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소박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소박하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까다롭지 않음을 일컫습니다. 꾸밈이 없으니 거짓이 있을 수 없고, 까다롭지 않으니 무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거짓 없이 무던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루에도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겉과 속을 이리저리 꾸미기에 바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가 더 서로에게 까다로울 수 있느냐를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삶은 내가 나의 참된 주인이 되어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더러는 그냥저냥 살아가기도 합니다. 가끔은 내가 아닌 남에 의해 내가 살아질 때마저 있습니다. 이래저래 삶이 버거워 소박하게 살지 못할 때,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심은 더 꿈틀거리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샘솟으면 하던 일을 잠시라도 멈추고 자연으로 향합니다. 거짓이 없고 무던한 모습의 중심에 자연이 있으며, 그 소박한 삶의 꼴을 고스란히 닮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더군다나 알맞게 비가 내려주는 날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알맞게 내리는 비를 가장 먼저 반기며 좋아하는 것은 메말랐던 흙입니다. 마를 대로 말라 서로 붙잡고 있을 힘마저 잃어 먼지로 흩날리는 흙에게 비는 그야말로 단물이지요. 그런데 가랑비는 마른 땅이 젖어들기에 부족합니다. 폭우는 흙과 한몸으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스쳐 흘러가고 맙니다. 알맞은 굵기로 떨어지는 비는 흙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비를 천천히 음미하듯 빨아들이며 흙은 표정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빠짝 말라 희끗희끗하게 들뜬 빛깔로 있다 비를 만나 짙은 갈색으로 낯빛을 바꾸고, 마침내 생기마저 술렁거리는 흙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알맞게 비가 올 때 흙과 더불어 신명이 나는 것은 흙에 생명을 기대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이겠으나, 그 중에서도 도드라지게 표가 나는 것은 들풀과 나무입니다. 비를 만난 들풀과 나무는 같은 녹색이어도 더욱 더 진한 녹색으로 그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먹구름이 드리워져 어두움이 슬쩍 내려 있더라도 들풀과 나무 주변은 오히려 더 밝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게다가 힘없이 처진 잎사귀가 몸을 바로 세우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른 더위가 너무 달린다 싶더니 결국 비가 오십니다. 비를 좋아합니다. 비는 물이며, 물을 좋아하는 천성에다 물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직업도 보태졌을 것입니다. 생명체의 70~90%를 차지하는 것은 물입니다. 생명체가 아득한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을 채울 가장 많은 물질로 선택한 것이 바로 물인 것이지요. 생명체에게 물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 수 없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이 없는 생명, 물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비를 만나 더없이 싱그러운 풀잎 위에 붉은 빛깔의 실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비를 좋아하니 자연히 빗소리도 좋아합니다. 비는 굵기에 따라 내리는 소리가 다릅니다. 같은 굵기라도 어디에 닿느냐, 곧 누가 맞이하느냐에 따라 소리는 변합니다. 메마른 땅에 닿을 때와 젖은 땅에 닿을 때가 다릅니다. 흙이 비를 맞이하는 소리와 나뭇잎이 맞이하는 소리가 다르며, 잎도 어느 잎이냐에 따라 소리는 또 달라집니다. 소나기가 커다란 방석처럼 드넓은 가시연꽃 위로 격렬하게 북을 두드리듯 떨어지는 소리는 압권이지요. 비가 물에 닿는 소리도 특별합니다. 같은 물이라도 고여 있는 물과 흐르는 물 어디에 닿느냐에 따라 소리는 사뭇 다르고요.

오는 듯 마는 듯 그러다 멈추는 가랑비도 아니고, 하늘이 열린 듯 한없이 쏟아붓는 폭우도 아니고, 꼭 알맞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던 일이 급하게 시간을 다투는 것이 아니기에 그대로 펼쳐두고 밖으로 나섭니다. 산으로 갈 수 있고, 들녘으로 들어설 수 있으며, 강으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연구실 문을 열고 나서 계단 몇 개 내려선 다음 몇 발짝 걸으면 바로 산으로 이어집니다. 산으로 들어서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 조금만 더 걸으면 넉넉한 들녘이 펼쳐집니다. 서서히 비에 젖어드는 산과 들녘에 꾸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차에 올라 잠시 움직이면 섬진강에도 이르게 됩니다. 언제나 그렇게 주어진 결대로 흐르는 섬진강에 꾸밈과 까다로움 또한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은 섬진강으로 향합니다. 우산은 가져오지도 않았지만, 비를 그냥 맞기로 합니다. 강둑에 내려서서 강 가장자리를 따라 거닙니다. 비를 만나 적당히 폭신폭신해진 강가의 흙을 밟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그러다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비를 만나 더없이 싱그러운 풀잎 위에 붉은 빛깔의 실잠자리 하나가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비, 흙, 풀잎, 실잠자리 그것만으로도 자연은 이미 소박함의 완성인 듯합니다.

알맞게 비가 오는 날에는 잠시라도 밖으로 나가 자연과 벗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산도 멀고, 들도 멀며, 섬진강은 더 멀리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디라도 흙과 들풀이 가까이 있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혹 실잠자리 하나의 자리가 비어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자연,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자연에서 멀 뿐입니다. 그래서 소박한 삶이 우리에게 멀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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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다 사망한 김모씨(19)의 어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아이를 기르면서 책임감이 강하고 떳떳하고 반듯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이에게는 절대 그렇게 가르치며 키우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책임감이 강하고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에게 개죽음만 남을 뿐입니다. 첫째(아이)를 그렇게 키운 것이 미칠 듯이 후회됩니다.”

그 어머니가 말하는 김씨 모습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말을 믿고 따랐다가 차가운 바다에 수장된 세월호 아이들과 겹친다. 그들은 나이도 같다. 세월호 아이들이 살아 있다면 김씨처럼 사회 초년병이거나 대학 새내기일 것이다. 둘 다 착한 것, 성실한 것, 어른들 말을 믿고 따른 것이 죄라면 죄였다. 정직한 것, 반칙하지 않는 것이 패가망신 이유가 되고 죽음의 원인이 되는 사회는 내면 깊숙이 병든 사회다. 사회 규범이 무너지고 신뢰가 붕괴된 자리에선 거짓과 술수와 협잡이 ‘끼리끼리’ ‘짜웅’ ‘짬짜미’ 같은 말을 거느리고 독버섯처럼 자란다.

유명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석연치 않은 변론으로 수백억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백 수십채의 오피스텔을 사들여 집장사를 하고 탈세했다. 거악을 징치한다는 특수통 검사의 노하우와 인맥을 범죄행위에 활용했다. 홍 변호사는 억울할 것이다. 그는 시쳇말로 재수 없게 걸린 케이스다. 최유정 변호사와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간 진흙탕 싸움이 없었다면 그가 검찰 수사를 받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명망 있는 법조인이요, 능력 있는 변호사로 남아 음으로 양으로 돈을 긁어모았을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과 명망을 밑천 삼아 장차 국회의원, 장관, 총리가 될 수도 있었겠다. 어쩌면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청년들에게 정직하게 땀 흘려 노력하라고 훈계할 수도 있었을 게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전관예우, 논문표절 따위가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고위 공직자의 기본 스펙이 된 지 오래다. 위선과 기만, 후안무치와 이중잣대.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정신적 풍경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에 연루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탈세와 변호사법 혐의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_경향DB


‘반칙을 해서라도 남을 짓밟고 올라서면 된다’는 천민 신자유주의적 삶의 태도를 선도한 건 정부·여당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과정의 정의를 중시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은 현 집권세력을 위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같은 시기 새누리당 실세들은 불법으로 유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침소봉대하며 색깔론을 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반칙을 일삼았다.

