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의 첫 번째 단계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다. 두 번째 단계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과 정권교체다. 세 번째 단계는 적폐청산과 새로운 질서의 구축이다. 이제 촛불혁명은 두 번째 단계를 통과하고 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개혁과 통합이라는 다소 모순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해야 하는 어려움을 만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적폐청산과 개혁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하면서 또한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다. 개혁과 통합을 함께 이루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개혁과 통합이라는 가치를 모순적이라고 하는 것은 개혁을 강조하다 보면 통합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있고, 통합에 방점을 찍으려고 하다 보면 개혁이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이 둘을 미봉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쪽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개혁을 통한 통합’이다.

개혁을 다져나가면서 그 힘으로 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촛불광장이 그랬다. 촛불이 밝혀졌던 지난겨울 우리 국민들은 명실상부한 국민통합을 실현했다. 우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때문에 100% 국민통합을 달성하게 되었으니 박 전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누었다. 개혁과 적폐청산이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여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 그것이 바로 국민통합이다. 개혁의 결과가 통합을 실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도 타당한 얘기이고 현실적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찾아가는 대통령 2편으로 서울 양천구 은정초등학교에서 열린 미세먼지 바로알기 방문교실에 참석해 학생들과 대화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혁을 통한 통합을 이루려면 개혁과제의 선후, 경중, 완급을 잘 구별하여 추진하는 전략적 사려가 필요하다. 지난겨울 촛불혁명의 첫 번째 단계가 성공한 것은 국민들이 박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소강령’에 기초하여 ‘최대연합’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의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개혁도 국민적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제를 먼저 추진하면서 조금씩 강령의 수준을 높여가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자면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제시되었던 약속도 구체적 실현 방안을 다시 따져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선거 공약과 현실 여건 사이의 차이를 조정하는 기구라고 하겠는데, 이번 선거는 전직 대통령 탄핵으로 실시된 조기선거였기 때문에 인수위와 같은 조정 과정이 생략된 채 대통령이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혁과제의 우선순위를 다듬는 작업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

촛불혁명의 세 번째 단계에서 우선적으로 설정해야 할 개혁과제는 민생, 복지 문제다. 문 대통령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온 힘을 쏟겠다고 했다. 문 후보의 일자리 공약에 대해 다른 후보들은 크게 반발했다. 문 후보는 주로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공공부문이 앞장서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게 좋은 일자리가 될 수 없을 것이며 실현하기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보수후보들의 경우 일자리 창출의 주체는 공공부문이 아니라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일자리 만들기에 대한 이런 사회적 논의는 활성화할수록 좋다. 활발한 논란을 거치면서 목표를 현실화하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생, 복지 문제를 앞장세워야 하고, 이념적 전선이 만들어지는 과제는 신중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 4대 개혁입법 과제를 설정했던 경험을 생각해보자. 당시 집권여당은 이 과제를 밀어붙이느라 힘이 빠져서 결국 국정운영의 동력이 소진되었다. 참여정부 시절에 비해 원내 의석수도 현저히 줄어든 현실을 감안하면 지금은 국정운영을 무리하게 밀어붙일 힘도 없어 보인다.

어느 한 정당도 압도적 힘의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당들 사이의 연대와 협력이 꼭 필요할 텐데 현실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 싶은 것을 다 이루기는 어렵다. 그럴 경우 국민들에게 그 상황을 솔직하게 밝히고 지지를 호소함으로써 개혁과제 추진의 동력을 만들 수밖에 없다.

지지자들도 개혁의 목표와 기대를 현실화하는 것이 좋다.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킨 유권자들은 열성적이며 동질적이다. 단결력이 강하며 행동에 적극적이다. 그것이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을 시종일관 유지했던 힘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특성의 지지기반이 포용력을 약화시켜 선거운동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 때문에 문 대통령의 통합력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이 뒤따랐다.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힌 문 대통령의 소망을 지지자들이 여유 있는 태도로 뒷받침해야 할 것이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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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구에서 유세를 시작했다. 그의 첫 유세 장소는 2·28민주운동 기념탑 광장이다. 특별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2·28민주운동은 1960년 2월28일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최초의 저항운동이었으며 4월혁명의 ‘출발’이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은 대구의 2·28에서 시작하여 마산의 3·15를 거쳐 서울의 4·19에서 절정을 이루었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이 대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서 대구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촛불민심의 대변자로서 이번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자신의 마음가짐을 보이려 하는 것 같다.

이런 문재인 후보의 노력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대구는 민주화 이후 한번도 민주당을 밀어주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대통령 선거는 해보나 마나 한 일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당 후보에 대한 전폭적 지지는 상수였다. 김대중-노무현 당선 때에도 이 지역의 몰표본능은 변함이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오른쪽)가 17일 대구 경북대학교 앞 유세에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시민들의 손을 잡고 있다. 권호욱 기자

이 지역에서 보수정당 지지와 민주당 배제는 크게 보면 세 가지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감정, 둘째는 정당일체감, 셋째는 이념이다.

처음에는 감정을 동원하면서 민주당을 배제하자고 했다. 근거 없는 편견을 조장함으로써 민주당에 대한 거부 감정을 키우는 것이었다. 이것은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적 언어, 다른 지역에 대한 막연한 우월감을 동반했다. 이런 감정의 동원은 사실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적으로 유통되지 않았다. 향우회나 동창회와 같은 일차적 관계의 모임에서 내밀하게 통용되는 담론이었다.

이와 같은, 감정에 기초한 정당지지와 배제가 거듭되면서 그것은 급기야 정당일체감으로 발전하였다. 이 단계에서부터 이 지역의 민주당 배제는 조금 더 노골화되었다. 특정 정당과는 동일시하는 의식이 생기고 그와 경쟁하는 다른 정당에 대해서는 적대의식이 흐름을 이루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는 이를 대표하는 담론이다. 민주당에 대한 배제는 조금 더 공개적 영역에서 진행되기 시작했다.

점차 정당일체감은 그 정당이 추구하고 있는 이념을 내면화하는 단계로 진화하였다. 보수정당을 지지하고 민주당을 배제하는 논리와 가치를 구축한 것이다. 이 담론은 이제 공적 영역에서 공공연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배제하는 논리적 근거와 명분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촛불민심이 우리나라 정치지형을 완전히 흔들어놓은 상황에서도 감정-정당일체감-이념으로 특정 정당을 배제하는 이 지역 정치의 바탕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촛불민심의 충격으로 이 지역을 독점적으로 대표하던 보수정당이 둘로 나누어지고 두 정당의 지지율이 보잘것없게 된 지금에도 이 지역 민심은 민주당으로 가지 않고 있다. 그냥 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도록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전략적으로 지지하자는 흐름까지 만들어지고 있다.

어떤 후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되지 않도록 다른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이런 경향이 얼마나 힘을 받을까?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나 그 조짐이 심상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구 정치 역사에는 그런 경험이 몇 차례 있었다는 것도 지나칠 일이 아니다. 1956년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이승만 후보는 진보당 조봉암 후보와 경쟁하여 70% 대 30% 비율로 승리했으나 대구에서는 그 비율이 거꾸로 나왔다. 이승만이 30%를 받았고 조봉암이 70%를 받았다. 정확한 득표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비율이 그렇다. 대구가 한국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얻게 만들었던 이 선거는 사실 대구 사람들이 조봉암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이승만이 싫어서였다. 당시 민주당 신익희 후보가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사망하였는데 그 때문에 이승만을 싫어하는 모든 표가 진보당 조봉암으로 몰린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는 1995년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돌풍이 분 것이나, 1996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자민련 바람이 몰아친 것은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싫어서였던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이를 정면 돌파하려는 것 같다. 그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출발인 2·28민주운동기념탑 광장에서 첫 유세를 함으로써 이 지역의 정체성을 일깨워 지지를 얻으려고 하였다. 이 힘과, 그가 싫어서 안철수 후보로 흐르는 민심의 힘이 교차하면서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를 것 같다. 수십년 만에 대구정치가 상수에서 변수가 되고 있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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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겨울 우리가 이룬 것은 세 번째 민주혁명의 물결이었다. 첫 번째 민주혁명의 물결은 4월혁명이다. 두 번째는 6월항쟁이다. 세 번째는 2017년의 민주혁명이다. 혁명을 추진한 주체에서 보면, 첫 번째는 학생혁명이고, 두 번째는 시민혁명이며, 세 번째는 국민혁명이다. 혁명이 추구한 가치를 보면, 첫 번째는 자유이고, 두 번째는 민주이며, 세 번째는 공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민주혁명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마냥 좋아하고만 있을 수도 없다. 앞선 두 차례의 혁명이 하고자 했던 바를 다 이룬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첫 번째는 미완의 혁명으로, 두 번째는 절반의 혁명으로 끝나버렸다.

첫 번째 혁명은 학생들로부터 민주주의의 깃발을 이어받은 정치인들이 그것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군사쿠데타 세력에 빼앗겨버렸기 때문에 미완의 역사가 되었다. 두 번째 혁명은 시민사회의 민주세력이 군부권위주의 정권에 대해 충분한 힘의 우위를 갖지 못한 교착상황에서 타협으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하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하루 앞둔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서 취재진이 박 전 대통령이 설 포토라인을 만들고 있다. 이준헌 기자

세 번째 민주혁명의 물결은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탄핵소추 ‘피청구인’은 그 결정을 승복하는 것 같지 않고, 박근혜가 잘못한 게 뭐냐라는 소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대통령선거 후보들은 정치적 부활의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앙시앵 레짐의 반동 음모야 모든 혁명의 역사에 있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탄핵을 결정한 그날 오후부터 나오기 시작한 ‘이제는 통합이다’라는 섣부른 안정론의 저의도 의심스럽다. 국정 혼란을 낳은 문제들을 재빨리, 그리고 명쾌하게 해결하는 것이야말로 사회통합과 안정을 이루는 지름길일진대, 때 이른 통합론은 세 번째 민주혁명의 본질을 흐리려는 게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민주진영의 정치인들도 미덥지 못하다. 대통령선거가 조기에 실시되어 그럴 수밖에 없다고는 하나 지금 정치사회는 중구난방이다. 이들이 세 번째 민주혁명을 이어받아 완성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촛불을 켜고 광장에 나왔다가 돌아가려는 이들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검찰에 출두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직에 이어 징벌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형사법정에 서게 되면 세 번째 혁명의 물결은 한 번 더 출렁이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혁명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혁명이 주저앉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신화로부터 걸어 나왔으며, 신탁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파직과 징벌이 박정희 신화를 훼손시킬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박정희 신화가 해체되거나 부활의 서사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는 부활을 의례로 자기를 재생산하고, 부활은 신화에 의지하여 자기를 강화한다. 신화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현재 상황이 필요하면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신화와 부활의 본질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고 우리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면 박정희 신화는 다시 다듬어질 것이다.

