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1998년 대구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뒤 대통령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국가와 국민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쩌다 시장이나 공장, 노숙자쉼터 등 소외되고 어려운 서민을 찾아갔던 것은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한번 얼굴을 비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가 입만 열면 신뢰를 강조한 것도 사실은 저 스스로도 저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며, 행여 국민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까 두려워 선수를 친 것이었습니다.

목표했던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정말 원 없이 놀았습니다. 원래 지킬 생각이 없었던 공약은 잊으려 노력했고, 제가 해야 할 국정과제는 최순실이 챙기도록 했습니다. 대신 피부 관리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의 얼굴이니만큼 좋은 피부를 보여드리는 게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정치인의 여정에서 단 한번도 부정부패에 연루되지 않은 적이 없었고, 주변의 비리에 한없이 관대했습니다. 1년만 더 버티면 임기를 마칠 수 있는데, 순실이의 국정농단이 탄로 나는 바람에 탄핵심판을 기다리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거짓말을 워낙 자주하다보니 이젠 입만 열면 저절로 거짓말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탄핵을 앞두고 제 소회를 말씀드릴까 합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저는 원래 말을 잘 못합니다. 하다 보면 주어와 동사가 헷갈리고, 엉뚱한 데서 목적어가 튀어나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제 빈약한 언어능력을 국민들에게 들킬까봐 토론을 한사코 거부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미리 준비된 대본이 없으면 일절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았고, 꼭 해야 하는 연설은 프롬프터를 그대로 읽었습니다. 질의응답을 할까봐 서둘러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연설문 작성에 있어서 순실이의 의견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가 특검에서 ‘공황장애’를 ‘공항장애’로 쓰는 걸 보면서 괜히 물어봤다는, 늦은 후회가 듭니다.

다음으로 재단설립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버지가 기업들로부터 돈을 뜯는 장면을 인상 깊게 본 탓인지 저는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부터 기업의 돈을 갈취할 욕심이 있었습니다. 국위선양이나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보다는, 최순실의 이익이 곧 대통령의 이익이라며 기업 회장을 협박했습니다. 기업인들도 경영권 승계라든지 감방에 있는 회장이 사면된다든지 하는 선물을 받았으니, 이건 서로 윈-윈이라고 생각한 점도 있습니다. 게다가 저는 대통령이라 임기 중 어지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특검이 저를 뇌물죄로 엮으려는 걸 보면서 세상 참 빡빡해졌구나 싶어 한숨이 나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대통령이 됐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이제 중소기업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순실이 제게 KD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현대차에 납품할 수 있게 하라고 했을 때, 저는 그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최순실의 지인이 경영하는 회사이고, 관련수석에게 “반드시 성사시켜라”라고 전달한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은 보좌진의 의견을 듣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하지만 의견을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으며, 현명한 판단과는 담을 쌓은 제가 촌각을 다투는 그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보좌진 역시 큰 사건이 터져도 제게 보고하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후회스러운 점은 중대본에 도착해서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라는 말을 한 것입니다. 슬픈 표정으로 입을 닫고 있으면 될 것을, 그 말로 인해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만인이 알아버렸습니다. 제가 검찰과 특검, 헌재에 아예 나가지 않은 것도 그때 얻은 교훈 때문입니다. 침묵이 금이라는 옛말은 곱씹을수록 명언입니다.

국민 여러분, 저는 정치인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진 자들이 더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라 믿고 살아왔습니다. 이 땅의 모든 젊은이들이 학교 졸업 후 비정규직이 될 수 있게 돕고, 우리 후손들이 아이 낳기가 두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제가 책임지고 해야 할 사명으로 생각하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왔습니다.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이는 과감하게 빨갱이로 몰고, 블랙리스트에 올렸습니다. 혹시 탄핵이 기각돼 제가 대통령을 더 하게 된다면, 남은 임기 동안에도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을 하면서 국가적 혼란을 가중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과 깊은 혜량을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주 필자가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주어로 해서 쓴 가상 칼럼입니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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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탄핵은 검찰, 국회, 언론, 종북 세력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서울디지텍고등학교 곽일천 교장이 지난 7일 종업식에서 학생들을 앞에 놓고 했던 말이다. 정권의 하수인이라 불리는 검찰, 박 대통령의 충복인 새누리당이 다수당인 국회, 보수의 지분이 많았던 언론이 그간 배척해 마지않던 종북세력과 힘을 합쳐 음모를 꾸몄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태블릿PC가 최순실의 것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다음 말을 들으면 진짜 음모를 꾸미는 이가 누구인지 짐작이 간다. 80%의 국민이 탄핵을 지지하는 이 순간에도 저들은 뒤집기 한판을 꿈꾸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중이니까. 모든 것은 다 고영태가 벌인 일이라느니 트럼프가 탄핵을 반대했다느니 하는 내용의 가짜뉴스는 그 결정판이다. 엊그제는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이 대선주자들을 모아놓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심판결정에 승복할 것을 약속하는 합동서약을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는데, 이걸 보면 드디어 저들이 뒤집기 문턱에 다다른 것 같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게 생명이다.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그 의견을 지지하는 이의 숫자가 적다고 해서 다수의 힘으로 무시해서는 안되는 게 민주주의다. 그렇다면 15%에 불과한 박사모의 저 난리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의견의 다름에도 정도가 있으며, 박사모의 지금 언행은 다름이 아닌, 틀림이다. 소수의견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해서 검은 개를 흰 개라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도 믿어줘야 하는 건 아니니까. 한국 정치가 지금 이 수준밖에 안되는 이유도 박사모의 틀림이 ‘다름’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다. 죄목은 선거에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되도록 많은 의석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선거법 중립 의무를 위반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국민들은 탄핵반대를 외치며 광화문에 모였다(이들을 A라고 하자). 반면 탄핵찬성을 주장하는 측은 태극기를 흔들며 광화문 한쪽을 차지했다(이들을 B라고 하자). 여기서 박 대통령과 노 대통령의 죄목을 바꿔서 반응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상해 보자.

1번. 2004년, 노 대통령이 측근인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사익추구를 적극 도왔다는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된다. 그랬다면 A가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노빠’로 불리는 적극적 지지층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A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은 느낄 줄 안다. 그러니 아무리 노무현을 사랑하더라도 광화문에 나와 탄핵반대를 외치진 않았을 것이다.

2번. 2016년, 박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과반, 최대 200석까지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던 더불어민주당에 의해 탄핵당한다. 이 경우 A는 광화문에 나가 탄핵반대를 외칠까? 노빠와 박근혜의 관계로 보건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최소한 A는 탄핵찬성을 외치진 않을 것이고, 여론조사에서도 탄핵에 반대표를 던지리라. 왜? 겨우 그 정도 가지고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한다는 건 다수당의 횡포일 뿐, 결코 민의가 아니니까. 반면 과거 노무현의 죄가 탄핵사유라고 주장하던 B는 지금 그보다 천만배가량 더 큰 죄를 지은 박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돼야 한다고 외치는 중이다.

전문용어로 이런 태도를 ‘내로남불’이라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뜻인데, 원래 ‘빠’들은 어느 정도 이런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박사모의 내로남불은 해도 너무한 감이 있다. 민주주의를 완전히 파괴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마치 정상적인 대통령처럼 보이게 만든 희대의 최악 대통령을 옹호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작년에 열린 촛불집회에서 한 초등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기 나와서 이런 얘기 하려고 초등학교 가서 말하기를 배웠나. 자괴감이 들고 괴로워서 밤에 잠이 안 옵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준 권력을 최순실에게 줬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 된 게 자괴감 들고 괴로우면 그만두세요.”

그렇다. 논쟁이란 뭔가 좀 애매한 구석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사실을 “그건 다 조작이다”라고 소리치는 건 한심한 일이다. 명색이 교육자인 교장이 학생들이 다 모인 종업식에서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탄핵이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열린 사람인 양 질의응답까지 하는 모습에선 역겨움까지 느껴진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아무리 심해도 넘어서면 안되는 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무 거리낌도 없고, 죄의식도 없이 쉽게 하는 걸 보면서 한국정치의 현주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지난 1월25일, 박 대통령이 정규재 주필과의 인터뷰 도중 한 말이다. 정말이지 아무리 심해도 넘어서면 안되는 도가 있는데, 아무 거리낌도 없고 죄의식도 없이 쉽게 그 도를 넘는 그 세력으로 인해 한국정치의 현주소가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박 대통령과 박사모에게 이 말을 다시 돌려주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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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일 지면기사 내용입니다-

이왕이면 착하게 사는 것이 좋겠지만, 삶이라는 게 꼭 자기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충동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의도야 어쨌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우리는 범죄자라 부른다. 범죄자를 유형에 따라 분류하면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수한 범죄자. 인간의 본능상 범행 후 붙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긴 했지만, 제정신이 들면 대개 자수하고 싶어진다. 하기야, 남은 생애를 언제 붙잡힐까 고민하면서 사는 것보다, 죗값을 치르는 게 훨씬 더 떳떳하지 않은가? 자수는 경찰에게 좋은 일이고, 자수했다고 법원이 형량을 줄여주니 범인에게도 좋다. 2016년 8월, 나와 성이 같은 29세 서모씨는 금은방에 들어가 금팔찌를 보여 달라고 했다. 서씨는 주인이 팔목에 금팔찌를 채워주자마자 도망쳤는데, 그 금팔찌가 30돈 상당이었으니 600만원 정도 되겠다. 하지만 폐쇄회로(CC)TV가 사방에 깔려 있는 시대에 서씨가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는 없었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서씨는 범행 한 달 만에 경찰에 자수하고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는 길거리에서 검거됐을 확률이 높고, 수갑을 차고 팔목이 꺾인 채 경찰서로 끌려왔을 테니, 자수하는 게 훨씬 좋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둘째, 붙잡히자마자 자백한 범죄자. 경찰서에 끌려간 뒤 한사코 범행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자백만 안 하면 풀려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기 때문이지만, 이러면 서로 피곤하기만 할 뿐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범죄자는 범행을 실토할 때까지 취조를 받아야 하고, 경찰은 증거를 찾아나서야 하는데, 이렇게 힘을 빼느니 미리 자수해서 예쁨을 받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많은 범죄자들이 그래서 이 길을 택한다. 선후배 2명과 공모해 BMW 차량을 개울에 고의로 추락시켜 5400여만원의 보험금을 받은 일당이 있었다. 범행에 성공하자 또 다른 BMW 중고차를 구입해 고의사고를 내 2300여만원을 탔는데, 재미가 들린 이들은 2015년 3월 고장난 BMW를 구입해 개울에 빠뜨렸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들은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사건의 성격상 자백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지만, 결국 범행 일체를 자백한다. 세 명이 모두 범행을 부인하는 건 쉽지 않았을 테니, 자백하는 게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셋째, 경찰이 증거를 제시한 뒤에야 자백한 범죄자. 모든 증거가 다 자신을 가리키는데도 자백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가 인간말종이라는 것만 입증해 줄 뿐, 상황이 나아질 게 없다. 그러니 순순히 죄를 인정하고 형을 받는 게 무난한 길이다. 올해 1월, 부인을 살해하고 시신을 불태워 차와 함께 유기한 남편이 있었다. 경찰은 진작 남편을 용의자로 판단해 조사했지만, 그는 부인이 죽은 것도 몰랐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 뒤 남편은 도주했다가 다시 잡히는데, 그래도 그는 “절대로 아내를 죽이지 않았다”고 우겼다. 경찰은 남편이 도주한 코스를 답사하다 아내를 태울 때 쓴 기름통을 발견했고, 여러 사람의 증언도 확보했다. 명백한 증거 앞에 버티는 건 쉬운 일이 아닌바, 남편은 결국 자신이 아내를 살해했음을 자백한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된 지난해 12월9일 박근혜 대통령이 위민관에서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재하며 모두발언을 마치고 메모를 살펴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넷째, 경찰이 증거를 제시해도 자백하지 않는 범죄자. 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타입으로, 자신의 범죄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 그 비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워낙 사이코패스다 보니 등장할 때마다 사회 전체를 뒤흔든다. 2017년 현재, 대한민국은 간만에 나타난 사이코패스형 범죄자로 인해 시끄럽다. 그는 자신의 범죄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한사코 부인했고, 그 이후 태블릿PC를 비롯해 수많은 증거와 관련자들의 진술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은 죄가 없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금 30돈 상당의 팔찌를 훔친 수준이 아니라 대기업과 공모해 1000억원 가까운 돈을 뜯어낼 정도로 규모가 크고, 지위가 지위니만큼 비리가 굉장히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자신의 직무가 정지되는 처벌을 받았지만, 그로 인해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엮였다”느니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기획한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느니 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뱉는다.

