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후보자 추천이 끝났다. 복기해 보자. 각 당의 공천전략 목표는 무엇이었고 그것을 얼마나 달성했는가?

새누리당의 목표는 ‘안정’이었다. 야당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서, 여당은 절차 관리를 안정적으로 잘하면 승리는 따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향식 국민경선은 그러한 목표를 실현해 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더민주의 목표는 과감한 ‘교체’였다. 선거마다 패배를 거듭한 정당으로서 뭔가 변화를 보여주어야 할 절실한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갈이를 할 수 있는 컷오프 시스템을 제도화했다. 국민의당의 목표는 무엇보다 ‘혁신’이었다. 양대 정당의 기득권과 싸우겠다는 세력으로서 기존 정치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인물들을 내세워야 했다.

이런 목표를 가지고 추진되었던 세 당의 공천과정은 어떻게 되었나? 모두 웃음거리로 마무리되었다. 새누리당의 공천과정은 찍어내기, 꽂아 넣기 등으로 처음부터 어수선하더니 끝내는 옥새 파동이라는 전대미문의 자해 소동으로 정리되었다. 새누리당의 공천은 박 대통령의, 박 대통령에 의한, 박 대통령을 위한 것이었다. 집권 초기 당내 분파 투쟁의 실패를 뒤집기 위한 박 대통령의 자기 사람 심기가 공천 과정의 처음과 끝이었다. 그 결과 박 대통령의 사람들이 승리는 했으나 적어도 공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만큼은 새누리당은 온전한 정당이 아니었다.

더민주도 시스템 공천을 한다고 자랑했으나 공천과정은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정무적 판단으로 얼룩이 졌다. 공천과정에서 더민주는 정당의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을 했다. 선출되지 않은 사람에게 정당의 가장 중요한 결정 권력인 공천권을 아무 조건 없이, 전부 주었다. 그뿐 아니다. 그 선출되지 않은 사람은 정당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권한까지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실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믿기 어려운 일들이 정통야당을 자처하는 더민주에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사연이야 다 아는 일이지만 이 상황에서만큼은 더민주 역시 이것을 과연 정당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했다.


더민주 비례대표 선정 결과_경향DB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넘어서는 제3세력이 되겠다고 하였으므로 당연히 새로운 인물들로 국민들을 감동시킬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국민의당은 실제로는 혁신이 아니라 세력화를 추구했다. 이런저런 명망가들을 모으는 데 급급했고 현역 국회의원이면 뛰어나와 환영했다. 새로 만들어진 정당이니 책임감이나 안정감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이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국민의당의 공천과정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은 분명했다. 공천을 받은 사람들 사이의 동질성도 문제가 있어 보였기 때문에 이 당 역시 온전해 보이지 않았다.

정당이란 비슷한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집단이고 공천과 같은 당내 의사결정은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헌법의 가치가 이번 공천과정에서는 무색해져 버렸다. 이런 정당들이 다수당이 되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집권하게 되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든다. 권력자로부터 자율성을 가지고 있지 못한 정당, 내부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정당,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정당이 국가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그것은 재앙이 아니겠는가?

공천과정이 이렇게 되었으므로 앞으로 진행될 선거운동 과정도 불을 보듯 뻔하다. 비전 대결은 사라지고 밑도 끝도 없이 치고받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런 혼란들은 과도기적인 것이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까? 새누리당은 대통령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국민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더민주는 의사결정을 민주화하여 패권적 당 운영이 없어지고, 국민의당은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서 정당구도를 재편할 수 있을까? 비관적이다. 이번 공천과정에서 우리나라 정당정치는 십여년 전으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제왕적 총재가 지배하고, 패권적 분파들이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고, 구성원들의 가치는 잡탕이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평가다. 이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할지 모른다.

