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했다. 지난 10년 동안 펄에 갇혔던 세상이 한꺼번에 밀물 위로 떠오르고 있다. 새벽 6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3시 무렵에야 퇴근한다는 청와대 관계자는 “하루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다 겪고 있다”고 ‘웃으며’ 푸념했다. 한 야당 인사는 “대통령 후보감인지 늘 의아했는데 대통령감은 맞는 것 같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권교체기엔 과거 정부 흔적 지우기가 관례였다. ‘무조건’ 차별화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수위원회 출범 20일 만에 40개가 넘는 정부조직을 뜯어고쳤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ABC(Anything But Clinton·클린턴만 아니면 괜찮아)’를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은 외려 과거 관례를 지우며 출발했다. 곳곳에서 시대의 변화를 해석하느라 분주하다. 문 대통령 리더십에서 찾자면 “비주류이지만 주류의 가치를 만들 줄 알기 때문”(도종환 의원)일 수도, “없음의 힘을 갖고 있어서”(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일 수도 있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연합 등 주요국 특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하기 위해 청와대 본관 충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은 권력 획득의 과정이다. 이번 대선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여정이라는 의미가 보태졌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정부’를 선언한 것에 주목한다. 국회의원부터 기초의원에 이르는 조직 자원을 갖고 있는 정당은 여론을 결집하는 통로다. 그래서 정당은 정치 영역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대표한다. 하지만 역대 정권은 정당 정부를 용납하지 않았다. 집권 여당이라도 ‘보스’(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했다. 새정치국민회의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해외순방길에 오르자 “이제 권한은 떠나고 대행만 남았다”고 했다. 여당이 대통령의 사당화 제물로 전락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내내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라는 오명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고리를 끊으려 했다. 당정분리를 시도하며 “정당을 좌우하지 않는 나의 무능력, 그게 나의 정당개혁”이라고 했다. 그러나 역사상 처음 시도된 당정분리는 집권 여당의 분열로 막을 내렸다. 정당의 실패는 정권의 실패로 이어졌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이 배출한 후보였고, 민주당을 장악한 후보였다. 내각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인데도 민주당 정부로 불리는 까닭이다. 국정자문기획위원회도 김진표 위원장 등 당 중심으로 구성됐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등 주요 인선 면면을 보면 당의 가치와 철학을 국정 중심에 두겠다는 문 대통령 의지가 읽힌다. 10년의 적폐를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는데도 안정적이라 평가받는 것은 선거 때부터 정당이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땐 국회의원들이 유세차에 오르지 못할 정도로 정당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왼쪽’ 이재명부터 ‘오른쪽’ 안희정까지 경선 때부터 정당의 역동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 대통령과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목소리로 ‘민주당 정부’를 외쳤다.

정당 정부는 대통령 의지만으론 버겁다. 정당도 변해야 한다. 당 철학을 이해하는 인물들이 성장하고,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공천 받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분권도 필수적이다. 김성희 정치발전소 대표는 “중앙의 권한을 지방에 떼주는 ‘약한 분권’을 넘어 독립적 힘을 나눠 갖는 ‘강한 분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방의회는 예산편성권, 인사권조차 없다. 경기도는 전체 인구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올해 예산 규모는 국가예산(약 400조원) 15분의 1 수준이다.

칼럼을 마무리할 무렵, 양정철 전 비서관 퇴장 소식이 들렸다.

문 대통령과 양 전 비서관 관계를 헤아린다면 패권 청산이라는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권력의 공공성, 양 전 비서관을 눈물로 보낸 문 대통령의 결심이었을 테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아닌 ‘민주당 정부’로 가는 가장 아픈 길이었으리라.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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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이번주 중 중등 역사교과서를 검정제로 되돌리는 수정고시 개정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교육부가 수정하려는 ‘수정고시’는 발표된 지 3개월도 되지 않았다.

교육부는 지난 2월23일 이준식 장관 명의로 2018학년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국·검정 역사교과서를 혼용한다는 수정고시를 발표했다. 2015년 11월에는 국정교과서만 쓰라고 했지만, 1년여 후인 2016년 12월에는 국·검정 중에 선택해서 쓰라고 하고 이를 위해 두 달 만에 수정고시를 발표한 것이다. 그러더니 새 대통령이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하자 4시간 만에 “다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 혼란을 두고 아직까지 단 한 줄의 사과조차 발표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 집무실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지시하는 전자결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장관은 자신이 발표한 행정고시를 최단기간 자기 이름으로 고치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어쩌면 지금 새 교육부 장관이 빨리 지명되기를 가장 절실히 바라는 사람은 이 장관일지도 모르겠다. 갈 때 가더라도 이 장관은 분명히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 그는 전임 장관이 저지른 발표를 어쩔 수 없이 떠안은 장관이 아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진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비교육적으로 진행된 정황이 드러나고, 국정교과서에서 1000건이 넘는 오류가 발견됐지만 그는 국정화를 강행했다.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신청이 저조하자 “법적 대응”을 운운하며 겁박했다. 특히 마지막 몇 달간 부린 ‘오기 행정’으로 출판사들은 느닷없이 검정 절차에 뛰어들었다가 일정이 어떻게 바뀔지 몰라 가슴을 졸이고 있다. 세금은 알려진 것만 최소 44억원이 투입됐다.

2017년 교육부와 장관이 역사에 조금이라도 염치 있는 모습으로 기록될 수 있을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면 장관은 이제 쓸모 없게 된 국정교과서를 퇴임기념품으로 꼭 챙겨가 꼼꼼히 읽어보길 권한다.

장은교 | 정책사회부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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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마라. 요즘 짤줍 한다고 날밤을 새우고 있다니까.”

전화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엔 약간의 흥분이 섞여 있었다. 게다가 ‘짤줍’이라니. 평소 국적불명의 유치한 줄임말을 자주 사용하며 아이돌을 찬양하던 내게 ‘나잇값 좀 하라’며 잔소리를 늘어놓던 친구였다. ‘짤줍’이란 각종 사진을 모아 저장하는 행위로, ‘덕질’(좋아하는 분야나 대상을 즐기는 일련의 행동)의 기본이자 필수다. 말인즉 스마트폰을 붙들고 앉아 대통령 관련 뉴스며 사진들을 찾아보고 저장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것이다. 유승민 찍었다더니 웬 대통령 덕질인가 싶었다. “F4인가 하는 그 커피 사진이 ‘입구’(덕질 시작)였어. 딸내미가 ‘엄마 하고 있는 그게 덕질’이라며 입을 비쭉거리더라고. 암튼 대통령 사진 보느라 재활용 분리배출도 잊어버리고 집안 꼴도 말이 아냐.”

한 시민이 1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도서진열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표지 인물로 등장한 시사주간 ‘타임’ 추가 제작본을 고르고 있다. 서점가에 따르면 문 대통령 당선 이후 <문재인의 운명> 등 대통령 관련 서적 판매가 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세상의 공기가 달라진 것 같다. 스마트폰만 켜봐도 실감난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엔 앞서 언급한, 대통령과 수석들의 커피 마시는 사진을 비롯해 대통령의 낡아빠진 구두 뒤축을 클로즈업한 사진 등 온갖 사진과 미담이 넘쳐나고 온라인 커뮤니티와 뉴스 댓글에는 새 정부의 출범을 반기고 지지하는 글들로 빼곡하다. ‘살다 살다 대통령 덕질을 하게 되다니’ ‘얼마 전까지 청와대는 드라마를 보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청와대에서 드라마를 찍고 있다’ ‘정치 뉴스 보기 싫어 구글만 쓰던 내가 지금은 혹여 놓친 사진 있을까 싶어 뉴스 검색만 한다’ 등등. 대통령이 핵잠수함 개발 필요성을 언급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던 중엔 ‘큭’ 하고 웃음이 터졌다. ‘우리 이니 핵잠수함 갖고 싶었쪄여? 사. 2개 사. 세금 낼게.’ 수백, 수천개 달린 다른 댓글도 비슷했다. 복지 확대를 위해 얼마든지 세금을 내겠다는 여론도 넘실댔다. 서점가엔 20~30대 여성들이 문 대통령 관련 책을 앞다퉈 사들이고, 대통령이 표지모델이 됐던 타임지는 일찌감치 품절이 됐으며 대통령이 다니던 커피집까지 문전성시를 이룬단다.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고, 직원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양복 재킷을 벗는 등 지극히 평범한 대통령의 행동 하나하나는 환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느 정권 초기나 대통령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강하게 드러나게 마련이지만 지금 나타나는 현상의 바탕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정서가 있다. 불통 리더십, 비민주성으로 무장해 인간미를 찾을 수 없던 전 정권에서 느꼈던 깊은 절망감과 갈증의 반작용이다. 가장 호감도 높은 전임 대통령으로 꼽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채의식, 그 결과 지난 9년간 겪었던 민주주의 퇴행기를 다시 겪을 수 없다는 우려와 절박감도 있다. 촛불을 이끌어 낸 주역들의 적극적인 민의 표출이기도 하다.

