 거냐고 물어요.”

생리에 대한 무지만이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생리, 혹은 생리대라는 단어조차 거북하다는 괴상망측한 엄숙주의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은 도외시된다. 더 짜증스러운 것은 생리대 광고다. TV 속 생리대 광고는 깨끗함, 순수함을 극도로 강조하며 성적 대상으로서의 환상을 심어준다. 최근 몇 년 새 남성 스타들까지 생리대 광고에 출연하면서 연애 판타지의 정점을 찍는 지경에 이르렀다. 난감하고 고통스럽고 지긋지긋한 여성의 현실은 싹 감춰진 채 남성들의 성적 환상을 지속시키는 데 오히려 충실하다. 한 제품 광고에서 남자 모델이 세련된 목소리로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데선 울화가 치밀었다. 그날에도 빛이 나면 뭘 어쩌려고?

우리 사회에선 오랫동안 남성이라는 성 자체가 권력이었다. 지금도 그로 인한 부작용과 불협화음이 곳곳에서 속출한다. 인격체로는 고사하고 생명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이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낮은 출산율을 여성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나 임산부에 대한 몰배려 역시 그 방증이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 마음을 모르겠다”거나 “여자를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렵다”고 습관처럼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 묻고 싶다. 귀찮으니까 그저 나 좋을 대로 생각하겠다는 의지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아닌가. 대단한 노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그저 당신이 좋아하는 야구팀이나 축구팀의 경기 결과에 갖는 관심 10분의 1만 쏟아도 충분할 거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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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로 징계를 받은 전직 부장판사 ㄱ씨가 변호사 등록을 하고 국내 최대 로펌에 들어가는 과정에 대한변호사협회의 등록심사위원회(등심위)를 거치지 않은 사실(경향신문 6월6일자 10면 보도)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등심위는 결격사유가 있는 전직 판검사의 변호사 등록을 심사하는 독립기구다.

통상 재직 중 문제를 일으킨 판검사가 퇴직 뒤 변호사 등록을 신청하면 등심위가 열렸다. ㄱ씨는 ‘감봉 3개월’이란 중징계를 받고 사직한 터라 등심위가 열리는 것은 당연했다.

등심위 관계자들도 ㄱ씨의 등심위가 열리지 않은 데 의아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매매 전력 부장판사의 변호사 등록을 허가할 수는 있다. 문제의 핵심은 중징계를 받고 사직한 부장판사의 등심위를 열지 않은 것이다.

등심위 회부는 대한변협 회장의 고유 권한이다. 김현 대한변협 회장은 ㄱ씨 건을 등심위에 넘기지 않았다. 김 회장은 취재 초반에 “등심위가 ㄱ씨에 대해 압도적으로 찬성 의견을 냈다”고 경향신문에 말했다. 이후 등심위가 열리지 않은 것이 확인돼 다시 문의하자 대한변협은 뒤늦게 대변인을 통해 김 회장이 착각을 했다고 해명했다.

7일 법무부·검찰 ‘돈봉투 만찬’ 합동감찰반은 감찰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 당사자인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조만간 검찰을 나올 것이다. 사법개혁 저지 의혹과 관련해 법원 내 고위 인사의 사직이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이미 법원을 나왔다.

이참에 등심위 관련 현행 변호사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징계를 받거나 위법행위와 관련해 퇴직한 자는 등심위를 거쳐야 한다’고 의무조항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비위 행위를 한 법조인의 변호사 활동을 막기 위해 생긴 등심위는 대한변협이 스스로 노력해 얻은 산물이다. 대한변협의 책임 있는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경학 | 사회부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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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6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대한민국 130번째 대법관이 얼마 전 퇴임했다. 법관 생활의 3분의 1을 사법행정기구에서 보냈다. 26년 판사 생활 중에 9년이 법원행정처 근무이고, 대법관이 되어서도 6년 중에 2년을 행정처에 있었다. 오롯한 재판은 20년 남짓 했다. 사법관료들 사이에서도 ‘사법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는 박병대 대법관이다.

하필이면 행정처를 폐지하라고 전·현직 판사가 국회에 모여 토론하는 시간에 퇴임식이 있었다. 언론 카메라 앞에서 그는 “사법권 독립과 법관 독립을 굳건히 하려는 논의가 자칫 자기중심적 이기주의로 비치지 않도록 스스로 살펴야 한다”고 했다. 한마디 허투루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박 대법관의 퇴임을 맞아 고위 법관들이 헌정문집을 출판했다. 대법원 산하 사법발전재단에서 세금을 써서 펴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청와대에 다녀온 김앤장 변호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등이 참여했다. 판사들은 글을 써서 올리고 박 대법관에게서 고급 부채를 하나씩 받은 게 전부라고 한다. 자발적 참여인 셈이다.

1600여쪽짜리 헌정문집 <법과 정의 그리고 사람>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사법행정에 대한 철학과 소신’이라는 제4부. 230쪽을 넘는 책 한 권 분량이다. 그가 행정처에서 이룬 업적을 소개하고 후배들의 평가를 실었다. 30명에 이르는 사법관료들의 헌사다.

“결단과 용기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추진력, 모든 이들을 열성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카리스마와 포용력.” “우리에게 국장님은 너무 큰 분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국장님의 번뜩이는 기지와 참신한 아이디어는 항상 답답하게 닫혀 있던 문을 열어주는 마법의 열쇠였다.” “대법관님께서 일신의 편안함과 개인적인 여유를 포기하셨기에 우리나라, 우리 사법부가 더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대법관님! 사랑합니다!”

“우리는 국장님의 높은 경륜과 넓은 안목에 놀랐고, 추진력과 치밀함에 탄복했다. 우리는 국장님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심을 ‘능대능소(能大+能小)’라는 네 글자로 표현했다.” “국장님을 모시는 동안 제가 느낀 심정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석가여래와 손오공입니다. 이른바 철학에서 말하는 창발적 진화의 순간입니다.”