그때 박 전 대통령은 부활의 옷을 걸치고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는 이런 부활을 수시로 봐 왔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민심이 흉흉할 때, IMF 외환위기가 찾아와서 나라가 몸살을 앓을 때 박정희의 유령이 우리 곁을 배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화는 이데올로기보다 더 무섭다. 이데올로기가 가치의 논리적 얼개라면 신화는 맹목적 믿음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파직과 징벌에서 더 나아가 박정희 신화를 해체해야 2017년 국민혁명이 완성된다. 그렇게 하자면 박 전 대통령이 박정희 신화로 만들어진 신의 딸이라는 점을 더 분명하게 드러내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헌법보다 더 높은 초월적 위치에 있다는 가치, 재벌에 특혜를 주고 리베이트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않는 시대착오적 불감증은 그가 박정희의 신전에서 뛰놀며 배웠던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97년체제, 87년체제만큼 61년체제의 문제를 파헤쳐주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서 박정희 신화를 해체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도 부활의 서사를 꿈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오늘 검찰에 출두하는 박 전 대통령을 형사법정에 세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역사의 법정’에 세워야 한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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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행실은 이미 미주알고주알 구설에 올랐으니 새삼 들출 필요는 없겠다. 최근에는 김관용 경북지사를 지지하는 행사에서 한 그의 연설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나는 그것을 동영상으로 보았다. 그가 마이크를 잡더니 “이완영은 청문회 스타다. 맞습니까?”라고 외친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목청껏 “맞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잠시 얼떨떨하던 기자들이 바삐 카메라를 움직인다. 그가 큰 뉴스거리를 또 하나 만드는 순간이다. 청문회 스타를 자칭하는 국회의원 이완영이나 그를 치켜세우는 청중이나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늘 이렇게 좋지 않은 일로 미디어의 초점에 있었다.

청문회 초반이었다. 새누리당 간사를 맡고 있던 그가 ‘재벌회장들이 나이도 많고 건강도 염려되니 일찍 집에 보내드리자’고 쪽지를 써서 서슬이 시퍼렇던 청문회 분위기를 졸지에 애완견 재롱 무드로 만들었다. 그리고 고영태를 몰아붙이다가 뜬금없이 ‘고영태는 최순실을 좋아하느냐, 존경하느냐’라고 물어서 청문회는 삼류만화가 되고 말았다. 자칭 청문회 스타, 국회의원 이완영의 명성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완영 의원

그가 이렇게 온몸으로 청문회의 물을 흐려 놓고 있을 때도 사실 나는 남들만큼 그를 심하게 비판하지 않았다. 그가 노동부 공무원을 하고 있을 때부터 조금 알고 있었으며, 그가 고향 근처를 왔다 갔다 할 때 몇 번 만나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좀 모자라기는 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연설 동영상을 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는 모자라기도 하지만 참 나쁜 국회의원이다.

이어진 그의 연설은 귀를 의심케 했다. “제가 좌빨들로부터 공격도 많이 당했습니다. 18원 후원금이 5000명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버텼습니다.” 아연실색할 말이다. 18원 후원금이 그의 기분을 나쁘게 했을 수는 있었겠다. 불평을 하든 말든 거기까지는 그의 자유다. 문제는 그가 그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을 ‘좌빨’이라고 선동한 것이다. 그는 군부독재자들이 민주인사를 탄압하기 위해 사용한 색깔론을 들고나왔다.

18원 후원금을 보낸 사람들이 좌빨이라니. 그의 연설을 듣고 기절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좌빨이란 ‘좌파 빨갱이’라는 뜻이 아니던가. 18원 후원금을 좌파라 하는 것도 부당하지만 그것을 빨갱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가당치 않은 말이다. 빨갱이란 공산주의자를 가리키는 것이고, 북한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얼마나 많은 민주주의자들을 감옥으로 보내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던가. 그것을 생각하면 국회의원 이완영의 말은 섬뜩하다.

그는 이미 사드를 반대하는 성주군민들을 좌파 종북세력들이라고 하여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성주군민들이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김제동이 했던 말을 빌려 “야, 우리는 종북이 아니라 경북이다”라고 했겠는가. 억장이 무너진 성주군민들은 자기 지역출신 국회의원 이완영의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사드보다도 그의 색깔론이 더 무섭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새누리당을 자유한국당으로 바꾸고 보수 쇄신을 도모하고 있는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목을 잘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이완영의 말은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며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언행이다. 그가 행사장에서 “이완영, 됐나?”를 선창하자, 참석자들은 “됐다”라고 소리쳤는데 내가 보기에는 결코 ‘됐다’ 할 일이 아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빨갱이로 색칠을 하여 왕따시키는 이 낡은 정치문화를 그대로 두고 자유한국당은 어떤 보수 쇄신도 말할 자격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때문에 역사적 지탄을 받고 있는 이 국면에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흔들어대고 있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좌빨론으로 제거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자유한국당은 오랫동안 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잡았다. 그런데 지금은 바로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냉전을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이용하여 보수를 지탱해왔으나 이제 그것이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것이 낡은 보수가 직면한 위기의 일단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인가?

자기 고향사람들까지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국회의원 이완영의 무도한 발언은 이 나라의 정체성인 자유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테러다. 자유한국당이 이런 심각한 반체제적 언동을 그냥 둔 채 어떻게 변했다고 국민들에게 얘기할 것인가. 자유한국당은 이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돈 받아먹고 성희롱한 국회의원보다 더 위험한 후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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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시장의 ‘불출마 선언’이 아쉽다. 그의 기자회견문을 몇 번이고 읽어보았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국민의 마음을 사지 못했다’는 것이 설명의 전부다. 그가 얻고 있는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그게 정말이라면 참 안타깝다.

그는 이 나라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나서겠다고 했다. 자신이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는 얘기도 했고, 자신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각오도 밝혔다. 그런데 시작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지지율이 낮아 주저앉겠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박 시장은 지지율이 높건 낮건 그만의 독특한 빛깔과 목소리를 계속 내야 했다. 그것은 지도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무이다.

박 시장이 하차했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 후보 진용에 심각한 결손이 생겼다. 그것은 박 시장의 지지율과 견줄 수 없는 큰 구멍이다. 그레고리 헨더슨이 ‘대한민국 그 자체’라고도 한 서울특별시를 이끈 값진 경험, 협치와 혁신의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가 민주당 후보 경쟁 과정에 계속 참여했더라면 민주당의 확장성과 역동성에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라는 미련을 버릴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김부겸 의원(오른쪽)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발언 순서를 양보하고 있다. 두 주자는 야권에 의한 ‘정권교체와 공동정부·공동경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양측은 야3당이 연합해 개방형 공동경선을 치를 것을 제안했다. 강윤중 기자

박 시장의 느닷없는 하차는 정치지도자 본인을 위해서도,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박 시장이 왜 저렇게 황망히 떠났을까, 그를 붙들어둘 수는 없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박 시장의 하차를 애석하게 여기다가 주변을 돌아보니 김부겸이 눈에 밟힌다. 박 시장의 행보를 지켜보며 김부겸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자신의 지역구 경기도 군포를 버리고 민주당의 ‘동토(凍土)’ 대구로 달려가 깃발을 꽂은 김부겸은 그 여세를 몰아 정권교체의 선봉에 서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선후보 여론조사표에서 그의 이름이 사라져 버렸다. 김부겸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민주당 주류의 대표 후보와 어쭙잖게 겨루려다 ‘18원짜리 후원금’으로 조롱을 받은 일이야 병가지상사라 하더라도 지하로 내려간 지지율은 참기 어려운 수모일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김부겸이 레이스를 포기하면 안된다. 그는 문재인, 이재명, 안희정이 가지고 있지 않은 덕목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부겸은 대구·경북의 ‘총아’다. 그는 민주당 간판으로 30여년 만에 대구·경북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 지역주의의 어두운 장막에 바늘 같은 빛줄기를 만들었다. 김대중의 동진정책, 노무현의 전국정당화정책을 이어받아 그가 단기필마로 이룬 성과다. 이번 대선에서 김부겸이 감당해야 할 몫은 여전히 크다. 지난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대구·경북에서 200만표가량을 졌는데 이번에 그 차이의 절반은 따라붙여야 민주당이 전국적으로 승리할 수 있다. 그동안 한나라당에서 넘어와 정체성이 어리바리하다고 무시당하고, 진보적 입장 그 자체를 우월감으로 여기는 민주당 주류의 철없는 구박을 견디면서도 대구·경북에서 빛바랜 민주당 깃발을 굳세게 지켜온 김부겸에게 희망을 걸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민주당원들은 김부겸이 포기하지 않도록 성원을 해야 한다.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 그렇다. 김부겸은 문재인처럼 내로라하는 정치 혈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이재명처럼 결기가 넘치는 것도 아니며, 안희정처럼 스마트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만큼 정치적 사려(prudence)가 깊은 지도자는 없다. 그는 1980년 봄,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 연설의 주인공이라는 신화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중하다. 그가 내세우는 상생의 정치, 공존의 공화국이라는 비전은 가장 김부겸다운 메시지다. 그는 ‘나를 따르라’라는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양떼를 뒤에서 밀고 가는 목동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지도자 만델라의 리더십에 비견하고 싶다. 이런 리더십이야말로 민주당의 확장성과 역동성, 그리고 민주진보세력의 통합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는 즈음에 김부겸을 격려하자는 이런 ‘위험한’ 제안을 마음 놓고 하는 이유는 사실 그가 꼴찌를 벗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민주당에 김부겸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가치만큼 필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라는 판단 때문이다. 이런 제안이 김부겸에게는 좀 미안하다.

