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비평/기자 칼럼, 기자메모'에 해당되는 글 179건

  1. 2016.09.22 ‘사드 효용성’ 검증보다 ‘안보 정략’…우왕좌왕 야당도 비겁하다
  2. 2016.09.08 “기사 나가면 실습 선원 더 힘들다” 선주업체의 엄포
  3. 2016.09.06 대통령에게 묻는다, 이럴 거면 인사청문회 왜 하자 했나
  4. 2016.07.22 사드 대안을 달라고?…대통령에 답한다 “외교다”
  5. 2016.07.19 [기자메모]외부 세력이라니…사드 배치가 성주만의 일인가
  6. 2016.07.06 ‘밑 빠진 독’에 물 부은 이유, 정부는 왜 설명 안 하나
  7. 2016.06.22 “금남로 군사 행진 몰랐다”…광주시장의 ‘유체이탈 화법’
  8. 2016.06.22 타당성 논란 빚은 도의원 성과금, 경기지사는 왜 침묵하나
  9. 2016.06.21 탈북 12인을 위험에 빠뜨린 건 정부
  10. 2016.06.10 부실 더 키운 ‘관치’ 그들의 ‘습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11. 2016.06.07 [김성호의 자연에 길을 묻다]알맞게 비가 내리는 날에는
  12. 2016.06.06 보수정권 9년의 적폐
  13. 2016.06.02 [기고]윤동주 하숙집을 시민들 품으로
  14. 2016.05.30 누가 ‘박 대통령이 외교는 잘한다’ 했나
  15. 2016.05.27 [정수복의 도시를 걷다]신림동 고시촌의 밤
  16. 2016.05.13 변화 없는 ‘새누리식당’
  17. 2016.05.01 박근혜 정부 ‘이중국적, 이중잣대’
  18. 2016.04.28 [배철현의 심연]관찰(觀察)
  19. 2016.04.27 [기자메모]박 대통령에게 세월호는…진상규명보다 ‘재정·인건비·세금’
  20. 2016.04.20 총선 끝나니 잠잠해진 ‘북풍’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야당들의 대응이 점입가경이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아직까지 찬반 당론을 정하지 못한 채 여론 눈치를 보고 있다. 일찌감치 반대 당론을 정했던 국민의당은 북한의 5차 핵실험 후 “중국이 대북제재에 동참하면 (사드 배치를) 유보할 수 있다”며 퇴로를 찾는 중이다.

안보 정국을 조성해 판을 주도하려는 여당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 하지만 사드 문제와 같은 국가안보의 중대 사안을 놓고 ‘북한이 5차 핵실험까지 한 마당에 사드까지 반대하기는 어렵다’는 식의 정치적 접근법은 비겁하다.

사드 배치 문제의 최우선적 고려 요소는 ‘무기로서의 효용성’이다. 북한 미사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이다. 효용성이 입증된다면 반대할 수도 없고, 반대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효용성을 입증할 수 없다면 당연히 반대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야당이 해야 할 일은 사드의 효용성을 철저히 검증해 찬반 결정의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사드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미국에서도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사드로 북한 미사일을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2013년 미 상원에 제출된 국방부 보고서에는 한국에서 사드의 효용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적시돼 있다. 미 국방부 미사일운용시험평가국장도 2015년 상원 진술서에서 사드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세상에 쓸모없는 무기는 없다. 뭐라도 있으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식으로는 안된다. 안보·외교·경제적으로 잃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국가안보가 걸린 수조원짜리 무기체계를 선전용 카탈로그만 보고 들여올 셈인가.

핵실험은 핵실험이고 사드는 사드다. 핵실험 했다고 사드의 성능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사드의 효용성은 제쳐두고 반대론자들을 종북·반미로 몰아세우는 정부·여당이나, 여론 눈치를 보며 정치적 유불리를 셈하기 바쁜 야당이나 이 문제를 국가안보가 아닌 정략적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정치권의 사드 논란을 지켜보고 있으면 북핵 문제가 왜 20년을 돌고 돌아 이 지경에까지 오게 됐는지 알 만하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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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습 선원들의 저임금 노동착취 실태를 고발한 ‘항해사·기관사 실습생들 월 30만원에 인권 사각’(경향신문 9월7일자 10면) 보도가 나간 뒤 기자의 e메일에는 “내 얘기인 줄 알았다” “알려지지 않은 더 큰 사건이 있다” 등 공감과 추가 제보가 쇄도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또 하나의 ‘열정페이’ 사건이라며 분노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공명(共鳴)했다.

그러나 정작 실습 선원들을 관리·감독하는 해양수산부의 반응은 황당했다. 지난 6일 오후 8시20분 인터넷 기사를 본 해수부 관계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다짜고짜 “어떻게 제보를 받은 거냐”고 캐물었다. 실태 파악보다 제보자 색출이 우선인 듯했다. 이 관계자는 앞서 4일 통화에서 “우리 딸은 실습비를 내고 교육을 받았다”면서 “ ‘노동’이 아니라 ‘교육’일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출처: 경향신문DB

선원을 양성하는 해사고·해양대와 이들을 채용하는 해운업계·선주협회 측 입장도 해수부와 똑같았다. 한술 더 떠 선주업계 관계자는 “처우를 문제 삼는 기사가 나가면 실습 선원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 실습생들만 더 힘들어질 뿐”이라고 엄포를 놨다. 기사에 등장하는 각종 심부름과 가혹행위 사례를 두고 ‘다 옛날 얘기’라고 치부하는 반응도 있었다. 이에 기자가 “그렇다면 실습 선원 처우에 관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달라”고 따져묻자 돌연 입을 굳게 닫았다.

일부에서는 “실습기간에 적은 돈을 받더라도 이때만 버티면 정식으로 선원이 돼 4000만~5000만원 상당의 고액 연봉을 받지 않느냐”는 반론도 제기한다. 하지만 실습 선원들은 “유럽에서 배를 타는 친구들은 우리처럼 대우가 열악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또 “호텔관광과 학생들이나 간호사들도 실습 선원 못지않게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한다”는 다른 직역의 유사 제보도 있었다. 정규직 채용 전 수습기간에는 어떤 부조리라도 눈 딱 감고 인내해야 한다는 통념이 한국에서만 유효하다는 게 재차 확인된 것이다.

교육부는 사회 각 부문에서 청년들을 상대로 한 ‘열정페이’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3월 ‘대학생 현장실습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이 운영규정은 “실습은 원칙적으로 주당 40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고, 실습 과정이 실질적 근로에 해당하면 법정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실습 선원들은 교육부 고시나 근로기준법이 아닌 선원법 적용 대상이어서 교육부 발표 이후에도 아무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해수부는 올해 초부터 ‘참선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해양원격진료 확대와 선원퇴직연금제도 도입 등 근무여건을 개선해 부족한 인력공급을 원활하게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취재 과정에서 만난 예비 기관사·항해사들에게 이 프로젝트의 존재를 물었으나 “알고 있다”고 답변한 사례는 단 1건도 없었다.

사회부 김원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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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이 영어로 ‘opposition party’로서 ‘반대하는 당’이다. 우리가 반대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느냐. 한마디로 국민을 싹 무시한 개각이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이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2006년 1월 노무현 정부 개각을 비판하며 한 얘기다. 박 대표는 2005년 4월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을 확대하고 청문회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의 공언대로 석 달 뒤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법 개정을 관철시켰다. 장관 후보자도 인사청문회 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두번째줄 왼쪽)과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오른쪽)이 5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박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며 한 얘기를 글자 그대로 옮겨 지금 상황에 대입하면 박 대통령 자신을 겨누는 격한 논고(論告)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데, 고위공직자 인사 문제에 관한 것이 특히 그렇다.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 최문기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정종섭·강병규 전 안전행정부 장관,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박근혜 정부가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임명을 강행한 전직 장관들이다.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정치적 편향, 자질 부족  등으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무산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최근 이 리스트에 세 명을 추가했다. 음주운전 교통사고를 내고도 신분을 속인 이철성 경찰청장, ‘황제 전세’ ‘황제 대출’ 의혹이 제기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거액의 재산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김·조 장관의 경우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 순방 중 전자결재로 임명안을 재가했다.