대통령도 인간인지라 본의 아니게 범죄에 연루될 수 있다. 그럴 때 죄를 인정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다면 국민들이 그렇게까지 자괴감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숱한 증거 앞에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증인들을 빼돌리고 위증을 교사하며, 고의로 수사를 지연시키는 등 온갖 추한 모습을 다 보이고 있는 중이다. 대통령의 품격은 고사하고 범죄자의 품격도 갖지 못한 그분 때문에 우리는 연말을, 연초를, 그리고 명절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이건 약과일지도 모르겠다. “탄핵이 기각되면 국민의 힘으로 언론과 검찰이 정리될 것이다”라는, 그분이 인터뷰 도중 했다는 말로 짐작건대, 어쩌면 우리는 대한민국을 잃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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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 이 나라에선 거짓말의 향연이 펼쳐졌다. 그들의 거짓말에 처음엔 화가 났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무감각해졌고, 나중에는 누가 거짓말을 더 잘하는지 따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이 글은 그러니까 내가 선정한 거짓말 왕에 대한 보고서다.

5위. 박근혜 대통령

거짓말의 포문을 연 것은 박 대통령이었다. 이분은 세 차례 간담회와 올해 초의 신년간담회까지, 총 4차례나 거짓말 리사이틀을 벌였다. 심지어 담화 중에 했던 ‘죄송하다’는 말 역시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이분의 순위가 낮은 것은 거짓말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실을 말하긴 쉽다. 자신이 겪은 대로 얘기하면 되니까 말이다. 거짓말은 그렇지 않다. 사실이 아닌 말로 다른 이들을 설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알리바이는 물론이고 이전에 했던 발언과 아귀가 맞는지 매 순간 따지지 않으면 안 되니 말이다. 박 대통령은 거짓말을 하겠다는 의욕은 넘쳤지만, 아쉽게도 역량이 모자랐다. 그의 거짓말을 떠올려 보자. 설득과는 무관한, 그냥 우기는 수준에 불과했다.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식의 말에 속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4위. 우병우 전 민정수석

우병우는 영주가 낳은 천재다. 늘 1등만 독차지했다. 검사장 인사에서 물을 먹기 전까지 승진에서도 늘 동기들 중 선두를 달렸다. 이런 그를 4위에 놓다니, 우병우가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청문회에서 우병우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어느 한 질문에도 머뭇거림이 없이 척척 대답하는 그를 보면서 “역시 천재구나!”라고 감탄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자신은 최순실을 모르고 장모에게 물었더니 장모도 모르더라는 답변이랄지, 2014년 세계일보 보도 이후 정윤회 문건을 수사하지 않은 이유가 검찰 수사에서 허위로 판명났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그 백미였다. 하지만 그의 거짓말은 타고난 재능이 아닌, 벼락치기 공부에 의해 이루어진 느낌이었다. 청문회장에서 답변하는 우병우를 보고 있노라니, 예상질문을 다 뽑고 그에 따라 무수히 연습한 사람의 모습이 그려졌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노력만으로는 재능을 이길 수 없다는 점에서 그는 4위가 맞다.

3위. 김경숙 전 이화여대 학장

부끄럽게도 난 청문회 전까지 김경숙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하지만 청문회 이후 난 그의 팬이 됐다. 무슨 거짓말을 그렇게 진짜같이 하는지. 김경숙은 시종 당당했고, 국회의원과의 말싸움에서도 한 치도 밀리지 않았다. 장제원 의원이 “답변 듣지 않겠다”고 해도 계속 답변을 하는 패기를 보라! 교육부 감사에서 다른 이가 했던 증언을 들이대도 “사실무근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김경숙의 표정은 거짓말의 달인이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줬다. 감히 말하건대 이건 타고난 재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올해 특검에 나갈 때 보여준 초췌한 모습은, 내가 그의 팬이 된 걸 후회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2위.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선의 거짓말은 위에서 열거한 이들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질문 요지와 무관한 답변으로 질문자로 하여금 뒷목을 잡게 했는데, 심지어 자신이 방금 인정한 얘기를 재차 물어봐도 엉뚱한 답변을 하는 장면은 신기 그 자체였다. 우병우에게마저 “식사하셨습니까?”라는 따뜻한 말을 건넸던 김경진 의원은 결국 이성을 잃고 막말을 해버렸다. “어이 장관! 몰랐어, 알았어?” “언제 어떻게 확인했냐고! 계속 물어보는데 그 답변을 못해?” 조윤선이 블랙리스트를 인정하도록 만든 이용주 의원은 그 답변을 얻기 위해 같은 질문을 17번이나 해야 했는데, 조윤선이 조금만 더 버텼다면 이 의원의 생명이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1위. 김기춘 전 비서실장.

위에 열거한 분들도 다 쟁쟁한 분이지만, 그래도 최고는 김기춘이다. 최순실을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알지 못합니다. 만난 일도 없습니다. 통화한 일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는데, 리듬을 붙여 노래하듯 말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거짓말을 즐긴다는 얘기다. 물론 그는 만사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건 거짓말 하수들의 우기기 전략일 수 있지만, 그의 뛰어난 점은 다른 이들과 달리 자기 자신을 속인다는 점이었다. 간첩사건을 조작하면서 “인권을 유린하고 고문했다면 제 자신이 이 자리에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이쯤 되면 거짓말탐지기를 써도 잡아내지 못할 것 같은데, 지난 40년 동안 거짓말을 하다 보니 삶 자체가 그냥 거짓말이 된 것 같았다. 아쉬운 점은 그가 나이가 많아 거짓말을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행히 우리에겐 정유라가 있다. 아직까지 보여준 게 많지 않은 유망주이지만, 20대 초반에 벌써 이 세계에 뛰어들었다는 게 강점이다. 유망주에겐 좋은 스승이 필요한 법, 정유라가 귀국한다면 김경숙, 조윤선, 김기춘과 한방에 수감하자. 일찍부터 이들에게서 배운다면 장차 김기춘을 뛰어넘는 인물로 자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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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들의 자괴감을 높여 주기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준 또 다른 긍정적인 영향은 세월호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바꿔줬다는 점이다. 최순실 게이트가 공론화되기 전까지 세월호에 대한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이제 그만 좀 우려먹어라, 지겹다. 둘째, 유족들이 돈 더 받으려고 저러는 거다. 셋째, 교통사고인데 무슨 진상규명이 필요하냐. 넷째, 인양하지 마라. 돈 아깝다. 모든 이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을 통해 표출되는 여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정부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때문이었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공모관계가 밝혀진 이후 세월호는 다시금 조명되기 시작한다. 사건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혹은 세월호가 어떻게 침몰했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 대해선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는데, 이유인즉슨 검찰 수사로 인해 밝혀진 침몰 원인인 과적과 급변침에 대해 대부분 수긍했기 때문이었다.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배를 고의로 침몰시켰다는, 소위 인신공양설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여기에 동조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작년 말, ‘자로’라는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이 2년의 노력 끝에 ‘세월X’라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했다. 무려 8시간49분에 달하는 이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자로와 그를 도운 김관묵 이화여대 교수의 노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자로는 그간 발표된 침몰 원인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세월호를 가라앉힌 진짜 이유에 접근해 나간다. 일단 급변침은 침몰 원인이 될 수 없다. 방향을 그 정도 틀었다고 해서 배가 넘어진다면, 우리나라 해역은 침몰하는 배들로 인해 연일 난리가 날 것이란다. 또한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세월호의 복원력은 그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면 과적이 원인일까? 세월호 운항일지를 보면 사고 당일보다 3배 가까이 물건을 실은 날도 있었단다. 자로가 존경스러운 점은 사소한 주장을 할 때조차 관련된 증거를 산더미처럼 제시한다는 데 있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결과가 인용되기도 하고, 언론보도나 검찰수사 자료, 그리고 <세월호 그날의 기록>이라는 책이 동원된다. 과적이 원인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자로는 세월호 당일 배에 화물이 실리는 폐쇄회로(CC)TV를 동원하기도 한다. ‘이 많은 자료를 다 어떻게 구했을까?’라는 감탄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노력 끝에 자로가 본 진실은 ‘외력’이었다. 사고 당일 세월호는 충격과 함께 45도로 기울었다. 3층 로비에 있던 양승진 선생님(실종)은 이 충격으로 바다로 튕겨 나가기까지 했는데, 이건 급변침으로 인한 침몰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실제로 세월호 생존자들 중 ‘쿵’ 소리를 들은 이가 많다고 하니, 이게 전혀 근거 없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그 외력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고 장소가 바다인 만큼 암초나 다른 선박일 수밖에 없는데, 사고 당시 세월호 주위에는 둘 다 없었다고 발표된 바 있다. 자로는 그걸 잠수함이라고 추정한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레이더에 나타난 괴물체가 그 증거다. 원래 이 물체는 세월호에서 떨어진 컨테이너라고 발표됐다. 하지만 자로는 이것이 컨테이너가 아닌, 나름의 동력을 가진 물체라고 주장한다. 레이더에 따르면 그 물체는 독자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레이더에서 사라졌는데, 이렇게 할 수 있는 물체는 잠수함밖에 없단다.

