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19대 대선이다. 접경지대에 선 기분이다. 권력과 역사의 긴장이 교차하는 곳,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곳쯤이겠다. 우리는 5월9일 이후 어두운 경계선을 지날 수 있을까.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73)는 최근 <불타는 얼음>을 출간했다. 형벌과도 같은 그리움으로 보낸 지난 세월의 자서전이자, 반세기 동안 남북의 경계인으로 살았던 회고록이다. “식민지, 한국전쟁, 독재를 겪은 뒤 서독 유학을 택했다. 첫 경계선이었다. 그걸 넘으니 제국주의와 반제 민족해방투쟁 사이의 첨예한 경계선을 만났다. 또 넘어섰다. 그리고 2017년 대선….” 송 교수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조국 땅을 처음 밟았던 때보다 긴장한 목소리였다. 이번 대선 의미를 말하면서 1987년의 아픔을 반복했다. 그는 “유력 후보들이 표심에만 몰두하고 있다. 87년 대선의 양김처럼 갈등만 커지면 정권을 교체해도 소용없다. 어려운 시대를 함께 헤쳐가는 상생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2003년 귀국 당시 노무현 정부가 보수의 포위망에 갇혀 있던 걸 경험했던 그다. “보수가 약화됐다지만 대선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격할 게 분명하다. 정치적 실력이나 도덕적 수준에서 진보를 추동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월등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박정희 패러다임 붕괴로 보면 안된다고 한 까닭이다. 아직도 텅 빈 대합실에 홀로 있을 때가 많다고 한 그는 “정상적인 사회를 위해 많은 고통을 치렀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뒷걸음질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접경지대 밖에서 50년을 서성여야 했던 그가 경계인으로 맞는 마지막 대선이길 바란다.

노무현 정부 여성 비서관들이 <대통령 없이 일하기>라는 책을 냈다. 청와대를 권부가 아닌 일터로 인식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사회의 변화 방향을 국가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게 대통령”이라면서도 “그 사회는 대통령이 아닌 우리의 꿈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없이 일하기>는 청와대를 권력이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하려 했던 이들의 고군분투기다.

공저자 7명 중 균형인사비서관이 2명이나 포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균형인사, 특히 여성인사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려 했다는 흔적이다.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던 김신일 교수가 교육부총리에 발탁된 것도 시스템 인사를 지향했기에 가능했다. 해방 후 처음 시도된 국가재원배분회의, 이지원 도입 등은 시스템 국정을 대표하는 사례다. 만약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할 일을 했더라면 시민들은 대통령의 부재를 알았을까.

접경지대 안에서 경계(한 권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돌파하려 했던 여성 비서관들의 노력이 그저 꿈으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20일 후면 대선이다. 후보들은 ‘든든한 국가’를 약속한다. 그러나 경계선 곳곳에선 ‘국가’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용주씨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세 번째 기소됐다. 보안관찰법은 군사반란·내란 등으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들이 출소 뒤 3개월마다 일거수일투족을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강씨는 “국가가 대를 이어(전신 사회안전법) 시민의 기본권을 짓누르는 데 복종하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 전 4·3항쟁 69주기였다. 1948년 4월 제주, 국가폭력은 냉전과 분단으로 무장한 군경토벌대를 앞세워 수만명을 쓰러뜨렸다. 4·3항쟁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란 덫에 갇혀 혁명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도 불리지 못한 채 통곡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유족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42번째 기일(4월9일)을 맞았다. 법원은 2007년 무죄를 선고했고, 2009년엔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대법원은 배상금이 지나치게 많다고 판결했고, 국가는 배상금 환수 청구소송에 이어 강제환수 조치를 진행했다. 채권자 이름은 ‘대한민국’이었다.

구혜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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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인양됐다. 미수습자들을 찾아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은 또다시 시작됐는데, 공직사회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까지 세월호 인양추진단장을 맡았던 전직 해양수산부 고위공무원이 산하 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것이다.

해수부는 지난 17일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새 원장에 연영진 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59)을 임명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뒤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없애겠다고 법까지 제정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세월호 수습을 맡은 공무원을 보란 듯 관피아로 앉힌 것이다.

해수부는 “진흥원은 안전문제나 이권과 관련된 산하 기관이 아니고, 관피아 방지법의 적용 대상도 아니라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는 본질을 비켜간 설명이다. 그간 관피아 방지법은 규제 대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낙하산 공무원 문제가 비단 안전문제, 이권 관련 기관에서만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어서다.

세월호가 참사 1091일 만에 육지로 완전 인양된 이튿날인 지난 12일 해질 녘 전남 목포신항 부두에 모로 누워 있다. 선진국들은 승객이 모두 산 사고라도 철저히 조사해 교훈으로 삼는 반면, 한국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백서도 못 내고 강제 해산되는 등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해수부는 또 연 전 실장이 해양과학 연구·개발(R&D)을 담당했고, 진흥원 산파역도 했다는 점을 들어 낙점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국민들에겐 황당한 발상으로 들릴 수 있다. 공무원이 재직 중 산하 기관을 만들고 퇴직 뒤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이런 논리라면 공무원들은 퇴직 후 들어갈 기관 만들기에 더 노력할지도 모를 일이다.

연 전 실장의 임명 시점도 공교롭다. 진흥원장에 지원한 직후 이미 관피아 논란이 대두됐고, 그 뒤 탄핵 정국까지 겹치며 원장 인사는 무기한 연기됐었다. 대선도 불과 20여일 앞뒀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옛 식구에게 자리를 내어줄 마지막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닐까.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까지 인양된 직후 인양추진단장을 맡던 인사라니 더 곱잖은 시선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절망을 극복하고 거리로 나섰던 것은, 우리 사회를 바꿔보자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 전 실장의 영전 소식을 들은 미수습자 가족이나 유가족 마음은 어떨까. 해수부가 세월호 때문에 흘렸다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나.

박용하 | 경제부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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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중 가장 강한 농도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쳤던 올봄, 어린 자녀를 둔 엄마·아빠의 속은 타들어갔다. 어른들도 목이 아파 외출을 꺼리는 날, 아이들은 공원에 오종종 모여 ‘현장학습’을 했다.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찼다. 어린이의 호흡량은 어른의 3배. 어른이 심각하다고 느낄 수준이면 아이에겐 ‘재난’에 가깝다.

정부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환경부는 초미세먼지·미세먼지 주의보 때 교육현장에서 야외수업이 ‘자제’될 것이라고 했지만 수업 조정 판단은 어린이집·유치원 원장과 학교장 재량이다. 게다가 한국은 미세먼지 기준이 느슨해 ‘고농도’에 신음해도 주의보는 쉽게 발령되지 않는다. 원성이 높아지자 올 1월 환경부는 ‘건강취약계층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각 지자체에 ‘주의보’보다 더 엄격한 ‘예비주의보’를 만들게 해 교육현장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전국 지자체 가운데 예비주의보가 시행되는 곳은 없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3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을 찾은 아빠와 딸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는 17일 교육부와 함께 한번 더 아이들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이번엔 서울시교육청과 엇박자다. 이날 정부는 ‘야외수업 자제’ 기준을 기존 ‘예비주의보’ 이상 단계에서 그 이전 단계인 ‘나쁨’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은 ‘보통’일 때도 야외수업을 자제시키겠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기준 조정을 검토해 다시 발표하겠다”고 했다. 애초 서로 충분히 논의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혼란이다.

환경부가 다음달 8일까지 실시하겠다고 밝힌 미세먼지 담당자 대응교육도 이상하다. 전국 유치원·학교 담당자만 대상이다.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할 어린이집이 빠졌다. 복지부는 “어린이집안전공제회에서 어린이집 교사 대상으로 미세먼지 내용을 포함한 안전교육을 하고 있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도, ‘미세먼지 담당자’ 대상의 교육도 아니다. 대응교육조차 따로따로다.