대선후보 여론조사표에서 이름이 사라진 김부겸에게 ‘모멸을 삼켜라’,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 ‘포기하지 말라’는 요구가 그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승리를 위해서는 이 꼴찌에게 갈채를 보내야 한다. ‘18원짜리 후원’이 아닌 제대로 된 후원을 해야 한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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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은 싱크탱크(Think Tank)라고 하기보다는 ‘두탱크(Do Tank)’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조사, 분석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 행동을 하는 조직이라는 뜻이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비전과 전략을 연구할 뿐만 아니라 직접 담론 투쟁의 장에 뛰어드는, 치열한 싸움의 전선에 서 있는 당의 핵심기관이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이 받는 국고보조금의 30%를 사용하고 있다. 이 비율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인데, 정당의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 보면 어마어마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국고보조금이 배로 늘어나기 때문에 민주연구원의 예산 역시 곱으로 커진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의 집권전략도 여기서 나와야 하고,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국가운영의 그림도 여기서 나와야 한다. 그리고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전문가 네트워크, 그리고 시민들의 집단지성을 연결하는 고리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동안은 그렇지 못했다. 민주연구원은 ‘당권 경쟁에서 승리한 세력이 차지하는 전리품이냐?’ ‘정치 예비군들이 머물렀다 가는 대합실이냐?’ ‘당 지도부의 하청기관이냐?’ ‘도대체 돈을 연구·개발에 쓰기나 하는 거냐?’ ‘조직관리비로 쓰는 거 아니냐?’와 같은 의심을 받아왔다. 당이 위기에 처하고 당 혁신 프로그램이 가동될 때마다 ‘연구원’은 가장 중요한 개혁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쇄신 대상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그동안의 노력이 별 볼일 없었던 모양이다. 근래에 민주연구원의 인사와 재정의 독립성을 강화해 연구원이 본래 임무를 잘할 수 있도록 했다는데 여전히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면 아직도 온전치 않은 것 같다.

지난 한 주일 동안 민주당 주변을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민주연구원의 ‘개헌전략 보고서’ 파동은 그런 걱정을 더해주고 있다. 개헌전략 보고서 때문에 민주연구원이 편파성 시비에 흔들리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개헌전략 보고서가 민주당의 주류 다수파이며, 대선후보로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도와주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궁금하여 그 보고서를 읽어보았다. 내가 보기에 보고서는 개헌 쟁점에 대해 민주당이 취해야 할 입장을 비교적 잘 정리하고 있었다. 개헌전략 보고서의 결론은 ‘미래지향적 국민중심의 질서 있는 개헌’을 원칙으로 개헌논의를 하되 ‘개헌과 민생개혁의제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다루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개헌 문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표출된 주장들을 적절히 수용하면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논란이 될 만한, 다시 말하자면 편파성 시비가 생길 수 있는 대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편파성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이 보고서가 대선후보를 꿈꾸는 각 지도자들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개헌’이라는 이슈가 이미 권력투쟁의 프레임이 되어있는 현실에서 대선주자들이 편파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이 논란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민주당이 신속하게 한 일은 이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는데 언론 보도를 보니 보고서 내용에 대한 책임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닌 것 같다. 연구자가 어떤 편파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가령 연구자가 능력이 없어서 분석과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 정기 인사에 그 평가를 반영할 일이지 보고서의 ‘입장’을 이유로 처벌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책임을 묻게 되면 민주연구원의 연구자들은 당내 정치의 눈치만 보면서 ‘영혼이 없는’ 보고서를 만들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연구원은 있으나 마나 한 조직이 된다. 연구자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자신의 전문적 역량과 양식으로 정세를 판단하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민주연구원이 제 기능을 할 것이다.

이 논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면 그 대상은 연구자가 아니라 연구원장과 부원장이다. 왜냐하면 민주연구원이 편파적일 수 있다는 의심은 원장, 부원장이 모두 문재인 전 대표와 가까운 분이라는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두 분 개인의 능력과 리더십에 무슨 흠결이 있어서가 아니다. 정당 국고보조금의 30%를 쓰는 중요한 수권기구의 장은 편파성의 혐의가 없는 인사에게 맡기는 것이 민주연구원의 기능을 십분 발휘하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뽑힌 대통령은 인수위를 꾸릴 시간도 없이 직무 수행에 들어가야 하므로 수권기구로서 정당 연구소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클 것이다. 두탱크, 민주연구원이 제 기능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이다.

김태일 |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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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에 제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는 박근혜와 최순실의 저지레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한 모양이다. 소가 웃을 노릇이다. 밥만 먹고 이야기만 들었다면 키친 캐비닛이라 한들 뭐라 하겠는가? 그런 거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다른 무엇인가를 도모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두 사람이 한 일에 대한 적절한 비유는 키친 캐비닛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이 최근 지적했듯 ‘가족기업’이다. 최순실은 남편, 박근혜는 아내라는 얘기다. ‘재산마저도 집단 운영해온 공동운명체’라고 하니, 구태여 부른다면 ‘키친 캐비닛의 대화’가 아니라 ‘베갯머리 송사’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박정희 유신체제 때는 박근혜는 구국선교단이라는 거창한 조직의 대표를 맡고 최씨네는 실질적 경영자 역할을 하는 가족기업을 운영했다. 지금 최씨네가 가지고 있는 재산의 종잣돈은 이때부터 조성된 것이 분명하다. 최태민이 구국선교단을 조직하고 박근혜에게 명예총재를 맡긴 후부터 최씨네는 돈방석에 올라앉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재벌들이 돈을 다 냈다’는 것이 최씨네 식구로부터 나온 증언이다.

 

대통령 탄핵사건 피청구인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신에 대한 탄핵 사유들이 사실과 다르다며 전면 부인했다. 김창길 기자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 실험은 박정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박근혜가 1980년부터 1988년까지 영남대학교 재단을 책임지고 있던 때에도 그들의 궤적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가족기업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돈을 빼돌리는 일이다. 이들은 공공재를 개인화하는 일을 능사로 알았다. 당시에 일어났던 온갖 부정이 그러했다. 박근혜가 재단이사장을 맡고 있던 동안 대학 경영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었다. 부정입학, 경리부정, 재산매각대금의 불분명한 처리 등 문제 제기가 꼬리를 물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비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최씨네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지금과 똑같은 모습의 가족기업이었다. 결국 그 일로 박근혜 재단이사장은 학원민주화 과정에서 자리를 내놓았는데, 당시의 부정비리가 최근 청와대에서 일어난 것과 복사를 한 듯 닮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은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직을 농단한 것이다.

 

지난 주말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육영재단과 관련한 살인 암투를 보여주었는데, 그 핵심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거기에서도 오랫동안 가족기업을 굴려온 최씨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구국선교단, 영남대학교, 육영재단, 그리고 청와대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돈을 어떻게 빼돌렸는지를 이번 기회에 파악해야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일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닐 듯하다. 그리고 가족기업을 통해서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은 모두 토해 내도록 해야 한다.

 

전두환, 노태우의 부정축재에 대해 취한 방법으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부정축재를 환수해야 한다. 그래야 저 음험한 가족기업의 모의를 키친 캐비닛이라고 분칠하는 후안무치의 민낯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가는 곳마다, 앉은 곳마다 능수능란한 방법으로 돈을 빼먹어온 저 어두운 역사를 천하에 보여주어야 한다. 환수한 나랏돈은 나라에 돌려주고, 학교의 돈은 학생들을 위해 쓰도록 하고, 공익재단의 돈은 재단이 돌려받아 사회를 위해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잘못이 있었다면 그것은 최순실이 저지른 일이고 자신은 몰랐다고 탄핵소추 반박 답변서에서 재차 무고를 주장했다. 이 주장이 맞는지는 특검이 구체적으로 증거를 확인하며 밝힐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최씨네와 박근혜 가족기업의 반복적인 ‘영업수법’으로 미루어보아 박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으로 보인다. 그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의 머리에는 전략만 있고 성찰은 없다. 물론 그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입을 앙다물고 전위를 맡고 친박이 새누리당의 스크럼을 다시 짜며 후위를 맡아 특검과 헌재 심판을 돌파할 계획으로 보이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들은 최씨네와 박근혜의 가족기업이 저지른 동일수법 전과기록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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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에 살고 있는 민주세력은 박정희 신화와 싸우고 있다. 우리의 상대는 박근혜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박정희다. 박정희를 가리키는 ‘반신반인’이라는 말에 모두 놀랐겠지만 이곳에서는 이 말이 오히려 겸양이다. 이곳에서 그는 온전한 ‘신’이다. 샤먼이다. 박정희 초상 앞에 촛불을 켜놓고 기복하는 모습을 이 지역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박정희 신화를 재생산하는 일은 쉬지 않고 진행됐다. 박정희 동상을 크게 세우고, 그의 최대 치적이라고 하는 새마을 담론을 동원하면서 박정희 신화를 끊임없이 불러내고 있다.

신화의 세계에서 박정희와 싸우는 일은 참 어렵다. 신화는 맹목적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보다도 강력하다. 이데올로기는 어떤 가치와 그것을 설명하는 논리이지만 신화는 조건 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무섭다. 박정희 신화는 비판하면 할수록 더 단단해진다. 신화의 세계에서 박정희는 어떤 대화와 토론도 허락하지 않는다.

28일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전교조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네트워크 회원들이 오늘 교육부에서 발표한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이곳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박정희 신화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다. 경기 군포 지역구를 버리고 고향을 찾아온 김부겸은 박정희 신화와 싸우기 위해 고육지계를 썼다. 그는 대구에 ‘박정희 컨벤션센터’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그리고 그것과 광주의 김대중 컨벤션센터의 교류를 제안했다. 의표를 찌르는 제안이었다. 민주진영에서는 그것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민주당 후보의 공약에 박정희 컨벤션센터가 무슨 말인가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부겸의 의도는 박정희를 신화의 영역으로부터 역사의 영역으로 끌어내리자는 것이었다. 김부겸은 박정희를 역사의 세계로 호명한 후, 그를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차근차근 그의 행적을 역사적으로 따져보자는 계획이었다. 김부겸이 오해와 논란을 감수하면서 내건 그 ‘아슬아슬한 공약’은 이유가 있었고 타당한 것이었다. 그것은 대구·경북에서 신화가 된 박정희와 싸우는 방편이었다. 신화를 상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 김부겸은 박정희를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위해 그런 부담스러운 공약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박근혜 스스로가 박정희 신화를 깨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박근혜는 박정희 신화로부터 걸어 나온 ‘신의 딸’이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판단이 아니라 아버지의 신탁(神託)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다. 그의 언어는 아버지의 그것이고, 그의 국가관도 아버지가 끌고 가던 유신체제의 그것이다. 박근혜는 아버지의 시대에 성장이 멈추어버린 신의 딸이다. 그는 사람을 잘 믿지 못하여 좋은 사람을 곁에 두지 않았고, 국가와 개인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시대착오적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랏돈을 빼돌려 최순실에게 주어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었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들에게 냉혹한 보복을 하였다. 박근혜를 지배한 것은 박정희의 신탁이었다. 그가 재벌들을 불러놓고 거래를 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가 하던 방식대로 권력을 휘두르다 파국을 맞이했다.