그래놓고도 이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명백하게 드러난 불법행위를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다. 법의 단죄를 받지도 않았다. 공안검찰은 2급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으로 유출해 선거에 활용토록 한 새누리당 정문헌 전 의원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는 데 그쳤다. 국가기밀을 불법으로 빼내 선거에 악용해도 벌금 500만원만 물면 된다는 것이 검찰에서 선거사범을 전담하는 공안검찰의 판단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하면 불법을 저지르라고 검찰이 권장한 셈이다. 정부가 앞장서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린 것이다. 공익은 집권세력의 사익에 압도됐다. 그런 정부를 시민들이 신뢰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면서 사회는 한층 천박하고 비열해졌다. 염치를 잃은 사람들은 오늘도 ‘완장질’을 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공동체는 붕괴됐고, 사회는 더 위험해졌다. 경제 사정은 나빠졌고, 일자리는 줄었으며, 남북관계는 악화됐다.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언론자유는 퇴보했다. 청년들은 미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난 9년간 무엇 하나 좋아진 것이 없다. 사회는 폐허가 됐다. 그 폐허에서 정직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오늘도 죽어가고 있다.



정제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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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의 안내책자에 실린 윤동주의 생애는 “1917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출생”으로 시작해서 “1945년 2월16일 오전 3시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북간도 용정 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이 약력을 읽으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된다. 온 국민이 사랑하는 민족시인 윤동주가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세상을 떠나고 다시 중국 고향 땅에 묻혔다면, 윤동주에게 서울은 무엇이었을까?

1938년 서울에 처음 올라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여름방학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 학생이던 후배 장덕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만주 땅에서는 볼 수 없는 무궁화가 캠퍼스에 만발했고, 도처에 우리 국기의 상징인 태극 마크가 새겨져 있고, 일본말을 쓰지 않고, 강의도 우리말로 하는 조선문학도 있다.”

윤동주의 시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설명이 북간도 명동촌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다니던 시절의 명동소학교는 외삼촌 김약연 목사가 교장으로 있던 시기의 민족교육 학교가 아니라 인민학교였으며, 1915년에 발표된 중국 정부의 교육법에 따라 중국어와 일본어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쳤다. 그나마 6학년 때에는 중국인 소학교에 편입해 공부했으므로 중국어로 배우고 생활하게 되었다.

광명학원 중학부에서 일본어 교육을 받을 때 지은 시는 띄어쓰기도 되지 않은 국한문혼용체였는데, 윤동주가 서울에 와서 가장 먼저 지은 시 ‘새로운 길’은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처럼 한글 전용이 되었다.

시내에 들어갔다 학교로 돌아오는 날에는 창천 내를 건너서 연희 숲을 지나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이 구절은 최현배 선생에게서 조선어를 배우며 아름다운 모국어로 시를 짓게 된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 윤동주_경향DB


졸업반 시절에 태평양전쟁 여파로 기숙사 음식이 시원치 않게 되자 윤동주는 후배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와 하숙집을 찾았는데, 정병욱은 하숙집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해(1941년) 5월 그믐께,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우연히, 전신주에 붙어 있는 하숙집 광고 쪽지를 보았다. 그것을 보고 찾아간 집은 문패에 ‘김송(金松)’이라고 적혀 있었다. 설마 하고 문을 두드려보았더니 과연 나타난 주인은 바로 소설가 김송, 그분이었다.”

윤동주보다 8세 위였던 김송은 함경도 출신으로 대표적인 항일작가였다. 일본 유학 시절의 감옥 체험을 다룬 데뷔작 <지옥>을 신흥극장 창단 작품으로 공연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중단당했으며, 일본 경찰에게는 요시찰 인물이었다. 누상동 9번지 하숙집에 살던 시절 윤동주의 동선은 글자 그대로 서울 산책이다.

“아침 식사 전에는 누상동 뒷산인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할 수 있었다. 하학 후에는 충무로 책방들을 순방하였다. 음악다방에 들러 음악을 즐기면서 우선 새로 산 책을 들춰보기도 했다. 오는 길에 명치좌(明治座)에 재미있는 프로가 있으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윤동주가 기숙사에서 나와 누상동에 하숙집을 잡은 이유는 서울 문화산책을 하기 위해서였던 셈이다.

하숙집에서는 조 여사가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렸으며, 식사가 끝나면 김송이 대청마루로 불러들여 한 시간 남짓 문학과 세상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김송이 요시찰 인물이라 고등계 형사가 거의 저녁마다 찾아와 윤동주의 책꽂이에서 책 제목을 적어 가고, 고리짝까지 뒤져 편지를 압수해 가며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하숙집을 옮겨야만 했다.

서울에서 윤동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연세대학교 핀슨홀(당시 기숙사)과 누상동 하숙집뿐인데, 윤동주 하숙집을 검색하면 낯선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일본인 독자들이 윤동주 하숙집을 찾아왔다가 한옥을 헐고 새로 세운 주택 앞에서 허탈하게 찍은 사진과 “윤/하/뻔”, 즉 태극기와 윤동주 하숙집 터 안내동판 위에 크게 써붙인 “윤동주 하숙집터 뻔데기” 간판이다.

윤동주가 아침마다 산책하고 세수하던 수성동계곡이 복원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오자 누군가 장삿속을 발동한 것이겠지만, 이제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집을 서울시민들에게 돌려줄 때가 되었다.

윤동주의 시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글자가 하늘과 우물과 길이다. 누상동 하숙집에서 청운동 시인의 언덕을 거쳐 윤동주문학관까지 이르는 길을 윤동주 산책길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기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제안한다.



허경진|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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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방문에서 정치적·역사적 의미를 배제하려 한다.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도 아니고 역사 청산도 아니라고 한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순수한 동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정치적·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미국이 사과 의미를 배제한 것은 옳지 않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민간인이 대부분인 수십만의 생명을 핵으로 절멸시킨 행위는 일본의 전쟁책임 여부와 별개로 사과해야 할 일인 것이 맞다.

현재 동북아시아에는 핵위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이벤트라는 주장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오바마가 일본에서 핵 없는 세상을 말하려면, 먼저 주변국을 불안케 하는 막대한 양의 농축우라늄, 무기급 플루토늄을 일본이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이 27일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_AP연합뉴스

결국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큰 의미가 있는 행사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온 오바마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다. 최소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아베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미국 판단이 작용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향후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공세적 아시아 전략으로 한국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릴 것임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한국인 희생자가 동등하게 언급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이 딱하다.

주변 정세가 이 지경인데 한·일 위안부 합의로 오바마의 히로시마행에 빗장을 풀어준 박근혜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부각시키는 데 매달리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다른건 몰라도 외교는 잘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유신모 ㅣ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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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의 끝자락이다. 입시생이나 재수생 못지않게 고시생들에게도 5월의 나른함은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과거 조선시대 양반 자제들은 세속의 유혹을 벗어나 과거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책을 싸들고 산속의 조용한 절을 찾았다. 그런 관습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도 계속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법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와 같은 고급공무원이 되기 위한 시험 준비를 위해 조용한 산사의 작은 방에서 젊음을 불살랐다.

그런데 1980년대 무렵부터 서울대 가까이 위치한 신림동 주변에 고시촌이 형성되면서 전국의 고시 준비생들이 절 대신에 고시원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사실 서울대 캠퍼스가 도심을 떠나 관악산 자락으로 이전하지 않았더라면 신림동에 고시촌이 형성될 이유가 없었다. 고시촌 주변은 원래 지방에서 올라온 서울대생들이 방을 빌려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던 동네였다. 그러다가 점차 고시촌으로 변모했다. 서울대가 들어오기 이전 완만한 언덕이던 신림동 주변에는 묘지들이 즐비했고 서울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곳은 주민들의 철거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된 투쟁의 현장이기도 했다.

1974년 서울대는 경성제국대학으로부터 물려받은 동숭동 캠퍼스를 떠나 관악산 기슭 6백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부지에 새로 지은 캠퍼스로 이전했다.(원래 그곳에는 1963년에 만들어진 관악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이 있었다. 현재 ‘교수회관’이라고 이름 붙은 건물이 과거 컨트리클럽의 식당과 연회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서울대 이전의 공식적인 이유는 서울대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동양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을 도심으로부터 격리시켜 체제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서울대 주변에는 기본 여가시설이 없어서 학생들은 캠퍼스 뒤의 관악산으로 들어가 술판을 벌이기도 했고, 학교 철조망을 넘고 개울을 건너 생두부를 안주 삼아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러 가기도 했다. 그게 그 시절의 낭만이었다.