지난겨울과 이른 봄, 아이들이 최악의 미세먼지 속에서 ‘각자도생’한 후에야 내놓은 대책이다. 적어도 각 주체가 ‘딴소리’ 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송윤경 | 정책사회부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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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f(x) 출신의 배우 설리. 그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논쟁적인 연예인 중 하나다. 작품 대신 주로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그의 행보에 쏟아지는 대중들의 관심은 뜨겁다. 최근 몇 달간 탄핵정국을 보내며 연예뉴스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예외였다. 남자친구와의 결별 소식은 물론이고 인스타그램에 어떤 사진을 올렸는지 시시콜콜 중계가 됐다. 그 사진들은 예외 없이 선정성 논란을 불렀다. 이틀 전엔 그를 옹호하며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긴 배우 김의성까지 덩달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설리는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넷이다. 열다섯 살에 가수로 데뷔해 청순한 이미지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그는 소녀 판타지의 전형이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안티팬 입장에서 봤을 때). 14살 연상 남자친구와 공개적으로 열애를 하며 가수로서의 본업을 소홀히 했고, 그동안 쌓아온 고운 이미지를 전복하며 대중을 ‘배신’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은 남자친구와 침대에서 키스하거나, 입안에 휘핑크림을 가득 머금은 모습으로 성적 상상을 부추겼다. 맨살을 드러낸 채 로리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과감한 차림도 서슴지 않았다.

김의성 SNS 갈무리

도발적인 그를 향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비난과 악플이었다. 노출증 환자, ‘관심종자’니 하는 원색적 용어부터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공인으로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훈계조 충고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그의 대응은 여느 연예인과 달랐다. 대중의 시선을 즐기듯, 조롱하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그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냈고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여전히 표현하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수년째 변함없이 시끌시끌한 것을 보면 종전에 볼 수 없던 설리 같은 유형의 여성 연예인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긴 한가 보다.

옹호나 비난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이를 표현하는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타인을 향한 혐오나 폭력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 자체로 인정되기보다는 사회적인 인격을 재단하고 옭아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다수의 구미에 맞게 왜곡되기 일쑤다. ‘걸레’ 같은 시대착오적 여성 비하 용어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하면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가 생각난다. 아테네 여성들이 남편들로 하여금 전쟁을 멈추도록 하기 위해 섹스 파업을 일으킨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뤼시스트라테는 아테네 여성들을 불러모아놓고 아래와 같이 선창하며 따라하도록 한다.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집에서 나는 숫처녀처럼 지내겠습니다. 나는 결코 자진하여 내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싫다는 데도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나는 재미없게 해주고 요분질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천장을 향하여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나는 치즈 강판에 새겨진 암사자처럼 엉덩이를 들고 웅크리지도 않겠습니다.”

기상천외한 발상의 이 작품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자유로운 아테네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제뉴스를 통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주도하는 이 같은 성담론은 언제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까. 야한 묘사가 꽤 있는 <뤼시스트라테>는 ‘고교생 필독서 100권’ 리스트에도 포함되는 고전이다. 이 작품이 써진 것이 기원전 411년. 지금은 2017년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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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사 탄압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임법관 임관식에서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라고 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은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갈파한 경구로서, 우리 모두 이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젊은 법관 107명이 처음 법복을 입고 들은 ‘대법원장님 말씀’은 과연 사실일까.

이 말은 발자크의 소설 <창녀의 영광과 비참(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입니다. 사법부의 현재 관행을 때려 부수고 다른 바탕 위에 새롭게 지으십시오. 하지만 사법부 신뢰를 멈추진 마십시오.’ 현실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가 섞인 문장이라고 한다.

파리8대학에서 발자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예영 서울대 교수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발자크는 사법권이 얼마나 권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고 부패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명성, 출세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야심, 그리고 권력층의 이해관계와 명예가 얽혀 있어서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판사의 갈등을 묘사한 이야기다.”

지난 6일 대검찰청의 조각작품 ‘심흔 95-1’을 두고 촬영한 대법원이 과녁에 든 표적물처럼 보인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양 대법원장(과 그의 비서업무를 하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하필이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발자크의 소설을 찾아내 인용하면서, 발자크의 말이라거나 경구라고까지 표현한 이유가 있을 테다. 문제는 이들의 원전 비틀기 대상이 프랑스 대문호의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헌법의 핵심 구절을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양 대법원장은 제왕적 인사권을 방어하기 위해 ‘법관의 독립’이 아닌 ‘법원의 독립’을 말해왔다. 이날 임관식에서도 “법관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의 구성원”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1항)를 뒤집은 것이다. 이런 해석이라면 제헌헌법에서는 ‘구성된’ 대신 ‘조직된’이었으므로 판사가 법원의 조직원이 된다.

헌법 제5장 법원(101~110조)을 관통하는 핵심은 ‘법관의 독립 보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에서는 법관의 독립 상대가 ‘법원 내·외부의 간섭’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재판의 독립’으로 바꾸고, 그 상대도 ‘외부의 부당한 통제’로 축소시킨다. 내부의 통제가 없다는 것인지, 있어도 그만이란 것인지 애매하다.

그리고 양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라고 신임법관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헌법 130개 조항 어디에도 ‘명백하게’ 재판의 독립을 선언한 구절이 없다. 우리 헌법이 선언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며 그 결과가 ‘재판의 독립’인 것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양심에 바탕을 둔 법관의 독립을 선언한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마저 미묘하게 왜곡된다. 대부분 학자들은 ‘헌법과 법률을 기초로 양심에 따라’라고 해석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라고 쉼표 하나를 얹어 법관의 양심을 3분의 1로 깎아내린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거쳐 나온 그의 발언이 이것이다. “법관은 어떠한 외부의 부당한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한다는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지난 6년 동안 양승태 대법원장의 헌법 해석이다.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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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공안검사와 점심을 먹었다. 이틀 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화두에 올랐다. 검사는 억울해했다. 유우성씨가 간첩인 것은 분명한데 증거에 발목이 잡혀서 놓치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몇 달간 간첩조작사건을 취재하면서 꽤 괜찮은 검사라 믿었던 이들에게도 들었던 말이었다.

검찰이 유씨가 간첩이라며 재판부에 낸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증거는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건넨 것이었다. ‘검찰은 국정원에 속았고 국정원은 정보원에 속았다.’ 한마디로 검찰은 간첩사건을 조작할 악의가 없었으며 단지 멍청하고 부주의했다는 것이 수사결과의 내용이었다.

검사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법원이 서류만 보고 간첩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요지였다. 직접 수사를 하지도 않은 당신은 어떻게 유씨가 간첩이라 확신하는지 물었다. 그가 밝은 얼굴로 답했다. “아휴, 우리야 딱 보면 알지요.” 거침없이 다음 말이 이어졌다. “판관 포청천 아시죠.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검찰이 수사도 하고 재판도 하고 집행도 하고…. 포청천이 작두를 대령하라~ 하잖아요. 껄껄껄.” 젊은 날 사법시험을 보는 데 지능을 다 써버린 것일까. 헌법을 부정하는 발언을 왜 오늘 처음 보는 법조 출입기자에게 하는지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전원 구조 속보는 오보인 것 같네요.” 옆에서 돌 씹는 표정을 하고 있던 타사 기자가 오보를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불쾌한 그와의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그날이 2014년 4월16일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점심과 비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됐다.

세월호가 모듈 트랜스포터를 이용한 육상거치를 위해 5일 오후 목포 신항만에서 방향을 바꿔 재접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씨 무리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대검찰청을 출입한 나는 대통령과 검찰과 법원이 3박자로 칼춤을 추는 것을 지켜봤다. 사고 다음날부터 검찰은 총괄수사대책본부를 구성해 세월호 참사 규명을 책임졌다. 대형 사건·사고의 원인 규명에 검찰이 나선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진실규명의 총대를 정부가 아닌 검찰이 멘 결과는 참담했다. 검찰은 죄인찾기에 주력했고, 검찰식 죄인찾기는 ‘사법처리’를 염두에 둔다. 잘못과 책임이 있어도 형법상 기소할 만큼의 형사적 증거가 부족하면 검찰의 죄인 명단에선 빠진다.