기자는 이 글들을 지난 주말 온라인에 공개하고 의견을 물었다. 서울지역 한 부장판사는 “10년 넘게 인사권 등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면서 법관과 법원을 사유화한 결과”라고 했다. 익명게시판의 어느 판사는 “사법제도와 재판절차 곳곳에 남겨진 흔적을 보면 그저 용비어천가로 썼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 독자들의 지적은 “문제는 박 전 대법관의 공과보다도 이런 글을 떳떳하게 공개까지 하는 판사들의 태도”라는 것이었다. Gang Lee라는 아이디를 쓰는 독자는 “마치 봉건국가에서 왕에게 맹목적 충성을 바치는 신하들의 찬가로 보인다”고 했다. 진즉에 검찰청 조직원인 윤석열 검사조차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법관료들이 평생을 ‘서울특별시 서초대로 219’에 있는 법원행정처에 모여 이런 글들을 주고받는다면야 얼마나 아름답고 훈훈한 일이겠나. 서로가 서로를 극한으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나라의 노동환경은 급속히 좋아질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재판부로 복귀해서, 진짜 판사들이 해야 할 좋은 자리를 독점하고, 그래서 고위공직자 구속도 판단하고, 재벌가의 상속 문제도 다루다가, 마침내 국회와 언론을 발판으로 대법관이 되고 대법원장까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눈물이 나도록 슬픈 사실은 이 안쓰러운 헌사라도 끼적거릴 자격이, 대한민국 대다수 진짜 판사들에게는 주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 헌사들을 보고 어느 젊은 판사가 내게 말했다. 법원행정처에도, 민사판례연구회에도, 우리법연구회에도, 국제인권법연구회에도 속하지 않은 그이다. “죄송해요. 제가 부끄러워요.”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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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그다지 면식이 없는데도, 부고기사에 가슴이 멍해올 때가 있다. 지난 18일.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부고를 접했을 때가 딱 그랬다.

1995년 부산 YWCA 대학부에서 진행한 ‘여성영화 읽기’에 한 대학교수가 초빙됐다. 강연을 마치며 그가 말했다.

“곧 부산에서 국제영화제가 열릴 텐데, 여기 있는 학생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죠?”

“그런 거는 서울에서나 하는 거 아닌가요?”

학생들이 미심쩍어하자 그가 정색했다. “아니 반드시 할 겁니다. 여기 있는 학생들은 약속만 분명히 해주세요. 도와주겠다고.” 그가 김지석 부위원장이었다. 당시 부산예술대 교수였다.

칸 해변의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 마련된 고 김지석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추모 공간.

6개월쯤 지난 어느날, 학내에 공고가 붙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자원봉사자 모집.’ 그와의 약속이 떠올라 무작정 지원했다. 부산 남포동에 있는 극장 몇 군데를 빌려 시작한 제1회 영화제는 참 열악했다. 어떤 영화는 번역이 채 안돼 자막 없이 상영됐다. 예고된 상영시간을 맞추지 못하는가 하면 이유 없이 상영이 중단됐다. 자원봉사자들은 영화제 진행보다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감독과의 대화에 통역자가 없자 보다 못한 관객이 통역에 나서기도 했다. 경험도 없었고 돈도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맨손으로 일군 축제였다.

그런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해 쑥대밭이 됐다.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작업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명박 정부 당시 ‘좌파영화제’로 낙인이 찍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시위 때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 죄였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종북영화제’로 격상됐다. 블랙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렸다. 친박시장이 이끌던 부산시는 영화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기업들은 눈치를 보며 지원을 주저했다. 때마침 밀어닥친 태풍이 해운대 백사장에 설치했던 야외무대를 날리면서 지난해 영화제는 최악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김 부위원장과 함께 영화제의 산파 역할을 했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은 횡령, 배임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특검은 부산국제영화제 탄압의 뒷배경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많은 것을 되돌려놓고 있다. 그간 농락당한 부산국제영화제도 새 정부가 시급히 명예회복시켜야 할 대상이다. 단순한 축제의 복원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의 답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질의 청년일자리를 낳은 거위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영화제의 성공은 한국영화산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 아시안필름마켓을 통해 수많은 영화와 시나리오가 팔려나갔다. 이는 한류붐의 원천이 됐다.

영화는 콘텐츠산업의 꽃이다.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제작, 배급에 수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지난해 국가재정운용계획의 문화체육관광 분야 자료를 보면 콘텐츠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10억원당 12.4명으로 전기전자(5.1명)나 자동차산업(5.7명)을 앞선다. 콘텐츠산업 종사자의 32%는 29세 이하 청년들이었다. 새 정부가 찾는 청년일자리의 보고가 여기 있다는 얘기다.

가을 바람이 불 때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문화예술 분야에 붙여진 블랙리스트를 시원하게 떼주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대원칙에 대못을 박아주기를 더불어 기대한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의 바다면서 일자리의 바다다. 영화제를 통해 다양한 국내외 영화가 발전하고, 사상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되며, 우리 청년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어쩌면 김지석 부위원장이 꿈꿨던 세계일 수도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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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10년 동안 펄에 갇혔던 세상이 한꺼번에 밀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 무렵에야 퇴근한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겪고 있다”고 ‘웃으며’ 푸념했다. 한 야당 인사는 “대통령 후보감인지 늘 의아했는데 대통령감은 맞는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권교체기엔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가 관례였다. ‘무조건’ 차별화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출범 20일 만에 40개가 넘는 정부조직을 뜯어고쳤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면 괜찮아)’를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외려 과거 관례를 지우며 출발했다. 곳곳에서 시대의 변화를 해석하느라 분주하다. 문 대통령 리더십에서 찾자면 “비주류이지만 주류의 가치를 만들 줄 알기 때문”(도종환 의원)일 수도, “없음의 힘을 갖고 있어서”(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일 수도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 등 주요국 특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충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은 권력 획득의 과정이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여정이라는 의미가 보태졌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선언한 것에 주목한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의원에 이르는 조직 자원을 갖고 있는 정당은 여론을 결집하는 통로다. 그래서 정당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정당 정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집권 여당이라도 ‘보스’(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르자 “이제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다”고 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사당화 제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고리를 끊으려 했다. 당정분리를 시도하며 “정당을 좌우하지 않는 나의 무능력, 그게 나의 정당개혁”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 시도된 당정분리는 집권 여당의 분열로 막을 내렸다. 정당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한 후보였고, 민주당을 장악한 후보였다. 내각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민주당 정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국정자문기획위원회도 김진표 위원장 등 당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주요 인선 면면을 보면 당의 가치와 철학을 국정 중심에 두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읽힌다. 10년의 적폐를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는데도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것은 선거 때부터 정당이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땐 국회의원들이 유세차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왼쪽’ 이재명부터 ‘오른쪽’ 안희정까지 경선 때부터 정당의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 대통령과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목소리로 ‘민주당 정부’를 외쳤다.

