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나름대로 소신의 길을 걸어온 정치인이다. 민정당 시절 정치에 입문해 줄곧 보수정당에 몸담은 것도 그렇지만, 호남에 대한 그의 일편단심은 일견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전남 곡성 출신인 그는 1995년 광주 시의원 선거에 나갔다가 낙선한 것을 시작으로 낙선 일변도의 길을 걷는다. 일단 2004년 17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낙선한다. 18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지만, 19대 총선에서 또다시 고배를 마신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남다른 야망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을 품었다. 민주당으로 부산에서 번번이 낙선하다 결국 뜻을 이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라는 명분을 가지고 계속 도전하는 그에게 유권자들은 마음을 열었고, 결국 그는 2014년 7월30일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의 기쁨을 안는다. 새누리당 최초의 호남 당선자가 된 그는 올해 20대 총선에서도 순천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를 여유 있게 누르고 당선된다. 3선에 불과한 그가 새누리당 대표가 된 것도 호남 출신 당선자라는 프리미엄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이 정도 경력을 가졌다면 그가 대권에 걸맞은 큰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 예상하는 게 과한 기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치명적인 꼬리표가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그가 박근혜 대통령을 추종하는 소위 친박이며, 그것도 강성이라는 점이었다. 현 대통령이 성군이라면 그가 친박이란 사실이 그다지 문제될 게 없지만, 안타깝게도 박 대통령은 국민을 등지기로 작정한 분처럼 행동하고 계시다. 이럴 때 집권당 대표가 해야 할 일은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 정신 차리라고 충고하는 것이 아닐까? 설령 그 말로 인해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쫓겨난다고 해도, 이 대표는 그 이상의 과실을 얻을 수 있으리라.

이게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이는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그는 국회를 무시하는 게 습관이 된 박 대통령에게 맞서 국회의 권위를 지키려다 결국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난다. 그 후에도 박 대통령은 유권자들에게 ‘배신자를 반드시 심판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았는데, 그의 지역구인 대구에 미치는 박 대통령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심지어 새누리당에서는 그에게 공천조차 주지 않아, 그는 결국 탈당 후 무소속으로 20대 총선에 나서야 했다. 결과는 압도적인 당선이었다. 원내대표 찍어내기 파동이 있기 전까지 유승민은 냉정히 말해 대권후보로 분류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뒤 유승민은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2016년 4월 기준 17.6%로 여권 내 1위에 오른다. 그 뒤 반기문 돌풍에 휘말려 7월에는 6.7%로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최근 강연에서 5·16을 쿠데타로 못 박는 팩트폭력을 자행하면서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엊그제 나를 태운 택시기사 아저씨는 “여권에서 유승민이 나오면 야당이 어렵다”며 그의 폭발력을 두려워했다.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분은 유승민만은 아니다. 성남시장 이재명은 애를 낳으면 1인당 25만원씩 상품권을 지급하고, 학생들에게 공짜로 밥을 먹였으며, 심지어 취업이 안된 청년들에게 청년배당이란 명목으로 돈을 지급하기까지 했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복지정책을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특허만 가지고 있던 박 대통령은 이 시장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그가 더 이상 시민들에게 복지를 베풀지 못하도록 그의 돈줄을 묶는다.

참다못한 이 시장은 광화문에서 단식을 하는 등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는데, 결국 그는 11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지만, 그 과실은 적지 않았다. 그 이전까지 그의 명성이 성남시 인근에만 국한된 반면, 박 대통령 버프를 받은 지금은 전국적 지명도를 갖게 됐으니 말이다. 2015년 1% 남짓에 불과했던 그의 지지율은 계속 올라가 2016년 10월 기준 5.2%가 됐다. 게다가 그는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유머감각까지 갖추고 있어, 선거전이 시작되면 지지율이 더 오를 것 같다.

이왕 정치를 시작했으니 이정현 대표도 대권의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반대편에 서 계신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 그분의 버프를 받아야 하건만, 그가 대표가 된 뒤 한 일은 자신이 박 대통령의 충실한 심복임을 재확인시키는 것들이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박근혜 대통령을 고꾸라지게 하려는 것이라면 사람 잘못 봤다. 대통령은 그럴 사람 아니다”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한 바 있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안 통과에 대해 대통령이 화를 내자 기껏 선택한 것은 밥을 굶는 일이었다. 일주일 뒤 단식을 중단한 것 역시 박 대통령의 지시였다니 마리오네트 인형이 따로 없다. 이쯤 되면 호남지역에서 낙선을 거듭했던 지난 세월이 아까워지는데, 이왕 글을 쓴 김에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이 난리를 피워가며 집권당 대표가 된 목적이 겨우 박 대통령 졸개 노릇하려고 그런 것인가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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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24일, 국회는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170명의 의원이 참석해 160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이 결정이 난 못내 아쉽다. 이로 인해 이득을 본 곳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을 보자.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지극히 당연한 조치였다. 대통령은 평소 국회의 견제를 국가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행위로 간주하고, 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시는 분이니, 야당한테 끌려다녀선 안된다는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렇긴 해도 대통령은 패자다. 대통령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불통 대통령’의 이미지가 재확인된 셈이니 말이다. 만일 국회의 결정대로 김 장관을 해임했다면 당장은 체면을 구기겠지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해임건의안이 통과돼 유감이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박 대통령이 대통령을 하는 것보다 더 큰 비상시국은 없는 듯하다.

일러스트_ 김상민 기자

새누리당 역시 패자다. 국회 안에서 싸우는 대신 퇴장해 버림으로써 해임안이 통과되는 걸 방치했으니 말이다. 그 이후 국회의장을 물고 늘어지고, 국정감사도 전면거부한다고 하는데, 이건 국정에 책임을 져야 할 집권여당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이정현 대표의 단식은 번지수가 틀렸다. 단식이라는 건 아무도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하는, 즉 약자가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방법일진대, 집권당 대표가 단식을 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정현 대표는 체형상 한 끼라도 굶는 것이 매우 치명적으로 보이는데, 도대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장 큰 패자는 이번 결정의 주체인 더불어민주당이다. 더민주는 2016년 4월 치러진 총선에서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더민주가 잘해서였을까? 그렇지 않다. 총선 전까지 더민주는 ‘지리멸렬’이란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제대로 된 제1야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게다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과 분열되기까지 해, 총선에서 참패할 거라는 여론이 대세였다. 이랬던 더민주가 원내 제1당이 됐다면, 승리감에 도취되기보다는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임으로써 다가온 대선에 대비하는 게 맞다.

그런데 더민주가 택한 것은 대통령이 추천한 장관의 해임이었다. 이게 산적한 다른 사안을 제쳐놓고 처리해야 할 만큼 시급한 일이었을까?

물론 김재수 장관은 도덕성 면에서 흠결이 있다. 하지만 초저금리로 대출을 받고, 1억9000만 원의 전세금으로 7년간 거주한 것이 다른 장관들에 비해 특별히 더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이전에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을 했던 이동필씨는 17개에 달하는 사외이사, 비상임이사를 겸직했고, 병역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이전 장관인 서용규씨 쌀 직불금을 수령해 사과한 바 있다. 되도록 깨끗한 사람이 장관이 된다면 좋겠지만, 비리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비슷한 분들끼리 어울리는 법, 능력도 있는 데다 청렴하기까지 한 사람이 왜 대통령 곁에 있겠는가? 매사 이런 식이면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 경질해야 마땅한 공직자가 계속 업무를 수행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점들을 감안해보면 더민주의 이번 해임안 통과는 자신들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여당을 압박하자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이 의도가 들어맞으려면 앞으로 새누리당이 ‘야당이 정말 세구나! 이제 말 잘 들을게’라고 해야 하지만, 그간의 행태로 보아 새누리당이 그럴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니, 남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정국경색뿐이고, 국민들은 더민주에도 이 책임을 물을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영화 <스파이더맨>에 나오는 대사다. 아무리 잘 드는 칼이 있다고 해도 닥치는 대로 베고 다니기보단, 꼭 필요할 때 한번 칼질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리라. 아무리 봐도 더민주의 이번 칼질이 ‘꼭 필요할 때’는 아닌 것 같다. 12년 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한 것이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이게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사안인지 납득할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탄핵안을 발의한 이유는 한나라당과 노 대통령의 적으로 돌변한 민주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탄핵안 통과의 기준인 재적의원의 3분의 2를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결국 탄핵안은 통과됐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 반발로 인해 한나라당은 그해 있었던 총선에서 원내 2당으로 전락했고, 탄핵안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당의 존립조차 위태로울 정도로 참패한다. 이번 해임안 통과가 영향력 면에서 대통령 탄핵에 비교될 수는 없겠지만, 그 이면에 다수당의 오만함이 내재됐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자신의 힘을 보이는 일은 이 정도로 하고, 남은 기간만큼은 제대로 된 제1야당의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시간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잖은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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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전이다.”

프로야구 한화의 김성근 감독은 지난 4일 경기에 앞서 남은 경기에서는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야구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화는 시즌 첫 경기부터 한국시리즈를 하는 심정으로 총력전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선발투수가 조금만 흔들리면 강판시켰고, 믿을 수 있는 구원투수들이 남은 경기를 책임졌다.

그러다 보니 한화는 구원투수들이 거의 매일 나와야 했다. 전날 선발투수로 나온 선수가 다음날 구원으로 던지기도 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했다. 이렇게 달렸다면 성적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 한화의 성적은 10개 팀 중 7위다. 한화 팬들이 김성근 감독을 모셔올 때 오매불망했던 가을야구는 올해도 물 건너간 듯하다. 더 암담한 일은 부상 선수의 속출이다. 사람의 팔이 고무가 아닌 한, 매일 던지다 보면 탈이 날 수밖에. 한 마디로 한화는 현재와 더불어 미래도 잃어버렸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김성근 감독은 1942년생, 우리 나이로 75살이다. 그가 처음 감독으로 데뷔한 1984년은 프로야구가 생긴 지 3년째에 접어든 시점이었다. 당시에는 지금으로 봐서는 말도 안되는 혹사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지금 김 감독이 보여주는 야구는 그러니까 30년 전이라면 전혀 이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사이 우리나라 야구는 크게 발전했고, 감독들은 물론 팬들도 선수를 혹사시켜 승리를 거두는 것이 당장은 이익이 될지언정, 길게 봐서는 팀에 해를 끼친다는 것을 잘 알게 됐다.

지난해 49세에 두산의 지휘봉을 잡은 김태형 감독이 기존 선수의 혹사 대신 새로운 신인들을 발굴해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15년 만에 우승시켰고, 비슷한 나이의 염경엽 넥센 감독도 혹사 없는 운영으로 전력이 약해진 넥센을 3위로 이끌고 있다. 혹사가 장기적으로 해가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은 단 한명, 바로 김성근 감독이다. 전문가들과 기자, 그리고 팬들이 혹사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도 그에게는 ‘소귀에 경 읽기’다. 혹사로 인해 부상을 당한 선수가 생겨도 그는 그걸 선수의 책임으로 돌린다. 과거에 집착하고 남의 말도 듣지 않는 것, 이건 그가 75살의 고령이라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김 감독이 감독을 시작한 1980년대, 우리나라 정치판은 혼탁 그 자체였다. 그 당시에는 안기부를 이용한 공작정치가 당연시됐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잡아다 고문하는 사건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언론사마다 안기부 직원이 상주하며 기사를 검열했고, 관제야당이 만들어지기까지 했으니, 제대로 된 정치가 자리 잡기는 어려웠다.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 돌을 던진 것은 시대상황으로 보아 당연한 일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 정치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40대 감독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야구와 달리 정치판에서 권력을 쥔 분들이 고령인 것도 한 요인이리라. 