상황이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데 또 이런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다. “유권자 여러분, 그래도 우리가 투표에 참가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믿을 것은 유권자의 힘입니다. 선거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덜 나쁜 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투표에 참가해서 정치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투표장에 가지 않으면 가장 나쁜 것에 의해 지배를 받습니다.” 여당도 야당도 보기가 싫어서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자신의 한 표가 어떤 변화의 힘이 될 것이라고 하는 믿음, 즉 정치적 효능감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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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경북지역에서 교수 노릇을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동진’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의 ‘전국정당화’ 정책을 지켜보았다. 동진정책은 밀라노프로젝트에서 보았듯이, 예산을 내세우면서 이 지역의 상층 토호들을 공략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 민주개혁 세력들이 적잖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전국정당화 정책은 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이 지역 출신 인사들을 국정운영에 적극 등용하였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끝난 후에도 이 지역 정치에 계속 남아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주의 극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았던 두 대통령의 정책은 일정한 성과가 있었으나 이런 한계도 있었다. 두 정책 모두 이 지역에서 ‘정당’ 조직과 인재를 육성하지 않고 청와대의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한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완장을 찬 사람들이 ‘민원해결사’ 노릇을 하면서 ‘특수이해와 충성의 교환’을 통해 지지기반을 만들려고 했는데, 권력을 잃자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문제는 지금이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에는 한계가 있었으나 나름 ‘전략’을 가진 접근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전략’은커녕 문제의식조차 없어 보인다. 가끔씩 이 지역을 다녀가는 정치지도자들이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그것이 ‘전당대회용 사탕’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 홍의락 의원이 25일 국회에서 탈당 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도중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다._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서 지역주의와 힘겹게 대면하고 있던 홍의락을 공천 배제한 것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즉 ‘전략이 없는’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홍의락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역주의의 아성을 공략하고 있는 김부겸은 그것이 ‘아군을 쏜 오인사격’이며, ‘뒤에서 얼음 칼을 꽂는 격’이라고 분노했다. 홍의락은 아예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지난 4년 동안 자신의 활동에 대한 ‘아군’의 평가가 ‘집에나 가라’는 말에 다리가 완전히 풀렸다. 그에게는 좌절과 모멸이라는 말조차 사치스러운 것이다. 더 이상 서 있을 힘조차 없기 때문이다. 4년 전, 그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자마자 보따리를 싸들고 더불어민주당의 최전선 대구로 내려왔다.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었다. 지역주의 문제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정당에서 최전방 소대장을 자임한 것이었다.

그는 아군의 총질이 ‘오인사격’이 아니라 차라리 ‘조준사격’이었으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하는 것 같다.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을 ‘집으로 보내는’ 결정이 어떤 분명한 전략적 의도와 목표를 가지고 한 일이라면 ‘알았다’ 하고 집으로 가겠는데 그게 아니니 더 갑갑한 노릇이라는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당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실 걱정은 국회의원의 활동을 계량 평가하여 그것으로 일부를 공천 배제한다는 결정을 할 때부터 있었다. 이 제도를 만든 분들의 최대 관심은 공천제도의 ‘공정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파 패권주의의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으로서는 공정한 공천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가장 큰 문제의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적실성이 있느냐에 대한 고민은 깊이 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이 이 점수를 공천배제 판단의 ‘자료’로 삼았으면 모르겠으나 이 점수를 기계적으로 적용하여 컷오프를 하면서 사고는 예상되었다. 이것 역시 공정성 강박을 가지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트라우마가 낳은 결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치적 판단을 중지해버린 정치집단으로서 직무유기를 면책받을 것 같지는 않다. 홍의락을 컷오프하겠다는 결정을 할 때, 그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홍의락에게 컷오프를 알려준 분의 말씀이 ‘공천배제 결정에 대한 이의제기는 부질없다. 합산은 정확했다’라고 했단다. 이거야말로 세상 물정 모르는 ‘양반집 도련님’의 말씀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 심각한 걱정거리는 더불어민주당에 대구·경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에 대구·경북은 사석(捨石)인가, 아니면 사석(死石)인가? 바둑에서 큰 집을 얻기 위해 버리는 돌인가, 의미 없이 죽이는 돌인가? 홍의락을 쓰러뜨리고 김부겸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어놓은 것이 ‘잘못’이라고 하면서도 지난 두 주일 동안 아무런 조치도 없이 내버려두고 있는 정말 생각 없는 ‘아군’ 더불어민주당에 드리는 질문이다. 김대중의 동진정책, 노무현의 전국정당화 정책의 발끝도 못 따라가는 생각 없는 ‘아군’에게 정중하게 드리는 질문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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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무능하고, 안철수는 이기적이어서 헤어졌다. 두 사람의 지도력이 신통치 않아서 야권이 분열됐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론적 설명보다는 “지지자 지형의 구조적 특성이 변화해 그들을 하나의 그릇에 담기 힘들어서 나누어진 것이다”라는 구조론적 설명이 더 그럴듯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야당은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가치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어려움을 겪었다. 오른쪽으로 보수여당이 대표하는 가치를 제외하고, 왼쪽으로 진보정당이 대표하는 가치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대표하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나머지 정당’이라는 별명도 얻고 있었다.