대중이 ‘덕질’할 수 있는 대통령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일각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약간의 노파심은 든다. 새 정권에 대한 합리적인 지적이나 조언에까지 과도한 비난부터 쏟아내는 것은 온당하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를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맹목적 찬사는 독이 된다. 덕질의 세계엔 이런 명제가 있다. ‘빠가 까를 만든다.’ 과도한 팬질이 거부감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결국 이미지에 손상을 입는 것은 내가 사랑하고 지지하는 대상이다.

촛불 민심의 목표는 묵은 원한을 갚고 복수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개혁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지켜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팬덤의 확장성이 있어야 하고 열기도 지속되어야 한다. 그래야 개혁과 적폐청산을 이뤄낼 수 있다. 앞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가치 있는 결실을 맺게 할 수 있다.

난 뒤늦게 ‘입덕’한 내 친구의 ‘덕질’이 문 대통령 퇴임까지 계속됐으면 좋겠다. 박수 받으며 떠난 버락 오바마처럼 떠나보내기에 아쉬운 그런 대통령. 촛불시민들에게 남은 또 하나의 소망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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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5월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노무현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한다. 청와대에 복귀한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사건 대리인 이용훈 변호사를 대법원장에 임명한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우리법연구회 멤버들을 법원행정처에 배치한다. 김종훈 비서실장,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이용구 송무심의관 등이다.

김종훈 실장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의 공동 변호인이었다. 이광범 실장은 광주일고 후배이며, 그의 형인 이상훈 판사는 이후 대법관에 제청된다. 이용구 심의관은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최종영 대법원장에 반발해 연판장을 돌렸다. 그 밖에 황진구 인사심의관 등도 우리법 회원이다.

우리법연구회는 누구나 알아보는 단순한 현상에 불과했다. 진짜 핵심은 이들을 비롯한 행정처 인물 모두가 사법관료라는 점이다. 이용훈 대법원장 자신부터 행정처 차장을 거쳤다. 그는 기획조정실장에 박병대, 윤리감사관에 강일원, 등기호적국장에 임종헌을 각각 앉혔는데, 모두 판사 생활 대부분을 행정처에서 보냈다. 이들은 현재 대법관이고 헌법재판관이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판사 블랙리스트’ 관리처로 지목된 기획조정실 책임자 이민걸 기조실장도 ‘이용훈 대법원’에서 기획조정심의관, 사법등기국장을 거쳤고, 우리법 출신이다. 이렇듯 사법관료 집단은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내밀어 정권과 호흡을 맞춰왔다. 변하지 않은 것은 사법관료의 사법부 장악이란 사실이다.

지난겨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되고 양승태 대법원장이 회복불능 상태가 되자, 대법원과 행정처를 장악하려는 새로운 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누가 대법원장이 되고 누가 비서실장이라는 얘기도 돈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에게 선을 댔다는 얘기도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름도 있지만 결국에는 행정처 출신이란 설명이 뒤따른다.

돌이켜 보면 대법원과 행정처를 장악한 이들은 진보이자 보수이고, 곧 노무현이자 박근혜였다. 보혁구도 같은 촌스럽고 게으른 프레임으로는 이들을 포착하지 못한다. 사법관료들은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들이고, 치밀하고 조직적인 집단이다. 이번에도 이미 양승태 카드를 포기하고 새로운 카드를 잡았다. 이것이 바로 행정처를 중심으로 하는 관료사법 메커니즘이다.

무소불위 사법행정기구인 법원행정처는 일본 최고재판소 사무총국을 모방한 것으로, 식민지 사법에까지 연원이 닿는다. 사무총국이 법관독립을 침해하므로 해체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본에서는 나오고 있다. 독일의 사법행정 교과서조차 “일본의 사무총국은 사법부의 형식적 독립을 명분으로 법관독립과 재판독립을 팔아넘겼다”고 지적한다. 나 역시 특별한 계기로 사무총국을 가까이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의 행정처는 사무총국보다 심각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유력한 대법원장 후보와 가깝다는 인사가 만든 법원개혁안 초안을 최근 보았다. 40쪽 넘는 문건이지만 행정처 개혁 방안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누구라도 대법원장만 되면 친위조직인 행정처를 축소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니겠냐”고 어느 부장판사는 말했다. 보고서를 의뢰한 국회의원실에 이런 의견이 있다고 말하자, 행정처 개혁을 포함한 최종본을 다시 작성 중이라고 전해줬다.

사법개혁에 대해 대통령 후보들은 조심스러워했다. 사법부의 독립이 걸린 문제라는 이유를 들었다. 유신 시절에 사법시험에 붙은 법조인들의 트라우마다. 지켜야 할 것은 부패한 사법행정기구가 아니라 법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이다. 지금 대법원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위협하고 있다. 이로 인한 시민의 재판권 침해는 헌법 위반에 해당하며, 대통령에게는 헌법 수호 의무가 있다.

이제, 양승태 대법원장은 세련된 카드를 던지고 사라질 것이다. 관료사법을 위한 사법관료들의 성실한 저항이 시작되고 있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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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4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1987년,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더없이 평온한 날들이었다. 1년쯤 다녀보니 학교란 곳도 적응됐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좋았다. 골목문화가 살아 있어서 학교가 끝나면 동네 아이들끼리 해가 지도록 함께 놀았다. 이웃엔 영미 언니가 살았다. 광주가 고향인 언니는 20대 중반으로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혼자 자취생활을 했다. 언니는 우리집을 자주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늘 잘 웃고 다정한 언니가 진짜 언니처럼 좋았다.

그해 늦가을 어느날, 언니와 등굣길을 함께했다. 담벼락엔 대통령 후보들의 선거벽보가 붙어 있었다. 다른 후보들은 얼굴사진을 커다랗게 썼는데 1번 노태우 후보만 엄지손가락을 세운 팔을 쭉 뻗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복을 입은 3번 김대중 후보는 혼자 흑백사진이었다. 조금 무서웠다. 2번 김영삼 후보와 4번 김종필 후보도 있었지만, 어떤 사진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니가 물었다. “누가 대통령이 되면 좋겠어?”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다시 벽보 사진을 슬쩍 봤지만,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언제나 근엄해보였던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이 떠올랐다. “글쎄요. 그냥 하던 사람이 계속했으면 좋겠는데….” 언니는 말없이 웃었다.

몇 달 뒤 늦은 밤, 이불 속에서 잠들었다가 깼다. 어머니와 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영미 언니는 군인들이 방 안까지 총을 들고 왔는데 옷장에 숨어 겨우 살았다고 했다. 꿈인가, ‘주말의 명화’ 속 이야기인가 싶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언니는 얼마 후 결혼했고 고향으로 갔다.

투표권을 갖게 되고 선거를 경험할 때마다 그날 영미 언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광주에서 나고 자라 계엄군의 살인진압을 경험한 언니에게 1987년의 대선은 얼마나 절실했을까. 광장에 모여 대통령 직선제를 이끌어낸 시민들에게 그해 대선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 가을과 겨울, 주말마다 촛불집회에 나갔다. 절반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참여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거리로 나오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방에서 입석기차를 타고 온 가족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과 딸에게 우리가 원하면 잘못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나왔다”고 했다. 한 초등학생은 “자꾸 바보 같은 짓을 하는 어른들끼리 ‘초딩 같다’고 하는데 초딩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한 아이돌 팬클럽은 “우리가 나라 꼴 말고 덕질(팬 활동)에만 신경쓸 수 있게 해달라”고 외쳤다. 안국동에서 광화문으로 넘어가는 길에선 한 무리의 아이들 앞에 한 여성이 멈춰 섰다. “저는 성소수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우리 아이들도 차별받지 않고 꿈꿀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주고 싶어 나왔습니다.”

대선후보 TV토론회를 보면서 광장에 나왔던 많은 시민들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실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대통령이 되든 2017년은 ‘우리가 만든 선거’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을 합법적으로 해고했으며, 유세 기간 동안 후보들이 던진 말은 실시간으로 ‘팩트체킹’ 됐다. 여전히 가짜뉴스와 막말이 떠돌지만 힘은 과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 더 이상 몇몇 사람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다.