이제 시민혁명의 횃불이 켜지고 박근혜의 추한 모습이 드러나자 박정희 신전의 어둠도 걷히고 있다. 요즈음 박근혜의 거취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는 모양인데, 중요한 것은 박근혜의 퇴진 과정에서 박정희 신화의 본질을 보여주고 그것을 역사적으로 청산하는 일이다. 박정희가 저렇듯 신화가 되어 그의 유령이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는 것은 그가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역사적 청산의 기회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잘잘못을 조목조목 짚어서 정리하고 평가하고 징벌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것이 박정희의 신탁에 기인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정치인은 박근혜의 퇴진을 두고 명예를 지키도록 하겠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발언이다. 이 사태를 정치적 타협으로 적당히 마무리하겠다는 정치적 수사가 아닐까라는 염려 때문이다. 박근혜가 자진 사퇴를 한다고 해도 적당히 얼버무려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박정희 신화는 다시 부활할지 모른다.

검찰과 특검수사, 국정조사, 탄핵 등의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는 박정희 신전의 어둠을 걷고 박정희의 신탁이 어떻게 박근혜를 통해 육화되고 박정희의 유령이 우리들 곁을 어떻게 배회하게 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이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질서의 건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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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교수님, 말씀 좀 해 주십시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총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하신 첫날의 ‘파안대소’는 무엇이며, 그 다음 다음날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면서 보이신 ‘눈물’은 또 무슨 의미입니까? 그리고 지난 주말,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하나”라고 반문하시는 그 ‘당당함’은 뭡니까? 김 교수의 종잡을 수 없는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언제 어디서 다시 마주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남에게 모진 소리는 하지 말라고 어른들은 가르치셨습니다만, 오늘은 김 교수께 뾰족한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김 교수님, 모든 걸 뿌리치시고 학교로 돌아오십시오. 외람된 말씀이오나 김 교수는 지금 평상심을 잃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웃다, 울다가 또 금방 눈을 부릅뜨실 수 있습니까? 제가 보기에 김 교수는 주술에 걸린 분 같습니다. 무슨 주술이냐고요? ‘선의(善意)’라는 주술입니다. 지난 며칠 동안 박 대통령과 김 교수가 하신 말씀을 뜯어보니, 김 교수께서 하고 싶어 하는 그 모든 일들은 박 대통령과 김 교수의 선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정치학자인 저로서는 황당합니다. 모든 정치는 선의가 아니라, 선의의 부재, 혹은 선의의 불안정성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에 기초하는 정치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김병준 국무총리 지명자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총리직 수락 배경을 설명하며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다하겠다”고 발언하다 울먹이고 있다. 이석우 기자

박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돌이켜 보시지요. 박 대통령과 김 교수, 두 분이 청와대에서 마주 앉아 나라 걱정을 함께하시다가 어느 대목에 배짱이 맞아 김 교수에게 총리를 맡기기로 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입니다. 청와대를 나와 김 교수는 자신이 책임총리로서 권한을 갖기로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고추 먹은 소리를 했습니다. 김 교수는 장관 두 명은 내 손으로 정한 것이다라는 위력시위까지 했습니다만, 국민들은 그것을 구차한 허세 정도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박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 담화에서도 그 문제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의 책임총리 노릇은 오로지 박 대통령의 선의에 기초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선의를 믿는 국민들이 얼마나 될까요? 김 교수께서는 박 대통령의 선의를 믿으시나요? 두 차례의 사과 담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박 대통령은 눈앞의 어려움을 벗어나려고만 할 뿐, 자신의 잘못과 책임 있는 대책에 대해서는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 민의의 평결입니다. 그러니 김 교수가 총리를 맡은들 뭘 기대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진퇴양난에 놓인 김 교수가 줄곧 하신 말씀은 자신의 선의를 믿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은 박 대통령과 이런저런 점이 다른데, 총리가 되면 자신의 방식대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김 교수의 선의에 대해서도 신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 교수에게 총리를 맡기자는 것은 어떤 의견 수렴도 거치지 않은 박 대통령의 일방적 결정이었습니다. 그러니 평소에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하시는 분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드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경세가이며 화려한 변설을 구사하는 논객입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선의에 기초한 김 교수의 선의는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책임총리. 내치대통령. 무슨 말로 표현을 하더라도 그것은 한낱 말의 유희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와서 박 대통령이 김 교수에게 책임총리 노릇을 맡긴다는 선의를 문서로 쓰고, 국민들 앞에 두 손을 모아 약속한다 하더라도 김 교수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이미 야당은 박 대통령이 김 교수를 총리로 지명한 절차가 잘못되었다고 이의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정혼란을 야기한 장본인인 박 대통령이 사태 수습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이 사태의 수습은 또 다른 주권기구인 국회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사태 수습의 동력을 만들기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김 교수의 총리 지명이 국회에서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박 대통령의 선의와 그것을 바탕으로 한 김 교수의 선의는 실현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김 교수께서는 선의의 주술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그리고 책임총리인가 뭔가를 당장 던져버리시는 게 어떨지요. 정치는 선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며, 민주주의는 선의의 부재, 혹은 선의의 불안정을 제도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민주주의자이신 김 교수께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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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라고? 난 경북이다.” 김제동이 경북 성주군 사드 배치 반대 집회에서 이렇게 촌철살인 하고 있을 때 나는 마침 그 옆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 다음날 김제동에게 무슨 사달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그가 ‘종북’이라는 말을 놀려 먹었기 때문이다. ‘종북’은 보수세력이 가장 아끼는 칼이 아니던가? 그걸 희롱했으니 김제동은 화를 면치 못하리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장에 불려 나가지도 않았고, ‘종북’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치도곤을 당하지도 않았다. 적어도 그 말을 이유로 김제동을 혼내자는 움직임은 없었다. 그의 고향이 경북 영천시 고경면인지라, ‘난 경북이다’라는 말이 허위사실이 아니어서 문제가 되지 않았나?

‘종북’을 조롱한 것은, 김제동이 국방위원회에 불려 나갈 뻔한 사유가 됐던 ‘영창’ 발언보다 보수세력에게는 더 불손할 법도 했는데 그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종북’이라는 말이 이미, 그리고 충분히, 조롱거리가 돼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하면, 김제동의 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빨갱이’라는 말에 이어 나타난 ‘종북’이라는 딱지는 보수세력이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고립시키는 데 사용한 엄청난 폭력이었고, 그것의 위력은 대단했다. ‘종북’이라는 주홍글씨는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힘은 오래 가지 못했다. 보수세력이 이 딱지를 아무 곳에나 붙였기 때문이다. 종북이라는 말은 놀림거리가 됐다. 이를 풍자하는 ‘종북 놀이’까지 생겼을 정도였다.

‘종북 놀이’에 따르면, 보편적 복지를 주장해도, 재벌에 대한 특혜를 없애자고 해도, 세월호 가족을 응원해도, 반값 등록금을 주장해도,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해도,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해도, 이승만과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해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해도, 미국을 비판해도, 친일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자고 해도 모조리 ‘종북’이라는 것이다.

이런 ‘종북 놀이’가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종북’ 딱지 붙이기의 허접스러움을 알아버렸다. 보수세력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찬성하지 않는 반대세력에게 ‘종북’ 딱지를 붙여 고립시켜왔다는 사실도 파악하게 됐다.

‘종북’이라는 개념의 모호성도 그것을 웃음거리로 만든 요인이다. ‘종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종북’ 아닌 것과 어떻게 구별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김제동이 ‘나는 경북이다’라고 ‘종북’을 놀려 먹어도 보수세력은 기분 나쁘지만 뭐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주부터 새누리당이 참여정부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의 회고록 일부를 가지고 문재인에게 또 ‘종북’ 딱지를 붙이려고 하는 모양인데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유력한 야당 대선후보를 공격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찾았다고 생각하는지 자극적인 말을 쏟아놓고 있다. 이정현 대표는 ‘종북’을 설명하기 위해 ‘내통’이라는 말을 꺼냈다. ‘내통’이란 말이 풍기는 음험하고 불손한 분위기를 이용해 야당을 곤경에 빠트리기로 궁리한 듯하다.

그러나 이 말은 오히려 새누리당의 입장을 구차하게 만들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체제 수립 과정을 북에 알린 사실, 그리고 이른바 총풍, 북풍 사건 등 북에 은밀한 부탁을 한 사실들은 보수세력이 야당을 공격하기 위해 들고나온 북과 ‘내통’했다는 말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박명재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종북’이라는 말을 더 자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종복(從僕)’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그에게 부메랑이 되고 있다. 그가 참여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까지 하고 등을 돌려 새누리당에 들어갔다는 행적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문제를 가지고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황금 같은 시간을 허송세월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말기를 또 그런 방식으로 보내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 정부의 정책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좋다. 잘못을 따지는 것도 좋다. 그런데 제발 ‘종북’ 따위의 색깔론, 딱지 붙이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종북’이란 개념의 외연과 내포가 분명치 않고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종북’이라는 말은 김제동으로부터 ‘종북이라고? 나는 경북이다’라고 놀림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개념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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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농민이 세상을 떠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뭐가 잘못된 일인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느 것 하나 분명한 게 없다. 국가폭력이 시위진압을 위해 불가피했다는 낯 뜨거운 답변만 현실을 조롱하듯 허공을 맴돌고 있다.