정당 정부는 대통령 의지만으론 버겁다. 정당도 변해야 한다. 당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공천 받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분권도 필수적이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대표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떼주는 ‘약한 분권’을 넘어 독립적 힘을 나눠 갖는 ‘강한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의회는 예산편성권, 인사권조차 없다. 경기도는 전체 인구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올해 예산 규모는 국가예산(약 400조원) 15분의 1 수준이다.

칼럼을 마무리할 무렵, 양정철 전 비서관 퇴장 소식이 들렸다.

문 대통령과 양 전 비서관 관계를 헤아린다면 패권 청산이라는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공공성, 양 전 비서관을 눈물로 보낸 문 대통령의 결심이었을 테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 가는 가장 아픈 길이었으리라.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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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이번주 중 중등 역사교과서를 검정제로 되돌리는 수정고시 개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부가 수정하려는 ‘수정고시’는 발표된 지 3개월도 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 2월23일 이준식 장관 명의로 2018학년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국·검정 역사교과서를 혼용한다는 수정고시를 발표했다. 2015년 11월에는 국정교과서만 쓰라고 했지만, 1년여 후인 2016년 12월에는 국·검정 중에 선택해서 쓰라고 하고 이를 위해 두 달 만에 수정고시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더니 새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하자 4시간 만에 “다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 혼란을 두고 아직까지 단 한 줄의 사과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하는 전자결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장관은 자신이 발표한 행정고시를 최단기간 자기 이름으로 고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어쩌면 지금 새 교육부 장관이 빨리 지명되기를 가장 절실히 바라는 사람은 이 장관일지도 모르겠다. 갈 때 가더라도 이 장관은 분명히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는 전임 장관이 저지른 발표를 어쩔 수 없이 떠안은 장관이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비교육적으로 진행된 정황이 드러나고, 국정교과서에서 1000건이 넘는 오류가 발견됐지만 그는 국정화를 강행했다.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이 저조하자 “법적 대응”을 운운하며 겁박했다. 특히 마지막 몇 달간 부린 ‘오기 행정’으로 출판사들은 느닷없이 검정 절차에 뛰어들었다가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가슴을 졸이고 있다. 세금은 알려진 것만 최소 44억원이 투입됐다.

2017년 교육부와 장관이 역사에 조금이라도 염치 있는 모습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면 장관은 이제 쓸모 없게 된 국정교과서를 퇴임기념품으로 꼭 챙겨가 꼼꼼히 읽어보길 권한다.

장은교 | 정책사회부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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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마라. 요즘 짤줍 한다고 날밤을 새우고 있다니까.”

전화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엔 약간의 흥분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짤줍’이라니. 평소 국적불명의 유치한 줄임말을 자주 사용하며 아이돌을 찬양하던 내게 ‘나잇값 좀 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친구였다. ‘짤줍’이란 각종 사진을 모아 저장하는 행위로, ‘덕질’(좋아하는 분야나 대상을 즐기는 일련의 행동)의 기본이자 필수다. 말인즉 스마트폰을 붙들고 앉아 대통령 관련 뉴스며 사진들을 찾아보고 저장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것이다. 유승민 찍었다더니 웬 대통령 덕질인가 싶었다. “F4인가 하는 그 커피 사진이 ‘입구’(덕질 시작)였어. 딸내미가 ‘엄마 하고 있는 그게 덕질’이라며 입을 비쭉거리더라고. 암튼 대통령 사진 보느라 재활용 분리배출도 잊어버리고 집안 꼴도 말이 아냐.”

한 시민이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도서진열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표지 인물로 등장한 시사주간 ‘타임’ 추가 제작본을 고르고 있다. 서점가에 따르면 문 대통령 당선 이후 <문재인의 운명> 등 대통령 관련 서적 판매가 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세상의 공기가 달라진 것 같다. 스마트폰만 켜봐도 실감난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엔 앞서 언급한, 대통령과 수석들의 커피 마시는 사진을 비롯해 대통령의 낡아빠진 구두 뒤축을 클로즈업한 사진 등 온갖 사진과 미담이 넘쳐나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는 새 정부의 출범을 반기고 지지하는 글들로 빼곡하다. ‘살다 살다 대통령 덕질을 하게 되다니’ ‘얼마 전까지 청와대는 드라마를 보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청와대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다’ ‘정치 뉴스 보기 싫어 구글만 쓰던 내가 지금은 혹여 놓친 사진 있을까 싶어 뉴스 검색만 한다’ 등등. 대통령이 핵잠수함 개발 필요성을 언급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던 중엔 ‘큭’ 하고 웃음이 터졌다. ‘우리 이니 핵잠수함 갖고 싶었쪄여? 사. 2개 사. 세금 낼게.’ 수백, 수천개 달린 다른 댓글도 비슷했다. 복지 확대를 위해 얼마든지 세금을 내겠다는 여론도 넘실댔다. 서점가엔 20~30대 여성들이 문 대통령 관련 책을 앞다퉈 사들이고, 대통령이 표지모델이 됐던 타임지는 일찌감치 품절이 됐으며 대통령이 다니던 커피집까지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고, 직원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양복 재킷을 벗는 등 지극히 평범한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는 환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느 정권 초기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지금 나타나는 현상의 바탕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정서가 있다. 불통 리더십, 비민주성으로 무장해 인간미를 찾을 수 없던 전 정권에서 느꼈던 깊은 절망감과 갈증의 반작용이다. 가장 호감도 높은 전임 대통령으로 꼽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 그 결과 지난 9년간 겪었던 민주주의 퇴행기를 다시 겪을 수 없다는 우려와 절박감도 있다. 촛불을 이끌어 낸 주역들의 적극적인 민의 표출이기도 하다.