1990년대의 일이다. 학회에 참석하거나 외국 학자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서울대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늘 낙성대 쪽에서 학교 안으로 진입했다. 캠퍼스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대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동네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5월 하순의 저녁 나는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내려 고시촌을 거쳐 서울대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쑥고개를 넘어 서울대입구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야간 산책’을 감행했다.

신림역에서 내려 거리로 나서니 신림사거리는 온갖 네온사인과 불빛으로 어지러웠고 밀려오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그곳에서 서울대 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 걸어 올라가니 도림천이 나왔다. 말끔하게 정리된 천변으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에는 “신림 경전철 예산 93억원 확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계속 걸어 올라가니 고시촌을 알리는 조형물이 나왔다.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이 겨우 과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책터나눔 ‘북션’도 보였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5층 규모의 공동주택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도로를 접하고 있는 1층에는 식당, 카페, 주점, 빨래방 등이 보였고 독서실, 고시학원 등의 간판도 보였다. 편의점 밖 테라스에는 캔 맥주를 마시고 있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서로 동료의식을 느끼며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 경쟁의식에 불타 분발하기도 하면서 고시촌 분위기에 젖어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착잡했다.

고시원이라고 부르는 건물은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가 있는 작은 단칸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곳에서 고시 준비생들의 숨 막히는 삶이 이루어진다. 주방, 화장실, 욕실, 세탁실 등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과거 가리봉동의 노동자들이 살던 ‘벌집’에 비교하면 훨씬 개선된 주거 환경이지만 그리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환경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이곳에 살면서 시험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몇몇 건물의 외벽에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이름이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젊은 시절의 몇 년을 그곳에서 보내고 ‘성공’해서 현재 부장판사로 일하고 있는 문유석은 20년 만에 신림동 고시촌 골목길을 다시 거닐며 이런 소감을 남겼다. “예전보다 많이 해사해졌지만 이 동네의 본질은 변할 리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 초조, 욕심, 좌절, 분노, 비뚤어진 욕망, 충족되지 않는 자존감, 과대망상, 성욕, 찌질함, 고시촌의 청춘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그때 누구보다 찌질하고 피폐했다. 내 안 밑바닥 어딘가에는 아직도 고시촌의 쾨쾨한 냄새가 남아 있다.”

도림천 양안 언덕에 고시 준비생들을 위한 건물들이 즐비한 언덕길을 걷다 지친 나는 지나가는 빈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기사에게 서울대 캠퍼스를 한 바퀴 돌자고 했더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잠시 후 국립서울대학교를 상징하는 ㄱ, ㅅ, ㄷ을 조합해 만든 철제 정문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자 왼쪽에 야간 조명등이 밝혀진 운동장이 나왔다. 택시의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캠퍼스의 외곽도로를 한 바퀴 쑥 돌았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정문 근방에 이르자 뿌연 조명등이 켜진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내 눈앞에는 고시원의 책상 앞에 웅크리고 있을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들이 어디에서든 저렇게 활기차게 뛸 날은 언제인가?


정수복 ㅣ 사회학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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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는 대형 식당이 3곳 있다. 원래 2곳이 영업 중이었는데, 지난 2월 ‘국민의식당’이 개업하면서 3각 경쟁을 벌이게 됐다.

이 중 가장 큰 규모와 매출을 자랑하던 ‘새누리식당’이 최근 위기에 빠졌다. 지난 4월 4년마다 열리는 ‘여의도 미식회’ 축제에서 손님이 확 줄었다. 매출액 1위 자리도 ‘더민주식당’에 내줬다.

축제 직전까지 난장을 펼쳤던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른 두 식당의 ‘손님 빼앗기’ 경쟁 덕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사태평과 오만방자가 화를 불렀다.

‘주인장 뜻’이라며 ‘진실한 종업원’을 감별하고, 밉보인 종업원은 쫓아냈다. 지배인을 “죽여버리겠다”고 취중막말을 한 종업원도 있었다. 급기야 지배인은 결재 도장을 감춘 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래 놓고선 ‘도장 들고 나르샤’란 광고를 했다.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노래)을 불러댔다. 메뉴들도 별반 새로운 게 없었다. 일부 단골손님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발길을 끊었다.

새누리식당에서 곡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장 지배인부터 사표를 냈다. 지리멸렬은 계속됐다. 원아무개 매니저는 ‘임시’ 지배인 자리를 노리다가 반발을 샀다. 종업원들은 워크숍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곧바로 ‘네 탓’ 타령을 해 ‘쇼’라는 빈축만 샀다.

지난주 새누리식당은 새 매니저를 뽑았다. 손님들의 니즈(요구)를 반영한 레시피를 만들 특별팀도 만들기로 했다.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레시피가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 주류 종업원들은 기득권 유지·강화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앞장서서 희생하는 사람도,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다. 식당 부흥의 방향을 토론할 중차대한 회의에 122명 종업원들 가운데 39명이 불참했다.

“절박함이 없다.” 한때 더민주식당에 하던 말이 이제 새누리식당을 두고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오죽했으면 한 원로가 “뼛속까지 반성하는 모습도 안 보이고 무기력하다”(김형오 전 국회의장)고 질타했을까.

뭔가 믿는 구석이 없으면 이럴 수 없다. 바로 ‘청와대식당’에 있는 주인장이 새누리식당의 든든한 뒷배다. 이 주인장의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아 보인다. ‘여의도 미식회’ 이후 한 달간을 언론인들과의 대화, 이란 순방, 여의도 식당 3곳 책임자들과의 회동 등으로 채웠다. 그사이 청와대식당의 인적 쇄신 목소리는 묻혔다.

실제 손님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래도 새누리식당”이라는 손님들이 여전히 많고, ‘기득권’ 양념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다.

어물쩍 시간이 지나면 손님들이 예전 수준으로 늘 것이다. 새누리식당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보수정당은 간단히 안 죽는다”(정진석 원내대표)고 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새누리식당의 기대대로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여의도 미식회’ 직후 새누리식당에선 12년 전 천막 치고 장사하던 시절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과연 절박함이 사라진 자리를 새누리식당은 무엇으로 메울까. 손님들은 “여긴 아직도 똑같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도 이미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을 섭렵해 웬만한 잔재주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소멸하게 될 것”(정두언 의원)이라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옛날 로마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던 말이다. 인간의 허영을 경계한 것이다.

‘여의도 미식회’ 직전 새누리식당 벽에도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정신차리자, 한순간에 훅 간다.’


김진우 ㅣ 정치부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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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서 이중국적자 자녀를 둔 외교관은 공관장이 될 수 없다. 올해 외교부 춘계 공관장 인사에서도 이중국적 자녀가 있는 외교관들은 대사 임명에서 제외됐다. 2014년 춘계 공관장 인사 때는 이중국적 자녀를 둔 외교관 일부를 공관장에 임명하면서 자녀의 이중국적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그리고 1년6개월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못한 공관장은 모두 조기 소환했다.

정부는 “이중국적 자녀를 가진 공무원을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에 임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임명권자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외국인이나 이중국적자 가족이 있는 공무원은 공관장에 임명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은 그런 규정이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위헌적 조치를 ‘임명권자 판단’이라는 이유로 강제하는 셈이다.