현행법상 국무총리·대법관·헌법재판관·감사원장과 달리 장관은 국회 임명동의 대상이 아니다.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해당 상임위가 ‘적격·부적격’ 의견을 채택해 대통령에게 전달하도록 돼 있다. 이 제도의 취지는 국회 의견을 무시하고 대통령 마음대로 장관을 임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 인사권을 존중하되 대통령은 국회 의견을 고려해 임명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의 소통, 대통령의 민심 청취 의무를 전제로 설계된 제도인 셈이다. 야당과 여론에 대한 대통령의 정치적 반응도가 낮으면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지금 이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따위 인사청문회를 왜 하느냐”고 한다. 비단 제도의 무용성만 탓하는 말이 아니다. 여론에 귀 막고 막무가내로 임명한 장관의 권위 따위는 인정할 수 없다는 내심의 거부 선언이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5일 야당의 대통령 발목 잡기를 비난했지만 현 정부 권위를 밑동부터 흔드는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다.

정치부 | 정제혁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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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21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한 반발을 겨냥해 “사드 외에 북한 미사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부디 제시해보라”고 했다. 대통령의 말은 순서가 틀렸다. 사드 배치를 결정하기 전에 먼저 이렇게 물어보았으면 ‘소통하는 대통령’이라는 평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밀실에서 다 결정하고 도장까지 ‘쾅쾅’ 찍은 뒤 이렇게 말하면 그저 호통이 되고 만다.

경북 성주군민 2000여명이 21일 서울역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준헌 기자

박 대통령은 사드 말고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느냐고 호통치기에 앞서 국민 보호를 위해 들여오는 사드가 왜 국가 주요 기관과 전체 인구의 절반이 모여 있는 수도권을 방어하지 못하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사드는 미군시설 지역에 배치하고 수도권에는 기존 패트리엇 미사일을 보강해 방어한다는 국방장관의 계획이 사실이라면 사드가 국민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은 애초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사드와 같은 미사일방어(MD) 체계는 기본적으로 적으로부터 공격받았을 때 반격하는 시스템으로, 자국의 군사적 자산 보호가 우선이다. 선제공격을 하면 다 같이 죽게 된다는 ‘상호확증파괴’ 논리에서 출발해 상대 공격력을 무력화시키고 전략적 우위를 점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 MD다.

만약 북한이 공격을 해온다면 군사적 관점에서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할 대상은 반격에 필요한 군 시설과 장비다. 미군이 사드를 수도권이 아닌 군 시설, 그중에서도 핵심적 전력인 미 군사기지를 보호할 수 있는 곳에 배치하려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미국 요구에 따라 사드를 들여오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

사드는 군사적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은 미완성 무기체계다. 북한이 사드를 피해 남측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너무 많고 다양하다. 이 때문에 사드가 북한의 도발을 막아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도발을 계획했다가 자제한다면 그것은 사드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미가 사드를 사용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미 전면전이 벌어진 상태임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명과 재산 피해는 발생한 뒤다. 결국 ‘사드 배치→북한 미사일 공격 차단→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논리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 방법’만큼 허망하다.

사드로 전쟁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국민 보호는 사드가 아니라 ‘외교와 전략’으로 하는 것이다. 정말 국민 안전이 목적이라면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국제 공조를 통해 평화유지 메커니즘을 만들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동결·폐기시키기 위한 외교적·전략적 노력을 기울이는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길을 차분히 한발씩 걷는 방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 평화를 유지하고 국민 안전을 도모하는 일이 사드 배치와 같은 단순한 조치로 이룰 수 있다면 한반도 문제가 왜 이 지경까지 왔겠는가.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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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경북 성주 배치에 반대하는 목소리에 ‘외부세력’이 개입했다는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외부세력이 폭력시위를 유도했다고 주장하고 보수층 인사들은 외부의 종북세력이 선동한 결과라고 맞장구친다. 사법당국은 기다렸다는 듯 수사에 착수했다.

18일 태평양 괌 미국기지에서 한국의 국방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이 사드포대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경북 성주지역으로 사드 배치지역이 결정된 후 제기되는 논란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괌 사드 포대 운용 실태와 레이더 전자파 인체 위해성 여부, 발전기 소음, 환경피해 등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이들이 말하는 외부세력은 성주에 거주하지 않거나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표현에는 사드 배치 문제가 ‘오롯이 4만5000명의 성주 군민들과 정부 간의 일’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드 배치를 ‘일개 포대중대 배치 문제’로 치부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단순하고 저급한 인식이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을 깨고 군비경쟁을 촉발해 역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물론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요원하게 만드는 사안이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한, 대한민국 국민 중 외부세력이라고 구분해 제외시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8일 태평양 괌 기지에 배치된 사드 포대에서 미군이 한국 취재진에게 관련 설명을 하고 있다. 이날 한국 국방부 관계자들과 취재진은 경북 성주지역으로 사드 배치지역이 결정된 후 제기되는 논란을 객관적으로확인하기 위해 괌 사드 포대 운용 실태와 레이더 전자파 인체 위해성 여부, 발전기 소음, 환경피해 등을 확인했다. 연합뉴스

외부세력을 찾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성주 군민들이 사드를 받아들이면 다른 지역 국민들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면 안된다는 말인가. 만약 성주가 끝내 반대해 다른 지역을 찾아야 한다면 그때는 성주 군민들이 외부세력이 되는가.

‘외부세력론’은 사드 배치 문제를 성주 군민과 정부 간의 사안으로 국한시키고 이들을 보상으로 회유하든 종북세력으로 몰아 겁박하든 입만 다물게 하면 된다는 불순한 의도를 담고 있다. 

굳이 외부세력을 색출하고 싶다면 멀리 갈 것도 없다.

북한 핵미사일과 관련이 없는 전략자산을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한반도에 배치하고 이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외교적·경제적·국내적 혼란을 감수하라고 팔을 비틀고 있는 미국이 바로 가장 심각한 외부세력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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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지난해 10월29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4조2000억원 지원방안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한 기자가 질문했다. “불황이 예상되는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당시 산업은행의 정용석 기업구조조정본부장은 “현시점에 이 회사를 정상화시키지 않을 경우 발생할 채권단과 국가경제의 손실을 비교해서 어느 것이 더 합리적인가 판단했다고 이해해달라”고 비켜갔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6월10일 . 경향신문DB

발표 일주일 전인 10월22일 안종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경환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홍기택 당시 산업은행 회장 등이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을 확정했다. 문제의 ‘서별관회의’다.

지난 4일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공개한 당시 서별관회의 문건에는 공교롭게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문건은 대우조선에 대해 ‘국책금융기관 주도 및 채권은행 협조에 의한 정상화’가 가장 적절한 방안이라고 제시하면서도 “조선산업의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추가 자금 지원도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비판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대우조선에 대한 대규모 지원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국책은행 자금은 사실상 공적자금인 만큼 4조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쓸 때는 촘촘한 근거가 제시돼야 한다. 하지만 문건에는 세 가지 방안과 방안별 장단점이 추상적으로 나열돼 있을 뿐이다. 서별관회의는 “국가경제 및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국내 조선업 경쟁력 유지, 대우조선의 대외신인도 유지 필요성, 자율협약·워크아웃 시 채권은행의 이탈 가능성 등 다양한 측면의 손익과 리스크 감안…” 등을 근거로 4조2000억원 지원을 결정했다.