대통령을 보자. 57세에 취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사회의 일반적인 정년 기준인 60세 이전에 대통령이 된 분은 한 명도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68세, 김대중 전 대통령은 75세, 이명박 전 대통령은 68세, 박근혜 대통령은 63세에 대통령이 됐다. 이들은 정당을 자신의 하수인쯤으로 여겼으며, 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강바닥을 파는 등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을 스스럼없이 했다.

정보기관의 공작정치는 여전했다. 정치가 사회적 갈등을 푸는 역할을 못하다 보니 지역간, 세대간, 남녀간 대립은 이전보다 심해졌다. 나이든 분들이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덜 갖게 마련이라, 청년들의 삶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고, 그들은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분들 중엔 젊을 때 당선이 됐다면 더 크게 나라를 말아먹었을 분도 계시지만, 40대 후반에 대통령이 된 오바마나 클린턴이 미국에 새바람을 일으키는 광경은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내년, 드디어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드디어’라고 한 것은 1980년대에서 더 퇴행해 1970년대에서나 보던 일들이 일어나던 현 시대가 드디어 종언을 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력 대통령 후보의 나이를 보면 다음 대통령이라고 해서 우리 사회에 새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64세이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66세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73세이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61세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55세로 비교적 젊지만, 지나치게 말을 아끼는 등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다른 후보와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1년 3개월 남짓, 이 기간 중 새로운 후보가 돌풍을 일으킬 확률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30대에 국회에 입성해 훌륭한 활동을 한 김광진 전 의원 같은 분들이 국회에 많이 들어와야 하지만, 20~30대 의원은 단 세 명으로, 19대보다 훨씬 적어졌다. 정치권의 고령화 타개가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터. 이젠 정치에 정년을 도입하는 문제를 검토할 때다. 나이든 사람들끼리 작당해 전리품을 나눠 갖는 정치는 그만 보고 싶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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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우 민정수석이 요즘 화제다. 야당은 물론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우병우를 경질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요지부동이다. 최근 개각에서도 우병우의 이름은 없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힘 있고 재산이 많은 사람은 무조건 검은 구석이 있거나 위법·탈법을 했을 것이라는 국민 정서에 터 잡아 청와대를 공격하는 것이다.” 과연 우 수석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가?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을 간단히 정리해보자. ①우 수석의 처가에서 얼마 전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을 통해 넥슨에 부동산을 매각하며 1300억원대의 돈을 챙겼다. 이후 넥슨이 이 부동산을 큰 손해를 보면서 팔았기에 ‘우 수석 측에 특혜를 준 매각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②‘도나도나’라는 회사에서 돼지사업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모았다가 원금도 돌려주지 않은 사기사건이 있었다. 우 수석은 선임계를 쓰지 않고 몰래 변론을 했고 1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③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해외 원정도박을 했는데, 50억원에 이르는 변호사 비용을 썼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때도 우 수석은 몰래 변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④우병우씨의 아들이 군대에 갔다. 아들이 ‘꽃보직’이라는 서울청 운전병에 발탁됐다. 특혜를 받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출처: 경향신문 DB

물론 우 수석은 모든 혐의를 부인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하면 아직은 죄가 없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검은 구석’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게다가 이 의혹을 확인하려면 검찰수사가 필요한데, 민정수석 신분으로 검사 앞에 서는 건 서로 껄끄럽다. 혹시 우 수석이 민정수석 역할을 아주 잘해서 그를 대신할 적임자가 없는 것일까? 하지만 우 수석이 진경준 검사장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비리를 일부러 누락시켰다는 혐의까지 받는 걸 보면 그가 자기 일을 열심히 한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우 수석을 경질하기는커녕 그를 조사한 감찰관에게 화를 내고 있다. 특별감찰관이 ‘우 수석이 협조를 안해 감찰을 제대로 못했다’고 푸념한 것이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걸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조사를 당부한 것이다.

3년 전 화제가 됐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경우를 보자. 다들 알다시피 국정원은 박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직원들에게 골방에 틀어박혀 댓글을 달게 했다가 발각되고 만다. 소위 ‘국정원 댓글사건’이다. 한 나라의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위법이기에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결국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기소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채 전 총장이 이끌던 검찰은 보기 드물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냈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채 전 총장에게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사태가 꼬이기 시작한다. 채 전 총장의 내연녀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는 TV조선으로부터 430만원을 받고 ‘내연녀의 집에 채 전 총장이 자주 찾아왔다’는 인터뷰를 하고, 청와대 행정관은 혼외 아들로 지목된 어린이의 인적사항을 열람한다. 민·관·언론이 서로 도와가며 우리 사회의 도덕을 지켜가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감동했고, 일제히 입을 모아 채 전 총장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의혹이 확산되자 박 대통령은 “사생활과 관련된 도덕성 의혹이 제기된 것에 대해 스스로 진실을 밝히라”며 채 전 총장을 압박, 사퇴하게 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사태를 ‘채동욱 찍어내기’라 불렀다.

윤창중은 주위의 반대에도 대통령이 직접 대변인으로 발탁한 인재였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 동행해 여자 인턴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본인은 격려차 허리를 툭 친 것에 불과하다며 성추문 의혹을 부인했지만,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윤 대변인을 전격 경질한다. 대통령께서 믿고 쓴 인재인 것을 감안하면 가히 전광석화 같은 속도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사건들에서 범죄에 대한 대통령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나쁜 범죄는 성추문이다. 하지만 별장 성접대 의혹이 제기된 김학의 전 법무차관을 바로 내치지 않은 걸 보면 대통령은 ‘미국 국적을 가진 여성에 대한 성추문’을 가장 큰 범죄로 규정하는 듯하다. 두 번째로 나쁜 범죄는 내연녀를 두고 자식까지 낳는 일로, 이 둘은 반드시 경질해야 하는 중대 사유다. 

반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특혜를 누리는 것은 대통령이 볼 때 전혀 범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을 욕하는 사람이야말로 대통령을 뒤흔드는 범죄자다. 한술 더 떠서 이들의 비리사실을 언론에 폭로하는 사람은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악질적인 범죄자라는 게 대통령의 인식이다. 

이제 공직자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성범죄는 일단 조심하자. 특히 상대가 미국 여성일 때는 더 조심하라. 자기 일은 대충 해도 된다. 그 대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할 수 있는 한 이득을 취하라. 그러면 대통령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남은 1년 반 동안 무탈하게 공직생활을 할 수 있다. 이게 박근혜 치하 헬조선에서 공직자가 살아남는 법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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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로 속임수를 쓰는 선수에게 관심 없다.”

리우 올림픽 남자수영 400m에서 우승한 호주의 맥 호튼이 경기 전 한 말이다.

그는 기자가 약물복용자인 중국의 수영선수 쑨양과 같이 경기하는 소감을 묻자 위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한 쑨양은 2014년 말, 국내 대회 참가 도중 도핑테스트에 걸렸다. 그가 먹었던 트리메타지딘(trimetazidine)이란 약은 협심증에 쓰이는 약으로, 쑨양은 심장 치료를 위해 이 약을 먹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2008년부터 심장약을 먹었으며, 국제대회에서 심장 문제로 1500m 경기를 포기한 적도 있으니, 그의 심장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인 모양이다.

일러스트 _ 김상민 기자


하지만 이 약은 흥분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2014년 1월 금지약물 리스트에 올랐기에, 그는 졸지에 부정한 약물을 사용한 선수, 일명 ‘약쟁이’가 됐다. 중국수영연맹은 그에게 3개월의 출장정지처분을 내렸다. 쑨양에게 약을 처방한 의사에게 자격정지 1년이라는 중벌이 내려진 걸 보면, 중국 측에서는 의사의 잘못이 더 크다는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쑨양이 ‘약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기에, 수영 전문지에 실린 관련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쑨양, 정말 실망했다.” “난 더 이상 네 팬이 아니다.”

팬들이 이럴진대 같이 뛰는 선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4년 전 쑨양을 보며 자신의 꿈을 키웠을 맥 호튼의 발언은 약물에 대한 수영계의 입장을 잘 보여 준다. 중국 팬들은 호튼 선수의 트위터에 몰려가 그를 욕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글을 남기고 있지만, 그런다고 ‘약쟁이’가 ‘약쟁이’가 아닌 게 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충분히 연습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박태환이 400m 예선에서 결승진출에 실패하자 해설을 맡은 노민상 전 감독이 한 말이다. 실제로 그랬다. 박태환은 2014년 9월 불시에 시행된 도핑검사에서 금지약물인 네비도가 검출되는 바람에 아시안게임 메달 박탈은 물론, 1년 반 동안 선수자격이 정지되는 중징계를 받았다

징계 기간을 다 소화한 후에는 약물을 사용한 이에게 국가대표 자격을 3년간 박탈하는 대한체육회 규정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게다가 박태환은 우리 나이로 28세, 수영선수로서는 이미 전성기가 지난 나이였다. 훈련에만 매진해도 메달을 딸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는데, 이런저런 일로 신경을 썼으니 좋은 성적을 거두긴 어려웠다.

런던에서 은메달을 땄던 200m에서 조 최하위에 그친 걸 보면 그의 몸 상태가 어떤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그는 약물검사에 걸린 게 의사의 실수라고 주장하나, 그 의사가 운영하는 병원은 원래 중년 남성들에게 남성호르몬을 주사하는 게 주 업무였다. 이런 병원을 찾아가 주사를 맞은 건 고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네비도는 쑨양이 먹은 약과는 차원이 다른, 반도핑기구가 최우선적으로 금지하는 약이니, 설령 모르고 맞았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한체육회가 규정을 내세워 박태환을 리우에 보내지 않으려 했을 때, 여론의 절대다수는 박태환 편을 들었다. 그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박태환은 고의로 주사를 맞은 게 아니다. 둘째, 이미 처벌을 받았는데 출전을 못 하게 하는 건 이중처벌이다. 셋째, 박태환 말고 우리나라 수영선수 중 메달 딸 사람이 누가 있느냐. 첫 번째에 대해선 이미 얘기했고, 두 번째 주장은 이미 체육회가 규정을 철회했으므로 언급하지 않는다. 내가 문제 삼는 건 바로 세 번째다. 그들 말대로 박태환은 당분간 우리나라에서 나오기 힘든 걸출한 수영선수다. 선수로서 환갑이 지난 나이임에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커다란 격차로 1위를 차지한 걸 보면, 그를 대표팀에 선발하는 게 당연해 보인다. 혹시 아는가. 메달이라도 하나 딸 수 있을지. 박태환이 국제스포츠 중재재판소(CAS)에 제소하는 등 대표로 나가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에 대한 여론이 우호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나라는 더 이상 못살고 내세울 것이 없는 나라가 아니다.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하나 더 딴다고 해서 세계가 우리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호튼의 발언에서 보듯 부정한 방법으로 이기려고 한 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다면 그거야말로 나라 망신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규정을 철회해가며 박태환을 리우로 보냈다. 그걸 보면 우리나라의 국민의식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져 있다. 과정이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떠받드는 후진적인 풍토, 그것이 이 나라의 온갖 부정부패를 낳는 이유였다. 논문을 조작해도 수백조원 국익을 창출할 원천기술이 있다는 이유로 영웅시하고, 선거에 부정이 있어도 일단 당선되면 다들 고개를 조아리는 나라에서 나만 떳떳하게 산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한 누리꾼이 쓴 댓글이다. “외국에서 태어났다면 훨씬 대단한 선수가 됐을 텐데, 못난 나라에서 태어나서 이 꼴을 당하는구나.” 사실이 아니다. 박태환이 지금 영웅일 수 있는 건 이 못난 나라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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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여름휴가는 내게 충격 그 자체였다. 평소처럼 모래밭에 글씨를 쓰며 해맑게 지내실 줄 알았는데, 그 기간에 몇 권의 책을 읽으셨단다. 사람들이 놀라자 청와대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대통령님은 원래 책을 좋아하신다.” 아쉬운 점은 책을 읽고 난 뒤 국정운영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 올해 4·13 총선 때 새누리당이 참패한 것도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책이 삶에 도움이 안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책을 읽고도 이해를 잘 못할 때고, 두 번째는 책 선택이 잘못됐을 때다. 설마 대통령께서 전자에 해당될 리는 없으니, 지난해에 읽으신 책에 문제가 있었다는 게 합리적인 해석이리라. 이럴 때 좋은 책을 추천해 드리는 건 좋게 봐서 ‘구국의 결단’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임기가 이제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고려하면 이번 여름휴가 때 읽는 책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안타깝게도 대통령님은 7월25일부터 휴가에 돌입했으니 지금 책을 추천하는 게 시기적으론 늦었다. 하지만 꼭 휴가 때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대통령님께는 물론이고 국가 전체적으로도 이익이 될 책을 몇 권 추천해 드린다.