이중국적 논란을 빚고 있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빌딩 15층에 마련한 임시 집무실에서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_박민규기자

이중국적 자녀를 둔 고위공무원은 많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됐고 유민봉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아들이 이중국적자였다. 공관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이중국적 자녀는 안된다는 논리라면, 부총리·장관·청와대 수석 등은 국가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국내에서 이중국적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병역 등 국민으로서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각종 혜택을 누리는 문제점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보완책으로 해결할 일이다. 이중국적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정부 출범 당시 한국계 외국인을 장관으로 임명하려던 박근혜 정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유신모 | 정치부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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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진부함을 넘어선 참신한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흔히 그런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산과 강을 찾아다닌다. 심지어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해외여행을 떠난다. 백두산 천지, 사하라사막, 북극의 오로라, 남극의 빙하…. 우리는 이런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우리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탄성과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자연히 그것을 응시하는 눈과 몸으로 들어와 관찰자를 혼미하게 만든다. 이런 숭고한 경험은 멀리 있는 것인가?

‘본다’는 행위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저 보는 것’이다. 그저 본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습관과 편견대로, 자기 기준대로 상대방을 보는 행위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시각적이며 수동적인 반응으로 피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 젖히면 날아다니는 새와 푸른 소나무가 눈에 저절로 들어온다. 내가 이것들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그냥 일어난 사건이다. 이 순간에 그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내 안목의 수준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지닌 안목이 옳다고 착각하고 외부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그 매개를 통해 해석한다. 이런 시선이 고착되는 것을 무식(無識)이라고 부른다. 무식을 고전 아랍어로 ‘자힐리야(jahiliyyah)’라고 부른다. 자힐리야는 기원후 7세기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 아랍사회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자힐리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쉽게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이유는 자신이 구축한 상대방에 대한 의견이나 허상 안에 그 대상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식한 사람은 화를 잘 낸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해를 끼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에 꿰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다.

두 번째는 ‘살펴보는 것’이다. 살펴보는 사람은 그 대상을 보려고 의도한다. 나는 아침에 조간신문을 보는 습관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대문으로 달려가 신문을 집어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와 헤드라인들을 훑어본다. ‘살펴보는 것’은 ‘그저 보는 것’과는 달리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신문을 넘기면서 의도하지 않게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나 글들도 있지만, 그것들 중에 새로운 소식에 눈길이 가고, 그 글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살펴보는’ 주체로서 보고 싶은 대상을 취사선택한다. 우리 대부분은 어떤 것을 공부할 때, 이런 식으로 살펴본다. ‘살펴보는 것’이 ‘그저 보는 것’과 의도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은 부족하다.

세 번째 보는 것은 이전 보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세 번째 보기를 ‘관찰’이라고 부르는데, 그 특징은 무아성(無我性)이다. 특히 살아 움직이는 어떤 것을 응시할 때, 그것을 의도를 지니고 볼 뿐만 아니라, 그 움직이는 모습을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 몰입이 필요하다. 몰입을 통해 관찰하려는 거룩한 공간은 공연장이나 영화관과 같은 장소다. 이곳에는 무대가 있다. 아니 내가 관찰을 시도하면 그 대상은 무형의 무대 위에서 나를 사로잡는다. 관찰은 나를 단호하고 압도적으로 사로잡아 숨을 멈추게 한다. 그 순간 나는 없어지고 내 관찰 대상의 표정과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넬슨 만델라 前 남아공화국 대통령, 남산 지구촌민속 박물관 방문_경향DB

나는 1998년 6월, 한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경험했다. 미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했다. 만델라는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어 27년을 지내고 석방되었다. 1994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평등 선거 실시 후 뽑힌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뒤, 1998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연사로 초대되어 왔다. 만델라가 연설하기 전, 미국 흑인 오페라 가수인 제시 노먼이 ‘Amazing Jesus’라는 흑인영가를 부를 때부터 2만여 관객들은 서서히 몰입되기 시작하였다. 제시 노먼이 노래를 마친 후, 단상에 앉아 있던 만델라가 일어나 아프리카 추장과 같은 당당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응시하였다. 나는 그의 눈길이 내게 오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27년 수감생활도 그의 바로서기와 자비로움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가 단상에 서 있는 모습이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그 후 20여분 동안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의 말과 표정 하나에 온몸으로 반응했다.

1973년 노벨의학상을 탄 카를 폰 프리슈는 관찰의 화신이었다. 프리슈는 ‘언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지녔다는 기존의 상식을 깨고 꿀벌의 춤추는 모습에서 이 동물이 가진 언어와 문법을 판독해냈다. 꿀을 발견한 벌이 벌집으로 돌아와 다른 벌들에게 벌집의 위치와 방향, 심지어 꿀의 질과 양까지 전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가 이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식이나 다른 과학자들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꿀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위대한 발견의 비밀을 물었다. 그는 말했다. “바위틈에서 수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는 꿀벌을 관찰했습니다. 내가 참을성 있는 관찰자였기 때문에, 그저 보는 과학자들이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발견의 비밀은 오래 관찰하기다. 당신은 그저 봅니까? 아니면 오래 봅니까?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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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란 무엇일까.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3년 만에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재정, 인건비, 세금’ 이렇게 세 단어로 축약되는 인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그동안 재정이 150억원 정도 들어갔고, 또 그걸 정리해서 서류를 만들려면 거기에 보태서 재정이 들어갈 것”이라며 “인건비도 한 50억원 정도 썼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을 목표로 하는 특조위 활동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이 비용만, 그것도 구체적인 ‘숫자’까지 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박 대통령은 특조위의 활동기간 보장에 대해 “국회에서 이런저런 것을 종합적으로 잘 협의하고 그렇게 해서 판단할 문제”라며 얼버무렸지만, 이에 앞서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사회자가 청와대 참모진을 소개하자 박수를 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27일 논평을 내고 “청와대의 일방적인 가이드라인”이라며 반발했다. 특조위 활동기간을 ‘보장’해달라는 희생자 유족과 특조위를 사실상 ‘세금 도둑’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특조위 활동기간에 대한 법조문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액수’를 줄줄 외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되물었다. “특조위 청문회에 나온 해경 지휘부의 증언을 한 줄이라도 들었는가.”

희생된 학생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한 선내 대기 방송이 청해진해운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세월호 여객부 직원의 새로운 증언이 나온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7월을 목표로 하는 세월호 인양 작업은 이제 막 ‘리프트빔’을 투하해 본격화했다. 유족들이 줄곧 온전한 인양을 요구한 건 선체 조사로 이전에 몰랐던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사실상 오는 6월에 특조위 문을 닫으라고 한다.

‘진상, 희생자, 유족’ 대신 ‘재정, 인건비, 세금’만 남은 대통령의 ‘세월호’. 여기에 아이들이 죽어간 차가운 바다 위에서 뜬눈으로 인양 현장을 지키는 유족들은 호소한다. 그 세금을 낸 국민은 진상을 보다 낱낱이 알고 싶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싶다고.


허남설 | 사회부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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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3당 체제라는 결과를 낸 20대 총선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의미를 던졌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돌이키면서 결코 빠트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북풍’이다.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 8일 오후 5시로 가보자. 통일부는 느닷없이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탈출해 국내에 들어왔다고 공개했다. 이들이 입국한 다음날이었다. 사진도 공개했다. 선거 사흘 전엔 통일부와 외교부가 브리핑을 자청해 “대북 제재에 영향을 받은 탈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선거 이틀 전엔 지난해 발생한 ‘고위급 탈북자’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자 즉각 시인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20대 총선 수도권 후보 출정식에서 후보자들과 악수하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_경향DB

탈북자 정보 공개에 관한 정부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류길재 전 장관마저 언론 인터뷰에서 “탈북자는 신변안전 문제가 있어 비공개가 역대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었다”면서 “탈북자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정부가 총선 이후 보이는 모습을 보면 기존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이유는 명백해진다. 총선이 끝남과 동시에 침묵 모드로 돌아간 것이다. 정부 당국의 ‘급변침’을 기획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차차 드러나겠지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청와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16일 국회 연설에서 “우리 사회 일부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이라는 원인보다는 ‘북풍 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 선거를 위해 내팽개친 탈북자들의 인권과 그들 가족들의 신변안전, 그리고 헌신짝이 돼버린 정부의 원칙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김재중 | 정치부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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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시40분. 몇 번 이름을 불러 깨웠지만 대답이 없다. 이번엔 한번 버럭 소리를 지를 차례다. “너, 정말 안 일어날래? 이제 혼자 좀 못 일어나냐!” 그제야 방 안에서 짜증 섞인 소리로 대답한다. “일어났어, 옷 입고 있다고.” 옷은 무슨, 어젯밤에 빤 교복 셔츠며 스타킹이 거실 빨래걸이에 그대로 걸려있는데 모를 줄 아냐, 누워서 대답하면서.