정부의 행태는 지금도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대우조선의 부실 규모를 명확하게 파악해 공개한 뒤 회생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이 순서였다. 회생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 뒤 자금 지원방안을 마련해도 늦지 않았다. 하지만 서별관회의는 부실 규모가 채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서둘러 결론을 내렸다. 그것도 향후 업황을 낙관적으로 판단한 채 내린 결론이다.

정부는 지난달 8일 대우조선으로부터 자회사 매각 등으로 3조5000억원을 마련하는 내용의 추가 자구안을 제출받았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마련한 정상화 계획이 엇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가 올해 말까지 420%로 떨어뜨리겠다는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올해 1분기 6600%대다. 당국 스스로 우려하던 ‘신규 지원자금의 부실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세간에선 “정권이 바뀐 뒤에 또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지난해 10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결정을 왜 서둘러 내려야 했는지 설명을 해야 한다.

송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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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주 호국보훈 퍼레이드는 광주시도 동의해 공동 주관하기로 했고, 2013년 11공수여단이 참여한 군 퍼레이드에는 시가 예산까지 지원했는데 알고 계십니까?”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돼 시민들을 학살했던 11공수특전여단의 광주 금남로 시가행진을 계획했던 국가보훈처는 지난 20일 비판 여론이 들끓자 “광주시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같이 항변했다. 지난 2개월여 동안 6·25 행사를 협의하면서 11공수여단 등도 참여하는 퍼레이드가 주요 행사임을 광주시에 충분히 설명했다는 주장이다.

광주시는 지난 4월12일 광주지방보훈청의 협조공문을 받았다. 광주보훈청은 “광주 호국보훈 퍼레이드 공동 주관 개최에 협조해 달라”며 군인과 참전유공자 등 2000여명이 금남로를 행진하려 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첨부된 계획서에는 담양에 주둔하고 있는 11공수여단과 31사단 군인들의 행진 순서 등도 적혀 있었다.


윤장현 광주시장이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을 찾아 생산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_광주시 제공



같은 달 28일 열린 회의에서도 11공수여단과 31사단 관계자가 참여했다. 당시 광주시는 군인들의 시가행진과 실내에서 열리는 6·25 기념식의 순서를 바꾸는 것을 빼고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특히 보훈청·31사단과 함께 공동 주관 기관에 이름까지 올리기도 했다. 이보다 앞서 광주시는 2013년 7월에 개최된 ‘광주·전남 호국문화행사’에는 300만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6·25전승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행사는 31사단과 보훈청이 주관했다. 당시 11공수여단과 31사단 군인들이 금남로를 행진했다.

하지만 윤장현 광주시장은 21일 간부회의에서 “이번 행사를 진행한 보훈처의 비상식적이고 비정상적인 사고에 분노한다”고만 했다.

또 올해 행사 협의는 알지 못했다면서 부하 공무원들 탓으로 돌렸다. 윤 시장의 ‘유체이탈’ 화법은 비겁한 책임회피와 다를 바 없다.




전국사회부 | 강현석 기자 kaja@ kyunghyang.com



전국사회부 | 강현석 기자 kaja@ kyunghyang.com

Read more: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6212220025&code=990105#csidx1bfbc9c539d1e6db7bd7c0e6a83cce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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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시·도의회의장협의회는 22일 대전에서 2016년 제5차 임시회를 개최한다. 전국 시·도의회의장이 정기적으로 모여 현안을 논의하고 모범적인 의정 활동을 한 의장에게는 조촐한 시상을 하기도 한다. 이날 임시회에서는 최근 주목받는 의견 한 건이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의장이 의견을 내 다음 모임에서 공식 안건으로 채택할지 여부를 논의할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 예비 안건은 지방의원들이 지방재정 확충에 성과를 나타내면 피감기관인 집행부의 평가를 거쳐 일종의 포상금 성격으로 예산성과금을 받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다. 새누리당 남경필 경기지사는 지난 3일 경기도북부청사에서 열린 월례조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도의원 2명에게 예산성과금으로 각 2000만원을 지급했다. 1998년 예산성과금제가 도입된 이후 지방의원이 이를 받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예산성과금은 예산절감과 세수증대에 기여한 공무원과 민간인에게 주는 일종의 포상금이다. 물론 지방의원들도 선출직 공무원 자격으로 의정활동을 통해 예산절감과 세수증대에 기여했다면 대상은 될 수 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그러나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 기능이 주업무인 지방의원이 피감기관으로부터 역평가를 받아 예산성과금을 받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어디까지가 지급 대상인지 기준도 모호하다. 기본 책무를 잘했다고 포상금을 지급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비판의 대상이다. 더 큰 문제는 집행부가 당근책으로 예산성과금제를 활용하면 의원들의 의정활동 제약 및 의회기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물론 지방의원들이 적극적으로 의정활동을 펼치는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없지는 않다. 경기도가 이 제도가 있는지도 모르고 있던 도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포상 신청을 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민들은 순수성을 의심하고 있다.

전국 자치단체의 이슈가 되고 있지만 정작 포상금을 도의원들에게 전국에서 처음으로 직접 준 남경필 지사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설명이 아직 없다.



전국사회부 | 경태영 kyeong@ kyunghyang.com

전국사회부 | 경태영 kyeong@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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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입국한 중국 북한식당 종업원들 중국 닝보의 북한 식당에서 근무하다 집단탈출한 종업원들이 4월7일 한국에 들어온 뒤 경기 시흥시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이동하고 있다._통일부 제공


중국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다 집단탈출해 지난 4월7일 한국에 입국한 북한식당 종업원들에게 다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여성 종업원 12명이 정부 발표대로 자발적 탈북인지 확인하게 해달라며 제출한 ‘인신보호구제심사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여 이들을 21일 법정에 출석시키라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대 총선을 불과 닷새 앞둔 4월8일 공식 브리핑을 갖고 이들의 입국 사실을 알렸다.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이들이 보호시설로 이동하는 사진과 이들이 진술했다는 탈북 이유 등도 상세하게 전달했다. 여러모로 이례적이었다. 올 들어 매달 탈북자가 평균 100여명 입국하지만 정부는 일절 공표하지 않았다. 북한 내 탈북자 가족의 신변 안전, 비슷한 경로로 탈북을 준비하는 다른 북한 주민들의 안전 등의 이유를 들었다.

북한식당 종업원들의 집단탈출은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뉴스거리였다. 북한의 1월 제4차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이들의 이탈에 영향을 미쳤으며, 북한의 해외식당 종업원은 북한 사회에서 중산층에 해당한다는 ‘해설’을 내놓으며 이들에게 쏠리는 관심을 즐겼다.

정부가 설명한 대로 북한에서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집안의 젊은이들이 단체로 전광석화처럼 신속하게 탈출을 감행한 경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그들은 자유의사에 의해 입국했다”고만 밝힐 뿐이었다. 정부는 20대 총선이 지나자 침묵 모드로 돌아섰다.

민변이 신청한 접견요청을 거부해오던 정부는 이들을 법정에 출석시켜 자유의사로 탈출한 것인지 답하도록 하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여론을 유포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가족들을 앞세워 이들이 남한 당국에 납치됐다고 주장하는 마당에 이들이 자유의사로 한국행을 택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 가족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북한 내 가족 안전을 걱정해 “납치된 것이 맞다”고 진술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정부의 우려를 수긍한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을 만든 1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이들의 탈출을 ‘대탈주’라도 되는 양 대대적으로 홍보함으로써 관심을 최고조로 상승시켰다. 4·13 총선을 앞두고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들의 집단 이탈을 대북압박 성과로 내세우려는 의도에서였다. 북한이 이들의 가족을 앞세워 ‘납치극’이라는 선전전으로 대응하는 것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결국 정부가 잘못 끼우기 시작한 단추가 북한 내 가족의 신변 안전을 이들 북한식당 종업원의 ‘양심’에 떠넘기는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정치부 | 김재중 hermes@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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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하는 곳이라던 청와대 서별관회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결정한 밀실 회의였다. 산업은행이 관리하는 부실기업과 자회사에 청와대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이 사이좋게 낙하산 자리를 나눠 가졌다. 청산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되는 기업에 국책은행이 무조건 돈을 대라는 압력을 가했다. 정부는 부행장급 인사 등 시시콜콜한 사안까지 관여하면서도 증거가 남지 않는 구두지시를 남발했다. 이를 따르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위협이 횡행했다. 관료와 금융기관 간에는 ‘까라면 까는’ 군대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8일 보도한 홍기택 전 KDB금융그룹 회장 겸 산업은행장의 발언들을 통해 밝혀진 일면들이다.