출처: 경향신문DB

1. <내 옆에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박 대통령은 가끔 억울함을 호소하신다. 당신은 열심히 일하는데, 나라 걱정에 잠도 잘 못 주무시는데 사람들은 입만 열면 대통령을 욕한다고. 박 대통령으로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께서는 그들을 ‘대통령을 흔들려는 세력’ 혹은 ‘종북세력’으로 지칭하며 분노를 표출하신다. 문제는 그들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 도대체 이 나라에는 왜 이리도 이상한 사람이 많을까, 라는 한탄이 나올 때 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다. 특히 다음 구절을.

“어떤 남성 운전자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고속도로에 역주행하는 차가 한 대 있으니 조심하라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그러자 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말했다. ‘한 대라고? 수백 대는 되겠다.’…경계성 인격장애, 자기애성 인격장애, 그리고 반사회적 인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사람들은 이들이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곁을 떠나게 된다.”(39쪽)

2. <세월호, 그날의 기록>

임기 초반인 2년째 일어난 세월호 사고는 박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할 풍향계였다. 이 사건에 제대로 대응했다면 박 대통령이 지금보다는 성공적인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박 대통령은 유족의 진상규명 요구를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적대시하는 우를 범한다. 시간이 좀 흘렀긴 해도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늦은 것은 아닌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세월호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 한다. 위 책은 세월호에 대한 모든 음모론을 배제한 채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만 담담히 적은, 진상을 아는 데 가장 좋은 책이다.

3. <자치가 진보다>

지방자치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인식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방자치, 그까짓 게 왜 필요해? 내가 대통령이니 내가 다 할 거야!” 하지만 지방자치가 필요한 이유는 지역마다 여건이 다르며, 중앙정부에서 그걸 일일이 파악해 대처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어느 곳, 누구에게나 적합한 보편적인 정책은 있을 수 없다. 나와 내 이웃이 안고 있는 문제는 나와 내 이웃이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다. 함께 머리 맞대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 자치이다.”(43쪽)

대통령께서 이 책을 읽으신다면 성남시장이 좀 더 편하게 시정을 펼칠 수 있으리라.

4. <개성공단 사람들>

박 대통령은 임기 내내 남북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중 최악은 올해 2월 개성공단 폐쇄였다. 북한에 벌을 준다면서 남한 측에 훨씬 더 큰 손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건 대통령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북한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해서다. 이미 신뢰가 깨진 마당이라 개성공단 폐쇄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됐지만, 대통령께서 이 책을 통해 ‘내가 무슨 일을 했던가?’ 정도는 느껴 보시면 좋겠다.

5. <댓글부대>

제목만 보고 식겁하실까봐 미리 말씀드리면, 이 책은 국정원 댓글사건을 다룬 다큐가 아니다. 댓글이라는 게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지를 아주 재미있게 풀어놓은 소설인데, 이 책을 읽으신다면 박 대통령께서 “나는 도움받은 적 없다”라는 말씀은 안 하실 수 있으리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인지라 책 다섯 권을 추천받으면 “언제 다 읽냐”며 손사래를 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이며, 자투리 시간에만 읽어도 석 달이면 다 읽으실 수 있다. 게다가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법, 혹시 아는가. 기적적으로 7시간가량 짬이 날지. 이 책들과 함께 변화된 대통령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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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17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11일간의 단식을 중단했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바지를 안 사준다고 딱 하루 동안 밥을 굶은 게 가장 긴 단식인 나로서는 열흘이 넘게 단식한 이 시장이 존경스럽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긴 하다. 예로부터 단식은 주로 힘없는 이의 수단이었다.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때 택하는 방법이 바로 단식 아닌가? 그런데 잘 사는 동네의 시장을 하는 분이 단식을 해야 할 사정은 도대체 뭘까? 그건 자신이 바라는 성남시의 모습이 박근혜 대통령의 그것과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

ⓒ 경향신문DB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집권 시 자신이 우선적으로 추구할 가치를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중점을 둔 가치는 남북관계 개선이었다. 이를 위해 김 전 대통령은 금강산관광을 시작했고, 온갖 난관을 다 이겨내고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고 돌아온 뒤 “전쟁은 없다”라고 선언한 그의 모습은 50년간의 적대에 찌든 우리에게 “통일이 머지않았구나”라는 환상을 갖게 해줬다.

하지만 남북화해보다는 대결을 더 선호하는 세력이 집권하면서 남북관계는 점점 뒷걸음질 쳤고, 그 시대의 상징인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이제는 과거의 유물이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해소’를 핵심가치로 삼았다. 지역주의에 도전했다 번번이 실패한 것이 그가 대통령이 된 이유였던 만큼 사람들은 이제 지긋지긋한 지역주의가 청산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지역주의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각 정당들도 지역주의 청산을 바라지 않았기에, 노 전 대통령의 가치는 아쉽게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을 따르는 측근들이 보다 윤택한 삶을 살기를 원했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대강의 강바닥을 파헤친 것도 이 때문인데, 여기에 투입된 돈은 무려 22조원이나 됐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4대강 사업이 국민들의 삶에 어떤 이득을 가져다줬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의 두 대통령과 달리 이 전 대통령이 원했던 가치는 충분히 실현된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집권 3년여를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나 보다. 국가에 뭔가를 바라지 말고 모든 것을 제힘으로 알아서 해결하는 그런 인간형, 이를 이루기 위해 박 대통령은 안 그래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인 복지를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제 국가에 대해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경기불황으로 삶의 수준이 밑바닥까지 떨어졌어도 국가에 의존하려 하지 않고, 심지어 큰 재난이 났을 때 국가기구가 나를 구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버린 지 오래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무슨 무슨 ‘장’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면 그 휘하에 있는 사람들을 잘 챙겨줄 의무가 있다는, 저 옛날 요순시대의 가치관을 갖고 있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남시의 유치원과 초·중학교에 친환경 무상급식을 시행했고, 1인당 15만원 정도가 드는 교복값도 지원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공공 산후조리원을 만들어 산모 1인당 25만원을 지원해줬다. 게다가 청년배당이라고 만 24세 청년에게 연 50만원을 지역화폐로 줬는데, 이는 지역에서 이 돈을 소비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정책이었다.

성남시민들은 시장을 칭송했고, “나도 성남에서 살고 싶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이 전국에 메아리쳤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성남시민들이 세금을 추가로 더 내게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소위 증세 없는 복지의 기적, 박 대통령이 국가채무를 기록적으로 늘려나가는 것과 정반대로 이 시장은 그전 시장이 진 빚까지 모두 갚아버렸다!

국민들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려던 박 대통령이 화들짝 놀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저작권의 소유자가 아닌가? 정부의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다. 성남시가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을 빼앗는 게 그 방법이었다.

심지어 성남시를 ‘부자 자치단체’라고 부르며 “부자들한테 5000억원씩을 갈취해 다른 지자체에 나눠 주겠다”는, 말도 안되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얼마 전 행정자치부가 입법예고한 ‘지방재정법 시행령 개정안’이 바로 이것인데, 이게 시행되면 우리나라에서 지방자치는 물 건너간다. 이것이 이 시장이 무려 11일간 밥을 굶은 이유였다.

안타까운 점은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보수세력이 성남시장을 포퓰리즘의 화신처럼 묘사하는 것이야 예상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많은 이들이 거기에 동조해 이 시장을 욕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성남시민이 부러우면 자기네 시장·군수에게 “왜 우리는 저렇게 못 하냐?”고 떼를 쓸지언정, 너희도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야 한다며 성남시장을 깎아내리는 게 과연 옳은가? 이런 걸 보면 국민들을 국가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키우겠다는 박 대통령의 가치는 거의 성공한 모양이다. 바람직한 가치는 줄줄이 실패하고,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가치는 죄다 성공하는 나라, 박 대통령의 성공이 슬픈 이유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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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파기라는 데 대해 동의할 수 없다.”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시민이 바라는 신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프랑스에 용역을 줘서 타당성을 따져본 끝에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나자 공약 파기 논란에 휩싸였었다. 하려던 사업이 수지가 안 맞는다면, 그리고 그 재원이 국민의 세금이라면, 욕을 좀 먹더라도 안 하는 게 맞다. 그렇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말을 믿고 기대했던 해당지역 주민들에게 사과 정도는 하는 게 도리다.

경향신문DB

게다가 신공항 사업이 이렇게 결론 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신공항을 짓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리저리 따져본 끝에 내린 결론은 새 공항을 짓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이 대통령은 2011년 만우절을 맞아 영남권 신공항이 백지화된 것에 대해 사과했다. “대통령 한 사람 편하자고 다음 세대에 부담을 주는 사업을 하자고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이렇게 일단락된 사건에 다시 불을 지피고, 보수세력의 본산이라 할 영남지역을 편을 갈라 싸우게 만든 장본인은 바로 박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사과하는 대신 기존 공항 리모델링이 사실상 신공항이라는 창조적 해석으로 공약 파기 논란을 벗어나려 한다.