30년 전 영미 언니가 왜 “전두환은 나쁜 대통령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종종 궁금했다. 그냥 어린아이에게 설명하기 힘들어서였겠거니 생각했지만, 요즘은 다른 이유가 짐작된다. 분노를 물려주기 싫어서…. 나도 분노 대신 의미를 새기고 싶다. 닷새 남은 대선을 어떤 의미로 만들 것인가는 후보들이 아니라 시민들이 결정한다. 소중한 한 표를 던지고 엄중히 감시하겠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으니까.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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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3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비용 부담을 한국 측에 요구했고, 이를 알면서도 조기 배치를 강행했다는 언론 보도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김 실장은 전날에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미국 언론 인터뷰 내용이 자신의 해명과 다르다는 지적에 “한·미 기존 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으로 본다”는 반응을 내놨다. 두 번 모두 단체 문자메시지를 통한 일방적 공지였고 제기된 의문들에 답하겠다는 태도가 아니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으로 촉발된 사드 대란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뭉개고 1주일만 더 버티면 된다는 태도로 볼 수밖에 없다. 안보실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온 뒤에도 청와대 경호의 보호막 속에서 국민들의 눈길을 피해 박근혜표 정책을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강행하고 있다.

김 실장은 국방장관 시절인 2013년 6월, 2년 뒤로 예정돼 있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다시 연기하자고 미국 측에 말을 꺼낸 장본인이다. 2014년 한·미의 전작권 전환 무기연기 결정 당시 그는 이미 안보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여서 청와대 담장 안에서 어떠한 질문도 피해갈 수 있었다.

전작권 전환 때는 상관인 대통령의 눈치만 보면 됐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이번 사드 대란은 경우가 다르다. 정치적 책임을 지는 상관이 파면된 상황에서 김 실장의 권한은 제한돼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김 실장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우선 대선을 앞두고 ‘안보장사’ ‘색깔론’을 전가의 보도로 삼는 보수 정치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 후보들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이들만 보고 김 실장이 전횡을 저지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옛 야권 주요 후보들이 사드 문제에 대해 보여주는, 모호하거나 일관되지 않은 입장이 김 실장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손제민 | 정치부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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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까지 12일 남았다. 선거판은 날로 격화된다. 며칠 남지 않은 선거판에서 가장 먹히는 것은 네거티브 선거전이다. 네거티브는 감성을 가장 잘 자극한다. 각 캠프는 상대 후보의 조그마한 흠결이라도 끄집어내려 혈안이 된다. 일단 한번 도드라진 흠결은 부풀려진 채 마구 뿌려진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아들 채용 의혹이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부인 김미경 교수 채용 의혹이 대표적이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돼지발정제 건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해명해도 일단 프레임에 걸리면 선거 국면에서는 해명이 잘되지 않는다.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면 의혹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선거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리고 이를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할 때 반박할 논지도 많지 않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누가 승자가 되든 당선자의 호감도는 여지없이 깎여버린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의 4월 셋째주(18~20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두 유력주자인 문 후보와 안 후보에 대한 비호감도는 40%가 넘는다. 호감도(문 후보 53%, 안 후보 52%)와는 고작 10%포인트밖에 차이가 안 난다. 홍 후보는 비호감도가 무려 75%다. 호감도(18%)를 크게 능가한다. 이렇게 미운털이 박혀서는 정권을 잡아도 국정을 힘 있게 밀어붙이기 힘들다. 미운 대통령이 추진하는 정책은 정책도 밉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중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지난해 말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경제전문가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던졌다.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뭘 했는지 몰라서 평가를 못 내리겠습니다.”

박근혜 정부라고 구호가 없었을까. 창조경제가 있었고,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있었다. 투자활성화 대책도 쏟아졌다. 문화융성이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창조경제는 그 실체가 모호한 채로 끝났고, ‘통일대박’을 담았던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뜬구름처럼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이 탄력을 받지 못한 데는 범국민적 지지를 얻지 못한 탓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고작 3.5%포인트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했다. 35%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믿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반대여론에 적극적으로 구애해야 했지만 싫어하는 사람과는 말도 섞기 싫은 ‘나쁜 사람’ 알레르기가 있었다. 껄끄러운 사안은 논의를 피하고 힘으로만 밀어붙였다. 성공할 리가 없었다. 증세와 복지 같은 장기과제는 아예 취급도 안 했다. 각 분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갈등사안도 특별히 해결한 게 없다.

박근혜 정부가 허비한 시간만큼 다음 정부는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증세와 복지 같은 큰 주제는 물론이고 보건, 교육, 노동 분야의 세부 난제도 많다. 수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는 의사 정원 확대 문제나 다양한 전공과 경력을 가진 사람을 교사로 채용하는 경력교원 임용은 뜨거운 감자다. 안전·위생·식품 분야의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집단소송제도 도입도 더는 미룰 수 없다.

이런 난제들은 수많은 토론을 통해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비로소 추진될 수 있다. 하지만 비호감도가 높아서는 리더십이 발휘될 수 없다. 김영삼 정부가 금융실명제를 도입하고, 하나회를 청산할 수 있었던 뒷배경에는 90%를 넘나들던 높은 지지율이 있었다. 반면 지지율이 30%가 되지 못할 때 ‘비전2030’을 제시한 노무현 정부는 ‘계산서를 내놨다 신나게 얻어터지고’는 끝났다.

다음달 9일 밤이면 새로운 대통령이 나온다. 성공한 대통령을 위해서 대선 이후를 생각하는 고급스러운 선거캠페인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단한 선거전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 후보를 비판하되 과도한 네거티브만 자제하면 된다. 차기 정권은 이미 시작됐다.

박병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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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사람들이 조기대선을 ‘벚꽃 대선’이라 하더니 벚꽃은 4월에 핀다고 ‘장미 대선’이라고 바꿔 부른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수수한 민들레로 대선을 부르자는 제안도 나온다. ‘장미 대선’이나 ‘민들레 대선’이란 이름엔, 지금 선거 내용과는 별개로, 봄내가 물씬하다. 박근혜를 구속시키고, 최소한의 정권교체는 가능한 듯한 분위기도 봄내를 더한다.

정치·사회의 봄은 왔는가? 박근혜 정권이 불러온 문제에서 벗어났는가를 되돌아본 건 한 매체 기사 때문이다. ‘노동과세계’가 지난 22일 서울 중심부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우리 일터 ‘새로고침’ 대행진>에 단 부제는 “정치의 봄은 우리의 삶과 일터의 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이다.

노동 현장엔 매서운 찬바람이 분다. ‘노동자민중 생존권 쟁취를 위한 투쟁사업장 공동투쟁위원회’ 소속 노동자 6명이 서울 광화문 한 건물 전광판에서 고공단식농성 중이다. 울산에선 하청노동자 2명이 염포산터널 부근 교각에서 농성한다. 조기대선은 죽음을 끊어내지도 못했다. 지난 1월 LG유플러스 현장실습생이, 지난 18일엔 갑을오토텍의 한 노조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월 1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마지막 촛불집회(20차)가 열리고 있다. 촛불집회는 지난해 10월 29일을 시작으로 매주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서 진행됐다. 이준헌 기자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확 바뀔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촛불광장 시민이 직접 민주주의로 이룬 이번 대선에서 노동자들이 다시 극한의 고공농성을 벌이고, 자살하는 일만큼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노동자들은 1차 때부터 박근혜 퇴진과 노동의제를 갖고 선봉에 서온 촛불집회 주체 가운데 하나다. 광화문에서 고공농성 중인 아사히비정규직지회 대의원 오수일은 언론 기고에서 절망과 분노를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가 쫓겨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변한 건 없다. 오히려 대선후보들 밥상만 차려준 꼴이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어가고 쫓겨나는 현실을 저들은 외면하고 있다.”

대선 노동 의제는 되레 퇴보했다. 2012년 문재인이 쌍용차·한진중을 찾았고, 안철수가 삼성백혈병 피해 노동자를 만났다. 박근혜도 청계천 전태일 동상에 갔다. 지금 유력 후보들은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말할 뿐 ‘비정규직 사용 전면 금지’ ‘2018년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사내하청제·기간제법·정리해고제 폐지’ 같은 요구에 구체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예견된 일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보수층의 표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5678서울도시철노동조합이 지난해 11월2일 낸 시국선언문 중 한 구절이다.