사람이 죽었다고 꼭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경찰청장의 말은 아마 2016 화제의 어록을 장식할 듯하다. 그의 사전에는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권한만 있지, 언제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써야 한다는 규칙은 없는 모양이다. 세상 물정 어두운 교수도 물대포는 사람에게 큰 위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려면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리고 물대포를 실제 사용할 때는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는 것쯤은 지침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짐작할 수 있는 상식이다. 전해 들은 바로는, 물대포는 우선 시위대의 머리 위로 물을 흩뿌려야 한다. 처음부터 사람의 몸을 향해 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시위대를 향해 쏠 경우에도 사람의 상반신으로 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것들이 하나라도 지켜졌는가?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대회 당시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고 의식불명에 빠졌던 농민 백남기(70)씨가 사고 317일만인 25일 숨을 거둔 가운데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이 이뤄지고 있다. 김창길 기자

백남기 농민에 대한 국가의 폭력은 정당하지 않았다. 무자비하게 직사한 물대포에 쓰러진 이후에도 백남기 농민은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몇 언론들은 미국 경찰의 총에 맞아 흑인이 사망했다는 뉴스는 중계 방송하듯이 보도를 하면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일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국가가 시위에 참여한 나이 많은 농민에게 폭력을 행사하여 사망하게 한 사건이야말로 세계적 뉴스가 아닌가. 우리나라가 과연 인권을 잘 지키고 있는 나라인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을 한 번 더 강화시키는, 부끄러운 세계 토픽이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것이 언제 우리 자신의 일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국가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자초지종을 따져서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 추궁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

더 암담한 현실은, 정부의 누구도 백남기 농민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가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작년 가을 백남기 농민은 가을걷이를 마치고 ‘아스팔트 농사’를 짓기 위해 서울로 왔다. 우리나라 농민들은 봄, 여름 뙤약볕에서 일을 하고 가을 추수를 끝낸 후 한 번 더 지어야 할 농사가 있다. 아스팔트 농사다. 이 농사는 땀 흘린 대가를 제대로 받기 위한 농사이며 농민이 제대로 된 사회적 대접을 받기 위한 농사다. 이미 아련한 역사가 되어버린, 1970년대 유신체제의 얼음공화국을 뚫고 솟아올랐던 함평고구마 싸움의 깃발, 1980년대 군부정권의 공포를 밀어내고 가을 하늘에 펄럭이던 고추 제값 받기 투쟁, 수세 싸움의 깃발 등이 아스팔트 농사다.

백남기 농민이 지으려고 했던 아스팔트 농사는 ‘쌀값’이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쌀값은 해마다 내리막길이어서 쌀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시름은 날로 깊어지고 있었다. 쌀소비는 줄어들고 있고, 해외에서 수입하는 쌀은 늘어나고, 정부의 지지정책은 미지근하여 쌀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지고 있다. 백남기 농민은 이런 문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평생 민주화운동, 농민운동을 한 사회운동가로서, 그리고 한 사람의 농민으로서 간절히 할 얘기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쌀농사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쌀은 단순한 먹거리 가운데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체성의 중심, 안보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문화적 사회적 역사적 존재이다.

그렇다면 포기하지 말자. 쌀 소비를 늘리는 방법도 더 적극 생각해보자. 남는 쌀이 있으면 북한 동포에게 보내는 것도 방법이 아니겠나. 그러면 남쪽도 좋고 북쪽도 좋은 일일 것이다. 쌀이 가지고 있는 비경제적, 비교역적 성격을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백남기 농민의 주장이 저 무도한 직사 물대포에 산산이 부서진 후, 올해의 쌀값은 더 절망적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 암담한 상황에 대한 처방이 고작 농지를 줄이는 것이라고 하는 정부의 말을 들으니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는 한층 더 절실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백남기 농민의 고통스러운 생애의 마지막이 더 애달프다. 317일 동안의 병상에서도 그가 일구고 있었을 ‘아스팔트 농사’가 올가을에도 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먼 길을 떠나는 그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있는 것 같다. 용서를 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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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호가 출범했다. 대선 경선 관리가 그의 주요 임무다. 아니 대선 성공이 그가 맡은 소임이다. 그런데 걱정이다. 그의 현실 인식이 아쉽기 때문이다. 그는 당선 인터뷰에서 ‘공정한’ 경선 관리를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의 취지는 짐작할 만하다. 자신을 지지하고 당선시켜준 주류 세력에게 유리하도록 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더민주가 서 있는 현실에서 보면 그 말은 ‘마음 편한’ 소리다. ‘공정한’ 경선 관리는 문재인의 무난한 경선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권교체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추미애 대표는 더민주가 직면한 절박한 과제에 대해 말했어야 했다.

돌이켜 보라. 더민주는 원내 1당이 되긴 했으나 아직까지 혁신도 통합도 제대로 못한 상태다. 김상곤이 이끌던 혁신위는 멋진 혁신의 깃발을 들었으나 통합에는 실패했다. 혁신위는 이탈하는 비주류를 동기 불순, 능력 부족의 흠결 있는 정치인으로 ‘정리’해버렸다. 이어지던 탈당의 대열은 김종인 비대위가 들어서서야 겨우 숙지게 됐다. 김상곤의 혁신위와는 대조적으로 김종인의 비대위는 통합에는 일조했으나 혁신에는 성과가 없었다. ‘계몽 차르’로 불렸던가? 김종인은 물이 새는 더민주의 둑을 자신의 얼굴로 틀어막았다. 그러나 그가 하고자 했던 계파 패권주의 불식, 노선 조정, 행태 변화 등은 오리무중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리하자면, 김상곤의 혁신위는 혁신하려다 통합에 실패하고 결국 혁신마저 흐지부지되고 말았고, 김종인의 비대위는 통합에 성과를 냈지만 혁신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통합마저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 정치에 서툰 교수 출신 혁신위원장과 정치를 너무 많이 아는 노회한 비대위원장은 어쨌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더민주의 변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미완의 과제를 남겨놓은 셈이다.

혁신과 통합을 한꺼번에 이루기는 이렇듯 어려운 일이다. 비주류를 털어내는 것이 혁신이 아니고, 주류 성향을 가진 10만 온라인 당원들의 가세가 통합이 아니라면 더민주는 더 간절해야 한다. ‘공정한’ 경선 관리와 조기 전당대회로 ‘돌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때를 놓치고 고뇌하고 있는 손학규에게 어디 갈 곳이 있겠는가라고 에누리 흥정을 시작할 요량인가? 심각한 얼굴로 운동화 끈을 조이고 있는 박원순, 김부겸, 안희정에게 나이가 있으니 이번에는 몸이나 풀어보라고 기운을 빼 버릴 요량인가?

‘공정한’ 김상곤의 혁신이나 ‘노회한’ 김종인의 통합이 이루지 못한 과제를 추미애 대표가 실현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주류 기득권을 과감하게 혁파하는 창조적 기획이 필요하다. 그게 구체적으로 뭔지는 잘 모르겠다. 추미애 대표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가을 전어처럼 더민주를 만들겠다고 했다. 매력이 있는 정당이 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좋다. 그렇게 하려면 기세등등한 저 주류 함성의 볼륨을 낮추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몸을 던지겠다’고 평소 그답지 않게 비장한 말까지 한 손학규지만 이런 위험한 운동장에 몸을 던질 용기를 낼 수 있겠는가? 스마트한 경기 매너로 새로운 솜씨를 선보이며 지지를 얻어가려고 하는 박원순, 김부겸, 안희정인들 상대편의 문전 실수라는 요행밖에 기회를 만들기 어려워 보이는 경기장에서 어떻게 자기의 기량을 펼 수 있겠는가?

추미애 대표가 할 일은 문재인이 후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경기장을 만드는 것이다. 오해는 하지 않기 바란다. 문재인이 후보가 되지 않아야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래야 더민주의 역동성이 생길 것이다. 지금과 같은 동종교배의 상황에서는 결코 생명력이 나올 수 없다. 다양성과 치열한 경쟁 과정이야말로 더민주 대선후보를 단련시킬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자신의 열성 지지자들에게 배타적인 말과 행동을 자제하라고 한 것은 사태를 바로 인식한 것이라 하겠다. 주류의 함성이 경기장을 압도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경기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런 ‘자제’ 정도로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 것 같지는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몽준과 힘을 합해야만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자신이 후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현기증 나는’ 경선 과정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의 경쟁력이 만들어졌고 그것이 승리로 이어졌다. 노무현이 훌륭한 것은 그가, 몰아치는 돌파능력은 물론 과감한 기획, 그리고 건곤일척의 승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용기를 가졌다는 점이다. 이 가운데 하나는 문재인의 몫이고 하나는 추미애의 몫이다. 추미애 대표가 할 일은 아찔한 경쟁 상황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정치 기획이다. 그저 공정한 경선관리가 아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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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의 집토끼, 산토끼 논란이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유권자 지형의 변화 때문에 생긴, 피할 수 없는 고민거리다. 과거에는 유권자들이 여야 두 편으로 분명하게 갈라져 투표를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쪽도 좋고 저쪽도 좋다고 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났고, 이들은 여당을 지지했다가 손쉽게 야당으로 지지를 바꾸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들을 ‘스윙보터’라고 불렀다. 이들은 우리나라 대통령을 지낸 지도자 가운데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박정희도 좋아하고, 노무현도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사람들은 처음에 이들을 ‘기회주의적 유권자’라고 불렀다. 이들은 정치에 대해 뚜렷한 소신도 없고, 마땅한 지식과 정보도 없으며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들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설명이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까다로운’ 유권자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치에 대해 나름대로 분명한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진영논리에 따라 지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따져서 지지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충분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판단한다는 얘기다.

이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방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각 정당이 유권자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방법은 갈라치기, 몰아붙이기였다. 강력하고 민감한 이슈를 던지고, 전선을 달구고, 지지자들을 동원하면서 동참을 호소하는 것이었다. 지지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으면 엄청난 과오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선택을 강박하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지난 몇 차례의 선거는 갈라치기, 몰아붙이기만 능사가 아니라 끌어안기, 차근차근 설명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상대편 지지자들에게도 수용성 높은 이슈를 내걸고, 전선을 허물면서 폭넓은 동조를 구하는 것이다. ‘공감’을 통해 참여를 설득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갈라치기는 전통적으로 집토끼를, 끌어안기는 산토끼를 잡는 방법이다. 더민주가 김종인 대표를 영입한 이후 추구한 전략은 후자이다. 김 대표는 총선 준비 과정에서부터 이런 기조로 더민주를 이끌어왔다. 더민주는 확장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다수파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내걸면서 이슈관리를 해왔다. 김 대표라는 인물 자체가 그런 노선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했다. 김 대표의 전략 기조는 많은 논란을 수반했다. 김 대표는 더민주가 추구해온 핵심가치라고 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정책의 기조를 수정하자고 했고 그때마다 더민주 내부는 시끄러웠다. 아슬아슬했지만, 그런 시끄러움이 더민주의 역동성을 만든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더민주 지지자들을 일깨우고 지지기반을 확장한 것은 분명했다.