미리 말해두지만, 난 박 대통령의 지지자다. 지난 대선 때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박근혜 대통령을 이명박 전 대통령과 비교하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을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박 대통령이 더 못할 것이다라고 한 반면, 난 박 대통령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명박보다 더 못하기 힘들며, 박 대통령은 자녀가 없어서 측근비리를 저지르기 힘들다는 게 당시 내 변명이었다. 내가 박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증거는 이게 다지만, 내 의견에 대한 수많은 반박에도 끝끝내 박 대통령 편을 든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좀 순진했다는 생각이 든다.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아 자신과 측근들의 재산을 불리는 데 주력한 이 전 대통령보다 국가 수준을 40년 전으로 돌리는 박 대통령이 훨씬 더 나빠 보이니 말이다. 물론 잘못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진솔한 사과, 그게 있어야지 그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고, 대통령 자신도 사과를 통해 다음번엔 비슷한 잘못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시모토아라는 기생충이 있다. 중남미 해안지방의 물고기에 기생하는 시모토아는 팬클럽이 있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고 합당한 책임을 진다는 게 그 비결이다. 원래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근처에 살면서 혀로 가는 혈관에 입을 박고 피를 빨아 먹는다. 혈액 공급이 부족해진 혀는 얼마 안돼서 썩어버리고, 결국 떨어져 나간다. 여기까지만 보면 시모토아는 굉장히 나쁜 기생충이다. 멀쩡한 혀를 없애버리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시모토아가 빛나는 대목은 그 다음부터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시모토아는 물고기에게 다음과 같이 용서를 구한다. “물고기야, 내가 내 욕심만 채우려고 너에게 몹쓸 짓을 했구나. 하지만 걱정 말아라. 앞으로 내가 너의 혀가 되어줄게.” 실제로 시모토아는 물고기의 혀 위치에 자리를 잡고 혀가 하던 역할을 대신한다. 물론 물고기의 혀가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먹을 게 물고기의 입에 들어가면 다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그게 있고 없고는 물고기에게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혀가 없어진 물고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양실조에 빠지지만, 혀 대신 시모토아를 가진 물고기는 정상 물고기와 비교할 때 체중변화가 거의 없었단다. 그뿐이 아니다. 물고기가 죽고 나면 시모토아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 대신 물고기의 곁을 지키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이 정도면 가히 사과의 아이콘으로 불려야 되지 않을까?

물론 박 대통령에게 시모토아 정도의 사과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저 이명박 전 대통령 정도의 사과가 우리가 기대하는 한계치일 텐데, 박 대통령이 그 정도의 사과마저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과 안 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윤창중 대변인이 성추행을 했을 때는 홍보수석이 나와 국민과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는데, 사과를 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사과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적어도 기생충의 세계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메르스로 인해 경제가 마비되고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을 때도 대통령 대신 총리가 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황교안씨가 사과를 했다. 세월호 사건 때도 사과를 계속 미루다 열흘이 지난 후 국무회의에서 뭐라 사죄를 드려야 그 아픔과 고통이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걸 과연 사과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사과가 싫다면 잘못을 하지 않으면 될 텐데 그런 것도 아니니 답답하다. 멕시코에 사는 시모토아를 데려와 사과에 대한 강의를 듣는다면 좋으련만, 남의 말도 잘 듣지 않으니 방법이 없어 보인다. 대통령의 사과가 없는 나라, 지금 우리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다.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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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말, 돌아가신 아버지의 첫 제사를 지냈다. 가족 모두 침통한 표정으로 너무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애도했다. 하지만 그 슬픔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얕아져서, 작년 제사 때는 아무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없었다. 아버님이 안 계시는 것을 가족 모두가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한 결과이리라. 그런 점에서 박 대통령이 보이는 효심은 놀랍기 그지없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박통)이 돌아가신 게 1979년이니 벌써 37년이 지났건만, 어떻게 된 게 시간이 감에 따라 효심이 더 깊어만 가는 느낌이다.

2012년 박정희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기념관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박 대통령이 여당 당대표이자 유력 대선후보가 아니었다면 서울에 기념관이 들어서는 건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 대통령이 된 박 대통령은 교과서를 뜯어고쳤다. 친일과 쿠데타 등등 박통의 부정적인 측면이 그대로 기술된 교과서가 아이들의 혼을 이상하게 만든다는 논리였다. 요즘 대통령은 아프리카 등 못사는 나라들에 새마을운동을 퍼뜨리려 노력하고 있다. 새마을운동에 긍정적인 면이 없진 않겠지만, 황폐해진 지금 농촌의 모습을 보면 그 운동의 성공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대통령은 ‘지구촌 새마을운동’이란 프로젝트를 만들어 매년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붓고 있다. 심지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새마을운동을 게임으로 개발해 그 정신을 세계에 알리겠다는데, 박 대통령의 엄청난 효심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가능하지 않았으리라.

왜 효도를 자기 돈으로 하지 국민 세금으로 하느냐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 알아서 효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리라. 문제는 박 대통령이 지금 하는 것들이 진짜 효도인지 여부다. 나카자카 도니가 쓴 <도이옹도화>라는 책을 보면 효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오우미에 사는 한 효자(이하 오우미)는 평소 자신이 더 효도를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던 차에, 시나노라는 곳에 엄청난 효자(이하 시나노)가 산다는 소문을 듣는다. 오우미는 제대로 된 효도를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시나노의 집을 찾아간다. 잠시 후 산에 나무를 하러 간 시나노가 땔감을 잔뜩 진 채 집으로 왔다. 그런데 시나노의 행동은 뜻밖이었다. 오자마자 큰 소리로 나이든 어머니를 불러 이렇게 외쳤다. “빨리와서 땔감 부리는 걸 도와줘요!” 그것만이 아니었다. 피곤하다며 노모더러 팔과 다리를 주무르게 했고, 어머니한테 밥상을 차리게 하더니 ‘반찬이 짜다’ ‘밥이 너무 딱딱하다’ 등등 밥투정을 해댔다. 보다 못한 오우미는 분연히 일어나 시나노를 나무랐다. “네가 효자라고 해서 배우러 왔더니, 너야말로 천하의 불효자식이다. 어찌 어머니를 그렇게 막 대하는가?”




그 말을 들은 시나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효도가 좋은 것이긴 하지만, 효도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들은 참된 효도가 아니다.”

무슨 말일까? 시나노의 어머니는 나무를 하고 온 아들이 피곤할 것 같아 돌봐주고 싶었을 텐데, 시나노는 그 마음을 헤아려 어머니더러 팔다리를 주무르게 한 거였다. 밥투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손님 대접을 하면서 혹시 미흡한 점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고, 그래서 아들이 어머니 뜻을 헤아려 먼저 불만을 터뜨린 것이었다. 시나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난 그저 어머니께서 생각하신 대로 하게 하는 것뿐이네.”

박 대통령도 아버지 박통이 과연 이런 효도를 원했을지,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친일전력, 좌익전력, 독재를 통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한 것, 권력을 이용해 뭇 여자를 섭렵한 일 등은 박통도 그리 떳떳하게 생각지 않았을 테니, 세금을 들여서라도 교과서를 고치는 건 효도의 범주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 밖의 점들은 아버지가 절대 원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박통이 경제발전에 매진한 것은 그가 부정한 방법으로 집권했다는 사실을 희석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었겠지만, 굶는 아이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그런 박통으로서는 재벌들을 배부르게 하느라 빈부격차가 나날이 커지게 만드는 딸을 보는 심정이 착잡할 것 같다. 대통령이 추진하는 소위 노동개혁법을 박통이라면 뜯어말리지 않았을까?

또한 경제발전에 필요한 돈을 조달하느라 외채로 고민했던 박통은 우리나라가 2016년 기준 1285조원의 빚을 지고 있고,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는 나라가 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으리라. 마지막으로 박통은 자신의 딸이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지금처럼 국민들로부터 욕먹는 일만 골라서 해대는 대통령을 박통이 봤다면 한숨을 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을 것 같다. “내가 딸을 잘못 키웠구나.”

사정이 이럴진대 박 대통령이 효자 코스프레를 계속하는 것은 아버지를 위한다기보단 남에게 보이기 위한 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부디 대통령이 <도이옹도화>를 읽고 진정한 효가 무엇인지 알았으면 한다. 아버지의 10분의 1만큼만이라도 국민을 생각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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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머니는 그게 아기에게 좋은 줄 알고 열심히 가습기를 틀어줬다고 한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는 말씀도 하셨다. 대통령의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대통령께서 요즘 많이 약해지신 것 같아서였다. 원래 대통령께서는 이런 분이 아니었다. 재정적자가 누적돼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의 40%에 육박해도 재벌과 부자들을 지키겠다며 세금을 올리지 않으셨다. “이런 교과서로 배우면 혼이 이상해진다”며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300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어도 눈 한번 깜빡하지 않았다. 심지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이렇게 강한 분이 갑자기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의외다. 게다가 그 사건이 당신의 임기 때도 아닌, 무려 5년 전에 발생한 일이라는 것도 의문을 증폭시킨다.

이상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5월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 것도 대통령답지 않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평소 지론처럼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나태하게 쉬는 것보다 시간을 아껴 일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실 분이다.

박 대통령의 지표라 할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자. 하도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바람에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하시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5월5일이 쉬는 날이니 6일은 두 배로 일하도록 퇴근시간도 자정 쯤으로 미루는 게 이치에 맞을 텐데, 그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4일 연휴를 만들어 버린 건 대통령이 변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물론 지난해 8월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해 국민들에게 3일 연휴를 선물한 바 있지만, 그거야 더운 여름날이니 전혀 납득이 안 가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5월 초인 데다 날씨가 시원해 마구 일이 하고 싶어지는 시기인데 임시공휴일이 웬 말인가?

최근 이란을 방문할 때 착용한 히잡도 논란이 됐다. 히잡이 여성인권을 탄압하는 도구로 쓰인다는 것도 문제지만 이란한테 너무 굽히고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해당 국가에 대한 존중의 의미라곤 하지만 대통령이 사랑해 마지않는 미국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프리카에 간다고 해서 벗고 가실 건 아니지 않은가.


추측하건대 대통령이 변한 건 지난달 치러진 총선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200석 이상을 얻어 부녀가 개헌하는 값진 기록도 세울 법했지만, 결과는 과반수는 고사하고 제1당도 차지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선거에 초연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일 잘하고 있는 장관들을 데려다 총선에 내보냈고, 빨간 옷을 입고 격전지를 둘러보는 등 누가 봐도 티가 나는 선거운동을 했다. 선거 전날까지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메시지를 국민에게 전달하느라 애썼다. 그래도 불안해서 선거 직전 탈북자들까지 동원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거기에 자신이 배신자라고 낙인찍은 유승민 의원이 당선되기까지 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국민들이 자신을 심판한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 대통령으로서는 기운이 없을 수밖에 없다. 선거 2주가 지난 뒤 “양당체제인 국회가 하는 일이 없어 국민이 국회를 심판한 것”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낼 때의 심경은 실로 비참했으리라. 그 내용을 기사로 보면서 난 대통령을 이렇게 만든 유권자들을 살짝 원망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해야 대통령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원인이 국민들에게 있는 만큼 우리가 대통령에게 좀 잘해야 한다. 지지하던 분들은 계속 지지하고, 반대하던 분들도 ‘그만하면 됐다’는 마음을 갖자. 안 그래도 선거 패배로 마음 아파하는 대통령이 “지지율 31%로 급락” 같은 기사를 본다면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두 번째로,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분들이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 역대 정부 중 현 정부만큼 아랫사람들이 개인적인 일탈을 저지른 정부는 없었다.

예컨대 2013년 청와대 행정관이던 조모씨는 당시 검찰총장 아들의 인적사항을 열람해줄 것을 지시했는데, 이건 대통령의 뜻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적인 일탈로 밝혀졌다. 2014년 터진 비선실세 의혹도 사심을 가진 몇몇 개인의 일탈이었다. 이번 어버이연합 관제데모 사건 역시 허모 행정관의 개인적인 일탈일 뿐, 청와대와는 무관하다는 게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으로 드러났다.