대중이 ‘덕질’할 수 있는 대통령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일각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약간의 노파심은 든다. 새 정권에 대한 합리적인 지적이나 조언에까지 과도한 비난부터 쏟아내는 것은 온당하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맹목적 찬사는 독이 된다. 덕질의 세계엔 이런 명제가 있다. ‘빠가 까를 만든다.’ 과도한 팬질이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결국 이미지에 손상을 입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지지하는 대상이다.

촛불 민심의 목표는 묵은 원한을 갚고 복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개혁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팬덤의 확장성이 있어야 하고 열기도 지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개혁과 적폐청산을 이뤄낼 수 있다. 앞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가치 있는 결실을 맺게 할 수 있다.

난 뒤늦게 ‘입덕’한 내 친구의 ‘덕질’이 문 대통령 퇴임까지 계속됐으면 좋겠다. 박수 받으며 떠난 버락 오바마처럼 떠나보내기에 아쉬운 그런 대통령. 촛불시민들에게 남은 또 하나의 소망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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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노무현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한다. 청와대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사건 대리인 이용훈 변호사를 대법원장에 임명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멤버들을 법원행정처에 배치한다. 김종훈 비서실장,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이용구 송무심의관 등이다.

김종훈 실장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의 공동 변호인이었다. 이광범 실장은 광주일고 후배이며, 그의 형인 이상훈 판사는 이후 대법관에 제청된다. 이용구 심의관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최종영 대법원장에 반발해 연판장을 돌렸다. 그 밖에 황진구 인사심의관 등도 우리법 회원이다.

우리법연구회는 누구나 알아보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했다. 진짜 핵심은 이들을 비롯한 행정처 인물 모두가 사법관료라는 점이다. 이용훈 대법원장 자신부터 행정처 차장을 거쳤다. 그는 기획조정실장에 박병대, 윤리감사관에 강일원, 등기호적국장에 임종헌을 각각 앉혔는데, 모두 판사 생활 대부분을 행정처에서 보냈다. 이들은 현재 대법관이고 헌법재판관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관리처로 지목된 기획조정실 책임자 이민걸 기조실장도 ‘이용훈 대법원’에서 기획조정심의관, 사법등기국장을 거쳤고, 우리법 출신이다. 이렇듯 사법관료 집단은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내밀어 정권과 호흡을 맞춰왔다. 변하지 않은 것은 사법관료의 사법부 장악이란 사실이다.

지난겨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고 양승태 대법원장이 회복불능 상태가 되자, 대법원과 행정처를 장악하려는 새로운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대법원장이 되고 누가 비서실장이라는 얘기도 돈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게 선을 댔다는 얘기도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름도 있지만 결국에는 행정처 출신이란 설명이 뒤따른다.

돌이켜 보면 대법원과 행정처를 장악한 이들은 진보이자 보수이고, 곧 노무현이자 박근혜였다. 보혁구도 같은 촌스럽고 게으른 프레임으로는 이들을 포착하지 못한다. 사법관료들은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이고, 치밀하고 조직적인 집단이다. 이번에도 이미 양승태 카드를 포기하고 새로운 카드를 잡았다. 이것이 바로 행정처를 중심으로 하는 관료사법 메커니즘이다.

무소불위 사법행정기구인 법원행정처는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을 모방한 것으로, 식민지 사법에까지 연원이 닿는다. 사무총국이 법관독립을 침해하므로 해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본에서는 나오고 있다. 독일의 사법행정 교과서조차 “일본의 사무총국은 사법부의 형식적 독립을 명분으로 법관독립과 재판독립을 팔아넘겼다”고 지적한다. 나 역시 특별한 계기로 사무총국을 가까이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의 행정처는 사무총국보다 심각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와 가깝다는 인사가 만든 법원개혁안 초안을 최근 보았다. 40쪽 넘는 문건이지만 행정처 개혁 방안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누구라도 대법원장만 되면 친위조직인 행정처를 축소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냐”고 어느 부장판사는 말했다. 보고서를 의뢰한 국회의원실에 이런 의견이 있다고 말하자, 행정처 개혁을 포함한 최종본을 다시 작성 중이라고 전해줬다.

사법개혁에 대해 대통령 후보들은 조심스러워했다. 사법부의 독립이 걸린 문제라는 이유를 들었다. 유신 시절에 사법시험에 붙은 법조인들의 트라우마다. 지켜야 할 것은 부패한 사법행정기구가 아니라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이다. 지금 대법원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한 시민의 재판권 침해는 헌법 위반에 해당하며, 대통령에게는 헌법 수호 의무가 있다.

이제, 양승태 대법원장은 세련된 카드를 던지고 사라질 것이다. 관료사법을 위한 사법관료들의 성실한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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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987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더없이 평온한 날들이었다. 1년쯤 다녀보니 학교란 곳도 적응됐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았다. 골목문화가 살아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끼리 해가 지도록 함께 놀았다. 이웃엔 영미 언니가 살았다. 광주가 고향인 언니는 20대 중반으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혼자 자취생활을 했다. 언니는 우리집을 자주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늘 잘 웃고 다정한 언니가 진짜 언니처럼 좋았다.

그해 늦가을 어느날, 언니와 등굣길을 함께했다. 담벼락엔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붙어 있었다. 다른 후보들은 얼굴사진을 커다랗게 썼는데 1번 노태우 후보만 엄지손가락을 세운 팔을 쭉 뻗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복을 입은 3번 김대중 후보는 혼자 흑백사진이었다. 조금 무서웠다. 2번 김영삼 후보와 4번 김종필 후보도 있었지만, 어떤 사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니가 물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어?”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다시 벽보 사진을 슬쩍 봤지만,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언제나 근엄해보였던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쎄요. 그냥 하던 사람이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언니는 말없이 웃었다.