홍 전 회장의 ‘의도하지 않은 발언들’의 불똥은 청와대와 금융당국을 넘어 여의도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해 서별관회의의 주인공이었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지며 청문회까지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보도 이후 당사자들은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다”(책임 떠넘기기),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변명과 부인), “언급할 가치가 없다”(‘모르쇠’ 전략)로 일관하고 있다. 이 또한 전형적인 관치의 모습들이다. 서별관회의를 통해 3조원 가까운 혈세가 들어간 상황에서도 정부는 또다시 한국은행에 손을 벌리는 편법으로 ‘국민 돈’ 12조원을 마련했다. 치킨집 주인, 비정규직 노동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등 대한민국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조성한 천문학적 규모의 돈은 부실 대기업을 살리는 데 들어간다.


홍기택 KDB산업은행장_경향DB



그렇지만 ‘혈세가 혈세를 부르는’ 현 구조조정 국면의 원인은 무엇이고,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시원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다. 유일호 부총리는 “구조조정에 정치 논리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구조조정 과정에 정치는 무관하며 앞으로도 그렇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관치는 없었다는 주장과 다름없다.

임종룡 위원장은 “대우조선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협의했고 충분히 의견을 존중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관료에 비하면 절대적 을(乙)에 불과한 산은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했는지 구체적인 증거는 없다. 저간의 사정으로 보면 “정책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는 홍 전 회장의 말에 무게중심이 쏠린다. 정부 지분이 없는 시중은행과 제2금융회사까지 무소불위의 인사권을 행사하는 당국에 산업은행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도 알 수 없다.

최경환 전 부총리의 한 측근은 “산은이 들고온 ‘대우조선 자구안’이 강도가 약해 반려시킨 게 당시 최 부총리”라고 전했다. 그러나 ‘진박 감별사’로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 지원유세 당시 최 전 부총리가 “경제부총리는 그만두었지만 제가 친한 공무원이 수두룩하다. 제가 전관예우를 발휘해서 확실한 예산을 보내주겠다”고 말한 것을 감안하면 그리 신뢰가 가지 않는다.

지금까지 정부는 부실기업 문제가 불거지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이를 은폐하기에 급급했고, 그 결과 부실은 더 커지고 구조조정을 지연시켜왔다. 이 같은 적폐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대우조선 관치의 실상은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



산업부 | 박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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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소박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합니다. ‘소박하다’는 것은 꾸밈이 없고 까다롭지 않음을 일컫습니다. 꾸밈이 없으니 거짓이 있을 수 없고, 까다롭지 않으니 무던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거짓 없이 무던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루에도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겉과 속을 이리저리 꾸미기에 바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누가 더 서로에게 까다로울 수 있느냐를 두고 경쟁이라도 하듯 살아가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소박하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삶은 내가 나의 참된 주인이 되어 당당하고 떳떳하게 사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더러는 그냥저냥 살아가기도 합니다. 가끔은 내가 아닌 남에 의해 내가 살아질 때마저 있습니다. 이래저래 삶이 버거워 소박하게 살지 못할 때, 소박한 삶에 대한 동경심은 더 꿈틀거리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샘솟으면 하던 일을 잠시라도 멈추고 자연으로 향합니다. 거짓이 없고 무던한 모습의 중심에 자연이 있으며, 그 소박한 삶의 꼴을 고스란히 닮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라면, 더군다나 알맞게 비가 내려주는 날이라면 더욱 좋습니다.

알맞게 내리는 비를 가장 먼저 반기며 좋아하는 것은 메말랐던 흙입니다. 마를 대로 말라 서로 붙잡고 있을 힘마저 잃어 먼지로 흩날리는 흙에게 비는 그야말로 단물이지요. 그런데 가랑비는 마른 땅이 젖어들기에 부족합니다. 폭우는 흙과 한몸으로 어우러지지 못하고 스쳐 흘러가고 맙니다. 알맞은 굵기로 떨어지는 비는 흙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일 수가 있습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비를 천천히 음미하듯 빨아들이며 흙은 표정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빠짝 말라 희끗희끗하게 들뜬 빛깔로 있다 비를 만나 짙은 갈색으로 낯빛을 바꾸고, 마침내 생기마저 술렁거리는 흙의 모습을 보는 것으로도 마음이 한결 차분해집니다. 알맞게 비가 올 때 흙과 더불어 신명이 나는 것은 흙에 생명을 기대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들이겠으나, 그 중에서도 도드라지게 표가 나는 것은 들풀과 나무입니다. 비를 만난 들풀과 나무는 같은 녹색이어도 더욱 더 진한 녹색으로 그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먹구름이 드리워져 어두움이 슬쩍 내려 있더라도 들풀과 나무 주변은 오히려 더 밝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게다가 힘없이 처진 잎사귀가 몸을 바로 세우는 데에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이른 더위가 너무 달린다 싶더니 결국 비가 오십니다. 비를 좋아합니다. 비는 물이며, 물을 좋아하는 천성에다 물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직업도 보태졌을 것입니다. 생명체의 70~90%를 차지하는 것은 물입니다. 생명체가 아득한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 자신을 채울 가장 많은 물질로 선택한 것이 바로 물인 것이지요. 생명체에게 물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 수 없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물이 없는 생명, 물이 없는 세상은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비를 만나 더없이 싱그러운 풀잎 위에 붉은 빛깔의 실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비를 좋아하니 자연히 빗소리도 좋아합니다. 비는 굵기에 따라 내리는 소리가 다릅니다. 같은 굵기라도 어디에 닿느냐, 곧 누가 맞이하느냐에 따라 소리는 변합니다. 메마른 땅에 닿을 때와 젖은 땅에 닿을 때가 다릅니다. 흙이 비를 맞이하는 소리와 나뭇잎이 맞이하는 소리가 다르며, 잎도 어느 잎이냐에 따라 소리는 또 달라집니다. 소나기가 커다란 방석처럼 드넓은 가시연꽃 위로 격렬하게 북을 두드리듯 떨어지는 소리는 압권이지요. 비가 물에 닿는 소리도 특별합니다. 같은 물이라도 고여 있는 물과 흐르는 물 어디에 닿느냐에 따라 소리는 사뭇 다르고요.

오는 듯 마는 듯 그러다 멈추는 가랑비도 아니고, 하늘이 열린 듯 한없이 쏟아붓는 폭우도 아니고, 꼭 알맞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하던 일이 급하게 시간을 다투는 것이 아니기에 그대로 펼쳐두고 밖으로 나섭니다. 산으로 갈 수 있고, 들녘으로 들어설 수 있으며, 강으로 향할 수도 있습니다. 연구실 문을 열고 나서 계단 몇 개 내려선 다음 몇 발짝 걸으면 바로 산으로 이어집니다. 산으로 들어서지 않고 모퉁이를 돌아 조금만 더 걸으면 넉넉한 들녘이 펼쳐집니다. 서서히 비에 젖어드는 산과 들녘에 꾸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차에 올라 잠시 움직이면 섬진강에도 이르게 됩니다. 언제나 그렇게 주어진 결대로 흐르는 섬진강에 꾸밈과 까다로움 또한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은 섬진강으로 향합니다. 우산은 가져오지도 않았지만, 비를 그냥 맞기로 합니다. 강둑에 내려서서 강 가장자리를 따라 거닙니다. 비를 만나 적당히 폭신폭신해진 강가의 흙을 밟는 느낌이 정말 좋습니다. 그러다 뭔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춥니다. 비를 만나 더없이 싱그러운 풀잎 위에 붉은 빛깔의 실잠자리 하나가 앉아 있는 모습입니다. 비, 흙, 풀잎, 실잠자리 그것만으로도 자연은 이미 소박함의 완성인 듯합니다.