대통령은 참사 닷새 만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다”면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원한 것은 형사적·민사적 잘잘못 이전에 ‘진실’ 그 자체였으나, 결과는 대통령의 바람대로 누가 욕먹을 것인지 줄세워 발표한 ‘수사결과’뿐이었다. 검찰이 이미 사망한 유병언씨 행적찾기에 골몰하는 동안 세월호는 진실과 함께 더 깊은 바다로 침몰했다.

대법원도 빠지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1심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대법원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안전사고와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법관이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양형을 실현하기 위해 고려할 사항을 논의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사실상 최고 형량을 선고하라는 지시로 읽히는 발표였다. 각 재판부의 독립권을 주장하며 문제 있는 판결에 공개적 비판을 해도 징계를 내리는 대법원마저 칼춤에 동참했다.

박근혜씨는 구속됐고 세월호는 3년 만에 겨우 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아직도 왜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오는 4월16일은 부활절이다. 지난 3년 동안 세월호를 생각하며 들었던 노래를 아이들에게 바친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중에서)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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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인가, 중국 출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 교수에게 물었다. 중국은 왜 그렇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민감하냐고. 그때도 한반도 사드 배치가 이슈였다.

그의 답은 이랬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에 사드를 설치하는 것은 미국으로선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 미국은 그때 핵전쟁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또 물었다. 좀 레이더로 들여다보면 어떠냐고.

“만약 중국이 미국 본토를 레이더로 감시한다고 해봐라. 미국이 어떻게 하겠나. 미국은 중국 서쪽에 인접한 국가들을 포섭해 미사일기지를 많이 세웠다. 한국에 사드를 설치하면 베이징이 감시권에 들어간다. 용납할 수 있겠나?”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제서야 ‘아차’ 했다. 강대국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중국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언제든 북한 장사정포가 머리 위로 쏟아질 수 있고, 미·중·일의 레이더와 인공위성이 24시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와는 안보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도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로 한국 관광 금지가 전면 확대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평소와 달리 무척 한산하다. 연합뉴스

중국의 사드 경고는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다. 7년 전인 2010년 문정인 교수가 집필한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보자. 주펑 베이징대 국제전략센터 부주임은 “만약 한국이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가입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아갈 것이므로 중국은 분명히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것”이라며 “MD는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도 많은 공을 들였다. 2015년 전승절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격적으로 대접했다. ‘망루외교’는 사드를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랬던 만큼 지난해 7월 사드 한반도 배치 발표 이후 보인 중국의 격한 반응은 이해할 만했다. 그동안 중국이 보여준 호의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의 비난과 분노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중국은 드라마, 영화 등 한류 수입을 막았고 이어 단체관광객 방한을 금지했다. 심지어 중국에서 열린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를 TV 화면에서 멀리 잡기도 했다. 그의 모자에 박힌 ‘롯데’ 로고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베이징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 상영을 피했다. 한마디로 쪼잔하다. 마음이 상한 덩치 큰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아이를 꼬집으며 복수하는 모양새다.

정작 사드 배치를 주도한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못한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다른 것은 여기에 있다. 1962년 쿠바사태 당시 미국은 소련을 막아섰다. 배를 돌리지 않으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소련에 눈웃음을 보내며 쿠바를 때리는 꼼수는 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중국에 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중국에 대한 호감은 주변국 어느 나라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국은 결코 한국을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결코 미국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중국을 무시하는 근거로 중국의 보편성 부족을 든다. 중국은 결코 정의롭고, 너그럽고, 자유롭고, 믿을 만한 존재라는 신뢰를 주변국들에 심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을 중국으로 만든다는 중화(中華)는 두려움 그 자체다.

‘천하를 얻으려면 민심을 얻어야 한다(得天下 在得民心)’고 했다. 중국이 미국을 넘는 꿈을 갖고 있다면 주변국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한국마저 등을 돌리면 이제 중국은 동아시아 어디서 민심을 잡을 수 있을까. 중국이 대국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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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대한민국 도시 중 지역 단위에 가치가 부여된 유일한 곳이다. 1980년 군부독재의 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이른 2017년 봄까지 광주가 지불한 비용은 적지 않았다. 5·18 광주항쟁 자체가 박정희 패러다임에 가장 오래, 가장 질기게, 가장 직접적으로 맞선 투쟁이었다.

한 50대 광주시민은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호남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평화(촛불)로 계엄령(태극기)을 덮었고, 국가전복세력으로 매도됐던 ‘국민’에서 박정희·박근혜 시대라는 반동을 물리친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의미일 테다. 지금 광주는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는 운동을 벌이며 국가주의에 짓눌려 평생을 ‘을’로 살아온 회한을 벗어나는 중이다. 계엄군 총탄에 스러진 시민군에 피를 나눠줬던 적십자병원 앞 행렬을 잊지 말자며, ‘5·18 헌혈의 날’을 제정하자고 외치며 말이다.

이런 역사 앞에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모습인가. 한 지인은 ‘늙었지만, 여전히 힘 있는 부모’(호남)와 ‘다 컸지만, 독립해 내보내기엔 여전히 불안한 자식’(민주당)에 빗댔다. 애먹이는 자식이란 말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은 수십년 동안 어지간히 부모를 힘들게 했다. 민주화 성지라는 표상과 세속적 욕망 사이 갈림길로 몰아세웠다. 몰표를 주든 안 주든 지역주의로 매도했다. 광주 정신은 불우한 시대의 희망이어야 한다며 내려놓기도 힘든 버거운 짐을 지게 했다. 안으론 어떤가. 광주만 해도 엘리트 정치의 독점이 어느 지역보다 심한 곳이다. 공고한 기득권이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어 민심이 반영될 통로조차 없다. ‘진보적 유권자 대 보수적 정치권’이라는 이중 구조가 강고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광주, 호남이었다. 민주당의 ‘일당독재’ 메커니즘이 만든 폐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호남의 선택을 물었다. 주적(主敵)이 사라진 상황이라 정권교체가 확실하다는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전략적 집단성이 옅어진 대신 깐깐한 정권교체를 원했다.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화를 꼽는 의견부터 그렇다. 기득권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호남에 적용하면 종북몰이와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패권적 지역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호남을 괴롭혀 온 빨갱이 콤플렉스는 지역을 넘어 한국 사회 이념과 정치의 모순을 끊임없이 키웠다. 이런 차원에서 문재인 후보의 전두환 표창장 논란과 오거돈 부산지역 상임선대위원장의 ‘부산 대통령’ 발언은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응에 생채기를 냈다.

호남을 존중해달라는 목소리도 컸다. 호남홀대론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금남로와 피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달라는 것이다.

호남이 안희정 후보의 대연정 제안을 매섭게 비판하는 까닭이다.

한 지인은 “박정희·박근혜 세력과 손잡는다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 국가운영을 위해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해도 ‘시민’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정치권끼리 지분 나눠 먹기에 그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호남 대표성도 결국 지역 국회의원, 토호세력들이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다.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발의한 개헌안에 맞서 시민권을 강조하고, 촛불 의미를 ‘풀뿌리 민주주의와 시민 정치역량 강화’로 규정했다.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응, 호남 존중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27일 호남의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경선 선거인단 214만3330명 중 호남은 약 27만명이다. 수도권(약 121만명)에 견주면 미미한 규모다. 그러나 호남의 정치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호남선엔 유난히 눈물이 많다.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호남의 눈물에서 민주당도 정권교체도 피어나길 바란다. 하물며 봄이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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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사람들이 잡혀가고 다치고, 목숨까지 빼앗기며 민주화를 외치던 1980년대. 중학생이던 당시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데모는 마귀들이 하는 짓”이라느니, “데모하면 우리나라도 월남처럼 망한다”느니, 혹은 “세상일에 관심 갖지 말고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라”는 따위였다. 정치적인 강요와 선동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황당한 정죄도 난무했다. 축구공에 맞아 입 주변을 꿰매고 온 학생에게 “찬송 대신 유행가 부르다가 벌 받은 것”이라는 정도는 애교였다. 한 부흥사는 대학졸업을 앞둔 자녀를 잃은 자신의 교회 신도 이야기를 전하며 “건물주이면서 부활절 헌금으로 고작 5000원 낼 만큼 인색했던 대가”라고 재단했고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아멘”을 합창했다. 나라든 교회든 지도자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고 말 많은 사람은 빨갱이, 빨갱이는 사탄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가 구호처럼 등장했다. 이견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사탄으로 매도되기 일쑤이던 분위기에서 난 종종 신앙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뒤죽박죽인 상태를 맞닥뜨려야 했다.