더민주가 전당대회 이후에도 이런 전략 기조를 유지할지는 알 수 없다. 총선 후 전당대회 국면으로 들어오면서 전통적 야당의 지지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다.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당의 전략 기조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누가 더민주의 대표가 되더라도 대통령 선거까지 집토끼, 산토끼 문제는 계속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리고 경쟁자의 전략에 따라 무엇을 강조할 것인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2000년 미 대선에서 부시는 교육, 빈곤, 보건 등 진보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에게 수용성이 높은 온정적 보수주의 이슈를 내걸고 나왔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의 주장을 떠올리게 하는 이슈들이었다. 박근혜 대선 후보의 경제민주화, 복지는 끌어안기 전략이 기조였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진보진영에서는 1996년 미 대선에 나선 클린턴이 세금감면, 범죄퇴치 등 보수 성향을 가진 유권자들에게 수용성이 높은 이슈를 던졌다. 반대로, 2004년의 부시는 동성애 결혼금지, 줄기세포반대 등 폭발성 있는 이슈를 걸고 보수를 결집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세대, 지역, 이념 등 전면적이고 강력한 이슈를 내걸고 지지자들을 결집했다.

더민주는 전당대회 과정에서, 그리고 전대 후에 이런 문제를 잘 정리해야 할 것이다.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집토끼 노선이 ‘정통’이고 까다로운 지지자들을 차근차근 설득하는 산토끼 노선이 ‘이단’이라고 주장할 일도 아니다. 거꾸로 집토끼 노선이 ‘낡은 것’이고, 산토끼 노선이 ‘새 것’이라고 할 일도 아니다. 이런 논란을 할 때 상대에 대한 인신비난을 주저하지 않는 공격성만 조심한다면 더민주의 집토끼, 산토끼 논란은 치열할수록 좋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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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아침, 달콤한 늦잠을 깨운 전화가 왔다. 대구 북구을에 지역구를 둔 무소속 홍의락 의원이다. “성주 가 볼래?” 진작 가보고 싶었지만 ‘외부세력’으로 찍힐까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던 나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샌들에 반바지 차림으로 친구를 따라나섰다. 성주 사람들이 저렇게 절박한 목소리로 사드 배치 반대를 외치는 이유를 듣고 싶었다.

성주는 대구에서 가까운 곳이다. 우리가 탄 차는 곧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산포대’에 도착했다. 이미 중요한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는 터라 경찰과 군이 지키고 있는 바리케이드 세 개를 지나서야 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사드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경북 성주 선산포대 인근에 있는 성주군 선남면 성원1리 마을회관에서 14일 주민이 모여 쉬고 있다. 마을회관에는 이날 오전에 박근혜 대통령 사진이 있었으나 오후에 주민이 떼어냈다. 이 마을은 박 대통령과 같은 문중인 고령박씨 집성촌이다. 연합뉴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산 아래를 내려다보던 우리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외친 말이다. “아니,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어?” 우리는 이곳을 사드 배치 최적지라고 결정한 사람들이 과연 현장을 와 봤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성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살고 있는 시가지가 사드 배치 장소의 ‘발아래’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곳 사이의 거리가 지도상으로는 1.5㎞ 정도라고 하는데 느낌으로는 지척이었다. ‘정서적’ 거리는 더 가까웠다. 사드를 배치할 것이라고 한 그 산은 성주 젊은이들이 계곡에서 가재를 잡고 놀던 뒷산이었다. 산 정상에서 돌을 던지면 데굴데굴 굴러가 닿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거리’에 성주 시가지가 있었다. ‘사드 전자파를 머리에 이고 살란 말이냐?’라는 성주 사람들의 호소는 충분하고도 남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

‘성산포대’를 내려와 성주 군청 앞 광장으로 향했다. 성주 사람들은 자신들의 머리에 이고 살지도 모를 사드의 전자파가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칠지 불안에 떨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사드 전자파 앞에 서서 그것이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에 성주 사람들은 실소를 넘어 분노하고 있다. 저것이 정녕 우리의 국가란 말인가? 군청 마당에서 만난 한 시민은 “그걸 무해 입증이라고 말하다니 우리를 능멸하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해롭지 않다면 지들 집 앞에 사드를 가져다 놓고 십 년이고 이십 년이고 전자파를 쏘이라고 하라지.” 참을 수 없는 노여움으로 시민의 눈에는 금세 눈물이 고였다.

성주 사람들은 정부의 이런 태도가 ‘성주를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이다’라고 해석한다. 성주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영이 있는 곳이며,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에게 86%의 몰표를 보낸 곳이어서 정부가 이처럼 무리하게 밀어붙여도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판단을 바탕으로 성주에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그 점에 대해 성주 사람들은 격분하고 있다. 성주군의회의 한 의원은 ‘믿고 지지했던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까지 ‘박근혜’라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을 흘린 사람입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아버지를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머리를 깎고 띠를 두른 성주군의회 백철현 의원의 말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을 신주처럼 모시던 어느 마을 할머니들이 벽에 붙여놓았던 박 대통령의 사진을 내려버렸다는 얘기를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덧붙였다. 성주 사람들은 ‘설명 준비도, 경호 준비도 없이’ 불쑥 성주를 찾아와 ‘상주시민 여러분’이라고 잠꼬대를 한 황교안 국무총리나 한민구 국방장관을 ‘과격행동 유발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정부와 신문·방송들이 성주 사람들을 고립시키려는 계략으로밖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주 사람들의 걱정처럼 정부와 일부 언론은 성주를 외부세계와 차단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 것 같다. 지역이기주의, 외부세력의 개입, 폭력, 색깔론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성주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분노하면서도 의연하게 받아넘기려고 하는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을 조용히 꾸짖고 있다. 성주의 어머니들이 만든 파란 평화의 나비들이 성주를 넘어 훨훨 날갯짓하고 있다. 성주 사람에게 가장 하고 싶은 얘기가 뭐냐고 물었다. “우리의 저항은 사드가 성주에만 들어오지 않으면 된다고 하는 지역이기주의가 아닙니다”라고 했다. “우리의 주장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 입니다.” 어떤 외부세력의 주장이 아니라 평생 1번을 찍으면서 성주에서 살고 있는 머리 하얀 어른의 조용하지만 단호한 말이다. 별 성(星), 고을 주(州). ‘별 터’라는 고운 이름으로도 불리는 성주의 사드 배치 반대운동은 평화운동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일요일 저녁 7시 군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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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대한민국에 있는 도시들 가운데 가장 큰 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그 자체이다.” 서울은 대한민국 그 자체라는 말은 1960년대에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책을 쓴 그레고리 헨더슨의 얘기다. ‘서울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초집중체제를 헨더슨이 본다면 뭐라고 할까? 놀라서 졸도할지 모른다. 우리가 ‘서울공화국’이라고 부르는 서울, 인천, 경기의 면적은 남한 국토 면적의 겨우 11.8%이다. 이곳에 국민의 절반 가까운 인구가 살고 있다. 어디 인구뿐이랴. 내로라하는 회사의 대부분이 이곳에 있고, 절반 이상의 돈이 여기에서 돌고 있다. 좋다는 대학들은 다 이 지역에 있다. ‘사람은 낳아서 서울로 보내라’는 경구는 여전히 유효하여 젊은이들에게는 ‘인’서울이 오매불망의 꿈이 되고 있다.

전북 남원시 대강면 인근 4차로로 확장 완공된 고속도로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공화국’을 제외한 나머지 도시들은 어떤가? 정반대의 모습이다. 대한민국 두 번째 도시, 세 번째 도시라고 자랑하던 부산과 대구의 몰골은 초라하다. 이 도시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 그냥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이 대거 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 호남의 주요 거점인 광주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돈도 사람도 기회도 떠나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비유한다. 서울공화국은 영양과잉으로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고 있는 반면,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은 영양부족으로 시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초집중체제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이런 것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서울공화국에 사는 사람들은 집값도 비싸고, 공기도 나쁘고, 교통도 혼잡해서 힘이 든다고 말한다. 반대로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좋은 학교도 병원도 없고, 사업을 하려니 돈 구할 데도 없어서 힘이 든다고 말한다. 서울공화국과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의 차이가 점점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두 개의 나라, 두 개의 국민’이 있다는 자조까지 있다. 이런 형국이 바람직하지 않은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기 때문이다. 서울공화국으로 자원이 집중되고 나머지 지역은 텅텅 비어가는 불균형의 확대는 모든 도시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그것은 또한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 분명하다.

역대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균형발전 정책을 실시했다. 그 가운데 돋보이는 업적은 단연코 노무현 정부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해 균형발전을 도모하려고 했다. 이에 따라 작년까지 거의 모든 공공기관이 이전을 완료했다. 공공기관을 이전하면서 전국 십여 곳에 혁신도시를 건설했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은 서울공화국이 아닌 지역 발전에 마중물 역할을 할 것 같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은 좋은 정책이었으나 여러 광역자치단체에 골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서 너무 파편적으로 자원을 분산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서울공화국에 견줄 만한 어떤 실질적 힘을 만들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런 비판은 타당한 것 같다. 우리가 서울공화국이라 부르는 자원의 초집중체제를 수정하는 일종의 국가재구조화의 필요성은 모두가 바라는 일인데,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과 혁신도시 건설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비전을 만들 것인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최근 모색되고 있는 하나의 비전, ‘남부경제권만들기’는 그런 문제의 해답일 수 있다. 서울공화국이라는 일극체제를 일단 양극체제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 비전이 초집중체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아니겠는가라는 의견이다. 남부경제권만들기란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광주, 전남, 전북을 아우르는 경제공동체를 가꾸자는 것이다. 이 지역의 인구는 대략 2000만명이다. 서울공화국에 겨룰 만한 규모다. 이 지역 광역자치단체들이 힘을 합쳐서 그럴듯한 초광역적 비전을 만들어본다면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희망의 단서를 찾을 것 같다.