식탁에 반숙 계란 프라이와 멸치볶음, 현미잡곡밥, 소고기 미역국, 김치를 차려놨다. 며칠 전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아이가 미역국 타령을 했다. “친구 엄마는 시험 보는 날, 일부러 미역국 끓여준대. 시험 못 보면 엄마 탓 하라고.” 그 말을 들은 다음부터는 보란듯이 미역국을 단골로 끓여댄다. 그 엄마 속도 좋다고 해라. 걸핏하면 친구 엄마를 갖다붙여. “그 집 가서 그 엄마랑 살던가, 지지배야!”

오후 2시 아이 학교에서 문자가 왔다. ‘4월8일 ○○○학생은 벌점 1점을 받았습니다.’ 새 학기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벌점을 받아. 등굣길에 짧은 치마가 걸렸나, 준비물을 빠트렸나. 상점 받아도 모자랄 판에 정신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야, 설마 생기부(생활기록부)에 적히는 건 아니겠지.

저녁 무렵에 아이가 보내온 카톡. “용돈 떨어져서 학원 갈 차비가 없어 ㅠㅠ. 김밥도 사먹어야 돼. 1만원만 통장으로 빨리 넣어주세요♡.” 돈 달라고 할 때만 하트야, 평소에 좀 고분고분하지. 퇴근 후 늦은 장을 본다. 우유, 짜장라면, 딸기, 삼겹살, 아이스크림…. 다이어트 한다고 잘 안 먹던데, 고기라도 구워 먹여야지. 근데 고등학교 2학년이 다이어트 할 때냐구, 웬수.

그리고 밤 10시 “다 녀 왔 습 니 다”. 아이가 현관 문을 열고 들어서 운동화를 벗고, 책가방을 던져두고 냉장고 문부터 열며 조잘조잘 오늘 하루를 얘기한다. 내일 아침이면 어서 일어나라고, 티격태격하며 얼굴을 맞대고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또 하루를 시작하겠지. 내세울 것 없는 그저 평범한 일상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이 보잘것없는 일상이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꿈에서라도 단 한번만…’이라며 그리워하는 엄마들이 있기 때문이다. 별이 된 아이들을 품고서 광화문광장에서,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지금도 울고 있는 엄마들이 있다.

"세월호 기억하자" 추모관에 전시되는 세월호 모형_경향DB

내일 4월16일은 세월호 참사 2주기다. 언제 이토록 시간이 지났을까. 무엇 하나 제대로 해결된 것이 없는데 시간만 지난 것은 아닌지. 2주기를 맞아 관련 책이 다수 출간되고 추모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지만 세월호를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고통을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 유가족들 곁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종교인들은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이 울고 웃는 것은 시민들의 관심, 기억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28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세월호 2차 청문회 방청석에도 유가족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대부분 자리했을 뿐 빈자리가 많았다. 총선 분위기에 밀려 청문회에서 새로 나온 내용들도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고 관심 밖의 일로 취급됐다. 이제 세월호광장에서는 가이드 깃발을 따라 영문을 모르는 중국, 일본 관광객들이 노란 천막 안에 마련된 전시회 등을 둘러볼 뿐이다. 지금 예정대로라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은 6월 말로 끝난다.

그 안타까움에 광화문광장 노란 천막 한 귀퉁이에서 세월호 엄마들은 노란 리본을 쇠줄에 달아 오가는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말 붙인다. “리본 달아드릴까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를 엮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 한 생존학생이 말한 “기억할 수 있을 때까지 기억할 거예요”는 우리에게 필요한 말이다. 고통의 치유와 새로운 출발도 모두 ‘기억’에서 시작된다.


김희연 | 문화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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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탈출한 주민들이 한국으로 오는 과정이나 이들의 신원과 관계된 것은 공식적으로 확인해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언론이 인권단체 등을 통해 취재한 탈북 관련 내용도 정부가 적극 나서서 보도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탈북자의 사생활·인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고려하고 관련국과의 외교적 마찰, 탈북 루트 차단 등을 막기 위한 것이다. 언론도 그래야만 더 많은 탈북자들이 안전하게 한국으로 올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동안 정부의 비보도 요청을 받아들이고 상세한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지난 8일 정부가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13명 집단탈출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것은 이 같은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정부는 이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탈출 동기, 시점, 심지어 사진까지 언론에 제공했다. 오랜만의 집단탈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와 정부의 독자 제재 상황에서’ 해외체류 북한 주민이 집단 탈출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집단탈출'에폐가된中닝보북한식당_연합뉴스

10일에는 이례적으로 통일부와 외교부가 동시에 대북 제재 효과에 대한 브리핑을 자청함으로써 이번 탈출 사건이 대북 제재의 효과 때문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결국 정부가 하고 싶은 말은 “박근혜 대통령 주도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총선을 의식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제는 이런 유치한 언론플레이가 작동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외 북한식당이 제재 이전부터 운영난을 겪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재 때문이라는 근거도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해외 북한식당이 모두 문을 닫는다 해도 이렇게 북한이 곧 망할 것처럼 흥분할 일은 아니다.

정부가 탈북 관련 보도원칙을 스스로 깨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탈북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는 질문에 정부 당국자는 “사안에 따라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공개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정부는 앞으로 탈북 관련 사안에 대해 신변안전, 외교마찰 운운하며 언론에 비보도 요청을 하는 염치없는 짓은 하지 말기 바란다.


유신모 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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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의 3대 변수로 국민의당 출현,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대표 영입, 새누리당의 ‘유승민 찍어내기’ 파동을 꼽을 수 있다. 국민의당 출현과 유승민 찍어내기 파동은 야·야, 여·여를 쪼개놓았고, 김종인을 영입한 더민주는 ‘비례 공천’ 파동을 겪었다. 국민의당 출현이 ‘1여다야’ 구도로 선거 지형을 바꾸어 놓았다면, 유승민 찍어내기 파동, 더민주의 김종인 영입과 ‘비례 공천’ 파문은 선거 판세를 흔들었다.

총선에 미친 영향의 폭과 깊이는 다르지만 세 변수의 기저를 흐르는 공통 흐름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당은 ‘제3 정당론’을 표방하며 ‘합리적 진보와 개혁적 보수’를 아우르겠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합리적 진보’에 더민주 친노·운동권이 들어갈 자리는 없는 것 같다. 이들이 말하는 ‘개혁적 보수’는 유승민 등 여권 ‘비박(비박근혜)’을 포함한다. 결국 더민주와 여권 ‘비박’ 사이를 자신의 정치공간으로 삼겠다는 얘기다. 더민주를 기준으로 우클릭한 것이다.