이렇게 넓은 범위의 가치를 하나의 그릇에 담으려고 하다 보니 내부는 항상 시끄러웠다.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를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당이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왼쪽 지지자들이 떨어져 나가고, 왼쪽으로 돌면 오른쪽 지지자들이 이탈했다. 그래서 지지율은 항상 초라했다. 이럴 경우는 헤어지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설명이 구조론의 주장이었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헤어진 직후,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고 각각의 지지기반이 다시 활성화돼 이런 설명을 뒷받침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두 지도자가 각자자신의 지지기반을 동원하고 필요할 때 손을 잡는 것이 야권 전체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는 전망과 제언이 나오기도 했다. 문재인은 진보적 지지자들을 동원해내고, 안철수는 중도적 기반을 이끌어내면서 야권 전체를 역동적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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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하는 일을 보면 걱정이 조금씩 생긴다. 이럴 거면 왜 헤어졌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북한체제 궤멸과 전통야당의 정체성이라고 할 햇볕정책의 한계를 거침없이 천명하는 반면, 국민의당은 개성공단 전면 폐쇄와 사드 배치에 반대 입장을 결연히 밝히고 있다. 입장이 단단히 뒤바뀐 느낌이다. 그뿐 아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참여정부 시절 한·미 FTA 추진 책임을 맡았던 김현종 본부장을 영입했다. 문득 2007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해 3월이었던 것 같다.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천정배 의원, 열린우리당 의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김근태 의원, 그리고 열정의 초선 임종인 의원이 국회의사당 건물 안팎에서 단식 농성을 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김현종 본부장을 앞세워 추진하던 한·미 FTA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것이 가져올 양극화와 서민생활 파탄을 걱정해 단식을 시작한 것이었다. 임종인 의원은 며칠 후 단식으로 인한 장출혈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 갔고, 천정배 의원은 무려 25일간의 단식을 계속해 보는 이의 마음을 졸였다.

세 사람의 단식이 한·미 FTA 체결을 저지하지는 못했지만, 그 후 2011년 가을, 야당 국회의원들은 국회 본관 계단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한·미 FTA 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목숨을 건 단식을 했던 천정배 의원과 임종인 전 의원은 지금 국민의당으로 가 있고 한·미 FTA 추진의 선봉이었던 김현종 본부장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들어갔다. 야당의 기존 당론도 한·미 FTA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이 가져올 심각한 문제들을 차단하자는 것이므로 천정배 의원과 김현종 본부장과의 차이는 심각한 게 아니라고 할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무시할 수 있는 차이는 아닌 것 같다. 따라서 양쪽의 엇갈린 행보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엇갈린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뒤죽박죽 정당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이럴 거면 왜 헤어졌나?’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해야 할 일은 각자의 다른 지지자와 정당이 적절한 정체성을 기초로 재정렬(realignment)하는 것이다. 그래서 잡탕정당이라는 오명을 벗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문재인과 안철수의 이별이 정치발전의 역사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 지금 두 당의 모습을 보면, 선거 승리를 위한 전술적 필요 때문에 마구잡이로 영입을 하고 그 결과 정당의 가치와 비전이 모호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정당은 자신이 대표하고자 하는 가치를 분명히 하고 거기에 맞는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서로 결합하도록 틀을 짜기 바란다. 두 정당은 이별을 ‘재정렬’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왜 헤어졌느냐는 조롱을 받게 될 것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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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의원이 대구의 한 출마자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유승민 의원을 격하게 비판했다. ‘대통령의 뒷다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그는 종주먹을 들이대며 이 지역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야단쳤다. ‘대통령이 어려울 때 뭘 하고 있었느냐?’ 유승민 의원이 한 일이 대통령의 뒷다리를 잡은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 잘되라고 한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지만, 최경환 의원 자신은 이 지역의 민심을 파악하는데 헛다리를 짚은 것 같다. 최 의원은 이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부추기려 했던 모양인데, 지역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은 대통령을 왜 잘 모시지 못했느냐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살림살이를 왜 이 꼴로 만들어놓았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을 배출한 이 도시의 지역총생산은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전국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 도시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최 의원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최근 젊은 시장이 나타나 침체한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려 하고는 있다. 그러나 이 도시에 드리워진 잿빛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사정이 이럴진대 최 의원은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 타령이나 하면서 ‘진박’이 필요하다 외치고 있으니 시민들로서는 그의 말이 고까울 수밖에 없다.