최근 몇 달간을 달궜던 탄핵정국. 소위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탄핵반대 집회를 접하면서 예전의 그 혼란스럽고 암담한 상황이 떠올랐다. 전쟁과 산업화를 겪었던 노년층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송두리째 부정당했다는 상실감에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집회에서 두드러지던 보수 기독교 세력은 어떻게 봐야할까. ‘권세에 복종하라’거나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성경 구절 팻말 아래로 십자가와 통성기도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모습에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개신교가 사회적 물의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왜 이렇게 희화화의 대상임을 확인시키고 조롱거리가 되기를 자처하나. 옳지 못한 대통령과 그를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정치인들을 지켜달라고 하고, 대통령이 물러나면 빨갱이 나라가 되니 기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왜 장로, 권사, 집사들이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전파하는 걸까. 그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고 신앙인가.

한국 개신교는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 독재 등을 거치며 친일, 친미를 기반으로 하고 반공정신으로 무장해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해방 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기득권과 파트너가 되어 주류의 삶을 누려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예수와 성경을 팔아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중 두드러진 것은 소위 ‘매북(賣北) 마케팅’이었고 ‘마귀를 대적하라’는 성경 구절은 그 근거로 활용됐다.

얼마 전 읽었던 이사야 3장15절의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라는 구절은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은 권력자를 하나님이 책망하는 내용이다. 주류 기득권층이 수없이 저질러왔던, 지금도 저질러지는 죄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주류 개신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젠 웬만해선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교회 내 횡령과 성폭력, 거짓말을 비롯해 온갖 사회적 지탄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세습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 대형교회의 처사에 대해서 보수 교회들은 침묵한다.

감리교 운동이 활발했던 18세기 영국에서 당시 감리교인들은 보증 없이 돈을 빌려줘도 되는 사람들로 신뢰받았다. 국내에 개신교가 전파된 초창기, 개신교는 민족·사회운동에 앞장서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물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이름 없는 성직자와 신도들은 있다.

지난 반세기 이상 드리웠던 구질서가 무너지며 우리 사회는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빛과 소금으로 돌아갈 것인지, ‘매북 개독’으로 남을지 선택할 때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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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사회부는 23일 각 시·도 중국음식 값을 인하하도록 종용했다. 보사부 당국은 이에 불응하면 경제기획원과 협의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1965년 4월2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한 구절이다. 박정희 정권은 짜장면 값을 누르면서 위생검사나 세무조사 등을 동원했다. 화교들이 쫓겨난 뒤 음식점엔 한국인들이 자리잡았다. ‘한국식 짜장면’의 탄생 비화다.

요즘 농림축산식품부는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재수 장관은 취임 후 역대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파동을 거치며 조직 위상에 바닥을 찍었지만 최근 ‘치느님(치킨을 일컫는 속어)’을 지킨 영웅이 됐다.

‘감히’ AI 와중에 치킨 값을 올리겠다고 나선 비비큐(BBQ)가 타깃이었다. 산지 2500원대 닭이 튀기면 1만6000원으로 뛰는 데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는데, 가격 인상 계획 발표는 공분을 불렀다. BBQ는 “AI 때문은 아니다”라고 항변했고 농식품부는 “왜 하필 지금이냐”고 응수했다. 정부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의문이 남는다. 지금 가격 인상을 막으면? AI가 지나면 업체는 다시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물가상승률, 인건비 등 업계가 둘러댈 명분은 늘 넘친다. 정부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정부는 유통 과정에 부조리는 무시하고 첫 단계인 농가와 끝인 가맹점을 비교하며 업체만 몰아붙였다. 한 마리 2560원인 생계가 1만6000원 치킨이 되는 과정의 의문은 없고, “원가가 10%밖에 안된다”는 구호만 키웠다.

박정희 정권의 가격 통제에 중국음식점은 공업용 탄산나트륨을 섞거나 가짜 춘장을 써서 가격을 낮췄다. 당분간 닭다리가 두 개 들었는지 살펴야 할지 모르겠다.

조형국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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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최종영 대법원장은 양승태 부산지법원장을 법원행정처 차장에 전보한다. 양승태는 최종영의 행정처 라인이다. 1996년 양승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은 최종영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지휘를 받아 로스쿨 문제를 담당하고 처리했다. 대법원장이 누군가를 차장에 발탁하는 것은 대법관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특이하게도 대법관을 제청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문명국 어디에도 없는 제도다. 1948년 제헌헌법 이후 법관회의가 대법관을 제청했다. 그러다 1972년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제청권을 대법원장에게 줬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군사정권은 대법원장을 장악해 사법부를 통제했다.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던 유신정권은 대법원장이 권력으로부터 사법부를 보호하는 구조라고 선전했다. 이치에 닿을 리가 없다. 동서고금에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최고법원이 없는 이유는 동등한 합의체라는 기본 원칙에 어긋나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장도 일본의 최고재판소장관도 소수의견에 몰리는 일이 많지만, 유독 한국의 대법원장만 항상 다수의견인 비밀이 여기에 있다.

법원행정처 603호에는 양복 차림 남성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그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역대 대법관 사진이 걸린 것으로 생각했다. 꼼꼼히 보니 대법관이 아닌 얼굴도 있었다. 대법관의 산실(産室)이라는 차장실, 사진은 역대 차장들이었다. 603호 출신의 법조계 원로는 “정말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고 했다. 대법원장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그 대가로 대법관에 오르는 것이다.

2월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전담법관 임명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이백규(53·사법연수원 18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주한길(53·24기) 변호사(서울서부지법 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를 신임 전담법관으로 임명했다. 전담법관은 특정 사건 재판만 맡는 법관으로 15년 이상 법조 경력자 중에서 선발한다. 대법원은 2013년부터 매년 3명씩 소액사건 전담법관을 임명해 전국 5개 지방법원에 배치했다. 연합뉴스

2003년으로 돌아가, 양승태 차장이 취임한 직후 4차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차장 등을 중심으로 하는 서열순 대법관 제청에 반대해 판사 160여명이 연판장에 서명했다. 하지만 최 대법원장은 전임 차장 김용담을 대법관에 제청하고, 대신 대법원장 몫 헌법재판관에 여성 법관 전효숙을 지명해 무마한다. 양 차장은 사법파동에 책임을 지고 최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한다. 2005년 퇴임하는 최종영은 마지막 대법관 제청 카드를, 사표를 반려하고 특허법원장에 보내둔 양승태에게 준다. 이렇게 해서 대법원의 ‘차장 불패’ 신화와 행정처가 지배하는 관료사법 체제는 생명을 이어간다. 양승태는 2011년 대법관에서 퇴임하고 몇 달 뒤 대법원장 임명장을 받는다.

지난해 촛불이 시작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서초동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양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퇴임 전에 행사할 두 장의 제청 카드가 온전하겠냐는 것이었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가 대선 국면으로까지 이어지면, 강형주 전 차장과 임종헌 현 차장을 챙겨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무렵 판사들이 사법개혁에 관한 학술행사를 준비했고 이를 막으라고 지시받은 판사는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대법원이 이렇게까지 무리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2003년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가진 양 대법원장 한 사람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에게 남은 임기는 불과 6개월이었다.

오히려 오는 9월 이후로 학술대회를 미뤄야 할 절실한 사정은 차기 대법원장을 노려온 사람들에게 컸다. 대법원장이 다 된 것처럼 움직이던 그들에게, 박근혜의 퇴진에 이은 판사들의 사법개혁 요구는 가슴 뜨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되기만 한다면 13장의 대법관 제청 카드를 갖게 되고, 그가 자리에 오르도록 유리한 국면을 조성한 사람도 기회를 얻는다.