알맞게 비가 오는 날에는 잠시라도 밖으로 나가 자연과 벗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산도 멀고, 들도 멀며, 섬진강은 더 멀리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디라도 흙과 들풀이 가까이 있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혹 실잠자리 하나의 자리가 비어 있을 수는 있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습니다. 자연, 생각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마음이 자연에서 멀 뿐입니다. 그래서 소박한 삶이 우리에게 멀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성호 | 서남대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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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정비하다 사망한 김모씨(19)의 어머니는 기자회견에서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아이를 기르면서 책임감이 강하고 떳떳하고 반듯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둘째 아이에게는 절대 그렇게 가르치며 키우지 않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책임감이 강하고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에게 개죽음만 남을 뿐입니다. 첫째(아이)를 그렇게 키운 것이 미칠 듯이 후회됩니다.”

그 어머니가 말하는 김씨 모습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 말을 믿고 따랐다가 차가운 바다에 수장된 세월호 아이들과 겹친다. 그들은 나이도 같다. 세월호 아이들이 살아 있다면 김씨처럼 사회 초년병이거나 대학 새내기일 것이다. 둘 다 착한 것, 성실한 것, 어른들 말을 믿고 따른 것이 죄라면 죄였다. 정직한 것, 반칙하지 않는 것이 패가망신 이유가 되고 죽음의 원인이 되는 사회는 내면 깊숙이 병든 사회다. 사회 규범이 무너지고 신뢰가 붕괴된 자리에선 거짓과 술수와 협잡이 ‘끼리끼리’ ‘짜웅’ ‘짬짜미’ 같은 말을 거느리고 독버섯처럼 자란다.

유명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는 석연치 않은 변론으로 수백억원을 벌었다. 그 돈으로 백 수십채의 오피스텔을 사들여 집장사를 하고 탈세했다. 거악을 징치한다는 특수통 검사의 노하우와 인맥을 범죄행위에 활용했다. 홍 변호사는 억울할 것이다. 그는 시쳇말로 재수 없게 걸린 케이스다. 최유정 변호사와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 대표 간 진흙탕 싸움이 없었다면 그가 검찰 수사를 받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명망 있는 법조인이요, 능력 있는 변호사로 남아 음으로 양으로 돈을 긁어모았을 것이다. 그렇게 모은 돈과 명망을 밑천 삼아 장차 국회의원, 장관, 총리가 될 수도 있었겠다. 어쩌면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청년들에게 정직하게 땀 흘려 노력하라고 훈계할 수도 있었을 게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전관예우, 논문표절 따위가 소위 사회지도층이라는 고위 공직자의 기본 스펙이 된 지 오래다. 위선과 기만, 후안무치와 이중잣대. 이것이 우리 사회의 정신적 풍경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에 연루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탈세와 변호사법 혐의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_경향DB


‘반칙을 해서라도 남을 짓밟고 올라서면 된다’는 천민 신자유주의적 삶의 태도를 선도한 건 정부·여당이다. 민주주의는 절차와 과정의 정의를 중시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 국가정보원은 현 집권세력을 위해 불법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같은 시기 새누리당 실세들은 불법으로 유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침소봉대하며 색깔론을 펴 톡톡히 재미를 봤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반칙을 일삼았다.

그래놓고도 이 사람들은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명백하게 드러난 불법행위를 제대로 사과한 적도 없다. 법의 단죄를 받지도 않았다. 공안검찰은 2급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불법으로 유출해 선거에 활용토록 한 새누리당 정문헌 전 의원을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하는 데 그쳤다. 국가기밀을 불법으로 빼내 선거에 악용해도 벌금 500만원만 물면 된다는 것이 검찰에서 선거사범을 전담하는 공안검찰의 판단이다. ‘비용 대비 효과’를 생각하면 불법을 저지르라고 검찰이 권장한 셈이다. 정부가 앞장서 국가의 기강을 무너뜨린 것이다. 공익은 집권세력의 사익에 압도됐다. 그런 정부를 시민들이 신뢰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보수정권 9년을 거치면서 사회는 한층 천박하고 비열해졌다. 염치를 잃은 사람들은 오늘도 ‘완장질’을 하며 피해자를 가해자로,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킨다. 공동체는 붕괴됐고, 사회는 더 위험해졌다. 경제 사정은 나빠졌고, 일자리는 줄었으며, 남북관계는 악화됐다. 민주주의는 후퇴했고, 언론자유는 퇴보했다. 청년들은 미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지난 9년간 무엇 하나 좋아진 것이 없다. 사회는 폐허가 됐다. 그 폐허에서 정직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오늘도 죽어가고 있다.



정제혁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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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운동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의 안내책자에 실린 윤동주의 생애는 “1917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촌 출생”으로 시작해서 “1945년 2월16일 오전 3시36분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북간도 용정 동산의 중앙교회 묘지에 윤동주 유해 안장”이라는 구절로 끝난다.

이 약력을 읽으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된다. 온 국민이 사랑하는 민족시인 윤동주가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세상을 떠나고 다시 중국 고향 땅에 묻혔다면, 윤동주에게 서울은 무엇이었을까?

1938년 서울에 처음 올라와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여름방학에 용정으로 돌아와 광명중학 학생이던 후배 장덕순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만주 땅에서는 볼 수 없는 무궁화가 캠퍼스에 만발했고, 도처에 우리 국기의 상징인 태극 마크가 새겨져 있고, 일본말을 쓰지 않고, 강의도 우리말로 하는 조선문학도 있다.”

윤동주의 시를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설명이 북간도 명동촌에서 민족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다니던 시절의 명동소학교는 외삼촌 김약연 목사가 교장으로 있던 시기의 민족교육 학교가 아니라 인민학교였으며, 1915년에 발표된 중국 정부의 교육법에 따라 중국어와 일본어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쳤다. 그나마 6학년 때에는 중국인 소학교에 편입해 공부했으므로 중국어로 배우고 생활하게 되었다.

광명학원 중학부에서 일본어 교육을 받을 때 지은 시는 띄어쓰기도 되지 않은 국한문혼용체였는데, 윤동주가 서울에 와서 가장 먼저 지은 시 ‘새로운 길’은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건너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처럼 한글 전용이 되었다.

시내에 들어갔다 학교로 돌아오는 날에는 창천 내를 건너서 연희 숲을 지나 기숙사로 돌아왔는데, 이 구절은 최현배 선생에게서 조선어를 배우며 아름다운 모국어로 시를 짓게 된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 것이기도 하다.

시인 윤동주_경향DB


졸업반 시절에 태평양전쟁 여파로 기숙사 음식이 시원치 않게 되자 윤동주는 후배 정병욱과 함께 기숙사를 나와 하숙집을 찾았는데, 정병욱은 하숙집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해(1941년) 5월 그믐께, 옥인동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우연히, 전신주에 붙어 있는 하숙집 광고 쪽지를 보았다. 그것을 보고 찾아간 집은 문패에 ‘김송(金松)’이라고 적혀 있었다. 설마 하고 문을 두드려보았더니 과연 나타난 주인은 바로 소설가 김송, 그분이었다.”

윤동주보다 8세 위였던 김송은 함경도 출신으로 대표적인 항일작가였다. 일본 유학 시절의 감옥 체험을 다룬 데뷔작 <지옥>을 신흥극장 창단 작품으로 공연하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중단당했으며, 일본 경찰에게는 요시찰 인물이었다. 누상동 9번지 하숙집에 살던 시절 윤동주의 동선은 글자 그대로 서울 산책이다.