그렇다고 자로가 자기주장이 맞다고 일방적으로 우기는 것은 아니다. 자로는 말한다. 자신의 주장도 하나의 가설일 뿐이며,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 나온다면 기꺼이 잠수함 주장을 철회하겠다고. 보다 정확한 진실을 알기 위해 자로가 원하는 것은 세월호의 인양이다. 무엇인가에 부딪혔다면 세월호의 어딘가에 그 흔적이 남아있을 테니 말이다.

2016년 해양수산부 장관은 “올해 인양에 성공하겠다”고 여러 번 밝힌 바 있지만, 결국 세월호 인양은 해를 넘겼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인양에 별 뜻이 없는 게 아니냐 의심한다. 그간 인양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데다 상대적으로 기술력이 떨어지는 상하이샐비지를 인양업체로 선정한 사실은 의심을 증폭시킨다. 중국업체인 만큼 인해전술로 배를 빨리 인양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인양이 언제쯤 될지 오리무중이다. 오히려 이들은 배에 130개의 구멍을 뚫는 등 선체를 훼손하고 있는데, 이러다간 배를 인양해도 침몰 원인을 찾지 못할 수도 있다.

혹자는 자로의 영상을 또 다른 음모론으로 치부한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음모론은 진실의 당사자가 뭔가를 자꾸 숨기려고 할 때 만들어진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7시간에 대해 갖가지 음모론이 나오는 것도 당시 행적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다 사실이 드러나면 그제야 인정하는 청와대의 석연치 않은 태도 때문이 아닌가? 세월호 침몰에 대한 음모론이 부담스러우면 하루빨리 배를 인양하자. 그리고 과학자를 포함한 검증단을 만들어 침몰 원인을 재조사하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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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국정조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날,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대통령과 단둘이 만나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었다. 이 부회장은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간 대화를 나눴다고 대답했다. 안민석 의원이 말한다.

“대통령의 머리로는 창조경제에 대해 30~40분 동안 이야기할 만한 그런 지식이 없으세요. 무슨 얘기 했습니까, 30~40분 동안?”

새누리당은 ‘금도를 넘는 인신공격’이라고 비난했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없다시피 했다. 안 의원의 발언에 대부분 동의했기 때문이리라. 대통령이 3차례에 걸친 대국민담화를 하면서 질문을 받지 않은 것,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도 질의응답을 통해 자신의 지적 수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잖은가?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아는 게 없어도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걸 박 대통령이 보여준 덕분일까. 고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뒤 사인을 해줄 때 장래희망을 꼭 묻는데, 대통령이 꿈이라는 학생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다. 나라를 잘 만들어 보겠다는 뜻을 가진 이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대통령만 한 ‘꿀직업’이 없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인 듯하다.

첫째,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관저에 있다가, 가끔 집무실에 나와서 남이 써준 원고를 읽기만 해도 2억1200만원의 연봉이 꼬박꼬박 입금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통령은 일어나시면 그게 출근이고 주무시면 퇴근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관저에서 태반주사를 맞든 미용시술을 하든, 아니면 드라마를 보든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꿀직업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더 놀라운 것은 5년을 이렇게 놀아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예우를 받는데, 그게 자그마치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연금과 비서관 3명, 운전기사 1명이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둘째, 충성스러운 부하가 많다. 세월호 침몰 당시 대통령의 대처는 크게 잘못됐다. 대통령의 지적 수준으로 보아 일찍부터 대책본부에 나와 있었다고 결과가 크게 달랐을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국가적 재난 때라도 자리를 지키라고 그런 대우를 해주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7시간이나 자리를 비웠다면 욕을 먹어도 싼데, 그 공백을 입증해줄 수많은 증인들이 하나같이 입을 닫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 대변인의 활약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지경인데, 그날 오후 대통령이 머리를 올리면서 보고를 받았다는, 자신도 안 믿을 말을 해명이랍시고 해대는 그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셋째, 지인에게 한턱 크게 쏠 수 있다. 친하게 지내는 지인에게 선물을 주면서 폼을 잡고 싶은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다. 하지만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사정이 여의치 못하기 때문인데, 대통령이 되면 지인이 바라는 바를 다 들어줄 수 있다. 특히 좋은 점은 자기 돈을 전혀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이라더라”는 한마디로 공직자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고, 관저로 재벌 총수를 불러서 몇 마디 하면 수십억, 아니 수백억원의 돈이 생긴다. 나중에 걸리면? 걱정하지 마시라. 몰랐다고 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넷째,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매일이 휴가지만, 그래도 다들 휴가 가는 여름이 되면 또 놀러 가서 모래사장에 낙서를 하는 것, 이게 바로 대통령의 행복이다. 그뿐이 아니다. 미국을 비롯해 프랑스, 우즈베키스탄 등 원하는 나라는 어디든 갈 수 있다. 국내에서도 그랬듯이 외국에 간다고 특별히 하는 일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 눈에는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니 일석이조다. 오고 갈 때 편안한 전용기를 타고 가는 것은 보너스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다섯째, 대통령은 임기 중 형사소추를 받지 않는다. 지금 감옥에 있는 이들 중 박 대통령만큼 큰 잘못을 한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박 대통령은 감옥 대신 평소 좋아하던 관저에 머물고 있다. 이만한 죄를 짓고도 관저에 있을 수 있는 건 물론 자신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은 종북에 관한 한 절대적인 권한을 갖는다. 남들은 빨간 옷만 입어도 종북으로 몰지만, 대통령은 김정일에게 매우 비굴한 편지를 보낸 게 드러나도 종북이 되지 않는다. 이쯤 되면 기를 쓰고 대통령 한번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아이들마저 선망해 마지않는 이 자리를 대통령이 물러나기 싫어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던 3차 담화 때의 약속을 지키는 대신 영혼을 팔아치운 분들로 변호인단을 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모조리 부인하고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만, 박 대통령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래야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대통령의 꿈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 대통령의 건투를 빈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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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리우올림픽은 박태환에게 기회의 땅이 되지 못했다. 그는 주종목인 400m는 물론이고 200m와 100m에서도 예선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 남은 1500m는 연습 부족을 이유로 기권했으니, 8명이 오르는 결선에는 단 한 번도 오르지 못한 채 귀국하는 신세가 된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2014년 아시안게임을 두 달 앞두고 금지약물인 ‘네비도’를 투여받았고, 이 사실이 적발됨으로써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과 더불어 1년6개월간 국제대회 출전이 금지되는 징계를 당한다. 박태환은 줄곧 “비타민제인 줄 알았다”고 주장하고, 주사를 놔준 의사를 고소까지 하는데, 어려서부터 국제대회를 숱하게 치른,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까지 딴 선수가 네비도가 금지약물임을 몰랐다는 것을 난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태환은 시종일관 억울하게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가 기자회견 때 눈물을 흘리며 했던 “고의성 여부를 떠나 대표선수로서 이런 결과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는 말에는 정작 진심 어린 반성이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억울하게 당했는데 대체 뭘 반성한다는 것일까. 그럼에도 그는 이런 식의 언론플레이를 계속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우리 국민을 믿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몰랐다고 말하면 믿어주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과연 그랬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대한체육회 규정 때문에 박태환의 리우행이 좌절될 위기에 처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70%가 넘는 이들이 박태환에게 기회를 주자는 데 찬성했다. 재판 결과 의사에게 벌금형이 내려졌으니 박태환이 모르고 먹은 게 확실하며, 모르고 먹었는데 무슨 ‘약쟁이’냐는 게 그들의 논리였다. 약을 먹은 선수들이 하나같이 ‘몰랐다’고 주장하는지라, 국제수영연맹은 모르고 먹은 이도 공평하게 약쟁이로 규정하고 있다는 주장도 그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화룡점정, 마지막 쐐기를 박기 위해 박태환은 올림픽을 석 달 앞둔 시점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바닥에 넙죽 엎드려 기회를 달라고 호소한다. 그는 그 이전에 이미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에 ‘우리나라가 부당하게 선수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제소해 놓은 상태였기에 그런 퍼포먼스가 필요 없었지만, 그를 응원하는 국민들을 위해서 이는 꼭 필요한 행위였다.

그가 이렇게 해서까지 리우에 가려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추정컨대 국가에 대한 봉사가 아닌, 개인의 명예회복이 더 컸을 것 같다. 리우에 못 가면 약쟁이로 은퇴해야 하지만, 올림픽에 나가 동메달이라도 따면 약을 먹은 전력은 인간승리의 멋진 재료가 되니까 말이다. 안타깝게도 박태환의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연습 부족도 이유가 되겠지만, 수영선수로서는 환갑에 달한 그의 나이로 보아 열심히 연습했다 하더라도 메달은 힘들었을 것이다. 리우에서 쓸쓸히 귀국하던 날 박태환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일부 언론이 보내주기만 하면 메달이라도 딸 것처럼 기대감을 높여놓은 탓이었다. 불세출의 수영영웅이 이렇게 퇴장하나 싶었지만, 그에게는 다시 한 차례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름하여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해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워낙 광범위한 분야를 섭렵했지만, 최순실이 특히 공을 들인 분야는 자신의 딸이 활약하는 문화체육관광부였다.

“박태환 선수, 오해해서 미안해요.” 최순실과 특히 친한 김종 전 차관이 박태환에게 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했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생각하면, 그리고 박태환이 그간 쌓은 업적을 생각하면, 이런 반응은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박태환 측의 관계자가 “박태환 선수가 자신도 모르게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게 된 게 최순실씨와 관련이 있는지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단다. 무슨 말일까? 최순실이 자기 딸 정유라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만들기 위해 의사를 매수해 박태환에게 네비도 주사를 놨다는 것이다. 심지어 김연아가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딴 것도 다 최순실의 음모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너무 어이없는 소설이라 웃어넘기려 하다가 주렁주렁 달린 댓글이 눈에 밟혔다. 눈물이 나려 한다느니, 못 지켜 줘서 미안하다느니, 수많은 이들이 저 루머를 믿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죄다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게 요즘 시국이긴 하지만, 이 루머는 너무 나갔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건 박태환의 태도다. 자신이 기자회견장에서 보인 눈물에 일말의 진심이 담겨 있다면, 김 전 차관에게 협박당한 것과 자신이 맞은 네비도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명해야 옳다. 하지만 그는 이런 루머에 기댐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단 한 순간도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한 박 대통령의 담화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숫자만 늘어나게 했을 뿐, ‘사생활’을 중시하는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지 못했다. 박태환은 물론 박 대통령과 차원이 다른 사람이지만, 이것만은 깨달았으면 한다. 진정한 명예회복은 자기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말이다.