최근에 광주와 대구를 잇는 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됐다. 철도로 남부지역을 연결하는 계획도 추진되고 있다. 새로운 공항을 만들자는 구상은 일단 어긋났지만 그것도 남부경제권만들기라는 균형발전 비전의 틀 속에서 더 다듬을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의 경제발전 전략을 짜서 남부경제권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원의 초집중체제, 즉 서울공화국 일극체제를 양극체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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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성남시장의 광화문 단식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이 시장의 문제 제기는 국가의 지방재정 개편 정책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싸움은 일파만파 커질 가능성이 크다. 지방자치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재명 시장의 말처럼 지방자치는 김대중 대통령이 살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키웠다. 그런데 밑으로부터 ‘자치’의 물결이 일어난 적은 없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몇 차례 지방자치 발전 과제를 들고 나와 목소리를 높이기는 했으나 번번이 좌절하고 말았다. 자치분권운동은 지방정치인의 힘에 기댄 거간정치 수준을 넘지 못하였던 터라 지방정치인들이 퇴각하면 허둥지둥 그 뒤를 따르고 말았다. 지방정치인들은 기세를 올리다가도 공천 날짜가 다가오면 하나 둘 꽁무니를 뺐기 때문에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투쟁은 물결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 주말, 이 시장의 단식을 지지하기 위해 모인 수만 명의 시민들을 보면서 이번에는 뭔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시장은 간단히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고 시민들의 함성은 힘이 넘쳤다. ‘지방’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지방자치의 시대정신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 시장의 저항은 지방재정 제도를 왜곡시키지 말라는 것인데, 지방자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국가와 지방의 관계에 대한 인식의 틀이 바로잡히기를 바라고 있다. 국가와 지방의 관계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생각의 틀이란, ‘국가가 지방을 만든 것이 아니라 지방이 모여 국가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지방의 힘만으로 하지 못하는 일을 하려고 국가를 만든 것이라는 말이다. 이를 ‘보충성의 원리’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국가-지방의 관계는 이런 원리와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단지 운영의 편의를 위해 약간의 권한을 지방에 나누어주고 있는 형국이다.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자치를 폐지한 후, 국가와 지방의 관계는 그렇게 뒤집힌 상태로 유지되어왔다.

민주화 과정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단식으로 지방자치를 부활시킨 것은 그런 관계를 바로잡아놓겠다는 뜻이었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지났다. 그러나 국가와 지방의 관계는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을 주민의 손으로 뽑고, 이를 견제할 지방의회도 주민의 손으로 구성했지만 ‘자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까마득하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선출하도록 했으면 ‘지방’이 자신의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이 자신의 뜻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보잘 것 없다. 조직, 재정, 인사 등에서 지방은 ‘자치’를 한다고 말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에 반대하는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_ 경향DB


국가가 온갖 생색을 내면서 넘겨주었다는 것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최악의 경우이지만, 과제는 떠넘기면서 그것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권한과 돈은 주지 않아 지방이 골탕을 먹고 있는 누리과정 사업과 같은 복지서비스가 그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의 모든 권력은 국가에 있다. 그리고 그 권력이 소재하는 곳에 돈, 사람, 일자리, 문화, 기회가 동심원을 이루며 모여 있다. 그곳을 우리는 중앙이라고 말한다. 중앙은 권력의 정점을 말하는 동시에 그 권력이 놓여있는 장소를 가리킨다. 그 ‘중앙’과 짝을 이루는 것이 ‘지방’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이란 말은 별 볼 일 없는 것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쓰인다. 지방을 ‘식민지’라고 한 강준만 교수의 지적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지방이란 말에는 편견과 차별의 의미가 잔뜩 묻어있다. 술자리와 같은 모임에서 주목을 요청하기 위해 ‘지방방송 꺼라’는 말을 쓴다. 그런데 왜 하필 ‘지방’방송인가? 여기에서 ‘지방’이란 쓸데없는 것, 중요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이런 말은, ‘지방’이란 뭔가 모자라는 것이라는 편견을 강화하고, 권력도 자원도 없는 ‘지방’의 현실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그냥 들어 넘길 수 없다.

‘지방’대학이라는 말도 그렇다. 수도에 소재하지 않은 대학을 굳이 ‘지방’대학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모두 ‘지방’대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만 ‘지방’대학이라는 말을 쓰는가? 지방의 재발견이라는 말은 그저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분명히 ‘지방’에 대한 잘못된 생각의 틀이 있고 그것과 맞물려 있는 잘못된 구조적 현실이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광화문 단식이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 정책에 대한 저항을 넘어 ‘지방’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틀과 구조적 모순을 바로잡는 풀뿌리민주주의 혁명의 물결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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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은 자유당, 공화당, 민정당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흐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정당들은 공통점이 있다. 모두 정치권력의 장식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정당이 만들어져서 권력을 취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정당이 조직됐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을 위해 만든 조직이었다. 정당이란 무릇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권력을 쟁취하는 조직이라고 정치학 교과서는 말하고 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자유당은 이미 만들어진 정치권력을 유지, 정당화하기 위해 급조한 정당이었다. 이승만은 자신의 재선에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기제로 자유당을 설립했다.

공화당은 5·16쿠데타 세력이 폭력으로 권력을 잡은 후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거기관으로 만들어졌다. 군부는 먼저 중앙정보부를 만들었고, 중앙정보부가 공화당을 만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취한 유사민간화 통치 방식을 가리켜 ‘군복 위에 양복을 걸쳐 입었다’라고 하는데 공화당은 바로 그 군복 위에 걸쳐 입은 양복과 같은 것이었다.

민정당은 전두환, 노태우를 비롯한 신군부가 12·12군사반란, 5·17쿠데타 등 두 차례의 군사적 행동으로 정권을 차지하고 나서 그 기반을 만들기 위해 조직한 것이었다. 민정당과 공화당이 다른 점이 있다면 공화당은 중앙정보부가 만들었고 민정당은 보안사가 만들었다는 것뿐이다. 경쟁자인 야당의 정치활동을 묶어놓고 국가기관이 비밀리에 민정당을 만든 과정은 공화당의 설립 과정을 따라 했을 것이 분명하다.

창당과정이 이러하니 대통령은 집권여당을 존중할 까닭이 없다.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 고무도장이었고 허수아비였다. 대통령의 결정을 추인하는 기관이었고 표를 모으는 도구였다. 집권여당이 대통령의 뜻을 잘 따르지 않을 경우,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괴롭힐 수단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보기관을 시켜서 뒷조사를 하고 조리돌림을 하기 일쑤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그 후,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관계는 조금 달라졌다. 몇 가지 환경 변화 때문이었다. 민주화는 정당의 운영에도 영향을 미쳐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과거와 같이 다스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집권여당은 야당과 협상을 통해 의회를 운영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일 수만은 없게 됐다. 정치적 이종교배(異種交配)로 인한 정당조직의 역동성도 환경변화의 하나다. 집권여당은 수차례에 걸쳐 보수야당, 심지어는 진보정당의 일부 세력을 흡수했다. 동종교배는 열성유전을 낳고, 이종교배는 그 반대라는 말처럼 집권여당의 조직은 과거보다 역동적이 됐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대통령은 집권여당을 하수인으로 부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런 흐름을 되돌려 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 새누리당 인사는 새누리당으로 간판이 바뀌면서 집권여당 내부의 역동성이 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과 국정운영을 상의하지 않았다. 당·정·청 협력은 이벤트로도 하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는 인사 참사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새누리당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와 같은 위기 및 갈등 관리 과정에서도 대통령은 새누리당에 어떤 역할을 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을 도구적 가치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기회만 있으면 박 대통령은 왜 자신을 뒷받침해주지 않느냐고 새누리당을 질타한다. 박 대통령에게 새누리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기동대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배신자라고 규정하고 찍어낸 일이나 국회의원 후보 공천 과정에서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을 밀어넣기 위해 진박소동을 불사하는 일은 새누리당을 하인으로 여기지 않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 참패의 원인도 새누리당을 속죄양으로 만들어서 정리했다.

국회의원들이 탄 출근 버스를 통째로 끌고 가서 이승만의 말을 듣도록 겁박했던 자유당 때 이야기나, 박정희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국회의원들을 잡아다 콧수염을 뽑으며 모멸을 주던 공화당 때 이야기, 그리고 전두환과 군인들의 기고만장이 하늘을 찔러 고위 장교들이 술잔을 집어던지며 국회의원들을 두들겨 팼던 민정당 때 이야기와 요즈음 겪고 있는 새누리당 이야기는 뭐가 다른가 싶다. 총선 패배 후 새누리당의 쇄신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혁신위원회 구성이 박대통령을 보위하려는 그룹의 방해로 파행이 됐다. 박 대통령이 남은 재임 기간에 생각과 태도를 바꿀 가능성이 없다면 새누리당의 실패는 예정된 일이다. 새누리당은 지금 막다른 골목에 와 있는 것 같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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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길거리에 한 청년이 이한열 열사의 영정을 들고 서 있다. 가슴을 누르는 역사의 무게 때문인지 몸을 가누기조차 힘겨워 보인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우상호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그 청년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국회의사당 발코니로 자리를 옮겨 우뚝 서 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가 되었다.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를 필두로 ‘86그룹’의 부상이 드디어 주목을 받고 있다. ‘드디어’라고 말하는 것은, 이 그룹의 동향은 오래전부터 정치사회에서 관심거리였기 때문이다.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정치사회에 진입한 이들은 다른 어떤 그룹보다 강한 단결력을 보였고, 진보적 비전의 담지자를 자임하면서 대오를 형성해왔다. 따라서 이 그룹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한국 정치의 미래를 가늠하는 흥미 있는 관전 포인트가 아닐 수 없다. 지지부진한 정치사회에 의미 있는 흐름이 될지, 아니면 그렇고 그런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지.

현재로서는 기대만큼이나 걱정도 큰 것 같다. 이 그룹이 걸어온 길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그룹 스스로 고백한 바이기도 하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패배한 다음해 봄, ‘86그룹’이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진보행동의 성찰과 민주당의 혁신방안’이었다. 총선·대선 패배 후, 책임 떠넘기기로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성찰을 자임한 토론회는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여기에서 ‘86그룹’은 자신들의 부족함에 대해 반성한다고 했다. 용기 있는 발언이었다.