“아침 식사 전에는 누상동 뒷산인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을 할 수 있었다. 하학 후에는 충무로 책방들을 순방하였다. 음악다방에 들러 음악을 즐기면서 우선 새로 산 책을 들춰보기도 했다. 오는 길에 명치좌(明治座)에 재미있는 프로가 있으면 영화를 보기도 했다.” 윤동주가 기숙사에서 나와 누상동에 하숙집을 잡은 이유는 서울 문화산책을 하기 위해서였던 셈이다.

하숙집에서는 조 여사가 저녁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렸으며, 식사가 끝나면 김송이 대청마루로 불러들여 한 시간 남짓 문학과 세상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김송이 요시찰 인물이라 고등계 형사가 거의 저녁마다 찾아와 윤동주의 책꽂이에서 책 제목을 적어 가고, 고리짝까지 뒤져 편지를 압수해 가며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하숙집을 옮겨야만 했다.

서울에서 윤동주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연세대학교 핀슨홀(당시 기숙사)과 누상동 하숙집뿐인데, 윤동주 하숙집을 검색하면 낯선 사진들을 볼 수 있다. 일본인 독자들이 윤동주 하숙집을 찾아왔다가 한옥을 헐고 새로 세운 주택 앞에서 허탈하게 찍은 사진과 “윤/하/뻔”, 즉 태극기와 윤동주 하숙집 터 안내동판 위에 크게 써붙인 “윤동주 하숙집터 뻔데기” 간판이다.

윤동주가 아침마다 산책하고 세수하던 수성동계곡이 복원되면서 관광객들이 찾아오자 누군가 장삿속을 발동한 것이겠지만, 이제는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이 집을 서울시민들에게 돌려줄 때가 되었다.

윤동주의 시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글자가 하늘과 우물과 길이다. 누상동 하숙집에서 청운동 시인의 언덕을 거쳐 윤동주문학관까지 이르는 길을 윤동주 산책길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돌려주기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에 제안한다.



허경진|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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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본 히로시마 방문에서 정치적·역사적 의미를 배제하려 한다. 원폭 투하에 대한 사과도 아니고 역사 청산도 아니라고 한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한 순수한 동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정치적·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미국이 사과 의미를 배제한 것은 옳지 않다.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민간인이 대부분인 수십만의 생명을 핵으로 절멸시킨 행위는 일본의 전쟁책임 여부와 별개로 사과해야 할 일인 것이 맞다.

현재 동북아시아에는 핵위협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핵 없는 세상’을 위한 이벤트라는 주장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오바마가 일본에서 핵 없는 세상을 말하려면, 먼저 주변국을 불안케 하는 막대한 양의 농축우라늄, 무기급 플루토늄을 일본이 보유하고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기념공원을 찾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오른쪽)이 27일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한 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_AP연합뉴스

결국 오바마의 히로시마 방문은 큰 의미가 있는 행사가 아니라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온 오바마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충족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 입장에서는 결코 달갑지 않다. 최소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대리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아베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미국 판단이 작용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향후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공세적 아시아 전략으로 한국이 더욱 어려운 처지에 몰릴 것임이 자명하다. 그럼에도 “한국인 희생자가 동등하게 언급됐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한국 정부 입장이 딱하다.

주변 정세가 이 지경인데 한·일 위안부 합의로 오바마의 히로시마행에 빗장을 풀어준 박근혜 대통령은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에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부각시키는 데 매달리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가 다른건 몰라도 외교는 잘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나.


유신모 ㅣ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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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5월의 끝자락이다. 입시생이나 재수생 못지않게 고시생들에게도 5월의 나른함은 공부에 전념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과거 조선시대 양반 자제들은 세속의 유혹을 벗어나 과거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 책을 싸들고 산속의 조용한 절을 찾았다. 그런 관습은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도 계속되어 수많은 젊은이들이 사법시험, 외무고시, 행정고시와 같은 고급공무원이 되기 위한 시험 준비를 위해 조용한 산사의 작은 방에서 젊음을 불살랐다.

그런데 1980년대 무렵부터 서울대 가까이 위치한 신림동 주변에 고시촌이 형성되면서 전국의 고시 준비생들이 절 대신에 고시원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사실 서울대 캠퍼스가 도심을 떠나 관악산 자락으로 이전하지 않았더라면 신림동에 고시촌이 형성될 이유가 없었다. 고시촌 주변은 원래 지방에서 올라온 서울대생들이 방을 빌려 자취를 하거나 하숙을 하던 동네였다. 그러다가 점차 고시촌으로 변모했다. 서울대가 들어오기 이전 완만한 언덕이던 신림동 주변에는 묘지들이 즐비했고 서울 도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달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곳은 주민들의 철거반대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된 투쟁의 현장이기도 했다.

1974년 서울대는 경성제국대학으로부터 물려받은 동숭동 캠퍼스를 떠나 관악산 기슭 6백만평에 이르는 광활한 부지에 새로 지은 캠퍼스로 이전했다.(원래 그곳에는 1963년에 만들어진 관악컨트리클럽이라는 골프장이 있었다. 현재 ‘교수회관’이라고 이름 붙은 건물이 과거 컨트리클럽의 식당과 연회장으로 쓰이던 곳이다.) 서울대 이전의 공식적인 이유는 서울대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동양 최고의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들리는 소문으로는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을 도심으로부터 격리시켜 체제의 안정성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했다. 당시 서울대 주변에는 기본 여가시설이 없어서 학생들은 캠퍼스 뒤의 관악산으로 들어가 술판을 벌이기도 했고, 학교 철조망을 넘고 개울을 건너 생두부를 안주 삼아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러 가기도 했다. 그게 그 시절의 낭만이었다.

1990년대의 일이다. 학회에 참석하거나 외국 학자들의 강연을 듣기 위해 서울대에 갈 일이 있으면 나는 늘 낙성대 쪽에서 학교 안으로 진입했다. 캠퍼스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대로 들어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디 멀리 떨어져 있는 외딴 동네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5월 하순의 저녁 나는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내려 고시촌을 거쳐 서울대 캠퍼스를 한 바퀴 돌고 쑥고개를 넘어 서울대입구역에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야간 산책’을 감행했다.

신림역에서 내려 거리로 나서니 신림사거리는 온갖 네온사인과 불빛으로 어지러웠고 밀려오는 인파로 북적거렸다. 그곳에서 서울대 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 걸어 올라가니 도림천이 나왔다. 말끔하게 정리된 천변으로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에는 “신림 경전철 예산 93억원 확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계속 걸어 올라가니 고시촌을 알리는 조형물이 나왔다. 인문사회과학 서점 ‘그날이 오면’이 겨우 과거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책터나눔 ‘북션’도 보였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5층 규모의 공동주택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들이 즐비했다. 도로를 접하고 있는 1층에는 식당, 카페, 주점, 빨래방 등이 보였고 독서실, 고시학원 등의 간판도 보였다. 편의점 밖 테라스에는 캔 맥주를 마시고 있는 젊은이들도 보였다. 서로 동료의식을 느끼며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서로 경쟁의식에 불타 분발하기도 하면서 고시촌 분위기에 젖어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착잡했다.

고시원이라고 부르는 건물은 책상 하나와 침대 하나가 겨우 들어가 있는 작은 단칸방들로 구성되어 있다. 원룸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곳에서 고시 준비생들의 숨 막히는 삶이 이루어진다. 주방, 화장실, 욕실, 세탁실 등은 공동으로 사용한다. 과거 가리봉동의 노동자들이 살던 ‘벌집’에 비교하면 훨씬 개선된 주거 환경이지만 그리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환경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와 함께 살던 집을 나와 이곳에 살면서 시험 준비에 전념하고 있다.