서민 | 단국대학교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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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임신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산 뒤 길을 건너던 남자가 뺑소니차에 치여 숨졌다. 소위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다. 범인은 도주했다가 수사망이 좁혀지자 자수했는데, 그는 한사코 ‘사람을 친 것을 몰랐다’라고 주장했다. 술에 너무 취해 정신이 없었다는 게 그의 변명이었다. 사고 직후 그가 골목길에 들어가 한참을 숨어 있었다든지, 정비소에 가는 대신 직접 부품을 구입해 부서진 차를 고치려고 한 일 등으로 미루어 볼 때 그는 사람을 쳤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그가 시종 ‘몰랐다’라고 주장한 이유는 그편이 뺑소니보다 형량이나 사회적 비난이 작을 것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최순실 의혹이 불거진 지난 한 달여 동안, 우리 국민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몰랐다”이다. 청와대 경호 담당자는 최순실이 출입기록도 남기지 않고 청와대를 출입하는 것을 몰랐고, 측근을 관리해야 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그녀가 저지르는 국정농단을 알지 못했다고 당당히 말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의 청와대 출입은 물론 그녀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것 말고도 모르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는데, 그중 세월호 사건 당일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몰랐다는 건 그가 대통령을 보필해야 하는 비서실장이라는 점에서 황당하기 그지없다. 최순실을 모르는 건 소위 문고리 3인방도 마찬가지였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최순실에게 대통령 보고 자료를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면서도 그녀를 모른다고 했고, 이재만 전 비서관 역시 최씨를 만난 기억이 없다고 한 바 있다.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모셨던 이들이 박 대통령이 죽고 못 사는 최씨를 모르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측근들은 하나같이 모른다며 입을 모은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쯤 되면 최순실이 과연 존재하는 사람인지 의심이 간다. 언제든 모습을 감출 수 있고 순간 이동이 가능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아무도 그녀를 못 볼 수 있을까? 대통령보다 높은 ‘VVIP’라 생각했기에 감히 얼굴을 쳐다볼 엄두를 못 낸 것일까? 청와대 거주민 중 유일하게 최순실을 아는 박 대통령 역시 그녀가 연설문을 잘 쓰는 것만 파악했을 뿐 내면이 탐욕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11월4일 대국민담화 때 “개인적 인연을 믿고 제대로 살피지 못한 탓”이라며 눈물을 흘리던 박 대통령의 모습은 친박의 수장 이정현 의원과 몇몇 박사모의 마음을 촉촉이 적셨다. 그러니까 박 대통령은 기업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고, 최씨를 위해 이권을 챙겨주는 그 순간에도 그게 국가를 위한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굳게 믿었던 모양이다.

이들은 도대체 왜 이리 모르는 게 많은 것일까? 뺑소니보다 만취 상태를 선택한 크림빵 가해자처럼, 이들은 안다고 시인해서 범죄자가 되는 대신 무능한 공직자로 남는 게 더 좋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무식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부끄러울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늘 하는 말인데, 위에서 예로 든 분들은 그 부끄러움을 감당할 뻔뻔함이 있었기에 기꺼이 무능을 택했다.

지난 9월 말부터 발효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은 공직자가 금품을 받은 경우 대가성 여부에 상관없이 처벌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그간 수많은 정치인과 공직자가 돈을 받은 뒤 대가성을 부인해 처벌을 받지 않는 광경을 지겹게 봐왔던 터라, 여론은 이 법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뻔히 아는 사실을 몰랐다고 함으로써 혐의를 벗으려는 공직자들은 대가성을 부인하는 공직자보다 덜 나쁜 것일까? 직급이 낮은 분들이야 조금 무능해도 괜찮겠지만, 높은 직급에 있는 이들의 무능은 사적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보다 국가적으로 훨씬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특히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무능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국가를 파멸로 몰고 갈 수도 있는 중대한 범죄다.

그래서 난 국회가 소위 ‘김기춘법’을 만들어 줄 것을 제안한다. 고위공직자가 자신의 직책상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을 모른다고 우기면 알고 범죄를 저지른 것보다 훨씬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하자는 취지다. 법안을 처음 제안한 내 이름 대신 ‘김기춘법’이라 명명한 까닭은 그가 “모른다”는 말을 단기간에 가장 많이 한, 후안무치한 분이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이 공직사회를 변화시킨 것처럼, 김기춘법도 시행만 된다면 공직자들의 언행을 순식간에 변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

“최순실씨 잘 알죠. 하도 자주 와서 주민등록등본을 아예 청와대로 옮기라고 농담한 적도 있어요.”(안종범)

“안 수석은 가만있어요. 최순실씨를 저만큼 자주 본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그래요? 매일같이 보고서 갖다 준 사람이 바로 납니다.”(정호성)

“사실 그날 대통령이 사생활이라고 들어오지 말라고 했는데, 문밖에서 코를 대보니 희미하게 프로포폴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아, 대통령께서 사생활을 누리고 계시는구나.”(김기춘)

어디까지나 예를 든 것이지만, 상상만 해도 신나지 않은가? 김기춘법이 하루빨리 시행돼야 할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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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도 왔고, 우병우도 왔다. 안종범 수석은 이미 와 있고, 김종 차관은 곧 올 예정이다. 여기서 ‘온다’는 검찰청 기준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꽤 오랜만이다. 원래 친밀한 사이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않고 대포폰으로만 얘기하다보니 얼굴을 까먹은 듯하고, 심지어 “본 적이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지경이란다. 그게 못내 안타까웠는데, 이참에 검찰청서 한데 모여 예전의 친밀함을 확인하길 빈다. 이 자리에 미처 못오신 박대통령이 외롭지 않을까 싶지만, 그분에겐 말 한마디에 죽는 시늉은 너끈히 할 친박들이 건재하니 그래도 견딜 만할 것이다. 뭐든지 분류하려 드는 게 학자의 특징이다. 예컨대 기생충은 크게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분류하고, 보이는 기생충은 또 지렁이처럼 생긴 것과 납작한 것, 그리고 끈처럼 기다란 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년간 기생충을 분류해온 사람으로서 한 자리에 모인 박대통령의 측근들을 분류해 본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첫째, 임숭재형. 임숭재는 연산군 시대의 채홍사로, 왕을 위해 조선 각지의 미녀를 뽑아 왕에게 갖다 바친 분이다. 얼마나 그 일을 잘했으면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간신>)까지 만들어졌겠는가? 임숭재의 대단한 점은 여성의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는 점으로, 사대부의 딸은 물론이고 유부녀, 천민을 가리지 않고 얼굴만 예쁘면 잡아갔다고 한다. 이는 그 대상을 연예인과 여대생으로만 한정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채홍사가 반성할 점이 아닌가 싶다. 임숭재에 비견될 인물이 바로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이다. 최순실이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쳐줬다는 의혹이 드러나자 “나도 친구에게 연설문 수정을 물어본다”고 한 바 있으며, 그 외에도 박 대통령이 악수(惡手)를 둘 때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그분에게 즐거움을 드리곤 했다. 심지어 알맹이가 없어 한숨만 나오는 대통령의 담화문에 눈물까지 흘리고, 최근엔 박 대통령이 피해자라는 망언까지 했다니, ‘국민의 뜻에 반하여 대통령을 보필하는 자리’인 집권당 대표의 역할을 100% 수행한 셈이다.

둘째, 십상시형. 중국 한나라 영제 때 활약했던 환관을 십상시라 하는데, 이들은 어린 황제인 영제를 주색에 빠지게 한 뒤 자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며 사적인 이익을 취한다. 이에 격분한 민중들이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삼국지의 배경이 된 황건적의 난도 그 중 하나다. 여기 속하는 대표적인 이가 바로 최순실과 안종범, 김종 등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나이를 제외하면 영제와 흡사한 박대통령을 ‘Good(굿)’에 빠지게 한 뒤 자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며 사적인 이익을 취한다. 이에 격분한 민중들은 곳곳에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는데, 이들은 불과 4만명이 그 넓은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우는 기적을 연출한다. 십상시는 원소와 조조 등 삼국지의 스타들에게 죽임을 당하지만, 최순실 무리들은 검찰의 따뜻한 배려 속에 시종 “모른다”로 일관하고 있는 중이다.

셋째, 허수아비형. 최순실의 연설문 파동이 불거졌을 때 이원종 비서실장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전문 연기자도 아닌 바, 그건 정말 모르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라든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냐”는 그의 말도 진정성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의혹이 사실임이 밝혀진 뒤에는 “알았다면 봉건시대 발언을 했겠느냐”며 되레 성을 내던데, 모르면 처음부터 말을 하지 말지 왜 무작정 부인하고 보는지 모르겠다. 가만 보면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은 다 나이가 많았다. 김기춘, 이원종, 이번에 새로 비서실장이 된 한광옥이 모두 75세며, 이병기씨가 69세로 최연소다. 최순실이 청와대에 그렇게 자주 드나들었지만, 이원종은 물론이고 2013년부터 1년6개월간 비서실장을 한 김기춘도 최순실을 모른다고 한 걸 보면 나이 때문에 눈과 귀가 어두워진 건지, 아니면 기억력이 감퇴해 봤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은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러려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뽑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이 셋 중 가장 덜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굳이 선택하자면 임숭재일 것 같다. 일이 좀 구려서 그렇지, 임씨는 어쨌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100% 수행했고, 사적인 이익을 취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임숭재가 병으로 몸져눕자 연산군은 환관을 보내서 경과를 물었는데, 그때 임숭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도 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으나, 다만 전하께 미인을 바치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하지만 연산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임숭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이 잘못을 행하려고 할 때, 신하는 목숨을 걸고 간언해야 하는가? 아니면 제 목숨을 애석히 여겨 순종해야 하는가? 군의 뜻에 영합하여 그 뒤의 해로움을 생각지 않으니 너는 간신이고, 또한 아첨으로 주군의 눈을 가려 나라를 말아먹으니 너는 망국신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박 대통령 측근 중 간신이자 망국신이 아닌 이는 없어 보인다. 어쩌겠는가. 대통령의 부덕의 소치인 것을.

서민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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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지인이 해발 600m 산 정상에서 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3개월 전이었다.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 기생충학을 하면 대박이 난다고 힘을 실어줬던 고마운 친구인지라 한번 가야지 했는데, 시간이 없다 보니 지난 주말에야 그 산에 오를 수 있었다. 힘들게 꼭대기에 오르자 GH상담소라는 간판이 달린 막사가 눈에 띄었다. 사람들 몇 명이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문 앞에 조그만 메모가 붙어있다. ‘사정상 폐업합니다. 상담소장 백.’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돌아가려는데, 누군가 날 부른다. “서민씨죠? 저희 소장님이 이걸 좀 전해 달라고 해서요.” 내가 올 것을 미리 알았다니, 정말 내공이 출중한 친구구나 했다. 뭔가 더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산 정상에 앉아 지인이 남긴 봉투를 열어봤다. 그건 그가 했던 상담기록이었다.