6년 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자 2003년에 연판장을 돌렸던 판사는 얼마 못 가 법복을 벗는다. 그가 이번 탄핵심판 사건에서 세월호 부분을 울먹이며 변론한 국회 대리인 이용구 변호사다. 지난주 학술대회 저지 의혹이 한창일 때 양 대법원장은 2003년과 비슷하게 여성 변호사 이선애씨를 헌법재판관에 지명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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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실물을 내놓기 전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념의 문제였다. 정권이 역사관을 독점하면 안된다는 생각, 미래세대에게 하나의 역사관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생각.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무기로 싸웠다.

전선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높은 국정화 반대여론을 바꾸기 위해 완성도 있는 교과서를 만들겠지만 현대사에 교묘한 편향과 왜곡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2016년 11월28일 현장검토본 발표 후 깨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게 교과서냐”고 묻는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든 이들은 최신 연구 대신 수십년 전 폐기된 학설을 인용하고, 조선 대표 실학자를 소개하며 다른 이의 영정(인물그림)을 썼으며 좌우가 바뀐 사진을 원사료인 양 실었다. 교육부가 지적을 받아들여 현장검토본에서 수정했다고 밝힌 오류 건수만 760건인데, 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장검토본과 공개된 최종본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실제 수정 건수는 1072건이라고 밝혔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최종본에 653개의 오류가 더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그중 일부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견해 차이”라며 버티고 있다. 교육부 말대로라면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내용을 교과서에 실었다는 뜻이다. 수능시험에라도 나오면 당장 소송감이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왼쪽)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어떤 국정교과서 찬성론자들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을 강조한 것이 왜 문제냐”고 한다. 아쉽게도 국정교과서는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팩트로 싸운다. 교과서가 무기다. 현대사 부분까지 가기도 전에 교과서는 놀랄 만한 수준을 드러낸다. 세계 민주국가들의 교과서 발행체제를 공부하며 국정화 비판 논리를 준비하던 역사학자와 교사들은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사실에 실소를 짓고 있다. 한 지인이 “그래도 아까우니 한국어 교재로 활용하면 어떠냐”고 했다. 국립국어원이 단 1주일 동안 어문규범을 감수한 결과 <한국사>에서만 1436건의 비문과 오탈자, 표기 오류가 발견됐다. 한글교재로도 못 쓴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청와대가 시켰고 여당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공무원이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짜 잘못은 국정교과서 발표 이후부터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에서 인정한 부분만을 봐도 불량품으로 드러났다. 그사이 ‘주문자’는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촛불광장에선 수백만명이 얼굴을 드러내고 “국정교과서 폐기”를 외쳤다. 교육부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다면, 선의로 했으나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반성했다면 그때라도 멈췄어야 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이 하기 힘들었다면 몇개월 뒤 떠날 장관이 탄핵국면과 여론을 핑계로라도 이용해 교육부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다.

교육부는 느닷없이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국·검정혼용제를 발표해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연장하고, 연구학교를 운영하겠다며 가산점과 돈으로 교사들을 유인하다 그마저도 안되니 보조교재로 뿌리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장관은 행자부 장관과 법무부 차관을 대동하고 연구학교 신청을 막는 외부세력이 있다며 “법적 조치”를 운운했다. 겁쟁이들은 늘 “두고보자”고 한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기적 같은 기회를 교육부는 최선을 다해 걷어찼다.

대선 후보들은 교육부 폐지와 개편을 말하고 있다. 교육부가 정말 문을 닫게 된다면 이준식 장관과 현 간부들의 책임이 팔할이다.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꽃다발을 주고, 전국의 학교현장을 찾아다니며 덕담을 건넨 시간을 떠올리며 장관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교육부가 받은 박수는 장관이 아니라, 보도자료에 이름 한 줄 나오지 않는 공무원들이 헌신한 결과다. 공약은 ‘공약(空約)’이 되기 십상이고 교육부는 인사물갈이로 개편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든 이런 교육부는 마지막이길 바란다.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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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 밀크(1930~1978)는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미국 최초로 선출직 공직자에 뽑힌 이다. 샌프란시스코 시의원으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일하다 정적에게 살해당한 그를 기려 제정한 상이 ‘하비 밀크 자유메달’이다. 반기문이 2015년 이 상을 받았다. 이달 출간된 <더 나은 유엔을 위하여>는 “동성애 혐오와 성전환 혐오에 맞서는 싸움에서 보여준 세계적 지도력”을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고 썼다.

‘세계적 지도력’은 한국에선 무력했다. 그가 개신교 연합체 간부들을 만나며 한 말을 요약하면 “제가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게 아니라…. 하지만 성소수자 차별엔 반대”다. “지지하지 않지만 차별엔 반대!” 대선 후보들의 ‘모범답안’이다. 문재인은 2013년 성별·종교·장애·나이·인종·학력·사상 등과 함께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가 개신교 단체와 만난 자리에선 추가 입법 불필요를 이유로 법제화에 반대했다. 안희정은 도민인권선언을 주도하고도 “(차별금지법은) 아직은 빠르다”는 입장을 냈다. 법 제정에 동의한다는 이재명은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다고 유보했다. 공개 찬성한 이는 심상정이 유일하다.

영화 <밀크> 포스터.

반동성애 세력은 ‘동성애지지’ 프레임으로 묶는다. 선거철에 더 활용한다. 사상검증에 정치인들이 응하면서 프레임에 갇히고, 정교분리도 무너진다. 4·13 총선을 한 달여 앞두고 박영선이 ‘나라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3당 대표 초청 국회기도회’에 나갔다. “차별금지법, 동성애법, 인권관련법, 이거 저희 다 반대한다.” 박영선 말에 청중은 박수를 쳤다. 그도 차별금지법 공동발의자 중 한명이다.

기도회를 주관한 목사 전광훈은 “항복선언!”이라고 기뻐했다. 그는 “세월호 사고 난 건 좌파, 종북자들만 좋아하더라”라고 말한 이다. 2011년 8월 부산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는 희망버스를 막으라고 어버이연합에 1000만원을 줬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전광훈은 일례다. 반동성애는 반노동, 반세월호 진상규명, 종북몰이 등 우익 운동과 이어진다. 친박·친정부 활동을 해온 어버이연합 등이 반동성애에 참여한 것은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다. 이 어버이연합을 전경련이 지원한 사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확인됐다.

‘동성애 지지’ 프레임은 보수·기독교·정치·재벌과 강고하게 연결된다. ‘정상 대 비정상’, ‘국민 대 비국민’의 프레임을 강화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블랙리스트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 프레임을 깨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제다. 민주화 세력의 존재 이유와도 무관치 않다. ‘성적 지향’에 대한 차별금지를 넣은 인권위법을 만든 게 김대중 때다. 노무현 때 정부가 법제화를 시도했다. 17~19대 국회에서 지금의 야권이 네번 발의했다. 모두 반동성애 세력 반대로 철회·폐기됐다. ‘10년간 시기상조’? 이 문제를 두고 한국 정치는 10년간 뒷걸음쳤다. 2015년 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개신교계에선 처음으로 성소수자 탄압에 반대하는 전향적인 입장을 밝혔는데도 말이다. 더 늦출 수 없다. 성소수자가 가장 큰 혐오 피해 대상자라는 인권위 조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차별금지법은 부세습, 착취, 갑질, 여혐 등 ‘헬조선’의 갖은 차별과 배제, 혐오 철폐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1981년 프랑스에서 사형제는 ‘인기 있는 야만 행위’였다. 그해 3월 사회당 대선후보 프랑수아 미테랑은 한 정치프로그램에서 “(사형제 지지가 60%라는) 수치를 알지만 선거에 패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양심에 따라 분명 폐지하겠다”고 했다. 여론 흐름을 바꿔 당선된 그는 사형제와 동성애자 차별제도를 폐지했다.

선거에선 표를 계산하기 마련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좌고우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인권은, 인간존엄은 거래 가능한 것인가? 법 제정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인가? 혐오·차별에 대한 단호함 없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모바일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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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에서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2등 경쟁’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한 달이 흘렀다. 하지만 지금 시간과 순위를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다. 2017년 대선 정국이 안희정으로 요동치고 있다.