노동 대통령을 표방한 심상정을 뺀 주자들은 저마다 ‘성장’ ‘4차 산업혁명’의 적임자임을 내세운다. 자신만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영국 신학자 허버트 매케이브의 말을 빌리면 ‘모든 이가 사랑에 빠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랑스러운 세계전망’일 뿐이다. 헛된 낙관이 되리라는 걸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소외된 촛불의제는 노동만이 아니다. 시인 송경동은 줄곧 촛불집회 현장을 지켰다. 세월호법 재개정, 사드 반대,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 박근혜 정권의 공작정치·공안탄압 국정조사, 재벌개혁 같은 촛불의제를 정치권이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선의 보수화는, 촛불집회가 박근혜 일당을 단죄했으나 새로운 사회 의제·가치·방향·정책을 담아내는 정치세력의 출현 내지 재편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촛불의제는 사라지고 말 것인가? 송경동은 촛불의제 부재를 일시적이라고 본다. 거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촛불집회의 다음 단계를 고민한다. 정권교체를 종착역으로 설정하지 않고, 2단계의 항쟁·혁명을 준비하는 것이다. “쉽진 않지만 촛불광장의 승리 경험을 토대로 특권·불공정·불의·부패가 발붙일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의 삶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바꿔나갈 것”이라고 했다.

모바일팀 | 김종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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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19대 대선이다. 접경지대에 선 기분이다. 권력과 역사의 긴장이 교차하는 곳,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곳쯤이겠다. 우리는 5월9일 이후 어두운 경계선을 지날 수 있을까.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73)는 최근 <불타는 얼음>을 출간했다. 형벌과도 같은 그리움으로 보낸 지난 세월의 자서전이자, 반세기 동안 남북의 경계인으로 살았던 회고록이다. “식민지, 한국전쟁, 독재를 겪은 뒤 서독 유학을 택했다. 첫 경계선이었다. 그걸 넘으니 제국주의와 반제 민족해방투쟁 사이의 첨예한 경계선을 만났다. 또 넘어섰다. 그리고 2017년 대선….” 송 교수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조국 땅을 처음 밟았던 때보다 긴장한 목소리였다. 이번 대선 의미를 말하면서 1987년의 아픔을 반복했다. 그는 “유력 후보들이 표심에만 몰두하고 있다. 87년 대선의 양김처럼 갈등만 커지면 정권을 교체해도 소용없다. 어려운 시대를 함께 헤쳐가는 상생의 철학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2003년 귀국 당시 노무현 정부가 보수의 포위망에 갇혀 있던 걸 경험했던 그다. “보수가 약화됐다지만 대선 이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격할 게 분명하다. 정치적 실력이나 도덕적 수준에서 진보를 추동하는 힘이 절대적으로 월등해야 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박정희 패러다임 붕괴로 보면 안된다고 한 까닭이다. 아직도 텅 빈 대합실에 홀로 있을 때가 많다고 한 그는 “정상적인 사회를 위해 많은 고통을 치렀다. 이번 대선을 계기로 뒷걸음질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접경지대 밖에서 50년을 서성여야 했던 그가 경계인으로 맞는 마지막 대선이길 바란다.

노무현 정부 여성 비서관들이 <대통령 없이 일하기>라는 책을 냈다. 청와대를 권부가 아닌 일터로 인식한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사회의 변화 방향을 국가의 이름으로 제시하는 게 대통령”이라면서도 “그 사회는 대통령이 아닌 우리의 꿈으로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없이 일하기>는 청와대를 권력이 아닌 시스템으로 운영하려 했던 이들의 고군분투기다.

공저자 7명 중 균형인사비서관이 2명이나 포함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균형인사, 특히 여성인사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려 했다는 흔적이다.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던 김신일 교수가 교육부총리에 발탁된 것도 시스템 인사를 지향했기에 가능했다. 해방 후 처음 시도된 국가재원배분회의, 이지원 도입 등은 시스템 국정을 대표하는 사례다. 만약 세월호 참사 때 청와대가 할 일을 했더라면 시민들은 대통령의 부재를 알았을까.

접경지대 안에서 경계(한 권력에 의존하는 정치)를 돌파하려 했던 여성 비서관들의 노력이 그저 꿈으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

20일 후면 대선이다. 후보들은 ‘든든한 국가’를 약속한다. 그러나 경계선 곳곳에선 ‘국가’를 묻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용주씨는 보안관찰법 위반으로 세 번째 기소됐다. 보안관찰법은 군사반란·내란 등으로 3년 이상 형을 받은 사람들이 출소 뒤 3개월마다 일거수일투족을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강씨는 “국가가 대를 이어(전신 사회안전법) 시민의 기본권을 짓누르는 데 복종하지 않겠다”고 했다.

얼마 전 4·3항쟁 69주기였다. 1948년 4월 제주, 국가폭력은 냉전과 분단으로 무장한 군경토벌대를 앞세워 수만명을 쓰러뜨렸다. 4·3항쟁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란 덫에 갇혀 혁명으로도, 민주화운동으로도 불리지 못한 채 통곡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유족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42번째 기일(4월9일)을 맞았다. 법원은 2007년 무죄를 선고했고, 2009년엔 손해배상금 지급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불과 2년 뒤 대법원은 배상금이 지나치게 많다고 판결했고, 국가는 배상금 환수 청구소송에 이어 강제환수 조치를 진행했다. 채권자 이름은 ‘대한민국’이었다.

구혜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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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우여곡절 끝에 3년 만에 인양됐다. 미수습자들을 찾아야 하는 가족들의 고통은 또다시 시작됐는데, 공직사회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해 11월까지 세월호 인양추진단장을 맡았던 전직 해양수산부 고위공무원이 산하 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간 것이다.

해수부는 지난 17일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새 원장에 연영진 전 해수부 해양정책실장(59)을 임명했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뒤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없애겠다고 법까지 제정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정작 세월호 수습을 맡은 공무원을 보란 듯 관피아로 앉힌 것이다.

해수부는 “진흥원은 안전문제나 이권과 관련된 산하 기관이 아니고, 관피아 방지법의 적용 대상도 아니라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는 본질을 비켜간 설명이다. 그간 관피아 방지법은 규제 대상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낙하산 공무원 문제가 비단 안전문제, 이권 관련 기관에서만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어서다.

세월호가 참사 1091일 만에 육지로 완전 인양된 이튿날인 지난 12일 해질 녘 전남 목포신항 부두에 모로 누워 있다. 선진국들은 승객이 모두 산 사고라도 철저히 조사해 교훈으로 삼는 반면, 한국은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가 백서도 못 내고 강제 해산되는 등 제대로 된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해수부는 또 연 전 실장이 해양과학 연구·개발(R&D)을 담당했고, 진흥원 산파역도 했다는 점을 들어 낙점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국민들에겐 황당한 발상으로 들릴 수 있다. 공무원이 재직 중 산하 기관을 만들고 퇴직 뒤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이런 논리라면 공무원들은 퇴직 후 들어갈 기관 만들기에 더 노력할지도 모를 일이다.

연 전 실장의 임명 시점도 공교롭다. 진흥원장에 지원한 직후 이미 관피아 논란이 대두됐고, 그 뒤 탄핵 정국까지 겹치며 원장 인사는 무기한 연기됐었다. 대선도 불과 20여일 앞뒀다.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옛 식구에게 자리를 내어줄 마지막 기회를 노린 것은 아닐까. 게다가 우여곡절 끝에 세월호까지 인양된 직후 인양추진단장을 맡던 인사라니 더 곱잖은 시선을 받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절망을 극복하고 거리로 나섰던 것은, 우리 사회를 바꿔보자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 전 실장의 영전 소식을 들은 미수습자 가족이나 유가족 마음은 어떨까. 해수부가 세월호 때문에 흘렸다는 눈물은 ‘악어의 눈물’이었나.

박용하 | 경제부 yong14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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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 중 가장 강한 농도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덮쳤던 올봄, 어린 자녀를 둔 엄마·아빠의 속은 타들어갔다. 어른들도 목이 아파 외출을 꺼리는 날, 아이들은 공원에 오종종 모여 ‘현장학습’을 했다. 운동장에 나가 공을 찼다. 어린이의 호흡량은 어른의 3배. 어른이 심각하다고 느낄 수준이면 아이에겐 ‘재난’에 가깝다.