꿈 많은 중1 학생입니다. 저는 무조건 부자가 되고 싶어요. 수단 방법은 가리지 않아도 됩니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일단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검사가 되세요. 그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스폰서를 구하면 됩니다. 스폰서가 주는 주식을 갖고만 있으면, 오래지 않아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까 그 중1 학생입니다. 추가로 질문이 있어서요. 그렇게 하면 부자는 되겠지만, 감옥에 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제가 아는 검사 한 분도 그 짓 하다가 구속됐거든요.

“하하, 매사 신중한 학생이군요. 좋습니다. 제가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어떻게든 줄을 대서 민정수석이 되세요. 그러면 아무리 큰 비리를 저질러도 끄떡없을 겁니다. 조사받으러 오라고 해도 ‘대통령을 보좌하는 큰일을 하고 있어 갈 수 없다’라고 하면 되니까요.”

-급합니다. 친구를 살짝 밀었는데 그만 땅에 머리를 부딪쳤어요. 4시간째 숨을 안 쉬는데 죽었으면 어쩌죠? 저는 이제부터 살인자인가요?

“4시간이나 지났다니 너무 늦었네요. 친구분의 명복을 빕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제가 방법을 가르쳐 드리지요. 친구분을 데리고 빨리 서울대병원에 가세요. 거기서 백씨 성을 가진 교수를 찾으시면 됩니다. 그러면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아니, 심장이 안 뛰네? 이분의 사인은 심정지에 의한 병사야.’ 당신은 더 이상 살인자가 아닙니다.”

-딸이 하나 있는데, 공부를 안 해요. 고1인데 맞춤법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인성이라도 좋으면 그걸로 수시전형에 한번 넣어 볼 텐데, 천하에 둘도 없는 개싸가지라서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로 저는 돈이 아주 많은 사모님입니다.

“일단 말을 사세요. 아주 비싼 말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승마코치를 구하세요. 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다면, 인서울 중에서도 명문인 이화여대에 입학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죄송합니다. 이대가 학점관리가 살벌하다던데, 그렇게 해서 붙은들 안 잘리고 졸업할 수 있을까요?

“별걱정을 다하시네요. 이대가 그렇게 소문이 났지만, 교수들은 학생을 상전으로 모십니다. 승마 핑계 대고 학교를 안 가도 출석으로 인정해 주거든요. 제가 아는 분도 그런 식으로 3.0이 넘는 학점을 땄어요. 교수가 협조를 안 하면 지도교수를 바꾸면 됩니다. 남자랑 눈이 맞아 임신만 하지 않는다면 졸업하는 건 문제없습니다.”

-살이 쪄서 고민이에요. 무엇보다 식성이 너무 좋은 게 문제예요. 먹을 것을 보면 참지 못하거든요.

“집권당 대표가 되세요. 그러면 단식할 일이 많이 생길 겁니다.”

-제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면 겁이 나고, 제 말을 들은 이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일자리도 구해야 하는데 이래 가지고 어디 취직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대통령이 되세요.”

-러시아에 살고 있는 이스키 정현스키입니다. 삶이 너무 무미건조해요. 이곳은 너무 춥고, 재미있는 일도 없어요. 늘 황량합니다.

“일단 한국국적을 따세요. 한국에 대해 관심이 생길 테고, 무미건조 같은 소리는 안하게 됩니다. 지상 최대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매일 밤 펼쳐지거든요.”

-현직 대통령입니다. 제가 숨기고 싶은 비리가 터져 나와 정신이 없네요. 이 난국을 돌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통령 각하, 이렇게 뵙게 돼 영광입니다. 대통령께서 전에 ‘개헌은 국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고 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 그 블랙홀을 쓸 적기입니다.”

그로부터 3주 뒤, TV에서는 개헌을 한다는 대통령의 말씀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다시는 그 지인을 만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그런데 읽는 내내 궁금했던 게 있다. GH는 뭐의 약자일까? 그 친구의 이름은 TM인데, GH는 도대체 뭘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개 같은 한국’이라는 건 확실한 것 같다. 가만, 개(G) 같은 한국(H)이라니.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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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나름대로 소신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다. 민정당 시절 정치에 입문해 줄곧 보수정당에 몸담은 것도 그렇지만, 호남에 대한 그의 일편단심은 일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전남 곡성 출신인 그는 1995년 광주 시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낙선 일변도의 길을 걷는다. 일단 2004년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낙선한다. 18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지만, 19대 총선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신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남다른 야망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을 품었다. 민주당으로 부산에서 번번이 낙선하다 결국 뜻을 이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을 가지고 계속 도전하는 그에게 유권자들은 마음을 열었고, 결국 그는 2014년 7월30일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의 기쁨을 안는다. 새누리당 최초의 호남 당선자가 된 그는 올해 20대 총선에서도 순천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르고 당선된다. 3선에 불과한 그가 새누리당 대표가 된 것도 호남 출신 당선자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 정도 경력을 가졌다면 그가 대권에 걸맞은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 예상하는 게 과한 기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꼬리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추종하는 소위 친박이며, 그것도 강성이라는 점이었다. 현 대통령이 성군이라면 그가 친박이란 사실이 그다지 문제될 게 없지만,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국민을 등지기로 작정한 분처럼 행동하고 계시다. 이럴 때 집권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 정신 차리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그 말로 인해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이 대표는 그 이상의 과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게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이는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국회를 무시하는 게 습관이 된 박 대통령에게 맞서 국회의 권위를 지키려다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난다. 그 후에도 박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배신자를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의 지역구인 대구에 미치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서는 그에게 공천조차 주지 않아, 그는 결국 탈당 후 무소속으로 20대 총선에 나서야 했다. 결과는 압도적인 당선이었다. 원내대표 찍어내기 파동이 있기 전까지 유승민은 냉정히 말해 대권후보로 분류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뒤 유승민은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2016년 4월 기준 17.6%로 여권 내 1위에 오른다. 그 뒤 반기문 돌풍에 휘말려 7월에는 6.7%로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최근 강연에서 5·16을 쿠데타로 못 박는 팩트폭력을 자행하면서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엊그제 나를 태운 택시기사 아저씨는 “여권에서 유승민이 나오면 야당이 어렵다”며 그의 폭발력을 두려워했다.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분은 유승민만은 아니다. 성남시장 이재명은 애를 낳으면 1인당 25만원씩 상품권을 지급하고, 학생들에게 공짜로 밥을 먹였으며, 심지어 취업이 안된 청년들에게 청년배당이란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복지정책을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특허만 가지고 있던 박 대통령은 이 시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그가 더 이상 시민들에게 복지를 베풀지 못하도록 그의 돈줄을 묶는다.

참다못한 이 시장은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는 등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결국 그는 11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지만, 그 과실은 적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그의 명성이 성남시 인근에만 국한된 반면,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지금은 전국적 지명도를 갖게 됐으니 말이다. 2015년 1% 남짓에 불과했던 그의 지지율은 계속 올라가 2016년 10월 기준 5.2%가 됐다. 게다가 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선거전이 시작되면 지지율이 더 오를 것 같다.

이왕 정치를 시작했으니 이정현 대표도 대권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반대편에 서 계신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그분의 버프를 받아야 하건만, 그가 대표가 된 뒤 한 일은 자신이 박 대통령의 충실한 심복임을 재확인시키는 것들이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박근혜 대통령을 고꾸라지게 하려는 것이라면 사람 잘못 봤다. 대통령은 그럴 사람 아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한 바 있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 통과에 대해 대통령이 화를 내자 기껏 선택한 것은 밥을 굶는 일이었다. 일주일 뒤 단식을 중단한 것 역시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니 마리오네트 인형이 따로 없다. 이쯤 되면 호남지역에서 낙선을 거듭했던 지난 세월이 아까워지는데, 이왕 글을 쓴 김에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이 난리를 피워가며 집권당 대표가 된 목적이 겨우 박 대통령 졸개 노릇하려고 그런 것인가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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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4일, 국회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170명의 의원이 참석해 16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결정이 난 못내 아쉽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본 곳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을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다. 대통령은 평소 국회의 견제를 국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간주하고, 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시는 분이니, 야당한테 끌려다녀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렇긴 해도 대통령은 패자다. 대통령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가 재확인된 셈이니 말이다. 만일 국회의 결정대로 김 장관을 해임했다면 당장은 체면을 구기겠지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안이 통과돼 유감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박 대통령이 대통령을 하는 것보다 더 큰 비상시국은 없는 듯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새누리당 역시 패자다. 국회 안에서 싸우는 대신 퇴장해 버림으로써 해임안이 통과되는 걸 방치했으니 말이다. 그 이후 국회의장을 물고 늘어지고, 국정감사도 전면거부한다고 하는데, 이건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할 집권여당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정현 대표의 단식은 번지수가 틀렸다. 단식이라는 건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하는, 즉 약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방법일진대, 집권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정현 대표는 체형상 한 끼라도 굶는 것이 매우 치명적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큰 패자는 이번 결정의 주체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민주는 2016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더민주가 잘해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총선 전까지 더민주는 ‘지리멸렬’이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제대로 된 제1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과 분열되기까지 해, 총선에서 참패할 거라는 여론이 대세였다. 이랬던 더민주가 원내 제1당이 됐다면, 승리감에 도취되기보다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가온 대선에 대비하는 게 맞다.

그런데 더민주가 택한 것은 대통령이 추천한 장관의 해임이었다. 이게 산적한 다른 사안을 제쳐놓고 처리해야 할 만큼 시급한 일이었을까?

물론 김재수 장관은 도덕성 면에서 흠결이 있다. 하지만 초저금리로 대출을 받고, 1억9000만 원의 전세금으로 7년간 거주한 것이 다른 장관들에 비해 특별히 더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전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했던 이동필씨는 17개에 달하는 사외이사, 비상임이사를 겸직했고, 병역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전 장관인 서용규씨 쌀 직불금을 수령해 사과한 바 있다. 되도록 깨끗한 사람이 장관이 된다면 좋겠지만, 비리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슷한 분들끼리 어울리는 법, 능력도 있는 데다 청렴하기까지 한 사람이 왜 대통령 곁에 있겠는가? 매사 이런 식이면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 경질해야 마땅한 공직자가 계속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점들을 감안해보면 더민주의 이번 해임안 통과는 자신들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여당을 압박하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의도가 들어맞으려면 앞으로 새누리당이 ‘야당이 정말 세구나! 이제 말 잘 들을게’라고 해야 하지만, 그간의 행태로 보아 새누리당이 그럴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니, 남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정국경색뿐이고, 국민들은 더민주에도 이 책임을 물을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다. 아무리 잘 드는 칼이 있다고 해도 닥치는 대로 베고 다니기보단, 꼭 필요할 때 한번 칼질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아무리 봐도 더민주의 이번 칼질이 ‘꼭 필요할 때’는 아닌 것 같다. 12년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한 것이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이게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사안인지 납득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탄핵안을 발의한 이유는 한나라당과 노 대통령의 적으로 돌변한 민주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탄핵안 통과의 기준인 재적의원의 3분의 2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결국 탄핵안은 통과됐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인해 한나라당은 그해 있었던 총선에서 원내 2당으로 전락했고, 탄핵안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당의 존립조차 위태로울 정도로 참패한다. 이번 해임안 통과가 영향력 면에서 대통령 탄핵에 비교될 수는 없겠지만, 그 이면에 다수당의 오만함이 내재됐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자신의 힘을 보이는 일은 이 정도로 하고, 남은 기간만큼은 제대로 된 제1야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잖은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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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전이다.”