문재인이 김종인을 ‘전권대표’로 영입할 때 예상했는지 모르지만, 김종인은 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치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기회 있을 때마다 당의 운동권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 한 예다. ‘비례 공천’ 파동도 결국 정체성을 둘러싼 인식차 때문이라고 김종인은 믿고 있다. 김종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경제민주화는 기존 보수·진보 구도에 포획되지 않는 개념틀이지만, 한반도평화 등 이슈에서 김종인이 보수적 스탠스를 취하는 건 분명하다. 더민주를 우클릭하겠다는 것이다. 더민주의 우측 수평이동은 자연스럽게 새누리당 비박 세력 일부와 접점을 만든다. 더민주가 원조 친박이자 박근혜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진영을 영입한 것이 그 징후다. 국민의당 창당과 김종인의 행보가 야당을 우클릭하는 것이라면, 여권 내 유승민 등의 권력투쟁은 박 대통령과 ‘진박’을 우측 기준선 삼아 좌클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 세 가지 정치 현상이 수렴되는 곳은 ‘더민주 오른쪽, 박 대통령 왼쪽’ 공간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11일 수원 장안구 경기도당회의실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뒤 지역 후보자들의 발언을 들으며 안경을 고쳐쓰고 있다._경향DB

이들의 인적 구성을 보면 정치적 공간이 포개지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 잘 알려져 있듯이 김종인은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기조를 창안한 사람이고, 국민의당 이상돈 공동 선대위원장은 박근혜 체제 새누리당에서 비대위원을 지냈다. 진영은 박 대통령 인수위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유승민은 박근혜 선대위 부위원장 출신이다. 박근혜 선대위 핵심들이 야당으로 흩어지거나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하면서 ‘대통령 박근혜’와 맞붙은 형국이다. 이번 총선을 놓고 항간에는 ‘대통령 후보 박근혜’와 ‘대통령 박근혜’의 대결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제3 공간의 정치적 수요를 만든 사람은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 집권 후 국정 전반의 강력한 우경화가 진행되면서 ‘상대적 진보’의 기준선이 종전 ‘더민주 친노·운동권 전후’에서 ‘유승민·진영 전후’로 수평이동했다. 보수파 입장에서 보면 한국 정치지형을 전반적으로 우경화한 것이야말로 박 대통령의 최대 치적일 것이다.

이번 총선이 끝나면 곧바로 대선 국면이 열린다. 그와 동시에 제3 정치공간을 차지하기 위한 중원 혈투가 펼쳐질 것이다. 가능성은 넷 중 하나다. 더민주가 우로 확장하는 것, 국민의당이 좌우로 확장하는 것, 여권 비박이 좌로 확장하는 것, 세 세력의 일부 혹은 전부가 연합하는 것. 어느 경우건 더민주는 정체성 논쟁을 피할 수 없다. ‘반박근혜’ 연합의 주도권을 누가 틀어쥘 것인가, 다른 세력이 주도권을 쥐어도 용납할 것인가 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물론 야당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따로 있다. 새누리당이 ‘반박근혜’ 혹은 ‘비박근혜’의 대표성을 획득해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는 경우다. 새누리당이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집권을 연장한 게 불과 4년 전이다.


정제혁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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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는 한반도 비핵화와 유엔 안보리 결의의 완전한 이행에 합의했다고 했는데, 왜 시진핑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은 걸까?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봐야 되지?” 랩톱 컴퓨터에 코를 박고 기사를 쓰던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르델라세라의 미국 특파원 주세페 사르치나가 물었다.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린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컨벤션센터의 국제미디어센터는 세계에서 온 기자들로 북적였다. 한·미·일, 한·일, 한·중, 미·일, 미·중의 다양한 회담이 열린 이날 기자들은 서로 정보와 견해를 나누며 각국 정부 관리들의 설명을 듣고 싶어 했다. 정상들의 성명에 담긴 암호 같은 말들을 해독해야 했기 때문이다.

백악관 대변인과 보좌관들은 컨벤션센터로 자리를 옮겨 정례브리핑을 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도널드 트럼프의 한·일 핵무장 용인 발언에 대한 정상들의 반응에 관심을 보인 반면, 외신기자들은 북핵에 관심이 많았다. 이어 다른 방에서 일본 외무성 대변인도 별도로 브리핑을 했다. 참석 기자 수는 훨씬 적었지만 그는 한·일, 한·미·일 정상회담과 북·일 납치 문제 협상, 핵안보에 대한 입장 자료를 준비해와 나눠주고 느린 영어로 정성껏 회견을 했다. 질문자가 더 없을 때까지 질문을 받았다. 곧이어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회견을 했다. 중국어·영어 순차통역으로 진행된 회견에서 그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문제에 대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 말을 상세히 공개했다.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워싱턴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환영 인사들과 악수하고 있다_경향DB


BBC 기자 시앤 레이가 “한국은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중국도 자신들 견해를 밝히며 외신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한국 정부도 당연히 그러리라 싶어 미디어센터에 파견나온 국무부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한참 자료를 찾아보고 본부에도 전화를 해본 뒤 “이상하다. 오늘과 내일 한국의 회견은 잡혀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훗날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정책이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정말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각국 언론의 궁금증에 답하고 이해시키는 노력은 필수가 아닌가.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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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인터넷 자기게시물 접근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 초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달부터 인터넷에 올린 글을 타인이 검색할 수 없도록 권리 행사가 가능해진다. 회원 탈퇴 등의 사유로 불가피하게 본인이 직접 삭제하지 못하는 게시물 등이 대상이다. 이번 초안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보가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것을 차단하는 ‘잊혀질 권리’가 제도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잊혀질 권리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 행복추구권과 직결되는 소중한 가치다. 별 생각 없이 무심코 올린 글이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고통을 당하거나 옛 애인과 찍은 사진으로 결혼생활이 파탄 나는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문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추진하면 부작용만 양산할 수 있다.

방통위 초안은 공익과 관련성이 있는 게시물에 대해서는 게시판 사업자와 검색서비스 사업자가 잊혀질 권리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법관도 아닌 이들 사업자가 공익과의 관련성을 따지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정신적·사회적 피해를 유발하는 인터넷 게시물은 제3자가 올린 경우가 많지만 초안에는 제3자가 올린 게시물에 대한 삭제요구권은 포함되지 않았다. 논란을 피해간 반쪽짜리 초안으로 방통위가 생색내기식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려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자기게시물 접근배제요청권 절차 개요, 잊혀질 권리 행사 대상 예시_경향DB

전 세계적으로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가 뜨거운 상황에서 무작정 도입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관건은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다.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 및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권력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서구보다 약하고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아 섣불리 도입하면 삭제청구권이 남발되면서 국민의 알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다. 예컨대 언론중재위원회가 추진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만 해도 그렇다. 개정안에는 언론중재절차를 통해 기사를 삭제하는 일이 가능해지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데, 피해자의 기사 삭제 청구가 넘쳐나 언론 보도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는 가이드라인 확정에 앞서 예상되는 기술적 문제점들을 세밀하게 보완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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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미(Pick Me) 픽미 픽미 업.”

요즘 화제라는 케이블채널의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의 노래 ‘픽미’의 가사다. “나를 뽑아줘. 오늘을 놓치지마. 내 마음을 알아줘….” 반복되는 가사와 멜로디가 중독성이 있다. 새누리당이 이 노래를 선거 로고송으로 채택한 것도 유권자에게 각인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오는 31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전국이 이 노래로 흘러넘칠지도 모르겠다. ‘픽미 픽미 픽미 업.’ 새누리당 후보들은 아이돌 지망생들처럼 노래할 것이다. 나를 뽑아줘, ‘픽미 업’.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픽미 픽미 픽미 업’. 그런데 ‘픽미’는 새누리당이 만든 ‘판타지’일 뿐이다. 지금 새누리당에선 ‘프로듀스 101’이 아닌 ‘막장’의 무대가 펼쳐지고 있다. ‘유승민 솎아내기’로 공천 막장극의 끝을 보는가 했더니, 당 대표가 공천안 의결을 거부하는 사상 초유의 ‘옥새 투쟁’까지 발생했다. 4·13 총선 후보자 등록 마지막 날까지 막장의 연속이다.

과연 막장의 끝은 어디일까. 이미 여당의 공천과정은 오로지 청와대에 밉보인 인사들을 찍어내기 위한 패권과 전횡, 비상식으로 점철됐다. 친박 핵심 윤상현 의원은 당 대표를 겨냥해 “죽여버려”라는 막말까지 해댔다. 압권은 ‘유승민 솎아내기’다. 당 공관위는 유 의원 낙천 결정을 후보 등록일까지 미루는 ‘꼼수’로 자진 탈당을 압박했다. 지난 50일간의 공천과정에서 집권여당이 민생과 여론에는 눈·귀를 막은 채 특정인 솎아내기에 총력을 쏟아붓는 비정상을 보여준 것이다. 오죽하면 김무성 대표가 “독재정권에서 하던 일”이라고 했을까.