정부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환경부는 초미세먼지·미세먼지 주의보 때 교육현장에서 야외수업이 ‘자제’될 것이라고 했지만 수업 조정 판단은 어린이집·유치원 원장과 학교장 재량이다. 게다가 한국은 미세먼지 기준이 느슨해 ‘고농도’에 신음해도 주의보는 쉽게 발령되지 않는다. 원성이 높아지자 올 1월 환경부는 ‘건강취약계층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각 지자체에 ‘주의보’보다 더 엄격한 ‘예비주의보’를 만들게 해 교육현장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전국 지자체 가운데 예비주의보가 시행되는 곳은 없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을 보인 3월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을 찾은 아빠와 딸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환경부는 17일 교육부와 함께 한번 더 아이들을 위한 대책을 내놨다. 그런데 이번엔 서울시교육청과 엇박자다. 이날 정부는 ‘야외수업 자제’ 기준을 기존 ‘예비주의보’ 이상 단계에서 그 이전 단계인 ‘나쁨’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은 ‘보통’일 때도 야외수업을 자제시키겠다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날 “기준 조정을 검토해 다시 발표하겠다”고 했다. 애초 서로 충분히 논의했다면 생기지 않았을 혼란이다.

환경부가 다음달 8일까지 실시하겠다고 밝힌 미세먼지 담당자 대응교육도 이상하다. 전국 유치원·학교 담당자만 대상이다.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할 어린이집이 빠졌다. 복지부는 “어린이집안전공제회에서 어린이집 교사 대상으로 미세먼지 내용을 포함한 안전교육을 하고 있어서”라고 했다. 하지만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교육도, ‘미세먼지 담당자’ 대상의 교육도 아니다. 대응교육조차 따로따로다.

지난겨울과 이른 봄, 아이들이 최악의 미세먼지 속에서 ‘각자도생’한 후에야 내놓은 대책이다. 적어도 각 주체가 ‘딴소리’ 내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송윤경 | 정책사회부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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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f(x) 출신의 배우 설리. 그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논쟁적인 연예인 중 하나다. 작품 대신 주로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에서 활동하는 그의 행보에 쏟아지는 대중들의 관심은 뜨겁다. 최근 몇 달간 탄핵정국을 보내며 연예뉴스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예외였다. 남자친구와의 결별 소식은 물론이고 인스타그램에 어떤 사진을 올렸는지 시시콜콜 중계가 됐다. 그 사진들은 예외 없이 선정성 논란을 불렀다. 이틀 전엔 그를 옹호하며 “세상에서 제일 멋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남긴 배우 김의성까지 덩달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다.

설리는 우리 나이로 올해 스물넷이다. 열다섯 살에 가수로 데뷔해 청순한 이미지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그는 소녀 판타지의 전형이었다. 그런 그가 언제부턴가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다(안티팬 입장에서 봤을 때). 14살 연상 남자친구와 공개적으로 열애를 하며 가수로서의 본업을 소홀히 했고, 그동안 쌓아온 고운 이미지를 전복하며 대중을 ‘배신’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사진은 남자친구와 침대에서 키스하거나, 입안에 휘핑크림을 가득 머금은 모습으로 성적 상상을 부추겼다. 맨살을 드러낸 채 로리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가 하면 브래지어를 착용하지 않은 과감한 차림도 서슴지 않았다.

김의성 SNS 갈무리

도발적인 그를 향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비난과 악플이었다. 노출증 환자, ‘관심종자’니 하는 원색적 용어부터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나” “공인으로서 너무한 것 아니냐”는 훈계조 충고까지 다양했다. 그런데 그의 대응은 여느 연예인과 달랐다. 대중의 시선을 즐기듯, 조롱하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떤 비난이 쏟아져도 그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히 드러냈고 성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여전히 표현하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수년째 변함없이 시끌시끌한 것을 보면 종전에 볼 수 없던 설리 같은 유형의 여성 연예인이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강렬하긴 한가 보다.

옹호나 비난은 개인의 자유다. 하지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이를 표현하는 자유는 존중받아야 한다. 물론 타인을 향한 혐오나 폭력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그 자체로 인정되기보다는 사회적인 인격을 재단하고 옭아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다수의 구미에 맞게 왜곡되기 일쑤다. ‘걸레’ 같은 시대착오적 여성 비하 용어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하면 고대 그리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뤼시스트라테>가 생각난다. 아테네 여성들이 남편들로 하여금 전쟁을 멈추도록 하기 위해 섹스 파업을 일으킨다는 유명한 이야기다. 뤼시스트라테는 아테네 여성들을 불러모아놓고 아래와 같이 선창하며 따라하도록 한다.

“애인이든 남편이든 남자는 어느 누구도 꼿꼿이 세우고 내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집에서 나는 숫처녀처럼 지내겠습니다. 나는 결코 자진하여 내 남편의 요구에 응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싫다는 데도 그이가 완력으로 강요한다면 나는 재미없게 해주고 요분질도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천장을 향하여 다리도 들지 않겠습니다. 나는 치즈 강판에 새겨진 암사자처럼 엉덩이를 들고 웅크리지도 않겠습니다.”

기상천외한 발상의 이 작품은 유쾌하고 재미있다. 자유로운 아테네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국제뉴스를 통해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벌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주도하는 이 같은 성담론은 언제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까. 야한 묘사가 꽤 있는 <뤼시스트라테>는 ‘고교생 필독서 100권’ 리스트에도 포함되는 고전이다. 이 작품이 써진 것이 기원전 411년. 지금은 2017년이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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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사 탄압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주 양승태 대법원장은 신임법관 임관식에서 말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라고 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은 법관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을 한시도 게을리해서는 안됨을 갈파한 경구로서, 우리 모두 이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젊은 법관 107명이 처음 법복을 입고 들은 ‘대법원장님 말씀’은 과연 사실일까.

이 말은 발자크의 소설 <창녀의 영광과 비참(Splendeurs et misères des courtisanes)>에 나오는 구절이다. 전체 문장은 이렇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한 사회의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입니다. 사법부의 현재 관행을 때려 부수고 다른 바탕 위에 새롭게 지으십시오. 하지만 사법부 신뢰를 멈추진 마십시오.’ 현실 사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냉소가 섞인 문장이라고 한다.

파리8대학에서 발자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예영 서울대 교수의 계속되는 설명이다. “발자크는 사법권이 얼마나 권력의 이해관계에 좌지우지되고 부패한 곳인지를 보여준다. 법관으로서의 양심과 명성, 출세하고자 하는 개인적인 야심, 그리고 권력층의 이해관계와 명예가 얽혀 있어서 처신하기가 매우 어려운 판사의 갈등을 묘사한 이야기다.”

지난 6일 대검찰청의 조각작품 ‘심흔 95-1’을 두고 촬영한 대법원이 과녁에 든 표적물처럼 보인다. 대법원은 판사들의 성향과 동향을 파악한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양 대법원장(과 그의 비서업무를 하는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하필이면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은 발자크의 소설을 찾아내 인용하면서, 발자크의 말이라거나 경구라고까지 표현한 이유가 있을 테다. 문제는 이들의 원전 비틀기 대상이 프랑스 대문호의 작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한민국헌법의 핵심 구절을 미묘하게 바꿔가면서 대법원장과 행정처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화법을 구사한다.

양 대법원장은 제왕적 인사권을 방어하기 위해 ‘법관의 독립’이 아닌 ‘법원의 독립’을 말해왔다. 이날 임관식에서도 “법관은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원의 구성원”이라고 했는데 이는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헌법 101조1항)를 뒤집은 것이다. 이런 해석이라면 제헌헌법에서는 ‘구성된’ 대신 ‘조직된’이었으므로 판사가 법원의 조직원이 된다.

헌법 제5장 법원(101~110조)을 관통하는 핵심은 ‘법관의 독립 보장’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제처가 발간한 헌법주석서에서는 법관의 독립 상대가 ‘법원 내·외부의 간섭’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법관의 독립’을 ‘재판의 독립’으로 바꾸고, 그 상대도 ‘외부의 부당한 통제’로 축소시킨다. 내부의 통제가 없다는 것인지, 있어도 그만이란 것인지 애매하다.

그리고 양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라고 신임법관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헌법 130개 조항 어디에도 ‘명백하게’ 재판의 독립을 선언한 구절이 없다. 우리 헌법이 선언한 것은 ‘법관의 독립’이며 그 결과가 ‘재판의 독립’인 것이다.

이런 식이다 보니 양심에 바탕을 둔 법관의 독립을 선언한 헌법 103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마저 미묘하게 왜곡된다. 대부분 학자들은 ‘헌법과 법률을 기초로 양심에 따라’라고 해석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라고 쉼표 하나를 얹어 법관의 양심을 3분의 1로 깎아내린다.