대통령을 누구보다 잘 보필해야 할 이들의 일탈은 그 자체가 대통령에게 큰 타격이다. 어버이연합도 문제가 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청와대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청와대 허 행정관이 이렇게 지시했지만 우리는 그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생각이 없어도 너무 없으신 거 아닌가. 대통령을 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충성이라는 건 몸만 가지고는 안되는 법이다.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박 대통령이 쓰신 저서다. 이 책 제목처럼 대통령이 빨리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길 빈다. 그래야 우리가 정권교체의 희망을 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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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주변이 별로 없는 편이다. 그래서 아주 절박할 때가 아니면 입을 열지 않게 됐다. 학교에서 하는 회의 때 자발적으로 말을 한 적은 거의 없고 혹시 누가 내 의견을 물을까봐 전전긍긍하곤 했다. 그렇다고 내가 말 잘하는 것에 대한 욕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잘생긴 사람보다 말 잘하는 사람이 훨씬 더 부러웠고, 특히 1~2분이면 충분한 얘기를 10분씩 하는 분들을 보면 아예 넋을 잃었다. 달변가의 꿈을 품고 혼자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말주변은 잘 늘지 않았다. 이 말재주로 방송에 나갔을 때 남들은 이렇게 날 격려했다. “너에겐 어눌한 데서 오는 매력이 있어.”

처음 박근혜 대통령을 봤을 때 난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더구나 대통령은 정치인이었으니, 말을 못한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눌변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다들 알다시피 대통령은 터놓고 대화할 사람이 거의 없는 청와대에서 10대와 20대를 보냈고, 유신이 몰락한 이후에는 20년 가까이 칩거를 했다. 그 기간 중 책이라도 열심히 읽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말을 잘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터였다. 정치판 입문의 기회로 삼았던 1998년 대구 보궐선거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했던 연설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가… 아버지는… 아버지를… 아버지!” 여기서 떨어졌다면 스피치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화술을 키웠을 텐데, 박 후보는 경쟁자로 나왔던 엄삼탁 후보를 엄청난 표차로 이기면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 후에도 대통령은 굳이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유세 도중 아버지를 몇 번만 부르면 표가 쏟아졌으니까. 설마 이러다 대통령까지 될까 했는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대통령은 일반 정치인과 달랐다. 대선후보 시절 TV 토론회도 이리저리 피해 다닌 대통령이었지만, 대통령이란 자리가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해야 하는 만큼 마이크 앞에 설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다음 두 가지 전략을 취했다. 첫째, 가급적이면 말을 하지 않기. 다들 대통령의 입만 쳐다볼 때조차 말하기를 회피했고, 아랫사람을 시켰으니까. 메르스 파동때 황교안 총리가 대국민사과를 하게 만든 게 대표적인 예다.

둘째, 돌발 상황 피하기. 어쩌다 말을 해야 할 때는 미리 원고를 준비해 프롬프터에 띄운 뒤 그냥 읽었고, 신년 기자회견처럼 피할 수 없는 행사에선 어떤 질문을 할 것인지를 사전에 받음으로써 말주변이 드러나는 것을 막았다. 심지어 할 말만 하고 질문은 받지 않는 황당한 회견도 있었으니, 대통령이 얼마나 말하기에 공포감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이러면서도 대통령은 자신이 눌변가라는 세간의 인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국무회의 때처럼 자신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말을 길게 늘여 함으로써 달변가의 이미지를 심으려 했다. ‘밥을 먹었다’는 것보단 ‘입을 통해 밥을 몸 안에 집어넣었다’가 훨씬 더 지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게 무슨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고, 그런 가운데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된다.” 박근혜 어록으로 남은 이 말은 달변가에 대한 대통령의 욕망을 너무도 잘 드러냈지만, 너무 말을 길게 하려다보니 주어가 뭔지 스스로 헷갈렸고, 그 결과 정체불명의 문장이 탄생해 버렸다. 그런데 이 말이 나온 뒤 국무위원 중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묻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걸 보면 그들도 대통령으로부터 의미 있는 말을 듣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던 모양이다. 이 밖에도 대통령은 많은 어록을 남겼는데, 그 대부분이 문장을 길게 늘이다 발생한 참사였다.

총선이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선거 참패의 원인이 유승민 등 소위 배신자를 쫓아낸 뒤 자신과 친한 인사들을 국회에 보내려고 무리수를 둔 대통령에게 있건만, 대통령의 반응은 좀 어이없었다.

선거 다음날 청와대 대변인의 말이다.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불리할 때 침묵하고, 정 말해야 할 때는 아랫사람을 시킨다는 첫 번째 원칙이 잘 구현되긴 했지만, 너무한 것 아닌가?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는지 며칠 뒤 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은 총선에 대해 추가로 언급한다. “앞으로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 문장을 억지로 늘이지 않고 짧게 말한 건 잘했다고 칭찬할 만하지만, 그토록 열을 올리신 이벤트의 결과에 대한 반응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대통령이 말을 잘하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달변인 사람만이 대통령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어눌해도 자신이 해야 할 말을 해주는 대통령이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니, 그가 해야 할 말을 역시 눌변가인 내가 대신 해준다. “제가 국민을 우습게 보고… 어 그러니까… 너무 오만하게 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겸허한 정치를 하겠습니다.”


서민의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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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내놓는 예측은 여간해선 들어맞는 법이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한 이유지만, 경제주체들이 꼭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게 더 큰 이유다. 예컨대 어느 가정에서 적자가 늘어나면 씀씀이를 줄이든지, 야근이라도 해서 적자를 줄이려고 노력한다. 이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어서 경제학을 동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기는커녕 계속 은행에서 빚을 당겨쓴다면? 실제 이런 나라가 있다. 눈치 빠른 분들은 알겠지만 그 나라는 우리나라로, 대통령은 세금을 올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늘어나는 재정적자를 바라만 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예측이 유난히 안 맞는 나라인 건 이렇듯 ‘비합리’라고 표현하기도 어이없는 선택들이 쌓인 결과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누가 봐도 모자란 후보가 비교적 괜찮은 후보를 꺾고 당선되는 일이 번번이 일어난다. 이건 다 투표를 하는 주체들이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투표결과만 보면 유권자들이 일부러 나라를 망치기로 작정한 것 같은데, 얘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란다. 그들의 항변이다. “이런 사람인 줄 나도 몰랐다.” 물론 헷갈릴 수는 있다. 양쪽 후보 모두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니 말이다. 여기서 따져봐야 할 것은 그 후보가 지난날 어떤 삶을 살았는지, 평상시 소신은 어떤 것인지 등등이다.

예를 들어 복지를 하려고 할 때마다 ‘빨갱이’라며 거품을 물고 반대하던 이가 갑자기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노령연금을 지급한다” “4대 중증질환의 진료비를 국가가 부담하겠다”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 같은 공약을 남발한다면, 이건 단순히 표를 얻기 위한 것일 뿐 진심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니 정말 복지확대가 필요하다면 그 후보에게 표를 던져선 안 되지만, 결국 당선되는 건 그런 후보다. 한두 번이면 몰라도 매번 “속았다”를 되풀이하는 건 유권자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심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현 정부의 업적으로 칭송되는 개성공단 폐쇄를 보자. 남북한 상황에 관계없이 개성공단은 유지한다는 약속을 어긴 건 둘째치고, 그게 과연 누구에게 이득을 가져다준 것일까? 국내 최고의 개성공단 전문가 김진향이 쓴 <개성공단 사람들>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개성공단은 퍼주기다? 아니다. 북측에 비해 오히려 우리가 몇 배는 더 많이 퍼오는 곳이다. 매년 1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투자해서 최소 15억~30억달러 이상의 가치를 생산하고 가져오는 곳이다.”

2013년 개성공단이 중단됐을 때 대체할 만한 곳을 찾던 기업들이 “해외 어디를 가 봐도 개성공단만큼 경쟁력을 가진 곳은 없다”라고 했단다. 개성공단의 수익이 미사일 개발에 쓰인다는 게 직접적인 폐쇄 이유지만, 개성공단에서 북한 근로자들이 받는 임금은 월 15만원에 불과하고, 이들이 중동에서 받는 임금이 1000달러임을 감안하면 이 조치가 북한에 얼마나 타격을 줬는지 의문스럽다. 우리 기업들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본 이 자해적 조치에 찬성하는 비율이 50.7%로 반대(41.2%)보다 높았고, 대구·경북 지역의 찬성률은 71.9%였다. 정말 궁금하다. 이분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성공단을 폐쇄했어도 같은 대답을 했을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일명 사드(THAAD)도 마찬가지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면 그 미사일을 요격해 우리 국민과 시설을 보호한다는 게 바로 사드의 배치 이유. 저 멀리 바다를 건너 날아온 미사일이면 모를까, 코앞에 있는 북한이 쏜 미사일을 사드가 지켜준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사드를 배치하면 중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재를 가한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67.1%가 찬성했고, 반대는 26.2%에 그쳤다. ‘사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이런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런 분들이 모여서 내는 목소리에 기대어 “국민여론이 사드를 더 찬성하고 있다”고 우겨도 되는지 의문이다.

4월13일,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선거 때마다 투표하자는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이런 무조건적인 투표 독려는 괜찮은 걸까? 유권자들이 정보를 찾아보고 투표한다면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에 누가 나왔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투표를 강요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투표를 하기 전에 각 정당의 정책과 후보자를 꼼꼼히 살펴보고 찍을 후보를 정하자. 그 정도 노력을 할 만한 여건이 안 된다면 차라리 투표하지 않는 것도 괜찮다. 생각 없는 투표는 나라를 산으로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에 대한 무관심보다 더 위험하니까. 투표 독려 캠페인 덕분에 투표율이 이전에 비해 10% 이상 올라갔던 지난 대선을 떠올려보자. 그 대선 이후 이 나라는, 산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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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22 20:40:46 수정 : 2016.03.22 20:48:30

“한국형 알파고를 만들겠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끝난 지 이틀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래창조과학부가 내놓은 폭탄선언이다. 앞으로 5년간 국가가 1조원, 민간에서 2조5000억원, 모두 3조5000억원을 투자한단다. 바둑의 최고수인 이세돌을 압도적으로 이기는 알파고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저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탄식하던데, 미래부의 발 빠른 선언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물론 바둑 좀 둬본 어른들에게도 큰 희망을 선사했으리라. 인터넷의 반응도 뜨거웠다.

“유행에 민감한 대한민국.” “만날 뭐만 하면 한국형, 지겹다.” “돈 버리는 소리가 들린다.” “로봇 물고기는 뭐하냐?”