최 의원이 ‘지역 사정이 이렇게 어려운 것에 책임감을 느낀다. 함께 이를 이겨나가자’라고 하면서 ‘마침 대통령과 특별히 가까운 사람들이 있으니 이들이 지역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넌지시 ‘진박’을 추천했더라면 대구시민들은 자존심이라도 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다짜고짜 대통령 이름을 들먹이며 윽박지르듯이 ‘진박’을 추천하니 이런 교만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 지역여론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지난 30일 대구 북구 복현동 하춘수 예비후보(대구 북구갑)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_연합뉴스


대통령을 보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는 것이 시민들 사이의 중론이다. 정말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를 걱정하는 것이라면 ‘진박’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이른바 험지에 출마하여 새누리당의 의석을 늘리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공천만 받으면 땅 짚고 헤엄쳐도 당선이 되는 곳에 와서 꽃가마를 타려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진박’의 진의에 대한 의심이다. 과연 대통령을 위한다고 하면서 배지나 달려는 사람들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을 들먹이며 저렇듯 으름장을 놓는 최경환 의원은 2008년 ‘친박연대’와 2016년 ‘진박연대’의 차이를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다. 2008 친박연대는 소위 공천학살을 당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던 정치인 박근혜에 대한 연민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살아서 돌아오세요’라고 한 애절한 메시지는 그래서 힘이 있었다. 그것이 2008 친박연대가 뜻밖의 성과를 거둔 이유다.

그런데 2016 ‘진박연대’는 무시무시한 대통령의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유승민 의원을 배신자로 단죄했고, 곧이어 자신에게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진실한 사람이라고 호명했다. ‘배신자-진실한 사람’이라는 인지심리학적 틀은 대통령의 위력으로 만들어졌다. 대통령이 대구를 방문하면서 이 지역 국회의원들을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이 틀은 확고해졌다. 그러나 이 틀은 인지심리학적 소구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배신자-진실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은 사실상 ‘공포의 동원’이며, 우격다짐이기 때문이다. 2008 친박연대의 힘이 간절한 호소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면, 2016 진박연대는 대통령의 권력으로 내리누르는 것이다. 2016 진박연대가 성공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누가 진실한 사람인지 대통령이 인증서를 써 줄 수도 없으니 누가 진박인지를 확인할 길도 없는 터라 급기야는 ‘진박 감별사’를 자임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그 순간 ‘진박연대’는 대구 지역을 넘어 전국적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어떤 지역에서는 특명을 받았다는 ‘진박’이 나중에 나타난 ‘진박’에게 밀려 다른 지역으로 날아간 일도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온갖 ‘진박’이 날아든다는 새타령 패러디까지 나돌고 있다. 2016 ‘진박연대’ 소동은 소극(笑劇)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리고 이것으로 가장 체면이 구겨질 이는 박 대통령이다. 왜냐하면 이 프레임을 만들고 이 소동을 자초한 분이 박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진박연대’ 소동으로 대통령이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새누리당의, 아니 새누리당 한 분파의 지도자로 비칠까 걱정이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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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의 정치구조 때문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 자신이다. 지역주의의 발생은 대구·경북에 의한 선행적 공세로 형성되었고, 호남 지역주의는 방어적 대응으로 나온 것이 분명하다. 구조적으로 한쪽의 지역주의는 권위주의와, 다른 한쪽의 지역주의는 민주주의와 결합해 있다. 그리고 지역주의가 일단 만들어지고 나서부터는 ‘거울효과’에 의해 심화되고 있다. 두 개의 거울을 마주 세우면 상대편 거울에 비친 모습을 되받아 끊임없이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 만들어내는 것처럼 지역주의도 그런 효과에 의해 재생산되고 강화되고 있다. 이것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이 만들어온 데칼코마니이다.