이런 치밀한 과정을 거쳐 나온 그의 발언이 이것이다. “법관은 어떠한 외부의 부당한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고 오직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재판하여야 한다는 ‘재판 독립의 원칙’은 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 중의 하나로서 우리 헌법도 이를 명백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지난 6년 동안 양승태 대법원장의 헌법 해석이다. 종말이 시작되는 징표다.

이범준 기자 seirot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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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공안검사와 점심을 먹었다. 이틀 전 국정원 간첩조작사건 수사결과 발표가 화두에 올랐다. 검사는 억울해했다. 유우성씨가 간첩인 것은 분명한데 증거에 발목이 잡혀서 놓치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놀라울 것도 없었다. 몇 달간 간첩조작사건을 취재하면서 꽤 괜찮은 검사라 믿었던 이들에게도 들었던 말이었다.

검찰이 유씨가 간첩이라며 재판부에 낸 증거가 조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증거는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건넨 것이었다. ‘검찰은 국정원에 속았고 국정원은 정보원에 속았다.’ 한마디로 검찰은 간첩사건을 조작할 악의가 없었으며 단지 멍청하고 부주의했다는 것이 수사결과의 내용이었다.

검사는 계속 열변을 토했다. 법원이 서류만 보고 간첩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는 요지였다. 직접 수사를 하지도 않은 당신은 어떻게 유씨가 간첩이라 확신하는지 물었다. 그가 밝은 얼굴로 답했다. “아휴, 우리야 딱 보면 알지요.” 거침없이 다음 말이 이어졌다. “판관 포청천 아시죠.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해요. 검찰이 수사도 하고 재판도 하고 집행도 하고…. 포청천이 작두를 대령하라~ 하잖아요. 껄껄껄.” 젊은 날 사법시험을 보는 데 지능을 다 써버린 것일까. 헌법을 부정하는 발언을 왜 오늘 처음 보는 법조 출입기자에게 하는지 기가 막혔다. “아무래도 전원 구조 속보는 오보인 것 같네요.” 옆에서 돌 씹는 표정을 하고 있던 타사 기자가 오보를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정리했다. 불쾌한 그와의 만남을 또렷이 기억하는 것은 그날이 2014년 4월16일이기 때문이다. 우울한 점심과 비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됐다.

세월호가 모듈 트랜스포터를 이용한 육상거치를 위해 5일 오후 목포 신항만에서 방향을 바꿔 재접안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씨 무리와 달리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대검찰청을 출입한 나는 대통령과 검찰과 법원이 3박자로 칼춤을 추는 것을 지켜봤다. 사고 다음날부터 검찰은 총괄수사대책본부를 구성해 세월호 참사 규명을 책임졌다. 대형 사건·사고의 원인 규명에 검찰이 나선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진실규명의 총대를 정부가 아닌 검찰이 멘 결과는 참담했다. 검찰은 죄인찾기에 주력했고, 검찰식 죄인찾기는 ‘사법처리’를 염두에 둔다. 잘못과 책임이 있어도 형법상 기소할 만큼의 형사적 증거가 부족하면 검찰의 죄인 명단에선 빠진다.

대통령은 참사 닷새 만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다”면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원한 것은 형사적·민사적 잘잘못 이전에 ‘진실’ 그 자체였으나, 결과는 대통령의 바람대로 누가 욕먹을 것인지 줄세워 발표한 ‘수사결과’뿐이었다. 검찰이 이미 사망한 유병언씨 행적찾기에 골몰하는 동안 세월호는 진실과 함께 더 깊은 바다로 침몰했다.

대법원도 빠지지 않았다.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1심 재판을 앞둔 상황에서 대법원은 “대규모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안전사고와 관련한 형사사건에서 법관이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한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양형을 실현하기 위해 고려할 사항을 논의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사실상 최고 형량을 선고하라는 지시로 읽히는 발표였다. 각 재판부의 독립권을 주장하며 문제 있는 판결에 공개적 비판을 해도 징계를 내리는 대법원마저 칼춤에 동참했다.

박근혜씨는 구속됐고 세월호는 3년 만에 겨우 물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아직도 왜 아이들이 구조되지 못했는지 알지 못한다. 오는 4월16일은 부활절이다. 지난 3년 동안 세월호를 생각하며 들었던 노래를 아이들에게 바친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브로콜리 너마저 ‘졸업’ 중에서)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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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해 전인가, 중국 출장에서 만난 한 중국인 교수에게 물었다. 중국은 왜 그렇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에 민감하냐고. 그때도 한반도 사드 배치가 이슈였다.

그의 답은 이랬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에 사드를 설치하는 것은 미국으로선 쿠바에 미사일을 설치하는 것과 같다. 미국은 그때 핵전쟁까지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서 또 물었다. 좀 레이더로 들여다보면 어떠냐고.

“만약 중국이 미국 본토를 레이더로 감시한다고 해봐라. 미국이 어떻게 하겠나. 미국은 중국 서쪽에 인접한 국가들을 포섭해 미사일기지를 많이 세웠다. 한국에 사드를 설치하면 베이징이 감시권에 들어간다. 용납할 수 있겠나?” 그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제서야 ‘아차’ 했다. 강대국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중국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언제든 북한 장사정포가 머리 위로 쏟아질 수 있고, 미·중·일의 레이더와 인공위성이 24시간 내려다보고 있는 우리와는 안보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달랐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도입에 대한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로 한국 관광 금지가 전면 확대된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평소와 달리 무척 한산하다. 연합뉴스

중국의 사드 경고는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다. 7년 전인 2010년 문정인 교수가 집필한 <중국의 내일을 묻다>를 보자. 주펑 베이징대 국제전략센터 부주임은 “만약 한국이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가입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아갈 것이므로 중국은 분명히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것”이라며 “MD는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라고 못 박았다. 중국도 많은 공을 들였다. 2015년 전승절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격적으로 대접했다. ‘망루외교’는 사드를 빼고는 설명하기 힘들다.

그랬던 만큼 지난해 7월 사드 한반도 배치 발표 이후 보인 중국의 격한 반응은 이해할 만했다. 그동안 중국이 보여준 호의를 생각할 때 어느 정도의 비난과 분노는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중국은 드라마, 영화 등 한류 수입을 막았고 이어 단체관광객 방한을 금지했다. 심지어 중국에서 열린 골프대회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를 TV 화면에서 멀리 잡기도 했다. 그의 모자에 박힌 ‘롯데’ 로고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베이징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 상영을 피했다. 한마디로 쪼잔하다. 마음이 상한 덩치 큰 아이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아이를 꼬집으며 복수하는 모양새다.

정작 사드 배치를 주도한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도 못한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다른 것은 여기에 있다. 1962년 쿠바사태 당시 미국은 소련을 막아섰다. 배를 돌리지 않으면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소련에 눈웃음을 보내며 쿠바를 때리는 꼼수는 부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한국인들의 중국에 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중국에 대한 호감은 주변국 어느 나라보다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중국은 결코 한국을 도와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중국의 급속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결코 미국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다. 이들은 중국을 무시하는 근거로 중국의 보편성 부족을 든다. 중국은 결코 정의롭고, 너그럽고, 자유롭고, 믿을 만한 존재라는 신뢰를 주변국들에 심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을 중국으로 만든다는 중화(中華)는 두려움 그 자체다.

‘천하를 얻으려면 민심을 얻어야 한다(得天下 在得民心)’고 했다. 중국이 미국을 넘는 꿈을 갖고 있다면 주변국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했다. 한국마저 등을 돌리면 이제 중국은 동아시아 어디서 민심을 잡을 수 있을까. 중국이 대국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경제부 박병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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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는 대한민국 도시 중 지역 단위에 가치가 부여된 유일한 곳이다. 1980년 군부독재의 봄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에 이른 2017년 봄까지 광주가 지불한 비용은 적지 않았다. 5·18 광주항쟁 자체가 박정희 패러다임에 가장 오래, 가장 질기게, 가장 직접적으로 맞선 투쟁이었다.

한 50대 광주시민은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호남은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평화(촛불)로 계엄령(태극기)을 덮었고, 국가전복세력으로 매도됐던 ‘국민’에서 박정희·박근혜 시대라는 반동을 물리친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의미일 테다. 지금 광주는 ‘시민의 기억이 지역을 만든다’는 운동을 벌이며 국가주의에 짓눌려 평생을 ‘을’로 살아온 회한을 벗어나는 중이다. 계엄군 총탄에 스러진 시민군에 피를 나눠줬던 적십자병원 앞 행렬을 잊지 말자며, ‘5·18 헌혈의 날’을 제정하자고 외치며 말이다.