적어도 <프로듀스 101>은 연습생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시청자는 이를 근거로 선택을 한다. 하지만 여당의 공천과정은 오직 청와대 눈 밖에 난 사람들은 쳐내고, ‘지당대신’(전하, 지당하옵니다)들을 내려꽂는 모습만을 보여줬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파동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실이 있다. 새누리당이라는 공당이 누구의,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당인지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부산 사하사랑채 노인복지관을 방문하고 나가면서 마중 나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이번 파동의 출발점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2008년 4월 총선 당시 친이계 주도의 공천 학살에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고 비판했던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달라”고 말해 거꾸로 ‘비박 공천 학살극’의 정점에 선 것이다. ‘박적박.’ 박 대통령의 적은 박 대통령이라는 항간의 우스갯소리다. 지금 여권 내홍은 이를 입증하는 모양새다.

박 대통령은 8년 전 “사당화, 즉 공천에 사심이 개입돼서는 안된다”고 하지 않았나. ‘유승민 솎아내기’에선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항명파동을 일으킨 공화당 ‘4인방’을 중앙정보부를 시켜 콧수염을 뽑는 등 초주검을 만들어 퇴출한 사건이 겹친다. 지역구와 비례대표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진박’ 내려꽂기를 두곤 ‘제2의 유정회’도 회자된다. 무엇보다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공공연하게 말해지고 있다.

‘픽미 업’, 나를 뽑아달라고?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그 마음은 뭘까.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이런 뜻 아닐까.

‘픽미 업, 선택권은 너에게 있는 게 아니야. 어차피 넌 날 찍을 거잖아. 실망한 사람은 기권할 것이고, 투표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날 찍을 거니까.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고 하지 않니.’

정말 그렇다면 오만도 이런 오만이 없다. 이런 오만을 그대로 둔 탓에 선거 후엔 항상 ‘국민만 속았다’로 귀결되는 것 아닐까. 이번 여당의 공천파동을 통해 유권자들은 정말 값진 정보를 얻었다. 지금은 ‘픽미’에 빠져들 때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독성으로는 뒤지지 않는 ‘백세인생’의 ‘사절(辭絶)’의 정신이다. “픽미 업, 나를 뽑아달라고 하거든 일없다고 전해라~”.


김진우 | 정치부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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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노동자 정당 심판.’ 노사정 합의가 파기되고 한 달 만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결정된 한국노총의 4월 총선 방침이다. 노동5법과 저성과자 해고 등 양대지침을 밀어붙인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이 상반기 투쟁계획의 핵심이 된 것이다.

그러나 대의원대회가 열린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 14일 ‘심판투쟁 대오’에서 이탈한 이들의 윤곽이 나오면서 한국노총은 충격에 빠졌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신청자 중에 현직 임원 3명(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김주익 수석부위원장·임이자 여성 담당 부위원장)이 포함돼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한국노총 지도부 일부가 총선을 앞두고 ‘여의도행 묻지마 티켓’을 끊는 고질병이 또 도진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노동계의 숙원사업 중 하나다. 이를 위해 노동운동 출신 인사의 여의도행은 되레 장려돼야 할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여의도행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담은 조직이 심판 대상으로 삼은 정당의 품에 안기려는 것은 더욱 그렇다.

19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대회의실에서 김동만 위원장이 노사정합의를 파기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_경향DB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정부·여당에 대한 협조와 공천을 교환하는 옛 관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4년 위원장 선거 당시 김동만 후보(현 위원장)가 임기 중 총선 불출마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이를 바꿔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 공약은 지난해 대의원대회 때 ‘위원장·상임임원은 국회의원 등 정당 소속의 선출직 공직을 담당할 수 없다’는 규약 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현직 임원들이 비례대표 신청을 강행하면서 제도적 견제 장치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

조직 내부에선 “임원 3명이 조합원을 팔아 금배지를 달려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비난만으로 바뀌는 건 없다. 원칙 없는 정치권 진출의 토양이 된 조직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21대 총선 때도 비슷한 일이 재연될 수밖에 없다.


김지환 | 정책사회부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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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인슈타인이 100년 전 예견한 중력파가 마침내 검출됐다. 세계과학계는 우주를 보는 새로운 창이 열렸다고 흥분하며 중력파 검출의 의미를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역불급이다. 절망에 빠진 필자는 어떤 책에서 위안이 되는 구절을 찾았다. 아인슈타인도 중력이론을 체계화하는 데 8년 넘게 걸렸으며, 그 이론을 이해한 과학자가 전 세계를 통틀어 12명도 안된다는 대목이었다. 무릎을 쳤다. 그래, 그렇게 고차원의 이론을 고작 원고지 몇 장으로 정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필자 같은 문외한의 눈높이에서 설명해보면 어떨까. 도전해보기로 했다. 팔자에 없는 관련 책들을 눈이 빠져라 읽고, 마침 <중력파> 책을 낸 오정근 박사의 도움도 받았다.

아인슈타인 중력이론의 요체는 질량을 가진 물체 때문에 시공간이 휘어지며, 그 시공간을 따라가는 빛도 휘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해를 돕기 위해 아이들이 콩콩 뛰며 노는 트램펄린을 연상해 보자(그림). 트램펄린(우주공간) 위에 쇠공(태양)을 놓는다 치자. 그러면 쇠공이 닿는 면은 움푹 들어갈 것이고, 닿는 면을 따라 곡선이 그려질 것이다. 이 곡면이 바로 아인슈타인이 설명하는 시간과 공간의 휘어짐이다. 이 시공간을 따라가는 빛도 휘어질 것이다. 만약 개미가 이 곡선면을 따라간다면 직선면보다 거리는 길어지고, 시간은 느려질 것이다. 또한 쇠공 가까이 어린아이가 서 있다고 치면 그 아이는 경사면을 따라 기울어질 것이다. 중력이란 뉴턴의 법칙대로 ‘힘과 힘의 작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쇠공이 만들어낸 ‘시공간의 휘어짐’ 때문에 생긴다는 것이다. 쇠공의 질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시간과 공간의 휘어짐 정도도 커질 것이다.

다시 트램펄린 위에 쇠공을 던진다고 치자. 그러면 주변으로 파문이 생길 것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예견한 중력파다. 만약 우주의 탄생(빅뱅)과, 별의 사멸 과정(블랙홀 충돌 및 합병·초신성 폭발·중성자별의 맥동) 등 격변이 일어나면 어찌 되는가. 엄청난 중력파 물결이 우주로 퍼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지구에 도달하는 중력파 크기가 극미했기 때문에 관찰하기 어려웠다. 이번에 감지된 중력파도 13억 광년 떨어진 블랙홀 충돌 때 발생한 것인데, 그 크기는 10의 21거듭제곱분의 1(10의 -21제곱)에 불과했다.



그러면 중력파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인류는 지금까지 빛, 전파, X선을 탐지하는 전자기파 천문학으로 우주를 관측했다. 하지만 전자기파는 물질을 통과하기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빅뱅 때 발생한 엄청난 에너지층은 빛과 같은 전자기파를 가둬버린다. 인류가 빅뱅으로 방출된 빛을 관측하는 데는 성공했다지만, 그것은 빅뱅 후 에너지가 식어버린 뒤인 38만년 후의 빛이었다. 인류는 빅뱅이 분출한 두꺼운 에너지층이 걷힌 뒤의 전자기파를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우주탄생 후 38만년 뒤의 빛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뿐인가. 빛까지도 빨려 들어가는 엄청난 중력이 작용하는 블랙홀의 전자기파도 물론 관측할 수 없다.