몇 달 뒤 늦은 밤, 이불 속에서 잠들었다가 깼다. 어머니와 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영미 언니는 군인들이 방 안까지 총을 들고 왔는데 옷장에 숨어 겨우 살았다고 했다. 꿈인가, ‘주말의 명화’ 속 이야기인가 싶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언니는 얼마 후 결혼했고 고향으로 갔다.

투표권을 갖게 되고 선거를 경험할 때마다 그날 영미 언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계엄군의 살인진압을 경험한 언니에게 1987년의 대선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광장에 모여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시민들에게 그해 대선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 가을과 겨울,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나갔다. 절반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참여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방에서 입석기차를 타고 온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딸에게 우리가 원하면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한 초등학생은 “자꾸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어른들끼리 ‘초딩 같다’고 하는데 초딩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한 아이돌 팬클럽은 “우리가 나라 꼴 말고 덕질(팬 활동)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달라”고 외쳤다. 안국동에서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길에선 한 무리의 아이들 앞에 한 여성이 멈춰 섰다. “저는 성소수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차별받지 않고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고 싶어 나왔습니다.”

대선후보 TV토론회를 보면서 광장에 나왔던 많은 시민들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실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2017년은 ‘우리가 만든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합법적으로 해고했으며, 유세 기간 동안 후보들이 던진 말은 실시간으로 ‘팩트체킹’ 됐다. 여전히 가짜뉴스와 막말이 떠돌지만 힘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더 이상 몇몇 사람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30년 전 영미 언니가 왜 “전두환은 나쁜 대통령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종종 궁금했다. 그냥 어린아이에게 설명하기 힘들어서였겠거니 생각했지만, 요즘은 다른 이유가 짐작된다. 분노를 물려주기 싫어서…. 나도 분노 대신 의미를 새기고 싶다. 닷새 남은 대선을 어떤 의미로 만들 것인가는 후보들이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한다.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엄중히 감시하겠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까.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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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비용 부담을 한국 측에 요구했고, 이를 알면서도 조기 배치를 강행했다는 언론 보도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전날에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미국 언론 인터뷰 내용이 자신의 해명과 다르다는 지적에 “한·미 기존 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 본다”는 반응을 내놨다. 두 번 모두 단체 문자메시지를 통한 일방적 공지였고 제기된 의문들에 답하겠다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으로 촉발된 사드 대란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뭉개고 1주일만 더 버티면 된다는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안보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온 뒤에도 청와대 경호의 보호막 속에서 국민들의 눈길을 피해 박근혜표 정책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고 있다.

김 실장은 국방장관 시절인 2013년 6월, 2년 뒤로 예정돼 있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다시 연기하자고 미국 측에 말을 꺼낸 장본인이다. 2014년 한·미의 전작권 전환 무기연기 결정 당시 그는 이미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여서 청와대 담장 안에서 어떠한 질문도 피해갈 수 있었다.

전작권 전환 때는 상관인 대통령의 눈치만 보면 됐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사드 대란은 경우가 다르다. 정치적 책임을 지는 상관이 파면된 상황에서 김 실장의 권한은 제한돼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김 실장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대선을 앞두고 ‘안보장사’ ‘색깔론’을 전가의 보도로 삼는 보수 정치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후보들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이들만 보고 김 실장이 전횡을 저지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옛 야권 주요 후보들이 사드 문제에 대해 보여주는, 모호하거나 일관되지 않은 입장이 김 실장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손제민 | 정치부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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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까지 12일 남았다. 선거판은 날로 격화된다. 며칠 남지 않은 선거판에서 가장 먹히는 것은 네거티브 선거전이다. 네거티브는 감성을 가장 잘 자극한다. 각 캠프는 상대 후보의 조그마한 흠결이라도 끄집어내려 혈안이 된다. 일단 한번 도드라진 흠결은 부풀려진 채 마구 뿌려진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아들 채용 의혹이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 채용 의혹이 대표적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돼지발정제 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해명해도 일단 프레임에 걸리면 선거 국면에서는 해명이 잘되지 않는다.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면 의혹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선거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리고 이를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때 반박할 논지도 많지 않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누가 승자가 되든 당선자의 호감도는 여지없이 깎여버린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4월 셋째주(18~20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두 유력주자인 문 후보와 안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는 40%가 넘는다. 호감도(문 후보 53%, 안 후보 52%)와는 고작 10%포인트밖에 차이가 안 난다. 홍 후보는 비호감도가 무려 75%다. 호감도(18%)를 크게 능가한다. 이렇게 미운털이 박혀서는 정권을 잡아도 국정을 힘 있게 밀어붙이기 힘들다. 미운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은 정책도 밉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중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해 말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경제전문가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뭘 했는지 몰라서 평가를 못 내리겠습니다.”

박근혜 정부라고 구호가 없었을까. 창조경제가 있었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있었다. 투자활성화 대책도 쏟아졌다. 문화융성이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그 실체가 모호한 채로 끝났고, ‘통일대박’을 담았던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뜬구름처럼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탄력을 받지 못한 데는 범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한 탓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고작 3.5%포인트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35%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믿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반대여론에 적극적으로 구애해야 했지만 싫어하는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은 ‘나쁜 사람’ 알레르기가 있었다. 껄끄러운 사안은 논의를 피하고 힘으로만 밀어붙였다. 성공할 리가 없었다. 증세와 복지 같은 장기과제는 아예 취급도 안 했다. 각 분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갈등사안도 특별히 해결한 게 없다.