프로야구 한화의 김성근 감독은 지난 4일 경기에 앞서 남은 경기에서는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야구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화는 시즌 첫 경기부터 한국시리즈를 하는 심정으로 총력전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선발투수가 조금만 흔들리면 강판시켰고, 믿을 수 있는 구원투수들이 남은 경기를 책임졌다.

그러다 보니 한화는 구원투수들이 거의 매일 나와야 했다. 전날 선발투수로 나온 선수가 다음날 구원으로 던지기도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달렸다면 성적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한화의 성적은 10개 팀 중 7위다. 한화 팬들이 김성근 감독을 모셔올 때 오매불망했던 가을야구는 올해도 물 건너간 듯하다. 더 암담한 일은 부상 선수의 속출이다. 사람의 팔이 고무가 아닌 한, 매일 던지다 보면 탈이 날 수밖에. 한 마디로 한화는 현재와 더불어 미래도 잃어버렸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김성근 감독은 1942년생, 우리 나이로 75살이다. 그가 처음 감독으로 데뷔한 1984년은 프로야구가 생긴 지 3년째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으로 봐서는 말도 안되는 혹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지금 김 감독이 보여주는 야구는 그러니까 30년 전이라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사이 우리나라 야구는 크게 발전했고, 감독들은 물론 팬들도 선수를 혹사시켜 승리를 거두는 것이 당장은 이익이 될지언정, 길게 봐서는 팀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잘 알게 됐다.

지난해 49세에 두산의 지휘봉을 잡은 김태형 감독이 기존 선수의 혹사 대신 새로운 신인들을 발굴해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15년 만에 우승시켰고, 비슷한 나이의 염경엽 넥센 감독도 혹사 없는 운영으로 전력이 약해진 넥센을 3위로 이끌고 있다. 혹사가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은 단 한명,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전문가들과 기자, 그리고 팬들이 혹사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도 그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혹사로 인해 부상을 당한 선수가 생겨도 그는 그걸 선수의 책임으로 돌린다. 과거에 집착하고 남의 말도 듣지 않는 것, 이건 그가 75살의 고령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김 감독이 감독을 시작한 1980년대, 우리나라 정치판은 혼탁 그 자체였다. 그 당시에는 안기부를 이용한 공작정치가 당연시됐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잡아다 고문하는 사건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언론사마다 안기부 직원이 상주하며 기사를 검열했고, 관제야당이 만들어지기까지 했으니, 제대로 된 정치가 자리 잡기는 어려웠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 돌을 던진 것은 시대상황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40대 감독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야구와 달리 정치판에서 권력을 쥔 분들이 고령인 것도 한 요인이리라. 

대통령을 보자. 57세에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사회의 일반적인 정년 기준인 60세 이전에 대통령이 된 분은 한 명도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68세, 김대중 전 대통령은 75세, 이명박 전 대통령은 68세, 박근혜 대통령은 63세에 대통령이 됐다. 이들은 정당을 자신의 하수인쯤으로 여겼으며,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강바닥을 파는 등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을 스스럼없이 했다.

정보기관의 공작정치는 여전했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푸는 역할을 못하다 보니 지역간, 세대간, 남녀간 대립은 이전보다 심해졌다. 나이든 분들이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덜 갖게 마련이라, 청년들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고, 그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분들 중엔 젊을 때 당선이 됐다면 더 크게 나라를 말아먹었을 분도 계시지만, 40대 후반에 대통령이 된 오바마나 클린턴이 미국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광경은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내년, 드디어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드디어’라고 한 것은 1980년대에서 더 퇴행해 1970년대에서나 보던 일들이 일어나던 현 시대가 드디어 종언을 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력 대통령 후보의 나이를 보면 다음 대통령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에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4세이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66세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73세이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61세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55세로 비교적 젊지만, 지나치게 말을 아끼는 등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후보와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1년 3개월 남짓, 이 기간 중 새로운 후보가 돌풍을 일으킬 확률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30대에 국회에 입성해 훌륭한 활동을 한 김광진 전 의원 같은 분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와야 하지만, 20~30대 의원은 단 세 명으로, 19대보다 훨씬 적어졌다. 정치권의 고령화 타개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터. 이젠 정치에 정년을 도입하는 문제를 검토할 때다. 나이든 사람들끼리 작당해 전리품을 나눠 갖는 정치는 그만 보고 싶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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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민정수석이 요즘 화제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우병우를 경질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최근 개각에서도 우병우의 이름은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 있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무조건 검은 구석이 있거나 위법·탈법을 했을 것이라는 국민 정서에 터 잡아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과연 우 수석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①우 수석의 처가에서 얼마 전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을 통해 넥슨에 부동산을 매각하며 1300억원대의 돈을 챙겼다. 이후 넥슨이 이 부동산을 큰 손해를 보면서 팔았기에 ‘우 수석 측에 특혜를 준 매각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②‘도나도나’라는 회사에서 돼지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모았다가 원금도 돌려주지 않은 사기사건이 있었다. 우 수석은 선임계를 쓰지 않고 몰래 변론을 했고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③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을 했는데, 50억원에 이르는 변호사 비용을 썼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때도 우 수석은 몰래 변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④우병우씨의 아들이 군대에 갔다. 아들이 ‘꽃보직’이라는 서울청 운전병에 발탁됐다. 특혜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처: 경향신문 DB

물론 우 수석은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하면 아직은 죄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검은 구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게다가 이 의혹을 확인하려면 검찰수사가 필요한데, 민정수석 신분으로 검사 앞에 서는 건 서로 껄끄럽다. 혹시 우 수석이 민정수석 역할을 아주 잘해서 그를 대신할 적임자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우 수석이 진경준 검사장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비리를 일부러 누락시켰다는 혐의까지 받는 걸 보면 그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우 수석을 경질하기는커녕 그를 조사한 감찰관에게 화를 내고 있다.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이 협조를 안해 감찰을 제대로 못했다’고 푸념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걸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것이다.

3년 전 화제가 됐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경우를 보자. 다들 알다시피 국정원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직원들에게 골방에 틀어박혀 댓글을 달게 했다가 발각되고 만다. 소위 ‘국정원 댓글사건’이다. 한 나라의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위법이기에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결국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채 전 총장이 이끌던 검찰은 보기 드물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에게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한다. 채 전 총장의 내연녀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는 TV조선으로부터 430만원을 받고 ‘내연녀의 집에 채 전 총장이 자주 찾아왔다’는 인터뷰를 하고, 청와대 행정관은 혼외 아들로 지목된 어린이의 인적사항을 열람한다. 민·관·언론이 서로 도와가며 우리 사회의 도덕을 지켜가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했고, 일제히 입을 모아 채 전 총장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의혹이 확산되자 박 대통령은 “사생활과 관련된 도덕성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해 스스로 진실을 밝히라”며 채 전 총장을 압박, 사퇴하게 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사태를 ‘채동욱 찍어내기’라 불렀다.

윤창중은 주위의 반대에도 대통령이 직접 대변인으로 발탁한 인재였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동행해 여자 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본인은 격려차 허리를 툭 친 것에 불과하다며 성추문 의혹을 부인했지만,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윤 대변인을 전격 경질한다. 대통령께서 믿고 쓴 인재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에서 범죄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나쁜 범죄는 성추문이다. 하지만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을 바로 내치지 않은 걸 보면 대통령은 ‘미국 국적을 가진 여성에 대한 성추문’을 가장 큰 범죄로 규정하는 듯하다. 두 번째로 나쁜 범죄는 내연녀를 두고 자식까지 낳는 일로, 이 둘은 반드시 경질해야 하는 중대 사유다. 

반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특혜를 누리는 것은 대통령이 볼 때 전혀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야말로 대통령을 뒤흔드는 범죄자다. 한술 더 떠서 이들의 비리사실을 언론에 폭로하는 사람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악질적인 범죄자라는 게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제 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성범죄는 일단 조심하자. 특히 상대가 미국 여성일 때는 더 조심하라. 자기 일은 대충 해도 된다. 그 대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할 수 있는 한 이득을 취하라. 그러면 대통령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남은 1년 반 동안 무탈하게 공직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게 박근혜 치하 헬조선에서 공직자가 살아남는 법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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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로 속임수를 쓰는 선수에게 관심 없다.”

리우 올림픽 남자수영 400m에서 우승한 호주의 맥 호튼이 경기 전 한 말이다.

그는 기자가 약물복용자인 중국의 수영선수 쑨양과 같이 경기하는 소감을 묻자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한 쑨양은 2014년 말, 국내 대회 참가 도중 도핑테스트에 걸렸다. 그가 먹었던 트리메타지딘(trimetazidine)이란 약은 협심증에 쓰이는 약으로, 쑨양은 심장 치료를 위해 이 약을 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2008년부터 심장약을 먹었으며, 국제대회에서 심장 문제로 1500m 경기를 포기한 적도 있으니, 그의 심장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인 모양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하지만 이 약은 흥분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2014년 1월 금지약물 리스트에 올랐기에, 그는 졸지에 부정한 약물을 사용한 선수, 일명 ‘약쟁이’가 됐다. 중국수영연맹은 그에게 3개월의 출장정지처분을 내렸다. 쑨양에게 약을 처방한 의사에게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벌이 내려진 걸 보면, 중국 측에서는 의사의 잘못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쑨양이 ‘약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수영 전문지에 실린 관련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쑨양, 정말 실망했다.” “난 더 이상 네 팬이 아니다.”

팬들이 이럴진대 같이 뛰는 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4년 전 쑨양을 보며 자신의 꿈을 키웠을 맥 호튼의 발언은 약물에 대한 수영계의 입장을 잘 보여 준다. 중국 팬들은 호튼 선수의 트위터에 몰려가 그를 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글을 남기고 있지만, 그런다고 ‘약쟁이’가 ‘약쟁이’가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박태환이 400m 예선에서 결승진출에 실패하자 해설을 맡은 노민상 전 감독이 한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박태환은 2014년 9월 불시에 시행된 도핑검사에서 금지약물인 네비도가 검출되는 바람에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은 물론, 1년 반 동안 선수자격이 정지되는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 기간을 다 소화한 후에는 약물을 사용한 이에게 국가대표 자격을 3년간 박탈하는 대한체육회 규정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게다가 박태환은 우리 나이로 28세, 수영선수로서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나이였다. 훈련에만 매진해도 메달을 딸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신경을 썼으니 좋은 성적을 거두긴 어려웠다.