그러나 중력파는 우주나 별의 생성과 사멸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 우주로 퍼진다. 중력파는 전자기파와 달리 어떤 물질의 간섭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류는 이 중력파의 파형으로 다양한 우주현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소리로도 변환시킬 수 있다. 예컨대 중력파 망원경으로 빅뱅의 원시중력파를 찾아낸다면 어찌 되는가. 빅뱅~38만년 사이의 과정, 즉 우주탄생의 순간을 읽을 수 있다. 빅뱅뿐이 아니다. 중력파 망원경을 통하면 블랙홀 내부까지 관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중력파가 밥 먹여주는가. 오정근 박사는 “먹여줄 수 있다”고 한다. 전자기파는 지금의 통신혁명을 일으켰다. 중력파의 힘을 이해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인류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파통신이 도달하지 못하는 그 어떤 곳도 중력파 통신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또 하나, 수많은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이 내준 중력파 수수께끼에 100년을 매달렸다는 것과, 미국이 지난 1992년 정식으로 출범한 중력파 검출 프로젝트에 지금까지 1조원 넘게 투자했다는 것도 경이로운 일이다. 이 대목에서 빛이 휘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아서 에딩턴의 말이 심금을 울린다. “중력파는 생각의 속도로 퍼진다.” 그러고보니 아인슈타인도 늘 문제 해결을 위해 방안을 서성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잠시 생각해보자.”


이기환 논설위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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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한국 정치의 문제가 ‘약한 야당’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야당이 지리멸렬하지 않았다면 경제 위기로 서민의 삶이 무너져내리는데도 여당이 ‘진박타령’이나 하면서 총선을 맞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이 노동 4법과 선거구 획정을 패키지로 묶어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야당이 허약하지 않았다면 정부가 10억엔을 받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종결하기로 일본 정부와 합의하는 일은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난데없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역사학자 90%를 좌파로 몰고, 거짓말과 식언을 밥 먹듯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공영방송의 보도기능이 ‘폐허’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야당이 튼튼해 비판과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정부·여당이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면 정부가 국회와 아무런 협의 없이 군사작전하듯 개성공단을 끝장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개성공단 입주 기업 124곳, 협력업체 5000곳, 업체 종사자 12만4000명의 생존을 하루아침에 낭떠러지로 내모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이 타락한다는 건 불변의 진리다. 정부·여당이 나라를 이렇게 운영하고도 총선에서 170~180석, 많게는 개헌선인 200석까지 내다보는 것 자체가 국가적 불행이다. 여당이 비굴할 정도로 청와대에 고분고분한 것은 그렇게 해도, 혹은 그렇게 해야만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지금처럼 청와대 거수기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약한 야당’이 ‘약한 여당’을 만들고 그것이 국회의 행정부 견제기능 무력화로 이어진 것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그런 점에서 ‘강한 야당’, ‘대안 야당’은 야권 지지층의 요구에만 머물지 않는다. 정치의 기능부전을 치유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에 가깝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4주기 추도미사에서 대화하고 있다._연합뉴스

야권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극심한 혼돈을 겪었다. 문재인과 안철수라는 대권 주자의 주도권 다툼, 친노와 비노의 권력투쟁, 호남과 비호남의 갈등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바탕에는 ‘강한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저마다 들고나온 것이 혁신이요, ‘새정치’다.

그러나 진통 끝에 도달한 야권재편 결과가 궁극적으로 ‘강한 야당’을 만드는 쪽으로 수렴될지는 불분명하다. 무엇보다 혁신이니 ‘새정치’니 하는 말의 성찬이 권력투쟁의 구실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종인 체제’가 들어선 뒤 더불어민주당은 빠르게 안정을 찾았지만 김종인이라는 한시적인 ‘슈퍼 관리자’의 존재, 문재인의 사퇴, 비주류 탈당이라는 상황 요인과 더 이상의 자중지란은 공멸이라는 위기의식이 맞물린 결과일 뿐 당의 체질이 바뀌고 시스템이 안정됐다고 보기 어렵다.

국민의당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안철수가 내건 ‘새정치’는 여전히 실체가 모호하다. 메시지도, 행태도, 정책도, 인물도 새롭지 않다. 권력다툼, 계파안배와 같은 구태에 가까운 모습을 더 많이 보였다. 국민의당이 ‘새정치’라고 실천한 것은 국민의당을 만든 것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야당은 새누리당에 판판이 깨지면서도 아무런 절박감도 없이 만년 2등의 지위와 기득권에 안주해왔다. 경쟁은 관성과 무사안일에 젖은 야권 풍토를 깨는 강력한 자극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제 살 깎아먹는 이전투구식 야권 분열이 아니라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생산적 경쟁을 주도할 생각이라면 국민의당은 이제라도 ‘새정치’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줘야 한다. 뼈저리게 느꼈겠지만 ‘이승만 국부론’, 영혼 없는 정치공학적 중도주의, 기회주의적 양비론 따위는 사람들이 바라는 ‘새정치’와 거리가 멀다.


정제혁 |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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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영국의 노화연구자 톰 커크우드는 늙음이 숙명적인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 수명은 앞으로도 10년마다 2년씩 늘어나고, 언젠가는 인류가 노화를 멈추는 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죽음이 극복된 사회에 대해서도 상상한다. 이 사회의 주요 특징은 아이를 마음대로 낳지 못하고,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음이 극복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아이를 잘 낳으려 하지 않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게 제한이 가해진다. 자기 생명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생명을 이어줄 후손이 필요없고, 사망 없이 출생만 늘어나면 인구증가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나이나 세대에 대한 관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결혼이나 연애에서 수십, 수백년의 나이 차이는 조금도 문제되지 않는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의미없는 것이 되고, 파트너와의 관계가 수백년 동안 유지되는 경우도 없다.

현재의 인류사회는 죽음을 서서히 극복해가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의 평균수명은 80이 넘는다. 20년 후에는 거의 90에 달할 것이다. 수명이 늘어나는 것에 거의 반비례적으로 출산은 줄어들고 있다. 1970년경부터 2000년대 초까지 수명이 10년 증가할 때마다 출산율은 절반 정도씩 감소했다. 결혼 연령이 크게 늦추어졌고, 독신이 늘어났고, 이혼율도 크게 증가했다. 커크우드의 죽음이 극복된 사회의 특징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 남성.여성의 평균수명 추이_경향DB



죽음이 극복된 사회에서 볼 수 있듯이, 평균수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사회에서 이 추세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간다는 사람들은 추세를 바꾸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런저런 출산 장려책을 내놓고, 중국동포를 대거 받아들이자고 한다. 이에 대해 아이를 낳고 기르기가 너무 힘든 사회적 조건을 개선해야지 무슨 소리냐고 하는 비판도 핵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지난 10여년간 정부에서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꽤 많은 정책을 내놓고 시행했다. 그러나 출산율은 조금도 늘어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죽음이 서서히 극복되어가는 사회라는 인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출산율을 높여서 고령화사회의 노동가능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틀린 방안이다. 죽음이 극복된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청년이기 때문에 청년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유행하는 100세 시대, 50이 인생의 절반이라는 말은 50세가 청년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40대 말에서 50대 말까지의 인구는 20%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스스로 청년이라고 생각한다면, 20대 청년들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염려가 나오기 어렵다. 만일 출산율이 높아져서 청년이 늘어난다면, ‘나이 든 청년’과 ‘어린 청년’ 사이의 갈등만 커질 것이다.

출산율을 늘리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수십년 후 노동가능인구는 얼마 안되는데 노인은 크게 늘어나 있는 사회에서 발생할 혼란을 걱정한다. 여기서 전제하는 것은 노인은 일하지 않는 존재, 부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100세 시대, 50대 청년 이야기를 하는데, 이율배반적이다. 게다가 출산율이 높아지면 인구도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한 치 앞도 못 보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만일 출산율이 높아져서 수십년 후 5000만의 인구가 6000만이 되면, 그때야말로 큰 혼란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는 출산율을 높이거나 중국동포를 대거 받아들여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먼저 지금 인류사회에서 죽음이 서서히 극복되어가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보이게 될 것이다.


이필렬 | 방송대 문화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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