박근혜 정부가 허비한 시간만큼 다음 정부는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증세와 복지 같은 큰 주제는 물론이고 보건, 교육, 노동 분야의 세부 난제도 많다. 수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사 정원 확대 문제나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가진 사람을 교사로 채용하는 경력교원 임용은 뜨거운 감자다. 안전·위생·식품 분야의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 도입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이런 난제들은 수많은 토론을 통해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비로소 추진될 수 있다. 하지만 비호감도가 높아서는 리더십이 발휘될 수 없다. 김영삼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하나회를 청산할 수 있었던 뒷배경에는 90%를 넘나들던 높은 지지율이 있었다. 반면 지지율이 30%가 되지 못할 때 ‘비전2030’을 제시한 노무현 정부는 ‘계산서를 내놨다 신나게 얻어터지고’는 끝났다.

다음달 9일 밤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나온다. 성공한 대통령을 위해서 대선 이후를 생각하는 고급스러운 선거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단한 선거전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 후보를 비판하되 과도한 네거티브만 자제하면 된다. 차기 정권은 이미 시작됐다.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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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이 조기대선을 ‘벚꽃 대선’이라 하더니 벚꽃은 4월에 핀다고 ‘장미 대선’이라고 바꿔 부른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수수한 민들레로 대선을 부르자는 제안도 나온다. ‘장미 대선’이나 ‘민들레 대선’이란 이름엔, 지금 선거 내용과는 별개로, 봄내가 물씬하다. 박근혜를 구속시키고, 최소한의 정권교체는 가능한 듯한 분위기도 봄내를 더한다.

정치·사회의 봄은 왔는가? 박근혜 정권이 불러온 문제에서 벗어났는가를 되돌아본 건 한 매체 기사 때문이다. ‘노동과세계’가 지난 22일 서울 중심부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우리 일터 ‘새로고침’ 대행진>에 단 부제는 “정치의 봄은 우리의 삶과 일터의 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이다.

노동 현장엔 매서운 찬바람이 분다.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소속 노동자 6명이 서울 광화문 한 건물 전광판에서 고공단식농성 중이다. 울산에선 하청노동자 2명이 염포산터널 부근 교각에서 농성한다. 조기대선은 죽음을 끊어내지도 못했다. 지난 1월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이, 지난 18일엔 갑을오토텍의 한 노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마지막 촛불집회(20차)가 열리고 있다. 촛불집회는 지난해 10월 29일을 시작으로 매주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진행됐다. 이준헌 기자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촛불광장 시민이 직접 민주주의로 이룬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들이 다시 극한의 고공농성을 벌이고, 자살하는 일만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노동자들은 1차 때부터 박근혜 퇴진과 노동의제를 갖고 선봉에 서온 촛불집회 주체 가운데 하나다. 광화문에서 고공농성 중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오수일은 언론 기고에서 절망과 분노를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가 쫓겨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한 건 없다. 오히려 대선후보들 밥상만 차려준 꼴이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쫓겨나는 현실을 저들은 외면하고 있다.”

대선 노동 의제는 되레 퇴보했다. 2012년 문재인이 쌍용차·한진중을 찾았고, 안철수가 삼성백혈병 피해 노동자를 만났다. 박근혜도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갔다. 지금 유력 후보들은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 ‘비정규직 사용 전면 금지’ ‘2018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사내하청제·기간제법·정리해고제 폐지’ 같은 요구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예견된 일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보수층의 표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5678서울도시철노동조합이 지난해 11월2일 낸 시국선언문 중 한 구절이다.

노동 대통령을 표방한 심상정을 뺀 주자들은 저마다 ‘성장’ ‘4차 산업혁명’의 적임자임을 내세운다. 자신만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영국 신학자 허버트 매케이브의 말을 빌리면 ‘모든 이가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랑스러운 세계전망’일 뿐이다. 헛된 낙관이 되리라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소외된 촛불의제는 노동만이 아니다. 시인 송경동은 줄곧 촛불집회 현장을 지켰다. 세월호법 재개정, 사드 반대,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 박근혜 정권의 공작정치·공안탄압 국정조사, 재벌개혁 같은 촛불의제를 정치권이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선의 보수화는, 촛불집회가 박근혜 일당을 단죄했으나 새로운 사회 의제·가치·방향·정책을 담아내는 정치세력의 출현 내지 재편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촛불의제는 사라지고 말 것인가? 송경동은 촛불의제 부재를 일시적이라고 본다. 거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촛불집회의 다음 단계를 고민한다. 정권교체를 종착역으로 설정하지 않고, 2단계의 항쟁·혁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쉽진 않지만 촛불광장의 승리 경험을 토대로 특권·불공정·불의·부패가 발붙일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했다.

모바일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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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19대 대선이다. 접경지대에 선 기분이다. 권력과 역사의 긴장이 교차하는 곳,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곳쯤이겠다. 우리는 5월9일 이후 어두운 경계선을 지날 수 있을까.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73)는 최근 <불타는 얼음>을 출간했다. 형벌과도 같은 그리움으로 보낸 지난 세월의 자서전이자, 반세기 동안 남북의 경계인으로 살았던 회고록이다. “식민지, 한국전쟁, 독재를 겪은 뒤 서독 유학을 택했다. 첫 경계선이었다. 그걸 넘으니 제국주의와 반제 민족해방투쟁 사이의 첨예한 경계선을 만났다. 또 넘어섰다. 그리고 2017년 대선….” 송 교수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조국 땅을 처음 밟았던 때보다 긴장한 목소리였다. 이번 대선 의미를 말하면서 1987년의 아픔을 반복했다. 그는 “유력 후보들이 표심에만 몰두하고 있다. 87년 대선의 양김처럼 갈등만 커지면 정권을 교체해도 소용없다. 어려운 시대를 함께 헤쳐가는 상생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2003년 귀국 당시 노무현 정부가 보수의 포위망에 갇혀 있던 걸 경험했던 그다. “보수가 약화됐다지만 대선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격할 게 분명하다. 정치적 실력이나 도덕적 수준에서 진보를 추동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월등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박정희 패러다임 붕괴로 보면 안된다고 한 까닭이다. 아직도 텅 빈 대합실에 홀로 있을 때가 많다고 한 그는 “정상적인 사회를 위해 많은 고통을 치렀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뒷걸음질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접경지대 밖에서 50년을 서성여야 했던 그가 경계인으로 맞는 마지막 대선이길 바란다.