몇몇 건물의 외벽에는 사법시험 합격자의 이름이 새겨진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젊은 시절의 몇 년을 그곳에서 보내고 ‘성공’해서 현재 부장판사로 일하고 있는 문유석은 20년 만에 신림동 고시촌 골목길을 다시 거닐며 이런 소감을 남겼다. “예전보다 많이 해사해졌지만 이 동네의 본질은 변할 리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 초조, 욕심, 좌절, 분노, 비뚤어진 욕망, 충족되지 않는 자존감, 과대망상, 성욕, 찌질함, 고시촌의 청춘이란 그런 것이다. 나는 그때 누구보다 찌질하고 피폐했다. 내 안 밑바닥 어딘가에는 아직도 고시촌의 쾨쾨한 냄새가 남아 있다.”

도림천 양안 언덕에 고시 준비생들을 위한 건물들이 즐비한 언덕길을 걷다 지친 나는 지나가는 빈 택시를 잡아탔다. 운전기사에게 서울대 캠퍼스를 한 바퀴 돌자고 했더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잠시 후 국립서울대학교를 상징하는 ㄱ, ㅅ, ㄷ을 조합해 만든 철제 정문이 보였다. 그곳을 지나자 왼쪽에 야간 조명등이 밝혀진 운동장이 나왔다. 택시의 창문을 열어놓고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캠퍼스의 외곽도로를 한 바퀴 쑥 돌았다.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정문 근방에 이르자 뿌연 조명등이 켜진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 내 눈앞에는 고시원의 책상 앞에 웅크리고 있을 젊은이들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들이 어디에서든 저렇게 활기차게 뛸 날은 언제인가?


정수복 ㅣ 사회학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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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는 대형 식당이 3곳 있다. 원래 2곳이 영업 중이었는데, 지난 2월 ‘국민의식당’이 개업하면서 3각 경쟁을 벌이게 됐다.

이 중 가장 큰 규모와 매출을 자랑하던 ‘새누리식당’이 최근 위기에 빠졌다. 지난 4월 4년마다 열리는 ‘여의도 미식회’ 축제에서 손님이 확 줄었다. 매출액 1위 자리도 ‘더민주식당’에 내줬다.

축제 직전까지 난장을 펼쳤던 게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른 두 식당의 ‘손님 빼앗기’ 경쟁 덕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사태평과 오만방자가 화를 불렀다.

‘주인장 뜻’이라며 ‘진실한 종업원’을 감별하고, 밉보인 종업원은 쫓아냈다. 지배인을 “죽여버리겠다”고 취중막말을 한 종업원도 있었다. 급기야 지배인은 결재 도장을 감춘 채 고향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래 놓고선 ‘도장 들고 나르샤’란 광고를 했다.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노래)을 불러댔다. 메뉴들도 별반 새로운 게 없었다. 일부 단골손님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발길을 끊었다.

새누리식당에서 곡소리가 터져나왔다. 당장 지배인부터 사표를 냈다. 지리멸렬은 계속됐다. 원아무개 매니저는 ‘임시’ 지배인 자리를 노리다가 반발을 샀다. 종업원들은 워크숍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곧바로 ‘네 탓’ 타령을 해 ‘쇼’라는 빈축만 샀다.

지난주 새누리식당은 새 매니저를 뽑았다. 손님들의 니즈(요구)를 반영한 레시피를 만들 특별팀도 만들기로 했다.

여야 3당 원내지도부가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_경향DB

하지만 혁신적이고 창조적인 레시피가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이미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 주류 종업원들은 기득권 유지·강화에 혈안이 된 모습이다. 앞장서서 희생하는 사람도, 책임지겠다는 사람도 없다. 식당 부흥의 방향을 토론할 중차대한 회의에 122명 종업원들 가운데 39명이 불참했다.

“절박함이 없다.” 한때 더민주식당에 하던 말이 이제 새누리식당을 두고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오죽했으면 한 원로가 “뼛속까지 반성하는 모습도 안 보이고 무기력하다”(김형오 전 국회의장)고 질타했을까.

뭔가 믿는 구석이 없으면 이럴 수 없다. 바로 ‘청와대식당’에 있는 주인장이 새누리식당의 든든한 뒷배다. 이 주인장의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아 보인다. ‘여의도 미식회’ 이후 한 달간을 언론인들과의 대화, 이란 순방, 여의도 식당 3곳 책임자들과의 회동 등으로 채웠다. 그사이 청와대식당의 인적 쇄신 목소리는 묻혔다.

실제 손님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 “그래도 새누리식당”이라는 손님들이 여전히 많고, ‘기득권’ 양념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다.

어물쩍 시간이 지나면 손님들이 예전 수준으로 늘 것이다. 새누리식당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보수정당은 간단히 안 죽는다”(정진석 원내대표)고 했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새누리식당의 기대대로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여의도 미식회’ 직후 새누리식당에선 12년 전 천막 치고 장사하던 시절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었다. 과연 절박함이 사라진 자리를 새누리식당은 무엇으로 메울까. 손님들은 “여긴 아직도 똑같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도 이미 수많은 요리 프로그램을 섭렵해 웬만한 잔재주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소멸하게 될 것”(정두언 의원)이라는 한탄까지 나오고 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옛날 로마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큰 소리로 외치게 했던 말이다. 인간의 허영을 경계한 것이다.

‘여의도 미식회’ 직전 새누리식당 벽에도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다. ‘정신차리자, 한순간에 훅 간다.’


김진우 ㅣ 정치부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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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서 이중국적자 자녀를 둔 외교관은 공관장이 될 수 없다. 올해 외교부 춘계 공관장 인사에서도 이중국적 자녀가 있는 외교관들은 대사 임명에서 제외됐다. 2014년 춘계 공관장 인사 때는 이중국적 자녀를 둔 외교관 일부를 공관장에 임명하면서 자녀의 이중국적을 포기하도록 하겠다는 ‘각서’를 받았다. 그리고 1년6개월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못한 공관장은 모두 조기 소환했다.

정부는 “이중국적 자녀를 가진 공무원을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에 임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임명권자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외국인이나 이중국적자 가족이 있는 공무원은 공관장에 임명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들면 된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것은 그런 규정이 위헌적 요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는 위헌적 조치를 ‘임명권자 판단’이라는 이유로 강제하는 셈이다.

이중국적 논란을 빚고 있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빌딩 15층에 마련한 임시 집무실에서 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_박민규기자

이중국적 자녀를 둔 고위공무원은 많다.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은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됐고 유민봉 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도 아들이 이중국적자였다. 공관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이중국적 자녀는 안된다는 논리라면, 부총리·장관·청와대 수석 등은 국가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국내에서 이중국적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병역 등 국민으로서 의무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각종 혜택을 누리는 문제점을 수없이 봐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은 보완책으로 해결할 일이다. 이중국적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올바른 접근법이 아니다. 정부 출범 당시 한국계 외국인을 장관으로 임명하려던 박근혜 정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유신모 | 정치부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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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진부함을 넘어선 참신한 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흔히 그런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산과 강을 찾아다닌다. 심지어는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여 해외여행을 떠난다. 백두산 천지, 사하라사막, 북극의 오로라, 남극의 빙하…. 우리는 이런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우리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탄성과 눈물을 주체할 수 없다. 자연히 그것을 응시하는 눈과 몸으로 들어와 관찰자를 혼미하게 만든다. 이런 숭고한 경험은 멀리 있는 것인가?