문제는 방향이다. 즉 어떤 기능을 가진 알파고를 만들지가 관건이다. 바둑 잘 두는 알파고는 이미 구글이 만들었다. 물론 우리나라 기술이라면 구글 알파고에 불계승을 거둘 알파고를 만들 수 있겠지만, 그래 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미 구글에 열광한 사람들이 뒤늦게 나온 한국의 알파고에 관심을 둘 것 같진 않고, 또 바둑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구글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알파고를 만든다면, 그래서 우리 실정에 맞게 잘 이용한다면 3조5000억원의 비용도 아깝지만은 않다. 그렇다면 한국형 알파고에 어떤 기능을 탑재해야 할까? 혹자는 대통령을 대신할 알파고를 만들자고 한다. 현 대통령에게 반감을 가진 좌파들이 이런 주장을 하는데, 그들이 간과하는 것은 아무리 잘 만든 알파고도 현 대통령만큼의 정치력을 보일 수 없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올 초 600조원을 돌파했다. 놀라운 점은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5년간 309조원에서 440조원을 만드는 데 그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3년 만에 160조원을 더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는 점. 그럼에도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니, 대통령의 목표는 아마도 세계 최대의 부채국가일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런 건 꿈도 꾸지 못한다. 오직 합리적인 판단만 하는 알파고는 집권하자마자 세금을 올리고 나라의 쓰임새를 줄여버릴 테니까. 부채의 규모보다 세계 1위가 주는 소소한 기쁨이 있다는 걸 알파고는 알 턱이 없다. 북한이 잃는 것보다 우리의 손실이 수십배에 달하는 개성공단 폐쇄도, 성적(性的)으로 문제가 많은 분이 대변인이 되는 것도 알파고가 대통령이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대통령을 대신할 알파고를 만들지 못한다고 할 때, 차선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대통령을 도울 알파고다. 바로 사람의 마음을 읽는 알파고. 국회의원 선거에서 집권여당의 공천이란 나라는 어찌 되든 대통령에게만 충성할 사람들을 가려내는 과정,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대통령에게 충성할 사람이 누군지 알 방법이 없어서다. 공천 여부가 화제가 된 유승민 의원을 보라. 2004년 당시 초선이던 유승민은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에게 충성한 덕분에 비서실장으로 발탁됐고, 그 뒤에도 쭉 대통령만 바라보는 정치를 해왔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원조 친박’인 셈, 하지만 그의 충성심은 가짜였다.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세월호 시행령 파동이 아니었다면 그가 대통령을 배신할 것임을 우리는 절대로 알지 못했으리라. 비단 유승민뿐만이 아니다. 지금 수많은 이가 ‘친박’ ‘진박’, 심지어 ‘진진박’을 자처하며 자신을 공천해 달라고 울부짖지만, 그들 중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대통령에게 배신의 칼을 겨눌 사람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의원으로서 권력을 향유할 2016년, 2017년이 대통령의 레임덕과 겹친다는 점에서, 제대로 된 사람을 공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한국형 알파고가 필요하다. 누가 대통령의 사람인지 잘 따져서 대통령의 업무를 도와줄 알파고가. 그런 걸 어떻게 만들겠느냐고 하겠지만,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세돌과 바둑을 둔 알파고를 떠올려 보라. 이세돌이 뒀던 판을 모조리 학습하고, 이세돌이 바둑돌을 둘 때마다 십여수 앞을 내다보는 게 가능하다면, 한 정치인의 삶을 입력하고 그의 앞날을 내다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게 어렵다면 ‘박 대통령은 늘 옳다’ ‘박 대통령이 잘되는 게 나라가 잘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아이큐는 430이다’ 같은 말로 끊임없이 사람들을 세뇌시켜 충신을 양성하는 알파고라도 만들어 보자. 우리나라엔 이 분야 전문가들이 아직 많이 생존해 계시니, 비용절감의 효과도 있다.

집권 초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를 선언한 바 있다. 아쉽게도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었고, 집권 4년째가 다 되도록 창조경제의 실체는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한국형 알파고가 만들어져 정치개혁을 이루고, 또 미얀마나 수단, 파키스탄 등 여러 선진국들에 수출까지 된다면, 더 이상 창조경제가 무엇인지 묻는 이는 없을 것 같다. 한국형 알파고가 기대되는 이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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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인간과 침팬지는 DNA 서열이 98% 이상 일치한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다.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반면, 침팬지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DNA대로라면 침팬지도 도구와 언어를 만들고, 나름의 문명도 이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바르키와 브라워가 쓴 <부정본능>이란 책은 그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이 성공한 이유는 제목 그대로 현실을 부정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

침팬지를 예로 들어보자. 무리들과 함께 어울려 놀던 ‘침팬지1’은 정신세계가 다른 침팬지들보다 약간 뛰어나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이 따르던 ‘침팬지2’가 늙어 죽는 것을 본다. 다른 침팬지들은 거기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던 반면 ‘침팬지1’은 언젠가는 자신도 그렇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며,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 그럼 어떻게 될까? ‘침팬지1’은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두려움은 커져,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점점 더 아무것도 안 하려 했다.

다른 침팬지들이 보기에 ‘침팬지1’은 그냥 ‘또라이’다. 이런 침팬지와 결혼하려는 침팬지는 없었으며, 자연선택은 ‘침팬지1’을 도태시켰다. 하지만 인간은 이와 달랐다. ‘침팬지1’보다 정신세계가 훨씬 진화된 인간은 여기에 맞설 방어기제를 만들어 냈으니, 그게 바로 ‘현실부정’, 더 정확히 말하면 ‘필멸성의 부정’이다. 사람들이 죽음을 잊은 채 살아가는 건 그 덕분이다. 동갑 친구의 장례식에 다녀온 그 날은 우울하겠지만, 현실로 돌아가는 데는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는다. 이게 어떻게 인간의 성공을 가져왔을까? 미지의 땅을 개척하고, 오래 존속하는 건물을 짓고, 빠르지만 사고 위험이 있는 교통수단을 타는 것 등은 현실부정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1987년 10월 공포된 10호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며, 딱 한 번만 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대통령이 되면 우울해질 수 있다. ‘5년이 지나면 영락없이 물러나야 하니, 대통령 자리도 무상하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이 목표한 바를 5년 동안 부지런히 하려고 애를 쓰는 게 정상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힘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수도이전으로 서울의 과밀화를 해소시키려 애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4대강 사업을 통해 자신의 지인들에게 화끈하게 일감을 몰아줬다.


그렇다면 박근혜 대통령은 무얼 하셨을까? 취임 첫해에는 대변인에 윤창중씨를 임명한 걸 제외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2년차에도 특별히 한 일이 없었다. 임기 중반이라고 할 3년차가 되자 대통령이 드디어 일을 시작했는데, 가장 먼저 하신 일이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였다.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았지만 대통령은 흔들림 없이 밀어붙였고,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친일과 독재가 미화된, 아이들의 혼을 맑게 해주는 교과서가 만들어진 모양이다. 지금은 노동개혁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국회를 압박하고 계신데, 이 법안만 통과된다면 우리 청년들이 비정규직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좋은 시대가 온다니 이것 역시 기대가 된다.

굵직한 일을 두 개나 하긴 했지만, 좀 이상하긴 하다. 5년이라는 기간이 막상 일하려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니, 하려던 바가 있다면 취임 초부터 화끈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은 이렇게 띄엄띄엄 일할까? 2년차 때는 세월호 사고가 있었고, 3년차 때는 메르스가 있어서 일하는 데 지장이 있었긴 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두 가지 일을 수습하는 데 있어서도 그다지 한 일이 없으니, 이걸 핑계 삼기엔 좀 궁색하다. <부정본능>을 읽고 난 뒤에야 이해가 됐다. 대통령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에 대한 방어기제로 ‘임기부정’을 구현하고 계신 거였다! 임기가 무한정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드니 일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고, 대신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레임덕만 걱정하면 된다.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정치인에게 배신자 낙인을 찍으면서 펄펄 뛰셨던 것도 그런 연유다. 남는 게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쓴소리를 해도 잘 듣지 않는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대통령의 국가부채를 걱정한다. 노무현 정부 때 재정적자는 10조원에 불과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는 100조원의 적자를 봤고, 박근혜 정부는 불과 3년 만에 167조원의 신화를 이루었다는 것. 이런 말도 대통령에겐 별 소용이 없다. 임기부정의 달인답게 “그깟 부채, 천천히 갚지 뭐”라며 여유를 부리고 있을 테니까.

하기야, 임기부정을 대통령만 하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뜻있는 국민들은 이미 대통령의 임기를 19년쯤 되는 걸로 느끼고 있지 않던가?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하고 투표를 하자. ‘침팬지1’은 자연선택으로 도태됐지만, 대통령은 그럴 수가 없으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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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한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는 없다.”

당연해 보이는 말이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에선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사람들, 특히 애국보수세력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판결이 자기 믿음과 다르게 나온다 해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들 주신씨의 병역비리 의혹이 대표적이다. 주신씨는 허리디스크로 4급 판정을 받았는데, 그 MRI가 가짜라는 게 그들의 주장. 논란이 확산되자 세브란스병원에서 공개검증을 받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혹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애국보수의 클래스를 살펴보자.

첫째, 그들은 주신씨가 병역면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박 시장의 아버지-박 시장-주신씨 이렇게 3대가 병역면제라고 하기도 한다. 정말일까? 박 시장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살았고, 박 시장은 부선망독자라고,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신 독자라 8개월 방위로 병역을 해결했다. 문제의 주신씨는 신검을 받은 후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했는데, 공익요원을 보고 면제라고 하는 사람은 애국보수세력이 유일하다. 그런데 그분들에게 남는 건 시간, 3대가 면제라고 인터넷에 도배를 어찌나 해대는지 그게 진짜인 줄 아는 분들이 생겨나고 있다. 특정인을 비판하기 위해 거짓말을 동원하는 건, 사실을 가지고 깔 게 없기 때문이 아닐까?

둘째, 주신씨의 비리 의혹을 제기한 분은 부산 동남권원자력의학원에 근무하는 의사 양승오씨다. 그는 애국보수세력으로부터 “영상의학 최고의 전문가”로 여겨지고, 이건 ‘동남권’이란 이름 때문에 빚어진 듯한데, 심지어 “아시아 최고의 명의”라고 칭하는 분들도 있다. 자료를 검색해본 결과 논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수도권에 사는 환자가 그를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가는 것 같지도 않은데, 그가 왜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일까? EBS <명의> 팀은 왜 그분을 놔둔 채 세브란스병원의 정태섭 교수를 촬영한 것일까? 아무래도 그들에게 명의란 좌파를 까는 의사인 듯하다.

셋째, 2월17일 서울중앙지법은 양씨의 주장이 허위라면서 15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그들은 판사를 욕한다. 판사가 좌파이며, 서울시장의 권력에 매수당했다고 한다. 또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의학 관련 문제에 대해 당대 최고 권위 전문의와 판사 중 누가 더 잘 알고 있을까요?” 야당 정치인인 박 시장의 권력이 집권당의 그것을 능가한다는 그들의 망상도 놀랍지만, 허위사실 유포에 관한 재판을 ‘의학 관련 문제’라고 단정짓는 창의성은 절로 고개가 수그러지게 만든다. 그런 논리라면 내가 “애국보수들은 뇌에 기생충을 가지고 있다”고 떠들어대도 판사는 판결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기생충에 대해선 내가 판사들보다 훨씬 잘 아니까.

넷째, 창의성의 결정체는 주신씨의 공개검증이었다. 2012년 주신씨는 병원 관계자와 기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MRI를 다시 찍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이들은 즉시 사과를 했지만, 애국보수세력은 물러서지 않았다. MRI가 바꿔치기됐다는 것. 그 옆방에서 다른 사람이 MRI를 찍고 그 사진이 주신씨의 것으로 둔갑했다는데, 그 사람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3년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신기한 점은 그들이 여전히 주신씨의 공개신검을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 의사들이 보고 있는데도 MRI 바꿔치기가 가능하다면, 열번을 찍든 백번을 찍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그들이 영국에 있다는 주신씨를 소환하려는 진짜 이유는 그냥 주신씨가 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좋으면 니들이 가는 방법도 있다.