노무현 정부 여성 비서관들이 <대통령 없이 일하기>라는 책을 냈다. 청와대를 권부가 아닌 일터로 인식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사회의 변화 방향을 국가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게 대통령”이라면서도 “그 사회는 대통령이 아닌 우리의 꿈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없이 일하기>는 청와대를 권력이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하려 했던 이들의 고군분투기다.

공저자 7명 중 균형인사비서관이 2명이나 포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균형인사, 특히 여성인사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려 했다는 흔적이다.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던 김신일 교수가 교육부총리에 발탁된 것도 시스템 인사를 지향했기에 가능했다. 해방 후 처음 시도된 국가재원배분회의, 이지원 도입 등은 시스템 국정을 대표하는 사례다. 만약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할 일을 했더라면 시민들은 대통령의 부재를 알았을까.

접경지대 안에서 경계(한 권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돌파하려 했던 여성 비서관들의 노력이 그저 꿈으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20일 후면 대선이다. 후보들은 ‘든든한 국가’를 약속한다. 그러나 경계선 곳곳에선 ‘국가’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용주씨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세 번째 기소됐다. 보안관찰법은 군사반란·내란 등으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들이 출소 뒤 3개월마다 일거수일투족을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강씨는 “국가가 대를 이어(전신 사회안전법) 시민의 기본권을 짓누르는 데 복종하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 전 4·3항쟁 69주기였다. 1948년 4월 제주, 국가폭력은 냉전과 분단으로 무장한 군경토벌대를 앞세워 수만명을 쓰러뜨렸다. 4·3항쟁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란 덫에 갇혀 혁명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도 불리지 못한 채 통곡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유족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42번째 기일(4월9일)을 맞았다. 법원은 2007년 무죄를 선고했고, 2009년엔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대법원은 배상금이 지나치게 많다고 판결했고, 국가는 배상금 환수 청구소송에 이어 강제환수 조치를 진행했다. 채권자 이름은 ‘대한민국’이었다.

구혜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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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인양됐다. 미수습자들을 찾아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은 또다시 시작됐는데, 공직사회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까지 세월호 인양추진단장을 맡았던 전직 해양수산부 고위공무원이 산하 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것이다.

해수부는 지난 17일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새 원장에 연영진 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59)을 임명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뒤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없애겠다고 법까지 제정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세월호 수습을 맡은 공무원을 보란 듯 관피아로 앉힌 것이다.

해수부는 “진흥원은 안전문제나 이권과 관련된 산하 기관이 아니고, 관피아 방지법의 적용 대상도 아니라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는 본질을 비켜간 설명이다. 그간 관피아 방지법은 규제 대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낙하산 공무원 문제가 비단 안전문제, 이권 관련 기관에서만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어서다.

세월호가 참사 1091일 만에 육지로 완전 인양된 이튿날인 지난 12일 해질 녘 전남 목포신항 부두에 모로 누워 있다. 선진국들은 승객이 모두 산 사고라도 철저히 조사해 교훈으로 삼는 반면, 한국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백서도 못 내고 강제 해산되는 등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해수부는 또 연 전 실장이 해양과학 연구·개발(R&D)을 담당했고, 진흥원 산파역도 했다는 점을 들어 낙점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국민들에겐 황당한 발상으로 들릴 수 있다. 공무원이 재직 중 산하 기관을 만들고 퇴직 뒤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이런 논리라면 공무원들은 퇴직 후 들어갈 기관 만들기에 더 노력할지도 모를 일이다.

연 전 실장의 임명 시점도 공교롭다. 진흥원장에 지원한 직후 이미 관피아 논란이 대두됐고, 그 뒤 탄핵 정국까지 겹치며 원장 인사는 무기한 연기됐었다. 대선도 불과 20여일 앞뒀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옛 식구에게 자리를 내어줄 마지막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닐까.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까지 인양된 직후 인양추진단장을 맡던 인사라니 더 곱잖은 시선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절망을 극복하고 거리로 나섰던 것은, 우리 사회를 바꿔보자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 전 실장의 영전 소식을 들은 미수습자 가족이나 유가족 마음은 어떨까. 해수부가 세월호 때문에 흘렸다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나.

박용하 | 경제부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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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중 가장 강한 농도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쳤던 올봄, 어린 자녀를 둔 엄마·아빠의 속은 타들어갔다. 어른들도 목이 아파 외출을 꺼리는 날, 아이들은 공원에 오종종 모여 ‘현장학습’을 했다.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찼다. 어린이의 호흡량은 어른의 3배. 어른이 심각하다고 느낄 수준이면 아이에겐 ‘재난’에 가깝다.

정부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환경부는 초미세먼지·미세먼지 주의보 때 교육현장에서 야외수업이 ‘자제’될 것이라고 했지만 수업 조정 판단은 어린이집·유치원 원장과 학교장 재량이다. 게다가 한국은 미세먼지 기준이 느슨해 ‘고농도’에 신음해도 주의보는 쉽게 발령되지 않는다. 원성이 높아지자 올 1월 환경부는 ‘건강취약계층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각 지자체에 ‘주의보’보다 더 엄격한 ‘예비주의보’를 만들게 해 교육현장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전국 지자체 가운데 예비주의보가 시행되는 곳은 없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3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을 찾은 아빠와 딸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는 17일 교육부와 함께 한번 더 아이들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이번엔 서울시교육청과 엇박자다. 이날 정부는 ‘야외수업 자제’ 기준을 기존 ‘예비주의보’ 이상 단계에서 그 이전 단계인 ‘나쁨’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은 ‘보통’일 때도 야외수업을 자제시키겠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기준 조정을 검토해 다시 발표하겠다”고 했다. 애초 서로 충분히 논의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혼란이다.

환경부가 다음달 8일까지 실시하겠다고 밝힌 미세먼지 담당자 대응교육도 이상하다. 전국 유치원·학교 담당자만 대상이다.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할 어린이집이 빠졌다. 복지부는 “어린이집안전공제회에서 어린이집 교사 대상으로 미세먼지 내용을 포함한 안전교육을 하고 있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도, ‘미세먼지 담당자’ 대상의 교육도 아니다. 대응교육조차 따로따로다.