‘본다’는 행위엔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그저 보는 것’이다. 그저 본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습관과 편견대로, 자기 기준대로 상대방을 보는 행위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것에 대한 시각적이며 수동적인 반응으로 피할 수 없다.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어 젖히면 날아다니는 새와 푸른 소나무가 눈에 저절로 들어온다. 내가 이것들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지만 그냥 일어난 사건이다. 이 순간에 그 대상을 판단하는 기준은 내 안목의 수준이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이 지닌 안목이 옳다고 착각하고 외부에서 눈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그 매개를 통해 해석한다. 이런 시선이 고착되는 것을 무식(無識)이라고 부른다. 무식을 고전 아랍어로 ‘자힐리야(jahiliyyah)’라고 부른다. 자힐리야는 기원후 7세기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 아랍사회를 지칭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자힐리야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쉽게 화를 낸다. 화를 내는 이유는 자신이 구축한 상대방에 대한 의견이나 허상 안에 그 대상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식한 사람은 화를 잘 낸다. 또 다른 하나는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해를 끼친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데올로기에 꿰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폭력을 행사한다.

두 번째는 ‘살펴보는 것’이다. 살펴보는 사람은 그 대상을 보려고 의도한다. 나는 아침에 조간신문을 보는 습관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대문으로 달려가 신문을 집어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와 헤드라인들을 훑어본다. ‘살펴보는 것’은 ‘그저 보는 것’과는 달리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신문을 넘기면서 의도하지 않게 눈에 들어오는 이미지나 글들도 있지만, 그것들 중에 새로운 소식에 눈길이 가고, 그 글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살펴보는’ 주체로서 보고 싶은 대상을 취사선택한다. 우리 대부분은 어떤 것을 공부할 때, 이런 식으로 살펴본다. ‘살펴보는 것’이 ‘그저 보는 것’과 의도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은 부족하다.

세 번째 보는 것은 이전 보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세 번째 보기를 ‘관찰’이라고 부르는데, 그 특징은 무아성(無我性)이다. 특히 살아 움직이는 어떤 것을 응시할 때, 그것을 의도를 지니고 볼 뿐만 아니라, 그 움직이는 모습을 온전히 따라가기 위해 몰입이 필요하다. 몰입을 통해 관찰하려는 거룩한 공간은 공연장이나 영화관과 같은 장소다. 이곳에는 무대가 있다. 아니 내가 관찰을 시도하면 그 대상은 무형의 무대 위에서 나를 사로잡는다. 관찰은 나를 단호하고 압도적으로 사로잡아 숨을 멈추게 한다. 그 순간 나는 없어지고 내 관찰 대상의 표정과 움직임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넬슨 만델라 前 남아공화국 대통령, 남산 지구촌민속 박물관 방문_경향DB

나는 1998년 6월, 한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경험했다. 미국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를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했다. 만델라는 반아파르트헤이트 운동을 전개하다가 투옥되어 27년을 지내고 석방되었다. 1994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평등 선거 실시 후 뽑힌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뒤, 1998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졸업식 연사로 초대되어 왔다. 만델라가 연설하기 전, 미국 흑인 오페라 가수인 제시 노먼이 ‘Amazing Jesus’라는 흑인영가를 부를 때부터 2만여 관객들은 서서히 몰입되기 시작하였다. 제시 노먼이 노래를 마친 후, 단상에 앉아 있던 만델라가 일어나 아프리카 추장과 같은 당당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응시하였다. 나는 그의 눈길이 내게 오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27년 수감생활도 그의 바로서기와 자비로움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가 단상에 서 있는 모습이 카리스마 그 자체였다. 그 후 20여분 동안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의 말과 표정 하나에 온몸으로 반응했다.

1973년 노벨의학상을 탄 카를 폰 프리슈는 관찰의 화신이었다. 프리슈는 ‘언어’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지녔다는 기존의 상식을 깨고 꿀벌의 춤추는 모습에서 이 동물이 가진 언어와 문법을 판독해냈다. 꿀을 발견한 벌이 벌집으로 돌아와 다른 벌들에게 벌집의 위치와 방향, 심지어 꿀의 질과 양까지 전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그가 이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식이나 다른 과학자들의 의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가 꿀벌을 관찰하였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위대한 발견의 비밀을 물었다. 그는 말했다. “바위틈에서 수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는 꿀벌을 관찰했습니다. 내가 참을성 있는 관찰자였기 때문에, 그저 보는 과학자들이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혁신적인 발견의 비밀은 오래 관찰하기다. 당신은 그저 봅니까? 아니면 오래 봅니까?


배철현 |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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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에게 세월호 참사란 무엇일까.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3년 만에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재정, 인건비, 세금’ 이렇게 세 단어로 축약되는 인식을 여실히 드러냈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그동안 재정이 150억원 정도 들어갔고, 또 그걸 정리해서 서류를 만들려면 거기에 보태서 재정이 들어갈 것”이라며 “인건비도 한 50억원 정도 썼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을 목표로 하는 특조위 활동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없이 비용만, 그것도 구체적인 ‘숫자’까지 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던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박 대통령은 특조위의 활동기간 보장에 대해 “국회에서 이런저런 것을 종합적으로 잘 협의하고 그렇게 해서 판단할 문제”라며 얼버무렸지만, 이에 앞서 “국민 세금이 많이 들어가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이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간담회에서 사회자가 청와대 참모진을 소개하자 박수를 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27일 논평을 내고 “청와대의 일방적인 가이드라인”이라며 반발했다. 특조위 활동기간을 ‘보장’해달라는 희생자 유족과 특조위를 사실상 ‘세금 도둑’으로 몰아간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특조위 활동기간에 대한 법조문 해석은 차치하고라도 ‘액수’를 줄줄 외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되물었다. “특조위 청문회에 나온 해경 지휘부의 증언을 한 줄이라도 들었는가.”

희생된 학생들에게 수차례에 걸쳐 한 선내 대기 방송이 청해진해운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는 세월호 여객부 직원의 새로운 증언이 나온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7월을 목표로 하는 세월호 인양 작업은 이제 막 ‘리프트빔’을 투하해 본격화했다. 유족들이 줄곧 온전한 인양을 요구한 건 선체 조사로 이전에 몰랐던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사실상 오는 6월에 특조위 문을 닫으라고 한다.

‘진상, 희생자, 유족’ 대신 ‘재정, 인건비, 세금’만 남은 대통령의 ‘세월호’. 여기에 아이들이 죽어간 차가운 바다 위에서 뜬눈으로 인양 현장을 지키는 유족들은 호소한다. 그 세금을 낸 국민은 진상을 보다 낱낱이 알고 싶고, 이를 바탕으로 안전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찾고 싶다고.


허남설 | 사회부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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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만의 여소야대, 20년 만의 3당 체제라는 결과를 낸 20대 총선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의미를 던졌다. 그런데 이번 총선을 돌이키면서 결코 빠트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다. ‘북풍’이다.

총선을 닷새 앞둔 지난 8일 오후 5시로 가보자. 통일부는 느닷없이 해외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탈출해 국내에 들어왔다고 공개했다. 이들이 입국한 다음날이었다. 사진도 공개했다. 선거 사흘 전엔 통일부와 외교부가 브리핑을 자청해 “대북 제재에 영향을 받은 탈북”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선거 이틀 전엔 지난해 발생한 ‘고위급 탈북자’ 관련 언론 보도가 나오자 즉각 시인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20대 총선 수도권 후보 출정식에서 후보자들과 악수하며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_경향DB

탈북자 정보 공개에 관한 정부의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들이 연달아 벌어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이었던 류길재 전 장관마저 언론 인터뷰에서 “탈북자는 신변안전 문제가 있어 비공개가 역대 정부의 일관된 원칙이었다”면서 “탈북자 공개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정부가 총선 이후 보이는 모습을 보면 기존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이유는 명백해진다. 총선이 끝남과 동시에 침묵 모드로 돌아간 것이다. 정부 당국의 ‘급변침’을 기획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는 차차 드러나겠지만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청와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월16일 국회 연설에서 “우리 사회 일부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도발이라는 원인보다는 ‘북풍 의혹’ 같은 각종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정말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은 선거를 위해 내팽개친 탈북자들의 인권과 그들 가족들의 신변안전, 그리고 헌신짝이 돼버린 정부의 원칙을 가슴 아파하고 있다.


김재중 | 정치부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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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