최근 눈길을 끄는 것은 요즈음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이 만들어내고 있는 또 다른 빛깔의 데칼코마니이다. 두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이 또한 닮은꼴을 이루고 있다는 얘기다. 가장 눈에 띄는 데칼코마니는 김부겸-이정현이다. 김부겸은 대구·경북에서, 이정현은 광주·전남에서 지역주의 구조를 넘어서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무모해 보이던 도전의 시작도 뜻밖의 성과도 두 사람의 노력은 닮았다. 이정현은 새누리당의 깃발을 들고 호남 땅에서, 김부겸은 더불어민주당의 깃발을 들고 영남 땅에서 뛰고 있다. 두 사람은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맨땅에 머리를 박고 있다’는 말로 비유하는데 그 모습이 처연하다. 이 두 사람의 간절한 호소가 받아들여진다면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이 만든 지역주의 구조는 금이 가게 될 것이고, 그리하여 두 지역은 정치적 다양성의 맛을 보게 될 것이다.


유승민 의원이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_연합뉴스


다른 하나의 데칼코마니는 유승민-천정배다. 이 두 사람이 추구하는 바는 구조 내의 변화다. 유승민과 천정배는 각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진영이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각각의 주류로부터 고초를 겪고 있다. 배신자로 내몰림을 당한 것도 닮았다. 유승민은 원내대표 자리에서 찍어내기를 당하고 지금 공천을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를 상황에 놓였다. 천정배는 광주시민들의 지지로 무소속 당선을 하기 전까지 온갖 수모를 겪어야 했고 지금도 앞날을 알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두 사람의 정치적 의미는 각자의 지역에서 경쟁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나태와 안일에 빠져있는 각 진영을 일깨우며 분발과 변화를 촉구하고 각 진영 내에서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 두 사람의 닮은 역할인 것 같다.

마지막 하나의 데칼코마니는 권영진-윤장현이다. 대구시장과 광주시장인 두 사람은 구조의 혁신을 꿈꾸고 있다. 이 두 사람은 지역주의 구조의 무기력과 비능률에 도전하고 있다. 두 사람의 목표는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의 협력이다. 두 사람이 함께 들고 있는 깃발은 달구벌(대구)과 빛고을(광주)의 첫 글자를 딴 ‘달빛동맹’이다. 작년 2월 윤장현 광주시장이 대구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횃불인 2·28민주운동기념식에 참석했고, 5월에는 권영진 대구시장이 광주를 방문하여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십자가인 5·18민주화운동기념식에 참석했다. 이 두 사람은 지난 연말 손을 꼭 잡고 여야를 찾아다니며 예산투쟁을 했다. 광주지역 예산이 어려움에 처하면 권영진 대구시장이, 대구지역 예산이 어려움에 처하면 윤장현 광주시장이 설명에 나섰다.

막걸리 냄새나는 김부겸-이정현, 대쪽 같은 유승민-천정배, 사려 깊은 권영진-윤장현. 스타일까지도 비슷해 보이는 이들이 각 지역에서 하는 역할은 수준이 각기 다르다. 김부겸-이정현은 구조 자체의 변화에 도전하면서 정치적 다양성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실천이다. 유승민-천정배는 구조 내에서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데 모두 진영 내부의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 권영진-윤장현은 가장 낮은 수준이기는 하나 가장 실질적인 실천을 하고 있다. 두 지역 사이의 협력을 통해 효율성을 제고하자는 것이다.