지난겨울과 이른 봄, 아이들이 최악의 미세먼지 속에서 ‘각자도생’한 후에야 내놓은 대책이다. 적어도 각 주체가 ‘딴소리’ 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송윤경 | 정책사회부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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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f(x) 출신의 배우 설리. 그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논쟁적인 연예인 중 하나다. 작품 대신 주로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그의 행보에 쏟아지는 대중들의 관심은 뜨겁다. 최근 몇 달간 탄핵정국을 보내며 연예뉴스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예외였다. 남자친구와의 결별 소식은 물론이고 인스타그램에 어떤 사진을 올렸는지 시시콜콜 중계가 됐다. 그 사진들은 예외 없이 선정성 논란을 불렀다. 이틀 전엔 그를 옹호하며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긴 배우 김의성까지 덩달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설리는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넷이다. 열다섯 살에 가수로 데뷔해 청순한 이미지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그는 소녀 판타지의 전형이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안티팬 입장에서 봤을 때). 14살 연상 남자친구와 공개적으로 열애를 하며 가수로서의 본업을 소홀히 했고, 그동안 쌓아온 고운 이미지를 전복하며 대중을 ‘배신’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은 남자친구와 침대에서 키스하거나, 입안에 휘핑크림을 가득 머금은 모습으로 성적 상상을 부추겼다. 맨살을 드러낸 채 로리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과감한 차림도 서슴지 않았다.

김의성 SNS 갈무리

도발적인 그를 향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비난과 악플이었다. 노출증 환자, ‘관심종자’니 하는 원색적 용어부터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공인으로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훈계조 충고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그의 대응은 여느 연예인과 달랐다. 대중의 시선을 즐기듯, 조롱하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그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냈고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여전히 표현하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수년째 변함없이 시끌시끌한 것을 보면 종전에 볼 수 없던 설리 같은 유형의 여성 연예인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긴 한가 보다.

옹호나 비난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이를 표현하는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타인을 향한 혐오나 폭력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 자체로 인정되기보다는 사회적인 인격을 재단하고 옭아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다수의 구미에 맞게 왜곡되기 일쑤다. ‘걸레’ 같은 시대착오적 여성 비하 용어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하면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가 생각난다. 아테네 여성들이 남편들로 하여금 전쟁을 멈추도록 하기 위해 섹스 파업을 일으킨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뤼시스트라테는 아테네 여성들을 불러모아놓고 아래와 같이 선창하며 따라하도록 한다.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집에서 나는 숫처녀처럼 지내겠습니다. 나는 결코 자진하여 내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싫다는 데도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나는 재미없게 해주고 요분질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천장을 향하여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나는 치즈 강판에 새겨진 암사자처럼 엉덩이를 들고 웅크리지도 않겠습니다.”

기상천외한 발상의 이 작품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자유로운 아테네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제뉴스를 통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주도하는 이 같은 성담론은 언제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까. 야한 묘사가 꽤 있는 <뤼시스트라테>는 ‘고교생 필독서 100권’ 리스트에도 포함되는 고전이다. 이 작품이 써진 것이 기원전 411년. 지금은 2017년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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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사 탄압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임법관 임관식에서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라고 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은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갈파한 경구로서, 우리 모두 이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젊은 법관 107명이 처음 법복을 입고 들은 ‘대법원장님 말씀’은 과연 사실일까.

이 말은 발자크의 소설 <창녀의 영광과 비참(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입니다. 사법부의 현재 관행을 때려 부수고 다른 바탕 위에 새롭게 지으십시오. 하지만 사법부 신뢰를 멈추진 마십시오.’ 현실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가 섞인 문장이라고 한다.

파리8대학에서 발자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예영 서울대 교수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발자크는 사법권이 얼마나 권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고 부패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명성, 출세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야심, 그리고 권력층의 이해관계와 명예가 얽혀 있어서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판사의 갈등을 묘사한 이야기다.”

지난 6일 대검찰청의 조각작품 ‘심흔 95-1’을 두고 촬영한 대법원이 과녁에 든 표적물처럼 보인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양 대법원장(과 그의 비서업무를 하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하필이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발자크의 소설을 찾아내 인용하면서, 발자크의 말이라거나 경구라고까지 표현한 이유가 있을 테다. 문제는 이들의 원전 비틀기 대상이 프랑스 대문호의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헌법의 핵심 구절을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양 대법원장은 제왕적 인사권을 방어하기 위해 ‘법관의 독립’이 아닌 ‘법원의 독립’을 말해왔다. 이날 임관식에서도 “법관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의 구성원”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1항)를 뒤집은 것이다. 이런 해석이라면 제헌헌법에서는 ‘구성된’ 대신 ‘조직된’이었으므로 판사가 법원의 조직원이 된다.

헌법 제5장 법원(101~110조)을 관통하는 핵심은 ‘법관의 독립 보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에서는 법관의 독립 상대가 ‘법원 내·외부의 간섭’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재판의 독립’으로 바꾸고, 그 상대도 ‘외부의 부당한 통제’로 축소시킨다. 내부의 통제가 없다는 것인지, 있어도 그만이란 것인지 애매하다.

그리고 양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라고 신임법관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헌법 130개 조항 어디에도 ‘명백하게’ 재판의 독립을 선언한 구절이 없다. 우리 헌법이 선언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며 그 결과가 ‘재판의 독립’인 것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양심에 바탕을 둔 법관의 독립을 선언한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마저 미묘하게 왜곡된다. 대부분 학자들은 ‘헌법과 법률을 기초로 양심에 따라’라고 해석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라고 쉼표 하나를 얹어 법관의 양심을 3분의 1로 깎아내린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거쳐 나온 그의 발언이 이것이다. “법관은 어떠한 외부의 부당한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한다는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지난 6년 동안 양승태 대법원장의 헌법 해석이다.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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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