다섯째, 그들은 19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아들이 공개신검으로 모든 의혹을 해소했다면서 박 시장을 비난한다. 이건 사실일까? 물론 아니다. 이 후보에겐 아들이 둘 있었는데, 둘 다 체중미달로 병역이 면제됐다. 특히 첫째는 179㎝에 45㎏이라는 드문 체형이어서 의혹을 한 몸에 받았는데, 대선 직전 서울대병원에 나타난 이는 첫째가 아니라 둘째 아들이었고, 그나마도 키만 측정하고 몸무게는 재지 않았다. 이 후보가 두 번이나 대선에 떨어진 건 이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 정도가 애국보수에게 ‘의혹 해소’라면, 공개검증에 응한 주신씨는 ‘의혹 완전말끔대박정리’가 돼야 마땅하다.

결론적으로 말해 애국보수세력은 그 투철한 애국심을 엉뚱한 곳에 낭비하고 있다. 물론 달리 할 일이 없어 그러는 건 알지만, 안타깝다. 애국보수라는 좋은 단어가 웃음거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박 시장 아들은 놔주고 다른 곳에 관심을 쏟으시라. 국가부채라든지, 김무성 의원 본인의 병역 의혹, 물고기 떼죽음 등등 애국보수의 관심이 필요한 일들은 도처에 있다. 애국보수의 각성을 기다린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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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혹시 기생충 박사님 아니세요?”

지하철에 서 있는데 나이 드신 여성분이 내게 말을 건넨다. TV에서 나를 봤다고 했다. 지금은 이런 것에 제법 익숙해졌지만, 처음 이런 일을 겪을 땐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했다. 날 알아봐줘서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제 나쁜 짓도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오래 날 지배한 감정은 우쭐함이었다.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살았고, 누군가가 날 모른 체하고 지나가면 속으로 ‘아니 날 몰라보다니!’라고 외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존경하는 분과 팟캐스트를 녹음했다. 녹음이 끝나고 같이 밖으로 나갔는데, 길을 가던 몇몇 분들이 날 알아본다. 의아했다. 내 옆에 계신 분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몇 권의 베스트셀러를 내신, 나와는 비교도 안될 훌륭한 분인데, 그분을 몰라보고 날 알아보다니 이건 세상이 잘못돼도 보통 잘못된 게 아닌 것 같았다. 집에 가서 곰곰이 생각을 해본 뒤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방송은 거기 출연한 사람을 유명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 유명세는 그 사람이 훌륭한 것과는 무관하다. 그러니 남들이 알아보는 사람이 됐다는 게 결코 우쭐해할 일은 아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혹시 누가 날 알아봐도 들뜨지 않으려 애썼는데, 나중에 방송에서 잘리고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간 뒤에도 의기소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 이런 정신수련 덕분이다. 물론 “훌륭한 사람이니까 방송에 나가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고, 방송에 나가는 분들 중 실제로도 훌륭한 분들이 많을 테지만, 원래 훌륭했던 분들도 우쭐하게 만드는 게 방송의 무서운 점이리라. ‘방송 나가더니 변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는 게 괜한 일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되기 전 박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라는 말이 연관 검색어로 뜰 만큼 훌륭한 분이셨다. 대표 시절 멀쩡한 당사를 놔두고 천막에서 업무를 보신 건 전설적인 일화고, 빗발치는 환원 요구에도 불구하고 정수장학회를 지켜내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대통령이 된 뒤 박 대통령은 변했다. 야당 시절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선 안된다”고 해놓고선 지난해 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단행했고, 대선 때 댓글을 단 국정원에 셀프개혁을 주문함으로써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그 밖에도 복지공약을 외면한 채 민주주의의 기본인 삼권분립을 유린하는 데 앞장서는 등 비판받을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여기에 대해 좌파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는 모양인데, 방송활동을 몇 년이라도 했던 내가 보기엔 이게 다 방송 탓이다. 미디어오늘이 2015년 1월부터 191일간 지상파 3사 메인뉴스의 박 대통령 관련 보도를 조사해 본 결과 대통령의 출연 빈도는 실로 엄청났다. SBS는 162건, KBS 155건, MBC 152건이었는데, 그 기간 중 휴일이 30일가량 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거의 매일 한 번씩, 그것도 지상파 황금시간대에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물론 대통령이 하는 일 중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이 많다보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저 보도들 중엔 대통령의 근황을 보도해야 한다는, 독재정권 시절부터 내려온 강박관념에서 비롯된 것도 많다. 예를 들어 ‘xx와 밥을 먹었다’든지 ‘xx와 만나서 환담했다’ 같은 것도 있던데, 이런 걸 모든 국민이 알아야 할까? 이런 식으로 매일 나오다보면 제 아무리 간디 같은 성인이라 할지라도 변할 수밖에 없는데, 간디에 조금 못 미치는 박 대통령이 변한 건 너무도 당연했다. 시간이 많다면 정신수련으로 극복할 수 있겠지만, 워낙 바빠서 7시간의 짬도 내기 힘든 대통령에게 그런 걸 요구하긴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최소한 지상파만이라도 대통령을 그만 놔줬으면 좋겠다.

비단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TV에서 보도할 만한 뉴스는 차고 넘친다. 아리랑TV 사장의 비리를 밝히는 데 공을 세운 따님을 출연시킨다든지, 요즘 진정한 충신이 뭔가를 보여주고 있는 최경환 전 부총리의 일대기를 보도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할 때는 보도를 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 3년을 돌이켜보라. 대통령이 한 중요한 일이 대체 몇 개나 되는가?

변하기 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 말고도 지상파의 대통령 외면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는 많다. 그 대표적인 게 욕을 덜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천만이 넘는 좌파가 살고 있고, 그들은 대통령이 말씀을 하실 때마다 거품을 문다. 하지만 아예 대통령 보도를 안 해 버리면 그들은 목표를 잃은 미사일처럼 방황하다 제 풀에 쓰러질 테니, 잘만 하면 좌파척결도 이룰 수 있다. 다행히 종편에서 박 대통령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으니 대통령 입장에선 그리 서운할 것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제안한다. 지상파 뉴스는 대통령 보도를 중단하라. 원칙과 신뢰의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서민 | 단국대 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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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이 종영된 날, 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혜리가 해낼 줄이야! 무시해서 미안해.” 제대로 연기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걸그룹 가수가 인기시리즈의 주인공 역할을 해낼지 걱정했는데, 그게 기우였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응팔>이 기록한 20%의 시청률은 공중파에서도 잘 보기 힘든 수치다.

이 드라마에 나온 출연자들의 연기는 다 출중했지만, 극중 주인공 ‘덕선이’를 위해 태어난 듯 보이는 혜리가 아니었던들 <응팔>이 이렇게 화제가 됐을까 싶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혜리가 천재 바둑기사 최택과 함께 중국에 갔을 때였다. 말이 안 통하는 호텔직원에게 몸짓 발짓을 동원해가며 “방이 너무 추워서 입이 돌아갔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은 나처럼 혜리를 불신했던 모든 사람을 겸연쩍게 만들었다.

혜리가 빛나는 연기를 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극중 배역이 혜리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 아닐까. <응팔>의 ‘덕선’이 그랬듯 실제의 혜리 역시 상대가 누구든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염치 불구하고 일단 먹고 봤을 것 같다. 만약 김태희였다면, 지금보다 나이가 십년쯤 더 젊다 해도, 이 배역을 소화하는 게 쉽진 않았을 것이다. 오해 없기 바란다. 지금 난 김태희가 연기를 못한다고 하는 건 아니다. 그녀의 연기력은 작년 후반기의 화제작 <용팔이>를 비롯해 수없는 히트작을 낸 것으로 이미 증명됐다. 그럼에도 김태희에게 ‘덕선이’가 어울리지 않다고 한 이유는 그녀의 삶이 엄청난 자기관리로 점철됐으리라는 추측 때문이다.

한창 놀고 싶은 중·고교 때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나처럼 못생겨서 할 수 없이 공부한 거라면 모를까, 빛나는 미모를 가진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그녀의 자기관리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김태희가 데뷔 이후 16년째 톱 탤런트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리라. ‘덕선이’에 김태희가 어색한 것처럼, 혜리 역시 <용팔이>에서 김태희가 맡았던 ‘한여진’ 역을 소화하는 건 버거울 것이다. 드라마마다 요구하는 스타일이 다른 만큼, 혜리 같은 천방지축도, 김태희로 대변되는 진중한 연기자도 꼭 있어야 한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다는 아니라도 정치인 중 일부는 혜리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줘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려 보자. 5공비리를 다룬 청문회 때 모르쇠로 일관한 전직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고, 3당합당이란 폭거가 자행될 때는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와 절연했다. 번번이 지면서도 지역주의에 맞서 싸웠고, 그래서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을 얻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검사와의 대화 때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고 한 것처럼, 하고 싶은 말은 거침없이 했다.

이런 그를 보수세력은 품위가 없다며 비판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의 재임 기간 국민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가 많은 매력을 지닌 정치인이었던 건 분명하다. 그가 ‘노사모’라는, 정치인 최초의 팬클럽을 거느린 것도 그 덕분이다.

노 전 대통령 이후 혜리형 정치인을 보는 건 힘들어졌다. 새누리당을 보자. 명백한 불의가 자행돼도 다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아예 체질이 됐다. 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은 국회의 권위를 지키려다 대통령에게 야단을 맞자 90도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당 대표 김무성은 납작 엎드리는 것도 모자라 대통령에게 아부를 해댄다. “이렇게 개혁적인 대통령은 앞으로 만나기 힘들 것이다”라니, 이렇게까지 해서 대표직을 유지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온다. 혜리형 정치인이 없는 건 야당도 마찬가지다. 차기 대선주자로 유력한 문재인을 보자.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낼 당시 부인을 백화점에 못 가게 하고, 청탁을 안 받으려 친구도 일절 만나지 않는 등 자기관리가 뛰어난 점은 십분 인정하지만, 그 이외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철수는 어떨까? 입대 전날까지 백신을 만드느라 바빠 가족들에게 군대 간다고 말도 안한 채 입대했을 만큼 자기관리의 화신인데, 너무 말을 아끼느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게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럼 지금 정치판엔 혜리형 정치인이 없는 것일까. 혜리형 정치인의 덕목이 ‘좌충우돌’이라면, 딱 한 분이 생각난다. 교과서 국정화로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 유체이탈화법을 즐겨 쓰는 데다, 바람같이 사라졌다 7시간 만에 나타나는 분, 이 정도라면 혜리형이 되기 충분하지 않을까? 물론 차이는 있다. 혜리의 좌충우돌은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반면, 이분의 좌충우돌은 주변을 어둡게 한다는 것. 아무렴 어떻겠는가? 있으면 그만인 것을.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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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아파 병원에 온 사람을 의사가 진료한다고 해서 감동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보고 월급을 받으니,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학생이 숙제를 하거나 택시기사가 승객을 안전하게 모시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들은 그 자체로 감동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이 당연한 일을 제대로 못했을 때 처벌이 따르기도 한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감동을 주고 있는 모양이다. 발단은 대통령의 발언이었다.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일을 제쳐두고 무슨 정치개혁을 한다고 할 수가 있겠나?” “일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잃어버린 시간, 인생을 누가 보상할 수 있겠나?” 얼핏 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올인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 같지만, 놀랍게도 이건 국회한테 한 말이었다.