이런 역사 앞에 더불어민주당은 어떤 모습인가. 한 지인은 ‘늙었지만, 여전히 힘 있는 부모’(호남)와 ‘다 컸지만, 독립해 내보내기엔 여전히 불안한 자식’(민주당)에 빗댔다. 애먹이는 자식이란 말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식은 수십년 동안 어지간히 부모를 힘들게 했다. 민주화 성지라는 표상과 세속적 욕망 사이 갈림길로 몰아세웠다. 몰표를 주든 안 주든 지역주의로 매도했다. 광주 정신은 불우한 시대의 희망이어야 한다며 내려놓기도 힘든 버거운 짐을 지게 했다. 안으론 어떤가. 광주만 해도 엘리트 정치의 독점이 어느 지역보다 심한 곳이다. 공고한 기득권이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어 민심이 반영될 통로조차 없다. ‘진보적 유권자 대 보수적 정치권’이라는 이중 구조가 강고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광주, 호남이었다. 민주당의 ‘일당독재’ 메커니즘이 만든 폐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호남의 선택을 물었다. 주적(主敵)이 사라진 상황이라 정권교체가 확실하다는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전략적 집단성이 옅어진 대신 깐깐한 정권교체를 원했다.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화를 꼽는 의견부터 그렇다. 기득권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호남에 적용하면 종북몰이와 ‘우리가 남이가’로 상징되는 패권적 지역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호남을 괴롭혀 온 빨갱이 콤플렉스는 지역을 넘어 한국 사회 이념과 정치의 모순을 끊임없이 키웠다. 이런 차원에서 문재인 후보의 전두환 표창장 논란과 오거돈 부산지역 상임선대위원장의 ‘부산 대통령’ 발언은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응에 생채기를 냈다.

호남을 존중해달라는 목소리도 컸다. 호남홀대론에 대한 물질적 보상이 아니라 금남로와 피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달라는 것이다.

호남이 안희정 후보의 대연정 제안을 매섭게 비판하는 까닭이다.

한 지인은 “박정희·박근혜 세력과 손잡는다는 것도 내키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 국가운영을 위해 대연정이 필요하다고 해도 ‘시민’이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정치권끼리 지분 나눠 먹기에 그칠 것이고, 그 과정에서 호남 대표성도 결국 지역 국회의원, 토호세력들이 가져갈 것이라는 우려다.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는 최근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이 발의한 개헌안에 맞서 시민권을 강조하고, 촛불 의미를 ‘풀뿌리 민주주의와 시민 정치역량 강화’로 규정했다. 시대정신과 호남의 조응, 호남 존중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27일 호남의 선택을 기다리는 중이다. 경선 선거인단 214만3330명 중 호남은 약 27만명이다. 수도권(약 121만명)에 견주면 미미한 규모다. 그러나 호남의 정치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호남선엔 유난히 눈물이 많다. “돌아서서 피눈물을 흘려야 옳으냐” “빗물이 흐르고 내 눈물도 흐르고”…. 호남의 눈물에서 민주당도 정권교체도 피어나길 바란다. 하물며 봄이다.

정치부 구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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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한 사람들이 잡혀가고 다치고, 목숨까지 빼앗기며 민주화를 외치던 1980년대. 중학생이던 당시 교회에서 설교 시간에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데모는 마귀들이 하는 짓”이라느니, “데모하면 우리나라도 월남처럼 망한다”느니, 혹은 “세상일에 관심 갖지 말고 신앙생활만 열심히 하라”는 따위였다. 정치적인 강요와 선동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앙이라는 명목으로 황당한 정죄도 난무했다. 축구공에 맞아 입 주변을 꿰매고 온 학생에게 “찬송 대신 유행가 부르다가 벌 받은 것”이라는 정도는 애교였다. 한 부흥사는 대학졸업을 앞둔 자녀를 잃은 자신의 교회 신도 이야기를 전하며 “건물주이면서 부활절 헌금으로 고작 5000원 낼 만큼 인색했던 대가”라고 재단했고 교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다들 “아멘”을 합창했다. 나라든 교회든 지도자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그렇지 않고 말 많은 사람은 빨갱이, 빨갱이는 사탄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가 구호처럼 등장했다. 이견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사탄으로 매도되기 일쑤이던 분위기에서 난 종종 신앙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뒤죽박죽인 상태를 맞닥뜨려야 했다.

최근 몇 달간을 달궜던 탄핵정국. 소위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탄핵반대 집회를 접하면서 예전의 그 혼란스럽고 암담한 상황이 떠올랐다. 전쟁과 산업화를 겪었던 노년층이 자신의 삶과 세계를 송두리째 부정당했다는 상실감에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은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 집회에서 두드러지던 보수 기독교 세력은 어떻게 봐야할까. ‘권세에 복종하라’거나 ‘누구든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성경 구절 팻말 아래로 십자가와 통성기도 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이는 모습에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개신교가 사회적 물의의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왜 이렇게 희화화의 대상임을 확인시키고 조롱거리가 되기를 자처하나. 옳지 못한 대통령과 그를 무조건적으로 감싸는 정치인들을 지켜달라고 하고, 대통령이 물러나면 빨갱이 나라가 되니 기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왜 장로, 권사, 집사들이 카톡으로 주고받으며 전파하는 걸까. 그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고 신앙인가.

한국 개신교는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 독재 등을 거치며 친일, 친미를 기반으로 하고 반공정신으로 무장해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해방 후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기득권과 파트너가 되어 주류의 삶을 누려왔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예수와 성경을 팔아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중 두드러진 것은 소위 ‘매북(賣北) 마케팅’이었고 ‘마귀를 대적하라’는 성경 구절은 그 근거로 활용됐다.

얼마 전 읽었던 이사야 3장15절의 “어찌하여 너희가 내 백성을 짓밟으며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하느뇨”라는 구절은 가난한 자의 재산을 빼앗은 권력자를 하나님이 책망하는 내용이다. 주류 기득권층이 수없이 저질러왔던, 지금도 저질러지는 죄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주류 개신교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젠 웬만해선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교회 내 횡령과 성폭력, 거짓말을 비롯해 온갖 사회적 지탄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세습의 욕심을 버리지 않는 대형교회의 처사에 대해서 보수 교회들은 침묵한다.

감리교 운동이 활발했던 18세기 영국에서 당시 감리교인들은 보증 없이 돈을 빌려줘도 되는 사람들로 신뢰받았다. 국내에 개신교가 전파된 초창기, 개신교는 민족·사회운동에 앞장서며 리더로서의 역할을 감당했다. 물론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이름 없는 성직자와 신도들은 있다.

지난 반세기 이상 드리웠던 구질서가 무너지며 우리 사회는 전환점을 맞았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빛과 소금으로 돌아갈 것인지, ‘매북 개독’으로 남을지 선택할 때다.

문화부 |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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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사회부는 23일 각 시·도 중국음식 값을 인하하도록 종용했다. 보사부 당국은 이에 불응하면 경제기획원과 협의해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1965년 4월2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 한 구절이다. 박정희 정권은 짜장면 값을 누르면서 위생검사나 세무조사 등을 동원했다. 화교들이 쫓겨난 뒤 음식점엔 한국인들이 자리잡았다. ‘한국식 짜장면’의 탄생 비화다.

요즘 농림축산식품부는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재수 장관은 취임 후 역대 최악의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 파동을 거치며 조직 위상에 바닥을 찍었지만 최근 ‘치느님(치킨을 일컫는 속어)’을 지킨 영웅이 됐다.

‘감히’ AI 와중에 치킨 값을 올리겠다고 나선 비비큐(BBQ)가 타깃이었다. 산지 2500원대 닭이 튀기면 1만6000원으로 뛰는 데 의심의 눈초리가 가득했는데, 가격 인상 계획 발표는 공분을 불렀다. BBQ는 “AI 때문은 아니다”라고 항변했고 농식품부는 “왜 하필 지금이냐”고 응수했다. 정부로선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다.

의문이 남는다. 지금 가격 인상을 막으면? AI가 지나면 업체는 다시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물가상승률, 인건비 등 업계가 둘러댈 명분은 늘 넘친다. 정부가 들여다봐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정부는 유통 과정에 부조리는 무시하고 첫 단계인 농가와 끝인 가맹점을 비교하며 업체만 몰아붙였다. 한 마리 2560원인 생계가 1만6000원 치킨이 되는 과정의 의문은 없고, “원가가 10%밖에 안된다”는 구호만 키웠다.

박정희 정권의 가격 통제에 중국음식점은 공업용 탄산나트륨을 섞거나 가짜 춘장을 써서 가격을 낮췄다. 당분간 닭다리가 두 개 들었는지 살펴야 할지 모르겠다.