런던에서 은메달을 땄던 200m에서 조 최하위에 그친 걸 보면 그의 몸 상태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그는 약물검사에 걸린 게 의사의 실수라고 주장하나, 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은 원래 중년 남성들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사하는 게 주 업무였다. 이런 병원을 찾아가 주사를 맞은 건 고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네비도는 쑨양이 먹은 약과는 차원이 다른, 반도핑기구가 최우선적으로 금지하는 약이니, 설령 모르고 맞았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한체육회가 규정을 내세워 박태환을 리우에 보내지 않으려 했을 때, 여론의 절대다수는 박태환 편을 들었다. 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박태환은 고의로 주사를 맞은 게 아니다. 둘째, 이미 처벌을 받았는데 출전을 못 하게 하는 건 이중처벌이다. 셋째, 박태환 말고 우리나라 수영선수 중 메달 딸 사람이 누가 있느냐. 첫 번째에 대해선 이미 얘기했고, 두 번째 주장은 이미 체육회가 규정을 철회했으므로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문제 삼는 건 바로 세 번째다. 그들 말대로 박태환은 당분간 우리나라에서 나오기 힘든 걸출한 수영선수다. 선수로서 환갑이 지난 나이임에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커다란 격차로 1위를 차지한 걸 보면, 그를 대표팀에 선발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혹시 아는가. 메달이라도 하나 딸 수 있을지. 박태환이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는 등 대표로 나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나라는 더 이상 못살고 내세울 것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 더 딴다고 해서 세계가 우리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호튼의 발언에서 보듯 부정한 방법으로 이기려고 한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다면 그거야말로 나라 망신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규정을 철회해가며 박태환을 리우로 보냈다. 그걸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의식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있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떠받드는 후진적인 풍토, 그것이 이 나라의 온갖 부정부패를 낳는 이유였다. 논문을 조작해도 수백조원 국익을 창출할 원천기술이 있다는 이유로 영웅시하고, 선거에 부정이 있어도 일단 당선되면 다들 고개를 조아리는 나라에서 나만 떳떳하게 산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한 누리꾼이 쓴 댓글이다. “외국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대단한 선수가 됐을 텐데, 못난 나라에서 태어나서 이 꼴을 당하는구나.” 사실이 아니다. 박태환이 지금 영웅일 수 있는 건 이 못난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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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평소처럼 모래밭에 글씨를 쓰며 해맑게 지내실 줄 알았는데, 그 기간에 몇 권의 책을 읽으셨단다. 사람들이 놀라자 청와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대통령님은 원래 책을 좋아하신다.” 아쉬운 점은 책을 읽고 난 뒤 국정운영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올해 4·13 총선 때 새누리당이 참패한 것도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이 삶에 도움이 안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을 읽고도 이해를 잘 못할 때고, 두 번째는 책 선택이 잘못됐을 때다. 설마 대통령께서 전자에 해당될 리는 없으니, 지난해에 읽으신 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합리적인 해석이리라. 이럴 때 좋은 책을 추천해 드리는 건 좋게 봐서 ‘구국의 결단’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이번 여름휴가 때 읽는 책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통령님은 7월25일부터 휴가에 돌입했으니 지금 책을 추천하는 게 시기적으론 늦었다. 하지만 꼭 휴가 때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대통령님께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될 책을 몇 권 추천해 드린다.

출처: 경향신문DB

1. <내 옆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박 대통령은 가끔 억울함을 호소하신다. 당신은 열심히 일하는데, 나라 걱정에 잠도 잘 못 주무시는데 사람들은 입만 열면 대통령을 욕한다고. 박 대통령으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께서는 그들을 ‘대통령을 흔들려는 세력’ 혹은 ‘종북세력’으로 지칭하며 분노를 표출하신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 도대체 이 나라에는 왜 이리도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라는 한탄이 나올 때 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다. 특히 다음 구절을.

“어떤 남성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가 한 대 있으니 조심하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대라고? 수백 대는 되겠다.’…경계성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 그리고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사람들은 이들이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곁을 떠나게 된다.”(39쪽)

2. <세월호, 그날의 기록>

임기 초반인 2년째 일어난 세월호 사고는 박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풍향계였다. 이 사건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박 대통령이 지금보다는 성공적인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박 대통령은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적대시하는 우를 범한다. 시간이 좀 흘렀긴 해도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늦은 것은 아닌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 한다. 위 책은 세월호에 대한 모든 음모론을 배제한 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만 담담히 적은, 진상을 아는 데 가장 좋은 책이다.

3. <자치가 진보다>

지방자치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방자치, 그까짓 게 왜 필요해? 내가 대통령이니 내가 다 할 거야!” 하지만 지방자치가 필요한 이유는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며, 중앙정부에서 그걸 일일이 파악해 대처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어느 곳, 누구에게나 적합한 보편적인 정책은 있을 수 없다. 나와 내 이웃이 안고 있는 문제는 나와 내 이웃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 함께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자치이다.”(43쪽)

대통령께서 이 책을 읽으신다면 성남시장이 좀 더 편하게 시정을 펼칠 수 있으리라.

4. <개성공단 사람들>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남북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중 최악은 올해 2월 개성공단 폐쇄였다. 북한에 벌을 준다면서 남한 측에 훨씬 더 큰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대통령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다. 이미 신뢰가 깨진 마당이라 개성공단 폐쇄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지만, 대통령께서 이 책을 통해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 정도는 느껴 보시면 좋겠다.

5. <댓글부대>

제목만 보고 식겁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면, 이 책은 국정원 댓글사건을 다룬 다큐가 아니다. 댓글이라는 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놓은 소설인데, 이 책을 읽으신다면 박 대통령께서 “나는 도움받은 적 없다”라는 말씀은 안 하실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인지라 책 다섯 권을 추천받으면 “언제 다 읽냐”며 손사래를 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며, 자투리 시간에만 읽어도 석 달이면 다 읽으실 수 있다. 게다가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 혹시 아는가. 기적적으로 7시간가량 짬이 날지. 이 책들과 함께 변화된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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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7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11일간의 단식을 중단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바지를 안 사준다고 딱 하루 동안 밥을 굶은 게 가장 긴 단식인 나로서는 열흘이 넘게 단식한 이 시장이 존경스럽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긴 하다. 예로부터 단식은 주로 힘없는 이의 수단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택하는 방법이 바로 단식 아닌가? 그런데 잘 사는 동네의 시장을 하는 분이 단식을 해야 할 사정은 도대체 뭘까? 그건 자신이 바라는 성남시의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 경향신문DB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집권 시 자신이 우선적으로 추구할 가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점을 둔 가치는 남북관계 개선이었다. 이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은 금강산관광을 시작했고, 온갖 난관을 다 이겨내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고 돌아온 뒤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한 그의 모습은 50년간의 적대에 찌든 우리에게 “통일이 머지않았구나”라는 환상을 갖게 해줬다.

하지만 남북화해보다는 대결을 더 선호하는 세력이 집권하면서 남북관계는 점점 뒷걸음질 쳤고, 그 시대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이제는 과거의 유물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해소’를 핵심가치로 삼았다. 지역주의에 도전했다 번번이 실패한 것이 그가 대통령이 된 이유였던 만큼 사람들은 이제 지긋지긋한 지역주의가 청산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지역주의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각 정당들도 지역주의 청산을 바라지 않았기에, 노 전 대통령의 가치는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따르는 측근들이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의 강바닥을 파헤친 것도 이 때문인데, 여기에 투입된 돈은 무려 22조원이나 됐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4대강 사업이 국민들의 삶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의 두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이 원했던 가치는 충분히 실현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집권 3년여를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국가에 뭔가를 바라지 말고 모든 것을 제힘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그런 인간형, 이를 이루기 위해 박 대통령은 안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복지를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제 국가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경기불황으로 삶의 수준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어도 국가에 의존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큰 재난이 났을 때 국가기구가 나를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버린 지 오래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무슨 무슨 ‘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그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줄 의무가 있다는, 저 옛날 요순시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남시의 유치원과 초·중학교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했고, 1인당 15만원 정도가 드는 교복값도 지원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공공 산후조리원을 만들어 산모 1인당 25만원을 지원해줬다. 게다가 청년배당이라고 만 24세 청년에게 연 50만원을 지역화폐로 줬는데, 이는 지역에서 이 돈을 소비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정책이었다.

성남시민들은 시장을 칭송했고, “나도 성남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전국에 메아리쳤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성남시민들이 세금을 추가로 더 내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위 증세 없는 복지의 기적, 박 대통령이 국가채무를 기록적으로 늘려나가는 것과 정반대로 이 시장은 그전 시장이 진 빚까지 모두 갚아버렸다!

국민들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려던 박 대통령이 화들짝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자가 아닌가?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성남시가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을 빼앗는 게 그 방법이었다.

심지어 성남시를 ‘부자 자치단체’라고 부르며 “부자들한테 5000억원씩을 갈취해 다른 지자체에 나눠 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얼마 전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이 바로 이것인데, 이게 시행되면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는 물 건너간다. 이것이 이 시장이 무려 11일간 밥을 굶은 이유였다.

안타까운 점은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보수세력이 성남시장을 포퓰리즘의 화신처럼 묘사하는 것이야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거기에 동조해 이 시장을 욕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성남시민이 부러우면 자기네 시장·군수에게 “왜 우리는 저렇게 못 하냐?”고 떼를 쓸지언정, 너희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야 한다며 성남시장을 깎아내리는 게 과연 옳은가? 이런 걸 보면 국민들을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겠다는 박 대통령의 가치는 거의 성공한 모양이다. 바람직한 가치는 줄줄이 실패하고,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가치는 죄다 성공하는 나라, 박 대통령의 성공이 슬픈 이유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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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파기라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프랑스에 용역을 줘서 타당성을 따져본 끝에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나자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였었다. 하려던 사업이 수지가 안 맞는다면, 그리고 그 재원이 국민의 세금이라면, 욕을 좀 먹더라도 안 하는 게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말을 믿고 기대했던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사과 정도는 하는 게 도리다.