물론 국회가 일을 잘한다고 할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대통령과 비교하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데다, 국회가 이렇게 된 건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를 찍어낸 것에서 보듯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쫓아내 버리는데, 국회가 소신껏 일할 수나 있을까? 대통령이 통과시키라고 강조한 소위 노동개혁 법안이 비정규직 허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근로자가 허용되는 업종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 젊은이들이 별반 좋아할 것 같지 않지만, 대통령이 간만에 민생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국회선진화법이었다. 3년 전 국회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은 법안 통과에 의석 과반이 아니라 60%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기준을 강화한 법안이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야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만들었는데, 그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결정한 건 당시 비대위원장이던 박 대통령이었다. 현재 새누리당 의석수는 157석으로 53.4%에 불과하니, 대통령이 국회, 특히 야당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하는 ‘직권상정’이란 게 있었던 것. 대통령의 명이 떨어지자 삼권분립 같은 건 예전에 갖다버린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장실로 달려가 정의화 의장을 협박한다. 여야 합의가 안되고 있는 노동개혁 법안과 경제살리기 법안을 직권상정해달라고 말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선 의장이 자기 당 출신인 만큼 설마 거절하랴 싶었을 테지만, 정 의장은 뜻밖의 말을 한다. “직권상정은 국가비상사태에나 가능하다고 국회법에 돼 있는데, 지금 경제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겠느냐?” 그는 자신에 대한 비난에 불쾌한 감정도 드러냈다. “국회선진화법에 찬성해 놓고 (그 법에 반대했던)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 이럴 시간 있으면 차라리 야당을 설득하라.”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하는 기관.’ 국회의장의 사전적 정의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외압에 굴하지 않고 국회의 명예를 지키는 것은 국회의장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 의장의 행동이 감동을 주는 것은 그간 우리 사회 요직에 있던 분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환경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환경부는 4대강을 반대하기는커녕 대대적인 홍보 활동에 나섰고, 간첩을 잡아야 할 국정원은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댓글을 달았다. 군통수권을 가진 대통령은 당연히 해야 할 전시작전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했다. 검찰은 대통령에게 누가 되는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일본 기자를 무리하게 기소했다 망신을 당했다. 해경은 배가 침몰하자 아이들 대신 선장과 선원들만 구했다. 이번에도 그렇다. ‘IMF 사태’를 거론하며 경제위기가 다시 올 수 있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에 경제부처 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경제가 말 몇 마디로 요동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건 명백한 직무유기다. 이런 와중에 국회의장이 대통령에 맞서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으니 사람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정 의장의 앞날이 그리 평탄할 것 같지는 않다. 애국단체들은 벌써부터 정 의장 규탄 집회를 열고 있고, 새누리당 의원들도 ‘국회의장 해임건의안’을 제기하는 중이다. 더 두려운 분은 바로 박 대통령으로, 역대 대통령 중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찍어내기’와 ‘뒤끝 작렬’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자리에 올라 있어서다. 국정원 댓글사건을 열심히 수사한다는 이유로 검찰총장을 찍어낼 때는 ‘혼외자식 의혹’이란 방법을 썼고, 여당 원내대표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던 유승민을 찍어낼 때는 그를 배신자로 몰면서 다음 선거에서 떨어뜨려 달라고 윽박질렀는데, 이번에는 어떤 방법을 쓸지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정의화, 그가 어떻게 되든 그의 이름은 기억해 놓자. 어쩌면 그가 이 정부에서 ‘해야 마땅한 일을 한 마지막 인물’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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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지난달 말, 7년간 복직투쟁을 해온 KTX 승무원들에 대한 고등법원 판결이 있었다.

KTX가 처음 출범하던 2004년, 공채를 통해 선발된 280명의 직원들은 당장은 계약직이지만 2년 뒤 정규직이 된다는 철도공사 측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계약만료에 의한 해고였다. 승무원들은 여기서 물러나는 대신 소송을 제기했다. “철도공사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해고 기간 동안 지급받지 못한 임금도 달라”는 게 그들의 요구였다.

1심과 2심은 철도공사가 그간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고 판결이 났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들이 철도공사의 직원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고, 뒤이어 열린 파기환송심도 결국 원고패소로 결말이 났다. 이제 승무원들은 정규직 채용은 고사하고 이전에 지급받은 임금 8600여만원을 다시 토해내야 한다.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판결은 별반 화제가 되지 못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지난 7년간 이들의 투쟁이 주목을 받은 적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많은 이들이 KTX 승무원들의 욕심을 탓했다.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란 책에는 20대 대학생들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되잖아요.”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을 때 저자는 이 학생을 걱정했다고 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그 학생이 혹시 왕따가 되지나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그건 기우였고, 다른 학생들 모두 이 학생의 말에 동감을 표시했다. 많은 젊은이들의 꿈인 공사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들어온 이들이 쉽게 차지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갖는 것도 전혀 이해 안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생각을 좀 달리해보자. KTX 승무원들로 인해 ‘비정규직으로 2년간 근무하면 정규직이 된다’는 약속이 지켜지는 사회가 된다면, 지금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수많은 젊은이들도 정규직의 꿈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KTX에 대한 사회의, 특히 젊은층의 무관심이 아쉽다. 판결이란 게 법을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긴 해도, 세간의 여론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이번 승무원들의 소송에서도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법 민사1부의 판단은, 같은 사안을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달랐으니 말이다.

이보다 먼저 있었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해고무효 확인소송을 보자.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본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사측이 해고회피 노력을 하지 않았다며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에도 문제는 대법원이었다. 2014년 말, 대법원은 해고가 적법하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판결이 내려진 데는 우리 사회의 여론도 한몫을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25명의 해고자와 가족들이 자살 등으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람들은 기이하리만큼 무관심으로 일관했으니까. 오히려 젊은층은 “해고도 마음대로 못하면 회사 망하라는 거냐?” “잘리면 다른 일 하지, 왜 파업하고 앉았느냐?”며 해고자들의 복직투쟁을 조롱했다. 그들의 단견이 아쉬운 이유는 이 판결로 인해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은 정리해고 요건을 갖추지 않고 직원을 해고해도 상관없게 됐고, 이 부담은 고스란히 젊은층에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우리 사회를 짓누른 건 벌써 십년도 더 된 일이다. 이들을 가리켜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니 하는 말이 만들어지곤 하는데, 안타까운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당하게 해고된 근로자들의 편에 서지 않는 것도 그렇지만, 자기들끼리 뭉쳐서 뭔가를 이루려는 움직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더 큰 문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정부를 압박하거나, 정규직을 많이 안 뽑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인다든지 하는 일을 지금의 20대가 벌였다는 기사를 본 적이 없다. 미약한 개인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지만, 연대하면 힘이 커진다. 현재 7년째 동결된 대학등록금은 대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이룬 빛나는 성과가 아닌가?

2006년, 프랑스 대학생들은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에 반발해 거리로 나왔다. 4년이 지난 2010년에는 노동자들의 정년을 2년 연장하는 것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서 고교생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이와는 달리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지금도 토익점수를 몇 점 더 올리기 위해 영어책을 뒤적이고, 짬이 날 때마다 댓글을 단다. “정규직 날로 먹으려 하면 안되잖아요.”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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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2006년 한 해 동안 H신문에 칼럼을 썼다. 당시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글쓰기 훈련이 덜 된 데다, 내가 쓴 글을 전 국민이 본다는 착각 때문에 그나마 있는 실력을 다 발휘하지도 못했다. 그보다 더 나를 힘들게 했던 건 당시 대통령이 처한 현실이었다. 칼럼을 쓸 때 나름의 원칙이 있긴 했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쓰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더 비판하자.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대통령보다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과 보수언론의 공세가 비상식적이었으니까. 무슨 일만 하려 하면 ‘친북’ 딱지를 붙였고, 사람을 하나 쓰면 ‘코드인사’라고 거품을 물었다.

기록적인 영남편중인사를 자행하는 현 정부에 아무 소리도 안하는 걸 보면, 그들의 비판은 그저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진보세력들까지 비판대열에 가세했다. 모두가 대통령을 욕하다 보니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유행어가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까지 욕할 필요가 있을까? 3주에 한 번씩 칼럼이 연재됐는데, 늘 쓸 게 없어 고민이었다. 할 수 없이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면 죽을까?” 같은 시답잖은 글만 쓰다 잘렸다.

2010년, 경향신문에서 불러준 덕분에 다시 칼럼을 쓰게 됐다. 한번 실패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걱정이 됐다. 게다가 이번엔 2주마다 한 번씩이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건 다 괜한 걱정이었다. 맛집의 비결은 좋은 재료를 충분히 쓴다는 것, 글쓰기도 이와 다르진 않다. 좋은 소재만 있다면 글쓰기 실력이 좋지 않다고 해도 남들이 읽을 만한 글이 나오기 마련이니까.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은 하루가 멀다 하고 글을 쓸 소재를 제공해 줬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 충격적인 것들이라 도대체 뭘 가지고 써야 할지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20조원을 써가며 멀쩡한 강바닥을 파서 자신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들이 운영하는 기업들에 큰 이익을 안겨줬고, 대선 때 약속한 전 재산 헌납도 결국 ‘꼼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원외교라는 명목으로 4대강보다 더 많은 돈을 퍼부었고, 국민 세금으로 아들에게 내곡동 땅을 사주려다 발각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이명박의 언행도 큰 화제가 됐다. 웬만한 일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로 상대의 입을 막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전매특허처럼 돼 있는 유체이탈화법도 사실은 이명박이 원조였다. 예컨대 내곡동 사저가 문제가 됐을 때 이명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의 아니게 사저 문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이 시절은 칼럼니스트들의 전성기였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해 팟캐스트들이 유행하게 된 것도 이명박의 얘기를 다루기엔 신문지면이 너무 좁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이면 매주 쓸 수도 있겠어!”라고 말하기도 했고, 실제로 경향 측에 칼럼 두 개를 보낸 뒤 “알아서 선택하시라”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칼럼니스트의 호시절은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끝났다. 박 대통령은 기이할 정도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씀을 많이 하시냐면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쩌다 하시는 말씀은 일반인이 알아듣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2015년 5월 국무회의 도중 하신 말씀을 보자.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정신을 차리고 나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걸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셔야 될 거라고 생각한다.”

해석이 돼야 칼럼으로 쓸 텐데,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듣지 못하니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2주라는 마감기간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억지로 짜내듯 보내는 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칼럼을 그만 쓰겠습니다”라고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차 대통령이 드디어 일을 시작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그간 소재 고갈로 힘들어하던 분들이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 환호했고, 신문 오피니언난의 대부분이 국정화 관련 글들로 채워졌다. 한편으론 걱정이 된다. 당분간은 국정화로 끌고 나갈 수 있지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앞으로 50여번 더 글을 써야 하는데, 무슨 수로 채워야 할까? 남은 임기 2년이 두렵게 느껴지는 이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고인은 깜짝쇼를 좋아했고, 자화자찬 기질도 좀 있었다. 실명제를 발표한 뒤 기자들에게 “놀랬지?”라며 즐거워한 대목이라던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사망하자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었다”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와중에, 그분이 대통령을 하던 시절에 내가 칼럼을 썼다면 어땠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스스로 내린 결론, “지금보다야 나았겠지!”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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