조형국 |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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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2월 최종영 대법원장은 양승태 부산지법원장을 법원행정처 차장에 전보한다. 양승태는 최종영의 행정처 라인이다. 1996년 양승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실장은 최종영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지휘를 받아 로스쿨 문제를 담당하고 처리했다. 대법원장이 누군가를 차장에 발탁하는 것은 대법관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법원장은 특이하게도 대법관을 제청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문명국 어디에도 없는 제도다. 1948년 제헌헌법 이후 법관회의가 대법관을 제청했다. 그러다 1972년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제청권을 대법원장에게 줬다. 그리고 역사에 기록된 것처럼 군사정권은 대법원장을 장악해 사법부를 통제했다. 이런 시스템을 운영하던 유신정권은 대법원장이 권력으로부터 사법부를 보호하는 구조라고 선전했다. 이치에 닿을 리가 없다. 동서고금에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최고법원이 없는 이유는 동등한 합의체라는 기본 원칙에 어긋나서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장도 일본의 최고재판소장관도 소수의견에 몰리는 일이 많지만, 유독 한국의 대법원장만 항상 다수의견인 비밀이 여기에 있다.

법원행정처 603호에는 양복 차림 남성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그 방에 처음 들어섰을 때 역대 대법관 사진이 걸린 것으로 생각했다. 꼼꼼히 보니 대법관이 아닌 얼굴도 있었다. 대법관의 산실(産室)이라는 차장실, 사진은 역대 차장들이었다. 603호 출신의 법조계 원로는 “정말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고 했다. 대법원장을 위해서 사는 것이고, 그 대가로 대법관에 오르는 것이다.

2월 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전담법관 임명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이백규(53·사법연수원 18기)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주한길(53·24기) 변호사(서울서부지법 조정센터 상임조정위원)를 신임 전담법관으로 임명했다. 전담법관은 특정 사건 재판만 맡는 법관으로 15년 이상 법조 경력자 중에서 선발한다. 대법원은 2013년부터 매년 3명씩 소액사건 전담법관을 임명해 전국 5개 지방법원에 배치했다. 연합뉴스

2003년으로 돌아가, 양승태 차장이 취임한 직후 4차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차장 등을 중심으로 하는 서열순 대법관 제청에 반대해 판사 160여명이 연판장에 서명했다. 하지만 최 대법원장은 전임 차장 김용담을 대법관에 제청하고, 대신 대법원장 몫 헌법재판관에 여성 법관 전효숙을 지명해 무마한다. 양 차장은 사법파동에 책임을 지고 최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표한다. 2005년 퇴임하는 최종영은 마지막 대법관 제청 카드를, 사표를 반려하고 특허법원장에 보내둔 양승태에게 준다. 이렇게 해서 대법원의 ‘차장 불패’ 신화와 행정처가 지배하는 관료사법 체제는 생명을 이어간다. 양승태는 2011년 대법관에서 퇴임하고 몇 달 뒤 대법원장 임명장을 받는다.

지난해 촛불이 시작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궁지에 몰리자 서초동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양 대법원장이 2017년 9월 퇴임 전에 행사할 두 장의 제청 카드가 온전하겠냐는 것이었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가 대선 국면으로까지 이어지면, 강형주 전 차장과 임종헌 현 차장을 챙겨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이 무렵 판사들이 사법개혁에 관한 학술행사를 준비했고 이를 막으라고 지시받은 판사는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대법원이 이렇게까지 무리할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 2003년에 대해 나쁜 기억을 가진 양 대법원장 한 사람 때문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에게 남은 임기는 불과 6개월이었다.

오히려 오는 9월 이후로 학술대회를 미뤄야 할 절실한 사정은 차기 대법원장을 노려온 사람들에게 컸다. 대법원장이 다 된 것처럼 움직이던 그들에게, 박근혜의 퇴진에 이은 판사들의 사법개혁 요구는 가슴 뜨끔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장이 되기만 한다면 13장의 대법관 제청 카드를 갖게 되고, 그가 자리에 오르도록 유리한 국면을 조성한 사람도 기회를 얻는다.

6년 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하자 2003년에 연판장을 돌렸던 판사는 얼마 못 가 법복을 벗는다. 그가 이번 탄핵심판 사건에서 세월호 부분을 울먹이며 변론한 국회 대리인 이용구 변호사다. 지난주 학술대회 저지 의혹이 한창일 때 양 대법원장은 2003년과 비슷하게 여성 변호사 이선애씨를 헌법재판관에 지명했다.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사회부 | 이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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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실물을 내놓기 전까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념의 문제였다. 정권이 역사관을 독점하면 안된다는 생각, 미래세대에게 하나의 역사관을 강요해선 안된다는 생각.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무기로 싸웠다.

전선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높은 국정화 반대여론을 바꾸기 위해 완성도 있는 교과서를 만들겠지만 현대사에 교묘한 편향과 왜곡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2016년 11월28일 현장검토본 발표 후 깨졌다. 사람들은 이제 “이게 교과서냐”고 묻는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든 이들은 최신 연구 대신 수십년 전 폐기된 학설을 인용하고, 조선 대표 실학자를 소개하며 다른 이의 영정(인물그림)을 썼으며 좌우가 바뀐 사진을 원사료인 양 실었다. 교육부가 지적을 받아들여 현장검토본에서 수정했다고 밝힌 오류 건수만 760건인데, 민족문제연구소는 현장검토본과 공개된 최종본을 일일이 대조한 결과 실제 수정 건수는 1072건이라고 밝혔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최종본에 653개의 오류가 더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그중 일부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견해 차이”라며 버티고 있다. 교육부 말대로라면 견해가 다를 수 있는 내용을 교과서에 실었다는 뜻이다. 수능시험에라도 나오면 당장 소송감이다.

이준식 교육부 장관(왼쪽)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권호욱 기자

어떤 국정교과서 찬성론자들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을 강조한 것이 왜 문제냐”고 한다. 아쉽게도 국정교과서는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팩트로 싸운다. 교과서가 무기다. 현대사 부분까지 가기도 전에 교과서는 놀랄 만한 수준을 드러낸다. 세계 민주국가들의 교과서 발행체제를 공부하며 국정화 비판 논리를 준비하던 역사학자와 교사들은 상대를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사실에 실소를 짓고 있다. 한 지인이 “그래도 아까우니 한국어 교재로 활용하면 어떠냐”고 했다. 국립국어원이 단 1주일 동안 어문규범을 감수한 결과 <한국사>에서만 1436건의 비문과 오탈자, 표기 오류가 발견됐다. 한글교재로도 못 쓴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청와대가 시켰고 여당이 온 힘을 다해 뛰었다. 공무원이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을 것이다. 진짜 잘못은 국정교과서 발표 이후부터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에서 인정한 부분만을 봐도 불량품으로 드러났다. 그사이 ‘주문자’는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촛불광장에선 수백만명이 얼굴을 드러내고 “국정교과서 폐기”를 외쳤다. 교육부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했다면, 선의로 했으나 잘못 만들었다는 것을 조금이라도 반성했다면 그때라도 멈췄어야 했다. 교육부 공무원들이 하기 힘들었다면 몇개월 뒤 떠날 장관이 탄핵국면과 여론을 핑계로라도 이용해 교육부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다.

교육부는 느닷없이 ‘다양성’이 중요하다며 국·검정혼용제를 발표해 국정교과서의 생명을 연장하고, 연구학교를 운영하겠다며 가산점과 돈으로 교사들을 유인하다 그마저도 안되니 보조교재로 뿌리겠다고 밝혔다. 교육부 장관은 행자부 장관과 법무부 차관을 대동하고 연구학교 신청을 막는 외부세력이 있다며 “법적 조치”를 운운했다. 겁쟁이들은 늘 “두고보자”고 한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기적 같은 기회를 교육부는 최선을 다해 걷어찼다.

대선 후보들은 교육부 폐지와 개편을 말하고 있다. 교육부가 정말 문을 닫게 된다면 이준식 장관과 현 간부들의 책임이 팔할이다. 소외계층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꽃다발을 주고, 전국의 학교현장을 찾아다니며 덕담을 건넨 시간을 떠올리며 장관은 억울할지도 모르겠다. 그때 교육부가 받은 박수는 장관이 아니라, 보도자료에 이름 한 줄 나오지 않는 공무원들이 헌신한 결과다. 공약은 ‘공약(空約)’이 되기 십상이고 교육부는 인사물갈이로 개편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어떤 결과든 이런 교육부는 마지막이길 바란다.

장은교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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