‘공적 됨됨이.’ 십수년간 지켜본 정치인 안희정에 대한 주관적 평가다. 1990년 3당 합당 후 이념도 정치도 헌 옷처럼 느껴져 여의도(이철 의원 비서관)를 나설 때, 1993년 친구 이광재와 서울 연신내 허름한 술집에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도원결의 할 때, 2002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홀로 멍에를 짊어졌을 때도 안희정은 조직과 대의명분이 우선이었다. 2007년 대선 패배, 2008년 총선 공천 배제 땐 ‘폐족’이란 말로 친노를 일으켜 세웠다.

스스로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 혁명을 결코 원하지 않았던 게 한국 야당사다. 가진 게 어정쩡해서다. 안락한 2등이 보장되는 소선거구제를 움켜쥐고 있는 것만 봐도 짐작이 간다. 그래서 결정적일 때 늘 보수적이었다. 1987년 분열, 1990년 민자당 합당, 1997년 DJP 연합,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등은 선명한 궤적이다. 안희정은 그럴 때마다 “동의할 수 없는 가치와 타협할 수 없고, 더욱이 그 동의할 수 없는 것이 현실 권력으로 존재할 때 난 그 권력을 (중략) 관용, 용서, 이해할 수 없다”(2004년 7월3일 옥중일기)고 다독여 왔다. 이렇게 하지 않고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산다는 건 그저 세상의 대기권 밖을 서성이는 일이었을 테니.

안희정 충남지사가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4차 혁명과 미래인재’ 콘퍼런스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안희정은 이처럼 예측 가능했다. 그런데 ‘선한 의지’, 대연정 제안, 사드 배치 신중, 녹색성장과 창조경제 계승…. 파문도 이런 파문이 없다. 파문이 지나간 자리마다 기존 정치가 익숙하게 밟았던 경로 의존성도 흔적조차 없다. 안희정 ‘현상’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대선이라는 최고 권력 획득전에서 한 후보의 발언을 두고 전략이냐, 소신이냐는 격론이 연일 벌어진다. 즉위를 반대하는 노론을 상대로 ‘아버지의 원한을 갚으려 하지 않겠다’고 한 정조의 시그널도 어른거린다. 안방(야권)에서 쫓겨날 듯한 질타를 받으면서도 지지율은 고공상승 중이다. 순식간에 야권 대 야권의 대결로 대선 구도를 바꿔 버렸다. 여권은 ‘안희정 경계령’을 내렸고, 야권에선 선거철 전가의 보도였던 연대·단일화 논쟁이 사라졌다. 생존조차 불투명했던 진보정당은 회생 기회를 잡았다.

합리적 차별조차 무의미할 정도로 국민정당(캐치올 정당)화된 여야, 길을 잃었지만 안길 곳 없는 보수 등 정치환경이 바뀐 이유도 있다. ‘노무현 적자’라는 배경 또한 안희정에겐 든든한 방어막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안희정 현상이라고 단언하진 못하겠다. 대선 주자가 개인 선의부터 확신한 것, 구체적으로 치열해야 할 때 담론의 늪을 만든 것, 민심의 언어로 세상을 읽지 않고 있는 것. 대연정만 해도 싸우지 않기 위해 손잡자는 게 아니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한 쓰임새가 더 크다. 분권형 개헌이 불가피하다. 법과 시스템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법과 시스템이 필요한 대목을 그는 지나쳤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신념은 철학과 계몽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공동체 이익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약속하고, 실천하면서 얻게 되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첫 의료보험제로 평가받는 오바마 케어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게 ‘의료복지’라는 신념을 안겨줬듯이.

구시대 마지막 열차와 새시대 첫 열차는 같은 길목에서 만나겠지만 타고 내리는 통로는 분명히 다르다. 반미청년회 수장 ‘안희정’에서 재선 충남지사 ‘안희정’이 되기까지, 마음속 철조망을 걷어내느라 수천 수만번 찔리고 다쳤을 것이다. 현실 정치로 나왔다면, 안희정 현상을 입증하려면 숱한 생채기가 벗겨지고 새살이 돋는 동안 ‘내가 품었던 세상의 욕망’을 성찰만 하지 말고 뚜렷하게 보여달라. 지난 계절을 ‘불만의 겨울’(1970년대 말 영국 노동당 집권 후 대규모 공공노조 파업)로 기억하는 봄을 맞고 싶진 않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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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 나오는 이는 지드래곤이다. 다운받은 그의 사진이 아니라 함께 찍은 것이다. 그것도 한 팔은 그의 어깨에 두르고, 한 손은 V자를 그린 채로 말이다. 낫살이나 먹고 주책이라는 핀잔도 간혹 듣지만 부러움 섞인 반응이 좀 더 많다. 뭐가 됐든 유치찬란한 자랑질 맞다. 지금이야 바꾸기 귀찮아서지만 몇 년째 이 사진을 고수했던 데는 모종의 불순한 의도가 있었다. 이 사진을 올린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중학생이던 딸아이의 친구가 문자를 보내왔다. “헐, 대박. 아줌마! 진짜 지드래곤이에요?” 한두 차례 통화했던 그 친구 전화기에 내 번호가 저장돼 있었나보다. 난 아이 친구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셀러브리티가 됐다. “저 ○○ 친군데요, 어떻게 하면 기자가 될 수 있나요” “아줌마, ㄱ이랑 ㄴ이랑 사귀는 거 진짜예요?” 따위의 문자부터 좋아하는 가수의 사인을 받아달라는 전화와 카카오스토리 친구신청까지 들이닥쳤다.

처음에 당황스러웠던 일은 생각지 않은 쪽으로 발전했다. 친구들을 통해 아이의 카카오스토리에 자연스럽게 접근하면서 아이의 학교생활이며 친구관계, 자주 쓰는 용어 등 평소의 대화나 생활에서 파악되지 않던 부분을 좀 더 세밀하게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가 친구에게 남긴 댓글로 행간의 의미가 읽혔고 사고방식, 습관 등도 유추할 수 있었다. 아이와 연락이 되지 않을 때도 쉽게 소재가 파악됐다.

나는 개방적이고 이야기 통하는, 쿨한 어른으로 비칠 것이라고 자부했고 쉽게 아이의 ‘사생활’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고 있다고 자만했다. 유명인들이 자녀의 소셜미디어 글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하는 것을 왕왕 보면서, 쥐뿔도 없는 주제에 나름 안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아이는 진작에 페이스북으로 갈아탔다.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일종의 ‘권력’을 차단당할 때 생기는 금단현상 비슷한 것을. 온·오프 공간에서 아이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을 얼마간 하던 끝에 페이스북 친구신청을 슬쩍 보냈다. 며칠 뒤 “가족끼리라도 지킬 건 지켜야지”라는 야멸찬 답변이 돌아왔다. 제 친구들이 내게 신청한 것까지도 야무지게 단속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던 욕구가 다시 살아난 것은 며칠 전 한 국회의원의 아들 논란이 불거지고서다. 저녁자리에서 한 지인이 “부모한테는 필요에 따라 자식 소셜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면서 “이놈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알 길이 없어 불안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그의 말에 몇마디를 보태려던 찰나, 다른 동석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건 근본적으로 부모 자식 간에 유대관계가 형성되지 않아서예요.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데 평소 생활에서 발견하지 못한다면 자식한테 성적 말고는 관심이 없는 거죠.” 몇차례 논박이 오갔다. 딱히 틀린 말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동의하기도 힘들었다.

자식문제로 논란이 일 때면 언제나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경구가 비판의 논거로 등장한다. 세상에 나서기에 앞서 수신제가가 이뤄져야 함도 옳다. 남을 향해 쉽게 할 수 있는 이 말들을 막상 내게 던져보니 한없이 위축된다. 금지옥엽 같은 자식이지만 살다보면 기가 막히고 속 터질 때, 치밀어 오르는 부아를 가라앉히기 힘들 때가 좀 많은가. 도대체 누굴 닮아 저러나 싶다가도 결국 날 닮은 것이 서늘한 진실이다. 그러니 예로부터 세상만사 마음대로 안되는 일이 자식 일이라고, 자식 문제로 절대 장담해선 안된다고 하지 않나. 어쩌겠나. 피하고 싶어도 평생 지고 가야 할 과제인 것을.