이런 데칼코마니가 대구·경북과 광주·전남에서 동시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지역주의가 만들어놓은 무사안일과 나태, 무책임을 넘어서고자 하는 두 지역 시민들의 간절한 소망과 노력이 꽃피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계속되고 있지만 새로운 도전과 상상력으로 이들이 만들고 있는 정치실험이 성과를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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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머무르고 있던 작가 목수정이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와 ‘청년들이 좀 이상해’라고 했을 때(<야성의 사랑학>, 2010), 사람들은 그의 특별한 감수성이 ‘참 재미있다’라고만 생각했다. 그가 말한, ‘암컷을 따라다니는 수컷도, 수컷을 유혹하는 암컷의 모습도 찾아보기 힘든’ 한국 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심각하게 걱정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청년들의 멘토를 자처하는 어른들은 거짓 선동만 일삼고 있었다. “청년들이여, 도전하라. 진취적인 젊은이가 되어라.” 그 말은 제법 그럴싸했다. ‘소년이여 야심을 가지라’라는 말을 밤낮으로 듣고 자란 청년들은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격언만 믿고 열심히 외국어능력 기록을 경신하고, 스펙을 쌓았다. 서점에는 이를 위한 자기경영개발서가 넘쳐났다. 청년들은 초시계를 옆에 두고 시간을 관리했다.

그러나 청년들이 이 말의 허구성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른들의 말에는 ‘힘든 현실의 책임은 청년 개인들의 탓으로 돌리는’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었다. 구조적 모순을 은폐하는 담론이었다.

도전해도 기회를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안 청년들이 다시 실의에 빠져있을 때 새로운 멘토가 나타났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청년문제 해결의 책임을 청년 자신에게 떠넘기던 이전의 멘토와 달리 새로운 멘토는 청년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청년들 사이에 선풍이 불었다. “힘들지? 너희들의 어려움을 잘 안다. 우리 어른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 같다.” 달콤한 위로에 청년들은 열광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 때문에 서점 문턱은 불이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위로는 위로일 뿐이었다. 청년들의 힘든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취업도 포기하고 사랑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계속 늘어났다. 구조적 모순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져 가고 있었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속까지 정치적인>의 저자 목수정씨가 책쓰기에 얽힌 이야기와 함께 문화예술, 정치 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_경향DB


그래서 청년들이 스스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청년 자신들이 희망을 찾아 나섰다. 2013년, 한 대학에 붙은 대자보가 일파만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하나의 신호였다. ‘안녕들 하십니까?’ 수줍은 표정의, 그래서 착하게만 보이는 한 학생이 소박하게 이웃 학생들에게 안부를 묻고 나선 이 글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첫째, 소박한 ‘말 걸기’ 방식 때문이었다. 빛나지도 않은 장소에, 투박한 손 글씨로, 수줍은 듯 던진 새로운 소통방법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둘째는 청년 자신들이 스스로 ‘공감 구하기’에 나섰다는 점 때문이었다. 안녕하지 못한 학생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또래 학생들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한 것이 반향을 일으켰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발전이었다. 자신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집단적 자각을 촉구하는 말 걸기였다.

이거야말로 청년문제 해결의 열쇠인 것 같다. 청년이 믿을 것은 청년 자신의 힘뿐이다. 2016년 새해 아침에 쏟아져 나온 ‘청년 담론’을 보니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와 주요 언론들이 앞다투어 청년문제를 띄우고 있는데 그 대안들이 대부분 그간에 나온 거짓선동과 달콤한 위로를 되풀이하는 것들이다. 한 방송사가 제작한 특집 프로그램은 청년문제의 해법을 ‘청년정신’이라고 하면서 청년정신은 ‘도전과 혁신’이라 맺고 있다. 그간의 책임 떠넘기기 담론을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대안도 달콤한 위로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안녕들 하십니까?’ 이후, 청년들이 자신들의 희망 찾기에 스스로 나서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더 많은 청년들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헬조선을 냉소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지난날 청년들은 자유, 민주, 평화의 수호자를 자임했다. 바리케이드 넘어 권위주의 정권을 향해 짱돌을 날렸다. 청년들은 이제 다시 짱돌을 들어야 한다. 청년들이 들어야 할 짱돌은 최루탄을 향해 바리케이드 넘어 날리던 그 돌이 아니라 ‘종이돌멩이’(paper stone)를 말한다. 즉 투표용지다.

이제 정치의 장은 거리의 바리케이드로부터 의사당의 발코니로 옮겨갔으며, 가장 중요한 정치의 수단은 투표용지가 되었다. 투표용지를 민주화운동 시기에 날렸던 짱돌에 비견하여 종이돌멩이라고 부른다.

청년들이 다시 짱돌을 들어야 한다는 말은 투표용지를 들자는 것이다.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당들이 청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러 가지 공약을 제시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짱돌을 들지 않으면 그것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릴


김태일 |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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