경향신문DB

게다가 신공항 사업이 이렇게 결론 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신공항을 짓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리저리 따져본 끝에 내린 결론은 새 공항을 짓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이 대통령은 2011년 만우절을 맞아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대통령 한 사람 편하자고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는 사업을 하자고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일단락된 사건에 다시 불을 지피고, 보수세력의 본산이라 할 영남지역을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사과하는 대신 기존 공항 리모델링이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창조적 해석으로 공약 파기 논란을 벗어나려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박 대통령의 지지자다. 지난 대선 때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박 대통령이 더 못할 것이다라고 한 반면, 난 박 대통령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명박보다 더 못하기 힘들며, 박 대통령은 자녀가 없어서 측근비리를 저지르기 힘들다는 게 당시 내 변명이었다. 내가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증거는 이게 다지만, 내 의견에 대한 수많은 반박에도 끝끝내 박 대통령 편을 든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좀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자신과 측근들의 재산을 불리는 데 주력한 이 전 대통령보다 국가 수준을 40년 전으로 돌리는 박 대통령이 훨씬 더 나빠 보이니 말이다. 물론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진솔한 사과, 그게 있어야지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고, 대통령 자신도 사과를 통해 다음번엔 비슷한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시모토아라는 기생충이 있다. 중남미 해안지방의 물고기에 기생하는 시모토아는 팬클럽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진다는 게 그 비결이다. 원래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근처에 살면서 혀로 가는 혈관에 입을 박고 피를 빨아 먹는다. 혈액 공급이 부족해진 혀는 얼마 안돼서 썩어버리고, 결국 떨어져 나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모토아는 굉장히 나쁜 기생충이다. 멀쩡한 혀를 없애버리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시모토아가 빛나는 대목은 그 다음부터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시모토아는 물고기에게 다음과 같이 용서를 구한다. “물고기야, 내가 내 욕심만 채우려고 너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하지만 걱정 말아라. 앞으로 내가 너의 혀가 되어줄게.” 실제로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위치에 자리를 잡고 혀가 하던 역할을 대신한다. 물론 물고기의 혀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먹을 게 물고기의 입에 들어가면 다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게 있고 없고는 물고기에게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혀가 없어진 물고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양실조에 빠지지만, 혀 대신 시모토아를 가진 물고기는 정상 물고기와 비교할 때 체중변화가 거의 없었단다. 그뿐이 아니다. 물고기가 죽고 나면 시모토아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대신 물고기의 곁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 정도면 가히 사과의 아이콘으로 불려야 되지 않을까?

물론 박 대통령에게 시모토아 정도의 사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명박 전 대통령 정도의 사과가 우리가 기대하는 한계치일 텐데, 박 대통령이 그 정도의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과 안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윤창중 대변인이 성추행을 했을 때는 홍보수석이 나와 국민과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사과를 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사과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적어도 기생충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메르스로 인해 경제가 마비되고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을 때도 대통령 대신 총리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황교안씨가 사과를 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사과를 계속 미루다 열흘이 지난 후 국무회의에서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걸 과연 사과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과가 싫다면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니 답답하다. 멕시코에 사는 시모토아를 데려와 사과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면 좋으련만, 남의 말도 잘 듣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사과가 없는 나라,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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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2002년 말, 돌아가신 아버지의 첫 제사를 지냈다. 가족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얕아져서, 작년 제사 때는 아무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님이 안 계시는 것을 가족 모두가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한 결과이리라.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보이는 효심은 놀랍기 그지없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통)이 돌아가신 게 1979년이니 벌써 37년이 지났건만, 어떻게 된 게 시간이 감에 따라 효심이 더 깊어만 가는 느낌이다.

2012년 박정희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기념관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박 대통령이 여당 당대표이자 유력 대선후보가 아니었다면 서울에 기념관이 들어서는 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대통령이 된 박 대통령은 교과서를 뜯어고쳤다. 친일과 쿠데타 등등 박통의 부정적인 측면이 그대로 기술된 교과서가 아이들의 혼을 이상하게 만든다는 논리였다. 요즘 대통령은 아프리카 등 못사는 나라들에 새마을운동을 퍼뜨리려 노력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겠지만, 황폐해진 지금 농촌의 모습을 보면 그 운동의 성공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대통령은 ‘지구촌 새마을운동’이란 프로젝트를 만들어 매년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 심지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새마을운동을 게임으로 개발해 그 정신을 세계에 알리겠다는데, 박 대통령의 엄청난 효심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왜 효도를 자기 돈으로 하지 국민 세금으로 하느냐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 알아서 효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문제는 박 대통령이 지금 하는 것들이 진짜 효도인지 여부다. 나카자카 도니가 쓴 <도이옹도화>라는 책을 보면 효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우미에 사는 한 효자(이하 오우미)는 평소 자신이 더 효도를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에, 시나노라는 곳에 엄청난 효자(이하 시나노)가 산다는 소문을 듣는다. 오우미는 제대로 된 효도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시나노의 집을 찾아간다. 잠시 후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시나노가 땔감을 잔뜩 진 채 집으로 왔다. 그런데 시나노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오자마자 큰 소리로 나이든 어머니를 불러 이렇게 외쳤다. “빨리와서 땔감 부리는 걸 도와줘요!” 그것만이 아니었다. 피곤하다며 노모더러 팔과 다리를 주무르게 했고, 어머니한테 밥상을 차리게 하더니 ‘반찬이 짜다’ ‘밥이 너무 딱딱하다’ 등등 밥투정을 해댔다. 보다 못한 오우미는 분연히 일어나 시나노를 나무랐다. “네가 효자라고 해서 배우러 왔더니, 너야말로 천하의 불효자식이다. 어찌 어머니를 그렇게 막 대하는가?”




그 말을 들은 시나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효도가 좋은 것이긴 하지만, 효도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들은 참된 효도가 아니다.”

무슨 말일까? 시나노의 어머니는 나무를 하고 온 아들이 피곤할 것 같아 돌봐주고 싶었을 텐데, 시나노는 그 마음을 헤아려 어머니더러 팔다리를 주무르게 한 거였다. 밥투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손님 대접을 하면서 혹시 미흡한 점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고,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 뜻을 헤아려 먼저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다. 시나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난 그저 어머니께서 생각하신 대로 하게 하는 것뿐이네.”

박 대통령도 아버지 박통이 과연 이런 효도를 원했을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친일전력, 좌익전력, 독재를 통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한 것, 권력을 이용해 뭇 여자를 섭렵한 일 등은 박통도 그리 떳떳하게 생각지 않았을 테니, 세금을 들여서라도 교과서를 고치는 건 효도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밖의 점들은 아버지가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박통이 경제발전에 매진한 것은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집권했다는 사실을 희석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굶는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그런 박통으로서는 재벌들을 배부르게 하느라 빈부격차가 나날이 커지게 만드는 딸을 보는 심정이 착잡할 것 같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소위 노동개혁법을 박통이라면 뜯어말리지 않았을까?

또한 경제발전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느라 외채로 고민했던 박통은 우리나라가 2016년 기준 1285조원의 빚을 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으리라. 마지막으로 박통은 자신의 딸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지금처럼 국민들로부터 욕먹는 일만 골라서 해대는 대통령을 박통이 봤다면 한숨을 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 같다. “내가 딸을 잘못 키웠구나.”

사정이 이럴진대 박 대통령이 효자 코스프레를 계속하는 것은 아버지를 위한다기보단 남에게 보이기 위한 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부디 대통령이 <도이옹도화>를 읽고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한다. 아버지의 10분의 1만큼만이라도 국민을 생각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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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머니는 그게 아기에게 좋은 줄 알고 열심히 가습기를 틀어줬다고 한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대통령께서 요즘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서였다. 원래 대통령께서는 이런 분이 아니었다. 재정적자가 누적돼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40%에 육박해도 재벌과 부자들을 지키겠다며 세금을 올리지 않으셨다. “이런 교과서로 배우면 혼이 이상해진다”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3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분이 갑자기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의외다. 게다가 그 사건이 당신의 임기 때도 아닌, 무려 5년 전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5월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도 대통령답지 않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평소 지론처럼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나태하게 쉬는 것보다 시간을 아껴 일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실 분이다.

박 대통령의 지표라 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자. 하도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바람에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5월5일이 쉬는 날이니 6일은 두 배로 일하도록 퇴근시간도 자정 쯤으로 미루는 게 이치에 맞을 텐데, 그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4일 연휴를 만들어 버린 건 대통령이 변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지난해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국민들에게 3일 연휴를 선물한 바 있지만, 그거야 더운 여름날이니 전혀 납득이 안 가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5월 초인 데다 날씨가 시원해 마구 일이 하고 싶어지는 시기인데 임시공휴일이 웬 말인가?

최근 이란을 방문할 때 착용한 히잡도 논란이 됐다. 히잡이 여성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란한테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해당 국가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곤 하지만 대통령이 사랑해 마지않는 미국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프리카에 간다고 해서 벗고 가실 건 아니지 않은가.


추측하건대 대통령이 변한 건 지난달 치러진 총선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얻어 부녀가 개헌하는 값진 기록도 세울 법했지만, 결과는 과반수는 고사하고 제1당도 차지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선거에 초연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 잘하고 있는 장관들을 데려다 총선에 내보냈고, 빨간 옷을 입고 격전지를 둘러보는 등 누가 봐도 티가 나는 선거운동을 했다. 선거 전날까지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느라 애썼다. 그래도 불안해서 선거 직전 탈북자들까지 동원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거기에 자신이 배신자라고 낙인찍은 유승민 의원이 당선되기까지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들이 자신을 심판한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대통령으로서는 기운이 없을 수밖에 없다. 선거 2주가 지난 뒤 “양당체제인 국회가 하는 일이 없어 국민이 국회를 심판한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낼 때의 심경은 실로 비참했으리라. 그 내용을 기사로 보면서 난 대통령을 이렇게 만든 유권자들을 살짝 원망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야 대통령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원인이 국민들에게 있는 만큼 우리가 대통령에게 좀 잘해야 한다. 지지하던 분들은 계속 지지하고, 반대하던 분들도 ‘그만하면 됐다’는 마음을 갖자. 안 그래도 선거 패배로 마음 아파하는 대통령이 “지지율 31%로 급락” 같은 기사를 본다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두 번째로,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분들이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역대 정부 중 현 정부만큼 아랫사람들이 개인적인 일탈을 저지른 정부는 없었다.

예컨대 2013년 청와대 행정관이던 조모씨는 당시 검찰총장 아들의 인적사항을 열람해줄 것을 지시했는데, 이건 대통령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적인 일탈로 밝혀졌다. 2014년 터진 비선실세 의혹도 사심을 가진 몇몇 개인의 일탈이었다. 이번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사건 역시 허모 행정관의 개인적인 일탈일 뿐, 청와대와는 무관하다는 게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보필해야 할 이들의 일탈은 그 자체가 대통령에게 큰 타격이다. 어버이연합도 문제가 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청와대 허 행정관이 이렇게 지시했지만 우리는 그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으신 거 아닌가. 대통령을 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충성이라는 건 몸만 가지고는 안되는 법이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박 대통령이 쓰신 저서다. 이 책 제목처럼 대통령이 빨리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길 빈다. 그래야 우리가 정권교체의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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