‘자식을 자랑거리 삼으려 말고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부모가 되자.’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본 글을 수첩 맨 앞장에 적었다. 매일 아침 업무 시작 전에 이를 들춰 보며 마음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 시도와 반복이 의외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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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20일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곳곳에 원망이 배어 있다. 올해 국정 역사교과서 연구학교가 한 곳에 그친 것은 외부세력의 방해 때문이라는 원망이다. 교과서 선택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확인되면 사법처리를 요구하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무엇이 왜 잘못됐는지를 아직도 모르는 교육부의 현실 인식이 국정교과서를 ‘좀비’로 만들고 있다.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새롭게 내놓은 방책은 ‘무료 배포’이다. 희망하는 학교 수요를 교육부가 직접 파악해 배부하겠다고 밝혔다.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교과서를 공짜로 나눠주고 가산점·지원금까지 주겠다며 신청기간까지 연장했는데도 거부당하자, 이번엔 정식 교과서가 아니어도 좋으니 가져만 가라는 식이다.

국정교과서의 지위는 복잡해졌다. 교과용도서심의 규정을 받는 ‘교과용도서’이자 국가가 저작권을 갖는 ‘국정도서’이면서 경우에 따라 ‘보조교재’일 수도 있고 ‘도서관 비치 도서’나 ‘방과후학교 교재’가 될 수도 있다. 학교에서 쓰는 책의 지위가 무엇이냐는 법과 규정을 바꿔야 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교육부는 2015년 말 역사 교과서는 국정교과서만 써야 한다는 고시를 발표했다. 2016년 말엔 2017년에는 연구학교에서만 쓰고, 2018년부터는 국·검정을 혼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입법예고를 하고 이달 중 대통령령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목적에 맞춰 스스로 세운 원칙까지 계속 바꾸다 보니 최소 44억원을 들인 국정교과서는 이제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애매한 존재가 됐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이 10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관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옆 사람은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 박민규 기자

신학기를 앞둔 학교는 한동안 또 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일부 학교의 경우 학교 구성원들이 반대해 연구학교 신청은 실패했으나, 보조교재 신청은 학교장과 재단에서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초중등 교육법 32조는 교과용도서와 교육자료 선정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 또는 자문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금용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은 “활용 방안에 따라 학운위의 논의 필요성이 있다”고 모호하게 말했다.

연구학교 신청률이 저조한 이유를 교육부는 ‘교육감과 외부세력’ 탓으로 돌렸다. 금 실장은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순수하게 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것”이라며 “지정 과정에 위법·불법 행위가 확인되면 법적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접수된 위법행위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했다. 보수단체가 학교 밖에서 국정교과서 지정 촉구 시위를 벌인 것에는 “신고된 합법 집회”라고 감쌌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은 “깜깜이 예산으로 불량품을 만들어놓고 또다시 세금을 들여 무료 교재로라도 배포하겠다니 학생들 보기에 부끄럽다”며 “국회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금지법안이 반드시 통과되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장은교 | 정책사회부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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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평양에서 7차 노동당 대회를 취재 중이던 영국 BBC 기자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한 무례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3일간 억류됐다. 이 무렵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도 박근혜 대통령에 관한 기사 때문에 8개월 동안 억류됐다. 명예훼손과 출국금지라는 법률용어를 썼지만 본질은 다르지 않다.

명예훼손, 이 단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정치권력이 부당하게 사용하는 탓이다. 정권들은 권력 감시를 개인 공격으로 몰아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형사처벌을 시도한다. 하지만 명예훼손 죄책을 따져묻는 것은 악이 아니다. 명예훼손은 헌법이 보장한 인격권의 침해이며, 인격권은 표현의 자유 못지않은 기본권이다.

언론(저술)의 명예훼손은 어디에서나 위법이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엄중한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수십억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일도 허다하다. 독일과 프랑스라면 손해배상에 더해 형사범으로 처벌된다. 다만 공익 목적이고 진실이면 책임을 벗는다. 진실 발견을 위해서만 인격 보호가 양보된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 대한 1심 재판들이 끝났다.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들의 명예를 훼손한 민사·형사다. 우선 2015년 민사법원이 책에 대한 삭제요구를 인용했고, 2016년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했다. 지난달 형사법원이 명예훼손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박 교수는 “현명한 판결”이라고 했다.

문제의 그 책도, 이를 반박한 책도 거듭해서 읽은 나는 무죄 판결문을 구했다. 명예훼손을 인정한 2개의 민사 판결을 어떻게 돌파했을지 궁금했다. 피해자가 살아있는 역사적 사실을 어디까지 기술할 수 있는지 재판부는 치열하게 논증했을 터였다. 미국, 유럽, 유엔이 관여한 세기의 사건이고, 표현의 자유에 관한 세계의 재판이다.

판결문은 눈을 의심케 했다. 이렇다 할 논증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서술은 사실(fact)과 의견(opinion)으로 나뉜다. 사실은 진실(truth)과 허위(false)로 갈린다. 명예훼손은 사실, 주로 허위를 적시한 경우에 해당된다. 의견은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실과 의견이 뒤섞인 경우가 허다하고, 그래서 판사는 사례를 공부하고 판례를 연구한다.

앞서 2개의 민사사건은 뜨거웠다. 2015년 삭제요구 사건에서 민사법원은 34곳에서 (허위) 사실적시와 명예훼손이 있다고 했다. 2016년 손배해상 사건에서도 같은 작업을 거쳐 명예훼손과 인격권 침해를 인정했다. 형사사건은 이미 인정된 34곳을 포함해 35곳의 명예훼손을 다퉜다. 그런데 재판부는 30곳이 단순 의견이라고 했다. 논증은 하지 않았다.

이상윤 재판부는 35곳의 표현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가리지도 않았고, 역사 기술의 한계를 밝히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판결문에는 이렇게 적었다. “불명료한 개념이나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 전후 모순된 것으로 보이는 서술 등이 다수 발견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중략) 피해자들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평가에 유의미할 정도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

거칠게 말하면, 박 교수의 조악한 연구와 난삽한 표현 때문에 명예훼손을 하는 데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성급한 일반화, 과도한 비약, 논리적 오류” 같은 학계의 평가도 재판부는 인용했다. 이렇게도 간단한 판결로 역사적 분쟁이 정리된 것일까.

“명예를 보호해주리라는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의사형성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는,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려는 개인 등의 전유물이 될 위험이 있다.” 법과대학 헌법교과서의 ‘표현의 자유’ 해설이다. 결론에 한 줄 무죄만 적는다고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는 게 아니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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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2000만원에 가까운 활동비를 받고 원자력발전소 신규 부지 선정 과정에 참여한 인사가 노후 원전 수명연장(계속운전) 심의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향신문은 2015년 2월 조성경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비상임위원에 대한 이런 보도를 했다. 조 위원은 2010년 12월~2011년 11월 한수원의 신규 원전 부지선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뒤 2014년 6월 원안위 위원에 임명됐다. 원안위설치법에 따라 최근 3년 사이에 원자력이용자(한수원) 사업에 관여한 사람은 위원이 될 수 없다. ‘선수’(원전 진흥)와 ‘심판’(원전 규제)을 분리한다는 원칙이다. 더구나 원안위는 경향신문 보도 전에 이미 조 위원의 위법한 경력을 알았다. 하지만 조 위원은 자리를 유지했다.

보도 다음날인 2015년 2월26일 오전 10시 시작한 원안위 회의는 정회와 속개를 반복했다. 결국 15시간 뒤인 27일 오전 1시10분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계속운전)을 의결했다. 원안위 위원 가운데 2명이 퇴장한 다음이었다. 회의 시작부터 조 위원 기피신청이 있었지만, 이은철 위원장 등 다수 위원이 “법원 판단에 맡기자”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런 원안위의 독단적인 결정해 반발해 월성 1호기 인근 주민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7일 법원이 원안위 결정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2년의 시간이 지난 다음이다. 지난 7일 서울행정법원은 무자격자인 조 위원의 참여가 수명연장 결정이 위법한 이유라고 했다.