무엇을 반성한다고 하는지 들어보았다. ①정치혁신의 실패 ②독자적 비전과 아젠다 설정의 실패 ③국민의 신임 약화 ④총선·대선 패배의 책임이라고 했다. 정곡을 찌르는 자기성찰이었다. 2000년, 2004년 총선부터 야당을 혁신할 젊은피로 수혈되었던 이 그룹에는 이미 좋지 않은 별명이 붙어 있었다. ‘숙주정치’라는 말이 그것이다. 뚜렷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지도 못하면서 기존 계파정치에 편입되어 좋은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는 조롱이었다. ‘86그룹’은 자신들을 폄훼하는 그런 말까지도 흔쾌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당내 권력구조 속에서 하청정치를 했다는 표현도 스스럼없이 했다. 그리고 중대선언을 발표했다. ‘계파정치’의 청산을 위해서 먼저 자신들의 모임인 ‘진보행동’부터 해산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486이라는 과거 인연으로 모임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 인터뷰_연합뉴스

쉽지 않은 얘기였다. 훌륭했다. 그러나 ‘때늦은 성찰’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해체 선언으로 새로운 흐름이 다양하게 나타나기를 바란다고 말했으나 여의도에서는 아무런 흐름도 생기지 않았다. 그동안 무수히 제기됐던 ‘86그룹’에 대한 비판과 기대를 생각하면 이러한 성찰은 때늦은 것이 분명했다. 그 선언에 공감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진정성 있는 것으로, 혹은 실효성 있는 것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너무 먼 미래’였다. ‘86그룹’ 자신들도 진보행동을 해체한다고 선언하는 계파활동의 ‘현장부재증명’만으로 정치사회가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86그룹’은 계파활동의 현장부재증명만 제출하고 지금까지 ‘잠수’했다. 더민주가 겉과 속이 뒤집어지는 혼란을 겪고 있을 때도 이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86그룹’에 거는 기대만큼 염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 그룹이 낡은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우월감을 가지고 있다든지, 그래서 남을 가르치려고 한다든지, 순혈주의를 내세워 기득권을 끼리끼리 나누어 갖는 자폐집단이 됐다든지, 비전은 어디 가고 연줄관계만 남아 있는 빛바랜 깃발만 들고 있다든지, 이런 따가운 비판에 제대로 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우상호 원내대표가 ‘운동권을 넘어선 운동권’을 만들겠다고 천명한 것은 그런 시선에 대한 답으로 적절하지만 과연 잘할 수 있을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운동권을 넘어선 운동권’을 만들지 못한 것은 최장집 교수께서 일찍이 지적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라고도 볼 수 있다. ‘86그룹’이 바리케이드의 정치에서 이룬 성과를 발코니의 정치에서도 잘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86그룹’에 그런 기대는 아예 하지 말라는 사람도 있다.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전하는 말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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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보다 더 나쁜 것은 독선이다. 정치에서는 그렇다. 독재는 정치의 한 유형이지만 독선은 정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 의견은 옳고 자기와 다른 것은 그르다고 하는 순간 정치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독재보다 더 나쁜’ 그 무엇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이번 총선 참패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나의 길을 가겠다는 듯하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는 그저 참조사항일 뿐, 국정운영 기조나 리더십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어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는 하지 않으면서 역사와 대화하겠다 하고, 선거의 평가는 외면하면서 역사의 평가를 받겠다고 한다면 그는 독선의 지경에 이른 것으로 봐도 좋다. 이런 상태의 대통령은 대개 자신이 ‘외롭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한 심리학자는 이와 같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에 대해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이며, ‘맡은 일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설명한다. ‘권력의지 결핍’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동의하기 어렵다. 정반대로, 박 대통령은 ‘권력의지 과잉’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역사의식만이 올바르며, 자신의 애국심만이 정당하며, 자신의 행동만이 공평무사하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손으로 그것을 이루겠다는 각오도 대단하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애간장이 타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은 ‘애국심’에 가득 차서 ‘역사와 대화’하고 있는 박 대통령에 대한 설득전략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며칠 전 만난 한 새누리당 인사는 문제의 중심에 있는 박 대통령이 변화할 가능성이 없으며 새누리당은 속수무책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없을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운데)와 원유철 원내대표가 4월 14일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해단식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_연합뉴스

새누리당 중앙여성위원회는 ‘총선에서 책임 있는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석고대죄부터 하자’는 주장을 한다. 그런데 이런 식상한 이벤트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되풀이하는 구태정치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외부에서 초빙하여 새누리당의 운명을 맡기자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런 외주정치는 야당에서 이미 실험을 한 바 있으나 성공한 모델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외부인사에게 당의 쇄신을 위탁하는 것은 대증요법으로서 반짝 효과는 있겠지만 체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과거 일부 야당이 했던 것처럼 저명한 대학교수를 모시고 와서 새누리당을 이끌어달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그리 좋은 방도는 아니다. 그렇게 해서 그럴듯한 결과가 나온 사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실험은 모두 ‘교수에게 자문은 맡기되 결정은 맡기지 말라’는 격언을 확인했을 뿐이다.

새누리당이 박 대통령의 협량하고 경직된 보수노선을 넘어서 보수혁신을 추구하고, 친박 비박 권력투쟁이 만들어놓은 아수라장을 정리하고, 여소야대 권력구조에서 국정을 운영하고 싶으면 눈을 내부로 돌려볼 것을 권한다. 지방정치에서 꽃피고 있는 협치의 리더십을 주목해보라는 얘기다. 서울시장 박원순, 경기지사 남경필, 제주지사 원희룡, 충남지사 안희정, 대구시장 권영진.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이 다섯 명의 지방정치 리더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종의 협치 경쟁을 하고 있다. 이들은 지방정치, 관료, 기업, 대학, 노동, 시민사회 등의 마음을 모아 지역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와 비판세력,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까지 손잡고, 협력을 통한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정책 또는 계획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이들이 보이고 있는 협치의 리더십은 우리 정치가 대결과 진영의 정치로부터 상생과 신뢰의 정치로 변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확인해주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새로운 정치의 희망은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 피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소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방정치에 새로운 정치의 단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지난 주말 한 새누리당 인사에게 했더니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권주자로 키우라는 얘깁니까? 비대위원 시키라는 얘깁니까? 그런 거까지는 모르겠다. 일과가 끝난 조용한 시간에 원희룡, 남경필, 권영진을 올라오라고 해서 협치라는 게 뭔지, 그걸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세히 물어보도록 박 대통령께 권해보라는 얘기다. ‘독재보다 더 나쁜’ 그 무엇에 빠져있는 박 대통령을 설득할 전략이 없다고 하니 드리는 말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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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마지막 쟁점으로 이번 선거운동은 막을 내리는 모양이다. 새누리당의 친박 공천 소동으로 요란하게 시작하여,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사이의 야권연대 얘기로 실속 없이 시끄럽다가, ‘호남의 향방’에 대한 관심을 끝으로 선거운동은 종을 치고 있다. 이런 재미없고 의미 없는 선거가 어디 있나 싶다.

문 전 대표는 호남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정치적 기회를 포기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며 호남을 두 차례나 방문하였다. 방문의 효과는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선거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만한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반발을 불러일으켜 부작용을 낳을 거라는 걱정은 일단 덜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가 해결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들 사이의 불화의 원인을 어떤 사람은 ‘감정’의 문제로 설명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정체성’의 문제로 해석을 한다. ‘이익’의 문제로 그것의 본질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문 전 대표의 처방에는 이런 것들이 섞여 있다. 이를테면, 참여정부가 호남을 홀대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이 시기에 임용된 호남 출신 고위직 인사들의 명단을 돌린 것은 ‘이익’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는 것이고, 5·18묘역에 무릎을 꿇는 의례는 ‘정체성’의 질문에 부응하려는 것이다. 호남이 인정하지 않으면 정치를 떠나겠다고 한 것은 ‘감정’에 호소하는 것인 듯하다.

이들 사이의 불화를 헤게모니 투쟁의 일환으로 보는 사람들은 1987년 이후 민주화를 함께 이끌어왔던 ‘호남과 리버럴 연합’의 해체로 해석한다. 야권의 지배를 둘러싼 두 헤게모니 분파의 연합에 균열이 생기고 이것을 통합하는 리더십이 없어서 정치적 파탄을 맞게 되었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는 말이다. 문제가 ‘호남과 리버럴 연합’이 주도권을 다투느라 엎치락뒤치락하는 것이라면 이들을 포용하면서 공정하게 다루어갈 수 있는 리더십과 경쟁의 제도가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고민은 이런 것들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호남과 리버럴’이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 독해(讀解)의 아쉬움이다.

첫째, 리버럴 측의 아쉬움이다. 리버럴은 호남을 여타의 지역주의와 같은 차원에서, 여러 지역주의 가운데 하나로 인식을 한다는 것이다. 호남의 지역주의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역사, 구조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호남의 지역주의를 그저 ‘낡은 것’이며, 일거에 ‘타파해야 할 그 무엇’으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5·18민중항쟁 추모탑에 분향한 뒤 참배하고 있다_연합뉴스

그런데 알다시피, 호남지역주의는 영남지역주의의 선행적이고 공격적인 자극에 대응하느라 생겼다. 호남지역주의는 방어적이며 수세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영남지역주의는 정치적 권위주의와 결합한 것에 비해, 호남지역주의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결합하였다. 리버럴은 호남지역주의의 이런 역사, 구조적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것 같았다. 열린우리당 시절 리버럴이 호남지역주의를 ‘난닝구’라고 호명하였던 것이 대표적 사례다. ‘난닝구’란 구태정치의 상징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둘째, 호남 측의 아쉬움이다. 우리나라의 지역주의는 영남의 선행 원인에 의해 생성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만들어진 후에 영남지역주의와 호남지역주의는 ‘거울효과’를 통해 서로를 강화해 간다. 마주 세워놓은 두 개의 거울은 서로의 모습을 되받아 끝없이 이어지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남·호남지역주의는 서로를 보면서 끝없이 강화된다.

따라서 지역주의의 해결은, 그것의 발생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제공한 순서에 따라 결자해지를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동시에 거울을 깨야만 한다. 거울효과와 동시해결의 원칙이 지역주의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 영남지역주의에 대해 발생사적 책임을 규탄하거나 결자해지를 요구하는 것은 영토적 보수주의처럼 지역주의를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호남과 리버럴의 불화는 오랫동안 쌓여온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호남과 리버럴이 각자 가지고 있는 지역주의 인식의 아쉬움을 인정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리버럴은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가 영남과 호남의 대결이라는 평면적 인식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는 호남 배제, 호남 고립화이며 호남지역주의는 그것에 대응하는 방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호남은 우리나라 지역주의 문제의 해결은 그것의 발생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결자해지를 요구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와 호남의 불화는 한 정파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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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