기자는 원안위가 이렇게 무리한 위원 구성으로 의결을 강행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고 의심했다. 원전 안전성 평가에는 최신 기술을 쓰라고 원자력안전법에 정해져 있다. 하지만 원안위는 월성 1호기보다 뒤에 건설된 월성 2·3·4호기에도 적용된 최신 기술기준 ‘R-7’을 월성 1호기 평가에 쓰지 않았다. 법원도 이 부분을 위법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월성 1호기는 계속 돌아가게 된다. 원안위가 이번에는 고등법원 판결을 받아보겠다며 항소를 결정했다. 항소심에서 진다 해도 대법원까지 갈 것이고 원전은 2~3년 더 운영된다. 월성 1호기의 연장된 운영기간이 2022년까지니 소송을 이용한 지연작전만으로 ‘절반의 성공’은 거두는 셈이다.

유희곤 | 탐사보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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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위인전이었다. ‘이렇게 훌륭한 어른이 되라’는 뜻으로 학교에서도 권장했다. 위인들의 이야기는 소설이나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다. 탄생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공통적인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이 집안에 하늘과 땅의 정기를 품은 아이가 태어날 것이오’라는 예언을 받는다. 위인의 부모는 본시 선행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인데 허름한 행인에게 물 한 바가지나 밥 한 그릇을 대접한 뒤 예언을 선물로 받는다. 예언을 하는 사람은 알고보니 천하제일의 고승이거나 신선이 현신한 것이다. 위인은 특별한 태몽과 함께 태어나고, 어릴 적부터 비범하다. 또래 아이들이 먹고 노는 것에 집착할 때 아이는 먼 산을 바라보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거나 동무끼리 싸울 때 스윽 나타나 지혜로운 해법을 내놓는다. 효심은 극진하고 남들이 중2병이나 사춘기로 방황할 때 위인은 국가와 집안을 위해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를 고민한다.

위인전을 읽을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빨리 커서 위인이 되고 싶었다. 어머니께 태몽을 물어봤다 실망하기도 했다. 왜 나의 태몽에는 여의주를 문 용이 등장하거나 하늘길이 열리며 붉은 해가 집 안으로 내려오는 명장면이 없나 속상했다. 아, 나는 위인이 될 수 없는 사람인가보다. 그러다가도 빨리 위기가 찾아와 멋지게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위인들은 누구나 한 번씩 나쁜 놈들의 계략에 빠져 위기를 맞지만, 담대하게 이겨냈다. 위인전의 첫 장 ‘태몽과 비범한 탄생’ 편은 쓰기 틀렸으니, 다음 장 ‘고난의 극복’ 편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한국의 위인전이 거창한 태몽과 미화일색의 서술로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최근 ‘박근혜와 무리들’을 보며 이제는 읽지 않는 위인전 생각이 났다. 잘못을 빌고 부끄러움에 몸을 한껏 숙여도 모자랄 사람들이 피해자처럼 굴고 있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들은 지금 자신만의 위인전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1인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현 사태는 거짓말로 쌓아올린 커다란 산”이며 “오래전부터 기획된 의혹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전형적인 ‘나는 악의 무리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위기의 위인’이라는 설정이다. 같은 날 특검에 소환된 최순실씨도 “자유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손자까지 멸망시키겠다고 한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독립운동가 또는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이들, 조작간첩으로 몰려 집안이 풍비박산 난 이들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다. 그러고보니 박 대통령 측 서석구 변호사는 대통령을 예수와 소크라테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고난 극복’ 장면을 쓰고 있다고 믿고 있다.

황당하지만 이런 가정이 아니고서야 그들의 언행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도 힘들다. 청문회에 나와 줄곧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 김기춘·우병우·조윤선의 표정은 억울해보이기까지 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선출마를 묻는 질문에 “문 조심하세요”, “길이 막혀 있네요” 같은 발언을 남겼다. 옛날 정치인들의 알쏭달쏭 화법을 흉내낸 답변이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은 불량품으로 판명난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이 교육을 위한 일이며 당장 연구학교에 보급해도 교육에 문제는 없다고 주장한다. 공분을 자아내는 이들의 뻔뻔함, 여유 있어보이기까지 하는 태도는 평범한 사고로는 납득하기 어렵다. 그들은 잘못을 저질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이런 식으로 위기를 탈출했거나 한 번도 제대로 된 벌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들을 정신차리게 해줄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평범한 시민들에게 있다. 과장된 위인전 따위에 나오지 않아도 하루하루를 묵묵히 버텨내는 평범한 시민들의 상식. 그것만이 그들에게 위인전 대신 참회록을 쓰게 할 수 있다.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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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적 양심을 걸고 이번 경제성 분석 결과를 확신합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경인운하 사업에 대해 비용 대비 편익(B/C) 분석이 기준점인 1을 넘는다고 설명하던 한 국책기관의 연구원이 이렇게 말했다. 기존의 같은 분석에서 1을 밑돌던 사업이 단번에 경제성 있는 사업으로 둔갑했다는 기자들의 질문 공세 끝에 나온 답이었다. 한반도대운하를 공약으로 내건 MB 정부 출범에 토건관료들은 경인운하를 다시 들고 나왔고, 사업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국책연구기관들을 압박했다. 이전에도 정부는 B/C 결과가 1에 못미치자, 평가항목을 수정해 재분석을 요구했고, 그래도 경제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자 용역비 지급을 미루기까지 했다. ‘학자적 양심’과 불도저 같은 정부의 밀어붙이기에 2조원 넘는 예산이 투입됐다. 그 결과는 4대강 사업의 ‘녹조라떼’만큼이나 허탈한 상황이다.

정부가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는 이유는 객관적 입장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신뢰 때문이다. 일반 시민의 의사 결정에도 전문가의 의견은 필수적이다. 고도로 전문화된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제적 측면에서 시민들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음으로써 정보취득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앤서니 다운스는 <경제이론으로 본 민주주의>에서 “합리적 시민들은 전문가의 의견에 필적한 만한 의견을 스스로 생산할 때 드는 비용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전문가의 일반적 의견을 구매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극단으로 치닫는 사회적 갈등 속에서 전문가 의견마저 그 격차가 커지고 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한편으론(on the one hand) 어떻고, 다른 한편으론(on the other hand) 어떻다라는 백악관 안팎의 경제학자들에게 “외팔이(one-handed) 경제학자를 한번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비꼬기도 했다지만 지금 우리 상황은 반대다. 너무나 완고해서 논리를 통한 설득보다는 상대방 의견을 ‘순진한 생각’, ‘얼치기 수준’으로 무시하기 일쑤다.

더 씁쓸한 것은 전문가로서 쌓은 명성과 지식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쓰고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등장하는 주요 인사들이 그렇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하고 성균관대 교수를 지내다 2005년부터 박근혜의 경제 가정교사 역할을 했다. “해외출장을 가도 대통령 전용기만 타고 다녀서 면세점 갈 시간이 없다”며 명품가방을 요구했다는 소식에 쓴웃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 미르재단과 보수단체에 필요한 돈을 수금하는 데 앞장섰던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역시 완고한 시장우선주의자였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전경련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학자 출신이다. 대통령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철학을 얘기하던 달변가이기도 했지만 지금 보면 누구보다 반(反)시장적이었고, 권력을 좇는 ‘예스맨’에 불과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의 중심에 있는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종 전 문체부 차관 역시 교수 출신이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된 이들은 ‘영혼 없는 공무원들’과 함께 헌법을 유린했다. 정유라 부정 입학과 학사 특혜 혐의 등으로 남궁곤·류철균 등 이화여대 교수들도 구속됐다.

시민이 전문가의 의견에 의지하다가는 주주와 전문경영인의 관계처럼 ‘대리인의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고 신영복 선생은 지식인에 대해 “지남철의 여윈 바늘 끝처럼 불안하게 전율하고 있어야 하는 존재”라며 떨림이 없이 어느 한쪽에 고정되면 나침반이 아니라고 했다. ‘조기 대선’ 분위기에 전문가들이 캠프에 몰려들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신념과 그 신념을 펼치기 위한 자리 구하기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 고민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떨림’이어야 할 것이다.

산업부 | 박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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